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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病床 앞에서의 어처구니없는 騷動

 

 

 

당금 무림의 상황(狀況)은 걷잡을 수 없는 삼성무림청의 팽창으로 인해 난세의 격변 속에 휩싸여 있었다.

은밀히 자행되는 고수들의 실종……

그리고 혈겁……

소일초는 그의 작은 어머니의 말이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_____삼성무림청!

 

이것은 분명 아버지 도왕 소선풍을 해쳤을 혈기자의 다른 세제자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때문에,

그들을 상대하여 복수를 하고 삼성무림청이 만드는 난세를 평정키 위해 아들인 신행마동 소일초,

바로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한 순간,

소일초의 아름다운 동공에 안타까운 빛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시선은 석상처럼 누워 있는 도왕 소선풍을 주시했다.

안타까움과……

후회와 염려와 아픔을 실어 나르는 그 눈빛……

문득,

지금까지 격동하던 무심군자가 진정된 조용한 음성을 흘려냈다.

[백인장의 모든 사람이 장주님의 상세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이때에……]

[…………]

[이처럼 장주님께서 차도가 있으시다는 것을 알린다면……우리 백인장의 사기는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충천할 것이 분명하오……]

무심군자의 음성에는 지금까지 움추려 있었던 백인장이 날아오를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듯 어린애 같은 희망이 가득 배어 있었다.

소일초……

나이에 비해 세상을 일찍 부터 돌아다닌 그의 영민한 눈빛에 문득 어떤 의혹이 배어나왔다.

[우리 백인장과 구파일방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갑작스런 소일초의 질문에 무심군자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말했다.

[구파일방의 힘도 엄청나기는 하나……]

[…………]

[그들이 자파의 이익과 명리를 버리고 단결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어려운 사실인 데다가……]

[…………]

[우리 백인장과는 서로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는 처지이기에 그저 상호 방관만 하고 있는 입장이지요.]

소일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사와 친해질 수 있다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겠지요.]

[그야 일를 말이겠습니까만 그들은 강한 배타성을 가지고 있어서……]

더불어 무심군자의 얼굴에 피어나는 더욱 짙은 의문,

도저히 소일초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그런 무심군자를 주시하며 소일초가 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방법(方法)은 이제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한 가지 방법뿐이라니요?]

[우리 백인장은 전부터 무림 정의를 위해서 앞장서 왔다고 했지요?]

[그렇소이다.]

[아까 봉공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지금 아버지께서 움직이지 못하시는 동안에는 제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

두 봉공은 소일초의 고강한 무공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려는 작정이었는데,

이 철부지 천방지축, 무공만 강한 줄 알았던 소일초가 스스로 하겠다고 하니 눈이 둥그레 질 지경이었다.

조금 변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기는 했지만 이처럼 철이 들었을 줄은 몰랐다.

갑자기 무심군자의 손이 아주 빠르게 움직이며 소일초의 견정혈을 찍어갔다.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수혼도객과 서공화, 조예진이 깜짝 놀랐으나 저지할 틈이 없었다.

무심군자는 삼현 중의 한 사람인 것이다.

소일초는 무심군자의 행동을 보면서도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심군자의 손이 그의 견정혈을 쳤는가 싶었는데 그 손은 소일초의 어깨를 관통해 버렸다.

조예진의 우수는 어느새 무심군자의 천령개에 닿아있었다.

그녀는 안광을 새파랗게 빛내며 무심군자를 노려보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무심군자는 두개골이 깨어질 판이었다.

소일초의 어깨를 관통했던 무심군자의 손은 바닥을 향해 축늘어져 있었고……

무심군자는 경악해 하고 있었다.

소일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예진의 소매를 당겨 옆으로 비키게 한 후 무심군자에게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봉공께 제가 죄를 지은 것이 있어요?]

무심군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무엇 때문에 저에게 살수를 썼습니까?]

무심군자는 콧웃음을 쳤다.

[혈기대종사(血旗大宗師)! 언제까지 모습을 숨기고 우리를 기만할 작정이오?]

[……?]

무심군자의 말에 좌중에 있던 사람들의 안색이 확 봐뀌면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더우기,

조예진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버렸다.

[대체 무슨 말씀이지요. 봉공! 내가 혈기자라니 말도 안돼는 소리를……]

[흥, 선배의 무공은 무림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독특하고 고강하겠지만 행동하는 것은 하류잡배만도 못하구료……]

무심군자는 죽음을 각오했는지 침상에 있는 소선풍을 몸으로 가린채 당당하게 말했다.

소일초는 어떻게된 영문인지를 몰랐다.

[작은 어머니……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러나,

조예진은 파랗게 질린 채로 남편 옆으로 다가가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사……사부이신가요?]

[작은 어머니……!]

[당신께서 우리 아이마저 해쳤나요? 애 아버지만으로는 부족해서요?]

아무도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소일초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예진의 말소리에는 울음이 섞이면서 점점 높아갔다.

[그렇게 제 행복을 다 파괴하고 싶으셨어요? 차라리 저를 일 장에 죽이시면 더 간단 하잖아요?]

그녀는 이제 오히려 소일초에게로 다가갔다.

[저도 살고 싶지 않아요. 우리 식구가 모두 같은 날 죽도록 지금 당장 죽여주세요.]

무심군자와 서공화, 그리고 수혼도객이 소리치며 그녀를 막았다.

[주모……안됩니다.]

그러나 조예진은 이미 반쯤 실성했다.

두손을 내저어 순식간에 세 사람을 물리치고 소일초를 향해서 울부짖으며 다가갔다.

[우리가 사부에게서 도망쳐 나왔지만……사부께서는 어디 잘 하셨나요? 이 만 명이 넘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무조건 주살하게 한 사부는 잘 하셨어요?]

벽으로 튕겨져 버린 세 사람은 조예진의 무공이 경공을 펼치는 것만을 보았을 뿐,

이렇게 무공을 펼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무림의 일반 고수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혈기자의 제자의 솜씨!

진정 경악할 만 했다.

무산신의가 침상에 멍하니 누워있는 소선풍을 바라보면서 힘겹게 중얼거렸다.

[끝장이다. 이렇게 되면 장주마저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소일초는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다가서는 조예진을 보자 어쩔 줄 몰라하면서 쓰러진 무심군자를 바라본 후 그만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으앙------엉엉엉 ------]

그가 언제 운 적이 있던가?

정말로 태어날 때 운 이후 처음으로 우는 소리였다.

갑작스럽게 그가 울음을 터뜨리자 조예진은 울부짖음을 뚝 멈추었고 사방에는 고요가 가득차 버렸다.

오직 그의 울음소리만이 백인장 옛터의 한 석실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소일초는 작은 어머니와 아기일 적 부터 함께 지냈던 봉공, 서공화 등이 자기를 전혀 다른 사람 취급을 하자 어쩔 줄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작은 어머니가 죽여달라고 울부짖으며 다가들자,

무공이고 뭐고 다 소용없이 어린애 답게 겁이나서 울음을 터뜨려 버린 것이다.

그의 울음은 한동안 계속 서럽게 울려퍼졌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와 무심군자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조예진이 진정을 한 후 조심스럽게 울고있는 소일초에게 물었다.

[정말, 우리 아기가 맞는가요?]

그녀의 물음은 조금 이상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일초가 더욱 큰 소리로 울면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으앙------작은 어머니-----엉엉------]

조예진은 그를 품에 안으며 깊은 안도를 했다.

자기가 기른 귀여운 말썽꾸러기가 확실하다는 심증을 얻은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의 사부였다면 본색을 드러냈지 정말 어린아이 처럼 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울먹이는 소일초를 품에 안고 토닥거리며 고개를 돌려 무심군자를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 보며 소리쳤다.

[좌봉공께서는 이리 오셔서 해명해 보도록 하십시오.]

[…………]

[만일, 해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경우, 소장주를 놀라게 하고 이토록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 엄중히 문책하겠어요.]

조예진이 백인장에 들어온 이후 눈살 한 번 찌푸리는 법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무심군자를 노려보는 그녀의 두눈에서는 파란 광채가 뻗쳐나와 무심군자가 감히 마주볼 수 조차 없었다.

서공화와 수혼도객이 어느새 그를 좌우에서 견제하고 있었다.

무심군자의 음성이 떨렸다.

[정말……소장주란 말씀이십니까?]

[흥,아무리 천하제일인이라도 아이처럼 우는 재주가 있겠어요?]

[저는……소장주께서 너무 변한 듯 하여……일단 의심이 들었습니다.]

[…………]

[게다가 혈기자가 반노환동했다는 말을 듣고 어쩌면……소장주로 변신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더욱 깊어갔지요……]

[…………]

[……소장주께서 그 전에도 오갑자의 공력을 지니고 계셨지만 지금의 소장주께서는 모든 공력이 깊이 안정되고 갈무리 되어서…… 천고에 보기 더문 경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세상에 그런 경지에 든 사람이 있다면 그가……바로 누구겠습니까?]

[혈기자……]

수혼도객이 대답했다.

[……그래도 심증 만으로는 안되겠기에 직접 손을 쓰본 것입니다.]

[…………]

[소장주께서는 날때부터 금강신(金剛身)을 가지고 계셨으니까 충격은 받아도 전혀 부상은 입지 않으리라 생각했었지요……그런데……]

[그런데……]

조예진이 딱딱하게 말을 받았다.

그러다 갑자기,

무산신의 서공화를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오……맙소사……저 분이 충격을 받지 않으셨는지……빨리 살펴보도록 하셔요.]

그녀는 소일초를 안은채 소선풍의 곁으로 가서 그를 지켜보았다.

서공화는 신중히 그의 상태를 살폈고……

무심군자는 넋이 나간듯 아무말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일초마저 울음을 뚝 그쳐 침묵이 석실에 가득한 데,

서공화가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늘이 돌보셨습니다. 장주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조예진은 소선풍의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소일초를 안고 일어서며,

[다른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세요.]

이때,

소일초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눈동자가 움직였어요.]

오오……

스스로의 의지로 아무 것도 움직일 수 없었던 소선풍의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 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큰 눈이 소일초와 조예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초점이……초점이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의 눈빛은 말하고 있는 듯 했다.

흐릿하던 그의 눈에서는 강렬한 신광이 뻣쳐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소일초와 조예진, 그리고 무심군자가 벌인 한바탕의 어처구니 없는 소동이 겨우 공력을 모아가던 소선풍에게 자극을 준 것이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귀로는 생생하게 들려오는 말도 아닌 소리들…………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그의 아내와 수하들……

그의 가슴은 답답함으로 가득차 자기도 모르게 강하게 기를 운용했고,

그것은 뜻밖에도 그의 시신경을 다시 연결시켜 버린 것이다.

그의 눈 앞에서 무산신의가 손가락을 펴보이며 물었다.

[장주……내 말이 들리시오? 그렇다면 나를 보고 아니면 주모를 봐주시오……]

입모양을 분명하게 하며 하는 서공화였다.

 

× × ×

 

삼현자(三賢者) 중의 하나인 무심군자는 목이 달아날 뻔한 상황에서 소선풍으로 말미암아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머리가 뛰어난 사람은 쉽게 남을 의심하고, 꾀를 부리는 자는 제 꾀에 망하기 쉽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사례였다.

소선풍의 상세는 이제 반 년이면 충분히 쾌유될 것이다.

그러나,

무심군자는 이전에 비해 훨씬 신중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 × ×

 

풍운만변(風雲萬變)의 무림(武林),

당금에 이르러 무림은 더더욱 돌풍의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그것은 바로,

저 위대한 정의의 혼을 불태워온 백인장(百刃莊)에서 발해진 하나의 첩지로 부터,

더욱 거세어 지고 있었다.

 

___ 본 신행마동 소일초……정의와 복수의 이름으로 무림정벌을 선언한다……이 후 삼성무림청을 비롯한 사마(邪魔)는 신행마동의 손으로 그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되리라……

 

경악,

몇 년 동안 잠잠하여 철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한 백인장의 꼬마 고수가 다시 무림에 풍운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의기소침하여 웅크리고 있던 백인장에 그의 선언은 찬란한 서광이었으며,

안에서만 갈고 닦던 백인장의 움추려 있던 힘이 밖으로 준동하기 시작했고,

충일하여 터지는 정(正)의 소리가 때맞추어 천하 곳곳에서 샘솟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은 알고 있었다.

이제,

맞부딪치게 되리라.

무림사상 가장 가공할 팽창력을 지닌 삼성무림청과……

수 백 년 내 최강의 문파로 알려져 왔던 힘이 집약된 백인장의 대격돌……

중원의 땅도, 바다도, 하늘도 숨죽여 긴장했다.

백인장의 겁모르는 천방지축 신행마동의 행보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 × ×

 

이상스런 물건들과……

화려한 장식……

그리고,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정실이다.

이곳은 백인장의 수 많은 정실 중 하나였으며……

황촉불이 은은히 타고 있엇다.

한데 돌연,

[…………]

어느 노느라고 지친 아이가 잠들어 있는가?

깊고 부드러운 숨소리가 한 편의 태사의에서 흘러나왔다.

또한 어디서 울려 퍼지는지 알 수 없는 낮은 휘파람 소리……

여기는……신행마동 소일초의 방,

호피로 씌워진 태사의에 깊숙이 묻혀있는 사람은 무림정벌을 선언한 소일초가 분명했다.

한데,

바로 그의 앞에는 자단목탁이 놓여 있었고,

그곳에는 한 가지의 물건과 책을 펼쳐보고 있는 한 소녀(少女)가 있었다.

하나의 물건은 손바닥 크기의 만년청옥(萬年靑玉)으로 된 하나의 청옥소도(靑玉小刀)였다.

그 옥검에서는 무어라 형용해 낼 길이 없는 신비한 광채가 서기마냥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한 소녀(少女)……

오오……

그 자단목탁 옆에 앉아 있는 십삼 사 세 가량의 소녀가 지닌 아름다움,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무수한 비유를 찾고 무수한 형용(形容)을 한다.

그러나 정작 아름다운 것 앞에는 아무런 비유도……아무런 형용도 못한 채……

그저 숨을 죽이고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뿐이다.

그렇다.

바로 이 소녀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은 그 어떤 비유를 거부했고……

그 어떤 형용을 불허하는 아름다움이었다.

거기에다 눈보다 하얀 백의에 쌓인 그 소녀의 성결함과 고아함은 이 세상을 온통 그 두 가지의 기운으로 표백시켜 버릴 만큼 강렬했다.

한데 이것은 또 무엇인가?

밤하늘 천만 가지 뭇 성좌(星座)를 담아 흘려내는 듯한 그 신비로운 동공은 보석처럼 반짝이는데……

그리고 그 소녀의 신체 어디에서 인지는 몰라도 쉴 새없이 흘러나오는 낮은 휘파람소리,

마치 그 소녀의 깊은 영혼 속에서 울려나오는 듯 했으니……

[휘이휘이……휘이이……]

한 번의 멈춤이나 간격도 없이……

입술을 벌리지도 않는 그 소녀는 휘파람새 처럼 이 낮은 소리를 되풀이해 흘려내는 것이니,

그 소녀에게는 오직 이 휘파람 만 존재하는 듯 싶었다.

[으음……음냐……]

태사의에 앉아서 잠이들었던 소일초,

입을 벌리고 큰 하품을 하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물끄러미 청옥소도와 정신없이 책에 빠져 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의 뇌리에는 조예진의 말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_______ 애야…… 이 청옥소도는 패도구룡인(覇刀九龍刃)으로써……어린도와 함께 바로 백인장의 장주의 신분을 나타내는 이대(二大) 신물(信物) 중의 하나이다.

어린도는 몸에서 놓을 수도 있지만, 이 패도구룡인은 절대적으로 외부인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린도가 장주가 사용해야 할 병기라면,

이 패도구룡인은 당연히 장주를 대변하는 것…… 그 어떤 자건 백인장의 사람이라면 이 패도구룡인을 대하면 장주를 직접 대하는 것처럼 경복해야 한다.

그리고……이것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비밀이지만,

이 구룡은 하나하나가 백인장주의 독문무공인 마도구식(魔刀九式)을 담고 있다고 한다.

네 무공도 이제는 충분히 마도구식을 펼치고 남음이 있으니 틈이나는 데로 비밀을 알아내 익히도록 해라.

이것을 만든 분은 칠백 여 년 전 우리 백인장의 일대기인이었던 신수기장이라는 분으로서……

무공에 대해선 전혀 문외한 이었음에도,

그 당시 장주이셨던 네 선조의 명을 받아 패도구룡인이라는 절세의 신물을 만드신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마도구식의 원래 명칭은 패도구식이었으나,

너무나 강맹일변도이고 한 번 발출되면 기어이 피를 보고야 마는 도법이었으므로 마도(魔刀)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조예진의 말을 생각하고 있던 소일초의 눈에서 빛이 반짝 거렸다.

그리고 그 눈빛은 인간이라 여길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절새의 미소녀의 숙여진 얼굴로 옮겨졌다.

별 빛 같은 눈망울로……

오직 잔잔한 휘파람소리 만을 쉬임없이 흘려내며 책을 보고 있는 소녀(少女)……

그 소녀를 향한 소일초의 눈빛이 더욱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또다시……

떠오르는 그의 작은 어머니 조예진의 음성……

 

____ 이 소녀는 삼 년 전 네 아버지께서 엄청난 내상을 입고 돌아오셨을 당시 품에 안고 온 아이로 내 사부의 손녀인 주소아다.

그때 이 아이의 나이는 불과 열 두 살……

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역시 피투성이 몸이었고,

당시에는 이 아이 또한 어떤 정신적인 충격으로 기억이 상실된 터라 신분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다 싶었는데……바로 내가 사부밑에 있을 때 직접 돌보았던 불쌍한 소아(小阿)였던 것이다.

한데 놀라운 것은,

그때 이 애의 체내에는 무려 삼갑자의 내공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외다.

네 내공은 이미 그당시 오갑자였으니 대단치 않은 것으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만,

무림를 통틀어 보아도 삼갑자 이상의 무공을 지닌 자는 일백 명 내외일 것이다.

피투성이 이면서도 소아의 몸에서는 휘파람 소리가 울려나와 혹시 십이 대 고수의 하나인 취풍녀(吹風女)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대 봉공께서 자신들이 만나본 취풍녀는 이십대 여인이었다고 증언을 했다.

그러나,

소아가 취풍녀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소일초는 조예진의 말을 생각하면서 더욱 세밀히 절색의 미소녀를 살피기 시작했다.

눈빛은 영롱히 반짝이고 있으며……

지금 과거의 기억을 상실하고 있기는 했으나 총명하기 이를데 없는 소녀……

(음……이 계집애는 어떻게 해서 입을 벌리지도 않고 휘파람을 부는 묘한 기술을 가지고 있을까?)

주소아는 그녀를 판히 바라보는 소일초를 느끼고 고개를 들며 생긋 웃어보였다.

주변이 온통 환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기에 소일초는 정신이 아찔했다.

(제길……되게 예쁘군……작은 어머니 만큼 예쁜 것 같은데……참 혹시 머리가 이상해 져서 기억을 상실해 버리면 몸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닐까?)

주소아의 얼굴에서 눈을 떼면서 소일초는 중얼거렸다.

[집을 나서기 전에 꼭 서공화 영감에게 한 번 물어봐야지……]

 

조예진은 주소아가 기억을 되찾기만 하면……

그의 아버지를 그 지경으로 만든 삼수와의 어떤 갈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허나 해석하게도 그녀는 기억이 상실되어 있으니……

 

지금 주소아가 보고 있는 책은 생사보록(生死寶錄)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소선풍에게 안겨왔을 때 그녀의 품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예전에 그녀가 생사보록을 익힌 적이 있는 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주소아는 생사보록을 다시 익히고 있었다.

조예진의 말을 따르자면 그녀의 무공에 대한 자질은 소일초에게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글 만을 좋아하던 문사였으나, 그녀의 조부는 대기인 혈기자인 것이다.

조부의 혈통 때문인지, 그녀의 엄청난 무공에 대한 안목에 백인장의 모든 사람들이 지난 삼 년 동안 적지 않게 놀랐었다.

조예진은 소일초에게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고,

지은 죄가 많은 그는 마지못해 응락했으나 내심 불만이었다.

(겨우 나보다 두 살 많은 계집애인데……내 말을 듣지 않으면 비성성으로 혼을 내 줘야지……)

그러나……

소일초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순진 무구한 비성성들은 영악한 주소아의 꼬임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하고 하는 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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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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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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