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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장

 

             토사구팽 (2)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대별산으로 오르는 두 사람의 젊은이가 있었다.

한사람은 죽립을 썼으며 죽립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삼십여세 정도로 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십이 채 되지 않은 청년으로 머리카락이 고슴도치처럼 빳빳하게 자라있었다.

이들은 석두공과 금사종이었다.

[놈들의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사십 명이 넘는 자들이 천하 곳곳으로 돌아다니며 살인을 일삼으니 그것을 어떻게 찾는단 말입니까?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잖습니까?]

석두공이 금사종에게 말했다.

석두공은 누적된 피로가 회복된 후에 금사종과 함께 척살대를 찾아서 천하를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척살대가 척살대라고 이마에 써붙히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수만 명이 숨어도 감쪽같이 숨어버릴 수 있는 넓은 중원 땅에서 겨우 사십여 명의 인물들을 찾아낸다는 것은 바다에서 바늘 찾기보다야 쉽겠지만 어려운 일임은 분명했다.

[나도 척살객이네. 그들의 행동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네.]

금사종이 말했다.

석두공이 물었다.

[그들이 대별산에 모이기라도 한답니까?]

[바로 그렇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미 남양(南洋)에서 그들의 표기를 발견했었네. 표기가 가리키는 곳은 줄곳 이곳 대별산이었네.]

석두공의 이마가 좁혀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살겁도 목격하지 못했는데... ]

[곧 보게 되겠지.]

금사종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문득 석두공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형님 말이 맞군요. 곧 보게 될 것같습니다.]

슈아아앙...

석두공은 갑자기 육지비행술을 펼쳐 산위로 달려갔다.

금사종의 귀에도 장력이 부딪히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봉우리의 중간 부분에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그 절벽의 앞쪽에는 제법 넓은 암반이 있었다.

[이 이놈들... 네놈들 마저 나를 배신하다니!]

해천월은 치를 떨면서 분노했다.

그의 전신은 이미 수십 개의 검상과 도상, 그리고 여러가지 괴이한 수법에 의해 만신창이 되어있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들은 스무 명 남짓, 그들은 모두 신호를 보고 모여든 척살객들이었다.

척살객 중의 한 자가 말했다.

[후후후! 우리에게 금제를 한계 당신들 실수야. 당신들 세 사람의 영패가 동시에 모여지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우리를 통제할 수 없어.]

[네놈들은 잔혼살객의 명령을 받지 않았느냐?]

해천월이 고함쳤다.

다른 척살객이 키들키들 웃으며 말했다.

[우린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니까. 잔혼살객의 명령을 들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뜻이 그의 말과 우연히 일치했을 뿐이지. 자 그럼 이제 팔황지옥도법의 원본을 내 놓으실까? 뭔가 빠져있는 불완전한 비급을 익히는 건 위험한 일이거든...]

[네 네놈들... ]

해천월이 검을 움켜잡았으나 손에 힘은 들어가지 않고 핏물만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척살객이 말했다.

[우리 열명의 합공을 당신은 견디지 못했어. 흐흐흐... 그렇다면 잔혼살객이나 부운청풍객도 비슷할 것 아닌가? 으하하하... 삼마경의 진본(眞本)을 모두 빼앗아 연성하게 된다면 천하에 우리를 당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으하하하하... ]

척살객들은 마치 자신들의 세상이 도래하기라도 한 듯이 웃어 제꼈다.

해천월은 내심 탄식했다.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히고 기르던 개에게 물린다고 하더니..... 내가 심제을에게 배신당한 데 이어 이놈들에게까지 당하다니.... )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거듭된 척살객들의 공격으로 그의 몸은 회복될 수 없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다.

부하들은 모조리 죽거나 흩어졌으며 지금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문득 해천월의 눈에 척살객 들의 뒤에 있는 굵은 나무가 들어왔다.

사람 허리어림에서 동강이 난 거대한 소나무인데 얼마나 굵은지 장정 몇 사람이 안아도 다 못 안을 정도였다.

나무 둥치 옆에는 썩어가고 있는 거대한 소나무의 잔해가 누워있다.

“허억!”

그 소나무를 본 순간 해천월은 혼비백산했다.

(이...이곳이 바로 그곳이었구나. 그의 혼령이 있어 복수라도 하는 모양이구나!)

척살객이 손을 내밀었다.

[자 어서 내놓으시지.]

해천월은 눈을 부릅떴다.

마치 십년 전의 상황이 그의 눈앞에서 재현되는 듯했다.

아니 실제로 그는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십년 전의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도 바로 이 장소였다.

해천월은 중얼거렸다.

[똑같다. 저렇게 내미는 손까지... 똑같다. 그가 독비신검객(獨臂神劒客)의 망령이 저들에게 붙었구나.]

그는 어디서 무슨 힘이 생겼는지 버럭 고함쳤다.

[너를 죽인 것은 심제을이다! 왜 그에게 직접 복수하지 않고 나를 괴롭히느냐? ]

그의 눈은 기이한 광기가 번들거리고 이미 눈앞을 보고 있는 것같지가 않았다.

손을 내밀었던 척살객이 놀란듯 눈이 둥그레졌다가 비웃음을 지으며 내뱉었다.

[지은 죄가 많아서 미쳐버렸군.]

[푸하하하... ]

척살객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난.... 난 죽지 않을 테다. 비켜라!]

쐐애액!

해천월이 갑자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토록 만신창이 된 몸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불가사의였다.

척살객들은 성급하게 잡으려고 하지도 않고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것이니 금방 지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목표가 해천월이었군. 해천월이 심제을 등에 의해서 제거되었다는 말이 사실이었어.]

스스스!

척살객들이 달려가는 뒤로 석두공과 금사종이 나타났다.

[잘하면 몽땅 다 한군데 몰아서 죽일 수도 있겠군요.]

[아마도 살아있는 자들은 다 모일 것같군. 후후후... 한데 그들의 말을 들었겠지.]

금사종이 웃고 말했다.

석두공이 씽긋 웃으며 말했다.

[가당찮은 꿈을 꾸고 있더군요. 명년 오늘이 제사날인 줄 모르고...]

[가만 두어도 죽을 놈들이지. 내가 저놈들에게 납과 수은을 먹였지. 아마 한 두 달 내에 다 죽게 될 거야.]

금사종은 자신이 영단에 납과 수은을 넣어 먹인 사실을 이야기했다.

석두공과 금사종은 해천월의 생사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시간이 좀더 지나서 척살객들이 더 많이 모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해천월과 척살객이 달려간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사종의 이야기를 들은 석두공이 물었다.

[흑백쌍사는 살려주었습니까?]

[반만 살려주었네.]

[...?]

의아한 표정을 짓는 석두공에게 금사종은 싱긋 웃어보이며 말햇다.

[그자들은 도저히 교화할 수 없는 자들이었지. 그렇다고 평생 데리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그자들의 경락의 끝을 모두 잘라버렸네. 내공은 가득해도 사용할 수가 없게 된 것이지.]

[그것 참 좋은 방법입니다. 맞을 때는 힘을 쓸 수 있지만 때릴 때는 힘을 쓰지 못할 테니까요.]

석두공은 그 같은 수법에 박수를 치면서 환영했다.

얼마를 더 걸어가다가 그가 말했다.

[몇 명이 더 늘었습니다. 이제 해천월이 죽을 때인 모양입니다.]

해천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독비신검객(獨臂神劒客) 섭영소! 노부가 아니다. 나를 막지마라! 모든 일을 꾸민건 심제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난 우연히 알게 되어 말려들었을 뿐이다.]

[흐흐흐... 이 영감이 독비신검객까지 죽인 모양이군. 어쩐지 지난 십여년간 독비신검객이 소식이 없다 했지.]

다른 음성도 들려왔다.

석두공과 금사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섭영소(攝瑩宵)!

 

고검문주 섭군천의 막내아들이며 그의 유일한 희망이라던 그가 아닌가?

섭군천은 섭영소가 우연히 얻었던 삼마경이 부운청풍객 등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섭영소가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한데 지금 해천월이 독비신검객이 섭영소라고 부르면서 뭔가 변명하고 있지 않은가?

쐐애액!

서로를 마주 본 석두공과 금사종은 빛살처럼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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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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