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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出世! 隱世正劒會! (1) 

 

 

 

 

-단혼곡(斷魂谷)!

 

천연의 요새인 이곳은 단 한 사람이 지킨다 하더라도 만 명의 적을 막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계곡을 들어서면 우선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짙은 운무가 가로막는다.

바닥 곳곳에는 깊은 틈이 있었으며, 또한 칼날같은 바위들이 천연의 진세를 이루어 사람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단혼곡에서 설치한 기관진식들로 말미암아 이곳은 천군만마도 침입할 수 없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단혼곡의 이러한 지형과 사파에 치우친 문파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몇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다.

단혼곡의 제자들 역시 밖으로 좀 체 나오지 않았다.

단혼장(斷魂掌)과 단혼검(斷魂劒)은 이곳 단혼곡의 이대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혼장은 남아있지만 단혼검은 하삼풍의 아들이 실종되면서 함께 사라져 버렸다.

만약 하삼풍의 손에 단혼검이 쥐어지기만 한다면 그의 무공은 면모를 달리하게 될 것이다.

한데 천하의 금지(禁地)라고 할 수 있는 이곳 단혼곡 입구에 이십 여 명의 검객들과 한대의 가마가 나타났다.

화려한 치장을 한 가마는 단혼곡 입구에 멈추어섰다.

가마 안에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해남검파의 진우백이 일전의 약속대로 하곡주를 뵙고자 찾아왔소. ]

그의 음성은 비록 낮았지만 내공이 충만해 있어 단혼곡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에 진우백은 다시 외쳤다.

[하곡주를 뵙고자 진우백이 찾아왔소.]

스으으으!

문득 안개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피풍의를 어깨에 걸친 하삼풍이었다.

[진문주 어서 오시오.]

그는 직접 진우백을 맞았다. 안개 속에는 보이진 않으나 그의 제자들이 서있는 것같았다.

진우백이 가마에서 내리지 않고 물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소이까?]

[진문주까지 해서 모두 육천 명 정도가 왔소. 그들 중에는 일파의 주인들도 상당수 있소. 이정도면 패권을 꿈꿔볼 수도 있지 않겠소?]

하삼풍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진우백은 하삼풍의 안내를 받아 단혼곡 안으로 들어갔다.

안개의 바다를 지나서 들어가니 그들의 눈앞에 별천지가 나타났다.

산중에 어찌 이런 초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넓다란 초지가 있고 초지의 한쪽에 웅장한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단혼곡 안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척살객과 검종맹, 그리고 잔혼각 등의 손을 피해 이곳 단혼곡으로 숨어들은 자들이었다.

단혼곡주 하삼풍의 살명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은 이곳 단혼곡을 선택한 것이었다.

하삼풍은 적에겐 가혹하지만 부하들에겐 관대하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하나둘 모여들은 자들이 이제는 하나의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진문주, 우린 무림인이니 복잡하게 말할 것없이 간단하게 결정지읍시다.]

하삼풍이 말했다.

진우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오.]

[우리가 욕심을 조금만 줄인다면 우린 천하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오. 우리가 서로 뜻을 합쳐서 한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면, 아무도 우릴 넘볼 수 없을 것이오. 힘을 합칩시다.]

검성의 백검보도 무너졌다.

구대문파를 제외하고는 무림에서 명맥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만약 해남검파와 단혼곡이 힘을 합친다면, 어쩌면 검종맹과 잔혼각과 천하를 삼분할 충분한 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사실을 잔혼각과 검종맹에서 모르고 있다면 더욱 그 가능성은 크질 것이다.

진우백은 염두를 굴렸다.

무엇보다도 구미가 당기는 것은 하삼풍에게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진우백도 젊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이지만 하삼풍보다는 늙지 않았다.

더구나 도산검림을 걷는 무림인으로서 어찌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삼풍이 죽기만 하면 그 세력은 고스란히 자신에게로 굴러들어올 것이다.

(죽지 않는다면 죽여야지.)

속으로 말한 진우백은 흔쾌히 승낙했다.

이로써 깨어지기 위한 또하나의 동맹이 탄생한 것이다.

 

***

 

송죽곡(松竹谷) 안의 정경은 섭웅평, 즉 석두공이 기억하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불타 허물어진 작은 집은 빛바랜 수풀로 무성하고, 그가 물장난하며 놀았던 작은 연못엔 물풀이 우거져 있었다.

댜행히 석두공은 집의 잔해 속에서 어머니의 유골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시체가 던져졌다는 서쪽 절벽의 중간에서 나무가지에 걸린 해골을 찾았다.

독비신검객의 시체는 풍우에 살이 다 섞어서 사라지고 햇빛받아 갈라진 뽀얀 백골뿐이었다.

석두공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을 상자에 넣어서 대별산을 떠났다.

그가 떠날 때 독왕동주 갈천상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단혼검을 주었다.

[이것은 원래 네가 나를 찾아왔을 때 주기로 했었던 물건이다. 천하에 검이 많다고 하지만 이 단혼검을 능가할 보검은 많지 않다. 단혼곡의 보물이지만 어쩌다가 손에 넣게 되었다. 강적을 만났을 때 네게 힘을 더해줄 것이다.]

단혼검은 두자정도 길이의 짧은 검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뻗치는 검기는 공력이 없는 사람이 휘둘러도 다른 사람을 상하기에 족했고, 검의 날카로움은 도검과 강기를 무 베듯 할 수 있었다.

석두공은 검을 사용하기 보다는 병기를 사용해야 할 때 주로 천왕저를 사용하므로 단혼검을 금사종에게 주었다.

[형님께서 파혼검이란 외호도 쓰신 적 있으니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석두공은 웃으며 말했다.

금사종은 검을 뽑아 휘둘러 본 후에 말했다.

[이름때문에 이같은 보물을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도 종종 외호를 바꿔야겠네. 다음엔 막사, 어장, 용천 등의 이름도 사용해보아야 겠군.]

 

* * *

 

그로부터 오일 후, 석두공과 금사종은 정주(鄭州)에 도착했다.

한데 정주에 들어서자마자 만난 한 거지가 석두공을 자꾸 훔쳐보며 따라오는 것이었다.

석두공은 무림첩을 돌릴 때 개방의 힘을 빌린 적이 있는지라 거지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내게 무슨 볼일이 있소?]

거지는 석두공을 유심히 보더니 물었다.

[혹시 석공자님이 아니신지요?]

석두공이 그렇다고 하자 거지는 환호성을 지르며 석두공에게 절했다.

[공자님은 우리 개방의 은인이십니다요. 어서 저와 함께 가시지요.]

이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인가?

석두공이 만나본 바로는 개방의 방주인 낙천부개 필요금은 자신에게 유감이 있으면 있었지 은인이라고 생각할 위인은 결코 아니었다.

무림첩의 발송일을 부탁할 때 그는 제자들이 굶어죽는다면서 석두공에게 오십만냥의 거금을 울궈내 간적이 있다.

 

거지는 석두공을 떠밀다시피하여 주택가로 데려갔다.

금사종과 석두공을 데리고 커다란 저택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 거지는 거침없이 한 저택의 문안으로 들어갔다.

[석두공 공자님을 찾았습니다요. 석두공 공자님을요!]

그는 들어서자마자 고함쳤다.

석두공은 괜히 머슥해지는 기분이었다.

저택의 넓은 마당을 지나고 안채의 문을 통과하여 거지의 목소리가 울러펴지고 있었다.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있어요.]

갑자기 낭랑한 소녀의 호통소리가 안으로 부터 들려와 석두공을 당황하게 했다.

쐐애액!

작은 홍영(紅影)이 지붕을 뛰어 넘으며 석두공에게로 날아들었다.

석두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홍영은 장지연이 아닌가?

또한 그녀의 뒤를 이어 낯익은 얼굴이 석두공과 금사종 앞에 나타났다.

무형도객이었다.

 

× × ×

 

무형도객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돈의 힘이 세기는 세군 그래. 이렇게 금방 자네를 찾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

[뭐가 뭔지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석두공이 물었다.

무형도객은 장지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를 찾아다닌 사람이지. 또한 자네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기도 하고... ]

[장소저는 알고 있는 사이입니다.]

[이봐요 숯덩어리,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어요?]

장지연은 입을 샐쭉하며 투덜거렸다.

석두공이 말했다.

[괜한 억지 쓰지 마시오. 내가 뭘 속였다는 것이오?]

[왜 내게는 당신 이름이 석두공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말만 해주었어도 쓸데없는 고생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장소저는 묻지도 않은 사람에게 이름을 말해주시오? 나를 숯덩어리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궂이 이름을 가르쳐줄 이유가 뭐있겠소?]

[흥, 가르쳐줄 이유가 없다구요? 이것을 보고도 그런말이 나오는지 모르겠군요.]

장지연이 뾰족하게 소리쳤다. 이어 그녀는 왼주먹을 불쑥 내밀어 석두공의 코앞에 놓았다.

석두공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것으로 부족한가요? 그럼 이건 어때요?]

촤락!

장지연은 품에서 혈죽선을 꺼내 펼치며 말했다.

그것들은 무주(無酒) 동복신과 무보(無寶) 동적선의 신물들이었다.

장지연은 석두공에 대한 소유를 선포했다.

[당신은 두분 사부님이 제게 물러주신 유산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석두공이나 금사종, 그리고 무형도객은 아무래도 말이 뒤바뀐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형도객이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물려진 유산인지는 천천히 판단하기로 하고, 석두공 자네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또 있다네. 만나 볼 텐가?]

석두공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왔으니 만나겠다는 사람은 다 만나야겠지요. 어떤 분이십니까?]

[소령이라는 소녀인데 자네를 꼭 만나야 겠다고 하는군.]

[소령이 이곳에 있습니까? 어디 있습니까?]

석두공은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자신에게 그토록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던 신비한 소녀 소령에 대한 생각은 줄곧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것 중의 하나였다.

그때 휘장이 걷히며 흑의면사녀가 들어왔다.

[저는 여기 있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군요.]

마치 방울소리가 울리듯 맑고 고운 음성으로 그녀가 말했다.

석두공은 덥썩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뇌주탄에선 대체 어디로 사라졌었소?]

[제게 산공독을 먹여서 바다에 던진 사람이 당신은 아니었던 모양이지요?]

소령이 말했다.

석두공은 그녀의 한마디에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우백은 그에게 소령이 자신을 도와 적룡혈운도를 철저히 쳐부수라고 한 후에 떠났다고 했다.

[너구리같은 늙은이!]

석두공이 내뱉었다.

[어쨌든 무사해서 천만다행이오.]

[염려해 주시니 고맙군요. 하지만 당신이 내 본모습을 보고도 과연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하하하하! 당신이 추팔괴라고 해도 난 놀라지 않을 것이오. 당신의 도움이 적지 않았는데 무엇을 탓하겠소? 오히려 사례를 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석두공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면사를 벗어버림에 따라 그의 표정은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잠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당신... 이었구려! 아주 딴 사람같았는데...]

[여자가 마음먹어 바꾸지 못할게 뭐가 있어요? 당신을 만난 후 사부님께서 엄한 문책을 하셨어요.]

면사를 벗어버린 소령, 그녀는 바로 백란이었다.

숭산의 무저동 입구에서 폭풍마존을 기다리다가 대신 석두공을 만났던...!

석두공은 설마 그녀일 줄은 생각지 못했기에 할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당돌하고 제멋대로이던 백란, 그녀가 어떻게 그토록 세심하면서도 석두공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그런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단 말인가?

진정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무형도객은 말했다.

[란이는 내 딸일세. 하지만 이 아이가 자네에게 잘하고 못했는가를 따지자는 말은 아니네. 바른대로 말하면 이 아이는... ]

[아버지, 제가 직접 말하겠어요.]

백란이 말했다.

그녀는 표정이 굳어있는 석두공에게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전 사부님의 명령을 받고 당신을 데려가기 위해 무림에 나왔어요. 당신이 진정 무림의 평화를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제게 대한 감정은 어떻든지 간에 저를 따라가 주세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혹시 은세정검회와 관련이 있소?]

석두공이 물었다.

순간 무형도객과 백란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백란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지만 앞으로 그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랬군! 사람이 바뀌었어. 정검령은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복종해야만 하는 것이겠지?]

[네.]

백란은 대답했다.

석두공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난 당신이 찾는 사람이 아니오. 당신이 찾는 분은 내 사부요. 그분을 모셔 가도록 하시오. 그분이야말로 은세정검회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계시오.]

장지연이 물었다.

[제게 검법을 전수해 주신 그분 말이에요?]

석두공이 끄덕였다.

무형도객과 백란은 사람이 바뀌었다는 석두공의 말에 어쩔 바를 모르는 것같았다.

그때 장지연이 말했다.

[하지만 그분은 이미 세상을 등지고 유유자적하시는데 누가 움직일 수 있겠어요? 만약 그분을 무공때문에 찾는 것이라면 당신이라도 충분하지 않겠어요?]

[휴...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군요. 모든 게 제 불찰인 것같아요. 그래도 저를 따라가 주시겠어요?]

백란이 간절한 눈빛을 석두공에게 보냈다.

석두공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께서 해야 할 일이라면 나라도 맡아야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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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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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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