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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신나는 武林出道

 

 

 

백인장,

이곳의 정예 백인도객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새롭게 정비하기 시작했다.

신행마동 소일초의 출현과 함께……

그 동안 발뒤꿈치를 들고 장주의 흉수와 소일초를 찾아다니던 그들이,

준동(駿動),

준동의 거대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백인장의 동녁 하늘에 고스란히 동이 터오고 있었다.

이 힘의 여명은……

소일초와 장주인 도왕 소선풍의 해후가 있었던 그날로부터 열흘 후,

그리고,

정식으로 신행마동 소일초의 무림정벌(武林征伐)을 선언한 칠일 후의 여명이었다.

 

이 아침의 싱그러운 여명에 쌓인 백인장 깊숙한 국화원(菊花園)에는,

사방이 온통 국화의 천국이었다.

화향이 천지를 진동하고,

온갖 국화의 색깔이 다투어 핀 이 국화의 바다……

이 화원에서 이른 아침부터 듬성듬성 솟아난 잡초를 손수 제거해 가던 백인장 원로 십팔도객의 제일 원로인 동평선생(東平先生),

은은히 흐르는 비범한 기질도 기질이려니와……

절정의 도객답지 않게 지혜로 충만하여 고요로운 눈빛……

돌아온 소장주로 말미암아 모든 근심이 다 사라져 버렸는가?

그의 한몸에 여유가 충일하여 넘친다.

[봄에는 매화……가을엔 국화…… 이 어찌 꽃 중의 으뜸이 아니겠는가……]

한데 돌연,

무심히 국화에 취해 잡초를 제거해 가던 동평선생의 손이 빠르게 허공에 휘저어졌다.

동시에,

어느 곳, 어느 방향에서 날아든지 모를 하나의 비찰이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이니……

동평선생은 조용히 그 비찰을 펼쳐 읽었다.

순간,

동평선생의 무처럼 잔잔한 얼굴에 빠른 경악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 부로 백인장은 일체 강호활동을 중지함. 단 본인은 제외. 불복자는 처단할 것임. 외부에서 활동하는 백인장의 가족들도 조속히 귀환조치 할 것. 특히 십팔원로는 일체 잔소리하지 말 것. 이상.

신행마동 소일초.>

 

[이런……이런……]

동평선생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서찰의 내용을 읽어내렸다.

이어,

제거해 가던 잡초를 내던지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말썽꾸러기……이제 철 좀 들었나 했더니 고작 며칠 만에 본색을 드러내? 무림에 혼자 나가서 뭘 어쩌겠다고……그리고 나보고 일체 잔소리 말라고?]

여명 아래 그의 신형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원로십팔도객의 우두머리이다. 소일초가 날 때부터 손자처럼 귀여워 했던 그였다.

[안될 소리……안될 소리……]

그의 심해처럼 맑은 눈은 떨림 속에 다시 비찰의 내용을 더듬었다.

분명,

비찰의 마지막에 찍힌 것은 패도구룡인(覇刀九龍刃)의 흔적이다.

[이……무슨 얼토당토 않은 짓……]

이어,

동평선생은 국화원의 한곳으로 다급한 음성을 던졌다.

[사호동(四護童)은 즉각 다른 원로들에게 알려라……직접 소장주께 확인할 것이다.……]

동시에,

스스스슷……

짙은 화향이 밀려오듯이 국화밭의 한 편에서 황색(黃色)의 작은 그림자들이 소리없이 솟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마도 그들이 사호동인 모양이었다.

동평선생도 첩지를 재빨리 품속에 넣고 손에 묻은 흙을 털었다.

동시에,

스스………스슷……

사호동보다 더욱 빠르게 허공을 땅처럼 밟고,

순식간에 국화원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정실,

정실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박하면서도 성결한……

그리고도 귀풍에 흠뻑 젖어 있다.

이 정실은 바로 소선풍이 병상에 누운 이후로 조예진이 거처하는 곳이다.

지금,

조예진은 치렁치렁한 소일초의 흑발을 가지런히 빗겨주고 있는 중이었다.

더 없이 자상한 손길과……

더없이 자애로운 눈빛이 하나의 동경(銅鏡)속에 비치고 있다.

한데 문득,

조예진의 따사롭고 자애로운 눈빛에 가득한 염려의 빛이 피어올랐다.

[……그래 꼭 혼자 떠나겠단 말이냐?]

[예……저 혼자 그들을 상대하고 싶어요. 작은 어머니……]

소일초의 음성엔 묵직한 의지가 흐르고 있었다.

비록 그의 악동같은 얼굴은 변함이 없으나……

지금 내뱉는 소일초의 음성은 옛날과 확연히 틀려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즉,

말썽만 부리던 그 음성도 아니었고……

옛날처럼 대소구분 없이 마음내키는 대로 내뱉던 음성도 아니었다.

굳은 의지가 살아 끔틀거리고 있는 당당한 어린 장부(丈夫)의 음성 바로 그것이었다.

검마에게서 받았던 삼 년의 수행은 그를 조금은 진지한 아이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순간,

소중히 소일초의 머리를 빗겨가던 조예진의 입에서 가득 염려가 깃든 음성이 흘러나왔다.

[애야…… 지극히 위험할 텐데……]

[…………]

[더구나 지금 삼성무림청은 장강 일대를 장악하고 끝없이 팽창하고 있는 실정이라……우리 백인성의 힘이 아니라면 막기 힘든 상대야……그런데……]

순간,

소일초의 얼굴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서 더욱 혼자 가야하는 것이지요.]

[아……네 뜻을 나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구나……]

[작은 어머니……나는 소일초가 아닙니까?중원을 지켜야 할 신행마동 소일초입니다.]

[…………]

[당연히.삼성무림청 정도는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그래야 우리 백인장의 위세도 더욱 높아 질 것입니다.]

[우리 말썽꾸러기가 삼 년 만에 정말 협객이 되어버렸구나……이제 신행마동이 아니라 신행협동(神行俠童)이라고 불러야 겠는걸……]

조예진이 걱정스럽던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좀 어색하고……아무튼 앞으로 최소한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 앞에서는 장난 치지 않겠어요. 지난 번에 작은 어머니가 막 울때 얼마나 놀랐다구요……]

[그럼………우리가 없을 때나 밖에서는 여전히 장난치겠다는 말이구나…]

[그건 작은 어머니도 이해해주셔야죠. 나는 아직 어린애니까 당연히……]

[그래! 우리 말썽꾸러기야. 그건 그렇고 원로들이 풀쩍 뛸텐데 어떻게 하지?]

조예진은 백인장 옛터전에서 소일초의 무공이 혈기자로 오해될 만큼 고강했던 것을 직접 격었으므로 혼자 나가겠다는 데 대해서 크게 염려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어린애를 혼자 보내는 안스러움이 조금있을 뿐이었다.

[제가 첩지에 원로들은 찍소리 말라고 했으니 괜찮을 겠죠뭐……]

[맙소사……정말로 그렇게 썼단 말이냐?]

조예진의 아름다운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거기에다 백인장의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고 했죠……]

소일초는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조예진은 어쩔 수 없는 말썽꾸러기를 보면서 한숨을 지었다.

[네가 가만있으라고 가만있을 원로들이냐? 벌써 내 귀가 따가운 것 같구나……정중하게 알려도 듣지 않을 원로들인데……]

[어? 정말 그럴까요?]

소일초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그럼, 이러다 원로들이 몰려오면 야단이잖아요.]

조예진은 머리를 끄덕였다.

[아이쿠, 작은 어머니. 저 이만 갈래요.]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애야! 행장은 갖고가야지……그리고, 소아도 데려가거라……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니까……]

[네! 그렇게 할께요……]

벌써 소일초는 자기 방문 앞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묶지도 않은 머리가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내가 따라가지 않아도 될까?]

조예진은 덤벙대는 소일초를 염려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직한 탄식과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녀석……어쨌거나 커기는 커버렸구나……]

 

× × ×

 

십팔원로도객이 일제히 내전으로 몰려들었다.

갑작스런 무림활동금지령의 부당성과……

혼자서의 무림행보는 단지 만용에 불과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간언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언을 하러왔던 잔소리를 하기위해 왔던지 간에,

조예진의 말로 그들은 입도 떼지 못하고 비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며 돌아가야만 했다.

 

____ 소장주는 벌써 떠났습니다……

원로들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소장주가 돌아온 후 그에게 하십시오. 설마 그 전에 이미 패도구룡인으로 내려진 명(命)를 어길 생각은 아니겠지요?

 

이때는……

소일초는 이미 주소아와 함께 아침 햇살에 머리카락을 빛내며 백인장에서 이백여리 떨어진 곳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허리에는 머리통 만큼이나 큰 검은 목탁이 매달려 있고,

왼쪽에는 집도 없이 걸려있는 날이 빠져 쇠몽둥이에 가까운 시커먼 철검이 걸려있었다.

어린도는 꺼림직해서 아버지의 병상옆에 살그머니 갖다놓았던 것이다.

붉은 띠로 질근 묶은 머리칼은 말꼬리같았다.

[야! 주소아, 네 젊은 할아버지 만나면 내 이야기 잘해줘야 해. 전에는 내가 어려서 장난이 좀 심했었다고……]

주소아는 입을 삐쭉했다.

[누나라고 부르지도 않으면서 말은……]

[이 년 먼저 났다고 너무 그러지마. 남자 여자는 나이를 따지지 않고 사귀는 거야……]

[네가 남자니? 말썽꾸러기 꼬마지……나도 백인장에 있으면서 네 악명을 충분히 들었다고……]

[내가 꼬마라고? 웃기는 말씀. 그리고 나는 내 악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구.]

[뭐?]

[먼저 내가 꼬마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지……]

갑자기,

소일초는 자기보다 한뼘은 더 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매달려 강하게 몸을 밀착시켰다.

주소아의 안색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변했다.

그녀의 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낮은 휘파람소리도 갑자기 높아졌다.

[어때, 이래도 꼬마라고 할거야?]

주소아는 자기의 배꼽어림에 와닿은 무엇을 느끼고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두팔을 돌려서 소일초의 허리를 움켜쥐고는 홱소리가 나도록 뒤로 집어던져버렸다.

그러나……

소일초는 기분이 좋은지 연방 콧노래를 부르며 가랑입처럼 날아갔다가 그녀의 옆으로 다시 너울너울 날아와 내려섰다.

주소아는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올라서 몸으로 연방 높은 휘파람소리를 냈다.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분노의 표시방법임에 틀림없다.

[내 사부 중의 하나가 색귀였다구. 여자에 관한한 나는 모르는 게 별로 없어……]

주소아는 입을 꼭 다물고 자기 몸에서 나는 휘파람 소리가 싫은 듯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일초의 말은 분명했다.

이론상이기는 하지만 색귀는 어리지만 당돌한 그에게 여자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 해 주었고,

그것들을 소일초는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적당한 대상을 만나지 못해서 그 지식들이 그의 몸에서 썩고있었지만,

지금, 아름답기 그지없는 주소아가 나타난 이상 그의 장난기와 더불어 그 지식들이 슬슬 몸으로 구현되려고 하는 것이었다.

주소아는 이미 열 다섯 살,

총명한 그녀는 이미 알 만한 것은 다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소일초와 말도 하기 싫었다.

(이 나쁜 놈하고 언제까지 같이 있어야 하나? 확 집으로 돌아가 버릴까?)

집이란 물론 백인장이다.

삼 년 동안 지냈으니 자기집이나 다름없었다.

(아니야……이 자식이 자기집이라고 우기면 나는 곤란하지……아무래도 나에게는 고모집일 뿐이니까 내가 밀리지……)

소일초의 작은 어머니인 조예진이 사승(師承)으로 본다면 주소아의 고모가 된다.

그녀는 이미 조예진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분의 제자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주소아가 생각에 빠져있을 때,

소일초는 소일초대로 그녀의 뒤에 따라걸으면서 신나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색귀사부의 말이 정말인것 같은데……기분이 묘했어. 이히히히……이제 적어도 몇 달은 같이 먹고 자고 할텐데……철저한 실험정신을 발휘해야겠지……)

신행마동 소일초……

그의 생각은 멋대로 가고 있었다.

생각에 도취되어 자기도 모르게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앞서가던 주소아는 그가 뒤에서 이상한 소리로 웃자 더욱 속이 끓었다.

그자리에 딱 멈추며 소리를 질렀다.

[이봐! 네가 앞에가, 엉큼한 꼬마같으니……]

[싫다. 네가 앞에 있으니 그대로 가.]

소일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기위해서라도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다.

[흥, 저런 막대먹은 꼬마가 뭐 삼성무림청을 쳐부수고 아버지 복술해? 고모 말도 웃기는 소리지……]

[그러면 내가 넘어갈 줄 알고……잔소리 말고 앞에서 걸어. 누군가 지켜봐준다는 것은 즐거운 일아니겠어?]

그의 무덤덤한 말에 주소아의 얼굴이 발개질 정도로 화가 났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휘파람소리는 다시금 높아지고 있었다.

[그 휘파람소리도 어디서 나는지 궁금하고……]

소일초의 그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소아 빽 소리를 질렀다.

[너 정말 나하고 싸워볼래? 조그만 녀석이……]

두 팔을 쫙 벌리며 공격자세를 취하는 그녀를 보면서 소일초는 자기가 너무 심했나 싶었다.

그는 뭐가뭔지도 모르는 철부지로 무엇이 적당한 정도인지도 당연히 몰랐다.

그러나 이내 그도 태도를 바꾸었다.

정말 화가나서 집으로 돌아가버리기라도 하면 좋은날은 다가버린 것이다.

[누나……정말 화난 거야? 난 어린애 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한테 그렇게 화내면 어떡해……]

그의 돌변한 태도에 화가 꼭지까지 올라갔던 주소아는 어이가 없었다.

일부러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에게 기대오는 소일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깜직하게 귀여운 모습에 화가 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가막혀 하면서도 이미 화는 풀려 그를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다시는 까불지마……]

영악한 소일초는 이미 자기의 수단이 성공한 줄 알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주소아…이렇게 있으니 기분좋은데……]

주소아는 그를 확 밀쳐버리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소일초가 어깨위에 그녀를 들어 올리고는 무중일전의 신법을 펼쳐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갔다.

[이 나쁜 놈……그냥 두나봐라……]

주소아의 외침은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흩어져 버리고 소일초는 신나게 달려갔다.

뿌연 안개에 휘감긴 채 한덩어리의 구름처럼 날아가는 그들을 보고 관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일초의 어깨에 얹혀가고 있는 주소아는 이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달려가고 있는 중에 소일초가 그녀를 다시 앞으로 안고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우리……그냥 편하게 지내자……우리가 가릴게 뭐 있겠어? 기분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되지……]

주소아는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심각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어디가서 아침이나 먹자.]

그리고……

소일초의 귀를 잡아당겨 버렸다.

[아아……귀떨어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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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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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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