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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一 章

 

      兎死狗烹 (1)

 

 

 

지리멸렬(支離滅裂),

귀산의 무림대회에 모였던 무림인들은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어버렸다.

극소수에 불과한 척살대들은 지난 열흘 동안 팔천 명이 넘는 무림인들을 살해했으며, 그들의 사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살아남은 무림인들은 그들의 살수를 피하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으며 어떤 자들은 아예 검종맹이나 잔혼각, 적룡혈운도로 투신하여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기도 했다.

무림은 오십 명이 채 되지 않는 척살대로 인하여 혈풍에 잠겨버렸고 부운청풍객등 삼인의 세력은 그것을 기화로 무림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오직 웅크리고 있는 구대문파와 단혼곡, 그리고 해남도등의 세력 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위용을 자랑하던 백검보도 귀산의 무림대회에서 멸망해버렸고, 보주인 검성 당이정과 만박노조는 어디론가 잠적해버렸다.

명실공히 검종맹과 잔혼각, 그리고 적룡혈운도의 수중으로 천하는 떨어져 버렸다.

그들의 만행이 각지에서 자행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저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것이 야망의 세계...

외부의 적이 사라지자 삼인은 서로를 노리기 시작했는데 일시 잠잠해지는가 싶었던 천하는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

 

[은사(隱四)가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금포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본좌가 직접 키운 은사가 죽었단 말이지? 고검문준가 하는 놈에게...]

[...!]

허공의 한 자락에선 침묵을 지켰고 금포노인은 살기를 꾹 억누르는 듯이 보였다.

그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은사의 무공을 너와 비교하면 어떠하냐?]

[오백초는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자에 대해서 다른 할 말은 없는가?]

[무림에 대해 한이 많습니다. 은오(隱五)의 전서에 의하면 무림을 멸망시킬 생각까지 갖고 있습니다.]

금포노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를 건드리지 마라. 야망이 없는 자를 야망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우를 범할 순 없다. 그가 강하고 약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은육(隱六)을 만박에게 보내라. 만박을 죽이려는 자는 먼저 죽여라. 그를 철저히 보호하라. 단, 지금처럼 자유를 보장한 상태에서...]

금포노인은 이상하리만큼 만박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존명!”

허공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침묵이 실내에 흘렀다.

[화와 복은 서로 멀리 있지 않고, 기회와 위험은 항상 같이 한다! 은세정검회의 꼬리가 드러난 지금 고검문주가 나타나고 또 석두공이라는 애송이가 날뛴다. 하지만... 은세정검회만 부순다면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본좌가 직접 상대할 터이니... 또한 기계인간이 있지 않은가?]

노인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발작적으로 외쳤다.

[미사! 울어라!]

[...?]

미사는 금포노인의 엉뚱한 요구에 어리둥절했으나 즉시 그의 명령에 따랐다.

[흑흑흑... 엉엉... 흑흑흑... ]

그녀는 금포노인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 큰소리로, 그리고 정말 슬픔이 복받쳐 오르는 듯이 울었다.

그러면서도 요염하게 보이기 위해 몸을 비틀고 비통하게 몸부림쳤다.

노인은 다시 외쳤다.

[묘선(猫仙)! 웃어라!]

묘선이라는 여인은 귀여운 암코양이 같아 보였다.

어딘지 연약해보이면서도 앙칼진 데가 있었다. 또한 오밀조밀하면서도 색정을 풍겨내는 듯한 작은 둔부를 지닌, 그야말로 암코양이 같은 여자였다.

[깔깔깔깔... 호호호호...]

그녀는 코가 둘러빠질 듯이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엉엉... 흑흑흑...]

[깔깔깔... 까르르르... 호호호... ]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묘한 부조화를 이루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노인이 눈에서 기이한 광채를 띠며 명령했다.

[환사! 묘선의 둔부를 때려라. 욕을 하면서 때려라.]

[장희(薔姬), 미사를 개처럼 물어뜯어라.]

노인은 괴이한 요구를 마구 늘어놓았고, 여인들은 그의 명령을 한치도 어김없이 이행했다.

울음소리와 눈물이 배어나올 듯한 웃음소리, 그리고 욕소리와 개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함께 터져 나왔다.

미친 짓이었다.

침상위의 여인들은 공포에 몸을 떨었다.

노인은 음악을 감사하듯이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울고 웃고, 개처럼 짓고 물어뜯고 때리고 욕하고...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노인은 참선하는 듯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번쩍!

노인이 감았던 눈을 떴다.

[한 달... 앞으로 한 달, 늦어도 한달 보름이면 모든 것은 끝난다. 더 빠를 수도 있다. ]

낮게 중얼거린 노인이 큰소리로 말했다.

[전 제자들을 무림으로 내보내라. 앞으로 한달 이내의 무림 동정에 대해서는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주시해라. 은세정검회가 움직일 것이다.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야 한다.]

[존명!]

허공의 일각에서 소리가 들렸다. 약간 흥분한 듯한 음성이었다.

여인들도 모두 미친 짓을 그만두고 가만히 있었다.

금포노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정말 움추려야 할 때다. 은세정검회를 멸망시키기 위해... 본궁의 천년을 기다려온 소망이 눈앞에 다다랐다.]

스으으으!

노인의 몸이 구름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그는 놀랍게도 그동안 한번도 떠나지 않았던 침상을 떠나 문을 나서고 있었다.

여인들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궁...궁주님... ]

[궁주님... ]

순간 침상에서 새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르르...

지옥의 마화같은 푸른 불꽃은 침상과 그 위의 여인들까지도 동시에 재로 만들어버렸다.

푸른 불꽃 속에서 여인들이 몸부림치다가 재로 변해갔다.

침상도 여인들도 모두 재로 변하고 났을 때 불꽃은 절로 사그라졌다.

그동안에 수 없이 벌어졌던 육체의 향연이 펼쳐졌던 흔적은 이 세상에서 모두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문이 열리고 네 명의 미소년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빗자루로 재들을 쓸어담아 밖으로 가져가 버렸다.

궁주의 유일한 여인이고 싶었던 미사의 꿈도 한갓 푸른 불꽃 속에 재로서 사그라져 버렸고, 청춘과 인생의 참된 모습을 느껴보지 못하고 오직 왜곡된 정사의 도구로 살아왔던 가련한 젊음도 그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피를 먹고 영웅은 자라고, 남자의 야망은 여자의 한을 먹고 이루어진다.

오직 한 사람의 야망을 위하여,

그 야망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졌던 여인들...

그녀들의 숨결은 독존패왕궁에 연기가 되어 흘러들어갔을 것이건만...

 

× × ×

 

[크하하하하... ]

적룡혈운도주 해천월은 비분강개한 광소를 터뜨렸다.

잔혼살객과 부운청풍객 심제을이 그의 앞에 우뚝 서있었다.

[크흐흐흐... 잔혼살객! 다음 번엔 네 차례다. 심제을 저 위선자가 너를 내버려 둘 것같은가?]

해천월이 잔혼살객을 노려보며 이를 갈앗다.

[천하는 혼자서 다스리기엔 너무 넓지. 부운청풍객은 물론 나를 죽이고 싶겠지만 일인천하는 결코 오래갈 수가 없지. 통제력이 약해져서 금방 무너지고 말테니까. 후후후... ]

잔혼살객이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심제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셋이 나눠 갖기는 너무 좁지.]

[크하하하! 심제을 기억하느냐? 오년전에도 너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 천하는 열이 갖기는 너무 좁다고... 잔혼살객, 이래도 심제을을 믿는가?]

해천월의 말에 잔혼살객은 히죽 웃었다.

[물론 믿지 않지. 후후후후! 하지만 나를 죽일 수 없지. 왜냐하면 그에겐 너를 죽일 때처럼 그를 도와서 나를 죽일 인물이 없거든. 비록, 몇 수 앞선다고 하지만 나를 죽이자면 그도 피해를 감수해야 할테니... ]

[좋다. 꼭 나를 죽여야 한다면 죽여라. 하지만 네놈들도 얼마가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고수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해천월은 포기한듯이 가슴을 내밀며 소리쳤다.

피이잉!

잔혼살객의 헐렁한 소매가 흔들리며 붉은 빛이 번쩍했다.

[당연히...]

퍼억!

해천월의 이마에 붉은 못이 박혔다.

그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너무 간단하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번쩍!

갑자기 심제을의 장검이 빛을 발했다.

잔혼살객이 벼락같이 물러서며 소리쳤다.

[나마저 죽일 생각이오?]

[천만에... 일인자이면 족하지 궂이 천하를 다 거머쥐어야만 할 필요는 없지.]

철컥!

심제을이 장검을 다시 꽂았다.

죽어있는 해천월의 얼굴 가운데로 가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심제을의 장검이 만든 흔적이었다.

쩌억!

한데 해천월의 얼굴에 그어진 가는 선이 갑자기 양쪽으로 돌돌 말리는 것이 아닌가?

드러난 얼굴은 해천월이 아닌 전혀 엉뚱한 자였다.

[제기랄! 놈이 기미를 알아채고 도망쳤군.]

잔혼살객이 그자의 머리를 밟았다.

퍽!

두개골이 깨어지며 뇌수가 흘러나왔다.

[늙은 여우가 수작을 부렸어. 이놈은 부도주인 능특서(凌特瑞)라는 놈이오. 깨끗이 당했군.]

심제을이 돌아서며 말했다.

해천월은 미리 심제을의 생각을 예측하고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의 모든 세력이 파괴되었으니 다른 생각은 못할 거요.]

[안심하진 못하겠군. 난 그자를 뒤쫓아야 겠소.]

[좋도록 하시오.]

스으으으!

잔혼살객은 허공을 밟고 걸어가더니 잠시 후에 모습을 감추었다.

심제을이 중얼거렸다.

[너는 내 방패이지 방패... 나를 죽이려는 자는 아마도 내 수족을 자른답시고 너부터 죽이게 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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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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