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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8.10 [만상지존보] 제 51장 지옥뢰의 비밀
  2. 2023.08.09 [만상지존보] 제 50장 마궁 잠입
  3. 2023.08.08 [만상지존보] 제 49장 지옥의 밀실
  4. 2023.08.07 [만상지존보] 제 48장 독문의 성지, 만독성부
  5. 2023.08.06 [만상지존보] 제 47장 단천애의 비극
  6. 2023.08.05 [만상지존보] 제 46장 천랑동부의 기연
  7. 2023.08.04 [만상지존보] 제 45장 안타까운 여심
  8. 2023.08.03 [만상지존보] 제 44장 적룡제삼검결
  9. 2023.08.02 [만상지존보] 제 43장 대비신니
  10. 2023.08.01 [만상지존보] 제 42장 금붕도의 여걸
  11. 2023.07.31 [만상지존보] 제 41장 공포의 태양천화굉염신공
  12. 2023.07.30 [만상지존보] 제 40장 잠룡의 비상
  13. 2023.07.29 [만상지존보] 제 39장 뜨거운 재회
  14. 2023.07.28 [만상지존보] 제 38장 신기곡의 일전
  15. 2023.07.27 [만상지존보] 제 37장 천외쌍비의 전설
  16. 2023.07.26 [만상지존보] 제 36장 구류천세록
  17. 2023.07.25 [만상지존보] 제 35장 구류천종의 풍운
  18. 2023.07.24 [만상지존보] 제 34장 빙시의 유혹
  19. 2023.07.23 [만상지존보] 제 33장 천이백년전의 미인
  20. 2023.07.22 [만상지존보] 제 32장 태양천화경
  21. 2023.07.21 [만상지존보] 제 31장 신비한 빙동
  22. 2023.07.20 [만상지존보] 제 30장 북해에 온 잠룡
  23. 2023.07.19 [만상지존보] 제 29장 봉황옥소의 기연
  24. 2023.07.18 [만상지존보] 제 28장 만수족의 위기
  25. 2023.07.17 [만상지존보] 제 27장 요정같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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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一 章

 

                    地獄牢秘密

 

 

 

군마대전(群魔大殿)!

 

천마궁의 중심부를 차지한 거대한 대전각, 사십팔개의 계단, 그리고 백팔개의 석주(石柱)로 이루어진 호화롭고 웅대한 대전, 그 주변은 온통 살기로 가득한 군마(群魔)들이 철통같이 둘러싸고 있었다.

청포노인, 그는 거령마신과 함께 군마대전(群魔大殿) 안으로들어섰다. 순간, 그의 두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번뜩 떠올랐다 사라졌다.

(으음... 생각 이상으로 천마궁의 위세가 엄청나군. 신중히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대사(大事)를 그르친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청포노인! 그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윽고, 청포노인과 거령마신은 사십 팔개의 계단을 오르기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클클... 환령(幻靈)! 오랫동안 보지 못했네!”

돌연 대전의 문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음산한 괴소가 들려왔다. 순간, 청포노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대전의 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구루혈면마(九淚血面魔)...!)

그는 흠칫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구루혈면마(九淚血面魔)!

그 자의 모습은 마치 지옥염라부에서 금방 뛰쳐나온 듯했다. 생혈(生血)을 바른 듯 시뻘겋고 섬뜩한 얼굴, 송곳같이 예리하게 뻗어 나오는 두 눈의 괴괴한 녹광(綠光)!

그 모습은 가히 지옥나찰을 방불케 했다.

백 년 전, 천음황(天音皇)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진 거마 중의 거마(巨魔). 한데, 그 자가 멀쩡히 나타난 것이었다.

 

(으음...!)

청포노인은 구루혈면마의 전신에서 풍겨져 나오는 싸늘하고 사악한 마기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하나, 그의 맑은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지극히 태연스러워 보였다. 그때,

대호법(大護法) 삼가 거령(巨靈)과 환령(幻靈)이 뵙습니다!”

구루혈면마를 발견한 거령마신이 먼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청포노인은 그 모습에 재빨리 따라 고개를 숙였다.

청포노인! 그는 바로 환령마신(幻靈魔神)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환령마신의 신분으로 위장한 군무현이었다.

마침내 그는 천마궁에 잠입한 것이었다. 그때, 구루혈면마는 대전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 거령마신과 군무현 사이를 지나갔다.

클클... 환령! 운남에서의 일은 잘 되었는가?”

!”

그 자의 물음에 군무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며 그는 심중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으음... 거령마신이 왠지 의도적으로 나를 도와주는 인상이 풍기는 구나.)

그가 내심 염두를 굴리는 사이, 구루혈면마는 두 사람 사이를 지나 멀리 사라져 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군무현은 군마대전의 호화로운 내부에 저으기 놀랐다.

대전 안, 중앙으로 취의청(聚議廳)이 있었고 좌우로는 석주(石柱)가 도열해 있었다. 붉은 융단이 깔린 바닥과 현란하고 정밀한 수많은 조각상들... 실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광경이었다.

한데, 대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군무현은 정면의 상좌에 누군가 앉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저 자는...!)

군무현은 그 인물을 주시하며 일순 흠칫했다. 그때,

총관! 오제를 데려 왔습니다!”

거령마신이 상좌 앞으로 다가가 깊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상좌의 인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수고했네. 자네는 물러가 쉬도록 하게!”

!”

거령마신은 대답과 함께 즉시 대전 밖으로 물러갔다.

혼자 남게된 군무현, 그는 상좌의 인물을 향해 즉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총관을 뵙습니다!”

백포노인, 나이는 팔순 가량 되었을가? 천마궁의 총관이라면 그 무공이 필경 경지를 넘었으리라.

으음... 이곳까지 오느라고 수고했소!”

구누현이 예를 취하자 총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와 함께,

지존! 어서 속하를 따라 오십시오!”

문득 군무현의 귓전으로 총관의 전음성이 파고들었다.

군무현은 이미 그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 인물이 바로 천마궁에 파견된 구류천종의 밀사로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그렇다. 천마궁의 총관으로 불리는 백포노인, 그는 바로 구류천종에게 파견된 인물이었다.

그때,

, 어서 따라오게!”

총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나갔다.

“...!”

군무현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한데, 총관은 군무현을 이끌고 대전의 후문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후문 밖, 그곳은 아늑하게 꾸며진 후원으로 통하고 있었다.

 

후원. 그곳은 온통 수많은 종류의 수목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 수목 가운데, 한 채의 전각이 그림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총관은 군무현을 그 전각 안으로 안내했다.

이 전각은 바로 속하가 기거하는 곳으로 은밀한 곳이니 염려를 놓으셔도 됩니다!”

그는 먼저 전각 안으로 들어서며 군무현에게 설명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총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총관은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속하는 천마분타의 총책을 맡고 있는 잔심염황수입니다. 지존을 알현하게 되어 무상의 영광으로 여깁니다!”

그럼 그대가 천마궁의 구류천종도를 지휘하는 총사인가?”

군무현은 잔심염황수를 주시하며 물었다.

잔심염황수는 어느 새 군무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잔심염황수!

그는 바로 마도의 십대고수 중 한 명이 아닌가? 그는 구루혈면마, 우내사천황 등과 동대(同代)의 거마로서 염황의 일맥을 잇고 있는 인물이었다.

 

잔심염황수는 공손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전각의 주변에는 모두 구류천종도(九流天宗道)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심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으음... 그대는 본존이 천마궁까지 온 이유를 알고 있는가?”

군무현은 어느 새 구류지존으로서의 위엄을 되찾고 있었다.

모르옵니다.”

군무현의 물음에 잔심염황수는 고개를 저었다.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말했다.

본존은 바로 천마황의 행방을 알려고 온 것이다. 본존이 알기로는 천마황이 천마제일궁의 배후에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습니다. 천마황은 이미 수십 년 전 제거되었고 천마제군(天魔帝君)이 자리를 이었습니다.”

잔심염황수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천마제군도 제 삼의 인물에게 조종되는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순간, 군무현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 삼의 인물에 대해서 아는가?”

하나, 잠심염황수는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그 자는 극히 신비하여 그림자조차 볼 수 없습니다. 다만...!”

다만 무엇인가?”

그 자는 혈문(血門)과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속하의 추측이지만...!”

혈문(血門)...!”

군무현의 입에서 나직한 경악성이 흘러 나왔다.

 

혈문(血門)!

천외쌍비(天外雙秘)의 하나, 바로 천외마도(天外魔道)의 성지라고 알려진 전설 속의 금역(禁域)이 아닌가?

 

잔심염황수는 다시 공손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천마제군 뿐만 아니라 대천성자(大天聖子)의 배후에도 혈문(血門)과 연관된 것 같습니다!”

군무현은 그의 말을 들으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혈문에서 비롯되었단 말인가?)

그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졌다.

잔심염황수는 그런 군무현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천마대전(天魔大戰)에서 패한 백도의 세력이 대천성자에 의해 무섭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

하지만 천마제군은 백도세력을 좌시하고 있습니다. 속하의 미천한 생각으로는 제 삼의 인물의 조종으로 흑백양도가 동패구상의 길로 치닫는 것 같습니다!”

순간, 군무현의 안광이 번득 빛났다.

(그렇군. 흑백양도가 동패구상한 후에 제삼의 세력이 나타나면 너무나 쉽게 천하를 얻을 수가 있겠지.)

그것은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으음... 우선 천마황이 제거된 것이 확실한 이상...”

군무현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잔심염황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어딘가 감금되어 있을 것입니다!”

군무현도 그 말에는 수긍이 갔다.

마도의 지주였던 천마황, 그를 결코 쉽게 죽일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그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천마황이 유폐되었다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가?”

그 자가 감금될 만한 곳이라면...!”

잔심염황수는 눈을 빛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러다,

있습니다!”

문득 그는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지옥뇌(地獄牢)! 바로 그곳이라면 분명히 천마황이 감금될 만한 곳입니다!”

그는 학신에 찬 음성으로 말하며 지옥뇌(地獄牢)에 대해 설명했다.

 

지옥뇌(地獄牢)!

들어갈 수는 있으나 나올 수는 없는 마()의 뇌옥, 그곳은 천마궁에서 영원히 제거되는 인물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한 번 닫히면 천만근의 화약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문과 방벽, 또한, 서른 여섯겹의 철통같은 기관은 가히 나는 새조차 침범을 불허할 정도였다.

 

잔심염황수는 조심스럽게 군무현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혹시 지존께서 지옥뇌에 잠입하실 생각이십니까?”

“...!”

군무현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의 뇌리 속에는 어떤 결심이 세워진 듯했다.

(),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천마궁에서 멀지 않은 곳, 그곳에는 깎아지른 듯한 천장단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접근치 앟은 금역(禁域).

문득, 스슥! 천장단애 앞에 하나의 은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군무현! 바로 그가 아닌가?

(지옥뇌(地獄牢)...! 불회뇌(不回牢)라고도 불리는 죽음의 뇌옥... 그러나 신기황 어르신네의 재간 이상의 기관이 펼쳐져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군무현은 내심 염두를 굴리며 기광을 번득였다.

그의 전면, 끔찍한 아수라의 형상을 한 지옥뇌의 문이 보였다.

고오오...! 온통 사악한 마기가 흐르고 있는 거대한 철문,

(후훗... 신기황 어르신네의 재간에 비교하면 마치 어린애 장난같군!)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리며 철문을 노려보았다. 이어, 그는 문득 아수라의 눈 부위를 슬쩍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르르릉...! 흡사 악귀가 울부짖는 듯한 섬뜩한 음향과 함께 철문이 좌우로 쩍 갈라졌다.

스슥! 군무현은 열려진 철문 안으로 유령같이 들어섰다.

통로, 철문 안은 음랭한 기운이 가득한 음산한 통로였다.

휘이 잉... 고오...! 섬뜩한 음풍과 질식할 듯한 악취가 통로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스슥! 군무현은 미끄러지듯 통로 안을 전진해 들어갔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문득, 군무현은 멈칫 몸을 세웠다.

그의 앞에 흑강옥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석문이 나타난 것이었다.

하나,

후훗! 어리석은 짓!”

군무현의 입가에 한가닥 기소가 피어 올랐다.

다음 순간, 파파파 팍! 그의 십지(十指)에서 뇌전과 같은 열가닥의 지력이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콰르릉...! 석문의 상단이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이제 저 구멍을 통해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리며 흑강옥의 석문을 열었다.

그그긍...! 문이 열리는 순간, 휘이잉! 숨이 콱 막히는 지독한 악취와 습기가 쏟아져 나왔다.

군무현은 절로 오만상을 찌푸렸다.

(지독하군. 아무리 공력이 높아도 이 지경에서 일년만 지내면 사지가 썩고 말겠군!)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어, 스슥! 그는 유령같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르릉...! 석문은 다시 굉음을 일으키며 저절로 닫혔다. 한데 그 순간, 군무현은 흠칫하며 몸이 굳어졌다.

그의 전신으로 터질 듯 강렬한 살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암울한 어둠, 그 속에서 마치 피에 굶주린 맹수의 눈빛과 같은 소름끼치는 안광이 무수히 뻗어 나오고 있었다.

군무현은 일순 움찔했으나 이내 태연한 신색을 회복했다.

(아마 천마황을 따르다가 함께 감금된 마도의 명숙들이겠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흑과 숨막히는 악취, 그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숨을 죽인 채 무서운 눈으로 군무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의 형상은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알몸이나 다름없는 참담한 몰골, 바닥까지 끌리는 머리카락과 피골이 상접한 흉직한 모습들, 군무현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은 그들을 향해 담담한 어조로 외쳤다.

천마황(天魔皇) 곡노선배는 어디 계시오?”

이어, 스슥! 군무현은 서슴없이 뇌옥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하나의 석동(石洞) , 군무현은 그곳에 이르러 우뚝 멈추어 섰다. 그때,

환령(幻靈)인줄 알았더니... 아니었군!”

문득 석동 안에서 한 줄기 창노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 창노한 음성에는 감히 범접키 어려운 기도가 실려 있었다.

(천마황(天魔皇)!)

군무현은 단번에 그 음성의 주인을 알아차렸다.

적룡천종(赤龍天宗)의 후예 군무현이 곡노선배를 뵙기를 청하오!”

그는 석동 안을 향해 정중한 어조로 외쳤다.

순간,

으음...!”

석동 안에서 경악이 깃든 나직한 신음성이 흘러 나왔다. 하나, 석동 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문득,

들어오게!”

마침내 석동 안에서 예의 창노한 음성이 다시 흘러 나왔다.

감사하오!”

군무현은 답례와 함께 곧장 석동 안으로 들어섰다.

석동 안, 십여평 남짓한 그곳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죽음같이 암울한 어둠 속,

“...!”

한 명의 괴인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칠척의 거구를 지닌 노인, 그의 일신에서는 태산같은 무형의 기도가 풍겨져 나왔다.

한데, 그 노인의 옆, 한 명의 청년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굴까?)

군무현은 미간을 모으며 중얼거렸다.

일견하기데도 범상치 않은 기도의 청년, 그 순간, 군무현은 기광을 번득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 청년이 바로 천마묵룡(天魔墨龍)이었군!)

그는 어렵지 않게 청년의 정체를 간파해냈다.

 

천마묵룡(天魔墨龍) 혁세민(赫世民)!

그는 바로 천마제군의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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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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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 章

 

           魔宮潛入

 

 

 

아아... 흐윽...!”

만화천요(萬花天妖). 그녀는 이 순간에도 뜨거운 욕정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녀는 타는 듯한 욕화를 참지 못해 단내를 토하며 안타깝게 신음했다.

아씨! 아씨!”

취취는 그런 만화천요의 모습에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어, 그녀는 급히 군무현의 팔을 잡아 끌었다.

아씨는 강한 최음향에 당했어요. 기왕에 도와주셨으니... 끝까지 도와주세요!”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그 말에 군무현은 흠칫했다.

무슨 뜻이냐?”

아씨는 아직 청백지신(淸白之身)이에요. 공자님의 처첩이 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분이지요. 어수선하지만... 이곳에서 신방을 차리세요!”

취취는 마구 재잘대더니 군무현이 미처 무어라 하기도 전에 얼른 방을 나가 버렸다.

군무현은 일순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아이로군!”

그는 씁쓰레한 표정으로 침상 위의 만화천요를 살펴 보았다.

아아... ... 으음...!”

이미 욕화가 극에 이른 듯 만화천요는 입가에 거품까지 물고 있었다. 그 모습에 군무현의 안색이 낭패함으로 물들었다.

(더 이상 방치해두면 위험하다!)

그는 일순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임의 표정을 지었다. 하나, 결국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할 수 없군!”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여인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는 겉옷을 벗고 침상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만화천요의 사지를 묶은 끈을 가볍게 끊어냈다. 두 팔과 다리가 자유로워지는 순간,

아아... ... 어서...!”

만화천요는 뜨거운 신음성을 발하며 군무현을 뱀처럼 휘감아 왔다. 군무현은 일순 움찔했으나 이내 고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의복을 벗어던지고 침상으로 올라갔다. 그 역시 피와 살을 지닌 사내였다. 더구나 그는 한창 피끓는 나이에 건강한 사내였다.

그는 만화천요의 뜨거운 욕정에 휘말려 이내 전신이 후끈 달아 올랐다. 이미 타오르고 있는 한 육체 위에, 막 점화되어 뜨거운 또 하나의 육체가 포개어졌다.

쾌락을 동반한 구인(救人) 행위, 그것은 젊음이 있기에 더욱 강렬하고 뜨거웠다.

두 남녀, 그들은 어느 새 혼연일체가 되어 항해를 시작하고 있었다. 열락으로 출렁거리는 끝없이 먼 항해를...

 

아침(). 햇살이 청명한 아침이었다.

넓고 화려한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한 채의 전각 안,

“...!”

군무현은 뜨락을 바라보며 단좌하고 있었다.

그의 뒤, 한 명의 백의궁장 미인이 군무현의 머리를 정성스레 빗겨주고 있었다. 바로 만화천요(萬花天妖)라 불리우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어젯밤까지만 해도 청백지신을 간직했던 순결한 몸이었다. 음탕한 만화부(萬花府)에서 자라나고, 선천적인 요염함이 그대로 몸에 배어 천하제일염(天下第一艶)으로 일컬어졌을 뿐 그녀는 천하의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정숙한 여인이었다.

하나, 그녀가 순결을 유지한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기도 했다.

 

염화잔양신강!

 

대성하기 전에 동정이 깨지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기공, 바로 그것이 만화천요의 청백지신을 구속했던 것이다.

본래, 그녀는 염화잔양신강이 십이성에 이른 상태였다. 하나, 어젯밤 군무현과의 정사로 인해 지금은 모든 공력이 전폐되고 말았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문득,

다 됐어요!”

만화천요는 군무현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고맙소. 이리 앉으시오!”

...!”

군무현의 담담한 말에 만화천요는 조심스럽게 군무현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러자, 군무현은 품 속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받으시오. 만화성부(萬花聖符)는 그대의 것이니...!”

 

만화성부(萬花聖符)!

그것은 만화부의 창건조사인 만화성녀(萬花聖女)의 신물이었다. 만화부 최대의 절기인 만화환선무(萬花幻仙舞)가 기록되어 있는 영부.

 

만화천요. 그녀는 공손하게 삼배를 올린 후 만화성부를 받아 들었다.

군무현은 그런 만화천요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대가 취취와 함께 자하곡(紫霞谷)으로 갔으면 하오!”

하나, 그 말에 만화천요는 살래살래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해요. 앞으로의 일생은 상공의 분부에 맡기겠으나... 자하곡으로 가는 것은 천첩의 결심에 맡겨주시기를...!”

그의 말에 군무현은 의아한 기색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자하곡행을 망설이는 것이오?”

그 말에 만화천요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제 상공께서 폐부의 수뇌들은 모두 제거하셨어요!”

“...!”

그래서... 이제 남아있는 제자들은 아직 음행(淫行)에 완전히 물든 아이들이 아니니... 천첩은 그 아이들을 계도하여 조사(祖師)께서 본부를 세우신 취지를 회복할 결심이에요!”

으음...!”

군무현은 잠시 침음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하곡의 혜미에게 도우라고 일러두리다!”

고마워요. 상공...!”

만화천요는 촉촉하고 그윽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군무현은 그녀의 눈길을 접한 순간 문득 후끈한 단전의 충동을 느꼈다.

그는 내심 고소를 지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그대는 천마궁(天魔宮)에 자주 들렸으니... 천마황(天魔皇)의 동태를 알지도 모르겠구려?”

자세히는 모르겠고...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 천마제군이 천마황을 유폐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요!”

...!”

군무현은 침음하며 화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만화천요는 그런 군무현의 준미한 옆모습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것을 확인해 보실 기회가 내일쯤 있을지도 몰라요!”

내일?”

만화천요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구령(天魔九靈) 중 환령마신(幻靈魔神)이 운남(雲南)에 갔다가 내일 이곳을 지나게 되어 있어요!”

군무현은 신광을 번득 빛냈다.

... 그 자의 입에서 천마황의 생존여부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말이오?”

, 그래요!”

문득, 군무현은 빙그레 웃었다.

하하... 그리고 나는 당신을 하루 더 안아볼 수 있고 말이오!”

어마...!”

그의 짓궂은 말에 만화천요의 옥용이 발그레 상기되었다. 군무현은 손을 뻗어 부드럽게 만화천요의 교구를 쓸어 안았다.

...!”

만화천요는 야릇한 비음을 토해냈다. 그녀는 선천적인 염색을 타고난 여인이었다. 그녀의 육체는 아주 쉽게 달아오르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윽고, 군무현은 만화천요의 교구를 번쩍 안아들고 걸음을 옮겼다.

침실로 가는 것이었다.

 

X X X

 

스스스스... 한 인영이 가히 빛살같은 속도로 산봉 위를 달리고 있었다. 너무도 빨라 그의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 가공할 쾌영(快影).

그 자는 교활한 인상을 지닌 청포노인이었다.

한데 문득, 위이 이잉! 돌연 좌측의 산봉에서 엄청난 속도의 백영 하나가 청포노인을 향해 폭사되어 왔다.

순간,

!”

청포노인은 직감적으로 살기를 느끼며 달리던 속도를 더욱 배가했다.

그러자, 쐐 애액! 그 자의 신형은 아예 한 줄기 섬광(閃光)으로 화했다. 하나,

환령마신(幻靈魔神)! 달아날 수 없다!”

한 소리 극히 냉막한 음성과 함께, 휘르르! 접근하던 백영은 선풍이 휘몰아치듯 청포노인을 향해 덮쳐들었다.

순간,

환령산혼비(幻靈散魂飛)!”

파아 앗! 청포노인, 즉 환령마신(幻靈魔神)의 신형이 삽시간에 열여덟 개로 늘어났다.

가히 유령과도 같은 신법!

하나,

이까짓 눈속임을 믿는가? 적룡팔극(赤龍八極)!”

츠츠츠츠! 눈부시도록 찬란한 광채가 일순 온 허공을 뒤덮었다.

그것은 가공할 검기(劍氣)였다. 다음 순간,

... 구류지존(九流至尊)! 크 윽!”

십팔 개의 환영이 일시에 사라지며 환령마신의 허리에서 피를 폭출하며 나뒹굴었다.

거의 동시에, 스스슥...! 그의 전면으로 검을 든 한 명의 백의청년이 내려섰다.

군무현! 그가 아닌가?

으으... 구류지존! 나같은 하수(下手)를 무엇 때문에...?”

환령마신은 고통스럽게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두 눈을 부릅떴다. 순간, 군무현은 그 자의 목에 차가운 검날을 들이댔다.

천마황(天魔皇)의 근황에 대해 고해라!”

그 말에 환령마신은 일순 움찔하더니 이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 알지 못하오... 제군(帝君)이 손을 쓴 것은 확실하나... 그 이상은...!”

“...!”

군무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부류의 인물은 교활하기는 하나 제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할 위인은 못된다!)

내심 염두를 굴린 그는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잠시 누워 있거라!”

! 그는 환령마신의 혼혈을 가격했다. 그러자 환령마신은 이내 혼절하며 축 늘어졌다.

바로 그때, 스스슥...! 문득 군무현의 위로 만화천요의 모습이 나타났다.

타고난 염색이 뇌살적으로 흐르는 여인, 하나, 궁장 차림에 부인처럼 머리를 틀어 올린 그녀의 몸가짐은 극히 정갈하고 정숙해 보였다.

이제 어찌하실 건가요?”

그녀는 군무현의 안색을 살피며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내가 직접 천마궁(天魔宮)으로 들어가 알아보는 수밖에...!”

군무현의 그 말에 만화천요는 옥용 가득 근심의 빛을 드리웠다.

직접... 가실건가요?”

군무현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걱정마시오. 완벽하게 준비하여 잠입할 것이니... 그리고 천마궁에도 구류천종(九流天宗)의 수하들이 잠입해 있으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오!”

하나, 만화천요의 표정은 그래도 밝아지지 않았다.

군무현은 그런 만화천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문득 짙푸른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천마황의 잠적! 그것이 당금무림의 기이한 정세를 파악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는 기광을 빛내며 내심 중얼거렸다.

 

X X X

 

구궁산(九宮山).

 

스스스... 짙은 안개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구궁산의 천애험곡(天崖險谷).

문득, 스윽! 하나의 환영(幻影)이 소리도 없이 안개 속으로 날아들었다.

그는 교활한 인상을 지닌 청포노인이었다. 음산한 마기가 감도는 구궁산의 천애험곡에 유령처럼 나타난 청포토인, 그는 혹시 유귀(幽鬼)가 아닐는지...

(이곳이군...!)

청포노인은 두 눈에 형형한 광채를 뿜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교활한 신색과는 달리 강렬한 안광이었다.

그때였다.

오제(五弟)! 예정보다 하루가 늦었군!”

안개처럼 짙은 마기가 감도는 험곡 안에서 한 가닥 음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머리카락이 절로 쭈뼛 곤두서는 음산한 음성, 이어, 스슥! 일진의 미풍과 함께 청포노인의 눈 앞에 하나의 철탑(鐵塔)이 불쑥 나타났다.

(으음... 천마구령(天魔九靈)의 넷째인 거령마신(巨靈魔神)이 나타났군!)

청포노인은 내심 재빨리 염두를 굴렸다. 눈 앞에 나타난 철탑을 방불케 하는 팔척의 거한, 그는 전신에 빛이 바랜 호피(虎皮)를 두르고 있었다.

구류천종의 졸개들과 부딪혀 잠시 지체됐습니다!”

청포노인은 거한을 향해 재빨리 일례하며 변명했다. 그러자, 거령마신의 검고 강한 얼굴에 한 가닥 기이한 미소가 감돌았다.

헛헛! 아무튼 수고했네. 우선 들어가세!”

이어, 그는 거구를 돌렸다.

거한, 그는 바로 천마구령 중 네 번째 인물인 거령마신(巨靈魔神)이었다.

스슥! 팔척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연하기 이를 데 없는 몸놀림을 보였다.

거령마신의 뒤를 따라 몸을 날리던 청포노인, 문득 그의 두 눈에 번뜩 섬광이 일었다 사라졌다.

(으음... 엄밀한 진세(陣勢)가 펼쳐져 있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말없이 거령마신의 뒤를 따랐다.

 

거령마신과 청포노인, 그들은 하나의 절곡 끝에 이른 광대한 분지 앞에 이르러 멈춰섰다.

절곡의 끝에 자리한 광대한 분지, 그곳에는 한 채의 거대한 성채가 안개 속에 음산하게 우뚝 서 있었다.

(천마궁(天魔宮)...!)

청포노인은 눈 앞의 거대한 성채를 주시하며 두 눈에 기광을 번득였다.

천마궁(天魔宮)!

그렇다. 이 거대한 성채가 바로 전 마도의 하늘()인 천마궁이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전대마두들이 웅거하고 있는 와호잠룡(臥虎潛龍)의 복마전(伏魔殿)!

거령마신과 청포노인은 잠시 하늘을 찌를 듯한 천마궁의 당당한 위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어서 가세! 총관이 오제(五弟)를 기다리고 있네!”

거령마신이 먼저 청포노인을 재촉하여 몸을 날렸다.

스슥! 청포노인은 아무말없이 곧바로 거령마신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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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九 章

 

               地獄密室

 

 

 

소양(邵陽)!

 

동정호(洞庭湖) 남단에 위치한 아담한 시진, 소양 입구에는 자그마한 주루 하나가 있었다.

아담하나 그런대로 형식을 갖춘 주루, 그 주루의 창가, 한 명의 백의청년이 병째로 화주(火酒)를 들이키고 있었다.

몇날 며칠을 깎지 않은 듯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청년, 그는 바로 군무현이었다.

며칠 사이 그의 안색은 눈에 뜨이도록 핼쓱해져 있었다.

! 군무현은 탁자 위에 소리나게 술병을 내려놓았다.

퀭하게 변한 그의 두 눈, 그것은 짙은 고뇌의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가엾은 황후...!”

문득 그의 입가로 미약한 탄식성이 새어 나왔다.

세상에 태어나 보이지 못하고... 천길 약수에 묻힌 나의 분신...!”

그는 갈가리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다시 독한 술을 들이켰다. 하나, 극고한 내공으로 인해 술기운은 쉽사리 오르지 않았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화르르...! 문득 향긋한 한줄기 화향(花香)이 이는가 싶더니 주루 안으로 한 명의 왜소한 인영이 날아들었다.

소녀(少女). 그 왜영은 이제 십사오세 가량 되어 보이는 미소녀였다. 상당한 미모에 앙증맞은 색기(色氣)를 뇌살적으로 풍기고 있는 소녀, 그녀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다급히 주루 안을 둘러 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병째 술을 들이키고 있는 군무현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순간, 소녀의 교구가 군무현을 향해 날아갈 듯 미끄러져 갔다.

... 공자님! 소녀를 좀 숨겨주세요!”

그녀는 다급한 음성으로 군무현에게 부탁했다.

바로 그때, ! ! 주루 밖에서 분분히 옷자락 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소녀는 사색이 되어 다급히 군무현의 등 뒤로 숨어 들었다.

“...!”

군무현은 소녀의 가냘픈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주루의 입구로 두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시뻘건 혈포가사를 걸친 라마승들, 그들은 흉흉한 살기를 폭사하며 음침한 괴소를 터뜨렸다.

크크크... 어딜 갔나 했더니... 기껏 여기까지 달아났느냐?”

쿵쿵...! 두 명의 혈포라마는 주루 바닥을 거칠게 울리며 사나운 기세로 소녀를 향해 다가섰다.

순간,

... 공자님!”

소녀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군무현의 팔에 매달렸다. 그 모습에 혈포라마들은 군무현을 노려보며 음험하게 웃었다.

흐흐... 이놈아! 냉큼 그 계집을 본 보살에게 넘겨라!”

“...!”

군무현은 그제서야 술병을 놓으며 혈포라마들에게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

순간,

“...!”

군무현과 시선이 부딪힌 혈포라마들은 안색이 일변했다.

돌아가라!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 살려준다!”

군무현은 지극히 냉담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순간,

... 뭣이라고?”

... 감히 혈륭마찰의 보살들을 능멸하다니...!”

혈포라마들은 분노로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잡아먹을 듯 군무현을 노려 보았다.

이어,

죽어랏!”

꽈릉...! 그 자들은 다짜고짜 무지막지한 장을 휘둘러 군무현을 짓쳐드는 것이 아닌가?

!”

그들의 갑작스런 공세에 소녀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비명을 내질렀다.

하나,

피를 보지 않으려 했거늘...!”

군무현은 싸늘하게 안색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순간, 화르르르! 그의 우장에서 시뻘건 극양지기가 폭출했다.

직후,

케 엑!”

!”

처절한 두 마디의 비명과 함께 두 명의 혈포라마는 그대로 재로 화해 산화해 버렸다. 실로 너무도 끔찍하고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엄청난 광경에,

... 이럴 수가...!”

보고 있던 소녀는 눈망울을 한껏 확대하며 교구를 바들바들 떨었다.

그 순간, 군무현은 어느 새 휘적휘적 주루 밖을 나서고 있었다.

아연하여 입을 딱 벌리고 있던 소녀, 그녀는 흠칫 정신을 차리며 다급히 군무현을 따라 나섰다.

공자님!”

그녀는 빠르게 군무현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어, 그녀는 돌연 군무현의 앞에 무너지듯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공자님! 우리 아씨를 구해 주세요!”

그녀는 간절한 음성으로 애원했다.

“...!”

군무현은 눈썹을 찌푸리며 소녀를 내려다 보았다. 그런 그의 눈길은 황폐하고 무심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린 계집이 벌써 동정을 잃었다니...!)

그는 소녀가 이미 처녀지신이 아님을 알아보고는 내심 쓴 웃음을 지었다. 불과 십사오세의 소녀가 사내를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은 보는 이를 결코 유쾌하게 만드는 일은 아니었다.

네 아씨가 누구냐?”

군무현은 지극히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순간, 소녀는 안색을 펴며 얼른 대답했다.

소녀는 취취(翠翠)라 하옵고... 저희 아씨는 만화천요(萬花天妖) 황보영혜(皇甫慧)라 하옵니다!”

... 화천요(萬花天妖)!”

천하제일염(天下第一艶)으로 불리우는 여인, 그녀는 천성적으로 지독한 색기를 타고 태어나 일찌감치 천하제일탕녀라는 명성을 획득한 바였다.

만화부(萬花府)의 당대부주인 만화요희(萬花妖姬)의 막내 사매가 바로 그녀였다.

 

만화천요가 네 아씨라고?”

!”

소녀 취취(翠翠)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한데... 부주께서 혈륭마찰의 혈륭대법사(血隆大法師)에게 아씨를 제물로 주려고 합니다. 혈륭대붕천마공(血隆大崩天魔功)을 연마하는 제물로...!”

그녀는 애절한 눈길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제발... 아씨를 구해 주세요. 혈륭대붕천마공은 순음지기를 흡수하여 익히는 것으로 아씨는 죽고 말거예요!”

무심한 표정으로 취취의 말을 듣고 있던 군무현, 문득 그는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만화부(萬花府)로 가자!”

순간,

... 공자님!”

취취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활짝 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공자님, 고마워요!”

그녀는 진정어린 감사의 빛을 띄우며 기쁨을 금치 못했다.

군무현의 깊고 무심한 눈에 순간적으로 미세하나마 웃음기가 떠올랐다.

(아직 치기를 벗지 못한 어린 소녀다...!)

이어, 그는 취취의 가냘픈 팔을 잡았다.

동시에, 스 악!

!”

깜짝 놀라 경호성을 재니르는 취취의 교구를 안아든 채 그는 섬전같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X X X

 

한칸의 밀실, 밀실 중앙에는 화려하고 넓은 침상이 놓여 있다. 한데, 침상 위,

아아...!”

한 명의 전라여인이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며 가쁘게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침상의 네 모서리에 사지가 결박당한 상태였다.

여인이 묶여 있는 침상 옆, 하나의 커다란 향로가 놓여 있었다.

스스스... 그 향로에서는 분홍빛 안개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 그것은 강렬한 최음약이 아닌가?

아아... 흐윽...!”

여인은 뜨거운 신음성을 발하며 사지를 비틀고 있었다.

음약의 약효가 미미 퍼질대로 퍼진 듯... 욕화를 이기지 못해 쉴새없이 온 몸을 뒤틀며 몸부림치는 여인, 결박당한 그녀의 손목과 발목에는 참혹한 혈선이 그려지고 있었다.

한데, 전라여인, ...! 그녀는 실로 아름다웠다.

()의 완벽한 걸작품이라고나 할까? 섬세하고 아름다운 용모에 그린 듯 단아한 윤곽의 얼굴.

그녀의 피부는 대리석보다 더 희고 매끄러웠다.

가냘픈 듯 하면서도 풍만한 몸매, 그것은 놀랍도로 뇌살적인 염색(艶色)을 폭출해내고 있었다.

타고난 천성(天性)일까? 여인의 아름다움은 뇌색적이고도 아찔한 염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가히 폭발적인 매력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아... ... 제발...!”

여인은 풍염하고 미끈한 나신을 비틀며 자극적인 비음을 흘려냈다. 안타까운 욕망을 갈구하는 자극적인 몸짓, 그것은 숨막히도록 선정적이었다.

그때였다. 문득 침실의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인물이 실내로 들어섰다. 일남일녀(一男一女). 삼십대의 요염한 나의미부와 일신에 혈포가사를 걸친 음악한 표정의 노라마승이었다.

그들은 음탕한 미소를 흘리며 침상의 여인에게로 다가섰다.

노라마의 팔에 매달려 걷는 나의미부, 그녀는 풍만한 둔부가 자극적으로 흔들렸다.

호호... 대법사(大法師)! 어때요?”

아미타불... 훌륭하오. 훌륭해!”

혈포라마는 음침한 시선으로 침상의 여인을 살피며 대꾸했다.

이제껏 본 어떤 여시주보다 음기(陰氣)가 강하오. 물론 아직 원음지체(元陰之體)이겠지요?”

호호호... 물론이예요!”

혈포라마의 물음에 나의미부는 탕기어린 눈웃음을 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 대공(大功)을 이루시면... 첩신이 사흘 밤낮을 모시겠어요!”

그녀는 혈포라마를 향해 뇌살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 그녀는 혈포라마 혼자만을 남겨놓고 침실을 나갔다.

혈포라마, 그 자는 음침한 눈을 번득이며 침상가로 다가섰다.

이어,

아미타불...!”

순간,

아흑...!”

자신의 예민한 부위에 사내의 손길이 닿음을 느낀 전라여인은 숨넘어 갈 듯한 교성을 발하며 봉목을 한껏 치떴다.

그때, 화르르르... 스스스슥! 혈포라마의 전신으로 시뻘건 기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츠츠츠츠...! 전라여인의 국부에서는 극음지기(極陰之氣)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흑... 흐윽...!”

그때마다 여인의 입에서는 기묘한 쾌락성이 새어 나왔다.

동시에, 파르르...! 그녀의 전신에 세찬 경련이 일어났다.

츠츠츠...! 혈포라마의 몸 주위로 일어나는 혈기는 더욱 더 짙어지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아아악!”

돌연 침실 밖에서 처절한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뒤이어, 콰 당! 침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명의 인물이 당당한 자세로 들어섰다.

! 그는 바로 군무현이 아닌가? 그는 한손에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여인의 목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혈포라마를 이곳으로 안내했던 예의 마의미부의 목이 아닌가?

군무현은 두 눈에 강렬한 살광을 폭사했다.

불자(佛者)의 탈을 쓰고서도 음행(淫行)을 서슴치 않다니...!”

순간, 파파파 팟! 그의 손에서 나의미부의 수급이 재로 화해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죽어랏!”

그의 쌍장이 맹렬한 기세로 뻗었다.

콰르르르...! 시뻘건 불기둥이 가공할 위세로 혈포라마를 휩쓸어갔다.

태양천뢰폭(太陽天雷爆)! 그 가공할 열양공(熱陽功)이었다.

그 순간,

우웃!”

혈포라마는 용수철이 튕겨지듯 벌떡 일어서며 마주 쌍장을 격출했다.

직후, 콰콰 쾅! 천붕지열의 가공할 폭음이 들썩 밀실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크 윽!”

콰 쾅! 콰르르.. 혈포라마는 답답한 신음성을 발하며 침실의 뒷벽을 뚫고 날아갔다.

혈륭대법사! 살려보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임을 명심해라!”

군무현은 날아가는 혈포라마의 뒤에 대고 싸늘한 음성으로 외쳤다. 그때,

아씨!”

소녀 취취가 얼른 달려들어와 침상 위의 여인을 얼싸안았다.

침상 위의 전라여인, 그녀는 바로 천하제일염(天下第一艶)이라 불리는 만화천요(萬花天妖)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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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八 章

 

                    毒門聖地, 萬毒聖府

 

 

 

자욱한 운무가 백사(白蛇)처럼 뒤엉켜 있는 단천애,

... 이런...!”

군무현은 단천애 아래를 내려다 보며 낭패의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뻗어낸 일격에 단애로 밀려난 독황후가 단천애 아래로 떨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

그것은 실로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사태였다.

군무현은 망연한 표정으로 단천애를 내려다 보았다.

한데, 그때였다.

! 스슥! 문득 두 명의 인물이 군무현의 뒤로 날아내렸다.

한 명의 노인(老人)과 노파(老婆)였다. 그들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온통 주름살로 뒤덮여 있었다.

노인장들께서는...?”

군무현은 천천히 돌아서며 노인과 노파를 주시했다. 그러자, 그들 중 백염을 기른 노인이 얼른 입을 열었다.

노부들은 독황쌍려(毒皇雙侶)라 하오. 소협은 혹시 구류지존(九流至尊)이 아니시오?”

그는 그렇게 물음과 함께 눈을 빛내며 빠르게 군무현의 전신을 살폈다.

“...!”

군무현은 대답 대신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순간, 독황쌍려(毒皇雙侶)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그들은 격동의 표정을 지으며 곧 정중한 예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독노(毒老), 독파(毒婆)! 태상부군(太上)께 인사드립니다!”

갑작스런 그들의 태도에 군무현은 당황했다.

태상부군(太上)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요?”

그 말에 독파가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모르고 계셨습니까? 독황후 궁주께서는 태상부군의 아기씨를 가지셨습니다. 궁주께서 이곳에서 태상부군을 만나셔서 모두 이야기하셨을 줄 알았는데...!”

순간,

... 그런 일이...!”

군무현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는 쇠망치로 뒷통수를 거세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그의 눈앞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던 독황후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독황후가 나의... 아기를 갖다니...!)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망연히 중얼거렸다.

순간, 그의 안색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 모습에 독황쌍려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흠칫했다.

태상부군, 궁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 그들은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안돼! 안돼!”

군무현이 갑자기 미친 듯이 부르짖으며 단천애 아래로 몸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 그는 독황쌍려가 미처 만류하기도 전에 단천애 아래로 몸을 던졌다.

“...!”

“...!”

독황쌍려는 일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군무현의 모습은 이미 자욱한 운무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태상부군...!”

그들은 단천애 아래를 내려다 보며 굳어버린 듯 언제까지고 몸을 움직일 줄 몰랐다.

 

쐐 액! 군무현은 비단폭 가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성이 귓전을 스침을 느꼈다.

단천애 아래로 무조건 몸을 날리고 있는 그는 돌멩이로 자신의 발 등을 찧은 듯한 뼈저린 아픔을 체험했다.

독황후...! 그녀가 나의 아기를 갖다니...!”

지금으로서는 독황후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그녀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휘 익! 군무현의 몸은 자연스럽게 허공을 감돌며 절벽 아래로 날아내렸다.

실로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야만야한 낭떠러지, 끝조차 보이지 않는 아득한 절벽을 깃털처럼 가볍게 떨어져 내리다니...!

군무현이 펼치고 있는 신법, 그것은 바로 천랑신마(天狼神魔)의 천랑비천사대식(天狼飛天四大式)이었다.

한 순간,

안돼! 죽으면 아니되오!”

휘르르...! 군무현은 절박하게 부르짖으며 급격히 하강했다.

허공을 휘돌며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그의 몸은 낙뢰가 떨어지듯 단천애의 운무를 뚫고 급격히 떨어져 내렸다.

 

단천애 아래, 흡사 지옥의 입구처럼 음습하고 퀴퀴한 악취가 풍겼다.

스으... 스으...! 주위에는 온통 자욱한 운무가 흐르고 있어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한데,

... 이럴 수가...!”

운무 속에서 문득 망연하고도 허탈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군무현, 그는 습기찬 바닥에 주저앉아 넋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편없이 찢기고 더럽혀진 그의 의복, 뻐근하게 전신을 저며오는 통증, 하나, 그런 것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독황후, 그녀가 없었다. 그녀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지 않은가?

군무현이 주저앉아 있는 바닥, 그 앞에는 시커먼 묵수(墨水)가 가득 고인 하나의 넓은 웅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그것은 새의 깃털조차 뜨지 못한다는 지독한 약수(弱水)가 아닌가?

독황후...!”

군무현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는 망연한 표정으로 넋나간 듯 눈 앞의 웅덩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습기로 축축한 그의 얼굴에 뜨겁고 끈끈한 것이 흘러 내렸다.

눈물, ...! 그것은 사나이의 눈물, 뜨거운 자책의 눈물이었다.

 

한편,

... ...!”

독황후는 전신이 부서지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끼며 신음했다. 이어, 문득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는 순간 그녀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갑자기 머리 속이 텅 비어 버린 듯했다. 하나, 돌연 그녀는 소스라치듯 놀라며 몸을 떨었다.

(... 아기는...!)

그녀는 숨막힐 듯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본능적으로 자신의 하복부를 감쌌다. 이어, 그녀는 급히 심맥을 더듬어 몸 속에 웅크리고 있는 태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인 본능의 강렬한 모성애(母性愛)였다.

...!”

자신의 몸 속에 숨쉬고 있는 작은 생명을 느낀 독황후, 그녀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상은 없다!)

그녀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전신골격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통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태아가 무사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족했다.

그 사실이 극심한 고통마저도 잊게 만들었다.

아가... 너만 무사하다면... 나는 어찌 되어도 좋다!”

독황후는 조심스럽게 하복부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이윽고,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으음...!”

그녀의 안색이 절로 고통으로 찡그려졌다. 몸을 움직이자 다시 전신골격이 부서지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엄습한 것이다.

하나, 그녀는 잘근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문득, 그녀는 자신의 몸이 축축 젖어 있음을 느꼈다.

“...?”

그제서야 그녀는 아미를 모으며 주위를 살펴 보았다. 지금 그녀ㄴ는 차가운 동굴의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곳은 얕게 물이 고여 있는 지하수로(地下水路)가 아닌가?

독황후는 비로소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지. 나는 절벽에서 떨어져 물에 빠졌었다. 한데, 정신을 잃은 사이에 이곳으로 휩쓸려 들어온 모양이군!”

그녀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은 실로 천행(天幸)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독황후는 수로에 그대로 앉은 채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위 잉! 그녀의 몸 주위로 이내 검푸른 독강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뼈를 깎는 듯한 엄청난 통증이 수반되었다.

하나, 진기를 삼주천 하고나자 그녀는 전신이 가쁜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독황후는 반짝 눈을 떴다.

나를 쳐서 떨어뜨리다니... 다시 만나게 되면 용서치 않겠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원독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 앞에 무심한 표정의 군무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원독으로 가득차 있던 독황후의 마음이 갑자기 세차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어찌됐든 태어날 아기의 아버지이니...!)

그녀의 독심(毒心)은 이내 흐려졌다.

몸 속에 자라고 있는 아기를 생각하자 도저히 악심을 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를 두고 다른 계집과 바람을 피우다니...!”

독황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군무현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하나, 그녀는 군무현의 생각을 떨쳐 버리려 고개를 흔들며 문득 주위를 둘러 보았다.

우선 이 이상한 곳을 빠져 나가자!”

이어, 그녀는 물이 흘러 내려 오는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갈수록 동굴은 점점 더 높아졌다.

그에 반해, 물줄기는 더욱 가늘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독황후는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동굴 바닥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때 문득,

“...!”

독황후의 아미가 파르르 떨림을 일으켰다.

강한 독기(毒氣)가 느껴진다!”

그녀는 독문(毒門)의 명인이었다. 그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희미한 독기까지 감지할 수 없었다.

(매우 강하다. 독성지기(毒聖之氣)에 버금가는 독기다!)

독황후의 가슴이 일순 세차게 뛰었다. 그녀는 크나큰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흥분을 금치 못하며 급히 걸음을 옮기던 독황후, 문득, 그녀의 눈앞에 하나의 동굴이 끝나고 또 다른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한데, 그 동굴의 입구에는 온통 시커먼 독무(毒霧)가 어려 있지 않은가?

독황후의 봉목이 크게 치떠졌다.

독황성령지(毒荒聖靈地)가 전면에 있다. 이것은 독황성령지(毒荒聖靈地)에서 나오는 만독응정기연(萬毒凝精氣煙)이 틀림없다!”

그녀는 온통 격동과 희열을 금치 못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독황성령지(毒荒聖靈地)!

천지지간(天地之間)의 만독(萬毒)이 모여 녹아드는 곳, 그곳은 독문(毒門)의 인물들이 꿈에라도 그리는 성지(聖地)였다.

독성지신(毒聖之神)! 독문의 인물들이라면 이보다 더 큰 소원이 없다.

독황성령지의 독성지기(毒聖之氣)를 흡수하면 바로 독문지상(毒門至上)의 염원인 독성지신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다.

 

독황후는 세차게 가슴이 뛰는 것을 억제치 못했다.

그녀는 흥분되는 마음을 간신히 누르며 만독응정기연을 뚫고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만독응정기연(萬毒凝精氣煙)!

그것의 독기(毒氣)는 실로 엄청났다.

범인이라면 설사 공력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한줌 혈수로 녹아드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 독황후, 그녀는 오히려 전신이 상쾌해지는 쾌감을 느꼈다.

독문의 절정기공을 익힌 그녀로서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동굴 안으로 얼마나 걸어들어 갔을까? 문득, 독황후는 흠칫하며 몸을 세웠다.

하나의 시커먼 석문(石門)이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아 섰기 때문이다.

 

<만독성부(萬毒聖府)!>

 

석문의 중앙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세 치 깊이로 뚜렷이 패여져 있었다.

순간,

... 만독성부...!”

독황후는 떨리는 음성으로 나직이 뇌까렸다.

석문에는 또한 다음과 같은 글씨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었다.

 

<독문(毒門)의 제자가 아니면 열지 말라!>

 

독황후는 마음을 가다듬고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

독문의 전대고인께서 이미 이곳에 이르셨던 것 같다!”

그는 곧 석문을 향해 공손히 일배했다.

독황궁(毒皇宮)의 제자 제약란(製葯蘭), 성부에 들겠습니다!”

이어, 그르릉! 그녀는 석문을 가볍게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탄성을 발했다. 석문 안은 한 칸의 넓은 석실이었다.

석실의 중앙, 시커먼 액체가 가득 고여 있는 이 장 넓이의 웅덩이가 파여 있었다.

스으... 스으... 만독응정기연은 바로 그곳에서부터 꾸역꾸역 치솟아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독황후는 격동을 금치 못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만독성령지...!”

독문 최대의 성지(聖地)!

마침내 그녀는 만독성령지를 찾아낸 것이었다.

만독(萬毒)의 정화가 모여 드는 만독성령지. 그것은 실로 하늘이 독황후에게 내린 최대의 기연이었다.

만독성령지의 옆, 시커먼 흑옥석(黑玉石)으로 만든 하나의 석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석상 위, 하나의 큼직한 옥함이 놓여져 있었다.

독문 선배님의 유물이리라!”

독황후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어, 그녀는 석상을 향해 정중히 삼배한 후 옥함을 집어들었다.

옥함 안, 몇가지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한 장의 양피지와 역시 양피지로 만든 한 권의 책자, 그리고 검은 가죽에 싸인 작은 보검(寶劍) 한 자루가 그것이었다.

독황후는 먼저 양피지를 집어들었다.

 

<만독노조(萬毒老祖)가 독문(毒門)의 후진에게 남긴다.>

 

양피지의 첫머리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용사비등한 서체로 적혀 있었다. 순간,

... 만독노조(萬毒老祖)!”

독황후는 대경하며 부르짖었다.

 

만독노조(萬毒老祖)!

독문 사상 최강자(最强者)로 손꼽히는 인물, 그는 천지십강 중의 당당한 일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천년(千年) 이전의 인물, 고금을 통틀어 최초로 독성지경(毒聖之境)에 올랐던 독종지존(毒宗至尊)이었다.

 

만독노조의 유지를 접하다니...!”

독황후는 그 사실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하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수습하고 정중한 자세를 취했다. 이어, 그녀는 석상을 향해 황급히 구배를 올리는 것이었다.

만독노조(萬毒老祖)! 그는 바로 독문(毒門)이 조종(祖宗)으로 섬기는 지존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바친 독황후는 다시 양피지로 눈길을 돌렸다. 양피지의 글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中略... 이제 풍진(風塵)을 떠나며 본조(本祖)의 일신재학을 한 권의 독경(毒經)으로 기록하여 만독청명검(萬毒靑冥劍)과 함께 남긴다. 후진은 본조의 유지를 이어받아 독문지학(毒門之學)을 가일층 발전시키도록 노력하라!

만독노조(萬毒老祖) 절필(絶筆)!>

 

독황후는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문 최대의 영광을 그녀가 이어받게 된 것이 아닌가? 그녀는 양피지를 내려 놓고 떨리는 손으로 비급을 집어 들었다.

 

<만독살황독강경!>

 

비급의 표지에는 고전체로 그와같이 적혀 있었다.

... 만독살황독강경...! 천지십강의 유급을 얻다니...!”

독황후는 엄청난 희열과 감격에 몸을 떨었다.

스스스... 우르르! 끝없이 솟아오르는 만독응정기연, 그 속에서 또 한 명의 절대자(絶對者)가 탄생하고 있었다.

여인으로서 최초로 독성지신(毒聖之身)을 지니게될 독문최대의 절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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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七 章

 

                        斷天崖悲劇

 

 

 

꽈르르릉 릉! 콰콰쾅...!

가공할 폭발음과 함께 돌연 천랑동부(天狼洞府)의 일각이 거대한 굉음을 일으키며 붕괴 되었다.

그 돌연한 사태에 혈랑곡은 대소란이 일었다.

무슨 일이냐?”

천랑동부가 무너졌다!”

혈랑곡도 때아닌 참변에 사색이 되어 우왕좌왕했다.

그때,

!”

천지를 뒤흔드는 찌렁한 장소가 혈랑곡을 울려 퍼졌다.

그 순간,

... ...!”

... 지독한 내공이다!”

혈랑곡의 마졸들은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꽈르르릉... 쿠쿵!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듯 집채만한 바윗덩어리가 허공으로 마구 솟구쳐 올랐다.

혈랑곡은 일시에 파멸의 구덩이에 휘말린 듯 대진동을 일으켰다. 그 거대한 굉음 속을 뚫고, 스 악! 한 명의 인물이 장내로 날아내렸다.

일신에 먼지투성이의 백의를 걸친 미청년! 바로 군무현이었다. 그는 만면에 냉막한 살기를 띄우며 혈랑곡의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순간,

으으... ... 저놈이 죽지 않았다니...!”

한 명의 외팔이 노인이 벼락을 맞은 듯 전신을 부르르 떨며 사색이 되었다.

()의 한쪽, 군무현에게 한쪽 팔을 잃은 혈랑곡이 서 있었다.

그 자는 온통 경악과 공포에 질려 안색이 흙빛으로 질려 있었다.

그런 혈랑곡의 옆, 한 명의 흑포노인이 뒷짐을 진 채 음침하게 서 있었다. 그 자는 두 눈이 움푹 꺼져들어가 음독한 인상을 물씬 풍겼다.

장내의 광경에 흑포노인은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혈랑곡! 구류지존을 죽였다더니 대체 어찌된 일이오?”

그 자는 못마따안 표정으로 혈랑곡을 힐책했다.

... 음령마신(陰靈魔神)! 저 놈은 분명히 미로에 묻혀 붕괴되었었소!”

혈랑곡은 당혹한 얼굴로 황급히 설명했다. 하나,

어찌됐든 저 자는 멀쩡히 살아있지 않소?”

음령마신(陰靈魔神)이라 불린 흑포노인은 버럭 노성을 내질렀다.

... 그것이...!”

혈랑곡은 손을 부비며 낭패함을 금치 못했다.

그때, 장내를 둘러보던 군무현의 시선이 혈랑곡에게 고정되었다.

혈랑곡! 죽을 준비는 되어 있겠지?”

그는 두 눈에 냉혹한 살기를 번득이며 입을 열었다.

혈랑곡의 안면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애송아! 너무 날뛰지 마라!”

그 자는 눈을 부라리며 버럭 폭갈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삐 익! 그 자는 음침하게 외치며 재차 날카로운 호각을 불었다.

그 순간, 크르르 릉! ... 크르르...! 수백 마리의 혈랑들이 일시에 시뻘건 입을 쩍 벌리며 군무현을 향해 덮쳐 들었다. 하나,

물러나랏!”

군무현은 냉혹한 일갈과 함께 번쩍 우수를 쳐들었다.

직후, 화르르! 태양천화굉염신공의 가공할 불길이 주위 십장을 삽사에 뒤덮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케 엑! 크르릉...!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혈랑들이 숯덩이가 되어 나뒹굴었다.

...!”

그 광경에 혈랑곡의 안색이 잿빛으로 질렸다. 그 자는 사시나무 떨 듯 부르르 전신을 경련하며 불신의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군무현은 살기어린 냉혹한 눈비층로 혈랑곡을 노려 보았다.

양민에게 피해만 끼치는 미물들! 한 놈도 살려두지 않으리라!”

그의 손에 일순 봉황옥소가 들려졌다.

다음 순간, 삘릴리! 삐 익! 천공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케 엑! 크악... ! 일백마리의 혈랑들이 일제히 피를 토하며 거꾸러졌다.

천붕뇌명후의 살인적인 소성에 내장이 파열되고 사지가 찢기는 참변을 면치 못한 것이었다.

혈랑곡은 사색이 되어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 천황음(天皇音)!”

그 자는 극도의 충격과 공포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멸절사뢰음(滅絶死雷音)도 받아랏!”

군무현은 재차 봉황옥소를 힘껏 불었다.

삐 이익...! 혈랑곡 전체가 가공할 음파로 무섭게 뒤흔들렸다. 천지만물은 가공할 멸절사뢰음의 음파에 여지없이 찢기고 박살났다.

꽈르릉... 콰쾅! 케엑! 크르릉... !

으 악!”

크아악!”

흙먼지와 폭음이 짓터져 오름과 함께 인간과 짐승의 처절한 비명이 마구 뒤섞여 장내를 메아리쳤다.

그것은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극이었다.

백여 마리의 혈랑떼, 그 놈들은 완전히 머리가 박살난 채 참혹하게 나뒹굴었다.

비단 혈랑 뿐만이 아니었다. 혈랑곡의 마도들 역시 오공에서 피를 뿌리며 짚단처럼 쓰러졌다.

혈랑곡, 그 자는 엄청난 충격과 분노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으... ... 이럴 수가...!”

그 자는 한껏 부릅떠진 핏발 선 눈으로 장내를 노려보며 비틀비틀 물러났다.

그때, ! 군무현이 냉막한 살기를 폭사하며 혈랑곡의 앞으로 내려섰다.

으으...!”

혈랑곡은 공포에 질려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바로 그때,

흐흐... 네놈이 적룡대제의 자식이냐?”

혈랑곡의 옆에 서 있던 음령마신이 다른 칠인의 노인들과 함께 군무현을 에워쌌다.

늙은이는 누구냐?”

군무현은 검미를 꿈틀하며 음령마신을 노려 보았다.

음령마신은 움푹 꺼져 들어간 두 눈에 소름끼치는 살광을 폭사하며 말했다.

흐흐... 음령마신(陰靈魔神)이라면 알겠느냐?”

천마구령(天魔九靈) 중 셋째가 늙은이인가?”

군무현은 흠칫하며 중얼거렸다.

 

천마구령(天魔九靈)!

천마궁(天魔宮)이 휘하로 거둔 마도의 절정고수들, 그자들은 백년 내에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무림의 거물들이었다.

 

음령마신은 군무현이 반응을 보이자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귀동냥은 제법 했구나! 네놈이 감히 천마궁 휘하의 혈랑곡을 침범하였으니 흐흐... 네놈의 목을 베어 죄를 묻겠다!”

그 자의 말에 군무현의 입가에 한줄기 차가운 조소가 어렸다.

너희들의 실력으로 말인가?”

그의 모욕적인 어투에 음령마신의 안면이 보기싫게 일그러졌다.

다음 순간, 츠츠츠... ! 쉬 악! 군무현의 손에서 적룡검이 빗발치듯 뻗어나왔다.

거의 동시에, 음령마신은 군무현을 포위한 일곱 명의 노인을 향해 짤막하게 명했다.

현음백살진(玄陰白殺陣)을 펼쳐라!”

그 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위 잉! 음령마신을 포함한 여덟 명의 노인들은 쾌첩하게 진세를 회전시켰다.

하나,

늦었다. 적룡어강살!”

쐐 액! 군무현의 입에서 한 소리 냉혹한 외침이 터짐과 함께 번쩍 검광이 작렬했다.

직후,

케 엑!”

크으 윽!”

전면의 두 노인이 가슴이 쩍 갈라진 채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음령마신은 안색이 홱 변했다.

(... 상상 이상이다!)

그 자는 비로소 공포를 느끼며 혼비백산했다.

군무현은 잠시도 여유를 주지 않았다.

누워랏!”

... 츠츠츠! 위 잉! 적룡검의 검기가 번쩍 허공을 긋는 순간,

크 악!”

으아악...!”

!”

나머지 다섯 명의 노인도 잇따라 피거품을 물고 거꾸러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자는 음령마신 혼자 뿐, 그 자는 부르르 전율하며 불신의 눈빛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 적룡대제 이상이라니...!”

이어, 그 자는 식은 땀을 흘리며 간신히 혈랑곡의 곁으로 다가섰다.

군무현은 묵묵히 적룡검을 거두었다. 이어, 그는 천천히 혈랑곡과 음령마신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

“...!”

혈랑곡과 음령마신은 사색이 된 채 무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하나, 그들은 곧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스스스... 그들은 입술을 질끈 악물더니 군무현의 양 옆으로 각각 다가섰다.

군무현의 냉막한 얼굴에 희미한 조소가 떠올랐다.

잘 생각했다. 하나씩 덤비면 번거롭기만 할 뿐이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적룡검을 치켜 들었다.

그 순간,

혈랑번신(血狼飜身)!”

쐐 애액! 파파팟! 혈랑곡의 하나밖에 없는 왼팔에서 음독한 경풍과 낭아표(娘牙剽)가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음령마신도 쾌속히 양손을 떨쳐내며 혈랑곡의 공세에 합세했다.

음령파황뢰(陰靈破荒雷)!”

위 잉! 콰자작!

그 자의 손에서 심맥을 얼려버릴 듯한 극음강기가 노도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적룡제뢰(赤龍帝雷)!”

꽈릉...! 군무현도 냉막한 일성과 함께 섬전처럼 적룡검을 휘둘렀다. 가공할 정도로 웅후한 검세가 육합을 뒤흔들었다.

직후, 콰콰콰 쾅! 파파파팍! 엄청난 폭음이 짓터져 오르며 벌컥 지축이 뒤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크 악!”

한 줄기 처절한 단말마가 폭풍 속을 회오리쳤다.

혈랑곡! 그 자가 목덜미가 정확히 반으로 쩍 갈라진 채 바닥으로 나뒹구는 것이 아닌가?

크윽!”

음령마신도 결코 무사치 못했다. 그자 역시 가슴이 온통 피로 범벅된 채 휘청 물러났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가랏! 적룡파운산(赤龍破雲山)!”

파파팟 번쩍! 군무현이 재차 냉갈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검광일섬(劍光一閃)! 한 순간 장내는 온통 눈부신 검광으로 뒤덮였다.

그 가운데,

크 악!”

음령마신은 허리가 두 동강난 채 팽개쳐지듯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

갑자기 장내는 죽음과도 같은 무서운 정적이 짓눌렀다.

“...!”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없이 적룡검을 거두었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두 눈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그대로 들어왔다.

수백마리의 혈랑떼들은 모조리 몰살했다. 뿐인가? 이삼백 명을 헤아리는 혈랑곡도들이 모두 피를 토하며 쓰러져 있었다. 모두 전멸한 것이었다.

(또 하나의 원수를 갚았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하나, 무슨 까닭인가?

(원수를 죽였으나 마음은 오히려 더 무겁기만 하니...!)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비록 원수이기는 하나... 원수이기에 앞서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人間)이기에...!)

그는 탄식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이어,

!”

그는 내심의 무거운 압박감을 벗어던지려는 듯 한 소리 웅후한 장소를 터드리며 몸을 날렸다.

스스스...! 그는 허공으로 화살처럼 솟구쳐 올랐다가 수라혈잠영의 경공을 펼쳐 삽시에 연기처럼 혈랑곡을 빠져 나갔다.

혈랑곡을 빠져나가면 천야만야한 단애가 나온다. 좁은 험로의 우측으로 꺾여지며 급격히 경사를 이룬 천험의 절벽,

단천애(斷天崖)! 그곳을 일컬어 그와같이 부른다.

단천애는 사시사철 짙은 운무에 싸여 있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신비절지였다.

스스... 군무현은 그 단천애의 아슬아슬한 험로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고 있었다.

아직도 무거운 표정을 벗어던지지 못한 얼굴, 한데, 그가 막 하나의 큼직한 바위 옆을 지날 때였다.

죽어랏!”

돌연 날카롭기 이를 데 없는 여인의 한맺힌 교갈이 그의 귓전을 찔렀다.

그와 동시에, ! ...! 갑자기 주위가 온통 시커먼 독무(毒霧)로 뒤덮이는 것이 아닌가?

뒤미처, 꽈르릉...! 독무 속을 뚫고 강맹한 강기가 폭풍같이 군무현을 휩쓸어왔다.

순간,

... 독황후!”

군무현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는 일순 신형을 휘청하며 부르짖었다. 그것은 실로 너무도 갑작스런 사태였다.

하나, 콰르릉...! 군무현은 본능적으로 태양천화굉염신공을 일으켰다. 그의 전신에서 일순 불덩이처럼 강렬한 극양강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직후, 콰콰 쾅! 천붕지열의 굉음이 들썩 단천애를 뒤흔들었다. 그 순간,

!”

여인의 처절한 비명이 폭음 속에 회오리쳤다.

군무현은 흠칫 놀라 부르짖었다.

독황후!”

! 그는 대경하여 황급히 허공으로 솟아 올랐다. 하나,

아 악!”

그가 본 것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단천애의 운무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여인의 옷자락 뿐이었다.

그것은 그의 뇌리에 선명한 기억을 심어준 자의궁장이었다.

자의궁장여인, 그녀는 바로 독황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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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六 章

 

                  天狼洞府奇緣

 

 

 

군무현의 앞을 가로막은 열 세 명의 인물들, 그들의 선두에 선 인물은 지극히 음독한 인상을 지닌 노인이었다.

일신에는 피처럼 섬뜩한 혈포를 걸쳤으며 한 손에는 낭아곤(郎牙棍)을 들고 있었다.

그 자의 두 눈은 끔찍하게도 시뻘건 핏빛을 띠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잔인하고 흉폭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모습, 그 자의 뒤로, 역시 혈포를 걸친 열 두 명의 노인들이 음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한결같이 음독하고 잔악한 인상을 지닌 자들, 군무현은 서늘한 한기가 일렁이는 눈으로 선두의 혈포노인을 주시했다.

그대가 혈랑왕(血狼王)인가?”

그 말에 혈포노인, 즉 혈랑왕은 물씬 살기가 풍기는 기괴한 괴소를 터뜨렸다.

크크... 구류지존이란 놈이 어떤 놈인가 했더니 겨우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애송이였군!”

그 자는 군무현이 아직 약관에 불과한 것을 보고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하나, 군무현을 혈랑왕의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혈랑왕이 틀림없는 듯 하군! 그렇다면 죽어주어야겠다!”

말을 마치는 순간, ... 츠츠츠! 시뻘건 수라혈도가 혈광을 그으며 번쩍 날았다.

순간,

!”

여유만만하던 혈랑왕은 대경실색했다.

군무현의 발도(拔刀)가 너무도 빨랐기 때문이었다.

위잉! 그 자는 일수 당황하며 반사적으로 낭아봉을 휘둘러 수라혈도를 막아갔다.

직후, 콰 쾅! 카가각! 격렬한 파열음과 폭음이 뒤섞여 터져 올랐다.

그와 동시에,

크윽...!”

혈랑왕은 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휘청 물러섰다. 그 순간을 놓칠 군무현이 아니었다.

죽어랏!”

그는 숨돌릴틈도 없이 재차 수라혈도를 휘둘렀다.

츠츠츠...! 가공할 혈기(血氣)가 온통 주위를 휘감아 올랐다.

그 순간,

어딜!”

받아랏!”

혈랑왕의 뒤에 대치하고 있던 열 두 명의 혈포노인들이 일제히 군무현을 덮쳐들었다.

그 자들은 바로 혈랑십이살(血狼十二殺)로 불리는 혈랑곡의 최고 고수들이었다.

직후, 콰콰콰 쾅! 따다당! 군무현의 수라혈도는 혈랑십이살의 낭아곤에 부딪혀 공격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 순간, 스스슥...! 혈랑십이살은 기민하게 몸을 움직여 군무현을 포위했다.

그 모습에 혈랑왕은 시뻘건 눈을 희번덕이며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애송아, 혈랑혈살진(血狼血殺陣)을 아느냐?”

그 자는 진속에 포위된 군무현을 주시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위 잉! 츠츠츠... 진세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쐐 액! 사위에서 벼락같이 낭아곤의 공세가 짓쳐들었다.

군무현은 대노했다.

물러나랏!”

번 쩍! 일순 수라혈도가 섬뜩한 혈선(血線)을 그으며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파파팍! 콰릉...! 열 두 개의 낭아곤은 거대한 쇳덩이리에 부딪힌 듯 급격히 튕겨졌다.

하나,

(!)

군무현도 일순 신형을 휘청했다. 그의 수라혈도 역시 강력한 반진력에 의해 튕겨지는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혈랑왕은 그 광경에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혈랑혈산진에 갇히고도 살아난 자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다!”

그 자는 득의만면하여 자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본인이 그 전례를 깨어주지!”

군무현은 냉혹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위 잉! 돌연 혈랑혈산진 속에서 창창한 핏빛 강기가 퍼져 올랐다.

그 광경에 혈랑왕은 흠칫했다. 그 자는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그것을 느낀 순간 그 자는 혈랑십이살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위험하다!”

하나, 그 자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라혈영파천무!”

이미 진속을 뒤덮은 혈강 속에서 군무현의 대갈이 터져 나왔다.

다음 순간, 콰르르릉! 쿠쿵...! 거대한 폭죽이 터지듯 뇌성벽력이 천지를 벌컥 뒤집어 엎었다.

그와 함께,

으 악!”

크윽... !”

케 엑!”

회오리치는 핏빛 그림자 속에서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잇달아 터져 올랐다.

오오... 보라! 끔찍하게도 혈랑십이살의 몸뚱이는 갈가리 찢겨 사방으로 튕겨져 나간 것이 아닌가?

그 자들은 흔적조차 없이 처참하게 허공에서 분시되고 말았다. 그 충격적인 사태에 혈랑왕은 안색이 시커멓게 질렸다.

... ...!”

그자는 공포에 질린 안색으로 사시나무 떨 듯 전신을 떨었다.

다음 순간, ! 그 자는 죽을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혈랑곡의 끝에는 절벽이 가로놓여 있었으며 그 절벽 중앙에는 하나의 석동(石洞)이 뚫려 있었다.

혈랑왕은 허공을 가로질러 벼락같이 그 석동 안으로 뛰어 들었다.

군무현은 그런 그 자를 차갑게 노려 보았다.

후훗...!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는 막 석동 안으로 뛰어드는 혈랑왕을 향해 수라혈도를 겨누었다.

순간,

수라도천파(修羅刀天破)!”

파파팟! 한소리 냉혹한 외침과 함께 핏빛 그림자가 번쩍 혈랑왕을 쫓았다.

어검술과 일백상통하는 이기어도술!

혈랑왕은 사색이 되어 다급히 몸을 피했다.

하나 그 순간,

!”

피보라가 확 퍼져오르며 그 자의 오른쪽 팔이 어깨에서부터 싹둑 잘려나갔다.

파파 팍! 수라혈도는 그 여력에 못이겨 절벽의 석벽으로 파고들었다.

그때, ! 혈랑왕은 팔이 잘린 채 그대로 동부 안으로 달아났다.

교활한 놈!”

군무현은 눈썹을 꿈틀하며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다음 순간, ! 그는 망설임없이 석벽 중앙의 동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천랑동부(天狼洞府)!

 

절벽의 중앙에 뚫려 있는 동굴, 그 입구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굵은 서체로 새겨져 있었다.

천랑노인(天狼老人)이 적룡천종에 패하고 자결한 후 그의 제자였던 천랑신마(天狼神魔)가 천랑노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만들었다는 동부,

어디로 달아나든 놓치지 않는다!”

천랑동부의 입구에 내려선 군무현, 그는 냉막한 안색으로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 그는 망설임없이 천랑동부 안으로 날아들었다. 동굴 안은 어두운 통로로 이어졌다.

군무현은 신광을 빛내며 동부의 암로를 따라 들어갔다.

오십여 장 장도 들어갔을까? 문득, 군무현은 몸을 멈추었다. 그곳에서부터 통로는 십여 갈래의 복잡한 미로(迷路)로 갈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무현은 미로의 입구에 우뚝 선 채 잠시 멈칫했다. 하나, 이내 그는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청각으로 집중했다.

천이통(天耳通)의 공력을 펼치는 것이었다. 순간,

(이쪽이군!)

군무현은 두 눈을 번쩍 뜨며 중얼거렸다.

삼십 장 밖에서 미약한 호흡소리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측의 한 미로를 택했다.

순간, 스스... 그는 수라혈잠영의 경공을 펼쳐 연기처럼 그곳으로 빨려들어 갔다. 하나,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가 막 한 굽이의 통로를 꺾어 도는 순간, 그의 코 끝에 매캐한 화약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것이 아닌가?

(아차!)

군무현은 흠칫하며 급급히 몸을 되돌리려 했다. 하나,

크크... 늦었다!”

혈랑왕의 음악한 괴소가 그의 귓전을 때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혈랑왕! 네놈이...!”

군무현의 눈썹이 휙 거슬러 올라갔다. 하나, 그의 노성은 뒤이어 터져 오른 굉렬한 폭음 속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꽈르르 릉... 쿠쿠쿵...! 거대한 화약이 일시에 폭발하는 가공할 붕괴음,

그와 동시에, 콰콰쾅 퍼엉! 군무현이 들어간 석동은 완전히 박살나며 무너져 내렸다.

그때,

크크크... 제놈이 죽지 않는다면 인간도 아니지!”

무너진 암동 옆의 동굴에서 혈랑왕이 득의의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문득, 우르릉... 콰쾅! 집채만한 바위가 박살나며 그 틈에서 한 명의 인영이 걸어 나왔다.

온통 먼지투성이의 백의청년, 바로 군무현이었다.

그는 비록 먼지를 흠뻑 뒤집어 쓰기는 했지만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는 분노의 표정으로 안색을 이지러뜨렸다. 하나, 이미 혈랑왕의 모습은 그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주위에는 온통 부서진 바윗덩이와 흙먼지로 사방이 막혀 있었다.

군무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일시의 실수로 꼼짝없이 갇혀 버렸으니...!”

그는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어딘가 출로(出路)가 있겠지!”

이윽고, 그는 몸을 돌려 동굴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흙먼지를 헤치며 통로의 두 굽이를 돌았을 때였다.

그의 앞에 이끼 낀 하나의 석벽이 가로막아 섰다.

막다른 길이란 말인가?”

군무현은 낭패함을 금치 못했다. 다음 순간, 그는 발길로 석벽을 힘것 걷어차 보았다.

! 하는 음향이 석동 안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우 웅! 석벽 안쪽에 또 다른 공간이 있음을 알려주는 미미한 진동음이 전해오는 것이 아닌가?

또 다른 동굴이 있나보군!”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번쩍 우수를 쳐들었다.

순간, 콰르릉! 쿠쿵! 가공할 폭음이 터져 오르며 석벽은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그 순간, 음습한 습기가 군무현의 얼굴로 확 끼쳐들었다.

군무현은 가볍게 미간을 모으며 석벽 안으로 성큼 발을 들여 놓았다. 뜻밖에도 그곳은 하나의 넓은 석실이었다.

사면 벽이 온통 이끼로 뒤덮여 있는 밀폐된 공간,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주위를 살펴 보았다.

석실의 중앙, 잔뜩 이끼 낀 하나의 석상(石床)이 놓여 있었다.

그 석상 위, ! 끔찍하게도 그곳에는 이미 썩어 부폐해 버린 인골(人骨)이 한 무더기 쌓여 있지 않은가?

천랑신마(天狼神魔)가 만든 석실인가?”

군무현은 무심코 중얼거리며 천천히 석상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 중 한구의 시신, 그것은 지극히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워낙 석실 안이 습하여 거의 뼈의 형태마저 흩어질 정도로 부폐되어 있었다.

한데, 그 시체의 옆, 기형(奇形)의 채찍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검은 교룡근(交龍筋)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기이하게도 채찍 끝에는 여러개의 낭아(郎牙)가 박혀 있어 섬뜩한 느낌을 풍겼다.

그것을 본 순간, 군무현은 짐작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군. 이것은 천랑신마의 독문병기인 천랑신편(天狼神鞭)이 분명하다!”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펴 보았다.

석상의 밑에는 역시 다 문드러진 우람한 골격의 짐승의 뼈가 뒹굴고 있었다.

이것은 천랑노조와 천랑신마 사제(師弟)를 모시던 천년백랑(千年白狼)의 뼈이겠군!”

군무현은 나름대로 추측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는 별다른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무엇인가 남겨놓은 것이 있을 텐데...!”

군무현은 무심히 중얼거리며 면밀히 석실 안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이끼 낀 사면의 벽에 고정되었다.

그는 눈을 빛내며 석상 뒤의 석벽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그곳의 무성한 이끼를 손으로 뜯어냈다. 이끼가 벗겨지자 드러나는 광경,

! 그 속에서는 석벽을 깎아만든 조각품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한 마리의 핏빛 늑대가 네 다리를 엇갈려 뻗은 채 하늘을 나는 모습이었다.

비랑(飛狼)! 그것은 너무도 생생하여 실제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순간,

(현기가 있다!)

군무현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는 급히 나머지 세 벽면의 이끼도 모두 뜯어내기 시작했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세 벽면의 이끼를 모두 뜯어내고 나자, 그곳에는 역시 생생한 비랑도(飛狼圖)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광경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훌륭하다. 하나같이 초절한 경공절기들이다!”

군무현의 안색이 거듭 변했다.

그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네폭의 비랑도, 그것은 모두 초절정의 경공신법을 나타낸 도해임을, 그것은 천랑신마가 창안한 경공이었다.

그는 사부 천랑노조가 적룡천종에 패한 원한을 갚기 위해 무려 일갑자 동안 고심참담하여 마침내 네폭의 비랑도를 완성했다.

주로 경공을 위주로 창안한 그것은 경공 속에 잔독흉랄한 공격수법을 내포하고 있었다.

군무현은 감탄과 함께 기쁨을 금치 못했다.

경공으로서는 단연 일절(一絶)이다. 천랑비천사대식(天狼飛天四大式)이라 이름 짓자!”

그는 당장 네폭의 비랑도에 이름을 붙였다. 실로 뜻하지 않은 기연을 얻은 그는 다소 흥분되는 심정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나, 이내 그는 네폭의 비랑도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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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五 章

 

                     안타까운 女心

 

 

 

(), 만물(萬物)은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다.

한데, 스스스...! 문득 파향객잔으로 은밀하게 스며드는 한 줄기 인영이 있었다. 유령처럼 은밀히 객잔의 후원으로 스며드는 인영, 그는 바로 군무현의 거처를 향해 접근하고 있지 않은가?

문득, 흐릿한 달빛이 인영의 어깨 위에 떨어졌다. 그러자 희끗하게 드러나는 인영의 모습, 자의미녀(紫衣美女).

그 인영은 기품있고 고귀한 인상을 주는 여인이었다. 하나, 그녀의 안색은 다소 창백했으며 초췌하게 보였다.

군무현이 거처하고 있는 전각, 자의미녀는 그 앞에 이르러 우뚝 몸을 세웠다.

“...!”

일순 그녀는 복잡한 시선으로 전각을 바라보았다.

자의미녀, 그녀는 독황후(毒皇后)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독황후는 갈등이 엇갈리는 눈빛으로 전각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비록 창졸간에 욕을 당하듯 몸을 허락했으나 이제는 그이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잉태하였다...)

그녀는 살며시 자신의 하복부를 어루만졌다. 문득, 창백한 그녀의 두 볼에 홍조가 어리는 듯했다. 하나, 그녀의 표정은 왠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듯 복잡해 보였다.

(단 한 번의 관계로 아이를 잉태할 줄이야...!)

갈등과 수치, 그리고 은은한 자부심이 그녀의 입가에 떠올랐다. 이어, 그녀는 결심한 듯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그이에게 안길 수밖에...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도...!)

결심이 선 순간, 스스스... 독황후는 소리없이 몸을 움직여 전각의 창문가로 다가섰다.

실로 귀신을 방불케 하는 놀라운 신법, 문득 독황후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자신있다. 그이가 나 이외의 여인에게는 곁눈질도 못하게 만들 자신이 있다...!)

그녀는 자신에 찬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살아온 여인이었다.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다 했으며 소유하고 싶은 것 또한 부족함없이 소유하며 살아왔다. 또한, 그녀는 여인으로서는 지나칠 정도로 강한 기()와 고집을 지녔다.

한데, 그런 그녀가 모든 자존심을 꺾고 지금 군무현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공교롭게도 너무나 때가 좋지 않았으니...

일순,

(!)

독황후는 터져 나오는 신음을 간신히 틀어 막으며 봉목을 치켜 떴다.

반쯤 열려진 전각의 창문, 그 앞으로 다가서자 방 안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예... 화예...!”

아아...!”

숨가쁘게 어울려 나오는 뜨겁고 거친 남녀(男女)의 신음성, 독황후의 치떠진 눈에 뜨겁게 서로를 탐하고 있는 군무현과 빙백염후의 모습이 들어왔다.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침상을 뒹굴고 있는 두 남녀, 그것은 너무도 아찔하고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독황후, 그녀의 교구가 일순 휘청했다.

... 이럴 수가...!”

지독한 배신감과 모멸감에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상상하던 분홍빛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계집을 안고 있다니...!)

그녀의 교구는 무섭게 부들부들 떨렸다.

유아독존(唯我獨尊) 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떠받들려 살아온 독황후, 그녀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오직 자신의 남자(男子)여야만 하는 군무현이 다른 여인을 품에 안고 있다니... 그것은 독황후로 하여금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을 유발시켰다.

질투는 곧 엄청난 배신감으로 바뀌었고 배신감은 또 처절한 분노와 증오로 남았다.

(... 죽이리라! 두 년놈들!)

일순 그녀의 두 눈에 강렬한 살기가 떠올랐다.

! 그녀는 질끈 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함께,

에 잇!”

꽈릉...! 그녀는 일진광풍을 몰아 다짜고짜 군무현의 등을 후려쳤다. 순간,

!”

군무현은 그 돌연한 사태에 다급성을 터뜨렸다.

! 그는 촉망중에 빙백염후를 안은 채 그대로 바닥으로 나둥굴었다.

그 순간, 콰 쾅! 폭음과 함께 침상이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누구냐?”

군무현은 노갈을 터뜨리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독황후는 원독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노려보며 교갈을 터뜨렸다.

죽여버릴테다!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딴 계집과 놀아나다니...!”

말을 마침과 함께, 위 잉! 꽈릉... 그녀는 재차 벼락같이 교수를 휘둘렀다.

지독한 맹독이 실린 독강이 무자비하게 군무현을 짓쳐들었다.

감히 암습을 하다니...!”

군무현은 짙은 검미를 꿈틀했다.

그 순간, 우르릉! 그의 우장(右掌)이 태양같은 극양지기를 몰아 벼락같이 떨쳐냈다.

인정사정을 두지 않은 양인의 공격이 일순 극렬하게 충돌했다.

직후, 콰르릉 퍼펑!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오르며 전각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순간,

!”

폭음 속을 뚫고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독황후, 그녀는 울컥 선혈을 토하며 비틀 물러섰다. 하나, 군무현은 상체를 휘청했을 뿐 별다른 충격은 없었다.

그는 한밤 중에 침실을 기습한 무례한에 대한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어떤 계집이 감히...!”

이불을 끌어 엉겁결에 몸을 가리던 군무현, 그의 안색이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 온통 분노와 원독의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고 서 있는 여인, ! 그녀는 군무현의 뇌리 속에 너무도 깊이 박혀 있는 여인이 아닌가?

본의는 아니었으나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동정을 취한 여인이었다.

대파산의 어느 산동(山洞). 그곳에서 처음으로 하룻밤을 같이 했던 여인, 어떤 사유로든 독황후는 군무현의 첫여인임이 분명했다.

비록 하룻밤의 인연만을 남기고 헤어졌지만 그 후 군무현은 한 번도 독황후를 잊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첫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 그대는 독황후(毒皇后)...!”

군무현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독황후는 입술을 악물며 원독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노려 보았다. 크고 맑은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었다.

이윽고,

...!”

독황후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 몸을 날렸다. ! 이내 그녀는 전각의 담을 넘어 군무현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순간,

소저!”

군무현은 그제서야 흠칫 정신을 치리며 급히 창가로 다가섰다. 하나, 이미 독황후의 모습은 그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 두고봐! 반드시 복수하고 말 것이다!”

문득 멀리서 독황후의 울음섞인 교갈이 들려왔다.

으음...!”

군무현은 무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그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졌다.

그때,

... 지존! 무슨 일이십니까?”

한밤중의 느닷없이 소란에 놀라 잠이 깬 객잔의 주인이 헐레벌떡 달려나왔다.

별일 아닐세. 돌아가게!”

군무현은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의 말에 객잔의 주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허리를 숙이며 물러갔다.

그녀가 독황후... 그래서 구류곡(九流谷)에서 내게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군...!”

군무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빙백염후는 벌거벗은 채 다가와 군무현의 등에 가만히 얼굴을 묻었다.

 

X X X

 

혈랑곡(血狼谷)!

 

혈랑곡의 역사는 깊다.

오백 년 전, 적룡천종(赤龍天宗)에 분패하고 자진한 것으로 알려진 천랑노인(天狼老人)이 바로 혈랑곡의 조사(祖師)였다.

당금의 혈랑곡주는 혈랑왕(血狼王) 호목광(胡目光)이라는 자였다. 그 자는 반금강지체인 혈랑(血狼)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인물이었다.

또한, 그 자의 혈랑비천십삼세(血狼飛天十三勢)는 무림일절(武林一絶)로 정평이 나있었다.

금붕천왕(金鵬天王), 장강방(長江幇)의 방주인 장하용왕(長河龍王), 그리고 쾌도문(快刀門)의 도천왕(刀天王)등과 함께 신주오왕(神州五王)에 드는 절정고수였다.

아울러, 그 자는 흑도십팔절의 수뇌인물이기도 했다.

혈랑곡(血狼谷)! 그곳은 동정호에서 이백리 떨어진 호남(湖南)에 위치하고 있었다.

석광산(錫鑛山)! 바로 그 험지에 혈랑곡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천마궁의 비호를 받아 호남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패는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약탈과 폭행, 살인, 방화 등... 무고한 사람을 산채로 혈랑의 먹이로 던져주는 끔찍한 만행도 서슴치 않는 자들이었다.

 

오시(午時) 무렵, 쐐 애액! 문득 석광산의 준봉 위로 거대한 대천붕이 날아올랐다.

대천붕의 등, 군무현이 빙백염후를 가볍게 안은 채 앉아 있었다.

몸을 허락했기 때문일까? 빙백염후는 수줍은 중에 요염한 교태를 피우고 있었다.

군무현은 그녀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석광산을 내려다 보았다. 문득, 그의 눈에 운무에 둘러싸인 하나의 절곡이 보였다.

운무를 뚫고 많은 전각들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혈랑곡...!”

군무현은 그것을 내려다 보며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의 두 눈에서 일순 섬칫한 한광이 뻗어나왔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목을 졸라 주려했으나... 그 발호가 극심하니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그는 결심한 듯 안색을 굳혔다. 이어, 그는 빙백염후를 바라보며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화예... 천웅과 함께 자하곡으로 돌아가 있으시오!”

그 말에 빙백염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군무현을 올려다 보았다. 군무현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한시라도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빙백염후가 아닌가?

하나, 상황이 상황인만큼 군무현은 빙백염후를 조용히 타이르듯이 설득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일이 끝나는대로 곧 자하곡으로 돌아가겠소. 그동안 혜미(慧美)와 함께 지내면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

빙백염후는 뭔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녀는 떨어지기 싫다는 군무현의 옷깃을 잡는 것이 아닌가? 하나, 군무현이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 보자 그만 힘없이 손을 놓는 것이었다.

문득, ...! 한 방울의 맑은 이슬이 그녀의 옷깃에 떨어져 내렸다.

눈물! 그것은 눈물이었다.

군무현은 흠칫했다.

(눈물이 있다니... 완전한 여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과연 빙백염후는 여인으로서 완벽했다.

비록 분명하지는 않지만 감정의 표현도 할줄 알았으며 다소곳이 순종할 줄도 알았다.

이윽고, 군무현은 고개를 돌리며 대천붕의 등을 가볍게 쳤다.

천웅! 자하곡으로 돌아가라!”

꾸륵...! 대천붕은 군무현의 말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울부짖었다.

다음 순간, ! 군무현은 허공을 가르며 그대로 혈랑곡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섬전보다 쾌속한 속도, 그 순간 잠잠하던 혈랑곡은 벌컥 뒤집히고 말았다.

... 대천붕이다!”

구류지존(九流至尊)이 나타났다.”

혈랑곡의 인물들은 허공을 올려다 보며 대경성을 터뜨렸다.

대천붕(大天鵬)! 그것은 곧 구류지존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 패해랏!”

위험하다!”

그들은 우왕좌왕하며 급급히 몸을 날렸다.

하나 그때,

!”

한 소리 웅후한 장소와 함께 군무현이 깃털처럼 가볍게 혈랑곡으로 날아내렸다.

천하를 어지럽힌 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대가를 받아라!”

그는 냉혹한 표정으로 냉갈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츠츠츠... ! 시뻘건 도광(刀光)이 송두리째 혈랑곡을 휩쓸었다.

직후,

크 악!”

으윽...!”

!”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도광속에 난도질하듯 터져 올랐다.

수라파천도(修羅破天刀)!

그 가공할 돗가 사방에 엄청난 혈풍을 일으키며 난무했다.

군무현은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훌쩍 지면으로 내려선 그는 무차별하게 혈랑곡의 마도들을 휘몰아쳤다.

파파팟! ... ! 대기를 발기발기 찢어내는 가공할 도세가 온통 핏빛으로 출렁거렸다.

군무현은 계속 손을 멈추지 않으며 벼락같이 외쳤다.

혈랑왕! 어디에 있느냐? 나와서 검을 받아랏!”

그 순간,

받아랏!”

적은 하나다! 죽여랏!”

돌연한 사태에 잠시 주춤하던 혈랑곡도들은 발악하듯 군무현을 향해 덮쳐들었다.

!”

죽여라!”

우 웅! ... 츠츠츠! 그들은 죽기 살기로 분별없이 마구 공격을 퍼부었다.

하나, 우웅...! 한 순간 군무현의 수중에 들려있던 수라혈도가 길게 도명(刀鳴)을 말했다.

그와 동시에, 번 쩍! 전율의 혈광(血光)이 허공을 난도질했다.

직후,

크으윽!”

케 엑!”

으악...!”

섬뜩한 피보라와 함께 선혈의 분수가 터져 올랐다.

추풍낙엽(秋風落葉)! 혈랑곡들은 군무현의 냉혹한 살수 아래 가랑잎처럼 나가 떨어졌다.

이대로 간다면 순식간에 혈랑곡은 개미새끼 한 마리 남지 않고 전멸을 당하고 말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멈추어라!”

혼란스러운 장내를 뚫고 음독한 일갈이 쩌렁하게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 ! ! 군무현의 앞으로 십여 명의 인물들이 날아내렸다.

나타났군!”

군무현은 싸늘하게 중얼거리며 전면의 인물들을 노려 보았다. 그들의 숫자는 정확히 열 세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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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四 章

 

                  赤龍第三劍訣

 

 

 

큰일이군. 아버님의 유품을 망치다니...!”

군무현은 대천붕의 등 위에 앉은 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쐐 애 액! 대천붕은 거대한 날개를 저으며 그림같이 수려한 백수호 위를 날고 있었다.

군무현의 오른손을 피가 엉겨붙어 엉망이었다. 그 모습에 빙백염후는 안색을 기이하게 찡그리고 있었다.

초점이 없는 그녀의 두 눈에 안타까운 빛이 어리고 있지 않은가? 하나, 군무현은 지금 자신의 상처에 신경 쓸 형편이 아니었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적룡검을 바라보았다.

적룡검의 손잡이 부분의 온옥(溫玉)이 길게 금이 가 비틀려 있었다.

청하의 모니항마강수와 격돌할 때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금이 간 것이었다.

적룡검은 아버님께서 남기신 유품이거늘 함부로하여 손상을 입혔으니...!”

군무현은 죄책감을 느끼며 안타까운 기색을 지었다. 이어, 그는 그것을 어떻게든 원상태로 해보려는 마음으로 적룡검의 손잡이를 잡고 가볍게 비틀었다.

그 순간, ! 온옥의 손작이가 쩍 갈라지며 부서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 이런...!”

군무현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한데, ! 무엇인가 그의 무릎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온옥 속에서 떨어진 양피지 조각이 아닌가?

이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군무현은 눈썹을 모으며 조심스럽게 양피지 조각을 펼쳐 보았다.

순간,

... 이것은...!”

그의 안색은 일변했다. 적룡검의 손잡이 속에서 떨어진 양피지 조각, 그 속에는 깨알보다 작은 글씨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강적(强敵)을 만나야 적룡제삼검결(赤龍第三劍訣)을 얻으리라...!

 

글의 첫 줄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군무현은 경악과 흥분을 금치못했다.

... 적룡제삼검결(赤龍第三劍訣)! 온옥이 부서진 것은 적룡천종의 안배였단 말인가?”

그는 심하게 가슴이 격탕되는 것을 느꼈다. 양피지에 적힌 글의 내용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본 천종(天宗)은 검()으로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을 능가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팔만사천검종(八萬四天劍宗)을 연구하게 되었고, 시험적으로 만든 것이 바로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과 적룡어강살이었다.

 

군무현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적룡팔대식과 적룡어강살이 시험적으로 만든 초식에 불과하다고...”

그것은 실로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적룡팔대식과 적룡어강살!

그 두 가지 검결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적룡대제를 존재하게 했으며, 그 무명(武名)을 만방에 떨쳐 역사(歷史)의 한 기록을 장식하게 만들었다.

한데, 그 위력적인 검법이 적룡천종의 시험작에 불과한 것이라니...!

군무현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실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곧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양피지의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中略... 본종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천하무림은 적룡팔대식과 적룡어강살마저도 견디지 못했다. 강적을 찾아나선 본종은 크게 실망하여 은거지로 되돌아 왔다. 그후 본종은 다시 천외삼대천을 능가할 검공절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이른 것은 전설상의 심검(心劍)이다.

 

심검(心劍)!

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마음()만으로 천리(千里) 밖의 적을 격살할 수 있다는 전설의 절학, 이는 다만 전설로만 내려오는 상상의 무학이었다.

살심(殺心)이 이는 순간 마음의 검(心劍)이 적을 살상해 버리는 가공할 검학, 그것은 이미 인간의 한계와 형()이라는 무학의 궤()를 벗어난 신인(神人)의 경지였다.

양피지의 글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하나... 이는 천외삼대천조차도 이르지 못한 경지였다. 본종은 백 년을 고심참담했으나 심검의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인간의 수명이란 인위로 어쩔 수 없는 것... 마침내 본종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들었다.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의 적을 대하자 본종은 체념에 가까운 허허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불현 듯 심득(心得)이 일어나며 일평생 동안 찾아온 현의(玄意)가 확연히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군무현은 침음성을 발했다.

죽음을 맞이하여 심득을 얻으시다니...!”

그는 절로 숙연한 신색이 되었다. 그는 기대와 흥분이 앞서던 마음을 경건하게 가다듬었다.

양피지의 글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이에... 본종은 급히 깨달은 바를 적어 애검(愛劍) 적룡검(赤龍劍) 안에 비장한다. 아마 그대는 적룡어강살의 검법으로 쓰러뜨릴 수 없는 강적과 겨룬후에야 이 글을 보게 되리라. 이제 신검의 검결을 기록하거니와 부디 심검(心劍)으로 인해 하늘의 호생지덕을 거스리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

 

그 글 밑으로, 양피지의 아래 부분에 깨알보다 작은 글이 일천자나 적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심검(心劍)의 구결이었다.

“...!”

군무현은 흥분과 격동의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는 떨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기대의 눈빛으로 심검의 구결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심어초극류(心御招極流)!

 

이것으 그 심검의 이름이었다.

이는 사상 초유의 심극검(心極劍)이었다. 마음() 하나로 천리 밖의 적을 살상할 수 있는 절학의 검학,

 

심어초극류(心御招極流)의 구결을 살펴 본 군무현, 그는 감탄을 금치못하며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적룡천종께서는 천외삼대천 이상이시다. 비록 그 경지가 죽음을 직면했을 때 도래했지만...!”

그는 적룡천종에 대해 절로 경외감이 일어났다.

천외삼대천은 형()이 극()에 달했을 뿐이다. 하나, 적룡천종께서는 형()을 넘어 의()가 극의 경지에 이르셨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그는 점점 강렬한 의욕과 함께 흥분이 고조됨을 느꼈다.

그의 눈빛이 이순간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

“...!”

빙백염후는 흥분된 표정을 짓고있는 군무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군무현은 벅찬 격동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조용한 곳으로 가서 참수해야겠군!”

그는 빙백염후의 가는 허리를 굳게 끌어 안았다. 이어, 그는 대천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천웅! 서둘러라!”

그 말이 떨어진 순간, 구 워억! 대천붕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듯 길게 울부짖었다.

군무현의 귓전에 대천붕의 울부짖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큭 느껴짐은 무슨 까닭일까?

 

X X X

 

백파진(白波鎭), 백수호(白水湖) 연안의 작은 어촌, 얼마 되지 않은 촌가(村家)들이 듬성듬성하게 늘려 있다.

그 광경은 지극히 평화스럽고 운치있는 느낌을 준다. 또한, 백파진에는 풍광이 수려한 백수호를 연하고 있어 제법 여러개의 객잔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파향객잔(派香客棧).

 

백파진에 있는 주루와 객잔 중 가장 크고 깨끗한 객잔, 특히, 이곳은 싱싱한 어물(魚物)로 만든 요리가 유명하여 백파진을 찾는 풍류객들은 반드시 파향객잔에 들르기를 잊지 않았다.

파향객잔의 가장 깊은 곳, 월동문(月洞門)을 지나면 이런 한촌답지 않게 잘 정돈된 정원이 나타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기화이초들이 다투어 방향(芳香)을 뿌려대는 정원, 그곳에 서면 멀리 백수호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잘 정돈된 정원의 중앙, 그곳에는 한 채의 화려한 누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 또한 백파진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호화로운 누각이었다.

누각 안, 한 명의 백삼문사가 단정히 탁자에 앉아 있다.

깎은 듯 수려한 얼굴, 잔잔하고도 무심한 눈빛, 그는 하나의 작은 양피지 조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내용에 깊이 몰두하고 있는 그의 눈빛은 일점 흔들림도 없이 진지하고 신중해 보였다.

백삼문사! 그는 바로 군무현이었다.

이곳 파향객잔은 다름아닌 구류천종 소속이었다.

천하각지에 구류천종의 세력이 분포되어 있지 않은 곳이란 한군데도 없었다.

이미 밖은 어둑어둑해 지고 있었다. 군무현은 꼬박 반나절을 양피지와 씨름한 터였다.

문득, 사르르...! 가볍게 옷자락 끌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미끄러지듯 방 안으로 들어섰다.

빙백염후, 바로 두 손에 단정히 향차를 받쳐든 그녀였다.

비록 영혼이 없는 그녀이건만 여인의 본능 때문인지 군무현의 시중을 드는 일만은 치밀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윽고, 빙백염후는 조심스럽게 군무현의 앞에 향차를 내려놓았다. 그제서야 군무현은 고개를 들었다.

염후, 고맙소!”

그는 비로소 양피지에서 눈을 떼며 향차를 들었다. 그런 그의 안색은 어두웠다.

(심어초극류(心御招極流)는 인간 능력 이상의 바탕을 요구한다. 내공이 십갑자를 넘어 심령이 천지(天地)를 교회(交會)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연마가 가능하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또한 그 중의 이치는 대해(大海)와 같아서 도저히 깊이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다. 결코 일시에 깨달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문득, 화르르...! 군무현의 손 끝에서 한줄기 불길이일어났다.

그와 함께, 스스스... 그가 들고 있던 양피지는 한줌의 재로 부서져 내렸다. 군무현은 문득 고개를 흔들며 내심 중얼거렸다.

(나의 내공은 겨우 오갑자(五甲子)... 천지현관(天地玄關)을 타통하기는 요원한 일이다. 태양천화굉염신공과 만겁빙백명공강을 합일시키기 전에는 감히 익힐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빙백염후도 따라 일어났다.

군무현은 문득 피로감을 느꼈다. 심어초극류의 구결에 너무 몰두해 있었던 까닭이다.

염후, 오늘은 일찍 쉬고 싶소. 자리를 부탁하오!”

“...!”

군무현의 말에 빙백염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어, 그녀는 거실에 연한 침실로 들어갔다.

은은한 연청빛 휘장이 드리워진 침상, 그것은 넓고 안락하게 꾸며져 있었다.

빙백염후는 정성스러운 손길로 침상 위에 비단금침을 깔기 시작했다.

“...!”

군무현은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문득 그는 빙백염후가 다정한 아내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자리가 다 정돈된 것을 본 그는 침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사르르... 빙백염후도 걸치고 있던 백의를 벗고 속이 은은히 비쳐보이는 나삼 차림이 되었다.

군무현은 무심코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리다가 흠칫했다.

나삼 속으로 드러나 보이는 빙백염후의 완벽한 몸매, 그것은 너무도 선명한 굴곡을 이루고 있어 후끈한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과연... 고금일미(古今一美)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몸매다...!)

군무현은 내심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빙백염후의 그 완벽한 몸매를 본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염후는 영혼이 없는 염시일 뿐이다!)

그는 이내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빙백염후도 조심스럽게 침상으로 올라왔다.

염후, 잘자오!”

군무현은 자신의 옆에 눕는 빙백염후에게 한쪽 팔을 내어준 후 고개를 돌렸다.

한데 그때,

으음...!”

문득 빙백염후가 나직한 비음을 발하며 군무현의 가슴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뭉클한 여체의 감각이 가득 느껴졌다.

군무현은 일순 의아한 기색을 지었다.

염후, 불편하오?”

고개를 돌려 빙백염후를 바라보던 군무현, 그는 흠칫했다.

빙백염후의 봉목이 뜨겁게 빛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무엇인가 강하게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설마... 염후가...?)

군무현은 그럴리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나, 빙백염후의 몸은 이미 뜨거워지고 있었다.

“...!”

그녀는 뜨거운 교성을 발하며 그대로 군무현의 품을 파고 들었다.

뜨겁게 호소하듯 몸을 비벼대는 여체, 순간, 군무현의 젊은 피가 후끈 끓어 올랐다.

염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빙백염후의 끊어질 듯 가는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

빙백염후는 오랫동안 갈증을 견디며 목말라왔던 사막처럼 뜨겁게 군무현을 받아 들였다.

군무현은 그녀의 풍염한 몸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으며 입술을 더듬었다. 그러자, 빙백염후도 백사같은 팔을 뻗어 군무현의 목을 굳게 끌어 안았다.

한 순간, 스르르...! 매미껍질처럼 얇은 빙백염후의 나삼이 침상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와 함께, ...! 침상 위에 밝혀둔 황촉이 꺼지며 침실 안에는 어둠이 찾아들었다.

 

< 五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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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三 章

 

                    大悲神尼

 

 

 

으 윽!”

금붕천왕이 걸치고 있던 화려한 금포는 완전히 시커멓게 타버렸다.

그자는 안색이 시뻘겋게 변한 채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군무현 역시 충격을 받은 듯 나직한 신음성을 발했다.

금붕천왕 한 사람만의 공격이 아니라 위지사영까지 합세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경악의 눈으로 위지사영을 바라보았다.

대비불광참(大悲佛光斬)...! 대비신니(大悲神尼)의 무공이 나타나다니...!”

그는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대비신니(大悲神尼)!

공문제일인(空門第一人), 전 무림의 추앙을 받은 희대의 여고수였다. 그녀는 천축(天竺), 중원(中原), 서역(西域)의 불공을 통합하여 광대하고 현오한 불문선공으로 집대성했다.

그 업적이 길이 무림사(武林史)에 남을만한 공문(空門)의 재녀(才女),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이백 년 전부터 백 오십 년 전까지 무림을 행로하다가 소리없이 잠적했다.

천지십강(天地十强) 중 최근세의 인물이기도 하다.

 

군무현이 놀라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천지십강 중 일인인 대비신지(大悲神尼), 백 오십 년 전에 실종된 그녀의 무공이 위지사영의 손에 의해 펼쳐진 것이 아닌가?

그때, 위지사영은 차가운 살기가 이는 눈으로 군무현을 쏘아보았다.

눈은 제대로 박혀 알아보는군! 하나 죽어줘야겠다!”

그녀는 냉갈과 함께 재차 번쩍 교수를 쳐들었다.

순간, 위 잉! 눈부신 금광이 회오리치듯 장내를 휩쓸었다.

그 광경에 금붕천왕도 신속히 합세했다.

죽어랏! 금붕뢰(金鵬雷)!”

꽈 릉! 실로 가공할 압력을 지닌 공격이었다.

하나,

어리석은 짓!”

군무현은 안면을 냉혹하게 굳히며 번개같이 손을 휘둘렀다.

수라혈영파천무!”

그 순간, 실로 가공할 일이 벌어졌다.

파파파 팟! 콰 콰쾅...! 천지사방이 온통 아수라(阿修羅)의 혈기(血氣)로 뒤덮이는 것이 아닌가?

! 그것은 실로 섬뜩한 전율의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직후,

!”

위지사영은 자신의 호신강기가 여지없이 깨짐을 느끼며 뾰족한 비명을 토했다.

그녀가 아무리 대비신니의 무공을 지녔다고는 하나 결코 군무현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절대절명의 순간,

아미타불...!”

돌연 나직하나 한소리 청렴한 불호성이 장내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콰콰콰 쾅! 폭죽 터지듯 대폭발음이 장내를 뒤집어 엎었다.

마치 천지의 종말을 예고하듯... 쿠쿠쿵... 꽈릉...!

경기가 충돌하며 생긴 거대한 돌풍은 무려 백 장을 치솟아 올랐다.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으음...!)

군무현은 일순 해연히 놀란 기색을 지었다.

그의 앞, 어느새 한 명의 승포여인이 바람처럼 조용히 서 있지 않은가?

그녀는 머리에 죽립을 눌러쓰고 있어 용모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나, 일점도 흔들림없는 잔잔한 자태와 은은한 분위기가 범상치 않은 기도를 느끼게 했다.

그때,

사저!”

승포여인을 발견한 위지사영은 반갑게 외치며 몸을 날렸다.

군무현은 그제서야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 여인이 대비신니(大悲神尼)의 직전 전인이겠군...!)

문득, 승포여인은 죽립을 살짝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 워억! 대천붕의 쩌렁쩌렁한 붕명이 장헌령을 온통 뒤흔들고 있었다.

그와 함께, 케 엑! 한 마리 금붕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지면으로 내리박히듯 떨어졌다.

대천붕의 억센 발톱이 금붕의 등판을 박살낸 것이었다.

쿠 우...! 쐐 애 액! 대천붕의 활약은 실로 찬탄할 정도였다.

그 놈은 만금지왕(萬金之王)답게 십여 마리의 금붕을 힘들이지 않고 압도해가고 있었다.

대천붕과 금붕의 싸움! 그것은 마치 독수리와 참새의 싸움처럼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쐐 액! 대천붕은 거대한 날개를 떨치며 전면으로 덮쳐오는 금붕을 잡아챘다.

그 순간, 파파파 팍! 대천붕의 등에 타고 있던 빙백염후의 옥수(玉手)에서도 새하얀 빙백강기가 쏟아졌다.

직후, 꽈르릉... 콰쾅! 허공은 대폭발을 일으키며 벌컥 뒤집혔다.

그 가공할 폭음에 이어, 카 악! 크악... 마지막 안감힘을 쓰듯 금붕의 처절한 비명이 잇달아 터져올랐다.

검붉은 선혈은 무지개같이 허공으로 퍼져 오르고... 한 마리 금붕이 대천붕에 의해 머리가 박살났으며, 또 한 마리의 금붕은 얼음덩이가 되어 급속히 떨어져 내렸다.

금붕천왕은 그 광경에 안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 저럴 수가...!”

그자는 부르르 몸을 떨며 진저리를 쳤다. 그때,

아미타불...!”

회의여승의 입에서 문득 크고 해맑은 불호성이 터졌다.

순간,

(...!)

군무현은 안색이 일변했다. 그는 마치 일만 개의 범종이 한꺼번에 귓전을 두드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대비범자후(大悲梵慈吼)!”

그의 입에서 놀라움에 찬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때, 실로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허공을 온통 수라장으로 뒤덮었던 대천붕과 금붕이 즉시 싸움을 멈추며 갈라서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회의여승을 주시하며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비범자후가 만생(萬生)의 살기를 없앤다더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군!”

아미타불...!”

호의여승은 다시 마음을 씻어낼 듯 청정한 불호를 외었다.

그때, 위지사영이 회의여승의 승포를 잡아끌며 분노의 음성으로 말했다.

사저! 저자예요. 저자가 소매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살인귀(殺人鬼)예요!”

그녀는 온통 원한과 분노가 뒤엉킨 눈으로 군무현을 노려보았다.

회의여승, 그녀는 잔잔하고 조용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아미타불... 빈니는 보타암(菩陀庵)의 청하입니다!”

그녀는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그 음성으로 미루어 나이가 젊은 여승임을 알 수 있었다.

군무현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외사천(世外四天) 중 동천(東天)의 대비신니(大悲神尼)의 후예였군...!)

이어, 그는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본인은 군무현이오!”

그 말에 회의여승, 청하의 고개가 아래 위로 끄덕여졌다.

문득 그녀는 청아하고도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시주께서 사영 사매에게 독수를 쓴 까닭은 시주의 가문과 천신보(天神堡) 사이의 원한 때문이었군요!”

아셨으면 되었소!”

군무현은 무심한 어조로 짤막하게 대꾸했다. 이어, 그는 힐끗 금붕천왕을 주시했다.

(...!)

금붕천왕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며 일보 뒤로 물러났다. 군무현은 그런 그 자를 향해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본인의 실수로 계집을 다치에 하였으니 더 이상 손을 쓰지는 않겠다. 하나, 다음에 만날 때는 오늘같이 끝나지 않을 것이을 명심하라!”

말을 마침과 함께, 그는 무심히 몸을 돌렸다.

하나 그때, 스슥! 위지사영이 재빨리 몸을 날려 군무현의 앞을 막아섰다.

못간다! 내 얼굴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무사할 줄 알았느냐?”

그녀는앙칼지게 소리치며 군무현을 쏘아 보았다. 그런 그녀의 두 눈에는 구슬같은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었다.

비켜랏!”

군무현은 차가운 음성으로 일갈했다.

순간,

“...!”

그의 냉담한 태도에 위지사영은 움찔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회의여승 청하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시주... 잠깐만!”

스슥! 그녀도 가볍게 몸을 날려 군무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스님까지...?”

군무현은 눈썹을 꿈틀했다. 하나, 청하는 군무현에게 정중히 합장하며 말했다.

시주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오!”

군무현은 뜻밖이었으나 무심한 어조로 대꾸했다.

청하는 맑고 잔잔한 음성으로 설득력있게 말을 꺼냈다.

세속의 여인들에게 있어 용모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

그의 말에 군무현은 일순 움찔했다.

(설마 이 여승은...!)

청하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사주께서는 물론 본의는 아니셨겠으나 사영 자매의 용모를 손상시켰어요.”

스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오?”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청하는 나직한 불호성을 외우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미타불... 사영 사매의 장래를 시주께서 책임져 주셔야겠어요!”

“...!”

군무현의 안색이 일순 굳어졌다.

(역시 그렇군!)

그는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은 것을 깨달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위지사영, 그녀는 복잡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미움과 갈등, 그리고 안타까운 갈망이 마구 뒤엉켜 떠올랐다.

여심(女心)! 실로 오묘하기 이를데 없는 여심이었다.

하나, 군무현은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며 고개를 저었다.

스님께서는 현의천신(玄衣天神)과 본인이 세불양립(世不兩立)의 처지임을 잊으셨구려!”

하나, 청하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원한이란 풀어야지 맺어서는 아니되는 법, ()는 피를,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지요!”

하지만 군무현은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스님은 지나친 요구를 하고 계시오. 겁멸의 화()를 당해보지 못한 스님께서 어찌 본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소?”

순간,

“...!”

갑자기 승포에 싸인 청하의 교구가 격렬한 떨림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그녀의 몸에서 강맹한 강기가 회오리치듯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군무현은 흠칫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말을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이 여승도 무엇인가 깊은 한()을 간직한 신세란 말인가?)

한순간 죽음같은 침묵이 무겁게 장내를 짓눌렀다.

군무현과 청하, 그들은 아무말없이 서로를 주시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금붕천왕과 위지사영, 그들 역시 목이 조여드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문득, 청하가 먼저 침묵을 깨며 입을 떼었다.

시주께서 기절하신다 해도... 빈니는 사영 사매를 시주께 맡기고 말 것입니다!”

그녀의 의사는 분명하여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하나, 군무현 역시 그녀에 못지 않았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시오?”

혈영천종의 마공을 너무 믿으시는군요!”

청하의 그 말에 군무현의 안색이 냉담하게 변했다.

본인이 믿는 것은 혈영천종의 마공이 아니라 이 적룡검(赤龍劍)과 삼천적룡지혼의 투혼일 뿐이오!”

쩌 엉! 일순 삼엄한 검망이 일며 적룡검이 군무현의 손에 들려졌다.

그 순간, 우 웅! 청하의 일신에서도 지극히 강하고 웅장한 경기가 일어났다.

군무현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대비신니의 신공은 장중함이 특징이다. 불완전한 적룡천종(赤龍天宗)의 절기로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위 잉! 츠츠츠... 적룡검의 검신에서는 찬란한 검강이 전율처럼 퍼져 일어났다.

그 검강의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파파파팟! 콰릉...! 십장 내의 모든 것을 삽시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지켜보던 금붕천왕, 그자는 전권 밖으로 물러나 관전하며 내심 경악을 금치못했다.

(... 적룡검제 만큼 강하다!)

그는 한차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때, 위 이 잉! 청하의 교수가 번쩍 쳐들리며 그녀의 교수에서 반투명한 강기가 엄청난 진동을 일으키며 회오리쳤다.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모니항마강수!)

그와 함께,

조심하시오!”

... 츠츠츠! 번 쩍! 적룡검이 벼락같이 휘둘러지며 천지를 밝힐 듯한 눈부신 검광이 작렬했다.

직후,

아미타불...!”

대비범자후의 범창이 뇌성같이 장내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우 웅! 꽈르릉... 청하가 쪼개내는 교수에서 반투명한 항마강기가 노도처럼 쏟아졌다.

다음 순간, 콰콰 쾅! 쿠쿵... 양인의 공세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천번지복의 굉음이 터져나왔다.

그와 함께,

!”

아악...!”

금붕천왕과 위지사영은 노도같은 경기의 파동에 휘청 밀려났다.

군무현과 청하, 그들 역시 충격을 받고 서로 물러났다.

!”

...!”

휘몰아치는 흙먼지 속에서 문득 두 마디의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스스스... 위 잉! 흙먼지가 가라앉자 양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들은 각각 일보씩 물러나 있었다.

군무현, 적룡검을 쥔 그의 우수에서 한줄기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반면, 청하는 쓰고 있던 죽립이 박살난 채 벗겨져 있었다.

죽립 속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 ! 실로 아름다웠다.

경국경성(傾國傾城)의 절륜하고 그지없는 용모, ()으로 조각한 듯 섬세하고 뚜렷한 윤곽을 지닌 그녀의 얼굴은 희디 희어 슬프기까지 했다.

그녀의 나이는 삼십 전후 정도, 완숙한 아름다움의 절정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한데, 촤르르...! 문득 그녀의 머리를 맨 끈이 풀어지며 삼단같은 머리가 물결치듯 그녀의 어깨위로 흘러내렸다.

뜻밖에도 그녀는 걸치고 있는 승포와는 달리 삭발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승포 아래로 치렁치렁하게 드리워진 수발, 그것은 기이한 매력과 함께 슬프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청하는 깊고 그윽한 눈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녀의 맑은 시선이 복잡한 빛으로 흔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때, 철 컥!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묵묵히 적룡검을 거두어 들였다.

이어,

!”

한차례 무심하게 장내의 인물들을 일견한 그는 이내 몸을 돌렸다. 천공을 떨어 울리는 웅후한 창룡음,

그와 함께, 스슥! 군무현의 신형은 화살처럼 허공으로 쏘아졌다.

바로 그때, 구워억! 상공(上空) 백여 장에서 군무현을 기다리고 있던 대천붕이 크게 울부짖으며 그를 맞이했다.

쐐 애 액! 군무현을 태운 대천붕은 순식간에 백수호 쪽으로 까마득히 사라져갔다.

“...!”

청하는 망연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주시했다. 문득, 그녀의 눈빛이 아득하게 변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지극히 인자한 인상의 노니(老尼)의 모습이 떠올랐다.

 

청하야... 사부가 네 머리를 깎아주지 않는 이유는 아직 세속광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설마... 내가...!”

청하는 그 말을 떠올리며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어찌하랴? 군무현의 차갑고 무심한 얼굴, 그러나 지극히 영준하고 인상적인 그 얼굴은 이미 그녀의 뇌리 속에 가득차 버리고 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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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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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二 章

 

                 金鵬島女傑

 

 

 

군무현은 천천히 난설홍예를 향해 다가갔다.

...!”

난설홍예는 교구를 휘청거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만년빙지를 내놓고 대죄하라!”

군무현은 그런 그녀를 향해 싸늘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항거할 수 없는 위압감이 서린 음성, 순간,

죽어랏!”

난설홍예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돌연 맹렬한 기세로 양소매를 떨쳐냈다.

파파파 팍! 얼음이 갈라지는 섬칫한 소성이 귓전을 찢었다.

그와 동시에, 삽시에 주위 삼십 장이 지독한 극음강기로 뒤덮이는 것이 아닌가?

제법이군. 만겁빙백명공강을 이루다니...!”

군무현은 무심한 눈으로 난설홍예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화르르! 돌연 그의 몸에서 시뻘건 불길이 열풍처럼 일어났다.

그것은 상극의 극음강기와 격돌하며 거센 열기로 얼음을 녹여버렸다.

직후, 치지직... 쿠 쿵!

!”

난설홍예는 송곳으로 찔린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하나, ! 그녀는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가는 그 순간을 이용하여 그대로 백 장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빙백궁 비전의 최고 경공, 바로 빙하천절류(氷河天絶流)였다.

달아나다니...!”

군무현은 차갑게 냉소하며 몸을 날리려 했다.

하나 그때,

구류지존! 용서하시오!”

허공으로 떠올르는 군무현의 등을 향해 곡강의 진천패왕뢰(震天覇王雷)의 공격이 짓쳐드는 것이 아닌가?

위 잉! 꽈릉... 엄청난 압력이 담긴 맹공이었다.

군무현의 검미가 일순 무섭게 꿈틀 치켜 올라갔다.

돌아가랏!”

파파파 콰쾅! 그는 몸을 홱 돌리며 벽력같은 강기를 내리쳤다.

직후,

크 윽!”

사위를 들썩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곡강은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난설홍예는 구릉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빛으로 사라지는 난설홍예의 뒷 모습을 주시했다.

천하가 넓으니 본인의 그물이 천하를 덮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그는 냉담한 어조로 나직히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쓰러져 있는 곡강을 향해 다가섰다.

순간, 곡강은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그는 군무현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무사(武士)된 자로 암습을 했으니... 살아있을 가치가 없소이다. 죽이시오!”

그는 군무현의 앞에 고개를 처박으며 그의 처분만을 기다렸다.

(화룡거사(火龍居士)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있겠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이어, ! 그는 품 속에서 한 권의 양피지 책자를 꺼내 곡강의 앞에 내던졌다.

 

태양천화경(太陽天火經)!

 

그것은 바로 태양천제(太陽天帝)의 전진비급이었다.

순간, 곡강의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 무슨 뜻이오?”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동천목(東天目) 광양곡(廣陽谷)으로 가서 그것을 익히시오. 태양일맥(太陽一脈)을 잇는 것으로 그대가 암습한 죄를 묻겠소!”

“...!”

곡강의 전신이 사시나무 떨리듯 격심하게 떨렸다.

그의 두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떠올랐다. 이어, 그는 질끈 입술을 깨물며 떨리는 손으로 태양천화경을 집어들었다.

그 순간, 스슥! 군무현은 빛살처럼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백여 장 위의 허공에는 대천붕이 날개를 펴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군무현은 단번에 백여 장을 솟구쳐 올라 대천붕이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한 가지 당부할 것이 있오. 천마제군(天魔帝君)은 현천신모(玄天神母)의 진전을 이은 자요. 잘 생각하여 행동하시오!”

그는 지면을 내려다보며 곡강에게 일러주었다.

그 말에 곡강의 안색이 거듭 변했다.

천마제군이 현천신문(玄天神門)...!”

그는 망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때, 구 워억! 군무현을 태운 대천붕은 거구를 돌려 남()으로 날아가 버렸다.

곡강, 그는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군무현, 그는 대천붕의 등에 앉은 채 나직한 기소를 발했다.

후훗... 태양일맥(太陽一脈)이 천이백 년만에 천하를 떨어울리게 되리라!”

그는 화룡거사의 유명(遺命)을 들어준 사실이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군무현의 가슴에는 빙백염후가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었다. 문득, 군무현은 빙백염후의 고운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하하... 염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오. 염후의 후손인 묵빙현하 소저도 빙백천후보를 수련하고 있으니... 묵빙현하와 천궁패왕은 좋은 적수가 될 것이오!”

“...!”

아는지 모르는지, 빙백염후는 여전히 예의 그 의미없는 미소를 띈 채 군무현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하하... 기왕 출곡(出谷)하였으니 잠시 유람이나 하고 갑시다. , 천웅(天雄)! ()으로 가자! 염후에게 강남(江南)의 절경을 보여 주어야겠다!”

군무현은 대천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순간, 쿠 우! 대천붕은 길게 울부짖으며 창공 더 높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그들의 모습은 끝없는 창공의 구름 속에 묻혀 버렸다.

 

황혼 무렵, 군무현과 빙백염후를 태운 대천붕은 붉은 노을 속을 날고 있었다.

 

장헌령(長軒嶺)!

호북(湖北)과 백수호(白水湖)로 들어서는 관문, 황혼 무렵의 장헌령은 전설 속의 신비한 정경처럼 아름다웠다.

한데, 구워억! 갑자기 대천붕이 흠칫하더니 나직한 경호성을 발했다.

“...!”

군무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전면을 주시했다.

삼마장 밖, 휘 익! 한 마리 거조(巨鳥)가 찬란한 금우(金雨)를 빛내며 날고 있었다.

양 날개의 편 길이가 무려 칠팔장에 이르는 거대한 금붕(金鵬). 하나, 아무리 크다고는 하지만 대천붕에 비하면 반도 안되는 크기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순간,

금붕(金鵬)!”

군무현의 두 눈에 번득 살기가 일었다.

필경 금붕도(金鵬島)의 금붕이리라!”

그런 그의 뇌리 속에 너무도 선명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적룡세가(赤龍勢家)!

그 웅장한 대장원의 멸겁, 수십마리의 금붕들이 적룡검사들을 습격하던 당시의 상황이 군무현의 눈 앞에 생생하게 떠 올랐다.

그것을 떠올린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졌다.

천웅! 쫓아라! 금붕도의 금붕이라면 살려두지 않겠다!”

그는 전면을 노려보며 살기띤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구 워억! 대천붕은 길게 울부짖으며 속도를 배가시켰다.

눈 깜짝할 순간, 대천붕은 금붕과의 거리를 이마장으로 좁혀들었다.

그러자, 크아! 앞서 달리던 금붕은 그제서야 대천붕을 발견했는지 공포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쐐액! 그놈은 전력을 다해 쏜살같이 남()으로 방향을 바꾸어 날아갔다.

그 순간,

“...!”

군무현의 두 눈이 번득 빛났다.

금붕의 등에 앉아 있는 한 명의 인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신에 화려한 금포를 걸친 여인, 그녀는 멀리서도 경악의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살려두지 않겠다!”

군무현은 싸늘한 한광을 발산하며 냉혹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삐 익! 그는 품 속의 봉황옥소를 꺼내 힘껏 불었다.

천붕뇌명후(天鵬雷鳴吼)의 가공할 살인음이 허공을 찢어 발겼다.

그 순간, 크 악!

!”

금붕과 함께 그 위의 금포여인마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지면으로 내리꽂혔다.

휘 익! 금붕은 머리를 아래로 떨군 채 빙글빙글 돌며 나선형으로 떨어져 내렸다.

천웅! 내려가자!”

군무현은 그것을 노려보며 대천붕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순간, 쿠우! 대천붕은 길게 울부짖으며 광풍을 몰고 장헌령으로 날아내렸다.

이윽고,

이곳에서 기다려라!”

휘 익! 군무현은 대천붕이 장헌령의 백장 상공에 이르자 깃털같이 가벼운 신법으로 아래로 날아 내렸다.

장헌령의 주위는 관목이 무성한 숲이었다.

한데, 무성한 관목 사이, 피투성이가 된 금붕이 사지를 뻗고 거꾸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그놈은 머리 속이 박살났음에도 한쪽 날개를 바들바들 떨고 있지 않은가?

그 금붕의 시신 옆, 금의여인이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나이는 이십세 전후 정도, 조각으로 빚은 듯 정교하고 아름다운 얼굴의 미인이었다.

하나, 그녀의 얼굴에는 오만함이 배어 도도한 인상을 풍겼다. 지금 그녀의 형색은 실로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일신에 걸친 금의는 갈가리 찢겨 전신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문득, 군무현의 눈에 여인의 왼쪽 가슴에 인두로 지진 듯한 끔찍한 상처가 보였다.

그것을 본 군무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계집까지 해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는 금의여인의 옆에 앉아 그녀의 상세를 살피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구 워억! 돌연 허공으로부터 대천붕의 급박한 경호성이 들려왔다.

군무현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홱 돌아섰다.

휘 익! 쐐 애 액!

장헌령 서쪽 산봉을 너머 십여마리의 금붕이 사나운 깃로 대천붕을 향해 쇄도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염후! 천웅을 도와주시오!”

군무현은 허공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하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네놈의 목이나 잘 간수해라!”

차갑고 날카로운 일갈과 함께, 위 잉! 돌연 군무현의 좌측으로부터 노도같은 강기가 짓쳐들었다.

(!)

군무현은 흠칫 놀랐다.

하나, 스슷...! 가볍게 몸을 흔드는 순간 어느새 그는 오장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한데,

흉수!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재차 앙칼진 교갈이 군무현의 귓전을 때렸다.

그와 동시에, 파파파 팟! 꽈릉... 눈을 멀게하는 찬란한 광휘가 일며 웅후한 경력이 폭풍같이 군무현을 휩쓸었다.

순간,

가랏!”

군무현은 싸늘한 냉갈과 함께 벼락같이 손을 휘둘렀다.

짜자작! 그의 손끝에서 번갯불이 작렬하듯 혈광(血光)이 튀었다. 바로 수라혈강수였다.

직후, 꽈르릉... ! 암습자와 군무현의 사이에 지축이 들썩 뒤흔들리는 폭음이 일었다.

군무현은 내심 흠칫하며 중얼거렸다.

(강하다!)

이윽고, 스스스... 장내를 뒤덮었던 흙먼지가 모두 가라앉았다. 그러자 드러나는 광경, 군무현의 전면, 한명의 여인이 우뚝 서 있었다.

그녀는 온통 원한에 얼룩진 눈으로 군무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희고 깨끗한 피부에 또렷한 윤곽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 한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한줄기 선명한 검흔(劍痕)이 길게 그어져 있지 않은가?

그것은 실로 옥()의 티라 아니할 수 없었다. 하나, 그 한가닥 검흔이 끔찍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기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야릇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으음...!”

여인을 본 순간 군무현의 입에서 절로 둔중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눈앞의 금의소녀, 그녀는 바로 천신보(天神堡)의 천금(千金)이 아닌가?

 

천래검봉(天來劍鳳) 위지사영!

바로 그녀였다. 군무현의 검()에 의해 옥같은 얼굴에 치명적인 검흔을 입은 소녀.

 

위지사영은 온통 원한과 분노로 교구를 파르르 떨며 군무현을 노려보았다. 크고 맑은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었다.

내 일생을 망쳐놓은 원수! 네놈의 목을 베어 그 보상을 받아내겠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앙칼진 음성으로 소리쳤다.

이어, ! 그녀는 허리춤에서 하나의 검을 뽑아들었다.

동시에,

죽어랏!”

츠츠... 위 잉!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군무현을 향해 검을 휘둘러냈다.

일순 수천 개의 검영(劍影)이 꽃송이처럼 확 퍼져오르며 위지사영의 모습을 가렸다.

으음...!”

군무현은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끼며 침음성을 발했다.

자신이 한순간 저지른 행동으로 인해 한 소녀의 일생이 타격을 받은 것이 아닌가?

그는 위지사영의 정면 공격을 받지 않고 가볍게 옆으로 몸을 피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쐐 액! 돌연 전신을 후벼팔 듯한 날카로운 경기가 측면에서 군무현의 옆구리를 노리고 쇄도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너무도 창졸간에 벌어진 쾌속한 암습이었다.

!”

군무현은 고통스럽게 옆구리를 움켜쥐고 비틀 물러났다.

그런 그의 옆구리, 어느 새 찬란한 금우(金羽)가 달린 하나의 강전이 박혀 있었다.

으득... 이놈! 감히 옥화(玉花)를 다치게 하다니...!”

위 잉! 이를 가는 분노의 음성과 함께 재차 측면에서 광풍노도같은 가공할 경기가 휩쓸려 왔다.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득 살광을 폭사했다.

금붕천왕(金鵬天王)!”

그는 냉혹한 일성을 터뜨리며 반사적으로 장을 후려쳤다.

순간, 꽈르릉! 콰 쾅! 각기 다른 세 가지 공세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

군무현은 옆구리를 움켜쥐며 휘청 한 걸음 물러났다.

물러서며 그는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그런 그의 눈에 한 명의 금포노인이 신형을 휘청거리는 것이 보였다.

금붕(金鵬)으로 이름을 떨친 금붕도(金鵬島)!

금포노인은 바로 금붕도주(金鵬島主)인 금붕천왕(今鵬天王)이었다.

군무현의 두 눈에서 가공할 살광이 번쩍 폭사되었다.

금붕천왕! 잘 만났다!”

다음 순간, 화르르! 그의 몸 주위로 시뻘건 극양지기가 불꽃처럼 일어났다.

순간,

우웃!”

...!”

금붕천왕과 위지사영은 안색을 일변하며 휘청 뒤로 물러났다. 군무현은 냉혹한 눈으로 금붕천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말에 금붕천왕의 안색이 흑빛으로 질렸다.

... 그렇다면... ... 네놈이... 군가(君家)...!”

그자는 대경실색한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다! 본인이 바로 군무현이다! 죽어랏!”

콰르르 릉! 일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듯 강렬한 극양강기가 금붕천왕을 휩쓸어왔다.

!”

금붕천왕은 다급성을 발하며 본능적으로 금붕강기를 발출했다.

파파파 팍! 눈부신 금광이 작렬하며 군무현의 저닌을 짓쳐들었다.

그 순간,

대비불광참(大悲佛光斬)!”

위지사영도 쾌속히 손을 저으며 금붕천왕과 합세했다.

번 쩍! 파파팟! 찬연한 불광(佛光)이 장엄하게 일며 군무현을 뒤덮어왔다.

이 대 일의 공격, 그들의 공격이 정면으로 격돌했다.

직후, 콰콰 콰쾅! 쿠쿠쿠...! 경천동지의 대폭음이 십장 방원을 온통 휩쓸었다.

군무현의 태양천화굉염신공은 사방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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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一 章

 

                    恐怖太陽天火宏炎神功

 

 

 

천궁패왕(天弓覇王) 곡강, 향차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일순 미묘한 갈등으로 흔들렸다.

하나,

궁주! 그동안 안녕하셨소?”

그는 이내 향차를 향해 정중히 포권했다.

그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강직했다.

그 순간, 촤르르... 옥구슬이 갈라지는 매끄러운 음향과 함께 향차의 주렴이 걷혀졌다.

이어, 화사한 분홍궁장을 차려입은 한 명의 여인이 사뿐 지면으로 내려섰다.

...! 천상(天上)의 선녀가 하강한 것일까? 향차 속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주위마저 화사한 빛으로 물들었다.

화려하고도 요염한 미태를 지닌 여인, 그녀의 뇌살적인 자태는 사내의 철석간담을 녹이고도 남을 정도였다.

난설홍예! 궁장여인은 바로 난설홍예가 아닌가?

공석(公席)중에 있는 빙백궁주의 자리를 스스로 차지한 빙백궁의 제일공주(第一公主)!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

천궁패왕 곡강의 강직한 얼굴에 걷잡을 수 없는 격동의 빛이 떠올랐다.

(아름답다. 수많은 녹림의 미희(美姬)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나 곡강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그는 내심 기이한 흥분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빨려드는 마력(魔力)과도 같았다.

그때, 난설홍예는 춘풍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곡강을 응시했다.

호호... 맹주께서 내일이나 되어야 도착할줄 알았는데 뜻밖이군요!”

고혹하기 이를데 없는 자태, 한마디 한마디에 달콤한 교태가 뚝뚝 흘러내렸다.

곡강은 그제서야 흠칫 정신을 차렸다.

밤을 도와 달려온 덕분에 이 시각에 이를 수 있었소. 강적의 소굴로 궁주를 보내고 어찌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겠소?”

그의 말에는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

난설홍예는 부드럽고 달콤한 눈빛으로 곡강을 응시했다.

(마음에 드는 사내야. 하지만... 본궁주의 미래를 맡질만큼 큰 그릇은 되지 못하다!)

그녀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중얼거렸다. 하나, 곡강의 마음은 뜨거웠다. 그는 진심으로 난설홍예의 일신을 염려했다.

녹림칠십이채의 사십팔걸(四十八傑)과 오백(五百)의 용사들이 이미 천신보의 보하(堡下)로 집결했소. 내일이면 혈륭마찰과 흑도십팔절의 후원군이 도착할 것이오!”

곡강의 말에 난설홍예는 고혹적인 자태로 살짝 머리를 쓸어 올렸다.

천신보의 정의맹(正義盟) 따위를 치는데 제국(帝君)께서는 너무 조심하시는군요. 정의맹 정도는 본 빙백궁의 힘으로도 괴멸시킬 수 있거늘...!”

그녀는 오만한 여인이었다. 그녀 특유의 오만함으로 곡강의 신중성을 비웃는 것이었다.

하나, 곡강은 안색을 침중하게 굳히며 고개를 저었다.

정의맹을 경시해서는 아니되오. 정의맹도들의 수는 얼마 안되지만 하나같이 백도의 최절정을 달리는 정예들이오. 특히, 정의맹을 이끄는 자는 자전신군(紫電神君)의 무공을 지녔음을 경각해야 하오!”

그 말에 난설홍예는 느닷없이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맹주께서도 한 가지 잊고 계신 것이 있군요!”

“...?”

곡강은 미간을 모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난설홍예는 자부심이 깃든 오만한 어조로 말했다.

본궁의 조상께서는 바로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의 일인이신 빙백염후(氷魄艶后)세요. 자전신군의 무공 따위가 빙백무공을 능가할 수 있다고 믿으세요?”

알고 있소. 하나...!”

바로 그때였다.

구 워억! 돌연 한소리 거창한 붕명이 사위를 뒤흔들었다.

순간,

... 대천붕(大天鵬)!”

난설홍예는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다급히 부르짖었다.

그때, 쐐 액! 남천일천(南天一天)을 가리며 한 마리 거대한 붕조가 난설홍예를 향해 곧바로 쏘아져 왔다.

... 설마... 그자가...!”

난설홍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두 눈앞에 한 명의 미청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희디 흰 피부에 조각같이 단아한 용모를 지닌 미청년, 그의 모습은 너무도 선명하여 결코 뇌리 속에서 지울 수 없을 정도였다.

난설홍예는 그 모습을 떨쳐버리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때,

대천붕...!”

곡강의 강인한 얼굴도 일순 굳어졌다.

콰르르... 휘 잉! 대천붕이 날개를 휘저을 때마다 가공할 소용돌이가 사위를 휩쓸었다.

순간,

어멋!”

!”

곡강과 난설홍예는 비명을 발하며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궁주! 조심하시오!”

곡강은 난설홍예를 향해 황급히 외쳤다.

바로 그때, 휘 익! 대천붕의 등에서 한 명의 백의청년이 바람처럼 날아내렸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천신(天神)이 하강하듯 표표히 날아내리는 그 모습은 실로 찬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대천붕은 허공 백여 장 높이에 떠 있었다. 하나, 군무현은 허공 백 장 위에서 깃털이 떨어져 내리듯 유유히 하강하고 있는 것이다.

군무현의 얼굴을 확인한 난설홍예, 그녀는 교구를 부르르 떨며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 역시...!”

그때, 스스슥...!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장내를 내려섰다.

난설홍예와 곡강의 앞에 우뚝 내려선 군무현, 그를 일견한 순간 난설홍예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강해졌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북해(北海)에서 처음 군무현을 만났을 때로 그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데, 지금 도저히 그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군무현의 시선은 제일 먼저 곡강을 향했다. 그는 곡강의 인물됨을 첫눈에 파악했다.

(장부다운 친구다. ()을 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천궁패왕이겠군!)

한순간,

“...!”

“...!”

군무현과 곡강의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파팟...! 불꽃을 튀기듯 강렬하게 부딪히는 눈빛,

순간,

(으음...!)

곡강은 내심 무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그는 마치 군무현의 눈빛 속으로 사정없이 빨려드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것은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강렬한 마력(魔力)같은 것이었다.

한데 그때, 스스스...! 삼인의 주위로 빙백궁의 여인들이 소리없이 모여들었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빛으로 힐끗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난설홍예에게 눈길을 고정시켰다.

그의 눈길이 닿는 순간 난설홍예는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 이내 그녀는 안색을 부드럽게 바꾸며 고혹한 미소를 지었다.

호호... 당신이 구류지존(九流至尊)인 줄은 몰랐어요!”

그녀의 말에 군무현의 눈빛이 가볍게 변했다.

(구류지존(九流至尊)의 전설을 알다니... 의외로군!)

하나 그의 시선이 차갑게 식으며 서늘한 한기가 뻗어 나왔다.

나의 신분이 무엇이든지 상관치마라. 본인은 그대에게 두 가지 볼일이 있을 뿐이다!”

그는 냉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난설홍예는 보통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군무현의 차가운 태도에도 관여치 않고 더욱 교태로운 모습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호호... 무엇인지 말씀해 보세요!”

교태가 뚝뚝 흐르는 요염한 자태, 그 모습에 곡강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그는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불끈 치밀어 오르는 것을 눌러 삼켰다.

군무현은 다시 냉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첫째는 빙백궁의 궁규를 어긴 죄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만년빙지(萬年氷芝)를 가져가기 위해서다!”

그 순간, 보고 있던 곡강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섰다.

구류지존! 너무 광망스럽지 않은가?”

군무현은 힐끗 곡강을 응시했다.

실망했군. 천궁패왕이 그래도 대장부(大丈夫)인줄 알았더니 소사(小事)에 얽매이고 감정에 날뛰는 졸장부였다니...!”

... 무엇이...?”

곡강은 분노와 수치를 참지 못하며 안색이 시뻘겋게 변했다.

무기를 들어라! 천궁파(天弓派)의 절기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리라!”

군무현은 일점의 동요도 없는 무심한 눈으로 곡강을 응시했다. 오히려 그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좌절을 당해보아야 더욱 강해지리라!)

이어, 그는 냉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대의 보잘 것 없는 실력으로 본존에 도전하려 하는가?”

으으...!”

곡강의 강인한 얼굴이 무섭게 씰룩거렸다. 그는 극심한 분노와 모멸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나, 그러면서도 그는 명망되어 군무현에게 먼저 덤비지는 않았다.

그것을 본 군무현의 눈빛이 일순 빛났다.

(되었다. 향후 백년의 녹림을 짊어질 재목감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는 짐짓 싸늘한 눈빛으로 곡강을 주시했다.

소원이라면 한 수 가르쳐 주지!”

다음 순간, ! 한무리 눈부신 광휘가 장내를 뒤덮었다.

! 어느새 군무현의 손에는 적룡검이 들려있지 않은가?

그것을 본 곡강의 눈빛이 일순 격력하게 흔들렸다.

으음... 적룡검(赤龍劍)! 그대는 바로...!”

군무현은 서늘한 한광이 이는 눈으로 곡강을 주시했다.

적룡어강살을 아는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위 잉! 적룡검의 검신에서 감히 마주볼 수 없는 강렬한 광채가 번쩍 폭사되었다.

동시에, 우르릉! 파파팟! 낙뢰같은 검강이 그의 가슴을 질타했다.

우 웃! 진천패왕뢰(震天覇王雷)!”

곡강은 다급한 신음을 발하며 반사적으로 궁()을 당겼다.

진천신궁의 위력은 가히 엄청났다.

콰릉 위잉! 폭풍같은 경기가 일시에 사위를 뒤집어 엎을 듯 몰아쳤다.

다음 순간, 양인의 공격이 벼락치듯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르릉... ! 파파파팍! 천붕지열의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크 윽!”

곡강은 고통스런 신음을 토하며 뒤로 나뒹굴었다.

그의 가슴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군무현, 그는 옷깃 하나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겨우 이 정도인가? 그러고도 녹림칠십이채를 이끌어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지극히 무심한 눈빛으로 곡강을 주시하며 말했다.

...!”

곡강의 안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호목(虎目)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군무현의 지극히 무심한 한 마디 한 마디가 화살이 되어 그의 가슴에 박히는 것이었다.

그때,

호호... 정말 대단하군요!”

문득 난설홍예가 요염한 교소를 터뜨려 장내의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렸다. 그녀는 이미 전권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또한, 군무현의 주위에는 어느 새 일백여 명의 빙백궁도들이 빙 둘러선 채 포위해 있지 않은가?

하나, 군무현은 그녀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힐끗 난설홍예를 응시했다. 그 눈빛을 접하는 순간 난설홍예는 내심 뜨끔했다.

(이자는 도대체...!)

그녀는 은은한 두려움을 느끼며 가볍게 아미를 찌푸렸다.

난설홍예! 구유현대진(九幽玄大陣) 정도로 본인을 어쩔 수 있다고 믿는가?”

군무현의 지극히 무심한 그 태도에 난설홍예는 고혹적인 표정으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글쎄요? 길고 짧은 것은 대 보아야 알겠죠!”

이어, 그녀는 군무현을 포위한 백여 명의 여인들을 향해 말했다.

호호... 구류지존(九流至尊)을 모셔라!”

그녀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위 잉! 스스스... 진세가 맹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지극히 강맹하고 음유한 경기가 소름끼치듯 일어났다. 범인이라면 그 음산한 경기에 여지없이 심맥이 얼어붙고 말 것이다.

츠츠츠... 위잉! 삽시에 주위는 온통 뼈를 얼릴 듯한 투명한 얼음으로 뒤덮혀 버렸다.

하나, 군무현은 여전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맹렬히 회전하는 진세 안에 우뚝 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진세는 극()에 이르렀다.

꽈르 릉! ... !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가공할 극음기류가 방원 오십 장을 뒤덮었다.

순간,

천외천(天外天)이 있음을 보여주리라!”

위 잉! 화르르...! 군무현의 입에서 차가운 일성이 떨어짐과 함께 그의 몸이 맹렬히 회전했다.

직후,

... 아니...!”

난설홍예는 눈을 크게 뜨며 소스라치듯 놀랐다.

보라! 군무현의 전신으로 태양같은 열기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전신이 불덩어리에 휩싸여 버린 것 같은 엄청난 광경!

태양천화굉염신공이다!”

그 속에서 군무현의 싸늘한 일성이 터져나왔다.

순간, 화르르... 파파파 팍! 노도같은 태양지기가 온통 사위를 집어삼킬 듯 거세게 회오리쳤다.

난설홍예는 일순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며 다급히 외쳤다.

안돼! 극성(極性)이다! 물러나라!”

하나,

늦었다!”

화르르... ! 콰콰 쾅...! 군무현의 전신이 일순 화산처럼 폭발하며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그와 함께,

!”

아 악!”

높고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이 잇따라 터져 올랐다.

천만 개의 화산이 일시에 폭발하듯 가공할 극양지류가 한순간 천지를 뒤덮었다.

그때,

!”

...!”

전권 밖으로 물러서 있던 곡강과 난설홍예도 그 여파에 휩쓸렸다. 그들은 전신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비틀 뒤로 물러섰다.

태양천화굉염신공의 위력! 그것은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 펼칠 수 없는 신위(神威)였다.

삽시에, 태양천화굉염신공의 극양지기는 오십 장 내의 모든 것을 휩쓸어 태워버렸다.

그 엄청난 광경에 난설홍예는 새파랗게 질려 사색이 되었다.

... 태양천제의 태양무공이 나타나다니...!”

그녀는 흡사 벼락을 맞은 듯 교구를 부르르 떨었다.

요요하던 그녀의 안색은 안전히 흑빛으로 질려 버렸다.

한 순간,

“...!”

“...!”

갑자기 장내에는 정적이 찾아들었다.

모든 것이 끝이었다. 구유현현대진을 이루던 일백 명의 여인들, 그녀들의 자위는 아예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모두 한 줌의 재로 화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 폐허, 주위는 완전히 폐허로 변해 있었다.

군무현, 장내를 바라보던 그의 안색이 일순 무겁게 굳어졌다.

(지나쳤다. 육성(六成)의 태양천화굉염신공의 위력이 이 정도라니...!)

그것은 그로서도 미처 상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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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 章

 

                     潛龍飛翔

 

 

 

군무현의 안색이 역시 엄숙했다.

적룡어강살은 일반 어검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신의 강기를 화산이 터지는 듯 일시에 폭출시키므로 뇌전(雷電)보다 빠르며 검강기공보다 배 이상 강하고 날카롭다. 먼저 진기를 단전(丹田)에서 이끌어 내어...!”

그는 적룡어강살의 구결을 강술하기 시작했다.

“...!”

“...!”

일백적룡검대는 눈빛하나 흐트리지 않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온 정신을 모아 경청하는 그 자세는 엄숙하기 그지 없었다.

그들이 어떤 인물들인가? 적룡세가의 투혼을 다시 천하에 불러일으킬 적룡검사들이었다. 또한 , 무공이라면 밥 먹기보다 더 좋아하는 인물들이 아닌가?

군무현이 구결을 두 번 강술하자 그들은 각자 그 오의(奧義)를 깨우치기 시작했다.

군무현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신뢰의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룡어강살까지 익힌다면 적룡검대 만으로도 과거 적룡세가의 성세를 능가할 수 있다!)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한데, 그때였다.

휘 익! ... 돌연 곡구(谷口)에서 초색화전(五色火箭)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에 천용학은 급히 몸을 날리려 했다. 하나,

천대장! 본인이 가보겠소.”

군무현이 그를 막으며 말했다.

다음 순간, ! 그는 곡구를 향해 가볍게 몸을 날렸다.

거의 동시에, ! 스슥! 군무현의 뒤를 따라 두 명의 인영이 몸을 날렸다. 남궁혜미와 빙백염후였다.

군무현 등은 순식간에 자하천류대진을 벗어났다. 그러자, 곡구의 광경이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

뜻밖에도 곡구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것이 아닌가?

삼천여에 달하는 인물들, 그들의 선두에는 몸에 꼭 끼는 흑색경자을 입은 한 명의 여인이 서 있었다.

첫눈에 상대의 전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매력을 지닌 미인.

군무현이 나타나는 순간,

지존!”

그녀는 황급히 부복하여 외쳤다. 그에 이어,

지존!”

삼천 명의 장한들이 일제히 외치며 군무현의 앞에 부복하는 것이 아닌가?

흑의경장녀. 그녀는 바로 환밀부주인 극밀환후(極密歡后)였다. 그리고, 그녀가 이끌고 온 삼천 명의 장한들은 바로 구류천종 칠십이파에서 선발되어 온 정예들이었다.

일어나라!”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감사합니다!”

극밀환후를 비롯한 삼천 명의 장한들은 입을 모아 외치며 다시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그때,

상공... 이분들은...!”

남궁혜미가 의아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군무현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혜미가 다시 수고를 해주어야 하겠소. 자하별부의 영약들과 신공비급으로 이들을 초정예화시켜 주시오!”

...!”

남궁혜미는 지혜로운 혜안을 빛내며 나직한 탄성을 발했다.

군무현은 문득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우리가 상대해야할 적은 천마궁의 십배가 넘는 강적일지도 모르오. 그들을 상대하려면 매우 강한 힘이 필요하오!”

명심하겠어요. 천첩의 미천한 재간을 모두 쏟아넣어 상공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어요!”

남궁혜미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군무현은 신뢰어린 눈빛으로 남궁혜미를 주시했다. 이어, 그는 문득 극밀환후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부주(府主)! 이 쪽은 본존의 내자(內子)이네!”

순간, 극밀환후의 아들다운 봉목에 언뜻 실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 이내 그녀는 그런 눈빛을 지우며 남궁혜미를 향해 예를 취했다.

천비, 주모(主母)를 배알합니다!”

그녀의 인사에 이어,

주모를 뵙습니다!”

삼천 명의 장한들도 남궁혜미를 향해 정중히 대례를 올렸다.

구류지존(九流至尊)!

구류천종의 수하들에게 있어 구류지존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그런 군무현의 아내인 남궁혜미 역시 그들의 눈에는 하늘처럼 보이는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남궁혜미는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여러분의 예를 감당할 수 없어요. 일어들 나세요!”

그녀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제서야 장한들은 입을 모아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군무현은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어, 그는 극밀환후를 향해 지시했다.

자하곡은 삼천 명의 인물들을 수용할 수 없다. 자하곡 뒤에 대둔곡(大屯谷)에 연무장을 설치하도록 하라!”

분부 거행하겠습니다!”

극밀환후는 즉시 대답하며 허리를 굽혔다.

삼천정영을 이곳까지 집결시키는 데는 천하의 이목을 속였을 줄 믿는다. 대둔곡에 연무관을 세우는 일도 극히 은밀히 행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군무현의 당부에 극밀환후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군무현은 이번에는 남궁혜미를 바라보았다.

혜미가 부주 일행을 대둔곡으로 안내해 주겠소?”

!”

남궁혜미는 살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극밀환후를 비롯한 삼천 명의 장한들은 다시 군무현에게 예를 취했다. 이어, 그들은 앞장서는 남궁혜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군무현은 몸을 돌렸다.

“...!”

빙백염후가 모호한 미소를 띄운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실로 기이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도 했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의미없는 표정인 것 같기도 했다.

군무현은 그녀의 그런 미소를 대할 때마다 흠칫 놀라곤 한다.

이지를 상실한 실혼녀, 그녀가 늘 입가에 머금고 있는 미소는 너무도 황홀했기 때문이다.

염후! 들어갑시다!”

군무현은 빙백염후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말했다.

그러자, 빙백염후는 군무현의 넓은 가슴에 사르르 몸을 기대오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고소를 지었다.

(누가 염후를 영혼이 없는 강시라고 믿겠는가?)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그는 가볍게 빙백염후의 어깨를 안은 채 자하천류대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구 우! 문득 허공에서 한소리 새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신응방의 연락인가?)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휘 익! 허공으로부터 한 마리 신응이 쏜살같이 떨어져 내렸다.

천리신응(千里神應)! 역시 신응방의 전서구였다.

천리신응은 가볍게 날개를 접으며 군무현의 어깨에 날아 내렸다. 군무현은 천리신응의 다리에서 하나의 천조각을 풀어냈다.

 

지존께 아뢰옵니다.

천마궁에서 천신보(天神堡)의 정의맹(正義盟)을 공격할 기세입니다. 그 선봉은 빙백궁(氷魄宮)으로 노산(魯山)의 사하(沙河)로 접근 중입니다.

신응(神應).

 

천조각에는 간략한 서체로 그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빙백궁!”

군무현의 두 눈이 번득 빛났다.

문득, 그의 무심한 두 눈에 차가운 한광이 솟았다.

난설홍예...!”

그는 간교한 계책으로 자신을 함정으로 몰아 넣은 난설홍예의 요염한 모습을 떠올렸다.

난설홍예... 만년빙지를 얻지 못해서가 아니다. 한 번은 따끔한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 계집이다!”

그는 차가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과연 난설홍예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교묘한 술책으로 군무현을 이용한 다음 빙백궁을 떠나 중원으로 들어갔다.

물론, 만년빙지는 그녀가 모두 취하여 지니고 온 것을 말할 나위도 없었다.

문득, 군무현은 품 속에서 봉황옥소를 꺼내들었다.

삐 익! 다음 순간 높고 날카로운 소성이 천공을 찢으며 멀리 메아리쳤다.

그 직후, 구워 억! 대천붕의 웅후한 붕명이 자하곡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콰아아...! 창천의 일각을 가리며 거대한 대천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

군무현은 그 순간 힘찬 장소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그러자, ! 빙백염후 역시 그림자처럼 뒤따라 몸을 띄웠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대천붕의 등에 올라탔다.

그때, 걸음을 옮기던 남궁혜미는 문득 아미를 모으며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어디로 가시는 걸까?”

군웅들 역시 한 개 점으로 화해 사라지는 군무현의 모습을 주시했다. 그 순간 남궁혜미는 들을 수 있었다.

노산(魯山)에 다녀오겠소!”

그녀의 귓전에 파고 드는 군무현의 전음을,

 

X X X

 

천신보(天神堡)!

 

적룡세가의 겁멸 후 중원일패(中原一覇)로 군림하는 대파(大派), 삼척동자라 해도 천신보의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정도였다.

 

현의천신(玄衣天神) 위지강(慰遲岡)!

 

이것이 당금 천신보의 보주(堡主)의 이름이었다.

그의 나이 육십(六十), 호신기공의 제일로 손꼽히는 천신강기를 십이성까지 익혔다.

천신보는 천마궁과 싸워 패하지 않은 단 하나의 문파였다.

 

천신군림신강(天神君臨神强)!

천신풍뢰검세(天神風雷劍勢)!

 

천신보 비전의 그 두 가지 무공은 천지십강의 무공에 육박한다고 알려졌다. 하나, 천신군림신강은 이미 백년 이전에 실전되어 위력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신보의 성세는 중주(中州)를 떨어울릴 정도였다.

 

노산(魯産)!

강서성(江西省)에 위치한 험산, 그 산을 끼고 도는 황하(黃河)의 지류가 있다.

사하(沙河)! 그 지류를 일컬어 그와 같이 부른다.

사하(沙河)는 노산의 험봉 사이를 가르며 넓은 백사장을 만들어 돌고 있다.

사하 연변, 멀리 노산의 최고봉인 강신봉(降神峯)이 바라다 보이는 곳이었다.

평소 그곳은 인적이 거이 없는 절지(絶地)였다.

한데, 넓은 구릉 위, 때아니게 수많은 인영들이 모여 있었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군웅들, 그들 중에는 사내들도 있었다. 하나, 대부분 그들은 여인들이었다.

얼음처럼 싸늘한 안색을 지닌 이십대 전후의 미인들, 그녀들의 수는 족히 천여 명이 넘어 보였다.

그녀들은 일신에 모두 백의를 걸쳤으며 키가 훤칠하게 컸다.

지금, 그녀들은 거대한 환원(環圓)을 이루며 포진하고 있는 상태였다.

환원의 중앙, 호환의 극을 달한 한 대의 향차가 서 있었다. 향차를 장식한 것은 온통 눈부시도록 화려한 보옥(寶玉)들이었다.

황후(皇后)의 마차인들 이처럼 호화로울까? 향차는 잡털하나 섞이지 않은 눈부신 백설총이 끌고 있었다.

그때, 스슥... 문득 한줄기 선풍이 일며 향차의 앞으로 한 명의 인물이 날아내렸다.

삼십대로 보이는 장항, 그는 일신에 가쁜한 청색경장을 걸쳤으며 출중한 용모에 강인한 인상이 물씬 풍기는 인물이었다.

첫눈에도 그는 뛰어난 호웅(豪雄)처럼 보였다.

그는 오른손에 한 자루의 강궁(强弓)을 들고 있었다.

그 장한이 나타나는 순간,

호호... 천궁패왕(天弓覇王) 곡맹주께서 이곳에는 웬일이시죠?”

문득 향차 안에서 농염하기 이를데 없는 여인의 교성이 울려나왔다.

철석간강을 녹이는 교태로운 옥성, 한데, ! 천궁패왕(天弓覇王)!

이 장한이 바로 천궁패왕이란 말인가?

 

천궁패왕(天弓覇王) 곡강(曲剛)!

약관의 나이로 남북녹림(南北綠林)을 일통한 대호웅(大豪雄), 한 자루 진천신궁(震天神弓)으로 숱한 녹림거효들을 굴복시키고 당당한 녹림칠십이채를 수하로 거둔 인물이었다.

그의 사문(師門)은 어떤가?

진천궁신(震天弓神)!

사백 년 전 천지십강 중 일대천인 현천신모(玄天神母)와 마지막까지 맞서 싸우다 장렬히 분사한 진천궁신의 후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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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九 章

 

            뜨거운 再會

 

 

 

“...!”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사라지는 대천성자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그때, 문득 천현우사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숙께서 직접 정의맹(正義盟)의 내실을 탐색하시려는 것입니까?”

그 말에 군무현은 의미모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정의맹이라기보다 대천성자의 주위를 주시하려는 것이오.”

이어, 그는 뒤쪽을 향해 문득 가볍게 손짓을 해보였다.

순간, 스슥...! 한명의 여인이 바람처럼 나타나 군무현의 앞에 부복했다.

지존(至尊)!”

그녀는 일신에 착 달라붙은 짙은 흑색경장 차림이었다.

첫눈에 보기에도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 하나, 가시를 품은 흑장미랄까?

그녀의 전신은 칼날같은 예기가 어려있어 감히 범접지 못할 정도였다.

군무현은 흑의경장녀를 향해 지시했다.

소요장을 감시하라. 명심할 것은 절대 소요장의 인물들과 충돌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흑의경장녀는 짧고 명확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물러가라!”

!”

스스스...! 흑의경장녀는 군무현에게 예를 취한 후 몸을 돌렸다.

그녀의 자취는 삽시에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천현우사는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뛰어난 경공이군요!”

“...!”

군무현은 아무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밀부(歡密府)!

구류천종의 칠십이파 중 일파(一派), 이는 모두 여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뛰어난 인술(刃術)과 미모로 천하의 기밀을 모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흑의경장녀는 바로 환밀부주(歡密府主)였다. 그녀의 이름은 극밀환후(極密歡后)였다.

 

군무현은 천현우사를 향해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였다.

몇가지 진세로 신기곡을 세상과 단절시켜 드리겠소. 이후로는 누구도 신기곡을 귀찮게하지 못할 것이오!”

감사합니다. 하지만 사숙께서는 때때로 들르셔서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천현우사는 진정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물론이오. 신기황 어르신네께 얻은 지식이니 신기곡에 들려줌이 마땅하오!”

군무현의 그 말에 천현우사는 천하를 얻은 것 보다 더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는 군무현을 바라보며 흡족함과 함께 진정으로 경외지심을 느꼈다.

(태산이시다. 이런 분을 존장으로 모신 것을 실로 신기곡의 흥복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감탄과 신뢰의 표정으로 내신 그렇게 중얼거렸다.

 

X X X

 

자하곡(紫霞谷)!

천중산(天中山)의 깊은 곳에 자리한 신비절곡, 스으... 스으... 신비한 자하(紫霞)가 온통 곡 전체를 자욱하게 뒤덮고 있었다.

석양 무렵, 문득, 구워어 억! 한소리 거창한 붕명이 석양의 자하곡을 울려퍼졌다.

이어, 쐐 애액! 한차례 엄청난 폭풍이 일며 거대한 대천붕이 자하곡으로 쏜살같이 내려왔다.

자하곡의 방대한 분지, 콰콰콰... 대천붕은 가볍게 날개를 접으며 분지로 날아내렸다.

순간,

...!”

... 아니...!”

분지 중앙에서 수련에 열중하고 있던 백여 명의 장한들은 아연한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때, 스슥...! 대천붕의 등에서 일남일녀가 가볍게 지면으로 내려섰다.

군무현과 빙백염후, 바로 그들이었다.

그 순간,

가주(家主)!”

군무현을 발견한 장한들은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입을 모아 외쳤다.

일백명의 웅맹한 기상의 장한들, 그들은 바로 일백적룡검대(一百赤龍劍隊)였다.

그들은 군무현의 지시대로 이곳 자하곡으로 와서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 태원(太原)에서 만났을 때보다 세 배 이상 강해졌다.)

군무현은 첫눈에 일백적룡검대의 놀라운 진보를 꿰뚫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들 나시오!”

그의 한 마디에 일백적룡검대는 일사불란한 태도로 몸을 일으켰다.

그때,

형님!”

문득 한소리 맑은 소년의 음성이 분지를 울렸다.

이어, ! 자하별부 쪽에서 한 명의 다삼소년이 뛰듯이 달려나왔다.

남궁준하 바로 그였다. 그는 반가움을 금치 못하는 얼굴로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준하, 잘 있었느냐?”

군무현도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었다. 그 말에 남궁준하는 문득 짓궂게 웃었다.

헤헤... 준하는 잘 있었지만 누나가...”

그때,

준하야!”

가볍게 꾸짖는 듯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어, 한 명의 자의궁장소부가 사뿐사뿐 다가왔다.

남궁혜미 그녀였다. 그녀는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다.

하나, 그녀의 크고 아름다운 두 눈에는 온통 반가움과 기쁨의 빛이 가득했다.

상공을 뵈옵니다!”

그녀는 군무현을 향해 날아갈 듯 절을 올렸다.

혜미! 초췌해졌구려!”

군무현은 미미하게 웃으며 남궁혜미의 몸을 부축해 일으켰다.

“...!”

그의 깊은 잔잔한 눈빛을 대하는 순간 남궁혜미와 작은 가슴은 갑자기 세차게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정인(情人)이시여... 진정 보고 싶었답니다!)

그녀의 눈망울이 어느 새 촉촉히 젖어들었다.

 

자하곡에는 그동안 여러 채의 전각이 늘어나 있었다.

일백 명의 적룡검대가 자하곡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칸의 아늑한 정실, 남궁혜미는 시선을 내리깐 채 군무현의 찻잔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은 무척 조심스러웠으며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쪼르르...! 찻잔이 가득차자 남궁혜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군무현에게 받쳐 올렸다. 군무현은 단정히 찻잔을 받아들었다.

탁자를 마주한 두 사람, 하나, 방 안에는 그들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군무현을 따르는 빙백염후,

그녀가 여전히 의미없는 표정으로 다소곳이 군무현의 뒤에 앉아 있었다.

문득, 군무현은 담담하 어조로 입을 열었다.

천검혈사(天劍血師), 천대장은 왜 보이지 않소?”

천대장께서는 무림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출곡(出谷)하셨어요!”

남궁혜미는 지혜로운 혜안을 빛내며 청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그럼 무림이 돌아가는 상황은 혜미도 알고 있겠군!”

.”

군무현은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보오?”

남궁혜미는 그의 물음에 보석같은 두 눈을 지혜로 반짝였다.

대천성자가 천마궁에서 무림명숙들을 구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것 같아요.”

혜미의 생각도 역시 그렇군!”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천마궁조차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오!”

천첩의 생각도 그래요. 천마제군의 뒤에는 아주 큰 암영(暗影)이 도사리고 있는 듯 해요!”

남궁혜미 역시 동감이라는 듯 어두운 안색을 지었다. 두 사람의 추측은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천핮일의 기남아(奇男兒)와 천하제일재녀(天下第一才女)가 아닌가?

군무현은 문득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밤()이었다. 문득 그는 피로감을 느꼈다.

이제 그만 쉬고 싶구려.”

그말에 남궁혜미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첩신은 이만...!”

하나, 일어서는 그녀의 손목을 군무현이 잡았다.

혜미도 이 방에서 자구려!”

그 말에 남궁혜미는 화들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화예 언니와... 주무세요.”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간신히 말했다.

화예와는 혜미같은 사이가 아니오!”

군무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남궁혜미 역시 빙백염후가 염시(艶屍)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예 언니가 계시는데 어찌...!”

그녀는 고개를 푹 떨구며 옷깃만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말에 군무현도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

염후가 한시도 본인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으니...!”

“...!”

남궁혜미는 안색을 붉히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군무현이 남궁혜미의 몸을 번쩍 안아들었다.

... 어멋!”

남궁혜미는 당황성을 터뜨렸으나 이내 눈을 꼭 감고 말았다.

비단 휘장이 드리워진 침상, 군무현은 남궁혜미의 교구를 침상에 뉘였다.

...!”

남궁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세차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빙백염후, 그녀는 여전히 침상 밖의 의자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형처럼,

(), 그런 가운데 밤은 깊고 있었다. 그리고... 비단 휘장이 차츰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을(), 어느새 자하곡에 가을이 찾아들었다.

자하곡 중앙의 분지, 십만평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의 이곳은 본래 기화이초가 만발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연무장으로 완전히 개조되어 사방이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연무장의 뒤쪽은 우거진 수림(樹林)이었다. 그리고, 수림 사이로 십수 채의 그림같은 전각들이 보였다.

하나의 거대한 전각 앞, 대천붕이 거대한 날개를 접은 채 앉아 있다. 그놈은 홍옥처럼 투명한 눈을 껌벅이며 연무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연무장에서는 일백적룡검대의 무공수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천강대라검진을 펼쳐라!”

웅맹한 사자(獅子)를 연상케 하는 한 명의 장한이 우렁찬 음성으로 외쳤다.

순간,

차 핫!”

!”

일백적룡검대는 일제히 웅후한 기압성을 발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스스스... 삽시에 십명 일조(一條)의 검진이 엷게 펼쳐졌다.

그들이 펼치는 진세는 가공지경이었다.

우르릉! 츠츠츠... 육합을 가득 메우며 무섭게 충천하는 검기(劍氣)! 그것은 천지사방으로 퍼졌다가 한순간 폭포수같이 일제히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우 우웅! 심혼을 울리는 검명(劍鳴)이 뇌성처럼 사위를 진동했다.

실로 웅장하기 이를 데 없는 검진(劍陣)이었다.

군무현, 그는 연무장의 우측에 마련되어 있는 삼장 높이의 대()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천강대라검진은 완벽하군!”

그는 뒷짐을 진 채 연무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바로 뒤, 두명의 여인이 다소곳이 서있다.

자의궁장 차림의 남궁혜미, 그리고 군무현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빙백염후였다.

연무장에서 일백적룡검대를 지휘하고 있는 인물은 천검혈사 천용학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남궁혜미를 향해 지시했다.

십방철혈대진(十方鐵血大陣)으로 연결시켜 보시오!”

!”

남궁혜미는 다소곳이 대답하며 교수를 치켜들었다.

그 순간, 천용학은 군무현과 남궁혜미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이어, 그는 일백적룡검대를 향해 웅장한 음성으로 외쳤다.

십방(十方)이 검영(劍影)으로 덮이니!”

그의 외침을 받아 일백적룡검대가 일시에 소리쳤다.

철혈(鐵血) 이 폭풍(暴風)을 일으킨다!”

다음 순간, 우르 릉! 위 잉! 열 개의 천강대라검진이 일시에 확 퍼지며 합일(合一)된 거대한 진세를 형성하는 것이 아닌가? 실로 엄청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콰르르 릉... 파파파팟! 섬전같은 검기가 창천을 난도질하듯 갈랐다.

천지간을 질타하고 가공할 소용돌이, 위 잉! 파파파 팍! 그 속에 휘말려 대기는 갈가리 찢겨 몸부림친다.

저돌적인 선풍! 아니, 그것은 검기(劍氣)의 폭풍이었다.

그와 함께, 찬란한 검화(劍花)가 무지개처럼 확 퍼져오르며 천라지망을 형성했다.

아아! 그것은 가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장관이었다.

십방철혈대진(十方鐵血大陣)! 그것은 신기황의 필생의 병진(兵陣)이었다.

백인(百人)으로 능히 일만인(一萬人)을 제압할 수 있는 절세병진!

그때,

어떠신지요?”

남궁혜미가 조심스럽게 군무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군무현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미세한 허점이 몇군데 보이나 짧은 기간의 수련에 비하면 훌륭한 성취하고 할수 있소.”

이어, 그는 천용학을 향해 번쩍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적룡검대의 대장인 천용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백적룡검대를 향해 외쳤다.

해진(解陣)!”

그의 지시가 떨어지는 순간,

!”

일백적룡검대는 일제히 대답하며 진세를 거두었다. 이어, 그들은 일사불란한 태도로 그 자리에 도열했다.

군무현은 엄숙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제군들! 수고했다.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의 수련은 마친 것으로 알고 오늘은 적룡어강살을 전수하겠다!”

순간,

...!”

일백적룡검대의 호한(虎漢)들은 만면에 격동의 빛을 띄웠다.

적룡어강살! 그것은 과거 적룡대제를 있게 한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의 검학이 아닌가?

적룡세가의 혼()이 이어받은 일백적룡검대! 그들이 벅찬 감격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순간 그들의 강철같은 눈빛은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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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八 章

 

              神機谷一戰

 

 

 

황산(黃山),

안휘성(安徽省)에 위치한 명산(名山)이다.

시신봉(視神峯)!

황산칠십이봉(黃山七十二峯) 중에서도 특히 그 웅장함이 돋보이는 거봉이다.

한데,

스스스...!

정적을 깨며 시산봉 밑으로 메뚜기같이 밀려드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회의장한들, 하나같이 사기(邪氣)가 물씬 풍기는 음침한 인상들이었다.

그들의 선두, 역시 회포를 걸친 오순 정도의 노인이 귀광을 번득이며 몸을 날리고 있었다.

크크크... 신기곡 샌님들의 안색이 똥빛이 되겠군!”

그자는 음험한 음성으로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 그자는 바로 사멸황(死滅皇)이 아닌가?

세외사천 중 남천(南天)이 사망림(死亡林)의 천주(天主),

크흐흐... 신기곡을 치는데 본 사멸황이 직접 나서는 것이 불만이기는 하지만... 하나 그 대가를 신기곡 샌님들에게서 갑절로 받아내리라!”

사멸황은 음산하게 중얼거리며 사망림의 마도들을 이끌고 분분히 옷자락을 날렸다.

신기곡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다.

스슥... ! 회의장한들은 일사불란한 태도로 삽시에 빨려들 듯 시신봉의 우측으로 꺾어져 사라졌다.

 

시신봉의 정상(頂上)!

, 이제야 오는군!”

한명의 흑의청년이 무심한 표정으로 시신봉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그는 대천봉을 타고 사망림의 인물들 보다 한걸음 빨리 황산에 도착한 것이다.

그때,

사숙! 천마제국의 저 무지막지한 마도들만 보낸 것이 기이하군요. 저자들은 간단한 반오행진(返五行陣)도 통과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자들인데 말입니다!”

군무현의 뒤에서 한 명의 중년인이 의아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청수한 인상을 지닌 신선풍의 중년인,

 

천현우사(天玄羽士)!

그는 바로 당대의 신기곡주(神機谷主)였다.

신기황의 사손(師孫)뻘 되는 인물, 군무현은 신기황을 정식 사부로 모시지는 않았다.

하나, 천현우사는 군무현을 신기황의 제자로 기꺼이 받들어 모셨다. 군무현은 천현우사(天玄羽士)의 말에 기광을 번득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 이 일에는 음모(陰謀)의 냄새가 나오. 천마제군(天魔帝君)이 제자들만 보낸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오!”

“...!”

하나 그자가 무슨 꿍꿍이속을 지니고 있든 상관할 것 없소. 천마궁(天魔宮)은 크게 좌절을 맛볼 것이오!”

군무현은 두 눈에 강렬한 신광을 발산하며 말했다.

천현우사는 신뢰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하나, 그는 염려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저자들을 돌려보내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그의 물음에 군무현은 무어라 대답을 하려 했다.

하나 그 순간, 그는 갑자기 검미를 꿈틀하며 고개를 돌렸다.

구 우! 돌연 허공으로부터 한 마리 천리신응(天里神應)이 빛살처럼 날아와 꽂히는 것이 아닌가?

천리신응은 삽시에 군무현의 어깨 위로 살며시 내려앉았다.

군무현은 눈을 번득 빛내며 이내 천리신응의 다리에 묶여있는 천조각을 끌러냈다.

 

대천성자(大天聖子)의 종적이 황산(黃山) 근역에 나타났습니다!

신응(神應).

 

천조각에는 간략한 서체로 그와 같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구류천종(九流天宗)의 칠십이파와 연락을 담당하고 있는 신응방에서 보내온 소식이었다.

대천성자가 황산근역에 나타났다고...?”

군무현은 검미를 꿈틀하며 중얼거렸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가 뇌리에 순간적으로 천마제군(天魔帝君)과 대천성자(大天聖子)의 이름이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군무현은 잠시 침음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어, 그는 무엇인가 짐작한 듯 안색이 일변했다.

어쩌면...!”

그의 뇌리로 한줄기 직감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사숙! 무엇입니까?”

그의 그런 모습에 천현우사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군무현은 천현우사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상태였다.

문득, 그는 가볍게 자신의 얼굴을 쓱 문질렀다. 이어 몸을 돌리는 군무현,

이 얼굴은 어떻소이까?”

그는 천현우사를 향해 빙긋 웃으며 물었다.

순간,

...!”

천현우사는 일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군무현, 그는 어느새 청수한 중년인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것이 아닌가?

... 대단한 역용술이십니다!”

천형우사는 이내 감탄을 금치못하며 탄성을 발했다.

군무현의 입가에 한줄기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청수한 중년인으로서의 그 미소는 고아하고 기품있게 느껴졌다.

당분간 만박기사(萬博奇士)라는 이름으로 사용할 것이오!”

만박기사... 실로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천현우사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의 눈빛을 지었다.

군무현은 한가닥 신비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시신봉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나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천하는 철저히 우롱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의미모를 중얼거림을 발하며 두 눈을 강렬하게 빛냈다.

 

스스슥... 스스... 사멸황이 이끄는 사망림의 마도들은 이윽고 넓은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사멸황은 선두를 지휘하면서 계곡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끝이 신기곡의 입구다! , 어서 가자!”

!”

회의장한들은 모두 힘있게 대답하며 최대한의 경곡을 발휘했다. 하나, 사멸황은 미처 주의하며 보지 못했다.

절곡의 주위 여기저기에 난석(亂石)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그것을 발견치 못한 그자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막 계곡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

사멸황은 일순 몸을 멈추며 대경성을 발했다.

갑자기 천지사방이 짙은 운무로 뒤덮이며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 아닌가?

... 이게 어찌된 일이냐?”

!”

... 아니...!”

사망림의 마도들은 눈을 부릅뜨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자욱한 운무 뿐이었다.

그들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방향의 중심을 잃은 그들은 일시지간 혼란지경에 빠져들었다.

한데, 그때였다.

우르르릉! 콰 쾅...! 돌연 멀쩡하던 하늘이 온통 시커먼 먹장구름으로 뒤덮이더니 뇌성벽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꽈르르릉... 쏴 아!

때마침 광풍폭우가 천지간을 질타했다. 그것은 실로 예기치 못했던 돌연한 사태였다.

사멸황은 당황을 금치못했던 수하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정신들 차려라! 자기 위치를 고수하라!”

하나,

...!”

크 악!”

마도들은 갈팡질팡하며 서로 부딪쳐 충돌하며 나가 떨어지는 등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히히히...!”

켈켈켈!”

돌연 광풍속에서 끔찍한 형상의 악귀들이 미친 듯이 너울거리며 그들을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에 잇!”

... 비켜랏!”

콰릉... ! 회의장한들은 앞 뒤 분간도 없이 마구 장을 휘둘러댔다.

하나, 눈앞을 어지럽히는 악귀들이 사라지기는커녕 그럴수록 더욱 더 극심하게 달려들었다.

으아 악!”

크윽...!”

사망림의 수하들은 미친듯한 혼란 속에서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이 모든 것은 모두 기문진세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하나, 경력이 일천한 사망림의 마도들은 걷잡을 수 없는 심마(心魔)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는 처절한 비명, 자욱한 피보라가 허공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사멸황은 그 광경에 벼락같은 노성을 내질렀다.

병신같은 놈들!”

그자는 눈을 부릅뜨며 발을 굴렀다. 하나, 상황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그때였다.

죽어랏!”

돌연 한명의 회의장한이 미친 듯이 사멸황에게 덤벼들었다.

빌어먹을...!”

사멸황은 어이가 없었다.

콰릉! 그자는 신경질적으로 일장을 떨쳐내며 물러섰다.

다음 순간, !

케 엑!”

달려들던 회의장한은 피곤죽이 되어 나뒹굴었다.

사멸황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어느 놈이냐? 어떤 놈이 이따위 수작을 부리느냐?”

그자는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며 주위를 향해 폭갈을 내질렀다.

그 순간,

그대가 사멸황(死滅皇)인가?”

갑자기 사멸황의 등 뒤에서 지극히 무심하고 차가운 일성이 들려왔다.

순간,

!”

사멸황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자는 반사적으로 홱 돌아섰다. 언제부터였을까?

지극히 초탈하고 기품있는 용모의 한 명의 중년문사가 사멸황의 일장 뒤에 표표히 서 있지 않은가?

... 네놈이냐?”

사멸황은 안면을 씰룩이며 눈을 부릅떴다.

다음 순간, 쿠 쿵! 그자의 손에서 벼락같이 강맹한 강기가 쏟아졌다.

그것은 중년문사의 가슴을 향해 정통으로 가격되었다.

직후, 콰쾅! 요란한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들었다.

(죽였다!)

사멸황은 그것을 확인하며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하나, 그 짧은 순간의 쾌감은 느낄 때보다 더 빨리 내던져야 했다.

그 정도로 세외사천에 들다니... 쯧쯧...!”

문득 차갑고 냉혹한 일성이 사멸황의 귓전을 울렸다.

그와 함께, 스스슥... 사멸황의 눈앞에 서 있던 중년문사의 모습이 돌연 둘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중년문사, 물론 그는 만박기사로 변신한 군무현이었다.

... ... 귀신이냐?”

사멸황은 눈이 튀어나올 듯 놀라며 공포에 질린 음성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외쳤다.

신기곡은 너희들같이 하찮은 마도가 드나들 곳이 아니다!”

군무현은 냉혹한 눈빛으로 사멸황을 직시하며 잘라 말했다.

... 이놈! 없어져랏!”

콰쾅 펑! 사멸황은 안면을 거칠게 일그러뜨리며 미친 듯이 쌍장을 휘둘렀다.

하나, 이것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사멸황이 일장을 후려칠 때마다 군무현의 모습이 점점 하나씩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 으아아!”

사멸황은 미친 듯이 발악했다.

어느새 군무현의 모습은 수십명으로 늘어나 사멸황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지 않은가?

더 쳐보아라!”

피를 식히는 싸늘한 군무현의 일성이 주위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스스슥...! 군무현의 분신들은 유령같이 사멸황을 포위해 왔다.

으아... 다가오지 마라!”

사멸황은 온 몸이 쇠사슬에 조여지는 듯한 극심한 공포로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군무현의 분신들 역시 환상에 불과했다.

그는 보법(步法)과 기문진의 원리를 이용하여 환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 그럼에도 절정고수인 사멸황은 쉽사리 그 함정이 휘말려 들었다.

그 자는 마도(魔道)에 빠져 심력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으으... ...!”

그자는 식은땀을 비오듯 흘리며 연신 뒤로 밀려났다.

한데 어느 순간, 스스스... 모든 것이 깨끗이 사라졌다.

...!”

사멸황은 공포에 짓눌려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채 사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 살려줘...!”

그자는 부르르 전신을 떨며 애원하듯 외쳤다. 그자의 두 눈에 들어온 광경은 실로 처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지옥도(地獄圖)! 그곳에는 한폭의 지옥도가 생생하게 펼쳐져 있었다.

온통 죽고 다치고 극도의 공포에 넋이 나간 사망림의 마도들이 주위에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 중에는 한 명도 온전한 자가 없었다.

그때,

사멸황!”

한소리 싸늘한 음성이 사멸황의 귓전을 때렸다.

사멸황은 질검하며 황급히 돌아섰다.

!”

그자의 두 눈이 한껏 부릅떠지며 벼락을 맞은 듯 전신을 부르르 경련했다.

협곡의 절벽 뒤, 군무현이 표표히 옷자락을 날리며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돌아가서 천마제군에게 전하라! 신기곡은 무림의 세파에 들기를 원치 않노라고!”

그는 사멸황을 향해 싸늘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사멸황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아니, 대꾸를 하고 싶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군무현은 그런 그자를 바로보며 냉담한 어조로 덧붙였다.

그대를 죽일 수도 있으나 살려보내는 이유는 천마궁과 굳이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 !”

돌연 사멸황은 미친 듯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발했다.

그와 함께, 휘 익! 그 자는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네놈과 상종하느니 차라리 지옥의 악귀들과 살겠다!”

달아나면서 그자는 저주스러운 음성으로 그렇게 외쳤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긴 것일까? 사멸황은 세상에 난 이후 가장 빠른 경공으로 달아났다.

그자가 미친 듯이 곡구를 빠져나가자, 넋을 잃고 멍하니 굳어있던 사망림의 마도들은 그제서야 소스라치게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으악...!”

우우...!”

살아 남은 인물들은 정신을 차린 순간 꽁무니가 빠져라 앞을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군무현은 이윽고 천천히 돌아섰다. 문득 그는 절벽 뒤쪽에 있는 바위를 주시했다.

귀하! 이제 그만 나오시는 것이 어떻소?”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허허... 신기곡에 잠룡(潛龍)이 도사리고 있었을줄은 몰랐구려!”

스슥...! 한줄기 창노한 웃음소리와 함께 문득 한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바위 뒤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군무현의 앞으로 다가서는 인물, 그는 도골선풍의 백의노인이었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군무현의 무심한 두 눈에 일순 기광이 스쳤다.

백의노인, 그는 나타나자마자 겸연쩍은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노부는 대천성자(大天聖子)라는 늙은이오!”

그 말에 군무현은 짐짓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 소용장주셨군요! 후배가 실례한 점이 있다면 용서하십시오!”

그는 포권을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허허... 용서라니 당치않소!”

백의노인 대천성자는 가볍게 손을 저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고아한 기품이 흐르는 청수한 용모, 부드러운 눈빛과 호인다운 웃음, 어디를 보아도 인자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하나, 군무현의 내심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무서운 인물...! 한올의 예기도 흘러나오지 않다니...!)

그는무심한 표정이었으나 대천성자의 모습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문득, 대천성자는 관심있는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고 물었다.

젊은이는 신기황과 어찌되는가?”

어느새 그의 어조는 자연스럽게 변해 있었다.

군무현은 정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신기황께서는... 후배의 선사(先師) 되십니다!”

... 그렇군!”

짧은 순간 대천성자의 잔잔한 두 눈에 한줄기 기광이 스쳤다. 한데, 그때였다.

스슥! 문득 두 사람의 옆으로 천현우사가 다가왔다.

사숙! 사망림도들은...!”

군무현을 향해 말을 꺼내던 그는 대천성자를 발견하고는 이내 입을 닫았다. 그러자 군무현은 그를 대천성자에게 소개했다.

사질! 인사하시게, 이분이 바로 선사님과 동대에 영명을 날리시던 소요장주시네!”

그 말에 천현우사는 짐짓 놀라는 기색을 지었다.

이어, 그는 대천성자를 향해 정중한 태도로 예를 취했다.

수배 황보인(皇補仁), 노선배님을 뵙습니다!”

허허! 예를 거두게!”

대천성자는 턱 밑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천현우사는 존경의 눈빛으로 대천성자를 주시하며 정중한 어조로 권했다.

바쁘시지 않다면 폐곡에 들어가심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대천성자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노부는 급히 볼일이 있다네. 그보다...!”

문득 그는 말끝을 흐리며 군무현을 주시했다.

젊은이는 당금 천하의 정세를 어떻게 보는가?”

갑작스런 그의 물음에 군무현은 짐짓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이내 그는 정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천마궁의 발호가 심하다고는 들었으나 자세히 알지 못하오이다!”

대천성자는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가 도탄에 빠져있네, 천마궁이 오랑캐들까지 끌어들여 천하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네!”

그는 누가에 근심의 빛을 드리우며 슬쩍 군무현의 안색을 살폈다.

군무현 역시 묵묵히 안색을 굳히고 있었다. 이어, 그는 대천성자의 뜻을 헤아린 듯 입을 열었다.

선배님께서도 신기곡이 천마궁의 예봉을 제지하여 주시기를 분부하시는 것이오이까?”

그 말에 대천성자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분부라니 당치않네. 다만 천하를 안정시키는데 힘을 써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네!”

그의 어조는 지극히 정대하고 겸허했다. 하나, 군무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신기곡은 강호정세에 관여치 않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 있소이다!”

허허... 그것은 모르는 바 아니나 그대 선사이신 신기황께서 평생 천하의 안위를 염려하셨네!”

군무현이 뜻을 굽힐 의사를 보이지 않자 대천성자는 설득력 있는 어조로 말했다. 하나, 군무현의 의사는 분명했다.

후배 개인이라면 모르는 일이나 신기곡의 강호사(江湖史)에 개입할 수는 없소이다!”

헛허... 아무튼 기다리겠네. 천신보(天神堡)에 정의맹(正義盟)의 총단이 있으니 언제라도 찾아주게!”

대천성자는 인자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당부했다.

그 말을 마침과 함께, 스슥...! 그는 한줄기 연기처럼 군무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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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七 章

 

        天外雙秘傳說

 

 

 

천하는 모른다.

구류천종(九流天宗)! 그들의 힘과 조직이 얼마나 크고 방대한가를.

당금 문도의 총수는 일백 팔십 사만 칠천 명, 그것은 실로 경악할 숫자였다.

천하제일의 문도수를 자랑하는 개방! 그들의 문도수는 남북을 통틀어 오십만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천하제일방(天下第一幇)이라 불리지 않는가? 한데, 구류천종은 자그마치 그 개방의 두 배가 넘는 문도들을 수용하고 있으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구류천종이 얼마나 거대한 문파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당금 황실의 구문제독(九門諸督)으로부터, 개방의 거지, 백정(白丁), 사공에 이르기까지 구류천종의 인물이 파견되지 않은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두루마리를 살펴나가던 군무현, 그는 경악지심을 감추지 못했다.

(무섭다. 천하(天下)가 곧 구류천종(九流天宗)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 만일 구류천종을 악용한다면... 천하는 고스란히 구류천종의 손에 들어오고 말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아침에 구류천종은 천하를 집어삼켜 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하나, 다행한 것은 구류천종이 정()과 의()의 기지 아래 조금도 탐심과 야욕을 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천하에 구류천종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단 두곳 뿐이었다.

 

혈문(血門)!

선부(仙府)!

 

천년의 전설 속에 내려오는 신비문파 천외쌍비(天外雙秘)!

그들은 단 한 번도 무림에 출현하지 않았다. 하나, 그럼에도 천지십강(天地十强)과 쌍벽을 이루는 거대한 신비세력이었다.

구류천종의 조직은 크게 나누어 다음과 같았다.

 

일전(一殿),

십이단(十二檀),

칠십이파(七十二波),

 

일전(一殿) 구류전(九流殿)!

바로 구류천종을 상징하는 중심(中心)이었다. 하나, 이는 다만 구류천종의 형식상 총수일 뿐이었다.

구류지존이 나타날 때까지 잠정적으로 구류천종의 수뇌 노릇을 대행하는 것이다.

 

십이단(十二檀)!

구류천종의 실체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직, 천하에 골구루 분포된 거대한 칠십이개 문파가 바로 구류천종의 진정한 모습이다.

하나, 칠십이개 문파중 어느 문파도 당금무림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일천오백 년의 세월을 날개접은 채 그늘 속에서 때를 기다려 왔을 뿐이다.

구류지존(九流至尊)! 오직 그 일인(一人)을 위해서!

 

군무현, 그는 구류천세록(九流天世綠)을 덮으며 만감어린 표정을 지었다.

본인 일인(一人)을 위해... 천오백 년의 장구한 세월을 그늘 속에서 살아왔단 말이오?”

지존...”

만가대유는 격동의 표정으로 고개를 깊숙이 떨구었다.

군무현은 자신의 어깨가 막중해짐을 느꼈다.

(만상자라는 분은... 너무도 큰 짐을 내게 맡기셨다.)

그는 이미 천오백 년 전부터 구류지존(九流至尊)으로 안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만가대유는 진지한 안색으로 하나의 옥함을 군무현에게 올렸다.

“...!”

군무현은 옥함을 받아들고 열어 보았다.

옥함 안, 각각 흑색(黑色)과 홍색(紅色)을 띈 지환(指環)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구류신환(九流神環)입니다. 바로 지존이심을 나타내는 신물입니다!”

만가대유는 만면에 격동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군무현은 말없이 두 개의 구류신환을 꺼내 양손 중지에 각각 끼었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군무현을 위해 만든 것인 듯 그의 손에 꼭 맞았다.

만가대유는 감격의 표정으로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는 벅찬 격동에 휩쌍인 채 군무현을 우러러 보았다.

구류신환(九流神環) 안에 만상자 조사께서 마지막으로 베푸신 안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 일천오백 년을 지나오면서 누구도 그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신뢰와 기대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군무현은 묵묵히 만가대유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어, 그는 문득 궁금한 어조로 물었다.

우선 그동안의 무림정세를 알고 싶구려!”

.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의 이목은 천하에 깔려 있습니다. 심지어는 천마궁의 수뇌부와 구파일방의 정상까지도 암중세력을 굳히고 있습니다!”

만가대유는 자신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자세하게 설명해 나갔다.

 

X X X

 

천마천하(天魔天下)! 이것이 당금천하를 한 마디로 일컫는 말이었다.

천하가 천마궁(天魔宮)의 손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천마제군(天魔帝君) 혁련상(赫鍊相)!

 

당금의 천마궁주(天魔宮主), 그자는 천마황(天魔皇)을 능가하는 마공(魔功)과 술수를 지닌 거마(巨魔)였다.

마도제일인(魔道第一人)!

그는 고금이래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효웅으로 알려졌다. 그가 타고난 계략과 술수로 휘하에 거둔 문파만 해도 부지기수였다.

혈륭마찰, 사망림, 독황궁, 빙백궁, 흑도십팔절, 녹림십이채등... 각기 강권을 자랑하는 그 문파들을 손쉽게 수하로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유사(有史)에 없는 가공할 힘()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일파로 능히 천하의 반을 집어 삼킬 수 있는 세외사천(世外四天)중 삼천(三天)을 포섭했을 뿐 아니라, 우내사천황 중 독천황(毒天皇)의 독황궁(毒皇宮)마저 수중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천하를 향해 광오하게 외쳤다.

 

오라! 천마(天魔)가 무적(無敵)임을 천하에 보여주리라!

 

천마제군은 천마대전(天魔大殿)을 열었다.

그것이 바로 한달 전의 일이었다. 그때 군무현은 광한전(廣寒殿)에서 빙백염후와 함께 빙백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구파일방을 비롯한 천하만파가 모두 천마대전(天魔大殿)에 참석했다. 하나, 그것은 철저한 속임수였다.

천마제군은 만파군웅들을 보기좋게 우롱했다.

구파일방의 수뇌를 비롯하여 만파의 장()들은 그의 철저한 계략에 속아 모조리 생포되고 만 것이 아닌가?

결국, 천하는 굴복하고 만 것이다. 천마제군 혁련상에게.

 

만가대유의 설명을 듣고 있던 군무현, 그는 송충이같은 눈썹을 무섭게 꿈틀했다.

천마제군... 그자가...!”

그 순간, 번득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천하에 거대한 암중세력이 있어 천하 위에 서려한다. 적룡세가(赤龍勢家)의 몰락은 바로 암중세력이 천하제패를 마무리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신기황이 군무현에게 들려준 말이었다. 그와 함께, 군무현은 한 가지 사실을 더 떠올렸다.

태원 교외의 비마애(秘魔崖), 그곳에서 혈륭법사 사멸황(死滅皇)을 만나던 신비인물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혈륭법사와 사멸황은 그자를 일컬어 지존(至尊)이라 칭하지 않았던가?

(그자가 천마제군이었단 말인가?)

군무현은 검미를 모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때, 만가대유가 군무현의 신색을 살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천마궁은 이미 천하를 장악했습니다. 천마궁의 마수를 피할 문파는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본문과 천신궁(天神宮), 동해(東海)의 금붕도(金鵬島), 세외사천 중 동천(東天)인 보타암(菩駝庵)과 신기황의 후예들이 있는 신기곡(神機曲) 정도입니다!”

한데 그때,

지존!”

구류천종의 총관이 급히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군무현은 황급히 자신의 앞에 부복하는 총관을 향해 물었다.

천마궁의 문도로부터 급보가 날아왔습니다!”

급보?”

총관의 보고에 만가대유는 미간을 좁혔다.

여기 있습니다!”

총관은 급히 수중의 쪽지를 만가대유에게 전했다. 만가대유는 그것을 받아 군무현에게 공손히 받쳐 올렸다.

쪽지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문주(門主)께 알림.

중요한 두 가지 일 발생. 먼저 대천성자(大天聖子) 강렬한 힘으로 천마궁을 습격한 사실. 그는 구파일방의 수뇌 인물을 비롯, 정파무림인 삼백인(三百人)의 무공으로 알려짐...

 

대천성자(大天聖子)...!”

군무현은 의혹의 표정으로 만가대유를 바라보았다.

만가대유는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 기억이 납니다. 그는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이전의 고인입니다. 무림사에 깊이 관여치 않고 유유자적하던 인물로서 태산(泰山) 관일봉(觀一奉) 소요장(逍遙莊)을 짓고 은거하는 백도명숙 입니다!”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는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대천성자...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든다. 기이하게도 어두운 예감을 풍기는 인물...!)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침중한 안색을 지었다. 이어, 그는 다시 종이 쪽지의 내용을 읽어 나갔다.

 

두 번째는 급보(急報). 천마궁은 사망림의 힘으로 신기곡(神機谷)을 접수하려 하고 있음. 신기곡마저 천마궁의 수중에 든다면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됨. 선처바람.

 

내용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감히 신기곡에 손을 대려 하다니...!”

군무현은 격노함으로 신형을 부르르 떨며 두 눈에 강렬한 살광을 폭사했다.

파파팍! 일순 그의 발 밑에 깔린 청석이 가루로 변해 부서졌다.

신기곡(神機谷)!

군무현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지극히 소중한 것이었다.

그에게 두 번째의 생()으리 살게해 준 신기황(神機皇)!

그의 후예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닌가? 군무현에게 있어서는 천하에서 단 하나뿐인 친인(親人)들의 문파인 것이다.

문득,

어느 놈이든 신기곡을 건드리면 용서치 않는다!”

군무현은 가공할 한광을 폭사하며 불끈 주먹을 움켜쥐었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는 폭풍같은 살기가 몰아쳤다.

만가대유는 그 모습에 부지불식간에 흠칫 몸을 떨었다.

(... 태산이시다!)

그는 놀라움과함께 내심 금치못했다.

(지존으로 인하여 구류천종의 성화(聖華)가 천세에 이르리라!)

그때, 군무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 그는 만인을 압도시키는 위엄있는 음성으로 단호히 말했다.

풍운대라굉벽대진(風雲大羅轟碧大陣)으로 구류곡을 보호한 뒤 신기곡으로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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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六 章

 

                      九流千世錄

 

 

꽈릉...!

갑작스러운 독황후의 공격에 만가대유는 황급히 쌍장을 엇비켜 내리쳤다.

그러자, 강맹한 장력이 쏟아지며 시커먼 독무는 허공으로 확 퍼지더니 다시 독황후에게로 돌아갔다.

에잇!”

츠츠츠...!

독황후는 악을 쓰며 재차 교수를 후려쳤다.

그녀의 소매 속에서 강렬한 경기가 쏟아져 나옴과 동시 독기를 휘몰아 만가대유를 휩쓸어 오는 것이었다.

직후,

콰르릉 펑!

크 윽!”

만가대유는 신형을 휘청하더니 비명과 함께 나가 떨어졌다.

! 그의 오른손, 끔찍하게도 그것은 새까맣게 변해버린 것이 아닌가?

... 독황후! 네가 천마궁(天魔宮)의 수하에 들다니... 독천황 선배님의 영명을 네가 다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만가대유는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며 독황후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분노와 경악, 회의의 빛이 뒤엉켜 떠올랐다.

하나,

호홋... 그것은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너는 네 수하들이나 걱정해라!”

독황후는 독살스러운 교소를 터뜨리며 빈정거렸다.

...!”

만가대유는 굴욕과 수치감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떨리는 눈빛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위잉! 츠츠츠... 콰 콰쾅!

도검(刀劍)이 난무하는 가운데 장내는 온통 폭음과 요란한 파공성으로 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크아악!”

케엑...!”

참담하게 꼬리를 물로 터져나오는 비명...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은 구류천종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연신 추풍낙엽처럼 덧없이 쓰러져갔다.

그 광경을 지켜본 만가대유는 참혹한 심정을 금할길 없었다.

(... 틀렸다. 호문천위대가 오지 않는한 겁멸을 피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는 참담한 절망감에 안색이 이지러졌다.

그때,

호호... 본후는 천마궁의 수하가 아니다! 다만 원수가 중원무림임을 알려준 천마궁주(天魔宮主) 천마제군(天魔帝君)의 부탁으로 구류천종을 접수하러 온것일뿐...!”

독황후가 요악한 교소를 터뜨리며 오만한 어투로 말했다.

만가대유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 눈잉 있어도 바로 보지 못하는 계집!”

그는 분노에 치를 떨며 이를 악물었다. 독기(毒氣)는 이미 그의 오른팔 전체로 퍼져 무섭게 그의 전신을 짓눌러 오고 있었다.

독황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너를 죽이고 구류신환(九流神環)만 얻으면 된다!”

면사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봉목에 일순 독랄한 살기가 번득였다. 이어, 그녀는 주저없이 만가대유의 앞으로 선뜻 다가섰다.

(...!)

만가대유는 식은땀을 흘리며 휘청 물러났다. 그래서는 도저히 독황후를 대항할 힘이 없었다.

독황후! 그녀는 강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심성은 이미 인간의 감정 따위를 내팽개친지 오래였다. 그녀는 사색이 된 만가대유를 향해 악독하게 웃어 보였다.

호호...! 각오해라!”

말과 함께, 그녀는 번쩍 교수를 들어올렸다.

“...!”

만가대유는 절망의 표정으로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절대절명! 독황후의 교수가 막 만가대유의 천령개를 내려치려 할 때였다.

구 워어억! 돌연 거창한 붕음이 만상문 전체를 무섭게 뒤흔들었다.

순간,

!”

아니...!”

중인들은 일제히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대경성을 발했다.

그때, 쏴 아! 천지를 휩쓸어 버릴 듯한 무서운 폭풍이 몰아쳤다.

그와 함께, 창공으로부터 한 마리 거대한 붕조의 그림자가 벼락같이 내리꽂히는 것이 아닌가?

쐐 애액! 그 기세는 실로 가공할 정도였다.

그 순간,

... 대천붕(大天鵬)!”

만가대유는 안색이 급변하며 숨넘어 가는 듯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그는 죽음의 고통조차 망각한 채 온통 격동과 희열을 금치못하며 허공을 우러렀다. 비단 만가대유 뿐만이 아니었다.

오오... 대천붕이 나타나다니...!”

아아...!”

구류천종 전체가 격전을 멈추고 주체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삽시에 장내는 물결처럼 술렁거렸다.

독황후, 그녀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봉목을 한껏 치켜떴다.

... 저렇게 큰 붕조가 있었다니...!”

그녀는 두려운 눈빛으로 황급히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

그때, 콰아아...! 세찬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대천붕이 장내로 내려앉았다.

중인들은 경악의 표정으로 급급히 물러났다.

장내를 온통 선풍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대천붕은 이윽고 천천히 날개를 접었다.

그 순간, ! 대천붕의 등에서 군무현이 가볍게 뛰어 내렸다.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군무현에게 집중되었다.

한데 그때,

... 당신은...!”

군무현의 얼굴을 본 독황후의 교구가 일순 쓰러질 듯 휘청 꺾여졌다.

그녀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하나, 경악의 눈빛은 이내 독랄한 살기로 바뀌었다. 군무현은 자신을 햐한 강렬한 눈빛을 느끼며 문득 시선을 돌렸다.

순간,

“...!”

“...!”

군무현과 독황후의 눈빛이 부딪혔다.

군무현은 독황후의 눈빛을 대하는 순간 가볍게 미간을 모았다.

(눈빛이 낯설지 않다!)

하나, 어디서 보았는지 잘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 순간,

죽인다!”

콰르 릉! 돌연 독황후가 한맺힌 교갈을 터뜨리며 군무현을 향해 번쩍 교수를 휘둘렀다.

그녀의 주위로 일순 시커먼 독강이 검은 파도처럼 휩쓸러 일어났다.

독문(毒門)인가?”

군무현은 힐끗 독황후를 주시하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하나,

예의를 모르는 계집이군!”

위 잉! 냉혹한 일갈과 함께 그의 몸에서 시뻘건 극양강기가 불길처럼 확 퍼져 일어났다.

이어, 치지직...! 놀랍게도 그것은 독황후의 독강을 단숨에 녹여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시커먼 연기와 함께 독강은 이내 사그러들었다.

()은 불()과 극성이 아닌가?

... 이런...!”

자신의 공격이 어이없이 무산된 것을 본 독황후, 그녀는 부르르 교구를 떨며 분노와 살기로 뒤범벅되었다.

다음 순간,

독종황후뢰(毒宗皇后雷)! 오독추혼독강지!”

그녀는 악에 받친 음성으로 잇달아 교갈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파츠츠츠... 파파팟! 쉼쉴 틈도 없이 그녀의 독랄한 공세가 연이어 펼쳐졌다.

일시지간 장내는 비릿하고 시커먼 독무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 광경에 군무현은 마침내 분노했다.

천방지축이군!”

그는 냉혹한 안색으로 번쩍 장을 치켜들었다. 그가 맹렬히 일장을 내려치는 순간, ! 문득 대천붕의 등에서 또 한 명의 인영이 쾌속한 속도로 쏘아져 내렸다.

위 잉! 그 인영은 장내로 날아듬과 동시 투명한 옥수(玉手)를 섬전같이 휘둘렀다.

한순간, 콰쾅 짜자작...! 그녀의 교수에서 천지를 얼려버릴 듯한 극강한 극음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직후, 쿠 쿵!

!”

둔중한 음향이 들썩 사위를 뒤흔듬과 함께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독황후, 그녀는 일순 튕기듯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대천붕에서 내려서며 눈부신 일격으로 독황후를 날려버린 인영, 그녀는 바로 빙백염후였다.

그것은 실로 예기치못한 갑작스런 사태였다.

그 순간,

궁주님!”

스슥! ! 독황궁의 노인들은 급급히 외치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은 가까스로 허공에서 독황후의 몸을 받아 안았다.

... 두고 보자!”

그자들은 장내를 향해 원한의 음성으로 이를 갈며 외쳤다.

이어,

독황궁도들은 물러가랏!”

그자들 중 한 명의 노인이 신속히 지시했다.

그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휘 휘르르... 독황궁의 인물들은 물밀 듯이 만상곡을 빠져나갔다.

냉혹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주시하고 있던 군무현, 문득 그는 빙백염후를 향해 말했다.

염후, 저자들도 모조리 쫓아내시오!”

그는 혈륭마찰과 흑도십팔절(黑道十八絶) 중 천사회(天邪會)의 인물들을 가리켰다.

“...!”

그의 말에 빙백염후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휘 잉! 그녀의 빙옥같은 교수가 선을 긋듯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콰르르 릉! 천지를 얼려버릴 듯한 극렬한 한기가 전면의 마도(魔道)들을 휩쓸어갔다.

직후,

케 엑!”

크아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잇달아 터져올랐다.

그 순간,

... ... 무후(武后)!”

... 달아나자!”

마도들은 사색이 되어 외치며 다투어 곡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나,

...!”

으아 악!”

달아나던 혈륭마찰과 천사회의 인물들은 삽시에 전신이 얼어붙어 빙인(氷人)이 되어 나뒹굴었다.

그때, 빙백염후는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는 나머지 마도들을 향해 재차 교수를 치켜들었다.

하나,

염후! 되었소.”

군무현이 가볍게 손을 저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러자, 빙백염후는 마치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순순히 손을 거두는 것이었다.

이어, 스슥...! 그녀는 유연하게 교구를 움직여 군무현의 뒤에 그림자처럼 시립했다.

바로 그때,

... 지존(至尊)!”

돌연 만가대유가 군무현의 앞에 오체복지하여 격동의 음성으로 외쳤다.

그에 이어,

지존!”

지존을 뵙습니다!”

전 마상문도들이 일제히 군무현을 향해 오체복지하는 것이 아닌가?

그 갑작스런 사태에 군무현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하여 본인을 지존(至尊)이라 하시오?”

그는 만가대유를 부축해 일으키며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대천붕(大天鵬)을 타고 오셨으니 구류지존(九流至尊)이 되십니다.”

만가대유는 온통 감회와 격동을 금치못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군무현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문득 만가대유의 상처로 눈길을 돌렸다.

연유는 잘 모르겠으나 우선 독기(毒氣)부터 제거해야겠소!”

만가대유의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이미 독기가 상반신으로 완전히 퍼져 상체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군무현, 그는 몸을 굽혀 만가대유의 맥문을 쥐었다.

그와 함께, 그는 전신에 태양천화굉염신공을 일으켰다.

우르르... 위 잉! 그의 전신은 순식간에 시뻘건 극양지기에 휩싸였다.

순간,

!”

만가대유는 온 몸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극렬한 통증을 느끼며 입술을 악물었다.

츠츠... ... 파팟! 강맹한 극양지기는 순식간에 만가대유의 몸속으로 퍼지는 독기를 태워나갔다.

그때마다 만가대유는 엄청난 고통에 몸을 떨었다.

하나, 그는 고통 가운데서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역시... 지존이시다!)

짙은 감회와 격동이 고통마저 깡그리 잊게했기 때문이다.

 

구류대전(九流大殿)!

 

얼마전 만가대유가 앉아있던 바로 그 대전이었다.

대전의 중앙, 만가대유가 앉아있던 태사의에는 군무현이 앉아 있었다.

군무현의 뒤, 빙백염후가 여전히 그림자처럼 다소곳이 시립해 있었다.

그때, 문득 대전의 문이 열리며 만가대유가 대전 앞으로 들어섰다. 그는 하나의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존! 이것을 받으십시오!”

그는 군무현의 앞에 무릎을 꿇며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공손히 받쳐올렸다.

고맙소!”

군무현은 두루마리를 받아들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문주, 예가 과하오. 편히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그제서야 만가대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군무현은 말없이 두루마리를 펼쳐들었다. 그곳에는 갑골문자로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승붕래자(乘鵬來者) 즉지존야(卽至尊也)!>

<()을 타고 오는 자() 곧 지존(至尊)이다.>

 

내용인즉 이러했다.

“...!”

군무현은 안색이 일변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는 구류천종(九流天宗)의 지존이 된 것이 아닌가?

그때, 만가대유가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구류천종 천오백 년 전에 세워져 오직 한 분만을 기다리며 은인자중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군무현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류천종 역사가 소림(少林)보다 깊단 말인가?)

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는 무림에서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는 비사(秘事)였으니...

만가대유는 군무현의 심중을 헤아린 듯 다시 설명했다.

조사(祖師)께서는 만상자(萬像子)라는 분으로 천년을 내다보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만상자(萬像子)...!”

군무현은 의아한 음성으로 나직이 뇌까렸다. 그로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만가대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만상자께서는 혈천종(血天宗)의 저주가 천오백 년 후에 다시 천하를 혈풍속으로 몰아 넣으리라는 것을 예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지존께서 혈천종의 저주를 막으실 기반이 되도록 은밀히 구류천종을 세우신 것입니다!”

“...!”

묵묵히 만가대유의 말을 듣고 있던 군무현은 문득 의혹이 솟구쳤다.

(천오백 년 전이라면 혈천종(血天宗)과 동시대(同時代)가 아닌가? 그렇다면... 만상자는 혈천종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만가대유를 주시했다.

만가대유는 엄숙한 신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속하들은 일천오백 년을 한결같이 현신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군무현의 안색도 절로 숙연해졌다.

(천오백 년... 장구한 세월이다!)

그는 구류천종의 충성스런 일념(一念)에 감탄과 아울러 경외감이 우러났다.

그때, 만가대유는 문득 품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군무현에게 바쳐 올렸다.

이것이 당금 폐문의 조직을 기록한 것입니다!”

“...!”

군무현은 말없이 책자를 받아들었다.

 

<구류천세록(九流千世錄)!>

 

두꺼운 책자의 표지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일필휘지의 서체로 쓰여져 있었다.

구류천세록의 첫장을 넘기던 군무현,

으음...!”

문득 그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과연, 그 안에는 어떤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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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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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五 章

 

             九流天宗風雲

 

 

 

쿠쿠쿠 쿵...! 콰르릉... 콰쾅!

천지를 허물어 버릴 듯한 대폭음이 사위를 뒤흔들었다.

순간,

... 이럴 수가...!”

광한애(廣寒崖)가 무너진다!”

여인들의 급급한 외침성이 폭음 속을 뚫고 터져나왔다.

빙백궁의 후면에 위치한 광한애(廣寒崖).

돌연 그 거대한 얼음벽이 유리가 부서지듯 산산이 파열되고 있지 않은가?

뒤이어,

우 우!”

굉음속을 뚫고 한소리 우렁찬 장소성이 울려퍼졌다.

순간,

아 악!”

... 지독한 내공이다!”

얼음벽이 파괴되는 광경을 지켜보던 수십 명의 빙백궁의 여인들이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그때, 스스스... ! 무너진 광한애의 얼음 구덩이에서 돌연 두 줄기 인영이 불쑥 솟구쳐 올랐다.

일남일녀(一男一女), 갈가리 찢긴 흑의장포를 걸친 청년, 그리고 날아갈 듯 아름다운 구천신녀의 의복을 걸친 면사여인이었다.

스스슥! 양인은 단번에 백장을 날아 빙백궁의 여인들 앞으로 날아내렸다.

군무현과 빙백염후! 바로 그 두 사람이었다.

그들이 내려서는 순간,

... ... 네가 죽지 않았다니...!”

여인들 중 한 명이 신형을 휘청이며 불신의 눈빛으로 뒤로 물러섰다.

잔설빙(殘雪氷)!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경악과 충격으로 핼쓱하게 질린 얼굴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바로 군무현을 죽음의 함정으로 유린했던 장본인이 아닌가? 하나,

묵빙현하는 어디 있느냐?”

군무현은 지극히 무심한 어조로 잔설빙을 향해 물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묵빙현하는 자신에게 크나큰 기연을 안겨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군무현의 눈빛은 전혀 감정을 엿볼 수 없이 잔잔했으며 지극히 무심해 보였다. 예전처럼 가슴을 찌르는 칼날같은 예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의 몸 주위로는 어떤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도가 태산처럼 어려 있었다.

천하의 구누구도 감히 범접지 못할 장중하고 압도적인 기도,

... 이공주께서는... 구금되었소!”

잔설빙은 군무현의 압도적인 기도에 부르르 몸을 떨며 대답했다.

묵빙현하가 구금되었다고?”

군무현은 짙은 검미를 꿈틀하며 되물었다.

... 그렇습니다. 제일공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잔설빙은 자신도 모르게 군무현에게 경어를 쓰고 있었다.

제일공주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군무현의 물음에 잔설빙은 떨리는 음성으로 순순히 대답했다.

제일공주께서는... 삼천 명의 궁도들을 이끌고 중원(中原)으로 가셨습니다!”

중원으로?”

, 천마궁(天魔宮)에서 사자(使者)가 와서 초청하여 가셨습니다!”

“...!”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염후(艶后)의 후예가 중원을 어지럽히겠군. 염후에게는 미안하지만... 징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기가 매우 탁하다. 중원천하가 걷잡을 수 없는 혈풍에 휘말려 들었다는 뜻이리라...!)

그의 무심한 눈빛이 일순 어둡게 흐려졌다.

그때, 잔설빙은 군무현의 무심한 옆모습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 천빙애에서 추락할 때와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사람은 이미 하늘이 되었다!)

그녀는 엄청난 위암감에 절로 몸을 움츠렸다.

 

빙백궁의 지하(地下),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하나의 뇌옥(牢獄)이 자리하고 있었다.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폐옥, 굵은 쇠창살이 드리워진 뇌옥 안,

흐흑... 나는 살아있을 면목이 없는 계집이야...!”

한 명의 여인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며 처연하게 오열하고 있었다.

여인의 행색은 실로 말이 아니었다. 제멋대로 풀어헤쳐져 헝클어진 머리채, 마구 구겨지고 찢겨 형편없는 옷차림, 본래 그녀가 걸친 의복은 짙은 묵의(墨衣)였다.

하나, 지금 그것은 선혈이 뒤엉켜 지저분하고 처참해 보였다.

여인의 피부는 지나칠 정도로 희었다. 훤칠한 키에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미녀,

하나, 지금 그녀의 얼굴은 초췌하기 이를데 없었으며 그녀의 앞가슴은 강맹한 강기에 짓이겨져 피가 엉겨붙어 있었다.

흐흑... 눈이 어두워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우매하여 사저가 궁규(宮規)를 어김을 막지 못했으니... ... 이 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여인의 눈물로 범벅된 얼굴에는 뼈저린 회한과 고통의 빛이 떠올랐다.

문득, 눈물 고인 그녀의 망막 위로 한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창백하리만치 흰 피부에 강렬하 인상을 풍기던 미청년, 단 한 번 그를 보았을 뿐인데도 그 청년의 인상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듯 여인의 뇌리속에 깊숙이 남아 있었다.

살아만 계신다면... 진정 살아만 계신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대죄(大罪)할 텐데...!”

여인은 회한과 안타까움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그르릉! 한차례 둔중한 굉음과 함께 뇌옥의 전면 석벽이 좌우로 갈라졌다.

(설빙... 그 계집이겠지!)

여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돌아보지도 않았다.

한데, 뚜벅 뚜벅... 나직하나 묵중한 발자국 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울렸다.

순간,

“...!”

여인은 흠칫 몸이 굳어졌다. 분명 그것은 잔설빙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었다.

(... 설마...!)

그녀는 순간적으로 뜨거운 충격과 전율에 휩싸였다.

그것은 여인 특유의 직감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굳어진 듯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뇌옥 안.

“...!”

한 명의 흑포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눈처럼 흰 피부에 주사처럼 붉은 입술, 그는 무심한 눈으로 여인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순간,

... 군공자님! ... 살아 계셨군요!”

여인은 벼락을 맞은 듯 전신을 부르르 떨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빙심(氷心), 차갑게 얼어붙은 여인의 가슴이 이 순간 크나 큰 희열로 녹아내렸다.

여인, 그녀의 이름은 묵빙현하(墨氷玄霞)였다.

 

X X X

 

대벌산(大別山).

 

안휘(安徽), 하남(河南), 호북(湖北)의 경계에 위치한 대산(大山).

정오무렵, 구워어 억! 돌연 엄청난 붕명(鵬鳴)이 대별산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어, 콰콰콰... 쐐 액! 빙판같은 북천(北天)의 일각에 문득 하나의 검은 점이 나타났다.

그 점은 삽시에 폭풍같은 기세로 확산되더니 쏘아질 듯 다가왔다.

대천붕(大天鵬)! 그것은 양 날개를 활짝 편 길이가 무려 이십 장에 이르는 거대한 대천붕이었다.

대천붕의 등, 일남일녀가 앉아 있었다.

군무현과 빙백염후, 바로 그들이었다.

하하... 염후(艶后)! 어떻소? 중원천하가 손바닥만 하지 않소?”

군무현은 무척 기분이 좋은 듯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 놀라운 일이 아닌가? 언제나 무심하기만 하던 그가 이렇게 소리내여 웃을 때가 있었다니... 여인(女人)의 힘은 실로 지대한 것임이 분명했다.

군무현의 성격에 그같은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빙백염후의 영향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빙백염후는 영혼을 잃은 강시였다. 하나, 그녀는 온통 여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숨쉬고 보고 먹고 잠을 자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천하를 얼음으로 뒤덮어 버릴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군무현의 마음을 마치 춘설(春雪)처럼 녹여버렸으니... 군무현은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르는 빙백염후에게서 훈훈한 정감을 느끽 된 것이다.

그는 웃음띤 얼굴로 호쾌하게 말했다.

가문의 원수를 갚고 천하의 혈란(血亂)이 가라앉으면 염후에게 천하를 구경시켜 주겠소!”

“...!”

그의 말을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빙백염후의 입가에는 의미모를 한가닥 미소만 희미하게 감돌 뿐이었다.

구류곡(九流谷)!

대별산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신비절지, 구류곡은 사시사철 짙은 운무에 가려져 있었다.

한데, 구류곡의 내부. 뜻밖에도 광활한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 분지의 중앙, 거대한 규모의 웅장한 장원이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구류천종(九流天宗)이 나 만가대유(萬家大儒)의 대()에 이르러 겁멸의 위경에 처하다니...!”

중년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구류천종(九流天宗)!

 

정확한 연원은 알려진 바가 없다. 모든 것이 신비(神秘)에 싸여있는 절문(絶門), 그들은 정사양도(正邪兩道)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중도(中道)를 걷는 문파였다.

그들은 무림의 대사에 관해 전혀 관여치 않았다. 하나, 구류천종은 모든 분야에 이르러 손을 대고 있었다.

구류(九流)의 인물들이 모두 만상문에 속할 뿐 아니라, 만가지 분야에 구류천종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비록 그 세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세인들은 모두 인정했다.

구류천종 조직이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는 사실을..

심지어, 천하제일의 방파로 알려진 개방조차도 그 조직력에 있어서는 구류천종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만가대유(萬家大儒)라 자칭한 중년인, 그의 안면은 더욱 어두워졌다.

강남(江南)에 가 있는 호문천위대(護門天衛隊)를 소환가히는 했으나... 그 동안 진세(陣勢)로 적을 막을 수 있을지...!”

그의 중얼거림이 막 끝났을 때였다.

! 갑자기 한 명의 인영이 급히 대전 안으로 날아들었다.

... 문주님!”

그는 청수한 인상을 지닌 중년인이었다.

총관! 무슨 일이오?”

만가대유는 중년인의 다급한 태도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급히 물었다.

총관이라 불린 중년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신무장영진세가 무너지려 합니다!”

만가대유는 그 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독황궁(毒皇宮)이나 혈륭마찰(血隆魔刹)의 마도들의 힘으로는 진세를 수월히 통과하지 못했을 텐데...?”

그는 그럴리 없다는 듯 불신의 표정을 지었다.

하나, 총관은 머리를 조아리며 침중한 어조로 보고했다.

흑도십팔절(黑道十八絶) 중 흑룡천사옹(黑龍天邪翁)이 나타나 순식간에 진세의 절반을 무너뜨렸습니다!”

흑룡천사옹(黑龍天邪翁)! 그 노괴가...!”

만가대유의 안색이 일변했다.

 

흑룡천사옹(黑龍天邪翁)!

흑도제일뇌(黑道第一腦), 기문지학(奇門之學)에 능통하며 깊고 냉철한 심기를 누구도 따를 자가 없다.

백년 내 신기황(神機皇)에게 단 한 번 패했을 뿐 더 이상의 패배를 허용치 않았던 노마두, 그 자는 만인이 공인하는 천하제일지(天下第一智)였다.

 

만가대유의 안면이 충격으로 한차례 부르르 떨렸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으헤헤... 신무장영진 정도로 안전할 줄 알았느냐?”

돌연 귓전을 긁어대는 사악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차차차 창! ... 퍼 펑!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요란한 폭음이 잇따라 터져올랐다.

와 아!”

!”

구류천종 전체는 요란한 함성으로 뒤흔들렸다.

뒤미처,

크 악!”

아아 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속속 터져나왔다.

다음 순간, ! 만가대유는 벼락을 맞은 듯 다급히 대전 밖으로 뛰쳐나갔다.

 

대전 밖!

곡구(谷口)의 진세가 무너지며 세 부류의 인물들이 질풍같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호호호...! 독황(毒皇)을 시해한 중원무림에 일만혈(一萬血)의 대가를 받으리라!”

한 명의 황의면사녀가 선두에 선 채 교구를 떨치고 있었다.

위 잉! 희디흰 그녀의 옥수(玉手)가 허공에 한 번씩 선을 그을 때마다,

크악!”

케 엑!”

... ... 독황후(毒皇后)!”

구류천룡의 인물들은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황의면사녀의 뒤, 한 명의 흑포노인이 따르고 있었다.

사악한 인상에 염소수염을 기른 노인, 바로 흑룡천사옹이었다.

만가대유, 그는 대전 밖의 광경에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그는 수하들을 향해 벼락같이 호통치며 명했다.

금붕포란(金鵬抱卵)의 진세로 막아랏! 천악단(天樂檀)은 독황후(毒皇后)를 상대하라!”

순간, 갈팡질팡하던 구류천종의 문하들은 비로소 완벽한 수비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그들은 거대한 수비진영을 이루며 침입자를 막아갔다.

하나 그때,

크하하하...! 혈륭마찰의 보살님들이 여기 있다!”

와 아!”

곡구의 좌측으로부터 수백 명의 혈승(血僧)들이 막무가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호호홋... 죽어랏!”

황의면사녀도 날카로운 교갈을 터뜨리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어, 그녀는 맹렬히 소매를 흔들었다.

크으... !”

아악!”

그녀의 주위에 진세를 형성했던 오십여 명의 구류천룡의 수하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그 광경에 만가대유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황의면사녀를 노려보며 분노의 폭갈을 내질렀다.

독황후(毒皇后)! 독천황(毒天皇)께서는 천하의 안위를 걱정하던 분이거늘 그 분의 후속인 그대가 어찌 이리 잔혹하단 말인가?”

스슥! 그는 독황후의 앞으로 내려서며 격분을 금치못했다.

하나, 황의면사녀 독황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호홋... 본후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너희 중원무림이다!”

그녀는 독살스러운 교소를 터뜨리며 만가대유를 노려보았다.

다음 순간, 화르르르...! 돌연 한 무더기의 비릿한 독무(毒霧)가 만가대유의 앞으로 확 밀려들었다.

 

< 四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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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四 章

 

            氷屍誘惑

 

 

 

천이백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다시 깨어난 빙백염후(氷魄艶后), 그녀는 군무현을 주시하며 초조함을 금치못했다.

(내가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불과 일각(一角)... 그 사이에 이자의 영혼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문득, 그녀의 옥용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천기(天機)에 의하면 실패한다고 나타났다. 하나... 아니할 수 없는 일...!)

그녀는 결연한 눈빛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 순간, 스스스... 돌연 그녀의 전신이 엄청난 요기로 뒤덮였다.

 

반혼환령이체술(返魂幻靈移體術)!

사술(邪術)의 최고봉, 자신의 영혼을 타인의 신체로 옮기거나 타인의 영혼을 갈취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기오한 대법.

빙백염후는 지금 그 반혼환령이체술(返魂幻靈移體術)을 펼치려 하는 것이었다.

하나, 그녀는 너무도 강한 영혼의 소유자를 상대로 선택했으니... 뉘라서 알 수 있으랴?

천하제일의 정력가(定力家)를 그 상대로 선택하게 한 것은 하늘의 오묘한 안배였음을.

폭발할 듯한 요기로 전신을 감싼 빙백염후,

순간,

!”

문득 그녀는 안색을 이지러뜨리며 짧은 비명을 토했다.

그녀는 이내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상상 이상으로 군무현의 정력은 너무도 강했다.

그는 반혼환령치체술에 걸려들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솜이 물을 빨아들이 듯 고스란히 흡수하는 것이 아닌가!

... ... 천기(天機)... 천기를 어길 수는 없단 말인가?”

빙백염후는 절망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패배했다. 그것도 아주 철저히 당하고 만 것이다.

그녀의 영혼을 군무현의 강인하고도 흔들림없는 정신력에서 산산히 파열되고 말았다.

... ...!”

빙백염후는 흐느끼듯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하나, 문득 그녀는 연신 경련을 일으키는 처연한 나신을 일으키며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손해볼 것은 없다... 천향염시(天香艶屍)가 되어... 백 년을 더 살수 있을테니...!”

한순간, 화르르르... 위 잉!

그녀의 몸을 뒤덮고 있던 요기가 극()에 이른 듯 확 퍼져 올랐다.

그와 함께, 빙백염후의 두 눈에서 스르르 광채가 사라졌다.

마치 바람 속에 흔적없이 잠드는 화향(花香)처럼...

그때, 우르르... 콰쾅! 군무현의 태양천화굉염신공의 위세는 더욱 팽창되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폭발할 듯 치솟는 극양지기는 광한전 내의 모든 기물을 산산히 부수어 버렸다.

콰르릉 쿠쿵... 엄청난 폭음이 광한전을 허물어뜨릴 듯 거세게 뒤흔들었다.

하나, 그 순간에도 여전히 군무현의 두 눈은 깊고 고요하기만 했다. 문득 그는 두 눈을 떴다.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리다니...!”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침음성을 발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주위는 온통 난장판으로 화해 있었다.

광한전 내의 모든 것은 산산히 파괴되거나 녹아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하나, 단 하나, 파괴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여인의 몸(女體), 고금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몸이었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으로 빙백염후를 바라보았다.

“...!”

빙백염후, 그녀는 다소곳이 무릎을 모은 채 군무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극히 요염하고도 선정적인 자태, 그것은 실로 사내의 혼백을 빼앗기에 충분한 뇌살적인 아름다움이었다.

한데, 기이한 일이었다. 눈빛, 빙백염후의 아름다운 두 눈에는 일정한 촛점이 없어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군무현은 가슴이 뜨끔해짐을 느꼈다.

(강시가 되다니...!)

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그러했다. 빙백염후는 놀랍게도 영혼을 잃은 강시로 변해버린 것이 아닌가?

살아 있으나 혼()이 없고, 눈빛이 있으나 이미 생자(生者)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천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났으나 결국 희생치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송두리째 자신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나, 그녀가 잃지않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이었다.

천년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녀는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비록 혼을 잃은 강시녀가 되어버렸으나 고금제일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군무현, 그는 한동안 침중한 표정으로 빙백염후를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묵묵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소곳이 앉아있던 빙백염후도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군. 이 여인은 심령(心靈)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의아로움을 금치못하며 중얼거렸다.

이지를 상실한 빙백염후, 그녀는 이제 군무현의 일부나 마찬가지인 그림자가 된 것이다.

미모 하나만으로도 능히 천하를 혈풍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고금제일미인(古今第一美人), 한데 이제 그 완벽한 미()를 소유한 여인은 한 사냉게 종속되고 말았다.

영원히 그녀는 군무현의 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천년 이전의 미인(美人)과 천년 후의 기남아(奇男兒)!

그들의 만남은 과연 장래에 어떤 신화(神話)를 낳을 것인가?

그때, 문득 군무현은 빙백염후가 아직도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나신임을 느꼈다.

(무엇인가 걸칠 것을 찾아주어야겠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의 모든 기물은 산산이 박살나고 없었다.

하나, 박살난 만년빙옥의 침상 밑에 하나의 시커먼 철함이 뒹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년한철로 만든 것이라 부서지지 않았군!”

군무현은 철함을 집어들며 중얼거렸다.

철함은 묵직한 한철로 된 자물쇠로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 팍팍! 군무현이 자물쇠를 쥐고 불끈 힘을 주자 이내 한철로 된 자물쇠는 모래알처럼 부서져 박살났다.

열려진 철함 안, 몇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먼저 한 벌의 백의(白衣)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결고운 빙잠사로 만들어진 구천신녀(九天神女)의 의복이었다.

빙백염후가 걸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군무현은 빙잠백의를 꺼내 빙백염후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걸치시오!”

“...!”

그 말에 빙백염후는 공손히 옷을 받아들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군무현은 눈을 돌려 다시 철함 안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하나의 가죽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가죽 주머니 안, 그 안에는 열여덟 자루의 단검(短劍)이 들어 있었다.

 

천라빙백검(天羅氷魄劍)!

 

단검의 손잡이네는 그와같은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빙백염후의 천라빙백구천류(天羅氷魄九天流)를 펼치는 명기들이군!”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천라빙백검이 든 가죽 주머니를 빙백염후에게 돌려주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

그는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광한전 전체가 환하게 밝아진 듯 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군무현은 일순 넋을 잃은 듯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빙백염후를 주시했다.

어느새 빙잠백의를 걸치고 선 빙백염후, 그녀의 모습은 황홀할정도로 아름다웠다.

구천신녀(九天神女)가 하강한 듯 은은하고 교교로운 자태, 빙장백의는 빙백염후의 모습을 한결 고아하고 품위있게 정돈해 주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아름다움에서 완숙하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었다.

군무현은 새삼 빙백염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다시 철함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천라빙백검의 밑에는 두권의 책자가 들어 있었다.

낡을대로 낡은 고서(古書), 군무현은 그 중 한 권을 집어들었다.

 

구천비사록(九天秘事錄)!

 

고서의 겉장에는 고전체로 그와같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이미 청년 이전에 사라진 구천사령궁(九天邪靈宮)의 비전이었다.

 

구천사령궁(九天邪靈宮)!

 

그들은 바로 고금제일사파(古今第一邪派)가 아닌가?

구천비사록 안에는 실로 가공할 사도절기가 집약적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태양천제와 빙백염후, 그 절대무적의 두 고수의 합공에 의해 당시 구천사령궁은 기왓장 하나 남김없이 괴멸했다.

하나, 빙백염후가 그때 얻은 구천비사록으로 인해 결국 두 고수는 동귀어진하게 된 것이다.

또 한권의 비급, 그것은 특이하게도 빙잠사로 엮어 만든 것이었다.

 

빙백천후보(氷魄天后譜)!

 

표지에 유려하고도 섬세한 필체로 쓰여진 다섯 글자, 그것을 본 순간 군무현은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빙백천후보(氷魄天后譜)...!”

그는 신음하듯 나직이 중얼거리며 문득 빙백염후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 여인이 빙백염후란 말인가?)

그는 불신의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하나, 그의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빙백염후는 촛점없는 멍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무현은 침음하며 다시 빙백천후보로 눈길을 돌렸다.

 

태양천화굉염신공은 너무도 가공스럽다. 본후(本后)의 만겁빙백명공강(萬劫氷魄冥空强)이 태양천제의 심맥을 마디마디 끊어 놓았으나... 본후의 심맥도 태양천화굉염신공에 의해 재가 되어 버렸다.

 

거기까지 읽은 군무현은 나직한 신음성을 발했다.

문득, 그는 빙백염후를 향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이리와 보시오!”

“...!”

그의 말에 빙백염후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군무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군무현은 손을 내밀어 빙백염후의 손목을 잡아보았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가볍게 굳어졌다.

역시...!”

놀라운 일이었다.

빙백염후, 그녀의 심맥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아예 흔적조차 없었다.

대신, 지극히 강한 기운이 그녀의 전신에 두서없이 널려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대가... 빙백염후였군!”

군무현은 신음과도 같이 침중한 음성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빙백염후! 그녀는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 중 일대천(一大天)이었다.

고금삼대기인 중 일인인 천년의 시공을 날아넘어 강시가 된 것이 아닌가?

그것도 바로 군무현 자신에 의해서, 군무현은 침중한 표정으로 다시 빙백염후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살아나는 길은 반혼환령이체술(返魂幻靈移體術)로 타인의 영혼을 갈취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천기를 보았다. 천기에 의하면 천년 이후에 한명의 인물이 광한전에 든다. 그러나... 천기는 오히려 나의 영혼이 그에 의해 부서진다고 나왔다...!

 

그 내용을 접한 군무현은 다시 한 번 무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그랬던가? 나도 모르게 영혼을 빼앗길 뻔했단 말인가?”

그는 하마터면 나환섭밀대법에 빠져들 뻔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이었다.

빙백염후의 글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을 얻는 길은 그것 뿐... 망설일 수는 없다. 요행으로 천기를 벗어나면 본후는 환생하여 천수를 누길 것이며... 실패하면 천향염시(天香艶屍)가 되어 그의 처첩으로 백년을 살게될 것이다. 이제... 잠혼영면술(潛魂泳眠術)로 천년의 긴 잠에 들게 될 것이다.

빙백염후(氷魄艶后) 단목화예!

 

군무현은 기광을 빛내며 빙백염후를 돌아보았다.

“...!”

아득하고도 촛점없는 시선, 빙백염후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모호한 시선으로 군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무현은 문득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고금제일의 여고수를 곁에 두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군!”

그 말에 빙백염후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영혼을 잃은 강시, 강시가 웃는다.

빙백염후의 입가에 흐릿하게 떠오르는 그것은 분명 인간의 미소였다.

기이하지 않은가? 강시가 웃다니...

하나, 그 미소는 너무도 황홀하여 빙백염후에게 썩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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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千二百年前美人

 

 

 

우르르... 위 잉!

엄청난 진동음과 함께 시뻘건 불길의 회오리가 지하광장을 가득 메웠다.

하나, 그 광휘는 이내 청색(靑色)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빛은 점점 백색(白色)을 띄기 시작했다.

신비로운 청백색의 광휘로 바뀐 것이다.

한순간, 스스스...! 지하광장을 뒤덮었던 청백색의 광휘가 안개 걷히듯 모두 사라졌다. 그러자 드러나는 광경.

군무현, 그는 지금 용암 위에 둥실 떠 있었다.

무쇠라도 녹여버리는 용암의 살인적인 열기에도 그는 조금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부글... 부글... 바로 그의 발 아래서 엄청난 기세로 끓고 있는 용암. 하나, 그는 맹렬한 용암의 열기도 군무현의 머리카락 한올조차 태우지 못했다.

문득, 군무현은 고개를 흔들며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태양천화굉염신공을 구성(九成)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구나!”

!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태양천화굉염신공의 구성 성취, 직접 그것을 창안한 태양천제가 최후로 오른 경지가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한데, 군무현은 이미 그 구성의 경지에 오른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중얼거렸다.

내가 아무리 태양신맥을 지녔다고는 하나 일조일석(一朝一石)에 들 수는 없지. 청백지경에는 수월하게 이르렀으나 백광지경(白光之境)에 들려면 더욱 분발해야 한다!”

이어, 스슥! 그는 가볍게 몸을 움직여 태양천제의 앞으로 내려섰다.

(이런 분이라면 사부(師父)로 모시기에 충분하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존경의 눈으로 태양천제를 우러러 보았다.

노선배님! 후배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시 들르게 되면 유체를 중원으로 모실 것입니다!”

군무현은 태양천제를 향해 공손히 구배(九拜)를 올렸다.

이어, 그는 문득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묵빙현하라고 했던가? 이런 기연을 얻게해준 그녀에게 감사해야 겠군!”

그는 고소를 지으며 옆의 석벽을 향해 다가갔다.

다음 순간, 그는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콰 쾅! 불과 삼성의 태양천화굉염신공을 사용했을 뿐이건만 그의 일장에 삼장 두께의 화강암의 석벽이 엿가락처럼 녹아버렸다.

이윽고, 군무현은 뻥 뚫려버린 전면을 향해 성큼 들어섰다.

한데, 석벽 안으로 들어서던 군무현, 일순 그는 흠칫하며 몸이 굳어졌다.

실로 엄청난 한기가 전신을 짓쳐드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태양천화굉염신공을 익힌 군무현마저도 전신이 으스스하게 떨릴 정도의 지독한 한기,

대단하군!”

군무현은 무심히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석벽 안, 그곳은 방대한 넓이의 또 다른 광장이었다.

본시, 이곳은 극히 화려한 전각의 내부였다.

한데, 놀랍게도 광장 전체는 온통 두터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지 않은가?

이곳이 광한전(廣寒殿)인가?”

군무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광장의 중앙으로 다가갔다.

한데 그 순간,

!”

갑자기 군무현의 시선이 굳어졌다. 그의 두 눈은 한껏 부릅떠졌다.

광장의 한쪽, 만년빙옥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화려하고 넓은 침상이 놓여 있었다.

한데, 침상 위, 한 명의 전라여인이 잠자듯 반듯이 누워있지 않은가?

그 여인을 본 순간,

...!”

갑자기 군무현의 눈빛이 야수처럼 변하며 욕정으로 이글거렸다.

우물(尤物)!

침상 위의 여인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더 이상 형용할 수 없는 극치의 완벽한 미()를 지닌 여인, 그녀의 얼굴은 신()이 빚어낸 걸작품 중 가장 아름다왔으며 그 몸매는 가히 뇌살적이었다.

사정없이 영혼을 뒤흔드는 신비한 마력(魔力)이 여인의 전신에서 폭발하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군무현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갖고 싶다!)

그는 오직 그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온통 눈앞을 가득 채우는 현란한 여인의 나체, 군무현은 참을 수 없는 충동으로 뜨겁게 피가 끓어 오름을 느꼈다.

!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금을 통해 가장 강한 사법(邪法)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나환섭밀대법(裸幻攝密大法)!

 

상고시대 현녀(玄女)가 황제(皇帝)의 총애를 자신에게 묶어두기 위해 만든 사이한 대법, 그것은 이미 천년 이전에 실전된 것이었다.

여인을 천하무적(天下無敵)으로 만들어주는 대법(大法),

 

으으...!”

군무현은 미처 경계할 틈도 없이 나환섭밀대법(裸幻攝密大法)에 걸려들고 말았다.

사내라면 누구도 이 대법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군무현은 극양지기가 넘쳐 흐르는 피끓는 나이의 청년이 아닌가?

 

호호호... 정랑 어서 오세요!

 

군무현의 귓전에 자극적인 여인의 교소가 들려왔다.

사내의 본능을 자극하는 끈끈한 유혹성.

... 보라! 침상 위의 나녀가 몸을 일으키며 뇌살적인 교태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

군무현은 터질듯한 본능적인 욕구에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안색은 고통으로 이지러졌으며 부릅뜬 두 눈에는 핏발이 섰다.

그 순간, 화르르르...! 그의 몸 속에서 가공할 극양지기가 불붙듯 확 일어났다.

뜨거운 본능의 욕구가 태양천화굉염신공을 불러 일으킨 것이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우르르... 쿠릉...! 태양천화굉염신공은 군무현이 일보를 움직일 때마다 배로 강해졌다.

마침내, 화르르... 콰 쾅! 태양천화굉염신공은 청백지경에 이르렀다.

그 가공할 열기는 광한전의 만년빙을 모조리 부수어 버렸다.

천행(天幸)이랄까?

쿠 쿵! 때마침 집채만한 얼음덩이가 군무현의 머리 위로 와르르 떨어져 내렸다.

파파팍! 얼음덩이는 군무현의 일장 위에서 박살나 흩어졌다.

하나, 파 팍! 한덩이의 얼음조각이 군무현의 어깨를 벼락같이 후려치며 녹아내렸다.

!”

극히 짧은 순간 군무현은 비명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내가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추태에 당황했다. 이어, 그는 눈앞의 나녀를 노려보며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 계집들의 몸뚱이에 정신을 잃다니...!”

그는 입술을 악물며 알몸의 미녀를 노려보았다. 하나, 이내 그의 눈빛이 다시 격렬하게 흔들렸다.

... ...!”

그의 입에서는 절로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침상 위의 나녀, 그녀가 펼치고 있는 사법(邪法)은 고금제일(古今第一)이었다.

어떠한 경우도 사내라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대법,

한순간,

크윽...!”

군무현은 자신의 혀를 질끈 깨물었다.

강렬한 여체의 유혹과 본능의 충동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골수까지 파고드는 고통이 다소의 이성을 회복시켜 주었다.

군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군무현아! 하찮은 계집의 유혹에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 위에 서려 하느냐?”

다음 순간, 그는 나녀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던져진 도전을 피하지 않는 것이 적룡세가의 법()! 이 계집의 사이한 술수를 꺾어 나의 의지를 시험하리라!”

그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눈앞의 여인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육감적이고 뇌살적인 여인의 나신, 그것은 너무도 강렬한 유혹이었다.

...!”

문득 군무현의 입가로 주르르 피가 흘러내렸다.

다시 한차례 그는 자신의 혀를 깨문 것이다.

여체의 유혹을 극복하기 위한 고통은 차라리 처절할 정도였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으며 군무현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겪는 가장 어려운 시련이라 할 수 있었다.

(... 당장이라도 저 몸을 안아버리고 싶다!)

충혈된 군무현의 두 눈에 강렬한 욕념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하나, 그는 끝내 한치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 강시같은 계집과의 싸움은 백년 면벽하는 것보다 더한 효능이 있다!)

군무현은 치미는 욕정을 간신히 억제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침상 위의 나녀, 그녀는 여전히 잠자듯 반듯이 누워 있었다. 하나, 그 모습은 군무현의 시야에 끝없는 환상과 자극적인 요기(妖氣)를 불러일으켰다.

“...!”

군무현의 몸은 그 자리에 굳어진 듯 미동도 없었다.

화르르르...! 다만 태양천화굉염신공의 극양지기만이 만상을 재로 만들어 버릴 듯 극렬하게 일어날 뿐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돌연 잠자듯 감겨져 있던 나녀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와 함께, 파파앗! 그녀의 두 눈에서 가공스런 백광(白光)이 소나기처럼 작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슥...! 침상 위의 여인은 고혹한 자태로 스르르 나신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순간,

(!)

군무현은 눈앞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눈이 빙글빙글 돌아갈 정도로 현란하고 성숙한 여체, 여인이 몸을 일으킴에 따라 앞가슴의 풍만한 유방이 자극적으로 출렁거렸다.

그녀는 강렬한 백광이 이는 시선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

군무현은 지극히 음탕한 미소를 지으며 나녀의 알몸을 노려보았다. 하나, 자세히보면 그의 눈빛은 호수처럼 깊게 가라앉아 추호의 동요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 눈빛을 대하는 순간, 나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한가닥 놀람의 빛이 스쳤다.

(나환섭밀대법(裸幻攝密大法)을 극()하는 사내가 있다니...!)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군무현의 한없이 고요하고 잔잔하 눈빛을 읽으며 내심 경악을 금치못했다.

(이 자는... 나환섭밀대법에 걸려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것을 터득하고 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부르르르...! 나녀의 교구가 뇌전을 맞은 듯 전율을 일으켰다.

그렇다. 군무현, 그는 놀랍게도 나녀가 펼친 나환섭밀대법을 스스로 깨우치고 있었다.

지극한 고통과 싸운 그 짧은 순간에, 알몸의 여인, 그녀는 군무현의 무서운 의지와 능력에 경악하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야욕은 천하(天下)보다 컸기에,

(태양천제(太陽天帝)보다 열배 더 강해질 수 있는 자다. 이자의 영혼을 나의 것으로 취한다면 나는 천년을 더 살 수 있다!)

나녀는 탐욕과 기대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아아! 이 얼마나 경악할 사실인가? 대체 이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그녀를 일컬어 세인들은 고금제일미(古今第一美)라 불렀다.

그것 말고도 그녀의 일신에 붙여진 영예로운 이름이 또 한 가지 있었다.

고금최강(古今最强)의 여고수(女高手)! 천하를 통틀어 가장 강했던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여인최고봉(女人最高峯)!

더구나, 그녀의 미모 또한 고금제일이었으니 이 얼마나 영예스러운 일인가?

하나, 인간은 태어나서 언제가 한 번은 죽는 법, 죽음은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여인, 그러나 고금최강이라 불린 이 여인은 죽음을 거부했다.

그녀는 죽음 직전에 배교의 사술(邪術)을 스스로 시전했다.

그것은 인세에 존재하는 최고의 사법이었다.

인간을 장구한 세월동안 가사상태로 잠들게 하는 비술(秘術), 그 비술로 여인은 무려 일천이백년의 세월을 가사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운명(運命)이 그녀를 깨워 일으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군무현의 태양천화굉염신공이 그녀를 가사상태에서 깨어나게 만든 것이었다.

그녀의 명호는 빙백염후(氷魄艶后)!

천이백년 전 사람들은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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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二 章

 

                      太陽天火經

 

 

 

동굴 안! 그곳은 통로며 사면 벽이며 할것없이 모두 만년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동굴 속을 전진하던 군무현, 문득 그는 채 십장을 들어가지 못해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동굴의 중앙, 한 명의 인물이 투명한 얼음에 둘러싸인 채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일신에 홍포를 걸친 위맹한 인상의 노인,

“...!”

군무현은 강렬한 기광을 발하며 홍포노인의 시신 앞으로 다가섰다.

순간, 그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홍포노인, 그는 이미 죽었으나 너무도 생생한 모습이었다.

첫눈에 보기에도 그는 강렬한 기질이 물씬 풍겼으며 과격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뇌신(雷神)을 연상케 하는 인물,

(보아하니 중원인(中原人)인 듯 한데... 어쩌다 이런 곳에서 죽었단 말인가?)

군무현은 미간을 모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때, 시선을 옆으로 돌리던 그는 흠칫했다. 홍포노인이 쓰러져 있는 얼음바닥, 그곳에 깎은 듯한 글씨가 패여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죽음이... 다가온다. 후일... 이 빙백마동(氷魄魔洞)의 한기에 얼어 죽지 않는 자가 이곳에 들기를 빌며... 화룡거사(火龍居士)가 적는다...!

 

화룡거사(火龍居士)!”

군무현은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다.

 

화룡거사(火龍居士)!

이미 백년 이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신비기인, 신분이나 출신, 무공 정도가 완전히 신비에 가려져 있어 행적 또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한데, 그런 절세기인이 천빙애의 한 빙동(氷洞)에서 빙인(氷人)으로 발견된 것이 아닌가?

군무현, 그는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 동굴 안에는 살인적인 한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천하에서 가장 막강한 체질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군무현의 눈길이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화룡거사의 글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노부 화룡거사는 태양천문(太陽天門)의 제 삼십일대 전인이며 태양천문의 조사(祖師)는 태양천제(太陽天帝)라는 분의 후손이다!

 

... 태양천제(太陽天帝)!”

군무현은 눈을 크게 뜨며 경악의 외침을 터뜨렸다.

 

태양천제(太陽天帝)!

 

이 얼마나 놀라운 이름인가?

고금무적(古今無敵)의 십대고수들, 태양천제(太陽天帝)는 바로 천지십강(天地十强)의 일인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천지십강 중에서도 최강(最强)으로 불리던 삼인 중의 일인 이기도 했다.

삼인(三人)의 강자, 그들을 일컬어 다음과 같이 칭했다.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

혈천종(血天宗)!

태양천제(太陽天帝)!

빙백염후(氷魄艶后)!

 

그들은 모두 천년 이전의 전설적인 인물들이었다.

태양천제는 바로 그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 중의 일인이었다. 동시에, 그는 빙백염후(氷魄艶后)와는 상극이었다.

최강의 적()과 동시대의 공존해야 했던 불운한 영웅(英雄).

그의 글은 계속 이어졌다.

 

조사 태양천제(太陽天帝)께서는 빙백염후(氷魄艶后)와 동귀어진하셨다. 하나, 두분이 동귀어진하신 곳이 빙백궁의 주위라고만 알려졌을 뿐 누구도 두 분의 유해를 거두지는 못했다...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천제와 빙백염후, 그들은 모두 일천이백년 전의 인물들이었다.

세인들의 기억 속에 이미 잊혀져간 고인들, 그들은 어느해 동시에 무림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로 일맥(一脈)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우리 태양신문(太陽神門)은 조사님의 유해를 거두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나... 결국 빙백궁의 방해로 인해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빙백궁과 세불양립(世不兩立)의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본문과 빙백궁의 수뇌들은 매 이십년 마다 비밀리에 대결을 벌여왔다. 본 거사(居士)도 소의빙파(素衣氷婆)와 겨루다가 천빙애가 허물어져 이곳으로 추락한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글씨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군무현은 시선을 집중하여 나머지 글을 읽어 내려갔다.

 

죽음이... 다가온다.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니나, 인세(人世)에 태양일맥(太陽一脈)의 후사를 정해놓지 못한 것이... ()이 될 뿐... 이 글을 읽는 자는... 동천목(東天目) 광양동부(廣陽洞府)에 가서... 태양... 일맥의 뒤를 이어주기를...!

 

화룡거사의 글은 거기에서 끝나 있었다.

사력을 다하여 쓴 것인 듯 끝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다.

다 읽고난 군무현, 그는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결국 빙백궁은 빙백염후의 후예들이 세운 문파였군!”

그는 얼음 속에 둘러싸인 채 죽어있는 화룡거사를 주시했다.

문득, 그의 얼굴에 어떤 결의의 빛이 떠올랐다.

거사의 심원을 풀어드리겠습니다. 후배가 이곳을 나가게 되면 기재(奇才)를 찾아 태양천문의 후사를 이어줄 것입니다!”

그는 화룡거사를 향해 다짐했다.

이윽고, 그는 눈을 돌려 동굴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동굴의 안쪽, 그곳에는 빙동 내부의 얼음들이 서로 눈부신 빛을 반사하며 신비한 광휘를 뿌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실로 경이로웠다.

군무현은 잠시 멍하니 그 아름답고 신비한 광경을 주시했다. 이어, 그는 비로소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깨닫고는 고소를 지었다.

달리 길이 없다. 동굴을 따라갈 수밖에...!”

이어, 그는 화룡거사의 시신을 지나 동굴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굴의 통로는 끝도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렇게 천여장 정도 들어갔을까?

문득, 주위의 벽과 통로를 덮고있던 얼음이 사라졌다.

대신, 시커먼 입을 쩍 벌린 화강암의 동굴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흠칫하며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열기가 느껴진다!)

과연,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훈훈한 열기가 느껴졌다.

(용암이 흐르는 길이 이 주위에 있는 듯하다!)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그로부터 다시 천여장을 더 나아갔다.

그러자, 처음에는 훈훈하게 느껴지던 열기가 갈수록 강렬해지며 동굴 안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아닌가?

한순간,

“...!”

군무현은 흠칫하며 눈썹을 모았다. 그의 전면, 시뻘건 광휘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하화산(地下火山)이다!)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리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다시 얼마쯤 더 나아가자 하나의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엄청난 규모의 지하광장!

그 중앙, 방원 이십장의 거대한 웅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한데, 부글... 부글... 우르릉...! 지금 그 거대한 웅덩이는 온통 뒤집혀질 듯 진동을 일으키며 들끓고 있었다.

시뻘건 용암, 끓고 있는 것은 물론 용암이었다.

매케한 유황 연기가 온통 지하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용암의 열기는 실로 가공할 정도였다. 쇠를 녹여버릴 듯한 엄청난 열기.

하나, 군무현은 별로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몸속에는 극렬정뇌수의 극랭한 기운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광장 안으로 접근했다.

한데,

“...!”

일순 그는 흠칫하며 멈추어 섰다.

용암이 들끓고 있는 웅덩이 건너편, 누군가 정좌한 자세로 굳은 듯이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스슥...! 군무현은 유황연기를 뚫고 순식간에 웅덩이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홍포노인,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좌화한 상태였다.

하나, 그 모습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을뿐더러 지금도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또한, 그의 전신에서는 숨막히는 엄청난 기도가 뻗치고 있었다.

(화룡거사보다 백배 뛰어난 기도가 아닌가?)

군무현은 홍포노인을 주시하며 경악을 금치못했다.

엄청난 패도지기(覇道之氣)에 완전히 압도 당하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군무현은 홍포노인의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그는 홍포노인의 앞에 놓여있는 하나의 옥함을 발견했다.

미생 군무현! 결례를 범하겠습니다!”

군무현은 홍포노인의 시신을 향해 공손히 일배를 했다.

이어, 그는 조심스럽게 옥함을 들어 뚜껑을 열었다.

옥함 안, 한 권의 앙피지 책자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책자와 함께 하나의 검붉은 빛을 띈 륜()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군무현은 기광을 빛내며 옥함 안의 륜을 집어들었다.

순간, 그의 안색이 일변했다.

(족히 삼백근은 나가겠군!)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륜의 무게는 실로 엄청났다. 하나, 무게에 반해 그 크기는 한 자가 채 안되는 소형(小形)이었다.

기이한 점은 또 있었다. 그것은 륜()이 분명했으되 날이 없지 않은가? 또한, 그것에서는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군무현은 기이함을 느끼며 륜을 내려놓았다.

이어, 이번에는 양피지로 된 비급을 집어들었다.

비급은 몹시 낡아 있었으며 표지에는 고전체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태양천화경(太陽天火經)!>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급변했다.

... 혹시... 이분이 바로...!”

그는 경악의 표정으로 급히 비급의 겉장을 넘겼다.

그곳에는 역시 고전체로 웅휘한 필체가 적혀 있었다.

 

태양천제(太陽天帝)가 남긴다!

그 첫줄을 본 군무현, 그는 흥분과 격동을 금치못했다.

... 역시...!”

그는 가슴이 세차게 쿵쾅거림을 느꼈다.

 

태양천제(太陽天帝)!

 

그 엄청난 이름 앞에 격동하지 않을 자 누가 있겠는가?

이윽고, 군무현은 격동하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다음 글을 읽어내려 갔다.

 

中略... 빙백염후와 본제(本帝)는 피차간에 희생치 못할 중상을 입었다. 그리하여 본제는 이곳 천화부(天火府)로 왔고 빙백염후는 후면의 광한전(廣漢殿)으로 들었다. 연자(緣者)는 우선 이곳에서 본제의 유학을 익힌 뒤 광한전으로 들라. 빙백염후가 한 가지 사이한 대법(大法)을 펼쳐 놓았음을 우려해서이니라... 後略...

 

군무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사이한 대법이라고...?)

그는 내심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다시 태양천화경(太陽天火經)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태양천화경!

그것의 맨 앞부분에는 고금최강의 극양기공이 실려 있었다.

 

태양천화굉염신공(太陽天火轟焰新功)!

 

이것이 그 극양기공의 이름이었다.

태양(太陽)과도 같은 극양지기를 일으키는 신공!

태양천화굉염신공이 극에 이르면 일백장을 초토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연성 단계에 따라 처음에는 붉은 광휘를, 구성(九成)에 이르면 청백색의 신비한 광채를 발휘한다.

그리고, 십이성에 이르면 그것은 눈부신 백색광휘를 나타낸다.

십이성의 경지, 그것은 만년한철 조차 단번에 재로 만들어 버리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

하나, 결코 그것은 범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고한 경지였다. 그것은 태양천제가 남긴 글로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본제도 청백(靑白)의 광염을 일으키는 경지밖에 이르지 못했다. 태양천화굉염신공을 백광지경(白光之境)으로 연마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특징을 요한다. 선천적으로 극양신맥(極陽神脈)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그것을 읽은 군무현, 그는 하늘이 내린 절묘한 안배에 감사함을 느꼈다.

마치 나를 위해 창안하신 신공처럼 느껴지는군!”

군무현이야말로 천지지간에서 가장 강한 극양신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희세의 기절맥을 소유한 군무현, 고금최강자였던 태양천제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해 놓은 듯했다.

군무현은 기대와 흥분을 누르며 다음의 신공을 훑어 보았다.

 

태양천뢰폭(太陽天雷爆)!

 

태양천화굉염신공을 한군데로 집약, 일거에 쳐내는 수법이다. 태양천화굉염신공만으로도 일백 장을 초토화로 만들 수 있거늘 이를 집약하여 쳐낸다면 가히 그 위력을 상상하고도 남으리라.

 

군무현은 태양천제의 설명을 읽으며 혀를 내둘렀다.

태양천제 노선배님을 특별히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에 두신 이유를 알것같다. 수라혈영파천무가 강하되 결코 태양천뢰폭(太陽天雷爆)과 비교될 수는 없다!”

그는 태양천제에 대해 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

이어, 그는 다시 비급으로 눈길을 돌렸다.

태양천화경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무공, 가장 강한 신공절기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태양굉폭겁멸륜(太陽轟爆劫滅輪)!

 

이는 바로 옥함 속에 들어 있는 륜, 즉 태양굉폭륜(太陽轟爆輪)으로 펼치는 무공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절기가 아니었다.

()의 미증유의 힘이 천지 밖으로 쏟아지며 펼쳐지는 가공할 절기, 태양굉폭겁멸륜이 펼쳐지는 순간 천하에는 또 하나의 태양(太陽이 생기리라.

그 위력은 가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군무현은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 어찌 인간이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경악을 금치못하며 망연자실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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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一 章

 

                      神秘氷洞

 

 

 

군무현, 그는 방금전 시녀가 놓고간 빙차(氷茶)를 음미하며 난설홍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스르르... 문득 방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한 명의 여인이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섰다.

하나, 그녀는 난설홍예가 아닌 예의 전설빙이었다.

군무현의 시선에 잔설빙은 고개를 약간 숙인 뒤 말했다.

제일공주께서 공자를 직접 만년빙지의 서식지로 오시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알겠소. 안내하시오!”

군무현은 몸을 일으키며 선 뜻 대답했다.

잔설빙은 두말 않고 몸을 돌려 먼저 방을 나섰다. 여전히 얼음같이 싸늘한 표정, 군무현도 곧 그녀의 뒤를 따랐다.

다음 순간, 스슥...! 두 사람은 삽시에 빙백궁을 벗어났다.

잔설빙의 속도는 실로 엄청났다. 그녀는 군무현이 따라오건 말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한데, 스윽! 한순간 잔설빙의 신형이 급속히 빨라지더니 어느 한곳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

! 군무현은 흠칫했으나 이내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한데, 잔설빙을 뒤따라 한곳으로 들어선 순간,

이곳은...!”

군무현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그는 짙은 검미를 꿈틀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곳은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지각이 쩍 갈라진 천인단애가 아닌가?

휘이 잉! 골수를 파고드는 음습한 바람만이 단애를 휩쓸고 있었다. 천길 절벽이 아스라이 내려다 보이는 천험의 오지,

이곳에 만년빙지가 서식한단 말인가?”

군무현은 의혹의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나, 그 말에 대답한 사람은 잔설빙이 아니었다.

네게 줄 만년빙지는 없다!”

돌연 군무현의 등 뒤에서 차가운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

군무현은 순간 흠칫 몸이 굳어졌다. 하나, 그는 냉담한 얼굴로 천천히 돌아섰다.

돌아서는 그의 눈에 한 여인의 모습이 비쳐들었다. 일신에 짙은 흑색궁장을 걸친 여인, 그녀는 훤칠한 키에 이국적인 미모가 물씬 풍기는 미인이었다.

하나, 그녀는 아름다우나 화사함을 잃은 빙화(氷花)였다.

묵빙현하의 뒤, 네명의 백의여인이 그림자처럼 우뚝 서 있었다.

(함정에 빠졌군!)

군무현은 고소를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어쩌면 미리 예상했던 일인지도 몰랐다.

그대는...?”

군무현은 힐끗 묵빙현하를 주시하며 물었다.

빙백궁의 제이궁주 묵빙현하가 본녀다!”

묵빙현하는 칼로 잘라내듯 차갑고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순간, 군무현의 영민한 두뇌는 신속히 회전했다.

(빙백궁의 전대 주인의 신상에 무슨 일인가 있다. 그 사이에 제일공주 난설홍예와 제이공주 묵빙현하가 실권을 놓고 암투를 벌이고 있다. 지금 묵빙현하는 나를 난설홍예의 동조자로 착각하고 있다...!)

그의 추측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사태를 짐작한 그는 냉담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빙백궁 내부에 어떤 알력이 있든지 간에 그것은 본인이 알바 아니오. 분명히 말하건대 본인은 그대들의 알력에 대해서는 무관하오. 그대들과 다툴 하등의 이유가 없소!”

그는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하나, 묵빙현하가 그 말을 믿을 리 없었다.

마음대로 지껄여라. 곧 천빙애(天氷崖)에 묻히게 될테니까!”

그 말을 끝냄과 함께, 스슥...! 그녀는 유령처럼 몸을 움직여 네 명의 백의여인들 사이에 섰다.

군무현은 일순 흠칫했다.

(저들은 강시가 아닌가?)

그는 네 명의 백의여인들을 주시하며 눈썹을 꿈틀했다.

전혀 표정이 없는 네 명의 백의여인들, 놀랍게도 그녀들은 혼()이 없는 강시였다.

(골치아프게 되었군.)

군무현은 고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피를 보기를 원하는가?”

하나, 묵빙현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네 명의 강시와 손을 마주 잡았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급격히 변했다.

(연체합벽술(連體合碧術)! 나를 단애 아래로 밀어버릴 작정이군!)

그는 순식간에 위급지경으로 몰리고 말았다.

찰나,

차 앗!”

군무현은 대갈일성과 함께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여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수라혈잠영! 그 초절한 경공이 펼쳐진 것이었다.

하나,

늦었다!”

위 잉! 묵빙현하의 입에서 싸늘한 냉갈이 터짐과 함께 엄청난 무게의 압력이 군무현의 가슴을 짓쳐들었다.

(위험하다!)

군무현은 눈앞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하나,

수라혈영파천무(修羅血影破天舞)!”

위 이잉! 그는 순간적으로 맹렬히 쌍수를 떨쳐냈다.

시뻘건 혈영(血影)이 온통 사위를 뒤덮음과 함께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콰르르 릉! 콰 쾅!

묵빙현하와 네 강시들의 무형경력과 군무현의 공세가 정면으로 격돌한 것이다.

그 굉렬한 폭음 속을 뚫고,

아 악!”

여인의 탈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졌다.

묵빙현하, 그녀는 앞가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일장 밖으로 튕겨나갔다.

바로 그때, 콰르르릉... 쿠쿠쿵!

돌연 그녀 앞의 단애가 엄청난 진동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돌발적인 사태였다.

... 콰콰쾅! 우르릉!

찰나지간 천지는 가공할 폭음속에 묻혀버렸다. 그 엄청난 함몰의 사태가 가라앉고 나자, 장내의 광경이 확연히 드러났다.

보라. 일인(一人). 오직 한 사람만이 단애 밑으로 함몰되는 불행을 면한 듯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묵빙현하 바로 그녀였다.

... 지독한 자...!”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군무현도, 네명의 빙시(氷屍)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단애가 붕괴되는 순간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만것이었다.

문득, 묵빙현하의 차갑고 깊숙한 두 눈에 한줄기 허탈한 빛이 어렸다.

이제 돌아가면...!”

그녀는 고통을 눌러 참으며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어느새 나타난 잔설빙이 그녀의 잔혈을 움켜쥔 것이 아닌가!

... 설빙! ... 네가...!”

묵빙현하는 불신과 회의의 눈빛으로 멍하니 잔설빙을 응시했다.

그 순간, 잔설빙의 두 눈에 고통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제이공주님! 용서하세요!”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때였다.

흐흐흐...!”

스슥...! 한 소리 요란한 교소와 함께 묵빙현하의 앞으로 한무더기의 분홍색 구름이 떨어져 내렸다.

난설홍예! 바로 그녀가 아닌가? 그녀의 모습을 본 빙백궁의 안면이 참담하게 이지러졌다.

홍예언니...! 설빙까지도 회유했군요!”

그 말에 난설홍예는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현하! 미안하구나. 나는 우리 빙백궁의 막강한 힘을 이 북해에서 썩히게 하고 싶지 않다!”

순간, 묵빙현하는 부르르 몸을 떨며 아미를 치떴다.

닥쳐요! 언니는 조사님들의 유명을 잊었어요? 절대 북해를 떠나지 말라는 그 명을 잊었느냔 말이에요?”

그녀의 격분된 음성에 난설홍예의 안색도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하나, 그녀는 이내 신경질적으로 왈칵 소리쳤다.

시끄럽다! 그따위 케케묵은 궁규(宮規) 때문에 청춘을 이 삭막한 북해에서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중원에 들어가 천마궁(天魔宮)과 손을 잡고 천하를 지배할 것이다!”

... 미쳤군요!”

묵빙현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천하제패(天下制覇)! 이 얼마나 엄청난 말인가?

돌연, 난설홍예는 허리를 쥐며 요란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미쳤다고 해도 좋다. 어쨌든 너를 손쉽게 잡게해준 군공자에게 감사해야겠구나!”

순간, 묵빙현하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렀다.

... 설마... 그는 언니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이었단 말인가요?”

그녀는 충격을 받은 듯 한차례 부르르 교구를 떨었다.

호호... 그렇다. 그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만년빙지를 구하러 왔을 뿐이지!”

난설홍예는 묵빙현하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

묵빙현하는 일순 교구를 휘청하며 한 모금의 선혈을 울컥 토해냈다.

그와 함께, 그녀는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 눈이 어두워 애꿎은 사람을 죽였으니... 이 죄를...!”

그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비몽사몽 중에 그녀는 들을 수 있었다.

호호호... 중원아 기다려라!”

난설홍예, 그녀의 요기서린 득의의 웃음소리가 북해의 동천을 뒤흔드는 것을...

 

X X X

 

음험한 지옥의 입구를 연상케 하는 절곡 밑,

크으... 지독하군!”

문득 한소리 고통스러운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사방은 온통 두터운 얼음으로 싸여 있었다.

한데, 신음성은 바로 그 얼음 구덩이 속에서 들려왔다.

이어, 콰릉 펑! 돌연 두터운 얼음덩이가 통째로 박살나며 그 속에서 한 명의 혈인(血人)이 불쑥 솟구쳐 나왔다.

군무현! 바로 그가 아닌가?

다행히 그는 네 명의 빙시 위로 떨어져내려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 그는 전신의 관절이 어긋나는 극심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전신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다.

군무현은 입술을 악물며 품속을 뒤졌다.

구전환혼단(九轉還魂丹)을 많이 가져오기를 잘 했다!”

그는 옥병 속의 구전환혼단 이십여 알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놓고 가부좌를 틀었다.

순간,

... !”

그의 안색이 처참한 고통으로 이지러졌다. 하나, 그는 이를 악물고 진기를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전신관절이 부서져 나갈 듯 아팠으나 점점 고통은 감소되었다.

그리고 한 순간, 그는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구전환혼단의 효력은 과연 대단했다. 고가진기를 삼주천했을 때, 놀랍게도 내상이 깨끗하게 완치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상 또한 거의 아물어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윽고, 군무현은 눈을 떴다.

때가 좋지 않았다. 빙백궁의 내부 알력에 휘말려 들다니...!”

그는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로군!”

문득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폭이 십여장 정도되는 협로였다. 수백 장 위로 손바닥만한 하늘이 겨우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사면의 벽, 그것은 엄청난 한기를 발산하는 만년빙(萬年氷)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천빙애(天氷崖)! 이곳이 바로 천빙애였다.

군무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도저히 벽을 타고 오를 수는 없겠군!”

거울처럼 미끄러운 만년빙(萬年氷), 더구나 골수까지 얼려버릴 듯한 엄청난 한기를 발산하는 그 만년빙의 벽을 타고 오른다는 것을 불가능했다.

군무현은 난감한 심정을 금치 못했다.

(이곳에 달리 통로가 없다면 꼼짝없이 뼈를 묻게 되겠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얼음벽으로 둘러싸인 협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동굴이 있다!”

과연, 그의 눈에 크지 않은 하나의 빙동(氷洞)이 들어왔다.

혹시...!”

군무현은 설마하는 기대감으로 그 동굴을 향해 다가갔다.

순간, 음랭하고 차가운 한기가 무서운 기세로 그의 전신을 몰아쳤다.

군무현은 절로 몸이 으스스해짐을 느꼈다. 하나, 그는 눈을 빛내며 주저없이 동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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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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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 章

 

                  北海에 온 潛龍

 

 

한놈도 살려두지 않으리라!”

군무현은 살기어린 싸늘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삐 익! 그는 재차 봉황옥소를 힘껏 불었다.

마치 예리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울부짖음으로 마구 뒤흔들렸다.

카 악! 크아아악... 맹금들은 모조리 머리가 박살나며 추풍낙엽처럼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하오미, 그녀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하나, 군무현은 싸늘하고 냉혹한 얼굴이었다.

멸절사뢰음(滅絶死雷音)!”

그의 입술 사이로 재차 냉혹한 일성이 흘러나왔다.

! 그것은 바로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 중 제 이음종인 멸음종(滅音宗)이었다.

가히 가공지경의 위력을 지닌 희대의 살음(殺音), 한데 바로 그때였다.

!”

갑자기 하오미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보라! 구워어 억! 돌연 천지가 시커멓게 변하더니 거창한 붕음(鵬音)이 천공을 뒤흔드는 것이 아닌가?

뒤이어, 콰르르... 쏴 아! 한 마리 거대한 붕조(鵬鳥)가 태양을 가리며 나타났다.

양 날개를 펼친 길이가 무려 이십 장이 넘는 엄청난 크기의 대붕(大鵬)!

순간, 군무현의 무심한 얼굴에 격렬한 동요가 일었다.

(전설의 대천붕(大天鵬)!)

그는 경악의 눈으로 내심 부르짖었다.

 

대천붕(大天鵬)!

그것은 단연코 만금지왕(萬禽之王)이었다.

거상(巨象)과 해경(海鯨)을 먹이로 한다는 전설 속의 거붕(巨鵬), 하나, 그것은 다만 전설로만 내려왔을 뿐 실제한다고는 상상치 못했다.

한데, 그 전설 속의 대천붕이 북해의 대초원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격동을 금치못했다.

(멸절사뢰음(滅絶死雷音)을 듣고 날아온 것이다. 선인(仙人)의 피리소리가 대붕(大鵬)을 부른다더니...!)

그는 희열의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무슨 생각에선지 봉황옥소를 다시 입에 댔다.

순간, ... ... ...! 지극히 온유하고도 평화로운 소성이 멀리 하늘을 감싸듯 은은히 퍼져 나갔다.

바로 천황오대음종 중 제 오음종인 천락화영춘(天落和英春)을 시전한 것이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꾸르륵...! 콰콰콰! 거대한 체구의 대천붕이 흉흉한 빛을 거두며 군무현의 앞으로 서서히 날아내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 오빠!”

하오미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채 두려운 듯 군무현의 곁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하나, 군무현의 태도는 지극히 태연했다.

대천붕(大天鵬), 그놈은 가까이서 보니 마치 하나의 작은 산()처럼 느껴졌다.

앉아있는 키만 해도 십장에 달했으며 그 발가락 하나가 사람의 몸통만 했다.

그제서야 군무현은 묵묵히 봉황옥소를 입에서 떼었다.

이어, 그는 마치 사람을 대하듯 대천붕을 향해 묻는 것이었다.

이 곡조가 마음에 들었느냐?”

그러자, 꾸륵! 놀랍게도 대천붕은 그의 말을 알아듣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놈은 커다란 부리를 군무현의 몸에 부벼대는 것이었다. 그것은 친근감을 뜻하는 표시였다.

군무현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대천붕의 부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뜻하지않게 훌륭한 동반자를 얻게 되었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실로 뜻밖의 기회로 그는 더할 수 없는 훌륭한 영물을 부리게 된 것이었다.

 

X X X

 

북해(北海)!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의 바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온통 흰 눈과 얼음 뿐이었다.

전설처럼 거대한 빙지(氷地)는 만년(萬年)의 신비 속에 깊이 잠들어 있었다.

문득, 휘이 잉! 북해의 동천(東天)을 가르며 거대한 회오리가 일었다.

...! 그것은 한 마리 거대한 붕조(鵬鳥)!

하나의 작은 야산을 방불케하는 크기의 대천붕이 아닌가?

콰르르르... 콰콰...! 대천붕이 한 번 날개짓을 할 때마다 거대한 회오리와 함께 폭풍이 일어났다.

그 대천붕의 등, 한 명의 흑의청년이 오연한 자태로 앉아 있었다.

군무현이었다. 그는 두 눈에 기광을 빛내며 전면을 주시했다.

저 멀리 하나의 거대한 얼음궁전(氷宮)이 들어왔다.

온통 투명한 얼음으로 장식되어 눈부신 백색 광휘를 뿌리고 선 거궁(巨宮)!

그것은 신비롭고도 환상적이었다.

찬란한 태양이 비치면 금방이라도 스르르 녹아 없어져 버릴 듯한 신비의 빙궁(氷宮), 군무현은 문득 대천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천웅(天雄)! 다왔다. 저곳이 바로 북해의 빙백궁(氷魄宮)이다!”

그는 손을 들어 멀리 보이는 백색 광휘로 찬란한 얼음궁전을 가리켜 보였다.

꾸우우...! 대천붕은 그의 말에 깊게 울부짖으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빙백궁을 경동시키고 싶지 않으니 저쪽 빙산(氷山)에 내려라!”

군무현은 대천붕에게 미리 일렀다.

그러자, 쐐 애액! 대천붕은 힘차게 날개를 쭉 뻗더니 빙백궁과 십여마장 떨어진 빙산(氷山) 위로 날아내렸다.

그 순간, ! 군무현은 대천붕의 등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이곳은 너무 추우니 남쪽으로 가서 기다려라! 돌아갈때는 봉황옥소로 다시 부르겠다!”

그는 대천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꾸르륵... 대천붕은 친물한 울음소리를 내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콰아아아...! 대천붕은 일진광풍을 일으키며 허공을 날아올랐다.

쐐 액! 순식간에 대천붕의 모습은 북해의 천공을 가로질러 군무현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빙백궁(氷魄宮)...!”

군무현은 몸을 돌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십여마장 앞의 거대한 빙백궁을 향하고 있었다.

가까이서보니 빙백궁의 위용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사방 십리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 눈이 부실 듯 현란하고 정교한 장식, 그것은 신비(神秘), 그 자체였다.

군무현의 무심한 두 눈에 문득 이채가 솟았다.

만년빙지(萬年氷芝)를 얻으려면 어려움을 겪어야 되리라...!”

그는 빙백궁을 주시하며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어, 스스스... 그는 수라혈잠영의 경공을 펼쳐 전면을 향해 날아갔다. 앞은 막막한 설원(雪原)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돌연, 스스스... 스슥! 황량한 설원, 인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설원에 백여 명의 여인들이 유령처럼 솟아났다.

순간,

“...!”

군무현은 흠칫하며 발길을 멈추었다.

백여 명의 여인들, 그녀들은 나타난 것보다 더욱 신속히 군무현을 포위했다.

실로 귀신같은 신법이었다.

그녀들의 모습은 각기 달랐으나 한 가지 공통점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들의 전신에서는 금방이라도 몸을 얼려보릴 듯한 차디찬 한기가 서려 있다는 점이었다.

전혀 표정이 없는 싸늘한 얼굴, 군무현은 첫눈에 알아보았다.

(하나같이 극음(極陰)의 기공을 극도로 익혔다. 개개인이 무시할 수 없는 고수들이다. 빙백궁이 새외제일(塞外第一)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군!)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여인들을 주시했다. 과연 놀라운 일이었다.

환영문(幻影門)의 절기를 이어받은 군무현, 그가 어이없이 한순간에 포위되고 만 것이 아닌가?

그때, 한 명의 빙녀(氷女)가 한기서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엇하러 본궁 주위를 어슬렁거리느냐?”

그대가 지휘자인가?”

군무현은 대답 대신 싸늘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의 그런 냉오한 태도에 여인은 아미를 찌푸렸다.

그녀는 이십대 전후로 보이는 절색(絶色)이었다. 백의(白衣) 차림에 훤칠한 키가 미모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얼음장같이 싸늘한 표정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렇다. 본녀가 본궁 칠백호궁빙녀대(七白號宮氷女隊)의 대장(隊長)인 잔설빙(殘雪氷)이다!”

그대들의 궁주(宮主)를 만나고 싶다. 안내하라!”

군무현은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했다.

그의 일방적인 태도에 여인 잔설빙(殘雪氷)의 아미가 상큼 치켜 올라갔다.

건방진... 궁주님은 너같은 무례한을 만나실 정도로 한가한 분이 아니다!”

그녀는 격분한 듯 얼음장같은 안색이 더욱 싸늘하게 굳어졌다.

한데, 그때였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갑자기 여인들의 포위 일각이 열리며 한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군무현은 흠칫했다.

(대단한 경공!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했거늘...!)

그는 미간을 모으며 나타난 한 명의 여인을 주시했다.

그 순간,

“...!”

때마침 여인의 눈빛도 군무현을 향했다.

군무현은 기이한 눈으로 여인을 주시했다.

여인, 갑자기 그녀가 나타남으로해서 싸늘한 한기가 풀풀 날리던 설원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사하고 훈훈하게 변해 버렸다.

우선 여인은 모습부터가 밝았다. 너무도 화사하여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녀는 의복 또한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화려하고 선명한 분홍색 궁장을 걸치고 있었다.

게다가, 만면에 그윽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으니...

! 그것은 사내의 철심(鐵心)을 단번에 녹여버릴 고혹적인 미소였다.

군무현은 고소를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탕기가 있어 보이나... 아름다운 여인이군!)

그때, 궁장여인 또한 군무현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강자(强者)!)

그녀의 회사한 분홍색 궁중이 소리없이 흔들렸다.

그녀의 두 눈에 야릇한 이채가 반짝 스치고 지나간 것은 그와 동시였다.

그녀는 빨아들일 듯한 눈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무심한 표정, 일점의 흔들림도 없는 군무현의 모습은 오래전부터 그곳에 서 있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궁장여인은 높은 무공의 소유자였다. 또한, 그녀는 사람을 볼줄 아는 눈을 지녔다.

(주위와 동화(同化)된다는 사실은 무공이 천일합일(天一合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그녀는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렸다.

군무현의 존재를 강렬하게 인식하게된 것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두 눈에 그윽한 빛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호호... 소녀는 빙백궁의 제일공주(第一公主)인 난설홍이에요. 대협께서는 폐궁에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요?”

그녀는 고혹한 미소를 지으며 더할 수 없이 달콤한 음성으로 물었다.

만년빙지(萬年氷芝)를 만년빙옥정(萬年氷玉精)과 바꾸려고 왔소!”

군무현은 냉담하고 정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순간, 난설홍예라 자칭한 궁장여인, 그녀는 두 눈에 이채를 반짝이며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렸다.

(이 인물만 내 편으로 끌어들이며 빙백궁을 나의 손 안에 넣을 수 있다!)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복사꽃보다 화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만년빙옥정(萬年氷玉精)이라면 만년빙지와 바꿀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이죠. 성함을 알고 싶군요!”

그녀는 순순히 호의를 표시했다.

군무현이오!”

호호... 군공자셨군요. , 우선 궁으로 들어가시죠!”

난설홍예는 고혹한 미소를 지으며 백옥같은 손을 들어 빙백궁을 가리켰다.

“...!”

군무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의외로 수월하게 풀리는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난설홍예를 향해 정중히 포권했다.

고맙소!”

호호... 아니에요. 공자님을 만나게 된 것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해요!”

난설홍예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앞장섰다.

그 순간, 스스스... 군무현을 포위했던 백여 명의 여인들은 물결이 갈라지듯 옆으로 물러났다.

군무현, 그는 난설홍예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음을 옮겼다.

궁이 가까워지자 군무현은 내심 경탄을 금치 못했다.

(... 이것은 얼음이 아니었군!)

가까이서 보니 빙백궁은 얼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빙옥(氷玉)으로 건축된 것이 아닌가?

얼음같이 생겼으되 얼음보다 천배 강한 옥석(玉石)인 빙옥(氷玉).

(빙옥을 깎아 궁을 짓다니... 정말 대단하군!)

군무현은 내심 감탄하며 빙백궁이 발산하는 마력적인 신비 속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빙백궁의 거대한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하나, 군무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

성문 위의 한채의 누각, 그 위에 한 명의 여인이 오연히 선 채 얼음장같이 싸늘한 안색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그 여인은 난설홍예와는 정반대의 인상을 지녔다.

일신에 걸친옷은 짙은 흑색궁장, 늘씬한 몸매에 천하일색(天下一色)의 절륜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 그녀의 안색은 싸늘한 얼음조각과도 같았다.

눈빛 또한 깊숙이 가라앉아 서늘한 한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때, 스슥...! 문득 흑의궁장여인의 옆으로 한 명의 인영이 소리없이 날아들었다.

잔설빙(殘雪氷)! 바로 그녀가 아닌가?

흑의궁장녀는 힐끗 잔설빙을 응시하며 차갑게 물었다.

어떠냐?”

잔설빙의 태도는 극히 공손했다.

, 아무래도 저자가 중원에서 제일공주님의 힘이 되기 위해 온다던 그자 같습니다! 제이공주님!”

제이공주(第二公主)!

그렇다면 흑의궁장녀는 바로 난설홍예의 동생이란 말인가?

잔설빙의 말에 제이공주라 불리운 흑의궁장녀는 전신에 한기를 발산하며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 감히... 사부님께서 타계하셨다고 사내를 궁안으로 끌어들이다니... 나 묵빙현하(墨氷玄霞)는 결코 용납지 않는다!”

그녀의 눈에서 전신을 얼려버릴 듯한 차가운 살기가 서리서리 뻗쳐나왔다.

“...!”

그 모습에 잔설빙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편, 군무현, 그는 난설홍예와 함께 빙옥(氷玉)을 지은 화려한 전각 앞에 이르렀다.

(궁도 전부가 여인들 뿐이라더니 과연 그렇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듣던바와 같이 과연 빙백궁도들은 모두 여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두 이십세(二十歲)를 전후한 미모의 여인들로만... 이는 실로 놀랍고도 특이한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군무현은 이십세 전후로 보이는 여인들의 나이가 이미 상당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들은 나이를 잊고 사는 여인들이다. 처녀지신을 지키면서 극고한 극음기공(極陰奇功)을 익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절로 주안공(主顔功)을 연성하는 격이 된다. 그런만큼 빙백궁도들의 무공이 무섭다는 얘기도 되겠지!)

그때, 난설홍예가 걸음을 멈추며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호호... 다 왔어요!”

그녀는 군무현을 한 칸의 넓은 정실로 안내했다.

호호...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폐를 끼치겠소!”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는 내심 난설홍예의 태도가 마땅치 못했다. 그녀는 야릇한 눈빛으로 사내의 본능을 충동질할 뿐 아니라 탕기어린 미소가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하나, 군무현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난설홍예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난설홍예는 자극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만년빙지를 준비해야 겠어요. 이만 실례하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보인 후 밖으로 나갔다.

군무현은 난설홍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볍게 눈썹을 찌푸렸다.

(너무 순순히 나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군!)

뜻밖에도 난설홍예의 태도는 지극히 호의적이었으며 그의 뜻에 순순히 응해주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어려움을 겪으리라 예상했던 군무현, 그로서는 의아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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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九 章

 

                   鳳凰玉簫奇緣

 

 

 

오빠!”

하오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뛸 듯이 기뻐하며 군무현ㅇ게 다가왔다.

군무현은 묵묵히 적룡검을 검집에 꽂았다. 그때, 그의 주위로 만수족의 인물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그들의 눈빛은 경외지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돌연히 나타나 그들이 상대치 못하는 독응들의 무리를 단숨에 물리쳐준 군무현, 그를 천신(天神)으로 우러러 보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그때, 하오미가 문득 군무현의 옷자락을 가볍게 끌며 말했다.

인사하세요. 이분이 소녀의 아버님 이세요!”

그녀는 백발노인, 즉 하고타(河古陀)를 소개시켰다.

군무현이오이다!”

군무현은 포권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하고타는 감격스러운 눈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감사를 표했다.

하고타라 하오. 폐족(弊族)의 위난을 구해주셔서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무르겠구려!”

불의(不義)를 보면 징계하는 것이 도리이오. 예를 거두십시오!”

군무현은 대수롭지 않은 듯 무감정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냉담했으나 정중하고 겸손했다.

하오미는 두 사람이 인사를 주고받자 이번에는 예의 미소부를 소개했다.

이분이 소녀의 새언니에요!”

군무현은 무심히 미소부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이십 육칠세 정도, 첫눈에 확 띄는 빼어난 미인이었다.

원래 그녀는 당대 족장이던 하오랍의 부인이었다. 하나, 하오랍이 불의의 사고로 타계하자 어린 딸과 함께 독수공방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크고 아름다운 두 눈에는 짙은 우수의 빛이 촉촉히 젖어 있었다.

미소부는 군무현을 향해 다소곳이 예를 취했다.

천녀의 딸 아이를 구해주셨으니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그녀는 행여 놓칠세라 꼭 품어 안은 어린 아이를 바라보며 진정으로 감사의 빛을 보였다.

군무현은 고개를 저었다.

은혜라 할 수 없는 일이오. 본인은 부인의 예를 받을 수 없소!”

순간, 미소부는 무형강기에 의해 굽혔던 허리가 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하고타가 온통 기쁨에 넘치는 음성으로 수하들을 향해 외쳤다.

, 무엇을 하느냐? 우리 만수족을 구해주신 대은인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벌여야 하지 않겠느냐? 어서 준비하도록 하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와아!”

만수족의 인물들은 일제히 환성을 터뜨렸다.

군무현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과분한 대가를 원치 않는 성격이었다.

하오미는 기쁨의 미소를 듬뿍 머금은 채 군무현을 올려다 보았다.

하나, 애석하게도 군무현의 표정은 무심했다.

시종일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얼굴, 하나, 그런 그의 얼굴은 분명히 매력적이었다.

“...!”

하오미의 작은 가슴이 문득 쿵쾅거리며 고동치기 시작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둥 둥! 흥겨운 북소리가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구고 있었다.

초경(初更), 때는 밤이었으나 만수곡은 대낮같이 밝은 불빛으로 흥청거리고 있었다.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만수곡 내에서도 가장 호화롭고 웅대하게 지어진 가옥(家屋)! 바로 족장 하고타의 집이었다.

지금 그곳에서는 한창 대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타다다닥...! 활활 장작불이 어둠을 밝히며 기세좋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일렁거리는 불빛을 따라 돌며 몽고 여인들이 기이한 복장으로 토착의 가무(歌舞)를 펼치고 있었다.

... ...! 북소리는 장단을 맞추듯 더욱 높아지고 여인들의 춤은 보기만 해도 흥에 겹다.

연회석의 상좌, 군무현과 하고타가 성대한 음식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한데, 군무현의 안색은 묘하게 변해 있었다.

... ... 아빠...!”

서투른 발음으로 그를 당혹하게 만드는 어린 아이 때문이었다.

이제 세 살난 귀여운 여아(女兒), 바로 하오미의 오빠인 하오랍과 그의 미망인 나하연(羅河燕) 사이의 유일한 혈육인 소란(素蘭)은 연회가 시작될 때부터 군무현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사귀지도 않았는데 처음 본 그를 아빠라 부르기를 서슴치 않으며 계속 군무현을 당혹케 만드는 것이 아닌가?

소란은 엄마인 나하연으로부터 늘 들어왔다.

 

아빠는 어디 멀리 가셨단다. 곧 돌아오실거야!

 

그런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군무현을 아빠로 알고 응석을 부리는 것은, 소란은 군무현의 무릎에 앉아 앙증맞은 손가락을 들어 무엇인가를 가리켰다.

아빠... 저기... ... !”

군무현, 그는 소란의 티없이 귀엽고 맑은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끌리고 있었다. 하나, 실로 그로서는 난처한 입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하고타가 턱밑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소란아! 이제 그만 할아버지에게로 오너라!”

그는 소란을 향해 자애롭게 팔을 벌려 보였다. 하나, 소란은 앙증맞게도 군무현의 가슴에 바싹 매달리며 막무가내로 도리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싫어... 싫어... 아빠가 좋아...!”

그 모습은 깜찍하고 귀엽기 이를데 없었다.

군무현은 내심 고소를 지었으나 희미하게 웃었다.

놓아두십시오. 소생이 함께 놀아 주지요!”

하고타는 그 말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이거 너무 폐를 끼치는 듯하오!”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는 몹시 흡족한 기분이었다. 손녀인 소란이 군무현을 따르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던 것이다.

연회는 차츰 무르익어갔다.

그와 함께, 밤도 깊어가고 있었다.

 

오빠! 안녕히 주무세요.”

하오미는 군무현을 침실로 안내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녀는 다소곳이 물러갔다.

군무현은 다소 술기운이 올라 있었다. 기분 좋을 정도로 적당히 취한 그는 오랜만에 마음이 훈훈했다.

오늘밤은 아무런 상념없이 깊이 잠들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침실로 들어섰다.

한데, 막 침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던 군무현, 그는 흠칫 몸이 굳어졌다.

(누군가 있다!)

그는 술기운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정갈하게 정돈된 방 안, 한쪽에 붉은 비단휘장이 드리워진 침상이 놓여 있었다.

한데, 한 명의 여인이 등을 돌린 채 침상에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그대는... 누구요?”

군무현은 멈칫하며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하나,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은 없었다.

대신, 여인은 상반신을 살짝 일으켜 침상 머리맡의 촛불을 훅 불어 껐다.

순간, 군무현은 여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하연...!)

그는 흠칫 놀라며 내심 중얼거렸다.

여인(女人), 놀랍게도 그녀는 바로 나하연, 하고타의 며느리가 아닌가?

군무현은 눈썹을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부인! 대체 무슨 짓이오?”

그의 어조는 냉담했으며 그 속에는 은은한 불쾌감마저 깃들어 있었다.

하나, 나하연은 침착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님께서... 은공의 잠자리 시중을 들라는 분부를 내리셨어요!”

군무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잠자리 시중이라니... 가당치 않소!”

그는 짙은 눈썹을 꿈틀하며 말했다. 순간, 나하연의 흰 어깨가 어둠 속에서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하나, 그녀는 다시 조용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귀객(貴客)에게 수청을 드는 것은 이곳의 법도이니... 책망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의 설득력있는 침착한 어조에도 군무현은 용납지 않았다. 그는 홱 몸을 그대로 방을 나가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오빠! 언니와 하룻밤 주무세요!”

문득 군무현의 귓전으로 하오미의 나직한 전음이 파고들었다.

“...!”

군무현은 그 소리에 움찔 몸을 멈추었다.

하오미는 그런 그를 설득하려는 듯 말을 이었다.

오랍 오빠는 저희 부족의 후사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고 타계하셨어요. 아버지께서는 오빠의 아기를 새언니가 가졌으면 하는 뜻에서예요!”

군무현은 안색이 굳어졌다. 하나, 하오미는 그의 내심을 꿰뚫어 보는 듯 분명한 어조로 일침을 가하듯 말했다.

오빠가 방을 나오시면 새언니는 수치심에 못이겨 자진하고 말거예요!”

“...!”

그 말에 군무현은 흠칫했다.

그는 힐끗 침상으로 시선을 던졌다. 과연, 나하연의 머리맡에는 한 자루의 날카로운 비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자 군무현은 당혹한 심정이 되었다.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실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어쩔줄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나, 이내 그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별다른 도리가 없군. 나로 인해 한 여인이 희생되는 것은 원치 않으니...!)

그는 씁쓸한 고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결심한 듯 몸을 되돌려 자신의 의복을 벗어던졌다.

삽시에 나신이 된 군무현, 그는 말없이 침상으로 올라갔다.

“...!”

군무현의 몸이 닿자 나하연은 교구를 부르르 떨엇다.

순간, 군무현은 흠칫했다.

(알몸이 아닌가?)

놀랍게도 나하연은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뭉클하고 뜨거운 여체의 감촉이 그대로 군무현의 가슴에 닿아왔다.

여체를 접하는 순간, 군무현은 잠들어 있던 본능적인 욕망이 불끈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문득, 그는 부드럽게 감겨오는 여체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풍만하고 농염하기 이를데 없는 여체가 그의 가슴에 가득 안겨오며 후끈한 욕념의 불길을 지폈다.

나하연, 그녀는 이미 음양(陰陽)의 이치를 아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군무현의 몇번 손길에 쉽사리 달아올랐다.

군무현도 여체를 향한 뜨거운 몰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뜨겁고 끈끈한 여체의 늪속으로 정신없이 파묻혀 갔다. 갑자기, 침상이 격렬한 흔들림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대초원의 상쾌한 아침이었다.

군무현은 단정히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나하연이 다소곳한 태도로 서 있었다.

그녀는 마치 군무현의 아내처럼 정성껏 식사 시중을 들고 있었다.

문득, 군무현은 수저를 놓으며 생각난 듯 나하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부인, 이곳에 혹시 소()나 적()이 있소?”

나하연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이어, 그녀는 조용한 걸음걸이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나하연은 하나의 옥함을 받쳐들고 들어왔다.

대원(大元)이 중원에 있을 때 우연히 천첩의 집안으로 흘러들어온 것이에요!”

그녀는 말과 함께 옥함을 군무현에게 내밀었다.

“...!”

군무현은 말없이 옥함을 받아들었다.

이어, ! 그는 옥함의 뚜껑을 열었다.

순간,

...!”

그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옥함 안! 오색창연한 한 자루의 옥소(玉簫)가 들어 있었다.

표면에 정교한 봉황(鳳凰)의 형상이 새겨진 그것은 한눈에 진귀한 명품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하나, 그것은 겉보기보다 백배 더 엄청난 것이었다.

군무현은 격동과 희열의 눈빛을 지었다.

봉황옥소(鳳凰玉簫)...! 춘추시대(春秋時代)의 명기(名器)를 직접 보게되다니...!”

그의 무심하기만 하던 두 눈에 경이와 기쁨의 빛이 역력하게 떠올랐다.

군무현, 그는 천하의 음종(音宗)인 천음황(天音皇)의 음공(音功)을 얻었다.

하나, 천음황의 천미신소(天微神簫)는 그가 암습당하는 와중에 실전되고 말았다.

희대의 음공을 얻었으나 마땅한 악기가 없어 그 위력을 시험해 볼 수 없던 참이었다.

이것이면 천응족(天鷹族)의 맹금들을 몰살시킬 수 있으리라!”

군무현은 봉황옥소를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나하연은 눈을 빛내며 기대의 표정을 지었다.

독응을 제거하시려는 생각이신지요?”

군무현은 대답 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하연의 눈에는 그런 군무현이 도란태산보다 더 높게만 보였다.

 

만수곡이 내려다 보이는 하나의 산봉 위!

문득,

나타났어요!”

하오미가 긴장된 음성으로 나직이 외쳤다.

군무현과 하오미,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산봉 위에 앉아 있었다.

지금 하오미의 봉목은 크게 떠져 있었다.

보라!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도란태산의 험봉 위로 수천마리의 맹금들이 쏜살같이 만수곡을 향해 내리 꽂히고 있지 않은가?

하오미는 그 광경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며 말했다.

어제 당한 분풀이를 하려고 자신들의 모든 맹금들을 총동원한 모양이에요!”

잘 되었군!”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천천히 봉황옥소를 입에 물었다.

삘리리... 삘리...! 봉황옥소에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환상적인 소성이 그윽하게 울려퍼졌다.

그 선율은 삽시에 도란태산을 가득 메웠다.

그 순간, 이변이 벌어졌다.

어엇! 왜들 멈추느냐? 일거에 만수곡을 휩쓸어라!”

한 마리 거대한 독응 위에 버티고 앉아있던 천응족의 족장 탑달극라, 그 자는 당황하여 눈을 부릅뜨며 맹금들을 향해 호통을 내질렀다.

봉황옥소의 소성을 들을 천응족의 맹금들이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주춤주춤 물러섰기 때문이었다.

그때, 삘릴리... 삘리...! 부드러운 소성이 갑자기 살벌하게 변하더니 천공을 찢어 발겼다.

직후, 실로 무서운 결과가 벌어졌다.

캬 아! 크아... 크윽!

허공을 날던 독웅들이 미친 듯이 울부짖음을 토하며 거품을 물었다.

그와 함께,

... 새들이 미쳤다.”

크악!”

맹금을 부리던 인물들 또한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돌연, 맹금들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크 악! 카오...!

서로 물고 찢고 사나운 부리로 살점을 쪼아대는 맹금들, 그 광경은 실로 처참할 정도였다.

그 바람에, 맹금의 등에 타고있던 천응족의 인물들은 급박한 비명과 함께 밑으로 추락했다.

그들 역시 맹금의 부리에 사정없이 물려 끔찍한 상처를 입은 채.

실로 그것은 삽시에 벌어진 돌연한 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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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八 章

 

                      萬獸族危機

 

 

 

군무현은 자신의 장포를 벗어 말없이 하오미에게 던져 주었다. 이어,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 고마워요!”

하오미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황급히 군무현의 장포로 알몸을 가렸다. 그녀의 작은 가슴은 이 순간 세차게 쿵쾅거리며 뛰었다.

(멋있는 분...!)

그녀는 군무현의 냉담하나 깨끗한 태도에 강렬한 매력을 느꼈다.

이윽고, 그녀는 급히 일어나 군무현의 뒤에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소녀는 만수족(萬獸族)의 하오미예요!”

“...!”

군무현은 아무말 없이 돌아섰다.

하오미, 그녀는 군무현의 헐렁한 장포를 걸친 채 살짝 볼을 붉히며 서 있었다.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수줍게 군무현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두 눈, 그것은 무척 크고 아름다웠으며 보석보다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눈이군!)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하오미가 조심스럽게 군무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빠... 라고 불러도 좋아요?”

그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군무현은 눈앞의 티없이 고운 소녀에게 정()이 갔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순간, 하오미의 안색이 활짝 펴졌다.

오빠는 중원(中原)에서 오셨어요?”

그녀는 금방 명랑한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무감정하나 차갑게 느껴지는 어조는 아니었다.

무슨 일로 중원에서 이곳까지 오셨지요?”

북해(北海)로 가는 길이다!”

하오미는 군무현의 대답에 안색이 일변했다.

설마... 빙백궁(氷魄宮)... 가시는 건가요?”

그녀는 염려의 표정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순간, 하오미는 살풋 아미를 찡그리며 말했다.

빙백궁이 목적지라면 가시지 마세요. 빙백궁의 계집들은 하나같이...!”

하나, 군무현은 그녀의 말을 막았다.

누가 오고 있다!”

“...?”

하오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따각... 따각... 급촉한 말발굽 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한 하오미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백 장 밖의 말발굽 소리를 알아 듣다니...!)

그녀는 군무현의 존재가 새삼 신비하고 거대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두두...! 한 필의 건마가 초원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히 잉! 말은 군무현의 바로 앞에서 급히 멈추어 섰다.

그와 함께, 마상에서 한 명의 피의청년이 훌쩍 날아내렸다.

군무현의 눈빛이 순간 기광을 발했다.

(훌륭한 기마술(騎馬術)!)

그때, 피의청년은 말에서 내려서자 마자 하오미를 향해 깊이 포권했다.

공주님!”

유가랍(幽加拉)! 무슨 일이에요?”

하오미는 피의청년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유가랍(幽加拉)이라 불린 피의청년은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어서 곡()으로 돌아가십시오! 천응족(天應族) 놈들의 동태가 이상합니다!”

천응족(天應族) 놈들이?”

하오미는 아미를 상큼 치켜올렸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사생결단을 내야 하겠습니다!”

그 야만인들이...!”

하오미는 분노의 표정을 지으며 붉고 도톰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초조와 불안의 빛이 떠올랐다.

군무현은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상황을 짐작한 그는 하오미를 힐끗 바라보았다.

급한 일인 모양이군! 내가 데려다 주겠다. 집은 어느 방향이냐?”

그 말에 하오미는 반색을 지었다.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만수곡(萬獸谷)은 도란태산에 있어요!”

가자!”

군무현은 서슴없이 하오미의 손목을 잡았다. 그와 함께, 스스슥! 그는 수라혈잠영의 경공으로 섬전같이 허공을 갈랐다.

...!”

하오미는 놀란 토끼처럼 탄성을 발하며 군무현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허리를 굳게 감아 안은 군무현, 그는 순식간에 도란태산을 향해 질주했다.

몸을 날리며 문득 그는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천응족(天應族)이란 자들과 분규가 있는 모양이군?”

하오미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중원에서 밀려난 뒤 저희는 각기 부족마다 떨어져서 군락을 이루며 살게 되었어요!”

 

만수족(萬獸族)!

그들은 달단부(達丹部)에 속하는 일족이었다. 도란태산을 근거지로 그곳의 반()을 차지하는 대부족(大部族)!

그들은 대대로 맹수(猛獸)를 다루는 기술을 지녔다.

하나, 원래 그들은 온순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에 타부족과의 분규를 원치 않았다.

반면, 도란태산의 또 다른 한곳에는 천응족(天應族)이라는 매우 호전적인 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독응(毒應)을 타고 다니며 맹금을 잘 부리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만수족과는 정반대로 그들은 야심이 큰 부족이었다.

때때로 그들은 탐심을 길러왔으며 도란태산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광분하는 무리들이었다.

그러니 어떻겠는가? 상반된 기질을 지닌 만수족과는 자연히 분규가 그칠날이 없는 것이다.

 

하오미는 아름다운 두 눈에 적의의 빛을 띄우며 말을 이었다.

당금 천응족의 족장인 탑달극리(塔達極利)는 아주 호전적인 자에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란태산을 자기들 수중에 넣으려고 발광하고 있어요!”

문득, 그녀의 안색이 침울하게 변했다.

게다가 우리 만수족의 족장이던 하오랍(河吳拉) 오빠는 반년 전에 사냥터에서 전갈에 물려 사망하고 말았어요!”

그녀는 두 눈에 어두운 빛이 어렸다.

혼자된 새언니만 불쌍하게 되었죠!”

군무현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물었다.

탑극라란 자는 누구냐?”

탑달극리의 아들이에요. 그 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닮아 방약무인하기 짝이 없어요!”

하오미는 탑극라에 대한 반감이 극심한 듯 아미를 찡그렸다.

그들은 몇마디 얘기를 주고받은 사이, 삽시에 그들은 도란태산이 보이는 곳까지 당도했다.

한데 문득, 군무현의 검미가 가볍게 찌푸러졌다.

(저것은...?)

도란태산의 산록에서 별로 멀지 않은 봉우리, 그 위를 스치는 수많은 맹금들의 그림자를 본 것이었다.

(벌써 싸움이 시작된 모양이군!)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리며 속도를 더욱 빨리했다.

휘르르르...! 그의 신형은 세찬 바람소리를 남겼을 뿐 흔적조차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X X X

 

광대한 분지!

그 광활한 분지에 수천호의 민가가 모여살고 있었다.

세외선경을 연상케하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하나, 지금 그곳은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카 악! 끄악...! 흉맹한 맹금의 괴성과 사나운 맹수들의 울부짖음이 허공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보라! 끔찍하게도 백여 마리의 거대한 독응과 수백 마리의 맹금들이 부지를 습격하고 있지 않은가?

크아 카오... 끄르륵...!

그들의 기세는 실로 가공스러울 정도였다. 이에 대항하여, 흑의를 입은 장한들이 거호(巨虎), 표범, 곰들 천여마리의 맹수들이 서로 어울려 맹금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끔찍하고 처참한 광경이었다. 분별없이 죽고 죽이는 짐승들과 인간의 싸움은 치열했다. 하나, 일방적으로 맹수들 쪽이 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크 악! 으르릉... ! 흉맹하고 처절한 짐승들의 울부짖음, 퍽퍽 피가 튀며 기세당당한 맹수들은 독응의 무쇠같은 발톱에 갈가리 찢겨 나뒹굴었다.

한편, 흑의장한들도 맹금들을 맞아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츠츠... 위 잉! 콰르릉!

도검(刀劍)이 난무하며 폭음과 장풍이 분지를 뒤집어 엎을 듯 몰아쳤다. 하나, 맹금과 독응의 가죽은 마치 철판같아 도검이나 화살 정도로는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크아아악!”

아 악?”

피를 보는 쪽은 대부분 흑의장한들이었다. 그들의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속속 나뒹굴었다.

바로 만수족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위세는 점점 풀잎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도저히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우하하하! 나의 자랑스러운 독응들아! 한놈도 남김없이 갈가리 찢어죽여라!”

한 마리 거대한 독응의 등 위에서 굉량한 광소와 함께 득의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독응의 위, 한 명의 흉악한 인상을 지닌 금포노인이 철갑(鐵甲)을 입은 채 한 자루 철궁(鐵弓)을 겨누고 있었다.

쉬 익! 쐐 애액!

그 자가 시위를 힘껏 잡아당길 때마다,

크악!”

크윽!”

흑의장한들은 어김없이 가슴을 부둥켜안고 거꾸러졌다.

그 자의 궁술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을 뿐 아니라 극히 뛰어났다. 맹수들은 지휘하는 장한들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탑달극리! 이놈!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맹수들의 무리 속에서 한 명의 백발노인이 분기탱천하며 노갈을 터뜨렸다. 하나, 독응 위의 탑달극리는 광소를 터뜨리며 분지를 내려다 보았다.

우하하...! 하고타(河古陀)! 네 아들 곁으로 보내주마!”

그 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백발노인을 향해 철궁을 겨누었다. 그 자가 막 철궁의 시위를 잡아당기려 할 때였다.

우 우!”

돌연 한소리 거창한 창룡음이 도란태산을 뒤흔들었다.

순간,

!”

탑달극리는 대경실색했다. 그 장소는 너무도 크고 웅후하며 하마터면 그 자는 독응 위에서 떨어질뻔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카 아! 크르 륵! !

수많은 맹금과 독응들이 그 진동에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다.

그때, 스윽! 탑달극리의 눈에 분지 입구로 날아드는 한 명의 흑의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그는 곡구로 들어서자마자 즉시 하오미를 내려놓았다.

이어, 그는 번개같이 적룡검을 뽑아들었다.

미물이 감히 인간을 해치다니... 용서치 못한다!”

그는 한광을 폭사하며 찌렁찌렁한 대갈을 터뜨렸다.

그와 함께,

가랏! 적룡어강살!”

번 쩍! 푸학! 그는 검을 단전에 붙이며 벼락같이 휘둘러냈다.

직후, 케 엑! 캬아악... 크윽!

십여 마리의 독응들이 단번에 두동강 나며 허공을 온통 피보라로 뒤덮으며 떨어져 내렸다.

그 광경을 본 탑달극리, 그 자는 찢어질 듯 눈을 부릅뜨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 어검술!”

그 자는 질겁하며 부르짖었다.

그때, 위 잉! 군무현의 적룡검은 계속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낙뢰보다 빠른 그것은 순식간에 맹금들을 양단시켜 버렸다.

으르릉... ! 우우!

분지를 찢어발기는 처절한 짐승의 울부짖음은 오싹 소림이 끼칠 정도였다.

탑달극리, 그 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군무현이 펼치는 어검술이 보통 어검술보다 열배 강한 적룡천종(赤龍天宗)의 절기임을...

... 물러가자!”

그 자는 급히 자신이 타고 있던 독응의 머리를 쳤다.

그 순간, 쉬 익! 날카로운 적룡검의 검기가 허공을 스치며 탑달극리가 부리는 거대한 독응의 한쪽 다리가 싹둑 잘려 나갔다.

케 엑! 독응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피를 쏟았다.

그 광경에, 크르르 카 아...!

수많은 맹금들도 공포에 질린 기색으로 분분히 흩어졌다.

순식간에, 맹금의 무리들은 도란태산 너머로 밀려가듯 사라졌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아 악! 아가!”

돌연 한 여인의 처절한 비명이 귓전을 찢었다. 군무현은 흠칫하며 홱 고개를 돌렸다.

콰르릉 펑! 한 채의 인가가 폭음 속에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인가속에서 한 명의 미소부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뛰쳐나왔다.

순간,

감히...!”

군무현의 두 눈에 번쩍 살광이 폭사되었다. 그의 눈에 한 마리 독응이 한 명의 어린아이를 잡아채며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찰나, 번 쩍! 어느새 적룡검은 군무현의 손을 떠나 독응의 등으로 날아 꽂히고 있었다.

직후, 크 악! 독응의 동체가 쫙 갈라지며 선혈이 확 뿌려졌다.

악 아가!”

그것을 본 미소부는 자지러질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독응의 발톱에 끼어있던 어린아이가 밑으로 급속히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그 순간, 스스스...! 문득 군무현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잠시 후,

와 아!”

오오...!”

중인들 사이에 터질듯한 환성이 울려퍼졌다. 그들은 환호성을 울리며 일제히 허공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스스스스... 군무현, 그가 깃털처럼 유유히 지면으로 내려서고 있지 않은가?

한쪽 팔에 혼절한 어린아이를 안은 채, 파파앗! 그는 적룡검을 회수하며 고개를 숙여 품안의 어린 아이를 내려다 보았다.

무심하기만 하던 그의 두 눈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귀여운 계집아이...!)

그의 품에 안긴 채 혼절해 있는 어린 아이는 불과 두세살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여아(女兒)였다.

뽀얀 우유빛 피부에 앵두같은 입술을 지닌 인형같은 아이, 그때,

... 아가!”

미소부가 정신없이 달려와 군무현의 손에서 아이를 받아안았다. 그녀는 아이를 품속에 끌어안으며 마구 볼을 부벼댔다. 어머니의 오열은 진하고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

군무현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 무엇보다 깊고 진한 감정, 그것이 바로 모성애(母性愛)가 아니겠는가?

그래서일까? 군무현은 차가운 가슴이 자신도 모르게 훈훈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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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七 章

 

           妖精같은 少女

 

 

 

휘이이잉! 스스스...

바람이 분다.

활화산(活火山)이라도 단숨에 얼려버릴 듯한 혹독한 한풍(寒風).

건곤일색!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눈부신 백색(白色) 뿐이다.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얼음, 그리고 눈(), 찬란한 빙설(氷雪)의 세계가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다.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황원(荒原)!

한데, 갑자기 그 황원이 뚝 끊어지며 마치 지옥(地獄)의 입구인양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천인단애가 나타났다.

그 단애의 빙벽 위, 언제부터인가 두 명의 인물이 대치하고 있었다. 절벽을 등지고 우뚝 선 인물, 그는 칠십 정도로 보이는 홍포노인이었다.

위맹한 용모에 태양처럼 강렬한 기질을 물씬 풍기는 모습, 횃불처럼 이글거리는 그의 두 눈은 그대로 두 개 불덩이와도 같았다.

홍포노인의 삼 장 앞, 그와는 정 반대의 인상을 풍기는 백의노파가 서 있었다.

단아한 용모에 기품어린 모습, 하나, 만년빙설처럼 차디찬 한기를 풍기는 싸늘한 인상이었다.

우르르릉... 콰릉!

대치한 양인 사이에는 뇌성벽력과 함께 거대한 폭발음이 솟구쳐 올랐다.

그들은 단지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치열한 대결, 그들은 지금 보이지 않는 거창한 무형강기로 경천동지할 내공을 겨루고 있는 중이었다.

문득, 백의노파의 뒤로 하나의 거대한 궁()이 아스라이 바라보였다.

! 그것은 놀랍게도 거대한 얼음궁전(氷宮)이 아닌가?

신화(神話) 속에서나 등장함직한 신비한 거궁.

그때,

태양천뢰폭(太陽天雷爆)!”

만겁빙백류(萬劫氷魄流)!”

양인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대갈일성이 터져나왔다.

순간, 콰르르릉... 쿠쿵!

홍포노인의 전신에서 시뻘건 용암같은 강기가 쏟아졌다.

반면, 백의노파의 양 손에서는 만년빙하(萬年氷河)가 은하처럼 쏟아져 흘렀다.

()과 극의 충돌! 일순, 천지는 파멸의 구렁텅이 속으로 함몰되고 말았다.

콰자작! 콰르릉... 퍼 펑!

()과 얼음()!

영원히 융합될 수 없는 상극의 양대기공이 서로 뒤엉켜 충돌하며 가공할 굉음을 터뜨렸다.

다음 순간, 콰르릉 쿠쿠쿠...! 빙벽 전체가 끝이 안보이는 단애 아래로 부서져 내렸다.

그와 함께,

흐윽...!”

백의노파는 새카맣게 타버린 가슴을 움켜쥐고 뒤로 나뒹굴었다. 홍포노인 역시 처참하게 박살난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는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을 지켜들며 중얼거렸다.

... 결국... 태양일맥(太陽一脈)... 영원히 사라졌다...!”

초점이 흐려진 그의 두 눈은 회의로 얼룩졌으며 만면에 허탈한 표정이 어렸다.

백의노파, 그녀 역시 희생키 힘든 중상을 입었다.

만년빙설처럼 차디찬 그녀의 얼굴에도 죽음을 따르는 초탈한 표정이 떠올랐다.

화룡거사... 노신 소의빙파(素衣氷婆)... 곧 그대의 뒤를 따라갈 것 같구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녀는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걷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신비의 얼음궁전!

그곳을 향해, 하나, 홍포노인 화룡거사(火龍拒士)! 그는 바닥에 쓰러진 채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X X X

 

도란태산(圖蘭泰山)!

 

새외제일악(塞外第一嶽)! 사시사철 만년빙(萬年氷)을 머리에 인 그 웅자는 무한한 신령스러움을 불러 일으킨다.

도란태산의 산록. 그곳을 넘으면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평원이 나타난다.

대초원(大草原)! 한때 천하를 위무했던 대원제국(大元帝國)이 바로 이곳에서 일어나지 않았던가?

오시(午時) 무렵, 스슥! 문득 초원의 저쪽에 한줄기 흑영이 나타났다.

그 흑영의 신법은 마치 유성이 흐르듯 경쾌하고 절륜하기 이를데 없었다.

흰 피부에 여인으로 착각할 만큼 빼어난 용모를 지닌 미청년. 바로 군무현이었다.

성길사한(成吉砂汗)! 그 대영웅(大英雄)이 태어난 곳...!”

문득, 군무현의 가슴에 대평원처럼 넓고 벅찬 포부와 장부(丈夫)의 투혼이 불끈 끓어 올랐다.

그는 실로 오랜만에 마음껏 가슴을 열었다. 그리고 힘껏 달렸다.

대평원!

사위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푸름으로 출렁거리는 끝이 없는 대초원을 향해, 얼마를 달렸을까?

군무현의 두 눈에 아득히 구름 저편에 자리한 도란태산의 웅자가 바라보였다. 그는 도란태산의 웅자와 더불어 성길사한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장쾌한 평원을 달리며 그는 천하를 위무할 웅심(雄心)을 길렀으리라!)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벅찬 가슴을 달래었다.

영웅(英雄)! 군무현 역시 천하보다 크고 넓은 웅심을 지닌 영웅이 아닌가?

그때, 문득 초원을 달리던 군무현의 두 눈에 멀리 아름다운 호수가 들려왔다.

군무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쉬어가야겠군!”

! 그는 망설임 없이 호수쪽으로 몸을 날렸다. 짙은 녹음이 우거져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호수.

한데,

(!)

막 호숫가에 내려서던 군무현은 그만 기겁하고 말았다. 호수의 물은 비취처럼 맑아 바닥이 투명하게 비칠 정도였다.

한데,

랄랄라...!”

그 호수 속에 한 명의 소녀가 몸을 담근 채 목욕을 하고 있지 않은가?

군무현은 기척없이 급히 녹음 사이로 몸을 숨겼다.

소녀(小女), 그녀는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처럼 맑고 경쾌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뽀얀 우유빛 나신에 물을 끼얹고 있었다.

! 천상에서 잠시 하강한 선녀(仙女)인가? 소녀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신선한 생동감이 온 몸 구석구석 깃들어 윤택하게 빛나는 아름다움.

소녀의 피부는 빙옥(氷玉)처럼 희디 희고 맑았으며 탄력있고 미끈하게 뻗은 몸매는 어둠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연어를 연상케 했다.

촤르르르... 맑고 경쾌한 물소리, 소녀는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채 목욕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듯 아름다운 정경.

“...!”

군무현은 일순 넋을 잃고 말았다.

녹음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름답다...!)

그는 절로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그것는 전혀 사심이 깃들지 않은 순수한 감정이었다.

전라소녀. 그녀의 아름다움이 너무도 신선하고 해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군무현이 지켜보고 있음을 까맣게 모르는 소녀,

촤르... ...! 그녀는 물 속에 반쯤 교구를 담근 채 목욕을 하고 있었다. 너무 맑아 투명해 보이는 물빛으로 그녀의 교구는 선연하게 비쳐보였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카 아! 돌연 모골이 송연해지는 맹금(猛禽)의 울음소리가 주위를 찢어 발겼다.

순간,

!”

소녀는 안색이 급변하여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보라! 쐐 액! 그런 그녀를 향해 허공으로부터 한 마리 거대한 독응(毒應)이 순식간에 내려꽂히는 것이 아닌가?

양 날개를 편 길이가 무려 사장에 이르는 거대한 독응.

문득, 독응 위에서 호탕한 사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으하하! 하오미(河娛美) 소저!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었구려!”

독응의 등 위, 한 명의 건장한 청년이 타고 있었다.

하오미(河娛美)라 불린 전라소녀, 그녀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며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탑극라(塔克羅) 당신이...!”

이어, 그녀는 날렵하게 물가로 뛰어나와 가죽옷으로 황급히 앞을 가렸다.

그때, ! 청년 탑극라는 독응 뒤에서 날아내리며 그대로 하오미를 찍어갔다.

에 잇!”

하오미도 질세라 교갈을 내지르며 재빨리 교수를 휘둘렀다.

순간, 보고있던 군무현의 두 눈에 기광이 스쳤다.

(투천표형조(透天豹形爪)...! 저 소녀가 감당치 못하겠군!)

하나, 그는 선뜻 나서 손을 쓰지 않았다. 잠시 그대로 두고 보기로 한 것이다.

그때, 콰쾅! ... 두 사람의 공격이 충돌하며 거창한 폭음이 들썩 사위를 뒤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찌 익!

!”

하오미는 가죽옷이 찢어짐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그 바람에,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이 햇살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뽀얗고 동그란 어깨, 그 아래로 이제 막 봉우리를 맺어 개화(開花)를 기다리는 꽃처럼 봉긋 솟아오른 탱탱한 젖가슴이 자리하고 있었다.

잘룩한 세류요에 나이답지 않게 풍만하고 육감적인 둔부. 미끈하게 뻗어내린 두 다리...

순간, 하오미는 분노와 수치를 참지못하며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양손으로 젖가슴과 방초가 보송보송 나기 시작한 허벅지 사이를 가렸다.

하나, 그녀의 작은 두 손으로 벗은 몸을 모두 가리키는 불가능했다.

... 당신이 감히...!”

그녀는 붉은 입술을 깨물며 치욕의 표정으로 파르르 교구를 떨었다. 하나, 그녀의 그런 모습은 오히려 사내의 음심을 작극하는 귀여운 반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탑극라는 음험한 눈빛으로 하오미의 나신을 쓸어보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흐흣... 하소저! 나 탑극라는 오랫동안 하소저를 연모해 왔소!”

이어, 그 자는 천천히 하오미의 앞으로 다가섰다.

순간,

다가서지 말아욧!”

하오미는 고개를 흔들며 날카로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녀는 이미 노출된 나신을 더욱 움츠리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나,

흐흐... 그대가 내게 시집을 오면 양가(兩家)가 하나가 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오?”

탑극라는 은근한 어조로 하오미를 회유시키려 했다.

꿈꾸지 말아요!”

하오미는 그런 탑극라의 모습에 역겨움이 치민 듯 발칵 소리쳤다.

하하...! 하소저가 원치 않더라도... 흐흐... 본인은 그대를 이곳에서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겠소!”

탑극라의 눈빛은 더욱 음탕하게 물들었다. 그 자는 하오미가 화를 내면 낼수록 더욱 능글능글해졌다.

하오미는 탑극라의 말에 파르르 나신을 떨며 수치와 분노에 어쩔줄 몰라했다.

... ...!”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우수를 들어 힘껏 탑극라를 후려쳤다.

하나,

하하...!”

위 잉! 탑극라는 교묘히 장()을 마주치며 여유있게 하오미의 공격을 막아냈다.

파팍!

!”

하오미의 공세가 허무하게 무산되어 버림과 함께, 그녀는 탑극라의 수중에 오히려 교수가 잡히고 말았다.

하소저! 당신은 정말 아름답소!”

탑극라는 하오미의 봉긋한 젖가슴을 손으로 슬쩍 쓰다듬으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친구! 그만 하시지!”

돌연 기대에 들떠있던 탑극라의 귓전으로 싸늘한 일성이 파고들었다.

순간,

누구냐?”

탑극라는 대경하며 버럭 소리쳤다.

직후,

!”

홱 돌아서는 그 자는 안면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군무현, 마치 빙인(氷人)을 연상케 하는 싸늘한 인상의 군무현이 어느새 그 자의 눈앞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탑극라는 군무현의 위압적이고 싸늘한 기도에 일순 흠칫했다.

하나, 이내 그 자는 분노의 표정을 지으며 만면에 살기를 띄웠다.

흐흐... 네놈이 감히 본인의 일을 방해하다니... 죽어랏!”

위 잉! 그 자는 막무가내로 장을 쳐들어 맹렬히 군무현을 후려쳐왔다.

군무현은 그 모습에 싸늘한 비웃음을 지었다.

하늘이 높음을 가르쳐주마!”

다음 순간, 쿠 쿵! 군무현의 좌수에서 돌연 막강한 경력이 일어났다.

! 한소리 폭음이 짓터짐과 함께,

크윽...!”

탑극라는 일 장 밖으로 거칠게 나뒹굴었다.

한데 그 순간, 크 악! 돌연 허공으로부터 탑극라의 독응이 군무현을 향해 무섭게 내리꽂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너무도 돌발적인 공세였다.

하나,

미물이 감히...!”

군무현은 눈썹을 꿈틀하며 상체를 홱 젖혔다. 그와 동시에, 콰르르릉! 그의 좌수에서 수라혈강뢰의 강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치뻗혔다.

직후, 콰 쾅! 케엑! 굉렬한 폭음이 들썩 사위를 뒤흔듬과 함께 처절한 독응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독응은 피를 뿌리며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그 모습에 군무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수라혈강뢰에 맞고도 즉사하지 않다니...!)

그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두고보자!”

스슥! 안색이 시뻘겋게 변한 탑극라, 그 자가 분노에 찬 일갈과 함께 황급히 몸을 날려 달아났다.

군무현의 신위에 몸보다 혼()이 머저 십리 밖을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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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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