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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五 章

 

                     안타까운 女心

 

 

 

(), 만물(萬物)은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다.

한데, 스스스...! 문득 파향객잔으로 은밀하게 스며드는 한 줄기 인영이 있었다. 유령처럼 은밀히 객잔의 후원으로 스며드는 인영, 그는 바로 군무현의 거처를 향해 접근하고 있지 않은가?

문득, 흐릿한 달빛이 인영의 어깨 위에 떨어졌다. 그러자 희끗하게 드러나는 인영의 모습, 자의미녀(紫衣美女).

그 인영은 기품있고 고귀한 인상을 주는 여인이었다. 하나, 그녀의 안색은 다소 창백했으며 초췌하게 보였다.

군무현이 거처하고 있는 전각, 자의미녀는 그 앞에 이르러 우뚝 몸을 세웠다.

“...!”

일순 그녀는 복잡한 시선으로 전각을 바라보았다.

자의미녀, 그녀는 독황후(毒皇后)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독황후는 갈등이 엇갈리는 눈빛으로 전각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비록 창졸간에 욕을 당하듯 몸을 허락했으나 이제는 그이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잉태하였다...)

그녀는 살며시 자신의 하복부를 어루만졌다. 문득, 창백한 그녀의 두 볼에 홍조가 어리는 듯했다. 하나, 그녀의 표정은 왠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듯 복잡해 보였다.

(단 한 번의 관계로 아이를 잉태할 줄이야...!)

갈등과 수치, 그리고 은은한 자부심이 그녀의 입가에 떠올랐다. 이어, 그녀는 결심한 듯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그이에게 안길 수밖에...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도...!)

결심이 선 순간, 스스스... 독황후는 소리없이 몸을 움직여 전각의 창문가로 다가섰다.

실로 귀신을 방불케 하는 놀라운 신법, 문득 독황후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자신있다. 그이가 나 이외의 여인에게는 곁눈질도 못하게 만들 자신이 있다...!)

그녀는 자신에 찬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살아온 여인이었다.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다 했으며 소유하고 싶은 것 또한 부족함없이 소유하며 살아왔다. 또한, 그녀는 여인으로서는 지나칠 정도로 강한 기()와 고집을 지녔다.

한데, 그런 그녀가 모든 자존심을 꺾고 지금 군무현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공교롭게도 너무나 때가 좋지 않았으니...

일순,

(!)

독황후는 터져 나오는 신음을 간신히 틀어 막으며 봉목을 치켜 떴다.

반쯤 열려진 전각의 창문, 그 앞으로 다가서자 방 안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예... 화예...!”

아아...!”

숨가쁘게 어울려 나오는 뜨겁고 거친 남녀(男女)의 신음성, 독황후의 치떠진 눈에 뜨겁게 서로를 탐하고 있는 군무현과 빙백염후의 모습이 들어왔다.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침상을 뒹굴고 있는 두 남녀, 그것은 너무도 아찔하고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독황후, 그녀의 교구가 일순 휘청했다.

... 이럴 수가...!”

지독한 배신감과 모멸감에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상상하던 분홍빛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계집을 안고 있다니...!)

그녀의 교구는 무섭게 부들부들 떨렸다.

유아독존(唯我獨尊) 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떠받들려 살아온 독황후, 그녀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오직 자신의 남자(男子)여야만 하는 군무현이 다른 여인을 품에 안고 있다니... 그것은 독황후로 하여금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을 유발시켰다.

질투는 곧 엄청난 배신감으로 바뀌었고 배신감은 또 처절한 분노와 증오로 남았다.

(... 죽이리라! 두 년놈들!)

일순 그녀의 두 눈에 강렬한 살기가 떠올랐다.

! 그녀는 질끈 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함께,

에 잇!”

꽈릉...! 그녀는 일진광풍을 몰아 다짜고짜 군무현의 등을 후려쳤다. 순간,

!”

군무현은 그 돌연한 사태에 다급성을 터뜨렸다.

! 그는 촉망중에 빙백염후를 안은 채 그대로 바닥으로 나둥굴었다.

그 순간, 콰 쾅! 폭음과 함께 침상이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누구냐?”

군무현은 노갈을 터뜨리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독황후는 원독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노려보며 교갈을 터뜨렸다.

죽여버릴테다!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딴 계집과 놀아나다니...!”

말을 마침과 함께, 위 잉! 꽈릉... 그녀는 재차 벼락같이 교수를 휘둘렀다.

지독한 맹독이 실린 독강이 무자비하게 군무현을 짓쳐들었다.

감히 암습을 하다니...!”

군무현은 짙은 검미를 꿈틀했다.

그 순간, 우르릉! 그의 우장(右掌)이 태양같은 극양지기를 몰아 벼락같이 떨쳐냈다.

인정사정을 두지 않은 양인의 공격이 일순 극렬하게 충돌했다.

직후, 콰르릉 퍼펑!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오르며 전각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순간,

!”

폭음 속을 뚫고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독황후, 그녀는 울컥 선혈을 토하며 비틀 물러섰다. 하나, 군무현은 상체를 휘청했을 뿐 별다른 충격은 없었다.

그는 한밤 중에 침실을 기습한 무례한에 대한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어떤 계집이 감히...!”

이불을 끌어 엉겁결에 몸을 가리던 군무현, 그의 안색이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 온통 분노와 원독의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고 서 있는 여인, ! 그녀는 군무현의 뇌리 속에 너무도 깊이 박혀 있는 여인이 아닌가?

본의는 아니었으나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동정을 취한 여인이었다.

대파산의 어느 산동(山洞). 그곳에서 처음으로 하룻밤을 같이 했던 여인, 어떤 사유로든 독황후는 군무현의 첫여인임이 분명했다.

비록 하룻밤의 인연만을 남기고 헤어졌지만 그 후 군무현은 한 번도 독황후를 잊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첫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 그대는 독황후(毒皇后)...!”

군무현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독황후는 입술을 악물며 원독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노려 보았다. 크고 맑은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었다.

이윽고,

...!”

독황후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 몸을 날렸다. ! 이내 그녀는 전각의 담을 넘어 군무현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순간,

소저!”

군무현은 그제서야 흠칫 정신을 치리며 급히 창가로 다가섰다. 하나, 이미 독황후의 모습은 그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 두고봐! 반드시 복수하고 말 것이다!”

문득 멀리서 독황후의 울음섞인 교갈이 들려왔다.

으음...!”

군무현은 무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그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졌다.

그때,

... 지존! 무슨 일이십니까?”

한밤중의 느닷없이 소란에 놀라 잠이 깬 객잔의 주인이 헐레벌떡 달려나왔다.

별일 아닐세. 돌아가게!”

군무현은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의 말에 객잔의 주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허리를 숙이며 물러갔다.

그녀가 독황후... 그래서 구류곡(九流谷)에서 내게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군...!”

군무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빙백염후는 벌거벗은 채 다가와 군무현의 등에 가만히 얼굴을 묻었다.

 

X X X

 

혈랑곡(血狼谷)!

 

혈랑곡의 역사는 깊다.

오백 년 전, 적룡천종(赤龍天宗)에 분패하고 자진한 것으로 알려진 천랑노인(天狼老人)이 바로 혈랑곡의 조사(祖師)였다.

당금의 혈랑곡주는 혈랑왕(血狼王) 호목광(胡目光)이라는 자였다. 그 자는 반금강지체인 혈랑(血狼)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인물이었다.

또한, 그 자의 혈랑비천십삼세(血狼飛天十三勢)는 무림일절(武林一絶)로 정평이 나있었다.

금붕천왕(金鵬天王), 장강방(長江幇)의 방주인 장하용왕(長河龍王), 그리고 쾌도문(快刀門)의 도천왕(刀天王)등과 함께 신주오왕(神州五王)에 드는 절정고수였다.

아울러, 그 자는 흑도십팔절의 수뇌인물이기도 했다.

혈랑곡(血狼谷)! 그곳은 동정호에서 이백리 떨어진 호남(湖南)에 위치하고 있었다.

석광산(錫鑛山)! 바로 그 험지에 혈랑곡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천마궁의 비호를 받아 호남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패는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약탈과 폭행, 살인, 방화 등... 무고한 사람을 산채로 혈랑의 먹이로 던져주는 끔찍한 만행도 서슴치 않는 자들이었다.

 

오시(午時) 무렵, 쐐 애액! 문득 석광산의 준봉 위로 거대한 대천붕이 날아올랐다.

대천붕의 등, 군무현이 빙백염후를 가볍게 안은 채 앉아 있었다.

몸을 허락했기 때문일까? 빙백염후는 수줍은 중에 요염한 교태를 피우고 있었다.

군무현은 그녀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석광산을 내려다 보았다. 문득, 그의 눈에 운무에 둘러싸인 하나의 절곡이 보였다.

운무를 뚫고 많은 전각들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혈랑곡...!”

군무현은 그것을 내려다 보며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의 두 눈에서 일순 섬칫한 한광이 뻗어나왔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목을 졸라 주려했으나... 그 발호가 극심하니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그는 결심한 듯 안색을 굳혔다. 이어, 그는 빙백염후를 바라보며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화예... 천웅과 함께 자하곡으로 돌아가 있으시오!”

그 말에 빙백염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군무현을 올려다 보았다. 군무현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한시라도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빙백염후가 아닌가?

하나, 상황이 상황인만큼 군무현은 빙백염후를 조용히 타이르듯이 설득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일이 끝나는대로 곧 자하곡으로 돌아가겠소. 그동안 혜미(慧美)와 함께 지내면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

빙백염후는 뭔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녀는 떨어지기 싫다는 군무현의 옷깃을 잡는 것이 아닌가? 하나, 군무현이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 보자 그만 힘없이 손을 놓는 것이었다.

문득, ...! 한 방울의 맑은 이슬이 그녀의 옷깃에 떨어져 내렸다.

눈물! 그것은 눈물이었다.

군무현은 흠칫했다.

(눈물이 있다니... 완전한 여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과연 빙백염후는 여인으로서 완벽했다.

비록 분명하지는 않지만 감정의 표현도 할줄 알았으며 다소곳이 순종할 줄도 알았다.

이윽고, 군무현은 고개를 돌리며 대천붕의 등을 가볍게 쳤다.

천웅! 자하곡으로 돌아가라!”

꾸륵...! 대천붕은 군무현의 말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울부짖었다.

다음 순간, ! 군무현은 허공을 가르며 그대로 혈랑곡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섬전보다 쾌속한 속도, 그 순간 잠잠하던 혈랑곡은 벌컥 뒤집히고 말았다.

... 대천붕이다!”

구류지존(九流至尊)이 나타났다.”

혈랑곡의 인물들은 허공을 올려다 보며 대경성을 터뜨렸다.

대천붕(大天鵬)! 그것은 곧 구류지존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 패해랏!”

위험하다!”

그들은 우왕좌왕하며 급급히 몸을 날렸다.

하나 그때,

!”

한 소리 웅후한 장소와 함께 군무현이 깃털처럼 가볍게 혈랑곡으로 날아내렸다.

천하를 어지럽힌 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대가를 받아라!”

그는 냉혹한 표정으로 냉갈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츠츠츠... ! 시뻘건 도광(刀光)이 송두리째 혈랑곡을 휩쓸었다.

직후,

크 악!”

으윽...!”

!”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도광속에 난도질하듯 터져 올랐다.

수라파천도(修羅破天刀)!

그 가공할 돗가 사방에 엄청난 혈풍을 일으키며 난무했다.

군무현은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훌쩍 지면으로 내려선 그는 무차별하게 혈랑곡의 마도들을 휘몰아쳤다.

파파팟! ... ! 대기를 발기발기 찢어내는 가공할 도세가 온통 핏빛으로 출렁거렸다.

군무현은 계속 손을 멈추지 않으며 벼락같이 외쳤다.

혈랑왕! 어디에 있느냐? 나와서 검을 받아랏!”

그 순간,

받아랏!”

적은 하나다! 죽여랏!”

돌연한 사태에 잠시 주춤하던 혈랑곡도들은 발악하듯 군무현을 향해 덮쳐들었다.

!”

죽여라!”

우 웅! ... 츠츠츠! 그들은 죽기 살기로 분별없이 마구 공격을 퍼부었다.

하나, 우웅...! 한 순간 군무현의 수중에 들려있던 수라혈도가 길게 도명(刀鳴)을 말했다.

그와 동시에, 번 쩍! 전율의 혈광(血光)이 허공을 난도질했다.

직후,

크으윽!”

케 엑!”

으악...!”

섬뜩한 피보라와 함께 선혈의 분수가 터져 올랐다.

추풍낙엽(秋風落葉)! 혈랑곡들은 군무현의 냉혹한 살수 아래 가랑잎처럼 나가 떨어졌다.

이대로 간다면 순식간에 혈랑곡은 개미새끼 한 마리 남지 않고 전멸을 당하고 말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멈추어라!”

혼란스러운 장내를 뚫고 음독한 일갈이 쩌렁하게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 ! ! 군무현의 앞으로 십여 명의 인물들이 날아내렸다.

나타났군!”

군무현은 싸늘하게 중얼거리며 전면의 인물들을 노려 보았다. 그들의 숫자는 정확히 열 세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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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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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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