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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3.07.15 [만상지존보] 제 25장 세외사천 등장
  3. 2023.07.14 [만상지존보] 제 24장 적룡세가의 가신들
  4. 2023.07.11 [만상지존보] 제 23장 소녀의 연정
  5. 2023.07.10 [만상지존보] 제 22장 만년영지
  6. 2023.07.09 [만상지존보] 제 21장 자령별부의 기연
  7. 2023.07.08 [만상지존보] 제 20장 신비한 자령곡
  8. 2023.07.07 [만상지존보] 제 19장 남궁세가의 겁화
  9. 2023.07.06 [만상지존보] 제 18장 중원제일재녀
  10. 2023.07.05 [만상지존보] 제 17장 적룡의 분노
  11. 2023.07.04 [만상지존보] 제 16장 복수의 시작
  12. 2023.07.03 [만상지존보] 제 15장 열화신문의 겁풍
  13. 2023.07.02 [만상지존보] 제 14장 폐허에 돌아오다.
  14. 2023.07.01 [만상지존보] 제 13장 우연한 정사
  15. 2023.06.30 [만상지존보] 제 12장 잠룡의 출세
  16. 2023.06.29 [만상지존보] 11장 마병 수라혈도를 얻다.
  17. 2023.06.28 [만상지존보] 제 10장 전대기인들의 시체
  18. 2023.06.27 [만상지존보] 제 9장 일만구의 시체, 그리고 천고기연
  19. 2023.06.26 [만상지존보] 제 8장 수라천마동부의 기연
  20. 2023.06.25 [만상지존보] 제 7장 천황음경, 고금최강의 음공
  21. 2023.06.23 [만상지존보] 제 6장 적룡검의 비밀
  22. 2023.06.22 [만상지존보] 제 5장 우내사천황의 전설
  23. 2023.06.21 [만상지존보] 제 4장 동굴 속의 괴인
  24. 2023.06.20 [만상지존보] 제 3장 천마애의 참극
  25. 2023.06.19 [만상지존보] 제 2장 처절한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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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六 章

 

                    天地十强超絶技

 

 

 

! !

군무현은 신형을 휘청하며 뒤로 삼보 물러섰다.

하나,

“...!”

백의몽면인, 그 자는 한 차례 흠칫 몸을 떨었을 뿐 그 자리에 뿌리박힌 듯 여전히 우뚝 서 있지 않은가?

군무현은 검미를 꿈틀했다.

(대단한 공력이다. 공력만으로는 나보다 한 수 위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경각심을 돋구었다.

그때, 자욱한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주위의 경물이 드러났다.

군무현과 백의몽면인,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히 대치하고 있었다.

문득, 백의몽면인이 음침하게 웃으며 괴이한 음성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흐흐... 뜻밖인걸! 당금천하에 그대같은 강자(强者)가 있었다니...!”

“...!”

군무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다음 순간, 푸 학! 돌연 그의 허리에서 폭죽이 터지듯 시뻘건 도기(刀氣)가 폭사되었다.

그 핏빛도기는 순식간에 천지사방을 뒤덮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작렬하는 핏빛도기 속에서 한 마디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수라파천도(修羅破天刀)!”

하나, 그 경악성은 이내 가공할 폭음 속에 묻히고 말았다.

콰르르릉! ... 츠츠츠!

끔찍 가공할 핏빛도기는 대기를 짓이기며 뻗어나갔다.

하나, 더욱 경악할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스스슥... 백의몽면인은 마치 흐르는 유성(流星)처럼 도세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그림자가 몸 밖으로 스르르 빠져 나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 모습에 군무현은 내심 해연히 놀랐다.

(수라파천도세를 이토록 가볍게 벗어나다니...!)

그는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다음 순간, 츠츠츠...! 그의 주위로 반투명한 핏빛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모습에 백의몽면인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역시... 수라혈영공(修羅血影功)! 혈영천종(血影天宗)의 마공절기가 팔백년 만에 세상에 나타나다니...!”

돌연, 그 자의 음침한 두 눈에 가공할 광망이 폭사되었다.

그것은 결코 경악의 빛 따위는 아니었다.

탐욕! 그것은 번들거리는 야수의 눈빛과도 같은 탐욕의 빛이었다.

그때, 우르르...! 번 쩍!

군무현의 수라혈도(修羅血刀)에서 낙뢰같은 혈전(血電)이 치뻗혔다.

그 모습에 백의몽면인은 더욱 강렬하게 눈을 번득이며 여유있게 웃었다.

흐흣... 천지십강(天地十强)의 무공을 대할 수 있다니 행운이군!”

문득, 위 잉! 그 자의 몸 주위로 질식할 듯 칙칙한 검은 기류가 일어났다.

그 기세는 가공할 정도로 맹렬했다.

한 순간,

“...!”

“...!”

양인은 뚫어지게 서로를 주시했다.

우웅! 파파파 팟!

천만근의 암경이 암중에 맹렬히 부딪히며 대기가 허공으로 말려 올라갔다.

바로 그 순간,

야압!”

파 앗! 군무현이 한 소리 대갈과 함께 맹렬히 수라혈도를 떨쳐냈다.

거의 동시에,

오랏! 현천강기살!”

쿠 쿵! 백의몽면인의 쌍수가 흩뿌려지며 먹물같은 시커먼 강기가 확 퍼져 올랐다.

직후, 콰르르릉! 쿠 쿵.... 해일같은 강기의 파동이 천지간을 질타하며 급격히 맞닥뜨렸다.

순간,

!”

군무현은 안색이 핼쓱하게 변했다.

그는 심맥이 으스러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또한, 수라혈도를 쥔 그의 호구가 터져 검붉은 선혈이 주르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백의몽면인, 그자 또한 무사치는 못했다.

...!”

그 자는 둔중한 신음성을 발하며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그 자의 가슴 부분의 장포는 완전히 박살나 있었다. 그 사이로 비치는 흐릿한 혈흔(血痕).

군무현은 그것을 본 순간 내심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금강불괴(金剛不壞) 지경에 든 자다. 끝까지 겨룰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백의몽면인의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때,

흐흣...! 수라혈영공이 극에 이르다니... 놀랍군!”

백의몽면인이 음산하게 웃으며 군무현을 노려 보았다.

그 말과 함께, 그 자는 천천히 우수를 쳐들었다.

그러자, 그 자의 우수는 마치 쇠로 깎은 듯 시커멓게 묵광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실로 섬뜩한 광경이었다.

군무현, 그는 절로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혈천묵강수...! 현천신모(玄天神母)의 절기가 나타나다니...!”

그의 놀라움은 실로 컸다.

백의몽면인은 군무현의 그런 반응에 거들먹거리듯 괴이하게 웃으며 흉광을 번득였다.

흐흣! 대단한 안목이군!”

 

현천신모(玄天神母)!

사백 년 전, 천하를 최초로 여인천하(女人天下)로 만들었던 대여걸, 그녀는 청해(靑海)에서 일어나 현천신문(玄天神門)을 세웠다.

본시, 그녀는 양가집의 부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우연히 무림의 시비에 말려들어 참살을 당하는 비운이 닥쳤다.

이에, 현천신모는 분노하며 치를 떨었다.

하나 어찌하랴? 그녀 자신도 결국 무림인들에게 무기력하게 짓밟히고 만 것을.

겨우 목숨만 유지하게된 현천신모, 그녀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하늘이 그녀를 버리지 않았던지 다행히 그녀는 기연을 얻었다. 그것도 실로 엄청난 기연을.

이미 천년 이전에 절전된 현녀문(玄女門)의 진전을 얻게된 것이었다.

그녀는 철저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현녀문(玄女門)의 진전을 통달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그 절기를 삼배 강하게 발전시키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세운 것이 바로 현천신문(玄天神門)이었다.

현천신모는 천하를 혈세(血洗)로 씻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사백 년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평생 무적(無敵)이었다. 그리고, 노사(老死)한 후 그녀는 당당하게 천지십강(天地十强)에 오른 것이다.

군무현은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렸다.

(기공(氣功)만으로는 당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군무현, 그는 흘깃 백의몽면인의 뒤쪽을 응시했다.

스스스스... 야천을 가르며 혈륭대법사와 사멸황이 일마장 밖으로 접근해 오고 있응 것이 보였다.

군무현은 입술을 악물었다.

(결판을 내자!)

그렇게 결심한 순간, 돌연 그의 두 눈에서 시뻘건 혈광이 폭사되었다.

그와 함께, 우 웅! 그의 수라혈도와 좌수(左手)에서 가공할 마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오오! 이 순간 그의 형상은 끔찍한 마인(魔人)의 형상 그대로였다.

순간, 백의몽면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수라혈영파천무(修羅血影破天舞)!”

그의 경악성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콰콰콰콰 쾅! 파파팍!

도저히 인간의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거창한 혈강이 일거에 삼십장을 뒤덮었다.

! 실로 경천동지할 가공할 위세였다.

그 순간,

현천마라복강쇄!”

거창한 폭발음 속을 뚫고 백의몽면인의 다급한 외침이 나왔다.

직후, 콰르릉... 카카카 캉! 혈강 속에서 톱니바퀴같은 거대한 묵강륜이 치솟아 올랐다.

시대를 달리하고 태어났던 천지십강! 혈영천종과 현천신모의 절기가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서로 격돌했다.

콰콰콰 쾅! 쿠쿵!

양대절기의 충돌은 엄청난 폭음을 동반했다.

백장 내의 모든 것은 완전히 박살나 초토화되고 말았다.

그때,

크윽...!”

... 지독하다!”

멋모르고 장내로 접근하던 혈륭대법사와 사멸황은 안색이 핼쓱해져 밀려났다.

우르르... 파파파팍!

가공할 폭풍의 여파는 무려 일천 장을 뒤덮었다.

그 회오리 속을 뚫고,

우 우!”

문득 상처입은 사자와도 같은 고통 섞인 창룡후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스슥! 한 줄기 묵영이 소용돌이 속을 뚫고 백장 밖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난무하던 흙먼지와 사진이 모두 가라앉았다. 그러자 드러나는 장내의 광경.

오오...! 폐허, 완전한 폐허였다.

그 폐허 속에 일인(一人)이 우뚝 서 있었다.

깊이 오장, 넓이 칠팔장의 거대한 웅덩이가 움푹 파여진 곳, 그곳에 우뚝 선 인물은 바로 백의몽면인이었다.

지금 그 자의 모습은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혈인(血人), 그 자는 전신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금강지체에 이른 백의몽면인 이건만 전신에 크고 작은 수십개의 상처를 입을 것이 아닌가?

그때,

지존!”

... 괜찮으십니까?”

혈륭대법사와 사멸황이 황급히 외치며 백의몽면인을 부축했다.

그 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제대로 신형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백의몽면인은 그들의 손을 뿌리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다. 그놈도... 성치는 못했을 것이다!”

그 자는 울컥 선혈을 토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편, 스슥...!

군무현, 그는 간신히 객잔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안색은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그의 상처는 극심했다.

가슴이 박살나 늑골이 드러날 정도의 중상을 입은 것이었다.

...!”

군무현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발하며 쓰러질 듯 침상에 주저앉았다. 하나, 그는 두 눈에 한광을 발산하며 불끈 주먹을 움켜 쥐었다.

현천마라복강쇄! 다음에 만날 때는 반드시 깨뜨리고 말겠다!”

그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품 속에서 하나의 옥병을 꺼냈다.

안이 투명하게 비치는 푸른 옥병,

 

구전환혼단(九轉環魂丹)!

자하별부를 나설 때 만약을 대비하여 준비했던 영약이었다.

아무리 극심한 내상이라도 급격히 치유해 주는 내상영약, 그것은 비단 상처를 치료할 뿐 아니라 체내에 새 힘을 불어넣는 무궁한 효력이 있다.

 

군무현은 구전환혼단을 한알 복용했다.

이어, 그는 곧 운공에 들어갔다. 그는 일신에 양극지기(兩極之氣)를 지닌 신체(神體)가 아닌가?

위 잉! 이내 군무현의 몸 주위로 창창한 강기가 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X X X

 

북해(北海)!

 

인간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최북단의 오지(奧地), 멀리 만리장성(萬里長城)을 넘어 몽고의 대평원을 가로지르고도 사천리를 더 가야 북해의 연변에 이를 수 있다.

그곳을 일컬어 새외(塞外)라 부른다.

북해에는 하나의 전설적인 궁()이 있다.

 

빙백궁(氷魄宮)!

새외에 있어 빙백궁(氷魄宮)은 신적인 존재였다.

장구한 역사와 거대한 신비, 영원히 침범할 수 없는 불문율로 숭앙받는 북해의 비궁(秘宮).

이미 천 년 동안 새외는 빙백궁의 신비한 마력에 지배 당하고 있었다.

 

< 三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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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五 章

 

                 世外四天 登場

 

 

 

군무현, 그는 내부 깊숙한 곳에서 끓어 오르는 피보다 진한 격동을 억누르며 말했다.

일어들 나시오! 그대들을 보니 아버님을 뵌 듯 하구려!”

순간,

소가주!”

청의검수, 즉 적룡검사들은 격정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모았다. 이어, 그들은 공손한 태도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호목에도 뜨거운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군무현은 예의 사자(獅子)와 같은 위맹을 지닌 장한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대의 이름을 알고 싶구려!”

힘찬 기개가 물씬 풍기는 장한은 강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속하는 일백적룡검대(一百赤龍劍隊)의 대장(隊長) 천붕학(天鵬壑)입니다!”

순간,

 

천대장!”

군무현은 천붕학의 손을 굳게 마주 쥐었다. 일순 두 사람의 시선이 뜨거운 격동과 감회로 얽혀 들었다.

그리고, 눈물, 굵은 사나이의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천붕학의 감루였다.

아홉 명의 적룡검사들도 주먹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천붕학은 군무현의 비범한 신태를 만감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경망스럽게 속하는 소가주께서도 운명하신줄 알고 천하(天下)를 상대로 싸우려 했습니다!”

군무현의 조각같은 얼굴에 한 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잘 참아주었소. 그대들이 있으니... 구천(九泉)의 아버님께서도 편히 눈을 감을 것이오!”

그의 음성은 어느 새 침착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무심하고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소저들을 집으로 돌려 보낸 뒤 천중산(天中山) 자하곡(紫霞谷)으로 가도록 하시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세 여인을 가리켜 보였다. 그의 말에 천붕학은 문득 의아한 기색을 지었다.

천중산(天中山)의 자하곡이라 하시면...!”

그곳에 나의 내자(內子)될 사람이 있소. 그곳으로 일백적룡검대를 이끌고 가서 힘을 기르도록 하오!”

천붕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숙였다. 이어, 문득 그는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소가주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북해에 갔다올 일이 있소!”

순간, 천붕학은 흠칫 놀라며 충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 험지에 소가주 혼자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 군무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걱정마오. 여럿이 가서 될일이 아니니... 어서 출불하도록 하시오!”

그는 오히려 천붕학을 재촉했다.

천붕학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한 번 하신 말씀은 거두지 않으시는 분...!)

그는 불과 몇마디의 대화에서 군무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는 충정어린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적룡검사들도 급히 세 여인들을 옆구리에 끼었다. 이어, 그들은 군무현을 향해 공손히 예를 취하며 입을 모아 말했다.

천중산에서 건안하신 모습을 뵙겠습니다!”

군무현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스슥! 스 윽! 열 명의 적룡검사들은 경쾌한 신법으로 허공을 가르며 사라져 갔다.

“...!”

군무현은 잠시 그들이 사라진 곳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혈도를 짚혀 쓰러져 있는 네 명의 라마승들, 군무현은 그들 중 우두머리인 핏빛 수염의 라마를 향해 가볍게 일지를 튕겼다.

파팟! 그러자,

...!”

핏빛 수염의 라마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발하며 정신을 차렸다.

군무현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 자를 노려 보았다.

말해라! 혈륭마찰의 주지(住持)가 이 근처에 있느냐?”

그는 혈염라마를 향해 차가운 어조로 다그쳐 물었다.

순간, 혈염라마는 공포의 표정으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 ... 그렇다!”

그 자는 군무현의 냉혹한 살수에 기가 질린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냐?”

군무현은 재차 싸늘하게 물었다. 그의 어조는 냉혹하고도 위압적이었다.

혈염라마는 부드득 이를 갈았다.

하나, 그 자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득...! 가르쳐 주마. 대법사께서... 우리의 원한을 갚아주실 것이다!”

헛소리를 듣겠다고 하지 않았다!”

군무현의 안색이 일순 서릿발처럼 차갑게 얼어 붙었다.

그의 살기어린 기세에 혈염라마는 사색이 되었다.

이곳에서... 동북(東北) 방향 이십리밖에 비마애(飛魔崖)라는 곳이 있다. 오늘밤 삼경(三更)... 대법사께서는 그곳에서... 지존(至尊)을 만나신다고 하셨다...!”

지존?”

군무현은 눈썹을 꿈틀했다. 하나, 혈염라마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 우리는 모른다. 대법사께서 아실 뿐...!”

군무현은 안색을 굳혔다. 이어,

한숨 자거라!”

파팟! 그는 혈염라마를 향해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러자,

...!”

혈염라마는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들 듯 혼절하고 말았다.

지존(至尊)이라... 설마 세외사천(世外四天)의 배후에 다른 인물이 있단 말인가?”

군무현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가보면 알게 되리라!”

그는 중얼거림과 함께 몸을 돌렸다.

다음 순간, 스스슷...! 그의 신형은 유령같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수하혈잠영의 놀라운 경공이었다.

 

X X X

 

비마애(飛魔崖),

 

태원(太原)에서 사십리 떨어진 절승(絶勝), 그곳의 지형은 기이했다. 절벽의 형상이 마치 지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비마(飛魔)와 같았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비마애였다.

(), 삼경 무렵의 칠흑같은 밤이었다. 천공에 달이 걸려 있다고는 하지만 그 빛은 극히 희미했다.

문득, 스스스...! 유령같은 한줄기 인영이 비마애 아래로 스며들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그는 비마애 아래 은밀히 몸을 숨긴 채 절벽 위를 주시했다.

비마애 위, 두 명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

일신에 칙칙한 혈포를 걸친 노라마, 그 자는 허연 백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한 손에는 주먹만한 묵주(墨珠)로 엮어진 염주를 들고 있었다.

그 자의 전신에서는 가공할 살기가 물씬 풍겨나오고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그 모습은 목을 조이는 섬뜩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또 다른 한 명의 인물, 그 자는 회포노인이었다.

그 자가 걸친 회포의 가슴 한복판, 그곳에는 끔찍하게도 죽을 사()자가 시커먼 글씨로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또한, 그 자의 모습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그 자는 살아 있되 산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피부는 시신의 그것처럼 칙칙한 빛이 감도는 회색이었다.

게다가, 전신은 강시처럼 비쩍 말라 도저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모습, 퀭하니 뚫린 두 눈, 그 눈을 껌벅거릴 때마다 모골이 송연한 회색 광망이 귀기스럽게 번뜩였다.

지독한 음사신공(陰邪神功)을 익힌 자임이 분명했다.

 

군무현, 그는 두 사람의 모습을 훑어보며 안색을 굳혔다.

(사천주(四天主)답다. 누구하나 만만히 볼 수 없는 강적들이다!)

그는 비마애 위의 두 인물이 이미 오기조원지경(五氣朝元之境)에 이른 극강한 내공의 소유자들임을 알아차렸다.

그것을 확인하자 그는 더욱 의구심이 솟구쳤다.

(도대체 지존이란 인물이 누구길래 저런 강자들을 오라가라 한단 말인가?)

그는 내심 염두를 굴렸다. 구름같은 의혹이 그의 가슴에 뭉클뭉클 솟구쳐 올랐다.

한데 그때, 문득 한 조각 암운이 희미하게 걸려 있는 천중(天中)의 달을 가렸다.

이어, 그 암운이 한조각 껍질처럼 벗겨질 때였다.

!”

... 지존!”

비마애 위에 좌정하고 있던 두 인물은 아연실색하며 당황성을 터뜨렸다.

보라! 언제였을까?

비마애 위, 한 명의 인물이 더 늘어나 있지 않은가?

백의몽면인, 그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온 것인지도 모르게 두 사람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혈포노라마와 회포노인은 그제서야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어,

혈륭마찰의 혈륭(血隆)! 삼가 지존을 뵈오이다!”

사망림(死亡林)의 사멸황(死滅皇)! 지존의 존안을 배견하오이다!”

그들은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오체복지했다.

! 실로 경악할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세외사천의 두 수뇌, 그들이 눈 앞의 백의몽면인에게 취하는 태도, 그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함인가?

세외를 떨어 울리는 이천(二天)의 주인, 그들이 백의몽면인을 향해 큰 절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에 군무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와 함께, 그의 가슴 속에 한 가닥 섬뜩한 공포가 피어 올랐다.

(저 자가 그토록 무서운 인물이란 말인가?)

그는 불신과 회의의 시선으로 고개를 저었다. 한데 그때, 문득 백의몽면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 어느새 그 자의 시선은 군무현이 은신하고 있는 쪽으로 향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팽팽한 긴장감, 갑자기 숨막힐 듯한 정적 속에 피를 말리는 긴장감이 팽배했다.

하나, 결코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 그만 나오시지!”

백의몽면인의 입에서 일순 살기 어린 싸늘한 일성이 흘러 나왔다.

군무현은 흠칫했다.

(역시... 대단하군!)

그 순간,

어느 놈이냐?”

회포노인 사멸황(死滅皇)이 홱 몸을 돌리며 대갈을 터뜨렸다.

동시에, 쐐 액! 그 자는 뇌전같이 몸을 날려 군무현이 은신한 곳으로 덮쳐왔다.

군무현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승산이 없다!)

내심 염두를 굴린 그는 몸을 일으킴과 함께 벼락같이 쌍장을 휘둘렀다.

우웅! 꼬르릉... 일순 산악같은 경기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뒤미처, 콰콰쾅! 양인의 공세가 서로 격돌하며 굉폭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순간,

!”

사멸황은 그 충격에 일순 신형을 휘청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스윽! 군무현은 섬천처럼 야천(夜天)을 갈랐다. 단숨에 그는 백장 밖으로 날아갔다.

하나,

흐흣...!”

그것을 지켜보던 백의몽면인의 입에서 낮고 음침한 괴소가 흘러 나왔다.

다음 순간, 스스슥...! 어느 새 그 자의 신형은 그 자리를 떠나 군무현의 뒤를 쫓고 있었다. 실로 귀신같은 신법이었다.

군무현은 최대한의 속력을 발휘했다.

쐐 액! 그는 무섭도록 쾌속하게 질주했다.

삽시에, 그는 수라혈잠영의 경공으로 십리를 날아갔다.

하나, 일순 그는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스스스... 백의몽면인, 그 자가 이미 군무현의 이십 장 밖으로 추적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단한 경공이다!)

군무현은 귀신같은 그 자의 경공술에 혀를 내둘렀다. 이어, 그는 안색을 굳히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일전을 피할 수 없다. 혈륭대법사(血隆大法師)와 사멸황(死滅皇)만 없다면 겨룰만 하다!)

다음 순간, 그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한 차례 쓱 문질렀다. 그러자, 그의 얼음처럼 차갑고 미려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는 냉혹한 장한의 얼굴로 변모한 것이 아닌가?

실로 절묘한 역용술이었다. 바로 환영투도의 기오막측한 역용술을 사용한 것이었다.

다음 순간, ! 군무현은 돌연 속도를 늦추며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이어, 그는 도리어 처음의 방향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닌가? 바로 백의몽면인이 쾌속한 속도로 추적해 오고 있는 정면을 향해서였다.

순간,

!”

급속히 군무현을 쫓아오던 백의몽면인, 그 자는 당황성을 터뜨렸다.

군무현의 행동이 너무도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군무현은 몸을 날리던 그 속도의 여세를 몰아 급격히 백의몽면인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직후,

차 앗!”

맑고 찌렁한 대갈일성이 터짐과 함께, 콰르르 릉! 군무현의 쌍장에서 노도같은 핏빛 강류가 쏟아져 나왔다.

다음 순간, 우르르릉... 콰 쾅!

폭죽이 터지는 듯한 천붕지열의 굉음이 들썩 야천을 뒤흔들었다.

그 여파는 가히 엄청났다. 사방 이십 장이 폐허처럼 휩쓸려 온통 흙이 뒤집혀 올랐다. 바위며 거목들은 폭풍을 만난 듯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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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四 章

 

                        赤龍勢家家臣

 

 

 

라마승들의 눈을 속이며 나타난 인영들, 그들은 일신에 가쁜한 청의경장을 걸친 검수(劍手)들이었다.

그들은 기쾌무비한 신법으로 대웅보전을 향해 접근해 들었다.

하나같이 정기 가득찬 장한들, 군무현은 그들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며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어느 문파의 고수들인가?)

그는 관심어린 눈빛으로 그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때, 대웅보전 안에서 핏빛 수염의 라마가 득의의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 지존(至尊)께서 우리를 불러주셨으니 본 혈륭마찰(血隆魔刹)의 천년(千年) 심원이 일년 안에 풀리리라!”

그렇습니다!”

그 자의 말에 혈포라마승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 콰콰쾅! 돌연 대웅보전의 사방 벽이 폭음을 내며 허물어졌다.

보라! 콰릉... 츠츠츠!

폭풍같은 검세가 사방 벽을 향해 퍼부어지고 있지 않은가?

순간,

!”

... 누구냐?”

... 어느 쥐새끼냐?”

대웅보전 안의 혈포라마들은 대경실색했다. 하나, 그들이 미처 몸을 날릴 사이도 없었다.

크 악!”

케엑!”

순식간에 열 명의 라마승들이 목을 움켜쥐고 비명과 함께 나뒹구는 것이 아닌가?

실로 그것은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난 사태였다. 처절한 비명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으하하하...! 혈륭마찰의 마졸들! 감히 중원이 어디인줄 알고 기어들어 왔느냐?”

돌연 찌렁찌렁한 대소가 대웅보전을 뒤흔들며 터져 나왔다.

동시에, 쐐 액! 질풍노도같은 검세가 혈륭마찰의 마승들을 휩쓸어 왔다.

츠츠츠! 파팟! 그것은 실로 눈부신 공격이었다.

혈륭마찰의 라마승들은 일순 당황했다.

하나,

막아랏!”

에 잇!”

그자들은 이내 분갈을 터뜨리며 덮쳐드는 청의검수들을 막아갔다.

그자들 역시 막강한 마공(魔功)을 익힌 고수들이 아닌가?

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군무현, 그의 얼굴에 격동과 함께 경악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 순간 그의 눈빛은 엄청난 동요로 흔들리고 있었다.

 

혈륭마찰(血隆魔刹)!

세외사천(世外四天) 중 서천(西天)으로 불리는 곳, 서역에서 포달랍궁과 쌍벽을 이루는 마()의 사찰이었다.

그들은 불문선공의 웅후함을 바탕으로 한 음악하고도 잔혹한 마공(魔功)으로 유명했다.

한데, 그들 혈륭마찰이 중원을 침범하다니...

 

하나, 군무현이 놀라는 것은 그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격동을 금치 못하며 일순 거대한 전율에 휩싸였다.

(... 저들의 검식(劍式)...!)

그는 한 차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의 두 눈은 뚫어질 듯 청의검수들의 검식을 주시하고 있었다.

청의검수들의 기세는 실로 엄청났다.

으악!”

크으... !”

케 엑!”

그들의 눈부신 검세 아래 혈륭마찰의 라마승들이 잇달아 피거품을 물고 거꾸러졌다.

츠츠츠츠... 쐐 액!

장중한 위엄 가운데 맹렬한 기세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청의검수들, 그들이 펼치는 검식은 군무현의 눈에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군무현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검식이 아닌가?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

마침내 그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한 마디 나직한 부르짖음이 터져 나왔다.

아아! 이럴 수가...!

청의검수들이 펼쳐내고 있는 검식, 그것은 바로 고금제일(古今第一)의 검법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이 아닌가?

적룡세가의 적룡검사들이 사용하던 무적(無敵)의 적룡팔대식! 그것이 이곳에 재현되다니...

군무현, 그의 얼굴에는 격정의 빛이 가득했다.

그때,

으 악!”

크아악!”

끔찍한 피보라를 동반한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은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삽시에, 수십 명의 혈포라마승들의 숫자는 일곱으로 줄어들었다.

십여 명의 청의검수들, 그들의 위세는 가히 찬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그들 중 사자(獅子)를 방불케 하는 위맹한 용모를 지닌 한 명의 검수가 선두를 지휘하고 있었다.

으하하하... 중원에 들어온 것이 죄다!”

그의 저돌적인 공세는 보기만 해도 호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극고한 마공을 지닌 혈륭마찰의 라마승들, 하나 그자들은 청의검수들의 질풍노도같은 검세에 연신 밀려날 뿐이었다.

위 잉! 파츠츠츠...

온통 눈부신 검광이 난무하는 가운데 장내는 삽시에 수라장이 되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에 잇!”

예의 핏빛 수염의 라마가 태원부에서 잡아온 미녀를 재빨리 잡아챘다. 그 자는 자신들의 힘으로 도저히 청의검수들을 상대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교활한 암계를 생각해낸 것이다.

그 자는 품 속에 나삼여인을 껴안은 채 음흉한 눈빛을 번득였다.

이 계집을 살리고 싶다면 손을 멈춰라!”

그 자는 교활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 모습에 청의검수들의 안면이 이지러졌다.

비겁한 놈!”

그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으나 급히 검을 멈추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군무현, 그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 꿈이 아니다!)

그는 격동을 금치 못하며 만면에 감회의 빛을 지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인을 위해 공세를 멈추는 청의검수들.

! 그들은 적룡검사(赤龍劍士)로 부족함이 없는 협골장한들이 아닌가?

그때, 핏빛 수염의 라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득의의 표정을 지었다.

흐흐... 순순히 길을 터라!”

그 자는 음흉한 흉광을 번득이며 말했다.

청의검수들의 태도에서 자신을 얻은 것이었다.

찢어죽일 오랑캐놈들!”

청의검수들은 혈포라마들의 비겁한 술수에 이를 갈았다. 하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길을 비켜주는 것이었다.

이윽고, 혈포라마들은 세 여인을 인질로 이용하여 황급히 대웅보전을 나섰다.

그자들은 황망히 밖으로 나서며 짐짓 분노의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크크... 네놈들이 감히 혈륭마찰을 건드렸으니 그 백배로 대가를 치루리라!”

하나 그 순간,

네놈들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다!”

문득 한 소리 싸늘한 음성이 그 자들이 머리 위를 울렸다.

순간,

... 어느 놈... 크악!”

핏빛 수염의 라마는 머리 위로 번쩍 혈영(血影)이 내리덮치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

거의 동시에,

크 윽!”

아아 악!”

다른 두 여인을 움켜쥐고 있던 라마들도 정수리가 박살나 나뒹굴었다. 실로 그것은 찰나지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돌연한 사태에 청의검수들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의 앞, 군무현, 그가 어느 새 세 명의 여인을 안아든 채 우뚝 서 있지 않은가?

...!”

청의검수들은 절로 탄성을 울렸다.

반면,

으으...!”

살아남은 나머지 네 명의 라마승들은 사색이 되어 급급히 달아났다.

하나,

누워랏!”

군무현의 입에서 재차 싸늘한 일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그는 여인들을 바닥에 내려 놓으며 벼락같이 우수를 휘둘렀다.

꽈르릉...! 들썩 장내를 뒤흔드는 폭음이 터져 올랐다.

직후,

크악!”

!”

네 명의 라마승들은 일제히 피분수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갑자기, 장내에는 침묵이 찾아들었다.

청의검수들은 만면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멍하니 군무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군무현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두 눈은 격렬한 격동의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일순,

“...!”

“...!”

그의 강렬한 눈빛과 청의검수들의 열쌍의 호목이 서로 부딪혔다.

군무현은 감회의 눈빛으로 청의검수들을 주시하며 문득 품 속에 집어 넣었다. 이어, 그는 격동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이것이 무엇인줄 아오?”

어느 새, 그의 손에는 하나의 옥패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은으한 홍색을 띠고 있었다.

그 옥패의 중앙,

 

<적룡(赤龍)!>

 

금빛 찬란한 두 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령주(令主)!”

십여 명의 청의검수들은 부르르 전신을 떨며 무너지듯 군무현의 앞에 부복했다.

군무현은 그런 그들을 주시하며 격동과 감회에 젖었다.

(... 역시...!)

그는 거대한 격정의 회오리에 휘말리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적룡패(赤龍牌)!

손바닥 크기의 둥근 영패, 그것은 적룡대제가 적룡검(赤龍劍)과 함께 군무현에게 남긴 신물이었다.

군무현이 자신의 발 아래 부복한 십여 명의 청의검수들을 바라보았다.

정녕... 그대들이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이오?”

그의 음성은 격동으로 인해 다소 떨려나왔다.

청의검수들 역시 격동과 감격을 주체치 못하는 듯 만감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모아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소가주님!”

이어, 그들 중 선두를 지휘하던 웅맹한 모습의 장한이 말했다.

대가주께서는 천하에 암운(暗雲)이 일어남을 감지하시고 속하들과 같은 일백명의 적룡검사들을 암중에 기르셨습니다!”

“...!”

군무현의 차갑기만 하던 두 눈에 뜨거운 물기가 배었다.

(아버님께서는 이미 앞날을 예견하셨구나!)

부친 적룡대제를 생각하자 그는 뜨거운 감정이 뭉클 치밀어 올랐다.

적룡대제! 그는 암중의 음모가 적룡세가를 노림을 미리 감지했다.

그것을 안 그는 즉시 안배를 갖추어 놓았다.

적룡검사들 중 가장 뛰어난 백 명의 검사들, , 적룡검사의 정예를 선정하여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비밀한 곳에 숨겨 두었다.

그들이야말로 삼천 명의 적룡검사들 중 최정영이라 할 수 있었다. 하나같이 일당백의 용맹을 지닌 충의(忠意)의 용사들, 바로 그 백 명의 적룡검사 중 열 명이 지금 군무현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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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三 章

 

                        少女戀情

 

 

 

자하별부(紫霞別府)!

그 앞에는 한 채의 아담한 모옥이 세워져 있었다.

작지만 운치있게 꾸며진 선경(仙境) 속의 별원(別園).

모옥 안, 두 남녀가 그림처럼 다정히 마주 앉아 있다.

군무현과 남궁혜미, 그들이었다.

그들의 앞,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이 놓여 있었다.

군무현은 단정한 자세로 앉아 수저를 들고 있는 중이었다.

남궁혜미는 그의 옆에 앉아 정성스럽게 군무현의 식사 시중을 들고 있었다.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누가 보아도 그들은 한쌍의 다정한 젊은 부부(夫婦)로 보였다.

잠시 후, 군무현은 수저를 놓으며 남궁혜미를 바라보았다.

혜미, 고맙소!”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어투는 바뀌어져 있었다. 무감정하고 건조한 음성은 여전했으나 남궁혜미를 한 사람의 여인(女人)으로 대해주고 있었다.

또한, 남궁혜미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화된 것이었다.

남궁혜미, 군무현에 대한 그녀의 정성은 지극했다.

때로는 어머니처럼, 때로는 누이처럼, 그리고 때로는 사랑스런 아내처럼 그녀는 내조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군무현은 그런 남궁혜미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남궁혜미는 군무현의 그 한 마디에 살포시 눈을 내리 깔았다. 이어, 그녀는 조심스럽게 찻잔을 받쳐 올렸다.

선향차(仙香茶)예요. 식기 전에 드세요!”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받아들었다.

차향(茶香)이 그윽했다.

남궁혜미는 조용히 몸을 일으키더니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

군무현은 그녀가 분주히 몸을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며 차향을 음미했다.

잠시 후, 남궁혜미는 다시 군무현의 앞에 마주 앉았다.

언제쯤... 출곡(出谷)하실건가요?”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군무현은 기이한 눈으로 남궁혜미를 바라보았다.

남궁혜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군무현이 말은 하지 않았으나 조만간 이곳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벌써 군무현의 내심을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리한 여인...!)

군무현은 내심 나직이 중얼거렸다.

하나, 그는 대답 대신 오히려 남궁혜미에게 되물었다.

혜미의 자하천류신공(紫霞天流神功)은 본 궤도에 올랐소?”

.”

남궁혜미는 다소곳이 대답했다.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말했다.

북해(北海)에 다녀올 것이오. 아마 두 달 정도 걸려야 될 듯 하오!”

순간, 남궁혜미의 아미가 파르르 떨렸다.

북해(北海)까지... 가셔야 하나요?”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아니갈 수 없는 일이오!”

군무현은 결의가 깃든 어조로 잘라 대답했다.

남궁혜미는 그 말에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미 군무현의 결심은 변화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순, 그녀는 무엇인가를 쥐었다 놓은 것처럼 허전한 기분을 느꼈다.

군무현은 그런 남궁혜미를 안심시키려는 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걱정마오. 별일 없을 테니...!”

하나, 남궁혜미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군무현은 그런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남궁혜미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밤은... 이곳에 계시겠지요?”

그녀의 물음에 군무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나, 그는 내심 남궁혜미의 태도에 의아한 느낌을 받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남궁혜미의 두 눈에 어떤 결의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윽고, 그녀는 잘근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천첩은 물러가겠어요!”

군무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은 따뜻하고 그윽한 빛으로 찰랑거리고 있었다.

천하제일재녀(天下第一才女) 남궁혜미!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여인으로 살고 있었다.

오직 한 남자만을 우러르며 작은 행복을 꿈꾸면서...

 

(), 군무현은 침상에 누워 있었다.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몸을 뒤척거렸다.

한데 문득, 그의 방문이 소리없이 조용히 열렸다.

군무현은 흠칫하며 몸을 일으켰다.

열린 방문으로 은가루같은 월광(月光)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투명하고 눈부신 월광 속, 한 명의 여인이 환상처럼 신비롭고 섬연한 자태로 서 있지 않은가?

월궁의 항아인들 그렇게 아름다울까?

달빛 속에 선 여인의 자태는 실로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웠다.

혜미...!”

군무현은 일순 움찔하며 나직이 부르짖었다.

그렇다. 월광을 등진 채 방안으로 들어서는 여인, 뜻밖에도 그녀는 남궁혜미였다.

한데, 놀랍게도 그녀는 속이 훤히 비쳐보이는 나삼차림이 아닌가? 나삼 속으로 탄력있게 부푼 여체의 굴곡이 선연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녀는 아직 십칠세의 소녀에 불과했다.

하나, 이제 막 소녀(少女)에서 여인(女人)으로 발돋음하고 있는 그 싱그러운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느껴졌다.

군무현은 남궁혜미의 뜻밖의 모습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으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신음성을 발했다.

남궁혜미, 그녀가 사뿐사뿐 다가옴에 따라 신선한 여체의 체향이 콧속으로 훅 끼쳐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기이하게도 냉담하게 잠들어 있던 군무현의 본능을 자극하며 아찔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그때, 군무현의 침상가로 다가선 남궁혜미, 사르륵...!

문득 그녀는 다소곳이 고개를 떨군 채 걸치고 있던 나삼을 끌어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군무현은 당황하여 외쳤다.

... 혜미! 왜 이러시오?”

하나, 그가 미처 만류하기도 전에, 남궁혜미는 희디 흰 나신을 드러낸 채 말없이 군무현의 침상으로 올라왔다.

순간,

“...!”

군무현은 따뜻하고 매끄러운 여체의 감촉에 흠칫했다.

그의 몸에 부드럽게 닿아오는 여체, 그것은 비록 말이 없었으나 뜨거운 정열을 호소하고 있었다.

문득, 남궁혜미는 가늘게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먼길을 떠나시는데... 첩신의 몸밖에 드릴 것이 없어서...!”

말과 함께 그녀는 군무현의 탄탄한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군무현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의 얼음같은 가슴을 뚫고 문득 뜨거운 열정이 솟구쳐 올랐다.

혜미...!”

그는 격정어린 손길로 남궁혜미의 나신을 굳게 끌어 안았다. 물결처럼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신선한 여체(女體),

...!”

남궁헤미의 입에서 꿈결같이 황홀한 탄성이 흘러 나왔다.

군무현, 그도 피끓는 나이의 혈기왕성한 남아였다.

뜨거운 정열을 호소하며 휘감겨 오는 여체를 안고도 냉담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가슴은 뜨겁게 끓어 올랐다. 얼음을 깨고 치솟는 열기가 더욱 뜨거운지도 몰랐다.

그는 남궁혜미의 매끄러운 알몸을 껴안으며 나직하게, 그러나 힘이 실린 어조로 말했다.

혜미를 울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소!”

순간,

상공...!”

남궁혜미는 옥용 가득 격동과 희열의 빛을 지었다.

그녀의 가슴에는 뜨거운 감격의 회오리가 출렁거렸다.

두 남녀(男女), 더 이상 말이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뜨거웠다. 마주보는 눈빛이 그러했으며 서로 맞닿은 심장이 그러했다.

서로를 갈구하는 몸짓, 그것은 사랑(), 뜨겁고 향기로운 사랑이었다.

군무현의 차디찬 가슴을 뜨거운 용광로로 바꾸어 놓은 위대한 힘().

그동안,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궁혜미의 따스함에 동화되어 점차 살기가 누그러지고 있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군무현, 그는 모성(母性)을 모르고 자랐다.

하나, 그것은 절실한 것이었다. 사막 가운데서의 목마름처럼, 한데 남궁혜미! 그녀가 군무현의 그런 목마름을 해소해 주었다.

그녀는 온유롭고 따스한 여인이었다. 군무현은 그런 남궁혜미에게서 목마르던 모성(母性)을 느끼고 있었다.

 

군무현은 자신의 의복을 벗어내렸다. 비록 겉으로는 유약한 모습이나 그의 벗은 몸은 건강하고 탄탄해 보였다.

...!”

남궁혜미는 일순 꿈결같은 탄성을 발했다.

갑자기 전신을 옥죄어오는 사내의 막강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문득,

혜미... 사랑하오!”

그녀의 귓전으로 군무현의 뜨거운 속삭임이 들려왔다.

남궁혜미는 전신을 파르르 경련하며 온 영혼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격한 희열을 맛보았다.

그와 함께, 마침내 여체가 그 숨막히는 신비의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군무현의 굳건한 몸 아래서 남궁헤미의 교구는 산산이 부서졌다.

열풍(熱風)! 뜨거운 정열의 폭풍이 하나로 합쳐진 두 남녀를 활활 불사르며 몰아치기 시작한다.

이 반, 남궁혜미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한 명의 성숙한 여인으로, 한 남자의 진정한 반려자로... 그녀는 파과의 지극한 고통 속에서도 눈물을 글썽이며 미소지었다.

그것은 고통보다 더한 격동한 희열을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한 남자의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진정한 기쁨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 밤이 깊고 있었다.

두 남녀의 결합을 축복하는 눈부신 달밤이었다.

 

X X X

 

군무현, 그는 흠칫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웬 야행인(夜行人)...?)

그는 눈썹을 꿈틀하며 중얼거렸다.

이곳은 별로 화려하지 않은 한 채의 객잔이었다.

산서(山西)의 태원(太原)은 아름다운 곳이다.

군무현은 태원(太原)의 경관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객잔에 들어 있었다.

자하곡을 떠나 북해로 가기 위해 북상(北上)하던 중 태원에서 하룻밤을 유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데, 스스스...!

그의 예민한 귓전으로 선풍을 일으키며 달리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가 파고드는 것이었다.

(), 그것도 삼라만상이 잠든 깊은 밤에 야행인의 기척이라니... 군무현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꼈다.

(어떤 자가 이 야심한 밤에...!)

그는 침상에서 일어나 급히 장포를 걸쳤다.

이어, 그는 수라혈도(修羅血刀)를 허리에 두르고 급히 방을 나섰다.

스슥! 밖으로 나오는 즉시 그는 객잔의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그는 바람처럼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멀리 태원성 밖으로 날아가는 야행인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었다.

(수상한 자다. 따라가 보자!)

그는 야행인의 뒤를 추적해 보기로 했다.

문득, 스스...! 군무현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했다.

 

수라혈잠영(修羅血潛影)!

혈영천종의 절정경공이었다.

삽시에, 군무현은 야행인의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한데, 군무현은 일순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 아닌가?)

그의 앞을 달리고 있는 인영, 그는 일신에 핏빛 가사를 걸친 승려였다. 그는 옆구리에 하나의 큼직한 자루를 짊어진 채 빠르게 야천을 가르고 있었다.

군무현은 그 모습을 주시하며 기이한 예감을 느꼈다.

(서역(西域)의 라마승이 중원에 나타나다니...!)

그는 내심 의아함을 느끼며 소리없이 혈포라마승의 뒤를 쫓았다.

하나,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혈포라마승, 그 자는 기오막측한 경공으로 태원 교외의 황원을 가로질러갔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눈앞에 하나의 작은 야산이 나타났다.

그 야산의 움푹 꺼진 음습한 곳,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허름한 하나의 사찰(寺刹)이 자리하고 있었다.

혈포라마승, 그 자는 바로 그 사찰 안으로 신형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기광을 번득이며 사찰 안을 주시했다.

(이미 여러 명이 와 있다!)

그는 사찰 안에서 여러 명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숨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스슥...! 그는 귀신같은 신법으로 사찰의 대웅보전으로 보이는 지붕 위로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이제 오는가?”

문득 어둠 속에서 한가닥 걸죽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소리는 한어(漢語)가 아니라 서역어 였다.

사찰 안에서 혈포라마가 들어서는 기척을 느낀 듯했다.

군무현, 그는 대웅보전의 지붕에 거꾸로 매달린 채 대웅보전 안을 들여다 보았다.

대웅보전 안, 삼십여 명의 혈포라마승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 자들의 인상은 한결같이 음흉했으며 눈빛은 사이한 광채로 번득이고 있었다.

한데, 대웅보전의 한쪽을 바라보던 군무현, 그의 두 눈에 일순 무서운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천인공노할 놈들!)

그는 싸늘한 한광을 폭사하며 중얼거렸다.

대웅보전의 한쪽, 십여 명의 여승(女僧)들이 죽어 있었다.

한데, 끔찍하게도 그녀들은 하의가 벗겨진 채 은밀한 부위가 온통 선혈로 범벅된 무참한 모습들이 아닌가?

여승들의 미모는 모두 절륜하기 이를데 없었다.

일견하기에도 그녀들은 처참하게 능욕당하고 죽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군무현은 그 모습에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마승(魔僧)들이다!)

그는 불끈 솟구치는 살심(殺心)을 간신히 억눌러 참으며 혈포라마승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때, 한 명의 라마승이 핏빛 수염을 쓰다듬으며 음침하게 웃었다.

흐흐... 아랍(阿拉)! 뜸을 들이다 온 것을 보니 명물(名物)을 구한 모양이군!”

그 자의 말에 방금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선 혈포라마가 득의의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흐흐...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이어, 그자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자루를 풀어 놓았다.

순간, 중인들은 일제히 두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대웅보전 안이 환해지는 느낌 때문이었다.

풀어헤쳐진 자루 속, 그곳에는 시체조차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킬 한 명의 기막힌 미모의 여인이 잠들어 있지 않은가?

그 여인은 일신에 은은히 속이 비쳐 보이는 나삼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실로 아찔하고도 자극적이었다.

실로 천하의 짝을 찾을 수 없는 절륜한 미색(美色).

핏빛 수염의 라마승, 그 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이군! 세 계집 중 최고다!”

그 자는 감탄의 표정으로 몹시 만족해 했다.

중인들 또한 탐욕어린 시선으로 죽은 듯 잠들어 있는 미인을 훔쳐보기에 바빴다.

그리고, 대웅보전의 한쪽 구석, 역시 자리옷 차림으로 나뒹굴어 있는 두 명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들 역시 빼어난 절색이었다.

하나, 혈포라마의 자루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미녀의 아름다움과는 비길 수 없었다.

흐흐... 태원부(太原府) 중에서 잡아온 계집입니다. 산서제일미인(山西第一美人)이라 불린답니다!”

혈포라마는 어떠냐는 듯 득의의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핏빛 수염의 라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흐흐... 좋다. 대법사(大法師)께서 돌아오시면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그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군무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대법사(大法師)...? 이자들이 우두머리에게 줄 여인들을 납치한 것이로군!)

그의 두 눈에 싸늘한 살기가 어렸다.

한데, 그때였다. 스스... ! 돌연 대웅보전 주위로 여러 줄기의 인영들이 다가들었다.

군무현은 흠칫했다.

(모두 대단한 고수들이다!)

그는 몸을 사리며 나타난 인영들을 면밀히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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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二 章

 

                      萬年氷芝

 

 

 

군무현이 비급이 쌓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만년한옥으로 만들어진 탁자 위, 수십 권의 비급이 쌓여 있었다. 군무현은 그 중 가장 첫 번째 비급을 집어 들었다.

 

<자하신경(紫霞神經)!>

 

낡은 양피지 비급의 표지에는 갑골문자로 그와같이 적혀 있었다.

(자하선인(紫霞仙人)의 일신무학이 담긴 것이군!)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비급의 두깨는 무려 다섯치나 되었다. 또한, 그것은 다음과 같이 몇가지 종류로 분류되어 있었다.

 

기환편(奇幻扁)!

형의편(刑意扁)!

연기편(鍊氣扁)!

 

군무현은 먼저 세 번째의 연기편(鍊氣扁)을 들추었다.

 

자하천류신공(紫霞天流神功)!

 

그것은 고금제일(古今第一)의 호신강기였다.

그것을 완전히 연성하면 진기가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이 된다. 아무리 지고무상한 패도신공으로 가겨해도 충격을 받지 않을뿐더러 흐르는 물(流水)같이 비켜 보낼 수 있다.

 

자하폭류기강!

 

자하천류신공이 극고한 호신기공임에 반하여 이는 무적의 공격강기였다. 적이 쳐보내는 기공을 받아 그 다섯배의 힘으로 되돌려 보내는 반탄기공, 그 위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폭포가 쏟아지듯 폭발적인 위세를 발휘한다. 따라서, 적의 공세가 강하면 강할수록 되돌려 보내는 힘도 더욱 강해진다.

 

군무현은 대충 자하신경(紫霞神經)을 살펴본 후 그것을 덮었다.

(고금제일의 호신무공... 혜미에게 익히게 하면 좋겠구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문득 시선을 돌렸다. 정신없이 약재를 분류하는데 여념이 없는 남궁혜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다. 문득, 군문현의 얼굴한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

그의 싸늘한 가슴에 한 줄기 훈풍이 불어왔다.

두텁게 쌓아 올린 철저한 혼자만의 마음벽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궁혜미, 그녀는 분주히 손을 움직이며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다.

(이 정도의 약재라면 초절정고수 삼천 명은 기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분은 고금무적의 수하들을 거느리게된는 것이다...)

그녀의 지혜롭고 영롱한 눈빛은 이 순간 더욱 밝게 반짝이고 있었다.

늘 그늘이 드리워져 우울해 보이던 그녀의 얼굴, 하나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기대와 설렘, 기쁨의 빛이 어우러져 햇살같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던가? 남궁혜미는 스스로를 잊어버렸다.

모든 것은 군무현, 그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었다. 부지불식간에 그녀는 모든 것을 군무현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군무현, 그가 곧 그녀의 자신이었으며 기쁨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때, 군무현은 자하신경을 내려놓고 두 번째 비급을 집어 들고 있었다.

 

제천무극경(帝天無極經)!

 

웅후할 뿐 아니라 감히 범접지 못할 위엄과 증후한 기도가 서린 필체, 지극히 귀족적인 서체라고나 할까?

그 비급의 제목을 본 순간, 군무현은 내심 경악하며 부르짖었다.

(제천무극경(帝天武極經)! 황궁이대천경(皇宮二大天經) 중 하나가 아닌가?)

무림(武林)과 달리 황실(皇室)에는 독특한 무공이 있었다.

그 중 최강의 것은 두 가지로 손꼽힌다. 바로 금령(金靈)과 무극(無極)이 그것이다.

금령(金靈)의 무공, 그것은 황실제일인(皇室第一人)으로 불리는 금령천존(金靈天尊)이 얻었다.

그리고, 무극(武極)이 기공이 담긴 제천무극경(帝天武極經)!

그것은 환영투도가 황궁에 잠입하여 훔쳐낸 것이었다.

환영투도는 천하제일의 신투가 아니었던가?

하나, 그런 그도 제천무극경을 훔쳐내는데는 죽음의 위험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황실제일인인 금령천존(金靈天尊)에게 발각당해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다.

 

(환노(幻老)와 아버님을 인연짓게한 비급...!)

군무현은 문득 환영투도의 얼굴을 떠올리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 생각에 이르자 가슴 뭉클한 감회가 솟구쳤다.

이어, 그는 제천무극경을 펼쳐들었다. 그것에는 시선을 끄는 여러 가지 무공들이 집약되어 있었다.

 

제천무극진력(帝天武極眞力)!

제천심극인(帝天心極印)!

무극제황대천검(武極帝皇大天劍)...!

 

그밖에, 제천무극경에는 열두가지의 광고절금의 무공이 수록되어 있었다.

군무현은 그것들을 대략 훑어본 후 제천무극경을 덮었다. 이어, 그는 다음의 비급을 손에 들었다.

 

환영만보록(幻影萬寶錄)!

 

! 그것은 바로 환영투도가 남긴 비급이 아닌가?

(환노(幻老)가 남긴 것...!)

군무현은 뭉클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어, 그는 마음을 경건하게 가지며 환영만보록(幻影萬寶錄)을 펼쳐들었다.

첫장을 넘기자 눈에 익은 환영투도의 필체가 들어왔다.

 

<환영만보록을 무현(武玄) 소주(少主)님께 드립니다!>

 

그 글을 본 순간 군무현은 콧등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환영투도, 그는 적룡세가의 몰락 이전에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군무현에게 남길 생각이었던 것이다.

 

환영만보록!

그 속에는 환영문(幻影門)이라는 신비공령문(神秘空靈門)의 절기가 들어있었다.

 

환영투도의 사문(師門)인 환영문(幻影門)!

환영문의 절기는 실로 기오막측했다.

특히, 잠행술(潛行術), 은신술(隱身術), 투도술 등은 가히 제일(第一)이었다.

환영투도, 그는 자질이 부족하여 환영문의 절기를 육성(六成)밖에 터득하지 못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면에서는 당대제일로 불리웠다. 그만큼 환영문의 절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환영문의 절기는 환영만보록의 삼할 정도를 차지했다.

한데, 나머지 부분을 펼친 군무현, 그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만보제종편(萬寶帝宗篇)!

 

나머지 부분은 그 같은 내용으로 메꾸어져 있었다.

아아!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은 바로 천하의 기진이보(奇眞異寶) 삼만 가지의 위치를 적은 것이 아닌가?

 

천하(天下)의 재물이 곧 환영문(幻影門)의 것이다!

 

그렇게 장담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만보제종편에는 기진이보가 비장되어 있는 현위치 뿐만 아니라, 금맥(金脈), 은맥(銀脈) 등의 광맥이 뻗혀 있는 곳, 천하영약들이 자라는 곳이나 그에 대한 치밀한 설명 등 갖가지 방면에 대한 정보가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그것은 만보(萬寶)의 지침서인 것이다.

(정말 대단하군...!)

군무현은 절로 혀를 내둘렀다.

그와 함께, 그는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만년빙지(萬年氷芝)가 있는 곳을 살펴보자!)

이어, 그는 눈을 빛내며 만보제종편의 내용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한 순간,

“...!”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기광을 발했다. 과연 만년빙지(萬年氷芝)에 관한 내용을 발견한 것이 아닌가?

 

만년빙지(萬年氷芝)!

북해(北海) 빙백궁(氷魄宮)에 일곱 뿌리가 있다. 한 뿌리만으로도 능히 탈태환골(脫胎煥骨), 금강지체(金剛之體)를 이룰 수 있다는 극음성약(極陰聖藥)이다. 그렇기 때문에 빙백궁에서는 이것을 목숨같이 아끼고 있다...

(북해(北海) 빙백궁(氷魄宮)...!)

군무현은 신광을 빛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눈에 모종의 결심의 빛이 떠올랐다.

 

북해(北海) 빙백궁(氷魄宮)!

 

세외사천(世外四天) 중 북천(北天)에 속하는 문파였다.

특이하게도, 빙백궁은 전 궁도들이 여인(女人)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어 비밀에 싸여 있는 문파였다.

세외제일신비문파(世外第一神秘門派)!

빙백궁을 가리켜 무림인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

 

X X X

 

이얍!”

치기가 채 가시지 않은 소년의 힘찬 함성이 주위를 울렸다.

이어, 콰르릉 콰쾅!

천붕지열의 굉음이 천지를 뒤집어 엎을 듯 터져 올랐다.

순간, 거창한 강기가 방원 십 장을 뒤덮었다.

자하곡(紫霞谷)의 중앙, 한 명의 단삼소년이 맹렬히 강기를 떨치고 있었다.

이제 십사오세 정도 되었을까? 영준한 용모에 균형잡힌 체격이 소영웅(少英雄)의 출중한 모습을 연상케 했다.

단삼소년, 그는 바로 남궁준하였다.

남궁준하의 곁에는 군무현이 우뚝 선 채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군무현, 그는 일신에 흑색경장을 가뿐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용모와 썩 잘 어울렸다.

짙은 흑색경장은 그의 창백한 얼굴을 더욱 희고 돋보이게 만들었다.

군무현은 잠시 손을 멈춘 남궁준하를 바라보며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제천무극대진력(帝天武極大眞力)은 되었다. 무극제황대천검(武極帝皇大天劍)을 펼쳐 보아라!”

!”

남궁준하는 호쾌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어, 그는 자세를 바로잡더니 벼락같이 손을 움직였다.

파파팟! 츠츠츠... 그의 허리에서 순간 낙뢰같은 검기가 작렬했다.

그의 수중에 들린 병기, 그것은 설악(雪嶽)이라는 이름이 붙은 단금쇄옥(斷金碎玉)의 춘추명기(春秋名器)였다.

한 순간, 우르릉... 쐐 액! 설악의 웅장하고도 장쾌한 검세가 십 장 방원을 완전히 뒤덮었다.

“...!”

군무현은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하나, 그는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영리한 녀석이다. 후일 남궁세가를 천하제일세가(天下第一勢家)로 이끌어 올리리라!)

남궁준하의 오성과 재능은 실로 뛰어났다. 군무현이 감탄할 정도로...

한데, 군무현이 내심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문득, 사르르... 비단자락 끌리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 향긋한 체향(體香)이 일었다.

이어, 한 명의 아름답고 기품있는 미소부(美少婦)가 나타났다.

남궁혜미 그녀가 아닌가?

그녀는 아직 십칠세밖에 되지 않은 소녀였다.

풋과일처럼 싱싱하고 청순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모습.

한데, 지금 남궁혜미는 부인(婦人)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그녀가 군무현의 첩실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아름다웠다.

우아하고 기품있는 자태가 또 다른 그녀의 매력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남궁혜미는 사뿐사뿐 교족을 떼어 군무현의 뒤로 다가섰다.

이어, 그녀는 남궁준하를 지켜보고 있는 군무현의 뒤에 다소곳이 시립했다.

혜미...!”

군무현은 그녀임을 느꼈는지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남궁혜미는 듬뿍 정감이 실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식사하실 시간이에요!”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한창 무공수련에 열중인 남궁준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하! 식사 후에 계속한다!”

그 말에 남궁준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형님 먼저 가십시오! 소제는 더 있다 가겠습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남궁혜미는 다소곳이 그를 뒤따르다가 문득 남궁준하에게 일렀다.

늦지 않도록 오너라!”

그 말에 남궁혜미는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였다.

헤헤... 누님! 형님과 단란한 시간 보내십시오!”

그의 의미있는 표정으로 그렇게 전음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남궁혜미는 그의 짓궂은 말에 옥용을 붉혔다.

하나, 그녀는 이내 달콤한 표정을 지으며 군무현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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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紫霞別府奇緣

 

 

 

남궁혜미, 그녀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자하천류대진을 뚫어질 듯 주시하고 있었다.

무엇엔가 집중하여 전혀 사심이 깃들지 않은 모습, 그런 그녀의 모습은 실로 아름다웠다.

군무현은 말없이 남궁혜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남궁혜미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여인의 미()를 느꼈다.

문득,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나직이 뇌까렸다.

혜미는... 과연 중원제일미(中原第一美)라 할만하군!”

그는 감탄의 눈빛으로 남궁혜미의 옆모습을 주시했다. 순간, 남궁혜미는 군무현의 시선을 느꼈는지 발그레 옥용을 붉혔다.

그제서야 군무현도 어색한 표정으로 안색을 바꾸었다.

이어, 그는 다시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돌파할 수 있겠느냐?”

남궁혜미는 군무현의 그런 무심한 음성에 다소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하나, 그녀는 지혜로운 소녀였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다부진 음성으로 대답했다.

반나절의 시간만 주신다면 돌파해 보이겠어요!”

“...!”

군무현의 입가에 한줄기 미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역시 남궁세가가 자랑할만한 재녀로군! 당금천하를 통틀어 자하천류대진을 알아볼 사람은 다섯이 채 되지 않거늘... 반나절이면 돌파할 수 있다니...!)

하나, 그는 입가의 미소를 떠올릴 때보다 더 빠르게 지워 버렸다. 이어,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반나절이나 기다릴 시간이 없다!”

그 말과 함께, 그는 남궁혜미의 손목을 잡았다.

... 무슨 말씀이신지요?”

갑작스런 군무현의 태도에 남궁혜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스슷...! 군무현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자하곡의 곡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더욱 어리둥절해진 것은 남궁준하였다.

하나, ! 그도 곧 군무현을 뒤따라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들은 곡구에 내려섰다.

군무현은 남궁준하에게 주의를 주었다.

내가 디디는 곳 외에는 절대 밟아서는 안된다. , 따라 오너라.”

!”

남궁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러게 군무현의 뒤를 따랐다.

군무현, 그는 남궁혜미의 손목을 잡고 거침없이 자하천류대진 안으로 들어갔다.

스으... 스으... 몸을 감싸며 휘감겨 오는 자욱한 자하(紫霞).

군무현은 그 속을 종횡으로 누비며 전진해 나갔다.

남궁혜미는 군무현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세상에...!)

그녀는 아연하여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기문지학만은 신기황(神機皇) 노선배님 외에는 제일(第一)이라 자부해 왔건만...!)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러했다. 그녀는 뛰어난 오성과 총명으로 기문지학에 달통할 수 있었다.

평소에 겸손한 그녀였지만 그 방면에서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노라고 자부해왔다.

한데, 군무현은 어떤가? 오히려 남궁혜미 자신보다 몇 단계 위가 아닌가?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것이리라.

그때, 스슥... 군무현은 마치 평지를 걷듯 절진 속을 뚫고 거침없이 전진해 들어갔다.

남궁준하, 그도 군무현의 행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빛내며 열심히 뒤따르고 있었다.

군무현은 계속 안으로 전진하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것은 이미 수천년 전에 설치된 진세라 극히 약해져 있었다. 그때 환노(幻老)가 이곳을 발견하여 자하선인(紫霞仙人)의 진전을 얻고 진세를 보강한 것이다!)

그는 내심 추측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하천류대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스슥... 스스스... 그의 보법은 지극히 기민하면서도 유연했다.

그렇게 얼마나 전진했을까? 삼인(三人)은 마침내 완전히 자하천류대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진세를 벗어나는 순간,

!”

남궁준하는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며 탄성을 울렸다.

보라! 그들의 눈 앞,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이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지 않은가?

세외선경(世外仙境), 무릉도원(武陵桃源)의 낙원이 바로 이곳이런가?

자하곡! 그 깊은 곳의 절경은 가히 필설이 따르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멋들어졌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기화이초들, 그것들은 넘치듯 출렁거리며 다투어 방향(芳香)을 뿌려대고 있었다.

어디선가 볼어와 꽃잎을 간지럽히는 그윽하고 부드러운 바람, 꽃잎에 앉아 한가로이 꿀을 취하고 있는 벌과 나비...

졸졸졸... 맑은 청음을 내며 옥같은 계류가 흐르고 있는가 하면, 오색영롱한 보석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종유석들이 기이한 신비를 연출하며 각기 다른 형상으로 늘어져 있다.

뿐인가? 주위는 온통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찼다. 실로 환상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천중산 깊은 험지에 이토록 신비스러운 절경이 자리하고 있을 줄이야... 세인들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으리라.

남궁혜미, 그녀는 꿈 속을 더듬는 듯 몽롱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문득, 그녀의 작은 가슴이 설렘으로 가득차 두근거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이분을 모시고 평생을 살 수 있다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며 몰래 얼굴을 붉혔다.

어느 덧, 군무현에 대한 사모지정이 그녀의 방심에 새록새록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군무현이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입을 열었다.

저곳이군!”

그는 곡 끝의 한 석동(石洞)을 가리켜 보였다.

동굴의 입구,

 

<자하별부(紫霞別府)!>

 

그와 같은 글씨가 세치 깊이로 새겨져 있었다.

고전체(古錢體)로 쓰여진 일필휘지의 명필, 동굴은 별다른 특징이 없이 평범해 보였다.

하나, 그것은 다만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군무현과 남궁혜미, 그들은 자하별부(紫霞別府)의 앞에 이르러 흠칫하며 멈추어 섰다.

문득,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남궁혜미를 바라보았다.

혜미, 보이느냐?”

그의 물음에 남궁혜미는 혜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요. 소녀가 보기에는 이곳에 서른 여섯가지의 사관(死關)이 감추어져 있어요!”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올렸다. 하나 그 순간, 남궁혜미가 생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소녀에게 맡겨주시지 않겠어요?”

군무현은 그녀의 말에 말없이 손을 내렸다.

남궁혜미는 그 모습에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남궁준하, 그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군무현과 남궁혜미를 번갈아 주시했다.

형님!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하나, 군무현은 가볍게 손을 저어 그의 말을 막았다.

곧 알게 될 것이다!”

남궁준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말없이 남궁혜미의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남궁혜미는 동굴 앞에 쪼그리고 앉은 채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조금씩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반각이 지났을 무렵, 문득 남궁혜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그녀는 품 속에서 하나의 작은 옥도(玉刀)를 꺼내들었다.

다음 순간, 파파팍! 그녀는 옥도를 던져 동굴 한쪽에 석벽을 찌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쩌적! 콰 앙!

무엇인가 부서지는 폭음이 들렸다.

순간, 군무현의 입가에 한줄기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파파팍! 따 당!

남궁혜미는 연이어 몇군데의 석벽을 옥도를 던져 찍어갔다.

놀랍게도 그녀의 작은 옥도는 석벽을 두부 베듯이 쉽게 베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옥린보도(玉麟寶刀)!

 

그것은 놀라운 위력을 지닌 신병이었다.

이윽고, 남궁혜미는 이마의 땀을 딱으며 옥도를 거두었다.

다 되었어요!”

그녀의 말에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궁준하를 이끌고 동굴 안으로 둘어섰다.

 

동굴의 통로는 무척 길었다. 하나, 중간중간에 은은한 야명주의 빛이 비치고 있어 전진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군무현 일행은 두 구비의 긴 통로를 지났다.

그러자, 눈 앞에 하나의 거대한 석문이 나타났다.

삼인(三人)은 석문 앞에 이르러 우뚝 멈추어 섰다.

한데, 석문의 중앙, 그곳에는 자운(紫雲)이 서로 엉켜 하늘로 오르는 기이한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남궁헤미는 것을 주시하며 혜안을 반짝였다.

자운승극도(紫雲昇極圖)예요! 현기가 보여요!”

군무현 역시 기광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없이 석문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어, 그는 뭉클뭉클 피어 오르는 자색 구름 모양을 몇 군데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르릉...! 묵중한 굉음과 함께 석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

남궁혜미와 남궁준하는 나직한 탄성을 발하며 눈이 부신 듯 손으로 눈을 가렸다.

석문의 안쪽, 그곳으로부터 눈을 멀게 만드는 엄청난 광채가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휘황찬란한 보광(寶光)이었다.

석문 안, 그곳은 한 칸의 석실이었다.

군무현은 천천히 석실 안으로 들어섰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내심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군! 천하의 재보(財寶)들이 이곳에 다 모인 듯 하군!)

그는 감탄의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석실, 그곳은 그대로 하나의 보산(寶山)이었다.

하나만으로도 능히 일개의 성()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재보들이 지천으로 쌓여 있지 않은가?

실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남궁혜미와 남궁준하, 그들 두 남매는 너무도 엄청난 재보를 바라보며 넋나간 표정을 지었다.

석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무수한 재보들, 그것은 환영투도가 평생에 걸쳐 모은 귀중한 재산이었다.

비단 재보 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절세신병(絶世神兵)을 비롯하여 희세의 무공비급들이 수두룩했다.

또한, 그것은 하나같이 엄청난 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중 하나만을 취해도 천하를 혈풍(血風) 속에 휘몰아 넣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 외에도, 뼈에 살을 붙이고 죽은 다도 능히 살릴 수 있는 희세의 영약들이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이 비장되어 있었다.

이 석실이야말로 실로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엄청난 보고(寶庫)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때, 군무현이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혜미...!”

?”

남궁혜미는 그제서야 흠칫 정신을 차리며 군무현에게로 다가왔다.

군무현은 석실 안의 무수한 기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안의 모든 것이 혜미 그대의 것이다!”

순간, 남궁혜미는 격동의 표정으로 교구를 파르르 떨었다.

... 상공...!”

그녀는 감격을 금치 못하며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실로 꿈만같은 일이 아닌가? 하나, 군무현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는 남궁혜미에 대한 신뢰의 눈빛을 보일 뿐이었다.

이 안의 재보들로 강한 힘을 길러라. 사망림(死亡林) 뿐 아니라 천하를 상대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말과 함께, 군무현은 남궁혜미의 작고 보드라운 교수를 힘주어 잡았다.

순간,

(...!)

남궁혜미는 꿈결같은 탄성을 발하며 옥용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일순 심혼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세차게 가슴이 뛰놀았다.

처음으로 군무현의 입가에 흐릿하나마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그녀는 본 것이다.

미소, 군무현의 미소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귀한 것일수록 그 가치가 더한 법, 우기(雨氣) 속은 짧은 햇빛처럼 군무현의 한줄기 미소는 투명하고도 눈부셨다.

남궁혜미의 꿈꾸듯 달콤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하나, 그녀는 이내 꿈에서 깨어나야만 했다.

, 우선 둘러보고 정리를 좀 하도록 하자!”

군무현이 그녀의 손을 놓으며 돌아선 것이다.

남궁혜미는 아쉬움을 느꼈으나 가볍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무현은 남궁준하에게도 시선을 주었다.

준하는 병기와 재보들을 한곳에 정리하고 혜미는 약재들을 분류하여 따로 모으는 것이 좋겠군!”

, 형님!”

남궁준하는 신이 난 듯 득시 대답하며 분주히 몸을 움직였다. 남궁혜미도 몸을 숙여 바닥의 약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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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 章

 

              神秘紫霞谷

 

 

 

흐흑... 어머님!”

남궁혜미, 그녀는 중년미부의 시신을 끌어 안으며 처절한 울부짖음을 터뜨렸다.

사내에게 능욕당하다 처참하게 죽어간 중년미부,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군무현은 엄천난 분노와 함께 강렬한 살심(殺心)이 솟구쳤다.

살인을 했으니 네놈들의 더러운 목숨으로 대가를 받으리라!”

그는 냉혹한 눈으로 혈사음령을 노려 보았다.

순간, 혈사음령은 그의 강렬한 기도에 흠칫 몸을 떨었다.

하나, 그 자는 이내 정신을 수습하며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크흐... 애송이놈! 감히 사망림의 일을 방해하다니... !”

그 자는 말을 하다 말고 두 눈을 한껏 부릅떴다.

죽어랏!”

군무현의 우수가 어느 새 번개같이 휘둘러진 것이었다.

꽈릉...! 벼락같은 핏빛강기가 혈사음령의 가슴을 후려쳤다.

어헉!”

혈사음령은 다급한 헛바람을 들이키며 질겁했다.

그 자는 앞 뒤 가릴 것도 없이 반사적으로 장을 맞받아쳤다.

위 잉!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은 강맹한 장력,

하나, 콰르릉... 콰쾅! 들썩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이 짓터져 오름과 함께,

크 악!”

혈사음령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 끔찍했다. 그자는 두 팔이 완전히 짓뭉개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하나, 군무현은 거기에서 손속을 멈추지 않았다.

수라혈살강뢰!”

콰자작! 재차 그의 입에서 냉혹한 일갈이 터짐과 함께 핏빛강기가 작렬하듯 혈사음령의 전신에 퍼부어졌다.

그것은 혈사음령으로서는 도저히 대항하거나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무서운 공력이었다.

부림주님!”

혈사음령의 수하들은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었다.

그 순간, 꽈르르릉! 퍼 엉!

천붕지열의 가공할 폭음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 폭음 속을 뚫고,

크 아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짓터져 올랐다.

오오!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혈사음령! 그 자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 조차 않았다.

산산이 찢기고 파열된 살조각과 선혈만이 허공을 뒤덮었을 뿐이었다.

그 광경에 사망림의 수하들은 혼비백산했다.

... ! 천살성(天殺星)이다!”

... 달아나자!”

스슥! ! 그자들은 사색이 되어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났다.

하나,

한 놈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군무현은 살기어린 눈으로 냉소를 머금었다.

이어, 그는 소매 속에서 하나의 철적(鐵笛)을 꺼내어 입에 댔다.

다음 순간, 삐 이익! 귀청을 찢어 발기는 날카로운 소성이 울려 퍼졌다.

직후,

케 엑!”

크악!”

크윽...!”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잇달아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쿵 쿠웅!

단번에 백장 밖까지 달아났던 사망림의 수하들은 모두 오공에서 피를 토하며 속속 나뒹굴었다.

 

천붕뇌명후(天崩雷鳴吼)!

 

군무현이 시전한 음공은 바로 그것이었다.

천황음경(天皇音經)의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 중 세 번째 음공, 그것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돌연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정적, 죽음 후의 무겁고 숨막히는 정적이 장내를 짓눌렀다.

이윽고, 군무현은 천천히 돌아섰다.

역한 피비린내가 그의 코끝을 물씬 진동했다.

남궁혜미, 그녀는 슬픔과 오열에 지쳐 혼절해 있었다. 죽은 어머니의 시신을 꼭 끌어 안은 채...

군무현은 깊은 연민의 눈빛으로 혼절한 남궁혜미를 내려다 보았다.

불쌍한 소녀...!”

그의 입에서 진심어린 동정이 깃든 나직한 뇌까림이 흘러 나왔다.

이어, 그는 남궁혜미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혈도를 가볍게 문질렀다.

그러자,

으음...!”

나직한 신음과 함께 잠시 후 남궁혜미가 깨어났다.

정신이 드느냐?”

군무현은 무심하나 염려가 깃든 음성으로 물었다.

남궁혜미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한동한 멍한 표정으로 중년미부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흐윽... 어머니...!”

그녀는 그대로 시신을 끌어 안으며 다시 서러운 오열을 터뜨렸다.

군무현은 무슨 말로든 그런 남궁혜미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나, 그는 생각과는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그는 서럽게 오열하는 남궁혜미의 모습을 지켜보며 어찌해야 좋을지 안절부절 할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중년미부의 곁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한 명의 소년을 발견했다.

(아직 죽지 않았다!)

그는 단번에 그것을 알아보고는 기광을 빛냈다.

이어, 그는 급히 소년의 곁으로 다가가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소년의 안색은 밀랍같이 창백했다. 이미 산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나, 그는 아직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소년의 얼굴은 반듯하고 준수했으며 남궁혜미의 용모와 흡사해 보였다.

(신기황 어르신네의 의술이 한 생명을 구하리라!)

군무현은 곧 능숙하게 소년의 혈도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는 빠르게 소년의 전신을 추궁과혈했다. 그러자,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한 소년의 얼굴에 점차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X X X

 

남궁세가의 뒷산, 크고 작은 몇 개의 봉분이 세워졌다.

두 개의 봉분 앞,

흐흑...!”

언제부터인가 간장을 끊어낼 듯 애절한 소녀의 울음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두 남매(男妹), 그들이 봉분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오열하고 있었다.

남궁혜미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연신 가녀린 어깨를 들먹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있었다.

반면, 그녀의 옆에 선 소년, 그는 사내답게 입술을 악문 채 오열을 삼키고 있었다.

 

남궁준하(南宮俊河)!

 

이것이 소년의 이름이었다.

두 남매의 뒤, 군무현이 침통한 안색으로 우뚝 서 있었다.

그는 회의어린 눈빛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남궁세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천년의 역사가 한줌 재로 쓰러지다니...!)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새삼 인간사(人間事)의 무상함을 절감했다.

실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군무현의 눈빛이 밝아졌다.

(일신의 원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을 내 자신이나 이 아이들 같은 슬픔을 겪게 해서는 안된다!)

그의 얼굴에 엄숙한 결의의 빛이 떠올랐다.

(자신의 야심을 위해 천하를 혈란(血亂)으로 몰아넣으려 하는 자... 그것이 누구이든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그는 내심 굳게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의 이같은 새로운 결심은 천하무림을 위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군무현! 역시 그는 영웅(英雄)임이 분명했다.

그때, 남궁혜미의 서러운 오열이 낮게 잦아드는가 싶더니 이윽고 울음을 그쳤다.

그것을 느낀 군무현, 그는 무심히 돌아섰다.

남궁혜미는 뿌연 안개처럼 흐린 눈으로 군무현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군무현은 그대로 태산(泰山)이었다.

문득,

상공...!”

남궁혜미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실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어, 그녀는 군무현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남궁준하는 입술을 악물며 하늘을 우러렀다.

준하에게 힘을 주소서! 원수들을 멸하고 남궁세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큰 힘을 주소서!”

그는 하늘을 향해 절규하듯 부르짖었다.

“...!”

군무현은 묵묵히 그들 남매를 내려다 보았다.

차갑고 무심하기만 하던 그의 눈에는 연민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남궁준하 역시 군무현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며 호소했다.

대협! 소생을 거두어 주십시오! 가문의 원한을 갚을 수 있는 힘만 주신다면 무슨 짓이든 할 것입니다!”

그의 두 눈에는 피맺힌 결의가 빛나고 있었다.

군무현은 말없이 남궁준하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이어, 그는 무서운 의지와 집념으로 타오르는 남궁준하의 두 눈을 직시했다.

준하! 너는 일문(一門)의 종사(宗師)! 선친과 사장(師長) 앞이 아니면 누구에게라도 무릎을 꿇어서는 안된다!”

대협...!”

남궁준하는 격동을 금치 못하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군무현은 그런 남궁준하를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이라 불러라! 내 너로 하여금 사망림(死亡林)을 초토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겠다!”

순간,

... 형님!”

상공!”

두 남매는 감격을 금치 못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군무현은 그런 두 남매의 손을 굳게 움켜 잡았다.

약속, 그것은 힘차고 뜨거운 약속이었다.

남궁남매는 온통 기대와 희열에 들뜬 표정으로 활짝 웃어 보였다. 채 마르지 않은 눈물 속에서 벅찬 감격이 빛나고 있었다.

서로의 손을 굳게 마주잡은 세 사람, 그들의 만남을 축복하듯이 찬란한 낙조가 세 사람의 어깨 너머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X X X

 

천중산(天中山),

 

하남성(河南省)에 위치한 대산(大山).

그 장쾌한 산세가 무려 일천칠백리에 이르는 거악(巨嶽)이다.

 

하나의 높은 산봉 위,

하하...! 형님! 수라혈잠영(修羅血潛影)의 경공은 정말 빠릅니다!”

스슥! 스스스...

소년의 낭랑한 웃음소리와 함께 문득 몇줄기 인영이 산봉 위로 날아 내렸다.

이남일녀(二男一女), 그들은 바로 군무현과 남궁혜미, 남궁준하 남매였다.

남궁혜미의 고운 얼굴은 무척 수척해 보였다. 아직도 그녀는 큰 충격과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옥용 가득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반면, 남궁준하, 그는 사내답게 슬픔을 벗어던지고 이미 명랑한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누나인 남궁혜미와 비교할 수는 없으나 역시 타고난 기재였다.

영민한 지혜와 뛰어난 자질을 갖춘 소년, 산봉 위에 우뚝 선 군무현, 그는 눈을 빛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자하곡(紫霞谷)에는 많은 영약이 있을 것이다. 준하를 단시일 내에 강자(强者)로 만들어 주리라!)

어느 새, 그는 남궁준하를 친동생 이상으로 아끼고 있었다.

물론, 남궁준하가 친형님 이상으로 군무현을 따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하곡(紫霞谷)!

지금 군무현 일행은 자하곡(紫霞谷)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환영투도가 죽기 직전에 일러주었던 곳, 천중산(天中山) 자하곡(紫霞谷)!

그곳에는 환영투도의 안배가 숨겨져 있으리라.

 

남궁혜미, 그녀는 아미를 살짝 모은 채 멀리 산정(山頂)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그녀는 무엇을 발견했는지 지혜로운 봉목에 반짝 이채를 띄웠다.

상공...! 현기가 보여요!”

“...!”

그녀의 말에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산정으로 눈길을 돌렸다.

스으... 스으...

과연, 그곳에는 은은하고 신비로운 자하(紫霞)가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환상차럼 신비로운 광경, 그때, 남궁준하는 만면에 의혹의 빛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형님, 누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는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궁준하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안개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군무현과 남궁혜미, 그들은 그 신비로운 자하(紫霞)가 인위적인 진형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임을 알아보았다.

군무현은 의아해 하는 남궁준하를 향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곧 알게될 것이다. , 가자!”

말과 함께, 스슥! 그는 남궁혜미의 손목을 잡고 바람처럼 신형을 날렸다.

그러자, ! 남궁준하도 곧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들은 삽시에 은은한 자하가 흐르는 산정(山頂)에 이르렀다.

산정에 발을 디디는 순간,

!”

남궁준하는 눈을 크게 뜨며 탄성을 내질렀다.

산정 아래,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세외도원이 이러할까?

스으... 스으... 신비한 자하가 구름처럼 흐르고 있는 그곳에 하나의 아름다운 절곡(絶谷)이 자리하고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려왔던 신비롭고 아름다운 절곡, 절곡 주위에는 온통 기화이초가 만발해 있었고 맑은 옥계류(玉溪流)와 청청한 숲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별천지에 들어선 듯한 황홀한 전경, 인간세상에 이렇듯 아름다운 곳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터였다.

남궁혜미는 그 절곡을 둘러보며 눈을 크게 떴다.

천중(天中)의 험지(險地)에 이런 도원경이 있을 줄이야...!”

그는 신기한 표정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때, 문득 군무현이 남궁혜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혜미? 알아보겠느냐?”

그 말에 남궁준하는 다시 의아한 시선으로 누나인 남궁혜미를 주시했다.

남궁혜미는 무한한 지혜가 반짝이는 혜안으로 자하 속에 둘러싸인 절곡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어, 그녀는 가볍게 아미를 모으며 입을 열었다.

소녀의 눈이 틀림없다면... 상고시대 자하선인(紫霞仙人)의 자하천류대진(紫霞天流大陣)이 곡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중원제일재녀(中原第一才女)의 명망이 헛것이 아니었군!”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그의 어조는 지극히 무심했다. 하나, 남궁혜미는 두 볼을 붉게 물들이며 기쁨의 표정을 지었다.

처음으로 군무현의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닌가?

그때, 남궁준하가 의아한 듯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자하선인(紫霞仙人)은 누구이며 자하천류대진(紫霞天流大陣)은 또 무엇입니까?”

군무현은 남궁준하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의문을 가지면 그것을 풀지 않고는 못배기는 남궁준하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었다.

자하선인은 무림(武林)이 태동될 무렵에 살았던 전설적인 기인(奇人)이셨다. 기문둔갑, 기관지학, 토목지술의 시조로 불리던 분이다. 세속의 명리에 초탈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천지십강(天地十强)에 못지 않은 고수셨다!”

순간, 남궁준하는 눈을 크게 뜨며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천지십강에 못지 않다구요?”

군무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자하곡을 내려다 보며 문득 환영투도가 남긴 말을 떠올렸다.

 

천중산(天中山) 자하곡(紫霞谷)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원수를 갚기에 충분한 무공비급들이 있을 것입니다...!

 

환영투도를 생각하자 군무현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환노는 자신이 비록 직접 익히지는 못했으나 자하선인의 진전을 지니고 있었구나!)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환영투도의 치밀한 안배에 새삼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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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九 章

 

                  南宮勢家劫火

 

 

 

군무현, 그의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남궁세가(南宮勢家)!

그들 역시 전체는 아니었으나 적룡세가의 멸겁에 소수의 인물이 참가했던 문파가 아닌가?

그것은 군무현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군무현은 남궁혜미를 주시하며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부탁이란 무엇인가?”

남궁혜미는 간절함이 깃든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 남궁세가가 사망림(死亡林)의 급습으로 위경에 처해 있어요! 제발 도와 주세요!”

그녀는 절실한 음성으로 간청했다.

도와달라고?”

군무현은 싸늘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 한기가 끼얹어졌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남궁혜미는 흠칫하며 불길한 예감을 직감했다.

(좋지 않다!)

하나, 털썩!

그녀는 이내 군무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어, 그녀는 간절한 음성으로 애원했다.

이렇게 부탁드리겠어요. 사망림의 마수(魔手)만 막아 주시면 무슨 짓이든 하겠어요!”

군무현은 서늘한 한기가 감도는 눈으로 남궁혜미를 내려다 보았다.

그대는 본인이 누군지 아느냐?”

그의 물음에 남궁혜미는 움찔 몸을 떨었다. 순간적으로 한 가지 직감이 그녀의 뇌리에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본 세가와 원한이 있구나!)

그것은 극히 불안한 느낌이었으나 그녀의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군무현의 입에서 한 소리 차가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본인의 이름은 군무현이다!”

순간, 남궁혜미의 안색이 홱 변했다.

(... 이 사람이 적룡대제의 아들...!)

그녀는 경악과 함께 무거운 절망감을 느꼈다.

원수를 도와줄 인물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하나, 남궁혜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하지만... 이 사람을 놓치면 남궁세가 일천 년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고 만다!)

그녀는 도저히 단념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군무현의 발밑에 엎드려 애원했다.

제발... 구원(舊怨)은 잊으시고 도와주세요. 도와주시기만 하면 상공의 시첩이 되어... 평생을 모시겠어요!”

주르르...! 옥같은 눈물이 그녀의 고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것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절로 뭉클하게 만드는 애절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눈물, 여인의 눈물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었다.

간절함과 진정으로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는 남궁혜미,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군무현의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삭막하기만 하던 그의 가슴에 한 가닥 뭉클한 감정이 일어난 것이었다.

군무현은 내심 자문해 보았다.

(군무현아... 네 스스로 멸문의 한()을 맛보지 않았느냐? 이 천진한 소녀에게도 그런 아픔을 겪게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 그것은 잔인한 짓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 군무현, 그는 결코 자신의 가슴에 뿌리내린 엄청난 한을 이 어린 소녀에게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잔인한 행위는 그의 본연의 선한 양심이 허용치 않는 것이다.

이윽고, 군무현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순간, 남궁혜미는 파르르 어깨를 떨며 조심스럽게 군무현을 올려다 보았다.

기대와 불안이 엇갈리는 초조한 눈빛,

... 도와주시는 건가요?”

“...!”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순간,

상공!”

남궁혜미는 기쁨을 금치 못하며 눈물 고인 눈으로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군무현, 문득 그의 싸늘한 입가에 한줄기 흐릿한 미소가 스쳤다.

 

X X X

 

화르르...! 콰콰 쾅!

화마(火魔)! 시뻘건 화염이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무엇이든 거침없이 집어 삼키는 엄청난 불길, 그 속에 한 채의 웅장한 장원이 화마에 휩싸여 흔적을 잃어가고 있었다.

콰르릉... 쿠쿵! 거대한 장원은 충천하는 화염 속에 휘말려 덧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주위를 진동하는 시신이 타는 매캐한 냄새, 아아! 또 얼마나 많은 자들이 덧없이 화염 속에 잿더미로 쓰러져 가고 있는 것일까?

 

남궁세가(南宮勢家)!

 

중원에서도 가장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명가(名家).

화마 속에 휩싸여 무너지고 있는 장원은 바로 다름 아닌 남궁세가였다.

화르르! 콰릉... 엄청난 기세로 불타오르는 남궁세가의 장원 앞, 수백 명의 회의(灰衣) 흉한들이 살기 흉흉한 눈으로 불타는 남궁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흉신악살을 연상케 하는 험악한 인상을 지닌 자들, 장원 안, 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몇부류의 인물들이 둘러서 있었다.

죽여라! 네놈들을 죽이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것이 한이다!”

한 명의 피투성이 중년인이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 채 노갈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실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본래, 그는 지극히 청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 희생키 힘든 중상을 입은 지금 그의 모습은 한 마리 거친 노호(怒虎)와도 같았다.

분노와 비통함, 그리고 참혹한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그런 중년인의 앞, 한 명의 소년이 창백한 안색으로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의 곁, 한 명의 중년미부가 쓰러져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눈이 번쩍 뜨이는 절륜한 미모의 중년미부, 그녀는 마혈이 짚힌 듯 분노와 원한의 눈물을 흘릴 뿐 미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중년인의 앞, 한 명의 회포노인이 우둑 서 있었다.

두 눈이 움푹 꺼져 들어가 지극히 음험한 인상을 풍기는 인물, 그 자는 득의함이 깃든 괴이한 표정으로 중년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흐흐... 남궁걸(南宮傑)! 이제 본림(本林)의 명을 거역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알겠느냐?”

 

남궁걸(南宮傑)! 이것이 당금 남궁세가의 가주(家主)인 신안수사(神眼秀士)의 이름이었다.

 

피투성이의 중년인, , 남궁걸은 두 눈에 줄기줄기 분광을 폭사하며 이를 갈았다.

으득...! 잊지 마라! 중원은 네놈들 변방의 오랑캐 따위가 언제까지 발호하는 것을 용납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당금 남궁세가의 가주답게 결코 꺾이지 않는 불굴의 투지로 대항했다.

하나, 무슨 소용이랴? 그는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 없었다.

문득, 회포노인의 두 눈에 야릇한 광채가 번득였다.

그 자는 힐끗 중년미부를 일견하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남궁걸! 네놈에게 근사한 것을 보여주겠다!”

그 말에 남궁걸의 안색이 일변했다.

혈사음령(血死陰靈)! ... 무슨짓을 하려는 것이냐?”

혈사음령(血死陰靈)이라 불리운 회포노인! 그 자는 음침한 눈을 번득이며 중년미부를 향해 다가섰다.

움푹 꺼진 그 자의 두 눈은 음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낀 중년미부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혈사음령은 그런 중년미부의 농염한 육체를 쓸어보며 군침을 삼켰다.

흐흐... 중원의 계집은 각별한 맛이 있다고 들었다!”

순간,

... 여보!”

중년미부는 수치와 분노로 새파랗게 질리며 다급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두 눈에는 초조와 불안의 빛이 얼룩졌다.

그때,

흐흐...!”

찌 익! 혈사음령이 그대로 중년미부의 몸을 덮치며 그녀의 의복을 찢어냈다.

! ... 놓아랏!”

중년미부는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저항했다.

하나, 마혈이 찍힌 그녀는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조차 없었다.

삽시에, 그녀는 사내의 음탕한 손길에 전신을 벌거벗기고 말았다.

풍만하고 농염한 여체, 관능적인 굴곡을 지닌 중년여인의 육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흐윽...!”

중년미부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오열을 터뜨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남궁걸,

... !”

그는 분노와 격동을 참지 못하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능욕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떻겠든가?

그것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한 치욕이며 굴욕이었다.

그이 두 눈은 금방이라도 핏물이 흘러 내릴 듯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 ...”

하나, 그 역시 마혈이 찍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무기력한 몸이었다.

혈사음령, 그 자는 잔인하고 음탕한 음소를 흘리며 중년미부의 나신을 쓸어 보았다.

흐흐... 과연 일품이군!”

그자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 자는 중년미부의 전신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순간,

아악! ... 이놈! ... 비켜랏!”

중년미부는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울부짖었다.

하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때, 혈사음령의 수하들이 음탕한 눈을 번득이며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 자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침을 흘리며 혈사음령이 중년미부를 능욕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흐흐... 비단결보다 부드러운 몸이군!”

혈사음령은 중년미부의 나신을 쓰다듬으며 감탄의 기색을 지었다.

흐윽...!”

종년미부는 몸서리를 쳤다.

혈사음령의 손길이 몸을 스칠 때마다 그녀는 흡사 송충이가 기어가는 듯한 전율을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혈사음령은 그런 중년미부의 모습에 미간을 찡그렸다.

흐흐... 계집이 너무 뻣뻣하면 재미가 없지!”

이어, 그 자는 중년미부의 마혈을 풀어 주었다.

순간,

... 놔랏! 이놈!”

중년미부는 있는 힘을 다해 혈사음령의 몸을 떠밀어 냈다.

하나,

!”

그녀는 다시 사내의 육중한 몸에 짓눌려 버렸다.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사내의 체구를 감당해 내기란 불가능했다.

문득, 중년미부의 두 눈에 비장한 결의의 빛이 떠올랐다.

(자결하자!)

그녀는 이를 악물며 남편 남궁걸을 바라보았다.

잔뜩 충혈된 채 핏발이 선 남궁걸의 두 눈, 일순,

“...!”

“...!”

두 부부의 말없는 시선이 마주쳤다.

중년미부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상공... 먼저 가겠어요!)

다음 순간, 주르르... 그녀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흘러 내렸다.

남궁걸은 대경실색했다.

부인! 안돼오!”

그는 처절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하나, 주르르... !

중년미부의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꺾여지며 선혈이 그녀의 목을 타고 흘러 내렸다.

! 그녀는 더 이상 치욕을 당하기 전에 혀를 물어 자결한 것이었다.

순간,

... 이런 망할 계집!”

혈사음령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탐스럽고 아름답던 중년미부의 나신은 어느새 힘없이 축 늘어지고 만 것이 아닌가?

그때,

부인! 부인!”

남궁걸은 처절한 음성으로 절규하듯 부르짖었다.

미처 그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중년미부는 자결해 버리고 만 것이다.

처연한 아내의 마지막 눈빛, 그것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크윽... 부인!”

그는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

하나, 속수무책, 그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혈사음령은 일순 낭패한 기색이었으나 이내 음흉한 괴소를 터뜨렸다.

클클... 좋다! 이런 맛도 괜찮겠지!”

이어, 그 자는 잔인하게도 이미 죽어버린 중년미부의 육신을 능욕하려는 것이 아닌가?

실로 천인공노할 짓이었다.

으으...”

그 자의 짐승같은 행위에 남궁걸은 부르르 치를 떨며 전율했다.

... ! 힘이 없음이 원망스럽... !”

그는 격분은 참지 못해 한 사발의 피를 욱컥 토해냈다.

그와 함께, !

그는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 채 그대로 꼬구라졌다.

절명한 것이다. 하나,

흐흐...!”

혈사음령은 남궁걸의 죽음에도 아랑곳조차 하지 않았다.

그 자가 막 죽은 중년미부를 범하려 할 때였다.

우 우!”

돌연, 한 소리 웅후한 장소성이 장원을 뒤흔들었다.

순간,

!”

크윽...!”

혈사음령과 그 자의 수하들은 심맥이 터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누구냐?”

혈사음령은 대경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자는 아무렇게나 바지를 끌어 올리며 홱 돌아섰다.

천인공노할 놈들!”

그런 그 자의 귓전에 얼음장같이 냉혹한 일갈이 들려왔다.

직후, 쉬 익! 허공으로부터 한 줄기 백영이 선풍을 일으키며 벼락같이 날아내렸다.

...!”

혈사음령은 그 엄청난 신법에 공포의 눈빛으로 비칠비칠 물러났다.

그때,

어머님!”

자지러질 듯 처절한 소녀의 비명이 장내를 울렸다.

나타난 백의인영,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품 속에 한 명의 소녀를 안고 있었다.

군무현과 남궁혜미, 바로 그들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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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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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八 章

 

                     中原第一才女

 

 

 

천하인(天下人)들은 경악했다.

열화신문(熱火神門)의 멸망(滅亡)!

그것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도저히 믿지 못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천하최강의 화기(火器)를 지닌 열화신문!

날로 욱일승천하는 당당한 위세의 열화신문이 하룻밤 사이에 초토화되고 만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무림에 일대 파문을 몰고왔다.

무수한 의혹과 구구한 억측이 분분하게 떠돌았다.

그 속에서 문득 천하인들은 생각했다.

 

적룡세가(赤龍勢家)의 투혼(鬪魂)이 되살아 나고 있다!

 

무슨 연유에서일까? 무림인들은 적룡세가의 투혼을 떠올리며 전율했다.

대파산(大巴山)! 그곳에서 열화신문을 비롯하여 백염보(白焰堡), 천신궁(天神宮) 등 삼파(三派)의 정예 일백 명이 한 자루 검()에 의해 몰살당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때는 설마했다.

하나, 그 사건 이후 불과 이틀이 지났을 때, 이번에는 열화신문이 완전히 괴멸된 것이었다.

이는 결코 우연으로 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비로소 무림인들은 긴장과 전율에 몸을 도사리게 되었다.

그들은 섬전같이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생각에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기이하게도 그들은 오년 전 멸망한 적룡세가를 제일 먼저 뇌리 속에 떠올린 것이었다.

그것은 적룡대제(赤龍大帝)의 불굴의 신조(信條)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 또한 남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남이 나를 건드린다면 천만(千萬)의 적()이라도 결코 피하지 않는다!

 

적룡대제 생전의 웅후한 사자후가 무림인들의 귓전에 생생히 들려오는 듯했다.

적룡세가의 몰락!

삼천 명의 적룡검사의 장렬한 죽음, 그들의 피끓는 투혼이 다시 살아나 무림을 휩쓰는 듯했다.

이렇게 되자, 적룡세가를 치는 데 참가한 수만 명의 정사무림인들은 머리를 싸매며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또 한 가지 충격이 무림을 벌컥 뒤집어 놓았다.

 

...! ... 그 자는 인간도 아니다. 본보(本堡)의 일천 무사가... 몰살 당했다...!

 

온통 공포에 질려 다 죽어가던 한 명의 피투성이 노인, 천신궁(天神宮)의 마지막 생존자가 남긴 그 한 마디는 천하를 격랑 속으로 휘몰아 넣기에 충분했다.

 

백의염왕(白衣焰王)!

그는 호북(湖北)의 명가 백염보(白焰堡)의 보주였다.

그는 마지막 그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천신궁(天神宮)으로 달려왔다.

하나, 결국 그는 천신궁의 문 앞에 쓰러져 치를 떨며 죽어갔다. 실로 처참한 최후였다.

열화신문이 무너진 다음날, 이번에는 백염보다 형체도 없이 적의 손 아래 괴멸되었다.

이것으로, 암중살수가 과거 적룡세가의 후예임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해진 것이다.

 

한편, 군무현! 그 일인(一人)으로 인하여 천하가 격동하고 있을 때, 춘풍(春風)과 함께 거센 마풍(魔風)이 천하를 휩쓸었다.

 

천마궁(天魔宮)!

 

그들의 등장이 또 한 번 무림을 경동시켰으니... 오년 전, 적룡세가의 멸겁을 기화로, 그 육십 년 만에 천마궁(天魔宮)이 다시 무림에 출현한 것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천하를 향해 검은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으하하! 천마(天魔)는 무적(無敵)이다! 굴복하지 않으면 멸겁만이 있을 뿐이다!

 

광언(狂言)! 엄청난 광소와 함께 천마궁은 노도같은 기세로 천하를 휩쓸었다.

그와 함께, 무림의 처지에서 돌풍이 일기 시작했으니...

 

흑도십팔절(黑道十八絶)!

 

흑도(黑道)를 주름잡던 그들이 하루 아침에 천마궁의 분타로 돌변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녹림칠십이채(綠林七十二菜)도 천마궁에 충성을 맹세했다.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삽시에, 천하의 절반이 천마궁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으니... 천마궁의 기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어 나갔다.

불길! 거대한 마()의 불길이 무림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들은 구파일방과 정파무림에까지 마수(魔手)를 뻗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혈풍(血風)! 피의 바람이 분다.

천하대분란의 막()이 바야흐로 걷혔으니...

 

X X X

 

헉헉...!”

한 명의 백의소녀가 숨가쁘게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연신 가쁘게 할딱거리며 내달리는 소녀, 이제 십칠팔세 정도 되었을까?

소녀의 미모는 절륜하기 이를데 없었다.

한 번 쳐다보기만 하면 도저히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해맑은 소녀, 그녀의 아름다움은 햇살같이 투명하게 빛이 났고 청순하고 고귀한 기품마저 함께 지니고 있었다.

크고 맑은 너무도 순결한 눈빛, 그것은 무한한 지혜가 반짝이는 혜안(慧眼)이었다.

하나, 지금 소녀의 형색은 실로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전신은 온통 땀으로 범벅되어 엉망이었다.

입고 있는 백의(白衣)마저 어겨저기 찢기고 먼지로 더럽혀져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그녀의 앙증맞고 귀여운 두 발은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녀는 무엇엔가 쫓기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속 달렸다.

그러다 문득, !

!”

그녀는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뾰족한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바람에, 섬섬옥수가 터지고 무릎이 깨져 선혈이 하얀 치마 밑으로 베어 흘렀다.

소녀는 고운 옥용을 찡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나,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다시 몸을 일으켰다.

헉헉... ... 어서 가야지!”

그녀는 다시 바쁘게 교족을 떼어놓았다.

한데, 그때였다.

흐흐흐...!”

돌연 한 가닥 음산한 괴소가 소녀의 귓전을 울렸다.

!”

소녀는 안색이 급변하며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스슥! ! 소녀의 주윌 세 명의 회포인들이 날아내렸다.

... 당신들이...!”

소녀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주춤 뒤로 물러났다.

세 명의 회포인, 그 자들은 삼십대 정도로 보이는 장한들로 한결같이 음침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그자들 중 두 눈이 가늘게 찢어져 잔혹한 인상을 풍기는 한 명의 장한이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 네 년이 뛰어봤자 벼룩이지 별수 있느냐?”

말과 함께, 그자들은 천천히 소녀의 곁으로 다가섰다.

소녀는 몸을 잔뜩 움츠리며 앙칼진 음성으로 외쳤다.

다가오지 마세요!”

그녀는 급히 품 속에서 한 자루 작은 옥검(玉劍)을 빼들었다.

하나,

흐흐...!”

쉬 잇! !

음침한 괴소와 함께 한 명의 장한이 가볍게 지풍을 날려 소녀의 옥검을 떨어드렸다.

옥검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

콰당! 소녀는 마혈이 찍혀 그대로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장한들은 바닥에 쓰러진 소녀를 노려보며 음험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네년은 중원제일재녀(中原第一才女)! 살려두면 후환이 될 것이다!”

그 자들은 두 눈에 흉흉한 살기를 띄우며 소녀를 향해 다가섰다.

한데 그때, 문득 그 자들 중 털복숭이 장한이 두 눈에 야릇한 광채를 번득이며 소녀를 노려보았다.

백의소녀, 그녀의 흐트러진 상의 사이로 뽀얀 젖가슴이 반쯤 드러나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소녀의 순결한 젖가슴을 본 순간, 그 자는 당장 음욕이 솟구쳤다.

잠깐! 기왕 죽일테니 즐기고 죽여도 늦지 않을걸세!”

그 자는 음소를 흘리며 두 동료를 향해 동의를 구했다.

그 자의 제의에 두 장한 역시 마다치 않았다.

클클... 좋다!”

그 자들의 두 눈은 이내 욕정으로 음탕하게 번들거렸다.

그 자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백의소녀, 그녀는 치욕과 분노, 그리고 두려움을 금치 못하며 교구를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 세 장한들은 탐욕의 눈을 번득이며 소녀를 향해 바짝 다가들었다.

다음 순간, 찌 익!

그 자들 중 한 명이 거칠게 소녀의 상의를 찢어냈다.

!”

소녀는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와 함께, 그녀의 사의 자락이 길게 찢어지며 소담스럽고 흰 젖가슴이 드러났다.

그것을 본 순간,

... 못참겠다!”

한 명의 장한이 성급히 소녀의 교구를 덮쳐들었다.

그러자, 나머지 두 장한도 질 수 없다는 듯 한꺼번에 소녀에게 덤벼들었다.

클클... 혼자 차지하려고?”

같이 즐기자... 흐흐...!”

그 자들은 음소를 흘리며 다투어 소녀의 몸을 탐하려 들었다.

아악!”

소녀는 한꺼번에 세 흉한에 짓눌린 채 공포의 비명을 내질렀다.

하나, 어쩌라?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몸이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으니... 마혈이 짚힌 이상 그녀는 저항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세 흉한들은 서로 다투듯 소녀의 작은 육봉을 움켜 쥐었다.

... !”

소녀는 엄청난 고통과 수치감에 와락 오열을 터뜨렸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만 싶었다.

한데, 그녀가 막 결연한 표정으로 혀를 깨물려는 순간이었다.

일어나랏!”

돌연 한 소리 싸늘한 냉갈이 세 흉한의 뒷통수를 때렸다.

순간,

!”

웬놈이냐?”

한창 소녀의 몸을 유린하던 세 흉한들은 날벼락을 맞은 듯 흠칫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언제였을까? 그 자들의 이 장 뒤,

“...!”

한 명의 백의청년이 유령같이 우뚝 서 있지 않은가?

얼음으로 깎은 조각상인 듯 희고 냉막한 얼굴, 그의 등 뒤로는 하나의 긴 가죽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군무현은 얼음장같이 냉혹한 눈으로 세 흉한들을 주시했다.

어린 소녀를 욕보이려 하다니...!”

그는 만면에 싸늘한 살기를 띠며 천천히 흉한들을 향해 다가섰다.

순간, 세 흉한들은 움찔했다.

하나, 그 자들은 이내 흉광을 번뜩이며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 감히 사망림(死亡林)이 하는 일에 끼어들다니...!”

죽어랏!”

위 잉! 꽈릉...

그자들은 흉흉한 폭갈과 함께 일제히 군무현을 향해 짓쳐들었다.

하나,

짐승만도 못한 놈!”

콰쾅! 한 소리 냉혹한 외침과 함께 군무현의 우수에서 벼락치는 듯한 굉음이 작렬했다.

직후, 콰르릉 콰쾅!

가공할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들었다.

동시에,

크윽!”

케 엑!”

한 줄기 혈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보라! 어느새 세 흉한들은 가슴이 박살난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지 않은가?

 

수라혈강수!

 

군무현이 펼친 것은 바로 혈영천종(血影天宗)의 무공이었다.

그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백의소녀,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반짝 이채를 띄웠다.

(... 강하다. 기인(奇人)을 만났어!)

그녀는 놀라움과 함께 기대의 눈빛을 지었다.

그때, 파팟! 군무현이 가볍게 지력을 날려 소녀의 마혈을 풀어 주었다.

이어,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순간,

... 잠깐만요!”

백의소녀는 다급한 음성으로 외쳤다.

그녀는 옷깃을 여미며 황급히 일어섰다.

“...!”

군무현은 무표정한 안색으로 천천히 돌아섰다.

이어, 그는 전혀 감정이 깃들지 않은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백의소녀는 군무현의 너무도 무심한 음성에 일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나,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내심 재빨리 염두를 굴렸다.

(이 분이라면 충분히 본 세가의 위기를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이어, 그녀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염치없는 말씀이오나... 한 가지 도움을 주셨으면...!”

군무현은 아무런 대꾸없이 무심한 눈으로 백의소녀를 주시했다.

백의소녀는 지혜로운 혜안에 초조한 빛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소녀는 남궁혜미(南宮慧美)라 하오며 남궁세가(南宮勢家) 출신이예요!”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이 어린 계집이 남궁혜미(南宮慧美)...!)

그녀의 이름은 언뜻 들은바가 있었다.

그대가 중원제일재녀(中原第一才女)인가?”

부끄러워요!”

백의소녀 남궁혜미는 옥용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남궁혜미(南宮慧美)!

남궁세가(南宮勢家)의 천금(千金).

그녀는 어려서부터 이미 천하재녀(天下才女)로 소문나 무림을 경동시켰다.

그녀의 지혜는 실로 추측할 길이 없을 정도로 깊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천()을 터득하는 뛰어난 오성의 소유자, 세 살 때 이미 제자백가서에 스스로 주해(註解)를 붙일 정도였으니 가히 그 재능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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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七 章

 

                          赤龍의 분노

 

 

 

크아 악!”

아악!”

다시 후원 쪽에서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 중에는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도 섞여 있었다.

천염화신은 마침내 발작하고 말았다.

으으... 이놈! 기다려라!”

! 그는 하늘이 무너져라 찌렁찌렁한 폭갈을 내지르며 벼락같이 몸을 날려 후원으로 달려갔다.

순간,

문주님!”

... 사부님!”

온유와 그의 두 제자는 황급히 천여화신을 저지하려 했다.

하나, 천염화신은 미처 그들이 만류할 틈도 없이 벼락같은 기세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천염화신은 홍포를 펄럭이며 대전의 후원으로 날아내렸다.

다음 순간, 콰르릉! !

그는 다짜고짜 거칠게 일장을 후려쳐 전각의 문을 박살냈다.

후원의 전각, 그곳은 천염화신의 부인이 거처하고 있는 곳이었다.

천염화신은 전각의 문을 쳐부수고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었다.

한데 그 순간,

!”

그는 다급히 숨을 들이키며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그의 전신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세차게 경련했다.

침상 위, 한 명의 중년미부가 자리옷 차림으로 누워 있었다.

하나, 그녀는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입가에 검붉은 선혈을 머금은 채 즉사해 있지 않은가?

천염화신은 엄청난 충격과 분노로 머리카락이 뻣뻣하게 곤두섰다.

... 으으... 부인!”

그는 안면을 처절하게 이지러뜨리며 신음하듯 외쳤다.

이어, 중년미붕의 시신을 와락 끌어안는 천염화신, 그의 두 손은 엄청난 분노와 비통함으로 연신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데, 그가 처절한 분노와 슬픔에 잠겨 있을 때였다.

크 악!”

대전 쪽에서 다시 한소리 참담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순간, 천염화신은 안색이 홱 변했다.

그것은 귀에 익은 음성이었다.

열화신문의 군사 온유의 비명이 아닌가?

...!”

천염화신은 불신의 표정으로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경악과 분노로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하나, 그와 함께 그의 심중 깊은 곳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공포! 그것은 소름끼치는 공포였다.

천염화신은 갑자기 전신이 오그라붙는 듯한 숨막히는 전율과 긴장감을 느꼈다.

(... 이 방 어디에선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불안과 초조가 뒤얽힌 눈으로 급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없다. 아무도 없었다.

하나,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전율과 숨막히는 긴장감이 팽팽히 그의 전신을 조여왔다.

갑자기 그는 미칠 듯 초조해졌다.

... 대전으로 가야 한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 그는 팽개치듯 부인의 시신을 집어던지며 전각 밖을 향해 쫓기듯 몸을 날렸다.

(...!)

대전이 가까워지자 비로소 천염화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일단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에는 까닭이 있었다.

대전 주위, 그곳에는 열화천염대진을 이루는 열화신문의 정예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바로 천염화신이 가장 믿는 세력이었다.

천염화신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어, 그는 태연을 회복하려는 듯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아무일도 없느냐?”

그는 한 명의 장한을 향해 위엄있는 음성으로 물었다.

바로 그 순간, 스르르... !

놀랍게도 그 장한이 선 자세로 그대로 바닥으로 허물어지는 것이 아닌가?

!”

천염화신은 대경하며 급히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두 눈은 엄청난 경악과 불신 회의의 빛이 마구 뒤엉켜 떠올랐다.

... 이럴 수가... ... 모두 죽다니...!”

그는 순간적으로 절망감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가장 믿었던 보호세력마저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 아닌가?

과연, 열화천염대진을 이루고 있는 장한들은 이미 산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선 자세로 그대로 절명한 것이 아닌가?

이는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지닌 천하제일의 화기(火器)를 한 번 써보지도 못한 채 즉사하고 만것이었다.

... ...!”

천염화신은 더 이상 경악하고 분노할 여력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몸을 숨기는 일이었다. 우선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급히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대전을 향해 다가갔다.

가는 도중 그는 잔뜩 공포의 표정을 지은 채 죽어있는 온유와 그의 두 제자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 천염화신은 그들의 시신을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목숨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 열화신동(熱火神洞)만이 안전하다!)

내심 그렇게 판단한 천염화신, 그는 사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열화신동(熱火神洞)!

그곳은 열화전(熱火殿)의 지하에 위치한 극히 은밀한 곳이었다.

열화신문의 모든 화기가 비장되어 있는 장소, 몸을 숨기기에는 그야말로 최적격이었다.

 

! 천염화신은 황급히 대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대전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쫓기듯 태사의를 향해 다가갔다. 이어, 그는 떨리는 손으로 태사의를 잡고 한차례 빙글 돌렸다.

그러자, 그르릉! 묵직한 굉음과 함께 태사의가 뒤로 밀려났다.

그와 함께, 그곳에 하나의 음침한 통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짧은 순간 천염화신의 두 눈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열화신동이라면 안전할 것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한 발을 동굴 안으로 들여 놓았다.

하나,

!”

그 순간 그는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통로 안, 그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백의청년, 한 명의 백의청년이 유령같이 우뚝 서 있지 않은가?

... 네놈은...!”

천염화신은 사색이 된 채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하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쾅! 돌연 강맹한 강기가 천염화신의 가슴을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크악!”

쿵쿵! 그는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삼 장 뒤로 휘청 물러났다.

물러서면서 그는 한 모금의 선혈을 왈칵 토해냈다.

그때, 뚜벅뚜벅... 백의청년이 지극히 냉혹한 표정으로 천천히 천염화신이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발자국 소리는 마치 천신(天神)의 그것처럼 묵직하고 공포스러웠다.

천염화신은 사색이 되어 전신을 부르르 경련했다.

으으... ... 네놈이 바로...!”

그는 경악과 불신, 공포가 뒤범벅이 된 눈으로 백의청년을 주시했다.

백의청년은 냉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 본인은 적룡대제의 아들 군무현이다!”

...!”

천염화신은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전율에 부르르 전신을 떨었다.

백의청년 군무현은 그런 천염화신을 노려보며 물씬 살기가 풍기는 냉혹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네놈의 목을 베러왔다!”

천염화신은 안면을 씰룩거리며 눈을 부릅떴다.

이어, 그는 이를 악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흐흐... 잘 만났다!”

그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음험한 괴소를 터뜨렸다.

다음 순간, 화르르! 돌연 그의 몸 주위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실로 갑작스런 사태였다.

군무현의 칼날같은 검미가 무섭게 꿈틀했다.

이어, 그는 천천히 적룡검을 치켜들었다.

천염화신은 시뻘건 안광을 폭사하며 음험한 괴소를 흘렸다.

크크... 천염화룡기(天焰火龍器)!”

순간, 화르르... 콰 쾅!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가공할 극양지기가 군무현의 전신을 휩쓸어왔다.

군무현의 안색이 얼음처럼 냉혹하게 굳어졌다.

직후,

적룡뇌후(赤龍雷侯)!”

그의 입에서 한소리 찌렁찌렁한 대갈일성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파파팟! 번 쩍!

일섬 검광(劍光)이 시뻘건 화염속을 갈랐다.

양인의 공격이 충돌하는 순간, 꽈르릉! !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뒤이어, 과콰쾅! 쿠쿵...

대전 전체가 지진을 만난 듯 뒤흔들리는가 싶더니 삽시에 대전의 지붕이 박살나며 구멍이 뻥 뚫렸다.

같은 순간,

크 윽!”

!

천염화신의 동체가 목과 분리되며 거칠게 바닥으로 나가 떨어졌다.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일순 허공으로 피보라가 확 솟구쳐 올랐다.

즉사한 것이다. 당금천하를 호령하던 거물 천염화신!

그자의 최후였다.

갑자기 주위는 깊은 적막속에 빠져들었다.

군문현, 그는 무표정한 눈으로 천염화신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밤이 깊었군!”

그는 무심한 음성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천천히 수중의 적룡검을 검집에 꽂았다.

그런 그의 가슴부분, ! 끔찍하게도 그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가 있었다.

극심한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극령정뇌수를 복용하여 최강의 극음지기를 지닌 군무현, 그런 그가 이토록 극심한 화상을 입다니...

천염화신의 천염화욜기는 과연 대단한 것임이 확인된 셈이었다.

이윽고, 군무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무거운 걸음걸이로 대전을 나섰다. 왠지 돌아서는 그의 등은 고독해 보였다.

 

화르르 쿠쿠쿵...

불길, 거대한 화마가 어둠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며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열화신문(熱火神門)!

그 속에 열화신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열화신문의 멸망이 천하를 벌컥 뒤집어 놓으리라.

 

< 二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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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六 章

 

                復讐始作

 

 

 

... 어느 놈이든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육시를 내어 죽이고 말리라!”

천염화신, 그는 터질 듯한 분노를 참지 못하며 가공할 살광을 폭사했다.

하나, 군사(軍師) 온유(溫儒)는 지극히 침착했다.

그는 유현한 눈을 빛내며 시신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순간, 그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음공(音功)에 당했다. 지극히 극고한 내가진기가 실린 음파(音派)에 저항도 못하고 전신심맥이 끊어져 절명했다!)

그는 세 구의 시신의 사인(死因)을 이내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한줄기 서늘한 기운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그것은 은은한 공포의 기분이었다.

(적은 암중에 있고 우리는 드러나 있는 상태다!)

온유는 내심 중얼거리며 안색이 굳어졌다.

이어, 그는 고개를 돌려 천염화신을 바라보았다.

천염화신은 기다렸다는 듯 성급히 다그쳐 물었다.

그래, 어떤가?”

그의 물음에 온유는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의외로 강적인 것 같습니다.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천염화신은 굵은 눈썹을 꿈틀 치켜세웠다.

무슨 소린가?”

온유의 음성은 여전히 낮고 침착했다.

이들의 사인(死因)은 음파(音派)입니다!”

“...!”

그 말에 천염화신은 흠칫했다. 다음 순간, 그는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켜 바닥에 내려섰다.

이어, 그는 강렬한 안광을 번득이며 세 구의 시신을 살펴보았다.

그의 옆에서 온유가 설명을 덧붙였다.

겉으로는 멀쩡하나 이들의 내부는 완전히 박살나 있습니다. 이 정도의 음파를 내려면 적어도 이갑자 이상의 공력이 필요합니다!”

“...!”

천염화신의 안색도 점점 굳어졌다. 뭔가 불안한 예감이 그의 뇌리속을 스쳤다.

온유는 그런 천염화신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원흉은 암중에 있는 반면 본문은 밝은 곳에 드러나 있는 상태입니다. 보이는 창은 두렵지 않으나 보이지 않는 화살은 방비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

게다가... 적은 소리도 흔적도 없이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귀신같은 자입니다!”

천염화신은 마음이 천근인 듯 무거워졌다.

불길같은 분노는 어느새 무서운 압박감과 긴장으로 바뀌어졌다.

그는 침착을 회복했다.

알았네. 대전 주위에 열화천염대진(熱火天焰大陣)을 펼치게. 그리고, 전 문도들은 화기를 소지하고 요소요소에 잠복하라 이르게!”

그는 군사인 온유에게 침중한 어조로 지시했다.

곧 시행하겠습니다!”

온유는 허리를 숙여 대답했다. 이어, 그는 빠르게 대전 밖으로 사라졌다.

천염화신은 뒷짐을 진 채 대전 안을 왔다갔다 했다.

으음... 어느 놈이 감히 본문을 노린단 말인가?”

그는 들끓어 오르는 심중을 주체할길 없었다.

한껏 부릅떠진 그의 두 눈에서는 시뻘건 광망이 줄기줄기 폭사되어 나왔다.

당금 천하를 떨어 울리는 당당한 위세의 열화신문!

그런 자신의 문파가 한 무명(無名)의 인물에게 위협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천염화신의 자존심이 도저히 용납지 않는 일이었다.

문득, 천염화신은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불끈 움켜쥐었다.

하나, 왜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가슴팍을 기어오르는 것은... 천염화신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무겁게 가슴을 짓눌러 오는 불안감을 떨어버리려는 듯, 어느새,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경(二更), 사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검은 묵운(墨雲)이 한 조각 남은 섬광(閃光)마저 가려버려 천지는 깊은 어둠속에 잠들어 있었다.

어둠속에 거대한 괴수처럼 웅크린 열화신문, 숨막히는 공포와 긴장감이 열화신문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사위는 조용했고 불이 꺼진지도 이미 오래였다.

모두 잠든 것일까?

하나, 단 한 곳, 불빛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었다.

홍광(紅光), 그것은 열화신문의 대전(大殿)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열화전(熱火殿).>

 

대전의 입구에는 그와 같은 편액이 걸려 있었다.

대전 안! 십여 명의 인물들이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상좌(上座), 홍포 차림의 천염화신 공무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 군사(軍師) 온유와 천염화신의 두 제자, 그리고 열화신문의 원로들인 화령오로(火領五老)가 착석하고 있었다.

“...!”

“...!”

침묵, 대전 안은 목을 조이는 무거운 침묵이 깔려 있었다.

중인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모두 질식할 것 같은 거북한 표정들이었다.

천염화신 역시 그러한 기분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불안과 긴장에 온 몸이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하나, 그는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 우둑...! 그는 신경질적으로 두 손의 관절을 주물러댔다.

그때마다 관절이 부딪히는 소리가 중인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때, 온유가 침묵을 깨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문주!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자가 아무리 은밀해도 열화천염대진에 걸리면 별수없이 한줌 재로 화하고 말 것입니다.”

그는 천염화신을 안심시키려는 듯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화령오로 중 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렇습니다. 과거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라던 적룡대제(赤龍大帝)조차도 열화천염대진(熱火天焰大陣) 앞에서 한줌 재로 쓰러졌...!”

그 순간, 천염화신의 안색이 홱 돌변했다.

파파팍! 그가 얼마나 격동했는지 움켜쥔 태사의의 팔걸이가 단번에 박살나 버렸다.

그는 비로소 생각난 듯 안면을 거칠게 씰룩거렸다.

적룡세가...! 적룡세가를 왜 생각지 못했단 말인가?”

그 모습에 온유는 미간을 모으며 물었다.

문주께서는 적룡세가의 후예가 본문에 복수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천염화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적룡세가를 무너뜨릴 때 선봉에 선 것은 바로 본문이 아닌가? 적룡세가의 후예가 있다면 가장 먼저 본문을 노릴 것이네!”

그는 불현 듯 생각난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당혹함을 금치못하는 기색이었다.

 

오 년 전!

열화신문은 다른 십이대 문파와 연수하여 무림최강(武林最强)으로 군림하던 적룡세가를 궤멸시켰다.

그들이 적룡세가를 친 이유는 적룡대제가 천지십강(天地十强)의 비급을 얻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하나, 그것은 단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열화신문을 포함한 강호대파는 항시 무림최강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적룡세가를 경원했다.

그들은 호시탐탐 적룡세가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겉으로는 내식지 않았으나 암중으로 항상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결국 그들은 적룡세가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하나, 과연 그것이 정당한 일이었던가?

그것은 스스로의 양심에 자문해볼 일이었다.

온유(溫儒), 그는 그럴리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적룡대제도 분명히 죽었고 삼천의 적룡검사(赤龍劍士)들도 모두 쓰러졌습니다!”

하나, 천염화신은 침중한 안색으로 말했다.

하지만 적룡대제의 독자(獨子) 군무현이란 애송이의 죽음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

“...!”

중인들의 안색이 일제히 납빛으로 변했다.

그렇다. 왜 거기까지 생각지 못했던가?

하나... 그들의 깨달음은 이미 늦은 것이었다.

천염화신, 그는 벌떡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대전 앞을 불안하게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숨막히는 침묵이 대전 안에 팽팽하게 깔렸다.

중인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긴장감으로 굳어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으아 악!”

돌연 대전 밖에서 심장을 쥐어뜯는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순간,

!”

“...!”

중인들은 섬뜩한 전율을 금치못하며 일제히 벌떡 일어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짙은 공포와 긴장감이 숨막힐 듯 떠올랐다.

하나, 비명은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무섭도록 암울한 적막이 찾아들었다.

심장을 후벼파는 공포의 적막, 천염화신, 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안면을 거칠게 씰룩거리며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하나 그때, 온유가 급히 나서며 그의 행동을 저지시켰다.

문주! 나가시면 암중살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 ...!”

천염화신은 두 주먹을 으스러질 듯 움켜쥐며 격분을 금치못했다.

찢어질 듯 부릅떠진 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섰다.

그때, 온유가 급히 화령오로를 향해 눈짓을 해보였다.

오로(五老)께서 살펴보아 주십시오!”

그 말에 화령오로는 흠칫하는 기색이었다.

하나, 그들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소!”

말과 함께, 그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이어,

, 가세!”

!”

! 스슥! 그들은 즉시 대전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데, 화령오로가 막 대청을 벗어나는 순간,

!”

크윽...!”

아 악!”

다섯 마디의 처절한 비명이 동시에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 ! 둔중한 음향이 적막한 대청을 울렸다.

순간, 천염화신의 안색이 홱 돌변했다.

오로(五老)!”

! 그는 격노한 음성으로 외치며 벼락같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 스슥! 온유와 천염화신의 두 제자도 황급히 몸을 날렸다.

 

대전 밖!

몇 명의 장한들이 모여선 채 공포에 질린 안색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천염화신은 급히 장한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오로!”

그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화령오로(火靈五老)! 그들이 오공에서 검붉은 피를 흘리며 즉사해 있는 것이 아닌가?

천염화신은 경악과 분노로 전신을 부르르 경련했다.

하나, 그는 애써 침착을 회복하여 화령오로의 시신을 살피기 시작했다.

...!”

다시 그의 안색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부르르 전신을 떨며 입술을 악물었다.

화령오로 역시 내부가 강력한 음파에 의해 박살나 절명한 것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광경을 확인한 온유, 그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림을 느꼈다.

(죽음이... 바로 곁에 있다!)

그것을 깨닫자 전신에 오싹 한기가 치밀었다.

그때, 천염화신은 미친 듯 대노하여 어쩔줄 몰라했다.

어떤 놈이냐? 어느 놈이 비겁하게 암중에서 살인을 하느냐?”

그는 사방을 둘러보며 격분에 찬 음성으로 대갈을 내질렀다.

온유는 그런 천염화신의 모습에 쓴 웃음을 지으며 한 명의 장한을 불러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

그의 물음에 장한은 몸을 부르르 떨며 공포의 기색을 지었다.

... 모르겠습니다. 오로께서 허공에서 갑자기 벼락을 맞은 듯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들 또한 영문을 모르는 듯 했다.

으음...!”

온유는 침음성을 발하며 안색이 무겁게 굳어졌다.

한데, 사건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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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五 章

 

                熱火神門劫風

 

 

 

스스스... 한 순간, 장내를 뒤덮었던 검영(劍影)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

“...!”

침묵, 죽음같은 침묵이 장내를 무겁게 짓눌렀다.

이인(二人), 장내에는 단 두 사람만이 우뚝 서 있었다.

군무현, 그리고 천마묵룡이었다.

천마묵룡은 아연한 표정으로 멍하니 군무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군무현은 마음이 침중해졌다.

(내 손속이 지나쳤는가?)

그는 스스로 자문하여 착잡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 끔찍했다.

시산혈해(屍山血海)!

그야말로 장내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루었다.

아비지옥(阿鼻地獄)의 광경이 이토록 처참할 것인가?

실로 몸서리쳐지는 참극이었다.

하나, 군무현의 안색이 문득 냉혹하게 굳어졌다. 그는 내심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불러들인 화가 아닌가?)

그는 냉혹하게 얼어붙은 눈빛으로 스스로의 양심의 자문마저도 거부했다.

(), 그의 한은 너무도 깊고 컸기 때문이다.

이때, 천마묵룡은 싸늘하게 굳은 군무현의 안색을 바라보며 몸서리를 쳤다.

(... 지독한 살기다. 대체 어떤 원한이 있기에 저토록 가공할 살기를 발산한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때, 군무현이 들고있던 적룡검을 검집에 꽂으며 천천히 돌아섰다.

순간,

잠깐!”

천마묵룡은 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군무현은 묵묵히 몸을 돌렸다.

그 순간,

“...!”

“...!”

두 사람의 시선이 불꽃 튀기듯 맞부딪혔다.

파 앗! 두 줄기 강렬한 섬광처럼 그들의 눈빛이 서로 얽혀들었다.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렸다.

(뛰어난 인물이다. 패기(覇氣)가 지나친 것이 흠이라면 흠일 뿐...!)

그는 천마묵룡의 인물됨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때, 천마묵룡이 정중히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천마궁(天魔宮)의 제자 천마묵룡(天薇墨龍) 혁세민(赫世珉)이요!”

그 말에 군무현의 먹물같은 검미가 꿈틀했다.

(천마황(天魔皇)! 그자의 후예...!)

그의 가슴에 일순 뜨거운 것이 불끈 치밀어 올랐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군무현은 내심 씁슬하게 중얼거렸다.

(유감이군. ()이 되고 싶지 않은 친구인데...!)

이어,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천마묵룡을 주시하며 말했다.

다시 만나게 될 때는 어쩌면 검()을 맞대야 할지도 모를 것이오!”

그 말과 함께, 스슥...! 그의 모습은 장내에서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

천마묵룡은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지는 군무현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문득, 그는 미간을 좁히며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검을 맞댄다고? 나의 사문(師門)과 무슨 원한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 이내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탄식했다.

사조(師祖)께서 삼십 년 전에 실종된 이래 본궁은 사조님의 뜻과는 달리 패도(覇道)에 몰두하고 있다. 하나... 제자된 도리로 사부님의 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철컥! 그는 바닥을 향해 길게 늘어뜨리고 있던 묵검(墨劍)을 검집에 집어 넣었다.

몸을 돌리던 천마묵룡, 문득 그는 두 눈에 강렬한 신광을 발산하며 중얼거렸다.

저 친구와 검을 맞대더라도 별 수 없다!”

다음 순간, 스슥...! 그의 모습도 한줄기 바람으로 화해 장내에서 사라졌다.

한데, 천마묵룡이 사라지고난 직후, 스스스...!

문득 허공을 밟으며 한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신비한 경공, 뜻밖에도 그 인영은 회포(灰袍)에 죽립을 눌러쓴 비구니였다.

죽립 아래로 언뜻 비치는 두 눈, ! 그것은 실로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깊고 그윽하며 가을 저녁의 호수처럼 고요한 눈빛, 그 눈빛으로 미루어 젊은 여승(女僧)임이 분명했다.

아미타불...!”

여승은 장내를 둘러보며 탄식 섞인 나직한 불호를 외었다.

한데 그때,

...!”

문득 한소리 나직한 신음성이 그녀의 귓전에 들려왔다.

순간, 여승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살아있는 시주가 계시는 모양이다!”

그녀는 급히 소리가 들린 곳을 찾아 다가갔다.

갈가리 찢겨 제멋대로 널브러진 시신들 사이, 한 명의 청의경장녀가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한데, 그녀는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지극히 여린 신음성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아미타불...!”

그 모습을 주시하던 여승의 고운 아미가 절로 찌푸려졌다.

청의경장녀, 그녀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녀의 왼쪽 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정확한 일검(一劍)이 그어져 있었다.

그 바람에, 끔찍하게도 풍만한 오른쪽 유방이 쩍 갈라진 처참한 모습이었다.

여승은 나직한 탄식성을 터뜨리며 동정의 눈빛을 지었다.

천행(天幸)이다...!”

과연 그러했다. 만일, 청의경장녀, 즉 천래검봉이 사내였다면 심장이 갈라져 즉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 다행히 유방의 두께를 계산하지 않은 일검으로 간신이 심장이 갈라지는 것만은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파팟! ...!

여승은 천래검봉의 몇군데 대혈을 신속한 수법으로 짚었다.

이어, 스슥...!

그녀는 천래검봉을 안아든 채 나타난 것보다 더 신비한 경공으로 사라졌다.

 

X X X

 

하락(河洛), 호남(湖南)과 호복(湖北)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 하락 근교에는 하나의 산()이 있다.

 

뇌산(雷山)!

 

그것은 오래전에 이미 활동을 멈춘 화산(火山)이었다.

그 뇌산(雷山)의 산록, 하나의 웅장한 성보가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열화신문(熱火神門)!

 

천하제일(天下第一)의 화기술(火器術)을 자랑하는 하락(河洛)의 명가(名家)!

열화신문의 성세는 적룡세가와의 일전(一戰) 후 욱일승천했다.

 

천염화신(天焰火神) 공무현(空無現)!

 

이것이 당금 열화신문의 문주(門主) 이름이었다.

그는 화공(火功)에 있어 무적(無敵)임과 동시에 화기(火器)의 명인이었다.

그의 천염화룡기(天焰火龍氣)는 천하제일의 극양공력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화기술은 일시에 태산을 날려버릴 수 있는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고 한다.

한데... 열화신문(熱火神門)!

화기(火器)의 명가, 천하(天下)의 명가에 서서히 암운이 밀어닥치고 있었으니...

저녁무렵, 날씨는 왠지 음산했다.

암운(暗雲)이 뒤덮인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울 듯하다.

사위는 우중충하게 어두워지고 있었으며 알지 못랄 음울한 기운이 열화신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돌연, 두두두두...!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이어, 세 필의 준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쏜살같은 기세로 관도에 나타났다.

그것은 삽시에 열화신문의 장원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두두... 삽시에, 세 필의 준마는 열화신문의 보문(堡門)을 밀치고 들어섰다.

그 순간,

누구냣?”

보문을 지키던 호목(虎目)의 장한들이 번개같이 준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바람에, 히 잉! 세 필의 준마는 급정지했다.

그와 동시에, ! ! 털썩!

세 명의 기사(騎士)들이 무너지듯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한데 그 순간,

!”

... 아니...!”

보문을 지키던 장한들은 대경실색하며 눈을 부릅떴다.

마상(馬上)에서 추락한 세 명의 인물들, ! 그들은 놀랍게도 이미 오공에서 피를 쏟은 채 절명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경악으로 물러섰던 장한들 중 한 명이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 백염보로 전갈을 하러갔던 장이(張二) 등이다!”

그 말에 다른 장한들이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마상에서 굴러 떨러진 세 인물, 그들은 불과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마주앉아 밥을 먹었던 동료들이 아닌가?

섬뜩한 전율이 그들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

... 대체 어떤 놈이...!”

그들은 주먹을 움켜쥐며 치를 떨었다.

한데, 그때였다.

! 문득 한 구의 시신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혈지(血紙)! 그것은 섬뜩한 핏빛으로 물든 한 장의 혈지였다.

장한들 중 한 명이 떨리는 손으로 급히 혈지를 집어들었다.

 

<오늘밤 안으로 열화신문(熱火神門)이란 이름은 천하에서 사라지리라!>

 

혈지에는 그와 같은 내용의 냉혹한 경고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피냄새가 물씬 풍기는 죽음의 포고문이었다.

장한들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어,

... 문주께 알리자!”

! 스슥! 그들은 세 구의 시신과 혈지를 들고 급히 열화신문 안으로 사라졌다.

 

뇌산(雷山)!

그곳에 서면 열화신문이 환히 내려다 보인다.

뇌산의 정상(頂上), 한 명의 백의청년이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우뚝 서 있었다.

문득,

열화신문...!”

굳게 다물려 있던 청년의 입에서 한소리 나직한 뇌까림이 흘러나왔다.

한기가 물씬 풍기는 싸늘한 음성, 청년의 용모는 조각으로 빚은 듯 준미하고 인상적이었다.

하나, 그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마치 얼음처럼 차갑고 냉혹했다.

깊고 신비한 두 눈, 하나, 그 눈은 섬뜩하리만치 냉혹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백의청년, 그는 등 뒤에 제법 큰 하나의 가죽 주머니를 메고 있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그는 열화신문을 내려다보며 살기띤 어조로 중얼거렸다.

약속은 지킨다. 오늘밤이 열화신문 최후의 밤이 되리라!”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왠지 짙은 고독을 느끼게 하는 넓은 그의 등, 그 뒤로 죽음의 그림자와도 같은 짙은 암운(暗雲)이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열화신문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대전(大殿)!

대전 안은 온통 타는 듯한 홍색(紅色)으로 치장되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화려한 천축산 양탄자, 태사의를 장식한 부드러운 가죽, 심지어는 천정에 달린 궁등조차 한결같이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전의 상좌, 하나의 화려한 태사의가 놓여 있었다.

태사의에는 한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일신에 홍포를 걸친 인물, 그는 마치 뇌신(雷神)처럼 시뻘건 안색을 지니고 있었다.

으득... 어느 놈이... 감히 이따위 짓을 한단 말인가?”

홍포노인은 지금 한 장의 혈지(血紙)를 든 채 전신을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천하에서 가장 급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불길같은 노화를 참지못해 그의 안색은 더욱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 홍포노인의 앞, 외상(外傷)이 전혀 없는 세 구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홍포노인은 화등잔만한 두 눈을 한껏 부릅뜬 채 세 구의 시신을 노려보았다.

그때,

문주! 고종하십시오. 우선 시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명의 중년인이 침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비교적 청수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시신이 놓여있는 곳에 빈틈없는 자세로 시립하고 있는 인물,

 

온유(溫儒),

 

이것이 그 중년인의 이름이었다.

그는 열화신문의 군사(軍師)였다.

그의 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느낌 이상으로 그의 성격은 빈틈없이 치밀하고 침착했다.

홍포노인, , 열화신문의 문주인 천염화신(天焰火神)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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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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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四 章

 

                   廢墟에 돌아오다

 

 

 

“...!”

“...!”

독황후는 군무현의 시선과 마주치자 원독에 찬 눈빛으로 앙칼지게 소리쳤다.

목을 늘이고 기다려욧! 반드시 당신의 목을 베어버리고 말거예요!”

그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찢어진 자의(紫衣)로 몸을 가리며 동굴 밖으로 뛰쳐 나갔다.

“...!”

군무현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졌다.

문득, 그는 씁쓸한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적반하장이로군!”

한데, 그때였다.

!”

동굴 밖에서 날카로운 독황후의 비명이 들려왔다.

순간, !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무슨 일이오?”

그는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 급히 독황후의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독황후는 나무에 기대선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는 군무현이 다가서자 수치와 분노로 옥용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군무현을 노려보았다. 이어, 그녀는 홱 몸을 돌리더니 비칠거리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갔다.

군무현, 그는 멀어지는 독황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문득, 지난밤의 폭풍같은 정사(情事)가 생각났다.

독황후! 그녀의 몸은 따뜻하면서도 한없이 깊고 끈적끈적한 늪과도 같았다.

(여인의 몸이란... 그런 것인가?)

군무현은 나직이 뇌까리며 가볍게 얼굴을 붉혔다.

환몽지경에 나누었던 여체의 감각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하나, 이내 그는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어, 그는 다시 무심한 표정을 회복하며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많은 은원이 내 어깨에 걸려있다.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그는 안색을 굳히며 스스로에 다짐했다.

그때, 고개를 돌리던 그의 둔 눈에 문득 바닥에 점점이 피어있는 선명한 혈화(血花)가 들어왔다.

동굴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혈흔, 그것은 지난밤의 기억을 생생히 꽃피우고 있었다.

군무현은 그것을 바라보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는 묵묵히 의복을 걸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군무현은 동굴을 나섰다. 그의 표정은 무심하고 고독해 보였다.

그는 행로(行路)를 정한 상태였다.

적룡세가(赤龍勢家)로 먼저 가보야겠다!”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스슥! 군무현의 신형은 마치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X X X

 

검운산(劍雲山)!

 

대파산(大巴山) 남쪽 삼백리 밖의 험산(險山), 오년 전 까지만 해도 천하최강의 문파가 당당히 자리했던 곳이다.

 

적룡세가(赤龍勢家)!

철골협심의 호웅(虎雄)들이 모여 이루었던 대문파!

삼십 년의 짧은 연륜으로 당당히 천하최강으로 군림했던 적룡세가(赤龍勢家)가 바로 검운산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음모의 암운(暗雲)에 허무하게 쓰러졌던 비운의 문파, 그 적룡세가의 폐허가 검운산역에 스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천검봉(天劍奉), 검운산(劍雲山) 제일의 험봉, 거대한 성보의 위용은 간데없고 풍진에 버려진 을씨년스런 폐허만이 무상한 세월속에 남아 있었다.

검게 타들어가 부숴지고 허물어진 고루거각의 전각들, 그 잔해들이 무성한 잡초에 묻힌 채 덩그러니 누워있다.

적룡세가!

! 누가 믿겠는가? 이곳이 바로 오년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화려한 웅휘를 떨쳤던 적룡세가임을...

하나, 이곳은 허무하게 쓰러진 적룡세가의 폐허가 분명했다.

천검봉을 등진 적룡세가의 후원, 크고 높은 봉분들이 세워져 있었다.

 

<적룡충혼총(赤龍忠魂塚)!>

 

누가 그것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약 오장 높이의 석비(石碑), 바로 최후의 일인까지 적룡세가를 지키다가 장렬히 전사한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의 위패를 모신 것이었다.

전 무림의 연합공세 앞에서도 의연히 맞서 싸운 적룡지혼의 용사들, 그들은 모두 쓰러졌다.

최후의 일인가지... 그러나, 무림은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영원히...

비록 적()이라 할지라도 적룡검사들의 그 불타는 투혼은 전 무림을 숙연케 했다.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라던가?

영원히 죽지 않는 투혼을 심어준 그 영웅심(英雄心)...

 

적룡충혼총(赤龍忠魂塚) ,

“...!”

언제부터였을까? 한 명의 백의청년이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앞, 재가 된 지전(紙錢)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백의청년, ! 그는 바로 군무현이었다.

적룡세가의 소가주(少家主), 그는 벌써 반나절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두 눈에는 싸늘한 살기와 함께 강렬한 투지가 이글거렸다.

지켜보아 주십시오. 여러분을 의혈(義血) 속에 쓰러지게한 원수들이 어떻게 그 대가를 치루는지를...!”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힘껏 움켜쥐었다.

하나 하나... 목을 졸라 쓰러뜨려 줄것입니다. 그 첫 번째는 적룡세가를 불태우고 아버님을 분사(焚死)케한 열화신문(熱火神門)입니다!”

그는 둔 눈 가득 원한의 광망을 폭사하며 중얼거렸다.

그의 가슴은 엄청난 한()으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윽고, 그는 묵묵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적룡충혼총에 공손히 일배를 울리는 군무현, 그는 엄숙한 어조로 다짐했다.

다시 찾아올 때는 반드시 원흉의 목을 들고 올것입니다!”

그는 강렬한 눈빛을 이글거리며 적룡충혼총을 주시했다.

이어,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한데, 그가 막 서너보를 떼어 놓았을 때였다.

“...!”

군무현은 멈칫 걸음을 멈추며 검미를 꿈틀했다.

멀리서 은은히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감히 적룡지흔의 영면(永眠)을 어지럽히다니...!”

그의 전신에서 일순 섬칫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어느 놈이든 용서치 않는다!”

다음 순간, 파 앗! 그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천검봉 아래의 황폐한 공터, 우르르르... 차차창! 꽈르릉 펑!

엄청난 선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검풍(劍風)과 장영(掌影)이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

그곳에는 백여 명의 장한들이 엄밀한 진세로 일진포위하고 있었다.

모두 세 부류의 인물들, 그자들은 지금 중앙의 인물을 두고 합공(合功)을 펼치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의 중앙, 한 명의 청년이 합공에 대항하고 있었다.

나이는 이십 오 세 정도, 일신에는 날렵한 인상을 주는 흑포를 걸치고 있었다.

마치 한 마리 거호(巨虎)를 연상케 하는 웅맹한 용모, 그 기질이 범상치 않을뿐더러 일견하기에도 패도적인 인상을 물씬 풍기는 인물이었다.

그는 한 자루 묵검(墨劍)을 휘두르며 패도적인 검범으로 분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 우르르릉! 콰쾅!

세 부류의 장한들이 펼치는 공세는 실로 가공할 위력을 나타냈다.

흑포청년은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하나, 그는 전혀 고통스러움을 내색지 않았다.

한 마리 노호(怒虎)처럼 맹렬히 검세를 쏟아낼 뿐이었다.

츠츠츠... 파 앗!

그의 검세 또한 가히 산악을 쪼갤 듯 막강했다.

한편, 진세의 외각, 세명의 인물이 우뚝 선 채 장내를 관전하고 있었다.

이남일녀(二男一女), 홍포 차림의 청년과 백삼청년, 그리고, 청의경장녀가 그들이었다.

문득, 홍포청년이 장내를 주시하며 득의의 웃음을 터뜨렸다.

핫하... 드디어 골칫거리 소마종(少魔宗)을 제거하게 되었소이다!”

그의 말에 백삼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듯 대꾸했다.

이 모두 열화신문(熱火神門)의 소문주이신 공형(空兄)의 공로가 아니겠소?”

백삼청년의 공치사에 홍포청년은 기분좋은 듯 입을 헤벌쭉 벌렸다.

 

열화신룡(熱火神龍)!

그는 바로 열화신문(熱火神門)의 소문주인 열화신룡(熱火神龍)이었다.

 

열화신룡은 득의의 표정을 지으며 짐짓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하하... 그것을 어찌 소제의 공이라고 하겠소? 백의제갈(白衣諸葛) 사마형의 지모와 천래검봉(天來劍鳳) 위지(尉遲) 낭자께서 힘써주신 덕분이오!”

천래검봉(天來劍鳳)이라 불린 위지 성()의 여인, 그녀는 눈이 번쩍 뜨이는 미녀였다.

하나, 도도하고 오만한 인상이 장미의 가시처럼 날카롭게 느껴진다.

그녀는 오만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천마묵룡(天魔墨龍)이 아무리 날고 긴다해도 본 천신궁(天神宮)의 천신검대(天神劍隊)의 합공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거예요!”

그녀의 말에 열화신룡과 백의제갈(白衣諸葛)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굴한 표정으로 동조했다.

천래검봉! 그녀는 당금 정파에서 가장 강한 인물을 부친으로 두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천하의 인물들을 눈 아래로 깔아보는 오만한 성격이 날로 더하고 있었다.

과연, 흑포청년, 즉 천마묵룡(天魔墨龍)을 공격하고 있는 인물들의 위세는 엄청났다.

특히, 삼십육인(三十六人)의 검수들은 한 가지 절묘한 검진(劍陣)으로 천마묵룡을 궁지에 몰아 넣고 있었다.

꽈르릉... 꽈쾅! 쐐 액!

열화신문의 문도들이 강렬한 화기(火器)로 천마묵룡을 핍박하는 사이, 삼십육인의 검수, 즉 천신검대(天神劍隊)의 검진이 질풍같은 검기를 휘몰아쳤다.

하나, 천마묵룡, 그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위 잉! 파파팟!

그 역시 묵검을 떨치며 맹렬한 위세로 맞섰다.

그러나,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상대는 너무도 강하고 많았다.

한순간, 파파팍!

검붉은 피가 확 튀며 천마묵룡의 가슴이 늑골까지 드러날 정도로 깊게 갈라졌다.

그와 함께,

!”

흡사 철인(鐵人)을 연상케 하던 천마묵룡의 얼굴에 비로소 고통스러운 경련이 일었다.

그 모습을 주시하고 있던 천래검봉, 그녀는 교만과 득의에 찬 교소를 터뜨렸다.

후훗... 천마묵룡! 철인(鐵人)인줄 알았더니 아니었군!”

그녀는 오만한 표정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한데 그때,

누구냐?”

돌연 백의제갈이 흠칫하며 버럭 대갈을 내질렀다.

그는 안색이 일벽하여 눈을 부릅떴다. 멀리서 한 명의 인물이 질풍같이 다가오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었다.

순간,

“...!”

“...!”

그제서야 열화신룡과 천래검봉도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명의 청년, 여인을 무색케하는 새하얀 피부의 미청년이 장내를 향해 다가서고 있지 않은가?

순간, 천래검봉은 아미를 상큼 치뜨며 오만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어떤 놈이냐? 그 자리에 서라!”

하나, 청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두 눈에서는 섬뜩한 살광이 폭사되었다.

열화신문(熱火神門)... 백염장... 천신보9天神堡)...! 잘 만났다!”

그는 흡사 만년빙동에서 흘러나오는 듯 냉혹한 음성으로 말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문득, 스윽!

군무현의 신형이 그대로 삼십 장 상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순간,

!”

천래검봉은 그제서야 대경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때, 허공에서 재차 군무현의 냉혹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희들로부터 적룡(赤龍)의 복수를 시작하리라.”

말이 끝나는 순간, 꽈르르릉!

돌연 군무현의 전신이 가공할 검기(劍氣)로 뒤덮였다.

그 모습에 백의제갈의 안색이 싹 변했다.

...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이다!”

하나, 그의 경악에 찬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적룡(赤領)은 영세무적(永世無敵)이다!”

군무현의 찌렁찌렁한 외침이 온통 허공을 뒤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콰콰콰 쾅! 퍼 엉!

가공무비할 검세가 천지사방을 휩쓸었다.

천지를 뒤덮은 거창한 검영(劍影)의 소용돌이, 그것은 세상의 종말을 보고야말 듯 광폭한 기세였다.

그 순간,

... ... 막아랏!”

스슥! ! 백의제갈과 열화신룡은 당황하며 황급히 몸을 날렸다.

... 안돼!”

천래검봉도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급급히 물러났다.

하나, 그들의 다급한 외침은 이내 거대한 폭음 속에 묻히고 말았다.

콰르르릉! 콰쾅... 지축이 들썩 뒤흔들리는 가공할 폭음, 그 소용돌이 속에,

크아악!”

케 엑!”

크윽...!”

심장을 쥐어뜯는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그리고, ()!

섬뜩한 피분수가 장내를 회오리쳤다.

아수라지옥(阿修羅地獄)! 그야말로 장내는 지옥을 방불케 했다.

모든 것이 끝이었다. 눈부신 검광은 무려 만 장에 걸쳐 치뻗혔으며, 가공할 기세로 치닫는 검세는 폭풍같이 천지를 휩쓸었다.

그와 함께,

크으... !”

아악!”

처절한 비명이 잇달아 터져나왔다.

혈우(血雨) 속에 허무하게 쓰러져가는 무수한 시신들, 실로 끔찍한 살륙의 장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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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三 章

 

                        우연한 情事

 

 

 

군무현은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는 사망신준의 뒷모습을 무십하게 바라보았다.

의외로 몸뚱이가 단단하군. 아마 사망림(死亡林)의 놈팽이리라.”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사망림(死亡林)!

 

그곳은 세외사천(世外四天) 중 일천(一天)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남만에서 패자(覇者)로 군림하는 거대세력,

 

군무현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무심(無心), 다시 무심으로 돌아온 그는 왠지 고독해 보였다.

 

하나의 작은 산동(山洞).

! 문득 산동의 입구로 하나의 인영이 다급히 뛰어들었다.

으음... 사망신준(死亡神俊)! 다시 만나면 육시를 내고 말리라!”

분노와 원한에 찬 교성, 그것은 해맑은 여인의 옥성(玉聲)이었다.

나이는 이십 이삼 세 정도, 기품있는 용모에 고귀한 인상을 풍기는 미녀(美女)였다.

그녀는 동굴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힘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데, 그녀는 몹시 숨이 찬 듯 가쁘게 숨을 할딱이고 있었으며 기이하게도 옥용이 온통 도화빛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의여인, 그녀는 지금 천하에서 가장 지독한 최음약(催淫藥)에 중독당한 상태였다.

극고한 내공으로 간신이 욕화를 누르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녀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이를 갈았다.

감히 본 독황후(毒皇后)를 암습하다니... 사망림(死亡林) 전체를 독()으로 태워없애리라!”

그녀는 분노에 치를 떨며 독랄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크고 아름다운 두 눈에는 원독의 빛이 가득했다.

일견하기에도 기()가 드센 여인인 듯 했다.

음약으로 인해 전신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 중에서도 그녀는 분노와 원한의 감정에 치를 떨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는 불덩이처럼 화끈거리며 달아오르는 전신을 주체할길 없었다.

하나, 그 수치스런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그녀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전신은 마치 열탕속에 빠진 듯 뜨겁게 끓어 올랐다.

아아...!”

독황후(毒皇后)라 자칭한 자의여인, 그녀는 점점 이성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흐윽... ...!”

그녀는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발했다. 실로 힘겨운 의지와의 싸움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

독황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갑자기 발딱 교구를 일으켰다.

언제였을까?

동굴의 입구, 한 명의 인영이 우뚝 서 있지 않은가?

투명할 정도로 흰 피부를 지닌 백의청년, 그의 두 눈은 지극히 무심했다.

그 순간,

사망신준(死亡神俊)! 죽어랏!”

독황후는 미처 사내의 얼굴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다짜고짜 앙칼진 외침과 함께 섬섬옥수를 휘둘렀다.

! 그녀의 전력을 다한 일장에 요란한 폭음이 들썩 동굴 안을 뒤흔들었다.

하나,

무례한 계집!”

그 폭음속을 뚫고 한 소리 싸늘한 냉갈이 들려왔다.

직후, 콰쾅!

독황후는 자신의 공세가 육중한 벽에 부딪혀 버린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함께, 공력으로 간신히 누르고 있던 욕화가 툭 터지듯 일시에 폭발해 버렸다.

흐윽...!”

독황후는 눈앞이 아찔해짐을 느끼며 교구를 휘청했다.

하나, 그녀는 원독이 가득찬 눈빛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네놈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깨끗이 자결하겠... ...!”

그녀는 그러나 말끝을 채 맺지도 못한 채 힘없이 그 자리에 무너졌다.

백의청년,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쓰러진 독황후를 내려다 보았다.

젊은 계집의 공력이 제법이군!”

그는 무심한 음성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군무현! 백의청년은 바로 그였다.

독황후는 동굴의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 그녀의 전신은 터질 듯한 욕화로 불덩이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때,

흐윽... 아아...!”

마침내 독황후는 뜨거운 신음성과 함께 사지를 비틀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군무현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지독한 최음약에 당했다.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으니!”

그는 곤혹함을 느끼며 난색을 지었다.

그대로 몸을 돌릴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나,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할만큼 군무현은 냉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아... ...!”

독황후는 마침내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듯 마구 전신을 비틀며 자극적인 교성을 발했다.

그녀는 풍염한 사지를 비틀며 숨가쁘게 몸부림쳤다.

그 모습은 실로 자극적이었다.

원초적인 본능을 후끈하게 자극하는 뜨거운 몸부림, 군무현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손을 부벼댔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대로 두면 일각도 못되어 전신 혈맥이 터져 절명하고 만다!)

그는 안절부절하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 ... 아아... ... 나를 좀... 어떻게...!”

독황후가 자신의 앞가슴을 쥐어뜯으며 간절한 음성으로 애원했다.

군무현은 실로 난감함을 금할 수 없었다.

풍염하고 자극적인 독황후의 몸매에 눈길이 닿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 순간,

아아... ... 제발... ... 나를...!”

갑자기 독황후가 군무현의 몸을 백사같이 휘감았다.

(!)

군무현은 기겁했다. 그는 당황하여 황급히 독황후를 떼어 놓으려 했다. 하나, 이내 그는 흠칫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두 손 가득 뭉클한 여체의 감촉이 닿아온 것이 아닌가?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성숙한 여체(女體), 그의 코끝이 농염한 여인의 육향이 물씬 스며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군무현은 단전에서 불끈 열기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그도 끓는 피를 지닌 청년이 아닌가?

그때,

으음... ... 어서... ... 나를...!”

독황후가 뜨겁게 숨을 몰아쉬며 군무현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독황후의 나릇한 허리를 으스러져라 힘껏 끌어안았다.

독황후는 굳센 사내의 손길에 희열의 교성을 발했다.

그녀는 교구를 부르르 경련하며 군무현의 목을 끌어안았다.

금방이라도 활활 타올라 날아가 버릴 듯한 여체, 군무현은 그 엄청난 열기에 함께 휩싸이고 말았다.

한순간, 군무현의 붉은 입술이 독황후의 뜨겁게 달아오른 입술을 덮었다.

전신이 녹아내리는 듯한 짜릿한 전율, 독황후는 교구를 파르르 경련하며 황홀한 신음성을 발했다.

입맞춤, 두 개의 불덩이가 서로 뒤엉킨 듯 그것은 뜨겁고 격렬했다.

군무현, 그는 전신의 피가 엄청나게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이한 흥분과 전율, 숨막힐 듯 뜨거운 격정에 몸을 떨며 그는 달콤하고 보드라운 여인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그와 함께, 그의 손은 점차 성숙한 여체를 더듬어 갔다.

매끄러운 등줄기, 풍만하게 부푼 탄력있는 둔부... 군무현의 애무는 능숙치 못했다.

하나, 그는 뜨겁고 강렬하게 여체를 탐했다.

군무현은 여체를 송두리째 빨아들일 듯 뜨거운 입맙춤을 퍼부으며 연신 애무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군무현은 형언할 수 없는 희열에 몸을 떨며 전신이 터질 듯 팽창됨을 느꼈다.

여체는 신비롭고 경이로왔으며 무한한 흥분과 희열을 자극시켰다.

이윽고, 찌 익! !

군무현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성급히 독황후의 의복을 찢어냈다. 그러자,

아아...!”

독황후는 기다렸다는 듯 군무현의 손길이 닿기도 전에 스스로 옷을 벗어 던졌다.

풍만하고 탐스럽기 이를데 없는 나신, 마침내 그녀는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알맞게 무르익어 성숙한 여체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뇌살적이었다.

“...!”

군무현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는 목구멍이 뜨겁게 타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열기가 그의 전신을 활활 타오르게 했다.

이윽고,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의복을 벗어던졌다.

근육으로 다져진 탄탄한 육체, 그는 넓은 가슴으로 마치 자신을 팽개치듯 덥쳐오는 독황후의 알몸을 받아들였다.

엉성하게 짚이 깔려있는 동굴 바닥, 그들은 이미 이성을 상실한 채 열락과 희열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폭풍(暴風), 폭풍이 몰아친다.

뜨겁고 거칠게 동굴 안을 몰아치는 두 남녀의 신음성, 군무현은 여체를 모른다. 그러기에 그는 여인을 다룰줄은 더욱 몰랐다.

그의 손길은 자연히 성급하고 거칠 수밖에 없었다.

하나, 독황후는 더욱 거친 애무를 원했다.

최음약의 약효가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었다.

한 순간, 그녀는 이내 고통의 뒤로 번지는 야릇한 희열과 쾌감의 파문에 전율하여 몸부림쳤다.

그것은 일찍이 상상치도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두 남녀의 신음성은 갈수록 뜨겁게 고조되어 갔다.

동굴 안은 때아닌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폭풍의 정사(情事)가 벌어지는 곳, 이곳은 대파산의 은밀한 산동(山洞)이었다.

아침, 눈부신 겨울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야산의 작은 동굴, 그곳에도 어김없이 빛은 스며들었다.

두 남녀, 동굴 안에는 나신(裸身)의 두 남녀가 서로를 껴안은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문득,

으음...!”

독황후는 나직한 신음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순간,

(!)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제일 먼저 그녀가 느낀 것은 자신의 소중한 부분이 칼로 저며지는 듯한 통증이었다.

순간, 독황후의 아름다운 얼굴은 당혹과 함께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 내가 기어이...!”

그녀는 잘근 입술을 깨물며 눈을 떴다.

그녀의 눈길은 파르르 떨리며 옆으로 향해졌다.

군무현, 그가 벌거벗은 몸으로 독황후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순간, 독황후는 흠칫하며 안색이 일변했다.

(... 이자는 사망신준이 아니다!)

그녀는 기이한 안도감을 느끼며 옥용 가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함께, 군무현의 용모를 확인한 그녀는 다시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투명할 정도로 흰 피부에 조각으로 빚은 듯 준미한 군무현의 얼굴, 그의 얼굴이 어떤 강렬한 느낌으로 독황후의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군무현은 평안한 얼굴로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었다.

혼곤한 피로감에 도취된 것이다.

독황후, 그녀는 일순 서글픈 표정으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 이렇게 어이없이 몸을 버리다니...!)

그녀는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문득, 주르르... 독황후의 옥같은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나,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독황후는 피가 나도록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이어, 그녀는 원독의 눈빛으로 싸늘하게 군무현을 쏘아보았다.

죽이리라!”

그녀는 살기어린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잠든 군무현의 머리위로 섬섬옥수를 쳐들었다.

하나,

...!”

그녀는 이내 힘없이 교수를 내려뜨리며 고통스럽게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몸은 온통 상처가 터져 선혈로 흠뻑 젖어 있었다.

사내의 육중한 몸에 짓눌려 밤새 너무도 지독한 시달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

군무현이 흠칫하며 비로소 잠에서 깨어났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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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二 章

 

                   潛龍出世

 

 

 

 

동굴 안!

“...!”

“...!”

두 노소(老少)가 앉아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희미한 야명주 불빛 아래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

군무현과 신기황, 바로 그들이었다.

신기황은 여전히 웅덩이 속의 지극음령수액에 잠긴 채 상반신만 드러내 놓고 있었다.

군무현, 그는 신기황과 마주보는 위치에서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말없이 가운데 뜨겁게 엉켜들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인간적인 유대가 형성되었다.

철천지한을 품고 무표정한 침묵으로 일관해온 군무현, 결코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괴인(怪人) 신기황, 그들 두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고 있는 것,

그것은 정()! 바로 뜨거운 정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순수한 감정이 아니겠는가?

문득, 신기황의 엄격한 얼굴에 한가닥 희미가 미소가 떠올랐다.

이어, 그는 먼저 침묵을 깨고 너털웃음 떠올렸다.

헛허... 벌써 오년(五年)이 지났는가?”

그는 감회가 깃든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오년(五年), 그가 천마애에 떨어져 무공을 연마한 지도 벌써 오년이 지났다.

병약한 십오세 소년에게이제 천하를 짊어질 헌앙한 기품의 약관 청년으로 성장한 군무현, 그의 변화는 실로 눈부실 지경이었다.

신기황, 그는 그런 군무현의 변화를 지켜보아 오면서 흐뭇한 심정을 금할길 없었다.

하나, 인간사(人間事) 만남이 있으면 이별(離別)도 있는 법, 마침내 두 사람은 이별의 날을 맞았다.

그러기에 무거운 침묵이 동굴 안을 메우고 있었던 것일까?

신기황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며 입을 열었다.

어느덧... 너는 과거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이상으로 강해졌다. 허허... 천하무림이 아연실색할 것이다!”

그는 대견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예전과 달리 인자하고도 부드러웠다.

“...!”

군무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나, 그는 진정어린 눈빛으로 신기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돌아올 때는... 반드시 만년빙지(萬年氷芝)를 구해올 것입니다!”

 

만년빙지(萬年氷芝)!

만년(萬年) 동안 얼음 속에서 자라는 전설의 영약, 신기황을 지극음령수액의 금제로 묶고 있는 무형화린산의 독기는 바로 만년빙지로만 해독이 가능했다.

 

신기황, 그는 군무현의 말에 씁씁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없다. 노부의 나이 이미 백팔십이 넘은지 오래다. 살만큼 살았으니 괜한 심기 쓰지 말거라!”

“...!”

군무현은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는 추호도 그 뜻을 꺾지 않을 의지가 엿보였다.

신기황은 고개를 흔들며 내심 중얼거렸다.

(녀석... 무슨짓을 해서라도 만년빙지를 구해오겠군!)

그는 대견함을 금치못하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더할 수 없이 흐뭇한 마음과 함께 군무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느꼈다.

그때, 군무현이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가능한... 빨리 돌아와 어르신네를 모시겠습니다!”

그는 무표정했으나 신기황은 잘 알고 있었다. ()으로 응어리진 차디찬 그의 내심에는 누구보다 뜨겁고 진실한 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신기황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무림에 나가거든 신기곡(神機谷)의 아이들을 돌보아다오. 그 아이들은 풍진에 묻히기를 싫어하지만 혼탁한 세상이 그들을 편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진지한 어조로 군무현에게 당부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신기곡(神機谷)! 그것은 신기황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문파였다.

이윽고, 군무현은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신기황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삼배(三拜), 그는 연이어 공손히 삼배를 올렸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순간, 신기황의 노안에 언뜻 아쉬운 빛이 스쳤다.

하나, 그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군무현은 그런 신기황을 뒤로 하고 묵묵히 몸을 돌렸다.

이어, 그는 천천히 동굴을 나섰다.

그림자(), 야명주 불빛 아래 길게 깔리는 뒷그림자만을 남긴 채...

동굴 밖!

혈영천종과 육대거두의 시신 대신 거둔 유해와 그들이 남긴 유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군무현은 그것들을 묵묵히 품 속에 갈무리했다.

이어, 그는 힐끗 뒤를 돌아 보았다.

퀭하니 뚫려 있는 동굴, 그곳에는 한명의 외로운 기인(奇人)이 기약없는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무현, 이제 그는 이곳을 떠난다.

무림(武林)! 그곳으로 나가는 것이다.

오년간의 뼈를 깎는 수련을 마치고 마침내 그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출도(出道), 한 마리 용()이 거대한 용트림과 함께 창천을 향해 치솟았다.

순간,

!”

쐐 액! 한소리 웅후한 장소성과 함께 군무현의 신형은 마치 창룡이 비상하듯 까마득한 절벽 위로 치솟아 올랐다.

아아! 마침내 그는 천마애를 떠나 웅대한 일보(一步)를 내디딘 것이었다.

그때,

무현... 잘 가거라...!”

문득 천마애 밑의 한 동굴에서 창노한 노인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X X X

 

휘이 잉! 스스스...

바람(), 바람이 분다. 차가운 설풍(雪風)이었다.

산 전체는 온통 흰 눈에 뒤덮여 있었다.

대파산(大巴山)!

엄동설한, 때는 겨울이었다.

하나의 구릉 위! 한 명의 백의청년이 백설을 딛고 우뚝 서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 깎은 듯 미려한 용모에 미인의 그것처럼 붉고 선명한 입술이 강렬한 인상을 물씬 풍겼다.

백의청년의 눈빛은 흡사 맑게 닦여진 차가운 검날을 연상케 했다.

그의 일신에서는 신비하고도 서늘한 한기가 물처럼 배어나오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하고도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청년,

군무현! 바로 그였다.

마침내 그는 천마애를 떠나 이곳 대파산록에 이른 것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싸늘한 살기가 일렁이는 시선으로 대파산봉을 주시했다.

나는 잊지 않았다. 아버님... 환노(幻老)... 그리고 삼천의 적룡검사(赤龍劍士), 그 모두의 한()...!”

그의 두 눈에서는 줄기줄기 살기가 뻗어나왔다.

선인들의 영령께서 네게 힘을 주셨으니... 천하(天下)로부터 대가를 받아내리라!”

그는 결연한 음성으로 다짐했다.

한순간, 파파파팍! 그의 발밑에 있던 바위가 무서운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가루로 부서져 내렸다.

그것은 군무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의 한()은 이미 하늘에 닿고 있었다.

뼈를 깎는 오년간의 수련, 그것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던가?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살아온 그가 아닌가?

군무현은 질근 입술을 악물었다.

나로 하여금 아버님의 유체조차 모시지 못하게 한 자들... 백배, 천배로 그보응을 받으리라!”

그는 냉혹한 한광을 폭사하며 굳게 맹세했다.

이윽고, 군무현은 몸을 돌렸다.

그의 어깨, 천마애에서 죽은 육대거두의 신물들이 천에 감긴 채 짊어져 있었다.

돌아서는 군무현의 얼굴은 어느새 무표정하게 변해 있었다.

한차례 눈덮힌 대파산을 둘러본 군무현,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데, 그가 막 구릉을 내려섰을 때였다.

스슥! 돌연 전면에서 한줄기 회영(灰影)이 나타났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으로 힐끗 회의인영을 주시했다.

(상당한 경공이군!)

하나,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간격이 점점 좁혀지자 회의인영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회포를 걸친 청년이었다. 나이는 군무현과 비슷한 정도, 그의 용모는 제법 영준했다.

하나, 별로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가늘게 번뜩이는 눈과 얄팍한 입술 끝이 위로 치켜진 것이 간교하고 음악한 인상을 풍겼다.

게다가, 그의 두 눈썹 사이는 음침하게 그늘져 푸르스름해 보였다.

생김새로 미루어 극히 음탕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군무현은 다가서는 회포청는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중럴거렸다.

(인간 구실을 못할 놈이군!)

하나, 그는 곧 회포청년에게서 시선을 떼며 무심하게 걷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였다. 스슥!

서랏!”

돌연 회포청년이 군무현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회포청년을 주시했다.

회포청년,

흐흐...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해라. 한명의 자의(紫衣)계집이 이쪽으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그자는 지극히 오만한 어조로 물었다.

“...!”

군무현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못들은 척 묵묵히 회포청년의 옆을 비켜 지나갔다.

순간, 회포청년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 그자는 눈을 부릅뜨며 다시 몸을 날려 대뜸 군무현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그자의 음침한 두 눈에 살기를 번뜩였다.

내 말을 듣지 못했느냐? 한명의 자의계집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군무현은 귀찮다는 듯 무감정한 어조로 대꾸했다.

보지 못했다!”

그 한 마디를 내뱉은 그는 다시 태연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순간,

... 아니...!”

회포청년의 안색이 거듭 변했다. 그자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군무현의 몸에서 뻗어나오는 막강한 잠력에 밀려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물러나고 만 것이 아닌가?

회포청년의 안색은 이내 수치로 이지러졌다.

하나, 군문현은 게의치 않았다.

그는 회포청년을 돌아보지도 않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으으...!”

회포청년은 부르르 몸을 떨며 치욕으로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하나, 이내 그자의 입가에는 살기어린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 네놈이 감히 나 사망신준(死亡神俊)을 무시하다니...!”

그자는 악독한 눈으로 군무현의 등을 노려보았다.

다음 순간,

죽어랏!”

위 잉! 그자는 군무현의 뒤를 노리고 맹렬히 일장을 후려쳤다.

그자의 공격은 독랄하고 잔혹하기 이를데 없었다.

격중되면 그대로 즉사하고 마는 치명적인 살수.

순간, 군무현의 두 눈에 싸늘한 살기가 번뜩 떠올랐다.

인간같지도 않은 놈!”

그는 냉갈하며 홱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콰르릉! 양인 사이에 격렬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직후,

!”

사망신준(死亡神俊)이라 자칭한 회포청년은 다급성을 발하며 휘청 물러섰다.

그자는 군무현을 후려진 장()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그제서야 그자는 경각심을 돋구었다.

(강한 놈이다. 잘못 건드린 것 같다!)

그자는 내심 아차하며 후회했다.

하나, 이미 늦은 후였다.

그자가 만난 상대가 누군가?

군무현! 천하를 상대로 복수를 다짐한 군무현이 아닌가?

그때,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사망신준을 향해 다가갔다.

본인을 이유없이 건드렸으니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그는 냉막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그 짤막한 한 마디는 사망신준으로 하여금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으으...!)

그 자는 완전히 기가 질리고 말았다.

군무현의 태산같이 막강한 기도는 도무지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하나, 그자는 간악한 작자였다. 그자의 가늘게 찢어진 두 눈이 일순 음흉하게 번득였다.

다음 순간,

에 잇!”

그자는 벼락같이 외치며 대뜸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화르르!

그자의 소매 속에서 돌연 시커먼 독무(毒霧)가 확 쏟어져 나왔다. 그것은 치밀한 그물처럼 삽시에 군무현의 전신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 아닌가?

순간, 군무현의 짙은 눈썹이 무섭게 꿈틀했다.

()을 쓰다니...!”

그의 안색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그때, 자욱한 독무 속에서 사망신준의 득의에 찬 음소가 흘러나왔다.

흐흐... 네놈이라고 별 수 있겠... !”

득의의 음소를 흘리던 사망신준, 하나 그 자는 이내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며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보라. 화르르...! 콰 쾅!

시커먼 독무 속을 뚫고 시뻘건 극양지기가 활화산같이 터져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스악! 사망신준은 대경실색하며 급급히 몸을 날려 달아나려 했다.

하나 그보다 빨리, 콰쾅!

케 엑!”

가죽북이 터지는 듯한 충격적인 폭음과 함께 한 마디 처절한 비명이 터져올랐다.

사망신준, 그자는 고통스런 비명을 토하며 벼락같이 뒤로 튕겨나갔다.

끔찍하게도 그자의 가슴이 시커멓게 탄 채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몸을 날리며 그자는 부득 이를 갈았다.

... 두고 보자!”

휘익! 그자는 고통과 분노의 신음성을 발하며 그대로 몸을 날려 군무현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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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一 章

 

                     魔兵, 修羅血刀를 얻다

 

 

 

무량관을 쓴 도복(道服) 차림의 인물, 그는 수중에 한 자루의 신홀을들고 있었다.

무당(武當)의 진산지보로 알려진 태청신홀, 바로 그것이 아닌가?

도인(道人)은 바로 태현자(太賢子)이리라.

다음으로 군무현의 시선이 이른 것은 한 명의 청포노인이었다.

지극히 청수한 용모를 지닌 청포노인, 군무현은 그를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이 종남(終南)의 개파조사인 종남연기사(終南鍊奇士)시로군!”

이어, 그는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종남연기사(終南鍊奇士)의 옆에 서 있는 인물은 여인(女人)이었다.

일신에 백색궁장을 화사하게 차려입은 궁장미부, 그녀는 모습은 극히 요염했다.

그녀는 다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격탕되고 피가 빨라지는 듯 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녀는 마치 날아갈 듯 춤을 추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군무현은 이내 알 수 있었다.

만화환선무(萬花幻仙舞)...! 만화부(萬花府)의 시조이신 만화성녀(萬花聖女).”

 

만화부(萬花府)!

만화성녀(萬花聖女)가 처음 만화부(萬花府)를 세웠을 때는 정파를 표방했다.

하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만화부는 차츰 변질되었다.

그들은 차츰 관능적 욕망에 휩쓸려 사파(邪派)로 흘러든 것이었다.

결국, 당금에 이르러 만화부(萬花府)는 천하염색굴(天下艶色窟)로 변해 버렸다.

그들은 천하를 음란의 색()의 열풍으로 휘몰고 있었다.

문득, 군무현은 만화성녀를 주시하며 형형하게 눈을 번뜩였다.

만화성녀께는 미안한 일이나... 만화부(萬花府)는 반드시 내 손으로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그는 한맺힌 어조로 중얼거렸다.

만화부(萬花府)!

그들은 바로 적룡세가를 친 십삼 개 주력 문파중 일파(一派)가 아닌가?

일순 군무현의 두 눈에서 싸늘한 한광이 뻗어 나왔다.

하나, 이내 그는 눈길을 돌렸다.

만화성녀의 옆, 한 명의 유생과 흑포노인이 눈을 부릅뜬 채 서 있었다.

수려하고 기품있는 용모의 유생(幼生), 그는 장검을 들어 단전(丹田)에 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흑포노인, 그의 용모는 위맹하고도 괴팍하기 이를데 없었다.

군무현은 그들을 주시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남궁세가(南宮勢家)의 일천 년 내 최강자이던 검황유(劍皇儒) 남궁천인(南宮天人) 선배님... 그리고 당문(唐門) 이대가주인 혈륜태세(血輪太世) 당종요(唐種要)...!”

그는 양인의 헌앙하고 뛰어난 기품과 강력한 기도에 감탄을 금치못했다.

일대종사(一代宗師), 과연 그 위명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 문득 군무현의 옷깃이 남궁천인(南宮天人)의 장검을 건드려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우수수... 스스... 나머지 오인의 시신마저 모두 부서져 흩어지고 말았다.

... 이런...!”

군무현은 낭패한 표정으로 급히 물러섰다.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군무현은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신물(身物)들이나마 후인에게 전해주는 것이 도리이리라!”

이어, 그는 시신들의 의복 속에서 각기 한 가지씩의 신물을 찾아냈다.

무우선사의 달마보장(達磨寶杖), 태현자의 태청신홀 외에도, 종남연기사에게는 종남연기경(終南鍊奇經), 검황유에게서는 황유보선(皇儒寶扇), 만화성녀에게서는 만화옥부(萬花玉符), 그리고, 혈륜태세 당종요의 신물로는 아홉 개의 개세혈강륜을 찾아냈다.

 

개세혈강륜!

그것은 혈강모로 만든 암기였다.

호신강기 파해 전문의 가공할 위력을 지닌 암기, 그 아홉 개 중 세 개는 혈영천종의 시신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두 개는 석벽에 꽂혀 있었으며 나머지 네 개는 혈륜태세가 수중에 지니고 있었다.

 

군무현, 마지막으로 그는 혈영천종의 수라혈도(修羅血刀)를 집어들었다.

수라혈도(修羅血刀)!

그것은 종잇장같이 얇은 면도로써 둥글게 말면 손 안에 들어올 정도였다.

이로써, 군무현은 팔백 년 전 일대를 풍미한 기인들의 신물을 모두 거둔 것이다.

문득, 그는 바람에 흩어져 있는 시신들이 남긴 재를 바라보았다.

천마애를 나갈 때 여러 선인들의 유체를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다짐했다.

이어, 그는 주위를 한차례 둘러본 후 석실을 나섰다.

 

X X X

 

세월여류(歲月如流)라던가?

무심한 가운데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는 세월, 그것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느낄 수는 있었다.

쏘아진 화살처럼 금방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는 세월, 그것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간다.

특히, 무엇엔가 몰두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화르르... 쿠르르릉!

광폭한 태양을 집어삼킬 듯한 강렬한 극양지기가 방원 십장을 뒤덮었다.

그와 함께, 콰콰쾅! 퍼 엉!

천지가 일제히 허물어지는 듯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뿐만이 아니었다.

치지지직... 지면의 흙과 돌덩이마저 극렬한 극양지기에 견디지 못하고 형체도 없이 녹아들었다.

한데, 이럴 수가...!

츠츠츠... 위 잉!

극양지기와 상극을 이루는 가공할 극음지기(極陰之氣), 흡사 만년빙동을 깨고 흘러 나오는 듯한 엄청난 극음지기가 그 위를 뒤덮는 것이 아닌가?

아아! 그것은 실로 일대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내, 우르릉! 콰콰콰 쾅! 위 잉! 츠츠츠!

극양과 극음의 양대지기는 서로 충돌하며 들썩 지축을 뒤흔들었다.

보라! 하나의 높은 바위 위, 그곳에는 입을 딱 벌릴만한 진기한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듯 시뻘건 기류와 그와는 대조적으로 눈같이 흰 백색기류가 무지개같이 서로 어우러져 감돌고 있지 않은가?

그 홍백(紅白)의 기류 안,

“...!”

한 명의 청년이 단좌하고 있었다.

한순간, 스스스... 홍백의 신비한 기류가 마치 안개 걷히듯 모두 사라졌다.

그러자 그러나는 청년의 모습, 그는 청격한 백의(白衣)차림이었다.

바람이라도 휙 불면 금방 쓰러져 버릴 듯한 유약한 모습, 하나, 백의청년의 인상은 지극히 인상적이었다.

충격적인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미녀(美女)의 그것같은 단순호치의 용모, 하나 그는 전체적으로 무표정한 싸늘한 기도가 배어 흘러 종잡을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군무현! 천하에 이처럼 형언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인물은 오직 그밖에 없었다.

문득,

“...!”

군무현은 감았던 눈을 떴다.

서늘하게 가라앉아 무심하기만 한 눈빛,

역시... 안되는군. 무상패엽공공강이나 태청혜극신공(太靑慧極神功)으로도 양극지기를 합일 시키지 못하다니...!”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무상패엽공공강!

그것은 무우선사의 달마보장(達磨寶杖)에서 찾아낸 소림무상기공(少林無上奇功)이었다.

 

태청혜극신공(太靑慧極神功)!

태청신홀에 적혀있던 세 가지 무당절기 중 하나였다.

 

군무현은 실망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불문(佛門)과 도가(道家)의 최고 신공으로도 양극지기를 합일시키지 못하다니...!”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미간을 모았다.

또한 수라혈영공(修羅血影功)은 패도만을 추구한 마공인지라 위력만 강할 뿐 현묘함이 없으니 아무 소용도 없고...!”

이어,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려듯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회가 닿으리라. 언젠가는...!”

그는 묵묵히 앞을 노려보았다.

그와 함께, 그는 번쩍 손을 쳐들었다.

순간, 우 웅!

웅후한 검명(劍鳴)이 주위를 진동시켰다.

동시에, 파파팟! 쐐 액!

이십 장 밖의 석벽에 박혀있던 적룡검이 길게 호선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그 순간,

!”

한소리 웅후한 장소가 허공으로 뒤흔들었다.

파 앗! 쐐액!

한순간 군무현의 몸이 적룡검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신검합일(身劍合一)!

아아! 천지가 뒤집히려는가?

파파팍! 츠츠츠츠... 꽈르릉!

웅장하기 이를데 없는 검세가 노도같이 천지를 질타하며 퍼져나갔다.

장쾌한 검광(劍光)과 웅후한 검명!

과연 검중패왕(劍中覇王)다운 가공할 검세였다.

거대한 창룡(蒼龍)의 기세로 치솟는 검기는 그대로 일대장관이었다.

적룡대제의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

바로 그것이 펼쳐진 것이었다.

뒤이어,

차 핫!”

사위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드높은 창룡음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쐐 액!

군무현의 품에서 한 덩어리의 찬란한 광휘가 폭사되었다.

그것은 눈부시게 사위를 휘감으며 창천으로 치솟았다.

 

적룡어강살!

바로 그것이었다.

실로 엄청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순에 무려 일천 장을 날아 태산이라도 둘로 갈라버릴 듯한 가공할 위세.

그것은 보통의 어검술과는 가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극상승의 검결이었다.

빠르기, , ()로 비유한다면 열 배에 달하며, ()함에 있어서는 가히 백 배 더 강한 패도무적의 절기였다.

 

한순간, 스윽! 적룡검은 이미 군무현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지면에 우뚝 내려 서 있었다.

무공을 펼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 없다. 적룡어강살만 하더라도 가히 무적(無敵)이거늘... 적룡천종(赤龍天宗)께서는 이보다 십 배 강한 검결을 어딘가에 비장하셨다니...!”

그는 실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 적룡팔대식과 적룡어강살, 그 두 가지 검결만으로도 적룡대제 군천휘는 검황(劍皇)으로 군림하지 않았던가?

군무현은 생각에 잠기며 검미를 모았다.

수라혈영제의 어떤 마공도 적룡어강살보다 강하지는 않다. 다만, 최후의 수라혈영파천무(修羅血影破天舞)만이 적룡어강살을 능가할 뿐!”

사실, 적룡천종의 검학과 혈영천종의 마공을 비교하기란 실로 난해했다.

적룡천종! 그의 검학은 웅후하며 장쾌함에 특징을 두고 있었다.

일단 펼쳐지면 태산을 짓누르는 듯한 육중함이 천지사방을 뒤덮는다.

반면, 혈영천종의 마공은 악랄한 것이었다.

일단 기회를 잡으면 끈질기게 파고들어 상대의 심장을 갈라버리고마는 잔혹무비한 살검(殺劍)!

그 때문에, 혈영천종의 마공은 선후(先後)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신속, 기민함과 독랄함이 그 특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적룡천종과 혈영천종의 무공은 비교가 불가능했다. 각기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다만,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그것은 연마하는 자의 신체적 특징과 수련의 연륜에 의해 결정될 뿐이었다.

군무현, 그는 적룡검을 내려다보며 한차례 쓰다듬었다.

무심(無心)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에게 있어서 적룡검은 일체감과 함께 큰 힘을 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는 적룡검에서 생명(生命)을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조심스럽게 적룡검을 내려놓았다.

수라혈영파천무... 오늘은 반드시 펼쳐 보이리라!”

그는 강한 의지가 깃든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문득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순간, 스으... 스으... 그의 주위로 칙칙한 혈기(血氣)가 일어났다.

그와 함께, 스르릉...!

군무현의 허리에 요대같이 둘러져 있던 수라혈도(修羅血刀)가 들려졌다.

위 잉! 츠츠츠... 수라혈도의 시뻘건 도신에서는 마귀에 혓바닥같은 섬뜩한 도기(刀氣)가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실로 전신을 섬뜩하게 만드는 가공할 기운, 군무현은 일순 수라혈도를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수라혈영파천무!

수라파천도(修羅破天刀)!

수라혈살강뢰!

 

그 세 가지의 마공이 동시에 펼쳐지는 가공무비한 살초, 그것이 바로 수라혈영파천무였다.

 

문득, 츠츠츠 위 잉!

군무현의 몸 주위로 칙칙한 핏빛기류가 혈사(血蛇)처럼 휘감겨 들었다.

이어, 그것은 숨통을 조일 듯 사위로 가득 메웠다.

파파팍! 가공할 경기가 일순 폭발을 기다리며 한껏 움츠려 들었다.

그리고 한순간,

파천(破天)!”

지축을 떨어 울릴듯한 대갈일성이 터져나왔다.

직후, 콰르르릉! 콰콰 쾅!

가공할 폭발음과 함께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무서운 진동이 사위를 마구 뒤흔들었다.

오오...! 경천동지(驚天動地)!

그것은 가히 상상치도 못할 엄청난 광경이었다.

파파파팍! 번 쩍!

수라혈도의 전율스러운 핏빛 도영(刀影)이 방원 오십 장을 치뻗었다.

그와 함께, 쿠쿠쿵... 위 잉!

폭풍! 대폭풍이 휘몰아쳤다.

질풍노도같은 핏빛강기는 사위를 온통 폭풍같이 휩쓸어 버렸다. 실로 믿을 수 없는 가공할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성공이다!”

문득 천지를 몰아치는 선풍 속에서 한소리 들뜬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렇다. 군무현, 마침내 그는 해낸 것이다.

수라혈영파천무!

그 끔찍무비한 잔영(殘影) 속에서 새로운 대풍운(大風雲)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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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前代奇人들의 屍體

 

 

 

우르릉... 콰쾅!

군무현의 내부는 계속 들끓고 있었다.

군무현은 전신이 재로 화해 부서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크 윽!”

마침내, 악문 그의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 극렬한 고통 속에서, 그는 점점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눈앞이 흐려지며 가물가물해졌다.

하나, 정신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군무현은 더욱 거세게 입술을 악물었다.

그는 초인적인 의지를 지녔다. 그렇지않고서는 이토록 엄청난 고통을 견뎌낼 수 없으리라.

그는 고통으로 허물어지려는 육신을 오직 초인적인 인내와 의지로 지탱하며 운공에 몰두했다.

하나,

크 으... 으윽!”

고통은 갈수록 극힘해졌다.

극양지기와 극음지기가 서로 충돌하며 일으키는 가공할 고통, 그것은 군무현의 몸을 용광로같이 뜨겁게 달구었다가 이내 만년한설처럼 차갑게 얼리곤 했다.

그 극렬한 고통은 몇번이고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각의 고통은 군무현을 열배 더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 !”

군무현은 연신 계속되는 참혹한 고통속에서 새롭게 탄생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스스스...!

신비한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보라, 붉고 흰 두 가지 기류가 지하광장의 한 곳을 완전히 뒤덮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서로 뒤엉켜 낮게 흐르듯 주위에 깔려 있었다.

한데, 스스스 스슥... 붉고 흰 기류가 바닥을 스칠 때 마다 기현상이 일어났다.

우수수... 휘류류!

놀랍게도 지하광장에 쌓여있던 건조한 시신들이 모조리 재로 화해 스러지는 것이 아닌가?

마침내, 우수수... 파파팟!

근 일만 구에 달하던 무수한 시신들이 일제히 재로 화해 스러져 버렸다.

이윽고, 우웅! 붉고 흰 두 가지 기류는 점차 응고되기 시작했다.

보라! 그것은 이내 반백(半白), 반홍(半紅)의 강기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한순간, 스슥...!

반백반홍의 양극강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나타나는 광경, 군무현 먼저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

그는 눈을 감은 채 단정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유약한 모습이었다.

하나, 결코 유약한 것이 아니었다. ()함이 극()에 이르러 오히려 유()하게 보일 뿐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물처럼 담담하고 무심한 눈빛, 그것은 심연처럼 깊고 맑았다.

군무현은 뜨거운 격동에 몸을 떨었다.

(아버님의 영령이 돌보심이다. 마침내 태양신맥(太陽神脈)이 치유되었다!)

그는 희열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 그렇다. 마침내 그는 고통을 극하고 눈부신 성취와 더불어 제이의 생명을 얻어 새롭게 태어난 것이었다.

생명(生命),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더욱이, 가슴에 철천지한을 품은 군무현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군무현의 입가에 한가닥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진정한 희열의 미소였다.

그의 내부는 완전히 변화했다. 온통 극양지기만이 가득하던 그의 심맥의 반은 이제 지극히 강한 극음지기로 채워졌다.

따라서, 극양지기가 크게 일어 심맥을 태울 걱정은 이제 사라졌다.

새 삶을 얻은 것이다. 또한, 그는 극령정뇌수의 무궁한 효력으로 인해 무려 삼갑자의 내공으 보유하게 되었다.

실로 놀랍고도 눈부신 성취였다.

하나, 문득 군무현은 미간을 좁히며 내심 중얼거렸다.

(극양(極陽), 극음(極陰)의 양극진기를 하나로 융합시키지 못한 것이 안타깝구나!)

그렇다. 그의 몸속에는 천하에서 가장 강한 극양지기와 극음지기가 공존하고 있다.

만약, 그 상극의 거창한 잠력이 합일(合一) 된다면 실로 엄청난 결과를 얻게 된다.

(), 그것도 가공할 힘을 지닐 수가 있다. 태산이라도 번쩍 들어올려 집어 던질 수 있는 극강의 초인적인 힘을.

이윽고, 군무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쉽지만... 천기귀원심공 정도의 내공심법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잠력들이다. 우선 삼갑자의 내공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자!”

그는 아쉬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검미를 모았다.

(이 동부의 안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들은 또한 무엇을 위해 이 지하동부에서 죽어간 것일까?)

그의 두 눈은 다시 강렬한 호기심과 의혹으로 물들었다.

이미 재로 부서져 흔적을 잃은 일만여 구의 시신들.

?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 지하광장에 매장되어야 했던가?

군무현은 강한 의문을 느끼며 지하광장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계속 들어가볼 생각이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동굴의 넓이는 점점 더 좁아졌다.

또한, 주위는 희미한 빛 한 점 새어들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다.

스산하고 음습한 기운이 숨막힐 듯 전신을 조였다.

하나, 군무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더욱 밝아진 안광을 빛내며 계속 안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이미 그가 지나온 길은 수백 장에 달하리라.

문득, 군무현의 눈앞에 하나의 석문(石門)이 나타났다.

전신을 으스스하게 만드는 음침한 석문이었다. 그것은 전체가 시커먼 흑옥석(黑玉石)으로 되어 있었다.

한데, 문의 안쪽으로 모골이 송연케 만드는 섬칫한 마기(魔氣)가 줄기줄기 뻗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절로 흠칫 몸이 굳어졌다.

(대단한 마기다!)

그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안에 무엇인가 있다!)

이윽고... 그는 형형하게 눈을 빛내며 번쩍 쌍장을 치켜들었다.

스스스... 그의 쌍장에서는 희고 붉은 양극강기가 뻗어나왔다.

순간, 콰르릉... 콰쾅!

사방을 들썩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거대한 석문이 그대로 박살났다.

... 보라! 놀랍게도 흑옥석의 거대한 석문은 모래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이미 신위(神威)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윽고, 군무현은 부서진 석문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 순간,

(!)

그는 다급성과 함께 그대로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석실, 석문 안은 한 칸의 넓은 석실이었다.

한데, 그곳에 칠인(七人)의 인물이 대치하고 있었다.

끔찍한 아수라의 형상이 생생히 조각된 석벽, 그 석벽을 등지고 한 명의 혈포인이 우뚝 서 있었다.

나머지 육인(六人)은 그 혈포인을 반월형으로 포위하고 있는 형태였다.

혈포인, 그의 인상은 험악하고 사악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의 일신에서는 숨통을 조이는 가공할 마기가 줄기줄기 뻗어나오고 있었다.

혈도(血刀), 지금 그는 전체가 온통 시뻘겋게 물든 한 자루의 혈도(血刀)를 불쑥 앞으로 내민 형상이었다.

실로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릴 가공할 기도, 그 반면 혈포인을 포위하고 있는 여섯 명의 인물들, 그의 형상은 각기 달랐다.

(), (), ()등 각기 다른 부류의 인물들이었다.

하나, 한 가지 모두 혈포인을 향해 공세를 취하는 형상이라는 점이다.

군무현, 그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동귀어진(同歸於盡)했다!)

그는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석실 안의 칠인, 그들 역시 지하광장의 인물처럼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다.

군무현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했다.

(이들이 양세력의 수뇌들일 것이다!)

그는 눈을 빛내며 중앙의 혈포인을 주시했다.

한데, 놀라운 일이었다.

혈포인은 단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움찔 몸을 떨게 만드는 무서운 마기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군무현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죽은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목을 조이는 마기를 발산한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 인물이 살아 있을 때는 아무리 철석간장을 지닌 자라 해도 감히 맞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윽고, 군무현은 천천히 혈포인을 향해 다가갔다.

무엇인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추측하며 즉시 혈포인의 시신에 손을 댔다.

그 순간, 우수수...! 혈포인의 시신은 삽시에 한줌의 재로 화해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 혈포인이 들고있던 혈도(血刀)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군무현은 실소를 발하며 검미를 모았다.

(육인의 막강한 합벽공에 내부가 박살나 있었다. 극고한 공력으로 간신히 육체를 유지하고 있기는 했으나 수백 년의 세월이 그것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그는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바닥에는 한 자루의 시뻘건 혈도와 함께 혈포인의 의복이 떨어져 있었다.

“...!”

군무현은 조심스럽게 혈포를 집어들었다.

그 순간, !

무엇인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양피지로 된 한권의 비급이었다.

흠뻑 핏물에 젖은 듯한 시뻘건 표지, 그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혈영경(血影經)!>

 

묵중하고도 강렬한 서체, 글씨는 시커먼 묵빛이었다.

군무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혈영경(血影經)...!”

그는 크게 호기심이 동함을 느꼈다. 이어, 그는 급히 비급의 겉장을 넘겼다. 그런 그의 눈에 물씬 마기를 풍기는 강렬한 서체가 들어왔다.

 

<혈영천하(血影天下)를 위하여 혈영천종(血影天宗) 적는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홱 변했다.

혈영천종(血影天宗)!”

그는 경악에 떨리는 음성으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혈영천종(血影天宗)!

 

팔백 년 전, 천하를 혈영(血影)으로 뒤덮은 대효웅(大梟雄), 그의 출신사문은 실로 엄청났다.

전설적인 마문(魔門), 바로 아수라궁(阿修羅宮)과 혈영문(血影門)의 공동전인이었다.

이후 그는 양대 마문(魔門)을 통합했다. 그리하여 세운 것이 바로 수라혈부(修羅血府)였다.

천하를 장악했던 혈영(血影)의 세력, 혈영천종은 수라혈부(修羅血府)를 세워 천하를 손아귀에 넣었다.

그러기를 삼십 년(三十年), 돌연 그는 자신이 세운 수라혈부와 함께 신비하게 실종되었다.

그 이후 아무도 혈영천종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한데, 군무현은 천마애의 깊숙한 지하동부 안에서 그 혈영천종의 시신을 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군무현,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천지십강(天地十强) 중의 일강(一强)을 이곳에서 보게되다니...!”

그는 눈앞의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혈영천종! 그 위명은 천하를 떨어 울리지 않았던가?

 

천지십강(天地十强)!

 

고금을 통틀어 가장 강한 십인의 절대자(絶代者)!

혈영천종은 그 당당한 영예의 일석(一席)을 차지한 인물이 아닌가?

군무현은 놀라움을 가라앉히며 이번에는 혈영천종과 대치하고 있던 육인(六人)을 주시했다.

(이글은 대체 누구이기에 천지십강(天地十强)의 일인을 격살했단 말인가?)

그는 내심 의혹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눈을 빛내며 육인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맨 좌측의 인물, 그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고승(高僧)이었다.

그는 석자 가량되는 보장(寶杖)을 번쩍 들어올린 자세를 쥐하고 있었다.

군무현은 두 눈에 기광을 번뜩였다.

소림(少林)의 불광현세(佛光現世)의 자세다. 소림의 고승(高僧)이신가?”

그는 생각을 굴리며 유심히 고승을 주시했다.

하나, 바로 그 순간, 스스스... 고승의 시신은 덧없이 한줌의 재로 화해 흩어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고승의 보장(寶杖)이 떨어졌다.

군무현은 허리를 숙여 보장을 집어 들었다.

 

달마(達磨)!

 

보장의 손잡이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것은 녹옥불장(綠玉佛杖) 조사령과 함께 소림삼대중령(少林三大重令)의 하나인 달마보장(達磨寶杖)이다!”

과연 그의 짐작은 맞아들었다.

군무현의 머리는 계속 민활하게 움직였다.

달마보장은 소림십이대방장 이시던 무우선사(無優先師)와 함께 실종되었다. 그것이 팔백 년 전의 일이다!”

문득, 생각을 굴리던 군무현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렇다! 이분이 바로 소림십이대방장이셨던 무우선사(無優先師)가 분명하다.”

그는 비로소 얽혔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그의 뇌리속에 한 가지 고사(古事)가 떠올랐다.

 

혈영천종(血影天宗)이 천하를 손 안에 넣은지 삼십년(三十年), 천하가 도탄에 빠지다. 문득 신무(神霧)가 크게 일더니 혈영천종(血影天宗)은 수라혈부(修羅血府)의 사천(四千) 마도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 그와 함께 당시 무림을 떠받히던 육대거두(六大巨頭)가 육천(六千)의 정영(精英)과 함께 의문의 실종을 당하다...

 

고사(古事)의 내용은 그러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군무현은 흥분의 눈빛으로 육인을 차례차례 훑어보았다.

육대거두(六大巨頭)... 그들은 바로 소림십이대 방장이셨던 무우선사(無優先師), 무당(武當)의 구대장문인(九代掌門人) 태현자(太玄子)...!”

문득, 중얼거리던 그의 시선이 한 명의 도인(道人)에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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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일만구의 屍體, 그리고 千古奇緣

 

 

 

사방이 훤히 트인 거대한 지하광장, 한데, 보라! 시산(屍山)!

놀랍게도 그곳은 바로 시체로 산이 쌓여 있지 않은가?

오오... 이럴 수가! 그것은 실로 섬뜩하고 전율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족히 일만(一萬)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의 시신들이 온통 지하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으니... 시신들은 서로 격렬히 싸우다 죽은 듯 마구 뒤엉킨 채 죽어 있었다.

열 명의 비율로 따지자면, 그 중 네 명은 혈포인이요, 여섯 명은 여러 부류의 인물들로 뒤섞여 있었다.

(), (), (), (), 여인(女人) ...

그들은 하나같이 생전의 형체를 그대로 유지한 채 죽어 있었다.

가공할 지극음기(地極陰氣), 그것으로 인해 부패되거나 변질됨이 없는 것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군무현이 처음 동굴을 들어설떼 본것같이 팔백 년 이전의 시신들이 아닌가?

군무현은 그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끔찍하군. 이런 지하(地下)에서 일만명의 생명이 죽어갔다니...!”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얼마나 끔찍한 광경인가? 일만여 구의 시신들, 그것들은 모두 사지가 끊어지고 머리가 박살났으며 복부가 찢어져 내장이 흘러나온 처참한 형색들이었다.

한데, 한 가지 기이한 것이 있었다.

그 시신들은 습기가 완전히 사라져 모두 강시화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

군무현, 그는 아연한 표정으로 넋이 나간 듯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일찍이 이같이 처참한 광경은 상상도 못한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저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미간을 모으며 전면을 주시했다.

보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시신들의 중앙, 기이하게도 그곳에는 자욱하게 백무(白霧)가 서려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그냥 지나칠 군무현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스슥! 그의 신형은 가볍게 시산(屍山) 위로 날아올랐다.

한데,

!”

시산의 중앙에 있는 백무(白霧)를 향해 다가서던 군무현, 일순 그는 신형을 휘청했다.

... 지독한 한기(寒氣)!”

그는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극랭한 한기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군무현은 극양지맥(極陽之脈)의 소유자였다.

범인이라면 능히 얼어 죽어버릴 극심한 한기도 가벼운 추풍(秋風) 정도로 느낄 뿐이었다.

한데, 그런 그가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한기를 느끼다니... 대체 그것은 얼마나 지독한 극음지기란 말인가?

만약 군무현이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면 단번에 심맥이 얼어붙고 말았으리라.

한데, 신기한 것이 있었다.

심맥을 파고들며 뼈를 얼리는 극심한 한기, 그것은 넓게 퍼지지 않고 백무(白霧) 주위에만 응집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의혹을 금치못했다.

지극음령수액보다 천배 더 차갑다. 도대체 어떤 물체가 있기에 이렇게 지독한 한기를 발산한단 말인가?”

그는 강렬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더구나, 그는 극양(極陽)의 절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극음지물(極陰之物)은 더할 수 없는 보신지물(寶身之物)이 아닌가?

군무현으로서는 큰 관심사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두 눈을 유현하게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지 찾아보리라!”

그렇게 결심한 순간, 그는 주위에 널려있는 시신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선자(先者)의 유체를 손상함은 도리가 아니다...!”

그는 시신에 손을 대는 것이 다소 마음에 걸렸다.

하나, 그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이윽고, 그는 시신의 산을 향해 쉴새없이 손을 내저었다.

우수수...! 휘르르!

그의 손짓에 따라 백무 주위의 시신들이 경기에 밀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기를 일각(一角), 군무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그는 무려 사백여 구의 시신을 치우고서야 비로소 바닥에 이를 수 있었다.

한데 그 순간,

... 이것은...!”

시신을 모두 치운 군무현, 그는 대경성을 발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앞, 넓이 일 장 정도의 널찍한 흑석(黑石)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데, 그 흑석에는 전신을 뼈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엄청난 한기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극음현령옥(極陰玄靈玉)이다!)

만년한옥(萬年寒玉)이 천만 년 동안 극음지기(極陰之氣)를 흡수하며 형성하는 기석(奇石), 이는 한 조각만으로도 능히 활화산(活火山)을 식혀버리는 엄청난 극음지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 군무현이 놀란 것은 그 극음현령옥(極陰玄靈玉) 때문이 아니었다.

극음현령옥의 중앙, 그곳에는 흡사 낙수(落水) 구멍같이 우푹한 홈이 패어져 있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 홈 속에는 투명한 유백색의 반고체 덩어리가 고여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음식으로 먹는 묵과 같은 형태였다. 만지면 물컹하게 손에 닿을 듯한 투명반고체, 그 분량도 제법 되었다.

어른의 주먹 두 개를 합친 정도, 표면에는 신비한 유백색의 광휘가 감돌고 있었다.

기이하고도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모습, 문득 군무현은 숨이 멎을 듯한 표정이 되었다.

... 혹시... ... 이것은...!”

그는 엄청난 경악으로 두눈을 휩떴다.

그런 그의 얼굴은 온톤 희열과 흥분으로 물들었다.

내심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군무현, 그가 이렇듯 경악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다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순, 군무현은 번개같이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에 전율했다.

 

인간이 죽으면 그 뇌수(腦髓)와 정수(精髓)는 대기(大氣) 중에 산화되고 만다. 하나 만일 극음현령옥(極陰玄靈玉)과 같은 극음(極陰)의 지보가 있는 곳에서 죽게되면 정수는 뇌수와 더불어 극음현령옥에 응결된다. 이것을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라 하며 실로 무궁무상의 효과가 있다...

 

바로 신기황에게 의술을 배울때 들은 내용이었다.

군무현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

특히 그것은 너무도 기이하게 여겨져 강한 의혹과 함께 군무현의 뇌리속에 선명히 남아 있었던 차였다.

한데, 천마애의 깊은 곳에 자리한 은밀한 지하동부, 그곳에서 실로 뜻밖에도 그 극령정뇌수를 발견한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이내 확신이 섰다.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극령정뇌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격동과 흥분으로 휩싸였다.

신기황이 들려준 또 다른 놀라운 사실 때문이었다.

 

일백인(一百人)의 뇌수와 정수가 모여야 그것은 겨우 밤톨만 해진다. 알아두어라.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만이 너의 태양신맥(太陽神脈)을 치료할 수 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희열과 격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극령정뇌수만이 너의 태양신맥을 치료할 수 있다...

 

군무현의 귓전에 신기황의 그 말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 했다. 군무현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감격의 표정을 지었다.

전설(傳說)로만 믿었거늘... 극령정뇌수가 실제로 있었다니...!”

그는 눈앞의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 하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군무현, 그로서는 실로 엄청난 일생일대의 대기연을 만난 것이었다.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

그는 마침내 불치의 절맥인 태양신맥을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희열과 격동에 몸을 떨던 군무현, 문득 그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극음현령옥에 고여있는 극령정뇌수, 그것은 족히 일만 명의 정뇌가 모인 것이었다.

어찌 기분이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제 나의 태양신맥은 치료할 수가 있다. 하나... 인간으로서 어찌 같은 인간의 정뇌를 복용한단 말인가?)

그는 난색을 지으며 거리낌을 금할 수 없었다.

일종의 죄의식이랄까? 아니, 그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할 양심인지도 몰랐다.

군무현은 잠시 갈등과 함께 망설임의 표정을 지었다.

하나, 생각해 보라. 누가 이런 엄청난 기연을 포기하겠는가?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

 

이는 인간의 정뇌와 극음현령옥의 극음지기가 뭉쳐진 정화였다.

그 때문에, 태양신맥의 극양지기를 누르고 태음경(太陰經)과 소음경(小陰經)을 능히 부활시킬 수 있었다.

뿐인가? 그것을 복용함으로해서 지고무상한 내공도 얻을 수가 있다.

극령정뇌수를 복용하게 되면 능히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가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효능인가?

물론, 군무현도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꺼림직한 기분과 함께 썩 즐겁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어쩌랴? 그는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이윽고, 그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개운치는 않으나... 내 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니...!”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어, 그는 극음현령옥의 앞으로 다가가 우뚝 섰다.

우선 그는 흥분된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혔다. 그런 다음, 그는 조심스럽게 극령정뇌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뭉클...! 손바닥 가득 기분 나쁜 감촉이 전해졌다.

(!)

군무현은 내심 다급성을 발했다. 뭉클하는 감촉과 함께 삽시에 두 손이 마비되는 듯한 엄청난 한기가 짓쳐드는 것이 아닌가?

(... 지독한 한기다...!)

그는 뼈골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지독한 한기가 전신을 엄습함을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순간, 군무현은 급히 입을 열었다.

꿀꺽...! 마침내 그는 극령정뇌수를 목구멍으로 삼켜버렸다.

그와 함께,

크 윽!”

군무현의 안면이 처참하게 이지러졌다. 그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그는 몸 전체가 사정없이 얼어붙는 듯 했다. 치가 떨리는 가공할 한기였다.

으으... ... 운공을 해야 한다...!”

군무현은 온통 고통으로 이지러진 얼굴로 간신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는 극음현령옥 위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그는 전신에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을 운용했다.

그러자, 우르르...! 이내 그의 내부에서 천지개벽을 하는 듯한 대변동이 일어났다.

(으윽...!)

군무현의 영준한 얼굴은 참혹한 고통으로 얽혀들었다.

꽈르릉... 태양같이 뜨거운 극양지기는 엄청난 기세로 그의 내부를 뚫고 일어났다.

그와 함께, 극령정뇌수의 가공할 극음지기도 이에 지지않고 대항하기 시작했다.

극양지기와 극음지기의 상반된 두 가지 기운의 대결, 그것은 마구 뒤엉켜 군무현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우르릉! 콰 앙!

미친 듯이 전신을 질타하는 상극의 양대기류,

(크윽...!)

군무현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악물었다.

전신이 터져 폭발해 버린 듯한 지극한 고통, 난마처럼 전신 구석구석을 치달리는 극을 달한 고통에 그는 눈앞이 캄캄해 졌다.

으윽... !”

군무현은 마침내 입 밖으로 신음성을 토해냈다.

전신이 뜨거운 불구덩이에 빠진 듯 화끈거렸다.

심맥이 타들어 가는 듯한 참혹한 고통, 하나 그런가하면 어느새 전신이 얼어붙어 쩍쩍 갈라지는 듯한 가공할 한기가 짓쳐들었다.

실로 인간으로서 참아낼 수 없는 엄청난 형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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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修羅天魔洞府奇緣

 

 

 

신기황은 만년에 감회와 격동의 빛을 지으며 말했다.

그 안에 고금제일음공(古今第一音功)이 적혀있다!”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하나, 그는 새로운 무공을 대할 때마다 새로운 흥분과 기대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접하고자 하는 그의 왕성한 의욕 때문이었다.

신기황은 군무현의 뛰어난 오성과 총명을 믿고 있었다.

노부도 음공(音功)에는 별반 너보다 나은 점이 없으니 천황음경(天皇音經)은 제 스스로 터득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군무현은 천황음경을 내려다보며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문득, 신기황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황음경에는 천음황의 한()이 실려있다. 천음일맥(天音一脈)을 잇는 너는 선인(先人)의 심한(心恨)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엄숙한 어조로 당부했다.

군무현은 그런 신기황의 내심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각골명심 하겠습니다!”

그는 굳은 결의의 음성으로 대답했다.

신기황의 노안이 음울한 빛으로 젖어들며 미미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는 볼 수 있었다.

나가 보아라!”

그의 음성 또한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군무현은 몸을 일으키며 내심 중얼거렸다.

(천음황 선배님을 생각하시는 것이리라...!)

이어, 그는 신기황을 향해 공손히 일배한 후 몸을 돌렸다.

물러가겠습니다!”

“...!”

신기황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눈길을 다시 벽쪽으로 돌렸다. 그런 그의 모습이 부쩍 늙어 보였다.

 

X X X

 

삘릴리 삘리... 부드러운 소성이 절곡(絶谷)을 가득 메우며 흐른다.

맑고 흥겨운 음률, 그것은 마치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분지를 어루만졌다.

온통 화려한 기화이초가 만발한 방대한 분지, 그 중앙의 평평한 바위 위, 한 명의 백의청년이 단좌하고 있었다.

조각같이 수려한 용모의 미청년. 바로 군무현이었다.

그는 두 누늘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술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하나의 목적(木笛)이 가볍게 물려져 있었다.

삘리리... 삘리... 그 목적(木笛)에서는 심신을 온유롭게 만드는 부드러운 음률이 흘러나왔다.

! 이 순간 천지는 온통 신비의 조화지경으로 화한다.

천지동화(天地同和)!

만물(萬物)이 피리소리에 끌려 하나로 융합된다.

상극(相極)과 상생(相生)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삼라만상(森羅萬象).

하나, 이 순간만은 상극(相極)이 없다. 오직 상생(相生)만이 존재할 뿐이다. 상극의 묘리는 흔적없는 티끌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주위는 평화롭고 피리소리는 더없이 흥겹고 부드럽다. 문득, 분지를 울려퍼지던 부드러운 소성이 뚝 끊어졌다.

군무현, 그는 목적(木笛)을 입에서 떼며 비로소 눈을 떴다.

항상 서늘한 살기가 어려있던 그의 눈빛, 하나 이 순간 그의 눈빛은 더할 수 없이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스스로 음률에 취한 것일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감정하고 서늘한 한기가 일렁거리는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문득, 군무현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천락화영춘(天樂和英春)...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에 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음공(音功)이다!”

천음황의 천황음경(天皇音經)!

그것은 음공(音功)의 정수를 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이다.

(), (), (), (), ()의 묘결을 담은 오대음종. 그것은 하나하나가 각기 한 방면의 최고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군무현은 천황오대음종에 대해 감탄을 금치못했다. 이어,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묘결은 모두 이해했다. 다만 그 위력이 지나쳐 화(), ()의 음종 외에는 펼칠 수가 없을 뿐...!”

과연 그러했다. ()와 환()까지는 단지 허상을 만들고 심기를 제()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하나, (), (), ()의 음종은 그 목적이 본격적으로 달랐다.

파괴(破壞). 그것은 오직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무서운 음공인 것이다.

설사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가공할 위력.

군무현, 그는 불과 일년만에 천황음경 내의 정수를 모두 터득했다. 이 또한 범인으로서는 상상치도 못할 눈부신 성취였다.

그는 수중의 목적을 만지작거리며 무감정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천황음경에서는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다. 실제로 펼쳐보는 일만 남았을 뿐!”

문득, 그는 눈을 돌려 북쪽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신기황이 기거하는 동굴의 맞은편에 위치한 석벽, 그 석벽을 주시하며 군무현은 눈을 빛냈다.

저 석벽에 대고 음공을 시험해 보자!”

중러거림과 함께, 스슥...! 그의 신형이 앉은 채 소리없이 떠올랐다.

 

파향비운산(波香飛雲散)!

 

천황음경 중에 실린 극상의 경공. 그것이 펼쳐진 것이었다.

스스스... 이내 군무현의 신형은 마치 산향(散香)이 퍼지듯 흩어졌다.

잠시 후, 스슥! 군무현은 깃털처럼 가볍게 석벽 앞으로 내려섰다.

그는 눈을 빛내며 석벽을 주시했다.

제삼붕음종(第三崩音宗)은 목표한 것만 무너뜨릴 뿐,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드는 제사멸음종(第四滅音宗)과는 다르지. 성세는 약하나 최고 십리(十里) 밖의 목표물도 부술 수 있는 묘용이 있다!”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수중의 목적을 입에 댔다.

그러다 문득,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혹의 빛을 지었다.

(오성(五成)의 공력으로 저 석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는 저으기 염려스러웠다.

하나, 삐 익!

이내 그의 목적(木笛)으로부터 천공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성이 울려퍼졌다.

순간, 파 팍!

그 엄청난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목적이 그대로 박살나고 말았다.

직후, 우르릉... 쩌 억!

음파에 격중당한 석벽이 굉음과 함께 마치 거북의 등처럼 쩍쩍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콰르르릉! 콰 쾅!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오르며 거대한 석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아아! 그것은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단 한 번의 음파(音派)! 그로 인해 엄청난 두께의 석벽이 가루로 부서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음공을 시전한 군무현, 그 역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붕뇌명후(天崩雷鳴吼)의 위력이 이 정도라니...!”

그는 아연하여 절로 탄성을 터뜨렸다.

위 잉! 파파앗! 일진 회오리와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온통 허공을 뒤덮었다.

다음 순간,

아니...!”

군무현은 흠칫하며 경호성을 발했다.

이어, ! 그는 즉시 앞으로 날아내렸다.

이런 곳에 동굴이 있었다니...!”

군무현은 경이의 눈빛으로 전면을 주시했다. 무너진 석벽의 뒤쪽, 뜻박에도 그곳에는 높이 십여 장의 높은 동굴이 뚫려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지옥(地獄)의 입구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동굴, 그 동굴 앞에 내려선 군무현, 그는 다시 한 번 흠칫 놀랐다.

(마기(魔氣)가 뻗힌다!)

그는 동굴에서 뻗어나오는 전율적인 마기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졌다.

동굴, 그 안쪽에서는 전신을 오그라붙게 만드는 섬뜩하고 칙칙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문득, 군무현의 두 눈이 강렬한 빛을 발했다. 그의 뇌리로 언뜻 신기황이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천마애(天魔崖)에는 신비가 숨겨져 있다. 노부는 지극음령수액에서 나갈 수 없어 알아보지 못했으니 기회가 닿으면 네 스스로 찾아보아라!

 

군무현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꼈다.

(범상한 동부가 아니다. 신기황께서 지칭한 신비(神秘)라는 것이 어쩌면 이 동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강렬한 호기심에 마음이 끌렸다.

이윽고,

(들어가보자!)

그는 결심을 굳히며 동굴 앞으로 다가섰다.

스슥! 이내 그는 망설임없이 동굴 안으로 날아들었다.

 

동굴 안, 그곳은 불빛 한점 없이 어두컴컴했다.

전신을 조여들게 만드는 칙칙한 마기(魔氣). 그것은 동굴의 통로를 따라 들어갈수록 더욱 강렬하게 뻗쳐나왔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문득, 군무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동부(洞府), 눈앞에 하나의 광활한 동부가 나타났다.

한데, 군무현은 일순 흠칫 놀라며 전면을 주시했다.

시신(屍身)!”

그는 나직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그의 전면, 어둠 속에 한 구의 시신이 보였다.

시신은 삼십 대의 장한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한 자루의 장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장한은 눈을 감은 채 동굴의 벽에 기대어 죽어 있었다.

“...!”

군무현은 눈썹을 모으며 천천히 시신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손끝으로 가볍게 시신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우수수...!

시신은 단번에 가루로 화해 부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흠칫하며 물러섰다.

하나, 이내 그의 머리는 민활하게 움직였다.

(복장으로 보아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복색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팔백년 전의 시신이다!)

그는 눈을 빛내며 염두를 굴렸다.

그때, 휘 잉!

문득 귀기서린 한줄기 음풍이 군무현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섬칫한 한기가 모발을 쭈뼛 곤두서게 만들었다. 하나, 군무현은 담력이 컸다.

그는 한줌의 재로 화해버린 시신을 내려다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곳은 천지지간의 음기(陰氣)가 모이는 곳... 지극음기(地極陰氣)가 시신의 부패를 막았으리라!)

과연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이윽고, 군무현은 예리한 눈을 빛내며 계속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데, 시신은 재로 화해버린 장한을 기점으로 계속 발견되었다.

또한, 갈수록 그 숫자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걸음을 옮기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두 개의 인물들이 싸우다가 동귀어진했다. 혈포를 걸친 자들은 여러 부류의 인물들이 합공한 것으로 보이는군!)

시신의 형태는 실로 각양각색이었다.

서로 뒤엉킨 채 나뒹굴어진 시신, 목이 댕강 잘려 나가고 없는 시신, 검을 끌어 안고 꼬꾸라졌거나, 혹은 심장이 관통되어 창자가 흘러나온 시신 등...

군무현은 예리한 눈빛으로 시신들을 살피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는 거대한 지하광장의 입구에 이르게 되었다.

그 순간,

“...!”

군무현은 흠칫하며 걸음을 멈춰섰다.

지하광장의 입구, 그곳에는 오 장 높이의 거대한 석비(石碑)가 세워져 있지 않은가?

 

<수라천마동부(修羅天魔洞府)!>

 

석비 위에는 섬뜩한 핏빛 글씨가 그와 같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전율스러운 마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수라천마동부(修羅天魔洞府)?”

군무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검미를 모았다. 그로서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성큼 지하광장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

군무현의 안색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여하한 일에도 좀처럼 감정을 내색지 않는 군무현, 그런 그였건만 그의 두 눈은 이 순간 한껏 부릅떠졌다.

대체 그는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 一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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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天皇音經, 古今最强音功

 

 

 

적룡검(赤龍劍)!

 

아아! 이 얼마나 놀라운 이름인가?

오백 년 전, 돌연 거창한 일대선풍이 천하를 휩쓸었다.

한 명의 검수(劍手)!

그의 등장은 돌풍처럼 무림을 뒤흔들었다. 그는 온통 신비 속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나이나 용모는 물론, 심지어는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 그 신비검수는 나타나자마자 무림을 벌컥 뒤집어 놓고 말았다.

그는 천하의 일백대 고인과 일백대 강대 문파를 질타했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뿐, 비무(比武)! 바로 그것이었다.

단순히 비무를 원한 행동이었으나 그 결과는 실로 어이없을 정도였다.

당당히 천하최강을 자부하던 인물들, 그들은 허무하게도 신비검수의 일초반식도 받지 못하고 연속 패하고 말았다.

완패(完敗). 무림의 완전한 패배였다.

신비검수, 그는 이 결과에 대해 실망을 금치못했다.

 

... 천하(天下)가 이토록 좁단 말인가! 구주팔황(九州八荒)의 넓이가 겨우 본 검종(劍宗)의 일초 검식도 완전히 펼칠 수 없이 협소하다니...!

 

그는 그렇게 탄식하며 종적도 없이 무림에서 사라졌다.

실로 경악할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출도한지 불과 반년만의 일이었다.

반년(半年), 단 반년의 활동으로 그 신비검수는 천지십강(天地十强) 중에 든 것이 아닌가?

이는 무림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이었다.

 

적룡검은 바로 적룡천종(赤龍天宗)께서 사용하신 명검(名劍)이다!”

신기황은 진중한 안색으로 말을 계속했다.

군무현은 묵묵히 입을 닫고 있었다. 하나, 그의 내심은 흥분과 격동으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는 유현하게 눈을 빛내며 수중의 적룡검을 내려다 보았다.

그때, 신기황의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적룡검에는 적룡천종(赤龍天宗) 선배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아마 네 부친 적룡대제는 그 중 두 가지 정도를 알아내었을 것이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과 적룡어강살...!)

그것은 부친 적룡대제의 최대절기였다.

한데, 신기황의 다음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네 아버지는 그 두가지의 절기로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란 소리를 들었겠으나... 사실 그것은 적룡천종(赤龍天宗)의 진정한 진전의 반푼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그의 말에 군무현은 의혹과 경악을 금치못했다.

적룡대제 군천휘를 천하제일검으로 군림케 만든 그의 최대검식, 그것이 겨우 적룡천종(赤龍天宗)의 반푼의 진전에 불과한 것이라니...

그는 놀라움을 가라앉히며 신기황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신기황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네 아버지와 노부도 찾지못한 세 번째 것이 적룡천종(赤龍天宗)의 진정한 절기다. 그것을 알아낸다면 너는 고금제일검(古今第一劍)의 뒤를 잇게 된다. 그 경지는 우내사천황도 이룰 수 없는 지고무상(至高無上)의 경지임을 알게 될 것이다!”

“...!”

군무현의 가슴은 뜨겁게 요동쳤다.

(고금제일검(古今第一劍)...!)

그는 격동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그는 새삼 신기황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신기황께서는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과 적룡어강살을 찾아내셨구나!)

그 두 가지 검식(劍式)은 군무현도 알고 있었다.

적룡검, 그것의 검집에는 매우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적룡팔대식을 나타내는 구결이었다.

적룡어강살! 그것은 적룡검의 손잡이에 구결이 암시되어 있었다.

적룡검의 손잡이는 만년온옥으로 되어 있는데 그곳에 흐릿하게 파여져 있는 종횡의 복잡한 선()들이 바로 적룡어강살의 구결이었다.

그때, 신기황이 두 눈에 기광을 폭사하며 말했다.

흐흐... 적룡천종의 진정한 절기를 얻는다면 네명의 천마황(天魔皇)이라도 벨 수 있다!”

! 그의 말은 실로 경악할만 했다. 군무현은 새삼 천지십강(天地十强)에 대한 경외심이 일었다.

(천지십강... 그 분들이 그렇게 강하단 말인가?)

신기황은 군무현을 똑바로 주시하며 물었다.

이제 네가 천마황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을 알겠느냐?”

!”

군무현은 낮으나 힘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기황은 신뢰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엄중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부터 노부의 재간을 전수하겠다. 노부의 재간은 무공이라기보다 학문(學文)에 가깝다. 하나, 명심해 두어라! 학문이라고는 하지만 무공수련보다 일백배 더 어렵다는 것을...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명심하겠습니다!”

군무현은 신념어린 어조로 대답했다.

신기황은 그런 군무현이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그러기에 그는 확신이 섰다.

범인이라면 노부의 재간을 모두 얻으려면 일백 년도 부족할 것이나 너는 이년(二年)안에 끝내리라 믿는다!”

그 말과 함께, 우 웅! 다시 한줄기 강력한 잠력이 웅덩이 속에서 뻗어나왔다.

이어, 휘익 탁! 동굴의 뒤쪽의 벽면에서 두 권의 두툼한 책자가 날아와 군무현의 무릎 앞에 떨어졌다.

“...!”

군무현의 눈길은 빠르게 그 두 권의 책자를 살폈다.

 

신기천망해(神機天網解)!

활심대성록(活心大聖綠)!

 

두 권의 양피자 책자, 그 표지에는 각기 그와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범인이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웅휘한 필체.

그때, 신기황이 다시 엄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노부는 삼절(三絶)이다. 기절(機絶)이 그 첫째이며, 의절(醫絶)이 그 둘째, 그리고 암기술(暗器術)이 셋째이다!”

신기황! 그는 삼십년간의 금제생활과 골수에 맺힌 원한으로 인해 성격이 괴팍하게 변해있었다.

하나, 본래 그는 뛰어난 인품과 덕망의 소유자였다.

그를 일컬어 무림제일의 현자(賢者)라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오랜 세월 고립된 생활로 인해 그 성격이 다소 변하기는 했으나 본래의 훌륭한 인품을 잃지는 않았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이윽고, 신기황은 자신의 절기에 대해 설명했다.

노부의 암기술은 고금제일(古今第一)을 다투어도 될만한 것이나 글로 남기기에는 부끄러운 것이라 노부가 직접 구술하겠다. 우선 신기천망해(神機天網解)부터 전수하겠다!”

군무현은 정신을 집중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집중력은 결코 범인이 따르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다.

신기천망해! 그것은 천지지간의 모든 이치를 담은 심오한 내용이었다.

군무현, 그는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신기황의 말을 경청했다.

차갑고 무심하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은 이 순간 쉴새없이 빛나고 있었다.

신기황의 또 다른 분신, 제 이의 신기황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X X X

 

천마애(天魔崖)!

나는 새도 접근을 불허하는 천험(天險)의 절지.

스으... 스으... 안개, 천마애는 사시사철 음울하고 검푸른 안개로 휩사여 있다.

암울한 신비가 전설처럼 구비구비 서린 곳, 그 누구도 감히 천마애의 신비를 벗길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묵운(墨雲). 그것은 천마애 주위에 펼쳐진 상고대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었다.

 

천애장비대진(天崖藏秘大陣)!

 

이것이 바로 그 절진의 이름이었다.

언제, 누가 이 절진을 설치해 놓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천애장비대진(天崖藏秘大陣)을 돌파할 수 있는 인물은 천하에 단 두 명 뿐이었다.

기문제일인(機門第一人)인 신기황, 그리고 그의 분신으로 새롭게 탄생한 젊은 기재 군무현이 바로 그들이었다.

천하애는 온통 신비로 뒤덮인 곳이었다.

그곳은 세인들의 상상 이상으로 신비가 처처에 깔려 있었다. 또한, 천마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드넓고 방대한 규모였다.

신기황, 그는 천마황의 독수에 당한 후 은신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천마애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이곳에 몸을 숨기고 지극음령수액에 몸을 담근 채 독기를 억누르며 살고 있는 것이다.

 

천마애 아래, 뜻밖에도 그곳은 방대한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 새외도원의 낙원(樂園)이 그러할까?

보라! 수십마장에 이르는 거대한 분지, 그곳은 온통 화려한 기화이초로 뒤덮여 있지 않은가?

실로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 정녕 세인들은 알지 못하리라.

천험의 절지 천마애, 그 아래 이토록 화려하고 평화로운 낙원이 있다는 것을.

초하(初夏). 싱그러운 첫여름이었다.

천마애의 여름은 너무도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방대한 분지는 온통 싱싱한 초록의 물결로 출렁거렸고 하늘은 눈부시게 청량했다.

한데, 우르릉! 콰쾅...! 돌연 맑은 하늘을 뒤흔드는 가공할 뇌성벽력이 터져나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가?

뒤이어, 콰르릉 콰쾅! 우르르... 쏴아!

광풍(狂風)이 몰아치며 세찬 폭우가 대지를 두드렸다.

갑자기 천마애는 온통 지축이 뒤흔들리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천지(天地)에 종말이 도래하려는가?

콰르르... ! 우르르릉!

광풍폭우가 미친 듯이 천마애를 뒤흔들었다.

일시에 사위는 암운천지로 돌변했다.

한데,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일순 모든 것이 정지했다.

가공할 뇌성벽력도, 천지를 함몰시킬 듯한 광풍폭우도 온데간데 없었다.

그것들은 마치 환상처럼 한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아! 이럴 수가...

보라! 천마애의 그 어디에도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창해(蒼海)처럼 맑게 출렁거리는 푸른 하늘, 그 눈부신 햇살 아래 생기롭게 빛나는 초목들, 꽃잎에는 물기 한 방울조차 남아있지 않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비쳤다 사라져버린 환상이라면 너무나 생생하지 않은가!

그때였다.

풍운대라굉벽진(風雲大羅轟碧陣)...!”

문득 한소리 담담한 청년의 음성이 분지를 울렸다.

이어, 분지의 한쪽 옆 돌무더기 사이에서 한 명의 청년이 걸어나왔다.

투명하리만치 흰 피부, 미인의 그것처럼 붉고 정령적인 입술, 깊고 깊은 신비를 담은 채 서늘하게 가라앉는 눈빛, 옥수같이 미려한 자태가 헌앙하기 이를 데 없다.

청년은 일신에 용모와 썩 잘 어울리는 백색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백의청년, 그에게서는 실로 종잡을 수 없는 기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만년한옥에서 스며나오는 듯한 서늘한 한기, 그것은 무형중에 사위를 짓누르는 기이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윽고, 백의청년은 몸을 돌려 어지러이 널려있는 돌무더기를 바라보았다.

풍운대라굉벽진... 신기황 어르신과 나 외에는 누구도 뚫을 수 없는 천하절진(天下絶陣)...!”

그의 붉은 입술 사이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방금 전 천마애를 휩쓸었던 뇌성벽력과 광풍폭우, 그것은 바로 진식이 만든 허상(虛象)이 아닌가?

누가 믿으려 할것인가? 이 엄청난 사실을... 천지를 질타했던 그 엄청난 광경이 어이없게도 환상에 불과하다니...

한데, 바로 그때였다.

무현... 들어오너라!”

문득 한소리 창노한 노인의 음성이 분지를 울렸다.

!”

그 음성에 백의청년은 공손한 대답과 함께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지의 끝, 그곳은 높은 벽면으로 앞이 가로막혀 있었다.

한데, 그 벽면에는 하나의 퀭한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백의청년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어, 그는 동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희미한 야명주 불빛이 비치는 동굴 안, 움푹 패인 웅덩이 속에 한 명의 괴인이 목만 내놓은 채 잠겨 있었다.

신기황 바로 그였다.

그는 벽쪽을 주시하고 있다가 백의청년이 들어서자 시선을 돌렸다.

무현, 앉거라!”

!”

백의청년은 담담히 대답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군무현! 물론 그는 군무현이었다.

신기황은 대견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허허... 이년(二年)이 족히 걸릴줄 알았거늘 석달이 모자라는 이년 동안에 노부의 밑천을 모두 뺏기고 말았구나!”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

군무현의 얼굴은 무심하고 담담했다.

하나, 그는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어 대꾸했다.

모두 노인장께서 소생을 아껴주신 덕분입니다!”

그는 신기황을 사부(師父)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황 또한 그것을 조금도 섭섭해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군무현을 만난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황의 노안에 오랜만에 미소가 떠올랐다.

헛허... 공자께서도 훌륭한 인재를 기름을 인생삼락(人生三樂)에 넣지 않았느냐? 늙으막에 뛰어난 기재를 가르치게 된것을 노부의 홍복으로 생각한다!”

부끄럽습니다!”

군무현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신기황은 흐뭇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말했다.

이제 천음황(天音皇)의 진전을 배울 차례다!”

! 어느새 말을 하는 그의 수중에는 한 권의 비급이 들려졌다.

이어,

받아라!”

! 그는 쥐고있던 비급을 가볍게 군무현에게 던져주었다.

군무현은 공손히 그 비급을 받아들었다.

 

<천황음경(天皇音經)!>

두툼한 비급의 표지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일필휘지의 서체로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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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赤龍劍秘密

 

 

 

백발괴인은 문득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노부가 바로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중 기문제일(機門第一)로 불리던 신기황(神機皇)이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일변했다. 그는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괴인, 그가 바로 일백년 전 혁혁한 명성을 날리던 기인(奇人) 신기황이라니...

실로 놀랍고도 뜻밖의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군무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신기황(神機皇) 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때, 백발괴인, 아니 신기황(神機皇)! 그도 군무현을 주시하며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어린 녀석의 심기가 삼갑자를 살아온 노부에 뒤지지 않다니...!)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 그는 일순 안색이 변했으나 이내 지극히 무심한 표정을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신기황은 그런 군무현의 모습에 고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무현! 너는 노무가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궁금하지도 않느냐?”

군무현은 그제서야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떼었다.

궁금합니다!”

신기황은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테지. 노부가 이 모양으로 잔생(殘生)하게 된 것은 어쩌면 천하대풍운(天下大風雲)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 말에 군무현은 내심 흠칫 놀랐다.

(천하대풍운(天下大風雲)의 시작...!)

그는 나직이 뇌까리며 안색을 굳혔다.

신기황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 아버지 적룡대제(赤龍大帝)와 적룡세가(赤龍勢家)의 몰락과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순간, 군무현의 전신이 미미하게 경련했다.

그와 함께, 그의 가슴 한복판으로 차가운 한풍이 휙 스치고 지나감을 느꼈다. 그는 묵묵히, 그러나 긴장된 눈빛으로 신기황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신기황은 지난 일을 회상하는 듯 문득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어,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삼십년(三十年) 전이었다. 노부는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천음황(天音皇)을 만나보러 청성(靑城)의 천음애(天音崖)로 갔었다.”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그들 중에서도 천음황(天音皇)과 신기황(神機皇)은 각별한 사이였다.

독천황(毒天皇)이 정사중도(正邪中道), 천마황(天魔皇)이 마도(魔道)를 걷는데 비해, 천음황과 신기황은 함께 정도(正道)를 걷던 인물들이었다.

그로 인해, 자연히 두 사람의 의기는 서로 투합하게 되었다.

우내사천황은 비록 걷는 길은 달랐으나 서로를 깊이 존경했다.

특히, 천음황과 신기황의 우의는 아주 긴물했다.

신기황이 천음황을 만나기 위해 천음애(天音崖)를 찾았던 날, 천음황은 변함없이 반가운 얼굴로 신기황을 맞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 술잔을 나누며 쌓였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몇 순배 술잔이 돌고 양인이 한창 회포를 풀고 있을 때였다. 천음애를 찾은 뜻밖의 손님이 있었다.

 

천마황(天魔皇)! 그는 바로 우내사천황 중의 일인인 천마황이었다.

천마황은 진정한 마웅(魔雄)이었다.

천하마도(天下魔道)를 수하로 결집시키고 천하의 반()을 얻은 그는 스스로 자족(自足)했다. 그리하여 그는 미련없이 자신이 세운 거대한 패세(覇勢)인 천마궁(天魔宮)을 폐했다.

그 후, 그는 후진들을 기르는 데 열정을 쏟고 있었다.

실로 일대종사(一大宗師)다운 처신이었다.

신기황과 천음황은 그런 천마황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평소에 친교는 없었으나 만나면 서로 웃으며 대하던 그들이었다.

한데, 그런 삼인(三人)이 실로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었다. 신기황과 천음황은 뒤늦게 찾아온 천마황을 환대하며 맞아들였다.

이윽고, 삼인은 격의 없이 술자리를 같이했다. 그들은 모두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로부터 반나절 후, 천마황은 적당히 술기운이 올라 기분좋은 모습으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가지 볼일이 있어 남황(南荒)으로 가던 길이었소.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소이다!”

그는 신기황과 천음황에게 인사를 한 후 총총히 천음애를 떠났다.

한데, 사태는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천마황을 배웅한 직후, 신기황은 이내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기문지학 뿐 아니라 의술(醫術)로도 당대제일이었다.

그는 즉시 자신이 맹독에 중독되었음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중독당한 것 같소!”

신기황의 그 말에 천음황은 대경했다. 이어, 다급히 자신의 몸을 살피던 천음황, 아니나 다를까? 그 역시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노부도 역시 그렇소!”

두 명의 절대고인은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마황(天魔皇)! 그 자의 짓이다!)

그들은 분격하며 치를 떨었다. 하나, 이미 늦은 후였다.

그들이 당한 독()은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맹독이었다.

사심없이 천마황을 믿었던 두 고인, 그들은 전혀 경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감쪽같이 중독 당하고 만것이었다.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경악과 분노, 그들이 받은 충격과 배신감은 그 이상이었다.

한데, 더욱 놀라운 사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그들이 분노를 금치못하고 있을 때, 돌연 일단의 무리들이 천음애로 들이닥쳤다.

갑작스런 습격이었다. 신기황과 천음황은 미처 대항할 여지조차 없었다. 그들은 독기(毒氣)를 두르며 간신히 천음애를 빠져나왔다.

하나, 어찌 알았으랴?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철저하고도 치밀한 죽음의 함정 뿐인 것을.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듯 수조차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적도들이 그들을 침습해 들었다.

결국, 그들은 싸워야 했다.

천음황, 그는 중독을 무시한 채 분전을 펼쳤다. 무려 일천 명의 적도들이 그의 음공(音功) 아래 쓰러졌다.

그들은 천음애의 괴멸과 함께 영원히 그곳에 묻히고 말았으니...

하나, 그로인해 천음황 또한 돌이킬 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천하제일의 의술을 지닌 신기황이었으나 그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마침내, 천음황은 청성(靑城)을 벗어나지 못하고 절명하고 말았다.

 

“...!”

“...!”

동굴 안은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신기황, 그의 모발 사이로 뻗힌 안광이 살기로 시퍼렇게 변했다. 그는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노부와 천음황이 당한 독()은 무형화린산(無形火燐散)이라는 것으로 천하에서 가장 극양(極陽)한 맹독이다!”

“...!”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신기황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말을 하는 신기황의 두 눈에서는 줄기줄기 원한의 광망이 폭사되었다.

무형화린산(無形火燐散)을 다룰줄 아는 곳은 독황궁(毒皇宮)과 남만의 사망림(死亡林) 외에는 없다. 노부는 지극음령수액에 몸을 담그고 간신히 무형화린산의 독기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군무현, 문득 그는 의아한 빛을 지으며 물었다.

지극음령수액으로 해독이 불가능하단 말입니까?”

신기황은 그의 말에 쓰디쓰게 웃었다.

흐흐... 해독이 가능했다면 노부가 이렇게 앉아 있겠느냐? 당장 뛰쳐나가 천마황(天魔皇)놈을 때려 잡았을 것이다!”

그는 흥분한 듯 두 눈에 핏발이 섰다. 하나, 이내 그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졌다.

전후 사정으로 보아 독천황(毒天皇)도 변을 당했을 것이다!”

“...!”

군무현은 가볍게 미간을 좁혔다. 이어, 그는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천마황은 무엇 때문에 세 분을 헤쳤을까요! 천하제패(天下制覇)가 목적이었다면 이미 천하가 천마황의 손 안에 들어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는 의혹의 표정을 지으며 신기황을 바라보았다.

하나, 그 말에 신기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흐흐... 천하를 네 손바닥만 하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는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설명했다.

천하에는 고인들이 모래사장의 모래알 같이 많다. 네 아비였던 적룡대제(赤龍大帝)가 우리 우내사천황에 육박했던 것이 그 본보기가 아니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얼마나 될지 장담하지 못한다!”

“...!”

군무현의 창백한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살짝 붉어졌다.

신기황은 기광을 번뜩이며 계속 말했다.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독황궁(毒皇宮)이나 천마궁(天魔宮)의 힘이 가장 강대했다. 하나... 천회쌍비(天外雙秘)나 세외사천(世外四天)도 각기 그에 못지 않다!”

그 말에 군무현은 흠칫했다.

천외쌍비(天外雙秘), 세외사천(世外四天)...!”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직이 뇌까렸다.

신기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나는대로 이야기해 주겠다!”

이어, 그는 두 눈에 싸늘한 한망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천마황은 암중에 방해되는 세력을 하나하나 제거하느라 삼십 년을 소비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놈은 어떤 형태로든 천하를 거의 손아귀에 넣었을 것이다!”

“...!”

결국... 적룡세가가 몰락한 것은 바로 천마황의 마무리 작업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 말에 군무현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졌다.

신기황, 그는 그런 군무현의 모습을 정면으로 주시했다.

군무현의 두 눈, 그것은 지금 엄청난 비분과 원한으로 끓어 오르고 있었다.

차가운 얼음 속에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본적이 있는가? 군무현의 눈빛이 바로 그러했다.

신기황은 그런 군무현의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 보았다.

이어, 그는 엄숙하고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 일신의 원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백만 무림동도들을 위해서다. 천마황을 죽여라!”

그것은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위엄이 깃든 명령이었다.

순간, 군무현의 전신이 한차례 부르르 경련했다.

기필코 그 자를 죽이겠습니다! 소생의 힘이 천마황의 그것에 미치지 않는다면 음모(陰謀)를 써서라도 쓰러뜨릴 것입니다!”

그는 싸늘하고 결연한 어조로 다짐했다.

신기황은 그의 말에서 신뢰를 느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자부심이 깃든 어조로 말했다.

흐흐... 천마황이 결코 네가 상대못할 강자(强者)가 아님을 알게될 것이다. 그놈의 마공(魔功)이 아무리 패도적이라도 우내사천황 중 이황(二皇)의 절기가 합쳐지면 결코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 순간 그의 두 눈은 강렬하고도 형형한 광채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만가지 감정이 서로 교차되고 있었다.

비로소 자신의 숙원이 달성된다는 것에 대한 감회, 그리고 당당한 우내사천황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이었다.

문득, 신기황은 생각난 듯 말했다.

네게 줄것이 있다!”

말과 함께, 위 잉! 돌연 그의 몸에서 강한 잠력이 일어났다.

이어, 츠츠츠읏!

지극음령수액이 떨어지는 벽면의 뒤에서 한 자루의 보검이 불쑥 솟아나오는 것이 아닌가?

은은한 붉은 빛을 띤 투명한 검신, 그 검신에는 한 마리 적룡(赤龍)의 문양이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적룡검(赤龍劍)!

 

! 그것은 바로 적룡대제가 남긴 적룡검(赤龍劍)이 아닌가?

순간, 군무현의 두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음울하고도 냉막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신기황은 군무현의 내심을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이 검을 보고 원한에 집착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주지 않았지만 이제 네게 돌려 주겠다!”

군무현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문득, 그는 뜨거운 격정이 가슴을 뭉클 적시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다시금 눈앞에 선연히 떠오르는 부친 적룡대제의 위엄있는 모습.

이윽고, ! 군무현은 말없이 적룡검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부친 적룡대제가 남긴 두 가지 유물 중 하나였다.

따라서, 적룡검이야말로 적룡대제의 혼()이 깃들어 있는 물건이었으며 군무현에게 있어 생명보다 더 귀중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

그때, 신기황이 문득 기이한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너는 적룡검의 내력을 아느냐?”

모릅니다!”

군무현은 음울한 눈빛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흐흐... 그렇겠지. 천하의 누구도 적룡검이 천지십강(天地十强) 중 한 고인의 애검(愛劍)임을 모른다. 네 아비였던 적룡대제조차도...!”

! 신기황의 말은 실로 놀랍고도 뜻밖이었다.

군무현, 그는 내심 기이한 흥분과 기대에 사로잡혔다.

(적룡검이 천지십강 중의 한 고인이 쓰던 애검이란 말인가?)

그는 기대의 눈빛으로 신기황을 주시했다.

신기황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오백년 전, 불과 반녀(半年) 만에 구주팔황(九州八荒)을 질타한 일대검종(一代劍宗)을 아느냐?”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적룡천종(赤龍天宗)!”

그는 경악의 음성으로 나직이 외쳤다.

신기황은 기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분은 바로 적룡천종(赤龍天宗)이라 불린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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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宇內四天皇傳說

 

 

 

 

부친 적룡대제를 생각하자 군무현은 들끓는 격정과 함께 처절한 슬픔에 가슴이 메어지는 것을 느꼈다.

강직하고 위엄있는 모습의 적룡대제, 군무현은 그 모습을 떠올리며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천지를 얼려버릴 듯한 강렬한 살기가 치뻗혔다.

순간, 백발괴인은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혈한(血恨)이 이 어린 녀석으로 하여금 저토록 강한 살기를 지니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는 나이답지 않게 깊은 한으로 점철된 소년 군무현에게 왠지 마음이 끌림을 느꼈다.

그때, 문득 군무현의 입에서 살기 어린 냉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천하와 맞서 싸워야 하는 신세, 노인장께서는 그 점은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에 백발괴인은 섬칫한 전율을 느꼈다.

하나, 곧 그는 동굴이 떠나갈 듯한 우렁찬 대소를 터뜨렸다.

우하하... 좋다! 좋아! 네놈이라면 오년 내에 천하를 뒤엎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흡족한 듯 오랜만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군무현의 입가에 비정한 결의의 냉소가 어렸다.

천하를 피로 씻어 버릴 텐데 그까짓 일인 정도 더 죽이는 것이 무엇이 대수겠습니까?”

“...!”

그의 냉혹한 어조는 다시 백발괴인을 전율케 했다.

(이놈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그는 심신이 절로 으스스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나, 이미 흥정은 이루어졌다.

군무현, 그는 서늘한 한광이 일렁이는 시선으로 백발괴인을 주시했다.

노인장께서는 어떻게 소생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시겠습니까?”

그는 냉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 말에 백발괴인은 물속에 잠겨있던 고개를 쭉 빼며 말했다.

흐흐... 너는 노부가 몸을 담그고 있는 이 액체가 무엇인줄 아느냐?”

군무현은 흠칫했다. 그제서야 그는 백발괴인이 몸을 담그고 있는 웅덩이 속의 새파란 액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기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방 벽면을 뒤덮고 있는 나무 뿌리들, 그 끝에서는 한 방울 한방울 액체가 떨어져 웅덩이로 흘러들고 있었다.

나무 뿌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액체, 그것은 투명한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그것을 본 군무현의 안색이 일변했다.

혹시... 지극음령수액(地極陰靈樹液)이 아닙니까?”

백발괴인은 군무현의 안목에 놀람을 금치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클... 어린 놈의 안목이 대단하구나!”

“...!”

군무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나, 그는 내심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음령수액(地極陰靈樹液)!

 

지하(地下)에는 강한 극음지기(極陰之氣)가 흐르고 있다.

그것이 일만년을 살아온 만년지령수(萬年地靈樹)에 흡수되어 수액(樹液)으로 응결된 것이 바로 지극음령수액(地極陰靈樹液)이었다.

이는 천하에서 두 번째로 지독한 극음령수(極陰靈樹)였다.

범인이라면 단 한 방울만으로도 백년을 무병장수하며, 무림인 이라면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무궁무진한 내공을 얻을 수가 있다.

 

백발괴인. 그는 군무현을 주시하며 놀라운 사실을 일러 주었다.

이곳 천마애가 바로 지극음기(地極陰氣)가 응집되는 성음극지(聖陰極地)이니라!”

“...!”

군무현의 무표정한 얼굴에 놀라운 빛이 떠올랐다.

성음극지(聖陰極地)!

그것은천하의 지극음기가 모이는 곳을 일컫는 것으로 만물(萬物)에 생명을 주는 근원이 된다.

백발괴인은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노부는 이 지극음령수액으로 네 녀석에게 연혼활심대법(連魂活心大法)을 펼쳐 주겠다!”

연혼활심대법(連魂活心大法)...?”

군무현은 의아한 듯 나직이 되뇌었다. 그는 무려 십만 권의 경서를 읽고 외운 천고기재(千古奇才)였다.

학문(學文)이라면 이미 통달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하나, 그런 그로서도 백발괴인의 말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백발괴인은 군무현의 내심을 짐작한 듯 신비한 기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흐흐... 노부는 삼절(三絶)이다. 그 중 일절(一絶)이다. 네녀석은 안심해도 된다!”

군무현은 내심 의문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도대체 이 노인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감탄과 함께 백발괴인에 대한 의혹과 궁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백발괴인이 지체할 것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흐흐... 시작하겠다!”

그 말과 함께, 우 웅...!

돌연 지극히 강대한 힘()이 군무현의 전신을 휘감았다. 동시에, 군무현의 몸이 둥실 지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흐흐...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네 몸에는 유익한 일이니 참아라!”

백발괴인은 괴이한 미소를 흘리며 미리 일러 두었다.

다음 순간, 파파팍! 돌연 웅덩이 속의 지극음령수액이 튀어올라 일시에 군무현의 삼백육십대혈을 가격했다.

그것은 실로 갑작스런 일이었다.

으윽!”

군무현은 돌연히 가해진 엄청난 고통에 안면을 이지러뜨리며 절로 신음성을 발했다.

하나, 그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 훌륭한 암기수법...!)

그것은 실로 지독한 고통이었다. 천만근의 추가 일시에 전신을 두드리는 듯한 엄청난 고통, 군무현은 단 일격에 까마득히 정신을 잃어갔다.

하나, 파파팍! 그 모습에도 아랑곳 없다는 듯 백발괴인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흐흐... 비록 이십 오 세까지긴 하지만 네녀석을 천하에서 가장 강한 놈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는 득의의 웃음을 흘리며 자신있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파파앗... 파파파팍!

푸른빛을 띈 지극음령수액은 쉴새없이 튀어올라 군무현의 전신 대혈을 잇따라 가격했다. 그것은 실로 눈부신 속도였다.

웅덩이 속에 잠겨 간신히 목만 내밀고 있는 백발괴인, 그의 몸 어디에서 이토록 강대한 힘이 작용하는 것일까?

한데, 그때였다. 실로 신비한 광경이 벌어졌다.

보라! 파파앗 파앗... 파앗! 스스스...

군무현의 대혈에 부딪힌 지극음령수액이 돌연 푸르스름한 안개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것은 신비한 청무(靑霧)가 되어 군무현의 전신을 에워쌌다.

청무는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군무현의 몸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와 함께, 군무현은 까마득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나, 그는 신비한 청무 속에 감싸인 채 한겹 허물을 벗고 있었다.

병약하고 무력하기만 하던 신체의 허물을 깨끗이 벗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그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탄생(誕生)! 제 이(第二)의 탄생이었다.

 

X X X

 

세월여류(歲月如流).

누가 세월을 흐르는 물과 같다고 했는가? 그것은 대자연(大自然)과의 어김없는 약속이었다.

혹한(酷寒)의 겨울도 어느새 춘풍(春風)에 흔적없이 녹아내리는가 싶더니 금방 신록이 우거지고, 찌는 듯한 혹서가 한동안 계속 되었다.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게 천지는 추색(秋色)이 완연해졌다.

가을, 단풍의 계절이 온 것이다.

 

동굴(洞窟). 하나의 음산한 동굴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희미한 야명주 불빛이 비치고 있는 동굴 안, ... ...!

맑은 청음을 내며 물방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투명하고 푸른빛을 띈 액체, 그것은 동굴의 중앙에 움푹 패여있는 웅덩이 속으로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만년(萬年)을 두고 계속되어 온 지극음령수액의 낙수(落水). 바로 그것이었다.

지극음령수액이 떨어져 고인 웅덩이 속, 한 명의 괴인이 몸을 담근 채 깊숙이 잠겨 있었다. 그는 벽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수초(水草)처럼 마구 헝클어진 백발의 모발이 온통 그의 등을 뒤덮고 있었다.

문득, 뚜벅... 뚜벅! 조용하던 동굴의 입구 쪽에서 규칙적인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별로 크지않은 소리였다. 하나, 그 속에는 심령을 뒤흔드는 묵중한 기도가 실려 있었다.

잠시 후, 동굴의 입구에 한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소년(少年), 그의 나이는 이제 십오륙 세 정도로 보였다.

핏기 한점 없는 창백한 얼굴. 하나, 그의 용모는 너무도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한 번 보면 영원히 잊지 못할 정도로 강한 충격을 주는 절륜한 용모. 전체적으로 약간 그늘져 어두운 듯 하면서도 그는 투명하리만치 아름다웠다.

특히, 소년의 두 눈은 신비(神秘), 바로 그 자체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맑게 가라앉아 서늘하게 일렁거리는 눈빛, 누구든 그 눈빛을 대하면 전율처럼 사정없이 전신을 끌어 당기는 강한 마력(魔力)에 사로 잡히고 말 것이다.

소년의 입술, 그것은 미인(美人)의 그것처럼 붉디 붉었다.

얼음 가운데 핀 불빛같은 정열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년은 전체적으로 몹시 유약한 인상을 풍겼다.

하나, 그런 그의 전신에서는 실로 종잡을 수 없는 싸늘한 기도가 뻗어나오고 있었다.

흠칫 몸을 떨게 만드는 살기(殺氣), 그것은 냉연하고 차디 찬 살기였다.

이윽고,

“...!”

소년은 말없이 뚜벅 뚜벅 걸음을 옮겨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무현(武玄)! 왔느냐?”

그가 들어서자 웅덩이 속의 괴인은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 그렇다. 소년, 그는 바로 군무현이었다.

군무현은 괴인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

그러자, 괴인은 벽쪽으로 향하고 있던 고개를 군무현을 향해 돌렸다.

백발괴인! 괴인은 바로 전신이 수초에 휘감겨 있는 듯한 모습의 그였다.

앉아라!”

그는 무심한 어조로 말하며 군무현을 주시했다.

하나, 그의 무심한 어투와는 달리 그의 두 눈에는 훈훈한 정감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하고 냉막해 보였다. 하지만 그 역시 백발괴인에게만은 지극히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그는 말없이 동굴의 바닥에 꿇어 앉았다.

이어, 그는 지극히 무심하고 냉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을 완성했습니다!”

천기귀원심공을 완성했다...!”

백발괴인은 나직한 어조로 되뇌었다.

하나, 그의 두 눈에는 경악의 빛이 번뜩 스쳐갔다.

(일년(一年)이 채 아니되어... 노부의 삼갑자(三甲子) 정화가 담긴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을 완성하다니...!)

그는 내심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놀라운 녀석...!)

사실 그는 놀랍고도 기쁘기 한량없었다. 하나, 겉으로는 전혀 그런 감정을 내색지 않았다.

그다지 느린 진도는 아니군.”

그는 무심히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군무현은 그런 백발괴인을 주시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어른이시다. 지니신바 학문은 창해(蒼海)보다 깊고 심기는 구중천(九中天)에 못지 않으시니...!)

그는 백발괴인의 지닌바 학문의 조예와 신비한 능력에 갈수록 감탄을 금치못하고 있었다.

각기 서로 다른 생각에 젖어있던 두 노소,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하나, 곧 백발괴인이 과묵한 어조로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천기귀원심공을 완성했다니 태산(泰山)이라도 짊어질 수 있는 정력(定力)이 생겼을 것이다!”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

 

실욕적인 모용은 별로 없다. 대신, 태산보다 육중한 정력을 길러주므로 그 중요성은 어떤 무공보다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백발괴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이제 넥 비로소 노부와 노부 친우(親友)의 전세절학을 전수할 기반이 닦였군!”

“...!”

군무현은 무릎을 꿇은 채 묵묵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문득, 백발괴인은 기광을 빛내며 군무현에게 물었다.

무현, 너는 노부의 본래 신분이 궁금하지 않느냐?”

“...?”

군무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백발괴인은 문득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원하되 원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험난한 강호를 살아가는데 긴요한 자세지!”

“...!”

군무현의 무심한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한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이윽고, 백발괴인은 안색을 진중하게 고치며 말했다.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을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군무현은 흠칫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그들을 모르는 자 뉘 있으랴?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백년 이전에 이미 천하최강(天下最强)으로 군림해온 절대기인들, 그들의 무공은 극고의 경지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들이 각기 한 방면에서 가히 고금무적(古今無敵)에 이르렀다는 점이었다.

고금을 통틀어 단연 최강으로 손꼽히는 천지십강(天地十强)!

설사 그들이라 해도 우내사천황의 한 가지씩의 특기에는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독천황(毒天皇)!

신기황(神機皇)!

천음황(天音皇)!

천마황(天魔皇)!

 

이들 사인을 일컬어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이라 한다.

 

독천황(毒天皇)!

우내사천황의 최고령자. 그는 바로 청해(靑海) 독황궁(毒皇宮)의 개파조사였다.

천년 내에 가장 강한 독문제일인(毒門第一人).

 

신기황(神機皇)!

고금제일(古今第一)을 논할 수 있는 현자(賢者). 그가 무공을 지녔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싸운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관지학과 기문진법(奇門陣法)은 천하무적(天下無敵)이었다.

 

천음황(天音皇)!

음공(音功) 조종(祖宗). 그는 천하의 모든 악기를 다룰줄 아는 기인(奇人)이었다.

악기의 소리로 태산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상초유의 인물. 그에 의해 전무후무한 음공(音功)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천마황(天魔皇)!

마도제일인(魔道第一人)이자 마공제일인(魔功第一人).

마종(魔宗)의 패도적인 마공이 그의 일신에 집약되었다.

마공에 있어 최고최강의 경지에 오른 인물, 그는 패도적인 마공과 뛰어난 통솔력으로 천하마도(天下魔道) 일백팔류(一百八流)를 일통시켰다. 그리하여 세운 것이 바로 천마궁(天魔宮)! 마도제일궁(魔道第一宮)인 저 천마궁(天魔宮)이었다.

 

하나, 우내사천황!

그들은 이미 일갑자 이전에 무림에서 사라졌다.

청해의 독황궁(毒皇宮)도 천마궁(天魔宮)도 일갑자 동안 무림에 출현하지 않고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백발괴인의 입에서 그 우내사천황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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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洞窟속의 怪人

 

 

 

쐐 애액!

귓청을 찢는 날카로운 파공성, 군무현의 신형은 급격히 아래로 추락해 내려갔다.

한데, 기이한 일이었다. 환영투도에 의해 천마애의 묵운 속으로 던져진 군무현, 그는 벌써 지면으로 떨어졌어야 마땅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의 몸은 끝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 하락하고만 있지 않은가?

한순간,

(!)

군무현은 전신이 경직되는 아찔함을 느끼며 숨을 들이켰다. 그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절벽이다!)

그는 내심 부르짖으며 전신을 부르르 경련했다. 그것은 아찔한 죽음의 예감이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 앞에 처절한 최후를 남기며 죽어간 부친 적룡대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적룡세가!

온통 화마에 휩싸여 덧없이 쓰러지던 웅장한 적룡세가의 위용이 망막을 가득 채웠다.

특히, 자신과 적룡대제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검()을 안고 쓰러져간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의 영상은 파편처럼 날카롭게 그의 가슴에 와 박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상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는 얼굴..

!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유명을 달리하신 생모(生母)의 자애로운 모습이었다.

문득,

(어머니...!)

군무현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격동을 느끼며 나직이 부르짖었다. 그와 함께, 그는 마치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 듯 스르르 정신을 잃고 말았다.

 

X X X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억겁(億劫) 같기도 하고 일수유 같기도 한 아득한 시간, 군무현은 그 시간 속을 끝없이 헤매고 있었다.

마치 죽음처럼 깊고 깊은 잠, 그는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나, 아직 운명이 다히자 않았음인가?

문득,

(이곳이... 저승인가?)

군무현은 오랜 혼몽 끝에 깨어나며 정신을 차렸다.

그의 전신은 지극히 무기력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 듯한 무력하고 공허로운 느낌..

하나, 그는 그 가운데 끝없이 안온한 기분도 함께 느꼈다.

일생을 바람처럼 떠돌다가 마침내 아늑한 풀밭에 누워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군무현은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너무 지쳐 편안하게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때였다.

...! 문득 무엇인가 한 방울의 액체가 무력하게 벌어진 그의 입 안으로 떨어졌다.

“...!”

군무현은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무심고 떨어지는 액체를 목구멍으로 삼켰다.

뜻밖에도 그 액체는 매우 달콤하고 향긋했다. 또한, 전신을 상쾌하게 만드는 강렬한 향기마저 지녀 입안 가득 기분좋은 청량감을 퍼뜨리는 것이 아닌가?

(무엇일까?)

군무현은 눈을 감은 채 의아한 듯 내심 중얼거렸다.

하나, 그는 몸을 일으키거나 눈을 떠 주위를 살피지는 않았다.

그 한방울의 액체 탓일까? 기이하게도 군무현은 무기력하기만 하던 전신에 새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가 강렬한 기운이 그의 몸속을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는 다시 입을 벌렸다.

하나 이번에는 다소의 기대감이 작용했다. 그러자, ! 다시 한방울의 달콤한 액체가 그의 입 안으로 떨어졌다.

이어, ... ...!

그것은 규칙적으로 떨어지며 그의 입 안을 청량하고 그윽한 향기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의아함과 함께 신기함을 금치못했다.

이제 그는 금방이라도 허공으로 튕겨질 듯 새 힘이 용솟음침을 느꼈다.

그의 전신에는 강력한 잠력이 무섭게 꿈틀거리며 살아나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이놈! 정신을 차렸으면 냉큼 눈을 뜨고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돌연 한소리 사나운 호통이 군무현의 고막을 뒤흔들었다.

순간,

“...!”

군무현은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군무현, 그가 있는 곳은 천정이 유난히 높은 하나의 동굴이었다.

지금 군무현은 동굴의 바닥에 누워있었다.

동굴. 기이하게도 그 동굴은 사면 벽 전체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

온통 기이한 나무 뿌리가 서로 뒤엉켜 벽면을 덮고 있는 기이한 광경.

동굴의 중앙, 넓이 이장 정도 되는 하나의 웅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그 웅덩이 속에는 무엇인지 모를 새파란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데,

!”

막 몸을 일으키던 군무현, 그는 일순 대경성을 발하며 눈을 크게 떴다.

웅덩이 속, 누군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자가 있었다.

오오! 놀라운 모습이었다.

괴인(怪人), 한 명의 괴인이 불쑥 목만 내놓은 채 웅덩이 속에 잠겨 있지 않은가?

그의 모습은 실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제멋대로 자란 허연 백발이 전신을 뒤덮어 마치 수초(水草)에 휘감겨 있는 듯한 괴이한 몰골.

봉두난발이 된 모발 사이로는 귀화같은 안광이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실로 절로 간담이 오그라붙는 섬뜩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철석간담을 지닌 인물이라 할지라도 혼비백산하고 말 음산하고 기괴한 풍경이었다.

그때, 웅덩이 속에 잠겨있던 백발괴인이 문득 경악으로 굳어있는 군무현을 주시하며 혀를 찼다.

끌끌... 사내 놈의 담력이 어찌 그 모양으로 보잘 것 없느냐?”

그 말에 군무현은 비로소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다. 순간, 그의 영민한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이내 전후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그는 내심 은은한 경악을 금치못했다.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에 당한 상세가 완치되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하나, 군무현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지극히 무표정했다. 이윽고, 그는 괴인을 향해 무심하나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노인장께서 소생을 구하셨습니까?”

백발괴인의 두 눈에 언뜻 한줄기 이채가 스쳤다. 하나, 이내 그는 전율스런 귀광을 번뜩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퉁명하게 대꾸했다.

클클클... 삼십년 간을 이 모양으로 살다보니 사람이 그리워 네놈을 구했을 뿐이다!”

“...!”

군무현의 얼굴은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을만큼 무표정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잃은 것일까? 그의 안색은 차갑고 무심하게 굳어 있었다.

하나, 그는 명가(名家)의 후손이었다. 결코 예의를 모르는 불손한 인물은 아니었다. 군무현은 백발괴인을 향해 정중히 일배를 올렸다.

순간,

치워랏! 마음에도 없는 인사는 받고싶지 않다!”

백발괴인은 눈을 부릅뜨며 버럭 대갈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강력한 잠력이 뻗어나와 군무현의 상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

군무현은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굽혔던 허리를 펼 수밖에 없었다.

백발괴인은 그런 군무현을 노려보며 퉁명스러운 어조로 불쑥 내뱉았다.

구하기는 했으나 괜한 골치만 썩게 되었다!”

그 말에 군무현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소생의... 절맥(絶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는 직감적으로 백발괴인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그러자 백발괴인은 뜻밖이라는 듯 오히려 되물었다.

네놈 스스로 절맥(絶脈)을 알고 있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군무현은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발괴인은 두 눈을 기이하게 번뜩이며 말했다.

말해 보아라!”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생의 절맥은 천지지간에 가장 양강(陽强)하다는 태양신맥(太陽神脈)입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백발괴인은 기광을 번뜩이며 의미모를 괴소를 지었다.

 

태양신맥(太陽神脈)!

 

일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극양절맥(極陽絶脈). 마치 태양(太陽)이 몸 속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지극한 극양지기(極陽之氣)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체질이다.

태음경(太陰經)은 물론 소음경(小陰經)마저도 없는 완전한 극양지체(極陽之體). 이 신맥을 타고난 인물은 오성이 범인(凡人)보다 백배 뛰어난 천고기재가 된다.

하나, 불행하게도 단명(短命)의 운을 함께 타고 태어나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 속의 극양지기는 더욱 강렬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십세가 되면 극양지기는 최고에 이르러 전신 심맥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타들어 가게 되며 결국 목숨을 잃고마는 것이었다.

한데, 군무현! 그가 바로 그 기이한 절맥인 태양신맥(太陽神脈)을 타고 태어 났다니...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야명주 불빛이 희미하게 밝혀진 동굴 안, 잠시 그곳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것은 백발괴인이었다.

노부는 네놈과 흥정을 하고 싶다!”

그는 퉁명스러운 어조로 불쑥 그렇게 말했다.

“...!”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백발괴인을 주시했다. 백발괴인은 그런 군무현의 얼굴을 꿰뚫어 볼 듯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흐흐... 네녀석에게는 하늘을 얼려버릴 듯한 엄청난 살기(殺氣)가 뻗힌다. 이는 곧 네녀석에게 불공대천지수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순간, 군무현의 무심한 얼굴에 흠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은은한 경악과 함께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 괴인은 범인(凡人)이 아니다. 타인의 마음을 훔칠 지경에 이른 모사(謀士)!)

하나, 그는 내심의 놀라움과는 달리 지극히 냉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백발괴인은 그런 군무현의 심중을 마치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흐흐... 그리고 그 원한은 네 녀석이 이십세(二十歲)가 되기 전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님도 안다!”

순간,

“...!”

군무현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하나, 그는 어쩔 수 없이 백발괴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 백발괴인은 기이한 눈빛을 번뜩이며 군무현을 주시했다.

클클... 노부가 네녀석의 수명을 오년(五年) 더 연장시켜 줄 수 있다고 하면 믿겠느냐?”

군무현은 그 말에 흠칫하며 백발괴인을 마주 주시했다.

순간, 그는 마음의 확신이 섰다.

(이 기인(奇人)이라면...!)

그같은 믿음이 서자 그는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습니다!”

그의 대답에 백발괴인은 괴이한 기소를 터뜨렸다.

클클... 네녀석이 오십(五十)까지만 살 수 있어도 향후 일천년의 중원무림사(中原武林史)가 뒤집혀지고 말 것이다!”

그의 어조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하나, 군무현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는 감정이 깃들지 않은 냉담한 어조로 물었다.

소생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간, 백발괴인의 두 눈에 끔찍한 살광이 번쩍 폭사되었다.

한놈을 노부 대신 죽여라!”

그의 음성에는 엄청난 원한과 살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일인격살(一人擊殺)! 그것이 전부입니까?”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백발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여 말했다.

흐흐... 쉽게 여기지 마라. 그놈은 천하에서 가장 음흉한 놈이다. 또한 백년내에 무적(無敵)으로 통하는 절세고수다! 그놈 일인을 죽이기 위해서는 천하(天下)와 맞서 싸워야 될지도 모른다!”

천하(天下)와 맞서 싸운다...!”

군무현은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한줄기 고통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그의 망막에 천하를 상대로 맞서 싸우던 한 거인(巨人)의 모습이 떠올랐다.

군무현 자신의 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천라지망 안으로 스스로 몸을 내던진 인물, 부친 적룡대제!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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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天魔崖慘劇

 

 

 

환영투도는 안면 가득 분노와 의혹의 빛을 떠올리며 적룡대제를 올려다 보았다.

... 주공!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적룡세가가 불타고 삼천(三千)의 정영들이 참살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느 놈들이...!”

그는 부르르 전신을 떨며 영문을 캐물었다. 그가 잠시 적룡세가를 비운 사이 참화가 밀어닥친 것이었다.

적룡대제의 안면은 고통스럽게 이지러졌다.

음모(陰謀)외다. 어느 작자인가... 적룡세가의 성세를 못마땅하게 여겨 본제(本帝)가 천지십강(天地十强)의 비도(秘圖)를 얻었다고 소문을 낸 것이오!”

그 말에 환영투도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

으득... 어느 놈이...!”

그의 두 눈에서는 엄청난 분노의 살광이 폭사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안색이 대변하여 경악의 음성으로 외쳤다.

주공! 중상을 입으셨군요!”

그제서야 비로소 그는 적룡대제의 상세를 발견한 것이었다.

적룡대제는 그런 환영투도를 향해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늦었소. 그보다... 주이에 널려있는 적들은 얼마나 되오!”

그 물음에 환영투도는 침중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천(二千)의 강적들이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임해(林海) 주위로 열화신문(熱火神門)이 열화천염대진(熱火天焰大陣)을 치밀하게 펼쳐놓고 있습니다!”

“...!”

적룡대제는 굳은 안색으로 절망의 눈빛을 지었다.

문득, 그는 고통과 연민이 얼룩진 눈으로 아들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이 애비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잠시나마 적의 눈길을 따돌리는 것 뿐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파파앗!

돌연 그는 들고 있던 적룡검으로 자신의 왼팔을 힘껏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 한소리 둔탁한 음향과 함께 피보라가 확 퍼져올랐다.

환영투도는 적룡대제의 그 갑작스런 행동에 대경함을 금치못했다.

주공!”

그는 경악의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하나, 이미 늦은 후였다. 적룡대제의 왼팔은 그의 적룡검에 싹뚝 베어져 나간 것이었다. 끊어진 그의 왼팔에서는 뚝뚝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적룡대제는 그 선혈을 혼절한 군무현의 입속으로 흘려넣었다.

파리한 잿빛으로 물든 군무현의 입술, 그 사이로 선연한 핏물이 주르르 흘러들었다.

적룡대제는 그 모습을 묵묵히 내려다 보았다.

이어, 그는 만면에 염려의 표정을 짓고있는 환영투도를 주시했다.

환노(幻老)! 무현은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에 당했소!”

순간,

파옥쇄심수!”

환영투도의 안색이 급변했다.

적룡대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무현은... 일각 내에 추궁과혈을 해주어야 하오! 무현을 환노에게 맡기겠소!”

환영투도는 대뜸 그의 뜻을 알아채고는 안색이 일변했다.

주공! ... 설마...!”

적룡대제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노의 은신술은 당금제일이니... 충분히 임해를 빠져나가리라 믿소!”

그는 신뢰어린 눈빛으로 환영투도를 주시하며 말했다.

순간,

주공...!”

환영투도는 치받치는 오열을 참지못하며 전신을 세차게 경련했다. 그 모습에 적룡대제의 강인한 눈빛이 한 차례 미미한 동요를 보였다.

하나, 곧 그는 한시가 급하다는 듯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천마애(天魔崖)로 가시오! 그곳이라면 적도들도 따르지 못할 것이오!”

“...!”

환영투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그는 말없이 적룡대제를 주시할 뿐이었다.

그 말없는 눈빛 속에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격정과 염려, 그리고 비애의 빛이 뒤엉켜 떠올랐다.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하나, 그 중에는 숨막히는 살기가 팽팽히 깔려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 !”

문득 한소리 나직한 신음성과 함께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군무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 마자 핏자국이 묻은 파리한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버님... 환노(幻老)!”

그는 환영투도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의 빛을 지었다.

그때, 적룡대제가 무어라 입을 열려는 군무현을 급히 저지하며 말했다.

무현! ... 들어라!”

, 아버님!”

군무현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적룡대제의 표정과 어투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적룡대제는 엄숙한 신색으로 아들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이 애비가 무림을 살아온 신조가 무엇인줄 아느냐?”

그는 먼저 군무현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의 그 음성에는 일대종사(一代宗師)의 당당한 자부와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 또한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나를 건드리면 천만(千萬)의 적()이라도 결코 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적룡대제의 입가에 한가닥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나, 그의 얼굴은 이미 산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그를 함락시키고 있었다. 다만, 그는 죽음을 초월한 무서운 의지로 고통에 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타는 듯 강렬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응시했다.

이제 애비의 모든 것을 네게 넘긴다!”

순간,

“...!”

군무현은 세차게 전신을 경련했다. 부친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적룡대제는 품속을 뒤져 하나의 옥패를 꺼내들었다. 이어, 그는 그 옥패를 적룡검과 함께 군무현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 군무현은 보았다. 부친 적룡대제의 피로 흥건히 물든 어깨를... 왼쪽 팔이 싹둑 잘려져 나간 그의 어깨는 끔찍하게도 피투성이었다.

“...!”

그것을 본 군무현은 부르르 몸을 떨며 전율했다. 그의 눈빛은 처절한 슬픔과 고통으로 얼룩졌다.

하나, 그는 입술을 짓깨물어 터져 나오려는 오열을 삼켰다.

이어,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적룡검과 옥패를 공손히 받아들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적룡대제의 두 눈에 자랑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이 속에 애비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

군무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가슴이 메어질 듯한 슬픔을 느끼며 소리없이 오열했다.

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단장의 아픔이 그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군무현, 그는 치유가 거의 불가능한 절맥(絶脈)을 타고난 몸이었다. 그런 반면, 그는 지극히 영민하여 그 지혜가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그런 군무현이 부친 적룡대제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

(아버님은 살신성인(殺身成人)하실 생각이다!)

부친의 그런 의도를 짐작한 그는 처절한 비애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적룡대제 군천휘, 그 또한 군무현의 내심을 읽고 있었다. 하나, 그는 강인하고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결코 감정을 경솔히 드러내지 않는 인물, 그는 엄숙한 안색으로 군무현을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잊지마라! 삼천(三千)의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이 너 하나를 위해 웃으며 죽어 갔다는 것을...!”

그는 강인한 어조로 힘주어 말했다.

그 말을 마침과 함께,

!”

한 소리 웅후한 장소성과 함께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튀듯이 날아올랐다.

이어, 파 앗!

그의 몸은 당겨진 화살처럼 허공으로 폭사되어 갔다.

그 순간,

나왔다!”

적룡대제다!”

쏴라!”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일제히 분분한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 쐐 액! 화르르... ! !

수천 송이의 불길이 일제히 적룡대제의 전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 그것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일시에 허공에는 찬란한 불꽃이 작렬하듯 터져올랐다.

뒤미처, ! 콰르르릉...!

천붕지열의 굉음이 천지를 들썩 뒤흔들었다.

오오... 보라! 적룡대제 군천휘!

그의 몸은 한순간 허공에서 흔적도 없이 산화되어 버리고 만 것이 아닌가!

눈 깜짝할 순간 그의 몸은 한줌의 재로 화해 흩어져 버린 것이다.

살신성인(殺身成人)! 이토록 무참히, 흔적도 없이 한순간에 재로 사라지는 것으 그 숭고한 희생의 대가란 말인가?

그것은 너무나 찰나지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주공...!”

환영투도는 적룡대제 군천휘의 장렬한 최후를 지켜보며 피를 토하듯 오열했다.

“...!”

군무현,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전신은 벼락을 맞은 듯 연신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나, 그는 필사적으로 입술을 악물며 오열을 짓씹어 삼켰다.

전신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엄청난 슬픔과 충격! 부친의 장렬한 최후는 그의 가슴에 피멍을 맺히게 했다.

있는 힘을 다해 악다문 그의 입술은 처참하게 터져 선혈이 흘러내렸다.

, 지금 그의 두 눈에는 피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혈루(血淚), 그것은 통한의 혈루였다.

아아... 아버님이시여!

군무현은 으스러져라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긴 것일까? 잔뜩 핏발이 선 그의 두 눈은 엄청난 원한과 분노의 광휘로 번뜩이고 있었다.

어쩌랴? 이제 십사세에 불과한 어린 소년 군무현, 그는 실로 감당치 못할 너무도 크나큰 한()을 짊어지고 만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 찾아랏!”

적룡대제의 시신에 천지십강(天地十强)의 열쇠가 있을 것이다!”

와아!”

사방에서 수천 명의 군웅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벌떼같이 덮쳐들었다.

그 순간,

소주(少主)! 노복이 모시겠습니다!”

환영투도가 비감어린 음성으로 말하며 군무현의 허리를 굳게 끌어안았다.

말과 함께, 스스스... 그는 기민하게 몸을 움직여 장내를 빠져나갔다.

군무현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잊지 않는다!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아버님을 시해하고 적룡세가를 무너뜨린 자들... 반드시 그 천만배로 갚아 주리라!)

그는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며 다짐했다. 일생을 다해도 결코 잊지못할 철천지한(徹天之恨).

처절하고도 뿌리깊은 원한이 어린 그의 가슴에 깊이깊이 심어지고 있었다.

 

X X X

 

천마애(天魔崖).

 

대파산의 제일험지(第一險地). 세인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천고절지(天古絶地)였다.

천마애는 사시사철 온통 시커먼 묵운(墨雲)으로 휩싸여 있다. 짙은 공포와 암울한 신비가 어려있는 곳, 천마애의 진실된 모습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 문득, 스스슥...!

스산한 음풍을 타고 하나의 인영이 천마애로 날아내렸다.

천험절지의 암울한 침묵을 깨며 날아든 인영, 일노일소(一老一少)! 바로 군무현을 안은 환영투도였다.

! 환영투도는 신형을 멈추며 앞을 노려보았다.

(저 묵기(墨氣)는 진세(陣勢)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천마애에 가공할 절진(絶陣)이 쳐져 있다는 것이 사실이었군!)

그는 형형한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결연한 신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소주(少主)를 숨길 수 있는 곳은 오직 저곳밖에 없다!)

결심한 순간, 그는 축 늘어진 군무현을 안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넘쳐 흘렀다.

(소주...! 천마애의 절진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나... 적도들의 마수(魔手)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이곳뿐이니...!)

그는 측은한 연민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이럴 줄 알았다!”

돌연 한소리 싸늘한 일성이 환영투도의 귓전을 울렸다.

순간,

!”

환영투도는 대경하며 홱 돌아섰다.

그런 그의 삼장 앞, 언제였을까?

한 명의 백의노인이 유령같이 우뚝 서 있었다.

고아한 용모에 신선같은 풍모를 지닌 노인, 귀밑까지 늘어뜨린 허연 백미(白眉)가 무척 특이한 인상을 풍겼다.

환영투도는 홀연한 백의노인의 등장에 내심 경악을 금치못했다.

(나의 이목을 속이는 자가 있다니...!)

환영투도! 그가 누군가?

천하(天下)가 알아주는 경공의 대가가 아닌가?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백의노인이 지척까지 접근하도록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환영투도는 절로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귀하는 누구요?”

환영투도는 백의노인을 노려보며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백의노인은 기품있는 용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흐흣! 알 필요 없다! 네놈은 곧 죽게 될테니까!”

그자는 음산한 눈빛을 번뜩이며 일축했다. 이어, 그 자는 천천히 환영투도를 향해 다가섰다.

“...!”

환영투도는 일순 이마에 땀이 배이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 주공에 못지않은 강자다. 노부의 상대가 아니다!)

그는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리며 백의노인을 노려보았다.

순간, 그의 두 눈에 엄청난 살광이 번쩍 폭사되었다.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 이 모두가 네놈의 짓이었군!”

그는 부르르 몸을 떨며 찌렁한 분노의 폭갈을 내질렀다.

백의노인. 그 자를 일견한 순간 환영투도는 직감적으로 눈앞의 백의노인이 음모(陰謀)의 원흉임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와 함께, 그는 축 늘어져 있는 군무현을 향해 급히 전음을 보냈다.

소주! 노복이 저자를 막을 동안 천마애로 들어가십시오! 위험을 벗어나시면 천중산(天中山) 자하곡(紫霞谷)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원수를 갚기에 충분한 무공비급들이 있습니다!”

“...!”

군무현의 창백한 안색이 어둡게 굳어졌다.

그때, 백의노인은 음흉한 음소를 흘리며 바짝 환영투도의 앞으로 다가섰다.

풀을 뽑을 때는 뿌리까지 뽑아야 하는 법!”

그 자는 냉혹하고 음산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우르릉!

그 자의 소매에서 돌연 산악같은 경기가 쏟아져 나왔다.

환영투도는 질끈 입술을 악물었다. 이어, 그는 군무현을 바라보며 결연한 음성으로 전음을 보냈다.

소주! 가십시오!”

말을 마침과 함께, 휘 익!

그는 안고있던 군무현을 그대로 천마애의 자욱한 운무 속으로 힘껏 집어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 갑작스런 사태에 백의노인은 낭패함을 금치못했다.

이런... 여우같은 놈!”

그자는 안면을 흉측하게 이지러뜨리며 폭갈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쉬 익!

그 자는 벼락같은 기세로 허공으로 날아가는 군무현을 낚아채려 했다.

하나,

어딜!”

위 잉! 콰르릉... !

환영투도가 황급히 장을 내질러 백의노인을 막아섰다. 그의 소매에서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경기가 섬전처럼 폭사되었다.

백의노인은 대노하며 발을 굴렀다.

교활한 도둑놈!”

우웅!

그자는 노기충천하여 맹렬히 우장을 휩쓸어냈다. 그러자, 그의 우수가 돌연 새파랗게 물드는 것이 아닌가!

환영투도는 흠칫하여 눈을 부릅떴다.

... 천강쇄옥수! ... 네놈은...!”

그는 경악과 불신의 눈빛으로 백의노인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콰쾅! 백의노인의 새파란 우수가 여지없이 환영투도의 가슴을 가격했다.

직후,

크 악!”

환영투도의 처절한 비명이 천마애를 울렸다.

그는 무참하게 가슴이 박살난 채 가랑잎처럼 뒤로 날아갔다.

그 직후, ! 백의노인은 환영투도의 생사(生死)를 살피지도 않고 다급히 천마애로 뛰어들었다.

하나, 군무현의 모습은 이미 천마애의 자욱한 묵운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백의노인의 청수한 안면은 보기싫게 이지러졌다.

이런 낭패가...!”

그자는 길게 뻗은 백미를 부르르 떨며 발을 굴렸다.

이윽고, 그 자는 체념의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돌아서는 그 자의 얄팍한 입꼬리에 한 가닥 음흉한 음소가 떠올랐다.

개운치 않지만...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천마애에 접근했다가 살아난 자는 아무도 없으니...!”

그 자는 음산한 눈을 번뜩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어, 스스스... 그 자의 신형은 유령같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 명의 장렬한 의혈(義血)이 뿌려진 천마애. 천고의 침묵 속에 잠긴 천마애는 여전히 무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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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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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悽絶父情

 

 

 

 

적룡대제는 있는 힘을 다해 벼락같이 적룡검을 휘둘렀다.

가랏!”

츠츠츠읏!

한소리 찌렁한 폭갈과 함께 눈부신 검기가 해일같이 금붕천왕(金鵬天王)을 휩쓸어 갔다.

다음 순간, 콰콰쾅! 콰릉...

크 악!

가공할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듬과 함께 붕조의 처절한 괴성이 터져올랐다.

그와 동시에,

크윽!”

적룡대제는 무서운 폭풍에 휘말려 십 장 밖으로 거칠게 튕겨져 나갔다. 그런 그의 모습은 실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의 복부는 길게 찢어져 시뻘건 내장과 검붉은 핏물이 마구 쏟아져 흐르고 있었다.

그의 몸은 금강지체(金剛之體)에 가까웠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붕의 사나운 발톱에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었다.

그때, 구워억! 콰아아...!

고통스러운 붕음과 함께 허공으로 떠오르는 금붕의 몸에서도 무지개같은 혈무가 확 퍼져올랐다.

금붕의 거대한 한쪽 날개, 그것이 적룡검의 검기에 처참하게 짓이겨진 것이었다.

그때,

흐흐... 적룡대제! 다시 오마!”

허공으로 떠오른 금붕천왕은 지면을 내려다보며 음산한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그와 동시, 콰르르... 쐐 액!

그 자는 부상을 입은 금붕을 타고 벼락같은 기세로 남()으로 방향을 잡아 날아갔다.

하나 그 순간, 적룡대제의 두 눈에 번쩍 살광이 치솟았다.

살려 보내지 않겠다!”

그는 이를 갈며 안고있던 군무현을 눈 위에 내려놓았다.

이어, 그는 벌떡 몸을 일으킴과 함께 수중의 적룡검을 단전(丹田)에 붙였다.

다음 순간,

죽어랏! 적룡검강!”

푸 학! 적룡대제의 입에서 대갈일성이 터짐과 함께 적룡검이 한 무더기 광채로 화해 허공을 향해 폭사되었다.

직후, 케에 엑!

처절하고 날카로운 금붕의 비명이 허공을 뒤흔들며 터져올랐다.

파파파앗! 번갯불이 몰아치는 듯한 엄청난 광채와 함께, 섬뜩한 피보라가 일순 산지사방으로 확 퍼져 올랐다.

보라! 거대한 금붕의 강철같은 오른쪽 날개는 흔적도 없이 싹둑 잘려져 나가버리고 없었다.

이어, 쐐 액!

금붕천왕을 태운 금붕은 남쪽 골짜기 너머로 내리 꽂히듯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쉬학!

적룡검이 번쩍 검광을 폭사하며 다시 적룡대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나,

... !”

적룡대제는 미처 검을 회수하지도 못하고 뒤로 휘청 물러서며 허리가 꺾여 졌다.

진기가 끊어진 것이었다.

그러자, 파파앗! 적룡검도 급격히 방향을 잃고 허공에서 뚝 떨어지며 눈 속에 푹 박혔다.

적룡대제, 그의 안색이 일순 고통과 함께 당혹함으로 처참하게 이지러졌다.

... 진기가 이어지지 않다니... 한 번 더... 고비를 넘겨야 하는데... 크윽!”

그는 입술을 악물며 비틀비틀 일어섰다. 이어, 바닥에 내려놓은 군무현과 함께 적룡검을 집어들었다.

그의 형상은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상처는 완전히 치명상이었다.

그의 심장 부근, 늑대의 이빨같은 낭아표(狼牙剽)가 다섯 개나 찍혀 있었다.

그것도 모두 사혈(死穴)에만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뿐인가? 그의 복부는 처참하게 찢겨 끊어진 내장이 연신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실로 그런 상태로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하나, 적룡대제는 자신의 상처 따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핏발선 눈을 부릅뜨며 이를 갈았다.

금붕천왕(金鵬天王)...! 그 놈을 일검(一劍)에 죽이지 못했으니... 곧 놈들이 개미떼같이 몰려오리라!”

그의 강직한 얼굴에는 초조와 불안의 빛이 떠올랐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육신, 그대로 주저앉으면 스르르 눈을 감아 버릴 듯하다.

하나, 그는 결코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적룡대제는 죽은 듯이 늘어져 있는 아들 군무현을 내려다보며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질끈 악물었다.

백짓장같은 얼굴로 혼절해 있는 군무현, 그를 내려다보는 적룡대제의 심정은 칼로 저미는 듯 쓰라리고 아팠다.

이윽고, 적룡대제는 힘겹게 다리를 끌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설원은 온통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그의 선혈은 끝없이 백설을 적시고 있었다.

하나, 적룡대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천근같은 몸을 끌며 계속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스스스... 걸음마다 피가 고이는 혈로(血路).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적룡대제는 마침내 아득한 설원을 지나 하나의 작은 구릉을 넘어섰다.

그러자, 눈앞에 갑자기 울창한 송림이 나타났다. 태고 이래 인적이 닿지않은 은밀한 절지(絶地).

울울창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길을 찾아 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

송림 앞에 이른 적룡대제, 그의 두 눈에 비로소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 이곳이 대파산(大巴山) 제일의 험지(險地)인 천마애(天魔崖) 앞의.... 임해(林海)...!”

그의 목소리가 떨림을 띠며 두 눈에 생기가 감돌았다.

천마애(天魔崖)까지 가면... 놈들도 추격을 못할 것이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나 문득, 그의 강직한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그것은 육신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천만(千萬)의 적()이라도 결코 피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적룡대제의 신조(新條)였다.

한데, 지금 그는 어떤가? 적을 피해 등을 보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적룡대제의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현... 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다!)

적룡대제는 스스로 그렇게 자위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 자신 또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사색(死色)이 완연했다.

하나, 그는 게의치 않았다.

사랑하는 아들, 지금 적룡대제의 뇌리 속에는 오직 아들을 살리려는 일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신을 짓누르는 처절한 고통도, 일생(一生)을 통해 굳게 지켜온 신조마저도 과감히 버렸다.

군무현!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이윽고, 적룡대제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미 균형을 잃어 불규칙한 걸음걸이, 하나 그는 계속 걸었다.

필사의 의지와 신념으로, 마침내 그는 울창한 송림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

그는 움찔하며 전신이 굳어졌다.

(적이 이미 와있다!)

그는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끼며 내심 부르짖었다.

그것은 수십 년간을 검날 위에서 살아온 그의 직감이었다.

(). 살기어린 형형한 눈빛, 적룡대제는 수백 개의 살기어린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나, 스슥...! 그는 잠시 주춤했을 뿐 발길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는 계속 송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멈추면... 덤벼들 것이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긴장된 눈빛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삐 익! 돌연 귀청을 찢는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송림 속을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크르릉... !

사나운 울부짖음과 함께 시뻘건 그림자들이 질풍같이 적룡대제를 향해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 놀라운 일이었다.

돌연히 적룡대제를 향해 덮쳐드는 시뻘건 그림자, 그것은 호랑이만큼 거대한 체구의 시뻘건 핏빛 늑대의 무리가 아닌가?

적룡대제는 흠칫하며 두 눈을 부릅떴다.

혈랑천왕(血狼天王)! 네놈이냐?”

그는 대갈일성하며 홱 돌아섰다.

그 순간, 츠츠츠읏! 스 악!

가공할 검기가 그의 주위로 무지개를 일으키며 확 퍼져올랐다.

직후, 크 악! 케에엑!

삽시에 수십마리의 혈랑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그놈들은 모두 목이 절단된 채 피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하나, 혈랑떼는 두려움 따위는 모르는 듯했다.

크르릉... ! !

그놈들은 시뻘건 이를 쩍 벌리며 흉폭한 기세로 재차 적룡대제를 향해 덮쳐들었다.

혈랑의 몸뚱이는 쇠보다 질긴 가죽으로 뒤덮여 있었다. 따라서, 보통의 보검으로는 상처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단단했다.

하나, 위 잉! 콰자작 콰릉...!

적룡대제의 신위는 가히 눈부실 정도였다.

케엑! 끄륵... 크악!

그의 적룡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호랑이만한 거대한 체구의 혈랑떼가 마치 썩은 짚단처럼 나뒹굴었다.

그와 함께, 역겨운 짐승의 피가 송림을 붉게 물들었다.

츠츠읏... 번 쩍!

적룡대제는 계속 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필사적인 대항이었다. 그는 점차 손에 힘이 빠짐을 느끼고 있었다.

(큰일이다. 다시... 진기가 막힌다. 더 이상 공격이 계속되면...!)

그의 내심은 온통 초조와 절박감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삐 익!

재차 한차례 날카로운 호각성이 적룡대제의 귓전을 찢었다.

그러자, 크르르... 우 우!

혈랑떼는 그 즉시 공격을 멈추고 마치 썰물이 빠지듯 일제히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실로 뜻밖의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적룡대제는 그 모습에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위, 백여마리가 넘는 혈랑의 시체들이 끔찍한 형상으로 널려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일단 위기를 넘기기는 했으나... 이미 임해(林海)는 천라지망으로 뒤덮여 있으니...!)

그의 안색은 무겁게 굳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콰르릉 콰쾅!

갑자기 적룡대제의 전면에서 거창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순간,

!”

적룡대제는 군무현을 안은 채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직후, 화르르!

그의 전면 십장이 강렬한 화기(火氣)에 휩싸이더니 삽시에 주위의 송림들이 한줌의 재로 화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에 적룡대제는 낭패함을 금치못했다.

(가장 골치아픈 열화신문(熱火神門)의 놈들까지...!)

그의 안색은 천근처럼 무거워졌다.

바로 그때, 파 앗! 송림 위로 다시 몇 개의 주먹만한 구슬이 날아들었다.

순간, 스슷! 적룡대제의 신형이 눈부시게 움직였다.

차 핫!”

그는 대갈일성하며 일시에 삼십 장 밖으로 물러섰다. 그것은 실로 기쾌무비하기 이를 데 없는 몸놀림이었다.

그 직후, 콰쾅! 화르르르...

가공할 폭음이 들썩 송림을 뒤흔들며 적룡대제가 서 있던 곳이 무참하게 박살났다.

스슥! 적룡대제는 그 순간을 틈타 삽시에 백여장을 쏘아나갔다.

하나,

크윽!”

콰당! 너무 급박한 나머지 그는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군무현을 안은 채 거칠게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고통과 함께 낭패함으로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으윽... 틀렸는가?”

그는 주먹만한 선혈을 한모금 울컥 토해냈다.

이어, 그는 입술을 악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군무현, 그의 얼굴은 완전히 사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을 본 적룡대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음을 느꼈다. 그는 급히 군무현의 심맥을 짚어보았다.

순간, 그의 안색이 어둡게 굳어졌다.

(... 큰일이다.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의 기운이 심장에 까지 이르렀다. 이대로 두면...!)

그는 절박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문득, 그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내 피를 먹이는 수밖에... 내 피속에는 만년설삼(萬年雪蔘)의 영기(靈氣)가 흐르고 있으니...!”

적룡대제! 그는 젊었을 때 한 뿌리의 만년설삼(萬年雪蔘)을 복용한 적이 있었다.

만년설삼의 영효는 실로 뛰어난 것이었다. 그것을 복용한 덕분에, 적룡대제는 나이 채 사십(四十)이 못되어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의 명예로운 권좌를 차지할 수 있었다.

만년설삼을 복용한 그의 피는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영약과 마찬가지의 효력을 지녔다.

이윽고, 적룡대제는 망설임없이 번쩍 적룡검을 쳐들었다.

아아... 부정(父情)!

부정은 뜨겁고도 처절한 것이었다. 적룡대제는 질끈 입술을 악물며 적룡검으로 거침없이 자신의 왼손을 내리치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우르릉! 돌연 은은한 진동음과 함께 주위의 지면이 기우뚱할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순간,

(!)

적룡대제는 안색이 대변했다.

(누군가 땅 속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는 급히 신형을 바로 잡으며 긴장된 눈빛으로 적룡검을 고쳐쥐었다.

바로 그때, 파파파팍!

지면의 흙이 팍 터지며 한 명의 인물이 불쑥 흙덩이를 뚫고 치솟아 올랐다.

적룡대제는 그 인영을 향해 사력을 다해 적룡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나 문득, 그의 안색이 급변하며 경악의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환노(幻老)!”

그는 눈을 부릅뜨며 발 아래를 주시했다. 두더지처럼 땅속을 뚫고 나온 인물, 그는 뜻 밖에도 적룡대제의 적이 아니었다.

적이 아닐뿐더러 그가 가장 신임하고 가깝게 여기는 인물이 아닌가?

백의노인, 그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극히 평범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 결코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백의노인은 만면에 격동의 빛을 감추지 못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주공(主公)!”

그는 적룡대제의 앞에 털석 무릎을 꿇었다.

적룡대제, 그의 안면에 부르르 격동의 떨림이 일었다.

환노(幻老)! 그대가... 여기까지 따라와 주었구려!”

그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백의노인의 손을 굳게 움켜쥐었다.

 

환영투도!

 

그는 이미 일백년(一百年)을 살아온 대신투였다.

역용(易容), 은신(隱身), 신투술에 있어 천하제일로 꼽히는 인물. 그는 배짱 또한 놀란만큼 두둑하여 황궁보고(皇宮寶庫)를 안방 드나들 듯 하는 인물이었다.

적룡대제와 환영투도,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진 것은 삼년(三年)전이었다.

적룡대제는 우연히 죽어가던 환영투도를 구해주게 되었다.

그 당시, 환영투도는 황궁(皇宮)에 숨어 들었다가 변을 당했다. 황실제일인(皇室第一人)인 금령천존(金靈天尊)과 맞닥뜨려 크게 부상을 당한 것이었다.

결국, 적룡대제는 환영투도의 생명의 은인인 셈이었다.

그후, 환영투도는 적룡대제를 주인(主人)으로 모셨다.

적룡대제, 그가 천하제일의 문파 적룡세가(赤龍勢家)를 이루는 데는 환영투도의 보이지 않는 공로가 지대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유대관계는 지극히 밀접했다. 환영투도는 진심으로 적룡대제를 주공(主公)으로 받들어 섬겼다.

적룡대제 또한 그런 그를 가장 믿고 신임했다. 그는 적룡세가의 모든 대소사(大小事)를 환영투도와 더불어 의논해왔다.

한데, 죽음의 위기에 몰린 적룡대제, 그의 앞에 뜻밖에도 그 환영투도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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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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