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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一 章

 

                      神秘氷洞

 

 

 

군무현, 그는 방금전 시녀가 놓고간 빙차(氷茶)를 음미하며 난설홍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스르르... 문득 방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한 명의 여인이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섰다.

하나, 그녀는 난설홍예가 아닌 예의 전설빙이었다.

군무현의 시선에 잔설빙은 고개를 약간 숙인 뒤 말했다.

제일공주께서 공자를 직접 만년빙지의 서식지로 오시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알겠소. 안내하시오!”

군무현은 몸을 일으키며 선 뜻 대답했다.

잔설빙은 두말 않고 몸을 돌려 먼저 방을 나섰다. 여전히 얼음같이 싸늘한 표정, 군무현도 곧 그녀의 뒤를 따랐다.

다음 순간, 스슥...! 두 사람은 삽시에 빙백궁을 벗어났다.

잔설빙의 속도는 실로 엄청났다. 그녀는 군무현이 따라오건 말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한데, 스윽! 한순간 잔설빙의 신형이 급속히 빨라지더니 어느 한곳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

! 군무현은 흠칫했으나 이내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한데, 잔설빙을 뒤따라 한곳으로 들어선 순간,

이곳은...!”

군무현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그는 짙은 검미를 꿈틀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곳은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지각이 쩍 갈라진 천인단애가 아닌가?

휘이 잉! 골수를 파고드는 음습한 바람만이 단애를 휩쓸고 있었다. 천길 절벽이 아스라이 내려다 보이는 천험의 오지,

이곳에 만년빙지가 서식한단 말인가?”

군무현은 의혹의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나, 그 말에 대답한 사람은 잔설빙이 아니었다.

네게 줄 만년빙지는 없다!”

돌연 군무현의 등 뒤에서 차가운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

군무현은 순간 흠칫 몸이 굳어졌다. 하나, 그는 냉담한 얼굴로 천천히 돌아섰다.

돌아서는 그의 눈에 한 여인의 모습이 비쳐들었다. 일신에 짙은 흑색궁장을 걸친 여인, 그녀는 훤칠한 키에 이국적인 미모가 물씬 풍기는 미인이었다.

하나, 그녀는 아름다우나 화사함을 잃은 빙화(氷花)였다.

묵빙현하의 뒤, 네명의 백의여인이 그림자처럼 우뚝 서 있었다.

(함정에 빠졌군!)

군무현은 고소를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어쩌면 미리 예상했던 일인지도 몰랐다.

그대는...?”

군무현은 힐끗 묵빙현하를 주시하며 물었다.

빙백궁의 제이궁주 묵빙현하가 본녀다!”

묵빙현하는 칼로 잘라내듯 차갑고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순간, 군무현의 영민한 두뇌는 신속히 회전했다.

(빙백궁의 전대 주인의 신상에 무슨 일인가 있다. 그 사이에 제일공주 난설홍예와 제이공주 묵빙현하가 실권을 놓고 암투를 벌이고 있다. 지금 묵빙현하는 나를 난설홍예의 동조자로 착각하고 있다...!)

그의 추측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사태를 짐작한 그는 냉담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빙백궁 내부에 어떤 알력이 있든지 간에 그것은 본인이 알바 아니오. 분명히 말하건대 본인은 그대들의 알력에 대해서는 무관하오. 그대들과 다툴 하등의 이유가 없소!”

그는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하나, 묵빙현하가 그 말을 믿을 리 없었다.

마음대로 지껄여라. 곧 천빙애(天氷崖)에 묻히게 될테니까!”

그 말을 끝냄과 함께, 스슥...! 그녀는 유령처럼 몸을 움직여 네 명의 백의여인들 사이에 섰다.

군무현은 일순 흠칫했다.

(저들은 강시가 아닌가?)

그는 네 명의 백의여인들을 주시하며 눈썹을 꿈틀했다.

전혀 표정이 없는 네 명의 백의여인들, 놀랍게도 그녀들은 혼()이 없는 강시였다.

(골치아프게 되었군.)

군무현은 고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피를 보기를 원하는가?”

하나, 묵빙현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네 명의 강시와 손을 마주 잡았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급격히 변했다.

(연체합벽술(連體合碧術)! 나를 단애 아래로 밀어버릴 작정이군!)

그는 순식간에 위급지경으로 몰리고 말았다.

찰나,

차 앗!”

군무현은 대갈일성과 함께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여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수라혈잠영! 그 초절한 경공이 펼쳐진 것이었다.

하나,

늦었다!”

위 잉! 묵빙현하의 입에서 싸늘한 냉갈이 터짐과 함께 엄청난 무게의 압력이 군무현의 가슴을 짓쳐들었다.

(위험하다!)

군무현은 눈앞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하나,

수라혈영파천무(修羅血影破天舞)!”

위 이잉! 그는 순간적으로 맹렬히 쌍수를 떨쳐냈다.

시뻘건 혈영(血影)이 온통 사위를 뒤덮음과 함께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콰르르 릉! 콰 쾅!

묵빙현하와 네 강시들의 무형경력과 군무현의 공세가 정면으로 격돌한 것이다.

그 굉렬한 폭음 속을 뚫고,

아 악!”

여인의 탈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졌다.

묵빙현하, 그녀는 앞가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일장 밖으로 튕겨나갔다.

바로 그때, 콰르르릉... 쿠쿠쿵!

돌연 그녀 앞의 단애가 엄청난 진동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돌발적인 사태였다.

... 콰콰쾅! 우르릉!

찰나지간 천지는 가공할 폭음속에 묻혀버렸다. 그 엄청난 함몰의 사태가 가라앉고 나자, 장내의 광경이 확연히 드러났다.

보라. 일인(一人). 오직 한 사람만이 단애 밑으로 함몰되는 불행을 면한 듯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묵빙현하 바로 그녀였다.

... 지독한 자...!”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군무현도, 네명의 빙시(氷屍)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단애가 붕괴되는 순간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만것이었다.

문득, 묵빙현하의 차갑고 깊숙한 두 눈에 한줄기 허탈한 빛이 어렸다.

이제 돌아가면...!”

그녀는 고통을 눌러 참으며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어느새 나타난 잔설빙이 그녀의 잔혈을 움켜쥔 것이 아닌가!

... 설빙! ... 네가...!”

묵빙현하는 불신과 회의의 눈빛으로 멍하니 잔설빙을 응시했다.

그 순간, 잔설빙의 두 눈에 고통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제이공주님! 용서하세요!”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때였다.

흐흐흐...!”

스슥...! 한 소리 요란한 교소와 함께 묵빙현하의 앞으로 한무더기의 분홍색 구름이 떨어져 내렸다.

난설홍예! 바로 그녀가 아닌가? 그녀의 모습을 본 빙백궁의 안면이 참담하게 이지러졌다.

홍예언니...! 설빙까지도 회유했군요!”

그 말에 난설홍예는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현하! 미안하구나. 나는 우리 빙백궁의 막강한 힘을 이 북해에서 썩히게 하고 싶지 않다!”

순간, 묵빙현하는 부르르 몸을 떨며 아미를 치떴다.

닥쳐요! 언니는 조사님들의 유명을 잊었어요? 절대 북해를 떠나지 말라는 그 명을 잊었느냔 말이에요?”

그녀의 격분된 음성에 난설홍예의 안색도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하나, 그녀는 이내 신경질적으로 왈칵 소리쳤다.

시끄럽다! 그따위 케케묵은 궁규(宮規) 때문에 청춘을 이 삭막한 북해에서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중원에 들어가 천마궁(天魔宮)과 손을 잡고 천하를 지배할 것이다!”

... 미쳤군요!”

묵빙현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천하제패(天下制覇)! 이 얼마나 엄청난 말인가?

돌연, 난설홍예는 허리를 쥐며 요란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미쳤다고 해도 좋다. 어쨌든 너를 손쉽게 잡게해준 군공자에게 감사해야겠구나!”

순간, 묵빙현하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렀다.

... 설마... 그는 언니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이었단 말인가요?”

그녀는 충격을 받은 듯 한차례 부르르 교구를 떨었다.

호호... 그렇다. 그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만년빙지를 구하러 왔을 뿐이지!”

난설홍예는 묵빙현하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

묵빙현하는 일순 교구를 휘청하며 한 모금의 선혈을 울컥 토해냈다.

그와 함께, 그녀는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 눈이 어두워 애꿎은 사람을 죽였으니... 이 죄를...!”

그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비몽사몽 중에 그녀는 들을 수 있었다.

호호호... 중원아 기다려라!”

난설홍예, 그녀의 요기서린 득의의 웃음소리가 북해의 동천을 뒤흔드는 것을...

 

X X X

 

음험한 지옥의 입구를 연상케 하는 절곡 밑,

크으... 지독하군!”

문득 한소리 고통스러운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사방은 온통 두터운 얼음으로 싸여 있었다.

한데, 신음성은 바로 그 얼음 구덩이 속에서 들려왔다.

이어, 콰릉 펑! 돌연 두터운 얼음덩이가 통째로 박살나며 그 속에서 한 명의 혈인(血人)이 불쑥 솟구쳐 나왔다.

군무현! 바로 그가 아닌가?

다행히 그는 네 명의 빙시 위로 떨어져내려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 그는 전신의 관절이 어긋나는 극심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전신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다.

군무현은 입술을 악물며 품속을 뒤졌다.

구전환혼단(九轉還魂丹)을 많이 가져오기를 잘 했다!”

그는 옥병 속의 구전환혼단 이십여 알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놓고 가부좌를 틀었다.

순간,

... !”

그의 안색이 처참한 고통으로 이지러졌다. 하나, 그는 이를 악물고 진기를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전신관절이 부서져 나갈 듯 아팠으나 점점 고통은 감소되었다.

그리고 한 순간, 그는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구전환혼단의 효력은 과연 대단했다. 고가진기를 삼주천했을 때, 놀랍게도 내상이 깨끗하게 완치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상 또한 거의 아물어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윽고, 군무현은 눈을 떴다.

때가 좋지 않았다. 빙백궁의 내부 알력에 휘말려 들다니...!”

그는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로군!”

문득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폭이 십여장 정도되는 협로였다. 수백 장 위로 손바닥만한 하늘이 겨우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사면의 벽, 그것은 엄청난 한기를 발산하는 만년빙(萬年氷)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천빙애(天氷崖)! 이곳이 바로 천빙애였다.

군무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도저히 벽을 타고 오를 수는 없겠군!”

거울처럼 미끄러운 만년빙(萬年氷), 더구나 골수까지 얼려버릴 듯한 엄청난 한기를 발산하는 그 만년빙의 벽을 타고 오른다는 것을 불가능했다.

군무현은 난감한 심정을 금치 못했다.

(이곳에 달리 통로가 없다면 꼼짝없이 뼈를 묻게 되겠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얼음벽으로 둘러싸인 협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동굴이 있다!”

과연, 그의 눈에 크지 않은 하나의 빙동(氷洞)이 들어왔다.

혹시...!”

군무현은 설마하는 기대감으로 그 동굴을 향해 다가갔다.

순간, 음랭하고 차가운 한기가 무서운 기세로 그의 전신을 몰아쳤다.

군무현은 절로 몸이 으스스해짐을 느꼈다. 하나, 그는 눈을 빛내며 주저없이 동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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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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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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