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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八 章

 

                      萬獸族危機

 

 

 

군무현은 자신의 장포를 벗어 말없이 하오미에게 던져 주었다. 이어,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 고마워요!”

하오미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황급히 군무현의 장포로 알몸을 가렸다. 그녀의 작은 가슴은 이 순간 세차게 쿵쾅거리며 뛰었다.

(멋있는 분...!)

그녀는 군무현의 냉담하나 깨끗한 태도에 강렬한 매력을 느꼈다.

이윽고, 그녀는 급히 일어나 군무현의 뒤에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소녀는 만수족(萬獸族)의 하오미예요!”

“...!”

군무현은 아무말 없이 돌아섰다.

하오미, 그녀는 군무현의 헐렁한 장포를 걸친 채 살짝 볼을 붉히며 서 있었다.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수줍게 군무현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두 눈, 그것은 무척 크고 아름다웠으며 보석보다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눈이군!)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하오미가 조심스럽게 군무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빠... 라고 불러도 좋아요?”

그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군무현은 눈앞의 티없이 고운 소녀에게 정()이 갔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순간, 하오미의 안색이 활짝 펴졌다.

오빠는 중원(中原)에서 오셨어요?”

그녀는 금방 명랑한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무감정하나 차갑게 느껴지는 어조는 아니었다.

무슨 일로 중원에서 이곳까지 오셨지요?”

북해(北海)로 가는 길이다!”

하오미는 군무현의 대답에 안색이 일변했다.

설마... 빙백궁(氷魄宮)... 가시는 건가요?”

그녀는 염려의 표정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순간, 하오미는 살풋 아미를 찡그리며 말했다.

빙백궁이 목적지라면 가시지 마세요. 빙백궁의 계집들은 하나같이...!”

하나, 군무현은 그녀의 말을 막았다.

누가 오고 있다!”

“...?”

하오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따각... 따각... 급촉한 말발굽 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한 하오미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백 장 밖의 말발굽 소리를 알아 듣다니...!)

그녀는 군무현의 존재가 새삼 신비하고 거대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두두...! 한 필의 건마가 초원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히 잉! 말은 군무현의 바로 앞에서 급히 멈추어 섰다.

그와 함께, 마상에서 한 명의 피의청년이 훌쩍 날아내렸다.

군무현의 눈빛이 순간 기광을 발했다.

(훌륭한 기마술(騎馬術)!)

그때, 피의청년은 말에서 내려서자 마자 하오미를 향해 깊이 포권했다.

공주님!”

유가랍(幽加拉)! 무슨 일이에요?”

하오미는 피의청년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유가랍(幽加拉)이라 불린 피의청년은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어서 곡()으로 돌아가십시오! 천응족(天應族) 놈들의 동태가 이상합니다!”

천응족(天應族) 놈들이?”

하오미는 아미를 상큼 치켜올렸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사생결단을 내야 하겠습니다!”

그 야만인들이...!”

하오미는 분노의 표정을 지으며 붉고 도톰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초조와 불안의 빛이 떠올랐다.

군무현은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상황을 짐작한 그는 하오미를 힐끗 바라보았다.

급한 일인 모양이군! 내가 데려다 주겠다. 집은 어느 방향이냐?”

그 말에 하오미는 반색을 지었다.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만수곡(萬獸谷)은 도란태산에 있어요!”

가자!”

군무현은 서슴없이 하오미의 손목을 잡았다. 그와 함께, 스스슥! 그는 수라혈잠영의 경공으로 섬전같이 허공을 갈랐다.

...!”

하오미는 놀란 토끼처럼 탄성을 발하며 군무현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허리를 굳게 감아 안은 군무현, 그는 순식간에 도란태산을 향해 질주했다.

몸을 날리며 문득 그는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천응족(天應族)이란 자들과 분규가 있는 모양이군?”

하오미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중원에서 밀려난 뒤 저희는 각기 부족마다 떨어져서 군락을 이루며 살게 되었어요!”

 

만수족(萬獸族)!

그들은 달단부(達丹部)에 속하는 일족이었다. 도란태산을 근거지로 그곳의 반()을 차지하는 대부족(大部族)!

그들은 대대로 맹수(猛獸)를 다루는 기술을 지녔다.

하나, 원래 그들은 온순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에 타부족과의 분규를 원치 않았다.

반면, 도란태산의 또 다른 한곳에는 천응족(天應族)이라는 매우 호전적인 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독응(毒應)을 타고 다니며 맹금을 잘 부리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만수족과는 정반대로 그들은 야심이 큰 부족이었다.

때때로 그들은 탐심을 길러왔으며 도란태산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광분하는 무리들이었다.

그러니 어떻겠는가? 상반된 기질을 지닌 만수족과는 자연히 분규가 그칠날이 없는 것이다.

 

하오미는 아름다운 두 눈에 적의의 빛을 띄우며 말을 이었다.

당금 천응족의 족장인 탑달극리(塔達極利)는 아주 호전적인 자에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란태산을 자기들 수중에 넣으려고 발광하고 있어요!”

문득, 그녀의 안색이 침울하게 변했다.

게다가 우리 만수족의 족장이던 하오랍(河吳拉) 오빠는 반년 전에 사냥터에서 전갈에 물려 사망하고 말았어요!”

그녀는 두 눈에 어두운 빛이 어렸다.

혼자된 새언니만 불쌍하게 되었죠!”

군무현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물었다.

탑극라란 자는 누구냐?”

탑달극리의 아들이에요. 그 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닮아 방약무인하기 짝이 없어요!”

하오미는 탑극라에 대한 반감이 극심한 듯 아미를 찡그렸다.

그들은 몇마디 얘기를 주고받은 사이, 삽시에 그들은 도란태산이 보이는 곳까지 당도했다.

한데 문득, 군무현의 검미가 가볍게 찌푸러졌다.

(저것은...?)

도란태산의 산록에서 별로 멀지 않은 봉우리, 그 위를 스치는 수많은 맹금들의 그림자를 본 것이었다.

(벌써 싸움이 시작된 모양이군!)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리며 속도를 더욱 빨리했다.

휘르르르...! 그의 신형은 세찬 바람소리를 남겼을 뿐 흔적조차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X X X

 

광대한 분지!

그 광활한 분지에 수천호의 민가가 모여살고 있었다.

세외선경을 연상케하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하나, 지금 그곳은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카 악! 끄악...! 흉맹한 맹금의 괴성과 사나운 맹수들의 울부짖음이 허공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보라! 끔찍하게도 백여 마리의 거대한 독응과 수백 마리의 맹금들이 부지를 습격하고 있지 않은가?

크아 카오... 끄르륵...!

그들의 기세는 실로 가공스러울 정도였다. 이에 대항하여, 흑의를 입은 장한들이 거호(巨虎), 표범, 곰들 천여마리의 맹수들이 서로 어울려 맹금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끔찍하고 처참한 광경이었다. 분별없이 죽고 죽이는 짐승들과 인간의 싸움은 치열했다. 하나, 일방적으로 맹수들 쪽이 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크 악! 으르릉... ! 흉맹하고 처절한 짐승들의 울부짖음, 퍽퍽 피가 튀며 기세당당한 맹수들은 독응의 무쇠같은 발톱에 갈가리 찢겨 나뒹굴었다.

한편, 흑의장한들도 맹금들을 맞아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츠츠... 위 잉! 콰르릉!

도검(刀劍)이 난무하며 폭음과 장풍이 분지를 뒤집어 엎을 듯 몰아쳤다. 하나, 맹금과 독응의 가죽은 마치 철판같아 도검이나 화살 정도로는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크아아악!”

아 악?”

피를 보는 쪽은 대부분 흑의장한들이었다. 그들의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속속 나뒹굴었다.

바로 만수족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위세는 점점 풀잎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도저히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우하하하! 나의 자랑스러운 독응들아! 한놈도 남김없이 갈가리 찢어죽여라!”

한 마리 거대한 독응의 등 위에서 굉량한 광소와 함께 득의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독응의 위, 한 명의 흉악한 인상을 지닌 금포노인이 철갑(鐵甲)을 입은 채 한 자루 철궁(鐵弓)을 겨누고 있었다.

쉬 익! 쐐 애액!

그 자가 시위를 힘껏 잡아당길 때마다,

크악!”

크윽!”

흑의장한들은 어김없이 가슴을 부둥켜안고 거꾸러졌다.

그 자의 궁술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을 뿐 아니라 극히 뛰어났다. 맹수들은 지휘하는 장한들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탑달극리! 이놈!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맹수들의 무리 속에서 한 명의 백발노인이 분기탱천하며 노갈을 터뜨렸다. 하나, 독응 위의 탑달극리는 광소를 터뜨리며 분지를 내려다 보았다.

우하하...! 하고타(河古陀)! 네 아들 곁으로 보내주마!”

그 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백발노인을 향해 철궁을 겨누었다. 그 자가 막 철궁의 시위를 잡아당기려 할 때였다.

우 우!”

돌연 한소리 거창한 창룡음이 도란태산을 뒤흔들었다.

순간,

!”

탑달극리는 대경실색했다. 그 장소는 너무도 크고 웅후하며 하마터면 그 자는 독응 위에서 떨어질뻔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카 아! 크르 륵! !

수많은 맹금과 독응들이 그 진동에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다.

그때, 스윽! 탑달극리의 눈에 분지 입구로 날아드는 한 명의 흑의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그는 곡구로 들어서자마자 즉시 하오미를 내려놓았다.

이어, 그는 번개같이 적룡검을 뽑아들었다.

미물이 감히 인간을 해치다니... 용서치 못한다!”

그는 한광을 폭사하며 찌렁찌렁한 대갈을 터뜨렸다.

그와 함께,

가랏! 적룡어강살!”

번 쩍! 푸학! 그는 검을 단전에 붙이며 벼락같이 휘둘러냈다.

직후, 케 엑! 캬아악... 크윽!

십여 마리의 독응들이 단번에 두동강 나며 허공을 온통 피보라로 뒤덮으며 떨어져 내렸다.

그 광경을 본 탑달극리, 그 자는 찢어질 듯 눈을 부릅뜨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 어검술!”

그 자는 질겁하며 부르짖었다.

그때, 위 잉! 군무현의 적룡검은 계속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낙뢰보다 빠른 그것은 순식간에 맹금들을 양단시켜 버렸다.

으르릉... ! 우우!

분지를 찢어발기는 처절한 짐승의 울부짖음은 오싹 소림이 끼칠 정도였다.

탑달극리, 그 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군무현이 펼치는 어검술이 보통 어검술보다 열배 강한 적룡천종(赤龍天宗)의 절기임을...

... 물러가자!”

그 자는 급히 자신이 타고 있던 독응의 머리를 쳤다.

그 순간, 쉬 익! 날카로운 적룡검의 검기가 허공을 스치며 탑달극리가 부리는 거대한 독응의 한쪽 다리가 싹둑 잘려 나갔다.

케 엑! 독응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피를 쏟았다.

그 광경에, 크르르 카 아...!

수많은 맹금들도 공포에 질린 기색으로 분분히 흩어졌다.

순식간에, 맹금의 무리들은 도란태산 너머로 밀려가듯 사라졌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아 악! 아가!”

돌연 한 여인의 처절한 비명이 귓전을 찢었다. 군무현은 흠칫하며 홱 고개를 돌렸다.

콰르릉 펑! 한 채의 인가가 폭음 속에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인가속에서 한 명의 미소부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뛰쳐나왔다.

순간,

감히...!”

군무현의 두 눈에 번쩍 살광이 폭사되었다. 그의 눈에 한 마리 독응이 한 명의 어린아이를 잡아채며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찰나, 번 쩍! 어느새 적룡검은 군무현의 손을 떠나 독응의 등으로 날아 꽂히고 있었다.

직후, 크 악! 독응의 동체가 쫙 갈라지며 선혈이 확 뿌려졌다.

악 아가!”

그것을 본 미소부는 자지러질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독응의 발톱에 끼어있던 어린아이가 밑으로 급속히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그 순간, 스스스...! 문득 군무현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잠시 후,

와 아!”

오오...!”

중인들 사이에 터질듯한 환성이 울려퍼졌다. 그들은 환호성을 울리며 일제히 허공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스스스스... 군무현, 그가 깃털처럼 유유히 지면으로 내려서고 있지 않은가?

한쪽 팔에 혼절한 어린아이를 안은 채, 파파앗! 그는 적룡검을 회수하며 고개를 숙여 품안의 어린 아이를 내려다 보았다.

무심하기만 하던 그의 두 눈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귀여운 계집아이...!)

그의 품에 안긴 채 혼절해 있는 어린 아이는 불과 두세살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여아(女兒)였다.

뽀얀 우유빛 피부에 앵두같은 입술을 지닌 인형같은 아이, 그때,

... 아가!”

미소부가 정신없이 달려와 군무현의 손에서 아이를 받아안았다. 그녀는 아이를 품속에 끌어안으며 마구 볼을 부벼댔다. 어머니의 오열은 진하고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

군무현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 무엇보다 깊고 진한 감정, 그것이 바로 모성애(母性愛)가 아니겠는가?

그래서일까? 군무현은 차가운 가슴이 자신도 모르게 훈훈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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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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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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