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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四 章

 

            氷屍誘惑

 

 

 

천이백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다시 깨어난 빙백염후(氷魄艶后), 그녀는 군무현을 주시하며 초조함을 금치못했다.

(내가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불과 일각(一角)... 그 사이에 이자의 영혼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문득, 그녀의 옥용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천기(天機)에 의하면 실패한다고 나타났다. 하나... 아니할 수 없는 일...!)

그녀는 결연한 눈빛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 순간, 스스스... 돌연 그녀의 전신이 엄청난 요기로 뒤덮였다.

 

반혼환령이체술(返魂幻靈移體術)!

사술(邪術)의 최고봉, 자신의 영혼을 타인의 신체로 옮기거나 타인의 영혼을 갈취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기오한 대법.

빙백염후는 지금 그 반혼환령이체술(返魂幻靈移體術)을 펼치려 하는 것이었다.

하나, 그녀는 너무도 강한 영혼의 소유자를 상대로 선택했으니... 뉘라서 알 수 있으랴?

천하제일의 정력가(定力家)를 그 상대로 선택하게 한 것은 하늘의 오묘한 안배였음을.

폭발할 듯한 요기로 전신을 감싼 빙백염후,

순간,

!”

문득 그녀는 안색을 이지러뜨리며 짧은 비명을 토했다.

그녀는 이내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상상 이상으로 군무현의 정력은 너무도 강했다.

그는 반혼환령치체술에 걸려들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솜이 물을 빨아들이 듯 고스란히 흡수하는 것이 아닌가!

... ... 천기(天機)... 천기를 어길 수는 없단 말인가?”

빙백염후는 절망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패배했다. 그것도 아주 철저히 당하고 만 것이다.

그녀의 영혼을 군무현의 강인하고도 흔들림없는 정신력에서 산산히 파열되고 말았다.

... ...!”

빙백염후는 흐느끼듯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하나, 문득 그녀는 연신 경련을 일으키는 처연한 나신을 일으키며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손해볼 것은 없다... 천향염시(天香艶屍)가 되어... 백 년을 더 살수 있을테니...!”

한순간, 화르르르... 위 잉!

그녀의 몸을 뒤덮고 있던 요기가 극()에 이른 듯 확 퍼져 올랐다.

그와 함께, 빙백염후의 두 눈에서 스르르 광채가 사라졌다.

마치 바람 속에 흔적없이 잠드는 화향(花香)처럼...

그때, 우르르... 콰쾅! 군무현의 태양천화굉염신공의 위세는 더욱 팽창되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폭발할 듯 치솟는 극양지기는 광한전 내의 모든 기물을 산산히 부수어 버렸다.

콰르릉 쿠쿵... 엄청난 폭음이 광한전을 허물어뜨릴 듯 거세게 뒤흔들었다.

하나, 그 순간에도 여전히 군무현의 두 눈은 깊고 고요하기만 했다. 문득 그는 두 눈을 떴다.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리다니...!”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침음성을 발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주위는 온통 난장판으로 화해 있었다.

광한전 내의 모든 것은 산산히 파괴되거나 녹아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하나, 단 하나, 파괴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여인의 몸(女體), 고금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몸이었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으로 빙백염후를 바라보았다.

“...!”

빙백염후, 그녀는 다소곳이 무릎을 모은 채 군무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극히 요염하고도 선정적인 자태, 그것은 실로 사내의 혼백을 빼앗기에 충분한 뇌살적인 아름다움이었다.

한데, 기이한 일이었다. 눈빛, 빙백염후의 아름다운 두 눈에는 일정한 촛점이 없어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군무현은 가슴이 뜨끔해짐을 느꼈다.

(강시가 되다니...!)

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그러했다. 빙백염후는 놀랍게도 영혼을 잃은 강시로 변해버린 것이 아닌가?

살아 있으나 혼()이 없고, 눈빛이 있으나 이미 생자(生者)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천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났으나 결국 희생치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송두리째 자신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나, 그녀가 잃지않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이었다.

천년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녀는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비록 혼을 잃은 강시녀가 되어버렸으나 고금제일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군무현, 그는 한동안 침중한 표정으로 빙백염후를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묵묵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소곳이 앉아있던 빙백염후도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군. 이 여인은 심령(心靈)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의아로움을 금치못하며 중얼거렸다.

이지를 상실한 빙백염후, 그녀는 이제 군무현의 일부나 마찬가지인 그림자가 된 것이다.

미모 하나만으로도 능히 천하를 혈풍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고금제일미인(古今第一美人), 한데 이제 그 완벽한 미()를 소유한 여인은 한 사냉게 종속되고 말았다.

영원히 그녀는 군무현의 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천년 이전의 미인(美人)과 천년 후의 기남아(奇男兒)!

그들의 만남은 과연 장래에 어떤 신화(神話)를 낳을 것인가?

그때, 문득 군무현은 빙백염후가 아직도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나신임을 느꼈다.

(무엇인가 걸칠 것을 찾아주어야겠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의 모든 기물은 산산이 박살나고 없었다.

하나, 박살난 만년빙옥의 침상 밑에 하나의 시커먼 철함이 뒹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년한철로 만든 것이라 부서지지 않았군!”

군무현은 철함을 집어들며 중얼거렸다.

철함은 묵직한 한철로 된 자물쇠로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 팍팍! 군무현이 자물쇠를 쥐고 불끈 힘을 주자 이내 한철로 된 자물쇠는 모래알처럼 부서져 박살났다.

열려진 철함 안, 몇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먼저 한 벌의 백의(白衣)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결고운 빙잠사로 만들어진 구천신녀(九天神女)의 의복이었다.

빙백염후가 걸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군무현은 빙잠백의를 꺼내 빙백염후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걸치시오!”

“...!”

그 말에 빙백염후는 공손히 옷을 받아들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군무현은 눈을 돌려 다시 철함 안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하나의 가죽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가죽 주머니 안, 그 안에는 열여덟 자루의 단검(短劍)이 들어 있었다.

 

천라빙백검(天羅氷魄劍)!

 

단검의 손잡이네는 그와같은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빙백염후의 천라빙백구천류(天羅氷魄九天流)를 펼치는 명기들이군!”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천라빙백검이 든 가죽 주머니를 빙백염후에게 돌려주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

그는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광한전 전체가 환하게 밝아진 듯 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군무현은 일순 넋을 잃은 듯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빙백염후를 주시했다.

어느새 빙잠백의를 걸치고 선 빙백염후, 그녀의 모습은 황홀할정도로 아름다웠다.

구천신녀(九天神女)가 하강한 듯 은은하고 교교로운 자태, 빙장백의는 빙백염후의 모습을 한결 고아하고 품위있게 정돈해 주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아름다움에서 완숙하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었다.

군무현은 새삼 빙백염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다시 철함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천라빙백검의 밑에는 두권의 책자가 들어 있었다.

낡을대로 낡은 고서(古書), 군무현은 그 중 한 권을 집어들었다.

 

구천비사록(九天秘事錄)!

 

고서의 겉장에는 고전체로 그와같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이미 청년 이전에 사라진 구천사령궁(九天邪靈宮)의 비전이었다.

 

구천사령궁(九天邪靈宮)!

 

그들은 바로 고금제일사파(古今第一邪派)가 아닌가?

구천비사록 안에는 실로 가공할 사도절기가 집약적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태양천제와 빙백염후, 그 절대무적의 두 고수의 합공에 의해 당시 구천사령궁은 기왓장 하나 남김없이 괴멸했다.

하나, 빙백염후가 그때 얻은 구천비사록으로 인해 결국 두 고수는 동귀어진하게 된 것이다.

또 한권의 비급, 그것은 특이하게도 빙잠사로 엮어 만든 것이었다.

 

빙백천후보(氷魄天后譜)!

 

표지에 유려하고도 섬세한 필체로 쓰여진 다섯 글자, 그것을 본 순간 군무현은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빙백천후보(氷魄天后譜)...!”

그는 신음하듯 나직이 중얼거리며 문득 빙백염후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 여인이 빙백염후란 말인가?)

그는 불신의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하나, 그의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빙백염후는 촛점없는 멍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무현은 침음하며 다시 빙백천후보로 눈길을 돌렸다.

 

태양천화굉염신공은 너무도 가공스럽다. 본후(本后)의 만겁빙백명공강(萬劫氷魄冥空强)이 태양천제의 심맥을 마디마디 끊어 놓았으나... 본후의 심맥도 태양천화굉염신공에 의해 재가 되어 버렸다.

 

거기까지 읽은 군무현은 나직한 신음성을 발했다.

문득, 그는 빙백염후를 향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이리와 보시오!”

“...!”

그의 말에 빙백염후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군무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군무현은 손을 내밀어 빙백염후의 손목을 잡아보았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가볍게 굳어졌다.

역시...!”

놀라운 일이었다.

빙백염후, 그녀의 심맥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아예 흔적조차 없었다.

대신, 지극히 강한 기운이 그녀의 전신에 두서없이 널려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대가... 빙백염후였군!”

군무현은 신음과도 같이 침중한 음성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빙백염후! 그녀는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 중 일대천(一大天)이었다.

고금삼대기인 중 일인인 천년의 시공을 날아넘어 강시가 된 것이 아닌가?

그것도 바로 군무현 자신에 의해서, 군무현은 침중한 표정으로 다시 빙백염후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살아나는 길은 반혼환령이체술(返魂幻靈移體術)로 타인의 영혼을 갈취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천기를 보았다. 천기에 의하면 천년 이후에 한명의 인물이 광한전에 든다. 그러나... 천기는 오히려 나의 영혼이 그에 의해 부서진다고 나왔다...!

 

그 내용을 접한 군무현은 다시 한 번 무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그랬던가? 나도 모르게 영혼을 빼앗길 뻔했단 말인가?”

그는 하마터면 나환섭밀대법에 빠져들 뻔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이었다.

빙백염후의 글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을 얻는 길은 그것 뿐... 망설일 수는 없다. 요행으로 천기를 벗어나면 본후는 환생하여 천수를 누길 것이며... 실패하면 천향염시(天香艶屍)가 되어 그의 처첩으로 백년을 살게될 것이다. 이제... 잠혼영면술(潛魂泳眠術)로 천년의 긴 잠에 들게 될 것이다.

빙백염후(氷魄艶后) 단목화예!

 

군무현은 기광을 빛내며 빙백염후를 돌아보았다.

“...!”

아득하고도 촛점없는 시선, 빙백염후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모호한 시선으로 군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무현은 문득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고금제일의 여고수를 곁에 두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군!”

그 말에 빙백염후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영혼을 잃은 강시, 강시가 웃는다.

빙백염후의 입가에 흐릿하게 떠오르는 그것은 분명 인간의 미소였다.

기이하지 않은가? 강시가 웃다니...

하나, 그 미소는 너무도 황홀하여 빙백염후에게 썩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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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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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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