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에 해당되는 글 366건

  1. 2020.12.08 [천황존신보] 제 6장 신비한 문양
  2. 2020.12.07 [태산북두] 제 44장 검에 죽은 검신 2
  3. 2020.12.06 [태산북두] 제 44장 검에 죽은 검신 1
  4. 2020.12.04 [태산북두] 제 43장 팔인의 절대고수
  5. 2020.12.02 [태산북두] 제 42장 천하에서 가장 큰 도박판
  6. 2020.11.30 [태산북두] 제 41장 무림황제를 뽑는 자리
  7. 2020.11.28 [태산북두] 제 40장 학선평에 모인 천하의 고수들
  8. 2020.11.28 [천황존신보] 제 5장 암동의 시신
  9. 2020.11.27 [태산북두] 제 39장 뜻밖의 구원자
  10. 2020.11.25 [태산북두] 제 38장 뜻밖의 만남
  11. 2020.11.24 [태산북두] 제 37장 삼절일천군단
  12. 2020.11.23 [천황존신보] 제 4장 운명의 만남
  13. 2020.11.22 [태산북두] 제 36장 패배
  14. 2020.11.21 [태산북두] 제 35장 무제 임보산과의 결투
  15. 2020.11.20 [태산북두] 제 34장 현현궁
  16. 2020.11.19 [천황존신보] 제 3장 풍림소축의 귀공자
  17. 2020.11.18 [태산북두] 제 33장 구문제독 하후승
  18. 2020.11.17 [태산북두] 제 42장 낙일검의 출현
  19. 2020.11.15 [태산북두] 제 31장 쌍두금구
  20. 2020.11.15 [천황존신보] 제 2장 쓰러진 검황종
  21. 2020.11.14 [태산북두] 제 30장 괴노 육천태의 수수께끼
  22. 2020.11.13 [태산북두] 제 29장 수신묘의 세 죽음
  23. 2020.11.12 [천황존신보] 제 1장 패륜의 일막
  24. 2020.11.12 [태산북두] 제 28장 색남색녀 2
  25. 2020.11.10 [태산북두] 제 28장 색남색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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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天荒秘府의 神秘한 紋樣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으... 음!”

한 차례 신음과 함께 이검엽의 몸이 꿈틀거렸다.

그의 전신은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이어,

“휴...”

긴 한숨과 함께 그는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말... 지독한 고통이었다.”

이어 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엇... 이럴 수가...”

그는 대경했다.

혈포인의 시신-------

시신은 어디로 가로 그 자리에는 유골의 가루만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 자레는 단지 그가 입고있던 옷과 그를 관통한 묵검(墨劍)이 놓여 있었다.

이검엽은 어찌된 일인지 대뜸 짐작했다.

(선인(仙人)의 유체를 훼손시키다니...)

그것은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이에 벌어진 일임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검엽은 죄책감을 느끼며 조심스레 가루가 된 혈포인의 시신을 옷자락과 함께 주워 모았다.

한데 이때,

가루를 걷어내자 뜻밖에 바닥에 지력(指力)으로 쓴 글씨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이 글을 읽는 분은 필시 의인(義人)일 것이오. 의인이기에 노부의 시신에 일편 연민을 느껴 인정을 베푸셨을 것이오.>

 

순간,

그 글을 읽은 이검엽은 쓴웃음을 지었다.

(의인이라고 선인의 시신을 훼손시킨 내가 의인이란 말인가?)

그는 다시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귀공(貴公)에게 한 가지 간절한 부탁이 있소. 나의 등에 꽂혔던 신검 묵령(墨靈)을 알아보는 자를 훗날 만나면 필히 죽이시오...>

 

이검엽은 흠칫했다.

(사람을 죽이라고?)

그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문(文)만을 익히 인명(人命)을 극히 귀중히 여겨온 그가 아닌가?

그로서는 살인(殺人)이란 감히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는 놀라움을 가라앉히며 다음 글을 읽어내려갔다.

 

<그 자를 죽일 수 있는 힘(力)은 이미 노주의 원영화령정(元榮華靈精)으로 그대에게 흡수되었소. 그 기운은 노부의 생전에 생성한 내가진공(內家眞功)으로 그대에게 향후 커다란 공효를 줄 수 있을 것이오...>

 

이검엽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원영화령정... 내가진공 그것이 무엇이길래... 아까 내가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것도 그럼 그때문이었단 말인가?)

그는 다시 글을 보았다.

 

<그 자를 죽일 방도는 노부의 옷자락에 기록해 놓았소. 부디 부탁하는 바이오. 그 일은 노부 개인의 원한(怨恨) 뿐만 아니라 중원무림(中原武林)의 천만동도(天萬同徒)를 구(救)하는 길이기도 하는 것이오.>

 

글은 거기에서 끝나 있었다.

이검엽은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사람을 죽여달라니... 그일이 곧 중원무림을 천만동도를 구하는 길이라니... 내게 너무 큰 짐을 남겼군.

이검엽.

그는 원래 무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므로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어 그는 유체의 옷자락을 들춰보았다.

문득,

옷자락 안쪽에 한 장의 양피지가 붙어 있는 것을 그는 발견했다.

그는 양피지를 떼어 살펴보았다.

양피지에는 기이한 무늬가 잔뜩 찍혀 있었다.

(음, 이것도 갑골문(甲骨文)이군. 그리고 점토판에 새겨진 것을 찍어낸 것이구나.)

이검엽은 갑골문을 해독해 보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천극굉연대천황(天剋轟然大天荒)>

 

“천극굉연대천황!”

이검엽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어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잠시 후, 그의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양피지의 앞뒤로 빽빽이 찍혀있는 글자.

그 글자는 모두 일천자(一千字)였다.

하나 그 내용은 너무도 난해하여 십만 권의 책을 독파한 이검엽으로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는 무공에 대해서는 문외한이 아닌가?

그러나 이검엽은 책벌레로서의 오기가 있었다.

그는 끈기와 집념을 가지고 갑골문에 깊이 빠져들어갔다.

이윽고.

그의 머리 속에는 어렴풋이나마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 이것은... 지극히 크고도 넓은 기(氣)를 일으켜 천하(天下)를 일시에 항복 시킬 수 있는 장법을 적은 가공할 내용이다...)

이검엽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환해졌다 했다.

(하나... 뭔가 완전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어떤 바탕이 결여되어 있다. 어쩌면 그 바탕이 없다면 이것도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될런지도 모른다.)

이검엽.

그는 양피지를 움켜 쥐었다.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은 것이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뿐,

그는 현실로 돌아와 문득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내가 어느새 이것에 푹 빠졌군. 하긴 제법 머리를 쓸만한 난제를 만난 셈이군.”

이검엽은 홍미어린 눈으로 양피지를 내려다보다가 그것을 품속에 집어 넣었다.

이어 바닥에서 묵검을 취해 들었다.

순간,

“끄응!”

그는 힘을 썼다.

겨우 한자반밖에 안되는 묵검이 엄청나게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능히 수백근(數百斤)은 나갈 듯 했다.

이검엽이 기연을 만나 신력(神力)을 얻었기 망정이지 보통사람이라면 들어 올리지도 못할 무게였다.

묵검.

그것은 끝이 뭉툭하고 광채도 없는 거무틱틱한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이것을 신검(神劍)이라 했는가? 묵령(墨靈)이라고?)

이검엽은 피식 실소했다.

하지만

(볼품없는 검... 하나 웬지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는 놈이다.)

이검엽은 손으로 검신을 가볍게 쓸었다.

웬지 점차 지기(知己)를 만난 듯 친근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그는 묵검 즉 묵령신검을 꽉 힘주어 쥐며 말했다.

“좋다. 이제 너를 한시도 손에서 놓지않고 아껴주마!”

순간,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우... 우... 웅...

돌연 검신이 미미한 전운을 일으키며 우는 것이 아닌가?

검명(劍鳴)!

검명이었다.

“헛!”

이검엽은 깜짝 놀라 묵검을 주시했다.

“예로부터 신검(神劍)은 주인을 알아본다 했거늘...”

그렇다.

묵령신검은 검명을 울림으로써 그를 알아 보았다.

“핫하하... 묵령 역시 너는 신검이었구나!”

이검엽은 만족스런 대소를 발했다.

그 순간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크게 호협(豪俠)한 기운이 일어났다.

아!

훗날 그 기운으로 인해 무림에 대영웅이 탄생할 줄이야...

 

<천황비부(天荒秘府)>

 

이검엽은 전면의 글씨를 응시했다.

(천황비부... 천황(天荒)...)

이검엽은 검미를 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천극굉연대천황의 글자와 같군.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일까? 저 안에 혹시...)

이검엽은 일단 호기심이 동하자 석문(石門)을 두 손으로 힘껏 밀어 보았다.

크르릉...

능히 천년(千年) 이상을 닫혀있을 것 같았던 석문이 열렸다.

우수수...

돌조각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하나 다음 순간,

이검엽은 눈앞이 환해짐을 느꼈다.

석문 안.

그것은 커다란 석전(石殿)이었다.

석전 안으로부터 눈부시고 휘황한 야명주(夜明珠)의 불꽃이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이검엽은 잠시 멈칫하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순간,

“엇!”

그는 흠칫하여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석전의 중앙.

그곳에 두 개의 석대(石대)가 놓여 있었고 석대 위에는 두 명의 노인(老人)이 마치 산사람처럼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좌측노인.

그는 흡사 신선(神仙)같은 노도인(老道人)이었다.

백색도포를 입었으며 백발은미는 세속을 초월한 선인(仙人)의 그것이었다.

우측노인.

그는 대조적으로 극히 패도적인 기개가 넘치고 있었다.

흑색장포(黑色長袍)를 전신에 걸쳤으며 대추빛 얼굴에 검은 눈썹과 수염은 몹시 위맹한 느낌이 들게 했다.

이검엽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들이 앉은 채 죽은 시신임을 알았다.

이어 그는 곧 바닥에 엎드려 배래를 올렸다.

“소생 이검엽 두분 선인(仙人)의 영거에 난입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어 그는 고개를 들었다.

하나 그 순간 그는 흠칫했다.

바로 바닥에 글씨가 쓰여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바닥에 엎드리지 않았다면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천허존자(天虛尊子)와 절대패존(絶代覇尊)이 남긴다------->

 

이검엽은 잠시 흠칫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음, 외모로 보아 백의도인이 천허존자, 흑포노인이 절대패존이겠구나.)

이검엽은 또 한 가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아까 석문 밖에 죽어있던 분은 이 두 노인의 후인(後人)이었겠군.)

일단 그렇게 생각되자 이검엽은 수중에 가지고 있던 혈포자락을 공손히 받쳐 들었다.

이어, 앞에 놓고 말했다.

“고인(故人)을 대신하여 삼가 소생이 기인들을 배견합니다.”

그는 내심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이 두 기인이 살아 생전 명망이 극히 존귀했기에 혈포인은 감히 유전에 들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제 내가 그분의 유언을 대신이나마 이루어 드렸으니 그분도 유계에서 만족히 눈을 감으실 것이다.)

이검엽은 다소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이어, 그는 바닥에 쓰여진 글씨를 다시 읽었다.

 

<우리 양인(兩人)은 본시 사형제(師兄弟) 지간으로 공동으로 오백 년(五百年) 전의 절대무성(絶代武聖)이신 천외신존(天外神尊)의 반푼 진전을 얻었다...>

 

거기까지 읽은 이검엽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천외신존...”

그는 즉시 다음을 읽었다.

 

<천외신존, 그분의 진전은 모두 삼백 육십 개(三百六十個)의 점토판에 새겨져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우리 사형제가 얻은 것은 전반부의 백 팔십 개(百八十個)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검엽은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이 두분 기인들 조차 천년 전의 분이거늘 천외신존이란 분은 그 두 분보다도 오백년(五百年) 전의 분이시라니... 그렇다면 그분은 천 오백 년 전의 선인이 아닌가?)

이검엽의 가슴은 놀라움으로 가득차고 말았다.

그는 다시 다음을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그 전반부의 진전만으로도 우리 사형제의 앞에 적(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구대천마(九大天魔)까지도 제압할 수가 있었다.>

 

이검엽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구대천마...? 인세(人世)에 그런 마인(魔人)들도 있었던가?”

 

<... 中略... 노부들의 평생 소원은 실전된 천외신존의 하반부 절학을 찾는 일이었다. 한데 우리는 우연히 이곳 천황비부를 발견하여 들어오게 되었다.>

 

이검엽은 흠칫했다.

(그렇다면 이 천황비부는 이들 두 분이 세운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는 어리둥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검엽은 의문을 느끼며 다시 바닥에 쓰여진 글씨를 읽었다.

 

<오...! 이곳 석전(石殿)에 들어오자... 오...! 사방 석벽에 새겨진 문양(文樣)! 그 문양들을 본뒤 우리 두 사람은 비로소 그 비밀을 풀게 되었도다! 아...!>

 

이검엽은 가슴이 진동함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반부 진전이 바로 석벽에 새겨진 것이란 말인가?)

그는 마음이 급해졌다.

 

<아... 하지만 어찌 알았으랴? 무려 일갑자(一甲子)를 참수했어도 문양의 오의를 풀지 못했음에야... 우리 두 사람의 자지리 미천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이검엽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얼마나 어렵기에 육십 년 간이나 뜻을 풀지 못했단 말인가?)

그는 시선을 돌려보았다.

과연, 있었다.

사방의 석벽,

그곳에는 가득히 기이한 형태의 문양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선(線)과 점(點)으로,

그리고, 기이한 모양의 원형(圓形)들이 수없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것은 실로 신비무쌍한 벽화(壁畵)였다.

사방의 석벽!

그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온통 혼(魂)을 빼앗기기에 충분한 유혹을 담고 있었다.

강유(剛柔)의 조화,

강하고 부드러움이 함께 있었다.

그뿐인가?

사면 벽은 어떻게 보면 사계(四季)를 나타내는 그림같기도 했다.

아니었다.

그것은 사상(四像)을 나타내는 도형(圖形)이기도 했다.

문득,

이검엽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사면의 벽화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도저히 알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이 강렬하게 마음에 부딪혀 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온통 심혼(心魂)을 빼앗는 신비한 기운이 있었다.

“...!”

이검엽은 무아지경에 빠진 듯 벽화에 빨려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그는 고개를 천장으로 올렸다.

천장에는 하나의 거대한 원(圓)이 그려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은 무수한 점(點)이 모인 것이었다.

또한, 중앙으로는 선(線)이 기이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저것은...!)

이검엽의 안색이 수시로 변했다.

태양(太陽).

태양인가? 아니었다. 달(月)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물(水)? 불(火)?

이검엽은 또다시 넋을 잃었다.

그것은 실로 오묘불가사의한 느낌이었다.

우주일원(宇宙一元),

태극혼천(太極混天),

음양일색(음約一色),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심오한 정화가 천장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검엽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과연... 무엇을 암시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구나...!)

그는 천허존자와 절대패존을 바라보았다.

(하긴... 저 두 분께서 일갑자를 고심하고도 알지 못했다고 하거늘...)

그는 거의 체념상태에 이르러 다시 바닥의 글을 읽어보았다.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문양의 심오한 뜻은 알지 못했으나 깨닫음은 있었다. 이에, 우리는 그 심득을 남긴다. 그 심득을 이 석전 바닥에 남기나 후인(後人)은 유용하기 바란다.

천허존자, 절대패존 서(書).>

 

이검엽은 모두 읽은 후 의아함을 느끼며 바닥을 둘러보았다.

다음 순간,

“헛...!”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석전의 바닥에는 빽빽이 갑골문이 가득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미처 주의를 기울이기 전에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글이었다.

수없이 많은 갑골문자들,...

이검엽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나, 곧 그는 그 문자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그의 얼굴은 경악에서 경악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자연(自然)과 우주(宇宙), 그리고 인간(人間)에 대한 심오한 진이다...)

이검엽,

그는 어느덧 무릎걸음으로 걸으며 바닥의 갑골문을 읽기에 몰두했다.

천하만사의 그 어떠함도 이 순간의 그를 멈추게할 수는 없었다.

무릎 옷이 헤어지고 맨살이 드러나고 다시 살갗이 까져 피가 흘렀으나 그는 여전히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실로 완전히 몰아의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휴-------!”

이검엽은 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두눈은 야릇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 이 또한 나의 재주로는 일시에 그 진리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은 우리 속에 담아 둔다. 그리고 앞으로 차근차근 생각해 본다.)

그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이어, 머리 속으로 갑골문자을 기억했다.

이윽고 모두 기억하자,

그는 몸을 추스르며 일어섯다.

문득,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천황비부에 머물렀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자운... 자운이 걱정하겠구나.)

그는 자운의 얼굴을 떠올랐다.

항상 관심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자운,

하지만

“...!”

문득 이검엽의 표정이 흔들렸다.

뜻밖에도 자운의 얼굴 대신 다른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신비여인(神秘女人),

얼마 전 만낫던 신비여인의 매혹적인 얼굴이 자운의 영상을 누르고 대신 떠오른 것이었다.

(아...!)

이검엽은 당혹과 함께 자책을 느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딱 한번 보았을 뿐인데...)

문득 그는 자신을 나무랐다.

(이검엽아! 이검엽... 무슨 짓이냐? 너는 자운을... 울릴 셈이냐? 네가 장부(丈夫)라면... 한낱 한 번 밖에 보지 못한 여인 때문에 자운을 불행하게 하려느냐?)

이검엽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하나 어찌하랴...!

마치 운명(運命)인 듯 자꾸만 신비여인의 영상이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으음...”

이검엽은 괴로운 듯 신음을 발했다.

그는 그 생각을 지우려는 듯이 곧 몸을 돌렸다.

이어, 그는 절을 올렸다.

“소생 이검엽,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천하존자와 절대패존에게 대례를 올린 후 몸을 돌렸다.

아쉬운 듯 천황비부의 석전을 둘러보며...

장차, 그의 운명을 바꾸게 한 장소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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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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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4장 

 

           검에 죽은 검신 (2)

 

 

 

휙!

한줄기 그림자가 비무대위로 날아올라갔다.

[아버지!]

부르짖으며 황급히 전득무를 껴안는 그는 전무옥이었다.

그때,

챙그랑!

전연옥의 발사이에 꽂꽂하게 서있던 전득무의 청강검이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전연옥의 안색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청강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알았던 것이다.

우연히 내던졌던 것같은 청강검은 검신의 노련한 경험과 절묘한 임기응변이 결합된 마지막 승부수였던 것이다.

한박자 느리게 어검술을 수법으로 전연옥의 복부를 관통했어야 할 청강검이었다.

전연옥은 청강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녀가 자신의 목을 노리는 힘을 느꼈을 때 이미 그녀의 복부도 위험아래 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녀가 전득무에게 검기를 내쏘기 전에 먼저 솟아오르며 그녀의 배를 찔렀어야 할 청강검이 그 자리에 꼿꼿히 서있다가 쓰러진 것이었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전무옥의 품에 안긴 전득무가 힘없이 말했다.

[그런 표정 지을 것없다. 네가 이겼으니 네 말이 옳다. 무슨 이유에서든 간에 너와 네 어미를 버린 것은 내 잘못이었다.]

전연옥은 멍하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서 물었다.

[그럼 왜‥‥‥?]

[조금 시간이 있을 듯하니 모두 말해주마. 너도 잘 들어라.]

전득무의 말에 전무옥도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원래 쇠락해가는 신검보의 세째아들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신검보는 강호에서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군소방파 중의 하나에 불과했지. 나는 세째였지만 너희들의 할아버지는 내게 가장 기대를 걸고 있었다. 두 형의 자질은 평범한 것이어서 신검보를 중흥시킬 수 있는 재목이 아니었던 것이지.]

전무옥이 그의 명문혈에 진기를 주입시키면서 말했다.

[아버지만큼 뛰어난 인재가 또 어디 있었겠습니까?]

전득무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 중 인재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네 누이를 보아라. 어린 나이에도 이 아비를 이기지 않았느냐?]

전연옥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전득무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무대의 중간에 꽂힌 낙일검의 검집이나 마찬가지로 서있는 것이다.

전득무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신검보를 중흥시킬 대임을 맡기는 했지만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단다. 신검보의 검술은 당시 내가 생각해도 삼류에 불과했지. 강호에 나가 새로운 검술을 구하던 중에 만났던 사람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도신 범강 형이고‥‥‥]

도신과 황군성, 진우란, 임단심 등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도신이 말했다.

[전형‥‥‥! 따지고 보면 우리의 죄업이 적지 않소이다. 나 또한 필경은 전형과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오.]

전득무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내 이야기를 끊지 말아주시오.]

그의 살아온 지난 날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쓰러져가는 가문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범강을 만난 전득무는 그와 사귀면서 그의 재능에 크게 감탄하고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그때부터 서로가 필적할 만한 상대였던 것이다.

함께 무림을 돌아다니면서 무공을 구했으나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그때 그들에게 손을 뻗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재능을 높이 산 것이다.

그자는 두 사람에게 제의하기를 자신을 위해서 일해준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무공비급을 주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몇 가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들은 구파일방의 절예를 비롯한 강호 제파의 검법과 도법이 기록되어있는 것이었다.

전득무는 상대가 많은 것을 제시하는 만큼 요구하는 것도 많으리라고 생각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신도보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것에 잠시 눈이 먼 범강은 그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범강이 너무 쉽게 수락해버리자 전득무는 오히려 반발심으로 거절해버렸고,

범강은 그자를 따라가고 전득무는 홀로 다시 강호를 떠돌았다.

그런데 약 일년 쯤 지났을 때 우연히 북경에서 전득무는 다시 범강을 만났다.

범강의 무공은 이미 몰라볼 정도로 강해져 있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은밀한 곳에서 범강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털어놓았고,

자신이 금제를 당해 그자의 손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을 말했다.

[그때 범형은 그자가 반역을 도모하는 자라고 했지. 범형은 반대파를 척결하는 일을 맞고 있었던 것이고‥‥‥나는 범형을 통해서 그자에 대한 것을 세세한 것까지 알았다. 하지만 나는 범형만이 무공이 강해진 것에 또한 반발심이 생겨 이번에는 왕부에 몸을 의탁하고 말았지. 그자의 가장 강한 적수라는 영왕부에‥‥‥]

황군성은 깜짝 놀랐다.

(검신이 아버지가 말했던 그 전삼이란 고수였구나‥‥‥그자란 분명히 마왕을 말하는 것인데‥‥‥그럼 마왕은 황실에 있었단 말인가?)

전득무의 말이 이어졌다.

[한데 나는 영왕부에서 언감생심 감히 영왕전하의 금지옥엽이신 혜명공주(慧明公主)님을 뵙고 나서 그만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가문의 부흥이고 뭐고 모두 잊고서 오직 공주님 곁에서 죽을 때까지 섬길 수 있기만을 바랐지. 한데‥‥‥내가 모시던 공주님은 그자가 보낸 자들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때 호위무사들 가운데서 오직 나혼자만이 살아남았는데 공주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나는 그자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떠났지.]

황군성은 생각했다.

(검신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줄로 알았구나. 그것이 장계취계의 나도 속이고 적을 속인다는 계략이었음을 몰랐구나.)

전득무는 가짜 주혜린이 죽는 것을 보고 상처입은 몸으로 떠난 후에 기연을 얻어 무광검을 얻게 되었다.

무광검은 한장의 양피지에 적혀진 검공(劍功)이었으니,

그는 그것을 암기한 후에 태워버렸다.

자신이 미약한 내공으로는 무광검을 완성하기에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범강을 찾아갔다.

정확하게는 범강이 섬기고 있는 마왕이란 자를 찾아간 것이다.

마왕은 그의 머리속에 금제를 심고는 그가 원하는 영약과 비급, 모든 것을 지원했다.

전득무는 무공이 깊어지면 마왕을 죽여 혜명공주의 복수를 할 생각이었는데‥‥‥

전득무가 전연옥에게 말했다.

[마왕이 누구였는지 아느냐? 바로 네 어미의 오라버니인 구문제독 하후승(夏厚勝)이다.]

범강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구문제독 하후승‥‥‥

영왕과 쌍벽을 이루는 세도가로 대명의 모든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전연옥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그녀의 어머니이자 마왕 하후승의 동생이었던 하설지(夏雪芝)는 전득무를 보자마자 그에게 깊이 빠져들었고,

전득무는 하후승에게 의심을 받지 않기위해서도 그녀를 멀리할 수 없었다.

마왕의 휘하에서 범강과 전득무는 두개의 산맥과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에 하후승도 자신의 여동생 하설지가 전득무를 선택했다는 데 대해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하설지의 전득무에 대한 사랑은 간절한 것이었으나 전득무의 마음속에는 오직 혜명공주만이 있었고,

혜명공주를 위해 하후승을 죽여 복수해야 한다는 마음만 있었기에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크기가 같지 않은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바퀴는 기어코 수레를 옆길로 가게 하기 마련‥‥‥

한편,

마왕은 전득무와 범강으로 하여금 강호에 신검보와 신도보를 다시 일으킬 것을 명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것은 모두 그의 무림장악을 위한 교두보였던 것이다.

하여튼,

마왕의 직접적인 지배에서 벗어난 두 사람은 무림에서 진반가반(眞半假半)의 대결을 해마다 벌임으로 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당당히 무림의 칠대세력에 들었고,

전득무는 부모의 강박으로 하설지가 모르게 옛날의 정혼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다.

마침내 알게된 하설지는 전득무의 아내를 죽이고 임신한 몸으로 신검보를 뛰쳐나갔다.

전득무가 붙잡으려면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랑이라고는 없었던 그는 그녀를 보내고 말았다.

훗날 하설지와 똑같이 생긴 전연옥이 그를 찾아왔을 때에도 그는 좋아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곁에 두기는 했으나 하설지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내심 꺼려지기조차 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전득무에게 한을 품고 있었으니‥‥‥

차라리 전득무는 그녀가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랐고,

실제로 황군성이 나타났을 때 그녀가 죽을 것이라 예상하고 내보내기도 했던 것이다.

전득무의 말을 다들은 전무옥이 전연옥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네 어머니는 내 어머니를 죽였는데, 그것도 모자라 너는 내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게 하느냐?]

전연옥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 그럼‥‥‥내가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것은‥‥‥누구‥‥‥누구 때문이었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왜‥‥‥왜‥‥‥? 그래도 아버진 어머니에게 잘못한 것은 있어. 죽어도 할말이 없을 거야‥‥‥하지만‥‥‥나는‥‥‥내가 뭘 잘못했어?]

그녀의 반문은 흐느낌과 절규로 높았다.

도신이 전무옥과 전연옥을 달랬다.

[사람의 일은 다 이런 것일세. 누구나 한을 가지고 있네. 다만 그것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 다를 뿐‥‥‥자네들은 그래도 같은 아버지를 가진 남매일세. 더 이상 잘못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네.]

[으아아아-----!]

갑자기 전연옥이 미친 듯이 소리치며 허공을 밟고 까마득히 날아가버렸다.

전득무가 탄식하며 말했다.

[사랑도 분수에 맞아야만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네. 범형, 나는 곧 죽을 것이네. 내 아들을 잘 돌봐주게나.]

범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단심이 말했다.

[검신께선 아직 살아나실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살아나신다면 따님이 부친을 살해했다는 죄를 범한 게 안되지 않겠어요?]

검신이 말했다.

[임소저에게 그런 방법이 있음을 믿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그 아이는 부친을 살해하지는 않았네.]

[…………?]

[…………?]

[범형은 내 뜻을 알것이오.]

범강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야.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기억하도록 해라.]

검신은 전무옥을 앞에 앉히며 전음으로 무형검의 구결을 빠르게 두번 읊었다.

그런데 그가 두번 째 읊을 때는 이런 말이 들어있었다.

 

-----제갈공지를 조심해라. 그가 네게 독을 썼던 자다.

 

전무옥이 어떤 표정의 변화를 드러내기도 전에 검신이 물었다.

[다 기억했느냐?]

[예‥‥‥아버지‥‥‥]

갑자기 검신은 두 손으로 전무옥의 얼굴을 와락 붙잡고 당겼다.

그리고,

마치 사랑하는 여인에게 하듯이 그의 입에 자신의 입을 갖다댔다.

짧은 순간,

검신의 무형검의 검기와 내공이 전무옥의 몸으로 옮겨갔다.

그것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점차 그의 몸에서 녹아 그의 것이 될 것이다.

사람들의 놀람속에서 입을 뗀 그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들릴락말락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아이를 용서해라‥‥‥내 마지막 부탁이다‥‥‥]

그의 눈동자가 풀리며 범강을 응시했다.

범강은 탄식하면서 전득무의 사혈을 짚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검의 달인 검신은 이렇게 죽었다.

자식에게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을 듣지 않게 하기위해 친구에게 마지막을 부탁했던 그‥‥‥

그의 죽음에 무림인들은 일세를 풍미한 절대고수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청삼객이 떨어져 있는 낙일검과 검집을 주워들며 중얼거렸다.

[낙일검‥‥‥태양을 떨어뜨린다는 낙일검‥‥‥조금도 그말이 틀리지 않았구나. 주인의 아버지를 베었으니‥‥‥]

흔히 아버지는 해, 어머니는 달에 비유된다.

낙일검은 기묘하게도 해를 떨어뜨린다는 그 이름처럼 주인의 아버지를 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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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四 章

 

            劍에 죽은 劍神 (1)

 

 

 

황군성이 먼저 전음으로 말했다.

[궁주! 이렇게 나와주신데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본좌는 황소협이 어떤 고견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싶을 뿐이오.]

청삼객은 이미 황군성이 황삼객임을 서찰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황군성이 물었다.

[나는 며칠 동안 지켜보면서 궁주가 진정 영웅다운 풍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소. 내가 보기에 아마 궁주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오.]

청삼객이 냉막한 얼굴에 미미한 웃음을 떠올리며 말했다.

[과찬의 말이오.]

[하지만, 나는 궁주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소.]

[…………]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와 아주 가까웠던 사람같기도 하고‥‥‥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불과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니 그럴리가 없고‥‥‥]

황군성은 그에게서 뭔가 조금이라도 발견하기 위해서 애쓰며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궁주가 남궁세가의 노가주인 남궁파라고 생각했소. 한데, 남궁파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남궁파가 두 사람일수는 없고‥‥‥]

[남궁파?]

청삼객은 전혀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그렇소. 나는 믿을 만한 분으로부터 남궁파가 바로 현현궁의 궁주라고 들었소. 그것은 결코 잘못될 수 없는 정보였소. 한데 궁주는 남궁파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듯하니‥‥‥]

청삼객은 심각한 생각에 빠져든 듯했다.

황군성은 그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은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청삼객은 한참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같소. 이야기 잘 들었소이다. 그리고 늦었지만 쾌유를 축하하는 바이오.]

그는 황군성에게 포권을 해보이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황군성이 전음이 아닌 입으로 소리쳤다.

[잠깐!]

청삼객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다른 것을 말해주기 어렵다면, 내게 당신이 어떻게 내 어머니 함자를 알고 있는지만 말해주시오.]

황군성은 간곡한 음성으로 청했다.

청삼객의 몸이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그순간 황군성의 귀로는 그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잘 생각해보시오. 주혜린이란 이름을 알고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소. 또한 그분이 황소협의 어머니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본좌는 그런 사실을 충분히 알 자격이 있는 사람이오.]

황군성은 그의 전음을 되새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 자격이 있다‥‥‥그럼 정말 나와 가까운 사이가 되지 않는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임단심과 진우란의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가 뭐라고 했어요?]

진우란이 물었다.

[청삼객은 그런 자격이 있다고 하더군!]

황군성의 믿도끝도 없는 말에 임단심과 진우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비무대 위에 팔인이 둘러섰다.

청삼객, 황삼객, 검신, 도신, 북혈마, 위지장천, 전연옥, 남궁파, 이렇게 팔인이었다.

비무대 아래에서는 수 만 명의 무림인들이 숨을 죽인 채 그들의 벌일 대결을 고대하고 있다.

전연옥이 먼저 한이 풀풀 날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제일 먼저 팔인의 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싸울 사람도 제일 먼저 정하겠소.]

[동의하오.]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누가 먼저 지목을 하든, 누가먼저 싸우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상대를 가려가며 싸워야 할 정도의 무공이라면 무림황제자리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무공이 강한 자들은 대개 자존심도 그만큼 강하기 마련인 법,

비열한 자라면 결코 상승의 무공을 익히기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힘들게 상승의 무공을 익히기 보다는 훨씬 쉬운 방법을 택할 것이므로‥‥‥

황군성은 왔구나 싶었다.

자신이 전에 전연옥을 패배시킨 적이 있으니까 아마 자기에게 도전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강해졌다. 어떻게 해서 단 일년 사이에 저렇게 변할 수 있을을까?)

황군성은 마음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그러나,

정작 치켜 올라간 전연옥의 손이 가리킨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검신 전득무였다.

검신 전득무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착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전득무! 당신과 제일 먼저 싸우겠소.]

[전형! 조심하시오.]

도신 범강이 전득무에게 말을 건내고 다른 고수들과 함께 비무대를 내려갔다.

전득무가 외팔로 검을 잡으면서 말했다.

[먼저 삼초를 양보하마. 그 이후에 너를 죽이겠다.]

전연옥이 차갑게 코웃음쳤다.

[내게 삼초를 양보할 능력이 당신에겐 없어. 당신을 만인이 보는 앞에서 비참하게 굴복시킨 뒤에 죽이겠어. 어머니와 나의 사무친 한(恨)을 풀기위해서‥‥‥]

그녀의 목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비로소 전연옥이 전득무에게 어떤 원한이 있었음을 알아챘다.

이신보 중에서 검신보의 고수들은 대부분이 그녀를 알고 있었다.

무적십이검 중의 우두머리였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와 전득무와의 얽힌 사연을 알고 있는 자는 오직 제갈공지뿐이었다.

심지어 전득무의 아들 전무옥조차 모르고 있었다.

전득무가 검을 중단으로 겨누며 말했다.

[내게 어떤 잘못이 있었다고 말하지 마라. 너와 네 어미에게 일어났던 일은 모두 네 어미가 자초한 일이었으니까.]

전연옥의 눈에서 파란 살광이 뻗쳐나왔다.

[그게 과연 아내와 딸을 버린 자의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심지어 돌아온 딸을 죽을 곳에 보내기까지 한 변명이?]

[…………]

전득무는 태산처럼 버티고 선채 말이없다.

전연옥은 그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며 수근거렸다.

전연옥이 말했다.

[이것은 당신을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는 절입니다.]

[저‥‥‥저럴 수가‥‥‥전옥이 전득무의 자식이었다니‥‥‥]

비무대 주위에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전연옥은 다시 절했다.

[이것은 아버지와의 모든 인연을 끊는 절입니다.]

세번째로 절하며 말했다.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천륜을 거역한 딸의 절입니다.]

비무대도‥‥‥

그 주위는 바늘하나 떨어져도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딸‥‥‥

천륜을 어기는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것이다.

전득무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음성으로 내뱉었다.

[검을 뽑아라. 너도 무림인, 나도 무림인, 검으로 말하자.]

전연옥은 백색검집을 들어올려 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각오하라. 전득무!]

그녀의 음성에서 이미 격앙된 감정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고,

오직 강한 적수를 눈앞에 둔 고수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적막이‥‥‥

하늘도 땅도 바람도 수 만 명의 사람들도 숨을 죽인 적막이 학선평을 감돌았다.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도 움직일 수 없을 것같이 느껴지는 순간,

번쩍!

흰그림자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비무대 위의 두 사람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엉키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오직 십여 명의 초절정고수들만 분명하게 볼 수 있을 뿐.

황군성은 벌떡 일어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궁파와 청삼객, 북혈마, 위지장천 등 팔인에 속하는 고수들과,

비무대 위의 두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임단심, 진우란, 한천사방객 중의 삼인 및 몇몇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던 기인들도 벌떡 일어섰다.

그들의 눈에는 일종의 경이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득무는 아예 초식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처음에,

전연옥은 몸을 움직이는가 싶은 순간에 이미 백색 검집으로 그의 목을 찌르고 있었다.

전득무는 여유있게 검끝을 빙글 돌리며 백색 검집을 밀어내고 도리어 전연옥의 목을 노리려 하였다.

한데,

그가 검을 움직이는 순간에 이미 전연옥의 검집은 그의 목이 아닌 손목을 노리고 있었다.

이것도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차라리 전득무가 전연옥의 검집을 향해 손목을 내밀고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분명히 처음에는 전득무의 목을 노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처음부터 그의 손목을 노린것 처럼 정확했다.

경악하며 전득무가 손목을 거둘 시간도 없이 보법을 밟아 가까스로 피했으나 이미 검기에 손목이 살짝스쳤다.

그것은 마치 일부러 그렇게 한 것같았다.

그러나 전득무는 아무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전연옥의 좌측으로 보법을 밟아간 그는 이미 자신의 옆구리로 들이 닥치고 있는 백색검집을 느껴야만했다.

그가 있는 몸의 자세로는 도저히 검으로 막을 수도 없는 위치였다.

즉,

틈이었던 것이다.

전득무의 몸이 반공에서 회전하며 뒤로 물러섰다.

백색검집은 이번에도 살짝 스쳤을 뿐이었다.

전득무의 몸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부욱!

그의 검이 기이한 음향과 함께 반원을 그리자 푸른 검막(劍幕)이 방패처럼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전연옥의 백색검집은 아래에서 솟구치며 그의 하반신을 베고 있었다.

황군성 등이 일어선 것도 바로 이때였던 것이다.

전득무의 몸이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며 가까스로 검집을 피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검집이 그의 다리를 살짝 긋고 지나감을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수많은 초식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전연옥의 공격은 모두 실날보다도 작은 그의 틈을 노린 것들이고,

이에 대한 대책은 오직 임기응변 외에는 있을 수도 없었다.

휘익!

전연옥이 멀찍이 물러나며 멈춰섰다.

전득무의 몸도 비무대위에 다시 우뚝섰다.

승부는 이미 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같았다.

그러나 전득무의 표정은 언제그렇게 당했냐는 듯이 무표정했다.

진정한 검도 고수의 풍모라고 할 수 있었다.

전연옥이 교갈을 질렀다.

[과연 누가 삼초를 양보했소? 자! 이제 목숨을 바치시오.]

그녀의 손목이 한번 비틀리는 순간,

팽!

백색검집이 날아가 비무대의 중간에 꽂혔다.

번쩍!

검집이 벗겨진 곳에는 백색검기를 뿜어내는 한 자루의 검이 있었다.

두자가 조금더 되는 길이‥‥‥

그 검기는 너무도 강렬해서 내리쬐는 햇빛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진정,

예기를 안으로 숨길 수조차 없는 절세의 보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의 주변으로 은은한 백색 무지개가 생기는 듯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놀람에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낙일검‥‥‥낙일검이 나타났다‥‥‥고금십대천병의 첫번째인 낙일검이‥‥‥]

그렇다.

그녀의 검은 낙일검이었던 것이다.

많은 무림인들이 이제 앉아있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려고 일제히 발꿈치를 돋우고 일어섰다.

황군성은 중얼거렸다.

[과연 낙일검이었구나. 하기야 낙일검이 아니고서야 천하의 검신을 상대로 그렇게 기이한 검법을 펼칠 수가 없었겠지‥‥‥한데 검신은 왜 무광검(無光劍)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무광검 또한 고금십대천병 중 서열 두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비록,

고급십대천병의 서열이 강함의 순서는 아니라고 할 지라도‥‥‥

 

비무대 위의 전득무는 이제 검을 상단으로 겨누고 있었다.

그의 자세가 아주 당당하여 과연 검신으로 추호의 손색도 없었으나,

백색무지개 같은 낙일검 앞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나약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일순간,

백색무지개가 하늘로 피어오르는가 싶었다.

창!

전연옥의 낙일검과 검신의 청강검이 부딪혔다.

모두가 청강검은 무처럼 베어지고 검신은 죽거나 중상을 입을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낙일검은 검신의 청강검에 튕겨져 나왔다.

전연옥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낙일검이 청강검하나를 자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럼‥‥‥!)

전연옥은 입술을 깨물면서 생각을 바꿔먹었다.

일초에 검과 함께 베어버리려던 생각을 바꿔 검신만을 베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녀는 결투중에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특이한 심법을 배웠다.

상대가 펼치는 무공이 어떤 것이라도 그 순간적인 틈과 공격할 부위를 단숨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전연옥은 화산의 절곡에서 거대한 석상들로부터 익힌 검법을 펼쳤다.

한데,

공격을 펼치던 그녀는 깜짝 놀라며 낙일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방비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의 가슴을 노린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내 검신의 보이지 않는 공격은 그녀의 어깨를 노리고 있었다.

전연옥은 공격할 틈을 놓쳐버렸다.

갑작스런 기이한 공격에 방비하기에 바빴다.

만일 그녀에게 신기한 심법이 없었더라면 이미 시체가 되어 누웠을 것이다.

그녀는 검신이 아무리 기이한 공격을 하더라도 다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전연옥은 검신에게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았지만 그가 청강검으로 공격을 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다른 수법을 펼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청강검과 보이지 않는 공격을 동시에 막아야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큰 부담이었다.

황군성은 머리를 끄덕였다.

(검신이 무광검을 대성했구나. 이미 보라색이 완전히 사라졌다.)

전연옥은 자신이 수세에 몰리자 기이한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검의 극은 극대로 검신을 공격하면서 검의 손잡이 부분은 따로 움직이며 검신의 공격을 방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미미하던 공격이 점차 크지면서 그녀의 검법은 완전히 공수를 겸비하여 검신의 어떤 공격에도 불구하고 한초식 한초식 순서대로 펼쳐내고 있었다.

갑자기 전연옥이 크게 소리쳤다.

[받아라!]

순간,

지금까지 빠른 초식으로 대결하던 상황에서 그녀의 낙일검이 하늘로 수십장이나 치솟는 검기를 내뿜었다.

번쩍!

쉬아아아아!

바늘끝같은 검기.

이미 검강의 경지를 넘어선 또하나의 경지였다.

검기는 검신 전득무를 일도양단할 듯 했다.

검신 전득무는 청강검을 전연옥의 발아래로 집어던지며 하나뿐이 손을 무지개같은 검기를 향해 뻗쳤다.

파파파팟!

해를 떨어뜨린다는 낙일검의 검기는 기이하게도 전득무의 외팔에 가로막히며 흩어져버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의 손에서 뻗어나온 무형검에 의해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득!

전연옥은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는 힘을 느끼고 낙일검을 다시한번 떨쳤다.

번쩍!

찬란한 검기가 전득무를 뒤덮고,

[큭!]

전득무가 나직한 비명을 지르며 그자리에서 무너져내렸다.

방비하지 못한 검기가 이미 그의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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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三 章

 

         八人의 絶對高手

 

 

비무가 벌어진지 오일(五日)째,

중앙의 비무대를 둘러싸고 무수한 인물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비무대에 올라있는 두 사람 중의 한사람은 이번에 새롭게 나타난 신성으로 황삼객이란 어린 소년이다.

그는 연거푸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여왔다.

오척단구의 키이지만 어깨는 딱 벌어졌고, 그의 모습은 준수하며 귀엽기까지 한다.

또한 자기의 키와 엇비슷한 장검을 무기로 사용하면서 그는 누구든 단 일초에 제압해왔다.

우리는 안다.

그가 바로 모습을 바꾼 황군성임을‥‥‥

한데,

지금 그와 마주선 자는 구파일방의 전 출전자 중에서 마지막 남은 자라고 할 수 있는 무당파(武當派)의 장로 철수검객(鐵袖劍客)이란 고수이다.

나이 칠십에 이른 그는 무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무당파 검술의 뛰어남을 여실히 보여주며 계속 이겨왔다.

황군성과 철수검객의 대결에 중인들의 시선이 모두 모여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비무대 아래에서는 승부를 점치는 소리가 들렸다.

 

[황삼객이 이길거야. 지금까지 계속 일초로 승부를 해왔어.]

[글쎄‥‥‥무당파 같은 검술 명문에도 그런 것이 통할 수 있을까? 일단 내공에서 밀릴 거야.]

[사제들, 그렇지 않다. 황삼객은 전혀 무공을 드러내고 있지 않아. 진정 무서운자다. 어쩌면 이번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킬 자인지도 모른다.]

 

평은 나이가 어린 황삼객 쪽이 우세하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철수검객은 무당파 비전의 양의검법을 시전할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소협! 먼저 공격하시오.]

황군성은 빙긋 웃으며,

[그럼‥‥‥]

전혀 사양하지 않고 자신의 키보다 조금작은 장검을 철수검객에게 겨누고 점점 다가갔다.

사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던 두 사람의 간격이 금방 이장으로‥‥‥

다시 일장으로 줄어들었다.

지켜보던 자들은 뜻밖의 사태에 놀라 모두 말을 잊었고,

철수검객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장검을 보면서 피해야 할지 막아야 할지를 잊어버렸다.

검은 이미 자신에게서 두자 떨어진 곳까지 가까웠다.

철수검개의 이미에 굵은 땀방울이 떨어졌다.

(이럴수가‥‥‥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나는 일초도 펼칠 수 없다‥‥‥)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었다.

철수검객은 힘없이 검을 떨어뜨렸다.

챙그랑!

황군성의 칼이 철수검객의 목앞에서 멈췄다.

철수검객이 참담한 얼굴로 말했다.

[노부가 졌소. 소협의 검술은 사람으로선 당할 수 없을 것이오. 다시는 검을 잡지 않을 것이오.]

그는 검을 줍지도 않고 그대로 비무대 아래로 쓸쓸하게 내려갔다.

구파일방의 고수들의 얼굴의 그늘로 뒤덮혀 버렸다.

황군성은 철수검객의 뒤에서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면서 겸손하게 말했다.

[소생이 한수 앞서기는 했지만 선배님의 당당한 검력에는 영원히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기고도 교만하지 않은 그의 태도에 뭇고수들은 물론 구파일방의 고수들 마저 찬탄을 금치 못했다.

임단심은 진우란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점점 의젓해 지는 것같지?]

[그래요. 정말 당당해졌어요. 아주 세련되고 멋있어요.]

황군성은 비무대를 내려와 그녀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소곤거리는 거요?]

임단심이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욕하고 있었어요. 너무 잘한다고.]

그때,

비무대 위에서 청삼객이 나타나 내공을 실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것으로 출전자들은 팔 명 만이 남았소. 이 중에서 무림황제가 나올 것은 거의 확실한 바요. 여기서 본좌는 본좌를 제외한 일곱 분의 출전자에게 중대한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하오.]

청삼객을 제외한 일곱 명의 출전자‥‥‥

이천명에 달하는 고수들 중에서 한번 도 패하지 않고 올라온 자들이다.

관전하는 무림인들이 보기에 그들의 무공은 모두 백중지세 가공무쌍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로,

도무지 누가 무림황제를 차지할지 예측불허하게 하고 있었다.

 

그 팔인에 제일 먼저 든 사람은 뜻밖에도 전옥(全玉)이라고 이름한 약관의 미청년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모습은 진정 여인처럼 뭇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했는데,

정작 그의 손에든 백색의 장검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단 일초에 상대방을 제압하면서 팔인의 고수에 끼게 되었다.

한데,

그를 바라보는 청삼객의 눈과 황군성, 전득무의 눈은 모두 착찹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끼리는 어느 누구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전옥이라는 이름을 써며 나타난 미청년은 바로 전연옥이란 이름의 소녀로 고금십대천병중 서열일위인 낙일검(落日劍)을 익힌 그녀였다.

그녀는 종종 예리한 시선으로 검신 전득무를 노려보곤 했다.

 

두번째로 팔인의 고수에 들은 사람은 놀랍게도 신비에 가려져 있던 취옥성의 성주였다.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붉은 입술 흰 피부의 청년‥‥‥

그는 바로 북한객 냉천삭의 철천지원수인 북혈마(北血魔)였으니‥‥‥

냉천삭은 물론 황군성도 그의 특이한 외모로 인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무림인 중에서 북혈마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단지 취옥성주라는 이름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역시 다른 출전자와 현격한 무공의 차이를 보이면서 오직 일수에 상대를 처참하게 죽이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은 살인을 한 자이기도 했다.

 

세번째로 팔인의 위치에 오른 인물은 황군성의 의부(義父)이자 이신보의 대표로 출전한 도신 범강이었다.

그는 너무도 알려진 자신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상대방이 기권하는 바람에 두번 밖에 싸우지 않고 올라왔다.

그 두번의 싸움도 시작하자마자 상대가 두려움에 질려 내려가 버림으로써 싱겁게 끝났는데,

그가 목계(木鷄)와 같은 마음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네번째로 팔인의 자리에 오른 자는 엉뚱하게도 남궁세가의 노가주인 남궁파(南宮坡)대협이었는데,

그가 비무에 출전한 것을 알았을 때 황군성과 임단심은 얼떨떨할 정도로 놀랐다.

그들은 청삼객이 바로 남궁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남궁파가 나타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청삼객이 남궁파가 아니라면 어디서 그같은 고수가 또 나왔단 말인가?

황군성과 임단심의 가슴에 풀리지 않는 의혹이 또 늘어난 것이다.

남궁파는 남궁세가의 가전무공을 완벽히 통달한 듯,

앞서 팔인에 끼인 고수들에 전혀 못지않은 무공솜씨를 보여주며 팔인에 들었다.

 

다섯번째로 위지장천이 팔인의 고수에 끼게 되었다.

위지장천은 특이하게도 한번도 검이나 손을 쓰지않았다.

그는 오직 한발로 비무대를 굴리는 시늉을 할 뿐이었는데, 그러면 상대방은 마치 짚동 쓰러지듯 쿵, 쓰러지고 마는 것이었다.

무림인들은 그의 마술같은 무공에 숫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여섯번째의 고수는 현현궁주 청삼객이었다.

그와 마주친 고수들은 반은 기권해버렸고,

억지로 덤볐던 자들은 그의 일장에 밀려서 모조리 비무대 밖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아무에게도 부상을 입히지도 않고 가볍게 팔인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이번 대회를 진행하면서 그가 보여준 태도와 무공은 무림인들의 존경을 은연중에 끌어내고 있었다.

많은 무림인들이 그가 무림황제가 되었으면 바라고 있었다.

 

일곱번째는 검신 전득무였다.

그 역시 상대방의 기권을 받고 또한 외팔이지만 단 한수에 승리하면서 팔인의 대열에 든 것이다.

그는 전옥의 살기어린 시선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 여덟번째,

황삼객으로 분장한 황군성이었다.

그는 비록 모습을 바꾸기 전의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도신등은 그 무기를 한번 얼핏 본 적 밖에 없었다.

그가 도신등을 떠난 이후에 그의 아버지 황창설을 만나 얻은 것이기에 새로 만났을 때도 도신등은 그 무기를 별로 주의해서 보지 않았던 것이다.

황군성 그는 현재까지 멋지게 일인이역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비무에 참가할 때는 황삼객의 모습이지만 비무대에서 내려오면 곧장 본 모습을 회복하고 도신 등을 만나기 때문이다.

비무시간이래야 불과 일각도 되지 않기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도신 등은 혜성같이 나타난 어린 황삼객이란 고수에게 강한 경계심마저 지니고 있었다.

 

이렇듯, 제각기 다른 여덟 명의 고수들이지만,

완전히 일치되는 공통점은 있었다.

그것은 모두들 자신의 진정한 무공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삼객의 말이 이어졌다.

[여러분들께서 동의하신다면 팔인의 고수는 상대를 지목하여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고자 하오.]

웅성웅성!

정작 대답을 해야 할 사람은 청삼객을 제외한 칠인의 고수들이지만 관전하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그때,

[좋은 방법이오. 본 황삼객은 전적으로 찬성하는 바이오. 팔인은 각기 한사람을 지명하여 도전할 권한을 갖기로 하고, 승리자는 계속해서 도전할 권한을 보유하는 것으로 합시다.]

어디서 부터 들려오는 소리인지 모르는 음성이 학선평에 울려퍼졌다.

황군성의 변성된 목소리였다.

청삼객이 말했다.

[다른 분께서 다른 말씀이 없다면 본인의 의견에 동의하신 것으로 간주하겠소.]

그때,

[어차피 무림황제란 누구와 싸워서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싸울 수만 있으면 방법은 어떻든지 상관이 없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듯 차가운 음성이 터져 나왔다.

취옥성주라는 자였다.

이로써 팔인의 고수들의 대결방식은 바뀌었다.

그들은 지명도전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툭툭!

사람들 틈에 있는 황군성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 있었다.

황군성은 고개를 돌려보고 소리쳤다.

[둘째 사부!]

그는 서한객 초사륭이었다.

초사륭은 그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전음으로 말했다.

[조용히 이야기 하자구나. 그래 황삼객이 바로 너냐?]

[네, 그렇습니다.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 건데‥‥‥]

[그건 중요치 않다. 우린 네가 꼭 출전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한데 내가 너를 찾아온 것은 의논한 것이 있어서다.]

[무슨 일이십니까?]

초사륭은 텅빈 비무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남궁파 그자가 낯설지 않아. 도무지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황군성은 가슴이 찌릿함을 느꼈다.

(아차! 내가 말씀드리지 않았구나!)

[사부‥‥‥죄송합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그자는 사부님의 원수입니다.]

초사륭이 멈칫했다.

하나 어느 정도 그도 짐작하고 있었는 듯 그다지 놀란 표정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랬었군. 확실히 그자였어. 그자를 이길 수 있겠느냐?]

황군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여덟 명은 모두가 아직 자신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무공이 숨겨져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만‥‥‥그들에게는 최소한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초사륭이 물었다.

[그럼 다른 자에겐 패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냐?]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의 무공은 아직 천하제일인을 상대하기에 모자람이 많습니다.]

[그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냐? 무림황제가 바로 천하제일인이 아니냐?]

[휴! 사부, 꼭 그렇지만도 아닙니다. 제자는 팔인의 고수들 중에는 두려워하는 자가 없습니다만‥‥‥오직 한사람, 천하제일인만은 이길 수 없습니다.]

초사륭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럼 무림에 따로 천하제일인이란 사람이 존재한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그것도 오래 전부터‥‥‥]

[음‥‥‥처음 듣는 이야기군. 믿기 어렵다.]

황군성은 그를 생각할 때마다 뼈아픈 패배가 생각나는지 낙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자는 애초에 무림황제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가 참석한다면 아무도 그를 이길 수 없을 것이고, 또한 그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무림황제는 허명뿐일 것이니까요.]

[어쩌면 그가 여기에 와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습니다.]

초사륭은 남궁파의 정체를 확인하러 왔다가 무림에 이미 존재한다는 절대자같은 인물의 이야기를 듣고는 낙담하여 돌아갔다.

그로서는 팔인의 무공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인데 그보다 훨씬 강한 고수가 있다는 사실에 자신이 초라해졌음이다.

그는 그저 제자가 자신의 원한을 풀어주기만을 바랄 뿐 아무 생각이 없었다.

 

× × ×

 

밤,

만월이 학선평위에 두둥실 떠올라 밤을 활기차게 하고 있었다.

학선평위에 모여든 무림인들은 아직까지 떠날 줄을 모른다.

무림황제의 탄생을 기다리며 절대고수들의 대결에서 한가지라도 무공의 비결을 옅보기 위해 눈을 밝히는 것이다.

현현궁의 막사 안,

청삼객이 태사의에 몸을 깊히 묻고 묵상에 잠겨있다.

황촉불이 오직 태사의 주변만을 밝혀주고 있는데,

막사안은 청삼객 뿐,

고요한 적막이 안개처럼 흐르고 있다.

(내일이 고비다. 이제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어왔다. 순조롭다는 것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일은 계산대로 진행되었다는 것‥‥‥)

청삼객은 이순간 누구와의 밀계(密計)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나를 비롯한 팔인을 모두 죽이려 할 것이다. 무림에 강자는 그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팔인 중에서 만만한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대체 어떤 방법으로 우리들을 죽이려 할까?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청삼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기에 내가 이기느냐 그가 이기느냐의 모든 관건이 달려있다. 무공으로는 이제 그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를 제거하기만 하면‥‥‥백인으로 구성되는 경천위지백인진으로 삼절일천군단을 제거해버린다면 천하의 어느 누구도 내가 무림황제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청삼객은 몸을 일으켰다.

(일단은 그가 어디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를 죽여야 한다.)

그때,

푹!

빛살같이 빠른 물체가 천막을 뚫고 그를 향해 날아왔다.

청삼객의 손바닥이 뒤집어졌다.

[유치한 수작!]

그의 손에는 돌돌 말린 종이가 들어있었다.

청삼객의 눈동자에 은은한 놀람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것은 아주 먼곳에서 던진 것이다. 한데 이같은 공력을 실고 여기까지 날아오다니‥‥‥)

사실 그가 종이를 받았을 때 손이 저린 것같은 충격을 느꼈던 것이다.

청삼객은 종이를 펼쳤다.

용사비등(龍蛇飛登)!

날아갈 듯한 글씨가 적혀있었다.

청삼객의 눈에 반가운 기색이 어렸다.

 

× × ×

 

임담심은 불안한 기색으로 황군성에게 물었다.

[과연 그에게까지 날아갔을까요?]

[미덥지 않으면 약속장소에 나가봅시다.]

황군성은 웃으면서 말했다.

진우란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에게 만나자고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에요. 언니나 황오라버니 말에 의하면 청삼객은 남궁파여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니‥‥‥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어요. 황오라버니 어머님의 함자를 아는 것도 그렇고‥‥‥]

임단심이 어처구니 없다는듯이 물었다.

[진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그를 만나자고 한 것인데‥‥‥]

[아니에요. 그냥해본 말이에요.]

진우란은 장난스런 몸짓을 해보이며 웃었다.

그들은 학선평 중앙에 있는 텅빈 비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비무대,

장차 무림황제를 탄생시킬 비무대는 싸늘한 달빛 아래에 스산한 모습으로 서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승부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찰 곳이지만,

이 순간만은 오직 풀벌레 소리가 그를 벗하고 있을 뿐이다.

한데,

언젠가부터 넓다란 비무대 중간에 한사람이 뒷짐을 지고 배회하고 있다.

문득,

그가 입을 열었다.

[황삼객! 어서오시오.]

순간,

비무대 위로 세개의 그림자가 올라왔다.

키가작은 소년하나와 아름다운 두 소녀.

바로 황군성과 임단심, 진우란이다.

마침내,

비무대의 중앙에서 황삼객이라 불리는 사람과 청삼객이라 불리는 두 사람이 만났다.

임단심과 진우란은 한쪽에 떨어져 있고,

그 두 사람은 잠시동안 서로를 바라볼 뿐 말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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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二 章

 

            天下에서 가장 큰 賭博板

 

 

황군성의 몸이 튕기듯 일어섰다.

그의 앞으로 빈소매를 펄럭이며 다가서는 노인‥‥‥

황군성은 몸을 던져 엎드리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노인‥‥‥

그는 바로 한천사방객의 네째인 북한객 냉천삭이었던 것이다.

냉천삭은 그의 앞에 다가와 빈소매로 황군성의 머리를 스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네가 우리를 아주 잊은 것은 아니구나. 기우가 헌앙해 보이니 마음이 아주 흡족하구나.]

[사 사부‥‥‥]

황군성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전륜법왕의 강압에 의해서 스스로 사부를 져버린다는 맹세를 한 그가 아니었던가?

[소문에 내공을 잃었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직접보니 마음이 놓이는 구나.]

[사부‥‥‥제자는‥‥‥]

[가슴이 아픈 이야기라면 아예 꺼내지도 마라. 누구나 한조각 쯤의 한(恨)은 가슴에 품고사는 것아니겠느냐.]

황군성의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만 일어나거라.]

냉천삭은 빈소매로 그를 끌어 일으키며 말했다.

황군성은 저항하지 않고 일어났다.

[제 천막으로 들어가시지요.]

그때 황군성의 천막이 열리면서 임단심과 진우란이 옆으로 비켜섰다.

그들은 황군성과 냉천삭의 대화를 들었던 것이다.

냉천삭이 들어와 의자에 앉자 임단심과 진우란이 큰절을 했다.

 

[그럼 두째사부님과 세째 사부님도 이곳에 와계신단 말입니까?]

황군성이 물었다.

[어쩌면 내일이면 보게 될 것이다.]

냉천삭을 술잔을 소매로 말아올리면서 말했다.

[이번 기회는 아주 좋다. 우리의 숙원을 풀수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자들도 이미 이곳에 와있을 것이다. 허허허‥‥‥오만한 그자들이 무림황제에 욕심을 내지 않을 리가 없지.]

임단심과 진우란은 냉천삭이 말하는 그자들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다만,

한천사방객과 원한을 맺은 자이니 만큼 대단할 거라고만 생각할 뿐이다.

[현현궁주 청삼객이란 자에게 감사해야 겠어.]

냉천삭의 말에 황군성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부, 그 청삼객이란 자가 바로 둘째 사부의 원수입니다.]

탕!

냉천삭의 소매에서 술잔이 떨어졌다.

[그게 정말이냐?]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리가‥‥‥그자가 전륜법왕이라니‥‥‥그럴리가‥‥‥]

냉천삭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벌써 반로환동을 할 수 있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사부,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그를 상대해 보겠습니다.]

냉천삭은 탄식했다.

[우리 한천사방객은 오직 네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아무튼 이번은 아주 좋은 기회니 그들이 나타날 때마다 당당히 싸워서 죽이도록 해라.]

그는 품에서 작은 구슬하나를 꺼냈다.

영롱한 빛이 나는 진주같았다.

[그리고 이걸 받아라.]

[…………?]

[그것이 천년한옥부(千年寒玉符) 속에 있는 빙정(氷精)이다.]

황군성은 경악하며 손을 거두지 못했다.

천년한옥부,

냉천삭이 북혈마로부터 전 가족이 몰살당하는 혈겁을 겪은 것이 바로 이 천년한옥부 때문이 아니었던가?

[북혈마는 특이한 마공을 익혔다. 그래서 그 마공의 화를 중화시키고 불사지체(不死之體)가 되기 위해서는 북해에서 나는 만년빙정(萬年氷精)이 필요했는데 마침 그게 우리 집안에 전해내려 온 게 화근이었지. 나도 수십년이 지나서야 이 구슬이 천년한옥부에 있던 빙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가 지니도록 해라. 북혈마가 이 때문에 죽는 꼴을 보고싶구나.]

황군성이 빙정을 거둬넣자 북혈마는 총총히 떠나버렸다.

황군성이 그를 배웅하고 다시 들어왔을 때 임단심이 물었다.

[대체 북혈마가 누구죠? 처음 듣는 이름인데‥‥‥]

[무서운 자요. 북해에서 신으로 군림하는 자이기도 하지.]

이번에는 진우란이 물었다.

[그분들의 원수는 대체 누구누구예요.]

황군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북혈마와 청삼객은 이미 알고 있을 테고, 나머지 두 사람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마왕과 낮에 임매와 내가 만났던 사신(死神)이란 자요.]

진우란의 몸이 가늘게 떨었다.

[왜그러시오?]

[아 아무것도‥‥‥]

진우란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언니, 난 좀 나갔다가 오겠어요. 금방 올게요.]

그녀는 임단심의 대답도 듣지 않고 천막 밖으로 빠져나갔다.

[진매가 좀 이상하군요. 혹시 그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임단심이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다.

황군성이 고개를 저었다.

[진매의 아버지는 무림의 기인인 진섭천이란 분이오. 그분은 괴노 육천태 노선배께서 보증하시는 분이니‥‥‥]

임단심은 의심을 떨쳐버리고 황군성의 품에 안겼다.

[어쨌든 당신은 내일 기필코 출전해야겠군요. 꺾어야 할 적이 많으니까. 참, 우리 이러면 어떨까요? 진매와 나, 우리 세사람 모두 출전하면‥‥‥]

황군성이 웃으며 말했다.

[임매의 구룡로가 돕는다면 무림황제가 될 수도 있겠는 걸?]

임단심이 꿈도 꾸지 말라는 듯이 피식웃었다.

[황오라버니의 무공은 아직도 멀었어요. 설마 자신이 천하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무공의 고하(高下)로 무림황제를 뽑는다면 될 사람은 따로 있어요.]

황군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나야말로 언감생신이지. 그를 깜박 잊고 있었어. 임매의 무공에 대한 안목이 아주 대단하군.]

[그라뇨?]

임단심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거요. 무제(武帝)라고‥‥‥이름은 임보산이라 하는데, 그러고 보니 임매와 성이같군!]

황군성은 말하면서 임단심을 안고 있기에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이때 임단심은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같이 놀라고 있었다.

[휴! 나는 백년을 더 수련해도 그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거야. 청삼객의 무공도 대단했지만‥‥‥이건 해보나마나야. 누구도 그를 이길 수는 없을 거야. 아니지 혹시 우리 육대조부님이시라면 또 알 수 없지‥‥‥]

황군성은 불헌듯 문성무존의 조부들을 생각했다.

세상밖의 신선같은 분들‥‥‥

임단심은 더 이상 무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어 계곡에서의 일을 물었다.

[한데 황오라버니, 어째서 청삼객이 준 약을 간단히 받아먹었어요? 주혜린이 대체 누구죠?]

황군성도 생각이 난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분은 내 어머니요. 지금도 그가 어떻게 내 어머님의 함자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소.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은 데‥‥‥]

임단심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륜법왕이 문성무존에 있다는 황군성의 어머니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가 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을 알 수있단 말인가?

그때,

임단심의 입을 황군성의 입술이 덮었다.

그리고 깊숙한, 영혼마저 빨아들여버릴 듯한 긴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임단심은 정신이 아득해지고 자신이 하늘을 날고있는 것같은 기분을 느꼈다.

실로 오랫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불헌듯 임단심의 머리에 조응경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황군성의 가슴을 밀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싫어요. 내가 이러면 조응경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임단심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면서 말했다.

아무리 조응경이 미운 그녀지만 조응경이 추태를 부리는 것이 여자로서 결코 하지 못할 짓이라 생각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녀와 조응경은 통심마고의 작용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데 만약 그녀가 황군성과 정사를 벌이게 된다면,

다른 곳에 있는 조응경이 어떤 일을 벌일지‥‥‥

[음음!]

갑자기 천막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진우란이었다.

 

황군성은 쫓겨나서 천막밖에서 이슬을 맞고 자야만 했다.

응당 그가 누웠어야 할 침상엔 진우란과 임단심이 누웠던 것이다.

 

× × ×

 

밤새 수 많은 천막들이 붉을 밝히며 기다린 아침이 드디어 밝았다.

해가 뜨자마자 각파의 수뇌들이 하나둘씩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홀홀단신으로 온 고수들도 그 근처로 모였다.

이번 모임의 주장이 된 현현궁주 청삼객이 준비된 의견을 이야기하고,

그의 의견은 똑똑한 사람들이 대부분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갈공지의 말은 청삼객의 말과 한치도 어김도 없이 똑같았다.

세력은 세력대로 대표자를 내고,

또한 개인의 자격으로 출전하고 싶은 자는 출전할 수 있었다.

승자승(勝者昇)의 원칙에 의해 결투는 진행되기로 합의가 되고,

또한 개인적인 도전도 허용되었다.

승부는 스스로 패배를 시인하거나 죽는 경우에 정해지게 된다.

 

청삼객이 손을 들자 그의 제자 한사람이 큰 통을 들고 왔다.

[여기엔 천자문(千字文)의 각 글자를 하나씩 적은 종이가 한쌍씩 들어있소. 출전할 자 중에서 같은 글자가 적혀진 것을 뽑은 사람끼리 대결하는 것이오. 첫번째 승리자들은 다시 반으로 줄어든 천자문으로 추첨을 하여 상대를 정하고, 그런 방법으로 최후의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대결하는 것이오.]

청삼객이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때 한사람이 소리쳤다.

[현현궁주! 질문이 있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그는 네모난 얼굴의 노인으로 크고 두터운 손을 가지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외가권(外家拳)을 익힌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청삼객을 그를 보고 말했다.

[황보세가(皇甫勢家)의 노가주(老家主)이신 황보탁(皇甫倬)! 황보가주였구려. 말씀하시오.]

현현궁주는 무림에 얼굴을 내놓지 않았었다.

한데,

한눈에 권법으로 유명한 황보세가의 노가주 황보탁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가 무림의 세세한 동정마저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황보탁이 말했다.

[궁주는 무림황제라고만 말했는데, 무림황제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권한이 있는 것이오?]

그렇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중요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림황제라는 이름에 혹해서 그것에 관해 자세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림황제‥‥‥

단순한 이름뿐이라면 그 의미는 반감되고 말 것이 아닌가?

청삼객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황보가주께서는 황제란 어떤 위치라고 생각하시오?]

[그야 만승지존이 아니오?]

[무림황제도 응당 그와같을 것이오. 자금성의 황제는 기껏해야 수백만의 허수아비 같은 군사들을 거느릴 수 있을 뿐이지만, 무림황제는 무림의 모든 고수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져야 함이 당연하지 않소?]

[…………]

[…………]

청삼객의 말이 이어졌다.

[본좌는 무림황제를 위한 황금관(黃金冠)과 곤룡포(袞龍袍)를 준비해 놓았소. 그리고 열 필의 비단도‥‥‥. 무림황제가 되기 위해 출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자신의 최고절기를 한가지씩 비단에 적어야 하오. 그것들은 모두 곤룡포안의 안감이 될 것이오. 그래야 무림황제로서 위엄이 서지 않겠소?]

무림황제가 되면 곤룡포를 갖게된다.

그 곤룡포 안에는 천하의 절기들이 모두 모이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어느 누가 무림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가 있겠는가?

약육강식의 강자존의 세계인 무림에서 힘보다 확실한 것이 또 있을 수 있는가?

어차피 무림황제가 되지 못한다면 그에게 복종해야 할 것은 당연지사.

차라리 자신의 무공을 기록하고 과감하게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무림인 다운 일이다.

뭇 사람들은 자신이 무림황제가 되기라도 한듯이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이제 정오가 되면 추첨이 있고 무림황제를 뽑기 위한 대결이 시작될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무공을 점검해보기 위해서이리라.

한데,

아침부터 사신각의 천막쪽에서는 마치 쥐죽은 듯 아무 기척이 없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살수들도 하나도 눈에 뛰지 않았다.

두런두런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사신각은 철수해버렸다.

----그들은 어둠속에 살아가는 살수들의 집단, 무림황제에 관심이 없다.

 

사신각이 천막을 놔둔채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충격이었다.

사신각의 주인인 사신은 그 이름을 아는 자들에겐 공포의 대상인데,

그자가 무림황제를 포기하고 사라졌다는 것은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단 한사람만은 완강하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는 결코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진섭천‥‥‥그자는 이런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는 황군성의 세번째 사부인 남한객 단극린이었다.

사신과 철천지한이 있는 인물‥‥‥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분개하고 있었으니‥‥‥

그는 바로 위지장천이었다.

사신에게 가문의 혈겁을 당한 또 하나의 인물인 그‥‥‥

펑!

그의 앞에 놓인 탁자가 산산조각 났다.

[사신‥‥‥네 놈만은 기필코 내손으로 죽이고 만다. 절대적으로‥‥‥]

우두둑!

손가락을 꺾는 소리가 잔인하게 천막 밖까지 들렸다.

 

× × ×

 

이신보의 천막안,

검신등은 황군성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하룻밤이 지나고 나니 한 여자가 불어난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것같기도 했다.

검신이 천막안에 모인 이신보의 중진들을 향해서 말했다.

[어젯밤, 본인은 범형과 상의에 상의를 거듭한 끝에, 우리 이신보의 대표로는 도신 범형께서 출전하기로 했소. 본인은 개인의 자격으로 출전할 것이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출전하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출전하도록 하시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아마,

스스로의 무공에 자신하지 않은 사람은 출전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오가 되기를 기다리며,

임단심이 황군성에게 살며시 말했다.

[비단에 무공을 적을 때 엉터리 무공을 적으면 어떨까요?]

황군성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림황제가 된 자가 그정도를 몰라보겠소? 끝까지 쫓아다니며 죽이려 할거요.]

[소문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또 한사람의 신비인인 취옥성주도 출전할 거라지요?]

진우란이 말했다.

[물러설 수가 없겠지. 천하의 고수란 고수는 다 출전한다고 봐야지. 당금에는 어느 때보다도 고수가 많으니까.]

황군성은 말을 하고는 두 여인의 손을 잡았다.

진우란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임단심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한데 당신은 무공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출전하겠어요?]

[나도 그게 걱정이오.]

[그럼 당신도 변장을 하고 출전해보는 게 어떻겠어요? 음‥‥‥현현궁주가 청삼객이니 황오라버니 당신은 황삼객(黃衫客)정도로‥‥‥]

진우란이 킥!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언니, 아무리 그래도 이 큰 덩치를 어떻게 숨겨요? 사람들은 한번 보기만 해도 알아차리고 말거예요.]

[아니 아니! 임매의 말은 아주 일리 있소. 키 따위는 이렇게 하면 되지 않소?]

스스슷!

말하는 황군성의 몸이 쏙 줄어들어버렸다.

장포는 헐렁해져버리고 그의 키는 진우란보다도 반뼘이나 작아져 버렸다.

황군성이 문성무존에서 익힌 바 있는 축골공(縮骨功)을 쓴 것이다.

임단심이 웃으며 말했다.

[밤새 아주 똑똑해 지셨군요. 하지만 머리는 조금더 줄이세요.]

황군성은 아주 딴사람으로 변해버렸다.

키는 오척단구에 몸은 빵빵하고,

안으로 똘똘 뭉쳐 차돌같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깨끗한 얼굴은 동안으로 황군성은 어린 소년같이 된 상태였다.

임단심은 그가 귀엽다는 듯이 껴안아 주며 말했다.

[이렇게 작은 무림황제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엄마 품에서 잠이나 자는 것이 어떻겠느냐?]

[풋! 나도 그러고 싶소.]

황군성의 말에 임단심은 자신이 말을 잘못했음을 알고 홍당무가 되었다.

진우란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실은‥‥‥황오라버니가 무림황제가 될 수도 있어요.]

[뭣!?]

임단심이 눈이 동그랗게 되면서 물었다.

진우란이 소매안에서 밀납으로 싸인 오리알 같은 것을 꺼내며 말했다.

[이건 괴노 육노선배께서 제게 주신 쌍두금구의 내단(內丹)이에요. 복용한다면 천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어요.]

천년의 공력‥‥‥

지금까지 누가 그같은 공력을 지닐 수 있었던가?

천년의 공력이라면 절기(絶技)가 없어도 능히 무림황제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인데,

하물며 황군성이 복용한다면 그가 무림황제가 될 것은 따논 당상이나 다름 없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멍하니 있었다.

어제는 만년빙정, 오늘은 쌍두금구의 내단이다.

황군성이 마음만 먹으면 무림황제가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한데,

황군성이 진우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진매, 정말 고맙소. 하지만, 나는 무림황제가 될 욕심까지는 없구려. 내 힘닿는 데 까지 싸워서 승리한다면 모를까. 굳이 이물(異物)의 힘을 빌리고 싶진 않소. 그건 훗날 꼭 필요할 때 사용하기로 합시다.]

몸이 작아진 그는 진우란을 오히려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마 나도 쉽게 패하진 않을 것이오.]

그의 미소를 바라보며 마음이 뜨거워진 진우란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고 말했다.

 

***

 

술렁술렁------!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정오가 되어가는 것이다.

비무에 참석할 자들이 하나둘씩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필요한 만큼씩 비단을 잘라가서는 자신의 독문절학을 적어서 출전신청을 한다.

비단은 한쪽에 놓여진 단상아래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함속에 들어있던 추첨을 위한 천자문의 종이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천 명에 가까운 숫자의 고수들이 출전신청을 했고 하루는 또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모두들 단상에 쌓여진 무공들을 탐욕의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감히 딴마음을 품을 수는 없었다.

천하의 고수들이 집결한 자리에서 허튼 수작을 부린다는 것은 자신의 비참한 종말을 부른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니까.

무림인들은 무림황제를 탄생시키기 위한 일념으로 학선평 중앙에 비무대를 만들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가 요구한 것도 아니지만 방종하는 자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이곳에서는 목숨으로 댓가를 지불받게 될 터이니‥‥‥

 

무림황제를 뽑는 대회는 몇 일을 계속되어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날이 밝음과 동시에 그 대회는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천(天)자를 뽑은 사람들로부터 비무는 시작된 것이다.

바야흐로 무림황제라는 가장 매력적인 자리를 놓고 천하의 무림인들이 벌이는 천하제일의 도박판이 막을 연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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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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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一 章

 

         武林皇帝를 뽑는 자리

 

 

 

[본좌는 현현궁의 궁주인 청삼객이오.]

하늘에서부터 학선평으로 부드러운 연인의 속삭임같은 음성이 울러퍼졌다.

크지도 않지만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 뚜렷하게 들리는 음성‥‥‥

[본좌의 초청에 바쁜 걸음을 해주신 무림동도 여러분께 먼저 감사드리는 바이오.]

그렇다.

청삼객은 무림전체에 공문을 돌려 이곳 학선평으로 모이게 한 것이었다.

칠파는 이곳으로 달려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연락하지 않았던 것이고‥‥‥

청삼객의 인사말은 계속되었다.

허공에서 몸을 멈춘 채 목소리가 널리 퍼져나가도록 하는 기이한 공력을 지닌 그는 어조에서 조차 한점 변화가 없었다.

그의 인사말이 끝나고 핵심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이에 본좌는 무공의 고하로 무림황제를 추대하여 혼란스런 무림에도 질서와 평화를 부여하자는 것이오.]

경악이 번져 나가고‥‥‥

학선평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내일 각파의 수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합시다.]

청삼객은 사방으로 포권을 해보인뒤 천천히 걸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현현궁의 막사 앞에서 정확하게 발을 땅에 딪고 들어갔다.

사람들은 귀신에 홀린 듯한 분위기였다.

그들은 제각기 막사안으로 들어갔다.

노을은 검게 변하고 밤은 점점 깊어만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학선평이지만 감히 경거망동하는 자는 없었다.

작은 소란이 얼마나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인지 모두들 잘 알고 있는 때문이리라.

 

이신보의 천막안,

[제갈공지! 말해 보아라.]

검신이 제갈공지를 응시하며 말했다.

제갈공지는 그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한참 생각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현현궁주는 아마도 두가지의 방법을 택할 것같습니다.]

[어떤 방법인가?]

도신이 물었다.

[하나는 세력들을 위한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고수들을 위한 방법이라 사료됩니다.]

제갈공지가 신중하게 말했다.

[청삼객은 먼저 세력들을 무마하기 위해 각 방파에서 대표자를 뽑아 결전을 벌이게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한 각 개별 적인 고수들이 무림황제의 자리에 도전하도록 하게 하겠지요.]

[음‥‥‥그렇게 된다면 강한 파에서 많은 고수들이 있을 테니까 그들은 개인자격으로 출전하고, 또한 대표자는 대표자대로 출전하게 된다는 말이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겠군.]

도신이 머리를 끄덕였다.

검신이 침중한 안색으로 물었다.

[범형은 청삼객이란 자를 어찌 보시오?]

도신 범강은 나직한 한숨을 쉬고 말했다.

[대단한 자요. 천하의 무림정령이 다 모였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처럼 압도할 수 있다니‥‥‥솔직히 말해서 내 무공은 그에 미치지 못하오.]

검신 전득무도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을 다해 볼 수 밖에‥‥‥나도 자신은 없소. 황소협은 어떤가?]

황군성이 입을 열기도 전에 도신이 고개를 저었다.

[말할 것도 없네. 만약 공력이 온전하다면 한번 해볼만 하겠지만‥‥‥내공을 완전히 잃어버렸으니‥‥‥]

황군성과 임단심, 전무옥은 입조차 떼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듣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신등은 황군성의 비밀을 모르고 있었다.

혈왕신공이 함유된 목계신공의 비밀을‥‥‥

황군성은 속으로 생각했다.

(청삼객의 무공은 강하다. 아주 강하다. 하지만‥‥‥무제(武帝)보다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이외에 또다른 고수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림황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자리다. 나는 내일 출전해야 할까?)

그는 힐끗 임단심을 바라보았다.

(휴‥‥‥위지장천의 말은 맞다. 나는 지금까지 줄곧 어리석은 짓만 했다. 내일이라고 별다른 짓을 할리가 없을 것같다. 내가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그는 한참 번민하다가 결심을 했다.

(그래! 내공을 진짜로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하고 조용히 임매와 함께 소음곡으로 돌아가자. 무림황제 따위가 내게 무슨 소용인가? 내 행동마저 다스리지 못하는데‥‥‥)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자 속이 후련한 것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버님! 저는 이만‥‥‥]

도신 범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피곤할 텐데 그만 가서 쉬도록 해라. 너도‥‥‥]

임단심을 향해서도 눈짓을 해보였다.

황군성은 임단심과 함께 마련된 천막으로 가버렸다.

전무옥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그림자처럼 어렸다.

검신 전득무가 안됐다는 듯이 말했다.

[그 가공하던 내공을 일시에 잃어버렸으니 쯧쯔‥‥‥]

그들은 계속해서 출전해야 할 고수를 정하는 데 고심하고 있었다.

밖에는 반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달빛은 삼성혈의 나부끼는 깃발도 환히 비춰주고 있었다.

깃발이 마치 날아가기라도 할 듯이 힘껏 움켜잡고 있는 손이 있다.

등에는 기형장검을 맨 백색장포의 미청년,

바로 위지장천이다.

이곳에 모인 세력들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삼장의 후신인 삼성혈을 이끌고 있는 주인인 그‥‥‥

그의 어깨에는 마치 황군성이 그랬듯이 쓸쓸한 고독이 얹혀있었다.

오직 힘,

힘하나 만으로 그는 자신을 이용하려던 가신(家臣)들의 세력인 삼장을 장악했다.

이미 무림칠대세력 중 삼대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던 그들을‥‥‥

그에게 악마의 무공 월음천마공을 익히라고 강요한 귀왕장의 장주인 철사륵을 죽이면서 시작된 그의 반란 아닌 반란은,

그들과 결탁한 사신각의 살수들을 무수히 죽이고,

마침내 화운장(花雲莊)과 천음장(天音莊)마저 굴복시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면서 마무리 되었었다.

[하지만‥‥‥아직 화운장주 갈지공(葛智空)! 그놈을 죽이지 못했다. 내가 화운장에 들어갔을 때 그놈은 없었다. 가장 교활한 자‥‥‥]

위지장천은 하늘을 우러러 중얼거렸다.

그는 수하들이 자신에게 진정으로 충성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힘! 힘! 오직 힘만이 그의 위치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 고독한 것이다.

[청삼객! 그는 강하다. 하지만‥‥‥나도 그에게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지검이 있는 한 내 위에 설자는 없다.]

그는 등 뒤의 묵직한 기형괴검의 무게를 느끼며 새삼 뿌듯해 했다.

[가문의 원수 사신도 내일이면 내손에 죽겠지.]

그는 사신각의 살수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끓고 있었다.

 

× × ×

 

조그마한 천막,

작은 방파나 혈혈단신인 고수들이 모여있는 곳에 있다.

그 안에는 세명의 노인이 고개를 맞대고 숙의하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아이가 공력을 상실했다고 하오.]

헐렁한 양쪽소매를 가진 노인이 말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소. 내 혈왕신공을 익힌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오.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오.]

다른 노인이 말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하지 않소. 어쩌면, 아니 반드시 그자들도 이곳에 와 있을 것이오.]

얼굴에 푸르스름한 기가 도는 노인이 말했다..

그눈 눈에서도 청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말에 두 노인이 아주 숙연해졌다.

그자들‥‥‥

그들의 일생을 한에 사무쳐 살아오게 했던 그자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헐렁한 소매를 가진 노인이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전에 전해주지 못했던 물건을 전해주어야겠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그는 천막을 나가 달빛 아래로 나섰다.

천막 속에 있던 이들은‥‥‥

백년 전 무림을 종횡했던 전설적인 고수 한천사방객 중의 세사람이었다.

 

× × ×

 

[황오라버니, 당신은 그럼 이대로 소음곡으로 돌아가잔 말이에요?]

임단심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황군성은 탄식하며 말했다.

[임매! 나는 괴롭소. 나는 바보요. 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소. 무림에 나온 이후 줄곧 바보같은 짓만 했소. 조용히 소음곡에 쳐박혀 있었어야 했소.]

임단심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훌륭하신 분이에요. 만약 황오라버니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그건 아직 황오라버니 자신의 길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럴 거예요.]

그녀는 황군성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위로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아무 준비도 없이 무림에 던져졌어요. 어떤 정보도 없이 갓 태어난 어린애처럼 말예요. 무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데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있었겠어요? 물론 처음부터 잘 하거나 잘 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지 않겠어요?]

황군성은 눈을 감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제 일년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자책만 하신다면 너무 성급하지 않겠어요? 조금 더 있어 보도록 해요. 과연 무림황제가 탄생할지 구경도 해보구요. 당신의 무공이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리가 있겠어요?]

황군성은 마음속으로 깊이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나는 바보같이 행동했다. 하지만‥‥‥앞으로는 얼마든지 잘할 수도 있지 않은가? 더구나 임매가 옆에서 도와주면‥‥‥)

쪽!

그는 임단심을 안아올려 뺨에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며 말했다.

[임매! 정말 고맙소. 당신이야 말로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오.]

[이러다가 다시 저를 젓혀두고 다른 여자와만‥‥‥]

임단심이 말을 하다가 차마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황군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 벌로 지난 일년간 당신만을 찾아 해맸지 않소. 용서해 주시오.]

임단심이 배시시 웃었다.

[벌써 용서했어요.]

[정말이지. 지금까지 나는 무슨 마음을 먹기만 하면 그것이 잘못되기만 했소. 패기를 가져서 뭔가 잘되나 했더니 당신이 떠나가고, 내단을 복용해서 내공이 깊어지나 하면 아예 내공이 묶여버리고‥‥‥늘 이런 식이었소.]

임단심은 그의 품에서 빠져 나오며 말했다.

[그럼 기분을 바꿀 겸 우리 술이나 마실까요? 제가 가져 올게요.]

[마다할 리가 있겠소.]

임단심은 천막 밖으로 나갔다.

이신보는 대대적인 이동을 했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다.

물론 술도 창고로 쓰이는 천막에 가득 있다.

[이게 적당하겠어.]

임단심은 작은 술통하나를 들고서 창고 천막을 나왔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는 영락없이 술도둑같이 보였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황군성과 자기의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언니 술인 모양이죠?]

그녀의 뒤에서 영롱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았다.

황색 옷을 입은 소녀가 허리에 손을 얹고 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신보의 진중에는 남녀 고수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이 흑의를 입지만 개중에는 더러 색다른 옷을 입는 사람들도 있었다.

임단심은 이신보의 제자들 중의 하나이거니 생각하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동생은 누구죠?]

[저는 진우란이라고 해요. 이름이 좀 바보스럽죠?]

소녀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임단심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쁜 이름이군요. 내 이름이야 말로 아주 촌스러운 편이에요.]

[언니 이름은 뭔데요?]

소녀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웃지 말아요. 음‥‥‥단심, 임단심이에요.]

임단심은 왠지 그녀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즐거웠다.

황군성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번히 알면서도 그녀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소녀가 그녀의 곁에서 먼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단심‥‥‥단심‥‥‥휴‥‥‥얼마나 좋은 이름이에요. 조금도 촌스럽지 않아요. 차라리 제 이름이 단심이었다면 좋겠어요.]

그녀의 음성은 어떤 감정같은 것이 배여 있어 임단심은 약간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녀는 나란히 걸으면서 즉시 말했다.

[진동생은 무슨 사연이 있군요. 내게 말해줄 수 있겠어요?]

진우란이 쓸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있다면 핑계 없는 무덤도 있어야겠지요. 아! 달도 밝은데 차라리 언니에게라도 내 심정을 털어놓고 싶군요.]

임단심은 그녀에게 깊은 동정심이 생겠다.

[내가 들어줄게요. 그런 마음은 가슴속에만 묻어두고 있으면 병이돼요.]

[그럼 말할게요. 언니, 어떻게 이른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 마음을 줬는데 이미 아내가 있는 사람이었지 뭐예요.]

[저런!]

임단심은 그녀의 불행한 애정에 동정을 표하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진우란이 처량하게 말했다.

[어떻게 하겠어요. 정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거든가요? 하는 수 없이 그 사람만 따를 생각이었는데‥‥‥]

[그래요. 하! 정은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지요. 무서운게 정이죠.]

임단심도 지난 일년동안 정에 몸부림쳤기에 자신도 모르게 한탄조로 말했다.

[한데 언니 이럴 수가 있어요? 세상에 절더러 자기가 묻지도 않은 걸 대답하지 않았다고 박대하는 거예요. 숫제 저를 믿지 못하겠다나요? 사랑은 일시라도 없어질 수 도 있겠지만 믿음이 없어지면 어떻게 함께 살 수 있겠어요?]

진우란의 음성에는 울음이 배여 있었다.

임단심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었다.

[그래서 그를 떠났어요?]

진우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그를 죽여버리고 나도 죽고싶어요. 흑!]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삼켰다.

임단심이 한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달랬다.

[동생, 나를 언니로 생각한다면 그런 마음은 먹지도 말아요. 어떻게든 좋은 방법을 찾아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이러지 말고 우리 천막으로 들어가요.]

때마침 천막이 불과 일장 앞에 있는지라 임단심은 억지로 그녀를 천막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임단심은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서있는 황군성과 매섭게 황군성을 노려보는 진우란을 번갈아 보면서 어리둥절했다.

진우란이 또박또박 한이서린 음성으로 말했다.

[언니, 이사람이 제가 죽이고 싶다던 그 사람이에요.]

혹시나 하고 불안해하던 임단심의 표정이 서릿발처럼 굳어졌다.

황군성은 갑자기 나타난 진우란에게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임단심의 눈이 독기를 품고 황군성에게 다가갔다.

[황오라버니, 당신이 무림에서 어떤 멍청한 짓을 했던 그건 괜찮아요. 하지만, 여자문제에 있어선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어요.]

[임‥‥‥매!]

황군성은 어쩔 바를 모르면서 물러서지도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당신은 벌을 받아야 해요. 용서하세요.]

임단심은 냉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번쩍!

그녀의 소매에서 새파란 빛이 번쩍이더니 천막으로 붉은 피가 튀었다.

[억!]

황군성은 목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쓰러졌다.

[안돼!]

진우란이 재빨리 임단심의 손을 잡았지만 이미 황군성은 목석처럼 넘어지고 있었다.

쿵!

그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분수가 천막안을 붉게 물들였다.

진우란은 넋이 나간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임단심의 손에는 피묻은 비수가 들려있었다.

그녀가 진우란의 손에 비수를 쥐어주며 말했다.

[죽여요. 복수를 해요. 사내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 행위 하나가 한 여자의 인생을 얼룩지게 했다는 것을 보여줘요.]

[나 나나난‥‥‥]

진우란은 임단심이 쥐어주는 비수를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임단심이 완강하게 쥐어주자 받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차라리 이게 잘됐어요. 괴로워하며 사느니‥‥‥]

그녀는 황군성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군요. 결국‥‥‥]

그녀의 손이 황군성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함께 살지 못할 바에야 함께 죽는 것이 훨씬 좋겠죠. 당신이 나를 의심할리도 없을 테고‥‥‥]

그녀의 말은 이제 놀람과 격동은 넘어서 오히려 담담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그녀의 진정이 배여있었다.

임단심은 턱을 높이 치켜들고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진우란이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언니, 미안해요. 나때문에 언니의 행복마저 깨어져 버렸군요. 정말 미안해요.]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임단심이 대꾸하지 않자 그녀는 황군성 옆에 앉아서 그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어 본 후에 비수로 힘껏 자기의 배를 찔렀다.

번쩍!

바로 그 순간,

[뭘해요! 정말 그녀를 죽일 참이에요!]

임단심이 날카롭게 소리치고,

비수를 잡은 진우란의 손은 황군성의 우수에 잡혀있었다.

비수는 그녀의 배에서 불과 반치도 남지 않은 거리에서 부르르 떨고 있었다.

황군성의 피에 젖은 얼굴에 두눈이 번쩍 떠졌다.

진우란은 펄쩍 뛰어 뒤로 물러서며 부들부들 떨었다.

[귀 귀신‥‥‥]

아무리 사신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아직 어린 소녀,

귀신을 겁내고 강시를 두려워하는 나이였다.

너무 놀란 그녀는 수족이 얼어붙어버리고 입도 떼지 못한 채 덜덜 떨고 있었다.

황군성이 벌떡 일어났다.

[아악!]

마침내 진우란은 기절하고 말았다.

넘어지는 그녀를 임단심이 옆에서 가볍게 부축했다.

[흥! 연극 한번 잘하더군요. 하지만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벌어지면 목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베어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요!]

임단심은 진우란을 침상에 갖다 눕히면서 황군성을 도끼눈을 하고 흘겼다.

황군성은 겸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말하지 않았죠?]

임단심은 그에게 따져 들었다.

[진매가 당신을 속인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속이는군요.]

[말하려고 했소. 하지만‥‥‥]

[뭐가 하지만 이에요. 엉큼하게 내공이 회복됐다는 것까지 숨기고, 진매가 죽인다는 말에서 생각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속고 있었을 거 아네요?]

임단심은 황군성에게 바짝 다가들며 따지고 들었다.

그녀는 진우란이 황군성을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서야 비로소 황군성이 전날 검신의 검을 목에 맞고도 곧 회복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자신이야 말로 속았다는 생각에 분이 나서 진짜로 그의 목을 찌르고 만 것이었다.

정말 여자는 무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황군성은 쩔쩔매매 그녀에게 빌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로서는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임단심이 다시 떠나버리기라도 한다면 여간 큰일이 아닌 것이다.

[옷이나 갈아입고 천막밖으로 나가요!]

황군성은 군말없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했다.

모르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잘못을 범하지 않는 최고의 방법이리라.

황군성은 뒤늦게 그러한 진리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피에 젖은 옷을 벗어버리고 임단심이 집어주는 장포를 걸치고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천막 밖에 나가 쭈그리고 앉았다.

달은 반달이지만 밝았다.

자신의 신세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왠지 즐거운 기분이들고 있었다.

천막 안에서 두 여자가 자기를 비방하는 소리가 노래처럼 즐겁게 들리고 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왠지 그도 잘해낼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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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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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 章

 

       鶴旋平에 모인 天下의 高手들

 

 

 

계곡의 입구가 보이는 제법 넓은 곳,

급류하나가 흘러가며 계곡을 바깥세상과 분리하고 있는데,

부채꼴로 펼쳐져 있는 평지 양쪽으로 두 편의 인물들이 대치해 있다.

한쪽은 삼절일천군단,

그리고 다른 쪽은 검은 복면에 흑의로 전신을 가린 사신각의 살수들‥‥‥

두 세력의 중앙에는 죽어버린 말과 양쪽 편의 회수되지 못한 시체들이 있고,

싸움은 소강상태로 접어든 듯하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후미에 또 다른 세력이 각각 기회를 노리고 있다.

어부지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야 말로 청삼객이 고대하던 것이기도 하다.

청삼객은 급류를 가로질러 소강상태에 접어든 격전장의 중간으로 내려섰다.

임단심과 전무옥은 황군성을 양쪽에서 부축하여 그의 곁으로 날아갔다.

그 순간,

사신각 살수들의 뒤쪽에 있던 전신을 흑포로 가린 아름다운 눈 하나가 반짝 빛을 발했다.

청삼객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불구덩이나 마찬가지인 양 세력의 가운데를 느긋하게 걸으며 말했다.

[본좌는 현현궁의 궁주 청삼객이오.]

쿵!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내공이 깃든 그의 음성은 나직했지만 어느 곳에서나 같은 크기로 들을 수 있었다.

현현궁의 궁주‥‥‥

일곱개의 세력을 거론할 때 가장먼저 거론되는 일궁(一宮) 현현궁의 궁주‥‥‥

무림에 전혀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던 그가 이곳 태행산의 이름모를 계곡에 나타났다.

삼절일천군단도 사신각의 살수들도 뒷꼭지가 당겨지는 듯한 팽팽한 긴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경우에도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던 현현궁이었다.

한데 그 궁주가 직접 나타나다니‥‥‥

사위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모든 사람들은 현현궁의 사자라고 하는 자들의 무공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고 있다.

궁주의 무공은 측량할 수도 없을 것이다.

청삼객의 말이 이어졌다.

[본좌는 이미 이곳에 각파의 주인들 중 몇 분이 와있음을 알고 있오. 또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와 있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하오.]

‥‥‥‥‥‥

청삼객은 뒷짐을 지고 마치 정원을 산책하듯이 걸으며 말하고 있었다.

[본좌의 뜻은 무모한 소모전을 피하자는 것이오. 어차피 우리 칠개파가 무림을 두고 한판 벌여야 한다면‥‥‥좀더 당당하게 규칙을 갖고 한곳에 모여서 싸우길 바라오. 그래서‥‥‥]

‥‥‥‥‥‥

[본좌는 학선평에 모든 세력이 결집하여 자웅을 결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오.]

청삼객은 걸음을 멈추고 사신각의 살수들에게 눈길을 주면서 물었다.

[사신(死神)형의 생각은 어떻소?]

그의 눈은 정확하게 살수들 틈에서 흑포로 전신을 가린 자를 찾아내었다.

사신이 손을 들었다.

사삭!

그러자 그의 앞을 가로 막고 있던 살수들이 옆으로 비켜서며 길이 생겼다.

살랑살랑!

그곳으로 검은 표범이 앞장서서 나갔다.

사신의 몸은 물위를 미끄러지는 나뭇잎처럼 부드럽게 나아갔다.

그는 살수들의 가장 앞으로 나가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전적으로 궁주의 의견에 동감하는 바이오.]

청삼객이 포권했다.

[감사하오.]

사신이 손으로 임단심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데, 궁주는 그녀와 무슨 관계에 있소?]

청삼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좌는 그녀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별난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소.]

[그럼 그녀를 내게 넘게 주시오. 그녀는 본 사신각의 원수요.]

이때 임단심이 소리쳤다.

[닥쳐요!]

사신의 눈에서 횃불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당신을 알지도 못해요. 그리고 사신각과도 어떤 원수맺을 일을 한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죽어서는 원수를 맺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사신은 차디차게 내뱉었다.

황군성이 말했다.

[사신!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았소. 당신이 찾는 사람은 이미 이곳에 없소. 이 사람은 내 아내요.]

사신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눈에서 흉폭한 광채가 피어올랐다.

(나를 속이다니‥‥‥눈앞에 번히 두고서 거짓말을‥‥‥)

[죽여버리겠다!]

바로 그때,

삼절일천군단쪽에서도 소리가 터져 나왔다.

[궁주! 본인은 삼절일천군단의 단주 염녹균이오. 본인도 궁주께서 그 혈룡도왕을 넘겨주기 전에는 궁주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소.]

염녹균은 금방이라도 수하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릴 듯했다.

청삼객의 냉막한 얼굴이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으하하하하하‥‥‥]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윽! 모두 귀를 막아라!]

누군가가 소리치고 황급히 귀를 막았지만 이미 적지 않은 자들이 충격을 받고 입과 코로 실날같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뚝!

[염녹균!]

청삼객은 천지가 뒤집힐 듯한 소리로 외쳤다.

윙윙윙----!

염녹균은 귓속에서 바퀴가 구르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실로 가공할 신공이었다.

[너 따위가 감히 본좌에게 협박하는 것이냐? 내가 취옥성주가 오기 전까지 단 한마디라도 입을 뗄 시에는 네놈의 목을 베어버리겠다!]

청삼객의 신위!

천하의 삼절일천군단도 순간적으로 기가 꺽여 버렸다.

청삼객이 차갑게 말했다.

[싸울 테면 싸워라. 그러나, 약화된 힘으로 본궁의 정예들 손에서 몇 수나 버티고 죽을지는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로 그때,

휘이익!

한줄기 유성처럼 백의를 걸친 청년이 청삼객의 앞으로 날아 내렸다.

등에는 철봉같은 기형괴검‥‥‥

절세준미한 얼굴‥‥‥

위지장천이었다.

[본인, 삼성혈(三聖穴)의 혈주(穴主) 위지장천은 궁주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오.]

[혈주의 성의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오. 그럼 학선평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청삼객은 포권을 해보인 후에 그곳을 떠나려 했다.

위지장천이 황군성을 보며 말했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났군. 이번엔 사신각이 아니라 삼절일천군단이었다지? 머리와 몸이 따로노는 멍청한 자‥‥‥]

황군성은 그의 말이 일리있다고 생각되어 아무대꾸도 못하고,

임단심이 독기를 품고 쏘아보며 내뱉었다.

[당신이야 말로 머리를 몸에서 따로 놀게 떼어놓겠어요.]

[풋! 좋을 대로.]

위지장천은 황군성을 비웃어준 후에 몸을 돌려 사신을 보았다.

[사신! 학선평에서 은원을 종결짓자. 설마 피하진 않겠지?]

사신도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쏘아보았다.

[얼마든지.]

염녹균은 대세가 학선평으로 모이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들만 나서보았자 오히려 그들 전부의 합공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학선평으로 돌아간다!]

그는 부하들에게 짧게 명령했다.

두두두두--------!

삼절일천군단이 가장먼저 빠져나갔다.

사신이 뒤를 돌아보며 살수들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살수들의 모습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산위의 일각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한떼의 무리들도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여섯 명의 사람과 한마리의 표범만이 남았다.

사신이 차갑게 내뱉었다.

[학선평에서 죽여주마!!]

황군성과 임단심을 향해 하는 말이었다.

그녀의 몸은 꺼지듯이 사라져버렸다.

표범도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럼 본인도 이만‥‥‥]

위지장천의 몸도 허공으로 까마득히 치솟아 사라졌다.

청삼객은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마치 한고비 넘겼다는 것같았다.

[몸은 좀 어떻소?]

[견딜 만하오.]

황군성은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갈수록 청삼객이 좋은 사람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을 먹으면 좀 좋아질 거요.]

청삼객은 품에서 옥병을 꺼내 건네 주었다.

황군성은 손을 저어 사양했다.

임단심이 비웃듯이 청삼객에게 말했다.

[당신을 어떻게 믿고 그 약을 먹을 수 있겠어요?]

청삼객은 그녀를 힐끗 쳐다본 후에 황군성을 향해 좌수를 펼쳐보였다.

스슷!

임단심이 재빨리 황군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주혜린?]

임단심은 청삼객의 손바닥에 쓰여진 세글자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내어 읽었다.

황군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당신은 누구요?]

[본좌는 현현궁주 청삼객이오. 약을 들겠소 말겠소?]

[먹겠소.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것같으니까.]

황군성은 옥병을 받아서 한꺼번에 몽땅 입안으로 털어넣어 꿀꺽 삼켜버렸다.

임단심이 미쳐 저지할 틈도 없었다.

황군성은 약이 넘어가자 마자 전신에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청삼객이 준 약은 정말 영약이었던 것이다.

[갑시다.]

청삼객은 앞서서 몸을 날렸다.

전무옥과 임단심은 황군성의 한쪽 손을 잡고 몸을 날렸다.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 × ×

 

[호오! 그래? 현현궁주 청삼객이란 자가 모두 학선평에서 만나자고 했겠다?]

[그렇습니다. 이미 많은 고수들이 학선평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참 재미있는 일이야. 그럼 그자들은?]

[검신과 도신을 말씀하시는‥‥‥?]

[그렇지!]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학선평으로 달려가고 있을 것입니다.]

[좋다! 우리도 학선평으로 간다. 청삼객 그자가 무슨 꿍꿍이 속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구경해 보자.]

길이 십이척(十二尺)!

너비 육척(六尺)! 높이 사척의 가마가 숲속에 놓여있고,

여덟 명의 가마꾼들이 그 주변에서 호위를 서고 있는데,

한 노인이 마차에와 주고 받은 이야기였다.

잠시후 마차는 밝아오는 여명 속으로 내달리고‥‥‥

그 방향은 학선평이었다.

 

× × ×

 

황군성과 삼절일천군단의 피의 혈투를 벌였던 학선평!

이미 몇 무리의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는 데,

뿌옇게 밝아오는 아침에 무수한 인마가 모여들고 있었다.

두두두두------!

삼절일천군단이 학선평의 일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른 세력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멈춰 서서 포진했다.

이신보(二神堡)의 기치가 밝아오는 동쪽에서는 높이 날리고 있고,

그 맞은 편에는 백여명의 현현궁의 인물들이 둥글게 포진하고 있다.

남쪽에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세개의 대열을 이루고 있는데,

위지장천이 그 앞에 우뚝서서 삼성혈(三聖穴)이라고 씌여진 깃발을 날리고 있다.

북쪽에는 취옥성의 삼절일천군단‥‥‥

서남쪽에는 사신각의 살수들이 어둠인양 자리잡고 있다.

중앙은 텅텅 비어있는 상태인데‥‥‥

 

천하의 모든 강대세력들이 모여든 학선평은 오수부동(五獸不動)‥‥‥

어느 쪽도 섯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당할 것은 필연적인 이치,

날은 이미 훤하게 밝아오는데 이곳에 모이기로 주장한 현현궁주 청삼객은 콧베기도 비치지 않고 있다.

한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학선평에는 이들 세력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당금 천하의 무림인은 거의 다 이곳 학선평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한 두 사람, 혹은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씩 까지 무리를 지어 오는 그들은 무림에 간판을 걸어놓은 모든 방파들이었다.

근래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구파일방(九派一幇)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드넓은 학선평이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하여 가운데를 제외하고는 입추의 여지도 없어져 버렸다.

펑!

삼절일천군단의 단주 염녹균이 땅에 일장을 가하며 소리쳤다.

[청삼객이란 그자의 소행이다. 빠드득!]

[교활한자‥‥‥성주님께서 빨리 당도하셔야 할텐데‥‥‥거만을 떠는 꼴이란‥‥‥제기랄!]

부단주 야상인도 입에붙은 욕을 하면서 말했다.

무림인들이 대거 나타남으로 인해서 가장 궁지에 몰린 것은 삼절일천군단과 사신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군소방파에 적지않은 원성을 사고 있었으니‥‥‥

하루가 그렇게 다 지나가고 있는 데도 청삼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학선평에 모여든 사람은 모두가 일촉즉발의 기세인지라 다른 파의 사람들과는 말도 나누지 못하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꾸역꾸역몰려들고 있었다.

또한 그만큼,

학선평에 천막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었다.

몰려든 인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억지로 어떤 상황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신보의 제일 첨단에 있는 천막 안,

검신과 도신이 나란히 앉아있고,

그 주위로 황군성과 임단심, 전무옥, 제갈공지 등이 늘어서 있었다.

황군성 일행은 청삼객과 함께 학선평까지 왔으나 각자 자기들의 진영으로 헤어졌다.

전무옥은 일년 만에 부친인 전득무와 만났으나 기뻐할 분위기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이 학선평이 천하의 향방을 가름할 대 결전장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데,

검신과 도신의 염려는 눈앞에 있는 적이 아니었다.

정작 염려스러운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그들 공통의 적‥‥‥

마왕(魔王)!

마왕인 것이다.

신검보와 신도보가 합쳐지면서 그 세력이 두배 이상으로 불어난 이신보가 다른 방파들을 두려워할 리가 없는 것이다.

삼성혈이 비록 의혹속에 숨어있던 삼장(三莊)의 연합된 힘이라고 하지만 두려워할 것은 못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신과 도신은 자신들의 힘을 자신하고 있었다.

 

노을이 하늘가에 걸리게 되자 현현궁의 천막에서 한사람이 걸어 나왔다.

지리하도록 느긋한 걸음으로 그는 학선평 중간에 남아있는 공지로 걸어갔다.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미세한 변화는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연락을 받은 각파의 수뇌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현현궁의 궁주 청삼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각파의 수뇌들도 중앙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황혼에 그들의 그림자가 사람들의 머리 위까지 길게 늘어졌다.

휘이이이‥‥‥

저녁나절의 바람이 천막과 깃발들을 펄럭이게 하고,

수 많은 무림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고 있었다.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가는 청삼객!

그는 걸어갈 수록 키가 커지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 때마다 마치 계단을 밟듯이 부드럽게 허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경악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부공답허(浮空踏虛)!]

각파의 수뇌들의 눈에도 은은한 경악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부공답허를 일시 펼친다는 것은 그들로서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없지만,

청삼객처럼 부드럽게 허공을 밟으며 계속 올라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삼객의 몸은 학선평의 어느 곳에서도 볼수 있는 위치까지 높이 올라갔다.

석양이 그의 몸을 비춰 환상적인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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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暗洞의 屍身

 

 

 

흑풍이 사라진 직후였다,

휘익! 휙!

난투의 현장에 두 줄기 인영이 날아 들었다.

홍(紅)과 백(白),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두 여인이었다.

홍의여인(紅衣女人),

그녀는 금세 피어오르는 복사꽃처럼 화사한 용모였다.

백의여인(白衣女人),

그녀는 홍의여인과는 대조적이었다.

아름답기로 치자면 홍의여인과 쌍벽을 이루었으나 얼음장처럼 차가와 뵈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공통된 사실은 그들 두 여인 모두 천하절색이라는 점,

결코 쓰러져 있는 신비의 자의궁장녀에 못지않은 미모였다.

“앗! 언니!”

두 여인은 당도하자마자 대경하여 부르짖었다.

“언니가 천지빙염독기에 당했어! 막강한 공력으로 겨우 독기를 막고는 계시지만...”

백의미녀의 싸늘한 얼굴에도 경악의 기색은 역력했다.

“빨리 천공제독산이나 천년학홍정을...”

그들은 신비여인을 안고 급급히 떠나려 했다.

문득,

홍의여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데 어찌 천지곤룡이 피만 남기고 사라졌을까?”

백의여인은 곱게 눈을 흘겼다.

“그것이 무슨 상관이야? 어서 가자!”

“알았어요.”

홍의여인은 퍼뜩 정신이 든듯 얼굴을 붉혔다.

스스슥!

신비녀를 안은 홍, 백의여인은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X X X

 

콰르릉...

거대한 폭포가 지면을 가른 것일까?

폭포는 지옥입구같은 동굴을 형성하고 있었다.

몇만 년의 역서를 자랑하듯 폭포수가 이룩해낸 장관_______

한데,

폭포수 상류에는 두 개의 물체가 급격히 떠내려오고 있었다.

아!

그것은 거대한 뱀모양의 괴수와 괴수를 끌어안은 청년이 아닌가?

콰르르르...

폭포의 굉음은 그들은 한껏 포옹하고 있었다.

떠밀려 내려올수록 거세어지는 물살,

청년과 괴수를 기다리는 것은 동굴입구의 암초였다.

그대로 곧장 밀려 내려오다 보면 그들은 분명 암초와 충돌할 것이 분명했다.

드디어,

쾅! 콰르릉!

그들은 암초와 정면으로 엄청난 충돌을 일으켰다.

빠지직!

분신쇄골의 음향_______

하지만 천우신조랄까?

엄청난 무게탓에 쳐져 내려오던 괴수와 암초에 부딪친 것이었다.

부서진 것은 결국 괴수의 몸과 함께 충돌한 암초였다.

뒤이어,

쿠_____ 우_______ 르_______!

엄청난 소용돌이가 그들을 휩쓸어 동굴로 밀어넣었다.

괴수와 암초덩이와 청년,

그들은 모두 한 덩이가 된채 뒤엉켜 폭포 밑으로 사라진 것이었다.

청년,

그는 시종일관 정신을 차리지 못한듯 했다.

아!

과연 그를 위한 하늘의 안배가 있을런지...

수백만 근이나 되는 폭포의 압력 속에 그는 회생할 것인지...

모든 것은 운명에 달려 있을 뿐,

 

넓은 동굴 안,

종유석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이 동굴은 그 넓이나 종유석들의 크기로 보아 오랜 역사를 지냈으리라.

동굴의 광장에는 너비가 이십여 장이나 되는 연못이 있었다.

돌연,

콰르르...

수면 위로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거대한 물체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것은 일시에 연못 전체를 빽빽이 메우고 있었다.

아!

그것은 갈기갈기 전신이 찢긴 괴수와 그 품에 감싸인 청년이었다.

폭포로부터 온 일인일수(一人一獸),

그들은 바로 이검엽과 천지곤룡이었다.

천지곤룡은 사실 이미 죽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검엽은 어찌된 것인가?

거센 물살로 인해 의복은 이미 다 떨어져 나가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상처하나 없었다.

그것은 바로 기적이었다.

죽이기 위해 끌어안았던 천지곤룡의 시신(屍身),

그 시진이 자신을 보호할 줄이야.

과연 그는 목숨조차도 건재할 것인가?

이윽고,

이검엽과 천지곤룡은 파문에 떠밀려 연못가에 닿았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연못 속에 잠겼던 그의 손가락 끝이 움찔했다.

여인의 그것과도 같은 소수(素手),

예민한 그의 고운손이 물의 차가움을 감지한 것일까,

그뿐이 아니었다.

그의 가슴이 점차 심한 기복을 보였다.

이어,

검미가 파르르 떨리는 순간 그의 눈은 번쩍 떠졌다.

아!

그러나 그의 눈빛은 신비하기 그지 없었다.

은은한 청광(靑光)과 홍광(紅光)이 교차되며 흘러나오는 두눈,

일순 그의 눈은 의아함에 휩싸였다.

(여기가 어딘가? 지옥인가...?)

다소 침침한 동굴 속,

그러나 이검엽은 이내 사위를 모두 바라볼 수가 있었다.

만월이 비춰진 듯 그의 시야는 환하기 그지 없었다.

벽과 천장, 주렁주렁 매달린 종유석 등 그는 한눈에 자신이 어는 동굴에 와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살아 있었구나...)

그는 내심 부르짖었다.

그러자 곧, 옆구리에 은은한 통증을 느꼈다.

“으음.”

그는 나직이 신음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데, 놀라운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우지직!

둔탁한 음향을 내며 자신의 옆구리에 꽂혀던 천지곤룡의 발이 부서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마치 수수깡 부서지듯 쉽사리,

“헛!”

그는 대경한 나머지 휘청하며 동굴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푸스슥!

여인과도 같은 그의 소수(素手)는 그 순간 가공할 힘을 발휘했다.

바로 긴 역사를 거치며 굳어온 석회석바닥이 두부 으스러지듯 부서진 것이었다.

“내... 내 몸이...!”

이검엽은 경악하고 말았다.

비로소 그는 자신의 몸에 엄청난 변화가 일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더구나, 그의 옆구리의 상처,

그것은 기실 그로서는 거의 치명적이었다.

내장까지 삐어져 나왔지 않았던가?

하지만 보통사람같으면 죽었을 정도의 상처까지 거의 완치 상태인 것이었다.

단지 천지곤룡의 발이 부서져 나간 후 발톱만이 여전히 박혀있을 뿐,

열(十) 개의 용조(龍爪),

파팍!

그가 한번 힘을 주자 그것은 모두 옆구리로부터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상처의 흔적 또한 그다지 큰 것은 아니었다.

“천지곤룡의 선혈 덕분이 아닐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문득, 그의 안면 근육이 무섭게 샐룩였다.

“설... 설마 내가 천지곤룡의 십만 년의 정화가 담긴 내단을...”

그렇다 천지곤룡과의 격투끝에 그의 목을 통해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간 둥근 물체,

그것은 바로 천지곤룡의 내단이었던 것이었다.

“엉겁결에 삼킨 것이 이토록 큰 기연(奇緣)일줄은...”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가공할 기(氣)를 감지했다.

힘(力)!

그것은 밖으로 터뜨리면 태산이라도 뒤엎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일순,

그는 암울한 기색을 띄웠다.

광세(曠世)의 기연(奇緣)을 만난 것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다.

하나 그보다 앞서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으니______

(신비한 여인... 내게 기연을 가져다 분 여인... 과연 무사한지...)

불현듯 그의 가슴은 격정으로 꽉 메워졌다.

이제,

그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오로지 그 신비여인의 모습 뿐이었다.

마치 자신의 눈속에 박히기하도 한듯 그는 여인의 모습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휴...”

잡히는 것은 나직한 한숨 뿐이었다.

그러나 문득,

“아! 그렇다!”

그는 생각난 듯 무릎을 쳤다.

아직껏 천지곤룡의 목에 박혀있는 금차(金叉).

그것은 바로 신비여인의 물건이 아닌가?

그는 즉시 천지곤룡의 시신에 다가가 금차를 뽑으려 했다.

그 순간 그는 흠칫하여 손을 멈추었다.

(나의 힘... 나 자신조차도 모르고 있으니 우선은...)

그는 조심스럽게 일단은 천지곤룡의 머리를 움켜 쥐었다.

한데 역시,

우지직!

약간 힘을 주었을 뿐인데도 만(萬)근 압력인 듯 천지곤룡의 머리는 산산이 부쉬졌다.

이검엽은 난색을 지었다.

“큰일이군. 자칫하면 손에 쥐는 것은 모조리 부수고 말겠군. 나도 이 힘에 익숙해지려면 꽤나 오랜 시일이 걸릴지도...”

이윽고,

그는 그는 금차에 손을 댔다.

이마에 땀이 배일 정도로 그는 신중을 기한 것이다.

스르륵!

뽑혀 나온 금차,

그것은 지극히 정교한 금황옥(今黃玉)으로 만든 비녀였다.

두 마리의 날아갈 듯 화려한 봉황이 새겨져 있었다.

“역시... 그 여인은 범상치 않은 신분이었군, 금황옥의 크기가 이정도면 능히 황금 백만(百萬) 냥의 가치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렇듯 세공이 정교한 봉황금차라면 몇 개의 성(城)을 사고도 남을 것이거늘...”

그는 신음에 가깝에 부르짖었다.

“이런 장식을 쓰는 여인이라면...”

그는 그 봉황금차를 신비녀의 신물(信物)인양 소중히 품안에 갈무리했다.

“인연이 있다면...”

그의 눈빛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몹시 흔들렸다.

심층 깊숙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그리움,

그것은 밀물처럼 그의 가슴을 가득 메웠다.

비록 생사여부조차 알 수 없으나 그는 확연히 부르짖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내 그는 멈칫했다.

“천지곤룡은 전신이 무가지보(無價之寶)이다. 이 한 쌍의 뿔은 백독에 특효이고 이 열개의 비늘은 천하에서 가장 굳강하니...”

그의 눈이 잠시 천지곤룡의 시신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는 몸을 들이켰다.

“이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니... 우선 이 동굴부터 살펴 보아야...”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컴컴한 동굴,

하지만 어둠따위는 그에게 전혀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는 스스럼없이 일보, 일보 걸음을 떼었다.

한데,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푸스슥!

그가 힘주어 디디는 곳,

그의 발자국이 닿는 곳은 여지없이 뭉개지는 것이 아닌가?

이검엽은 기쁘기보다는 오히려 씁쓸했다.

“지나친 힘은 학문에 몰두하는데 방해만될 뿐... 이 힘을 쓸 용도조차 없는 것을...”

그는 다시 걸었다.

한데 한순간,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

그는 무엇을 발견한 듯 급히 지면을 살폈다.

드디어 면밀한 그의 주의력은 무억인가를 발견했다.

어떤 물체인가 바닥에 끌린 듯한 자국,

“그렇다면 이 안에 나 말고도 무엇인가...”

부지불식간 그는 한 차례 부르르 경련했다.

알지 못할 공포가 일순 그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내 그는 다소 긴장을 풀었다.

“흐음... 하지만 이 자국을 보니 적어도 몇년 전에 생긴 것 같군.”

미세한 자취,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흔적이다! 사람이 기어간 듯한 자국이다.”

그는 그 자취를 따라 계속 걸었다.

이어,

그것은 흐릿한 핏자국과 함께 찢어진 백의자락이 있는 곳까지 그를 인도했다.

하지만

백의라고 느낀 것은 그의 직감알 뿐 피에 푹 젖어 혈의처럼 보였다.

“부상당한 사람이 저 연못을 통해 이 동굴로 왔나보군.”

그는 딱딱하게 피로 엉그러 붙은 백의자락을 만져보았다.

묘한 긴장과 흥분이 그를 휩쌌다.

그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모퉁이,

동굴의 길은 휘어져 있었다.

“아!”

모퉁이를 돌던 이검엽은 그대로 그 자렝서 석상처럼 굳어졌다.

그의 앞에는 또 다른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광장의 맞은편,

그곳에는 기이한 문양이 넉(四)자가 새겨진 석문(石門)이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석문은 그 크기나 새겨진 문양이 웅장함을 풍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석문 앞,

한 명의 혈포인이 석문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었다.

혈포인(血袍人),

본시 백의일 듯한 그의 옷이 선혈로 물들은 것이었다.

그것은 한 자루의 검(劍)이었다.

아!

그의 등에는 검은빛의 검이 손잡이까지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으... 음!”

이검엽은 신음성을 발했다.

끔찍한 한편 괴이한 광경에 그로서는 그저 놀랄 뿐이었다.

이윽고,

그는 정신을 가다듬어 광장으로 선뜻 들어섰다.

중앙에 우뚝 선 그는 거대한 석문과 정면으로 마주섰다.

“갑골문자(甲骨文字)로군.”

이검엽,

무려 십만(十萬) 권에 육박하는 책(冊)을 읽어낸 그의 학문은 과연 어디서고 진가를 발휘했다.

“천(天), 황(荒), 비(秘), 부(府).”

그는 거침없이 갑골문자를 읽어냈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겼다.

(천황비부... 갑골문자도 익혀둔 보람이 다 있군,... 한데 천황비부라는 곳은... 적어도 천년 이전 갑골문자 시대에 이룩된 곳일 것이다...)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이 인물은 죽은지 불과 사오 년 남짓...?)

이검엽은 의문에 휩싸여 중얼거렸다.

“무엇 때문인가?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와서 무릎을 꿇고 죽었는가?”

그는 천천히 시신으로 다가갔다.

시신,

무언(無言)의 사자(死者),

단지 오체복지(五體伏地)한 채 죽어있을 뿐...

앞으로 내뻗은 팔사이로 고개를 묻어 얼굴조차 알 수 없었다.

“글씨가 있었군.”

이검엽의 두눈이 번쩍 광채를 발했다.

시신의 두 팔사이의 지면,

이검엽은 그 곳에 쓰인 글씨를 발견한 것이었다.

글씨는 매우 난잡하게 씌여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시신이 기력이 쇄진한 상태, 즉 죽기 직전에 쓴것 같았다.

 

<조사(祖師)시여! 못난 제자를 용서하소... 서... 본문의 천년기업이 제자의 불민으로 쓰러졌으니... 너무나 죄스러워 차마 부(府)에 들어 두분 조차 영전에서 죽지 못하나이다... 제자... 를 용서... 본문을... 지켜 주옵소서...>

 

혈루를 뿌리며 쓴듯 글의 중간중간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역력했다.

“무엇인가 지극히 통한을 지니고 타계하신 듯하구나.”

이검엽은 그 시신에 대한 연민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이분은 땅에 묻히기조차 부끄러워하신 듯하구나.”

그의 시선은 마지막 줄을 훑었다.

 

<본인의... 시신... 을 발견하는 자... 부디... 이대로 두어 주시길...>

 

“그럴수야 없지.”

이검엽은 머뭇거리지 않고 시신에 다가섰다.

일단 그는 혈의인 앞에 정중히 일배(一拜)했다.

“의(義)를 행함에 목숨을 아끼지 말라 했습니다. 선인(先人)께서 어찌 생각하시든 도의를 아는 이상 그냥은 지나치기가 어렵겠습니다.”

이검엽.

그의 굳은 의지는 예(禮)와 덕(德)을 지극히 숭상함에야 어찌하랴?

“미생이 편히 쉬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정중히 혈포인의 시신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헛!”

그는 대경실색했다.

우수수...!

혈포인의 시신은 모래의 성(城)처럼 그대로 허물어져 버린 것이었다.

“이... 이런...!”

이검엽은 황망히 그의 시신을 끌어 안으며 주워 모았다.

한데 그때였다.

부서진 혈포인의 시신에서 장엄한 서기가 일어났다.

그것은 휘황하게 동굴 안을 밝히며 이검엽을 뒤덮었다.

미처 놀랄 사이도 없었다.

“크윽!”

이검엽은 비명을 토하며 나뒹굴었다.

전신의 살갗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

“크_______ 으!”

느닷없는 엄청난 고통에 이검염은 몸부림쳤다.

하나 그가 어찌 알았으랴?

상서롭지 않은 서기가 자신의 살갗을 통해 심맥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그러자,

그의 심맥 속에서는 일대 격변이 일어낫다.

미리 그 속에 잠재해 있던 천지곤룡의 내단의 신력(神力).

그것에 바로 서기가 뒤석였던 것이었다.

길조(吉兆)인지, 흉조(兇兆)인지...

어떻든 견디기 힘든 고통에 이검엽은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푹_______!

기어코 그는 무릎으로 바닥을 헤맸다.

그의 손은 주위의 돌조각을 아무렇게나 움켜쥐어 갔다.

우두둑...!

푸스스...!

이검엽에 의해 동굴은 마구 뭉개지고 있었다.

천지분간이 힘든 아득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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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九 章

 

              뜻밖의 救援者

 

 

 

전무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고통을 참으며 노려보고 있는 임단심과 똑같이 생긴 얼굴이 있다.

바로 조응경인 것이다.

전무옥은 임단심으로부터 두 여자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제일 먼저 만났던 여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 조응경이라는 것도‥‥‥

전무옥은 어떻게 해서 그녀가 이곳에 불숙 나타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소저‥‥‥]

조응경이 그녀를 쏘아보고 독기서린 음성으로 내뱉었다.

[흥! 알긴 아는군요. 이건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복수인가요?]

[아니오. 나는 조소저가 내게 독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소. 그리고 내 아버님도 마찬가지요.]

전무옥은 고개를 저었다.

조응경은 무엇엔가 쫒기는 듯 무척 다급한 표정이었다.

[그럼 잘됐군요. 방금 일검을 맞은 것은 다음에 갚기로 하죠.]

그녀는 전무옥의 앞을 지나 달려가려했다.

휘익!

전무옥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소저! 이곳으로 들어갈 수 없소. 미안하오.]

그는 임단심과 황군성을 위해서 호법을 서야하는 입장이다.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그로서도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남편이라는 작자를 보호하기 위해 문지기노릇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하나,

조응경이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다.

눈으로 새파란 한광을 파릇파릇뿜으며 소리쳤다.

[정말 싸워보자는 것이로군! 좋아요.]

그녀의 쌍장이 기습적으로 전무옥을 향해 뻗어졌다.

번쩍!

전무옥이 장검으로 몇 개의 원을 그리자 장력은 다른 곳으로 흘러버렸다.

그가 급급하게 변명했다.

[조소저!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오. 단지 조금 기다려 달라는 거요.]

조응경이 소리쳤다.

[이 황량한 계곡에서 나를 붙잡고 무슨 짓을 하려고?]

그녀는 잇달아 삼장을 뻗었다.

휙휙휙!

장력은 전무옥의 상중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전무옥은 나직히 탄식했다.

(아버님이 나를 단순하고 쉽게 어디에 빠져들기 쉬운 성격이라고 할 때 믿지 않았었는데‥‥‥이런 상황하나를 제대로 처리못하다니‥‥‥)

갑자기 그의 눈에서 광채가 폭사되었다.

그녀를 일단 제압하고 봐야 겠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다. 삼절일천군단이 곧 밀어닥칠 것이다.)

그의 장검이 발앞의 땅에 닿았다.

그리고,

번쩍!

쉬이이익!

한걸음 크게 다가들며 아래에서 부터 위로 세차게 베었다.

그를 향해서 밀려오던 조응경의 장력이 단번에 양쪽으로 절단되어 버렸다.

한데,

그 장력은 여전히 전무옥을 향해서 날아들고 있었다.

전륜법왕의 무공 중의 하나인 만상장(萬象掌)의 수법이었다.

장력은 회전하여 그의 여섯 요혈을 노리고 있었다.

전무옥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보통 매서운 장력이 아니구나. 듣도 보도 못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앞에 크게 원을 그렸다.

놀랍게도,

그의 검이 지나가는 자리에 마치 푸른 벽같은 것이 생기면서 그의 전신을 가려버렸다.

장력은 그곳에 부딪혔다.

펑펑!

[검막(劍幕)!]

조응경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검막‥‥‥

검강과 필적할 수 있는 검술의 정화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전무옥의 검술 경지는 그녀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인데,

검신의 아들로서 어쩌면 그정도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또한 그의 사부 천산일검자 사공도를 보아서라도‥‥‥

계곡 안쪽에서 임단심은 조응경의 목소리를 들었다.

음성도 그녀와 아주 흡사한 조응경이다.

임단심은 씁쓸하게 웃었다.

[오늘은 이상하군요. 당신과 만났는가 싶었는데 당신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됐으니‥‥‥]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갑자기 왔던 통증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조응경이 가까이 있은 것이다.

그녀가 부상을 당하자 통심마고의 영력에 의해 임단심마저도 똑같은 고통을 느낀 것이었다.

황군성은 그녀를 안으며 일어섰다.

이미 평범한 몸이 되어 버린 그도 갑작스런 조응경의 등장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단심을 가슴에 끌어당겨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나에게는 오직 당신뿐이오.]

임단심의 얼굴에 볼그레한 홍조가 피어올랐다.

조응경은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깨닫고 소리쳤다.

[임단심! 이곳에 있었구나!]

그는 즉시 임단심이 근처에 있음을 눈치챘다.

그녀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이 계곡에서 전가 녀석과 뭘하고 있었지? 수치스럽지도 않아?]

임단심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렇게 변했다.

막소리치려는 데 전무옥이 차갑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조소저! 말이 너무 심하지 않소? 그녀는 지금 남편과 함께 있소.]

조응경의 몸이 우뚝 멈춰버렸다.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라면 황군성 외에는 있을리가 없다.

(그가 그녀와 만나고 말았단 말인가? 그럼‥‥‥진실을 알아차리고 홍심련을 공격하게 한 다음에 나를 앞질러 이곳에‥‥‥)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는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니야!)

[조소저! 이리오시오.]

황군성의 음성이 나직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다시한번 진저리를 치며 홀린 듯이 황군성을 향해 다가갔다.

전무옥은 몸을 돌려 계곡의 입구만 바라보고 묵묵히 있었다.

조응경은 고개를 들어 황군성을 볼 수가 없었다.

황군성이 입을 열었다.

[이곳은 삼절일천군단에 포위되어 있소. 어쩌면 조소저는 나와 상관이 없으니 그들이 보내 줄 거요. 빨리 돌아서 나가시오.]

조응경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악물었다.

상관이 없다‥‥‥

함께 있을 때 서로 살을 섞은 것이 몇 번인데 상관이 없다니‥‥‥

그 이유야 무슨 필요가 있는가?

단지,

그와 내가 서로 살을 섞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황군성의 완전히 남을 대하듯하는 태도는 조응경의 가슴에 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주었다.

차라리 그녀를 욕하고 때리는 것만도 못했다.

조응경은 고개를 들어 원망어린 눈길로 황군성을 바라 보았다.

그 눈에는 비애가 가득차 있었다.

조응경이 이번에는 임단심을 보았다.

거울을 보는 것같이 똑같은 얼굴‥‥‥

(그래‥‥‥똑같은 건 하나만 있으면 됐지 둘은 필요없는 거야‥‥‥)

속으로 뇌까리는 그녀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푹 고개를 수그리고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계곡의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임단심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조응경을 아주 싫어하는 그녀이지만 그녀의 감정과 고통은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임단심이었다.

조응경의 황군성에 대한 사랑이 더없이 깊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군성을 그녀와 함께 나누고 싶지는 않았다.

황군성은, 그녀만의 것이다.

조응경이 높이 치솟은 암벽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 때마다 그녀가 살아왔던 지난 날들이 마치 주마등 처럼 지나갔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그녀를 어떤 중년인이 구해다가 현현궁이란 곳으로 데려간 것‥‥‥

그곳에서 십삼매란 이름으로 십 수년 동안 무공을 익혀서 강호에 나온 일‥‥‥

전무옥을 만나 구혼을 받았던 일과 배에서 전륜법왕과 황군성을 만난 일‥‥‥

그리고 황군성과의 강요된 정사와 그후의 관계,

그가 떠나고 난 후에 현현궁의 칠십여 외부 문파를 모아서 홍심련이란 단체를 조직한 것하며,

며칠 전에 사신각의 살수들의 침입을 받아 홍심련이 궤멸되고 이곳까지 쫓겨온 것하며‥‥‥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내는 거야!)

조응경은 암벽앞에서 삼장 정도에 이르자 힘껏 돌진했다.

[앗!]

임단심이 까무라칠 정도로 놀랐다.

황군성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으나 이미 조응경을 저지할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임단심도 죽음을 느꼈다.

조응경이 죽게 되면 그녀도 살지 못한다.

통심마고의 무서운 힘에 의해 그녀도 죽어갈 것이다.

바로 그순간,

조응경의 암벽에 부딪히려던 몸이 어떤 탄력에 의해서 뒤로 튕겨져 나왔다.

허공으로 붕떠버린 그녀의 몸을 누군가 나타나며 가볍게 옆구리에 끼고 땅위에 내려섰다.

가경할 무공이었다.

푸른 장삼을 걸치고 얼굴은 창백한 모습의 중년인 이었다.

[사부!]

조응경이 그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녀는 마치 학질에 걸린 것처럼 덜덜 떨기 시작했다.

황군성과 임단심, 전무옥은 뜻밖의 사태에 어리둥절했다.

지금 쯤은 삼절일천군단이 쇄도해야 할 때인데 전혀 엉뚱한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황군성과 임단심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사부‥‥‥

조응경의 사부라면‥‥‥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이 괴이한 음성으로 말했다.

[열세 째! 네가 죽을 장소는 이곳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조응경은 납작 엎드려 대꾸도 못하고 있었다.

그는 조응경을 버려두고 황군성을 향해 다가갔다.

스슷!

임단심이 황군성의 앞을 막아섰다.

팽팽한 긴장으로 그녀는 전신의 신경이 당겨지는 것같았다.

우뚝!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이 그녀의 일장 앞에서 멈추었다.

[본좌는 현현궁의 궁주인 청삼객(靑衫客)이오. 무림이 신성(新星)인 혈룡도왕 황군성소협을 뵙게 되어 반갑소.]

그는 임단심을 무시하고 황군성에게 말했다.

황군성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현현궁의 궁주가 누군지를 전륜법왕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내색도 할 수없다.

현현궁주 청삼객이 말했다.

[본좌는 누가 감히 삼절일천군단에 맞서서 그같은 타격을 입혔는가 하고 궁금했는데 소협을 보니 모든 의문이 풀렸소. 하나, 이제보니 소협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군. 곧 들이닥칠 그들을 어떻게 막으려는지 모르겠구려.]

임단심이 손안의 구룡로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멀리 있는 이리떼보다 가까이 있는 맹호가 노리지 않을까 두렵군요.]

청삼객이 그녀를 힐끗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뚝!

[날카롭군. 내 제자와 모습이 똑같은 소저는 독봉 임소저?]

[그래요! 당신 제자 때문에 꽤나 곤욕을 치뤘죠.]

청삼객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본좌에게 유감이 아주 많은 듯한데 쓸없는 감정은 갖지 마시오. 또한 본좌는 남의 위기를 틈타는 소인배가 아니오. 물론 눈앞에서 자결하려는 사람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임단심의 얼굴이 분노로 파랗게 변했다.

청삼객이 자신들을 조롱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군성이 발작하려는 그녀의 소매를 잡아 저지하며 말했다.

[궁주께서 어떤 복안을 가지고 소생에게 접근했는지 나는 짐작할 수가 없소.]

청삼객이 그의 눈을 마주보면서 말했다.

[본좌도 황소협이 어떻게 삼절일천군단을 그것도 평원에서 단신으로 공격하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없소.]

임단심이 발끈했다.

[당신은 맞대놓고 이사람을 어리석다고 하는군요.]

청삼객이 말했다.

[혹시 그건 임소저의 생각이 아니오? 본좌의 말은 황소협에게 있었을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뜻이었는데‥‥‥]

황군성이 다시 나섰다.

[궁주께서는 말을 흐리지 마시오. 그래 나를 죽이려 왔소?]

청삼객의 푸르띵띵한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걸렸다.

[사실 본좌도 삼절일천군단을 상대해 볼까 하고 제자들을 거느리고 왔소. 한데 먼저 그들과 부딪힌 사람이 있길래 누군가 싶어서 흔적을 뒤쫓아 온 것이오. 황소협은 원래는 내 계산에 없었던 셈이지. 물론 내 제자도 말이오.]

[그말은 우리를 죽이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물론 죽이겠다고 쉽게 죽을 우리도 아니지만.]

임단심의 말이었다.

청삼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다 맞는 말이오. 본좌는 지금 당신들을 죽이지 않을 거요. 아니 오히려 돕는다고 해야 옳겠지.]

[…………?]

[…………?]

[황소협은 삼절일천군단이 아직 이 골짜기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소?]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단심도 그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청삼객이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곳 태행산으로 천하의 고수들이 모두 몰려들고 있다면 믿겠소?]

[그럴리가‥‥‥!!]

임단심이 입을 딱 벌렸다.

[본좌의 말은 사실이오. 아마 당금 무림의 칠개대파가 모두 이곳으로 모이고 있을 것이오. 그렇다면 삼절일천군단은 일곱세력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지.]

청삼객의 말이 사실이라면 태행산은 엄청난 피의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 틀림없다.

일곱개의 힘이 만난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황군성은 자신들이 폭풍의 핵속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삼절일천군단을 노리고 있었군‥‥‥그들의 행로가 너무 드러나 있었어‥‥‥]

임단심의 가슴은 마치 바위를 올려놓은 듯 무거웠다.

(칠개파가 모여들면 고수들의 수만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목숨을 버릴 각오가 아니면 이사람을 지키기 어렵겠구나. 아‥‥‥어째 이사람은 나와 만날땐 항상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일까?)

사실이 그러했다.

처음 그녀가 황군성을 구했을 때도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고,

철갑대망의 내단을 복용했을 때는 내공이 모조리 묶여버렸으며,

이번에는 다시 전신의 내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는 한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니‥‥‥

원래 황군성에게는 혈왕신공이 있지 않았던가?

어떤 경우에도 목숨을 지킬 수 있는 혈왕신공‥‥‥

비록 황군성의 목계신공에 융화되었지만 그 능력이 없어졌을리는 없는 것,

황군성의 내공이 잠시 흩어졌지만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복구된다는 것을 그녀는 감쪽같이 잊고 있었다.

황군성은 이미 자신의 내부에서 흩어졌던 공력이 점점 단전으로 되돌아옴을 느끼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억누르고 있을 뿐‥‥‥

한편,

한쪽에 떨어져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무옥은 내심 크게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칠개파가 몰려온다면 그의 아버지 검신 전득무도 올 것이다.

신검보에는 또한 검의 달인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지 않은가?

청삼객이 엎드려 있는 조응경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열셋째 이리로 오너라.]

조응경은 두려움에 떨면서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청삼객은 그녀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 눈을 찌푸렸다.

[누구에게 당했느냐?]

힐끗 고개를 돌려 전무옥을 바라보며,

[저자냐?]

조응경은 그의 관심에 놀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는 결코 배신자에게 이렇게 관대하지 않은데‥‥‥혹시 더욱 가혹한 벌을‥‥‥)

번쩍!

청삼객의 몸이 순식간에 전무옥의 눈앞에 도착했다.

짝!짝!

연거푸 두번의 격타음이 들리고 전무옥은 뺨을 싸안고 두걸음이나 물러섰다.

실로 귀신을 방불케하는 빠르기였다.

전무옥의 눈이 경악과 분노로 피빛을 띠었다.

청삼객은 다시 조응경의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황군성은 간담이 서늘함을 느꼈다.

(과연 사형‥‥‥공력이 완전히 회복된다고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겠구나.)

청삼객이 조응경에게 물었다.

[경천위지백인진(經天緯地百人大陣)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느냐?]

조응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삼객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조금이라도 공력을 가한다면 그녀의 머리는 손아귀에서 사과가 터져 나가듯이 터지고 말 것이다.

[네가 잘못을 용서받을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다.]

조응경의 눈이 반짝했다.

그녀는 불과 얼마 전에 자살을 하려고 했었지만 지금은 청삼객의 손에서 어떻게든 살아나고 싶었다.

그냥 죽기에는 행복이라는 것을 전혀 느껴보지 못한 그녀의 생이 억울해서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천위지백인대진은 너를 비롯한 열세번째 그놈이 사라짐으로 인해서 위력이 현저하게 감소했다. 하지만, 네가 다시 가담하고 내가 빈곳을 채운다면 삼절일천군단 정도는 충분히 깰 수 있다. 하겠느냐?]

[네! 사부님, 하겠습니다.]

청삼객은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떼면서 말했다.

[그럼 당장 학선평으로 가라. 그곳에서 네 사형제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조응경은 그 말에 아주 당황했다.

[사부님 제자는 현재 사신각의 살수들에게 쫓기는 몸‥‥‥]

청삼객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염려할 것없다. 그들은 제일먼저 삼절일천군단과 충돌했다. 지금 그들이나 삼절일천군단이나 총력전을 벌이고 있을 것이니 간단히 갈 수 있다. 가라!]

청삼객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이 내려온 절벽쪽으로 힘껏 던졌다.

휘이익-----!

조응경의 몸이 새처럼 절벽위로 날아갔다.

청삼객은 황군성을 보면서 말했다.

[그럼 우리도 나가 봅시다. 본좌가 칠개파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육개파, 아니 그건 자세히 말할 수도 없겠지. 신검보와 신도보가 합쳐 이신보가 됐듯이 다른 파도 병합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황군성이 말했다.

[무엇때문에 궁주가 나를 도우려고 하는지 모르겠소.]

청삼객이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질긴 인연때문이라 해야하지 않을까?]

황군성과 임단심은 가슴이 뜨끔함을 느꼈다.

(내가 전륜법왕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한데 왜‥‥‥?)

청삼객이 앞서 곡구 쪽으로 가며 말했다.

[본좌는 천하의 모든 종주세력이 한곳에 모이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네. 그래서, 이렇게 만난김에 아무렇게나 니전투구(泥田鬪狗)할 것이 아니라 학선평에 모여서 당당히 자웅을 결하길 원하지. 그러기 위해선 도신의 양자인 자네 도움이 필요하네.]

황군성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현현궁주가 생각보다 비열하거나 나쁜사람 같은 인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당당함 같은 것이 있어 영웅같은 기상도 보였다.

임단심은 그를 부축하고 청삼객의 뒤를 따라갔다.

그 뒤를 전무옥이 따르고 있었다.

전무옥의 양 뺨에는 선명한 손도장이 찍혀있었다.

계곡은 좁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이었다.

삼절일천군단도 조응경을 뒤쫓아 왔다는 사신각의 살수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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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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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八 章

 

                 뜻밖의 만남

 

 

붉은 안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났다.

완전히 베어져 죽은 말과 사람들‥‥‥

장력에 짓이겨져 죽은 자들‥‥‥

또한,

완전히 얼음덩어리로 변해서 죽어버린 백여기의 사람과 말‥‥‥

뜻 밖에도 사상자들은 무려 이백을 헤아리고 있었다.

삼절일천군단이 전부 동원되고도 한사람을 죽이지 못한채 이백명이 죽어 삼절팔백군단으로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혈룡도왕‥‥‥죽인다! 으아아아아‥‥‥!]

염녹균이 미친듯이 소리쳤다.

그때 그의 옆에서 부단주 야상인이 말했다.

[단주! 진정하십시오. 제기랄‥‥‥하여튼 놈도 마지막 충돌때 겨우 숨만 붙은 상태로 빠져나갔을 것이오. 그놈도 사람인 이상‥‥‥틀림없을 것이오. 지금쯤 어디서 벌써 숨이 끊어졌는지도 모르오.]

염녹균은 새파랗게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추적한다! 놈은 이미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죽일 수있다.]

두두두두--------!

그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수습할 생각도 않고 태행산으로 달려갔다.

태행산이 깨어나고 있었다.

짐승들이 놀라서 도망치는 바람에 온 산이 시끌벅적해지고 있었다.

 

× × ×

 

휙!

임단심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는 노루를 슬쩍 피했다.

(이 밤중에 겁많은 노루가 어쩐 일로‥‥‥?)

조금 더 걸어가자 이번에는 앞에서 무엇인가 세차게 달려왔다.

[괙꽥!]

임단심은 몸을 훌쩍 날려 피했다.

멧돼지가 그녀의 발아래로 지나갔다.

[불이 났나?]

그녀는 멧돼지가 달려왔던 방향을 주시해 보았다.

그러나 산불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뒤쪽을 돌아보았다.

뒤따르고 있는 전무옥이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그러나 전무옥은 보이지도 않았다.

바로 그때,

휙!

파르르르------!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무엇인가가 앞쪽에서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임단심이 날카롭게 교갈을 질렀다.

[멈춰라! 왠 놈이냐!]

그녀의 손이 기이하게 움직이고,

[옥인표향!]

청마수의 첫번째 초식이 옥인표향이 발출되었다.

슈슈슈슉-----!

옥인표향이 달려오는 그림자를 정면에서 가로막았다.

한데,

놀랍게도 그자가 손을 한번 휙 내젓자 옥인표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임단심은 경악했다.

청마수는 천하의 절학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데,

그렇게 간단하게 풀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아버지 임보산이라 하더라도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전륜법왕도 청마수를 만류귀종으로 받아들였다가 되튕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임단심이 더욱 놀랄 일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의 청마수를 간단하게 풀어버린 인영이 마치 추락하는 유성처럼 그녀의 앞에 뚝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쿵!

중심도 잡지 못하고 땅에 쳐박혀 버렸다.

[청마수를 간단히 풀어버리는 고수가 어째서‥‥‥?]

바로 그순간,

쳐박혀진 인영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임‥‥‥매‥‥‥]

임단심은 벼락을 맞은 듯이 부르르 떨었다.

임매‥‥‥

그녀를 부르는 그 목소리‥‥‥

죽어도 잊지 못하고 죽어서도 알아들을 그 음성이 아닌가?

[다‥‥‥당신‥‥‥당신인가요?]

그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으며 다가갔다.

그러나,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임단심은 황급히 그를 앉아 바로 눕혔다.

전신이 피투성이인 처참한 모습‥‥‥

어쨌거나 황군성이 틀림없었다.

[왁!]

임단심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황군성은 이미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린 뒤였다.

대충 보아도 그의 상세가 얼마나 심한 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휘익!

임단심의 뒤로 누군가가 내려섰다.

[그가 황군성이오?]

물은 사람은 전무옥이었다.

임단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생겼군‥‥‥]

전무옥은 칭찬인지 무엇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빨리 이곳을 피해야 하오. 이 일대에 그를 찾는 무리들이 있소. 아마 삼절일천군단인듯하오.]

[삼절일천군단? 그들이 왜?]

임단심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전무옥이 황군성을 등에 업었다.

[묻고 있을 시간도 없소. 이미 그자들은 가까이 왔소.]

임단심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잘됐군. 원수를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됐으니‥‥‥]

전무옥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들이 삼절일천군단인데도?]

임단심은 대답하지 않았다.

황군성의 상세로 보아 살아나기 어려울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원수를 하나라도 죽이고 같이 죽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그녀에게 든 것이다.

그녀는 결연한 표정으로 황군성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전무옥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어렸다.

[그를 내려주고 가세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전소협.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나는 이 사람의 아내인 몸이죠.]

임단심이 약간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전무옥은 그말에 그의 가슴을 도려내는 것같은 아픔을 느꼈다.

임단심의 말은 함께 죽겠다는 뜻이 포함되어있었던 것이다.

[임소저‥‥‥임단심‥‥‥당신은 정말 일편단심이구려‥‥‥. 나도 당신과 함께 죽고 싶소. 하나 당신이 허락하지 않겠지‥‥‥]

전무옥은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애절한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임단심도 그말에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미안해요. 그만 가세요.]

그녀의 말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스슷!

전무옥의 몸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임단심은 품에서 구룡로를 꺼내들었다.

[구룡로라면 그들을 어느 정도 죽일 수 있겠‥‥‥]

말을 하던 그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아! 이 바보!]

그녀는 갑자기 자기의 머리를 치면서 황군성을 안아들었다.

[구룡로가 모든 상처를 치료한다는 것을 왜 잊어버렸을까?]

그녀의 눈에 슬픔이 사라지고 생기가 돌기시작했다.

그녀는 삼불대 밑에서 늘 구룡로를 익히면서 지냈던 것이다.

한데,

그동안 구룡로의 효능 중의 하나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사용할 기회가 없었던 때문이다.

그녀는 주먹만한 구룡로를 황군성의 얼굴로 가져갔다.

구룡로를 구슬처럼 굴리자 얼굴에 났던 상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녀는 황군성의 전신에 난 상처를 찾아서 구룡로를 문질렀다.

외상은 삽시간에 말끔히 치유되었다.

내상을 치유하자면 구룡로에 공력을 주입하여 단전에 앉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단심은 망설였다.

지금,

황군성의 적이라고 생각되는 삼절일천군단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그래! 내상은 후에 치료하기로 하자.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임단심은 황군성을 등에 업었다.

그런데,

황군성의 발이 땅에 끌리고 축 쳐진 고개가 그녀의 시야를 다 가려버렸다.

황군성의 몸이 너무 큰 것이다.

임단심에게 그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있었지만 업을 재주는 없었다.

임단심은 조급한 마음을 발을 굴렀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하는 수 없지! 일단은 살고 봐야 하니까. 이사람도 나를 탓하진 않을 거야.)

그녀는 황군성을 내려놓은 다음에 목 뒤의 철갑옷깃을 잡았다.

그리고 훌쩍 몸을 날렸다.

황군성의 몸이 그녀의 뒤에 연처럼 날렸다.

삑! 삑!

두두두------!

휘파람 소리와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삑!삑!

휘파람 소리는 그녀의 뒤로 계속 따라붙고 있었다.

이미 발각된 것이다.

 

임단심은 황군성과 함께 철갑대망의 내단을 하나 복용했다.

그리고 그녀의 공력은 자그마치 삼백년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 이순간,

그녀는 전 공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한줄기 검은 빛이 되어 황군성의 목덜미를 잡고 허공을 가로 질러 날아갔다.

그녀는 점점 산아래로 도망치고 있었다.

한데,

그녀를 뒤쫓는 삼절일천군단의 추적도 무서웠다.

그들은 산을 마치 평지처럼 달리며 그녀를 뒤쫓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은 임단심이 우세했다.

충분한 공력의 뒷받침을 받은 그녀의 경신술은 아주 빨라서 그녀는 어느 새 산아래 계곡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뒤에서는 끝없이 삑삑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때,

임단심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자신의 뒤에서만 들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느새 포위되고 있는 중이었다.

(아! 휘파람소리!)

그렇다.

휘파람 소리가 바로 그녀를 포위하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녀가 달려가는 방향을 지적해주면서‥‥‥

그녀의 눈앞으로 세 필의 말이 달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우측에서도 두 필의 말이 달려오고 있었다.

[차압!]

임단심은 기합을 지르며 높이 치솟았다.

그녀의 한손에 매달린 황군성의 몸이 바람에 날리는 가랑잎처럼 흔들렸다.

[치구룡술(治九龍術)!]

그녀의 입에서 앙칼진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진 조그마한 황금빛 화로에서 밝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아니,

그것은 불꽃이 아니었다.

연기처럼 가닥진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것들은 아홉마리의 황금색 용모양으로 변했다.

화로에서 나온 용들은 그녀의 뜻에따라 풍운변색의 바람을 일으키며 말들을 향해 몰려갔다.

히이이잉!

어떤 경우에도 소리하나 낼 것같지 않던 말들이 놀라 미친듯이 날뛰었다.

구룡로에서 나온 용은 마치 마술같은 위력을 보였다.

콰콰콰콰콰-------!

그것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크아악!

말도 사람도 세찬 몽둥이에 터져버린 사과조각처럼 흩어져 버렸다.

황금색 아홉마리의 용이 다섯마리의 말과 다섯명의 고수를 핏덩어리로 만들고 난 후에, 임단심의 몸이 천천히 내려왔다.

한데,

그것은 짧으나마 시간의 지체를 가져왔었다.

벌써 삼절일천군단이 그녀를 향해 삼면에서 쇄도해오고 있었다.

핑핑핑핑!

먼저 새까맣게 암기가 날아들었다.

어둠속에서도 독이묻은 암기들이 파릇파릇하게 보였다.

아홉마리의 용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암기들은 사방으로 되튕겨갔다.

나무들 사이로, 바위들 틈으로, 심지어 나무에서 나무위로 건너뛰기 까지 하면서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삼절일천군단.

그들의 다가오는 모습은 노도와 같아서 임단심으로 하여금 두려움이 느껴지게 했다.

[절벽밑으로 내려가야하오. 저들에게 합공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되오. 임소저!]

갑자기 귓전으로 파고든 전무옥의 전음에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저들은 개개인으로는 약하다. 좁은 장소에서 각개격파를 시도해야 한다.)

임단심은 용들을 거둬들이며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휙휙휙휙!

다가온 삼절일천군단의 무사들이 그녀의 등을 향해 창을 던졌다.

창들은 기하학적인 무늬를 형성하고 그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염녹균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절대 놓치지 마라! 기필코 죽여라!]

그는 발광하고 있었다.

삼절일천군단이 일 개인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창들이 임단심의 몸 가까이 접근했을 때,

절벽 쪽에서 검은 인영이 날아올랐다.

번쩍!

검광이 몇 번 이는가 싶더니 창들이 한꺼번에 베어져 버렸다.

[또 다른 놈이 있었다!]

삼절일천군단 쪽에서 소리가 나고,

두두두두두---------!

그들은 방향을 바꾸어 절벽아래로 달려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서도 염녹균은 상대방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기 위하여 수신호로 부하들이 가야할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다.

물론,

절벽 위에도 오십여 기의 부하들을 남겨놓은 것을 잊지 않았다.

 

× × ×

 

휘익!

전무옥의 몸이 임단심과 황군성을 앞질러 내려갔다.

절벽의 깊이는 얼마나 될른지 알 수 없다.

전무옥은 그가 위험을 자처함으로서 임단심에게 대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행히 절벽은 이십여장 정도로 그다지 깊은 편은 아니었다.

펑펑!

전무옥은 장력을 뻗어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고 가볍게 내려섰다.

휙!

임단심은 땅이 가까워지자 황군성을 다시 높이 던져 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착지하고 나서야 내려오는 황군성은 몸을 되받았다.

[으음!]

충격을 받았는지 황군성이 미약한 신음을 내뱉었다.

임단심은 전무옥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부탁했다.

[염치는 없지만 잠시동안 호법을 서주시겠어요?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어요.]

전무옥이 고개를 끄덕이고 계곡의 입구쪽으로 걸어갔다.

계곡은 그의 생각보다도 더 좁았다.

그 정도라면 삼절일천군단도 힘을 써지 못할 것이고, 한번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임단심은 황군성을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인지라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머리카락을 이어서 만든 철갑옷을 벗겨내자 황군성의 잘 발달된 상체가 드러났다.

임단심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황군성의 가슴에 붉은 손도장이 찍혀있는 것이었다.

만져보니 철갑옷의 철갑이었다.

어떻게 해서 철갑옷의 일부가 그의 가슴에 아로 새겨진 것처럼 붙어버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치명적인 상처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 떨쳐 버리고 황군성의 단전에 구룡로를 거꾸로 놓았다.

그리고,

그 용법에 따라 구룡로에 스스히 진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구룡로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기운이 황군성의 몸안으로 스며들었다.

황군성은 전신에 혈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 임단심의 얼굴이 있었다.

[임‥‥‥매‥‥‥]

황군성이 힘없이 말했다.

임단심은 공력을 돋구고 있는 중이라 미소만 지어보였다.

한데,

임단심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황군성의 오장이 뒤집어지면서 공력이 완전히 흩어지고 만 것이었다.

황군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내 공력이 흩어졌겠지? 상관없소.]

그는 임단심의 손을 꼭잡았다.

[나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요. 내 삶의 방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모양이오. 임매! 당신이 떠나고 난 후에 내게는 오직 어지러운 혼란 뿐이었소. 이제 조용히 소음곡에 들어가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고싶소.]

임단심은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황군성의 흩어져 버린 내공은 임단심의 구룡로로도 어쩔 수가 없다.

내상은 이미 치유되었으나 황군성은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절세고수가 내공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멀쩡하던 사람이 수족 다 잘렸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인 것이다.

황군성은 임단심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이것도 결국은 내가 자초한 것의 하나에 불과하오. 아! 당신은 모를 것이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만을 해왔는지‥‥‥]

순간,

[악!]

임단심이 한쪽어깨를 움켜잡으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엔 어떤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곡구 쪽에서 푸른 검광이 번쩍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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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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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七 章

 

         삼절일천군단

 

 

두두두두󰠏󰠏󰠏󰠏󰠏󰠏!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고 있다.

어디선가 부터 갑자기 퍼지기 시작한 소문이 무림을 긴장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무서운,

아주 무서운 소문‥‥‥

 

󰠏󰠏󰠏󰠏󰠏취옥성이 천하를 얻기위한 대장정을 개시했다!

 

취옥성‥‥‥

삼절일천군단으로 천하에서 가장 전투력이 강한 세력으로 손꼽히는 곳,

그곳의 최정예 삼절일천군단이 무림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들이 움직임을 개시하자마자 혈풍(血風)이 일고,

그들이 간 곳마다 시산혈해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알고 있다.

취옥성의 성주가 바로 북해의 신이라고 하는 북혈마임을‥‥‥

벌써,

삼십여 개의 군소방파들이 무림에서 사라져갔다.

그들의 행진을 노도와 같아서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 × ×

 

휘이이󰠏󰠏󰠏󰠏󰠏󰠏󰠏!

붉은 황혼을 날려버릴 듯이 불어오는 바람은 황군성의 머리칼을 날렸다.

금강역사처럼 들판에 우뚝선 그의 어깨위로 삐죽이 올라온 검자루가 돋보인다.

표정없는 얼굴‥‥‥

스스로 자초한 고독일까?

다시금 모든 사람이 떠나버린 그의 전신에는 죽음같은 고독이 일렁이고,

영혼은 침체되어 버렸는가?

그의 눈동자에는 빛이 없다.

그가 이곳에 서있은 것은 어제 저녁무렵부터.

지금이 다시 황혼녁이니 그는 장장 하루동안을 미동도 하지 않고 까마득한 지평선만을 노려보고 서있었다.

실로 대단한 정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두두두두󰠏󰠏󰠏󰠏󰠏󰠏!

 

지평선 저 멀리서 땅에 깔리듯이 푸른 구름이 일고 있었다.

미약하게 나마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는 그것.

바로 일천기의 명마였다.

구름떼같이 달려오는 말들은 횡으로 이십, 종으로 오십,

실로 질서정연하게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한데,

갖가지 병기를 움켜잡고 마상에 앉아있는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오직 죽음.

그들의 푸른 옷과 말들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얼마나 잔인한 살상이 있었는지를 가히 짐작케하는 일‥‥‥

두두두두두󰠏󰠏󰠏󰠏󰠏󰠏󰠏󰠏!

석상처럼 평원을 가로막고 있는 황군성의 앞으로 점점 기마대는 가까워오고 있었다.

황군성의 입에서 칼로 자르듯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삼.절.일.천.군.단!]

 

기마대의 제일 선두에 섰던 자가 황군성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천하의 삼절일천군단을 단신으로 막아서는 자가 있다니.

[미친놈!]

그는 짧게 내뱉었다.

두두두두󰠏󰠏󰠏󰠏󰠏󰠏󰠏󰠏!

그 와중에도 기마대는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달리던 동료들도 황군성을 발견하고는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었다.

그러나,

조금더 다가 갔을 때,

그들은 일단 황군성의 칠척에 달하는 장대한 체구에 놀랐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풍겨나는 어떤 무형의 기운에 절로 두려움이 이는 것을 느꼈다.

목계신공,

아무런 기척도 갖지 않지만 상대로 하여금 절도 두렵게 하고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어버리는 무공.

삼절일천군단의 군단주(軍團主)는 염녹균, 별호는 삼수괴(三手怪).

그는 황군성에게서 일말의 위기감을 느끼며 한손을 들어올렸다.

순간,

취취취칙!

말들이 소리도 없이 조용히 그자리에 멈춰섰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삼절일천군단의 군단주 염녹균의 손짓하나에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염녹균이 왼쪽에 있는 그의 부단주 야상인(夜傷人)에게 물었다.

[저자가 누구냐?]

야상인이 눈을 빛내며 살피다가 말했다.

[혈룡도왕! 제기랄 혈룡도왕입니다.]

[저자가?]

양쪽에서 놀람의 물음이 터져 나왔다.

[틀림없습니다.]

야상인은 침을 뱉으며 말했다.

[퉤! 더럽군요. 밟아주는 수밖에.]

염녹균의 표정이 굳어졌다.

[검신을 능가한다는 도신의 양자‥‥‥어느 정도의 피해는 각오해야 겠군.]

그의 손이 황군성을 가리켰다.

그리고,

[죽여라!]

짧은 한마디가 퍼져나가자 멈추었던 기마대는 용수철에 튀기는 것처럼 달려나갔다.

[와!]

두두두두󰠏󰠏󰠏󰠏󰠏󰠏󰠏󰠏󰠏!

그들은 황군성을 에워싸듯 하면서 달려 들었다.

전면에 있는 기마대가 황군성의 앞에 당도할 때에 이미 등뒤에도 기마대의 일부가 도착하고 있었다.

완전히 황군성을 중심으로 헤쳐모여하는 것과 똑같은 형세였다.

슈슈슈슝!

화살과 암기가 하늘로 부터 떨어져 내렸다.

기마대의 후미에 위치한 자들이 허공으로 쏘아올린 것들이었다.

그리고,

접근한 자들이 쇄도하면서 장병(長兵)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창, 삼절곤, 칠절편, 철추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들의 합공은 완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리가 더욱 좁혀진 자들은 허리에서 단병, 짧은 무기를 꺼내들며,

검과, 도, 척, 판관필 따위로 공격해들어왔다.

황군성이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같았다.

한데,

바로 그순간,

삼절일천군단의 단주인 염녹균은 머리가 하애지는 충격을 받았다.

오오!

인간이 진정 저럴 수도 있단 말인가?

황군성의 몸이 물살을 가르는 배처럼 삼절일천군단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가 지나간 곳으로 잘려진 팔다리와 목이 일시에 날아오르고,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으악악󰠏󰠏󰠏󰠏󰠏󰠏!

 

누가 지른 비명인지도 알 수가 없다.

비명은 그들이 죽어간 후에 터져 나온 것이므로,

황군성의 손에는 핏방울이 굴러 떨어지는 사척반의 장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의 표정은 비정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것은 삼절일천군단에게 더욱 심한 공포를 주었다.

삽시간에 이십여명의 삼절일천군단이 죽었다.

지금까지,

삼절일천군단은 그 많은 싸움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었다.

한데 이것은‥‥‥

[모두 검을 뽑아라. 혈검천륙살진(血劍天戮殺陣)!]

염녹균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촤촤촹!

삽시간에 붉은 기운이 하늘을 뒤덮을 듯 퍼져나갔다.

혈검천륙살진이 펼쳐진 것이다.

일천여명의 삼절일천군단이 움직이는 사이에 한치앞을 분간할 수 없는 붉은 안개가 깔렸다.

그들이 뽑아든 혈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하늘을 찔렀다.

두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붉은 안개속에서 마치 천둥소리처럼 번져나갔다.

황군성은 시야가 완전히 차단당한 상태에서 자신이 망망대해의 흔들리는 파도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일천대 일!

하늘이 놀라고 땅이 놀랄 무림사의 일획을 그을 대결전이 마침내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 × ×

 

임단심이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무옥! 너때문에 집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감사한다. 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계속 나를 쫓아다니겠다면 죽여 버리겠다.]

전무옥은 쓸쓸하게 웃었다.

[소저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지는 않소. 단지‥‥‥소저를 바라볼 수만 있으면 족할 뿐이오.]

[흥! 나는 네놈이 나를 바라보는 것도 싫다.]

임단심은 마상에서 차갑게 소리쳤다.

전무옥이 고개를 푹수그렸다.

검신 전득무의 아들 전무옥‥‥‥

그가 임단심이란 여인에게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온갖 수모를 다 받으면서도‥‥‥

다각다각다각󰠏󰠏󰠏󰠏󰠏!

전무옥이 탄 말은 임단심이 탄 말의 뒤를 묵묵히 따르고 있다.

임단심은 일년 동안 금족령을 받고 항산 삼불대 아래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전무옥은 금화선녀에게 포로가 된 후 삼불대에서 남자 종이나 다름없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임단심의 미모에 깊히 빠져 들어버렸다.

한때 그는 임단심과 똑같이 생긴 조응경에게 매료되어 그녀와 혼인하겠다고 까지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의 임단심에 대한 감정은 그때와 같은 달아오른 철판같은 사랑이 아니라, 무려 일년동안이나 익고 익은 것이었다.

임단심은 부모가 왜 자기를 가둬놓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황군성을 떠나오기는 했으나 시간이 지나갈 수록 그에 대한 그리움에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감시하는 전무옥과 노파의 눈을 벗어나 도망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데,

이번에는 전무옥이 그녀를 도와주어 함께 도망친 것이다.

임단심은 삼불대에서 나오자마자 개봉으로 달려가는 길이다.

개봉‥‥‥

그곳에는 그녀가 구해놓은 집이 있고,

그 집에서 황군성과 꿈같이 달콤한 한때를 보내지 않았던가?

혹시 황군성이 그곳으로 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날은 어두워 오는데,

전무옥은 떨어질 생각을 안한다.

임단심은 속상한 생각에 말의 배를 힘껏 찼다.

[이랴!]

말이 놀라 훌쩍 뛰어나갔다.

전무옥도 황급히 말을 재촉하여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에잇! 힘도 없는 말같으니라구. 그걸 달렸다고 거품을 물고 엎어져?]

임단심이 쓰러진 말에게 화가 나서 발길질을 했다.

태행산의 밤은 깊은 데 길가에는 오직 임단심과 전무옥 두 사람 밖에 없다.

전무옥의 말은 임단심의 말보다 일찍 쓰러졌다.

그는 말이 쓰러지자 버려두고 경신술로 그녀의 뒤를 따라온 것이다.

그는 한쪽에 비켜서서 임단심이 하는 양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임단심은 말을 버려두고 길옆 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하는 수 없지. 여기서 노숙(露宿)을 하는 수밖에‥‥‥]

휘익!

전무옥은 바람처럼 빠르게 그녀를 앞질러 나무 밑으로 갔다.

그리고,

번쩍! 번쩍!

검이 몇 번 휘둘러지는 가 싶더니 작은 나무가지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들은 신기하게도 원을 그리며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작은 나무가지와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푹신한 침상이 만들어졌다.

[흥!]

임단심이 코웃음을 한번 치고는 그곳에 앉았다.

전무옥은 멀찌감치 떨어진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바로 그때였다.

[켈켈켈‥‥‥형님들 오늘은 수입이 괜찮군요. 말 한 필에 젊은 계집이라‥‥‥]

숲속에서 음침하기 그지 없는 웃음소리와 함께 다섯 명의 인물이 걸어 나왔다.

스스슥!

감산도(坎山刀)를 어깨에 걸치고 나무가지를 헤치며 걸어 나온 그들은 말 그대로 산도둑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같았다.

떡 하니 벌어진 체구에,

풀어 젖힌 가슴팍, 그리고 아무렇게나 동여맨 상투꼭지‥‥‥

얼굴을 반쯤 뒤덮어 버린 구롓나루‥‥‥

임단심은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는 그들을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림인에게 강도짓 하는 자들도 있었나?)

전무옥이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산적들 중의 하나가 약간 놀란 듯이 말했다.

[어? 남자새끼도 있었네? 반질반질 한 걸 보니 기생오라비인 모양이군.]

다른 하나가 소리쳤다.

[야 이놈아! 어서 주머니를 갖다 바치지 않고 뭘하느냐? 살고 싶지 않단 말이냐?]

[꿀꺽!]

임단심을 바라보던 산적이 침을 삼켰다.

[이제 보니 이년이 아주 절색인데‥‥‥헤헤헤‥‥‥호박이 덩굴채 굴러왔군.]

다른 자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봐 네째! 자네는 순서를 어길 샘인가? 이런 일에는 응당 이 형님이 먼저 아닌가?]

그자의 덩치가 제일 컸다.

조금 전의 그자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에이! 그럼 어서 먼저 하쇼. 남의 애간장 태우지 말고.]

[헐헐헐‥‥‥물론 그래야지‥‥‥]

임단심은 눈을 까뒤집고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산적을 보자 어이가 없었다.

[흠!]

하며 예쁘게 헛기침을 한번 하고 팔장을 꼈다.

[빨리 꺼내놓지 못해?]

그때 세놈의 산적이 전무옥을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감산도를 높이 들고 그를 협박하고 있었다.

전무옥도 기가 막힌 지 피식 웃었다.

[헤헤‥‥‥]

두목인 듯한 자가 침을 흘리며 임단심에게 달려들었다.

한데,

그가 갑자기 돌멩이에 걸리기라도 한 듯이 푹 꼬꾸라졌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없고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봐 노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럼 내가 먼저 하더라도 뭐라 하지 말게.]

뒤로 밀렸던 자가 냉큼 임단심앞으로 다가섰다.

한데,

그자도 갑자기 푹 고꾸라져 일어나지 못하기는 매 한 가지였다.

전무옥을 둘러쌌던 자들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보니 이들은 자기들이 나타났는데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을 잘못 봤다!!)

그들 세 산적들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통했다.

엎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자들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고,

산자들은 살고 봐야 될 일이다.

[튀자!]

그들은 냅다 숲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화살을 방불케 할 솜씨였다.

그러나,

그들은 갑자기 살맞은 기러기처럼 그 자리에 픽픽 쓰러지고 말았다.

비명도 없고 기척도 없었다.

임단심이 발딱 일어섰다.

[기분 잡쳤어. 두 시간만 걸으면 학선평(鶴旋平)일 테지.]

그녀는 산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뒤로 전무옥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있었다.

도적들은 모두 임단심의 독술에 의해 죽었다.

그들은 죽고 나서도 어떻게 독이 펼쳐졌는지 모를 것이다.

 

× × ×

 

들판에 넘실대는 붉은 안개,

어둠속에서도 마치 악마의 기운처럼 흩어지지 않고 깔려있다.

그리고,

두두두두󰠏󰠏󰠏󰠏󰠏󰠏󰠏󰠏!

그 속에서 굉음처럼 울러 퍼지는 말발굽 소리‥‥‥

(벌써 두 시진이 지났다. 이들의 진세를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다.)

황군성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의 흰 장삼은 이미 누더기가 되어 날아가버렸고,

붉은 철갑옷도 비늘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다.

목계신공의 호신강기로 근근히 버텨왔지만,

이 빌어먹을 혈검천륙살진 속에서는 적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퍽퍽!

무엇인가 둔중한 물체가 어느 새 다시 그의 등을 두드렸다.

황군성의 몸이 비틀거렸다.

번쩍!

공격을 받은 곳으로 빠르게 장검을 날려 보지만 검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삼절일천군단‥‥‥

왜 삼절일천군단을 최고의 전투력을 가진 단체라고 하는 지 황군성은 알것도 같았다.

이것은 일개 고수와의 싸움과는 비교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진의 한가운데 있겠지.)

황군성은 모종의 결심을 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우물주물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할 뿐이다.

적은 강하다.

진을 어떻게 뚫어볼 방법도 없다.

[무조건 뚫고 간다!]

황군성은 자신이 생각해도 가장 무식한 방법을 택했다.

오직 일신의 무공 하나만 믿고 쌍산 조자룡처럼 삼절일천군단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려하는 것이다.

그것도 오직 일직선으로 달려서‥‥‥

추악!

그의 장검이 왼손에 쥐어지자마자 오른손에서 번천도가 솟아올랐다.

한번의 심호흡 후에 그는 들소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안개속을 돌진했다.

검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도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순간적으로 붉은 기운이 갈라지고 비명이 터져 올랐다.

[으아아악!]

황군성은 자신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지금은 눈을 가린 상태로 가시밭을 달려가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으아아악!]

검에 둔중한 느낌이 걸리면서 또 하나의 비명이 솟아올랐다.

그의 몸에도 무수한 상처가 생겼다.

한데,

달려갈 수록 그의 몸에 와닿는 압력이 엄청나게 강해지고 있었다.

삼절일천군단의 혈검천륙살진의 압력은 밖으로 나갈 수록 강해지는 것이다.

달리는 말들과 사람의 힘이 배합된 이 진은 바깥이 더욱 많은 고수들이 포진하고,

이로 말미암아 적은 달아날래야 달아날 수도 없이 몸이 갈갈이 찢겨죽게 되는 것인데,

삼절일천군단의 단주인 염녹균은 치를 떨고 있었다.

일 개인의 몸으로 그 무시무시한 진안에서 두 시진을 버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시간이라면 만명의 고수라고 하더라도 살륙했을 시간인 것이다.

더구나 그자가 이번엔 필사의 탈출을 기도하고 있다.

황군성은 자신이 한걸음을 걷기가 어려움을 알았다.

육백 년에 육박하는 내공을 가진 그‥‥‥

한데 그에게 밀려드는 압력은 그로 하여금 걸음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압력이 강해질 수록 그의 몸에난 상처에서 흐르는 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적은 힘을 합하고 있는 것이다.

황군성은 마지막 모험수를 던졌다.

자신의 힘으로 그들 전체와 충돌하는 것이다.

그는 검을 등에 꽂았다.

그리고,

전륜법왕이 전수해준 만류귀종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모든 힘을 반탄시켜 되돌리는 무공‥‥‥

그는 남아있는 전 공력을 쌍장에 모으고 만류귀종을 펼쳤다.

[만류귀종!]

우렁찬 폭갈이 터지고,

그를 향해 밀려들던 압력이 순간적으로 반탄되며 엄청난 한기를 동반하고 되돌아갔다.

그가 만류귀종에 빙백강기를 포함시킨 것이었다.

크아아악󰠏󰠏󰠏󰠏󰠏󰠏󰠏󰠏󰠏!

붉은 안개가 순간적으로 멈추며 비명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황군성의 몸이 그틈을 놓치지 않고 비상했다.

쉬이이익!

한줄기 유성처럼 그는 삼절일천군단의 붉은 안개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원래 그의 뒤에 서있던 태행산을 행해서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의 전신에서 핏물이 샘솟듯이 흐르고 있었다.

(으으‥‥‥만류귀종을 펼쳤을 때 충격으로 내장이 뒤엉켜버렸다. 어쩌면 파괴되었을 지도‥‥‥)

황군성의 몸은 삼절일천군단이 진세를 새로 정비하기도 전에 태행산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말 것같았다.

죽음이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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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운명의 만남

 

 

 

사르륵!

방문이 열리고 자운의 환한 얼굴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공자님, 나와 보시옵소서.”

“무슨 일이지?”

이검엽은 책에서 시선을 떼며 마주 미소했다.

“반가운 손님이 왔어요.”

“허, 반가운 손님이라... 누굴까?”

이검엽은 선뜻 밖으로 나섰다.

히히힝______!

한 필의 건장한 오추마(烏추馬)가 그를 보자 울부짖었다.

기다리던 손님이란 바로 그 말인 듯 했다.

“아니! 흑풍(黑風)이 아니냐?”

이검엽은 몹시 반색을 하며 말에게로 뛰어갔다.

사람(人)과 말(馬).

그들은 서로 오랫동안의 지우(知友)인 양 대화하여 어쩔줄 몰랐다.

흑풍!

그 말은 이검엽이 북경에 두고온 애마(愛馬)였던 것이었다.

자운이 곁에서 이들에게 곱게 미소를 보냈다.

“흑풍이 하도 보채어 승상께서 보내시었다 하옵니다.”

그 말에 이검엽은 만면에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하! 흑풍!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

그는 흑풍의 이마를 긁어주며 껑충 그 잔등으로 올랐다.

“자! 오랜만에 시원하게 달려 보자!”

히_______ 힝!

따그닥 따그닥...!

흑풍은 검은 갈기를 휘날리며 곧장 내달았다.

“핫하... 자운, 내 한 바퀴 돌고 오겠다.”

이검엽의 목소리는 금세 멀어지며 메아리를 남겼다.

이검엽과 흑풍은 한 무더기가 되어 검은 구름처럼 몰려 갔다.

풍림소축의 담을 순식간에 뛰어 넘어 그들은 풍림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자운의 고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격하신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분... 그러나 흑풍과 어울리심은 독서 다음으로 좋으신 모양이구나.”

언제 다가왔는지 늙은 하녀가 은근히 농을 던졌다.

“아씨께선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자칫 공자님의 사랑하심을 저 시커먼 놈에게 빼앗기시겠어요.”

“...!”

자운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힐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험준한 산봉(山峰).

두두두...!

갑자기 관목을 타넘으며 한 무더기 흑운(黑雲)이 밀려 들었다.

“하하하핫!”

청아한 쾌소가 산중을 올렸다.

두두두...!

히히힝...!

흑운은 바로 한 쌍의 인마(人馬)였다.

먹물로 목욕을 시킨 듯한 새카만 준마였다.

마상(馬上)의 준수무비한 청년.

그들은 다름아닌 이검엽과 흑풍이었다.

“하하하... 흑풍! 다리의 힘은 여전하구나!”

이검엽은 유쾌히 외치며 훌쩍 뛰어내렸다.

그들이 당도한 곳은 멀리 천주신봉(天柱神峯)과 측융봉(側隆峰)이 좌우로 보이는 산봉의 정상이었다.

장대한 천주산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맑디 맑은 이검엽의 두눈이 장엄한 산세를 두루 훑었다.

문득 그의 가슴에는 피끓는 웅심(雄心)이 가득 차올랐다.

“하하하... 흑풍! 저 넓은 천주산역이 보이느냐?”

히힝______!

흑풍은 마치 그의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하는 듯 울부짖었다.

이검엽은 장엄한 신색으로 낭랑히 외쳤다.

“천하도 저와 같다. 제각기 뛰어난 인재들이 저 뭇 준봉들과 같이 솟아있다. 저 하늘은 천자(天子)시며 저 뭇봉은 신하(臣下)이다.”

그는 흑풍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보아라! 나 이검엽은 저 천주신봉이 될 것이다.”

이어 그는 호탕하게 대소했다.

“하하하핫! 무릇 뜻을 풀었으면 대인(大人)이 되어 대도(大道)를 걸어야 하지 않겠느냐?”

히히힝!

흑풍의 우렁찬 울부짖음은 주인의 뜻에 호응하는 충실한 충복과도 같았다.

이검엽은 흑풍의 날씬한 목을 힘껏 껴안았다.

“흑풍! 기다려라. 언젠가는 천하를 네 발굽 아래 두어 보이겠다!”

이어 그는 다시 흑풍의 등에 올랐다.

“보고 있거라! 나 자신이 저 하늘 기둥(天柱)이 되어 하늘을 떠받칠 것이다.”

천주신봉은 천주산의 장대한 산세 속에 가장 높고 빼어난 거봉(巨峰)이었음에랴.

뛰어난 기재 이검엽의 웅심은 하늘을 떠받고도 남음이 있을 듯 했다.

이윽고 그는 말머리를 오던 길로 되돌렸다.

“가자! 하하... 자운을 기다리게 할 수야 있겠느냐?”

두두두_______!

흑풍은 질풍처럼 내달아 산봉을 내려갔다.

산봉을 잇는 단애를 흑풍은 거침없이 지나고 있었다.

한데 그 순간,

파파팍!

흑풍의 발길이 지면에 꽂혔다.

푸르르르...

갑자기 멈춰선 흑풍은 갈기를 곤두세운 채 두눈에서 불을 뿜어냇다.

“엇!”

이검엽은 흠칫했다.

담대한 흑풍의 긴장에 그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흑풍! 무슨 일이냐?”

푸르르...

흑풍은 여전히 두눈을 번뜩이며 전면을 노려보았다.

“...?”

이검엽이 의아해하는 사이 돌연,

“으으음...!”

나직한 여인의 신음이 그의 귓전을 파고 들었다.

이면의 거대한 바위의 뒷쪽이었다.

(여인의 신음...?)

이검엽은 급히 마상에서 뛰어내렸다.

“흑풍, 넌 여기서 기다려라!”

그의 신형은 서슴없이 암석 위로 뛰어올랐다.

“헛!”

이검엽의 대경한 외침.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화급지경(火急之境).

한 명의 여인이 바위에 등을 기댄 채 신음을 흘림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한데 이럴 수가...

여인의 앞에는 거대한 괴물이 바로 그 여인을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길이 만도 무려 십여 장.

용(龍)의 머리에 뱀(蛇)의 몸.

어디 그 뿐인가?

청홍이 엇갈린 다리의 수가 여덟 개나 되었다.

크르르...!

괴물의 괴성은 여인을 위협했다.

발톱을 무시무시하게 곤두세운 채 괴물은 시시각각 여인을 조여들었다.

격렬한 난투를 벌인 듯 괴물 역시 여기저기 상처를 입기는 했다.

그러나 그 기세는 엄청나고도 무시무시했다.

“천... 천지곤룡(天地昆龍)!”

이검엽은 대경실색하여 부르짖었다.

 

괴이지(怪異誌)에 기록된 바_______

천지곤룡(天地昆龍)은 천지간의 가장 영통한 영물이었다.

그것은 몸에 붙은 비늘은 매 만년(萬年)마다 하나씩 생겨나는 것으로 종잇장처럼 얇으나 도검불침(刀劍不侵), 즉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것이었다.

한데 그 비늘이 열 개가 될 경우, 즉 십만 년의 수명을 누릴 경우 천지곤룡은 체내에 내단을 형성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천지곤룡의 내단(內丹).

십만 년의 천지정기를 흡수한 이것은 천지의 음양이기가 조화되어 천하제일의 신효(神效)를 발휘한다고 전해진다.

그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게 되면 신의 지경에 이름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하지만 둘, 셋, 넷...

이검엽은 괴물의 옆구리에 붙은 손바닥만한 비늘을 눈으로 확인했다.

도합 열(十)개.

그렇다면 눈앞의 천지곤룡은 무려 십만(十萬) 년을 살아온 괴물이란 말인가?

“으...”

이검엽은 전신이 얼어붙는 듯 경직되어 버렸다.

크크크... 캬오!

천지곤룡은 두눈에서 불같은 광채를 뿜으며 여인에게로 점점 다가들었다.

쿵,... 쿵...!

괴물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공포스러움이란_______

괴물의 거보(巨步)는 바윗덩어리를 가루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인은 체념한 듯 내뱉았다.

“으... 방심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위기!

엄청난 위기가 그녀를 덮쳐드는 순간이었다.

“위험하오!”

이검엽은 힘껏 소리쳤다.

아울러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옆에서 주먹만한 돌을 집어던졌다.

휘익_______!

팍!

그것은 곧바로 천지곤룡에게 적중했다.

그까짓 것쯤은 천지곤룡에 있어 아무런 충격도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천지곤룡은 대노하여 길길이 날뛰었다.

크아악!

또한 그 노성은 방해자인 이검엽에게 쏘아짐은 당연한 결과였다.

크르르...!

천지곤룡은 거대한 입을 딱 벌려 이검염을 급습했다.

“야_______ 앗!”

순간 여인의 교갈일성이 쏘아졌다.

쐐_______ 액!

그녀의 우수(右手)는 휘황한 금광(金光)을 폭사시켯다.

푸_______ 욱!

천지곤룡의 턱밑에는 여인의 금차(金叉)가 격중되었다.

캐_______ 엑!

처절한 비명과 함께 천지곤룡의 거구가 거꾸러졌다.

약 반 자(半尺)가 조금 넘는 금차였으나 그것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휴_______ 우!”

이검엽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으... 음!”

쿠_______ 웅!

여인의 교구 또한 허물어지듯 옆으로 넘어갔다.

“소저!”

이검엽은 대경하여 급히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자색궁장(紫色宮裝)의 여인,

“소저,... 정신... 헛!”

그녀를 부축하려던 이검엽은 그만 아찔해지고 말았다.

그의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져 있었다.

미(美)의 극치!

환상 속에서 천상의 선녀를 대하는 것인가?

도대체 인세의 속인(俗人)인가? 천상의 우물(尤物)인가?

이검엽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니, 그는 충격을 받은 듯 몸을 떨고 있었다.

경국지색(傾國之色).

화용월태(花容月態).

천하미색(天下美色).

이러한 미사여구가 그는 도저히 이 여인에게 근접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정녕 만 여인 중 하나 있을까말까한 아름다움이요,

수백 년에 하나 날까말까한 천향국색(天香國色)의 미모.

힘없이 내리 감겨진 두눈,

창백하기 그지없는 안색,

이러한 극한 상황들조차 그녀의 미(美)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못했다.

(아... 아름답다... 천하에 이런 미녀가 있었다니...)

이검엽은 꿈꾸듯 몽롱한 시선으로 여인을 응시했다.

그는 그 여인에게라면 자신의 그 무엇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설사 자신의 목숨일지라도...

천하를 향한 응심도 그녀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검엽은 마치 억겁의 세월을 치른 것만 같았다.

서늘한 산풍(山風).

그의 뇌리는 맑아지고 있었다.

하나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내가 이 무슨 추태를...”

입으로 내뱉는 언어,

이것은 단지 이성(理性)일 뿐, 여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처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로서는 이미 인정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여인과의 극히 짧은 대면이 자신의 생애를 뒤엎어 형극의 길을 달리게 할 줄은...!

이검엽은 애써 담담히 여인을 바로 뉘였다.

새털같이 가벼운 여인의 몸,

뭉클한 감촉에 그는 전율했다.

하지만 이검엽은 강한 자제력과 이성으로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우선 여인의 옷깃을 느슨히 풀어주었다.

(독기에 당했군... 천지곤룡의 천지빙염독기(天地氷焰毒氣)에 당했으리라...)

그의 안색은 침중하게 변했다.

(천지빙염독기는 음양지기를 지닌 독으로 천년학홍정(千年鶴紅精)이 있어야 해독할 수 있는데...)

그러나 문득 그의 두눈이 재차 크게 떠졌다.

스스슥...!

여인의 전신에 신비로운 서기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 서기가 짙어 갈수록 점차 여인은 혈색을 되찾는 것이었다.

(천지빙염독기를 자력(自力)으로 치료하다니...!)

이검엽은 마치 자신이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여인은 세속의 여인이 아니란 말인가?)

자색의 궁장은 되찾아가는 그녀의 혈색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발그스름해진 여인의 얼굴,

하여간 너무나 곱구나...

이검엽의 시선은 다시금 몽롱해졌다.

그때였다.

“으... 음!”

그녀의 속눈썹이 무겁게 들렸다.

이어 그녀는 힘없이 동공을 열었다.

“소저, 괜찮소?”

어찌 되었던 이검엽은 반색을 했다.

여인의 시선이 잠시 무심하게 이검엽을 응시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다소 놀란 듯 되물었다.

“공... 공자께서는 ... 풍림... 소축의...?”

“소생을 알고 계시었소?”

이검엽이 흠칫하자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데... 그보다... 독기를 한쪽으로 몰아넣었... 으나... 반각이내에...”

그녀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점차 작아져 갔다.

“천... 천풍... 제독산(天風制毒散)을 복용해야...”

툭!

여인의 고개가 다시 떨어졌다.

“소저!”

이검엽이 다가드는 순간,

스스스...!

여인의 전신은 다시 서기로 휩싸였다.

“큰일이다... 천풍제독산을 구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텐데...”

이검엽은 걱정이 앞서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우선 풍림소축으로,...!”

한데 바로 그 순간,

크르르...!

그의 등뒤로부터 가래가 끓는 듯한 괴성이 일었다.

“헉!”

뒤돌아선 이검엽은 대경실색했다.

천지곤룡!

그 괴물이 목에 금차가 꽂힌 그대로 자신에게 덤벼드는 것이 아닌가?

놈은 두 앞발을 겨냥한 채 상체를 일으켜 이검엽을 노렸다.

크악!

천지곤룡의 두 발은 이검엽의 양허리에 정확히 예리한 발톱을 꽂았다.

“으...”

천지곤룡의 발톱은 대뜸 그의 내장을 부숴뜨리고 있었다.

“크... 으... 이... 이놈의 미물이...”

이검엽은 사력을 다해 천지곤룡의 목을 움켜 쥐었다.

하나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천지곤룡은 입을 딱 벌리며 무섭게 그의 머리를 물어 뜯으려 했다.

이검엽은 허리께가 부서지는 고통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순간 그는 천지곤룡의 목에 박힌 금차를 보았다.

“크... 네놈에게 죽을 수야...”

그는 힘껏 금차를 머리로 들이 받았다.

퍽!

카오! 카르르,...

천지곤룡은 금차가 깊숙이 박히자 발광을 했다.

“죽이리라!”

이검엽은 다시 금차를 들이 받았다.

콸콸...

금차가 박힌 천지곤룡의 목에서 선혈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검엽은 덕분에 시뻘건 선혈을 뒤집어 썼다.

그 와중에도 그는 전신이 따끔거리는 감촉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윽고 이검엽의 옆구리를 움켜쥔 천지곤룡의 발에서 점차 힘이 빠졌다.

“흠. 네깐 놈이...”

이검엽은 잠시 숨을 돌렸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헉!”

카르르!

천지곤룡의 쩍 벌린 입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최후의 발악이었다.

“크으!”

이검엽의 허리는 뒤로 꺾이고 팔마저 구부러졌다.

“그러면!”

이검엽은 마지막 용기를 다해 가슴으로 금차를 들이받았다.

아울러 그는 천지곤룡을 꽉 끌어안은 채 피할 여유를 허락치 않았다.

크_______ 악!

천지곤룡의 단말마인가?

“악!”

헌데 이검엽은 자신의 얼굴에 부어지는 뜨겁고 찬기운에 비명을 질럿다.

그 순간 벌어진 그의 입속에서 천지곤룡의 구토물이 왈칵 들어왔다.

무엇인가 둥근 물체였다.

“아_______ 악!”

이검엽은 재차 비명을 터뜨렸다.

둥근 것이 체내에 들어가자 그는 느닷없이 고통에 휘말린 것이었다.

속은 타는 듯한 반면, 겉은 얼어붙는 듯한 극심한 고통!

이검엽은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푹!

천지곤룡의 목도 그 순간 꺾였다.

일인일수(一人一獸).

그들은 모두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까마득한 단애 밑이었다.

우르르르_______

콰_______ 릉!

이검엽은 천지곤룡의 시체와 함께 정신마저 잃은 채 깊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고만 것이었다.

히힝_______

흑풍이 다급히 달려왔다.

하나 절벽 위에 남은 것이라곤 축 늘어진 여인 뿐.

푸르르...

흑풍은 슬프게 우짖으며 단애 밑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백운이 걸린 까마득한 낭떠러지... 무엇이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두두두...

흑풍은 체념을 했는지 급급히 달려갔다.

 

풍림소축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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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六 章

 

              敗北

 

 

 

사실,

임보산으로서는 황군성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오직 황군성에게 임단심의 소식을 전하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그를 데려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은 꼬여버렸다.

겨우겨우 어떻게 해서 황군성의 종적을 찾아 동정호까지 온 그가 만난 사람은 뜻밖에도,

옛날 그의 가장 강력한 적수중의 하나였던 육천태였다.

임보산은 황군성이 그곳에 있다는 확증을 갖고 왔었다.

한데,

그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육천태는 완강하게 부인했다.

황군성은 이미 떠났다는 것이었다.

육천태로서는 자기의 방에 있을 진우란에 대한 근심도 되었던 것이다.

육천태와 진우란의 아버지 진섭천은 임보산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언제라도 그의 무공을 따라잡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들 두 사람일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던 임보산이다.

진우란이 진섭천의 딸임을 알게 되면 그와 악감정이 많은 임보산이 결코 그냥두지 않을 것이다.

육천태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임보산은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한시가 급한 실정인데 뻔한 사실을 육천태가 잡아떼자 참을 수 없어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임보산은 확실히 임보산,

일백오십 년 만의 결투임에도 육천태는 더욱 현저해진 그와의 무공차이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진우란은 고금십대천병 중의 두 가지를 사용하는 바람에 그녀가 진섭천의 딸이라는 사실만을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임보산으로서는 자신의 일을 방해했던 그 두 사람을 죽여버릴 작정이었는데 황군성이 막았으니 화가 하늘끝까지 닿을 정도로 치밀은 상태였다.

또한,

자신의 딸이 남편이라고 한 황군성이 다른 여자, 그것도 진섭천의 딸을 보호하려고 하자 그 분노는 극에 달한 것이다.

게다가,

황군성의 무공,

황군성이 자신의 신주독존공을 정면에서 맞받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긁었다.

지금 이순간,

그는 딸이고 뭐고 없었다.

오직 황군성과 적으로서 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평생동안 절대 패하지 않고 오직 승리만을 거듭해온 무제 임보산,

하늘도 오시할 수 있는 그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음에야‥‥‥

 

공격은 황군성이 먼저 시작했다.

그의 양손이 임보산을 향하는 순간에 천지를 뒤집을 듯한 기운이 그를 향해 밀려갔다.

우르르‥‥‥

은은한 뇌성이 들리고,

임보산의 하늘을 가리키고 있던 손이 내려졌다.

번쩍!

황군성의 손에서 발출된 장력이 뇌성이라면 그의 손끝에서 발출된 것은 뇌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대한 빛무더기가 황군성의 장력을 뚫고 그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순간,

[이얍! 철인검!]

슈콰󰠏󰠏󰠏󰠏󰠏!

그의 등에서 솟아오른 사척반의 장검이 손에 쥐어지고,

검은 빛을 꿰뚫듯이 찔러갔다.

 

진우란의 눈에는 시간이 멎어버렸다.

모든 것이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인양 아득했다.

황군성의 몸이 하늘로 비상해 오르는 것도,

어느 틈에 공간을 좁힌 임보산이 그의 가슴에 일장을 가하는 것도‥‥‥

그리고,

검을 놓친 황군성의 오른 손에서 한줄기 백광이 치솟으며 임보산을 아래에서 부터 위로 베는 것도‥‥‥

 

콰콰쾅󰠏󰠏󰠏󰠏󰠏󰠏!

황군성의 몸이 실끊어진 연처럼 수십 장위의 공중에서 부터 맴돌며 추락했다.

입으로는 가는 핏줄기를 뿜고 있었다.

잘라진 임보산의 옷자락이 그의 곁으로 날아들고,

임보산은 길게 베어져 펄럭이는 옷차림으로 천신처럼 천천히 하강하고 있었다.

휘익!

한줄기 흰 그림자가 허공을 스치며 황군성을 안고 날아 내렸다.

진우란이었다.

임보산은 그녀에게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그녀의 품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황군성을 노려보면서 자르듯이 내뱉었다.

[본 무제의 몸에 손을 댄 자는 지난 이백사십 년 동안 아무도 없었다. 응당 죽여야겠으나 그 무공이 아까워서 살려준다. 하나, 네 놈은 내 딸의 일생을 망쳤으니 그 아이가 죽거나 네놈이 한번 이라도 그 아이를 본다면 눈을 뽑아서 가장 처참한 방법으로 죽이겠다.]

임보산의 몸이 신선처럼 허공으로 너울너울 떠올랐다.

그리고 밝아오는 동녘 하늘로 까마득히 사라져갔다.

 

[그 아이를 내려놓아라.]

갑자기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의기소침한 음성이 진우란의 멍한 정신을 일깨웠다.

육천태가 낙담한 표정으로 그녀앞에 서있었다.

진우란의 얼굴이 꽃처럼 확 피어났다.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

육천태가 고개를 푹 수그리면서 말했다.

[휴! 내가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도 나를 죽이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 아! 임보산‥‥‥]

또다시 임보산이란 벽을 넘지 못한데 대한 어떤 비애같은 것이 육천태에게는 느껴졌다.

진우란은 황군성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이사람이 살 수 있겠어요?]

육천태가 품속에서 납작하면서도 큰 푸른 옥병을 꺼내며 말했다.

[내가 살았는데 나보다 강한 이아이가 어찌 죽겠느냐?]

진우란은 육천태가 황군성더러 자기보다 강하다고 하자 얼굴에 기쁜 기색을 떠올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보다 강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그녀로서는 하나의 기쁨인 것이다.

[쌍두금구의 정혈을 이녀석이 제일 먼저 시식해보는구나.]

육천태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옥병의 마개가 열리고,

똑!

오직 한방울의 붉은 핏방울이 황군성의 입안에 떨어졌다.

 

옥병안에 든 쌍두귀갑의 정혈(精血)!

이것은 육천태가 쌍두귀갑을 잡은 후에 그 피를 모조리 뽑아서 금막대로 저어서 굳어지지 않게 한 다음,

여러가지 약물을 이용해서 수분을 증발시키고 오직 한병만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천하에서 제일가는 영약이라고 할 수 있으니,

공청석유보다도 구엽자지초나 천년삼왕보다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화색이 돌아요.]

진우란이 기뻐소리쳤다.

과연 황군성의 백지장처럼 창백하던 얼굴이 점점 붉으스레 해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뜨거운 열이 발산되었다.

양기(陽氣)로 가득찬 쌍두금구의 정혈이 내는 힘이었다.

한바탕 물에 젖은 듯이 땀을 흘리고 난 황군성은 눈을 떴다.

[진매! 무사했구려.]

진우란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챙기는 황군성의 정성에 감동되어 눈물을 왈칵쏟았다.

육천태가 그의 이마를 눌러 눕히면서 말했다.

[무리하지 말아라. 가슴의 상처를 한번 보자구나.]

훌렁!

황군성의 옷자락이 젓혀졌다.

옷안에 입고 있었던 철갑대망의 붉은 철갑옷이 나타났다.

[앗!]

진우란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육천태도 침음성을 흘렸다.

[음‥‥‥이럴 수가‥‥‥]

무제 임보산의 일장을 맞았던 황군성의 가슴,

그곳에는 완연한 손바닥이 새겨져 있었다.

임보산의 손이 닿은 부분의 철갑은 이미 도려낸 듯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황군성의 가슴에 문신처럼 손자국에 박혀버린 것이다.

철갑이 황군성의 가슴에 붙어버렸다.

그렇지만 황군성의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같았다.

육천태가 그의 맥문을 쥐어보고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네 공력이 너를 살렸다. 반발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더라면 네 가슴에 손자국이 새겨진 것이 아니라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임보산의 신주독존공에 필적할 만한 무공이 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구나.]

황군성이 일어서서 옷을 걸치며 물었다.

[육노선배님! 그 사람은 대체 누굽니까?]

[천하제일인, 당금의 천하제일인 무제 임보산. 아니 어쩌면 고금제일인일지도 모르지.]

육천태가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등이 유난히도 초라해 보였다.

[천하제일인‥‥‥?]

황군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진우란이 그의 곁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이름은 아무나 알고 있는 이름이 아니에요. 무림에서도 진짜 강자만 알고 있는 것이죠. 실상 입에 담는 것조차 함부로 할 수 없어요.]

[진매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황군성이 말했다.

진우란이 그의 손을 잡으며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말씀해 주셨죠.]

황군성은 육천태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도무지 나만 모르고 있는 것같아. 심지어 진매마저도 나는 알 수가 없어.]

진우란은 가슴이 섬찟해옴을 느꼈다.

그에게 그녀는 모든 것을 숨겼던 것이다.

황군성의 말에서 어떤 두려움같은 것을 그녀는 느꼈다.

그녀가 멈칫하는 사이 황군성은 육천태의 뒤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내 내가‥‥‥너무‥‥‥저 저사람은‥‥‥]

진우란은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떨리는 목소리로 몇 마디 중얼거린 후 황군성의 뒤를 쫓아갔다.

 

× × ×

 

객점,

창가에 자리잡은 육천태와 황군성, 진우란은 말없이 묵묵히 있었다.

쪼르르‥‥‥

육천태가 스스로 잔을 채워 마셨다.

탁!

술잔을 내려놓고 육천태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가?]

황군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는 아무래도 황산으로 가야겠습니다. 육노선배님께선‥‥‥]

[황산? 취옥성에 갈 모양이로군.]

육천태가 고개를 들어 반문하며 말했다.

진우란의 안색이 변했다.

[안돼요. 그 홍심련인가 하는 단체의 말을 믿을 수는 없어요. 그들은 어떤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황군성이 눈을 빛냈다.

[나로서는 그들이나 진매나 모르기는 매한가지요.]

진우란이 파랗게 질렸다.

처음에,

황군성은 그녀를 일개 농사군의 딸로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어떤 기인의 딸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한데,

그녀가 가공할 무공을 펼치는 것을 마침내 목격했던 것이다.

황군성의 그녀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지만 그의 이성(理性)이 그녀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아직도 자기가 모르는 어떤 비밀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불신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갑자기 불신받는 다는 것.

더우기 여자로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진우란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가 자초한 일이야‥‥‥속였으니까‥‥‥하지만 내게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었는데 어떻게 나를 밝힐 수 있어‥‥‥?)

그녀는 사신각을 공격하게끔 황군성을 사주한 홍심련이란 단체에 강한 적개심을 일으켰다.

그들만 아니었다면 당당히 자신을 밝히고 황군성과 가까워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입술을 꼭 악다물었다.

(그들을 죽여버리겠어.)

진우란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없이 객점의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황군성은 그녀를 보고도 잡지 않았다.

진우란은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속좁은 남자‥‥‥나하나를 감싸주지 못하고‥‥‥)

진우란이 나가고 나자 육천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에게 약점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

[실망일세. 자네가 찾아다닌다는 임단심인가 하는 소저도 스스로 자네를 떠났다고 하지 않았는가? 결국 자네는 진소저마저 떠나보내는 군. 그녀에게도 어떤 말못할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황군성은 고개를 푹수그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숨기면서도 가장 가까운 척하는 사람을 용납할 수 없다는 심정이었다.

[잘해보게. 나는 산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을 생각이네.]

육천태도 잔을 놓고 일어섰다.

황군성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육천태에 대해서 원망과 반감을 느꼈다.

그는 꿈적도 않고 앉아있고,

육천태는 휘적휘적 객점밖으로 걸어 나갔다.

황군성의 귓속으로 한줄기 전음이 파고들었다.

[한가지만 알려주겠네. 임보산의 몸은 금강신(金剛身)이라네.]

황군성은 정신이 펏득 들었다.

그제서야 이해되지 않던 의문이 확연히 풀렸다.

그는 임보산과의 대결에서 일장을 맞았지만 자신도 임보산의 몸을 아래에서 위로 번천도로 베었다.

한데,

임보산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던 것이다.

고금십대천병의 하나인 번천도에 베이고서도‥‥‥

그것을 황군성은 줄곧 괴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임보산의 몸이 역시 고금십대천병의 하나인 금강신이라면 능히 그러리난 생각이 들은 것이다.

 

금강신은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것으로도 죽일 수 없는 몸인 것이다.

금강신을 가진 자가 단 한가지의 무공만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그자는 다른 사람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고 동패구사의 방법으로 공격한다면 기필코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은 죽지 않는데 상대방은 죽게 되니까.

또한,

금강신을 지니게 되면 그때부터 몸은 늙지도 않게된다.

임보산의 몸이 바로 이 금강신이었던 것이다.

 

육천태도 떠나갔다.

진우란과 육천태가 자신의 곁을 떠나가 버리자 황군성은 천지에 오직 혼자만이 남은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황산으로 가자‥‥‥그들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취옥성을 뒤져봐야 겠다.]

그는 나직이 뇌까리고 객점을 나서 북으로 방향을 잡았다.

황산은 동정호에서 북방으로 가야한다.

 

× × ×

 

어두운 밤,

달이 떠려면 아직 멀었다.

갖가지 풀벌레 소리와 밤새소리가 들리고 있는 숲속,

관제묘(關帝廟),

지붕위에 어둠의 화신인듯한 그림자가 하나 우뚝서있다.

전신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손마저 드러내지 않고 있는 자,

그리고,

그의 옆에는 고양이 보다 조금 큰 검은 표범이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표범이 낮은 소리로 그르렁거렸다.

그리고,

휙휙!

휙휙휙!

흑의에 검은 복면을 한 예닐곱명의 인물이 관제묘로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헉!]

그들 중의 하나가 지붕위에 우뚝선 그림자를 보더니 짧은 경악성을 터뜨렸다.

표범의 눈동자가 불꽃처럼 보였다.

그자는 무릎을 꿇으며 낮게 소리쳤다.

[신께 충성을!]

다른 자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신께 충성을!]

지붕위의 검은 그림자가 그들앞에 내려섰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안광을 내뿜으며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애매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본 사신각은 다시 활동한다!!]

흑의인들이 머리를 납작 숙였다.

사신각‥‥‥

이들은 사신각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모든 고수들을 안경(安慶)에 집결시켜라. 그리고, 홍심련이란 단체를 찾아내고 흔적도 없이 말살하라. 그들이 누구든 상관없다. 풀한포기 남기지 말고‥‥‥]

쿵!

일곱 명의 흑의인이 땅에 머리를 찧었다.

[이번 일에 대한 전권을 너희 칠대살객에게 맞기겠다. 실패했을 경우 너희들의 목숨으로 책임을 묻겠다.]

검은 그림자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는 몇 가지의 부수적인 명령을 내린 후에 차갑게 내뱉었다.

[떠나라!]

흑의인들은 기척도 없이 사라져갔다.

검은 그림자가 표범을 안으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틀림없이 안경에 근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에게 그처럼 빨리 정보를 주진 못했을 것이다. 철저하게‥‥‥아주 철저하게 돌려주마. 홍심련‥‥‥]

표범을 거느린 검은 그림자‥‥‥

이는 누구인가?

표범은 동정호변의 수신묘에도 나타난 적이 있는데‥‥‥

바로 사신(死神)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사신 진섭천의 뒤를 이어 새로운 사신이 되었던 진우란 바로 그녀‥‥‥

혈풍은 예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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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五 章

 

            무제 임보산과의 決鬪

 

 

어두운 수중 동굴,

반평도 채 되지 않을 그곳에 갑자기 두개의 불이 나타났다.

아니 그것은 불이 아니었다.

바로 빛나는 인간의 눈이었다.

야수의 그것인 양 빛나는 눈을 가진 사람은 황군성이다.

그가 마침내 자신을 새롭게 하고 눈을 떤 것이다.

[이제 목계신공을 중심으로 철인검과 번천도, 그리고 그밖의 무공들을 모두 일직선상에 놓았다. 이로써 나의 무공은 새로운 경지로 접어든 것이다.]

황군성은 감개가 무량한 듯 입을 열었다.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그 무공은 얼마나 깊어진 것일까?

하나만 익혀도 천하제일을 넘볼 수 있는 무공들‥‥‥

황군성은 지금 어떤 자신감이나 호승심같은 것도 있지 않았다.

목계신공을 익힌 그는 모든 것이 담담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야 진정한 자기를 찾은 것같았다.

더 이상의 혼란도 방황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몸이 미꾸라지 처럼 움직이며 동굴을 빠져 나왔다.

수초들이 머리에 묻었다.

그는 말굽처럼 생긴 좁은 동굴을 빠져나와 큰 동굴로 나왔다.

그리고,

스스스슷!

수면을 미끄러지며 밖으로 나왔을 때는 안개가 자욱한 새벽이었다.

차앗!

그의 몸은 물에서 비상하여 날아올랐다.

까마득히‥‥‥

 

× × ×

 

괴노 육천태는 이글거리는 분노를 담고 임보산을 노려보았다.

[임형! 내게 없는 사람을 내놓으라니 어디 말이나 되오?]

[하하하하‥‥‥!]

임보산은 낭낭한 웃음을 터뜨렸다.

[천하의 기인 육천태, 육형이 언제부터 거짓말장이가 되었는가? 대체 육형은 그놈과 어떤 관계요?]

부드러운 음성,

중후한 얼굴‥‥‥

사람의 마음을 사라잡는 엷은 웃음‥‥‥

이 모든 것을 갖춘 천하제일인 임보산은 육천태를 부드럽게 핍박하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인시(寅時),

벌써 한시진 동안 육천태와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무엇이든 자기 기분대로 하는 임보산도 괴노 육천태에 대해서는 마구잡이로 대하지는 못했다.

육천태와 자기가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큰 차이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임보산이 무림에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육천태가 천하제일인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육천태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그와는 단지 면식이 있는 사이일 뿐이오. 무슨 이유에서 임형이 그를 찾는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오. 이미 이곳을 떠났으니까.]

임보산이 코웃음을 쳤다.

[그럼 저 방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요. 내가 과문한 탓인지 육형이 제자를 두었다는 소식은 듣지도 못했는데.]

[임형과 상관없는 사람이오. 오늘은 임형을 손님으로 맞을 수 없으니 용서하시오.]

순간,

[하하하하‥‥‥!]

하늘을 돌리고 땅을 뒤집어 엎을 듯한 광소가 터져 나왔다.

육천태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과연 무제(武帝)‥‥‥)

임보산이 웃음을 뚝 그치고 형형한 눈초리로 말했다.

[육천태! 무슨 이유로 감히 나와 맞서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나를 자극하지 마라. 너를 해치고 싶지는 않다.]

육천태의 이마에 푸른 핏줄이 꿈틀거렸다.

[임보산! 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군. 일백오십 년 전에 한번 이겼다고 해서 지금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두 사람의 말이 거칠어졌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던 임보산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사라진지 오래다.

슈우우우‥‥‥

그의 주변에서 기류가 변하고 있었다.

그가 공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육천태의 몸 주변에서도 바람이 잠들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드드드득‥‥‥

임보산의 몸에서 몰아치는 기류로 말미암의 어부의 집이 흔들리고 있었다.

휙휙!

지붕이 뜯어지고 있었다.

우우웅‥‥‥

기류를 타고 흙과 자갈이 날아올랐다.

마치 임보산을 둘러싸고 하나의 거대한 용권풍이 형성되는 것같았다.

사방이 모두 임보산의 몸 주변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육천태의 몸 주위 이장 이내에서는 바람한 점 일지 않고 고요했다.

두 사람은 엄청난 대비를 보이고 있었다.

드드득!

쿵!

담장이 쓰러졌다.

사람들이 임보산이 등장한 이후 모두 도망쳐 버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화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임보산의 몸에서 일어난 용권풍은 점점 그 세력권을 넓혀갔다.

용권풍은 어떤 무공도 아니었다.

오직 그가 자신의 내공을 끌어올리는 데 따라서 일어난 하나의 현상일 뿐이었다.

급기야 육천태의 뒤에 있던 조그만 별채의 지붕도 날아올랐다.

육천태의 몸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가 있는 이장 주위만이 고요하다.

그 밖에는 이미 임보산의 세력권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있는 곳은 마치 망망대해 중에 있는 한점의 섬과 같았다.

육천태의 두 손은 눈앞에 있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스다듬는 듯한 자세가 되어있었다.

임보산은 육천태 이외에 어떤 힘이 자기에게 저항하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은 바로 육천태의 뒤에 있는 지붕이 날아가고 벽이 막 넘어갈듯말듯한 곳으로 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슈욱󰠏󰠏󰠏󰠏󰠏󰠏!

갑자기 공간을 가득 메우던 모든 긴장이 사라져 버린 것같았다.

육천태의 고함이 허공을 갈랐다.

[멈춰라!]

그의 손가락에서 흔적도 없고 소리도 없으면서 빛처럼 빠른 열 줄기 힘이 뻗어나갔다.

임보산의 몸은 깨어진 유리처럼 흩어져 버렸다.

육천태의 손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고,

[음‥‥‥!]

쿵!쿵!

그는 강맹한 힘에 의해 뒤로 두걸음이나 물러났다.

발자국이 세치깊이로 선명하게 찍혔다.

임보산은 육천태의 뒤쪽에 있는 별채를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덮쳐가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임보산의 몸이 허공중에 그대로 딱 정지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옆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땅으로 내려섰다.

그 각도가 마치 칼로 자른듯 깨끗했다.

[진섭천!]

임보산의 입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투두둑!

툭! 쿵!

임보산의 힘에 의해 하늘로 말려올라갔던 돌멩이와 바위 등이 떨어져 내렸다.

임보산의 안색이 분노로 인해 파랗게 굳어졌다.

[육천태, 네가 진섭천마저 불러서 나를 상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미 수치심마저 잃어버린 모양이구나.]

육천태는 아무 대답없이 묵묵히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쿵!

별채의 벽을 밀어뜨리며 손에 작고 괴상한 북을 든 소녀가 나왔다.

바로 진우란이었다.

임보산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진우란이 웃을듯 말듯한 표정을 지으며 임보산에게 물었다.

[육노선배가 진섭천과 손을 잡으면 왜 수치스럽지요? 힘으로 억지로 남을 핍박하는 것은 수치스럽지 않구요?]

임보산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말을 막하는 막돼먹은 계집애로군. 무공으로 보아하니 진섭천의 자식인 듯한데 그가 내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단 말인가?]

[막돼먹은 계집애지만 어찌 당금의 천하제일인 무제 임보산을 몰라보겠어요? 선친께서 만나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제일 주의를 준 분이시기도 한데‥‥‥]

[마침내 진섭천이 죽은 모양이군!]

임보산은 잘죽었다는 듯이 말했다.

진우란이 진섭천을 가리켜 선친(先親)이라고 하자 그가 죽었음을 안 것이다.

그가 칼날같은 눈빛으로 진우란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놈과 함께 다닌다는 계집이 바로 너였던 모양이군. 육천태!]

육천태가 그에게로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첫번째 격돌에서 그는 두걸음이나 밀렸다.

진우란과 협공이라도 하지 않고는 임보산을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래도 그놈이 여기를 떠났다고 할 것인가? 계집을 놓아두고?]

육천태가 싸늘한 음성으로 쏘아부쳤다.

[당신도 그러지 않았소?]

임보산의 입이 실룩거렸다.

그의 몸에서 살기가 피어오르며 주위에 있는 사람을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여자가 많이 따랐던 임보산은 실제로 여자에게 정을 주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이 그에게 짐짝처럼 버려지고 했던 것인데 육천태는 바로 그것을 비웃는 것이었다.

임보산이 중얼거렸다.

[육천태! 아무래도 오늘로 더 살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요즘은 별로 살인을 하지 않았는데 네 피를 구경해야 겠군.]

나지막하게 높낮이 없는 말로 내뱉는 임보산.

그러나‥‥‥

육천태는 그의 그런 태도에서 반드시 자기를 죽이고 말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임보산‥‥‥

하늘이 내린 최고의 무인,

무림의 일각에서는 삼불혼이란 신적인 존재로 떠받들어지기도 하는 인물‥‥‥

무림에서 그의 말은 법이나 마찬가지다.

[저승길 외롭지 않게 저 계집애와 함께 죽여주마.]

임보산이 오른 손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오직 검지 하나만이 하늘중간을 가리킬 뿐,

조금 전과는 달리 어떤 기운도 뿜어지지 않았다.

육천태가 침중한 어조로 내뱉었다.

[신주독존공(神州獨尊功)‥‥‥]

진우란의 안색이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창백하게 변했다.

 

신주독존공,

 

임보산이 천하의 무학을 오시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그의 독문절학이 아닌가?

이 신주독존공이야 말로 임보산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니‥‥‥

임보산을 무(武)의 제왕, 무제(武帝)로 만들어준 신주독존공‥‥‥

임보산의 손이 마치 달을 가리키듯하며 육천태를 가리켰다.

순간,

번쩍!

벼락이 치는듯이 섬광이 번쩍이고,

육천태의 몸은 십여장이나 나가 떨어졌다.

쿵!

[차앗!]

진우란이 손목을 흔들면서 북을 쳤다.

둥둥둥둥둥둥󰠏󰠏󰠏󰠏󰠏󰠏󰠏!

임보산의 몸이 잠시 흔들했다.

[지멸고와 섬전사! 그것으로 나를 이기기엔 부족하지.]

그의 손가락은 어느새 진우란을 가리키고 있었다.

촤아악!

진우란의 손에서 발출된 섬전사가 임보산의 몸에 이르기도 전에 튕겨났다.

번쩍!

폭발하는 듯한 빛이 진우란의 몸을 향해 쏘아지고,

팡!

진우란은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 경악하며 뒤로 날아갔다.

둥󰠏󰠏󰠏󰠏󰠏󰠏!

북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임보산이 발출한 힘을 진우란은 가까스로 지멸고로 막았던 것이다.

임보산이 상체를 휘청했다.

무형의 기운을 빨아들여 반탄시키는 힘을 가진 지멸고에서 반탄되어 나온 힘이 그를 밀어젓힌 때문이다.

지멸고‥‥‥

섬전사‥‥‥

이 두가지 모두 고금십대천병 중에 속하는 것들이다.

한데,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고금십대천병의 두가지를 맞아서도 간단하게 물리쳐버린 임보산의 신위.

그것은 그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십 여 장을 날아간 진우란은 가까스로 땅에 내려섰다.

그녀의 얼굴은 경악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임보산이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명이 길군. 그것도 이제 끝이겠지만‥‥‥]

진우란은 자신을 향해 방향을 잡는 임보산의 손끝을 보면서 화석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임보산같은 자가 지멸고를 다시 사용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번쩍!

그녀를 폭발시켜 버릴 것같은 빛이 몰려왔다.

그녀는 눈을 감고 말았다.

팡!

지멸고가 신주독존공을 빨아들여 반탄시키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은 충격을 받고 두 발로 땅바닥에 금을 그으면서 십여장이나 밀려났다.

한데,

바로 그순간,

임보산의 손에서 두번째의 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빛은 반탄되어 오는 힘의 방향을 되돌리며 더욱 강한 힘으로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지멸고로는 막을 수 없다!)

진우란은 죽음을 눈앞에 떠올렸다.

지멸고는 강한 힘을 한번 발휘한 후에는 잠시 지나서야 다시 위력을 발위할 수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진우란의 머리속에 황군성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바로 그순간이었다.

그녀의 앞에서 측량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서로 맞부딪히는 것을 느낀 것은‥‥‥.

 

파파파파팍󰠏󰠏󰠏󰠏󰠏󰠏!

 

엄청난 충돌이 있고,

그 다음에는 쥐죽은 듯한 고요가 찾아왔다.

진우란은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눈에 커다란 사람의 등이 보였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음‥‥‥신주독존공에 맞설 수 있는 무공이 있다니 놀라운 걸. 네가 바로 황군성인가?]

임보산이 경악을 억누르며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타난 사람은 황군성이었다.

그는 동굴을 나와서 달려오다가 진우란의 위기를 발견하고 끼어든 것이다.

황군성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정말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진우란을 죽이려고 한 자라고 만 생각할 따름이었다.

한데,

임보산이 자신을 보자마자 알아보는 듯하니 어느 정도 놀랐다.

또한,

자기는 불과 몇 각 전에 목계신공을 중심으로 자신의 무공을 모두 재편성했는데,

동굴을 나오자 마자 전력을 다한 목계신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는 사람을 만나자 그의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그의 분노만큼 크지는 않았다.

폐허로 변해버린 어부의 집,

한쪽에 쓰러져 있는 육천태‥‥‥

황군성은 임보산의 물음에 대답할 게재가 아니었다.

가슴속을 태워버릴 것같은 분노를 물같이 고요하게 조절하면서,

상대를 향한 불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에서는 어떤 기도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한조각의 생명없는 돌이나 같았다.

임보산의 놀라움은 상당했다.

자신이 찾아다니던 황군성으로 보이는 청년의 무공이 자신에 비해 그다지 쳐지는 느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가 보기에 황군성은 어떤 강렬한 패기를 물처럼 잔잔한 가운데 숨기고 있었다.

임보산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의 일생일대의 최고 적수를 만났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손가락으로 하늘의 중앙을 가리켰다.

그의 표정은 어느때보다 신중했다.

또한 황군성의 표정도 마치 깎아놓은 목상처럼 변화가 없다.

어떤 기운도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그들의 주변에는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정신적이 힘이 형성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춰지는 듯했다.

진우란은 도저히 황군성의 뒤에 서있을 수가 없어서 비척비척물러섰다.

폭풍이 휘몰아치기 전의 질식할 듯한 고요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황군성의 어깨에 매달린 사척반의 장검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황군성은 자신의 힘이 점점 정점을 향해 상승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러한 힘은,

최고에 달했다가 다시 하강하게 될 것이다.

공격의 시점은 최고에 달한 바로 그 순간이다.

그때 비록 상대방 역시 최고에 달했다고 하더라도 놓칠 수 없다.

한번 실기(失機)하면 다시 힘을 최고로 모으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든다.

공격해야 할 때 공격하지 못하면,

오히려 상대방의 공격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 힘이 논리인 것이다.

황군성에게 느낌이 왔다.

(지금이다!)

그의 양손이 임보산을 향해 펼쳐졌다.

번쩍!

임보산의 눈에서 뇌전같은 빛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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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四 章

 

           玄玄宮

 

 

 

미청년,

아니 미소녀 전연옥은 부덜부덜떨리는 몸으로 힘겹게 숲속을 헤맸다.

한데,

분명히 떨어져 있어야 할 황군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누가‥‥‥구해갔단 말인가‥‥‥?]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몸을 이끌고 몇 번이나 주위를 살폈는데도 황군우는 감쪽같이 종적을 감춰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땅에 떨어진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으‥‥‥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놈의 공력은 기이하기 짝이 없어.]

전연옥은 쏟아지는 비를 맞는 것도 견딜 수가 없어 나무의 밑동에 바싹 다가앉았다.

나뭇잎이 어느 정도 비를 막아주기는 하나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밖으로는 한없이 춥고 안으로는 불이 치미는 것같은 괴이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황군우의 음양합일신공을 정면으로 맞받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전연옥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으로 한기와 열기를 몰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경악하고 말았다.

(이런‥‥‥어느 것도 몰아낼 수 없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심하게 땀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그녀의 전신은 한기로 인해 부들부들떨고 있는데,

그녀의 내공을 모두 일으켜도 한기와 열기를 몰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한기를 몰아내려고 하면 열기가 강해진다‥‥‥열기를 몰아내려면 한기가 강해진다.)

닥닥닥‥‥‥닥닥‥‥‥

그녀는 이빨을 마주치며 떨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이 추운지 더운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오직 전신이 못견디게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가부좌를 튼 그녀의 몸이 사시나무 처럼 떨린다.

어느 한 순간,

[으아아아‥‥‥!]

도저히 고통을 참지못하고 그녀는 미친듯이 소리치며 빗물속을 뒹굴었다.

쏴아아아‥‥‥!

어둠이 젖어든 가운데도 비는 하릴없이 오는데,

그녀는 숲속을 미친듯이 뒹굴며 소리친다.

[으아아아‥‥‥!]

흙과‥‥‥

그녀가 뒹굴면서 흘린 피와‥‥‥

회색털가죽옷이 범벅이 되어서 그녀는 도저히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 였다.

 

고통의 시간이 흘러간지 얼마나 되었을까?

전연옥은 솜뭉치마냥 늘어진 몸으로 실눈을 떴다.

하늘에는 구름이 벗겨지고 별만 총총했다.

비는 언제 그쳤는지도 알 수 없다.

[내 몸이 어떻게 됐을까‥‥‥?]

힘없이 중얼거린 그녀는 진기를 일주천 시켜보았다.

그러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틀렸다. 기경팔맥 중에서 음교맥과 양유맥의 두 혈도가 굳어져 버렸다. 내공이 순식간에 반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음교맥과 양유맥은 임맥이나 독맥만큼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들이 굳어졌다면 무공에있어서 엄청난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음양합일신공은 그 두개의 맥에 나누어 잠복하고 있었다.

전연옥이 이나마도 견딜 수 있는 것은 황군우의 음양합일신공이 겨우 이성정도의 수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의 음양합일신공이 삼성수준만 됐어도,

두 사람의 격돌에서 피를 뿜고 날아갔을 사람은 바로 전연옥이었다.

전연옥은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악물었다.

[황가놈들‥‥‥번번이 내게 좌절만을 안겨주다니‥‥‥]

그녀는 비칠비칠 어두운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날은 달이 새로 나오는 초이틀이었다.

앞으로 그녀는 매달 이날이 다가오면 미친 듯한 고통을 겪게 되는데‥‥‥

 

× × ×

 

휘이익!

암천을 한줄기의 유성을 방불케하는 그림자가 날아갔다.

휘이이익!

그림자는 무서운 속도로 산을 넘고 내를 건너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겨드랑이에는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는 청년이 매달려 있었다

 

× × ×

 

[여기가 어디요?]

황군우는 가뿐해진 몸을 일으키며 약을 가지고 온 시녀에게 물었다.

녹색 옷을 곱게 차려입은 시녀는 그에게 날아갈 듯 절을 하고는 나가버렸다.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침상과 가구들은 모두 자단목으로 만든 최상의 것들이다.

황금빛 비단 이불은 그의 몸에 상쾌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같고,

창으로 들어오는 맑은 새소리와 꽃향기는 정신을 그윽하게 해준다.

천정마저도 뛰어난 장인의 솜씨로 장식되어있는 화려하기 그지 없는 방이다.

황군우는 어떻게 해서 자기가 여기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자와의 결투에서 패했는데‥‥‥)

그는 전연옥과의 결투를 잠시 떠올려 본 후 공력을 모아보았다.

기력은 넘칠 듯이 충만해 있었다.

오히려 부상을 입기전보다 나았다.

머리맡에는 한서여의선이 가지련히 접혀 놓여있다.

황군우는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누워 있는 것은 마음이 불안해서도 못 견딜 일이었다.

바로 그때,

황군우는 자기가 있는 곳으로 향해서 오고 있는 두 사람의 발소리를 들었다.

[…………?]

가벼운 걸음으로 보아 여인들인 것같았다.

한데,

[소협! 정신이 드셨소?]

창노한 노인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황군우는 일어서며 포권을 취했다.

들어선 사람은 과연 노인과 두 시녀였다.

[저는 화산에서 정신을 잃었는데 어떻게 하여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노인은 훤칠한 키에 백발을 드리우고 수염을 짧게 깎아 구렛나루 처럼 하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협을 구해온 사람이 있으니 직접 물어보시구려.]

노인은 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혼(大魂)! 내려와 인사하게!]

순간,

스스슷!

노인의 뒤쪽으로 흑의를 걸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냉막한 인상의 삼십대 장한이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이란 이런 사람을 말하는 가 싶을 정도였다.

대혼이라 불린 장한이 말했다.

[화산을 지나던 중, 격투소리를 듣고 달려갔다가 날아오른 소협을 구하게 됐소이다.]

그는 말을 마치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노인이 소매를 휙 저었다.

그러자 대혼은 소매에 날려가기라도 하는 듯이 문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소생 황군우,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황군우는 다시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허허허허‥‥‥]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감사할 것없네. 황소협을 구해온 것은 대혼이고 상처는 소협혼자서 치료했네. 정말 무섭도록 놀라운 치유력이었지.]

황군우는 음양합일신공을 이룬 후에 스스로 몸을 치유하는 능력마저 급격히 발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이곳은‥‥‥?]

[여긴 내 궁(宮)일세.]

노인은 간단히 말했다.

[한데, 황소협의 무공은 청년으로서는 다툴자가 없을 것같은 데 대체 사문이 어디인가? 노부는 한번도 무림에 황소협같은 젊은 고수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네.]

노인은 친근감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황군우는 문성무존의 가족이다.

그러나 문성무존이란 말은 입 밖에 내어서는 안돼는 것,

그는 적당히 얼버무려 버렸다.

[가전(家傳)의 무공을 몇 수 익혔을 뿐입니다.]

노인의 눈에 기이한 빛이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

[밝히기 곤란하다면 굳이 물을 생각은 없네, 이곳을 자네 집처럼 여기고 오늘은 푹 쉬도록 하게. 그리고 내일 보게나.]

스슷!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황군우가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황군우는 대경실색했다.

[대체 무슨 신법이기에 이처럼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시녀들이 미소를 지어보인 후에 밖으로 사라졌다.

 

× × ×

 

노인이 뒷짐을 지고 정원을 거닐면서 중얼거렸다.

[대혼, 네가 보기엔 어떤가?]

[…………]

그의 근처에는 대혼은 커녕 소혼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노인은 허깨비 씌인 것처럼 계속 주절거렸다.

[지탄없이 말해봐라. 판단은 내가 할 뿐이니까.]

문득,

나직막한, 그리고 냉혹한 음성이 공간의 한 자락에서 들려왔다.

[그는 강했습니다. 소인이 그와 괴청년의 결투를 지켜본 바, 소인으로서는 그들의 삼초지적도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인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 것 같아. 특이한 신공을 익혔더군. 대혼!]

[말씀하십시오.]

[네가 반대하지 않겠다면 그로 정하고 싶다.]

[대혼은 주인님의 종일 뿐입니다. 오직 따르기만 하겠습니다.]

노인의 얼굴에 만족스런 웃음이 떠올랐다.

노인에게 있어서 대혼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 × ×

 

[여기가 제일 핵심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지.]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군우는 눈앞에 있는 검은 철문을 보았다.

이곳은 지하 삼십 장 정도의 깊이에 있는 공동(空洞)이다.

노인은 이곳을 다듬고 정비하여 하나의 별세계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다른 세계와는 아무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곳,

결코 어둡지도 않았다.

높은 천정의 위에서는 푸른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연못같은 것인 듯 한데,

빛이 돋보기 처럼 모였다가 지하공동 전체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어떻게 연못의 물이 밑으로 쏟아지지 않게 건축할 수 있었을까?

정말 세상에 보기드문 장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동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갖가지 나무들도 자라고 있다.

또한 새들과 짐승들도 뛰어다닌다.

한마디로 바깥 세상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

노인은 검은 철문으로 다가가 기묘한 각도로 일장을 가했다.

펑!

순간,

그그그긍!

철문이 뒤로 밀려가며 하나의 거대한 현판이 나타났다.

 

<현현궁(玄玄宮)>

 

[현현궁!]

황군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도 무림에 나온 후에 일곱개의 세력에 대한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는 노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인자스러운 얼굴‥‥‥

친밀감이 느껴지는 온화한 웃음‥‥‥

(현현궁은 강호에 야심을 품고 있다고 들었는데‥‥‥)

황군우는 혼란스러웠다.

노인이 손을 치켜들면서 말했다.

[잘봐두게!]

슈슝!

그의 손바닥에서 세줄기의 기운이 뻗어나왔다.

그 기운은 <玄玄宮>이라는 글자의 제일 위의 획을 동시에 찍었다.

순간,

그릉!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현판은 뒤로 넘어가고,

넘어가서는 다시 뒤집어졌다.

그리고 빙글 각도를 바꾸어 하나의 교각처럼 변해버리는 것이아닌가?

노인이 말했다.

[세개의 획을 각기 구백구십아홉 근의 힘으로 동시에 눌러야만 하네, 그렇지 않으면 오직 죽음의 기관을 발동시키는 것일 뿐이지.]

그는 교각으로 먼저 발을 딛었다.

황군우는 움직이지 않고 노인을 불렀다.

[노야(老爺)! 노야께서는 대체 누구십니까?]

노인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황군우의 눈을 빤히 들여다 보며 물었다.

[자네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현현궁의 궁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황군우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네. 노부는 현현궁의 궁주이지. 아마도 궁금한게 많을 것이나 들어가서 모든 것을 말해 주겠네.]

황군우는 고개를 완강하게 저었다.

[아닙니다. 여기서 대답해주십시오. 먼저 제게 이런 대접을 해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야의 비밀을 엿본 것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번쩍!

노인의 눈이 폭발하듯 광채를 뿜었다.

[자네가 원한다면 미리 말해주지. 자네에게 두가지의 길을 주기 위해서지.]

[…………]

[노부는 제자들은 있어도 후계자는 없네. 나는 자네가 후계자로는 가장 적임이라고 생각하네. 그것이 첫번째 길이네.]

황군우가 말을 이었다.

[두번째 길은 그럼 죽음이겠군요. 이미 노야의 비밀을 거의 다 보았으니까요.]

[역시 총명하군!]

노인은 자신의 뜻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이것을 쓰도록 하게!]

노인은 품속에서 두장의 인피면구를 꺼냈다.

똑같은 모습의 창백한 중년인의 얼굴이었다.

황군우는 인피면구를 쓰고나서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이미 노인이 아닌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이 되어있었다.

(내 모습도 저렇겠지‥‥‥)

황군우와 노인은 마치 쌍둥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다시 품에서 검은 복면을 꺼내 황군우에게 주었다.

황군우는 두말 않고 받아서 인피면구위에 복면을 썼다.

[괜찮은 모습이군!]

노인은 등을 보이고 앞서서 교각을 건너갔다.

황군우는 그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후계자라면 정중히 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뭔가 이상한 데가 있다. 현현궁주‥‥‥ 좋다! 노야는 노야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그 안에서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오.)

그는 얼굴을 풀고 씽긋 웃음을 지은 후에 교각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완전한 현현궁이었다.

흰 대리석으로 건설된 지하의 궁전,

한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일백 명 정도의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현현궁의 궁주인 노인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절했다.

 

제자들이 사부님을 뵙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모두 현현궁주의 제자들이자 진실한 현현궁의 힘인 것이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해 보이고는 높은 단상에 놓여진 태사의로 올라갔다.

[따라오게!]

황군우는 노인의 뒤를 따라 올라가 태사의 옆에 섰다.

스스스슷!

대전의 양쪽으로 남녀 제자들이 편을 나누어 일열로 도열했다.

마치 황제앞에 늘어선 만조백관들 같았다.

그들이 서는 위치도 정해져 있는 것같다.

한데,

황군우는 두군데의 빈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각기 양쪽 열에서 열 세번째에 위치하는 자리였다.

그의 눈빛을 읽었는지 현현궁주가 말했다.

[그 자리들은 두 배신자의 자리지. 언젠가 잡아와서 저 자리에 평생토록 서있게 만들 생각이네.]

현현궁주의 음성은 담담했다.

배신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지가 않았다.

하지만 황군우는 그런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할 수 있는 노인이야 말로 진정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노인이 제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노부는 오늘 현현궁의 궁주자리를 후계자에게 양위하기로 결정했다!!]

들어올 때부터,

황군우를 수상스런 눈초리로 보았던 현현궁의 제자들이었다.

한데,

궁주의 갑작스런 양위발표가 뒤따르자 그들은 적의의 눈초리로 황군우를 노려보았다.

그들 중의 일부는 살기마저 띠고 있었다.

황군우도 대강 예상은 했지만 노인의 갑작스런 발표에 저으기 당황했다.

황군우를 가리키며 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제 이대 현현궁주는 바로 이 사람이다! 만일.]

[…………]

[…………]

[내 뜻에 수긍이 가지 않은 자가 있다면 제 이대 궁주를 무공으로 꺾어라. 그렇다면 그가 삼대 궁주다.]

노인의 말은 폭탄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강한자가 궁주가 된다.

누구든지 궁주를 꺾어라!

노인은 계속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고 황군우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이다.

(현현궁은 칠대세력의 처음에 거론되는 강한 힘을 가진 곳‥‥‥어차피 무림이란 강자의 세계가 아닌가? 아버님도 우리의 강호행을 허락하셨는데‥‥‥)

그는 자신의 입지가 어떤지 떠올랐다.

문성무존의 차대 주인은 그의 형 황군성이 될 것이다.

황군우로서는 무림에 남기를 원한다.

그도 젊은 사람,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강한 야망이 있었다.

마침내 황군우는 결심했다.

(좋다. 노야의 호의는 결코 호의가 아니다. 나를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노야를 이용하겠다. 세력따위는 내가 절대강자가 될 때까지만 필요한 것일 뿐이다. 수락하자!!)

그는 지체없이 복면을 벗어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이번에는 노인이 복면을 했다.

이것으로 현현궁주의 지위는 양위된 것이다.

황군우의 전신에서 태산을 압도할 것같은 기도가 일어났다.

그는 허공으로 구름처럼 떠올라 천천히 단상아래에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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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楓林小築의 貴公子

 

 

 

깊은 가을이다.

천주산(天柱山)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천주산의 수려한 봉우리들은 오색의 단풍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우수수...!

한기를 머금은 추풍이 산역을 맴돈다.

그때마다 녹색을 잃은 잎사귀들이 꽃잎처럼 흩날린다.

천주산의 어느 산록,

단풍나무들이 우거진 곳에 한 채의 단아한 장원(莊園)이 자리하고 있다.

그 장원 아래로는 수십 채의 모옥들이 작은 산촌(山村)을 이루고 있었다.

정겨움이 깃들어 뵈는 작은 촌락이다.

장원은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하여 마치 산촌의 머리같이 보인다.

 

-풍림소축(楓林小築),

 

그 장원을 산촌 사람들은 이렇게 붙였다.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소장원,

그러나 이곳의 장주(莊主)로 말하던 그 명망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당대의 승상(丞相) 이성진(李聖眞)이 바로 풍림소축의 주인인 것이다.

승상 이성진에게는 인중지룡(人中之龍)으로 불리는 아들이 있다.

이검엽(李劍葉).

이성진의 독자(獨子)이며 풍림소축의 사실상 장주다.

승상 이성진은 황제를 보필하여 국정을 운영하느라 한가할 틈이 없다.

그런 부친과 달리 이검엽은 풍림소축에 내려와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촌 마을 사람들에게 이검엽은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얼굴을 아는 이는 없었다.

이검엽은 풍림소축에 온 이후 단 한 발짝도 외부로 나가본 일이 없는 때문이었다.

 

풍림소축의 널찍한 방.

그곳은 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서가(書家)였다.

장식이라고는 전혀없이 백의 사면이 온통 책들로 들어차 있었다.

지향(紙香)이 코를 찌르고,

한데 방의 중앙에 한 명의 청년서생이 있었다.

그는 넓적한 식탁을 마주하고 단정히 좌정한 모습이었다.

청년서생,

그는 마치 오랫동안 햇빛을 못본 듯 안색이 무척 창백했다.

그러나 타고난 본래의 외모는 영준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깊고도 서늘한 두 눈은 지극히 심오한 혜지(慧知)을 담고 있었다.

깨끗한 백의(白衣).

그리고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는 붉은 홍옥(紅玉)이 박힌 문생건을 두르고 있었다.

그의 외모는 한 마디로 단번에 매료될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 타인의 마음을 더욱 끄는 것이 있었으니...

지극히 초탈한 외모,

그에게서 풍기는 기품은 학처럼 고고하기까지 했다.

“...!”

청년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단지 시선만을 움직여 앞에 펼친 고서(古書)의 행을 따를 뿐이었다.

간간이 입가에 흐르는 미소.

책장을 넘기는 뽀얀 옥수(玉手)의 움직임,

그것만이 그의 행동의 전부였다.

마치 석상인 양 그는 고요 속에 오직 독서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문득,

사르륵...!

문밖에서 비단 옷자락이 끌리는 음향이 들려왔다.

이어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들어왔다.

백옥같은 피부,

그린 듯한 아미,

십 육칠 세쯤 되었을까?

청년에 비해나이는 어리나 거의 완숙함과 동시에 포근함을 지닌 미녀였다.

특히 마치 구름같이 틀어올린 머릿결이 몹시도 탐스러웠다.

일견하여 이렇듯 아름다운 이 미녀는 찻잔을 받쳐들고 있었다.

그녀는 긴 머릿결을 물결치며 서탁으로 가까이 왔다.

그러나 여인은 청년을 방해치 않으려는 듯 종종걸음이었다.

또한 지극한 조심스런 몸짓으로 찻잔을 서탁에 내려놓았다.

“음, 자운(紫雲), 고마워!”

청년의 담담한 말을 들으며 그녀는 조용히 그와 마주 앉았다.

청년은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가볍게 미소했다.

따스한 찻잔,

향기로운 다향(茶香)이 그에게 전한 것은 푸근한 정(情)이었을까?

그러나 그의 시선은 이내 무심하게 고서를 향했다.

자운이라 불리운 여인,

그녀의 상아빛 뺨은 조금 전 노을같이 바알갛게 물들었었다.

하나 청년의 무심함은 그녀의 홍조를 금세 거두어가 버렸다.

그녀는 몹시 서운한 표정이 되었다.

(휴...!)

그녀의 가지런한 이빨 사이로 소리없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련한 물기가 그녀의 긴 속눈썹에 맺히고 있었다.

그녀는 내심 탄식했다.

(분수도 모르는 계집... 일개 시비의 몸으로 공자님의 마음을 바라다니...)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비애감에 젖어들었다.

(나는 미천한 종인데 반해 저 분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신 승상님의 소공자(少公子)... 시중들며 가까이 있을 수만 있더라도...)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부모님만 생존해 계셨더라도...)

승상의 소공자,

풍림소축의 소주(少主),

그는 바로 이검엽이였다.

이검엽을 향한 자운의 단심(丹心)은 뜨거운 이슬이 되어 뺨을 적셨다.

또르르... 똑!

모아진 섬섬옥수 위로 눈물방울이 굴렀다.

그러나 그녀는 곧 체념이 습관인 듯 손등의 눈물을 훔쳤다.

(속좁은 계집... 공자님의 면전에서 눈물을 보이다니...)

그녀는 두 손으로 뺨을 감추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그녀는 흠칫하고 말았다.

이검엽의 따스한 시선이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공... 공자님,...”

자운은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이검엽은 다정히 물었다.

“자운, 누가 너를 울렸지?”

“흑...!”

드디어 참았던 설움이 북받쳐 자운은 그만 흐느끼고 말았다.

이검엽은 정색을 했다.

“허... 자운,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흑흑... 죄... 죄송... 하옵... 니다.”

자운은 황망히 일어나 문께로 달려갔다.

“자운.”

하지만 이검엽의 부름에 자운은 문을 나서지 못했다.

멈추어선 그녀의 교구가 바르르 떨렸다.

이검엽은 천천히 일어서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자운, 무엇때문이냐? 말해다오.”

“공자님,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자운은 애써 담담히 대꾸했다.

“자운.”

이검엽의 목소리가 다소 엄격해졌다.

그는 자운을 잡고 돌려세웠다.

“나를 보아라.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라온 너와 내가 아니었더냐?”

그의 음성은 다시 누그러졌다.

“네가 나에게 못할 말이 있었느냐? 네가 말하지 않으면 나는 무척 서운할 것이다.”

이검엽은 그녀의 섬섬옥수를 부여잡고 자리로 돌아와 앉혔다.

“어떤 일이든 혼자 속을 태운다고 나아질 것은 없다. 자, 어서 숨기지 말고 내게 말해다오.”

자운은 선뜻 말하지 못했다.

그녀의 작은 가슴이 수없이 두근두근 맞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천... 천녀는... 두려사옵니다.”

“무엇이 그리 두렵지?”

“언젠가는... 공자님께서... 천년에게 떠나라... 하시는 날이... 올 것만...”

이검엽은 잔잔히 웃었다.

“자운, 바보같구나. 지금껏 내가 자운을 단 한시라도 내곁에서 떨어져 있게 한 적이 있더냐?”

그 말에 자운의 아미에 가득 드리워졌던 그늘이 일시에 지워졌다.

그녀의 눈은 금세 감격의 빛으로 촉촉히 젖어 들었다.

“하... 하오나... 천녀같이 미천한 것을...”

이검엽은 실소했다.

“미천하다고? 허허...”

이어 그는 밝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바보같은 자운, 천만인(天萬人)을 모아놓고 물어 보아라. 사헌대부(司憲大夫) 추(秋)대감의 천금(千金)이 미천하냐고!”

“공자님... 흑...!”

자운은 얼굴을 감싸쥐었다.

이검엽은 가만히 자운을 안았다.

부드러운 그의 손마디가 탐스러운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자운(紫雲),

본시 그녀의 부친 추경업(秋耕業)은 사헌대부로서 그 권세가 대단했었다.

한데 가정(嘉靖) 일년(一年), 추경업은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구족지멸(九族之滅)의 참화를 입게 되었다.

그때 추경업의 어린 딸 자운만이 이검엽의 부친인 이성진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했었다.

그 이후 추경업의 부친의 무고함이 밝혀졌다.

정적(政敵)의 모함 때문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로 인해 자운은 본래의 신분을 되찾았다.

사실 이성진의 따뜻한 배려도 그녀는 처음부터 이씨가(家)의 친딸처럼 키워져 왔었다.

그러나 자운은 천애고아로 의지할 곳 없는 몸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로인해 그녀는 이검엽의 시비를 자처하여 지성껏 그의 시중을 들어왔다.

이검엽은 자운과 함께 자라오던 지난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르를 스쳤다.

그는 자운의 등을 어루만지며 다정히 물었다.

“자운. 너는 왜 아버님께서 자운이 내 시중을 들도록 내버려 두셨는지나 알고 있느냐?”

“모... 모르옵니다.”

자운은 살포시 그의 어깨에 기댄 채 고개를 저었다.

이검엽은 쾌활하게 웃었다.

“하하핫... 아버님은 바로 자운을 며느리로 맞고 싶으신 것이다.”

“...!”

자운의 몸은 그 순간 경직되고 말았다.

몹시 총격을 받은 탓일까?

이검엽은 굳어진 그녀의 감촉을 느끼며 다시 대소했다.

“하하... 아버님께선 드러내시지는 않으시지만 각별히 정이 많으신분이 아니셨더냐?”

이어 그는 다소 가라앉은 음성이 되었다.

“유난히 아끼시던 사헌대부께서 변을 당하시자 그를 막지 못해 아버님은 두고두고 괴로와하셨다. 그러니 그 안타까운 심정으로라도 자운에게 더욱 정을 베푸시려 하신다.”

“흑...”

자운은 이검엽의 품에 파묻히며 오열을 터뜨렸다.

이검엽은 그녀의 교구를 와락 끌어안았다.

따스했다.

그리고...

뭉클한 탄력이 미묘하게 전해져왔다.

(자운도... 이제 성숙한 여인이 다 되어 가는구나...)

그는 그녀를 가볍게 안아 일으켰다.

“자, 오랫만에 자운과 함께 걷고 싶구나.”

 

두 사람은 나란히 문을 나섰다.

화사한 햇살이 눈부셨다.

단풍잎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은 마냥 따사로왔다.

“거동 하시었사옵니까?”

풍림소축의 하인과 시비들이 허리를 굽히며 그들의 길을 터주었다.

건장한 호위무사 이인(二人)이 말없이 그들을 따랐다.

이검엽은 호위무사들을 돌아보며 담담히 말했다.

“그만들 두시게. 자운과 풍림을 거닐고 싶군.”

“예.”

호위무사들은 자리에 멈췄다.

그러나 두 남녀가 앞서 가자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공자께선 만류하셨으나...”

그들은 멀찍히 두 남녀를 따랐다.

이검엽과 자운.

먼저 이검엽이 입을 열었다.

“하하... 십만 권의 책을 읽기 전에는 풍림소축을 나서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 어제같건만...”

“죄... 죄송하옵니다... 천비 때문에 괜히...”

자운이 얼굴을 붉히자 이검엽은 유쾌히 웃었다.

“하하... 자운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큰 맹세라도 할 수 있다.”

“공자님...”

두 사람의 발길이 잠시 멈추어 졌다.

이검엽의 맑은 두눈이 자운을 향했다.

“자운. 너는 모르고 있었느냐?”

“무... 무슨 말씀이시온지?”

“내가 처음 이성(異性)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누구였는지 아느냐?”

“...”

“너무나 긴 머리를 주체 못하던... 바로 자운이라는 소녀였다.”

“고... 공자님...”

“자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서로을 와락 끌어 안았다.

이어 이검엽의 입술이 꽃같은 자운의 입술을 덮었다.

“으음,...”

자운은 나직한 신음을 흘려내었다.

정인(情人).

그의 마음과 입술을 한꺼번에 받아들인 그녀의 가슴은 기쁨이 충만했다.

잠시 후 입술과 입술이 서로 떨어졌다.

“아...”

자운은 몹시 부끄러운 듯 후다닥 풍림사이로 숨어들었다.

“하하... 자운 놓치지 않겠다.”

이검엽 역시 그녀를 잡으려 풍림으로 뛰어들고...

이를 본 호위무사들은 멋적은 표정을 주고 받았다.

“이보게. 아무래도 물러가는 것이...”

“그래야겠군.”

그들은 오던 길로 되돌아 사라졌다.

 

풍림이 끝나는 언덕.

멀리 평화로운 산촌의 풍경이 내려다보였다.

이검엽과 자운,

두 사람은 풍목(楓木)에 기대앉아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검의 한 팔은 자운을 감싸안고 있었다.

이검엽의 두눈이 잔잔한 우수를 띄웠다.

“자운. 기억하느냐? 어렸을 때 나는 자운에게 참으로 못된 짓을 많이 했지?”

그의 말투는 은근하고도 따스했다.

자운은 그에게 몸을 기댄 채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랬었사옵니다.”

그녀의 눈이 몽롱한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천비는 때론 너무 약이 올라 울기도 하였어요.”

“하하! 그래, 생각나는군.”

“하오나... 천비가 울면 공자님께서는 꼭 달래주시었습니다.”

“이렇게 해주었지.”

이검엽은 자운의 시원한 이마에 대고 살짝 입을 맞추었다.

잘 익은 홍시같은 두볼.

그녀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한데, 그때였다.

스스슥,...

숲속 깊은 곳,

그곳에 한 줄기 인영이 어른거렸다.

흐릿한 서기로 전신을 감싼 기이한 인영.

비록 용모를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여인임은 분명했다.

그것도 대단히 아름다운.

은은히 드러난 여인의 자태는 형용할 수 없을이만치 고왔다.

문득 신비로운 음성이 낮게 흘렀다.

“휴... 저 소녀가 부럽군.”

여인의 다소 고독하게 들리는 독백이었다.

이검엽과 자운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계속 말을 주고 받았다.

“사실은 백여 권만 더 읽으면 십만 권을 읽겠다는 계획은 완성이다.”

“아! 공자님!”

그러나 그 이전,

신비여인의 흐릿한 신형이 일순 몹시도 흔들렸다.

(내 또래거늘... 십만(十萬) 권을 읽다니...)

“경하드리옵니다.”

자운의 칭찬에 이검엽은 매우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 백여 권을 다 읽고나면 즉시 북경(北京)으로 갈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중추절 이전에 아버님을 뵐 수...”

그의 말이 갑자기 뚝 끊겼다.

예민한 그의 시선이 숲속 신비여인을 발견한 것이었다.

하나 그때,

스스스...

흐릿한 인영은 안개와도 같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무엇을 보시기라도...?”

자운은 궁금한 듯 그의 시선이 향한 쪽을 보았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검엽조차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듯 정색을 했다.

“아니다. 내가 아마 헛것을 본 모양이다.”

그는 자운의 머리채를 쓰다듬으며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중추절 후에 개최되는 어전시(御前試)를 볼 것이다.”

그의 맑은 두눈이 자운의 아름다운 봉목을 향했다.

“어전시에 만일 장원을 하게 되면...”

그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여인(女人).

여인의 육감이란 대개 사물을 관통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인가?

자운은 괜스레 얼굴을 붉히며 어쩔줄을 몰라 했다.

이검엽은 그녀의 심중을 곧 알아차린 듯 의미있게 웃어댔다.

“하하하핫_______ 그 다음 얘기는 그때에 해야겠구나. 자, 이제 그만 일어날까?”

“네.”

자운은 기어들 듯 겨우 대답하고는 몸을 일으켯다.

두 남녀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 걸었다.

풍림 사이, 풋풋한 햇살이 그들의 등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쫓는 한 쌍의 우울한 눈빛이 있을 줄이야...

예의 신비녀였다.

그녀는 아직껏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두 남녀가 멀찍이 사라지도록 그녀의 눈길은 그들에게서 떨어질줄을 몰랐다.

“휴우_______”

나직한 신비녀의 한숨이 은짙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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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九門提督 夏厚勝

 

 

 

태산,

관일봉에서 이십여리 정도 떨어진 맞물린 듯붙어있는 두개의 절벽사이,

귀신도 모를 것같이 교묘하게 자리잡은 서천복지(西天福地)같은 곳이있다.

원래 붙어 있던 절벽의 가운데가 함몰되면서 만들어진 이곳,

병풍같은 암벽으로 둘러싸여 아름답기 그지 않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물이 계곡에 치밀하게 짜여진 수로를 감돌아 흐르고,

어디선가 은은하게 소음(簫音)이 흐른다.

그리고 곡구에 맑은 거울처럼 펼쳐져있는 아담한 호수‥‥‥

이곳은 어디인가?

바로 문성무존이 자리잡고 있는 소음곡이 아니고 어디겠는가?

한데,

휘이이이‥‥‥

놀랍게도 까마득한 절벽으로부터 한사람 표표히 옷깃을 날리며 뒷짐을 진 채 날아 내리고 있었다.

쉬이이이‥‥‥

빠르게 떨어져 내리던 그는 완전히 역학의 원리를 무시하고 있었다.

떨어질 수록 점점 빨라지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

오히려 그는 점점 느려지더니 문성무존의 정문앞에 내려설 때에는 마치 계단을 밟고 내려서는 듯 아무 기척도 없었다.

태연히 문성무존의 열려진 문으로 걸어가는 중년인(中年人),

바로 황창설이었다.

그는 수로옆의 길을 걸어서 점점 내원으로 사라져갔다.

그런데‥‥‥

황창설이 내려온 소음곡의 절벽 위에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천년거목인양 한사람이 우뚝 서있었다.

얼굴은 흉칙한 악마의 가면을 뒤집어썼으며,

어깨에는 흰피풍이 바람에 날린다.

손에는 검은 장갑‥‥‥

전신에서 너울너울 피어나는 악마의 사악한 기운‥‥‥

그가 나타나고 부터는 태양이 빛을 잃어버렸다.

그가 나타나고 부터는 사위가 숨을 죽여버렸다.

드러난 피부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직 백색으로 투영되는 유리알같은 눈동자만 빛나고 있었다.

그 눈‥‥‥

죽음과 공포와 영혼을 탈색시키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악마탈의 벌려진 입에는 붉은 송곳니가 슝슝하고‥‥‥

마침내 심장을 얼려버릴 것만 같은 섬찟한 웃음소리가 악마탈 뒤에서 흘러나왔다.

[흐흐흐흐‥‥‥드디어 찾았구나‥‥‥황창설‥‥‥흐흐흐흐‥‥‥네 심장의 더운 피를 맛보겠다‥‥‥흐흐흐‥‥‥으하하하하하‥‥‥]

끔찍한 말 뒤로 하늘과 땅을 마기로 가득채울 듯한 광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이미 까마득히 먼 허공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악마탈을 쓴 자는 이미 허공에서 조차 한점으로만 남았다.

누군가가 소음곡을 발견했는지 어쨌는지도 모르는 채,

소음곡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이고 있었다.

 

× × ×

 

북경(北京),

원조(元祖)에서는 세계를 다스리던 대도(大都)였으며‥‥‥

명대에 들어와서는 연경으로 호칭되었던 곳,

그리고 연왕이 등극한 후에 다시 명의 수도가 되어 북경이 된 곳,

구중궁궐 자금성(紫禁城)이 자리잡고 있는 앞쪽으로 주작대로가 길게 뻗어있고,

한적한 주택가에는 고관대작들의 고대광실같은 저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저택들 중의 하나‥‥‥

문전에는 마치 왕부나 되듯이 중무장을 한 무사들이 늘어서 있고,

두 명씩 짝을 지어 저택을 빙빙 돌며 순시를 하는 이곳,

 

<구문제독부(九門提督府)>

 

대명의 병권을 한손에 움켜쥐고 있다는 구문제독 하후승(夏厚勝)의 제독부인 것이다.

하후승‥‥‥

그의 권력은 당금에 이르러 조정의 삼인자라고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을 만치 강하다.

첫째는 당연히 황제이고 둘째는 영왕‥‥‥

그리고 세번째가 하후승인 것이니‥‥‥

경도의 백성들이 제독부 앞을 지날 때는 뒷꿈치를 들고 간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도화원(桃花園)

제독부의 뒤쪽 가산곁에 마련된 도화원은 삼백여 그루의 복숭아가 심겨져있다.

지금이 성하(盛夏)이니 풍만한 여인의 가슴만큼이나 큰 복숭아들이 싱그러운 향기를 발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매달려 있다.

이곳 도화원은 제독 하후승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인데‥‥‥

복숭아나무들 사이에 큰 태사의를 갖다놓고 전라의 중년인이 비스듬히 기대앉아있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을 오히려 즐기는 듯,

그는 전신을 태양에 골고루 비추기 위에 몸을 이리저리 돌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중년인‥‥‥

한눈에도 천하 영웅의 우두머리와 만군을 통솔하는 대장군으로 보이지 않는가?

황제일지라도 벌거벗은 몸으로는 위엄을 내비치지 못할 터인데,

중년인은 느긋하게 기대어있으면서도 사방을 압도하는 위엄을 보이고 있다.

짙은 눈썹‥‥‥

백수의 왕 호랑이를 방불케하는 호안(虎眼)‥‥‥

크고 각진 얼굴‥‥‥

군살하나 붙지 않은 탄탄한 청년같은 몸‥‥‥

이 사람이 구문제독 하후승이다.

이십여년 간을 권력의 핵심부에서 살아온‥‥‥

 

하후승이 손바닥으로 태사의의 한쪽을 두드렸다.

탁탁!

그러자,

잠시 후에 사박사박 풀잎을 밟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덮개가 있는 쟁반을 바쳐든 궁장 여인이 나타났다.

궁장여인‥‥‥

황제의 후궁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같다.

전신에 폭발할 듯한 염기(艶氣)와 더불어 형언할 수 없는 기품을 갖추고,

터질 듯한 풍만한 몸매를 화려한 궁장으로 감싸고 있었다.

사라락!

궁장여인은 하후승의 앞에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접시를 내밀었다.

접시의 덮개를 열자 달콤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작은 찻잔에 황금색 꿀물이 있고,

그 위에 두덩이의 얼음이 동동 떠있었다.

하후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궁장여인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어 마셨다.

그리고 접시를 한쪽에 내려놓은 후에 일어섰다.

한데,

그녀는 갑자기 하후승의 입으로 자기의 입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두개의 입술이 맞닿고,

궁장여인은 무너지듯 하후승에게 안겼다.

달콤한 꿀물이 궁장여인의 입에서 하후승의 입으로 넘어갔다.

하후승은 그녀의 입속으로 혀를 밀어넣은 남아있는 꿀과 그녀의 타액을 함께 빨아들였다.

궁장여인의 입속엔 침이 그득한 상태였다.

젊은 여인의 타액을 옥장( )이라고 한다.

고대 도가에서 부터 여인의 침과 분비물을 장생불노의 영약으로 여겨왔다는 것은 늘리 알려진 일이다.

하후승은 꿀로서 여인의 타액을 촉진하여 그마저 빨아들인 것이다.

그들의 입맞춤(?)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여린 살과 살이 맞주치는 소리가 들리고,

궁장여인은 하후승의 품에서 비비 몸을 꼬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남녀의 접촉은 무언가 다른 것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이미 하후승의 벌거벗은 몸도 어느 한곳이 경직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후승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두 눈이 마주치고, 이내 배가 맞아야 되는 것은 정한 이치일까?

찰랑찰랑!

궁장여인은 하후승의 품에서 벗어나며 장식하고 있던 패옥을 떼어내고,

요대를 풀었다.

그리고,

빠르고 능숙한 솜씨로 자신의 옷을 벗어버렸다.

눈부신 태양아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 백옥같은 나신이 복숭아들 사이에 섰다.

그녀의 가슴에는 복숭아가 얼굴을 숨길 정도로 풍만하고 탄실탄실한 두 유방이 출렁일듯하고,

우유가 엉긴 듯한 살결을 따라 내려와 모든 남성을 색의 포로로 잡아버릴 여인의 앙증맞은 배꼽과‥‥‥

그 아래로 희디흰 피부와 완전히 대조되는 검은 숲이 있었다.

그녀는 하후승의 앞으로 걸어갔다.

하후승은 그녀의 두 다리 사이로 풀밭을 보고 있었다.

묘한 대비였다.

흰 다리, 검은 숲‥‥‥

그리고 싱그러운 녹색의 풀들‥‥‥

하후승은 몸을 바르게 했다.

그의 두 다리 사이에서 구문제독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을 웅장한 물건이 하늘을 거역할 듯 치솟아 있었다.

다가온 여인은 무릎을 꿇고 먼저 그 장대한 물건에 입을 맞춰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두 다리로 하후승의 다리를 슬슬 비비며 자신의 몸을 하후승의 상체에 밀착시켰다.

하후승의 코앞으로 풍만한 두 유방이 다가왔다.

하후승은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눈부신 태양이 그의 눈을 찡그리게 했다.

여인은 하후승의 전신을 스다듬으며 태사의의 팔걸이위로 올라왔다.

양쪽의 팔걸이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그녀는 한손으로 자기의 유방을 잡고 하후승의 입으로 유두를 들이밀었다.

[하아하]

여인은 벌써부터 신음을 뱉기 시작했다.

달콤한 향기가 하후승의 코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마도 꿀냄새가 아직 남았으리라.

미동도 하지 않는 하후승의 몸을 입술로 핥고 유방으로 문지러던 그녀는 둔부를 원을 그리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둔부의 아래에는 하후승의 그것이 가까스로 닿아있었다.

그녀는 입을 기묘하게 벌리며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하후승의 그것에 마찰시켰다.

하후승의 것이 더욱 우람해졌다.

그러나 하후승은 움직일 줄 몰랐다.

여인은 자신의 몸안이 충분히 젖자 몸을 뒤로 젓혔다.

그리고 두 팔로 태사의 팔걸이의 끝을 잡았다.

묘한 자세로 여인은 한쪽 다리를 하후승의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이내 하나 남은 다리마저 걸치고 둔부를 낮추었다.

순간!

[!]

여인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체중에 의해 하후승의 그것에 의해 꼬치꿰이듯이 꿰인 것이다.

[‥‥‥너무 커요‥‥‥]

그러나 그녀는 다시 둔부를 들어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낮추며 원을 그리듯 돌렸다.

[‥‥‥‥‥‥‥‥‥]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각종의 신음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여인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그녀는 바야흐로 절정을 향해 치달리고 있는 것이다.

순간,

하후승의 목석같던 눈빛이 붉게 충혈되었다.

[!]

여인은 비명을 지르며 하늘이 거꾸로 보이는 것을 느껴야 했다.

하후승이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킨 것이다.

[! 너무 아파요.]

그녀의 배에는 무엇인가가 튀어나올듯 불룩했다.

하후승의 물건이 갑자기 꺽여진 각도에 적응하지못한 것이다.

하나,

하후승은 여인의 비명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두손이 여인의 둔부를 우악스럽게 싸잡았다.

그리고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악악! ‥‥‥‥‥‥악악!]

여인의 눈이 하얗게 되면서 그의 움직임에 따라 비명을 질러댔다.

여인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이 하후승의 얼굴을 찼어도 발이 머리에 닿을 듯 내려왔어도.

하후승의 움직임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아악‥‥‥]

여인은 마침내 실신하고 말았다.

하후승은 그리고 그녀의 몸을 팽개치던 던졌다.

실신한 그녀의 몸은 풀밭을 굴러 사지를 쫙 벌리고 드러누웠고,

하후승의 입에서는 음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흐흐‥‥‥황제가 데리고 놀던 계집이라서 그런지 맛이 다르군. 이것으로 나와 황제가 네 번째로 구멍동서가 된 건가?]

황제?

그럼 그 여인이 황제의 후궁 중의 하나란 말인가?

한데 벌써 네번째라니‥‥‥

가경할 일이다.

여인은 정신이 조금 돌아왔지만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 옆에 선 하후승은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의 전신으로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짝짝!

두번의 손뼉소리가 들리자 어디선가 네 사람의 건장한 청년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태사의를 받쳐들고와 하후승을 태우고 복숭아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

슥스슷!

파김치가 되어 엎드려 있는 여인의 눈앞에 여러개의 발들이 나타났다.

불길한 예감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건장한 청년 다섯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여색에 미친 색광의 그것이었다.

그들 중의 하나가 우악스럽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하후승에게서 치뤘던 것과 거의 같은 절차를 거듭 일곱 번이나 치루어야 했다.

소라면 모를까?

사람인 그녀가 배겨낼 도리가 없다.

마침내 여인은 명줄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전례에 따라 그녀의 몸뚱이는 열매가 부실한 도화나무 아래에 묻히고 말았다.

아마도 내년에는 그녀의 살과 뼈가 복숭아로 변할 것이다.

 

× × ×

 

제독부의 가산(假山) 안에는 세상사람들이 기절초풍할 것이 들어있었다.

자금성을 축소시켜 만들어 놓은 듯한 시설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한데,

황제가 앉아야 할 용상에는 구문제독 하후승이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용상 아래의 바닥에는 두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염려할 것없다. 검신과 도신은 내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은 다시 내 명을 듣게 될 것이다.]

하후승은 느긋하게 말했다.

[정작 너희들이 할 것은 천하의 강자들을 어떻게 소음곡으로 몰아넣느냐 하는 것이다. 후후후후‥‥‥]

[주군의 명을 받듭니다.]

두 사람이 입을 모아 외쳤다.

[으하하하하‥‥‥]

하후승은 경천동지할 웃음을 터뜨렸고,

그의 눈은 동자가 사라지며 하얀 유리알 처럼 변해버렸다.

소음곡 위에 나타났던 악마탈의 사나이‥‥‥

바로 하후승이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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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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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二 章

 

             落日劍의 出現

 

 

 

쏴아아아!

콰아아아!

하늘이 문득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쏟아졌다.

여름 날씨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뒷짐을 쥐고 여유있는 자세로 산을 올라가던 서생(書生)이 소나기에 저으기 당황했는가 보다.

촤악!

섭선을 펼쳐 머리를 가리고 나무 밑으로 피했다.

바로 그순간,

번쩍󰠏󰠏󰠏󰠏󰠏󰠏!

꽈르르르󰠏󰠏󰠏󰠏󰠏󰠏꽝!

벼락이 그가 숨어들었던 나무로 떨어졌다.

[차앗!]

나약해 보이기까지 한던 서생은 놀랍게도 쓰러지는 나무를 뚫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

번쩍!

번개의 그의 등 뒤에서 길개 허공을 찢고 지나갔다.

서생의 몸은 제비처럼 허공을 스치듯이 맴돌며 높이 솟은 벼랑 밑으로 내려섰다.

놀라운 경신술이었다.

[나참 이게 무슨 꼴이람! 하마터면 숯덩어리가 될번 했잖아.]

서생은 섭선을 접어 옷자락을 툭툭 털며 투덜거렸다.

쏴아아아󰠏󰠏󰠏󰠏󰠏󰠏!

비속에서 중얼거리는 그는 영락없이 비맞은 중이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그는 다시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벼랑의 한쪽에서 연기가 낮게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휙!

서생은 제법 큼직한 동굴앞에 내려섰다.

연기는 그곳으로 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또한 침이 넘어가게하는 구수한 고기냄새도 흘러나왔다.

서생은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다.

그때,

휘리리릭!

동굴 안의 모닥불 쪽에서 작은 물체가 나선형으로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촤락!

그는 섭선을 펼쳐 한번 밀었다 당기는 시늉을 했다.

날아들던 물체가 그의 섭선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서생이 안쪽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소생은 황군우라고 하오. 초면에 인사 잘 받았소이다.]

[솜씨가 제법이군!]

맑으면서도 한기가 서린 음성이 들려왔다.

침침한 동굴 속에서 밝게 빛나는 모닥불,

그곳에는 등을 보이고 앉은 사람이 고기를 구운 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중이었다.

황군우가 섭선으로 받았던 것도 꿩의 뼛조각이었던 것이다.

한데,

등을 보이고 있는 그 사람,

묶지도 않은 머리는 등을 거의 다 덮고 있었다.

또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전신을 회색털가죽으로 감싸고 있었다.

(참 괴상한 사람이군. 머리만 언듯 보아서는 형님으로 착각하기 꼭 알맞겠군. 몸집은 작지만‥‥‥)

황군우는 목소리로 짐작해 보아 그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가가며 말했다.

[주인이 있는 줄은 몰랐소. 잠시 피를 피한 후에 곧 떠나겠소.]

회색 털옷을 입은 사람은 아무 대답도 없이 닭만 뜯고 있었다.

쩝쩝󰠏󰠏󰠏󰠏!

꼬로록!

황군우의 배속에서 밥벌레가 요동을 쳤다.

지금은 오후도 늦은 시간,

이때까지 그는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침이 꼴깍꼴깍 넘어 갔으나 체면이 있지 구걸은 죽어도 못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객을 홀대하는 주인을 원망하고 있었다.

(야박하군. 야만인이 따로 없어. 그 좀 나눠주면 어디 덧나나?)

쏴아아아!

야박하기는 날씨도 마찬가지였다.

빨리 나가버렸으면 좋겠는데 비는 억수같이 쏟아진다.

불쪽으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힐끗 보다가 밖을 보다가 하던 그는 체념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섭선을 사이에 끼고 합장했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요 며칠 사이에 크게 성과를 올린 음양을 겸비한 내공 수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한서여의선(寒曙如意扇),

음양의 이기(二氣)를 간직하고 있는 세상에 다시 없는 보물이었다.

(형님이 전수해주신 빙백강기는 아주 유용한 것이다. 하지만‥‥‥한서여의선으로 음양합일신공을 이루는 데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는 황군성을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음양합일신공(陰陽合一神功)‥‥‥그것의 비밀은 바로 한서여의선 자체였다. 쌍장으로 동시에 한서여의선으로 부터 기운을 받아들여 내 몸을 통해서 서로 교류하게 한 후에 세개의 단전(丹田)에 나누어 저장한다면‥‥‥)

세개의 단전‥‥‥

배꼽아래 한치 부근의 하단전과 가슴가운데의 전중혈과 눈썹사이의 미심혈을 말하는 것이다.

한데,

한서여의선의 비밀은 바로 그 부채 자체였으니,

음양합일의 신공이 있어야만 부채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부채가 음양합일의 신공을 이루도록 도와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한서여의선의 한쪽은 천산한옥이고,

다른 한쪽은 만년온옥을 다듬어 가히 신의 솜씨라고 할 만큼 뛰어난 솜씨로 만들었다.

천산한옥이 있는 쪽이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만년온옥이 있는 쪽이 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황군우의 양쪽 장심(掌心)을 통해서 두가지의 기운이 그의 체내로 섞여들어갔다.

두 기운의 힘은 완전히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그의 몸속,

전중혈에서 만나자 마자 조화를 이루어 세배로 강해지면서 그의 하단전으로 내려가 갈무리 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의 몸 주변에는 기현상(奇現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스스슷!

그의 몸에서 반자 정도 떨어진 곳에 엷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뭉게뭉게‥‥‥

희미한 연무와 함께 서리는 점차 하나의 벽을 이루고 높아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서리의 벽은 두께 두치 정도로 계란 껍질처럼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동굴 안으로 한기가 휘몰아쳤다.

서리는 점점 강하고 두껍게 되어가며 얼음이 되어버렸고,

회색털가죽을 입은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눈을 반짝이며 그 신비한 장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서리는 완전한 결빙으로 파란 유리알처럼 변해버렸다.

한데,

놀라움이 이것이 시작이었다.

붉으스레한 주황색 광채가 황군우를 둘러싼 유리알 같은 벽을 뚫고 나와 한자쯤 되는 거리에서 또 하나의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것의 빛도 여렸으나 점차 강해지며 뜨거운 화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쪽의 파란 유리벽같은 것은 전혀 녹아내리지 않았다.

주황색의 벽은 완전한 불의 벽이 되었다.

동굴의 안은 화기(火氣)로 가득차버렸다.

기상천외한 일이었다.

불이 얼음을 뚫고 나와 하나의 벽을 이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음은 조금도 녹지 않다니‥‥‥

회색털옷의 괴인은 눈도깜짝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두자정도 길이의 백색검(白色劍)이 놓여있었다.

한편,

황군우는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변화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몰아지경에 빠져들어간 그는,

자신이 마침내 한서여의선의 기운을 전중으로 받아들여 조화시키고,

하단전에서 단련시킨 후,

미심혈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것으로 음양합일신공은 이루어졌고,

그 수위는 이성(二成) 정도로 직접 운용할 수 있게된 상태였다.

갑자기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불꽃과 얼음막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스르르르‥‥‥

그것들이 점차 압축되면서 황군우의 몸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먼저,

불꽃의 벽과 얼음의 막이 부딪혔다.

쉬이이익!

얼음이 순식간에 증기로 변해 사라지고 불꽃도 사라졌다.

하지만,

얼음을 이루었던 빙기(氷氣)와,

불을 이루었던 화기(火氣)의 정화가 서로 합쳐지며 밝은 빛을 발산하고는 황군우의 전신으로 스며들어갔다.

황군우의 전신은 흠뻑젖어있었다.

그러나,

번쩍!

그는 어느때 보다 깨운한 심신의 상태로 눈을떴다.

그의 눈에서는 범접하지 못할 것같은 신광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눈을 한번 깜짝거리자 그 신광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완전히 안으로 갈무리 된 것이다.

황군우는 축축히 젖은 자신의 몸을 느끼고는 한서여의선으로 살랑살랑 부치기 시작했다.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화한 바람이 일어나며 그의 옷을 금방 뾰송뾰송하게 말려버렸다.

황군우는 흠칫했다.

회색털옷을 입은 사람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색털옷을 입은 사람‥‥‥

비록 차림새는 괴상했지만 얼굴은 오히려 황군우보다 뛰어난 미남이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어떤 서릿발같은 기상이 서려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갑자기 회색털옷의 사나이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황군성‥‥‥황군우‥‥‥황군성‥‥‥황군우‥‥‥얼굴까지 닮았군.]

그는 눈알을 빛내면서 말했다.

[황군성! 그를 아시오?]

황군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자가 설마 형님을 잘 알고 있는 자란 말인가? 닮았다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분은 소생의 형님 되시오.]

괴인의 눈에서 살기가 번쩍였다.

[그랬군! 어쩐지 닮았다했어.]

그가 백색의 검을 집어들며 일어섰다.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황군우는 그가 황군성의 원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파파팟󰠏󰠏󰠏󰠏󰠏󰠏󰠏!

두 사람의 눈빛이 치열하게 얽혔다.

황군우도 천천히 일어섰다.

(결코‥‥‥내 아래가 아니다. 어쩌면 패할지도‥‥‥)

황군우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

비록 방금 전에 음양합일신공을 터득했다고는 하지만 눈앞이 상대에게 자신할 수가 없었다.

뽑지도 않은 백색검집을 들고 서있는 미청년,

그에게서는 검의 제왕같은 기운이 풍겨나고 있었다.

황군우의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미 기도에서 뒤지고 있었다.

상대방이 검을 뽑기만 하면 자신을 일검에 베어버리고 말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검처럼‥‥‥

방패처럼‥‥‥

가슴앞에 비스듬히 세운 한서여의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눈앞의 미청년은 그에게 어떤 공포를 던져주고 있었다.

쏴아아아󰠏󰠏󰠏󰠏󰠏󰠏!

소나기가 장마로 이어지는 것인가?

비는 해질 무렵인데도 끝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황군우는 음양합일신공을 모두 끌어올려 한서여의선에 실었다.

그의 몸 주변에 푸르스름한 한겹의 강기막이 형성되었다.

(움직여야 한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단 일초에 승부를 걸어야‥‥‥)

[직도황룡(直刀黃龍)!]

황군우는 우렁차게 고함치며 한서여의선을 종(縱)으로 그었다.

직도황룡‥‥‥

강호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알고있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초식,

황군우는 직도황룡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알고있는 초식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어느 것도 음양합일신공을 펼쳐내기에는 적당치 않았던 것이다.

가장 간단한 것‥‥‥

어쩌면 그것은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번쩍!

한서여의선에서 발출된 한줄기 강기가 미청년의 몸을 쪼갤듯이 날아갔다.

미청년의 몸이 미미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하나 바로 그 순간,

황군우는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드는 회색그림자를 볼 수있었다.

(죽음‥‥‥)

순간적으로 그는 죽음이란 말을 떠올렸다.

뽑지도 않은 백색의 검이 그의 목으로 환상처럼 다가왔다.

황군우는 이를 악물었다.

[으앗!]

마지막으로 전력을 쏟아 한서여의선을 쳐올렸다.

한데,

그와 동시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 한서여의선에서 폭발하듯 강기가 뻗어나가며 회색그림자와 백색검을 튕겨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쉬악! 싹!

강기가 동굴안을 휘몰아치는 순간,

반듯하게 잘려질 바위들이 떨어지면서 동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차압!]

황군우는 혼신의 힘을 다해 동굴밖으로 뛰쳐나갔다.

쏴아아아‥‥‥

컴컴한 중에 비는 솟아지고,

쿠쿵!

동굴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버렸다.

쏴아아아‥‥‥

황군우는 머리로 젖어드는 비와,

고비를 넘긴 후의 식은 땀을 소매로 씻어내렸다.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회색털옷의 미청년은 동굴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무의식중에 빙백강기의 수법을 음양합일신공으로 펼친 것이 주효했다. 무서운‥‥‥무공이었다.]

황군우는 미청년의 무시무시한 검법을 떠올리며 부르르 치를 떨었다.

세상에 그런 검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음양합일신공의 강기는 어떤 것이라도 벤다.

한데,

그 강기를 허깨비처럼 뚫고 환상처럼 미청년은 검법을 펼쳐 그의 목을 노렸다.

피할 수 있는 모든 방향은 차단되어 있었다.

맞받아치는 외에는 어떤 수법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초식이었다.

황군우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등을 돌렸다.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대체 그자가 누구였을까? 어떻게 형님과 원한을 맺었을까‥‥‥?]

불헌듯,

황군우는 이상한 느낌을 가지며 딱 멈춰서고 말았다.

그의 눈은 경악으로 크게 뜨졌다.

[황가는 그렇게 하나같이 다 무공이 고강한가?]

한기가 풀풀 날리는 차가운 음성이 그의 고막을 때렸다.

그리고,

상대의 검은 이미 자신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미청년이 자신의 뒤로 돌아와 검을 겨누고 있었는지 황군우는 알 수 없었다.

[황군성! 그자는 어디있는가?]

[…………]

미청년이 손목을 살짝 비틀었다.

그러자 황군우의 가슴에서 붉은 핏물이 배여나며 빗물에 씻겨내려갔다.

그러나.

황군우는 여전히 아무 대답이없었다.

죽음따위는 초월한 듯 담담한 모습이었다.

[지금도 독봉 임단심이라는 계집과 함께 싸돌아다니고 있겠지?]

황군우가 미청년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이 누군지 나는 모르오. 또한 패했으니 죽이든 살리든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내 형님께 대해 그렇게 경박한 말을 쓰는 것은 용서하지 못하오.]

미청년의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

[용서하지 못하면? 다시 싸워보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황군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심으로는 어느정도 확률을 점치고 있었다.

조금 전, 그는 빙백강기의 수법으로 음양합일신공을 펼쳐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가 아버지 황창설로 부터 전수받은 철인검을 써볼 차례인 것이다.

철인검은 내공이나 육체의 제약따위는 거의 받지 않는다.

한마디로 혈도가 제압된 상태에서도 펼칠 수 있는 정신력의 무공인 것이다.

심(心)을 단련하고 지(志)로써 심을 움직이는 철인검‥‥‥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무림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이길 수 없다.]

미청년이 오만하게 말했다.

한데,

그 오만이 황군우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오만이라면 또한 황군우도 남에게 지지않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상대방의 승리를 일축해버렸다.

[괴상한 방법으로 승리를 거두고서 마치 천하제일인처럼 행세하는 군!]

미청년의 얼굴에 분노가 피어올랐다.

[좋다. 다시한번 기회를 준다. 이번에는 바로 죽여비리고 말겠다.]

[기회를 주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미 준비를 하고 있다.]

황군우는 상대방을 활활태워버릴 것같은 눈으로 응시하며 얼음같이 차갑게 내뱉었다.

미청년이 흔들하는 순간 이장밖으로 물러났다.

황군우를 다시 패배시키고 죽여버리려는 것이다.

하나,

착!

황군우는 그가 물러나는 순간에 한서여의선을 접었다.

그리고‥‥‥

[철인검!]

강철을 자르듯 단호한 외침과 함께 모아진 한서여의선으로 미청년을 찔러갔다.

번󰠏󰠏󰠏󰠏󰠏󰠏󰠏쩍!

미청년은 순간적으로 빗줄기 소리가 멎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자신의 모든 것마저 정지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정지해버린 시간속에,

황군우의 섭선이 그의 몸을 찔러오고 있었다.

미청년의 머리속으로 번개처럼 네 군데의 혈도가 떠올랐다.

(선기(旋機), 영허(靈墟), 주영(周榮), 태일(太一)‥‥‥)

그의 손에 들리워진 백색검이 흰무지개를 만들었다.

번쩍!

아!

진정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백색검의 끝이 불과 두자정도 이동했는데 흰무지개가 일어나며 황군우의 몸을 맞는 것이 아닌가?

카카카캉!

[우욱!]

한서여의선과 백색검이 맞부딪치고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황군우는 천지가 아득해짐을 느끼며 칠공으로 피를 뿜었다.

그의 몸은 튕겨져 숲속으로 날아갔다.

미청년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몸은 학질에 걸린 것처럼 덜덜 떨고있었다.

[가경하다‥‥‥왁!]

한덩어리의 피를 토해냈다.

[세상에‥‥‥고금십대천병의 서열 일위인‥‥‥낙일검(落日劍)에 필적할 수 있는 무공이 있다니‥‥‥]

울컥!

그는 다시 한덩어리의 피를 토해냈다.

한데,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서열 제일위의 낙일검이 출현했다.

그리고,

비속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얼굴‥‥‥

미청년은 바로 신검보의 무적십이검 중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그였다.

아니 그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곳 화산의 절벽아래에서 기연을 얻었던 그녀‥‥‥

그녀가 황군우의 철인검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그녀가 절벽 중간의 동굴에서 얻었던 심법때문이었으니.

그 심법이야 말로 상대의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나 전연옥(全燕玉)‥‥‥기필코 너를 죽여버리겠다.]

덜덜떠는 그녀의 몸으로 살기가 구름처럼 피어났다.

그녀는 황군우가 떨어진 숲속으로 힘겹게 걸어갔다.

과연 황군우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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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一 章

 

        雙頭金龜

 

 

 

진우란은 육천태에 대해서 마치 친할아버지 같은 친밀감을 느꼈다.

자신의 비밀을 감춰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인데 그는 기꺼이 그녀를 위해 입을 다물었다.

더우기,

육천태가 그가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이인(異人)이었다.

무공은 물론이고 깊은 학문과 신의라고 불릴 정도의 의술을 가진 육천태는 결코 그녀의 아버지에 못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천태,

그가 괴노라고 불린 것도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뛰어난 머리로 기행을 일삼았고 사람들이 이해하게끔 설명해주기를 귀찮아했기에 괴노라고 불렸다.

한때는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기인이사들과 사귀어 보았고 싸워도 보았던 그,

그는 높은 인격적 수양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황군성을 따로 불러 진우란과 만나게 된 것을 꼬치꼬치 물어본 후에 그녀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버렸다.

그리고 진우란에게 아주 자상하게 대해 주었다.

황군성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으나 진우란의 아버지 진섭천이란 인물이 아주 대단했던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양심적인 갈등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임단심에 대한 의무감과 진우란에 대한 애정이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진우란은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같았다.

그녀는 그에게 어떤 강요를 하진 않았다.

단지,

그가 그녀를 떠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취옥성‥‥‥취옥성‥‥‥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황군성은 중얼거렸다.

동정호변에서 육천태와 함께 머문 지 벌써 사흘이다.

임단심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진우란과 더 이상 논의할 입장도 못되었다.

황군성은 한숨을 쉬었다.

[요즘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뭔가 쇄신하지 않으면 인생을 끌려가며 살게 될 것같다.]

그는 입을 다물고 눈을 빛냈다.

[그래, 한동안 좌선이라도 해서 마음을 가다듬어야겠다. 그리고 나서 취옥성에 가도록 하자.]

그는 소리쳐 진우란을 불렀다.

[진매! 진매!]

그는 진우란을 진매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미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 이상 호칭에 있어서 꺼릴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진우란은 들어오지 않았다.

육천태를 따라 낚시하러 간 것이다.

황군성은 붓을 들어 몇 자 적은 다음에 연적으로 눌러놓았다.

그리고,

호변을 거닐 때 얼핏 봐두었던 동굴로 갔다.

 

호수가의 절벽 아래에 있는 동굴,

입구는 반원으로 물이 차있다.

배를 타고 들어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것같고 어두우며 습기가 가득하다.

또한 대낮에도 박쥐가 날고 있다.

몇 만 년을 그렇게 있어온 동굴이지만 어부들은 잘 가까이 가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동굴에서 풍겨지는 음산한 분위기 때문인 것이다.

휙!

황군성은 절벽에서 한 마리 새 날아 내렸다.

그리고,

물위를 밟고 우뚝서자마자 그의 몸은 동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쏴아아아!

그의 뒤에서 물살이 갈라졌다.

동굴 안은 어두웠다.

[어디 앉을 데가 있겠지.]

황군성은 중얼거리며 눈을 빛내고 동굴 안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푸드득!

찍찍!

박쥐가 그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삼장 정도 들어가자 천정이 물에 닿을 정도로 낮아졌다.

사실상의 동굴은 거기서 끝난 것이다.

그러나,

입구에서 삼장 이내에는 어디 올라앉을 만한 곳이 없었다.

비록 그가 내공이 고강하여 물위에 떠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황군성은 잠시 생각해 본 후에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미 황하에서 수중동굴의 신비함을 옅본 적이 있다.

어쩌면 이곳에도 그곳같은 수중동굴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과연,

수중으로는 동굴이 끝나지 않고 더 이어져 있었다.

황군성은 유유히 헤엄쳐 들어갔다.

상당히 깊은 동굴이었다.

다시 오장 정도 더 들어갔을 때 동굴이 왼쪽으로 휘어졌다.

그리고,

동굴은 끝이나 있었다.

황군성은 더 나아갈 곳이 없는 것같아 실망하면서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의 발아래로 뻥 뚫린 구멍을 볼 수 있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그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그의 오른손은 공력을 잔득 모으고 있었다.

동굴은 말굽처럼 휘어져있었다.

장독처럼 생긴 입구부터 시작해서 수초들이 가득자라 황군성의 진로를 방해했다.

동굴이 위로 향함에 그는 손발을 빨리 움직였다.

푸우!

마침내,

그는 수면위로 올라왔다.

그곳은 아주 협소한 곳이기는 하지만 공기가 있었다.

넓이는 불과 반평도 되지 않을 것같았다.

황군성은 땅위에 올라서며 고개를 갸웃했다.

[공기가 신선한데‥‥‥]

어딘가에서 공기는 들어오고 있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금방 알 수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좌선을 하리라 생각하며 털퍽 주저앉았다.

그의 엉덩이에 무슨 돌출된 돌멩이 같은 것이 느껴졌다.

[…………?]

손을 더듬어 들어보니 반쯤 부스러진 사람의 두개골이었다.

[이곳에 사람이 왔었구나.]

푸르스름한 인광이 해골에서 비쳤다.

다른 뼈는 다 삭아버렸는지 종지뼈 두개와 그 두개골이 전부였다.

안력을 돋우어 자세히 살피니 뒤쪽 석벽에 무슨 글자가 씌여있는 것이 보였다.

황군성은 석벽을 유심히 살피다가 깜짝 놀랐다.

[목계(木鷄)‥‥‥목계가 여기에도 기록되어 있다니‥‥‥]

놀랍게도 석벽에 씌여진 글자는 남화경의 목계대목이었다.

이것은 황군성이 도신 범강의 지도를 받아 깊이 체득한 바 있는 것이기도 하다.

[목계에서 무공을 도출해낸 사람이 의부 외에도 또 있었단 말인가?]

그는 중얼거리며 석벽의 글자를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잠시 후,

황군성은 숨을 깊이 몰아쉬었다.

[여기에 기록된 것은 너무도 가공한 심법이다. 아! 같은 목계이건만 이건 완전한 무공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무공은 그 다양성과 깊이에서 도무지 끝을 볼 수가 없구나.]

 

석벽에 기록된 것은 목계에서 나온 하나의 무공심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무공이 그렇지만 이 목계심법(木鷄心法)은 특히 정신력의 강함을 주로 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문성무존의 최고 절기인 철인검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철인검이 심(心)을 단련하고 지(志)로써 심을 움직이는 무공인데,

목계심법은 정신력을 강하게 해주는 것이니.

말하자면 철인검과 상부상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심법을 기록한 사람의 이름은 남아있지 않았다.

석벽의 밑쪽에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나 물결에 깎여 나가버린 것이다.

황군성은 그 기인을 알 수 없게 된 것에 아쉬움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좌정하고 목계심법에 깊히 빠져들어갔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같기도 하고 정지해버린 것같기도 했다.

하지만,

고요한 속에서도 모든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황군성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그의 마음은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 × ×

 

[육노선배님! 쌍두금구가 좋아하는 게 뭐예요?]

찰랑이는 호수물을 바라보며 진우란이 물었다.

촤악촤악!

육천태는 노를 저어 나아가며 말했다.

[그놈은 미식가지. 별나고 희귀한 물고기를 아주 좋아하지. 가령 수백년 또는 천년이나 된 화리(火鯉)같은 것.]

[한데 쌍두금구는 어디에 쓰는 거죠?]

진우란이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앉아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물었다.

[그 효능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많지. 내단은 복용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금강불괴로 만들어주고 동시에 일천년의 내공을 갖게 해주겠지. 또한 그 껍질은 공력이 주입되면 줄었다 늘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보물이지. 하지만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보혈(寶血)이라고 할 수 있어. 그 보혈은 사람 몸 안에 있는 모든 기운을 중화시켜 고르게 해줄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 있지. 몸에 병이 생기는 것은 다 조화가 깨어지기 때문인데 그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보배가 쌍두금구의 피인 셈이지.]

육천태는 신의인 만큼 쌍두금구의 다른 효능보다도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 있는 보혈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었다.

진우란이 근심스러운 듯 물었다.

[한데 그런 쌍두금구가 겨우 미끼나 물까요?]

[미끼? 미끼라고?]

[그래요. 미끼.]

[그런건 애초부터 없었어. 어떤 죽어있는 미끼가 그놈을 유혹할 수 있겠나. 어림도 없지. 그놈은 군성이처럼 멍청하지 않거든.]

진우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럼 어떻게‥‥‥]

육천태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놈이 내 몸에서 십장 이내에만 들어오면 모든 것은 끝나는 거지.]

그는 옆구리에 차고 있는 지팡이 같은 묵철간(墨鐵竿)을 두드려보였다.

늘어났다 줄었다 할 수 있는 그가 만든 보물인 묵철간에는 천잠사가 매여져 있고,

그 끝에는 작은 금강석이 달려있다.

육천태는 채찍을 사용하는 것처럼 묵철간을 사용해서 쌍두금구를 옭아매려고 하는 것이다.

조그마한 배는 동정호의 군산(君山)부근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수 마장 쯤에 군산이 보일 때 육천태가 노 젓기를 멈췄다.

[아마 여기가 수심이 제일 깊은 데인 모양이죠?]

진우란의 물음에 육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의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묵철간을 뻗었다.

순간,

취리리릭!

묵철간이 쭉 뻗어나가며 물속으로 천잠사가 드리워졌다.

육천태는 눈을 감고 전 공력을 동원해서 물속의 동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물고기가 없다!!)

육천태는 가늘게 흥분했다.

쌍두금구가 있는 근처에는 모든 물고기가 달아나 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가 낚시를 드리우는 곳은 물고기가 많은 곳이 아니라 늘 물고기가 없는 곳을 가렸던 것이다.

호수속은 피라미 한 마리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가까운 곳에 쌍두금구가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공력을 돋구어 천잠사끝에 매달린 금강석이 움직이게 했다.

금강석,

세상에서 제일 강하면서도 밝게 빛나는 금강석은 쌍두금구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쌍두금구가 근처에 다가오기만 하면‥‥‥

육천태의 손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금강석은 물속에서 유영하듯이 움직였다.

호수물은 잔잔하고,

물위에 띄워진 찌는 바람에만 미약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물속에서의 움직임은 수직의 찌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줄 것이다.

비록 육천태의 귀를 속일 수는 있어도 찌를 통해서 전달되는 그의 손감각은 속일 수 없을 것이다.

진우란은 육천태의 표정의 전에없이 심각함을 보자 막연한 느낌을 가지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쌍두금구가 금방이라도 잡힐 것만 같았다.

파악!

갑자기 육천태의 옷자락이 찢길 듯 팽배해졌다.

전신의 공력을 다 돋군 것이다.

그와 함께 물속에서 작은 움직임이 일더니 갑자기 그들이 탄 배가 쏜살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잡았구나!!)

진우란은 배를 꼭 잡으며 긴장했다.

굳건히 버티고 선 육천태의 묵철간이 그들이 탄배를 끌고 가고 있었다.

육천태는 계속 전신의 공력을 다 동원해 천잠사 줄을 죄고 있었다.

배가 요동쳤다.

출렁출렁!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만 같다.

진우란은 육천태를 돕기위애 천근추를 발휘해 배를 안정시켰다.

배는 마치 땅위에 올라온 듯 잠잠해졌다.

육천태의 눈에 은은한 놀람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배는 계속 호수를 달리고 있었다.

쏴아악!

물살이 갈라지며 포말이 일었다.

직선으로 달리던 배가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아마도 쌍두금구가 방향을 전환했으리라.

쌍두금구는 오히려 배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이얍!]

육천태의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묵철간은 물론이고 천잠사줄마저 꼿꼿해지면 위로 들렸다.

추앙!

갑자기 천잠사 줄에 달려 방원 일장 정도 될 듯한 거북이 하늘로 솟구쳤다.

육천태의 가경할 내공에 의해 다려올라간 것이었다.

한데,

그것까진 좋았으나‥‥‥

갑작스런 무게의 편중으로 말미암아 배가 기울고 말았다.

육천태는 당황했다.

진우란이 천근추로 버텨주기에 안심하고 수법을 발휘해본 것이었다.

그런데 배가 기울다니‥‥‥

그녀는 뭘 한단 말인가?

하나,

의문은 간단히 풀렸다.

그의 눈에 쌍두금구를 향해서 날아가는 진우란이 들어온 때문이다.

번쩍!

그녀의 손에서 무엇인가 빛이 쏘아져 나갔다.

갑자기 쌍두금구의 몸은 보일듯 말듯한 검은 실에 칭칭 감겨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육천태는 한편으로는 내공으로 쌍두금구를 뛰워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천근추로 배를 바로잡고 있었다.

수백 근이 됨직한 쌍두금구를 십장 밖에서 한가닥 실에 공력을 주입해 허공 높이 치켜올렸다.

그것도 작은 배위에서 천근추를 발휘하며‥‥‥

강호의 고수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지인 것이다.

추리릭!

묵철간이 빠르게 줄어들며 배는 쌍두금구의 밑으로 다가갔다.

진우란이 허공에서 맴돌며 배위에 내려섰다.

이내 육천태가 묵철간을 내려놓으며 두손으로 장력을 뻗어 쌍두금구가 가볍게 배에 떨어지도록 했다.

배위에 꽁꽁 묶인 채로 떨어져 있는 쌍두금구를 바라보는 육천태와 진우란은 감격해 마지않았다.

더우기 쌍두금구의 그 신비함이란‥‥‥

쌍두금구는 말그대로 두개의 머리를 가진 금빛 거북이었다.

두개의 머리가 마치 나무가지처럼 갈라져 나와 있었다.

어찌나 큰지 하나의 나무기둥을 보는 것같았다.

요동치려고 애쓰는 것같지만 검은 실에 감겨서 미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육천태가 입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고금십대천병 중 하나인 섬전사(閃電絲)인가?]

[네‥‥‥]

[허허허‥‥‥신세를 크게 졌으니 어떻게 한다‥‥‥]

육천태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쌍두금구를 잡은 것을 기뻐했다.

쌍두금구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저도 신세를 졌잖아요.]

진우란의 말에 육천태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고‥‥‥음‥‥‥이놈의 내단을 주지.]

진우란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 그럴 순 없어요. 너무 과해요. 감당할 수 없어요.]

육천태는 더 말하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난 지금 무공으로도 충분해, 게다가 이미 금강불괴야. 또한 의술을 알고 있으니 앞으로도 백년은 더 살거니 그건 무용지물이지. 누구에게 줘도 주야 할 걸?]

진우란은 큰 절을 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받겠습니다. 반드시 좋은 일에만 쓸 것임을 맹세합니다.]

[하하하하‥‥‥]

육천태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광소를 터뜨렸다.

그이 웃음소리에 호수물이 진동하고 동정호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작은 섬을 향해 힘차게 노를 젓는 육천태는 젊은이처럼 활기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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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쓰러진 劍皇宗

 

 

신비(神秘),

만사(萬事)가 신비 속에 가린 채 무심한 세월은 흘렀다.

과연 그 누구를 위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월이었던가?

 

X X X

 

황막한 산중(山中),

창공을 뒤덮은 시커먼 먹구름에 사위는 음침하기 짝이 없었다.

우_______ 웅!

금시라도 폭우를 몰고올 듯한 일진 광풍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칙칙한 폐사(廢寺),

어느 상고시대의 유물인가?

찬란했던 불존(佛尊)의 유적이었음은 감히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차라리 지옥(地獄)의 입구(入口)인 듯,

불시에 귀신이라도 툭 튀어나올 듯 광풍 속에 음산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한데,

스스스...

이 다쓰러져가는 폐사에 유령같이 스며드는 인영이 있었다.

괴인영(怪人影),

그는 미끄러지듯 대웅전을 향했다.

번쩍!

콰르릉_______

천공(天空)은 발작적으로 뇌성벽력을 토해냈다.

그때 괴인영의 모습이 번갯불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백의몽면인은 거의 무너져가는 불상 옆에 우뚝 서 있었다.

일핏 그의 우수에는 폭이 좁고 긴 한 자루의 도(刀)가 들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쏴_______ 아!

드디어 엄청난 폭우가 산중을 휘몰아쳤다.

거센 폭우는 일시에 폐사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것은 차라리 장관이었다.

천변만화의 역사 속에 퇴락해 버린 폐사의 건물,

대자연의 엄숙한 힘(力)앞에 오히려 더욱 초라해지는 것은...

그 순간 번쩍이는 뇌광을 등지고 또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가 등장했다.

거한이었다.

그는 짐승가죽을 두른 채 날이 두 자나 되는 거부(巨斧)를 차고 있었다.

음침하기는 하나 단아해뵈는 백의몽면인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단지 동일한 것이라면 거한 역시 몽면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쿵! 쿵!

그는 역시 발걸음조차 거한다왔다.

거보(巨步)를 움직여 백의몽면인과 마주섰다.

콰르릉_______

뇌성벽력과 폭우는 점점더 그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

...

백의몽면인과 거한(巨漢),

양인은 그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동시에 초조한 빛을 띄웠다.

아마도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이때였다.

스스스...

뒤미처 다른 두 인영이 장내에 당도했다.

그들은 일남일녀(一男一女)였다.

남자(男子),

흑의를 입은 듯 하나 흐릿한 그림자에 싸여져 그 형체를 분간하기 힘든 괴몽면인,

일견하기에도 그는 음침하고도 흉흉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여인(女人),

그녀는 천하의 요녀(妖女)였다.

거의 속살이 다 들여다 보이는 나의를 걸친 그녀의 몸매,

실로 농염의 극치였다.

불룩하고 잘록함이 분명한 곡선미,

게다가 비록 면사로 가려져 있으나 그윽이 열린 도발적인 눈매가 무척 요염했다.

제각기 특성이 다른 사인(四人),

그들은 서로 대치하듯 사위로 나뉘어 섰다.

...

...

그들의 회합른 분명 미리 계획된 일인 듯 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숨통을 조일 듯한 침묵이 내려앉고 있었다.

콰르릉_______

콰르르_______

쏴아_______

장대밭같은 폭우에 대웅전까지도 뒤흔들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미동도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때였다.

“모두 모였군.”

나직한 일성에 사인은 질겁을 했다.

“헉!”

“아니, 어느새...”

어느틈엔가 불상의 전면에 한 청영이 와 있지 않은가?

전신이 푸르스름한 기류로 뒤덮인 신비의 인물,

그를 보자 사인은 저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으... 이럴 수가...)

(천하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인 우리조차도 감히...)

그들은 내심 찬탄을 발했다.

동시에, 그들은 한결같이 자세를 굳혔다.

“지존을 뵙습니다.”

“그 자리에 모두들 앉으시오.”

신비한 청의인이 명(命)했다.

몹시 위엄이 서려있으면서도 웬지 섬칫하고 냉혹한 음성이었다.

“...!”

“...!”

사인은 모두 말없이 그 자리에 부복했다.

청의인의 눈길이 백의몽면인에게로 향했다.

“백살파(白煞巴)!”

그의 나직한 음성이 백의몽면인을 불렀다.

“옛!”

백의몽면인은 경건한 자세로 청의인을 향했다.

“준비는 되었소?”

“옛! 지존의 분부만 계시면 백살파용사 일만(一萬)이 언제라도 중원을 칠 터입니다.”

그들의 대화는 짤막했다.

이번에는 청의인의 시선이 거한에게로 향했다.

“지옥림(地獄林), 그대는?”

“옛! 지옥림의 삼백육십지옥혈강시(地獄血강屍)는 천하무적입니다!”

거한은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중원이 제아무리 넓다하나 삼백육십지옥혈강시하면 문제없이 멸망을 시킬 수가 있습니다.”

“음.”

청의인의 눈가에 알지못할 신비함이 깃들었다.

“환공강(幻空岡).”

흑의인이 즉시 대꾸했다.

“옛! 지존의 분부 거행했습니다. 중원천하에 이미 일만팔천(一萬八千)의 수하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청의인은 담담히 물었다.

“물론 그 누구도 눈치는 못챘겠지?”

흑의인은 다소 긴장을 풀며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예. 설사 그들과 살을 섞고 있는 계집들일지라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청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끝으로 그는 홍일점의 여인을 응시했다.

“요지(遙池)!”

“예엣.”

그의 시선을 받자 여인은 교구를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입을 떼었다.

“천락환요화(天樂歡妖花) 일천(一千)은 개개인이 천하우물이옵니다.”

그녀의 음성은 확신이 있는 듯 했다.

반면 어떤 두려움에서인지 음성조차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애써 말투를 가다듬으며 덧붙였다.

“아무리 심지가 굳은 자라도 그 아이들에게는 당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

그 말에 청의인은 대답대신 무거운 침묵을 깔았다.

사인의 조마조마한 시선은 오로지 그의 표정에 집중되고 있었다.

이윽고,

“흐흐...”

청의인은 짧고 나직하게 웃었다.

이어 그는 웅후한 일갈을 터뜨렸다.

“때는 왔다______!”

그 한 마디에 사인의 눈빛은 격동으로 몹시 흔들렸다.

뒤이어 청의인은 앙천광소했다.

“으하하... 천하는 그대들의 것이다! 중원천하를 철처히 괴멸시켜 버려라!”

사인은 벌떡 일어나 입을 모아 외쳤다.

“신명을 바쳐 수생하겠습니다!”

청의인은 자족한 미소를 흘렸다.

“천하를 동서남북으로 사분한다. 이날 이후 그대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 점령하라.”

“옛!”

사인은 의기가 투합된 듯 청의인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두눈에 투지와 신뢰를 담은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은 속단이었다.

청의인은 찬물을 끼얹은 듯 냉엄하게 일갈했다.

“천하를 정복하기 전까지는 그대들의 경쟁을 허용한다. 그러나 천하제패 후에는 단 일파만이 본인과 천세를 누리리라!”

파파팟!

일순 사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광폭하게 부딪쳤다.

그들은 내심 똑같이 부르짖고 있었다.

(질 수 없다! 천년! 천 년을 바라던 대업이거늘...)

청의인의 심계는 무한히 깊고도 깊었다.

그들 사인의 암투를 조장하면서도 그는 스스로 침착을 전혀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극히 담담하게 말을 맺었다.

“삼일 후, 천중(天中)으로 모이도록 하시오.”

사인은 일제히 그 말에 허리를 굽혔다.

“속하를 물러가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은 거의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파_______ 앗!

그들은 광풍푹우를 빛살처럼 가르며 사라져갔다.

콰르릉_______!

쏴_______ 아!

이제 청의인의 시야에 남은 것은 오로지 장엄한 대자연의 격동 뿐이었다.

“흐흐흐...”

나직한 괴소.

일순 뇌전같은 신광이 청의인의 두눈으로 번뜩였다.

“때는 왔다. 천 년을 잠들어 있던 사대마파(四大魔派)를 깨웠노라.”

그는 광폭하게 대갈했다.

“흐하핫! 마음껏 짓밟아라! 천하를 피로 씻어라!”

광언(狂言)!

그것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행함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청의인의 광기어린 음성은 광언을 서슴치 않는 것이었다.

천 년을 숨어있던 삼정(三鼎)이 꼬리를 내밀고 그것으로 중원의 대역사는 끝나리라!

폭우!

폭우의 난무는 거칠줄을 모르는 채 천지를 휘몰아쳤다.

허지만 폭우를 가르는 엄청난 장소성!

“우하하하하_______!”

중원이여!

너 그 찬란하고 무궁무진한 역사여!

그것이 과연 광마의 마수(魔手) 이래 짓밟힐 것인가?

그 무슨 괴사를 창출하여 혈(血)의 역사를 점철시킬 것인가_______

 

X X X

 

천중산(天中山).

무려 구천 팔백(九天八百) 척이나 되는 고천봉(孤天峰)이 외로이 우뚝 서 있다.

항시 백운이 감도는 장엄한 산세.

이 천중산역에 한 줄기 외로운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스스스슥...

놀라운 것은 그 인영이 내딛는 일보가 족히 십여 장씩이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실로 가공할 경공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경공의 소유자는 과연 누구인가?

언뜻 선계(仙界)의 신인(神人)을 연상시키는 인물,

검박한 회포노인(灰袍老人).

그는 실상 별다른 특징이라고는 없었다.

단지 고독한 인상에 한 자루 검(劍)을 가슴에 안고 있을 뿐.

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기상만은 결코 변상치 않았다.

형언할 수 없는 웅대무비한 기개.

그에게서는 일대종사(一代宗師)의 면모가 은은히 엿보이고 있었다.

문득 그는 다소 감회 어린 듯 읊조렸다.

산천의구(山川依舊)라... 고천봉은 에나 지금이나 다를바가 없구나...

그의 시선은 담담히 천중산역을 두루 훑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는 부르짖었다.

“허...! 기이한 일이다... 천중산 전체가 살기로 뒤덮이다니...!”

그의 얼굴에 일순 어두운 기색이 스쳤다.

“혹시...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그는 금세 불안과 초조가 깃들었다.

“서둘러야겠구나.”

스스슥...

그는 흐르는 유성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

문득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일백 수십 년을 검날 위에서 살아온 노강호인(老江湖人).

그의 단련된 감각이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었다.

“감히 노부를 노리다니!”

한소리 냉갈이 터졌다.

그와 함께 노인은 무섭게 표정을 바꿨다.

천군만마라도 일거에 흩어버릴 듯 그의 눈에서 불꽃이 작렬했다.

“나와랏_______!”

노인은 무시무시하게 폭갈했다.

한데, 그때였다.

콰르릉_______!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십 장 밖에 있는 거대한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노인은 아무런 행동도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사태는 분명 노인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

그것은 심즉살(心卽殺), 즉 이사동기(以思動氣)의 경지가 아닌가?

고금을 통틀어 이런 통천가공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 과연 몇아니 되겠는가.

이때였다.

“흐흐흐...!”

음산한 괴소와 함께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슥...!

백의몽면인.

그는 길고 끝이 굽어진 기형의 도(刀)를 비껴든 채 유령처럼 나타났다.

노인은 그를 보자 노성을 발했다.

“네놈은 누구냐? 누군데 감히...”

“검황종(劍皇宗)...!”

백의몽면인은 슬쩍 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곤 음산하게 덧붙였다.

“오늘 이곳에서 죽어주어야겠다.”

검황종,

이 대단한 이름을 지닌 노인은 코웃음을 날렸다.

“허헛... 그대 애송이 실력으로 본인을 베겠다고?”

과연 아름답게 그는 자신의 검을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러나 백의몽면인 역시 녹녹치 않은 인물이었다.

예의 음산한 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흐흐... 그렇다면 이것부터 한번 보시지?”

휙!

웬 보자기에 싸인 물체가 검황종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파_______ 앗!

그것은 허공에 못박힌 듯 멈칫했다.

그 순간 보자기가 그대로 풀어지고 싸여던 물체가 드러났다.

한데 놀랍게도 그 물체는 중년남녀의 수급이었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죽어간...

“억!”

검황종은 그 남녀를 아는 듯 대경실색했다.

아울러 순간적으로 그의 신형은 휘청 균형을 잃었다.

콰릉_______

순간 검황종의 겉으로 흐릿한 그림자가 스치며 맹격을 퍼부었다.

크_______ 으!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검황종은 신음을 토해냈다.

이 광경에 백의몽면인이 경악하여 부르짖었다.

“이런! 쓰러지지 않다니!”

실상 검황종이 괴인영으로부터 받은 일격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범인(凡人)으로서 그것을 받았다면 천살박살을 면치 못했으리라.

한데 그때였다.

스스슥...

또 다른 인영들이 그곳에 출현했다.

그들은 한 명의 거한과 나삼만을 걸친 요염한 여인이었다.

“흐흐흐...”

검황종은 어이없는 사태에 한번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피눈물보다 더 진한 고통의 표현이었음에랴_______

뒤이어 그는 처절히 부르짖었다.

“네놈들이 성아(聖兒) 부부를...!”

언제부터인가 그의 허리는 완전히 짓뭉그러져 콸콸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하나 그는 자신의 상세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단지 분노로 이글거리는 무시무시한 안광을 폭사시키고 있었다.

백의몽면인은 그를 조롱하듯 득의에 찬 음성으로 외쳤다.

“그렇다. 그러나 염려마라. 네놈 늙은이도 이제 곧 이 두 년놈의 뒤를 따를 것이다!”

검황종은 이를 뿌드득 갈며 검(劍)을 들었다.

“죽이리라! 검(劍)을 봉(封)한지 채 일갑자도 못되었으나 네놈들을 죽여 성아부부의 원한을 갚으리라!”

쩌_______ 엉!

드디어 검이 뽑혀졌다.

“우훗!”

백의몽면인을 비롯한 사인은 감히 무시를 못한 채 경계를 취했다.

보검(寶劍),

그것은 가공할 광채를 발하며 중인을 압도했다.

삽시에 삼십여 장 밖까지 검광(劍光)으로 뒤덮이는 순간이었다.

“으하하하핫! 죽어랏! 건곤멸절파(乾坤滅絶破)!”

피를 토하는 듯한 일갈을 터뜨리며 검황종은 일검(一劍)을 날렸다.

콰릉!

“이얍!”

사인도 지지않고 각기 이와 맞섰다.

콰릉!

엄청난 대격돌,

일인(一人)대 사인(四人),

그러나 보라!

피투성이가 되어 주르륵 밀려난 것은 사인쪽이었다.

“크으... 이렇게 강할 줄이야!”

“으으...”

그들은 저마다 경악으로 두눈을 부릅떴다.

검황종은 폭풍노도와 같이 다시 검세를 격출했다.

“천참만륙을 내리라! 굉폭혈살뢰(宏暴血煞雷)!”

콰르릉!

천중산을 온통 뒤덮는 검광(劍光)!

그것은 첫번 공격과는 엄청나게 배가된 기세였다.

“으으...!”

“허억!”

사인은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상대가 아니다! 지존(至尊)에 버금가는,...)

그들은 단 한 명도 감히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뻣뻣이 굳고 말았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츠츠츠츳!

갑자기 가공할 파공성이 천지를 메웠다.

그것은 검황종의 등뒤에서 기척도 없이 순식간에 폭사된 것이었다.

미처 검황종의 태세를 갖출 사이도 없었다.

그는 전광처럼 검을 휘둘렀다.

콰릉!

순간 검황종이 휘두른 검고아은 그 순간 박살이 나고 말았다.

“크아_______ 악!”

검황종의 처절한 비명이 천중산을 메아리쳤다.

박살난 가슴을 안고 그는 십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타당!

그의 보검이 허무하게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

“...!”

사인은 넋이 너긴 듯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잃고 있었다.

스스슥!

순간 그들 주위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 지존...!”

사인은 기척이 난 쪽을 향해 일제히 부복했다.

언제부터 였던가?

그들을 굽어볼 수 있는 높직한 곳에 서 있는 흐릿한 청영(靑影),

청영으로부터 지극히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보같은... 검황종이 비록 천하무적이라하나 네 명이 하나를 감당 못하다니...”

그 음성은 당당한 한편 천만근 무게를 지닌 듯 사인을 억눌렀다.

사인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청영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검황종은 죽었다. 고금무적으로까지 접근하던 그를 쓰러뜨렸으니 그대들을 저지할 강자는 이제 중원에 없다.”

청영은 멀리 천중산역을 둘러보는 듯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엄숙히 덧붙였다.

“가랏! 이제 그대들의 뜻을 마음껏 펼쳐 보라.”

“지존!”

사인은 감격한 듯 청영을 우러러 보았다.

이윽고 그들은 청영으로부터 떨어져 각기 다른 곳으로 사라져갔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나자 청영은 신형을 돌려 스르르 격전의 현장으로 내려섰다.

이젠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검황종이 뿌린 혈흔(血痕) 위에 주인을 잃은 고검이 떨어져 있을 뿐,

청영은 능공섭물로써 가볍게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그 고검을 빨아 들였다.

“검황종... 그대는 너무 강한 것이 잘못이었다.”

청영(靑影),

천하최강임을 단연코 입증시킨 인물,

분명 그는 검황종을 꺾었다.

음산하게 흘려내는 웃음,

“흐흐... 그대의 손녀만큼은 본인이 잘 기를 것이다.”

그것은 득의와 조소가 어울린 것이었다.

이어 그 역시 장내를 등졌다.

스스슥...

그가 사라지자 남은 것은 이제 무엇인가?

침묵과 고요,

사자(死者)의 망혼(亡魂)은 말조차 잊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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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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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 章

 

            怪老 陸天泰의 수수께끼

 

 

푸른 안개가 넘실거리는 동정호의 호면,

어두운 밤의 하늘거리는 바람은 이따금씩 버드나무를 흔들고 간다.

바위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조는듯 자는듯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두 사람.

바로 황군성과 괴노 육천태이다.

사박사박!

가벼운 발걸음이 호변으로 다가서고,

황군성은 힐끗 고개를 돌려 육천태를 바라본다.

육천태는 아예 모르는 척하고 있다.

황군성도 나도 몰라라 하고 호면을 바라본다.

보았댔자 특별히 보일 것도 없는 호수 물을.

사박사박!

발걸음 소리는 한시진 전 쯤 황군성이 앉았던 그 바위위에 와서 멎었다.

사락!

바위에 걸터앉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휴!]

하는 가벼운 한숨소리가 뒤를 이었다.

(엇!)

황군성은 눈이 동그라지도록 놀랐다.

한숨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지 않고 어쩐 일로‥‥‥?)

 

󰠏󰠏󰠏󰠏초초하도다 견우성이여!

교교하도다 하한녀여!

섬섬옥수를 들어

찰깍찰까 베틀의 북을 놀리네.

종일토록 무늬를 이루지 못하고

체읍하여 눈물이 비 오듯 한다.

은하수의 물은 맑고 옅으며

상거 또한 얼마이리요.

물이 가득찬 한 줄기 강 사이에서 묵묵히 말이 없구나󰠏󰠏󰠏󰠏󰠏󰠏

 

은근하고도 부드럽게 젖어드는 옥음이 호면위로 흘러갔다.

순간,

육천태의 눈이 번쩍 광망을 토했다가 감겼다.

(또 노래를 부를 모양이군. 쌍두금구를 잡아야 하는데‥‥‥)

황군성이 막 인기척을 하고 나가 그녀를 제지하려 할 때였다.

[휴!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신신당부하시길 사내는 원래 박정한 물건이니 속좁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하셨지. 그저 농사일이나 잘하고 나 하나만 위해주는 그런 사람.]

갑자기 들려온 진우란의 탄식에 황군성은 침을 꿀꺽 삼키며 멈추었다.

불헌듯 자기가 그런 농사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우란의 음성은 다시 들려왔다.

[아버님 말씀이 맞았어. 이미 따라 나섰을 때에는 모든 것을 바친다는 뜻이었는데‥‥‥그 사람은 오직 자기 밖에는 몰라. 아!]

…………

[이제 와서 돌아가려해도 마음은 이미 주었으니 다른 사람을 볼 수도 없지. 휴! 하는 수 없이 깨끗이 죽어 수치나 면해야겠구나.]

사라락!

진우란은 일어서고 있었다.

황군성의 가슴은 터질듯이 뛰었다.

그녀가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분명했다.

막 뛰쳐나가려는데 그의 옷자락을 누군가가 잡아당겼다.

[…………?]

육천태였다.

그는 고개를 저어보이며 나가지 말라는 뜻을 비췄다.

황군성은 속에서 불이 나는 것같았다.

육천태가 생각이 깊은 기인인 줄은 알지만 사람이 죽으려는 데 구하지 못하게 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우란은 품에서 비수를 뽑아 들었다.

그녀는 잠시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 그렸다.

(이상한데? 이럴리가 없는데‥‥‥)

찰칵!

비수를 다시 집어넣고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치마를 뒤집어쓰고 호수로 몸을 날렸다.

풍덩!

그녀의 흰치마가 물위에 둥둥떴다.

황군성은 몸을 날리려다 휘청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육천태가 기습적으로 그의 혈도를 찍은 것이다.

그가 물으려고 하자 귀신처럼 손을 움직여 아혈까지 찍어버렸다.

황군성은 하나의 바위덩어리 처럼 꼼짝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황군성이라고 하나 상대는 괴노 육천태다.

또한 신의이기도 한.

세상에서 점혈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면 육천태외에는 거론할 사람이 없는 터인 것이다.

물에 연꽃처럼 떴던 치마는 점점 작아지며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황군성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영감이 미쳤나?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구할 생각을 안해? 그러고도 신의야?)

그는 진기를 힘껏 돋구었다.

순간,

투둑툭!

막혔던 혈도가 순식간에 뚫어져 버렸다.

풍덩!

그는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에잇! 쯧쯔.]

육천태가 혀를 찼다.

황군성의 내공은 세가지의 절묘한 신공이 융합된 특이한 것이다.

세상의 어떤 공력보다 끈질기고 강한 것이다.

추앙!

물속에서 흰그림자가 마치 용이 승천하듯 허공으로 솟구쳐올랐다.

휘리리릭!

몇바퀴 맴돌아 물을 떨구곤 육천태 옆에 내려섰다.

황군성의 품에는 정신을 잃은 진우란이 안겨있었다.

그녀는 이미 물을 많이 먹은 것 같았다.

[노선배님! 빨리 좀‥‥‥]

육천태의 시선은 아주 못마땅했다.

[칠칠치 못하게 서리‥‥‥어째 그리 멍청할까?]

육천태의 말에 황군성은 어리둥절했다.

[한쪽에 내려둬! 엎어서. 조금 있으면 정신차릴 거야.]

육천태의 말은 신경질 적이었다.

황군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괴상한 늙은이 소리를 듣지.)

휙휙!

육천태는 낚시를 다시 던졌다.

[솜씨가 대단해. 대단해. 노부는 머리 둘달린 거북이를 낚는데 실패했는데 참‥‥‥아무래도 노부도 몸으로 미끼를 삼아야 겠군. 방금 몸으로 대가리 둘달린 멍청이를 낚아올리는 걸 봤으니까‥‥‥]

그는 중얼중얼하며 힐끗 진우란을 쳐다보았다.

황군성이 제빨리 그를 가로막았다.

물에 폭 젖은 진우란의 육감적인 몸매를 육천태가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육천태가 눈을 흘겼다.

[멍청한 녀석! 썩 꺼져! 범강 그놈도 미쳤지. 저런 멍청이를 좋다고 아들 삼다니‥‥‥]

그는 신도보의 도신마저 욕해댔다.

진우란의 주먹이 볼끈 쥐어졌다.

(저 노인은 대체 누굴까? 혼자인 줄 알았는데‥‥‥. 단번에 내가 연극했다는 것을 간파하다니‥‥‥)

황군성이 끙 소리를 냈다.

[요즘 멍청하다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왜 멍청한지도 모르겠으니 확실히 멍청하기는 멍청하지요.]

[흥!]

육천태는 콧방귀를 뀌면서 낚시를 거둬들였다.

슈슈슉!

이장 정도 길이는 족히 될 것같던 낚시대가 갑자기 줄어들면서 짧은 지팡이로 변해버렸다.

길이가 세자 남짓되었다.

[거참 신기하군요.]

[흥! 아무리 욕심내도 소용없어. 절대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육천태는 일어서서 바위를 돌아 올라갔다.

[계집찾아 다닌다던 녀석이 계집구하러 다닌 모양이구나. 일년 만에 저 꼴이니 몇 년지나면 몇 년이나 데불고 다닐지 모르겠구나.]

황군성은 얼굴이 화끈해옴을 느꼈다.

진우란이 이를 악물었다.

(저 영감이 대체 누구지? 말하지만 않으면 흔적도 느낄 수 없으니‥‥‥보통 고수가 아닌데‥‥‥)

[깨어났소?]

황군성이 그녀가 미미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물었다.

[으응!]

진우란은 고개를 들면서 황군성에게 약하게 말했다.

[제가 살았어요?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미안하오. 먼저 와 있었오.]

갑자기 진우란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럼 제 말을 다 들었겠군요.]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저를 구했어요. 차라리 죽느니만 못해요.]

그녀는 야멸차게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나도 진소저를‥‥‥]

황군성은 손을 저으며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바로 그때,

[이놈아! 빨리 오지 않고 뭘해! 젊은 것들이 으슥한 데서‥‥‥]

육천태의 고함소리가 바위위에서 들려왔다.

진우란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황군성이 빠르게 말했다.

[저분은 원래 성미가 고약하신 분이오. 하지만 아주 좋으신 분이니 신경쓰지 마시오.]

그는 진우란의 젖은 몸을 안아들고 훌쩍 몸을 날렸다.

육천태는 진우란의 얼굴을 쳐다 보더니 빈정거렸다.

[소 주인이군.]

진우란은 가슴이 뜨끔함을 느꼈다.

(이 노인이 나를 안단 말인가? 설마 그럴 리가‥‥‥)

그녀는 황군성을 소처럼 부린 적이 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노인이 한 말일까?

아니면‥‥‥

 

괴노 육천태는 호변에 어부의 집에 방을 얻어 살고 있었다.

진우란을 안고 황군성은 그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작은 방이지만 육천태의 성미를 말해주기라도 하듯 방은 깨끗했다.

또한 탁자 위에는 몇 권의 책이 놓여져 있고 방 한쪽에 여러 개의 약병이 놓여 있었다.

황군성은 염치불구하고 진우란을 육천태의 침상에 내려놓았다.

진우란이 그의 귀에 대고 살짝 물었다.

[저분은 누구예요.]

[나는 나일뿐이니까 말할 것도 없다.]

육천태가 탁자에 앉으며 말했다.

황군성은 그녀의 맥문을 통해서 진기를 불어넣어주었다.

한기를 몰아내려는 것이다.

순간 진우란이 흠칫했다.

황군성도 흠칫했다.

마치 그의 진기가 솜에 스며드는 물처럼 진우란의 몸에서 흔적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진우란이 빠르게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

황군성이 손을 떼자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내상을 입었어. 엄청난 공력이야.)

[그럼 둘 다 이리오게.]

육천태가 비로소 조금 점잖은 어투로 말했다.

황군성과 진우란은 탁자로 가서 앉았다.

육천태가 책한 권을 펼쳐보였다.

[자네는 원래 총명했고 이 소저 또한 아주 총명한 듯하니 내가 평소에 풀지 못했던 의문을 한번 물어보겠네.]

그는 두 사람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질문을 했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는 의자 앞에 주춤거리며 앉지도 서지도 않고 있네. 그 사람은 어떻게 있는 것인가?]

[…………?]

황군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누워있겠지요.]

육천태는 진우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진우란이 대답했다.

[의자 앞에 주춤거리며 서지도 앉지도 않고 있습니다.]

육천태가 다시 물었다.

[나무 위에 두 사람이 올라가 있네. 한사람은 다른 사람 위에 있는데 다른 한 사람은 남의 아래에 있지 않네. 그들은 어떻게 있는 것인가?]

진우란이 즉시 대답했다.

[아마도 한사람은 키가 작고 한사람은 키가 아주 클 것입니다. 그래서 키가 작은 사람은 키큰 사람보다 높은 가지에 발을 닿고 있을 것이지만 키큰 사람의 키보다는 낮을 것입니다.]

육천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문제는 어떻게 된 건지 맞춰보게.

열개의 구슬이 있네. 그 중에 두개는 크기는 작지만 아주 무겁고 두개는 크기도 크고 무겁기도 무겁네.

하지만 작은 두개만큼 무겁지는 않네. 또 두개는 작기도 작고 가볍기도 가볍네.

또 두개는 크기는 좀 큰 편이지만 아주 가볍다네. 마지막 두개는 작기는 제일 큰 것보다 작지만 무겁기는 그보다 못하지 않네.

소저는 이 구슬들을 한꺼번에 던져진다면 어느 것이 가장 먼저 땅에 떨어질 것같은가?]

척척 대답하던 진우란도 여기에 대해서는 심사숙고 하는 듯했다.

황군성은 아주 총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앞의 두 문제에 대해서도 답은 그의 생각과는 엉뚱했다.

이번에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한참을 생각하던 진우란이 고개를 들어 육천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알아냈는가?]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진우란은 단호하게 말했다.

[…………]

[떨어지는 것이 있다면 죽은 사람의 시체겠지요.]

황군성은 다시 알 수 없는 소리에 의아해졌고 육천태는 벌떡 일어섰다.

그가 큰 소리로 물었다.

[자 그럼 마지막 질문이네. 소저는 임보산의 영애인가 아니면 진섭천(晉涉天)의 영애인가?]

진우란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육천태의 활짝 펼쳐진 손바닥이 그녀의 한자 앞에 있었다.

[열개 구슬의 해답을 알았으면 설마 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

황군성은 당혹스러웠다.

육천태의 태도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열개구슬의 문제에서 해답은 시체가 떨어진다 였다.

[왜 그러십니까?]

육천태가 눈에서 횃불같은 광망을 뿜으며 말했다.

[자네는 간섭하지 말게. 이일은 자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육천태는 거듭 물었다.

[임보산의 영애인가? 진섭천의 영애인가?]

진우란이 애처로운 눈초리로 황군성을 바라보았다.

황군성이 소리쳤다.

[육노선배! 더 이상 이런다면 나는 진소저를 데리고 나가버리겠소.]

[진소저? 그럼 진섭천의 딸이겠군.]

육천태는 차갑게 말했다.

[군성! 자네 무공이 나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이 진섭천을 딸을 데리고 나가려 할 때는 아마 죽은 딸 밖엔 데리고 나갈 수 없을 거야.]

진우란은 손가락하나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뭐가 진섭천의 딸이란 말입니까? 그 사람이 누굽니까? 그녀는 가난한 농가의 여식일 뿐입니다.]

황군성은 육천태의 무공을 알고 있었다.

그는 허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죽인다고 했으면 반드시 죽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황군성은 애원조로 그를 달래보는 것이다.

진우란은 입을 열지 않고 복화술로 전음을 펼쳤다.

(저는 진섭천의 딸입니다. 하지만‥‥‥저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노선배님 제발‥‥‥만약 아버님과 어떤 은원이 계시다면 훗날 저와 해결해 주십시오.)

그녀의 얼굴은 간절한 빛이었다.

육천태도 묵묵히 복화술로 전음을 펼쳐 말했다.

(노부는 네 아버지와 원한은 없다. 하지만 그의 일은 늘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저 아이에게 신분을 속이고 접근했느냐? 당장 떠나지 않겠다면‥‥‥네 아버지와 생사를 다투고 싸울지라도 너를 죽이고 말겠다.)

진우란의 눈이 슬픈빛이 어렸다.

(저는 저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단지‥‥‥저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을 뿐이에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진섭천의 딸이 하는 말을 노부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저의 아버지는 벌써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저도 아버지의 사업따위엔 아무 관심이 없어요.)

육천태의 눈에 은은한 놀람이 어렸다.

(진섭천이‥‥‥?)

[으음‥‥‥너는 그와 다른 것같군.]

그는 약한 침음성을 흘렸다.

진우란의 말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것같았다.

[아버진 언제 돌아가셨느냐?]

육천태는 손을 거두면서 말했다.

[벌써 오년 전의 일입니다.]

진우란이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황군성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육천태가 추억을 회상하는 듯이 말했다.

[내가 평생 감탄한 인물이 있다면 다섯 사람이다.]

[…………]

[…………]

[그중의 첫번째가 무제 임보산이고‥‥‥]

황군성이 물었다.

[무제 임보산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육천태가 말했다.

[그는 신룡과 같은 사람이다.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도 알아보기 어렵다. 더우기 무공을 펼치는 것은 구경하기도 어렵지. 하지만‥‥‥]

[…………]

[…………]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금의 천하제일인이라고 할 수있다.]

육천태가 황군성을 힐끗 보았다.

[너도 상당하지만 아직 그에 비하면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한다. 그는 완성되었는데 너는 멀었어. 하나 언젠가는 네가 그를 앞지를 수도 있겠지.]

[제가 어떻게‥‥‥]

황군성이 겸양을 했다.

육천태의 말이 이어졌다.

[두번 째 사람이 진섭천, 바로 진소저의 아버지지. 임보산과 진섭천 이 두 사람이야 말로 백미라고 할 수 있지. 문무를 겸했으며 세상을 풍미할 하늘이 낸 인재들이었으니까. 이 세상에서 열개의 구슬 수수께끼를 푼 사람은 그 두 사람과 진소저 뿐이지.]

[그럼 세번째 분은 누구십니까?]

진우란이 물었다.

육천태가 잠시 천정을 바라보더니 자르듯이 내뱉었다.

[전륜법왕!]

황군성은 해연히 놀랐다.

전륜법왕, 바로 그의 사부가 아닌가?

[매우 오만한 사람이지. 하지만 그의 무공은 특별해. 천하에 적수를 찾기 어려울 거야. 스스로 수많은 무공을 창시해서 대종사라고 자부하는 사람이지. 바로 자네 사부겠지만‥‥‥]

육천태는 황군성에게 눈길을 주면서 말했다.

[네번째는 바로 자네들 두 사람이야.]

진우란과 황군성은 얼굴을 붉혔다.

 

날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육천태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진우란의 귓속으로 육천태의 전음이 들려왔다.

(추호라도 그릇된 마음을 먹지 말게. 그럼 노부는 입을 다물 것일세. 하지만‥‥‥만약 그에게 어떤 해라도 가한다면‥‥‥진섭천의 흔적은 세상에서 없어질 거야. 그 녀석의 사부는 전륜법왕이고 의부는 도신 범강이니 그만한 능력은 되겠지. 또한, 그 녀석은 어떤 가공할 세력을 등에 없고 있네.)

진우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럴 생각도 없는데‥‥‥)

황군성은 묘한 감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진우란은 완전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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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九 章

 

         수신묘의 세 죽음

 

 

 

황군성은 터벅터벅 걸어 호변으로 갔다.

그대로 여인숙으로 돌아갈 기분이 아니었다.

얼마 전,

그가 주루로 들어섰었을 그는 예리한 바람소리를 들었다.

순간 적으로 왔구나 싶은 그는 바람소리의 근원을 향해 몸을 날렸고,

막 단검을 던지고 사라지려고 하던 두 여인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었다.

그의 너무나도 빠른 반응에 여인들의 몸은 굳어버렸고,

황군성은 단검의 모양으로 보아 그에게 임단심의 서찰을 전해준 자가 바로 그녀들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황군성은 호변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정말 임매가 취옥성에 갖혀있을까? 홍심련‥‥‥그들은 또 대체 누구일까?)

혼란스러웠다.

사실의 진부도 가리기 어렵고 무림경험이 일천한 그로서는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을 것같았다.

문득,

임단심을 생각하던 그의 머리에 진우란이 떠올랐다.

왜 그녀가 떠올랐는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임매‥‥‥하던 그의 머리에 임단심의 얼굴이 진우란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어쩌면,

진우란이 임단심보다 더욱 깊이 그의 가슴속에 새겨져 있는 것같아 섬찟했다.

임단심과 진우란,

두 여자는 서로 다른 점이 너무나 많다.

진우란과 아직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황군성의 마음은 임단심보다 진우란을 가깝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도 알 수 없는 현상이었다.

임단심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마치 그의 의무감처럼 느껴지고 사랑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진우란을 생각할 때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끝없는 애착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가 그녀의 말에 꼼짝하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마음 때문인지도 몰랐다.

임단심이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맹종했듯이‥‥‥

[모르겠다. 아무튼 임매부터 구하고 볼 일이다.]

황군성은 한숨을 내쉬면서 호수가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로 그때,

[한숨 쉬지 말게. 누구 낚시를 방해하려고?]

황군성이 앉아 있는 바위의 바로 아래에서 소곤거리는 듯한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황군성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사람이 이토록 가까이 있는데도 몰랐다니‥‥‥)

황군성의 무공은 거의 신화경에 달했다고 할 수있다.

무림에 그보다 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한데,

그가 지척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니‥‥‥

그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황군성은 바위 아래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바위틈에서 한 노인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노인의 눈이 힐끗 그를 보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황군성!]

[육선배!]

놀랍게도 그들은 서로 아는 사람이었다.

황군성이 노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허허‥‥‥자네야 말로 어쩐 일인가? 나는 이곳에서 쌍두금구(雙頭金龜)를 잡으려는 참인데‥‥‥]

[어쩌다 보니 오게 됐습니다.]

노인은 그를 옆에 앉히며 말했다.

[그래 자네 의부는 잘 있는가?]

[의부께선 검신과 힘을 합했습니다.]

[그 잘됐군.]

이 노인은 누구인가?

천하에 이름을 날린 전대고수인 괴노(怪老) 육천태(陸天泰)인 것이다.

또한 세상에 둘도 없는 신의(神醫)로서 범강에게 스스로 귀머거리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일찌기 허명의 무쌍함을 깨닫고 기행을 일삼다가 무림에서 잠적해버렸던 기인‥‥‥

육천태가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게. 한 시진 정도만 있어보고 오늘도 허탕 치면 들어가도록 하세.]

육천태는 쌍두금구라는 거북을 잡기 위해서 왔다.

이 거북은 머리가 둘 달린 황금색 거북인데 그 수명은 만년을 산다고 전해진다.

쌍두금구가 있는 주변에는 반드시 예리하게 물어뜯긴 큰 물고기들이 나타나곤 하는데,

육천태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에게서 우연히 동정호에서 그런 물고기들이 나타난다는 소문을 들었다.

듣자마자 쌍두금구가 출현했으리라 생각한 그는 그날로 동정호로 달려와 낚시를 드리웠던 것이다.

황군성은 쌍두금구가 어떤 물건인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묵묵히 육천태 옆에 앉아서 호수를 지켜보았다.

육천태의 낚시대는 검은 묵철(墨鐵)로 만들어진 것이고,

줄은 천잠사로 된 것이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이기에 이런 낚시대를 준비한 걸까?)

황군성의 생각과 아랑곶없이,

육천태는 호수같이 가라앉은 눈으로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고 찌를 노려보고 있었다.

 

× × ×

 

슥! 스륵!

마천화의 옷이 마침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의 터질듯 팽팽한 두 가슴과 풍만한 둔부가 어떤 속박도 없이 노출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두 다리를 적당히 벌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갖다댈듯 말듯한 자세로 장대호가 서있다.

수신묘의 한쪽구석에는 죽어버린 장대호의 여편네가 널부러져 있고,

다른 쪽에는 몸을 비스듬히 하고 누워있는 진우란이 있었다.

한데,

진우란의 별이 떤 것같은 맑은 눈이 장대호와 마천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어느새 정신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색욕에 짐승처럼 변해버린 장대호와 마천화는 그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진우란은 한쪽 팔로 머리를 받친 채 비스듬히 그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다.

[하악!학!]

마천화가 뜨거운 신음을 뿜으면서 장대호의 목을 안으려 했다.

하나,

장대호는 그녀의 아랫배를 손등으로 슬쩍 스치면서 겨드랑이 아래로 빠져나가 마천화의 등뒤에 섰다.

그의 물건이 마천화의 둔부를 슬쩍 건드렸다.

[흐흐‥‥‥가만히 있어. 죽여줄 테니까.]

[아아! 못참겠어.]

마천화는 장대호의 요구대로 다시 두 팔을 벌리고 서면서도 몸을 비비 꼬았다.

아랫도리가 허전해서 죽을 지경인 것이다.

둔부를 슬슬 움직이며 자꾸 장대호에게로 밀어부쳤다.

장대호의 손이 그녀의 검은 숲에 다가갔다.

[흐읍!]

마천화가 헛바람을 삼켰다.

장대호의 손은 그녀의 축축히 젖은 부분을 슬슬 문지르기 시작했다.

마천화는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흥분에 죽을 것만 같았다.

[아아! 그 그만!]

그녀는 자신의 둔부를 마구 앞뒤로 움직였다.

홱!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펄쩍 뛰어 장대호의 몸을 두 다리와 두 팔로 감으며 둔부를 비벼댔다.

[흑흑! 못 참겠어. 빨리! 빨리 넣어줘! 아아!]

장대호는 냉정하게 그녀를 밀어냈다.

[왜‥‥‥?]

[흐흐‥‥‥그렇게 원한다면 너도 내게 봉사를 해봐. 그래야 공평하지 않아?]

장대호는 이미 홀린듯 망연한 눈빛을 하고 있는 마천화에게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천화,

그녀도 색에 관한한 누구보다 경험이 많은 색녀이고 또한 밝히는 여자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늘 장대호에게 더욱 사족을 못써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정욕에 눈이까뒤집히고 말았다.

장대호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충 짐작을 했는지 그녀는 주저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손으로 장대호의 물건을 감싸듯이 움켜쥐고 빨간 입술안으로 가져갔다.

[흑!]

장대호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진우란은 그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었다.

(남자들은 저걸 좋아하는 모양이군!)

장대호는 마천화의 머리를 움켜잡고 힘껏 당겼다.

[욱!]

마천화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마천화의 머리가 진퇴를 거듭한 후에 장대호는 그녀를 와락 밀쳤다.

털퍽!

마천화가 사지를 벌린 채 발라당 넘어지고 장대호가 그녀의 벌려진 두 다리 사이에 무릎으로 앉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물건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마천화는 어떤 기대감에 눈을 가늘게 뜨고 긴장하고 있었고,

팔을 고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진우란은 얼굴을 붉혔다.

(그도 저렇게 클까?)

그녀는 어떤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황군성이라는 사람을‥‥‥

진우란은 자신의 오금이 지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악!]

장대호의 팔뚝같은 대물이 마천화의 붉은 속살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그녀의 한눈에 들어왔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같은 일에도 마천화는 둔부를 움직일 뿐 죽지는 않았다.

[아아‥‥‥아‥아‥아아아‥]

죽기는 커녕 연방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년! 이년, 암캐같은 년! 개년! 죽어라! 아아악!]

장대호가 욕을 해대며 미친것처럼 급격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아래에 있는 마천화의 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아악아‥‥‥더‥‥‥더‥‥‥세게‥‥‥더! 아악]

진우란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마천화에게 몸을 실고 있는 장대호의 뒤로 갔다.

퍽퍽퍽!

장대호의 물건이 마천화의 몸속을 바쁘게 왕래하고 있었다.

순간,

퍽!

약간 다른 소리가 들리며 장대호는 마천화에게 완전히 엎어지고 말았다.

[됐어! 이제 그만해! 볼 건 다 본 것같으니까.]

진우란은 말과 동시에 다시 한번 발길질을 해서 마천화의 몸에 깊히 결합되어 있는 장대호의 물건을 걷어찼다.

[악!]

장대호는 무엇이 터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기절하고 말았다.

[누‥‥‥누구냐?]

마천화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욕정으로 힘없이 물었다.

[네 년이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라서 미안하군. 이제 남자가 없으니 혼자서 라도 해야겠네?]

진우란이 한발로 장대호의 등을 밟으며 말했다.

마천화의 눈에 경악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너‥‥‥너는 아까 그‥‥‥]

[그래 잡혀온 사람이지.]

진우란은 말을 하면서 장대호를 슬쩍 밀쳤다.

쿠당!

장대호의 몸이 한쪽으로 넘어가며 마천화의 몸 깊히 들어가 있던 그의 물건도 빠져 버렸다.

마천화는 아랫도리가 허전해지자 견딜 수가 없었다.

허전함을 메꾸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그곳으로 가지고 갔다.

[아아!]

[됐어. 그만해!]

진우란이 다시 발길질로 그녀의 그곳을 찼다.

[악!]

극렬한 고통이 있었으나 마천화는 오히려 어떤 희열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진우란의 한마디에 그녀의 몸은 싸늘히 식고 말았다.

[탕화(蕩花) 마천화! 마천화 맞지?]

마천화는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네 년은 누구냐?]

진우란이 그녀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거기부터 좀 가리지. 그리고 감히 네게 그따위로 말하다니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마천화는 뒤로 물러나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크르르‥‥‥]

순간,

그녀는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짐승의 소리에 흠칫하며 돌아보았다.

갑자기,

마천화는 사시나무 떨 듯 달달 떨기 시작했다.

[사‥‥사사‥‥‥신‥‥‥]

그녀의 등뒤에는 고양이 보다 조금 커보이는 검은 표범이 흉폭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줄줄줄‥‥‥

마천화는 오줌을 싸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다‥‥‥당‥‥‥신은‥‥‥그‥‥‥그럼‥‥‥사‥‥‥신‥‥‥]

진우란이 한광을 번득이며 말했다.

[마천화! 너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내뱉어서는 안될 말을 내뱉고 말았어.]

마천화는 벼락을 맞은듯이 빳빳해졌다.

(그렇다! 사신의 얼굴을 본 자는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그의 앞에서 사신이란 말을 하는 자 역시‥‥‥)

번쩍!

눈앞에서 무슨 빛이 이는 것을 느끼는 순간 마천화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진우란은 검은 표범을 보며 물었다.

[어디 있느냐?]

표범이 수신묘밖으로 달려 나갔다.

진우란은 천천히 걸어서 호변으로 갔다.

수신묘 안에는 세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마천화와 장대호의 벌거벗은 시체와 장대호 여편네의 시체였다.

한데,

신기하게도 마천화와 장대호의 몸에는 어떤 치명상도 보이지 않았다.

진우란‥‥‥

그녀의 정체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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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황존신보(天荒尊神譜)

 

 

 

 

 

<작품이력>

1983년 12월 전 6권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第 一 章

  

               패륜의 일막

 

 

 

천학만봉(天壑萬峯)!

 

산봉(山峯)은 높아 봉두(峯頭)를 구름 속에 두었고,

골(壑)은 깊어 그 끝(低)을 운무(雲霧)로 장(帳)하다.

 

<천주산(天柱山)>

 

창천(蒼天)은 떠받치는 큰 기둥(柱)이라 하여 천주(天柱)란 이름이 붙었다.

그옛날 신(神)들이 인간(人間)과 함께 하던 시대.

 

<수신(水神) 공공(共工)이 화신(火神) 축융(祝融)과 큰 싸움을 하다.

싸움에 진 공공(共工)은 노화를 참지 못하여 불주산(不周山)을 머리로 받다.

이에 불주(不周)에 있던 천주(天柱)와 지추(地추)가 무너지다.

대지(大地)가 동남(東南)으로 기울다.

대홍수(大洪水)가 대지를 잠기우고, 맹수(猛獸) 흉금(兇禽)이 날뛰니 인간(人間)의 피해(被害) 입음이 지극하더라.

이를 본 고매신(高媒神) 여와(女와)께서 황하(黃河)의 오색석(五色石)을 내어 창천(蒼天)을 메우고...>

 

<보천신화(補天神話)>

 

여와(女와)와 공공(共工), 축융(祝融), 그리고 인간(人間)이 뒤엉켜 전해 내려오는 상고전설(上古傳說)이다.

보천신화(補天神話)의 장소가 된 곳.

 

바로 이곳 천주산(天柱山)!

 

예로부터 천주(天柱)가 있는 곳이라 하여 신성시되었거니와,

그 장려한 산세가 시인묵객(詩人墨客)을 미치게 하는 명산(名山)이다.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산봉과 천야만야한 절곡이 그 끝을 보이지 않아,

인간(人間)의 발길을 거부하여 상고(上古)의 전설을 깊이 안으로 숨기고 있으니,

그 신비함이 상고(上古)와 현세(現世)에 다름이 없다.

천만세(千萬歲) 연륜이 하늘높이 치솟은 거목(巨木)들로 깊어가고,

세상을 등진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의 애착함이 더욱 각별해지기만 하는 곳.

 

<천주산(天柱山)>

 

X X X

 

가을도 깊어가는 어느 날.

천주산을 뒤덮은 원시림들의 무성한 잎들도 붉다 못해 적갈색으로 말라들고 있다.

 

정오 무렵,

스스스...!

서늘한 산풍이 임중(林中)을 스치고 지나갔다.

휘르르르...

안간힘을 쓰며 가지에 붙어 있던 갈색의 낙엽이 산풍(山風)에 휘말려 날아올랐다.

그와 함께,

...!

...!

산풍(山風)을 타고 흐르는 두 줄기 인영(人影)!

깊디깊은 이산중에 어인 인적(人蹟)인가?

귀신인가?

아니면, 하계(下界)에 내려온 천상선인(天上仙人)인가?

휘르르...!

스스스...!

백영(白影)과 청영(靑影)은 마치 무게도 없는 듯!

발 한번 땅에 대지 않고 수백장을 일촌지각(一寸之刻)에 날아갔다.

만일 그들이 인간이라면 너무도 놀라운 경공재간이 아닐 수 없다.

고금(古今)을 통틀어 그와 같은 경지의 경공술은 많지 않다.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다.

 

<어검비행(馭劍飛行)>

<축지성촌(縮地星寸)>

<무영비천술(無影飛天術)>

<승풍어기신보(乘風御氣神步)>

 

모두가 절진되어 현세에 이어지지 않는 비술,

하물며, 양인의 경공은 전설상의 어느 경공도 따르지 못할 지고무상한 것이니...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무엇때문에 이 깊은 천주(天柱)의 산중(山中)을 황행하는가?

휘_______ 잉!

일시에 양인의 신형이 뇌전같이 허공을 갈랐다.

휘르르르...

일순간 그들의 몸이 멈칫하는 듯하였다.

휘_______ 잉!

쏴______ 아!

강한 산풍이 불며 그들 양인의 발밑으로 군봉(群峯)들이 벌려져 보였다.

 

<천주신봉(天柱神峯)>

 

하늘의 무게를 받친다하여 붙여진 이름의 척천준봉(刺天俊峯)!

천주(天柱)의 뭇 봉우리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고도 웅장한 거봉이다.

...!

...!

천주신봉 위에 오연히 몸을 세운 양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천주(天柱)의 장관에 넋을 잃은 때문인가?

 

백의인(白衣人).

 

사십전후의 중년문사(中年文士).

마치 한 마리 백학(白鶴)을 대하는 듯 고고하고도 청수한 인물이다.

운치있게 머리를 묶은 문생건 밑으로 깊숙이 빛을 발ㅇ하는 봉목이 천주를 내려다보고 있다.

너무나도 고용하고 맑은 눈빛!

그를 보고 어찌 한 줄기 바람을 타고 천주신봉을 오른 절세고인이라 하겠는가?

 

청의인(靑衣人).

 

백의인과 몹시도 흡사한 외모를 지녔다.

아마도 형제지간이리라.

다만 청의인의 두 눈썹 끝에 불끈 치솟은 것이 백의인과 다를 뿐이었다.

아마도 그의 성품은 백의인과는 달리 강하고 야심이 큰 그런 것일 것이다.

문득 청의인의 두 눈이 싸늘한 한기를 발랬다.

찰나지간에 스쳐간 안광이지만 골수까지 스미는 살기를 지니고 있었다.

지도(地圖)대로라면... 저쪽 축융봉(祝融峯) 뒤쪽이 그곳일 것이다.

홀연히 백의인이 입을 열었다.

그는 천주산봉 우측에 솟은 험준한 산봉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축융봉(祝融峯)!

축융신(祝融神)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그만큼 산봉의 형상은 거칠고도 험했다.

“형님!”

문득 청의인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역시 양인은 형제지간이었다.

백의인이 청의인의 형이 되는 모양이다.

“천외(天外)에서 이곳까지 힘든 발길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

청의인의 물음에 백의인은 대답을 하지 않고 축융봉만을 바라보았다.

“본궁(本宮)의 절기들은 천년(千年) 세월을 지나오면서 갈고 닦여져 지금은 본궁을 세우신 조사님들의 유전절학(遺傳絶學)보다 십배이상 강해져 있습니다.”

청의인의 강한 어조에도 백의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청의인은 계속 말을 이었다.

“한데 무엇 때문에 두분 조사님께 좌화하신 곳을 굳이 찾으시려 하시는 것입니까?”

백의인이 손을 저어 청의인의 말문을 막았다.

“그만 두거라. 네 심정은 우형(遇兄)이 모르는바 아니다.”

청의인의 말을 막은 백의인은 발길을 축융봉쪽으로 옮겼다.

스스스...!

쉬______ 잉!

그의 신형은 다시 산풍에 실려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그는 흡사 평지를 걷듯이 허공을 밟으며 곧장 축융봉을 향해 날아 내렸다.

휘_______ 잉!

검미를 꿈틀하던 청의인이 즉시 백의인이 뒤를 따랐다.

슈_______ 앙!

곧 청의인은 백의인과 나란히 서게 되었다.

“사람이 근본을 잊으면 금수와 다른 것이 무엇이 있느냐?”

청의인이 옆에 오자 백의인이 조용히 말했다.

“두분 조사께서 구대천마(九大天魔)를 무찌르고 본궁(本宮)을 여신 것이 어언 천 년 무공일도는 끝없는 발전을 이루어 이미 두 분의 절학도 구태의연한 것이 되었음을 내 어찌 모르랴? 설사 두분 조사님께서 그곳에 절기를 남겨놓으셨다 해도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는 못할 것이다.”

백의인은 강렬한 시선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하나 후손된 도리로 두분 조사님께서 우화등선(羽化登仙)하신 곳을 알면서도 찾아뵙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청의인은 말없이 전면만을 바라보았다.

휘_______ 잉!

스스스...!

어느덧 양인은 축융봉의 정상 위를 날고 있었다.

축융봉의 뒤쪽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단애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천하(天下)를 도모함보다 효(孝)를 행함이 백배 중함을 어찌 잊으랴? 그 때문에 아우님을 데리고 이곳까지 온 것이야!”

휘르르르...!

스_______ 슥!

백의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양인은 단애 위로 내려섰다.

백의인은 단애 위에 내려서자마자 단애 밑으로 내려다보았다.

고요하던 그의 얼굴은 엄숙하고도 장하게 변하였다.

“틀림없구나! 저 아래 두분 조사님의 유체가 안거해 계실 것이다.”

다소 흥분한 빛을 띄우며 백의인은 단애가로 바짝 다가섰다.

“...!”

순간 청의인의 눈실이 엄청난 살기(殺氣)를 띄우며 번뜩였다.

스_______ 윽!

그와 함께 그의 우측 소매에서 한자반 정도 길이의 묵검(墨劍)리 솟아났다.

청의인은 두눈을 부릅뜨며 등을 돌린 백의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묵검(墨劍)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또한 살기로 충혈된 그의 두눈에 한 가닥 갈등의 빛이 지나갔다.

천륜(天倫)을 거역하려는 자신에 대한 양심의 가책인가?

그러나 그 갈등의 빛은 이내 사라졌다.

슈_______ 욱!

입술을 악다문 청의인은 형인 백의인의 등을 향하여 힘껏 묵검(墨劍)을 찔러내었다.

“헉!”

묵검(墨劍)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백의인의 두눈이 불신(不信)으로 치떠졌다.

(동생이 나를...)

순간적으로 자기 동생이 자신을 암습해옴을 깨달은 백의인은 아연하였다.

하지만 백의인은 피할 생각할 하지 않았다.

(어떤 보검으로도 나의 천허존신강기(天虛尊神강氣)를 뚫지 못한다.)

자신의 무공을 믿는 때문이다.

하지만 백의인은 자신의 믿음이 또다시 완벽하게 허물어짐을 절실히 느껴야만 했다.

푸_______ 욱!

파_______ 학!

“크______ 으!”

청의인은 찌른 묵검(墨劍)은 여지없이 백의인이 명문으로 박혔다.

피가 확 튀며 묵검의 끝이 백의인의 단전으로 빠져나왔다.

“크... 으... 네... 네가...!”

백의인은 두 손으로 단전으로 빠져나온 묵검을 움켜쥐며 치를 떨었다.

파_______ 앗!

“크흐흐흐흐흐...”

암습에 성공한 청의인은 기민하게 오 장 밖으로 물러났다.

백의인이 최후기력으로 반격해올까 두려워한 때문이다.

“으... 으...!”

백의인은 묵검(墨劍)에 관통당한 채 비틀거리며 돌아섰다.

그의 백의는 삽시에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백의인은 분노와 경악으로 물든 눈길로 청의인을 노려보았다.

“네... 네가... 감히...!”

백의인은 으드득 이를 갈았다.

그의 전신은 터질 듯한 살기로 뒤덮였다.

(으... 음... 검에 관통당하고도 즉사하지 않다니...)

청의인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네놈에게 무엇을 섭섭하게 하였느냐? 무엇이 부족하여 나를... 으...”

백의인은 노갈을 터뜨리다 휘청하였다.

그도 별 수 없이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청의인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 형님은 너무 웅심(雄心)이 없었소. 본궁(本宮)은 천하최강(天下最强)의 문파요!”

청의인은 음산한 표정으로 백의인을 향해 다가왔다.

백의인은 어지러운 시선으로 다가오는 청의인을 노려보았다.

“흐흐... 본궁세력의 반만을 가지고도 천하를 손아귀에 넣어 영원히 무림종주로 군림 할 수 있단 말이외다.”

백의인이 이를 갈았다.

“네... 네놈은 천하무림 위에 군린해서는 아니된다는 조사님들의 유명을 잊었느냐?”

“흐흐... 그따위 고리타분한 유명은 필요없소. 저뿐 아니라 본궁 궁도들이 대부분이 그같은 조사유명을 탁탁치 않게 여기고 있소!”

“으으,... 아무리 그래도 네놈이 형인 나를 시해하고서야 본궁도들이 네놈의 뜻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으하하...”

청의인은 발길을 멈추며 득의하여 장소를 터뜨렸다.

“형님께서 그런 걱정해주지 않으셔도 되오! 형님은 영원히 죽지 않을 터이니...”

백의인은 흠칫하였다.

그의 하체는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흐흐... 이것을 보시면 알게 될 것이오.”

돌연 청의인의 얼굴 모습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하였다.

“으으...!”

그 모습을 본 백의인은 아연한 표정이 되어 치를 떨었다.

청의인!

그는 어느 사이엔가 백의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있었던 때문이다.

“으... 천... 천환변형술(天幻變形術)! 네... 놈이 천화변형술까지 익힌 것을 보니... 이 음모가 하루이틀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구나!”

청의인은 득의하여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핫하, 물론 그렇소. 십년 전 조사께서 남기신 묵령신검(墨靈神劍)을 조사동(祖師洞)에서 얻은 직후부터 준비한 일이었으니...”

“으... 그랬었군!”

백의인은 자신을 관통한 묵검을 착잡한 표정으로 내려보았다.

“묵... 묵령신검(墨靈神劍)이기에 천허존신강기(天虛尊神강氣)를 관통할 수 있었지.”

청의인은 그런 백의인의 모습을 보고 음독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형님! 그만 저승으로 가셔야겠소이다.”

그의 쌍장에는 청색강기(靑色강氣)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으... 오냐! 네놈하나 죽일 힘은 남아 있다!”

백의인이 이를 악물고 쌍장을 쳐들었다.

위_______ 잉!

스스스...!

백의인의 전신에서 성스런 서기(瑞氣)가 노을같이 일어났다.

“으하핫! 잘 가시오!”

청의인이 대소하며 쌍장을 내쳤다.

카______ 카캉!

콰______ 릉!

새파란 강기(강氣)의 덩어리가 굉렬한 기세로 백의인을 휩쓸어갔다.

“오냐! 오너랏!”

백의인이 피를 토하며 쌍장을 휘둘렀다.

슈_______ 앙!

스스... 스...

백의인의 쌍장에서 일순 서기로운 노을이 크게 번졌다.

“크_______ 윽!”

그러나 백의인의 안색이 회색으로 변하는 순간 그 서기는 눈녹듯이 사그러 들었다.

콰_______ 앙!

그 순간 청의인의 청색강기가 모질게 백의인의 전신을 두들겼다.

“아_______ 악!”

푸_______ 학!

백의인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허공으로 튕겨졌다.

그리고는 피안개를 뿌리며 단애 아래고 떨어져 내렸다.

“흐흐흐...!”

청의인은 백의인을 떨어뜨린 단애로 내려다보며 음악하게 웃었다.

“흐흐... 형님 잘가시오. 형님의 모든 것은 이 동생이 이어받을 테니까.”

문득 그자의 얼굴에 음탕한 빛이 떠올랐다.

“흐흐... 물론 아름다우신 형수까지도...”

이어 그자는 하늘을 바라보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우하하! 오년(五年)! 오 년(五年)이다. 천외기학(天外奇學)을 완전히 내것으로 만든후면... 천하가 나의 발아래 무릎을 꿇을 것이다.”

청의인은 마치 미친듯이 웃어대었다.

휘르르,...

무심한 산풍은 천륜(天倫)을 거역한 참사가 벌어진 단애에서 혈향(血香)을 몰아 서쪽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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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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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장

 

          색남색녀 (2)

 

 

 

황군성과 진우란은 여인숙에서 같은 방을 사용한다.

황군성으로서는 껄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진우란은 불안해서 혼자 방안에 있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잘 믿기지는 않았지만 황군성은 같은 방안에서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그녀의 파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꼬르륵!

밤이 깊어가자 황군성은 배가 슬슬 고프기 시작하고 술이 먹고 싶어졌다.

그냥 나가자니 진우란이 깨고나면 뭐라 할 것같고 그는 진우란을 불러보았다.

[진소저!]

진우란은 침상에서 잠이들었는지 아무대답이 없다.

황군성은 다시 한번 불렀다.

[진소저!]

[아웅! 왜그래요?]

[나가서 뭘좀 먹고 옵시다. 배가 출출해서 잠을 잘수가 없소.]

진우란은 몸을 뒤척이며 잠결처럼 말했다.

[혼자같다 오세요. 어린애 처럼 꼭 같이가야해요?]

황군성은 어리둥절해졌다.

어린애 처럼 혼자서는 못잔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말로서는 당하지 못할 게 여인이다.

아예 입씨름을 포기하고 황군성은 일어났다.

진우란의 드러난 뽀얀 귀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었다.

그는 여인숙을 나왔다.

[아무래도 내 양껏 먹으려면 주루엘 가야지.]

 

여인숙의 방문이 살짝 밀렸다.

진우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벌써 먹고 온 거예요?]

조용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고 새록새록 잠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숨소리를 낮춘 장대호와 그 여편네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눈알을 굴리며 침상에 누운 진우란을 확인한 그들은 한 알의 약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검은 약병을 꺼내어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몽글몽글‥‥‥

파란 연기가 병에서 나와 진우란의 얼굴을 향해 몰려갔다.

진우란의 콧속으로 파란 연기가 빨려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장대호는 약병의 마개를 닫았다.

[됐어. 흐흐흐‥‥‥계명고에 취했으니 해독약을 먹이기 전엔 결코 깨어나지 못할 거야. 이제 들고나가자.]

계명고(鷄鳴藁)란 일종의 마취약이다.

흔한 무림의 잡배들이 사용하는 미혼약보다 훨씬 효력이 강하고 또한 오래가는 것이다.

보통 미혼약은 찬물을 마시거나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 버리지만,

이 계명고는 해독약을 먹기 전에는 결코 깨어날 수 없는 무서운 마약인 것이다.

장대호는 준비해온 포대를 꺼내 진우란을 넣었다.

[한데 그놈은 어디간 거야!]

그의 여편네가 포독스럽게 말했다.

[일단 이년 부터 손에 넣고 있으면 그놈은 절로 걸려들거야.흐흐‥‥‥]

장대호는 벌써부터 입으로 침을 흘리고 있었다.

얼마 후,

두 개의 그림자가 도둑고양이 처럼 담을 넘어 여인숙을 빠져나갔다.

 

동정호 변에 세워진 수신묘(水神廟)!

쿵!

장대호는 보자기를 내려놓았다.

꿀꺽!

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여인은 한쪽에 팔짱을 낀채 서있다.

보자기를 풀자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진우란이 나왔다.

진우란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장대호가 말했다.

[흐흐흐‥‥‥이 야들야들한것, 이 장나으리가 극락구경을 시켜주마.]

그의 여편네가 말했다.

[빨리 끝내. 그년은 내손에 죽어야 해.]

바로 그때,

[안돼! 시작할 수도 없어!]

어디선가 여인의 옥음이 들려왔다.

장대호의 여인이 흠칫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냐! 썩 나와라!]

장대호가 약간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소리쳤다.

[넌 조금 있다가 힘쓰야 할텐데 소리도 치지마.]

예의 목소리는 다시 들려왔고,

쿵!

한쪽 구석에서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장대호의 안색이 확 변했다.

소리가 난 곳에는 그의 여편네가 눈을 까뒤집고 죽어있었다.

이마 한가운데 솔잎이 반쯤 꽂혀있었다.

[헉!]

장대호는 숨이 끊힐 듯이 놀랐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툭친 것이었다.

그와 함께 여인의 육향이 그의 정신을 황홀하게 했다.

[아까부터 너를 지켜보고 있었어. 제법 쓸만한 몸이더군.]

[누 누구냐?]

장대호는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눈앞이 확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마천화, 마천화인 것이다.

또한 그녀의 얼굴에는 보통 여인들에게는 없는 색기(色氣)같은 것이 있어서 장대호는 자신의 어느 한 부분이 한순간에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편네 보다 훨씬 젊고 아름답다‥‥‥)

장대호는 그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상대가 무림고수이건 아니건 가릴 바가 없었다.

그는 와락 마천화의 허리를 껴안았다.

[호호호‥‥‥확실히 제법이야. 마음에 들어. 그럼 어디 마음껏 기술을 발휘해봐!]

그녀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장대호가 그녀의 몸을 만지기 좋도록 해주었다.

물론 두 다리도 적당히 벌리고 섰다.

장대호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지나갔다.

(흐흐흐‥‥‥네년이 지금이 이래도 조금있으면 제발 살려달라고 온갖 아양을 다떨것이다.)

그는 그쪽 방면으로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고수라고 자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스르르‥‥‥

손으로 그녀의 몸에 닿을락말락 스치며 둔부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놈‥‥‥확실히 제법이야‥‥‥한동안 같이 놀아야 겠어.)

마천화는 실력있는 상대를 만나자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축축해지는 느낌이었다.

(흐흐‥‥‥죽여주마. 네년이 빌며 매달리도록 해주마.)

슬금슬금 장대호는 마천화의 몸을 더듬다가 한걸음 물러섰다.

[…………?]

그리고 그의 옷을 다 벗어버렸다.

탄탄해보이는 몸에 무엇보다 우람한 그의 육봉이 고개를 쳐들었다.

(헉!)

마천화는 보기만 해도 숨이 넘어갈 것같았다.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아니야! 내가 먼저 움직여선 안돼.)

하마터면 손을 내밀어 잡을 뻔 했던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그녀의 얼굴은 도화꽃 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참고 있는 것이다.

더욱 황홀한 정사를 위해서‥‥‥

다시 다가온 장대호는 마천화의 몸을 스다듬으로 자신의 물건으로 그녀의 하체를 툭툭 건드렸다.

마천화는 그때마다 짜릿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장대호의 눈에 기이한 빛이 감돌고,

그는 천천히 마천화의 치마를 걷어올렸다.

(흐흐‥‥‥짐작대로 네년도‥‥‥)

마천화는 겉옷 외에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치마가 걷어올라가자 두개의 하얀 옥기둥이 나타나고,

그 사이에 촉촉히 젖은 검은 비림이 나타났다.

장대호의 손은 치마 밑으로 해서 그녀의 둔부를 스다듬었다.

(아아‥‥‥그기 말고‥‥‥)

그녀는 숨이 턱에 닿을 것같았다.

장대호의 손이 더욱 거칠게 그녀를 유린해 주기 바라건만 장대호는 핵심을 피하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그녀가 둔부를 움직여 장대호의 손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인도하려 했다.

하지만,

장대호의 손은 여전히 주위를 맴돌뿐 이었다.

마천화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놈‥‥‥진짜 전문가야‥‥‥)

(흐흐흐‥‥‥네년이 내가 얼마나 많은 계집을 해치웠는지 알면 까무라칠 것이다.)

돈이 있을 때는 돈으로,

돈이 없을 때는 힘으로,

힘으로 되지 않을 무림의 여걸들은 약으로‥‥‥

그렇게 수많은 여자들을 강간했던 장대호였다.

그에게 당한 여자들은 많았지만,

아직 어느 여자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의 기술에 완전히 매료되어 무림의 여걸마저도 죽일 생각을 하기는 커녕 한번 만 더 해달라고 애원할 정도였으니‥‥‥

마천화의 옹달샘에 가득찼던 샘물이 마침내 밖으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주르르‥‥‥

그녀의 옥기둥같은 두다리를 타고 흘렀다.

두팔과 두 다리를 활짝 벌리고 서있는 마천화는 이미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달아올라있었다.

[흐윽 흐으‥‥‥]

마천화는 눈을 꼭감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장대호의 손이 마천화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사라락! 사라락!

 

             *** 

 

두 여인은 꼼짝도 못하고 빳빳하게 굳어있었다.

그녀들은 황군성의 사척반이나 되는 장검이 내뿜는 검기에 갇혀있었다.

[지난번의 서찰도 소저들이 전한 거겠지?]

두 여인은 서로 눈을 마주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소저들이 누군지 부터 말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황군성의 검이 이장 정도 떨어져 있는 탁자를 가리켰다.

[…………?]

[…………?]

갑자기 탁자가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두개의 다리가 잘려진 것이다.

기척도 흔적도 없이 발출된 검기에 의한 작용이었다.

두 여인의 놀람에 찬 눈동자 앞으로 그의 검은 다시 다가와 있었다.

마치,

중간의 동작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고 검이 정지해있을 때만 보이는 것같았다.

한 여인이 가볍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먼저 검을 거두셔요. 우리는 공자님의 적이 아니랍니다. 적이라니 상상할 수도 없지요.]

황군성은 냉냉하게 웃으며 검을 거두었다.

[내 검은 원래 있으나 마나이니 헛된 생각일랑 마시오.]

다른 여인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우리는 매화이검(梅花二劍)! 홍심련(紅心聯)에 소속되어 있어요. 련주님의 직속이죠.]

[홍심련?]

[그래요. 무림에서 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홍심련은 공자님의 친구죠.]

[나는 모르오.]

황군성은 차갑게 말했다.

[당신들이 전해준 정보는 엉터리였어. 대체 무슨 내게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지? 만약 나를 이용할 생각이라면‥‥‥]

[…………]

[당신들 홍심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오!]

매화이검 중 언니인 대매(大梅)가 말했다.

[어떻게 모르겠어요. 천하의 사신각마저 하루아침에 초토가 되어버렸는데‥‥‥]

[임매는 어디 있소.]

황군성은 무거운 음성으로 물었다.

대매가 그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사신이 지금 취옥성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

황군성은 묵묵히 매화이검을 노려보았다.

그의 몸에서는 구름같은 기도가 피어올랐다.

매화이검, 그녀들은 안색이 파랗게 변하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황군성이 느릿하게 물었다.

[홍심련의 목적은 천하제패인가?]

매화이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나를 이용해서 강자들을 제거하려고 하지? 전번엔 사신각, 이번엔 취옥성‥‥‥]

[오 오해예요. 우린 오직 공자님을 돕기 위해서‥‥‥]

[그래? 한데, 취옥성에 임매가 있는 것은 확실한가?]

매화이검은 흠칫하며 눈빛을 교환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탕!

황군성은 탁자를 짚으며 일어섰다.

[좋다! 아니 좋소. 소저들은 가시오. 하지만, 만약 취옥성에 임매가 없었을 경우!]

[…………]

[…………]

[당신들 홍심련은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오. 아마 홍심련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자들이 천하에서 모두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르오.]

매화이검의 안색이 흑빛으로 변했다.

(이 사람‥‥‥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홍심련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자가 천하에서 모두 사라진다‥‥‥

진정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황군성은 등을 돌리고 주루를 내려가고 있었다.

매화이검에게 비친 그의 등은 마치 대해보다 넓은 것같았다.

[빨리 련주님께‥‥‥]

그녀들은 빠르게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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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八 章

 

            色男色女 (一)

 

 

 

호남성 동정호(同庭湖),

늘어진 수양버들이 호수에 닿을락 말락하고,

가가소소 웃어 제끼는 유람객들의 소리가 주변의 숲을 살아있게 만든다.

군데군데 좌판에는 술과 안주를 놓고 손님을 상대하는 장사꾼들이 분주하다.

한데,

좌판 중에서 그늘이 가장 좋고 목도 좋아 보이는 곳,

돼지 목을 따는 듯한 소리가 갑자 터져 나왔다.

[이쌍놈의 새끼야! 차라리 나를 죽여라 죽여. 퉤! 더러운 새끼, 개보다 못한 새끼……]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들은 놀랍게도 서른 안팎의 젊은 여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 X같은 놈아, 내가 니놈한테 十을 팔았나 니놈 X을 샀나. 백주 대낮에 측간에서 달려들어 혼자서 부비고 핥고 쑤신 놈이 이제 와서 무슨 서방 노릇하겠다는 거냐. 이 X같은 놈아. 죽었으면 죽었지 네놈한테는 땡전 한 푼 못 준다. 씩씩……]

여인은 연주포(連珠砲)를 쏘아대듯 숨도 쉬지 않고 쏴붙혔다.

제법 반반한 얼굴의 그녀 앞에는 수치감과 당혹감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장한이 주먹을 올렸다 내렸다 하고있다.

[이……쌍년이……이……]

[죽여라! 죽여! 내가 죽고 나면 네놈은 어디 살 수 있관데? 귀신이 돼서라도 네놈의 오장육부를 파먹고 X까지 물어뜯어 버리겠다.]

바락바락 악을 쓰며 주먹앞에 얼굴을 내미는 여인이다.

[에잇 이년! 어디 죽어봐라!]

퍽!

[악!]

주위의 이목이 두려워 손대지 못하고 있던 장한도 이성을 잃었는지 여인의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얼굴을 감싸쥔 여인의 손 사이로 빨간 핏물이 줄줄흘러내렸다.

여인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이새끼야! 나라고 못때릴 줄 아느냐? 함께 죽자 이새끼야!]

여자 악귀같다고 하면 딱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이미 주먹질을 시작한 장한도 소리치며 잇달아 주먹을 날렸다.

[으아아아! 이十년 죽여버린다.]

퍽퍽퍽!

[아악! 죽여라 죽여!]

여인도 비명을 지르면서 앙겨들고,

풍류를 즐기러 나왔던 구경꾼들은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퍽!

여인은 갑자기 눈앞에 있던 장한의 얼굴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쿵!

그녀의 몸이 반드시 뒤로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얼굴에서 흘러내린 피가 호선을 그렸다.

눈이 벌개진 장한은 와락 여인의 몸위로 덮쳤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있는 여인의 얼굴과 가슴, 배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그의 눈은 광기를 번들거리고 있었다.

말릴 엄두도 내지 못한 구경꾼들이 차마 보지 못하고 눈길을 돌렸다.

순간,

북! 쫘악!

옷뜯어지는 소리가 중인들의 귀속을 파고들고,

여인의 옷은 아래위가 다 찢어져 유방과 아랫도리의 검은 부분이 확 드러났다.

[저……저런 개같은 놈! 아무리 여자가 심했기로서니 저런 개같은 짓을……]

보다못한 초로의 선비가 부채를 들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퍽!

젊은 망나니의 한번 발길질에 선비는 개구리처럼 뻗어버렸고,

사람들은 분개하면서도 다시 나서지 못했다.

 

진우란이 붉어진 얼굴로 소곤거렸다.

[아무리 부부라지만 저건 너무 심하군요.]

[내가 어떻게 해보겠소.]

황군성은 혈도를 쳐서 쓰러진 선비에게 정신이 들게 했다.

그리고 장한과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장한은 여인의 몸 위에 자신의 몸을 실고 뭔가를 삽입하려는 중이었다.

진정,

개가 따로 없었다.

인간이라면 수치감으로 이런 일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림자가 자신을 덮는 것을 느낀 장한은 여인의 몸 위에 엎드리면서 힘껏 호미각(虎尾脚)을 날렸다.

퍽!

[어이쿠!]

황군성의 몸에 반탄된 힘에 의해 장한은 땅을 뒹굴며 발을 감싸잡았다.

헐떡 까발린 그의 남성이 시꺼멓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저벅저벅!

장한은 다가오는 칠척장신의 황군성을 보곤 겁에 질려 비실비실 기어서 물어났다.

하지만,

황군성의 손은 그의 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죽이진 말아요!]

진우란의 다급한 음성이 들리고,

휙!

훌렁!

장한은 허공을 가로질러 호수로 날아가고,

펄렁펄렁!

벗겨진 그의 바지가 치부를 드러낸 채 정신을 잃고있는 여인의 몸위에 알맞게 내려 덮혔다.

[어푸! 어푸! 살려줘! 읍……꼬로록!]

헤엄을 치지 못하는 것인지 호수에 떨어진 장한이 퍼덩개를 치며 살려달라고 고함 치고있다.

황군성은 돌아서서 진우란에게 오면서 슬쩍 지풍을 날려 여인의 인중을 가볍게 찍었다.

순간,

번쩍 눈을 떤 여인이 용수철 튕기듯이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 十할새깨 어디 있어. 어디 있어~]

눈을 희번떡 거리며 살피다가,

마침내 물에서 꼬르락하는 장한을 여인이 발견했다.

그녀는 다짜고짜 좌판에서 닭을 쫓는데 써던 시퍼런 식도(食刀)를 들고 장한을 향해 달려갔다.

벌어진 옷자락에서 흉물스럽게 유방이 덜렁거리고,

사타구니의 음영은 혐오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깡!

털썩!

진우란이 황군성을 보고 배시시 웃으며 자신의 행낭을 들어보였다.

여인은 팍 엎어진 채 다시 정신을 잃고 있었다.

진우란이 그녀가 옆을 스치고 갈 때 행낭으로 뒤통수를 친 것이었다.

짝짝짝!

[소저! 정말 잘했소. 그런 사람같지 않은 것들은 그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그녀를 추켜세웠다.

진우란은 더욱 얼굴이 붉어져 황군성의 손을 이끌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숲속의 바위에 앉아 솔바람 향기를 맡으며 진우란이 물었다.

[그들은 왜 싸웠을까요? 부부같던데……]

[총명한 진소저가 내게 그런 것을 다 묻다니 뜻밖이오.]

황군성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진우란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가고, 또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날이 어두워 오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나를 찾아낼까? 그렇다면 진소저의 짐작은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것이겠지.)

황군성은 며칠 전부터 갑갑한 심정으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 자기에게 임단심의 서찰을 전해 주었던 자를 기다리는 것이다.

(임매의 소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 출처도 정확하게 확인해보지 않는 우를 범했어. 바보같이‥‥‥)

그자를 만나기 위해 그는 행적을 완전히 드러내놓고 움직이고 있다.

만일 그자가 황군성을 어떤 목적에 이용하고자 했다면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진우란과 그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제 여인숙으로 가요.]

진우란이 그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여인숙? 또?]

[나는 가난해요. 당신같은 부자가 아니니 여인숙에서 잘 수밖에 더 있겠어요?]

진우란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두볼에 상큼한 보조개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이쁘게 패였다.

객점은 숙식을 겸할 수도 있고 시설도 훨씬 낫다.

하지만 여인숙은 말그대로 떠돌이들이 잠자는 곳에 불과하다.

황군성은 며칠 여인숙에서 지내보고 차라리 밖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던 것이다.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해도 진우란은 막무가내다.

이 시골아가씨는 검소한 생활이 몸에 향기처럼 배인 모양이었다.

황군성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보다는 나았지만 마지못해 끌려가기는 마찬가지였다.

 

× × ×

 

[빠드득! 그 十년을 갈아마셔 버리겠어!]

이빨을 가는 소리와 함께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여인이 흉악하게 눈을 빛내며 얼굴을 계란으로 문지르고 있다.

낮에 호수변에서 노점을 하던 그 여인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그 뭔년이 누군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 새끼도 죽여버리겠어. 감히 나 장대호(張大虎)를 건드리다니!]

그 여인의 뒤에서 장한이 말했다.

한데,

그들의 자세는 참으로 요상했다.

여인은 엎드려서 동경을 바라보고 있고 그 뒤에서 장대호가 무릎을 꿇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다.

낮에만 해도 결코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을 원수처럼 싸우더니 밤이되자 묘하게도 다시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몸은 아직 결합하지 않은 상태였다.

장대호가 자신의 뿌리로 여인의 둔부사이에 갖다댔다.

그의 얼굴이 색기로 긴장되고 여인이 한손을 뒤로 돌려 그의 뿌리를 잡으려 했다.

순간,

[헉!]

장대호의 허리가 심하게 한번 움직이자 여인은 동경에 얼굴을 부딪히며 쳐졌다.

장대호의 손이 우악스럽게 여인의 둔부를 움켜쥐었다.

[악! 으흐‥‥‥흑!]

여인은 교성을 지르면서 둔부를 움직였다.

장대호의 몸도 앞뒤로 요동쳤다.

[더! 더세게! 헉헉! 아아! 나죽어!]

여인은 아예 비명처럼 소리치고 있었다.

여인이 급격하게 둔부를 흔들었다.

[아아!]

[이 十八년! 으아!]

장대호도 욕설을 하면서 미친듯이 몸을 움직였다.

[못참겠어!]

여인이 벌떡 일어나며 뒤에 있던 장대호를 넘어뜨려 버렸다.

그러자 묘하게도 장대호위에 그 여인이 앉은 자세가 되어버렸다.

[아‥‥‥아‥‥‥]

여인은 한손을 장대호의 뿌리와 결합하고 있는 자신의 음부에 갖다대고는 문지르며 아래위로 움직였다.

아래에서 장대호가 세차게 쳐올릴 때마다 여인은 숨이 넘어가는 비명소리를 냈다.

[아윽‥‥‥]

갑자기 여인은 절정에 달했는지 사타구니를 오무리며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장대호는 아니었다.

여전히 세차게 움직이자 여인은 잠시 혼절해버리는 것같았다.

그때였다.

(착각이었나?)

장대호는 천정에서 누군가가 꼭 자기와 눈을 마주쳤던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찰라지간이어서 확신할 수 없었다.

[최고야! 흥흥!]

정신을 차린 여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불같이 치솟아 오른 정욕때문에 장대호는 그 사실을 젖혀버렸다.

와락 여인을 밀쳐 넘어뜨리고는 그위로 덮쳐들었다.

[악!]

여인이 비명을 지르고,

장대호는 한손으로는 여인의 유방을 힘껏 비틀고 입으로는 다른 유방을 깨물었다.

[아악!]

그들의 정사는 처절한 사투였다.

여인은 장대호의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순간 장대호의 손가락이 그녀의 은밀한 곳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헉!]

여인의 손이 느슨해지자 장대호는 그녀의 전신을 샅샅이 핥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여인의 몸위에서 요동치며 움직였고,

마침내 세찬 분출로서 그들의 정사를 마무리했다.

[학학‥‥‥]

[흑흑‥‥‥]

가쁜 숨소리가 방안의 더운 열기속을 맴돌았다.

벌렁 드러누운 장대호의 물건은 여전히 더세보였다.

대단한 대물이었다.

[그 새끼가 도할망구의 여인숙에 있는게 틀림없어?]

장대호가 물었다.

[틀림없어! 들어가는 걸 내가 직접 확인해봤으니까.]

[흐흐흐흐‥‥‥]

장대호의 눈에 음산한 살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꿀꺽! 그놈은 죽여버리고 그 계집은 내가‥‥‥흐흐‥‥‥]

[흥! 그놈도 그냥 죽일 순 없지. 자 나가봐야지.]

 

한쌍의 미치광이 같은 탕남탕녀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도노파의 여인숙으로 가는 것이다.

그들이 나간 방,

휙!

천정에서 흰 그림자가 내려왔다.

한데,

이게 누군가?

아름다운 모습, 요염한 얼굴, 이십이삼 세의 나이,

음양괴 마차달의 딸인 마천화가 아닌가?

입술을 핥으며 미소를 지어보인 마천화가 중얼거렸다.

[그놈‥‥‥대물이었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호호호‥‥‥]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는 창으로 넘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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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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