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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一 章

 

         武林皇帝를 뽑는 자리

 

 

 

[본좌는 현현궁의 궁주인 청삼객이오.]

하늘에서부터 학선평으로 부드러운 연인의 속삭임같은 음성이 울러퍼졌다.

크지도 않지만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 뚜렷하게 들리는 음성‥‥‥

[본좌의 초청에 바쁜 걸음을 해주신 무림동도 여러분께 먼저 감사드리는 바이오.]

그렇다.

청삼객은 무림전체에 공문을 돌려 이곳 학선평으로 모이게 한 것이었다.

칠파는 이곳으로 달려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연락하지 않았던 것이고‥‥‥

청삼객의 인사말은 계속되었다.

허공에서 몸을 멈춘 채 목소리가 널리 퍼져나가도록 하는 기이한 공력을 지닌 그는 어조에서 조차 한점 변화가 없었다.

그의 인사말이 끝나고 핵심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이에 본좌는 무공의 고하로 무림황제를 추대하여 혼란스런 무림에도 질서와 평화를 부여하자는 것이오.]

경악이 번져 나가고‥‥‥

학선평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내일 각파의 수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합시다.]

청삼객은 사방으로 포권을 해보인뒤 천천히 걸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현현궁의 막사 앞에서 정확하게 발을 땅에 딪고 들어갔다.

사람들은 귀신에 홀린 듯한 분위기였다.

그들은 제각기 막사안으로 들어갔다.

노을은 검게 변하고 밤은 점점 깊어만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학선평이지만 감히 경거망동하는 자는 없었다.

작은 소란이 얼마나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인지 모두들 잘 알고 있는 때문이리라.

 

이신보의 천막안,

[제갈공지! 말해 보아라.]

검신이 제갈공지를 응시하며 말했다.

제갈공지는 그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한참 생각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현현궁주는 아마도 두가지의 방법을 택할 것같습니다.]

[어떤 방법인가?]

도신이 물었다.

[하나는 세력들을 위한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고수들을 위한 방법이라 사료됩니다.]

제갈공지가 신중하게 말했다.

[청삼객은 먼저 세력들을 무마하기 위해 각 방파에서 대표자를 뽑아 결전을 벌이게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한 각 개별 적인 고수들이 무림황제의 자리에 도전하도록 하게 하겠지요.]

[음‥‥‥그렇게 된다면 강한 파에서 많은 고수들이 있을 테니까 그들은 개인자격으로 출전하고, 또한 대표자는 대표자대로 출전하게 된다는 말이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겠군.]

도신이 머리를 끄덕였다.

검신이 침중한 안색으로 물었다.

[범형은 청삼객이란 자를 어찌 보시오?]

도신 범강은 나직한 한숨을 쉬고 말했다.

[대단한 자요. 천하의 무림정령이 다 모였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처럼 압도할 수 있다니‥‥‥솔직히 말해서 내 무공은 그에 미치지 못하오.]

검신 전득무도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을 다해 볼 수 밖에‥‥‥나도 자신은 없소. 황소협은 어떤가?]

황군성이 입을 열기도 전에 도신이 고개를 저었다.

[말할 것도 없네. 만약 공력이 온전하다면 한번 해볼만 하겠지만‥‥‥내공을 완전히 잃어버렸으니‥‥‥]

황군성과 임단심, 전무옥은 입조차 떼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듣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신등은 황군성의 비밀을 모르고 있었다.

혈왕신공이 함유된 목계신공의 비밀을‥‥‥

황군성은 속으로 생각했다.

(청삼객의 무공은 강하다. 아주 강하다. 하지만‥‥‥무제(武帝)보다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이외에 또다른 고수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림황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자리다. 나는 내일 출전해야 할까?)

그는 힐끗 임단심을 바라보았다.

(휴‥‥‥위지장천의 말은 맞다. 나는 지금까지 줄곧 어리석은 짓만 했다. 내일이라고 별다른 짓을 할리가 없을 것같다. 내가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그는 한참 번민하다가 결심을 했다.

(그래! 내공을 진짜로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하고 조용히 임매와 함께 소음곡으로 돌아가자. 무림황제 따위가 내게 무슨 소용인가? 내 행동마저 다스리지 못하는데‥‥‥)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자 속이 후련한 것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버님! 저는 이만‥‥‥]

도신 범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피곤할 텐데 그만 가서 쉬도록 해라. 너도‥‥‥]

임단심을 향해서도 눈짓을 해보였다.

황군성은 임단심과 함께 마련된 천막으로 가버렸다.

전무옥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그림자처럼 어렸다.

검신 전득무가 안됐다는 듯이 말했다.

[그 가공하던 내공을 일시에 잃어버렸으니 쯧쯔‥‥‥]

그들은 계속해서 출전해야 할 고수를 정하는 데 고심하고 있었다.

밖에는 반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달빛은 삼성혈의 나부끼는 깃발도 환히 비춰주고 있었다.

깃발이 마치 날아가기라도 할 듯이 힘껏 움켜잡고 있는 손이 있다.

등에는 기형장검을 맨 백색장포의 미청년,

바로 위지장천이다.

이곳에 모인 세력들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삼장의 후신인 삼성혈을 이끌고 있는 주인인 그‥‥‥

그의 어깨에는 마치 황군성이 그랬듯이 쓸쓸한 고독이 얹혀있었다.

오직 힘,

힘하나 만으로 그는 자신을 이용하려던 가신(家臣)들의 세력인 삼장을 장악했다.

이미 무림칠대세력 중 삼대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던 그들을‥‥‥

그에게 악마의 무공 월음천마공을 익히라고 강요한 귀왕장의 장주인 철사륵을 죽이면서 시작된 그의 반란 아닌 반란은,

그들과 결탁한 사신각의 살수들을 무수히 죽이고,

마침내 화운장(花雲莊)과 천음장(天音莊)마저 굴복시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면서 마무리 되었었다.

[하지만‥‥‥아직 화운장주 갈지공(葛智空)! 그놈을 죽이지 못했다. 내가 화운장에 들어갔을 때 그놈은 없었다. 가장 교활한 자‥‥‥]

위지장천은 하늘을 우러러 중얼거렸다.

그는 수하들이 자신에게 진정으로 충성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힘! 힘! 오직 힘만이 그의 위치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 고독한 것이다.

[청삼객! 그는 강하다. 하지만‥‥‥나도 그에게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지검이 있는 한 내 위에 설자는 없다.]

그는 등 뒤의 묵직한 기형괴검의 무게를 느끼며 새삼 뿌듯해 했다.

[가문의 원수 사신도 내일이면 내손에 죽겠지.]

그는 사신각의 살수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끓고 있었다.

 

× × ×

 

조그마한 천막,

작은 방파나 혈혈단신인 고수들이 모여있는 곳에 있다.

그 안에는 세명의 노인이 고개를 맞대고 숙의하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아이가 공력을 상실했다고 하오.]

헐렁한 양쪽소매를 가진 노인이 말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소. 내 혈왕신공을 익힌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오.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오.]

다른 노인이 말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하지 않소. 어쩌면, 아니 반드시 그자들도 이곳에 와 있을 것이오.]

얼굴에 푸르스름한 기가 도는 노인이 말했다..

그눈 눈에서도 청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말에 두 노인이 아주 숙연해졌다.

그자들‥‥‥

그들의 일생을 한에 사무쳐 살아오게 했던 그자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헐렁한 소매를 가진 노인이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전에 전해주지 못했던 물건을 전해주어야겠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그는 천막을 나가 달빛 아래로 나섰다.

천막 속에 있던 이들은‥‥‥

백년 전 무림을 종횡했던 전설적인 고수 한천사방객 중의 세사람이었다.

 

× × ×

 

[황오라버니, 당신은 그럼 이대로 소음곡으로 돌아가잔 말이에요?]

임단심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황군성은 탄식하며 말했다.

[임매! 나는 괴롭소. 나는 바보요. 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소. 무림에 나온 이후 줄곧 바보같은 짓만 했소. 조용히 소음곡에 쳐박혀 있었어야 했소.]

임단심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훌륭하신 분이에요. 만약 황오라버니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그건 아직 황오라버니 자신의 길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럴 거예요.]

그녀는 황군성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위로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아무 준비도 없이 무림에 던져졌어요. 어떤 정보도 없이 갓 태어난 어린애처럼 말예요. 무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데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있었겠어요? 물론 처음부터 잘 하거나 잘 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지 않겠어요?]

황군성은 눈을 감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제 일년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자책만 하신다면 너무 성급하지 않겠어요? 조금 더 있어 보도록 해요. 과연 무림황제가 탄생할지 구경도 해보구요. 당신의 무공이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리가 있겠어요?]

황군성은 마음속으로 깊이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나는 바보같이 행동했다. 하지만‥‥‥앞으로는 얼마든지 잘할 수도 있지 않은가? 더구나 임매가 옆에서 도와주면‥‥‥)

쪽!

그는 임단심을 안아올려 뺨에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며 말했다.

[임매! 정말 고맙소. 당신이야 말로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오.]

[이러다가 다시 저를 젓혀두고 다른 여자와만‥‥‥]

임단심이 말을 하다가 차마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황군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 벌로 지난 일년간 당신만을 찾아 해맸지 않소. 용서해 주시오.]

임단심이 배시시 웃었다.

[벌써 용서했어요.]

[정말이지. 지금까지 나는 무슨 마음을 먹기만 하면 그것이 잘못되기만 했소. 패기를 가져서 뭔가 잘되나 했더니 당신이 떠나가고, 내단을 복용해서 내공이 깊어지나 하면 아예 내공이 묶여버리고‥‥‥늘 이런 식이었소.]

임단심은 그의 품에서 빠져 나오며 말했다.

[그럼 기분을 바꿀 겸 우리 술이나 마실까요? 제가 가져 올게요.]

[마다할 리가 있겠소.]

임단심은 천막 밖으로 나갔다.

이신보는 대대적인 이동을 했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다.

물론 술도 창고로 쓰이는 천막에 가득 있다.

[이게 적당하겠어.]

임단심은 작은 술통하나를 들고서 창고 천막을 나왔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는 영락없이 술도둑같이 보였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황군성과 자기의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언니 술인 모양이죠?]

그녀의 뒤에서 영롱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았다.

황색 옷을 입은 소녀가 허리에 손을 얹고 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신보의 진중에는 남녀 고수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이 흑의를 입지만 개중에는 더러 색다른 옷을 입는 사람들도 있었다.

임단심은 이신보의 제자들 중의 하나이거니 생각하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동생은 누구죠?]

[저는 진우란이라고 해요. 이름이 좀 바보스럽죠?]

소녀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임단심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쁜 이름이군요. 내 이름이야 말로 아주 촌스러운 편이에요.]

[언니 이름은 뭔데요?]

소녀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웃지 말아요. 음‥‥‥단심, 임단심이에요.]

임단심은 왠지 그녀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즐거웠다.

황군성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번히 알면서도 그녀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소녀가 그녀의 곁에서 먼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단심‥‥‥단심‥‥‥휴‥‥‥얼마나 좋은 이름이에요. 조금도 촌스럽지 않아요. 차라리 제 이름이 단심이었다면 좋겠어요.]

그녀의 음성은 어떤 감정같은 것이 배여 있어 임단심은 약간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녀는 나란히 걸으면서 즉시 말했다.

[진동생은 무슨 사연이 있군요. 내게 말해줄 수 있겠어요?]

진우란이 쓸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있다면 핑계 없는 무덤도 있어야겠지요. 아! 달도 밝은데 차라리 언니에게라도 내 심정을 털어놓고 싶군요.]

임단심은 그녀에게 깊은 동정심이 생겠다.

[내가 들어줄게요. 그런 마음은 가슴속에만 묻어두고 있으면 병이돼요.]

[그럼 말할게요. 언니, 어떻게 이른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 마음을 줬는데 이미 아내가 있는 사람이었지 뭐예요.]

[저런!]

임단심은 그녀의 불행한 애정에 동정을 표하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진우란이 처량하게 말했다.

[어떻게 하겠어요. 정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거든가요? 하는 수 없이 그 사람만 따를 생각이었는데‥‥‥]

[그래요. 하! 정은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지요. 무서운게 정이죠.]

임단심도 지난 일년동안 정에 몸부림쳤기에 자신도 모르게 한탄조로 말했다.

[한데 언니 이럴 수가 있어요? 세상에 절더러 자기가 묻지도 않은 걸 대답하지 않았다고 박대하는 거예요. 숫제 저를 믿지 못하겠다나요? 사랑은 일시라도 없어질 수 도 있겠지만 믿음이 없어지면 어떻게 함께 살 수 있겠어요?]

진우란의 음성에는 울음이 배여 있었다.

임단심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었다.

[그래서 그를 떠났어요?]

진우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그를 죽여버리고 나도 죽고싶어요. 흑!]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삼켰다.

임단심이 한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달랬다.

[동생, 나를 언니로 생각한다면 그런 마음은 먹지도 말아요. 어떻게든 좋은 방법을 찾아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이러지 말고 우리 천막으로 들어가요.]

때마침 천막이 불과 일장 앞에 있는지라 임단심은 억지로 그녀를 천막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임단심은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서있는 황군성과 매섭게 황군성을 노려보는 진우란을 번갈아 보면서 어리둥절했다.

진우란이 또박또박 한이서린 음성으로 말했다.

[언니, 이사람이 제가 죽이고 싶다던 그 사람이에요.]

혹시나 하고 불안해하던 임단심의 표정이 서릿발처럼 굳어졌다.

황군성은 갑자기 나타난 진우란에게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임단심의 눈이 독기를 품고 황군성에게 다가갔다.

[황오라버니, 당신이 무림에서 어떤 멍청한 짓을 했던 그건 괜찮아요. 하지만, 여자문제에 있어선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어요.]

[임‥‥‥매!]

황군성은 어쩔 바를 모르면서 물러서지도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당신은 벌을 받아야 해요. 용서하세요.]

임단심은 냉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번쩍!

그녀의 소매에서 새파란 빛이 번쩍이더니 천막으로 붉은 피가 튀었다.

[억!]

황군성은 목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쓰러졌다.

[안돼!]

진우란이 재빨리 임단심의 손을 잡았지만 이미 황군성은 목석처럼 넘어지고 있었다.

쿵!

그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분수가 천막안을 붉게 물들였다.

진우란은 넋이 나간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임단심의 손에는 피묻은 비수가 들려있었다.

그녀가 진우란의 손에 비수를 쥐어주며 말했다.

[죽여요. 복수를 해요. 사내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 행위 하나가 한 여자의 인생을 얼룩지게 했다는 것을 보여줘요.]

[나 나나난‥‥‥]

진우란은 임단심이 쥐어주는 비수를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임단심이 완강하게 쥐어주자 받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차라리 이게 잘됐어요. 괴로워하며 사느니‥‥‥]

그녀는 황군성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군요. 결국‥‥‥]

그녀의 손이 황군성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함께 살지 못할 바에야 함께 죽는 것이 훨씬 좋겠죠. 당신이 나를 의심할리도 없을 테고‥‥‥]

그녀의 말은 이제 놀람과 격동은 넘어서 오히려 담담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그녀의 진정이 배여있었다.

임단심은 턱을 높이 치켜들고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진우란이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언니, 미안해요. 나때문에 언니의 행복마저 깨어져 버렸군요. 정말 미안해요.]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임단심이 대꾸하지 않자 그녀는 황군성 옆에 앉아서 그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어 본 후에 비수로 힘껏 자기의 배를 찔렀다.

번쩍!

바로 그 순간,

[뭘해요! 정말 그녀를 죽일 참이에요!]

임단심이 날카롭게 소리치고,

비수를 잡은 진우란의 손은 황군성의 우수에 잡혀있었다.

비수는 그녀의 배에서 불과 반치도 남지 않은 거리에서 부르르 떨고 있었다.

황군성의 피에 젖은 얼굴에 두눈이 번쩍 떠졌다.

진우란은 펄쩍 뛰어 뒤로 물러서며 부들부들 떨었다.

[귀 귀신‥‥‥]

아무리 사신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아직 어린 소녀,

귀신을 겁내고 강시를 두려워하는 나이였다.

너무 놀란 그녀는 수족이 얼어붙어버리고 입도 떼지 못한 채 덜덜 떨고 있었다.

황군성이 벌떡 일어났다.

[아악!]

마침내 진우란은 기절하고 말았다.

넘어지는 그녀를 임단심이 옆에서 가볍게 부축했다.

[흥! 연극 한번 잘하더군요. 하지만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벌어지면 목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베어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요!]

임단심은 진우란을 침상에 갖다 눕히면서 황군성을 도끼눈을 하고 흘겼다.

황군성은 겸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말하지 않았죠?]

임단심은 그에게 따져 들었다.

[진매가 당신을 속인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속이는군요.]

[말하려고 했소. 하지만‥‥‥]

[뭐가 하지만 이에요. 엉큼하게 내공이 회복됐다는 것까지 숨기고, 진매가 죽인다는 말에서 생각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속고 있었을 거 아네요?]

임단심은 황군성에게 바짝 다가들며 따지고 들었다.

그녀는 진우란이 황군성을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서야 비로소 황군성이 전날 검신의 검을 목에 맞고도 곧 회복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자신이야 말로 속았다는 생각에 분이 나서 진짜로 그의 목을 찌르고 만 것이었다.

정말 여자는 무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황군성은 쩔쩔매매 그녀에게 빌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로서는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임단심이 다시 떠나버리기라도 한다면 여간 큰일이 아닌 것이다.

[옷이나 갈아입고 천막밖으로 나가요!]

황군성은 군말없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했다.

모르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잘못을 범하지 않는 최고의 방법이리라.

황군성은 뒤늦게 그러한 진리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피에 젖은 옷을 벗어버리고 임단심이 집어주는 장포를 걸치고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천막 밖에 나가 쭈그리고 앉았다.

달은 반달이지만 밝았다.

자신의 신세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왠지 즐거운 기분이들고 있었다.

천막 안에서 두 여자가 자기를 비방하는 소리가 노래처럼 즐겁게 들리고 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왠지 그도 잘해낼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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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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