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에 해당되는 글 366건

  1. 2020.10.05 [태산북두] 제 9장 음양철갑망
  2. 2020.10.04 [태산북두] 제 8장 탈출
  3. 2020.10.02 [태산북두] 제 7장 신검보의 지배자2
  4. 2020.10.01 [태산북두] 제 7장 신검보의 지배자1
  5. 2020.09.30 [태산북두] 제 6장 무적십이검의 미소년2
  6. 2020.09.29 [태산북두] 제 6장 무적십이검의 미소년1
  7. 2020.09.27 [태산북두] 제 5장 검신보의 검신2
  8. 2020.09.26 [태산북두] 제 5장 검신보의 검신1
  9. 2020.09.24 [태산북두] 제 4장 독봉 임단심2
  10. 2020.09.23 [태산북두] 제 4장 독봉 임단심1
  11. 2020.09.22 [태산북두] 제 3장 천하대란의 조짐은 태산에서부터 예언되었다.
  12. 2020.09.20 [태산북두] 제 2장 신비한 일족
  13. 2020.09.18 [태산북두] 제 1장 한천사방객
  14. 2020.09.18 [태산북두] 작품이력
  15. 2020.09.16 [환락영웅] 제 59장 백인장으로 돌아가는 길 (완결)
  16. 2020.09.15 [환락영웅] 제 58장 의견일치, 부자무적
  17. 2020.09.14 [환락영웅] 제 57장 청년의 야망 속에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
  18. 2020.09.13 [환락영웅] 제 56장 피 뿌리는 어린도
  19. 2020.09.12 [환락영웅] 제 55장 황녹천의 제안
  20. 2020.09.11 [환락영웅] 제 54장 생기지도 않은 아들을 도박으로 날려버린 사나이
  21. 2020.09.09 [환락영웅] 제 53장 객점에 찾아온 신선
  22. 2020.09.08 [환락영웅] 제 52장 미녀를 땅에 묻고 땅 위에 쓰러지다
  23. 2020.09.07 [환락영웅] 제 51장 천하제일의 초식고수
  24. 2020.09.04 [환락영웅] 제 50장 혈기자의 변신
  25. 2020.09.03 [환락영웅] 제 49장 만남의 장소, 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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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陰陽鐵甲蟒

 

 

 

[전 당신이 죽은 줄만 알았어요.]

임단심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나는 쉽게 죽지 않소.]

황군성이 말했다.

[그리고 검신은 내게 목숨을 빚지고 있소. 머잖아 그의 목숨을 거둬들이겠소.]

임단심은 방긋 미소만 지었다.

황군성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황군성은 검신과의 대결에서 자신을 과소평가한 검신을 기계(奇計)로 상대했다.

그는 불과 하루 사이지만 엄청나게 변하고 있었다.

싸울 수록 그의 투지와 생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들끓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허무와 절망과 고독이 너무 강했기에,

그 반발로 그만큼 억눌러져 있던 생에 대한 욕구와 투지가 샘솟고 있는 지도 몰랐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새는 줄 모른다 했던가?

황군성은 그처럼 열심히 생을 살게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황군성은 중얼거렸다.

[이제, 결코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는 않겠다. 나의 모든 것은 내가 주도한다.]

[우리 동굴같은 데를 찾아봐요.]

임단심은 그의 손등을 꼬집으면서 말했다.

어둠이 홍조띤 그녀의 얼굴을 감싸주고 있었다.

 

× × ×

 

하나의 석부(石府),

십여 개의 횃불이 밝혀져 있다.

아주 넓은 석실이다.

하지만 석실의 한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은 그야 말로 주먹보다 조금 커보이는 황금빛 화로(火爐) 하나 뿐,

괴기스러운 적막이 석실에 넘실대고 있다.

그그긍!

문득 한쪽에 있는 석벽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깡마른 체구,

너무 늙어서 꾸부정한 허리,

군데군데 빠져 버린 수염은 흉하게 보이고,

움푹 들어간 눈에서는 흉신악살(兇神惡殺)과 같은 빛이 번쩍인다.

닳아빠져 무릎이 나오고, 소매가 반쯤만 남은 옷을 입고 있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석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황금빛 작은 화로 앞에 앉은 노인은 형형한 눈초리로 화로를 응시하고 중얼거렸다.

[오늘로 딱 칠십일년 째, 일만일천사백구십다섯 가지의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노인의 까마귀 울음소리 같은 말이 석실에 울러퍼지면서 횃불이 일렁거렸다.

[나, 색혈광마(索血狂魔) 음자추(陰紫錐)가 구룡로(九龍爐)를 얻고도 비밀을 풀지 못해 청춘을 이 석실에서 잃어버리다니……]

그의 음성은 분노를 담고 있었다.

한데,

색혈광마……

구룡로……

이게 무슨 말인가?

노인이 바로 색혈광마 음자추이고 황금화로가 바로 구룡로란 말인데,

 

칠십여 년 전, 무림에는 일대의 살인마가 등장했다.

미치광이처럼 무림인들을 찾아다니며 사지(四肢)를 찢어서 죽이는 일대의 흉마였다.

장강(長江) 일대에서 부터 시작된 그의 살인은 남북으로 이어졌고,

불과 이년 이란 짧은 시간에 그에게 살해된 사람의 수는 무려 이천 명이 넘었다.

단 하루도 손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무공은 괴이독랄하여 아무도 그의 십초지적이 되지 못했는데,

이를 간과할 수 없었던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 소림사(少林寺)가 드디어 십팔나한(十八羅漢)을 파견하기에 이르렀고,

때맞추어 무당(武當)에서는 삼십육천강(三十六天罡)을 파견했다.

마침내,

소림과 무당 양파의 고수들과 색혈광마가 황하(黃河) 변에 있는 비정애(非情崖)에서 만나 일대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십팔 나한 중 여섯 명과 삼십육 천강 중 아홉 명이 색혈광마 음자추의 손에 의해 죽은 댓가로,

그들은 음자추의 일곱군데 사혈을 찌르고 비정애에서 황하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색혈광마 음자추는 무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노인은 자기가 색혈광마 음자추임을 말하고 있다.

일곱군데의 사혈을 찍혀 황하에 떨어졌던 자가……

세인들의 추측을 깨고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다.

 

색혈광마 음자추는 구룡로를 내려다보면서 섬찟한 괴소를 흘러냈다.

[흐흐흐……하지만, 구룡로의 비밀을 풀기만 하면 천하는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 으하하하……]

 

× × ×

 

[어머! 이런 곳에 동굴이 있어요.]

임단심이 두개의 바위틈에 난 작은 동굴을 보고 소리쳤다.

황군성은 그 동굴을 보고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작소, 내 몸이 들어갈 것 같지가 않은데……]

임단심이 동굴 안으로 쪼르르 달려 들어갔다.

[안은 상당히 넓어요. 들어와 보셔요.]

순간,

휙!

비릿한 내음과 함께 어둠속에서 뭔가가 덮쳐왔다.

[앗!]

임단심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쿵!

워낙 당황하여 동굴의 낮은 입구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그사이,

쉭!

비릿한 내음이 왈칵 덮쳐오고,

그녀는 힘껏 일장을 날렸다.

펑!

손바닥으로 마치 철판을 두드린 듯 한 충격이 전해왔다.

하지만 그녀는 연거푸 장력을 날렸다.

[무슨 일이오?]

황군성은 임단심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비명소리와 함께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자 크게 외치며 동굴속으로 들어왔다.

몸을 웅크리고 그가 동굴 속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한 마리의 거대한 뱀 앞에 위협받고 있는 임단심을 볼 수 있었다.

황군성에게 동굴 속의 어둠 정도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펑!

황군성은 왼손을 날려 일장을 때렸다.

투쾅!

그리고 동굴의 안쪽을 향해서도 강맹한 일장을 날렸다.

순간,

쩌저적!

동굴 속에는 북풍한설보다 더 차가운 바람이 일면서 뼈를 얼릴 듯한 한기로 가득 차 버렸다.

임단심은 몸속으로 침입하는 한기에 의해서 덜덜 떨며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추……워……요.]

그녀를 공격하던 거대한 대망은 얼음이 되어버린 듯 굳어있었다.

황군성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공력을 일으켜 그녀의 몸에서 한기를 몰아내 주었다.

그는 적이 뱀임을 보자 빙백강기를 일으켰던 것이다.

잠시 후,

임단심이 부르르 진저리를 치고는 말했다.

[대체 무슨 무공인데 이리 추워요.]

[빙백강기라는 것이오.]

화섭자를 꺼내어 불을 밝힌 임단심은 거대한 대망에 눈이 휘둥그레 졌다.

[음양철갑망(陰陽鐵甲蟒)!]

소리친 그녀는 안색이 홱 변했다.

[다른 한 마리가 있을 거예요.]

[걱정할 것 없소. 이미 손을 썼으니까.]

황군성의 말을 듣고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빙백강기로 얼리지 않았다면 힘든 싸움이 될 뻔 했어요. 이놈은 도검이 불침하는 비늘을 가지고 있거든요. 한데 이놈은 적어도 천년은 된 것같아요. 그야 말로 무림인에겐 보물이라고 할 수있죠.]

얼어있는 음양철갑대망,

그 굵기는 건장한 사람의 몸통보다 더 컸다.

길이도 이장 가까이나 되어 큰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이 누워있는 것같았다.

임단심의 말대로,

황군성이 재빨리 빙백강기를 펼치지 않았더라면 음양철갑대망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였을 것이다.

이 짐승은 힘도 써보지 못하고 어이없이 당해버린 셈이다.

동굴의 안쪽에도 빙백강기에 격중된 한 마리의 철갑대망이 있었다.

이 음양철갑대망은 늘 한쌍이 같은 곳에서 사는 것이다.

임단심의 기쁨은 대단했다.

[뜻밖에 보물을 얻었어요. 이것들은 앞으로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곳은 황하가 가까운 곳으로 음양철갑대망은 황하 물속으로 왕래하면서 옷갖 짐승들과 때때로 사람의 시체까지 먹으면서 살아왔었다.

어느 누구도 음양철갑대망이 이런 곳에 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황군성도 음양철갑대망에 대해서는 책에서 보았기에 잘 안다.

그도 내심 직접 음양철갑대망을 보고 자신이 그것을 손에 넣게 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내단과 피를 꺼냅시다.]

황군성의 왼손에서 백색 광채가 뻗어 나왔다.

번천도인 것이다.

임단심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잠깐만요. 철갑을 훼손하지 말아요.]

그녀는 품에서 한자루의 예리한 비수(匕首)를 꺼내 철갑대망의 벌려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쉬익쉭!

살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철갑대망의 철갑껍질이 머리에서 부터 벗겨지기 시작했다.

임단심은 비수로 안에서 부터 철갑을 베어 꼬리까지 길게 갈라놓았다.

철갑대망의 철갑은 밖에서는 도검불침이지만 안에서는 맥없이 잘라졌다.

잠시 후 껍질이 완전히 벗겨진 철갑대망은 얼어붙은 빨간 속살을 드러내고 말았다.

임단심은 철갑을 둘둘 뭉쳐서 한쪽으로 던지고 다른 한 마리에게로 다가갔다.

곧 두 마리의 철갑대망은 빨간 무갑대망(武甲大莽)이 되어 그들앞에 놓여졌다.

임단심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두마리를 다 먹으려면 두 세달은 여기서 살아야 겠는걸요?]

황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그동안 나도 해야할 일이 있을 것 같소.]

[그럼 낭군님, 밤이 늦기는 하지만 이 동굴부터 깨끗이 청소하도록 해요.]

 

뱀이 사는 동굴은 항상 깨끗하다.

뱀은 뭐든지 통채로 삼켜버린다. 그 때문에 찌꺼기가 남지 않는 것이다.

황군성은 철갑대망의 철갑을 동굴 한쪽에 깔아놓고는 할 일 다 했다는 듯이 앉아있었다.

임단심은 삐죽 입을 내밀고는 비수로 철갑대망의 살점을 움푹 베어냈다.

그곳은 철갑대망 전체 길이의 삼분의 이 정도 되는 곳이었다.

그녀는 그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복숭아 같은 물건을 꺼냈다.

[철갑대망이 얼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았어요. 내단이 살아있어요.]

그녀는 황군성의 입을 벌리게 해서 넣어주었다.

복숭아만한 내단이어서 다른 사람이라면 먹는데 어려움을 느끼겠지만 황군성은 칠척의 거한인 만큼,

마치 사탕 삼키듯 꿀꺽 삼켜버렸다.

임단심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이고는 다른 한마리에게로 갔다.

그리고,

마찬가지 방법으로 내단을 꺼냈다.

황군성이 복용한 것은 붉은 것이었는데 이번의 것은 푸른 빛이 돌고 있었다.

[이건 제가 먹을 게요.]

임단심이 황군성을 보며 말했을 때,

황군성은 벌써 운기행공(運氣行功을 하고 있었다.

임단심도 그의 옆에 앉아 욱욱거리며 푸른 내단을 복용했다.

그녀는 철갑대망의 내단이 배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황군성의 전신에서는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전신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고통속에 있는 중이었다.

(우우……이건 잘못됐다. 몸이 폭발할 것만 같다.)

그의 몸속에서 세가지의 기운이 일시에 팽배하며 충돌하기 시작했다.

혈왕신공의 기운과 빙백강기, 그리고 문성무존의 독문내공인 포태신공(抱山神功)이 서로 충돌하며 배척하고 있다.

꽝!

꽝!

혈도를 마음대로 치달리면서 이 세 가지의 진기들은 충돌에 충돌을 거듭했다.

그때마다 황군성은 전신이 터져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도무지 걷잡을 수도 없는 노도와 같은 기운들이었다.

전신의 삼백육십개 대혈에서 충돌하며 몸속에서 진기들이 폭발했다.

임독이맥과 생사현관마저도 그 폭발 속에 터져버렸다.

진기들은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황군성은 머리 속이 새하얗게 된 듯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전신의 대혈에서 폭발이 일어날 적 마다,

그의 옷자락이 터져 날아가 순식간에 알몸이 되고 말았다.

여러 명의 사부로 부터 무공을 익히면서 동시에 혈왕신공과 빙백강기를 익힌 것이 잘못이었다.

그리고,

문성무존의 포산신공 역시 그의 체내에서 함께 작용하여 서로 융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에 그 충돌은 더욱 심했다.

체내에서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진기의 싸움이 끊없이 이어졌다.

이것은 모두 철갑대망의 내단을 복용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원래는 서로 자라면서 적당한 상호견제를 하던 진기들이 갑작스럽게 들어온 엄청난 내력에 팽창하면서 다른 진기를 억누르려고 했던 때문이다.

운기행공을 하기는커녕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황군성은 만사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포기해버렸다.

어느 한 가지 운공방법을 택하려 해도 아무 소용도 없고, 정신도 모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념해 버리자 오히려 몸은 편안한 듯 했다.

몸속에서는 폭발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그것이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충돌과 폭발이 줄어들고 있었다.

잇달아 터지던 폭발은 간간히 터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폭발은 더욱 강력했다.

점점 빈도수는 떨어지고, 대신 강도는 높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황군성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세 가닥의 진기가 점차 단전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꽈꽝!

이전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엄청난 폭발이 단전에서 일어나며 황군성은 혼절하고 말았다.

 

임단심의 모공에서 백색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왔다.

그리고,

그 연기는 그녀의 머리위에서 둥근 고리를 만들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가고,

연기가 더욱 짙어 지면서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둥근 고리가 두개로 변했다.

그리고 위의 고리는 색마저 변해서 청색(靑色)을 띠고 있었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머리에는 다섯개의 고리가 생겼다.

청황적백흑(靑黃赤白黑)의 오색을 띠고 있었다.

오색의 고리들은 밝은 빛을 뿌리더니 밑에서 부터 허물어지며 사르르 임단심의 콧속으로 빨려들어가버렸다.

임단심,

그녀는 뜻밖의 행운으로 단숨에 오기조원(五氣照元)의 경지에 달해버린 것이다.

삼백년의 내공,

내공으로만 따지면 그녀도 강자라고 할 만하다.

임단심은 눈을 떴다.

번쩍!

그녀의 눈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신광이 발해졌다.

[아! 내 공력이 삼백년 수위로 되다니……]

그녀는 홀가분하면서도 전신에 충만한 힘을 느끼며 나직한 탄성을 토해냈다.

옆을 돌아보니 황군성은 가부좌를 튼 채로 뒤로 넘어가 있다.

황군성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거구는 은은한 담황색의 기운으로 휩싸여 있었다.

임단심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람이 왜 발가벗고 넘어가 있지?)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황군성은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그토록 그를 괴롭혔던 세가닥의 기운은 그의 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덜컥 염려가 되었다.

세 기운이 모두 소멸해 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그는 아랫배에서 부터 불끈 치솟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몸을 태워버릴 것같은 욕망은 그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앞에 임단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황군성의 마음은 금방 임단심에게로 전해졌다.

그녀의 몸도 순식간에 강한 욕망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한쌍의 음양철갑대망의 내단……

음양철갑대망이란 놈은 원래,

숫놈의 정력은 끝없이 강하고 암놈은 그런 숫놈에 즉시 교감하는 성질을 가진 것들이다.

이들은 다른 짐승들과는 달리 따로 교미기(交尾期)가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암수가 함께 살면서 교합하기를 즐기는 것이었다.

한데,

황군성과 임단심이 복용한 내단에도 그와 같은 성질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니,

황군성은 시시각각으로 정욕을 느끼게 되고 임단심은 그에 반응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황군성은 임단심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 작업에는 임단심의 손도 함께 동원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뱀처럼 뒤엉키며 펼쳐놓은 철갑위로 넘어졌다.

미친 듯이 서로가 서로의 입술을 탐하고,

알몸은 서로 뒤섞을 듯이 비벼댔다.

칠척의 거구에 깔린 자그마한 여인의 몸은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고,

황군성의 몸은 희고 매끄러운 두 다리 사이에 끼어있었다.

서로의 몸을 이어주기 위한 사랑의 사자(使者)가 마침내 임단심의 몸속으로 파고들고,

그녀는 전율에 몸을 떨며 가쁜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동굴 안은 열풍이 휘몰아치고,

밤은 끝나가고 있었다.

 

[아악!]

몸속에서 퍼부어지는 애욕의 세례를 받으며 임단심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쾌감에 혼절하고 말았다.

그녀의 몸 위에서 황군성이 부르르 몸을 떨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임단심이 상기된 얼굴로 눈을 떴다.

[어……어떻게 된 거예요?]

[아마도 철갑대망때문인 듯 하오.]

황군성은 그녀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될까요?]

[아마도……]

[어휴……어쩌면 이것도 큰 고민거리가 되겠어요.]

[왜?]

[생각해봐요. 객점에서나 어디서나 이렇게 법석을 떨면 쫓아내지 않을 곳이 어디 있겠어요?]

임단심은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라도 한 것같은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은 밀고 밀리며 애초에 있었던 곳에서 출발하여 동굴을 한 바퀴 헤매다 시피한 후에 다시 철갑위로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임단심은 황군성을 밀어내며 다리를 오무렸다.

[그리고, 내게 너무 커질까 싶어 두려워요. 적당히 자제해야겠어요.]

황군성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난 죽지 않을 거요. 과부가 되어 재혼할 일은 없을 테니 그런 걱정은 마시오.]

[누가 그걸 걱정 한다 그랬어요? 혹시 당신이 작은 구멍을 찾아가지나 않을까 걱정이죠.]

임단심은 빽 소리치고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변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황군성이 귀여운 듯이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미풍이 스치는 듯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고기나 조금 잘라오세요. 아침을 먹어야죠.]

황군성은 벌거벗은 몸으로 철갑대망을 향해서 가며 중얼거렸다.

[이젠 결코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그의 뒤에서 임단심이 달콤하게 말했다.

[낭군님, 설마 저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않으시겠죠?]

황군성은 도화꽃 처럼 화사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마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대체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이것은 보통 공처가 또는 애처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황군성은 미처 모르고 있지만……

여자란,

특히 총명한 여자란 남자를 마음대로 조종하는데 모든 인생의 가치를 두고 이것에서 최고의 기쁨을 만끽하려 하는 법인데……

 

얼마 후,

황군성은 그의 긴 머리카락을 움푹 뽑혀야만 했다.

바로 그를 낭군님이라고 부르는 여자에 의해서.

[조금만 더 뽑으면 돼요. 그럼 옷이 다 만들어져요.]

임단심은 철갑대망의 철갑으로 두벌의 옷을 꾸미고 있었다.

황군성의 머리카락은 실이 되어 옷을 꾸미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임단심의 바느질 솜씨는 아주 좋았다.

황군성의 몸에 철갑을 갖다대보면서 금방 한 벌의 옷을 만들었다.

그녀는 철갑옷을 입은 황군성을 바라보며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아주 멋있어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神將)같아요.]

철갑옷은 황군성의 몸에 아주 잘 어울렸다.

칠척거구의 그가 검은 철갑옷을 입자 그야말로 신장과 같은 위엄이 넘쳐흘렀다.

철갑은 임단심의 옷을 해 입고도 상당히 남았다.

[남은 것으론 훗날 우리 아기들이 입을 옷을 만들어야겠어요.]

황군성이 질겁을 하면서 물러났다.

임단심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걱정마셔요. 더 이상 당신 머리카락을 뽑을 일은 없어요. 그냥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만들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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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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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脫出

 

 

 

어둠이 낮게 깔려있는 신검보,

빈객청에 있는 어느 방,

황군성과 임단심이 앉아있다.

[이상해요. 전무옥의 체내엔 독이 전혀 없었어요.]

임단심이 말했다.

[게다가 이백년이 넘는 내공도 살아있고요. 한데도 몸은 뻣뻣하게 굳어있으니……]

황군성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문득 나직하게 내뱉었다.

[잘못들어왔어.]

[…………?]

[검신은 이미 흉수를 찾고 있는 중이오.]

[그야 당연히……]

[그게 아니요. 아마도 내일은 전무옥이 죽을 것이오.]

황군성은 단정하듯 말했다.

임단심이 해연히 놀라는데,

갑자기 밖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군성, 네 정체가 점점 궁금해지는군.]

검신 전득무의 음성이었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선 그를 향해 황군성이 말했다.

[소생 역시 검신의 무공내력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소.]

전득무의 눈이 그의 전신을 빨아들일 듯 기이한 빛을 발했다.

[그래서 내 무공내력을 직접 알아보겠다는 것인가?]

[그렇소.]

황군성의 대답은 전득무에게도 임단심에게도 모두 뜻밖이었다.

전득무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그는 그냥한번 해본 말에 불과 했었던 것이다.

임단심의 얼굴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이 판단해 볼때 황군성은 아직 전득무의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황군성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감히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체념하며 중얼거렸다.

(함께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황군성이 전득무에게 말했다.

[오늘 내가 당신과 싸우지 않으면 내일 누명을 쓰고 죽을 것인데 어찌 대결을 마다하겠소.]

전득무는 고개를 끄덕여 시인했다.

[세상의 소문이 잘못 전해졌군. 독봉 임단심이 귀계가 많고 총명하다고 들었는데 진짜 총명한 자는 오히려 그대였어.]

[…………]

[사실대로 말해주지, 네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어. 내일 아침에 빌미를 붙여 죽일 작정이었는데 이제, 시간이 단축될 수밖에 없겠지.]

[왜……?]

임단심의 말에 전득무가 반문했다.

[왜냐고? 간단해, 황군성 너를 살려두면 언젠가는 내가 죽을 것같은 기분이었거든……]

임단심은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이자는 반드시 우리를 죽이고 말겠다는 생각이다.)

전득무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너를 한번 써먹고 죽이려 했는데 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총명해, 아까워.]

황군성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정식으로 비무를 요청하는 바이오. 지금 당장.]

 

연무장,

횃불이 밝혀지고 신검보의 수많은 고수들이 둘러선 가운데,

전득무와 황군성은 오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섰다.

휘이이잉!

바람이 황군성의 긴 흑발을 휘날리며 지나갔다.

임단심은 가슴을 졸이면서 황군성의 뒤쪽에 서있다.

(제발……)

그녀는 지금 기적이라도 일어나 주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임시로 얻은 한자루의 철검을 잡고 우뚝 서있는 황군성의 모습은 뭇 사람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해준다.

형형한 눈빛이 서로 부딪히고,

검신 전득무가 우측 검지와 중지로 검결을 맺었다.

순간,

그의 검결에서 은은한 보라빛 줄기가 쏟아지며 넉자 길이의 장검이 되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것은 몸에서 쏟아져 나온 검강(劍罡)이었다.

황군성은 그의 일초를 피하기가 가장 어려울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검신은 자신의 체면 때문에라도 그를 단숨에 죽이려 할 것이다.

신검보의 고수들은 황군성을 미친 사람 보듯 하고 있다.

(검신에게 검으로 맞서려고 하다니……)

전득무가 검강으로 이루어진 검 끝을 땅으로 향하게 하며 느릿하게 말했다.

[삼초를 양보하마.]

[사양치 않겠소.]

그 순간,

칠척거구의 황군성의 몸은 바람같이 빠르게 전득무의 면전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에들린 철검이 휘둘러졌다.

그러자,

한꺼번에 일흔 두 송이의 검화(劒花)가 허공 중에 만들어 지며 전득무의 전신요혈을 노리고 날아갔다.

피할 수 있는 방위까지도 모두 차단한 기막한 검법이었다.

[아!]

신검보의 고수들이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전득무가 강기로 이루어진 검을 들어 허공을 찌르는 시늉을 하는 순간,

칠십 두 송이의 검화는 그의 검을 타고 부드럽게 전득무의 등뒤로 넘어가 버렸다.

 

와아아아!

 

신검보의 고수들 사이에서 우뢰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황군성은 자신이 문성무존에서 배웠던 검법 중의 하나를 펼쳤던 것인데,

전득무가 전혀 힘도 들이지 않고 받아넘겨 버리자 내심 당황했다.

그가 그러한 수법을 사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황군성은 즉시 두번째 초식을 사용했다.

왼손을 올려 손바닥을 펼침과 동시에 오른손에 있는 철검을 던졌다.

번쩍!

휘루루룽!

철검은 풍차처럼 돌며 전득무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전득무의 몸을 한바퀴 휘감으려는 순간,

전득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철검의 중간을 눌러 바닥에 꽂아버렸다.

팡!

부르르……

황군성의 철검은 바닥에 박혀 손잡이가 심하게 진동떨렸다.

그러나,

전득무는 황군성의 잠시 펼쳐졌던 왼손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손이 펼쳐지는 순간 그 안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초식의 일부인지 어떤 암기를 준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황군성은 두번째 공격마저 무위로 끝나버리자 세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무릎을 낮춘 자세로 천천히 쌍장을 밀었다.

그의 얼굴에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 여실히 나타났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그의 장력은 멀리 뻗어나가지 못하고 자신의 일장 정도에서 바닥을 치며 멈춰지고 말았다.

바닥도 그다지 손상되지 않았다.

[…………?]

[삼초가 끝났소. 이제 공격하시오.]

황군성은 두손을 교차하며 가슴앞에 모으고 소리쳤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황군성은 자신의 일장 앞까지 다가온 검신 전득무을 볼 수있었다.

보라빛 검이 황군성의 목을 단숨에 파고드는 중이었다.

순간,

검신 전득무의 보라빛 검이 멈칫했다.

한데,

그와 동시에 황군성의 몸에서 폭발하는 듯 붉은 연기가 모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전득무의 얼굴이 경악의 빛이 스치고 지났다.

[혈왕신공! 너는 한천사방객의……]

추잇!

보라빛 검은 혈왕신공의 붉은 구름을 뚫고 황군성의 목젖을 꿰뚫었다.

바로 그때,

전득무는 붉은 구름아래에서 치솟는 백색의 광채를 느낄 수 있었다.

반사적인 감각으로 벼락처럼 뒤로 물러나며 보라빛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슈악!

백색 광채는 벌써 그의 보라빛 검을 젖히며 왼쪽 팔을 자르고 있었다.

반드시 베어진 검신의 팔이 피를 뿌리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검신은 눈은 분노와 경악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한 무더기의 붉은 구름은 벌써 연무장 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신검보의 수하들은 뜻밖의 사태에 얼이 빠져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전득무의 오른손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왼손을 가르켰다.

순간,

슈아아앙!

그의 왼손은 뻣뻣하게 손바닥을 펴며 가공할 속도로 붉은 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어검술이었다.

황군성은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임단심을 안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달렸다.

그러다,

그는 등 뒤에서 몰려오는 엄청난 압력을 느끼고 번천도를 휘둘렀다.

쉬익!

한데,

그는 등 뒤가 화끈해지는 고통을 느꼈다.

무언가가 두개의 조각이 그의 등에 박힌 것이다.

순간적으로 아찔해졌으나 그는 더욱 빠르게 달렸다.

그의 등에는 두 조각이 난 전득무의 왼팔이 꽂혀있었다.

 

전득무는 황군성을 쫓으려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뒤쫓을 것 없다. 그자는 내 검에 목을 찔렸고 어검술에 등이 관통되었다.]

잘려진 팔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며 전득무는 연무장에서 사라져갔다.

검신이……

이름도 없는 무명소졸에게 팔이 잘렸다.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전득무의 전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몸으로 가공할 한기(寒氣)가 스며들고 있었다.

(놈이 이런 수법을 쓸 줄이야……)

사실 황군성의 제 삼초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

황군성은 빙백강기를 자신의 일장 앞에 응축시켜놓았던 것이다.

전득무의 검이 순간 적으로 멈칫 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라고 하지만 준비없이 빙백강기에 몸을 던지고 말았으니 그 한기가 뼈를 얼릴 정도였던 것이다.

그는 내공으로 한기를 몰아내기 위해 급히 자신의 연공실로 갔다.

대상없는 분노가 그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 × ×

 

미친 듯이 달려서 어느 숲속에 들어선 황군성은 마침내 정신이 가물거리며 임단심을 안은 채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악!]

갑자기 그의 거구에 깔려진 임단심이 비명을 질렀다.

황군성의 배밑을 빠져나온 그녀는 그의 등에서 황급히 두 개의 잘려진 팔을 뽑아냈다.

붉은 구름은 거의 몸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리고,

황군성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순간,

그의 고개가 돌아가며 한치 정도 길이의 검상이 보였다.

검신 전득무의 보라빛 검에 의한 것이었다.

검상은 세치 정도로 상당히 깊었다.

그것을 발견한 순간,

[아!]

임단심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느끼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털썩!

황군성의 몸위로 그녀의 몸이 포개졌다.

그리고,

어두운 숲속엔 정적이 찾아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임단심은 천천히 정신이 들었다.

황군성이 죽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비감한 심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뜨거운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황군성의 몸으로 흘러들고,

황군성의 죽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그녀는,

두 팔로 황군성의 등을 꼭 끌어안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황군성과 지냈던 지난 삼개월이 그녀의 눈앞으로 꿈결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겨우 어제서야 마음을 열었는데……)

분하고 억울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겨우 어제부터 참사랑을 받기 시작했는데 하룻만에 그 사랑이 끝나다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황군성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자결해버리자. 이 사람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검신 전득무의 얼굴이 떠올랐다.

(복수……복수를 해야하지 않을까? 신검보의 모든 사람들을 만성독약에 중독시켜버릴까?)

그녀는 도리질 했다.

(아니야. 복수따위가 무슨 소용이야. 이 사람을 따라 죽는 것만 못해.)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일단 무덤을 만들고,

그속에서 황군성을 안은 채로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바로 그때,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황군성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은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

그녀는 번쩍 눈을 떴다.

그러자,

그녀는 붉은 구름속에 싸여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깜짝 놀라 황군성의 목을 더듬어 보니 검상은 어느새 아물어가고 있었다.

[어……어떻게……이런 기적이……]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황군성은 살아있었다.

혈왕신공의 힘이 그로 하여금 죽음으로 부터 지켜주었던 것이다.

혈왕신공……

황군성이 검신 전득무와 승산없는 대결을 벌이게 된 데는 이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검신 전득무는 그보다 세 단계는 높은 고수,

그로서는 죽어주면서 그의 몸을 훼손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흔히,

살을 주고 뼈를 깍는 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황군성은 목숨을 주고 상대의 팔을 잘랐던 것이다.

검신 전득무로서도 목이 찔린 상대가 가공한 도법으로 반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황군성이 목숨을 내 줄 수 있었던 것은 혈왕신공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고,

혈왕신공은 태산에서의 그 엄청난 산사태 속에서도 그의 몸을 살려주었던 바 있다.

황군성은 번천도 보다 혈왕신공을 더 믿었던 것이다.

붉은 안개가 차차 그의 몸으로 흡수되어갔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그러나,

혈왕신공이 그의 생명을 살리는 데는 그의 본신 진기를 이용한다.

이 때문에 혈왕신공은 내공이 아주 고강해야만 위력을 재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여,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지 못할 정도로 내공이 약화되어 있다면 혈왕신공으로서도 그의 목숨을 살릴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혈왕신공의 치명적인 약점인데,

내공이 회복되기 전에 잇달아 치명적이 상처를 입게 되면 부활할 방법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황군성의 내력은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목숨을 건진 댓가인 것이다.

 

정신을 차린 황군성은 임단심과 긴 입맞춤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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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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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神劍堡의 지배자 2

 

 

 

 

흑수산(黑首山),

크지 않은 산이나 상당히 높은 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명한 것은 그 산정상이 검은 흑석(黑石)인 오강석(烏鋼石)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멀리서도 새까맣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 오강석은 일반의 금석(金石)보다 강하다.

그래서,

강호의 이름난 무사들은 이 오강석을 하나쯤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의 검과 도를 연마하는데 써기도 한다.

그런데,

오십여 년 전부터,

이 오강석을 가진 무사들은 아주 드물어져 버렸다.

놀랍게도,

오강석을 구하기 위해 흑수산으로 올랐던 사람들이 모조리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 때문이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흑수산에 올랐으나 내려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산 정상에는 오강석으로 세워진 작은 장원이 하나 생겼다는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전다.

지금,

흑수산 위에 있는 검은 장원,

이곳이 바로 그것인데, 그 이름이 귀왕장(鬼王莊)이다.

귀왕장,

바로 무림의 칠대세력 중의 하나로 세인의 접근을 절대로 금하고 있는 금지(禁地).

한데,

지금 이 안에서 모종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철사륵(鐵沙勒), 내게 더 이상 명령조로 말하지 마라.]

카랑카랑한 음성이 오강석으로 번들거리는 실내에서 소리쳤다.

[소주(少主)! 속하가 불충했다면 벌하십시오. 하지만 이 말은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굴강한 노인의 음성,

살아온 인생만큼의 고집이 들어있는 듯 하다.

연공실인 듯한 이곳,

놀랍게도 한 명의 청년이 웃통을 벗은 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의 손에는 벽에 붙은 듯한 굵은 철봉같은 것이 잡혀있고,

청년의 전신은 땀으로 번들거린다.

그러나,

약간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청년의 용모는 흡사 사람을 빨아들일 듯이 아름다웠다.

분명한 남자의 몸이고 음성이건만,

청년의 아름다움은 어떤 여인보다도 뛰어났다.

얼굴은 완연한 여성미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몸은 또한 완전한 남성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연공실의 바닥에 서서 청년을 올려보고 있는 노인,

백발 성성한 이 노인은 학창의를 입었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청년이 다시 소리쳤다.

[철사륵, 너는 여전히 내가 십년 전의 어린아인 줄만 아는구나. 하지만, 더 이상 너의 건방진 태도를 방관하지 않겠다.]

[아무리 그러셔도 소용없습니다. 소주께서는 무슨 수가 있더라도 월음천마공(月陰天魔功)을 익혀야 합니다.]

철사륵의 어조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월음천마공,

이것은 보통 사람이 듣고서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닌 말이다.

틀림없이 그는 월음천마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거나,

월음천마공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세고수(蓋世高手)인 것이다.

일갑자 이상의 내공을 지닌 순음지체(純陰之體)의 여인 일천명을 희생시키고 서야 연성이 가능한 악마의 무공인 월음천마공,

이 무공을 완성했다면 그는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다.

불사불괴(不死不壞)의 몸에 만독불침지신,

그리고 일천년의 공력을 얻음은 물론,

월음천마공의 힘, 어떤 것이든 허공 중에 산산히 흩어버리는 그 힘을 얻는다.

휘익!

청년이 바닥으로 내려섰다.

[철사륵, 네놈은 정녕 나를 괴물로 만들고 싶어 미친 놈이다. 나는 그따위 월음천마공 정도는 없어도 고금무적인(古今無敵人)이 될 수 있다.]

철사륵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고수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대지검(大地劍)만으로 그들을 다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네놈은 나를 무시하고 있군.]

청년이 차가운 음성을 내뱉었다.

철사륵은 그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소주의 무공은 노복의 칠성 수준에 불과합니다.]

순간,

[우하하하……]

청년은 미친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연공실이 웅웅 울리며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리고,

[철사륵, 너야말로 헛된 자만심에 가득차있군, 하기야 귀왕장의 장주니 만큼 그 무공은 인정해야 겠지.]

청년은 형형한 눈빛을 발하며 말했다.

[하나, 내가 네놈의 속셈을 모를 줄 아느냐? 월음천마공을 익혀 마성에 빠진 나를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네놈의 뜻을……]

무림의 금지 귀왕장의 장주라고 불린 철사륵,

강호상에 전혀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자,

그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소주, 그 무슨 외람된 말씀이십니까? 노복이 어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청년은 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손을 저었다.

[됐어, 철사륵! 어쨌든 너는 나를 무시했어. 난 이순간 부터 누구든 나를 무시하는 자는 적으로 삼고 죽여버리겠다고 결심했거든……]

철사륵이 쇠구슬같던 눈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너무 컸는가?)

청년의 내젓던 손으로 한 자루의 철봉이 와서 잡혔다.

아니 그것은 철봉이 아니었다.

팔목만큼 굵은 네자 정도의 철봉에 뭉뚱한 끝이 있는,

모양이 조금 괴이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검(劍)이었다.

청년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선언했다.

[나 위지장천(衛遲長天)의 최초의 적으로 철사륵 너를 택한다.]

[소주, 마음을 돌리시지요. 혹시 노복이 실수하여 다치게 하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위지장천은 콧웃음을 쳤다.

[그만 마각을 드러내지. 네놈이 아무리 그래봤자 꼭두각시 놀음을 할 내가 아니니까.]

철사륵은 한동안 묵묵히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눈에서 섬뜩한 살광이 뻗어나왔다.

[그럼 할 수 없지. 어리석은 놈, 스스로 명을 재촉하다니……]

철사륵의 몸에서 폭풍같은 기운이 일어났다.

그는 이미 방금 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그가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공한 고수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지팡이가 천천히 올려지며 위지장천을 겨누었다.

[과연 대단하군 철사륵, 아마 세놈의 늑대새끼 중에서 무공은 네놈이 제일 강할 거야.]

위지장천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게 오면서 자전편(磁電鞭)을 갖고 오지 않은 것은 네놈의 치명적인 실수다.)

위지장천은 공력을 끌어올렸다.

순간,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압력과 철사륵이 일으키는 무형의 압력이 부딪히며 사방의 오강석 벽에 미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놈……내 예상보다 훨씬 강하구나. 하지만……본좌가 철사륵이라는 사실을 네놈은 알아야만 했다.)

그때,

번쩍,

마치 검은 번개가 움직이는 듯 위지장천의 손에들린 기형괴검이 철사륵을 향해 쏘아져 왔다.

순간,

철사륵의 단장(短杖)이 허공에서 내려쳐지고,

꽝!

엄청난 폭음이 터져나왔다.

(윽! 이 놈의 내공이 나못지 않다니……)

철사륵은 위지장천의 기형괴검에서 전해지는 엄청난 충격에 몸이 튕겨나가는 것을 느꼈다.

위지장천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그는 상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대인 철사륵은 지난 십년 간을 지켜보고서도 자신을 모르고 있다.

위지장천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바로 그순간,

번쩍!

철사륵의 단장이 그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검술(馭劍術)!]

위지장천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철사륵이 어검술마저 익혔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위지장천의 몸이 기형괴검을 중심으로 한바퀴 돌았다.

쉬익!

철사륵의 단장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단장은 다시 철사륵의 손짓을 따라 움직이며 그를 향해 날아왔다.

위지장천의 몸은 기형괴검의 주위로 번쩍이며 움직여 단장을 피했다.

그렇다.

위지장천의 대지검(大地劍)은 검을 휘두르는 검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검으로 적을 찌르기는 하지만,

그 본질은 검을 휘두르듯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천정에 매달려 있는 철봉도 바로 대지검을 익히는 도구이다.

검법에 따라서 검을 휘두르는데,

검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몸이 대신 움직일 수 밖에는 없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대지검법은 어떤 강한 적과 부딪치더라도 절대 패하지 않을 수 있는 기이막측한 절학이었다.

그가 이길 수 없는 적은 있어도,

그를 이길 수 있는 적은 있을 수 없다.

위지장천은 이 대지검을 철사륵이 상상하지 못할 경지까지 익히고 있었다.

어검술의 수법에 의해 날아오는 단장을 뒤로하고,

그는 전력을 다해 기형괴검으로 철사륵을 무찔러갔다.

우우웅!

공기가 파도치고,

철사륵은 자신의 심장을 찔러오는 위지장천의 검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단장은 위지장천의 머리뒤로 날아들고 있다.

(내가 빠르다!)

기형괴검이 자신의 심장을 꿰뚫기 전에 자신의 단장이 위지장천의 머리를 부수고 말것이다.

한데,

위지장천의 몸이 기형괴검을 중심으로 다시 팽이처럼 돌았다.

철사륵은 경악하고 말았다.

위지장천이 피해버린 그의 단장이 오히려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온다.

피하거나 방향을 조정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전력을 다했기에 엄청난 빠르기였다.

철사륵의 몸이 활처럼 뒤로꺾어졌다.

그러나,

[크아악!]

화끈한 통증이 아랫배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의 왼쪽어깨를 뚫고 지나갔다.

위지장천은 비웃듯이 말했다.

[네놈이 할 수 있는 어검술 따위라면 나는 보기만 해도 할 수 있어.]

그의 눈앞에 있는 철사륵의 몸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기형괴검이 그의 아랫배에서 부터 파고들어 배와 심장을 뚫고 어깨로 빠져나와있다.

그리고,

그의 두개골 상부는 완전히 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사륵은 숨이 끊어지진 않고 있었다.

깊은 내공때문이다.

그는 입으로 꾸역꾸역 핏물을 쏟으며 말했다.

[네……네 놈의……쿨럭……무……공……이……본좌가……잘 못……보……]

[맞았어. 철사륵, 너는 나를 천년에 한번 볼까말까하는 기재라고 하면서도 내 능력을 과소평가했어. 아마 지난 십년이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

위지장천은 자신의 검을 뽑아당겼다.

순간,

철사륵의 몸에서 엄청난 핏물이 솟구쳤다.

그리고,

뻥뚫린 아랫배로 내장이 밀려나왔다.

[교……활……하지……만……그들……은……결……코……큭!]

철사륵은 눈동자를 허옇게 까뒤집으며 죽고 말았다.

위지장천을 검을 휘둘러 오물을 떨쳐버리며 말했다.

[네놈을 죽인 내 입장도 좋지는 않아. 가만히 있었으면 강호에서 가장 큰세력인 삼장(三莊)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을 텐데 이젠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으니까. 그 밥맛 떨어지는 월음천마공만 아니라면 나도 어떻게든 참았을 텐데……]

이게 무슨 말인가?

위지장천,

그가 이곳 귀왕장 뿐만 아닌 다른 이장인 화운장, 천음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귀왕장주 철사륵에게 작은 주인이라고 불린 인물……

그의 눈은 어떤 강렬한 야심에 불타고 있다.

기형괴검을 어깨에 걸치며 연공실을 나간다.

[먼저 선수(先手)를 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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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神劍堡의 지배자

 

 

 

오리평으로 들어서면서,

황군성은 신검보의 웅장한 위세에 놀랐다.

지금까지 그는 이처럼 거대한 보루를 보지 못했었다.

무려 일만 오천여 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제갈공지를 뒤따라 황군성과 임단심은 거대한 연무장을 지나 중앙에 있는 검신탑으로 갔다.

 

십층의 대전,

검신 전득무는 태사의에 앉아 제갈공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득무가 황군성과 임단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갈공지는 대전에 들어선 순간부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의 몸은 경직되어 있는 듯했다.

임단심은 전득무의 무심한 눈길을 대하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의 눈길을 받은 그녀의 몸은 점점 움추려들고 있었다.

그때,

크다란 손이 그녀의 손을 덮어쥐면서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황군성의 몸에서 전해지는 진기였다.

그제서야 그녀는 조금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황군성은 황군성 대로 전득무를 대하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비록 그의 근처에 검 한 자루 보이지 않았으나,

그가 왜 검신이라고 하는 지가 몸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전득무의 시선이 조금 움직이면서 황군성의 눈과 마주쳤다.

순간,

전득무의 눈에 약간의 놀람이 있었다.

황군성은 그의 눈을 대하자 눈을 감고 외면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것은,

검을 들지는 않았지만 심력(心力)의 싸움이었다.

실제로는 검을 든 싸움 보다도 내공의 대결보다도 더욱 무서운 싸움인 것이다.

심력의 싸움에서 움추려들게 되면 스스로 그자의 노예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상대를 공격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은 지켜야 한다.

황군성은 눈동자를 흐릿하게 하면서 혼란했을 때의 마음을 비춰보였다.

그가,

이 시대의 검신이라는 전득무의 심력에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자신의 심력이 턱없이 딸리는 상황하에서 본신의 심력으로 그를 상대한다는 것은 지배당하겠다는 의미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을 흐려버리고 자신을 숨겨버리면 상대로써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드러난 것은 제압할 수 있어도,

상대의 마음속 깊이 침투해 들어와 공격할 수는 없다.

전득무는 예의 그 윤기있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는 자였군. 분명 명사(名師)의 제자야.]

황군성은 전신에서 송골송골 솟는 땀을 느낄 수 있었다.

전득무의 동작하나,

말 한마디에 예리한 비수가 숨어있고 함정이 감춰져 있었다.

(위험했다.)

하마터면 그는 전득무의 말에 대꾸할 번 했다.

그랬더라면 이미 그의 말에 이끌려 조종되고 있을 것이다.

검을 통해 익힌 정신력의 힘이 얼마나 강한 지를 전득무는 보여주고 있다.

(아마……이 사람의 검술도 도처에 함정과 비수가 숨어있겠지……강렬한 유혹도……)

황군성은 세상에는 자기를 능가하는 고수가 아직은 수없이 많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문득,

전득무는 제갈공지를 향해 말했다.

[제갈공지, 음……잘했어. 무적십이검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는데 그대는 혼자서 이 둘을 데리고 왔군.]

제갈공지는 깊히 허리를 숙였다.

[한데, 이들이 누구지?]

전득무의 말에 임단심은 의아함을 느꼈다.

(제갈공지가 마음대로 행한 일인가?)

그때,

제갈공지가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황군성, 황소협과 독봉 임단심소저입니다.]

[아! 독봉! 영악하지 영악해. 그래, 자네들은 왜왔지?]

임단심은 어이가 없었다.

(검신이 노망이 들었나?)

[임소저, 본좌는 노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었다.

전득무는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이 그녀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왜, 검신 전득무가 두려운 존재인지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감히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 조차 두려워졌다.

그가 자신의 머리속을 환히 들여다 보고 있다는 생각에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제갈공지가 읍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군, 임소저와 황소협은 우리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전득무는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작업 인부가 부족한가?]

[그게 아닙니다. 임소저께서 소주를 구하실 것입니다.]

제갈공지는 의연하게 버티려고 안간힘을 다쓰고 있는 듯 했지만 여전히 전득무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몸이 수그러지고 있었다.

순간,

전득무의 음성이 차갑게 들려왔다.

[누가 그런일을 지시했는가? 본좌는 이들을 죽이라 했을 뿐인데. 그리고, 제갈공지, 누가 네게 이자들을 데려오라 했나?]

제갈공지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얼굴이 붉어진 채 땀만을 흘리고 있었다.

입술이 달삭달삭하지만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

전득무는 말했다.

[이번은 제갈공지의 체면을 봐서 그대들을 이곳에 일시 머물게 해주겠다. 그러나, 본좌는 계집의 암수따위에 당해 죽어가는 자식놈 따위를 구할 생각은 없다. 단지, 무인으로서 복수만을 해줄 뿐이다.]

이말을 마지막으로 전득무는 스르르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태사의에 깊이 묻은 몸은 그대로 화석이라도 된 듯 했다.

제갈공지는 전음으로 황군성과 임단심에게 말했다.

[조용히 나갑시다.]

황군성은 전득무의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소리 같은 것이 하나하나가 무기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대전을 나가며 전득무에 대한 생각을 애써 떨쳐버렸다.

그의 말은 가슴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비수가 될 지도 모른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제갈공지와 함께 계단을 걸어 제갈공지의 거소로 같다.

무수한 책들이 서가에 꽂혀있고,

중간중간에 난(蘭)을 비롯한 여러가지 꽃들이 화분에 심겨져 있었다.

그때문에 책이 있는 곳에서 언제나 나게 마련이 묵향도 퀘퀘한 책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

그 많은 책들과 기물들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주인인 제갈공지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한 마디로 말해주고 있었다.

시녀가 차를 내오자 제갈공지가 입을 열었다.

[두분께서는 믿지 않겠지만, 검신께서는 약간 괴팍스런 점이 있기는 하나 이세상에 그분처럼 마음이 넓은 사람도 없소.]

임단심이 말했다.

[한데 제갈선생께서는 왜 제가 그 여자가 아니란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으셨어요?]

제갈공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감히 그분께서 묻지 않으신 것을 함부로 말할 용기가 없소이다.]

[그럼 사정을 모른 검신께서 저를 일검에 죽이시지 않겠어요?]

제갈공지는 약간 퉁명스럽게 말했다.

[임소저는 아직도 모르셨소? 검신께서는 이미 그 가짜를 만나보셨소. 그리고 오늘 임소저를 보았으니 당연히 그녀가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아니겠소.]

[저와 모든 것이 똑같다고 하셨잖아요.]

임단심이 쏘아 부치자 제갈공지는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소저, 소저는 그분을 보통사람과 같이 보시오?]

임단심은 입이 붙어버렸다.

검신 전득무의 무서움이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제갈공지는 얼굴을 풀고 황군성에게 말했다.

[황소협! 소협은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더군, 나는 지금까지 삼십 년이 되도록 보주님을 모셨지만 그분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소.]

[도신(刀神)도 말이오?]

황군성의 날카로운 질문에 제갈공지는 예상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세상의 모든 것에 서로 상극이 있지 않소? 그런 의미에서 도신은 검신의 상극이라오. 상극은 그 능력에 있어서 비슷하지 않겠소?]

황군성은 다시 물었다.

[그럼 도신 이외에는 귀 보주의 상대가 될만한 인물은 없단 말이오?]

[아마 그럴 것이오.]

제갈공지의 대답은 확신에 차있는 듯 했으나 황군성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검신의 무공은 내가 오년 안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 정도로만 천하제일이라는 것은 너무 우스운 노릇이다.)

그는 자기의 사부들을 생각했다.

(그분들 중 궁월사부는 이미 검신과 비슷한 정도의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더우기 고금십대천병 중의 하나인 번천도마저도……하나 마왕이란 자에게 결국 패하고 말았다.)

그렇다.

고금십대천병을 지닌 궁월을 패배시킨 자도 있는 것이다.

그 패배의 휴유증으로 인해 궁월의 몸은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곳에서 석화공(石化功)으로 겨우 생명을 보존하고 있다.

황군성이 생각해볼 때 검신의 무공은 아무리 높이 쳐준다 해도 궁월의 위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그의 두번 째 사부인 초사륭,

그 역시 강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나 전륜법왕(轉輪法王)이란 자에게 당했다.

스스로 천하제일임을 자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 도취일 뿐이고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

황군성의 주위에는 많은 고수들이 있었다.

그의 사부들인 한천사방객 뿐만 아니라 문성무존의 거의 모든 사람이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윗대의 조부들은 그 무공의 깊이가 얼마나 될 지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것은 최소한 검신의 경지는 초월하고 있다는 말이된다.

그의 고조부인 황자준 등은 이미 모든 기도가 사라져 버렸고,

그의 오대조인 황필민은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었다.

또한,

문성무존 최고의 어른인 황숭환은 옆에 있을 때도 있는지 없는 지를 느낄 수 없을 만치 그 존재 자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황군성은 검신 전득무에 대한 관심이 팍 식어버렸다.

하지만,

검신 전득무는 어쨌든 대단한 고수가 아닐 수 없다.

최소한 황군성 자기보다는 세단계 이상의 고수인 것이다.

 

제갈공지는 황군성과 임단심을 전무옥(全武玉)에게로 안내했다.

성세를 자랑하고 있는 신검보의 작은 주인답게,

그의 방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확트여 더넓은 거실과 그 안쪽에 자리한 붉은 비단 휘장이 드리워진 침상,

한쪽에 모양을 갖춘 서재와 맞은 편에 놓여진 차탁,

바닥에 깔려진 융단은 그 부드러운 감촉을 신발위로 까지 전해주고,

서가 한쪽에 놓여진 새장에서는 맑은 새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백옥을 통채로 다듬어 만든 침상에 황금색 이불을 덮고서,

이 방의 주인이 멍청한 눈을 하고 드러누워있다.

임단심은 그러한 전무옥을 보자마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저사람 눈빛이 꼭 저랬지.)

그녀는 힐끔 황군성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배시시 웃었다.

황군성은 그녀의 표정을 모른 척하고 있었다.

[임소저께서 잘 살펴봐 주시기 바라오.]

제갈공지는 그녀에게 정중한 어조로 부탁했다.

[저도 단서를 잡아서 감히 누가 나를 사칭했는 알아볼 참이에요.]

임단심은 야무지게 말했다.

그리고,

전무옥의 손목에 그녀의 검지를 살짝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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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無敵十二劍의 美少年 2

 

 

 

개봉성에서 가장 큰 전장인 금종전장은 밤이 되자 그 문을 굳게 닫아놓고 있다.

금종전장의 내실,

두 자루의 황촉불이 방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데,

앉아 있는 황군성과 임단심의 맞은편에 서서 안절부절 못하고 서있는 금의화복의 노인이 있었다.

[노복이야 그저 작은 주인님 분부대로만 따르겠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정주의 순무를 만나겠습니다.]

황군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경우에도 나와의 관계를 밝혀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계시겠지요? 그리고 가문의 금기(禁忌)도……]

[노복이 미쳐죽는다 하더라도 발설하지 못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노복은 감히 주인님과 작은 주인님이 묻지 않으실 때는 기억하지조차 못합니다.]

 

× × ×

 

임단심이 웃으면서 말했다.

[결국 우리는 밖에서 한밤도 지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군요.]

[알아보셨소?]

그녀는 황군성이 창밖을 향해 말하자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때였다.

창가의 탁자 앞에 불빛이 모여들며 타오르는 듯 하더니 사람의 형체를 이루었다.

신검보의 군사 제갈공지였다.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의심을 한 점도 남김없이 지워버렸소이다. 과연 두 분은 지난 삼개월 동안 이곳에서만 사셨더군.]

그는 임단심의 집 근처에 있는 이웃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행적에 대해 물어보았던 것이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이 남문 근처의 주택가에서는 특이함으로 인해 꽤 알려졌기에,

이웃 사람들은 그들의 동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남자는 조금 이상하다는 것과,

꽃같이 아름다운 여자는 남자를 위해 아주 헌신적이라는 것 등……

그리하여,

제갈공지는 그들의 말에 한 점의 거짓도 없다는 것만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황군성의 아내로 삼고 있는 임단심이 신검보의 작은 주인과 혼인하겠다고 따라들어 갔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이다.

임단심은 분위기를 깨뜨리며 들어온 불청객에게 상당히 화가나있었다.

그래서 대뜸 차갑게 쏘아 붙였다.

[그래요? 그럼 건너방에 가서 주무시기나 해요. 다시는 이 방에 들어올 생각 마시고.]

[하하하, 임소저의 말을 어찌 어길 수 있겠소? 하지만 나는 저 방에 가서 잘 수 없는 신세라오.]

팍!

웃음소리를 남기며 제갈공지의 몸은 거품이 터지듯이 터지면서 사라져버렸다.

임단심은 기이한 그의 술법에 놀라워하며 말했다.

[신검보는 그야말로 복마전(伏魔殿)인 모양이에요.]

[환술이었소. 원래 그의 실체(實體)는 이 방안에 들어오지도 않았소.]

황군성은 침상에 몸을 눕히면서 말했다.

[내게 무림이야기나 해주시오. 그리고 당신에 관해서도……]

임단심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당신……이제야 제게 대해 물어보는군요.]

임단심은 쾌활하게 당금 무림의 정세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칠대세력에 대한 말이 거론되고,

구파일방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문득,

가만히 듣고 있던 황군성이 물었다.

[북혈마나 마왕 같은 인물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소?]

임단심은 고개를 갸웃했다.

[북혈마? 마왕? 처음 듣는 이름이에요. 한데 정말 그걸 이름으로 쓰는 자가 있단 말예요?]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무공은 측량할 수 조차 없을 정도요.]

[당신보다 강한가요?]

임단심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황군성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강하고 말고……내 무공은 그야 말로 조족지혈……]

 

× × ×

 

임단심의 집에 있는 다른 방,

탁자에 앉아 일렁이는 촛불아래 검을 닦는 사람이 있다.

오색수실이 흔들리는 보검(寶劍),

서릿발 같은 눈동자,

초생달같이 그어진 눈썹,

주사같이 붉은 입술,

극렬 준미한 얼굴의 미소년,

무적십이검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 자였다.

진지하게 검을 닦고 있는 이 미소년의 앞에는 또한 제갈공지가 서있다.

[제갈공지!]

문득,

그가 제갈공지에게 하대를 하면서 부르는 것이 아닌가?

제갈공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씀하시지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무적십이검 중의 일인(一人)일 뿐인 미소년이 어떻게 신검보의 이인자(二人者)인 제갈공지에게 하대를 하고,

제갈공지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가?

미소년은 손가락으로 검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대가 은밀히 따라 왔다는 것은 그 자식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단 이야기인가?]

[저는 단지 주군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제갈공지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미소년의 추궁하는 듯한 말에 살짝 전득무의 등 뒤로 피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흥!]

미소년이 콧웃음을 쳤다.

[내 동료가 그자의 단 일검에 모두 죽고, 내가 그자의 칼 아래 놓였을 때도 박쥐처럼 숨어있었겠지?]

제갈공지가 미소를 지었다.

[저는 원래 무능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대장부라고 자처할 만한 용기도 없지요……]

일순,

번쩍!

미소년의 보검은 어느새 제갈공지의 심장에 닿아있었다.

[제갈공지! 오늘의 일을 죽도록 후회하게 될거야. 그리고……]

제갈공지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달고 있었다.

[내가 죽기를 바란 그자도……나는, 결코 죽지 않을 테니까.]

미소년은 슬쩍 검을 밀었다.

그러자,

제갈공지의 몸도 마치 검에 붙은 지푸라기마냥 똑같이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진정 무게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같았다.

이맛살을 한번 찌푸린 미소년은 검을 거둬들이고 일어섰다.

제갈공지는 포권을 하면서 말했다.

[편히 쉬시지요.]

미소년은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보았을 때 제갈공지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미소년은 중얼거렸다.

[내 능력으로는 제갈공지를 상대하려고 해도 까마득한데, 언제 전득무 그자를 죽인단 말인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신검보의 무적십이검 중의 일인이었던 자가 보주인 검신 전득무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다니……

한데,

전득무와 제갈공지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하지 않은가?

 

× × ×

 

오늘밤,

하늘에는 별이 유난히도 많이 보인다.

긴 숨한번 쉴 동안에도 몇 개의 별똥별이 떨어지고,

길게 한번 뒤척일 때에는 하늘이 빙글 도는 듯하다.

지금,

제갈공지는 지붕위에 반듯이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고,

물을 바라보면서,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헝클어진 생각의 갈래를 바로 풀어오곤 했다.

한데,

별이 많은 오늘은 이상하게도 실타래들이 풀리지 않는다.

임단심에 대한 사건은 그녀가 단서가 되어준다면 곧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자신이 개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방관할 수도 없는 한가지의 일은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그의 눈앞에 미소년의 얼굴의 떠올랐다.

제갈공지는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자신이 생각해 봤자 풀 수 없는 수수께끼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그 뿐이다……)

문제를 뒷켠으로 밀어버리면 누구나 그렇듯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서늘한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자 제갈공지는 약간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신검보의 이인자란 나 제갈공지가 지붕위에서 파수(把守)나보며 밤을 새워야 하다니……쯥.)

지붕아래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어떤 열락의 달뜬 신음소린 그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었다.

(에잇! 귀를 막아버리자. 도무지 저 두사람은 눈치가 부족한 건가 뻔뻔스러운 건가……)

그는 귀를 꽉 막아버렸다.

 

× × ×

 

제갈공지는 튕기듯이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딱딱히 굳어있었다.

그리고,

지붕으로 연기처럼 스며들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미소년의 방이었다.

훌쩍 내려선 그는 재빨리 침상으로 시선을 던졌다.

방은 어두웠지만 그 정도에 시선을 구애받을 제갈공지가 아니었다.

침상에는 엷은 이불을 불룩해보였다.

그리고, 침상 앞에는 검은 가죽신이 놓여있었다.

제갈공지는 침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슈앙!

침상의 엷은 이불이 그의 손으로 빨려들어왔다.

힘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의 공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수였다.

한데,

이불이 벗겨진 침상에는 방안에 있던 여러 가지 잡동사니가 쌓여져 있었다.

제갈공지는 난감한 기색이었다.

[결국 떠나버렸구나. 휴! 내가 귀만 막지 않았어도……]

미소년은 신발을 벗어놓고 도망쳐버린 것이다.

[이것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아야 할 텐데……]

제갈공지는 불안한 마음으로 중얼거리고 탁자 앞에 앉았다.

시월의 밤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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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無敵十二劍의 美少年 1

 

 

황군성은 정주를 빠져나가자 곧장 개봉을 향하여 달렸다.

그의 품속에서 임단심이 의아한 눈초리로 물었다.

[개봉엔 어째서 다시 가는 거지요?]

[개봉에 아버님의 기업이 있소. 그곳을 찾아가 부탁해야겠소.]

그의 말처럼,

개봉에는 그의 아버지인 황창설의 기업 중의 하나인 금종전장(金鐘錢場)이 있다.

황군성은 이곳에 가서 신분을 밝힌 후, 금종전장의 책임자로 하여금 정주의 순무를 무마시키도록 할 작정인 것이다.

문득,

황군성은 달려가던 발을 멈추고 우뚝 섰다.

그의 사방에서 뻗어오는 가공할 검기가 있었던 것이다.

어둑어둑해오는 저녁 무렵,

그를 포위하고 있는 열두명의 흑의인들,

일견(一見)하기에도 보검인 그들의 장검으로부터 가공할 검기(劍氣)가 뻗어 나오고 있었다.

(대단한 고수들이다. 가히 검의 달인들……)

순간,

그의 품안에서 가는 떨림이 전해왔다.

임단심이 가까스로 말을 내뱉었다.

[저들은 신검보의 무적십이검(無敵十二劍)이에요. 보주인 검신의 직속으로 수라검 모령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인물들……]

그러나,

그녀의 경악과는 달리,

황군성은 여전히 조금의 미동도 없이 태산같이 버티고 서있다.

무적십이검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다가들고,

그때마다 황군성에게는 전해오는 압력은 갑절로 변해갔다.

하나,

무적십이검의 다가오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도 걸음을 떼기가 힘든 것이다.

아무런 자세도 취하고 있지 않은 듯한 황군성의 몸에서 풍겨지는 가공할 힘은 그들의 걸음을 절로 늦추고 있었다.

그들도 한걸음을 떼기위해 이마로 푸른 핏줄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과 함께 살기가 하늘을 찌를 듯 충천하고 있다.

황군성도 무적십이검도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이 긴장이 깨어지는 순간 양측 중에 어느 한쪽은 완전히 전멸하리라는 것을……

무적십이검은 시간이 갈수록 경악하고 있었다.

(이렇게 강한 자가 있다니……주군께 그다지 뒤지는 솜씨가 아니다!)

임단심은 아예 호흡을 정지하고 있었다.

행여 자신의 호흡이 황군성의 집중에 방해라도 줄까싶어 두려웠던 것이다.

서로의 거리가 일장 정도로 가까워지자,

무적십이검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어둠속에서도 그들의 검이 발하는 차가운 광망은 눈을 시리게 하고 있었다.

문득,

무적십이검 중 황군성의 정면에서 세번 째 선 인물이 검의 끝으로 작은 원을 그렸다.

순간,

놀랍게도 그의 검에서 하얀 기류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황군성은 눈도 깜짝이지 않고 그자를 지켜보았다.

보통 키이지만 여자처럼 곱상한 얼굴의 미남자다.

나이도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불과 이십세 정도,

무적십이검 중에서 가장 어려보이는 자였다.

그자가 만들어낸 흰 기류는 차츰 황군성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검강(劍罡)의 초보적인 단계였다.

그 기류가 아주 강하게 뭉치게 되면 바로 검술의 두번째 단계라는 검강이 되는 것이다.

황군성은 그자의 무공이 무적십이검중 발군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흰 기류가 자신의 몸에 충돌하는 순간에 나머지 열한개의 검이 자신과 임단심의 몸을 꿰뚫고 말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심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완벽한 반전은,

언제나 상대방이 완벽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느리게 다가온 흰 기류가 마침내 그의 몸을 둔중하게 강타하는 순간,

미소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나가고,

열한 자루의 검이 순식간에 일장의 거리를 좁히면서 황군성의 몸을 무찔러갔다.

아무런 변식도 없고, 특이한 초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다만 빠르고 정확하며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가공할 힘이 결집되어있고, 검을 통해 단련한 정신력의 총화가 스며들어있었다.

펑!

흰기류가 황군성의 몸에 충돌하며 폭음을 터뜨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황군성의 몸에서 구름같은 붉은 기운이 일어난 것은.

그것은 삽시간에 그의 몸을 가려버리고,

그 속에서 번개불같은 섬광이 일었다.

그리고……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무서운 정적이 흘러갔다.

[으으으……이럴 수가……단 일초에 십일인을 베다니……]

미소년의 가날픈 신음소리가 그 정적을 깼다.

붉은 구름에 휩싸여 있는 황군성의 주위,

쿵쿵!

십일인의 흑의인들이 검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들의 머리가 땅에 닿는 순간,

소리없이 두개골이 열려지며 뇌수가 땅위로 흘러내렸다.

실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미소년의 얼굴에 떠오른 강한 불신감은 공포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채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붉은 빛이 일렁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머리에 와닿는 싸늘한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황군성이 도신이 넓은 번천도를 그의 머리위에 갖다 대고 있는 것이었다.

미소년은 손가락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혼이 빠져나갈 것같은 공포속에서 그의 정신은 얼어붙어버렸다.

갑자기 황군성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붉은 구름이 그의 모공으로 흡수되었다.

여전히 그의 품에 안겨있는 임단심의 얼굴은 그의 승리가 믿어지지 않는 듯 했다.

(세상에……강한 줄은 알았지만 설마……무적십이검을 단 일초에 제압하다니……)

순간,

황군성이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나는 당신들 신검보와 아무 원한이 없다. 무엇 때문에 나를 공격했는가?]

미소년은 흠칫 몸을 떨고 말했다.

[당신은 본 신검보의 외총관을 살해하지 않았소?]

그는 황군성의 몸에서 공포를 느끼게 하던 붉은 구름이 사라지자 어느 정도 공포가 가신 듯 했다.

[그럼 모령산이 나를 공격한 것은 무슨 이유이지요?]

임단심이 비웃음을 담고 물었다.

미소년이 임단심을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그 이유를 모른단 말이요? 뻔뻔스럽기 그지없군.]

임단심이 대노하며 소리쳤다.

[뭐라고? 그 이유야 공격한 네놈이 알지 어떻게 내가 안단 말이냐? 감히 내게 뻔뻔스럽다니 죽고 싶으냐?]

미소년은 입술을 깨물고 독기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빨리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고 싶어도 못 죽을 것이다.]

짝!짝!짝!

그녀는 미소년의 뺨을 연거푸 세대나 때렸다.

미소년은 원래 그녀보다 무공이 훨씬 높았으나 지금은 황군성의 도가 자신의 머리에 닿아있는지라 피하지도 못했다.

뺨이 터지면서 그의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임단심을 쏘아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감히 우리 신검보의 소주(少主)께 독수를 써고도 모른 척하다니 정말 뻔뻔스럽구나.]

임단심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내가 왜?]

미소년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거야 말로 독봉 네가 알고 있어야할 이유가 아니냐?]

임단심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신검보의 소주진 뭔지 본 적도 없어. 그런 자를 내가 어떻게 해칠 수 있단 말이냐?]

황군성이 번천도를 거둬들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이상하군. 한번 자세히 이야기해 보시오. 신검보의 소보주가 언제 독수에 당했단 말이오?]

미소년도 두 사람의 태도에 거짓이 없음을 느끼고 저으기 당황했다.

그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듯했다.

[그럼……대체 누가……아니야……틀림없이 독봉이라고 했어……]

[소보주가 당한 것이 언제요?]

황군성이 다시 물었다.

[그건 불과 사흘 전……]

[그렇다면 이 사람은 아니오. 이 사람은 지난 삼개월 동안 나와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소.]

황군성은 단정을 내리고 임단심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흉수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시오. 만약! 다시 한 번 우리를 건드린다면……당신네 보주를 직접 만나겠소.]

그의 말은 엄중한 경고였다.

미소년은 흠칫 몸을 떨었다.

(저 사내……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정말 우리 신검보의 주춧돌까지 흔들지도 모른다……)

그의 귓속으로 임단심이 조그마한 음성으로 황군성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검보의 보주도 직접 만나서 입씨름하고 싶으셔요?]

황군성은 엷은 미소만 지었다.

그는 지금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생을 즐기고 있었다.

더 이상 삶은 고통이 아닌 것이다.

그때 갑자기,

[임소저, 그리고 대협! 잠시만 멈춰주시겠소?]

어디선가 호소력 있는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황군성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나,

그의 내심은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대단한 고수다. 오장 이내까지 접근하도록 눈치 채지 못했다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나뭇잎이 한 장 팔랑팔랑 날아 내리고 있었다.

한데,

스스슷!

그 나뭇잎이 갑자기 크게 변하면서 사람의 형체로 변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바로 제갈공지였다.

(환술(幻術)을 쓰는 자!)

황군성은 속으로 뇌까렸다.

미소년이 놀란 음성으로 내뱉었다.

[제갈군사……]

제갈공지는 미소년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황군성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나는 신검보의 군사인 제갈공지라는 사람이오. 소협의 명호는……?]

[황군성이오.]

[황소협이었구려. 먼저 본 신검보가 황소협과 임소저께 실수한 점에 대해 사과드리겠소. 하지만 황소협도 내 말을 들어보면 수긍이 가는 바가 있을 것이오.]

제갈공지는 부드러운 화술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얼마 전,

신검보의 작은 주인인 전무옥(全武玉)이 어떤 아름다운 소녀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는 원래 전득무에 의해서 모종의 장소로 보내져 무공을 익혔는데,

그동안 무공을 완성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데,

문제는 바로 그가 데리고 온 아름다운 소녀에게 있었다.

그녀는 독봉 임단심이라고 했었다.

실제로 그녀의 얼굴은 독봉 임단심과 완벽하리만큼 똑같았다.

게다가 음성마저도 조금도 다르지 않았기에,

임단심을 직접 본 사람들조차 그녀 본인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전무옥은 온통 그녀에게 빠져 있었는데,

보주이자 아버지인 전득무에게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말하며 승낙을 구했었다.

그러나,

전득무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다.

성격이 급한 전무옥은 길길이 뛰면서 아버지의 결정을 불복했으나,

그런 작은 일에 눈썹하나 까닥할 전득무가 아니었다.

한데,

다음날 아침,

전무옥의 시녀가 불이나케 달려와 전득무 앞에 엎드렸다.

그녀의 말인즉슨 전무옥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전득무가 가보았을 때,

전무옥은 괴이한 독에 의한 중독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전신의 경혈이 뻗뻗이 굳어가고,

체온이 식어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군사인 제갈공지가 짚이는 데가 있어서 부하들을 시켜 임단심의 거쳐를 조사해보게 했다.

그랬더니 그녀의 거처에는 네 구의 시녀들 시체만 나왔을 뿐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전득무가 자신의 공력으로 전무옥의 몸속에 침투한 독을 몰아냈다.

그러나,

독은 완전히 배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무옥은 깨어날 줄 몰랐다.

어떤 수법도 소용이 없었다.

전무옥은 살아있는 고깃덩어리가 되고 만 것이다.

좋은 말로 하면 잠자는 신검보의 소보주고……

그래서,

급기야 신검보의 고수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독봉 임단심의 종적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독봉 임단심을 찾아서 공격했는데 일이 요상하게 꼬여 이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제갈공지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묘하게 생각되었다.

누가 임단심을 사칭해서 전무옥을 해쳤단 말인가?

(혹시 내게 원한이 있는 자가……?)

임단심에게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귀보의 소주께서 당한 독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놀라지 마시오. 바로 심경신강(心硬身剛)이오.]

제갈공지의 말에 임단심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럴수가……그건 세상에서 오직 나만 알고 있는 독인데……]

심경신강,

그것은 오직 임단심만이 조제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특이한 독이다.

무색무취무미한 이 독에 중독된 자는 먼저 심장이 멎고 전신이 굳어져,

죽은 후 몇 일이 지나도 살이 썩지 않는다.

오직 내장부터 썩어서 칠공으로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본 보에서는 임소저가 틀림없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오. 물론 이제 임소저가 소주께 독수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믿지만 아무래도 이 사건과 임소저는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소.]

제갈공지는 임단심과 황군성에게 간청하는 어조로 말했다.

[만약, 두 분께서 급한 일이 없다면 우리 신검보로 가서 좀 도와주시기 바라는 바이오. 이 사건을 풀자면 임소저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같으니……]

임단심은 황군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태도가 분명했다.

[개봉에서 급히 처리해야할 일이 있소.]

황군성의 말에 제갈공지는 더 들어보지도 않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함께 본 보로 가도록 합시다. 황소협의 볼일이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힘 닫는 대로 도와드리리다.]

아예 거절의 여지를 단절하고 보는 제갈공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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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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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검신보의 검신 2

 

 

 

처마의 끝이 날아갈 듯 높은 전각들,

딱딱한 분위기,

퉁명스런 표정들……

이곳은 틀림없이 정주의 순무가 있는 곳이다.

관(官)이 아니고서야 어디 이런 고식(姑息)적인 분위기가 흐르겠는가?

이곳의 가장 화려한 대청,

붉은 관복을 입은 노인의 음성이 밖까지 들려나왔다.

[공자께서 진정 영왕전하(永王殿下)의 외손자이시라면, 무슨 증거를 보여 주셔야 할게 아니오.]

고압적인 음성이었다.

소리치고 있는 그의 앞에는 두 남녀가 포박당한 채 앉아있었다.

칠척의 거한과 옷속에 빠져버린 한떨기 꽃같은 미녀,

바로 황군성과 임단심이었다.

황군성은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빌어먹을 순무 늙은이가 도무지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주혜린이고, 주혜린의 아버지가 영왕이니,

그는 자연히 영왕의 외손자가 아닌가?

하나,

지금 그는 그의 말로 인해서 오히려 황족을 사칭했다는 누명까지 뒤집어 쓰게 되었다.

임단심은 도무지 융통성이라고 보이지 않는 황군성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했던 말만 하고 또하고, 순무도 했던 말만 하고 또하고……

그도 그럴 것이 만약 당대의 실권자의 영왕과 조금의 국물이라도 튄 사이라면 그의 모든 것이 곤두박질 칠 수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는 것에도 한도가 있는 것이다.

황군성으로서는 포박당한다는 것도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노릇이었으나,

포박하지 않고는 만나 줄 수 없다는 순무의 강경한 태도에 삼보 양보한 것이었는데,

벌써 한시진이 넘도록 순무와 입다툼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지쳤다.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자,

그를 몇 번 더 살핀 순무가 대뜸 명령을 내렸다.

[이 두 죄인을 뇌옥에 갖다 넣어라.]

기가 막힌 노릇이지만 돌부처같은 황군성을 보면서 임단심은 체념하고 말았다.

 

× × ×

 

덜컹!

철문을 닫고 옥리(獄吏)는 가버렸다.

[그래도 순무가 조금 켕기는 데는 있는 모양이군요. 우릴 같은 곳에 넣어주다니……]

임단심이 배시시 웃으며 황군성에게 말했다.

황군성은 희미하게 웃으며 한곳에 앉아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사실,

그는 자신이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순무와의 억지와 억지의 짜증나기 이를 데 없는 말다툼을 했음에도,

지금은 오히려 속이 후련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속에서 뭔가가 점점 뚜렷하게 형성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산다는 것일까?)

소음곡에서 그는 한번도 누구와 다퉈보거나 싸워보지 않았다.

대가족인 가정에서 보통 그렇듯이 웃사람에 대한 철저한 공경으로 그 가정의 기초는 다져지는 때문이다.

그는 웃어른들에게는 무조건 복종했었고, 동생들은 또한 그의 말에 그렇게 했었다.

도무지 충돌이란 있을 수 없다.

꾸지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별개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싸움, 피를 뿌리는 싸움이든 피곤하기 그지 없는 말다툼이든, 그 속에 이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어떤 즐거움 같은 것을 맛보고 있었다.

소음곡에서 그는,

인생이란 원래 치열한 것이고,

치열하지 못하다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도 치열했다.

영왕의 외손자임을 입증하려는 자기의 절박한 마음과 혹시 공무를 잘못 집행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순무의 마음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일순,

황군성의 마음으로 어떤 번갯불같은 섬광이 지나갔다.

그는 벌떡 일어서며 뇌전을 맞은 듯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듯이 소리쳤다.

[그렇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 이제 빈손으로 시작해서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이루겠다.]

그의 갑작스런 고함소리에 임단심은 깜짝 놀라 귀를 틀어막았다.

(아……이 분은 엄청난 고수였어……)

뇌옥 안에 그의 음성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황군성의 눈은 신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떤 강렬한 의지같은 것이 그의 얼굴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를 지배하고 있던 허무와 고독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얼굴은 환하게 밝아져 빛이 나는 듯 했다.

그렇다.

이제,

황군성은 비로소 관문을 넘은 것이다.

문성무존의 모든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했던 그 관문을……

이것은,

모든 것을 소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시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문득,

놀람과 약간의 두려움을 담은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임단심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거침없이 그녀를 껴안아 올렸다.

그녀의 키가 너무 작기에, 아니 그가 너무 크기에 얼굴을 마주 보자면 그녀를 들어 올리는 것이 편한 때문이다.

그녀의 두발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황군성은 그녀의 붉은 입술을 자신의 두터운 입술로 덮었다.

임단심은 무엇이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자신을 안아주자 두근거림과 함께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입술을 비집고 황군성의 혀가 그녀의 입 깊숙히 파고들어왔다.

서로의 타액이 교환되고,

영혼이 달아나 버릴 것 같은 달콤한 입맞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녀의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황군성의 한손이 그녀의 둔부 전체를 감싸고 쥐어짰다.

짜릿한 느낌이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그녀는 두 팔로 황군성의 목을 꽉 껴안았다.

황군성은 그녀를 안은채 바닥에 몸을 뉘였다.

임단심의 턱은 어떤 기대감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사르락! 사르락!

그녀의 하의가 벗겨지며 한쪽으로 젖혀지고,

황군성의 하의도 발가락에 밀려 한쪽에 쭈그러졌다.

아무것도 깔지 않은 바닥이지만 아무 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그녀의 몸 위로 황군성의 몸이 포개지고,

일순간 불같은 기운이 그녀의 은밀한 곳에서 머리꼭대기까지 뻗어 올라갔다.

그녀는 아득한 심연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황홀한 상태에서 그녀의 정신은 구름 속을 노닐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는 몇 번이나 최고의 희열을 맛보았다.

그리고,

황군성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힘찬 분출이 있었다.

 

× × ×

 

임단심은 황군성의 몸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에게는 가장 편안한 곳이다.

그녀가 황군성의 귀에 대고 감미로운 음성으로 소곤거렸다.

[저는 무조건 당신만을 따를 뿐이에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아무 걱정마셔요.]

[하지만 이번 한 번 만은 아버님 신세를 져야만 하겠소.]

황군성의 눈은 은은한 정을 담고 있었다.

노룡하에서 자신을 구한 후 헌신적으로 모든 것을 바쳐온 여인이다.

산사태에 몸을 맡겨 죽으려고 했음에도 단극린의 혈왕신공으로 말미암아 죽지도 못하고 되살아난 그,

허무와 고독 속에서 유일한 쾌락이 있었다면 임단심과의 정사(情事)뿐이었다.

그것도,

그를 구하기 위해 임단심이 순결을 바침으로써 알게 되었던 것이지만……

어쨌든,

지난 삼개월 동안 그는 모든 것을 임단심에게 의지해 왔었다.

임단심과 그는 한시라도 떨어진 적이 없었고,

기이하게도 그 자신도 그녀와 떨어진 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스스로 죽음에 대한 유혹과 삶에 대한 권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였기에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임단심의 그 현신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입 한번 열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임단심은 단 한번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다.

이제,

황군성으로 부터 모든 것을 전해들은 임단심은 그의 말이 마치 꿈인 듯 느끼고 있었다.

이 세상과는 별세계 인것같은 소음곡 이야기가 그렇고,

그 안에 살고 있다는 삼백세가 넘의 그의 육대조 이야기가 그러하며,

당대의 실권자의 영왕이 그의 외조부라는 사실이 그러했다.

하나,

그녀는 황군성의 말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었다.

 

황군성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 볼 일 다 봤으니 이곳을 빠져나갑시다.]

[이곳은 철옥인데 어떻게……]

그는 임단심의 염려에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커다란 왼손바닥을 펴자 오리알같은 흰 물건이 나타났다.

[…………?]

(설마 저 구슬로 뭘 하겠다는……)

그녀의 설마는 사실이었다.

황군성의 다시 손을 움켜쥐는 순간,

번쩍!

한줄기 섬광이 뻗어 나오며 소리없이 한자 두께의 철문을 베어버렸다.

임단심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황군성의 손에는 날이 넓은 한 자루의 백색 도가 쥐어져 있지 않은가?

번천도였다.

황군성은 번천도를 휘둘러 통로를 낸 후,

얼이 빠져있는 임단심을 품에 안고 유유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많은 옥리들과 포리 및 관군들이 서있었으나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문성무존의 후계자이자 한천사방객의 모든 무공을 한 몸에 익힌 황군성을 그들이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완전히 밖에 나왔을 때는 석양이 지고 있었다.

한데,

십여 명의 인물들이 나는 듯이 빠져나가는 황군성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용히 갈무리된 기도는,

각기 오색 수실이 휘날리는 검을 찬 이들이, 일파 종사의 경지를 뛰어넘는 무공의 소유자임을 말하고 있다.

[역시 우리 짐작이 맞았군, 모령산을 일초에 죽인 인물 따위가 관의 뇌옥에 갖힌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은 소리지.]

[조금 뒤따라가다가 한적한 곳에서 처치하지.]

그들은 황군성이 몸을 날린 곳을 향해 섬전같은 빠르기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섰던 곳에 환상처럼 모습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었다.

신검문의 군사인 제갈공지였다.

[주군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군. 보통 고수가 아니야. 어쩌면 저들이 모두 죽을 지도 모르지……]

그의 몸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안개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한데,

이것은 틀림없는 배교(拜敎)의 환무잠행술(幻霧潛行術)이다.

오백 년 전에 모습을 감춘 배교……

제갈공지는 어떻게 해서 배교의 비전술법(秘傳術法)인 환무잠행술을 알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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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神劍堡의 劍神

 

 

 

정주에서 백여리 떨어진 곳에 있는 오리평(五里平),

두 개의 언덕 사이에 있는 그다지 넓지 않은 평야.

하지만,

이곳에는 적지 않은 한채의 보루(堡壘)가 서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늘어선 전각들……

곳곳에서 새로 건설되고 있는 건물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신검보(神劍堡),

이곳은 바로 당금 무림의 칠대세력 중의 하나인 신검보인 것이다.

한데,

이 신검보의 중앙에는 오행의 방위를 따라 건설된 다섯 개의 구층탑이 있다.

그리고,

각각 구층으로 이루어진 다섯 개의 탑 가운데에는 십이층으로 된 거대한 탑이 있다.

이름하여 검신탑(劍神塔),

바로 신검보의 보주인 검신 전득무(全得武)의 거처다.

검신탑 십 층에 있는 대전(大殿)에는 휘황찬란한 태사의를 중심으로 십여명의 인물들이 늘어서 있다.

태사의에 앉아 있는 오십 줄의 초로인,

일견하기에도 거악같은 위엄이 풍겨난다.

넓게 확 트인 이마,

너무 짙어서 한꺼번에 이어져 버린 일자눈썹,

네모난 각진 턱,

강철보다 강인해 보이는 철완(鐵腕),

짧게 턱을 감싸고 있는 검은 수염은 그의 위엄을 더해주고 있다.

한데,

이 검신 전득무의 바위처럼 굴강한 입이 열리고 있다.

오십줄에 들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윤기있는 목소리……

그가 말하고 있다.

[제갈공지(諸葛共智), 한낱 독봉이란 어린 계집얘에게 외총관이 당했다는 그 말을 본좌가 믿어야 하느냐?]

순간,

그의 우측에 서있던 부드러운 인상의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중년인이 깊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주군! 외총관 모령산을 살해한 인물은 독봉 임단심이 아니라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거한이라고 했습니다.]

[음……그게 그거지. 내 말은 외총관의 무공이 쓸만 했는데 어떻게 이름도 없는 자에게 단숨에 죽였느냐 하는 것이지.]

검신 전득무는 말을 바꾸었다.

검신보의 군사(軍師)인 제갈공지는 이마의 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주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리고 믿어셔야 합니다. 모령산의 부하들이 직접 보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당연히 믿어야지. 본좌는 부하가 직접 본 것도 믿지 않는 그런 좁은 그릇이 아니니까?]

전득무의 말은 점점 꼬이고 있었다.

그만큼 제갈공지는 쩔쩔 매면서 허리를 굽힌다.

전득무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제갈공지에게 물었다.

[한데, 외총관이 무엇때문에 독봉 계집애와 마주쳤지?]

제갈공지의 등줄기는 아예 땀으로 젖어버렸다.

[주……주군께서 그 계집을 처치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래, 그랬지, 본좌가 시킨 일을 본좌가 모를리 있나? 한데……]

전득무의 말이 계속이어지자 제갈공지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뭣 때문에 내가 그 계집애를 죽이라고 했지?]

전득무의 좌우에 도열하고 있는 자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제갈공지는 또 쩔쩔 매면서 대답하고……

[그 계집애가…… 감히…… 소주(少主)께 독……을 썼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갈공지! 그 좀 더듬지 않고 말할 수 없나. 영 듣기가 거북하구만.]

[네……네, 그러……겠습니다.]

여전히 제갈공지는 말을 더듬었다.

강호거파인 신검보의 군사쯤 되는 자라면 말을 더듬을 리 없건만……

문득,

전득무는 좌우에 도열하고 있는 수하들을 보며 말했다.

[자네들은 여기서 뭘하고 있나? 그자를 잡아 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그의 눈길을 받은 자들은 일자로 굳어졌다가 동시에 합창했다.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그들은 잘 훈련된 병사들 처럼 일시에 허리를 굽히고 대전밖으로 미끌어져나갔다.

[쯧쯔……저렇게 뒤퉁스러워서야 원, 무인(武人)은 그저 동작이 빨라야 하는 건데……]

완전히 코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엎드려 버린 제갈공지를 보며 전득무가 말했다.

[자네도 나가보게, 여기 무슨 할일이 있다고 웅크리고 있는가?]

[네? 네……]

제갈공지는 그야말로 사면이라도 받은 듯이 꽁무니가 빠지게 대전을 나가버렸다.

순간,

[아니……생각해 보니 할 일이 있어.]

갑자기 들려온 전득무의 말에 제갈공지는 벼락을 맞은 듯이 멈춰서 버렸다.

전득무는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느릿하게 걸어서 태사의 뒤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들을 따라가. 하지만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구경만 해. 그리고 내일 이때 보고하도록……]

전득무의 음성도, 모습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제갈공지는 완전히 탈진한 모습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서운 분……진정 하늘같은……)

전득무,

일견 허술한듯 말하지만,

그 말들은 지나고 되새겨 보면 되새겨 볼 수록 심오하기 그지 없는 것들이다.

방금 전만 해도,

자신이 했던 말을 상대편의 입을 통해 다시 듣는 것 하나 만으로도 책임을 소재를 완벽하게 했다.

그의 앞에서는 어떤 거짓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리숙하게 내뱉는 그 말들은 상대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그 속에 깊이 감추어진 것을 파내는 가공할 무기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전득무의 부하들은 오직 진실 하나로만 그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속인다는 것은 꿈도꾸지 못할 일이다.

그런 상태인데 역심(易心) 같은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앞에 선 부하들은 전득무에대한 진실한 충성심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는 신검보의 일만오천 수하들을 한손아귀에 넣고 뒤흔드는 신(神)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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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毒鳳 任丹心 2

 

 

 

임단심은 황군성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객점에 다다를 때 까지 시종 그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그들이 객점의 문앞에 다가가자 흑의에 검을찬 십여명의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임단심은 일이 쉽지 않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들은 복장으로 보아 모두 신검보의 고수들인 듯 했다.

임단심을 발견하자 마자 살기(殺氣)를 드러내며 그들은 검을 뽑았다.

챙!

챙!

[독봉 임단심!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

한기가 풀풀날리는 음성으로 제일 앞쪽에 선 강팍한 인상의 중년인이 말했다.

염소수염을 한 그자는 전신에 살이라고는 한점도 없어 마치 해골같은 느낌을 주었다.

임단심은 차갑게 내뱉었다.

[신검보의 외총관(外總管)인 수라검(修羅劍) 모령산(毛岺山)이로군.]

[흥! 눈이 멀지는 않았구나. 하나, 여우같은 네년도 오늘은 여기 뼈를 묻고 말것이다.]

모령산은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군. 어째서 신검보의 졸개들이 본녀를 이처럼 귀찮게 구는지……]

임단심의 말에 모령산의 얼굴은 분노로 범벅이 되었다.

 

그가 속해있는 신검보,

당금 강호의 최강세력인 일궁일성이보삼장(一宮一城二堡三莊) 중 당당히 이보에 속하는 세력이다.

그곳의 외총관이라고 하면 강호에서는 군소문파의 장문인과 버금가는 대접을 받고 있다.

한데도,

임단심이 그녀를 마치 남의 집을 지키는 강아지보듯 한 것이니 그가 미칠 듯이 분노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한데,

일궁일성이보삼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일궁 현현궁(玄玄宮),

이것이 어디에 있는 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림에 있는 칠십여개의 방파가 현현궁에 복종하고 있다.

그곳에서 나온 사자(使者)들은 때때로 복종하지 않는 방파들을 징벌하기도 하는데,

그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단 두명의 사자만으로도 이백여명의 고수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고,

그곳에 단 하나의 생명도 남겨놓지 않는다.

그러나,

이 현현궁에 복종하는 문파들은 현현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그 지역에서 강대문파로 성장해버린다.

심지어 스스로 현현궁에 복종하기를 원하는 문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천하각지에 칠십여개의 방파를 두고 있는 현현궁이야 말로 당금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성(一城) 취옥성(翠玉城),

황산(黃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이 성은 세가지의 병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일천명의 고수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름하여 삼절일천군단(三絶一千軍團)이라 한다.

이 삼절일천군단과 직접 맞부딪힐 수 있는 세력은 강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취옥성이 당당히 천하의 칠대강파 중의 하나로 들게 된 것은 바로 이들의 활약때문이었다.

사십여년 전,

이들은 등장하자마자 흑도의 십이개 연합세력이었던 혈인방(血人幇)을 단숨에 궤멸시켜버렸었다.

당시만 해도 혈인방이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꼽히는 거대세력이었던 만큼,

그 여파는 대단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혈인방 팔천 고수들을 몰살시키면서도, 삼절일천군단은 단 한사람의 희생자도 없었다는 사실이 모든 강호인들을 경악시켰었다.

이때문에 천하의 무림인들은 취옥성이야 말로 최강의 전투력을 지닌 단체로 인정하는 데 인색함이 없는 것이다.

 

이보(二堡),

이보는 기이하게도 검과 도를 숭상하는 문파를 말한다.

신검보(神劒堡)와 신도보(神刀堡),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오래전 부터 간간히 이름이 전해지던 군소방파중의 하나였다.

한데,

어느날 갑자기 그들은 문호를 활짝열고 많은 제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그동안 보주들에게만 전해지던 검법과 도법을 문하제자 모두에게 익히게 했다.

하지만,

이들이 결정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그 주인들 때문이었다.

신검보와 신도보는 이상할 정도의 적대감을 갖고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두 세력의 우두머리인 보주들은 해마다 한번씩 장소를 정해놓고 결투를 벌였다.

그런데,

공개된 그 결투장에서 두사람이 보여준 대결은 세인의 상상을 완전히 초월해 버린 것이었다.

해마다 무승부로 끝나는 대결이기는 하지만 결투장이 정해지면 무수한 무림인들이 그들 두 절세고수의 결투를 구경하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들의 검술과 도법은 정말 검신과 도신이라고 이름할 만한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검술, 도법을 본 자가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당연히 당금 무림의 최고 검신이 있는 신검보와 최고의 도신이 있는 신도보가 당당히 칠대세력에 들게된 것이다.

그리고 무수한 검과 도의 추종자들이 그들의 휘하에 몰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삼장(三莊),

바로 화운장(花雲莊), 귀왕장(鬼王莊), 천음장(天音莊), 이 세 세력을 일컫는 말이다.

기이하게도 이들 삼장에 대해서 밖으로 특별히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삼장은 모두 세인의 접근을 절대로 금하는 금지(禁地)인 것이다.

이곳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엇이든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한 사람의 고수가 가면 고수가 사라져 버리고,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 일개 방파가 가면 그 방파가 사라져 버린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않고 그곳에 가기만 하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무림의 많은 열혈남아들이 그 비밀을 풀기위해 삼장으로 달려갔으나,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삼장은 각 장(莊)의 이름으로된 첩지(帖紙)를 무림의 어떤 고수들에게 뛰우는데, 그것은 말그대로 최명부(催命符)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첩지를 받은 자는 어느 곳에 숨더라도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해 세인들은 삼장을 공포로 당금세력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 일곱세력 중,

우두머리가 밝혀져 있는 것은 바로 이보(二堡) 뿐이었다.

그들은 결투중에 드러낸 무공으로 말미암아 은연중에 천하제일의 고수로 추앙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모령산은 바로 그러한 세력 중의 하나인 신검보의 외총관인 것이다.

자연 무공에 있어서 남다른 바가 있다.

원래 자신의 검술이었던 수라검에다가 신검보에서 배운 새로 익힌 검술을 혼합하여 그만의 독특한 검술을 만들어냈다.

무수한 검호(劍豪)들이 득실거리는 신검보에서 당당히 외총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때문이었다.

이순간,

분기탱천한 그는 자신의 체면을 돌보지 않고 욕을 퍼부었다.

[이 가랑이를 찢어죽일 년! 네년을 사로잡아 강간한 후에 죽이겠다.]

원래 흑도 출신인지라 입이 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모령산이다.

비록 신검보에 들어갔지만 개꼬리 삼년 묵는다고 족제비꼬리가 될리 없다.

임단심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매섭게 치켜올라갔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아무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개수작 마라!]

번󰠏󰠏󰠏󰠏󰠏󰠏쩍!

모령산이 수라검을 펼쳐서 십여 개의 환영을 만들어냈다.

쉬쉭!

그의 수라검은 임단심의 팔대요혈을 한꺼번에 노리고 있었다.

임단심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예의 기이한 보법을 펼쳐 모령산의 뒤로 돌아갔다.

모령산이 콧웃음쳤다.

[겨우 칠현천기보(七玄天機步) 따위를 믿고 날뛰다니……]

그는 몸도 돌리지 않은채 뒤를 향해 검을 펼쳤다.

기이하게도 모령산의 검은 여전히 임단심의 팔대요혈을 노린 채 뻗어나가고 있었다.

마치 앞을 향해 검법을 펼쳤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 작자가 과연 대단하구나!)

임단심은 식은 땀을 흘리며 재빨리 칠현천기보를 밟아 물러섰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그녀의 옷자락이 길게 찢어지고 말았다.

찌익󰠏󰠏󰠏󰠏󰠏!

어깨에서 앞가슴까지 베어져 순간적으로 그녀의 속살이 드러났다.

(헉!)

그녀는 내심 다급성을 발했으나 손으로 가릴 새도 없었다.

여전히 몸을 돌리지 않은 채 등으로 그를 쫓아오며 모령산이 수라검으로 찔러오기 때문이다.

그녀의 빠른 보법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속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심한 수치감과 함께 그녀는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검보의 외총관의 솜씨는 그녀의 상상을 절(切)한 것이었다.

찰라의 순간에 다시 모령산의 검이 그녀의 옆구리를 스치며 피가 배여나오게 했다.

고통보다 앞서서 임단심은 식은땀으로 속옷이 축축히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이자는 내공이 깊어서 독도 금방 통하지 않는구나. 오늘은 득보다 실이 많은 날인 모양이다……)

그녀는 사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흔적없는 독을 펼쳐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술이 있다.

지금 모령산의 몸을 한바퀴 돌면서 까지 독공을 펼쳤음에도 모령산은 끄덕도 하지않고 그를 공격해오고 있다.

임단심은 다시 순식간에 세군데의 검상을 입었다.

붉은 옷에 흘린 피는 그다지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창백해진 안색은 붉은 옷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황군성을 데리고 그들의 손을 빠져나갈 자신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독을 뿌리면서 모령산이 쓰러지기만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하고 있었다.

한데,

그녀의 애절한 모습을 지켜보는 황군성의 눈빛이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그때,

신검보의 늘어서 있는 고수들 중에서 몇 명이 아무 비명도 없이 뒤로 쓰러져 버렸다.

그자들을 필두로 해서 신검보의 고수들은 앞다투어 뒤로 넘어가버렸다.

멀쩡히 서있는 자들은 불과 두명 뿐이었다.

[간악한 년! 죽여버리겠다! 우아……]

모령산은 부하들의 죽음에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이십칠검을 펼쳤다.

하얀 백색 검기가 임단심의 몸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듯 몰려갔다.

한데,

임단심은 모령산의 검은 본 척도 않고 고개를 돌려 황군성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실력으로서는 모령산의 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황군성의 모습이나마 마음에 담아두고자 한 것이다.

그녀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황군성을 향해 처연하게 웃어보였다.

바로 그순간,

그녀는 황군성의 눈에서 엄청난 신광이 폭사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캉!

[으악!]

어떻게 된 상황인지도 모른 채,

모령산은 산산조각나 자신의 몸에 박히는 수라검을 느끼면서 눈을 부릅뜨고 쓰러졌다.

쿵!

임단심은 눈앞의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앞을 막아서 있는 칠척거구의 사나이,

그는 바로 자신의 정인(情人)이 아닌가?

객점앞으로는 구경꾼들이 몰려나와 있었는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황군성이 수법을 펼치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모령산이 전신에 검의 파편을 박고 죽어갈 때,

임단심 앞에 우뚝 나타난 그를 보았을 뿐이다.

남아있던 두 명의 신검보 고수는 그의 가공할 신위에 비척비척 물러섰다.

덩치가 크고 잘생기기만 할뿐 흐릿한 눈동자의 바보같던 사나이가 완연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탑탁천왕이 따로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칠척의 거구에서 뿜어지는 위압감만으로도 그들의 숨을 멈춰놓을 것만 같았다.

임단심의 그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그녀의 볼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죽음의 순간에서 자신을 구해준 인물이 세 달 전에 자신이 노룡하(怒龍河)에서 건져올렸던 정인이라니……

황군성은 자신의 앞에서 핏물을 쏟으며 죽어있는 모령산을 보자,

자신의 마음을 덮고 있던 무엇인가가 스스히 걷히고 있음을 느꼈다.

그가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칼끝에 인생을 건다……바로 이런 것이었나……]

임단심은 그의 등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당신……당신은 말도 할 줄 아는군요.]

남이 들으면 어처구니 없는 것 같겠지만,

임단심에게는 어쩌면 자신이 살았다는 것보다 황군성이 말을 했다는 것이 더 큰 의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황군성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듯,

여전히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서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다니……나는 살인마란 말인가?]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다. 그럴리가 없다. 나는 문성무존의 후계자가 아닌가? 한데……한데……이 자를 죽일 때 나는 내 인생에서 최고로 통쾌함을 느꼈다. 왜그럴까? 왜?]

주변에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던 자들은 슬금슬금 피하고 있었다.

두 명의 신검보 고수는 어느 틈에 사라져 버리고 흔적도 없다.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 임단심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이자가 죽어 마땅한 자였기 때문이예요. 죽어 마땅한 자를 죽였기에 통쾌했던 거구요.]

황군성의 큰 몸이 흠칫 떨렸다.

[그럼 왜? 이자가 죽어마땅한 자일까?]

그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말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임단심에게 하는 말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임단심은 여전히 그의 허리를 껴안은 채 다시 대답했다.

[나는 당신의 여자잖아요. 그런 저를 모욕하고 죽이려한 자니까 당연히 죽어마땅하죠.]

[그런가……? 겨우 그정도의 이치에 불과한 것이었나……?]

황군성은 몸을 돌려 그녀를 안았다.

[인생이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야만 하는 겨우 그런 것이었나?]

이말은 임단심 자신이 말한 것과는 엉뚱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황군성의 몸에서 뭔가 새로운 활력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고 큰 희열을 느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포옹하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한쪽에 쓰러져 있는 십여명의 흑의인들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한데,

그순간,

여덟 명의 인물이 그들의 주위로 날아내리며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살인자는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황군성은 아무 반응이 없었으나 임단심은 내심 아차싶었다.

버젓이 대로변에서 살인을 하고도 그대로 있다니 평소같으면 그녀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과연,

그들을 포위한 인물들은 정주(鄭州) 관아(官衙)에 소속된 포리(捕吏)들 이었다.

한손에는 검을 뽑아들고 다른 손에는 포승(捕繩)을 쥐고 있었다.

임단심은 황군성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빨리 달아나야 해요. 관군에게 쫓기면 강호에서 활동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녀는 재빨리 황군성의 손을 잡고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녀는 맥없이 그자리에 뚝 떨어지고 말았다.

황군성이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미동도 하지 않은 것이다.

[당신……왜……?]

하지만,

황군성은 그녀가 아닌 포리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위맹한 중년인을 향해서 말했다.

[당신이 책임자요?]

그의 몸에서는 태산같은 위엄과 기품이 넘쳐흘렀다.

포리들의 우두머리는 구조룡(九鳥龍) 남호풍(藍虎風)이란 사나이다.

그는 황군성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함부로 대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한 걸음 나가서며 대답하려는데,

불쑥 그의 옆에서 한사람이 호통을 쳤다.

[이 살인자! 어서 오라를 받지않고 무슨 잡소리냐?]

구조룡 남호풍이 말릴 사이도 없었다.

그는 내심 아차 싶었으나 내뱉은 말을 돌이킬 수 있는 재주는 없었다.

황급히 황군성의 얼굴을 살피니,

그의 얼굴에 은은한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리친 자도 서릿발 같은 그의 눈빛을 대하자 밀납처럼 얼굴이 창백해지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소리치는 것이었다.

[네 이놈! 강호의 무뢰배가 감히 눈빛으로 관인을 위협하겠다는 것이냐? 황제폐하의 팔십만 어림군이 두렵지도 않단 말이냐?]

이 자는 평소 만용을 잘 부리고 허풍을 잘 뜨는 소화룡(蘇火龍)이란 자로 무공은 별볼일 없는 자였다.

다수의 힘을 믿고 소수를 핍박하고, 강자를 등에 업고 약자를 호령하며, 가난한 자를 협박하여 씨나락 뺏어가는 그런 소인배의 표본이라면 바로 소화룡이자를 일컫는 다고 할 수 있다.

황군성은 더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구조룡 남호풍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순무(巡武)에게 나를 인도하시오. 그에게로 직접가서 해명하도록 하겠소.]

한데,

소화룡 이자는 황군성이 더이상 자기에게 따지려하지 않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그가 황제의 팔십만 어림군에 겁을 집어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호통을 쳤다.

[너 따위 잡종이 어떻게 감히 지고하신 순무나으리를 뵙는단 말이냐?]

남호풍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소리를 질렀다.

[소화룡! 한마디만 더하면 네 주둥이를 찢어놓고 말겠다.]

소화룡은 남호풍의 살기등등한 눈초리를 대하자 강아지처럼 슬그머니 꼬리를 말았다.

한편,

황군성 옆에 붙어있는 임단심은 조바심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가 입은 세 군데의 검상은 외상에 불과한 정도이니 아무렇지 않다고 하지만,

앞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옷이 베어졌기에,

그녀는 한쪽손으로 옷자락을 쥐고 가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순무를 감히 만날 만한 입장이 못되었다.

그녀가 죽인 인물들의 숫자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 중에서는 물론 반드시 죽어야할 악인도 있었지만,

그녀의 기분을 거스른 때문에 죽은 자들도 다수있었던 것이다.

관부에도 고수들이 적지 않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만약,

끈질긴 사냥개같은 관부의 고수들에게 쫓긴다면 그야말로 여간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군성은 순무를 만나려고만 하고 있었다.

초조한 눈으로 그녀가 황군성을 바라보자,

그는 장삼을 벗어서 그녀에게 주었다.

커다란 장삼은 그녀를 완전히 묻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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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毒鳳 任丹心

 

 

밤이면 나는 내 머리의 창문을 열고 달빛이 새어드는 작은 구멍을 통해 지붕위에 올라간다.

바람을 맞으면 바람이 되어 내몸은 골목길을 돌아가고,

불이 켜진 집들 위로 날아갈때는 내 몸을 눕힌다.

밤의 소음은 은밀하고,

은밀한 소음은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모두 내 귓속으로 몰려든다.

내귀로 들어오는 거친 숨소리, 몸 전체를 뒤틀고 울리며 발하는 비음(鼻音)들……

나의 몸은 어느새 한줌의 불꽃으로 타버리고 만다.

재가 되었나 했을 때는 한줄기 차가운 이성에 의해서 숲으로 들고 있다.

푸른 냄새가 폐부에 가득차고 달빛 그늘에 나는 부끄러움으로 몸을 숨긴다.

나는 알몸,

스치는 내 몸을 스치는 풀잎에 은밀한 쾌감을 느끼면서, 가만히 드러누우면 그곳은 나의 침실.

문득 하늘이 아득히 멀어지고 원죄의 업을 벗지 못한채 추락한다.

허공에서 내몸은 주발의 주사위보다 더 많이 뒤집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알은 세상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만다.

새로운 질서가 내눈에도 찾아오고,

나는 다소곳한 자태로 기와집 지붕위에 앉아있다.

산을 넘어가기 전의 달은 온화한 어둠에 차가운 빛을 던지고,

월광에 내리쪼인 나는 전율에 몸을 떤다.

내 몸을 투과한 달빛은 왜 이리도 검은가?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나는 내 속으로 도망치고 만다.

날이 밝아올 때,

나의 창문은 닫히고,

내가 몸을 일으킬 때,

다른 얼굴을 한 나 임단심(任丹心)이 이 낯선 사내 품에 안겨 있음을 느낀다.

 

임단심(任丹心),

그녀는 일어나 앉으면서 머리를 틀어올렸다.

벌써 세달 째,

그녀가 몸을 일으킬 때마다 그녀의 옆에는 칠척의 건장한 사나이가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있다.

그리고, 그녀의 몸도 역시 실오라기하나 걸치고 있지 않다.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가날픈 얼굴은 늘 분을 바른듯 홍조를 띠고 있으며,

초생달 같은 눈썹은 그린 듯 아름답다.

큰 눈에 잔잔히 떨리는 긴 속눈썹은 사내의 심금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매혹적이고,

작고 붉은 입술은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뒷쪽으로 바짝 올려붙은 두 귀는 시원한 느낌을 주고,

뾰송뾰송한 솜털은 그녀를 도화꽃인양 착각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긴 희고 긴 목과 부드러운 어깨선은 너무도 가녀려서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고,

알맞게 솟아있는 두 가슴은 그녀의 자존심을 대변하고 있다.

그녀는 이불로 몸을 가린채 침상가에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을 챙겼다.

이제 사내의 옷을 챙겨놀 차례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는 흰 장삼을 침상가에 챙겨놓았다.

아침을 준비한 후에 그를 깨워 입힐 것이다.

드르륵!

임단심은 창문을 열었다.

개봉(開封) 성 전체를 내리 비치는 아침햇살은 그녀의 침실로도 어김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부신 햇살,

언젠가 부터 찾아온 두려움 속의 불안한 행복,

이곳은 개봉의 남문 근처에 있는 한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집이었다.

 

× × ×

 

비춰들어오는 온묘로운 햇살은 식탁앞에 이르자 죽어버렸다.

달그락, 달그락……

그 식탁에는 임단심과 백의를 걸친 한 사나이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아니,

임단심 그녀가 사나이에게 억지로 아침을 먹이고 있었다.

한데,

이 사나이,

임단심 보다도 머리 두개는 더 클 것같은 칠척의 거한,

그의 전신에서는 말할 수 없는 권태와 허무와 고독이 흐르고 있었다.

싱그러운 아침햇살마저 찬란하게 비치지 못할 정도의 그것이……

죽음보다 더 깊은 허무와 고독……

그렇다.

이것은 바로 그만의 것이다.

산사태에 휘말려사라진 황군성, 오직 그 만의 것이다.

과연,

얼굴에 난 수많은 작은 상채기에도 불구하고,

그 사나이는 틀림없는 황군성이었다.

상채기들이 절세미남인 그의 용모를 조금도 가려주지 못하고 있다.

한데……

그가 어떻게 해서 이곳에 와 있단 말인가?

임단심이라는 여인과 몸을 섞는 사이가 되어서……

문득,

황군성이 손을 저으며 임단심의 젓가락을 거절했다.

그리고,

침상으로 가서 앉은 채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임단심이 애처로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뭘 원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않돼요.]

그녀는 젓가락을 놓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치 어린 아기를 안아 주듯이 황군성을 안으며 속삭였다.

[우리 오늘은 남산(南山)에 가보기로 해요. 기분이 한결 좋아질 거예요.]

남산은 개봉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높지 않은 산이다.

임단심의 집이 성의 남쪽인지라 남산은 바로 지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도 황군성은 아무 표정도 대답도 없다.

그러다 문득,

그를 잡아 일으키려는 임단심의 머리를 크다란 두손으로 쥐며 그녀의 붉은 입술에 얼굴을 덮었다.

화끈한 열기가 임단심의 입으로 전해지고,

그녀는 다시금 그 열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온 몸이 허공에 떠오른 듯 황홀해지며 역설적으로 아득한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녀는 그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었다.

황군성은 그녀를 가볍게 안아 침상에 눕혔고,

그녀는 어느새 그의 목을 꽉 틀어안고 있었다.

이내 옷자락들이 침상가로 떨어져 내리고,

그녀는 누운채로 알몸이 되어버렸다.

언제나 이랬다.

옷을 벗고 누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침상가로 다가올 때부터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치우고 마는 성미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않았던가?

남자의 흰 장삼도 침상에서 흘러내리고,

칠척거한의 탄탄한 육체가 조그마한 임단심의 몸위에 포개졌다.

임단심은 숨이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이 남자는 자신의 생각은 조금도 해주지 않는다.

거칠게 달려들어 마음끝 육체를 유린한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들어버린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머리가 뻥뚫리는 듯한 쾌락을 느끼는 임단심이었다.

화끈한 불덩어리가 그녀의 몸을 꿰뚫으면서,

벼락맞은 듯이 그녀는 전율했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충격이요 희열이다.

고통도 있지만 그것은 크나큰 희열속으로 묻혀버리고 만다.

황군성의 움직임에 따라서 그녀의 붉은 입술은 크게 벌어지고,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희열 속에서 달뜬 신음을 내뱉는다.

달콤한 그녀의 숨결은 황군성의 욕정을 더욱 부채질하고,

뱀처럼 휘감는 흰 팔과 다리는 황군성을 그녀 육체의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몸에서 흘러내린 땀으로 침상은 눅눅히 젖어들고,

전신이 뻗뻗해지는 엄청난 희열속에 그녀는 잠시 정신을 잃고 만다.

이윽고,

흥분이 가라앉는 긴 한숨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으며 얼굴에 홍조를 띤다.

이제 황군성의 몸이 무거움을 느끼고 두 팔로 그를 옆으로 밀친다.

그리고 임단심은 황군성의 배에 올라 그의 귀를 살짝 깨문 후 폴짝 뛰어내린다.

햇살을 받은 나신은 눈부시게 찬란하고,

한조각 한조각 옷이 걸쳐질 때마다 그녀는 요부에서 정숙한 숙녀로 탈바꿈한다.

황군성을 일으켜 옷을 입힌 후,

얼굴을 붉히며 침상에서 사랑의 흔적을 지운다.

몸은 날아갈 듯이 상쾌하다.

이것이……

남자가 여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라는 것을 그녀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비록 황군성이 지금까지 그녀에게 한 말은 한마디도 없지만,

그녀는 황군성이 자기를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믿고 있다.

 

황군성은 임단심의 손에 이끌려 집밖으로 갔다.

임단심은 절대로 그를 두고서는 외출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에게서 떨어지는 법이 없다.

개봉의 이 주택가에서는 그들은 이미 꽤 알려진 얼굴이다.

칠척이나 되는 거구의 미남청년이 세상에 더물기도 하거니와, 아름답기 그지없는 임단심과 부부로서 늘 함께 다니기 때문에 더욱 유명했다.

하지만,

황군성의 눈동자에는 힘이없고,

언제나 깊이 침잠하여 있다는 것은 임단심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늘 밝고 쾌활하게 움직이며 그를 기뻐게 하려고 하지만 황군성은 지금까지 한번도 웃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임단심은 그를 데리고 주루로 가서 술도 마시고, 사람들이 많은 시장이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기분을 전환시켜 줄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황군성 혼자서는 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임단심의 손길을 마다하지도 않지만, 요구하지도 않는다.

오직,

요구하는 것은 그녀와의 관계뿐이다.

 

개봉 남산은 경치가 아기자기하다.

그리고 정상에서는 개봉 전체가 잘내려다 보인다.

임단심은 황군성을 데리고 남산 정상에 올랐다.

이곳에 오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 마다 그들을 유심히 보았었다.

한눈에도 군계일학처럼 보이는 한쌍이기 때문이다.

그럴때 마다 임단심은 은근히 기뻤다.

자기의 남자에 대한 자긍심인 것이다.

임단심의 발걸음은 아주 가볍고 표홀하다.

보폭이 두배나 큰 황군성에게 조금도 뒤쳐지지 않았다.

정상에는 대개의 산들이 그렇듯이 이곳 남산에도 많은 너럭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임단심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을 하나 찾아서 올라갔다.

산위의 선선한 바람이 옷자락을 날리게 하고,

붉은 옷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바위위에 핀 한떨기 철쭉꽃 같았다.

황군성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 그녀의 양볼에는 옴폭한 보조개가 생겼다.

그때,

임단심이 만난 이후 처음으로 황군성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회의와 고독에 젖어있던 눈이 차차 맑아지며 깨끗한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임단심은 몸이 떨릴 정도로 감격했다.

[당신……당신……]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황군성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날려 황군성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 × ×

 

나는 이 사람과 함께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유람해야겠다.

이 사람을 만난 후 강호에서의 모든 은원을 잊고자 했으나,

이 사람은 한곳에 묶여 있어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낮,

남산에 올랐을 때 나를 보던 그 눈빛이 지금도 선연하다.

나는 처음으로 내 몸을 치장한 보람을 느꼈다.

나는 이 사람에게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이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그 지독한 무엇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

언제부턴가 이 사람은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

한순간도 이 사람없는 나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남자 알기를 개울의 피래미보다 하찮게 여기던 나 독봉(毒鳳) 임단심이……

 

× × ×

 

다각다각다각󰠏󰠏󰠏󰠏󰠏󰠏!

한대의 마차가 관도를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 마차안에는 백의를 입은 칠척의 거한과 홍의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타고있었다.

황군성과 임단심이었다.

황군성은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임단심은 얼굴에 연방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가 황군성에게 말했다.

[당신과 함께 강호를 다니게 되다니……꿈만 같아요.]

[…………]

[우리 늙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천하를 유람하며 다녀요.]

황군성의 대답을 기대하고 하는 말이 아닌지라 그녀는 계속 혼자서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음……우리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당신은 아버지가 되고……]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흐흐흐흐……]

돌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침각박의 스산한 괴소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마차의 전후 좌우를 둘러싸며 네 명의 흑의인들이 나타났다.

마차는 멈춰서고, 어찌된 영문인지 마부는 아무기척이 없었다.

임단심의 얼굴표정이 굳어졌다.

눈썹이 상큼 치켜올라가며 살기가 피어올랐다.

[누구냐?]

그녀가 황군성의 곁에 바짝 붙으며 앙칼지게 호통쳤다.

순간,

번쩍!

마차의 포장을 뚫고 대답대신 두자루의 검이 벼락처럼 찔러왔다.

임단심은 그 빠름에 경악하면서 태산같은 몸집의 황군성을 안고 마차의 지붕을 뚫고 솟아올랐다.

거구의 황군성을 마치 공깃돌처럼 가볍게 안아들은 그녀의 무공은 진정 놀라운 바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마차의 지붕 위로는 두 사람의 흑의인이 신검합일의 자세로 공격해오고 있었다.

임단심은 경악하며 소리쳤다.

[일검추혼세(一劒追魂勢)!]

흑의인의 검들은 빗살같은 기세로 그녀를 노리고 쏘아오고 있었다.

모두가 임단심 그녀만을 노릴 뿐 황군성에게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듯했다.

임단심의 얼굴에 서릿발같은 한기가 일었다.

[좋다! 신검보(神劒堡)와 직접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하더라도 네놈들을 없애버리고 말겠다.]

그녀의 몸은 황군성을 안은채 나비처럼 날아내리며 두자루의 검을 피했다.

[광풍진천세(狂風震天勢)!]

땅에서 기다리던 두사람이 사나운 검풍을 휘몰아치면서 공격해왔다.

그러나,

임단심은 기이한 보법(步法)을 밟으며 한쪽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그 순간,

쿵!쿵!

허공에서 그녀에게 일검추혼세를 펼쳤던 두 흑의인이 마치 바위덩어리처럼 굳어진 채 떨어졌다.

그들은 서로의 가슴에 검을 꽂은 채 일어날 줄 몰랐다.

[이……간악한 계집……]

나머지 두 사람이 욕을 하며 다시 그녀를 향해 공격해왔다.

하지만,

임단심은 냉소를 지으며 전혀 피하거나 응수하지 않았다.

두자루의 검은 그녀의 목과 아랫배를 찔러오고 있었으나 그녀는 눈썹도 깜짝이지 않았다.

한데,

그녀의 앞 한척까지 다가온 검은 힘없이 밑으로 쳐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두 흑의인의 얼굴이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더니 눈을 까뒤집은채 죽고 말았다.

임단심은 손한번 써는 것 같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네명의 고수가 죽고 만 것이다.

임단심은 네 구의 시체들을 향해서 지풍을 날렸다.

시체들은 금방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한줌의 핏물로 변해 땅속으로 스며들어버렸다.

네 자루의 주인잃은 청강검(靑鋼劍)만이 남아있다.

물론 이것도 얼마후 누군가 집어가버리고 말 것이지만……

임단심이 마차를 보니 끔찍 스러울 정도였다.

말은 일검에 반듯하게 목이 잘렸는데도 여전히 네발로 버티고 서있었다.

그리고 마부의 목에는 한 자루의 단검이 깊숙히 박혀있었다.

말도 마부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던 것이다.

그녀는 마차 안에서 보자기에 쌓인 조그마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이 그녀의 전 재산인 것이다.

비록 부피는 작지만 금원보가 가득 들었기 때문에 상당한 무게였다.

황군성은 세워논 기둥인 듯이 그녀의 옆에 무표정하게 서있다.

금원보를 챙겨들면서 그녀는 속으로 강한 의문을 느꼈다.

(신검보에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 무엇때문에 그들이 다짜고짜 나를 공격했을까?)

물어보지도 않고 모두 죽여버린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그들은 시체마저 녹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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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天下大亂의 兆朕은 泰山에서부터 豫言되었다.

 

 

 

야조(夜鳥)가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구구구!

밤비둘기의 울음소리는 마치 산의 호곡(呼哭)같다.

휘이이익!

긴 바람소리를 남기며,

냉천삭,

그는 이를 악물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중상을 입은 단극린이 팔없는 소매에 말려있다.

단극린은 혼미한 중에도 계속 혈왕신공을 운용하고 있다.

혈왕신공이 만들어낸 붉은 안개는 달려가는 냉천삭이 마치 한 조각 붉은 구름처럼 보이게 했다.

(으……가공할 내공……이었다. 가운데의 그 노인……북혈마(北血魔)보다 약하지 않은 무공이었다.)

냉천삭은 황자준의 장력을 직접 맞받았었다.

내공이 딸리는 그로서는 필연적으로 깊은 내상을 입었다.

만약 상대방이 자신의 빙백강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냉천삭은 지금쯤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의 품에 있는 단극린,

그의 상처는 더욱 심했다.

금강불괴를 이룬다는 혈왕신공을 육성까지 연성한 단극린은 우측의 노인이 펼친 검강 단 한수에 가슴이 한치 깊이로 갈라지는 중상을 입고 말았다.

더구나 검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몸으로 침투하여 깊은 내상마저 입었다.

(세상에 그런 고수들이 있었다니……)

냉천삭은 자신들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하나,

이 개월전에 이곳 태산을 떠나 운남에 있는 창산(蒼山)으로 간 서한객 초사륭을 찾아가 만나는 것 뿐이다.

초사륭은 강하다.

비록 동한객 궁월만큼 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기들보다 강하다.

서로가 함께 모인다면 세 노인의 손에서 부터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세 노인은 지금쯤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을 것이라고 냉천삭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서 반드시 자신들을 죽이고 말겠다는 신념같은 것을 느꼈다.

냉천삭은 속으로 한탄했다.

(황군성……그놈을 제자로 삼게 되었을 때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고 믿었거늘……결국 하늘은 또 이렇게 우리를 버리고 마는가? 하늘이여……하늘이여……)

단극린의 혈왕신공은 특이한 무공이다.

몸이 산산조각나고 내장이 꺼내지지 않은 한,

단극린은 스스로 상세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냉천삭은 그가 상세를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

비록 내상이 엄하기는 하지만 버텨야만 한다.

깊은 한(恨)……

그의 삶을 지탱시키고 있는 한이 소멸되기 전까지는 결코 죽을 수도 없다.

부드득!

그는 이빨을 으스라지라고 갈았다.

눈앞으로 북혈마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간 때문이다.

 

북혈마(北血魔)……

이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북해의 신으로 군림하는 자,

하지만 결코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는 전설적인 존재.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가 전설속의 인물이라고 하기도 하고,

실재로 살아있는 인물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냉천삭의 원수인 그……

냉천삭도 그를 직접 만나기 전까진는 북해에 살면서도 북혈마의 존재를 믿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날 갑자기 푸른 머리카락을 날리는 절세준미한 청년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다짜고짜로 냉천삭에게 천년한옥부(千年寒玉符)를 내놓으라고 했다.

그러나 냉천삭은 천년한옥부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자는 콧웃음치는 냉천삭을 말없이 바라본 후 떠나갔다.

냉천삭은 당시 별난 놈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자는 분명 등을 돌리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냉천삭의 집에서는 끊임없이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냉천삭이 놀라 달려가 보았을 때,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모두 칠공으로 피를 쏟으며 죽어있었다.

집안의 여자들은 공포에 질러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에 반쯤 미쳐버린 냉천삭이 다시 달려나왔을 때,

그자는 다시 방향을 바꾸어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말,

[냉천삭, 노부가 걸음을 바꾸었듯이 너도 마음을 바꾸었겠지? 빨리 천년한옥부를 내놔라!]

냉천삭은 그자의 짓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어떤 수법인지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냉천삭,

그도 스스로 천하에서 열손가락 안에드는 고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음에도.

그자의 무공이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가공하다는 것을 냉천삭은 알게되었으나,

그자가 어떤 사술(邪術)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냉천삭이 그의 정체를 알게 된 후 그것이 모두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마공이라는 것을 알았다.

북혈마,

그 악마가 전음에 공력을 실어서 냉가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던 것이다.

냉천삭은 북혈마에게 달려들었으나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비록 청년같이 보이는 북혈마였으나 기실 이백 살이 넘었던 것이다.

북혈마는 그의 빙백강기를 단숨에 파괴해버리고,

그의 두 팔을 잘라버린 후,

그가 보는 앞에서 천년한옥부를 요구하며 집안의 여자들을 강간해버렸다.

그리고, 그 여자들의 목을 하나하나 부러뜨려버렸다.

냉천삭은 미쳐버렸다.

미친 순간에 갑자기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힘을 발휘하게 된 냉천삭은 자신의 손녀를 강간하고 있는 북혈마에게 한대의 빙백강기를 갈겼다.

북혈마가 의외의 상황에 놀랄 때,

그는 벌거벗은 북혈마를 안고 북해의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어버렸다.

하지만,

북혈마는 진정 가공했다.

무엇이나 얼려버리는 그 북해의 차가운 물속에서도 냉천삭을 떨쳐버리고 유유히 빠져나가버렸다.

냉천삭은 물속에서 얼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백웅(白熊)의 동굴에 있었던 것이다.

 

[북혈마!]

냉천삭은 소리쳤다.

그의 눈에서는 새파란 청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원한의 불꽃이었다.

그 순간,

 

八月秋高風怒號(팔월추고풍노호)

卷我屋上三重茅(권아옥상삼중모)

茅飛度江泗江郊(모비도강사강교)

高者掛肩長林梢(고자괘견장림초)

下者飄轉沈塘拗(하자표전침당요)

南村群童欺我老無力(남촌군동기아노무력)

忍能對面爲盜賊(인능대면위도적)

公然抱茅入竹去(공연포모입죽거)

脣憔口燥呼不得(순초구조호부득)

 

팔월 가을 하늘 높은데 바람이 노호하여

우리 집 옥상의 세 겹의 이엉을 말았으니

이엉은 날아 강을 건너 물가에 흩어져 떨어졌는데

높은 것은 높은 나뭇가지 끝에 걸렸고

낮은 것은 굴러 제방의 웅덩이에 빠졌도다.

남촌의 아이들이 내가 늙어 무력함을 깔보아

뻔뻔스럽게 나의 면전에서 도둑질하네.

공공연히 그 이엉을 타고 대밭으로 들어가나

입술이 타고 입이 말라 소리 지를 수 없네.

 

어디선가 울러퍼지는 창노한 음성,

높지도 않다.

하지만 사방 십여리 어디에서나 귓가에 속삭이듯 울러퍼지고 있었다.

가공할 천리전음의 수법이었다.

냉천삭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는 더이상 도망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았다.

천리전음을 뛰운 상대방은 자신들을 한낫 어린아이 정도로 보고 있다.

그는 몸을 멈추었다.

(아! 세상에 고수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는 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하늘도 무심하구나 하늘도……]

그때 그의 품에있던 단극린이 정신을 차렸다.

그의 몸은 거의 완전히 나아있었다.

그가 광소를 터뜨렸다.

[죽일 놈의 하늘이지……죽일놈의 하늘……크하하하……]

그의 전신에서 붉은 안개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문득,

단극린과 냉천삭은 자신들의 눈앞에 환상처럼 나타나는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조그마한 키,

고부라진 허리,

땅에 닿을락 말락하는 긴 수염, 그리고 두자가 넘는 흰눈썹.

얼굴은 코만 보일뿐 눈도 입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수염과 눈썹에 가려진 때문이다.

노인은 백의를 입었으며 짧은 지팡이를 짚고있다.

그들은 단연코 이처럼 늙은 노인을 본 적이 없었다.

노인의 모습은 마치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숲속의 난장이 같았다.

마치 안개가 모이는 것처럼 나타난 노인에게서 냉천삭과 단극린은 주체하지 못할 경외감을 느꼈다.

말없이 노인을 바라보았고,

노인 또한 말없이 그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냉천삭은 눈앞의 노인이 방금 전 천리전음을 펼쳤던 장본인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몸에서는 비록 아무런 기도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자신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른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극에 달하면 모든 것이 평범하게 보이고, 숨겨지는 것이다.

삐익!

멀리서 긴 휘파람소리가 들려왔다.

냉천삭은 넋을 놓아 버렸다.

(틀렸구나 틀렸어……)

세 명의 노인이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와 단극린의 얼굴에는 완연한 체념의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한과 슬픔이 어우러져 그들의 얼굴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감한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노인 앞에서만도 발이 얼어붙은 듯 도망칠 수 없음을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 × ×

 

하늘이 갑자기 검은 구름으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별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달은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다.

우르릉!

어디선가 낮게 울리는 우뢰소리가 태산 곳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내 하늘은 한줄기 뇌성벽력과 함께 굵은 빗방울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번쩍!

꽈르릉󰠏󰠏󰠏󰠏󰠏꽝!

콰󰠏󰠏󰠏󰠏󰠏󰠏쏴아아아!

빗방울에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때마침 불어온 강한 바람은 그들을 멀리 휘감아 도망친다.

천지는 온통 암흑속에 잠겨버렸다.

산을 두들기는 빗줄기소리가 모든 소음마저 삼켜버리고,

간간히 들리는 뇌성(雷聲)은 사람의 닫힌 양심을 열어놓으며 고통에 몸부림치게 한다.

황군성의 몸은 이미 완전히 물에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심한 폭우는 그를 폭포수 밑에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허무과 고독이 스물스물피어오르는 그의 어깨에서는 흰 김이 솟아나고 있다.

체온에 빗물이 증발하고 있는 것이다.

황군성은 이 폭우 속에서도 달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이러한 폭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몸을 두드리는 폭우는 이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위로해 주고 있는 상대인지도 몰랐다.

황군성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은 채 걷고 있었다.

우르르르……

갑자기 그의 왼쪽에 있는 산비탈이 무너져 내렸다.

산사태다.

바위와 나무와, 흙들이 해일처럼 밀려 내려왔다.

황군성은 그 산사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짙은 고독과 허무가 오히려 산사태를 반갑게 맞이하게 해주었다.

(잘됐군, 잘됐어……참으로 적절하다……)

그랬던가?

그의 고독은 진정 죽음보다도 깊고,

그의 허무는 생을 한낱 티끝과 같이 여기게 만들 정도였던가?

죽음을 불러올 산사태를 반가워할 정도로……

(오랫만에 느껴보는 평온한 감정이다.)

황군성은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산사태를 저항없이 온몸으로 받았다.

순간,

빗물에 짓이겨진 흙들과, 바위와, 나무들이 그를 덮치고 산 아래로 몰려갔다.

일대의 지형이 변하고 있었다.

거대한 산사태,

내려갈 수록 산사태는 점점 커지고,

황군성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덮어준 무덤속에 묻혀버렸는가?

그토록 그를 지배하던 허무와 고독도 흙냄새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는가?

 

× × ×

 

[조부님!]

황자준은 황숭환을 등을 향해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의 옆에는 황자걸과 황자웅이 서있는데,

황숭환 노인앞에 있던 단극린과 냉천삭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물은 황자준 삼형제의 몸에 닿지 못하고 휘어져 땅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문성무존의 최고 어른인 황숭환의 몸에는 수염까지 빗물이 타고 내리고 있었다.

황숭환은 비 때리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황자준 삼형제는 당혹스런 태도를 취하며 황숭환을 둘러싸고 강기로 그를 빗물로 부터 보호했다.

문득 황숭환이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늙어서도 죽지 않으면 때때로 천의(天意)를 알게 되기도 하지……]

[…………!]

[…………!]

[우리 문성무존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어. 이것은 천도(天道)에 합당한 것은 아니야.]

황자준이 말했다.

[조부님! 우리 집안은 해마다 수천금을 풀어서 천하창생을 돕는데 쓰고 있습니다. 어찌 이기적이라고 하……]

순간,

황자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비척비척 물러섰다.

황숭환의 단장(短杖)이 그의 이마를 심하게 때린 때문이다.

기척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보이지도 않았다.

오직 머리에 닿아있는 단장이 눈에 보이고 극렬한 고통이 느껴질 뿐이었다.

황자준이 펼치고 있는 강기의 막까지 소리없이 뚫어버린 것이다.

어느새 단장은 원래대로 돌아가 있고,

황숭환의 음성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생각때문에 우리 집안이 망할 수도 있어. 우리는 그동안 희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어. 그런데, 지금 하늘은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나지막한 음성이었으나,

황자준 등은 그 말이 어떤 말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이미……일은 시작되었다. 만약 우리가 희생을 거부한다면 하늘은 문성무존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이미 일은 시작되었다.

이 말은 세 사람에게 어떤 강렬한 의미로 부각되며 심장을 옭아매고 있었다.

[아마도……이번 일이 끝났을 때, 우리 문성무존에서 스스로 늙은이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너희들도 당연히……]

황자준은 그의 조부 황숭환이 천기를 살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숭환의 말에 의하면 문성무존 최대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에 의한 것도 아닌,

하늘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황숭환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그들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꺼져버렸다.

 

× × ×

 

사람은 하늘을 우러러 숭배하건만,

하늘은 우리 인간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잔인한 하늘은 인간에게 다시 피를 요구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의 피로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하늘은 스스로 인간을 죽여서 피를 맛보고자 한다.

지난 백여년간,

무림은 너무도 평온했다.

간간히 일어나는 살인은 끊이지 않았으나,

수 천 년 동안 있어왔던 거대한 혈겁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하늘이 인간의 피를 요구한다.

범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능력을 가진 자들을 곳곳에 태어나게해서,

그들의 손을 빌어 인간의 참상을 보고자 한다.

찢어죽일 놈의 하늘……

그놈의 하늘이 지금 우리에게조차 피를 강요하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피를 뿌리지 않으면 미친 놈의 하늘은 우리 문성무존을 영원히 소멸시켜버릴 것을……

이제 천하대란은 시작되었다.

적어도 수만 명의 인간들이 핏물 속에 죽어갈 것이다.

나 황숭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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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神秘한 一族

 

 

 

햇살이 소음곡 전체를 내리쬐는 시간은 불과 두시진 반 정도,

지금은 소음곡이 가장 밝고 아름다울 때다.

정오가 아직 되지 않은 시간,

콰아아아!

장원의 뒤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의 맑은 물은 장원 전체에 거미줄 처럼 퍼져있는 수로(水路)를 맴돌아서 앞쪽의 수문으로 나온다.

수로가 지나는 곳의 주변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장원의 밖으로 나온 물은 곡구(谷口)쪽에 있는 연못으로 흘러들어간다.

물은 끝없이 연못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연못의 물은 조금도 더 불지 않는다.

이곳에 어디론지 통하는 물길이 있으리라.

이 소음곡,

정말 신비한 곳이다.

계곡을 가까스로 들어서면 바로 연못이 펼쳐져 있고 그 뒤에 이만 여 평의 분지에 온갖 동물들이 뛰어 놀고 있는 것이다.

장원의 한 내실,

창으로는 찬란한 금빛 햇살이 스며들어 온다.

화려한 내실을 장식하고 있는 아담한 자단목 가구들이 보이고,

비단 휘장이 쳐진 벽면에는 갖가지 병장기들이 걸려있다.

검(劒)……도(刀)……창(槍)……편(鞭)……봉(捧)……비도(飛刀)……산(傘)……유성추(流星鎚)……선(扇)……철척(鐵尺)……

무려 사십여 개의 병기들이 걸려 있지만 그 중에 갖은 종류는 하나도 없었다.

방의 중앙,

자단목의 탁자에 마주 앉은 한 쌍의 중년 부부가 보인다.

한데,

사십이 넘어 보이는 중년인,

청수한 용모임에도 위맹한 기상마저 함께 보이고 있다.

짧게 자라있는 수염이 그의 강직한 성격을 말해주는 듯 하고,

넓은 얼굴은 중후한 인상의 큰 배포를 미리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사람,

바로 이 장원의 주인인 황창설(黃蒼雪)인 것이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부인은 바로 그의 처 주혜린이고……

주혜린은 끊임없이 남편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듯 한데,

황창설은 손에든 한 자루의 청옥소(靑玉簫)를 매만지며 경탄을 터뜨리고 있다.

[보면 볼 수록…… 진품이라는 걸 느끼게 해……과연……]

그의 손에 들린 청옥소는 은은한 하늘 같은 푸른 빛을 띠고 있엇다.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청옥소의 빛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그 심미안(尋美眼)을 눈뜨게 해주는 듯하다.

황창설은 청옥소를 입에 가져갔다.

순간,

부우󰠏󰠏󰠏󰠏󰠏󰠏!

맑은 소성(簫聲)이 멀리까지 울러펴졌다.

소음곡 전체에 끝없이 들려오는 소음(簫音)과 어우러져,

청옥소의 소리는 마치 천상의 선음(仙音)처럼 들렸다.

[한데 왜 어딘지 모자라는 것같은 느낌이 자꾸드는 걸까‥‥‥?]

그가 다시 청옥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문득,

주혜린이 톡 쏘듯이 말했다.

[당신도 똑같아요.]

하지만 황창설은 여전히 청옥소를 쥐고 벙글벙글 웃고 있었다.

[도대체 당신이나 군성이는 내 말을 조금도 듣지 않아요. 지금도 당신은 딴청만 피고 있어요.]

주혜린은 단단히 화가 난 듯 미간이 잔뜩 모아져 있었다.

그러자 황창설이 이상한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뭐 대단한 문제라고 나까지 신경써야 된단 말이오?]

주혜린은 아예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어머머머……세상에……]

[…………]

[당신은 우리 아들들이 모두 이상한 생각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걱정도 되지 않아요? 그러고도 부모노릇 다했다고 그럴거예요?]

황창설은 피식 웃었다.

[무공 익히기 싫은 놈 억지로 가르칠 게 뭐있소? 책읽기 싫다면 그것도 할 수 없지. 약골이 되도 제 녀석이 되는 거고 무식한 놈이 되도 제 녀석이 되는 거지 내가 되는 건 아니니까.]

주혜린은 입을 딱 벌렸다.

[세상에……당신이 얘들에게 무심한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로까지일 줄은……]

[내버려 둬요. 살기 싫으면 죽든가 죽기 싫으면 할 만한 뭔가를 찾아보든가 하겠지.]

황창설은 마치 남의 집 감떨어진 얘기를 하듯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만한 때 생의 의욕만으로 넘친다면 머리 나쁜 놈이란 얘기 밖에는 안돼, 당연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시오.]

[그럼 설마……당신도 그랬단 말예요?]

황창설은 청옥소를 눈에 갖다대고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

[물론 그랬지. 나도 머리나쁜 놈은 아니었으니까. 당신을 만나게 된 것도 아마 그 무렵이었지?]

주혜린은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돼요. 당신과 결혼한 것이 올해로 꼭 스물하고도 두 해 째인데, 어머님외에는 전부 나하고 달라요.]

[이상할 게 없어. 이곳에 소음곡에서 태어났느냐 아니면 바깥세상에서 태어났느냐 그차이 뿐이니까.]

황창설은 청옥소를 탁자에 내려놓으면서 팔짱을 꼈다.

[이봐요, 혜명공주(慧明公主)마님!]

주혜린이 흥,하고 콧웃음을 쳤다.

[또 무슨 곤란한 말씀을 하시려고……]

혜명공주(慧明公主)……

주혜린이 혜명공주였단 말인가?

당금 황제(皇帝)의 사촌아우로 황족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영왕(永王),

늘 황제의 측근에서 중요한 사항에 대한 자문을 해주고 있는 이 시대의 실력자,

그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이 바로 혜명공주였던 것이다.

황창설은 그녀의 손을 슬며시 잡으며 말했다.

[이곳 소음곡은 태산의 정기가 어려있는 곳이라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이곳에서 자리잡은 이후 세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명을 누리며 살아온 것이오.]

혜명공주가 삐죽하면서 말했다.

[오래 사시기는 오래 사시더군요. 그 덕에 지금도 세수(歲數) 삼백이 넘으신 오대조부모님까지 모시는 며느리니까요.]

이 장원,

놀랍게도 십여채의 전각들 중에 하인이라고는 한사람도 없다.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른 명 정도,

그들은 모두 황창설의 오대조부모에서 부터 숙부들에 이르기까지 한 가족들인 것이다.

지금은 황창설이 집안일을 맞은 장주가 되어 있으나,

그가 이곳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기는커녕 밑에서 맴돌고 있는 처지였다.

단지 윗 어른들이 일체 장원이 일에 간섭하지 않으니 명색이나마 유지하는 것이다.

만약,

주혜린이 시집오면서 여덟명의 시녀들을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손수 물일까지 해야하는 처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황창설이 재력이 부족하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버젓이 외부에 몇 개의 기업(企業)을 가지고 있었다.

북경에만 해도 가장 큰 고서화점(古書畵店)인 천품서화방(天品書畵房)이 바로 그의 것이다.

또한 무창(武昌)에도 골동품점을 가지고 있으며,

서안(西安)과 중경(重慶), 항주(杭州), 개봉(開封)에도 각각 기업이 있다.

그래서 그는 한해에 한번 씩은 꼭꼭 천하에 흩어져 있는 자기의 사업체들을 찾아 운영 상황을 점검해오고 있다.

그가 주혜린에게 말했다.

[태산의 정기(精氣)를 이어받은 우리 황가에 범상(凡常)한 자란 없소. 그래서 나이가 들면 대부분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는 거요. 세존께서 그랬듯이……하지만 결국엔 모두 그 회의를 극복하고 올바른 삶을 찾게 되는 거라오. 만약,]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제 갈 길은 따로 찾아 가거나 죽어야겠지. 극복하지 못하면 당연히……]

황창설의 표정은 아주 근엄하게 변해버렸다.

자식이 그렇게 돼서 죽는다 하더라도 그다지 개의치 않을 태도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기도 그래왔고, 그의 아버지도 그래왔듯이, 자기의 아들들도 능히 극복해내리라는 철저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주혜린은 어머니로서의 불안감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자단목 탁자위에 놓여진 청옥소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 여전히 하늘같은 푸른 빛을 띠고 있다.

팔짱을 끼고 창밖을 바라보는 황창설은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공주! 걱정은 그게 아니라오. 당신은 상상도 못할 다른 곳에 군성이의 걱정이 있다오……)

 

× × ×

 

무장각(武藏閣),

이 장원이 문성무존(文聖武尊)임을 가르쳐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대리석 건물은 만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렇게 서있을 듯 견고하게만 보인다.

문성무존의 곳곳에 놓여진 작은 다리들 아래로 흐르는 수로는 이곳 무장각도 돌아흐로고,

아름다운 꽃들이 풍기는 향내에 벌과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문득, 무장각앞으로 누군가가 걸어왔다.

장대한 체구, 딱 벌어진 어깨,

늘어진 흑발……

어깨에 비스듬히 걸려있는 사척 장검……

바로 황군성이었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서 무장각안으로 들어갔다.

외인이 없는 곳이기에 무장각은 중지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개방되어 있다.

그그긍!

황군성은 석문을 밀어젓히고 들어갔다.

순간,

무장각 안은 무수한 야명주들로 인하여 대낮같이 밝아졌다.

물론 밖이야 대낮이지만.

무장각 안,

삼장 높이의 천정아래 이장 높이의 수십개의 서가(書架)가 서있다.

아니,

그것은 서가가 아니다.

서가처럼 보일 뿐 사실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벽들이다.

그리고,

그곳에 문성무존의 모든 무공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대리석 벽들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야명주들이 새겨진 글자들을 밝혀준다.

황군성은 즐비한 벽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랫만에 들어와 보는 군, 정확하게 일천삼백오십이일 만이군!]

그는 왼손을 펴보았다.

그의 손에는 동한객 궁월로 부터 받은 번천도환이 쥐어져 있었다.

[십일……십일이면……번천도를 삼성까진 익힐 수 있겠지……]

 

× × ×

 

저녁무렵,

문성무존을 맴돌아 흐르는 수로위에 누군가서 서있었다.

아니,

서있는 것이 아니라 물을 밟고 물이 흘러가는 곳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황창설,

바로 그였다.

물은 이상하게도 폭포가 있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황창설이 타고 있는 수로는 한바퀴 맴돌아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황창설은 폭포 바로 앞에 있는 한채의 전각 앞에 이르러 표홀히 몸을 날렸다.

마치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나르는 기러기처럼 날아서 전각의 문앞에 내려섰다.

황창설은 몸가짐을 단정히 하면서 허리를 굽히고 나직하게 말했다.

[소손 창설입니다.]

그러자 전각안에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너라.]

황창설은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전각 안,

기다란 회의탁이 놓여져 있고,

그기에는 십여 명의 노인들이 앉아있었다.

그 중 제일 상석에 앉아있는 노인,

계피학발에 눈썹마저 배꼽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 있다.

다른 노인들도 모두 긴 수염을 늘어뜨린 미염공(美髥公)들로 진정 신선(神仙)같은 풍모들이었다.

이들은 바로 황창설의 사대조를 비롯한 그의 웃어른들인 것이다.

황창설은 가장 말석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상석에 앉아있는 황창설의 고조부 황필민(黃筆旻)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이 일은 절대로 처에게도 말해선 않된다. 행여 연로하신 아버님이 들으시면 어떤 사고가 일어날 지 모른다.]

좌중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 집안의 가장 어른인 황창설의 오대조는 이러한 회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이곳에 없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황필민은 눈썹속에 파묻힌 눈을 빛내며 황창설에게 물었다.

[그곳은 가보았느냐?]

[예, 소손이 직접 갔다 왔습니다.]

황창설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상세히 말해보도록 해라.]

[소손이 가보았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진정 괴이한 곳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은 그의 입만을 쳐다 보았다.

[그곳에는 한층의 검은 구름같은 것이 걸려있어서 밑에는 빛이라고 한 점 없었습니다. 소손의 안력으로도 살피지 못할 정도의 어둠이었습니다.]

좌측에 앉은 한노인이 불쑥 물었다.

[삼갑자(三甲子)에 이른 네 공력으로도 말이냐?]

[그렇습니다.]

황창설은 계속 설명하고 모든 사람들의 안색은 침중했다.

[그자들의 정체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가공한 인물들일지도 모릅니다.]

황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감히 우리 문성무존의 장손(長孫)에게 손을 뻗친데 대한 댓가는 주어져야지.]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긴 수염이 허리까지 흘러내렸다.

[군성이 그 아이가 배운 무공 중에는 틀림없이 엄청난 마공(魔功)도 있다.]

황필민의 눈이 엄청난 신광을 뿜어냈다.

[자준(慈俊), 자걸(慈傑), 자웅(慈雄)! 이 일은 너희들에게 맡긴다.]

그러자,

회의탁 우측에 나란히 앉아 있던 사람들 중 셋이 벌떡 일어서며 허리를 굽혔다.

[아버님 분부하십시오.]

놀랍게도,

이들은 황창설의 증조부들이었다.

황필민은 느릿하게 말했다.

[우리 문성무존은 무림에서 활동하지 않은지 천년이 가깝다. 한데, 누군가가 우리를 그 피비린내 나는 곳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장손(長孫)에게 접근한 그자들, 너희들은 무조건 그자들을 죽여라.]

황필민은 전각의 문을 밀었다.

[단, 결코 그 아이가 모르도록 처리해라.]

황필민이 나가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읍했다.

명령을 받은 세 노인은 자리에 앉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너희들은 그만 가보도록 해라. 우리는 좀더 논의할 일이 있다.]

 

잠시 후,

전각 안은 그들 세 노인만 남았다.

황창설의 증조부인 황자준이 두 아우에게 말했다.

[군성이의 뒤를 밟아서 그자들을 죽이면 간단하겠지.]

[하지만 형님,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황자웅이 말했다.

[군성이는 우리 집안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재입니다. 녀석도 문성무존 최고의 비학인 철인검(哲人劒)을 제외한 모든 무공을 익혔습니다. 그런 녀석을 가르칠 수 있는 자라면 그자들의 무공은 진정 대단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황자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어떤 무공이 우리 문성무존의 철인검을 당할 수 있겠느냐?]

황자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철인검,

대체 어떤 무공이기에 이들이 이렇게 자신하는 것인가?

더구나,

이들의 말로 미루어 보아 황군성의 모든 행적을 알고 있는 듯 한데……

그렇다면 이들이 죽이려하는 인물은 그의 사부들,

바로 한천사방객들이라는 결론이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소음곡에서 살아온 문성무존 황가(黃家)일족,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은 과연 무엇때문에 무림에 나서기를 꺼리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 × ×

 

황필민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의 눈앞에는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이 길을 막고 서있었다.

노인의 수염은 땅에 닿을 만큼 길었고,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형한 눈으로 황필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황필민의 조심스런 말.

그 노인은 바로 황필민의 아버지인 이 집안 최고의 어른이었다.

노인의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칠칠치 못한 놈, 나잇살이 삼백이 가깝도록 내 몰래 뭘 하려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황필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증손자 현손자 오대손까지 거느린 그도 아버지 앞에서는 미욱한 자식에 불과한 것이다.

노인, 황필민의 아버지 황숭환(黃崇煥)의 입이 다시 열렸다.

[여전히 젊은 녀석들 마냥 뭐든지 힘부터 쓰려고 하니……]

황숭환은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뒤로 황필민이 조심스럽게 따랐다.

[그녀석이 태어날 때부터 오늘같은 날이 오리라는 것을 대강은 알았지……]

황숭환은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황필민의 얼굴에 은은한 놀람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빨랐어.]

[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숭환은 들릴락 말락한 음성으로 말했다.

[군성이 그놈……어깨가 너무 넓었어. 다 그 때문이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남의 한을 대신 지게 된 거지. 나도 반갑진 않지만 숙명이라면 거역할 수 없겠지. 그놈들을 죽이든 말든……]

황숭환은 꽃들 사이로 걸어서 가버렸다.

[네녀석도 밤잠없으면 책이나 볼거지 돌아다니지 마라.]

황필민은 흠칫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계셨구나.)

기실,

황군성이 때때로 소음곡을 빠져나가 모종의 장소로 간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바로 황필민이었던 것이다.

황필민은 중얼거렸다.

[문성무존이 밖으로 알려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적이 생긴다. 적이란 묘한 것이어서 우리가 강하면 그만큼 따라 강해지는 것, 세상 밖의 혼란에 궂이 빠질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라고 할 이곳 소음곡에서 행복하게 살면 그뿐……]

그의 말은 바로 문성무존이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태도이기도 했다.

적이 있으면 기필코는 멸망하고 만다.

무가(武家)의 자손으로 강호(江湖)를 횡행하노라면 필연적으로 원수를 맺고, 그러다 보면 후손들까지도 영락없이 원한의 굴레에 빠져들기 쉽상이다. 그것은 끔찍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깊은 곳에서 은인자중, 유유자적하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고금의 책들을 읽고, 무공을 익히고 연구하며……

 

× × ×

 

조각난 달이 하늘 한 자락에 걸려있다.

단혼애(斷魂崖),

깍아지른 절벽의 밑으로는 구름들이 떠다니고,

밤새들이 이따금씩 절벽 아래로 날아간다.

이 단혼애의 중간,

세인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을 이곳에는 한 개의 석동(石洞)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나직한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늘이 십일 째인데 그 아인 오지 않을 모양이오.]

[아마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이오.]

[이것만 전해주면 모든 것이 끝나는데……]

탄식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아이는 신비하기 짝이 없소. 이 근처에 사는 듯 한데 도무지 사는 곳을 알 수가 없소. 냉형! 우리가 너무 큰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오?]

[뭘 말이오?]

[우리는 그 아이의 이름 외에는 알고 있는 것이 없질 않소. 무공만 해도 그렇소. 그는 우리가 가르치기 전부터 놀라운 무공을 지니고 있었소.]

[그것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하지 맙시다. 우리는 우리의 한을 풀면 되는 것이고, 그 아이는 우리의 무공을 익히면 되는 것 아니요.]

그때 문득 그들의 귀로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당신들은 그 한을 풀지 못할 것이다.]

동굴안,

돌로된 석탁에는 기괴한 모습의 두사람이 앉아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진정 기이했다.

왼쪽에 앉은 붉은 머리칼, 붉은 옷에 붉은 얼굴……온통 붉은 노인,

그의 눈동자마저 혈광이 감돌고 있다.

그리고,

그 맞은 편에 앉은 노인,

두 팔이 보이지 않는다.

헐렁이는 소매만 있을 뿐,

하지만 그 소매는 기이하게도 찻잔을 감아쥐고 있다.

안색이 백짓장보다 더욱 희다. 마치 얼음조각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한데,

그들의 앞으로 세사람의 노인이 나타났다.

신선같은 풍모의 노인들……

바로 황자준 등이었다.

황자준은 그 두사람을 보고 의외인듯 입을 열었다.

[이게 누군가? 백년 전에 이름을 날렸던 남한객 단극린과 북한객 냉천삭아닌가?]

그랬다.

동굴 속의 두 사람은 황군성의 네 사부 중 두명인 단극린과 냉천삭이었다.

두 사람은 놀라서 몸을 움찔했다.

나타난 상대방이 뜻밖에도 단번에 자기들을 알아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단극린 등은 맹세코 한번도 황자준 등을 본 적이 없었다.

황자준도 그들을 본 적은 없었으나 강호행을 다녀온 손자를 통해 전해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단극린의 혈포가 빧빧하게 부풀어올랐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단극린, 너는 감히 물을 자격이 없다. 노부의 아들만 해도 네 아비뻘은 될 것이다.]

황자준의 말에 단극린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도 당연한 것이 황자준 등은 이백칠십에 가까운 나이인데도 수염등을 제외하면 여전히 좋은 몸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자걸이 차갑게 말했다.

[너희들은 너무 주제넘은 짓을 했어. 듣기로는 너희들의 무공도 쓸만하다고 하더라만, 오늘 이곳에 뼈를 묻어야겠다.]

냉천삭이 한광을 번뜩이며 물었다.

[노선배, 우리가 무슨 주제넘은 짓을 했단 말이오?]

그는 황자준 등이 자신들 보다 훨씬 연상인 것을 알고 노선배라고 부른 것이다.

황자웅이 말했다.

[죄라면 오직하나, 제자를 잘못 삼았다는 거지.]

단극린이 흠칫하며 물었다.

[우리 제자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했단 말이오?]

황자준이 콧웃음을 쳤다.

[잘못은 너희가 했지 그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다.]

단극린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황자준의 말이 이어졌다.

[너희들은 그 아이를 감히 강호의 혈풍속으로 끌어들이려 했어. 그동안 이해가 가지 않던 점들이 너희 한천사방객을 보니 한꺼번에 풀려버렸어. 그 아인 너희들의 한을 푸는 도구따윈 되지않아.]

냉천삭이 묵묵히 있다가 물었다.

[선배들은 우리 제자와 어떻게 되는 사이요?]

황자걸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 진작 그렇게 물었어야지. 우린 그녀석의 고조부들이지. 이게 바로 너희들이 죽어줘야 할 이유이기도 하고.]

냉천삭이 차갑게 말했다.

[우리를 선배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으시오?]

[물론 너희들은 강하겠지. 하지만, 감히 우리에게 대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황자걸은 단호하게 말했다.

순간,

황자준을 비롯한 황자걸과 황자웅의 몸에서 폭풍같은 기운이 일어났다.

[병기를 들어라!]

황자준의 준엄한 말이 떨어졌다.

단극린과 냉천삭의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갑자에 가까운 공력이다……)

그들은 강호에서 한번도 황자준 같은 고수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단극린과 냉천삭의 눈이 마주쳤다.

(우린 한을 가슴에 안은 채 죽게되겠구려……)

싸우기 전에 이미 승부는 난 것 같았다.

제자의 고조부들이라는 세 노인,

그들은 너무도 강해보인다.

자신들이 백년전 무림을 떨쳐울린 한천사방객이란 것을 알고도 마치 어린애 대하는 듯하다.

그만큼 무공에 자신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천사방객이다.

백년전 천하에 적수가 없었던 고수들……

그들은 자신들의 최고 절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순,

단극린의 몸에서 붉은 구름같은 기운이 일어났다.

그의 몸은 완전히 붉은 구름속에 싸여버렸다.

황자준은 얼굴에 은은한 감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과연 한천사방객이군……듣던것 보다 두배는 강하다.)

한편,

냉천삭의 몸에서도 얼음보다 차가운 한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팔없는 두 소매는 거대하고 굵은 봉(捧)마냥 팽팽하게 부풀어 있고,

두발은 땅에서 두치쯤 허공에 떠있었다.

그의 발은 적족(赤足)이었다.

냉천삭이 발산하는 한기가 황자준등에게까지 몰려왔다.

황자걸이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놀랍군, 놀라워, 그만큼 무공을 쌓자면 수많은 세월과 노력이 필요했겠지?]

말을 하는 중에도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하지만 냉천삭은 전혀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싸움이 결코 좋게 끝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붉은 안개에 휩싸인 단극린이 짧게 내뱉었다.

[먼저 공격하겠소.]

[얼마든지……]

황자준은 느긋하게 말하며 쌍장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냉천삭의 몸이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부우웅!

그의 두소매가 마치 거대한 봉처럼 황자걸과 황자웅을 쳐갔다.

뼈마져 얼려버릴 듯한 한기에 동굴안은 새하얀 서리가 깔렸다.

그리고 그의 발은 수백개의 발그림자를 만들며 황자준을 공격했다.

황자준 등은 한기가 보통 것이 아님을 알고 놀랐다.

[빙백지기(氷白之氣)!]

황자걸이 소리쳤다.

빙백지기,

이것은 조금이라도 몸에 스치스며들게 되면 그 한기를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는 얼음조각이 되어버리는 무서운 무공이다.

일순간,

황자준의 쌍장이 동굴안을 가득 매울 만큼의 손그림자를 만들었다.

손그림자들은 마치 비누방울처럼 각각이 냉천삭과 단극린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단극린의 귀로 파고드는 빠른 전음이 있었다.

[물러나면서 왼쪽벽에 일장을 가하시오.]

바로 냉천삭의 음성이었다.

냉천삭의 발그림자와 황자준의 손 그림자가 충돌하려는 순간,

허공에서 냉천삭의 몸은 팽이처럼 돌았다.

그의 소매가 만들어낸 거대한 봉은 여지없이 동굴의 천정과 바닥, 벽을 파고들었다.

쿠쿠쿠궁!

그러자 동굴은 순식간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자준의 손그림자는 여지없이 냉천삭의 발그림자와 부딪혔고,

냉천삭의 몸은 동굴의 안쪽으로 날아갔다.

냉천삭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동굴이 무너지고 있었다.

순간,

꽝!

소리가 나면서 동굴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며 더욱 급속하게 무너져 내렸다.

단극린이 혈왕신공으로 동굴벽을 친 것이다.

그때,

황자걸이 큰소리로 내질렀다.

[감히 도망칠 수작을 하다니!]

허리에 걸려있던 장검이 백색광망을 뿜었다.

번쩍!

그러자,

놀랍게도 백색광망은 무너져 내리던 거대한 바위들을 가르면서 그대로 단극린과 냉천삭을 베어가는 것이 아닌가?

단극린이 경악하며 외쳤다.

[검강(劒罡)이다!]

그는 전력을 다해 혈왕신공을 끌어올렸다.

혈왕신공의 붉은 안개와 백색검강이 충돌을 일으켰다.

꽈과광!

그순간 동굴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뿌옇게 돌먼지가 나르는 가운데 황자준 등은 동굴밖으로 날아나왔다.

그리고 단혼애를 날아올라갔다.

단혼애에 우뚝 멈추어서서 황자걸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놈들의 무공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군요.]

[하지만 형님 검강에 격중당했으니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황자웅의 말에 황자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철인검을 사용해야했다. 그들은 중상은 입었어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비밀통로로 도망치고 있겠지.]

황자걸이 가벼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정말 대단한 자들입니다. 가공할 빙백지기……그리고 검강을 막아내는 신공……아마 그자의 내공이 저와 같았다면 당한 것은 저일 겁니다.]

황자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자들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들은 한천사방객 중에서도 세번째와 네번째 인물, 첫째인 동한객 궁월과 둘째인 서한객 초사륭 역시 죽여야 한다. 군성이에게 쓸데 없이 한을 심어주는 자는 용서할 수 없다.]

황자준의 말에 따라 그들은 단극린과 냉천삭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 × ×

 

황군성은 동굴앞에 다다라보고 의아해져 버리고 말았다.

응당 있어야 할 동굴이 완전히 없어지고 만 것이 아닌가?

어떤 거대한 힘에의해 동굴이 붕괴된 것이었다.

[사부들이 이곳을 떠났단 말인가? 그래도 동굴을 붕괴시킬 필요는 없었을 텐데……]

그는 다시 단천애 위로 올라왔다.

칠척의 헌앙한 신체에서 드리워진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달이 기울고 있음이다.

할 일을 잃어버린 황군성은 천천히 걸어서 소음곡을 향했다.

그가 사라진 단혼애에 문득 한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그의 아버지 황창설이었다.

그는 황군성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이렇게 끝나야 하는 거다. 모두 잊어버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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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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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恨天四方客

 

 

 

만월(滿月)이 산위로 떠오르고 있다.

밤의 여신(女神)의 영역을 빛내기 위해 차가운 빛을 뿌리며 떠오르고 있다.

방금까지만 해도 밝음을 다투던 일등성(一等星)들도 뭇 별빛 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태산(泰山),

이곳은 중원 오악(五嶽)의 우두머리라 중악(中嶽) 태산이다.

역대의 황제(皇帝)들이 천명(天命)을 받기 위해 제단을 차렸던 산,

이 산의 한쪽면 나뭇잎까지 밝혀주며 만월은 역설적으로 관일봉(觀日峰)위에 떠오른다.

만월이 밑자락을 장대질 하던 나뭇가지마저 살짝 피해 올라간 순간,

한줄기 검은 선이 만월을 양단하며 하늘로 치솟았다.

일순간 달은 접혀졌다 펴진 동전처럼 보였다.

만월을 가른 검은 선은 지워지고, 한줄기 검은 물체가 관일봉 아래 절벽으로 떨어졌다.

천길 만길 절벽 아래로 유성보다 빠르게 추락하고 있는 물체,

놀랍게도 그것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찌푸렸던 달은 다시 해맑은 모습을 하고,

절벽 밑의 그늘은 떨어지던 사람의 모습을 삼켜버렸다.

 

× × ×

 

빛이 한점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은 어디인가?

사방팔방십이방을 둘러봐도 오직 칠흑같은 어둠만이 존재한다.

어둠 속에서 흔히 있을 법한 유령의 숨소리같은 미약한 바람조차 없다.

무서운 태고의 정적만이 감돌고 있는 이곳,

휘이익!

갑자기 어둠이 찢어지면서 달빛 속에 검은 인영이 땅으로 내려 꽂혔다.

팍!

어둠이 스물거리며 달빛을 몰아내 버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딱딱, 소리와 함께 그곳은 다시 밝아졌다.

검은 인영은 화섭자에서 초로 불을 옮기고, 그의 모습은 촛불이 자람에 따라 점점 뚜렸하게 나타났다.

그 인영은 발끝까지 걸쳐지는 흑포를 입고 한자루의 장검을 등에 맨 청년이었다.

흘러내린 머리칼은 흑포의 뒤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허무가 깃던 눈빛은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하다.

한데,

그의 붉으스레한 얼굴은 그야말로 절세미장부가 아닌가?

훤한 이마의 먹물같은 검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턱선은 사람의 시선을 절로 잡아 매는 힘이 있다.

칠척 장신의 당당한 어깨는 모든 것을 압도할 듯 한데,

정작 전신에 흐르고 있는 기운은 오직 허무였다.

문득, 촛불을 든 청년이 입을 열었다.

[사부! 제자 황군성(黃君星)이 왔습니다. 번천도(飜天刀)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 청년은 누구를 향해서 말하는 것일까?

촛불의 주변에는 몇 개의 바위들만 보일뿐 아무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 지옥의 유부인양 고요하던 곳에서 갑자기 늙으스레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단극리에게서 혈왕신공(血王神功)을 다 배웠느냐?]

[삼성 수준으로 익혔습니다.]

늙은 음성은 잠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보름 만에 혈왕신공을 삼성(三成)까지 익히다니 놀랍군!]

하지만 전혀 어조가 느껴지지 않는 노인의 음성에는 어떤 놀람도 깃들어 있진 않았다.

황군성은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촛불이 일렁이며 그의 얼굴에 여러가지 그림자를 만들어 내곤 했다.

이때 갑자기 그의 앞에 있는 바위가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록 아주 천천히시작 되었으나 급격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육척높이의 돌기둥 같은 바위가 천천히 모습을 바꾸며 사람의 형상으로 변한 것이다.

굴곡이 뚜렸해 지면서 팔과 다리가 생기고 얼굴의 윤곽도 뚜렸해졌다.

그리고 일순간,

완전한 모양을 갖춘 사람의 형상은 눈을 떴다.

번쩍!

번개불같은 신광이 폭출했다.

그것은 나이를 짐작할 수 조차 없는 노인의 눈빛이었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시간은 일각뿐, 그 안에 모든 것을 암기하라. 본문의 규칙상 번천도는 일자전승(一子傳承), 오직 입에서 입으로 전할 수 밖에 없다.]

황군성은 미동도 않은 채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왼쪽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그 손바닥 안에서 오리알 같은 흰구슬이 나왔다.

[이것이 번천도다. 고금십대신병(古今十大天兵) 중 서열 칠위인……]

오오! 그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노인의 말은 놀라왔다.

고금십대천병이라니……

무림이 있어온 이래 삼천 년 동안 등장했던 수 많은 병기들, 시대마다 보검과 신검, 보도가 어찌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고금십대천병에는 견주지 못한다.

그 고금십대천병은 과연 무엇인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도 전혀 밝혀지지 않은 이 병기는 적게는 삼 백여년 전, 많게는 천 수백 년에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닌 자는 어김없이 고금무적십인에 들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대적할 수 없었고, 어느 누구도 고금십대천병앞에서 일초를 넘길 수 없었다.

이 놀라운 고금십대천병의 이름은 이러하다.

 

서열 제 일위 낙일검(落日劒),

서열 제 이위 무광검(無光劒),

서열 제 삼위 혈화창(血花槍),

서열 제 사위 진천소(震天簫),

서열 제 오위 지멸고(地滅鼓),

서열 제 육위 자전편(磁電鞭),

서열 제 칠위 번천도(飜天刀),

서열 제 팔위 구룡로(九龍爐),

서열 제 구위 금강신(金剛身),

서열 제 십위 섬전사(閃電絲),

 

이 서열들은 강함의 순서가 아니다.

그 병기가 등장했던 순서대로 매겨진 것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고금십대천병 중 가장 강한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것들은 서로 부딪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적에게도 단 일초이상을 허용하지 않았던 고금십대천병,

그 중의 하나인 번천도가 노인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이다.

한 알의 구슬같은 모양으로.

구슬 같은 번천도는 노인이 신공을 일으키자 일순간 빛이 쏘아나가듯 쭉 늘어졌다.

그리고 한자루의 도로 변하는 것이었다.

길이는 이척반(二尺半) 정도, 엷은 날은 손바닥 만큼 넓다.

허무로 젖어있는 듯하던 황군성의 두눈이 순간 빛을 발했다.

(내 삶을 유일하게 지탱시켜 주는 것은 무공뿐……무공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더나면 나는 아마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던가?

그래서 그의 몸에서 그토록 짙은 허무가 배여있었던 것인가?

그때 노인이 번천도를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번천도는 천천히, 지겨울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의 입은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말하고 있었다.

[오성삼푼, 칠성팔푼, 십성이푼, 삼성구푼, 구성육푼……]

검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노인은 그 순간에 운용해야 할 공력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놀랍게도 번천도는 똑같은 깊이의 공력으로 운용하는 도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 일초에 일흔두 번이나 공력깊이가 바뀌면서 강약유화가 완벽히 배합된 도초(刀招)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번천도가 삼초를 모두 펼쳐내는 동안, 황군성은 눈도한번깜짝이지 않고 보고 있었다.

(엄청나다. 과연 고금십대천병의 제 칠위……)

[모두 기억했느냐?]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이곳을 떠나라. 그리고 다시는 오지마라. 나는 네가 마왕(魔王)을 죽일 때만 기다릴 뿐, 너를 기다리지는 않으니까……]

핑!

일순간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노인의 손에서 번천도환(飜天刀丸) 발출되었다.

지극히 짧은 순간에 황군성의 눈앞에 이른 그것은 가볍게 내민 황군성의 손에 빨리듯 들어갔다.

번천도환,

그것은 손가락에 낄수 있는 작은 반지가 만들어져 있으며 도환은 손바닥안에 늘 감추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황군성이 왼손 중지에 반지를 끼고 주먹을 가볍게 쥐자 번천도환은 그의 손안에 감춰져 버렸다.

순간,

노인의 몸은 서서히 굳어지며 돌로 변하기 시작했다.

[일백 칠십 년의 세월이 이렇게 보냈다. 앞으로도 이백 년은 더 지내겠지……]

황군성은 돌이된 노인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절했다.

(다시는 궁월사부(弓月師父)를 만나지 못하리라……)

황군성을 가르친 네 명의 사부 중 가장 연장자인 노인의 이름은 바로 궁월이었던 것이다.

궁월,

그 놀라운 이름……

백 여년 전 무림에는 가공할 네명의 고수가 등장했었다.

그들은 각기 누군가를 찾아 다니며 가공할 혈풍을 일으켰는데, 당시 중원의 무림인 중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차별적인 살인을 하지는 않았었다.

세인들은 그들이 어떤 무서운 한을 품은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가 원수를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 있었으니,

한천사방객(恨天四方客),

바로 한천사방객인 것이다.

그들은 각기 중원의 동서남북에서부터 혈풍을 일으키기 시작했으니 그 각각은 이름은 이렇게 주어졌다.

 

동한객(東恨客) 궁월(弓月),

서한객(西恨客) 초사륭(楚獅隆),

남한객(南恨客) 단극린(段克燐),

북한객(北恨客) 냉천삭(冷千索),

 

한데, 삼년의 세월 동안 세인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한천사방객은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렸었다.

갑자기 나타났던 것 처럼 갑자기 사라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한동안 세인들의 입에서는 구구한 억척이 난무했다.

어떤 기인이 나타나 한천사방객을 단숨에 처치해버렸다고도 했고,

한천사방객은 서로끼리 충돌해서 모두 동패공사(同敗共死)해 버렸다고도 했다.

아무튼,

그 이후로 한천사방객은 세인들의 입에서 전설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궁월,

그는 바로 그 한천사방객의 우두머리인 동한객이었던 것이다.

 

절을 마친 황군성은 순간 땅을 박차고 비조처럼 몸을 날렸다.

번천도의 전수가 이루어졌던 암흑의 공간에는 다시 고요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곳은 진정 괴이한 곳이었다.

 

× × ×

 

소음곡(簫音谷),

관일봉에서 불과 이십여리 정도 떨어진 절벽 사이에 있는 계곡이다.

원래 붙어 있던 절벽의 가운데가 함몰되면서 만들어진 이곳은 병풍같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아름답기 그지 없는 곳이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물이 계곡을 흐르며 온갖 기화이초를 키워내고, 그 기화이초(奇花異草)를 먹고 많은 영물영수(靈物靈獸)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소음곡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이러하다.

골짜기의 특이한 구조로 말미암아 불어오는 바람에 골짜기가 마치 퉁소처럼 울리기 때문이다.

은은하고 맑은 퉁소소리는 오직 계곡 안에서만 들리지만, 그야 말로 천음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그리고, 조물주(造物主)의 역작(力作)인 듯한 이 소음곡, 그 한 가운데에는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장원이 한 채 자리잡고 있다.

크기는 불과 이천평 정도, 십오륙 채 정도의 전각이 세워져 있고, 담장을 형성한 장미덩굴들은 잘 다듬어져 있다.

뒷쪽의 병풍같은 절벽사이에서 흘러나온 작은 폭포는 장원의 안으로 떨어지고, 그 물은 장원 곳곳을 돌아흘러서 앞쪽에 있는 거대한 문옆으로 빠져 나온다.

그렇다.

이 장원에는 물이 나오는 문과, 사람이 나다닐 수 있는 문이 나란히 있는 것이다.

퉁소소리는 계곡에 부드러운 화음을 주는데,

아침 햇살이 소음곡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햇살에 장원의 편액이 선명하게 보였다.

금자(金字)로 씌어진 꿈틀대는 전자체(篆字體)로 씌어진 네 글자.

 

<문성무존(文聖武尊)>

 

이것이 무슨 말인가?

설마하니 이것이 바로 장원의 이름이란 말인가?

두고 볼 일이다.

 

이 장원의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 존현각(尊賢閣),

누군가가 아침부터 빽빽소리치고 있었다.

[너는 도대체 정신이 있는 아이냐 없는 아이냐? 어째 동생들 보다 못하단 말이냐? 이 집안을 이어가야 할 장남(長男)으로서 부끄럽지도 않냐?]

여인의 앙칼진 호통소리가 전각 밖까지 울러퍼지고 있었다.

호통을 치고 있는 이 여인,

바로 이 장원의 안주인인 주혜린(朱慧麟)이다.

비록 화내고 있는 모습이기는 하나 그녀의 아름다움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중년의 나이건만 이곳 소음곡에 있은 덕분인지 주름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젊었을 때의 미모 그대로이다.

크다란 눈은 호수처럼 맑고, 갸름한 얼굴의 뽀얀 살결은 처녀의 그것같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강한 위엄과 기품이 풍겨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두 아들과 외동딸을 앞에 놓고 꾸중을 하고 있는 중이다.

큰아들은 황군성,

나이 이십일세에 아버지를 닮아 칠척의 거구이다.

그리고 둘째 아들 황군우(黃軍祐),

문무를 겸비한 십칠 세의 총명하기 그지없는 소년이다.

마지막으로 외동딸 황청청(黃靑靑),

주혜린과 그녀의 남편인 황창설(黃蒼雪)이 뒤늦게 본 딸이다.

이제 십이 세의 그녀는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는 터였다.

더우기 눈치가 빠르고 엉뚱한 짓을 잘하여 사람들을 종종 놀라게 하는 말괄량이기도 하다.

자식들에게 엄하게 대하는 주혜린의 오늘 적수(?)는 바로 큰아들 황군성이다.

얼마전부터 황군성이, 문무겸전인 이 황가(黃家)의 전통을 깨뜨리기라도 할 듯이 학문을 도외시할 뿐만 아니라 무공마저도 소홀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혜린은 눈을 반짝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군성이 너는 오늘부터 무장각(武藏閣)에서 십일 동안 무공을 익히면서 근신(謹愼)하도록 해라.]

황군성은 고개를 숙이고 일어서며 침중하게 말했다.

[어머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주혜린은 등을 돌리고 문을 나서는 그를 보면서 가볍게 탄식했다.

[저 얘가 요즘들어 왜 그러는지 모르겠구나!]

[저는 형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문득 황군우가 말했다.

그의 몸은 형만큼 크지 않았지만 얼굴윤곽은 그와 흡사했다.

뜯어보면 주혜린을 닮은 얼굴이나 언뜻 윤곽만 보면 황군성과 착각할 정도로 닮은 모습이었다.

주혜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형이 무슨 말이라도 하더냐?]

[어머님도 참, 형님이 어디 제게 무슨 말을 할 사람이던가요? 그냥 대충 짐작해 보는 거지요.]

황군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주혜린이 다시 탄식을 하며 말했다.

[그래, 저 녀석은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할 녀석이 아니지. 도무지 속을 짐작할 수 없으니 더욱 답답하구나.]

그녀는 황군우와 황청청을 보았다.

[군성이가 너희들만 할 때는 얼마나 총명하고 뛰어났는지 돌아가신 네 조부님께서 그렇게 칭찬하셨단다. 그리고 그 녀석이 무엇을 하던지 마음대로 하게 놔두라 그러셨지.]

[…………]

[…………]

[하지만, 갈수록 속을 짐작할 수 없이 변해가는데 이 어미가 어찌 그녀석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이냐?]

[어머님, 어쩌면 형님의 무공과 학문은 어머님의 생각을 훨씬 초월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한데, 이상하게도 형님에게서는 삶에 대한 의지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황군우의 말에 주혜린은 몸을 움찔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님께서도 말씀하셨고 조부님들께서도 말씀하신 것 처럼, 형님은 저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형님이 달이라면 저는 반딧불 같이 미미할 뿐이지요.]

주혜린은 고개를 저었다.

[너 또한 네 형에 못하지 않다.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황군우는 씨익 웃었다.

[어머님, 위로해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이상하네……큰오빠는 공부도 안하고 무공도 익히지 않는데 어떻게 작은 오빠보다 나아?]

황청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녀의 치기어린 말에 황군우는 다만 미소만을 지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 주혜린에게 말했다.

[한데 어머님, 형님에 비하면 까마득히 부족한 저인데도, 이미 읽을 만한 책은 다 읽었고 알만 한 무공은 대충 알고 있습니다. 한데, 어찌된 일인지 학문도 염증이 나는 것 같고 무공은 쓸모가 없는 것 같습니다. 형님도 이러한 것을 느낀 것은 아닐까요?]

[쳇, 공부가 염증이 난다고? 나는 재미만 있더라. 그리고 무공만 해도 얼마나 신나는 일인데……]

황청청이 입을 삐죽거리며 쫑알댔다.

하지만 주혜린의 얼굴은 화석처럼 굳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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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강 무협소설

 

 

            태산북두- 泰山北斗

 

 

 

 

<작품이력>

 

19947월 전 7권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와룡강 필명의 단행본 <태산북두>도 있습니다만...

본 작품과는 다른 작품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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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九 章

 

         百刃莊으로 돌아가는 길

 

 

 

등봉현에서 출발한 수십 대의 마차가 줄을지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제일 앞에선 마차에 붉은 비단으로 만든 하나의 기(旗)가 걸려있다.

 

백인무적 호정수신(百刃無敵 護正修身)!

 

바로 백인장의 구호였다.

마차에는 백인장의 고수들이 나누어서 타고있었다.

전승을 기념하여 소선풍이 특별히 배려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여산의 백인장까지 갈 것이다.

각 마차 안 마다 서로의 무용담을 늘어놓느라고 입에 침을 튀기고 있었다.

소선풍이 탄 마차도 마찬가지였다.

이주용이 신나게 떠들고 있는 것이다.

[글세, 네 아버지가 왼쪽 동굴로 들어간 후 조금 있으려니까 갑자기 청의에 면사를 쓴 놈이 밖에서 쏙 뛰쳐 들어오지 않겠니?]

조예진은 생각하고 자기를 질책하려는 구나 싶어서 아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서요?]

주소아가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인지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흥미있는 척 물었다.

[그래서, 그놈에게 어검술을 펼쳤는데 건방지게도 피해버리더군, 하지만 그놈도 죽음은 피하지 못했지. 이 사람이 돌맹이로 피하는 그놈의 머리를 깨어버렸거든,]

이주용이 못마땅한 듯이 조예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조예진은 얼굴을 들 수도 없었다.

사람을 잘못 죽인 것 같아서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지금 또 그 일을 들고 나오니 괴로웠다.

[화가나서 그놈의 깨어진 머리를 발로 찼더니 면사가 훌렁 벗겨지는데 계집이었어. 그때 인자하신 소대협께서 나타나서 나를 마구 꾸짖었지.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사람을 함부로 죽였다고……]

[흠흠!]

소선풍도 마른 기침을 하며 얼굴을 돌렸다.

[그래서 내가 이 사람이 죽였다고 소리쳤더니 쑥 들어가며 그만하자고 하더군……]

이주용은 조예진을 가리키며 말했는데 모두 킥킥 웃었다.

소선풍이 성격이 불같은 이주용 보다는 조예진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소일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녹천이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거기서 죽었군요. 그는 마물들을 처치할 것을 도맡았는데……]

[황녹천? 그가 누군데?]

조예진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아니 중원제일의 신비인이라는 황녹천을 몰라? 하기사 나도 지금에서야 그놈이 황녹천인 줄 알기야 했지만……]

이주용이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쏘아 부쳤다.

[엄청난 야심을 가진 여자였어요, 무림을 일통하여 다스리겠다는. 살려둬서는 안될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죽었다니 잘됐어요.]

소일초는 황녹천의 야심을 모두 말해주었다.

소선풍과 마차 안의 사람들 모두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조예진의 얼굴은 활짝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자신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소선풍이 넋을 뺏기는 듯 했다.

그가 다짜 고짜 소일초와 며느리가 될 주소아와 사씨남매, 그리고 취풍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너희들 마차로 돌아가서 쉬도록 해라. 우리도 편히 쉬어야겠으니 올생각 말고……]

무슨 낌새를 눈치챈 여인들의 얼굴이 발갛게 익으며 웃음을 감추려고 애를 썼다.

소일초와 그녀들은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자기들의 마차로 돌아갔다.

소선풍이 마차에서 두 부인과 함께 무슨 일을 할지는 감히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입안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소일초가 자기의 마차로 갔을 때 원천기와 한천녀가 와있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소일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왔어? 특별한 볼일 없으면 네마차로 돌아가.]

[소일초! 같이 술이나 마시자고 왔더니 우리를 이렇게 푸대접할 수 있어? 좋다 좋아, 절대 백인장 따위에는 가지도 않겠다.]

원천기가 말하며 마차를 나갔다.

[그게 아니고,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나중에 객점에 들어가서 술 마시도록 하자. 무슨 일인지는 조금 후에 알게 될 거니까 너희들도 얌전히 마차 안에 있는 게 좋을 걸?]

소일초가 다급하게 말했다.

원천기에게 그동안 신세진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원천기는 한천녀와 함께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는지 얼른 가버렸다.

 

소일초와 네 여자들만 남은 마차에서 그녀들은 소일초의 묘기를 보고 있었다.

뭐가 커졌다 작아졌다.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길어졌다 짦아졌다 하는 것을……

그 묘기 덕분이었는지,

일 년이 지나지 않아서 백인장에는 두 명의 쌍둥이 여자아기와 세 명의 사내아기가 태어났다.

여자아기 남자아기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소일초가 만들어졌던 그 원영련무대법에 의해 태어난 작은 마동(魔童)들인지라 백인장의 식구들은 치를 떨었다.

급기야 그들에게 시달리던 비성성마저 남만으로 도망쳐버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소선풍이 원로들을 소집하고 회의를 한 후에 그 새끼 마동들과 그 어미 아비를 몽땅 내쫓아 버렸다.

북경으로 가는 마차 속에서 쫓겨난 네 명의 아기 엄마들 중의 두목이 요상한 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아기들로 하여금 말썽을 피우도록 사주한 원흉이었던 것이다.

그후 그녀로 인해서 북경의 동선장은 제이의 백인장으로 변하게 되었다.

여산의 본가와는 아주 다른 성격을 지닌 백인장으로……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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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八 章

 

       意見一致 父子無敵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고 얼마전에만 해도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피를 구하는 마물이 되어 오직 살인과 파괴를 찾아 날뛰는 것들……

소선풍은 뇌옥 앞에서 백여 명이 넘는 마물들과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었다.

조예진과 이주용은 그의 뒤 멀찍이 떨어져 발만 동동구를 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폭풍같은 강기가 몰아치고 벼락같은 어린도의 도강이 사방을 헤집는다.

도강의 틈을 비집고 마물들이 날아다니고……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집히는 대 혈투,

마물들의 무공은 놀라울 정도였고, 각기 고유의 무공을 펼쳐내며 소선풍을 공격했다.

이 놀라운 격전장으로 백인장의 고수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천신과 같은 신위를 발휘하는 소선풍……

이미 쪼개져 널부러져 있는 것은 이십 여 명,

그리고 팔십 여 마물들을 절벽 쪽에 몰아놓은 채 하나도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메뚜기처럼 날뛰며 검과 장, 권과 도를 비롯한 무기들로 일제히 소선풍을 공격하자 그 위력 또한 소선풍의 도법에 전혀 못하지 않았다.

소선풍의 도가 그 공격들을 막으며 잇달아 공격하고……

소선풍은 밀리고 있었다.

불과 삼 각에 불과한 시간동안 벌어진 혈투였지만 공력의 소모가 극심한 도법을 펼치고 있는 그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병상에 있는 동안 깨달아서 마도구식을 바탕으로 새로이 만든 신도이식(神刀二式)이 아니었다면 벌써 마물들은 그를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제일초 존천(尊天)이 펼쳐지면 하늘을 향해 들리워진 어린도에서 우박같은 도강의 편린(片鱗)들이 쏟아졌고,

제이초 감지(感地)가 펼쳐지면 땅에서 빛이 솟아오르는 듯 했다.

그가 하나라도 놓친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 지 예상할 수 없었다.

사력을 다해 존천감지를 펼쳐 다시 수 개의 마물을 토막 냈으나 두 마물이 기어코 그의 도막(刀幕)을 벗어나 뛰쳐나왔다.

[이야앗-----!]

이주용의 검이 허공을 꿰뚫었고 한 마물의 걸레같은 몸도 꿰뚫었지만 그 마물은 그대로 덥쳐오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검으로 무시무시한 검기를 뿜으면서 이주용을 쪼개왔다.

[위험해!]

[피해요!]

두 마디의 절박한 외침이 들리는 순간,

이주용은 땅을 구르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했지만 전신이 떨려왔다.

그를 공격했던 마물과 뛰쳐나왔던 다른 마물은 두 조각이 나있었다.

소선풍이 그녀의 곁에 당도하여 힘겹게 마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가 물러난 만큼 마물들은 밀려왔고 장소가 넓어진 만큰 그들의 공격은 더욱 격렬해 졌다.

세 사람은 점차 물러났다.

소선풍의 도법은 눈에 띄게 약해져서 이제는 더 이상 마물들을 살상하지 못했다.

단지 자신들을 보호하고 마물들을 겨우 가둘 수 있을 뿐이었다.

둥둥둥-------!

어디선지 낮은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마물들은 그를 향한 공격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도막을 향해 지닌 바 무공을 다 펼쳐냈다.

예상치 못한 돌연한 행위였다.

팔십여 마물들의 합쳐진 힘에 의하여 도막은 찢어지고 그들은 사방으로 비산했다.

소선풍은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순식간에 마물들이 오히려 그와 두 아내를 포위하고 나머지는 폐허가 된 환상림으로 날아갔다.

[여보! 이제 죽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소. 둘 다 어서 내 다리를 하나씩 잡고 일어서요.]

소선풍의 절규하는 듯한 외침이었다.

이주용과 조예진은 그의 다리를 잡고 일어서서 그들의 어깨위에 소선풍을 받쳐 놓은 듯 했다.

사람 말(馬)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소선풍의 도에 의해서 보호를 받으며 손으로는 자신들의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둥둥둥둥------!

어디선가 북소리는 들려오고 마물들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여보! 마물들이 환상림에서 누군가에게 가로막혔어요. 무공이 굉장해요.]

이주용이 환상림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소리쳤다.

그때,

[으합------!]

[이얏------!]

환상림에서는 두 마리의 묵룡이 허공으로 오르고 있었고 회몰아치는 두 가닥의 기류에 마물들이 휘말리고 있었다.

등천마룡과 두 개의 일초검공이었다.

주소아가 소리쳤다.

[고모부! 우리가 왔어요! 이리로 물러나도록 하셔요.]

소선풍과 조예진, 그리고 이주용은 맞붙어있는 서로의 몸에서 안도와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살았다.

환상림을 가로막는 사람의 숫자는 속속들이 늘어났다.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었다.

[갑시다. 이대로 앞으로 달려요.]

두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력을 다해 소선풍을 어깨에 태운 채 환상림으로 달려갔다.

앞에도 뒤에도 위에도 옆에도 마물들은 있었다.

벌떼처럼 그들을 가로막고 공격을 펼치고 소선풍과 두 여인은 마지막 한 방울의 힘을 짜내고 있었다.

위태롭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는 마물들의 벽을 뚫고 손을 맞잡은 채 소선풍을 향해서 달려갔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일초검공에 마물들은 휩쓸려 들어가 폭죽처럼 터져버렸다.

소선풍의 도법보다는 마물들을 상대하는 데 훨씬 더 위력을 발휘하는 일초검공이었다.

이때 주소아는 난생처음 전력을 다해 무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에서 형성되는 기류는 마물들을 감싸자마자 분시해 버렸고,

소일초의 마황검에서 형성된 기류는 벌써 이십 명이 넘는 마물들을 휘말아 올리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소리치며 마물의 공격에 쓰러질 듯 위태로운 소선풍과 그의 크고 작은 두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잇달아 주소아가 당도하고 그들의 검은 완벽한 합주를 이루며 사방의 마물들을 쓸어버렸다.

일초무적의 신위가 여실히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소선풍은 도를 놓았다.

그리고 소일초와 주소아가 만들어 놓은 공간으로 두 부인과 함께 들어가 탈진한 상태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이걸 잡수시게 하셔요.]

소일초는 검공을 펼치면서도 다른 손으로 품에서 옥병을 꺼내 이주용에게 주었다.

환상림 바깥 쪽에서는 일곱 명의 원로도객이 맹위를 떨치고 한천이기의 묵룡이 마물들을 쳐부수고 있었다.

등천묵룡은 한천이기가 천하제일의 무공이라고 생각했던 강기의 무공,

과연 상대를 바로 만나자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둥둥둥둥-------!

어디선가 북소리는 다급하게 들려오는데,

이미 마물들의 숫자는 사십이 되지 않았다.

그것들이 흉맹하다 하지만 소일초와 주소아가 펼치는 일초검공에는 상대할 수 없었다.

놓치지만 않으면 무엇이던 깨뜨려 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진 일초검공이다.

[태봉아! 네 아버지보다 훨씬 나은 무공이구나.]

이주용이 아들의 신위를 지켜보면서 큰소리로 칭찬했다.

그 아들을 자기가 낳은 것이다.

앙큼한 조예진이 기르기는 했어도…………

[아직 어떻게 아버지께 비교할 수 있겠어요.…………]

 

× × ×

 

흔적도 없어진 환상림에는 북소리마저 끊어졌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피, 또는 타인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물들은 모두 없애버렸지만 그 흉폭했던 모습에 모두들 치를 떨었다.

소선풍이 기력을 회복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두 봉공께서는 인원을 점검하시오.]

잠시 후 무심군자가 말했다.

[중상자가 삼십여 명, 그 중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자는 칠명, 경상자는 오십여 명입니다. 그리고 사망자는……]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없습니다!]

순간,

[와-----!]

하는 일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누군가 젊은 도객 한 사람이 외쳤다.

[백인무적 호정수신!]

그 소리에 맞춰서 모든 사람들이 입을 맞추어 외쳤다.

[백인무적 호정수신!]

[백인무적 호정수신!]

…………

[중상자들의 처리는 어떻게 되었소?]

소선풍은 백인장의 장주로서 전과(戰果)보다는 백인장 식구들의 안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지라 그들을 염려하여 물었다.

무심군자는 하늘을 가리켰다.

[비성성들이 분주히 산아래로 데려가 무산신의(武神醫) 서공화의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소선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삼수를 처치하는 것만 남았군!]

[아버지! 삼수 중의 위청천과 사진성은 참회한 후에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대성화만 남았습니다.]

소일초가 말했다.

[좋다. 모든 일이 원래 생각과는 다르게 이루어지는 것. 어찌 되었던 자세한 말은 전승연에서 하기로 하고, 지금은 대성화를 찾아야겠다. 그는 내손으로 죽이겠다.]

소선풍이 호기롭게 말했다.

그 순간,

둥둥둥둥-------!

귀신을 부르는 듯한 북소리가 사방에서 울려왔다.

그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마교칠십이절기 가운데 하나인 오욕음(五慾音)처럼 사람의 마음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때,

[대성화!]

소선풍이 내공을 결집시켜 한 곳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펑-----!

소리와 함께 북소리가 뚝 끊쳤다.

[나와라! 거기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소일초를 비롯한 고수들은 그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때,

작은 바위가 구르면서 벌떡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바위는 점차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 버렸다.

[대성화!]

[이사형!]

여러 개의 외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는 대성화였다.

어깨에는 비스듬히 장검을 맸고 황의를 입었다.

손에는 찢어진 작은 북이 들려져 있으며, 우뚝 선 그의 몸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무형의 마기가 뻗어나오고 있었다.

마공을 사용하여 형성하는 것이 아닌 본연의 자세에서의 마기였다.

눈동자는 유리알처럼 반짝이는데 검은 동공은 보이지 않았다.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에는 분을 바른 듯이 가루라도 묻어날 듯 하다.

늘어뜨린 머리카락의 바람도 없는데 물결처럼 춤을 춘다.

마왕의 형상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의 모든 것이 공포스러웠다.

소일초의 왼손에 있는 자침단검의 끝은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선풍, 용서하지 않겠다. 마인(魔人)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대신 마인들을 없앨 수 있는 힘을 가진 너와 백인장의 모든 사람들을 죽여버리겠다.]

입은 열리지도 않고 사방을 회오리치는 음성……

느릿하면서도 사람을 흘리는 것 같다.

육합전성의 수법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비교할 수 조차 없는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물들은 그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미 완벽한 악마가 되어버린 듯한 대성화에게는 천하도 뜻이 없다.

오직 천지파멸을 위해 피와 파괴만이 그의 전부였다.

그를 살려둔다면 무수한 마물들이 천하를 피로 씻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대성화!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간! 너 하나를 죽이면 천하가 태평할 것 같구나! 모두 물러서라.]

소선풍은 어린도로 그를 가리켰다.

그리고 몸을 돌리며 왼쪽 겨드랑이로 어린도를 감았다.

순간,

그의 몸이 튕기듯이 대성화를 향해서 날아갔다.

어린도는 똑바로 그를 노리고 있는데 소선풍의 몸은 어린도를 따라가며 나선형을 그리고 있었다.

[마도구식!]

원로도객 동평선생이 나직히 부르짖었다.

슈악-------!

대성화의 몸이 어린도에 의해 비스듬히 잘렸다.

너무나 간단한 결말이었다.

한데……

대성화의 잘려진 상체의 얼굴이 섬뜩한 미소를 짓는 순간,

그의 몸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장환술!]

여러사람이 동시에 외치는 가운데 소일초가 뛰쳐나갔다.

그의 손에서 마황검이 뻗어나오며 소선풍의 등을 찔렀다.

순간,

[악!]

[앗!]

여러가지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동시에 소선풍의 어린도도 뒤로돌아 소일초를 찔렀다.

갑작스런 혈육상잔의 참극에 모든 사람들이 눈을 질끈 깜았다.

[으헉! 어……어린 놈이……장환마공을……]

돌연한 괴성에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소선풍의 어린도는 황의를 입은 대성화의 코를 뚫고 뒷머리로 빠져나와 있었다.

그리고, 소일초의 마황검은 그의 등에 수박보다 더 큰 구멍을 뚫어버린 채였다.

내장이 와르르 쏟아지며 대성화는 무너졌다.

장환술을 극대화시킨 마공도 두 부자의 협공에 깨어지고 만 것이다.

소선풍과 소일초는 마주보고 큰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하하----!

그들은 웃고 있었지만 간이 떨어질 만큼 놀란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승리도 승리지만 그렇게 하여 모든 사람을 감수(減壽)하게 하다니……

 

× × ×

 

아직도 연기가 치솟고 있는 정천보에는 어느 틈에 왔는지 구파일방의 인물들이 헤집고 다니며 아직 죽지 않고 신음하고 있는 정천보의 주구들을 죽이거나 잡거나 하고 있었다.

백인장의 인물들이 비웃음을 보냈지만 어색하게 웃을 뿐 그들은 계속 하던 일을 했다.

아마,

내일쯤에는 구파일방이 위선의 무리인 정천보를 멸망시켜 천하의 정기를 바로 세웠다는 소문이 천지를 진동할 것이다.

백인장은 그들의 일을 조금 거들은 정도일 테고……

명성을 길이 보전하는 방법은 이렇듯 고명하다.

그들의 무공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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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七 章

 

         靑年의 野望 속에는 惡魔가 도사리고 있다.

 

 

 

하늘을 치솟는 불꽃……

사방을 뒤덮는 연기……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과 비명……

정천보는 지옥을 연상시키고 있다.

곳곳에서 도광이 충천하며 피를 부르고 굴러떨어진 수급이 발에 걷어차인다.

백인도객은 과연 무적의 신위를 보이고 있었다.

정천보의 수하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 한 사람을 해치지 못하고 있다.

원천기의 지휘를 받는 등천마세의 인물들도 적지 않았다.

정천보의 우두머리는 보이지도 않는데,

정천보는 사라져 가고 있었다.

 

× × ×

 

소일초를 태웠던 마차가 정천보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가까운 한 전각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었다.

그것을 신호로 정천보의 모든 전각은 불길에 휩싸이고 정천보의 일 만 여 사람들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불길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나는 것은 백인도객……

한번 도가 번쩍일 때 마다 머리가 땅에 뒹굴었다.

백인장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지켜온 초상화가 새겨진 백인도(百刃刀),

어느 누구하나 일파의 종주보다 못한 사람이 없는 백인도객이었다.

황녹천이 마차의 문을 열었다.

[이건 자네 작품인가?]

소일초가 말끔한 모습으로 걸어 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야겠지……]

황녹천은 발을 굴렀다.

[나와 상의 한마디 정도는 있었어야지……이젠 걷잡을 수 없게 되었어. 그 마물들이 뛰쳐나오면 모두 끝장이야.]

[우리들의 합의는 아직도 유효해, 마물들은 네 차지가 아닌가? 빨리 움직여야지……]

[이런……제기……]

황녹천은 어디론가를 향해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소일초는 치솟는 불길과 연기 속에서 간간히 백인도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황녹천이 대환단과 함께 주었던 자침이 달린 단검을 소에 들었다.

단검의 촉수와 같은 끝은 북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해는 맞은 편 소실봉에 걸려있다.

단검의 반응을 살피며 그는 혼란스러운 정천보의 고수들을 해집고 다녔다.

그가 지나는 곳마다 정천보의 고수들은 바람을 만난 풀잎처럼 쓰러졌다.

하늘에는 지금 비성성들이 정천보를 빠져 나갈 지도 모르는 삼수를 감시하기위해 떠있다.

소일초는 지금 사은상이 그린 정천보의 그림을 보지 못했었다.

삼수의 거처가 어딘지 알 수 없다.

사은상도 삼수의 거처가 어딘 지는 자세히 몰랐으나, 삼수의 거처가 아닌 곳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은 쉽게 압축해 갈 수도 있을 것이건만……

소일초는 한곳으로 방향을 정하고 안으로 안으로 달려갔다.

그저 깊은 곳에 은신하고 있으리라 생각한 때문이었다.

[소장주님! 무사하셨군요. 우리 걱정은 헛것이었습니다.하하하……]

백인도객 중 한 사람이 여유가 있는 싸움을 벌이다가 소일초를 향해 큰소리로 소리쳤다.

[반갑소. 정도객! 인사는 끝나고 합시다.]

소일초는 소리쳐서 답했지만 어떻게 해서 그가 자기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는지는 몰랐다.

그런 일은 수 차에 걸쳐서 반복되었다.

그때,

[소장주님! 주아가씨와 친구분들이 모두 저쪽으로 가셨습니다.]

한 도객이 정천보의 무사를 벤 뒤에 도를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개속에 휘감겨서 날아갔다.

무중일전의 경신법이었다.

불타는 몇 채의 전각을 넘어서 달려가니 불붙지 않은 작은 석옥이 있었다.

그 근처에는 정천보의 무사들도 보이지 않고,

단지 특이한 백발의 한천이기와 주소아, 사은상과 사백상, 그리고 취풍녀와 사마귀가 모여서 석옥을 둘러싸고 있었다.

소일초는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여기 있었구나.]

그러나, 그들은 침중한 신색으로 그에게 기쁜 눈인사만 보낼 뿐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소일초도 그곳에 내려서자 마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석옥에서는 숨을 막을 듯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소일초의 손에 들린 단검의 촉수가 석옥을 가리켰다.

단검을 왼손에 쥐고 모든 공력을 일으켰다.

[천천히 물러서, 아주 천천히. 나 혼자 상대하겠어.]

나지막하게 그들을 향해서 말했다.

한천이기 등은 그의 말에 따라서 천천히 뒤로 물러섰고,

주소아는 오히려 소일초의 왼편에 와서 섰다.

[엄청난 마기야! 조심해!]

원천기가 뒤에서 소리쳤다.

소일초는 머리를 약간 까닥해보였다.

주소아는 손에 한 자루의 검을 들고 있었고, 소일초의 오른손에도 어느새 마황검이 들려져 있었다.

한천이기와 사마귀 등도 그들의 뒤에 서 있었으나 언제라도 출수할 준비를 갖췄다.

사은상이 말했다.

[이곳은 아마도 대성화가 있는 곳이 아닌가 싶어요.]

순간,

으하하하하--------!

석실안에서 가공할 공력을 실은 앙천광소가 터져 나왔다.

사은상과 사백상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대사백(大師伯)!]

[사은상,사옥상! 너희들을 먼저 죽이겠다.]

웃음소리가 뚝 그치며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소일초가 웅혼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위청천(衛靑川)인가?]

[그렇다. 너는 누구냐?]

[나는 소일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나오라! 싸우자!]

석옥 안에는 삼수의 우두머리 위청천이 있었다.

[세상에 무슨 소일초가 또 있단 말인가? 그 꼬마는 이미 죽은 지 오랜데……]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였다.

마기가 뒤섞여 있는 듯한 음성, 바로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사진성(史震聲)이다.

사은상과 사백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소일초의 안색도 침중해 졌다.

석옥 안에는 삼수가 다 모여 있을 지도 몰랐다.

[개소리 말고 나와라. 당신들의 사부께서 나에게 문호를 정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소일초의 외침에 돌연 석옥에서 마기가 걷히고 조용해져 버렸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석옥을 둘러싼 네 벽이 넘어가 버렸다.

자욱한 먼지가 이는데, 모두 긴장된 시선으로 석옥을 주시했다.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두 사람의 중년인이 석옥에서 나왔다.

멀리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리가 되는 데로 몸을 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장주께서 가신 곳으로 집결해라.]

거듭거듭 몇 번이고 소리는 들려 왔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적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석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기로 뒤덮여 있었는데,

위청천과 사진성의 몸 어디에서도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위청천이 말했다.

[정말 사부를 만났단 말이냐?]

[그렇다. 위청천! 나를 잊지는 않았겠지? 우리는 조부님을 만났다.]

주소아가 원독에 찬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위청천은 하늘을 보았다.

[그동안 이쁘게 자랐구나. 소아! 때를 잘 맞추었다. 하늘이 도우셨구나.]

위청천의 우수에 담긴 듯한 모습에 소일초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어리둥절해졌다.

사진성 역시 담담한 시선으로 사씨 남매를 지켜보고 있었다.

위청천과 사진성, 그들의 몸 어디에서도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서 말해야 할지,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단지!]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각이 미쳐 못된다.]

위청천은 슬픔이 베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그가 중요한 말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형, 시간이 더 짧아질지도 모릅니다.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습니다.]

사진성이 위청천에게 말했다.

위청천이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내 말을 끊지 말고 듣기만 해라. 이것은 무림에 영원히 남아 만인을 경각시켜야 할 비사(秘事)고 모든 젊은이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사부를 떠나올 때 야심은 있었지만, 악인(惡人)은 아니었다. 막내가 백인장주에게 시집을 가버리고 난 후 우리는 야심을 위한 기틀을 준비하다 우리가 멸망시켰던 등천마교의 터전을 이용할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

[우리가 사부를 떠날 그 무렵 사부는 무서운 광기(狂氣)를 보이고 있었다. 소아 너를 잘못 키운 것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

[너를 막내가 데리고 가서 키우고 싶어 했지만 시집가는 여자가 아이를 데려갈 수는 없었기에 우리가 맡았던 것이다. 한데……]

[……?]

[장강 변에 있는 등천마교의 본단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지하밀실에 죽어있는 한 구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

[그 시신 역시 여느 시신이나 마찬가지로 사부님의 단장(短杖)에 의해 머리가 파열되어 흩어져 버리고 몸만 남아있는 것이었는데……그 옆에서 한부의 비급을 발견하였다.]

소일초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교칠십이절기였군……)

[그것은 소림의 칠십이절기와 이름을 서로 맞서서 지은 마교칠십이절기가 기록된 것이었다. 사부께서도 그것을 못 보셨을 리야 없겠지만, 당신께선 천하의 어떤 무공도 하찮게 보시는 고금제일인……]

[…………]

[하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운명이 바뀌어 버렸다.]

[…………]

[사부를 떠난 뒤에 무학에 대한 열정을 어디서도 만족시키지 못하던 우리에게 마교칠십이절기는 어둠 속의 빛과 같았다. 모두가 절학이었으며 우리가 배웠던 것과는 근본부터 다른 것이었기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

[한데……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야망이 마공과 결합되면서 마성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피와 파괴를 점차 원하고 있었고, 등천마교의 교도들을 수 없이 죽였던 경험은 우리를 더욱 깊이 마성에 빠져들게 했다.]

[…………]

[삼성무림청을 세우고 야망을 이루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었다. 그 와중에 생각해낸 것 중의 하나가 골격과 재질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소아 너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주소아는 그때를 생각하는 지 지그시 이를 악다물었다.

[사부께 배운 무공과 마공을 절충하여 새로운 무공을 만들 수 있었는데, 생사보록이란 책에 기록하여 어린 소아로 하여금 익히게 했다. 소아의 오성은 놀라울 정도였고……우리는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소아를 천하의 대고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말을 듣는 살인기계인 대고수로……]

[…………]

[한데, 우리의 그 계획은 얼마가지 못해서 깨어지고 말았다. 막내의 남편 도왕 소선풍이 우릴 찾아온 것이었다.]

[…………]

[그는 우리를 사부에게 데려가려 했었고 우리는 거절했다. 사부를 만난다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었다. 지나고 보면 그때 우리가 사부를 만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로서는 마공마저 익힌 상태라 마음속에 바른 것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강해지고 있던 때였다.]

[…………!]

[소선풍은 우리가 거절하자 소아(小阿)만이라도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소아는 우리의 계획에 필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부로 부터 우릴 지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인질이기도 하기에 그마저도 당연히 거부했다.]

[…………!]

[점잔은 대협으로 소문난 그도 분노를 터뜨렸고, 급기야 우리와 일전을 겨루게 되었다. 아……그때 소선풍의 무공은 우리를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그의 무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그를 경시하고 있었는데……]

[…………]

[그의 무공은 세상에서 사부 외에는 당할 자가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둘이 합공해서야 그를 감당할 수 있었고, 셋이 합공해서야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

[한데, 도왕이라고 불리우는 그는 도를 사용하지도 않은 상태였으니……거기다 그는 소아를 안고 상처입은 몸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우리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는 우리의 손에 의해 전신의 맥이 끊어질 정도의 상처를 입었었는데도 놓치고 말았지……]

[…………]

[우리는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선풍이 몸을 회복하여 도를 들고 온다면 우리는 생명을 건지지 못할 것이었다. 단지 상처가 심하여 죽기를 바랐지만 그의 무공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드물었다.]

[사형! 일각이 지났습니다.]

사진성이 급하게 말했다.

위청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말했다.

[그 후 우리는 녹림맹에서 어처구니없이 세력의 팔할을 잃고 화산 옥녀봉에서는 다시 한 번 백인장의 저력을 실감하며 도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

[뜻밖에도 녹림맹주이자 중원제일의 신비인인 황녹천이 둘째인 대성화와 때때로 관계를 가져왔던 그 여자였다. 그녀가 우리에게 구파일방을 손에 쥐게 해주겠다고 조건을 내걸었고 우리는 은신처를 도모하던 중이었기에 쾌히 승락했었다.]

[…………]

[그 여자는 무서운 여자였다. 약속대로 구파일방은 우리 손에 쥐어졌고 그녀는 우리와 동참했다. 한데, 그 후에 정천보를 만들 쯤에는 우리 모두에게 기현상이 나타났다.]

[…………]

[점점 마성에 깊이 빠져들면서 무수한 악행을 자행하는 데,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오히려 아주 맑은 정신이 찾아들고 모든 양심이 회복되는 것이었다. 그때는 마성에 빠져 있을 때를 기억할 수 있지만 마성에 빠져 있을 때는 그때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

[그때부터 우리의 생활은 이중적으로 되어갔고 깊은 번민에 빠지게 되었다. 마성에 빠졌을 때는 극악한 마인으로 벗어났을 때는 지극한 선인으로 변함으로써 그때마다 극렬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우리가 사부로 부터 배웠던 정종무공으로 인해서였던 것 같다. 처음에 마공을 배웠을 때는 쉽게 사람에게 파고드는 마공으로 인해서 사부로 부터 배웠던 정종무공이 완전히 빛을 잃었다가……]

[…………]

[점차로 마공과 맞서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현상이 생겼던 것이다. 한데 마공이 더욱 강해지면서 우리가 맑은 정신을 회복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자각하고 있다.]

[…………]

[언젠가는 이 잠깐의 시간마저 영원히 없어져 버리고 영원한 마인이 되고 말 것임을……]

[…………!]

[한데, 둘째는 우리와 다르다. 그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완전한 마인이 되어버렸다. 둘째를 조심해라.]

[…………]

[소아야! 사부를 만나게 되거든 어리석은 제자들은 지옥으로 갔다고 전해다오. 그리고, 마음에 야망을 갖지 마라, 갖더라도 바른 것이 아니면 즉시 버려라. 청년의 야심 속에 악마가 자라고 있다.]

[사형! 시간이 멀지 않았습니다. 제게도 잠시 틈을 주십시오.]

사진성이 다급히 외쳤다.

[내말은 이제 다 끝났다. 할 말이 있거든 빨리 끝내거라.]

위청천이 말을 마치고 입을 다물었다.

사진성이 사씨 남매를 보고 말했다.

[너희들에게 내가 몹쓸 짓을 시켰던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바른 정신이 들 때마다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무사한 것 같아서 마음이 적잖아 놓인다.]

[사부님……]

[아무말 말아라. 나는 악인이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버렸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모든 악인이 바른 정신이 들게 되면 같은 말을 하겠지. 네 부모들은 북경에 계실 것이다.]

[……?]

[내가 마성에 깊이 빠져 들지 않았을 때, 왕옥산을 지나가다가 강도들이 마차를 터는 것을 목격했다. 두 노부부와 너희 두 자매가 타고 있었는데, 강도들을 죽이고 내가 너희들을 구했지만 너희들의 조부모는 구하지 못했다.]

[저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은상이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너무 귀여운 생각이 들어서 데리고 와서 제자로 삼았지……무공을 가르치고……참으로 행복했던 때였다. 은상이는 아마 알 수 도 있을 것이다. 북경에서 네 집을 찾도록 해라. 부모님은 살아계실 지도 모른다.]

[이미 다 돌아가셨어요. 제가 전에 가보았어요. 그래서 우리에겐 사부님 뿐이었죠.]

사은상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의 욕심이 너희들의 생을 그르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구나.]

사진성이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사형! 저는 준비가 됐습니다.]

[그래!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위청천과 사진성이 서로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뚜두둑---뚜둑----!

그들의 몸은 둔탁한 음향과 함께 점점 수축되어갔다.

원천기가 탄식을 했다.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야망과 저주, 한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이렇게 되었으니……우리 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구나.]

모든 사건의 원흉으로 생각했던 삼수 중의 두 사람은 참회와 함께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사람이 가고난 지금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아마 죽어간 두 사람도 야망도 선악도 다 잊어버렸으리라.

소일초 등은 사은상의 뒤를 따라 뇌옥으로 달려갔다.

그곳으로 집결해라는 명령은 이미 이각 전에 떨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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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六 章

 

           피 뿌리는 魚鱗刀

 

 

 

소선풍이 도를 들고 한걸음 다가서자 나무들마저 사라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갑자기 강대한 바람이 일어나 그들의 옷자락을 찢을 듯이 몰아쳤다.

한 걸음을 다가서면 바람의 압력은 배로 강해지고 두 걸음 다가서면 네배로 강해졌다.

바람에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바람 속에서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호곡성이 들리고 모골이 송연하게 하는 비명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듯 했다.

바람속에서 조예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 이곳이 환상림(幻像林)인 것 같아요. 빨리 빠져 나가야 해요.]

그러나 그녀의 외침은 바람소리 속에 묻히면서 다른 괴이한 소리로 변해 두 사람의 귀에 들렸다.

공포의 환상림에 들어선 것이다.

직접 경험하기는 이것이 처음이지만 조예진은 사부로부터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은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러한 진은 마음속의 자기가 적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기에 강한 사람 약한 사람 모두 자기의 환상과 싸우게 되는 것이다.

자기 마음속의 환상과의 싸움인데 쉽게 결판이 날 수도 없다.

결국은 기력이 고갈되어 죽게 되는 것이다.

길은 오직 한 곳 밖에 없는데 그들은 아주 잘못 들어온 것이다.

조예진의 마음은 다급했다.

소선풍의 옷자락을 당기면서 물러나자는 의사를 표시했다.

순간,

[아악!]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잡고 있던 소선풍은 어디가고 괴상한 나무모양의 괴물이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것이 아닌가?

환상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소선풍의 눈에 자기가 괴물로 보인다면 환상림을 모르는 그가 자신을 단칼에 죽일 지도 몰랐다.

순간,

[우하압--------!]

모든 환상을 깨뜨리는 상상치 못할 거대한 기합이 들렸다.

콰르르릉-------!

콰아아아-------촤아악------!

벼락치는 듯한 소리가 사방을 진동시켰고 땅마저 부르르 떨리는 듯 했다.

조예진의 눈에 어린도를 비켜들고 있는 정기 늠름한 소선풍의 모습이 확 들어왔다.

사방의 숲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다.

이주용도 그 가공할 위력에 부르르 몸을 떨며 넋이 빠져 버린 듯 했다.

공포의 환상림도 상상을 초월하는 소선풍의 가공할 도법에 산산조각 나버린 것이다.

[여보! 당신 무공은 상상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있군요……]

이주용이 새삼 처음으로 그의 무위를 보았다는 듯이 말했다.

[대단찮은 잔재주일 뿐이오. 어서 갑시다.]

조예진은 아직 그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잔재주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긴 공포의 환상림이에요.]

[환상림? 그게 뭐요?]

[저기 흩어지고 있는 푸른 연기 보이죠?]

조예진은 사그라지고 있는 푸른 연기를 가리키면 말했다.

[저 푸른 연기들은 여기 쓰러져 산산조각 나버린 이 나무들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사람을 자기만의 환상속에 빠져들도록 해요.]

환상림은 마풍수(麻風樹)라는 나무들로 이루어진다.

이 나무들은 잎에서 푸른 연기를 뿜어내는 데,

그 연기가 사람을 환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독이 아니기 때문에 만독불침의 몸이라 해도 소용이 없다.

이 마풍수가 일정한 진식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면 그 무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 인 것이다.

진식 안에서는 하늘도 뒤짚히고 땅도 뒤집히는 무서운 환상림인 것이다.

[죽었구나 싶은 순간에 눈앞이 확 걷히면서 당신이 보였어요.]

조예진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선풍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서둘렀다.

[자 대단치 않으니 어서 가기나 합시다.]

폐허가 된 환상림을 뒤로 하고 그들은 절벽에 접근했다.

과연,

하나의 동굴을 석문이 굳게 막고 있고 얼이 빠진 듯 그들을 지켜보는 무사들이 있었다.

환상림이 폭발하듯 사라져 버리고 나타난 사람은 겨우 일남이녀이니 넋이 빠질 만도 했다.

순간,

하압-----!

소리와 함께 이주용의 검이 날아가 두 사람의 몸을 꿰뚫고 돌아왔다.

어검술(馭劍術)이었다.

[삼 년동안 놀지는 않았죠?]

그녀가 비장의 기술을 선보이고 자랑스러운 듯 남편을 보았다.

[언니 대단해요. 언제 어검술을 익혔어요?]

남편은 가만히 미소를 지을 뿐이고 조예진이 손을 치켜올리면서 칭찬했다.

그들의 뒤에서는 고함소리와 하늘을 태울 듯이 불길이 오르고 있었다.

마차가 마침내 정천보로 들어온 것이다.

[늦었소. 서두릅시다.]

소선풍은 어린도를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그의 어린도가 쭉 늘어나면서 십 장의 크기로 변해버렸다.

눈 앞에 아지도 남아있는 전천보의 나머지 무사들은 어린도에 두 동강이 나버렸고 소선풍은 이미 석문을 깨뜨려 버렸다.

쿠르르릉------!

이 장 두께의 두꺼운 석문은 종잇장처럼 베어져 무너지고 있었다.

세 사람의 몸은 빨려들 듯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동굴 안에는 두개의 갈림길이 있었다.

소선풍은 잠시 벽에 귀를 대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두 사람을 보았다.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소. 일단 당신 두 사람은 이곳을 장악하고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시오. 내가 먼저 왼쪽 길로 가보겠소. 기다리시오. 조심하고……]

두 사람이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왼쪽 동굴로 날아서 들어가 버렸다.

가만히 있을 땐 태산같은 사람이었지만 움직일 땐 비호보다 더 빨랐다.

[흥! 핏, 우리보고 파수나 보라니……]

이주용이 투덜거렸다.

[우린 편안히 놀기만 하다가 싸움이 끝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조예진이 말했다.

이주용이 눈을 빛냈다.

[이쪽 동굴에는 뭐가 있는지 한 번 가볼까?]

조예진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랬다가 무슨 말씀을 들으려고 그래요? 얌전히 시키는 대로 여기나 지키고 있도록 해요.]

[늘 그렇게 하니까 우리 소대협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난 사랑받기는 틀렸나봐……성격이 이래서야……]

이주용도 자신의 성격이 나쁜 줄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한편,

왼쪽 동굴로 들어간 소선풍은 도중에 여러 명의 간수를 만났으나 눈도 깜짝 못할 사이에 어린도로 그들을 베어버렸다.

걸음마다 사방 벽에서 수십 가지의 기관이 작동하여 암기가 쏟아지고 독이 퍼부어졌지만 그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하고 모두 파괴되었다.

철로된 문을 찢어버리고 들어가니 악취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마침내 뇌옥이었다.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짐승처럼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여져 있었다.

넓다란 장소에 단지 벽에 고정된 쇠사슬로 사람들을 개처럼 묶어놓은 것이다.

소선풍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가 목과 팔, 허리와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사십여 인물들이 그를 보고 놀라고 있었다.

[백인장의 소대협 아니시오?]

흘러내린 머리칼 시꺼먼 얼굴……

소선풍은 말한 사람이 누군지 알 도리가 없다.

[맞소. 내가 소선풍이요.]

말을 하면서 그는 어린도를 움직여 사람들의 족쇄를 잘랐다.

와-----!

하는 함성이 뇌옥 안에서 울렸다.

순식간에 사십여 사람의 족쇄를 다 자른 그는 밖으로 뛰어나왔다.

이미 풀려진 사람들은 먼저 나가고 있었다.

이때,

이주용은 청의면사인을 검으로 찌르고 있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짜고짜 오른쪽 동굴로 다가들며 등에 진 물건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청의 면사인은 가까스로 검을 피하며 소리쳤다.

[시간이 없소. 방해하지 마시오.]

그의 음성은 어디서 들려오는 지 종잡을 수도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육합전성……

바로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이었다.

그때 조예진이 소리쳤다.

[언니! 그 포대 안에서 화약 냄새가 나요.]

[이놈이 아예 우릴 죽이려고 작정했구나. 내가 먼저 죽여주마!]

이주용은 살기등등하게 소리치며 검을 떨쳤다.

그러자 검은 빛살처럼 황녹천을 향해 날아갔다.

[어검술!]

황녹천의 경악에 찬 음성이 들리고 황녹천의 몸은 땅을 구르며 간신히 이주용의 검을 피했다.

[악!]

그러나 그는 조예진이 던진 돌은 피하지 못하고 머리가 깨어져 버렸다.

[이놈이 화약을 터뜨렸다면 우리뿐만 아니라 그 사람까지 동굴 속에 묻혀버릴 뻔 했잖아!]

구멍이 뚫린 황녹천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순간, 훌렁하며 황녹천의 면사가 벗겨졌다.

[아니 무슨 계집이 이렇게 요상하고 독랄한 짓을 하려고 했을까?]

황녹천의 얼굴은 아직 삼십이 되지 않았을 여인의 것이었다.

주소아의 예측은 정확했지만 지금 조예진과 이주용은 그녀가 누군지를 알 길이 없다.

단지 요사스런 음성을 가진 동굴을 파괴하려한 독랄한 계집이라는 것 밖에는…

[그 여자는 누구요?]

그들의 뒤에서 중후한 음성으로 어느새 왔는지 소선풍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갑자기 뛰어 들어오더니 이 동굴을 파괴하려 하잖아요. 그래서 죽여 버렸죠.]

이주용이 그렇게 말하자 소선풍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성미하곤,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죽였단 말이요?]

[아니! 그럼 다짜고짜 동굴을 파괴하려는데 어떻게 해요? 그리고 이번엔 내가 죽인 게 아니고 이 사람이 죽였다구요.]

이주용은 소리를 꽥 질렀다.

조예진이 아무말 못하고 고개를 숙이자 소선풍이 말했다.

[그만 둡시다. 이번엔 이쪽으로 가봐야겠소. 이쪽도 뇌옥일 듯 싶소.]

그는 다시 나는 듯이 오른 쪽 동굴로 들어가버렸다.

이주용이 씩씩 거렸다.

[그저 저 화상은 나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지, 어디 밤에 두고 보자.]

[언니 미안해요. 화풀어요.]

조예진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아! 나혼자 뿐이었을 때가 좋았는데……불쌍한 작은 마누라 신세여……!)

남몰래 한탄하는 그녀였다.

 

왼쪽 동굴에서는 짐승같은 모습을 한 수인(囚人)들이 밖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순간,

쿵----!

쿵-----쿵-----쿵!

동굴이 진동하고 있었다.

벽과 천정에서 돌부스러기들이 떨어져 내렸다.

소선풍이 갑자기 오른 쪽 동굴에서 부터 뛰쳐나오면서 소리쳤다.

[빨리 빠져나가! 마물들이야!]

조예진과 이주용이 무슨 소린지 채 알아듣기도 전에 그가 달려들어 그녀들을 동시에 껴안고 동굴 밖으로 날아갔다.

동굴 밖으로 나온 그는 아주 다급해 보였다.

[누가 가서 빨리 일을 종결짓고 모두 이곳으로 오라고 해! 빨리! 저 안에서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어.]

소선풍은 언제나 말이 점잖은 사람인데 지금은 두 사람을 향해서 아주 고함을 치고 있었다.

이주용은 힐끗 조예진을 바라본 후 몸을 날렸다.

결코 소선풍의 곁을 떠날 그녀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선풍은 낮은 목소리로 흥분을 가누지 못하고 말했다.

[뒤로 물러서 있어! 저들은 당신에 뒤지지 않는 고수들이야. 어떻게 해서 저런 괴물들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조예진은 직감하고 있었다.

남편이 마물이라고 외쳤을 때 이미 사은상이 말했던 그런 것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소선풍은 하늘을 향해서 도를 치켜올리고 가만히 서 있었다.

뇌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이미 폐허가 된 환상림을 지나가고 있는데……

꿍꿍-----꽝------!

동굴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내가 나오면서 동굴을 일부 무너뜨렸어. 지금 그걸 뚫고 나오는 걸거야.오……!]

소선풍이 흥분을 가누며 말하다가 비명을 올렸다.

[동굴 앞의 그 화약! 그것만 생각했어도 완전히 매장할 수 있었는데……맙소사……]

그는 다시 동굴 안으로 달려 들어가려고 했다.

[안돼요! 이미 늦었어요. 여기서 그들을 나오지 못하게 동굴을 더 부셔요.]

조예진이 그의 허리를 껴안아 저지시켰다.

소선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떼어놓고 하늘을 향해서 도를 높이 들었다.

순간,

그의 도에서 벼락치듯 우레 소리가 나며 사방의 공기를 압축시키는 엄청난 도강이 치솟아 하늘로 올라갔다.

도강의 길이는 족히 이십 장이 넘을 것 같았다.

갑자기 그의 도에서 도강이 자취를 감추었다.

꽝-----꽈르르르-------

도강들의 편린이 우박처럼 동굴을 향해서 폭사되어 동굴의 입구를 파괴해 버렸다.

환상림을 파괴했던 그 수법이었다.

[화약에 못지않아요. 정말 훌륭해요.]

[틀렸어. 위력은 몰라도……화약은 안에서 터지는 것이고 이건 밖에서 터지는 것이오. 동굴을 허물지는 못했어. 단지 막기만 했을 뿐……그 마물들은 곳 빠져 나올 것이오.]

[그렇게 무서워요?]

소선풍이 고개를 저었다.

[옛날에 삼수의 무공보다 그다지 뒤지지 않는 마물들이야……이들을 내보낼 수는 없어. 우리 식구들이 적지 않게 다치거나 죽을 거야.]

조예진의 그의 뒤에서 껴안으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가 여기서 그들을 막아요. 사력을 다하면 곳 우리 식구들이 오겠죠. 그리고 당신과 함께인데 죽어도 후회하지 않아요.]

소선풍의 몸을 돌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때,

[나도 함께 죽어요. 두 사람만 같이 죽는다는 것은 분해서 못 봐요.]

이주용이 어느새 통보를 하고 달려오면서 소리쳤다.

곧이어,

꽝-----!

소리가 들리며 무너진 동굴에서 바위와 돌이 날아 나왔다.

[드디어……]

소선풍은 입을 굳게 다물며 도를 수평으로 겨누었다.

마침내,

일남이녀와 백 명이 넘는 마물과의 경천동지할 대 격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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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五 章

 

          黃綠天의 提案

 

 

 

태실봉의 정천보로 올라가는 길은 넓고 고르게 잘 닦여져 있었다.

이곳은 정천보가 있는 곳에서 십리도 되지 않는

 

하마령(下馬嶺),

 

정천보가 들어서기 전에는 길이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악(五嶽)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나온 황제라 할지라도 말에서 내려야 하는 고개였다.

길은 좋아도 고개를 없애지는 못했다.

 

멈춰라-------!

사방에서 울리는 육합전성의 목소리,

바로 무적검을 잡아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중원제일의 신비인이자 녹림맹주인 황녹천이었다.

마차는 멈춰지고 황녹천의 말이 다시 들렸다.

[이곳 하마령에서 잠시 쉬어간다. 정천보가 눈앞이니 해지기 전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명령이 있을 때 까지 쉬도록…… ]

그제서야 사방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며 일천여 명의 고수들과 말들이 쉬기시작했다.

끼리릭------덜컹-----!

마차의 철문이 요란한 소음을 내면서 열렸다.

[무적검, 죽지는 않을 모양이군.]

황녹천이 마차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소일초는 등을 보이고 누워있었다.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 들어왔나?]

[천만에, 자네와 이야기를 좀 할까 싶어서……]

황녹천은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많이 컸군, 황녹천. 내가 발톱빠진 사자같은가?]

[그런 말은 하지 마세. 자네와 이야기만 잘 되면 나는 자네 몸을 치료해 줄수도 있네.]

황녹천은 예의 그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천보에 들어가기만 가면 제일 먼저 죽여버리겠다……)

소일초는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소림사의 대환단이지, 이것 하나면 자네의 내상은 물론 외상도 어느정도 치료되겠지……]

황녹천은 작은 옥병에서 구슬만한 알약을 꺼내 보였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 그의 말처럼 대환단인 모양이었다.

(이 계집이 무슨 수작을 하자는 거야?)

소일초는 그 전에 주소아로부터 황녹천이 여자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계집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으면 자네는 정천보에 갈 것 없이 여기서 죽게되겠지……]

황녹천의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호한 음성이었다.

[나에게 유리한 이야기라면 마다할 리가 없겠지……]

소일초가 말했다.

[좋아 무적검! 솔직히 다 말하겠다. 나는 지금 삼수의 밑에 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 조건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좋지. 나 역시 삼수를 죽이고 싶으니까……]

황녹천이 조건을 제시한다.

[네가 정천보를 장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그러면 너는 명실공히 정사무림을 일통한 무림의 제왕이 되겠지?]

[구미가 당기는군, 하지만 너는 무엇을 얻게 되지?]

[무림이 일통된다고 하더라도 정사가 뒤섞일 수는 없겠지, 필연적으로 분리해서 통치해야 할테고 그러면 최소한 두 명의 군왕(君王)이 필요하게 될 거라고 생각되지 않은가?]

[그래야겠지……]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중의 한 군왕이지.]

황녹천은 의미심장하게 소일초의 등을 보고 웃었다.

소일초는 여전히 처음의 자세대로 말만 주고받는다.

[왜 스스로 무림을 일통하고 제왕이 될 생각을 하지 않지?]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나에게는 머리만큼 무공이 따라주지 못해. 필연적으로 무공이 강한 자를 업고 있어야만 무림의 강자들을 상대할 수 있지. 네 무공과 내 머리가 결합하면 천년의 무림제국을 건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황녹천의 야심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컸다.

[대단한 야심가였군, 황녹천 너처럼 거대한 몽상을 가진 자를 난 만나본 적이 없다. 왜 그 야심을 삼수와 함께 하지 않나?]

소일초가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처음엔 그럴 생각이었지. 아니 그 전에는 구파일방을 이용할 생각이었어. 구파일방의 수뇌들 중에서도 옛날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야심가들이 적지 않거든, 한데 그들 중에 진정 대단한 인물은 없었어.]

[…………!]

[모두가 그렇고 그런 정도였지, 조금 났다는 것이 소림사의 도봉이나 선인일검자나 홍건개 정도였으니까.]

[녹림맹주인 네가 어떻게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지?]

소일초에게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였다.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의 신비가 벗겨지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구파일방의 세력이 위축된 만큼, 그들의 살림도 빈약했지. 그건 접근할 좋은 기회였다. 처음에 그들에게 신분을 밝히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금과 은을 보냈지……]

[…………!]

[처음엔 적은 양이었으니까 별생각 없이 받더군, 그래서 점차 그 양을 늘려나갔지. 그들의 생활은 윤택해졌고 배에는 기름이 끼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이미 나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곤란하게 되었고……]

[…………]

[나의 존재에 상당한 신경을 쓰기 시작했지, 그것은 곧 나의 영향력의 증대를 의미했고 나는 그들을 배경으로 녹림맹을 천하의 종주로 만들려고 했었지.]

그의 말에 소일초가 의문을 제기했다.

[구파일방이 그렇게 어리석지만은 않았을 텐데…………]

황녹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삼성무림청과 우리 녹림맹의 싸움이후에 구파일방은 단교를 선언하고 나왔지. 자기들의 치부가 노출될까 싶어서 두려워한 것이었어. 그래서……]

[……?]

[화가 난 나는 그들과 지내면서 파악해 놓았던 것들을 토대로 그들을 삼수에게 팔아버릴 생각을 했다. 하늘이 나를 도와서인지 삼수는 옥녀봉의 결전에서 심한 타격을 받고 잠적할 장소를 물색하는 중이었지……]

소일초가 빈정거렸다.

[정말 하늘이 도왔군……]

황녹천은 그의 말에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말만 했다.

[삼수와 손을 잡고 구파일방의 우두머리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지. 지금의 인물들은 모두 가짜고 우리의 꼭두각시야.]

말을 하다 말고 황녹천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는 정말 기뻤지. 내 야망의 반은 달성된 듯 했으니까. 구파일방은 손아귀에 들었고, 삼수는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어. 한데……]

소일초는 침을 삼켰다. 이제 진짜 중요한 대목인 것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고문으로도 다 들을 수 없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말로 진실이고 깊이 있게 이야기되는 첫사랑의 추억담과 같은 것이다.

황녹천이 말을 이었다.

[삼수가 미쳐버렸어!]

황녹천의 말은 던져버리듯이 튀어나왔고, 소일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근래에는 무림의 고수가 미치는 것이 무슨 추세라도 되는가?

마금석이 미치는 것을 본 적이 언제라고 또 삼수마저 미쳤단 말인가?

[셋 모두 말인가?]

[그래, 그들은 마공에 미쳐서 괴상한 짓을 서슴지 않았어. 무림일통 같은 것은 희미해져 버리고 파괴와 살인에만 정신을 쏟는 거야. 끔찍한 마물들을 만들어 가면서……]

소일초는 황녹천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삼수가 칠십이기재들의 한과 저주, 천지파멸의 뜻을 실행하려는 거야……)

끔찍한 일이다.

그들이 무림일통 정도가 아닌 천지파멸을 실현하려고 한다면……

그 참상은 측량할 수 도 없을 것이다.

삼수……

그들은 칠십이기재들이 만든 마교칠십이절기를 얻은 후에 자기들의 무공과 결합하여 더욱 가공할 무공으로 만들어간 것이다.

게다가 마공의 사악괴이한 수법들에 눈을 뜨면서 점차 깊이 빠져들어가서 칠십이기재들이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원했던 그런 마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오직 피와 파괴만을 추종하는 천지파멸의 도구가 되어버린 샘이다.

뜻밖의 장소에서 정통마교주들이 나온 것이었다.

이것은 칠십이기재는 물론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원천기가 옛날 같으면 제일 좋아할 일이겠군, 세명의 종자가 생겼으니……)

황녹천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너에게 죽은 세 마물들, 탕마령주와 혈군자, 그리고 마금석들은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었지. 천하의 무적검인 너도 정신없이 혼이 났을 정도니까……]

[…………!]

[지금쯤은 그런 마물이 아마 백여 개는 만들어 졌을 걸? 그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만들 수 있게 됐거든.]

소일초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경악했다.

그런 마물들이 백여 개라면……

백인장의 고수들이 위험할 지도 모른다. 아니 위험할 것이다.

[얼마 후 세상은 그들 마물들로 인해서 피에 젖지 않은 곳이 없어질 거야. 천하에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황녹천도 고개를 내저었다.

[두려운 일이야 두려운 일…………]

소일초가 말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너 역시 그 일에 동참하지 않았나.]

[그래,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은 무림의 패권에 동참하겠다는 것이지 세상을 깨뜨리려는 것에 동참하려는 것이 아니었지……]

소일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추었어. 그건 바로 마장탑의 칠십이기재들의 뜻인 천지파멸을 위한 일이야. 그 뜻을 삼수가 이행하고 있는 것이지.]

황녹천이 소일초의 등을 보면서 말했다.

[너도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모양이군……]

[조금은……]

[상관없지. 아무튼 삼수를 제거해야겠어. 그리고 난 후에 그 마물들을 없애야겠어.]

[어떻게?]

[처음엔 너를 나의 명령만을 따르는 마물로 만들어 그들을 차례로 죽일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직접 너와 거래하기로 한 거야.]

소일초가 신중하게 물었다.

[삼수를 만나면 알아볼 수는 있는 건가?]

[그들은 신분을 감추는데 도가 튼 자들이지. 그래서 내가 만약의 경우에 그들을 알아보기 위해 내공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한옥패를 자철(磁鐵)로 만든 목걸이에 끼워서 선물했었지.]

[…………!]

[그들은 그 목걸이를 한 시도 떼어놓는 적이 없지, 내공을 높여준다는 무림기보인데 어찌 몸에서 뗄 수 있겠나?]

소일초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그걸로 삼수를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황녹천의 머리가 끄덕여졌다.

[물론, 금광을 찾는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자침(磁針: 나침반)만 있으면 그들이 근처에 오는 즉시 알 수 있지.]

소일초는 황녹천이란 인물이 정말 야망을 품을 만큼 대단한 두뇌의 소유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림에 그가 깔아놓은 복선이 얼마나 많을 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대충 할 말은 다한 것 같군, 이 대환단을 먹고 상처를 치료하게, 삼수만 자네가 제거해 주면 내가 마물들을 제거하고 정천보를 장악해 자네에게 바치겠어. 그럼, 자네는 무림의 제왕이 되고 나는 무림의 군왕이 되는 거지. 사실……]

[…………]

[정천보 같은 반쪽의 주인이 되는 것 보다는 최초로 통일된 무림의 이인자가 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황녹천은 그의 등 뒤에 한 자루의 단검과 대환단을 놓고는 나가버렸다.

출발이다-------!

그의 명령에 따라서 마차와 함께 일천여 명의 사람들이 움직여갔다.

두두두두-------!

 

× × ×

 

소일초는 대환단을 품에 넣고 단검을 보았다.

단검의 끝은 다른 쇠를 붙여 만든 것이었다.

단검을 움직일 때마다 그것은 곤충의 촉수처럼 휘어지며 북쪽을 가리켰다.

교묘하게 만들어진 자침(磁針)인 것이다.

마차는 마침내 정천보의 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편,

정천보에는 은밀히 움직이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치밀한 경계망을 뚫고 그림자처럼 스며들며 정천보의 곳곳으로 흩어지는 그림자들……

소일초가 탄 마차를 추월해온 백인장의 고수들이었다.

 

-------모두들 잊지 마라. 마차가 정천보로 들어와 모든 이목이 그곳으로 쏠린 순간 방화한다.

 

입에서 입으로 말이 전해지는 동안에,

백인장의 고수들은 정천보의 모든 전각들을 각기 점거해 가고 있었다.

 

소선풍-------!

 

백인장의 장주이자 주소아가 무림인을 논할 때 주하운 다음가는 두번째의 고수라고 일컬었던 사람,

그의 어깨에는 어린도가 매여져 있고, 오늘 결전을 위해서 소매가 딱 붙은 백색무복을 입었다.

그의 뒤에는 이주용과 조예진이 뒤따르고 있었다.

이미 정천보의 깊숙이 들어온 그는 거침없이 당당히 자기 집 인양 걸어갔다.

[누구……윽!]

당당히 걸어오는 소선풍과 그의 두 부인을 보고 정천보의 한 무사가 물어보려다가 조예진의 지풍에 격중되어 황천길로 가버렸다.

소선풍은 힘차게 걸어가고 그의 두 부인은 그들의 앞을 막는 무사들을 가차없이 살해했다.

(마누라도 둘이 되니까 쓸데가 많군.)

소선풍은 속으로 뿌듯했다.

그들이 가는 곳은 정천보의 뇌옥이었다.

백인성의 좌봉공이자 무림 십이 대 고수의 하나로 허명(?)을 날렸던 무심군자의 작전에 따라 그들은 뇌옥을 파괴하려 하는 것이다.

방화와 살인, 그리고 뇌옥의 파괴가 삼박자를 이루어 거대한 정천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려는 것이다.

혼란의 와중에서 편안히 그들은 삼수를 찾고 살인을 저지르면 되는 것이다.

강력한 집중력과 전투력을 가진 백인도객은 천군이든 만마이든 상대해낼 것이다.

[이쪽길이 맞기는 맞소?]

소선풍이 누구를 향해서인지는 몰라도 두 부인 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

[사은상 그 애가 그려준 그림에 따르면 저 안쪽 절벽 속에 뇌옥이 있어요.]

조예진이 말했다.

[그럼 빨리 움직입시다. 이러다간 우리가 제일 늦겠소.내 뒤를 쫓아오도록 하시오.]

말과 동시에 소선풍의 몸은 무엇에 끌려가기라도 하는 듯 쭉 앞으로 빠져나갔다.

그들을 보고 뛰쳐나오던 정천보의 무사들이 그가 지나감에 따라서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졌다.

그 뒤를 바짝 붙어서 이주용과 조예진이 달려갔다.

몇 개의 전각을 지나노라니 곳곳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는 백인도객들이 있었다.

그들은 품위유지 하느라고 꾸물거린 장주부부보다 더 빨리 자기들의 정해진 위치에 가 있었던 것이다.

전각들을 지나서 작은 관목 숲이 있었다.

소선풍은 암습이나 함정을 두려워하는 작은 고수가 아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 들어갔다.

그곳을 지나야 뇌옥이 있는 절벽이 나오는 것이다.

순간, 그와 그의 두 부인은 걸음을 뚝 멈추었다.

숲에 가득하던 키가 크지도 않던 나무들이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숲에 진세(陣勢)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군.]

소선풍이 말하며 자기가 모르는 진세인지라 두 부인을 둘러보았다.

그녀들도 알 수 없는 진이었다.

소선풍의 옷자락을 잡고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었다.

소선풍이 조금 더 둘러보다가 어깨에서 어린도를 풀어들었다.

[보내주지 않으니 부수고 가야겠지.]

두 부인을 보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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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四 章

 

              생기지도 않은 아들을 賭博으로 날려버린 사나이

 

 

 

숭산 태실봉을 향하여 달리는 마차는 지나가는 땅마다 깊은 바퀴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겉모양은 보통 마차와 같았지만 그 속은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하나의 작은 철옥(鐵獄)이다.

말을 타거나 경신술을 펼치며 마차의 사방에서 일천 명이 넘는 고수들이 달려가는데, 마차 안에서는 폐인이 되다시피한 청년이 드러누워 있었다.

머리 위쪽에는 험악하게 패여 두개골이 드러나 보이는 심한 상처를 입고 있으며, 갈라져 있는 옷 사이로 시뻘겋게 갈라져 아물지도 않은 긴 상처가 보였다.

바로 소일초였다.

혈군자의 장환술을 격파하지 못하여 두 사람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고 황녹천에게 잡혔던 그……

벌써 이틀 동안을 마차에서 보냈건만 그의 상처는 조금도 차도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있었다.

제일 먼저 걱정이 되는 것은 격전 중에 잊어 버렸을 백인장의 신물 청옥소도와 사부인 검마의 사리(舍利)를 원천기 등이 찾아 주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둘다 그에게 소중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하나는 가문의 상징이고 하나는 자신을 주켜주었던 스승의 진체사리이다.

그것들이 가치없이 버려지거나 남의 손에 들어간다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청옥소도에는 백인장의 최고 절학인 마도구식이 숨어있기까지 하는 것이니 무림에 나돌면 능히 혈겁을 일으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위험을 느끼고 다급히 깨어나지도 않은 사옥상을 땅에 뭍은 것도 마음에 걸렸다.

숨은 쉴 수 있도록 해 놨으니까 질식하지는 않겠지만 혹시 원천기 등이 돌아오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온다면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닐 그녀가 어떻게 할 지 짐작 할 수가 없었다.

또한,

자기를 생포한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 역시 그의 의문 중 하나였다.

황녹천이 어떻게 해서 탕마사십사객과 함께 혈군자나 마금석같은 고수들을 데리고 자기를 공격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은상의 말로는 삼수가 구대문파를 장악하는데 황녹천의 도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수 많은 의문들,

어느 하나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들과 더불어,

그의 생각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장환술을 어떻게 대처하는 가 하는 것이었다.

절세의 무공 일초검공도 상대가 어디 있는 지는 최소한 알아야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은 숨도 쉬지 않고 심장의 박동도 들리지 않으며 전혀 기척도 없이 보이지도 않는 중에 공격해 들어오는 것은 진짜 유령과 싸우는 짓이다.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흔적도 없이 도륙당했을 지도 모르지……)

[일초야 일초야 그 걸 어떻게 깨뜨린단 말이냐? 사부께서 가르쳐 주실 때 배워 놀 것이지 이제와서 그때를 후회한단 말이냐……휴……]

무학이 아주 깊은 경지에 이른 대 고수들은 장환술에도 대부분이 일가견이 있다.

장환술도 역시 무학의 한 분야이기에 연구하는 것이었다.

장환술……

환상을 만들어 내고 나약한 정신과 완고한 정신 등 모두 정신적인 틈을 파고들어가, 눈과 귀를 막음은 물론 심한 경우 수족을 묶어버리기도 하는 정신의 무공이었다.

환술이라고도 하는 것은 흔혹되지 않으면 되지만 그만한 수양을 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공과 결합되어 펼쳐지는 장환술은 아주 무서울 수도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장환술을 깨뜨릴 능력이 없는 자라면……

[무공이 강하면 뭘하나……장환술은 깨뜨릴 방법이 없는데, 제길……반쯤 죽었을때 사부를 찾아서 다시 배워갖고 오는 건데……]

남만의 검마동에서 사부와 함께 있을 때였다.

검마는 비록 일초검공 하나로만 이름을 떨쳤지만 다른 무공에 대한 이해도 남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장환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깨뜨리기는 물론 펼칠 수도 있었다.

소일초에게 그가 말했었다.

[장환술을 깨뜨리자면 펼치는 사람에 응해서도 안되고 거부해서도 안된다. 시전자는 그것을 노리는 것이다.]

검마는 그에게 장환술과 깨뜨리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했으나 고집불통 소일초는 잡술(雜術)이라며 배우려 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도 장환술은 강력한 의지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변덕이 심한 그가 배우려면 얼마나 혼이 나야할 지 알 수 없었기에 이 핑계 저 핑계로 건너 뛴 것이었다.

검마는 그 당시 한숨을 쉬었다.

[배울 때 배워 놓지 않으면 언제가 후회할 때가 오는 법이거늘……]

[검은 천하병기의 으뜸이고 도에 이르기 가장 정통적인 방법이라 하셨죠? 그럼 검술 하나로도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전 안 배울래요.]

소일초는 자신있게 말했었는데 사부의 말은 사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마차는 정천보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그의 생각은 해답을 찾아서 달리고 있었다.

잡히지 않는 해결책……

[상대방에 응하지도 말고 거역하지도 않으면 깨뜨릴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순간,

만년한철로 된 마차의 한쪽에 희미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내가 도와줄까?]

소일초는 흠칫했다.

이 마차 안에 사람이 나타나다니……

창살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이는데 한 모퉁이에 단정히 앉아있는 미남청년……

소일초는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것보다 더 기뻤다.

이리저리 터진 몸을 가누고 넙죽 절을 했다.

[여기서 나가겠느냐?]

[아닙니다.]

[몸을 완전히 상했구나. 죽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주하운이 손을 뻗어 그를 만지려 했다.

소일초는 고개를 가로지었다.

[몸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보다 저……내기 도박 딱 한 번 만 하면 안되겠습니까?]

소일초는 뼈가 드러난 머리를 긁으며 히죽 웃었다.

주하운도 어처구니없는 그의 태도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견딜 만 하기는 한데 곤란한 점이 있는 모양이지?]

[네……]

[아까 중얼거리던 것 말이냐?]

[네……]

소일초는 싱글벙글했다.

저승에가서 사부를 모시오지 않아도 장환술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 젊은 형씨가 모르면 천하의 누가 안단 말인가?

소일초가 처참한 모습으로 귀신처럼 웃는 모습을 주소아가 봤으면 평생 곁에 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도 내기로 결정하자. 나도 걸어야할 중대한 것이 하나 있으니 잘됐다.]

주하운은 소일초와 만나면 체면이고 뭐고 어디론지 반쯤은 달아나 버리고 그와함께 어울린다.

손녀 사위될 젊은이와 이런다는 것이 체통이 서는 일은 아니지만 누가 알라고?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할까요?]

소일초는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필승이라고 할 수 있지. 내가 방법을 정하지.]

[그럼 제가 원하는 것을 주셔야 합니다.]

[좋아. 내가 원하는 것은 이번에도 한가지 뿐이야.]

주하운도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자 이렇게 하는 거야. 내가 장환술을 깨뜨리는 방법을 금방 가르쳐 줄 수 있으면 내가 이긴 것이고 일 각 이내에 가르쳐 주지 못하면 네가 이긴 것으로……]

[그……그럼……]

소일초는 아주 당황했다.

설마 그런 내기를 걸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내기에서 이긴 조건으로 장환술을 가르쳐 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벌써부터 자기의 넋두리를 다 듣고 있었는지 먼저 그걸 들고 나온 것이다.

장환술을 배우기는 하겠지만 주하운의 승리가 될테고 조건으로 무언가를 들어줘야 할 것이다.

이기기 위해서,

절실히 필요한 장환술을 깨는 비법을 귀를 막고 배우지 않을 도리도 없다.

소일초는 한숨을 쉬었다.

[제가 지고 만 것 같습니다. 조건을 말씀해주십시오.]

하하하하------!

주하운은 크게 웃었다.

이제야 전에 당했던 앙갚음을 톡톡히 하게된 것이다.

속아서 무공 가르쳐 주고 거기다 열흘 동안 창산기슭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던 보복을 하는 것이다.

웃음소리가 컸지만 소일초도 걱정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가 있는 이상 그가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웃음소리는 마차 밖으로도 나가지 않았다.

[내 조건은 간단해. 앞으로 소아가 낳는 아이들 중 두 번째의 사내놈에게 반드시 주씨성을 붙쳐주고 나한테로 보낼 것!]

[그……그건 제 아버지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텐데요?]

[선풍이 그놈이 뭐라고 하면 내가 훔쳐가 버릴 테니 그렇게 알라고 해!]

[소아는 무공이 강해서 어쩌면 아기를 낳지 못할 지도 모르는 걸요……작은 어머니처럼요.]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앞으로 잘만 낳을 거야. 만약 딴소리하면 또 직접 백인장으로 가서 훔쳐서라고 가버릴 거니까 좋게 들어.]

소일초는 낳기는 커녕 만들어 지지도 않은 둘째 아들 놈을 도박으로 날려버렸다.

주소아가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할지 화를 낼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앞으로 마누라도 도박으로 날릴 놈이라고 하지는 않을까 모를 일이었다.

 

낳지도 않은 아들은 예약되어버렸고……

마차는 달려가는데 어떤 장환술이건 간단히 깨어버릴 수 있는 비법은 전수되고 있었다.

[그 쌍둥이 처녀들 중 정신을 금제 당했던 아이도 네 여자냐?]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근래에는 무림에 기재들이 많이 나타나는 구나. 그 아이도 너와 소아, 그리고 소중이를 제외하고는 따를 사람이 없을 기재이더구나. 휴……]

[그 여자는 정신이 조금 모자라는……]

[어릴 때의 충격때문에 정신의 발육이 멈춰버렸었던 거야. 고쳐줬으니 그 값은 나중에 쳐서 받겠다. ]

그 말을 듣고 소일초는 질겁을 했다.

[또 아이입니까?]

[아이는 됐어. 다른 걸 생각해 봐야지. 소영감은 무슨 복이 많아서 후손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맺히고 나는 하나있는 손녀까지 빼앗겨 버려야 하나……그 영감이 아직도 한번 진 것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있나……]

그는 소일초의 조부(祖父)인 소호연(蘇昊硯)이 무척 부려운 듯 했다.

[나는 가마!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있더라. 네 물건들도 안전하게 회수한 모양이고……물가에서 고깃덩어리까지 잔뜩 가져온 모양이더군……에잇, 나는 그놈들이 보기 싫어서라도 이쯤에서 북경으로 가버려야 겠다.]

주하운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개처럼 흩어지며 마차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가 말하는 그놈들은 두말하지 않아도 삼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떠나는 주하운은 마음이 홀가분했다.

뜻 밖에도 소일초가 심각한 상태가 아니어서 별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았고 자신의 배덕한 제자들은 소선풍 등이 알아서 제거할 것이다.

손녀도 만났고 귀엽던 조예진도 다시 만났다.

즐거운 마음으로 백소중과 함께 북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백인장의 힘을 알기에 정천보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 × ×

 

이 보다 앞선 시간,

백인장의 모든 고수들이 한 곳에 모아 놓고 원천기가 별채의 벽에다가 사람 키만큼 큰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의 키는 여섯 자가 될락 말락하고, 체형은 나와 거의 같소이다. 무게는 내가 아닌 여기 어느 분이 가장 잘 아실 것이고……]

킥킥킥------

여기저기서 주소아를 바라보며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주소아의 얼굴이 발갛게 되어 원천기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모른 척하고 계속 말한다.

[눈은 장주님이신 소대협의 눈을 그대로 그리면 되겠고……볼은 심술기가 있으니까 아마……]

그는 더 말을 잇지는 않고 이주용을 힐끗 본 후에 그대로 그렸다.

우하하하-------!

이극송과 소선풍마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어버리자 백인장의 사람들 모두가 기회다 싶어 마음놓고 웃었다.

이주용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는데, 주소아는 그 모습까지 소일초가 화날 때의 모습같아 보였다.

(어이구 시원하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구나……)

남아있는 일곱 원로도객의 우두머리 동평선생은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그의 생각은 모든 원로도객들이 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계속해서,

코는……귀는……턱은……

하면서 원천기가 재미나게 이야기 하면서 그려나가자 어느새 소일초의 그 얼굴모습이 되어버렸다.

소선풍과 이주용이 있었기에 더욱 완전하게 그릴 수 있었다.

부모를 닮지 않은 자식이 어디있어야 말이지……

원천기는 소일초의 변해버린 모습을 백인장의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이제 정천보에 들어가게 되면 마주치게 될 테니까 몰라보고 살수를 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백인장의 사람들과 그 친구들은 느긋한 마음으로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승리는 불을 보듯 분명한 것이었다.

그들이 병기를 점검하고 호기를 불태우고 있을 때,

하늘에서 커다란 검은 새가 두 마리 내려왔다.

그들은 비성성이었다.

현재 백인장의 사람들 치고 비성성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몇 년을 백인장의 가라앉은 섬에서 보낼 때 그들의 가장 재미나는 소일거리 중의 하나가 비성성들의 소동을 보는 것이었다.

그 비성성들은 사람들의 생활을 흉내 내려고 여러 가지 짓을 하곤 했었는데 엉뚱하고 괴상하여 우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조예진이 비성성의 말을 대충 알아듣고 사람들에게 말해주었다.

[마차가 이십 리 정도 달려갔다고 합니다. 지금 쫓으면 그들의 방심을 틈타서 쉽게 정천보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동은 즉시 이루어지고……

일백 삼십 여 명에 달하는 고수들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백인도객(百刃刀客)……

백인장이 생긴 이래로 최초로 모든 백인도객이 한 곳으로 출동했다.

누가 이들을 대적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문파에서 이들의 힘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

일천 명이 넘는 고수들에 둘러싸인 마차는 정천보에 점점 가까워지고……

그들의 뒤에서는 무림최강의 문파 백인장의 주력이 뒤따르고 있었다.

 

× × ×

 

마차 안에서 소일초는 정천보가 가까워 옴에 따라서 몸을 정비하고 있었다.

처음에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정천보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원래의 계획대로 정천보로 모여들고 있을 것이다.

주하운이 이미 그들을 만나본 듯하지 않았던가?

사은상의 증언에 의하여 삼수가 정천보의 우두머리임은 이미 밝혀졌으니 그들을 죽이는 일 만 남았다.

자기를 호송하고 있는 황녹천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무공으로 행세하는 자가 아닌 비밀과 음모로 살아가는 자이니까 무식하게 때려잡으면 될 것이다.

건방진 구파일방이야 삼수를 때려부순 후에 추궁해도 될 것이다.

소일초는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릿가죽의 일부분이 찢어져 나가고 흰 두개골에 패여진 상처가 남아있었다.

혈군자의 섭선에 당한 흔적이다.

손바닥으로 슬금슬금 문지르자 뼈가 아물고 머릿가죽이 다시 덮여나왔다.

상처가 깊은 곳이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금방 치료할 수 있다.

그의 몸속에는 백송균화의 힘이 있으므로 생명을 살리고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내상도 치료하고 외상도 치료했다.

만신창이 되었던 사옥상의 몸도 깨끗이 치료했는데 자기 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외상이 치료되고 나니 공력은 절로 되살아났고 마차의 문이 열리고 삼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의 손에서 붉은 마황검이 일렁이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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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三 章

 

          客店에 찾아온 神仙

 

 

 

 

사은상은 땅속에서 찾아낸 사옥상을 끌어안고 울었다.

눈 만 멀뚱거리는 사옥상은 완전한 백치가 되어있었다.

취풍녀와 한천이기 사마귀 등은 폐허로 변해버린 격전장에서 넋을 잃고 있었다.

사방 수 십여 장을 휩쓸고 부수고 뒤집어 버린 대 혈투는 어떤 것이었는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살점들과 뿌려진 피……

현장을 둘러보며 원천기는 중얼거렸다.

[소일초가 죽었단 말인가?]

그의 말에 취풍녀가 강한 도리질을 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그는 결코 죽지 않아요.]

그녀의 말은 소일초에 대한 철저한 신념이었다.

그때 문득,

[저기에 보물이 있어.]

투귀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곳으로 쏠렸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투귀는 다가가서 여러가지 물건들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주귀와 지금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원천기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모두 투귀에게 쏠리는데,

원천기와 한천녀, 그리고 도귀와 사은상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겉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었다.

투귀의 귀신같은 눈이 무엇을 찾아냈는지 그들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취풍녀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울부짖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그분이 돌아가실 리가 없어요. 얼마나 강한지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누가 그분을 죽일 수 있단 말이에요.……]

그녀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에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천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진정시키고 있을 뿐……

원천기가 겉옷을 벗어서 주변에 떨어져 있는 살점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기 시작하자 사마귀도 각자의 옷에 살점들과 뼈조각들을 주워담기 시작했다.

[우왝---왝-----]

사은상이 심한 구역질을 했다.

어둠 속에서 두 시간이 넘도록 샅샅이 뒤지며 주운 살점들을 한 곳에 모으자 상당한 부피가 되었다.

불타는 처참한 인간의 잔해를 바라보는 그들의 볼에는 무림의 강호들답지 않게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취풍녀는 충격이 얼마나 심했는지 실신하길 거듭했다.

사은상이 재를 수습하여 원천기가 벗어준 겉옷에 싸서 손에 들었다.

 

× × ×

 

북경의 대운루(大運樓),

자금성으로 향하는 주작로 변에 있는 이 주루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여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왁작지껄한 가운데 무림인도 관리도 구분이 없다.

한데,

이 시꺼러운 곳에서 방금 만난 두 사람이 구석진 자리에서 소곤소곤 이야기 하고 있었다.

[……등천마세의 주인인 무적검이 잡혔다네……]

[그게 무슨 말인가? 무적검이라면 마도사상 최고의 기재라고 소문났던 그 아닌가?]

[중원제일의 신비인이라는 황녹천이 잡았다더군……]

[자넨 이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가?]

[지금 벌써 소문이 안 도는 곳이 없어……숭산 태실봉의 정천보로 데려가는 중이라더군……]

그들의 이야기에 주루에 앉은 무림인들 중 귀가 밝은 상당수의 인물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중에는 준미한 소년도 한 사람 있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살며시 다시 물어보았다.

사실이라고 한다.

어디서 부터 퍼지기 시작한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사방에 쫙 퍼졌다고 한다.

소년은 빠른 걸음으로 주루를 나가 어디론지 사라졌다.

 

× × ×

 

숭산 밑에는 지금도 유명한 무술의 고장 중의 하나인 등봉현이 있다.

이곳에서 소림사가 있는 소실봉으로도 갈 수 있고 정천보가 있는 태실봉으로도 갈 수 있다.

이곳 등봉현은 그 이름 만큼은 크지 않는 고을이었다.

주민이래야 고작 삼사 천에 불과한……

한데,

느닷없이 이 등봉현에 무수한 이방인이 모여들며 발칵 뒤집히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무림인들이었다.

객점은 일찌기 만원(滿員)이 되고,기루마저 손님들로 가득차 있었다.

오늘,

등천마세의 주인인 무적검이 이곳을 지나는 것이다.

그리고,

등천마세의 고수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신분을 숨기고 포진해있기도 하다.

또한 정천보의 고수들이 무적검을 지키기 위해 집결하여 곳곳에서 등천마세의 고수들과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

정천보에서는 정예고수 일천명을 동원하여 그를 호송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고수들은 단지 외적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등봉현의 여러 객점 중의 한 객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에 의해 통채로 세를 주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천에 싸인 길죽한 물건을 등에 지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사방을 방비하고 있었다.

그 객점의 가장 별채에는 이십여 사람이 모여 숙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무림의 최강세력 백인장의 사람들이었다.

백인장의 요인들은 모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주인 도왕 소선풍과 그의 두 부인, 그리고 일곱 명의 원로도객과 좌우봉공이 있었다.

거기다, 청옥검궁의 궁주인 검왕 이극송과 검왕자 이수군이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얼굴에 서릿발을 드리우고 있는 수척한 주소아와 한천이기, 그리고 취풍녀와 사씨자매, 사마귀가 배석하고 있었다.

이극송이 창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는 삼수가 도망칠까봐 그렇게 겁이나는가? 일초가 비참하게 끌려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빙장어른! 일초가 정천보에 들어가고 난 후에 손을 쓰도 늦지 않습니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면 다시는 삼수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소선풍이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는 내가 죽고난 후에 삼수나 찾아다니게. 나는 오늘 무슨 수가 있어도 일초를 구하고 말겠네.]

[삼수는 그 동안 모든 무림의 혈겁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해 왔습니다. 이번에 뿌리를 뽑지 못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칠지 모릅니다.]

이때 주소아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제가 당돌하게 한마디 올리고자 합니다. 고모부! 고모부께서는 호정수신(護正修身)하는 백인장의 장주이시고 무림의 대협이시니 혈육의 정보다 정의를 표방하시는 것이 당연하십니다.]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구나.]

[그러나, 고모부! 저는 무림의 대협도 아니고 정의를 숭상해온 협객도 아닙니다. 저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그 뿐입니다. 저 또한 검왕 할아버지처럼 혼자서라도 그를 구할 것입니다.]

[애야, 네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이란다. 하지만 일에는 대소가 있고 무리에는 우두머리가 있는 것이니 우리는 자중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조예진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고모! 지금 그는 오늘 괴물로 변해서 모습을 나타낼 지 내일 괴물이 돼서 우릴 죽이려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그를 한시라도 빨리 구해야 해요. 정천보로 들어가면 이미 늦을지 몰라요……엉엉……]

주소아는 마침내 울고 말았다.

그때,

[장주님, 소장주님의 친구분이라면서 찾아온 소협들이 계십니다.]

밖에서 도객 중의 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선풍이 얼굴을 찌푸렸다.

백인장의 종적이 드러난 듯 해서 기분이 언찮았던 것이다.

[이리로 모두 모시고 오도록 하시오.]

백인장주는 백인장의 도객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을 항상 예로써 대해야 하는 것이 백인장 장주가 지켜야 할 율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소선풍은 모두라는 말을 강하게 발음했다.

일이 중요한 만큼 수상한 자이면 죽이거나 억류하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얼마 후 문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림말학(武林末學) 백소중이 대협을 뵙고자 왔습니다.

[들어오시오.]

주소아와 한천이기 등이 백소중이라는 말을 듣고 맞이하기위해 일제히 일어섰다. 백소중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데, 문을 들어선 사람은 어리고 키가 작은 백소중이 아니고 훤칠한 미남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뒤를 백소중이 조심스럽게 따르고 있었다.

주소아와 한천이기의 표정이 환히 밝아지며 모든 근심이 가시는 듯 했다.

그리고 소선풍과 조예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절을 했다.

소선풍은 깊이 허리를 숙일 뿐이지만 조예진은 땅에 머리가 닿는 큰 절을 했다.

검왕 이극송은 사위와 사위의 둘째 부인이 일제히 청년에게 절을 하자 어리둥절했다.

백인장주의 신분이 아무에게나 허리를 굽힐 수 있는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주소아와 한천이기도 절을 하고 있었다.

미남 청년은 주하운이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도깨비 장난 같은 일을 당해서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절을 하는 사람들은 그의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절한 후에 인사말 만 했다.

조예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신선께서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에……]

[너도 힘든 일을 많이 겪는구나. 그동안 그 곱던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주하운의 눈가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모든 것이 제가 불민한 탓입니다.]

소선풍이 머리를 조아렸다.

청년은 아주 당연한 듯이 절을 받고 여러 사람들이 절을 했건만 그들의 표정은 모두 숙연했다.

무림에서 천하제일은 물론 달마와 장삼풍에 비견되는 고금제일인이라는 칭호까지 들었던 대종사에 대한 당연한 예우요 존경의 표시였다.

[내 이미 모든 이야기를 다들어서 알고있다. 선풍이 너는 아무 염려하지 말고 네 뜻대로 하도록 해라.]

[신선께서 분부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소선풍과 조예진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찼다.

이미 모든 일은 다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주하운은 다시 주소아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너도 아무걱정 하지 말아라. 편안한 마음으로 어른들의 말씀에 따르도록 하여라.]

[네……]

대답하는 주소아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부탁이 있는 게로구나. 말해보아라.]

너른 별채 안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단지 주하운의 잔잔한 음성과 그 음성에 답하는 다른 음성만이 존재할 뿐……

주소아는 손을 들어 사옥상을 가리켰다.

주하운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오너라……]

그의 음성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며 흘려나왔다.

백치가 되어있는 사백상은 그 음성에 끌리듯이 일어서면서 주하운을 향해 갔다.

[너는 큰 일을 겪고 영(靈)이 아직 껍질 속에 갇혀 있구나. 천하에 너같은 기재(奇才)는 셋을 넘지 못하겠구나……]

주하운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녀는 스르륵 주저앉으며 잠이들고 말았다.

그녀의 몸은 부드럽게 허공으로 날아서 사은상의 품으로 가버렸다.

[깨어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게다.]

사은상이 머리를 숙여 감사했다.

주하운이 조예진을 바라보았다.

[이제 한가지 일 만하면 여기서의 일은 다 보는 것 같구나……]

조예진이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신선께서 어떤 처분을 내리시던 달게 받겠습니다.]

[내가 어찌 너를 벌할 수 있겠느냐? 일어나도록 해라……]

조예진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소중아! 인사 올리도록 해라.]

[백소중이 인사드립니다.]

조예진은 마주 답례했다. 그가 새로이 혈기문을 이어갈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정중했다.

[너희들은 자주 보았으면 좋겠구나.]

주하운이 한천이기를 보면서 말했다.

[이보다 더한 광영(光榮)이 없겠습니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크게 기쁘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들이 머리를 들었을 때 주하운은 백소중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나가 허공으로 아득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극송이 소선풍에게 물었다.

[그가 정말 신선인가? 세상에 정말 신선이 있는가?]

[방금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소선풍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물음으로 대답했다.

별채의 분위기는 조금 전과는 아주 달라져 있었다.

지금은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것 같았다.

주하운을 아는 사람들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체 그가 누군데 자네가 그토록 존경하는가? 내가 보기엔 황제도 그런 존경을 받지 못할걸세.]

[더 이상 그분에 대한 말씀은 거론하지 말아주십시오. 혹시 실수라도 할까 두렵습니다. 우리로서는 감히 그분을 앞에서고 뒤에서고 부르지도 못합니다.]

소선풍은 말하고는 입을 다물고 다시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이극송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의문이었는데 주소아와 한천이기를 바라보아도 그들의 입조차 굳게 다물려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고 아는 사람들은 걱정을 버린채 마시고 노는 사이에 소일초를 실은 호송마차는 아무탈 없이 등봉현을 통과해서 태실봉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일천 명의 정천보 고수들에 둘려싸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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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二 章

 

         미녀를 땅에 묻고 땅위에 쓰러지다.

 

 

 

발버둥치는 탕마령주……

소일초는 보면볼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언제 자기가 그처럼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던가?

전신이 욱신 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검에 갇혀있는 저 여인 또한 탕마사십사객보다 더 무서운 괴물일 것이다.

그의 검에서 면도날같이 예리한 기운이 움직여 탕마령주의 몸 사지근육을 절단해 버렸다.

살아는 있어도 수족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경력을 움직여 그녀의 경골을 부수어 버렸다.

그리하여……

소일초는 분을 풀었고 탕마령주는 풀기없는 빨래처럼 전신에 검붉은 피를 흘리며 무너졌다.

괴물이고 뭐고 간에 그지경이 된 이상 몸밖에 꿈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의 목에서는 그륵 그륵 가래 끓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대체……어떻게 생겨먹은 계집이길래 그리 지독해.]

소일초의 손에서 장력이 격출되면서 탕마령주의 면사를 날려버렸다.

[헉……!]

오……세상에……

그녀는 그의 처음 짐작대로 정말 사옥상이었다.

얼굴은 그다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자신이 정천보에 잠입하여 구하고자 했던 그녀가 벌써 탕마령주라는 신분으로 마물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목소리마저 변해 버리고 태도마저 달라져 있었다.

사옥상은 두 눈에서 백색광채를 뿜으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에서는 연신 꺼르륵 소리가 새어나오는데……

소일초는 다급해졌다.

고개를 돌려 멀리 있는 요월정을 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취풍녀도 한천이기도, 사은상도……

사백상에게 두들겨 맞고 있을 동안 그들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그들이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사람을 이렇게 괴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정도란 말인가?]

그래도 몸을 산산이 흩어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랬더라면 탕마령주가 사옥상인 줄도 모르고 정천보에서 찾아 헤맸을 것이다.

사옥상이 그를 많이 때려서 화를 돋운 것이 어쩌면 잘 된 일이었다.

풀뿌리가 뽑혀서 날아가고 바위가 깨뜨려졌으며 땅이 패인 격전장에서 그는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처럼 덜렁이가 의술을 알리는 없다.

단지 그의 손에 있는 백송균화의 신비한 축복에 의존할 뿐이었다.

그는 먼저 사옥상의 체질을 바꾸어 놓은 약물을 제거하고 그녀의 체질을 정상대로 돌리는 데 착수했다.

그의 손은 생명을 담고 있는 손……

뜻에 따라서 사옥상의 체질은 바꾸어 지고 있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밤은 깊어 가는데 그의 일행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밤바람이 차가운데 마땅히 옮길 만한 장소도 근처에 보이지 않는다.

요월정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사옥상의 체질을 돌려놓은 그는 그녀의 정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감히 몸을 다 치료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기도 난감했다.

(이럴 때 소아가 있었으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는 다시 그녀의 몸을 완전히 치료하고 수혈을 짚어 버렸다.

이제 그녀는 마물이 아닌 것이다.

그녀의 체력은 급격히 감소하여 허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동안 독과 약물을 복용해 왔었는데 갑자기 그 기운이 모두 제거되어 버린 때문이었다.

그는 자꾸만 사방을 둘러보면 일행을 기다리다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것들이 몽땅 어디로 꺼져버린 거야! 하나쯤은 남아있었어야지.]

이때,

한천이기와 오 인의 도객, 그리고 사마귀와 사은상, 취풍녀 등 소일초를 제외한 모든 일행은 사십여 리 떨어진 낡은 절에서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소일초가 사옥상과 싸우기 시작하자마자 나타난 흑의인들과 싸우면서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그들의 수효는 이백에 가까웠다.

거기에다 모두가 마물들이었다.

탕마사십사객만큼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몸체는 그들과 똑 같았다.

생사를 돌보지 않고 달려드는 그들을 열 세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대고 공격하여 백 수십 명을 죽였다.

다섯 명의 백인도객들의 도는 그들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는 신위를 보였으며, 한천이기는 그들의 몸을 풍선처럼 터뜨리고 있었다.

이 싸움의 최고 수훈자는 백인도객들이었다.

한천이기의 방법도 공력이 많이 소모되는 것이었기에 끝없이 펼쳐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백인도객들의 도는 신들린 것처럼 끝없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사마귀의 무공은 주귀를 제외하고는 마물들을 상대하기에 적당치 않았다.

그들의 매화지나 대자비수 등의 무공은 무용지물보다는 조금 나을 뿐이었다.

원천기가 소리쳤다.

[이건 아무래도 조호이산(鳥虎移山)같아. 지금 소일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어.]

[그가 감당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염려 놓아요……]

한천녀가 말했다.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그들도 우리에 대해 상당히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이봐요, 조형!]

한천녀가 소리쳐서 백인도객 중의 한사람을 불렀다.

[왜 그러시오.]

[나머지 놈들을 당신들끼리 다 감당할 수 있겠소?]

[까짓 한 번 해보지요. 이 정도도 해결 못한데서야 어디 백인장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

[좋소, 그럼 우리는 먼저 가도록 하겠소. 빨리 뒤쫓아 오도록 하시오.]

원천기는 먼저 몸을 날렸다.

한천녀와 취풍녀가 잇달아 몸을 빼냈고,

사마귀는 도망한다는 소리에 기뻐서 무공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은상을 붙잡고 부리나케 달려버렸다.

 

한편,

소일초는 툴툴대다가 갑작스런 정적을 느끼고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장을 날려서 작은 구덩이를 파고는 갈대를 넣은 다음 사옥상의 몸을 엎어서 묻어버렸다.

그의 신경은 무서운 위험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사방에는 바람소리만 들릴 뿐 가을의 그 흔한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강가에 서있는 삼 장 높이의 바위로 다가갔다.

순간,

언제 나타났는지 한 명의 중년인이 그 바위 옆에 서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보이지 않고 서있는 중년의 사나이……

적포(赤袍)를 몸에 걸치고 섭선을 접어 쥐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구름처럼 피어나는 기도로 인해서 풀벌레 소리마저 끊인 듯 했다.

그리고……

바위의 다른 쪽에도 한 명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에 걸린 검……그리고 백의……

놀랍게도 그는 미쳐버렸던 등천마세의 이교주 마금석이었다.

신형검기(身形劍氣)를 익힌 검객,

그의 모습은 전과 같았으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없이 살기가 팽창하여 오르고……

소일초는 섭선을 든 적포인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그의 가공할 기도는 마금석에 비해 오히려 나았기 때문이다.

마금석 역시 전과는 비할 수 없을 만치 강렬한 살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문득,

[무적검! 탕마령주까지 제거해 버렸다니 놀랍군……]

사방에서 들려오는 듯한 육합전성……

바로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의 음성이었다.

소일초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황녹천이 여기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중원의 정보상인이라는 황녹천……

그는 수많은 무림의 비밀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많은 이권을 챙기는 인물이었다.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소개하지. 적포인은 무림의 삼현 중의 한 사람인 혈군자라고 하지……, 그리고 그 옆의 검객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 마금석이라고……]

황녹천의 말에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혈군자 같은 고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생겨날 리는 없는 것이다.

[아마 너는 여기서 뼈를 묻게 될 거야.]

[황녹천, 장담하지 마라.]

소일초가 웅혼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녹천은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무적검, 나를 알고 있었군, 아무튼 잘 싸워보게……]

그 말과 동시에 혈군자의 섭선이 펼쳐지며 그를 베어왔다.

환상처럼 사방의 모든 공간에 섭선이 가득 차 버리고 소일초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환상을 이용한 무공이었다.

실체는 어느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천지를 갈라놓을 듯 예리한 검기가 섭선들 사이에서 그를 향해 쪼개왔다.

완벽한 합공이었다.

소일초의 손에서 마황검이 튀어나오며 일초검공이 빛을 발했다.

순간 그의 검에서 기류가 형성되며 모든 사방공간을 감싸는데……

환상이 걷쳐진 자리에 혈군자와 마금석은 보이지 않았다.

최초로 일초검공이 이름값을 하지 못한 것이다.

파아아--------

갑자기 그의 발밑에서 섭선이 솟아 오르며 그의 몸을 양분하려 했다.

뒤로 몸을 젖히며 섭선을 피하는 순간 등뒤에 싸늘한 느낌이 전해졌다.

즉시 옆으로 몸을 옆으로 비틀었다.

[윽!]

일초검공은 실패하고 등에 마금석의 일 검을 맞은 것이다.

등에서는 비스듬히 맞은 일 검에 피가 번지고 있었다.

금강체인 그도 마금석의 신형검도에 상처를 입고 만 것이다.

(혈군자는 장환술(障幻術)의 달인이었구나. 장환술을 깨뜨리는 방법이……)

그는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며 마황검에 모든 공력을 모았다.

일초검공으로 사방을 휘감아 초토화 시켜버리려는 것이다.

일초검공에 걸리기만 하면 살아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이얍-----윽!]

기합과 함께 일초검공을 펼치려던 그는 묵직한 신음을 내뱉으며 땅으로 떨어졌다.

허공에 떤 상태에서 어느새 등뒤에 혈군자의 일장을 맞은 것이었다.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떨어지는 그를 향해 다시 무시무시한 검기가 밀려오고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마치 유령과 싸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좋다. 보이건 말건 상관치 않겠다. 마구잡이 검으로 한번 잡아보마 이 쥐새끼같은 놈들……)

그의 마황검이 순간 일만 개의 그림자를 만들며 사방으로 뻗어갔다.

잇달아 휘둘러지면서 사방을 기류속에 몰아넣고……

눈마저 감아버리고 소일초는 기분이 내키는 대로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일초검공에 의해 생긴 기류는 사방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과연, 그의 마구잡이 전법은 효과가 있었다.

혈군자와 마금석의 공격이 잠시나마 뚝 끊겼던 것이다.

전후좌우상하 사방팔방으로 내키는 대로 전력을 향해서 검을 펼쳐내었다.

꽝------

쏴아아아------추앙-----

삼 장 높이의 바위가 박살나서 흩어지고 기류에 닿은 강물은 요동치며 솟아올랐다.

순간 소일초는 머리 위가 이상함을 느끼고 검과 머리를 동시에 돌렸다.

[윽!]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

어느새 혈군자의 섭선에 두개골이 패일 만큼 심한 상처를 입었다.

하나, 혈군자는 그의 마황검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류에 휘말리며 허공으로 갈가리 찢겨져버렸다.

소일초의 얼굴로는 뜨거운 피가 흘러내려 완전히 혈인(血人)이 된 듯했다.

지혈할 사이도 없었다.

일초검공이 멈추기만 하면 죽는 것은 자기일 것이다.

푸악-----

그의 검이 혈군자를 찢는 틈을 타서 그의 발밑에서 마금석이 검과 함께 치솟아 올랐다.

피하거나 어쩔 틈도 없었다.

그의 몸은 두 조각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속으로 크게 외쳤다.

(이환공!)

마금석과 그의 검은 소일초를 가르고 올라가 마황검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렸다.

소일초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이환공이 펼쳐지기는 했으나 너무나 창촐간에 펼친 것이라 불완전 했던 것이다.

상처는 어깨 뿐만이 아니었다.

복부에서 어깨까지 갈라지지는 않았지만 긴 혈선이 그어졌고 내장은 심하게 다친 것이었다.

그의 내공은 흩어져 버리고 내장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금강체의 몸이 아니라면 벌써 죽었을 정도였다.

머리에서는 피가 빗물처럼 줄줄내리며 그를 흠뻑적시는데……

[황녹천……황녹천을 죽여야……하는데……]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마황검은 다시 그의 손으로 스며들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경천동지할 대결투가 몇 시간 사이에 두 번이나 벌어진 강변에는 다시 풀벌레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한 청의면사인이 솟아오르듯이 강변에 나타났다.

바로 황녹천이었다.

[무서운 놈……! 마물이 되어있는 그들을 해치워 버리다니……]

그는 소일초의 쓰러진 몸에 손을 대 보았다.

[아직 살아있으니……더욱 가공할 놈으로 만들 수 있겠지……]

그는 소일초의 처참한 몸을 옆에 끼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강변의 그 격전장에는 소일초의 옷이 갈라지면서 흘러내린 그의 소지품들이 피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곳에는 한 사람 두 사람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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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一 章

 

         天下第一의 招式高手

 

 

 

숭산,

소실봉에 있는 대 소림사의 어느 밀실.

십여 명의 인물들이 모여서 숙의를 거듭하고 있다.

[황녹천에게서 연락이 왔소. 무적검의 행방을 탐지했다고 하오.]

[그들은 무적검을 요격할 생각이겠지요?]

[그렇소. 무적검은 숭산으로 오고 있소. 대단한 위협이 아닐 수 없소.]

[그럼 우리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지 않겠소?]

[그렇소. 우리가 비록 황녹천과 삼수의 힘을 빌린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린 정통의 명문정파요. 그들을 무조건 쫓아갈 수는 없소. 이쯤에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거취를 확실히 정해야 할지도 모르오.]

[무적검의 능력은 어느 정도요?]

[제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의 무공은 추측이 불가하오. 단지 불패도라는 여인의 무공이 알려졌지만, 가공하여 우리중의 어느 누구도 일초지적이 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오.]

밀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이 숙연해졌다.

[음……! 우리는 그럼 일단 여기에서 몸을 사리도록 합시다. 그들 두 세력 모두 정파라고 할 수 없는 곳이 있으니 그들 중 약해진 쪽을 합공하여 사파로 몰면 무림의 정의는 우리가 지키는 것이 될 것이오.]

아무도 그의 말에 이의가 없었다.

이미 절세고수가 나타나지 않는 구파일방이 계속 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런 처세술 때문인지도 모른다.

 

× × ×

 

요월정(遙月亭),

 

달과 더불어 노닐 수 있다는 요월정은 늦가을 지는해를 내려다보고 서있었다.

황혼이 곱게 나래를 접고……

물가를 날아다니는 철새들은 제 집을 찾는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요월정의 내전에는 두 사람이 마주앉은 채 나직한 음성으로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은 바로 과거 정천수호군주였던 왕혜려가 아닌가?

정천수호군주 왕혜려……

그리고 정천수호군의 부군주였던 북궁헌……

그들은 탕마사십사객의 마지막 두 명이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과거,

등마제에서의 참혹한 패배를 통감하고 스스로 탕마사십사객의 일원이 되기를 갈망했던 것으로 알려진 왕혜려……

한데,

지금 그녀는 한 사람을 향해 공손히 부복해 있는 것이 아닌가?

황혼의 붉은 후광을 등에 업고……

막연히 동정호의 수면을 내려다보고 있는 면사인……

그는 일신에 눈처럼 흰 백의를 걸치고 있었으며……

역시 눈처럼 희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한데, 그의 손,

섬세하며 아름다운 옥수는 분명히 여인의 손이었다.

그 손에는 백옥처럼 은은히 백광이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황혼에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말할 수 없이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로 끌어가는 묘한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녀의 투명한 눈망울 역시 백광을 띠고 있었다.

문득,

백의면사여인의 입에서 무감정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던가?]

독백하듯 중얼거린 그녀는 시선을 들어 멀리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대체 몇 명의 탕마객들이 그에게 당했는가……사십사객……]

이 물음에 왕혜려는 더욱 허리를 깊숙히 숙였다.

[이미 반 수 이상이 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 수 이상이?]

면사여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나……그를 척살하기 위해 탕마사십사객 중 이십 명이 함께 움직였으니……곧 좋은 소식이 오리라 기대가 됩니다.]

왕혜려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무적검……그 사내……텁텁한 분위기의 절세 미남자……나는 지금 그를 죽이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최초의 남자……)

백의면사녀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너는 그를 만나본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때의 느낌은 어땠나?]

[권태로운 표정의 종잡을 수 없는 신비한 고수였습니다.]

[탕마사십사객의 최고수인 네가 그를 상대한다면?]

[얼마를 버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패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왕혜려는 깊이 부복하며 말했다.

이 백의면사녀는 그녀로서도 처음 대하는 탕마령주(蕩魔令主)이다.

정천보에서의 서열이 십위 이내인 지고한 인물이기에 그녀는 긴장하고 있었다.

정파의 모든 힘을 결집시킨 정천보에서의 서열이 십위 이내라면 실로 엄청난 신분의 인물인 것이다.

지금까지 왕혜려로서도 본 적이 없는 탕마령주인 것이다.

무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라는 존재도 엄청난 것이었다.

하나,

정천보의 진정한 힘에는 이렇듯 가공할 인물들이 상당수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탕마령주의 독백과 같은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무적검……그를 보고 싶다.]

[…………!]

[탕마사십사객들로서도 상대할 수 없는 인물이라면……제 사십사객인 너도 필패를 장담하는 자라면……]

탕마령주의 눈에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왕혜려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령주께서 나선다면……무적검을 상대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그 남자……무적검! 등천마세의 주인이라지만……령주는 탕마사십사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존재라고 하지 않은가?)

그녀는 탕마령주의 손과 눈빛에 감도는 백광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그리고, 탕마사십사객의 령주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는 죽겠지……내 마음에 한 자락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비록 왕혜려는 처음 대하는 탕마령주이었지만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신비한 기운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본 령주가 직접 상대할 것이다……그러니 그대들은 살아있는 탕마객들을 이끌고 그에게서 물러나도록 하라……]

면사인의 말은 상대를 짓누르는 힘을 담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말하던 면사여인의 눈에 번쩍 기광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빛은 눈이 부셔져 버릴 듯한 백광,

왕혜려의 시선이 탕마령주의 눈을 따라 한 곳으로 향했다.

바로 강변이었다.

한데 그곳에 언제 나타났는지 한 사람이 저녁 강의 정경에 취한 듯 서 있었다.

백의를 표표히 날리며……

황혼을 가슴에 포용한 채 일렁이는 물결을 한 없이 바라보고 있는 청년,

누구이기에 탕마령주의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인가?

왕혜려는 기겁할 듯 놀랐다.

(저사람……그 사람……어떻게 이곳에……한데 …… 령주께서 어떻게 그를 알아본단 말인가? 아아……)

탕마령주, 그녀는 마치 빨아들일 듯이 청년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과연 그녀의 두 눈에는 은은히 긴장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무적검!]

왕혜려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탕마령주의 시선은 계속 청년을 향해 머무른 채 동공에 떠올라 있는 백광을 강렬하게 발하고 있었다.

[느낄 수가 있다……저자야 말로 무적검일 수 밖에 없는 인물이며……아니라면……장차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수가 될 인물이다.]

무서운 본능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어찌 동물과 같은 이러한 본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쿠쿠쿵------!

요월정 지붕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자의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뭉뚝한 몸체,

반쯤 날아가 버린 머리, 절단된 사지……

끔직한 모습의 동체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순간, 왕혜려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럴 수가……무적검을 척살하기 위해 나섰던 북궁헌……]

충격이었다. 끔직했다.

그녀도 저와 같은 괴물의 몸이라니 절로 몸이 떨렸다.

그녀도 영혼을 잃은 탕마사십사객의 한 사람인 것이다.

등마제에서의 참패에 대한 책임으로 강제로 제령(除靈)당하고 눈앞에 꿈틀거리고 있는 북궁헌과 함께 약물로 단련되어진 마물인 것이다.

사태는 명확해졌다.

처참한 상태에서 바닥에 꿈틀거리고 있는 북궁헌은 무적검에게 당한 것이 분명하다.

황혼을 말없이 주시하고 있는 청년, 그는 다름 아닌 소일초였던 것이다.

무적검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한천이기의 등천마세에 이름을 빌려주고 있는……

그는 느끼고 있었다.

바로 저 멀리 요월정에서 풍겨져 오고 있는 기운을……

(묘한 기분이 드는 군……마치 죽은 지 오래된 시체를 대하는 듯한 느낌……한천이기보다 더한데……)

탕마사십사객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느낌이었다.

의외의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탕마객들의 배후에 이런 인물이 도사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한 것이다.

문득,

그 시체같은 느낌의 인물이 요월정를 떠나 가까이에 접근하고 있음을 소일초는 느꼈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이미 그 인물은 등에 와 닿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가 바로 무적검인가?]

무심한 음성이 소일초의 전신으로 흘러들었다.

바로 탕마령주라는 여인의 것이었다.

 

× × ×

 

돌연,

[움직이지 마라!]

무미건조한 이 음성은 바로 왕혜려의 등쪽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녀의 뒤에서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기운이 흘러오고 있었다.

태산을 바수어 버릴 듯한 강맹한 기운,

그녀는 단지 그것만을 느끼고 있었다.

검에 찔리는 것이나 심장을 관통당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탕마사십사객의 최고수인 그녀이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걸음이라도 움직인다면 몸이 다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폭발해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이것은 단지 느낌이었지만 그녀의 등쪽에 선 인물은 그만큼 가공한 기도를 풍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원천기였다.

그리고, 왕혜려의 앞에는 다시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치렁치렁한 백발의 미녀와 다른 두 미녀……

그리고 사마귀와 다섯 도객……

그들의 무기와 손은 일제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탕마사십사객 중의 하나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듯 했다.

(무서운 고수들……탕마사십사객이면 천하의 어떤 세력보다 강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인생인지는 몰라도 그 인생의 종지부를 찍기로 마음을 먹었다.

히압-----!

그녀의 몸이 기합과 함께 뒤로 젖혀졌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원천기의 손에서 검은 묵룡이 뛰쳐나오면서 그녀를 휘감아 버렸다.

파아아아-----!

끼아아악-----!

섬칫한 비명과 함께 묵룡에 감긴 그녀의 몸이 피보라로 변하면서 묵룡과 함께 요월정 지붕을 뚫고 나가 밖으로 흩어졌다.

원천기는 아예 등천마룡으로 그녀의 몸을 분쇄시켜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여……

천하의 재녀 한 사람은 땅속에 스며들고 말았다.

꽃다운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피로서 점철된 그녀의 삶은 끝을 맺고 말았다.

모든 운명은 결국은 자기가 선택한 것인 것을……

그녀는 어느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인가……

요월정 주변의 꽃들은 그녀의 피와 기름으로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날 텐데……

그녀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사은상의 눈물 한 방울과 함께……

 

× × ×

 

[너는?]

[나는 탕마령주.]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는 무적검이다. 탕마사십사객의 뒤에 너같은 여자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너 또한 괴물이냐?]

탕마령주의 눈에서 하얀 광채가 쏟아졌다.

[나는 그런 것은 모른다. 단지 이번에 무적검이란 자를 죽이기 위해 나왔을 뿐이다.]

순간,

그녀의 백옥같은 손에서 역설적으로 붉은 혈강이 뻗쳐나와 소일초의 머리를 쳐왔다.

[혈옥강!]

소일초의 놀람에 찬 외침이 튀어나왔다.

혈옥강……

이것은 혈옥수가 극에 이른 후에 다다를 수 있는 무공이었다.

혈옥수는 사백상의 무공이었다.

십이성에 이르면 동공과 뇌가 파열되고 혈맥이 가라진다는, 무림에서 오직 그녀만이 사용한 무공이었다.

신지가 부족한 그녀를 위해 사진성이 특별히 연구하여 익히게 한 무공……

그녀는 오직 동작을 통해서만 익힐 뿐 글과 말을 통해 익힐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공을 익히기에 아주 적합한 몸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진성은 번거로움을 마다않고 키웠던 것인데……

[너는 사옥상이구나! 오! 맙소사, 벌써 마물이 되고 말았어……]

소일초의 머리를 사은상의 혈옥수가 관통하고 소일초는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탕마령주는 그의 괴이한 무공에 어리둥절 하더니 소매를 떨쳤다.

순간,

쫙----!

하는 소리와 함께 소매속에서 아홉개의 영롱한 구슬이 중간중간에 달린 채찍이 튀어나왔다.

뱀처럼 영활하게 움직이며 채찍은 소일초의 목을 감아왔다.

소일초는 난감했다.

탕마령주가 사백상이 맞다면 죽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탕마령주일 뿐이라면 지금 단 일초로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인지와 중지를 모아서 검결을 맺었다.

뻗어오는 채찍은 그냥 말을 수는 없다. 피하든가 되돌리든가 해야 한다.

일초검공이 위력을 발휘하자 채찍은 방향을 바꿔버렸다.

순간,

탕마령주가 채찍을 놓아버리며 몸을 돌렸다.

한데, 놀랍게도 그녀의 오른 발 뒤축이 어느새 소일초의 머리를 찰 정도로 가까이 와 있었다.

천하의 소일초도 간담이 서늘했다.

급히 몸을 숙여 일곱걸음이나 자리를 옮겨서야 탕마령주의 발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탕마령주는 초식무공의 대가였다.

그 현란한 수법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찬란하고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초식과 초식의 연결에 전혀 빈틈이 없었다.

적절한 초식은 절세의 무공이다.

그녀의 몸이 풍차처럼 돌아가며 권장지를 뻗어내고 거리를 측정할 수 없는 그녀의 기묘한 각법은 어느 일파에서 흘러나온 무공인지도 알 수 없었다.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심지어 머리와 어깨도 그녀의 무기가 되어 예상치 못한 기초를 발휘해 냈다.

발은 슬쩍 움직이면서도 땅에서 흙먼지와 함께 돌을 차보내기도 했고,

때로는 내공이 결집된 무서운 혈강이 초식과 초식사이에서 뻗어나오기도 했다.

소일초는 힘든 상대였다.

일초검공으로 상대를 죽일 수도 없는 데……

검지로 펼치는 일초검공을 그녀의 현란한 수법이 교란시키면서 마치 몸이 수십 개인 듯 사방에서 소일초를 공격해왔다.

(서로 다른 초식무공과 기공을 이렇듯 배합하여 절묘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이 여자는 사옥상이 아니다. 사옥상이 이런 무공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그녀의 경탄할 무공의 현란함에 넋을 잃은 채 탕마령주의 공격을 받아내던 소일초는 마음을 정했다.

자기도 일초검공을 포기하고 오직 초식으로만 맞서 보기로……

탕마령주의 일권을 피했다 싶은 순간 탕마령주의 스쳐지나간 몸에서 발이 밑에서 원을 그리며 치솟아 소일초의 가슴을 찼다.

일초검공을 포기하자 마자 나타난 결과였다.

[윽!]

충격이 크긴했지만 정통으로 격중되지 않아서 견딜 만 했다.

순간 탕마령주는 체바퀴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면서 두 손으로 그의 눈을 찔러왔다.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두 손가락은 그의 머리를 스치면서 머리카락을 날렸다.

마교칠십이절기고 혈기자에게 사기쳐서 배웠던 무공이고 간에 모두 사용해 볼 틈도 없었다.

바람처럼 움직이는 그녀에게 일초검공 외에 어떤 무공으로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소일초도 그녀에게 강렬한 투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보고 듣고 배웠던 모든 수법들을 총동원했지만 두들겨 맞기만 했다.

그의 몸이 금강체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고 말았을 것이다.

탕마령주가 자신의 앞에서 튀어오르며 무릎을 세웠는데 공격은 팔꿈치로 했다.

그의 머리에 팔꿈치가 내려 찍힐 판이라 그의 몸이 수평으로 뉘여지며 탕마령주위 겨드랑이를 발로 찼다.

발은 허전한데 다시 자기의 명치에 꽂히는 그녀의 발……

소일초는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공격이 시작된 후 우박처럼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치는 이러한 무공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기로 마음을 먹고 이환공을 일으켰다.

그 사이에도 탕마령주의 만근같은 공격을 수 차례나 받았다.

이환공이 효과를 발휘하여 탕마령주의 공격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신비의 무공 이환공도 잠시, 탕마령주는 떨어져 있던 채찍으로 그의 몸을 휘감았다.

신비의 무공 이환공의 최대 단점은 이순간에 드러나고 있었다.

잠시 동안 효력을 발휘한 후에는 불이 꺼지듯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인데 소일초는 아직도 그런 점을 모르고 있었다.

여태까지 소일초가 이환공을 오랫동안 펼쳐야 할 만큼 강한 상대를 만나지 못한 때문이다.

그는 다시 흠뻑 두들겨 맞으면서 몽롱하게 염두를 굴렀다.

(이 여자를 이기자면 특이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틈을 주고 같이 치는 것이다.)

그는 수비를 풀면서 틈을 보였다.

탕마령주의 수족은 짜맞춘 듯이 그 틈을 파고 들때 그의 손도 똑같이 뻗었다.

그러나 그 수법도 허탕이었다.

자기는 맞아도 상대방은 맞아주지 않는 것이다.

(하는 수 없다. 일초검공아끼려다 소일초가 가겠다.)

[이얍-----!]

우렁찬 기합과 함께 그의 손에 마황검이 들려졌다.

마황검이 그의 몸을 한바퀴둘렀다.

마침내 일초검공이 발휘된 것이다.

검에서는 지금껏 맞은 분노가 폭출되는 듯 폭풍같은 기류가 일어나며 사방을 휘감았다.

탕마령주도 일초검공에는 깜짝 놀란 듯 검의 세력권 밖으로 벼락처럼 물러났다.

그러나……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

탕마령주는 일초검공의 세력권을 벗어나지 못해서 기류에 싸이고 말았다.

그녀는 기류안에서 발버둥 쳤지만 몸은 점점 조여들 뿐이었다.

일초검공……

과연 무적이었다.

소일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공에서는 딸릴 것이 없다.

마침내 바람같은 탕마령주를 검으로 가두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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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 章

 

          血旗子의 變身

 

 

 

주소아는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상당한 과장도 있어서 듣고 있는 주하운으로 하여금 손을 쥐게 했다.

그녀의 허풍도 주귀와 함께 다니는 중에 늘었는지 한천이기와 소일초는 번히 알면서도 주하운 앞이라 아무말 못하고 있었다.

주소아가 어떨 때는 소일초를 천하의 나쁜 놈으로 매도하여 주하운의 무서운 눈총을 받았고 한천이기를 싸잡아서 때려 줄일 년놈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주하운은 그저 그녀가 귀여운지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문득, 소일초와의 예전 일을 말하던 중에 주소아가 울음을 터뜨렸다.

[흑흑흑------]

[아니 왜그러느냐?]

주하운이 다급하게 물었다.

주소아는 더 큰 소리로 울면서 주하운의 어깨에 기댔다.

[무슨 일이냐? 네가 원하면 뭐든지 다해주마. 너에게 내가 뭘 아낄게 있겠느냐?]

주하운이 그녀를 달랬다.

[훌쩍……할아버지, 훌쩍……저 색마녀석이 그동안 내가 부모없는 고아라고 얼마나 괄시했다구요……훌쩍……]

[할아버지 그……그게 아니……아이쿠]

짝-----!

주하운은 다짜고짜 소일초의 뺨을 후려쳤다.

소일초가 뺨을 싸잡고 억울하다는 듯이 주소아를 보았지만 그녀는 혀만 날름거렸다.

[고찰(古刹)에서는 자기 무공이 조금 더 강하다고 나를 때리기도 했어요. 그리고 뭐했는지 아셔요? 엉엉……부끄러워서 남에게 말도 못해요……]

[무슨 일이 있었겠느냐? 너는 아직도 청결한 몸이고 저 녀석도 동정(童貞)을 보전하고 있는것 같은데……]

주하운이 연방그녀를 달래며 하는 말이다.

[말도 말아요. 훌쩍……저에게 얼마나 수모를 주었다구요. 그때부터 내가 다른데 시집갈 생각도 포기하고 하는 수 없이……훌쩍……구박받고 살았다구요.]

주하운의 눈이 다시 소일초를 향하자 소일초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거기다가 여자만 보면 눈이 뒤짚히는지……엉엉……벌써 저 말고도 셋이나 돼요……엉엉……]

[내가 무공을 다 전수해 주마! 다시는 저녀석이 너를 때리지도 못하고 다른 여자에게 눈도 돌리지 못하게 하마! 아니 내가 아예 저놈의 한 팔을 잘라버릴까? 그럼 무공이 비슷해 질것 같은데……]

주하운이 정말 그럴 것 같이 말하자 주소아의 울음이 뚝 끊쳤다.

[할아버진 제가 병신(病身)하고 같이 살기 원하셔요?]

[네가 저 녀석을 저렇게 싫어하니 그런 거지……아예 내가 황족이나 명문세가의 자식을 택해서 혼인을 시켜주랴?]

주소아와 소일초가 경악하며 동시에 외쳤다.

[안돼요!]

[그래! 항상 그렇게 입을 맞추어서 살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주하운이 느긋하게 말했다.

주소아는 입을 다물고 벙어리가 되었고 한천이기가 킥킥대며 웃었다.

[저 녀석도 제 할아버지 대부터 우리 집안과 교류가 있었는데, 제 할애비를 봐서라도 내가 함부로 못해. 그 영감이 나하고 사생결단을 내자고 저승에서 뛰쳐나오면 곤란하지……]

주소아와 소일초, 그리고 한천이기와 더불어서 애기하는 주하운은 비슷한 또래의 청년같았다.

주하운……

당대의 세력가로 떠오르고 있는 한림원의 시강인 이 사람은 엉뚱하게도 천하제일인 혈기자였다.

무림세계에서 천하제일은 물론 고금제일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는 자식을 잃는 비애와 엄청난 혈겁을 경험한 이후로 무림을 떠나서 황궁에 투신한 것이었다.

반로환동한 그는 전혀 세상을 다르게 살리라 마음먹고 신분을 숨긴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혈기자를 마주친 소일초는 기겁을 하고 도망부터 쳤었지만,

한천이기와 주소아가 소리쳐 그의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눈치 빠른 혈기자 주하운이 눈 깜짝할 사이에 쫓아와서 그의 덜미를 잡아버린 것이었다.

반항도 한번 못해보고 잡혀와 바닥에 던져졌던 그는 눈 밖에 움직일 수 없었다.

혈기자의 수법에 의해 전신이 굳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소아에게 할아버지라는 사실도 알려주지 못했었다.

주하운은 주소아에게 각별한 친근감을 느꼈지만 손녀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가 아무리 눈짓으로 표시하려고 해도 주소아는 자기의 뜻을 곡해하기만 하자 속이 탈것만 갔았다.

거기다 험악한 말이 나오고 급기야 주소아가 전력을 다해서 달려들려고 하자 급기야 그의 화가 기를 폭발시켜 주하운이 막아놓았던 제맥수법(制脈手法)을 풀고 소리쳤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약속의 반 이야기를 꺼내자 주소아도 자기의 조부인 혈기자인 줄 알아채서 갈등이 풀렸던 것이다.

그 와중에 영문도 모르고 한천이기는 주하운에게 절을 했지만, 훨씬 연상이고 천하의 대종사를 만나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했었다.

밖에는 벌써 어둠이 밀려오는 데 주하운이 말했다.

[내가 제자를 잘못 키워서 세상을 어지럽혔으니 부끄럽기 한이 없다. 그들이 마공을 익혀서 인성을 상실한 대마두가 됐으니 나는 정식으로 그들을 파문하고 문호를 정리해야겠다.]

네 사람은 숙연하게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새로 소중이를 받아들여 마지막 제자로 키우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소중이가 그들을 제거하기란 아직까지 불가능한 일이고 십 년은 지나야 그들 중 하나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

[마땅히 문호 정리는 넷째인 예진이가 맡아야겠으나, 이미 한 남자의 부인이 된지 오래이니 강요할 바는 못 된다. 그래서 너희들이 그들 삼수를 제거하고 내 문호를 깨끗이 하도록 해라.]

주소아와 소일초가 머리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든 혈기문(血旗門)은 소중이가 이끌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많이 도와주도록 해라.]

[할아버지, 우리도 동선장에서 살게 될 거니까 앞으로 자주 보면서 살겠지요?]

주소아의 물음에 주하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절대로 나에게 혈기자란 말을 해서는 안된다. 누구도……]

[칫! 누가 할아버지보고 혈기자라고 부른다고 믿을 사람이나 있겠어요?]

하하하하하-----!

방안을 울려퍼지는 웃음소리는 잠시나마 그들 모두를 무림의 번잡한 혈겁을 모두 잊게 했다.

 

***

 

저녁을 먹은 후 유쾌한 기분으로 그들은 마차를 타고 백소중과 함께 돌아왔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침실 바로 앞에 있는 거실에 그들은 다시 모여 앉아있었다.

주소아의 수다를 들어줘야할 의무를 모두가 느끼고 있는 때문이다.

[한천녀! 내말이 맞았지? 세상에서 가장 무공이 고강하신 분을 만나본 소감이 어때?]

주소아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십 수 년 만에 헤어졌던 조부를 만나고 게다가 그가 천하제일인이니 기분이 좋을 만도 했다.

부모가 없어서 백인장의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했던 걱정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로서는 생애 최고의 날인 것이다.

[세상에 정말로 신선의 술법을 익힌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사실 전에는 네 말을 믿지도 않았어. 휴……]

[이제는?]

[우리도 이제부터라도 신선술이나 닦아요.]

주소아의 물음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한천녀가 원천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소일초가 꿈에도 생각 말라는 투로,

[너네들은 이름부터 바꾸기 전에는 아마 신선될 생각은 않하는게 좋을 걸?]

[너도 이름부터 바꿔야 겠더라. 일초가 아니라 무초(無招)로……손 한 번 맞대보지도 못하고 뒷덜미 잡혀오는 꼴이란……]

원천기의 말에 소일초의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그때 얼마나 꼴불견이었을까?

[너라고 별 수 있었을 것 같아? 흥 너는 오줌이 지려서 도망도 못쳤을 거야.]

[그래서 내 이름은 일초가 아니라고, 뱃속에 거만만 잔뜩 들었다가 꼴 좋았지.]

원천기는 평소의 불만을 이때 틀어놓는 듯 했다.

소일초가 벌떡 일어났다.

[한 번 해보자는 거냐?]

[싫다. 솔찍히 이길 힘은 없고 우린 신선술이나 닦아서 네가 늙어 죽기나 기다려야 겠다.]

원천기는 웃으면서 한천녀와 함께 문을 꽝 소리가 나도록 닫고, 자기들의 방으로 가버렸다.

[오늘은 최악의 날이야……]

소일초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난 최고의 날인데……]

주소아가 말하자 소일초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적은 자기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누군가 말했지……]

취풍녀와 사은상이 물과 음식을 더 가지고 들어오다가 그 말을 듣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적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

취풍녀의 말에 주소아가 대답했다.

[바로 거기……]

주소아의 손은 사은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손의 의미를 알아챈 두 여인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백소중은 입을 막고 킥킥거렸다.

오랫만에 만난 죽은 줄 알았던 친구가 옛날 보다는 기가 팍 꺾인 것 같았다.

그래도 그때는 그의 작은 어머니만 무서워하는 것 같았는데……

주소아의 손이 두 여인이 가져온 물을 술로 바꾸고,

여인은 여인들끼리 두 친구는 친구대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 여인들도 어느새 백소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 할아버지께서 삼수(三手)중의 둘째인 대성화의 마공에 돌아가시고 나는 부모님과 백가장의 충성스런 수하들의 희생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지……]

백소중……

백가장의 장주이자 무림 십이 대 고수 중의 한사람이었던 백대선생의 손자였다.

운남으로 가던 길에 소일초를 만나 인연을 맺었던 그는,

백인장이 무림에서 사라진 후 강대하게 떠올라 일년 천하를 구가했던 백가장이 정천보에 의해 아무도 모르는 새 혈겁을 당할 때 수하들의 목숨을 바친 충성으로 인해 혼자서만 살아나올 수 있었다.

언제나 따라 다니며 잔소리하던 유모도 죽고 백가장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백가장의 무공만으로는 원수를 갚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사부를 구하기 위해 천하를 방랑했다.

그러다 북경 근처에 왔다가 한 높은 벼슬아치를 만나게 되었는데 다짜고짜 그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 벼슬아치가 바로 주하운이었던 것이다.

주하운은 그의 골격을 알아보고 상승의 무학을 익힐 만한 기재라고 생각되어 백소중을 데려가 자기의 제자로 삼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백소중은 큰 관리 밑은 작은 관리로 행세하며 북경에서 생활해온 것이다.

[……오늘 사부께서 동선장주를 청해오라는 말을 듣고 왔다가 너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만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걸……]

주소아가 중얼거렸다.

그녀로서는 백소중이 할아버지의 제자이니 자기보다 오히려 배분이 높은 것이 불만이었다.

[지금 무림 일에 삼수가 개입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추풍녀가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늘은 끝까지 최고의 날로 만들고 싶어……]

나지막히 말하는 주소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소일초 역시 강한 흥분에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의 옷이 침상밑으로 흘러내려가고……

소일초는 미루어 두었던 상을 받고 주소아는 끝까지 그날을 최고의 날로 만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한 행복감과 포만감……

이것이었구나 싶은 두 사람이었다.

동선장의 밤은 그렇게 사랑 속에 깊어갔다.

 

침상 속에서의 밀어는 나직히 흐르고……

[숭산 태실봉의 정천보에는 네가 먼저 가. 나는 할아버지께 삼수를 제압할 수 있는 무공을 배워서 갈테니……]

[나 혼자는 싫어. 함께 가자……]

[다른 사람들은 다 데리고 가, 취풍녀와 사은상도……]

[……?]

[이제는 내가 먼저 맛봤으니 독차지 할 수 없잖아.]

[그래도 나는 너만 좋은 걸……]

[다 벌이야. 책임질 짓을 했으니까 의무를 다하도록 해……]

[그럼 그전에 다시 한 번……]

…………

 

× × ×

 

<급보----

무적검 일행의 종적 발견. 현재 북경을 나서 숭산으로 향하고 있음.

총 인원은 십사 인, 남 십일 여 삼. 모두 고수들임.

탕마령주님의 결단을……

정천밀조(正天密組) 제 삼십사 호>

 

전서구는 첩지를 달고 서쪽으로 날아갔고……

북경에서 숭산으로 이르는 모두 길목으로 탕마사십사객이 집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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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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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九 章

 

         만남의 장소, 北京

 

 

 

북경성 외곽에 있는 동선장은 갑자기 돌아온 주인으로 인해 떠들썩했다.

꼬마들이 뛰쳐나와 마차에서 내리는 주소아와 소일초, 그리고 한천이기에게 매달리며 재롱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며 심지어는 그들의 옷을 찢어놓기도 했다.

집사와 글 선생, 애들 돌보는 사람, 일제히 나와서 인사를 하고 아이들은 소일초 일행의 뒤를 우루루 몰려다니며 깔깔거렸다.

그 소란스런 광경에 백인장의 도객들과 사마귀, 그리고 취풍녀와 사은상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림에서의 격전장도 이보다는 낫다 싶을 정도였다.

장충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우리 백인장의 애들은 얌전하기 그지없는 것 같아. 이 애들에 비하면 군자야 군자……]

주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백인장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이곳보다 더해지면 더해지지 못하진 않을 거야.]

[왜?]

[천하의 말썽꾸러기인 내 제자의 마누라들이 줄줄이 소마동(小魔童)들을 낳을 텐데 백인장 기둥이나 남아나겠어?]

[거기다 둘째 형의 작은 색귀도 한몫할 테고……]

투귀가 다시 색귀를 꼬집고 한마디 하자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들과 같이 가던 취풍녀와 사은상은 우스우면서도 부끄럽기도 해서 고개를 들 수 없어 쩔쩔맸다.

과연,

주귀는 선견지명이 있어 그의 예언대로 백인장이 난장판이 되는 일이 일어나기는 났는데……

그것은 불과 이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꼬마들의 천국(天國) 동선장에서는 잔치가 열렸다.

주인인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한천이기의 무사귀환(無事歸還)을 축하하고,

동선장의 식구들의 그간의 노고(勞苦)를 치하하며,

먼 곳에서 온 손님들을 환영하고,

꼬마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연회가 성대하게 열려져 이웃의 사람들 까지 와서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곳은 제이(第二)의 백인장이 될 거예요. 저 아이들의 제이의 백인도객이 될 거구요. 제가 직접 키우겠어요.]

주소아가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백인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소일초가 모든 사람의 궁금증을 대변하여 물었다.

[물론 가야지. 후에 네가 장주직을 물려받게 되면! 하지만 그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일이지……]

[…………]

[음, 먼저 장주이신 고모부께서 아직 젊으셨고, 게다가 무공마저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이시니 변을 당하실 리도 없고……그렇다 보면 네가 장주가 되려면 몇 십 년, 또는 백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할 걸?]

[그야 그렇겠지.]

[그동안 우리가 백인장에 있으면 여전히 소장주고 소장주 부인일 뿐이야. 하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키워서 가르치면 우리가 제이의 백인장주고 장주부인이 되지.]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돼 버렸다.

말이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언니! 그럼 부모님은 누가 모시고요?]

취풍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주소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럼 넌 백인장에 가서 부모님 모실래?]

취풍녀는 혹시 그녀가 자기만 백인장으로 쫓아 보낼까봐 슬그머니 꼬리를 말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주귀의 되먹지 않은 진짜같은 거짓말이 사람들의 배를 쥐고 웃게 만들었고 춤과 노래와 더불어서 주흥은 크게 일어났다.

취풍녀가 몸을 일으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제가 노래를 한 곡조 부르겠어요. 흉보진 않겠죠?]

[와----좋다. 아줌마 최고다.]

꼬마들이 소리를 질러 환호했다.

취풍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오랫만에 자기의 성명절기(姓名絶技)를 발휘했다.

전신의 몸으로는 휘파람소리를 내면서 춤을 추며 입으로 노래를 불렀다.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련만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련만

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위에 이끼만 푸르구나.

슬픔도 기쁨도 집어 삼키는 검은 구름

향촉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롭구나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돌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소금이 절여

바람 불고 눈보라치지 않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숨 막힐 마음 속에 어디 강물 흐르느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마음에 들이노라

수만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노랑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어딘지 모르게 깊은 애수가 깃들어 있는 가락이건만,

경쾌한 발놀림에 하늘거리는 춤사위로 주흥을 더욱 돋우었다.

한천이기는 가사에 깊이 빠지는 듯 얼굴이 침중하고 사은상의 얼굴에도 우수의 빛이 어렸다.

[노랑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그녀는 나직히 음을 따라 읊어보았다.

누구가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눈으로 보는 듯이 그 서글픈 정경을 그려냈다.

[고향이 어디였지?]

소일초가 박수를 받으며 돌아온 취풍녀에게 물었다.

[천진이에요.]

[멀지 않은 바닷가로군……]

그때,

관복을 입은 한 소년이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그들에게로 오는 것이 보였다.

나이는 불과 십 육칠 세 정도 되었으며 아주 영준한 얼굴이었다.

힘찬 걸음이 정종무공을 익힌 무가의 자손인 듯 하다.

집사가 먼저 와서 알렸다.

[한림원의 주시강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이곳의 모든 사람이 무림인이다.

관부와 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리둥절하여 벼슬아치 손님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데 사은상이 앞으로 나섰다.

[장주님께선 이곳에 계십니다. 이리로 드시지요.]

정중하게 젊은 관인을 맞아 자리로 인도했다.

사은상은 원래 북경의 관가에서 태어나 자랐던 것이다.

그녀가 사진성을 만나기 이전까지는……

소일초와 주소아 모두 일어서서 젊은 관인이 앉기를 기다리는데,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주시강나으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함입니다.]

젊은 관인은 일어선 채로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저희는 야인(野人)들이라 관의 예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젊으신 나으리께 양해를 구합니다.]

사은상이 말하자 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시강대감께서 말씀하시길 동선장이 세상의 귀감이 되고 있으니 마땅히 천자께 상신하여 상을 내리는 것이 옳으나, 그 전에 먼저 대감께서 동선장의 장주님을 청하여 치하하시고자 합니다.]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누가 장주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동선장은 장주가 네 사람이나 됩니다. 더우기 세상의 일에 구속받지 않는 분들이시니 시강나으리께 감사하오나 가실 수는 없다고 전해주십시오.]

여전히 대변인은 사은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화와 민간에서 쓰는 말은 다른 데가 있었고,

더우기 무림인은 천하를 돌아다니다 보니 말이 거칠고 여러 지방의 사투리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를 주기 쉬웠다.

사은상은 어려서 배웠던 말인지라 관화에 아주 익숙하다.

소일초와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능숙한 관화에 내심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이야! 마누라 중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네……)

젊은 관인은 사은상의 말에 난처한 기색을 띠었다.

[어떤 경우가 있어도 모시고 오라는 것이 대감의 분부였는지라 아래사람으로서는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함께 가주시길 바랍니다.]

이때,

소일초는 유심히 그 관인의 얼굴을 보고있는 중이었다.

상당히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점잖게 말할 자신이 서지 않아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궁금함을 도무지 참을 수 없어 말했다.

[너 백소중 아니냐?]

다들 눈이 둥그레 졌다.

그중에서도 젊은 관인의 눈이 제일 크게 뜨졌다.

[백가가 맞습니다. 어찌 제 이름을 아시는지……]

그가 그 말을 하자마자 소일초가 펄쩍 뛰어 상을 넘어오면서 소리쳤다.

[백소중! 맞았구나. 한데 네가 관인이 되다니……무슨 괴상망칙한 짓이냐?]

[뉘신지?]

[나야나! 신행마동 소일초. 나를 잊어 버렸단 말이야?]

백소중의 입이 다시 딱 벌어지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그가 아는 소일초와 비슷하지만 그의 형인 듯 한 나이였다.

소일초는 자기와 같은 또래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다시 한번 던져줄까? 요즘은 유모를 데리고 다니지 않아? 마부는 밖에 있니?]

[일초! 정말 소일초구나. 내친구.]

백소중이 기뻐소리치며 어른이 돼버린 소일초를 끌어앉았다.

[죽었다더니 어떻게 된거야? 그리고 몸은 또 왜그래?]

[죽었다던건 잘못알려 진거고, 몸은 우리 마누라가 약초를 잘못먹이는 바람에 커져버렸어?]

소일초는 다시 개구장이가 돼 버린 듯 했다.

이상해 보이는 그들의 상봉을 모두가 눈도 깜작이지 않고 보고 있지만 그것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마누라가 있어?]

[저기 저 여자가 내 마누라야. 그리고 여기 여기도 그렇게 될 거고……]

[넌 확실히 대단하구나. 난 아직 한 여자도 못 얻었는데……]

백소중도 자기가 무슨 일로 이곳에 왔던지 조차 잊어버렸다.

[그런데 넌 왜 관인이 됐지? 너도 대단한 꼬마였는데……]

갑자기 백소중의 얼굴이 침울해 지며 낙담했다.

[그동안 사연이 많았어. 몇 날 밤을 세워 이야기해도 모자랄 정도야. 그리고 나도 너에게 궁금한게 너무 많아.]

[그래 밤새 술 마시며 이야기 하자.]

[오늘은 안돼. 깜박할 뻔 했는데 나는 이곳 동선장의 장주를 데려가기 위해서 왔어. 꼭 데려가야 해. 그런데 누가 장주시니?]

[그건 걱정마! 내가 책임지고 다 가도록 할께. 네 부탁인데 뭘 못해주겠어. 당장 가자. 시강인지 뭔지 하는 영감부터 만나고 우리 이야기나 하자.]

 

***

 

소일초는 가기 싫다는 한천이기를 억지로 마차에 태워서 주소아와 함께 당대의 세력가로 떠오르고 있는 한림원의 주시강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갔다.

마차 안에서 백소중이 말했다.

[소일초 네가 대단한 건 알지만 대감을 만나게 되면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해. 그분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측량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야. 젊고 유능한 사람을 아주 좋아하시는데 너도 어쩌면 좋아하실지 몰라……]

[넌 진짜 관인이 돼 버렸구나. 벼슬아치 따위를 그렇게 말하다니……]

[그분은 달라.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분은 내 스승이시기도 해! 함부로 말하면 내가 곤란해.]

[그래 제기랄……알았어. 조심하지.]

 

소일초가 투덜대고 있는 사이에 마차는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저택으로 마차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리로 따라와.]

백소중이 먼저 가면서 길을 안내했다.

그뒤를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한천이기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따라갔다.

[제길……무림의 방파들이 조금만 치장이 화려해도 황궁보다 낫다니 어쩌니 하는데 말짱 거짓말이야……시강의 저택이 이정도인데 황궁은 어떻겠어?]

그 저택 안은 그의 말대로 아주 웅장하면서도 화려했다.

작은 돌 하나 마저도 아무렇게 놓여있는 것이 없는 온갖 정성과 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백소중! 너 황제가 산다는 황궁에도 들어가 봤니?]

백소중이 기급을 하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황제께서 사시는 북경이란 말이야. 함부로 무례하게 말하면 큰일 나……그리고 황궁은 여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찬란해.]

소일초가 주소아와 한천이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밤중에 황궁에나 한 번 가볼래?]

소일초의 대담한 말에 다들 입을 딱 벌리는데……

[황궁에도 고수가 상당해. 그들은 다들 무공을 드러내지도 않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 중에는 절세고수도 있어. 무림에서 황궁을 못 건드리는 것이 뭐 군사들 수 때문만 인줄 알아?]

[…………!]

[함부로 날뛰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가는 곳이 황궁이라구……심지어 환관이나 주방의 요리사조차도 절세의 무공을 숨기고 있는 기인일 수도 있어.]

[지금 내가 겁먹어야 하니 아니면 용기를 내서 부딪쳐 보겠다고 해야 하니?]

소일초는 완전히 어린애가 돼 버렸다.

그의 철부지같은 말과 행동에 한천이기는 재미있게 보고 있었지만 주소아는 속상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제 다 왔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들어가도록 하자.]

웅장한 한 채의 전각을 들어서면서 그들은 방명록을 적었다.

다른 사람이 안으로 통보를 하고 백소중은 그들을 데리고 시강이 있다는 곳으로 갔다.

[사부님! 저 소중(小重)입니다. 동선장주를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오느라.]

소일초는 그 목소리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디서 들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문 안으로 다섯 사람이 들어서자 등을 보이고 책장을 넘기는 사람이 보였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당당한 체구……

도무지 그들이 상상했던 늙은 영감의 모습이 아니었다.

당당한 체구에 백의를 입은 시강이 일어서서 몸을 돌렸다.

[어서 오시오. 이사람이 시강인 주하운(朱河雲)이요.]

순간,

[앗!]

비명을 지르며 천하의 신행마동 소일초가 냅다 왔던 길로 바람처럼 도망쳤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서 백소중과 한천이기, 그리고 주소아가 합창을 하듯이 그의 이름을 외쳤다.

[소일초!]

그러자,

불과 이십사오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시강 주하운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리고 그의 몸이 번뜩 하면서 사라지고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놈! 당장 게 서지 못해?]

한천이기와 주소아 백소중은 무슨 일인지 몰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정신없게 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이게 대체 몇 번 채인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소일초가 또 일을 낸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막 사라져간 두 사람을 쫓아가려는데 흰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시강 주하운이 소일초의 덜미를 쥐고 들어왔다.

백소중의 표정은 소일초를 걱정하고 있는 듯 했을 뿐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경악으로 인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일초가 어떤 고수인데……

한참 도망간 후에 뒤 쫓아가서 순식간에 잡아오다니……

소일초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들은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경악하며 주하운과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주하운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서 소일초를 바닥으로 휙 집어던져 버렸다.

주소아가 달려가 받으려다가 주하운의 눈총을 받고는 꼼작도 못하고 멈춰버렸다.

꽈당-------

소리와 함께 소일초의 몸이 큰대자로 융단위에 뻗어서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소중이 너는 나가 있거라!]

주하운의 말이 떨어지자 백소중이 멈칫거리며 말했다.

[사부님! 그는 제 친구인데……]

[이놈이? 발은 꽤나 넓구나. 죽이진 않을 테니 걱정말고 나가 있거라.]

주하운은 약간 의외라는 듯이 소일초를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백소중은 죽이지 않는다는 말에 그냥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주하운이 죽이지 않는다면 죽이지 않는 것이다.

백소중은 소일초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본 후 방을 나가면서 한천이기와 주소아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절대로 그분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됩니다. 무조건 따르십시오. 경우가 없는 분은 결코 아니시니……]

[이놈! 쓸데없는 소리말고 빨리 나가기나 해라!]

주하운이 백소중을 향해서 일갈했다.

그는 남의 전음마저도 알아듣는 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백소중의 전음이 아니라도 한천이기와 주소아는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일초가 반항도 못해보고 저지경이 될 정도면 소일초에 미치지 못하는 자기들 셋이 다 뭉친다 해도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주소아가 소일초의 눈을 보니 그의 눈은 간절히 그녀를 보았다가 주하운을 보았다가 한다.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자기보고 주하운을 보라는 것인지 싸워서 물리쳐 달라는 것인지……

[이녀석! 중간에 기연이 있었구나.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하고 눈앞에서 놓칠 뻔 했다.]

주하운의 기세는 살기등등했다.

[먼저, 그 까불락거리는 팔다리를 몽땅 부러뜨려 열흘동안 쳐박아 놓아야겠다.]

[안돼요. 당신은 그럴 수 없어요. 내가 당신과 싸우겠어요.]

주소아는 소일초의 팔다리가 부러져 병신이 될 지경이 되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죽든 살든 달려들고 봐야 되겠다는 생각에 소리치고 나선 것이다.

그녀가 나서자 한천이기도 자기들만 살겠다고 물러설 수 없어 결전태세를 갖추었다.

주소아가 소일초의 눈을 보니 마구 눈알을 돌리면서 감았다 떴다 한다.

[안심해. 너만 죽거나 병신이 되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테니……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맹세했었잖아.]

소일초의 눈은 더 빨리 구르고 감았다 떴다 하며 간절히 뭔가를 말하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그래선 안된다고 말하는 것같았다.

[괜찮아. 어차피 네가 없으면 어떻게 나혼자서 살 수 있겠니? 내가 먼저 죽으나 네가 먼저 죽으나 마찬가지야.]

그녀는 주하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주하운이 큰소리로 말했다.

[이놈, 여복이 아주 많구나.저 아가씨의 정이 그토록 깊으니……]

[…………!]

[하지만 아가씨! 이놈이 너보다 더 어리다는 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물론 알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제 나이를 알 수가 있어요?]

[당연하지. 비록 몸은 커졌지만 네 나이는 많아야 열여덟 적어야 열일곱 그 사이야. 달 수로 따지면 더 정확하겠지 너는 이백이십이 개월 되었으니 생일은 삼월이겠지?]

한천이기와 주소아는 다시 놀라고 있었다.

주소아는 조예진이 가르쳐 준 바에 의하면 삼월 초엿세가 생일이라고 했다.

주하운의 그녀가 무척 호감이 가는지 놀라는 표정을 보고 다시 말했다.

[네 옆의 두 애늙은이 나이도 쉽게 알 수 있지. 사내는 팔십일곱에서 여덟사이이고 계집은 팔십하나에서 팔십둘이지.]

사내와 계집으로 불리웠다고 해서 화낼 게재가 아니었다.

주하운의 계산은 한 치도 어김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저런 귀신같은 인간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기인이사는 모래알 처럼 많다는 것이 실감나는 것이었다.

[저사람이 대체 당신에게 무슨 못할 짓을 했어요? 우리가 감당할 수 있으면 감당하고 감당할 수 없으면 함께 죽도록 하겠어요.]

주소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걸?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은 있어.]

주하운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

[그게 뭔가요?]

[아가씨가 나와함께 삼 년을 같이 보내는 거야?]

주하운의 말에 주소아와 한천이기는 분노했다.

[당신은 권력가라더니 남의 여자나 탐하는 오리(汚吏)에 불과한 자군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함께 죽겠어요. 저 사람도 그걸 바랄 거예요.]

[남의 여자를 탐한다? 그런말로도 들릴 수 있었겠군 그래, 내 말은 단지 여기서 삼 년만 보내는 것을 말한 것이었는데.]

주하운의 말에 한천녀가 차갑게 내뱉었다.

[결국은 같은 말이겠지. 여자의 틈을 엿보려는……당신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우리는 굴종만 하지는 않겠어.]

[늙은 한 쌍과 젊은 한 쌍의 우정이라……이것도 좀처럼 보기 힘든 거로군.]

주소아는 주하운이 보든 말든 소일초에게 다가가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고통스러운지 땀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끝없이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무말 하지마. 죽일 수 없으면 우리가 죽으면 되잖아. 무림인의 삶이란 원래 이런 거겠지……]

그녀는 말을 마치고 일어서서 전신의 세 곳에 분산시켜 놓았던 내공을 한곳으로 모을려고 했다.

죽고사는 마당에 아기를 낳고 못 낳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주하운의 얼굴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띄고 있었다.

[탐이 나는 재목이야 당금 세상에서 저놈 말고는 필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자질이야……]

주소아가 전중혈에 묶어놓았던 내공을 스스히 풀기 시작했다.

그때,

[안돼!]

갑자기 사람의 혼백을 빼버리고 바위를 으스려버릴 듯한 엄청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한천이기와 주소아가 심한 충격을 받고 몸을 후들거리고 방안의 여러 기물이 부셔져 버렸다.

귀를 웅웅울리는 여운과 함께 소일초가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주하운은 여전히 여유있는 웃음을 짓고 그를 보고 있었다.

마치 손바닥위에 오른 개미를 보는 듯한 태도였다.

[할아버지! 제가 여러 가지 약속 중 그래도 반은 지켰습니다. 나머지도 앞으로 이행할 테니 용서해 주십시오.]

소일초가 머리를 땅에 대면서 말했다.

방안에는 아직도 그의 고함이 만들어낸 여운이 감도는데 겨우 정신을 찾는 주소아와 한천이기는 주하운은 다시 쳐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새파란 청년이다.

할아버지라니……

집안의 어른이란 말인가?

순간,

주소아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모습에 한천이기는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반은 지켰다니……어느 반이란 말이냐?]

주하운 역시 격동하며 말했다.

[제가 주소아랍니다. 할아버지……]

주소아가 고개숙여 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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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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