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에 해당되는 글 366건

  1. 2021.03.15 [천병신기보] 제 1장 혈벽, 혈종, 혈정극마갱
  2. 2021.03.13 [천병신기보] 서장(2) 신기지장
  3. 2021.03.13 [천병신기보] 서장(1) 천병지장
  4. 2021.03.13 [천병신기보] 집필이력
  5. 2021.02.26 [찬황존신보] 제 46장 혈궁과 삼패의 궤멸 2
  6. 2021.01.15 [천항존신보] 제 26장 태극신후의 위기 2
  7. 2020.12.26 [태산북두] 제 55장 새로운 복지를 찾아서 (완결)
  8. 2020.12.24 [태산북두] 제 54장 피리소리가 끊기다
  9. 2020.12.23 [천황존신보] 제 14장 부부의 정
  10. 2020.12.22 [태산북두] 제 53장 경천동지할 대혈투
  11. 2020.12.21 [천황존신보] 제 13장 거인의 최후
  12. 2020.12.20 [태산북두] 제 52장 바위를 잘 보아라
  13. 2020.12.19 [태산북두] 제 51장 선상에 흩어진 절세고수의 유해
  14. 2020.12.18 [천황존신보] 제 12장 고금최강의 검법
  15. 2020.12.17 [태산북두] 제 50장 고불암의 야객
  16. 2020.12.16 [천황존신보] 제 11장 이존과 구대천마
  17. 2020.12.15 [태산북두] 제 49장 구절반천평맥의 치료
  18. 2020.12.15 [천황존신보] 제 10장 아아 검황종!
  19. 2020.12.14 [태산북두] 제 48장 마왕의 정체
  20. 2020.12.13 [천황존신보] 제 9장 혈세사패
  21. 2020.12.12 [태산북두] 제 47장 분노한 천하제일인
  22. 2020.12.11 [천황존신보] 제 8장 천래비룡
  23. 2020.12.10 [태산북두] 제 46장 풀밭 위의 정사
  24. 2020.12.09 [천황존신보] 제 7장 슬픈 정사
  25. 2020.12.09 [태산북두] 제 45장 내가 바로 그 신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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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血壁, 血宗, 血精極魔坑

 

 

 

우르르르르...!

--- --- 우웅!

대지가 몸살을 앓는 듯,

거대한 울림이 망막하게 펼쳐진 산하(山河)를 뒤덮었다.

크크크크...!

크르르르...!

그 거대한 울림에는 분위가 있었다.

천하(天下)를 피()로 씻으려 하는 지옥(地獄)의 마기가...!

우우--- --- 우웅!

울림은...

쩍 갈라져 지옥의 입구같이 보이는 극히 음침한 절곡에서 흘렀다..

깎아지른 듯한 두 개의 석벽이 마주친 절곡 안에서...

절곡 안은 그대로 유계(幽界)였다.

칙칙한 마기...!

습함과 어둠으로 드리운 죽음의 냄새(死香)...!

번뜩이는 귀화(鬼火)!

산더미같이 쌓인 해골(骸骨)...

크크크크크크... 키키...!

지옥의 울림은 그 절벽사이의 절곡에서 울려 나와 대지를 뒤흔들었다.

한데,

!

사람이 있었다.

해골이 아닌 생명을 지닌 사람이 한명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한 명의 인물이 시뻘건 혈벽(血壁) 앞에 오체복지하고 있었다.

괴이하고 섬칫하도록 시뻘건 빛인 석벽(石壁)!

혈벽(血壁)!

혈벽(血壁)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일인이 있었다.

얼굴은 땅에 처박아 모습을 알 수 없는 백의노인이다.

노인의 머리는 백의만큼이나 하얗다.

[...!]

백의노인은 오체복지한 채 절대적인 어떤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르르르르르...!

크그그그그그긍,...!

공포스러운 진동!

그 진원지는 백의노인이 꿇어 엎드려 있는 혈벽(血壁) 안쪽이었다.

혈벽(血壁)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무시무시한 마기(魔氣)로 인해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쿠쿠--- --- --- 쿠쿵!

지축이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그와함께,

쿠르르르르--- 르릉!

백여 장 높이의 혈벽(血壁)이 서서히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 !

파츠츠츠--- 츠츠츳!

혈광(血光)!

끔찍한 핏빛 혈광(血光)이 갈라진 혈벽(血壁)사이로 쏟아져 나왔다.

그믐날 밤의 모닥불빛같이...!

터져 솟구치는 화산의 용엄같이...!

엄청난 핏빛 혈광이 갈라진 혈벽에서 쏟아져 나오지 않는가?

()!

죽음()을 부르는 지옥(地獄)의 혈광(血光)!

그것이었다.

츠츠츠...!

우르르르르...!

노도가 쏟아지듯 혈광이 쏟아졌다.

모든 사악(邪惡)함이 깃든 혈광이 폭포같이 흘렀다..

[...!]

혈벽 앞에 오체복지하고 있는 백의노인의 몸이 더욱 쭈그러들었다.

지극한 공포로 그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그리고 문득,

한소리 웅혼한 일성이 터졌다.

그 목소리는 쩍 갈라지는 혈벽(血壁)사이에서 흘러 나왔다.

[쌍극천효(雙極天梟)! 고개를 들라!]

섬칫함이 배인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섬칫함 외의 어떤 마기(魔氣)도 서려 있지를 않았다.

극마지경(極魔之境)에 든 자가 발한 목소리였을까?

자세히 보면,

혈벽에서 흘러나오는 혈광(血光) 속에는 시뻘건 혈기(血氣)에 싸인 괴인이 둥실 떠 있었다.

혈기에 가려 전혀 모습은 알아볼 수가 없고,

다만, 강렬한 핏빛의 안광이 횃불같이 번뜩이고 있었다.

[오오... 혈종(血宗)이시여...!]

쌍극천효(雙極天梟)라 불린 백의노인이 감루를 흘리며 혈인을 우러러 보았다.

혈종(血宗)!

혈종(血宗)이라니...!

혈광 속의 괴인(怪人)!

그가 혈종(血宗)이라는 끔찍한 이름을 가진 자인가?

고개를 들자, 비로소 백의노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백의노인, 쌍극천효(雙極天梟)!

그자는 육십 전후의 청수한 노인이었다.

모습은 청수하지만 그자의 두 눈은 음침함으로 깊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일견하여 지극히 심기가 깊고 간계가 뛰어난 자임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혈종(血宗)이시여... 속하는 일갑자를... 혈종의 부르심을 기다리며 절치부심해왔습니다.]

쌍극천효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자는 진심으로 감격하고 있었다.

[쌍극천효(雙極天梟)! 잘 기다려 주었다. 이제 천하가 혈종(血宗)의 것이 될 것이고, 그대는 혈종의 제일출복이 될 것이다!]

혈벽(血壁)!

그 갈라진 틈으로 흐르는 혈광 속에서 웅혼한 들렸다.

[혈종(血宗)!]

쌍극천효(雙極天梟)는 감격하여 몸을 떨었다.

(... 극마극사지경(極魔極邪之境)에 드셨다. 천하에 혈종(血宗)의 적수가 없으리라!)

다시 혈광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쌍극천효(雙極天梟)! 천하를 제()할 대계(大計)를 말해보라!]

[분부... 받들겠사옵니다!]

쌍극천효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자의 두 눈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혈종(血宗)께서 가장 먼저 하셔야 할 일은 일황룡(一皇龍)을 쓰러뜨리고 일비부(一秘府)를 얻으셔야 하고 십병(十兵)을 거두시며... 일기재(一奇才)를 얻으시던지 없애셔야 합니다!]

[일황룡(一皇龍), 일비부(一秘府), 십병(十兵), 일기재(一奇才)...]

혈광 속의 인물이 중얼거렸다.

쌍극천효가 영교하게 설명했다.

[일황룡(一皇龍)은 황산(黃山) 패천황룡(覇天皇龍)을 일컬음입니다. 그자는 백 년대의 천하제일고수(天下第一高手)로 패천자일맥(覇天子一脈)의 후인입니다!]

혈광 속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패천자일맥(覇天子一脈)이 나타났단 말인가? 혈종(血宗)과 상극(相克)인 패천자일맥이!...]

쌍극천효는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습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으나... 패천황룡은 패천자의 후예입니다!]

혈광 속의 인물,

혈종(血宗)이라 불리는 그자의 목소리에 살기가 흘렀다.

[이백 년 전의... 전철을 되밟지 않으려 하면 패천황룡(覇天皇龍)을 확실히 없애야겠군!]

쌍극천효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일비부(一秘府)는 자부(紫府)를 말함입니다. 지부에는 오절(五絶)이 있고 그 하나 하나가 절세일절(絶世一絶)이므로... 천하를 경륜하심에 있어 반드시 얻으셔야 할 것입니다...!]

[...!]

[십병(十兵)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것이고...!]

[그렇다. 본종의 극마지체(極魔之體)도 천지십병(天地十兵) 앞에서는 무력함을 안다!]

[황망스럽습니다!]

쌍극천효가 고개를 조아렸다.

[계속하라! 일기재(一奇才)?]

쌍극천효는 혈종의 말에 즉시 대답하였다.

[황산잠룡(黃山潛龍)이 일기재(一奇才)입니다!]

[...!]

혈벽 속의 혈광이 크게 파동을 일으켰다.

[황산잠룡이라면... 설마 패천황룡(覇天皇龍...!]

[그렇습니다. 일기재는 패천황룡(覇天皇龍)의 독자(獨子)인 패천잠룡(覇天潛龍)을 말함입니다!]

[패천잠룡(覇天潛龍)...!]

[그는 당년에 약관으로서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을 타고난 자였습니다!]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

혈종이 혈광에 묻혀 중얼거렸다.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

 

있다고는 전하나 이천 년 내에 나타나지 않았던 전설의 신맥(神脈)이다.

천지문(天地聞)의 지극히 바르고 큰 기운(大正氣)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

이를 지니고 태어난 인간은 통천(通天)의 지혜를 지닌다.

그뿐 아니라,

어떤 어려운 기공도 일별함으로써 습득할 수 있으며,

만사(萬邪)와 만마(萬魔)가 그의 안광만으로도 사그라들고 만다.

이것이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인 것이다.

 

[...!]

[...!]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천극대정신맥을 지녔다면... ()과는 공존할 수 없는 자!]

[혈종(血宗)께서는...!]

쌍극천효가 묻자, 혈종의 냉혹한 일성이 혈광 속에서 터졌다.

[죽여라! 무슨 수를 쓰든 확실하게 죽여 없애도록!]

[존명(尊命)!]

쌍극천효는 머리를 땅에 박으며 몸을 떨었다.

혈종의 냉혹한 목소리가 혈벽 사이에서 울려 나왔다.

[중원천하가 넓음을 안다. 일황룡, 일비부, 천지십병, 일기재외에도 주목해야할 자들이 있을 터인데...!]

혈종의 말에 쌍극천효는 즉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마도(魔道)와 사도(邪道)는 혈종(血宗)의 평화에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으나 흑도녹림(黑道綠林)과 정도(正道)에 많은 강자들이 있습니다.]

[계속하라!]

[먼저... 구파일방에... 삼존(三尊)이 있습니다.]

쌍극천효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삼존(三尊)에 대해 설명하였다.

 

<정도삼존(正道三尊)>

 

패천황룡(覇天皇龍)이전 세대에 있어 무적최강으로 알려진 삼인(三人)의 절대고수를 말한다.

이들은 각기 소림(少林), 무당(武當), 개방(丐幇)에서 나왔다.

그 때문에 이들은 불존(佛尊), 도존(道尊), 개존(丐尊)이라고도 불린다.

 

---천해존불(天海尊佛).

 

그는 당대 소림방장인 법정선사(法正禪師)의 사백이 되는 인물이다.

전대 소림사의 장문인기도 한 그는 소림사 역사상 삼대고수(三大高手)에 드는 고승이다.

그의 항마신공(降魔神功)은 능히 만 근의 철괴(鐵塊)를 모래로 만들 정도라 한다.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

 

무당 최강자이며 전설적인 도문(道門)인 청허문(靑虛門)의 전인,

또한, 전대의 천하제일지(天下第一智)이기도한 고인(高人)이다.

그의 도가기공은 천해천불의 항마절기와 쌍벽을 이루고,

그의 뇌리에는 천하만사(天下萬事)가 담겨져 있다.

 

---취존개(醉尊).

 

개방 역사상 최강자!

천년 개방절예가 그의 일신에 모여 백배 강하게 나타났다.

청허현도존만큼 지혜로운 현자이기도 한 그는 한곳에 머무르는 것이 싫어 하루만에 개방지존이라는 지위를 버렸다.

술과 해학!

이 둘도 벗을 삼아 천하를 떠도는 제일기인(第一奇人)이 그다.

 

이들이 정도삼존(正道三尊)!

구파일방의 성세를 최고고조로 높였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사십여 년 전부터 무림에서 그 모습이 사라졌다.

그 때문에 항간에는 그들이 이미 죽었을 것이라는 소문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정도삼존(正道三尊)외에 정파에서 가장 주목되는 자는 광양대제(廣陽大帝)라는 자입니다!]

쌍극천효가 말을 이었다.

[광양대제(廣陽大帝)...!]

[그자는 삼존과 동배분의 인물이며 또한 삼존 중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자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자 휘하에 있는 정파제일의 광양회(廣陽會)입니다.]

[...!]

혈종은 말없이 듣기만 하였다.

쌍극천효는 영교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정도에는 삼존과 일제 외에 일검성(一劍聖), 신주오기(神州五奇)가 있습니다.]

쌍극천효의 눈이 교활한 빛을 띄우고 입가에는 득의의 미소가 흘렀다.

[하오나... 일검성과 신주오기는 속하의 손으로도 없앨 수 있는 자들입니다.]

[흑도와 녹림에는 누가 있는가?]

혈종의 혈벽 안에서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모래를 씹는 듯 전혀 감정이 실려 있지를 않았다.

쌍극천효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흑도에는 흑룡천신(黑龍天神)이 있고 녹림에는 녹림대제(綠林大帝)가 있습니다.]

[회유할 수 없는 자들인가?]

혈종이 물었다.

[그들은 쌍황(雙皇)만큼 강한 자들입니다. 목숨이 끊일지언정 타인의 수하로 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의 생각은?]

혈종의 물음에 쌍극천효는 즉시 대답했다.

[역시 척살(剔煞)함이...]

갑자기 혈종이 그의 말을 끊었다.

[척살(剔煞)함은 하책이다. 자존심이 강한 자들이라니... 그 점을 이용하여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쌍극천효는 등줄기로 식은 땀을 흐르는 것을 느꼈다.

(혈종(血宗)께서는 노부 못지 않은 심기를 지니신 분이다.)

쌍극천효는 일말의 두려운 감정이 일었다.

심기방면에 있어서만큼은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하던 그였다.

한데 혈종의 안목이 자신에 못지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쌍극천효는 그런 내심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혈종의 분부하심, 각골명심하겠습니다.]

그는 혈벽을 향해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이제... 때가 되었다. 혈종오패(血宗五覇)를 잠에서 깨워랏! 일시에 천하는 혈종의 것으로 하리라!]

[혈종(血宗)...!]

쌍극천효가 격동하여 몸을 떨었다.

혈종은 웅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열흘 후! 본종의 현신이 있으리라. 그때까지 혈종오패의 전력을 모아놓아야 한다!]

[혈종! 심려 놓으소서...!]

그그그그그... !

열렸던 혈벽이 굉음을 내며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혈종이시여...!]

그모습을 보며 쌍극천효는 오체복지하여 감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스스스스... 츠츠츳!

점차, 칙칙한 혈기도 속으로 사그러져 갔다.

사그러지는 혈기사이로 혈종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쌍극천효(雙極天梟)! 그대를 믿는다. 본종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 --- --- !

크르르르르... ...!

혈벽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가랏! 가서 본종의 현신을 기다려라!]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깊은 죽음의 적막의 절곡을 뒤덮었다.

그제야 쌍극천효는 몸을 일으켰다.

[후훗! 천하는 모르리라!]

그는 닫혀진 혈벽을 주시하며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신기보(神奇譜) 제삼서열의 신기(神奇)가 이곳 지옥애(地獄崖)에 있음을...!]

이럴 수가...!

신기보(神奇譜) 제삼신기(第三神奇)라니...!

그것은 혈정극마갱(血精極魔坑)의 신기(神奇)가 아닌가!

 

---혈정극마갱(血精極魔坑)!

 

()와 사()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극마지경(極魔之境)이 거기에 있다는 저주의 지옥마소(地獄魔所)가 아닌가?

그 혈정극마갱이 혈벽(血壁) 안에 있다니...!

너무도 놀라운 일이 아닌가?

[흐흐흣! 제일이 되기를 원치는 않는다. 야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타고 난 재주가 모자람을 알기 때문이다!]

쌍극천효의 두 눈이 극히 음사하게 빛났다.

[흐핫하! 그러나... 반년 후에는 제일은 못되어도 제이(第二)는 되어 있으리라!]

--- --- !

쌍극천효는 크게 웃으며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의 신형은 삽시에 까마득한 절벽을 치솟고 있었다.

그와 함께,

그그그그그... 그긍!

--- --- 우우우웅!

다시 마()와 피()를 부르는 진동이 지옥애(地獄崖)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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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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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章 (二)



              神奇之章





<신기보(神奇譜)>


신기보(神奇譜)라는 것이 천병보(天兵譜)와 함께 한다.

천병보(天兵譜)가 병기의 계보라면,

신기보(神奇譜)는 전설(傳說)과 기사(奇事)가 계보다.

무림사 수천 년이 지나면서 수많은 신기(神奇), 전설(傳說), 기사(奇事)가 창출되었다.

신기보(神奇譜)는 이것들을 기록한 것이다.

무려 삼천종의 신화와 전설이 그 안에 살아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기보(神奇譜)이며...

모든 신기(神奇)에는 서열이 메겨져 있다.

신기보(神奇譜)에는 천세에 잊혀 지지 않는 세 가지 신기(神奇)가 있다.


<삼대신기(三大神奇)>


삼대신기라 불리는 전설을 신기보(神奇譜)는 이렇게 말한다.


---태초(太初), 태극일원(太極一元)이 아직 혼몽 속에 있을 때 아주 크고 혼탁함 만이 오직 가득하더라.

---이는 대혼돈(大混沌)이라 하며 또한 대천황(大天荒)이라 하니라.


---대천황(大天荒)---


전설은 대천황(大天荒)이 있었음을 말한다.

태극(太極), 태허(太虛), 그 이전에 극히 크고 허허(虛虛)로운 대혼돈(大混沌)이 있음을...


---천황(天荒).


만상(萬象)의 그 이견,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지혜가 통하지 않는 대근원이 이것이다.

천황지기(天荒之氣).

만상의 근원인 천황지기(天荒之氣).

그것은 영겁 속에서 만상을 탄생시키며 흩어졌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만상으로 흩어져 간 것이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한가닥의 전설이 인구에 회자하며 전해 내려온다.

그것은 이렇게 말한다.


---대천황지기(大天荒之氣)가 억겁(億겁)을 넘어 정(精)으로 뭉친 곳이 있다.

---한 모금의 천황지기(天荒之氣)를 취해도 천신(天神)이 될 수 있다.


<대천황연(大天荒衍)>


X X X


---천마(天魔)가 강림하다.

---마기(魔氣) 천지(天地)를 뒤덮어 이백성장에 이르다.

---천지지간에 정(正)이 멸절하고 마영(魔影)만이 가득하도다.


그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려진바 없다.

다만 무림이 막 태동되었을 무렵이었으리라.

그때, 한 명의 대마종(大魔宗)이 있었다.


<천마(天魔)>


완벽한 비밀로 나서 완벽한 비밀로 사라졌던 대마종이 있었다.

이백 년을 천하 위레 군림하고도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던 천마지존(天魔至尊)이 있었다.

죽음(死)과 암흑(暗黑)의 신(神).

천마(天魔).

고금오대마종(古今五大魔宗)의 지존(至尊)이며 영원한 마도대조종(魔道大祖宗)이 바로 그다.

그는, 신비 속의 출현만큼이나 신비롭게 인세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후,

한가닥 소문이 떠돌았다.


---천마는 천마총(天魔塚)가 묻혔다는 천마총에 대한 소문이었다.


천하인은 광분하여 천마총을 찾아 헤매였다.

왜?

그것은 천마총에 천마(天魔)의 모든 것이 비장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이(第二)의 천마(天魔).

그것은 곧 천하지존(天下至尊)을 의미하지 않는가?


이것이 신기보 제이신기(第二神奇)이다.


X X X


마(魔)와 사(邪)의 영원한 이상향(理想鄕)이 있다.

사마(邪魔)가 영원히 죽지 않는 곳,


<혈정극마갱(血精極魔坑)>


이 또한 대천황(大天荒)에서 나왔다.


---혼탁하고 무거우며 어두운 기운이 가라앉은 땅(地)이 되리라.


혈정극마갱(血精極魔坑)!

바로 어둠(暗)과 악(惡)함의 정(精)이 혈기(血氣)로 모이는 곳!

그곳이 바로 사마(邪魔)의 이상향인 혈정극마갱이다.

마령(魔靈)과 사령(邪靈)의 강함을 천만배로 눌려 주며,

영원히 죽지 않는 극마존체(極魔尊體)가 이루어지는 비밀이 혈정(血精)에 있다.


---혈정(血精)의 비밀을 풀어라!

---혈정극마갱(血精極魔坑)에 들어라. 곧 영세무적(英世無敵)이 되리라!


천세(千歲)에 걸쳐 사마(邪魔)의 추종자들은 광분하여 구주팔황(九州八荒)을 뒤집고 다녔다.

그러나...

없었다!

그 어느 곳에도 혈정극마갱의 혈기(血氣)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마의 핏발선 눈길은 잠기지 않았다.


---찾아라! 항시 정(正)에 눌리어 살아갈 수는 없지 않는가?

---회천(回天)의 사령지계(邪靈之界)는 혈정극마갱(血精極魔坑)에만 있다.


그렇게...

사마지도들의 핏발 선 눈길은 하늘의 끝과 땅의 밑바닥까지 훑고 있다.

과연...


---혈정극마갱(血精極魔坑)!


그 공포와 저주와 동경의 사마지경(邪魔之境)은 있는가?

과연... 있는가?


이것이 신기보(神奇譜) 서열 삼위와 신기(神奇)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풍운(大風雲)의 발원지이기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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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章 (一)

 

            天兵之章

 

 

 

<천병보(天兵譜)>

 

천병보(天兵譜)라는 책이 있다.

만겁무림(萬겁武林)에는 수천 수만의 병기(兵器)들이 나타났었고,

천병보(天兵譜)는 그중 일천(一千)의 절대명기(絶代名器)들을 적은 기록이다.

즉, 천병보(天兵譜)는 병장기들의 계보인 것이다.

병기의 모양, 종류, 만든 장인과 사용한 명인(名人)들 뿐 아니고,

병기와 얽힌 은원, 기연까지도 그 안에 수록되어 있다.

 

천병보(天兵譜)를 누가 처음 지었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천병보의 기록이 이천 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알려졌을 뿐...

천병보의 내용은 무림의 풍운과 더불어 변한다.

구병(舊兵)을 몰아내고 나의 신병(新兵)을 천병일천좌(天兵一千坐)에 올린다!

이것이 무림인들의 지상목표다.

천병보의 서열은 곧 병기주의 서열을 의미하므로,

그러나...

천세의 풍운에도 그 고고함을 잃지 않은 절대신병(絶代神兵)들이 있다.

영광스러운 천병일천좌에서도 최고봉을 지키는 열 개의 신병들...

이를 가리켜 천하는 천지십병(天地十兵)이라 하여 숭앙해왔다.

 

<천지십병(天地十兵)>

 

천병일천좌의 수좌(首坐)에서 서열 제 십좌를 지키는 십종신병(十種神兵)들이다.

---천지십병(天地十兵)!

그것은 무적(無敵)이고,

그것은 초극(초極)이며,

그것을 얻음은 곧 천하(天下)를 얻음이다.

 

천지십병(天地十兵)의 수좌(首坐)!

그 불멸의 영예는 전설(傳說)에 있다.

전설은 이렇게 말한다.

 

---태극일원(太極一元) 그 이전, 만상(萬象)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때.

대천황(大天荒)의 천황지기(天荒之氣)가 팔십겁(八十겁)을 쌓여 천병(天兵)을 이루다.

---이를 일컬어 팔황천병(八荒天兵)이라 하니라.

 

<팔황천병(八荒天兵)>

 

절대무적(絶代無敵)!

독존최강(毒尊最强)!

하늘(天)을 가르고 천신(天神)이라도 벨 수 있다는 천병지존(天兵至尊)!

형체(形體)도 모른다.

과연 어떤 종류의 병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팔황천병(八荒天兵)!

그것은 천병일천좌(天兵一千坐)의 수좌(首坐)이며 지존이다.

천하(天下) 위에 있다는 천상천병(天上天兵)!

그것이 팔황천병(八荒天兵)이다.

 

그리고...

천병일천좌의 서열이 위에서 구위까지 신병(神兵)에는 서열이 없다.

같은 시대에 한 번도 함께 나타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도 가공스러운 위력을 지닌 병기들인지라.

그 진정한 위력들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 팔대중병(八大重兵)은 다시 사대마병(四大魔兵)과 사대신병(四大神兵)으로 분류된다.

 

<사대마병(四大魔兵)>

 

---천마지존비(天魔至尊匕).

---만독묵린편(萬毒墨鱗鞭).

---혈황탈(血荒奪).

---천향옥잠(天香玉簪).

 

<사대신병(四大神兵)>

 

---천형제황검(天形帝皇劍).

---봉황극락조(鳳凰極樂鳥).

---패천신륜(覇天神輪).

---태양천화신창(太陽天火神槍).

 

이들이 무(無) 서열로 천병일천좌의 이위에서 구위를 차지하는 신병들이다.

 

---사대마병(四大魔兵).

---사대신병(四大神兵).

 

팔황천병(八荒天兵)의 전설에만 눌릴 뿐,

천세무림에 독존(毒尊) 무적(無敵)으로 군림해온 중병기들이 이것이다.

그중 일병(一兵)만 나타나도,

천하(天下)가 무릎을 꿇는다 전해진다.

 

그리고...

천병일천좌(天兵一天坐)의 제십좌(第十坐)의 병기가 있다.

이름하여,

 

<천극(天戟)>

 

그것은 아무런 특징이 없는 무기다.

극히 평범한... 아니 초라하기까지 한 하나의 극(戟)이 천극(天戟)이라 불린다.

천극(天戟)에 어떤 힘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지수의 병기...

그것이 천극(天戟)이다.

그것을 사용한 인물은 대라천기선(大羅天機仙)이라는 인물이다.

무림최고의 현자(賢者)라 불리는 그의 한 마디가 천극을 천병일천좌의 서열 십위 안에 있게 하였다.

 

--- 때(時)가 오리라. 천극(天戟)이 대광풍(大狂風)을 쓸어버릴 때가 오리라.

 

대라천기선(大羅天機仙)!

천년 후의 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안다는 최고의 현자...

그의 말을 천하는 믿는다.

믿기에 천극(天戟)을 천지십병(天地十兵)에 두른 것이다.

 

팔황천병(八荒天兵).

사대마병(四大魔兵).

사대신병(四大神兵).

천극(天戟).

 

<천지십병(天地十兵)>

 

은원은... 십병(十兵)이 동시대에 나타나면서 광풍으로 시작된다.

대영웅(大英雄), 그리고 상상치 못한 대혈마(大血魔)의 부활로 천지가 초유의 혼돈으로 치닫나니...

이것이 천병지장(天兵之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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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4월 전 6권 박스본으로 출간한 대본소용 무협지입니다.

박스본이란 5-7권의 무협지를 박스 하나에 넣어 만화대본소에 보급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무려 37년 전의 작품입니다.

다시 읽어보면 참으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구성과 묘사로 범벅이 되어있군요.

강산이 네번 가까이 변하기 전의 유물이라는 점,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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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장

 

               혈궁과 삼패의 궤멸 (2)

 

 

 

절곡(絶谷),

나는 새(鳥)라도 쉽사리 접근하기 힘든 깊고 깊은 계곡이다.

마치 지옥의 입구같은 절곡의 끝에는 의외로 수만 평은 됨직한 원형의 분지가 있다.

그 분지를 가득 메우고 음산한 혈기(血氣)에 뒤덮인 궁(宮)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혈기가 감싸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자욱한 혈무(血霧)요, 피보라였다.

창! 차창----

콰르릉---- 펑!

쐐------ 에---- 액! 파츠츠츳-----!

쾅! 콰릉------!

“와----- 아------!”

“크----- 악!”

“크------ 으---- 아------ 악------!”

아수라(阿修羅)가 만드는 지옥도(地獄圖)인가?

절곡 끝의 분지에 자리한 궁(宮) 일대에서는 무려 이만(二萬)에 달하는 인물들이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가공할 혈전(血戰)이었다.

궁을 방어하는 무리는 오천(五千)에 달하는 혈포인(血袍人)들이었다.

혈포인들을 공격하는 자들은 여러 부류였다.

팔구천(八九千)에 달하는 백포인(白袍人)들,

천(千)여 명의 요녀(妖女)들,

이천(二千)여의 잡다한 인물들,

그리고 수천 명의 악귀(惡鬼)같은 모습의 인물들이었다.

혈세사패의 무리들이 혈포인들을 합공(合攻)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처절한 사투였다.

“크-----악!”

“크---- 아----- 악!”

꽈르릉---- 콰쾅-----!

쐐----- 애----- 액!

차차------창---- 창------!

비명과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요란한 폭음, 금속음이 절곡을 메웠다.

숫적으로는 열세였으나 혈포인들 개개인의 무공은 혈세사패보다 우월했다.

다만 공격하는 혈세사패 수하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몰리고 있을 뿐이었다.

장내에는 피의 시신이 산(山)처럼 쌓이고 피가 내를 이루고 있었다.

실로 인세(人世)의 종말들 보는 듯한 아비규환의 지옥도였다.

한데 그때였다.

“우... 우... 우... 우...”

돌연 한 줄기 장소성이 궁의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왔다.

화악!

이어 한 줄기 혈영(血影)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혈영은 전신에 핏빛 장포를 걸친 노인이었다.

쉬------- 익!

단번에 수십 장 높이로 솟구쳐 전세를 살펴본 혈포노인의 얼굴이 무시무시한 살기로 물들었다.

“혈세사패(血洗四覇)! 네놈들이 감히 혈궁(血宮)을 치다니! 간이 부었구나!”

혈포노인은 음산무비한 일갈을 터뜨렸다.

절곡에 자리한 궁은 혈궁이었다.

그렇다면 혈포노인은 혈궁의 궁주인 혈종(血宗) 아니겠는가?

쉬------ 익!

혈종은 곧장 혈세사패의 무리들에게로 폭사해갔다.

콰르릉...

직후 일성 폭음과 함께 엄청난 혈강(血罡)이 장내를 휩쓸었다.

콰르르... 콰,... 응...

“크------- 악!”

“아----- 아------ 악!”

“크----- 아------ 악!”

놀랍고 끔찍한 일이었다.

혈종이 쏟아낸 혈강이 휩쓸자 혈세사패의 인물들은 추풍낙엽같이 피를 뿌리며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크하하핫... 가거랏! 염라전으로...”

혈종은 광소를 터뜨리며 양손을 뻗었다.

스스스! 화악!

혈종의 양손에서 피 안개같은 것이 확 뿜어져 나왔다.

순간 그자 근처에 있던 혈세사패의 수하들은 비명을 지르며 목을 움켜쥐었다.

“크----- 아! 독... 독(毒)이다.”

“아아악-----”

“크------ 으----- 악!”

삽시에 백여 명의 혈세사패 수하들이 피부가 시커멓게 변색되어 나뒹굴었다.

실로 가공할 독의 위력이었다.

혈종은 엄청난 살기를 발산하여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핫... 모두 모두 죽이리라.”

그는 양손을 내저었다.

그때마다 백여 명이 무더기로 짚단 쓰러지듯 넘어졌다.

실로 가공할 독공이었다.

그때였다.

“호호호홋...”

돌연 혼백을 빼앗을 듯이 요란한 교소가 터짐과 동시,

“크크큿... 혈종!”

음산한 외침과 함께,

휘르륵...

혈종의 주위로 삼인(三人)의 인영이 내려섰다.

그들이 나타난 순간 혈종은 만면에 더욱 살기를 발산했다.

“크하하... 네놈들이었군!”

나타난 삼인은 다름 아닌 천살백제, 지옥천공. 요지선녀였다.

즉 혈세사패의 수뇌들인 것이었다.

단지 그들 가운데는 환공강의 주인인 환영비마만이 없었다.

천살백제가 입을 열어 음침하게 말했다.

“혈종! 순순히 검황종의 검경을 내놓아라!”

그 말에 지옥천공과 요지선녀의 얼굴에 탐욕의 빛이 어렸다.

혈종은 그 말에 노갈을 터뜨렸다.

“미친 소리! 검황종의 검경이라니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냐?”

그러자 요지선녀가 요사스럽게 몸을 흔들며 웃었다.

“흣흣흣... 천하가 다 아는 일인데 시치미를 떼다니 혈종답지 않군요.”

지옥천공도 음침하게 한 마디했다.

“혈종! 검황궁의 검경을 혼자 독차지 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그들의 말에 혈종은 마침내 만면에 흉폭한 살기를 드러냈다.

“크크크... 네놈들이 본 혈종을 위해하기 위해 별 수작을 다 꾸미는구나! 좋다! 오랏! 받아주마!”

수르르르...

혈종의 전신 핏빛장포가 부풀어 오르며 그의 전신에서 시뻘건 혈기가 일어났다.

“갈!”

천살백제가 먼저 기형장도를 발출했다.

번쩍!

쐐------ 애----- 액----!

가공할 도기(刀氣)가 전광처럼 떨었다.

“으핫핫핫... 감히!”

콰르릉!

혈종은 뭉클한 혈기를 뻗으며 도세를 막았다.

“흣흣흣흣... 여기도 있다!”

“흣흣흣... 지옥이 너를 부른다!”

콰르릉... 콰릉...

사인(四人) 대격돌.

엄청난 혈전이 벌어졌다.

혈세사패의 주인과 천하를 주름잡는 혈궁의 궁주 혈종이 삼대 일로 맞붙은 것이었다.

콰르릉------- 콰------- 앙!

파츠츠츠츠... 콰릉...

콰르르...

엄청난 경풍, 강기의 소용돌이가 일어 지면에 구덩이가 파이고 흙먼지가 십 장 높이로 치솟았다.

막상막하의 접전이었다.

혈종의 무공은 실로 대단했다.

그는 삼패의 주인들의 협공을 막힘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콰------- 콰릉-------

치열한 격전이 자욱한 흙먼지와 폭풍 속에서 숨 가쁘게 전개되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었다.

천살백제는 싸움의 와중 속에서 힐끗 장내를 살펴보았다.

어느덧 대혈전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혈세사패와 혈궁의 수하들은 거의 만오천명(萬五千名)이 시신으로 화해 있었다.

혈궁 일대는 말 그대로 시산혈해를 이루고 있었다.

창... 차차차... 창...

꽈릉... 콰... 쾅...

“으------ 아----- 악!”

“크----- 아------- 악!”

싸움은 끝이 없을 듯 계속되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는 고작 천여 명의 혈궁도, 오천여 명의 혈세사패 수하들이 전부였다.

상황을 파악한 천살백제는 내심 중얼거렸다.

(빙궁(氷宮)까지 끌어들였어야 했는데... 게다가 환공강의 주인인 환영비마(幻影飛魔), 그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다니...)

천살백제는 두 눈 가득 살기를 띄었다.

(이제 끝을 내자. 너무 오래 끌었다.)

스스스...!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이 옆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그는 도(刀)를 기이하게 비껴들었다.

그것은 베는 것도, 찌르는 것도 아닌 괴이한 자세였다.

파파팟!

이어 엄청난 도강(刀罡)이 장도로부터 폭사되었다.

“헉!”

혈종은 느닷없이 폭사된 도강에 기겁을 하도록 놀랐다.

그는 전력을 다해 방어했다.

콰르릉-------!

일성폭음과 함께,

“크------- 윽!”

그는 가슴이 화끈함과 동시에 분수같은 피가 솟는 것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앗...!”

“아니...!”

그 갑작스런 변화에 합공하던 지옥천공과 요지선녀도 놀라 경악성을 발했다.

위------- 잉!

뒤미처 천살백제의 장도에서 웅후한 파공성과 함께 찬란한 광채가 눈부시게 일어났다.

아!

그것은 부챗살처럼 쫘악 펼쳐지더니 일순간에 봉황(鳳凰)의 형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네... 네놈...!”

혈종은 아연하여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나 그런 중에도 그는 전력을 다해 쌍장으로 혈강을 내쳤다.

“크------ 악-----!”

그에게 뻗치던 도기(刀氣)는 여지없이 그의 혈강을 관통하고는 혈종의 가슴을 꿰뚫고 말았다.

“끄----- 끄... 으... 큭!”

혈종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끄득거리며 천살백제를 노려보다가는 뒤로 넘어갔다.

쿠------- 웅!

그는 말없는 사목(死木)이 되었다.

그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허망한 사신(死身)이 되고 만 것이다.

“...!”

“...!”

놀라운 사실에 지옥천공과 요지선녀는 너무나 아연하여 멍하니 넋을 잃고 말았다.

천살백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도를 늘어뜨린 채 천천히 그들 양인을 돌아보았다.

요지선녀가 문득 공포스러운 기색을 하며 더듬거렸다.

“그... 그대... 천살백제가 아니... 으------- 악!”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요지선녀의 입에서는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녀는 눈앞에 갑자기 봉황이 나타나 나래를 편다싶은 순간 번쩍하는 도광(刀光) 아래 고혼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요염한 허리가 여지없이 두 동강 나고 만 것이다.

일대요녀(一大妖女)의 죽음치고는 너무도 허무했다.

지옥천공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으... 으... 우리 모두... 네게 속았... 구나!”

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요지선녀를 벤 가짜 천살백제, 즉 이검엽은 말없이 도를 비껴들었다.

매우 괴이한 자세였다.

“그... 그것은...!”

지옥천공은 그 자세에서 무엇인가를 느낀 듯 안색이 홱 변했다.

바로 그 순간,

“잘 가시오!”

번------- 쩍!

파츠츠츳------!

가공할 도기(刀氣)가 작렬하듯 전광처럼 뻗었다.

그 순간 지옥천공도 전력을 다해 반격했다.

“우------- 얍!”

지옥유명강(地獄幽冥罡)이 펼쳐진 것이다.

콰콰콰------- 쾅----!

폭음이 작렬하고,

“크------- 악!”

비명이 터졌다.

동시에 지옥천공의 심장에서 피분수가 치솟았다.

그는 가슴을 부여안고 휘청거렸다.

“지... 지옥명살... 조사(祖師)의... 무공이... 었군.”

이검엽은 침중하게 말했다.

“그렇소. 어기천강산(御氣天罡散)이라는 것이오.”

지옥천공의 얼굴에 의혹이 어렸다.

“그대... 는... 누구... 요?”

이검엽은 장도를 내리며 담담히 물었다.

“그대는 검황종을 기억하시오?”

지옥천공의 얼굴에 죽음이 내렸다.

“그... 그랬었나...?”

쿠------- 웅!

그는 거목이 쓰러지듯 뒤로 넘어졌다.

그때였다.

“사부님의 원수!”

쐐------ 액!

갑자기 이검엽의 측면에서 노도같은 강기가 쇄도해 왔다.

이검엽은 그 공격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이러고 싶지는 않으나... 어쩔 수 없군.)

번------- 쩍!

그의 손에 들린 도가 한 차례 섬광을 그렸다.

항거할 수 없는 도강이 먼저 쇄도한 강기를 종잇장처럼 찢으며 파고들어갔다.

“크------ 흑!”

한 차례 비명과 함께 한 명의 청년이 장도에 가슴이 갈라져 나뒹굴었다.

그는 바로 지옥마군자(地獄魔君子)였다.

“끄윽...”

지옥마군자는 가슴이 갈라진 채 눈을 부릅뜨며 신음을 토했다.

이검엽은 천천히 얼굴에 쓰고 있던 복면을 벗었다.

드러난 그의 얼굴을 본 지옥마군자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대... 였군.”

이검엽은 영준한 얼굴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귀공과 본인은 때를 잘못 타고 났소.”

“동감... 이오.”

지옥마군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문득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대와... 술을 한번 거나하게 마셔보지도 못한 것이... 유감천만... 내생에는 필히... 친구로... 태어나길...”

그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지옥마군자의 고개가 힘없이 꺾였다.

마침내 생(生)을 마친 것이다.

(부디 극락왕생하시오.)

지옥마군자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이검엽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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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六 章

 

        太極神后 危機 (2)

 

 

 

 

방심했군. 저자의 혈응비천보(血應飛天步)가 무림일절임을 잊다니...”

이검엽은 혀를 찼다.

그때였다.

스스스...!

무엇인가가 이검엽의 손으로 날아왔다.

번쩍이는 편린이 혈응신수를 격상시키고 신기하게도 되날아온 것이었다.

용린!

바로 천지곤룡의 비늘이었다.

일만(一萬) 년에 겨우 하나씩 생기는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물체.

이검엽은 그 용린을 어심극검(御心剋劍)의 수법으로 던져낸 것이었다.

되날아온 용린을 회수한 이검엽은 태극신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직후 그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너무도 아름다운 태극신후의 몸매에 절로 가슴이 떨렸던 것이다.

태극신후는 부끄러움으로 인해 얼굴은 물론 긴 목까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 이공자님이신가요?”

그녀는 두 눈을 꼭 같은 채 더듬더듬 물었다.

이검엽은 급히 시선을 허공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 그렇습니다. 한데... 어디를 제압당하셨습니까?”

... 마혈을...”

------- !

이검엽은 일지(一指)를 튕기고는 돌아섰다.

혈도가 풀린 태극신후는 급히 일어나 의복을 걸쳤다.

그리고는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검엽에게 물었다.

청아와 홍아는 어찌 되었나요?”

이검엽은 태극신후를 향해 몸을 돌리며 싱긋 웃었다.

무사합니다.”

그 직후였다.

두두두!

절벽 위에 백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미조가 백운의 등에 앉아있는데 앞쪽에 청아와 홍아를 앉히고 있었다.

청아와 홍아, 위경을 넘긴지 반각도 안되었건만 두 소녀는 다시 장난기 가득한 말괄량이로 돌아와 있었다.

어머! 사부님 옥안에 꽃이 피어잖아!”

당연하지! 저 아저씨하고 같이 있잖아!”

제자들의 짓궂은 장난에 태극신후는 홍시같이 얼굴을 붉히며 이검엽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어찌 감사해야할지...”

이검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외다. 마침 문주를 찾아뵈려다 우연히 만난 것뿐입니다.”

천녀를 만나려 발걸음 하셨습니까?”

,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외다.”

부탁이라니요?”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가는 중에 말썽꾸러기 두 소녀가 끼어들었다.

어머! 사부님은 언제까지 아저씨를 혼자 독차지할 거예요?”

정말! 청아와 홍아는 이미 사부님 신랑감으로 결정했지만 벌써부터 너무했다!”

저 애들이 정말...”

제자들의 쫑알거림에 태극신후는 질겁했다.

그녀는 확확 얼굴이 달아올라 어쩔 줄을 몰랐다.

헤헤...!”

호호...!”

청아와 홍아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검엽 역시 멋쩍게 웃었다.

허참! 이거야 원...”

그는 태극신후를 보며 말했다.

우선 올라가십시다. 이곳에 더 있다간 두 말괄량이들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지요.”

휘르르르...!

휘익!

두 남녀는 몸을 날려 절벽 위로 올라갔다.

그 즉시 청아와 홍아는 백운의 등에서 뛰어내려 이검엽에게 달려왔다.

아저씨! 아저씨!”

보고 싶었어요!”

하하... 나도 보고 싶었다.”

이검엽은 달려드는 두 소녀를 끌어안았다.

! 다 큰 아가씨들이라 꽤 무거운 걸?”

홍아가 먼저 이검엽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아저씨. 홍아가 아저씨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글쎄 얼마만큼이나 보고 싶었을까?”

이검엽은 짐짓 관심있는 척 물었다.

홍아는 팔을 크게 벌려 원을 그려 보았다.

이마만큼!”

그러자 청아와 입술을 삐쭉거렸다.

! 청아는 저 하늘만큼 보고 싶었는 걸?”

홍아가 그 말을 받아 다시 삐쭉!

피이! 네가 아무리 그래도 사부님만큼 보고 싶지는 않았을 걸?”

덕분에 태극신후가 쩔쩔 매였다.

청아, 홍아! 너희들 정말 이럴 테냐?”

그녀는 입장이 난처해 땀을 뺐다.

, 장난꾸러기 아가씨들. 이리로 앉자.”

이검엽은 흐뭇하게 웃으녀 두 소녀를 풀밭에 앉혔다.

그리고는 설미조를 태극신후에게 소개했다.

문주께선 아마 미조를 아실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태극신후는 설미조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이내 그녀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혹시... 흑룡방의 꼬마 아가씨가 아니야?”

설미조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맞아요. 칠년 전, 언니께서 아버지를 뵈러 오셨을 때 저도 언니를 뵌 기억이 나요.”

태극신후는 설미조의 손을 꼭 쥐었다.

정말 몰라보게 자랐구나. 그후 영친과는 여러 가지 일들로 수차 만났지만 동생은 처음이구나.”

그녀는 감개가 무량한 듯 설미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태극신후는 궁금한 듯 물었다.

한데... 미조 동생은 어떻게 이공자님과 동행하게 되었지?”

이검엽이 대신 대답했다.

이중에는 좋지 않은 사연이 있소이다.”

이어 그는 설미조의 부친인 흑룡방주 흑룡왕(黑龍王)이 뒤바뀐 사실을 간략하게 얘기했다.

태극신후는 경악하여 부르짖었다.

... 어떻게 그런... 일이...!”

이검엽은 침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소생이 미조를 돌보아 주기로 했으나 여러 가지로 다망하여... 잠시 미조를 문주께서 데리고 계셔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태극신후는 선뜻 대답했다.

기꺼이 그렇게 하지요.”

그녀는 말과 함께 설미조의 두 손을 꼭 쥐었다.

“...!”

설미조는 고개를 떨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검엽은 다시 입을 열었다.

소생은 미조와 의남매의 인연을 맺었소이다. 소생 손으로 흑룡방을 미조에게 도로 찾아 주려하는 데 그동안만 문주께 폐를 끼치려 하는 것이외다.”

그의 눈에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태극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미조는 언제까지든 친동생같이 돌보겠어요.”

감사합니다.”

친남매간인 양 이검엽은 설미조를 대신해 깊이 머리 숙였다.

사부님. 이 언니가 그럼 우리하고 살 거야?”

그렇단다.”

태극신후가 대답하자 청아와 홍아 두 소녀는 손뼉을 쳤다.

와아! 좋아라! 언니 잘 부탁해요.”

우리도 이제 언니가 생겼다. 그치?”

두 소녀의 호들갑에 설미조의 표정도 환해졌다.

그래. 미조도 잘 부탁한다.”

이검엽과 태극신후.

두 사람은 설미조를 포함한 세 소녀가 하는 양에 미소를 교환했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좋아하며 어울리나 봐요.”

하핫... 그런 것 같습니다.”

이어 태극신후는 정중하게 청했다.

이제 그만 산을 내려가시지요. 폐문이 멀지않은 곳에 있사오니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군요.”

폐를 끼치도록 하겠습니다.”

이검엽은 대답하고는 백운의 등에 설미조를 태웠다.

그리고 그녀의 앞뒤로 청아와 홍아를 앉혔다.

백운. 난폭하게 굴면 안된다.”

그가 등을 두드려주자 백운은 알았다는 듯 울어댔다.

히히힝...

! 신난다. 백운 달려라! 달리라구!”

홍아는 백운의 등에서 마구 펄쩍펄쩍 뛰어 올랐다.

그 바람에 백운은 지면을 박차며 내닥기 시작했다.

! -------

두두두두...

------- !”

소녀들의 환성은 산이 떠나갈 듯 메아리쳤다.

백운은 산길을 평지 달리듯 신나게 달려 내려갔다.

태극신후는 조용히 웃어 보였다.

신마(神馬)로군요.”

이검엽은 마주 미소했다.

그렇습니다. 백리신구의 혈통을 지닌 순종입니다.”

곧 이어 이들 두 남녀도 백운의 뒤를 따랐다.

하하! 백운 같이 가자!”

스스슥...

이들은 마치 행운유수처럼 지면을 스치며 날았다.

청아와 홍아는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호호홋! 아저씨 사부님! 빨리 와요. 빨리요.”

하하핫... 그러마.”

호호...”

이검엽을 비롯한 그들 일행은 웃음을 여운으로 남기며 멀리 사라져 갔다.

한데, 바로 그 직후였다.

스스스...

절벽 아래로부터 가냘픈 왜영이 날아올랐다.

그 왜영은 한 명의 자의여인이었다.

절벽 위에 핀 한 송이 꽃이런가?

꽃이라면 사천초목이 일시에 넋을 잃고 말리라.

그만큼 그 여인은 절세의 미인이었다.

바로 고금제일미인 단목자혜였다.

보름달을 연상시키듯 자태!

너무도 완벽한 미를 갖춘 여인.

그러나 지금 단목자혜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어른거렸다.

그녀는 우수에 찬 시선으로 이검엽이 사라진 곳을 응시했다.

...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겠구나.”

깊은 탄식이 그녀의 입으로부터 새어나왔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키 어려운 듯 두 손으로 가슴을 감쌌다.

처음에는 단지 그가 파천대업에만 동행하면 그 뿐이라 생각했거늘... 저 평범한 서생이 어느덧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게 아닐까?”

사실 이검엽은 어리석을 정도로 단목자혜에게 몰두해 있었다.

때문에 대의(大義)와 그녀의 말을 혼동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를 향한 이검엽의 마음은 거센 폭풍과도 같았다.

반면 단목자혜는 달랐다.

지나치도록 현명하고 영악한 여인이었기에 그녀는 쉽게 이검엽을 조종해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분명 애를 태우는 쪽은 이검엽보다 단목자혜였다.

절세미남은 아닐지언정, 이검엽에게는 은은한 기품으로써 상대방을 압도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역시 단목자혜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문득 단목자혜는 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자혜야 자혜! 정신 차려라. 네게는 선대(先代)에 정해진 혼약자가 있지 않느냐?”

그녀는 자책을 함이 분명했다.

못난 계집. 외간 남자에 방심이 흔들리다니...”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어쩔 수 없는 갈등이 스쳤다.

휴우...”

저절로 나오느니 깊은 한숨 뿐.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머물렀다.

------ !

을씨년스러운 새벽 바람이 그녀의 옷깃을 날렸다.

그녀는 한없이 고적함을 느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

이윽고 단목자혜는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멀리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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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五 章

 

         새로운 복지(福地)를 찾아서

 

 

폐허가 된 소음곡이 있던 절벽 위‥‥‥

아무런 흔적도 남지않고 오직 거대한 바위들만 흩어져 있는데‥‥‥

한여인이 미친 듯이 바위를 던져내고 땅을 파고 있었다.

바로 조응경이었다.

[안돼‥‥‥그가 죽으면‥‥‥그는 틀림없이 살았을 거야‥‥‥]

그녀는 이성을 잃고 중얼거리며 손에서 피가 나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바위를 파고 있었다.

돌연,

펑펑!

하나의 바위가 허공으로 날아올라 산산히 깨어졌다.

한데,

바위가 있던 곳 아래로 검은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아닌가?

그곳으로부터 몰골이 말이 아닌 남녀들이 힘겹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황청청을 데린 주혜린과 황창설을 필두로한 계곡의 탈출자들이었다.

황군성과 진우란 등이 나오고‥‥‥

황군우와 전연옥이 나왔으며‥‥‥

금화선녀와 육천태가 나왔다.

또한,

가까스로 위기일발의 순간에 그들과 합류했던 전무옥과 위지장천이 만신창이 된 몸으로 나왔다.

[아!]

조응경의 긴장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자연의 대 재앙앞에서,

인간은 나약할 뿐이고 비록 원수라 하더라도 자연과 맞서기 위해서는 인간은 힘을 합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존자들의 얼굴에는 엄청난 일을 경험한 뒤의 허탈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위지장천과 전무옥은 황창설에게 포권해 보인다음 힘없이 떠나갔다.

금화선녀는 정신이 나간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나오지 못하다니‥‥‥그 사람이 나오지 못하다니‥‥‥어떻게 그럴 수가‥‥‥그럴 수가‥‥‥]

놀랍게도,

중얼거릴 때마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늙어가고,

삼단같던 머리채는 검은 색을 잃어가며 백발로 변하고 있었다.

[어 어머니‥‥‥]

임단심이 안타까워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울먹였다.

[그가‥‥‥그가‥‥‥아! 여보‥‥‥당신은 영원히 죽지 않을 줄 알았는데‥‥‥]

금화선녀의 중얼거림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애절한 심정이 그대로 담겨있어 주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모두가 큰 일을 겪은 후이라 힘이 있어도 기력이 없는 때인데‥‥‥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담담히 들려온 음성이 금화선녀를 사시나무처럼 떨리게 했다.

[부인! 당신은 평생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당신도 늙었구려‥‥‥]

절벽의 한쪽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는 애정을 듬뿍 담은 눈으로 금화선녀를 응시했고‥‥‥

[나도 용암을 뚫고 올라오느라 금강신(金剛身)이 파괴되어 버렸소.]

금화선녀와 임단심이 그를 향해 달려갔다.

 

× × ×

 

계곡을 똑바로 뚫고 올라왔던 임보산은 근처에서 한천사방객을 찾아서 타협을 본 후였다.

그의 뒤에는 그들이 서있었다.

진우란이 그들 앞에 가서 무릎을 굻고 처분을 기다렸다.

한천사방객 중 초사륭이 탄식하며 말했다.

[네째!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 여기게. 자네의 복수는 사신의 귀한 딸에게 우리 제자의 아이를 낳게 하는 것으로 끝내게나.]

단극린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한을 풀자고 제자에게 한을 줄 수로 없겠지요. 한이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가 아닙니까. 저도 이 아이처럼 예쁜 아이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늙어버린 임보산과 육천태가 그를 칭찬하며 말했다.

[진정 훌륭하오. 원한을 이렇게 갚는 것은 훗날에도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오.]

진우란은 단극린에게 절하며 울먹였다.

[평생 아버님처럼 생각하며 모시겠어요.]

황군성은 사부들에게 연거푸 절하며 감사했다.

소음곡이 있던 절벽 위에는 모든 은원이 풀어지고 있었는데‥‥‥

오직 한사람 조응경만은 쓸쓸히 혼자 떨어져 서있었다.

그녀의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그녀 혼자 황군성을 구하려고 태산을 옮기려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을 벌였는데‥‥‥

 

황창설은 주혜린과 의논한 후에 그의 가족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 문성무존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야 한다. 나와 청청이, 그리고 이사람은 강북 일대를 물색해 보겠다. 군성이는 강남을 맡고 군우는 사천 지방을 맡도록 해라.]

문성무존의 가족들은 다시 서천복지를 찾아 모이기로 약속하고 떠나가기 시작했다.

황창설 부부가 제일 먼저 떠나갔고 그 다음에 황군우가 전연옥을 데리고 떠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모두 황군성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의 일행이 가장 많기에 제일 늦게 출발하는 것이다.

[이제 떠나게나.]

임보산이 말했다.

황군성은 조응경을 힐끗 돌아보고 고개를 돌려 앞장서서 걸었다.

조응경은 참담한 기분 속에서 하늘을 보고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그때 임단심이 말했다.

[아무래도 않되겠어요. 아버지! 육백부! 통심마고를 몸속에서 꺼낼 방법이 있어요?]

임보산도 육천태도 고개를 저었다.

[전륜법왕은 할 수 있을 텐데 그가 죽었으니 이제 아무도 그걸 하는 사람이 없어졌지.]

임단심이 황군성의 소매를 잡으며 소리쳤다.

[방법이 없다잖아요. 황오라버니 당신은 나를 죽일 참인가요? 왜 조소저를 데려와 죽지 못하게 지키지 않는 거예요? 그녀도 당신을 위해 손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임단심과 똑같은 모습의 조응경의 얼굴에 가득낀 먼지를 씻어 내리며 눈물이 타고 흘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세상에 태어난 후 어느 때 보다도 기쁨으로 가득 차있었다.

 

× × ×

 

하늘에 호생지덕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늘은 인간의 피를 좋아할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고대로 부터 인간을 제물로 해서 하늘에 제사지냈겠는가?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림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 것이고,

하늘은 그들이 또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잡아먹을 궁리를 할 것이다.

어떻게 요리할까 하면서‥‥‥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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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四 章

 

             피리소리가 끊기다.

 

 

 

끼익! 끽!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일어선 동피철골시들은 마치 군대처럼 정렬하고 있었다.

먼저 내려온 것들은 위치를 정하고 움직이지 않고,

뒤에 떨어진 것들은 그뒤로 나열하고 있다.

여인들은 이 기괴한 광경에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동피철골시는 오백 여구 정도 되었다.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목석처럼 정렬하고 있다.

골짜기에는 오직 두쌍의 싸움만 치열하게 벌어질 뿐,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동피철골시를 바라보고 있다.

 

× × ×

 

소음곡 절벽위,

언젠가는 마왕 하후승이 서서 은밀히 소음곡을 훔쳐보던 자리,

제갈공지가 마치 제왕같은 모습으로 치장하고 서있다.

그는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면서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황혼이 그의 금포를 비치고 찬란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제갈공지는 동피철골시의 위로 내려와 그들의 머리를 밟고 섰다.

[후후후후‥‥‥]

기이한 웃음을 날리며 뭇사람들을 오만하게 바라보는 제갈공지는 신검보에서 검신에게 완전히 복종하고 있던 그때의 제갈공지가 아니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가만있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못떼고 있었다.

제갈공지가 말했다.

[안심하시오. 본 황(皇)은 문성무존의 무공과 영약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니‥‥‥]

그는 자신을 황이라고 일컫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고수가 너무 많소. 그래서 나는 이곳을 깨끗이 청소할 생각이오만‥‥‥]

위지장천이 무거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갈지공‥‥‥갈지공이었군. 결국은 모습을 드러내는군.]

제갈공지가 앙천광소를 했다.

[크하하하‥‥‥위지장천, 아니 혈주, 미안하게도 너무 늦게 알았소. 이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줘야 하오. 본 황의 무림대업을 위해서‥‥‥]

[이자들은 모두 삼장(三莊)을 찾았다가 실종된 고수들이겠군.]

[그또한 혈주는 너무 무심했지. 확실히 어리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과 통했으니까.]

바로 그때,

번쩍!

쾅쾅!

황군성과 남궁파가 충돌하고 떨어졌다.

한데 남궁파의 혈화창은 황군성의 복부를 관통하고 등뒤에까지 빠져나와 있었다.

진우란이 비명을 질렀다.

[악!]

하지만 땅에 내려선 황군성은 쓰러지지 않고 굳건하게 서서 막 내려서는 남궁파를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남궁파의 몸이 발을 땅에 대는 순간에 종이조각처럼 힘없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뭉클뭉클‥‥‥

뜨거운 내장이 와르르 쏟아지고 그의 몸은 머리까지 정확하게 양분되어버렸다.

서로가 치명적인 일격을 추고 받았던 것인데 황군성은 살았고 남궁파는 죽었다.

황군성은 자신의 복부를 관통하고 있는 혈화창의 손잡이를 이를 악물고 힘껏 쳤다.

푸욱!

그의 등뒤로 혈화창이 빠져 나가면서 피가 솟구쳤다.

임단심이 달려가 구룡로를 갖다 댔다.

그녀는 황군성이 그 지경이 됐어도 안색도 변하지 않았다.

구룡로로 상처를 문지르면서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제갈공지가 바로 신검보에서 내게 누명을 씌운 자예요. 어쩐지 그의 서재가 우리가 가보았던 삼성혈의 화운장과 비슷하다 싶었어요.]

황군성이 말했다.

[싸우면서도 저자의 말은 듣고 있었소.]

[위지장천의 표정을 보니까 동피철골시라는 게 보통이 아닌 모양이에요.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할 것같아요.]

임단심이 그렇게 속삭일 때,

황군성의 귀로 주혜린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내 말을 명심해라. 이건‥‥‥소음이 멈추면‥‥‥]

그녀는 황군우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황군성에게 했다.

황군성은 전신에 새로운 긴장이 팽배해짐을 느꼈다.

임단심의 말마따나 정말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황군성은 제갈공지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제갈군사, 축하하는 바이오. 호랑이가 없는 산에서 왕이 되시려 하는구려.]

그러자 황숭환이 소리쳤다.

[더 이상 다가가지 마라.]

제갈공지가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확실히 늙은이가 뭔가를 아는군. 그러나 다 끝났어! 이제 모두 죽어야지.]

그가 손을 번쩍 들었다.

바로 그때,

콰쾅!

마왕과 임보산의 경력이 맞부딪히며 방향을 바꾸어 제갈공지를 향해 밀려갔다.

쿠쿠쿠쿠-------!

제갈공지가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막아라!]

순간,

동피철골시들이 날아오르며 풍차처럼 회전했다.

콰콰콰쾅!

그들이 이룬 힘이 천년의 공력을 지닌 하후승과 임보산의 힘을 되 튕겨 버렸다.

임보산과 하후승은 충격을 받고 땅으로 떨어졌다.

동피철골시들은 내려서고 제갈공지는 오만하게 웃고있었다.

[크하하하‥‥‥모두 내 위력을 보았겠지.]

그는 쇠가 울리는 듯 쟁쟁하게 소리쳤다.

[모두 죽여라!]

동피철골시들은 벌떼처럼 산개하며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악!

아악!

비명이 터져 나오고,

어느 순간에 주혜린은 귀가 허전함과 동시에 소음(簫音)이 들려오지 않음을 느꼈다.

그녀는 빠르게 눈을 굴려 황창설을 찾았다.

그녀의 귀에 황숭환의 준엄한 외침이 들렸다.

[가라!]

주혜린은 황청청의 손을 잡고 날아올랐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다.

동피철골시는 괴물이었다.

그들은 진정 마물이었다.

우우우우------!

황군성은 용처럼 길게 부르짖으며 임단심과 조응경을 껴안고 날아올랐다.

그의 곁으로 진우란이 그림자처럼 따랐다.

이미 예언은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임단심이 목이 터져라 외쳤고,

금화선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날았다.

황군우와 전연옥도 날아오르는 중이었다.

날아오르는 자들의 뒤를 따라 동피철골시들도 튀어올랐다.

번쩍!

황숭환이 철인검을 펼쳐 그들을 공격하며 괴노 육천태와 임보산에게 소리쳤다.

[저들을 따라가시오.]

[조부님!]

황창설이 외치자 황숭환이 호통을 쳤다.

[뭣하는 게냐?]

황창설은 육천태와 함께 몸을 날렸다.

바로 그 순간,

[키야압!]

위지장천이 동피철골시의 틈을 뚫고 허리춤에서 긴 채찍을 펼쳐 휘둘렀다.

우우웅-----!

채찍은 영활한 뱀처럼 빈틈을 뚫고 제갈공지를 향해 날아갔다.

파파파팟------!

그의 채찍에서는 푸른 번개가 치는 듯했다.

동피철골시들도 그것이 두려운 지 순간적으로 멈칫하고,

그 사이에 고금십대천병의 하나인 위지장천의 자전편(磁電鞭)은 제갈공지의 코앞에 다가가 있었다.

[크흣! 자전편 따위‥‥‥]

제갈공지의 몸이 환상처럼 옆이로 이동하며 자전편을 피했다.

파파팍!

동피철골시들이 자전편을 휘어감았다.

순간,

제갈공지는 뇌호혈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 어이해 내가‥‥‥? 나 갈지공이‥‥‥]

본명 갈지공‥‥‥

제갈공지란 이름으로 이십여년을 살아온 그의 머리에는 뒤에서 부터 이마까지 작은 구멍이 나있었다.

동피철골시 하나가 뛰어오르며 그의 앞에 섰다.

한데,

괴물같은 얼굴을 떼어버리자 그는 전무옥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제갈공지를 감시하다가 마침내 기회를 봐서 무광검으로 죽인 것이었다.

위지장천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를 죽여서는 안돼! 이 마물들을 조종할 사람이 없어!]

그러나 이미 제갈공지는 허망하게 죽어버렸고,

그와 영성에 통제를 받던 마물들은 더욱 미친 듯이 날뛰었다.

황숭환과 살아남은 문성무존의 인물들은 마물들이 소음곡 안쪽으로 가지 못하게 치열하게 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속절없이 죽어갔고,

마왕과 마물은 또한 그렇게 둘 다 미쳐서 어우러져 있고,

임보산은 가공할 무공으로서 황숭환을 도와 마물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는 이미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 먼저 안쪽으로 떠나간 사람들이 탈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떠나지 못하고 마물들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빠져 나가면 금방이라도 저지선은 무너지고 말것이기에‥‥‥

[여보‥‥‥! 빨리 와요!]

금화선녀가 천리전음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황숭환이 소리쳤다.

[가시오! 당신의 무공이면 지금도 갈 수 있소.]

그러나,

임보산은 선뜻 몸을 빼지 못하고 있었다.

끼얍!

위지장천과 전무옥이 대신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저지선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 뿐이라고 뜻이 통한 것이다.

문성무존의 생존자들은 그들을 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뒤를 따라 잡으려는 마물들을 저지할 뿐이었다.

황숭환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가시오!]

순간,

쿠쿠쿠쿠쿠-------!

하늘이 우는가?

땅이 곡을 하는가?

지축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콰릉‥‥‥!

계곡 양쪽의 석벽이 무너지면서‥‥‥

쿠아아------!

시뻘건 용암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계곡은 비틀리고 계곡을 형성하고 있던 원래의 갈라진 두개의 절벽은 무너지면서도 합쳐지고 있었다.

아!

인간의 천인공노할 살겁에 마침내 태산도 분노한 것인가?

쿠르르르-------!

용암이 노도와 같이 쏟아지고, 집채만한 바위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면서 떨어져 내렸다.

콰르르르르------!

그 사이를 뚫고 한마리의 용이 꿈틀대듯 누군가가 승천해 올라갔다.

그리고‥‥‥

콰콰콰쾅‥‥‥‥‥‥

계곡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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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四 章

 

           夫婦의 情

 

 

 

“우------- 우------!”

우렁찬 장소성이 천중산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쐐------- 액!

한 줄기 찬연한 검광이 충천한 가운데,

빛살처럼 단애 밑으로부터 일직선으로 곧장 치솟는 것이 있었다.

창룡(蒼龍)이 비상하는가?

그것은 한 명의 젊은 청년이었다.

휘르르르...

드디어 그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단애 위로 우뚝 올라섰다.

남루한 의복에 꾀죄죄한 형색.

더구나 허리에는 고철덩이같은 묵검 한 자루가 덜렁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초탈한 외모와 범접키 어려운 기품을 지녀 청년은 마치 신선(神仙)과도 같았다.

그의 시선은 줄곧 단애 밑을 향하고 있었다.

문득 맑은 그의 두 눈에 뿌연 감회가 어렸다.

“드디어 세상으로 나왔다.”

그는 탄식하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청년은 바로 이검엽이었다.

이곳에 발을 디딘지가 어언 석달.

드디어 그는 이곳을 떠나려는 것이었다.

그는 시선을 움직여 주위를 돌아보았다.

성하(盛夏)임을 알려주듯 짙푸른 녹음을 본 그는 다시 중얼거렸다.

“벌써 한 계절이 지났군.”

이어 그는 갑자기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삐------ 익!”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기대하듯 꼼짝않고 서 있었다.

하지만 일각이 지나도록 주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흑풍... 이 녀석이 나를 기다리지 않을 리 없는데...!”

애마(愛馬) 흑풍(黑風).

그는 흑풍을 부른 것이었다.

“흑풍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그는 초조했으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마 혼자 집으로 갔을 게다. 영리한 녀석이니...!”

문득 그는 자신의 집이 있는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환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자운(紫雲)...!”

그의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스르르 번졌다.

“자운이 무척 걱정했겠군, 돌아가면 내 자운에게 큰 낭패를 당하리라.”

이어 그는 호통한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핫...! 자운, 조금만 기다리시오. 바람처럼 달려가리라!”

번------- 쩍!

다시 찬란한 검광이 일었다.

쐐----- 액!

검인(劍人), 일체(一體).

그의 신형은 즉시 흐르듯 날아가고 있었다.

 

X X X

 

보국승상부(保國丞相府)의 정문을 향해 한 명의 백포서생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본 정문의 호원무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소... 소부주님이시다!”

“장팔(張八)! 빨리 안으로 알려드리게!”

“알았네.”

한 장한이 나는 듯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머지 호원무사들은 백포서생을 향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소부주님! 어디 계시다가 이제야 돌아오셨습니까?”

백포서생은 보국승상의 소부주인 이검엽이었다.

이검엽은 가볍게 미소했다.

“이삼(李三). 수고가 많네.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무고하시겠지?”

“예. 하오나 두 분께선 걱정이 크셨습니다.”

이검엽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겠지. 수고하게.”

그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지나가던 하인들과 시녀들이 그를 보며 급히 허리를 숙였다.

이검엽은 그들을 지나 웅장한 대전 앞에 이르렀다.

대전 앞에 한명의 미소부(美少婦)가 두 명의 시비를 거느리고 서 있었다.

창백하고 초조한 안색으로...

이검엽은 한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자운(紫雲)!”

그가 부르자 자운은 망연히 그를 보았다.

“상... 상공!”

그녀의 눈이 금세 촉촉히 젖어 들었다.

그녀는 눈에 뛸만큼 수척해져 있었다.

이검엽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몹시 마음이 저려왔다.

“자운. 미안하오.”

그는 자운의 작은 손을 꼬옥 쥐었다.

“상... 공!”

자운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맞잡은 두 사람의 손등을 적셨다.

그녀는 내심 이렇게 뇌이고 있었다.

(되었습니다. 이처럼 건강하게 돌아오셨는데 소첩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어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안으로 드시옵소서. 아버님 어머님이 심려하심이 무척 크셨사옵니다.”

“알겠소. 자! 함께 들어갑시다.”

이검엽은 자운의 가냘픈 어깨를 이끌어 함께 대전으로 들어섰다.

 

대전 안.

입구 전면의 태사의(太師椅)에 승상부부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용서하십시오. 소자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이검엽은 우선 부모님들에게 문안을 올렸다.

“엽아...!”

그의 모친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맞았다.

그러나 승상은 노한 표정으로 호령했다.

“어찌된 일이냐? 석달 가량이나 아무 연락도 없이 집을 비우다니! 애비와 네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을 잊고 있었더냐?”

이검엽은 난감한 기색이 되었다.

“소자가 어찌... 다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인적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석달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승상 이성진(李聖眞).

지위의 고하(高下)와 무관한 것이 부정(父情)이런가?

그는 아들의 난색에 표정이 금세 누그러들고 있었다.

“음. 어찌 되었던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이어 그는 다시 엄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황망스럽게도 황상께옵서 내 안위를 염려하시어 수 차례 애비에게 하문(下問)이 계셨다.”

“황상께옵서,...”

이검엽은 할 말을 지은 듯 말끝을 흐렸다.

승상은 다시 나무라기를 멈추지 않았다.

“황상께서 너를 유달리 총애함을 모르지는 않질 않느냐? 의관을 정제하고 입궐하여 문안을 여쭙도록 해라.”

“예.”

이검엽은 고개를 조아린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자, 물러가 준비하겠습니다.”

“오냐. 어서 가보도록 해라.”

이검엽은 부친의 말이 떨어지자 곧 자운을 데리고 대전을 나섰다.

 

이검엽과 자운.

두 사람은 나란히 후원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이검엽은 걸으면서 자운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삼단같이 틀어올린 그녀의 머리결은 탐스러웠다.

그의 눈길을 의식한 탓인지 우유빛 긴 목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자운... 걱정 많이 했겠구료.”

그는 은근한 음성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작고 여린 옥수(玉手)를 꼭 쥐었다.

자운의 촉촉히 젖은 새초롬한 두눈이 이검엽을 응시했다.

반짝이는 그녀의 동공이 그에게 많은 말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막상 그녀는 담담히 한 마디 입을 열었다.

“소첩보다도... 아버님 어머님께서 끼니마저 잊으시며 상공의 안위를 걱정하셨사옵니다.”

이검엽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자운 고맙소.”

그는 그녀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그나마 자운이 곁에 있었기에 아버님, 어머님의 심려도 많이 덜어졌을 것이오.”

“상... 상공...!”

그녀는 당황한 듯 그의 팔을 풀려했다.

하지만 그때 이검엽의 얼굴에는 장난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끌어안았다.

“자운에게 감사하는 의미요.”

“어머머... 시녀들이 보옵니다!”

그녀의 만류를 뿌리치며 그는 대뜸 그녀의 입술을 찍어 눌렀다.

달콤한 숨결,

팔딱이는 심장의 고동이 그의 가슴으로 전해왔다.

이렇게 되자.

민망한 것은 그들을 뒤따르던 시녀들이었다.

시녀들은 저마다 황망히 고개를 돌리며 물러가고 있었다.

“아이 참...!”

이윽고 입술이 풀리자 자운은 부끄러운 듯 총총히 달아나 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이검엽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핫...!”

이어 그 역시 걸음을 옮겨 자운의 뒤를 따랐다.

 

***

 

달밤(月夜).

승상부의 후원,

가산 위 정자에는 푸른 달빛이 그득했다.

그 아래로 널찍한 연못,

우아한 백련(白蓮)이 가득하고 계류(溪流)가 조약돌을 간지르고 있었다.

띵! 띠딩!

청아한 비파성이 정자로부터 흘러나와 연못 위로 퍼졌다.

정자 안의 일남일녀(一男一女),

이검엽과 자운이었다.

이검엽은 폭신한 포단에 비스듬히 기대누워 자운을 바라보았다.

자운은 그림같이 고운 자태로 비타줄을 당기고 있었다.

구름같이 틀어올린 머리,

연어(연漁)의 속살같이 뽀얀 피부,

게다가 살포시 내리 감은 긴 속눈썹.

오똑한 콧날.

촉촉히 젖어 발갛게 윤기 흐르는 입술.

그녀는 정말 너무도 아름다왔다.

더구나 길고 우아한 목아래로 나사(羅紗)에 살짝 숨겨진 단려한 동체.

이검엽의 눈길은 차츰 뜨거워졌다.

띵! 띠디딩!

그는 섬세한 비파의 선율과 함께 넋이 나간 듯 자운의 미태를 감상하고 있었다.

실로 아름다운 정경(情景)이었다.

한데 어느 한순간-------

띠------ 잉!

비파음이 뚝 끊기고 말았다.

자운은 비파를 매만지며 고개를 떨구었다.

“오랫만에 잡아본지라 소첩이 그만 실수를 했사옵니다.”

이검엽은 미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아주 훌륭했소.”

이어 그는 나직히 청했다.

“자운, 한곡 더 들려주지 않겠소?”

“예.”

자운은 다시 비파를 뜯었다.

애잔한 비파음이 낮게 흐르는 가운데 자운은 단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美人捲珠簾

深坐嚬蛾眉

但見淚痕濕

不知心恨誰

 

주렴을 걷고 그린 듯이 앉은 가인,

곱게 모아 흐린 아미,

옥같은 볼에 이슬이 적시니,

누구를 원망함인가?

 

노래를 마치자 자운은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바로 이백(李白)의 미인(美人)이 아닌가?

이검엽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 이백의 시(詩)이나 자운의 모습을 말하는 것 같소.”

“부끄럽사옵니다.”

그녀의 머리는 더욱 숙여져 버렸다.

“...!”

이검엽은 입을 다물었다.

분명 해야할 말이 있었으나 하지 못함은 무엇 때문인가?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어렵게나마 먼저 입을 연 것은 자운이었다.

“다시... 떠나셔야 하옵는지요...?”

이검엽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자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구료.”

그는 따스함이 깃든 시선으로 자운을 바라보았다.

자운은 미태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애끓는 내심을 보여주듯 그것은 처연한 아름다움이었다.

이검엽은 시선을 돌려 그녀를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이번 강남행에서... 원치를 않았으나 한 가지 은원을 짊어지게 되었소.”

그가 짊어진 은원,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검황종의 일이었다.

“황상께서는 나를 곁에 두시고자 하셨으나 나는 경륜의 부족함을 들어 일 년(一年)의 말미를 구하였소.”

그는 다시 자운을 응시하였다.

이어 가녀린 그녀의 손목을 잡아 당겼다.

“일년... 일 년이면 되오. 모든 은원을 그안에 마무리 짓고 돌아와 자운과 조용히 지낼 것이오.”

“...!”

“황상께선 어사(御使)의 직분을 일년 더 위임시켜 주시었소. 일 년만 더 강호에 나갔다가 돌아올 것이오.”

그말에 자운의 고운 아미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녀의 서늘하고 맑은 두 눈에는 염려의 기색이 어렸다.

“소... 소첩은 안심이 되지를 않사옵니다. 강호라 하면... 항시 위험이 뒤따르는 곳이라 들었아온데...”

그녀는 차마 뒷말을 잊지 못한 채 바르르 교구를 떨었다.

“자운! 이것을 보시오.”

이검엽은 웃으며 우수(右手)를 쳐들었다.

그 순간,

쩌------- 엉!

기이한 음향을 울리며 그의 우수는 삽시에 새파란 강기(靑色강氣)로 물들었다.

위------- 잉!

파팍!

이어 섬전같은 강기가 날아 십 장(十丈) 밖의 거대한 바위에 작렬했다.

푸스슥...!

그러자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바윗덩어리는 그 순간 가루가 되고 말았다.

“어머낫! 어떻게 저럴 수가...!”

도저히 믿기지 않은 광경!

평소 지나치리만큼 침착한 그녀였으나 이 순간만은 달랐다.

엄청난 경악이 그만 그녀의 자제력을 무너뜨린 것인가?

그녀는 안색이 핼쓱해진 채 가슴을 쓸어 내렸다.

“정말 놀랍군요...!”

이검엽은 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있게 말했다.

“보시오. 내 한몸 지킬 능력은 충분하지 않소?”

“예...”

“여유가 있으면 몇달 내로 들를 것이오. 한데 그 때는...”

이검엽은 자운의 아랫배에 손을 가져갔다.

“기쁜 소식이 있기를 바라오.”

“...!”

자운은 귓볼까지 새빨개져 어쩔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이검엽의 손길은 그때 이미 그녀의 깊은 곳을 더듬고 있었다.

자운은 거부하지 않았다.

다만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의 손에 몸을 내맡겼다.

이윽고 이검엽은 자운을 부드럽게 안아 자신이 깔고 있던 포단 위에 뉘였다.

물씬 짙은 육향이 코에 스미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자운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사르륵...

그녀를 감쌌던 꺼풀들이 한겹한겹 벗겨져 내렸다.

이검엽의 숨소리는 차츰 고조되었다.

그는 더욱 숨결과 함께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자운... 내가 홀로 강호에 떠돌며 자운을 얼마나 그리워 했는지 아시오?”

“상공...!”

자운은 신음하듯 뇌이며 그를 껴안았다.

드디어 이검엽은 탄탄한 육체를 그녀 위에 실었다.

여인(女人)으로서의 은밀한 즐거움을 아는 자운,

“아... 아...!”

닥쳐올 희열에 대한 기대로 그녀는 몸부림 쳤다.

“자운...!”

은밀한 이검엽의 애무...!

그의 입술이 지닌 뜨거운 열기는 자운의 온몸을 불태우고 있었다.

자운의 매끈한 팔 다리가 스스럼없이 그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들은 쾌락의 심연(深淵)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살(肉)과 살(肉)이 부딪히며 무수히 불꽃을 튕겨내었다.

이미 서로의 몸을 알고 있어 익숙한 몸짓들...!

뜨겁고 달콤한 부부지정(夫婦之情)이 밤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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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三 章

 

                驚天動地할 大 血鬪

 

 

 

문성무존의 밖으로 나오던 주혜린은 마왕을 보고 경악했다.

[구문제독 하후승!]

마왕의 유리알 같은 눈이 백열하면서 그녀를 보았다.

[크흐흐흐‥‥‥주혜린! 너는 내 것이어야 했는데‥‥‥크하하하하 하지만 복수하게 되었으니 후회하지는 않는다.]

놀랍게도 마왕은 옛날 주혜린에게 눈독을 들였던 것이다.

가만 두면 자신의 아내가 될 가능성이 많았던 주혜린이었다.

헌데 황창설이 나타나 자신의 음모를 파괴했을 뿐 아니라 주혜린마저 데리고 사라져버리자,

한때 마왕은 모든 수하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던 적이 있다.

황군우가 분기탱천하여 소리쳤다.

[어디서 감히 더러운 말을 입에 담느냐?]

휘루룽!

그의 손에서 음양합일신공이 마왕을 향해 뻗어나갔다.

[크흐흐‥‥‥]

마왕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일수를 내저었다.

순간,

슈콰콰콰------!

그의 손에서 뻗어나온 가공할 장력이 황군우의 음양합일신공과 부딪혔다.

위지장천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월음천마공!]

쾅!

[으윽!]

황군우의 몸은 이장이나 뒤로 튕겨나갔다.

월음천마공‥‥‥

스치는 것은 무엇이나 부수어버린다는 금단의 마공‥‥‥

전연옥이 재빨리 날아올라 황군우를 받아안으며 물었다.

[괜찮아요?]

[으음‥‥‥괜찮소. 충격을 조금 받았을 뿐이오.]

황군우는 그녀의 손을 밀면서 말했다.

그의 음양합일신공은 천의무봉(天衣無縫)한 것이라 내공에 있어서만 딸리지 않으면 천하의 어떤 무공보다도 못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월음천마공과 정면에서 맞부딪히고도 살아난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는 오직 황군우 한사람뿐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경악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

한줄기 뿌연 연기같은 선이 그어지며 마왕 하후승을 뒤에서 덮쳤다.

도신 범강이었다.

번쩍!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었다.

더우기 그 빠름과 강함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신 범강은 자신의 도가 마왕의 대추혈에 닿는 것을 느끼며 내심 소리쳤다.

(베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다.

카캉!

소리와 함께 그의 도(刀)는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지고,

번쩍!

[큭!]

마왕의 손이 벼락처럼 뒤로 돌아가며 우악스럽게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하후승의 유리알 같은 눈은 심장을 얼려버릴 것같은 마기가 뿜어지는 순간,

툭!

도신의 목이 그의 손에 잘려지면서 수없이 흩어져 있는 시체들 위에 뒹굴었다.

마왕의 무공은 진정 경천동지, 오로지 경악 그 자체였다.

천하의 종주를 노리던 인물중의 하나였던 도신 범강이 기습을 하고도 마왕의 단 일초를 피하지 못하고 목이 잘려 죽었다.

이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황군우와 전연옥에게 주었다.

또한,

문성무존의 인물들 역시 대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같은 무공은 인간의 한계를 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왕‥‥‥

처음에는 그는 냉정한 듯했다.

그러나,

막상 무공을 펼치기 시작한 후는 완전한 살인마가 되어버렸다.

[크하하하‥‥‥]

괴성을 지르며 멋대로 장력을 날리면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성무존의 가족과 남궁파나 북혈마, 위지장천등을 가리지도 않았다.

슈콰콰콰-------!

스치면 무엇이나 부수어버리는 장력앞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었다.

오직 문성무존의 황숭환이나 황필민이 겨우 몇 수를 버틸 정도이고,

또한 남궁파만이 아무렇지 않게 유유자적 그의 장력을 피하고 막을 수 있을 뿐이었다.

[철인검!]

황숭환이 소리치며 검을 날렸다.

슈우우우-------!

시간이 정지되어버린 듯한 순간에 그의 검은 마왕의 장력을 뚫고 들어가 그의 목에 꽂혔다.

하나,

캉!

소리와 함께 검은 부숴져 버리고,

황숭환은 벼락처럼 뒤로 물러섰다.

문성무존의 철인검 마저도 그의 몸을 벨 수 없었다.

그자는 진정 이름 그대로 마왕이었다.

 

싸움은 난전의 형세로 치닫고 있었다.

이제는 황숭환이 노구를 이끌고 남궁파를 대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력이 딸려 그에게 연방 밀리고 있었다.

황군우는 북혈마를 몰아붙이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전연옥은 낙일검은 번쩍이며 위지장천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한 전부가 마왕 하후승 한 사람만을 공격하는데도 마왕은 끄덕도 없었다.

그의 손에 의해 피가 끊임없이 피가 뿌려지고 있었다.

문성무존의 여인들마저 나와 싸우는데‥‥‥

금단의 마공 월음천마공을 완성한 마왕을 어떤 수법으로도 죽일 수 없었다.

남궁파와 싸우던 황숭환은 점점 밀리고 있었다.

천하에 상대할 것이 없다고 자부하던 철인검도 천년의 공력을 지녀 금강불괴가 된 자를 베지 못했다.

문성무존의 멸망은 눈앞에 다가온 것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소음곡을 무너뜨릴 듯이 들려오는 소리‥‥‥

아아아-------!

또한 이와 조화를 이루는 소리‥‥‥

우우우-------!

맑고 청랑하면서도 분노가 느껴지는 소리가 소음곡을 울렸다.

그리고,

칠인의 인물이 빛살처럼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황군성과 임보산, 육천태, 금화선녀, 임단심, 진우란, 그리고 전륜법왕의 하인이었던 마타였다.

마왕이 임보산을 보더니 괴성을 지르며 흉폭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죽어라!]

그는 임보산에게 일장을 당한 기억에 그를 가장 강한 적수로 간주한 것 같았다.

임보산이 소리치며 손을 들어 가리켰다.

[마물! 월음천마공을 익히다니. 신주독존공을 받아라!]

그의 손이 하늘을 가리키다가 벼락처럼 마왕을 가리키자 강렬한 빛이 뻗어나갔다.

번쩍!

크윽!

마왕이 몸이 십여장 날아가 석벽에 부딪혔다.

진정 무제 임보산의 공력과 무공은 도저히 타인이 미칠 바가 못되었다.

그런 가공할 무공에 중인은 두려움과 함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크아!]

마왕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괴성을 지르며 다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북혈마!]

황군성은 내려서자마자 벽력같은 소리로 외치며 그를 향해 쌍장을 날렸다.

번쩍!

[크아악!]

북혈마의 몸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황군우와 대적하고 있던 그는 미처 피할 틈도 없었다.

황군성의 천년의 공력에 목게신공의 뒷받침을 받은 장력을 그로서는 받아낼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었다.

황군성은 즉시 방향을 돌려 남궁파를 향해 날아가며 소리쳤다.

[남궁파! 목숨을 바쳐라!]

펑!

남궁파와 황군성이 서로 한 걸음 씩 물러섰다.

남궁파는 소매 속에서 한자루의 단창을 꺼내들었다.

고금십대천병 중의 하나인 혈화창이었다.

그가 자신의 사부인 전륜법왕을 살해할 때 사용한 것이기도 하다.

황군성이 소리쳤다.

[그것으로 사부를 잘도 죽였겠다.]

그의 손에서 백색 광채가 뻗어나왔다.

번천도가 펼쳐진 것이다.

붉은 빛과 백광이 어우러지며 한폭의 찬란한 그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스팟---------!

 

한편,

진우란은 전연옥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위지장천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손에는 지멸고가 들려있었다.

[삼성혈주! 이것이 뭔지 알아보시겠어요?]

진우란은 지멸고를 치켜들며 말했다.

위지장천이 전연옥에게서 물러섰다.

[지멸고‥‥‥당신이 사신‥‥‥?]

[그래요. 하지만 삼성혈을 쑥밭으로 만들고 지멸고를 빼앗은 사람은 바로 제 아버지였어요.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당신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 조금도 없어 져버렸어요.]

진우란은 비웃듯이 말했다.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나 제 아버지께서 삼성혈에 간 이유나 뭐가 다르겠어요? 하지만, 지멸고는 돌려드리죠.]

그녀는 지멸고를 휙 던졌다.

위지장천은 자신의 기형괴검을 뻗쳐 지멸고를 받고는 묵묵히 서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소저의 말이 옳소. 나도 다를 것이 없었구려.]

침중하게 말하면서 등을 돌렸다.

방금전까지 문성무존에 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던 그지만,

물러설 때는 깨끗하게 물러서는 장부다운 일면이 있었다.

진우란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도 대장부였구나.)

 

펑펑!

마왕과 임보산은 팽팽한 대치를 이루고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의 몸을 격타하고 있었다.

임보산은 고금십대천병 중에서 금강신(金剛身)을 소유한 인물이고,

마왕 하후승은 월음천마공으로 불사불괴지체가 된 몸이다.

펑! 펑! 펑!

수 만근의 경력이 서로의 몸위에 떨어져도 그들은 끄덕도 없이 공격만을 해대고 있었다.

임보산이 일푼 정도 우세한 듯했지만 쉽게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들의 싸움은 두 사람만의 싸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황군성과 임보산이 나타난 이후,

문성무존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미 반 수 이상의 가족이 죽었지만 그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었던 터다.

싸우는 사람은 오직 황군성과 임보산 두 사람 뿐이고,

황창설 등은 가족의 시체를 한군데로 모으고 있었다.

황필민도 마왕의 손에 목숨을 잃었고 황자준, 황자걸, 황자웅 등도 모두 불귀의 고혼이 되고 말았다.

모두들 슬퍼하고 있는데도 황숭환은 불안한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닌데‥‥‥아닌데‥‥‥)

그의 말은 옳았다.

정말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소음곡 절벽 위로부터 새까맣게 인영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문성무존의 사람들은 아득해 짐을 느꼈다.

주혜린은 황청청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말씀을 잊지 않았겠지? 절대로 내 곁을 떠나서는 않된다.]

황청청이 두려움에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소음곡을 떠나려던 위지장천도 떠나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는 인영들을 보고 있었다.

한데,

떨어져 내리는 인영들은 마치 나무토막처럼 아무렇게나 떨어지며 소음곡 바닥에 쳐박혔다.

쿵!쿵!쿵!

마치 방아짓는 소리같은 음향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땅에 쳐박혀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같던 자들이 몸을 세우고 있었다.

위지장천이 경악에 찬 외침을 터뜨렸다.

[동피철골시(銅皮鐵骨尸)!]

 

일어서고 있는 자들‥‥‥

그들은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실혼인의 상태에서 약물에 달궈지고 특이한 종류의 금속을 복용하면서 이십 년이상을 살아온 자들‥‥‥

그들에겐 오직 명령을 내리는 대로 따라할 만큼의 단순한 정신 밖엔 없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다.

이들은 불로도 독으로도 도검으로도 죽일 수가 없다.

또한,

이성이 없기에 잔인함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마음대로 손을 쓴다.

냉혹, 무자비, 그러면서도 빠르고 강한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것이 동피철골시다.

그러나,

소음곡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동피철골시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오직 위지장천 밖에 없었다.

이것은 삼성혈에서도 극히 비밀로 전해내려오는 대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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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三 章

 

           巨人의 最後

 

 

 

염천(炎天),

사계(四季)의 변화는 어김없이 돌고 돌아 폭염지절(暴炎之節)을 맞이한다.

천중산(天中山),

폭양(暴陽)은 마치 천중산 전체를 태워 버릴 듯 했다.

하지만 폭염조차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은밀한 곳이 있었다.

구천지옥인 양 까마득한 절곡,

이곳은 지면으로부터 무려 이백 장(二百丈)이나 낮은 지대였다.

한 줄기의 햇빛도 스며들지 못해 주위는 너무도 습하고 음침했다.

몇 백 년을 자랐는지 이끼가 풀처럼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것은 좌우로 시커먼 흑요석의 절벽이 가로막힌 때문이리라.

한데 이 곳에 언제부터인지 한 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이검엽이었다.

그는 상의를 벗고 하의만 걸치고 있었다.

얼굴은 좀 더 초탈하게 보일 뿐 이전과 별반 달라진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가까운 지인들도 몰라보리만치 건장해져 있었다.

딱 벌어진 어깨,

알맞게 붙은 근육,

미끈하게 쭉 빠진 허리 등,

한 마디로 보기 좋게 잘 발달한 상체였다.

이로 인해 그의 일신은 영웅의 기개를 발산하고 있었다.

한데 괴이한 일이 발생했다.

스스슥!

이검엽의 주위로 새파란 기류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바로 태청대라신공의 지고무상한 정화였다.

이어 그것은 삽시에 엄청난 선풍을 몰아쳤다.

휘르르!

그것은 일순 그를 휘감는가 싶더니 금세 삼십 장 방원으로 확산되었다.

우르르------- 릉!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사위는 갑자기 어두컴컴해졌다.

휘몰아치는 선풍에 사석들이 제멋대로 흩날렸다.

그 순간,

“이------- 얍!”

한 줄기 낭랑한 기합성이 울렸다.

동시에,

쿠------- 앙!

콰르르-------!

실로 폭풍노도와 같은 강풍이 폭사되었다.

펑!

요란한 굉음이 터지는 찰나,

콰르릉!

무쇠같이 단단한 흑요석 절벽의 일각이 어이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우수수...

하나 그때 재차 기합성이 터졌다.

“하------- 앗! 태청강기(太靑罡氣)!”

그 순간 선풍 내에서 새파란 유형의 강기가 폭출되었다.

쩌------ 엉!

기이한 음향과 함께 그것은 다시 절벽을 짓쳐갔다.

파파팟!

절벽면은 한 차례 새파란 불꽃을 튕겨 내었다.

다음 순간,

쩌------- 억!

절벽면은 무려 석 자 깊이로 삼 장이나 갈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도저히 상상을 초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흑요석으로 된 절벽이 입을 쩍 벌린 것이었다.

그 정도라면 능히 만년한철이라도 부술만한 위력이 아닌가?

이윽고,

스스스...!

주위를 휩싸던 선풍도, 기류도 모두 가라앉았다.

그리고 한 개의 신형이 드러났다.

이검엽, 바로 그였다.

그는 다음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목검(木劍),

자신이 차고 있던 목검을 빼어든 것이었다.

“차------- 앗!”

그는 목검을 휘둘렀다.

위------ 잉!

천변만화(天變萬化)!

일순 목검은 수천수만의 검영(劍影)을 일으켜 천지를 뒤덮었다.

촤르르!

쐐------- 액!

태풍이 몰아치듯,

노도가 넘실거리듯,

연이은 검기와 검영이 천지변색의 조화를 일으켯다.

그 순간,

“극(極)!”

위------- 잉!

목검이 그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원을 그렸다.

다음 순간,

우르릉!

콰------- 쾅!

방원 오 장 내의 모든 물체는 그대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검기(劍氣)의 륜(輪)!

바로 그것이 빚어낸 엄청난 결과였다.

이검엽은 목검으로 원을 긋자,

그 원은 그대로 방원 오장의 거대한 검기(劍氣)의 륜(輪)으로 돌변한 것이었다.

이검엽은 손을 멈추며 나직이 뇌었다.

“파천패혈삼십육파! 이젠 더 이상 깨우칠 것이 없다.”

그렇다. 지금 그가 펼쳐낸 것이 바로 파천패혈삼십육파의 최후초식이었다.

 

<극(極)>

 

그렇다면 지금의 이검엽은 역시 혈검파천황의 무공을 완전히 연성해낸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의외로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오직 무공 익히기에만 몰두한 것인가?

뒤이어 그는 목검을 쳐들어 또 한번 전면을 내쳤다.

“파천무적강살(破天無敵罡煞)!”

쩌엉!

순간 휘황찬란한 청색 검강(劍罡)이 사위를 밝혔다.

다음 순간,

쾅! 쿠르릉!

절벽은 흑요석 덩어리를 마구 토해내고 말았다.

목검이 끝이 향햇던 부분,

바로 그곳에는 무려 방원 삼 장에 깊이 일 장은 됨직한 구멍이 뻥 뚫린 것이다.

낙뢰(落雷)!

그것은 마치 낙뢰가 짓쳐간 자국과도 같았다.

이를 보자 이검엽은 스스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연 파천무적강살이다! 호신강기 파해전문의 검공(劍功)! 천하의 어떤 호신강기가 이에 견디어 내겠는가?”

그때였다.

끼루룩!

절애의 상공을 선회하는 한 마리 독수리가 그의 눈에 띄었다.

“가랏!”

이검엽은 들고 있던 목검을 허공으로 힘차게 던져냈다.

슈------- 웅!

그 순간 목검은 뇌전으로 돌변했다.

번------- 쩍!

한 무더기 검광이 하늘을 뒤덮었다.

푸------ 학!

그것으로 독수리는 절단이 나고야 말았다.

까------ 악!

찢어지는 괴성(怪聲)!

피(血),

그리고 독수리의 날개짓이 허공에 어지러이 흩날렷다.

독수리는 정확히 양단된 채 급강하하고 있었다.

위------- 잉!

목검은 검명(劍鳴)을 발하며 그의 손에 회수되었다.

툭!

양단된 독수리의 시신이 곤두박질한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

“역시... 어심극검(御心克心)이다.”

이검엽은 신음하듯 부르짖었다.

이어 그는 목검을 바로 잡아들며 엄숙한 자세를 취했다.

그는 품에 안듯 목검을 왼팔에 비스듬히 기대어 쥐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천뢰벽력섬(天雷霹靂閃)!”

우렁찬 일갈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쿠------ 앙!

한 무더기 검기가 이십 장 밖의 거대한 바위를 비스듬히 스쳤다.

흔들-------!

그르르... 릉...!

이검엽은 그때 이미 검을 거두고 난 후였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무려 만 근(萬斤)이 넘어뵈는 바위가 마치 무우 잘리듯 싹둑 잘려져 있지 않은가?

더구나 그 잘려진 면은 유리같이 반질반질 했다.

쾌검(快劍)!

실로 믿기 어려운 쾌검이었다.

사실 일반적으로 쾌(快)하면 중(重)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검엽의 검세만은 달랐다.

쾌하면서도 족히 만 근이 넘는 힘(力)이 실려있는 것이었다.

스스스...!

이검엽과 목검은 혼연일치가 되어 섬칫한 예기를 무럭무럭 발산시키고 있었다.

뒤이어,

“건곤멸절파(乾坤滅絶破)!”

위------- 잉!

츠츠츳!

이검엽의 일갈과 함께 가공할 검기가 방원 이십여 장을 뒤덮었다.

푸스스...!

경천동지, 그 자체인가?

검기에 스치는 모든 물체가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검엽은 멈추지 않고 재차 대갈했다.

“천폭혈살뢰(天暴血殺雷)!”

위------ 잉!

그 순간 이검엽은 보이지 않았다.

목검을 중심으로 시뻘건 검기에 휘감긴 것이었다.

“차----- 앗!”

슈------- 웅!

시뻘건 검기는 이내 검강이 덩어리가 되어 목검의 끝으로 뭉쳤다.

동시에,

쉬------ 잇!

번쩍-------!

한 줄기 뇌전이 무섭게 허공을 갈랐다.

다음 순간,

쾅! 콰릉!

오십 장 밖의 바위가 폭발하듯 부서져 날아갔다.

실로 가공할 위력의 검강이었다.

“음...”

이검엽은 나직하게 신음하며 또 다른 동작을 취해갔다.

한데 문득 그의 얼굴에는 기이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어느새------

츠츠츠...!

양손으로 목검을 쥔 그는 무형검기에 휩싸이고 있었다.

“멸겁패천류(滅劫覇天流)!”

위------ 잉!

일순 절곡 전체가 검기로 뒤덮였다.

그것은 그대로 절곡을 초토화시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스스스...!

이내 가공할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것이 아닌가?

“으음!”

이검엽은 짙은 검미를 모으며 신음을 토해냈다.

“역시 안되는구나...!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천황사대검종 중 제삼(第三)검종까지 뿐이었던가?”

그는 안타까운 듯 탄식을 금치 못했다.

 

-천황사대검종(天荒四大劍宗).

 

이검엽은 물론 그 오의를 모두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고도의 실전경험을 토대로 한 절정의 검학(劍學)이었다.

그러므로 실전경험이 없는 그가 천황사대검종을 모두 펼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다른 것은 모르되, 집대성(集大成)인 최후초식 멸겁패천류(滅겁覇天流)만은 펼치지 못한 것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스스스...!

절벽 한쪽의 석동으로부터 한 명의 괴인이 소리없이 나섰다.

검황종이었다.

그는 이검엽의 무공 시전을 모두 지켜 보았다.

그리고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는 터였다.

(저 녀석... 사람을 너무 놀라게 하는군. 천황사대검종만도 적게 잡아 반년은 걸려애 익히는 것을... 겨우 석달만에 그것을 비롯한 모든 것을 마쳐 내었구나!)

문득 그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흡혈옥령망을 쓰다듬었다.

(이제... 저 녀석을 강호로 내보낼 때가 왔구나...!)

일순 무엇인가 결연한 비치 그의 시선을 스쳤다.

(강해야만 한다. 무림의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저 녀석이 그 험한 세파와 싸워 더욱 강해져야만...)

그는 협혈옥령망을 의미깊은 시선으로 응시했다.

(흡혈옥령망의 피는 공력을 복돋아 주고 혜지를 맑게 해준다...! 저 녀석이 지금까지 융해한 천지곤룡의 내단은 겨우 이갑자(二甲子) 공격이다.)

그의 눈은 망연히 허공을 응시했다.

(일반 고수들을 상대하는 데야 모자람이 없다. 하나 절정의 고수들을 상대하기엔 많은 부족함이 있다...)

그는 발길을 돌려 천천히 동굴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나직이 이검엽을 불렀다.

“엽아(葉兒). 이리 들어오너라.”

이검엽은 그 목소리에 언뜻 정신이 들었다.

“예 노야.”

대답을 한 이검엽은 서둘러 동굴로 달려갔다.

 

동굴의 끝부분.

그곳은 이검엽이 검황종에게 구원을 받고 깨어난 곳이었다.

즉. 두 사람이 처음 상면한 곳이었다.

검황종은 그곳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어르신.”

이검엽은 밝은 표정으로 그와 마주했다.

한데 그는 늘상 검황종의 가슴에 박혀 있던 흡혈옥령망이 없음을 알았다.

처음에는 기이했으나 곧,

(어딘가 다른 짐승의 피를 빨아 먹으러 나갔겠지.)

하며 그냥 지나치려 했다.

하나 육감이란 무서운 것인가?

이검엽은 웬지 모르게 불안한 심정이 되고야 말았다.

그때, 검황종이 미소하여 입을 열었다.

“네 진전이 무척이나 빠르더구나.”

“부끄럽습니다.”

이검엽은 슬쩍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검황종과 이검엽.

늘 그렇듯 그들의 대화는 예사로웠다.

검황종은 다시 말했다.

“노부는 네가 천황사대검종까지 모두 익혀 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돌연 그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한데 네녀석은 정말 놀랍게도 모두 연성해 내고 말았구나.”

“모두가 어르신의 가르치심 덕분입니다.”

“허헛! 노부의 얼굴에 금칠을 할 생각은 말아라. 이 모두 너의 뛰어난 자질 덕분이다.”

이어 그는 짐짓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래, 마지막 멸겁패천류까지 시전이 가능 하더냐?”

그 말에 이검엽은 다시금 얼굴이 붉어졌다.

“실은... 그 중의 현오함은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되나 막상 펼치려면 되지를 않습니다.”

검황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다. 하나 걱정 마라. 몇 차례 강적들과 부딪히다 보면 자연히 터득하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치자 검황종은 묵묵히 이검엽을 주시했다.

얼핏 그의 눈에는 따뜻함이 어렸다.

하지마나 곧 그는 무심한 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마지막 무공을 전수하겠다.”

“예...!”

이검엽은 바짝 긴장하여 검황종을 주시했다.

“어검비행술(馭劍飛行術)...! 바로 이 절곡을 빠져나갈 무공이다.”

검황종은 이어 난해한 구결들을 줄줄이 쏟아내었다.

 

-어검비행술(馭劍飛行術).

 

이는 절세의 경공술(輕功術)이다.

문자 그대로 검기(劍氣)를 빌어 허공으로 나는 절묘한 신법이었다.

이검엽은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그자리에서 구결들을 외우려 애썼다.

잠시 후------!

검황종이 나직이 물었다.

“모두 외웠느냐?”

“예 노야.”

이검엽은 공손히 대답했다.

“그럼 이것을 단숨에 마셔라.”

검황종은 돌로 깎은 큼직한 사발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검붉은 액체가 가득 들어 있었다.

“...?”

이검엽은 의아했으나 주저없이 그것을 즉각 받아 마셨다.

비릿하고 다소 역겹기까지 했다.

(피를 마시는 기분이군.)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발을 입에서 떼었다.

한데, 그때였다.

“윽!”

돌연 이검엽은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그는 전신의 경맥에서 엄청난 폭발이 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다급히 부르짖었다.

“어... 어르신 이것은 혹시...”

검황종은 그의 말을 막고 대뜸 불호령을 내렸다.

“이놈! 어서 운공하여 공력으로 다스리지 않고 무얼 하느냐?”

이검엽은 이것저것 생각할 겨룰없이 즉시 운공에 들어갔다.

스스스...!

그의 전신에서 새파란 강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헉!)

헌데 그 직후 이검엽은 기겁했다.

하나의 손이 자신의 백회혈(百會穴)에 닿음을 느낀 것이다.

쿠쿠쿠!

이어 그 손으로부터 장강대하와도 같은 엄청난 공력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공력은 이내 이검병 본신의 진기와 뒤섞이기 시작했다.

본신진기와 용해되지 않은 잠력. 그리고 외부에서 흘러드는 강력한 공력...

서로 다른 세 가지 기운은 서로 좌충우돌하며 이검엽의 심맥을 터려버릴 듯 팽창시켰다.

몸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이 이검엽을 엄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 가지 기운은 합쳐져 강대하고도 도도한 흐름이 되었다.

그리던 어느 순간,

꽈------- 꽝!

“크윽!”

머리 속에서 대폭발이 이는 것을 느끼며 그는 혼절하고 말았다.

이는 무슨 현상인가?

무림인이라면 꿈에서라도 숙원인 경지!

바로 생사현관이 타통(打通)함이 아닌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검엽은 눈을 번쩍 떴다.

직후 그는 스스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일신이 마치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체내의 힘(力)의 충만함을.

그러나 그는 곧 검황종을 의식하고 주위를 살폈다.

그 직후,

“헛!”

이검엽은 대경실색했다.

검황종.

그는 이미 이승을 하직하고 난 후였다.

편안한 미소를 띄운 채 자는 듯 죽어 있는 것이었다.

“노... 노야!”

검황종이 숨을 거둔 것을 확인한 이검엽은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검황종은 자신의 최후의 한방울 공력까지 이검엽에게 불어넣어주고 죽은 것이었다.

또 한쪽에는 껍질만 남은 흡혈옥령망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검염이 마셨던 검붉은 액체는 바로 흡혈옥령망의 피(血)였던 것이다.

“이... 이럴 수는 없습니다 노야!”.

이검엽은 오열하며 온몸을 떨었다.

“이.. 이건...”

그러던 어느 순간 이검엽의 눈이 부릅떠졌다.

검황종의 시신 옆의 바닥에 피로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 녀석아... 울지 말아라... 노부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어야할 몸이었다...>

 

그것은 검황종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쓴 일종의 유언이었다.

 

<네 녀석은 정말로 손자사위를 삼고 싶은 녀석이었다. 강호에 나가면 매검지(梅劍芝)라는 아이를 찾아 보아라. 그 녀석은 양 젖가슴 사이에... 검(劍)모양의 흉터가 있다.>

 

글씨는 점점 흔들려 서체가 불분명해지고 있었다.

 

<만일...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네 녀석의... 첩(妾)으로 주... 마... 허허... 잘 가... 거라... 짧은 기간이었... 으나... 네놈같이... 뛰... 어난... 놈을... 만날 수... 있어... 기뻤...>

 

이검엽은 통곡을 할 것만 같았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검황종이 호쾌한 반면 정(情)이 깊은 인물이라는 것을.

단지 그릇이 너무 커 자잘한 위인이 아닐 뿐이지 않았던가?

검황종은 한맺힌 생(生)을 이렇게 마친 것이었다.

이검엽은 눈물어린 시선으로 검황종의 시신을 응시했다.

“어르신께서 비록 사제지간을 강요하지는 않으셨으나 소생은 어르신을 평생의 스승으로 섬기겠습니다.”

이윽고 그는 경건히 검황종의 시신에 구배(九拜)를 올렸다.

배사지례(拜師之禮).

그것은 실로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배사지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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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二 章

 

           바위를 잘 보아라.

 

 

 

은은한 퉁소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곳,

태산의 정기가 한곳에 뭉쳐졌다는 소음곡이다.

소음곡 뒤쪽의 절벽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밑,

문성무존의 최고 어른인 황숭환이 뒷짐을 지고 배회하고 있다.

한쪽에는 지금 문성무존의 안살림을 맡아하고 있는 황창설의 처 주혜린이 황청청을 데리고 서있고‥‥‥

황숭환이 물었다.

[지금까지 몰려온 자가 몇이라고?]

주혜린이 대답했다.

[호수 안에 들어온 자들 만도 이천 명 정도입니다.]

[음‥‥‥발디딜 곳이 별로 없겠군.]

[지금 고조부님을 위시한 식구들이 가차없는 살수를 펼쳐 그들을 막고있습니다만‥‥‥흘러내린 피로 이미 호수가 붉게 물들었다 합니다.]

황숭환은 하늘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야. 피할 수 없는‥‥‥]

[할아버님!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살죠?]

황청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숭환은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스다듬으며 말했다.

[너는 아무 걱정할 것없다. 네 어미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말아라.]

[네!]

황숭환은 주혜린을 불렀다.

[얘야, 이리와서 앉도록 해라.]

그는 곁에 있는 바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우리 문성무존이 대를 이어가고 못가고는 오직 네 손에 달렸다.]

황숭환의 말에 주혜린은 흠칫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너와 창설, 그리고 너희들의 세 아이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죽게될 것이다.]

주혜린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문성무존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황숭환이 앞일을 내다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가 그렇다고 하면 필경은 그런 것이다.

[오늘로서 우리 문성무존의 소음곡에서의 생활은 끝날 것이다. 너와 창설이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서 문성무존을 이어가야 한다.]

[…………]

[오늘 적어도 일만 명 이상이 소음곡에서 죽어갈 것이다. 그 중에는 무공이 강한 자도 있고 약한 자도 있다.]

[…………]

황숭환은 황청청의 손을 꼭 잡은 후에 그녀에게 자신이 앉은 곳으로 부터 다섯걸음 나아가서 원을 그리게 시켰다.

그리고 주혜린에게 말했다.

[청청이가 그린 원을 잘봐둬라. 이곳에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원안에 있는 것뿐이다. 저녁무렵, 갑자기 소음곡에서 소음(簫音)이 끊어지면 어디에 있던간에 무조건 이곳으로 달려와야 한다. 반드시 이곳이어야 한다. 잊지 말아라. 소음이 끊어지면‥‥‥]

[명심하겠습니다.]

[창설이와 군성, 군우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해라. 다른 식구들에겐 알릴 필요가 없다.]

황숭환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너는 총명하니까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애야. 하늘은 사람의 피를 좋아한단다. 그럼 우리도 가보자구나.]

황숭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황청청을 사랑스럽게 품에 안아들고 문성무존의 입구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주혜린은 황숭환이 앉았던 바위를 거듭 눈여겨 보았다.

그것은 평소 황숭환이 즐겨 앉던 곳이기도 했다.

그녀는 주위의 원을 익힌 다음에 지워버리고 황숭환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황숭환이 말한 하늘은 사람의 피를 좋아한다는 말이 맴돌고 있었다.

(그래‥‥‥우리 가족은 인간세상에 산 것이 아니었어. 너무나 오랜 세월을 피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았어. 하늘이 시기할 만도 해‥‥‥)

 

***

 

문성무존의 앞,

백발이 성성한 신선같은 노인들과 중년인들이 장검을 들고 길게 장사진(長蛇陳)을 늘어서있고,

그들의 맞은 편에는 각양각색의 무림인들이 병기를 번쩍이며 대치하고 있는데,

무림인들의 앞에는 시체가 마치 방죽처럼 쌓여있었다.

약 이천여명의 무림인들이 호수를 건너와 입추의 여지도 없이 빽빽히 서있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섣불리 시체의 방죽을 넘어오려 하지 않았다.

문성무존의 문이 열리고 황숭환이 황청청을 안은채 밖으로 나왔다.

황청청이 무수한 시체들과 피를 보자 황숭환의 가슴을 얼굴을 묻고 보려하지 않았다.

황숭환이 그녀의 등을 다독거렸다.

장사진의 가운데 서있던 노인, 황필민이 허리를 굽히며 그를 맞았다.

바로 그때,

호수 쪽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목숨이 아까우면 비켜라!

----아악! 크악!

 

비명소리가 어우러지더니 무림인들 가운데로 길이 뚫리며 이십여 명의 사요(邪妖)한 모습을 한 인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몸에서는 요상스런 기운이 일고 있었다.

그들은 걸리적 거리는 인물들은 모조리 베어버리며 시체의 방죽앞에 도착했다.

그들 중에 붉은 옷을 입은 삼십여세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시체를 밟고 올라서며 깔깔 웃었다.

[호호호호‥‥‥우리는 청해 신선동의 사람들이다. 영감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 순순히 길을 비켜주기바란다.]

청해 신선동‥‥‥

그러한 문파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검술에 요상스런 술법을 섞어서 사용하는 인물들고 한마디로 사파에서도 사파로 치우친 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황필민이 황창설에게 물었다.

[신선동이 뭐하는 데냐?]

[보잘 것없는 검술에 조잡스런 사술(邪術)을 섞어 사용하는, 눈여겨 볼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곳입니다. 우두머리는 스스로 구천미랑(九泉美娘)이라고 하는 여자인데 아마 저 여자 일듯 싶습니다.]

황창설은 무림에 나갈 때마다 외부의 기업에서 모아둔 정보를 통해 그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구천미랑은 그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으나,

방금 전과는 달리 내심 두려움이 일고 있었다.

상대는 자신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은가?

황필민이 구천미랑을 보며 말했다.

[이제보니 쓸모없는 물건이었군.]

구천미랑은 앙칼지게 소리쳤다.

[공격해라!]

그녀의 뒤에있던 이십여명의 인물들이 검을 번쩍이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한데,

바로 그순간,

장사진을 치고 있던 문성무존의 식구들 중의 일부가 검을 휘둘렀고,

번쩍!

툭! 털썩! 털썩!

비명도 없이 날아올랐던 자들이 시체들의 방죽위에 떨어지면서 방죽을 높혔다.

구천미랑도 이미 그녀가 밟고 섰던 시체위에 포개져 있었다.

시체들의 방죽은 무림인들이 더 이상 다가설 수 없는 최후의 선이었던 것이다.

이런 정도가 되니까 이천여 명이나 되는 무림인들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서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미 문성무존은 쑥밭이 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문성무존의 가공할 무공을 본 무림인들의 탐욕은 더욱 커지고 있었으니‥‥‥

신선동의 요사한 무리들이 죽은지 채 일각도 되지 않았을 때,

호수 쪽에서 다시 소란이 일었다.

 

-----취옥성의 삼절일천군단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뒤이어 살벌한 음성이 들렸다.

 

-----이곳에 있는 자들을 모두 죽여라!

 

삼절일천군단은 말을 타고 작은 호수를 헤엄쳐 건너오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자들이 닥치는 대로 살인하기 시작했다.

 

----으악! 악!

----도망쳐라! 이들은 우리를 몰살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두두두두-----!

말발굽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서 땅에는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비명이 끝없이 터져 나왔다.

으악!악!

번쩍! 우웅!

삼절일천군단은 불과 삼각이 되지 않아서 원래 그곳에 있던 이천여 명의 무림인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몰살시켜버렸다.

단주 염녹균이 말을 몰아 시체들의 방죽위에 우뚝서며 외쳤다.

[본 취옥성의 삼절일천군단은 이곳 소음곡을 접수한다!]

황필민이 황창설에게 말했다.

[이 자들은 그래도 좀 낫군.]

[진법으로 싸우는데 특히 능한 자들입니다.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황창설은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문성무존은 개인들의 무공은 발전시켰지만 집단 간의 싸움에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에게 삼절일천군단은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 있다.

황필민이 차갑게 말했다.

[그럼 진을 펼칠 틈을 주지 말아야지.]

순간,

그는 말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절벽 위에서 부터 꽃처럼 날아 내리는 인영들이 있었다.

슈우우우------!

[드디어 강한 놈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모양이군.]

황필민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날아 내리는 백여 명의 인물들 중 하나가 세찬 기세로 떨어져 내려왔다.

황필민이 손을 들어 빛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군성인가?]

[아닙니다. 군우입니다.]

떨어져 내린 인물은 황군우였다.

그는 내려서자 마자 무릎을 꿇고 황숭환에게 절했다.

황창설이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들은?]

[아버님, 제가 거느린 사람들입니다.]

[그래? 그럼 이쪽으로 내리게 해라.]

황창설은 반가워하며 말했다.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이 부하들을 데리고 위급할 때 찾아왔으니 그가 기뻐지 않을리가 없다.

싱글벙글하는 그를 보며 황필민이 말했다.

[너보다 낫다.]

 

황군우는 현현궁의 용봉들이 날아 내리자 마자 명령을 내렸다.

[경천위지백인진을 펼쳐 적들을 섬멸하라!]

휘휘휙!

구십팔 명의 용봉들과 전연옥이 삼절일천군단의 사이로 날아들어가고,

황군우 자신도 그들 중에 합류했다.

이어서,

우르렁! 쿵쾅!

[크아아악!]

삼절일천군단과의 경천동지할 대결전이 벌어졌다.

숫적으로는 황군우측이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나,

그들은 개개인이 모두 우수한 고수들일 뿐 아니라,

경천위지백인진이란 절진을 펼쳐서 일사불란 하게 움직이는데 비해,

삼절일천군단은 발대기도 비좁은 공간에 있으니 그들의 특기인 혈검천륙살진을 펼칠래야 펼쳐볼 수도 없었다.

말과 사람의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사람들은 시체를 밟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천여 명의 무림인을 몰살시킨 똑같은 그자리에서,

삼절일천군단은 똑같은 운명을 걷고있었다.

그들은 좁은 소음곡으로 들어온 자체가 실수였던 것이다.

전연옥이 휘두른 낙일검에 삼절일천군단의 단주인 염녹균은 일찌감치 종씨인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버렸고,

넓은 곳으로 뛰쳐나가 싸우려고 시체의 방죽을 넘었던 자들은 문성무존의 징계를 받고 그자리에서 시체로 변했었다.

아름답던 소음곡은 이제 오직 혈혈혈(血血血)‥‥‥

피와 죽음이 가득하고,

늘 푸르던 작은 호수는 붉게 변한 채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현현궁의 용봉들의 피해도 상당했다.

그들 중의 사할이 삼절일천군단과 함께 죽어갔다.

살아남은 그들은 황필민의 배려에 의해 문성무존에서 휴식을 취했다.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혈전이었다.

황군우는 들어가지 않고 전연옥과 함께 장사진에 합류하려 했다.

그때,

[작은 오빠! 이리와요. 어머니께서 기다리셔요.]

황숭환의 눈짓을 받은 황청청이 그와 전연옥을 데리고 주혜린이 있는 곳으로 갔다.

 

문성무존의 여인들은 모두 문성무존의 요소요소에서 경계하고 있었다.

주혜린은 전연옥을 데리고온 황군우를 반갑게 맞았다.

[이 아름다운 아가씨는?]

황군우는 겸면쩍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었고,

전연옥이 절하며 말했다.

[어머님을 뵙습니다. 전연옥입니다.]

[우리 군우에게 과분한 아가씨구나.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우리 집안에 관한 것들을 들려주마.]

[예.]

전연옥이 절하며 물러섰다.

주혜린은 황군우를 응시하며 위엄있는 음성으로 나직히 말했다.

[이것은 제일 위 조부님 말씀이시니 절대로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황군우는 제일 위 조부님의 말이라는 소리에 바짝 경각심을 가졌다.

[소자 명심하겠습니다.]

[당신께서 늘 앉으시던 바위를 기억하느냐?]

[폭포수 있는 데 말씀이십니까?]

[그래, 바로 그곳이다. 저녁 때가 되면 소음곡에서 소음이 끊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는 만사를 젓혀 두고 그곳으로 달려와야 한다. 이것은 절대로 잊어선 안된다. 어떤 경우에도 소음이 들리는지 아닌지 신경쓰고 있어야 한다.]

 

× × ×

 

휘이이-------

휘이이-------

문성무존의 장사진 앞에는 시간이 갈 수록 시체가 높이 쌓였다.

벌써 몇 차례나,

시체가 가득한 곳을 메웠던 무림인들이 죽어갔는지 모른다.

문성무존의 가족들에 의해서도 죽고,

자기들 끼리도 죽고죽였다.

평평했던 곳은 말 그대로 시체가 쌓여서 언득을 이루고,

피는 흘러서 내를 이루었다.

시간은 오후도 반이 지나버린 때다.

더 이상 소음곡안으로 들어오는 무림인들은 없을 듯했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곧,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절정의 고수들이 출현하리라는 것을‥‥‥

돌연,

[크하하하하‥‥‥]

가공할 내공이 깃든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오며 한 인물이 푸르스름한 기운에 휩싸인 채 소음곡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푸른 머리카락을 한 그는 북혈마였다.

그는 시산혈해에 우뚝 내려서서 형형한 눈초리로 장사진을 노려보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본좌에게 저항하지 마라. 순순히 길을 비켜라!]

그는 임보산을 만난 후에 자신의 무공에 열등감을 느꼈던 것인데,

소음곡에 무수한 비급과 영약이 있다는 말을 듣고 총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황필민이 황창설에게 물었다.

[저 미치광이는 대체 누구냐?]

[소손은 모르는 자입니다.]

그때 전연옥과 함께 서있던 황군우가 말햇다.

[북혈마라는 자로 저희가 섬멸시킨 삼절일천군단의 주인입니다.]

[무공은 어떻냐?]

[소손에 비해 나은 것이 없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때,

허공에서 다시 한 명의 인물이 날아 내렸다.

얼핏 보기에도 그자의 무공은 북혈마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구름을 탄듯이 천천히 내려온 그는 남궁파였다.

고수는 하늘에서 내려온다?

다시 기형장검을 둘러맨 위지장천이 내려왔고,

그의 뒤를 전신이 마기로 뒤덮힌 중년인이 내려왔다.

바로 마왕 하후승이었다.

그리고, 도신 범강이 뚝 떨어지듯 소음곡에 내려섰다.

황숭환의 눈이 남궁파와 하후승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황필민은 이제 말하지 않았다.

눈앞에는 진정한 강적이 도달했고,

지금부터는 모든 것을 그의 아버지이자 문성무존의 최고 어른인 황숭환이 주도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온 자들과,

원래부터 있었던 자들은 한동안 말없이 대치하기만 하고있었다.

황숭환이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 아들들아 손자들아! 이제 너희들이 죽어야 할때가 도래했구나. 검을 높이 들어 적을 맞도록 해라.]

바야흐로‥‥‥

소음곡의 운명을 판가름할 대 혈전의 서막이 올랐다.

지금 나타난 고수들은 먼저 죽어 시산혈해를 이루었던 그자들 모두를 합한 것 만큼이나 강한 자들‥‥‥

진정한 위기는 지금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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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一 章

 

          船上에 흩어진 絶世高手의 遺骸

 

 

 

황하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는 포구 연운항(蓮雲港),

키가 큰 꼽추 하나가 갖가지 물건을 사들고 포구에 닿아있는 한척의 배위로 올라간다.

그는 바로 전륜법왕의 하인인 마타(魔駝)였다.

배위에 올라가 창고에 물건을 넣고 선실로 다가가던 그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몸을 날렸다.

쿵!

문이 떨어져 날아가고,

확!

피비린내가 그의 코를 찔렀다.

[주인님!]

마타는 크게 부르짖고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실로,

참혹한 광경이 선실안에 펼쳐져 있었으니‥‥‥

마타의 주인 전륜법왕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팔과 다리는 따로따로 잘려서 흩어져 있고,

머리는 뎅그라니 식탁위에 올려져 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의자에 놓여있는 그의 몸통에는 예리한 것으로 난자당한 흔적이 가득했다.

사람을 죽여도 이렇게 죽일 수는 없다.

개를 잡고 소를 잡아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마타는 분노로 치를 떨며 미친듯이 고함쳤다.

[으아아아아------!]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창고에서 부대를 가지고 와서 흩어져 있는 전륜법왕의 살점과 수족을 주워모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남궁파‥‥‥개같은 놈‥‥‥아니 개보다 못한 놈‥‥‥네놈은 살아있다는 것을 후회하며 죽게 될 것이다‥‥‥]

 

× × ×

 

[흐흐흐‥‥‥괴물같은 난장이 영감‥‥‥이게 순서지 순서. 큭큭‥‥‥]

한 야산에서 전신을 피로 뒤집어쓴 듯한 노인이 상처를 싸매면서 키들거리고 있었다.

한데,

이 노인이야 말로 마타가 저주를 퍼부은 그 남궁파가 아닌가?

[사부‥‥‥대단했소. 사부가 내게 준 이 혈화창이 아니었더라면 죽은 것은 아마 나였을 것이오. 큭큭‥‥‥]

남궁파는 옆에 놓여진 두척길이의 단창을 꽉 잡으며 말했다.

[그 상황에서도 내게 반격을 가하다니 과연 사부는 천하의 무학종사였소.]

남궁파는 전륜법왕을 칭찬하는 것인지 비웃는 것인지 모를 어조로 계속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사부‥‥‥나 역시 배신은 내가 거둔 놈으로부터 배웠소. 하지만 나는 그것을 써먹을 수 있었지만 사부는 배운 것을 써보지도 못하고 갔구려.]

으드득!

그는 이빨을 갈며 분한 듯 소리쳤다.

[그놈! 황군우‥‥‥! 갈아마시고 말겠다.]

그의 눈에서는 줄기줄기 혈광이 뻗쳐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다시 음흉하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흐흐흐‥‥‥비록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사부의 내공을 흡수했으니 나는 천년의 공력을 이루었다. 흐흐흐‥‥‥이제 누구도 나를 당할 순 없을 것‥‥‥크하하하‥‥‥]

그는 앙천광소를 터뜨리며 날아올랐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는 핏자국이 붉게 남았다.

사부를 죽이고,

그 내공을 흡수한 천인공로할 살인자의 앞날은 과연‥‥‥

 

× × ×

 

나는 듯이 날아가는 황군성 일행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누구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황군성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나타난 사람은 넙죽 땅에 엎드리며 말했다.

[노복 마타올시다. 주인!]

황군성은 어리둥절하면서 그의 앞에 멈춰섰다.

[마타가 웬일이시오?]

황군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마타가 한때 수많은 여인을 간살했던 대마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금화선녀가 차갑게 말했다.

[마타! 간이 단단히 부었구나. 감히 내앞에 나타나다니‥‥‥]

그러나,

그녀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마타는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황군성을 향해 울부짖었다.

[작은 주인! 법왕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흉수는 남궁파‥‥‥처참하게 돌아가셨소이다.]

쿵쿵!

마타의 충심에서 우려나오는 음성이 황군성과 금화선녀, 임보산의 가슴을 격탕시켰다.

임보산이 탄식했다.

[그같은 인물이 제자의 해침을 받다니‥‥‥전륜법왕! 전륜법왕! 당신같은 무림의 일대종사가 너무 허망하게 갔구려‥‥‥]

[휴‥‥‥사형이 죽다니 믿어지지가 않군요. 남궁파 따위가 무슨 수로 사형을 죽일 수 있었을까요?]

금화선녀가 한숨을 쉬면서 임보산에게 물었다.

[그 친구가 혈화창을 가지고 있지 않았소? 아마도 그 혈화창에 해침을 받았을 것이오.]

[무제의 말씀대로입니다. 저희 주인님의 유해는 너무 참혹하여 남에게 보일 수 조차 없을 지경입니다.]

마타는 전륜법왕과 수 십년을 살면서 그를 충심으로 따랐던 것이다.

강호의 은원을 모두 잊고 그를 따르면서 유유자적 신선같은 생활을 했던 그이기에 자신이 존경하는 전륜법왕을 죽인 남궁파에 대한 원한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무공은 남궁파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하여 전륜법왕의 다른 제자가 된 황군성을 찾아 복수를 부탁하려한 것이다.

복수의 화신이 된듯 마타의 눈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망연자실하던 황군성이 입을 열었다.

[사부! 당신의 그 괴벽스런 성격을 싫어했소만 인간적으로 미워하진 않았소. 사부의 복수는 기필코 하겠소.]

그의 마음은 굳은 결의로 가득차있었다.

(어쩌면 소음곡을 무림에 알린 원흉이 바로 남궁파일지도 모른다. 그건 누군가의 음모일 테니까. 남궁파‥‥‥네가 살길은 이제 어디에도 없어져 버렸다.)

가자!

태산으로‥‥‥

황군성은 앞장서서 지름길을 찾아 몸을 날렸다.

휘이익!

그의 몸은 한줄기 빛이 되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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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 十 二 章

 

          古今最强의 劍法

 

 

 

검황종은 허공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백여년 전이었다. 절강성의 어느 호숫가를 지나던 노부는 비를 피하기 위해 작은 동굴에 들어갔다가 한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완전히 해골이 된 것으로 보아 그 시신은 연대를 가늠하기 힘든 오랜 옛날에 죽은 게 분명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검황종의 진무른 눈은 우수로 물들었다.

“그 시신을 수습해 주려던 노부는 시신이 꼭 껴안고 죽은 한 권의 비급과 한 자루의 보검을 얻었다.”

“그 해골의 주인이 혈검파천황이겠군요.”

“그렇다. 천여 년 전, 이존에게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혈검파천황이었다.”

검황종의 대답을 들은 이검엽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구마가 이존에게 감금당했다는 전설은 잘못 전해진 것이 아닐까요?”

검황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혈검파천황이 갇혔던 곳에서 탈출했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니냐?”

이어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부연 설명을 했다.

“어쩌면... 혈검파천황 말고도 한두 명이 더 세상에 나와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검엽은 검황종이 뜻하는 바에 긍정했다.

그의 시선은 다시 파천검보로 향했다.

(어쨌든 구마와 인연이 닿다니 정말 뜻밖이로구나.)

그는 가시지 않는 흥분으로 몸을 조금 떨었다.

이를 본 검황종은 얼핏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혈검파천황은 대단한 인물이다. 아마 삼천마종도 그를 얕보진 못했을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초식상으로 혈검파천황은 구대천마 중 으뜸이었다. 다만 그에게는 검법의 바탕이 되어줄만한 뛰어난 신공(神功)이 없었다.”

“아...!”

“내공의 바탕이 모자란 때문에 그는 자신이 지닌바 검법의 위력도 오할 정도밖에 발휘하지 못했다.”

검황종의 말에 이검엽은 새삼 의구심을 느꼈다.

(혈검파천황의 검법이 그리 대답했나?)

검황종은 이검엽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부연 설명을 했다.

“오할의 위력인 검법으로도 혈검파천황은 삼천마종을 제외한 육마(六魔) 중 수좌를 차지했었다.”

“그 정도였다면 삼천마종도 혈검파천황을 무시하지 못했겠습니다.”

이검엽은 검황종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검황종은 자신의 일로 화제를 돌렸다.

“노부는 뛸 듯이 기뻐했다. 노부의 경우는 혈검파천황과 달랐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는 검법의 위력을 받쳐줄만한 신공이 없었으나 노부에게는 고금오대신공의 하나인 태청대라신공(太靑大羅神功)이 있었다!”

“아!”

이검엽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검황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노부는 삼년 동안 미친 듯이 파천검보를 연마했으며 결국 십이성(十二成)까지 도달하고야 말았다.”

이검엽은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결례인지는 모르오나... 그 경지는 삼천마종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검황종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다. 직접 삼천마종과 겨룰 수 없으니 단정지울 수는 없겠지만...”

곧 검황종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렸다.

“최소한 삼천마종에 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

이검엽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발했다.

그런 그의 가슴 속에는 검황종에 대한 인식이 새삼 새로워지고 있었다.

“파천검보를 보아라.”

검황종의 말에 따라 이검엽은 파천검보를 펼쳤다.

 

<파천패혈삼십육파(破天覇血三十六破)>

 

천하만종(天下萬種)의 검법요결이 집약된 것!

이 삼십육식(三十六式)의 검법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극강의 검세를 발휘하는 구개(九個)요결, 즉-------

변(變), 환(幻), 류(流), 탈(奪), 살(煞), 멸(滅), 절(絶), 쇄(碎), 극(極).

거기에 또한 네 가지 변화가 깃들어 있었다.

경(輕), 중(重), 완(緩), 급(急).

이를 모두 훑어본 이검엽은 저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실로 대단한 검법이로군요!”

비록 무공을 정식으로 익힌 적은 없는 이검엽이다.

그러나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파천패혈삼십육파의 위력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하나하나가 초극에 이른 검식!

단 일초라 할지라도 가히 천하를 쓸어버릴만한 위력을 지닌 것이었다.

검황종이 정색을 하며 설명했다.

“혈검파천황은 그 잔혹한 손속 때문에 구대천마에 끼었다. 그러나 검도(劍道)에 있어서는 그 만큼 완벽한 경지에 이르렀던 인물이 없었다.”

“그렇겠습니다.”

이검엽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는 검황종의 말에 완전히 수긍이 갔던 것이었다.

이어 그는 파천검보의 뒷부분을 읽어갔다.

한데 맨 뒤쪽에는 두 가지의 무공비결이 적혀 있었다.

 

<파천무적강살(破天無敵罡煞)>

 

지독히 빠르고도 예리한 검강(劍罡)이다.

파천무적강살이 십성에 이르면 금강불괴라도 벨 수 있다.

 

<어심극검(御心剋劍)>

 

일종의 어검술(御劍術),

더우기 이것은 일반 어검술과는 달리 검(劍)이 아닌 그 무엇으로도 시전이 가능했다.

이검엽은 두 가지 비결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말할 수 없는 흥분에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검황종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노부가 파천패혈삼십육파를 완성하고 무림에 나왔을 때 적수라고는 없었다.”

그의 음성에는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동시에 한 줄기 고독한 빛이 얼굴을 스쳤다.

이를 본 이검엽은 내심 뇌까렸다.

(절대자(絶對者)란 고독한 지위임을 느끼신 것이겠구나!)

검황종은 다시 말을 이었다.

“심지어... 단 삼검을 받아내는 자도 없었다.”

낮은 음성 가운데 돌연 그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단 한번 싸움다운 싸움! 그것은 사성(四聖)중 한 명인 무정마제(無情魔帝)와였다. 그래도 그는 노부의 삼검을 받아냈다. 결국 패하기는 했지만 대단한 적수였다.”

“무정마제!”

이검엽은 낮게 되뇌었다.

(비록 삼검에 패했다지만 무정마제라는 인물은 상당한 고수임이 틀림없으리라.)

그는 새삼 검황종을 다시 보았다.

천래비룡 막운비의 말에 의하면 일종(一宗)과 사성(四聖)을 모두 다 수위로 꼽았었다.

하지만 일종인 검황종은 사성 중 한 명을 단 삼검으로 굴복시키고 만 것이었다.

검황종!

정녕 그는 검(劍)의 지존(至尊)이란 말인가?

그러나 최강의 검객답지 않게 검황종의 얼굴에는 쓸쓸한 기색이 떠올랐다.

“무정마제 이후로 노부는 무인다운 무인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한순간 자만하기도 했으나... 그 뒤로 노부는 자신과 싸우기 시작했다.”

이검엽은 싱긋 웃으며 나섰다.

“스스로와의 싸움... 소생이 한번 그 의미를 맞추어 볼런지요?”

“허허... 좋도록 해라.”

“노인장께선 아마 생존하지도 않는 삼정, 이존, 구마를 모두 능가해 보려하셨을 것입니다.”

그 말에 검황종은 대소했다.

“하하... 용케 알아맞추는구나. 네 녀석은 여러모로 노부의 마음을 당기는 놈이다, 하핫...!”

실로 오랫만이었다.

검황종의 얼굴에는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자애롭고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노부는 네 녀석을 손자사위로 삼았을 것이다.”

검황종의 이어진 말에 이검엽은 흠칫했다.

“손녀가 있으셨습니까?”

“그렇다. 너보다는 한 두 살 어린 열여덟 살이다. 검지(劍芝)라는 이름이었는데...”

문득 검황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예기치 못했던 참화!

그것으로 아들 부부가 한꺼번에 몰살당하고 자신은 처참한 운명에 놓이질 않았는가?

덕분에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손녀 검지...!

검황종은 일순 가슴이 메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내 엄숙한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노부는 일갑자(一甲子)를 각고했다. 다시 천하 팔만사천종의 검류(劍流)를 연구한 것이다.”

“오...!”

이검엽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발했다.

한 인간이 어떻게 팔만사천 가지의 검법을 익히고 연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노부는 마침내 파천패혈삼십육파보다 두 배는 강한 사식(四式)의 검법을 완성시켰다.”

이검엽의 놀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황종은 말을 이어갔다.

“흐흐... 당년의 이존이나 삼천마종이 환생을 한다 해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그런 검법이었다.”

검황종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자부심이 떠올라 있었다.

“노부는 그 사식의 검법에 천황사대검종(天荒四大劍宗)이라 이름을 붙였다!”

“천황사대검종!”

이검엽은 다시 한번 탄성을 발했다.

종(宗)이란 무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스스로 만든 검법에 천황사대검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만큼 자부심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흐흐흣! 노부는 마침내 고금제일검법을 완성한 것이다!”

검화종은 강렬한 시선으로 이검엽을 주시하며 말했다.

“...!”

이검엽은 감히 입을 뗄 수 없었으나 피하지 않고 그 시선을 마주 받았다.

검황종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노부는 파천검보는 물론 태청대라신공과 천황사대검종을 모두 네게 전수할 것이다.”

이검엽은 다소 난감해졌다.

“소생이 노인장께 너무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닐런지요?”

“크크... 그 따위 소리는 두번 다시 하지도 마라!”

검황종은 딱 잘라 말했다.

“너는 단지 노부가 전수하는 무공으로 그 오인(五人)을 베기만 하면 된다!”

이어 그는 다소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본래는 네 녀석을 태청문의 차기 장문인으로 삼으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네 녀석은 너무 큰 그릇이다.”

이검엽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검황종은 껄껄 웃었다.

“허허... 네 녀석은 일문일파(一門一派)에 얽매일 재목이 아니다. 능히 천하만종(天下萬宗)을 포용할 수 있는 큰 그릇이다.”

그 말을 듣자 이검엽은 비로소 얼굴을 붉혔다.

“지나친 과찬, 부끄럽습니다.”

검황종은 가볍게 미소하며 말했다.

“네 일신에는 족히 육갑자(六甲子)가 넘는 막강한 잠재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물론 천지곤룡의 내단을 복용한 때문에 생긴 잠력(潛力)이다.”

이어 그는 진지한 어조로 덧붙였다.

“그 힘은 너무 강해 고금오대신공의 하나인 태청대라신공으로도 완전히 용해할 수 없다. 때문에 이를 완전한 네 것으로 하려면 극양과 극음의 상반되는 기공들을 익혀야 한다.”

“상반되는 기공이라면..?”

“그건 지금 말해 줘도 이해하지 못한다. 나중에 가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이윽고 검황종은 설명을 끝내고 당부했다.

“네 일신에는 차고도 넘치는 내공이 있으므로 일단 무공에 입문하면 무섭게 성장할 수 있다. 다만 그 시기의 장단(長短)은 네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세상에 나가려면 각고의 수련 외에 달리 길이 없음을 명심해라.”

이검엽은 공손히 읍했다.

“노인장의 금과옥조(金科玉條). 각골명심하겠습니다.”

검황종은 미소를 띄우며 신뢰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우선 네게 태청문의 절정신공인 태청대라신공(太靑大羅神功)을 전수하겠다.”

이검엽은 대답대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어, 그는 전신경을 모두 두 귀로 모았다.

“태청(太靑)이라 함은 천지만물(天地萬物) 중 가장 정순((精純)함을 말함이며 대라(大羅)라 함은...”

검황종의 입에서 나직하지만 현기가 서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검엽은 그의 말을 입안으로 따라 외우며 오의(奧意)를 가슴 속 깊이 새겨나갔다.

 

-태청대라신공(太靑大羅神功).

 

명실상부 도가제일기공이다.

지극히 현오하면서도 도가기공의 특징인 강맹(强猛)함에 있어 극(極)에 이른다.

반면 그 오의를 깨치기가 힘들어 백 년(百年)을 수련해도 그 진실된 성취를 이루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한데 검황종은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는 분명 단 두 번 읊었을 뿐이다.

헌데 이검엽은 지금 어떠한가?

몰아지경(沒我之境)!

이검엽은 이미 스스로 그 오의를 깨친 것이었다.

“허어... 그 녀석...! 노부가 열흘 밤낮을 물 한 모음 마시지 않고 씨름해서야 비로소 그 오의를 깨닫기 시작했거늘...”

그는 감탄한 듯 혀를 찼다.

“단 두 번 듣고 그중의 심오한 이치를 깨닫다니 예사 놈이 아니군!”

흐뭇한 미소가 스르르 그의 얼굴을 감쌌다.

“본래는 일 년(一年)을 예정했으니 너무도 턱없이 길게 잡은 것 같군!”

이윽고 그는 허공을 우러러 득의만면한 채 중얼거렸다.

“흐흐... 어쨌든, 이제 곧 제이(第二)의 검황종이 중원무림을 뒤흔들게 될 것이다!”

드디어 숙원을 이룬 때문일까?

검황종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감개가 스쳐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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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 章

 

             苦佛菴의 夜客

 

 

 

보화산의 밤,

별빛은 초랑초랑하고 은하수는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

보화산의 중턱에 있는 고불암의 승려는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머리를 흔들면서 암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법당에 모셔진 일백팔 개의 고뇌불은 세상의 근심을 모두 얼굴에 담고있다.

법당으로 나란히 걸어가는 한쌍의 남녀.

칠척의 거구 황군성과 가날픈 몸매의 진우란이다.

진우란은 그의 손을 잡아끌며 고뇌불이 모셔진 법당으로 갔다.

일렁이는 촛불이 불상의 번뇌를 더하게 하는데‥‥‥

진우란은 합장을 한후에 불상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보면서 말했다.

[황오라버니‥‥‥ 이 불상들 옆에 서면 제가 백 아홉 번째 불상으로 보이지 않겠어요?]

황군성은 그녀의 심사를 알것도 같아서 묵묵히 있었다.

임보산이 그녀를 위해 나서준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마음이 편할 수 만은 없는것.

또한 그녀는 위지장천의 원수로 지목되고 있기도 하질 않는가?

어쩌면 지금쯤 그녀의 부하들은 위지장천으로 부터 사냥당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황군성이 그녀의 어깨를 포근히 감쌌다.

진우란이 소리죽여 흐느끼며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내려갑시다.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으니 모든 것이 잘될 것이오.]

 

임보산은 침상에 느긋하게 누워서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그참‥‥‥이거 귀가 가려워서라도 한천사방객을 빨리 만나 담판을 지어야 겠군. 틈만 있으면 훌쩍이는 것이 영 나들으라는 소리같아서 원‥‥‥]

[당신도 쓸데없는데 귀 기울여 젊은 사람들 얘기 엿듣지 말아요.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금화선녀가 그녀의 상징인 금화를 손질하여 머리에 꽂으며 말했다.

[거 참 이상하단 말이야.]

[왜요?]

임보산의 말에 그녀가 물었다.

[분명히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도무지 그 녀석이 뭘 하는 소리를 엿들을 수가 없으니 이상하지 않소?]

[실없는 소리 말아요. 애들 들을까 겁나지도 않아요?]

갑자기 임보산이 귀를 쫑긋했다.

[응?]

[엿듣지 말래두 그러네.]

[그게 아냐 누가 오고 있는데? 젊은 여자군. 아주 젊어.]

[흥, 젊은 여자는 무슨‥‥‥]

말하든 금화선녀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젊은 여자군요.]

[거봐, 곧장 이리로 오잖소. 아마 날 찾아왔을 거요. 부인은 잠시 피해주구려.]

금화선녀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힘껏 쳤다.

펑!

[흥! 만약 당신을 찾아온 여자라면 이번에야 말로 목을 비틀어 버리겠어요.]

꽝!

그녀는 문을 세차게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가끔 임보산이 말한 그런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그녀였다.

금화선녀는 밖으로 나가 달려오는 그림자를 본 후에 후딱 임단심이 자고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어본 즉 임단심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그녀는 훌쩍 몸을 날려 달려오는 그림자를 막아섰다.

달려오던 소녀가 걸음을 멈추면서 소리쳐 물었다.

[아주머니! 혹시 저와 똑같이 생긴 여자 보시지 않았어요?]

금화선녀의 눈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파릇파릇한 빛을 발했다.

[네가 조가라는 그 못된 계집애로구나!]

소녀는 그녀의 한기 풀풀 날리는 음성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물러났다.

[다, 당신은 누구세요? 무림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금화선녀는 임단심이 삼불대 밑으로 돌아온 날 이미 조응경에 대해 들은 바 있었다.

그 당시에 그녀는 조응경에 대해 심하게 욕설했었는데‥‥‥

과연,

그녀의 앞에 놀란 토끼 마냥 쫑긋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는 조응경이었고,

금화선녀는 보자마자 그녀를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흥! 무슨 마음으로 그 애를 찾아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당장 떠나는 것이 좋을 걸? 비록 후배에게 손쓰고 싶지는 않지만‥‥‥경우에 따라서는 쓸 수도 있으니까.]

살기등등한 금화선녀의 말과 거동에 조응경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물었다.

[부인께선 누구시죠? 어떻게 저를 알고‥‥‥]

[네 까짓 게 뭐 대단하다고 내가 알아주겠느냐.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조응경은 몹시 두려웠으나 내심 임단심이 근처에 있음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부인이 그렇게 나올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응경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저는 그녀, 아니 꼭 그 사람을 만나야 해요. 부인께선 제발 저를 불쌍히 여겨 혈룡도왕 황군성소협을 만나게 해주세요.]

금화선녀가 차디찬 음성으로 내뱉었다.

[말로해서는 도저히 들을 계집애가 아니군.]

그녀는 시위를 하는 듯 소매속에서 금화(金花)를 꺼내들었다.

번쩍!

금화가 폭발하듯이 터져 오르며 칠십두 개의 꽃잎이 빛이 되어 날아갔다.

[앗!]

조응경은 경악하며 전신의 공력을 다해 날아올라 연거푸 일곱 번을 구르고 땅에 떨어졌다.

[헉!]

조응경의 옷은 마치 국수처럼 갈기갈기 베어져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두치 정도의 폭으로 잘라진 베를 몸을 감고 있은 듯한 형국이었다.

금화선녀가 마음만 먹었으면 찢어진 것은 그녀의 옷이 아니라 몸이었을 것이다.

쉬이이이--------!

한줄기 금빛이 모이듯 금화선녀의 손으로 꽃잎은 다시 모였다.

바로 그때,

[또 당신이었군.]

0아름답지만 한기가 풀풀 날리는 음성이 조응경의 귓전을 때렸다.

그리고,

스스슷!

금화선녀의 옆으로 세 사람이 환상처럼 나타났다.

임보산과 황군성, 진우란이었다.

조응경은 황군성을 보자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서릿발 같은 진우란의 눈도 보이지 않았다.

진우란이 한걸음 나서면서 말했다.

[홍심련주! 감히 내게 차도살인지계를 사용한 댓가를 보여주마!]

조응경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진우란이 바로 사신이라는 것을 그녀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단지,

지금 이순간에 황군성이 나서주지 않는다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간발의 순간에,

과연 황군성은 자신의 역활(?)을 잊지 않고 했다.

[휴! 진매, 멈추시오.]

[…………?]

[…………?]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로서는 그녀를 보호해야 할 입장이라오.]

진우란이 흠칫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설마‥‥‥]

황군성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오. 다만, 그녀와 임매는 통심마고로 영적으로 이어져 있소. 만약 그녀를 죽인다면 임매도 살지 못 할 것이오.]

금화선녀는 임단심으로 부터 들었던 말이 있는지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빨을 갈면서 말했다.

[괘씸한 사형! 만나기만 하면 족제비같은 수염을 왕창 뽑아버리겠어.]

그녀가 말하는 사형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통심마고를 펼친 전륜법왕이다.

그녀는 화를 부룩부룩 내며 객사로 돌아가 버렸다.

임보산도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진우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황군성의 행동을 지켜보는데,

황군성이 입을 열었다.

[조소저, 이곳은 왠일이요. 무엇 때문에 임매를 찾는 것이오?]

조응경이 입속 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무엇때문에 임단심을 찾겠어요? 당신을 한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을 뿐이지‥‥‥]

그러나 그 말을 황군성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시 물으려는데 조응경이 거의 다 베어진 소매 속에서 너덜거리는 서찰을 꺼내들었다.

다행히도 서찰에는 길게 베어진 자국이 있기는 했으나 읽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같았다.

[현현궁주이신 청삼객께서 당신에게 보낸 거예요.]

휙!

조응경은 내공을 실어 서찰을 던진 후 그대로 몸을 돌려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갔다.

서찰은 황군성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듯 날아들었다.

황군성은 서찰을 받아드는 순간 격동으로 몸을 떨었다.

너무도 익숙한 글씨,

바로 그의 동생 황군우의 필체가 아닌가?

[조소저! 잠깐 멈추시오.]

그가 황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조응경의 몸은 까마득히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진우란이 황군성의 기색을 남몰래 살폈다.

 

황군성은 황촉불 아래에서 서찰을 펼쳤다.

순간,

그의 안색은 크게 변해버리고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진우란이 다급히 물었으나 황군성은 대답없이 숨을 몰아쉬며 서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형님,

문성무존이 외부에 노출되었습니다.

무림인들이 영약과 비급을 얻기 위해 태산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소음곡에서 다시 한번 학선평의 참사가 재현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먼저 태산으로 갑니다.

군우올림>

 

진우란은 물론, 어깨너머로 바라본 임보산마저도 미미하게 놀랐다.

문성무존‥‥‥

내일이면 육천태를 데리고 황군성이 가기로 한 그곳이 아닌가?

한데,

그 문성무존이 노출됐다‥‥‥

모든 무림인들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황군우가 학선평에서 기개를 널리 떨쳤던 현현궁주 청삼객이었다는 사실 정도에 비할 수 없는 사태인 것이다.

[빨리 가봐야지 않겠나?]

임보산이 염려스러운 듯 물었다.

황군우가 길게 한숨을 내쉰 후에 말했다.

[아마 소음곡으로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임매가 정신을 차리면 출발하기로 하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황군성의 마음은 초조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또한 사건은 급박하고 돌아가고 있었다.

 

× × ×

 

학선평의 참사가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림은 다시 술렁이며 태산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태산에는 신선들이 사는 신비한 계곡이 있다.

-------그곳에는 온갖 영약과 무공비급들이 무진장 늘려있다.

-------들어가기만 하면 절세고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태산으로‥‥‥태산으로‥‥‥

 

영약과 비급이 무진장 감춰진 신선들이 사는 곳‥‥‥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전해진 소문은 무림황제를 추대하는 것과는 또 다른 흥분을 무림에 부여하고 있다.

영약과 비급은 명분이 아닌 실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 무림인들은 사람은 탐욕으로 죽고 새는 모이로 죽는다는 것을 가장 잘 알면서도 따르지 못하는 인물들‥‥‥

이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위험이 있는 법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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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一 章

 

             二尊과 九大天魔

 

 

 

“노... 노인장께서 그럼 일종(一宗)이신 검황종(劍皇宗)이셨습니까?”

이검엽은 대경실색하여 자신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이검엽의 반응에 노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네가 노부의 명호를 알고 있었구나. 그렇다... 노부가 바로 검황종이다.”

“아!”

이검엽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발했다.

 

검황종(劍皇宗)-------

천하무림의 숭앙을 한몸에 받아오던 무종(武宗),

그는 단연코 최고수위인 일종(一宗)으로 불리웠다.

또한, 풍전등화격인 현무림을 구출한 유일한 거목으로 지목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분명 죽었다.

천중산에서 지존(至尊)이라는 신비 인물에게 암습당해 절명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살아있었던 것이다.

더우기 이같이 처참함 모습으로,

검황종의 죽음(死),

검황종의 재생(再生),

실로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었다.

“어찌 되신 일입니까? 소생이 알기로는 노인장께선 오래 전에 은거하셨다고...?”

이검엽은 궁금해서 묻다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검황종에 대해 무엇을 안단 말인가?

고작 천래비룡 막운비에게 들은 것뿐이다.

어찌 지금 상황에서 경솔히 이것저것을 물을 수 있겠는가?

검황종이라 자처한 그 노인이 말을 이었다.

“흐흣... 일년 전만 해도 그랬다.”

그는 자조어린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두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살광이 폭사되었다.

이어 그는 치를 떨며 말을 이었다.

“흐흐... 그때에 노부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다섯 놈에게 당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놈들의 정체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자신이 겪은 엄청난 불운(不運).

검황종은 스스로 그것을 되씹듯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다섯 놈 중 적어도 네(四) 놈만큼은 알 수 있었다.”

“...?”

이검엽은 단정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검황종은 다시 말했다.

“그자들은 천여 년 전 이존(二尊)에게 패퇴했던 구대천마(九大天魔)의 후인들이었다.”

“이존!”

이검엽은 흠칫하여 물었다.

“혹시 말씀하신 이존은 천허존자(天虛尊子)와 절대패존(絶代覇尊) 아니십니까?”

그 물음에 검황종은 다소 억양이 가라앉았다.

“허허... 이존을 알다니 제법이구나, 그렇다면 이존과 구대천마와의 일도 알고 있느냐?”

“거기까지는 잘 모릅니다.”

“그럼 노부가 얘기해주마. 우선 구대천마는...”

그의 이야기는 대강 이러했다.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

무림사상 전무후무한 피의 역사를 창줄해낸 마인(魔人)들이 있었다.

이른바 구대천마(九大天魔),

 

혈천존(血天尊),

태양염제(太陽焰帝),

빙백존후(氷魄尊后),

혈검파천황(血劍破天荒),

광혈도귀(狂血刀鬼),

독종음절(毒宗淫絶),

환락선요(幻樂仙妖),

지옥명살(地獄冥煞),

환영마신(幻影魔神).

 

바로 이들이 구대천마다.

구대천마는 천하를 구분(九分)하여 피로 씻었다.

이들이 지나는 곳에는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조차 남아나지 않았다.

모두 그들 앞에 승복하거나 쓸려버린 것이었다.

특히 구대천마 중에서도 삼인(三人)은 별격의 존재들이었다.

 

혈천존(血天尊)!

태양염제(太陽焰帝)!

빙백존후(氷魄尊后)!

 

그들은 가히 패천(覇天)의 마공(魔功)을 지닌 개세마두(蓋世魔頭)였다.

때문에 그들은 구대천마 중에서도 따로 지칭되고 있었다.

 

-삼천마종(參天魔宗).

 

이것이 바로 그들 삼인의 이름이었다.

한데 어느 날,

구대천마는 돌연 한 곳의 은밀한 장소에서 만났다.

그리고는 그 직후,

두 명의 절대기인들과 대접전을 벌였다.

무려 칠주칠야(七晝七夜),

마침내 구대천마는 그 두 기인에게 제압당해 어떤 절지에 감금되고 말았다.

한데 그것이 바로 구마(九魔)의 최후가 될줄이야...

그들은 너무도 어이없는 종말을 맞이한 것이었다.

그만큼 구대천마는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불과 칠주야만에 제압했고 또 완전히 감금시킨 두 기인은 누군가?

 

-이존(二尊),

 

바로 그들이었다.

 

천허존자(天虛尊子),

절대패존(絶代覇尊).

 

이 두 기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신비문파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바로 천외천궁(天外天宮)이다.

그 이후 천여 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천외천궁은 면면히 그 역사를 이어왔다.

천외천궁,

그들은 강호에 그 정체를 드러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무림에 혈란(血亂)이 일어나면 반드시 초절정 고수들을 파견했다.

그들로 인해 무림은 어김없이 평정되고 마(魔)가 제압된다.

천외천궁,

그들은 정녕 무림의 수호신(守護神)적 존재인가?

 

“비록 구마가 이존에 패해 갇혔다지만 이중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

검황종은 심각한 어투로 덧붙였다.

“사실 구마 중 삼천마종은 너무도 초절한 고수들이었다. 한데 과연 이존의 실력으로 그들을 비롯한 구마를 모두 가둘 수 있었는지가 바로 의문점이다.”

“...!”

“이존이라 해도 삼천마종을 능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어쨌든 구대천마는 제압되었으나 천하에는 여전히 그들의 후인들이 있었다.”

 

구대천마의 후인(後人),

알려진 바로는 다음과 같았다.

 

혈천종의 혈궁(血宮),

빙백존후의 빙백전(氷魄殿),

혈검파천황의 검황문(劍皇門),

광혈도귀의 백살파(白煞巴),

독종음절의 만독문(萬毒門),

환락선요의 요지(遙池),

지옥명살의 지옥림(地獄林),

환영마신의 환공상(幻空岡).

 

등이 그들이었다.

 

듣고 있던 이검엽이 나직이 말을 꺼냈다.

“태양염제만이 문파를 세우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그러나 혈궁, 빙백전, 검황문, 만독문 등도 사라진지 오래다. 그들은 다시 천하제채를 꿈꾸다가 천외천궁과 전 무림의 합공에 괴멸되었다.”

일순 검홍종의 눈은 기이하게 번뜩거렸다.

“백살파, 지옥림, 환공강, 요지만이 잔명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일년 전 그놈들이 본종을 습격한 것이다.”

이검엽은 이해가 가는 듯 끄덕였다.

“그럼 네 명이란 바로 그 네 문파의 인물들이었겠군요.”

“흐흐... 그렇다. 그러나 그놈들 정도의 실력으로는 본종의 단 백초도 못 넘긴다. 한데...”

검황종의 두눈은 원독에 차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때 암습을 가한 놈이 있었다. 지존(至尊)이라 불리우는 놈...! 노부 총망중인데다 그놈의 무공은 극강했다. 결국... 노부는 이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바로 그 지존이란 자가 백살파 등을 배후에서 조종했겠군요?”

검황종은 분노를 삭이며 대답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한 가지 이해 못할 것은 지존이란 자의 무공이 지즉히 광명정대하다는 점이다.”

“...?”

“그래도 확실한 것은 결코 그 자가 선심(善心)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

이검엽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오인(五人)을 베라하심은 그 지존이란 자를 비롯한 그 일행이겠군요?”

“흐흐... 그렇다. 아마도 그자들은 당금무림을 뒤집어 놓고 있을 것이다.”

거인(巨人).

검황종의 혜지(慧智)는 깊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의 원한보다 전무림을 염려하는 것이었다.

또한 벌써 백살파 등의 만행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검엽은 대답대신 아까와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검황종을 응시했다.

검황종은 다시 덧붙였다.

“본종의 명예를 걸고라도 그자들이 횡행하도록 놔둘 수는 없다.”

그의 어조는 감히 범치 못할 위엄이 서려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스르륵!

무언가가 바닥을 기는가 싶더니 미끄러지듯 그의 가슴에 난 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흡혈옥령망이었다.

검황종은 흡혈옥령망을 보며 중얼거리듯 낮게 말했다.

“이놈이 아니었다면 노부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그는 씁쓸히 웃어 보였다.

“노부의 심장은 반 이상 부서져 나갔다. 이놈은 노부의 정혈(精血)을 빨아먹는 대신 자신이 흡수했던 영물들의 피를 나누어 주어 이나마 노부를 연명시켰다.”

이검엽은 싱긋 웃었다.

“실로 기문(奇聞)입니다.”

“허허... 이제는 노부의 일부가 된듯 하다.”

검황종은 가볍게 흡혈옥령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어 그는 이검엽의 몸을 훑어보며 말했다.

“노부는 네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네 몸을 살펴보았다. 너는 이전에 혹 천고기연(千古奇緣)을 만난적이 있었느냐?”

이검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보셨습니다. 소생은 우연찮게 천지곤룡(天地崑龍)의 내단을 복용하였습니다.”

검황종은 흠칫했다.

“천지곤룡의 내단을 먹었다고...?”

“예!”

이검엽은 이어 가급적 간결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지곤룡을 만난 것에서부터 천황비부(天皇秘府)에 들었던 일을...

검황종은 시종 묵묵히 듣고 있다가 껄껄 웃었다.

“허허헛... 기연이로군! 너라는 녀석은 역시 범상치 않은 놈이다!”

이검엽은 멋쩍게 웃었다.

“어쩌다 인연이 닿았을 뿐입니다.”

검황종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하여간 천황비부라는 곳에서 이존(二尊)과 인연을 맺었다니 대단한 일이다.”

문득, 그의 표정이 침중하게 변했다.

“한데... 아무래도 천황비부 앞에서 부복한 채 죽었다는 그 인물의 정체가 마음에 걸리는구나!”

이어 그는 혼잣말로 되뇌였다.

“설마... 천외천궁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듣고 있던 이검엽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노인장께선 그 인물이 천외천궁의 인물이라 생각하십니까?”

검황종은 안색을 굳혔다.

“그렇다. 더우기 네가 차고 있던 이 묵검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묵령신검이 천외천궁의 보물이란 말씀입니까?”

“물론이다! 이것은 바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절대패존께서 사용하시던 애검이다.”

“옛? 이게 절대패존의 애검이라구요?”

이검엽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발했다.

검황종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일... 천외천궁 내부에서 큰 변란이 일어났다면...!”

문득, 그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듯 치를 떨었다.

그리고 이검엽을 향해 당부했다.

“이곳을 나가에 되면 천외천궁의 동태도 유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

이검엽은 두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검황종은 화제를 돌렸다.

“너는 노부의 사문이 어딘지 궁금하지 않느냐?”

이검엽은 다소 들뜬 음성으로 대꾸했다.

“소생이 듣기로 노인장께선 절대무적지경에 이르셨던 고인이시라 했습니다.”

검황종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낯 뜨거운 소리하지 마라. 지금의 이 몰골을 보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느냐?”

이검엽은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거야 다수의 적을 상대하신데다 또 암습을 당하셨으니...”

검황종은 그의 말을 제지했다.

“무인(武人)이 되어 암습당하는 것만한 치욕도 없다. 그러니 암습당해서 졌다는 것은 변명이 못된다.”

“...!”

그 말에 이검엽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자연히 화제는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노부는 하나의 사문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검황종은 말을 하다 말고 그에게 물었다.

“삼정(三鼎)이라고...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그럴 테지. 삼정이라 함은...”

검황종은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삼정(三鼎).

구마이래 최강이던 삼인(三人).

각기 도가(道家), 불문(佛門), 속가(俗家)를 대표하던 절정기인들이었다.

 

태청노군(太靑老君).

 

전설 속의 도가(道家) 문파인 태청문(太靑門)을 세운 도가제일기인이다.

태청대라신공(太靑大羅神功).

이는 태청노군의 독문(獨門)으로 고금오대신공(古今五大神功) 중 하나였다.

지극히 현오하고 강맹함이 그 특징이다.

 

무아성승(無我聖僧).

 

당시의 불문제일고수다.

본래 소림(少林)의 제자로서 일찌기 소림칠십이종절예(少林七十二種絶藝)에 통달했었다.

한데 어느 날, 천축여행중에 그는 패엽진경(貝葉眞經)을 얻었다.

패엽진경(貝葉眞經)!

이는 천축에서 이르기를 절세비급으로 단연 무아성승을 불가최대의 고수로 부상시켰다.

 

풍운대제(風雲大帝).

 

전설적인 무제(武帝).

그는 단신으로 중원천하를 석권했다.

풍운개벽대정신공(風雲開霹大霆神功).

이는 그 적수를 찾아볼 수 없는 패도지공이었다.

풍운대제는 이것으로 대영웅의 권좌를 누렸다.

 

“그렇다면 그 중 한 분의 진전을 노인장께서 이으신 것입니까?”

이검엽의 물음에 검황종은 미소했다.

“그렇다. 바로 태청문(太靑門)이 노부의 사문 중 하나다.”

이어, 그는 자부심이 깃든 신비한 표정으로 한 권의 책자를 내밀었다.

“흐흐... 이것을 보아라. 노부의 또 다른 사문이다.”

낡아빠진 양피지의 비급.

더구나 피에 젖은 채 말라붙어 허름하기까지 했다.

이검엽은 그 비급을 받아 살펴보았다.

 

<파천검보(破天劍譜)>

 

그 비급의 겉장에 적힌 제목이었다.

이검엽은 흠칫하여 물었다.

“혹시... 구대천마 중 혈검파천황의... 무공이 실린 비급이 아닙니까?”

검황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했다.

“겉장을 넘겨보아라.”

“예...”

이검엽은 검미를 모으며 겉장을 넘겼다.

 

<혈검(血劍)의 검향(劍香)이 파천(破天)의 살운(殺雲)을 부르다.

------ 혈검파천황(血劍破天荒) 절필(絶筆).>

 

“혈(血), 검(劍), 파(破), 천(天), 황(荒)...!”

이검엽은 나직이 되뇌었다.

그런 그의 동공은 크게 떠지고 있었다.

 

고금제일검수(古今第一劍手)-------

혈검파천황(血劍破天荒)!

피(血)와 명예로 뒤덮인 마명(魔名)!

 

그의 비급이 이 순간 손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검엽은 흥분과 격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이미 그의 가슴은 수없이 맞방망이질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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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九 章

 

          九絶反天平脈의 治療

 

 

 

[그렇게 절망적이라곤 할 수 없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육노인과 잘 아는 편입니다.]

황군성이 발작적인 증세를 보이는 금화선녀에게 말했다.

금화선녀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황군성을 채근했다.

임보산은 마치 기도하는 듯한 모습으로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높히 쳐들고 말이 없고,

황군성은 진우란을 돌아보고 말했다.

[진매! 내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잘들었다가 절승곡(絶勝谷)에 가서 전해주시오.]

[말씀하세요. 황오라버니 분부대로 하겠어요.]

황군성은 육천태가 눈앞에 있기라도 하듯이 지그시 눈을 감고 말했다.

[육노선배! 만약, 육노선배께서 임매를 살려주신다면‥‥‥저는 육노선배께서 그토록 궁금해 하셨던 제 가문에 대해서 상세히 밝힘은 물론, 직접 육노선배님을 모시고 가서 원하시는 만큼의 영약들을 얻을 수 있게 해주겠습니다. 또한 언제나 그곳에 출입하고 머무를 수 있도록도 해드리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문성무존의 제 사십구대 주인이 될 사람으로서 맹세하는 바입니다.]

[육노선배!‥‥‥‥‥‥맹세하는 바입니다. 어디 틀린데는 없죠?]

진우란은 똑같이 한 번 외워 보인 후에 말했다.

황군성은 그 순간에도 한번 미소를 지어보인 후 빠르게 말했다.

[한마디도 틀리지 않았소.]

[그럼 다녀오겠어요.]

진우란은 임보산과 금화선녀를 향해 허리를 굽혀 보인 후에 절승곡으로 떠났다.

괴노 육천태가 이름을 숨기고 살고 있는 절승곡은 그들이 있는 고불사로부터 불과 이십여리 남짓한 곳에 있다.

황군성은 그곳에 머문 적이 있고, 진우란은 육천태로부터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진우란이 절승곡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나가고 난 후 얼마 있다가 임보산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육천태가 이곳 보화산에 은거하고 있었다니 뜻밖이군‥‥‥]

 

× × ×

 

뚜벅뚜벅!

실내를 거니는 발자국 소리가 불안스럽게 계속되고 있다.

무릎을 꿇고 앉은 한 여인의 주위를 돌고 있는 청년과 그녀를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미소녀.

이들은 객점에 들어온 황군우와 전연옥 일행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여인은 조응경이고,

황군우는 무언가를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이윽고,

[조소저! 그대가 형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이오?]

하고 청삼객의 차림을 한 황군우가 조응경에게 물었다.

그는 조응경이 그의 형 황군성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알기에 봉십삼으로 부르지 않고 조소저라 부른 것이다.

조응경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궁주님, 독봉 임단심소저와 저는 한 쌍의 통심마고에 의해 영적으로 이어져 있기에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말로는 임단심을 찾으면 황군성은 당연히 그곳에 있으리라는 것이다.

[통심마고라‥‥‥세상에 그런 기이한 물건도 있었군‥‥‥]

황군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전연옥이 말했다.

[저도 통심마고에 대해서는 들어본 일이 있습니다. 묘강에 사는 특이한 벌레로 다른 고와는 달리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통심마고를 다룰 줄 아는 기인이 존재하고 있는 모양이지요.]

조응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통심마고를 펼친 분은 다름아닌 남궁파의 사부인 전륜법왕입니다.]

황군우는 그녀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있는 것같지 않았다.

한동안 깊히 생각한 후에 한필의 서찰을 적어 조응경에게 주면서 말했다.

[그럼 형님께 이것을 전해주시오. 이것을 전해 주기만 하면 알아서 하실 것이오. 빨리 가보시오. 참 그리고‥‥‥]

[…………]

[조소저는 굳이 돌아오지 않아도 되오. 현현궁에 얽매이지 마시오.]

황군우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가시오!]

조응경이 감격하며 읍했다.

[궁주님의 하해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뜻을 이루시고 전소저와 백년회로 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소식이 늦지 않게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오.]

황군우는 담담하게 말했고,

조응경은 몸을 날려 떠나갔다.

[마치 폭풍이 몰아칠 것같은 기분이군요.]

전연옥이 불안한 표정으로 황군우에게 다가섰다.

황군우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렇소. 어쩌면‥‥‥어쩌면‥‥‥]

[떠나야죠?]

전연옥은 웃음 진 얼굴로 황군우를 대했다.

그녀는 남장여인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어떤 여인보다도 더욱 여인다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황군우는 그녀의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면서 말했다.

[갑시다.]

한시가 급하다.

황군우의 마음은 콩이 튀듯 튈 것만 같은 정도인 것이다.

잠시 후,

일백 명의 영기발랄한 남녀 고수들이 바람과 같이 달려갔다.

그들이 가는 방향은‥‥‥

태산(泰山)이 있는 쪽이었다.

 

× × ×

 

[구절반천평맥?]

육천태가 갑작스럽게 찾아와 재촉하는 진우란에게 반문했다.

[예! 구절반천평맥‥‥‥]

[그게 사람한테 나타날 수 있기는 있는 것이었나?]

육천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구절반천평맥에 걸렸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의학 이론상 그런 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정도일 뿐이었다.

육천태는 옥으로된 호로병 하나를 깊숙한 데서 찾아내더니 말했다.

[가자!]

[그것만 가지고 되겠어요?]

진우란이 불안스럽게 묻자 육천태는 미소를 지었다.

[명궁(名弓)이 한마리의 새를 잡는데는 화살 하나면 족함이 있고 신의(神醫)가 병을 치료함에는 일침이면 족하지. 그렇다고 내가 신의라는 것은 아니지만‥‥‥]

급한 환자가 있다는 데야 괴노 육천태도 더 물어 보지 않고 그녀를 따라 나섰다.

[내공이 상당히 늘었군! 내단이라도 복용한 겐가?]

오히려 자신을 앞질러 달려가는 진우란을 보고 육천태가 감탄하며 말했다.

진우란은 미처 그런 것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못들은 체 하고 달리노라니 금방 고불암이 눈앞에 들어왔다.

이십리의 거리야 그녀와 육천태같은 고수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뒷간이나 다름없는 거리였던 것이다.

진우란은 고불암 앞에 나와 있던 금화선녀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금화선녀는 그들 앞에 내려서며 말했다.

[육선생 어서 오셔요.]

육천태는 갑자기 금화선녀를 만나자 어리둥절하여 인사하며 물었다.

[부인께서 이곳에 어쩐 일이시오.]

그러자 갑자기,

금화선녀는 그에게 깊숙히 허리를 굽혀 절했다.

육천태는 황급히 옆으로 비껴서며 말했다.

[무슨 일이시오? 이 육모는 감당할 수 없구려.]

금화선녀가 애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육선생께서 제 딸을 치료해 주신다면 평생의 은인으로 알겠습니다.]

육천태가 고개를 돌려 진우란을 보고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녀석이 찾아다니던 임소저가 이 부인의 딸이란 말이냐?]

진우란은 속일 수가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고약하군‥‥‥음‥‥‥]

육천태가 중얼거렸다.

[참으로 고약한 일이군‥‥‥임보산은 내가 자기의 딸을 치료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 텐데‥‥‥]

금화선녀가 황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육선생, 그 사람도 감히 청하지 못할 뿐,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육천태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구절반천평맥이라고 해도 그라면 능히 치료할 수 있을 텐데‥‥‥그럴 수가 있겠소?]

금화선녀의 표정이 울쌍이 되었다.

자기 남편이 얼마나 인심을 잃고 살았는지 능히 실감하고도 남았다.

심지어 도와주는 것까지 두려워할 정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육형! 이 임모를 용서해 주시오. 육형께서 소제의 딸을 치료해 주신다면 불을 지고 섶으로 뛰어들라고 해도 마다하지 않겠소.]

임보산이 탄식하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천태는 놀라서 눈이 둥그레졌다.

무제 임보산이 어떤 사람인데 스스로 자기를 낮춘단 말인가?

오히려 육천태가 당황스러워졌다.

그는 즉시 객사로 달려가며 말했다.

[임형! 이 육모가 지나쳤소. 그런 말을 듣자고 한 소리는 아니었소.]

[모쪼록 이 임모는 육형의 자비만 바랄 뿐이오.]

사랑하는 딸의 목숨 앞에서는 임보산도 그냥 평범한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육천태는 방을 들어서자마자 세사람을 보았다.

임보산의 모습은 초췌하여 삽시간에 십년은 늙어버린 것같았다.

육천태는 그의 심려가 얼마나 컸겠는가 싶어 위로하며 말했다.

[임형 염려마시오. 내가 얼마 전에 쌍두금구를 얻었기에 기뻐했더니 그게 실은 임형의 영애를 구하라는 하늘의 뜻이었는가 보오.]

그는 즉시 임단심의 얼굴색을 살핀 후에,

품에서 작은 옥배(玉盃)를 꺼냈다.

그리고 검지를 옥배에 갖다 대자 검지가 갈라지면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며 옥배에 반쯤 채웠다.

다시 품에서 준비한 옥호로를 꺼내 몇 방울의 검붉은 액체를 떨어뜨렸다.

[이 쌍두금구의 정혈은 모든 기를 순화시키고 고르게 해주는 영험이 있소. 구절반천평맥같은 것에는 그야말로 특효라고 할 수 있소.]

임보산이 감격해하며 물었다.

[육형! 내가 도울 일은 없겠소?]

육천태는 옥배를 두 손바닥 사이에 넣고 살살 비비면서 말했다.

[목욕하기에 충분한 물이 있으면 좋겠소.]

그 말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진우란과 금화선녀가 크다란 목간통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 가운데는 물이 가득차있었다.

두 사람은 나가지 않고 육천태가 어떻게 치료하는지 한쪽에서 구경했다.

그때,

육천태의 옥배에서 한줄의 명주실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임단심으로 콧속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옥배에 들었던 것은 모조리 없어졌다.

육천태는 임단심의 목에 손가락을 대보고는 말했다.

[내가 숫자를 셀때 마다 내력을 일푼식 거둬들이시오. 일‥‥‥이‥‥‥삼‥‥‥]

황군성과 임보산은 그의 말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내공을 거둬들였다.

숫자가 일백에 다다랐을 때 육천태는 더 이상 헤아리지 않고 말했다.

[임소저의 몸에서 반발력이 느껴지는 순간에 손을 완전히 거두시오.]

황군성은 임단심의 몸 안에서 마치 곤두서있던 막대들이 넘어가는 것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쌍두금구의 정혈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그 쌍두금구의 정혈이 가진 효력은 황군성과 임보산의 힘이 맞닿아있는 아홉개의 맥에 까지 뻗쳐왔다.

순간,

황군성의 아홉개의 맥에서 일제히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것을 느끼며 황급히 손을 뗐다.

임보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붕!

임단심의 몸은 육천태의 공력에 의해 목간통으로 옮겨가 완전히 물속에 잠겨버렸다.

육천태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고비는 넘겼소.]

[육형 정말 고맙소. 내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으리다.]

임보산이 진심으로 육천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한테는 육형같은 도량이 없소. 나로서는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의 딸을 온갖 정성을 다해 치료해 줄 수 없을 것이오.]

육천태는 속으로 큰 기쁨을 느꼈다.

그에게 무공으로 이기고자 했으나 결코 이길 수 없었던 육천태인데‥‥‥

단지 한번의 치료로 그토록 거만하던 임보산이 자기에게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니,

그것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임보산과 그는 그동안의 감정을 떨쳐버리고 화해했다.

 

물속에 잠겨있는 임단심의 몸에서 나는 열기로 인해 통속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모든 것이 잠잠해 지며 임단심의 몸이 떠올랐다.

구절반천평맥이 치료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육천태가 일어나며 말했다.

[임형! 우린 나가도록 합시다. 이제 옷갈아 입히고 푹자고 나면 내일 아침 쯤에는 거뜬히 일어날 거요.]

임보산이 쾌한 마음으로 그를 따라 나섰다.

 

방안에서는 금화선녀와 진우란이 임단심의 옷을 갈아 입히고,

육천태와 임보산, 황군성은 황혼을 바라보며 섰다.

육천태가 황군성을 보면서 웃고 말했다.

[자네는 정말 신통한 재주를 가졌군. 이 임형이나, 이미 죽은 진섭천이나 나를 가장 감탄시킨 두 사람인데 그들이 딸을 모두 차지 하다니‥‥‥]

[육형도 혼인해서 딸을 낳았더라면 뺏겼을 지도 모르지.]

[하하하하‥‥‥]

임보산이 하는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문득,

육천태가 웃음을 뚝 그치며 말했다.

[임소저가 이미 자네 처라니 하는 말인데, 진소저를 통해서 내게 한 말은 아직도 유효한가?]

[기꺼이 저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임매가 완쾌되는 대로 함께 떠나도록 하지요.]

육천태는 크게 기뻐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절대 빈말은 아니겠지?]

 

일은 이렇게 된 것이었다.

그는 범강과 함께 온 황군성을 만나본 후에 황군성이 여러가지 영약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알고 있기에 신기하게 여겨서 자꾸 물어보았었는데,

그만 황군성이 실수하여 소음곡에 대한 말을 흘리고 말았었다.

그때부터 육천태는 온갖 기화이초가 가득하다는 소음곡을 마음을 두고 그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황군성이 다급해지자 그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내일 아침 일찍 오겠네. 임형! 내일 보세나. 껄껄껄‥‥‥]

육천태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웃으면서 절승곡으로 달려가 버렸다.

달려가는 그는 속으로 연방 중얼거리고 있었다.

(삽도 몇 개 준비해야 하고‥‥‥약초를 담을 상자도 준비해야 하고‥‥‥)

황군성과 임보산은 그의 돌연한 행동에 어리둥절하며 동시에 내뱉었다.

[괴노‥‥‥]

괴상한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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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아! 劍皇宗

 

 

 

스슥!

백의인의 발끝이 흠칫하는가 싶은 다음 순간이었다.

쐐------ 액!

그야말로 뇌전이 흐르는 듯 빠르고 악랄한 도세가 허공을 갈랐다.

파팟-------!

카----- 앙!

이검엽의 검이 그를 맞받아 후려쳐냈다.

그러나,

“웃!”

“허엇!”

두 마디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검엽.

그는 안색이 밀랍처럼 창백해 있었다.

조금전에 당했던 도흔(刀痕).

바로 그곳이 깊숙이 패인 것이었다.

그의 가슴은 무참하게도 시뻘건 선혈로 젖어들었다.

백의인,

그는 무사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형언키 어려운 경악을 담고 있었다.

이가 뭉턱 빠져 버린 장도.

그는 넋이 나간 듯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제정신이 든 백의인은 끔찍스러울 정도로 살기를 발산시켰다.

“크크... 제법이다만 이번에는 정녕 살아남지 못하리라!”

그는 장도를 두 손으로 움켜쥐며 이검엽을 겨누었다.

그 순간,

스스스...!

그의 도신(刀身)은 희뿌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것은 엄청난 도기(刀氣)의 덩어리를 형성해 내었다.

이를 본 이검엽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심상치 않은 기세다. 저 도세에 정면으로 가격당한다면 나로서도 도저히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드디어 백의인은 도를 뻗어내었다.

“죽어랏!”

슈------ 악!

아!

쾌도 중 쾌도였다.

뇌전의 매속도를 십분(十分)한다한들 이렇게 빠를 수가 있단 말인가?

“차------- 앗!”

위------ 잉!

맹렬한 검세로 그에 맞닥뜨린 묵령신검!

족히 삼천 근에 이르는 일검(一劍)이었다.

카------ 앙!

파팟-------!

휘황인 불꽃이 작렬했다.

무게(重)와 속도(快)의 대격돌!

그속으로부터 터지는 처참한 두 마디 비명-------

“크----- 악!”

“크윽!”

이검엽의 신형이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갔다.

휘------- 익!

그는 한줄기 선연한 피의 무지개를 그으며 급강하했다.

아! 그곳은 바로 깎아내린 절벽이 아닌가!

그는 곧장 천야만야한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아------- 악!”

그의 처절한 비명이 긴 메아리를 남기고 있었다.

아! 이검엽-------

그는 희뿌연 도기(刀氣)에 격중 당해 가슴이 박살이 났었다.

또한,

그 가공할 도세로 인해 절벽 아래로 튕겨져 버린 것이었다.

점점이 남은 혈흔.

절벽 모퉁이는 온통 시뻘건 피투성이였다.

한편,

백의인, 그는 어찌 되었는가?

정확히 양단된 처참한 시신.

그것은 분명 백의인이었다.

두 조각난 더욱 피를 콸콸 쏟아내고 있었다.

그의 주위는 온통 시뻘건 선혈로 강(江)을 이루었다.

조금 전까지 만도 살아 숨쉬던 그는 이미 육괴(肉塊)에 불과했다.

또한, 쾌도를 자랑하던 그의 장도(長刀)-----

그것 역시 완전히 두 동강이 난채 그 곁에 있었다.

격전의 종말.

그것은 고요 일색(一色)이었다.

휘------- 잉!

지나가는 산풍(山風)에 역한 피비린내만이 장내를 휩싸고 돌았다.

이검엽,

그의 자취는 사라졌다.

과연 그의 생(生)은 이로서 막(幕)을 내릴 것인가-------

 

히힝...!

주인을 잃은 구슬픈 울부짖음...!

흑풍이었다.

충마(忠馬) 흑풍은 이검엽이 떨어져 내려간 절벽 아래를 보며 처량히 울어댔다.

그러나,

까마득한 절벽은 그밑이 어디인지조차 보이지도 않았다.

휘------ 이------ 잉!

싸늘한 산풍만이 절벽을 휘돌고 있었다.

그때였다.

쐐------- 액-----!

한 줄기 선풍(旋風)인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공할 빠르기로 날아드는 인영이었다.

극히 섬세하고 가냘픈 인영.

스스슥...

그 인영은 이내 절벽 위에 내려섰다.

여인(女人),

대략 십 칠팔 세 정도 되었을까?

그린 듯한 고운 아미.

정결한 피부.

빼어난 미녀라기보다는 고귀한 기품이 흐르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한 마리 학과도 같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의 미(美)에는 가시가 있었다.

살기(殺氣)!

끔찍한 살기가 그녀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녀의 얼구른 얼음장보다도 더욱 싸늘하게 보였다.

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흘깃 고천봉을 바라보며 앙칼지게 뇌까렸다.

“사부님 말씀대로군! 아버님은 구파일방과 팔절(八絶) 등의 수법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겁간당하신 채 목이 잘리셨다!”

이어 그녀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매섭게 외쳤다.

“중원무림! 호호홋! 기다려라! 감히 검황종(劍皇宗) 일가를 건드린 보복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보여주마!”

그녀는 전신에서 줄기줄기 원독에 찬 살광을 뿜어냈다.

히힝!

갑작스런 그녀의 출현과 엄청난 살기에 흑풍은 몸서리를 쳤다.

푸르르...!

흑풍은 대뜸 그녀에게 경계의 빛을 띄웠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흑풍과 마주했다.

“신마(神馬)로군!”

그녀는 탐욕에 두 눈이 반짝 빛났다.

“호호... 이곳에서 신마를 얻다니 정말 뜻밖이군. 모두 할아버님과 아버님, 어머님의 덕분일거야.”

그녀는 마음대로 지껄이며 흑풍에게 다가섰다.

쿵, 쿵...

“이리 오너라.”

그러나 흑풍은 사납게 그녀를 노려보며 꼼짝하지 않았다.

푸르르...!

“호호... 한낱 미물인 주제에 감히 나와 맞서려 하다니,...!”

그녀는 냉소하며 대뜸 흑풍의 등으로 날아 올랐다.

히힝!

흑풍은 발작적으로 몸을 흔들며 그녀를 떨치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여인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어림없지! 네 녀석 하나 못 다룰 내가 아니야!”

그녀는 한 손으로 고삐를 바짝 잡았다.

동시에, 나머지 한 손을 들어 흑풍의 등을 후려갈겼다.

철------- 썩!

여인의 교수(嬌手),

그것이 이처럼 혹독할 수도 있단 말인가?

이어, 그녀는 매몰차게 박차를 가했다.

“이럇! 가자!”

히------ 잉!

흑풍은 길게 울며 산아래로 달렸다.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일임을 흑풍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일까-------

 

***

 

암흑(暗黑),

그리고 너무도 조용했다.

(후훗... 기이한 인연이군. 천주산의 절애에서 천지곤룡과 함께 추락한 것이 불과 반년 전이거늘...!)

이검엽.

그의 뇌리는 쉬지않고 움직였다.

하나 그의 육신은 도무지 꼼짝할 수 조차 없었다.

눈꺼풀은 천근이나 되는 듯 무겁게 내리감기고,

전신골격이 모두 어긋난 듯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다만 기이할 정도로 정신이 맑았다.

(죽지는 않은 모양이군. 번번이 절벽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나는 것을 보면 나라는 놈은 일찍 죽지는 않을 것인가...?)

그는 눈을 내리감은 채 피식 실소했다.

그때였다.

“이놈! 웃을 기력이 있으면 냉큼 일어나지 못할까!”

벽력같은 고함이 그를 강타했다.

“헛!”

이검엽은 대경하여 무의식적으로 급히 눈을 떴다.

그 순간에 비로소 그는 완전히 정신이 든 것이었다.

그는 눈을 껌벅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음침한 동굴,

그 돌바닥에 자신이 누워있음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어느 분이 소생을... 헛!”

말하는 도중 그는 흠칫하여 입을 다물어 버렸다.

동굴 안 귀퉁이에 앉아있는 괴인(怪人)을 발견한 것이었다.

괴인,

그의 모습은 실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실로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사람인가? 귀신인가?)

이검엽은 문득 소름이 오싹함을 느꼈다.

비스듬히 벽에 기대앉은 괴인,

그는 우선 봉두난발이어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옷은 본래 색을 알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피와 오물로 찌들어 있었다.

더우기,

그는 가슴이 으스러져 허연 갈비뼈가 끔찍하게 삐죽 드러났다.

이검엽은 그것을 보자 낡은 초가(草家)의 서까래를 보듯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었다.

섬뜩하게도 괴인의 가슴 한복판에 시뻘건 물체가 박힌 것이었다.

아!

그것은 놀랍게도 핏빛 가죽의 뱀이 살속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문득,

괴인은 부서진 자신의 가슴에서 쭉 붉은 뱀을 뽑아내고 있었다.

이검엽은 아픔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났다.

“노... 노인장께선... 어떻게...”

그는 말문이 막혔다.

봉두난발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안광!

그것이 자신을 쏘아보고 있음을 느낀 것이었다.

그는 머리털이 몽땅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괴인은 냉소를 터뜨렸다.

“크크... 사내 놈이 이 정도에 놀라다니...”

그는 기이한 눈빛을 지으며 자신의 가슴을 드러내 보였다.

뻥 뚫러진 뱀의 거처가 드러나자 이검엽은 흠칫했다.

(피 한 방울도 나지 않는군! 어제 오늘 뱀이 머물렀던 것이 아닌가 본데...)

그의 상념을 깨듯 괴인이 말했다.

“크크... 홍아(紅兒), 나가서 배를 채우고 오너라.”

그말에 홍사(紅蛇)는 쏜살같이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끼르륵...!

괴이한 뱀의 울부짖음이 음산한 여운을 남겼다.

이검엽은 그 울음소리에 소름이 돋옴을 느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흡혈옥령망(吸血玉靈망)이라는 것인가 보군요.”

괴인은 그 말에 괴상한 웃음을 흘렸다.

“클클... 어린 놈치고 안목은 제법이로군!”

조소인지 칭찬인지 이검엽은 그 말에 신경쓰고 싶지가 않았다.

그의 뇌리에는 흡혈옥령망에 대한 기록만이 맴돌았다.

 

-흡혈옥령망(吸血玉靈蟒),

 

문자 그대로 다른 짐승의 피(血)를 빨아먹고 사는 일종의 영물(靈物)이었다.

특히 즐기는 것은 다른 영물이나 영사(靈蛇) 등의 피였다.

그래서인지,

흡혈옥령망은 가히 희세의 보물로 꼽히고 있었다.

그 피를 만일 복용할 수 있다면 장생불로(長生不老)는 물론 영민한 지혜(知慧)를 지닐 수가 있었다.

또한,

무림인에게라면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내공증진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검엽은 생각을 접으며 괴인을 의식했다.

그는 다소 마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 노인장께서 소생을 구하신 것... 입니까?”

“그렇다.”

괴노인(怪老人)은 억양이 없는 투로 잘라 말했다.

이검엽은 즉시 일어나 허리를 굽히려했다.

어찌 되었건 그 괴노인은 자신을 구한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그러나 그 순간 괴노인은 손을 저으며 굳은 어조로 말했다.

“그만 두거라. 노부 또한 목적이 있어 네놈을 살린 것이다.”

이검엽의 허리는 굽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자의(自意)가 아니었다.

강력한 무형의 경기!

그것이 그의 몸을 저지한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이검엽은 똑바로 서서 노인을 응시했다.

그리고 담담히 물었다.

“그 목적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갑자기 노인은 무섭게 두눈을 희번덕였다.

“다섯 명을 죽여라!”

“살인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이검엽은 대경하여 되물었다.

노인은 잘라 말했다.

“그렇다!”

이검엽은 난감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참 어려운 일이로군. 어찌 사람을 죽여 달라는 부탁을? 그것도 다서 명씩이나...)

그의 짙은 검미가 잔뜩 찌푸려졌다.

(실로 기이하군. 천황비부와 또같은 일을 또다시 겪게되는 셈이다.)

그의 표정의 변화에 노인은 다소 부드러운 음성으로 덧붙였다.

“걱정 말아라. 선자(善者)를 죽이라는 것은 아니다.”

(으음....!)

이검엽은 잠시 갈등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내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악인(惡人)이라면 소생을 구해 주신 은혜를 보답키 위해 밸 수도 있습니다.”

“...!”

노인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의 두눈은 여전히 이검엽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나 조금 전과는 달리 그 눈빛은 다소 부드러워져 있었다.

이어 노인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너는 노부가 누구인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검황종(劍皇宗)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느냐?”

노인이 복잡한 감정이 서린 음성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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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八 章

 

            마왕의 정체

 

 

 

북경(北京),

하후승의 구문제독부 가산 속,

[으‥‥‥그놈들‥‥‥모조리 죽여 버린다. 우아아아!]

와장창!

펑! 쿵쾅!

하후승이 기물들을 마구 때려부수며 발광하고 있었다.

태사의가 가루로 변해서 날아가고,

대전 안은 스물거리는 마기(魔氣)로 가득차 있었다.

[크흐흐흐‥‥‥그년, 그년만 있었으면 월음천마공을 완성할 수 있었을 텐데‥‥‥]

하후승은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하후승‥‥‥

그는 무림황제를 뽑는 대회에 정체를 숨기고 참가했다가 내공이 아주 고강해보이는 임단심을 납치했던 것이다.

그가 어찌 알았겠는가?

그녀가 임보산이란 천하제일인의 금지옥엽이었음을‥‥‥

임보산도 마왕이라는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지만,

하후승도 암중의 천하제일인 임보산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임보산을 아는 자들이 많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그를 아는 자는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그 때문에 하후승은 천하에 자신의 세력을 심어두고도 그를 알지 못했다.

월음천마공을 거의 완성하였기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마왕(魔王) 하후승‥‥‥

기실 그의 마왕이란 호칭은 그 자신이 얻었던 것이 아닌 물려받은 것이었다.

실제로 한천사방객의 우두머리인 궁월의 흉수는 하후승이 아니라 그의 사부였던 전대 마왕이다.

옛날,

궁월이 동해에 비밀리에 전해져 오는 파형도문(派形刀門)의 장문인이었을 때,

그는 우연히 바다 속 수중동굴에서 고금십대천병의 하나인 번천도와 그 비급을 얻었다.

그는 그후로 파형도문에서 두문불출 번천도를 익히기에 고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갑자기 침입한 한명의 살인마가 번천도를 요구하며 파형도문을 쑥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사건이 터졌다.

삼십여 명의 제자들을 모두 그자의 손에 죽었고,

궁월은 이성 수준으로 익힌 번천도로 그자와 맞섰으나 삼초 만에 일장을 맞고 말았다.

하지만,

제자들의 죽음에 한이 맺힌 궁월은 그에게 순순히 번천도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바다 위 절벽에서 내던졌다.

그 절벽아래에는 궁월이 번천도를 얻었던 그 동굴이 있고,

그는 다시 그곳으로 가서 상처를 치유했다.

하지만,

그의 상세는 엄중하여 도저히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궁월은 마지막 모험을 하여 동굴 속에서 암흑초(暗黑草)라는 지독하기 이를 데 없는 독초를 먹게 되었다.

암흑초를 먹게 되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밝은 태양아래에 나설 수 없는 몸이 되고 만다.

게다가 세월이 흐를수록 그의 몸은 점점 돌처럼 굳어지게 되는 데,

내공의 강함으로 일시적으로 회복할 수는 있지만 종국에는 돌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궁월의 마왕에 대한 한은 더욱 깊어졌고,

급기야는 동한객이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가 번천도를 십성 수준으로 익혔을 때는 이미 마왕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고,

그는 태산의 어두울 절곡에서 돌이 되어가고 있었던 터‥‥‥

 

[그놈들‥‥‥흐흐‥‥‥반드시 죽이고 만다. 감히 나 마왕 하후승에게 상처를 입힌 놈들‥‥‥]

하후승의 눈은 악마의 눈빛과 같았다.

유리알처럼 하얗게 변해 동공이 사라진 눈‥‥‥

그는 임보산에게 일장을 맞고 황군성에게 일검을 맞았었다.

비록 큰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구성 수준의 월음천마공으로 인해 이미 상세는 완전히 회복된 터였다.

하후승은 밖을 보며 소리쳤다.

[계집! 계집을 데려와라! 내공만 강하다면 늙은 계집이든 중 년이든 상관치 않겠다. 월음천마공을 완성하고야 말겠다!]

누군가가 명을 받고 벌써 달려 나가고 있었다.

얼마 후,

구문제독부에서는 백 여명의 인물이 빠져나갔다.

그들은 무공이 높은 여승이나 여협을 잡으러 간 것인데‥‥‥

하후승은 가산을 나가면서 다시 소리쳤다.

[당장 쓸 계집도 데려와라! 궁녀든 뭐든 상관없다.]

그는 자신의 옷을 모두 찢어버린 채 도화원으로 나섰고,

태사의가 복숭아나무 숲 한쪽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두 여인이 달려오고 있었다.

하후승의 눈이 뒤집혔다.

슈우우욱!

그가 쌍장을 뻗자 가경할 흡입력이 생기면서 두 여인의 몸이 그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맛!]

[흐흐흐‥‥‥이년 내손에서 잘도 벗어났겠다.]

하후승은 두 여인 중의 하나를 임단심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월음천마공이 깊어진 결과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였다.

위지장천이 말하지 않았던가?

월음천마공을 익히게 되면 이성(理性)을 잃고 살인을 위한 도구가 되고 만다고‥‥‥

하후승은 입을 오무리고 오른손에 든 여자를 향해서 입김을 불었다.

휘휘휘휘-------!

순간,

그의 입에서 나간 바람은 마치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여인의 옷을 갈가리 베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여인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몸에는 상처하나 나지 않았다.

하후승의 흉물스런 남성이 하늘을 찌를 듯 벌겋게 충혈된 채 치솟아 있었다.

하후승은 왼쪽에 있는 여인마저 똑같은 방법으로 나신으로 만들었다.

요염한 두 여인의 백옥같은 나체가 그의 앞에 떨면서 서있었다.

두려워 하는 그 모습은 하후승의 욕정을 더욱 부채질 할 따름,

[으왓!]

하후승이 동시에 두 여인을 안고 넘어뜨렸다.

[아아!아!아!아!] 

[아응!‥‥‥]

여인들이 비음을 지르고,

하후승은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움직였다.

 

 

[후‥‥‥다 끝났어. 이제 갖다 묻자고.]

건장한 사나이가 여인의 몸에서 떨어지며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서 다른 여인의 위에 올라가 있던 자가 말했다.

[조, 조금만 기다려‥‥‥으으‥‥‥]

그자는 마지막 힘을 쓰고 있었다.

[휴----! 됐어. 다됐어.]

그자도 일어서고,

무참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여인의 시체가 드러났다.

[제길‥‥‥계집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죽어버렸어.]

그는 툴툴거리며 여인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갔다.

[낄낄낄‥‥‥이곳에서는 그저 이 재미만 한 게 없단 말이야. 사흘이 멀다하고 양귀비같은 계집년들을 맛볼 수도 있고‥‥‥그게 조금 상하긴 했지만 낄낄‥‥‥]

지금까지의 다른 시체들과 마찬가지로,

그 두 여인의 시체도 복숭아나무 아래의 거름이 되고 말았다.

사람이 복숭아를 먹는 것인지?

복숭아 나무가 사람을 먹는 것인지‥‥‥

하지만,

여하튼간에 여승도 묻히고 늙은 여자 이쁜 여자 못난 여자 골고루 이렇게 묻혀가는 동안에,

하후승은 금단의 마공 월음천마공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 × ×

 

[뭐라고요? 내가 삼백 년의 공력을 줘버리면 할망구가 되고 말텐데 그래도 좋단 말이에요?]

금화선녀는 길길이 뛰면서 임보산에게 소리쳤다.

임보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속살은 팍삭 늙었으면서 겉만 번드르해 가지곤 하는 소리라는게‥‥‥죽어도 진작 죽었어야 할 할망구가‥‥‥]

[그렇게는 죽어도 못해요.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요.]

금화선녀는 앵돌아 앉으며 말했다.

임보산이 코웃음을 쳤다.

[흥! 딸이야 죽든 말든 그저 젊은 계집처럼 보이는 것만 중요하다는 말이지?]

[흥! 그러는 자기는 왜 백오십 년의 공력도 남에게 못줘? 자기가 주더라도 마찬가지잖아.]

금화선녀가 쏘아 부쳤다.

임보산이 말했다.

[당신이야 나를 의지하면서 살면 되겠지만 내 무공이 약해져 버리면 누가 전륜법왕이나 육천태같은 고수를 저지할 수 있어?]

[핑게대지 말아요. 꼭 당신이 그들을 저지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임보산과 금화선녀의 말다툼은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일어났다.

임보산이 그녀더러 다짜고짜 황군성에게 삼백 년의 공력을 주라고 한 때문이다.

임보산의 공력은 구백년이 조금 넘는 정도이고 황군성은 육백 년이 조금 넘으니,

구절반천평맥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황군성과 임보산의 내공수위가 거의 같아져야 하는데,

임보산은 자신의 공력을 낮추긴 싫고 금화선녀에게 황군성의 공력을 구백년 수위까지 높여주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금화선녀의 꽃다운 미모는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호호파파 할망구가 되거나 심할 경우 노쇠를 이기지 못해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응락할 리가 없다.

이미,

자신의 병에 대해 들어서 알고있는 임단심은 부모가 또 자기 때문에 다투자 화가 나서 다른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았다.

황군성은 그들 옆에서 감히 끼어들지도 어쩌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한데,

진우란이 다투고 있는 그들 부부사이에 끼어들었다.

[저‥‥‥]

[뭐냐?]

금화선녀가 가시돋힌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녀는 딸의 씨앗이나 마찬가지인 진우란을 좋아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진우란은 풀죽은 음성으로 말했다.

[제게 천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는 쌍두금구의 내단이 있어요. 이것으로 어떻게 안될까요?]

그녀가 품에서 꺼내놓는 구슬같은 내단을 냉큼 받아들며 임보산이 큰소리로 웃었다.

[되고 말고, 이것이면 충분하고 넘치지. 으하하하하‥‥‥]

 

황군성은 자신의 공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먼저 임보산과 금화선녀에게 각각 백년 씩의 공력이 가고,

진우란에게 사백 년의 공력이 전해졌다.

이로써 황군성의 대해와 같은 단전은 쥐어짜야 십여 년에 불과한 공력 만이 남고 텅텅 비어버렸으며,

진우란은 팔백 년, 금화선녀는 칠백 년, 임보산은 천년의 공력을 채우고 있었다.

이같은 내공은 무림에 거의 유래가 없는 것들이었다.

이내,

황군성도 쌍두금구의 내단을 복용하고 천년의 공력을 형성했으니 그의 무공은 완성의 경지에 접어든 셈‥‥‥

그들은 며칠 동안 연공하면서 그 공력들을 자신들의 몸에 익숙하게 하는데 애썼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임단심의 구절반천평맥을 치료하는 날이 왔다.

 

× × ×

 

임보산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임보산아 임보산아‥‥‥이제 너도 죽을 때가 된 모양이구나. 모든 것이 갖춰졌는가 했는데 천려일실로 말미암아 딸을 죽이게 됐구나‥‥‥]

그의 맞은 편에는 황군성이 침중한 표정으로 앉아있고 그 두 사람 사이에 임단심이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임보산의 오른손은 임단심의 왼손 맥문을 쥐고 있으며,

그의 왼손은 임단심의 등밑에 자리한 명문혈에 닿아있다.

황군성의 왼손은 임단심의 오른손 맥문을 쥐었으며,

그의 오른손은 임단심의 단전에 닿아있는데‥‥‥

그들은 손을 떼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하는 상태에 처하고 만 것이다.

그들은 실패했다.

아니,

아직 임단심이 죽지 않았으니까 속단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성공하지는 못했다.

임보산은 모든 것을 고려했으면서도 정작 딸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임단심은 고금십대천병의 하나인 구룡로를 지니고 치구룡술이란 전 무림을 통틀어서도 독특하기 이를 데 없는 무공을 익혔다.

치구룡술은 아홉마리의 용을 다스리는 것인데,

그 아홉 기운은 원래 구룡로에만 담겨있은 것이지만 임단심이 치구룡술을 익힘으로 인해서 그녀의 몸과 넘나들고 있었다.

한데,

그녀의 몸속에 들어온 용의 아홉가지 기운은 그녀의 구절반천평맥과 만나 그녀의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아홉군데의 요혈에 각기 자리를 틀고 말았다.

그들이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자리를 틀었냐고 할 테지만,

기운들이 요혈을 움직이다가 완전하지 못한 요혈을 만나 완전히 흘러가지 못한채 조금씩 남았다가 뭉쳐져 강화된 것을 말한다.

그로 인해 원래부터 약하기 이를 데 없었던 아홉요혈은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단단하기만 했지 힘은 전혀 없었다.

임보산과 황군성이 원래의 계획대로,

한사람은 천천히 혈맥을 뒤집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받쳐주면서 완전한 혈맥으로 바꾸는 대법을 펼치게 된다면,

얇은 얼음조각처럼 변해버린 임단심의 구대요혈은 일제히 터져버리고 말 것이다.

이미 양쪽에서 황군성과 임보산이 공력을 주입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들은 섣불리 손을 뗄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들의 공력이 물러나게 된다면 그녀의 요혈에 잠복해 있던 아홉기운이 깨어나면서 요동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임단심의 몸은 한마디로 갈 때까지 거의 다가 있었던 셈인데‥‥‥

아홉기운은 그녀의 몸에 있어서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아마도 임단심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죽게될 것이다.

 

임보산과 황군성은 각기 일천 년에 이르는 내공을 지녔기에 임단심의 몸에 공력을 건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여력은 있었다.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은 물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 지금같은 상태를 유지해 준다고 해도,

정신을 잃고 깨어날 줄 모르는 임단심은 어찌할 것인가?

임보산은 평생 지금같은 막막한 경우를 당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인데,

그는 탄식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객사 밖에서 호법을 쓰고 있던 금화선녀와 진우란이 달려와 물었다.

임보산은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매인 음성으로 말했다.

[부인, 나 임보산 정말 부인에게 면목이 없소. 내가 실수하는 바람에 우리 단심이가 죽게 되었구려‥‥‥]

금화선녀의 안색이 밀납처럼 창백해졌다.

진우란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누르느라 목이 메였다.

금화선녀가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겨우 물었다.

[단심이는 죽었어요?]

[아직‥‥‥]

[당신이 구할 수 없다면‥‥‥단심이는 죽을 수 밖에 없겠군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누가 또 할 수 있겠어요‥‥‥]

금화선녀는 임보산의 뒤에 앉으며 말했다.

[여보! 이일은 아마 하늘의 뜻인 모양이에요. 당신의 잘못이 아닐 거예요. 아니 당신이 잘못했다 해도 그건 하늘의 뜻일 겁니다.]

그녀는 오히려 임보산을 위로했다.

임보산‥‥‥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천하제일인‥‥‥

그의 가슴은 진정 면도날로 도려내는 것보다 더욱 쓰라릴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의 딸을 구하는데 실패를 했으니‥‥‥

금화선녀는 늘 그와 다투기만 했지만 실상은 그의 관대함에 기댄 어리광에 불과 했다.

지금이야 말로 그녀가 임보산을 위로하고 감쌀 때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묵묵히 있던 황군성이 입을 열었다.

[괴노 육천태 노선배! 혹시 그분이라면 무슨 수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 육천태!]

금화선녀가 무릎을 치며 소리쳤다.

진우란의 얼굴에는 희색이 감돌았고, 임보산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의술이라면 천하에 그를 당할 사람이 없지.]

[그럼 내가 그를 청해오겠어요.]

금화선녀는 벌떡 일어섰다.

임보산이 그녀를 불렀다.

[부인, 멈추시오. 육천태가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그는 오지도 않을 거요.]

[왜‥‥‥?]

[불과 얼마 전에 나는 그에게 또 상처를 입히고 말았소.]

금화선녀가 털석 주저앉았다.

[그럼‥‥‥우리 단심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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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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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血洗四覇

 

 

 

바로 그 순간,

그들을 제지하는 것이 있었다.

“친구들! 그만 하는 것이 어떻겠소?”

착 가라앉은 침착한 음성.

“누구냐?”

백의인들은 대경실색하며 급히 돌아섰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얼굴에는 조소가 어렸다.

그들을 막아선 인물.

그는 무명의 청년서생이었던 것이었다.

백의인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냉소했다.

“흐흐... 책벌레... 네놈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

“싱거운 놈!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과연 그들이 이렇게 나올만 했다.

청년서생,

기실 그는 수려하고 초탈한 외모이긴 하였으나 무(武)자도 모르는 백면서생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청년서생은 그들의 태도를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당당히 대꾸했다.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를 베려는 것은 결코 명예롭지 못하오.”

그늠 무우를 베듯 딱 잘라 말했다.

“그 정도에서 그만 그치시는 것이 좋겠소이다.”

“이런 찢어죽일 놈!”

백의인들은 몹시 분개한 듯 욕설을 퍼부어댔다.

“크크... 감히 본파가 하는 일을 방해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구나!”

“소원이라면 네놈의 목도 날려 주마!”

그들은 천래비룡을 베려던 장도를 청년서생에게 겨누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들은 멈칫할 뿐 선뜻 손을 쓰지 못했다.

청년서생.

그는 바로 이검엽이었다.

아! 그렇다!

이검엽은 이미 신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정인군자(正人君者)의 품위를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이검엽의 일신에서는 은연중 서생답지 않게 은근히 만인을 누루는 듯한 기도가 번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

쓰러져 있던 천래비룡은 걱정스럽게 그를 만류했다.

“귀공! 귀공같은 문사가 참견할 일이 아니니 어서 물러서시오.”

“...!”

이검엽은 대답대신 묵묵시 묵령신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백의인들은 마치 감전되듯 흠칫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그들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실소했다.

“크크... 그래도 한 가닥 하는 놈인줄 알았더니...!”

묵령신검.

기실 외양으로야 그것은 한낱 고철덩어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백의인들은 상대를 얕보는 마음이 생기자 살기를 띄우며 덮쳤다.

“뒈져랏-------!”

쐐------- 액!

두 자루의 장도가 금세 이검엽을 양단할 듯 날아왔다.

(헛!)

이검엽은 흠칫하며 물러났다.

아무래도 첫 실전이라 긴장한 것이다.

그것을 본 백의인들은 더욱 기세가 등등했다.

“크크... 죽어랏!”

사삭-------!

다시 장도가 이검엽을 그어갔다.

하나 다음 순간,

파파팟----!

장도는 마치 철벽을 두드린 듯 모두 튕겨지고 말았다.

“엇! 이런...!”

“이런 변이 있나?”

백의인들은 안색이 대변한 채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때였다.

위------- 잉!

웅후한 음향과 함께 수많은 묵령신검의 검영이 난무했다.

“그것... 용조파뢰!”

천래비룡이 질겁을 하여 외쳤다.

다소 어색하고 서툰 검세.

하나 그것은 분명 자신이 사용한 용조파뢰식(式)이었던 것이었다.

캉-------!

“크아악!”

과연 용조파뢰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인의 백의인 중 한 명의 단말마가 뒤를 이었다.

“끄르륵------!”

아, 보라!

백의인의 쩍 갈라진 가슴은 시뻘건 선혈을 뭉클뭉클 쏟아내고 있었다.

그의 장도는 박살이 난지 오래였다.

“...!”

천래비룡은 놀라움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검엽은 씁쓸히 중얼거렸다.

(죽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난생 처음의 살인에 이검엽은 다소 당혹해진 것이었다.

한데 그 순간,

“죽일 놈! 가랏-----!”

쐐------- 액!

마지막 남은 백의인의 장도가 날아들었다.

“헉!”

이검엽은 총망중 다급성과 함께 발을 움직였다.

스슥!

간발의 차이로 그는 무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본파의 잔마보(殘魔步)!”

천래비룡이 다시 경악성을 터뜨린 순간이었다.

위------- 잉!

묵령신검의 검신에서 한 무더기 검기가 작렬했다.

천래비룡은 아예 대경실색이었다.

“신... 신룡비운까지...!”

그렇다!

그것은 바로 거의 정확한 진마보요, 신룡비운이었다.

“크아악!”

백의인은 처참한 비명을 토해냈다.

그의 오른팔은 장도를 쥔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는 시뻘건 피가 콸콸 솟는 어깨를 움켜쥐며 부드득 이를 갈았다.

“크으... 두고 보자!”

휘------- 익!

백의인은 오던 방향으로 몸을 날려 도망을 쳤다.

“으음...!”

이검엽은 낮게 신음했다.

도망치는 백의인을 보면서도 그는 따라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보다 그는 착잡한 심정이 되어 죽은 자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무의식 중이라지만 사람을 죽이다니...)

그는 새삼 자신이 한일에 대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한데 문득,

그는 주위가 너무 조용함을 느꼈다.

“...?”

기이한 생각에 그의 시선은 천래비룡쪽을 돌아다 보았다.

천래비룡.

그는 벌써 가부좌를 튼채 운공요상을 하고 있었다.

(저것은 무엇하는 자세일까?)

이검엽은 그러한 모습을 처음 본지라 유심히 살폈다.

스스스...!

드디어 천래비룡의 몸에서는 희뿌연 기류가 솟아올랐다.

이어 그 기류는 점차 그의 전신을 휩쌌다.

(기이하군.)

이검엽은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긍정적으로 나섰다.

(무엇인가 큰 이유가 있어 저런 일을 하는 모양인데 방해자가 나타날지 모르니 지켜주어야겠군.)

이검엽은 묵령신검을 거두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범인(凡人)보다 백 배는 뛰어난 그의 시력(視力)과 청력(聽力).

그는 백 장 내에서 기어가는 개미를 보며 벌레가 풀잎 건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 누구보다 완벽한 호법(護法)을 설 수 있었던 것이었다.

잠시 후,

“귀공!”

그는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천래비룡이었다.

신과이 번뜩이는 얼굴.

천래비룡의 모습은 조금 전과는 달리 굳건한 기백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귀공 덕분에 이제 견딜만하게 되었소이다.”

그는 이검엽을 향해 진심으로 감사했다.

“완전치는 못하나 그래도 몸을 움직일만은 하니 모두 귀공 덕분이오이다.”

그 말에 이검엽은 미소로 답했다.

“별 말씀을... 그보가 웬만큼 회복되셨다니 천만다행이구려.”

이어 그는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소생 이검엽이라 합니다. 일개 백면서생이오이다.”

천래비룡은 마주 웃었다.

“아! 이공이셨구료. 소제는 곤륜 문하(門下)의 막운비(莫雲飛)라는 사람이오이다.”

이어 그는 정식으로 깊이 읍했다.

“위급한 지경에 도와 주셔서 무어라 감사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오이다. 그저 약간의 힘이 있어 쓸데 썼을 뿐 대단치 않은 일이오.”

이검엽의 말에 천래비룡은 두눈을 빛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온데... 소제는 놀랐습니다. 이공께서는 어디서 폐문의 무공들을 연마 하시었소? 특히 운룡등천소법은...”

이검엽은 멋쩍게 웃었다.

“다른 곳에서 배운 게 아니오. 그저 아까 막형께서 펼치신 것을 보고 흉내만 좀 내봤소이다.”

“예엣? 흉내라고요?”

천래비룡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운룡등천소법을 흉내를 내다니-------

그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기 힘든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었다.

 

운룡등천소법(雲龍騰天嘯法),

이것은 본래 오식(五式)으로 되어 있었다.

한데, 백년(百年) 전,

곤륜쌍선(崑崙雙仙)이 실종되면서 후이식(後二式)이 실전되었다.

하지만

그 나머지 삼식(三式)만으로도 천하제일소법이라 불리웠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유는 간단했다.

복잡함과 절묘함으로써 가히 완벽을 구가하는 소법인 때문이었다.

 

막운비는 다소 황망히 물었다.

“이... 이공께서는 그럼 신안공(神眼功)이라도 익히신 것이오?”

“아니외다. 소생은 무공에는 문외한이오.”

막운비는 더욱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엄청난 내공을 지니셨소?”

그의 손가락이 한 백의인의 시신을 가리켰다.

“아까 이 자를 베실 때 보여주신 내력(內力)은 적어도 일갑자 이상의 수련이 있어야만 가능하거늘...”

“소생은 내공이 무엇인지 내력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오이다.”

이검엽은 나직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단지 기연으로 신력(神力)을 얻을 수 있었소.”

“신... 신력이라 하시면...?”

막운비는 다소 더듬거리며 물었다.

“소제는 쉽게 이해하기가 힘드오이다.”

그 말에 이검엽은 미소하며 죽은 자의 부러진 장도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보검은 아니었다.

하나 백 번을 단련하여 만든 이른바 백련정강(百鍊精鋼)이었다.

“보십시오.

이검엽은 그것을 움켜 쥐었다.“

그 순간,

우지직!

백련정강으로 된 도신은 박살이나고야 말았다.

막운비는 대경했다.

“이... 이럴 수가!”

이어 그는 다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도(刀)에 베이신 것 같았는데...”

막운비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배여 나간 옷자락으로 언뜻 보인 속살,

그 곳에는 손톱만한 상처도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의 놀라움은 거의 극에 이르고 있었다.

(기... 기인이다!)

그의 시선은 뚫어져라 이검엽을 주시했다.

겉보기에는 유약하기 그지없는 서생,

그러나 그에게 이렇듯 엄청난 내력이 존재할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문득,

그는 이검엽의 전신에서 발산되는 기(氣)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실로 태산고도 같은 기개였다.

그는 내심 외치듯 부르짖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향후 백 년내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될 기인을 만나고 있는지고 모른다.)

천래비룡 막운비.

그는 비로소 산위에 있음을 실감했다.

교만한 것은 아니나,

자신의 무공에 대해 매우 자신해 오던 터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앞에 있는 이 신비한 인물을 통해 그는 보다 넓은 천하를 느낀 기분이 되었다.

(정말... 너무도 그릇이 큰 인물이다.)

일순 그의 눈에는 호감이 어렸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침착을 찾은 듯 낮게 말했다.

“이 곳은 안전치가 못합니다. 언제 적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우선 이곳을 떠나십시다.”

“그렇게 합시다.”

이검엽은 선뜻 수긍했다.

사실 그로서도 상대방이 한눈에 마음에 들었던 것이었다.

그는 천래비룡 막운비의 말에 따라 그 곳을 떠나려 흑풍을 불렀다.

“흑풍! 오너라.”

히힝!

흑풍은 이검엽의 부름에 나는 듯 달려왔다.

“신마(神馬)인 것 같소이다.”

막운비는 흑풍을 보자 감탄한 듯 말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소이다.”

이검엽은 가볍게 웃어보이며 그에게 권유했다.

“자! 함께 타십시오.”

천래비룡은 고개를 저었다.

“하하! 아니외다. 소제의 경공은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합니다. 제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휘------- 익!

막운비는 재빨리 앞서 몸을 날렸다.

“흑풍, 가자!

이검엽은 얼른 말을 몰아 그의 뒤를 따랐다.“

 

두두두두...

이인(二人)과 일기(一騎)는 질풍처럼 산중을 내달았다.

이검엽은 전면에서 달리고 있는 막운비를 응시했다.

천래비룡 막운비,

그는 의호답게 멋지고 쾌속하게 신형을 놀리고 있었다.

끔찍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신룡이 비상하듯 날고 있었다.

이검엽은 큰소리로 외쳤다.

“대단하오. 막형!”

천래비룡 막운비는 대답 대신 뒤돌아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한데 문득,

이검엽의 시선이 이채를 띄었다.

그는 막운비가 계속 여덟 가지 동작을 반복하며 날아가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치솟고, 허공을 가르고-------

회전하는가 하면 투이겨지는,

(대단한 몸놀림이다. 비록 여덟 가지지만 그 안에는 무려 칠백 이십(七百二十) 가지의 변화가 있다.)

이검엽은 내심 감탄하는 한편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으음! 그 중의 현기(玄氣)가 너무 깊어 일시에 모두 알 수 없음이 아쉽구나.)

이검엽,

그의 시력은 과연 놀라왔다.

천래비룡 막운비가 펼치는 경공,

그것은 운룡대팔식이었다.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이는 공히 곤륜의 최고비학(最高秘學)이다.

본시 운룡대팔식은 곤륜의 개파조사(開派祖師)인 운룡상인(雲龍上人)이 창안한 것이었다.

고금일절(古今一絶),

이는 절기 중 절기라 할 수 있는 경공술이었다.

하나 천여 년을 거치며 실전되었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그것은 다시 재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곤륜쌍선,

바로 이 두 사람에 의해 운룡대팔식의 맥(脈)은 다시 이어진 것이었다.

 

천래비룡 막운비,

그는 사실 운룡대팔식을 의도적으로 펼치는 중이었다.

모든 자세를 반복하여 펼쳐내고 있는 그는 내심 만족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지금은 비록 서샹에 불과하나 틀림없이 거인(巨人)이 될 인물... 그에게서 운룡대팔식이 빛을 발한다면 조사께서도 탓하지는 않으시리라...)

전면을 향한 그의 얼굴에는 얼핏 미소가 번졌다.

이윽고,

스스슥...!

두두두두...

그들은 극히 험준한 절봉(絶峯)에 이르렀다.

흑풍은 이검엽을 실은 채 나는 듯 절봉을 뛰어 올랐다.

이번에는 막운비가 뒤로 처지며 대소했다.

“하하... 과연 신마(神馬)로군! 이 험한 산봉을 날 듯이 올라가는구나!”

드디어 흑풍은 하늘을 찌를 듯한 절봉의 봉두(峯頭)에 섰다.

고천봉(孤天峯).

그곳에 우뚝 선 흑풍은 마치 구름에 몸을 묻은 것 같았다.

그러나 흑풍은 숨이 약간 거칠어졌을 뿐 조금도 힘들어 하지 않았다.

“대단한 친구로군 그래.”

막운비는 뒤따라 올라와 흑풍의 등을 두드렸다.

이어 그는 마상의 이검엽에게 말했다.

“이 정도 왔으면 그 자들도 쉽게 찾지는 못할 것이외다.”

“그럴 것 같소이다.”

이검엽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이검엽과 막운비는 널찍한 반석 위에 마주 앉았다.

“막형께선 어쩌다 이토록 심한 상처를 입으셨소?”

이검엽이 물었다.

그는 마치 오랜 지기(知己)를 대하듯 걱정스러운 어투였다.

막운비는 그의 그러한 감정을 느낀 듯 두눈에 따스함이 어렸다.

“괜히 걱정을 끼쳐 드린 것 같소이다. 외상보다 내상이 문제지만...”

막운비는 씁쓸히 웃었다.

“한 열흘 면벽요상하면 완치야 되겠으나...”

돌연,

그는 어조를 바꾸어 심각하게 물었다.

“이공께선 무림에 대해 아시오?”

이검엽은 갑작스런 질문에 어리둥절한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런 세계가 있다고는 들었으나 그에 관해선 전혀 모르오이다.”

“이공이야 모르시겠지요.”

막운비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공께서도 어쩔 수 없이 무림에 관계하시게 될지도 모르겠소이다.”

이검엽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시오?”

막운비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외다. 이공께 드릴 말씀이 아니었는데 소제가 그만 실수한 것 같소이다.”

“...?”

이검엽은 의아했으나 입을 다물었다.

“...!”

“...!”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럿다.

이윽고,

이검엽이 무거운 분위그르 깨듯 먼저 입을 열었다.

“무림이란 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하구려...!”

막운비는 일순 멈칫했다.

하나 그는 마음을 정한 듯 두눈을 빛냈다.

“학문과는 다른 길... 무공일도(武功一道)의 천하, 그것이 바로 무림이오.”

이검엽은 반문했다.

“무공일도...! 그렇다면 무(武)만을 숭상하는 세상이겠구료.”

“그렇소이다.”

막운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림의 역사(歷史)를 설명했다.

본시 무림은 두 가지 맥(脈)이 있었다.

첫째-------

그것은 천여 년 전 천축의 파사국(婆巳國)의 왕자(王子)의 달마선사(達磨禪師)에게서 비롯되었다.

달마선사.

그는 천축에 근원을 두고 있으나 그곳의 무공을 중원(中原)으로 이식(移植)시켰던 것이었다.

두번째-------

그것은 중원 본토(本土)에서 자생(自生)하여 사천여 년 동안을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던 도가(道家)의 일맥(一脈)이었다.

이 두 가지 맥은 정(正)을 지향하여 이른바 정파(正派)라 지칭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여 발족된 것이 바로 사파(邪派)였다.

사파는 정(正)에 대응키 위해 급속히 대공(大功)을 이루려했다.

그 결과로 사파는 사악한 술수로써 무공을 연마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곧 사파인들의 심성을 사악(邪惡)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말을 하던 막운비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데... 당대에 들어 갑자기 사(邪)가 융성하여 무림을 어지럽히고 있소이다.”

이어 그는 다시 덧붙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금 무림.

무림은 지금 사파의 농간에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경에 놓여 있었다.

돌연 나타난 거대한 사의 집단들.

 

백살파(白煞巴).

지옥림(地獄林).

환공강(幻空岡).

요지(遙池).

 

이들 집단은 각기 무림제패를 부르짖으며 동서남북(東西南北)에서 엄청난 혈풍(血風)을 몰아오고 있었다.

 

동(東)의 환공강.

서(西)의 요지.

남(南)의 지옥림.

북(北)의 백살파.

 

그들이 지나는 길은 그야말로 혈로(血路)였다.

최근 들어 그들은 단 일년(一年) 사이에 무려 사백여 개의 군소문파를 괴멸시키거나 사파에 병합시키고 있었다.

이들의 세력은 실로 엄청났다.

그로 인해 무림은 이들을 혈세사패(血洗四覇)라 부르고 있었다.

 

이검엽은 눈쌀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정파라는 인물들은 수수방관이라도 한단 말씀이시오?”

“그럴 리야 있겠소이까?”

막운비는 얼른 부인했다.

“우리 구파일방(九派一幇)이 보다 못해 십파연맹(十派聯盟)을 맺고 대항하려 했소이다. 한데...”

그는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 쥐었다.

“어떻게 비밀이 새어 나갔는지 십파연맹의 최초 회합 장소를 백살파와 지옥림의 정예고수들이 급습했습니다.”

비분강개!

막운비의 두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십파의 고수 일천(一千)은 허무하게 전멸을 당했소.”

이검엽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럴 수가... 사전에 비밀이 새어나갔다함은 십파 내에 간세가 있었겠구료.”

“분하지만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소이다.”

막운비는 격분하는 한편 우울하게 덧붙였다.

“소제는 간신히 사지(死地)를 탈출했으나 십파의 수뇌인 일백(一百)분들의 생사를 알 길조차 없으니...”

그는 탄식하듯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이제는... 오래 전에 은거하신 일종사성(一宗四聖)께서 재출도하시어 이 난국을 타개해 주시기를 빌밖에 별도리가 없소이다.”

이검엽은 내심 그의 염려에 공감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일종(一宗)과 사성(四聖)이라 하심은...?”

그 말에 막운바는 다소 활기를 되찾은 듯 대꾸했다.

“일종(一宗)은 백 년내 절대무적이시던 한분 무종(武宗)을 말하외다. 그분은 검황종(劍皇宗)이라 불리시던 분으로 고금무적(古今無敵)으로까지 여겨지던...!”

그는 갑자기 안색이 홱 변하며 말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오, 막형?”

“백살파의 마도들이오.”

막운비는 벌떡 일어나며 산 아래쪽을 가리켰다.

십여 리 밖.

여러 개의 백영(白影)이 유유히 산봉을 오르고 있었다.

“저자들... 경공으로 보아 소제로서도 감당키 어려운 고수들일 것이외다.”

막운비는 이검엽의 손을 굳게 쥐었다.

“이곳에서 일다경만 계시다가 소제가 가는 반대쪽으로 가십시오.”

이검엽은 섬칫하며 부르짖었다.

“막형? 혹시... 막형께서는...!”

막운비는 싱긋 웃으며 그의 말을 막았다.

“걱정마십시오. 소제를 따라잡을 자, 천하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의 두눈에는 강한 신념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공을 만나 뵙게되어 정말 기뻤소이다.”

그는 손에 힘을 주어 이검엽의 손을 한번 꽉 쥐고는 이내 몸을 날렸다.

휘------- 잉!

그의 신형은 바람처럼 허공을 날았다.

“우------- 우------!”

웅후한 장소성.

그것을 남긴 채 막운비는 동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러자,

백영, 즉 백의인들은 즉시 장소성을 따라 동쪽으로 향했다.

이를 본 이검엽은 낮게 중얼거렸다.

“음. 내가 위험에 빠질까보아 적을 유인한 게로군.”

그는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막운비를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진심으로 사귀어볼만한 친구다.”

그는 허공을 응시하며 다시금 막운비의 준수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곧,

그는 몸을 돌렸다.

“막형의 고심을 헛되게 할 수는 없다. 괜히 섣부르게 나서기보다는 차라리 자리를 피해 주어야겠다.”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그는 선뜻 흑풍에 올라탔다.

“흑풍! 우리도 이곳을 어서 떠나자!”

히힝...!

두두두...!

흑풍은 질풍같이 절봉을 달려 내려갔다.

 

헌데 절봉의 중간지점쯤 되었을까?

깎아지른 단애를 달릴 때였다.

슈------- 욱!

돌연 뼈끝까지 스미는 한기가 쇄도했다.

“헛!”

이검엽은 흠칫했다.

그 순간,

그는 벌써 흑풍의 등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파------- 앗!

한 자루의 얇은 유엽비도가 그의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실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간발의 차,

그것으로서 그는 위기를 모면한 것이었다.

히힝...

놀라 울부짖는 흑풍의 등으로 이검엽은 사뿐히 내려섰다.

휘르르...

그리고 도중 그는 내심 몹시 놀랐다.

(내가 이렇게 할 수가 있다니...!)

그렇다!

그는 무의식중 막운비가 펼쳣던 운룡대팔식을 그대로 시전한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훌륭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로 인해 마수(魔手)에 걸려들줄이야...

“흐흐흐...운룡대팔식을 쓰는 것을 보니 곤륜의 잔당인 모양이로구나.”

스스스슥...!

음산한 괴소를 흘리며 유령같이 다가드는 괴인영!

아!

그것은 다름아닌 백의인들의 무리 중 일인(一人)이었다.

“...!”

이검엽은 그를 보자 흠칫했다.

백의인.

그가 풍기는 위압감에 절로 긴장이 앞섰다.

(이 자... 아까 상대했던 자들보다 몇 배는 강한 자일 것이다.)

문득 이검엽의 시선이 백의인의 소맷부리를 보았다.

그 부분에는 보기에도 섬칫한 한 자루의 핏(血)빛 장도가 수놓아져 있었다.

(저것은 아마도 이 자의 신분이나 무공 정도의 표식인가 보군. 아쨋든...)

이검엽은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켰다.

(우선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이윽고.

그는 짐짓 태연히 입을 열었다.

“귀하는 무슨 연유로 소생을 암습하는 것이오?”

백의인은 무시무시한 살과을 뿜어내며 대꾸했다.

“흐흐흐... 구파일방의 잔당은 한 놈도 살아서 천중산(天中山)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시치미를 때봐야 네놈은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이검엽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귀하는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소. 소생은 구파일방파는 아무런 관계도 없소이다.”

“흐흐... 곧 죽을 놈이 말이 많군!”

백의인은 귀찮다는 얼굴로 선뜻 차고있던 기형장도를 뽑았다.

그 순간,

쐐------ 액!

언제 그었는지 엄청난 도기(刀氣)가 이검엽을 엄습했다.

“헉!”

이검엽은 얼굴로 쏟아 부어지는 엄청난 기운에 대경실색했다.

“웃!”

그는 일순 전력을 다해 뒤로 후퇴했다.

하나 그는 휘청하며 가슴을 감싸 안았다.

“크으...”

그는 나직이 신음하며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길게 찢어진 옷자락.

그리고 속살을 벤 흐릿한 혈흔.

(대단한 쾌도(快刀)였다. 게다가 족히 천 근(千斤)의 무게가 실려 있다.)

이검엽은 내심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쉽게 그어댄 단 일도(一刀)!

만일 그가 천지곤룡의 피로 목욕을 하여 도검불침이 못되었던들 지금쯤 아마 가슴이 쫙 갈라졌을 것이다.

피부만 약간 갈라졌을 뿐 그는 별반 부상을 입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 이런...!”

백의인이 황망히 부르짖었다.

그는 사실 정확하게 이검엽을 베었다.

하지만

이검엽은 멀쩡하지 않은가?

(실... 실수였겠지.)

백의인은 스스로 위로하듯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재차 살기를 띄우며 장도를 움켜 쥐었다.

이검엽은 내심 머리를 굴렸다.

(대단한 쾌도... 내 실력으로 대하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지금은 도(刀)을 치켜든 상태이니 아까보다 배는 빠른 도세가 펼쳐질 것이다.)

스르릉-------

그는 묵검을 뽑아 들었다.

(저 자의 쾌도를 깨는 길은 정면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나의 피부는 다행히 이지간해선 찢기지 않으니...)

이때,

백의인이 그를 보며 싸늘하게 냉소했다.

“크크... 그것도 검(劍)이라는 것이냐? 그것으로 날 상대하겠다고?”

백의인의 얼굴에는 잔뜩 조소가 어렸다.

그러나 다음 순가,

이검엽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음...”

백의인은 낮게 신음했다.

그는 그 순간 이검엽의 범상치 않은 기도를 동감한 것이었다.

이윽고,

양인은 각기 도(刀)와 검(劍)을 든채 서로 대치상태가 되었다.

휘------- 익!

스산한 산풍이 양인의 옷자락을 스쳤다.

양인의 긴장감은 더욱더 팽배해 갔다.

 

<제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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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七 章

 

             憤怒한 天下第一人

 

 

 

황혼녁!

청삼객은 전연옥을 데리고 다시 현현궁의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흔아홉명의 용봉들은 모두 서열대로 정열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전연옥을 보았으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청삼객은 제일 앞에 선 용일과 봉일을 보면서 물었다.

[결정했느냐?]

순간,

[사부!]

구십구명의 용봉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저희들은 사부를 영원히 따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사부 만을 알뿐 남궁파라는 인물은 알지 못합니다.]

청삼객은 형형한 눈초리로 그들 전부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와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있느냐?]

[기꺼이 사부를 위해 죽겠습니다!]

용봉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청삼객은 그들의 사이를 걸으면서 말했다.

[좋다. 그 뜻에 변함이 없다면 본좌는 그대들에게 알릴 것이 있다.]

[…………?]

[…………?]

[모두들 고개를 들고 나를 봐라!]

용봉들은 청삼객이 너무 젊었음에 놀랐다.

용봉들 중에서 서열이 빠른 자들보다 오히려 어려보였다.

[본좌는 그대들의 사부가 아니다. 이 모습을 알고도 나를 따르겠다면 그대들은 나를 궁주라고 불러라!]

잠시 얼빠진 모습으로 있던 용봉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궁주(宮主)!

 

황혼을 받고 서있는 황군우의 모습은 천하를 압도할 듯한 기상을 보이고 있었다.

현현궁은 완전히 그 성질이 변질되고 있었다.

남궁파가 황군우를 제물로 선택한 것이 실수였다.

 

× × ×

 

황군성은 산중에서 납치범의 종적을 잃어버렸다.

그는 마치 철판위의 개미처럼 허둥댔다.

임단심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분명히 납치범이 그곳으로 가는 것을 보고 뒤쫓았는데 갑자기 종적이 묘연해진 것이다.

그는 그 주위로 불맞은 짐승처럼 뛰어다니며 부르짖었다.

[임매! 임매!]

임매‥‥‥임매‥‥‥

메아리가 다시 그에게 임매를 부르며 되돌아왔다.

그의 목소리는 울음이 섞여있었다.

임단심이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는 새삼 깨닫고 있었다.

바로 그때,

휘이이------!

그는 누군가 자신의 등뒤로 날아 내리는 것을 느끼며 검을 잡고 빠르게 몸을 돌렸다.

[황오라버니!]

임보산의 옆구리에 들려있던 진우란이 소리쳤다.

황군성은 앞이 캄캄했다.

(임매가 정체모를 고수에게 납치된데 이어 진매 마저 무제(武帝)에게 납치당하다니‥‥‥)

상대가 임보산이라면 그의 무공으로는 진우란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조부님들을 모시고 나오는 수밖에 없겠구나‥‥‥)

임보산이 그의 눈앞으로 다가들며 물었다.

[그애는? 그애는 어디있느냐?]

황군성은 그가 임단심마저 찾는 듯하자 분노하여 소리쳤다.

[노선배는 수치심도 없소? 노선배의 신분으로 어떻게 어린 소저를 납‥‥‥]

순간,

짝!

황군성은 눈에서 불이튀는 것을 느끼며 뒤로 두걸음이나 물러섰다.

임보산이 꽥 소리쳤다.

[내딸 단심이는 어디 있느냐 말이다!]

귀가 멍멍해지고 한참동안 메아리가 온산에 퍼져나갔다.

황군성은 말을 더듬었다.

[따 딸이라고‥‥‥?]

[그래 이놈아! 빨리 말해라. 빨리!]

임보산은 딸이 위험에 쳐해있다는 것을 알고 그답지 않게 흥분하고 있었다.

황군성은 그에게 목이 잡힌 채 가까스로 말했다.

[큭‥‥‥이 근처에서 그자를 놓쳤습니‥‥‥다.큭‥‥‥]

임보산이 황군성을 팽개쳤다.

[바보같은 놈! 제 여편네 하나 지키지 못해!]

그는 씩씩거리면서 주변을 번개처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황군성은 임보산이 임단심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놀라있었다.

임보산은 진우란이 자신의 옆구리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는지 내려놓을 생각도 않고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순간 우뚝 멈추어서며 소리쳤다.

[찾았다!]

황군성은 빛살처럼 그의 곁으로 날아갔다.

임보산은 그가 다가가기도 전에 바위를 돌아서 날아가고 있었다.

황군성은 뒤따라가면서 전음으로 물었다.

[어르신, 임매는 어디에‥‥‥]

[밥통같은 놈! 네놈은 독도 모르느냐?]

임보산의 화난 음성이 그의 귀청을 뜨르르 울렸다.

황군성은 정신이 번쩍드는 것같았다.

독(毒)!

임단심은 독봉이 아니던가?

귀신같은 솜씨로 독을 쓰는 그녀가 납치되었다고 순순히 있었을리가 없다.

과연,

황군성도 은은한 사향냄새와 함께 부골독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임보산이 달려가는 곳은 여간 해서는 찾기어려운 좁은 골짜기였다.

그와 황군성은 비조처럼 골짜기로 날아들어갔다.

한데,

골짜기 안,

한채의 거대한 붉은 장원이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괴기스런 운무가 장원을 감돌고 있는데,

밖에서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임보산은 무엇이 나타나리라고 예상했었는지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장원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곳이건만 그는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다.

천하제일인인 그가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가?

황군성과 그는 장원의 가운데 있는 큰 전각 위로 내려섰다.

임보산은 벽력같이 소리쳤다.

[모두 나와라!]

웅웅웅------!

쿠르르릉!

몇 채의 전각이 그의 사자후에 무너져 내렸다.

전각 밖에서 움직이던 흑의인들이 피를 토하며 그자리에 고꾸라졌다.

임보산은 진우란의 몸을 내던지듯 내려놓으며 한채의 전각을 향해 날아갔다.

슈앙!

그곳으로 임단심이 뿌렸을 독냄새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우란과 황군성은 천신같은 무위를 보이고 있는 그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그들이 전각앞으로 다가갔을 때,

콰쾅------!

천각은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터져버렸다.

전각이 날아가고 난 곳에는 밑으로 뻥 뚤린 구멍이 있었다.

아마도 임보산이 장력으로 뚫은 듯했다.

콰앙!

또한번의 굉음과 함께 땅이 울렸다.

황군성과 진우란은 지하로 뚤린 구멍으로 날아들어갔다.

순간!

[이놈!]

임보산의 분노에찬 일갈이 터져 나오고,

떨어져 내려가는 황군성과 진우란의 밑에서 붉은 그림자가 무서운 속도록 솟구쳐 올라왔다.

[번천도!]

황군성은 검을 뽑을 틈도 없어 손안에 있는 번천도를 전개해 붉은 그림자를 베었다.

[크악!]

섬칫한 비명과 함께 번천도에 강한 반탄력이 전해졌다.

붉은 그림자는 어느새 그들을 지나 까마득히 사라져버렸다.

번천도에 상처만 입고 달아난 것이었다.

황군성과 진우란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바닥에 내려섰다.

풍지박산이 난 지하의 석실들 저쪽에 임보산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버지! 엉엉‥‥‥]

임단심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임보산은 딸을 껴안고 머리를 쓸어주며 위로하고 있었다.

[이제 괜찮다. 괜찮다. 애야‥‥‥그놈이 오늘은 도망갔지만 이 아비가 끝까지 쫓아가서 그놈을 죽여버리마. 얼마나 놀랐느냐?]

그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임단심을 달랬다.

황군성이 다가가자 임단심은 와락 그에게 안기며 울었다.

[엉엉엉‥‥‥]

그녀의 옷은 길게 찢어져 있었다.

그자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임보산이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더라면 그녀는 변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황군성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우란이 자신의 보따리에서 흰옷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걸쳐주었다.

황군성은 임단심을 꼭 껴안아 진정시켜준 후에 임보산에게 무릎을 꿇고 절했다.

[제가 아버님을 몰라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문성무존의 후손 황군성이 빙부(聘父)를 뵙습니다.]

임보산이 눈알을 부라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황군성은 일어서면서 읍하며 말했다.

[임매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놈아! 단심이는 내 딸이야! 네놈처럼 멍청한 놈에게 딸을 줘야 한다는 사실이 분할 뿐이다.]

임보산이 버럭 소리쳤다.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딸을 훔치더니 이제 하마터면 도둑맞을 뻔 까지 해? 한번 만 더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아니 비슷한 일 만 벌어져도 먼저 네놈의 돌대가리를 부셔놓고 말겠다!]

그는 생각할 수록 임단심이 화를 당할 뻔 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황군성은 머리를 조아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휴‥‥‥]

임보산은 긴장이 풀어지는 듯,

하마터면 딸이 정절을 잃을 번한 침상에 걸터앉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진우란은 임보산을 보고 그녀의 아버지 생각이 간절했다.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 나를 저렇게 사랑해 주실텐데‥‥‥)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악한 일도 서슴지 않았던 그녀의 아버지 사신 진섭천이었지만 그녀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아버지였던 것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열두살 어린 나이에 사신각을 맡았던 그녀였으니 부모에 대한 정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놈이 도대체 어떤 놈인지 모르겠군.]

임보산이 중얼거렸다.

[그만한 무공이면 결코 이름없는 자가 아닌데‥‥‥어째서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일까?]

황군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사신은 아닐까요? 그자는 비무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진우란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고,

임보산은 어이없다는 듯이 황군성과 진우란을 번갈아 보았다.

[도무지 자넨 멍청이야! 진섭천은 죽었고 그 딸은 자네 옆에 있는데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오나?]

그를 제외한 세 사람의 안색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진우란의 몸은 학질에 걸린듯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사신이 황군성의 네 사부중 세째인 단극린의 원수라는 것을 이미 학선평에서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황군성의 말소리가 떨려 나왔다.

[진 진매‥‥‥당신의 아버지가 바로 사신‥‥‥이었소?]

진우란은 입을 열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임단심이 그녀를 재빨리 부축했다.

[아! 이럴 수가‥‥‥]

황군성이 절망하며 벽을 짚었다.

임보산이 말했다.

[그애가 사신의 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갑자기 무슨 호들갑이냐?]

[아버지‥‥‥사신은 이사람 사문의 원수예요. 이일을 어쩌면 좋죠?]

임단심이 그녀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임보산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닳은 것이다.

임보산은 원래가 잘못을 시인하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데,

이렇게 드러난 실수를 하여 분란을 일으킨 꼴이 되었으니 딸을 위해서도 만회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온갖 음탕한 춘화(春畵)가 그려져 있고 기괴한 도해(圖解)가 벽에 붙어있는 석실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한참 생각한 임보산이 입을 열었다.

[자네 사부는 전륜법왕이 아니었던가?]

[전륜법왕 사부는 후에 모시게 되었고, 원래 사부는 한천사방객이라는 분들이었습니다.]

황군성이 허탈한 심정으로 말했다.

[음‥‥‥사신이 한천사방객과 원한을 맺은 게로군. 그도 남보다 특별히 많은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는데‥‥‥수단이 좀 독랄하기는 했지만 그저 보통 무림인들이 저지르는 정도였을 뿐이었는데 그참‥‥‥]

임보산은 사신에 대해서 변호하는 듯이 말했다.

[아무튼 자네가 직접 진섭천과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보산은 일어서면서 그의 어깨를 툭툭쳤다.

[그럼 이 일은 전적으로 내게 맡겨라. 내가 직접 한천사방객을 만나서 잘 설득해보마.]

황군성은 회의적은 표정이었다.

단극린의 사신에 대한 한은 하늘까지 닿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임보산이 직접 나서겠다는 데 어떤 이의를 달 수는 없었다.

임보산이 말했다.

[그동안 저 아이를 전과 같이 대해주도록해라. 틀림없이 원한은 풀릴 것이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황군성은 속으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것은 희망으로만 끝나기 쉬울 것같았다.

하지만,

임보산은 나름대로 복안이 있었다.

한천사방객을 만나서 한껏 설득해본 후에 정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모조리 죽여버리거나 할 작정이었다.

그후에 그가 단극린이 사신을 용서했다고 거짓말을 하면 황군성으로서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임보산은 사람의 목숨따위는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기인이니 한천사방객처럼 한때 세상을 시끄럽게 한 자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조금도 양심이 거리낄게 없었다.

 

임보산은 눈을 돌려 석벽에 그려진 춘화들을 보았다.

남녀가 전라의 몸으로 뒤엉켜있는 있는 그림들을 살피더니 말했다.

[그놈은 월음천마공(月陰天魔功)이란 금단의 마공을 익히는 중이었군. 어쩐지 꽤 쓸만한 무공이다 했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어. 마기가 아주 강렬했어.]

월음천마공‥‥‥

과거 귀왕보의 보주 철사륵이 위지장천에게 익히기를 강요하던 그 마공이 아닌가?

한데,

뜻밖의 장소에서 그것을 거의 익힌 인물이 있을 줄이야‥‥‥

[나가자!]

임보산은 황군성등을 밖으로 내보내고 석실의 춘화들을 삼매진화로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들이 밖으로 나오니 전각의 뒤쪽에 큰 가마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여덟명의 건장한 흑의인들이 피를 토하고 죽어있었다.

이들은 모두 임보산이 처음에 지른 사자후에 죽은 것이다.

잠시후,

괴상한 장원은 완전히 초토화 되어버렸다.

무제 임보산의 손길에 의해‥‥‥

 

× × ×

 

보화산(寶華山) 중턱에 있는 고불암(苦佛庵),

이 크지 않은 암자에는 염화미소를 띤 석가여래가 아닌 고뇌하는 백팔개의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암자의 아래쪽에 있는 객사(客舍)에는 방금 도착한 손님들이 있다.

임보산과 황군성, 그리고 임단심과 진우란이었다.

그 객사들 중의 한 방,

[진매! 아버지께서 나서서 중재해주신다고 약속했으니까 아무 걱정할 것없어. 안심해. 무엇보다도 황오라버니가 너를 사랑하잖아.]

임단심은 진우란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방에서는 임보산과 황군성이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임보산은 딸의 천형인 구절반천평맥(九絶反天平脈)을 치료하기 위해 황군성을 찾아다녔었다.

이곳 보화산 고불암은 그가 바로 그의 아내인 금화선녀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이니,

임보산은 이곳에서 황군성의 손을 빌려 딸을 치료할 생각인 것이다.

구절반천평맥‥‥‥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거듭 말해보기로 한다.

이것은 전신의 경략이 정상적인 사람보다 아홉군데가 더 돌출되어 떠있는 맥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알 수 없고,

또한 진맥을 해서도 무공이 극히 고강한 사람이 아니고는 발견해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숨어있는 맥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데,

이 맥은 전신의 혈기가 아주 왕성해 지는 시기가 되면 가볍게 떠있던 혈맥이 뒤집어지면서 극심한 고통속에서 죽어가게 되는데,

사람의 혈기가 가장 왕성해 질때는 대체로 이십 일이세 정도일때이고 보면,

선천적으로 구절반천평맥을 타고난 임단심은 그야말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절세적인 무공을 가진 사람이 뒤집어질 혈맥을 내공으로 바로 받쳐주는 것 뿐‥‥‥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공력은 가히 하늘을 거스를 수 있다는 천년의 공력에 달해야 하는데,

천하에서 가장 무공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임보산,

그도 천년의 공력을 갖지는 못했다.

또한 치료를 하고 나서 나은 사람은 엄청난 공력을 소유하게 되겠지만,

시술을 베푼 사람은 현격히 내공이 줄어들고 말게 되니‥‥‥

누군가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지 않는 한 임단심의 구절반천평맥을 고칠 방법은 없는 것이다.

또한,

한사람의 공력이 천년에 달하지 못한다면,

시술하는 두 사람의 공력은 엇비슷해야 하는 것이니‥‥‥

그런 고수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보산의 말을 다듣고난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임매가 절학을 배우지 못했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결국 저로 말미암아 일이 더욱 어렵게 되었군요.]

[삼백 오십년에 달하는 단심이의 공력을 감안해서 생각해보면 일천사백 년에 달하는 공력이 있어야만 그아이를 치료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게 되지‥‥‥]

하고 임보산이 말했다.

한데,

일천사백 년의 공력이라니‥‥‥

진정 까무라칠 정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옆방에 있는 임단심은 자신이 그런 절맥에 걸려있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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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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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天來飛龍

 

 

 

밀지(密地),

산풍(山風)조차 스며들기 어려운 은밀한 절곡,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언제 세워졌는지 이곳에는 거대한 장원(莊園)이 있었다.

인적이 전혀 뜨이지 않은 채 덩그렇게 서 있는 한 채의 장원,

 

<홍엽장(紅葉莊)>

 

이름과는 달리 그 장원은 퍽이나 적막하고 괴괴(怪怪)해 보였다.

한데 문득,

스스스슥...

수십 줄기의 인영이 이곳에 조심스럽게 내려섰다.

그들의 선두에는 한 명의 노인이 날아내렸다.

신선(神仙)의 풍모를 지닌 노문사(老文士),

중후한 기개까지 겸비한 인물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탈속하기 보다는 오히려 세사(世事)에 달관(達觀)한 듯한 중압감마처 풍기는 인상이었다.

그는 당당한 걸음으로 무리를 이끌어 홍엽장의 정문으로 다가섰다.

끼------- 익!

그를 알아보는 듯 거대한 장원문이 열렸다.

그러자 그안에서 몇몇 장한들이 달려나와 노문사에게 길게 음했다.

그들은 보자 노문사는 짧게 물었다.

“모두 오셨는가?”

“예!”

장한들은 모두 공손히 대꾸했다.

이어,

그들의 인도에 따라 노문사를 비롯한 일행은 모두 장원의 뜰로 나갔다.

드넓은 마당,

이곳에서는 천여 명에 이르는 군협들이 가부좌를 튼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문사는 잠시 그들은 훑어본 후,

자신의 일행 중 중후해 뵈는 한 청의청년을 향해 명령했다.

“비(飛)아야, 문하들과 여기서 잠시 기다리거라.”

“예.”

청년은 짧게 대답하며 허리를 굽혔다.

그가 허리를 굽히자 거기에 매달려 있던 한 자루의 옥소(玉簫)가 그를 따라 움직였다.

이윽고,

노문사는 대청으로 향햤다.

그가 다가오자 대청문 앞에 시립해 있던 한 장한이 크게 외쳤다.

“곤륜(崑崙)의 종대선생(鍾大先生)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대청 안에는 이미 여러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도합 구인(九人)으로 그들은 각기 다른 부류의 인물들이었다.

승(僧), 도(道), 속 등에서 하물며 여인과 거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부류는 다양했다.

하나 이들의 모두 함께 지닌 특성-------

그것은 결코 범상치 않은 기도라는 점이었다.

한눈에 이들은 모두 초절정에 이르는 고수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 중,

잿빛 가사를 걸친 한 노승(老僧)이 일어나 노문사를 맞았다.

종장문인(鍾掌門人)께서 원로에 수고가 많으시오.

노문사는 머리를 가볍게 저었다.

“수고는 무슨... 당치 않소이다.”

이어 그는 다소 안색을 굳히며 덧붙였다.

“모두 무림을 위하는 일이거늘 천만 리라 한들 멀다 하겠소이까?”

이 말에 좌중의 분위기는 일순 매우 심각해졌다.

잠시 후,

노문사가 자리에 앉자 노승은 좌중을 향해 굳은 어조로 말했다.

“뜻(意)은 정해졌소이다. 결과는 세존(世尊)께서만 아실 뿐,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오.”

“...!”

“...!”

중인들은 모구 침음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나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굳건한 결의의 빛이 어렸다.

한데 그때였다.

콰------- 앙!

콰릉-------!

엄청난 폭음에 대청까지 온통 흔들거렸다.

또한 미처 놀랄 사이도 없이 여기저기서 외침성이 터졌다.

“적이닷!”

“기습이다!”

이어 병장기 부딪는 소리와 비명이 난무했다.

창창-------!

펑!

“으악!”

“크윽-------!”

그 위로 물밀 듯한 함성이 덮쳤다.

“와아------! 모두 죽여랏-------!”

“우하핫! 십파(十派)의 버러지들! 모조리 쓸어주마!”

 

대청 안의 십인(十人),

그들은 돌연한 사태에 경악했다.

하나 놀라고 있기에 바깥 사태는 너무도 위급하지 않은가?

“이게 무슨...”

“어서 밖으로 나가 봅시다!”

그들은 황망히 대청을 나섰다.

아비규환(阿鼻叫喚).

대청 바깥의 상황은 그야말로 아수라지옥도였다.

홍엽장 사방에서 날아드는 수많은 인영들,

혈의 또는 백의를 걸친 이들의 숫자는 수천에 달하고 있었다.

이들 혈의인과 백의인들은 닥치는대로 살상과 파괴를 거듭했다.

“으아------- 악-------!”

“크------- 악!”

돌연한 침입에 홍엽장은 금세 피바다가 되고 있었다.

“으... 비밀이 새어 나갔구나!”

십인 중 한 명이 이를 갈았다.

한데 그 순간,

화르르르...

홍엽장의 한 귀퉁이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쳤다.

이어 그것은 삽시간에 홍엽장 곳곳에 번져 나갔다.

예상치도 못했던 화마(火魔)의 급습이 가세된 것이었다.

십인의 고수도 이에 맞서 혈의인과 백의인들을 짓쳐갔다.

“누워랏-------!”

그들까지 합세하자 전세는 더욱 치열해졌다.

펑------!

꽈르르릉------!

시뻘건 화마 속에서 장(掌)과 병기들이 무섭게 작렬했다.

그러나,

불길은 그들을 모두 뒤덮을 듯 홍엽장 전체를 휘감아갔다.

시커먼 연기가 솟구쳐 하늘마저 공포스럽게 변화하고 있었다.

드디어...

혈겁의 장(掌)은 열리려는가?

 

X X X

 

양춘가절(養春佳節).

춘록(春綠)이 무르익은 천중산(天中山).

산기슭을 따라 관도(官道)가 있고 물오른 나뭇가지들이 길옆으로 휘늘어져 있었다.

관도 위.

따각따각...!

한 필의 준마가 한가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마상(馬上)에는 한 명의 청년이 타고 있었다.

수려한 용모였다.

시원스런 이마와 도사린 담담한 눈매.

게다가 깨끗한 피부에 붉은 입술은 마치 여인의 그것과도 같았다.

반면 청년은 수렴함에 못지않은 고고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탈속한 외모라고나 할까?

그는 깨끗한 의복차림새와는 달리 검고 칙칙한 묵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다름아닌 이검엽이었다.

이검엽은 자신의 애마(愛馬), 즉 흑풍에 걸터 앉아 유유자적 이곳을 지나던 길이었다.

“흑풍. 그 동안 고생이 많았다.”

그가 흑풍의 등을 두드리자 흑풍이 기쁜 듯 울부짖었다.

히힝...!

“집을 떠난지 벌써 반년(半年). 그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한 채 강남(江南)의 칠(七)개성을 달리게 하였구나.”

이검엽.

그는 어전시에 장원하여 어사(御使)로 봉직되었다.

황제는 그의 재주를 아껴 그를 은밀히 불러 친히 밀지(密地)를 내린 것이었다.

밀지(密地)란-------

바로 강남의 칠개성을 암행(暗行)하며 민정(民政)을 순시하라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는 그 임무를 마치고 현재 황정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문득 그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모습이 있었다.

대임(大任)을 맞고 길을 떠나기 전, 대례(大禮)로서 부부가 된 여인,

자운이었다.

“자운. 그녀의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어서 가서 반가움을 나누고 싶다.”

이검엽은 웃으며 흑풍에게 말을 건넸다.

“하하... 흑풍 너도 백운(白雲)이 그립겠구나!”

히힝!

흑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운(白雲).

흑풍과 짝 지워준 암말로 본시 자운이 기르던 애마였다.

여인(女人)을 그리는 마음.

한 쌍의 인마(人馬)가 공감을 갖는 흐뭇한 일이 아닌가?

“이제 돌아가면 싫도록 백운과 놀아보아라.”

이검엽은 자신의 심정을 대변한 듯 흑풍에게 말했다.

한데 그때,

두두두...!

그들의 후면이었다.

십여 기의 준마가 질풍같이 몰려드는 것이었다.

“흑풍! 물러서자.”

이검엽은 흠칫하여 어른 길옆으로 비켜났다.

두두두...!

일단의 준마가 바람처럼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짧은 순간이었다.

하나 그 사이 이검엽은 마상의 인물들의 얼굴을 살필 수가 있었다.

싸늘한 한기와 살기를 띈 냉혹한 인상의 백의인들.

그들은 폭이 좁고 긴 장도(長刀)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이검엽은 쓰게 입맛을 다셨다.

(무림인들이군! 과히 선량한 자를 같지는 않구나.)

무림(武林).

기실 이검엽으로서는 지금껏 무림이란 전혀 미지(未知)의 세계였다.

단지 안행중 보고 들은 약간의 지식이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이내 무심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흑풍! 가자.”

그는 한가로이 흑풍을 몰아 가던 길을 재촉했다.

약 삼사리 정도 지났을까?

문득,

그의 귓전을 때리는 소성(小聲)이 있었다.

창! 창!

(병기 부딪치는 소리...? 그렇다면 조금 전에 본 그자들일까?)

이검엽은 짐작되는 바가 있었으나 곧 다시 무심해졌다.

(무림인들 사이의 분란이거늘 무림인이 아닌 내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

그는 일부러 말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가고자 했다.

한데, 그때였다.

“으------- 악!”

“크------ 윽!”

처절한 비명이 천중산역을 메아치는 것이 아닌가?

“...!”

이검엽은 흠칫했다.

아울러 그는 호기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름을 느꼈다.

“흑풍! 가보자!”

드디어 그는 소리난 쪽을 향해 말을 몰았다.

히힝...!

두두두두...!

흑풍은 그가 지시하는 쪽을 따라 빠르게 내달렸다.

관도가 아닌 그 옆의 계곡 방향이었다.

 

계곡의 중간.

과연 그곳에서는 처절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예의 백의인들이었다.

그들은 한 명의 청년을 포위한 채 합격을 퍼붓고 있었다.

청의(靑衣)의 청년.

매우 영준하고 충후한 인상이었다.

한데,

그는 단 한 자루의 옥소(玉簫)만으로 어렵게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수없는 악전고투를 겪은 듯 청의가 거의 혈의(血衣)였다.

그의 주위로는 벌써 칠팔 구나 되는 시신이 피를 뒤집어쓴 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백의인들은 기형(奇形)의 장도를 무섭게 그에게 들이댔다.

“흐흐흐... 천래비룡(天來飛龍)! 네놈이 아무리 발악해봐야 이곳에서 빠져 나가지는 못한다!”

과연 백의인들의 기세는 엄청났다.

하지만

청의청년 즉, 천래비룡이라는 인물은 의연하게 호통을 쳤다.

“닥쳐랏! 네놈들 정도의 졸개들에게 당할 나 천래비룡이 아니다!”

그는 말과 함께 수중의 옥소를 내쳤다.

위------- 잉!

한 줄기 소영(簫影)이 섬전처럼 허공을 갈랐다.

한 백의인이 다급히 외쳤다.

“조심들 해라!”

하지만 다음 순간,

파팟-------!

날쌘 파공성과 함께 비명이 터졌다.

“으------- 악!”

한 백의인이 목을 안고 나뒹굴었다.

보라!

그의 천돌혈에는 이미 구멍이 뻥 뚫려져 있지 않은가?

뚫린 구멍은 피분수를 뿜어냈다.

그러나,

“윽-------!”

청의청년 즉 천래비룡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또 다른 백의인의 장도가 그의 옆구리를 깊이 베고만 것이었다.

그의 신형은 일순 휘청했다.

이를 본 백의인들은 기세등등하게 다시 덤벼왔다.

“흐흐... 도륙을 내고 말겠다!”

쐐------ 액!

위------- 잉!

백의인들의 장도가 일시에 호선을 그었다.

그 순간,

“이얍!”

천래비룡은 절묘한 신법을 펼쳤다.

그의 신형은 선풍같이 날았다.

아울러 그는 다시 옥소를 휘둘렀다.

캉!

카캉!

그의 옥소는 백의인들의 공격을 모두 차단시켰다.

그러나,

그는 비명을 터뜨렸다.

“크윽!”

동시에 그의 허리에서 시뻘건 선혈이 튀었다.

조금 전 베인 상처가 힘을 쓰자 입을 쩍 벌린 것이었다.

그러나,

휘르르...

그는 마치 신룡(神龍)이 비상하듯 휘몰아 오장 밖으로 멋지게 내려섰다.

 

관전하던 이검엽은 감탄했다.

“훌륭하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의 두눈은 번쩍 빛을 발했다.

그 순간 이검엽은 천래비룡의 움직임을 뇌리에 심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천래비룡의 움직임은 절묘할 뿐만 아니라 극히 뛰어난 경공신법이었던 것이었다.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바로 이렇게 불리우는 것으로 한 때는 천하제일을 구가하기도 했었다.

이검엽은 물론 무림인이 아닌 이상 이것까지야 알 리 없었다.

 

스스스슥...

백의인들은 유령같이 움직여 다시 천래비룡을 포위해갔다.

이미 오래 전에 이검엽이 이곳에 와 있으나 천래비룡을 비롯한 백의인들은 전혀 관심도 두지 않는 듯 했다.

다만 혈전에 온 정신을 쏟을 뿐이었다.

덕분에 이검엽은 관찰이 자유로왔다.

(저자들의 보법은 매우 은밀하고 교활하구나.)

그때,

이검엽은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했다.

천래비룡의 안색이 잿빛으로 되어가도 있었던 것이다.

천래비룡.

그는 내심 다급히 부르짖었다.

(크... 큰일이다. 상세가 도졌구나.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올지도 모르겠구나.)

이어 그는 분한 듯 으드득 이를 갈았다.

(지옥마군자(地獄魔君者)! 그놈 때문이다! 그 악랄한 놈과 정면 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천래비룡의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백의인들은 더욱 포위망을 좁혀왔다.

“크흐흐... 이제 그만 목을 길게 늘여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천래비룡은 의연하게 부르짖었다.

“곤륜의 제자는 결코 맥없이 쓰러지지는 않는다!”

그는 옥소를 굳게 쥐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 줄기 피가 손목으로부터 흘러 옥소를 적셨다.

대단한 부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그는 곁눈으로 그것을 알아챘으나 이내 정면을 향했다.

(별 수 없다. 이렇게 된바에야 한 번만 더 운룡등천소를...)

천래비룡은 옥소를 자신의 눈높이와 맞추어 겨눴다.

“이얏!”

그의 옥소가 그 위치에 튕쳐지는 순간,

“크크...”

쐐------- 액!

백의인들이 일제히 장도를 쓸어갔다.

삼엄하고 쾌첩한 도세!

(빠르다!)

이검엽은 절로 손에 땀이 배였다.

그 순간,

“용조파뢰(龍爪破雷)!”

슈------- 욱!

쐐----- 애------- 액!

천래비룡의 낭랑한 외침에 뒤이어 격렬한 파공성이 울렸다.

동시에,

용의 발톱과도 같은 소영이 삽시에 삼 장 방원을 뒤덮었다.

이검엽은 두눈이 다시 크게 떠졌다.

그의 뇌리는 그 순간 빠르게 그것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창!

차창!

“크------- 악!”

“악!”

두 자루의 장도가 날아가고 이인의 백의인이 안면을 안고 나뒹굴었다.

“크------- 으!”

천래옥룡도 어깨를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그의 어깨는 허옇게 뼈를 드러낸 채 피를 뭉턱 쏟아냈다.

이제 남은 백의인은 육명,

그들은 동료의 죽음과 천래비룡의 상세를 보자 더욱 기세를 높였다.

“죽어랏!”

그들은 질풍같이 천래비룡을 베어갔다.

그러나 천래비룡은 또다시 이에 맞닥뜨렸다.

“신룡비운(神龍飛雲)!”

슈------- 악!

천래비룡의 옥소와 여섯 자루 장도가 무섭게 격돌했다.

창!

파파팍!

“크------ 윽!”

“으... 악!”

비명이 연이어 터졌다.

다행히도 그것은 백의인들의 비명이었다.

여서 명 중 두 명이 가슴을 부여안고 쓰러졌다.

천래비룡.

그는 안색이 창백해졌을 뿐 굿굿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발밑은 어느새 짙은 선혈로 질퍽해졌다.

(마... 마지막 두명!)

그는 강인하게 부르짖고 있었으나 의식은 이미 가물가물했다.

다만 그의 의지력으로 다시 옥소를 움켜 쥐었다.

백의인들조차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으... 음! 과연 곤륜의 종대선생의 수제자(首弟子)답다.”

“그런 몸으로도 쓰러지지 않다니...”

천래비룡은 웃었다.

“흐흐흐... 그렇다! 곤륜은 강하다. 네놈들 백살파(白煞巴)같은 사(邪)의 집단과는 비교 될 수 없다.”

그 말에 백의인들은 비웃음을 던졌다.

“크크... 그것은 곤륜쌍선(崑崙雙仙)의 살아 있었을 시대의 이야기다.”

그들의 음성에는 자신이 넘쳤다.

기실 지금껏 살아남은 만큼 그들은 가장 강한 자들인 때문이다.

스스스...

이어 그들은 미끄러지듯 천래비룡의 양옆으로 벌려섰다.

(사부님! 제자에게 힘을...)

천래비룡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크크... 죽어라!”

쌔------- 액!

뇌전같은 도세가 그를 짓쳤다.

천래비룡은 전력을 다해 옥소를 떨쳤다.

“운룡등천(雲龍騰天)!”

파파팟!

위------- 잉!

선풍같은 소용이 마치 신룡이 하늘로 휘말려가듯 휘돌았다.

“...!”

이검엽은 경탄에 찬 시선으로 그를 주시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까이 부르짖었다.

(아깝다!)

천래비룡의 공세는 일순 허공에서 격감되고만 것이다.

파파팟!

겨렬한 충격음에 이어 천래비룡은 비명을 토해냈다.

“크------- 윽!”

쿵쿵!

그는 연속 두 걸음 후퇴하고 말았다.

“으... 음!”

“크...!”

백의인들도 낮게 신음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쿠------- 웅!

천래비룡은 기어코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그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다.

“흐흐흐...”

“각오해랏!”

백의인들은 부상을 감수하며 다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부... 분하다! 지옥마군자... 그놈에게 당한 내상이 도지지만 않았던들... 네놈들 따위에게...”

천래비룡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하지만

그는 운신도 못하는 듯 꼼짝하지 못했다.

다만 격분에 몸을 떨 뿐이었다.

“크크... 그만 가거라!”

백의인들은 동시에 도를 쳐들었다.

절체절명(絶體絶命),

천래비룡은 사신(死神)이 보였다.

과연 그는 이대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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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六 章

 

     풀밭위의 情事

 

 

 

진우란은 땅에 내려서자 마자 다시 황군성이 날아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바로 그때,

[그녀석은 어디로 갔느냐?]

갑자기 등뒤에서 들린 소리에 진우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순간적으로 진기가 흩어지며 그녀의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바위위에 내려선 그녀의 앞에는 어느새 무제 임보산이 서있었다.

그는 황군성이 임단심을 부르면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뒤쫓았던 것이다.

진우란은 임보산을 몹시 두려워했다.

사신이라고 불리던 그녀의 아버지도 이기지 못했던 인물이다.

그가 체면상 그녀에게 손을 쓸 리는 없지만 두려움은 어쩔 수없었다.

그녀도 임보산을 동정호 변에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는 두려움이라고는 몰랐는데‥‥‥

[그 녀석은 어디로 갔느냐?]

임보산이 역정을 내면서 다시 물었다.

진우란이 황급히 황군성이 달려간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니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어요. 저쪽으로‥‥‥]

임보산이 물었다.

[언니라니‥‥‥단심이 말이냐?]

[그래요. 언니를 아시는군요. 빨리 좀 구해주세요.]

임보산의 안색이 홱 변했다.

[누가 단심이를 잡아갔단 말이냐?]

[네, 그래요.]

순간,

진우란은 자신의 몸이 까마득히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귓가로 새찬바람이 따갑게 스치고 지나갔다.

임보산이 딸이 위험하단 말을 듣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날아오른 것이었다.

임보산의 몸은 황군성이 사라져간 방향으로 까마득히 사라졌다.

 

× × ×

 

청삼객은 화탄속에서 벗어나자마자 현현궁의 일백여 제자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의 뒤에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열풍이 몰아닥치고 있었다.

비무대 아래에 있던 화약이 폭발한 것이었다.

현현궁의 정확히 구십구명의 제자들은 그가 날아오는 것을 보자 동시에 몸을 날렸다.

청삼객이 소리쳤다.

[모두 내뒤를 따라라!]

현현궁의 제자들의 무공은 확실히 다른 자들보다 월등히 강했다.

그들의 무공은 그들 중의 하나인 조응경만 생각해보아도 능히 알만하지 않은가?

남궁파가 심혈을 기울여서 기른 자들‥‥‥

그들은 청삼객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학선평을 빠져나갔다.

남궁파는 원래 청삼객만 죽여 버리면 자신의 제자들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를 잃은 제자들에게 그가 다시 현현궁주로 복귀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있었다.

그의 제자들은 현현궁주는 알아도 남궁세가와 남궁파라는 인물은 모른다는 것이다.

청삼객이 살아남고 말았으니 그는 고스란히 자신의 제자들을 뺏긴 셈인데‥‥‥

 

청삼객은 학선평에서 이백여리 정도 달려서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 멈추었다.

[여기서 휴식을 취하도록!]

아흔아홉명의 현현궁 제자들은 한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그의 뒤를 잘 쫓아 왔었다.

털썩! 털썩!

그들은 냇가에 주저앉아 흘러내리는 땀을 씻으며 긴장을 풀었다.

그들은 이번 실패로 끝난 무림황제의 추대대회에서 청삼객이 보여준 태도를 깊히 존경하고 있었다.

실로 당당한 영웅의 풍모였고 마지막엔 남궁파의 음모를 발각하여 많은 사람들을 화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경모의 눈초리로 청삼객을 바라보았다.

그가 현현궁의 이대궁주가 되고나서 불만을 가졌던 자들도 아예 속에서부터 그런 씨앗을 없애버린지 오래였다.

조응경도 지금은 청삼객이 자신을 길렀던 일대 현현궁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일대 현현궁주였으면 결코 그녀를 용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잠시 모두들 숨을 돌리고 나자 청삼객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말했다.

[본좌의 가까이로!]

스스슷!

아흔아홉 명이 그의 명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청삼객은 그들 하나하나에게 눈길을 주면서 말했다.

[본좌가 현현궁을 맡은지 불과 보름정도. 그러나 그동안 그대들에 대해서 알만한 것은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본좌는 그대들의 의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현현궁의 제자들은 남자에게는 용(龍)을,

여자에게는 봉(鳳)을 그 서열앞에 붙여서 부른다.

서열 일번, 즉 용일(龍一)이 청삼객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사부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모든 것을 사부의 뜻에 따를 따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부께서는 진정한 영웅이십니다. 아마도 남궁파가 음모를 꾸미지 않았다면 사부께서 무림황제가 되셨을 것입니다.]

봉일(鳳一)도 그녀의 뜻을 전했다.

청삼객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 일 만은 묻지 않을 수 없다. 봉일은 방금 남궁파의 음모라고 말했는데, 그가 바로 그대를 기르고 무공을 가르친 전임 현현궁주였다면 믿겠느냐?]

[그럴리가‥‥‥]

봉일이 말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청삼객이 못박듯이 말했다.

[본좌의 말은 사실이다. 나는 그와 계약에 의해 현현궁주가 되었을 뿐이다. 하나, 그가 먼저 계약을 어겼다!]

아흔여덟 명의 용과 봉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로 얼굴만 마주 보고 있었다.

오직 조응경만이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여러 사형사자(師兄師姉)와 사제사매(師弟師妹)들은 잠시 내말을 들어주셔요.]

[…………]

[사부의 말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용십삼과 함께 사부의 명을 받고 태상을 만나러 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태상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그녀의 말은 이순간 청삼객의 말보다 더 위력이 있었다.

용과 봉들은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삼객이 말했다.

[그는 계약을 어기고 나를 죽이려했다. 그는 악랄한 자이고 파렴치한 자이다. 이제 본좌는 그와 싸우려고 한다. 그대들은 나를 따라도 좋고 그를 따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

[그대들이 지금 전대 궁주의 은혜를 생각해서 나를 공격해도 탓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마도 뒤의 두가지 경우를 선택했을 경우 그대들 중 목숨을 부지한 자는 없을 것이다. 이미 그자는 무림의 공적이 되었으니 모든 무림인으로 부터 쫓길 것이니까.]

그 뒤의 말은 하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었다.

마지막의 경우 청삼객을 그들이 공격했을 경우 청삼객은 그들 모두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낸 것이니까.

청삼객은 일어서며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대들은 신중히 숙의하길 바란다. 본좌는 해가지면 이곳으로 다시 오겠다.]

그가 떠나자 용과 봉들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기 시작했다.

 

청삼객은 냇가에 흐르는 물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졸졸졸------!

물은 얉게퍼져 돌멩이를 굴리면서 흐르고,

걸어가는 청삼객의 옆으로는 물에비친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이 그의 친구가 되었다.

불헌듯,

개울가 숲속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이 들려와 그의 아취를 깼다.

 

[히히히‥‥‥운수대통(運數大通)했는걸. 아마 기루에 가도 이런 계집은 흔치 않을거야. 히히히‥‥‥]

[야! 뜸들일 시간이 어디있어. 빨리 해치우자고. 이야 고것 참. 꿀꺽!]

[낄낄‥‥‥이 옥같이 하얀 살결을 한번 봐라. 죽인다 죽여!]

 

청삼객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마도 몇몇 파락호가 여인을 놓고 하는 이야기 인것같았다.

한데,

여인의 음성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기절한 모양이라고 생각한 청삼객은 숲속으로 몸을 날렸다.

휘익!

숲속에 들어선 그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세명의 농사꾼같은 시골뜨기가 눈동사를 궹하니 뜨고 있는 여인의 옷을 찢어내고 있었는데,

이미 한쪽 유방이 노출된 채 망연한 눈빛으로 청삼객을 바라보는 그 여인은 바로 전연옥이 아닌가?

그녀가 힘없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청삼객‥‥‥]

시골뜨기 들은 청삼객이 나타난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이년이 무슨 소릴 하는 것야. 퍼런 삼이 뭐 어찌됐다고?]

그순간,

청삼객이 분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장 그 여인에게서 물러서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엇!]

[엇!]

시골뜨기들은 갑작스런 청삼객은 등장에 놀라워 하면서 전연옥을 가렸다.

청삼객이 소리쳤다.

[당장!]

시골뜨기 중 삐쩍 마르고 시커먼 자가 소리쳤다.

[글쟁이 놈이 어디서 큰소리냐! 당장 죽고싶으냐!]

그자는 새파랗게 날이선 낫을 집어들었다.

눈앞에 달같은 미인이 있는 데 죽어도 양보할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두 놈도 낫을 집어들었다.

청삼객은 눈에서 파란 불꽃이 튀는 듯했다.

냉혹한 얼굴에서 냉혹한 말이 튀어나왔다.

[죽어야 될놈들이었군! 죽엇!]

죽엇‥‥‥

마치 명령하듯 외친 그 한마디‥‥‥

세 시골뜨기는 돌연 칠공으로 피를 흘리며 눈알이 튀어나왔다.

[크윽-----!]

[크으으----!]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엎어졌다.

한놈은 자신이 손에 들었던 낫에 의해 오히려 자신이 배를 깊숙히 베이고는 내장을 쏟아냈다.

청삼객은 냉혹한 눈초리를 그들을 바라본 후,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전연옥에게로 다가갔다.

찢어진 옷속에 드러난 그녀의 백옥같은 살결이 숲을 뚫고 들어온 햇빛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전연옥은 그녀의 유방을 가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힘없이 입술만 달짝거리며 말했다.

[청삼객‥‥‥검신은 어떻게‥‥‥ 되었소?]

청삼객은 그의 푸른 청삼을 벗어서 그녀를 덮어주며 말했다.

[소저는 천륜을 거역하지 않았소. 염려할 것없소. 검신의 마지막은 장렬했소이다. 그는 소저에게 짐을 지우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결했소.]

전연옥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청삼객은 그의 맥문을 잡아보았다.

그녀의 몸에서는 음양이기가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원래,

전연옥은 황군우와의 화산에서 대결 후에 황군우가 막 이룬 음양합일신공에 의해 해를 입었었다.

음양의 기운이 몸안에 침투한 것이었는데,

그녀를 고통속에 몸부림치게 하다가 그 두 기운은 음교맥과 양유맥사이로 스며들어 굳어졌었다.

원래대로 하자면 이것은 한달이 지나야 다시 발작을 하는 것이었으나 그녀가 과도한 무공의 사용으로 인해 기경 팔맥 중의 두 맥인 음교, 양유에 있던 음양합일신공의 기운이 쏟아져 나오고 만 것이다.

그녀는 이곳 숲속에서 미친 듯이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완전히 탈진하고 말았는데,

그녀의 정신도 육체도 모두 피폐해진 까닭이다.

그때,

세 시골뜨기가 나타나 그녀를 보고 이게 웬 떡이냐고 달려든 것이었다.

 

청삼객은 그녀의 맥문을 놓으며 말했다.

[몸속에 있는 이 음양이기(陰陽二氣)를 몰아내거나 중화시키지 않으면 때때로 이같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오.]

전연옥이 입술을 달짝거렸다.

[소용이 없소. 여러번 시도해 봤지만 도저히 불가능했소.]

청삼객이 말했다.

[소저가 여자라는 사실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알고있소. 그 딱딱한 말투 좀 버릴 수 없겠소?]

전연옥이 흠칫하며 그를 보았다.

(이자도 내 몸에 욕심을‥‥‥)

청삼객은 소매속에서 한가지 물건을 꺼냈다.

찬연한 백색, 두자정도의 길이‥‥‥

바로 낙일검이었다.

[소저의 물건이니 돌려드리겠소. 그리고 잠시 장소를 옮깁시다.]

그는 전연옥을 두 팔로 안으며 말했다.

낙일검은 가슴에 안은 전연옥의 교구가 가늘게 떨었다.

청삼객이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무성한 덤불들이 나왔고,

그 덤불들을 지나자 물이 고인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는 풀밭이 나왔다.

그는 전연옥을 웅덩이 옆의 풀밭에 뉘였다.

전연옥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 보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소저, 당신에게 음양이기의 공력을 사용한 자를 기억하시오?]

전연옥은 고개를 까딱해보였다.

[만약에 그자를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할 작정이오?]

청삼객의 물음에 전연옥은 망연히 푸른 하늘로 시선을 옮기며 생각하다가 힘없이 말했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어요. 모두가 내 부질없는 독기(毒氣)때문이었는데‥‥‥]

청삼객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전소저‥‥‥만약, 만약에 말이오‥‥‥]

[…………]

[본좌가 이자리에서 전소저께 구혼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소?]

전연옥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눈을 크게 떠면서 청삼객을 바라보았다.

표정은 냉막하지만 그의 눈에는 진정이 어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전연옥은 바싹 마른 입술을 달짝 거렸다.

그러나 완전히 탈진한 후라 아무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청삼객이 그녀의 맥문을 통해 한줄기의 뜨거운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녀가 기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며 말했다.

[나는‥‥‥원래 당신을 무림을 노리는 음흉한 마두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휴‥‥‥]

[맞는 말이오. 나는 무림에 야심을 가지고 있소.]

청삼객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전연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당신이 그동안에 보여준 태도는 어떤 영웅도 쫓아가지 못할 만큼 당당했어요. 학선평에 모여든 수만 명의 날고긴다는 무림인들이 모두 당신 한마디에 압도되었으니까‥‥‥]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만약‥‥‥당신에게 다른 여자가 없다면‥‥‥당신을 따르겠어요.]

그녀는 부모의 애환을 직접 몸으로 겪었기에 그점부터 조건으로 들었다.

청삼객의 눈에 기쁨이 넘치는 듯했다.

그는 전연옥의 양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내 나이는 겉보기 보다 아주 차이가 많소. 그래도 상관없소?]

전연옥은 눈을 떠지 못하고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수백 살 먹었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청삼객은 그녀를 껴안에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약속했소. 그럼 당신은 이제부터 내 아내요.]

전연옥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청삼객 같은 영웅적인 인물의 구혼을 어느 여자가 거부할 수 있으랴 싶었다.

청삼객은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같은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등불이 되고 있었다.

사랑은 이렇게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운명처럼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인피면구요. 내 참모습을 보지 않겠소?]

[보고싶어요.]

청삼객은 한손을 얼굴로 가져가며 갔다.

찌이익!

인피면구가 얼굴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훌렁 그의 머리채까지 통채로 벗겨졌다.

순간,

전연옥은 놀라 짧게 부르짖었다.

[당신!]

그녀의 눈앞에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

그가 누구이겠는가?

바로 황군우‥‥‥

음양합일신공을 대성한 황군우였으니‥‥‥

그의 입술은 전연옥의 앵두같은 입술을 순간적으로 눌러덮었다.

전연옥은 전신이 둥둥떠는 것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이것은 운명이야‥‥‥이 사람이 바로 그였을 줄이야‥‥‥아!)

그녀의 몸위를 덮고 있던 푸른 장삼이 옆으로 치워지고,

찌이익!

이미 반쯤 찢어져 속살이 노출된 그녀의 옷은 완전히 찢어져 버렸다.

전연옥의 눈에는 눈물이 어렸다.

(그래‥‥‥아버지의 딸로서의 한스러운 내 인생은 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끝났어. 이제는 이사람은 아내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거야‥‥‥)

그녀는 세차게 황군우의 혀를 빨면서 자신을 불사르고자 했다.

푸른 풀밭위에 하나둘 옷가지가 떨어지고,

게 중에는 웅덩이에 던져지는 것도 있었다.

전연옥은 완전한 나신이 되어 물고기 처럼 퍼덕거리고,

황군우 역시 벌거벗은 몸으로 그녀를 짓눌렀다.

[허억! 헉!]

전연옥의 가쁜 숨소리가 터져 나오고,

황군우의 손이 그녀의 탐스러운 두 육봉을 힘껏 움켜잡았다.

매끄러운 허리선‥‥‥

살짝 패인 배꼽‥‥‥

그리고 두 다리 사이에 은밀한 비밀의 숲‥‥‥

황군우는 숨이 막힐 것같았다.

그의 남성은 하늘을 찌를 듯이 팽창했고,

두 다리를 한것 벌린 전연옥의 비지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하아! 하!]

눈을 감은 전연옥의 입에서는 단내음이 숨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고,

황군우의 남성은 마침내 전연옥의 붉은 석류같은 곳에 다다랐다.

전연옥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거‥‥‥거기가 아니‥‥‥]

그녀는 한 손을 아래로 내려 황군우의 우람한 남성을 잡았다.

그녀의 손안에는 떠거운 불덩어리가 느껴졌다.

(내 손목보다 굵어‥‥‥)

그녀는 순간적으로 와락 두려움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받아들일 수 있을까‥‥‥?)

황군우는 그녀의 몸속으로 그의 남성을 밀어넣으려 애쓰고 있었다.

전연옥은 황군우의 남성을 자신의 여문(女門)으로 인도했다.

순간,

[악!]

불같이 떠거운 기둥이 그녀의 몸안으로 일시에 밀고 들어오면서 그녀는 극렬한 고통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누운 개구리처럼 뒷걸음질 치며 둔부를 뒤로 뺐다.

그러나,

이미 황군우의 남성은 그녀의 몸속 깊숙히 까지 들어와 있었다.

고통속에서도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을 것같은 포만감과 가슴벅찬 희열이 느껴졌다.

그녀는 숨도 쉴 수 없을 것같았다.

입술을 세차게 깨물며 고통과 신음을 참았다.

[으으으‥‥‥]

황군우의 남성이 그녀의 몸안에서 세차게 요동쳤다.

그녀는 도저히 이를 악물고 참을 수가 없었다.

[악! 악‥‥‥아아아아‥‥‥악‥‥‥헉‥‥‥]

고통속에서도 짜릿하게 퍼져나가는 희열에 그녀는 모순을 느끼면서 교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황군우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천상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아흐흐‥‥‥악‥‥‥아‥‥아아‥‥‥악‥‥‥으으‥‥‥]

[헉헉!]

황군우의 몸은 점점 세차게 움직였다.

[아아아‥‥‥아‥‥‥아‥‥‥]

전연옥의 고통은 점점 희열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황군우의 몸놀림 만으로는 자신의 정열를 다스리지 못한 전연옥은 그의 보조에 맞춰 격렬하게 둔부를 움직이며 그를 껴안았다.

[헉헉!]

그의 숨결이 귀에 와 닿으면서 더욱 그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아아아‥‥‥아‥‥‥더‥‥‥빨리‥‥‥]

황군우와 그녀는 어떤 목표를 향해서 미친듯이 움직였고,

마침내,

[아악!]

두 사람은 동시에 절정에 달하면서 아득한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전연옥은 자신의 몸에서 몇 번이나 거듭되는 세찬 분출에 돌에맞은 개구리처럼 달달떨며 황군우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태양이 부끄러워 눈을 가릴 순간이 지나가고,

전연옥은 부끄러움에 황군우의 시선을 피하며 웅덩이에서 몸을 씻었다.

처녀를 상징하는 피가 물에 풀리면서 점점 물어져 갔다.

풀밭 위에는 선선한 바람이 그들의 노고(?)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해는 하늘의 한쪽 가에 가있었다.

전연옥의 몸안에 있던 음양이기는 황군우와의 정사와 더불어 깨끗히 사라지고 말았다.

황군우는 청삼객의 인피면구를 다시 쓰고 전연옥의 나신을 뒤에서 안았다.

잠시간의 부드러운 애무가 있은 후에 그들은 숲을 나서고 있었다.

황군우의 청삼은 전연옥의 몸을 감싸고 있는 유일한 겉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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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슬픈 情事

 

 

드넓은 정원(庭園),

잘 가꾸어진 관목들이 즐비했다.

휘늘어진 가지.

우수수...!

추풍(秋風)이 볼 때마다 가지 끝에 달린 이파리가 바르르 떨었다.

단풍 든 홍엽(紅葉)이 어느새 낙엽을 떨구려 함인가?

널찍한 연못.

시원한 추수(秋水)가 건듯 부는 바람에 자잘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 연못이 자리한 가산(假山)은 온통 기이한 암석들이 가득했다.

암석들 사이로는 한 채의 정자(亭子)가 있었다.

기암괴석들에 싸인 이 정자는 마치 선계(仙界)의 누각인 양 자연과 벗하는 듯 하였다.

 

정자 안,

한 명의 청년이 정좌하고 있었다.

침묵과 고요가 그 청년을 감쌌다.

“...”

청년은 무심히 연못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 중이었다.

초탈한 외모,

모습은 완전히 선계의 누각인 듯한 정자와 동화된 것이어서 결코 범속치 않아 보였다.

마치 한 마리 학을 보는 듯 그에게는 고아한 기품이 흘렀다.

아! 이검엽,

바로 그였다.

그가 지금 머무는 곳은 바로 북경(北京)의 승상부(丞相府)였던 것이었다.

그는 이미 보름 전에 이곳에 돌아왔다.

하지만

침묵에 싸인 그의 얼굴에서는 일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어전시를 치르고 난 후라면 당연히 겪는 불안과 초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표정에는 깊은 수심이 어려 있었다.

그의 뒤,

자운(紫雲)이 어느새 와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삼단같이 틀어올린 채 다소곳이 그의 곁에 앉았다.

이검엽은 나직이 신음했다.

“휴...”

자운은 그의 신음에 슬픈 눈길을 보냈다.

벌써부터 그녀는 이검엽의 번민도 알고 있었다.

여인만이 가지는 직감이랄까?

그녀는 이검엽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에 대해서도 대충 짐작을 하였다.

(저분은... 필시 누군가 아름다운 분을 못잊어 저러시는 것 같구나...)

자운의 고개는 푹 떨구어졌다.

(못난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 내가 미흡하여 저분의 마음을 잡아 드릴 수 없음이 안타깝구나...)

또르륵...!

맑은 옥루(玉淚)가 숙여진 얼굴로부터 치마폭 위로 굴렀다.

그녀는 이검엽에 대한 원망이란 추호도 없었다.

오직 자신에 대한 자책만이 앞설 뿐이었다.

(내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왔다면... 저분이 저런 번민에 빠지지 않도록 해드리련만...)

“휴... 우...”

또다시 흘러나오는 이검엽의 한숨.

자운은 자신의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검엽,

그는 과연 냉심(冷心)의 사나이인가?

곁에 애처로운 심경의 여인을 두고 다른 여인만을 생각하는 것인가-------

(잊을 수가... 도저히 잊을 수가...)

그는 내심 부르짖듯 되뇌이고 있었다.

하지만

실은 그 자신 역시 스스로 당혹을 금치 못하는 처지였다.

일별하며 스친 짧은 순간의 대면.

그것이 주는 느낌은 오히려 처절한 상처였다.

잊으려 무진 애를 쓸수록 명확히 떠오르는 신비한 얼굴,

그 얼굴은 매혹적인 미소로 자신을 유혹하였다.

“...!”

이검엽은 문득 생각 난듯 품에서 봉황금차를 꺼내었다.

봉황금차,

자세히 보면 그것은 양끝이 극히 여리하게 세공이 된 일종의 암기였다.

만일 무길로 쓴다면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검엽에게 있어 그 봉황금차에 담긴 의미는 단 한 가지였다.

신비여인이 지녔던 물건,

그녀의 머리를 아름답게 장식시켜 주었던 비녀.

그것으로서 그는 충분했다.

봉황금차를 만지작거리며 그는 신비여인의 환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반면,

그는 갈등 속을 헤매기도 했다.

(이검엽아. 자운에게 미안하지도 않으냐? 자운은 이제껏 묵묵히 기다려 오지 않았더냐?)

그렇다.

이검엽의 본심은 자운을 충분히 이해하고 아끼는 것이었다.

또한 그녀에 대한 미안한 마음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와서 자운을 버리면... 자운이 너무 불쌍하다...)

생각이 자운에게로 치닫자 그는 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명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고개를 힘껏 내젓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나...)

일순 그의 얼굴조차 몹시 일그러졌다.

우두둑...!

그의 손이 닿았던 난간의 한부분이 으스러졌다.

걷잡을 수 없는 심경에 내리누르는 순간,

자단목으로 된 난간이 순식간에 가루로 화하다니...

그것은 인력(人力)이 아닌 신력(神力)이었다.

그러나 그를 본 이검엽은 씁쓸히 부르짖었다.

(신력을 지닌들... 십만 권, 아니 백만 권의 서적을 읽은들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 내마음 하나 가누지 못할진대 모두 허사가 아닌가...!)

그때,

자운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깼다.

“무슨 일이냐?”

자운은 멀찍이 시립해 있는 시녀를 향해 물은 것이었다.

그 말에 시녀는 공손히 대꾸했다.

“승상께서 퇴청(退廳) 하셨사옵니다. 퇴청하시자마자 소부주님과 아씨를 모셔오랍시는 분부가 계셨사옵니다.”

자운은 차분하게 시녀를 물렸다.

“알았다. 물러가 있거라.”

“네.”

시녀가 대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자운은 살며시 이검엽의 뒤로 가까이섰다.

그녀의 태도는 침착하고도 부드러웠다.

자신의 동요로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갸륵한 심정의 바로일까?

그녀는 차분한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공자님, 승상께서 퇴청하시어... 뵙고자 하신다 하옵니다.”

어쩔 수 없는 미미한 떨림.

이검엽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돌아 앉았다.

자운의 고개는 푹 꺾이고 말았다.

“...!”

“...!”

잠시 두 남녀 사이에는 침묵이 오갔다.

하나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은 피차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아닌가?

이검엽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순간 어렵게 그의 입이 열렸다.

“자운...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아니, 버릴 수... 없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마치 자신에게 다짐하듯 한자 한자 힘주어 말했다.

“공... 공자님...!”

자운은 당황하여 멈칫했다.

그 순간,

이검엽은 그녀의 허리를 와락 끌어 안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풍요한 머릿결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참아다오. 창해가 마르는 한이 있더라도 자운... 너만은 버리지 않겠다!”

자운은 이검엽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소리없이 오열했다.

그녀의 마음은 이검엽에 대한 끝없는 연민으로 가득했다.

(얼마나 괴로우신가? 얼마나 괴로우시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자운의 뜨거운 눈물이 이검엽의 가슴팍을 적셨다.

옷깃이 젖어듬을 감지한 이검엽은 마음을 많이 추스릴 수가 있었다.

돌연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결의가 떠올랐다.

(결심하자...! 내 마음 하나에 되는일... 자운을 내 사람으로... 그러면 그 여인의 환상을 잊을지도...!)

그는 벌떡 일어섰다.

“가자. 아버님은 어전시의 결과를 가져오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님께 드릴 소청이 있다.”

그는 말을 맺기도 전에 성급히 정자 밖으로 나섰다.

“...?”

자운은 다소 아연했으나 이내 그를 따라나섰다.

그러나 이검엽의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자운의 걸음은 그를 따르지 못했다.

“잠깐 참아다오.”

이검엽은 돌아섬과 동시에 자운을 번쩍 들어 안았다.

“어... 머머... 공... 공자님!”

자운은 대경실색하며 발버둥쳤다.

“...!”

이검엽은 대답대신 나는 듯한 걸음으로 정원을 빠져 나갔다.

자운도 이제는 체념한 듯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

월동문(月洞門)을 지나고-------

웅장한 전각들이 속속 그들의 시야를 지나갔다.

그들이 그 곳을 지날 때,

시립해 있던 하인과 시녀들이 난색을 지으며 황망히 고개를 숙였다.

이검엽은 총총걸음으로 자운을 안고 계속 나아갔다.

자운은 그만 얼굴이 새빨개져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말았다.

이윽고,

그들은 취의청(聚議廳)에 당도했다.

“이... 이제... 그만 내려 주시어요.”

자운은 수줍은 듯 애원했다.

“...”

이검엽은 여전히 묵묵한 채 그녀를 가만히 내려 놓았다.

이어,

그들은 나란히 취의청 안으로 들어갔다.

“허허... 엽아(葉兒)! 어서 오너라.”

굵직하고 우렁찬 음성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의 정면에는 두 명의 남녀(男女)가 앉아 있었다.

육십이 넘은 듯한 노인(老人)과 극히 허약해 뵈는 사십대(四十代)의 여인(女人)이었다.

바로 이검엽의 부친과 모친이었다.

방금 말한 음성은 바로 부친의 음성임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이검엽의 부친(父親) 이성진(李聖眞),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丞相)답게 위엄과 후덕함이 엿보이는 인물이었다.

또한 강직한 기개가 넘쳐 황가(皇家)의 충신(忠臣)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검엽의 모친(母親).

이 여인은 이검엽의 생모(生母)이나 승상에게는 후실(後室)이었다.

무자(無子)인 처지에서 상처(喪妻)한 승상과 혼인해 그녀는 이검엽을 출산한 것이었다.

하나 그녀는 본시 몹시 허약했었다.

한데 현재는 그래도 한 가닥 혈색이 감돌았다.

그것은 바로 천지곤룡의 쓸개를 이검엽이 복용시킨 덕분이었다.

그녀는 아들인 이검엽을 보며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퇴청하셨사옵니까?”

이검엽과 자운은 승상부처(夫妻)에게 나란히 큰절을 올렸다.

승상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오냐! 내 기쁜 소식을 가져 왔다.”

“...!”

자운은 살포시 미소했다.

하나 반면, 이검엽은 오히려 담담하기만 했다.

이성진은 흐뭇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네가 어전시에 장원을 하였다. 그것도 발군(拔群)하여 황상(皇上)께서 크게 기꺼워 하셨느니라.”

이검엽은 담담히 대꾸했다.

“모두 아버님과 어머님의 덕입니다.”

이성진은 여전히 미소를 띄웠다.

“그래서 황상께서는 내일 너를 입궐(入闕)시키라 명하셨다. 아마도 네게는 어사(御使)가 봉직(奉職)될 것이다.” 

그의 음성은 아들의 일로 인해 기쁨을 감추지 못한 듯 매우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이검엽의 모친은 달랐다.

그녀는 아들의 얼굴에서 어른거리는 짙은 그늘을 발견한 것이었다.

“네 안색이 말이 아니구나. 무슨 걱정이라도 있느냐?”

모친의 음성에는 따스한 염려가 깃들어 있었다.

이검엽은 황급히 이를 부인했다.

“아... 아니옵니다. 어머님.”

일순 그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보다 아버님 어머님께 소자 소청이 있습니다.”

이성진. 아들의 기분을 알아차리자 그의 안면에 깔렸던 미소가 가셨다.

대신 심각하게 물었다.

“그래 말해 보아라. 이 애비가 들어 줄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 주마. 오늘은...”

그는 아들의 기색을 살피며 은근히 덧붙였다.

“네가 어전시에 장원했음이 발표된 날이 아니냐?”

이검엽은 부모님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가 있었다.

또한 독자인 자신에 대한 그들의 기대도 알고 남았다.

그는 이러한 것들로 더욱 마음을 다졌다.

(그렇다. 내가 마음을 잡고 안팎으로 충실해야만이 부모님들께도 효도가 되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옵고, 외람되오나... 자운과 하루 속히 가정을 이루고 싶습니다.”

“공자님! 어찌 저같은 것을...!”

곁에 섰던 자운이 황망히 그를 만류했다.

승상 부처(夫妻)는 일순 전혀 뜻밖인 듯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성진이 파안대소했다.

“네 부탁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느냐?”

“네. 면구스럽습니다.”

이검엽의 얼굴도 다소 붉어졌다.

부친 이성진은 유쾌한 듯 우렁차게 말했다.

“하핫... 그것은 네가 부탁할 일이 아니라 애비가 먼저 부탁하고 싶었던 일이다. 애비도 죽기 전에 어서 손자녀석을 안아 보아야하지 않겠느냐?”

“...!”

이검엽의 얼굴에 미미한 미소가 흘렀다.

자운.

그녀는 이순간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만사를 그대로 순응하면 그 뿐이었다.

이때,

이성진이 일어나 이검엽과 자운의 엎으로 다가왔다.

이어 드는 두 사람을 일으켜 서로의 손을 쥐어 주었다.

“당장에라도 혼인을 시키고 싶구나. 허헛...”

그는 흡족한 듯 웃으며 자운을 보았다.

“운아(雲兒)야. 하루 빨리 튼튼한 손자 녀석을 안겨 주어야 하느니라.”

자운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번엔 이검엽의 모친이 그녀에게 당부했다.

“운아. 네가 지금껏 잘해온만큼... 앞으로도 엽아(葉兒)를 잘 보필해 주어야겠구나.”

“명... 명심... 하겠습니다.”

자운은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겨우 대꾸했다.

이성진은 호쾌하게 두 젊은이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허헛...! 자! 이제 나가 보아라. 식은 곧 올릴 것이니 그 동안 다정히 지내고들 있거라!”

“물러가겠습니다.”

이검엽은 자운을 데리고 부모의 면전을 떠났다.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진 후,

이검엽의 모친이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상공... 아무래도... 엽아에게 무슨 걱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성진 역시 무거운 음성이었다.

“흠. 그런 듯 하구료. 하나...”

그는 자소 밝게 덧붙였다.

“자운이 있질 않소? 현명한 아이니 엽아의 근심을 크게 덜어줄 것이오.”

 

***

 

조용한 전각(殿閣).

이검엽과 자운의 거처로는 아주 적당한 곳이었다.

아담하고 깨끗한 정실.

이검엽과 자운이 마주하고 있었다.

자운은 다소 어색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차를... 올리겠습니다.”

“아니다, 자운 이리 오너라.”

이검엽은 다소 강하게 그녀를 끌어 당겼다.

“...”

자운은 입을 다문 채 다소곳이 그의 코앞에 섰다.

이검엽은 그녀의 손을 꼭쥐었다.

“자운... 지금 당장은 큰 사랑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평생 자운을 버리지는 않겠다.”

자운의 입술이 바르르 떨었다.

이검엽.

자운은 그를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순간에도 다른 여인을 생각라도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한평생 자신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자운은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말할 수 있었다.

“상... 상공... 의 사랑하심... 천... 비는 감당키 어렵습니다.”

그 말에 이검엽은 입술을 지즈시 물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여인.

항시 자신을 보살펴 주며 자기 곁을 지키던 여인.

자운을 두고 다른 여인을 생각하는 자신의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자운...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웠던 여인이었다. 차라리 이 기회에 자운을 내사람으로...)

그는 눈빛을 빛내며 자운을 보았다.

(나를 자운에게 완전히 구속시키면 번민을 잊을 수도 있다.)

이검엽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어 그는 자운의 옷섶으로 손을 가져갔다.

“...!”

일순 자운의 처녀지신(處女之身)은 흠칫했다.

결코 예사롭지 않은 손길.

그러나 자운은 피하지 않았다.

스르르 눈을 내리 감으며 그녀는 그의 손에 자신을 맡겼다.

“자운... 나는 자운을 갖고싶다.”

속삭이듯 나직한 이검엽의 음성.

자운은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이윽고,

자운의 옷섶이 풀렸다.

사르르륵...!

가벼운 음향과 함께 그녀의 상의가 흘러 내렸다.

뽀얗고 동그란 어깨에 이어 빨간 젖가리개가 나왔다.

이검엽의 떨리는 손끝이 젖가리개를 떼어냈다.

아! 물결치는 유방이여.

불긋한 두 개의 젖무덤은 고혹적인 매력을 뿜어냈다.

거기에 달린 두 개의 상큼한 포도알.

이검엽의 시선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자운은 부끄러운 듯 낮게 신음하며 두 손으로 유방을 가렸다.

이검엽은 서두르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자신의 가슴이 식기전에 그는 일을 치르고 싶었던 것이었다.

스르륵...

그녀의 하의가 한꺼번에 모두 벗겨져 내렸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신.

빙기옥골(氷肌玉骨).

뽀얗게 피어 오르는 듯한 탄력있는 피부.

솟을 곳은 제대로 솟고 꺼질곳은 움푹 꺼진 현란한 곡선미.

평소에 따스하게만 느껴지던 자운의 육체는 이 순간 폭발적인 매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검엽의 동정(童貞)은 이끌리듯 그녀에게 흡수되었다.

하늘(天)이 내린 본분이랄까?

순양지체(純陽之體)와 순음지체(純陰之體)의 교합(交合)은 뜨겁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으윽...! 음...”

일순 자운은 고통에 겨운 신음을 흘려 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자 그녀는 깊은 쾌락의 늪을 지나고 있었다.

이검엽.

첫순간의 성급함과는 달리 그의 육체는 서서히 타올랏다.

그는 끊임없이 노를 저었다.

자운(紫雲)이란 고요했던 바다는 그에 의해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허억...!”

“아아...!”

두 남녀의 신음이 뒷섞이며 그들은 더욱 뜨겁게 타들어갔다.

끈끈한 율동과 율동.

“흐으윽...”

희디흰 교구가 절정을 향해 돌진했다.

“허억...!”

이검엽도 절정을 향해 돌진했다.

격렬한 몸부림으로 그는 자운을 정복하고야 말았다.

“아아아아-------!”

꺼져들어가는 듯한 자운의 신음이 그의 귓전을 울렸다.

자운의 여인 손톱은 그의 등을 마구 찍어대고 있었다.

까마득한 희열의 나락.

거대한 입을 쩍 벌린 그 곳에 두 사람은 휩쓸리듯 빨려 들었다.

이검엽은 현실을 모두 잊었다.

이 순간 그가 느끼고 있는 살과 살의 교점 뿐이었다.

그는 인간의 육체가 지닐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윽고,

격렬한 동작은 모두 멎고 그들의 가슴은 포만감으로 가득했다.

이검엽은 자운의 귓볼을 씹으며 꿈꾸듯 중얼거렸다.

“아... 보고 싶었소 소저! 당신과 이렇게...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당신을...”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자운은 쾌락으로부터 순식간에 동떨어져 버리는 충격을 받았다.

(아... 이 분은 나를 다른 여인으로 착각하고 계시는구나...)

자운의 눈언저리는 금세 젖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검엽에게서 몸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힘주어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사랑해요... 상공... 당신이 누구를 생각하시든지... 저는 오직 상공만을...”

그녀의 낮은 속삭임이 이검엽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 이런! 내가 큰 실수를,...)

그는 단번에 몸이 식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미끄러지듯 가만히 그는 자운의 몸에서 내려왔다.

나란히 누운 두 남녀(男女).

자운은 소리를 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끝없이 솟아 나와 배갯머리를 흠뻑 적셨다.

“...!”

이검엽은 그녀에 대한 죄책감에 몹시 난감했다.

그러나 결코 변명따위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솔직히 털어 놓았다.

“자운... 미안하구나... 내 본심은 이게 아니었다. 그녀의 환상을 잊으려 한 것이 그만 네게 상처를 입히고 말았구나.”

자운은 흐느끼며 그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흑흑흑...!”

이어 그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말했다.

“아니어요... 소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예요.”

“자운...!”

이검엽은 부르짖듯 신음했다.

자운이 다시 말했다.

“흑... 소녀는... 소녀는... 상공께서 삼전사원(三殿四院)에 첩실을 가득 두시더라도 절대 원망치 않을 거예요. 상공께서 정히 잊을 수 없는 분이라면...”

그녀는 울음을 멈추며 애써 또렷하게 덧붙였다.

“억지로 잊으려 하지 마세요.”

이검엽은 한숨을 토해냇다.

“자운... 네게는... 네게는 오직 미안할 따름이다...!”

“상공...”

자운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녀의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어렸다.

“자운...”

이검엽은 그를 꽉 끌어 안았다.

나신과 나신이 접하자 그는 훈훈한 정감(情感)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 자운보다 좋은 여인은 없을 것이다. 자운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나는 사내도 아니다...!)

그는 내심 부르짖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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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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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五 章

 

           내가 바로 그 神僧이다.

 

 

 

검신의 시체는 전무옥의 품에 안긴 채 신검보의 제자들이 모인 곳으로 운반되어가고,

비무대에는 다시 육인의 고수가 올라갔다.

무림황제를 추대하는 비무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취옥성주 북혈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엔 본좌가 지명할 차례인가?]

그때 불쑥 황군성이 나서면서 말했다.

[성주께서 나를 지목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소.]

북혈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목을 한 것이 아니라 지목을 당한 것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때문이다.

기분이 상하기는 하지만 그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것은 또한 그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기에‥‥‥

[건방진 꼬마놈! 죽기를 원한다면 죽여주지.]

[감사하오. 하지만 승부는 겨뤄봐야 아는 것 아니겠소?]

어리고 조그마해 보이는 그가 패기있게 푸른 머리를 한 북혈마를 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즉시 내려가고,

황군성과 북혈마는 대치를 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북혈마도 큰소리는 쳤지만 황군성을 가볍게 보고 있지는 않았다.

황군성이 검을 앞에 세우면서 말했다.

[병기를 뽑으시오.]

[본좌는 평생 이 육장(肉掌) 외에 다른 병기를 써본 일이 없다.]

황군성은 목계신공을 일으켰다.

(철인검으로 승부를 짓자!)

 

한천사방객의 북한객인 냉천삭은 주먹에 땀을 쥐고 비무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평생의 원수‥‥‥

그를 한천사방객의 일원이 되도록 만든 그자가 지금 비무대 위에서 자신이 가르친 제자와 마주서 있는 것이다.

제자가 이긴다면‥‥‥

그는 필생의 한을 푸는 것이 될 것이고,

만약에 제자마저 북혈마의 손에 죽게 된다면 그의 한은 더욱 무거워지리라.

한편,

임단심과 진우란도 가슴을 졸인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단심의 손에는 구룡로가 언제라도 위력을 발휘할 준비를 하고 쥐어져 있었고,

진우란도 섬전사를 발출할 준비를 하고 손에 힘을 모은 상태였다.

일촉즉발의 상태,

갑자기 누군가가 비무대에 뛰어올라가면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잠깐!]

긴장은 삽시간에 흐지부지 되고,

중인들의 시선이 그자에게로 몰렸다.

그자는 여덟개의 포대를 짊어진 늙은 거지,

포대가 여덟개라는 것은 그가 바로 개방의 방주라는 것을 말하는데‥‥‥

그는 바로 입씨름 잘하기로 유명한 개방 방주 유세걸(遊說乞) 홍대구(弘大口)였다.

어째 지금까지 잠잠하다 했더니 기어코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건 뭔가 잘못됐소. 잘못됐소.]

그가 손을 마구 내저으며 말했다.

북혈마가 화가난듯 소리쳤다.

[뭐가 잘못됐단 말이냐?]

개방주 홍대구가 자신의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찍어가면서 말했다.

[생각해보시오. 원래 이 무림황제를 추대하는 대회는 현현궁주의 의견에 따라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되었소. 방파는 방파의 대표자를 내고, 개인은 개인으로 참가할 수 있었소. 한데 내말은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이오.]

개방주 홍대구는 유세거지란 별호가 붙을 정도로 말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그가 뭔가 말하려 하자 사람들은 또 무슨 해괴한 말이 나오나 싶어서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었다.

홍대구가 소리쳤다.

[그것이야 말로 조삼모사(朝三募四)의 얄팍한 수작으로 중인들을 농락한 것이오. 만약에 각 방파가 대표자를 내지 않고 모두 개인으로 출전했다 해도 지금과 결과가 무엇이 다르겠소?]

옳은 말이었다.

잠시 생각해보고 일찍 깨달은 사람들이 소리쳤다.

[옳소! 맞는 말이오!]

홍대구는 자신이 붙는지 입을 함지박만큼 크게 벌리면서 떠들었다.

[또한, 무림에는 각 개인만이 존재하고 힘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오. 혼자일 때는 약하지만 둘, 셋, 그 이상이 뭉쳤을 때는 더할 수 없이 강할 수도 있소. 그런데 그 중에 고수가 없다고 하여 전체적으로는 강대한 힘을 지녔으면서도 그 힘은 묵살되어 버린다면 어찌 불공평한 일이 아니겠소?]

[옳소! 와!]

[잘한다! 홍방주말이 맞소.]

출전자들이 탈락하고 그저 무림황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관전하던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홍대구는 손을 흔들어 그들을 진정시킨 후에 다시 말했다.

[그래서, 이 늙은 거지의 생각으로는 마땅히 방파들의 힘도 겨뤄보아야 옳다고 생각하오. 방파는 대표자의 무공으로만 그 강약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소.]

조용해져 버렸다.

그토록 시끌벅적하던 학선평이 방파들도 힘을 겨뤄야 한다는 한마디에 조용해져 버린 것이다.

방파들의 힘겨루기‥‥‥

그것은 바로 전쟁을 의미함과 무엇이 다른가?

북혈마가 냉냉하게 소리쳤다.

[감히 세력으로서 본 취옥성의 삼절일천군단을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있단 말인가?]

[싸워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오. 삼절일천군단도 최강이라고 소문이 났을 뿐, 실제로 알려지지 않은 곳에 최강이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아니겠소?]

홍대구의 매끄러운 혀가 북혈마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그의 푸른 머리카락이 바람도 없는데 훨훨 날아올랐다.

[네놈들 구파일방이 인재가 매말라 고수를 내지 못하니 별 수작을 다부리는 구나. 만약 한마디만 더 지껄인다면 네놈의 혓바닥을 뽑아죽이겠다.]

바로 그때,

[누가 감히 구파일방에 인재가 없다고 말하는가?]

웅웅-----!

학선평에는 메아리 칠 곳도 하나없는데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나왔다.

그 소리는 하도 웅장해서 하늘과 땅을 가득매우고 있는 듯했다.

북혈마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그 목소리에 깃든 힘은 진정 초유의 것이었으니‥‥‥

황군성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결국 왔구나!]

도신, 위지장천, 청삼객, 남궁파 등의 고수들도 안색이 대변했다.

특히 남궁파의 얼굴은 숫제 흑빛으로 변해버렸다.

오직 한사람 임단심 만이 기쁜 표정을 지을 뿐이다.

북혈마가 주위를 둘러보며 공력을 모아 소리쳤다.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윽!]

[크악! 지 지독한‥‥‥]

내공이 약한 자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하늘 한쪽에서 마치 천신처럼 하강하고 있는 한 중년선비를 볼 수가 있었다.

옷깃을 표표히 날리며 비무대를 향해 천천히 하강하는 중년인‥‥‥

일대 정마(情魔)라고 할까 보기만 해도 여인의 춘정을 우려나게 할듯한 얼굴을 하고있다.

그 헌앙한 기도가 탁월하여 가히 천신을 방불케하는 점이 있었다.

그는 비무대의 중간에 내려섰다.

황군성이 자신도 모르게 포권을 취해보였다.

천하제일인에 대한 경외심이 우러난 것이리라.

무제 임보산이 그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반가운 얼굴은 아니군. 게다가 하고 있는 꼬락서니하고는‥‥‥]

그는 황군성이 어린 소년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지만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때 북혈마가 그의 뒤에서 물었다.

[너는 누구냐?]

[너?]

임보산이 느릿하게 몸을 돌리면서 반문했다.

북혈마로서는 네놈이라고 할 것을 최대한 양보하여 한 말이었다.

그의 실제 나이는 이백 이십여세.

누구를 보아도 하대하는 버릇이 생긴 터였다.

그러나 그는 상대를 잘못만난 것이다.

임보산은 따지듯이 물었다.

[북혈마! 나보고 한 소리냐?]

북혈마는 가슴이 섬칫해졌다.

자신이 북혈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한데,

눈앞의 중년인은 옛날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아닌가?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다는 북혈마가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다!]

[건방진 놈! 그동안 얌전히 코 박고 있길래 귀찮아서 놔두고 있었더니 아주 기고만장하군. 몇 푼어치 되도 안한 무공을 믿고 있는 것이냐?]

임보산의 질책하는 듯한 말에 북혈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다.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다시 임보산이 쏘아 부쳤다.

[구파일방에 인재가 없다고 한것만 해도 큰 죄이거늘 감히 내앞에서 까지 건방을 떨다니 죽어야겠구나.]

중인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중년인은 무림황제를 꿈꾸는 팔인의 절대고수 중 하나인 북혈마의 목숨을 마치 주머니 속의 물건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곳곳에 숨어서 목을 움추리고 있던 전대의 흉마거마(兇魔巨魔)들 슬금슬금 비무대로 다가가 임보산의 뒤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린 것이었다.

그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북혈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눈앞에 있는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어떤 절대자 임을 느낀 것이다.

임보산은 못마땅한 눈으로 북혈마를 쏘아보면서 한손을 들어 하늘 중간을 가리켰다.

그가 신주독존공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그때,

북혈마가 다급하게 물었다.

[당신은 구대문파와 무슨 연관이 있소? 당신은 중도 아니고 도사도 아닌데 어째서 그들을 그처럼 비호(庇護)하는 거요?]

그는 아예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그래, 본좌는 중도 아니고 도사도 아니다. 하지만 한때는 중도 되어보고 도사도 되어보았으며 거지도 되어보았다. 구파일방이 바로 본좌의 사문(師門)이거늘 사문을 모독하는 자를 어찌 그냥둘 수 있겠느냐? 이놈아!]

임보산은 화가 난 듯이 소리쳤다.

그러했다.

임보산의 무공의 근원은 무림의 정종(正宗)이라는 구파일방이었던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림사를 비롯한 무당과 화산 등 구파일방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그들의 무공을 전부 익혔던 것이다.

홍대구 등 구파일방의 사람들은 임보산이 자기들의 동문이라고하자 전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임보산을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림의 공성대사(空性大師)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미타불! 소승은 소림의 공성이외다. 시주께서는 구파일방이 사문이라고 하셨는데 그중에 본사도 들어가는지요?]

[소림사는 구파일방이 아니란 말이냐? 공성 너는 나를 본 적이 없어서 의심하는가 본데, 네가 알기로 지금까지 소림사에서 달마조사이후로 최고의 기재가 누구였느냐?]

임보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미타불! 조사이후로 육조께서 가장 뛰어나다고 전해졌지만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약 이백 년 전에 본사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젊은 신승(神僧)이 계셨다고 합니다. 한데 불행하게도 그분께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입적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장을 하려고 했는데도 몸이 전혀 불에 타지 않아서 탑림에 매장했다고 전해지는데‥‥‥]

공성대사가 소림의 영화를 되살리려는 듯이 길게 늘어놓는데,

임보산이 말을 끊었다.

[됐다. 내가 바로 그 신승 대우(大愚)다.]

충격이었다.

공성대사의 무릎이 허물어지듯 무너지며 부르짖었다.

[태사백조‥‥‥]

그의 뒤를 따라 소림의 전 고수들이 일제히 엎드렸다.

임보산은 대수롭지 않은 듯 그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북혈마를 보며 소리쳤다.

[아직도 죽지 않았느냐!]

북혈마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응대했다.

[당신이 나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소.]

임보산의 얼굴이 서릿발같이 변했다.

그의 하늘을 가리키던 손이 벼락처럼 북혈마를 가리켰다.

순간,

황군성은 번개같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이 자는 제가 죽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임보산이 분노는 극에 달한 듯했다.

그는 말없이 황군성과 북혈마를 노려보았다.

딸이 남편이라고 한 자‥‥‥

생각같아서는 죽여 버리고 싶지만 딸이 무서워서 손을 못쓰고 있는 임보산이었다.

 

한편,

청삼객은 무제 임보산이 나타난 후에도 암중으로 끝없이 남궁파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과연 남궁파는 임보산이 나타난 후 누군가를 향해서 전음을 보내는 것이 청삼객의 눈에 잡혔다.

그리고 남궁파는 지금 표 나지 않게 조금씩 단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단상‥‥‥

무림황제가 쓸 황금면류관과 참전한 모든 고수들은 최고 절학이 기재된 비단을 안감으로 댄 곤룡포가 있는 곳‥‥‥

감시하는 자도 없었지만 감히 무림의 어떤 도둑들도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던 그것들이 있는 단상‥‥‥.

황금관과 곤룡포는 유리로 만든 상자속에 들어가 있는데‥‥‥

청삼객은 남궁파가 다가감에 따라 등뒤에서 삼척길이의 각진 몽둥이같은 것을 꺼냈다.

문득,

이 대회의 주관자로서 비무대의 주위를 살피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그는 비무대를 가운데 두고 남궁세가의 고수들이 이십여장의 거리에서 둘러서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들은 하나같이 긴장된 표정이었고 은연중에 손을 모두 비무대를 향하게 하고 있었다.

불헌듯 청삼객의 뇌리에 스치는 것이있었다.

(그자가 고수들을 모두 죽일 방법이라면‥‥‥화탄(火彈)‥‥‥)

청삼객은 즉시 소리치면서 남궁파를 향해 덮쳐갔다.

[모두 피하시오! 남궁세가가 화탄을 사용하려 하오!]

우르르르------!

그의 손에 들린 각진 몸둥이 같은 물건에서 어마어마한 경력이 쏟아져 나와 남궁파를 덮쳐갔다.

남궁파도 그와 거의 같은 순간에 몸을 곤룡포가 들어있는 유리상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또한,

핑핑핑핑!

그 순간에 사방에서 비무대를 향하여 무수한 화탄이 날아들고 있었다.

[피해라!]

비명같은 소리가 터져 나오고,

남궁파는 청삼객의 경력을 만류귀종의 수법을 펼쳐 끌어당긴 후에 되돌리려했다.

하나,

청삼객은 경력은 특이하여 만류귀종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남궁파의 몸이 튕겨나갔다.

그는 대경실색하며 유리상자를 잡으려 했으나 그 순간에 청삼객의 두번째 공격이 날아들고 있었다.

청삼객의 손에 들렸던 각진 몽둥이 같은 것은 실상 거대한 부채였다.

촤앙!

펼쳐진 부채의 날이 환상처럼 남궁파의 목을 베어오고 있었다.

남궁파는 풍차처럼 몸을 돌리면서 허공으로 높이 솟구치며 비무장을 벗어났다.

그러나,

청삼객의 부채에는 피가 묻어나고 있었다.

남궁파의 가슴에 길게 상처가 난 것이다.

이 남궁파와 청삼객의 대결은 찰라의 순간이었다.

화탄은 날아들고 비무대 주변에 있던 고수들은 화탄을 뚫고 나가려하고 있었다.

펑펑펑!

화르르르‥‥‥

화탄이 터지고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았다.

펑!

무림황제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상자가 박살나며 곤룡포에 불이붙었다.

고수들은 봄철의 메뚜기 뛰듯이 이리저리 뛰면서 화탄이 솟아지는 곳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뜨거워! 살려줘!]

사방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학선평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콰콰쾅!

비무대가 폭발하면서 허공으로 일백 장 가까이까지 불꽃을 쏘아올렸다.

남궁파는 미리 비무대가 설치될 장소 아래에 폭약까지 숨겨두었던 것이다.

아비규환의 초열지옥‥‥‥

비명이 끝없이 울려퍼지고 수 만 명의 무림인들이 질서없이 날아 내리고 있었다.

밟혀서 죽는 자,

앞이 가로막혀 다급함에 검을 빼어 휘두르는자,

또 그에 맞서는 자‥‥‥

서로 달아나려다가 머리를 부딪히는 자‥‥‥

길길이 뛰면서 서로 살길을 도모하다 오히려 죽는 학선평‥‥‥

지옥이 있다면 이곳 학선평이 바로 그 지옥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들은 그 와중에서도 청삼객의 재빠른 말로 인해 어렵지 않게 탈출했으니‥‥‥

 

황군성은 청삼객의 소리를 듣자마자 진우란과 임단심을 향해 날아갔다.

한데,

휙!

그보다 한발 앞서 누군가가 임단심을 나꿔채들고 까마득히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임매!]

그는 진우란의 손을 잡고 날아오르면서 소리쳤다.

임단심을 안고 달려가는 자는 기이하도록 빨랐다.

황군성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쳐지는 실력이 아니었다.

[임매!]

황군성은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그자를 뒤쫓았다.

삽시간에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한줄기 빗살처럼 날아갔다.

황군성은 침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같았다.

진우란이 그의 품에서 전음으로 말했다.

[저를 내려놓고 쫓아가세요. 뒤따라 가겠어요.]

그녀는 황군성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황군성은 말할 틈도 없이 까마득히 달려가는 임단심의 납치범을 쫓아갔다.

진우란은 정신이 얼떨떨했다.

대체 누가 임단심을 납치해간단 말인가?

임단심의 무공도 아주 고강한데 어떻게 저항한번 해보지 못하고 잡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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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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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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