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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쓰러진 劍皇宗

 

 

신비(神秘),

만사(萬事)가 신비 속에 가린 채 무심한 세월은 흘렀다.

과연 그 누구를 위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월이었던가?

 

X X X

 

황막한 산중(山中),

창공을 뒤덮은 시커먼 먹구름에 사위는 음침하기 짝이 없었다.

우_______ 웅!

금시라도 폭우를 몰고올 듯한 일진 광풍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칙칙한 폐사(廢寺),

어느 상고시대의 유물인가?

찬란했던 불존(佛尊)의 유적이었음은 감히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차라리 지옥(地獄)의 입구(入口)인 듯,

불시에 귀신이라도 툭 튀어나올 듯 광풍 속에 음산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한데,

스스스...

이 다쓰러져가는 폐사에 유령같이 스며드는 인영이 있었다.

괴인영(怪人影),

그는 미끄러지듯 대웅전을 향했다.

번쩍!

콰르릉_______

천공(天空)은 발작적으로 뇌성벽력을 토해냈다.

그때 괴인영의 모습이 번갯불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백의몽면인은 거의 무너져가는 불상 옆에 우뚝 서 있었다.

일핏 그의 우수에는 폭이 좁고 긴 한 자루의 도(刀)가 들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쏴_______ 아!

드디어 엄청난 폭우가 산중을 휘몰아쳤다.

거센 폭우는 일시에 폐사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것은 차라리 장관이었다.

천변만화의 역사 속에 퇴락해 버린 폐사의 건물,

대자연의 엄숙한 힘(力)앞에 오히려 더욱 초라해지는 것은...

그 순간 번쩍이는 뇌광을 등지고 또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가 등장했다.

거한이었다.

그는 짐승가죽을 두른 채 날이 두 자나 되는 거부(巨斧)를 차고 있었다.

음침하기는 하나 단아해뵈는 백의몽면인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단지 동일한 것이라면 거한 역시 몽면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쿵! 쿵!

그는 역시 발걸음조차 거한다왔다.

거보(巨步)를 움직여 백의몽면인과 마주섰다.

콰르릉_______

뇌성벽력과 폭우는 점점더 그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

...

백의몽면인과 거한(巨漢),

양인은 그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동시에 초조한 빛을 띄웠다.

아마도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이때였다.

스스스...

뒤미처 다른 두 인영이 장내에 당도했다.

그들은 일남일녀(一男一女)였다.

남자(男子),

흑의를 입은 듯 하나 흐릿한 그림자에 싸여져 그 형체를 분간하기 힘든 괴몽면인,

일견하기에도 그는 음침하고도 흉흉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여인(女人),

그녀는 천하의 요녀(妖女)였다.

거의 속살이 다 들여다 보이는 나의를 걸친 그녀의 몸매,

실로 농염의 극치였다.

불룩하고 잘록함이 분명한 곡선미,

게다가 비록 면사로 가려져 있으나 그윽이 열린 도발적인 눈매가 무척 요염했다.

제각기 특성이 다른 사인(四人),

그들은 서로 대치하듯 사위로 나뉘어 섰다.

...

...

그들의 회합른 분명 미리 계획된 일인 듯 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숨통을 조일 듯한 침묵이 내려앉고 있었다.

콰르릉_______

콰르르_______

쏴아_______

장대밭같은 폭우에 대웅전까지도 뒤흔들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미동도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때였다.

“모두 모였군.”

나직한 일성에 사인은 질겁을 했다.

“헉!”

“아니, 어느새...”

어느틈엔가 불상의 전면에 한 청영이 와 있지 않은가?

전신이 푸르스름한 기류로 뒤덮인 신비의 인물,

그를 보자 사인은 저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으... 이럴 수가...)

(천하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인 우리조차도 감히...)

그들은 내심 찬탄을 발했다.

동시에, 그들은 한결같이 자세를 굳혔다.

“지존을 뵙습니다.”

“그 자리에 모두들 앉으시오.”

신비한 청의인이 명(命)했다.

몹시 위엄이 서려있으면서도 웬지 섬칫하고 냉혹한 음성이었다.

“...!”

“...!”

사인은 모두 말없이 그 자리에 부복했다.

청의인의 눈길이 백의몽면인에게로 향했다.

“백살파(白煞巴)!”

그의 나직한 음성이 백의몽면인을 불렀다.

“옛!”

백의몽면인은 경건한 자세로 청의인을 향했다.

“준비는 되었소?”

“옛! 지존의 분부만 계시면 백살파용사 일만(一萬)이 언제라도 중원을 칠 터입니다.”

그들의 대화는 짤막했다.

이번에는 청의인의 시선이 거한에게로 향했다.

“지옥림(地獄林), 그대는?”

“옛! 지옥림의 삼백육십지옥혈강시(地獄血강屍)는 천하무적입니다!”

거한은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중원이 제아무리 넓다하나 삼백육십지옥혈강시하면 문제없이 멸망을 시킬 수가 있습니다.”

“음.”

청의인의 눈가에 알지못할 신비함이 깃들었다.

“환공강(幻空岡).”

흑의인이 즉시 대꾸했다.

“옛! 지존의 분부 거행했습니다. 중원천하에 이미 일만팔천(一萬八千)의 수하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청의인은 담담히 물었다.

“물론 그 누구도 눈치는 못챘겠지?”

흑의인은 다소 긴장을 풀며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예. 설사 그들과 살을 섞고 있는 계집들일지라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청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끝으로 그는 홍일점의 여인을 응시했다.

“요지(遙池)!”

“예엣.”

그의 시선을 받자 여인은 교구를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입을 떼었다.

“천락환요화(天樂歡妖花) 일천(一千)은 개개인이 천하우물이옵니다.”

그녀의 음성은 확신이 있는 듯 했다.

반면 어떤 두려움에서인지 음성조차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애써 말투를 가다듬으며 덧붙였다.

“아무리 심지가 굳은 자라도 그 아이들에게는 당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

그 말에 청의인은 대답대신 무거운 침묵을 깔았다.

사인의 조마조마한 시선은 오로지 그의 표정에 집중되고 있었다.

이윽고,

“흐흐...”

청의인은 짧고 나직하게 웃었다.

이어 그는 웅후한 일갈을 터뜨렸다.

“때는 왔다______!”

그 한 마디에 사인의 눈빛은 격동으로 몹시 흔들렸다.

뒤이어 청의인은 앙천광소했다.

“으하하... 천하는 그대들의 것이다! 중원천하를 철처히 괴멸시켜 버려라!”

사인은 벌떡 일어나 입을 모아 외쳤다.

“신명을 바쳐 수생하겠습니다!”

청의인은 자족한 미소를 흘렸다.

“천하를 동서남북으로 사분한다. 이날 이후 그대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 점령하라.”

“옛!”

사인은 의기가 투합된 듯 청의인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두눈에 투지와 신뢰를 담은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은 속단이었다.

청의인은 찬물을 끼얹은 듯 냉엄하게 일갈했다.

“천하를 정복하기 전까지는 그대들의 경쟁을 허용한다. 그러나 천하제패 후에는 단 일파만이 본인과 천세를 누리리라!”

파파팟!

일순 사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광폭하게 부딪쳤다.

그들은 내심 똑같이 부르짖고 있었다.

(질 수 없다! 천년! 천 년을 바라던 대업이거늘...)

청의인의 심계는 무한히 깊고도 깊었다.

그들 사인의 암투를 조장하면서도 그는 스스로 침착을 전혀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극히 담담하게 말을 맺었다.

“삼일 후, 천중(天中)으로 모이도록 하시오.”

사인은 일제히 그 말에 허리를 굽혔다.

“속하를 물러가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은 거의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파_______ 앗!

그들은 광풍푹우를 빛살처럼 가르며 사라져갔다.

콰르릉_______!

쏴_______ 아!

이제 청의인의 시야에 남은 것은 오로지 장엄한 대자연의 격동 뿐이었다.

“흐흐흐...”

나직한 괴소.

일순 뇌전같은 신광이 청의인의 두눈으로 번뜩였다.

“때는 왔다. 천 년을 잠들어 있던 사대마파(四大魔派)를 깨웠노라.”

그는 광폭하게 대갈했다.

“흐하핫! 마음껏 짓밟아라! 천하를 피로 씻어라!”

광언(狂言)!

그것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행함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청의인의 광기어린 음성은 광언을 서슴치 않는 것이었다.

천 년을 숨어있던 삼정(三鼎)이 꼬리를 내밀고 그것으로 중원의 대역사는 끝나리라!

폭우!

폭우의 난무는 거칠줄을 모르는 채 천지를 휘몰아쳤다.

허지만 폭우를 가르는 엄청난 장소성!

“우하하하하_______!”

중원이여!

너 그 찬란하고 무궁무진한 역사여!

그것이 과연 광마의 마수(魔手) 이래 짓밟힐 것인가?

그 무슨 괴사를 창출하여 혈(血)의 역사를 점철시킬 것인가_______

 

X X X

 

천중산(天中山).

무려 구천 팔백(九天八百) 척이나 되는 고천봉(孤天峰)이 외로이 우뚝 서 있다.

항시 백운이 감도는 장엄한 산세.

이 천중산역에 한 줄기 외로운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스스스슥...

놀라운 것은 그 인영이 내딛는 일보가 족히 십여 장씩이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실로 가공할 경공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경공의 소유자는 과연 누구인가?

언뜻 선계(仙界)의 신인(神人)을 연상시키는 인물,

검박한 회포노인(灰袍老人).

그는 실상 별다른 특징이라고는 없었다.

단지 고독한 인상에 한 자루 검(劍)을 가슴에 안고 있을 뿐.

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기상만은 결코 변상치 않았다.

형언할 수 없는 웅대무비한 기개.

그에게서는 일대종사(一代宗師)의 면모가 은은히 엿보이고 있었다.

문득 그는 다소 감회 어린 듯 읊조렸다.

산천의구(山川依舊)라... 고천봉은 에나 지금이나 다를바가 없구나...

그의 시선은 담담히 천중산역을 두루 훑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는 부르짖었다.

“허...! 기이한 일이다... 천중산 전체가 살기로 뒤덮이다니...!”

그의 얼굴에 일순 어두운 기색이 스쳤다.

“혹시...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그는 금세 불안과 초조가 깃들었다.

“서둘러야겠구나.”

스스슥...

그는 흐르는 유성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

문득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일백 수십 년을 검날 위에서 살아온 노강호인(老江湖人).

그의 단련된 감각이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었다.

“감히 노부를 노리다니!”

한소리 냉갈이 터졌다.

그와 함께 노인은 무섭게 표정을 바꿨다.

천군만마라도 일거에 흩어버릴 듯 그의 눈에서 불꽃이 작렬했다.

“나와랏_______!”

노인은 무시무시하게 폭갈했다.

한데, 그때였다.

콰르릉_______!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십 장 밖에 있는 거대한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노인은 아무런 행동도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사태는 분명 노인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

그것은 심즉살(心卽殺), 즉 이사동기(以思動氣)의 경지가 아닌가?

고금을 통틀어 이런 통천가공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 과연 몇아니 되겠는가.

이때였다.

“흐흐흐...!”

음산한 괴소와 함께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슥...!

백의몽면인.

그는 길고 끝이 굽어진 기형의 도(刀)를 비껴든 채 유령처럼 나타났다.

노인은 그를 보자 노성을 발했다.

“네놈은 누구냐? 누군데 감히...”

“검황종(劍皇宗)...!”

백의몽면인은 슬쩍 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곤 음산하게 덧붙였다.

“오늘 이곳에서 죽어주어야겠다.”

검황종,

이 대단한 이름을 지닌 노인은 코웃음을 날렸다.

“허헛... 그대 애송이 실력으로 본인을 베겠다고?”

과연 아름답게 그는 자신의 검을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러나 백의몽면인 역시 녹녹치 않은 인물이었다.

예의 음산한 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흐흐... 그렇다면 이것부터 한번 보시지?”

휙!

웬 보자기에 싸인 물체가 검황종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파_______ 앗!

그것은 허공에 못박힌 듯 멈칫했다.

그 순간 보자기가 그대로 풀어지고 싸여던 물체가 드러났다.

한데 놀랍게도 그 물체는 중년남녀의 수급이었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죽어간...

“억!”

검황종은 그 남녀를 아는 듯 대경실색했다.

아울러 순간적으로 그의 신형은 휘청 균형을 잃었다.

콰릉_______

순간 검황종의 겉으로 흐릿한 그림자가 스치며 맹격을 퍼부었다.

크_______ 으!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검황종은 신음을 토해냈다.

이 광경에 백의몽면인이 경악하여 부르짖었다.

“이런! 쓰러지지 않다니!”

실상 검황종이 괴인영으로부터 받은 일격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범인(凡人)으로서 그것을 받았다면 천살박살을 면치 못했으리라.

한데 그때였다.

스스슥...

또 다른 인영들이 그곳에 출현했다.

그들은 한 명의 거한과 나삼만을 걸친 요염한 여인이었다.

“흐흐흐...”

검황종은 어이없는 사태에 한번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피눈물보다 더 진한 고통의 표현이었음에랴_______

뒤이어 그는 처절히 부르짖었다.

“네놈들이 성아(聖兒) 부부를...!”

언제부터인가 그의 허리는 완전히 짓뭉그러져 콸콸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하나 그는 자신의 상세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단지 분노로 이글거리는 무시무시한 안광을 폭사시키고 있었다.

백의몽면인은 그를 조롱하듯 득의에 찬 음성으로 외쳤다.

“그렇다. 그러나 염려마라. 네놈 늙은이도 이제 곧 이 두 년놈의 뒤를 따를 것이다!”

검황종은 이를 뿌드득 갈며 검(劍)을 들었다.

“죽이리라! 검(劍)을 봉(封)한지 채 일갑자도 못되었으나 네놈들을 죽여 성아부부의 원한을 갚으리라!”

쩌_______ 엉!

드디어 검이 뽑혀졌다.

“우훗!”

백의몽면인을 비롯한 사인은 감히 무시를 못한 채 경계를 취했다.

보검(寶劍),

그것은 가공할 광채를 발하며 중인을 압도했다.

삽시에 삼십여 장 밖까지 검광(劍光)으로 뒤덮이는 순간이었다.

“으하하하핫! 죽어랏! 건곤멸절파(乾坤滅絶破)!”

피를 토하는 듯한 일갈을 터뜨리며 검황종은 일검(一劍)을 날렸다.

콰릉!

“이얍!”

사인도 지지않고 각기 이와 맞섰다.

콰릉!

엄청난 대격돌,

일인(一人)대 사인(四人),

그러나 보라!

피투성이가 되어 주르륵 밀려난 것은 사인쪽이었다.

“크으... 이렇게 강할 줄이야!”

“으으...”

그들은 저마다 경악으로 두눈을 부릅떴다.

검황종은 폭풍노도와 같이 다시 검세를 격출했다.

“천참만륙을 내리라! 굉폭혈살뢰(宏暴血煞雷)!”

콰르릉!

천중산을 온통 뒤덮는 검광(劍光)!

그것은 첫번 공격과는 엄청나게 배가된 기세였다.

“으으...!”

“허억!”

사인은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상대가 아니다! 지존(至尊)에 버금가는,...)

그들은 단 한 명도 감히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뻣뻣이 굳고 말았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츠츠츠츳!

갑자기 가공할 파공성이 천지를 메웠다.

그것은 검황종의 등뒤에서 기척도 없이 순식간에 폭사된 것이었다.

미처 검황종의 태세를 갖출 사이도 없었다.

그는 전광처럼 검을 휘둘렀다.

콰릉!

순간 검황종이 휘두른 검고아은 그 순간 박살이 나고 말았다.

“크아_______ 악!”

검황종의 처절한 비명이 천중산을 메아리쳤다.

박살난 가슴을 안고 그는 십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타당!

그의 보검이 허무하게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

“...!”

사인은 넋이 너긴 듯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잃고 있었다.

스스슥!

순간 그들 주위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 지존...!”

사인은 기척이 난 쪽을 향해 일제히 부복했다.

언제부터 였던가?

그들을 굽어볼 수 있는 높직한 곳에 서 있는 흐릿한 청영(靑影),

청영으로부터 지극히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보같은... 검황종이 비록 천하무적이라하나 네 명이 하나를 감당 못하다니...”

그 음성은 당당한 한편 천만근 무게를 지닌 듯 사인을 억눌렀다.

사인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청영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검황종은 죽었다. 고금무적으로까지 접근하던 그를 쓰러뜨렸으니 그대들을 저지할 강자는 이제 중원에 없다.”

청영은 멀리 천중산역을 둘러보는 듯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엄숙히 덧붙였다.

“가랏! 이제 그대들의 뜻을 마음껏 펼쳐 보라.”

“지존!”

사인은 감격한 듯 청영을 우러러 보았다.

이윽고 그들은 청영으로부터 떨어져 각기 다른 곳으로 사라져갔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나자 청영은 신형을 돌려 스르르 격전의 현장으로 내려섰다.

이젠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검황종이 뿌린 혈흔(血痕) 위에 주인을 잃은 고검이 떨어져 있을 뿐,

청영은 능공섭물로써 가볍게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그 고검을 빨아 들였다.

“검황종... 그대는 너무 강한 것이 잘못이었다.”

청영(靑影),

천하최강임을 단연코 입증시킨 인물,

분명 그는 검황종을 꺾었다.

음산하게 흘려내는 웃음,

“흐흐... 그대의 손녀만큼은 본인이 잘 기를 것이다.”

그것은 득의와 조소가 어울린 것이었다.

이어 그 역시 장내를 등졌다.

스스슥...

그가 사라지자 남은 것은 이제 무엇인가?

침묵과 고요,

사자(死者)의 망혼(亡魂)은 말조차 잊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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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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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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