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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4장 

 

           검에 죽은 검신 (2)

 

 

 

휙!

한줄기 그림자가 비무대위로 날아올라갔다.

[아버지!]

부르짖으며 황급히 전득무를 껴안는 그는 전무옥이었다.

그때,

챙그랑!

전연옥의 발사이에 꽂꽂하게 서있던 전득무의 청강검이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전연옥의 안색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청강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알았던 것이다.

우연히 내던졌던 것같은 청강검은 검신의 노련한 경험과 절묘한 임기응변이 결합된 마지막 승부수였던 것이다.

한박자 느리게 어검술을 수법으로 전연옥의 복부를 관통했어야 할 청강검이었다.

전연옥은 청강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녀가 자신의 목을 노리는 힘을 느꼈을 때 이미 그녀의 복부도 위험아래 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녀가 전득무에게 검기를 내쏘기 전에 먼저 솟아오르며 그녀의 배를 찔렀어야 할 청강검이 그 자리에 꼿꼿히 서있다가 쓰러진 것이었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전무옥의 품에 안긴 전득무가 힘없이 말했다.

[그런 표정 지을 것없다. 네가 이겼으니 네 말이 옳다. 무슨 이유에서든 간에 너와 네 어미를 버린 것은 내 잘못이었다.]

전연옥은 멍하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서 물었다.

[그럼 왜‥‥‥?]

[조금 시간이 있을 듯하니 모두 말해주마. 너도 잘 들어라.]

전득무의 말에 전무옥도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원래 쇠락해가는 신검보의 세째아들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신검보는 강호에서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군소방파 중의 하나에 불과했지. 나는 세째였지만 너희들의 할아버지는 내게 가장 기대를 걸고 있었다. 두 형의 자질은 평범한 것이어서 신검보를 중흥시킬 수 있는 재목이 아니었던 것이지.]

전무옥이 그의 명문혈에 진기를 주입시키면서 말했다.

[아버지만큼 뛰어난 인재가 또 어디 있었겠습니까?]

전득무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 중 인재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네 누이를 보아라. 어린 나이에도 이 아비를 이기지 않았느냐?]

전연옥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전득무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무대의 중간에 꽂힌 낙일검의 검집이나 마찬가지로 서있는 것이다.

전득무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신검보를 중흥시킬 대임을 맡기는 했지만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단다. 신검보의 검술은 당시 내가 생각해도 삼류에 불과했지. 강호에 나가 새로운 검술을 구하던 중에 만났던 사람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도신 범강 형이고‥‥‥]

도신과 황군성, 진우란, 임단심 등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도신이 말했다.

[전형‥‥‥! 따지고 보면 우리의 죄업이 적지 않소이다. 나 또한 필경은 전형과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오.]

전득무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내 이야기를 끊지 말아주시오.]

그의 살아온 지난 날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쓰러져가는 가문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범강을 만난 전득무는 그와 사귀면서 그의 재능에 크게 감탄하고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그때부터 서로가 필적할 만한 상대였던 것이다.

함께 무림을 돌아다니면서 무공을 구했으나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그때 그들에게 손을 뻗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재능을 높이 산 것이다.

그자는 두 사람에게 제의하기를 자신을 위해서 일해준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무공비급을 주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몇 가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들은 구파일방의 절예를 비롯한 강호 제파의 검법과 도법이 기록되어있는 것이었다.

전득무는 상대가 많은 것을 제시하는 만큼 요구하는 것도 많으리라고 생각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신도보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것에 잠시 눈이 먼 범강은 그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범강이 너무 쉽게 수락해버리자 전득무는 오히려 반발심으로 거절해버렸고,

범강은 그자를 따라가고 전득무는 홀로 다시 강호를 떠돌았다.

그런데 약 일년 쯤 지났을 때 우연히 북경에서 전득무는 다시 범강을 만났다.

범강의 무공은 이미 몰라볼 정도로 강해져 있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은밀한 곳에서 범강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털어놓았고,

자신이 금제를 당해 그자의 손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을 말했다.

[그때 범형은 그자가 반역을 도모하는 자라고 했지. 범형은 반대파를 척결하는 일을 맞고 있었던 것이고‥‥‥나는 범형을 통해서 그자에 대한 것을 세세한 것까지 알았다. 하지만 나는 범형만이 무공이 강해진 것에 또한 반발심이 생겨 이번에는 왕부에 몸을 의탁하고 말았지. 그자의 가장 강한 적수라는 영왕부에‥‥‥]

황군성은 깜짝 놀랐다.

(검신이 아버지가 말했던 그 전삼이란 고수였구나‥‥‥그자란 분명히 마왕을 말하는 것인데‥‥‥그럼 마왕은 황실에 있었단 말인가?)

전득무의 말이 이어졌다.

[한데 나는 영왕부에서 언감생심 감히 영왕전하의 금지옥엽이신 혜명공주(慧明公主)님을 뵙고 나서 그만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가문의 부흥이고 뭐고 모두 잊고서 오직 공주님 곁에서 죽을 때까지 섬길 수 있기만을 바랐지. 한데‥‥‥내가 모시던 공주님은 그자가 보낸 자들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때 호위무사들 가운데서 오직 나혼자만이 살아남았는데 공주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나는 그자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떠났지.]

황군성은 생각했다.

(검신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줄로 알았구나. 그것이 장계취계의 나도 속이고 적을 속인다는 계략이었음을 몰랐구나.)

전득무는 가짜 주혜린이 죽는 것을 보고 상처입은 몸으로 떠난 후에 기연을 얻어 무광검을 얻게 되었다.

무광검은 한장의 양피지에 적혀진 검공(劍功)이었으니,

그는 그것을 암기한 후에 태워버렸다.

자신이 미약한 내공으로는 무광검을 완성하기에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범강을 찾아갔다.

정확하게는 범강이 섬기고 있는 마왕이란 자를 찾아간 것이다.

마왕은 그의 머리속에 금제를 심고는 그가 원하는 영약과 비급, 모든 것을 지원했다.

전득무는 무공이 깊어지면 마왕을 죽여 혜명공주의 복수를 할 생각이었는데‥‥‥

전득무가 전연옥에게 말했다.

[마왕이 누구였는지 아느냐? 바로 네 어미의 오라버니인 구문제독 하후승(夏厚勝)이다.]

범강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구문제독 하후승‥‥‥

영왕과 쌍벽을 이루는 세도가로 대명의 모든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전연옥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그녀의 어머니이자 마왕 하후승의 동생이었던 하설지(夏雪芝)는 전득무를 보자마자 그에게 깊이 빠져들었고,

전득무는 하후승에게 의심을 받지 않기위해서도 그녀를 멀리할 수 없었다.

마왕의 휘하에서 범강과 전득무는 두개의 산맥과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에 하후승도 자신의 여동생 하설지가 전득무를 선택했다는 데 대해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하설지의 전득무에 대한 사랑은 간절한 것이었으나 전득무의 마음속에는 오직 혜명공주만이 있었고,

혜명공주를 위해 하후승을 죽여 복수해야 한다는 마음만 있었기에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크기가 같지 않은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바퀴는 기어코 수레를 옆길로 가게 하기 마련‥‥‥

한편,

마왕은 전득무와 범강으로 하여금 강호에 신검보와 신도보를 다시 일으킬 것을 명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것은 모두 그의 무림장악을 위한 교두보였던 것이다.

하여튼,

마왕의 직접적인 지배에서 벗어난 두 사람은 무림에서 진반가반(眞半假半)의 대결을 해마다 벌임으로 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당당히 무림의 칠대세력에 들었고,

전득무는 부모의 강박으로 하설지가 모르게 옛날의 정혼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다.

마침내 알게된 하설지는 전득무의 아내를 죽이고 임신한 몸으로 신검보를 뛰쳐나갔다.

전득무가 붙잡으려면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랑이라고는 없었던 그는 그녀를 보내고 말았다.

훗날 하설지와 똑같이 생긴 전연옥이 그를 찾아왔을 때에도 그는 좋아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곁에 두기는 했으나 하설지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내심 꺼려지기조차 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전득무에게 한을 품고 있었으니‥‥‥

차라리 전득무는 그녀가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랐고,

실제로 황군성이 나타났을 때 그녀가 죽을 것이라 예상하고 내보내기도 했던 것이다.

전득무의 말을 다들은 전무옥이 전연옥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네 어머니는 내 어머니를 죽였는데, 그것도 모자라 너는 내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게 하느냐?]

전연옥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 그럼‥‥‥내가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것은‥‥‥누구‥‥‥누구 때문이었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왜‥‥‥왜‥‥‥? 그래도 아버진 어머니에게 잘못한 것은 있어. 죽어도 할말이 없을 거야‥‥‥하지만‥‥‥나는‥‥‥내가 뭘 잘못했어?]

그녀의 반문은 흐느낌과 절규로 높았다.

도신이 전무옥과 전연옥을 달랬다.

[사람의 일은 다 이런 것일세. 누구나 한을 가지고 있네. 다만 그것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 다를 뿐‥‥‥자네들은 그래도 같은 아버지를 가진 남매일세. 더 이상 잘못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네.]

[으아아아-----!]

갑자기 전연옥이 미친 듯이 소리치며 허공을 밟고 까마득히 날아가버렸다.

전득무가 탄식하며 말했다.

[사랑도 분수에 맞아야만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네. 범형, 나는 곧 죽을 것이네. 내 아들을 잘 돌봐주게나.]

범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단심이 말했다.

[검신께선 아직 살아나실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살아나신다면 따님이 부친을 살해했다는 죄를 범한 게 안되지 않겠어요?]

검신이 말했다.

[임소저에게 그런 방법이 있음을 믿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그 아이는 부친을 살해하지는 않았네.]

[…………?]

[…………?]

[범형은 내 뜻을 알것이오.]

범강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야.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기억하도록 해라.]

검신은 전무옥을 앞에 앉히며 전음으로 무형검의 구결을 빠르게 두번 읊었다.

그런데 그가 두번 째 읊을 때는 이런 말이 들어있었다.

 

-----제갈공지를 조심해라. 그가 네게 독을 썼던 자다.

 

전무옥이 어떤 표정의 변화를 드러내기도 전에 검신이 물었다.

[다 기억했느냐?]

[예‥‥‥아버지‥‥‥]

갑자기 검신은 두 손으로 전무옥의 얼굴을 와락 붙잡고 당겼다.

그리고,

마치 사랑하는 여인에게 하듯이 그의 입에 자신의 입을 갖다댔다.

짧은 순간,

검신의 무형검의 검기와 내공이 전무옥의 몸으로 옮겨갔다.

그것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점차 그의 몸에서 녹아 그의 것이 될 것이다.

사람들의 놀람속에서 입을 뗀 그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들릴락말락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아이를 용서해라‥‥‥내 마지막 부탁이다‥‥‥]

그의 눈동자가 풀리며 범강을 응시했다.

범강은 탄식하면서 전득무의 사혈을 짚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검의 달인 검신은 이렇게 죽었다.

자식에게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을 듣지 않게 하기위해 친구에게 마지막을 부탁했던 그‥‥‥

그의 죽음에 무림인들은 일세를 풍미한 절대고수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청삼객이 떨어져 있는 낙일검과 검집을 주워들며 중얼거렸다.

[낙일검‥‥‥태양을 떨어뜨린다는 낙일검‥‥‥조금도 그말이 틀리지 않았구나. 주인의 아버지를 베었으니‥‥‥]

흔히 아버지는 해, 어머니는 달에 비유된다.

낙일검은 기묘하게도 해를 떨어뜨린다는 그 이름처럼 주인의 아버지를 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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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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