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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슬픈 情事

 

 

드넓은 정원(庭園),

잘 가꾸어진 관목들이 즐비했다.

휘늘어진 가지.

우수수...!

추풍(秋風)이 볼 때마다 가지 끝에 달린 이파리가 바르르 떨었다.

단풍 든 홍엽(紅葉)이 어느새 낙엽을 떨구려 함인가?

널찍한 연못.

시원한 추수(秋水)가 건듯 부는 바람에 자잘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 연못이 자리한 가산(假山)은 온통 기이한 암석들이 가득했다.

암석들 사이로는 한 채의 정자(亭子)가 있었다.

기암괴석들에 싸인 이 정자는 마치 선계(仙界)의 누각인 양 자연과 벗하는 듯 하였다.

 

정자 안,

한 명의 청년이 정좌하고 있었다.

침묵과 고요가 그 청년을 감쌌다.

“...”

청년은 무심히 연못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 중이었다.

초탈한 외모,

모습은 완전히 선계의 누각인 듯한 정자와 동화된 것이어서 결코 범속치 않아 보였다.

마치 한 마리 학을 보는 듯 그에게는 고아한 기품이 흘렀다.

아! 이검엽,

바로 그였다.

그가 지금 머무는 곳은 바로 북경(北京)의 승상부(丞相府)였던 것이었다.

그는 이미 보름 전에 이곳에 돌아왔다.

하지만

침묵에 싸인 그의 얼굴에서는 일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어전시를 치르고 난 후라면 당연히 겪는 불안과 초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표정에는 깊은 수심이 어려 있었다.

그의 뒤,

자운(紫雲)이 어느새 와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삼단같이 틀어올린 채 다소곳이 그의 곁에 앉았다.

이검엽은 나직이 신음했다.

“휴...”

자운은 그의 신음에 슬픈 눈길을 보냈다.

벌써부터 그녀는 이검엽의 번민도 알고 있었다.

여인만이 가지는 직감이랄까?

그녀는 이검엽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에 대해서도 대충 짐작을 하였다.

(저분은... 필시 누군가 아름다운 분을 못잊어 저러시는 것 같구나...)

자운의 고개는 푹 떨구어졌다.

(못난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 내가 미흡하여 저분의 마음을 잡아 드릴 수 없음이 안타깝구나...)

또르륵...!

맑은 옥루(玉淚)가 숙여진 얼굴로부터 치마폭 위로 굴렀다.

그녀는 이검엽에 대한 원망이란 추호도 없었다.

오직 자신에 대한 자책만이 앞설 뿐이었다.

(내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왔다면... 저분이 저런 번민에 빠지지 않도록 해드리련만...)

“휴... 우...”

또다시 흘러나오는 이검엽의 한숨.

자운은 자신의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검엽,

그는 과연 냉심(冷心)의 사나이인가?

곁에 애처로운 심경의 여인을 두고 다른 여인만을 생각하는 것인가-------

(잊을 수가... 도저히 잊을 수가...)

그는 내심 부르짖듯 되뇌이고 있었다.

하지만

실은 그 자신 역시 스스로 당혹을 금치 못하는 처지였다.

일별하며 스친 짧은 순간의 대면.

그것이 주는 느낌은 오히려 처절한 상처였다.

잊으려 무진 애를 쓸수록 명확히 떠오르는 신비한 얼굴,

그 얼굴은 매혹적인 미소로 자신을 유혹하였다.

“...!”

이검엽은 문득 생각 난듯 품에서 봉황금차를 꺼내었다.

봉황금차,

자세히 보면 그것은 양끝이 극히 여리하게 세공이 된 일종의 암기였다.

만일 무길로 쓴다면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검엽에게 있어 그 봉황금차에 담긴 의미는 단 한 가지였다.

신비여인이 지녔던 물건,

그녀의 머리를 아름답게 장식시켜 주었던 비녀.

그것으로서 그는 충분했다.

봉황금차를 만지작거리며 그는 신비여인의 환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반면,

그는 갈등 속을 헤매기도 했다.

(이검엽아. 자운에게 미안하지도 않으냐? 자운은 이제껏 묵묵히 기다려 오지 않았더냐?)

그렇다.

이검엽의 본심은 자운을 충분히 이해하고 아끼는 것이었다.

또한 그녀에 대한 미안한 마음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와서 자운을 버리면... 자운이 너무 불쌍하다...)

생각이 자운에게로 치닫자 그는 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명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고개를 힘껏 내젓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나...)

일순 그의 얼굴조차 몹시 일그러졌다.

우두둑...!

그의 손이 닿았던 난간의 한부분이 으스러졌다.

걷잡을 수 없는 심경에 내리누르는 순간,

자단목으로 된 난간이 순식간에 가루로 화하다니...

그것은 인력(人力)이 아닌 신력(神力)이었다.

그러나 그를 본 이검엽은 씁쓸히 부르짖었다.

(신력을 지닌들... 십만 권, 아니 백만 권의 서적을 읽은들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 내마음 하나 가누지 못할진대 모두 허사가 아닌가...!)

그때,

자운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깼다.

“무슨 일이냐?”

자운은 멀찍이 시립해 있는 시녀를 향해 물은 것이었다.

그 말에 시녀는 공손히 대꾸했다.

“승상께서 퇴청(退廳) 하셨사옵니다. 퇴청하시자마자 소부주님과 아씨를 모셔오랍시는 분부가 계셨사옵니다.”

자운은 차분하게 시녀를 물렸다.

“알았다. 물러가 있거라.”

“네.”

시녀가 대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자운은 살며시 이검엽의 뒤로 가까이섰다.

그녀의 태도는 침착하고도 부드러웠다.

자신의 동요로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갸륵한 심정의 바로일까?

그녀는 차분한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공자님, 승상께서 퇴청하시어... 뵙고자 하신다 하옵니다.”

어쩔 수 없는 미미한 떨림.

이검엽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돌아 앉았다.

자운의 고개는 푹 꺾이고 말았다.

“...!”

“...!”

잠시 두 남녀 사이에는 침묵이 오갔다.

하나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은 피차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아닌가?

이검엽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순간 어렵게 그의 입이 열렸다.

“자운...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아니, 버릴 수... 없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마치 자신에게 다짐하듯 한자 한자 힘주어 말했다.

“공... 공자님...!”

자운은 당황하여 멈칫했다.

그 순간,

이검엽은 그녀의 허리를 와락 끌어 안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풍요한 머릿결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참아다오. 창해가 마르는 한이 있더라도 자운... 너만은 버리지 않겠다!”

자운은 이검엽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소리없이 오열했다.

그녀의 마음은 이검엽에 대한 끝없는 연민으로 가득했다.

(얼마나 괴로우신가? 얼마나 괴로우시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자운의 뜨거운 눈물이 이검엽의 가슴팍을 적셨다.

옷깃이 젖어듬을 감지한 이검엽은 마음을 많이 추스릴 수가 있었다.

돌연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결의가 떠올랐다.

(결심하자...! 내 마음 하나에 되는일... 자운을 내 사람으로... 그러면 그 여인의 환상을 잊을지도...!)

그는 벌떡 일어섰다.

“가자. 아버님은 어전시의 결과를 가져오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님께 드릴 소청이 있다.”

그는 말을 맺기도 전에 성급히 정자 밖으로 나섰다.

“...?”

자운은 다소 아연했으나 이내 그를 따라나섰다.

그러나 이검엽의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자운의 걸음은 그를 따르지 못했다.

“잠깐 참아다오.”

이검엽은 돌아섬과 동시에 자운을 번쩍 들어 안았다.

“어... 머머... 공... 공자님!”

자운은 대경실색하며 발버둥쳤다.

“...!”

이검엽은 대답대신 나는 듯한 걸음으로 정원을 빠져 나갔다.

자운도 이제는 체념한 듯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

월동문(月洞門)을 지나고-------

웅장한 전각들이 속속 그들의 시야를 지나갔다.

그들이 그 곳을 지날 때,

시립해 있던 하인과 시녀들이 난색을 지으며 황망히 고개를 숙였다.

이검엽은 총총걸음으로 자운을 안고 계속 나아갔다.

자운은 그만 얼굴이 새빨개져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말았다.

이윽고,

그들은 취의청(聚議廳)에 당도했다.

“이... 이제... 그만 내려 주시어요.”

자운은 수줍은 듯 애원했다.

“...”

이검엽은 여전히 묵묵한 채 그녀를 가만히 내려 놓았다.

이어,

그들은 나란히 취의청 안으로 들어갔다.

“허허... 엽아(葉兒)! 어서 오너라.”

굵직하고 우렁찬 음성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의 정면에는 두 명의 남녀(男女)가 앉아 있었다.

육십이 넘은 듯한 노인(老人)과 극히 허약해 뵈는 사십대(四十代)의 여인(女人)이었다.

바로 이검엽의 부친과 모친이었다.

방금 말한 음성은 바로 부친의 음성임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이검엽의 부친(父親) 이성진(李聖眞),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丞相)답게 위엄과 후덕함이 엿보이는 인물이었다.

또한 강직한 기개가 넘쳐 황가(皇家)의 충신(忠臣)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검엽의 모친(母親).

이 여인은 이검엽의 생모(生母)이나 승상에게는 후실(後室)이었다.

무자(無子)인 처지에서 상처(喪妻)한 승상과 혼인해 그녀는 이검엽을 출산한 것이었다.

하나 그녀는 본시 몹시 허약했었다.

한데 현재는 그래도 한 가닥 혈색이 감돌았다.

그것은 바로 천지곤룡의 쓸개를 이검엽이 복용시킨 덕분이었다.

그녀는 아들인 이검엽을 보며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퇴청하셨사옵니까?”

이검엽과 자운은 승상부처(夫妻)에게 나란히 큰절을 올렸다.

승상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오냐! 내 기쁜 소식을 가져 왔다.”

“...!”

자운은 살포시 미소했다.

하나 반면, 이검엽은 오히려 담담하기만 했다.

이성진은 흐뭇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네가 어전시에 장원을 하였다. 그것도 발군(拔群)하여 황상(皇上)께서 크게 기꺼워 하셨느니라.”

이검엽은 담담히 대꾸했다.

“모두 아버님과 어머님의 덕입니다.”

이성진은 여전히 미소를 띄웠다.

“그래서 황상께서는 내일 너를 입궐(入闕)시키라 명하셨다. 아마도 네게는 어사(御使)가 봉직(奉職)될 것이다.” 

그의 음성은 아들의 일로 인해 기쁨을 감추지 못한 듯 매우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이검엽의 모친은 달랐다.

그녀는 아들의 얼굴에서 어른거리는 짙은 그늘을 발견한 것이었다.

“네 안색이 말이 아니구나. 무슨 걱정이라도 있느냐?”

모친의 음성에는 따스한 염려가 깃들어 있었다.

이검엽은 황급히 이를 부인했다.

“아... 아니옵니다. 어머님.”

일순 그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보다 아버님 어머님께 소자 소청이 있습니다.”

이성진. 아들의 기분을 알아차리자 그의 안면에 깔렸던 미소가 가셨다.

대신 심각하게 물었다.

“그래 말해 보아라. 이 애비가 들어 줄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 주마. 오늘은...”

그는 아들의 기색을 살피며 은근히 덧붙였다.

“네가 어전시에 장원했음이 발표된 날이 아니냐?”

이검엽은 부모님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가 있었다.

또한 독자인 자신에 대한 그들의 기대도 알고 남았다.

그는 이러한 것들로 더욱 마음을 다졌다.

(그렇다. 내가 마음을 잡고 안팎으로 충실해야만이 부모님들께도 효도가 되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옵고, 외람되오나... 자운과 하루 속히 가정을 이루고 싶습니다.”

“공자님! 어찌 저같은 것을...!”

곁에 섰던 자운이 황망히 그를 만류했다.

승상 부처(夫妻)는 일순 전혀 뜻밖인 듯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성진이 파안대소했다.

“네 부탁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느냐?”

“네. 면구스럽습니다.”

이검엽의 얼굴도 다소 붉어졌다.

부친 이성진은 유쾌한 듯 우렁차게 말했다.

“하핫... 그것은 네가 부탁할 일이 아니라 애비가 먼저 부탁하고 싶었던 일이다. 애비도 죽기 전에 어서 손자녀석을 안아 보아야하지 않겠느냐?”

“...!”

이검엽의 얼굴에 미미한 미소가 흘렀다.

자운.

그녀는 이순간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만사를 그대로 순응하면 그 뿐이었다.

이때,

이성진이 일어나 이검엽과 자운의 엎으로 다가왔다.

이어 드는 두 사람을 일으켜 서로의 손을 쥐어 주었다.

“당장에라도 혼인을 시키고 싶구나. 허헛...”

그는 흡족한 듯 웃으며 자운을 보았다.

“운아(雲兒)야. 하루 빨리 튼튼한 손자 녀석을 안겨 주어야 하느니라.”

자운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번엔 이검엽의 모친이 그녀에게 당부했다.

“운아. 네가 지금껏 잘해온만큼... 앞으로도 엽아(葉兒)를 잘 보필해 주어야겠구나.”

“명... 명심... 하겠습니다.”

자운은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겨우 대꾸했다.

이성진은 호쾌하게 두 젊은이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허헛...! 자! 이제 나가 보아라. 식은 곧 올릴 것이니 그 동안 다정히 지내고들 있거라!”

“물러가겠습니다.”

이검엽은 자운을 데리고 부모의 면전을 떠났다.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진 후,

이검엽의 모친이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상공... 아무래도... 엽아에게 무슨 걱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성진 역시 무거운 음성이었다.

“흠. 그런 듯 하구료. 하나...”

그는 자소 밝게 덧붙였다.

“자운이 있질 않소? 현명한 아이니 엽아의 근심을 크게 덜어줄 것이오.”

 

***

 

조용한 전각(殿閣).

이검엽과 자운의 거처로는 아주 적당한 곳이었다.

아담하고 깨끗한 정실.

이검엽과 자운이 마주하고 있었다.

자운은 다소 어색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차를... 올리겠습니다.”

“아니다, 자운 이리 오너라.”

이검엽은 다소 강하게 그녀를 끌어 당겼다.

“...”

자운은 입을 다문 채 다소곳이 그의 코앞에 섰다.

이검엽은 그녀의 손을 꼭쥐었다.

“자운... 지금 당장은 큰 사랑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평생 자운을 버리지는 않겠다.”

자운의 입술이 바르르 떨었다.

이검엽.

자운은 그를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순간에도 다른 여인을 생각라도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한평생 자신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자운은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말할 수 있었다.

“상... 상공... 의 사랑하심... 천... 비는 감당키 어렵습니다.”

그 말에 이검엽은 입술을 지즈시 물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여인.

항시 자신을 보살펴 주며 자기 곁을 지키던 여인.

자운을 두고 다른 여인을 생각하는 자신의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자운...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웠던 여인이었다. 차라리 이 기회에 자운을 내사람으로...)

그는 눈빛을 빛내며 자운을 보았다.

(나를 자운에게 완전히 구속시키면 번민을 잊을 수도 있다.)

이검엽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어 그는 자운의 옷섶으로 손을 가져갔다.

“...!”

일순 자운의 처녀지신(處女之身)은 흠칫했다.

결코 예사롭지 않은 손길.

그러나 자운은 피하지 않았다.

스르르 눈을 내리 감으며 그녀는 그의 손에 자신을 맡겼다.

“자운... 나는 자운을 갖고싶다.”

속삭이듯 나직한 이검엽의 음성.

자운은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이윽고,

자운의 옷섶이 풀렸다.

사르르륵...!

가벼운 음향과 함께 그녀의 상의가 흘러 내렸다.

뽀얗고 동그란 어깨에 이어 빨간 젖가리개가 나왔다.

이검엽의 떨리는 손끝이 젖가리개를 떼어냈다.

아! 물결치는 유방이여.

불긋한 두 개의 젖무덤은 고혹적인 매력을 뿜어냈다.

거기에 달린 두 개의 상큼한 포도알.

이검엽의 시선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자운은 부끄러운 듯 낮게 신음하며 두 손으로 유방을 가렸다.

이검엽은 서두르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자신의 가슴이 식기전에 그는 일을 치르고 싶었던 것이었다.

스르륵...

그녀의 하의가 한꺼번에 모두 벗겨져 내렸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신.

빙기옥골(氷肌玉骨).

뽀얗게 피어 오르는 듯한 탄력있는 피부.

솟을 곳은 제대로 솟고 꺼질곳은 움푹 꺼진 현란한 곡선미.

평소에 따스하게만 느껴지던 자운의 육체는 이 순간 폭발적인 매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검엽의 동정(童貞)은 이끌리듯 그녀에게 흡수되었다.

하늘(天)이 내린 본분이랄까?

순양지체(純陽之體)와 순음지체(純陰之體)의 교합(交合)은 뜨겁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으윽...! 음...”

일순 자운은 고통에 겨운 신음을 흘려 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자 그녀는 깊은 쾌락의 늪을 지나고 있었다.

이검엽.

첫순간의 성급함과는 달리 그의 육체는 서서히 타올랏다.

그는 끊임없이 노를 저었다.

자운(紫雲)이란 고요했던 바다는 그에 의해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허억...!”

“아아...!”

두 남녀의 신음이 뒷섞이며 그들은 더욱 뜨겁게 타들어갔다.

끈끈한 율동과 율동.

“흐으윽...”

희디흰 교구가 절정을 향해 돌진했다.

“허억...!”

이검엽도 절정을 향해 돌진했다.

격렬한 몸부림으로 그는 자운을 정복하고야 말았다.

“아아아아-------!”

꺼져들어가는 듯한 자운의 신음이 그의 귓전을 울렸다.

자운의 여인 손톱은 그의 등을 마구 찍어대고 있었다.

까마득한 희열의 나락.

거대한 입을 쩍 벌린 그 곳에 두 사람은 휩쓸리듯 빨려 들었다.

이검엽은 현실을 모두 잊었다.

이 순간 그가 느끼고 있는 살과 살의 교점 뿐이었다.

그는 인간의 육체가 지닐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윽고,

격렬한 동작은 모두 멎고 그들의 가슴은 포만감으로 가득했다.

이검엽은 자운의 귓볼을 씹으며 꿈꾸듯 중얼거렸다.

“아... 보고 싶었소 소저! 당신과 이렇게...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당신을...”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자운은 쾌락으로부터 순식간에 동떨어져 버리는 충격을 받았다.

(아... 이 분은 나를 다른 여인으로 착각하고 계시는구나...)

자운의 눈언저리는 금세 젖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검엽에게서 몸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힘주어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사랑해요... 상공... 당신이 누구를 생각하시든지... 저는 오직 상공만을...”

그녀의 낮은 속삭임이 이검엽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 이런! 내가 큰 실수를,...)

그는 단번에 몸이 식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미끄러지듯 가만히 그는 자운의 몸에서 내려왔다.

나란히 누운 두 남녀(男女).

자운은 소리를 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끝없이 솟아 나와 배갯머리를 흠뻑 적셨다.

“...!”

이검엽은 그녀에 대한 죄책감에 몹시 난감했다.

그러나 결코 변명따위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솔직히 털어 놓았다.

“자운... 미안하구나... 내 본심은 이게 아니었다. 그녀의 환상을 잊으려 한 것이 그만 네게 상처를 입히고 말았구나.”

자운은 흐느끼며 그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흑흑흑...!”

이어 그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말했다.

“아니어요... 소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예요.”

“자운...!”

이검엽은 부르짖듯 신음했다.

자운이 다시 말했다.

“흑... 소녀는... 소녀는... 상공께서 삼전사원(三殿四院)에 첩실을 가득 두시더라도 절대 원망치 않을 거예요. 상공께서 정히 잊을 수 없는 분이라면...”

그녀는 울음을 멈추며 애써 또렷하게 덧붙였다.

“억지로 잊으려 하지 마세요.”

이검엽은 한숨을 토해냇다.

“자운... 네게는... 네게는 오직 미안할 따름이다...!”

“상공...”

자운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녀의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어렸다.

“자운...”

이검엽은 그를 꽉 끌어 안았다.

나신과 나신이 접하자 그는 훈훈한 정감(情感)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 자운보다 좋은 여인은 없을 것이다. 자운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나는 사내도 아니다...!)

그는 내심 부르짖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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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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