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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血洗四覇

 

 

 

바로 그 순간,

그들을 제지하는 것이 있었다.

“친구들! 그만 하는 것이 어떻겠소?”

착 가라앉은 침착한 음성.

“누구냐?”

백의인들은 대경실색하며 급히 돌아섰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얼굴에는 조소가 어렸다.

그들을 막아선 인물.

그는 무명의 청년서생이었던 것이었다.

백의인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냉소했다.

“흐흐... 책벌레... 네놈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

“싱거운 놈!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과연 그들이 이렇게 나올만 했다.

청년서생,

기실 그는 수려하고 초탈한 외모이긴 하였으나 무(武)자도 모르는 백면서생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청년서생은 그들의 태도를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당당히 대꾸했다.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를 베려는 것은 결코 명예롭지 못하오.”

그늠 무우를 베듯 딱 잘라 말했다.

“그 정도에서 그만 그치시는 것이 좋겠소이다.”

“이런 찢어죽일 놈!”

백의인들은 몹시 분개한 듯 욕설을 퍼부어댔다.

“크크... 감히 본파가 하는 일을 방해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구나!”

“소원이라면 네놈의 목도 날려 주마!”

그들은 천래비룡을 베려던 장도를 청년서생에게 겨누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들은 멈칫할 뿐 선뜻 손을 쓰지 못했다.

청년서생.

그는 바로 이검엽이었다.

아! 그렇다!

이검엽은 이미 신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정인군자(正人君者)의 품위를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이검엽의 일신에서는 은연중 서생답지 않게 은근히 만인을 누루는 듯한 기도가 번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

쓰러져 있던 천래비룡은 걱정스럽게 그를 만류했다.

“귀공! 귀공같은 문사가 참견할 일이 아니니 어서 물러서시오.”

“...!”

이검엽은 대답대신 묵묵시 묵령신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백의인들은 마치 감전되듯 흠칫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그들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실소했다.

“크크... 그래도 한 가닥 하는 놈인줄 알았더니...!”

묵령신검.

기실 외양으로야 그것은 한낱 고철덩어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백의인들은 상대를 얕보는 마음이 생기자 살기를 띄우며 덮쳤다.

“뒈져랏-------!”

쐐------- 액!

두 자루의 장도가 금세 이검엽을 양단할 듯 날아왔다.

(헛!)

이검엽은 흠칫하며 물러났다.

아무래도 첫 실전이라 긴장한 것이다.

그것을 본 백의인들은 더욱 기세가 등등했다.

“크크... 죽어랏!”

사삭-------!

다시 장도가 이검엽을 그어갔다.

하나 다음 순간,

파파팟----!

장도는 마치 철벽을 두드린 듯 모두 튕겨지고 말았다.

“엇! 이런...!”

“이런 변이 있나?”

백의인들은 안색이 대변한 채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때였다.

위------- 잉!

웅후한 음향과 함께 수많은 묵령신검의 검영이 난무했다.

“그것... 용조파뢰!”

천래비룡이 질겁을 하여 외쳤다.

다소 어색하고 서툰 검세.

하나 그것은 분명 자신이 사용한 용조파뢰식(式)이었던 것이었다.

캉-------!

“크아악!”

과연 용조파뢰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인의 백의인 중 한 명의 단말마가 뒤를 이었다.

“끄르륵------!”

아, 보라!

백의인의 쩍 갈라진 가슴은 시뻘건 선혈을 뭉클뭉클 쏟아내고 있었다.

그의 장도는 박살이 난지 오래였다.

“...!”

천래비룡은 놀라움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검엽은 씁쓸히 중얼거렸다.

(죽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난생 처음의 살인에 이검엽은 다소 당혹해진 것이었다.

한데 그 순간,

“죽일 놈! 가랏-----!”

쐐------- 액!

마지막 남은 백의인의 장도가 날아들었다.

“헉!”

이검엽은 총망중 다급성과 함께 발을 움직였다.

스슥!

간발의 차이로 그는 무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본파의 잔마보(殘魔步)!”

천래비룡이 다시 경악성을 터뜨린 순간이었다.

위------- 잉!

묵령신검의 검신에서 한 무더기 검기가 작렬했다.

천래비룡은 아예 대경실색이었다.

“신... 신룡비운까지...!”

그렇다!

그것은 바로 거의 정확한 진마보요, 신룡비운이었다.

“크아악!”

백의인은 처참한 비명을 토해냈다.

그의 오른팔은 장도를 쥔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는 시뻘건 피가 콸콸 솟는 어깨를 움켜쥐며 부드득 이를 갈았다.

“크으... 두고 보자!”

휘------- 익!

백의인은 오던 방향으로 몸을 날려 도망을 쳤다.

“으음...!”

이검엽은 낮게 신음했다.

도망치는 백의인을 보면서도 그는 따라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보다 그는 착잡한 심정이 되어 죽은 자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무의식 중이라지만 사람을 죽이다니...)

그는 새삼 자신이 한일에 대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한데 문득,

그는 주위가 너무 조용함을 느꼈다.

“...?”

기이한 생각에 그의 시선은 천래비룡쪽을 돌아다 보았다.

천래비룡.

그는 벌써 가부좌를 튼채 운공요상을 하고 있었다.

(저것은 무엇하는 자세일까?)

이검엽은 그러한 모습을 처음 본지라 유심히 살폈다.

스스스...!

드디어 천래비룡의 몸에서는 희뿌연 기류가 솟아올랐다.

이어 그 기류는 점차 그의 전신을 휩쌌다.

(기이하군.)

이검엽은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긍정적으로 나섰다.

(무엇인가 큰 이유가 있어 저런 일을 하는 모양인데 방해자가 나타날지 모르니 지켜주어야겠군.)

이검엽은 묵령신검을 거두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범인(凡人)보다 백 배는 뛰어난 그의 시력(視力)과 청력(聽力).

그는 백 장 내에서 기어가는 개미를 보며 벌레가 풀잎 건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 누구보다 완벽한 호법(護法)을 설 수 있었던 것이었다.

잠시 후,

“귀공!”

그는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천래비룡이었다.

신과이 번뜩이는 얼굴.

천래비룡의 모습은 조금 전과는 달리 굳건한 기백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귀공 덕분에 이제 견딜만하게 되었소이다.”

그는 이검엽을 향해 진심으로 감사했다.

“완전치는 못하나 그래도 몸을 움직일만은 하니 모두 귀공 덕분이오이다.”

그 말에 이검엽은 미소로 답했다.

“별 말씀을... 그보가 웬만큼 회복되셨다니 천만다행이구려.”

이어 그는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소생 이검엽이라 합니다. 일개 백면서생이오이다.”

천래비룡은 마주 웃었다.

“아! 이공이셨구료. 소제는 곤륜 문하(門下)의 막운비(莫雲飛)라는 사람이오이다.”

이어 그는 정식으로 깊이 읍했다.

“위급한 지경에 도와 주셔서 무어라 감사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오이다. 그저 약간의 힘이 있어 쓸데 썼을 뿐 대단치 않은 일이오.”

이검엽의 말에 천래비룡은 두눈을 빛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온데... 소제는 놀랐습니다. 이공께서는 어디서 폐문의 무공들을 연마 하시었소? 특히 운룡등천소법은...”

이검엽은 멋쩍게 웃었다.

“다른 곳에서 배운 게 아니오. 그저 아까 막형께서 펼치신 것을 보고 흉내만 좀 내봤소이다.”

“예엣? 흉내라고요?”

천래비룡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운룡등천소법을 흉내를 내다니-------

그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기 힘든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었다.

 

운룡등천소법(雲龍騰天嘯法),

이것은 본래 오식(五式)으로 되어 있었다.

한데, 백년(百年) 전,

곤륜쌍선(崑崙雙仙)이 실종되면서 후이식(後二式)이 실전되었다.

하지만

그 나머지 삼식(三式)만으로도 천하제일소법이라 불리웠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유는 간단했다.

복잡함과 절묘함으로써 가히 완벽을 구가하는 소법인 때문이었다.

 

막운비는 다소 황망히 물었다.

“이... 이공께서는 그럼 신안공(神眼功)이라도 익히신 것이오?”

“아니외다. 소생은 무공에는 문외한이오.”

막운비는 더욱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엄청난 내공을 지니셨소?”

그의 손가락이 한 백의인의 시신을 가리켰다.

“아까 이 자를 베실 때 보여주신 내력(內力)은 적어도 일갑자 이상의 수련이 있어야만 가능하거늘...”

“소생은 내공이 무엇인지 내력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오이다.”

이검엽은 나직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단지 기연으로 신력(神力)을 얻을 수 있었소.”

“신... 신력이라 하시면...?”

막운비는 다소 더듬거리며 물었다.

“소제는 쉽게 이해하기가 힘드오이다.”

그 말에 이검엽은 미소하며 죽은 자의 부러진 장도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보검은 아니었다.

하나 백 번을 단련하여 만든 이른바 백련정강(百鍊精鋼)이었다.

“보십시오.

이검엽은 그것을 움켜 쥐었다.“

그 순간,

우지직!

백련정강으로 된 도신은 박살이나고야 말았다.

막운비는 대경했다.

“이... 이럴 수가!”

이어 그는 다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도(刀)에 베이신 것 같았는데...”

막운비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배여 나간 옷자락으로 언뜻 보인 속살,

그 곳에는 손톱만한 상처도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의 놀라움은 거의 극에 이르고 있었다.

(기... 기인이다!)

그의 시선은 뚫어져라 이검엽을 주시했다.

겉보기에는 유약하기 그지없는 서생,

그러나 그에게 이렇듯 엄청난 내력이 존재할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문득,

그는 이검엽의 전신에서 발산되는 기(氣)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실로 태산고도 같은 기개였다.

그는 내심 외치듯 부르짖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향후 백 년내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될 기인을 만나고 있는지고 모른다.)

천래비룡 막운비.

그는 비로소 산위에 있음을 실감했다.

교만한 것은 아니나,

자신의 무공에 대해 매우 자신해 오던 터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앞에 있는 이 신비한 인물을 통해 그는 보다 넓은 천하를 느낀 기분이 되었다.

(정말... 너무도 그릇이 큰 인물이다.)

일순 그의 눈에는 호감이 어렸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침착을 찾은 듯 낮게 말했다.

“이 곳은 안전치가 못합니다. 언제 적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우선 이곳을 떠나십시다.”

“그렇게 합시다.”

이검엽은 선뜻 수긍했다.

사실 그로서도 상대방이 한눈에 마음에 들었던 것이었다.

그는 천래비룡 막운비의 말에 따라 그 곳을 떠나려 흑풍을 불렀다.

“흑풍! 오너라.”

히힝!

흑풍은 이검엽의 부름에 나는 듯 달려왔다.

“신마(神馬)인 것 같소이다.”

막운비는 흑풍을 보자 감탄한 듯 말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소이다.”

이검엽은 가볍게 웃어보이며 그에게 권유했다.

“자! 함께 타십시오.”

천래비룡은 고개를 저었다.

“하하! 아니외다. 소제의 경공은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합니다. 제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휘------- 익!

막운비는 재빨리 앞서 몸을 날렸다.

“흑풍, 가자!

이검엽은 얼른 말을 몰아 그의 뒤를 따랐다.“

 

두두두두...

이인(二人)과 일기(一騎)는 질풍처럼 산중을 내달았다.

이검엽은 전면에서 달리고 있는 막운비를 응시했다.

천래비룡 막운비,

그는 의호답게 멋지고 쾌속하게 신형을 놀리고 있었다.

끔찍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신룡이 비상하듯 날고 있었다.

이검엽은 큰소리로 외쳤다.

“대단하오. 막형!”

천래비룡 막운비는 대답 대신 뒤돌아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한데 문득,

이검엽의 시선이 이채를 띄었다.

그는 막운비가 계속 여덟 가지 동작을 반복하며 날아가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치솟고, 허공을 가르고-------

회전하는가 하면 투이겨지는,

(대단한 몸놀림이다. 비록 여덟 가지지만 그 안에는 무려 칠백 이십(七百二十) 가지의 변화가 있다.)

이검엽은 내심 감탄하는 한편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으음! 그 중의 현기(玄氣)가 너무 깊어 일시에 모두 알 수 없음이 아쉽구나.)

이검엽,

그의 시력은 과연 놀라왔다.

천래비룡 막운비가 펼치는 경공,

그것은 운룡대팔식이었다.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이는 공히 곤륜의 최고비학(最高秘學)이다.

본시 운룡대팔식은 곤륜의 개파조사(開派祖師)인 운룡상인(雲龍上人)이 창안한 것이었다.

고금일절(古今一絶),

이는 절기 중 절기라 할 수 있는 경공술이었다.

하나 천여 년을 거치며 실전되었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그것은 다시 재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곤륜쌍선,

바로 이 두 사람에 의해 운룡대팔식의 맥(脈)은 다시 이어진 것이었다.

 

천래비룡 막운비,

그는 사실 운룡대팔식을 의도적으로 펼치는 중이었다.

모든 자세를 반복하여 펼쳐내고 있는 그는 내심 만족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지금은 비록 서샹에 불과하나 틀림없이 거인(巨人)이 될 인물... 그에게서 운룡대팔식이 빛을 발한다면 조사께서도 탓하지는 않으시리라...)

전면을 향한 그의 얼굴에는 얼핏 미소가 번졌다.

이윽고,

스스슥...!

두두두두...

그들은 극히 험준한 절봉(絶峯)에 이르렀다.

흑풍은 이검엽을 실은 채 나는 듯 절봉을 뛰어 올랐다.

이번에는 막운비가 뒤로 처지며 대소했다.

“하하... 과연 신마(神馬)로군! 이 험한 산봉을 날 듯이 올라가는구나!”

드디어 흑풍은 하늘을 찌를 듯한 절봉의 봉두(峯頭)에 섰다.

고천봉(孤天峯).

그곳에 우뚝 선 흑풍은 마치 구름에 몸을 묻은 것 같았다.

그러나 흑풍은 숨이 약간 거칠어졌을 뿐 조금도 힘들어 하지 않았다.

“대단한 친구로군 그래.”

막운비는 뒤따라 올라와 흑풍의 등을 두드렸다.

이어 그는 마상의 이검엽에게 말했다.

“이 정도 왔으면 그 자들도 쉽게 찾지는 못할 것이외다.”

“그럴 것 같소이다.”

이검엽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이검엽과 막운비는 널찍한 반석 위에 마주 앉았다.

“막형께선 어쩌다 이토록 심한 상처를 입으셨소?”

이검엽이 물었다.

그는 마치 오랜 지기(知己)를 대하듯 걱정스러운 어투였다.

막운비는 그의 그러한 감정을 느낀 듯 두눈에 따스함이 어렸다.

“괜히 걱정을 끼쳐 드린 것 같소이다. 외상보다 내상이 문제지만...”

막운비는 씁쓸히 웃었다.

“한 열흘 면벽요상하면 완치야 되겠으나...”

돌연,

그는 어조를 바꾸어 심각하게 물었다.

“이공께선 무림에 대해 아시오?”

이검엽은 갑작스런 질문에 어리둥절한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런 세계가 있다고는 들었으나 그에 관해선 전혀 모르오이다.”

“이공이야 모르시겠지요.”

막운비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공께서도 어쩔 수 없이 무림에 관계하시게 될지도 모르겠소이다.”

이검엽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시오?”

막운비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외다. 이공께 드릴 말씀이 아니었는데 소제가 그만 실수한 것 같소이다.”

“...?”

이검엽은 의아했으나 입을 다물었다.

“...!”

“...!”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럿다.

이윽고,

이검엽이 무거운 분위그르 깨듯 먼저 입을 열었다.

“무림이란 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하구려...!”

막운비는 일순 멈칫했다.

하나 그는 마음을 정한 듯 두눈을 빛냈다.

“학문과는 다른 길... 무공일도(武功一道)의 천하, 그것이 바로 무림이오.”

이검엽은 반문했다.

“무공일도...! 그렇다면 무(武)만을 숭상하는 세상이겠구료.”

“그렇소이다.”

막운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림의 역사(歷史)를 설명했다.

본시 무림은 두 가지 맥(脈)이 있었다.

첫째-------

그것은 천여 년 전 천축의 파사국(婆巳國)의 왕자(王子)의 달마선사(達磨禪師)에게서 비롯되었다.

달마선사.

그는 천축에 근원을 두고 있으나 그곳의 무공을 중원(中原)으로 이식(移植)시켰던 것이었다.

두번째-------

그것은 중원 본토(本土)에서 자생(自生)하여 사천여 년 동안을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던 도가(道家)의 일맥(一脈)이었다.

이 두 가지 맥은 정(正)을 지향하여 이른바 정파(正派)라 지칭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여 발족된 것이 바로 사파(邪派)였다.

사파는 정(正)에 대응키 위해 급속히 대공(大功)을 이루려했다.

그 결과로 사파는 사악한 술수로써 무공을 연마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곧 사파인들의 심성을 사악(邪惡)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말을 하던 막운비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데... 당대에 들어 갑자기 사(邪)가 융성하여 무림을 어지럽히고 있소이다.”

이어 그는 다시 덧붙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금 무림.

무림은 지금 사파의 농간에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경에 놓여 있었다.

돌연 나타난 거대한 사의 집단들.

 

백살파(白煞巴).

지옥림(地獄林).

환공강(幻空岡).

요지(遙池).

 

이들 집단은 각기 무림제패를 부르짖으며 동서남북(東西南北)에서 엄청난 혈풍(血風)을 몰아오고 있었다.

 

동(東)의 환공강.

서(西)의 요지.

남(南)의 지옥림.

북(北)의 백살파.

 

그들이 지나는 길은 그야말로 혈로(血路)였다.

최근 들어 그들은 단 일년(一年) 사이에 무려 사백여 개의 군소문파를 괴멸시키거나 사파에 병합시키고 있었다.

이들의 세력은 실로 엄청났다.

그로 인해 무림은 이들을 혈세사패(血洗四覇)라 부르고 있었다.

 

이검엽은 눈쌀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정파라는 인물들은 수수방관이라도 한단 말씀이시오?”

“그럴 리야 있겠소이까?”

막운비는 얼른 부인했다.

“우리 구파일방(九派一幇)이 보다 못해 십파연맹(十派聯盟)을 맺고 대항하려 했소이다. 한데...”

그는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 쥐었다.

“어떻게 비밀이 새어 나갔는지 십파연맹의 최초 회합 장소를 백살파와 지옥림의 정예고수들이 급습했습니다.”

비분강개!

막운비의 두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십파의 고수 일천(一千)은 허무하게 전멸을 당했소.”

이검엽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럴 수가... 사전에 비밀이 새어나갔다함은 십파 내에 간세가 있었겠구료.”

“분하지만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소이다.”

막운비는 격분하는 한편 우울하게 덧붙였다.

“소제는 간신히 사지(死地)를 탈출했으나 십파의 수뇌인 일백(一百)분들의 생사를 알 길조차 없으니...”

그는 탄식하듯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이제는... 오래 전에 은거하신 일종사성(一宗四聖)께서 재출도하시어 이 난국을 타개해 주시기를 빌밖에 별도리가 없소이다.”

이검엽은 내심 그의 염려에 공감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일종(一宗)과 사성(四聖)이라 하심은...?”

그 말에 막운바는 다소 활기를 되찾은 듯 대꾸했다.

“일종(一宗)은 백 년내 절대무적이시던 한분 무종(武宗)을 말하외다. 그분은 검황종(劍皇宗)이라 불리시던 분으로 고금무적(古今無敵)으로까지 여겨지던...!”

그는 갑자기 안색이 홱 변하며 말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오, 막형?”

“백살파의 마도들이오.”

막운비는 벌떡 일어나며 산 아래쪽을 가리켰다.

십여 리 밖.

여러 개의 백영(白影)이 유유히 산봉을 오르고 있었다.

“저자들... 경공으로 보아 소제로서도 감당키 어려운 고수들일 것이외다.”

막운비는 이검엽의 손을 굳게 쥐었다.

“이곳에서 일다경만 계시다가 소제가 가는 반대쪽으로 가십시오.”

이검엽은 섬칫하며 부르짖었다.

“막형? 혹시... 막형께서는...!”

막운비는 싱긋 웃으며 그의 말을 막았다.

“걱정마십시오. 소제를 따라잡을 자, 천하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의 두눈에는 강한 신념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공을 만나 뵙게되어 정말 기뻤소이다.”

그는 손에 힘을 주어 이검엽의 손을 한번 꽉 쥐고는 이내 몸을 날렸다.

휘------- 잉!

그의 신형은 바람처럼 허공을 날았다.

“우------- 우------!”

웅후한 장소성.

그것을 남긴 채 막운비는 동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러자,

백영, 즉 백의인들은 즉시 장소성을 따라 동쪽으로 향했다.

이를 본 이검엽은 낮게 중얼거렸다.

“음. 내가 위험에 빠질까보아 적을 유인한 게로군.”

그는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막운비를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진심으로 사귀어볼만한 친구다.”

그는 허공을 응시하며 다시금 막운비의 준수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곧,

그는 몸을 돌렸다.

“막형의 고심을 헛되게 할 수는 없다. 괜히 섣부르게 나서기보다는 차라리 자리를 피해 주어야겠다.”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그는 선뜻 흑풍에 올라탔다.

“흑풍! 우리도 이곳을 어서 떠나자!”

히힝...!

두두두...!

흑풍은 질풍같이 절봉을 달려 내려갔다.

 

헌데 절봉의 중간지점쯤 되었을까?

깎아지른 단애를 달릴 때였다.

슈------- 욱!

돌연 뼈끝까지 스미는 한기가 쇄도했다.

“헛!”

이검엽은 흠칫했다.

그 순간,

그는 벌써 흑풍의 등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파------- 앗!

한 자루의 얇은 유엽비도가 그의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실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간발의 차,

그것으로서 그는 위기를 모면한 것이었다.

히힝...

놀라 울부짖는 흑풍의 등으로 이검엽은 사뿐히 내려섰다.

휘르르...

그리고 도중 그는 내심 몹시 놀랐다.

(내가 이렇게 할 수가 있다니...!)

그렇다!

그는 무의식중 막운비가 펼쳣던 운룡대팔식을 그대로 시전한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훌륭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로 인해 마수(魔手)에 걸려들줄이야...

“흐흐흐...운룡대팔식을 쓰는 것을 보니 곤륜의 잔당인 모양이로구나.”

스스스슥...!

음산한 괴소를 흘리며 유령같이 다가드는 괴인영!

아!

그것은 다름아닌 백의인들의 무리 중 일인(一人)이었다.

“...!”

이검엽은 그를 보자 흠칫했다.

백의인.

그가 풍기는 위압감에 절로 긴장이 앞섰다.

(이 자... 아까 상대했던 자들보다 몇 배는 강한 자일 것이다.)

문득 이검엽의 시선이 백의인의 소맷부리를 보았다.

그 부분에는 보기에도 섬칫한 한 자루의 핏(血)빛 장도가 수놓아져 있었다.

(저것은 아마도 이 자의 신분이나 무공 정도의 표식인가 보군. 아쨋든...)

이검엽은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켰다.

(우선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이윽고.

그는 짐짓 태연히 입을 열었다.

“귀하는 무슨 연유로 소생을 암습하는 것이오?”

백의인은 무시무시한 살과을 뿜어내며 대꾸했다.

“흐흐흐... 구파일방의 잔당은 한 놈도 살아서 천중산(天中山)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시치미를 때봐야 네놈은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이검엽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귀하는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소. 소생은 구파일방파는 아무런 관계도 없소이다.”

“흐흐... 곧 죽을 놈이 말이 많군!”

백의인은 귀찮다는 얼굴로 선뜻 차고있던 기형장도를 뽑았다.

그 순간,

쐐------ 액!

언제 그었는지 엄청난 도기(刀氣)가 이검엽을 엄습했다.

“헉!”

이검엽은 얼굴로 쏟아 부어지는 엄청난 기운에 대경실색했다.

“웃!”

그는 일순 전력을 다해 뒤로 후퇴했다.

하나 그는 휘청하며 가슴을 감싸 안았다.

“크으...”

그는 나직이 신음하며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길게 찢어진 옷자락.

그리고 속살을 벤 흐릿한 혈흔.

(대단한 쾌도(快刀)였다. 게다가 족히 천 근(千斤)의 무게가 실려 있다.)

이검엽은 내심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쉽게 그어댄 단 일도(一刀)!

만일 그가 천지곤룡의 피로 목욕을 하여 도검불침이 못되었던들 지금쯤 아마 가슴이 쫙 갈라졌을 것이다.

피부만 약간 갈라졌을 뿐 그는 별반 부상을 입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 이런...!”

백의인이 황망히 부르짖었다.

그는 사실 정확하게 이검엽을 베었다.

하지만

이검엽은 멀쩡하지 않은가?

(실... 실수였겠지.)

백의인은 스스로 위로하듯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재차 살기를 띄우며 장도를 움켜 쥐었다.

이검엽은 내심 머리를 굴렸다.

(대단한 쾌도... 내 실력으로 대하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지금은 도(刀)을 치켜든 상태이니 아까보다 배는 빠른 도세가 펼쳐질 것이다.)

스르릉-------

그는 묵검을 뽑아 들었다.

(저 자의 쾌도를 깨는 길은 정면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나의 피부는 다행히 이지간해선 찢기지 않으니...)

이때,

백의인이 그를 보며 싸늘하게 냉소했다.

“크크... 그것도 검(劍)이라는 것이냐? 그것으로 날 상대하겠다고?”

백의인의 얼굴에는 잔뜩 조소가 어렸다.

그러나 다음 순가,

이검엽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음...”

백의인은 낮게 신음했다.

그는 그 순간 이검엽의 범상치 않은 기도를 동감한 것이었다.

이윽고,

양인은 각기 도(刀)와 검(劍)을 든채 서로 대치상태가 되었다.

휘------- 익!

스산한 산풍이 양인의 옷자락을 스쳤다.

양인의 긴장감은 더욱더 팽배해 갔다.

 

<제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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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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