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에 해당되는 글 366건

  1. 2023.06.30 [만상지존보] 제 12장 잠룡의 출세
  2. 2023.06.29 [만상지존보] 11장 마병 수라혈도를 얻다.
  3. 2023.06.28 [만상지존보] 제 10장 전대기인들의 시체
  4. 2023.06.27 [만상지존보] 제 9장 일만구의 시체, 그리고 천고기연
  5. 2023.06.26 [만상지존보] 제 8장 수라천마동부의 기연
  6. 2023.06.25 [만상지존보] 제 7장 천황음경, 고금최강의 음공
  7. 2023.06.23 [만상지존보] 제 6장 적룡검의 비밀
  8. 2023.06.22 [만상지존보] 제 5장 우내사천황의 전설
  9. 2023.06.21 [만상지존보] 제 4장 동굴 속의 괴인
  10. 2023.06.20 [만상지존보] 제 3장 천마애의 참극
  11. 2023.06.19 [만상지존보] 제 2장 처절한 부정
  12. 2023.06.17 [만상지존보] 제 1장 쫓기는 부자 8
  13. 2023.06.16 [만상지존보] 서문과 서장 1
  14. 2021.06.19 [천병신기보] 제 61장 영웅 대 마웅 (완결)
  15. 2021.06.17 [천병신기보] 제 60장 대혈륜
  16. 2021.06.15 [천병신기보] 제 59장 마굴에 가다.
  17. 2021.06.14 [천병신기보] 제 58장 잉태한 여인
  18. 2021.06.13 [천병신기보] 제 57장 혈종천하
  19. 2021.06.12 [천병신기보] 제 56장 팔황천병, 그 신비를 벗다.
  20. 2021.06.10 [천병신기보] 제 55장 대천황연, 억겁의 기우
  21. 2021.06.09 [천병신기보] 제 54장 천마지벽
  22. 2021.06.08 [천병신기보] 제 53장 우주혈종 등장
  23. 2021.06.07 [천병신기보] 제 52장 철혈묵사, 쓰러지다.
  24. 2021.06.06 [천병신기보] 제 51장 천극 대 태양천화신창
  25. 2021.06.05 [천병신기보] 제 50장 위기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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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二 章

 

                   潛龍出世

 

 

 

 

동굴 안!

“...!”

“...!”

두 노소(老少)가 앉아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희미한 야명주 불빛 아래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

군무현과 신기황, 바로 그들이었다.

신기황은 여전히 웅덩이 속의 지극음령수액에 잠긴 채 상반신만 드러내 놓고 있었다.

군무현, 그는 신기황과 마주보는 위치에서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말없이 가운데 뜨겁게 엉켜들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인간적인 유대가 형성되었다.

철천지한을 품고 무표정한 침묵으로 일관해온 군무현, 결코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괴인(怪人) 신기황, 그들 두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고 있는 것,

그것은 정()! 바로 뜨거운 정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순수한 감정이 아니겠는가?

문득, 신기황의 엄격한 얼굴에 한가닥 희미가 미소가 떠올랐다.

이어, 그는 먼저 침묵을 깨고 너털웃음 떠올렸다.

헛허... 벌써 오년(五年)이 지났는가?”

그는 감회가 깃든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오년(五年), 그가 천마애에 떨어져 무공을 연마한 지도 벌써 오년이 지났다.

병약한 십오세 소년에게이제 천하를 짊어질 헌앙한 기품의 약관 청년으로 성장한 군무현, 그의 변화는 실로 눈부실 지경이었다.

신기황, 그는 그런 군무현의 변화를 지켜보아 오면서 흐뭇한 심정을 금할길 없었다.

하나, 인간사(人間事) 만남이 있으면 이별(離別)도 있는 법, 마침내 두 사람은 이별의 날을 맞았다.

그러기에 무거운 침묵이 동굴 안을 메우고 있었던 것일까?

신기황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며 입을 열었다.

어느덧... 너는 과거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이상으로 강해졌다. 허허... 천하무림이 아연실색할 것이다!”

그는 대견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예전과 달리 인자하고도 부드러웠다.

“...!”

군무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나, 그는 진정어린 눈빛으로 신기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돌아올 때는... 반드시 만년빙지(萬年氷芝)를 구해올 것입니다!”

 

만년빙지(萬年氷芝)!

만년(萬年) 동안 얼음 속에서 자라는 전설의 영약, 신기황을 지극음령수액의 금제로 묶고 있는 무형화린산의 독기는 바로 만년빙지로만 해독이 가능했다.

 

신기황, 그는 군무현의 말에 씁씁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없다. 노부의 나이 이미 백팔십이 넘은지 오래다. 살만큼 살았으니 괜한 심기 쓰지 말거라!”

“...!”

군무현은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는 추호도 그 뜻을 꺾지 않을 의지가 엿보였다.

신기황은 고개를 흔들며 내심 중얼거렸다.

(녀석... 무슨짓을 해서라도 만년빙지를 구해오겠군!)

그는 대견함을 금치못하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더할 수 없이 흐뭇한 마음과 함께 군무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느꼈다.

그때, 군무현이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가능한... 빨리 돌아와 어르신네를 모시겠습니다!”

그는 무표정했으나 신기황은 잘 알고 있었다. ()으로 응어리진 차디찬 그의 내심에는 누구보다 뜨겁고 진실한 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신기황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무림에 나가거든 신기곡(神機谷)의 아이들을 돌보아다오. 그 아이들은 풍진에 묻히기를 싫어하지만 혼탁한 세상이 그들을 편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진지한 어조로 군무현에게 당부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신기곡(神機谷)! 그것은 신기황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문파였다.

이윽고, 군무현은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신기황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삼배(三拜), 그는 연이어 공손히 삼배를 올렸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순간, 신기황의 노안에 언뜻 아쉬운 빛이 스쳤다.

하나, 그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군무현은 그런 신기황을 뒤로 하고 묵묵히 몸을 돌렸다.

이어, 그는 천천히 동굴을 나섰다.

그림자(), 야명주 불빛 아래 길게 깔리는 뒷그림자만을 남긴 채...

동굴 밖!

혈영천종과 육대거두의 시신 대신 거둔 유해와 그들이 남긴 유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군무현은 그것들을 묵묵히 품 속에 갈무리했다.

이어, 그는 힐끗 뒤를 돌아 보았다.

퀭하니 뚫려 있는 동굴, 그곳에는 한명의 외로운 기인(奇人)이 기약없는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무현, 이제 그는 이곳을 떠난다.

무림(武林)! 그곳으로 나가는 것이다.

오년간의 뼈를 깎는 수련을 마치고 마침내 그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출도(出道), 한 마리 용()이 거대한 용트림과 함께 창천을 향해 치솟았다.

순간,

!”

쐐 액! 한소리 웅후한 장소성과 함께 군무현의 신형은 마치 창룡이 비상하듯 까마득한 절벽 위로 치솟아 올랐다.

아아! 마침내 그는 천마애를 떠나 웅대한 일보(一步)를 내디딘 것이었다.

그때,

무현... 잘 가거라...!”

문득 천마애 밑의 한 동굴에서 창노한 노인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X X X

 

휘이 잉! 스스스...

바람(), 바람이 분다. 차가운 설풍(雪風)이었다.

산 전체는 온통 흰 눈에 뒤덮여 있었다.

대파산(大巴山)!

엄동설한, 때는 겨울이었다.

하나의 구릉 위! 한 명의 백의청년이 백설을 딛고 우뚝 서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 깎은 듯 미려한 용모에 미인의 그것처럼 붉고 선명한 입술이 강렬한 인상을 물씬 풍겼다.

백의청년의 눈빛은 흡사 맑게 닦여진 차가운 검날을 연상케 했다.

그의 일신에서는 신비하고도 서늘한 한기가 물처럼 배어나오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하고도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청년,

군무현! 바로 그였다.

마침내 그는 천마애를 떠나 이곳 대파산록에 이른 것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싸늘한 살기가 일렁이는 시선으로 대파산봉을 주시했다.

나는 잊지 않았다. 아버님... 환노(幻老)... 그리고 삼천의 적룡검사(赤龍劍士), 그 모두의 한()...!”

그의 두 눈에서는 줄기줄기 살기가 뻗어나왔다.

선인들의 영령께서 네게 힘을 주셨으니... 천하(天下)로부터 대가를 받아내리라!”

그는 결연한 음성으로 다짐했다.

한순간, 파파파팍! 그의 발밑에 있던 바위가 무서운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가루로 부서져 내렸다.

그것은 군무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의 한()은 이미 하늘에 닿고 있었다.

뼈를 깎는 오년간의 수련, 그것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던가?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살아온 그가 아닌가?

군무현은 질근 입술을 악물었다.

나로 하여금 아버님의 유체조차 모시지 못하게 한 자들... 백배, 천배로 그보응을 받으리라!”

그는 냉혹한 한광을 폭사하며 굳게 맹세했다.

이윽고, 군무현은 몸을 돌렸다.

그의 어깨, 천마애에서 죽은 육대거두의 신물들이 천에 감긴 채 짊어져 있었다.

돌아서는 군무현의 얼굴은 어느새 무표정하게 변해 있었다.

한차례 눈덮힌 대파산을 둘러본 군무현,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데, 그가 막 구릉을 내려섰을 때였다.

스슥! 돌연 전면에서 한줄기 회영(灰影)이 나타났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으로 힐끗 회의인영을 주시했다.

(상당한 경공이군!)

하나,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간격이 점점 좁혀지자 회의인영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회포를 걸친 청년이었다. 나이는 군무현과 비슷한 정도, 그의 용모는 제법 영준했다.

하나, 별로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가늘게 번뜩이는 눈과 얄팍한 입술 끝이 위로 치켜진 것이 간교하고 음악한 인상을 풍겼다.

게다가, 그의 두 눈썹 사이는 음침하게 그늘져 푸르스름해 보였다.

생김새로 미루어 극히 음탕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군무현은 다가서는 회포청는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중럴거렸다.

(인간 구실을 못할 놈이군!)

하나, 그는 곧 회포청년에게서 시선을 떼며 무심하게 걷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였다. 스슥!

서랏!”

돌연 회포청년이 군무현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회포청년을 주시했다.

회포청년,

흐흐...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해라. 한명의 자의(紫衣)계집이 이쪽으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그자는 지극히 오만한 어조로 물었다.

“...!”

군무현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못들은 척 묵묵히 회포청년의 옆을 비켜 지나갔다.

순간, 회포청년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 그자는 눈을 부릅뜨며 다시 몸을 날려 대뜸 군무현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그자의 음침한 두 눈에 살기를 번뜩였다.

내 말을 듣지 못했느냐? 한명의 자의계집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군무현은 귀찮다는 듯 무감정한 어조로 대꾸했다.

보지 못했다!”

그 한 마디를 내뱉은 그는 다시 태연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순간,

... 아니...!”

회포청년의 안색이 거듭 변했다. 그자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군무현의 몸에서 뻗어나오는 막강한 잠력에 밀려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물러나고 만 것이 아닌가?

회포청년의 안색은 이내 수치로 이지러졌다.

하나, 군문현은 게의치 않았다.

그는 회포청년을 돌아보지도 않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으으...!”

회포청년은 부르르 몸을 떨며 치욕으로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하나, 이내 그자의 입가에는 살기어린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 네놈이 감히 나 사망신준(死亡神俊)을 무시하다니...!”

그자는 악독한 눈으로 군무현의 등을 노려보았다.

다음 순간,

죽어랏!”

위 잉! 그자는 군무현의 뒤를 노리고 맹렬히 일장을 후려쳤다.

그자의 공격은 독랄하고 잔혹하기 이를데 없었다.

격중되면 그대로 즉사하고 마는 치명적인 살수.

순간, 군무현의 두 눈에 싸늘한 살기가 번뜩 떠올랐다.

인간같지도 않은 놈!”

그는 냉갈하며 홱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콰르릉! 양인 사이에 격렬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직후,

!”

사망신준(死亡神俊)이라 자칭한 회포청년은 다급성을 발하며 휘청 물러섰다.

그자는 군무현을 후려진 장()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그제서야 그자는 경각심을 돋구었다.

(강한 놈이다. 잘못 건드린 것 같다!)

그자는 내심 아차하며 후회했다.

하나, 이미 늦은 후였다.

그자가 만난 상대가 누군가?

군무현! 천하를 상대로 복수를 다짐한 군무현이 아닌가?

그때,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사망신준을 향해 다가갔다.

본인을 이유없이 건드렸으니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그는 냉막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그 짤막한 한 마디는 사망신준으로 하여금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으으...!)

그 자는 완전히 기가 질리고 말았다.

군무현의 태산같이 막강한 기도는 도무지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하나, 그자는 간악한 작자였다. 그자의 가늘게 찢어진 두 눈이 일순 음흉하게 번득였다.

다음 순간,

에 잇!”

그자는 벼락같이 외치며 대뜸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화르르!

그자의 소매 속에서 돌연 시커먼 독무(毒霧)가 확 쏟어져 나왔다. 그것은 치밀한 그물처럼 삽시에 군무현의 전신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 아닌가?

순간, 군무현의 짙은 눈썹이 무섭게 꿈틀했다.

()을 쓰다니...!”

그의 안색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그때, 자욱한 독무 속에서 사망신준의 득의에 찬 음소가 흘러나왔다.

흐흐... 네놈이라고 별 수 있겠... !”

득의의 음소를 흘리던 사망신준, 하나 그 자는 이내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며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보라. 화르르...! 콰 쾅!

시커먼 독무 속을 뚫고 시뻘건 극양지기가 활화산같이 터져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스악! 사망신준은 대경실색하며 급급히 몸을 날려 달아나려 했다.

하나 그보다 빨리, 콰쾅!

케 엑!”

가죽북이 터지는 듯한 충격적인 폭음과 함께 한 마디 처절한 비명이 터져올랐다.

사망신준, 그자는 고통스런 비명을 토하며 벼락같이 뒤로 튕겨나갔다.

끔찍하게도 그자의 가슴이 시커멓게 탄 채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몸을 날리며 그자는 부득 이를 갈았다.

... 두고 보자!”

휘익! 그자는 고통과 분노의 신음성을 발하며 그대로 몸을 날려 군무현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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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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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一 章

 

                     魔兵, 修羅血刀를 얻다

 

 

 

무량관을 쓴 도복(道服) 차림의 인물, 그는 수중에 한 자루의 신홀을들고 있었다.

무당(武當)의 진산지보로 알려진 태청신홀, 바로 그것이 아닌가?

도인(道人)은 바로 태현자(太賢子)이리라.

다음으로 군무현의 시선이 이른 것은 한 명의 청포노인이었다.

지극히 청수한 용모를 지닌 청포노인, 군무현은 그를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이 종남(終南)의 개파조사인 종남연기사(終南鍊奇士)시로군!”

이어, 그는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종남연기사(終南鍊奇士)의 옆에 서 있는 인물은 여인(女人)이었다.

일신에 백색궁장을 화사하게 차려입은 궁장미부, 그녀는 모습은 극히 요염했다.

그녀는 다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격탕되고 피가 빨라지는 듯 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녀는 마치 날아갈 듯 춤을 추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군무현은 이내 알 수 있었다.

만화환선무(萬花幻仙舞)...! 만화부(萬花府)의 시조이신 만화성녀(萬花聖女).”

 

만화부(萬花府)!

만화성녀(萬花聖女)가 처음 만화부(萬花府)를 세웠을 때는 정파를 표방했다.

하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만화부는 차츰 변질되었다.

그들은 차츰 관능적 욕망에 휩쓸려 사파(邪派)로 흘러든 것이었다.

결국, 당금에 이르러 만화부(萬花府)는 천하염색굴(天下艶色窟)로 변해 버렸다.

그들은 천하를 음란의 색()의 열풍으로 휘몰고 있었다.

문득, 군무현은 만화성녀를 주시하며 형형하게 눈을 번뜩였다.

만화성녀께는 미안한 일이나... 만화부(萬花府)는 반드시 내 손으로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그는 한맺힌 어조로 중얼거렸다.

만화부(萬花府)!

그들은 바로 적룡세가를 친 십삼 개 주력 문파중 일파(一派)가 아닌가?

일순 군무현의 두 눈에서 싸늘한 한광이 뻗어 나왔다.

하나, 이내 그는 눈길을 돌렸다.

만화성녀의 옆, 한 명의 유생과 흑포노인이 눈을 부릅뜬 채 서 있었다.

수려하고 기품있는 용모의 유생(幼生), 그는 장검을 들어 단전(丹田)에 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흑포노인, 그의 용모는 위맹하고도 괴팍하기 이를데 없었다.

군무현은 그들을 주시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남궁세가(南宮勢家)의 일천 년 내 최강자이던 검황유(劍皇儒) 남궁천인(南宮天人) 선배님... 그리고 당문(唐門) 이대가주인 혈륜태세(血輪太世) 당종요(唐種要)...!”

그는 양인의 헌앙하고 뛰어난 기품과 강력한 기도에 감탄을 금치못했다.

일대종사(一代宗師), 과연 그 위명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 문득 군무현의 옷깃이 남궁천인(南宮天人)의 장검을 건드려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우수수... 스스... 나머지 오인의 시신마저 모두 부서져 흩어지고 말았다.

... 이런...!”

군무현은 낭패한 표정으로 급히 물러섰다.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군무현은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신물(身物)들이나마 후인에게 전해주는 것이 도리이리라!”

이어, 그는 시신들의 의복 속에서 각기 한 가지씩의 신물을 찾아냈다.

무우선사의 달마보장(達磨寶杖), 태현자의 태청신홀 외에도, 종남연기사에게는 종남연기경(終南鍊奇經), 검황유에게서는 황유보선(皇儒寶扇), 만화성녀에게서는 만화옥부(萬花玉符), 그리고, 혈륜태세 당종요의 신물로는 아홉 개의 개세혈강륜을 찾아냈다.

 

개세혈강륜!

그것은 혈강모로 만든 암기였다.

호신강기 파해 전문의 가공할 위력을 지닌 암기, 그 아홉 개 중 세 개는 혈영천종의 시신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두 개는 석벽에 꽂혀 있었으며 나머지 네 개는 혈륜태세가 수중에 지니고 있었다.

 

군무현, 마지막으로 그는 혈영천종의 수라혈도(修羅血刀)를 집어들었다.

수라혈도(修羅血刀)!

그것은 종잇장같이 얇은 면도로써 둥글게 말면 손 안에 들어올 정도였다.

이로써, 군무현은 팔백 년 전 일대를 풍미한 기인들의 신물을 모두 거둔 것이다.

문득, 그는 바람에 흩어져 있는 시신들이 남긴 재를 바라보았다.

천마애를 나갈 때 여러 선인들의 유체를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다짐했다.

이어, 그는 주위를 한차례 둘러본 후 석실을 나섰다.

 

X X X

 

세월여류(歲月如流)라던가?

무심한 가운데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는 세월, 그것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느낄 수는 있었다.

쏘아진 화살처럼 금방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는 세월, 그것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간다.

특히, 무엇엔가 몰두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화르르... 쿠르르릉!

광폭한 태양을 집어삼킬 듯한 강렬한 극양지기가 방원 십장을 뒤덮었다.

그와 함께, 콰콰쾅! 퍼 엉!

천지가 일제히 허물어지는 듯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뿐만이 아니었다.

치지지직... 지면의 흙과 돌덩이마저 극렬한 극양지기에 견디지 못하고 형체도 없이 녹아들었다.

한데, 이럴 수가...!

츠츠츠... 위 잉!

극양지기와 상극을 이루는 가공할 극음지기(極陰之氣), 흡사 만년빙동을 깨고 흘러 나오는 듯한 엄청난 극음지기가 그 위를 뒤덮는 것이 아닌가?

아아! 그것은 실로 일대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내, 우르릉! 콰콰콰 쾅! 위 잉! 츠츠츠!

극양과 극음의 양대지기는 서로 충돌하며 들썩 지축을 뒤흔들었다.

보라! 하나의 높은 바위 위, 그곳에는 입을 딱 벌릴만한 진기한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듯 시뻘건 기류와 그와는 대조적으로 눈같이 흰 백색기류가 무지개같이 서로 어우러져 감돌고 있지 않은가?

그 홍백(紅白)의 기류 안,

“...!”

한 명의 청년이 단좌하고 있었다.

한순간, 스스스... 홍백의 신비한 기류가 마치 안개 걷히듯 모두 사라졌다.

그러자 그러나는 청년의 모습, 그는 청격한 백의(白衣)차림이었다.

바람이라도 휙 불면 금방 쓰러져 버릴 듯한 유약한 모습, 하나, 백의청년의 인상은 지극히 인상적이었다.

충격적인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미녀(美女)의 그것같은 단순호치의 용모, 하나 그는 전체적으로 무표정한 싸늘한 기도가 배어 흘러 종잡을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군무현! 천하에 이처럼 형언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인물은 오직 그밖에 없었다.

문득,

“...!”

군무현은 감았던 눈을 떴다.

서늘하게 가라앉아 무심하기만 한 눈빛,

역시... 안되는군. 무상패엽공공강이나 태청혜극신공(太靑慧極神功)으로도 양극지기를 합일 시키지 못하다니...!”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무상패엽공공강!

그것은 무우선사의 달마보장(達磨寶杖)에서 찾아낸 소림무상기공(少林無上奇功)이었다.

 

태청혜극신공(太靑慧極神功)!

태청신홀에 적혀있던 세 가지 무당절기 중 하나였다.

 

군무현은 실망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불문(佛門)과 도가(道家)의 최고 신공으로도 양극지기를 합일시키지 못하다니...!”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미간을 모았다.

또한 수라혈영공(修羅血影功)은 패도만을 추구한 마공인지라 위력만 강할 뿐 현묘함이 없으니 아무 소용도 없고...!”

이어,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려듯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회가 닿으리라. 언젠가는...!”

그는 묵묵히 앞을 노려보았다.

그와 함께, 그는 번쩍 손을 쳐들었다.

순간, 우 웅!

웅후한 검명(劍鳴)이 주위를 진동시켰다.

동시에, 파파팟! 쐐 액!

이십 장 밖의 석벽에 박혀있던 적룡검이 길게 호선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그 순간,

!”

한소리 웅후한 장소가 허공으로 뒤흔들었다.

파 앗! 쐐액!

한순간 군무현의 몸이 적룡검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신검합일(身劍合一)!

아아! 천지가 뒤집히려는가?

파파팍! 츠츠츠츠... 꽈르릉!

웅장하기 이를데 없는 검세가 노도같이 천지를 질타하며 퍼져나갔다.

장쾌한 검광(劍光)과 웅후한 검명!

과연 검중패왕(劍中覇王)다운 가공할 검세였다.

거대한 창룡(蒼龍)의 기세로 치솟는 검기는 그대로 일대장관이었다.

적룡대제의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

바로 그것이 펼쳐진 것이었다.

뒤이어,

차 핫!”

사위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드높은 창룡음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쐐 액!

군무현의 품에서 한 덩어리의 찬란한 광휘가 폭사되었다.

그것은 눈부시게 사위를 휘감으며 창천으로 치솟았다.

 

적룡어강살!

바로 그것이었다.

실로 엄청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순에 무려 일천 장을 날아 태산이라도 둘로 갈라버릴 듯한 가공할 위세.

그것은 보통의 어검술과는 가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극상승의 검결이었다.

빠르기, , ()로 비유한다면 열 배에 달하며, ()함에 있어서는 가히 백 배 더 강한 패도무적의 절기였다.

 

한순간, 스윽! 적룡검은 이미 군무현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지면에 우뚝 내려 서 있었다.

무공을 펼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 없다. 적룡어강살만 하더라도 가히 무적(無敵)이거늘... 적룡천종(赤龍天宗)께서는 이보다 십 배 강한 검결을 어딘가에 비장하셨다니...!”

그는 실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 적룡팔대식과 적룡어강살, 그 두 가지 검결만으로도 적룡대제 군천휘는 검황(劍皇)으로 군림하지 않았던가?

군무현은 생각에 잠기며 검미를 모았다.

수라혈영제의 어떤 마공도 적룡어강살보다 강하지는 않다. 다만, 최후의 수라혈영파천무(修羅血影破天舞)만이 적룡어강살을 능가할 뿐!”

사실, 적룡천종의 검학과 혈영천종의 마공을 비교하기란 실로 난해했다.

적룡천종! 그의 검학은 웅후하며 장쾌함에 특징을 두고 있었다.

일단 펼쳐지면 태산을 짓누르는 듯한 육중함이 천지사방을 뒤덮는다.

반면, 혈영천종의 마공은 악랄한 것이었다.

일단 기회를 잡으면 끈질기게 파고들어 상대의 심장을 갈라버리고마는 잔혹무비한 살검(殺劍)!

그 때문에, 혈영천종의 마공은 선후(先後)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신속, 기민함과 독랄함이 그 특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적룡천종과 혈영천종의 무공은 비교가 불가능했다. 각기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다만,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그것은 연마하는 자의 신체적 특징과 수련의 연륜에 의해 결정될 뿐이었다.

군무현, 그는 적룡검을 내려다보며 한차례 쓰다듬었다.

무심(無心)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에게 있어서 적룡검은 일체감과 함께 큰 힘을 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는 적룡검에서 생명(生命)을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조심스럽게 적룡검을 내려놓았다.

수라혈영파천무... 오늘은 반드시 펼쳐 보이리라!”

그는 강한 의지가 깃든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문득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순간, 스으... 스으... 그의 주위로 칙칙한 혈기(血氣)가 일어났다.

그와 함께, 스르릉...!

군무현의 허리에 요대같이 둘러져 있던 수라혈도(修羅血刀)가 들려졌다.

위 잉! 츠츠츠... 수라혈도의 시뻘건 도신에서는 마귀에 혓바닥같은 섬뜩한 도기(刀氣)가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실로 전신을 섬뜩하게 만드는 가공할 기운, 군무현은 일순 수라혈도를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수라혈영파천무!

수라파천도(修羅破天刀)!

수라혈살강뢰!

 

그 세 가지의 마공이 동시에 펼쳐지는 가공무비한 살초, 그것이 바로 수라혈영파천무였다.

 

문득, 츠츠츠 위 잉!

군무현의 몸 주위로 칙칙한 핏빛기류가 혈사(血蛇)처럼 휘감겨 들었다.

이어, 그것은 숨통을 조일 듯 사위로 가득 메웠다.

파파팍! 가공할 경기가 일순 폭발을 기다리며 한껏 움츠려 들었다.

그리고 한순간,

파천(破天)!”

지축을 떨어 울릴듯한 대갈일성이 터져나왔다.

직후, 콰르르릉! 콰콰 쾅!

가공할 폭발음과 함께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무서운 진동이 사위를 마구 뒤흔들었다.

오오...! 경천동지(驚天動地)!

그것은 가히 상상치도 못할 엄청난 광경이었다.

파파파팍! 번 쩍!

수라혈도의 전율스러운 핏빛 도영(刀影)이 방원 오십 장을 치뻗었다.

그와 함께, 쿠쿠쿵... 위 잉!

폭풍! 대폭풍이 휘몰아쳤다.

질풍노도같은 핏빛강기는 사위를 온통 폭풍같이 휩쓸어 버렸다. 실로 믿을 수 없는 가공할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성공이다!”

문득 천지를 몰아치는 선풍 속에서 한소리 들뜬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렇다. 군무현, 마침내 그는 해낸 것이다.

수라혈영파천무!

그 끔찍무비한 잔영(殘影) 속에서 새로운 대풍운(大風雲)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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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前代奇人들의 屍體

 

 

 

우르릉... 콰쾅!

군무현의 내부는 계속 들끓고 있었다.

군무현은 전신이 재로 화해 부서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크 윽!”

마침내, 악문 그의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 극렬한 고통 속에서, 그는 점점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눈앞이 흐려지며 가물가물해졌다.

하나, 정신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군무현은 더욱 거세게 입술을 악물었다.

그는 초인적인 의지를 지녔다. 그렇지않고서는 이토록 엄청난 고통을 견뎌낼 수 없으리라.

그는 고통으로 허물어지려는 육신을 오직 초인적인 인내와 의지로 지탱하며 운공에 몰두했다.

하나,

크 으... 으윽!”

고통은 갈수록 극힘해졌다.

극양지기와 극음지기가 서로 충돌하며 일으키는 가공할 고통, 그것은 군무현의 몸을 용광로같이 뜨겁게 달구었다가 이내 만년한설처럼 차갑게 얼리곤 했다.

그 극렬한 고통은 몇번이고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각의 고통은 군무현을 열배 더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 !”

군무현은 연신 계속되는 참혹한 고통속에서 새롭게 탄생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스스스...!

신비한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보라, 붉고 흰 두 가지 기류가 지하광장의 한 곳을 완전히 뒤덮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서로 뒤엉켜 낮게 흐르듯 주위에 깔려 있었다.

한데, 스스스 스슥... 붉고 흰 기류가 바닥을 스칠 때 마다 기현상이 일어났다.

우수수... 휘류류!

놀랍게도 지하광장에 쌓여있던 건조한 시신들이 모조리 재로 화해 스러지는 것이 아닌가?

마침내, 우수수... 파파팟!

근 일만 구에 달하던 무수한 시신들이 일제히 재로 화해 스러져 버렸다.

이윽고, 우웅! 붉고 흰 두 가지 기류는 점차 응고되기 시작했다.

보라! 그것은 이내 반백(半白), 반홍(半紅)의 강기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한순간, 스슥...!

반백반홍의 양극강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나타나는 광경, 군무현 먼저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

그는 눈을 감은 채 단정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유약한 모습이었다.

하나, 결코 유약한 것이 아니었다. ()함이 극()에 이르러 오히려 유()하게 보일 뿐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물처럼 담담하고 무심한 눈빛, 그것은 심연처럼 깊고 맑았다.

군무현은 뜨거운 격동에 몸을 떨었다.

(아버님의 영령이 돌보심이다. 마침내 태양신맥(太陽神脈)이 치유되었다!)

그는 희열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 그렇다. 마침내 그는 고통을 극하고 눈부신 성취와 더불어 제이의 생명을 얻어 새롭게 태어난 것이었다.

생명(生命),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더욱이, 가슴에 철천지한을 품은 군무현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군무현의 입가에 한가닥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진정한 희열의 미소였다.

그의 내부는 완전히 변화했다. 온통 극양지기만이 가득하던 그의 심맥의 반은 이제 지극히 강한 극음지기로 채워졌다.

따라서, 극양지기가 크게 일어 심맥을 태울 걱정은 이제 사라졌다.

새 삶을 얻은 것이다. 또한, 그는 극령정뇌수의 무궁한 효력으로 인해 무려 삼갑자의 내공으 보유하게 되었다.

실로 놀랍고도 눈부신 성취였다.

하나, 문득 군무현은 미간을 좁히며 내심 중얼거렸다.

(극양(極陽), 극음(極陰)의 양극진기를 하나로 융합시키지 못한 것이 안타깝구나!)

그렇다. 그의 몸속에는 천하에서 가장 강한 극양지기와 극음지기가 공존하고 있다.

만약, 그 상극의 거창한 잠력이 합일(合一) 된다면 실로 엄청난 결과를 얻게 된다.

(), 그것도 가공할 힘을 지닐 수가 있다. 태산이라도 번쩍 들어올려 집어 던질 수 있는 극강의 초인적인 힘을.

이윽고, 군무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쉽지만... 천기귀원심공 정도의 내공심법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잠력들이다. 우선 삼갑자의 내공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자!”

그는 아쉬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검미를 모았다.

(이 동부의 안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들은 또한 무엇을 위해 이 지하동부에서 죽어간 것일까?)

그의 두 눈은 다시 강렬한 호기심과 의혹으로 물들었다.

이미 재로 부서져 흔적을 잃은 일만여 구의 시신들.

?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 지하광장에 매장되어야 했던가?

군무현은 강한 의문을 느끼며 지하광장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계속 들어가볼 생각이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동굴의 넓이는 점점 더 좁아졌다.

또한, 주위는 희미한 빛 한 점 새어들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다.

스산하고 음습한 기운이 숨막힐 듯 전신을 조였다.

하나, 군무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더욱 밝아진 안광을 빛내며 계속 안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이미 그가 지나온 길은 수백 장에 달하리라.

문득, 군무현의 눈앞에 하나의 석문(石門)이 나타났다.

전신을 으스스하게 만드는 음침한 석문이었다. 그것은 전체가 시커먼 흑옥석(黑玉石)으로 되어 있었다.

한데, 문의 안쪽으로 모골이 송연케 만드는 섬칫한 마기(魔氣)가 줄기줄기 뻗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절로 흠칫 몸이 굳어졌다.

(대단한 마기다!)

그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안에 무엇인가 있다!)

이윽고... 그는 형형하게 눈을 빛내며 번쩍 쌍장을 치켜들었다.

스스스... 그의 쌍장에서는 희고 붉은 양극강기가 뻗어나왔다.

순간, 콰르릉... 콰쾅!

사방을 들썩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거대한 석문이 그대로 박살났다.

... 보라! 놀랍게도 흑옥석의 거대한 석문은 모래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이미 신위(神威)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윽고, 군무현은 부서진 석문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 순간,

(!)

그는 다급성과 함께 그대로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석실, 석문 안은 한 칸의 넓은 석실이었다.

한데, 그곳에 칠인(七人)의 인물이 대치하고 있었다.

끔찍한 아수라의 형상이 생생히 조각된 석벽, 그 석벽을 등지고 한 명의 혈포인이 우뚝 서 있었다.

나머지 육인(六人)은 그 혈포인을 반월형으로 포위하고 있는 형태였다.

혈포인, 그의 인상은 험악하고 사악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의 일신에서는 숨통을 조이는 가공할 마기가 줄기줄기 뻗어나오고 있었다.

혈도(血刀), 지금 그는 전체가 온통 시뻘겋게 물든 한 자루의 혈도(血刀)를 불쑥 앞으로 내민 형상이었다.

실로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릴 가공할 기도, 그 반면 혈포인을 포위하고 있는 여섯 명의 인물들, 그의 형상은 각기 달랐다.

(), (), ()등 각기 다른 부류의 인물들이었다.

하나, 한 가지 모두 혈포인을 향해 공세를 취하는 형상이라는 점이다.

군무현, 그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동귀어진(同歸於盡)했다!)

그는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석실 안의 칠인, 그들 역시 지하광장의 인물처럼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다.

군무현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했다.

(이들이 양세력의 수뇌들일 것이다!)

그는 눈을 빛내며 중앙의 혈포인을 주시했다.

한데, 놀라운 일이었다.

혈포인은 단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움찔 몸을 떨게 만드는 무서운 마기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군무현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죽은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목을 조이는 마기를 발산한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 인물이 살아 있을 때는 아무리 철석간장을 지닌 자라 해도 감히 맞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윽고, 군무현은 천천히 혈포인을 향해 다가갔다.

무엇인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추측하며 즉시 혈포인의 시신에 손을 댔다.

그 순간, 우수수...! 혈포인의 시신은 삽시에 한줌의 재로 화해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 혈포인이 들고있던 혈도(血刀)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군무현은 실소를 발하며 검미를 모았다.

(육인의 막강한 합벽공에 내부가 박살나 있었다. 극고한 공력으로 간신히 육체를 유지하고 있기는 했으나 수백 년의 세월이 그것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그는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바닥에는 한 자루의 시뻘건 혈도와 함께 혈포인의 의복이 떨어져 있었다.

“...!”

군무현은 조심스럽게 혈포를 집어들었다.

그 순간, !

무엇인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양피지로 된 한권의 비급이었다.

흠뻑 핏물에 젖은 듯한 시뻘건 표지, 그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혈영경(血影經)!>

 

묵중하고도 강렬한 서체, 글씨는 시커먼 묵빛이었다.

군무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혈영경(血影經)...!”

그는 크게 호기심이 동함을 느꼈다. 이어, 그는 급히 비급의 겉장을 넘겼다. 그런 그의 눈에 물씬 마기를 풍기는 강렬한 서체가 들어왔다.

 

<혈영천하(血影天下)를 위하여 혈영천종(血影天宗) 적는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홱 변했다.

혈영천종(血影天宗)!”

그는 경악에 떨리는 음성으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혈영천종(血影天宗)!

 

팔백 년 전, 천하를 혈영(血影)으로 뒤덮은 대효웅(大梟雄), 그의 출신사문은 실로 엄청났다.

전설적인 마문(魔門), 바로 아수라궁(阿修羅宮)과 혈영문(血影門)의 공동전인이었다.

이후 그는 양대 마문(魔門)을 통합했다. 그리하여 세운 것이 바로 수라혈부(修羅血府)였다.

천하를 장악했던 혈영(血影)의 세력, 혈영천종은 수라혈부(修羅血府)를 세워 천하를 손아귀에 넣었다.

그러기를 삼십 년(三十年), 돌연 그는 자신이 세운 수라혈부와 함께 신비하게 실종되었다.

그 이후 아무도 혈영천종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한데, 군무현은 천마애의 깊숙한 지하동부 안에서 그 혈영천종의 시신을 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군무현,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천지십강(天地十强) 중의 일강(一强)을 이곳에서 보게되다니...!”

그는 눈앞의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혈영천종! 그 위명은 천하를 떨어 울리지 않았던가?

 

천지십강(天地十强)!

 

고금을 통틀어 가장 강한 십인의 절대자(絶代者)!

혈영천종은 그 당당한 영예의 일석(一席)을 차지한 인물이 아닌가?

군무현은 놀라움을 가라앉히며 이번에는 혈영천종과 대치하고 있던 육인(六人)을 주시했다.

(이글은 대체 누구이기에 천지십강(天地十强)의 일인을 격살했단 말인가?)

그는 내심 의혹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눈을 빛내며 육인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맨 좌측의 인물, 그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고승(高僧)이었다.

그는 석자 가량되는 보장(寶杖)을 번쩍 들어올린 자세를 쥐하고 있었다.

군무현은 두 눈에 기광을 번뜩였다.

소림(少林)의 불광현세(佛光現世)의 자세다. 소림의 고승(高僧)이신가?”

그는 생각을 굴리며 유심히 고승을 주시했다.

하나, 바로 그 순간, 스스스... 고승의 시신은 덧없이 한줌의 재로 화해 흩어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고승의 보장(寶杖)이 떨어졌다.

군무현은 허리를 숙여 보장을 집어 들었다.

 

달마(達磨)!

 

보장의 손잡이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것은 녹옥불장(綠玉佛杖) 조사령과 함께 소림삼대중령(少林三大重令)의 하나인 달마보장(達磨寶杖)이다!”

과연 그의 짐작은 맞아들었다.

군무현의 머리는 계속 민활하게 움직였다.

달마보장은 소림십이대방장 이시던 무우선사(無優先師)와 함께 실종되었다. 그것이 팔백 년 전의 일이다!”

문득, 생각을 굴리던 군무현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렇다! 이분이 바로 소림십이대방장이셨던 무우선사(無優先師)가 분명하다.”

그는 비로소 얽혔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그의 뇌리속에 한 가지 고사(古事)가 떠올랐다.

 

혈영천종(血影天宗)이 천하를 손 안에 넣은지 삼십년(三十年), 천하가 도탄에 빠지다. 문득 신무(神霧)가 크게 일더니 혈영천종(血影天宗)은 수라혈부(修羅血府)의 사천(四千) 마도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 그와 함께 당시 무림을 떠받히던 육대거두(六大巨頭)가 육천(六千)의 정영(精英)과 함께 의문의 실종을 당하다...

 

고사(古事)의 내용은 그러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군무현은 흥분의 눈빛으로 육인을 차례차례 훑어보았다.

육대거두(六大巨頭)... 그들은 바로 소림십이대 방장이셨던 무우선사(無優先師), 무당(武當)의 구대장문인(九代掌門人) 태현자(太玄子)...!”

문득, 중얼거리던 그의 시선이 한 명의 도인(道人)에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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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일만구의 屍體, 그리고 千古奇緣

 

 

 

사방이 훤히 트인 거대한 지하광장, 한데, 보라! 시산(屍山)!

놀랍게도 그곳은 바로 시체로 산이 쌓여 있지 않은가?

오오... 이럴 수가! 그것은 실로 섬뜩하고 전율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족히 일만(一萬)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의 시신들이 온통 지하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으니... 시신들은 서로 격렬히 싸우다 죽은 듯 마구 뒤엉킨 채 죽어 있었다.

열 명의 비율로 따지자면, 그 중 네 명은 혈포인이요, 여섯 명은 여러 부류의 인물들로 뒤섞여 있었다.

(), (), (), (), 여인(女人) ...

그들은 하나같이 생전의 형체를 그대로 유지한 채 죽어 있었다.

가공할 지극음기(地極陰氣), 그것으로 인해 부패되거나 변질됨이 없는 것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군무현이 처음 동굴을 들어설떼 본것같이 팔백 년 이전의 시신들이 아닌가?

군무현은 그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끔찍하군. 이런 지하(地下)에서 일만명의 생명이 죽어갔다니...!”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얼마나 끔찍한 광경인가? 일만여 구의 시신들, 그것들은 모두 사지가 끊어지고 머리가 박살났으며 복부가 찢어져 내장이 흘러나온 처참한 형색들이었다.

한데, 한 가지 기이한 것이 있었다.

그 시신들은 습기가 완전히 사라져 모두 강시화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

군무현, 그는 아연한 표정으로 넋이 나간 듯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일찍이 이같이 처참한 광경은 상상도 못한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저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미간을 모으며 전면을 주시했다.

보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시신들의 중앙, 기이하게도 그곳에는 자욱하게 백무(白霧)가 서려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그냥 지나칠 군무현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스슥! 그의 신형은 가볍게 시산(屍山) 위로 날아올랐다.

한데,

!”

시산의 중앙에 있는 백무(白霧)를 향해 다가서던 군무현, 일순 그는 신형을 휘청했다.

... 지독한 한기(寒氣)!”

그는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극랭한 한기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군무현은 극양지맥(極陽之脈)의 소유자였다.

범인이라면 능히 얼어 죽어버릴 극심한 한기도 가벼운 추풍(秋風) 정도로 느낄 뿐이었다.

한데, 그런 그가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한기를 느끼다니... 대체 그것은 얼마나 지독한 극음지기란 말인가?

만약 군무현이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면 단번에 심맥이 얼어붙고 말았으리라.

한데, 신기한 것이 있었다.

심맥을 파고들며 뼈를 얼리는 극심한 한기, 그것은 넓게 퍼지지 않고 백무(白霧) 주위에만 응집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의혹을 금치못했다.

지극음령수액보다 천배 더 차갑다. 도대체 어떤 물체가 있기에 이렇게 지독한 한기를 발산한단 말인가?”

그는 강렬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더구나, 그는 극양(極陽)의 절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극음지물(極陰之物)은 더할 수 없는 보신지물(寶身之物)이 아닌가?

군무현으로서는 큰 관심사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두 눈을 유현하게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지 찾아보리라!”

그렇게 결심한 순간, 그는 주위에 널려있는 시신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선자(先者)의 유체를 손상함은 도리가 아니다...!”

그는 시신에 손을 대는 것이 다소 마음에 걸렸다.

하나, 그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이윽고, 그는 시신의 산을 향해 쉴새없이 손을 내저었다.

우수수...! 휘르르!

그의 손짓에 따라 백무 주위의 시신들이 경기에 밀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기를 일각(一角), 군무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그는 무려 사백여 구의 시신을 치우고서야 비로소 바닥에 이를 수 있었다.

한데 그 순간,

... 이것은...!”

시신을 모두 치운 군무현, 그는 대경성을 발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앞, 넓이 일 장 정도의 널찍한 흑석(黑石)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데, 그 흑석에는 전신을 뼈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엄청난 한기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극음현령옥(極陰玄靈玉)이다!)

만년한옥(萬年寒玉)이 천만 년 동안 극음지기(極陰之氣)를 흡수하며 형성하는 기석(奇石), 이는 한 조각만으로도 능히 활화산(活火山)을 식혀버리는 엄청난 극음지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 군무현이 놀란 것은 그 극음현령옥(極陰玄靈玉) 때문이 아니었다.

극음현령옥의 중앙, 그곳에는 흡사 낙수(落水) 구멍같이 우푹한 홈이 패어져 있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 홈 속에는 투명한 유백색의 반고체 덩어리가 고여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음식으로 먹는 묵과 같은 형태였다. 만지면 물컹하게 손에 닿을 듯한 투명반고체, 그 분량도 제법 되었다.

어른의 주먹 두 개를 합친 정도, 표면에는 신비한 유백색의 광휘가 감돌고 있었다.

기이하고도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모습, 문득 군무현은 숨이 멎을 듯한 표정이 되었다.

... 혹시... ... 이것은...!”

그는 엄청난 경악으로 두눈을 휩떴다.

그런 그의 얼굴은 온톤 희열과 흥분으로 물들었다.

내심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군무현, 그가 이렇듯 경악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다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순, 군무현은 번개같이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에 전율했다.

 

인간이 죽으면 그 뇌수(腦髓)와 정수(精髓)는 대기(大氣) 중에 산화되고 만다. 하나 만일 극음현령옥(極陰玄靈玉)과 같은 극음(極陰)의 지보가 있는 곳에서 죽게되면 정수는 뇌수와 더불어 극음현령옥에 응결된다. 이것을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라 하며 실로 무궁무상의 효과가 있다...

 

바로 신기황에게 의술을 배울때 들은 내용이었다.

군무현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

특히 그것은 너무도 기이하게 여겨져 강한 의혹과 함께 군무현의 뇌리속에 선명히 남아 있었던 차였다.

한데, 천마애의 깊은 곳에 자리한 은밀한 지하동부, 그곳에서 실로 뜻밖에도 그 극령정뇌수를 발견한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이내 확신이 섰다.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극령정뇌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격동과 흥분으로 휩싸였다.

신기황이 들려준 또 다른 놀라운 사실 때문이었다.

 

일백인(一百人)의 뇌수와 정수가 모여야 그것은 겨우 밤톨만 해진다. 알아두어라.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만이 너의 태양신맥(太陽神脈)을 치료할 수 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희열과 격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극령정뇌수만이 너의 태양신맥을 치료할 수 있다...

 

군무현의 귓전에 신기황의 그 말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 했다. 군무현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감격의 표정을 지었다.

전설(傳說)로만 믿었거늘... 극령정뇌수가 실제로 있었다니...!”

그는 눈앞의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 하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군무현, 그로서는 실로 엄청난 일생일대의 대기연을 만난 것이었다.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

그는 마침내 불치의 절맥인 태양신맥을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희열과 격동에 몸을 떨던 군무현, 문득 그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극음현령옥에 고여있는 극령정뇌수, 그것은 족히 일만 명의 정뇌가 모인 것이었다.

어찌 기분이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제 나의 태양신맥은 치료할 수가 있다. 하나... 인간으로서 어찌 같은 인간의 정뇌를 복용한단 말인가?)

그는 난색을 지으며 거리낌을 금할 수 없었다.

일종의 죄의식이랄까? 아니, 그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할 양심인지도 몰랐다.

군무현은 잠시 갈등과 함께 망설임의 표정을 지었다.

하나, 생각해 보라. 누가 이런 엄청난 기연을 포기하겠는가?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

 

이는 인간의 정뇌와 극음현령옥의 극음지기가 뭉쳐진 정화였다.

그 때문에, 태양신맥의 극양지기를 누르고 태음경(太陰經)과 소음경(小陰經)을 능히 부활시킬 수 있었다.

뿐인가? 그것을 복용함으로해서 지고무상한 내공도 얻을 수가 있다.

극령정뇌수를 복용하게 되면 능히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가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효능인가?

물론, 군무현도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꺼림직한 기분과 함께 썩 즐겁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어쩌랴? 그는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이윽고, 그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개운치는 않으나... 내 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니...!”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어, 그는 극음현령옥의 앞으로 다가가 우뚝 섰다.

우선 그는 흥분된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혔다. 그런 다음, 그는 조심스럽게 극령정뇌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뭉클...! 손바닥 가득 기분 나쁜 감촉이 전해졌다.

(!)

군무현은 내심 다급성을 발했다. 뭉클하는 감촉과 함께 삽시에 두 손이 마비되는 듯한 엄청난 한기가 짓쳐드는 것이 아닌가?

(... 지독한 한기다...!)

그는 뼈골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지독한 한기가 전신을 엄습함을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순간, 군무현은 급히 입을 열었다.

꿀꺽...! 마침내 그는 극령정뇌수를 목구멍으로 삼켜버렸다.

그와 함께,

크 윽!”

군무현의 안면이 처참하게 이지러졌다. 그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그는 몸 전체가 사정없이 얼어붙는 듯 했다. 치가 떨리는 가공할 한기였다.

으으... ... 운공을 해야 한다...!”

군무현은 온통 고통으로 이지러진 얼굴로 간신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는 극음현령옥 위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그는 전신에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을 운용했다.

그러자, 우르르...! 이내 그의 내부에서 천지개벽을 하는 듯한 대변동이 일어났다.

(으윽...!)

군무현의 영준한 얼굴은 참혹한 고통으로 얽혀들었다.

꽈르릉... 태양같이 뜨거운 극양지기는 엄청난 기세로 그의 내부를 뚫고 일어났다.

그와 함께, 극령정뇌수의 가공할 극음지기도 이에 지지않고 대항하기 시작했다.

극양지기와 극음지기의 상반된 두 가지 기운의 대결, 그것은 마구 뒤엉켜 군무현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우르릉! 콰 앙!

미친 듯이 전신을 질타하는 상극의 양대기류,

(크윽...!)

군무현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악물었다.

전신이 터져 폭발해 버린 듯한 지극한 고통, 난마처럼 전신 구석구석을 치달리는 극을 달한 고통에 그는 눈앞이 캄캄해 졌다.

으윽... !”

군무현은 마침내 입 밖으로 신음성을 토해냈다.

전신이 뜨거운 불구덩이에 빠진 듯 화끈거렸다.

심맥이 타들어 가는 듯한 참혹한 고통, 하나 그런가하면 어느새 전신이 얼어붙어 쩍쩍 갈라지는 듯한 가공할 한기가 짓쳐들었다.

실로 인간으로서 참아낼 수 없는 엄청난 형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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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修羅天魔洞府奇緣

 

 

 

신기황은 만년에 감회와 격동의 빛을 지으며 말했다.

그 안에 고금제일음공(古今第一音功)이 적혀있다!”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하나, 그는 새로운 무공을 대할 때마다 새로운 흥분과 기대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접하고자 하는 그의 왕성한 의욕 때문이었다.

신기황은 군무현의 뛰어난 오성과 총명을 믿고 있었다.

노부도 음공(音功)에는 별반 너보다 나은 점이 없으니 천황음경(天皇音經)은 제 스스로 터득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군무현은 천황음경을 내려다보며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문득, 신기황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황음경에는 천음황의 한()이 실려있다. 천음일맥(天音一脈)을 잇는 너는 선인(先人)의 심한(心恨)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엄숙한 어조로 당부했다.

군무현은 그런 신기황의 내심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각골명심 하겠습니다!”

그는 굳은 결의의 음성으로 대답했다.

신기황의 노안이 음울한 빛으로 젖어들며 미미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는 볼 수 있었다.

나가 보아라!”

그의 음성 또한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군무현은 몸을 일으키며 내심 중얼거렸다.

(천음황 선배님을 생각하시는 것이리라...!)

이어, 그는 신기황을 향해 공손히 일배한 후 몸을 돌렸다.

물러가겠습니다!”

“...!”

신기황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눈길을 다시 벽쪽으로 돌렸다. 그런 그의 모습이 부쩍 늙어 보였다.

 

X X X

 

삘릴리 삘리... 부드러운 소성이 절곡(絶谷)을 가득 메우며 흐른다.

맑고 흥겨운 음률, 그것은 마치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분지를 어루만졌다.

온통 화려한 기화이초가 만발한 방대한 분지, 그 중앙의 평평한 바위 위, 한 명의 백의청년이 단좌하고 있었다.

조각같이 수려한 용모의 미청년. 바로 군무현이었다.

그는 두 누늘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술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하나의 목적(木笛)이 가볍게 물려져 있었다.

삘리리... 삘리... 그 목적(木笛)에서는 심신을 온유롭게 만드는 부드러운 음률이 흘러나왔다.

! 이 순간 천지는 온통 신비의 조화지경으로 화한다.

천지동화(天地同和)!

만물(萬物)이 피리소리에 끌려 하나로 융합된다.

상극(相極)과 상생(相生)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삼라만상(森羅萬象).

하나, 이 순간만은 상극(相極)이 없다. 오직 상생(相生)만이 존재할 뿐이다. 상극의 묘리는 흔적없는 티끌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주위는 평화롭고 피리소리는 더없이 흥겹고 부드럽다. 문득, 분지를 울려퍼지던 부드러운 소성이 뚝 끊어졌다.

군무현, 그는 목적(木笛)을 입에서 떼며 비로소 눈을 떴다.

항상 서늘한 살기가 어려있던 그의 눈빛, 하나 이 순간 그의 눈빛은 더할 수 없이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스스로 음률에 취한 것일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감정하고 서늘한 한기가 일렁거리는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문득, 군무현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천락화영춘(天樂和英春)...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에 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음공(音功)이다!”

천음황의 천황음경(天皇音經)!

그것은 음공(音功)의 정수를 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이다.

(), (), (), (), ()의 묘결을 담은 오대음종. 그것은 하나하나가 각기 한 방면의 최고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군무현은 천황오대음종에 대해 감탄을 금치못했다. 이어,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묘결은 모두 이해했다. 다만 그 위력이 지나쳐 화(), ()의 음종 외에는 펼칠 수가 없을 뿐...!”

과연 그러했다. ()와 환()까지는 단지 허상을 만들고 심기를 제()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하나, (), (), ()의 음종은 그 목적이 본격적으로 달랐다.

파괴(破壞). 그것은 오직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무서운 음공인 것이다.

설사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가공할 위력.

군무현, 그는 불과 일년만에 천황음경 내의 정수를 모두 터득했다. 이 또한 범인으로서는 상상치도 못할 눈부신 성취였다.

그는 수중의 목적을 만지작거리며 무감정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천황음경에서는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다. 실제로 펼쳐보는 일만 남았을 뿐!”

문득, 그는 눈을 돌려 북쪽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신기황이 기거하는 동굴의 맞은편에 위치한 석벽, 그 석벽을 주시하며 군무현은 눈을 빛냈다.

저 석벽에 대고 음공을 시험해 보자!”

중러거림과 함께, 스슥...! 그의 신형이 앉은 채 소리없이 떠올랐다.

 

파향비운산(波香飛雲散)!

 

천황음경 중에 실린 극상의 경공. 그것이 펼쳐진 것이었다.

스스스... 이내 군무현의 신형은 마치 산향(散香)이 퍼지듯 흩어졌다.

잠시 후, 스슥! 군무현은 깃털처럼 가볍게 석벽 앞으로 내려섰다.

그는 눈을 빛내며 석벽을 주시했다.

제삼붕음종(第三崩音宗)은 목표한 것만 무너뜨릴 뿐,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드는 제사멸음종(第四滅音宗)과는 다르지. 성세는 약하나 최고 십리(十里) 밖의 목표물도 부술 수 있는 묘용이 있다!”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수중의 목적을 입에 댔다.

그러다 문득,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혹의 빛을 지었다.

(오성(五成)의 공력으로 저 석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는 저으기 염려스러웠다.

하나, 삐 익!

이내 그의 목적(木笛)으로부터 천공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성이 울려퍼졌다.

순간, 파 팍!

그 엄청난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목적이 그대로 박살나고 말았다.

직후, 우르릉... 쩌 억!

음파에 격중당한 석벽이 굉음과 함께 마치 거북의 등처럼 쩍쩍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콰르르릉! 콰 쾅!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오르며 거대한 석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아아! 그것은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단 한 번의 음파(音派)! 그로 인해 엄청난 두께의 석벽이 가루로 부서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음공을 시전한 군무현, 그 역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붕뇌명후(天崩雷鳴吼)의 위력이 이 정도라니...!”

그는 아연하여 절로 탄성을 터뜨렸다.

위 잉! 파파앗! 일진 회오리와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온통 허공을 뒤덮었다.

다음 순간,

아니...!”

군무현은 흠칫하며 경호성을 발했다.

이어, ! 그는 즉시 앞으로 날아내렸다.

이런 곳에 동굴이 있었다니...!”

군무현은 경이의 눈빛으로 전면을 주시했다. 무너진 석벽의 뒤쪽, 뜻박에도 그곳에는 높이 십여 장의 높은 동굴이 뚫려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지옥(地獄)의 입구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동굴, 그 동굴 앞에 내려선 군무현, 그는 다시 한 번 흠칫 놀랐다.

(마기(魔氣)가 뻗힌다!)

그는 동굴에서 뻗어나오는 전율적인 마기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졌다.

동굴, 그 안쪽에서는 전신을 오그라붙게 만드는 섬뜩하고 칙칙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문득, 군무현의 두 눈이 강렬한 빛을 발했다. 그의 뇌리로 언뜻 신기황이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천마애(天魔崖)에는 신비가 숨겨져 있다. 노부는 지극음령수액에서 나갈 수 없어 알아보지 못했으니 기회가 닿으면 네 스스로 찾아보아라!

 

군무현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꼈다.

(범상한 동부가 아니다. 신기황께서 지칭한 신비(神秘)라는 것이 어쩌면 이 동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강렬한 호기심에 마음이 끌렸다.

이윽고,

(들어가보자!)

그는 결심을 굳히며 동굴 앞으로 다가섰다.

스슥! 이내 그는 망설임없이 동굴 안으로 날아들었다.

 

동굴 안, 그곳은 불빛 한점 없이 어두컴컴했다.

전신을 조여들게 만드는 칙칙한 마기(魔氣). 그것은 동굴의 통로를 따라 들어갈수록 더욱 강렬하게 뻗쳐나왔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문득, 군무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동부(洞府), 눈앞에 하나의 광활한 동부가 나타났다.

한데, 군무현은 일순 흠칫 놀라며 전면을 주시했다.

시신(屍身)!”

그는 나직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그의 전면, 어둠 속에 한 구의 시신이 보였다.

시신은 삼십 대의 장한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한 자루의 장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장한은 눈을 감은 채 동굴의 벽에 기대어 죽어 있었다.

“...!”

군무현은 눈썹을 모으며 천천히 시신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손끝으로 가볍게 시신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우수수...!

시신은 단번에 가루로 화해 부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흠칫하며 물러섰다.

하나, 이내 그의 머리는 민활하게 움직였다.

(복장으로 보아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복색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팔백년 전의 시신이다!)

그는 눈을 빛내며 염두를 굴렸다.

그때, 휘 잉!

문득 귀기서린 한줄기 음풍이 군무현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섬칫한 한기가 모발을 쭈뼛 곤두서게 만들었다. 하나, 군무현은 담력이 컸다.

그는 한줌의 재로 화해버린 시신을 내려다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곳은 천지지간의 음기(陰氣)가 모이는 곳... 지극음기(地極陰氣)가 시신의 부패를 막았으리라!)

과연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이윽고, 군무현은 예리한 눈을 빛내며 계속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데, 시신은 재로 화해버린 장한을 기점으로 계속 발견되었다.

또한, 갈수록 그 숫자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걸음을 옮기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두 개의 인물들이 싸우다가 동귀어진했다. 혈포를 걸친 자들은 여러 부류의 인물들이 합공한 것으로 보이는군!)

시신의 형태는 실로 각양각색이었다.

서로 뒤엉킨 채 나뒹굴어진 시신, 목이 댕강 잘려 나가고 없는 시신, 검을 끌어 안고 꼬꾸라졌거나, 혹은 심장이 관통되어 창자가 흘러나온 시신 등...

군무현은 예리한 눈빛으로 시신들을 살피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는 거대한 지하광장의 입구에 이르게 되었다.

그 순간,

“...!”

군무현은 흠칫하며 걸음을 멈춰섰다.

지하광장의 입구, 그곳에는 오 장 높이의 거대한 석비(石碑)가 세워져 있지 않은가?

 

<수라천마동부(修羅天魔洞府)!>

 

석비 위에는 섬뜩한 핏빛 글씨가 그와 같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전율스러운 마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수라천마동부(修羅天魔洞府)?”

군무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검미를 모았다. 그로서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성큼 지하광장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

군무현의 안색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여하한 일에도 좀처럼 감정을 내색지 않는 군무현, 그런 그였건만 그의 두 눈은 이 순간 한껏 부릅떠졌다.

대체 그는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 一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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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天皇音經, 古今最强音功

 

 

 

적룡검(赤龍劍)!

 

아아! 이 얼마나 놀라운 이름인가?

오백 년 전, 돌연 거창한 일대선풍이 천하를 휩쓸었다.

한 명의 검수(劍手)!

그의 등장은 돌풍처럼 무림을 뒤흔들었다. 그는 온통 신비 속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나이나 용모는 물론, 심지어는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 그 신비검수는 나타나자마자 무림을 벌컥 뒤집어 놓고 말았다.

그는 천하의 일백대 고인과 일백대 강대 문파를 질타했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뿐, 비무(比武)! 바로 그것이었다.

단순히 비무를 원한 행동이었으나 그 결과는 실로 어이없을 정도였다.

당당히 천하최강을 자부하던 인물들, 그들은 허무하게도 신비검수의 일초반식도 받지 못하고 연속 패하고 말았다.

완패(完敗). 무림의 완전한 패배였다.

신비검수, 그는 이 결과에 대해 실망을 금치못했다.

 

... 천하(天下)가 이토록 좁단 말인가! 구주팔황(九州八荒)의 넓이가 겨우 본 검종(劍宗)의 일초 검식도 완전히 펼칠 수 없이 협소하다니...!

 

그는 그렇게 탄식하며 종적도 없이 무림에서 사라졌다.

실로 경악할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출도한지 불과 반년만의 일이었다.

반년(半年), 단 반년의 활동으로 그 신비검수는 천지십강(天地十强) 중에 든 것이 아닌가?

이는 무림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이었다.

 

적룡검은 바로 적룡천종(赤龍天宗)께서 사용하신 명검(名劍)이다!”

신기황은 진중한 안색으로 말을 계속했다.

군무현은 묵묵히 입을 닫고 있었다. 하나, 그의 내심은 흥분과 격동으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는 유현하게 눈을 빛내며 수중의 적룡검을 내려다 보았다.

그때, 신기황의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적룡검에는 적룡천종(赤龍天宗) 선배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아마 네 부친 적룡대제는 그 중 두 가지 정도를 알아내었을 것이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과 적룡어강살...!)

그것은 부친 적룡대제의 최대절기였다.

한데, 신기황의 다음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네 아버지는 그 두가지의 절기로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란 소리를 들었겠으나... 사실 그것은 적룡천종(赤龍天宗)의 진정한 진전의 반푼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그의 말에 군무현은 의혹과 경악을 금치못했다.

적룡대제 군천휘를 천하제일검으로 군림케 만든 그의 최대검식, 그것이 겨우 적룡천종(赤龍天宗)의 반푼의 진전에 불과한 것이라니...

그는 놀라움을 가라앉히며 신기황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신기황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네 아버지와 노부도 찾지못한 세 번째 것이 적룡천종(赤龍天宗)의 진정한 절기다. 그것을 알아낸다면 너는 고금제일검(古今第一劍)의 뒤를 잇게 된다. 그 경지는 우내사천황도 이룰 수 없는 지고무상(至高無上)의 경지임을 알게 될 것이다!”

“...!”

군무현의 가슴은 뜨겁게 요동쳤다.

(고금제일검(古今第一劍)...!)

그는 격동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그는 새삼 신기황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신기황께서는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과 적룡어강살을 찾아내셨구나!)

그 두 가지 검식(劍式)은 군무현도 알고 있었다.

적룡검, 그것의 검집에는 매우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적룡팔대식을 나타내는 구결이었다.

적룡어강살! 그것은 적룡검의 손잡이에 구결이 암시되어 있었다.

적룡검의 손잡이는 만년온옥으로 되어 있는데 그곳에 흐릿하게 파여져 있는 종횡의 복잡한 선()들이 바로 적룡어강살의 구결이었다.

그때, 신기황이 두 눈에 기광을 폭사하며 말했다.

흐흐... 적룡천종의 진정한 절기를 얻는다면 네명의 천마황(天魔皇)이라도 벨 수 있다!”

! 그의 말은 실로 경악할만 했다. 군무현은 새삼 천지십강(天地十强)에 대한 경외심이 일었다.

(천지십강... 그 분들이 그렇게 강하단 말인가?)

신기황은 군무현을 똑바로 주시하며 물었다.

이제 네가 천마황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을 알겠느냐?”

!”

군무현은 낮으나 힘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기황은 신뢰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엄중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부터 노부의 재간을 전수하겠다. 노부의 재간은 무공이라기보다 학문(學文)에 가깝다. 하나, 명심해 두어라! 학문이라고는 하지만 무공수련보다 일백배 더 어렵다는 것을...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명심하겠습니다!”

군무현은 신념어린 어조로 대답했다.

신기황은 그런 군무현이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그러기에 그는 확신이 섰다.

범인이라면 노부의 재간을 모두 얻으려면 일백 년도 부족할 것이나 너는 이년(二年)안에 끝내리라 믿는다!”

그 말과 함께, 우 웅! 다시 한줄기 강력한 잠력이 웅덩이 속에서 뻗어나왔다.

이어, 휘익 탁! 동굴의 뒤쪽의 벽면에서 두 권의 두툼한 책자가 날아와 군무현의 무릎 앞에 떨어졌다.

“...!”

군무현의 눈길은 빠르게 그 두 권의 책자를 살폈다.

 

신기천망해(神機天網解)!

활심대성록(活心大聖綠)!

 

두 권의 양피자 책자, 그 표지에는 각기 그와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범인이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웅휘한 필체.

그때, 신기황이 다시 엄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노부는 삼절(三絶)이다. 기절(機絶)이 그 첫째이며, 의절(醫絶)이 그 둘째, 그리고 암기술(暗器術)이 셋째이다!”

신기황! 그는 삼십년간의 금제생활과 골수에 맺힌 원한으로 인해 성격이 괴팍하게 변해있었다.

하나, 본래 그는 뛰어난 인품과 덕망의 소유자였다.

그를 일컬어 무림제일의 현자(賢者)라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오랜 세월 고립된 생활로 인해 그 성격이 다소 변하기는 했으나 본래의 훌륭한 인품을 잃지는 않았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이윽고, 신기황은 자신의 절기에 대해 설명했다.

노부의 암기술은 고금제일(古今第一)을 다투어도 될만한 것이나 글로 남기기에는 부끄러운 것이라 노부가 직접 구술하겠다. 우선 신기천망해(神機天網解)부터 전수하겠다!”

군무현은 정신을 집중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집중력은 결코 범인이 따르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다.

신기천망해! 그것은 천지지간의 모든 이치를 담은 심오한 내용이었다.

군무현, 그는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신기황의 말을 경청했다.

차갑고 무심하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은 이 순간 쉴새없이 빛나고 있었다.

신기황의 또 다른 분신, 제 이의 신기황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X X X

 

천마애(天魔崖)!

나는 새도 접근을 불허하는 천험(天險)의 절지.

스으... 스으... 안개, 천마애는 사시사철 음울하고 검푸른 안개로 휩사여 있다.

암울한 신비가 전설처럼 구비구비 서린 곳, 그 누구도 감히 천마애의 신비를 벗길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묵운(墨雲). 그것은 천마애 주위에 펼쳐진 상고대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었다.

 

천애장비대진(天崖藏秘大陣)!

 

이것이 바로 그 절진의 이름이었다.

언제, 누가 이 절진을 설치해 놓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천애장비대진(天崖藏秘大陣)을 돌파할 수 있는 인물은 천하에 단 두 명 뿐이었다.

기문제일인(機門第一人)인 신기황, 그리고 그의 분신으로 새롭게 탄생한 젊은 기재 군무현이 바로 그들이었다.

천하애는 온통 신비로 뒤덮인 곳이었다.

그곳은 세인들의 상상 이상으로 신비가 처처에 깔려 있었다. 또한, 천마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드넓고 방대한 규모였다.

신기황, 그는 천마황의 독수에 당한 후 은신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천마애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이곳에 몸을 숨기고 지극음령수액에 몸을 담근 채 독기를 억누르며 살고 있는 것이다.

 

천마애 아래, 뜻밖에도 그곳은 방대한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 새외도원의 낙원(樂園)이 그러할까?

보라! 수십마장에 이르는 거대한 분지, 그곳은 온통 화려한 기화이초로 뒤덮여 있지 않은가?

실로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 정녕 세인들은 알지 못하리라.

천험의 절지 천마애, 그 아래 이토록 화려하고 평화로운 낙원이 있다는 것을.

초하(初夏). 싱그러운 첫여름이었다.

천마애의 여름은 너무도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방대한 분지는 온통 싱싱한 초록의 물결로 출렁거렸고 하늘은 눈부시게 청량했다.

한데, 우르릉! 콰쾅...! 돌연 맑은 하늘을 뒤흔드는 가공할 뇌성벽력이 터져나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가?

뒤이어, 콰르릉 콰쾅! 우르르... 쏴아!

광풍(狂風)이 몰아치며 세찬 폭우가 대지를 두드렸다.

갑자기 천마애는 온통 지축이 뒤흔들리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천지(天地)에 종말이 도래하려는가?

콰르르... ! 우르르릉!

광풍폭우가 미친 듯이 천마애를 뒤흔들었다.

일시에 사위는 암운천지로 돌변했다.

한데,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일순 모든 것이 정지했다.

가공할 뇌성벽력도, 천지를 함몰시킬 듯한 광풍폭우도 온데간데 없었다.

그것들은 마치 환상처럼 한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아! 이럴 수가...

보라! 천마애의 그 어디에도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창해(蒼海)처럼 맑게 출렁거리는 푸른 하늘, 그 눈부신 햇살 아래 생기롭게 빛나는 초목들, 꽃잎에는 물기 한 방울조차 남아있지 않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비쳤다 사라져버린 환상이라면 너무나 생생하지 않은가!

그때였다.

풍운대라굉벽진(風雲大羅轟碧陣)...!”

문득 한소리 담담한 청년의 음성이 분지를 울렸다.

이어, 분지의 한쪽 옆 돌무더기 사이에서 한 명의 청년이 걸어나왔다.

투명하리만치 흰 피부, 미인의 그것처럼 붉고 정령적인 입술, 깊고 깊은 신비를 담은 채 서늘하게 가라앉는 눈빛, 옥수같이 미려한 자태가 헌앙하기 이를 데 없다.

청년은 일신에 용모와 썩 잘 어울리는 백색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백의청년, 그에게서는 실로 종잡을 수 없는 기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만년한옥에서 스며나오는 듯한 서늘한 한기, 그것은 무형중에 사위를 짓누르는 기이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윽고, 백의청년은 몸을 돌려 어지러이 널려있는 돌무더기를 바라보았다.

풍운대라굉벽진... 신기황 어르신과 나 외에는 누구도 뚫을 수 없는 천하절진(天下絶陣)...!”

그의 붉은 입술 사이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방금 전 천마애를 휩쓸었던 뇌성벽력과 광풍폭우, 그것은 바로 진식이 만든 허상(虛象)이 아닌가?

누가 믿으려 할것인가? 이 엄청난 사실을... 천지를 질타했던 그 엄청난 광경이 어이없게도 환상에 불과하다니...

한데, 바로 그때였다.

무현... 들어오너라!”

문득 한소리 창노한 노인의 음성이 분지를 울렸다.

!”

그 음성에 백의청년은 공손한 대답과 함께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지의 끝, 그곳은 높은 벽면으로 앞이 가로막혀 있었다.

한데, 그 벽면에는 하나의 퀭한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백의청년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어, 그는 동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희미한 야명주 불빛이 비치는 동굴 안, 움푹 패인 웅덩이 속에 한 명의 괴인이 목만 내놓은 채 잠겨 있었다.

신기황 바로 그였다.

그는 벽쪽을 주시하고 있다가 백의청년이 들어서자 시선을 돌렸다.

무현, 앉거라!”

!”

백의청년은 담담히 대답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군무현! 물론 그는 군무현이었다.

신기황은 대견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허허... 이년(二年)이 족히 걸릴줄 알았거늘 석달이 모자라는 이년 동안에 노부의 밑천을 모두 뺏기고 말았구나!”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

군무현의 얼굴은 무심하고 담담했다.

하나, 그는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어 대꾸했다.

모두 노인장께서 소생을 아껴주신 덕분입니다!”

그는 신기황을 사부(師父)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황 또한 그것을 조금도 섭섭해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군무현을 만난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황의 노안에 오랜만에 미소가 떠올랐다.

헛허... 공자께서도 훌륭한 인재를 기름을 인생삼락(人生三樂)에 넣지 않았느냐? 늙으막에 뛰어난 기재를 가르치게 된것을 노부의 홍복으로 생각한다!”

부끄럽습니다!”

군무현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신기황은 흐뭇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말했다.

이제 천음황(天音皇)의 진전을 배울 차례다!”

! 어느새 말을 하는 그의 수중에는 한 권의 비급이 들려졌다.

이어,

받아라!”

! 그는 쥐고있던 비급을 가볍게 군무현에게 던져주었다.

군무현은 공손히 그 비급을 받아들었다.

 

<천황음경(天皇音經)!>

두툼한 비급의 표지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일필휘지의 서체로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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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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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赤龍劍秘密

 

 

 

백발괴인은 문득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노부가 바로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중 기문제일(機門第一)로 불리던 신기황(神機皇)이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일변했다. 그는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괴인, 그가 바로 일백년 전 혁혁한 명성을 날리던 기인(奇人) 신기황이라니...

실로 놀랍고도 뜻밖의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군무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신기황(神機皇) 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때, 백발괴인, 아니 신기황(神機皇)! 그도 군무현을 주시하며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어린 녀석의 심기가 삼갑자를 살아온 노부에 뒤지지 않다니...!)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 그는 일순 안색이 변했으나 이내 지극히 무심한 표정을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신기황은 그런 군무현의 모습에 고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무현! 너는 노무가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궁금하지도 않느냐?”

군무현은 그제서야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떼었다.

궁금합니다!”

신기황은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테지. 노부가 이 모양으로 잔생(殘生)하게 된 것은 어쩌면 천하대풍운(天下大風雲)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 말에 군무현은 내심 흠칫 놀랐다.

(천하대풍운(天下大風雲)의 시작...!)

그는 나직이 뇌까리며 안색을 굳혔다.

신기황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 아버지 적룡대제(赤龍大帝)와 적룡세가(赤龍勢家)의 몰락과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순간, 군무현의 전신이 미미하게 경련했다.

그와 함께, 그의 가슴 한복판으로 차가운 한풍이 휙 스치고 지나감을 느꼈다. 그는 묵묵히, 그러나 긴장된 눈빛으로 신기황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신기황은 지난 일을 회상하는 듯 문득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어,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삼십년(三十年) 전이었다. 노부는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천음황(天音皇)을 만나보러 청성(靑城)의 천음애(天音崖)로 갔었다.”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그들 중에서도 천음황(天音皇)과 신기황(神機皇)은 각별한 사이였다.

독천황(毒天皇)이 정사중도(正邪中道), 천마황(天魔皇)이 마도(魔道)를 걷는데 비해, 천음황과 신기황은 함께 정도(正道)를 걷던 인물들이었다.

그로 인해, 자연히 두 사람의 의기는 서로 투합하게 되었다.

우내사천황은 비록 걷는 길은 달랐으나 서로를 깊이 존경했다.

특히, 천음황과 신기황의 우의는 아주 긴물했다.

신기황이 천음황을 만나기 위해 천음애(天音崖)를 찾았던 날, 천음황은 변함없이 반가운 얼굴로 신기황을 맞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 술잔을 나누며 쌓였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몇 순배 술잔이 돌고 양인이 한창 회포를 풀고 있을 때였다. 천음애를 찾은 뜻밖의 손님이 있었다.

 

천마황(天魔皇)! 그는 바로 우내사천황 중의 일인인 천마황이었다.

천마황은 진정한 마웅(魔雄)이었다.

천하마도(天下魔道)를 수하로 결집시키고 천하의 반()을 얻은 그는 스스로 자족(自足)했다. 그리하여 그는 미련없이 자신이 세운 거대한 패세(覇勢)인 천마궁(天魔宮)을 폐했다.

그 후, 그는 후진들을 기르는 데 열정을 쏟고 있었다.

실로 일대종사(一大宗師)다운 처신이었다.

신기황과 천음황은 그런 천마황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평소에 친교는 없었으나 만나면 서로 웃으며 대하던 그들이었다.

한데, 그런 삼인(三人)이 실로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었다. 신기황과 천음황은 뒤늦게 찾아온 천마황을 환대하며 맞아들였다.

이윽고, 삼인은 격의 없이 술자리를 같이했다. 그들은 모두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로부터 반나절 후, 천마황은 적당히 술기운이 올라 기분좋은 모습으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가지 볼일이 있어 남황(南荒)으로 가던 길이었소.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소이다!”

그는 신기황과 천음황에게 인사를 한 후 총총히 천음애를 떠났다.

한데, 사태는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천마황을 배웅한 직후, 신기황은 이내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기문지학 뿐 아니라 의술(醫術)로도 당대제일이었다.

그는 즉시 자신이 맹독에 중독되었음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중독당한 것 같소!”

신기황의 그 말에 천음황은 대경했다. 이어, 다급히 자신의 몸을 살피던 천음황, 아니나 다를까? 그 역시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노부도 역시 그렇소!”

두 명의 절대고인은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마황(天魔皇)! 그 자의 짓이다!)

그들은 분격하며 치를 떨었다. 하나, 이미 늦은 후였다.

그들이 당한 독()은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맹독이었다.

사심없이 천마황을 믿었던 두 고인, 그들은 전혀 경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감쪽같이 중독 당하고 만것이었다.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경악과 분노, 그들이 받은 충격과 배신감은 그 이상이었다.

한데, 더욱 놀라운 사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그들이 분노를 금치못하고 있을 때, 돌연 일단의 무리들이 천음애로 들이닥쳤다.

갑작스런 습격이었다. 신기황과 천음황은 미처 대항할 여지조차 없었다. 그들은 독기(毒氣)를 두르며 간신히 천음애를 빠져나왔다.

하나, 어찌 알았으랴?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철저하고도 치밀한 죽음의 함정 뿐인 것을.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듯 수조차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적도들이 그들을 침습해 들었다.

결국, 그들은 싸워야 했다.

천음황, 그는 중독을 무시한 채 분전을 펼쳤다. 무려 일천 명의 적도들이 그의 음공(音功) 아래 쓰러졌다.

그들은 천음애의 괴멸과 함께 영원히 그곳에 묻히고 말았으니...

하나, 그로인해 천음황 또한 돌이킬 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천하제일의 의술을 지닌 신기황이었으나 그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마침내, 천음황은 청성(靑城)을 벗어나지 못하고 절명하고 말았다.

 

“...!”

“...!”

동굴 안은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신기황, 그의 모발 사이로 뻗힌 안광이 살기로 시퍼렇게 변했다. 그는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노부와 천음황이 당한 독()은 무형화린산(無形火燐散)이라는 것으로 천하에서 가장 극양(極陽)한 맹독이다!”

“...!”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신기황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말을 하는 신기황의 두 눈에서는 줄기줄기 원한의 광망이 폭사되었다.

무형화린산(無形火燐散)을 다룰줄 아는 곳은 독황궁(毒皇宮)과 남만의 사망림(死亡林) 외에는 없다. 노부는 지극음령수액에 몸을 담그고 간신히 무형화린산의 독기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군무현, 문득 그는 의아한 빛을 지으며 물었다.

지극음령수액으로 해독이 불가능하단 말입니까?”

신기황은 그의 말에 쓰디쓰게 웃었다.

흐흐... 해독이 가능했다면 노부가 이렇게 앉아 있겠느냐? 당장 뛰쳐나가 천마황(天魔皇)놈을 때려 잡았을 것이다!”

그는 흥분한 듯 두 눈에 핏발이 섰다. 하나, 이내 그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졌다.

전후 사정으로 보아 독천황(毒天皇)도 변을 당했을 것이다!”

“...!”

군무현은 가볍게 미간을 좁혔다. 이어, 그는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천마황은 무엇 때문에 세 분을 헤쳤을까요! 천하제패(天下制覇)가 목적이었다면 이미 천하가 천마황의 손 안에 들어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는 의혹의 표정을 지으며 신기황을 바라보았다.

하나, 그 말에 신기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흐흐... 천하를 네 손바닥만 하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는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설명했다.

천하에는 고인들이 모래사장의 모래알 같이 많다. 네 아비였던 적룡대제(赤龍大帝)가 우리 우내사천황에 육박했던 것이 그 본보기가 아니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얼마나 될지 장담하지 못한다!”

“...!”

군무현의 창백한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살짝 붉어졌다.

신기황은 기광을 번뜩이며 계속 말했다.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독황궁(毒皇宮)이나 천마궁(天魔宮)의 힘이 가장 강대했다. 하나... 천회쌍비(天外雙秘)나 세외사천(世外四天)도 각기 그에 못지 않다!”

그 말에 군무현은 흠칫했다.

천외쌍비(天外雙秘), 세외사천(世外四天)...!”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직이 뇌까렸다.

신기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나는대로 이야기해 주겠다!”

이어, 그는 두 눈에 싸늘한 한망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천마황은 암중에 방해되는 세력을 하나하나 제거하느라 삼십 년을 소비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놈은 어떤 형태로든 천하를 거의 손아귀에 넣었을 것이다!”

“...!”

결국... 적룡세가가 몰락한 것은 바로 천마황의 마무리 작업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 말에 군무현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졌다.

신기황, 그는 그런 군무현의 모습을 정면으로 주시했다.

군무현의 두 눈, 그것은 지금 엄청난 비분과 원한으로 끓어 오르고 있었다.

차가운 얼음 속에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본적이 있는가? 군무현의 눈빛이 바로 그러했다.

신기황은 그런 군무현의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 보았다.

이어, 그는 엄숙하고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 일신의 원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백만 무림동도들을 위해서다. 천마황을 죽여라!”

그것은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위엄이 깃든 명령이었다.

순간, 군무현의 전신이 한차례 부르르 경련했다.

기필코 그 자를 죽이겠습니다! 소생의 힘이 천마황의 그것에 미치지 않는다면 음모(陰謀)를 써서라도 쓰러뜨릴 것입니다!”

그는 싸늘하고 결연한 어조로 다짐했다.

신기황은 그의 말에서 신뢰를 느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자부심이 깃든 어조로 말했다.

흐흐... 천마황이 결코 네가 상대못할 강자(强者)가 아님을 알게될 것이다. 그놈의 마공(魔功)이 아무리 패도적이라도 우내사천황 중 이황(二皇)의 절기가 합쳐지면 결코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 순간 그의 두 눈은 강렬하고도 형형한 광채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만가지 감정이 서로 교차되고 있었다.

비로소 자신의 숙원이 달성된다는 것에 대한 감회, 그리고 당당한 우내사천황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이었다.

문득, 신기황은 생각난 듯 말했다.

네게 줄것이 있다!”

말과 함께, 위 잉! 돌연 그의 몸에서 강한 잠력이 일어났다.

이어, 츠츠츠읏!

지극음령수액이 떨어지는 벽면의 뒤에서 한 자루의 보검이 불쑥 솟아나오는 것이 아닌가?

은은한 붉은 빛을 띤 투명한 검신, 그 검신에는 한 마리 적룡(赤龍)의 문양이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적룡검(赤龍劍)!

 

! 그것은 바로 적룡대제가 남긴 적룡검(赤龍劍)이 아닌가?

순간, 군무현의 두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음울하고도 냉막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신기황은 군무현의 내심을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이 검을 보고 원한에 집착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주지 않았지만 이제 네게 돌려 주겠다!”

군무현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문득, 그는 뜨거운 격정이 가슴을 뭉클 적시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다시금 눈앞에 선연히 떠오르는 부친 적룡대제의 위엄있는 모습.

이윽고, ! 군무현은 말없이 적룡검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부친 적룡대제가 남긴 두 가지 유물 중 하나였다.

따라서, 적룡검이야말로 적룡대제의 혼()이 깃들어 있는 물건이었으며 군무현에게 있어 생명보다 더 귀중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

그때, 신기황이 문득 기이한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너는 적룡검의 내력을 아느냐?”

모릅니다!”

군무현은 음울한 눈빛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흐흐... 그렇겠지. 천하의 누구도 적룡검이 천지십강(天地十强) 중 한 고인의 애검(愛劍)임을 모른다. 네 아비였던 적룡대제조차도...!”

! 신기황의 말은 실로 놀랍고도 뜻밖이었다.

군무현, 그는 내심 기이한 흥분과 기대에 사로잡혔다.

(적룡검이 천지십강 중의 한 고인이 쓰던 애검이란 말인가?)

그는 기대의 눈빛으로 신기황을 주시했다.

신기황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오백년 전, 불과 반녀(半年) 만에 구주팔황(九州八荒)을 질타한 일대검종(一代劍宗)을 아느냐?”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적룡천종(赤龍天宗)!”

그는 경악의 음성으로 나직이 외쳤다.

신기황은 기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분은 바로 적룡천종(赤龍天宗)이라 불린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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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宇內四天皇傳說

 

 

 

 

부친 적룡대제를 생각하자 군무현은 들끓는 격정과 함께 처절한 슬픔에 가슴이 메어지는 것을 느꼈다.

강직하고 위엄있는 모습의 적룡대제, 군무현은 그 모습을 떠올리며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천지를 얼려버릴 듯한 강렬한 살기가 치뻗혔다.

순간, 백발괴인은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혈한(血恨)이 이 어린 녀석으로 하여금 저토록 강한 살기를 지니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는 나이답지 않게 깊은 한으로 점철된 소년 군무현에게 왠지 마음이 끌림을 느꼈다.

그때, 문득 군무현의 입에서 살기 어린 냉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천하와 맞서 싸워야 하는 신세, 노인장께서는 그 점은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에 백발괴인은 섬칫한 전율을 느꼈다.

하나, 곧 그는 동굴이 떠나갈 듯한 우렁찬 대소를 터뜨렸다.

우하하... 좋다! 좋아! 네놈이라면 오년 내에 천하를 뒤엎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흡족한 듯 오랜만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군무현의 입가에 비정한 결의의 냉소가 어렸다.

천하를 피로 씻어 버릴 텐데 그까짓 일인 정도 더 죽이는 것이 무엇이 대수겠습니까?”

“...!”

그의 냉혹한 어조는 다시 백발괴인을 전율케 했다.

(이놈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그는 심신이 절로 으스스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나, 이미 흥정은 이루어졌다.

군무현, 그는 서늘한 한광이 일렁이는 시선으로 백발괴인을 주시했다.

노인장께서는 어떻게 소생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시겠습니까?”

그는 냉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 말에 백발괴인은 물속에 잠겨있던 고개를 쭉 빼며 말했다.

흐흐... 너는 노부가 몸을 담그고 있는 이 액체가 무엇인줄 아느냐?”

군무현은 흠칫했다. 그제서야 그는 백발괴인이 몸을 담그고 있는 웅덩이 속의 새파란 액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기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방 벽면을 뒤덮고 있는 나무 뿌리들, 그 끝에서는 한 방울 한방울 액체가 떨어져 웅덩이로 흘러들고 있었다.

나무 뿌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액체, 그것은 투명한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그것을 본 군무현의 안색이 일변했다.

혹시... 지극음령수액(地極陰靈樹液)이 아닙니까?”

백발괴인은 군무현의 안목에 놀람을 금치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클... 어린 놈의 안목이 대단하구나!”

“...!”

군무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나, 그는 내심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음령수액(地極陰靈樹液)!

 

지하(地下)에는 강한 극음지기(極陰之氣)가 흐르고 있다.

그것이 일만년을 살아온 만년지령수(萬年地靈樹)에 흡수되어 수액(樹液)으로 응결된 것이 바로 지극음령수액(地極陰靈樹液)이었다.

이는 천하에서 두 번째로 지독한 극음령수(極陰靈樹)였다.

범인이라면 단 한 방울만으로도 백년을 무병장수하며, 무림인 이라면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무궁무진한 내공을 얻을 수가 있다.

 

백발괴인. 그는 군무현을 주시하며 놀라운 사실을 일러 주었다.

이곳 천마애가 바로 지극음기(地極陰氣)가 응집되는 성음극지(聖陰極地)이니라!”

“...!”

군무현의 무표정한 얼굴에 놀라운 빛이 떠올랐다.

성음극지(聖陰極地)!

그것은천하의 지극음기가 모이는 곳을 일컫는 것으로 만물(萬物)에 생명을 주는 근원이 된다.

백발괴인은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노부는 이 지극음령수액으로 네 녀석에게 연혼활심대법(連魂活心大法)을 펼쳐 주겠다!”

연혼활심대법(連魂活心大法)...?”

군무현은 의아한 듯 나직이 되뇌었다. 그는 무려 십만 권의 경서를 읽고 외운 천고기재(千古奇才)였다.

학문(學文)이라면 이미 통달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하나, 그런 그로서도 백발괴인의 말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백발괴인은 군무현의 내심을 짐작한 듯 신비한 기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흐흐... 노부는 삼절(三絶)이다. 그 중 일절(一絶)이다. 네녀석은 안심해도 된다!”

군무현은 내심 의문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도대체 이 노인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감탄과 함께 백발괴인에 대한 의혹과 궁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백발괴인이 지체할 것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흐흐... 시작하겠다!”

그 말과 함께, 우 웅...!

돌연 지극히 강대한 힘()이 군무현의 전신을 휘감았다. 동시에, 군무현의 몸이 둥실 지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흐흐...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네 몸에는 유익한 일이니 참아라!”

백발괴인은 괴이한 미소를 흘리며 미리 일러 두었다.

다음 순간, 파파팍! 돌연 웅덩이 속의 지극음령수액이 튀어올라 일시에 군무현의 삼백육십대혈을 가격했다.

그것은 실로 갑작스런 일이었다.

으윽!”

군무현은 돌연히 가해진 엄청난 고통에 안면을 이지러뜨리며 절로 신음성을 발했다.

하나, 그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 훌륭한 암기수법...!)

그것은 실로 지독한 고통이었다. 천만근의 추가 일시에 전신을 두드리는 듯한 엄청난 고통, 군무현은 단 일격에 까마득히 정신을 잃어갔다.

하나, 파파팍! 그 모습에도 아랑곳 없다는 듯 백발괴인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흐흐... 비록 이십 오 세까지긴 하지만 네녀석을 천하에서 가장 강한 놈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는 득의의 웃음을 흘리며 자신있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파파앗... 파파파팍!

푸른빛을 띈 지극음령수액은 쉴새없이 튀어올라 군무현의 전신 대혈을 잇따라 가격했다. 그것은 실로 눈부신 속도였다.

웅덩이 속에 잠겨 간신히 목만 내밀고 있는 백발괴인, 그의 몸 어디에서 이토록 강대한 힘이 작용하는 것일까?

한데, 그때였다. 실로 신비한 광경이 벌어졌다.

보라! 파파앗 파앗... 파앗! 스스스...

군무현의 대혈에 부딪힌 지극음령수액이 돌연 푸르스름한 안개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것은 신비한 청무(靑霧)가 되어 군무현의 전신을 에워쌌다.

청무는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군무현의 몸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와 함께, 군무현은 까마득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나, 그는 신비한 청무 속에 감싸인 채 한겹 허물을 벗고 있었다.

병약하고 무력하기만 하던 신체의 허물을 깨끗이 벗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그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탄생(誕生)! 제 이(第二)의 탄생이었다.

 

X X X

 

세월여류(歲月如流).

누가 세월을 흐르는 물과 같다고 했는가? 그것은 대자연(大自然)과의 어김없는 약속이었다.

혹한(酷寒)의 겨울도 어느새 춘풍(春風)에 흔적없이 녹아내리는가 싶더니 금방 신록이 우거지고, 찌는 듯한 혹서가 한동안 계속 되었다.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게 천지는 추색(秋色)이 완연해졌다.

가을, 단풍의 계절이 온 것이다.

 

동굴(洞窟). 하나의 음산한 동굴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희미한 야명주 불빛이 비치고 있는 동굴 안, ... ...!

맑은 청음을 내며 물방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투명하고 푸른빛을 띈 액체, 그것은 동굴의 중앙에 움푹 패여있는 웅덩이 속으로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만년(萬年)을 두고 계속되어 온 지극음령수액의 낙수(落水). 바로 그것이었다.

지극음령수액이 떨어져 고인 웅덩이 속, 한 명의 괴인이 몸을 담근 채 깊숙이 잠겨 있었다. 그는 벽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수초(水草)처럼 마구 헝클어진 백발의 모발이 온통 그의 등을 뒤덮고 있었다.

문득, 뚜벅... 뚜벅! 조용하던 동굴의 입구 쪽에서 규칙적인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별로 크지않은 소리였다. 하나, 그 속에는 심령을 뒤흔드는 묵중한 기도가 실려 있었다.

잠시 후, 동굴의 입구에 한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소년(少年), 그의 나이는 이제 십오륙 세 정도로 보였다.

핏기 한점 없는 창백한 얼굴. 하나, 그의 용모는 너무도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한 번 보면 영원히 잊지 못할 정도로 강한 충격을 주는 절륜한 용모. 전체적으로 약간 그늘져 어두운 듯 하면서도 그는 투명하리만치 아름다웠다.

특히, 소년의 두 눈은 신비(神秘), 바로 그 자체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맑게 가라앉아 서늘하게 일렁거리는 눈빛, 누구든 그 눈빛을 대하면 전율처럼 사정없이 전신을 끌어 당기는 강한 마력(魔力)에 사로 잡히고 말 것이다.

소년의 입술, 그것은 미인(美人)의 그것처럼 붉디 붉었다.

얼음 가운데 핀 불빛같은 정열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년은 전체적으로 몹시 유약한 인상을 풍겼다.

하나, 그런 그의 전신에서는 실로 종잡을 수 없는 싸늘한 기도가 뻗어나오고 있었다.

흠칫 몸을 떨게 만드는 살기(殺氣), 그것은 냉연하고 차디 찬 살기였다.

이윽고,

“...!”

소년은 말없이 뚜벅 뚜벅 걸음을 옮겨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무현(武玄)! 왔느냐?”

그가 들어서자 웅덩이 속의 괴인은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 그렇다. 소년, 그는 바로 군무현이었다.

군무현은 괴인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

그러자, 괴인은 벽쪽으로 향하고 있던 고개를 군무현을 향해 돌렸다.

백발괴인! 괴인은 바로 전신이 수초에 휘감겨 있는 듯한 모습의 그였다.

앉아라!”

그는 무심한 어조로 말하며 군무현을 주시했다.

하나, 그의 무심한 어투와는 달리 그의 두 눈에는 훈훈한 정감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하고 냉막해 보였다. 하지만 그 역시 백발괴인에게만은 지극히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그는 말없이 동굴의 바닥에 꿇어 앉았다.

이어, 그는 지극히 무심하고 냉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을 완성했습니다!”

천기귀원심공을 완성했다...!”

백발괴인은 나직한 어조로 되뇌었다.

하나, 그의 두 눈에는 경악의 빛이 번뜩 스쳐갔다.

(일년(一年)이 채 아니되어... 노부의 삼갑자(三甲子) 정화가 담긴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을 완성하다니...!)

그는 내심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놀라운 녀석...!)

사실 그는 놀랍고도 기쁘기 한량없었다. 하나, 겉으로는 전혀 그런 감정을 내색지 않았다.

그다지 느린 진도는 아니군.”

그는 무심히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군무현은 그런 백발괴인을 주시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어른이시다. 지니신바 학문은 창해(蒼海)보다 깊고 심기는 구중천(九中天)에 못지 않으시니...!)

그는 백발괴인의 지닌바 학문의 조예와 신비한 능력에 갈수록 감탄을 금치못하고 있었다.

각기 서로 다른 생각에 젖어있던 두 노소,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하나, 곧 백발괴인이 과묵한 어조로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천기귀원심공을 완성했다니 태산(泰山)이라도 짊어질 수 있는 정력(定力)이 생겼을 것이다!”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

 

실욕적인 모용은 별로 없다. 대신, 태산보다 육중한 정력을 길러주므로 그 중요성은 어떤 무공보다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백발괴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이제 넥 비로소 노부와 노부 친우(親友)의 전세절학을 전수할 기반이 닦였군!”

“...!”

군무현은 무릎을 꿇은 채 묵묵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문득, 백발괴인은 기광을 빛내며 군무현에게 물었다.

무현, 너는 노부의 본래 신분이 궁금하지 않느냐?”

“...?”

군무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백발괴인은 문득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원하되 원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험난한 강호를 살아가는데 긴요한 자세지!”

“...!”

군무현의 무심한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한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이윽고, 백발괴인은 안색을 진중하게 고치며 말했다.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을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군무현은 흠칫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그들을 모르는 자 뉘 있으랴?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백년 이전에 이미 천하최강(天下最强)으로 군림해온 절대기인들, 그들의 무공은 극고의 경지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들이 각기 한 방면에서 가히 고금무적(古今無敵)에 이르렀다는 점이었다.

고금을 통틀어 단연 최강으로 손꼽히는 천지십강(天地十强)!

설사 그들이라 해도 우내사천황의 한 가지씩의 특기에는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독천황(毒天皇)!

신기황(神機皇)!

천음황(天音皇)!

천마황(天魔皇)!

 

이들 사인을 일컬어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이라 한다.

 

독천황(毒天皇)!

우내사천황의 최고령자. 그는 바로 청해(靑海) 독황궁(毒皇宮)의 개파조사였다.

천년 내에 가장 강한 독문제일인(毒門第一人).

 

신기황(神機皇)!

고금제일(古今第一)을 논할 수 있는 현자(賢者). 그가 무공을 지녔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싸운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관지학과 기문진법(奇門陣法)은 천하무적(天下無敵)이었다.

 

천음황(天音皇)!

음공(音功) 조종(祖宗). 그는 천하의 모든 악기를 다룰줄 아는 기인(奇人)이었다.

악기의 소리로 태산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상초유의 인물. 그에 의해 전무후무한 음공(音功)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천마황(天魔皇)!

마도제일인(魔道第一人)이자 마공제일인(魔功第一人).

마종(魔宗)의 패도적인 마공이 그의 일신에 집약되었다.

마공에 있어 최고최강의 경지에 오른 인물, 그는 패도적인 마공과 뛰어난 통솔력으로 천하마도(天下魔道) 일백팔류(一百八流)를 일통시켰다. 그리하여 세운 것이 바로 천마궁(天魔宮)! 마도제일궁(魔道第一宮)인 저 천마궁(天魔宮)이었다.

 

하나, 우내사천황!

그들은 이미 일갑자 이전에 무림에서 사라졌다.

청해의 독황궁(毒皇宮)도 천마궁(天魔宮)도 일갑자 동안 무림에 출현하지 않고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백발괴인의 입에서 그 우내사천황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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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洞窟속의 怪人

 

 

 

쐐 애액!

귓청을 찢는 날카로운 파공성, 군무현의 신형은 급격히 아래로 추락해 내려갔다.

한데, 기이한 일이었다. 환영투도에 의해 천마애의 묵운 속으로 던져진 군무현, 그는 벌써 지면으로 떨어졌어야 마땅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의 몸은 끝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 하락하고만 있지 않은가?

한순간,

(!)

군무현은 전신이 경직되는 아찔함을 느끼며 숨을 들이켰다. 그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절벽이다!)

그는 내심 부르짖으며 전신을 부르르 경련했다. 그것은 아찔한 죽음의 예감이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 앞에 처절한 최후를 남기며 죽어간 부친 적룡대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적룡세가!

온통 화마에 휩싸여 덧없이 쓰러지던 웅장한 적룡세가의 위용이 망막을 가득 채웠다.

특히, 자신과 적룡대제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검()을 안고 쓰러져간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의 영상은 파편처럼 날카롭게 그의 가슴에 와 박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상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는 얼굴..

!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유명을 달리하신 생모(生母)의 자애로운 모습이었다.

문득,

(어머니...!)

군무현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격동을 느끼며 나직이 부르짖었다. 그와 함께, 그는 마치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 듯 스르르 정신을 잃고 말았다.

 

X X X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억겁(億劫) 같기도 하고 일수유 같기도 한 아득한 시간, 군무현은 그 시간 속을 끝없이 헤매고 있었다.

마치 죽음처럼 깊고 깊은 잠, 그는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나, 아직 운명이 다히자 않았음인가?

문득,

(이곳이... 저승인가?)

군무현은 오랜 혼몽 끝에 깨어나며 정신을 차렸다.

그의 전신은 지극히 무기력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 듯한 무력하고 공허로운 느낌..

하나, 그는 그 가운데 끝없이 안온한 기분도 함께 느꼈다.

일생을 바람처럼 떠돌다가 마침내 아늑한 풀밭에 누워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군무현은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너무 지쳐 편안하게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때였다.

...! 문득 무엇인가 한 방울의 액체가 무력하게 벌어진 그의 입 안으로 떨어졌다.

“...!”

군무현은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무심고 떨어지는 액체를 목구멍으로 삼켰다.

뜻밖에도 그 액체는 매우 달콤하고 향긋했다. 또한, 전신을 상쾌하게 만드는 강렬한 향기마저 지녀 입안 가득 기분좋은 청량감을 퍼뜨리는 것이 아닌가?

(무엇일까?)

군무현은 눈을 감은 채 의아한 듯 내심 중얼거렸다.

하나, 그는 몸을 일으키거나 눈을 떠 주위를 살피지는 않았다.

그 한방울의 액체 탓일까? 기이하게도 군무현은 무기력하기만 하던 전신에 새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가 강렬한 기운이 그의 몸속을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는 다시 입을 벌렸다.

하나 이번에는 다소의 기대감이 작용했다. 그러자, ! 다시 한방울의 달콤한 액체가 그의 입 안으로 떨어졌다.

이어, ... ...!

그것은 규칙적으로 떨어지며 그의 입 안을 청량하고 그윽한 향기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의아함과 함께 신기함을 금치못했다.

이제 그는 금방이라도 허공으로 튕겨질 듯 새 힘이 용솟음침을 느꼈다.

그의 전신에는 강력한 잠력이 무섭게 꿈틀거리며 살아나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이놈! 정신을 차렸으면 냉큼 눈을 뜨고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돌연 한소리 사나운 호통이 군무현의 고막을 뒤흔들었다.

순간,

“...!”

군무현은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군무현, 그가 있는 곳은 천정이 유난히 높은 하나의 동굴이었다.

지금 군무현은 동굴의 바닥에 누워있었다.

동굴. 기이하게도 그 동굴은 사면 벽 전체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

온통 기이한 나무 뿌리가 서로 뒤엉켜 벽면을 덮고 있는 기이한 광경.

동굴의 중앙, 넓이 이장 정도 되는 하나의 웅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그 웅덩이 속에는 무엇인지 모를 새파란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데,

!”

막 몸을 일으키던 군무현, 그는 일순 대경성을 발하며 눈을 크게 떴다.

웅덩이 속, 누군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자가 있었다.

오오! 놀라운 모습이었다.

괴인(怪人), 한 명의 괴인이 불쑥 목만 내놓은 채 웅덩이 속에 잠겨 있지 않은가?

그의 모습은 실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제멋대로 자란 허연 백발이 전신을 뒤덮어 마치 수초(水草)에 휘감겨 있는 듯한 괴이한 몰골.

봉두난발이 된 모발 사이로는 귀화같은 안광이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실로 절로 간담이 오그라붙는 섬뜩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철석간담을 지닌 인물이라 할지라도 혼비백산하고 말 음산하고 기괴한 풍경이었다.

그때, 웅덩이 속에 잠겨있던 백발괴인이 문득 경악으로 굳어있는 군무현을 주시하며 혀를 찼다.

끌끌... 사내 놈의 담력이 어찌 그 모양으로 보잘 것 없느냐?”

그 말에 군무현은 비로소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다. 순간, 그의 영민한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이내 전후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그는 내심 은은한 경악을 금치못했다.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에 당한 상세가 완치되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하나, 군무현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지극히 무표정했다. 이윽고, 그는 괴인을 향해 무심하나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노인장께서 소생을 구하셨습니까?”

백발괴인의 두 눈에 언뜻 한줄기 이채가 스쳤다. 하나, 이내 그는 전율스런 귀광을 번뜩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퉁명하게 대꾸했다.

클클클... 삼십년 간을 이 모양으로 살다보니 사람이 그리워 네놈을 구했을 뿐이다!”

“...!”

군무현의 얼굴은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을만큼 무표정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잃은 것일까? 그의 안색은 차갑고 무심하게 굳어 있었다.

하나, 그는 명가(名家)의 후손이었다. 결코 예의를 모르는 불손한 인물은 아니었다. 군무현은 백발괴인을 향해 정중히 일배를 올렸다.

순간,

치워랏! 마음에도 없는 인사는 받고싶지 않다!”

백발괴인은 눈을 부릅뜨며 버럭 대갈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강력한 잠력이 뻗어나와 군무현의 상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

군무현은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굽혔던 허리를 펼 수밖에 없었다.

백발괴인은 그런 군무현을 노려보며 퉁명스러운 어조로 불쑥 내뱉았다.

구하기는 했으나 괜한 골치만 썩게 되었다!”

그 말에 군무현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소생의... 절맥(絶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는 직감적으로 백발괴인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그러자 백발괴인은 뜻밖이라는 듯 오히려 되물었다.

네놈 스스로 절맥(絶脈)을 알고 있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군무현은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발괴인은 두 눈을 기이하게 번뜩이며 말했다.

말해 보아라!”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생의 절맥은 천지지간에 가장 양강(陽强)하다는 태양신맥(太陽神脈)입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백발괴인은 기광을 번뜩이며 의미모를 괴소를 지었다.

 

태양신맥(太陽神脈)!

 

일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극양절맥(極陽絶脈). 마치 태양(太陽)이 몸 속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지극한 극양지기(極陽之氣)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체질이다.

태음경(太陰經)은 물론 소음경(小陰經)마저도 없는 완전한 극양지체(極陽之體). 이 신맥을 타고난 인물은 오성이 범인(凡人)보다 백배 뛰어난 천고기재가 된다.

하나, 불행하게도 단명(短命)의 운을 함께 타고 태어나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 속의 극양지기는 더욱 강렬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십세가 되면 극양지기는 최고에 이르러 전신 심맥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타들어 가게 되며 결국 목숨을 잃고마는 것이었다.

한데, 군무현! 그가 바로 그 기이한 절맥인 태양신맥(太陽神脈)을 타고 태어 났다니...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야명주 불빛이 희미하게 밝혀진 동굴 안, 잠시 그곳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것은 백발괴인이었다.

노부는 네놈과 흥정을 하고 싶다!”

그는 퉁명스러운 어조로 불쑥 그렇게 말했다.

“...!”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백발괴인을 주시했다. 백발괴인은 그런 군무현의 얼굴을 꿰뚫어 볼 듯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흐흐... 네녀석에게는 하늘을 얼려버릴 듯한 엄청난 살기(殺氣)가 뻗힌다. 이는 곧 네녀석에게 불공대천지수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순간, 군무현의 무심한 얼굴에 흠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은은한 경악과 함께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 괴인은 범인(凡人)이 아니다. 타인의 마음을 훔칠 지경에 이른 모사(謀士)!)

하나, 그는 내심의 놀라움과는 달리 지극히 냉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백발괴인은 그런 군무현의 심중을 마치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흐흐... 그리고 그 원한은 네 녀석이 이십세(二十歲)가 되기 전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님도 안다!”

순간,

“...!”

군무현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하나, 그는 어쩔 수 없이 백발괴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 백발괴인은 기이한 눈빛을 번뜩이며 군무현을 주시했다.

클클... 노부가 네녀석의 수명을 오년(五年) 더 연장시켜 줄 수 있다고 하면 믿겠느냐?”

군무현은 그 말에 흠칫하며 백발괴인을 마주 주시했다.

순간, 그는 마음의 확신이 섰다.

(이 기인(奇人)이라면...!)

그같은 믿음이 서자 그는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습니다!”

그의 대답에 백발괴인은 괴이한 기소를 터뜨렸다.

클클... 네녀석이 오십(五十)까지만 살 수 있어도 향후 일천년의 중원무림사(中原武林史)가 뒤집혀지고 말 것이다!”

그의 어조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하나, 군무현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는 감정이 깃들지 않은 냉담한 어조로 물었다.

소생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간, 백발괴인의 두 눈에 끔찍한 살광이 번쩍 폭사되었다.

한놈을 노부 대신 죽여라!”

그의 음성에는 엄청난 원한과 살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일인격살(一人擊殺)! 그것이 전부입니까?”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백발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여 말했다.

흐흐... 쉽게 여기지 마라. 그놈은 천하에서 가장 음흉한 놈이다. 또한 백년내에 무적(無敵)으로 통하는 절세고수다! 그놈 일인을 죽이기 위해서는 천하(天下)와 맞서 싸워야 될지도 모른다!”

천하(天下)와 맞서 싸운다...!”

군무현은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한줄기 고통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그의 망막에 천하를 상대로 맞서 싸우던 한 거인(巨人)의 모습이 떠올랐다.

군무현 자신의 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천라지망 안으로 스스로 몸을 내던진 인물, 부친 적룡대제!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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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天魔崖慘劇

 

 

 

환영투도는 안면 가득 분노와 의혹의 빛을 떠올리며 적룡대제를 올려다 보았다.

... 주공!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적룡세가가 불타고 삼천(三千)의 정영들이 참살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느 놈들이...!”

그는 부르르 전신을 떨며 영문을 캐물었다. 그가 잠시 적룡세가를 비운 사이 참화가 밀어닥친 것이었다.

적룡대제의 안면은 고통스럽게 이지러졌다.

음모(陰謀)외다. 어느 작자인가... 적룡세가의 성세를 못마땅하게 여겨 본제(本帝)가 천지십강(天地十强)의 비도(秘圖)를 얻었다고 소문을 낸 것이오!”

그 말에 환영투도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

으득... 어느 놈이...!”

그의 두 눈에서는 엄청난 분노의 살광이 폭사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안색이 대변하여 경악의 음성으로 외쳤다.

주공! 중상을 입으셨군요!”

그제서야 비로소 그는 적룡대제의 상세를 발견한 것이었다.

적룡대제는 그런 환영투도를 향해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늦었소. 그보다... 주이에 널려있는 적들은 얼마나 되오!”

그 물음에 환영투도는 침중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천(二千)의 강적들이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임해(林海) 주위로 열화신문(熱火神門)이 열화천염대진(熱火天焰大陣)을 치밀하게 펼쳐놓고 있습니다!”

“...!”

적룡대제는 굳은 안색으로 절망의 눈빛을 지었다.

문득, 그는 고통과 연민이 얼룩진 눈으로 아들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이 애비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잠시나마 적의 눈길을 따돌리는 것 뿐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파파앗!

돌연 그는 들고 있던 적룡검으로 자신의 왼팔을 힘껏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 한소리 둔탁한 음향과 함께 피보라가 확 퍼져올랐다.

환영투도는 적룡대제의 그 갑작스런 행동에 대경함을 금치못했다.

주공!”

그는 경악의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하나, 이미 늦은 후였다. 적룡대제의 왼팔은 그의 적룡검에 싹뚝 베어져 나간 것이었다. 끊어진 그의 왼팔에서는 뚝뚝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적룡대제는 그 선혈을 혼절한 군무현의 입속으로 흘려넣었다.

파리한 잿빛으로 물든 군무현의 입술, 그 사이로 선연한 핏물이 주르르 흘러들었다.

적룡대제는 그 모습을 묵묵히 내려다 보았다.

이어, 그는 만면에 염려의 표정을 짓고있는 환영투도를 주시했다.

환노(幻老)! 무현은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에 당했소!”

순간,

파옥쇄심수!”

환영투도의 안색이 급변했다.

적룡대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무현은... 일각 내에 추궁과혈을 해주어야 하오! 무현을 환노에게 맡기겠소!”

환영투도는 대뜸 그의 뜻을 알아채고는 안색이 일변했다.

주공! ... 설마...!”

적룡대제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노의 은신술은 당금제일이니... 충분히 임해를 빠져나가리라 믿소!”

그는 신뢰어린 눈빛으로 환영투도를 주시하며 말했다.

순간,

주공...!”

환영투도는 치받치는 오열을 참지못하며 전신을 세차게 경련했다. 그 모습에 적룡대제의 강인한 눈빛이 한 차례 미미한 동요를 보였다.

하나, 곧 그는 한시가 급하다는 듯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천마애(天魔崖)로 가시오! 그곳이라면 적도들도 따르지 못할 것이오!”

“...!”

환영투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그는 말없이 적룡대제를 주시할 뿐이었다.

그 말없는 눈빛 속에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격정과 염려, 그리고 비애의 빛이 뒤엉켜 떠올랐다.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하나, 그 중에는 숨막히는 살기가 팽팽히 깔려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 !”

문득 한소리 나직한 신음성과 함께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군무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 마자 핏자국이 묻은 파리한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버님... 환노(幻老)!”

그는 환영투도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의 빛을 지었다.

그때, 적룡대제가 무어라 입을 열려는 군무현을 급히 저지하며 말했다.

무현! ... 들어라!”

, 아버님!”

군무현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적룡대제의 표정과 어투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적룡대제는 엄숙한 신색으로 아들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이 애비가 무림을 살아온 신조가 무엇인줄 아느냐?”

그는 먼저 군무현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의 그 음성에는 일대종사(一代宗師)의 당당한 자부와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 또한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나를 건드리면 천만(千萬)의 적()이라도 결코 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적룡대제의 입가에 한가닥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나, 그의 얼굴은 이미 산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그를 함락시키고 있었다. 다만, 그는 죽음을 초월한 무서운 의지로 고통에 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타는 듯 강렬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응시했다.

이제 애비의 모든 것을 네게 넘긴다!”

순간,

“...!”

군무현은 세차게 전신을 경련했다. 부친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적룡대제는 품속을 뒤져 하나의 옥패를 꺼내들었다. 이어, 그는 그 옥패를 적룡검과 함께 군무현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 군무현은 보았다. 부친 적룡대제의 피로 흥건히 물든 어깨를... 왼쪽 팔이 싹둑 잘려져 나간 그의 어깨는 끔찍하게도 피투성이었다.

“...!”

그것을 본 군무현은 부르르 몸을 떨며 전율했다. 그의 눈빛은 처절한 슬픔과 고통으로 얼룩졌다.

하나, 그는 입술을 짓깨물어 터져 나오려는 오열을 삼켰다.

이어,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적룡검과 옥패를 공손히 받아들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적룡대제의 두 눈에 자랑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이 속에 애비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

군무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가슴이 메어질 듯한 슬픔을 느끼며 소리없이 오열했다.

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단장의 아픔이 그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군무현, 그는 치유가 거의 불가능한 절맥(絶脈)을 타고난 몸이었다. 그런 반면, 그는 지극히 영민하여 그 지혜가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그런 군무현이 부친 적룡대제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

(아버님은 살신성인(殺身成人)하실 생각이다!)

부친의 그런 의도를 짐작한 그는 처절한 비애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적룡대제 군천휘, 그 또한 군무현의 내심을 읽고 있었다. 하나, 그는 강인하고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결코 감정을 경솔히 드러내지 않는 인물, 그는 엄숙한 안색으로 군무현을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잊지마라! 삼천(三千)의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이 너 하나를 위해 웃으며 죽어 갔다는 것을...!”

그는 강인한 어조로 힘주어 말했다.

그 말을 마침과 함께,

!”

한 소리 웅후한 장소성과 함께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튀듯이 날아올랐다.

이어, 파 앗!

그의 몸은 당겨진 화살처럼 허공으로 폭사되어 갔다.

그 순간,

나왔다!”

적룡대제다!”

쏴라!”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일제히 분분한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 쐐 액! 화르르... ! !

수천 송이의 불길이 일제히 적룡대제의 전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 그것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일시에 허공에는 찬란한 불꽃이 작렬하듯 터져올랐다.

뒤미처, ! 콰르르릉...!

천붕지열의 굉음이 천지를 들썩 뒤흔들었다.

오오... 보라! 적룡대제 군천휘!

그의 몸은 한순간 허공에서 흔적도 없이 산화되어 버리고 만 것이 아닌가!

눈 깜짝할 순간 그의 몸은 한줌의 재로 화해 흩어져 버린 것이다.

살신성인(殺身成人)! 이토록 무참히, 흔적도 없이 한순간에 재로 사라지는 것으 그 숭고한 희생의 대가란 말인가?

그것은 너무나 찰나지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주공...!”

환영투도는 적룡대제 군천휘의 장렬한 최후를 지켜보며 피를 토하듯 오열했다.

“...!”

군무현,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전신은 벼락을 맞은 듯 연신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나, 그는 필사적으로 입술을 악물며 오열을 짓씹어 삼켰다.

전신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엄청난 슬픔과 충격! 부친의 장렬한 최후는 그의 가슴에 피멍을 맺히게 했다.

있는 힘을 다해 악다문 그의 입술은 처참하게 터져 선혈이 흘러내렸다.

, 지금 그의 두 눈에는 피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혈루(血淚), 그것은 통한의 혈루였다.

아아... 아버님이시여!

군무현은 으스러져라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긴 것일까? 잔뜩 핏발이 선 그의 두 눈은 엄청난 원한과 분노의 광휘로 번뜩이고 있었다.

어쩌랴? 이제 십사세에 불과한 어린 소년 군무현, 그는 실로 감당치 못할 너무도 크나큰 한()을 짊어지고 만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 찾아랏!”

적룡대제의 시신에 천지십강(天地十强)의 열쇠가 있을 것이다!”

와아!”

사방에서 수천 명의 군웅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벌떼같이 덮쳐들었다.

그 순간,

소주(少主)! 노복이 모시겠습니다!”

환영투도가 비감어린 음성으로 말하며 군무현의 허리를 굳게 끌어안았다.

말과 함께, 스스스... 그는 기민하게 몸을 움직여 장내를 빠져나갔다.

군무현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잊지 않는다!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아버님을 시해하고 적룡세가를 무너뜨린 자들... 반드시 그 천만배로 갚아 주리라!)

그는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며 다짐했다. 일생을 다해도 결코 잊지못할 철천지한(徹天之恨).

처절하고도 뿌리깊은 원한이 어린 그의 가슴에 깊이깊이 심어지고 있었다.

 

X X X

 

천마애(天魔崖).

 

대파산의 제일험지(第一險地). 세인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천고절지(天古絶地)였다.

천마애는 사시사철 온통 시커먼 묵운(墨雲)으로 휩싸여 있다. 짙은 공포와 암울한 신비가 어려있는 곳, 천마애의 진실된 모습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 문득, 스스슥...!

스산한 음풍을 타고 하나의 인영이 천마애로 날아내렸다.

천험절지의 암울한 침묵을 깨며 날아든 인영, 일노일소(一老一少)! 바로 군무현을 안은 환영투도였다.

! 환영투도는 신형을 멈추며 앞을 노려보았다.

(저 묵기(墨氣)는 진세(陣勢)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천마애에 가공할 절진(絶陣)이 쳐져 있다는 것이 사실이었군!)

그는 형형한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결연한 신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소주(少主)를 숨길 수 있는 곳은 오직 저곳밖에 없다!)

결심한 순간, 그는 축 늘어진 군무현을 안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넘쳐 흘렀다.

(소주...! 천마애의 절진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나... 적도들의 마수(魔手)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이곳뿐이니...!)

그는 측은한 연민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이럴 줄 알았다!”

돌연 한소리 싸늘한 일성이 환영투도의 귓전을 울렸다.

순간,

!”

환영투도는 대경하며 홱 돌아섰다.

그런 그의 삼장 앞, 언제였을까?

한 명의 백의노인이 유령같이 우뚝 서 있었다.

고아한 용모에 신선같은 풍모를 지닌 노인, 귀밑까지 늘어뜨린 허연 백미(白眉)가 무척 특이한 인상을 풍겼다.

환영투도는 홀연한 백의노인의 등장에 내심 경악을 금치못했다.

(나의 이목을 속이는 자가 있다니...!)

환영투도! 그가 누군가?

천하(天下)가 알아주는 경공의 대가가 아닌가?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백의노인이 지척까지 접근하도록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환영투도는 절로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귀하는 누구요?”

환영투도는 백의노인을 노려보며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백의노인은 기품있는 용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흐흣! 알 필요 없다! 네놈은 곧 죽게 될테니까!”

그자는 음산한 눈빛을 번뜩이며 일축했다. 이어, 그 자는 천천히 환영투도를 향해 다가섰다.

“...!”

환영투도는 일순 이마에 땀이 배이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 주공에 못지않은 강자다. 노부의 상대가 아니다!)

그는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리며 백의노인을 노려보았다.

순간, 그의 두 눈에 엄청난 살광이 번쩍 폭사되었다.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 이 모두가 네놈의 짓이었군!”

그는 부르르 몸을 떨며 찌렁한 분노의 폭갈을 내질렀다.

백의노인. 그 자를 일견한 순간 환영투도는 직감적으로 눈앞의 백의노인이 음모(陰謀)의 원흉임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와 함께, 그는 축 늘어져 있는 군무현을 향해 급히 전음을 보냈다.

소주! 노복이 저자를 막을 동안 천마애로 들어가십시오! 위험을 벗어나시면 천중산(天中山) 자하곡(紫霞谷)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원수를 갚기에 충분한 무공비급들이 있습니다!”

“...!”

군무현의 창백한 안색이 어둡게 굳어졌다.

그때, 백의노인은 음흉한 음소를 흘리며 바짝 환영투도의 앞으로 다가섰다.

풀을 뽑을 때는 뿌리까지 뽑아야 하는 법!”

그 자는 냉혹하고 음산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우르릉!

그 자의 소매에서 돌연 산악같은 경기가 쏟아져 나왔다.

환영투도는 질끈 입술을 악물었다. 이어, 그는 군무현을 바라보며 결연한 음성으로 전음을 보냈다.

소주! 가십시오!”

말을 마침과 함께, 휘 익!

그는 안고있던 군무현을 그대로 천마애의 자욱한 운무 속으로 힘껏 집어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 갑작스런 사태에 백의노인은 낭패함을 금치못했다.

이런... 여우같은 놈!”

그자는 안면을 흉측하게 이지러뜨리며 폭갈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쉬 익!

그 자는 벼락같은 기세로 허공으로 날아가는 군무현을 낚아채려 했다.

하나,

어딜!”

위 잉! 콰르릉... !

환영투도가 황급히 장을 내질러 백의노인을 막아섰다. 그의 소매에서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경기가 섬전처럼 폭사되었다.

백의노인은 대노하며 발을 굴렀다.

교활한 도둑놈!”

우웅!

그자는 노기충천하여 맹렬히 우장을 휩쓸어냈다. 그러자, 그의 우수가 돌연 새파랗게 물드는 것이 아닌가!

환영투도는 흠칫하여 눈을 부릅떴다.

... 천강쇄옥수! ... 네놈은...!”

그는 경악과 불신의 눈빛으로 백의노인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콰쾅! 백의노인의 새파란 우수가 여지없이 환영투도의 가슴을 가격했다.

직후,

크 악!”

환영투도의 처절한 비명이 천마애를 울렸다.

그는 무참하게 가슴이 박살난 채 가랑잎처럼 뒤로 날아갔다.

그 직후, ! 백의노인은 환영투도의 생사(生死)를 살피지도 않고 다급히 천마애로 뛰어들었다.

하나, 군무현의 모습은 이미 천마애의 자욱한 묵운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백의노인의 청수한 안면은 보기싫게 이지러졌다.

이런 낭패가...!”

그자는 길게 뻗은 백미를 부르르 떨며 발을 굴렸다.

이윽고, 그 자는 체념의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돌아서는 그 자의 얄팍한 입꼬리에 한 가닥 음흉한 음소가 떠올랐다.

개운치 않지만...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천마애에 접근했다가 살아난 자는 아무도 없으니...!”

그 자는 음산한 눈을 번뜩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어, 스스스... 그 자의 신형은 유령같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 명의 장렬한 의혈(義血)이 뿌려진 천마애. 천고의 침묵 속에 잠긴 천마애는 여전히 무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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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悽絶父情

 

 

 

 

적룡대제는 있는 힘을 다해 벼락같이 적룡검을 휘둘렀다.

가랏!”

츠츠츠읏!

한소리 찌렁한 폭갈과 함께 눈부신 검기가 해일같이 금붕천왕(金鵬天王)을 휩쓸어 갔다.

다음 순간, 콰콰쾅! 콰릉...

크 악!

가공할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듬과 함께 붕조의 처절한 괴성이 터져올랐다.

그와 동시에,

크윽!”

적룡대제는 무서운 폭풍에 휘말려 십 장 밖으로 거칠게 튕겨져 나갔다. 그런 그의 모습은 실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의 복부는 길게 찢어져 시뻘건 내장과 검붉은 핏물이 마구 쏟아져 흐르고 있었다.

그의 몸은 금강지체(金剛之體)에 가까웠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붕의 사나운 발톱에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었다.

그때, 구워억! 콰아아...!

고통스러운 붕음과 함께 허공으로 떠오르는 금붕의 몸에서도 무지개같은 혈무가 확 퍼져올랐다.

금붕의 거대한 한쪽 날개, 그것이 적룡검의 검기에 처참하게 짓이겨진 것이었다.

그때,

흐흐... 적룡대제! 다시 오마!”

허공으로 떠오른 금붕천왕은 지면을 내려다보며 음산한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그와 동시, 콰르르... 쐐 액!

그 자는 부상을 입은 금붕을 타고 벼락같은 기세로 남()으로 방향을 잡아 날아갔다.

하나 그 순간, 적룡대제의 두 눈에 번쩍 살광이 치솟았다.

살려 보내지 않겠다!”

그는 이를 갈며 안고있던 군무현을 눈 위에 내려놓았다.

이어, 그는 벌떡 몸을 일으킴과 함께 수중의 적룡검을 단전(丹田)에 붙였다.

다음 순간,

죽어랏! 적룡검강!”

푸 학! 적룡대제의 입에서 대갈일성이 터짐과 함께 적룡검이 한 무더기 광채로 화해 허공을 향해 폭사되었다.

직후, 케에 엑!

처절하고 날카로운 금붕의 비명이 허공을 뒤흔들며 터져올랐다.

파파파앗! 번갯불이 몰아치는 듯한 엄청난 광채와 함께, 섬뜩한 피보라가 일순 산지사방으로 확 퍼져 올랐다.

보라! 거대한 금붕의 강철같은 오른쪽 날개는 흔적도 없이 싹둑 잘려져 나가버리고 없었다.

이어, 쐐 액!

금붕천왕을 태운 금붕은 남쪽 골짜기 너머로 내리 꽂히듯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쉬학!

적룡검이 번쩍 검광을 폭사하며 다시 적룡대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나,

... !”

적룡대제는 미처 검을 회수하지도 못하고 뒤로 휘청 물러서며 허리가 꺾여 졌다.

진기가 끊어진 것이었다.

그러자, 파파앗! 적룡검도 급격히 방향을 잃고 허공에서 뚝 떨어지며 눈 속에 푹 박혔다.

적룡대제, 그의 안색이 일순 고통과 함께 당혹함으로 처참하게 이지러졌다.

... 진기가 이어지지 않다니... 한 번 더... 고비를 넘겨야 하는데... 크윽!”

그는 입술을 악물며 비틀비틀 일어섰다. 이어, 바닥에 내려놓은 군무현과 함께 적룡검을 집어들었다.

그의 형상은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상처는 완전히 치명상이었다.

그의 심장 부근, 늑대의 이빨같은 낭아표(狼牙剽)가 다섯 개나 찍혀 있었다.

그것도 모두 사혈(死穴)에만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뿐인가? 그의 복부는 처참하게 찢겨 끊어진 내장이 연신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실로 그런 상태로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하나, 적룡대제는 자신의 상처 따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핏발선 눈을 부릅뜨며 이를 갈았다.

금붕천왕(金鵬天王)...! 그 놈을 일검(一劍)에 죽이지 못했으니... 곧 놈들이 개미떼같이 몰려오리라!”

그의 강직한 얼굴에는 초조와 불안의 빛이 떠올랐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육신, 그대로 주저앉으면 스르르 눈을 감아 버릴 듯하다.

하나, 그는 결코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적룡대제는 죽은 듯이 늘어져 있는 아들 군무현을 내려다보며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질끈 악물었다.

백짓장같은 얼굴로 혼절해 있는 군무현, 그를 내려다보는 적룡대제의 심정은 칼로 저미는 듯 쓰라리고 아팠다.

이윽고, 적룡대제는 힘겹게 다리를 끌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설원은 온통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그의 선혈은 끝없이 백설을 적시고 있었다.

하나, 적룡대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천근같은 몸을 끌며 계속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스스스... 걸음마다 피가 고이는 혈로(血路).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적룡대제는 마침내 아득한 설원을 지나 하나의 작은 구릉을 넘어섰다.

그러자, 눈앞에 갑자기 울창한 송림이 나타났다. 태고 이래 인적이 닿지않은 은밀한 절지(絶地).

울울창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길을 찾아 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

송림 앞에 이른 적룡대제, 그의 두 눈에 비로소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 이곳이 대파산(大巴山) 제일의 험지(險地)인 천마애(天魔崖) 앞의.... 임해(林海)...!”

그의 목소리가 떨림을 띠며 두 눈에 생기가 감돌았다.

천마애(天魔崖)까지 가면... 놈들도 추격을 못할 것이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나 문득, 그의 강직한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그것은 육신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천만(千萬)의 적()이라도 결코 피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적룡대제의 신조(新條)였다.

한데, 지금 그는 어떤가? 적을 피해 등을 보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적룡대제의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현... 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다!)

적룡대제는 스스로 그렇게 자위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 자신 또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사색(死色)이 완연했다.

하나, 그는 게의치 않았다.

사랑하는 아들, 지금 적룡대제의 뇌리 속에는 오직 아들을 살리려는 일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신을 짓누르는 처절한 고통도, 일생(一生)을 통해 굳게 지켜온 신조마저도 과감히 버렸다.

군무현!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이윽고, 적룡대제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미 균형을 잃어 불규칙한 걸음걸이, 하나 그는 계속 걸었다.

필사의 의지와 신념으로, 마침내 그는 울창한 송림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

그는 움찔하며 전신이 굳어졌다.

(적이 이미 와있다!)

그는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끼며 내심 부르짖었다.

그것은 수십 년간을 검날 위에서 살아온 그의 직감이었다.

(). 살기어린 형형한 눈빛, 적룡대제는 수백 개의 살기어린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나, 스슥...! 그는 잠시 주춤했을 뿐 발길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는 계속 송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멈추면... 덤벼들 것이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긴장된 눈빛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삐 익! 돌연 귀청을 찢는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송림 속을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크르릉... !

사나운 울부짖음과 함께 시뻘건 그림자들이 질풍같이 적룡대제를 향해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 놀라운 일이었다.

돌연히 적룡대제를 향해 덮쳐드는 시뻘건 그림자, 그것은 호랑이만큼 거대한 체구의 시뻘건 핏빛 늑대의 무리가 아닌가?

적룡대제는 흠칫하며 두 눈을 부릅떴다.

혈랑천왕(血狼天王)! 네놈이냐?”

그는 대갈일성하며 홱 돌아섰다.

그 순간, 츠츠츠읏! 스 악!

가공할 검기가 그의 주위로 무지개를 일으키며 확 퍼져올랐다.

직후, 크 악! 케에엑!

삽시에 수십마리의 혈랑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그놈들은 모두 목이 절단된 채 피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하나, 혈랑떼는 두려움 따위는 모르는 듯했다.

크르릉... ! !

그놈들은 시뻘건 이를 쩍 벌리며 흉폭한 기세로 재차 적룡대제를 향해 덮쳐들었다.

혈랑의 몸뚱이는 쇠보다 질긴 가죽으로 뒤덮여 있었다. 따라서, 보통의 보검으로는 상처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단단했다.

하나, 위 잉! 콰자작 콰릉...!

적룡대제의 신위는 가히 눈부실 정도였다.

케엑! 끄륵... 크악!

그의 적룡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호랑이만한 거대한 체구의 혈랑떼가 마치 썩은 짚단처럼 나뒹굴었다.

그와 함께, 역겨운 짐승의 피가 송림을 붉게 물들었다.

츠츠읏... 번 쩍!

적룡대제는 계속 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필사적인 대항이었다. 그는 점차 손에 힘이 빠짐을 느끼고 있었다.

(큰일이다. 다시... 진기가 막힌다. 더 이상 공격이 계속되면...!)

그의 내심은 온통 초조와 절박감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삐 익!

재차 한차례 날카로운 호각성이 적룡대제의 귓전을 찢었다.

그러자, 크르르... 우 우!

혈랑떼는 그 즉시 공격을 멈추고 마치 썰물이 빠지듯 일제히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실로 뜻밖의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적룡대제는 그 모습에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위, 백여마리가 넘는 혈랑의 시체들이 끔찍한 형상으로 널려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일단 위기를 넘기기는 했으나... 이미 임해(林海)는 천라지망으로 뒤덮여 있으니...!)

그의 안색은 무겁게 굳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콰르릉 콰쾅!

갑자기 적룡대제의 전면에서 거창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순간,

!”

적룡대제는 군무현을 안은 채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직후, 화르르!

그의 전면 십장이 강렬한 화기(火氣)에 휩싸이더니 삽시에 주위의 송림들이 한줌의 재로 화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에 적룡대제는 낭패함을 금치못했다.

(가장 골치아픈 열화신문(熱火神門)의 놈들까지...!)

그의 안색은 천근처럼 무거워졌다.

바로 그때, 파 앗! 송림 위로 다시 몇 개의 주먹만한 구슬이 날아들었다.

순간, 스슷! 적룡대제의 신형이 눈부시게 움직였다.

차 핫!”

그는 대갈일성하며 일시에 삼십 장 밖으로 물러섰다. 그것은 실로 기쾌무비하기 이를 데 없는 몸놀림이었다.

그 직후, 콰쾅! 화르르르...

가공할 폭음이 들썩 송림을 뒤흔들며 적룡대제가 서 있던 곳이 무참하게 박살났다.

스슥! 적룡대제는 그 순간을 틈타 삽시에 백여장을 쏘아나갔다.

하나,

크윽!”

콰당! 너무 급박한 나머지 그는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군무현을 안은 채 거칠게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고통과 함께 낭패함으로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으윽... 틀렸는가?”

그는 주먹만한 선혈을 한모금 울컥 토해냈다.

이어, 그는 입술을 악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군무현, 그의 얼굴은 완전히 사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을 본 적룡대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음을 느꼈다. 그는 급히 군무현의 심맥을 짚어보았다.

순간, 그의 안색이 어둡게 굳어졌다.

(... 큰일이다.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의 기운이 심장에 까지 이르렀다. 이대로 두면...!)

그는 절박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문득, 그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내 피를 먹이는 수밖에... 내 피속에는 만년설삼(萬年雪蔘)의 영기(靈氣)가 흐르고 있으니...!”

적룡대제! 그는 젊었을 때 한 뿌리의 만년설삼(萬年雪蔘)을 복용한 적이 있었다.

만년설삼의 영효는 실로 뛰어난 것이었다. 그것을 복용한 덕분에, 적룡대제는 나이 채 사십(四十)이 못되어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의 명예로운 권좌를 차지할 수 있었다.

만년설삼을 복용한 그의 피는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영약과 마찬가지의 효력을 지녔다.

이윽고, 적룡대제는 망설임없이 번쩍 적룡검을 쳐들었다.

아아... 부정(父情)!

부정은 뜨겁고도 처절한 것이었다. 적룡대제는 질끈 입술을 악물며 적룡검으로 거침없이 자신의 왼손을 내리치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우르릉! 돌연 은은한 진동음과 함께 주위의 지면이 기우뚱할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순간,

(!)

적룡대제는 안색이 대변했다.

(누군가 땅 속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는 급히 신형을 바로 잡으며 긴장된 눈빛으로 적룡검을 고쳐쥐었다.

바로 그때, 파파파팍!

지면의 흙이 팍 터지며 한 명의 인물이 불쑥 흙덩이를 뚫고 치솟아 올랐다.

적룡대제는 그 인영을 향해 사력을 다해 적룡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나 문득, 그의 안색이 급변하며 경악의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환노(幻老)!”

그는 눈을 부릅뜨며 발 아래를 주시했다. 두더지처럼 땅속을 뚫고 나온 인물, 그는 뜻 밖에도 적룡대제의 적이 아니었다.

적이 아닐뿐더러 그가 가장 신임하고 가깝게 여기는 인물이 아닌가?

백의노인, 그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극히 평범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 결코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백의노인은 만면에 격동의 빛을 감추지 못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주공(主公)!”

그는 적룡대제의 앞에 털석 무릎을 꿇었다.

적룡대제, 그의 안면에 부르르 격동의 떨림이 일었다.

환노(幻老)! 그대가... 여기까지 따라와 주었구려!”

그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백의노인의 손을 굳게 움켜쥐었다.

 

환영투도!

 

그는 이미 일백년(一百年)을 살아온 대신투였다.

역용(易容), 은신(隱身), 신투술에 있어 천하제일로 꼽히는 인물. 그는 배짱 또한 놀란만큼 두둑하여 황궁보고(皇宮寶庫)를 안방 드나들 듯 하는 인물이었다.

적룡대제와 환영투도,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진 것은 삼년(三年)전이었다.

적룡대제는 우연히 죽어가던 환영투도를 구해주게 되었다.

그 당시, 환영투도는 황궁(皇宮)에 숨어 들었다가 변을 당했다. 황실제일인(皇室第一人)인 금령천존(金靈天尊)과 맞닥뜨려 크게 부상을 당한 것이었다.

결국, 적룡대제는 환영투도의 생명의 은인인 셈이었다.

그후, 환영투도는 적룡대제를 주인(主人)으로 모셨다.

적룡대제, 그가 천하제일의 문파 적룡세가(赤龍勢家)를 이루는 데는 환영투도의 보이지 않는 공로가 지대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유대관계는 지극히 밀접했다. 환영투도는 진심으로 적룡대제를 주공(主公)으로 받들어 섬겼다.

적룡대제 또한 그런 그를 가장 믿고 신임했다. 그는 적룡세가의 모든 대소사(大小事)를 환영투도와 더불어 의논해왔다.

한데, 죽음의 위기에 몰린 적룡대제, 그의 앞에 뜻밖에도 그 환영투도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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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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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쫓기는 父子

 

 

 

사천(四川) 검운산(劍雲山)!

 

하나의 웅장하고 거대한 성보(成堡)가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천하를 굽어 호령하며 위세당당한 기세로 우뚝 선 무적(無敵)의 철옹성!

 

적룡세가(赤龍勢家)!

 

오오...! 그 이름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당금무림의 최강문파, 사천(四川)에서 일어나 호남(湖南), 호북(湖北), 섬서(陝西)를 완전히 장악한 거대패세(巨大覇勢)가 바로 그들이었다.

백도무림(白道武林)의 위대한 투혼을 기치로 일어선 그들은 타오르는 횃불과도 같이 그 기세가 날로 욱일승천하고 있었다.

나는 새조차 떨어뜨릴 듯한 드높은 위명의 적룡세가(赤龍勢家)! 그 누구도 적룡세가에 대적하려들지 않았다.

명실공히 천하거봉(天下巨峯)으로 우뚝 선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

한데, 이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보라! 화르르르...! 콰르릉... 쿠 쿵!

화마(火魔)! 거대하고 웅장한 적룡세가(赤龍勢家) 전체는 지금 온통 시뻘건 화마의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콰콰쾅 우르릉... 천지겁멸의 장이 열리는가?

엄청난 폭음과 화마 속에 적룡세가는 통째로 붕괴되고 있었다.

아아... 누가 있어 당금무림의 최강문파인 적룡세가를 괴멸시킨단 말인가? 실로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무적(無敵)의 절대패세(絶代覇勢)! 천하대세(天下大勢)의 한 획을 긋는 거대패세가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만물이 잠든 깊은 밤에... 그것은 철저하고 뿌리깊은 거대한 흑암(黑暗)의 꿈틀거림과 함께 시작되었다.

 

X X X

 

대파산(大巴山)!

 

섬서성에 연한 사천(四川) 변경의 험산(險山). 천년(千年)의 장구한 세월동안 인간의 발길을 거부해온 처녀지(處女地).

사시사철 산허리를 휘감아 흐르는 자욱한 안개와 함께 태고의 신비가 구비구비 서린 심산(深山)이었다.

겨울(). 대파산 전체는 온통 흰 눈에 뒤덮여 있었다.

건곤일색! 사위는 온통 눈부신 백색(白色)의 설경(雪景)으로 덮여 신비롭고 평화롭기 이를데 없었다.

어둠, 그 눈부신 백설 위로 짙은 어둠이 쌓이고 있었다.

하나, 찬란한 설광(雪光)은 어둠마저 흰빛으로 물들여 주위는 마치 불을 밝힌 듯 환했다.

한데, ! 혈점(血點)! 희디흰 설원에 너무도 철저하도록 붉고 선명한 혈흔(血痕)이 얼룩져 있지 않은가?

그 혈흔은 실로 충격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점점이 이어지는 핏자국, 누가 어둠 속의 설원에 선혈을 뿌린 것일까?

하나, 기이한 일이었다. 눈 위에 시뻘건 핏자국은 선명히 남아있건만 피를 흘린 이의 발자국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휘이이잉...! 스스스...

바람이 분다. 뼈를 저미는 매서운 설풍(雪風).

그 설풍이 휩쓸고 지나는 설원으로 붉고 처절한 핏자국은 점점 크고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선홍의 혈흔은 손바닥만하게 커지며 그 간격이 점점 더 좁아진다.

게다가, 어느 시점, 모락모락 뜨거운 김까지 피어오르지 않는가? 피를 흘린 자의 체온이 그 혈흔 속에 배어있음이다.

문득,

... 무현(武玄)! 잊지마라! 잊어서는 아니된다!”

처절한 한()과 분노가 서린 한소리 중얼거림이 설원을 울렸다.

! 보인다. 전신이 시뻘겋게 물들어 혈인(血人)이 된 한 명의 인물이 어둠 속의 설원을 가로지르고 있지 않은가?

스스스... 눈덮인 설원을 바람처럼 지나는 인물, 끔찍했다.

그는 처참하게도 일신에 무려 칠백여 군데의 상처를 입은 모습이 아닌가?

그 혈인(血人)이 설원을 스쳐 지날 때마다 희디흰 설원에는 새빨간 선홍의 무늬가 아로새겨졌다.

얼마나 그렇게 달려온 것일까?

간신히 몸을 날리고 있기는 했으나 혈인(血人)은 몹시 지친 듯 연신 신형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설원을 가로지르는 속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으며 그의 걸음걸이는 갈수록 불규칙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듯 위태로운 모습,

하나, 스슥...!

보라! 혈인의 발은 바닥에 닿지 않을 뿐 아니라 설원의 두치 위를 떠가고 있었다.

답설무흔(踏雪無痕)! 그 지고무상한 경공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데, 그때였다.

... 잊지 않습니다... 소자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끊어질 듯 미약한 소년의 음성이 혈인의 말에 대꾸해 왔다.

희미하게 꺼져 들어가는 극히 무기력한 음성, 하나, 그 힘없는 음성 속에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철천지한(徹天之恨)이 서려 있었다.

그렇다. 그러고보니 혈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왼팔, ! 한 명의 소년이 축 늘어진 채 힘없이 안겨있지 않은가?

이제 십사오세 정도 되었을까? 백짓장같이 창백한 안색에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었다. 하나, 소년의 용모는 놀랍도록 준미했다.

특히, ()! 소년의 두 눈은 너무도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깊숙하고 신비한 가운데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그의 두 눈은 싸늘한 검날 위에 빛나는 은은하고 투명한 달빛, 그것이었다.

한 번 보면 영원히 잊지못할 신비하고 인상적인 소년의 두 눈, 그것은 차라리 마력적인 신비(神秘)라고 할 수 있었다.

반면, 소년을 안은 채 설원 위를 치달리고 있는 혈인(血人).

그의 두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분노와 원한, 그리고 엄청난 격정으로 이글거리는 눈빛, 그의 호목(虎目)은 찢어질 듯 한껏 부릅떠져 있었으며 붉은 입술은 피가 나도록 꽉 짓깨물고 있었다.

지금 그는 통한의 음성으로 소년에게 거듭 당부하고 있었다.

그렇다! 잊으면 안된다. 비명(非命)에 쓰러진 삼천(三千)의 적룡지혼(赤龍之魂)을 잊어서는 안된다!”

소년의 여인처럼 붉은 입술도 꽉 깨물려 선렬한 피가 흘러 내렸다.

그는 비분에 찬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 천지가 뒤집혀도... 소자 군무현(君武玄)은 적룡세가(赤龍勢家)의 삼천정영(三千精英)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아!

적룡세가(赤龍勢家)!

적룡세가라 했던가? 당금무림의 최강문파인 적룡세가가 바로 혈인의 가문이란 말인가?

그렇다.

 

적룡대제(赤龍大帝) 군천휘(君天輝)!

 

한 자루 적룡검(赤龍劍)으로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보좌를 차지한 일대영웅(一代英雄)! 그는 바로 적룡세가(赤龍勢家)의 당대가주였다.

백년 전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이래 최강(最强)으로 불리는 절대검제(絶代劍帝), 그의 검법은 당대 무적(無敵)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데,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사천(四川) 검운산(劍雲山) 정상에 차리한 적룡세가, 그곳에서 무적의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을 호령하고 있어야할 적룡대제(赤龍大帝) 군천위.

그가 어찌 이같은 처참한 모습으로 심야에 대파산을 넘고 있단 말인가?

 

군무현(君武玄)!

 

이것이 적룡대제의 품에 안긴 소년의 이름이었다.

적룡대제가 목숨보다 더 아끼는 그의 외아들.

지금 그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문득, 혈인 적룡대제의 강직한 얼굴에 절박한 표정이 떠올랐다.

(큰일이다. 절맥(絶脈)을 지니고 태어나 허약할대로 허약한 데다가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를 맞았으니...!)

그는 초조한 눈빛으로 소년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군무현, 그의 가슴에는 하나의 불그스름한 수인(手印)이 꾹 찍혀 있었다.

그는 지금 기식이 엄엄한 상태였다. 그의 조각같이 준미한 얼굴에는 차츰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적룡대제의 안색은 처참하게 이지러졌다.

문득, 그의 부릅떠진 두 눈에서 엄청난 살광이 폭사되었다.

으득... 쇄심선자(碎心仙子)! 무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년은 나 적룡대제의 검() 아래 천참만륙 당하리라!”

그는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를 갈았다.

그때,

... 잊지 않습니다... 소자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군무현은 파리한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힘없이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나, 그런 그의 시선은 급격히 흐려지고 있었다.

적룡대제는 절박한 심정을 금치못했다.

안된다! 눈을 감지마라, 무현! 잠들지 말라!”

그는 아들 군무현을 세차게 흔들며 피를 토하듯 외쳤다.

하나 어쩌랴! 군무현의 눈빛은 점점 아득하게 흐려지기만 했으니... 이미 그의 두 눈에는 죽음이 깃들고 있었다.

무현! 무현!”

적룡대제는 비통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아아... 처절한 부정(父情)이여...!

그의 상세 또한 심각하기 이를데 없어 지금 그는 골수를 쪼개는 처절한 고통에 짓눌리고 있었다.

하나, 어찌 자신의 고통쯤이 문제이랴?

아들(). 자신이 목숨보다 아끼는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적룡대제는 가슴이 뽀개지는 듯한 고통을 무릅쓰고 사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스슥! 그가 몸을 날릴 때마다 설원 위에는 시뻘건 혈화(血花)가 어둠이 무색할 정도로 선명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파파팍! 돌연 눈앞에 번쩍 광채가 작렬했다.

그와 동시에, 찬란한 금광(金光)이 적룡대제를 향해 벼락같이 날아 꽂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

적룡대제는 눈을 부릅뜨며 신형을 휘청했다.

! 어느새 한 자루 금빛의 강전이 그대로 적룡대제의 어깨를 관통한 것이 아닌가?

금붕강전!”

그는 노갈을 터뜨리며 홱 돌아섰다.

그 순간, 끄 악! 쐐액!

허공을 쥐어뜯는 흉측한 괴성과 함께 적룡대제의 전면으로 한 마리 거대한 금빛의 거조(巨鳥)가 내리박히듯 쇄도해 들어왔다.

오오! 실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콰르르... 콰쾅!

금빛의 거조(巨鳥)! 그것의 날개짓에 주위 십장 방원이 삽시에 초토화되어 버렸다.

찰나지간 거조의 금빛 그림자는 천지를 메우듯 사위를 뒤덮었다.

금붕천왕(金鵬天王)!”

적룡대제는 눈을 부릅뜨며 노갈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파 앗! 그의 신형이 벼락같이 움직였다.

직후, 콰르릉... 콰콰 쾅!

천번지복의 가공할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들며 터져올랐다.

츠츠츠... 쉬 잉!

장내를 온통 휩쓸며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보라.

그 가운데, 카 악! 거조의 날카로운 괴성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하나, 쐐 액! 십장의 거대한 붕조(鵬鳥)는 한차례 휘청 거구를 비틀거렸으나 이내 쏜살같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광경에 적룡대제는 분노를 금치못했다.

감히 여기까지 쫓아 오다니...!”

그의 두 눈에 번쩍 살광이 폭사되었다.

그때, 휘르르... 파파앗!

적룡대제의 주위로 무수히 잘려진 붕조의 찬란한 금우(金羽)가 어지럽게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크윽...!”

적룡대제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신형을 휘청했다.

그런 그의 가슴, 실로 끔찍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의 가슴 부분은 처참하게 짓이겨져 허연 늑골이 드러나 보였다.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엄청난 중상.

하나, 적룡대제는 핏발선 호목(虎目)을 부릅뜬 채 무섭게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때, 콰콰콰... 쐐액!

금붕(金鵬)의 거대한 거구가 다시 적룡대제를 향해 벼락같이 짓쳐들었다.

그런 금붕의 등 위, 한 명의 위풍당당한 체구의 금포노인이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자는 한 자루 강궁을 쳐든 채 적룡대제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으하하! 적룡대제! 이번에는 심장을 갈라 주겠다!”

금포노인은 득의의 광소를 터뜨리며 외쳤다.

적룡대제는 이를 악물며 신형을 부르르 경련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줄기줄기 원한과 분노의 광망이 치뻗쳤다.

그는 허공을 노려보며 찌렁찌렁한 음성으로 외쳤다.

금붕천왕(金鵬天王)! 양단을 내주리라!”

다음 순간, 쩌 엉! 그의 손에 한 자루 눈부신 장검(長劍)이 들려졌다.

아아!

 

적룡검(赤龍劍)!

 

그 장검은 바로 적룡검(赤龍劍)이 아닌가?

무적제황검(無敵帝皇劍)!

적룡검의 검신(劍身)은 마치 홍옥처럼 서늘하고 투명해 보였다.

그 투명한 검신, 한 마리 비등하는 용()의 문양이 너무도 정교하고도 웅장한 자세로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적룡검을 뽑아드는 순간 눈부신 보광(寶光)과 함께 수천가닥의 날카로운 예기가 숨통을 조일 듯 뻗어나왔다.

오늘의 적룡대제를 있게 한 신검(神劍)!

 

적룡대제, 적룡검을 든 채 우뚝 선 그의 모습은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태산(泰山)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콰르르릉! 쐐 액!

다시 금붕의 그림자가 장내를 가득 뒤덮으며 거대한 금붕이 위맹한 기세로 적룡대제를 향해 짓쳐들었다.

그와 함께, 파 앗!

섬뜩한 파공성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하나의 금붕강전이 섬전같이 적룡대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위기일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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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3월! 무려 39년 전에 쓴 작품입니다. 20대 초반, 중2병의 흔적이 남아있을 시절에 쓴 글입니다. 실소가 나오는 설정과 표현이 있더라도 감안하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序 文

 

 

 

봄(春), 봄(春), 봄(春)!

드디어 봄이 왔습니다.

사실 드디어... 라는 말이 싱거울 정도로 지난 겨울의 동장군은 위세가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월동용 품장사들이 망했다고 아우성을 치겠습니까? 그러나 어쨌든 겨울은 겨울이었고, 누구나 봄날의 따사로움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계절의 순환은 무상하되, 또한 속임도 없는 법, 이윽고 봄날의 자비로움이 우리곁에 이르렀습니다.

봄은 실로 생명의 터라고 할 수 있는 계절이 아닐런지...!

많은 인간들이 새봄과 함께 가슴 벅찬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세상만사는 결코 화사한 봄빛만도ㅛ 아닙니다. 물가는 오르고, 정치판은 개판이 된지 오래며, 수많은 부조리가 우리 주위에서 난리를 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숨막힐 듯한 절망감에 인간들의 눈에는 핏발이 맺히고 절로 공격적이 되어 버립니다.

인심은 흉흉하고 가슴을 따스하게 해줄 미담이 실로 절실한 때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또 계절은 변합니다.

희망의 싹을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이봄의 환희를 만끽합시다.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 탓하지 마시고 피곤하고 염증나는 이 세상의 일일랑 본졸저(卒著)와 함께 잊어주십시오.

그것이 비록 찰나의 짧은 환각이 될지라도...!

끝없는 독자제현의 애정과 관심이야말로 졸저자 와룡강으로 하여금 좀더 나은 작품을 쓰도록 다그칠 수 있는 채찍입니다. 그러면 와룡모모도 독자제현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이 봄의 화기(和氣)를 함께 나누길 바라며,

道峯山下 臥龍小屠에서 臥龍岡 拜上.

 

 

 

 

序 章

 

風雲武林의 序

 

 

 

무림개사(武林開史) 오천년(五千年)!

수없이 많은 전설(傳說)과 신화(神話)가 역사 속에 명멸해 갔다. 대부분의 전설이나 신화는 잠시 무지개를 쫓는 허황된 꿈과 야망(野望) 속에 존재하다가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하나, 그 가운데 가장 무림인의 뇌리에 뿌리깊게 살아온 전설이 있었으니... 그것은 무림인들의 최대 최고의 이상이며 꿈에라도 그리는 신천지(新天地)이기도 했다.

 

천외쌍비(天外雙秘)!

그렇다! 그것은 하늘 밖의 전설(傳說)이었다.

너무도 오랜 세월동안 천하무림(天下武林)을 무대로 잠들어온 전설.

무림(武林)! 천하무림인들은 언제나 평화를 구가한다.

하나, 그 전설의 여파는 무림의 평화를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혈문(血門)!

선부(仙府)!

 

이것이 바로 천외쌍비(天外雙秘)의 전설이었다.

누가, 언제 세웠는지조차 알려지지 않는 천외(天外)의 비밀.

하나, 천하는 알고 있었다.

천오백년(千五百年)의 무림사(武林史)! 그것이 바로 천외쌍비(天外雙秘)에서 파생되었음을.

 

혈종(血宗)의 저주(詛呪)가 천세(千世) 후에 깨어나리라. 혈종(血宗)의 미소는 대지(大地)를 찢고, 혈종의 혈루(血淚)는 대해(大海)를 인혈(人血)로 가득 채우리라! 오오! 천지(天地)가 혈운(血雲)으로 뒤덮이리니 그 피의 향기(血香)가 억겁을 지나리라!

 

가공할 전율의 전설! 이것이 바로 혈문(血門)의 전설이었다.

피(血)를 숭상하는 혈마(血魔)들이 살고 있다는 혈문(血門)!

하나, 그들은 일천오백 년의 세월을 어두운 그늘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 이유는 다음의 전설이 말해준다.

 

천지(天地)가 극락지기(極樂之氣)로 가득하리라! 평화(平和)와 열락(悅樂)만으로 만천(萬天)을 가득 채우고 사마(邪魔)의 그림자 지옥(地獄)으로 사그러들리라. 선부(仙府)가 다시 열리는 날, 천하가 발음(明)과 바름(正)으로 가득차리니 그 정대한 기운이 억겁에 이르리라!

 

천세(千世)를 통하여 정(正)을 세우고 의(義)를 지켜온 선부(仙府)! 선부가 있었기에 혈문(血門)은 이를 갈며 그늘에서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극(極)과 극이 공존하는 천외천(天外天). 하나, 그것은 그저 전설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전설은 예고하고 있었다. 천외쌍비의 전설이 당금(當今)에 현세(現世)하리라는 것을.

천하인들은 그 엄청난 기대와 공포에 전율하며 가슴 조이고 있었다.

과연... 전설의 현세는 무림에 어떤 대풍운(大風雲)을 몰고올 것인가?

 

X X X

 

무림에 신화(神話)를 창출한 기인이사들은 무수히 많다.

하나, 그 가운데도 천년의 풍진을 거치며 지워지지 않고 무림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신화를 남긴 인물들이 있으니...

 

천지십강(天地十强)!

 

아아! 그 이름은 무린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위대한 신화를 남겼다.

천하(天下)를 떠받친 열 개의 하늘! 그 십인(十人)의 고금무적인(古今無敵人)들의 신화를 아는가?

멀리는 일천 오백 년 전부터, 가깝게는 일백 오십 년 전에 이르기까지... 서로 시대(時代)를 달리한 십인(十人)의 대영웅(大英雄)들, 그들에 의해 천지십강(天地十强)의 신화가 이루어졌다.

 

혈영천종(血影天宗)!

태양염제(太陽焰帝)!

빙백염후(氷魄焰后)!

만독노조(萬毒老祖)!

표향음룡(瓢香淫龍)!

자전신군(紫電神群)!

수라마제(修羅魔帝)!

적룡천종(赤龍天宗)!

현천신모(玄天神母)!

대비신니(大悲神尼)!

 

이들이 바로 천지십강(天地十强)이었다.

그들은 인간(人間)임과 동시에 하늘이었다. 그것도 광활하도록 넓고 큰 하늘(天).

일천 오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의 육신은 풍진에 삭아 스러졌다. 하나, 그들의 신화(神話)는 무공(武功)으로 남아 당세에 이른다.

천지십강의 가공할 무공! 그것은 현신(現身)! 이는 또 다른 대천의 군림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세외사천(世外四天)!

 

중원무림에 천지십강(天地十强)이 있다면 변황(邊荒)에는 네 개의 하늘(四天)이 존재한다.

그들을 일컬어 세외사천(世外四天)이라 칭했으니... 그들은 아득한 역사의 전통과 더불어 세외(世外)의 하늘로 군림해 왔다.

 

동천(東天) 보타암(普陀庵)!

서천(西天) 혈륭마찰(血隆魔刹)!

남천(南天) 사망림(死亡林)!

북천(北天) 빙백궁(氷魄宮)!

 

아무도 알지 못한다. 세외(世外)의 네 하늘, 그들이 지닌 엄청난 잠력을...

불심(佛心) 깊은 여니(女尼)들만의 보타암(普陀庵).

피(血)와 색(色)에 굶주린 서천의 혈륭마찰(血隆魔刹).

독(毒)과 죽음(死)의 절지(絶地) 사망림(死亡林).

염색절륜의 미인(美人)들의 한숨이 서린 빙백궁(氷魄宮).

한(恨)과 욕(欲). 죽음과 정(情)을 찾아 세외사천(世外四天)이 대풍운(大風雲)을 일으킨다.

 

전설(傳說)! 그리고 신화(神話)!

야심(野心)과 애욕(愛欲)이 서로 뒤엉켜 천하혈란(天下血亂)의 대풍운은 음모(陰謀) 속에 서서히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음모(陰謀)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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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十一 章

 

               英雄 對 魔雄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아직 혈종천위대(血宗天衛隊) 일천이 건재하고 혈종사마천종(血宗四魔天宗)과 우주혈종이 있다. 그들만으로도 아군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제갈영라의 안면에 한 가닥 불안감이 떠올랐다.

(상공께서는 성공하신 것일까?)

그녀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였다.

돌연,

[후후후후후...!]

한소리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크--- 윽!]

[으웃!]

[지... 지독하다...!]

싸우던 양 진영의 군웅들이 귀를 싸매고 물러났다.

낮으막한 그 웃음소리에는 가공스런 마기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타났다!]

제갈영라는 입술을 꼬옥 깨물며 한쪽을 바라보았다.

스스스스스--- 스!

화르르르르...!

유령같이 날아드는 일천의 그림자들이 있었다.

전면에는 백의를 걸친 청수한 노인이 있고,

노인의 뒤로 무표정한 네 명의 혈포노인들이 따르고 있었다.

[와...! 종주께서 나오셨다!]

[와...! 혈종무적이다!]

혈종문도들이 길길이 날뛰며 좋아했다.

바로 우주혈종과 혈종사마천종등이 나타난 것이다.

[후훗! 어린아이들이 제법이구나!]

스--- 으윽!

우주혈종이 허공에 뜬 채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다음 순간,

콰--- 콰쾅!

[크--- 아악! 아--- 악!]

히히히히히히...!

처절한 비명과 함께 수많은 인마(人馬)가 우주혈종의 일거수에 즉사하고 말았다.

[으... 이럴 수가...!]

[저... 정도였다니...!]

군우들의 안색이 하애졌다.

우주혈종!

그자의 위세가 너무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우와아악! 우주혈종! 묵사대형께 진 빚을 갚아랏!]

화르르르르!

파츠츠츠츠...

일백의 독종혈대가 미친듯이 우주혈종에게로 쇄도하였다.

[엇!]

독종철혈대의 물불을 가리지 않은 공세에 우주혈종은 움찔하였다.

[크크... 종주! 저희들이 맡겠습니다!]

우주혈종의 등 뒤에 서 있던 혈종사마천종이 날아올라 독종철혈대를 맞아갔다.

그때였다.

[우하하하! 혈종사마천종! 그대들은 우리 몫이다!]

거창한 장소가 터지며 지옥애 사방에서 내 줄기 인영이 솟구쳤다.

능붕비, 태양신존, 그리고 천검미후 나설련과 환몽천후 등이었다.

[헉! 저들이 어떻게 지옥뢰를 나왔는가?]

우주혈종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허허! 이것이 천형제왕검이라오.]

쿠르르르르! 콰자자자작!

백 장 길이의 검형이 일어 혈종사마천종을 쓸어갔다.

[우하하! 태양천화신창의 진정한 위력을 보여주마!]

화르르르르---!

태양신존이 내치는 태양천화신창에서는 용암류가 쏟아졌다.

[호호... 천향산혼폭(天香散魂瀑)!]

[묵영독존(墨影毒尊)을 대신해서...!]

스스스스--- 파--- 팡!

파츠츠츠--- 츠츠츠!

나설련과 환몽천후가 질세라 혈종사마천종을 쓸어갔다.

그때,

[우우... 원수! 누워랏!]

[차핫! 녹아랏!]

파츠츠츠... 츠... 츳!

독종철혈대가 우주혈종에게로 쇄도하였다.

[음... 귀찮은 것들...!]

슈--- 파--- 앙!

우주혈종이 백미를 찌푸리며 장을 휘둘렀다.

쿠--- 콰--- 앙!

우르르르---!

화산이 터지듯이 폭발이 일었다.

[으...!]

쿵--- 쿠쿵!

그중에서 일백의 독종철혈대들은 휘청이며 물러섰다.

백인의 합공을 받고도 우주혈종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으드드득! 네놈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위--- 이이이잉!

독종철혈대가 독강류를 일으키며 우주혈종을 향해 다가갔다.

그때였다.

[여러분... 혈종은 본인에게 맡기시오!]

스스스스...!

정중한 일성과 함께 허공에서 황포의 능천한이 천신(天神)의 자태로 내려왔다.

[너... 패천지존!]

능천한의 모습을 발견하 우주혈종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으... 지존께라면 양보할 수 밖에...!]

독종철혈대는 뒤로 물러섰다.

능천한은 그런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에 우주혈종과 마주섰다.

[혈종, 오래만이외다.]

[으음... 죽지 않았군!]

능천한을 바라보는 우주혈종의 시선이 아주 복잡했다.

어찌 보면 기뻐하는 것도 같고, 어찌 보면 능천한을 확실히 죽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듯이 보였다.

[그 사이... 천마 이상이 되었구나.]

[사형보다야 어찌 강해질 수 있겠소이까?]

능천한이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사형? 천마가 그대의 사형이 된다는 말인가?]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도 대천황(大天荒)의 제자이셨다고 하면... 이해가 되시겠소이까?]

[대천황!]

우주혈종의 얼굴에 경악지색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경악지색은 나타날 때보다 더 빠르게 사라져 갔다.

그는 무엇인가 이해가 간듯이 보였다.

[그랬군. 천마총의 이면에... 천황천존의 유적과... 대천황연(大天荒衍)이 있었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이다. 인연이 닿아 천황천존의 은혜를 입게 되었지요!]

[흠... 대천황과 혈종이라... 이 일전은... 피할 수 없겠군.]

[그렇소이다. 우주혈종!]

위--- 이이이잉--!

츠츠츠---!

갑자기 양인 사이에서 가공할 폭풍이 일어났다.

양인의 일신에서 떨쳐지는 무형기도(無形氣道)로 인한 폭풍이었다.

[우우우웃!]

[으... 지... 지독하다!]

쿠--- 쿠쿠쿵!

주위에 둘러서 있던 군웅들은 무형강벽에 밀려 단번에 백여 장 밖으로 밀려 나갔다.

우스스스스---

그와 함께 혈종문의 폐허도 무엇이든 가루로 부수어져 일시에 평지로 화해버렸다.

실로 범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위세였다.

[이백 년을 혈종극마갱(血宗極魔坑)에 살며... 한 가지 기공을 창안하였네!]

우주혈종이 말했다.

능천한은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기대가 됩니다. 혈종!]

[허허허... 고맙네.]

두 사람은 모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양인은 고금에 유례가 없는 대영웅(大英雄)들이다.

그것이 정웅(正雄)이고 사웅(邪雄)이란 차이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영웅이 아니면 누가 영웅을 알아주랴?

지금 비록 칼을 맞대나 그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허허... 혈령파황대멸겁강(血靈破荒大滅劫罡)이라는 것이지.]

[혈령파황대멸겁강... 훌륭한 공력이겠구려. 후배는 천황대정존극심강을 펼치겠습니다.]

[허허... 좋지!]

위--- 이이이잉!

츠츠츠츠츠---

양인의 몸에서 서로 상반괸 기류가 일어났다.

우주혈종의 몸에서는 시뻘건 혈강류가 일어 수백 장을 치솟았다.

그리고 능천한의 몸에서는 무형의 지극히 크고 바른 기운이 일어났다.

그것은 대정지기(大正之氣)를 싣고 지옥애의 마기를 야천으로 날려 보내버렸다.

한순간,

[혈령파황(血靈破荒)!]

쿠쿠쿠웅---

[천황대정극(天荒大正極)!]

위--- 이이이잉!

두 가지 강력한 기운이 서로에게로 밀려갔다.

쿠--- 우우우웅!

위--- 이이이잉!

[우와--- 아앗!]

충돌이 일며 그다지 큰 폭음이 일지는 않았다.

대신에 엄청난 압력이 일어 줄줄이 팔극으로 뻗쳐갔다.

[대단하군!]

우주혈종이 휘청하다가 몸을 세웠다.

그의 안색이 밀랍같이 하애져 있었다.

반면 능천한은 아주 평온한 표정이었다.

[허허... 이번에는 병기로 겨루어 보겠는가?]

차--- 아앙! 츠츠츠---

혈종의 손에 혈황탈과 천마지존비가 들려졌다.

[상공!]

스--- 으윽!

멀리서 제갈영라가 천황대정신극을 던져 보냈다.

[훌륭한 극이로군. 이름이 무엇인가?]

우주혈종이 탄성을 지르며 천황대정신극을 바라보았다.

[팔황천병(八荒天兵)으로서 자격이 있어 보입니까?]

능천한이 천극을 쳐들며 말했다.

[팔황천병!]

우주혈종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그는 뚫어지게 천황대정신극을 바라보았다.

점차 그의 안색에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인정하이... 팔황천병으로서 손색이 없네!]

[감사합니다.]

능천한은 천극을 들어 예를 취했다.

[허허... 그러나! 방심치 말게! 본종에게는 사대마병의 두 가지가 있으니...]

[하하... 물론입니다.]

능천한은 껄껄 웃었다.

두 사람은 마치 망년지우사이인 듯이 보였다.

그리고,

위--- 이이잉!

츠츠츠---

혈종의 몸이 시뻘건 혈강과 시커먼 묵강으로 뒤덮였다.

위--- 이이이이잉---

사기(邪氣)와 마기(魔氣)가 천장을 치솟았다.

[...]

그런 우주혈종에 비해 능천한은 다만 혈황대정신극을 비스듬히 들고 표표히 서 있을 따름이다.

숨막히는 적막이 장내를 뒤덮었다.

한순간,

[혈황천탈뢰(血荒天奪雷)! 천마천존류(天魔天尊流)!]

쿠--- 아아아아앙!

파츠츠츠츠---

슈--- 파--- 파--- 앙---

우주혈종의 몸에서 혈강류와 묵강류가 폭풍같이 일어나 능천한에게 쏟아졌다.

[아!]

[아... 위험해욧!]

여인들이 아연실색하여 비명을 질렀다.

능천한이 무방비인 자세로 날아드는 혈황탈과 천마지존비를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기 때문이다.

쉬--- 아아앙---

츠츠츠츠--- 츳!

혈황탈과 천마지존비가 여지없이 능천한의 가슴으로 찍어 들어왔다.

[으...]

[악...]

여인들은 질끈 눈을 감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번--- 쩍!

콰자--- 자작!

우워--- 어어엉!

쿠르르르르--- 르르르르!

천지가 혼연일체가 되어 뒤흔들렸다.

야천이 쩍 갈라졌다.

돌연 천황대정신극에서 구중천(九重天)까지 뻗치는 광휘가 쏟아진 것이다.

그것은 실로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장관이었다.

그것에 비하면 혈황탈과 천마지존비의 위세는 아이들 장난같았다.

카--- 카카카캉!

차--- 아앙!

천황대정신극에 부딪힌 혈황탈과 천마지존비가 얼음 깨어지듯이 산산이 부수어져 나갔다.

그 직후,

[...]

[...]

모든 소성이 사라지고 적막이 감돌았다.

[...]

[어찌 되었는가?]

중인들은 침을 삼키며 정내를 바라보았다.

능천한은여 전히 천황대정신극을 비껴들고 서 있었다.

문득,

[음...]

능천한과 마주서 있던 우주혈종이 휘청하였다.

[자내를 만날 수... 있어서... 기쁘네...]

우주혈종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우수수수...

그와 함께 그의 사지가 가루로 부수어져 버렸다.

[자네... 가... 없었으면... 쓸쓸... 했을 텐데...]

퍼--- 억!

스스스스--- 스!

우주혈종의 몸이 마침내 한줌 재로 사그라 들었다.

천황대정신극의 대정지기에 전신이 박살이 난 것이다.

[와아...]

[패천지존!]

[천황지존의 승리다![

[와...]

숨을 죽이던 수만 군웅들의 입에서 일시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상공! 상공!]

화르르르...

그의 여인들이 분분히 능천한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란공주와 환밀후의 얼굴도 보였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능천한에게 달려오는 것이다.

[이제 끝인가?]

능천한은 허무한 표정으로 야공을 올려다보았다.

야공은... 동녘으로부터 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형님...]

능천한은 나직이 철혈묵사 정천학을 불러보았다.

 

---허허허... 능천... 훌륭하네. 천하가 이제 그대를 지존(至尊)으로 섬길 것이니---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 않은가?

좋은 아침이었다.

 

<大尾>

 

***천병신기보 연재가 끝났습니다. 22살 한창 철 없고 혈기만 뻗히던 시절의 작품이라 허황되고 어지러운 작품이었습니다. 낯 뜨거움을 무릅 쓰고 <천존창룡보> 연재로 이어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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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十 章

 

              大血輪

 

 

[으음...]

적발마뢰신은 기묘한 기분이 되었다.

일종의 경외지심과 안도감이 그의 노구를 뒤흔들었다.

(저항했다면 저같이 되었으리라.)

적발마뢰신의 시선을 뒤로하고 능천한은 육중한 석문으로 다가갔다.

우--- 우우우웅!

적발마뢰신이 지켜 보는 능천한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막강한 기운이 일어났다.

그리고,

[천황대정존극심... 천검만리어기뢰!]

능천한은 장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석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쿠-- 콰-- 콰콰쾅!

능천한의 가슴에서 보이지 않는 검형(劍形)이 쏟아졌다.

 

---천황대정존극심.

---천형제왕검.

---천검만리어기뢰.

 

삼종의 절대절기가 하나가 되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콰--- 콰콰-- 쾅!

콰--- 자자자--- 작!

가공스러웠다.

무형의 천형제왕검이 무려 백여 장을 내뻗쳤다.

그 앞에서는 무엇이든지 남아 남지 않았다.

일거에 폭 오 장, 길이 백여장에 이르는 통로가 생겼다.

가히, 신력(神力)이라 하리라.

인간의 힘으로 어찌 이같겠는가?

적발마뢰신은 넋이 나가 입만 딱 벌렸다.

[백여 장 저쪽에 뇌옥이 있음을 안다!]

스--- 윽!

능천한은 안개가 퍼지듯이 일시에 일천 장을 날아갔다.

[주... 주공(主公)!]

화르르르---!

적발마뢰신이 크게 외치며 능천한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능천한을 주인(主人)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심령상에서 일어난 큰 변화로 그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스--- 슥! 화르르르!

적발마뢰신은 능천한의 옆으로 내려섰다.

[...!]

능천한은 무너진 뇌옥에 갇혀 있는 한 명의 수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끔찍하게도 그 수인은 사지가 끊어지고 두 눈이 뽑힌 상태였다.

[쌍극천효...!]

능천한은 괴로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처참하게 난도질 당한 괴인,

그는 바로 마중제일효(魔中第一梟)라 불리던 쌍극천효였던 것이다.

능천한에게 장인이 되고 제갈영라에게는 아버지가 되는 인물...

[누... 누가... 나를 불렀오?]

쌍극천효가 퀭하게 뚫리고 진물이 줄줄 흘리는 눈으로 능천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사지가 끊어진 그가 움직일 수 있을 까닭이 없다.

[...!]

능천한은 말없이 쌍극천효의 눈에서 흐르는 진물을 닦아 주었다.

[으...!]

갑자기 쌍극천효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무도 따뜻하고 큼직한 손길...

보지는 못하도라도 쌍극천효는 마중제일효라고 불리던 인물이다.

그 손의 주인을 모를 리 없었다.

[으... 능공자... 인가?]

쌍극천효가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천한입니다.]

[으... 어쩌자고... 이 지옥같은 곳에 들어왔는가?]

[말씀하지 마십시오. 몸이... 좋지를 않으십니다.]

[...]

쌍극천효의 처참한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주르르르...!

진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한 줄기 칙칙한 물줄기가 썩은 눈자위에서 흘렀다.

[용서하이... 이같이 훌륭한... 자네를 해하려고만... 하고...!]

능천한은 쌍극천효가 보지 못함을 알면서도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모두 지난 일이니...]

[흐... 허허... 우주혈종... 네가... 죽을 날도 멀지 않았구나...!]

쌍극천효는 껄껄 웃었다.

그의 웃음에는 통한과 분노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자는... 천하를 제패했다고 생각하자... 노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네. 노부의 지혜가... 마도(魔道)를 해한다는 명목이지만... 사실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지!]

[...!]

능천한은 흠칫했다.

쌍극천효의 안색에서 급격히 생기가 사그라들고 있음을 본 때문이다.

(더 이상 목숨을 이어가지 않으려 하신다. 영라가 뵙고 싶어했는데...)

능천한은 깊이 탄식하였다.

그때 쌍극천효는 빙그레 웃었다.

[영라는... 신랑을... 잘 골랐어... 그 아이를... 부탁하네.]

쌍극천효의 고개가 서서히 옆으로 기울어졌다.

[이런... 모습을... 영라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니... 이곳에 그냥,... 묻어주게!]

[알겠습니다. 빙장어른!]

능천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빙장이라... 좋은...!]

쌍극천효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능천한은 쌍극천효의 시신 옆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적발마뢰신도 말없이 능천한의 뒤에 무릎을 꿇었다.

(우주혈종... 그대가 죽을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능천한은 형형하게 눈을 빛냈다.

[원하신 대로...]

능천한은 쌍극천효를 잘 뉘고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적발마뢰신과 뇌옥에서 물러섰다.

다음 순간,

우르르르!

뇌옥이 절로 무너져 쌍극천효의 시신을 덮었다.

[흐음...]

능천한은 잠시 무너진 뇌옥 앞에 서 있다가 몸을 돌렸다.

그의 앞에 반쯤 무너진 두터운 석벽이 나타났다.

우르르르---!

우스--- 스스스---!

능천한이 다가가자 석벽은 모래처럼 부서져 내렸다.

[...!]

무너진 석벽 안으로 들어서던 능천한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어두운 석실이었다.

습습한 습기가 얼굴로 확 끼쳐 왔는데,

어둠 속에서 여러 줄기의 안광이 능천한에게 모여졌다.

[허허! 네가 올줄 알았다!]

[천한(天漢)아...!]

[능대공자님...!]

[으드득! 바로 너였느냐?]

여러 마디의 음성이 동시에 터졌다.

어둠은 능천한의 시선을 가로막지 못한다,

습기 가득찬 석실에는 여러 명의 인물이 있었다.

제왕의 기품을 지닌 곤룡포의 중년인과 황우의 품위를 지닌 미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버님! 어머님!]

능천한은 두 부부를 향하여 큰 절을 올렸다.

그들은 바로 능붕비와 천환여제였다.

[이제야 왔습니다. 용서하소서!]

[하하! 되었다. 네 건장한 모습을 보니 그동안 겪은 곤란이 모두 사라지는구나.]

능붕비가 껄껄 웃었다.

[아이야...]

천환여제는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능천한의 손을 꼬옥 쥐었다.

그리고,

[능대공자...!]

천촨여제의 뒤에서 초췌한 인상의 미인이 옥루를 흘렸다.

홍하공주 주하령이었다.

[음... 네가 존황(尊皇)의 아들이었다니...!]

한구석에서 홍의의 장한이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능천한을 노려보았다.

그의 뒤로는 야수같이 생긴 괴인과 백염의 날카로운 인상을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태양신존!

그리고 해천신검제와 남황야수신이 그들이었다.

[이제... 이곳을 나가셔야지요.]

능천한이 천환여제의 손을 쥔 채 능붕비를 바라보았다.

능붕비의 안면에 대견한 미소가 감돌았다.

[허허... 녀석... 어느 사이에 애비보다 더 강해졌구나. 훌륭하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리고,

위이이이잉!

능천한의 몸에서 지극히 광명정대한 기운이 일어났다.

그것은 만사(萬邪) 만마(萬魔)를 한줌의 재로 사그라뜨릴 수 있는 성질인 것이었다.

바로 대정지기(大正之氣).

으스스스--- 스스!

츠츠츠츠---!

대정지기가 뻗쳐나가자 석실응 메우고 있던 탁한 습기가 증기로 사그라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스스스스스--- 스!

대정지기는 안개와 같이 변하여 중인들의 몸으로 스며 들어갔다.

[음...!]

우드드드드드두!

파스스스스--!

대정지기!

그 장대한 기운은 중인들의 몸에 가해진 사악한 금제를 얼음같이 깨쳐 버렸다.

뿐만이 아니고 사실은 마음에 두었던 여인마저 능천한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능천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생을 치시고 싶으시다면 밖으로 나가서 치십시오!]

[으으음...]

우두두두--- 두두둑!

태양신존의 막혔던 기혈들이 확확 튀어져 나갔다.

위--- 이이이잉!

능천한은 완전히 서기로 뒤덮여 갔고,

다른 육인들도 점차 망아지경으로 빠져 들어갔다.

몰아지경으로 접어드는 태양신존의 귓전으로 능천한의 목소리가 웅웅 들려왔다.

[사란이... 곧 이곳에 도착할 것이오. 사란이 도착해서 신존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실망이 클 것이외다.]

[사란이... 풍운철기대와...]

태양신존은 꿈속에서 인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무아지경으로 빠져 들어갔다.

 

X X X

 

사경 말,

쿠쿠쿠--- 쿠쿠쿠쿵!

콰르르--- 르르르릉!

[크--- 아아악!]

[케--- 에에에엑!]

갑자기 지옥애의 절애 위에서 시뻘건 화약덩어리가 쏟아져 내렸다.

잠이 들어 있던 혈종문도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죽어 나자빠졌다.

화르르르르륵!

후드드드드--- 드득!

쿠--- 쿠--- 콰--- 쾅!

빗발치듯이 쏟아지는 화전(火箭)과 폭약이 폭발 속에서 혈종문이 화마에 휘말려 들어갔다.

[크으... 어느놈들이 감히...]

[나와랏!]

화르르르르!

쐐--- 애애액---

불길 속에서 혈종문의 거마들이 분분이 뛰쳐나왔다.

그자들은 시커멓게 그을은 낭패한 몰골들이었다.

그때,

[모두 나서랏! 정기 아직 세상에 남아음을 보이자.]

[자령천위대! 선봉에 서세요!]

[정검을 높이 들자. 마귀의 심장을 가를 때가 왔노라!]

[와--- 아아!]

[쳐랏! 사필귀정임을 보이자!]

쐐--- 애액!

우르르르르--- 르!

질풍노도!

폭풍이 장풍 검영에 휘말려 천지를 뒤덮었다.

지옥애의 사위에서 수천 수만의 군웅들이 짓쳐들어왔다.

[크--- 아아악!]

[크... 정파의 놈팽이들이 기습을...]

혈종도들이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너무도 뜻밖이었고 경황중의 기습이었다.

혈종문도들은 채 진형을 이루기도 전에 어지러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크크크크...]

[크크... 애송이들이 감히...]

우르르르--- 르!

위--- 이이이잉!

혈종문도들 중에서 노마들이 일어났다.

그자들은 한결같이 백년 이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거마들이다.

젊은 군웅들이 당해낼 수 없는 상대들이다.

콰--- 콰--- 콰콰쾅!

쿠르르--- 르르르르!

[크--- 윽!]

[악!]

선봉에 섰던 젊은 군웅들이 노마들의 비수에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갔다.

이를 본 제갈영라가 크게 손을 저었다.

[천병밀사! 독종철혈대! 노마들을 막으세요!]

그러자,

[후하하하! 주모! 기다렸습니다.]

[크흐흐흐! 혈종! 우주혈종은 어디로 갔느냐?]

[구천독종이 빚을 받으러 왔도다!]

[우주혈종을 죽이자!]

[와--- 아아앙!]

[우우우...]

폭풍!

마치 폭풍같은 기세로 두 부류의 청년들이 일어났다.

오백 명의 정기훤앙한 청년들.

그들의 손에 손에 신병(神兵)을 들고 노마들의 호신강기를 종이베듯이 베어 넘겼다.

그리고,

츠츠츠--- 츠츠츠!

독종철혈대!

사무치는 원한으로 독이 오른 한들이 독강(毒罡)으로 혈종문을 초토로 만들어 나갔다.

[크하하... 우주혈종! 나와랏! 나와랏! 구천독종의 혼이 여기 있다!]

[우우... 너희들이 묵사대협을 사해하였으니... 네놈들 만 놈의 목을 베어 한을 풀리라!]

[크크크... 누가 철혈의 사자(獅子)를 건드렸느냐?]

쿠쿠쿠쿠--- 쿠쿵!

츠츠츠--- 츠츠츠!

독종철혈대는 무적이었다.

그들 앞에서는 버텨 내는 것이 없었다.

시커먼 독강류가 치솟았다.

그럴 때마다 혈종문도들이고 건물이고간에 모조리 독수로 녹아내렸다.

[으... 막아랏! 혈종께서 곧 도착하실 것이다!]

[혈종천하(血宗天下)가 이루어진지 오래다. 네놈들이 날뛰어야할 때다.]

혈종 정에들의 저항도 완강했다.

제갈영라는 일시에 혈종문을 압도하지 못했다.

[영라야! 손쓸 때가 되었다.]

면사를 하고 가슴에 천황대정신극을 안은 환몽천후가 조용히 말했다.

[네!]

제갈영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쳐들었다.

그러자.

[우하하하... 이놈들! 감히 황실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후하하하... 흑룡천신이 여기 있다!]

두두두두두--- 두!

쐐--- 애애애액!

혈종묵도들의 양 측면으로 두 무더기의 인마들이 돌풍같이 일어났다.

바로 십만의 금군들과 흑룡천신이 이끄는 흑룡궁도들이었다.

[크... 또 있었는가?]

[케--- 에엑! 크,...]

정신없이 몰아쳐 오는 금군과 흑룡궁도들의 공세에 혈종문의 측면이 허물어졌다.

[크크크... 감히 황백을 연모하고 공주마마의 존체에 누를 끼치다니...!]

콰--- 콰콰콰쾅!

[케--- 에에엑!]

[크으... 수라천극존이다!]

금군의 선봉에서 불맞은 황소같이 날뛰는 것은 수라천극존이었다.

이어,

[사란동생! 나서세요!]

제갈영라가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호호호호... 변황에 일성부(一聖府), 태양성부가 있느니라!]

해맑은 소녀의 교성이 야천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우두두두두--- 두두!

두두두두두!

해일이 밀려오듯이 혈종문의 후면으로 일만(一萬)의 철갑기병들이 쇄도하여 들어왔다.

[케--- 에에에엑!]

[크--- 아아아악!]

[카--- 악!]

두두두두두두---!

폭풍!

풍운철기대(風雲鐵騎隊)의 등장은 혈종문의 종말을 예고하였다.

변황최강이라는 풍운철기대,

신마(神馬)들의 발굽 아래 혈종문도들은 그대로 박살이 나고 찢겨져 나갔다.

이제 격전의 승패는 뚜렷이 드러났다.

최소한 혈종문은 재기불능정도의 대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러나,.

[...!]

제갈영라의 안색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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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九 章

 

               地獄崖에 가다

 

 

 

자허소축(紫虛少築)의 대전(大殿).

[...!]

[...!]

묵직한 분위기가 대전 가득 흐르고 있었다.

대전의 상좌에는 능천한이 앉아있다.

그는 자색의 장포를 걸치고 있는데,

그의 등 뒤로 천황대정신극을 받쳐 든 환몽천후가 시립하고 있었다.

능천한의 우측에는 금벽라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으며,

능천한의 좌측에는 취존개와 광양대제가 배석하고 있었다.

장내에는 여러 명의 인물들이 더 있었다.

커다란 지도 앞에 서 있는 제갈영라가 있고,

천약관음(天藥觀音),

녹림대제(綠林大帝),

황금대공(黃金大公),

자부성수(紫府聖手),

대력천패(大力天覇) 등의 자부오공(紫府五公)이 있었다.

그외에 거령패왕(巨靈覇王) 등의 패천팔걸과

천검미후(天劍美后) 나설련,

유령신녀(幽靈神女) 등 능천한의 여인이 있었다.

제갈영라가 입을 열었다.

[혈종문으로 침투한 녹림부의 제자의 보고에 의하면 혈종문은 이곳 기련산(祁蓮山) 지옥애(地獄崖)에 총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사옵니다.]

그녀는 벽면에 걸린 지도를 가리켰다.

지도는 기련산 북방을 가로 지르는 천인단애를 나타내고 있었다.

[기련산 지옥애...]

능천한은 중얼거렸다.

 

---기련산 지옥애.

 

그곳은 일전에 능천한이 읽은 패천자의 기록에도 나와있던 지명이다.

즉, 패천자와 제왕천신이 우주혈종을 베어 넘긴 장소가 바로 그곳이다.

(우주혈종... 그가 지옥애에 총단을 세웠다함은 그자가 이백년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그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능천한의 분석은 치밀했다.

실제로 지옥애에 저주의 혈정극마갱(血精極魔坑)이 있었고,

그로 인해 우주혈종은 과거의 천마이상이 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측의 힘과 혈종측의 힘을 비교하여 보시오!]

능천한의 말에 제갈영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그동안 길러온 아군의 힘입니다. 자부의 정화를 이용하여 기른 오천(五千)의 자령천위대(紫靈天衛隊)와 일백의 천병밀사(天兵密士)들이 있고...]

제갈영라는 혈종문도들과 싸울 수 있는 정파쪽의 총력을 설명하였다.

 

---자령천위대(紫靈天衛隊).

---천병밀사(天兵密士).

 

이들은 자부에서 나온 정예들로 제갈영라가 길러낸 전력이다.

백만의 자부문도에서 선발된 그들은 영약의 도움과 제갈영라의 훈련으로 최강자들이 되어 있다.

이들은 개개인의 힘이 결정일 뿐더러,

더욱이 제갈영라의 탁월한 기문진학에 바탕을 둔 병진(兵陣)들을 익혀 십만의 적을 상대할 수 있다.

특히 천병밀사 오백(五百)은 하나같이 천병보 천병일천좌에 드는 신병들을 지니고 있었다.

본래 자허천부에는 천병일천좌 중 삼백여 개밖에 없었다.

그런 것을 거액을 뿌려 이백여종의 신병을 추가로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검신영대(正劍神影隊).

 

금벽라가 훈련시킨 정파의 후예들이다.

대부분이 혈종일문에 철천지한을 지녀 유사시 천인의 능력을 발휘할 인재들이다.

그 수는 삼천(三千).

 

---광양신무대(廣陽神武隊).

---녹림일천웅(綠林一千雄).

---만화밀살수(萬花密煞手).

---벽력단(霹靂檀)과 패천팔걸(覇天八傑).

---여황교(女皇敎) 일백화염강시(一百化艶강屍).

---유령궁(幽靈宮) 구유유령위(九幽幽靈衛).

 

그리고, 능천한의 최근에 거둔 독종철혈대(毒宗鐵血隊) 등이 혈종문과 싸울 수 있는 정예들이다.

그 수는 대략 일만오천정도였다.

제갈영라는 말을 이었다.

[혈종문도들은 총 이십만이고,... 그중 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가 삼만에 이르며, 초절정의 거마(巨魔)들만도 일천 이상입니다.]

[객관적으로는... 우리측의 열세군.]

능천한이 담담히 말했다.

제갈영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사옵니다. 하수들은 차지하고라도 절정고수들만으로도 저들의 반푼에 채 못미치는 힘입니다. 더욱이 그들 중에는 고금오대마종(古今五大魔宗)에 이르는 네명의 가공스런 고수들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흠... 그들이 누구요?]

[혈종사마천종(血宗四魔天宗)이라고 아시는 지요?]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이백 년 전 우주혈종의 가장 강한 하수자들 아니오?]

제갈영라가 대답했다.

[맞사옵니다. 한데 놀랍게도 그들이 살아있어요. 마치 우주혈종같이 말예요!]

[아...]

[그자들... 혈종사마천종들이...]

중인들의 안색이 변했다.

능천한 등 몇몇 사람들만이 조용할 뿐,

[지금 상태로는 그자들이 가장 큰 장애예요. 그자들은 천지십병으로나 죽일 수 있는 거흉(巨兇)들인데...]

제갈영라는 능천한과 금벽라, 천검미후 나설련을 바라보았다.

그들만이 천지십명 중의 신병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상공께서는 우주혈종을 상대하셔야 하므로 그자들은 결국... 상대할 사람이 없어요. 벽라언니도 몸이 무겁고...]

[...!]

[...!]

중인들은 막막한 느낌이 들어 침묵을 지켰다.

제갈영라는 그런 중인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한 가지 계획을 세웠어요.]

[계획?]

[...?]

중인들은 제갈영라를 주시하였다.

[지금, 지옥애의 지옥뇌(地獄牢)라는 곳에는 황실의 태상존황과 태양신존 등의 감금되어 있어요.]

능천한이 제갈영라의 말을 막았다.

[그분들을 구출하여 혈종사마천종을 상대케 할 계획이라면 찬성이오. 그분들의 구출은 내가 맡겠소!]

[음...]

중인들은 무거운 시선으로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중인들 중에 능천한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없다.

자연히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다.

제갈영라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으로서는... 달리 상공을 능가하는 분이 없으니... 상공께서 힘을 써주세요.]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시오, 그보다는 전체적인 열세는 어찌 만회하겠소?]

능천한의 물음에 제갈영라는 가볍게 대답했다.

[천하는 넓어요. 혈종문은 천하를 지배하기 위해 전력의 육할을 천하에 뿌려 놓았어요. 따라서 혈종문 총단의 힘은 실상 전력의 사할에 미치는 정도이고...]

[흠, 그렇군. 그정도라면 아군과 대등한 전력 이상은 못될 것이고...]

능천한의 중얼거림에 제갈영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물론, 혈종문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긴 하지만...

게다가 또 다른 세 개의 세력이 혈종을 치려하고 있으니 그들만 끌어들인다면 압독적으로 우리가 우세해져요.]

[또 다른 변수가 있소?]

[네, 먼저 태양신존을 구하기 위해 변황 태양성부(太陽聖府)에서 일만(一萬)의 풍운철기대(風雲鐵騎隊)가 중원으로 들어왔어요. 그들의 인솔자는 사란공주와 환밀후(歡密后)이나...]

제갈영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사란과... 환밀후라...]

능천한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들은 염려마세요. 같은 여인들끼리이니... 신첩이 회유하겠어요.]

[좋소, 그건 그렇고, 또 다른 두 세력은...]

[황실의 십만금군과 흑룡천신(黑龍天神)의 흑룡궁(黑龍宮)이에요.]

[황실은 그렇다치고... 흑룡천신은 또 어쩌다가 혈종과...]

[상공께서는 흑룡천신이 혈종의 괴뢰가 되었을 것을 기억하시지요?]

[물론이오!]

제갈영라는 신중히 대답했다.

[아마도 흑룡천신은 혈종에게 큰 모욕을 당했을 거예요.]

[흠 결국 설욕전이란 얘기군!]

능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흑룡궁의 본부 수하가 전한바로는 흑룡천신은 그동안 한 가지 초절기(超絶技)를 연마해왔다는 거예요.]

[초절기(超絶技)라...]

[그건 내가 알지...]

거슴츠레한 눈으로 꾸벅꾸벅 졸던 취졸개가 말했다.

지금 순간만은 그의 눈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흑도사상 최강자였던 천외묵룡존(天外墨龍尊)이 남긴 최후 초절기가 흑룡궁에 있네.]

 

---천외묵룡존(天外墨龍尊).

 

구백 년 전,

흑도에서 나와 천하제일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절대무종(絶代武宗)이다.

그의 무공은 패도적이며 기이신랄함이 특징이었다.

취존개가 말을 이었다.

[그것은 묵룡쇄강전(墨龍碎罡箭)이라는 절기로 백만 근의 압력을 강전(罡箭)에 실어 내치는 것이디. 그 위력은 가히 경천동지할 정도다. 다만 오백년 내공을 필요로 하며 그 수련이 지극히 혹독하여 누구도 완성할 사람은 없네!]

[음...]

[묵룡쇄강전이라...]

중인들은 탄성을 발했다.

[헤헤! 묵룡쇄강전을 연성하였다면 그 위력은 천지십병의 위력에 버금간다.]

취존개는 말을 마치자 다시 꾸벅꾸벅 졸기시작했다.

제갈영라는 미소를 띄우며 취존개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흑룡천신의 회유는 어려울 것이 없어요. 문제는 황실의 십만금군이 문제예요. 힘을 합치는 것은 물론 자칫 혈종문을 자극하여 우리의 기습마저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능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오, 내가 황상께 서신을 올릴 터이니...]

제갈영라가 미소를 지었다.

[상공께서는 황상과 태상존황과 친분이 있으니... 가능할 것이에요.]

능천한은 그말을 듣는지 마는지 지옥대의 지도에 시선을 던졌다.

능천한 뒤에 서 있는 환몽천후는 그런 능천한의 태도에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태상존황께서 아버님이심을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은 괜한 번거로움을 자초하시지 않으시려는 때문이시고...)

[지옥애...]

능천한은 지옥애의 지형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곳에 과연 어떤 비밀이 있는가? 우주혈종에 영생을 준 그 무엇이 있을 터인데...]

중얼거리면서,

능천한은 문득 혈정극마갱을 뇌리에 떠올렸다.

 

---혈정극마갱(血精極魔坑).

 

X X X

 

기련산(祁蓮山),

장성(長城)을 넘어 변황(邊荒)과 중원(中原)을 가름하고 있는 대산맥이다.

그 거친 산역의 광활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특히 음산하여 인적(人蹟)을 거부하는 곳이 있다.

이름하여,

 

---지옥애(地獄崖).

 

대지가 갑자기 뚝 끊어진 마치 지옥의 입구같이 보이느 절지를 일컬음이다.

 

삼경 무렵,

음침한 암운(暗雲)이 밤하늘을 뒤덮고 있다.

암운에 가려 별빛 한점 없이 음산함을 더해주고 있다.

[...!]

언제부터인가,

한 줄기 황영(黃影)이 지옥애의 석벽 위에 오연히 서 있다.

스스스!

야풍에 황포가 나부낀다.

형형한 안광으로 암흑을 꿰뚫고 있는 인물,

그는 지옥애의 칙칙한 어둠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능천한!

지옥애를 굽어보는 것은 바로 그였다.

지옥애 주위로 많은 시선들이 있으나 누구도 능천한을 발견하지 못했다.

은신술도 은신술이거니와 그의 일신에서 풍기는 기도가 흡사 기련산의 일부인 것 같기 때문이다.

[흠...]

문득 능천한은 나직하게 헛기침을 하였다.

이어,

스스스--- 슥!

능천한은 몸이 둥실 떠올라 지옥애 아래로 날아내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백 장 깊이의 지옥애다.

그럼에도 능천한은 마치 무게없는 깃털인 양 곡풍에 부대끼며 유유히 절애로 날아내렸다.

지옥애의 한쪽은 폭 수십마장의 광활한 분지다.

그 분지 가득히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고루거각들이 들어차 있었다.

(영라가 알려준 대로라면 지옥뇌는 저 북쪽 끝의 석벽 아래에 있다.)

스스스--- 스스스!

능천한은 마치 날개가 달린 듯이 수마장을 수평으로 날아나갔다.

누가 있어 이런 경공을 꿈이라도 꾸어 보았겠는가?

대천황지기를 얻은 능천한에게만 볼 수 있는 가공할 경공절기다.

스--- 스스슥!

능천한은 무인지경(無人之境)인 듯이 북쪽의 석벽 끝으로 내려섰다.

[저곳이군.]

뒷짐을 짚고 주위를 둘러보던 능천한은 한쪽의 석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석벽 밑에 시커먼 철문이 붙어 있음이 보였다.

그 칙칙한 철문 위로 섬뜩한 핏빛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지옥뇌(地獄牢).

---생자불회(生者不廻)>

 

[사자는 나오지 못한다...]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지옥뇌로 걸어갔다.

적지에 들어왔음에도 능천한의 태도는 너무도 한가하지 않은가?

능천한은 주위를 경계하지도 않은 듯이 보였다.

그렇다고 남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급히 서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자기집의 뒷뜰을 거닐 듯이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상상도 못한다.

능천한의 이목이 십 리 안에서 나뭇잎 구르는 소리까지 주의하고 있음을...

문득,

화르르르르---!

[흐흐... 네놈은 누구냐?]

허공에서 돌연 일인이 날아내렸다.

능천한의 앞을 가로막는 자.

시뻘건 적염(赤苒)을 기른 노인이었다.

두 눈에서 뇌전같은 시뻘건 안광이 쏟아지고, 곤두선 모발은 흡사 아치를 연상시키는 인상이다.

[그대가 적발마뇌신(赤髮魔雷神)인가?]

능천한은 담담한 어조로 말하며 적염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

부르르르---!

갑자기 적염노인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능천한의 눈을 대하는 순간,

그 자신의 모든 의지가 그 눈빛에 사그라들고 만 것이다.

이것이 어떤 사술같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극도로 발현된 정신력의 일종이다.

[그대가 적발마뢰신인가를 묻고 있다.]

능천한이 오히려 막아선 적염노인에게 호통을 치는 형세였다.

 

---적발마뢰신(赤髮魔雷神).

 

근 삼갑자 전에 천하에서 사라진 마뢰문(魔雷門)의 마두다.

성격이 열화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든 부수어 버리는 흉성을 지녔다.

한데 적염노인... 그자보고 적발마뢰신이 아니냐고 능천한이 묻고 있는 것이다.

[그... 그렇소... 노부가 바로 적발마뢰신...]

적염노인이 더듬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가 바로 적발마뢰신이었다.

죽었어도 아주 오래 전에 죽어야할 대마두 적발마뢰신,

한데 막상 대답을 해놓고도 적발마뢰신은 자신이 왜 대답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능천한의 기도가 행하지 않음을 용서치 않을 것같기에 대답한 것이다.

[지옥뢰로... 앞장서라!]

능천한이 적발마뢰신을 향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옛!]

적발마뢰신은 질겁을 하며 급히 몸을 돌려 지옥뢰로 다가갔다.

지옥뢰로 다가가는 그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런 적발마뢰신을 능천한은 뒷짐을 짚고 따라갔다.

이윽고 두 사람은 지옥뢰 앞으로 이르렀다.

능천한은 지옥뢰의 철문을 두들겨 보았다.

(안에서만 열린다. 막중한 기관장치가 되어 있는 절지(絶地)다.)

능천한은 힐긋 적발마뢰신을 돌아보았다.

[문을 열라고 명령해라!]

그의 말에 적발마뢰신은 식은 땀을 줄줄 흘렸다.

[용... 용서하십시오. 집법각주(集法閣主)나 종주(宗主)의 명이 아니면...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석문을 향하여 장을 내밀었다.

[대천황지존(大天荒至尊)의 뜻이다. 열려라!]

능천한이 묵직하게 외쳤다.

그러자,

우두두두둑!

와--- 끈!

철문이 안에 장치된 기관과 빗장이 박살나는 소성이 들렸다.

[으... 이... 이럴 수가...!]

적발마뢰신의 적안이 불신으로 휘둥그래졌다.

석 자 두께의 만년한철의 벽을 격하고 그 내부를 부술 수 있는 공력!

그것은 우주혈종에게도 없는 무서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으... 태산... 태산이다.)

적발마뢰신의 몸에서 비오듯이 땀이 쏟아졌다.

그때,

그그그그--- 그긍!

십만 근 무게의 철문이 저절로 열렸다.

[누구냐!]

[빗장을 부수다니...!]

철문이 열리며 냉혹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뚜벅! 뚜---벅!

능천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걸어들어갔다.

[...!]

그 뒤를 적발마뢰신은 주춤주춤 따라 들어갔다.

능천한이 따르기를 강요한 것도 아닌데 왠지 따라가야만 할 것같았다.

[너는 누구냐?]

[어는 단 소속이냐?]

능천한이 들어서자 사인(四人)의 중년인들이 쫙 벌려서며 가로막았다.

능천한은 그자들을 돌아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극히 평범한 용모의 인물들이다.

그러나,.

(반박귀진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고수들!

그자들은 흑(黑), 백(白), 청(靑), 홍(紅)의 서로 다른 색의 의복을 걸친 자들이었다.

[적발마뢰신! 감히 지옥뢰를 들어오다니...!]

[크크...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군.]

능천한 뒤에 선 적발마뢰신을 발견한 그자들의 눈에서 섬뜩한 살광이 흘렀다.

그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적발마뢰신은 쓸쓸하게 웃었다.

[사수신황(四獸神皇)! 본마신을 욕하지 마라. 이분은... 나같은 자가 길을 막을 수 없는 분이니...]

적발마뢰신의 말에 사인은 흠칫했다.

[으... 하늘같다니...!]

[음... 종주(宗主)에 못지않다!]

능천한을 자세히 살피던 사수신황이 부지불식간에 몸을 떨었다.

 

---사수신황(四獸神皇)

 

이들은 적발마뢰신과 같은 시대의 마종들이다.

사방(四方)을 지키는 신수(神獸)들로 대표되는 이들은 개개인의 오히려 적발마뢰신을 능가하는 강자들이다.

특히 그들 사인의 합격술은 그야말로 철벽이다.

 

---천마(天魔)라 해도 우리의 합공을 당하지는 못하리라---

 

이렇게 호언할 정도로 그들의 합공은 무서운 것이다.

[우주혈종(宇宙血宗)이 옥지기들은 제대러 세웠군!]

뚜벅! 뚜--- 벅!

능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수신황의 사이로 나갔다.

[음...!]

지켜보던 적발마뢰신은 괜히 손에 땀을 쥐며 능천한을 걱정했다.

[가자! 형제드들이여. 사신수(四神獸)는 무적이니...!]

청룡운황(靑龍雲皇)이 벼락같이 외치며 몸을 일으켰다.

우르르르---!

그의 몸에서 폭풍이 일어났다.

[백호출기(白虎出起)!]

콰르르르르릉! 크--- 킁!

백호무황(白虎武皇)!

[주작래천남(朱雀來天南)! 뇌운진천(雷雲震天)!]

[현무제창천(玄武制蒼天)! 사수합기(四獸合起)!]

주작뢰황(朱雀雷皇), 현무천황(玄武天皇)의 흑적(黑赤) 쌍기가 뢰성을 일으켰다.

쿠--- 콰--- 콰콰콰쾅!

위--- 이이이잉! 우르르르르!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흑홍백청(黑紅白靑)의 네가지 기류가 그물망같이 뒤엉켜 일어났다.

그 사색신수강(四色神獸罡)은 뇌성벽력으로 능천한을 짓쳐 갔다.

적발마뢰신은 능천한을 향하여 외치며 식은 땀을 흘렸다.

그때 담담한 기세로 서 있던 능천한의 손끝이 슬쩍 바람을 일으켰다.

[혼돈대정(混沌大正) 만상어생(萬象於生), 만류환일(萬流換一)!]

능천한은 장중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음 순간,

쿠--- 와--- 아아앙!

푸--- 하아아악!

사색신수강이 한 무더기로 뒤엉켜 덩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한쪽의 석벽을 향해 튕겨져 나갔다.

[아... 안돼!]

청룡운황(靑龍雲皇)이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쿠--- 쿠--- 쿵!

콰--- 우--- 웅!

사색신수강은 그대로 석벽을 통타하였다.

카--- 카--- 카캉!

와작끈--- 꾸꾸꿍!

석벽 속에서 수만 근의 쇠붙이들이 산산이 부수어져 날아갔다.

한순간 지옥뢰 전체의 기관함정이 단 일격으로 박살난 것이다.

그리고,

[크... 이렇게... 허무하다니...!]

[종... 종주께서는... 너무 강한... 적을 두셨다.]

[천마... 이상이...]

쿠--- 쿠쿵! 콰당!

뻣뻣이 서 있던 산수신황의 몸들이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어심득살(御心卽殺)!

능천한의 무형기도가 살기로 일어난 것이고...

사수신황은 영문도 모른 채 내부가 박살이 나서 절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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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八 章

 

               孕胎한 廣陽尊后!

 

 

 

쐐애--- 애애--- 액!

스스스스--- 스스!

녹림천봉은 궁장여인에 의하여 곧장 높직한 산봉 위로 이끌려 올라갔다.

한데,

(저분...)

산봉 위를 바라보던 진예빈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산봉 위에는 한 명의 황삼문사가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한 자루 방천화극을 짚은 채 표표히 산봉위에 선 청년문사,

그의 뒷모습을 본 진예빈의 두 눈이 뿌옇게 적셔졌다.

황삼의 청년문사가 누구인지 알아본 때문이다.

스--- 스스슥!

그때 궁장미인이 진예빈과 함께 청년의 뒤로 내려섰다.

[지존!]

지면에 내려서자마자 진예빈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봉목이 그렁그렁햐지다가 주르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녹림천봉 진예빈으로부터 지존이라 불릴 수 있는 단 한명,

바로 능천한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예빈...]

능천한은 천천히 돌아섰다.

몸을 돌린 능천한은 온화한 시선으로 진예빈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능천한의 모습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그 부드러움 속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웅장한 기도가 서려 있었다.

(하늘이 되셨다.)

진예빈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마음 속의 정랑이 하늘같이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흠... 많이 여위었구나?]

능천한이 부드러운 어조로 진예빈에게 말했다.

능천한의 관심있는 말을 들은 진예빈은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었다.

[지존... 어찌 몇달씩이나 연락조차 없으셨사옵니까? 여러언니들의 걱정이 태산같았사옵니다.]

진예빈이 눈가를 적시며 말했다.

[지체해야만 했던 일이 있었다. 그래 벽라누님 증은 어찌 지내시느냐?]

능천한의 물음에 진예빈은 함초롬히 미소를 지었다.

[심려들이 크셨으나 모두 무고하세요. 다만... 벽라언니에게...]

진예빈은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능천한은 흠칫했다.

[벽라누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능천한의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의 표정에는 진한 관심이 가득하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궁장미인, 환몽천후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들 중 상공의 가장 깊은 사랑을 받는 사람은 역시 벽라동생이야.)

환몽천후 뿐만이 아니고 진에빈의 표정에도 일말의 부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진예빈은 고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생각해보니... 천첩의 미리 말씀드리면... 벽라언니에게 야단을 맞을거예요. 지존께서 직접 자허천부로 가셔서 벽라언니를 만나보시어요.]

[으음...]

진예빈의 미온적인 대답에 능천한은 속이 타들어갔다.

(누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미 신인지경(神人之境)에 이를 금벽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였다.

금벽라라는 한 여인의 신상에 일어났을 일 때문에 천인(天人)의 능력을 지닌 그가 안절부절을 못하는 것이었다.

[안되겠군! 지금 당장 자부로 가보아야지!]

능천한이 중얼거릴 때였다.

돌연,

우--- 워--- 어어억!

동천(東天)으로부터 거창한 봉황음(鳳凰音)이 터졌다.

[금봉(金鳳)!]

능천한의 안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동천일각(東天一角).

그곳에 한 점이 나타나다니 급속도로 그 형태가 커져왔다.

그것은 바로 구천금봉황)이었다.

우워--- 어어--- 억!

구천금봉황은 멀리서도 주인을 알아보고 기뻐 크게 봉황음을 내었다.

[금봉! 오너라!]

쉬--- 아--- 아악!

능천한은 벼락같이 외치며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치솟았다.

[무엇을 하시려고!]

그 모습에 진예빈은 깜짝 놀랐다.

구천금봉황은 천수백장 밖에 있는 때문이다.

그러나,

[두고 보아요!]

환몽천후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때,

[우--- 우우!]

능천한의 입에서 웅장한 창룡후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쉬--- 이이이잉!

삼백 장을 치솟는 능천한은 허공에서 몸을 휘둘렀으며,

다음 순간,

스--- 스스스슥!

그의 신형은 일천 장을 날아 곧바로 구천금봉황의 등위로 날아내렸다.

[저... 저럴 수가... 어찌 인간의 몸으로 날을 수가...]

진에빈이 입을 딱 벌렸다.

이에 환몽천후가 조용히 말했다.

[저분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신 분이에요!]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셨다고요?]

진예빈의 물음에 환몽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반인반신(半人半神)이라해야 옳겠지]

중얼거리는 환몽천후의 시선은 저 멀리 사라지는 구천금봉황을 따르고 있었다.

그런 환몽천후의 봉목이 다소 쓸쓸하게 변하였다.

(지난 몇달을 모셨어도... 단 한번... 잠자리시중을 허락하셨던 분이 벽라동생의 소식에 저토록 애가 타시다니...)

환몽천후는 진예빈을 돌아보았다.

[도대체 벽라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이지?]

그녀의 물음에 진예빈은 미소르 지었다.

[벽라언니는 배가 이만해요?]

진예빈은 두 손으로 아랫배를 둥글게 해보였다.

[벽라동생이... 상공의 아기를...]

환몽천후도 깜짝 놀랐다.

[호호! 그래요. 이미 육개월째예요.]

환ㅁ봉천후는 망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로는... 내가 가장 연장이나... 결국 정실 자리는... 벽라에게 양보를 해야겠구나.)

그녀의 시선에 고소가 떠올랐다.

어찌되었든, 아무리 친한 여인들이라 해도 한 남자의 사랑을 나누어 갖게 된다면 양보고 무엇이고 없는 법이다.

 

[상공!]

구천금봉황의 등위로 날아올라간 능천한에게 뭉클한 동체가 안겨왔다.

그렁그렁한 커다란 눈망울,

터딜 듯이 무르익은 동체.

그녀는 바로 천검미후 나설련이었다.

[설련!]

능천한은 미소를 지으며 나설련의 세류요를 꼬옥 끌어안았다.

[천마총에서 변을 당하셨다는 소문에 설련이 얼마나 울었는지 아시옵니까?]

나설련은 능천한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천향지기(天香之氣)가 사그라든 그녀는 마치 어린 소녀같이 순진한 성격으로 변해 있었다.

[설련... 미안!]

능천한은 나설련의 풍만한 둔부를 다독여 주었다.

우--- 워--- 어억!

오랫만에 주인을 태운 구천금봉황은 거창한 봉황음을 토하며 남쪽으로 날아갔다.

 

***

 

자허천부의 구층이 최근 규방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한 명의 아랫배가 불룩한 미인이 한시도 남천(南天)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그 구충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구층의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다소 여윈 모습의 절세미부(絶世美婦)가 난간을 짚고서서 남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오시나? 벌써 봄이거늘... 그분은 아직도 아니 오시는구나!]

미부는 처연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야위어서 더욱 크고 아름답게 보이는 미부의 두 눈이 그렁그렁 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가... 네 아빠는... 엄마와 네가 보고 깊지도 않으신 모양인가 보구나!]

미부는 자신의 하복부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광양존후 금벽라였다.

그녀는 능천한이 모르는 사이에 또 하나의 능천한을 자기 속에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네 아빠가 오시기만 하면... 엄마는 강짜를 놓아줄 거란다. 다시는 엄마 손도 못 잡게 할거야!]

금벽라는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녀는 이미 무림을 호령하던 여걸이 아니었다.

다만, 이제 곧 큰 고통 후에 또 하나의 생명을 열어놓을 어머니일 따름이다.

그때,

[언니... 너무 서 있으면 아기에게 좋지 않아요.]

한 명의 차분한 미모의 미녀가 다가왔다.

바로 천약관음 교옥진이었다.

[자... 여기에 앉으세요.]

천약관은 금벽라를 안락의자에 앉혀주었다.

[언니, 오늘은 기분이 좋아보이시는군요!]

천약관음의 말에 금벽라는 미소로 답했다.

[그래... 아가는 오늘 따라 장난이 심하기는 하지만...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기분이야.]

[아마도 좋은 소식이 있으려는 모양이지요.]

천약관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우--- 워--- 어억!

돌연 자허천부 상공에서 구천금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설련동생이 벌써 돌아왔군요.]

[글쎄... 어쩐지 금봉의 기분이 좋은 듯하구나.]

두 여인이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스스스슥!

한 가닥 유령같은 인영이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누구... 어멋!]

발딱 일어나 교갈을 치려던 천약관음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나타난 인물,

그는 여인들이 너무도 애타게 그리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 아우님...!]

금벽라도 깜짝 놀라 일어났다.

돌연 나타난 인물은 바로 능천한이었다.

[누... 누님...]

능천한은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딱 벌렸다.

그의 시선은 불룩하게 솟은 금벽라의 아랫배를 주시하고 있었다.

너무도 뜻밖의 일인지라 능천한은 넋이 나가고 말았다.

[누님... 누님이... 아기를...!]

[아우님...! 아우님...!]

금벽라는 눈물을 흘리며 능천한에게 달려들었다.

그제야 능천한의 안색이 뜻밖의 경사로 환하게 밝아졌다.

[누님! 하하! 누님! 고맙습니다!]

능천한은 안겨든 금벽라를 반짝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금벽라의 입술을 덮어누르며 열렬한 입맞춤을 퍼부었다.

[음...!]

능천한에게 입술을 탐닉하면서 금벽라는 능천한의 목에 팔을 걸고 매달렸다.

두 사람의 그런 열열한 정열에 천약관음이 오히려 부끄러웠다.

천약관음이 얼른 구층, 금벽라의 규방에서 나갔다.

[하하! 누님! 고맙습니다!]

능천한은 껄껄 웃으며 금벽라를 안고 침상으로 달려갔다.

그는 금벽라를 침상에 누이고 그녀의 아랫배로 손을 집어넣었다.

[흐응... 아우님...]

금벽라는 발갛게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피하지는 않았다.

피하기는 커녕, 그녀는 남편의 손길을 잡아 하복부로 가져갔다.

[보아요. 아가가... 막 잠에서 깨었어요. 아빠가 오신 줄 알고 있는 모양이에요!]

금벽라가 자랑과 사랑이 듬북 담긴 시선으로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누님,... 감사합니다.]

능천한은 환하게 웃으며 금벽라의 하의를 벗겨 내렸다.

금벽라는 얼굴을 붉혔으나 능천한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너무도 오랫만에 접해보눈 남편의 손길이었다.

이윽고 남산처럼 부푼 금벽라의 하복부가 드러났다.

[하하... 녀석이 발길질을 하는군!]

금벽라의 하복부에 귀을 갖다 댄 능천한은 신기하여 웃었다.

미약하나마 금벽라의 몸속에 또 하나의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누님...!]

능천한은 불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는 금벽라의 몸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의복을 벗겨 내렸다.

임신으로 인하여 더욱 기름지고 윤기있게 변한 것이다.

[사랑합니다 누님!]

능천한은 금벽라의 나신 위로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아아... 아우님...]

능천한의 손길 아래서 금벽라는 몸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모성본능은 두 팔로 하복부를 감싸 보호하고 있었다.

[아아... 아우님... 아우님...]

[흐음... 아... 헉헉...!]

뜨거운 사랑과 열정은 자허천부를 후끈 달아오르도록 만들어갔다.

능천한은 사랑을 다해 아주 부드럽고 정성스러움으로 금벽라를 탐했다.

만족감과 행복함으로 가득한 금벽라는 대지와 같은 아량으로 능천한의 사랑을 몸속 깊이 받아들였다.

[아아... 으으음... 아아...!]

[누님... 헉... 헉... 사랑합니다!]

뜨거운 열풍,

그것은 평소와는 달리 아주 부드럽고도 길게 이어져 갔다.

마치 끝이 없을 듯이,.

그것은 또한 완만한 중에 더할 수 없는 지극히 환희를 두 남녀에게 가져다 주고 있었다.

[휴...!]

[음... 언니가 부러워...!]

그 자허천부로 여러 쌍의 눈길이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천약관음(天藥觀音) 교옥진,

---천헤선자(天慧仙子) 제갈영라,

---유령신녀(幽靈神女),

---홍예선희(紅霓仙姬),

---천산홍연(天山紅燕) 위지련(慰枝蓮)...

 

바로 그녀들이었다.

하나같이 절세미녀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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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七 章

 

                 血宗天下!

 

 

구중궐(九重闕).

황제(皇帝)의 처소인 자금성(紫禁城)을 일컫는다.

 

---건원전(乾元殿).

 

자금성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대전(大殿)으로,

당금의 황제 선덕제의 거처다.

이경 무렵,

웅장한 건원전 안에 자색 곤룡포를 걸친 청년이 뒷짐을 진채 거닐고 있었다.

아직 경륜이 몸에 배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청년의 일신에서는 만인을 압도하는 지존(至尊)의 위엄이 있었다.

그가 바로 선덕제다.

웬일인지 선덕제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으음...!]

한동안 왔다갔다 하던 선덕제는 보좌에 깊이 몸을 실었다.

그는 두 손을 깍지 끼며 중얼거렸다.

[어디로 갔을까? 황백(皇伯)뿐이 아니시고... 함께 계시던 백모님조차 종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시다니...!]

무슨 소리인가?

태상존황, 아니 패천황룡 능붕비와 천환여제가 실종되다니...

천하의 패천황룡이 어찌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실종될 수 있는가?

문득,

[폐하!]

대전의 문쪽에서 침중한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선덕제는 상체를 세우며 대답했다.

[밀영반(密領班), 들어오시오!]

[옛!]

끼--- 익!

대전문이 열리며 한 명의 청포를 걸친 노인이 들어왔다.

괴팍한 인상의 노인인데 안색까지 침중했다.

 

-수라천극존(修羅天極尊),

 

노인은 바로 수라천극존이었다.

그는 패천동부를 탈출한 뒤 얼마 안되어 능붕비가 황실에 있음을 알았다.

그러자 그는 황실에까지 뛰어들어 능붕비에게 설욕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능붕비는 전에 비해 두배 이상 강해져 있었다.

설욕을 자신하던 수라천극존은 또 한번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되었다.

그때 능붕비가 좋은 말로 수라천극존을 설득하여 그를 황실에 묶어 두었다.

능붕비에게 연퍄한 수라천극존은 과거의 호승심을 꺾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수라천극존은 독존궁(獨尊宮)의 절정고수들과 선덕제의 주위를 지키는 대임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영반... 어떻소?]

선덕제는 수라천극존을 향하여 무겁게 물었데.

수라천극존이 어두운 안색으로 대답했다.

[전혀 단서도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두 분께서는 차를 드시다가 암격을 당하신 듯 합니다만...!]

수라천극존은 말끝을 흐렸다.

그 다음 말에 그다지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혀 싸운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최강의 적이 두 분을...!]

수라천극존은 말을 듣던 선덕제가 말을 꺼냈다.

[이해가 아니되오. 아무리 기습을 했다 하더라도 천하의 황백을 누가 감히,...]

말을 하는 선덕제를 바라보며 수라천극존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주공께서는 모르시외다. 우주혈종이라는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강적이 있음을...)

말은 하지 않았으나 수라천극존은 능붕비를 해한 것이 우주혈종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천하를, 아니 고금을 통하여 능붕비의 저항을 받지 않고 암습을 할 수 있는 인물은 단 둘 뿐이었다.

천마(天魔),

고금제일마종(古今第一魔宗)인 그와

이백 년 전에 죽었다고 알려졌던 전대의 대사종(大邪宗) 우주혈종이 다른 한 사람이다.

설사 우주혈종이라 해도 능붕비를 정면으로 공격하면 적어도 이삼백초는 허비하여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우주혈종은 암습을 택한 것이고,

무방비상태로 천환여제와 차를 마시던 능붕비는 어이없이 제압당했을 것이다.

[폐하, 확실치는 않으나 대변란이 다가오고 있음이외다.]

수라천극존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대변란!]

선덕제가 입속으로 되뇌었다.

[천하무림에 사상 유례없는 대사종이 일어났소이다. 황백의 실종은... 어쩌면 그자가 황실마저...!]

부르르---!

말을 하던 수라천극존의 노구가 경련을 일으켰다.

느낌,

소름이 오싹 끼치는 느낌이 갑자기 엄습한 것이다.

[밀영반! 무슨 일이오?]

선덕제도 이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 하였다.

[으으음... 우주혈종!]

수라천극존은 신음하듯이 중얼거리며 대전의 우측을 노려보았다.

다음 순간,

우두두--- 두두둑!

우스스스--- 스!

갑자기 대전의 벽이 모래로 부수어져 내렸다.

[허허! 수라천극존이란 아이야. 또 만나게 되는구나!]

쿠쿠--- 쿠쿠쿵!

대전이 무너질 듯이 뒤흔들리며 일인이 나타났다.

일견하기에는 청수한 인상의 백의노인이었다.

[우주혈종!]

백의노인을 발견한 수라천극존의 안색이 대변하였다.

그자는 바로 우주혈종이었다.

한데 우주혈종의 옆구리에 한 명의 자의궁장미인이 끼어 있었다.

[홍하(紅霞)!]

궁장미인을 발견한 선덕제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자의 옆구리에 끼어 있는 자의궁장미인,

그녀는 선덕제의 단 하나 뿐인 여동생인 홍하공주(紅霞公主)였던 것이다.

[우주혈종! 네가 감히 공주님의 옥체에 누를 끼치다니...]

우르르르--- 르---!

쐐--- 애애애액!

수라천극존이 벼락치듯이 우주혈종에게 덮쳐 들었다.

천극수라영(天極修羅影)!

묵황굉벽뢰(墨荒轟霹雷)!

쿠쿠--- 쿠쿠쿵!

수라천극존의 손에서 시커먼 묵강류(墨강流)가 폭출되었다.

그러나,

[흐흣! 물러나랏!]

우주혈종은 냉갈하며 수라천극존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크--- 흑!]

쿠--- 우웅!

수라천극존은 두 눈을 감싸쥐며 나뒹굴었다.

사안파령소에 당한 것이다.

[밀영반!]

선덕제가 대경하여 태사의에서 벌떡 일어섰다.

[으...!]

수라천극존이 바닥에서 뒹굴며 괴로워하였다.

[후훗! 폐하의 어전 앞인지라 죽이지는 않겠다.]

우주혈종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무엄하다. 이곳이 강호(江湖)의 한구석인 줄로 알고 있느냐?]

우주혈종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덕제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

우주혈종의 안색이 일순 움찔 흔들렸다.

[...!]

[...!]

양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작렬하였다.

(과연, 만승지존(萬乘至尊)... 제왕지재(帝王之才)다.)

우주혈종의 눈빛이 위축되었다.

선덕제는 아직 나이 어리고 경륜이 얕아 완전히 제왕이 되었다고 하기는 어려우리라.

하지만 제왕(帝王)은 제왕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 장중함은 범부가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홍하를 내려놓고 물러가랏! 그대 노공(老公)의 난행을 책하지는 않겠다.]

선덕제가 침중히 말했다.

그의 말에 우주혈종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자의 안면에 괴이한 미소가 감돌았다.

[후훗! 폐하의 명을 따를 수 없음을 용서하오!]

[음...]

선덕제의 안면이 노기로 부르르 떨렸다.

[짐작하셨으리라 믿소이다. 폐하의 백부되는 사람과 그의 계집도... 본종의 손에 들어 있소!]

우주혈종은 득의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아울러, 공주마마도 본종이 데려가 잘 모시겠소.]

선덕제가 분기를 누르며 말했다.

[그대가 짐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후훗! 그것은 차후 말씀드리도록 하고... 오늘은... 야심하니 이만 물러가겠소!]

스스스스--- 슥---!

홍하공주를 안아든 우주혈종의 신형이 둥실 떠올랐다.

[후후후후! 잊지 마시오. 태상존황 부부와,... 공주마마께서 본종의 손에 있음을,...!]

스--- 으윽!

우주혈종의 몸이 환영같이 대전 밖으로 날아나갔다.

[으음...]

그 모습을 보며 선덕제는 분노로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감히... 짐을 위협하려 하다니...!]

선덕제는 이를 악물었다.

[으음... 능공(陵公)은 어디 있는가? 이 어려운 때에 짐의 힘이 되어 주셨으면 좋으련만...!]

선덕제는 능천한의 영상을 떠올리며 발을 굴렀다.

능붕비가 없는 이때 선덕제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인물은 능천한외에 달리 없었다.

[크...!]

수라천극존은 땅을 치며 통한을 삼키고 있었다.

평화로워야만 할 자금송이 짙은 암운에 뒤덮였다.

참으로, 이번의 겨울은 길고도 춥기만 하다.

구주팔황(九州八荒)이 피빛의 혹한으로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X X X

 

자연(自然)!

그 거대한 순리의 흐름을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다.

몸서리 처지는 대혹한의 겨울은 끝이 없을 것같이 보여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부터 봄은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천하가 잔혹한 겨울의 그늘에 파묻혀 있기는 하지만,

분명 봄의 그 따스함은 서서히 온 천지로 퍼져가고 있었다.

 

***

 

무공산(武功山),

도끼로 찍어놓은 듯이 절곡이 있다.

이곳을 아는 사람들은 이 절곡을 철혈부(鐵血府)라고 부른다.

적은 숫자이나 맹룡(猛龍)들이 독아(毒牙)를 기르고 있는 절대중지(重地)가 이곳이다.

문득,

[크... 대형(大兄)! 대형께서 쓰러지시다니...]

[으드드득! 우주혈종! 네놈의 뼈를 갈아 마시리라!]

[흐...! 대형의 원한을 갚지 못한다면... 차라리 대형의 뒤를 따르겠소이다!]

[대형...! 크으... 대형!]

[묵사대형(墨獅大兄)! 우리 형제들이 대형께 입은 은혜를 어찌하라고... 먼저 가셨소이까?]

관(棺)을 붙들고 오열하는 장부들,

칠팔 척의 거구들이 흐느낌으로 떨리고, 굵은 눈물들이 거친 구레나룻위로 흔른다.

무쇠의 팔뚝으로 씻기는 그 뜨거운 오열들,

이를 어찌 계집들의 얄팍한 찔끔거림에 비하랴?

가슴이 통한으로 무너지고,

불끈 움켜쥔 구리빛의 주먹으로 철천의 원한이 화산같이 폭발하고 있지 않은가?

터져 복바치는 울분과 격정을 속으로 삭이는 장부들...

그들의 가슴 속에는 꾹꾹 눌리어지는 활화산들이 있다.

한번 터져 폭발하매 천지를 무너뜨려버릴 거창한 분노의 활화산이 있다.

장부들의 수는 일백여 명,

하나같이 시커먼 묵의를 걸친 인물들이다.

그들은 옥(玉)으로 만들어진 관을 붙잡고 눈물들을 흘린다.

그드릐 그런 모습을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는 일남일녀.

황포를 걸친 고고한 기품의 청년문사,

분홍빛 궁장을 날아갈 듯이 차려 입은 천상선녀와같은 절세미녀가 그들이었다.

여인의 품에는 한자루 방천화극(方天火戟)의 안겨져 있었다.

[...!]

황포청년은 시선을 들어 창공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보는 창공에는 한명 호한의 얼굴이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형님...!)

청년은 입안으로 나직이 되뇌었다.

(형님이 뿌린 씨앗들이 이렇게 강대한 거목(巨木)들로 자라고 있소이다. 저들로... 우주혈종에게 진 형님의 빚을 받아내겠습니다.)

굳게 입술을 깨무는 청년문사,

그는 바로 능천한이었다.

대천황연을 나온 그는 가장먼저 이곳 철혈부로 달려온 것이다.

그때,

[대협! 우리를 인도하소서!]

한 명의 청년이 벌떡 일어나 능천한을 향해 외치며 무릎을 꿇었다.

[이끌어 주소서! 우주혈종의 심장을 우리 손으로 바스러뜨리게 하여 주소서!]

[대협!]

[능대공자!]

장한들, 독종철혈대(毒宗鐵血隊)의 호한들이 물결같이 일어나 능천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보며 능천한은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형님은 타계하시고도 많은 영웅들의 존경을 받으시는구나!)

능천한은 염두를 굴리며 가장 먼저 꿇어앉은 청년 앞에 앉아 손을 굳게 쥐었다.

[약속하리라. 그대들의 손으로 우주혈종을 철저히 부수도록 해주리라!]

능천한이 굳게 약속을 하였다.

[대협! 대협!]

[지존(至尊)! 패천지존(覇天至尊)이시여...!]

장한들은 감격의 탄성을 터뜨렸다.

하늘(天)!

하늘이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않는가?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하하! 우주혈종만 죽이게 해주소서! 지존의 종으로 평생을 살겠소이다!]

[하하! 청지기 자리는 제 것이외다!]

[하하하...!]

독종철혈대는 물결치듯이 능천한을 에워싸며 환성을 질렀다.

(상공께서는... 이미 하늘이 되셨다. 만인(萬人)이 스스로 종이 되기를 원하는 하늘(天)이 되셨다.)

환몽천후의 봉목이 감화로 젖어 들었다.

 

***

 

어두운 숲속,

송림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그안이 제대로 들여다보이지 않는 숲속이다.

사--- 사사사삭!

스스--- 스스스슥!

유령같은 그림자들이 숲속을 훑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번뜩이는 혈안(血眼)들,

몸에는 시뻘건 혈포를 걸친 자들이었다.

그자들은 음산한 미소를 지은 채 송림의 일각을 향하여 포위망을 좁혀 가고 있었다.

[크크... 지독하게 속을 썩이던 녹림(綠林)을 뿌리째 뽑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 명의 혈포노인이 음악한 미소를 지었다.

비쩍 말라 대나무 꼬챙이를 연상케 하는 자인데 두 눈에서는 푸르죽죽한 안광이 흐르고 있었다.

스스--- 스스스스...!

그자는 허공에 둥실 뜬채 송림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클클... 녹림천봉! 네년이 녹림천신(綠林天神)의 화산임을 잘 안다. 네년만 제거하면 녹림의 힘은 한꺼번에 무너지고 만다.]

삐쩍 마른 자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고죽마제(枯竹魔帝).

 

그자는 이미 백수십 년 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전대의 거마다.

혈종문은 이런 전대의 거마들을 수두룩하게 거느리고 있었다.

천여 명에 이르는 전대인 거마들이 혈종문의 주력이고,

그것은 무림사앙 유례가 없었던 최강의 힘이었다.

천하무림은 그들 천여 명의 전대거마들에 의하여 철처하게 혈종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다.

 

***

 

송림의 깊은 곳,

[음... 방심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주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미인이 서 있었다.

일견하여 싸늘하다는 인상이 풍기는 흑의경장미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싸늘함에는 빙매(氷梅)와도 같은 향기가 있었다.

누구라도 한번 향기를 맡으면 취해버리고 말...

(설련언니나... 벽라큰언니가 낭패를 당하고 말리라!)

그녀는 어두운 안색으로 돌아보았다.

그녀 주위에는 십여 명의 소녀들이 빙둘러서서 일종의 진세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녹림제일미인(綠林第一美人)의 칭호를 듣고 있는 여인이다.

바로 녹림천봉 진예빈이 그녀였다.

[...!]

[...!]

숨 막히는 적막이 송림을 뒤덮었다.

그 적막 속에는 끈끈한 살기가 뒤덩켜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녹림천봉 진예빈의 안색이 점점 더 침중해져 갔다.

한데 그때였다.

[으아아--- 아악!]

한소리 처참한 비명이 송림을 뒤흔들었다.

(핫!)

[...!]

[...!]

녹림천봉을 위시한 여인들의 안색이 대변하였다.

[이 목소리는...]

녹림천봉은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비명을 지른 장본인이 누구인 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자신을 핍박해오던 고죽마제였던 것이다.

(누가 고죽마제를... 비명소리로 보아 일합을 버티지 못하고 즉한 듯한데...)

진예빈이 찬바람을 들이 마실 때였다.

툭!

갑자기 그녀의 발아래로 무엇인가가 툭 떨어졌다.

[...!]

흠칫하며 내려다본 진예빈은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

그녀의 발앞에 던져진 물체,

그것은 바로 고죽마제의 목이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

어느틈엔가 한 명의 궁장여인이 허공에 둥실 떠서 나타나 있었다.

[...!]

[...!]

진예빈과 궁장여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어우러졌다.

궁장미인은 면사를 하고 있어서 그 용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자 면사사이로 드러나는 궁장여인의 눈빛은 너무도 신비하고 아름다왔다.

(넟설지 않은 눈빛...!)

진예빈은 궁장여인의 눈빛이 낯설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며 궁장여인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일시지간에 그 눈빛의 주인을 생각해내지 못하였다.

그때,

[예빈동생, 동생을 뵙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니 따라오세요.]

궁장여인이 조용하게 말했다.

진예빈은 흠칫하며 함께 있는 여인들을 돌아보았다.

[그 아이들 걱정은 말아요. 이 주위의 혈종문도들은 모두 제거되었으니...]

궁장미인이 진예빈의 걱정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진예빈은 다시 한번 놀랐다.

(그 짧은 시간에 혈종도들을 모두 제압했다니... 이분 언니는 도대체 누구일까? 설련언니 등보다 오히려 강해보이니...)

염두를 굴리며 진예빈은 소녀들을 돌아보았다.

[그대는 동쪽으로 전진하거라. 가는 도중에 설련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소녀를 대답하자 진예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자, 가자꾸나!]

스스--- 스슥!

[...!]

궁장미인은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무형의 경력이 진예빈을 궁장미인에게 묶어버려 함께 허공으로 치솟았다.

화르르르---!

쐐--- 애애액!

진예빈이 아연하는 사이에 두 여인은 까마득한 허공으로 치솟았다.

(도대체... 공력이 어느정도에 이른 언니이기에...)

진예빈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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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六 章

 

                八荒天兵! 그 神秘를 벗다!

 

 

 

[...!]

능천한은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돌아오며 자신의 내부에 거대한 폭풍의 징조가 도사리고 있음을 느꼈다.

우르르르...

쿠쿠쿠--- 쿠쿵!

지극히 혼탁하고,

지극히 강대한 기류들이 전신에 꾹꾹 눌러 담겨져 있었다.

그 눌려지는 압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져서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우르르르---!

대천황연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모금에 대천황지기가 능천한의 몸속으로 파고 들었다.

다음 순간,

쿠--- 와--- 앙!

꾸--- 꾸꾸--- 꿍!

견디지 못하고 능천한의 내부에서 가공할 폭발이 일어났다.

콰--- 자자작!

쿠--- 쾅--- 쾅쾅!

[크--- 웃!]

우르르르---!

모든 막히고 거리끼던 것이 한순간에 박살이 나서 흩어졌다.

쏴--- 아아아아!

심령(心靈)이 확 트이며 천지의 오묘한 이치가 확연히 느껴져 들어왔다.

그것은 지극히 상쾌한 전율이었다.

 

---천지교감(天地交感).

 

능천한은 완벽하게 천지교감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 경지가 곧 초극(超極)이며 신인(神人)의 경지다.

자연(自然), 천지가 내속에 있고,

나 또한 자연 속에 있나니,

내가 곧 자연, 대우주이며,

자연, 대우주가 곧 나(我)인 것이다.

[...!]

능천한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실로 신비한 미소였다.

지옥의 아수라(阿修羅)라 해도 오금이 저릴 대정지기(大正之氣)가 깃들어 있는 미소다.

스스스!

누워 있던 능천한의 몸이 둥실 떠올라 허공에 좌정했다.

능천한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곳은 천정까지의 높이가 백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동공(洞空)이었다.

자연과의 교감,

그것이 전후의 모든 사정을 능천한이 이해토록 만들었다.

[이곳이 대천황연(大天荒衍)...]

능천한은 담담하고 지극히 맑은 눈빛으로 동공에 시선을 보냈다.

[이 광활한 곳에 가득 찼던 대천황지기를 내가 모두 흡수했다는 말인가?]

능천한은 실감이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몸속에 얼마만한 잠력이 도사리고 있는지 조차도 가늠할 수 없었다.

[천극(天戟)이 있군!]

능천한은 자기가 누워있던 곳에 천극이 놓여 있음을 발견하고 손을 내밀었다.

스스슥!

천극은 자석에 끌려오듯 저절로 능천한의 손으로 날아와 달라붙었다.

 

---대천황(大天荒)을 만나면 그 신비가 풀리리라.

 

어떤 웅혼한 외침이 능천한의 귓전을 울렸다.

[흠...!]

능천한은 숨을 내쉬며 천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우르르르--- 르!

능천한의 몸에 가득히 쌓여 있던 천황지기가 천극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다음 순간,

콰--- 자자자작! 콰--- 우우우웅!

번--- 쩍! 푸--- 하악!

천극을 가리고 있던 묵기(墨氣)가 쩍적 갈라져 깨쳐 나갔다.

그와 함께,

쩌엉!

찬란한 광휘가 지존의 품위를 싣고 빛을 뿌렸다.

[음...!]

능천한은 홀린 듯이 손에 들린 천극을 바라보았다.

 

---천극(天戟).

 

장구한 세월을 이어져 내려오던 신비가 이제 벗겨진 것이다.

천극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먼저,

어디에 감추어져 있었는지 극인(戟刃)의 중간쯤에 반월형(半月形)의 날 한 쌍이 좌우에 돋아나 있었다.

반월형의 날은 붉고 푸른빛을 띄고 있으며 극인을 중심으로 등을 돌린 채 붙어 있었다.

그 때문에 천극은 방천화극(方天火戟)의 형상을 하게 되었다.

천극은 그 전체적인 빛도 변해 있었다.

극인은 추수같이 반투명한 백색이 되어 있고,

봉(棒)은 지존(至尊)의 품위를 지닌 자청(紫靑)의 서기(瑞氣)를 띄고 있었다.

능천한의 시선이 봉의 끝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갑골문자로 극명(戟名)이 적혀 있었다.

 

<천황대정신극(天荒大正神戟)>

 

[천황대정신극]

능처한은 입속으로 천황대정신극의 이름을 되뇌었다.

[더 할 수 없이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능천한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휘--- 익!

시험 삼아 천황대정신극, 즉 천극을 휘저었다.

다음 순간,

푸--- 하악!

콰--- 자자자--- 자작!

돌연 천황대정신극의 반월형 날 두 개에서 붉고 푸른 극양(極陽), 극음(極陰)의 막강한 잠력이 일어났다.

그 양극지기는 극인(戟刃)으로 모여 들어 거대한 강류(罡流)를 이루어 내뻗쳤다.

쿠--- 콰콰--- 콰쾅!

꾸--- 꾸꾸--- 꿍!

폭 십 장,

길이 백 장의 거창한 강류였다.

콰르르르...!

그 강류는 그대로 동공의 일각을 강타하였고,

아연하게도,

가격당한 동공의 석벽에 수백 장 길이의 거대한 석동(石洞)이 파여 버렸다.

[이... 이럴 수가!]

너무도 뜻밖의 위력이었다.

능천한은 해연히 놀라 천극을 내려다보았다.

일푼의 힘도 들이지 않고 버틴 것이 이런 가공할 위세를 발휘한 때문이다.

능천한이 아연해하고 있을 때였다.

[그것은 팔황천병(八荒天兵)의 아주 작은 능력에 불과하옵니다.]

돌연 환상적이고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 목소리가 능천한의 귓전에 울렸다.

[...!]

능천한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곳은 한쪽의 석벽인데 석벽이 잘라진 석문이 있었다.

그 석문 앞에 한 명의 미인(美人)이 서 있었다.

[...!]

능천한의 담담한 눈빛에 아주 작은 파문이 일었다.

석문 앞의 미인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가히 고금제일(古今第一)이라 불릴만한 미모였고...

한데,

[상공의 대공을 경하드리옵니다!]

여인이 날아갈 듯이 능천한에게 절을 올렸다.

그제야 능천한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여인이 입고 있는 분홍빛의 궁장,

그것은 바로 환몽천후가 입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그 절세미녀의 기분 윤곽은 환몽천후와 아주 흡사했다.

[그대가 환몽?]

능천한이 묻자 여인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달리 이름이 있기는 하오나... 상공께서 붙여주신 이름은 바로 환몽이옵니다.]

[음...!]

능천한은 절로 신음을 흘렸다.

강시(彊屍)였던 환몽천후가 아닌가?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 그녀는 완전한 인간이 되어있는 것이다.

능천한이 놀라자 환몽천후는 함초롬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공의 은혜로... 대천황지기를 한 모금 마실 수 있었고... 그 덕에 혼(魂)을 되찾을 수 있었사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구려.]

능천한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음도 내심 무거웠다.

자신의 처첩같이 대하던 환몽천후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화강시였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은 완벽한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나이로 따지면 오백 수십 살이나 되는...

환몽천후는 그런 능천한의 갈등을 이내 알아차렸다.

그녀는 살짝 볼을 붉혔다.

화강시였을 때 능천한은 그녀가 보는 앞에서 여러 번 다른 여인을 안고 부부지정(夫婦之情)을 나누지 않았던가?

[신첩의 나이를 괘념마소서. 신첩은 여전히 상공의 희첩(姬妾;본부인 외의 첩)일 따름입니다.]

그녀의 말에 능천한의 표정에도 훈훈한 미소가 감돌앗다.

[고맙소. 환몽!]

능천한은 환몽천후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교수를 꼬옥 쥐었다.

그러자 그녀의 두 볼이 도화빛으로 물들었다.

환몽천후는 살짝 능천한에게서 손을 빼내었다.

[이쪽으로... 상공을 위한 상고(上古)의 안배가 있사옵니다.]

환몽천후는 능천한을 안내하여 석문을 들어갔다.

능천한도 천황대정신극을 비껴들고 석실로 들어섰다.

 

그르르르륵!

두 사람이 들어서자 석문이 뒤쪽에서 닫혔다.

능천한은 석실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여염집의 내실같이 잘 치장이 되어 있는 석실이었다.

한쪽으로는 화려한 침상이 보이고,

양쪽의 석벽으로는 비급과 죽간, 두루마기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환몽천후는 능천한을 석실 가운데의 석탁으로 인도하여 미소를 지었다.

[저 비급들은 천마께서 천하를 횡행할 때 모은 일천상고신공기(一千上古神功技)예요.]

[일천상고신공기?]

능천한은 탁자 앞에 앉으며 비급을 둘러보았다.

[네, 저 신공절기들 중 구할 이상이 당세에 전해 내려 오지 않는 절전절기들이옵니다. 이걸 보시겠사옵니까?]

환몽천후는 한권의 핏빛의 죽간을 능천한에게 내밀었다.

능천한은 죽간을 받아들었다.

 

<서열팔십구위(序列八十九位).

혈황록(血荒錄)

--- 혈황마존(血荒魔尊)이 남긴다.>

 

환몽천후가 말을 이었다.

[그것은 후일 혈종의 마공바탕이 되었고, 그것을 우주혈종이 잇게 되었사옵니다.]

[음...!]

능천한은 신음했다.

혈종문의 근원인 혈황록(血荒錄)!

물론 수천 년을 거치며 많은 발전을 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혈황록이 일천상고절기의 겨우 팔십구위인 것이다.

이말은 혈화록보다 강한 상고절기가 팔십팔종이나 있다는 얘기가 되지 않는가?

[혈황록 따위는 상공께서 보실만한 것이 못되옵니다. 이것을 보시옵소서!]

환몽천후는 혈황록을 빼앗아 한쪽에 두고 두툼한 옥함을 주었다.

능천한은 조심스레 옥함을 열었다.

[...!]

옥함의 안을 들여다보던 능천한의 둔누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곳에는 서너 장의 옥판(玉板)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자허천부(紫虛天府)에서 본 헌원천황벽(軒轅荒璧)과 똑같은 것이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옥함 속의 옥판들은 바로 헌원천황벽의 다른 부분들이었다.

능천한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옥판들을 읽어 내려갔다.

 

<황제(黃帝)의 부탁으로 천황천존(天荒天尊)이 적는다.>

 

[삼황오제 중 황제 헌원씨(軒轅氏)와 천황천존이란 분의 합작(合作)인 모양이구나...]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 내려갔다.

 

<만년에 이르러 우리 양인은 대천황(大天荒)의 지극히 큰 뜻을 깨닫고 그 심득을 이에 적어 남긴다.

이는 만상(萬象)을 포용할 인재가 아니면 그 잔수를 얻을 수 없는 지극히 심오한 내용이다.

만년에 노부는 제자를 한명 거두었다.

지극히 뛰어난 자질을 지닌 아이였으나 그 아이도 천황지벽(天荒之璧)의 진수를 얻지는 못했다.

본시 그 아이는 지극히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자신이 천화지벽의 진수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천하의 그 누구도 천황지벽을 연마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천황대공(天荒大功)은 인간의 몸으로는 익힐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노부는 다만 웃으며 천황대공은 어떤 대기재(大奇才)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해주었다.

이것이 그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자신의 재질을 능가하는 자가 천하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아이의 주장이었고...

마침내 스스로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천하로 뛰쳐나갔다.

향후, 천하가 그 아이로 인하여 고금미증유의 대풍운을 겪에 되리라...>

 

[그분이 바로 천마셨겠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추측은 정확했다.

 

---천마(天魔).

 

그는 천황천존(天荒大天尊)의 제자였다.

천하를 두들겨 부숨으로써 실력을 숨기고 있는 진정한 장자들을 끌어내려는 것이 무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백여 년의 세월동안 천하 위에 군림하면서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불완전한 천황대공이건만 천하무림은 그것조차 감당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노부의 말속에 담긴 시공(時空)의 차이를 염두에 두지 못했다.

천황지벽의 정수를 얻고 대천황지존(大天荒至尊)이 될 대기재가 향후 삼천 년의 시송을 넘어서야 태어날 것임을...

결국 그 아이는 실망만을 안고 대천황연으로 돌아오리라.

노부는 이제 삼천 년 후에 올 대기재를 위해 두 가지 안배를 베풀 것이다.

천황지벽 여덟개 중 후반의 다섯 장과 대천황지정(大天荒之精)이 억겁동안 싸여 이루어진 팔황천병(八荒天兵)을 세상에 내보낼 것이다.

팔황천병에는 천황대정(天荒大正)이란 이름을 주었다.

그것은 묵기로 진면목을 가리고 있다가 영웅의 손에 들어간 후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리라...>

 

[음...!]

능천한은 천황대정신극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그런 모습에 환몽천후가 미소를 지옸다.

[천극이 바로 팔황천병이옵니다. 그에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공스러운 힘이 들어있사옵니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황대정신극을 쓰다듬었다.

 

<팔황청병(八荒天兵)>

 

저 천병보(天兵譜) 천병일천좌(天兵一天坐)의 수좌를 차지하는 전설의 천병(天兵)!

그것은 실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으로 천하에 있었다.

많은 인물들이 천극(天戟)을 사용했었으나 누구도 그 진가를 알지 못했다.

그저 대라천기선(大羅天機仙)만이 어렴풋이 그 진가를 추측했을 뿐이었다.

 

<... 먼 후일... 천황지벽과 천황대정신극이 대기재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마침내는 이곳에 이르게 되리라.

이제 대천황(大天荒)의 억겁을 지난 정화가 그대에게 피어나리니...

만행을 행함에 대정(大正)의 큰 뜻을 항시 명심키를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천황천존 절필(絶筆).>

 

그리고 그 아래로 헌원천황벽의 전반부.

능천한이 천황대정존극심이라 이름붙인 절대심공의 구결(口訣)이 있었다.

구결을 읽어 내려가며,

능천한은 이제껏 흐릿한 안개 속에 있던 천황대정존극심의 실체가 뚜렷해짐을 느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키 어려운 거대한 힘을 추구하는 절대심공이었다.

능천한은 그대로 천황지벽에 몰두하여 들어갔다.

우르르르르---!

천황대정존극심(天荒大正尊極心)-!

그 심오함이 풀어짐에 따라 능천한의 일신에서 아주 강력한 힘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고금을 통하여 최강인 힘이고,

오직 대천황지기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막강한 잠력은 다만 잠력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능천한의 몸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천황대정존극심이 구결이 끌려감에 점차 그 예리하고 웅장함이 다듬어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또한 고금제일인(古今第一尊), 대천황지존(大天荒至尊)의 탄생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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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五 章

 

                  大天荒衍! 億劫의 奇遇!

 

 

 

---만겁패천초극류(萬겁覇天超極流).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되,

아직 한 번도 펼쳐져 본적이 없는 초절기(超絶技)다.

뚜렷한 형채는 없는 중에 일시에 석실전체가 패천신륜(覇天神輪)의 그림자로 뒤덮였다.

어떤 기공(奇功), 어떤 호신지기(護身之氣)라도 부수어 낼 수 있는 위력이 그 그림자에 있었다.

그러나,

츠--- 츠츠츠---!

섬뜩한 마기가 구천에 이를 듯 흩뿌려지자.

거대한 륜영(輪影)의 일각이 너무도 허무하게 베어져 나갔다.

천마지존비의 그 가공한 마력(魔力)이 떨쳐진 것이다.

파--- 가--- 가가각!

츄--- 하--- 아아앙!

천마지존비는 정확히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졌다!)

륜영이 둘로 쩍 갈라짐을 보며 능천한은 패배를 직감하였다.

한순간,

푸--- 학!

얼음보다도 싸늘한 가슴을 가름을 능천한은 느꼈다.

[과연... 천마지존비!]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쿠--- 우웅!

마치 거목이 쓰러지듯이,

능천한의 몸이 그대로 위로 쓰러지며 선혈의 혈향(血香)이 석실을 가득 메웠다.

[흠...!]

스--- 으윽!

뒤이어 우주혈종도 침중한 신음을 흘리며 천마지존비를 거두어들였다.

그의 가슴이 패천신륜의 예기에 쩍 갈라져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극마존체(極魔尊體)인 본종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우주혈종은 가슴을 누르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쓰러진 능천한은 가스미 쩍 갈라져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린 놈이나... 본종의 적수가 될 유일한 제목이었는데...!]

문득 우주혈종의 눈에 한 줄기 안타까운 빛이 흘러지나갔다.

그역시 범사한 마두(魔頭)는 아니었다.

적수를 알아보고 아낄줄 아는 대마두(大魔頭)인 것이다.

[네가 재생하든지... 천마와 함께 뼈를 묻든지는... 천운(天雲)에 달렸다.]

우주혈종은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스스--- 스스스슥!

휘르르--- 르르르르!

그자의 신형은 신기루같이 변하여 천마지벽 밖으로 사라져 갔다.

그르르르--- 르릉!

우주혈종이 사라지자 천마지벽은 굉음과 함께 다시 닫혔다.

그리고,

석실에는 죽음의 적막이 깔렸다.

어떤 소음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정적이 뒤덮이 것이다.

한데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쩌엉!

한 쌍의 강렬한 빛이 어둠과 적막을 함께 찢었다.

아!

그것은 눈빛(眼光)이었다.

천마(天魔)!

그의 감겨있던 눈이 떠지며 강렬하기 이를 데 없는 안광이 흐른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천마는 수천 년 전에 죽었거늘... 어찌 눈을 떠 안광을 떨쳐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었다.

천마의 두 눈에서 횃불같은 안광이 일어났던 것이다.

천마는 쓰러져 있는 능천한과 돌로 깎은듯이 묵묵히 서 있는 환몽천후를 바라보았다.

[과연... 사부의 말씀대로구나. 삼천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천황일맥(天荒一脈)의 진정한 후계자가 나온다함은...!]

웅웅거리는 웅혼한 음성이 석실을 울렸다.

천마는 전혀 입술을 움직잊 않았는데도 음성이 흐르는 것이다.

천마!

그에게 사부(師父)가 있었는가?

또한 천황일맥(天荒一脈)이란 또 무엇인가?

모를 일이다.

천마총의 진정한 신비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기나긴 세월... 천황지벽(天荒之璧)과 천병(天兵)을 지닌 인재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너무도 긴 세월을 영면에 들지 못했다. 허허... 이제야 비로소... 구천(九泉)에 들 수 있으리라!]

스스스---

천마의 몸에서 강렬한 광휘가 쏟아졌다.

그러자,

그그그그긍!

우르르르르!

갑자기 석실 바닥이 쩌억 갈라졌다.

화르르르르--- 르!

휘--- 이이이--- 이이잉!

이어 능천한과 환몽천후의 몸이 둥실 떠올라 석실의 바닥이 갈라진 틈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그 아이아면... 대천황(大天荒)의 진정한 정수를 얻을 것이고...]

쿠르르르르---

천마의 중얼거림 속에 석실바닥은 능천한과 환몽천후를 삼킨 채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진정한 고금제일인이 나리라. 허허... 아울러 고금제일미(古今第一美)도 함께...]

천마와 웃음소리가 석실을 웅웅 울렸다.

그와 함께,

스스스스---!

천마의 형형하던 안광이 급격히 사그라 들었다.

[인세(人世)에서 나의 할 일은 완전히 끝났다. 이제 구천에 들 시간이다...]

스스스스--- 스스슥!

안광이 마침내 사그러 들었다.

그러자 천마의 시신에 변화가 일었다.

스스스스--- 스!

휘르르르르--- 르르!

그의 시신이 머리쪽으로부터 먼지보다도 곱게 부수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화르르르---!

마침내 천마의 시신은 완전히 가루로 사그러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믿어지지 않는 괴사가 일어났던 천마의 무덤은 다시금 적막에 뒤덮였다.

 

***

 

그곳은 공(空) 자체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빛(光)도 없으며 대기(大氣)도 없으며 삼라만상의 그 무엇도 없었다.

그곳은 그저 공(空)일 뿐이다.

그러나...

우르르---

위--- 이이이잉!

그곳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모습은 없으나 소리(聲)가 있고

형체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근원인 대혼돈(大混沌)이 있었다.

만상(萬象)의 모태(母胎)!

대혼돈(大混沌)... 대천황(大天荒)!

 

---태초(太初) 그 이전에 만상(萬象)의 모태가 된 지극히 큰 기운이 있었느니라.

---이를 대혼돈(大混沌)이라하며 이는 만상(萬象)을 탄생시킴으로 사멸되도다.

---억겁(億劫)을 이르러 대혼돈의 정화인 대천황지기(大天荒之氣)가 흩어지지 않고 쌓인곳이 있단다.

---이를 일컬어 대천황연(大天荒衍)이라 하다니... 오호하 이것이 신기보(神技譜) 제일신기(第一神奇)이니라.

 

<대천황연(大天荒衍).>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한 모금만 취해도 신(神)의 경지에 들 수 있다는 대천황지기가 억겁을 변치 않고 쌓여 있는 곳!

빛도 형체도 없는,

그러나 분명히 도도하게 물결치는 대천황지기가 고여있는 곳,

그 대천황연이 이곳이었다.

신기보 일천신기의 제일장을 장식하고 있는 대천황연이 이곳인 것이다.

그 대천황지기이 도도한 흐름 속에 둥실 떠있는 인물이 있었다.

피에 젖은 황초를 걸친 검미(劍眉)의 청년,

바로 능천한이었다.

콰르르르--- 르!

능천한의 주위러 여신 거창한 광풍노고가 일고 있었다.

콰--- 자자자자강!

쿠--- 쿠쿠쿠쿵!

혈지지간에서 가장 빠르다는 낙뢰(落雷)보다도 오히려 빠른 탕류가 능천한의 몸을 뚫고 지나쳤다.

거침없고 막힘이 없는 거대한 역류,

그것이 바로 대천황지기의 흐름이었다.

스스스스--- 스스스!

츠츠츠츠--- 츠츠!

입술을 굳게 다문 능천한의 대천황지기를 끝없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몸은 바닥이 없는 거대한 그릇(器)같았다.

그 끝도 없을 것 같은 천황지기를 막힘이 없이 몸안으로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위--- 이이이잉!

스스스스--- 스스스!

천황지기의 흡수가 진행됨에 따라 능천한의 몸에서는 지극히 광명정대한 광휘가 흘러넘쳤다.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

 

그 천고(千古)의 절대신맥의 모든 능력이 천황지기를 접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우르르르르릉!

쿠르르르르---!

대천황지기의 격랑,

그것은 능천한을 신인(神人)으로 단련시키고 있었다.

 

---천마총(天魔塚).

 

천하인은 꿈에더 천마총이 대천황연의 입구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 거룡(巨龍)이 대천룡(大天龍)으로 자라나고 있음은,...

 

X X X

 

황원(荒原).

거치른 난석과 시든 잡초들로 뒤덮인 황원이었다.

휘--- 이이이잉!

츠츠츠--- 츠츠츠!

겨울의 문턱을 들어서자 삭풍이 뼈골을 시리게하며 불어온다.

중원천하는 유달리 일찍 찾아온 강추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화르르르--- 르르!

쐐--- 애애애액!

돌연 황원을 가르며 세 줄기의 인영이 허공을 갈랐다.

서두에 선 인물은 타는 듯이 붉은 홍포를 걸친 장한이었다.

[...!]

휘--- 이이이잉!

무겁게 입을 다문 장한은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전면을 쏘아보고 있었다.

허공을 가르는 장한의 오른손에는 길이 일 장의 시뻘건 신창(神槍)이 들려 있었다.

 

---태양천화신청(太陽天火神槍).

 

바로 사데신병에 드는 절대신창(絶代神槍)이 그것이고,

그 주인인 홍포의 장한은 태양신존(太陽神尊),

변황제일인(邊荒第一人)이 바로 그였다.

스스스스슥!

휘르르르르--- 르!

무섭게 달리는 태양신존을 두 명의 인물이 땀을 뻘뻘 흘리며 따르고 있다.

 

---남황야수신(南荒野獸神),

---해천신검제(海天神劍帝),

 

변황삼대거파의 종주들이었다.

문득,

스스--- 스스슥!

태양신존이 표표히 날아내리며 몸을 멈추었다.

화르르르--- 르! 스--- 슥!

남황야수신과 해천신검제는 그뒤를 따라 몸을 멈추어 세웠다.

그곳은 까마드히 지평선이 보이는 황원의 중간쯤이었다.

휘--- 이이이잉!

[...!]

차가운 삭풍을 받으며 태양신존은 북쪽을 바라보았다.

[검제(劍帝)!]

태양신존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옛! 속하 여기 있습니다.]

햐천신검제가 공손히 대답하며 허리를 숙였다.

태양신존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사란과... 밀후에게 연락은 제대로 보냈겠지?]

[그렇습니다. 신존. 지금쯤 연락이 닿았을 것이고...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일만의 풍운철기대(風雲鐵騎隊)가 중원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음...]

태양신존은 아주 무거운 안색이 되었다.

[혈종문의 힘이 그터럭 강했다니... 십만의 변황의 용사들이 그토록 허무하게 쓰러지다니...]

태양신존은 탄식을 하였다.

해천신검제가 그런 태양신존을 위로하였다.

[신존! 심려를 푸소서. 이제 딩도할 풍운철기대는 일기일인(一騎一人)이 천인(千人)의 천인(千人)의 발굽 아래 초토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남황야수신도 우직한 음성으로 해천신검제를 겨들었다.

[그렇습니다. 신존.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두 사람의 위로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태양신존은 황원의 저끔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 스스스슥!

그곳에는 하나의 점이 나타나고 있었다.

(사람이다. 그것도... 가공할 경공을 지닌...)

태양신존의 눈빛이 형형하게 타올랐다.

황야의 끝에 나타난 하얀 점은 바로 사람의 그림자였다.

한데,

휘--- 이이이이!

그 인영(人影)은 가공할 경공으로 태양신존 자신들에게 폭사되어 오고 있었다.

이윽고 태양신존은 다가오는 인영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자는 극히 청수한 인상의 백의노인이었다.

화르르르---! 쐐--- 애액!

[허허허---!]

선풍을 일으키며 백의노인은 삽시에 태양신존 앞으로 날아내렸다.

[네가 태양신존이란 아이렸다?]

백의노인은 아무렇지 않게 태양신존에게 말했다.

[발칙한 자...!]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화르르르르--- 르르르르르!

츠츠츠! 쐐--- 애애애애액!

대노한 남황야수신과 해천신검제가 일시에 백의노인에게로 달려들었다.

쿠르르르르--- 르르릉!

그들 양인의 합공은 가히 경세적이었다.

그러나,

[날뛰지 말고... 누워 있거라!]

백의노인은 담담히 말하며 달려드는 남황야수신과 해천신검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으--- 악!]

[아--- 악! 눈... 눈이...!]

쿵! 쿠쿵!

남황야수신과 해천신검제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눈을 감싸쥐며 나뒹굴었다.

태양신존은 그 모습을 보고 안색이 일변하였다.

[사안파령소! 그대는...!]

[허허! 본종을 굳이 알려고 할 필요는 없고... 다만 자네는 본종을 따라가 주어야겠네!]

[음...!]

백의노인, 우주혈종의 말에 태양신존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강한 자다. 어쩌면... 패할지도...!)

우르르르르--- 르!

화르르르르---!

태양천화신창에서 폭풍이 일었다.

시뻘건 구양지기가 삭풍을 가르며 수십 장까지 뻗쳐 나갔다.

[본존을 데려가고 싶으면... 태양천화신창을 눌려야 할 것이오!]

태양신존이 태양천화신창을 겨누며 말했다.

그러자 우주형종은 껄껄 웃었다.

[허허! 어려운 일이 아니지.]

우주혈종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슈--- 팡! 콰--- 콰콰쾅!

[크--- 흑!]

태양신존은 느닷없이 가슴에 일장을 맞고 십여 보 물러섰다.

우주혈종의 무공이 이심제기(以心制氣)의 지겨에 들었음을 알지 못하고 당한 것이다.

태양신존이 몸을 채 바로 잡기도 전이었다.

위--- 이이이잉! 츠츠츠츠츠!

일시에 천지사방이 숨막히는 마기(魔氣)로 뒤덮였다.

그와 함께,

스--- 으윽!

한 자루 시커먼 비수(匕首)가 태양신존의 가슴을 그어갔다.

[헛! 태양뢰폭(太陽雷瀑)!]

태양신존은 다급히 태양천화신창을 휩쓸어 내었다.

그러나,

[흐--- 훗!]

파--- 가--- 가각!

츠츠츠--- 츠츠츠---!

우주혈종의 손에 들린 천마지존비는 여지없이 태양신존의 가슴으로 퍼고들었다.

파--- 파파팟!

푸--- 하--- 악!

[크--- 으... 당하다니...!]

타--- 당!

태양천화신창이 요란하게 땅으로 떨어졌다.

쿠--- 우웅!

그와 함께 태양신존은 가슴에서 선혈을 내뿜으며 나뒹굴었다.

우--- 우우우!

피맛을 본 천마지존비가 섬뜩한 울림을 내었다.

우주혈종은 그런 천마지존비를 쓰다듬으며 청수한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후훗! 다시는 이백 년 전같은 좌절을 당하지 않는다. 천하를 철저히 본종의 손에 넣어 영세군림(永世君臨)할 것이다.]

우주혈종은 두 눈에서 광휘를 쏟아내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이 이 순간만은 사악한 야심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패천지존, 구천독종이 제거되었고... 이제 태양신존마저 제압하였으니... 천향염후만 굴복시키면 무림은 본종에게 대항할 힘을 상실한다.]

우주혈종의 눈빛은 아주 형형하게 빛났다.

[후후... 무림이 본종의 손에 들어오게 되면... 그다음 목표는 태상존황(太上尊皇)이 된... 패천황룡(覇天皇龍)이다.]

우주혈종은 음침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황원의 저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패천황룡의 사라진 황실은 사상누각일 뿐이고... 후후훗, 그렇게 되면...]

우주혈종!

이자는 도대체 어떤 야심을 지니고 있기에 황실마저 넘본단 말인가?

[으하하! 이제 곧 천하가 본종을 신(神)으로 모시게 되리라.]

우주혈종의 웃음소리는 아주 멀리멀리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혈종천하를 예고하는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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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四 章

 

                  天魔之壁, 天魔, 天魔至尊匕!

 

 

 

(무엇인가 있다.)

능천한은 흠칫하며 멈추어 섰다.

이곳은 아주 어두운 석로(石路)였다.

지독한 어둠...

기이하게도 천녀내공을 지닌 능천한이건만 간신히 일 장 앞을 내다 볼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인가?

단순히 빛(光)이 차단된 곳이라 하여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섬뜩한 기분...

어둠 속에 무엇인가 도사리고 있었다.

금시라도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스물... 스물...!

형체도 소리도 없는 중에 그것은 벌레가 기어드는 것처럼 파고 들어왔다.

어지간한 능천한이건만 소름이 오싹 끼쳤다.

(무엇인가? 대체 무엇이 있기에... 이토록 섬뜩한 느낌을 주는가?)

능천한은 눈에 힘을 주고 전면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역시 일 장 이상은 꿰뚫어 볼 수 없었다.

그때였다.

[...!]

환몽천후가 능천한의 팔을 끼며 바짝 달라붙었다.

능천한은 그녀의 교구가 바들바들 떨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이 없는 환몽의 심령마저도 위축시키는 그 무엇이 저 안에 도사리고 있다.)

스--- 윽!

능천한은 일보를 내디뎠다.

사-- 가가가각!

스스스--- 스스슥!

(우웃!)

능천한은 휘청하였다.

그 기분나쁜 기운이 강렬해진 것이다.

피부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전신이 음침한 기운에 오그라들고 모발이 쭈뼛 쭈뼛 일어섰다.

[음...!]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금시라도 날카로운 칼이 목을 푹 찌를 것만 같은 섬뜩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는 모르고 있었다.

공력이 아무리 높은 자리도 일반인들이었다면 이미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을 것을...

일 장 이상을 볼 수 없는 이 석로에는 사상최악의 안배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중에 사람의 심기를 갈가리 찢어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흠...]

능천한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무엇이든... 나의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지는 못한다!]

능천한의 눈에서 뇌전이 쏟아졌다.

누군가 있어 그것을 보았으면 태양이 떠오른 줄로 착각했을 것이다.

능천한의 눈빛은 그만큼 강렬했다.

스--- 스스--- 슥!

뚜-- 벅! 뚜벅!

능천한은 천만근의 무게를 두 발에 담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푸--- 스스슥!

그의 일보 일보마다 석로의 바닥이 푹푹 꺼졌다.

그와 함께,

츠츠츠츠--- 츠츠!

스스스스---!

무형의 살벌한 기운이 잘 벼린 칼날같이 능천한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능천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살벌하고 섬뜩한 기운에 전신이 베어져 나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기운은 능천한이 일보를 움직일 때마다 배로 강해졌다.

그러나,

주르르--- 르!

능천한은 식은 땀을 흘리면사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푹! 푸--- 스슥!

그의 걸음마다 다섯 치 깊이의 족인(足人)이 새겨지고,

무섭게 부릅뜬 그의 시선은 오직 전면만을 노려보았다.

우--- 우우우웅!

츠츠츠츠--- 츠!

무형의 살벌한 기운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져 갔다.

금시라도 전신이 난도질 당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능천한의 발걸음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이것은 공력(功力) 이전에 정력(定力)의 문제였다.

범인이었다면 이미 몇 번은 피를 토하고 쓰러졌을 지독한 안배였다.

(어쩌면... 천마가 자신의 영면(永眠)을 지키기 위해 베풀어놓은 안배인지 모른다.)

어둠 속을 노려보는 능천한의 두 눈이 횃불이었다.

그는 피가 터지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천마이든 누구이든... 패하지 않는다.)

뚜벅--- 뚜--- 벅!

우수수수! 푸--- 스슥!

능천한의 발걸음도 점점 더 깊게 파여졌다.

그만큼 그의 발길을 방해하려는 기운이 강해졌음을 말한다.

그리고

 

--- 크크크크...!

--- 컬컬컬...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오느냐?

--- 크크크... 돌아가랏1 그렇지 않으면 목을 따버리겠다.

 

스스스스스---!

마침내 환청(幻聽)까지 일어났다.

아수라(阿修羅)와 지옥의 악귀들이 구름같이 일어나 능천한을 가로 막았다.

스스스--- 스스!

 

--- 켈켈--- 켈켈!

--- 크크크--- 크크!

 

꿈에 볼까 두려운 악귀들 망령들...

생각하기도 싫은 호나상이 뭉클뭉클 치솟아 능천한을 뒤덮어 씌웠다.

그것은 섬뜩한 기도에 부합하여 능천한을 사정없이 죄어왔다.

능천한의 일신이 식은땀으로 질퍽해졌다.

[물러가랏! 마계(魔界)의 망령들이여!]

문득 능천한이 벼락같이 일갈을 터뜨렸다.

그의 일갈에는 만사(萬邪) 만마(萬魔)를 깨쳐 부수는 대정지기(大正之氣)라 있었다.

다음 순간,

스스스-!

모든 환상과 환청이 거짓말같이 사그라 들었다.

그와 함께,

파--- 앗! 스스스스!

갑자기 석로를 뒤덮고 있던 칙칙한 어둠이 확 가셔 버렸다.

그러자 석로주변이 일시에 환해졌다.

[...!]

의아해하던 능천한의 안색이 갑자기 목석같이 굳어져 버렸다.

그는 경악에 찬 시선으로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쪽에 있는 것은 높직한 석문이었다.

시커먼 묵강옥(墨剛玉)으로 만들어진 것이데,

일견하여 낙서와 같은 큼직한 문양이 그 묵강벽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갑골문자(甲骨文字)였다.

능천한은 갑골문자를 읽어 보았다.

 

<천마지벽(天魔之璧)>

 

[우웃!]

글을 읽던 능천한은 뇌전에 맞은 듯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마기(魔氣)!

지도한 마기가 그 네 글자에 모두 집약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그런 가공할 마기가 그 네 자의 글에 실려있는 것이다.

[으음...!]

그러나 능천한은 점차 평정을 되찾았다.

천극대정신맥을 지닌 능천한이다.

마(魔)가 강하던 강할 수록 강해질 수 있는 것이 능천한의 장점이다.

[천마지벽!]

능천한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천마가 잠든 곳이... 이 너머에 있으리라. 모든 마기가 이곳에서 흘러나오니...]

능천한은 묵직한 시선으로 천마지벽을 바라보았다.

스스스--- 스스!

우우--- 우우우--- 웅!

그와 함께 능천한의 일신에서 지극히 크고 정대한 기운이 무지개같이 피어올랐다.

바로 천극대정신맥에서 우러나오는 대정지기(大正之氣)가 그것이다.

[진정, 천마가 고금제일마종(古今第一魔宗)이었다면... 극정(極正)의 큰 기운에 자신의 문(門)을 열 큰 아량이 있으리라!]

능천한은 담담히 중얼거렸다.

그의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 그그그긍!

우르--- 르르르르!

천마지벽에서 웅혼한 진동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츠츠--- 츠츠--- 츠!

스스--- 스스스--- 스!

침중한 광휘가 새어 나오며 천마지벽이 둘로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역시...!]

능천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영웅지혼(英雄之魂)은 천세(千世)을 격하고도 이어지는가?

천마지벽이 갈라진 것이 우연이었는지 안배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스--- 스스슥!

능천한은 환몽천후와 함께 천마지벽의 갈라진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가자 천마지벽은 소리없이 합쳐졌다.

 

[...!]

능천한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아무런 특징도 없는 석실이었다.

다만 석실 전체가 시커먼 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것이 기이할 뿐이었다.

한데 석벽을 등진 석상(石床) 위에 일인(一人)이 좌정하고 있었다.

일신에 고풍스런 묵의(墨衣)를 걸친 중년인이었다.

(음... 기도가 엄청나다. 하늘을 보는 듯하다.)

능천한의 검미가 부르르 떨렸다.

능천한은 묵의중년인의 모습에서 하늘을 보았다.

천지를 가득 메우는 가공스런 기도(氣道)!

그것은 정사(正邪)를 따지기 그 이전의 기도였다.

만상(萬象)을 포용하고,

만천하(萬天下)를 뒤덮어 버릴만한 엄청난 무형기도(無形氣道)!

능천한은 숨이 탁 막힘을 느꼈다.

(이제껏... 이만한 기도를 보지 못하였다. 우주혈종이 몸속에 감춘 그 엄청난 기도도... 이 인물의 그것에는 비교되지 않는다.)

능천한은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만큼 묵의중년인은 능천한을 압도하는 기도를 지닌 것이다.

어찌 보면 평범하나 만세지존(萬世至尊)의 기품이 그에게 있었다.

[이분이 천마이시리라.]

능천한은 시선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묵의중년인의 가슴에 이르러 멈추어졌다.

묵의중년인의 가슴,

그곳에는 한 자루 비수(匕首)가 손잡이만 남긴 채 박혀 있었다.

아수라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는 비수의 손잡이에서는 칙칙한 마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천마지존비(天魔至尊匕)! 설마 이 분은... 스스로 자결하셨단 말인가?]

능천한의 시선이 흔들렸다.

 

<천마지존비(天魔至尊匕)>

 

바로 그것이었다.

중년인의 가슴에 손잡이만 남기고 박혀 있는 비수가 바로 천마지존비였다.

사대마병(四大魔兵)의 으뜸으로 팔황천병(八荒天兵)의 전설에만 그 상좌를 양보한다는...

바로 그 천마지존비인 것이다.

능천한은 석상(石床) 밑의 바닥을 주시하였다.

그곳에는 글이 있었다.

모든 글이 갑골문자로 쓰여있으나 능천한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야심으로 하여... 적수를 찾아 천하에 나섰도다. 그러나... 없었다. 적수는 고사하고 본인이 일초반식을 받는자도 없었다.

(中略)

이에 백여 년을 횡행하다가... 이곳에 천마총을 짓고 스스로 목숨을 끊도다.

천세(千世) 후에라도 본인의 적수가 천하에 나기를 기대하며...

천마가 적노라.>

 

[으음... 역시...]

능천한은 글에서 시선을 때고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천마(天魔)>

 

천하가 고금제일마종(古今第一魔宗)이라고 부르는 천마,

그가 실상은 너무도 고독하고 불행하였음을 천하는 모른다.

그는 자신의 적수를 기다리며 일백수십년의 세월을 무림 위에 있었다.

그러나 끝내 천마의 적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천하에 오직 혼자만이 독존군림한다는 것.

범인(凡人)은 그것을 동경(憧憬)하지만

그 경지에 이른 절대자(絶代者)는 진정 고독해 진다.

자신과 뜻을 나눌 단 일인도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이기에...

능천한은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그 자신도 이미 절정(絶頂)에 접근해 있는 인물이다.

자연히 천마가 느꼈던 그 처절한 고독(孤獨)의 그림자를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선배의 생전 심정을 압니다. 천하 위에 홀로 서셨던 그 처절한 고독을 이해합니다.]

능천한은 천마를 향하여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다른 시대에 나서 다른 길을 걷고 있으나... 후배가 가히 선배에게 찾으시던 적수가 되어 보겠습니다.]

능천한은 말을 하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

침묵이 흘렀다.

능천한은 결연한 눈빛으로 천마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다시 올 때는... 선배만큼 강해져서 올 것입니다.]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천마를 감아보았다.

 

---천마지존비(天魔至尊匕).

 

천하인이 눈에 불을 켜고 얻으려는 그 절대신병(絶代神兵)도 능천한을 유혹하지늠 못했다.

(천마지존비보다 백배 귀중한 것을얻었다. 그것은 정사(正邪)로 극한 대도(大道)가 있음을 본 것이다.)

염두를 굴리며 능천한은 굳혀진 천마지벽 앞으로 다가섰다.

그때였다.

[후후후...]

한소리 웃음소리가 천마지벽 저쪽에서 들려왔다.

(우... 우주혈종!)

능천한은 직감적으로 천마지벽 저편에 우주혈종이 와 있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그그그릉---

천마지벽이 쩍 갈라졌다.

자자자자작---

츠츠츠츠---

그와 함께 천마지벽사이로 시뻘건 기류가 노도같이 번져 나왔다.

[우웃! 자령천존수(紫靈天尊手)!]

쿠쿠쿠쿵---

능천한도 벼락같이 우수를 쏟아내었다.

콰--- 콰쾅--- 꾸--- 꾸꿍!

우르르르---

천지개벽하는 듯한 엄청난 광음이 터져 나왔다.

꾸--- 꾸끙!

[흑...]

화르르--- 르르---

능천한은 가슴을 철퇴로 가격당한 충격을 느기고 쓰러질 듯이 비틀거렸다.

[허허... 욕심이 없군. 천마지존비에 손도 쓰지 않다니...]

스스스--- 스!

껄껄 웃음소리가 들리며 한 줄릭 백영이 천마의 시신 앞으로 다가갔다.

물론 우주혈종이었다.

[안 가지겠다면 본종이 가져주지.]

우주혈종은 서슴없이 천마의 가슴에 박힌 천마지존비를 쥐었다.

[안돼! 손을 떼랏!]

위--- 이이이잉!

능천한이 벼락같이 외치며 우주혈종에게 덮쳐갔다.

짜자--- 자자작---

츠파파파파---

능천한의 전신이 거대한 검형(劍形)이 되어 우주혈종을 무찔러갔다.

[호! 천형제왕검까지?]

스--- 윽!

우주혈종은 중얼거리며 천마지존비를 잡아 뽑았다.

다음 순간,

슈--- 파--- 아앙---

화르르--- 르르--

갑자기 마기(魔氣)가 석실을 가득 메웠다.

다섯 치가 채 안되는 천마지존비의 날(刃)이 나타난 것이다.

(우웃!)

허공에 뜬 능천한은 천마지존비의 마공에 접하자 전신이 터져 나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만큼 천마지존비의 마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스--- 스스슥---

츠--- 파파파---

능천한의 천형제왕검과 우주혈종이 휘두른 천마지존비의 비영(匕影)이 허공에서 작렬하였다.

사--- 가각---

일순 천형제왕검이 천마지존비에 두 동강 나버렸다.

위력을 따지기 그 이전에 공력상의 문제였다.

[과연 천마지존비!]

스스스슥---

능천한은 냉갈하며 지면으로 내려섰다.

능천한은 몸을 세우며 소매에 한 손을 집어넣었다.

(보통의 무공으로는 이자를 죽일 수 없다.)

능천한은 무겁게 눈을 빛내며 우주혈종을 노려보았다.

[고인의 유물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책벌을 할 것인가?]

우주혈종은 천마지존비를 만지작거리며 대꾸했다.

[천마 선배를 대신하여...]

위이--- 이이이잉---

갑자기 능천한의 몸에서 지극히 허허로운 기운이 구름같이 일어났다.

[...]

우주혈종도 흠칫하였다.

능천한의 기도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때문이다.

[만겁패천초극류(萬겁覇天超極流)!]

슈아아아앙--- 스스스!

능천한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거창한 륜영(輪影)이 환상인 듯이 일어났다.

우주혈종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패천제육절식(覇天第六絶式)이 있는가?]

위--- 이이이잉!

츠츠츠--- 츠츠!

그와 함께

콰아아앙!

우주혈종의 일신에서 폭풍인 듯 실로 엄청난 기류(氣流)가 일어나 내뻗쳤다.

그것은 천마지존비의 섬뜩한 마기에 곁들어 태산을 둘로 갈라 놓을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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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三 章

 

                      宇宙血宗 登場

 

 

 

--- 이이이잉!

우르르르--- 르릉!

막강한 암경을 휘몰며 핏빛 강기가 쏟아졌다.

[후후후...!]

폭풍같은 암경 속에서 백의노인의 웃음소리가 환상인 듯 들려왔다.

[...!]

철혈묵사는 혈강의 무더기가 쏟아져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이미 심장이 박살이 난 철혈묵사다.

반격은 고사하고 그 몸으로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우르르르---!

해일이 몰아치듯이 거창한 강기의 무더기가 철혈묵사의 코앞으로 닥쳐 들었다.

절체절명(絶體絶命)!

(틀렸다!)

철혈묵사는 탄식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백의노인의 공세를 피하거니 막아볼 방도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우우---!]

돌연 사나운 일갈이 천마총을 무너뜨릴 듯이 울려퍼졌다.

--- 콰콰콰--- !

콰르르르르---!

그와 함께 측면으로부터 노도같은 묵강이 날아들었다.

그 묵강에는 족히 작은 산 하나를 깔아 부술 수 있는 가공할 압력이 담겨 있었다.

--- --- 콰쾅!

--- --- 쿠쿵!

묵강과 백의노인의 혈강이 충돌하며 굉렬한 폭음이 터졌다.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엄청난 폭음이었다.

[--- !]

콰당탕!

폭발의 여파로 철혈묵사는 십여 장을 날아가 나뒹굴었다.

[...! 지독하군...!]

둔탁한 신음이 들렸다.

스스스스---!

휘르르르르---!

그와 함께 두 줄기 인영이 장내로 날아내렸다.

능천한과 환몽천후였다.

[환몽! 형님을 모시고 뒤로 물러서시오!]

능천한은 백의노인과 마주 서며 무겁게 말했다.

스스--- 스스슥!

환몽천후는 유령같이 움직여 철혈묵사를 안아들고 멀찍히 물러섰다.

[...!]

백의노인과 마주선 능천한은 안색이 더할 수 없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백의노인,

능천한이 수라천극존과 함께 있을 때 보았던 바로 그 백의노인이었던 것이다.

능천한의 봉목이 흔들렸다.

(폭풍대공이 혈종이었고 형님이 묵영독존이었음도 놀랍거늘... 구천독종의 당대종주인 형님이 저항도 못하고 당하는 강자가 있었다니...)

석실의 상황을 한눈에 알아본 능천한은 내심 긴장하였다.

백의노인의 강한 정도를 도무지 추측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 능제... 안되네... 맞서지... 말고... 피하... !]

능천한의 등 뒤에서 환몽천후에게 안긴 철혈묵사가 고통을 억누르며 말했다.

[허허... 늦었다!]

철혈묵사의 말에 백의노인이 껄걸 웃었다.

그리고,

--- !

마치 푹죽이 터지는 듯 사악한 광채가 노인의 두 눈에서 쏟아지는 것을 능천한은 보았다.

[--- !]

능천한은 눈을 감싸며 신음을 토했다.

백의노인의 안광을 접하는 순간 두 눈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던 것이다.

[... 사안파령소!]

능천한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그럼에도 능천한은 다만 잠시 시력을 잃었을 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것은 능천한이 만사(魔邪)와 만마(萬魔)에 극성인 천극대정신맥을 지녔기 때문이다.

백의노인도 흠칫했다.

[그렇군. 네가 천극대정신맥을 지녔음을 잊었군!]

백의노인은 비틀거리는 능천한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스스--- !

[--- !]

능천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무형무성의 지극히 강한 힘이 접근해 옴을 느낀 것이다.

[--- -- !]

스스스--- 스스스슷!

능천한의 입에서 우렁찬 폭갈이 터지고 그의 신형이 일시에 백팔 개로 늘어났다.

[구유백팔유령흔(九幽百八幽靈痕)!]

우르르르--- 르르---!

폭풍이 능천한의 환영(幻影)들을 일그러뜨렸다.

[거령폭류참! 겁멸파황륜!]

--- --- --- !

콰르르... -- 이이이잉!

허공에 둥실 뜬 능천한의 몸에서 화산이 터지듯,

거창한 공세가 쏟아져 백의노인을 뒤덮어 씌웠다.

천극에서 강기의 노도가 쏟아지고,

패천신륜이 천지를 양단할 기세로 내뻗쳤다.

[허허! 천극과 패천신륜이라...!]

우르르르르---!

--- 이이이잉!

쏟아져 들어오는 능천한의 공세를 바라보며 백의노인은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개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콰드드!

아연하게도 능천한의 막강한 공세가 어이없이 허물어져 내린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 우우--- 우웅

무형무성의 거창한 능천한의 가슴으로 벼락같이 밀려왔다.

[이럴 수가...!]

--- 이이이잉!

능천한은 아연실색하면서 몸을 휘둘렀다.

 

---구유백팔유령흔(九幽百八幽靈痕)!

---유령잠천행(幽靈潛天行),

---환향허무류(幻香虛無流),

 

폭발하듯이 절정의 경공신법이 그의 일신에서 펼쳐나왔다.

그러나,

파파파--- 파팟!

[--- !]

능천한은 바위가 떨어지듯이 묵직하게 바닥에 내려섰다.

그의 가슴이 시뻘건 선혈로 물들어 있었다.

절정의 경공으로 백의노인의 공세를 피하지 못한 것이고,

금강불괴지신인 그이건만 여지없이 상처를 입고 만 것이다.

[...!]

천극을 집고 몸을 세우며 능천한은 신음하였다.

(역시... 강하다. 호신강기고 금강불괴신이고 여지없이 허물어지다니...!)

침중하게 안색을 굳히는 능천한을 향해 백의노인은 미소를 띄우면서 다가섰다.

일견해서는 극히 맑고 청수한 웃음이다.

그러나 능처한은 백의노인의 미소에 섬뜩함을 느꼈다.

소리장도(笑裏藏刀)라는 엣말이 떠오른다.

[패천지존이라 불리어 부족함이 없군. 본종의 이초를 감당해내다니...]

--- 스스스슥!

백의노인이 온화게 중얼거리며 능천한을 향해 다가왔다.

그때였다.

[... 능제... 그자... 우주혈종! 상대할... 수 없... ...!]

철혈묵사의 끊어질 듯한 목소리,

그것이 천둥소리같이 능천한의 귓전을 두드렸다.

[우주혈종!]

능천한은 비명에 가까운 신음 성을 흘렸다.

얼머나 놀랏는지 그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천극을 떨어뜨릴뻔 하였다.

그는 경악의 눈빛으로 백의노인을 바라보았다.

[귀하가... 우주혈종?]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 우웅!

--- 르르르릉!

[--- !]

능천한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오 장을 붕 날아갔다.

무형무성(無形無聲)!

천년공력을 지닌 능천한이 전혀 알아 차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격당한 것이다.

[... 능제...!]

그 모습에 철혈묵사가 신음을 터뜨렸다.

화르르르--- !

[으음...!]

허공으로 튕겨졌던 능천한은 힘겹게 몸을 틀어 지면으로 내려섰다.

! --- !

지면으로 내려선 능천한은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선 후에야 몸을 세웠다.

그의 가슴부위가 늑골이 허옇게 드러날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

(무섭다, 어심즉살(御心卽殺)의 경지에 이른 자다!)

능천한은 숨을 들이쉬며 고통을 눌렀다.

[뼈대가 강하구나. 그렇다. 노부가 우주혈종이라 불리던 사람이다!]

백의노인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묵영독존이 치명적인 지경으로 빠질 정도의 강렬한 공세를 두 번이나 받고도 능천한은 서 있기 때문이다.

[으음...!]

능천한의 신색도 더할 수 없이 무겁게 변했다.

 

<우주혈종(宇宙血宗).>

 

이 얼마나 섬뜩한 이름이던가?

이백 여년 전!

한 자루 혈황탈로 천하를 혈세(血洗)하였던 저주의 혈마(血魔)가 아닌가?

한데 그가 살아있는 것이다.

이백여 년의 세월을 날아넘어 그가 살아있는 것이다.

믿기조차 싫은 너무도 끔찍한 사실이었다.

[그랬었는가? 귀하가 우주혈종이었던가?]

능천한은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분하지만 우선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 진정 우주혈종이라면... 아버님과 힘을 합쳐야 한다!)

능천한의 봉목이 형형하게 빛났다.

-- 스스스슥!

휘르르르르--- 르르!

능천한의 신형이 일시에 석실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청허현도존께서 하셨듯이...)

--- 쿠쿠--- 쿠쿵!

콰르르르--- 르르릉!

천지를 허물어 뜨릴 듯이 거창한 강기가 일어났다.

[자령천단공강! 패천존후신강!]

--- 이이이잉!

--- 파파--- !

폭풍같은 강기가 해일같이 백의노인 우주혈종에게로 쏟아져 들어갔다.

[허허! 어린아이가 제법이군!]

--- 이이잉!

우주혈종의 손이 호선을 그리며떨쳐졌다.

--- --- !

--- --- 꾸꿍!

엄청난 폭발이 일어 석실을 뒤흔들었다.

그 순간,

[무너져랏! 폭천혈강륜!]

--- 이이이--- !

--- 자자--- 자자작!

뇌정이 터지듯,

태산같은 륜영(輪影)이 석실의 천정으로 쏘아갔다.

[!]

그제야 우주혈종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손을 쓰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 걸음 늦었다.

--- --- 쿠쿠쿵!

우르르--- 르릉! --- !

지축이 뒤흔들리며 석실의 천정이 폭삭 가라앉았다.

[교활한...]

천정이 무너져 내리는 굉음 속에서 우주혈종의 노성이 터졌다.

--- --- 콰쾅!

우르르--- 르를!

굉음 속에서 석실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

 

어두운 석로(石路),

[... ... 미안하네... 정체를 속여서...]

철혈묵사가 고통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금 능천한에게 안겨 있었다.

(회생불능(回生不能)이다... 지금까지 버티신 것은 ... 독성지경(毒聖之境)에 이른 독종지기(毒宗之氣) 덕분이다.)

능천한의 눈빛이 안타깝게 변했다.

철혈묵사의 상세가 도저히 손을 써볼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 네를... 친동생같,... 이 좋아... 했는데...]

[형님...]

철혈묵사를 안고 있는 능천한의 손이 떨렸다.

[우연히... 무저갱(無低坑)... 발견하고... 구천묵독제의... 진전을 얻었네. 구천독종을... 이은 직후... 나는 아주 거대한 세력이 암중에서... 천하를 지배하려고... 하고 있음을... 알았네. 그래서 나는... 스스로 그 세력에 뛰어... 들었... 던 것이고...]

[...!]

능천한의 두 눈이 축축히 물기고 젖어들었다.

영웅(英雄)!

천하에 나와서 최초로 만났던 일대영웅(一大英雄)이던 검은 사자(黑獅)!

그 사자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을 주었던 영웅!

장부임을 서로가 알았기에 짧은 만남으로 천인만큼이나 가깝게 느꼈던 철혈묵사다.

그의 최후를 지켜보는 능천한의 마음은 비통함으로 이지러졌다.

[혈종... 폭풍대공 따위... 가 그 거대한 암류의 종주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느나... 설마... 우주혈종이... 살아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철혈묵사가 말을 이었다.

그의 얼굴에 점차 한 가닥의 혈색이 돌아왔다.

그것은 마지막 심력(心力)이 타오르는 희광반조의 현상이었다.

[힘을 모으게... 태양신존... 태상존황,... 그들과 힘을 합해야 우주혈종을 막을 수 있네!]

[알겠습니다. 형님.]

능천한은 철혈묵사의 손을 꼭 쥐었다.

!

한 방울 뜨거운 눈물이 꼭쥔 두 장부의 손등으로 떨어졌다.

철혈묵사는 말을 이어갔다.

[구천독종의... 주력은... 아직 건재하네. 그것을... 능제에게 맡기네.]

[구천독종을...]

철혈묵사는 한 가닥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나는... 만일을 대비하여 힘을... 기르고 있었네. 독종철... 혈대(毒宗鐵血隊)라는...]

[독종철혈대!]

능천한이 중얼거리다가 철혈묵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백명... 정도이나 개개인이... 우형에 육박하는 강골들이지!]

[...]

능천한은 신음했다.

일백 명(一百名)

철혈묵사에 육박하는 일백의 독종(毒宗)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히 천하를 뒤덮을 정도의 엄청난 힘이 아닌가?

[후훗... 우주혈종... 그자는... 모르고... 있지. 구천독종의 진... 정한 잠력을...]

철혈묵사는 득의의 미소를 흘렸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하였다.

[우형의 가슴 속에... 구천묵황경(九天墨荒經)... 철사령(鐵獅靈)이 있네... 그것들을 만독묵린편과 함께... 자네에게 주겠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형님!]

[받아... 주니... 고맙네... 철사령은 독종철혈대를... 능제의 수족으로... 만들어 줄 것이네...]

말을 하는 철혈묵사의 두 눈이 자꾸만 감기려고 하였다.

죽음이 가까이 있는 것이다.

[그아... 이들... 모두... 강골한들이나... 좋은... 아이들... 이네. ... 대해주게.]

[걱정마십시오. 형님.]

능천한은 철혈묵사의 소을 꼭 쥐어 주었다.

철혈묵사의 안면에 미소가 떠올랐다.

[자네들... 믿네. 자네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스르르르륵!

철혈묵사의 머리가 힘없이 옆으로 꺾어졌다.

모든 것을 능천한에게 일임하는 순간,

그의 영혼을 육체에 묶어두고 있던 끈이 끊어지고 만 것이다.

[형님!]

능천한이 다급히 철혈묵사의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철혈묵사의 영혼은 이미 그의 몸에서 떠난 후였다.

주르르!

한 가닥 뜨거운 물줄기가 능천한의 볼을 흘러 내렸다.

[...!]

능천한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철혈묵사의 시신을 조심스레 바닥에 뉘었다.

그리고 능천한은 철혈묵사의 시신을 향해 이배를 올렸다.

그런 후에 그는 한 무릎을 꿇은 채 철혈묵사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처참한 형색이었으나...

철혈묵사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능천한을 믿는 안도감 때문일까?

[지켜보아 주십시오. 우주혈종이... 이미 극마지경(極魔之境)에 이르렀으나 소제의 손으로 반드시 제거하겠습니다.]

능천한은 철혈묵사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다짐하였다.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던 능천한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이곳에 형님을 모셨다가 천하가 평온해지고 나서 밖으로 모셔야겠다.]

능천한은 한쪽의 석벽으로 다가갔다.

우르르르르---

--- 파파--- !

그의 손에서 벼락같은 강기가 일어 석벽에 깊은 구덩이가 생겼다.

능천한은 철혈묵사의 시신을 들어 그 구덩이에 조심스럽게 안치했다.

그런 후에 그는 바위로 그 입구를 잘 막았다.

[우주혈종을 베는 날... 형님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능천한은 쉽사리 석벽에서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철혈묵사(鐵血墨師) 정천학(鄭天壑).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호웅(豪雄)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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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二 章

 

           鐵血墨獅, 쓰러지다.

 

 

넓은 석실,

[크크크... 폭풍팔존(暴風八尊)을 아느냐?]

[흐흐... 구천독종(九天毒宗) 따위가 감히 혈종에 대항하려 하다니!]

콰르르르릉!

쿠--- 쿠--- 쿠쿵!

팔인(八人),

폭풍(暴風)의 기세로 휘돌아가는 팔인이 있다.

그들 광인이 하나의 진세를 형성하여 일단의 인물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그들은 폭풍보(暴風堡)의 최고고수들인 폭풍팔존)이었다.

우르르르르--- 르!

콰르르르르--- 르르!

[크--- 아악!]

[아--- 아악!]

폭풍팔존이 진세를 휘돌림에 따라 진중에 갇혀 있던 인물들이 퍽퍽 쓰러졌다.

 

---폭풍사멸대진(暴風死滅大陣).

 

한 번도 파괴된 적이 없다는 폭풍사멸대진이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크으... 독존(毒尊)께서... 원한을 갚아주실 것이다!]

[크--- 아악!]

[아--- 아악!]

연신 진중의 인물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진중에 갇힌 자들은 하나같이 절정에 이른 독문(毒門)의 고수들이다.

그럼에도 폭풍사멸대진에 잘못 걸려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크크... 꿈꾸지 마라! 묵영독존(墨影毒尊)도 지금쯤 혈종과 혈령십위(血靈十衛)의 합공 아래 지옥문을 넘고 있을 것이다!]

[크크크... 혈종의 천하가 도래할 것이다!]

콰콰--- 콰-- 콰쾅!

쿠르르르--- 르르르릉!

[아--- 악!]

[크으...]

또다시 세 명의 독문고수들이 가슴이 으스러져 나뒹굴었다.

그때였다.

스스스--- 스스슥!

화르르르르!

네 줄기 인영이 장내로 떨어져 내렸다.

[으하하! 혈종천하(血宗天下)? 웃기지 마라!]

[호호호호! 천하는 오직 구천(九天)의 것일 뿐이다!]

노인의 음소와 여인의 교갈이 장중을 뒤덮었다.

스스스--- 스스스슥!

화르르--- 르르르!

그와 함께 시커먼 독무가 장내를 뒤덮었다.

[크으... 묵린독장(墨鱗毒瘴)!]

[크윽... 벽안독마들을 잊다니...」

기세좋게 날뛰던 폭풍독존이 휘청하였다.

 

---묵린독장(墨鱗毒瘴)!

 

그것은 남만의 깊은 오지에서 나뭇잎들이 부패하여 생기는 지독한 독장(毒瘴)이다.

다만 독공을 익힌 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영약이 된다.

[으하하! 네놈들이 독종의 형제들을 쓰러뜨렸느냐?]

[크크... 죽어랏!]

전세는 단번에 역전되고 말았다.

묵린독장을 독문인 고수들이 길길이 나뛰며 폭풍팔존을 덮쳐갔다.

펑! 퍼--- 펑!

[크--- 아악!]

[케--- 에에엑!]

폭풍팔존 중의 두 명이 가슴이 박살이 나서 쓰러졌다.

쓰러진 그자들의 몸은 삽시에 독수로 녹아들었다.

[흐흐흐...]

나중에 나타난 사인은 폭풍팔존이 쓰러지는 것을 보며 득의의 미소를 흘렸다.

그들은 벽안독마, 천독노군(天毒老君), 독절신모(毒絶神母), 살독서시(煞毒西施)등이었다.

[크--- 아악!]

[케--- 에에엑!]

[아--- 아악!]

폭풍팔존이 차례차례 짚단이 넘어지듯 쓰러졌다.

[흐흐... 혈종의 득세도 한때다. 구천독종은 천 년의 세월을 독종천하를 꿈꾸어 왔다. 이것은 혈종 따위가 따르지 못할 저력이다.]

벽안독마는 쓰러져 독주로 화하는 폭풍팔존을 내려다보며 득의하여 말했다.

그때였다.

[허허! 과연 그럴까?]

돌연 한소리 창노한 음성이 벽안독마의 귀를 흔들었다.

[헉!]

[으음...]

벽안독마 등은 질겁하며 홱 돌아섰다.

그 직후 벽안독마 등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한 명의 백의노인 뒷짐을 짚고 장내에 나타나 있었다.

노인은 매우 초탈하고 청수하였다.

언뜻 보면 마음씨좋은 글방의 노문사같이 보인다.

그러나 벽안독마에게서는 사지가 덜덜 떨림을 느꼈다.

백의노인에게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념(邪念)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전신의 소름을 돋게 만드는 것이고,

정공(正功)을 익힌 사람보다 사공(邪功)을 익힌 자가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누... 누구냣?]

벽안독마가 용기를 내어 외쳤다.

[후훗! 너희들같은 졸개들은 본종을 알 자격도 없다!]

[무... 무엇이? 이익!]

화르르르! 쐐--- 애액!

독문의 고수들이 대노하여 백의노인을 덮쳐갔다.

[어린아이들 장난!]

그러나 백의노인은 날아드는 독문의 고수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

그러자 기상천외할 일이 벌어졌다.

[으--- 웩!]

[아--- 악!]

백의노인에게 달려들던 독몬의 고수들은 무형의 벽에 부딪힌 듯이 피를 토하며 튕겨져 나갔다.

[으으... 사안파령소(死眼破靈笑)! 그저 전설로만 내려오는 초절 마공인데...]

벽안독마의 안색이 회색으로 변했다.

 

---사안파령소(死眼破靈笑)!

 

마도(魔道)에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ㅍ초절기를 일컬음이다.

다만 눈빛과 미소로 인명을 살상할 수 있다는 가공스런 위력의...

[후후... 너희들도 누워랏!]

백의노인은 벽안독마 등을 향하여 괴괴한 시선을 보았다.

다음 순간 네명은 자신들의 심장이 박살남을 느꼈다.

쿵--- 쿠쿵!

네 명은 신음도 못지르고 나귕굴었다.

실로 가공스러운 마공이 아닐 수 없었다.

백의노인은 벽안독마를 바라보았다.

[네 생명을 일다경 연장시켜줌은... 또 한 마리의 대어(大魚)를 그물로 몰아넣기 위해서다. 후후후...]

스스--- 슥! 파--- 앗!

그리고,

백의노인은 유령같은 신법으로 장내에서 사라졌다.

너무도 가공스런 인물...

백의노인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일다경쯤 후...

[혈향(血香)과 독향(毒香)이 나는군!]

한소리 침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

스--- 스스슥!

장내로 일남일녀가 나타났다.

바로 능천한과 환몽천후였다.

[지독하군... 동귀어진했는가?]

능천한은 혀를 차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문득,

[으...]

능천한은 누군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벽안독마!]

부상자에게로 다가간 능천한은 다급히 벽안독마에게 공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으으... 패... 패천지... 존!]

벽안독마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의 심장은 이미 박살난 상태고 다만 한 가닥 연약한 심근이 남아있을 뿐이다.

[어찌된 일이오? 누가 그대들을...]

능천한이 묻자 벽안독마는 공포에 차서 중얼거렸다.

[사... 사안파령소... 피... 피하시오. 그자는... 우... 우주(宇宙)...]

툭!

벽안독마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사안파령소? 이론만으로 전해오는 초절마공이 아닌가? 이들이 정녕 사안파령소에 당했는가?]

능천한은 경이에 찬 시선으로 독문의 고수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벽안독마는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일까? 우주(宇宙)라니...?]

능천한은 검미를 모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콰--- 콰--- 콰쾅!

쿠--- 쿠쿠쿠--- 쿵!

몇마장 밖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

능천한은 강렬한 호기심이 일어남을 느꼈다.

[굉음으로 보아 보통의 고수들 싸움이 아니다. 가보자!]

스스스스--- 슥!

휘르르르---

그 뒤를 환몽천후가 어김없이 따라갔다.

 

***

 

[으음... 혈령십위(血靈十衛)가 십초를 버티지 못하다니...]

칙칙한 혈광 속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렀다.

안개같이 흐르는 혈기(血氣),

그 안에 서 있는 자는 바로 혈종이었다.

혈종 앞.

십 명의 혈포인들이 죽어 넘어져 있었다.

하나같이 괴악한 인물들로서 그자들의 시체는 극독에 당한 듯이 녹아들고 있었다.

[후훗! 혈종. 너는 본존의 진정한 무서움을 알지 못하고 있다.]

혈종과 마주하고 시커먼 구름에 싸인 인물이 있다.

묵영독존이었다.

[후후후! 이제 구천독종의 진실된 무서움을 싫도록 맛보게 해주마.]

츠츠츠츠!

묵영독존을 가린 묵운(墨雲)이 더욱 짙어졌다.

그와 함께,

스--- 스스!

묵기 속에서 섬뜩한 묵광을 쏟아내는 것이 있었다.

만독묵린편(萬毒墨鱗鞭)이었다.

[으음...]

혈종은 혈광 속에서 무섭게 신음하였다.

그는 칙칙한 어조로 대답했다.

[날뛰지 마라! 만독묵린편이 혈황탈(血荒奪)을 능가한다고는 믿을 수 없다!]

위--- 이이이잉!

츠파파--- 파파팟!

혈광 속에서 시뻘건 탈영(奪影)이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혈황탈의 그림자였다.

 

만독묵린편(萬毒墨鱗鞭).

혈황탈(血荒奪).

 

천하사대마병(天下四大魔兵)에 드는 초절한 위력의 병기들이다.

천세(千世)에 두고 없었던 마병(魔兵) 간의 일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드드드득!

스스스스스!

두 마병이 내뿜는 끔찍한 마기에 석실의 여기저기가 가루로 부서져 버렸다.

위--- 이이이잉!

츠츠츠츠츠츠---

압력이 더욱 가중되어 마침내 터지지 않고는 못 베길 지경이었다.

혈종이 먼저 움직엿다.

[우--- 야--- 압! 혈탈개세천(血奪蓋世天)!]

쿠--- 콰콰--- 콰쾅!

콰--- 우--- 우우웅!

혈황탈이 천지를 뒤덮는 끔찍한 위세로 묵영독존을 쓸어갔다.

[후후! 왔느냐?]

츠츠츠츠츠!

사--- 사--- 사삭!

묵운 속에서 묵영독존의 웃음소리가 들렷다.

천가닥 만가닥의 묵광(墨光)이 폭출되어 혈황탈의 탈영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우우...]

[으하하하!]

콰--- 르르르릉!

콰--- 콰콰콰--- 쾅!

위--- 이이이잉!

경천동지(驚天」動地)!

천붕지열(天崩之裂)!

인간 사이의 싸움이 아닌 듯이 여겨지는 거창한 일전이었다.

혈황강기(血荒罡氣)가 백 장을 뒤덮고,

그 혈황강기를 만독묵린편의 묵독강기가 갈가리 찢으며 들어갔다.

석벽이 쩍쩍 갈라져 무너지고,

집채만한 석괴가 만독묵린편에 스치자 얼음녹듯이 녹아내렸다.

[크크큿! 죽어랏!]

우르르르--- 르르르!

쿠쿠쿠--- 쿠쿵!

[차--- 핫! 오랏!]

위--- 이이잉!

콰--- 우웅!

콰르르릉!

석실이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어느 한순간,

스--- 스스슥!

만독묵린편의 편영이 사그러 들었다.

(기회다!)

무방비 상태의 묵영독존을 바라보며 혈종은 쾌재를 불렀다.

[혈폭자천류(血瀑刺天流)!]

푸--- 하--- 악!

콰--- 자자자작!

혈종은 전력을 다해 혈황탈을 묵영독존의 가슴으로 내던졌다.

혈황탈이 태산이라도 가를 가공스런 위력으로 묵영독존을 무찔러 왔다.

그 순간이었다.

[우하하! 혈종! 너는 졌다.]

쉬--- 아아아앙!

묵영독존의 웃음소리가 석실을 뒤흔들고 축 늘어졌던 만독묵린편이 영사같이 휘둘러졌다.

파--- 카카카캉!

콰--- 자자자작!

만독묵린편을 여지없이 혈황탈을 휘감아 내던졌다.

카--- 카캉!

혈황탈을 맥없이 허공으로 던져서 석벽에 깊숙이 박혀 버렸다.

[으...]

혈황탈을 빼앗긴 햘종이 사색이 되어 비틀거렸다.

사대마병을 든 자와 안든 자...

그것은 애초에 싸움이 안된다.

[구천묵독살황류(九千墨毒薩荒流)!]

파츠츠츠츠--- 츠츳!

위--- 이이잉!

만독묵린편에서 시커먼 묵독강류(墨毒罡流)가 쏟아져 혈종을 후려쳤다.

[아... 안돼! 아--- 악!]

콰르르르르!

혈종이 엉겁결에 손을 들어 막았으니 손이 온전할 리가 없다.

혈종의 두 팔이 짓뭉그러지고 그의 가슴이 쩍 갈라져 팽개쳐졌다.

콰--- 당!

혈종을 가린 혈광이 사라지며 혈종은 모질게 넘어졌다.

그러자 나타난 얼굴.

혈종...

그는 바로 폭풍대공(暴風大公)이 아닌가?

스--- 스스---

묵영독존은 흐르듯이 폭풍대공에게로 날아들었다.

[후훗! 폭풍대공... 그대가 혈종의 화산임은 진작부터 알았다.]

묵운 속에서 묵영독존이 말했다.

스스스---

폭풍대공은 상처부위에서부터 몸이 독수로 녹아들고 있었다.

만독묵린편에 상처를 입으면 금강불괴라도 한줌 독수로 녹고 만다고 했다.

그 실례가 폭풍대공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흐흐... 묵영독존... 나를 죽였다고... 득의해 하지 말아라. 나는 진정한 혈종이 아니니...]

뜻밖에도 폭풍대공은 묵영독존을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네가 진정한 혈종이 아니라고...?]

묵영독존은 흠칫하였다.

[크크... 그렇다. 진... 정한... 혈종께서도... 지금... 이곳... 천마총 안에 계신다.]

[으음...]

묵영독존이 묵운이 흔들렸다.

(역시... 너무 쉽게 혈종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더니...)

[흐흐... 이제는... 네... 정체를... 알만... 하다... 네 녀석은... 바로... 철혈(鐵血)... 그러나... 조심... 해라... 후후... 혈종께서... 네 뒤에... 있을... 지도...]

혈종의 음성이 잦아들었다.

헌데 그 직후였다.

묵영독존은 갑자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폭풍대공 말대로 누군가 뒤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휙!

묵영독존은 고개를 홱 돌렸다.

[헉!]

묵영독존이 갑자기 휘청하며 물러섰다.

있었다!

정말로 한 명의 인물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백의를 걸친 청수란 인상의 인물인데 입가로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에는 혈황탈을 들고 매만지고 있었다.

[귀하는 누구요?]

묵영독존은 서늘해지는 가슴을 억누르며 백의노인에게 일갈을 터뜨렸다.

[허허, 노부는 저 아이가 말하던 바로 그 사람이네!]

노인은 댜수롭지 않게 말했다.

[당신이... 진정한 혈종?]

묵영독존은 자기도 모르게 전율하고 말았다.

가장 평범하다는 것, 그것은 곧 가장 비범함을 뜻하는 것이다.

백의노인에게는 전혀 비범함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청수하다는 것 외에는...

묵영독존은 그것이 꺼림직한 것이다.

[허허! 미안하네만 혈종을 위해 구천독종은 멸절되어 주어야 하겠네.]

백의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으음...]

묵영독존은 부르르 떨었다.

[그대가 누구이든... 만독묵린편에 견뎌낼 수 있다고는 믿지 못하겠다!]

위--- 이이잉!

묵영독존은 폭갈을 내지르며 만독묵린편으로 백의노인을 휩쓸어갔다.

[허허허... 제법이군!]

백의노인은 껄껄 웃으며 날아드는 만독묵린편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 익!]

위--- 이이잉!

백의노인이 무시하자 묵영독존은 전력을 다해 백의노인을 후려쳤다.

파--- 파--- 파팟!

만독묵린편은 정확히 백의노인을 후려쳤다.

그러나 백의노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헉!]

묵영독존은 막강한 반탄지기가 만독묵린편을 타고 다신의 심맥을 질타함을 느꼈다.

[크--- 윽!]

묵영독존은 가슴이 빠대지는 듯한 충격에 신음을 토하며 밀려났다.

[극... 극마존체(極魔尊體)... 당신... 우주(宇宙)... 으... 악!]

말을 하던 묵영독존은 한 손으로 눈을 감싸쥐고 나뒹굴었다.

그가 백의농니의 정체를 알아낸 순간 백의노인의 안광이 그의 심장을 박살낸 것이다.

[사... 사안파령소... 당신이 바로,...]

슈--- 아--- 아앙!

쓰러져 나뒹구는 묵영독존의 가슴으로 혈황탈이 날아들었다.

[으...]

묵영독존은 전력을 다해 만독묵린편을 쳐들어 막았다.

그러나.

파--- 가강--- 푸학!

[크--- 앙!]

혈황탈은 여지없이 묵영독존의 가슴을 쩍 빠개 놓았다.

[으...]

범인이라면 몇번 죽었을 중상이었다.

그런데도 묵영독존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런 묵영독존을 보고 어지간히 백의노인도 혀를 내둘렀다.

[심장이 산산조각 나고도 살다니... 어린 녀석이... 독성지경(毒聖之境)에 이르렀구나!]

위--- 이이이잉!

백의노인은 다시 장을 들었다.

그의 우수에서 시뻘건 혈강구(血罡求)가 형성되었다.

(으... 쓰러져선 안되는데... 저 노마(老魔)가... 살아있음을 알려야 하는데...)

묵영독존은 자꾸만 기우는 몸을 바로하며 휘청거렸다.

그와 함께... 묵영독존을 가렸던 묵운(墨雲)이 걷혔다.

그러자 나타난 얼굴.

중후한 인상에 사자(獅子)의 기개가 서린 얼굴이었다.

 

---철혈묵사(鐵血墨師) 정천학!

 

바로 그가... 묵영독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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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一 章

 

                  天戟 對 太陽天火神槍

 

 

 

[... ... 패천지존!]

혈영군은 삼지(三枝)를 벌벌 떨었다.

들어 온 사람은 능천한과 환몽천후였던 것이다.

혈영군은 공포에 떨며 비틀 비틀 물러났다.

[아아... 어서... 나 좀... 어떻게... 으으...!]

그사이에도 환밀후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욕정에 몸부림쳤다.

[...!]

혈영군과 음욕에 허우적거리는 환밀후를 번갈아 본 능천한은 이내 모든 상황을 알아 차렸다.

[혈영군! 스스로 무덤을 팠군1]

--- 이이이잉!

말을 하던 능천한의 가슴으로 검()의 형태를 한 강기가 피어올랐다.

[... 천형제왕검...!]

혈영군의 안색이 사색으로 변했다.

--- 이익!

직후 혈영군은 이를 악물고 뒤쪽의 석벽으로 부딪혀 갔다.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

그자가 날림과 동시에 능천한의 천형제왕검이 일섬낙뢰를 그었다.

--- !

[--- 에에엑!]

혈영군은 가슴이 뻥 뚫려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 !

즉사한 혈영군의 몸이 석벽에 강하게 부딪혔고,

우르르--- 르르르---!

그의 시신이 부딪힌 석벽이 쩍 갈라지며 시커먼 함정이 드러났다.

혈영군의 시신은 그대로 넘어져 그 함정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혈영군-!

혈종오패 중 가장 교활하고 사악하던 자의 최후였다.

그리고 혈영군을 죽임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아... 아흐흑... 나 죽어요... 제발... 나를 어떻게...!]

환밀후가 몸부림을 쳤다.

욕정이 해일같이 일어 그녀의 전신이 불덩이같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바닥을 헤집을 때마다 투실투실하게 기름진 유방이 요란하게 출렁거렸다.

능천한은 난색을 지었다.

[지독한 음약에 당했다. 음양교합으로 원하는 행위를 해주지 않으면 심맥이 터져 버리리라!]

능천한은 곤혹스러워졌다.

환밀후와는 단 한번 대변했었고 지금은 서로 칼을 맞댈 적수의 사이다.

그러나 지금 환밀후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으면 환밀후는 심맥이 터지고 순음지기가 말라붙어 절명할 상태다.

빨리 결정을 내려야했다.

[으음...!]

능천한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환밀후르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발갛게 달아오느 옥용이 웬일인지 사란공주와 겹쳐져 보였다.

이내 능천한은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별도리 없다. 우선 목숨을 구하고 볼 일이니...]

능천한은 환몽천후를 돌아보았다.

[환몽! 호법을 부탁하오!]

그의 말에 환몽천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몽천후가 천극을 안고 돌아서는 것을 보며 능천한은 환밀후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의 풍염한 상체는 이미 벗겨진 상태였다.

[아아아...!]

환밀후가 몸부림칠 때마다 그 우람한 유방이 마구 출렁였다.

그녀의 유방을 바라보건 능천한의 몸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사각--- 사르르---!

능천한은 환밀후의 하의에 손을 가져갔다.

요대를 푸르고, 그녀의 치마와 속옷이 한꺼번에 벗겨 내려졌다.

불룩한 아랫배와 펑퍼짐하게 벌어진 둔부와 능천한을 달아오르게 하였다.

[으음...!]

능천한은 절로 신음을 토했다.

두둑히 솟은 환밀후의 중지가 드러난 때문이다.

사르르르...!

능천한은 환밀후의 하의를 무릎 아래로 벗겨 내렸다.

그리고 환밀후가 받아드릴 자세를 취한 사이로 들어갔다.

[아아... 어서... 흐윽... 아아...!]

능천한의 육중한 체중을 느끼자 환밀후는 영사같이 능천한을 휘감아왔다.

너무도 후끈하고 기름진 동체였다.

[...!]

능천한도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는 과격하고 거침없는 기세로 환밀후를 점령했다.

[--- 흐윽!]

최초의 자극한 고통이 환미루를 전율케 하였다.

그녀는 두 눈을 하얗게 치뜨며 능천한의 등을 마구 헤집었다.

[허억... ...!]

능천한의 환밀후라는 기름지고 튼튼한 배를 젓기 시작하였다.

[아아흑... 아아아... 으음... 흑흑... 아아...!]

능천한에게 학대를 당하며 환밀후는 몸부림을 쳣다.

그러나 더 강하게 부서질 때마다 환밀후의 입에서는 비명대신 교성이 흘렀다.

아프면 아플 수록 더욱 진한 환희의 파랑이 엄숩하는 것이다.

[헉헉... 으음...!]

능천한은 맹렬히 환밀후를 휘달구어 정검으로 밀어붙여 올라갔다.

[흑흑... 싫어... 아아아... 으음...!]

환밀후는 몸부림치고 반항하면서도 능천한에게 떠밀려 정점으로 치달려 올라갔다.

... ...!

그녀가 한걸음 한걸음 절정으로 다가설 때마다 너무도 선연한 혈화(血花)가 수 놓아졌다.

[...!]

뒤엉켜 돌아가는 두 남녀를 무감정한 한 쌍의 봉목이 지켜보고 있었다.

천극을 소중하게 품에 안은 환몽천후였다.

그녀는 어떤 감흥도 서려있지를 않은 시선으로 능천한과 그의 몸아래에 있는 환밀후를 바라보았다.

영혼이 없는 여인,

그녀의 눈에는 두 사람의 행위가 어떤 의미로 비추어질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광풍노도같던 열풍도 이윽고 가라앉았다.

[...]

환밀후는 넋이 나가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녀는 자기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능천한을 꿈결인 듯이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허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분노도 환희도... 놀라움도 그녀의 뇌리에는 발을 들여 놓치를 못했다.

다만 그녀의 눈에 떠오르는 것은 능천한게 처참하게 유린당해 있던 사란공주의 모습 뿐이었다.

경로야 어찌되었든...

그녀 자신도 사란공주와 같이 된 것이다.

[미안하오...]

능천한이 깊이 탄식하며 환밀후의 몸에서 떨어졌다.

능천한은 다소 지친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리고 묵묵히 환밀후를 안아 의복을 입혀 주었다.

[...!]

환밀후는 망연한 표정으로 능천한에게 몸을 맡겼다.

능천한은 환밀후에게 옷을 입혀준 뒤에 살며시 안아주었다.

어떤 구치한 변명같은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또 할 필요도 없었다.

전후사정을 환밀후도 잘 알기 때문이다.

문득,

[!]

환밀후의 벽안에서 주루루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이렇게 허무하게 버리기 위해 삼십여년을 지켜온 순결이 아닌데...)

알 수 없는 서러움이 환밀후를 휘감았다.

[흐음...!]

능천한은 다만 환밀후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 !

환몽천후의 무심하던 봉목에 경계의 빛이 떠올랐다.

동시에,

(!)

능천한도 어떤 강한 힘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그그그--- 그긍!

--- 르르르르릉!

한쪽의 석벽이 시커멓게 그을려져 와르르 무너졌다.

그와 함께,

--- !

한 명의 타는 듯한 적의를 걸친 장한이 신창(神槍)을 비껴들고 나타났다.

[...!]

[...!]

--- 파팟!

네 줄기의 시선이 허공에서 작열하였다.

(태양신존!)

능천한의 안색이 착찹하게 변했다.

그장한은 바로 태양신존이었고,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저 태양천화신창(太陽天火神槍)이었다.

[으음...!]

태양신존의 묵직한 안면이 분노로 이지러졌다.

능천한에게 안겨 넋을 잃고 있는 환밀후,

석실의 바닥에 점점 피어있는 혈화가 모든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으음... ! 패천의 망나니... 사란을 망쳐놓고 이제는 밀후(密后)까지 능욕하다니!]

우르르르--- !

화르르르---

태양신종의 일신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극양지기가 일어났다.

그 기세는 일거에 태산을 부수어 버릴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능천한은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알았다.

[환몽...!]

능천한은 환밀후를 한쪽에 내려놓고 환몽천후에게 손을 내밀었다.

--- !

환몽천후는 흐르듯이 다가와 천극(天戟)을 능천한에게 건네 주었다.

(도리가 아니나, 부딪힐 수밖에...)

능천한은 한숨을 쉬며 천극을 쳐들었다.

--- 이이이잉!

우우우우우--- 우웅!

천극이 웅혼한 울림을 강력한 무형강기가 줄기줄기 피어올랐다.

그와 함께,

츠츠츠--- 츠츠츠!

화르르르르--- 르르!

태양천화신창이 쇳물같이 시뻘겋게 달아올랏다.

태양천화신창에서 뻗치는 극양지기는 실로 대단하였다.

[...!]

천년내공을 지닌 능천한이건만 피부가 타들어가는 듯한 뜨거움을 느껴야했다.

(대단하다. 태양천화신창의 위력은 일검으로 산더미같은 철괴를 녹인다더니...)

능천한은 땀을 흘렸다.

--- 이이잉!

천극에서 천지를 뒤덮는 듯이 거대한 무형강벽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주대하는 태양신존의 안면이 부르르 떨렸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전혀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태양신존의 이마에서도 땀이 줄줄 흘렀다.

츠츠츠츠--- 츠츠!

태양천화신창의 열기에 견디지 못한 석벽들이 줄줄 녹아내렸다.

그정도로 태양천화신창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그리고, 한순간,

[태양뢰폭(太陽雷瀑)!]

--- --- !

--- 하악! 콰자작!

태양신존이 벼락같이 외치며 신창을 쪼개어 내었다.

그러자 시뻘건 극양의 뢰전(雷電)이 능천한에게 쏘아져 왔다.

그것은 만장철벽이라도 관통할 정도로 엄청난 위세였다.

[--- ! 천극망(天極網)!]

능천한은 장포가 재로 부서짐을 느끼며 벼락치듯이 천극(天戟)을 짓쳐 내었다.

--- 아아악!

츠츠츠---!

천가닥 만가닥의 천극강기가 뻗어 태양천화신창을 막아갔다.

--- --- !

쿠르르르르--- ---

굉렬한 폭음이 터지며 석실이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우우우... 태양멸천폭(太陽滅天瀑)!]

우르르르--- --- 처음보다 두배 강한 극양지기가 쏟아져 나왔다.

[거령폭류참(巨靈瀑流斬)!]

--- --- !

콰자--- 자자자작!

고형의 강기가 기둥으로 변하여 태양천화신창의 극강지기에 맞부딪혀 갔다.

--- 우우웅!

우르르르르--- 르르!

우두두두두둑!

석실의 일각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 --- 저적!

사방의 석벽도 얼음이 깨지듯이 쩍쩍 갈라져 나갔다.

쿠르르르르--- 르르--- !

[태양천지멸(太陽天地滅)!]

우르르르--- 르르!

[거령폭류(巨靈瀑流)! 자령천존구(紫靈天尊手)!]

쿠우--- --- 우우웅!

--- 콰콰쾅!

석실전체가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으윽!]

그중에서 태양신존의 고통스런 신음이 흘렀다.

그러나,

우르르르---!

태양신존의 신음도 환밀후의 모습도 무너져 내리는 석괴도 차단되어 버렸다.

콰콰--- --- !

크르르르--- 르릉!

양절대고수의 충돌에 견디지 못한 석실전체가 굉음과 함께 무너져 버렸다.

우르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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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 章

 

                 위기의 여인

 

 

 

[엇!]

능천한은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석문으로 들어선 후 백여 장을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는 널찍한 석실에 이르렀다.

한데,

쏴--- 아아--- 아!

스스스스--- 스!

기이하게 그 석실로는 물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가 있을 텐데...)

능천한은 석문을 들어서며 주위를 살폈다.

이내 그의 시선은 천정에 박힌 여러 개의 구슬에 가 닿았다.

[피수주(避水珠)! 저것 때문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 스스슥!

이어 능천한은 환몽천후를 데리고 석실을 지났다.

석실을 지나니 또다시 긴 통로였다.

[...!]

통로로 발을 들여 놓으려던 능천한은 멈칫하였다.

그의 시선은 통로 양쪽 석벽에 튀어있는 몇 방울에 선혈에 가닿았다.

[함정이 있군. 양쪽 석벽을 제외하고 천정과 바닥에...]

능천한은 눈을 빛냈다.

만절기사(萬絶奇士)의 진전을 얻은 능천한이다.

그는 이내 통로에 설치된 기관함정의 허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툭!

능천한은 통로의 전면을 향하여 은덩이를 한 조각 던졌다.

그러자,

덜--- 컹!

파--- 파파팟!

통로의 바닥이 훌떡 뒤집히고 천정으로부터 수많은 암기가 우박 떨어지듯이 떨어졌다.

지면이 뒤집혀 허공에 몸이 뜬 상태에서 암습을 받는다면 어지간한 고수라도 당하고 말 것이다.

[흠...!]

훌렁 뒤집힌 통로바닥의 아래쪽을 보며 능천한은 검미를 찌푸렸다.

그곳은 수십 장 깊이의 함정이었다.

한데 그 함정 바닥에는 수많은 무림인들의 시신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들은 첫번째 관문조차 제대로 넘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것이다.

[휴... 자족(自足)함을 잃어 행(幸)이거늘...]

능천한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환몽, 내 발자국만 따르시오!]

이어 환몽천후에게 주의를 준 뒤 걸음을 옮겼다.

스--- 스스스슥!

통로의 길이는 백 장이 넘었다.

그러나 능천한은 몇 발자국 걷지 않아 그 통로를 벗어났다.

능천한은 자신이 들어선 곳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여러 개의 통로가 전면에 있는 널찍한 관문이었다.

[팔패의 형세다. 첫 번째 함정을 돌파한 군웅들은 제각기 이 통로로 사라졌을 것이다.]

능천한이 중얼거릴 때였다.

[으아아--- 악!]

멀리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감(坎)의 방향! 환몽! 갑시다!]

스--- 스스슥!

휘르르르--- 르르!

 

***

 

두 사람은 삽시에 일마장을 전진하였다.

[크--- 으악!]

[아--- 아아악!]

그때 전면에서 화광(火光)이 크게 일며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일어났다.

[음...!]

스--- 스스슥!

화광이 솟구치는 곳으로 날아들던 능천한은 흠칫하였다.

그곳은 널찍한 석실이었다.

한데 석실의 한쪽 벽면에서 시퍼런 불길이 치솟고,

그 불길에 휩싸인 수십 명의 군웅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고 있었다.

[명린인화(冥鱗湮火)!]

능천한은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군웅들은 태우고 있는 불길은 아주 지독한 불길이었다.

한번 몸에 불으면 전신을 태워버리고야 꺼져 버리는 것이다.

이름하여 명린인화가 그것이다.

화르르르---

후드드--- 드드둑!

스스스스...!

명린인화에 당한 군웅들은 능천한이 손을 써보기 전에 모두 재로 스러졌다.

[지독하군...]

능천한은 혀를 내둘렀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명린인화는 아무리 오래가도 오백 년 이상을 유지하지 못한다. 한데... 어떻게...]

능천한은 이글거리는 명린인화를 바라보았다.

화르르르...

점점 잦아드는 명린인화를 주시하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것은 최근에 발라진 것이다. 결국...]

능천한은 석실을 둘러보았다.

[누군가 이미 이곳에 들어와 손을 써놓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약화된 기관함정들을 보수하여 치명적인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능천한이 중얼거릴 때였다.

쿠--- 쿠--- 쿠쿵!

갑자기 멀리서 어떤 굉음이 들렸다.

무엇인가가 폭발하는 소리였다.

드드드!

그와 함께 능천한이 있는 석실까지 진동으로 뒤흔들렸다.

[누군가 기관을 건드렸다.]

능천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쩌--- 저--- 저적!

감자기 석실의 사면 벽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환몽! 이리로 오시오!]

능천한이 급히 외쳤다.

콰르르르--- 르르르!

우르르르---!

능천한이 다가온 환몽천후의 팔을 꽉 잡는 순간,

석벽이 종이짝같이 무너지며 시커먼 흙탕물이 밀려들었다.

[어느 놈이 고의로 기관장치를 부수었군!]

콰--- 콰--- 콰--- 쾅!

능천한은 노성이 굉음 속에 파묻혔다.

우--- 우--- 우우웅!

위--- 이이--- 이잉!

능천한은 광허무상대법력이 지극히 강한 호신강기로 몰려드는 격랑을 막아냈다.

그러나,

콰--- 콰--- 콰쾅!

천만근의 무게로 내쳐오는 격랑 앞에서는 능천한도 속수무책이었다.

호신강기가 꺼지지는 않았으나,

능천한은 환몽천후를 끌어안은 채 격랑에 휘말려 들어갔다.

쿠--- 쿠쿠쿠쿵!

콰르르르르---!

격랑은 일거에 수십 개의 석벽을 박살내어 버렸다.

[크--- 아아악!]

[아--- 악! 사람... 살려...!]

그와 함께 수많은 군웅들이 격랑에 휘말려 튕겨졌다.

그들 모두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었으나 세찬 격랑 앞에서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군웅들이 가랑잎같이 휘말려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능천한은 속수무책이었다.

 

우르르르---!

이윽고 격랑이 멎은 후에야 능천한은 몸을 세울 수 있었다.

(얼마나 멀리 떠밀려 왔는지 모르겠군!)

우르르르---!

위--- 이이--- 이잉!

호신강기로 흙탕물을 밀어내면서 능천한은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곳은 어두운 석실이었다.

석실은 반정도 물에 차있었는데,

수면에는 격랑에 휘말려 죽은 군웅들의 시신이 떠있었다.

[흠...!]

그 시신들을 보며 능천한은 탄식을 하였다.

스스스스--- 슥!

이어 그의 몸은 환몽천후를 안은 채 둥실 떠올랐다.

[거령폭류참!]

쿠--- 쿠쿠쿵!

능천한의 손에서 벽락치듯 강기가 일며 전면의 석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스스--- 스스슥!

능천한은 지체없이 그 구멍으로 날아들어갔다.

 

능천한이 들어선 곳은 건조한 석로(石路)였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이 먼지가 한 자씩 쌓여 있었다.

[이곳은 아직 누구도 들어와 보지 못한 곳이다.]

능천한은 환몽천후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갔다.

능천한이 백여 장을 걸어나갔을 때였다.

[흐흐... 과연 쌍극천효다운 계책이다.]

전면에서 음침한 말소리가 들렸다.

[...!]

능천한은 흠칫하며 말소리가 들린 곳으로 다가갔다.

말소리는 석벽을 격하고 들려왔다.

[크크... 결국 태양신존, 묵영독존, 패천지존 등이 이곳에 뼈를 묻게 될 것이고...]

[흐흐흐... 그렇게 되면 천하는 혈종천하(血宗天下)가 되는 것이다.]

석벽 너머에 있는 인물들의 대화를 들으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혈종문이 이번일의 주모자였군.)

능천한이 염두를 굴리는데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아직 천마의 시신이 묻힌 곳은 발견되지 않은 모양이지?]

또 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렇네, 천마총이 워낙 광활하여 천마비도(天魔秘圖)를 갖고도 팔할 밖에 탐색 못했다고 하더군!]

(천마의 유물이 아직은 혈종문의 손에 들어가지는 않은 모양이군!)

위--- 이이이잉!

능천한의 우수가 시커멓게 변하였다.

그리고,

[묵황굉벽뢰(墨荒轟霹雷)!]

쿠--- 쿠--- 쿠쿵!

콰--- 자자--- 자작!

능천한의 손에서 시커먼 묵강류가 쏟아져 석벽을 후려쳤다.

콰--- 릉!

[크--- 윽!]

[누... 누구냐! 크--- 으...]

석벽이 산산이 부서져 나가며 서쪽에서 어지러운 비명이 일었다.

스스스슥---

능천한은 무너뜨린 석벽으로 날아들어갔다.

그곳은 넓은 석실이었다.

이십여 명의 혈포인들이 그 석실에 있다가 날벼락에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느 놈이냐?]

스스슥---

휘르르르---

촉막중에도 그자들은 날아든 능천한을 쾌첩하게 에워쌌다.

[천혈사신(天血死神)들이군.]

그자들을 둘러보며 능천한이 중얼거렸다.

그자들이 구십구천혈사신에 속하는 자들임을 알아본 때문이다.

[으... 패천지존이었느냐?]

[크크... 잘 만났다.]

그제야 그자들도 능천한을 알아보고 살기를 띄웠다.

[크크... 패천지존을 우리 손으로 제거하면... 혈종께서 상을 내리실 것이다.]

위--- 이이이잉!

츠츠츠츠---

그자들의 속에서 칙칙한 혈기(血氣)가 피어올랐다.

그때였다.

스스스슥---

[크--- 아악!]

[케--- 에!]

갑자기 다섯 명의 천혈사신의 허리가 두 동강이로 끊어졌다.

휘르르르르---

뒤에 남아있던 환몽천후가 날아 나오며 천극을 쪼개낸 것이다.

[헉... 또 한 명이 있었다니...]

[막... 막아랏!]

천혈사신들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하였다.

그런 천혈사신들을 향하여 능천한은 우수(右手)를 쳐들었다.

[이제 그만 누워라.]

위--- 이이이이잉!

츠--- 파파파--- 팟!

능천한의 손에서 반투성의 검형강기(劍形罡氣)가 불쑥 튀어 나왔다.

[헉... 천형제왕검!]

[크--- 윽!]

위--- 이이이잉!

파파파팟---

일시에 장내가 찬연한 검기로 가득 찼다.

[아--- 악!]

[크--- 아악!]

그중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지고 천혈사신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스스스슥---

그와 함께 천형제왕검이 능천한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세상에 살아 있어야 선량한 사람들에게 폐만 될 인물들...]

능천한은 죽어 넘어선 천혈사신들을 내려다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살인이란 어떤 명분으로도 그다지 유쾌해질 수 없는 것이므로...

 

X X X

 

콰르르르르---

우르르--- 르릉---

석벽이 쩍 갈라졌다.

그와 함께,

또박... 또박...

아주 아름다운 벽안의 미녀가 걸어 들어왔다.

얼굴의 윤곽이 조각인 양 너무도 섬세하다.

반면 교구는 기름지기 이르데 없도록 풍염하였다.

일신에는 끈적끈적한 유혹과 본능의 내음을 흘리는 여인,

[큰일이다. 갑자기 석실이 뒤집히는 바람에 신존(神尊)과 떨어지고 말았다.]

여면인은 난색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우람한 유방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물결치듯이 움직이고,

한줌의 세류요 밑으로 투실투실한 둔부가 출렁이는 여인,

바로 환밀후(歡密后)였다.

젊은 나이에 요지(遙池)의 주인이 된 변황쌍미(邊荒雙美)중의 환밀후였다.

[무엇인가... 음모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데... 신존께서 무고하신지...]

환밀후는 근심스런 표정이 되었다.

태양신존은 그녀가 방심 속에 고히 간직해둔 정인(情人)이었다.

요지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음탕하였다.

대부분의 요지의 제자들은 십 세가 넘은 후부터는 사내를 안다고 할 정도다.

그런 중에서도 환밀후는 용케 처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 한 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사내가 아니면 처녀를 주지 않는다.

 

자존심이 강한 절세미녀,

환밀후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한 맹세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의 몸을 줄 상대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태양신존이란 주인에게 패하여 요지로 그에게 들어 바치게 되었고,

비로소 그녀는 자신을 의탁하여도 될만한 장부를 찾은 것이다.

물론 그는 태양신존이었다.

[신존은 위대하시다. 그러나 중원에도 신존만한... 아니... 어쩌면 신존보다 더 클지도 모를 영웅이 있다.]

환밀후는 언뜻 한 인물을 떠올렸다.

무너진 석실에서 그녀 자신가 해천신검제를 어린아이 다루듯이 밀어낸 청년...

[패천지존...]

그녀는 능천한을 떠올렸다.

기이하게도 단 한 번의 대면이었음애도 환밀후의 방심 깊이 능천한의 영상이 자리를 잡아 버렸다.

[나도 모르겠어. 왜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지.]

환밀후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위--- 이이잉!

한쪽의 벽이 갈라지며 한 명의 혈영인(血影人)이 들어섰다.

[혈영군!]

그자를 바라본 환밀후가 냉갈하였다.

그자는 바로 혈영군이었다.

능천한에게 한 팔을 잘려 그의 오른쪽 소매는 허전하게 덜렁거리고 있었다.

[흐흐... 환밀후! 단둘이 만나다니... 무시 못할 인연이구나.]

혈영군이 음충스럽게 말했다.

말을 하며 그자는 환밀후의 풍만한 교구를 아래 위로 쓸어 보았다.

환밀후는 그자의 그런 시선에 질색을 하고 말았다.

[혈영군! 죽고 싶어서 네스스로 찾아왔구나.]

위--- 이이이이잉---

환밀후의 교수로 뇌전같ㅇ은 강기가 일었다.

[호... 대범천밀수(大梵天密手)인가?]

혈영군이 빈정거렸다.

입으로는 빈정대고 있으나 사실 그자의 몸은 긴장으로 경직되고 있었다.

환밀후 태양신존 다음가는 변황제이고수(邊荒第二高手)다.

진정한 실력으로 혈영군따위가 상대할 수 없는 강자인 것이다.

그러나,

(흐흐... 탐나는 계집이다. 환락최음산(歡落催淫散)으로 쓰러뜨려서... 흐흐...)

혈영군의 왼팔이 스치는 것을 환밀후는 주시하지 않았다.

[누워랏!]

위--- 이이이잉!

츠츠츠--- 환밀후는 교갈과 함께 여인답지 않은 웅장한 일수를 떨쳤다.

그 순간,

스스스슥---

혈영군의 신영이 십여 개로 불어 났다.

그와 함께,

파--- 악!

허공으로 분홍빛의 분말이 확 퍼졌다.

[학!]

환밀후가 질겁했으나 촉망중인지라 그 분말을 한 모금 마셔버리고 말았다.

[음... 비겁한...]

털--- 퍽!

환밀후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갑자기 팔다리가 후들후들하고 강렬한 본능이 불끈 치솟아 오른 때문이다.

[흐흐... 환밀후, 극락을 구경시켜 주마!]

혈영군이 음탕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환밀후는 어쩌지를 몰랐다.

너무도 강렬한 본능이 점차 이성을 침식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흐흐...]

혈영군은 한 가닥 긴장을 하며 환밀후의 투실투실한 젖무덤을 쥐어갔다.

그러자,

[아아... 어서...]

환밀후는 그대로 혈영군에게 안겨 들었다.

[흐흐흐흐... 고것!]

환밀후가 완전히 음욕의 늪으로 빠져든 것을 알자 혈영군은 대담해졌다.

그는 그대로 환밀후를 쓰러뜨리며 올라탔다.

[아아... 제발... 빨리...]

환밀후는 몸부림을 쳤다.

요지의 여인으로서 실고 난 음탕함이 때를 만난 듯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사각 사각---

찌--- 지지직---

환밀후의 의복이 거칠게 벗겨져 나갔다.

우유빛의 뽀얀 피부,

투실투실한 기름진 젖무덤이 우람한 물결을 일렁이며 드러났다.

[흐흐...]

혈영군은 음욕으로 두 눈이 시뻘개져서 환밀후의 젖무덤을 터질 듯이 주물럭거렸다.

너무도 풍만한 그녀의 젖무덤은 한 손으로는 다 움켜쥘 수도 없었다.

이어 그자의 손이 환밀후의 하의로 움직였다.

한데 그가 막 환밀후의 하의를 벗기려고 할 때였다.

우르르--- 르릉---

갑자기 혈영군이 들어왔던 석벽이 쩍 갈라졌다.

[누구냐?]

흠칫하며 일어선 혈영군이 일갈하며 돌아섰다.

그러나,

[헉!]

짜증스럽게 일갈하던 혈영군의 안색이 대변하였다.

갈라진 석벽으로 들어오는 일남일녀(一男一女),

그 중의 청년은 혈영군(血影君)이 꿈에도 만나길 두려워하는 인물이었다.

 

<第五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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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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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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