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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三 章

 

           巨人의 最後

 

 

 

염천(炎天),

사계(四季)의 변화는 어김없이 돌고 돌아 폭염지절(暴炎之節)을 맞이한다.

천중산(天中山),

폭양(暴陽)은 마치 천중산 전체를 태워 버릴 듯 했다.

하지만 폭염조차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은밀한 곳이 있었다.

구천지옥인 양 까마득한 절곡,

이곳은 지면으로부터 무려 이백 장(二百丈)이나 낮은 지대였다.

한 줄기의 햇빛도 스며들지 못해 주위는 너무도 습하고 음침했다.

몇 백 년을 자랐는지 이끼가 풀처럼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것은 좌우로 시커먼 흑요석의 절벽이 가로막힌 때문이리라.

한데 이 곳에 언제부터인지 한 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이검엽이었다.

그는 상의를 벗고 하의만 걸치고 있었다.

얼굴은 좀 더 초탈하게 보일 뿐 이전과 별반 달라진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가까운 지인들도 몰라보리만치 건장해져 있었다.

딱 벌어진 어깨,

알맞게 붙은 근육,

미끈하게 쭉 빠진 허리 등,

한 마디로 보기 좋게 잘 발달한 상체였다.

이로 인해 그의 일신은 영웅의 기개를 발산하고 있었다.

한데 괴이한 일이 발생했다.

스스슥!

이검엽의 주위로 새파란 기류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바로 태청대라신공의 지고무상한 정화였다.

이어 그것은 삽시에 엄청난 선풍을 몰아쳤다.

휘르르!

그것은 일순 그를 휘감는가 싶더니 금세 삼십 장 방원으로 확산되었다.

우르르------- 릉!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사위는 갑자기 어두컴컴해졌다.

휘몰아치는 선풍에 사석들이 제멋대로 흩날렸다.

그 순간,

“이------- 얍!”

한 줄기 낭랑한 기합성이 울렸다.

동시에,

쿠------- 앙!

콰르르-------!

실로 폭풍노도와 같은 강풍이 폭사되었다.

펑!

요란한 굉음이 터지는 찰나,

콰르릉!

무쇠같이 단단한 흑요석 절벽의 일각이 어이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우수수...

하나 그때 재차 기합성이 터졌다.

“하------- 앗! 태청강기(太靑罡氣)!”

그 순간 선풍 내에서 새파란 유형의 강기가 폭출되었다.

쩌------ 엉!

기이한 음향과 함께 그것은 다시 절벽을 짓쳐갔다.

파파팟!

절벽면은 한 차례 새파란 불꽃을 튕겨 내었다.

다음 순간,

쩌------- 억!

절벽면은 무려 석 자 깊이로 삼 장이나 갈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도저히 상상을 초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흑요석으로 된 절벽이 입을 쩍 벌린 것이었다.

그 정도라면 능히 만년한철이라도 부술만한 위력이 아닌가?

이윽고,

스스스...!

주위를 휩싸던 선풍도, 기류도 모두 가라앉았다.

그리고 한 개의 신형이 드러났다.

이검엽, 바로 그였다.

그는 다음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목검(木劍),

자신이 차고 있던 목검을 빼어든 것이었다.

“차------- 앗!”

그는 목검을 휘둘렀다.

위------ 잉!

천변만화(天變萬化)!

일순 목검은 수천수만의 검영(劍影)을 일으켜 천지를 뒤덮었다.

촤르르!

쐐------- 액!

태풍이 몰아치듯,

노도가 넘실거리듯,

연이은 검기와 검영이 천지변색의 조화를 일으켯다.

그 순간,

“극(極)!”

위------- 잉!

목검이 그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원을 그렸다.

다음 순간,

우르릉!

콰------- 쾅!

방원 오 장 내의 모든 물체는 그대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검기(劍氣)의 륜(輪)!

바로 그것이 빚어낸 엄청난 결과였다.

이검엽은 목검으로 원을 긋자,

그 원은 그대로 방원 오장의 거대한 검기(劍氣)의 륜(輪)으로 돌변한 것이었다.

이검엽은 손을 멈추며 나직이 뇌었다.

“파천패혈삼십육파! 이젠 더 이상 깨우칠 것이 없다.”

그렇다. 지금 그가 펼쳐낸 것이 바로 파천패혈삼십육파의 최후초식이었다.

 

<극(極)>

 

그렇다면 지금의 이검엽은 역시 혈검파천황의 무공을 완전히 연성해낸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의외로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오직 무공 익히기에만 몰두한 것인가?

뒤이어 그는 목검을 쳐들어 또 한번 전면을 내쳤다.

“파천무적강살(破天無敵罡煞)!”

쩌엉!

순간 휘황찬란한 청색 검강(劍罡)이 사위를 밝혔다.

다음 순간,

쾅! 쿠르릉!

절벽은 흑요석 덩어리를 마구 토해내고 말았다.

목검이 끝이 향햇던 부분,

바로 그곳에는 무려 방원 삼 장에 깊이 일 장은 됨직한 구멍이 뻥 뚫린 것이다.

낙뢰(落雷)!

그것은 마치 낙뢰가 짓쳐간 자국과도 같았다.

이를 보자 이검엽은 스스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연 파천무적강살이다! 호신강기 파해전문의 검공(劍功)! 천하의 어떤 호신강기가 이에 견디어 내겠는가?”

그때였다.

끼루룩!

절애의 상공을 선회하는 한 마리 독수리가 그의 눈에 띄었다.

“가랏!”

이검엽은 들고 있던 목검을 허공으로 힘차게 던져냈다.

슈------- 웅!

그 순간 목검은 뇌전으로 돌변했다.

번------- 쩍!

한 무더기 검광이 하늘을 뒤덮었다.

푸------ 학!

그것으로 독수리는 절단이 나고야 말았다.

까------ 악!

찢어지는 괴성(怪聲)!

피(血),

그리고 독수리의 날개짓이 허공에 어지러이 흩날렷다.

독수리는 정확히 양단된 채 급강하하고 있었다.

위------- 잉!

목검은 검명(劍鳴)을 발하며 그의 손에 회수되었다.

툭!

양단된 독수리의 시신이 곤두박질한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

“역시... 어심극검(御心克心)이다.”

이검엽은 신음하듯 부르짖었다.

이어 그는 목검을 바로 잡아들며 엄숙한 자세를 취했다.

그는 품에 안듯 목검을 왼팔에 비스듬히 기대어 쥐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천뢰벽력섬(天雷霹靂閃)!”

우렁찬 일갈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쿠------ 앙!

한 무더기 검기가 이십 장 밖의 거대한 바위를 비스듬히 스쳤다.

흔들-------!

그르르... 릉...!

이검엽은 그때 이미 검을 거두고 난 후였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무려 만 근(萬斤)이 넘어뵈는 바위가 마치 무우 잘리듯 싹둑 잘려져 있지 않은가?

더구나 그 잘려진 면은 유리같이 반질반질 했다.

쾌검(快劍)!

실로 믿기 어려운 쾌검이었다.

사실 일반적으로 쾌(快)하면 중(重)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검엽의 검세만은 달랐다.

쾌하면서도 족히 만 근이 넘는 힘(力)이 실려있는 것이었다.

스스스...!

이검엽과 목검은 혼연일치가 되어 섬칫한 예기를 무럭무럭 발산시키고 있었다.

뒤이어,

“건곤멸절파(乾坤滅絶破)!”

위------- 잉!

츠츠츳!

이검엽의 일갈과 함께 가공할 검기가 방원 이십여 장을 뒤덮었다.

푸스스...!

경천동지, 그 자체인가?

검기에 스치는 모든 물체가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검엽은 멈추지 않고 재차 대갈했다.

“천폭혈살뢰(天暴血殺雷)!”

위------ 잉!

그 순간 이검엽은 보이지 않았다.

목검을 중심으로 시뻘건 검기에 휘감긴 것이었다.

“차----- 앗!”

슈------- 웅!

시뻘건 검기는 이내 검강이 덩어리가 되어 목검의 끝으로 뭉쳤다.

동시에,

쉬------ 잇!

번쩍-------!

한 줄기 뇌전이 무섭게 허공을 갈랐다.

다음 순간,

쾅! 콰릉!

오십 장 밖의 바위가 폭발하듯 부서져 날아갔다.

실로 가공할 위력의 검강이었다.

“음...”

이검엽은 나직하게 신음하며 또 다른 동작을 취해갔다.

한데 문득 그의 얼굴에는 기이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어느새------

츠츠츠...!

양손으로 목검을 쥔 그는 무형검기에 휩싸이고 있었다.

“멸겁패천류(滅劫覇天流)!”

위------ 잉!

일순 절곡 전체가 검기로 뒤덮였다.

그것은 그대로 절곡을 초토화시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스스스...!

이내 가공할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것이 아닌가?

“으음!”

이검엽은 짙은 검미를 모으며 신음을 토해냈다.

“역시 안되는구나...!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천황사대검종 중 제삼(第三)검종까지 뿐이었던가?”

그는 안타까운 듯 탄식을 금치 못했다.

 

-천황사대검종(天荒四大劍宗).

 

이검엽은 물론 그 오의를 모두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고도의 실전경험을 토대로 한 절정의 검학(劍學)이었다.

그러므로 실전경험이 없는 그가 천황사대검종을 모두 펼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다른 것은 모르되, 집대성(集大成)인 최후초식 멸겁패천류(滅겁覇天流)만은 펼치지 못한 것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스스스...!

절벽 한쪽의 석동으로부터 한 명의 괴인이 소리없이 나섰다.

검황종이었다.

그는 이검엽의 무공 시전을 모두 지켜 보았다.

그리고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는 터였다.

(저 녀석... 사람을 너무 놀라게 하는군. 천황사대검종만도 적게 잡아 반년은 걸려애 익히는 것을... 겨우 석달만에 그것을 비롯한 모든 것을 마쳐 내었구나!)

문득 그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흡혈옥령망을 쓰다듬었다.

(이제... 저 녀석을 강호로 내보낼 때가 왔구나...!)

일순 무엇인가 결연한 비치 그의 시선을 스쳤다.

(강해야만 한다. 무림의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저 녀석이 그 험한 세파와 싸워 더욱 강해져야만...)

그는 협혈옥령망을 의미깊은 시선으로 응시했다.

(흡혈옥령망의 피는 공력을 복돋아 주고 혜지를 맑게 해준다...! 저 녀석이 지금까지 융해한 천지곤룡의 내단은 겨우 이갑자(二甲子) 공격이다.)

그의 눈은 망연히 허공을 응시했다.

(일반 고수들을 상대하는 데야 모자람이 없다. 하나 절정의 고수들을 상대하기엔 많은 부족함이 있다...)

그는 발길을 돌려 천천히 동굴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나직이 이검엽을 불렀다.

“엽아(葉兒). 이리 들어오너라.”

이검엽은 그 목소리에 언뜻 정신이 들었다.

“예 노야.”

대답을 한 이검엽은 서둘러 동굴로 달려갔다.

 

동굴의 끝부분.

그곳은 이검엽이 검황종에게 구원을 받고 깨어난 곳이었다.

즉. 두 사람이 처음 상면한 곳이었다.

검황종은 그곳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어르신.”

이검엽은 밝은 표정으로 그와 마주했다.

한데 그는 늘상 검황종의 가슴에 박혀 있던 흡혈옥령망이 없음을 알았다.

처음에는 기이했으나 곧,

(어딘가 다른 짐승의 피를 빨아 먹으러 나갔겠지.)

하며 그냥 지나치려 했다.

하나 육감이란 무서운 것인가?

이검엽은 웬지 모르게 불안한 심정이 되고야 말았다.

그때, 검황종이 미소하여 입을 열었다.

“네 진전이 무척이나 빠르더구나.”

“부끄럽습니다.”

이검엽은 슬쩍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검황종과 이검엽.

늘 그렇듯 그들의 대화는 예사로웠다.

검황종은 다시 말했다.

“노부는 네가 천황사대검종까지 모두 익혀 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돌연 그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한데 네녀석은 정말 놀랍게도 모두 연성해 내고 말았구나.”

“모두가 어르신의 가르치심 덕분입니다.”

“허헛! 노부의 얼굴에 금칠을 할 생각은 말아라. 이 모두 너의 뛰어난 자질 덕분이다.”

이어 그는 짐짓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래, 마지막 멸겁패천류까지 시전이 가능 하더냐?”

그 말에 이검엽은 다시금 얼굴이 붉어졌다.

“실은... 그 중의 현오함은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되나 막상 펼치려면 되지를 않습니다.”

검황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다. 하나 걱정 마라. 몇 차례 강적들과 부딪히다 보면 자연히 터득하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치자 검황종은 묵묵히 이검엽을 주시했다.

얼핏 그의 눈에는 따뜻함이 어렸다.

하지마나 곧 그는 무심한 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마지막 무공을 전수하겠다.”

“예...!”

이검엽은 바짝 긴장하여 검황종을 주시했다.

“어검비행술(馭劍飛行術)...! 바로 이 절곡을 빠져나갈 무공이다.”

검황종은 이어 난해한 구결들을 줄줄이 쏟아내었다.

 

-어검비행술(馭劍飛行術).

 

이는 절세의 경공술(輕功術)이다.

문자 그대로 검기(劍氣)를 빌어 허공으로 나는 절묘한 신법이었다.

이검엽은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그자리에서 구결들을 외우려 애썼다.

잠시 후------!

검황종이 나직이 물었다.

“모두 외웠느냐?”

“예 노야.”

이검엽은 공손히 대답했다.

“그럼 이것을 단숨에 마셔라.”

검황종은 돌로 깎은 큼직한 사발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검붉은 액체가 가득 들어 있었다.

“...?”

이검엽은 의아했으나 주저없이 그것을 즉각 받아 마셨다.

비릿하고 다소 역겹기까지 했다.

(피를 마시는 기분이군.)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발을 입에서 떼었다.

한데, 그때였다.

“윽!”

돌연 이검엽은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그는 전신의 경맥에서 엄청난 폭발이 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다급히 부르짖었다.

“어... 어르신 이것은 혹시...”

검황종은 그의 말을 막고 대뜸 불호령을 내렸다.

“이놈! 어서 운공하여 공력으로 다스리지 않고 무얼 하느냐?”

이검엽은 이것저것 생각할 겨룰없이 즉시 운공에 들어갔다.

스스스...!

그의 전신에서 새파란 강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헉!)

헌데 그 직후 이검엽은 기겁했다.

하나의 손이 자신의 백회혈(百會穴)에 닿음을 느낀 것이다.

쿠쿠쿠!

이어 그 손으로부터 장강대하와도 같은 엄청난 공력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공력은 이내 이검병 본신의 진기와 뒤섞이기 시작했다.

본신진기와 용해되지 않은 잠력. 그리고 외부에서 흘러드는 강력한 공력...

서로 다른 세 가지 기운은 서로 좌충우돌하며 이검엽의 심맥을 터려버릴 듯 팽창시켰다.

몸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이 이검엽을 엄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 가지 기운은 합쳐져 강대하고도 도도한 흐름이 되었다.

그리던 어느 순간,

꽈------- 꽝!

“크윽!”

머리 속에서 대폭발이 이는 것을 느끼며 그는 혼절하고 말았다.

이는 무슨 현상인가?

무림인이라면 꿈에서라도 숙원인 경지!

바로 생사현관이 타통(打通)함이 아닌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검엽은 눈을 번쩍 떴다.

직후 그는 스스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일신이 마치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체내의 힘(力)의 충만함을.

그러나 그는 곧 검황종을 의식하고 주위를 살폈다.

그 직후,

“헛!”

이검엽은 대경실색했다.

검황종.

그는 이미 이승을 하직하고 난 후였다.

편안한 미소를 띄운 채 자는 듯 죽어 있는 것이었다.

“노... 노야!”

검황종이 숨을 거둔 것을 확인한 이검엽은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검황종은 자신의 최후의 한방울 공력까지 이검엽에게 불어넣어주고 죽은 것이었다.

또 한쪽에는 껍질만 남은 흡혈옥령망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검염이 마셨던 검붉은 액체는 바로 흡혈옥령망의 피(血)였던 것이다.

“이... 이럴 수는 없습니다 노야!”.

이검엽은 오열하며 온몸을 떨었다.

“이.. 이건...”

그러던 어느 순간 이검엽의 눈이 부릅떠졌다.

검황종의 시신 옆의 바닥에 피로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 녀석아... 울지 말아라... 노부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어야할 몸이었다...>

 

그것은 검황종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쓴 일종의 유언이었다.

 

<네 녀석은 정말로 손자사위를 삼고 싶은 녀석이었다. 강호에 나가면 매검지(梅劍芝)라는 아이를 찾아 보아라. 그 녀석은 양 젖가슴 사이에... 검(劍)모양의 흉터가 있다.>

 

글씨는 점점 흔들려 서체가 불분명해지고 있었다.

 

<만일...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네 녀석의... 첩(妾)으로 주... 마... 허허... 잘 가... 거라... 짧은 기간이었... 으나... 네놈같이... 뛰... 어난... 놈을... 만날 수... 있어... 기뻤...>

 

이검엽은 통곡을 할 것만 같았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검황종이 호쾌한 반면 정(情)이 깊은 인물이라는 것을.

단지 그릇이 너무 커 자잘한 위인이 아닐 뿐이지 않았던가?

검황종은 한맺힌 생(生)을 이렇게 마친 것이었다.

이검엽은 눈물어린 시선으로 검황종의 시신을 응시했다.

“어르신께서 비록 사제지간을 강요하지는 않으셨으나 소생은 어르신을 평생의 스승으로 섬기겠습니다.”

이윽고 그는 경건히 검황종의 시신에 구배(九拜)를 올렸다.

배사지례(拜師之禮).

그것은 실로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배사지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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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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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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