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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二 章

 

           바위를 잘 보아라.

 

 

 

은은한 퉁소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곳,

태산의 정기가 한곳에 뭉쳐졌다는 소음곡이다.

소음곡 뒤쪽의 절벽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밑,

문성무존의 최고 어른인 황숭환이 뒷짐을 지고 배회하고 있다.

한쪽에는 지금 문성무존의 안살림을 맡아하고 있는 황창설의 처 주혜린이 황청청을 데리고 서있고‥‥‥

황숭환이 물었다.

[지금까지 몰려온 자가 몇이라고?]

주혜린이 대답했다.

[호수 안에 들어온 자들 만도 이천 명 정도입니다.]

[음‥‥‥발디딜 곳이 별로 없겠군.]

[지금 고조부님을 위시한 식구들이 가차없는 살수를 펼쳐 그들을 막고있습니다만‥‥‥흘러내린 피로 이미 호수가 붉게 물들었다 합니다.]

황숭환은 하늘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야. 피할 수 없는‥‥‥]

[할아버님!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살죠?]

황청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숭환은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스다듬으며 말했다.

[너는 아무 걱정할 것없다. 네 어미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말아라.]

[네!]

황숭환은 주혜린을 불렀다.

[얘야, 이리와서 앉도록 해라.]

그는 곁에 있는 바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우리 문성무존이 대를 이어가고 못가고는 오직 네 손에 달렸다.]

황숭환의 말에 주혜린은 흠칫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너와 창설, 그리고 너희들의 세 아이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죽게될 것이다.]

주혜린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문성무존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황숭환이 앞일을 내다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가 그렇다고 하면 필경은 그런 것이다.

[오늘로서 우리 문성무존의 소음곡에서의 생활은 끝날 것이다. 너와 창설이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서 문성무존을 이어가야 한다.]

[…………]

[오늘 적어도 일만 명 이상이 소음곡에서 죽어갈 것이다. 그 중에는 무공이 강한 자도 있고 약한 자도 있다.]

[…………]

황숭환은 황청청의 손을 꼭 잡은 후에 그녀에게 자신이 앉은 곳으로 부터 다섯걸음 나아가서 원을 그리게 시켰다.

그리고 주혜린에게 말했다.

[청청이가 그린 원을 잘봐둬라. 이곳에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원안에 있는 것뿐이다. 저녁무렵, 갑자기 소음곡에서 소음(簫音)이 끊어지면 어디에 있던간에 무조건 이곳으로 달려와야 한다. 반드시 이곳이어야 한다. 잊지 말아라. 소음이 끊어지면‥‥‥]

[명심하겠습니다.]

[창설이와 군성, 군우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해라. 다른 식구들에겐 알릴 필요가 없다.]

황숭환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너는 총명하니까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애야. 하늘은 사람의 피를 좋아한단다. 그럼 우리도 가보자구나.]

황숭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황청청을 사랑스럽게 품에 안아들고 문성무존의 입구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주혜린은 황숭환이 앉았던 바위를 거듭 눈여겨 보았다.

그것은 평소 황숭환이 즐겨 앉던 곳이기도 했다.

그녀는 주위의 원을 익힌 다음에 지워버리고 황숭환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황숭환이 말한 하늘은 사람의 피를 좋아한다는 말이 맴돌고 있었다.

(그래‥‥‥우리 가족은 인간세상에 산 것이 아니었어. 너무나 오랜 세월을 피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았어. 하늘이 시기할 만도 해‥‥‥)

 

***

 

문성무존의 앞,

백발이 성성한 신선같은 노인들과 중년인들이 장검을 들고 길게 장사진(長蛇陳)을 늘어서있고,

그들의 맞은 편에는 각양각색의 무림인들이 병기를 번쩍이며 대치하고 있는데,

무림인들의 앞에는 시체가 마치 방죽처럼 쌓여있었다.

약 이천여명의 무림인들이 호수를 건너와 입추의 여지도 없이 빽빽히 서있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섣불리 시체의 방죽을 넘어오려 하지 않았다.

문성무존의 문이 열리고 황숭환이 황청청을 안은채 밖으로 나왔다.

황청청이 무수한 시체들과 피를 보자 황숭환의 가슴을 얼굴을 묻고 보려하지 않았다.

황숭환이 그녀의 등을 다독거렸다.

장사진의 가운데 서있던 노인, 황필민이 허리를 굽히며 그를 맞았다.

바로 그때,

호수 쪽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목숨이 아까우면 비켜라!

----아악! 크악!

 

비명소리가 어우러지더니 무림인들 가운데로 길이 뚫리며 이십여 명의 사요(邪妖)한 모습을 한 인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몸에서는 요상스런 기운이 일고 있었다.

그들은 걸리적 거리는 인물들은 모조리 베어버리며 시체의 방죽앞에 도착했다.

그들 중에 붉은 옷을 입은 삼십여세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시체를 밟고 올라서며 깔깔 웃었다.

[호호호호‥‥‥우리는 청해 신선동의 사람들이다. 영감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 순순히 길을 비켜주기바란다.]

청해 신선동‥‥‥

그러한 문파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검술에 요상스런 술법을 섞어서 사용하는 인물들고 한마디로 사파에서도 사파로 치우친 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황필민이 황창설에게 물었다.

[신선동이 뭐하는 데냐?]

[보잘 것없는 검술에 조잡스런 사술(邪術)을 섞어 사용하는, 눈여겨 볼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곳입니다. 우두머리는 스스로 구천미랑(九泉美娘)이라고 하는 여자인데 아마 저 여자 일듯 싶습니다.]

황창설은 무림에 나갈 때마다 외부의 기업에서 모아둔 정보를 통해 그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구천미랑은 그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으나,

방금 전과는 달리 내심 두려움이 일고 있었다.

상대는 자신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은가?

황필민이 구천미랑을 보며 말했다.

[이제보니 쓸모없는 물건이었군.]

구천미랑은 앙칼지게 소리쳤다.

[공격해라!]

그녀의 뒤에있던 이십여명의 인물들이 검을 번쩍이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한데,

바로 그순간,

장사진을 치고 있던 문성무존의 식구들 중의 일부가 검을 휘둘렀고,

번쩍!

툭! 털썩! 털썩!

비명도 없이 날아올랐던 자들이 시체들의 방죽위에 떨어지면서 방죽을 높혔다.

구천미랑도 이미 그녀가 밟고 섰던 시체위에 포개져 있었다.

시체들의 방죽은 무림인들이 더 이상 다가설 수 없는 최후의 선이었던 것이다.

이런 정도가 되니까 이천여 명이나 되는 무림인들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서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미 문성무존은 쑥밭이 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문성무존의 가공할 무공을 본 무림인들의 탐욕은 더욱 커지고 있었으니‥‥‥

신선동의 요사한 무리들이 죽은지 채 일각도 되지 않았을 때,

호수 쪽에서 다시 소란이 일었다.

 

-----취옥성의 삼절일천군단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뒤이어 살벌한 음성이 들렸다.

 

-----이곳에 있는 자들을 모두 죽여라!

 

삼절일천군단은 말을 타고 작은 호수를 헤엄쳐 건너오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자들이 닥치는 대로 살인하기 시작했다.

 

----으악! 악!

----도망쳐라! 이들은 우리를 몰살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두두두두-----!

말발굽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서 땅에는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비명이 끝없이 터져 나왔다.

으악!악!

번쩍! 우웅!

삼절일천군단은 불과 삼각이 되지 않아서 원래 그곳에 있던 이천여 명의 무림인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몰살시켜버렸다.

단주 염녹균이 말을 몰아 시체들의 방죽위에 우뚝서며 외쳤다.

[본 취옥성의 삼절일천군단은 이곳 소음곡을 접수한다!]

황필민이 황창설에게 말했다.

[이 자들은 그래도 좀 낫군.]

[진법으로 싸우는데 특히 능한 자들입니다.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황창설은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문성무존은 개인들의 무공은 발전시켰지만 집단 간의 싸움에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에게 삼절일천군단은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 있다.

황필민이 차갑게 말했다.

[그럼 진을 펼칠 틈을 주지 말아야지.]

순간,

그는 말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절벽 위에서 부터 꽃처럼 날아 내리는 인영들이 있었다.

슈우우우------!

[드디어 강한 놈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모양이군.]

황필민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날아 내리는 백여 명의 인물들 중 하나가 세찬 기세로 떨어져 내려왔다.

황필민이 손을 들어 빛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군성인가?]

[아닙니다. 군우입니다.]

떨어져 내린 인물은 황군우였다.

그는 내려서자 마자 무릎을 꿇고 황숭환에게 절했다.

황창설이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들은?]

[아버님, 제가 거느린 사람들입니다.]

[그래? 그럼 이쪽으로 내리게 해라.]

황창설은 반가워하며 말했다.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이 부하들을 데리고 위급할 때 찾아왔으니 그가 기뻐지 않을리가 없다.

싱글벙글하는 그를 보며 황필민이 말했다.

[너보다 낫다.]

 

황군우는 현현궁의 용봉들이 날아 내리자 마자 명령을 내렸다.

[경천위지백인진을 펼쳐 적들을 섬멸하라!]

휘휘휙!

구십팔 명의 용봉들과 전연옥이 삼절일천군단의 사이로 날아들어가고,

황군우 자신도 그들 중에 합류했다.

이어서,

우르렁! 쿵쾅!

[크아아악!]

삼절일천군단과의 경천동지할 대결전이 벌어졌다.

숫적으로는 황군우측이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나,

그들은 개개인이 모두 우수한 고수들일 뿐 아니라,

경천위지백인진이란 절진을 펼쳐서 일사불란 하게 움직이는데 비해,

삼절일천군단은 발대기도 비좁은 공간에 있으니 그들의 특기인 혈검천륙살진을 펼칠래야 펼쳐볼 수도 없었다.

말과 사람의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사람들은 시체를 밟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천여 명의 무림인을 몰살시킨 똑같은 그자리에서,

삼절일천군단은 똑같은 운명을 걷고있었다.

그들은 좁은 소음곡으로 들어온 자체가 실수였던 것이다.

전연옥이 휘두른 낙일검에 삼절일천군단의 단주인 염녹균은 일찌감치 종씨인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버렸고,

넓은 곳으로 뛰쳐나가 싸우려고 시체의 방죽을 넘었던 자들은 문성무존의 징계를 받고 그자리에서 시체로 변했었다.

아름답던 소음곡은 이제 오직 혈혈혈(血血血)‥‥‥

피와 죽음이 가득하고,

늘 푸르던 작은 호수는 붉게 변한 채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현현궁의 용봉들의 피해도 상당했다.

그들 중의 사할이 삼절일천군단과 함께 죽어갔다.

살아남은 그들은 황필민의 배려에 의해 문성무존에서 휴식을 취했다.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혈전이었다.

황군우는 들어가지 않고 전연옥과 함께 장사진에 합류하려 했다.

그때,

[작은 오빠! 이리와요. 어머니께서 기다리셔요.]

황숭환의 눈짓을 받은 황청청이 그와 전연옥을 데리고 주혜린이 있는 곳으로 갔다.

 

문성무존의 여인들은 모두 문성무존의 요소요소에서 경계하고 있었다.

주혜린은 전연옥을 데리고온 황군우를 반갑게 맞았다.

[이 아름다운 아가씨는?]

황군우는 겸면쩍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었고,

전연옥이 절하며 말했다.

[어머님을 뵙습니다. 전연옥입니다.]

[우리 군우에게 과분한 아가씨구나.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우리 집안에 관한 것들을 들려주마.]

[예.]

전연옥이 절하며 물러섰다.

주혜린은 황군우를 응시하며 위엄있는 음성으로 나직히 말했다.

[이것은 제일 위 조부님 말씀이시니 절대로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황군우는 제일 위 조부님의 말이라는 소리에 바짝 경각심을 가졌다.

[소자 명심하겠습니다.]

[당신께서 늘 앉으시던 바위를 기억하느냐?]

[폭포수 있는 데 말씀이십니까?]

[그래, 바로 그곳이다. 저녁 때가 되면 소음곡에서 소음이 끊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는 만사를 젓혀 두고 그곳으로 달려와야 한다. 이것은 절대로 잊어선 안된다. 어떤 경우에도 소음이 들리는지 아닌지 신경쓰고 있어야 한다.]

 

× × ×

 

휘이이-------

휘이이-------

문성무존의 장사진 앞에는 시간이 갈 수록 시체가 높이 쌓였다.

벌써 몇 차례나,

시체가 가득한 곳을 메웠던 무림인들이 죽어갔는지 모른다.

문성무존의 가족들에 의해서도 죽고,

자기들 끼리도 죽고죽였다.

평평했던 곳은 말 그대로 시체가 쌓여서 언득을 이루고,

피는 흘러서 내를 이루었다.

시간은 오후도 반이 지나버린 때다.

더 이상 소음곡안으로 들어오는 무림인들은 없을 듯했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곧,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절정의 고수들이 출현하리라는 것을‥‥‥

돌연,

[크하하하하‥‥‥]

가공할 내공이 깃든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오며 한 인물이 푸르스름한 기운에 휩싸인 채 소음곡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푸른 머리카락을 한 그는 북혈마였다.

그는 시산혈해에 우뚝 내려서서 형형한 눈초리로 장사진을 노려보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본좌에게 저항하지 마라. 순순히 길을 비켜라!]

그는 임보산을 만난 후에 자신의 무공에 열등감을 느꼈던 것인데,

소음곡에 무수한 비급과 영약이 있다는 말을 듣고 총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황필민이 황창설에게 물었다.

[저 미치광이는 대체 누구냐?]

[소손은 모르는 자입니다.]

그때 전연옥과 함께 서있던 황군우가 말햇다.

[북혈마라는 자로 저희가 섬멸시킨 삼절일천군단의 주인입니다.]

[무공은 어떻냐?]

[소손에 비해 나은 것이 없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때,

허공에서 다시 한 명의 인물이 날아 내렸다.

얼핏 보기에도 그자의 무공은 북혈마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구름을 탄듯이 천천히 내려온 그는 남궁파였다.

고수는 하늘에서 내려온다?

다시 기형장검을 둘러맨 위지장천이 내려왔고,

그의 뒤를 전신이 마기로 뒤덮힌 중년인이 내려왔다.

바로 마왕 하후승이었다.

그리고, 도신 범강이 뚝 떨어지듯 소음곡에 내려섰다.

황숭환의 눈이 남궁파와 하후승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황필민은 이제 말하지 않았다.

눈앞에는 진정한 강적이 도달했고,

지금부터는 모든 것을 그의 아버지이자 문성무존의 최고 어른인 황숭환이 주도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온 자들과,

원래부터 있었던 자들은 한동안 말없이 대치하기만 하고있었다.

황숭환이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 아들들아 손자들아! 이제 너희들이 죽어야 할때가 도래했구나. 검을 높이 들어 적을 맞도록 해라.]

바야흐로‥‥‥

소음곡의 운명을 판가름할 대 혈전의 서막이 올랐다.

지금 나타난 고수들은 먼저 죽어 시산혈해를 이루었던 그자들 모두를 합한 것 만큼이나 강한 자들‥‥‥

진정한 위기는 지금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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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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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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