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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修羅天魔洞府奇緣

 

 

 

신기황은 만년에 감회와 격동의 빛을 지으며 말했다.

그 안에 고금제일음공(古今第一音功)이 적혀있다!”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하나, 그는 새로운 무공을 대할 때마다 새로운 흥분과 기대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접하고자 하는 그의 왕성한 의욕 때문이었다.

신기황은 군무현의 뛰어난 오성과 총명을 믿고 있었다.

노부도 음공(音功)에는 별반 너보다 나은 점이 없으니 천황음경(天皇音經)은 제 스스로 터득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군무현은 천황음경을 내려다보며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문득, 신기황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황음경에는 천음황의 한()이 실려있다. 천음일맥(天音一脈)을 잇는 너는 선인(先人)의 심한(心恨)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엄숙한 어조로 당부했다.

군무현은 그런 신기황의 내심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각골명심 하겠습니다!”

그는 굳은 결의의 음성으로 대답했다.

신기황의 노안이 음울한 빛으로 젖어들며 미미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는 볼 수 있었다.

나가 보아라!”

그의 음성 또한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군무현은 몸을 일으키며 내심 중얼거렸다.

(천음황 선배님을 생각하시는 것이리라...!)

이어, 그는 신기황을 향해 공손히 일배한 후 몸을 돌렸다.

물러가겠습니다!”

“...!”

신기황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눈길을 다시 벽쪽으로 돌렸다. 그런 그의 모습이 부쩍 늙어 보였다.

 

X X X

 

삘릴리 삘리... 부드러운 소성이 절곡(絶谷)을 가득 메우며 흐른다.

맑고 흥겨운 음률, 그것은 마치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분지를 어루만졌다.

온통 화려한 기화이초가 만발한 방대한 분지, 그 중앙의 평평한 바위 위, 한 명의 백의청년이 단좌하고 있었다.

조각같이 수려한 용모의 미청년. 바로 군무현이었다.

그는 두 누늘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술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하나의 목적(木笛)이 가볍게 물려져 있었다.

삘리리... 삘리... 그 목적(木笛)에서는 심신을 온유롭게 만드는 부드러운 음률이 흘러나왔다.

! 이 순간 천지는 온통 신비의 조화지경으로 화한다.

천지동화(天地同和)!

만물(萬物)이 피리소리에 끌려 하나로 융합된다.

상극(相極)과 상생(相生)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삼라만상(森羅萬象).

하나, 이 순간만은 상극(相極)이 없다. 오직 상생(相生)만이 존재할 뿐이다. 상극의 묘리는 흔적없는 티끌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주위는 평화롭고 피리소리는 더없이 흥겹고 부드럽다. 문득, 분지를 울려퍼지던 부드러운 소성이 뚝 끊어졌다.

군무현, 그는 목적(木笛)을 입에서 떼며 비로소 눈을 떴다.

항상 서늘한 살기가 어려있던 그의 눈빛, 하나 이 순간 그의 눈빛은 더할 수 없이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스스로 음률에 취한 것일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감정하고 서늘한 한기가 일렁거리는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문득, 군무현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천락화영춘(天樂和英春)...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에 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음공(音功)이다!”

천음황의 천황음경(天皇音經)!

그것은 음공(音功)의 정수를 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이다.

(), (), (), (), ()의 묘결을 담은 오대음종. 그것은 하나하나가 각기 한 방면의 최고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군무현은 천황오대음종에 대해 감탄을 금치못했다. 이어,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묘결은 모두 이해했다. 다만 그 위력이 지나쳐 화(), ()의 음종 외에는 펼칠 수가 없을 뿐...!”

과연 그러했다. ()와 환()까지는 단지 허상을 만들고 심기를 제()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하나, (), (), ()의 음종은 그 목적이 본격적으로 달랐다.

파괴(破壞). 그것은 오직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무서운 음공인 것이다.

설사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가공할 위력.

군무현, 그는 불과 일년만에 천황음경 내의 정수를 모두 터득했다. 이 또한 범인으로서는 상상치도 못할 눈부신 성취였다.

그는 수중의 목적을 만지작거리며 무감정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천황음경에서는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다. 실제로 펼쳐보는 일만 남았을 뿐!”

문득, 그는 눈을 돌려 북쪽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신기황이 기거하는 동굴의 맞은편에 위치한 석벽, 그 석벽을 주시하며 군무현은 눈을 빛냈다.

저 석벽에 대고 음공을 시험해 보자!”

중러거림과 함께, 스슥...! 그의 신형이 앉은 채 소리없이 떠올랐다.

 

파향비운산(波香飛雲散)!

 

천황음경 중에 실린 극상의 경공. 그것이 펼쳐진 것이었다.

스스스... 이내 군무현의 신형은 마치 산향(散香)이 퍼지듯 흩어졌다.

잠시 후, 스슥! 군무현은 깃털처럼 가볍게 석벽 앞으로 내려섰다.

그는 눈을 빛내며 석벽을 주시했다.

제삼붕음종(第三崩音宗)은 목표한 것만 무너뜨릴 뿐,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드는 제사멸음종(第四滅音宗)과는 다르지. 성세는 약하나 최고 십리(十里) 밖의 목표물도 부술 수 있는 묘용이 있다!”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수중의 목적을 입에 댔다.

그러다 문득,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혹의 빛을 지었다.

(오성(五成)의 공력으로 저 석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는 저으기 염려스러웠다.

하나, 삐 익!

이내 그의 목적(木笛)으로부터 천공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성이 울려퍼졌다.

순간, 파 팍!

그 엄청난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목적이 그대로 박살나고 말았다.

직후, 우르릉... 쩌 억!

음파에 격중당한 석벽이 굉음과 함께 마치 거북의 등처럼 쩍쩍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콰르르릉! 콰 쾅!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오르며 거대한 석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아아! 그것은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단 한 번의 음파(音派)! 그로 인해 엄청난 두께의 석벽이 가루로 부서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음공을 시전한 군무현, 그 역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붕뇌명후(天崩雷鳴吼)의 위력이 이 정도라니...!”

그는 아연하여 절로 탄성을 터뜨렸다.

위 잉! 파파앗! 일진 회오리와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온통 허공을 뒤덮었다.

다음 순간,

아니...!”

군무현은 흠칫하며 경호성을 발했다.

이어, ! 그는 즉시 앞으로 날아내렸다.

이런 곳에 동굴이 있었다니...!”

군무현은 경이의 눈빛으로 전면을 주시했다. 무너진 석벽의 뒤쪽, 뜻박에도 그곳에는 높이 십여 장의 높은 동굴이 뚫려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지옥(地獄)의 입구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동굴, 그 동굴 앞에 내려선 군무현, 그는 다시 한 번 흠칫 놀랐다.

(마기(魔氣)가 뻗힌다!)

그는 동굴에서 뻗어나오는 전율적인 마기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졌다.

동굴, 그 안쪽에서는 전신을 오그라붙게 만드는 섬뜩하고 칙칙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문득, 군무현의 두 눈이 강렬한 빛을 발했다. 그의 뇌리로 언뜻 신기황이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천마애(天魔崖)에는 신비가 숨겨져 있다. 노부는 지극음령수액에서 나갈 수 없어 알아보지 못했으니 기회가 닿으면 네 스스로 찾아보아라!

 

군무현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꼈다.

(범상한 동부가 아니다. 신기황께서 지칭한 신비(神秘)라는 것이 어쩌면 이 동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강렬한 호기심에 마음이 끌렸다.

이윽고,

(들어가보자!)

그는 결심을 굳히며 동굴 앞으로 다가섰다.

스슥! 이내 그는 망설임없이 동굴 안으로 날아들었다.

 

동굴 안, 그곳은 불빛 한점 없이 어두컴컴했다.

전신을 조여들게 만드는 칙칙한 마기(魔氣). 그것은 동굴의 통로를 따라 들어갈수록 더욱 강렬하게 뻗쳐나왔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문득, 군무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동부(洞府), 눈앞에 하나의 광활한 동부가 나타났다.

한데, 군무현은 일순 흠칫 놀라며 전면을 주시했다.

시신(屍身)!”

그는 나직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그의 전면, 어둠 속에 한 구의 시신이 보였다.

시신은 삼십 대의 장한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한 자루의 장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장한은 눈을 감은 채 동굴의 벽에 기대어 죽어 있었다.

“...!”

군무현은 눈썹을 모으며 천천히 시신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손끝으로 가볍게 시신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우수수...!

시신은 단번에 가루로 화해 부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흠칫하며 물러섰다.

하나, 이내 그의 머리는 민활하게 움직였다.

(복장으로 보아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복색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팔백년 전의 시신이다!)

그는 눈을 빛내며 염두를 굴렸다.

그때, 휘 잉!

문득 귀기서린 한줄기 음풍이 군무현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섬칫한 한기가 모발을 쭈뼛 곤두서게 만들었다. 하나, 군무현은 담력이 컸다.

그는 한줌의 재로 화해버린 시신을 내려다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곳은 천지지간의 음기(陰氣)가 모이는 곳... 지극음기(地極陰氣)가 시신의 부패를 막았으리라!)

과연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이윽고, 군무현은 예리한 눈을 빛내며 계속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데, 시신은 재로 화해버린 장한을 기점으로 계속 발견되었다.

또한, 갈수록 그 숫자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걸음을 옮기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두 개의 인물들이 싸우다가 동귀어진했다. 혈포를 걸친 자들은 여러 부류의 인물들이 합공한 것으로 보이는군!)

시신의 형태는 실로 각양각색이었다.

서로 뒤엉킨 채 나뒹굴어진 시신, 목이 댕강 잘려 나가고 없는 시신, 검을 끌어 안고 꼬꾸라졌거나, 혹은 심장이 관통되어 창자가 흘러나온 시신 등...

군무현은 예리한 눈빛으로 시신들을 살피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는 거대한 지하광장의 입구에 이르게 되었다.

그 순간,

“...!”

군무현은 흠칫하며 걸음을 멈춰섰다.

지하광장의 입구, 그곳에는 오 장 높이의 거대한 석비(石碑)가 세워져 있지 않은가?

 

<수라천마동부(修羅天魔洞府)!>

 

석비 위에는 섬뜩한 핏빛 글씨가 그와 같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전율스러운 마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수라천마동부(修羅天魔洞府)?”

군무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검미를 모았다. 그로서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성큼 지하광장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

군무현의 안색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여하한 일에도 좀처럼 감정을 내색지 않는 군무현, 그런 그였건만 그의 두 눈은 이 순간 한껏 부릅떠졌다.

대체 그는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 一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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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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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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