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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쫓기는 父子

 

 

 

사천(四川) 검운산(劍雲山)!

 

하나의 웅장하고 거대한 성보(成堡)가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천하를 굽어 호령하며 위세당당한 기세로 우뚝 선 무적(無敵)의 철옹성!

 

적룡세가(赤龍勢家)!

 

오오...! 그 이름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당금무림의 최강문파, 사천(四川)에서 일어나 호남(湖南), 호북(湖北), 섬서(陝西)를 완전히 장악한 거대패세(巨大覇勢)가 바로 그들이었다.

백도무림(白道武林)의 위대한 투혼을 기치로 일어선 그들은 타오르는 횃불과도 같이 그 기세가 날로 욱일승천하고 있었다.

나는 새조차 떨어뜨릴 듯한 드높은 위명의 적룡세가(赤龍勢家)! 그 누구도 적룡세가에 대적하려들지 않았다.

명실공히 천하거봉(天下巨峯)으로 우뚝 선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

한데, 이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보라! 화르르르...! 콰르릉... 쿠 쿵!

화마(火魔)! 거대하고 웅장한 적룡세가(赤龍勢家) 전체는 지금 온통 시뻘건 화마의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콰콰쾅 우르릉... 천지겁멸의 장이 열리는가?

엄청난 폭음과 화마 속에 적룡세가는 통째로 붕괴되고 있었다.

아아... 누가 있어 당금무림의 최강문파인 적룡세가를 괴멸시킨단 말인가? 실로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무적(無敵)의 절대패세(絶代覇勢)! 천하대세(天下大勢)의 한 획을 긋는 거대패세가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만물이 잠든 깊은 밤에... 그것은 철저하고 뿌리깊은 거대한 흑암(黑暗)의 꿈틀거림과 함께 시작되었다.

 

X X X

 

대파산(大巴山)!

 

섬서성에 연한 사천(四川) 변경의 험산(險山). 천년(千年)의 장구한 세월동안 인간의 발길을 거부해온 처녀지(處女地).

사시사철 산허리를 휘감아 흐르는 자욱한 안개와 함께 태고의 신비가 구비구비 서린 심산(深山)이었다.

겨울(). 대파산 전체는 온통 흰 눈에 뒤덮여 있었다.

건곤일색! 사위는 온통 눈부신 백색(白色)의 설경(雪景)으로 덮여 신비롭고 평화롭기 이를데 없었다.

어둠, 그 눈부신 백설 위로 짙은 어둠이 쌓이고 있었다.

하나, 찬란한 설광(雪光)은 어둠마저 흰빛으로 물들여 주위는 마치 불을 밝힌 듯 환했다.

한데, ! 혈점(血點)! 희디흰 설원에 너무도 철저하도록 붉고 선명한 혈흔(血痕)이 얼룩져 있지 않은가?

그 혈흔은 실로 충격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점점이 이어지는 핏자국, 누가 어둠 속의 설원에 선혈을 뿌린 것일까?

하나, 기이한 일이었다. 눈 위에 시뻘건 핏자국은 선명히 남아있건만 피를 흘린 이의 발자국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휘이이잉...! 스스스...

바람이 분다. 뼈를 저미는 매서운 설풍(雪風).

그 설풍이 휩쓸고 지나는 설원으로 붉고 처절한 핏자국은 점점 크고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선홍의 혈흔은 손바닥만하게 커지며 그 간격이 점점 더 좁아진다.

게다가, 어느 시점, 모락모락 뜨거운 김까지 피어오르지 않는가? 피를 흘린 자의 체온이 그 혈흔 속에 배어있음이다.

문득,

... 무현(武玄)! 잊지마라! 잊어서는 아니된다!”

처절한 한()과 분노가 서린 한소리 중얼거림이 설원을 울렸다.

! 보인다. 전신이 시뻘겋게 물들어 혈인(血人)이 된 한 명의 인물이 어둠 속의 설원을 가로지르고 있지 않은가?

스스스... 눈덮인 설원을 바람처럼 지나는 인물, 끔찍했다.

그는 처참하게도 일신에 무려 칠백여 군데의 상처를 입은 모습이 아닌가?

그 혈인(血人)이 설원을 스쳐 지날 때마다 희디흰 설원에는 새빨간 선홍의 무늬가 아로새겨졌다.

얼마나 그렇게 달려온 것일까?

간신히 몸을 날리고 있기는 했으나 혈인(血人)은 몹시 지친 듯 연신 신형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설원을 가로지르는 속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으며 그의 걸음걸이는 갈수록 불규칙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듯 위태로운 모습,

하나, 스슥...!

보라! 혈인의 발은 바닥에 닿지 않을 뿐 아니라 설원의 두치 위를 떠가고 있었다.

답설무흔(踏雪無痕)! 그 지고무상한 경공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데, 그때였다.

... 잊지 않습니다... 소자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끊어질 듯 미약한 소년의 음성이 혈인의 말에 대꾸해 왔다.

희미하게 꺼져 들어가는 극히 무기력한 음성, 하나, 그 힘없는 음성 속에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철천지한(徹天之恨)이 서려 있었다.

그렇다. 그러고보니 혈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왼팔, ! 한 명의 소년이 축 늘어진 채 힘없이 안겨있지 않은가?

이제 십사오세 정도 되었을까? 백짓장같이 창백한 안색에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었다. 하나, 소년의 용모는 놀랍도록 준미했다.

특히, ()! 소년의 두 눈은 너무도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깊숙하고 신비한 가운데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그의 두 눈은 싸늘한 검날 위에 빛나는 은은하고 투명한 달빛, 그것이었다.

한 번 보면 영원히 잊지못할 신비하고 인상적인 소년의 두 눈, 그것은 차라리 마력적인 신비(神秘)라고 할 수 있었다.

반면, 소년을 안은 채 설원 위를 치달리고 있는 혈인(血人).

그의 두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분노와 원한, 그리고 엄청난 격정으로 이글거리는 눈빛, 그의 호목(虎目)은 찢어질 듯 한껏 부릅떠져 있었으며 붉은 입술은 피가 나도록 꽉 짓깨물고 있었다.

지금 그는 통한의 음성으로 소년에게 거듭 당부하고 있었다.

그렇다! 잊으면 안된다. 비명(非命)에 쓰러진 삼천(三千)의 적룡지혼(赤龍之魂)을 잊어서는 안된다!”

소년의 여인처럼 붉은 입술도 꽉 깨물려 선렬한 피가 흘러 내렸다.

그는 비분에 찬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 천지가 뒤집혀도... 소자 군무현(君武玄)은 적룡세가(赤龍勢家)의 삼천정영(三千精英)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아!

적룡세가(赤龍勢家)!

적룡세가라 했던가? 당금무림의 최강문파인 적룡세가가 바로 혈인의 가문이란 말인가?

그렇다.

 

적룡대제(赤龍大帝) 군천휘(君天輝)!

 

한 자루 적룡검(赤龍劍)으로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보좌를 차지한 일대영웅(一代英雄)! 그는 바로 적룡세가(赤龍勢家)의 당대가주였다.

백년 전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이래 최강(最强)으로 불리는 절대검제(絶代劍帝), 그의 검법은 당대 무적(無敵)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데,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사천(四川) 검운산(劍雲山) 정상에 차리한 적룡세가, 그곳에서 무적의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을 호령하고 있어야할 적룡대제(赤龍大帝) 군천위.

그가 어찌 이같은 처참한 모습으로 심야에 대파산을 넘고 있단 말인가?

 

군무현(君武玄)!

 

이것이 적룡대제의 품에 안긴 소년의 이름이었다.

적룡대제가 목숨보다 더 아끼는 그의 외아들.

지금 그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문득, 혈인 적룡대제의 강직한 얼굴에 절박한 표정이 떠올랐다.

(큰일이다. 절맥(絶脈)을 지니고 태어나 허약할대로 허약한 데다가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를 맞았으니...!)

그는 초조한 눈빛으로 소년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군무현, 그의 가슴에는 하나의 불그스름한 수인(手印)이 꾹 찍혀 있었다.

그는 지금 기식이 엄엄한 상태였다. 그의 조각같이 준미한 얼굴에는 차츰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적룡대제의 안색은 처참하게 이지러졌다.

문득, 그의 부릅떠진 두 눈에서 엄청난 살광이 폭사되었다.

으득... 쇄심선자(碎心仙子)! 무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년은 나 적룡대제의 검() 아래 천참만륙 당하리라!”

그는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를 갈았다.

그때,

... 잊지 않습니다... 소자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군무현은 파리한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힘없이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나, 그런 그의 시선은 급격히 흐려지고 있었다.

적룡대제는 절박한 심정을 금치못했다.

안된다! 눈을 감지마라, 무현! 잠들지 말라!”

그는 아들 군무현을 세차게 흔들며 피를 토하듯 외쳤다.

하나 어쩌랴! 군무현의 눈빛은 점점 아득하게 흐려지기만 했으니... 이미 그의 두 눈에는 죽음이 깃들고 있었다.

무현! 무현!”

적룡대제는 비통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아아... 처절한 부정(父情)이여...!

그의 상세 또한 심각하기 이를데 없어 지금 그는 골수를 쪼개는 처절한 고통에 짓눌리고 있었다.

하나, 어찌 자신의 고통쯤이 문제이랴?

아들(). 자신이 목숨보다 아끼는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적룡대제는 가슴이 뽀개지는 듯한 고통을 무릅쓰고 사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스슥! 그가 몸을 날릴 때마다 설원 위에는 시뻘건 혈화(血花)가 어둠이 무색할 정도로 선명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파파팍! 돌연 눈앞에 번쩍 광채가 작렬했다.

그와 동시에, 찬란한 금광(金光)이 적룡대제를 향해 벼락같이 날아 꽂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

적룡대제는 눈을 부릅뜨며 신형을 휘청했다.

! 어느새 한 자루 금빛의 강전이 그대로 적룡대제의 어깨를 관통한 것이 아닌가?

금붕강전!”

그는 노갈을 터뜨리며 홱 돌아섰다.

그 순간, 끄 악! 쐐액!

허공을 쥐어뜯는 흉측한 괴성과 함께 적룡대제의 전면으로 한 마리 거대한 금빛의 거조(巨鳥)가 내리박히듯 쇄도해 들어왔다.

오오! 실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콰르르... 콰쾅!

금빛의 거조(巨鳥)! 그것의 날개짓에 주위 십장 방원이 삽시에 초토화되어 버렸다.

찰나지간 거조의 금빛 그림자는 천지를 메우듯 사위를 뒤덮었다.

금붕천왕(金鵬天王)!”

적룡대제는 눈을 부릅뜨며 노갈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파 앗! 그의 신형이 벼락같이 움직였다.

직후, 콰르릉... 콰콰 쾅!

천번지복의 가공할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들며 터져올랐다.

츠츠츠... 쉬 잉!

장내를 온통 휩쓸며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보라.

그 가운데, 카 악! 거조의 날카로운 괴성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하나, 쐐 액! 십장의 거대한 붕조(鵬鳥)는 한차례 휘청 거구를 비틀거렸으나 이내 쏜살같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광경에 적룡대제는 분노를 금치못했다.

감히 여기까지 쫓아 오다니...!”

그의 두 눈에 번쩍 살광이 폭사되었다.

그때, 휘르르... 파파앗!

적룡대제의 주위로 무수히 잘려진 붕조의 찬란한 금우(金羽)가 어지럽게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크윽...!”

적룡대제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신형을 휘청했다.

그런 그의 가슴, 실로 끔찍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의 가슴 부분은 처참하게 짓이겨져 허연 늑골이 드러나 보였다.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엄청난 중상.

하나, 적룡대제는 핏발선 호목(虎目)을 부릅뜬 채 무섭게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때, 콰콰콰... 쐐액!

금붕(金鵬)의 거대한 거구가 다시 적룡대제를 향해 벼락같이 짓쳐들었다.

그런 금붕의 등 위, 한 명의 위풍당당한 체구의 금포노인이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자는 한 자루 강궁을 쳐든 채 적룡대제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으하하! 적룡대제! 이번에는 심장을 갈라 주겠다!”

금포노인은 득의의 광소를 터뜨리며 외쳤다.

적룡대제는 이를 악물며 신형을 부르르 경련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줄기줄기 원한과 분노의 광망이 치뻗쳤다.

그는 허공을 노려보며 찌렁찌렁한 음성으로 외쳤다.

금붕천왕(金鵬天王)! 양단을 내주리라!”

다음 순간, 쩌 엉! 그의 손에 한 자루 눈부신 장검(長劍)이 들려졌다.

아아!

 

적룡검(赤龍劍)!

 

그 장검은 바로 적룡검(赤龍劍)이 아닌가?

무적제황검(無敵帝皇劍)!

적룡검의 검신(劍身)은 마치 홍옥처럼 서늘하고 투명해 보였다.

그 투명한 검신, 한 마리 비등하는 용()의 문양이 너무도 정교하고도 웅장한 자세로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적룡검을 뽑아드는 순간 눈부신 보광(寶光)과 함께 수천가닥의 날카로운 예기가 숨통을 조일 듯 뻗어나왔다.

오늘의 적룡대제를 있게 한 신검(神劍)!

 

적룡대제, 적룡검을 든 채 우뚝 선 그의 모습은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태산(泰山)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콰르르릉! 쐐 액!

다시 금붕의 그림자가 장내를 가득 뒤덮으며 거대한 금붕이 위맹한 기세로 적룡대제를 향해 짓쳐들었다.

그와 함께, 파 앗!

섬뜩한 파공성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하나의 금붕강전이 섬전같이 적룡대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위기일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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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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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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