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에 해당되는 글 366건

  1. 2023.07.27 [만상지존보] 제 37장 천외쌍비의 전설
  2. 2023.07.26 [만상지존보] 제 36장 구류천세록
  3. 2023.07.25 [만상지존보] 제 35장 구류천종의 풍운
  4. 2023.07.24 [만상지존보] 제 34장 빙시의 유혹
  5. 2023.07.23 [만상지존보] 제 33장 천이백년전의 미인
  6. 2023.07.22 [만상지존보] 제 32장 태양천화경
  7. 2023.07.21 [만상지존보] 제 31장 신비한 빙동
  8. 2023.07.20 [만상지존보] 제 30장 북해에 온 잠룡
  9. 2023.07.19 [만상지존보] 제 29장 봉황옥소의 기연
  10. 2023.07.18 [만상지존보] 제 28장 만수족의 위기
  11. 2023.07.17 [만상지존보] 제 27장 요정같은 소녀
  12. 2023.07.16 [만상지존보] 제 26장 천지십강의 초절기들
  13. 2023.07.15 [만상지존보] 제 25장 세외사천 등장
  14. 2023.07.14 [만상지존보] 제 24장 적룡세가의 가신들
  15. 2023.07.11 [만상지존보] 제 23장 소녀의 연정
  16. 2023.07.10 [만상지존보] 제 22장 만년영지
  17. 2023.07.09 [만상지존보] 제 21장 자령별부의 기연
  18. 2023.07.08 [만상지존보] 제 20장 신비한 자령곡
  19. 2023.07.07 [만상지존보] 제 19장 남궁세가의 겁화
  20. 2023.07.06 [만상지존보] 제 18장 중원제일재녀
  21. 2023.07.05 [만상지존보] 제 17장 적룡의 분노
  22. 2023.07.04 [만상지존보] 제 16장 복수의 시작
  23. 2023.07.03 [만상지존보] 제 15장 열화신문의 겁풍
  24. 2023.07.02 [만상지존보] 제 14장 폐허에 돌아오다.
  25. 2023.07.01 [만상지존보] 제 13장 우연한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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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七 章

 

        天外雙秘傳說

 

 

 

천하는 모른다.

구류천종(九流天宗)! 그들의 힘과 조직이 얼마나 크고 방대한가를.

당금 문도의 총수는 일백 팔십 사만 칠천 명, 그것은 실로 경악할 숫자였다.

천하제일의 문도수를 자랑하는 개방! 그들의 문도수는 남북을 통틀어 오십만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천하제일방(天下第一幇)이라 불리지 않는가? 한데, 구류천종은 자그마치 그 개방의 두 배가 넘는 문도들을 수용하고 있으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구류천종이 얼마나 거대한 문파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당금 황실의 구문제독(九門諸督)으로부터, 개방의 거지, 백정(白丁), 사공에 이르기까지 구류천종의 인물이 파견되지 않은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두루마리를 살펴나가던 군무현, 그는 경악지심을 감추지 못했다.

(무섭다. 천하(天下)가 곧 구류천종(九流天宗)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 만일 구류천종을 악용한다면... 천하는 고스란히 구류천종의 손에 들어오고 말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아침에 구류천종은 천하를 집어삼켜 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하나, 다행한 것은 구류천종이 정()과 의()의 기지 아래 조금도 탐심과 야욕을 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천하에 구류천종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단 두곳 뿐이었다.

 

혈문(血門)!

선부(仙府)!

 

천년의 전설 속에 내려오는 신비문파 천외쌍비(天外雙秘)!

그들은 단 한 번도 무림에 출현하지 않았다. 하나, 그럼에도 천지십강(天地十强)과 쌍벽을 이루는 거대한 신비세력이었다.

구류천종의 조직은 크게 나누어 다음과 같았다.

 

일전(一殿),

십이단(十二檀),

칠십이파(七十二波),

 

일전(一殿) 구류전(九流殿)!

바로 구류천종을 상징하는 중심(中心)이었다. 하나, 이는 다만 구류천종의 형식상 총수일 뿐이었다.

구류지존이 나타날 때까지 잠정적으로 구류천종의 수뇌 노릇을 대행하는 것이다.

 

십이단(十二檀)!

구류천종의 실체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직, 천하에 골구루 분포된 거대한 칠십이개 문파가 바로 구류천종의 진정한 모습이다.

하나, 칠십이개 문파중 어느 문파도 당금무림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일천오백 년의 세월을 날개접은 채 그늘 속에서 때를 기다려 왔을 뿐이다.

구류지존(九流至尊)! 오직 그 일인(一人)을 위해서!

 

군무현, 그는 구류천세록(九流天世綠)을 덮으며 만감어린 표정을 지었다.

본인 일인(一人)을 위해... 천오백 년의 장구한 세월을 그늘 속에서 살아왔단 말이오?”

지존...”

만가대유는 격동의 표정으로 고개를 깊숙이 떨구었다.

군무현은 자신의 어깨가 막중해짐을 느꼈다.

(만상자라는 분은... 너무도 큰 짐을 내게 맡기셨다.)

그는 이미 천오백 년 전부터 구류지존(九流至尊)으로 안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만가대유는 진지한 안색으로 하나의 옥함을 군무현에게 올렸다.

“...!”

군무현은 옥함을 받아들고 열어 보았다.

옥함 안, 각각 흑색(黑色)과 홍색(紅色)을 띈 지환(指環)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구류신환(九流神環)입니다. 바로 지존이심을 나타내는 신물입니다!”

만가대유는 만면에 격동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군무현은 말없이 두 개의 구류신환을 꺼내 양손 중지에 각각 끼었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군무현을 위해 만든 것인 듯 그의 손에 꼭 맞았다.

만가대유는 감격의 표정으로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는 벅찬 격동에 휩쌍인 채 군무현을 우러러 보았다.

구류신환(九流神環) 안에 만상자 조사께서 마지막으로 베푸신 안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 일천오백 년을 지나오면서 누구도 그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신뢰와 기대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군무현은 묵묵히 만가대유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어, 그는 문득 궁금한 어조로 물었다.

우선 그동안의 무림정세를 알고 싶구려!”

.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의 이목은 천하에 깔려 있습니다. 심지어는 천마궁의 수뇌부와 구파일방의 정상까지도 암중세력을 굳히고 있습니다!”

만가대유는 자신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자세하게 설명해 나갔다.

 

X X X

 

천마천하(天魔天下)! 이것이 당금천하를 한 마디로 일컫는 말이었다.

천하가 천마궁(天魔宮)의 손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천마제군(天魔帝君) 혁련상(赫鍊相)!

 

당금의 천마궁주(天魔宮主), 그자는 천마황(天魔皇)을 능가하는 마공(魔功)과 술수를 지닌 거마(巨魔)였다.

마도제일인(魔道第一人)!

그는 고금이래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효웅으로 알려졌다. 그가 타고난 계략과 술수로 휘하에 거둔 문파만 해도 부지기수였다.

혈륭마찰, 사망림, 독황궁, 빙백궁, 흑도십팔절, 녹림십이채등... 각기 강권을 자랑하는 그 문파들을 손쉽게 수하로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유사(有史)에 없는 가공할 힘()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일파로 능히 천하의 반을 집어 삼킬 수 있는 세외사천(世外四天)중 삼천(三天)을 포섭했을 뿐 아니라, 우내사천황 중 독천황(毒天皇)의 독황궁(毒皇宮)마저 수중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천하를 향해 광오하게 외쳤다.

 

오라! 천마(天魔)가 무적(無敵)임을 천하에 보여주리라!

 

천마제군은 천마대전(天魔大殿)을 열었다.

그것이 바로 한달 전의 일이었다. 그때 군무현은 광한전(廣寒殿)에서 빙백염후와 함께 빙백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구파일방을 비롯한 천하만파가 모두 천마대전(天魔大殿)에 참석했다. 하나, 그것은 철저한 속임수였다.

천마제군은 만파군웅들을 보기좋게 우롱했다.

구파일방의 수뇌를 비롯하여 만파의 장()들은 그의 철저한 계략에 속아 모조리 생포되고 만 것이 아닌가?

결국, 천하는 굴복하고 만 것이다. 천마제군 혁련상에게.

 

만가대유의 설명을 듣고 있던 군무현, 그는 송충이같은 눈썹을 무섭게 꿈틀했다.

천마제군... 그자가...!”

그 순간, 번득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천하에 거대한 암중세력이 있어 천하 위에 서려한다. 적룡세가(赤龍勢家)의 몰락은 바로 암중세력이 천하제패를 마무리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신기황이 군무현에게 들려준 말이었다. 그와 함께, 군무현은 한 가지 사실을 더 떠올렸다.

태원 교외의 비마애(秘魔崖), 그곳에서 혈륭법사 사멸황(死滅皇)을 만나던 신비인물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혈륭법사와 사멸황은 그자를 일컬어 지존(至尊)이라 칭하지 않았던가?

(그자가 천마제군이었단 말인가?)

군무현은 검미를 모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때, 만가대유가 군무현의 신색을 살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천마궁은 이미 천하를 장악했습니다. 천마궁의 마수를 피할 문파는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본문과 천신궁(天神宮), 동해(東海)의 금붕도(金鵬島), 세외사천 중 동천(東天)인 보타암(菩駝庵)과 신기황의 후예들이 있는 신기곡(神機曲) 정도입니다!”

한데 그때,

지존!”

구류천종의 총관이 급히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군무현은 황급히 자신의 앞에 부복하는 총관을 향해 물었다.

천마궁의 문도로부터 급보가 날아왔습니다!”

급보?”

총관의 보고에 만가대유는 미간을 좁혔다.

여기 있습니다!”

총관은 급히 수중의 쪽지를 만가대유에게 전했다. 만가대유는 그것을 받아 군무현에게 공손히 받쳐 올렸다.

쪽지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문주(門主)께 알림.

중요한 두 가지 일 발생. 먼저 대천성자(大天聖子) 강렬한 힘으로 천마궁을 습격한 사실. 그는 구파일방의 수뇌 인물을 비롯, 정파무림인 삼백인(三百人)의 무공으로 알려짐...

 

대천성자(大天聖子)...!”

군무현은 의혹의 표정으로 만가대유를 바라보았다.

만가대유는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 기억이 납니다. 그는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이전의 고인입니다. 무림사에 깊이 관여치 않고 유유자적하던 인물로서 태산(泰山) 관일봉(觀一奉) 소요장(逍遙莊)을 짓고 은거하는 백도명숙 입니다!”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는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대천성자...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든다. 기이하게도 어두운 예감을 풍기는 인물...!)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침중한 안색을 지었다. 이어, 그는 다시 종이 쪽지의 내용을 읽어 나갔다.

 

두 번째는 급보(急報). 천마궁은 사망림의 힘으로 신기곡(神機谷)을 접수하려 하고 있음. 신기곡마저 천마궁의 수중에 든다면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됨. 선처바람.

 

내용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감히 신기곡에 손을 대려 하다니...!”

군무현은 격노함으로 신형을 부르르 떨며 두 눈에 강렬한 살광을 폭사했다.

파파팍! 일순 그의 발 밑에 깔린 청석이 가루로 변해 부서졌다.

신기곡(神機谷)!

군무현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지극히 소중한 것이었다.

그에게 두 번째의 생()으리 살게해 준 신기황(神機皇)!

그의 후예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닌가? 군무현에게 있어서는 천하에서 단 하나뿐인 친인(親人)들의 문파인 것이다.

문득,

어느 놈이든 신기곡을 건드리면 용서치 않는다!”

군무현은 가공할 한광을 폭사하며 불끈 주먹을 움켜쥐었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는 폭풍같은 살기가 몰아쳤다.

만가대유는 그 모습에 부지불식간에 흠칫 몸을 떨었다.

(... 태산이시다!)

그는 놀라움과함께 내심 금치못했다.

(지존으로 인하여 구류천종의 성화(聖華)가 천세에 이르리라!)

그때, 군무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 그는 만인을 압도시키는 위엄있는 음성으로 단호히 말했다.

풍운대라굉벽대진(風雲大羅轟碧大陣)으로 구류곡을 보호한 뒤 신기곡으로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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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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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六 章

 

                      九流千世錄

 

 

꽈릉...!

갑작스러운 독황후의 공격에 만가대유는 황급히 쌍장을 엇비켜 내리쳤다.

그러자, 강맹한 장력이 쏟아지며 시커먼 독무는 허공으로 확 퍼지더니 다시 독황후에게로 돌아갔다.

에잇!”

츠츠츠...!

독황후는 악을 쓰며 재차 교수를 후려쳤다.

그녀의 소매 속에서 강렬한 경기가 쏟아져 나옴과 동시 독기를 휘몰아 만가대유를 휩쓸어 오는 것이었다.

직후,

콰르릉 펑!

크 윽!”

만가대유는 신형을 휘청하더니 비명과 함께 나가 떨어졌다.

! 그의 오른손, 끔찍하게도 그것은 새까맣게 변해버린 것이 아닌가?

... 독황후! 네가 천마궁(天魔宮)의 수하에 들다니... 독천황 선배님의 영명을 네가 다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만가대유는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며 독황후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분노와 경악, 회의의 빛이 뒤엉켜 떠올랐다.

하나,

호홋... 그것은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너는 네 수하들이나 걱정해라!”

독황후는 독살스러운 교소를 터뜨리며 빈정거렸다.

...!”

만가대유는 굴욕과 수치감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떨리는 눈빛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위잉! 츠츠츠... 콰 콰쾅!

도검(刀劍)이 난무하는 가운데 장내는 온통 폭음과 요란한 파공성으로 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크아악!”

케엑...!”

참담하게 꼬리를 물로 터져나오는 비명...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은 구류천종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연신 추풍낙엽처럼 덧없이 쓰러져갔다.

그 광경을 지켜본 만가대유는 참혹한 심정을 금할길 없었다.

(... 틀렸다. 호문천위대가 오지 않는한 겁멸을 피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는 참담한 절망감에 안색이 이지러졌다.

그때,

호호... 본후는 천마궁의 수하가 아니다! 다만 원수가 중원무림임을 알려준 천마궁주(天魔宮主) 천마제군(天魔帝君)의 부탁으로 구류천종을 접수하러 온것일뿐...!”

독황후가 요악한 교소를 터뜨리며 오만한 어투로 말했다.

만가대유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 눈잉 있어도 바로 보지 못하는 계집!”

그는 분노에 치를 떨며 이를 악물었다. 독기(毒氣)는 이미 그의 오른팔 전체로 퍼져 무섭게 그의 전신을 짓눌러 오고 있었다.

독황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너를 죽이고 구류신환(九流神環)만 얻으면 된다!”

면사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봉목에 일순 독랄한 살기가 번득였다. 이어, 그녀는 주저없이 만가대유의 앞으로 선뜻 다가섰다.

(...!)

만가대유는 식은땀을 흘리며 휘청 물러났다. 그래서는 도저히 독황후를 대항할 힘이 없었다.

독황후! 그녀는 강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심성은 이미 인간의 감정 따위를 내팽개친지 오래였다. 그녀는 사색이 된 만가대유를 향해 악독하게 웃어 보였다.

호호...! 각오해라!”

말과 함께, 그녀는 번쩍 교수를 들어올렸다.

“...!”

만가대유는 절망의 표정으로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절대절명! 독황후의 교수가 막 만가대유의 천령개를 내려치려 할 때였다.

구 워어억! 돌연 거창한 붕음이 만상문 전체를 무섭게 뒤흔들었다.

순간,

!”

아니...!”

중인들은 일제히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대경성을 발했다.

그때, 쏴 아! 천지를 휩쓸어 버릴 듯한 무서운 폭풍이 몰아쳤다.

그와 함께, 창공으로부터 한 마리 거대한 붕조의 그림자가 벼락같이 내리꽂히는 것이 아닌가?

쐐 애액! 그 기세는 실로 가공할 정도였다.

그 순간,

... 대천붕(大天鵬)!”

만가대유는 안색이 급변하며 숨넘어 가는 듯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그는 죽음의 고통조차 망각한 채 온통 격동과 희열을 금치못하며 허공을 우러렀다. 비단 만가대유 뿐만이 아니었다.

오오... 대천붕이 나타나다니...!”

아아...!”

구류천종 전체가 격전을 멈추고 주체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삽시에 장내는 물결처럼 술렁거렸다.

독황후, 그녀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봉목을 한껏 치켜떴다.

... 저렇게 큰 붕조가 있었다니...!”

그녀는 두려운 눈빛으로 황급히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

그때, 콰아아...! 세찬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대천붕이 장내로 내려앉았다.

중인들은 경악의 표정으로 급급히 물러났다.

장내를 온통 선풍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대천붕은 이윽고 천천히 날개를 접었다.

그 순간, ! 대천붕의 등에서 군무현이 가볍게 뛰어 내렸다.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군무현에게 집중되었다.

한데 그때,

... 당신은...!”

군무현의 얼굴을 본 독황후의 교구가 일순 쓰러질 듯 휘청 꺾여졌다.

그녀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하나, 경악의 눈빛은 이내 독랄한 살기로 바뀌었다. 군무현은 자신을 햐한 강렬한 눈빛을 느끼며 문득 시선을 돌렸다.

순간,

“...!”

“...!”

군무현과 독황후의 눈빛이 부딪혔다.

군무현은 독황후의 눈빛을 대하는 순간 가볍게 미간을 모았다.

(눈빛이 낯설지 않다!)

하나, 어디서 보았는지 잘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 순간,

죽인다!”

콰르 릉! 돌연 독황후가 한맺힌 교갈을 터뜨리며 군무현을 향해 번쩍 교수를 휘둘렀다.

그녀의 주위로 일순 시커먼 독강이 검은 파도처럼 휩쓸러 일어났다.

독문(毒門)인가?”

군무현은 힐끗 독황후를 주시하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하나,

예의를 모르는 계집이군!”

위 잉! 냉혹한 일갈과 함께 그의 몸에서 시뻘건 극양강기가 불길처럼 확 퍼져 일어났다.

이어, 치지직...! 놀랍게도 그것은 독황후의 독강을 단숨에 녹여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시커먼 연기와 함께 독강은 이내 사그러들었다.

()은 불()과 극성이 아닌가?

... 이런...!”

자신의 공격이 어이없이 무산된 것을 본 독황후, 그녀는 부르르 교구를 떨며 분노와 살기로 뒤범벅되었다.

다음 순간,

독종황후뢰(毒宗皇后雷)! 오독추혼독강지!”

그녀는 악에 받친 음성으로 잇달아 교갈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파츠츠츠... 파파팟! 쉼쉴 틈도 없이 그녀의 독랄한 공세가 연이어 펼쳐졌다.

일시지간 장내는 비릿하고 시커먼 독무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 광경에 군무현은 마침내 분노했다.

천방지축이군!”

그는 냉혹한 안색으로 번쩍 장을 치켜들었다. 그가 맹렬히 일장을 내려치는 순간, ! 문득 대천붕의 등에서 또 한 명의 인영이 쾌속한 속도로 쏘아져 내렸다.

위 잉! 그 인영은 장내로 날아듬과 동시 투명한 옥수(玉手)를 섬전같이 휘둘렀다.

한순간, 콰쾅 짜자작...! 그녀의 교수에서 천지를 얼려버릴 듯한 극강한 극음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직후, 쿠 쿵!

!”

둔중한 음향이 들썩 사위를 뒤흔듬과 함께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독황후, 그녀는 일순 튕기듯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대천붕에서 내려서며 눈부신 일격으로 독황후를 날려버린 인영, 그녀는 바로 빙백염후였다.

그것은 실로 예기치못한 갑작스런 사태였다.

그 순간,

궁주님!”

스슥! ! 독황궁의 노인들은 급급히 외치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은 가까스로 허공에서 독황후의 몸을 받아 안았다.

... 두고 보자!”

그자들은 장내를 향해 원한의 음성으로 이를 갈며 외쳤다.

이어,

독황궁도들은 물러가랏!”

그자들 중 한 명의 노인이 신속히 지시했다.

그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휘 휘르르... 독황궁의 인물들은 물밀 듯이 만상곡을 빠져나갔다.

냉혹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주시하고 있던 군무현, 문득 그는 빙백염후를 향해 말했다.

염후, 저자들도 모조리 쫓아내시오!”

그는 혈륭마찰과 흑도십팔절(黑道十八絶) 중 천사회(天邪會)의 인물들을 가리켰다.

“...!”

그의 말에 빙백염후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휘 잉! 그녀의 빙옥같은 교수가 선을 긋듯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콰르르 릉! 천지를 얼려버릴 듯한 극렬한 한기가 전면의 마도(魔道)들을 휩쓸어갔다.

직후,

케 엑!”

크아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잇달아 터져올랐다.

그 순간,

... ... 무후(武后)!”

... 달아나자!”

마도들은 사색이 되어 외치며 다투어 곡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나,

...!”

으아 악!”

달아나던 혈륭마찰과 천사회의 인물들은 삽시에 전신이 얼어붙어 빙인(氷人)이 되어 나뒹굴었다.

그때, 빙백염후는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는 나머지 마도들을 향해 재차 교수를 치켜들었다.

하나,

염후! 되었소.”

군무현이 가볍게 손을 저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러자, 빙백염후는 마치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순순히 손을 거두는 것이었다.

이어, 스슥...! 그녀는 유연하게 교구를 움직여 군무현의 뒤에 그림자처럼 시립했다.

바로 그때,

... 지존(至尊)!”

돌연 만가대유가 군무현의 앞에 오체복지하여 격동의 음성으로 외쳤다.

그에 이어,

지존!”

지존을 뵙습니다!”

전 마상문도들이 일제히 군무현을 향해 오체복지하는 것이 아닌가?

그 갑작스런 사태에 군무현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하여 본인을 지존(至尊)이라 하시오?”

그는 만가대유를 부축해 일으키며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대천붕(大天鵬)을 타고 오셨으니 구류지존(九流至尊)이 되십니다.”

만가대유는 온통 감회와 격동을 금치못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군무현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문득 만가대유의 상처로 눈길을 돌렸다.

연유는 잘 모르겠으나 우선 독기(毒氣)부터 제거해야겠소!”

만가대유의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이미 독기가 상반신으로 완전히 퍼져 상체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군무현, 그는 몸을 굽혀 만가대유의 맥문을 쥐었다.

그와 함께, 그는 전신에 태양천화굉염신공을 일으켰다.

우르르... 위 잉! 그의 전신은 순식간에 시뻘건 극양지기에 휩싸였다.

순간,

!”

만가대유는 온 몸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극렬한 통증을 느끼며 입술을 악물었다.

츠츠... ... 파팟! 강맹한 극양지기는 순식간에 만가대유의 몸속으로 퍼지는 독기를 태워나갔다.

그때마다 만가대유는 엄청난 고통에 몸을 떨었다.

하나, 그는 고통 가운데서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역시... 지존이시다!)

짙은 감회와 격동이 고통마저 깡그리 잊게했기 때문이다.

 

구류대전(九流大殿)!

 

얼마전 만가대유가 앉아있던 바로 그 대전이었다.

대전의 중앙, 만가대유가 앉아있던 태사의에는 군무현이 앉아 있었다.

군무현의 뒤, 빙백염후가 여전히 그림자처럼 다소곳이 시립해 있었다.

그때, 문득 대전의 문이 열리며 만가대유가 대전 앞으로 들어섰다. 그는 하나의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존! 이것을 받으십시오!”

그는 군무현의 앞에 무릎을 꿇며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공손히 받쳐올렸다.

고맙소!”

군무현은 두루마리를 받아들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문주, 예가 과하오. 편히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그제서야 만가대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군무현은 말없이 두루마리를 펼쳐들었다. 그곳에는 갑골문자로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승붕래자(乘鵬來者) 즉지존야(卽至尊也)!>

<()을 타고 오는 자() 곧 지존(至尊)이다.>

 

내용인즉 이러했다.

“...!”

군무현은 안색이 일변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는 구류천종(九流天宗)의 지존이 된 것이 아닌가?

그때, 만가대유가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구류천종 천오백 년 전에 세워져 오직 한 분만을 기다리며 은인자중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군무현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류천종 역사가 소림(少林)보다 깊단 말인가?)

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는 무림에서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는 비사(秘事)였으니...

만가대유는 군무현의 심중을 헤아린 듯 다시 설명했다.

조사(祖師)께서는 만상자(萬像子)라는 분으로 천년을 내다보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만상자(萬像子)...!”

군무현은 의아한 음성으로 나직이 뇌까렸다. 그로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만가대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만상자께서는 혈천종(血天宗)의 저주가 천오백 년 후에 다시 천하를 혈풍속으로 몰아 넣으리라는 것을 예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지존께서 혈천종의 저주를 막으실 기반이 되도록 은밀히 구류천종을 세우신 것입니다!”

“...!”

묵묵히 만가대유의 말을 듣고 있던 군무현은 문득 의혹이 솟구쳤다.

(천오백 년 전이라면 혈천종(血天宗)과 동시대(同時代)가 아닌가? 그렇다면... 만상자는 혈천종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만가대유를 주시했다.

만가대유는 엄숙한 신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속하들은 일천오백 년을 한결같이 현신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군무현의 안색도 절로 숙연해졌다.

(천오백 년... 장구한 세월이다!)

그는 구류천종의 충성스런 일념(一念)에 감탄과 아울러 경외감이 우러났다.

그때, 만가대유는 문득 품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군무현에게 바쳐 올렸다.

이것이 당금 폐문의 조직을 기록한 것입니다!”

“...!”

군무현은 말없이 책자를 받아들었다.

 

<구류천세록(九流千世錄)!>

 

두꺼운 책자의 표지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일필휘지의 서체로 쓰여져 있었다.

구류천세록의 첫장을 넘기던 군무현,

으음...!”

문득 그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과연, 그 안에는 어떤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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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五 章

 

             九流天宗風雲

 

 

 

쿠쿠쿠 쿵...! 콰르릉... 콰쾅!

천지를 허물어 버릴 듯한 대폭음이 사위를 뒤흔들었다.

순간,

... 이럴 수가...!”

광한애(廣寒崖)가 무너진다!”

여인들의 급급한 외침성이 폭음 속을 뚫고 터져나왔다.

빙백궁의 후면에 위치한 광한애(廣寒崖).

돌연 그 거대한 얼음벽이 유리가 부서지듯 산산이 파열되고 있지 않은가?

뒤이어,

우 우!”

굉음속을 뚫고 한소리 우렁찬 장소성이 울려퍼졌다.

순간,

아 악!”

... 지독한 내공이다!”

얼음벽이 파괴되는 광경을 지켜보던 수십 명의 빙백궁의 여인들이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그때, 스스스... ! 무너진 광한애의 얼음 구덩이에서 돌연 두 줄기 인영이 불쑥 솟구쳐 올랐다.

일남일녀(一男一女), 갈가리 찢긴 흑의장포를 걸친 청년, 그리고 날아갈 듯 아름다운 구천신녀의 의복을 걸친 면사여인이었다.

스스슥! 양인은 단번에 백장을 날아 빙백궁의 여인들 앞으로 날아내렸다.

군무현과 빙백염후! 바로 그 두 사람이었다.

그들이 내려서는 순간,

... ... 네가 죽지 않았다니...!”

여인들 중 한 명이 신형을 휘청이며 불신의 눈빛으로 뒤로 물러섰다.

잔설빙(殘雪氷)!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경악과 충격으로 핼쓱하게 질린 얼굴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바로 군무현을 죽음의 함정으로 유린했던 장본인이 아닌가? 하나,

묵빙현하는 어디 있느냐?”

군무현은 지극히 무심한 어조로 잔설빙을 향해 물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묵빙현하는 자신에게 크나큰 기연을 안겨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군무현의 눈빛은 전혀 감정을 엿볼 수 없이 잔잔했으며 지극히 무심해 보였다. 예전처럼 가슴을 찌르는 칼날같은 예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의 몸 주위로는 어떤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도가 태산처럼 어려 있었다.

천하의 구누구도 감히 범접지 못할 장중하고 압도적인 기도,

... 이공주께서는... 구금되었소!”

잔설빙은 군무현의 압도적인 기도에 부르르 몸을 떨며 대답했다.

묵빙현하가 구금되었다고?”

군무현은 짙은 검미를 꿈틀하며 되물었다.

... 그렇습니다. 제일공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잔설빙은 자신도 모르게 군무현에게 경어를 쓰고 있었다.

제일공주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군무현의 물음에 잔설빙은 떨리는 음성으로 순순히 대답했다.

제일공주께서는... 삼천 명의 궁도들을 이끌고 중원(中原)으로 가셨습니다!”

중원으로?”

, 천마궁(天魔宮)에서 사자(使者)가 와서 초청하여 가셨습니다!”

“...!”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염후(艶后)의 후예가 중원을 어지럽히겠군. 염후에게는 미안하지만... 징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기가 매우 탁하다. 중원천하가 걷잡을 수 없는 혈풍에 휘말려 들었다는 뜻이리라...!)

그의 무심한 눈빛이 일순 어둡게 흐려졌다.

그때, 잔설빙은 군무현의 무심한 옆모습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 천빙애에서 추락할 때와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사람은 이미 하늘이 되었다!)

그녀는 엄청난 위암감에 절로 몸을 움츠렸다.

 

빙백궁의 지하(地下),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하나의 뇌옥(牢獄)이 자리하고 있었다.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폐옥, 굵은 쇠창살이 드리워진 뇌옥 안,

흐흑... 나는 살아있을 면목이 없는 계집이야...!”

한 명의 여인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며 처연하게 오열하고 있었다.

여인의 행색은 실로 말이 아니었다. 제멋대로 풀어헤쳐져 헝클어진 머리채, 마구 구겨지고 찢겨 형편없는 옷차림, 본래 그녀가 걸친 의복은 짙은 묵의(墨衣)였다.

하나, 지금 그것은 선혈이 뒤엉켜 지저분하고 처참해 보였다.

여인의 피부는 지나칠 정도로 희었다. 훤칠한 키에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미녀,

하나, 지금 그녀의 얼굴은 초췌하기 이를데 없었으며 그녀의 앞가슴은 강맹한 강기에 짓이겨져 피가 엉겨붙어 있었다.

흐흑... 눈이 어두워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우매하여 사저가 궁규(宮規)를 어김을 막지 못했으니... ... 이 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여인의 눈물로 범벅된 얼굴에는 뼈저린 회한과 고통의 빛이 떠올랐다.

문득, 눈물 고인 그녀의 망막 위로 한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창백하리만치 흰 피부에 강렬하 인상을 풍기던 미청년, 단 한 번 그를 보았을 뿐인데도 그 청년의 인상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듯 여인의 뇌리속에 깊숙이 남아 있었다.

살아만 계신다면... 진정 살아만 계신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대죄(大罪)할 텐데...!”

여인은 회한과 안타까움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그르릉! 한차례 둔중한 굉음과 함께 뇌옥의 전면 석벽이 좌우로 갈라졌다.

(설빙... 그 계집이겠지!)

여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돌아보지도 않았다.

한데, 뚜벅 뚜벅... 나직하나 묵중한 발자국 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울렸다.

순간,

“...!”

여인은 흠칫 몸이 굳어졌다. 분명 그것은 잔설빙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었다.

(... 설마...!)

그녀는 순간적으로 뜨거운 충격과 전율에 휩싸였다.

그것은 여인 특유의 직감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굳어진 듯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뇌옥 안.

“...!”

한 명의 흑포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눈처럼 흰 피부에 주사처럼 붉은 입술, 그는 무심한 눈으로 여인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순간,

... 군공자님! ... 살아 계셨군요!”

여인은 벼락을 맞은 듯 전신을 부르르 떨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빙심(氷心), 차갑게 얼어붙은 여인의 가슴이 이 순간 크나 큰 희열로 녹아내렸다.

여인, 그녀의 이름은 묵빙현하(墨氷玄霞)였다.

 

X X X

 

대벌산(大別山).

 

안휘(安徽), 하남(河南), 호북(湖北)의 경계에 위치한 대산(大山).

정오무렵, 구워어 억! 돌연 엄청난 붕명(鵬鳴)이 대별산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어, 콰콰콰... 쐐 액! 빙판같은 북천(北天)의 일각에 문득 하나의 검은 점이 나타났다.

그 점은 삽시에 폭풍같은 기세로 확산되더니 쏘아질 듯 다가왔다.

대천붕(大天鵬)! 그것은 양 날개를 활짝 편 길이가 무려 이십 장에 이르는 거대한 대천붕이었다.

대천붕의 등, 일남일녀가 앉아 있었다.

군무현과 빙백염후, 바로 그들이었다.

하하... 염후(艶后)! 어떻소? 중원천하가 손바닥만 하지 않소?”

군무현은 무척 기분이 좋은 듯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 놀라운 일이 아닌가? 언제나 무심하기만 하던 그가 이렇게 소리내여 웃을 때가 있었다니... 여인(女人)의 힘은 실로 지대한 것임이 분명했다.

군무현의 성격에 그같은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빙백염후의 영향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빙백염후는 영혼을 잃은 강시였다. 하나, 그녀는 온통 여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숨쉬고 보고 먹고 잠을 자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천하를 얼음으로 뒤덮어 버릴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군무현의 마음을 마치 춘설(春雪)처럼 녹여버렸으니... 군무현은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르는 빙백염후에게서 훈훈한 정감을 느끽 된 것이다.

그는 웃음띤 얼굴로 호쾌하게 말했다.

가문의 원수를 갚고 천하의 혈란(血亂)이 가라앉으면 염후에게 천하를 구경시켜 주겠소!”

“...!”

그의 말을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빙백염후의 입가에는 의미모를 한가닥 미소만 희미하게 감돌 뿐이었다.

구류곡(九流谷)!

대별산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신비절지, 구류곡은 사시사철 짙은 운무에 가려져 있었다.

한데, 구류곡의 내부. 뜻밖에도 광활한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 분지의 중앙, 거대한 규모의 웅장한 장원이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구류천종(九流天宗)이 나 만가대유(萬家大儒)의 대()에 이르러 겁멸의 위경에 처하다니...!”

중년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구류천종(九流天宗)!

 

정확한 연원은 알려진 바가 없다. 모든 것이 신비(神秘)에 싸여있는 절문(絶門), 그들은 정사양도(正邪兩道)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중도(中道)를 걷는 문파였다.

그들은 무림의 대사에 관해 전혀 관여치 않았다. 하나, 구류천종은 모든 분야에 이르러 손을 대고 있었다.

구류(九流)의 인물들이 모두 만상문에 속할 뿐 아니라, 만가지 분야에 구류천종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비록 그 세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세인들은 모두 인정했다.

구류천종 조직이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는 사실을..

심지어, 천하제일의 방파로 알려진 개방조차도 그 조직력에 있어서는 구류천종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만가대유(萬家大儒)라 자칭한 중년인, 그의 안면은 더욱 어두워졌다.

강남(江南)에 가 있는 호문천위대(護門天衛隊)를 소환가히는 했으나... 그 동안 진세(陣勢)로 적을 막을 수 있을지...!”

그의 중얼거림이 막 끝났을 때였다.

! 갑자기 한 명의 인영이 급히 대전 안으로 날아들었다.

... 문주님!”

그는 청수한 인상을 지닌 중년인이었다.

총관! 무슨 일이오?”

만가대유는 중년인의 다급한 태도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급히 물었다.

총관이라 불린 중년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신무장영진세가 무너지려 합니다!”

만가대유는 그 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독황궁(毒皇宮)이나 혈륭마찰(血隆魔刹)의 마도들의 힘으로는 진세를 수월히 통과하지 못했을 텐데...?”

그는 그럴리 없다는 듯 불신의 표정을 지었다.

하나, 총관은 머리를 조아리며 침중한 어조로 보고했다.

흑도십팔절(黑道十八絶) 중 흑룡천사옹(黑龍天邪翁)이 나타나 순식간에 진세의 절반을 무너뜨렸습니다!”

흑룡천사옹(黑龍天邪翁)! 그 노괴가...!”

만가대유의 안색이 일변했다.

 

흑룡천사옹(黑龍天邪翁)!

흑도제일뇌(黑道第一腦), 기문지학(奇門之學)에 능통하며 깊고 냉철한 심기를 누구도 따를 자가 없다.

백년 내 신기황(神機皇)에게 단 한 번 패했을 뿐 더 이상의 패배를 허용치 않았던 노마두, 그 자는 만인이 공인하는 천하제일지(天下第一智)였다.

 

만가대유의 안면이 충격으로 한차례 부르르 떨렸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으헤헤... 신무장영진 정도로 안전할 줄 알았느냐?”

돌연 귓전을 긁어대는 사악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차차차 창! ... 퍼 펑!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요란한 폭음이 잇따라 터져올랐다.

와 아!”

!”

구류천종 전체는 요란한 함성으로 뒤흔들렸다.

뒤미처,

크 악!”

아아 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속속 터져나왔다.

다음 순간, ! 만가대유는 벼락을 맞은 듯 다급히 대전 밖으로 뛰쳐나갔다.

 

대전 밖!

곡구(谷口)의 진세가 무너지며 세 부류의 인물들이 질풍같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호호호...! 독황(毒皇)을 시해한 중원무림에 일만혈(一萬血)의 대가를 받으리라!”

한 명의 황의면사녀가 선두에 선 채 교구를 떨치고 있었다.

위 잉! 희디흰 그녀의 옥수(玉手)가 허공에 한 번씩 선을 그을 때마다,

크악!”

케 엑!”

... ... 독황후(毒皇后)!”

구류천룡의 인물들은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황의면사녀의 뒤, 한 명의 흑포노인이 따르고 있었다.

사악한 인상에 염소수염을 기른 노인, 바로 흑룡천사옹이었다.

만가대유, 그는 대전 밖의 광경에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그는 수하들을 향해 벼락같이 호통치며 명했다.

금붕포란(金鵬抱卵)의 진세로 막아랏! 천악단(天樂檀)은 독황후(毒皇后)를 상대하라!”

순간, 갈팡질팡하던 구류천종의 문하들은 비로소 완벽한 수비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그들은 거대한 수비진영을 이루며 침입자를 막아갔다.

하나 그때,

크하하하...! 혈륭마찰의 보살님들이 여기 있다!”

와 아!”

곡구의 좌측으로부터 수백 명의 혈승(血僧)들이 막무가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호호홋... 죽어랏!”

황의면사녀도 날카로운 교갈을 터뜨리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어, 그녀는 맹렬히 소매를 흔들었다.

크으... !”

아악!”

그녀의 주위에 진세를 형성했던 오십여 명의 구류천룡의 수하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그 광경에 만가대유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황의면사녀를 노려보며 분노의 폭갈을 내질렀다.

독황후(毒皇后)! 독천황(毒天皇)께서는 천하의 안위를 걱정하던 분이거늘 그 분의 후속인 그대가 어찌 이리 잔혹하단 말인가?”

스슥! 그는 독황후의 앞으로 내려서며 격분을 금치못했다.

하나, 황의면사녀 독황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호홋... 본후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너희 중원무림이다!”

그녀는 독살스러운 교소를 터뜨리며 만가대유를 노려보았다.

다음 순간, 화르르르...! 돌연 한 무더기의 비릿한 독무(毒霧)가 만가대유의 앞으로 확 밀려들었다.

 

< 四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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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四 章

 

            氷屍誘惑

 

 

 

천이백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다시 깨어난 빙백염후(氷魄艶后), 그녀는 군무현을 주시하며 초조함을 금치못했다.

(내가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불과 일각(一角)... 그 사이에 이자의 영혼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문득, 그녀의 옥용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천기(天機)에 의하면 실패한다고 나타났다. 하나... 아니할 수 없는 일...!)

그녀는 결연한 눈빛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 순간, 스스스... 돌연 그녀의 전신이 엄청난 요기로 뒤덮였다.

 

반혼환령이체술(返魂幻靈移體術)!

사술(邪術)의 최고봉, 자신의 영혼을 타인의 신체로 옮기거나 타인의 영혼을 갈취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기오한 대법.

빙백염후는 지금 그 반혼환령이체술(返魂幻靈移體術)을 펼치려 하는 것이었다.

하나, 그녀는 너무도 강한 영혼의 소유자를 상대로 선택했으니... 뉘라서 알 수 있으랴?

천하제일의 정력가(定力家)를 그 상대로 선택하게 한 것은 하늘의 오묘한 안배였음을.

폭발할 듯한 요기로 전신을 감싼 빙백염후,

순간,

!”

문득 그녀는 안색을 이지러뜨리며 짧은 비명을 토했다.

그녀는 이내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상상 이상으로 군무현의 정력은 너무도 강했다.

그는 반혼환령치체술에 걸려들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솜이 물을 빨아들이 듯 고스란히 흡수하는 것이 아닌가!

... ... 천기(天機)... 천기를 어길 수는 없단 말인가?”

빙백염후는 절망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패배했다. 그것도 아주 철저히 당하고 만 것이다.

그녀의 영혼을 군무현의 강인하고도 흔들림없는 정신력에서 산산히 파열되고 말았다.

... ...!”

빙백염후는 흐느끼듯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하나, 문득 그녀는 연신 경련을 일으키는 처연한 나신을 일으키며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손해볼 것은 없다... 천향염시(天香艶屍)가 되어... 백 년을 더 살수 있을테니...!”

한순간, 화르르르... 위 잉!

그녀의 몸을 뒤덮고 있던 요기가 극()에 이른 듯 확 퍼져 올랐다.

그와 함께, 빙백염후의 두 눈에서 스르르 광채가 사라졌다.

마치 바람 속에 흔적없이 잠드는 화향(花香)처럼...

그때, 우르르... 콰쾅! 군무현의 태양천화굉염신공의 위세는 더욱 팽창되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폭발할 듯 치솟는 극양지기는 광한전 내의 모든 기물을 산산히 부수어 버렸다.

콰르릉 쿠쿵... 엄청난 폭음이 광한전을 허물어뜨릴 듯 거세게 뒤흔들었다.

하나, 그 순간에도 여전히 군무현의 두 눈은 깊고 고요하기만 했다. 문득 그는 두 눈을 떴다.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리다니...!”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침음성을 발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주위는 온통 난장판으로 화해 있었다.

광한전 내의 모든 것은 산산히 파괴되거나 녹아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하나, 단 하나, 파괴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여인의 몸(女體), 고금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몸이었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으로 빙백염후를 바라보았다.

“...!”

빙백염후, 그녀는 다소곳이 무릎을 모은 채 군무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극히 요염하고도 선정적인 자태, 그것은 실로 사내의 혼백을 빼앗기에 충분한 뇌살적인 아름다움이었다.

한데, 기이한 일이었다. 눈빛, 빙백염후의 아름다운 두 눈에는 일정한 촛점이 없어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군무현은 가슴이 뜨끔해짐을 느꼈다.

(강시가 되다니...!)

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그러했다. 빙백염후는 놀랍게도 영혼을 잃은 강시로 변해버린 것이 아닌가?

살아 있으나 혼()이 없고, 눈빛이 있으나 이미 생자(生者)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천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났으나 결국 희생치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송두리째 자신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나, 그녀가 잃지않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이었다.

천년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녀는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비록 혼을 잃은 강시녀가 되어버렸으나 고금제일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군무현, 그는 한동안 침중한 표정으로 빙백염후를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묵묵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소곳이 앉아있던 빙백염후도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군. 이 여인은 심령(心靈)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의아로움을 금치못하며 중얼거렸다.

이지를 상실한 빙백염후, 그녀는 이제 군무현의 일부나 마찬가지인 그림자가 된 것이다.

미모 하나만으로도 능히 천하를 혈풍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고금제일미인(古今第一美人), 한데 이제 그 완벽한 미()를 소유한 여인은 한 사냉게 종속되고 말았다.

영원히 그녀는 군무현의 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천년 이전의 미인(美人)과 천년 후의 기남아(奇男兒)!

그들의 만남은 과연 장래에 어떤 신화(神話)를 낳을 것인가?

그때, 문득 군무현은 빙백염후가 아직도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나신임을 느꼈다.

(무엇인가 걸칠 것을 찾아주어야겠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의 모든 기물은 산산이 박살나고 없었다.

하나, 박살난 만년빙옥의 침상 밑에 하나의 시커먼 철함이 뒹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년한철로 만든 것이라 부서지지 않았군!”

군무현은 철함을 집어들며 중얼거렸다.

철함은 묵직한 한철로 된 자물쇠로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 팍팍! 군무현이 자물쇠를 쥐고 불끈 힘을 주자 이내 한철로 된 자물쇠는 모래알처럼 부서져 박살났다.

열려진 철함 안, 몇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먼저 한 벌의 백의(白衣)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결고운 빙잠사로 만들어진 구천신녀(九天神女)의 의복이었다.

빙백염후가 걸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군무현은 빙잠백의를 꺼내 빙백염후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걸치시오!”

“...!”

그 말에 빙백염후는 공손히 옷을 받아들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군무현은 눈을 돌려 다시 철함 안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하나의 가죽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가죽 주머니 안, 그 안에는 열여덟 자루의 단검(短劍)이 들어 있었다.

 

천라빙백검(天羅氷魄劍)!

 

단검의 손잡이네는 그와같은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빙백염후의 천라빙백구천류(天羅氷魄九天流)를 펼치는 명기들이군!”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천라빙백검이 든 가죽 주머니를 빙백염후에게 돌려주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

그는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광한전 전체가 환하게 밝아진 듯 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군무현은 일순 넋을 잃은 듯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빙백염후를 주시했다.

어느새 빙잠백의를 걸치고 선 빙백염후, 그녀의 모습은 황홀할정도로 아름다웠다.

구천신녀(九天神女)가 하강한 듯 은은하고 교교로운 자태, 빙장백의는 빙백염후의 모습을 한결 고아하고 품위있게 정돈해 주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아름다움에서 완숙하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었다.

군무현은 새삼 빙백염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다시 철함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천라빙백검의 밑에는 두권의 책자가 들어 있었다.

낡을대로 낡은 고서(古書), 군무현은 그 중 한 권을 집어들었다.

 

구천비사록(九天秘事錄)!

 

고서의 겉장에는 고전체로 그와같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이미 청년 이전에 사라진 구천사령궁(九天邪靈宮)의 비전이었다.

 

구천사령궁(九天邪靈宮)!

 

그들은 바로 고금제일사파(古今第一邪派)가 아닌가?

구천비사록 안에는 실로 가공할 사도절기가 집약적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태양천제와 빙백염후, 그 절대무적의 두 고수의 합공에 의해 당시 구천사령궁은 기왓장 하나 남김없이 괴멸했다.

하나, 빙백염후가 그때 얻은 구천비사록으로 인해 결국 두 고수는 동귀어진하게 된 것이다.

또 한권의 비급, 그것은 특이하게도 빙잠사로 엮어 만든 것이었다.

 

빙백천후보(氷魄天后譜)!

 

표지에 유려하고도 섬세한 필체로 쓰여진 다섯 글자, 그것을 본 순간 군무현은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빙백천후보(氷魄天后譜)...!”

그는 신음하듯 나직이 중얼거리며 문득 빙백염후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 여인이 빙백염후란 말인가?)

그는 불신의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하나, 그의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빙백염후는 촛점없는 멍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무현은 침음하며 다시 빙백천후보로 눈길을 돌렸다.

 

태양천화굉염신공은 너무도 가공스럽다. 본후(本后)의 만겁빙백명공강(萬劫氷魄冥空强)이 태양천제의 심맥을 마디마디 끊어 놓았으나... 본후의 심맥도 태양천화굉염신공에 의해 재가 되어 버렸다.

 

거기까지 읽은 군무현은 나직한 신음성을 발했다.

문득, 그는 빙백염후를 향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이리와 보시오!”

“...!”

그의 말에 빙백염후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군무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군무현은 손을 내밀어 빙백염후의 손목을 잡아보았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가볍게 굳어졌다.

역시...!”

놀라운 일이었다.

빙백염후, 그녀의 심맥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아예 흔적조차 없었다.

대신, 지극히 강한 기운이 그녀의 전신에 두서없이 널려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대가... 빙백염후였군!”

군무현은 신음과도 같이 침중한 음성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빙백염후! 그녀는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 중 일대천(一大天)이었다.

고금삼대기인 중 일인인 천년의 시공을 날아넘어 강시가 된 것이 아닌가?

그것도 바로 군무현 자신에 의해서, 군무현은 침중한 표정으로 다시 빙백염후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살아나는 길은 반혼환령이체술(返魂幻靈移體術)로 타인의 영혼을 갈취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천기를 보았다. 천기에 의하면 천년 이후에 한명의 인물이 광한전에 든다. 그러나... 천기는 오히려 나의 영혼이 그에 의해 부서진다고 나왔다...!

 

그 내용을 접한 군무현은 다시 한 번 무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그랬던가? 나도 모르게 영혼을 빼앗길 뻔했단 말인가?”

그는 하마터면 나환섭밀대법에 빠져들 뻔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이었다.

빙백염후의 글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을 얻는 길은 그것 뿐... 망설일 수는 없다. 요행으로 천기를 벗어나면 본후는 환생하여 천수를 누길 것이며... 실패하면 천향염시(天香艶屍)가 되어 그의 처첩으로 백년을 살게될 것이다. 이제... 잠혼영면술(潛魂泳眠術)로 천년의 긴 잠에 들게 될 것이다.

빙백염후(氷魄艶后) 단목화예!

 

군무현은 기광을 빛내며 빙백염후를 돌아보았다.

“...!”

아득하고도 촛점없는 시선, 빙백염후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모호한 시선으로 군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무현은 문득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고금제일의 여고수를 곁에 두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군!”

그 말에 빙백염후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영혼을 잃은 강시, 강시가 웃는다.

빙백염후의 입가에 흐릿하게 떠오르는 그것은 분명 인간의 미소였다.

기이하지 않은가? 강시가 웃다니...

하나, 그 미소는 너무도 황홀하여 빙백염후에게 썩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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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千二百年前美人

 

 

 

우르르... 위 잉!

엄청난 진동음과 함께 시뻘건 불길의 회오리가 지하광장을 가득 메웠다.

하나, 그 광휘는 이내 청색(靑色)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빛은 점점 백색(白色)을 띄기 시작했다.

신비로운 청백색의 광휘로 바뀐 것이다.

한순간, 스스스...! 지하광장을 뒤덮었던 청백색의 광휘가 안개 걷히듯 모두 사라졌다. 그러자 드러나는 광경.

군무현, 그는 지금 용암 위에 둥실 떠 있었다.

무쇠라도 녹여버리는 용암의 살인적인 열기에도 그는 조금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부글... 부글... 바로 그의 발 아래서 엄청난 기세로 끓고 있는 용암. 하나, 그는 맹렬한 용암의 열기도 군무현의 머리카락 한올조차 태우지 못했다.

문득, 군무현은 고개를 흔들며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태양천화굉염신공을 구성(九成)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구나!”

!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태양천화굉염신공의 구성 성취, 직접 그것을 창안한 태양천제가 최후로 오른 경지가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한데, 군무현은 이미 그 구성의 경지에 오른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중얼거렸다.

내가 아무리 태양신맥을 지녔다고는 하나 일조일석(一朝一石)에 들 수는 없지. 청백지경에는 수월하게 이르렀으나 백광지경(白光之境)에 들려면 더욱 분발해야 한다!”

이어, 스슥! 그는 가볍게 몸을 움직여 태양천제의 앞으로 내려섰다.

(이런 분이라면 사부(師父)로 모시기에 충분하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존경의 눈으로 태양천제를 우러러 보았다.

노선배님! 후배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시 들르게 되면 유체를 중원으로 모실 것입니다!”

군무현은 태양천제를 향해 공손히 구배(九拜)를 올렸다.

이어, 그는 문득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묵빙현하라고 했던가? 이런 기연을 얻게해준 그녀에게 감사해야 겠군!”

그는 고소를 지으며 옆의 석벽을 향해 다가갔다.

다음 순간, 그는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콰 쾅! 불과 삼성의 태양천화굉염신공을 사용했을 뿐이건만 그의 일장에 삼장 두께의 화강암의 석벽이 엿가락처럼 녹아버렸다.

이윽고, 군무현은 뻥 뚫려버린 전면을 향해 성큼 들어섰다.

한데, 석벽 안으로 들어서던 군무현, 일순 그는 흠칫하며 몸이 굳어졌다.

실로 엄청난 한기가 전신을 짓쳐드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태양천화굉염신공을 익힌 군무현마저도 전신이 으스스하게 떨릴 정도의 지독한 한기,

대단하군!”

군무현은 무심히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석벽 안, 그곳은 방대한 넓이의 또 다른 광장이었다.

본시, 이곳은 극히 화려한 전각의 내부였다.

한데, 놀랍게도 광장 전체는 온통 두터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지 않은가?

이곳이 광한전(廣寒殿)인가?”

군무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광장의 중앙으로 다가갔다.

한데 그 순간,

!”

갑자기 군무현의 시선이 굳어졌다. 그의 두 눈은 한껏 부릅떠졌다.

광장의 한쪽, 만년빙옥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화려하고 넓은 침상이 놓여 있었다.

한데, 침상 위, 한 명의 전라여인이 잠자듯 반듯이 누워있지 않은가?

그 여인을 본 순간,

...!”

갑자기 군무현의 눈빛이 야수처럼 변하며 욕정으로 이글거렸다.

우물(尤物)!

침상 위의 여인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더 이상 형용할 수 없는 극치의 완벽한 미()를 지닌 여인, 그녀의 얼굴은 신()이 빚어낸 걸작품 중 가장 아름다왔으며 그 몸매는 가히 뇌살적이었다.

사정없이 영혼을 뒤흔드는 신비한 마력(魔力)이 여인의 전신에서 폭발하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군무현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갖고 싶다!)

그는 오직 그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온통 눈앞을 가득 채우는 현란한 여인의 나체, 군무현은 참을 수 없는 충동으로 뜨겁게 피가 끓어 오름을 느꼈다.

!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금을 통해 가장 강한 사법(邪法)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나환섭밀대법(裸幻攝密大法)!

 

상고시대 현녀(玄女)가 황제(皇帝)의 총애를 자신에게 묶어두기 위해 만든 사이한 대법, 그것은 이미 천년 이전에 실전된 것이었다.

여인을 천하무적(天下無敵)으로 만들어주는 대법(大法),

 

으으...!”

군무현은 미처 경계할 틈도 없이 나환섭밀대법(裸幻攝密大法)에 걸려들고 말았다.

사내라면 누구도 이 대법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군무현은 극양지기가 넘쳐 흐르는 피끓는 나이의 청년이 아닌가?

 

호호호... 정랑 어서 오세요!

 

군무현의 귓전에 자극적인 여인의 교소가 들려왔다.

사내의 본능을 자극하는 끈끈한 유혹성.

... 보라! 침상 위의 나녀가 몸을 일으키며 뇌살적인 교태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

군무현은 터질듯한 본능적인 욕구에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안색은 고통으로 이지러졌으며 부릅뜬 두 눈에는 핏발이 섰다.

그 순간, 화르르르...! 그의 몸 속에서 가공할 극양지기가 불붙듯 확 일어났다.

뜨거운 본능의 욕구가 태양천화굉염신공을 불러 일으킨 것이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우르르... 쿠릉...! 태양천화굉염신공은 군무현이 일보를 움직일 때마다 배로 강해졌다.

마침내, 화르르... 콰 쾅! 태양천화굉염신공은 청백지경에 이르렀다.

그 가공할 열기는 광한전의 만년빙을 모조리 부수어 버렸다.

천행(天幸)이랄까?

쿠 쿵! 때마침 집채만한 얼음덩이가 군무현의 머리 위로 와르르 떨어져 내렸다.

파파팍! 얼음덩이는 군무현의 일장 위에서 박살나 흩어졌다.

하나, 파 팍! 한덩이의 얼음조각이 군무현의 어깨를 벼락같이 후려치며 녹아내렸다.

!”

극히 짧은 순간 군무현은 비명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내가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추태에 당황했다. 이어, 그는 눈앞의 나녀를 노려보며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 계집들의 몸뚱이에 정신을 잃다니...!”

그는 입술을 악물며 알몸의 미녀를 노려보았다. 하나, 이내 그의 눈빛이 다시 격렬하게 흔들렸다.

... ...!”

그의 입에서는 절로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침상 위의 나녀, 그녀가 펼치고 있는 사법(邪法)은 고금제일(古今第一)이었다.

어떠한 경우도 사내라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대법,

한순간,

크윽...!”

군무현은 자신의 혀를 질끈 깨물었다.

강렬한 여체의 유혹과 본능의 충동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골수까지 파고드는 고통이 다소의 이성을 회복시켜 주었다.

군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군무현아! 하찮은 계집의 유혹에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 위에 서려 하느냐?”

다음 순간, 그는 나녀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던져진 도전을 피하지 않는 것이 적룡세가의 법()! 이 계집의 사이한 술수를 꺾어 나의 의지를 시험하리라!”

그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눈앞의 여인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육감적이고 뇌살적인 여인의 나신, 그것은 너무도 강렬한 유혹이었다.

...!”

문득 군무현의 입가로 주르르 피가 흘러내렸다.

다시 한차례 그는 자신의 혀를 깨문 것이다.

여체의 유혹을 극복하기 위한 고통은 차라리 처절할 정도였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으며 군무현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겪는 가장 어려운 시련이라 할 수 있었다.

(... 당장이라도 저 몸을 안아버리고 싶다!)

충혈된 군무현의 두 눈에 강렬한 욕념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하나, 그는 끝내 한치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 강시같은 계집과의 싸움은 백년 면벽하는 것보다 더한 효능이 있다!)

군무현은 치미는 욕정을 간신히 억제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침상 위의 나녀, 그녀는 여전히 잠자듯 반듯이 누워 있었다. 하나, 그 모습은 군무현의 시야에 끝없는 환상과 자극적인 요기(妖氣)를 불러일으켰다.

“...!”

군무현의 몸은 그 자리에 굳어진 듯 미동도 없었다.

화르르르...! 다만 태양천화굉염신공의 극양지기만이 만상을 재로 만들어 버릴 듯 극렬하게 일어날 뿐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돌연 잠자듯 감겨져 있던 나녀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와 함께, 파파앗! 그녀의 두 눈에서 가공스런 백광(白光)이 소나기처럼 작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슥...! 침상 위의 여인은 고혹한 자태로 스르르 나신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순간,

(!)

군무현은 눈앞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눈이 빙글빙글 돌아갈 정도로 현란하고 성숙한 여체, 여인이 몸을 일으킴에 따라 앞가슴의 풍만한 유방이 자극적으로 출렁거렸다.

그녀는 강렬한 백광이 이는 시선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

군무현은 지극히 음탕한 미소를 지으며 나녀의 알몸을 노려보았다. 하나, 자세히보면 그의 눈빛은 호수처럼 깊게 가라앉아 추호의 동요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 눈빛을 대하는 순간, 나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한가닥 놀람의 빛이 스쳤다.

(나환섭밀대법(裸幻攝密大法)을 극()하는 사내가 있다니...!)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군무현의 한없이 고요하고 잔잔하 눈빛을 읽으며 내심 경악을 금치못했다.

(이 자는... 나환섭밀대법에 걸려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것을 터득하고 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부르르르...! 나녀의 교구가 뇌전을 맞은 듯 전율을 일으켰다.

그렇다. 군무현, 그는 놀랍게도 나녀가 펼친 나환섭밀대법을 스스로 깨우치고 있었다.

지극한 고통과 싸운 그 짧은 순간에, 알몸의 여인, 그녀는 군무현의 무서운 의지와 능력에 경악하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야욕은 천하(天下)보다 컸기에,

(태양천제(太陽天帝)보다 열배 더 강해질 수 있는 자다. 이자의 영혼을 나의 것으로 취한다면 나는 천년을 더 살 수 있다!)

나녀는 탐욕과 기대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아아! 이 얼마나 경악할 사실인가? 대체 이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그녀를 일컬어 세인들은 고금제일미(古今第一美)라 불렀다.

그것 말고도 그녀의 일신에 붙여진 영예로운 이름이 또 한 가지 있었다.

고금최강(古今最强)의 여고수(女高手)! 천하를 통틀어 가장 강했던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여인최고봉(女人最高峯)!

더구나, 그녀의 미모 또한 고금제일이었으니 이 얼마나 영예스러운 일인가?

하나, 인간은 태어나서 언제가 한 번은 죽는 법, 죽음은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여인, 그러나 고금최강이라 불린 이 여인은 죽음을 거부했다.

그녀는 죽음 직전에 배교의 사술(邪術)을 스스로 시전했다.

그것은 인세에 존재하는 최고의 사법이었다.

인간을 장구한 세월동안 가사상태로 잠들게 하는 비술(秘術), 그 비술로 여인은 무려 일천이백년의 세월을 가사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운명(運命)이 그녀를 깨워 일으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군무현의 태양천화굉염신공이 그녀를 가사상태에서 깨어나게 만든 것이었다.

그녀의 명호는 빙백염후(氷魄艶后)!

천이백년 전 사람들은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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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二 章

 

                      太陽天火經

 

 

 

동굴 안! 그곳은 통로며 사면 벽이며 할것없이 모두 만년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동굴 속을 전진하던 군무현, 문득 그는 채 십장을 들어가지 못해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동굴의 중앙, 한 명의 인물이 투명한 얼음에 둘러싸인 채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일신에 홍포를 걸친 위맹한 인상의 노인,

“...!”

군무현은 강렬한 기광을 발하며 홍포노인의 시신 앞으로 다가섰다.

순간, 그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홍포노인, 그는 이미 죽었으나 너무도 생생한 모습이었다.

첫눈에 보기에도 그는 강렬한 기질이 물씬 풍겼으며 과격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뇌신(雷神)을 연상케 하는 인물,

(보아하니 중원인(中原人)인 듯 한데... 어쩌다 이런 곳에서 죽었단 말인가?)

군무현은 미간을 모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때, 시선을 옆으로 돌리던 그는 흠칫했다. 홍포노인이 쓰러져 있는 얼음바닥, 그곳에 깎은 듯한 글씨가 패여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죽음이... 다가온다. 후일... 이 빙백마동(氷魄魔洞)의 한기에 얼어 죽지 않는 자가 이곳에 들기를 빌며... 화룡거사(火龍居士)가 적는다...!

 

화룡거사(火龍居士)!”

군무현은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다.

 

화룡거사(火龍居士)!

이미 백년 이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신비기인, 신분이나 출신, 무공 정도가 완전히 신비에 가려져 있어 행적 또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한데, 그런 절세기인이 천빙애의 한 빙동(氷洞)에서 빙인(氷人)으로 발견된 것이 아닌가?

군무현, 그는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 동굴 안에는 살인적인 한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천하에서 가장 막강한 체질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군무현의 눈길이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화룡거사의 글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노부 화룡거사는 태양천문(太陽天門)의 제 삼십일대 전인이며 태양천문의 조사(祖師)는 태양천제(太陽天帝)라는 분의 후손이다!

 

... 태양천제(太陽天帝)!”

군무현은 눈을 크게 뜨며 경악의 외침을 터뜨렸다.

 

태양천제(太陽天帝)!

 

이 얼마나 놀라운 이름인가?

고금무적(古今無敵)의 십대고수들, 태양천제(太陽天帝)는 바로 천지십강(天地十强)의 일인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천지십강 중에서도 최강(最强)으로 불리던 삼인 중의 일인 이기도 했다.

삼인(三人)의 강자, 그들을 일컬어 다음과 같이 칭했다.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

혈천종(血天宗)!

태양천제(太陽天帝)!

빙백염후(氷魄艶后)!

 

그들은 모두 천년 이전의 전설적인 인물들이었다.

태양천제는 바로 그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 중의 일인이었다. 동시에, 그는 빙백염후(氷魄艶后)와는 상극이었다.

최강의 적()과 동시대의 공존해야 했던 불운한 영웅(英雄).

그의 글은 계속 이어졌다.

 

조사 태양천제(太陽天帝)께서는 빙백염후(氷魄艶后)와 동귀어진하셨다. 하나, 두분이 동귀어진하신 곳이 빙백궁의 주위라고만 알려졌을 뿐 누구도 두 분의 유해를 거두지는 못했다...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천제와 빙백염후, 그들은 모두 일천이백년 전의 인물들이었다.

세인들의 기억 속에 이미 잊혀져간 고인들, 그들은 어느해 동시에 무림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로 일맥(一脈)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우리 태양신문(太陽神門)은 조사님의 유해를 거두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나... 결국 빙백궁의 방해로 인해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빙백궁과 세불양립(世不兩立)의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본문과 빙백궁의 수뇌들은 매 이십년 마다 비밀리에 대결을 벌여왔다. 본 거사(居士)도 소의빙파(素衣氷婆)와 겨루다가 천빙애가 허물어져 이곳으로 추락한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글씨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군무현은 시선을 집중하여 나머지 글을 읽어 내려갔다.

 

죽음이... 다가온다.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니나, 인세(人世)에 태양일맥(太陽一脈)의 후사를 정해놓지 못한 것이... ()이 될 뿐... 이 글을 읽는 자는... 동천목(東天目) 광양동부(廣陽洞府)에 가서... 태양... 일맥의 뒤를 이어주기를...!

 

화룡거사의 글은 거기에서 끝나 있었다.

사력을 다하여 쓴 것인 듯 끝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다.

다 읽고난 군무현, 그는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결국 빙백궁은 빙백염후의 후예들이 세운 문파였군!”

그는 얼음 속에 둘러싸인 채 죽어있는 화룡거사를 주시했다.

문득, 그의 얼굴에 어떤 결의의 빛이 떠올랐다.

거사의 심원을 풀어드리겠습니다. 후배가 이곳을 나가게 되면 기재(奇才)를 찾아 태양천문의 후사를 이어줄 것입니다!”

그는 화룡거사를 향해 다짐했다.

이윽고, 그는 눈을 돌려 동굴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동굴의 안쪽, 그곳에는 빙동 내부의 얼음들이 서로 눈부신 빛을 반사하며 신비한 광휘를 뿌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실로 경이로웠다.

군무현은 잠시 멍하니 그 아름답고 신비한 광경을 주시했다. 이어, 그는 비로소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깨닫고는 고소를 지었다.

달리 길이 없다. 동굴을 따라갈 수밖에...!”

이어, 그는 화룡거사의 시신을 지나 동굴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굴의 통로는 끝도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렇게 천여장 정도 들어갔을까?

문득, 주위의 벽과 통로를 덮고있던 얼음이 사라졌다.

대신, 시커먼 입을 쩍 벌린 화강암의 동굴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흠칫하며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열기가 느껴진다!)

과연,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훈훈한 열기가 느껴졌다.

(용암이 흐르는 길이 이 주위에 있는 듯하다!)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그로부터 다시 천여장을 더 나아갔다.

그러자, 처음에는 훈훈하게 느껴지던 열기가 갈수록 강렬해지며 동굴 안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아닌가?

한순간,

“...!”

군무현은 흠칫하며 눈썹을 모았다. 그의 전면, 시뻘건 광휘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하화산(地下火山)이다!)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리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다시 얼마쯤 더 나아가자 하나의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엄청난 규모의 지하광장!

그 중앙, 방원 이십장의 거대한 웅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한데, 부글... 부글... 우르릉...! 지금 그 거대한 웅덩이는 온통 뒤집혀질 듯 진동을 일으키며 들끓고 있었다.

시뻘건 용암, 끓고 있는 것은 물론 용암이었다.

매케한 유황 연기가 온통 지하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용암의 열기는 실로 가공할 정도였다. 쇠를 녹여버릴 듯한 엄청난 열기.

하나, 군무현은 별로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몸속에는 극렬정뇌수의 극랭한 기운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광장 안으로 접근했다.

한데,

“...!”

일순 그는 흠칫하며 멈추어 섰다.

용암이 들끓고 있는 웅덩이 건너편, 누군가 정좌한 자세로 굳은 듯이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스슥...! 군무현은 유황연기를 뚫고 순식간에 웅덩이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홍포노인,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좌화한 상태였다.

하나, 그 모습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을뿐더러 지금도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또한, 그의 전신에서는 숨막히는 엄청난 기도가 뻗치고 있었다.

(화룡거사보다 백배 뛰어난 기도가 아닌가?)

군무현은 홍포노인을 주시하며 경악을 금치못했다.

엄청난 패도지기(覇道之氣)에 완전히 압도 당하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군무현은 홍포노인의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그는 홍포노인의 앞에 놓여있는 하나의 옥함을 발견했다.

미생 군무현! 결례를 범하겠습니다!”

군무현은 홍포노인의 시신을 향해 공손히 일배를 했다.

이어, 그는 조심스럽게 옥함을 들어 뚜껑을 열었다.

옥함 안, 한 권의 앙피지 책자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책자와 함께 하나의 검붉은 빛을 띈 륜()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군무현은 기광을 빛내며 옥함 안의 륜을 집어들었다.

순간, 그의 안색이 일변했다.

(족히 삼백근은 나가겠군!)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륜의 무게는 실로 엄청났다. 하나, 무게에 반해 그 크기는 한 자가 채 안되는 소형(小形)이었다.

기이한 점은 또 있었다. 그것은 륜()이 분명했으되 날이 없지 않은가? 또한, 그것에서는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군무현은 기이함을 느끼며 륜을 내려놓았다.

이어, 이번에는 양피지로 된 비급을 집어들었다.

비급은 몹시 낡아 있었으며 표지에는 고전체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태양천화경(太陽天火經)!>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급변했다.

... 혹시... 이분이 바로...!”

그는 경악의 표정으로 급히 비급의 겉장을 넘겼다.

그곳에는 역시 고전체로 웅휘한 필체가 적혀 있었다.

 

태양천제(太陽天帝)가 남긴다!

그 첫줄을 본 군무현, 그는 흥분과 격동을 금치못했다.

... 역시...!”

그는 가슴이 세차게 쿵쾅거림을 느꼈다.

 

태양천제(太陽天帝)!

 

그 엄청난 이름 앞에 격동하지 않을 자 누가 있겠는가?

이윽고, 군무현은 격동하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다음 글을 읽어내려 갔다.

 

中略... 빙백염후와 본제(本帝)는 피차간에 희생치 못할 중상을 입었다. 그리하여 본제는 이곳 천화부(天火府)로 왔고 빙백염후는 후면의 광한전(廣漢殿)으로 들었다. 연자(緣者)는 우선 이곳에서 본제의 유학을 익힌 뒤 광한전으로 들라. 빙백염후가 한 가지 사이한 대법(大法)을 펼쳐 놓았음을 우려해서이니라... 後略...

 

군무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사이한 대법이라고...?)

그는 내심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다시 태양천화경(太陽天火經)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태양천화경!

그것의 맨 앞부분에는 고금최강의 극양기공이 실려 있었다.

 

태양천화굉염신공(太陽天火轟焰新功)!

 

이것이 그 극양기공의 이름이었다.

태양(太陽)과도 같은 극양지기를 일으키는 신공!

태양천화굉염신공이 극에 이르면 일백장을 초토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연성 단계에 따라 처음에는 붉은 광휘를, 구성(九成)에 이르면 청백색의 신비한 광채를 발휘한다.

그리고, 십이성에 이르면 그것은 눈부신 백색광휘를 나타낸다.

십이성의 경지, 그것은 만년한철 조차 단번에 재로 만들어 버리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

하나, 결코 그것은 범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고한 경지였다. 그것은 태양천제가 남긴 글로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본제도 청백(靑白)의 광염을 일으키는 경지밖에 이르지 못했다. 태양천화굉염신공을 백광지경(白光之境)으로 연마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특징을 요한다. 선천적으로 극양신맥(極陽神脈)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그것을 읽은 군무현, 그는 하늘이 내린 절묘한 안배에 감사함을 느꼈다.

마치 나를 위해 창안하신 신공처럼 느껴지는군!”

군무현이야말로 천지지간에서 가장 강한 극양신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희세의 기절맥을 소유한 군무현, 고금최강자였던 태양천제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해 놓은 듯했다.

군무현은 기대와 흥분을 누르며 다음의 신공을 훑어 보았다.

 

태양천뢰폭(太陽天雷爆)!

 

태양천화굉염신공을 한군데로 집약, 일거에 쳐내는 수법이다. 태양천화굉염신공만으로도 일백 장을 초토화로 만들 수 있거늘 이를 집약하여 쳐낸다면 가히 그 위력을 상상하고도 남으리라.

 

군무현은 태양천제의 설명을 읽으며 혀를 내둘렀다.

태양천제 노선배님을 특별히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에 두신 이유를 알것같다. 수라혈영파천무가 강하되 결코 태양천뢰폭(太陽天雷爆)과 비교될 수는 없다!”

그는 태양천제에 대해 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

이어, 그는 다시 비급으로 눈길을 돌렸다.

태양천화경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무공, 가장 강한 신공절기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태양굉폭겁멸륜(太陽轟爆劫滅輪)!

 

이는 바로 옥함 속에 들어 있는 륜, 즉 태양굉폭륜(太陽轟爆輪)으로 펼치는 무공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절기가 아니었다.

()의 미증유의 힘이 천지 밖으로 쏟아지며 펼쳐지는 가공할 절기, 태양굉폭겁멸륜이 펼쳐지는 순간 천하에는 또 하나의 태양(太陽이 생기리라.

그 위력은 가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군무현은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 어찌 인간이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경악을 금치못하며 망연자실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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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一 章

 

                      神秘氷洞

 

 

 

군무현, 그는 방금전 시녀가 놓고간 빙차(氷茶)를 음미하며 난설홍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스르르... 문득 방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한 명의 여인이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섰다.

하나, 그녀는 난설홍예가 아닌 예의 전설빙이었다.

군무현의 시선에 잔설빙은 고개를 약간 숙인 뒤 말했다.

제일공주께서 공자를 직접 만년빙지의 서식지로 오시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알겠소. 안내하시오!”

군무현은 몸을 일으키며 선 뜻 대답했다.

잔설빙은 두말 않고 몸을 돌려 먼저 방을 나섰다. 여전히 얼음같이 싸늘한 표정, 군무현도 곧 그녀의 뒤를 따랐다.

다음 순간, 스슥...! 두 사람은 삽시에 빙백궁을 벗어났다.

잔설빙의 속도는 실로 엄청났다. 그녀는 군무현이 따라오건 말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한데, 스윽! 한순간 잔설빙의 신형이 급속히 빨라지더니 어느 한곳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

! 군무현은 흠칫했으나 이내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한데, 잔설빙을 뒤따라 한곳으로 들어선 순간,

이곳은...!”

군무현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그는 짙은 검미를 꿈틀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곳은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지각이 쩍 갈라진 천인단애가 아닌가?

휘이 잉! 골수를 파고드는 음습한 바람만이 단애를 휩쓸고 있었다. 천길 절벽이 아스라이 내려다 보이는 천험의 오지,

이곳에 만년빙지가 서식한단 말인가?”

군무현은 의혹의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나, 그 말에 대답한 사람은 잔설빙이 아니었다.

네게 줄 만년빙지는 없다!”

돌연 군무현의 등 뒤에서 차가운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

군무현은 순간 흠칫 몸이 굳어졌다. 하나, 그는 냉담한 얼굴로 천천히 돌아섰다.

돌아서는 그의 눈에 한 여인의 모습이 비쳐들었다. 일신에 짙은 흑색궁장을 걸친 여인, 그녀는 훤칠한 키에 이국적인 미모가 물씬 풍기는 미인이었다.

하나, 그녀는 아름다우나 화사함을 잃은 빙화(氷花)였다.

묵빙현하의 뒤, 네명의 백의여인이 그림자처럼 우뚝 서 있었다.

(함정에 빠졌군!)

군무현은 고소를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어쩌면 미리 예상했던 일인지도 몰랐다.

그대는...?”

군무현은 힐끗 묵빙현하를 주시하며 물었다.

빙백궁의 제이궁주 묵빙현하가 본녀다!”

묵빙현하는 칼로 잘라내듯 차갑고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순간, 군무현의 영민한 두뇌는 신속히 회전했다.

(빙백궁의 전대 주인의 신상에 무슨 일인가 있다. 그 사이에 제일공주 난설홍예와 제이공주 묵빙현하가 실권을 놓고 암투를 벌이고 있다. 지금 묵빙현하는 나를 난설홍예의 동조자로 착각하고 있다...!)

그의 추측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사태를 짐작한 그는 냉담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빙백궁 내부에 어떤 알력이 있든지 간에 그것은 본인이 알바 아니오. 분명히 말하건대 본인은 그대들의 알력에 대해서는 무관하오. 그대들과 다툴 하등의 이유가 없소!”

그는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하나, 묵빙현하가 그 말을 믿을 리 없었다.

마음대로 지껄여라. 곧 천빙애(天氷崖)에 묻히게 될테니까!”

그 말을 끝냄과 함께, 스슥...! 그녀는 유령처럼 몸을 움직여 네 명의 백의여인들 사이에 섰다.

군무현은 일순 흠칫했다.

(저들은 강시가 아닌가?)

그는 네 명의 백의여인들을 주시하며 눈썹을 꿈틀했다.

전혀 표정이 없는 네 명의 백의여인들, 놀랍게도 그녀들은 혼()이 없는 강시였다.

(골치아프게 되었군.)

군무현은 고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피를 보기를 원하는가?”

하나, 묵빙현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네 명의 강시와 손을 마주 잡았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급격히 변했다.

(연체합벽술(連體合碧術)! 나를 단애 아래로 밀어버릴 작정이군!)

그는 순식간에 위급지경으로 몰리고 말았다.

찰나,

차 앗!”

군무현은 대갈일성과 함께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여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수라혈잠영! 그 초절한 경공이 펼쳐진 것이었다.

하나,

늦었다!”

위 잉! 묵빙현하의 입에서 싸늘한 냉갈이 터짐과 함께 엄청난 무게의 압력이 군무현의 가슴을 짓쳐들었다.

(위험하다!)

군무현은 눈앞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하나,

수라혈영파천무(修羅血影破天舞)!”

위 이잉! 그는 순간적으로 맹렬히 쌍수를 떨쳐냈다.

시뻘건 혈영(血影)이 온통 사위를 뒤덮음과 함께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콰르르 릉! 콰 쾅!

묵빙현하와 네 강시들의 무형경력과 군무현의 공세가 정면으로 격돌한 것이다.

그 굉렬한 폭음 속을 뚫고,

아 악!”

여인의 탈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졌다.

묵빙현하, 그녀는 앞가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일장 밖으로 튕겨나갔다.

바로 그때, 콰르르릉... 쿠쿠쿵!

돌연 그녀 앞의 단애가 엄청난 진동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돌발적인 사태였다.

... 콰콰쾅! 우르릉!

찰나지간 천지는 가공할 폭음속에 묻혀버렸다. 그 엄청난 함몰의 사태가 가라앉고 나자, 장내의 광경이 확연히 드러났다.

보라. 일인(一人). 오직 한 사람만이 단애 밑으로 함몰되는 불행을 면한 듯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묵빙현하 바로 그녀였다.

... 지독한 자...!”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군무현도, 네명의 빙시(氷屍)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단애가 붕괴되는 순간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만것이었다.

문득, 묵빙현하의 차갑고 깊숙한 두 눈에 한줄기 허탈한 빛이 어렸다.

이제 돌아가면...!”

그녀는 고통을 눌러 참으며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어느새 나타난 잔설빙이 그녀의 잔혈을 움켜쥔 것이 아닌가!

... 설빙! ... 네가...!”

묵빙현하는 불신과 회의의 눈빛으로 멍하니 잔설빙을 응시했다.

그 순간, 잔설빙의 두 눈에 고통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제이공주님! 용서하세요!”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때였다.

흐흐흐...!”

스슥...! 한 소리 요란한 교소와 함께 묵빙현하의 앞으로 한무더기의 분홍색 구름이 떨어져 내렸다.

난설홍예! 바로 그녀가 아닌가? 그녀의 모습을 본 빙백궁의 안면이 참담하게 이지러졌다.

홍예언니...! 설빙까지도 회유했군요!”

그 말에 난설홍예는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현하! 미안하구나. 나는 우리 빙백궁의 막강한 힘을 이 북해에서 썩히게 하고 싶지 않다!”

순간, 묵빙현하는 부르르 몸을 떨며 아미를 치떴다.

닥쳐요! 언니는 조사님들의 유명을 잊었어요? 절대 북해를 떠나지 말라는 그 명을 잊었느냔 말이에요?”

그녀의 격분된 음성에 난설홍예의 안색도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하나, 그녀는 이내 신경질적으로 왈칵 소리쳤다.

시끄럽다! 그따위 케케묵은 궁규(宮規) 때문에 청춘을 이 삭막한 북해에서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중원에 들어가 천마궁(天魔宮)과 손을 잡고 천하를 지배할 것이다!”

... 미쳤군요!”

묵빙현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천하제패(天下制覇)! 이 얼마나 엄청난 말인가?

돌연, 난설홍예는 허리를 쥐며 요란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미쳤다고 해도 좋다. 어쨌든 너를 손쉽게 잡게해준 군공자에게 감사해야겠구나!”

순간, 묵빙현하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렀다.

... 설마... 그는 언니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이었단 말인가요?”

그녀는 충격을 받은 듯 한차례 부르르 교구를 떨었다.

호호... 그렇다. 그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만년빙지를 구하러 왔을 뿐이지!”

난설홍예는 묵빙현하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

묵빙현하는 일순 교구를 휘청하며 한 모금의 선혈을 울컥 토해냈다.

그와 함께, 그녀는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 눈이 어두워 애꿎은 사람을 죽였으니... 이 죄를...!”

그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비몽사몽 중에 그녀는 들을 수 있었다.

호호호... 중원아 기다려라!”

난설홍예, 그녀의 요기서린 득의의 웃음소리가 북해의 동천을 뒤흔드는 것을...

 

X X X

 

음험한 지옥의 입구를 연상케 하는 절곡 밑,

크으... 지독하군!”

문득 한소리 고통스러운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사방은 온통 두터운 얼음으로 싸여 있었다.

한데, 신음성은 바로 그 얼음 구덩이 속에서 들려왔다.

이어, 콰릉 펑! 돌연 두터운 얼음덩이가 통째로 박살나며 그 속에서 한 명의 혈인(血人)이 불쑥 솟구쳐 나왔다.

군무현! 바로 그가 아닌가?

다행히 그는 네 명의 빙시 위로 떨어져내려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 그는 전신의 관절이 어긋나는 극심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전신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다.

군무현은 입술을 악물며 품속을 뒤졌다.

구전환혼단(九轉還魂丹)을 많이 가져오기를 잘 했다!”

그는 옥병 속의 구전환혼단 이십여 알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놓고 가부좌를 틀었다.

순간,

... !”

그의 안색이 처참한 고통으로 이지러졌다. 하나, 그는 이를 악물고 진기를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전신관절이 부서져 나갈 듯 아팠으나 점점 고통은 감소되었다.

그리고 한 순간, 그는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구전환혼단의 효력은 과연 대단했다. 고가진기를 삼주천했을 때, 놀랍게도 내상이 깨끗하게 완치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상 또한 거의 아물어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윽고, 군무현은 눈을 떴다.

때가 좋지 않았다. 빙백궁의 내부 알력에 휘말려 들다니...!”

그는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로군!”

문득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폭이 십여장 정도되는 협로였다. 수백 장 위로 손바닥만한 하늘이 겨우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사면의 벽, 그것은 엄청난 한기를 발산하는 만년빙(萬年氷)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천빙애(天氷崖)! 이곳이 바로 천빙애였다.

군무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도저히 벽을 타고 오를 수는 없겠군!”

거울처럼 미끄러운 만년빙(萬年氷), 더구나 골수까지 얼려버릴 듯한 엄청난 한기를 발산하는 그 만년빙의 벽을 타고 오른다는 것을 불가능했다.

군무현은 난감한 심정을 금치 못했다.

(이곳에 달리 통로가 없다면 꼼짝없이 뼈를 묻게 되겠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얼음벽으로 둘러싸인 협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동굴이 있다!”

과연, 그의 눈에 크지 않은 하나의 빙동(氷洞)이 들어왔다.

혹시...!”

군무현은 설마하는 기대감으로 그 동굴을 향해 다가갔다.

순간, 음랭하고 차가운 한기가 무서운 기세로 그의 전신을 몰아쳤다.

군무현은 절로 몸이 으스스해짐을 느꼈다. 하나, 그는 눈을 빛내며 주저없이 동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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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 章

 

                  北海에 온 潛龍

 

 

한놈도 살려두지 않으리라!”

군무현은 살기어린 싸늘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삐 익! 그는 재차 봉황옥소를 힘껏 불었다.

마치 예리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울부짖음으로 마구 뒤흔들렸다.

카 악! 크아아악... 맹금들은 모조리 머리가 박살나며 추풍낙엽처럼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하오미, 그녀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하나, 군무현은 싸늘하고 냉혹한 얼굴이었다.

멸절사뢰음(滅絶死雷音)!”

그의 입술 사이로 재차 냉혹한 일성이 흘러나왔다.

! 그것은 바로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 중 제 이음종인 멸음종(滅音宗)이었다.

가히 가공지경의 위력을 지닌 희대의 살음(殺音), 한데 바로 그때였다.

!”

갑자기 하오미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보라! 구워어 억! 돌연 천지가 시커멓게 변하더니 거창한 붕음(鵬音)이 천공을 뒤흔드는 것이 아닌가?

뒤이어, 콰르르... 쏴 아! 한 마리 거대한 붕조(鵬鳥)가 태양을 가리며 나타났다.

양 날개를 펼친 길이가 무려 이십 장이 넘는 엄청난 크기의 대붕(大鵬)!

순간, 군무현의 무심한 얼굴에 격렬한 동요가 일었다.

(전설의 대천붕(大天鵬)!)

그는 경악의 눈으로 내심 부르짖었다.

 

대천붕(大天鵬)!

그것은 단연코 만금지왕(萬禽之王)이었다.

거상(巨象)과 해경(海鯨)을 먹이로 한다는 전설 속의 거붕(巨鵬), 하나, 그것은 다만 전설로만 내려왔을 뿐 실제한다고는 상상치 못했다.

한데, 그 전설 속의 대천붕이 북해의 대초원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격동을 금치못했다.

(멸절사뢰음(滅絶死雷音)을 듣고 날아온 것이다. 선인(仙人)의 피리소리가 대붕(大鵬)을 부른다더니...!)

그는 희열의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무슨 생각에선지 봉황옥소를 다시 입에 댔다.

순간, ... ... ...! 지극히 온유하고도 평화로운 소성이 멀리 하늘을 감싸듯 은은히 퍼져 나갔다.

바로 천황오대음종 중 제 오음종인 천락화영춘(天落和英春)을 시전한 것이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꾸르륵...! 콰콰콰! 거대한 체구의 대천붕이 흉흉한 빛을 거두며 군무현의 앞으로 서서히 날아내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 오빠!”

하오미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채 두려운 듯 군무현의 곁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하나, 군무현의 태도는 지극히 태연했다.

대천붕(大天鵬), 그놈은 가까이서 보니 마치 하나의 작은 산()처럼 느껴졌다.

앉아있는 키만 해도 십장에 달했으며 그 발가락 하나가 사람의 몸통만 했다.

그제서야 군무현은 묵묵히 봉황옥소를 입에서 떼었다.

이어, 그는 마치 사람을 대하듯 대천붕을 향해 묻는 것이었다.

이 곡조가 마음에 들었느냐?”

그러자, 꾸륵! 놀랍게도 대천붕은 그의 말을 알아듣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놈은 커다란 부리를 군무현의 몸에 부벼대는 것이었다. 그것은 친근감을 뜻하는 표시였다.

군무현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대천붕의 부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뜻하지않게 훌륭한 동반자를 얻게 되었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실로 뜻밖의 기회로 그는 더할 수 없는 훌륭한 영물을 부리게 된 것이었다.

 

X X X

 

북해(北海)!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의 바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온통 흰 눈과 얼음 뿐이었다.

전설처럼 거대한 빙지(氷地)는 만년(萬年)의 신비 속에 깊이 잠들어 있었다.

문득, 휘이 잉! 북해의 동천(東天)을 가르며 거대한 회오리가 일었다.

...! 그것은 한 마리 거대한 붕조(鵬鳥)!

하나의 작은 야산을 방불케하는 크기의 대천붕이 아닌가?

콰르르르... 콰콰...! 대천붕이 한 번 날개짓을 할 때마다 거대한 회오리와 함께 폭풍이 일어났다.

그 대천붕의 등, 한 명의 흑의청년이 오연한 자태로 앉아 있었다.

군무현이었다. 그는 두 눈에 기광을 빛내며 전면을 주시했다.

저 멀리 하나의 거대한 얼음궁전(氷宮)이 들어왔다.

온통 투명한 얼음으로 장식되어 눈부신 백색 광휘를 뿌리고 선 거궁(巨宮)!

그것은 신비롭고도 환상적이었다.

찬란한 태양이 비치면 금방이라도 스르르 녹아 없어져 버릴 듯한 신비의 빙궁(氷宮), 군무현은 문득 대천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천웅(天雄)! 다왔다. 저곳이 바로 북해의 빙백궁(氷魄宮)이다!”

그는 손을 들어 멀리 보이는 백색 광휘로 찬란한 얼음궁전을 가리켜 보였다.

꾸우우...! 대천붕은 그의 말에 깊게 울부짖으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빙백궁을 경동시키고 싶지 않으니 저쪽 빙산(氷山)에 내려라!”

군무현은 대천붕에게 미리 일렀다.

그러자, 쐐 애액! 대천붕은 힘차게 날개를 쭉 뻗더니 빙백궁과 십여마장 떨어진 빙산(氷山) 위로 날아내렸다.

그 순간, ! 군무현은 대천붕의 등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이곳은 너무 추우니 남쪽으로 가서 기다려라! 돌아갈때는 봉황옥소로 다시 부르겠다!”

그는 대천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꾸르륵... 대천붕은 친물한 울음소리를 내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콰아아아...! 대천붕은 일진광풍을 일으키며 허공을 날아올랐다.

쐐 액! 순식간에 대천붕의 모습은 북해의 천공을 가로질러 군무현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빙백궁(氷魄宮)...!”

군무현은 몸을 돌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십여마장 앞의 거대한 빙백궁을 향하고 있었다.

가까이서보니 빙백궁의 위용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사방 십리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 눈이 부실 듯 현란하고 정교한 장식, 그것은 신비(神秘), 그 자체였다.

군무현의 무심한 두 눈에 문득 이채가 솟았다.

만년빙지(萬年氷芝)를 얻으려면 어려움을 겪어야 되리라...!”

그는 빙백궁을 주시하며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어, 스스스... 그는 수라혈잠영의 경공을 펼쳐 전면을 향해 날아갔다. 앞은 막막한 설원(雪原)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돌연, 스스스... 스슥! 황량한 설원, 인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설원에 백여 명의 여인들이 유령처럼 솟아났다.

순간,

“...!”

군무현은 흠칫하며 발길을 멈추었다.

백여 명의 여인들, 그녀들은 나타난 것보다 더욱 신속히 군무현을 포위했다.

실로 귀신같은 신법이었다.

그녀들의 모습은 각기 달랐으나 한 가지 공통점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들의 전신에서는 금방이라도 몸을 얼려보릴 듯한 차디찬 한기가 서려 있다는 점이었다.

전혀 표정이 없는 싸늘한 얼굴, 군무현은 첫눈에 알아보았다.

(하나같이 극음(極陰)의 기공을 극도로 익혔다. 개개인이 무시할 수 없는 고수들이다. 빙백궁이 새외제일(塞外第一)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군!)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여인들을 주시했다. 과연 놀라운 일이었다.

환영문(幻影門)의 절기를 이어받은 군무현, 그가 어이없이 한순간에 포위되고 만 것이 아닌가?

그때, 한 명의 빙녀(氷女)가 한기서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엇하러 본궁 주위를 어슬렁거리느냐?”

그대가 지휘자인가?”

군무현은 대답 대신 싸늘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의 그런 냉오한 태도에 여인은 아미를 찌푸렸다.

그녀는 이십대 전후로 보이는 절색(絶色)이었다. 백의(白衣) 차림에 훤칠한 키가 미모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얼음장같이 싸늘한 표정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렇다. 본녀가 본궁 칠백호궁빙녀대(七白號宮氷女隊)의 대장(隊長)인 잔설빙(殘雪氷)이다!”

그대들의 궁주(宮主)를 만나고 싶다. 안내하라!”

군무현은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했다.

그의 일방적인 태도에 여인 잔설빙(殘雪氷)의 아미가 상큼 치켜 올라갔다.

건방진... 궁주님은 너같은 무례한을 만나실 정도로 한가한 분이 아니다!”

그녀는 격분한 듯 얼음장같은 안색이 더욱 싸늘하게 굳어졌다.

한데, 그때였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갑자기 여인들의 포위 일각이 열리며 한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군무현은 흠칫했다.

(대단한 경공!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했거늘...!)

그는 미간을 모으며 나타난 한 명의 여인을 주시했다.

그 순간,

“...!”

때마침 여인의 눈빛도 군무현을 향했다.

군무현은 기이한 눈으로 여인을 주시했다.

여인, 갑자기 그녀가 나타남으로해서 싸늘한 한기가 풀풀 날리던 설원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사하고 훈훈하게 변해 버렸다.

우선 여인은 모습부터가 밝았다. 너무도 화사하여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녀는 의복 또한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화려하고 선명한 분홍색 궁장을 걸치고 있었다.

게다가, 만면에 그윽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으니...

! 그것은 사내의 철심(鐵心)을 단번에 녹여버릴 고혹적인 미소였다.

군무현은 고소를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탕기가 있어 보이나... 아름다운 여인이군!)

그때, 궁장여인 또한 군무현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강자(强者)!)

그녀의 회사한 분홍색 궁중이 소리없이 흔들렸다.

그녀의 두 눈에 야릇한 이채가 반짝 스치고 지나간 것은 그와 동시였다.

그녀는 빨아들일 듯한 눈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무심한 표정, 일점의 흔들림도 없는 군무현의 모습은 오래전부터 그곳에 서 있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궁장여인은 높은 무공의 소유자였다. 또한, 그녀는 사람을 볼줄 아는 눈을 지녔다.

(주위와 동화(同化)된다는 사실은 무공이 천일합일(天一合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그녀는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렸다.

군무현의 존재를 강렬하게 인식하게된 것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두 눈에 그윽한 빛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호호... 소녀는 빙백궁의 제일공주(第一公主)인 난설홍이에요. 대협께서는 폐궁에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요?”

그녀는 고혹한 미소를 지으며 더할 수 없이 달콤한 음성으로 물었다.

만년빙지(萬年氷芝)를 만년빙옥정(萬年氷玉精)과 바꾸려고 왔소!”

군무현은 냉담하고 정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순간, 난설홍예라 자칭한 궁장여인, 그녀는 두 눈에 이채를 반짝이며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렸다.

(이 인물만 내 편으로 끌어들이며 빙백궁을 나의 손 안에 넣을 수 있다!)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복사꽃보다 화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만년빙옥정(萬年氷玉精)이라면 만년빙지와 바꿀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이죠. 성함을 알고 싶군요!”

그녀는 순순히 호의를 표시했다.

군무현이오!”

호호... 군공자셨군요. , 우선 궁으로 들어가시죠!”

난설홍예는 고혹한 미소를 지으며 백옥같은 손을 들어 빙백궁을 가리켰다.

“...!”

군무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의외로 수월하게 풀리는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난설홍예를 향해 정중히 포권했다.

고맙소!”

호호... 아니에요. 공자님을 만나게 된 것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해요!”

난설홍예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앞장섰다.

그 순간, 스스스... 군무현을 포위했던 백여 명의 여인들은 물결이 갈라지듯 옆으로 물러났다.

군무현, 그는 난설홍예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음을 옮겼다.

궁이 가까워지자 군무현은 내심 경탄을 금치 못했다.

(... 이것은 얼음이 아니었군!)

가까이서 보니 빙백궁은 얼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빙옥(氷玉)으로 건축된 것이 아닌가?

얼음같이 생겼으되 얼음보다 천배 강한 옥석(玉石)인 빙옥(氷玉).

(빙옥을 깎아 궁을 짓다니... 정말 대단하군!)

군무현은 내심 감탄하며 빙백궁이 발산하는 마력적인 신비 속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빙백궁의 거대한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하나, 군무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

성문 위의 한채의 누각, 그 위에 한 명의 여인이 오연히 선 채 얼음장같이 싸늘한 안색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그 여인은 난설홍예와는 정반대의 인상을 지녔다.

일신에 걸친옷은 짙은 흑색궁장, 늘씬한 몸매에 천하일색(天下一色)의 절륜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 그녀의 안색은 싸늘한 얼음조각과도 같았다.

눈빛 또한 깊숙이 가라앉아 서늘한 한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때, 스슥...! 문득 흑의궁장여인의 옆으로 한 명의 인영이 소리없이 날아들었다.

잔설빙(殘雪氷)! 바로 그녀가 아닌가?

흑의궁장녀는 힐끗 잔설빙을 응시하며 차갑게 물었다.

어떠냐?”

잔설빙의 태도는 극히 공손했다.

, 아무래도 저자가 중원에서 제일공주님의 힘이 되기 위해 온다던 그자 같습니다! 제이공주님!”

제이공주(第二公主)!

그렇다면 흑의궁장녀는 바로 난설홍예의 동생이란 말인가?

잔설빙의 말에 제이공주라 불리운 흑의궁장녀는 전신에 한기를 발산하며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 감히... 사부님께서 타계하셨다고 사내를 궁안으로 끌어들이다니... 나 묵빙현하(墨氷玄霞)는 결코 용납지 않는다!”

그녀의 눈에서 전신을 얼려버릴 듯한 차가운 살기가 서리서리 뻗쳐나왔다.

“...!”

그 모습에 잔설빙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편, 군무현, 그는 난설홍예와 함께 빙옥(氷玉)을 지은 화려한 전각 앞에 이르렀다.

(궁도 전부가 여인들 뿐이라더니 과연 그렇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듣던바와 같이 과연 빙백궁도들은 모두 여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두 이십세(二十歲)를 전후한 미모의 여인들로만... 이는 실로 놀랍고도 특이한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군무현은 이십세 전후로 보이는 여인들의 나이가 이미 상당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들은 나이를 잊고 사는 여인들이다. 처녀지신을 지키면서 극고한 극음기공(極陰奇功)을 익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절로 주안공(主顔功)을 연성하는 격이 된다. 그런만큼 빙백궁도들의 무공이 무섭다는 얘기도 되겠지!)

그때, 난설홍예가 걸음을 멈추며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호호... 다 왔어요!”

그녀는 군무현을 한 칸의 넓은 정실로 안내했다.

호호...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폐를 끼치겠소!”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는 내심 난설홍예의 태도가 마땅치 못했다. 그녀는 야릇한 눈빛으로 사내의 본능을 충동질할 뿐 아니라 탕기어린 미소가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하나, 군무현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난설홍예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난설홍예는 자극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만년빙지를 준비해야 겠어요. 이만 실례하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보인 후 밖으로 나갔다.

군무현은 난설홍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볍게 눈썹을 찌푸렸다.

(너무 순순히 나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군!)

뜻밖에도 난설홍예의 태도는 지극히 호의적이었으며 그의 뜻에 순순히 응해주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어려움을 겪으리라 예상했던 군무현, 그로서는 의아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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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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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九 章

 

                   鳳凰玉簫奇緣

 

 

 

오빠!”

하오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뛸 듯이 기뻐하며 군무현ㅇ게 다가왔다.

군무현은 묵묵히 적룡검을 검집에 꽂았다. 그때, 그의 주위로 만수족의 인물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그들의 눈빛은 경외지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돌연히 나타나 그들이 상대치 못하는 독응들의 무리를 단숨에 물리쳐준 군무현, 그를 천신(天神)으로 우러러 보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그때, 하오미가 문득 군무현의 옷자락을 가볍게 끌며 말했다.

인사하세요. 이분이 소녀의 아버님 이세요!”

그녀는 백발노인, 즉 하고타(河古陀)를 소개시켰다.

군무현이오이다!”

군무현은 포권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하고타는 감격스러운 눈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감사를 표했다.

하고타라 하오. 폐족(弊族)의 위난을 구해주셔서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무르겠구려!”

불의(不義)를 보면 징계하는 것이 도리이오. 예를 거두십시오!”

군무현은 대수롭지 않은 듯 무감정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냉담했으나 정중하고 겸손했다.

하오미는 두 사람이 인사를 주고받자 이번에는 예의 미소부를 소개했다.

이분이 소녀의 새언니에요!”

군무현은 무심히 미소부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이십 육칠세 정도, 첫눈에 확 띄는 빼어난 미인이었다.

원래 그녀는 당대 족장이던 하오랍의 부인이었다. 하나, 하오랍이 불의의 사고로 타계하자 어린 딸과 함께 독수공방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크고 아름다운 두 눈에는 짙은 우수의 빛이 촉촉히 젖어 있었다.

미소부는 군무현을 향해 다소곳이 예를 취했다.

천녀의 딸 아이를 구해주셨으니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그녀는 행여 놓칠세라 꼭 품어 안은 어린 아이를 바라보며 진정으로 감사의 빛을 보였다.

군무현은 고개를 저었다.

은혜라 할 수 없는 일이오. 본인은 부인의 예를 받을 수 없소!”

순간, 미소부는 무형강기에 의해 굽혔던 허리가 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하고타가 온통 기쁨에 넘치는 음성으로 수하들을 향해 외쳤다.

, 무엇을 하느냐? 우리 만수족을 구해주신 대은인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벌여야 하지 않겠느냐? 어서 준비하도록 하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와아!”

만수족의 인물들은 일제히 환성을 터뜨렸다.

군무현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과분한 대가를 원치 않는 성격이었다.

하오미는 기쁨의 미소를 듬뿍 머금은 채 군무현을 올려다 보았다.

하나, 애석하게도 군무현의 표정은 무심했다.

시종일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얼굴, 하나, 그런 그의 얼굴은 분명히 매력적이었다.

“...!”

하오미의 작은 가슴이 문득 쿵쾅거리며 고동치기 시작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둥 둥! 흥겨운 북소리가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구고 있었다.

초경(初更), 때는 밤이었으나 만수곡은 대낮같이 밝은 불빛으로 흥청거리고 있었다.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만수곡 내에서도 가장 호화롭고 웅대하게 지어진 가옥(家屋)! 바로 족장 하고타의 집이었다.

지금 그곳에서는 한창 대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타다다닥...! 활활 장작불이 어둠을 밝히며 기세좋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일렁거리는 불빛을 따라 돌며 몽고 여인들이 기이한 복장으로 토착의 가무(歌舞)를 펼치고 있었다.

... ...! 북소리는 장단을 맞추듯 더욱 높아지고 여인들의 춤은 보기만 해도 흥에 겹다.

연회석의 상좌, 군무현과 하고타가 성대한 음식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한데, 군무현의 안색은 묘하게 변해 있었다.

... ... 아빠...!”

서투른 발음으로 그를 당혹하게 만드는 어린 아이 때문이었다.

이제 세 살난 귀여운 여아(女兒), 바로 하오미의 오빠인 하오랍과 그의 미망인 나하연(羅河燕) 사이의 유일한 혈육인 소란(素蘭)은 연회가 시작될 때부터 군무현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사귀지도 않았는데 처음 본 그를 아빠라 부르기를 서슴치 않으며 계속 군무현을 당혹케 만드는 것이 아닌가?

소란은 엄마인 나하연으로부터 늘 들어왔다.

 

아빠는 어디 멀리 가셨단다. 곧 돌아오실거야!

 

그런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군무현을 아빠로 알고 응석을 부리는 것은, 소란은 군무현의 무릎에 앉아 앙증맞은 손가락을 들어 무엇인가를 가리켰다.

아빠... 저기... ... !”

군무현, 그는 소란의 티없이 귀엽고 맑은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끌리고 있었다. 하나, 실로 그로서는 난처한 입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하고타가 턱밑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소란아! 이제 그만 할아버지에게로 오너라!”

그는 소란을 향해 자애롭게 팔을 벌려 보였다. 하나, 소란은 앙증맞게도 군무현의 가슴에 바싹 매달리며 막무가내로 도리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싫어... 싫어... 아빠가 좋아...!”

그 모습은 깜찍하고 귀엽기 이를데 없었다.

군무현은 내심 고소를 지었으나 희미하게 웃었다.

놓아두십시오. 소생이 함께 놀아 주지요!”

하고타는 그 말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이거 너무 폐를 끼치는 듯하오!”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는 몹시 흡족한 기분이었다. 손녀인 소란이 군무현을 따르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던 것이다.

연회는 차츰 무르익어갔다.

그와 함께, 밤도 깊어가고 있었다.

 

오빠! 안녕히 주무세요.”

하오미는 군무현을 침실로 안내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녀는 다소곳이 물러갔다.

군무현은 다소 술기운이 올라 있었다. 기분 좋을 정도로 적당히 취한 그는 오랜만에 마음이 훈훈했다.

오늘밤은 아무런 상념없이 깊이 잠들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침실로 들어섰다.

한데, 막 침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던 군무현, 그는 흠칫 몸이 굳어졌다.

(누군가 있다!)

그는 술기운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정갈하게 정돈된 방 안, 한쪽에 붉은 비단휘장이 드리워진 침상이 놓여 있었다.

한데, 한 명의 여인이 등을 돌린 채 침상에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그대는... 누구요?”

군무현은 멈칫하며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하나,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은 없었다.

대신, 여인은 상반신을 살짝 일으켜 침상 머리맡의 촛불을 훅 불어 껐다.

순간, 군무현은 여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하연...!)

그는 흠칫 놀라며 내심 중얼거렸다.

여인(女人), 놀랍게도 그녀는 바로 나하연, 하고타의 며느리가 아닌가?

군무현은 눈썹을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부인! 대체 무슨 짓이오?”

그의 어조는 냉담했으며 그 속에는 은은한 불쾌감마저 깃들어 있었다.

하나, 나하연은 침착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님께서... 은공의 잠자리 시중을 들라는 분부를 내리셨어요!”

군무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잠자리 시중이라니... 가당치 않소!”

그는 짙은 눈썹을 꿈틀하며 말했다. 순간, 나하연의 흰 어깨가 어둠 속에서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하나, 그녀는 다시 조용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귀객(貴客)에게 수청을 드는 것은 이곳의 법도이니... 책망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의 설득력있는 침착한 어조에도 군무현은 용납지 않았다. 그는 홱 몸을 그대로 방을 나가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오빠! 언니와 하룻밤 주무세요!”

문득 군무현의 귓전으로 하오미의 나직한 전음이 파고들었다.

“...!”

군무현은 그 소리에 움찔 몸을 멈추었다.

하오미는 그런 그를 설득하려는 듯 말을 이었다.

오랍 오빠는 저희 부족의 후사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고 타계하셨어요. 아버지께서는 오빠의 아기를 새언니가 가졌으면 하는 뜻에서예요!”

군무현은 안색이 굳어졌다. 하나, 하오미는 그의 내심을 꿰뚫어 보는 듯 분명한 어조로 일침을 가하듯 말했다.

오빠가 방을 나오시면 새언니는 수치심에 못이겨 자진하고 말거예요!”

“...!”

그 말에 군무현은 흠칫했다.

그는 힐끗 침상으로 시선을 던졌다. 과연, 나하연의 머리맡에는 한 자루의 날카로운 비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자 군무현은 당혹한 심정이 되었다.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실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어쩔줄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나, 이내 그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별다른 도리가 없군. 나로 인해 한 여인이 희생되는 것은 원치 않으니...!)

그는 씁쓸한 고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결심한 듯 몸을 되돌려 자신의 의복을 벗어던졌다.

삽시에 나신이 된 군무현, 그는 말없이 침상으로 올라갔다.

“...!”

군무현의 몸이 닿자 나하연은 교구를 부르르 떨엇다.

순간, 군무현은 흠칫했다.

(알몸이 아닌가?)

놀랍게도 나하연은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뭉클하고 뜨거운 여체의 감촉이 그대로 군무현의 가슴에 닿아왔다.

여체를 접하는 순간, 군무현은 잠들어 있던 본능적인 욕망이 불끈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문득, 그는 부드럽게 감겨오는 여체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풍만하고 농염하기 이를데 없는 여체가 그의 가슴에 가득 안겨오며 후끈한 욕념의 불길을 지폈다.

나하연, 그녀는 이미 음양(陰陽)의 이치를 아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군무현의 몇번 손길에 쉽사리 달아올랐다.

군무현도 여체를 향한 뜨거운 몰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뜨겁고 끈끈한 여체의 늪속으로 정신없이 파묻혀 갔다. 갑자기, 침상이 격렬한 흔들림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대초원의 상쾌한 아침이었다.

군무현은 단정히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나하연이 다소곳한 태도로 서 있었다.

그녀는 마치 군무현의 아내처럼 정성껏 식사 시중을 들고 있었다.

문득, 군무현은 수저를 놓으며 생각난 듯 나하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부인, 이곳에 혹시 소()나 적()이 있소?”

나하연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이어, 그녀는 조용한 걸음걸이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나하연은 하나의 옥함을 받쳐들고 들어왔다.

대원(大元)이 중원에 있을 때 우연히 천첩의 집안으로 흘러들어온 것이에요!”

그녀는 말과 함께 옥함을 군무현에게 내밀었다.

“...!”

군무현은 말없이 옥함을 받아들었다.

이어, ! 그는 옥함의 뚜껑을 열었다.

순간,

...!”

그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옥함 안! 오색창연한 한 자루의 옥소(玉簫)가 들어 있었다.

표면에 정교한 봉황(鳳凰)의 형상이 새겨진 그것은 한눈에 진귀한 명품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하나, 그것은 겉보기보다 백배 더 엄청난 것이었다.

군무현은 격동과 희열의 눈빛을 지었다.

봉황옥소(鳳凰玉簫)...! 춘추시대(春秋時代)의 명기(名器)를 직접 보게되다니...!”

그의 무심하기만 하던 두 눈에 경이와 기쁨의 빛이 역력하게 떠올랐다.

군무현, 그는 천하의 음종(音宗)인 천음황(天音皇)의 음공(音功)을 얻었다.

하나, 천음황의 천미신소(天微神簫)는 그가 암습당하는 와중에 실전되고 말았다.

희대의 음공을 얻었으나 마땅한 악기가 없어 그 위력을 시험해 볼 수 없던 참이었다.

이것이면 천응족(天鷹族)의 맹금들을 몰살시킬 수 있으리라!”

군무현은 봉황옥소를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나하연은 눈을 빛내며 기대의 표정을 지었다.

독응을 제거하시려는 생각이신지요?”

군무현은 대답 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하연의 눈에는 그런 군무현이 도란태산보다 더 높게만 보였다.

 

만수곡이 내려다 보이는 하나의 산봉 위!

문득,

나타났어요!”

하오미가 긴장된 음성으로 나직이 외쳤다.

군무현과 하오미,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산봉 위에 앉아 있었다.

지금 하오미의 봉목은 크게 떠져 있었다.

보라!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도란태산의 험봉 위로 수천마리의 맹금들이 쏜살같이 만수곡을 향해 내리 꽂히고 있지 않은가?

하오미는 그 광경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며 말했다.

어제 당한 분풀이를 하려고 자신들의 모든 맹금들을 총동원한 모양이에요!”

잘 되었군!”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천천히 봉황옥소를 입에 물었다.

삘리리... 삘리...! 봉황옥소에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환상적인 소성이 그윽하게 울려퍼졌다.

그 선율은 삽시에 도란태산을 가득 메웠다.

그 순간, 이변이 벌어졌다.

어엇! 왜들 멈추느냐? 일거에 만수곡을 휩쓸어라!”

한 마리 거대한 독응 위에 버티고 앉아있던 천응족의 족장 탑달극라, 그 자는 당황하여 눈을 부릅뜨며 맹금들을 향해 호통을 내질렀다.

봉황옥소의 소성을 들을 천응족의 맹금들이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주춤주춤 물러섰기 때문이었다.

그때, 삘릴리... 삘리...! 부드러운 소성이 갑자기 살벌하게 변하더니 천공을 찢어 발겼다.

직후, 실로 무서운 결과가 벌어졌다.

캬 아! 크아... 크윽!

허공을 날던 독웅들이 미친 듯이 울부짖음을 토하며 거품을 물었다.

그와 함께,

... 새들이 미쳤다.”

크악!”

맹금을 부리던 인물들 또한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돌연, 맹금들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크 악! 카오...!

서로 물고 찢고 사나운 부리로 살점을 쪼아대는 맹금들, 그 광경은 실로 처참할 정도였다.

그 바람에, 맹금의 등에 타고있던 천응족의 인물들은 급박한 비명과 함께 밑으로 추락했다.

그들 역시 맹금의 부리에 사정없이 물려 끔찍한 상처를 입은 채.

실로 그것은 삽시에 벌어진 돌연한 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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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八 章

 

                      萬獸族危機

 

 

 

군무현은 자신의 장포를 벗어 말없이 하오미에게 던져 주었다. 이어,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 고마워요!”

하오미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황급히 군무현의 장포로 알몸을 가렸다. 그녀의 작은 가슴은 이 순간 세차게 쿵쾅거리며 뛰었다.

(멋있는 분...!)

그녀는 군무현의 냉담하나 깨끗한 태도에 강렬한 매력을 느꼈다.

이윽고, 그녀는 급히 일어나 군무현의 뒤에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소녀는 만수족(萬獸族)의 하오미예요!”

“...!”

군무현은 아무말 없이 돌아섰다.

하오미, 그녀는 군무현의 헐렁한 장포를 걸친 채 살짝 볼을 붉히며 서 있었다.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수줍게 군무현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두 눈, 그것은 무척 크고 아름다웠으며 보석보다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눈이군!)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하오미가 조심스럽게 군무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빠... 라고 불러도 좋아요?”

그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군무현은 눈앞의 티없이 고운 소녀에게 정()이 갔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순간, 하오미의 안색이 활짝 펴졌다.

오빠는 중원(中原)에서 오셨어요?”

그녀는 금방 명랑한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무감정하나 차갑게 느껴지는 어조는 아니었다.

무슨 일로 중원에서 이곳까지 오셨지요?”

북해(北海)로 가는 길이다!”

하오미는 군무현의 대답에 안색이 일변했다.

설마... 빙백궁(氷魄宮)... 가시는 건가요?”

그녀는 염려의 표정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순간, 하오미는 살풋 아미를 찡그리며 말했다.

빙백궁이 목적지라면 가시지 마세요. 빙백궁의 계집들은 하나같이...!”

하나, 군무현은 그녀의 말을 막았다.

누가 오고 있다!”

“...?”

하오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따각... 따각... 급촉한 말발굽 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한 하오미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백 장 밖의 말발굽 소리를 알아 듣다니...!)

그녀는 군무현의 존재가 새삼 신비하고 거대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두두...! 한 필의 건마가 초원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히 잉! 말은 군무현의 바로 앞에서 급히 멈추어 섰다.

그와 함께, 마상에서 한 명의 피의청년이 훌쩍 날아내렸다.

군무현의 눈빛이 순간 기광을 발했다.

(훌륭한 기마술(騎馬術)!)

그때, 피의청년은 말에서 내려서자 마자 하오미를 향해 깊이 포권했다.

공주님!”

유가랍(幽加拉)! 무슨 일이에요?”

하오미는 피의청년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유가랍(幽加拉)이라 불린 피의청년은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어서 곡()으로 돌아가십시오! 천응족(天應族) 놈들의 동태가 이상합니다!”

천응족(天應族) 놈들이?”

하오미는 아미를 상큼 치켜올렸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사생결단을 내야 하겠습니다!”

그 야만인들이...!”

하오미는 분노의 표정을 지으며 붉고 도톰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초조와 불안의 빛이 떠올랐다.

군무현은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상황을 짐작한 그는 하오미를 힐끗 바라보았다.

급한 일인 모양이군! 내가 데려다 주겠다. 집은 어느 방향이냐?”

그 말에 하오미는 반색을 지었다.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만수곡(萬獸谷)은 도란태산에 있어요!”

가자!”

군무현은 서슴없이 하오미의 손목을 잡았다. 그와 함께, 스스슥! 그는 수라혈잠영의 경공으로 섬전같이 허공을 갈랐다.

...!”

하오미는 놀란 토끼처럼 탄성을 발하며 군무현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허리를 굳게 감아 안은 군무현, 그는 순식간에 도란태산을 향해 질주했다.

몸을 날리며 문득 그는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천응족(天應族)이란 자들과 분규가 있는 모양이군?”

하오미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중원에서 밀려난 뒤 저희는 각기 부족마다 떨어져서 군락을 이루며 살게 되었어요!”

 

만수족(萬獸族)!

그들은 달단부(達丹部)에 속하는 일족이었다. 도란태산을 근거지로 그곳의 반()을 차지하는 대부족(大部族)!

그들은 대대로 맹수(猛獸)를 다루는 기술을 지녔다.

하나, 원래 그들은 온순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에 타부족과의 분규를 원치 않았다.

반면, 도란태산의 또 다른 한곳에는 천응족(天應族)이라는 매우 호전적인 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독응(毒應)을 타고 다니며 맹금을 잘 부리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만수족과는 정반대로 그들은 야심이 큰 부족이었다.

때때로 그들은 탐심을 길러왔으며 도란태산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광분하는 무리들이었다.

그러니 어떻겠는가? 상반된 기질을 지닌 만수족과는 자연히 분규가 그칠날이 없는 것이다.

 

하오미는 아름다운 두 눈에 적의의 빛을 띄우며 말을 이었다.

당금 천응족의 족장인 탑달극리(塔達極利)는 아주 호전적인 자에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란태산을 자기들 수중에 넣으려고 발광하고 있어요!”

문득, 그녀의 안색이 침울하게 변했다.

게다가 우리 만수족의 족장이던 하오랍(河吳拉) 오빠는 반년 전에 사냥터에서 전갈에 물려 사망하고 말았어요!”

그녀는 두 눈에 어두운 빛이 어렸다.

혼자된 새언니만 불쌍하게 되었죠!”

군무현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물었다.

탑극라란 자는 누구냐?”

탑달극리의 아들이에요. 그 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닮아 방약무인하기 짝이 없어요!”

하오미는 탑극라에 대한 반감이 극심한 듯 아미를 찡그렸다.

그들은 몇마디 얘기를 주고받은 사이, 삽시에 그들은 도란태산이 보이는 곳까지 당도했다.

한데 문득, 군무현의 검미가 가볍게 찌푸러졌다.

(저것은...?)

도란태산의 산록에서 별로 멀지 않은 봉우리, 그 위를 스치는 수많은 맹금들의 그림자를 본 것이었다.

(벌써 싸움이 시작된 모양이군!)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리며 속도를 더욱 빨리했다.

휘르르르...! 그의 신형은 세찬 바람소리를 남겼을 뿐 흔적조차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X X X

 

광대한 분지!

그 광활한 분지에 수천호의 민가가 모여살고 있었다.

세외선경을 연상케하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하나, 지금 그곳은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카 악! 끄악...! 흉맹한 맹금의 괴성과 사나운 맹수들의 울부짖음이 허공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보라! 끔찍하게도 백여 마리의 거대한 독응과 수백 마리의 맹금들이 부지를 습격하고 있지 않은가?

크아 카오... 끄르륵...!

그들의 기세는 실로 가공스러울 정도였다. 이에 대항하여, 흑의를 입은 장한들이 거호(巨虎), 표범, 곰들 천여마리의 맹수들이 서로 어울려 맹금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끔찍하고 처참한 광경이었다. 분별없이 죽고 죽이는 짐승들과 인간의 싸움은 치열했다. 하나, 일방적으로 맹수들 쪽이 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크 악! 으르릉... ! 흉맹하고 처절한 짐승들의 울부짖음, 퍽퍽 피가 튀며 기세당당한 맹수들은 독응의 무쇠같은 발톱에 갈가리 찢겨 나뒹굴었다.

한편, 흑의장한들도 맹금들을 맞아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츠츠... 위 잉! 콰르릉!

도검(刀劍)이 난무하며 폭음과 장풍이 분지를 뒤집어 엎을 듯 몰아쳤다. 하나, 맹금과 독응의 가죽은 마치 철판같아 도검이나 화살 정도로는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크아아악!”

아 악?”

피를 보는 쪽은 대부분 흑의장한들이었다. 그들의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속속 나뒹굴었다.

바로 만수족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위세는 점점 풀잎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도저히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우하하하! 나의 자랑스러운 독응들아! 한놈도 남김없이 갈가리 찢어죽여라!”

한 마리 거대한 독응의 등 위에서 굉량한 광소와 함께 득의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독응의 위, 한 명의 흉악한 인상을 지닌 금포노인이 철갑(鐵甲)을 입은 채 한 자루 철궁(鐵弓)을 겨누고 있었다.

쉬 익! 쐐 애액!

그 자가 시위를 힘껏 잡아당길 때마다,

크악!”

크윽!”

흑의장한들은 어김없이 가슴을 부둥켜안고 거꾸러졌다.

그 자의 궁술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을 뿐 아니라 극히 뛰어났다. 맹수들은 지휘하는 장한들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탑달극리! 이놈!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맹수들의 무리 속에서 한 명의 백발노인이 분기탱천하며 노갈을 터뜨렸다. 하나, 독응 위의 탑달극리는 광소를 터뜨리며 분지를 내려다 보았다.

우하하...! 하고타(河古陀)! 네 아들 곁으로 보내주마!”

그 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백발노인을 향해 철궁을 겨누었다. 그 자가 막 철궁의 시위를 잡아당기려 할 때였다.

우 우!”

돌연 한소리 거창한 창룡음이 도란태산을 뒤흔들었다.

순간,

!”

탑달극리는 대경실색했다. 그 장소는 너무도 크고 웅후하며 하마터면 그 자는 독응 위에서 떨어질뻔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카 아! 크르 륵! !

수많은 맹금과 독응들이 그 진동에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다.

그때, 스윽! 탑달극리의 눈에 분지 입구로 날아드는 한 명의 흑의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그는 곡구로 들어서자마자 즉시 하오미를 내려놓았다.

이어, 그는 번개같이 적룡검을 뽑아들었다.

미물이 감히 인간을 해치다니... 용서치 못한다!”

그는 한광을 폭사하며 찌렁찌렁한 대갈을 터뜨렸다.

그와 함께,

가랏! 적룡어강살!”

번 쩍! 푸학! 그는 검을 단전에 붙이며 벼락같이 휘둘러냈다.

직후, 케 엑! 캬아악... 크윽!

십여 마리의 독응들이 단번에 두동강 나며 허공을 온통 피보라로 뒤덮으며 떨어져 내렸다.

그 광경을 본 탑달극리, 그 자는 찢어질 듯 눈을 부릅뜨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 어검술!”

그 자는 질겁하며 부르짖었다.

그때, 위 잉! 군무현의 적룡검은 계속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낙뢰보다 빠른 그것은 순식간에 맹금들을 양단시켜 버렸다.

으르릉... ! 우우!

분지를 찢어발기는 처절한 짐승의 울부짖음은 오싹 소림이 끼칠 정도였다.

탑달극리, 그 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군무현이 펼치는 어검술이 보통 어검술보다 열배 강한 적룡천종(赤龍天宗)의 절기임을...

... 물러가자!”

그 자는 급히 자신이 타고 있던 독응의 머리를 쳤다.

그 순간, 쉬 익! 날카로운 적룡검의 검기가 허공을 스치며 탑달극리가 부리는 거대한 독응의 한쪽 다리가 싹둑 잘려 나갔다.

케 엑! 독응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피를 쏟았다.

그 광경에, 크르르 카 아...!

수많은 맹금들도 공포에 질린 기색으로 분분히 흩어졌다.

순식간에, 맹금의 무리들은 도란태산 너머로 밀려가듯 사라졌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아 악! 아가!”

돌연 한 여인의 처절한 비명이 귓전을 찢었다. 군무현은 흠칫하며 홱 고개를 돌렸다.

콰르릉 펑! 한 채의 인가가 폭음 속에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인가속에서 한 명의 미소부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뛰쳐나왔다.

순간,

감히...!”

군무현의 두 눈에 번쩍 살광이 폭사되었다. 그의 눈에 한 마리 독응이 한 명의 어린아이를 잡아채며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찰나, 번 쩍! 어느새 적룡검은 군무현의 손을 떠나 독응의 등으로 날아 꽂히고 있었다.

직후, 크 악! 독응의 동체가 쫙 갈라지며 선혈이 확 뿌려졌다.

악 아가!”

그것을 본 미소부는 자지러질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독응의 발톱에 끼어있던 어린아이가 밑으로 급속히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그 순간, 스스스...! 문득 군무현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잠시 후,

와 아!”

오오...!”

중인들 사이에 터질듯한 환성이 울려퍼졌다. 그들은 환호성을 울리며 일제히 허공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스스스스... 군무현, 그가 깃털처럼 유유히 지면으로 내려서고 있지 않은가?

한쪽 팔에 혼절한 어린아이를 안은 채, 파파앗! 그는 적룡검을 회수하며 고개를 숙여 품안의 어린 아이를 내려다 보았다.

무심하기만 하던 그의 두 눈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귀여운 계집아이...!)

그의 품에 안긴 채 혼절해 있는 어린 아이는 불과 두세살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여아(女兒)였다.

뽀얀 우유빛 피부에 앵두같은 입술을 지닌 인형같은 아이, 그때,

... 아가!”

미소부가 정신없이 달려와 군무현의 손에서 아이를 받아안았다. 그녀는 아이를 품속에 끌어안으며 마구 볼을 부벼댔다. 어머니의 오열은 진하고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

군무현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 무엇보다 깊고 진한 감정, 그것이 바로 모성애(母性愛)가 아니겠는가?

그래서일까? 군무현은 차가운 가슴이 자신도 모르게 훈훈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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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七 章

 

           妖精같은 少女

 

 

 

휘이이잉! 스스스...

바람이 분다.

활화산(活火山)이라도 단숨에 얼려버릴 듯한 혹독한 한풍(寒風).

건곤일색!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눈부신 백색(白色) 뿐이다.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얼음, 그리고 눈(), 찬란한 빙설(氷雪)의 세계가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다.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황원(荒原)!

한데, 갑자기 그 황원이 뚝 끊어지며 마치 지옥(地獄)의 입구인양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천인단애가 나타났다.

그 단애의 빙벽 위, 언제부터인가 두 명의 인물이 대치하고 있었다. 절벽을 등지고 우뚝 선 인물, 그는 칠십 정도로 보이는 홍포노인이었다.

위맹한 용모에 태양처럼 강렬한 기질을 물씬 풍기는 모습, 횃불처럼 이글거리는 그의 두 눈은 그대로 두 개 불덩이와도 같았다.

홍포노인의 삼 장 앞, 그와는 정 반대의 인상을 풍기는 백의노파가 서 있었다.

단아한 용모에 기품어린 모습, 하나, 만년빙설처럼 차디찬 한기를 풍기는 싸늘한 인상이었다.

우르르릉... 콰릉!

대치한 양인 사이에는 뇌성벽력과 함께 거대한 폭발음이 솟구쳐 올랐다.

그들은 단지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치열한 대결, 그들은 지금 보이지 않는 거창한 무형강기로 경천동지할 내공을 겨루고 있는 중이었다.

문득, 백의노파의 뒤로 하나의 거대한 궁()이 아스라이 바라보였다.

! 그것은 놀랍게도 거대한 얼음궁전(氷宮)이 아닌가?

신화(神話) 속에서나 등장함직한 신비한 거궁.

그때,

태양천뢰폭(太陽天雷爆)!”

만겁빙백류(萬劫氷魄流)!”

양인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대갈일성이 터져나왔다.

순간, 콰르르릉... 쿠쿵!

홍포노인의 전신에서 시뻘건 용암같은 강기가 쏟아졌다.

반면, 백의노파의 양 손에서는 만년빙하(萬年氷河)가 은하처럼 쏟아져 흘렀다.

()과 극의 충돌! 일순, 천지는 파멸의 구렁텅이 속으로 함몰되고 말았다.

콰자작! 콰르릉... 퍼 펑!

()과 얼음()!

영원히 융합될 수 없는 상극의 양대기공이 서로 뒤엉켜 충돌하며 가공할 굉음을 터뜨렸다.

다음 순간, 콰르릉 쿠쿠쿠...! 빙벽 전체가 끝이 안보이는 단애 아래로 부서져 내렸다.

그와 함께,

흐윽...!”

백의노파는 새카맣게 타버린 가슴을 움켜쥐고 뒤로 나뒹굴었다. 홍포노인 역시 처참하게 박살난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는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을 지켜들며 중얼거렸다.

... 결국... 태양일맥(太陽一脈)... 영원히 사라졌다...!”

초점이 흐려진 그의 두 눈은 회의로 얼룩졌으며 만면에 허탈한 표정이 어렸다.

백의노파, 그녀 역시 희생키 힘든 중상을 입었다.

만년빙설처럼 차디찬 그녀의 얼굴에도 죽음을 따르는 초탈한 표정이 떠올랐다.

화룡거사... 노신 소의빙파(素衣氷婆)... 곧 그대의 뒤를 따라갈 것 같구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녀는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걷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신비의 얼음궁전!

그곳을 향해, 하나, 홍포노인 화룡거사(火龍拒士)! 그는 바닥에 쓰러진 채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X X X

 

도란태산(圖蘭泰山)!

 

새외제일악(塞外第一嶽)! 사시사철 만년빙(萬年氷)을 머리에 인 그 웅자는 무한한 신령스러움을 불러 일으킨다.

도란태산의 산록. 그곳을 넘으면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평원이 나타난다.

대초원(大草原)! 한때 천하를 위무했던 대원제국(大元帝國)이 바로 이곳에서 일어나지 않았던가?

오시(午時) 무렵, 스슥! 문득 초원의 저쪽에 한줄기 흑영이 나타났다.

그 흑영의 신법은 마치 유성이 흐르듯 경쾌하고 절륜하기 이를데 없었다.

흰 피부에 여인으로 착각할 만큼 빼어난 용모를 지닌 미청년. 바로 군무현이었다.

성길사한(成吉砂汗)! 그 대영웅(大英雄)이 태어난 곳...!”

문득, 군무현의 가슴에 대평원처럼 넓고 벅찬 포부와 장부(丈夫)의 투혼이 불끈 끓어 올랐다.

그는 실로 오랜만에 마음껏 가슴을 열었다. 그리고 힘껏 달렸다.

대평원!

사위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푸름으로 출렁거리는 끝이 없는 대초원을 향해, 얼마를 달렸을까?

군무현의 두 눈에 아득히 구름 저편에 자리한 도란태산의 웅자가 바라보였다. 그는 도란태산의 웅자와 더불어 성길사한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장쾌한 평원을 달리며 그는 천하를 위무할 웅심(雄心)을 길렀으리라!)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벅찬 가슴을 달래었다.

영웅(英雄)! 군무현 역시 천하보다 크고 넓은 웅심을 지닌 영웅이 아닌가?

그때, 문득 초원을 달리던 군무현의 두 눈에 멀리 아름다운 호수가 들려왔다.

군무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쉬어가야겠군!”

! 그는 망설임 없이 호수쪽으로 몸을 날렸다. 짙은 녹음이 우거져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호수.

한데,

(!)

막 호숫가에 내려서던 군무현은 그만 기겁하고 말았다. 호수의 물은 비취처럼 맑아 바닥이 투명하게 비칠 정도였다.

한데,

랄랄라...!”

그 호수 속에 한 명의 소녀가 몸을 담근 채 목욕을 하고 있지 않은가?

군무현은 기척없이 급히 녹음 사이로 몸을 숨겼다.

소녀(小女), 그녀는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처럼 맑고 경쾌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뽀얀 우유빛 나신에 물을 끼얹고 있었다.

! 천상에서 잠시 하강한 선녀(仙女)인가? 소녀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신선한 생동감이 온 몸 구석구석 깃들어 윤택하게 빛나는 아름다움.

소녀의 피부는 빙옥(氷玉)처럼 희디 희고 맑았으며 탄력있고 미끈하게 뻗은 몸매는 어둠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연어를 연상케 했다.

촤르르르... 맑고 경쾌한 물소리, 소녀는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채 목욕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듯 아름다운 정경.

“...!”

군무현은 일순 넋을 잃고 말았다.

녹음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름답다...!)

그는 절로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그것는 전혀 사심이 깃들지 않은 순수한 감정이었다.

전라소녀. 그녀의 아름다움이 너무도 신선하고 해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군무현이 지켜보고 있음을 까맣게 모르는 소녀,

촤르... ...! 그녀는 물 속에 반쯤 교구를 담근 채 목욕을 하고 있었다. 너무 맑아 투명해 보이는 물빛으로 그녀의 교구는 선연하게 비쳐보였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카 아! 돌연 모골이 송연해지는 맹금(猛禽)의 울음소리가 주위를 찢어 발겼다.

순간,

!”

소녀는 안색이 급변하여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보라! 쐐 액! 그런 그녀를 향해 허공으로부터 한 마리 거대한 독응(毒應)이 순식간에 내려꽂히는 것이 아닌가?

양 날개를 편 길이가 무려 사장에 이르는 거대한 독응.

문득, 독응 위에서 호탕한 사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으하하! 하오미(河娛美) 소저!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었구려!”

독응의 등 위, 한 명의 건장한 청년이 타고 있었다.

하오미(河娛美)라 불린 전라소녀, 그녀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며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탑극라(塔克羅) 당신이...!”

이어, 그녀는 날렵하게 물가로 뛰어나와 가죽옷으로 황급히 앞을 가렸다.

그때, ! 청년 탑극라는 독응 뒤에서 날아내리며 그대로 하오미를 찍어갔다.

에 잇!”

하오미도 질세라 교갈을 내지르며 재빨리 교수를 휘둘렀다.

순간, 보고있던 군무현의 두 눈에 기광이 스쳤다.

(투천표형조(透天豹形爪)...! 저 소녀가 감당치 못하겠군!)

하나, 그는 선뜻 나서 손을 쓰지 않았다. 잠시 그대로 두고 보기로 한 것이다.

그때, 콰쾅! ... 두 사람의 공격이 충돌하며 거창한 폭음이 들썩 사위를 뒤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찌 익!

!”

하오미는 가죽옷이 찢어짐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그 바람에,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이 햇살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뽀얗고 동그란 어깨, 그 아래로 이제 막 봉우리를 맺어 개화(開花)를 기다리는 꽃처럼 봉긋 솟아오른 탱탱한 젖가슴이 자리하고 있었다.

잘룩한 세류요에 나이답지 않게 풍만하고 육감적인 둔부. 미끈하게 뻗어내린 두 다리...

순간, 하오미는 분노와 수치를 참지못하며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양손으로 젖가슴과 방초가 보송보송 나기 시작한 허벅지 사이를 가렸다.

하나, 그녀의 작은 두 손으로 벗은 몸을 모두 가리키는 불가능했다.

... 당신이 감히...!”

그녀는 붉은 입술을 깨물며 치욕의 표정으로 파르르 교구를 떨었다. 하나, 그녀의 그런 모습은 오히려 사내의 음심을 작극하는 귀여운 반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탑극라는 음험한 눈빛으로 하오미의 나신을 쓸어보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흐흣... 하소저! 나 탑극라는 오랫동안 하소저를 연모해 왔소!”

이어, 그 자는 천천히 하오미의 앞으로 다가섰다.

순간,

다가서지 말아욧!”

하오미는 고개를 흔들며 날카로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녀는 이미 노출된 나신을 더욱 움츠리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나,

흐흐... 그대가 내게 시집을 오면 양가(兩家)가 하나가 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오?”

탑극라는 은근한 어조로 하오미를 회유시키려 했다.

꿈꾸지 말아요!”

하오미는 그런 탑극라의 모습에 역겨움이 치민 듯 발칵 소리쳤다.

하하...! 하소저가 원치 않더라도... 흐흐... 본인은 그대를 이곳에서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겠소!”

탑극라의 눈빛은 더욱 음탕하게 물들었다. 그 자는 하오미가 화를 내면 낼수록 더욱 능글능글해졌다.

하오미는 탑극라의 말에 파르르 나신을 떨며 수치와 분노에 어쩔줄 몰라했다.

... ...!”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우수를 들어 힘껏 탑극라를 후려쳤다.

하나,

하하...!”

위 잉! 탑극라는 교묘히 장()을 마주치며 여유있게 하오미의 공격을 막아냈다.

파팍!

!”

하오미의 공세가 허무하게 무산되어 버림과 함께, 그녀는 탑극라의 수중에 오히려 교수가 잡히고 말았다.

하소저! 당신은 정말 아름답소!”

탑극라는 하오미의 봉긋한 젖가슴을 손으로 슬쩍 쓰다듬으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친구! 그만 하시지!”

돌연 기대에 들떠있던 탑극라의 귓전으로 싸늘한 일성이 파고들었다.

순간,

누구냐?”

탑극라는 대경하며 버럭 소리쳤다.

직후,

!”

홱 돌아서는 그 자는 안면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군무현, 마치 빙인(氷人)을 연상케 하는 싸늘한 인상의 군무현이 어느새 그 자의 눈앞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탑극라는 군무현의 위압적이고 싸늘한 기도에 일순 흠칫했다.

하나, 이내 그 자는 분노의 표정을 지으며 만면에 살기를 띄웠다.

흐흐... 네놈이 감히 본인의 일을 방해하다니... 죽어랏!”

위 잉! 그 자는 막무가내로 장을 쳐들어 맹렬히 군무현을 후려쳐왔다.

군무현은 그 모습에 싸늘한 비웃음을 지었다.

하늘이 높음을 가르쳐주마!”

다음 순간, 쿠 쿵! 군무현의 좌수에서 돌연 막강한 경력이 일어났다.

! 한소리 폭음이 짓터짐과 함께,

크윽...!”

탑극라는 일 장 밖으로 거칠게 나뒹굴었다.

한데 그 순간, 크 악! 돌연 허공으로부터 탑극라의 독응이 군무현을 향해 무섭게 내리꽂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너무도 돌발적인 공세였다.

하나,

미물이 감히...!”

군무현은 눈썹을 꿈틀하며 상체를 홱 젖혔다. 그와 동시에, 콰르르릉! 그의 좌수에서 수라혈강뢰의 강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치뻗혔다.

직후, 콰 쾅! 케엑! 굉렬한 폭음이 들썩 사위를 뒤흔듬과 함께 처절한 독응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독응은 피를 뿌리며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그 모습에 군무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수라혈강뢰에 맞고도 즉사하지 않다니...!)

그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두고보자!”

스슥! 안색이 시뻘겋게 변한 탑극라, 그 자가 분노에 찬 일갈과 함께 황급히 몸을 날려 달아났다.

군무현의 신위에 몸보다 혼()이 머저 십리 밖을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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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六 章

 

                    天地十强超絶技

 

 

 

! !

군무현은 신형을 휘청하며 뒤로 삼보 물러섰다.

하나,

“...!”

백의몽면인, 그 자는 한 차례 흠칫 몸을 떨었을 뿐 그 자리에 뿌리박힌 듯 여전히 우뚝 서 있지 않은가?

군무현은 검미를 꿈틀했다.

(대단한 공력이다. 공력만으로는 나보다 한 수 위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경각심을 돋구었다.

그때, 자욱한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주위의 경물이 드러났다.

군무현과 백의몽면인,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히 대치하고 있었다.

문득, 백의몽면인이 음침하게 웃으며 괴이한 음성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흐흐... 뜻밖인걸! 당금천하에 그대같은 강자(强者)가 있었다니...!”

“...!”

군무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다음 순간, 푸 학! 돌연 그의 허리에서 폭죽이 터지듯 시뻘건 도기(刀氣)가 폭사되었다.

그 핏빛도기는 순식간에 천지사방을 뒤덮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작렬하는 핏빛도기 속에서 한 마디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수라파천도(修羅破天刀)!”

하나, 그 경악성은 이내 가공할 폭음 속에 묻히고 말았다.

콰르르릉! ... 츠츠츠!

끔찍 가공할 핏빛도기는 대기를 짓이기며 뻗어나갔다.

하나, 더욱 경악할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스스슥... 백의몽면인은 마치 흐르는 유성(流星)처럼 도세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그림자가 몸 밖으로 스르르 빠져 나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 모습에 군무현은 내심 해연히 놀랐다.

(수라파천도세를 이토록 가볍게 벗어나다니...!)

그는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다음 순간, 츠츠츠...! 그의 주위로 반투명한 핏빛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모습에 백의몽면인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역시... 수라혈영공(修羅血影功)! 혈영천종(血影天宗)의 마공절기가 팔백년 만에 세상에 나타나다니...!”

돌연, 그 자의 음침한 두 눈에 가공할 광망이 폭사되었다.

그것은 결코 경악의 빛 따위는 아니었다.

탐욕! 그것은 번들거리는 야수의 눈빛과도 같은 탐욕의 빛이었다.

그때, 우르르...! 번 쩍!

군무현의 수라혈도(修羅血刀)에서 낙뢰같은 혈전(血電)이 치뻗혔다.

그 모습에 백의몽면인은 더욱 강렬하게 눈을 번득이며 여유있게 웃었다.

흐흣... 천지십강(天地十强)의 무공을 대할 수 있다니 행운이군!”

문득, 위 잉! 그 자의 몸 주위로 질식할 듯 칙칙한 검은 기류가 일어났다.

그 기세는 가공할 정도로 맹렬했다.

한 순간,

“...!”

“...!”

양인은 뚫어지게 서로를 주시했다.

우웅! 파파파 팟!

천만근의 암경이 암중에 맹렬히 부딪히며 대기가 허공으로 말려 올라갔다.

바로 그 순간,

야압!”

파 앗! 군무현이 한 소리 대갈과 함께 맹렬히 수라혈도를 떨쳐냈다.

거의 동시에,

오랏! 현천강기살!”

쿠 쿵! 백의몽면인의 쌍수가 흩뿌려지며 먹물같은 시커먼 강기가 확 퍼져 올랐다.

직후, 콰르르릉! 쿠 쿵.... 해일같은 강기의 파동이 천지간을 질타하며 급격히 맞닥뜨렸다.

순간,

!”

군무현은 안색이 핼쓱하게 변했다.

그는 심맥이 으스러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또한, 수라혈도를 쥔 그의 호구가 터져 검붉은 선혈이 주르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백의몽면인, 그자 또한 무사치는 못했다.

...!”

그 자는 둔중한 신음성을 발하며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그 자의 가슴 부분의 장포는 완전히 박살나 있었다. 그 사이로 비치는 흐릿한 혈흔(血痕).

군무현은 그것을 본 순간 내심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금강불괴(金剛不壞) 지경에 든 자다. 끝까지 겨룰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백의몽면인의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때,

흐흣...! 수라혈영공이 극에 이르다니... 놀랍군!”

백의몽면인이 음산하게 웃으며 군무현을 노려 보았다.

그 말과 함께, 그 자는 천천히 우수를 쳐들었다.

그러자, 그 자의 우수는 마치 쇠로 깎은 듯 시커멓게 묵광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실로 섬뜩한 광경이었다.

군무현, 그는 절로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혈천묵강수...! 현천신모(玄天神母)의 절기가 나타나다니...!”

그의 놀라움은 실로 컸다.

백의몽면인은 군무현의 그런 반응에 거들먹거리듯 괴이하게 웃으며 흉광을 번득였다.

흐흣! 대단한 안목이군!”

 

현천신모(玄天神母)!

사백 년 전, 천하를 최초로 여인천하(女人天下)로 만들었던 대여걸, 그녀는 청해(靑海)에서 일어나 현천신문(玄天神門)을 세웠다.

본시, 그녀는 양가집의 부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우연히 무림의 시비에 말려들어 참살을 당하는 비운이 닥쳤다.

이에, 현천신모는 분노하며 치를 떨었다.

하나 어찌하랴? 그녀 자신도 결국 무림인들에게 무기력하게 짓밟히고 만 것을.

겨우 목숨만 유지하게된 현천신모, 그녀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하늘이 그녀를 버리지 않았던지 다행히 그녀는 기연을 얻었다. 그것도 실로 엄청난 기연을.

이미 천년 이전에 절전된 현녀문(玄女門)의 진전을 얻게된 것이었다.

그녀는 철저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현녀문(玄女門)의 진전을 통달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그 절기를 삼배 강하게 발전시키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세운 것이 바로 현천신문(玄天神門)이었다.

현천신모는 천하를 혈세(血洗)로 씻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사백 년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평생 무적(無敵)이었다. 그리고, 노사(老死)한 후 그녀는 당당하게 천지십강(天地十强)에 오른 것이다.

군무현은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렸다.

(기공(氣功)만으로는 당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군무현, 그는 흘깃 백의몽면인의 뒤쪽을 응시했다.

스스스스... 야천을 가르며 혈륭대법사와 사멸황이 일마장 밖으로 접근해 오고 있응 것이 보였다.

군무현은 입술을 악물었다.

(결판을 내자!)

그렇게 결심한 순간, 돌연 그의 두 눈에서 시뻘건 혈광이 폭사되었다.

그와 함께, 우 웅! 그의 수라혈도와 좌수(左手)에서 가공할 마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오오! 이 순간 그의 형상은 끔찍한 마인(魔人)의 형상 그대로였다.

순간, 백의몽면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수라혈영파천무(修羅血影破天舞)!”

그의 경악성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콰콰콰콰 쾅! 파파팍!

도저히 인간의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거창한 혈강이 일거에 삼십장을 뒤덮었다.

! 실로 경천동지할 가공할 위세였다.

그 순간,

현천마라복강쇄!”

거창한 폭발음 속을 뚫고 백의몽면인의 다급한 외침이 나왔다.

직후, 콰르릉... 카카카 캉! 혈강 속에서 톱니바퀴같은 거대한 묵강륜이 치솟아 올랐다.

시대를 달리하고 태어났던 천지십강! 혈영천종과 현천신모의 절기가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서로 격돌했다.

콰콰콰 쾅! 쿠쿵!

양대절기의 충돌은 엄청난 폭음을 동반했다.

백장 내의 모든 것은 완전히 박살나 초토화되고 말았다.

그때,

크윽...!”

... 지독하다!”

멋모르고 장내로 접근하던 혈륭대법사와 사멸황은 안색이 핼쓱해져 밀려났다.

우르르... 파파파팍!

가공할 폭풍의 여파는 무려 일천 장을 뒤덮었다.

그 회오리 속을 뚫고,

우 우!”

문득 상처입은 사자와도 같은 고통 섞인 창룡후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스슥! 한 줄기 묵영이 소용돌이 속을 뚫고 백장 밖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난무하던 흙먼지와 사진이 모두 가라앉았다. 그러자 드러나는 장내의 광경.

오오...! 폐허, 완전한 폐허였다.

그 폐허 속에 일인(一人)이 우뚝 서 있었다.

깊이 오장, 넓이 칠팔장의 거대한 웅덩이가 움푹 파여진 곳, 그곳에 우뚝 선 인물은 바로 백의몽면인이었다.

지금 그 자의 모습은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혈인(血人), 그 자는 전신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금강지체에 이른 백의몽면인 이건만 전신에 크고 작은 수십개의 상처를 입을 것이 아닌가?

그때,

지존!”

... 괜찮으십니까?”

혈륭대법사와 사멸황이 황급히 외치며 백의몽면인을 부축했다.

그 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제대로 신형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백의몽면인은 그들의 손을 뿌리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다. 그놈도... 성치는 못했을 것이다!”

그 자는 울컥 선혈을 토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편, 스슥...!

군무현, 그는 간신히 객잔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안색은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그의 상처는 극심했다.

가슴이 박살나 늑골이 드러날 정도의 중상을 입은 것이었다.

...!”

군무현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발하며 쓰러질 듯 침상에 주저앉았다. 하나, 그는 두 눈에 한광을 발산하며 불끈 주먹을 움켜 쥐었다.

현천마라복강쇄! 다음에 만날 때는 반드시 깨뜨리고 말겠다!”

그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품 속에서 하나의 옥병을 꺼냈다.

안이 투명하게 비치는 푸른 옥병,

 

구전환혼단(九轉環魂丹)!

자하별부를 나설 때 만약을 대비하여 준비했던 영약이었다.

아무리 극심한 내상이라도 급격히 치유해 주는 내상영약, 그것은 비단 상처를 치료할 뿐 아니라 체내에 새 힘을 불어넣는 무궁한 효력이 있다.

 

군무현은 구전환혼단을 한알 복용했다.

이어, 그는 곧 운공에 들어갔다. 그는 일신에 양극지기(兩極之氣)를 지닌 신체(神體)가 아닌가?

위 잉! 이내 군무현의 몸 주위로 창창한 강기가 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X X X

 

북해(北海)!

 

인간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최북단의 오지(奧地), 멀리 만리장성(萬里長城)을 넘어 몽고의 대평원을 가로지르고도 사천리를 더 가야 북해의 연변에 이를 수 있다.

그곳을 일컬어 새외(塞外)라 부른다.

북해에는 하나의 전설적인 궁()이 있다.

 

빙백궁(氷魄宮)!

새외에 있어 빙백궁(氷魄宮)은 신적인 존재였다.

장구한 역사와 거대한 신비, 영원히 침범할 수 없는 불문율로 숭앙받는 북해의 비궁(秘宮).

이미 천 년 동안 새외는 빙백궁의 신비한 마력에 지배 당하고 있었다.

 

< 三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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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五 章

 

                 世外四天 登場

 

 

 

군무현, 그는 내부 깊숙한 곳에서 끓어 오르는 피보다 진한 격동을 억누르며 말했다.

일어들 나시오! 그대들을 보니 아버님을 뵌 듯 하구려!”

순간,

소가주!”

청의검수, 즉 적룡검사들은 격정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모았다. 이어, 그들은 공손한 태도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호목에도 뜨거운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군무현은 예의 사자(獅子)와 같은 위맹을 지닌 장한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대의 이름을 알고 싶구려!”

힘찬 기개가 물씬 풍기는 장한은 강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속하는 일백적룡검대(一百赤龍劍隊)의 대장(隊長) 천붕학(天鵬壑)입니다!”

순간,

 

천대장!”

군무현은 천붕학의 손을 굳게 마주 쥐었다. 일순 두 사람의 시선이 뜨거운 격동과 감회로 얽혀 들었다.

그리고, 눈물, 굵은 사나이의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천붕학의 감루였다.

아홉 명의 적룡검사들도 주먹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천붕학은 군무현의 비범한 신태를 만감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경망스럽게 속하는 소가주께서도 운명하신줄 알고 천하(天下)를 상대로 싸우려 했습니다!”

군무현의 조각같은 얼굴에 한 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잘 참아주었소. 그대들이 있으니... 구천(九泉)의 아버님께서도 편히 눈을 감을 것이오!”

그의 음성은 어느 새 침착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무심하고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소저들을 집으로 돌려 보낸 뒤 천중산(天中山) 자하곡(紫霞谷)으로 가도록 하시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세 여인을 가리켜 보였다. 그의 말에 천붕학은 문득 의아한 기색을 지었다.

천중산(天中山)의 자하곡이라 하시면...!”

그곳에 나의 내자(內子)될 사람이 있소. 그곳으로 일백적룡검대를 이끌고 가서 힘을 기르도록 하오!”

천붕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숙였다. 이어, 문득 그는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소가주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북해에 갔다올 일이 있소!”

순간, 천붕학은 흠칫 놀라며 충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 험지에 소가주 혼자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 군무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걱정마오. 여럿이 가서 될일이 아니니... 어서 출불하도록 하시오!”

그는 오히려 천붕학을 재촉했다.

천붕학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한 번 하신 말씀은 거두지 않으시는 분...!)

그는 불과 몇마디의 대화에서 군무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는 충정어린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적룡검사들도 급히 세 여인들을 옆구리에 끼었다. 이어, 그들은 군무현을 향해 공손히 예를 취하며 입을 모아 말했다.

천중산에서 건안하신 모습을 뵙겠습니다!”

군무현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스슥! 스 윽! 열 명의 적룡검사들은 경쾌한 신법으로 허공을 가르며 사라져 갔다.

“...!”

군무현은 잠시 그들이 사라진 곳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혈도를 짚혀 쓰러져 있는 네 명의 라마승들, 군무현은 그들 중 우두머리인 핏빛 수염의 라마를 향해 가볍게 일지를 튕겼다.

파팟! 그러자,

...!”

핏빛 수염의 라마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발하며 정신을 차렸다.

군무현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 자를 노려 보았다.

말해라! 혈륭마찰의 주지(住持)가 이 근처에 있느냐?”

그는 혈염라마를 향해 차가운 어조로 다그쳐 물었다.

순간, 혈염라마는 공포의 표정으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 ... 그렇다!”

그 자는 군무현의 냉혹한 살수에 기가 질린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냐?”

군무현은 재차 싸늘하게 물었다. 그의 어조는 냉혹하고도 위압적이었다.

혈염라마는 부드득 이를 갈았다.

하나, 그 자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득...! 가르쳐 주마. 대법사께서... 우리의 원한을 갚아주실 것이다!”

헛소리를 듣겠다고 하지 않았다!”

군무현의 안색이 일순 서릿발처럼 차갑게 얼어 붙었다.

그의 살기어린 기세에 혈염라마는 사색이 되었다.

이곳에서... 동북(東北) 방향 이십리밖에 비마애(飛魔崖)라는 곳이 있다. 오늘밤 삼경(三更)... 대법사께서는 그곳에서... 지존(至尊)을 만나신다고 하셨다...!”

지존?”

군무현은 눈썹을 꿈틀했다. 하나, 혈염라마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 우리는 모른다. 대법사께서 아실 뿐...!”

군무현은 안색을 굳혔다. 이어,

한숨 자거라!”

파팟! 그는 혈염라마를 향해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러자,

...!”

혈염라마는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들 듯 혼절하고 말았다.

지존(至尊)이라... 설마 세외사천(世外四天)의 배후에 다른 인물이 있단 말인가?”

군무현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가보면 알게 되리라!”

그는 중얼거림과 함께 몸을 돌렸다.

다음 순간, 스스슷...! 그의 신형은 유령같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수하혈잠영의 놀라운 경공이었다.

 

X X X

 

비마애(飛魔崖),

 

태원(太原)에서 사십리 떨어진 절승(絶勝), 그곳의 지형은 기이했다. 절벽의 형상이 마치 지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비마(飛魔)와 같았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비마애였다.

(), 삼경 무렵의 칠흑같은 밤이었다. 천공에 달이 걸려 있다고는 하지만 그 빛은 극히 희미했다.

문득, 스스스...! 유령같은 한줄기 인영이 비마애 아래로 스며들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그는 비마애 아래 은밀히 몸을 숨긴 채 절벽 위를 주시했다.

비마애 위, 두 명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

일신에 칙칙한 혈포를 걸친 노라마, 그 자는 허연 백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한 손에는 주먹만한 묵주(墨珠)로 엮어진 염주를 들고 있었다.

그 자의 전신에서는 가공할 살기가 물씬 풍겨나오고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그 모습은 목을 조이는 섬뜩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또 다른 한 명의 인물, 그 자는 회포노인이었다.

그 자가 걸친 회포의 가슴 한복판, 그곳에는 끔찍하게도 죽을 사()자가 시커먼 글씨로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또한, 그 자의 모습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그 자는 살아 있되 산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피부는 시신의 그것처럼 칙칙한 빛이 감도는 회색이었다.

게다가, 전신은 강시처럼 비쩍 말라 도저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모습, 퀭하니 뚫린 두 눈, 그 눈을 껌벅거릴 때마다 모골이 송연한 회색 광망이 귀기스럽게 번뜩였다.

지독한 음사신공(陰邪神功)을 익힌 자임이 분명했다.

 

군무현, 그는 두 사람의 모습을 훑어보며 안색을 굳혔다.

(사천주(四天主)답다. 누구하나 만만히 볼 수 없는 강적들이다!)

그는 비마애 위의 두 인물이 이미 오기조원지경(五氣朝元之境)에 이른 극강한 내공의 소유자들임을 알아차렸다.

그것을 확인하자 그는 더욱 의구심이 솟구쳤다.

(도대체 지존이란 인물이 누구길래 저런 강자들을 오라가라 한단 말인가?)

그는 내심 염두를 굴렸다. 구름같은 의혹이 그의 가슴에 뭉클뭉클 솟구쳐 올랐다.

한데 그때, 문득 한 조각 암운이 희미하게 걸려 있는 천중(天中)의 달을 가렸다.

이어, 그 암운이 한조각 껍질처럼 벗겨질 때였다.

!”

... 지존!”

비마애 위에 좌정하고 있던 두 인물은 아연실색하며 당황성을 터뜨렸다.

보라! 언제였을까?

비마애 위, 한 명의 인물이 더 늘어나 있지 않은가?

백의몽면인, 그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온 것인지도 모르게 두 사람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혈포노라마와 회포노인은 그제서야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어,

혈륭마찰의 혈륭(血隆)! 삼가 지존을 뵈오이다!”

사망림(死亡林)의 사멸황(死滅皇)! 지존의 존안을 배견하오이다!”

그들은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오체복지했다.

! 실로 경악할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세외사천의 두 수뇌, 그들이 눈 앞의 백의몽면인에게 취하는 태도, 그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함인가?

세외를 떨어 울리는 이천(二天)의 주인, 그들이 백의몽면인을 향해 큰 절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에 군무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와 함께, 그의 가슴 속에 한 가닥 섬뜩한 공포가 피어 올랐다.

(저 자가 그토록 무서운 인물이란 말인가?)

그는 불신과 회의의 시선으로 고개를 저었다. 한데 그때, 문득 백의몽면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 어느새 그 자의 시선은 군무현이 은신하고 있는 쪽으로 향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팽팽한 긴장감, 갑자기 숨막힐 듯한 정적 속에 피를 말리는 긴장감이 팽배했다.

하나, 결코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 그만 나오시지!”

백의몽면인의 입에서 일순 살기 어린 싸늘한 일성이 흘러 나왔다.

군무현은 흠칫했다.

(역시... 대단하군!)

그 순간,

어느 놈이냐?”

회포노인 사멸황(死滅皇)이 홱 몸을 돌리며 대갈을 터뜨렸다.

동시에, 쐐 액! 그 자는 뇌전같이 몸을 날려 군무현이 은신한 곳으로 덮쳐왔다.

군무현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승산이 없다!)

내심 염두를 굴린 그는 몸을 일으킴과 함께 벼락같이 쌍장을 휘둘렀다.

우웅! 꼬르릉... 일순 산악같은 경기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뒤미처, 콰콰쾅! 양인의 공세가 서로 격돌하며 굉폭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순간,

!”

사멸황은 그 충격에 일순 신형을 휘청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스윽! 군무현은 섬천처럼 야천(夜天)을 갈랐다. 단숨에 그는 백장 밖으로 날아갔다.

하나,

흐흣...!”

그것을 지켜보던 백의몽면인의 입에서 낮고 음침한 괴소가 흘러 나왔다.

다음 순간, 스스슥...! 어느 새 그 자의 신형은 그 자리를 떠나 군무현의 뒤를 쫓고 있었다. 실로 귀신같은 신법이었다.

군무현은 최대한의 속력을 발휘했다.

쐐 액! 그는 무섭도록 쾌속하게 질주했다.

삽시에, 그는 수라혈잠영의 경공으로 십리를 날아갔다.

하나, 일순 그는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스스스... 백의몽면인, 그 자가 이미 군무현의 이십 장 밖으로 추적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단한 경공이다!)

군무현은 귀신같은 그 자의 경공술에 혀를 내둘렀다. 이어, 그는 안색을 굳히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일전을 피할 수 없다. 혈륭대법사(血隆大法師)와 사멸황(死滅皇)만 없다면 겨룰만 하다!)

다음 순간, 그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한 차례 쓱 문질렀다. 그러자, 그의 얼음처럼 차갑고 미려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는 냉혹한 장한의 얼굴로 변모한 것이 아닌가?

실로 절묘한 역용술이었다. 바로 환영투도의 기오막측한 역용술을 사용한 것이었다.

다음 순간, ! 군무현은 돌연 속도를 늦추며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이어, 그는 도리어 처음의 방향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닌가? 바로 백의몽면인이 쾌속한 속도로 추적해 오고 있는 정면을 향해서였다.

순간,

!”

급속히 군무현을 쫓아오던 백의몽면인, 그 자는 당황성을 터뜨렸다.

군무현의 행동이 너무도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군무현은 몸을 날리던 그 속도의 여세를 몰아 급격히 백의몽면인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직후,

차 앗!”

맑고 찌렁한 대갈일성이 터짐과 함께, 콰르르 릉! 군무현의 쌍장에서 노도같은 핏빛 강류가 쏟아져 나왔다.

다음 순간, 우르르릉... 콰 쾅!

폭죽이 터지는 듯한 천붕지열의 굉음이 들썩 야천을 뒤흔들었다.

그 여파는 가히 엄청났다. 사방 이십 장이 폐허처럼 휩쓸려 온통 흙이 뒤집혀 올랐다. 바위며 거목들은 폭풍을 만난 듯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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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四 章

 

                        赤龍勢家家臣

 

 

 

라마승들의 눈을 속이며 나타난 인영들, 그들은 일신에 가쁜한 청의경장을 걸친 검수(劍手)들이었다.

그들은 기쾌무비한 신법으로 대웅보전을 향해 접근해 들었다.

하나같이 정기 가득찬 장한들, 군무현은 그들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며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어느 문파의 고수들인가?)

그는 관심어린 눈빛으로 그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때, 대웅보전 안에서 핏빛 수염의 라마가 득의의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 지존(至尊)께서 우리를 불러주셨으니 본 혈륭마찰(血隆魔刹)의 천년(千年) 심원이 일년 안에 풀리리라!”

그렇습니다!”

그 자의 말에 혈포라마승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 콰콰쾅! 돌연 대웅보전의 사방 벽이 폭음을 내며 허물어졌다.

보라! 콰릉... 츠츠츠!

폭풍같은 검세가 사방 벽을 향해 퍼부어지고 있지 않은가?

순간,

!”

... 누구냐?”

... 어느 쥐새끼냐?”

대웅보전 안의 혈포라마들은 대경실색했다. 하나, 그들이 미처 몸을 날릴 사이도 없었다.

크 악!”

케엑!”

순식간에 열 명의 라마승들이 목을 움켜쥐고 비명과 함께 나뒹구는 것이 아닌가?

실로 그것은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난 사태였다. 처절한 비명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으하하하...! 혈륭마찰의 마졸들! 감히 중원이 어디인줄 알고 기어들어 왔느냐?”

돌연 찌렁찌렁한 대소가 대웅보전을 뒤흔들며 터져 나왔다.

동시에, 쐐 액! 질풍노도같은 검세가 혈륭마찰의 마승들을 휩쓸어 왔다.

츠츠츠! 파팟! 그것은 실로 눈부신 공격이었다.

혈륭마찰의 라마승들은 일순 당황했다.

하나,

막아랏!”

에 잇!”

그자들은 이내 분갈을 터뜨리며 덮쳐드는 청의검수들을 막아갔다.

그자들 역시 막강한 마공(魔功)을 익힌 고수들이 아닌가?

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군무현, 그의 얼굴에 격동과 함께 경악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 순간 그의 눈빛은 엄청난 동요로 흔들리고 있었다.

 

혈륭마찰(血隆魔刹)!

세외사천(世外四天) 중 서천(西天)으로 불리는 곳, 서역에서 포달랍궁과 쌍벽을 이루는 마()의 사찰이었다.

그들은 불문선공의 웅후함을 바탕으로 한 음악하고도 잔혹한 마공(魔功)으로 유명했다.

한데, 그들 혈륭마찰이 중원을 침범하다니...

 

하나, 군무현이 놀라는 것은 그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격동을 금치 못하며 일순 거대한 전율에 휩싸였다.

(... 저들의 검식(劍式)...!)

그는 한 차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의 두 눈은 뚫어질 듯 청의검수들의 검식을 주시하고 있었다.

청의검수들의 기세는 실로 엄청났다.

으악!”

크으... !”

케 엑!”

그들의 눈부신 검세 아래 혈륭마찰의 라마승들이 잇달아 피거품을 물고 거꾸러졌다.

츠츠츠츠... 쐐 액!

장중한 위엄 가운데 맹렬한 기세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청의검수들, 그들이 펼치는 검식은 군무현의 눈에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군무현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검식이 아닌가?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

마침내 그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한 마디 나직한 부르짖음이 터져 나왔다.

아아! 이럴 수가...!

청의검수들이 펼쳐내고 있는 검식, 그것은 바로 고금제일(古今第一)의 검법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이 아닌가?

적룡세가의 적룡검사들이 사용하던 무적(無敵)의 적룡팔대식! 그것이 이곳에 재현되다니...

군무현, 그의 얼굴에는 격정의 빛이 가득했다.

그때,

으 악!”

크아악!”

끔찍한 피보라를 동반한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은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삽시에, 수십 명의 혈포라마승들의 숫자는 일곱으로 줄어들었다.

십여 명의 청의검수들, 그들의 위세는 가히 찬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그들 중 사자(獅子)를 방불케 하는 위맹한 용모를 지닌 한 명의 검수가 선두를 지휘하고 있었다.

으하하하... 중원에 들어온 것이 죄다!”

그의 저돌적인 공세는 보기만 해도 호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극고한 마공을 지닌 혈륭마찰의 라마승들, 하나 그자들은 청의검수들의 질풍노도같은 검세에 연신 밀려날 뿐이었다.

위 잉! 파츠츠츠...

온통 눈부신 검광이 난무하는 가운데 장내는 삽시에 수라장이 되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에 잇!”

예의 핏빛 수염의 라마가 태원부에서 잡아온 미녀를 재빨리 잡아챘다. 그 자는 자신들의 힘으로 도저히 청의검수들을 상대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교활한 암계를 생각해낸 것이다.

그 자는 품 속에 나삼여인을 껴안은 채 음흉한 눈빛을 번득였다.

이 계집을 살리고 싶다면 손을 멈춰라!”

그 자는 교활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 모습에 청의검수들의 안면이 이지러졌다.

비겁한 놈!”

그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으나 급히 검을 멈추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군무현, 그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 꿈이 아니다!)

그는 격동을 금치 못하며 만면에 감회의 빛을 지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인을 위해 공세를 멈추는 청의검수들.

! 그들은 적룡검사(赤龍劍士)로 부족함이 없는 협골장한들이 아닌가?

그때, 핏빛 수염의 라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득의의 표정을 지었다.

흐흐... 순순히 길을 터라!”

그 자는 음흉한 흉광을 번득이며 말했다.

청의검수들의 태도에서 자신을 얻은 것이었다.

찢어죽일 오랑캐놈들!”

청의검수들은 혈포라마들의 비겁한 술수에 이를 갈았다. 하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길을 비켜주는 것이었다.

이윽고, 혈포라마들은 세 여인을 인질로 이용하여 황급히 대웅보전을 나섰다.

그자들은 황망히 밖으로 나서며 짐짓 분노의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크크... 네놈들이 감히 혈륭마찰을 건드렸으니 그 백배로 대가를 치루리라!”

하나 그 순간,

네놈들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다!”

문득 한 소리 싸늘한 음성이 그 자들이 머리 위를 울렸다.

순간,

... 어느 놈... 크악!”

핏빛 수염의 라마는 머리 위로 번쩍 혈영(血影)이 내리덮치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

거의 동시에,

크 윽!”

아아 악!”

다른 두 여인을 움켜쥐고 있던 라마들도 정수리가 박살나 나뒹굴었다. 실로 그것은 찰나지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돌연한 사태에 청의검수들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의 앞, 군무현, 그가 어느 새 세 명의 여인을 안아든 채 우뚝 서 있지 않은가?

...!”

청의검수들은 절로 탄성을 울렸다.

반면,

으으...!”

살아남은 나머지 네 명의 라마승들은 사색이 되어 급급히 달아났다.

하나,

누워랏!”

군무현의 입에서 재차 싸늘한 일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그는 여인들을 바닥에 내려 놓으며 벼락같이 우수를 휘둘렀다.

꽈르릉...! 들썩 장내를 뒤흔드는 폭음이 터져 올랐다.

직후,

크악!”

!”

네 명의 라마승들은 일제히 피분수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갑자기, 장내에는 침묵이 찾아들었다.

청의검수들은 만면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멍하니 군무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군무현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두 눈은 격렬한 격동의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일순,

“...!”

“...!”

그의 강렬한 눈빛과 청의검수들의 열쌍의 호목이 서로 부딪혔다.

군무현은 감회의 눈빛으로 청의검수들을 주시하며 문득 품 속에 집어 넣었다. 이어, 그는 격동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이것이 무엇인줄 아오?”

어느 새, 그의 손에는 하나의 옥패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은으한 홍색을 띠고 있었다.

그 옥패의 중앙,

 

<적룡(赤龍)!>

 

금빛 찬란한 두 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령주(令主)!”

십여 명의 청의검수들은 부르르 전신을 떨며 무너지듯 군무현의 앞에 부복했다.

군무현은 그런 그들을 주시하며 격동과 감회에 젖었다.

(... 역시...!)

그는 거대한 격정의 회오리에 휘말리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적룡패(赤龍牌)!

손바닥 크기의 둥근 영패, 그것은 적룡대제가 적룡검(赤龍劍)과 함께 군무현에게 남긴 신물이었다.

군무현이 자신의 발 아래 부복한 십여 명의 청의검수들을 바라보았다.

정녕... 그대들이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이오?”

그의 음성은 격동으로 인해 다소 떨려나왔다.

청의검수들 역시 격동과 감격을 주체치 못하는 듯 만감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모아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소가주님!”

이어, 그들 중 선두를 지휘하던 웅맹한 모습의 장한이 말했다.

대가주께서는 천하에 암운(暗雲)이 일어남을 감지하시고 속하들과 같은 일백명의 적룡검사들을 암중에 기르셨습니다!”

“...!”

군무현의 차갑기만 하던 두 눈에 뜨거운 물기가 배었다.

(아버님께서는 이미 앞날을 예견하셨구나!)

부친 적룡대제를 생각하자 그는 뜨거운 감정이 뭉클 치밀어 올랐다.

적룡대제! 그는 암중의 음모가 적룡세가를 노림을 미리 감지했다.

그것을 안 그는 즉시 안배를 갖추어 놓았다.

적룡검사들 중 가장 뛰어난 백 명의 검사들, , 적룡검사의 정예를 선정하여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비밀한 곳에 숨겨 두었다.

그들이야말로 삼천 명의 적룡검사들 중 최정영이라 할 수 있었다. 하나같이 일당백의 용맹을 지닌 충의(忠意)의 용사들, 바로 그 백 명의 적룡검사 중 열 명이 지금 군무현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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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三 章

 

                        少女戀情

 

 

 

자하별부(紫霞別府)!

그 앞에는 한 채의 아담한 모옥이 세워져 있었다.

작지만 운치있게 꾸며진 선경(仙境) 속의 별원(別園).

모옥 안, 두 남녀가 그림처럼 다정히 마주 앉아 있다.

군무현과 남궁혜미, 그들이었다.

그들의 앞,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이 놓여 있었다.

군무현은 단정한 자세로 앉아 수저를 들고 있는 중이었다.

남궁혜미는 그의 옆에 앉아 정성스럽게 군무현의 식사 시중을 들고 있었다.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누가 보아도 그들은 한쌍의 다정한 젊은 부부(夫婦)로 보였다.

잠시 후, 군무현은 수저를 놓으며 남궁혜미를 바라보았다.

혜미, 고맙소!”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어투는 바뀌어져 있었다. 무감정하고 건조한 음성은 여전했으나 남궁혜미를 한 사람의 여인(女人)으로 대해주고 있었다.

또한, 남궁혜미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화된 것이었다.

남궁혜미, 군무현에 대한 그녀의 정성은 지극했다.

때로는 어머니처럼, 때로는 누이처럼, 그리고 때로는 사랑스런 아내처럼 그녀는 내조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군무현은 그런 남궁혜미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남궁혜미는 군무현의 그 한 마디에 살포시 눈을 내리 깔았다. 이어, 그녀는 조심스럽게 찻잔을 받쳐 올렸다.

선향차(仙香茶)예요. 식기 전에 드세요!”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받아들었다.

차향(茶香)이 그윽했다.

남궁혜미는 조용히 몸을 일으키더니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

군무현은 그녀가 분주히 몸을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며 차향을 음미했다.

잠시 후, 남궁혜미는 다시 군무현의 앞에 마주 앉았다.

언제쯤... 출곡(出谷)하실건가요?”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군무현은 기이한 눈으로 남궁혜미를 바라보았다.

남궁혜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군무현이 말은 하지 않았으나 조만간 이곳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벌써 군무현의 내심을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리한 여인...!)

군무현은 내심 나직이 중얼거렸다.

하나, 그는 대답 대신 오히려 남궁혜미에게 되물었다.

혜미의 자하천류신공(紫霞天流神功)은 본 궤도에 올랐소?”

.”

남궁혜미는 다소곳이 대답했다.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말했다.

북해(北海)에 다녀올 것이오. 아마 두 달 정도 걸려야 될 듯 하오!”

순간, 남궁혜미의 아미가 파르르 떨렸다.

북해(北海)까지... 가셔야 하나요?”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아니갈 수 없는 일이오!”

군무현은 결의가 깃든 어조로 잘라 대답했다.

남궁혜미는 그 말에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미 군무현의 결심은 변화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순, 그녀는 무엇인가를 쥐었다 놓은 것처럼 허전한 기분을 느꼈다.

군무현은 그런 남궁혜미를 안심시키려는 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걱정마오. 별일 없을 테니...!”

하나, 남궁혜미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군무현은 그런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남궁혜미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밤은... 이곳에 계시겠지요?”

그녀의 물음에 군무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나, 그는 내심 남궁혜미의 태도에 의아한 느낌을 받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남궁혜미의 두 눈에 어떤 결의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윽고, 그녀는 잘근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천첩은 물러가겠어요!”

군무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은 따뜻하고 그윽한 빛으로 찰랑거리고 있었다.

천하제일재녀(天下第一才女) 남궁혜미!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여인으로 살고 있었다.

오직 한 남자만을 우러르며 작은 행복을 꿈꾸면서...

 

(), 군무현은 침상에 누워 있었다.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몸을 뒤척거렸다.

한데 문득, 그의 방문이 소리없이 조용히 열렸다.

군무현은 흠칫하며 몸을 일으켰다.

열린 방문으로 은가루같은 월광(月光)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투명하고 눈부신 월광 속, 한 명의 여인이 환상처럼 신비롭고 섬연한 자태로 서 있지 않은가?

월궁의 항아인들 그렇게 아름다울까?

달빛 속에 선 여인의 자태는 실로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웠다.

혜미...!”

군무현은 일순 움찔하며 나직이 부르짖었다.

그렇다. 월광을 등진 채 방안으로 들어서는 여인, 뜻밖에도 그녀는 남궁혜미였다.

한데, 놀랍게도 그녀는 속이 훤히 비쳐보이는 나삼차림이 아닌가? 나삼 속으로 탄력있게 부푼 여체의 굴곡이 선연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녀는 아직 십칠세의 소녀에 불과했다.

하나, 이제 막 소녀(少女)에서 여인(女人)으로 발돋음하고 있는 그 싱그러운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느껴졌다.

군무현은 남궁혜미의 뜻밖의 모습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으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신음성을 발했다.

남궁혜미, 그녀가 사뿐사뿐 다가옴에 따라 신선한 여체의 체향이 콧속으로 훅 끼쳐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기이하게도 냉담하게 잠들어 있던 군무현의 본능을 자극하며 아찔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그때, 군무현의 침상가로 다가선 남궁혜미, 사르륵...!

문득 그녀는 다소곳이 고개를 떨군 채 걸치고 있던 나삼을 끌어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군무현은 당황하여 외쳤다.

... 혜미! 왜 이러시오?”

하나, 그가 미처 만류하기도 전에, 남궁혜미는 희디 흰 나신을 드러낸 채 말없이 군무현의 침상으로 올라왔다.

순간,

“...!”

군무현은 따뜻하고 매끄러운 여체의 감촉에 흠칫했다.

그의 몸에 부드럽게 닿아오는 여체, 그것은 비록 말이 없었으나 뜨거운 정열을 호소하고 있었다.

문득, 남궁혜미는 가늘게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먼길을 떠나시는데... 첩신의 몸밖에 드릴 것이 없어서...!”

말과 함께 그녀는 군무현의 탄탄한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군무현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의 얼음같은 가슴을 뚫고 문득 뜨거운 열정이 솟구쳐 올랐다.

혜미...!”

그는 격정어린 손길로 남궁혜미의 나신을 굳게 끌어 안았다. 물결처럼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신선한 여체(女體),

...!”

남궁헤미의 입에서 꿈결같이 황홀한 탄성이 흘러 나왔다.

군무현, 그도 피끓는 나이의 혈기왕성한 남아였다.

뜨거운 정열을 호소하며 휘감겨 오는 여체를 안고도 냉담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가슴은 뜨겁게 끓어 올랐다. 얼음을 깨고 치솟는 열기가 더욱 뜨거운지도 몰랐다.

그는 남궁혜미의 매끄러운 알몸을 껴안으며 나직하게, 그러나 힘이 실린 어조로 말했다.

혜미를 울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소!”

순간,

상공...!”

남궁혜미는 옥용 가득 격동과 희열의 빛을 지었다.

그녀의 가슴에는 뜨거운 감격의 회오리가 출렁거렸다.

두 남녀(男女), 더 이상 말이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뜨거웠다. 마주보는 눈빛이 그러했으며 서로 맞닿은 심장이 그러했다.

서로를 갈구하는 몸짓, 그것은 사랑(), 뜨겁고 향기로운 사랑이었다.

군무현의 차디찬 가슴을 뜨거운 용광로로 바꾸어 놓은 위대한 힘().

그동안,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궁혜미의 따스함에 동화되어 점차 살기가 누그러지고 있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군무현, 그는 모성(母性)을 모르고 자랐다.

하나, 그것은 절실한 것이었다. 사막 가운데서의 목마름처럼, 한데 남궁혜미! 그녀가 군무현의 그런 목마름을 해소해 주었다.

그녀는 온유롭고 따스한 여인이었다. 군무현은 그런 남궁혜미에게서 목마르던 모성(母性)을 느끼고 있었다.

 

군무현은 자신의 의복을 벗어내렸다. 비록 겉으로는 유약한 모습이나 그의 벗은 몸은 건강하고 탄탄해 보였다.

...!”

남궁혜미는 일순 꿈결같은 탄성을 발했다.

갑자기 전신을 옥죄어오는 사내의 막강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문득,

혜미... 사랑하오!”

그녀의 귓전으로 군무현의 뜨거운 속삭임이 들려왔다.

남궁혜미는 전신을 파르르 경련하며 온 영혼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격한 희열을 맛보았다.

그와 함께, 마침내 여체가 그 숨막히는 신비의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군무현의 굳건한 몸 아래서 남궁헤미의 교구는 산산이 부서졌다.

열풍(熱風)! 뜨거운 정열의 폭풍이 하나로 합쳐진 두 남녀를 활활 불사르며 몰아치기 시작한다.

이 반, 남궁혜미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한 명의 성숙한 여인으로, 한 남자의 진정한 반려자로... 그녀는 파과의 지극한 고통 속에서도 눈물을 글썽이며 미소지었다.

그것은 고통보다 더한 격동한 희열을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한 남자의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진정한 기쁨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 밤이 깊고 있었다.

두 남녀의 결합을 축복하는 눈부신 달밤이었다.

 

X X X

 

군무현, 그는 흠칫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웬 야행인(夜行人)...?)

그는 눈썹을 꿈틀하며 중얼거렸다.

이곳은 별로 화려하지 않은 한 채의 객잔이었다.

산서(山西)의 태원(太原)은 아름다운 곳이다.

군무현은 태원(太原)의 경관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객잔에 들어 있었다.

자하곡을 떠나 북해로 가기 위해 북상(北上)하던 중 태원에서 하룻밤을 유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데, 스스스...!

그의 예민한 귓전으로 선풍을 일으키며 달리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가 파고드는 것이었다.

(), 그것도 삼라만상이 잠든 깊은 밤에 야행인의 기척이라니... 군무현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꼈다.

(어떤 자가 이 야심한 밤에...!)

그는 침상에서 일어나 급히 장포를 걸쳤다.

이어, 그는 수라혈도(修羅血刀)를 허리에 두르고 급히 방을 나섰다.

스슥! 밖으로 나오는 즉시 그는 객잔의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그는 바람처럼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멀리 태원성 밖으로 날아가는 야행인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었다.

(수상한 자다. 따라가 보자!)

그는 야행인의 뒤를 추적해 보기로 했다.

문득, 스스...! 군무현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했다.

 

수라혈잠영(修羅血潛影)!

혈영천종의 절정경공이었다.

삽시에, 군무현은 야행인의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한데, 군무현은 일순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 아닌가?)

그의 앞을 달리고 있는 인영, 그는 일신에 핏빛 가사를 걸친 승려였다. 그는 옆구리에 하나의 큼직한 자루를 짊어진 채 빠르게 야천을 가르고 있었다.

군무현은 그 모습을 주시하며 기이한 예감을 느꼈다.

(서역(西域)의 라마승이 중원에 나타나다니...!)

그는 내심 의아함을 느끼며 소리없이 혈포라마승의 뒤를 쫓았다.

하나,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혈포라마승, 그 자는 기오막측한 경공으로 태원 교외의 황원을 가로질러갔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눈앞에 하나의 작은 야산이 나타났다.

그 야산의 움푹 꺼진 음습한 곳,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허름한 하나의 사찰(寺刹)이 자리하고 있었다.

혈포라마승, 그 자는 바로 그 사찰 안으로 신형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기광을 번득이며 사찰 안을 주시했다.

(이미 여러 명이 와 있다!)

그는 사찰 안에서 여러 명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숨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스슥...! 그는 귀신같은 신법으로 사찰의 대웅보전으로 보이는 지붕 위로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이제 오는가?”

문득 어둠 속에서 한가닥 걸죽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소리는 한어(漢語)가 아니라 서역어 였다.

사찰 안에서 혈포라마가 들어서는 기척을 느낀 듯했다.

군무현, 그는 대웅보전의 지붕에 거꾸로 매달린 채 대웅보전 안을 들여다 보았다.

대웅보전 안, 삼십여 명의 혈포라마승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 자들의 인상은 한결같이 음흉했으며 눈빛은 사이한 광채로 번득이고 있었다.

한데, 대웅보전의 한쪽을 바라보던 군무현, 그의 두 눈에 일순 무서운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천인공노할 놈들!)

그는 싸늘한 한광을 폭사하며 중얼거렸다.

대웅보전의 한쪽, 십여 명의 여승(女僧)들이 죽어 있었다.

한데, 끔찍하게도 그녀들은 하의가 벗겨진 채 은밀한 부위가 온통 선혈로 범벅된 무참한 모습들이 아닌가?

여승들의 미모는 모두 절륜하기 이를데 없었다.

일견하기에도 그녀들은 처참하게 능욕당하고 죽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군무현은 그 모습에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마승(魔僧)들이다!)

그는 불끈 솟구치는 살심(殺心)을 간신히 억눌러 참으며 혈포라마승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때, 한 명의 라마승이 핏빛 수염을 쓰다듬으며 음침하게 웃었다.

흐흐... 아랍(阿拉)! 뜸을 들이다 온 것을 보니 명물(名物)을 구한 모양이군!”

그 자의 말에 방금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선 혈포라마가 득의의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흐흐...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이어, 그자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자루를 풀어 놓았다.

순간, 중인들은 일제히 두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대웅보전 안이 환해지는 느낌 때문이었다.

풀어헤쳐진 자루 속, 그곳에는 시체조차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킬 한 명의 기막힌 미모의 여인이 잠들어 있지 않은가?

그 여인은 일신에 은은히 속이 비쳐 보이는 나삼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실로 아찔하고도 자극적이었다.

실로 천하의 짝을 찾을 수 없는 절륜한 미색(美色).

핏빛 수염의 라마승, 그 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이군! 세 계집 중 최고다!”

그 자는 감탄의 표정으로 몹시 만족해 했다.

중인들 또한 탐욕어린 시선으로 죽은 듯 잠들어 있는 미인을 훔쳐보기에 바빴다.

그리고, 대웅보전의 한쪽 구석, 역시 자리옷 차림으로 나뒹굴어 있는 두 명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들 역시 빼어난 절색이었다.

하나, 혈포라마의 자루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미녀의 아름다움과는 비길 수 없었다.

흐흐... 태원부(太原府) 중에서 잡아온 계집입니다. 산서제일미인(山西第一美人)이라 불린답니다!”

혈포라마는 어떠냐는 듯 득의의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핏빛 수염의 라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흐흐... 좋다. 대법사(大法師)께서 돌아오시면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그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군무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대법사(大法師)...? 이자들이 우두머리에게 줄 여인들을 납치한 것이로군!)

그의 두 눈에 싸늘한 살기가 어렸다.

한데, 그때였다. 스스... ! 돌연 대웅보전 주위로 여러 줄기의 인영들이 다가들었다.

군무현은 흠칫했다.

(모두 대단한 고수들이다!)

그는 몸을 사리며 나타난 인영들을 면밀히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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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二 章

 

                      萬年氷芝

 

 

 

군무현이 비급이 쌓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만년한옥으로 만들어진 탁자 위, 수십 권의 비급이 쌓여 있었다. 군무현은 그 중 가장 첫 번째 비급을 집어 들었다.

 

<자하신경(紫霞神經)!>

 

낡은 양피지 비급의 표지에는 갑골문자로 그와같이 적혀 있었다.

(자하선인(紫霞仙人)의 일신무학이 담긴 것이군!)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비급의 두깨는 무려 다섯치나 되었다. 또한, 그것은 다음과 같이 몇가지 종류로 분류되어 있었다.

 

기환편(奇幻扁)!

형의편(刑意扁)!

연기편(鍊氣扁)!

 

군무현은 먼저 세 번째의 연기편(鍊氣扁)을 들추었다.

 

자하천류신공(紫霞天流神功)!

 

그것은 고금제일(古今第一)의 호신강기였다.

그것을 완전히 연성하면 진기가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이 된다. 아무리 지고무상한 패도신공으로 가겨해도 충격을 받지 않을뿐더러 흐르는 물(流水)같이 비켜 보낼 수 있다.

 

자하폭류기강!

 

자하천류신공이 극고한 호신기공임에 반하여 이는 무적의 공격강기였다. 적이 쳐보내는 기공을 받아 그 다섯배의 힘으로 되돌려 보내는 반탄기공, 그 위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폭포가 쏟아지듯 폭발적인 위세를 발휘한다. 따라서, 적의 공세가 강하면 강할수록 되돌려 보내는 힘도 더욱 강해진다.

 

군무현은 대충 자하신경(紫霞神經)을 살펴본 후 그것을 덮었다.

(고금제일의 호신무공... 혜미에게 익히게 하면 좋겠구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문득 시선을 돌렸다. 정신없이 약재를 분류하는데 여념이 없는 남궁혜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다. 문득, 군문현의 얼굴한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

그의 싸늘한 가슴에 한 줄기 훈풍이 불어왔다.

두텁게 쌓아 올린 철저한 혼자만의 마음벽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궁혜미, 그녀는 분주히 손을 움직이며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다.

(이 정도의 약재라면 초절정고수 삼천 명은 기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분은 고금무적의 수하들을 거느리게된는 것이다...)

그녀의 지혜롭고 영롱한 눈빛은 이 순간 더욱 밝게 반짝이고 있었다.

늘 그늘이 드리워져 우울해 보이던 그녀의 얼굴, 하나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기대와 설렘, 기쁨의 빛이 어우러져 햇살같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던가? 남궁혜미는 스스로를 잊어버렸다.

모든 것은 군무현, 그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었다. 부지불식간에 그녀는 모든 것을 군무현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군무현, 그가 곧 그녀의 자신이었으며 기쁨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때, 군무현은 자하신경을 내려놓고 두 번째 비급을 집어 들고 있었다.

 

제천무극경(帝天無極經)!

 

웅후할 뿐 아니라 감히 범접지 못할 위엄과 증후한 기도가 서린 필체, 지극히 귀족적인 서체라고나 할까?

그 비급의 제목을 본 순간, 군무현은 내심 경악하며 부르짖었다.

(제천무극경(帝天武極經)! 황궁이대천경(皇宮二大天經) 중 하나가 아닌가?)

무림(武林)과 달리 황실(皇室)에는 독특한 무공이 있었다.

그 중 최강의 것은 두 가지로 손꼽힌다. 바로 금령(金靈)과 무극(無極)이 그것이다.

금령(金靈)의 무공, 그것은 황실제일인(皇室第一人)으로 불리는 금령천존(金靈天尊)이 얻었다.

그리고, 무극(武極)이 기공이 담긴 제천무극경(帝天武極經)!

그것은 환영투도가 황궁에 잠입하여 훔쳐낸 것이었다.

환영투도는 천하제일의 신투가 아니었던가?

하나, 그런 그도 제천무극경을 훔쳐내는데는 죽음의 위험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황실제일인인 금령천존(金靈天尊)에게 발각당해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다.

 

(환노(幻老)와 아버님을 인연짓게한 비급...!)

군무현은 문득 환영투도의 얼굴을 떠올리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 생각에 이르자 가슴 뭉클한 감회가 솟구쳤다.

이어, 그는 제천무극경을 펼쳐들었다. 그것에는 시선을 끄는 여러 가지 무공들이 집약되어 있었다.

 

제천무극진력(帝天武極眞力)!

제천심극인(帝天心極印)!

무극제황대천검(武極帝皇大天劍)...!

 

그밖에, 제천무극경에는 열두가지의 광고절금의 무공이 수록되어 있었다.

군무현은 그것들을 대략 훑어본 후 제천무극경을 덮었다. 이어, 그는 다음의 비급을 손에 들었다.

 

환영만보록(幻影萬寶錄)!

 

! 그것은 바로 환영투도가 남긴 비급이 아닌가?

(환노(幻老)가 남긴 것...!)

군무현은 뭉클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어, 그는 마음을 경건하게 가지며 환영만보록(幻影萬寶錄)을 펼쳐들었다.

첫장을 넘기자 눈에 익은 환영투도의 필체가 들어왔다.

 

<환영만보록을 무현(武玄) 소주(少主)님께 드립니다!>

 

그 글을 본 순간 군무현은 콧등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환영투도, 그는 적룡세가의 몰락 이전에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군무현에게 남길 생각이었던 것이다.

 

환영만보록!

그 속에는 환영문(幻影門)이라는 신비공령문(神秘空靈門)의 절기가 들어있었다.

 

환영투도의 사문(師門)인 환영문(幻影門)!

환영문의 절기는 실로 기오막측했다.

특히, 잠행술(潛行術), 은신술(隱身術), 투도술 등은 가히 제일(第一)이었다.

환영투도, 그는 자질이 부족하여 환영문의 절기를 육성(六成)밖에 터득하지 못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면에서는 당대제일로 불리웠다. 그만큼 환영문의 절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환영문의 절기는 환영만보록의 삼할 정도를 차지했다.

한데, 나머지 부분을 펼친 군무현, 그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만보제종편(萬寶帝宗篇)!

 

나머지 부분은 그 같은 내용으로 메꾸어져 있었다.

아아!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은 바로 천하의 기진이보(奇眞異寶) 삼만 가지의 위치를 적은 것이 아닌가?

 

천하(天下)의 재물이 곧 환영문(幻影門)의 것이다!

 

그렇게 장담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만보제종편에는 기진이보가 비장되어 있는 현위치 뿐만 아니라, 금맥(金脈), 은맥(銀脈) 등의 광맥이 뻗혀 있는 곳, 천하영약들이 자라는 곳이나 그에 대한 치밀한 설명 등 갖가지 방면에 대한 정보가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그것은 만보(萬寶)의 지침서인 것이다.

(정말 대단하군...!)

군무현은 절로 혀를 내둘렀다.

그와 함께, 그는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만년빙지(萬年氷芝)가 있는 곳을 살펴보자!)

이어, 그는 눈을 빛내며 만보제종편의 내용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한 순간,

“...!”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기광을 발했다. 과연 만년빙지(萬年氷芝)에 관한 내용을 발견한 것이 아닌가?

 

만년빙지(萬年氷芝)!

북해(北海) 빙백궁(氷魄宮)에 일곱 뿌리가 있다. 한 뿌리만으로도 능히 탈태환골(脫胎煥骨), 금강지체(金剛之體)를 이룰 수 있다는 극음성약(極陰聖藥)이다. 그렇기 때문에 빙백궁에서는 이것을 목숨같이 아끼고 있다...

(북해(北海) 빙백궁(氷魄宮)...!)

군무현은 신광을 빛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눈에 모종의 결심의 빛이 떠올랐다.

 

북해(北海) 빙백궁(氷魄宮)!

 

세외사천(世外四天) 중 북천(北天)에 속하는 문파였다.

특이하게도, 빙백궁은 전 궁도들이 여인(女人)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어 비밀에 싸여 있는 문파였다.

세외제일신비문파(世外第一神秘門派)!

빙백궁을 가리켜 무림인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

 

X X X

 

이얍!”

치기가 채 가시지 않은 소년의 힘찬 함성이 주위를 울렸다.

이어, 콰르릉 콰쾅!

천붕지열의 굉음이 천지를 뒤집어 엎을 듯 터져 올랐다.

순간, 거창한 강기가 방원 십 장을 뒤덮었다.

자하곡(紫霞谷)의 중앙, 한 명의 단삼소년이 맹렬히 강기를 떨치고 있었다.

이제 십사오세 정도 되었을까? 영준한 용모에 균형잡힌 체격이 소영웅(少英雄)의 출중한 모습을 연상케 했다.

단삼소년, 그는 바로 남궁준하였다.

남궁준하의 곁에는 군무현이 우뚝 선 채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군무현, 그는 일신에 흑색경장을 가뿐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용모와 썩 잘 어울렸다.

짙은 흑색경장은 그의 창백한 얼굴을 더욱 희고 돋보이게 만들었다.

군무현은 잠시 손을 멈춘 남궁준하를 바라보며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제천무극대진력(帝天武極大眞力)은 되었다. 무극제황대천검(武極帝皇大天劍)을 펼쳐 보아라!”

!”

남궁준하는 호쾌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어, 그는 자세를 바로잡더니 벼락같이 손을 움직였다.

파파팟! 츠츠츠... 그의 허리에서 순간 낙뢰같은 검기가 작렬했다.

그의 수중에 들린 병기, 그것은 설악(雪嶽)이라는 이름이 붙은 단금쇄옥(斷金碎玉)의 춘추명기(春秋名器)였다.

한 순간, 우르릉... 쐐 액! 설악의 웅장하고도 장쾌한 검세가 십 장 방원을 완전히 뒤덮었다.

“...!”

군무현은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하나, 그는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영리한 녀석이다. 후일 남궁세가를 천하제일세가(天下第一勢家)로 이끌어 올리리라!)

남궁준하의 오성과 재능은 실로 뛰어났다. 군무현이 감탄할 정도로...

한데, 군무현이 내심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문득, 사르르... 비단자락 끌리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 향긋한 체향(體香)이 일었다.

이어, 한 명의 아름답고 기품있는 미소부(美少婦)가 나타났다.

남궁혜미 그녀가 아닌가?

그녀는 아직 십칠세밖에 되지 않은 소녀였다.

풋과일처럼 싱싱하고 청순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모습.

한데, 지금 남궁혜미는 부인(婦人)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그녀가 군무현의 첩실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아름다웠다.

우아하고 기품있는 자태가 또 다른 그녀의 매력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남궁혜미는 사뿐사뿐 교족을 떼어 군무현의 뒤로 다가섰다.

이어, 그녀는 남궁준하를 지켜보고 있는 군무현의 뒤에 다소곳이 시립했다.

혜미...!”

군무현은 그녀임을 느꼈는지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남궁혜미는 듬뿍 정감이 실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식사하실 시간이에요!”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한창 무공수련에 열중인 남궁준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하! 식사 후에 계속한다!”

그 말에 남궁준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형님 먼저 가십시오! 소제는 더 있다 가겠습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남궁혜미는 다소곳이 그를 뒤따르다가 문득 남궁준하에게 일렀다.

늦지 않도록 오너라!”

그 말에 남궁혜미는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였다.

헤헤... 누님! 형님과 단란한 시간 보내십시오!”

그의 의미있는 표정으로 그렇게 전음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남궁혜미는 그의 짓궂은 말에 옥용을 붉혔다.

하나, 그녀는 이내 달콤한 표정을 지으며 군무현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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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紫霞別府奇緣

 

 

 

남궁혜미, 그녀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자하천류대진을 뚫어질 듯 주시하고 있었다.

무엇엔가 집중하여 전혀 사심이 깃들지 않은 모습, 그런 그녀의 모습은 실로 아름다웠다.

군무현은 말없이 남궁혜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남궁혜미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여인의 미()를 느꼈다.

문득,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나직이 뇌까렸다.

혜미는... 과연 중원제일미(中原第一美)라 할만하군!”

그는 감탄의 눈빛으로 남궁혜미의 옆모습을 주시했다. 순간, 남궁혜미는 군무현의 시선을 느꼈는지 발그레 옥용을 붉혔다.

그제서야 군무현도 어색한 표정으로 안색을 바꾸었다.

이어, 그는 다시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돌파할 수 있겠느냐?”

남궁혜미는 군무현의 그런 무심한 음성에 다소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하나, 그녀는 지혜로운 소녀였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다부진 음성으로 대답했다.

반나절의 시간만 주신다면 돌파해 보이겠어요!”

“...!”

군무현의 입가에 한줄기 미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역시 남궁세가가 자랑할만한 재녀로군! 당금천하를 통틀어 자하천류대진을 알아볼 사람은 다섯이 채 되지 않거늘... 반나절이면 돌파할 수 있다니...!)

하나, 그는 입가의 미소를 떠올릴 때보다 더 빠르게 지워 버렸다. 이어,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반나절이나 기다릴 시간이 없다!”

그 말과 함께, 그는 남궁혜미의 손목을 잡았다.

... 무슨 말씀이신지요?”

갑작스런 군무현의 태도에 남궁혜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스슷...! 군무현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자하곡의 곡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더욱 어리둥절해진 것은 남궁준하였다.

하나, ! 그도 곧 군무현을 뒤따라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들은 곡구에 내려섰다.

군무현은 남궁준하에게 주의를 주었다.

내가 디디는 곳 외에는 절대 밟아서는 안된다. , 따라 오너라.”

!”

남궁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러게 군무현의 뒤를 따랐다.

군무현, 그는 남궁혜미의 손목을 잡고 거침없이 자하천류대진 안으로 들어갔다.

스으... 스으... 몸을 감싸며 휘감겨 오는 자욱한 자하(紫霞).

군무현은 그 속을 종횡으로 누비며 전진해 나갔다.

남궁혜미는 군무현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세상에...!)

그녀는 아연하여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기문지학만은 신기황(神機皇) 노선배님 외에는 제일(第一)이라 자부해 왔건만...!)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러했다. 그녀는 뛰어난 오성과 총명으로 기문지학에 달통할 수 있었다.

평소에 겸손한 그녀였지만 그 방면에서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노라고 자부해왔다.

한데, 군무현은 어떤가? 오히려 남궁혜미 자신보다 몇 단계 위가 아닌가?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것이리라.

그때, 스슥... 군무현은 마치 평지를 걷듯 절진 속을 뚫고 거침없이 전진해 들어갔다.

남궁준하, 그도 군무현의 행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빛내며 열심히 뒤따르고 있었다.

군무현은 계속 안으로 전진하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것은 이미 수천년 전에 설치된 진세라 극히 약해져 있었다. 그때 환노(幻老)가 이곳을 발견하여 자하선인(紫霞仙人)의 진전을 얻고 진세를 보강한 것이다!)

그는 내심 추측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하천류대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스슥... 스스스... 그의 보법은 지극히 기민하면서도 유연했다.

그렇게 얼마나 전진했을까? 삼인(三人)은 마침내 완전히 자하천류대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진세를 벗어나는 순간,

!”

남궁준하는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며 탄성을 울렸다.

보라! 그들의 눈 앞,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이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지 않은가?

세외선경(世外仙境), 무릉도원(武陵桃源)의 낙원이 바로 이곳이런가?

자하곡! 그 깊은 곳의 절경은 가히 필설이 따르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멋들어졌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기화이초들, 그것들은 넘치듯 출렁거리며 다투어 방향(芳香)을 뿌려대고 있었다.

어디선가 볼어와 꽃잎을 간지럽히는 그윽하고 부드러운 바람, 꽃잎에 앉아 한가로이 꿀을 취하고 있는 벌과 나비...

졸졸졸... 맑은 청음을 내며 옥같은 계류가 흐르고 있는가 하면, 오색영롱한 보석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종유석들이 기이한 신비를 연출하며 각기 다른 형상으로 늘어져 있다.

뿐인가? 주위는 온통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찼다. 실로 환상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천중산 깊은 험지에 이토록 신비스러운 절경이 자리하고 있을 줄이야... 세인들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으리라.

남궁혜미, 그녀는 꿈 속을 더듬는 듯 몽롱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문득, 그녀의 작은 가슴이 설렘으로 가득차 두근거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이분을 모시고 평생을 살 수 있다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며 몰래 얼굴을 붉혔다.

어느 덧, 군무현에 대한 사모지정이 그녀의 방심에 새록새록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군무현이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입을 열었다.

저곳이군!”

그는 곡 끝의 한 석동(石洞)을 가리켜 보였다.

동굴의 입구,

 

<자하별부(紫霞別府)!>

 

그와 같은 글씨가 세치 깊이로 새겨져 있었다.

고전체(古錢體)로 쓰여진 일필휘지의 명필, 동굴은 별다른 특징이 없이 평범해 보였다.

하나, 그것은 다만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군무현과 남궁혜미, 그들은 자하별부(紫霞別府)의 앞에 이르러 흠칫하며 멈추어 섰다.

문득,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남궁혜미를 바라보았다.

혜미, 보이느냐?”

그의 물음에 남궁혜미는 혜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요. 소녀가 보기에는 이곳에 서른 여섯가지의 사관(死關)이 감추어져 있어요!”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올렸다. 하나 그 순간, 남궁혜미가 생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소녀에게 맡겨주시지 않겠어요?”

군무현은 그녀의 말에 말없이 손을 내렸다.

남궁혜미는 그 모습에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남궁준하, 그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군무현과 남궁혜미를 번갈아 주시했다.

형님!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하나, 군무현은 가볍게 손을 저어 그의 말을 막았다.

곧 알게 될 것이다!”

남궁준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말없이 남궁혜미의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남궁혜미는 동굴 앞에 쪼그리고 앉은 채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조금씩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반각이 지났을 무렵, 문득 남궁혜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그녀는 품 속에서 하나의 작은 옥도(玉刀)를 꺼내들었다.

다음 순간, 파파팍! 그녀는 옥도를 던져 동굴 한쪽에 석벽을 찌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쩌적! 콰 앙!

무엇인가 부서지는 폭음이 들렸다.

순간, 군무현의 입가에 한줄기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파파팍! 따 당!

남궁혜미는 연이어 몇군데의 석벽을 옥도를 던져 찍어갔다.

놀랍게도 그녀의 작은 옥도는 석벽을 두부 베듯이 쉽게 베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옥린보도(玉麟寶刀)!

 

그것은 놀라운 위력을 지닌 신병이었다.

이윽고, 남궁혜미는 이마의 땀을 딱으며 옥도를 거두었다.

다 되었어요!”

그녀의 말에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궁준하를 이끌고 동굴 안으로 둘어섰다.

 

동굴의 통로는 무척 길었다. 하나, 중간중간에 은은한 야명주의 빛이 비치고 있어 전진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군무현 일행은 두 구비의 긴 통로를 지났다.

그러자, 눈 앞에 하나의 거대한 석문이 나타났다.

삼인(三人)은 석문 앞에 이르러 우뚝 멈추어 섰다.

한데, 석문의 중앙, 그곳에는 자운(紫雲)이 서로 엉켜 하늘로 오르는 기이한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남궁헤미는 것을 주시하며 혜안을 반짝였다.

자운승극도(紫雲昇極圖)예요! 현기가 보여요!”

군무현 역시 기광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없이 석문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어, 그는 뭉클뭉클 피어 오르는 자색 구름 모양을 몇 군데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르릉...! 묵중한 굉음과 함께 석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

남궁혜미와 남궁준하는 나직한 탄성을 발하며 눈이 부신 듯 손으로 눈을 가렸다.

석문의 안쪽, 그곳으로부터 눈을 멀게 만드는 엄청난 광채가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휘황찬란한 보광(寶光)이었다.

석문 안, 그곳은 한 칸의 석실이었다.

군무현은 천천히 석실 안으로 들어섰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내심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군! 천하의 재보(財寶)들이 이곳에 다 모인 듯 하군!)

그는 감탄의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석실, 그곳은 그대로 하나의 보산(寶山)이었다.

하나만으로도 능히 일개의 성()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재보들이 지천으로 쌓여 있지 않은가?

실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남궁혜미와 남궁준하, 그들 두 남매는 너무도 엄청난 재보를 바라보며 넋나간 표정을 지었다.

석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무수한 재보들, 그것은 환영투도가 평생에 걸쳐 모은 귀중한 재산이었다.

비단 재보 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절세신병(絶世神兵)을 비롯하여 희세의 무공비급들이 수두룩했다.

또한, 그것은 하나같이 엄청난 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중 하나만을 취해도 천하를 혈풍(血風) 속에 휘몰아 넣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 외에도, 뼈에 살을 붙이고 죽은 다도 능히 살릴 수 있는 희세의 영약들이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이 비장되어 있었다.

이 석실이야말로 실로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엄청난 보고(寶庫)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때, 군무현이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혜미...!”

?”

남궁혜미는 그제서야 흠칫 정신을 차리며 군무현에게로 다가왔다.

군무현은 석실 안의 무수한 기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안의 모든 것이 혜미 그대의 것이다!”

순간, 남궁혜미는 격동의 표정으로 교구를 파르르 떨었다.

... 상공...!”

그녀는 감격을 금치 못하며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실로 꿈만같은 일이 아닌가? 하나, 군무현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는 남궁혜미에 대한 신뢰의 눈빛을 보일 뿐이었다.

이 안의 재보들로 강한 힘을 길러라. 사망림(死亡林) 뿐 아니라 천하를 상대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말과 함께, 군무현은 남궁혜미의 작고 보드라운 교수를 힘주어 잡았다.

순간,

(...!)

남궁혜미는 꿈결같은 탄성을 발하며 옥용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일순 심혼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세차게 가슴이 뛰놀았다.

처음으로 군무현의 입가에 흐릿하나마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그녀는 본 것이다.

미소, 군무현의 미소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귀한 것일수록 그 가치가 더한 법, 우기(雨氣) 속은 짧은 햇빛처럼 군무현의 한줄기 미소는 투명하고도 눈부셨다.

남궁혜미의 꿈꾸듯 달콤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하나, 그녀는 이내 꿈에서 깨어나야만 했다.

, 우선 둘러보고 정리를 좀 하도록 하자!”

군무현이 그녀의 손을 놓으며 돌아선 것이다.

남궁혜미는 아쉬움을 느꼈으나 가볍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무현은 남궁준하에게도 시선을 주었다.

준하는 병기와 재보들을 한곳에 정리하고 혜미는 약재들을 분류하여 따로 모으는 것이 좋겠군!”

, 형님!”

남궁준하는 신이 난 듯 득시 대답하며 분주히 몸을 움직였다. 남궁혜미도 몸을 숙여 바닥의 약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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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 章

 

              神秘紫霞谷

 

 

 

흐흑... 어머님!”

남궁혜미, 그녀는 중년미부의 시신을 끌어 안으며 처절한 울부짖음을 터뜨렸다.

사내에게 능욕당하다 처참하게 죽어간 중년미부,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군무현은 엄천난 분노와 함께 강렬한 살심(殺心)이 솟구쳤다.

살인을 했으니 네놈들의 더러운 목숨으로 대가를 받으리라!”

그는 냉혹한 눈으로 혈사음령을 노려 보았다.

순간, 혈사음령은 그의 강렬한 기도에 흠칫 몸을 떨었다.

하나, 그 자는 이내 정신을 수습하며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크흐... 애송이놈! 감히 사망림의 일을 방해하다니... !”

그 자는 말을 하다 말고 두 눈을 한껏 부릅떴다.

죽어랏!”

군무현의 우수가 어느 새 번개같이 휘둘러진 것이었다.

꽈릉...! 벼락같은 핏빛강기가 혈사음령의 가슴을 후려쳤다.

어헉!”

혈사음령은 다급한 헛바람을 들이키며 질겁했다.

그 자는 앞 뒤 가릴 것도 없이 반사적으로 장을 맞받아쳤다.

위 잉!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은 강맹한 장력,

하나, 콰르릉... 콰쾅! 들썩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이 짓터져 오름과 함께,

크 악!”

혈사음령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 끔찍했다. 그자는 두 팔이 완전히 짓뭉개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하나, 군무현은 거기에서 손속을 멈추지 않았다.

수라혈살강뢰!”

콰자작! 재차 그의 입에서 냉혹한 일갈이 터짐과 함께 핏빛강기가 작렬하듯 혈사음령의 전신에 퍼부어졌다.

그것은 혈사음령으로서는 도저히 대항하거나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무서운 공력이었다.

부림주님!”

혈사음령의 수하들은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었다.

그 순간, 꽈르르릉! 퍼 엉!

천붕지열의 가공할 폭음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 폭음 속을 뚫고,

크 아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짓터져 올랐다.

오오!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혈사음령! 그 자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 조차 않았다.

산산이 찢기고 파열된 살조각과 선혈만이 허공을 뒤덮었을 뿐이었다.

그 광경에 사망림의 수하들은 혼비백산했다.

... ! 천살성(天殺星)이다!”

... 달아나자!”

스슥! ! 그자들은 사색이 되어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났다.

하나,

한 놈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군무현은 살기어린 눈으로 냉소를 머금었다.

이어, 그는 소매 속에서 하나의 철적(鐵笛)을 꺼내어 입에 댔다.

다음 순간, 삐 이익! 귀청을 찢어 발기는 날카로운 소성이 울려 퍼졌다.

직후,

케 엑!”

크악!”

크윽...!”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잇달아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쿵 쿠웅!

단번에 백장 밖까지 달아났던 사망림의 수하들은 모두 오공에서 피를 토하며 속속 나뒹굴었다.

 

천붕뇌명후(天崩雷鳴吼)!

 

군무현이 시전한 음공은 바로 그것이었다.

천황음경(天皇音經)의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 중 세 번째 음공, 그것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돌연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정적, 죽음 후의 무겁고 숨막히는 정적이 장내를 짓눌렀다.

이윽고, 군무현은 천천히 돌아섰다.

역한 피비린내가 그의 코끝을 물씬 진동했다.

남궁혜미, 그녀는 슬픔과 오열에 지쳐 혼절해 있었다. 죽은 어머니의 시신을 꼭 끌어 안은 채...

군무현은 깊은 연민의 눈빛으로 혼절한 남궁혜미를 내려다 보았다.

불쌍한 소녀...!”

그의 입에서 진심어린 동정이 깃든 나직한 뇌까림이 흘러 나왔다.

이어, 그는 남궁혜미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혈도를 가볍게 문질렀다.

그러자,

으음...!”

나직한 신음과 함께 잠시 후 남궁혜미가 깨어났다.

정신이 드느냐?”

군무현은 무심하나 염려가 깃든 음성으로 물었다.

남궁혜미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한동한 멍한 표정으로 중년미부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흐윽... 어머니...!”

그녀는 그대로 시신을 끌어 안으며 다시 서러운 오열을 터뜨렸다.

군무현은 무슨 말로든 그런 남궁혜미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나, 그는 생각과는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그는 서럽게 오열하는 남궁혜미의 모습을 지켜보며 어찌해야 좋을지 안절부절 할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중년미부의 곁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한 명의 소년을 발견했다.

(아직 죽지 않았다!)

그는 단번에 그것을 알아보고는 기광을 빛냈다.

이어, 그는 급히 소년의 곁으로 다가가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소년의 안색은 밀랍같이 창백했다. 이미 산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나, 그는 아직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소년의 얼굴은 반듯하고 준수했으며 남궁혜미의 용모와 흡사해 보였다.

(신기황 어르신네의 의술이 한 생명을 구하리라!)

군무현은 곧 능숙하게 소년의 혈도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는 빠르게 소년의 전신을 추궁과혈했다. 그러자,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한 소년의 얼굴에 점차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X X X

 

남궁세가의 뒷산, 크고 작은 몇 개의 봉분이 세워졌다.

두 개의 봉분 앞,

흐흑...!”

언제부터인가 간장을 끊어낼 듯 애절한 소녀의 울음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두 남매(男妹), 그들이 봉분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오열하고 있었다.

남궁혜미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연신 가녀린 어깨를 들먹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있었다.

반면, 그녀의 옆에 선 소년, 그는 사내답게 입술을 악문 채 오열을 삼키고 있었다.

 

남궁준하(南宮俊河)!

 

이것이 소년의 이름이었다.

두 남매의 뒤, 군무현이 침통한 안색으로 우뚝 서 있었다.

그는 회의어린 눈빛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남궁세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천년의 역사가 한줌 재로 쓰러지다니...!)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새삼 인간사(人間事)의 무상함을 절감했다.

실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군무현의 눈빛이 밝아졌다.

(일신의 원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을 내 자신이나 이 아이들 같은 슬픔을 겪게 해서는 안된다!)

그의 얼굴에 엄숙한 결의의 빛이 떠올랐다.

(자신의 야심을 위해 천하를 혈란(血亂)으로 몰아넣으려 하는 자... 그것이 누구이든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그는 내심 굳게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의 이같은 새로운 결심은 천하무림을 위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군무현! 역시 그는 영웅(英雄)임이 분명했다.

그때, 남궁혜미의 서러운 오열이 낮게 잦아드는가 싶더니 이윽고 울음을 그쳤다.

그것을 느낀 군무현, 그는 무심히 돌아섰다.

남궁혜미는 뿌연 안개처럼 흐린 눈으로 군무현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군무현은 그대로 태산(泰山)이었다.

문득,

상공...!”

남궁혜미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실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어, 그녀는 군무현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남궁준하는 입술을 악물며 하늘을 우러렀다.

준하에게 힘을 주소서! 원수들을 멸하고 남궁세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큰 힘을 주소서!”

그는 하늘을 향해 절규하듯 부르짖었다.

“...!”

군무현은 묵묵히 그들 남매를 내려다 보았다.

차갑고 무심하기만 하던 그의 눈에는 연민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남궁준하 역시 군무현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며 호소했다.

대협! 소생을 거두어 주십시오! 가문의 원한을 갚을 수 있는 힘만 주신다면 무슨 짓이든 할 것입니다!”

그의 두 눈에는 피맺힌 결의가 빛나고 있었다.

군무현은 말없이 남궁준하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이어, 그는 무서운 의지와 집념으로 타오르는 남궁준하의 두 눈을 직시했다.

준하! 너는 일문(一門)의 종사(宗師)! 선친과 사장(師長) 앞이 아니면 누구에게라도 무릎을 꿇어서는 안된다!”

대협...!”

남궁준하는 격동을 금치 못하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군무현은 그런 남궁준하를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이라 불러라! 내 너로 하여금 사망림(死亡林)을 초토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겠다!”

순간,

... 형님!”

상공!”

두 남매는 감격을 금치 못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군무현은 그런 두 남매의 손을 굳게 움켜 잡았다.

약속, 그것은 힘차고 뜨거운 약속이었다.

남궁남매는 온통 기대와 희열에 들뜬 표정으로 활짝 웃어 보였다. 채 마르지 않은 눈물 속에서 벅찬 감격이 빛나고 있었다.

서로의 손을 굳게 마주잡은 세 사람, 그들의 만남을 축복하듯이 찬란한 낙조가 세 사람의 어깨 너머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X X X

 

천중산(天中山),

 

하남성(河南省)에 위치한 대산(大山).

그 장쾌한 산세가 무려 일천칠백리에 이르는 거악(巨嶽)이다.

 

하나의 높은 산봉 위,

하하...! 형님! 수라혈잠영(修羅血潛影)의 경공은 정말 빠릅니다!”

스슥! 스스스...

소년의 낭랑한 웃음소리와 함께 문득 몇줄기 인영이 산봉 위로 날아 내렸다.

이남일녀(二男一女), 그들은 바로 군무현과 남궁혜미, 남궁준하 남매였다.

남궁혜미의 고운 얼굴은 무척 수척해 보였다. 아직도 그녀는 큰 충격과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옥용 가득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반면, 남궁준하, 그는 사내답게 슬픔을 벗어던지고 이미 명랑한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누나인 남궁혜미와 비교할 수는 없으나 역시 타고난 기재였다.

영민한 지혜와 뛰어난 자질을 갖춘 소년, 산봉 위에 우뚝 선 군무현, 그는 눈을 빛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자하곡(紫霞谷)에는 많은 영약이 있을 것이다. 준하를 단시일 내에 강자(强者)로 만들어 주리라!)

어느 새, 그는 남궁준하를 친동생 이상으로 아끼고 있었다.

물론, 남궁준하가 친형님 이상으로 군무현을 따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하곡(紫霞谷)!

지금 군무현 일행은 자하곡(紫霞谷)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환영투도가 죽기 직전에 일러주었던 곳, 천중산(天中山) 자하곡(紫霞谷)!

그곳에는 환영투도의 안배가 숨겨져 있으리라.

 

남궁혜미, 그녀는 아미를 살짝 모은 채 멀리 산정(山頂)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그녀는 무엇을 발견했는지 지혜로운 봉목에 반짝 이채를 띄웠다.

상공...! 현기가 보여요!”

“...!”

그녀의 말에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산정으로 눈길을 돌렸다.

스으... 스으...

과연, 그곳에는 은은하고 신비로운 자하(紫霞)가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환상차럼 신비로운 광경, 그때, 남궁준하는 만면에 의혹의 빛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형님, 누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는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궁준하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안개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군무현과 남궁혜미, 그들은 그 신비로운 자하(紫霞)가 인위적인 진형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임을 알아보았다.

군무현은 의아해 하는 남궁준하를 향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곧 알게될 것이다. , 가자!”

말과 함께, 스슥! 그는 남궁혜미의 손목을 잡고 바람처럼 신형을 날렸다.

그러자, ! 남궁준하도 곧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들은 삽시에 은은한 자하가 흐르는 산정(山頂)에 이르렀다.

산정에 발을 디디는 순간,

!”

남궁준하는 눈을 크게 뜨며 탄성을 내질렀다.

산정 아래,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세외도원이 이러할까?

스으... 스으... 신비한 자하가 구름처럼 흐르고 있는 그곳에 하나의 아름다운 절곡(絶谷)이 자리하고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려왔던 신비롭고 아름다운 절곡, 절곡 주위에는 온통 기화이초가 만발해 있었고 맑은 옥계류(玉溪流)와 청청한 숲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별천지에 들어선 듯한 황홀한 전경, 인간세상에 이렇듯 아름다운 곳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터였다.

남궁혜미는 그 절곡을 둘러보며 눈을 크게 떴다.

천중(天中)의 험지(險地)에 이런 도원경이 있을 줄이야...!”

그는 신기한 표정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때, 문득 군무현이 남궁혜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혜미? 알아보겠느냐?”

그 말에 남궁준하는 다시 의아한 시선으로 누나인 남궁혜미를 주시했다.

남궁혜미는 무한한 지혜가 반짝이는 혜안으로 자하 속에 둘러싸인 절곡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어, 그녀는 가볍게 아미를 모으며 입을 열었다.

소녀의 눈이 틀림없다면... 상고시대 자하선인(紫霞仙人)의 자하천류대진(紫霞天流大陣)이 곡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중원제일재녀(中原第一才女)의 명망이 헛것이 아니었군!”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그의 어조는 지극히 무심했다. 하나, 남궁혜미는 두 볼을 붉게 물들이며 기쁨의 표정을 지었다.

처음으로 군무현의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닌가?

그때, 남궁준하가 의아한 듯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자하선인(紫霞仙人)은 누구이며 자하천류대진(紫霞天流大陣)은 또 무엇입니까?”

군무현은 남궁준하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의문을 가지면 그것을 풀지 않고는 못배기는 남궁준하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었다.

자하선인은 무림(武林)이 태동될 무렵에 살았던 전설적인 기인(奇人)이셨다. 기문둔갑, 기관지학, 토목지술의 시조로 불리던 분이다. 세속의 명리에 초탈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천지십강(天地十强)에 못지 않은 고수셨다!”

순간, 남궁준하는 눈을 크게 뜨며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천지십강에 못지 않다구요?”

군무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자하곡을 내려다 보며 문득 환영투도가 남긴 말을 떠올렸다.

 

천중산(天中山) 자하곡(紫霞谷)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원수를 갚기에 충분한 무공비급들이 있을 것입니다...!

 

환영투도를 생각하자 군무현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환노는 자신이 비록 직접 익히지는 못했으나 자하선인의 진전을 지니고 있었구나!)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환영투도의 치밀한 안배에 새삼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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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九 章

 

                  南宮勢家劫火

 

 

 

군무현, 그의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남궁세가(南宮勢家)!

그들 역시 전체는 아니었으나 적룡세가의 멸겁에 소수의 인물이 참가했던 문파가 아닌가?

그것은 군무현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군무현은 남궁혜미를 주시하며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부탁이란 무엇인가?”

남궁혜미는 간절함이 깃든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 남궁세가가 사망림(死亡林)의 급습으로 위경에 처해 있어요! 제발 도와 주세요!”

그녀는 절실한 음성으로 간청했다.

도와달라고?”

군무현은 싸늘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 한기가 끼얹어졌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남궁혜미는 흠칫하며 불길한 예감을 직감했다.

(좋지 않다!)

하나, 털썩!

그녀는 이내 군무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어, 그녀는 간절한 음성으로 애원했다.

이렇게 부탁드리겠어요. 사망림의 마수(魔手)만 막아 주시면 무슨 짓이든 하겠어요!”

군무현은 서늘한 한기가 감도는 눈으로 남궁혜미를 내려다 보았다.

그대는 본인이 누군지 아느냐?”

그의 물음에 남궁혜미는 움찔 몸을 떨었다. 순간적으로 한 가지 직감이 그녀의 뇌리에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본 세가와 원한이 있구나!)

그것은 극히 불안한 느낌이었으나 그녀의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군무현의 입에서 한 소리 차가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본인의 이름은 군무현이다!”

순간, 남궁혜미의 안색이 홱 변했다.

(... 이 사람이 적룡대제의 아들...!)

그녀는 경악과 함께 무거운 절망감을 느꼈다.

원수를 도와줄 인물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하나, 남궁혜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하지만... 이 사람을 놓치면 남궁세가 일천 년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고 만다!)

그녀는 도저히 단념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군무현의 발밑에 엎드려 애원했다.

제발... 구원(舊怨)은 잊으시고 도와주세요. 도와주시기만 하면 상공의 시첩이 되어... 평생을 모시겠어요!”

주르르...! 옥같은 눈물이 그녀의 고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것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절로 뭉클하게 만드는 애절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눈물, 여인의 눈물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었다.

간절함과 진정으로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는 남궁혜미,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군무현의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삭막하기만 하던 그의 가슴에 한 가닥 뭉클한 감정이 일어난 것이었다.

군무현은 내심 자문해 보았다.

(군무현아... 네 스스로 멸문의 한()을 맛보지 않았느냐? 이 천진한 소녀에게도 그런 아픔을 겪게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 그것은 잔인한 짓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 군무현, 그는 결코 자신의 가슴에 뿌리내린 엄청난 한을 이 어린 소녀에게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잔인한 행위는 그의 본연의 선한 양심이 허용치 않는 것이다.

이윽고, 군무현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순간, 남궁혜미는 파르르 어깨를 떨며 조심스럽게 군무현을 올려다 보았다.

기대와 불안이 엇갈리는 초조한 눈빛,

... 도와주시는 건가요?”

“...!”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순간,

상공!”

남궁혜미는 기쁨을 금치 못하며 눈물 고인 눈으로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군무현, 문득 그의 싸늘한 입가에 한줄기 흐릿한 미소가 스쳤다.

 

X X X

 

화르르...! 콰콰 쾅!

화마(火魔)! 시뻘건 화염이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무엇이든 거침없이 집어 삼키는 엄청난 불길, 그 속에 한 채의 웅장한 장원이 화마에 휩싸여 흔적을 잃어가고 있었다.

콰르릉... 쿠쿵! 거대한 장원은 충천하는 화염 속에 휘말려 덧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주위를 진동하는 시신이 타는 매캐한 냄새, 아아! 또 얼마나 많은 자들이 덧없이 화염 속에 잿더미로 쓰러져 가고 있는 것일까?

 

남궁세가(南宮勢家)!

 

중원에서도 가장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명가(名家).

화마 속에 휩싸여 무너지고 있는 장원은 바로 다름 아닌 남궁세가였다.

화르르! 콰릉... 엄청난 기세로 불타오르는 남궁세가의 장원 앞, 수백 명의 회의(灰衣) 흉한들이 살기 흉흉한 눈으로 불타는 남궁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흉신악살을 연상케 하는 험악한 인상을 지닌 자들, 장원 안, 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몇부류의 인물들이 둘러서 있었다.

죽여라! 네놈들을 죽이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것이 한이다!”

한 명의 피투성이 중년인이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 채 노갈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실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본래, 그는 지극히 청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 희생키 힘든 중상을 입은 지금 그의 모습은 한 마리 거친 노호(怒虎)와도 같았다.

분노와 비통함, 그리고 참혹한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그런 중년인의 앞, 한 명의 소년이 창백한 안색으로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의 곁, 한 명의 중년미부가 쓰러져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눈이 번쩍 뜨이는 절륜한 미모의 중년미부, 그녀는 마혈이 짚힌 듯 분노와 원한의 눈물을 흘릴 뿐 미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중년인의 앞, 한 명의 회포노인이 우둑 서 있었다.

두 눈이 움푹 꺼져 들어가 지극히 음험한 인상을 풍기는 인물, 그 자는 득의함이 깃든 괴이한 표정으로 중년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흐흐... 남궁걸(南宮傑)! 이제 본림(本林)의 명을 거역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알겠느냐?”

 

남궁걸(南宮傑)! 이것이 당금 남궁세가의 가주(家主)인 신안수사(神眼秀士)의 이름이었다.

 

피투성이의 중년인, , 남궁걸은 두 눈에 줄기줄기 분광을 폭사하며 이를 갈았다.

으득...! 잊지 마라! 중원은 네놈들 변방의 오랑캐 따위가 언제까지 발호하는 것을 용납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당금 남궁세가의 가주답게 결코 꺾이지 않는 불굴의 투지로 대항했다.

하나, 무슨 소용이랴? 그는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 없었다.

문득, 회포노인의 두 눈에 야릇한 광채가 번득였다.

그 자는 힐끗 중년미부를 일견하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남궁걸! 네놈에게 근사한 것을 보여주겠다!”

그 말에 남궁걸의 안색이 일변했다.

혈사음령(血死陰靈)! ... 무슨짓을 하려는 것이냐?”

혈사음령(血死陰靈)이라 불리운 회포노인! 그 자는 음침한 눈을 번득이며 중년미부를 향해 다가섰다.

움푹 꺼진 그 자의 두 눈은 음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낀 중년미부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혈사음령은 그런 중년미부의 농염한 육체를 쓸어보며 군침을 삼켰다.

흐흐... 중원의 계집은 각별한 맛이 있다고 들었다!”

순간,

... 여보!”

중년미부는 수치와 분노로 새파랗게 질리며 다급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두 눈에는 초조와 불안의 빛이 얼룩졌다.

그때,

흐흐...!”

찌 익! 혈사음령이 그대로 중년미부의 몸을 덮치며 그녀의 의복을 찢어냈다.

! ... 놓아랏!”

중년미부는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저항했다.

하나, 마혈이 찍힌 그녀는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조차 없었다.

삽시에, 그녀는 사내의 음탕한 손길에 전신을 벌거벗기고 말았다.

풍만하고 농염한 여체, 관능적인 굴곡을 지닌 중년여인의 육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흐윽...!”

중년미부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오열을 터뜨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남궁걸,

... !”

그는 분노와 격동을 참지 못하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능욕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떻겠든가?

그것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한 치욕이며 굴욕이었다.

그이 두 눈은 금방이라도 핏물이 흘러 내릴 듯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 ...”

하나, 그 역시 마혈이 찍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무기력한 몸이었다.

혈사음령, 그 자는 잔인하고 음탕한 음소를 흘리며 중년미부의 나신을 쓸어 보았다.

흐흐... 과연 일품이군!”

그자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 자는 중년미부의 전신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순간,

아악! ... 이놈! ... 비켜랏!”

중년미부는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울부짖었다.

하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때, 혈사음령의 수하들이 음탕한 눈을 번득이며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 자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침을 흘리며 혈사음령이 중년미부를 능욕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흐흐... 비단결보다 부드러운 몸이군!”

혈사음령은 중년미부의 나신을 쓰다듬으며 감탄의 기색을 지었다.

흐윽...!”

종년미부는 몸서리를 쳤다.

혈사음령의 손길이 몸을 스칠 때마다 그녀는 흡사 송충이가 기어가는 듯한 전율을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혈사음령은 그런 중년미부의 모습에 미간을 찡그렸다.

흐흐... 계집이 너무 뻣뻣하면 재미가 없지!”

이어, 그 자는 중년미부의 마혈을 풀어 주었다.

순간,

... 놔랏! 이놈!”

중년미부는 있는 힘을 다해 혈사음령의 몸을 떠밀어 냈다.

하나,

!”

그녀는 다시 사내의 육중한 몸에 짓눌려 버렸다.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사내의 체구를 감당해 내기란 불가능했다.

문득, 중년미부의 두 눈에 비장한 결의의 빛이 떠올랐다.

(자결하자!)

그녀는 이를 악물며 남편 남궁걸을 바라보았다.

잔뜩 충혈된 채 핏발이 선 남궁걸의 두 눈, 일순,

“...!”

“...!”

두 부부의 말없는 시선이 마주쳤다.

중년미부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상공... 먼저 가겠어요!)

다음 순간, 주르르... 그녀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흘러 내렸다.

남궁걸은 대경실색했다.

부인! 안돼오!”

그는 처절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하나, 주르르... !

중년미부의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꺾여지며 선혈이 그녀의 목을 타고 흘러 내렸다.

! 그녀는 더 이상 치욕을 당하기 전에 혀를 물어 자결한 것이었다.

순간,

... 이런 망할 계집!”

혈사음령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탐스럽고 아름답던 중년미부의 나신은 어느새 힘없이 축 늘어지고 만 것이 아닌가?

그때,

부인! 부인!”

남궁걸은 처절한 음성으로 절규하듯 부르짖었다.

미처 그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중년미부는 자결해 버리고 만 것이다.

처연한 아내의 마지막 눈빛, 그것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크윽... 부인!”

그는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

하나, 속수무책, 그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혈사음령은 일순 낭패한 기색이었으나 이내 음흉한 괴소를 터뜨렸다.

클클... 좋다! 이런 맛도 괜찮겠지!”

이어, 그 자는 잔인하게도 이미 죽어버린 중년미부의 육신을 능욕하려는 것이 아닌가?

실로 천인공노할 짓이었다.

으으...”

그 자의 짐승같은 행위에 남궁걸은 부르르 치를 떨며 전율했다.

... ! 힘이 없음이 원망스럽... !”

그는 격분은 참지 못해 한 사발의 피를 욱컥 토해냈다.

그와 함께, !

그는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 채 그대로 꼬구라졌다.

절명한 것이다. 하나,

흐흐...!”

혈사음령은 남궁걸의 죽음에도 아랑곳조차 하지 않았다.

그 자가 막 죽은 중년미부를 범하려 할 때였다.

우 우!”

돌연, 한 소리 웅후한 장소성이 장원을 뒤흔들었다.

순간,

!”

크윽...!”

혈사음령과 그 자의 수하들은 심맥이 터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누구냐?”

혈사음령은 대경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자는 아무렇게나 바지를 끌어 올리며 홱 돌아섰다.

천인공노할 놈들!”

그런 그 자의 귓전에 얼음장같이 냉혹한 일갈이 들려왔다.

직후, 쉬 익! 허공으로부터 한 줄기 백영이 선풍을 일으키며 벼락같이 날아내렸다.

...!”

혈사음령은 그 엄청난 신법에 공포의 눈빛으로 비칠비칠 물러났다.

그때,

어머님!”

자지러질 듯 처절한 소녀의 비명이 장내를 울렸다.

나타난 백의인영,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품 속에 한 명의 소녀를 안고 있었다.

군무현과 남궁혜미, 바로 그들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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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八 章

 

                     中原第一才女

 

 

 

천하인(天下人)들은 경악했다.

열화신문(熱火神門)의 멸망(滅亡)!

그것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도저히 믿지 못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천하최강의 화기(火器)를 지닌 열화신문!

날로 욱일승천하는 당당한 위세의 열화신문이 하룻밤 사이에 초토화되고 만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무림에 일대 파문을 몰고왔다.

무수한 의혹과 구구한 억측이 분분하게 떠돌았다.

그 속에서 문득 천하인들은 생각했다.

 

적룡세가(赤龍勢家)의 투혼(鬪魂)이 되살아 나고 있다!

 

무슨 연유에서일까? 무림인들은 적룡세가의 투혼을 떠올리며 전율했다.

대파산(大巴山)! 그곳에서 열화신문을 비롯하여 백염보(白焰堡), 천신궁(天神宮) 등 삼파(三派)의 정예 일백 명이 한 자루 검()에 의해 몰살당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때는 설마했다.

하나, 그 사건 이후 불과 이틀이 지났을 때, 이번에는 열화신문이 완전히 괴멸된 것이었다.

이는 결코 우연으로 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비로소 무림인들은 긴장과 전율에 몸을 도사리게 되었다.

그들은 섬전같이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생각에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기이하게도 그들은 오년 전 멸망한 적룡세가를 제일 먼저 뇌리 속에 떠올린 것이었다.

그것은 적룡대제(赤龍大帝)의 불굴의 신조(信條)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 또한 남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남이 나를 건드린다면 천만(千萬)의 적()이라도 결코 피하지 않는다!

 

적룡대제 생전의 웅후한 사자후가 무림인들의 귓전에 생생히 들려오는 듯했다.

적룡세가의 몰락!

삼천 명의 적룡검사의 장렬한 죽음, 그들의 피끓는 투혼이 다시 살아나 무림을 휩쓰는 듯했다.

이렇게 되자, 적룡세가를 치는 데 참가한 수만 명의 정사무림인들은 머리를 싸매며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또 한 가지 충격이 무림을 벌컥 뒤집어 놓았다.

 

...! ... 그 자는 인간도 아니다. 본보(本堡)의 일천 무사가... 몰살 당했다...!

 

온통 공포에 질려 다 죽어가던 한 명의 피투성이 노인, 천신궁(天神宮)의 마지막 생존자가 남긴 그 한 마디는 천하를 격랑 속으로 휘몰아 넣기에 충분했다.

 

백의염왕(白衣焰王)!

그는 호북(湖北)의 명가 백염보(白焰堡)의 보주였다.

그는 마지막 그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천신궁(天神宮)으로 달려왔다.

하나, 결국 그는 천신궁의 문 앞에 쓰러져 치를 떨며 죽어갔다. 실로 처참한 최후였다.

열화신문이 무너진 다음날, 이번에는 백염보다 형체도 없이 적의 손 아래 괴멸되었다.

이것으로, 암중살수가 과거 적룡세가의 후예임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해진 것이다.

 

한편, 군무현! 그 일인(一人)으로 인하여 천하가 격동하고 있을 때, 춘풍(春風)과 함께 거센 마풍(魔風)이 천하를 휩쓸었다.

 

천마궁(天魔宮)!

 

그들의 등장이 또 한 번 무림을 경동시켰으니... 오년 전, 적룡세가의 멸겁을 기화로, 그 육십 년 만에 천마궁(天魔宮)이 다시 무림에 출현한 것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천하를 향해 검은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으하하! 천마(天魔)는 무적(無敵)이다! 굴복하지 않으면 멸겁만이 있을 뿐이다!

 

광언(狂言)! 엄청난 광소와 함께 천마궁은 노도같은 기세로 천하를 휩쓸었다.

그와 함께, 무림의 처지에서 돌풍이 일기 시작했으니...

 

흑도십팔절(黑道十八絶)!

 

흑도(黑道)를 주름잡던 그들이 하루 아침에 천마궁의 분타로 돌변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녹림칠십이채(綠林七十二菜)도 천마궁에 충성을 맹세했다.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삽시에, 천하의 절반이 천마궁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으니... 천마궁의 기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어 나갔다.

불길! 거대한 마()의 불길이 무림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들은 구파일방과 정파무림에까지 마수(魔手)를 뻗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혈풍(血風)! 피의 바람이 분다.

천하대분란의 막()이 바야흐로 걷혔으니...

 

X X X

 

헉헉...!”

한 명의 백의소녀가 숨가쁘게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연신 가쁘게 할딱거리며 내달리는 소녀, 이제 십칠팔세 정도 되었을까?

소녀의 미모는 절륜하기 이를데 없었다.

한 번 쳐다보기만 하면 도저히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해맑은 소녀, 그녀의 아름다움은 햇살같이 투명하게 빛이 났고 청순하고 고귀한 기품마저 함께 지니고 있었다.

크고 맑은 너무도 순결한 눈빛, 그것은 무한한 지혜가 반짝이는 혜안(慧眼)이었다.

하나, 지금 소녀의 형색은 실로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전신은 온통 땀으로 범벅되어 엉망이었다.

입고 있는 백의(白衣)마저 어겨저기 찢기고 먼지로 더럽혀져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그녀의 앙증맞고 귀여운 두 발은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녀는 무엇엔가 쫓기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속 달렸다.

그러다 문득, !

!”

그녀는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뾰족한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바람에, 섬섬옥수가 터지고 무릎이 깨져 선혈이 하얀 치마 밑으로 베어 흘렀다.

소녀는 고운 옥용을 찡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나,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다시 몸을 일으켰다.

헉헉... ... 어서 가야지!”

그녀는 다시 바쁘게 교족을 떼어놓았다.

한데, 그때였다.

흐흐흐...!”

돌연 한 가닥 음산한 괴소가 소녀의 귓전을 울렸다.

!”

소녀는 안색이 급변하며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스슥! ! 소녀의 주윌 세 명의 회포인들이 날아내렸다.

... 당신들이...!”

소녀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주춤 뒤로 물러났다.

세 명의 회포인, 그 자들은 삼십대 정도로 보이는 장한들로 한결같이 음침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그자들 중 두 눈이 가늘게 찢어져 잔혹한 인상을 풍기는 한 명의 장한이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 네 년이 뛰어봤자 벼룩이지 별수 있느냐?”

말과 함께, 그자들은 천천히 소녀의 곁으로 다가섰다.

소녀는 몸을 잔뜩 움츠리며 앙칼진 음성으로 외쳤다.

다가오지 마세요!”

그녀는 급히 품 속에서 한 자루 작은 옥검(玉劍)을 빼들었다.

하나,

흐흐...!”

쉬 잇! !

음침한 괴소와 함께 한 명의 장한이 가볍게 지풍을 날려 소녀의 옥검을 떨어드렸다.

옥검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

콰당! 소녀는 마혈이 찍혀 그대로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장한들은 바닥에 쓰러진 소녀를 노려보며 음험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네년은 중원제일재녀(中原第一才女)! 살려두면 후환이 될 것이다!”

그 자들은 두 눈에 흉흉한 살기를 띄우며 소녀를 향해 다가섰다.

한데 그때, 문득 그 자들 중 털복숭이 장한이 두 눈에 야릇한 광채를 번득이며 소녀를 노려보았다.

백의소녀, 그녀의 흐트러진 상의 사이로 뽀얀 젖가슴이 반쯤 드러나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소녀의 순결한 젖가슴을 본 순간, 그 자는 당장 음욕이 솟구쳤다.

잠깐! 기왕 죽일테니 즐기고 죽여도 늦지 않을걸세!”

그 자는 음소를 흘리며 두 동료를 향해 동의를 구했다.

그 자의 제의에 두 장한 역시 마다치 않았다.

클클... 좋다!”

그 자들의 두 눈은 이내 욕정으로 음탕하게 번들거렸다.

그 자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백의소녀, 그녀는 치욕과 분노, 그리고 두려움을 금치 못하며 교구를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 세 장한들은 탐욕의 눈을 번득이며 소녀를 향해 바짝 다가들었다.

다음 순간, 찌 익!

그 자들 중 한 명이 거칠게 소녀의 상의를 찢어냈다.

!”

소녀는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와 함께, 그녀의 사의 자락이 길게 찢어지며 소담스럽고 흰 젖가슴이 드러났다.

그것을 본 순간,

... 못참겠다!”

한 명의 장한이 성급히 소녀의 교구를 덮쳐들었다.

그러자, 나머지 두 장한도 질 수 없다는 듯 한꺼번에 소녀에게 덤벼들었다.

클클... 혼자 차지하려고?”

같이 즐기자... 흐흐...!”

그 자들은 음소를 흘리며 다투어 소녀의 몸을 탐하려 들었다.

아악!”

소녀는 한꺼번에 세 흉한에 짓눌린 채 공포의 비명을 내질렀다.

하나, 어쩌라?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몸이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으니... 마혈이 짚힌 이상 그녀는 저항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세 흉한들은 서로 다투듯 소녀의 작은 육봉을 움켜 쥐었다.

... !”

소녀는 엄청난 고통과 수치감에 와락 오열을 터뜨렸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만 싶었다.

한데, 그녀가 막 결연한 표정으로 혀를 깨물려는 순간이었다.

일어나랏!”

돌연 한 소리 싸늘한 냉갈이 세 흉한의 뒷통수를 때렸다.

순간,

!”

웬놈이냐?”

한창 소녀의 몸을 유린하던 세 흉한들은 날벼락을 맞은 듯 흠칫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언제였을까? 그 자들의 이 장 뒤,

“...!”

한 명의 백의청년이 유령같이 우뚝 서 있지 않은가?

얼음으로 깎은 조각상인 듯 희고 냉막한 얼굴, 그의 등 뒤로는 하나의 긴 가죽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군무현은 얼음장같이 냉혹한 눈으로 세 흉한들을 주시했다.

어린 소녀를 욕보이려 하다니...!”

그는 만면에 싸늘한 살기를 띠며 천천히 흉한들을 향해 다가섰다.

순간, 세 흉한들은 움찔했다.

하나, 그 자들은 이내 흉광을 번뜩이며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 감히 사망림(死亡林)이 하는 일에 끼어들다니...!”

죽어랏!”

위 잉! 꽈릉...

그자들은 흉흉한 폭갈과 함께 일제히 군무현을 향해 짓쳐들었다.

하나,

짐승만도 못한 놈!”

콰쾅! 한 소리 냉혹한 외침과 함께 군무현의 우수에서 벼락치는 듯한 굉음이 작렬했다.

직후, 콰르릉 콰쾅!

가공할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들었다.

동시에,

크윽!”

케 엑!”

한 줄기 혈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보라! 어느새 세 흉한들은 가슴이 박살난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지 않은가?

 

수라혈강수!

 

군무현이 펼친 것은 바로 혈영천종(血影天宗)의 무공이었다.

그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백의소녀,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반짝 이채를 띄웠다.

(... 강하다. 기인(奇人)을 만났어!)

그녀는 놀라움과 함께 기대의 눈빛을 지었다.

그때, 파팟! 군무현이 가볍게 지력을 날려 소녀의 마혈을 풀어 주었다.

이어,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순간,

... 잠깐만요!”

백의소녀는 다급한 음성으로 외쳤다.

그녀는 옷깃을 여미며 황급히 일어섰다.

“...!”

군무현은 무표정한 안색으로 천천히 돌아섰다.

이어, 그는 전혀 감정이 깃들지 않은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백의소녀는 군무현의 너무도 무심한 음성에 일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나,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내심 재빨리 염두를 굴렸다.

(이 분이라면 충분히 본 세가의 위기를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이어, 그녀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염치없는 말씀이오나... 한 가지 도움을 주셨으면...!”

군무현은 아무런 대꾸없이 무심한 눈으로 백의소녀를 주시했다.

백의소녀는 지혜로운 혜안에 초조한 빛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소녀는 남궁혜미(南宮慧美)라 하오며 남궁세가(南宮勢家) 출신이예요!”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이 어린 계집이 남궁혜미(南宮慧美)...!)

그녀의 이름은 언뜻 들은바가 있었다.

그대가 중원제일재녀(中原第一才女)인가?”

부끄러워요!”

백의소녀 남궁혜미는 옥용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남궁혜미(南宮慧美)!

남궁세가(南宮勢家)의 천금(千金).

그녀는 어려서부터 이미 천하재녀(天下才女)로 소문나 무림을 경동시켰다.

그녀의 지혜는 실로 추측할 길이 없을 정도로 깊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천()을 터득하는 뛰어난 오성의 소유자, 세 살 때 이미 제자백가서에 스스로 주해(註解)를 붙일 정도였으니 가히 그 재능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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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七 章

 

                          赤龍의 분노

 

 

 

크아 악!”

아악!”

다시 후원 쪽에서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 중에는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도 섞여 있었다.

천염화신은 마침내 발작하고 말았다.

으으... 이놈! 기다려라!”

! 그는 하늘이 무너져라 찌렁찌렁한 폭갈을 내지르며 벼락같이 몸을 날려 후원으로 달려갔다.

순간,

문주님!”

... 사부님!”

온유와 그의 두 제자는 황급히 천여화신을 저지하려 했다.

하나, 천염화신은 미처 그들이 만류할 틈도 없이 벼락같은 기세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천염화신은 홍포를 펄럭이며 대전의 후원으로 날아내렸다.

다음 순간, 콰르릉! !

그는 다짜고짜 거칠게 일장을 후려쳐 전각의 문을 박살냈다.

후원의 전각, 그곳은 천염화신의 부인이 거처하고 있는 곳이었다.

천염화신은 전각의 문을 쳐부수고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었다.

한데 그 순간,

!”

그는 다급히 숨을 들이키며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그의 전신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세차게 경련했다.

침상 위, 한 명의 중년미부가 자리옷 차림으로 누워 있었다.

하나, 그녀는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입가에 검붉은 선혈을 머금은 채 즉사해 있지 않은가?

천염화신은 엄청난 충격과 분노로 머리카락이 뻣뻣하게 곤두섰다.

... 으으... 부인!”

그는 안면을 처절하게 이지러뜨리며 신음하듯 외쳤다.

이어, 중년미붕의 시신을 와락 끌어안는 천염화신, 그의 두 손은 엄청난 분노와 비통함으로 연신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데, 그가 처절한 분노와 슬픔에 잠겨 있을 때였다.

크 악!”

대전 쪽에서 다시 한소리 참담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순간, 천염화신은 안색이 홱 변했다.

그것은 귀에 익은 음성이었다.

열화신문의 군사 온유의 비명이 아닌가?

...!”

천염화신은 불신의 표정으로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경악과 분노로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하나, 그와 함께 그의 심중 깊은 곳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공포! 그것은 소름끼치는 공포였다.

천염화신은 갑자기 전신이 오그라붙는 듯한 숨막히는 전율과 긴장감을 느꼈다.

(... 이 방 어디에선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불안과 초조가 뒤얽힌 눈으로 급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없다. 아무도 없었다.

하나,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전율과 숨막히는 긴장감이 팽팽히 그의 전신을 조여왔다.

갑자기 그는 미칠 듯 초조해졌다.

... 대전으로 가야 한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 그는 팽개치듯 부인의 시신을 집어던지며 전각 밖을 향해 쫓기듯 몸을 날렸다.

(...!)

대전이 가까워지자 비로소 천염화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일단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에는 까닭이 있었다.

대전 주위, 그곳에는 열화천염대진을 이루는 열화신문의 정예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바로 천염화신이 가장 믿는 세력이었다.

천염화신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어, 그는 태연을 회복하려는 듯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아무일도 없느냐?”

그는 한 명의 장한을 향해 위엄있는 음성으로 물었다.

바로 그 순간, 스르르... !

놀랍게도 그 장한이 선 자세로 그대로 바닥으로 허물어지는 것이 아닌가?

!”

천염화신은 대경하며 급히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두 눈은 엄청난 경악과 불신 회의의 빛이 마구 뒤엉켜 떠올랐다.

... 이럴 수가... ... 모두 죽다니...!”

그는 순간적으로 절망감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가장 믿었던 보호세력마저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 아닌가?

과연, 열화천염대진을 이루고 있는 장한들은 이미 산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선 자세로 그대로 절명한 것이 아닌가?

이는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지닌 천하제일의 화기(火器)를 한 번 써보지도 못한 채 즉사하고 만것이었다.

... ...!”

천염화신은 더 이상 경악하고 분노할 여력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몸을 숨기는 일이었다. 우선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급히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대전을 향해 다가갔다.

가는 도중 그는 잔뜩 공포의 표정을 지은 채 죽어있는 온유와 그의 두 제자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 천염화신은 그들의 시신을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목숨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 열화신동(熱火神洞)만이 안전하다!)

내심 그렇게 판단한 천염화신, 그는 사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열화신동(熱火神洞)!

그곳은 열화전(熱火殿)의 지하에 위치한 극히 은밀한 곳이었다.

열화신문의 모든 화기가 비장되어 있는 장소, 몸을 숨기기에는 그야말로 최적격이었다.

 

! 천염화신은 황급히 대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대전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쫓기듯 태사의를 향해 다가갔다. 이어, 그는 떨리는 손으로 태사의를 잡고 한차례 빙글 돌렸다.

그러자, 그르릉! 묵직한 굉음과 함께 태사의가 뒤로 밀려났다.

그와 함께, 그곳에 하나의 음침한 통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짧은 순간 천염화신의 두 눈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열화신동이라면 안전할 것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한 발을 동굴 안으로 들여 놓았다.

하나,

!”

그 순간 그는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통로 안, 그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백의청년, 한 명의 백의청년이 유령같이 우뚝 서 있지 않은가?

... 네놈은...!”

천염화신은 사색이 된 채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하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쾅! 돌연 강맹한 강기가 천염화신의 가슴을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크악!”

쿵쿵! 그는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삼 장 뒤로 휘청 물러났다.

물러서면서 그는 한 모금의 선혈을 왈칵 토해냈다.

그때, 뚜벅뚜벅... 백의청년이 지극히 냉혹한 표정으로 천천히 천염화신이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발자국 소리는 마치 천신(天神)의 그것처럼 묵직하고 공포스러웠다.

천염화신은 사색이 되어 전신을 부르르 경련했다.

으으... ... 네놈이 바로...!”

그는 경악과 불신, 공포가 뒤범벅이 된 눈으로 백의청년을 주시했다.

백의청년은 냉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 본인은 적룡대제의 아들 군무현이다!”

...!”

천염화신은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전율에 부르르 전신을 떨었다.

백의청년 군무현은 그런 천염화신을 노려보며 물씬 살기가 풍기는 냉혹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네놈의 목을 베러왔다!”

천염화신은 안면을 씰룩거리며 눈을 부릅떴다.

이어, 그는 이를 악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흐흐... 잘 만났다!”

그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음험한 괴소를 터뜨렸다.

다음 순간, 화르르! 돌연 그의 몸 주위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실로 갑작스런 사태였다.

군무현의 칼날같은 검미가 무섭게 꿈틀했다.

이어, 그는 천천히 적룡검을 치켜들었다.

천염화신은 시뻘건 안광을 폭사하며 음험한 괴소를 흘렸다.

크크... 천염화룡기(天焰火龍器)!”

순간, 화르르... 콰 쾅!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가공할 극양지기가 군무현의 전신을 휩쓸어왔다.

군무현의 안색이 얼음처럼 냉혹하게 굳어졌다.

직후,

적룡뇌후(赤龍雷侯)!”

그의 입에서 한소리 찌렁찌렁한 대갈일성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파파팟! 번 쩍!

일섬 검광(劍光)이 시뻘건 화염속을 갈랐다.

양인의 공격이 충돌하는 순간, 꽈르릉! !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뒤이어, 과콰쾅! 쿠쿵...

대전 전체가 지진을 만난 듯 뒤흔들리는가 싶더니 삽시에 대전의 지붕이 박살나며 구멍이 뻥 뚫렸다.

같은 순간,

크 윽!”

!

천염화신의 동체가 목과 분리되며 거칠게 바닥으로 나가 떨어졌다.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일순 허공으로 피보라가 확 솟구쳐 올랐다.

즉사한 것이다. 당금천하를 호령하던 거물 천염화신!

그자의 최후였다.

갑자기 주위는 깊은 적막속에 빠져들었다.

군문현, 그는 무표정한 눈으로 천염화신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밤이 깊었군!”

그는 무심한 음성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천천히 수중의 적룡검을 검집에 꽂았다.

그런 그의 가슴부분, ! 끔찍하게도 그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가 있었다.

극심한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극령정뇌수를 복용하여 최강의 극음지기를 지닌 군무현, 그런 그가 이토록 극심한 화상을 입다니...

천염화신의 천염화욜기는 과연 대단한 것임이 확인된 셈이었다.

이윽고, 군무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무거운 걸음걸이로 대전을 나섰다. 왠지 돌아서는 그의 등은 고독해 보였다.

 

화르르 쿠쿠쿵...

불길, 거대한 화마가 어둠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며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열화신문(熱火神門)!

그 속에 열화신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열화신문의 멸망이 천하를 벌컥 뒤집어 놓으리라.

 

< 二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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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六 章

 

                復讐始作

 

 

 

... 어느 놈이든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육시를 내어 죽이고 말리라!”

천염화신, 그는 터질 듯한 분노를 참지 못하며 가공할 살광을 폭사했다.

하나, 군사(軍師) 온유(溫儒)는 지극히 침착했다.

그는 유현한 눈을 빛내며 시신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순간, 그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음공(音功)에 당했다. 지극히 극고한 내가진기가 실린 음파(音派)에 저항도 못하고 전신심맥이 끊어져 절명했다!)

그는 세 구의 시신의 사인(死因)을 이내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한줄기 서늘한 기운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그것은 은은한 공포의 기분이었다.

(적은 암중에 있고 우리는 드러나 있는 상태다!)

온유는 내심 중얼거리며 안색이 굳어졌다.

이어, 그는 고개를 돌려 천염화신을 바라보았다.

천염화신은 기다렸다는 듯 성급히 다그쳐 물었다.

그래, 어떤가?”

그의 물음에 온유는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의외로 강적인 것 같습니다.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천염화신은 굵은 눈썹을 꿈틀 치켜세웠다.

무슨 소린가?”

온유의 음성은 여전히 낮고 침착했다.

이들의 사인(死因)은 음파(音派)입니다!”

“...!”

그 말에 천염화신은 흠칫했다. 다음 순간, 그는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켜 바닥에 내려섰다.

이어, 그는 강렬한 안광을 번득이며 세 구의 시신을 살펴보았다.

그의 옆에서 온유가 설명을 덧붙였다.

겉으로는 멀쩡하나 이들의 내부는 완전히 박살나 있습니다. 이 정도의 음파를 내려면 적어도 이갑자 이상의 공력이 필요합니다!”

“...!”

천염화신의 안색도 점점 굳어졌다. 뭔가 불안한 예감이 그의 뇌리속을 스쳤다.

온유는 그런 천염화신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원흉은 암중에 있는 반면 본문은 밝은 곳에 드러나 있는 상태입니다. 보이는 창은 두렵지 않으나 보이지 않는 화살은 방비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

게다가... 적은 소리도 흔적도 없이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귀신같은 자입니다!”

천염화신은 마음이 천근인 듯 무거워졌다.

불길같은 분노는 어느새 무서운 압박감과 긴장으로 바뀌어졌다.

그는 침착을 회복했다.

알았네. 대전 주위에 열화천염대진(熱火天焰大陣)을 펼치게. 그리고, 전 문도들은 화기를 소지하고 요소요소에 잠복하라 이르게!”

그는 군사인 온유에게 침중한 어조로 지시했다.

곧 시행하겠습니다!”

온유는 허리를 숙여 대답했다. 이어, 그는 빠르게 대전 밖으로 사라졌다.

천염화신은 뒷짐을 진 채 대전 안을 왔다갔다 했다.

으음... 어느 놈이 감히 본문을 노린단 말인가?”

그는 들끓어 오르는 심중을 주체할길 없었다.

한껏 부릅떠진 그의 두 눈에서는 시뻘건 광망이 줄기줄기 폭사되어 나왔다.

당금 천하를 떨어 울리는 당당한 위세의 열화신문!

그런 자신의 문파가 한 무명(無名)의 인물에게 위협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천염화신의 자존심이 도저히 용납지 않는 일이었다.

문득, 천염화신은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불끈 움켜쥐었다.

하나, 왜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가슴팍을 기어오르는 것은... 천염화신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무겁게 가슴을 짓눌러 오는 불안감을 떨어버리려는 듯, 어느새,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경(二更), 사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검은 묵운(墨雲)이 한 조각 남은 섬광(閃光)마저 가려버려 천지는 깊은 어둠속에 잠들어 있었다.

어둠속에 거대한 괴수처럼 웅크린 열화신문, 숨막히는 공포와 긴장감이 열화신문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사위는 조용했고 불이 꺼진지도 이미 오래였다.

모두 잠든 것일까?

하나, 단 한 곳, 불빛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었다.

홍광(紅光), 그것은 열화신문의 대전(大殿)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열화전(熱火殿).>

 

대전의 입구에는 그와 같은 편액이 걸려 있었다.

대전 안! 십여 명의 인물들이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상좌(上座), 홍포 차림의 천염화신 공무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 군사(軍師) 온유와 천염화신의 두 제자, 그리고 열화신문의 원로들인 화령오로(火領五老)가 착석하고 있었다.

“...!”

“...!”

침묵, 대전 안은 목을 조이는 무거운 침묵이 깔려 있었다.

중인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모두 질식할 것 같은 거북한 표정들이었다.

천염화신 역시 그러한 기분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불안과 긴장에 온 몸이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하나, 그는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 우둑...! 그는 신경질적으로 두 손의 관절을 주물러댔다.

그때마다 관절이 부딪히는 소리가 중인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때, 온유가 침묵을 깨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문주!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자가 아무리 은밀해도 열화천염대진에 걸리면 별수없이 한줌 재로 화하고 말 것입니다.”

그는 천염화신을 안심시키려는 듯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화령오로 중 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렇습니다. 과거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라던 적룡대제(赤龍大帝)조차도 열화천염대진(熱火天焰大陣) 앞에서 한줌 재로 쓰러졌...!”

그 순간, 천염화신의 안색이 홱 돌변했다.

파파팍! 그가 얼마나 격동했는지 움켜쥔 태사의의 팔걸이가 단번에 박살나 버렸다.

그는 비로소 생각난 듯 안면을 거칠게 씰룩거렸다.

적룡세가...! 적룡세가를 왜 생각지 못했단 말인가?”

그 모습에 온유는 미간을 모으며 물었다.

문주께서는 적룡세가의 후예가 본문에 복수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천염화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적룡세가를 무너뜨릴 때 선봉에 선 것은 바로 본문이 아닌가? 적룡세가의 후예가 있다면 가장 먼저 본문을 노릴 것이네!”

그는 불현 듯 생각난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당혹함을 금치못하는 기색이었다.

 

오 년 전!

열화신문은 다른 십이대 문파와 연수하여 무림최강(武林最强)으로 군림하던 적룡세가를 궤멸시켰다.

그들이 적룡세가를 친 이유는 적룡대제가 천지십강(天地十强)의 비급을 얻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하나, 그것은 단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열화신문을 포함한 강호대파는 항시 무림최강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적룡세가를 경원했다.

그들은 호시탐탐 적룡세가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겉으로는 내식지 않았으나 암중으로 항상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결국 그들은 적룡세가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하나, 과연 그것이 정당한 일이었던가?

그것은 스스로의 양심에 자문해볼 일이었다.

온유(溫儒), 그는 그럴리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적룡대제도 분명히 죽었고 삼천의 적룡검사(赤龍劍士)들도 모두 쓰러졌습니다!”

하나, 천염화신은 침중한 안색으로 말했다.

하지만 적룡대제의 독자(獨子) 군무현이란 애송이의 죽음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

“...!”

중인들의 안색이 일제히 납빛으로 변했다.

그렇다. 왜 거기까지 생각지 못했던가?

하나... 그들의 깨달음은 이미 늦은 것이었다.

천염화신, 그는 벌떡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대전 앞을 불안하게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숨막히는 침묵이 대전 안에 팽팽하게 깔렸다.

중인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긴장감으로 굳어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으아 악!”

돌연 대전 밖에서 심장을 쥐어뜯는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순간,

!”

“...!”

중인들은 섬뜩한 전율을 금치못하며 일제히 벌떡 일어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짙은 공포와 긴장감이 숨막힐 듯 떠올랐다.

하나, 비명은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무섭도록 암울한 적막이 찾아들었다.

심장을 후벼파는 공포의 적막, 천염화신, 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안면을 거칠게 씰룩거리며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하나 그때, 온유가 급히 나서며 그의 행동을 저지시켰다.

문주! 나가시면 암중살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 ...!”

천염화신은 두 주먹을 으스러질 듯 움켜쥐며 격분을 금치못했다.

찢어질 듯 부릅떠진 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섰다.

그때, 온유가 급히 화령오로를 향해 눈짓을 해보였다.

오로(五老)께서 살펴보아 주십시오!”

그 말에 화령오로는 흠칫하는 기색이었다.

하나, 그들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소!”

말과 함께, 그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이어,

, 가세!”

!”

! 스슥! 그들은 즉시 대전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데, 화령오로가 막 대청을 벗어나는 순간,

!”

크윽...!”

아 악!”

다섯 마디의 처절한 비명이 동시에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 ! 둔중한 음향이 적막한 대청을 울렸다.

순간, 천염화신의 안색이 홱 돌변했다.

오로(五老)!”

! 그는 격노한 음성으로 외치며 벼락같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 스슥! 온유와 천염화신의 두 제자도 황급히 몸을 날렸다.

 

대전 밖!

몇 명의 장한들이 모여선 채 공포에 질린 안색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천염화신은 급히 장한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오로!”

그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화령오로(火靈五老)! 그들이 오공에서 검붉은 피를 흘리며 즉사해 있는 것이 아닌가?

천염화신은 경악과 분노로 전신을 부르르 경련했다.

하나, 그는 애써 침착을 회복하여 화령오로의 시신을 살피기 시작했다.

...!”

다시 그의 안색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부르르 전신을 떨며 입술을 악물었다.

화령오로 역시 내부가 강력한 음파에 의해 박살나 절명한 것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광경을 확인한 온유, 그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림을 느꼈다.

(죽음이... 바로 곁에 있다!)

그것을 깨닫자 전신에 오싹 한기가 치밀었다.

그때, 천염화신은 미친 듯 대노하여 어쩔줄 몰라했다.

어떤 놈이냐? 어느 놈이 비겁하게 암중에서 살인을 하느냐?”

그는 사방을 둘러보며 격분에 찬 음성으로 대갈을 내질렀다.

온유는 그런 천염화신의 모습에 쓴 웃음을 지으며 한 명의 장한을 불러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

그의 물음에 장한은 몸을 부르르 떨며 공포의 기색을 지었다.

... 모르겠습니다. 오로께서 허공에서 갑자기 벼락을 맞은 듯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들 또한 영문을 모르는 듯 했다.

으음...!”

온유는 침음성을 발하며 안색이 무겁게 굳어졌다.

한데, 사건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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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五 章

 

                熱火神門劫風

 

 

 

스스스... 한 순간, 장내를 뒤덮었던 검영(劍影)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

“...!”

침묵, 죽음같은 침묵이 장내를 무겁게 짓눌렀다.

이인(二人), 장내에는 단 두 사람만이 우뚝 서 있었다.

군무현, 그리고 천마묵룡이었다.

천마묵룡은 아연한 표정으로 멍하니 군무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군무현은 마음이 침중해졌다.

(내 손속이 지나쳤는가?)

그는 스스로 자문하여 착잡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 끔찍했다.

시산혈해(屍山血海)!

그야말로 장내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루었다.

아비지옥(阿鼻地獄)의 광경이 이토록 처참할 것인가?

실로 몸서리쳐지는 참극이었다.

하나, 군무현의 안색이 문득 냉혹하게 굳어졌다. 그는 내심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불러들인 화가 아닌가?)

그는 냉혹하게 얼어붙은 눈빛으로 스스로의 양심의 자문마저도 거부했다.

(), 그의 한은 너무도 깊고 컸기 때문이다.

이때, 천마묵룡은 싸늘하게 굳은 군무현의 안색을 바라보며 몸서리를 쳤다.

(... 지독한 살기다. 대체 어떤 원한이 있기에 저토록 가공할 살기를 발산한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때, 군무현이 들고있던 적룡검을 검집에 꽂으며 천천히 돌아섰다.

순간,

잠깐!”

천마묵룡은 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군무현은 묵묵히 몸을 돌렸다.

그 순간,

“...!”

“...!”

두 사람의 시선이 불꽃 튀기듯 맞부딪혔다.

파 앗! 두 줄기 강렬한 섬광처럼 그들의 눈빛이 서로 얽혀들었다.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렸다.

(뛰어난 인물이다. 패기(覇氣)가 지나친 것이 흠이라면 흠일 뿐...!)

그는 천마묵룡의 인물됨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때, 천마묵룡이 정중히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천마궁(天魔宮)의 제자 천마묵룡(天薇墨龍) 혁세민(赫世珉)이요!”

그 말에 군무현의 먹물같은 검미가 꿈틀했다.

(천마황(天魔皇)! 그자의 후예...!)

그의 가슴에 일순 뜨거운 것이 불끈 치밀어 올랐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군무현은 내심 씁슬하게 중얼거렸다.

(유감이군. ()이 되고 싶지 않은 친구인데...!)

이어,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천마묵룡을 주시하며 말했다.

다시 만나게 될 때는 어쩌면 검()을 맞대야 할지도 모를 것이오!”

그 말과 함께, 스슥...! 그의 모습은 장내에서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

천마묵룡은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지는 군무현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문득, 그는 미간을 좁히며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검을 맞댄다고? 나의 사문(師門)과 무슨 원한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 이내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탄식했다.

사조(師祖)께서 삼십 년 전에 실종된 이래 본궁은 사조님의 뜻과는 달리 패도(覇道)에 몰두하고 있다. 하나... 제자된 도리로 사부님의 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철컥! 그는 바닥을 향해 길게 늘어뜨리고 있던 묵검(墨劍)을 검집에 집어 넣었다.

몸을 돌리던 천마묵룡, 문득 그는 두 눈에 강렬한 신광을 발산하며 중얼거렸다.

저 친구와 검을 맞대더라도 별 수 없다!”

다음 순간, 스슥...! 그의 모습도 한줄기 바람으로 화해 장내에서 사라졌다.

한데, 천마묵룡이 사라지고난 직후, 스스스...!

문득 허공을 밟으며 한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신비한 경공, 뜻밖에도 그 인영은 회포(灰袍)에 죽립을 눌러쓴 비구니였다.

죽립 아래로 언뜻 비치는 두 눈, ! 그것은 실로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깊고 그윽하며 가을 저녁의 호수처럼 고요한 눈빛, 그 눈빛으로 미루어 젊은 여승(女僧)임이 분명했다.

아미타불...!”

여승은 장내를 둘러보며 탄식 섞인 나직한 불호를 외었다.

한데 그때,

...!”

문득 한소리 나직한 신음성이 그녀의 귓전에 들려왔다.

순간, 여승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살아있는 시주가 계시는 모양이다!”

그녀는 급히 소리가 들린 곳을 찾아 다가갔다.

갈가리 찢겨 제멋대로 널브러진 시신들 사이, 한 명의 청의경장녀가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한데, 그녀는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지극히 여린 신음성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아미타불...!”

그 모습을 주시하던 여승의 고운 아미가 절로 찌푸려졌다.

청의경장녀, 그녀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녀의 왼쪽 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정확한 일검(一劍)이 그어져 있었다.

그 바람에, 끔찍하게도 풍만한 오른쪽 유방이 쩍 갈라진 처참한 모습이었다.

여승은 나직한 탄식성을 터뜨리며 동정의 눈빛을 지었다.

천행(天幸)이다...!”

과연 그러했다. 만일, 청의경장녀, 즉 천래검봉이 사내였다면 심장이 갈라져 즉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 다행히 유방의 두께를 계산하지 않은 일검으로 간신이 심장이 갈라지는 것만은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파팟! ...!

여승은 천래검봉의 몇군데 대혈을 신속한 수법으로 짚었다.

이어, 스슥...!

그녀는 천래검봉을 안아든 채 나타난 것보다 더 신비한 경공으로 사라졌다.

 

X X X

 

하락(河洛), 호남(湖南)과 호복(湖北)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 하락 근교에는 하나의 산()이 있다.

 

뇌산(雷山)!

 

그것은 오래전에 이미 활동을 멈춘 화산(火山)이었다.

그 뇌산(雷山)의 산록, 하나의 웅장한 성보가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열화신문(熱火神門)!

 

천하제일(天下第一)의 화기술(火器術)을 자랑하는 하락(河洛)의 명가(名家)!

열화신문의 성세는 적룡세가와의 일전(一戰) 후 욱일승천했다.

 

천염화신(天焰火神) 공무현(空無現)!

 

이것이 당금 열화신문의 문주(門主) 이름이었다.

그는 화공(火功)에 있어 무적(無敵)임과 동시에 화기(火器)의 명인이었다.

그의 천염화룡기(天焰火龍氣)는 천하제일의 극양공력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화기술은 일시에 태산을 날려버릴 수 있는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고 한다.

한데... 열화신문(熱火神門)!

화기(火器)의 명가, 천하(天下)의 명가에 서서히 암운이 밀어닥치고 있었으니...

저녁무렵, 날씨는 왠지 음산했다.

암운(暗雲)이 뒤덮인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울 듯하다.

사위는 우중충하게 어두워지고 있었으며 알지 못랄 음울한 기운이 열화신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돌연, 두두두두...!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이어, 세 필의 준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쏜살같은 기세로 관도에 나타났다.

그것은 삽시에 열화신문의 장원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두두... 삽시에, 세 필의 준마는 열화신문의 보문(堡門)을 밀치고 들어섰다.

그 순간,

누구냣?”

보문을 지키던 호목(虎目)의 장한들이 번개같이 준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바람에, 히 잉! 세 필의 준마는 급정지했다.

그와 동시에, ! ! 털썩!

세 명의 기사(騎士)들이 무너지듯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한데 그 순간,

!”

... 아니...!”

보문을 지키던 장한들은 대경실색하며 눈을 부릅떴다.

마상(馬上)에서 추락한 세 명의 인물들, ! 그들은 놀랍게도 이미 오공에서 피를 쏟은 채 절명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경악으로 물러섰던 장한들 중 한 명이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 백염보로 전갈을 하러갔던 장이(張二) 등이다!”

그 말에 다른 장한들이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마상에서 굴러 떨러진 세 인물, 그들은 불과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마주앉아 밥을 먹었던 동료들이 아닌가?

섬뜩한 전율이 그들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

... 대체 어떤 놈이...!”

그들은 주먹을 움켜쥐며 치를 떨었다.

한데, 그때였다.

! 문득 한 구의 시신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혈지(血紙)! 그것은 섬뜩한 핏빛으로 물든 한 장의 혈지였다.

장한들 중 한 명이 떨리는 손으로 급히 혈지를 집어들었다.

 

<오늘밤 안으로 열화신문(熱火神門)이란 이름은 천하에서 사라지리라!>

 

혈지에는 그와 같은 내용의 냉혹한 경고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피냄새가 물씬 풍기는 죽음의 포고문이었다.

장한들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어,

... 문주께 알리자!”

! 스슥! 그들은 세 구의 시신과 혈지를 들고 급히 열화신문 안으로 사라졌다.

 

뇌산(雷山)!

그곳에 서면 열화신문이 환히 내려다 보인다.

뇌산의 정상(頂上), 한 명의 백의청년이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우뚝 서 있었다.

문득,

열화신문...!”

굳게 다물려 있던 청년의 입에서 한소리 나직한 뇌까림이 흘러나왔다.

한기가 물씬 풍기는 싸늘한 음성, 청년의 용모는 조각으로 빚은 듯 준미하고 인상적이었다.

하나, 그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마치 얼음처럼 차갑고 냉혹했다.

깊고 신비한 두 눈, 하나, 그 눈은 섬뜩하리만치 냉혹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백의청년, 그는 등 뒤에 제법 큰 하나의 가죽 주머니를 메고 있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그는 열화신문을 내려다보며 살기띤 어조로 중얼거렸다.

약속은 지킨다. 오늘밤이 열화신문 최후의 밤이 되리라!”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왠지 짙은 고독을 느끼게 하는 넓은 그의 등, 그 뒤로 죽음의 그림자와도 같은 짙은 암운(暗雲)이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열화신문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대전(大殿)!

대전 안은 온통 타는 듯한 홍색(紅色)으로 치장되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화려한 천축산 양탄자, 태사의를 장식한 부드러운 가죽, 심지어는 천정에 달린 궁등조차 한결같이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전의 상좌, 하나의 화려한 태사의가 놓여 있었다.

태사의에는 한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일신에 홍포를 걸친 인물, 그는 마치 뇌신(雷神)처럼 시뻘건 안색을 지니고 있었다.

으득... 어느 놈이... 감히 이따위 짓을 한단 말인가?”

홍포노인은 지금 한 장의 혈지(血紙)를 든 채 전신을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천하에서 가장 급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불길같은 노화를 참지못해 그의 안색은 더욱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 홍포노인의 앞, 외상(外傷)이 전혀 없는 세 구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홍포노인은 화등잔만한 두 눈을 한껏 부릅뜬 채 세 구의 시신을 노려보았다.

그때,

문주! 고종하십시오. 우선 시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명의 중년인이 침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비교적 청수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시신이 놓여있는 곳에 빈틈없는 자세로 시립하고 있는 인물,

 

온유(溫儒),

 

이것이 그 중년인의 이름이었다.

그는 열화신문의 군사(軍師)였다.

그의 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느낌 이상으로 그의 성격은 빈틈없이 치밀하고 침착했다.

홍포노인, , 열화신문의 문주인 천염화신(天焰火神)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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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四 章

 

                   廢墟에 돌아오다

 

 

 

“...!”

“...!”

독황후는 군무현의 시선과 마주치자 원독에 찬 눈빛으로 앙칼지게 소리쳤다.

목을 늘이고 기다려욧! 반드시 당신의 목을 베어버리고 말거예요!”

그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찢어진 자의(紫衣)로 몸을 가리며 동굴 밖으로 뛰쳐 나갔다.

“...!”

군무현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졌다.

문득, 그는 씁쓸한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적반하장이로군!”

한데, 그때였다.

!”

동굴 밖에서 날카로운 독황후의 비명이 들려왔다.

순간, !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무슨 일이오?”

그는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 급히 독황후의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독황후는 나무에 기대선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는 군무현이 다가서자 수치와 분노로 옥용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군무현을 노려보았다. 이어, 그녀는 홱 몸을 돌리더니 비칠거리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갔다.

군무현, 그는 멀어지는 독황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문득, 지난밤의 폭풍같은 정사(情事)가 생각났다.

독황후! 그녀의 몸은 따뜻하면서도 한없이 깊고 끈적끈적한 늪과도 같았다.

(여인의 몸이란... 그런 것인가?)

군무현은 나직이 뇌까리며 가볍게 얼굴을 붉혔다.

환몽지경에 나누었던 여체의 감각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하나, 이내 그는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어, 그는 다시 무심한 표정을 회복하며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많은 은원이 내 어깨에 걸려있다.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그는 안색을 굳히며 스스로에 다짐했다.

그때, 고개를 돌리던 그의 둔 눈에 문득 바닥에 점점이 피어있는 선명한 혈화(血花)가 들어왔다.

동굴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혈흔, 그것은 지난밤의 기억을 생생히 꽃피우고 있었다.

군무현은 그것을 바라보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는 묵묵히 의복을 걸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군무현은 동굴을 나섰다. 그의 표정은 무심하고 고독해 보였다.

그는 행로(行路)를 정한 상태였다.

적룡세가(赤龍勢家)로 먼저 가보야겠다!”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스슥! 군무현의 신형은 마치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X X X

 

검운산(劍雲山)!

 

대파산(大巴山) 남쪽 삼백리 밖의 험산(險山), 오년 전 까지만 해도 천하최강의 문파가 당당히 자리했던 곳이다.

 

적룡세가(赤龍勢家)!

철골협심의 호웅(虎雄)들이 모여 이루었던 대문파!

삼십 년의 짧은 연륜으로 당당히 천하최강으로 군림했던 적룡세가(赤龍勢家)가 바로 검운산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음모의 암운(暗雲)에 허무하게 쓰러졌던 비운의 문파, 그 적룡세가의 폐허가 검운산역에 스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천검봉(天劍奉), 검운산(劍雲山) 제일의 험봉, 거대한 성보의 위용은 간데없고 풍진에 버려진 을씨년스런 폐허만이 무상한 세월속에 남아 있었다.

검게 타들어가 부숴지고 허물어진 고루거각의 전각들, 그 잔해들이 무성한 잡초에 묻힌 채 덩그러니 누워있다.

적룡세가!

! 누가 믿겠는가? 이곳이 바로 오년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화려한 웅휘를 떨쳤던 적룡세가임을...

하나, 이곳은 허무하게 쓰러진 적룡세가의 폐허가 분명했다.

천검봉을 등진 적룡세가의 후원, 크고 높은 봉분들이 세워져 있었다.

 

<적룡충혼총(赤龍忠魂塚)!>

 

누가 그것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약 오장 높이의 석비(石碑), 바로 최후의 일인까지 적룡세가를 지키다가 장렬히 전사한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의 위패를 모신 것이었다.

전 무림의 연합공세 앞에서도 의연히 맞서 싸운 적룡지혼의 용사들, 그들은 모두 쓰러졌다.

최후의 일인가지... 그러나, 무림은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영원히...

비록 적()이라 할지라도 적룡검사들의 그 불타는 투혼은 전 무림을 숙연케 했다.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라던가?

영원히 죽지 않는 투혼을 심어준 그 영웅심(英雄心)...

 

적룡충혼총(赤龍忠魂塚) ,

“...!”

언제부터였을까? 한 명의 백의청년이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앞, 재가 된 지전(紙錢)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백의청년, ! 그는 바로 군무현이었다.

적룡세가의 소가주(少家主), 그는 벌써 반나절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두 눈에는 싸늘한 살기와 함께 강렬한 투지가 이글거렸다.

지켜보아 주십시오. 여러분을 의혈(義血) 속에 쓰러지게한 원수들이 어떻게 그 대가를 치루는지를...!”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힘껏 움켜쥐었다.

하나 하나... 목을 졸라 쓰러뜨려 줄것입니다. 그 첫 번째는 적룡세가를 불태우고 아버님을 분사(焚死)케한 열화신문(熱火神門)입니다!”

그는 둔 눈 가득 원한의 광망을 폭사하며 중얼거렸다.

그의 가슴은 엄청난 한()으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윽고, 그는 묵묵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적룡충혼총에 공손히 일배를 울리는 군무현, 그는 엄숙한 어조로 다짐했다.

다시 찾아올 때는 반드시 원흉의 목을 들고 올것입니다!”

그는 강렬한 눈빛을 이글거리며 적룡충혼총을 주시했다.

이어,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한데, 그가 막 서너보를 떼어 놓았을 때였다.

“...!”

군무현은 멈칫 걸음을 멈추며 검미를 꿈틀했다.

멀리서 은은히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감히 적룡지흔의 영면(永眠)을 어지럽히다니...!”

그의 전신에서 일순 섬칫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어느 놈이든 용서치 않는다!”

다음 순간, 파 앗! 그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천검봉 아래의 황폐한 공터, 우르르르... 차차창! 꽈르릉 펑!

엄청난 선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검풍(劍風)과 장영(掌影)이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

그곳에는 백여 명의 장한들이 엄밀한 진세로 일진포위하고 있었다.

모두 세 부류의 인물들, 그자들은 지금 중앙의 인물을 두고 합공(合功)을 펼치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의 중앙, 한 명의 청년이 합공에 대항하고 있었다.

나이는 이십 오 세 정도, 일신에는 날렵한 인상을 주는 흑포를 걸치고 있었다.

마치 한 마리 거호(巨虎)를 연상케 하는 웅맹한 용모, 그 기질이 범상치 않을뿐더러 일견하기에도 패도적인 인상을 물씬 풍기는 인물이었다.

그는 한 자루 묵검(墨劍)을 휘두르며 패도적인 검범으로 분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 우르르릉! 콰쾅!

세 부류의 장한들이 펼치는 공세는 실로 가공할 위력을 나타냈다.

흑포청년은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하나, 그는 전혀 고통스러움을 내색지 않았다.

한 마리 노호(怒虎)처럼 맹렬히 검세를 쏟아낼 뿐이었다.

츠츠츠... 파 앗!

그의 검세 또한 가히 산악을 쪼갤 듯 막강했다.

한편, 진세의 외각, 세명의 인물이 우뚝 선 채 장내를 관전하고 있었다.

이남일녀(二男一女), 홍포 차림의 청년과 백삼청년, 그리고, 청의경장녀가 그들이었다.

문득, 홍포청년이 장내를 주시하며 득의의 웃음을 터뜨렸다.

핫하... 드디어 골칫거리 소마종(少魔宗)을 제거하게 되었소이다!”

그의 말에 백삼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듯 대꾸했다.

이 모두 열화신문(熱火神門)의 소문주이신 공형(空兄)의 공로가 아니겠소?”

백삼청년의 공치사에 홍포청년은 기분좋은 듯 입을 헤벌쭉 벌렸다.

 

열화신룡(熱火神龍)!

그는 바로 열화신문(熱火神門)의 소문주인 열화신룡(熱火神龍)이었다.

 

열화신룡은 득의의 표정을 지으며 짐짓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하하... 그것을 어찌 소제의 공이라고 하겠소? 백의제갈(白衣諸葛) 사마형의 지모와 천래검봉(天來劍鳳) 위지(尉遲) 낭자께서 힘써주신 덕분이오!”

천래검봉(天來劍鳳)이라 불린 위지 성()의 여인, 그녀는 눈이 번쩍 뜨이는 미녀였다.

하나, 도도하고 오만한 인상이 장미의 가시처럼 날카롭게 느껴진다.

그녀는 오만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천마묵룡(天魔墨龍)이 아무리 날고 긴다해도 본 천신궁(天神宮)의 천신검대(天神劍隊)의 합공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거예요!”

그녀의 말에 열화신룡과 백의제갈(白衣諸葛)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굴한 표정으로 동조했다.

천래검봉! 그녀는 당금 정파에서 가장 강한 인물을 부친으로 두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천하의 인물들을 눈 아래로 깔아보는 오만한 성격이 날로 더하고 있었다.

과연, 흑포청년, 즉 천마묵룡(天魔墨龍)을 공격하고 있는 인물들의 위세는 엄청났다.

특히, 삼십육인(三十六人)의 검수들은 한 가지 절묘한 검진(劍陣)으로 천마묵룡을 궁지에 몰아 넣고 있었다.

꽈르릉... 꽈쾅! 쐐 액!

열화신문의 문도들이 강렬한 화기(火器)로 천마묵룡을 핍박하는 사이, 삼십육인의 검수, 즉 천신검대(天神劍隊)의 검진이 질풍같은 검기를 휘몰아쳤다.

하나, 천마묵룡, 그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위 잉! 파파팟!

그 역시 묵검을 떨치며 맹렬한 위세로 맞섰다.

그러나,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상대는 너무도 강하고 많았다.

한순간, 파파팍!

검붉은 피가 확 튀며 천마묵룡의 가슴이 늑골까지 드러날 정도로 깊게 갈라졌다.

그와 함께,

!”

흡사 철인(鐵人)을 연상케 하던 천마묵룡의 얼굴에 비로소 고통스러운 경련이 일었다.

그 모습을 주시하고 있던 천래검봉, 그녀는 교만과 득의에 찬 교소를 터뜨렸다.

후훗... 천마묵룡! 철인(鐵人)인줄 알았더니 아니었군!”

그녀는 오만한 표정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한데 그때,

누구냐?”

돌연 백의제갈이 흠칫하며 버럭 대갈을 내질렀다.

그는 안색이 일벽하여 눈을 부릅떴다. 멀리서 한 명의 인물이 질풍같이 다가오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었다.

순간,

“...!”

“...!”

그제서야 열화신룡과 천래검봉도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명의 청년, 여인을 무색케하는 새하얀 피부의 미청년이 장내를 향해 다가서고 있지 않은가?

순간, 천래검봉은 아미를 상큼 치뜨며 오만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어떤 놈이냐? 그 자리에 서라!”

하나, 청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두 눈에서는 섬뜩한 살광이 폭사되었다.

열화신문(熱火神門)... 백염장... 천신보9天神堡)...! 잘 만났다!”

그는 흡사 만년빙동에서 흘러나오는 듯 냉혹한 음성으로 말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문득, 스윽!

군무현의 신형이 그대로 삼십 장 상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순간,

!”

천래검봉은 그제서야 대경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때, 허공에서 재차 군무현의 냉혹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희들로부터 적룡(赤龍)의 복수를 시작하리라.”

말이 끝나는 순간, 꽈르르릉!

돌연 군무현의 전신이 가공할 검기(劍氣)로 뒤덮였다.

그 모습에 백의제갈의 안색이 싹 변했다.

...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이다!”

하나, 그의 경악에 찬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적룡(赤領)은 영세무적(永世無敵)이다!”

군무현의 찌렁찌렁한 외침이 온통 허공을 뒤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콰콰콰 쾅! 퍼 엉!

가공무비할 검세가 천지사방을 휩쓸었다.

천지를 뒤덮은 거창한 검영(劍影)의 소용돌이, 그것은 세상의 종말을 보고야말 듯 광폭한 기세였다.

그 순간,

... ... 막아랏!”

스슥! ! 백의제갈과 열화신룡은 당황하며 황급히 몸을 날렸다.

... 안돼!”

천래검봉도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급급히 물러났다.

하나, 그들의 다급한 외침은 이내 거대한 폭음 속에 묻히고 말았다.

콰르르릉! 콰쾅... 지축이 들썩 뒤흔들리는 가공할 폭음, 그 소용돌이 속에,

크아악!”

케 엑!”

크윽...!”

심장을 쥐어뜯는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그리고, ()!

섬뜩한 피분수가 장내를 회오리쳤다.

아수라지옥(阿修羅地獄)! 그야말로 장내는 지옥을 방불케 했다.

모든 것이 끝이었다. 눈부신 검광은 무려 만 장에 걸쳐 치뻗혔으며, 가공할 기세로 치닫는 검세는 폭풍같이 천지를 휩쓸었다.

그와 함께,

크으... !”

아악!”

처절한 비명이 잇달아 터져나왔다.

혈우(血雨) 속에 허무하게 쓰러져가는 무수한 시신들, 실로 끔찍한 살륙의 장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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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三 章

 

                        우연한 情事

 

 

 

군무현은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는 사망신준의 뒷모습을 무십하게 바라보았다.

의외로 몸뚱이가 단단하군. 아마 사망림(死亡林)의 놈팽이리라.”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사망림(死亡林)!

 

그곳은 세외사천(世外四天) 중 일천(一天)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남만에서 패자(覇者)로 군림하는 거대세력,

 

군무현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무심(無心), 다시 무심으로 돌아온 그는 왠지 고독해 보였다.

 

하나의 작은 산동(山洞).

! 문득 산동의 입구로 하나의 인영이 다급히 뛰어들었다.

으음... 사망신준(死亡神俊)! 다시 만나면 육시를 내고 말리라!”

분노와 원한에 찬 교성, 그것은 해맑은 여인의 옥성(玉聲)이었다.

나이는 이십 이삼 세 정도, 기품있는 용모에 고귀한 인상을 풍기는 미녀(美女)였다.

그녀는 동굴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힘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데, 그녀는 몹시 숨이 찬 듯 가쁘게 숨을 할딱이고 있었으며 기이하게도 옥용이 온통 도화빛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의여인, 그녀는 지금 천하에서 가장 지독한 최음약(催淫藥)에 중독당한 상태였다.

극고한 내공으로 간신이 욕화를 누르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녀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이를 갈았다.

감히 본 독황후(毒皇后)를 암습하다니... 사망림(死亡林) 전체를 독()으로 태워없애리라!”

그녀는 분노에 치를 떨며 독랄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크고 아름다운 두 눈에는 원독의 빛이 가득했다.

일견하기에도 기()가 드센 여인인 듯 했다.

음약으로 인해 전신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 중에서도 그녀는 분노와 원한의 감정에 치를 떨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는 불덩이처럼 화끈거리며 달아오르는 전신을 주체할길 없었다.

하나, 그 수치스런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그녀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전신은 마치 열탕속에 빠진 듯 뜨겁게 끓어 올랐다.

아아...!”

독황후(毒皇后)라 자칭한 자의여인, 그녀는 점점 이성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흐윽... ...!”

그녀는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발했다. 실로 힘겨운 의지와의 싸움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

독황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갑자기 발딱 교구를 일으켰다.

언제였을까?

동굴의 입구, 한 명의 인영이 우뚝 서 있지 않은가?

투명할 정도로 흰 피부를 지닌 백의청년, 그의 두 눈은 지극히 무심했다.

그 순간,

사망신준(死亡神俊)! 죽어랏!”

독황후는 미처 사내의 얼굴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다짜고짜 앙칼진 외침과 함께 섬섬옥수를 휘둘렀다.

! 그녀의 전력을 다한 일장에 요란한 폭음이 들썩 동굴 안을 뒤흔들었다.

하나,

무례한 계집!”

그 폭음속을 뚫고 한 소리 싸늘한 냉갈이 들려왔다.

직후, 콰쾅!

독황후는 자신의 공세가 육중한 벽에 부딪혀 버린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함께, 공력으로 간신히 누르고 있던 욕화가 툭 터지듯 일시에 폭발해 버렸다.

흐윽...!”

독황후는 눈앞이 아찔해짐을 느끼며 교구를 휘청했다.

하나, 그녀는 원독이 가득찬 눈빛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네놈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깨끗이 자결하겠... ...!”

그녀는 그러나 말끝을 채 맺지도 못한 채 힘없이 그 자리에 무너졌다.

백의청년,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쓰러진 독황후를 내려다 보았다.

젊은 계집의 공력이 제법이군!”

그는 무심한 음성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군무현! 백의청년은 바로 그였다.

독황후는 동굴의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 그녀의 전신은 터질 듯한 욕화로 불덩이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때,

흐윽... 아아...!”

마침내 독황후는 뜨거운 신음성과 함께 사지를 비틀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군무현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지독한 최음약에 당했다.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으니!”

그는 곤혹함을 느끼며 난색을 지었다.

그대로 몸을 돌릴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나,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할만큼 군무현은 냉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아... ...!”

독황후는 마침내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듯 마구 전신을 비틀며 자극적인 교성을 발했다.

그녀는 풍염한 사지를 비틀며 숨가쁘게 몸부림쳤다.

그 모습은 실로 자극적이었다.

원초적인 본능을 후끈하게 자극하는 뜨거운 몸부림, 군무현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손을 부벼댔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대로 두면 일각도 못되어 전신 혈맥이 터져 절명하고 만다!)

그는 안절부절하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 ... 아아... ... 나를 좀... 어떻게...!”

독황후가 자신의 앞가슴을 쥐어뜯으며 간절한 음성으로 애원했다.

군무현은 실로 난감함을 금할 수 없었다.

풍염하고 자극적인 독황후의 몸매에 눈길이 닿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 순간,

아아... ... 제발... ... 나를...!”

갑자기 독황후가 군무현의 몸을 백사같이 휘감았다.

(!)

군무현은 기겁했다. 그는 당황하여 황급히 독황후를 떼어 놓으려 했다. 하나, 이내 그는 흠칫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두 손 가득 뭉클한 여체의 감촉이 닿아온 것이 아닌가?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성숙한 여체(女體), 그의 코끝이 농염한 여인의 육향이 물씬 스며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군무현은 단전에서 불끈 열기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그도 끓는 피를 지닌 청년이 아닌가?

그때,

으음... ... 어서... ... 나를...!”

독황후가 뜨겁게 숨을 몰아쉬며 군무현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독황후의 나릇한 허리를 으스러져라 힘껏 끌어안았다.

독황후는 굳센 사내의 손길에 희열의 교성을 발했다.

그녀는 교구를 부르르 경련하며 군무현의 목을 끌어안았다.

금방이라도 활활 타올라 날아가 버릴 듯한 여체, 군무현은 그 엄청난 열기에 함께 휩싸이고 말았다.

한순간, 군무현의 붉은 입술이 독황후의 뜨겁게 달아오른 입술을 덮었다.

전신이 녹아내리는 듯한 짜릿한 전율, 독황후는 교구를 파르르 경련하며 황홀한 신음성을 발했다.

입맞춤, 두 개의 불덩이가 서로 뒤엉킨 듯 그것은 뜨겁고 격렬했다.

군무현, 그는 전신의 피가 엄청나게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이한 흥분과 전율, 숨막힐 듯 뜨거운 격정에 몸을 떨며 그는 달콤하고 보드라운 여인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그와 함께, 그의 손은 점차 성숙한 여체를 더듬어 갔다.

매끄러운 등줄기, 풍만하게 부푼 탄력있는 둔부... 군무현의 애무는 능숙치 못했다.

하나, 그는 뜨겁고 강렬하게 여체를 탐했다.

군무현은 여체를 송두리째 빨아들일 듯 뜨거운 입맙춤을 퍼부으며 연신 애무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군무현은 형언할 수 없는 희열에 몸을 떨며 전신이 터질 듯 팽창됨을 느꼈다.

여체는 신비롭고 경이로왔으며 무한한 흥분과 희열을 자극시켰다.

이윽고, 찌 익! !

군무현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성급히 독황후의 의복을 찢어냈다. 그러자,

아아...!”

독황후는 기다렸다는 듯 군무현의 손길이 닿기도 전에 스스로 옷을 벗어 던졌다.

풍만하고 탐스럽기 이를데 없는 나신, 마침내 그녀는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알맞게 무르익어 성숙한 여체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뇌살적이었다.

“...!”

군무현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는 목구멍이 뜨겁게 타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열기가 그의 전신을 활활 타오르게 했다.

이윽고,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의복을 벗어던졌다.

근육으로 다져진 탄탄한 육체, 그는 넓은 가슴으로 마치 자신을 팽개치듯 덥쳐오는 독황후의 알몸을 받아들였다.

엉성하게 짚이 깔려있는 동굴 바닥, 그들은 이미 이성을 상실한 채 열락과 희열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폭풍(暴風), 폭풍이 몰아친다.

뜨겁고 거칠게 동굴 안을 몰아치는 두 남녀의 신음성, 군무현은 여체를 모른다. 그러기에 그는 여인을 다룰줄은 더욱 몰랐다.

그의 손길은 자연히 성급하고 거칠 수밖에 없었다.

하나, 독황후는 더욱 거친 애무를 원했다.

최음약의 약효가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었다.

한 순간, 그녀는 이내 고통의 뒤로 번지는 야릇한 희열과 쾌감의 파문에 전율하여 몸부림쳤다.

그것은 일찍이 상상치도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두 남녀의 신음성은 갈수록 뜨겁게 고조되어 갔다.

동굴 안은 때아닌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폭풍의 정사(情事)가 벌어지는 곳, 이곳은 대파산의 은밀한 산동(山洞)이었다.

아침, 눈부신 겨울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야산의 작은 동굴, 그곳에도 어김없이 빛은 스며들었다.

두 남녀, 동굴 안에는 나신(裸身)의 두 남녀가 서로를 껴안은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문득,

으음...!”

독황후는 나직한 신음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순간,

(!)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제일 먼저 그녀가 느낀 것은 자신의 소중한 부분이 칼로 저며지는 듯한 통증이었다.

순간, 독황후의 아름다운 얼굴은 당혹과 함께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 내가 기어이...!”

그녀는 잘근 입술을 깨물며 눈을 떴다.

그녀의 눈길은 파르르 떨리며 옆으로 향해졌다.

군무현, 그가 벌거벗은 몸으로 독황후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순간, 독황후는 흠칫하며 안색이 일변했다.

(... 이자는 사망신준이 아니다!)

그녀는 기이한 안도감을 느끼며 옥용 가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함께, 군무현의 용모를 확인한 그녀는 다시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투명할 정도로 흰 피부에 조각으로 빚은 듯 준미한 군무현의 얼굴, 그의 얼굴이 어떤 강렬한 느낌으로 독황후의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군무현은 평안한 얼굴로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었다.

혼곤한 피로감에 도취된 것이다.

독황후, 그녀는 일순 서글픈 표정으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 이렇게 어이없이 몸을 버리다니...!)

그녀는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문득, 주르르... 독황후의 옥같은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나,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독황후는 피가 나도록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이어, 그녀는 원독의 눈빛으로 싸늘하게 군무현을 쏘아보았다.

죽이리라!”

그녀는 살기어린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잠든 군무현의 머리위로 섬섬옥수를 쳐들었다.

하나,

...!”

그녀는 이내 힘없이 교수를 내려뜨리며 고통스럽게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몸은 온통 상처가 터져 선혈로 흠뻑 젖어 있었다.

사내의 육중한 몸에 짓눌려 밤새 너무도 지독한 시달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

군무현이 흠칫하며 비로소 잠에서 깨어났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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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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