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30. 09:00 박스본 무협지의 추억/만상지존보
[만상지존보] 제 12장 잠룡의 출세
第 十二 章
潛龍의 出世
동굴 안!
“...!”
“...!”
두 노소(老少)가 앉아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희미한 야명주 불빛 아래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
군무현과 신기황, 바로 그들이었다.
신기황은 여전히 웅덩이 속의 지극음령수액에 잠긴 채 상반신만 드러내 놓고 있었다.
군무현, 그는 신기황과 마주보는 위치에서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말없이 가운데 뜨겁게 엉켜들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인간적인 유대가 형성되었다.
철천지한을 품고 무표정한 침묵으로 일관해온 군무현, 결코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괴인(怪人) 신기황, 그들 두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고 있는 것,
그것은 정(情)! 바로 뜨거운 정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순수한 감정이 아니겠는가?
문득, 신기황의 엄격한 얼굴에 한가닥 희미가 미소가 떠올랐다.
이어, 그는 먼저 침묵을 깨고 너털웃음 떠올렸다.
“헛허... 벌써 오년(五年)이 지났는가?”
그는 감회가 깃든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오년(五年), 그가 천마애에 떨어져 무공을 연마한 지도 벌써 오년이 지났다.
병약한 십오세 소년에게이제 천하를 짊어질 헌앙한 기품의 약관 청년으로 성장한 군무현, 그의 변화는 실로 눈부실 지경이었다.
신기황, 그는 그런 군무현의 변화를 지켜보아 오면서 흐뭇한 심정을 금할길 없었다.
하나, 인간사(人間事) 만남이 있으면 이별(離別)도 있는 법, 마침내 두 사람은 이별의 날을 맞았다.
그러기에 무거운 침묵이 동굴 안을 메우고 있었던 것일까?
신기황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며 입을 열었다.
“어느덧... 너는 과거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이상으로 강해졌다. 허허... 천하무림이 아연실색할 것이다!”
그는 대견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예전과 달리 인자하고도 부드러웠다.
“...!”
군무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나, 그는 진정어린 눈빛으로 신기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돌아올 때는... 반드시 만년빙지(萬年氷芝)를 구해올 것입니다!”
만년빙지(萬年氷芝)!
만년(萬年) 동안 얼음 속에서 자라는 전설의 영약, 신기황을 지극음령수액의 금제로 묶고 있는 무형화린산의 독기는 바로 만년빙지로만 해독이 가능했다.
신기황, 그는 군무현의 말에 씁씁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없다. 노부의 나이 이미 백팔십이 넘은지 오래다. 살만큼 살았으니 괜한 심기 쓰지 말거라!”
“...!”
군무현은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는 추호도 그 뜻을 꺾지 않을 의지가 엿보였다.
신기황은 고개를 흔들며 내심 중얼거렸다.
(녀석... 무슨짓을 해서라도 만년빙지를 구해오겠군!)
그는 대견함을 금치못하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더할 수 없이 흐뭇한 마음과 함께 군무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느꼈다.
그때, 군무현이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가능한... 빨리 돌아와 어르신네를 모시겠습니다!”
그는 무표정했으나 신기황은 잘 알고 있었다. 한(恨)으로 응어리진 차디찬 그의 내심에는 누구보다 뜨겁고 진실한 정(情)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신기황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무림에 나가거든 신기곡(神機谷)의 아이들을 돌보아다오. 그 아이들은 풍진에 묻히기를 싫어하지만 혼탁한 세상이 그들을 편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진지한 어조로 군무현에게 당부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신기곡(神機谷)! 그것은 신기황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문파였다.
이윽고, 군무현은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신기황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삼배(三拜), 그는 연이어 공손히 삼배를 올렸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순간, 신기황의 노안에 언뜻 아쉬운 빛이 스쳤다.
하나, 그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군무현은 그런 신기황을 뒤로 하고 묵묵히 몸을 돌렸다.
이어, 그는 천천히 동굴을 나섰다.
그림자(影), 야명주 불빛 아래 길게 깔리는 뒷그림자만을 남긴 채...
동굴 밖!
혈영천종과 육대거두의 시신 대신 거둔 유해와 그들이 남긴 유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군무현은 그것들을 묵묵히 품 속에 갈무리했다.
이어, 그는 힐끗 뒤를 돌아 보았다.
퀭하니 뚫려 있는 동굴, 그곳에는 한명의 외로운 기인(奇人)이 기약없는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무현, 이제 그는 이곳을 떠난다.
무림(武林)! 그곳으로 나가는 것이다.
오년간의 뼈를 깎는 수련을 마치고 마침내 그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출도(出道), 한 마리 용(龍)이 거대한 용트림과 함께 창천을 향해 치솟았다.
순간,
“우!”
쐐 액! 한소리 웅후한 장소성과 함께 군무현의 신형은 마치 창룡이 비상하듯 까마득한 절벽 위로 치솟아 올랐다.
아아! 마침내 그는 천마애를 떠나 웅대한 일보(一步)를 내디딘 것이었다.
그때,
“무현... 잘 가거라...!”
문득 천마애 밑의 한 동굴에서 창노한 노인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X X X
휘이 잉! 스스스...
바람(風), 바람이 분다. 차가운 설풍(雪風)이었다.
산 전체는 온통 흰 눈에 뒤덮여 있었다.
대파산(大巴山)!
엄동설한, 때는 겨울이었다.
하나의 구릉 위! 한 명의 백의청년이 백설을 딛고 우뚝 서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 깎은 듯 미려한 용모에 미인의 그것처럼 붉고 선명한 입술이 강렬한 인상을 물씬 풍겼다.
백의청년의 눈빛은 흡사 맑게 닦여진 차가운 검날을 연상케 했다.
그의 일신에서는 신비하고도 서늘한 한기가 물처럼 배어나오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하고도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청년,
군무현! 바로 그였다.
마침내 그는 천마애를 떠나 이곳 대파산록에 이른 것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싸늘한 살기가 일렁이는 시선으로 대파산봉을 주시했다.
“나는 잊지 않았다. 아버님... 환노(幻老)... 그리고 삼천의 적룡검사(赤龍劍士)들, 그 모두의 한(恨)을...!”
그의 두 눈에서는 줄기줄기 살기가 뻗어나왔다.
“선인들의 영령께서 네게 힘을 주셨으니... 천하(天下)로부터 대가를 받아내리라!”
그는 결연한 음성으로 다짐했다.
한순간, 파파파팍! 그의 발밑에 있던 바위가 무서운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가루로 부서져 내렸다.
그것은 군무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의 한(恨)은 이미 하늘에 닿고 있었다.
뼈를 깎는 오년간의 수련, 그것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던가?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살아온 그가 아닌가?
군무현은 질근 입술을 악물었다.
“나로 하여금 아버님의 유체조차 모시지 못하게 한 자들... 백배, 천배로 그보응을 받으리라!”
그는 냉혹한 한광을 폭사하며 굳게 맹세했다.
이윽고, 군무현은 몸을 돌렸다.
그의 어깨, 천마애에서 죽은 육대거두의 신물들이 천에 감긴 채 짊어져 있었다.
돌아서는 군무현의 얼굴은 어느새 무표정하게 변해 있었다.
한차례 눈덮힌 대파산을 둘러본 군무현,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데, 그가 막 구릉을 내려섰을 때였다.
스슥! 돌연 전면에서 한줄기 회영(灰影)이 나타났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으로 힐끗 회의인영을 주시했다.
(상당한 경공이군!)
하나,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간격이 점점 좁혀지자 회의인영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회포를 걸친 청년이었다. 나이는 군무현과 비슷한 정도, 그의 용모는 제법 영준했다.
하나, 별로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가늘게 번뜩이는 눈과 얄팍한 입술 끝이 위로 치켜진 것이 간교하고 음악한 인상을 풍겼다.
게다가, 그의 두 눈썹 사이는 음침하게 그늘져 푸르스름해 보였다.
생김새로 미루어 극히 음탕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군무현은 다가서는 회포청는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중럴거렸다.
(인간 구실을 못할 놈이군!)
하나, 그는 곧 회포청년에게서 시선을 떼며 무심하게 걷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였다. 스슥!
“서랏!”
돌연 회포청년이 군무현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회포청년을 주시했다.
회포청년,
“흐흐...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해라. 한명의 자의(紫衣)계집이 이쪽으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그자는 지극히 오만한 어조로 물었다.
“...!”
군무현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못들은 척 묵묵히 회포청년의 옆을 비켜 지나갔다.
순간, 회포청년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휙! 그자는 눈을 부릅뜨며 다시 몸을 날려 대뜸 군무현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그자의 음침한 두 눈에 살기를 번뜩였다.
“내 말을 듣지 못했느냐? 한명의 자의계집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군무현은 귀찮다는 듯 무감정한 어조로 대꾸했다.
“보지 못했다!”
그 한 마디를 내뱉은 그는 다시 태연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순간,
“아... 아니...!”
회포청년의 안색이 거듭 변했다. 그자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군무현의 몸에서 뻗어나오는 막강한 잠력에 밀려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물러나고 만 것이 아닌가?
회포청년의 안색은 이내 수치로 이지러졌다.
하나, 군문현은 게의치 않았다.
그는 회포청년을 돌아보지도 않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으으...!”
회포청년은 부르르 몸을 떨며 치욕으로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하나, 이내 그자의 입가에는 살기어린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 네놈이 감히 나 사망신준(死亡神俊)을 무시하다니...!”
그자는 악독한 눈으로 군무현의 등을 노려보았다.
다음 순간,
“죽어랏!”
위 잉! 그자는 군무현의 뒤를 노리고 맹렬히 일장을 후려쳤다.
그자의 공격은 독랄하고 잔혹하기 이를데 없었다.
격중되면 그대로 즉사하고 마는 치명적인 살수.
순간, 군무현의 두 눈에 싸늘한 살기가 번뜩 떠올랐다.
“인간같지도 않은 놈!”
그는 냉갈하며 홱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콰르릉! 양인 사이에 격렬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직후,
“헉!”
사망신준(死亡神俊)이라 자칭한 회포청년은 다급성을 발하며 휘청 물러섰다.
그자는 군무현을 후려진 장(掌)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그제서야 그자는 경각심을 돋구었다.
(강한 놈이다. 잘못 건드린 것 같다!)
그자는 내심 아차하며 후회했다.
하나, 이미 늦은 후였다.
그자가 만난 상대가 누군가?
군무현! 천하를 상대로 복수를 다짐한 군무현이 아닌가?
그때,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사망신준을 향해 다가갔다.
“본인을 이유없이 건드렸으니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그는 냉막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그 짤막한 한 마디는 사망신준으로 하여금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으으...!)
그 자는 완전히 기가 질리고 말았다.
군무현의 태산같이 막강한 기도는 도무지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하나, 그자는 간악한 작자였다. 그자의 가늘게 찢어진 두 눈이 일순 음흉하게 번득였다.
다음 순간,
“에 잇!”
그자는 벼락같이 외치며 대뜸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화르르!
그자의 소매 속에서 돌연 시커먼 독무(毒霧)가 확 쏟어져 나왔다. 그것은 치밀한 그물처럼 삽시에 군무현의 전신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 아닌가?
순간, 군무현의 짙은 눈썹이 무섭게 꿈틀했다.
“독(毒)을 쓰다니...!”
그의 안색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그때, 자욱한 독무 속에서 사망신준의 득의에 찬 음소가 흘러나왔다.
“흐흐... 네놈이라고 별 수 있겠... 헉!”
득의의 음소를 흘리던 사망신준, 하나 그 자는 이내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며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보라. 화르르...! 콰 쾅!
시커먼 독무 속을 뚫고 시뻘건 극양지기가 활화산같이 터져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스악! 사망신준은 대경실색하며 급급히 몸을 날려 달아나려 했다.
하나 그보다 빨리, 콰쾅!
“케 엑!”
가죽북이 터지는 듯한 충격적인 폭음과 함께 한 마디 처절한 비명이 터져올랐다.
사망신준, 그자는 고통스런 비명을 토하며 벼락같이 뒤로 튕겨나갔다.
끔찍하게도 그자의 가슴이 시커멓게 탄 채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몸을 날리며 그자는 부득 이를 갈았다.
“두... 두고 보자!”
휘익! 그자는 고통과 분노의 신음성을 발하며 그대로 몸을 날려 군무현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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