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3. 08:59 박스본 무협지의 추억/만상지존보
[만상지존보] 제 15장 열화신문의 겁풍
第 十五 章
熱火神門의 劫風
스스스... 한 순간, 장내를 뒤덮었던 검영(劍影)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
“...!”
침묵, 죽음같은 침묵이 장내를 무겁게 짓눌렀다.
이인(二人), 장내에는 단 두 사람만이 우뚝 서 있었다.
군무현, 그리고 천마묵룡이었다.
천마묵룡은 아연한 표정으로 멍하니 군무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군무현은 마음이 침중해졌다.
(내 손속이 지나쳤는가?)
그는 스스로 자문하여 착잡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 끔찍했다.
시산혈해(屍山血海)!
그야말로 장내는 시체가 산(山)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루었다.
아비지옥(阿鼻地獄)의 광경이 이토록 처참할 것인가?
실로 몸서리쳐지는 참극이었다.
하나, 군무현의 안색이 문득 냉혹하게 굳어졌다. 그는 내심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불러들인 화가 아닌가?)
그는 냉혹하게 얼어붙은 눈빛으로 스스로의 양심의 자문마저도 거부했다.
한(恨), 그의 한은 너무도 깊고 컸기 때문이다.
이때, 천마묵룡은 싸늘하게 굳은 군무현의 안색을 바라보며 몸서리를 쳤다.
(지... 지독한 살기다. 대체 어떤 원한이 있기에 저토록 가공할 살기를 발산한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때, 군무현이 들고있던 적룡검을 검집에 꽂으며 천천히 돌아섰다.
순간,
“잠깐!”
천마묵룡은 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군무현은 묵묵히 몸을 돌렸다.
그 순간,
“...!”
“...!”
두 사람의 시선이 불꽃 튀기듯 맞부딪혔다.
파 앗! 두 줄기 강렬한 섬광처럼 그들의 눈빛이 서로 얽혀들었다.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렸다.
(뛰어난 인물이다. 패기(覇氣)가 지나친 것이 흠이라면 흠일 뿐...!)
그는 천마묵룡의 인물됨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때, 천마묵룡이 정중히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천마궁(天魔宮)의 제자 천마묵룡(天薇墨龍) 혁세민(赫世珉)이요!”
그 말에 군무현의 먹물같은 검미가 꿈틀했다.
(천마황(天魔皇)! 그자의 후예...!)
그의 가슴에 일순 뜨거운 것이 불끈 치밀어 올랐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군무현은 내심 씁슬하게 중얼거렸다.
(유감이군. 적(敵)이 되고 싶지 않은 친구인데...!)
이어,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천마묵룡을 주시하며 말했다.
“다시 만나게 될 때는 어쩌면 검(劍)을 맞대야 할지도 모를 것이오!”
그 말과 함께, 스슥...! 그의 모습은 장내에서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
천마묵룡은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지는 군무현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문득, 그는 미간을 좁히며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검을 맞댄다고? 나의 사문(師門)과 무슨 원한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 이내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탄식했다.
“사조(師祖)께서 삼십 년 전에 실종된 이래 본궁은 사조님의 뜻과는 달리 패도(覇道)에 몰두하고 있다. 하나... 제자된 도리로 사부님의 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철컥! 그는 바닥을 향해 길게 늘어뜨리고 있던 묵검(墨劍)을 검집에 집어 넣었다.
몸을 돌리던 천마묵룡, 문득 그는 두 눈에 강렬한 신광을 발산하며 중얼거렸다.
“저 친구와 검을 맞대더라도 별 수 없다!”
다음 순간, 스슥...! 그의 모습도 한줄기 바람으로 화해 장내에서 사라졌다.
한데, 천마묵룡이 사라지고난 직후, 스스스...!
문득 허공을 밟으며 한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신비한 경공, 뜻밖에도 그 인영은 회포(灰袍)에 죽립을 눌러쓴 비구니였다.
죽립 아래로 언뜻 비치는 두 눈, 아! 그것은 실로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깊고 그윽하며 가을 저녁의 호수처럼 고요한 눈빛, 그 눈빛으로 미루어 젊은 여승(女僧)임이 분명했다.
“아미타불...!”
여승은 장내를 둘러보며 탄식 섞인 나직한 불호를 외었다.
한데 그때,
“음...!”
문득 한소리 나직한 신음성이 그녀의 귓전에 들려왔다.
순간, 여승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살아있는 시주가 계시는 모양이다!”
그녀는 급히 소리가 들린 곳을 찾아 다가갔다.
갈가리 찢겨 제멋대로 널브러진 시신들 사이, 한 명의 청의경장녀가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한데, 그녀는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지극히 여린 신음성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아미타불...!”
그 모습을 주시하던 여승의 고운 아미가 절로 찌푸려졌다.
청의경장녀, 그녀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녀의 왼쪽 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정확한 일검(一劍)이 그어져 있었다.
그 바람에, 끔찍하게도 풍만한 오른쪽 유방이 쩍 갈라진 처참한 모습이었다.
여승은 나직한 탄식성을 터뜨리며 동정의 눈빛을 지었다.
“천행(天幸)이다...!”
과연 그러했다. 만일, 청의경장녀, 즉 천래검봉이 사내였다면 심장이 갈라져 즉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 다행히 유방의 두께를 계산하지 않은 일검으로 간신이 심장이 갈라지는 것만은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파팟! 팟...!
여승은 천래검봉의 몇군데 대혈을 신속한 수법으로 짚었다.
이어, 스슥...!
그녀는 천래검봉을 안아든 채 나타난 것보다 더 신비한 경공으로 사라졌다.
X X X
하락(河洛), 호남(湖南)과 호복(湖北)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 하락 근교에는 하나의 산(山)이 있다.
뇌산(雷山)!
그것은 오래전에 이미 활동을 멈춘 화산(火山)이었다.
그 뇌산(雷山)의 산록, 하나의 웅장한 성보가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열화신문(熱火神門)!
천하제일(天下第一)의 화기술(火器術)을 자랑하는 하락(河洛)의 명가(名家)!
열화신문의 성세는 적룡세가와의 일전(一戰) 후 욱일승천했다.
천염화신(天焰火神) 공무현(空無現)!
이것이 당금 열화신문의 문주(門主) 이름이었다.
그는 화공(火功)에 있어 무적(無敵)임과 동시에 화기(火器)의 명인이었다.
그의 천염화룡기(天焰火龍氣)는 천하제일의 극양공력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화기술은 일시에 태산을 날려버릴 수 있는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고 한다.
한데... 열화신문(熱火神門)!
화기(火器)의 명가, 천하(天下)의 명가에 서서히 암운이 밀어닥치고 있었으니...
저녁무렵, 날씨는 왠지 음산했다.
암운(暗雲)이 뒤덮인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울 듯하다.
사위는 우중충하게 어두워지고 있었으며 알지 못랄 음울한 기운이 열화신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돌연, 두두두두...!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이어, 세 필의 준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쏜살같은 기세로 관도에 나타났다.
그것은 삽시에 열화신문의 장원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두두... 삽시에, 세 필의 준마는 열화신문의 보문(堡門)을 밀치고 들어섰다.
그 순간,
“누구냣?”
보문을 지키던 호목(虎目)의 장한들이 번개같이 준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바람에, 히 잉! 세 필의 준마는 급정지했다.
그와 동시에, 쿵! 쿵! 털썩!
세 명의 기사(騎士)들이 무너지듯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한데 그 순간,
“헉!”
“아... 아니...!”
보문을 지키던 장한들은 대경실색하며 눈을 부릅떴다.
마상(馬上)에서 추락한 세 명의 인물들, 아! 그들은 놀랍게도 이미 오공에서 피를 쏟은 채 절명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경악으로 물러섰던 장한들 중 한 명이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백... 백염보로 전갈을 하러갔던 장이(張二) 등이다!”
그 말에 다른 장한들이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마상에서 굴러 떨러진 세 인물, 그들은 불과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마주앉아 밥을 먹었던 동료들이 아닌가?
섬뜩한 전율이 그들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으...!”
“대... 대체 어떤 놈이...!”
그들은 주먹을 움켜쥐며 치를 떨었다.
한데, 그때였다.
툭! 문득 한 구의 시신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혈지(血紙)! 그것은 섬뜩한 핏빛으로 물든 한 장의 혈지였다.
장한들 중 한 명이 떨리는 손으로 급히 혈지를 집어들었다.
<오늘밤 안으로 열화신문(熱火神門)이란 이름은 천하에서 사라지리라!>
혈지에는 그와 같은 내용의 냉혹한 경고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피냄새가 물씬 풍기는 죽음의 포고문이었다.
장한들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어,
“문... 문주께 알리자!”
휙! 스슥! 그들은 세 구의 시신과 혈지를 들고 급히 열화신문 안으로 사라졌다.
뇌산(雷山)!
그곳에 서면 열화신문이 환히 내려다 보인다.
뇌산의 정상(頂上), 한 명의 백의청년이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우뚝 서 있었다.
문득,
“열화신문...!”
굳게 다물려 있던 청년의 입에서 한소리 나직한 뇌까림이 흘러나왔다.
한기가 물씬 풍기는 싸늘한 음성, 청년의 용모는 조각으로 빚은 듯 준미하고 인상적이었다.
하나, 그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마치 얼음처럼 차갑고 냉혹했다.
깊고 신비한 두 눈, 하나, 그 눈은 섬뜩하리만치 냉혹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백의청년, 그는 등 뒤에 제법 큰 하나의 가죽 주머니를 메고 있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그는 열화신문을 내려다보며 살기띤 어조로 중얼거렸다.
“약속은 지킨다. 오늘밤이 열화신문 최후의 밤이 되리라!”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왠지 짙은 고독을 느끼게 하는 넓은 그의 등, 그 뒤로 죽음의 그림자와도 같은 짙은 암운(暗雲)이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열화신문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대전(大殿)!
대전 안은 온통 타는 듯한 홍색(紅色)으로 치장되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화려한 천축산 양탄자, 태사의를 장식한 부드러운 가죽, 심지어는 천정에 달린 궁등조차 한결같이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전의 상좌, 하나의 화려한 태사의가 놓여 있었다.
태사의에는 한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일신에 홍포를 걸친 인물, 그는 마치 뇌신(雷神)처럼 시뻘건 안색을 지니고 있었다.
“으득... 어느 놈이... 감히 이따위 짓을 한단 말인가?”
홍포노인은 지금 한 장의 혈지(血紙)를 든 채 전신을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천하에서 가장 급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불길같은 노화를 참지못해 그의 안색은 더욱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 홍포노인의 앞, 외상(外傷)이 전혀 없는 세 구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홍포노인은 화등잔만한 두 눈을 한껏 부릅뜬 채 세 구의 시신을 노려보았다.
그때,
“문주! 고종하십시오. 우선 시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명의 중년인이 침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비교적 청수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시신이 놓여있는 곳에 빈틈없는 자세로 시립하고 있는 인물,
온유(溫儒),
이것이 그 중년인의 이름이었다.
그는 열화신문의 군사(軍師)였다.
그의 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느낌 이상으로 그의 성격은 빈틈없이 치밀하고 침착했다.
홍포노인, 즉, 열화신문의 문주인 천염화신(天焰火神)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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