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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九 章

 

                  南宮勢家劫火

 

 

 

군무현, 그의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남궁세가(南宮勢家)!

그들 역시 전체는 아니었으나 적룡세가의 멸겁에 소수의 인물이 참가했던 문파가 아닌가?

그것은 군무현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군무현은 남궁혜미를 주시하며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부탁이란 무엇인가?”

남궁혜미는 간절함이 깃든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 남궁세가가 사망림(死亡林)의 급습으로 위경에 처해 있어요! 제발 도와 주세요!”

그녀는 절실한 음성으로 간청했다.

도와달라고?”

군무현은 싸늘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 한기가 끼얹어졌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남궁혜미는 흠칫하며 불길한 예감을 직감했다.

(좋지 않다!)

하나, 털썩!

그녀는 이내 군무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어, 그녀는 간절한 음성으로 애원했다.

이렇게 부탁드리겠어요. 사망림의 마수(魔手)만 막아 주시면 무슨 짓이든 하겠어요!”

군무현은 서늘한 한기가 감도는 눈으로 남궁혜미를 내려다 보았다.

그대는 본인이 누군지 아느냐?”

그의 물음에 남궁혜미는 움찔 몸을 떨었다. 순간적으로 한 가지 직감이 그녀의 뇌리에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본 세가와 원한이 있구나!)

그것은 극히 불안한 느낌이었으나 그녀의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군무현의 입에서 한 소리 차가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본인의 이름은 군무현이다!”

순간, 남궁혜미의 안색이 홱 변했다.

(... 이 사람이 적룡대제의 아들...!)

그녀는 경악과 함께 무거운 절망감을 느꼈다.

원수를 도와줄 인물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하나, 남궁혜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하지만... 이 사람을 놓치면 남궁세가 일천 년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고 만다!)

그녀는 도저히 단념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군무현의 발밑에 엎드려 애원했다.

제발... 구원(舊怨)은 잊으시고 도와주세요. 도와주시기만 하면 상공의 시첩이 되어... 평생을 모시겠어요!”

주르르...! 옥같은 눈물이 그녀의 고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것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절로 뭉클하게 만드는 애절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눈물, 여인의 눈물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었다.

간절함과 진정으로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는 남궁혜미,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군무현의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삭막하기만 하던 그의 가슴에 한 가닥 뭉클한 감정이 일어난 것이었다.

군무현은 내심 자문해 보았다.

(군무현아... 네 스스로 멸문의 한()을 맛보지 않았느냐? 이 천진한 소녀에게도 그런 아픔을 겪게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 그것은 잔인한 짓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 군무현, 그는 결코 자신의 가슴에 뿌리내린 엄청난 한을 이 어린 소녀에게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잔인한 행위는 그의 본연의 선한 양심이 허용치 않는 것이다.

이윽고, 군무현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순간, 남궁혜미는 파르르 어깨를 떨며 조심스럽게 군무현을 올려다 보았다.

기대와 불안이 엇갈리는 초조한 눈빛,

... 도와주시는 건가요?”

“...!”

군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순간,

상공!”

남궁혜미는 기쁨을 금치 못하며 눈물 고인 눈으로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군무현, 문득 그의 싸늘한 입가에 한줄기 흐릿한 미소가 스쳤다.

 

X X X

 

화르르...! 콰콰 쾅!

화마(火魔)! 시뻘건 화염이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무엇이든 거침없이 집어 삼키는 엄청난 불길, 그 속에 한 채의 웅장한 장원이 화마에 휩싸여 흔적을 잃어가고 있었다.

콰르릉... 쿠쿵! 거대한 장원은 충천하는 화염 속에 휘말려 덧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주위를 진동하는 시신이 타는 매캐한 냄새, 아아! 또 얼마나 많은 자들이 덧없이 화염 속에 잿더미로 쓰러져 가고 있는 것일까?

 

남궁세가(南宮勢家)!

 

중원에서도 가장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명가(名家).

화마 속에 휩싸여 무너지고 있는 장원은 바로 다름 아닌 남궁세가였다.

화르르! 콰릉... 엄청난 기세로 불타오르는 남궁세가의 장원 앞, 수백 명의 회의(灰衣) 흉한들이 살기 흉흉한 눈으로 불타는 남궁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흉신악살을 연상케 하는 험악한 인상을 지닌 자들, 장원 안, 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몇부류의 인물들이 둘러서 있었다.

죽여라! 네놈들을 죽이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것이 한이다!”

한 명의 피투성이 중년인이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 채 노갈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실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본래, 그는 지극히 청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 희생키 힘든 중상을 입은 지금 그의 모습은 한 마리 거친 노호(怒虎)와도 같았다.

분노와 비통함, 그리고 참혹한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그런 중년인의 앞, 한 명의 소년이 창백한 안색으로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의 곁, 한 명의 중년미부가 쓰러져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눈이 번쩍 뜨이는 절륜한 미모의 중년미부, 그녀는 마혈이 짚힌 듯 분노와 원한의 눈물을 흘릴 뿐 미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중년인의 앞, 한 명의 회포노인이 우둑 서 있었다.

두 눈이 움푹 꺼져 들어가 지극히 음험한 인상을 풍기는 인물, 그 자는 득의함이 깃든 괴이한 표정으로 중년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흐흐... 남궁걸(南宮傑)! 이제 본림(本林)의 명을 거역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알겠느냐?”

 

남궁걸(南宮傑)! 이것이 당금 남궁세가의 가주(家主)인 신안수사(神眼秀士)의 이름이었다.

 

피투성이의 중년인, , 남궁걸은 두 눈에 줄기줄기 분광을 폭사하며 이를 갈았다.

으득...! 잊지 마라! 중원은 네놈들 변방의 오랑캐 따위가 언제까지 발호하는 것을 용납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당금 남궁세가의 가주답게 결코 꺾이지 않는 불굴의 투지로 대항했다.

하나, 무슨 소용이랴? 그는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 없었다.

문득, 회포노인의 두 눈에 야릇한 광채가 번득였다.

그 자는 힐끗 중년미부를 일견하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남궁걸! 네놈에게 근사한 것을 보여주겠다!”

그 말에 남궁걸의 안색이 일변했다.

혈사음령(血死陰靈)! ... 무슨짓을 하려는 것이냐?”

혈사음령(血死陰靈)이라 불리운 회포노인! 그 자는 음침한 눈을 번득이며 중년미부를 향해 다가섰다.

움푹 꺼진 그 자의 두 눈은 음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낀 중년미부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혈사음령은 그런 중년미부의 농염한 육체를 쓸어보며 군침을 삼켰다.

흐흐... 중원의 계집은 각별한 맛이 있다고 들었다!”

순간,

... 여보!”

중년미부는 수치와 분노로 새파랗게 질리며 다급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두 눈에는 초조와 불안의 빛이 얼룩졌다.

그때,

흐흐...!”

찌 익! 혈사음령이 그대로 중년미부의 몸을 덮치며 그녀의 의복을 찢어냈다.

! ... 놓아랏!”

중년미부는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저항했다.

하나, 마혈이 찍힌 그녀는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조차 없었다.

삽시에, 그녀는 사내의 음탕한 손길에 전신을 벌거벗기고 말았다.

풍만하고 농염한 여체, 관능적인 굴곡을 지닌 중년여인의 육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흐윽...!”

중년미부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오열을 터뜨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남궁걸,

... !”

그는 분노와 격동을 참지 못하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능욕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떻겠든가?

그것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한 치욕이며 굴욕이었다.

그이 두 눈은 금방이라도 핏물이 흘러 내릴 듯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 ...”

하나, 그 역시 마혈이 찍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무기력한 몸이었다.

혈사음령, 그 자는 잔인하고 음탕한 음소를 흘리며 중년미부의 나신을 쓸어 보았다.

흐흐... 과연 일품이군!”

그자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 자는 중년미부의 전신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순간,

아악! ... 이놈! ... 비켜랏!”

중년미부는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울부짖었다.

하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때, 혈사음령의 수하들이 음탕한 눈을 번득이며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 자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침을 흘리며 혈사음령이 중년미부를 능욕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흐흐... 비단결보다 부드러운 몸이군!”

혈사음령은 중년미부의 나신을 쓰다듬으며 감탄의 기색을 지었다.

흐윽...!”

종년미부는 몸서리를 쳤다.

혈사음령의 손길이 몸을 스칠 때마다 그녀는 흡사 송충이가 기어가는 듯한 전율을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혈사음령은 그런 중년미부의 모습에 미간을 찡그렸다.

흐흐... 계집이 너무 뻣뻣하면 재미가 없지!”

이어, 그 자는 중년미부의 마혈을 풀어 주었다.

순간,

... 놔랏! 이놈!”

중년미부는 있는 힘을 다해 혈사음령의 몸을 떠밀어 냈다.

하나,

!”

그녀는 다시 사내의 육중한 몸에 짓눌려 버렸다.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사내의 체구를 감당해 내기란 불가능했다.

문득, 중년미부의 두 눈에 비장한 결의의 빛이 떠올랐다.

(자결하자!)

그녀는 이를 악물며 남편 남궁걸을 바라보았다.

잔뜩 충혈된 채 핏발이 선 남궁걸의 두 눈, 일순,

“...!”

“...!”

두 부부의 말없는 시선이 마주쳤다.

중년미부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상공... 먼저 가겠어요!)

다음 순간, 주르르... 그녀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흘러 내렸다.

남궁걸은 대경실색했다.

부인! 안돼오!”

그는 처절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하나, 주르르... !

중년미부의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꺾여지며 선혈이 그녀의 목을 타고 흘러 내렸다.

! 그녀는 더 이상 치욕을 당하기 전에 혀를 물어 자결한 것이었다.

순간,

... 이런 망할 계집!”

혈사음령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탐스럽고 아름답던 중년미부의 나신은 어느새 힘없이 축 늘어지고 만 것이 아닌가?

그때,

부인! 부인!”

남궁걸은 처절한 음성으로 절규하듯 부르짖었다.

미처 그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중년미부는 자결해 버리고 만 것이다.

처연한 아내의 마지막 눈빛, 그것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크윽... 부인!”

그는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

하나, 속수무책, 그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혈사음령은 일순 낭패한 기색이었으나 이내 음흉한 괴소를 터뜨렸다.

클클... 좋다! 이런 맛도 괜찮겠지!”

이어, 그 자는 잔인하게도 이미 죽어버린 중년미부의 육신을 능욕하려는 것이 아닌가?

실로 천인공노할 짓이었다.

으으...”

그 자의 짐승같은 행위에 남궁걸은 부르르 치를 떨며 전율했다.

... ! 힘이 없음이 원망스럽... !”

그는 격분은 참지 못해 한 사발의 피를 욱컥 토해냈다.

그와 함께, !

그는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 채 그대로 꼬구라졌다.

절명한 것이다. 하나,

흐흐...!”

혈사음령은 남궁걸의 죽음에도 아랑곳조차 하지 않았다.

그 자가 막 죽은 중년미부를 범하려 할 때였다.

우 우!”

돌연, 한 소리 웅후한 장소성이 장원을 뒤흔들었다.

순간,

!”

크윽...!”

혈사음령과 그 자의 수하들은 심맥이 터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누구냐?”

혈사음령은 대경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자는 아무렇게나 바지를 끌어 올리며 홱 돌아섰다.

천인공노할 놈들!”

그런 그 자의 귓전에 얼음장같이 냉혹한 일갈이 들려왔다.

직후, 쉬 익! 허공으로부터 한 줄기 백영이 선풍을 일으키며 벼락같이 날아내렸다.

...!”

혈사음령은 그 엄청난 신법에 공포의 눈빛으로 비칠비칠 물러났다.

그때,

어머님!”

자지러질 듯 처절한 소녀의 비명이 장내를 울렸다.

나타난 백의인영,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품 속에 한 명의 소녀를 안고 있었다.

군무현과 남궁혜미, 바로 그들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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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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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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