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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七 章

 

       恐怖의 魔物 蕩魔四十四客

 

 

 

광통거를 통과하는 선박들과 선객들이 쉬었다 가는 물가에 정운루(停雲樓)라는 주루가 있다.

이곳은 소일초와 백인장의 다섯 백인도객들, 그리고 취풍녀가 모이기로 약속한 곳이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한천이기가 사은상을 데리고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은 먼저 당도해 있었다.

그리고……

밤은 깊어 삼경을 넘어가는데 탕마사십사객 중 구혼객이라는 괴물의 소동도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구혼객의 부서진 잔해로 인해 방을 옮긴 사은상의 새 방,

황촉불도 꺼지고 다만 창가의 달빛 만 희미하게 들어오는데……

사은상은 기이한 기분에 사로 잡혀있었다.

허전함, 바로 그것이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대체 누구이기에 이렇듯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인가?)

사은상은 그들이 분명히 등천마세의 인물들임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어 자꾸만 이런 생각에 빠지고 있다.

(내가 지니고 있는 비밀을 노린다면……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나에게 편안함만을 주려고 한다.)

사은상은 이들 이상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신비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은 도무지 등천마세와는 상관없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에 지쳐 천천히 잠 속에 빠져 들어가 버렸다.

 

× × ×

 

[개별적으로 행동을 하던 탕마사십사객들이 일제히 이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어요……내말 듣고 있어요?]

한 별실(別室)에서 취풍녀가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말했다.

소일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쪽 침상에 누워있고, 주소아와 한천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중 구혼객이란 자가 그 아가씨의 침실로 침입했었어요.]

[사은상을 꼭 죽여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모양이지?]

주소아가 취풍녀에게 물었다.

[언니 그것까진 물어보지 못했어요. 한데 하마터면 그 사은상이란 아가씨가 죽을 뻔 했죠.]

[넌 뭘했기에?]

[그들은 괴물이었어요. 분명히 내가 심장을 관통시켜 죽였는데……]

한천이기와 주소아는 취풍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심장을 관통당하고도 죽지 않고 머리가 부서져 없어졌는데도 계속 공격했다는 말에 치를 떨었다.

무서움이전에 끔찍함 이었다.

[탕마사십사객들 모두가 그런 괴물들인 모양이에요.]

취풍녀의 말을 침상에서 듣고 있던 소일초가 물었다.

[원천기! 뭐 집히는 게 없어? 그런건 네 전문이잖아……]

[약물과 마공으로 만들어진 괴물인 모양이야……몸도 아수라수에 겨우 부서질 정도 같으면 금강불괴에 가까운 거야. 보통 수법이나 도검으로는 흔적도 못 남기겠지……]

원천기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다.

주소아의 염려는 깊은 듯 했다.

그들은 일제히 정천보로 잠입해서 삼수를 찾을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정천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공할 것 같은데……]

[취풍녀도 기습이 아니었고, 구혼객이란 자도 정면으로 당당하게 나섰었다면 이기기는 해도 상당히 힘들었을 거야……]

원천기는 침음성을 터뜨렸다.

취풍녀는 원래 등천마세에서 삼위에 해당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던 고수임에도 그들 탕마사십사객 중 하나를 겨우 상대할 수 있다면 보통문제가 아니다.

만약 주소아가 미리 취풍녀를 사은상의 머물고 있는 객실에 투입하지 않았더라면 사은상은 귀신도 모르게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간파된 이상,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은상을 죽이려 들겠지?]

[그녀가 아주 중대한 비밀을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을 거야.]

한천녀가 주소아의 말을 받아서 했다.

소일초가 침상에서 내려왔다.

[탕마사십사객이 그녀를 노린다면 어차피 우리와 마주쳐야겠지. 그들이 괴물이고 마공을 익혔다면 반드시 삼수와 관련이 있을 거야……]

[이걸 정천보에 잠입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면 좋은데……]

주소아가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순간,

번쩍-------

원천기의 손에서 두 줄기 붉은 혈광이 번갯불처럼 피어 올랐다.

그 핏빛 화살은 정확히 천정을 향해서 폭출이 되었고……

다음 순간,

[크악!]

[헉!]

처절한 비명이 천정을 통해서 들려왔다.

순간,

한천녀의 몸이 연기처럼 천정을 뚫고 밖으로 사라졌으며……

그랬다고 느끼는 순간 그녀는 양쪽 옆구리에 한 사람씩을 끼고 들어왔다.

그들의 몸에는 원천기의 손가락에서 뻗어나간 지강에 의한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던져버려!]

주소아가 갑자기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한천녀가 어리둥절 하는 순간 이미 소일초와 원천기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며 두 구의 시체를 낚아채 지붕 밖으로 던졌다.

동시에 소일초의 일초검공이 발출되고 두 구의 시체는 섬찟한 괴성과 함께 파열되어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모두가 손에 땀을 쥐었다.

한천녀도 자기가 무슨 일을 했던 가를 깨닫고 원천기 품에 안겨버렸다.

원천기가 발출한 지강에 격중하여 쓰러진 두 구의 시체를 한천녀는 무심코 가지고 들어왔던 것인데,

그때 그 시체들은 다시 되살아나 한천녀를 공격하려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들 역시 탕마사십사객들 중의 두 괴물이었던 것이다.

주소아가 재빨리 발견하고 소리를 치는 순간에 원천기와 소일초도 알아챘기에 한천녀가 살아날 수 있었다.

[정말 괴물이에요. 무서워요. 언니……]

취풍녀는 자기가 구혼객을 죽였다는 사실마저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죽었던 시체가 되살아나 다시 사람을 공격한다니……

순간,

원천기가 한천녀의 어깨를 다독거려 진정시켜 준 후 뚫어진 지붕으로 몸을 날렸다.

그에게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짐작이 맞지 않은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들어왔다.

[틀림없을 줄 알았는데……]

[뭐가?]

소일초가 물었다.

[그때 그……날, 동선장에 들어왔던 복면인들 생각나지……]

[그래, 어떻게 그날을 잊을 수 있나……]

[느낌뿐이기는 해도 그날 그 복면인들은 정천보에서 왔던 것 같아.]

[어떤 단서라도 있어?]

[생각해봐! 그때 그들은 영적으로 공감대를 갖고 있었어. 한데 이 탕마사십사객들은 마치 영혼이 존재하지 않은 것 같아……]

동선장에 침입했다가 소일초의 손에 죽은 흑의인들 ……

그 주위에 수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함께 죽어 있었었다.

그 당시, 한천이기가 뒤늦게 내린 결론은 그들이 영적으로 서로 맺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사람이 위기를 느끼면 그대로 죽음을 당함으로써 완전히 자신들의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데,

지금 탕마사십사객은 그들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아예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생각하고 움직이는 시체와도 같다.

이것은 양쪽 다 영혼을 다루고 있다는 데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한천이기는 등천마세에서 그런 수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새로이 창조된 마공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탕마사십사객들이 그때의 복면침입자들과 같은 부류의 무리들이란 결론이 나오는 군요.]

한천녀의 말에 원천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확실한 결론은 그때의 복면인들이 바로 정천보의 고수들이라는 것이지.]

[음……]

소일초가 다시 하나의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정천보에서 왜 그 당시에 흑의인들을 동선장으로 보냈을까?]

[혹시……그들의 비밀 근거지가 동선장 부근에 있는 것은 아닐까?]

주소아가 조심스럽게 추측을 말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결국에 가서는 모든 사실이 드러나고야 마는 법이니까……

[조아저씨와 사마귀에게도 알려줘! 대적하게 되면 그들의 몸을 반드시 분시(分屍)해버려야 한다고……]

주소아의 말을 듣고 취풍녀가 밖으로 나갔다.

[이제 너희들 방으로 가서 잠이나 자둬. 우리도 방을 옮겨서 자야겠어.]

[그래야겠지. 내일 보초는 우리가 될 것 같으니까……]

한천녀가 대답하고 원천기와 함께 그들의 방으로 갔다.

소일초와 주소아만이 실내에 남아 있다가 빈방을 찾아서 들어갔다.

주변을 열 명의 고수들이 경계하고 있을 테니 안심해도 될 것이다.

침상에 먼저 누운 소일초의 몸 위에 엎드리며 물었다.

[사은상을 만나고 나니 감회가 새롭겠지?]

[조금은……]

[내가 잠들면 몰래 사은상 만져보러 갈거야?]

주소아가 그의 눈을 빤히 보았다.

[어떻게 감히……]

소일초는 그녀의 허리로 팔을 두르면서 말했다.

그의 아랫도리가 팽창하며 주소아의 배를 압박하고 있었다.

[사은상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끝없이 쫓길 것 같은데……대체 그녀는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 걸까? 우리가 옛날의 그 꼬마들이라면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아무래도 그녀는 우리와 인연이 깊은가봐.]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지 그래?]

말을 하면서 소일초의 손은 그녀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주소아가 그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오늘은 옷을 벗을 순 없어……그냥 이대로 있어.]

그리고, 그녀는 소일초의 머리를 잡으며 세차게 그의 입술을 빨았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참으로 사건이 많았던 길고 긴 밤이 물러가는 것이다.

소일초가 눈을 떴을 때 주소아는 얼굴 단장을 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멀리 광통거의 고요한 수면 위로 여명(餘命)이 움터오고 있었다.

소일초는 심호흡을 했다.

[좋은 아침이다.]

분명 좋은 아침이었다.

하나 그들에게는 좋은 아침일 수가 없지 않은가?

그들의 주위에는 정천보의 최고살수 조직인 탕마사십사객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언제 어느 때 사은상을 죽이기 위해 뛰어들지도 모른다.

탕마사십사객은 지금도 사십일 명이 남아있고 소일초 측의 고수들은 회복된 사은상까지 해서 십오 명이다.

그 탕마사십사객의 무공이 고강하기는 하지만 개개로 보아 그들에게 질 사람은 사은상 외에는 없다.

단지 그들의 몸을 분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큰 부담이었다.

분시되기 전에는 끝없이 달려들 그 탕마사십사객들은 그들을 치 떨리게 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살수였다. 어디서 암습할지 모르는 것이다.

이제 소일초 일행은 죽음을 등에 지고 다니게 된 것이다.

좋은 아침이었다.

살인을 예고하듯 붉은 햇살을 보이며 가을해가 나타나있었다.

 

× × ×

 

북경(北京)의 동선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지 삼 일의 시간이 흘렀다.

소일초 일행은 번갈아 가며 경계를 하면서 천천히 북상하고 있었다.

백인도객과 사마귀, 그리고 취풍녀가 한 조가 되었으며,

한천이기가 다른 한 조 였고, 소일초와 주소아 역시 한 조 였다.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함께 가고 있는 사은상의 마음은 점차 초조해지고 있었다.

알려야 할 것은 있고 그 사람들은 만나지도 못했는데……

지금쯤 동생인 사옥상은 어떻게 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도무지 속셈을 짐작할 수 없는 경천동지할 고수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그녀의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다.

지금도 한 객점의 방안에서,

그녀는 난초 향기 그득한 실내를 의미없이 돌고 있었다.

지난 삼 일 동안 다른 사람들은 자주 왔었지만 무적검은 단 세 번 그녀를 찾아왔을 뿐이었다.

그는 하루에 한 번씩 찾아와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말만을 짧게 던져 주고 사라져갔다.

(등천마세의 주인인 그……정말 무적검 본인이란 말인가? 그 자체마저 의심이 든다……어느 누구도 그들 일행 중 어느 누구도 그를 무적검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지금,

그의 뇌리에는 소일초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 동안 이들은 나에게 기밀에 대한 말은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그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걸까?)

웬지 가슴이 답답했다.

차라리 그들이 자신이 지닌 기밀에 대한 것을 물어 준다면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그리고, 그녀는 지난 삼 일 동안 수십여 차례나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비명을 들었다.

그 비명소리는 거의 늘 자신에게서 멀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말해주지 않고 자신이 보지 않아도 잘알고 있었다.

그 비명소리들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나선 탕마사십사객들의 것임을……

(사부가 진정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십수 년을 함께해온 나를 죽이기 위해 그들을 동원하기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자기의 사부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다.

순간,

[차라리 이들에게 말해 버리자……그리고 도움을 청하자. 그 동안 보아온 이들은 도저히 마인이라고 볼 수 없는 선량한 사람들이었지 않은가? 어차피 백인장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 바에야 이들같은 고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옥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중얼거리면서 결심을 굳혔다.

[그래……그들은……도와 줄 거야!]

한데 그 순간,

[무엇을 그렇게 힘들어 해요? 언니……보고 있기도 힘들어요.]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성이 바로 그녀의 뒤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사은상은 고개를 돌려보았다.

주소아가 그녀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있다.

[지금이 녹림맹 푸른 계곡에서 보다 더 힘들어요?]

사은상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떻게 나를……어떻게 그걸……설마……]

떨린다.

사은상의 몸이 말을 뱉어 내지 못할 정도로 무섭게 떨린다.

그녀의 눈은 오늘 따라 유난히도 아름답게 보이는 주소아의 얼굴에 못 박혔다.

[그래요. 나는 그 때의 주소아예요. 그리고 무적검은 그 어린 색마구요.]

[주……죽지 않았었단 말인가……오! 하늘이여……]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녀의 노을빛 얼굴에서는 줄기줄기 눈물이 흘렀다.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이 왜 그리 낯이 익은 것이었던지……

그들의 무공이 왜 본적이 있던 것이었는지……

두 꼬마의 사형들이 아닐까 까지 생각했던 그들이 그 꼬마들이었다.

주소아가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닭고기와 음식을 녹림맹의 푸른성에서와 똑같이 준비를 했는데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그 천하에서 제일…… 악독한 두 꼬마가 이런 훌륭한 청년과 숙녀가…… 되었을 줄을 누가…… 어떻게 알겠어?]

그녀의 말소리는 여전히 떨렸고 몸은 감격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소일초는 자신의 몸을 낱낱이 다 만지고 비벼보고 했던 꼬마였다.

그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사옥상과 함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그로부터 고통을 받는 동안에 미운정 미운 사랑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지금 그가 살아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아주 어엿한 청년이 되어있다.

불과 삼 년이 지났을 뿐이건만……

그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의 복수와 사백상을 구하기 위해 백인장의 사람들을 찾았던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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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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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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