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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九 章

 

         만남의 장소, 北京

 

 

 

북경성 외곽에 있는 동선장은 갑자기 돌아온 주인으로 인해 떠들썩했다.

꼬마들이 뛰쳐나와 마차에서 내리는 주소아와 소일초, 그리고 한천이기에게 매달리며 재롱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며 심지어는 그들의 옷을 찢어놓기도 했다.

집사와 글 선생, 애들 돌보는 사람, 일제히 나와서 인사를 하고 아이들은 소일초 일행의 뒤를 우루루 몰려다니며 깔깔거렸다.

그 소란스런 광경에 백인장의 도객들과 사마귀, 그리고 취풍녀와 사은상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림에서의 격전장도 이보다는 낫다 싶을 정도였다.

장충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우리 백인장의 애들은 얌전하기 그지없는 것 같아. 이 애들에 비하면 군자야 군자……]

주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백인장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이곳보다 더해지면 더해지지 못하진 않을 거야.]

[왜?]

[천하의 말썽꾸러기인 내 제자의 마누라들이 줄줄이 소마동(小魔童)들을 낳을 텐데 백인장 기둥이나 남아나겠어?]

[거기다 둘째 형의 작은 색귀도 한몫할 테고……]

투귀가 다시 색귀를 꼬집고 한마디 하자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들과 같이 가던 취풍녀와 사은상은 우스우면서도 부끄럽기도 해서 고개를 들 수 없어 쩔쩔맸다.

과연,

주귀는 선견지명이 있어 그의 예언대로 백인장이 난장판이 되는 일이 일어나기는 났는데……

그것은 불과 이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꼬마들의 천국(天國) 동선장에서는 잔치가 열렸다.

주인인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한천이기의 무사귀환(無事歸還)을 축하하고,

동선장의 식구들의 그간의 노고(勞苦)를 치하하며,

먼 곳에서 온 손님들을 환영하고,

꼬마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연회가 성대하게 열려져 이웃의 사람들 까지 와서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곳은 제이(第二)의 백인장이 될 거예요. 저 아이들의 제이의 백인도객이 될 거구요. 제가 직접 키우겠어요.]

주소아가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백인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소일초가 모든 사람의 궁금증을 대변하여 물었다.

[물론 가야지. 후에 네가 장주직을 물려받게 되면! 하지만 그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일이지……]

[…………]

[음, 먼저 장주이신 고모부께서 아직 젊으셨고, 게다가 무공마저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이시니 변을 당하실 리도 없고……그렇다 보면 네가 장주가 되려면 몇 십 년, 또는 백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할 걸?]

[그야 그렇겠지.]

[그동안 우리가 백인장에 있으면 여전히 소장주고 소장주 부인일 뿐이야. 하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키워서 가르치면 우리가 제이의 백인장주고 장주부인이 되지.]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돼 버렸다.

말이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언니! 그럼 부모님은 누가 모시고요?]

취풍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주소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럼 넌 백인장에 가서 부모님 모실래?]

취풍녀는 혹시 그녀가 자기만 백인장으로 쫓아 보낼까봐 슬그머니 꼬리를 말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주귀의 되먹지 않은 진짜같은 거짓말이 사람들의 배를 쥐고 웃게 만들었고 춤과 노래와 더불어서 주흥은 크게 일어났다.

취풍녀가 몸을 일으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제가 노래를 한 곡조 부르겠어요. 흉보진 않겠죠?]

[와----좋다. 아줌마 최고다.]

꼬마들이 소리를 질러 환호했다.

취풍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오랫만에 자기의 성명절기(姓名絶技)를 발휘했다.

전신의 몸으로는 휘파람소리를 내면서 춤을 추며 입으로 노래를 불렀다.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련만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련만

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위에 이끼만 푸르구나.

슬픔도 기쁨도 집어 삼키는 검은 구름

향촉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롭구나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돌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소금이 절여

바람 불고 눈보라치지 않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숨 막힐 마음 속에 어디 강물 흐르느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마음에 들이노라

수만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노랑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어딘지 모르게 깊은 애수가 깃들어 있는 가락이건만,

경쾌한 발놀림에 하늘거리는 춤사위로 주흥을 더욱 돋우었다.

한천이기는 가사에 깊이 빠지는 듯 얼굴이 침중하고 사은상의 얼굴에도 우수의 빛이 어렸다.

[노랑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그녀는 나직히 음을 따라 읊어보았다.

누구가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눈으로 보는 듯이 그 서글픈 정경을 그려냈다.

[고향이 어디였지?]

소일초가 박수를 받으며 돌아온 취풍녀에게 물었다.

[천진이에요.]

[멀지 않은 바닷가로군……]

그때,

관복을 입은 한 소년이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그들에게로 오는 것이 보였다.

나이는 불과 십 육칠 세 정도 되었으며 아주 영준한 얼굴이었다.

힘찬 걸음이 정종무공을 익힌 무가의 자손인 듯 하다.

집사가 먼저 와서 알렸다.

[한림원의 주시강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이곳의 모든 사람이 무림인이다.

관부와 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리둥절하여 벼슬아치 손님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데 사은상이 앞으로 나섰다.

[장주님께선 이곳에 계십니다. 이리로 드시지요.]

정중하게 젊은 관인을 맞아 자리로 인도했다.

사은상은 원래 북경의 관가에서 태어나 자랐던 것이다.

그녀가 사진성을 만나기 이전까지는……

소일초와 주소아 모두 일어서서 젊은 관인이 앉기를 기다리는데,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주시강나으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함입니다.]

젊은 관인은 일어선 채로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저희는 야인(野人)들이라 관의 예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젊으신 나으리께 양해를 구합니다.]

사은상이 말하자 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시강대감께서 말씀하시길 동선장이 세상의 귀감이 되고 있으니 마땅히 천자께 상신하여 상을 내리는 것이 옳으나, 그 전에 먼저 대감께서 동선장의 장주님을 청하여 치하하시고자 합니다.]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누가 장주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동선장은 장주가 네 사람이나 됩니다. 더우기 세상의 일에 구속받지 않는 분들이시니 시강나으리께 감사하오나 가실 수는 없다고 전해주십시오.]

여전히 대변인은 사은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화와 민간에서 쓰는 말은 다른 데가 있었고,

더우기 무림인은 천하를 돌아다니다 보니 말이 거칠고 여러 지방의 사투리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를 주기 쉬웠다.

사은상은 어려서 배웠던 말인지라 관화에 아주 익숙하다.

소일초와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능숙한 관화에 내심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이야! 마누라 중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네……)

젊은 관인은 사은상의 말에 난처한 기색을 띠었다.

[어떤 경우가 있어도 모시고 오라는 것이 대감의 분부였는지라 아래사람으로서는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함께 가주시길 바랍니다.]

이때,

소일초는 유심히 그 관인의 얼굴을 보고있는 중이었다.

상당히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점잖게 말할 자신이 서지 않아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궁금함을 도무지 참을 수 없어 말했다.

[너 백소중 아니냐?]

다들 눈이 둥그레 졌다.

그중에서도 젊은 관인의 눈이 제일 크게 뜨졌다.

[백가가 맞습니다. 어찌 제 이름을 아시는지……]

그가 그 말을 하자마자 소일초가 펄쩍 뛰어 상을 넘어오면서 소리쳤다.

[백소중! 맞았구나. 한데 네가 관인이 되다니……무슨 괴상망칙한 짓이냐?]

[뉘신지?]

[나야나! 신행마동 소일초. 나를 잊어 버렸단 말이야?]

백소중의 입이 다시 딱 벌어지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그가 아는 소일초와 비슷하지만 그의 형인 듯 한 나이였다.

소일초는 자기와 같은 또래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다시 한번 던져줄까? 요즘은 유모를 데리고 다니지 않아? 마부는 밖에 있니?]

[일초! 정말 소일초구나. 내친구.]

백소중이 기뻐소리치며 어른이 돼버린 소일초를 끌어앉았다.

[죽었다더니 어떻게 된거야? 그리고 몸은 또 왜그래?]

[죽었다던건 잘못알려 진거고, 몸은 우리 마누라가 약초를 잘못먹이는 바람에 커져버렸어?]

소일초는 다시 개구장이가 돼 버린 듯 했다.

이상해 보이는 그들의 상봉을 모두가 눈도 깜작이지 않고 보고 있지만 그것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마누라가 있어?]

[저기 저 여자가 내 마누라야. 그리고 여기 여기도 그렇게 될 거고……]

[넌 확실히 대단하구나. 난 아직 한 여자도 못 얻었는데……]

백소중도 자기가 무슨 일로 이곳에 왔던지 조차 잊어버렸다.

[그런데 넌 왜 관인이 됐지? 너도 대단한 꼬마였는데……]

갑자기 백소중의 얼굴이 침울해 지며 낙담했다.

[그동안 사연이 많았어. 몇 날 밤을 세워 이야기해도 모자랄 정도야. 그리고 나도 너에게 궁금한게 너무 많아.]

[그래 밤새 술 마시며 이야기 하자.]

[오늘은 안돼. 깜박할 뻔 했는데 나는 이곳 동선장의 장주를 데려가기 위해서 왔어. 꼭 데려가야 해. 그런데 누가 장주시니?]

[그건 걱정마! 내가 책임지고 다 가도록 할께. 네 부탁인데 뭘 못해주겠어. 당장 가자. 시강인지 뭔지 하는 영감부터 만나고 우리 이야기나 하자.]

 

***

 

소일초는 가기 싫다는 한천이기를 억지로 마차에 태워서 주소아와 함께 당대의 세력가로 떠오르고 있는 한림원의 주시강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갔다.

마차 안에서 백소중이 말했다.

[소일초 네가 대단한 건 알지만 대감을 만나게 되면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해. 그분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측량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야. 젊고 유능한 사람을 아주 좋아하시는데 너도 어쩌면 좋아하실지 몰라……]

[넌 진짜 관인이 돼 버렸구나. 벼슬아치 따위를 그렇게 말하다니……]

[그분은 달라.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분은 내 스승이시기도 해! 함부로 말하면 내가 곤란해.]

[그래 제기랄……알았어. 조심하지.]

 

소일초가 투덜대고 있는 사이에 마차는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저택으로 마차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리로 따라와.]

백소중이 먼저 가면서 길을 안내했다.

그뒤를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한천이기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따라갔다.

[제길……무림의 방파들이 조금만 치장이 화려해도 황궁보다 낫다니 어쩌니 하는데 말짱 거짓말이야……시강의 저택이 이정도인데 황궁은 어떻겠어?]

그 저택 안은 그의 말대로 아주 웅장하면서도 화려했다.

작은 돌 하나 마저도 아무렇게 놓여있는 것이 없는 온갖 정성과 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백소중! 너 황제가 산다는 황궁에도 들어가 봤니?]

백소중이 기급을 하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황제께서 사시는 북경이란 말이야. 함부로 무례하게 말하면 큰일 나……그리고 황궁은 여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찬란해.]

소일초가 주소아와 한천이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밤중에 황궁에나 한 번 가볼래?]

소일초의 대담한 말에 다들 입을 딱 벌리는데……

[황궁에도 고수가 상당해. 그들은 다들 무공을 드러내지도 않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 중에는 절세고수도 있어. 무림에서 황궁을 못 건드리는 것이 뭐 군사들 수 때문만 인줄 알아?]

[…………!]

[함부로 날뛰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가는 곳이 황궁이라구……심지어 환관이나 주방의 요리사조차도 절세의 무공을 숨기고 있는 기인일 수도 있어.]

[지금 내가 겁먹어야 하니 아니면 용기를 내서 부딪쳐 보겠다고 해야 하니?]

소일초는 완전히 어린애가 돼 버렸다.

그의 철부지같은 말과 행동에 한천이기는 재미있게 보고 있었지만 주소아는 속상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제 다 왔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들어가도록 하자.]

웅장한 한 채의 전각을 들어서면서 그들은 방명록을 적었다.

다른 사람이 안으로 통보를 하고 백소중은 그들을 데리고 시강이 있다는 곳으로 갔다.

[사부님! 저 소중(小重)입니다. 동선장주를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오느라.]

소일초는 그 목소리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디서 들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문 안으로 다섯 사람이 들어서자 등을 보이고 책장을 넘기는 사람이 보였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당당한 체구……

도무지 그들이 상상했던 늙은 영감의 모습이 아니었다.

당당한 체구에 백의를 입은 시강이 일어서서 몸을 돌렸다.

[어서 오시오. 이사람이 시강인 주하운(朱河雲)이요.]

순간,

[앗!]

비명을 지르며 천하의 신행마동 소일초가 냅다 왔던 길로 바람처럼 도망쳤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서 백소중과 한천이기, 그리고 주소아가 합창을 하듯이 그의 이름을 외쳤다.

[소일초!]

그러자,

불과 이십사오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시강 주하운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리고 그의 몸이 번뜩 하면서 사라지고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놈! 당장 게 서지 못해?]

한천이기와 주소아 백소중은 무슨 일인지 몰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정신없게 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이게 대체 몇 번 채인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소일초가 또 일을 낸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막 사라져간 두 사람을 쫓아가려는데 흰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시강 주하운이 소일초의 덜미를 쥐고 들어왔다.

백소중의 표정은 소일초를 걱정하고 있는 듯 했을 뿐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경악으로 인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일초가 어떤 고수인데……

한참 도망간 후에 뒤 쫓아가서 순식간에 잡아오다니……

소일초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들은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경악하며 주하운과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주하운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서 소일초를 바닥으로 휙 집어던져 버렸다.

주소아가 달려가 받으려다가 주하운의 눈총을 받고는 꼼작도 못하고 멈춰버렸다.

꽈당-------

소리와 함께 소일초의 몸이 큰대자로 융단위에 뻗어서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소중이 너는 나가 있거라!]

주하운의 말이 떨어지자 백소중이 멈칫거리며 말했다.

[사부님! 그는 제 친구인데……]

[이놈이? 발은 꽤나 넓구나. 죽이진 않을 테니 걱정말고 나가 있거라.]

주하운은 약간 의외라는 듯이 소일초를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백소중은 죽이지 않는다는 말에 그냥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주하운이 죽이지 않는다면 죽이지 않는 것이다.

백소중은 소일초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본 후 방을 나가면서 한천이기와 주소아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절대로 그분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됩니다. 무조건 따르십시오. 경우가 없는 분은 결코 아니시니……]

[이놈! 쓸데없는 소리말고 빨리 나가기나 해라!]

주하운이 백소중을 향해서 일갈했다.

그는 남의 전음마저도 알아듣는 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백소중의 전음이 아니라도 한천이기와 주소아는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일초가 반항도 못해보고 저지경이 될 정도면 소일초에 미치지 못하는 자기들 셋이 다 뭉친다 해도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주소아가 소일초의 눈을 보니 그의 눈은 간절히 그녀를 보았다가 주하운을 보았다가 한다.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자기보고 주하운을 보라는 것인지 싸워서 물리쳐 달라는 것인지……

[이녀석! 중간에 기연이 있었구나.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하고 눈앞에서 놓칠 뻔 했다.]

주하운의 기세는 살기등등했다.

[먼저, 그 까불락거리는 팔다리를 몽땅 부러뜨려 열흘동안 쳐박아 놓아야겠다.]

[안돼요. 당신은 그럴 수 없어요. 내가 당신과 싸우겠어요.]

주소아는 소일초의 팔다리가 부러져 병신이 될 지경이 되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죽든 살든 달려들고 봐야 되겠다는 생각에 소리치고 나선 것이다.

그녀가 나서자 한천이기도 자기들만 살겠다고 물러설 수 없어 결전태세를 갖추었다.

주소아가 소일초의 눈을 보니 마구 눈알을 돌리면서 감았다 떴다 한다.

[안심해. 너만 죽거나 병신이 되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테니……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맹세했었잖아.]

소일초의 눈은 더 빨리 구르고 감았다 떴다 하며 간절히 뭔가를 말하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그래선 안된다고 말하는 것같았다.

[괜찮아. 어차피 네가 없으면 어떻게 나혼자서 살 수 있겠니? 내가 먼저 죽으나 네가 먼저 죽으나 마찬가지야.]

그녀는 주하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주하운이 큰소리로 말했다.

[이놈, 여복이 아주 많구나.저 아가씨의 정이 그토록 깊으니……]

[…………!]

[하지만 아가씨! 이놈이 너보다 더 어리다는 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물론 알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제 나이를 알 수가 있어요?]

[당연하지. 비록 몸은 커졌지만 네 나이는 많아야 열여덟 적어야 열일곱 그 사이야. 달 수로 따지면 더 정확하겠지 너는 이백이십이 개월 되었으니 생일은 삼월이겠지?]

한천이기와 주소아는 다시 놀라고 있었다.

주소아는 조예진이 가르쳐 준 바에 의하면 삼월 초엿세가 생일이라고 했다.

주하운의 그녀가 무척 호감이 가는지 놀라는 표정을 보고 다시 말했다.

[네 옆의 두 애늙은이 나이도 쉽게 알 수 있지. 사내는 팔십일곱에서 여덟사이이고 계집은 팔십하나에서 팔십둘이지.]

사내와 계집으로 불리웠다고 해서 화낼 게재가 아니었다.

주하운의 계산은 한 치도 어김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저런 귀신같은 인간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기인이사는 모래알 처럼 많다는 것이 실감나는 것이었다.

[저사람이 대체 당신에게 무슨 못할 짓을 했어요? 우리가 감당할 수 있으면 감당하고 감당할 수 없으면 함께 죽도록 하겠어요.]

주소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걸?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은 있어.]

주하운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

[그게 뭔가요?]

[아가씨가 나와함께 삼 년을 같이 보내는 거야?]

주하운의 말에 주소아와 한천이기는 분노했다.

[당신은 권력가라더니 남의 여자나 탐하는 오리(汚吏)에 불과한 자군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함께 죽겠어요. 저 사람도 그걸 바랄 거예요.]

[남의 여자를 탐한다? 그런말로도 들릴 수 있었겠군 그래, 내 말은 단지 여기서 삼 년만 보내는 것을 말한 것이었는데.]

주하운의 말에 한천녀가 차갑게 내뱉었다.

[결국은 같은 말이겠지. 여자의 틈을 엿보려는……당신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우리는 굴종만 하지는 않겠어.]

[늙은 한 쌍과 젊은 한 쌍의 우정이라……이것도 좀처럼 보기 힘든 거로군.]

주소아는 주하운이 보든 말든 소일초에게 다가가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고통스러운지 땀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끝없이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무말 하지마. 죽일 수 없으면 우리가 죽으면 되잖아. 무림인의 삶이란 원래 이런 거겠지……]

그녀는 말을 마치고 일어서서 전신의 세 곳에 분산시켜 놓았던 내공을 한곳으로 모을려고 했다.

죽고사는 마당에 아기를 낳고 못 낳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주하운의 얼굴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띄고 있었다.

[탐이 나는 재목이야 당금 세상에서 저놈 말고는 필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자질이야……]

주소아가 전중혈에 묶어놓았던 내공을 스스히 풀기 시작했다.

그때,

[안돼!]

갑자기 사람의 혼백을 빼버리고 바위를 으스려버릴 듯한 엄청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한천이기와 주소아가 심한 충격을 받고 몸을 후들거리고 방안의 여러 기물이 부셔져 버렸다.

귀를 웅웅울리는 여운과 함께 소일초가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주하운은 여전히 여유있는 웃음을 짓고 그를 보고 있었다.

마치 손바닥위에 오른 개미를 보는 듯한 태도였다.

[할아버지! 제가 여러 가지 약속 중 그래도 반은 지켰습니다. 나머지도 앞으로 이행할 테니 용서해 주십시오.]

소일초가 머리를 땅에 대면서 말했다.

방안에는 아직도 그의 고함이 만들어낸 여운이 감도는데 겨우 정신을 찾는 주소아와 한천이기는 주하운은 다시 쳐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새파란 청년이다.

할아버지라니……

집안의 어른이란 말인가?

순간,

주소아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모습에 한천이기는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반은 지켰다니……어느 반이란 말이냐?]

주하운 역시 격동하며 말했다.

[제가 주소아랍니다. 할아버지……]

주소아가 고개숙여 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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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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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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