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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三 章

 

          客店에 찾아온 神仙

 

 

 

 

사은상은 땅속에서 찾아낸 사옥상을 끌어안고 울었다.

눈 만 멀뚱거리는 사옥상은 완전한 백치가 되어있었다.

취풍녀와 한천이기 사마귀 등은 폐허로 변해버린 격전장에서 넋을 잃고 있었다.

사방 수 십여 장을 휩쓸고 부수고 뒤집어 버린 대 혈투는 어떤 것이었는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살점들과 뿌려진 피……

현장을 둘러보며 원천기는 중얼거렸다.

[소일초가 죽었단 말인가?]

그의 말에 취풍녀가 강한 도리질을 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그는 결코 죽지 않아요.]

그녀의 말은 소일초에 대한 철저한 신념이었다.

그때 문득,

[저기에 보물이 있어.]

투귀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곳으로 쏠렸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투귀는 다가가서 여러가지 물건들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주귀와 지금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원천기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모두 투귀에게 쏠리는데,

원천기와 한천녀, 그리고 도귀와 사은상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겉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었다.

투귀의 귀신같은 눈이 무엇을 찾아냈는지 그들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취풍녀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울부짖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그분이 돌아가실 리가 없어요. 얼마나 강한지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누가 그분을 죽일 수 있단 말이에요.……]

그녀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에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천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진정시키고 있을 뿐……

원천기가 겉옷을 벗어서 주변에 떨어져 있는 살점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기 시작하자 사마귀도 각자의 옷에 살점들과 뼈조각들을 주워담기 시작했다.

[우왝---왝-----]

사은상이 심한 구역질을 했다.

어둠 속에서 두 시간이 넘도록 샅샅이 뒤지며 주운 살점들을 한 곳에 모으자 상당한 부피가 되었다.

불타는 처참한 인간의 잔해를 바라보는 그들의 볼에는 무림의 강호들답지 않게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취풍녀는 충격이 얼마나 심했는지 실신하길 거듭했다.

사은상이 재를 수습하여 원천기가 벗어준 겉옷에 싸서 손에 들었다.

 

× × ×

 

북경의 대운루(大運樓),

자금성으로 향하는 주작로 변에 있는 이 주루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여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왁작지껄한 가운데 무림인도 관리도 구분이 없다.

한데,

이 시꺼러운 곳에서 방금 만난 두 사람이 구석진 자리에서 소곤소곤 이야기 하고 있었다.

[……등천마세의 주인인 무적검이 잡혔다네……]

[그게 무슨 말인가? 무적검이라면 마도사상 최고의 기재라고 소문났던 그 아닌가?]

[중원제일의 신비인이라는 황녹천이 잡았다더군……]

[자넨 이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가?]

[지금 벌써 소문이 안 도는 곳이 없어……숭산 태실봉의 정천보로 데려가는 중이라더군……]

그들의 이야기에 주루에 앉은 무림인들 중 귀가 밝은 상당수의 인물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중에는 준미한 소년도 한 사람 있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살며시 다시 물어보았다.

사실이라고 한다.

어디서 부터 퍼지기 시작한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사방에 쫙 퍼졌다고 한다.

소년은 빠른 걸음으로 주루를 나가 어디론지 사라졌다.

 

× × ×

 

숭산 밑에는 지금도 유명한 무술의 고장 중의 하나인 등봉현이 있다.

이곳에서 소림사가 있는 소실봉으로도 갈 수 있고 정천보가 있는 태실봉으로도 갈 수 있다.

이곳 등봉현은 그 이름 만큼은 크지 않는 고을이었다.

주민이래야 고작 삼사 천에 불과한……

한데,

느닷없이 이 등봉현에 무수한 이방인이 모여들며 발칵 뒤집히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무림인들이었다.

객점은 일찌기 만원(滿員)이 되고,기루마저 손님들로 가득차 있었다.

오늘,

등천마세의 주인인 무적검이 이곳을 지나는 것이다.

그리고,

등천마세의 고수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신분을 숨기고 포진해있기도 하다.

또한 정천보의 고수들이 무적검을 지키기 위해 집결하여 곳곳에서 등천마세의 고수들과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

정천보에서는 정예고수 일천명을 동원하여 그를 호송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고수들은 단지 외적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등봉현의 여러 객점 중의 한 객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에 의해 통채로 세를 주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천에 싸인 길죽한 물건을 등에 지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사방을 방비하고 있었다.

그 객점의 가장 별채에는 이십여 사람이 모여 숙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무림의 최강세력 백인장의 사람들이었다.

백인장의 요인들은 모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주인 도왕 소선풍과 그의 두 부인, 그리고 일곱 명의 원로도객과 좌우봉공이 있었다.

거기다, 청옥검궁의 궁주인 검왕 이극송과 검왕자 이수군이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얼굴에 서릿발을 드리우고 있는 수척한 주소아와 한천이기, 그리고 취풍녀와 사씨자매, 사마귀가 배석하고 있었다.

이극송이 창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는 삼수가 도망칠까봐 그렇게 겁이나는가? 일초가 비참하게 끌려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빙장어른! 일초가 정천보에 들어가고 난 후에 손을 쓰도 늦지 않습니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면 다시는 삼수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소선풍이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는 내가 죽고난 후에 삼수나 찾아다니게. 나는 오늘 무슨 수가 있어도 일초를 구하고 말겠네.]

[삼수는 그 동안 모든 무림의 혈겁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해 왔습니다. 이번에 뿌리를 뽑지 못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칠지 모릅니다.]

이때 주소아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제가 당돌하게 한마디 올리고자 합니다. 고모부! 고모부께서는 호정수신(護正修身)하는 백인장의 장주이시고 무림의 대협이시니 혈육의 정보다 정의를 표방하시는 것이 당연하십니다.]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구나.]

[그러나, 고모부! 저는 무림의 대협도 아니고 정의를 숭상해온 협객도 아닙니다. 저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그 뿐입니다. 저 또한 검왕 할아버지처럼 혼자서라도 그를 구할 것입니다.]

[애야, 네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이란다. 하지만 일에는 대소가 있고 무리에는 우두머리가 있는 것이니 우리는 자중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조예진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고모! 지금 그는 오늘 괴물로 변해서 모습을 나타낼 지 내일 괴물이 돼서 우릴 죽이려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그를 한시라도 빨리 구해야 해요. 정천보로 들어가면 이미 늦을지 몰라요……엉엉……]

주소아는 마침내 울고 말았다.

그때,

[장주님, 소장주님의 친구분이라면서 찾아온 소협들이 계십니다.]

밖에서 도객 중의 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선풍이 얼굴을 찌푸렸다.

백인장의 종적이 드러난 듯 해서 기분이 언찮았던 것이다.

[이리로 모두 모시고 오도록 하시오.]

백인장주는 백인장의 도객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을 항상 예로써 대해야 하는 것이 백인장 장주가 지켜야 할 율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소선풍은 모두라는 말을 강하게 발음했다.

일이 중요한 만큼 수상한 자이면 죽이거나 억류하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얼마 후 문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림말학(武林末學) 백소중이 대협을 뵙고자 왔습니다.

[들어오시오.]

주소아와 한천이기 등이 백소중이라는 말을 듣고 맞이하기위해 일제히 일어섰다. 백소중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데, 문을 들어선 사람은 어리고 키가 작은 백소중이 아니고 훤칠한 미남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뒤를 백소중이 조심스럽게 따르고 있었다.

주소아와 한천이기의 표정이 환히 밝아지며 모든 근심이 가시는 듯 했다.

그리고 소선풍과 조예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절을 했다.

소선풍은 깊이 허리를 숙일 뿐이지만 조예진은 땅에 머리가 닿는 큰 절을 했다.

검왕 이극송은 사위와 사위의 둘째 부인이 일제히 청년에게 절을 하자 어리둥절했다.

백인장주의 신분이 아무에게나 허리를 굽힐 수 있는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주소아와 한천이기도 절을 하고 있었다.

미남 청년은 주하운이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도깨비 장난 같은 일을 당해서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절을 하는 사람들은 그의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절한 후에 인사말 만 했다.

조예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신선께서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에……]

[너도 힘든 일을 많이 겪는구나. 그동안 그 곱던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주하운의 눈가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모든 것이 제가 불민한 탓입니다.]

소선풍이 머리를 조아렸다.

청년은 아주 당연한 듯이 절을 받고 여러 사람들이 절을 했건만 그들의 표정은 모두 숙연했다.

무림에서 천하제일은 물론 달마와 장삼풍에 비견되는 고금제일인이라는 칭호까지 들었던 대종사에 대한 당연한 예우요 존경의 표시였다.

[내 이미 모든 이야기를 다들어서 알고있다. 선풍이 너는 아무 염려하지 말고 네 뜻대로 하도록 해라.]

[신선께서 분부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소선풍과 조예진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찼다.

이미 모든 일은 다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주하운은 다시 주소아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너도 아무걱정 하지 말아라. 편안한 마음으로 어른들의 말씀에 따르도록 하여라.]

[네……]

대답하는 주소아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부탁이 있는 게로구나. 말해보아라.]

너른 별채 안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단지 주하운의 잔잔한 음성과 그 음성에 답하는 다른 음성만이 존재할 뿐……

주소아는 손을 들어 사옥상을 가리켰다.

주하운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오너라……]

그의 음성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며 흘려나왔다.

백치가 되어있는 사백상은 그 음성에 끌리듯이 일어서면서 주하운을 향해 갔다.

[너는 큰 일을 겪고 영(靈)이 아직 껍질 속에 갇혀 있구나. 천하에 너같은 기재(奇才)는 셋을 넘지 못하겠구나……]

주하운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녀는 스르륵 주저앉으며 잠이들고 말았다.

그녀의 몸은 부드럽게 허공으로 날아서 사은상의 품으로 가버렸다.

[깨어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게다.]

사은상이 머리를 숙여 감사했다.

주하운이 조예진을 바라보았다.

[이제 한가지 일 만하면 여기서의 일은 다 보는 것 같구나……]

조예진이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신선께서 어떤 처분을 내리시던 달게 받겠습니다.]

[내가 어찌 너를 벌할 수 있겠느냐? 일어나도록 해라……]

조예진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소중아! 인사 올리도록 해라.]

[백소중이 인사드립니다.]

조예진은 마주 답례했다. 그가 새로이 혈기문을 이어갈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정중했다.

[너희들은 자주 보았으면 좋겠구나.]

주하운이 한천이기를 보면서 말했다.

[이보다 더한 광영(光榮)이 없겠습니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크게 기쁘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들이 머리를 들었을 때 주하운은 백소중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나가 허공으로 아득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극송이 소선풍에게 물었다.

[그가 정말 신선인가? 세상에 정말 신선이 있는가?]

[방금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소선풍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물음으로 대답했다.

별채의 분위기는 조금 전과는 아주 달라져 있었다.

지금은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것 같았다.

주하운을 아는 사람들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체 그가 누군데 자네가 그토록 존경하는가? 내가 보기엔 황제도 그런 존경을 받지 못할걸세.]

[더 이상 그분에 대한 말씀은 거론하지 말아주십시오. 혹시 실수라도 할까 두렵습니다. 우리로서는 감히 그분을 앞에서고 뒤에서고 부르지도 못합니다.]

소선풍은 말하고는 입을 다물고 다시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이극송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의문이었는데 주소아와 한천이기를 바라보아도 그들의 입조차 굳게 다물려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고 아는 사람들은 걱정을 버린채 마시고 노는 사이에 소일초를 실은 호송마차는 아무탈 없이 등봉현을 통과해서 태실봉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일천 명의 정천보 고수들에 둘려싸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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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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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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