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태산북두(太山北斗)'에 해당되는 글 68건

  1. 2020.11.15 [태산북두] 제 31장 쌍두금구
  2. 2020.11.14 [태산북두] 제 30장 괴노 육천태의 수수께끼
  3. 2020.11.13 [태산북두] 제 29장 수신묘의 세 죽음
  4. 2020.11.12 [태산북두] 제 28장 색남색녀 2
  5. 2020.11.10 [태산북두] 제 28장 색남색녀 1
  6. 2020.11.08 [태산북두] 제 27장 농가의 북소리
  7. 2020.11.07 [태산북두] 제 26장 천하를 원하는 자들
  8. 2020.11.05 [태산북두] 제 25장 지하실에서의 무공전수
  9. 2020.11.04 [태산북두] 제 24장 검은 표범
  10. 2020.11.03 [태산북두] 제 23장 선인루의 혈겁
  11. 2020.11.02 [태산북두] 제 22장 무제의 정사
  12. 2020.10.30 [태산북두] 제 21장 이상한 음모 2
  13. 2020.10.29 [태산북두] 제 21장 이상한 음모 1
  14. 2020.10.27 [태산북두] 제 20장 거마들의 죽음
  15. 2020.10.26 [태산북두] 제 19장 이신보의 탄생
  16. 2020.10.24 [태산북두] 제 18장 무광검과 번천도의 대결
  17. 2020.10.22 [태산북두] 제 17장 삼불대 밑의 천하제일인 2
  18. 2020.10.21 [태산북두] 제 17장 삼불대 밑의 천하제일인 1
  19. 2020.10.20 [태산북두] 제 16장 떠나버린 여자
  20. 2020.10.19 [태산북두] 제 15장 미소년(?)
  21. 2020.10.17 [태산북두] 제 14장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사이2
  22. 2020.10.16 [태산북두] 제 14장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사이1
  23. 2020.10.14 [태산북두] 제 13장 엉뚱한 제안
  24. 2020.10.13 [태산북두] 제 12장 괴상한 배, 괴상한 사람2
  25. 2020.10.12 [태산북두] 제 12장 괴상한 배, 괴상함 사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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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一 章

 

        雙頭金龜

 

 

 

진우란은 육천태에 대해서 마치 친할아버지 같은 친밀감을 느꼈다.

자신의 비밀을 감춰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인데 그는 기꺼이 그녀를 위해 입을 다물었다.

더우기,

육천태가 그가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이인(異人)이었다.

무공은 물론이고 깊은 학문과 신의라고 불릴 정도의 의술을 가진 육천태는 결코 그녀의 아버지에 못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천태,

그가 괴노라고 불린 것도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뛰어난 머리로 기행을 일삼았고 사람들이 이해하게끔 설명해주기를 귀찮아했기에 괴노라고 불렸다.

한때는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기인이사들과 사귀어 보았고 싸워도 보았던 그,

그는 높은 인격적 수양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황군성을 따로 불러 진우란과 만나게 된 것을 꼬치꼬치 물어본 후에 그녀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버렸다.

그리고 진우란에게 아주 자상하게 대해 주었다.

황군성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으나 진우란의 아버지 진섭천이란 인물이 아주 대단했던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양심적인 갈등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임단심에 대한 의무감과 진우란에 대한 애정이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진우란은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같았다.

그녀는 그에게 어떤 강요를 하진 않았다.

단지,

그가 그녀를 떠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취옥성‥‥‥취옥성‥‥‥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황군성은 중얼거렸다.

동정호변에서 육천태와 함께 머문 지 벌써 사흘이다.

임단심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진우란과 더 이상 논의할 입장도 못되었다.

황군성은 한숨을 쉬었다.

[요즘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뭔가 쇄신하지 않으면 인생을 끌려가며 살게 될 것같다.]

그는 입을 다물고 눈을 빛냈다.

[그래, 한동안 좌선이라도 해서 마음을 가다듬어야겠다. 그리고 나서 취옥성에 가도록 하자.]

그는 소리쳐 진우란을 불렀다.

[진매! 진매!]

그는 진우란을 진매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미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 이상 호칭에 있어서 꺼릴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진우란은 들어오지 않았다.

육천태를 따라 낚시하러 간 것이다.

황군성은 붓을 들어 몇 자 적은 다음에 연적으로 눌러놓았다.

그리고,

호변을 거닐 때 얼핏 봐두었던 동굴로 갔다.

 

호수가의 절벽 아래에 있는 동굴,

입구는 반원으로 물이 차있다.

배를 타고 들어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것같고 어두우며 습기가 가득하다.

또한 대낮에도 박쥐가 날고 있다.

몇 만 년을 그렇게 있어온 동굴이지만 어부들은 잘 가까이 가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동굴에서 풍겨지는 음산한 분위기 때문인 것이다.

휙!

황군성은 절벽에서 한 마리 새 날아 내렸다.

그리고,

물위를 밟고 우뚝서자마자 그의 몸은 동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쏴아아아!

그의 뒤에서 물살이 갈라졌다.

동굴 안은 어두웠다.

[어디 앉을 데가 있겠지.]

황군성은 중얼거리며 눈을 빛내고 동굴 안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푸드득!

찍찍!

박쥐가 그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삼장 정도 들어가자 천정이 물에 닿을 정도로 낮아졌다.

사실상의 동굴은 거기서 끝난 것이다.

그러나,

입구에서 삼장 이내에는 어디 올라앉을 만한 곳이 없었다.

비록 그가 내공이 고강하여 물위에 떠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황군성은 잠시 생각해 본 후에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미 황하에서 수중동굴의 신비함을 옅본 적이 있다.

어쩌면 이곳에도 그곳같은 수중동굴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과연,

수중으로는 동굴이 끝나지 않고 더 이어져 있었다.

황군성은 유유히 헤엄쳐 들어갔다.

상당히 깊은 동굴이었다.

다시 오장 정도 더 들어갔을 때 동굴이 왼쪽으로 휘어졌다.

그리고,

동굴은 끝이나 있었다.

황군성은 더 나아갈 곳이 없는 것같아 실망하면서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의 발아래로 뻥 뚫린 구멍을 볼 수 있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그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그의 오른손은 공력을 잔득 모으고 있었다.

동굴은 말굽처럼 휘어져있었다.

장독처럼 생긴 입구부터 시작해서 수초들이 가득자라 황군성의 진로를 방해했다.

동굴이 위로 향함에 그는 손발을 빨리 움직였다.

푸우!

마침내,

그는 수면위로 올라왔다.

그곳은 아주 협소한 곳이기는 하지만 공기가 있었다.

넓이는 불과 반평도 되지 않을 것같았다.

황군성은 땅위에 올라서며 고개를 갸웃했다.

[공기가 신선한데‥‥‥]

어딘가에서 공기는 들어오고 있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금방 알 수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좌선을 하리라 생각하며 털퍽 주저앉았다.

그의 엉덩이에 무슨 돌출된 돌멩이 같은 것이 느껴졌다.

[…………?]

손을 더듬어 들어보니 반쯤 부스러진 사람의 두개골이었다.

[이곳에 사람이 왔었구나.]

푸르스름한 인광이 해골에서 비쳤다.

다른 뼈는 다 삭아버렸는지 종지뼈 두개와 그 두개골이 전부였다.

안력을 돋우어 자세히 살피니 뒤쪽 석벽에 무슨 글자가 씌여있는 것이 보였다.

황군성은 석벽을 유심히 살피다가 깜짝 놀랐다.

[목계(木鷄)‥‥‥목계가 여기에도 기록되어 있다니‥‥‥]

놀랍게도 석벽에 씌여진 글자는 남화경의 목계대목이었다.

이것은 황군성이 도신 범강의 지도를 받아 깊이 체득한 바 있는 것이기도 하다.

[목계에서 무공을 도출해낸 사람이 의부 외에도 또 있었단 말인가?]

그는 중얼거리며 석벽의 글자를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잠시 후,

황군성은 숨을 깊이 몰아쉬었다.

[여기에 기록된 것은 너무도 가공한 심법이다. 아! 같은 목계이건만 이건 완전한 무공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무공은 그 다양성과 깊이에서 도무지 끝을 볼 수가 없구나.]

 

석벽에 기록된 것은 목계에서 나온 하나의 무공심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무공이 그렇지만 이 목계심법(木鷄心法)은 특히 정신력의 강함을 주로 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문성무존의 최고 절기인 철인검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철인검이 심(心)을 단련하고 지(志)로써 심을 움직이는 무공인데,

목계심법은 정신력을 강하게 해주는 것이니.

말하자면 철인검과 상부상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심법을 기록한 사람의 이름은 남아있지 않았다.

석벽의 밑쪽에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나 물결에 깎여 나가버린 것이다.

황군성은 그 기인을 알 수 없게 된 것에 아쉬움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좌정하고 목계심법에 깊히 빠져들어갔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같기도 하고 정지해버린 것같기도 했다.

하지만,

고요한 속에서도 모든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황군성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그의 마음은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 × ×

 

[육노선배님! 쌍두금구가 좋아하는 게 뭐예요?]

찰랑이는 호수물을 바라보며 진우란이 물었다.

촤악촤악!

육천태는 노를 저어 나아가며 말했다.

[그놈은 미식가지. 별나고 희귀한 물고기를 아주 좋아하지. 가령 수백년 또는 천년이나 된 화리(火鯉)같은 것.]

[한데 쌍두금구는 어디에 쓰는 거죠?]

진우란이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앉아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물었다.

[그 효능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많지. 내단은 복용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금강불괴로 만들어주고 동시에 일천년의 내공을 갖게 해주겠지. 또한 그 껍질은 공력이 주입되면 줄었다 늘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보물이지. 하지만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보혈(寶血)이라고 할 수 있어. 그 보혈은 사람 몸 안에 있는 모든 기운을 중화시켜 고르게 해줄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 있지. 몸에 병이 생기는 것은 다 조화가 깨어지기 때문인데 그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보배가 쌍두금구의 피인 셈이지.]

육천태는 신의인 만큼 쌍두금구의 다른 효능보다도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 있는 보혈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었다.

진우란이 근심스러운 듯 물었다.

[한데 그런 쌍두금구가 겨우 미끼나 물까요?]

[미끼? 미끼라고?]

[그래요. 미끼.]

[그런건 애초부터 없었어. 어떤 죽어있는 미끼가 그놈을 유혹할 수 있겠나. 어림도 없지. 그놈은 군성이처럼 멍청하지 않거든.]

진우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럼 어떻게‥‥‥]

육천태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놈이 내 몸에서 십장 이내에만 들어오면 모든 것은 끝나는 거지.]

그는 옆구리에 차고 있는 지팡이 같은 묵철간(墨鐵竿)을 두드려보였다.

늘어났다 줄었다 할 수 있는 그가 만든 보물인 묵철간에는 천잠사가 매여져 있고,

그 끝에는 작은 금강석이 달려있다.

육천태는 채찍을 사용하는 것처럼 묵철간을 사용해서 쌍두금구를 옭아매려고 하는 것이다.

조그마한 배는 동정호의 군산(君山)부근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수 마장 쯤에 군산이 보일 때 육천태가 노 젓기를 멈췄다.

[아마 여기가 수심이 제일 깊은 데인 모양이죠?]

진우란의 물음에 육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의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묵철간을 뻗었다.

순간,

취리리릭!

묵철간이 쭉 뻗어나가며 물속으로 천잠사가 드리워졌다.

육천태는 눈을 감고 전 공력을 동원해서 물속의 동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물고기가 없다!!)

육천태는 가늘게 흥분했다.

쌍두금구가 있는 근처에는 모든 물고기가 달아나 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가 낚시를 드리우는 곳은 물고기가 많은 곳이 아니라 늘 물고기가 없는 곳을 가렸던 것이다.

호수속은 피라미 한 마리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가까운 곳에 쌍두금구가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공력을 돋구어 천잠사끝에 매달린 금강석이 움직이게 했다.

금강석,

세상에서 제일 강하면서도 밝게 빛나는 금강석은 쌍두금구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쌍두금구가 근처에 다가오기만 하면‥‥‥

육천태의 손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금강석은 물속에서 유영하듯이 움직였다.

호수물은 잔잔하고,

물위에 띄워진 찌는 바람에만 미약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물속에서의 움직임은 수직의 찌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줄 것이다.

비록 육천태의 귀를 속일 수는 있어도 찌를 통해서 전달되는 그의 손감각은 속일 수 없을 것이다.

진우란은 육천태의 표정의 전에없이 심각함을 보자 막연한 느낌을 가지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쌍두금구가 금방이라도 잡힐 것만 같았다.

파악!

갑자기 육천태의 옷자락이 찢길 듯 팽배해졌다.

전신의 공력을 다 돋군 것이다.

그와 함께 물속에서 작은 움직임이 일더니 갑자기 그들이 탄 배가 쏜살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잡았구나!!)

진우란은 배를 꼭 잡으며 긴장했다.

굳건히 버티고 선 육천태의 묵철간이 그들이 탄배를 끌고 가고 있었다.

육천태는 계속 전신의 공력을 다 동원해 천잠사 줄을 죄고 있었다.

배가 요동쳤다.

출렁출렁!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만 같다.

진우란은 육천태를 돕기위애 천근추를 발휘해 배를 안정시켰다.

배는 마치 땅위에 올라온 듯 잠잠해졌다.

육천태의 눈에 은은한 놀람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배는 계속 호수를 달리고 있었다.

쏴아악!

물살이 갈라지며 포말이 일었다.

직선으로 달리던 배가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아마도 쌍두금구가 방향을 전환했으리라.

쌍두금구는 오히려 배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이얍!]

육천태의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묵철간은 물론이고 천잠사줄마저 꼿꼿해지면 위로 들렸다.

추앙!

갑자기 천잠사 줄에 달려 방원 일장 정도 될 듯한 거북이 하늘로 솟구쳤다.

육천태의 가경할 내공에 의해 다려올라간 것이었다.

한데,

그것까진 좋았으나‥‥‥

갑작스런 무게의 편중으로 말미암아 배가 기울고 말았다.

육천태는 당황했다.

진우란이 천근추로 버텨주기에 안심하고 수법을 발휘해본 것이었다.

그런데 배가 기울다니‥‥‥

그녀는 뭘 한단 말인가?

하나,

의문은 간단히 풀렸다.

그의 눈에 쌍두금구를 향해서 날아가는 진우란이 들어온 때문이다.

번쩍!

그녀의 손에서 무엇인가 빛이 쏘아져 나갔다.

갑자기 쌍두금구의 몸은 보일듯 말듯한 검은 실에 칭칭 감겨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육천태는 한편으로는 내공으로 쌍두금구를 뛰워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천근추로 배를 바로잡고 있었다.

수백 근이 됨직한 쌍두금구를 십장 밖에서 한가닥 실에 공력을 주입해 허공 높이 치켜올렸다.

그것도 작은 배위에서 천근추를 발휘하며‥‥‥

강호의 고수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지인 것이다.

추리릭!

묵철간이 빠르게 줄어들며 배는 쌍두금구의 밑으로 다가갔다.

진우란이 허공에서 맴돌며 배위에 내려섰다.

이내 육천태가 묵철간을 내려놓으며 두손으로 장력을 뻗어 쌍두금구가 가볍게 배에 떨어지도록 했다.

배위에 꽁꽁 묶인 채로 떨어져 있는 쌍두금구를 바라보는 육천태와 진우란은 감격해 마지않았다.

더우기 쌍두금구의 그 신비함이란‥‥‥

쌍두금구는 말그대로 두개의 머리를 가진 금빛 거북이었다.

두개의 머리가 마치 나무가지처럼 갈라져 나와 있었다.

어찌나 큰지 하나의 나무기둥을 보는 것같았다.

요동치려고 애쓰는 것같지만 검은 실에 감겨서 미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육천태가 입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고금십대천병 중 하나인 섬전사(閃電絲)인가?]

[네‥‥‥]

[허허허‥‥‥신세를 크게 졌으니 어떻게 한다‥‥‥]

육천태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쌍두금구를 잡은 것을 기뻐했다.

쌍두금구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저도 신세를 졌잖아요.]

진우란의 말에 육천태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고‥‥‥음‥‥‥이놈의 내단을 주지.]

진우란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 그럴 순 없어요. 너무 과해요. 감당할 수 없어요.]

육천태는 더 말하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난 지금 무공으로도 충분해, 게다가 이미 금강불괴야. 또한 의술을 알고 있으니 앞으로도 백년은 더 살거니 그건 무용지물이지. 누구에게 줘도 주야 할 걸?]

진우란은 큰 절을 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받겠습니다. 반드시 좋은 일에만 쓸 것임을 맹세합니다.]

[하하하하‥‥‥]

육천태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광소를 터뜨렸다.

그이 웃음소리에 호수물이 진동하고 동정호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작은 섬을 향해 힘차게 노를 젓는 육천태는 젊은이처럼 활기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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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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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 章

 

            怪老 陸天泰의 수수께끼

 

 

푸른 안개가 넘실거리는 동정호의 호면,

어두운 밤의 하늘거리는 바람은 이따금씩 버드나무를 흔들고 간다.

바위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조는듯 자는듯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두 사람.

바로 황군성과 괴노 육천태이다.

사박사박!

가벼운 발걸음이 호변으로 다가서고,

황군성은 힐끗 고개를 돌려 육천태를 바라본다.

육천태는 아예 모르는 척하고 있다.

황군성도 나도 몰라라 하고 호면을 바라본다.

보았댔자 특별히 보일 것도 없는 호수 물을.

사박사박!

발걸음 소리는 한시진 전 쯤 황군성이 앉았던 그 바위위에 와서 멎었다.

사락!

바위에 걸터앉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휴!]

하는 가벼운 한숨소리가 뒤를 이었다.

(엇!)

황군성은 눈이 동그라지도록 놀랐다.

한숨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지 않고 어쩐 일로‥‥‥?)

 

󰠏󰠏󰠏󰠏초초하도다 견우성이여!

교교하도다 하한녀여!

섬섬옥수를 들어

찰깍찰까 베틀의 북을 놀리네.

종일토록 무늬를 이루지 못하고

체읍하여 눈물이 비 오듯 한다.

은하수의 물은 맑고 옅으며

상거 또한 얼마이리요.

물이 가득찬 한 줄기 강 사이에서 묵묵히 말이 없구나󰠏󰠏󰠏󰠏󰠏󰠏

 

은근하고도 부드럽게 젖어드는 옥음이 호면위로 흘러갔다.

순간,

육천태의 눈이 번쩍 광망을 토했다가 감겼다.

(또 노래를 부를 모양이군. 쌍두금구를 잡아야 하는데‥‥‥)

황군성이 막 인기척을 하고 나가 그녀를 제지하려 할 때였다.

[휴!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신신당부하시길 사내는 원래 박정한 물건이니 속좁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하셨지. 그저 농사일이나 잘하고 나 하나만 위해주는 그런 사람.]

갑자기 들려온 진우란의 탄식에 황군성은 침을 꿀꺽 삼키며 멈추었다.

불헌듯 자기가 그런 농사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우란의 음성은 다시 들려왔다.

[아버님 말씀이 맞았어. 이미 따라 나섰을 때에는 모든 것을 바친다는 뜻이었는데‥‥‥그 사람은 오직 자기 밖에는 몰라. 아!]

…………

[이제 와서 돌아가려해도 마음은 이미 주었으니 다른 사람을 볼 수도 없지. 휴! 하는 수 없이 깨끗이 죽어 수치나 면해야겠구나.]

사라락!

진우란은 일어서고 있었다.

황군성의 가슴은 터질듯이 뛰었다.

그녀가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분명했다.

막 뛰쳐나가려는데 그의 옷자락을 누군가가 잡아당겼다.

[…………?]

육천태였다.

그는 고개를 저어보이며 나가지 말라는 뜻을 비췄다.

황군성은 속에서 불이 나는 것같았다.

육천태가 생각이 깊은 기인인 줄은 알지만 사람이 죽으려는 데 구하지 못하게 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우란은 품에서 비수를 뽑아 들었다.

그녀는 잠시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 그렸다.

(이상한데? 이럴리가 없는데‥‥‥)

찰칵!

비수를 다시 집어넣고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치마를 뒤집어쓰고 호수로 몸을 날렸다.

풍덩!

그녀의 흰치마가 물위에 둥둥떴다.

황군성은 몸을 날리려다 휘청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육천태가 기습적으로 그의 혈도를 찍은 것이다.

그가 물으려고 하자 귀신처럼 손을 움직여 아혈까지 찍어버렸다.

황군성은 하나의 바위덩어리 처럼 꼼짝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황군성이라고 하나 상대는 괴노 육천태다.

또한 신의이기도 한.

세상에서 점혈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면 육천태외에는 거론할 사람이 없는 터인 것이다.

물에 연꽃처럼 떴던 치마는 점점 작아지며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황군성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영감이 미쳤나?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구할 생각을 안해? 그러고도 신의야?)

그는 진기를 힘껏 돋구었다.

순간,

투둑툭!

막혔던 혈도가 순식간에 뚫어져 버렸다.

풍덩!

그는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에잇! 쯧쯔.]

육천태가 혀를 찼다.

황군성의 내공은 세가지의 절묘한 신공이 융합된 특이한 것이다.

세상의 어떤 공력보다 끈질기고 강한 것이다.

추앙!

물속에서 흰그림자가 마치 용이 승천하듯 허공으로 솟구쳐올랐다.

휘리리릭!

몇바퀴 맴돌아 물을 떨구곤 육천태 옆에 내려섰다.

황군성의 품에는 정신을 잃은 진우란이 안겨있었다.

그녀는 이미 물을 많이 먹은 것 같았다.

[노선배님! 빨리 좀‥‥‥]

육천태의 시선은 아주 못마땅했다.

[칠칠치 못하게 서리‥‥‥어째 그리 멍청할까?]

육천태의 말에 황군성은 어리둥절했다.

[한쪽에 내려둬! 엎어서. 조금 있으면 정신차릴 거야.]

육천태의 말은 신경질 적이었다.

황군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괴상한 늙은이 소리를 듣지.)

휙휙!

육천태는 낚시를 다시 던졌다.

[솜씨가 대단해. 대단해. 노부는 머리 둘달린 거북이를 낚는데 실패했는데 참‥‥‥아무래도 노부도 몸으로 미끼를 삼아야 겠군. 방금 몸으로 대가리 둘달린 멍청이를 낚아올리는 걸 봤으니까‥‥‥]

그는 중얼중얼하며 힐끗 진우란을 쳐다보았다.

황군성이 제빨리 그를 가로막았다.

물에 폭 젖은 진우란의 육감적인 몸매를 육천태가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육천태가 눈을 흘겼다.

[멍청한 녀석! 썩 꺼져! 범강 그놈도 미쳤지. 저런 멍청이를 좋다고 아들 삼다니‥‥‥]

그는 신도보의 도신마저 욕해댔다.

진우란의 주먹이 볼끈 쥐어졌다.

(저 노인은 대체 누굴까? 혼자인 줄 알았는데‥‥‥. 단번에 내가 연극했다는 것을 간파하다니‥‥‥)

황군성이 끙 소리를 냈다.

[요즘 멍청하다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왜 멍청한지도 모르겠으니 확실히 멍청하기는 멍청하지요.]

[흥!]

육천태는 콧방귀를 뀌면서 낚시를 거둬들였다.

슈슈슉!

이장 정도 길이는 족히 될 것같던 낚시대가 갑자기 줄어들면서 짧은 지팡이로 변해버렸다.

길이가 세자 남짓되었다.

[거참 신기하군요.]

[흥! 아무리 욕심내도 소용없어. 절대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육천태는 일어서서 바위를 돌아 올라갔다.

[계집찾아 다닌다던 녀석이 계집구하러 다닌 모양이구나. 일년 만에 저 꼴이니 몇 년지나면 몇 년이나 데불고 다닐지 모르겠구나.]

황군성은 얼굴이 화끈해옴을 느꼈다.

진우란이 이를 악물었다.

(저 영감이 대체 누구지? 말하지만 않으면 흔적도 느낄 수 없으니‥‥‥보통 고수가 아닌데‥‥‥)

[깨어났소?]

황군성이 그녀가 미미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물었다.

[으응!]

진우란은 고개를 들면서 황군성에게 약하게 말했다.

[제가 살았어요?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미안하오. 먼저 와 있었오.]

갑자기 진우란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럼 제 말을 다 들었겠군요.]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저를 구했어요. 차라리 죽느니만 못해요.]

그녀는 야멸차게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나도 진소저를‥‥‥]

황군성은 손을 저으며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바로 그때,

[이놈아! 빨리 오지 않고 뭘해! 젊은 것들이 으슥한 데서‥‥‥]

육천태의 고함소리가 바위위에서 들려왔다.

진우란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황군성이 빠르게 말했다.

[저분은 원래 성미가 고약하신 분이오. 하지만 아주 좋으신 분이니 신경쓰지 마시오.]

그는 진우란의 젖은 몸을 안아들고 훌쩍 몸을 날렸다.

육천태는 진우란의 얼굴을 쳐다 보더니 빈정거렸다.

[소 주인이군.]

진우란은 가슴이 뜨끔함을 느꼈다.

(이 노인이 나를 안단 말인가? 설마 그럴 리가‥‥‥)

그녀는 황군성을 소처럼 부린 적이 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노인이 한 말일까?

아니면‥‥‥

 

괴노 육천태는 호변에 어부의 집에 방을 얻어 살고 있었다.

진우란을 안고 황군성은 그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작은 방이지만 육천태의 성미를 말해주기라도 하듯 방은 깨끗했다.

또한 탁자 위에는 몇 권의 책이 놓여져 있고 방 한쪽에 여러 개의 약병이 놓여 있었다.

황군성은 염치불구하고 진우란을 육천태의 침상에 내려놓았다.

진우란이 그의 귀에 대고 살짝 물었다.

[저분은 누구예요.]

[나는 나일뿐이니까 말할 것도 없다.]

육천태가 탁자에 앉으며 말했다.

황군성은 그녀의 맥문을 통해서 진기를 불어넣어주었다.

한기를 몰아내려는 것이다.

순간 진우란이 흠칫했다.

황군성도 흠칫했다.

마치 그의 진기가 솜에 스며드는 물처럼 진우란의 몸에서 흔적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진우란이 빠르게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

황군성이 손을 떼자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내상을 입었어. 엄청난 공력이야.)

[그럼 둘 다 이리오게.]

육천태가 비로소 조금 점잖은 어투로 말했다.

황군성과 진우란은 탁자로 가서 앉았다.

육천태가 책한 권을 펼쳐보였다.

[자네는 원래 총명했고 이 소저 또한 아주 총명한 듯하니 내가 평소에 풀지 못했던 의문을 한번 물어보겠네.]

그는 두 사람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질문을 했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는 의자 앞에 주춤거리며 앉지도 서지도 않고 있네. 그 사람은 어떻게 있는 것인가?]

[…………?]

황군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누워있겠지요.]

육천태는 진우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진우란이 대답했다.

[의자 앞에 주춤거리며 서지도 앉지도 않고 있습니다.]

육천태가 다시 물었다.

[나무 위에 두 사람이 올라가 있네. 한사람은 다른 사람 위에 있는데 다른 한 사람은 남의 아래에 있지 않네. 그들은 어떻게 있는 것인가?]

진우란이 즉시 대답했다.

[아마도 한사람은 키가 작고 한사람은 키가 아주 클 것입니다. 그래서 키가 작은 사람은 키큰 사람보다 높은 가지에 발을 닿고 있을 것이지만 키큰 사람의 키보다는 낮을 것입니다.]

육천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문제는 어떻게 된 건지 맞춰보게.

열개의 구슬이 있네. 그 중에 두개는 크기는 작지만 아주 무겁고 두개는 크기도 크고 무겁기도 무겁네.

하지만 작은 두개만큼 무겁지는 않네. 또 두개는 작기도 작고 가볍기도 가볍네.

또 두개는 크기는 좀 큰 편이지만 아주 가볍다네. 마지막 두개는 작기는 제일 큰 것보다 작지만 무겁기는 그보다 못하지 않네.

소저는 이 구슬들을 한꺼번에 던져진다면 어느 것이 가장 먼저 땅에 떨어질 것같은가?]

척척 대답하던 진우란도 여기에 대해서는 심사숙고 하는 듯했다.

황군성은 아주 총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앞의 두 문제에 대해서도 답은 그의 생각과는 엉뚱했다.

이번에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한참을 생각하던 진우란이 고개를 들어 육천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알아냈는가?]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진우란은 단호하게 말했다.

[…………]

[떨어지는 것이 있다면 죽은 사람의 시체겠지요.]

황군성은 다시 알 수 없는 소리에 의아해졌고 육천태는 벌떡 일어섰다.

그가 큰 소리로 물었다.

[자 그럼 마지막 질문이네. 소저는 임보산의 영애인가 아니면 진섭천(晉涉天)의 영애인가?]

진우란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육천태의 활짝 펼쳐진 손바닥이 그녀의 한자 앞에 있었다.

[열개 구슬의 해답을 알았으면 설마 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

황군성은 당혹스러웠다.

육천태의 태도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열개구슬의 문제에서 해답은 시체가 떨어진다 였다.

[왜 그러십니까?]

육천태가 눈에서 횃불같은 광망을 뿜으며 말했다.

[자네는 간섭하지 말게. 이일은 자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육천태는 거듭 물었다.

[임보산의 영애인가? 진섭천의 영애인가?]

진우란이 애처로운 눈초리로 황군성을 바라보았다.

황군성이 소리쳤다.

[육노선배! 더 이상 이런다면 나는 진소저를 데리고 나가버리겠소.]

[진소저? 그럼 진섭천의 딸이겠군.]

육천태는 차갑게 말했다.

[군성! 자네 무공이 나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이 진섭천을 딸을 데리고 나가려 할 때는 아마 죽은 딸 밖엔 데리고 나갈 수 없을 거야.]

진우란은 손가락하나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뭐가 진섭천의 딸이란 말입니까? 그 사람이 누굽니까? 그녀는 가난한 농가의 여식일 뿐입니다.]

황군성은 육천태의 무공을 알고 있었다.

그는 허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죽인다고 했으면 반드시 죽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황군성은 애원조로 그를 달래보는 것이다.

진우란은 입을 열지 않고 복화술로 전음을 펼쳤다.

(저는 진섭천의 딸입니다. 하지만‥‥‥저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노선배님 제발‥‥‥만약 아버님과 어떤 은원이 계시다면 훗날 저와 해결해 주십시오.)

그녀의 얼굴은 간절한 빛이었다.

육천태도 묵묵히 복화술로 전음을 펼쳐 말했다.

(노부는 네 아버지와 원한은 없다. 하지만 그의 일은 늘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저 아이에게 신분을 속이고 접근했느냐? 당장 떠나지 않겠다면‥‥‥네 아버지와 생사를 다투고 싸울지라도 너를 죽이고 말겠다.)

진우란의 눈이 슬픈빛이 어렸다.

(저는 저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단지‥‥‥저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을 뿐이에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진섭천의 딸이 하는 말을 노부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저의 아버지는 벌써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저도 아버지의 사업따위엔 아무 관심이 없어요.)

육천태의 눈에 은은한 놀람이 어렸다.

(진섭천이‥‥‥?)

[으음‥‥‥너는 그와 다른 것같군.]

그는 약한 침음성을 흘렸다.

진우란의 말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것같았다.

[아버진 언제 돌아가셨느냐?]

육천태는 손을 거두면서 말했다.

[벌써 오년 전의 일입니다.]

진우란이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황군성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육천태가 추억을 회상하는 듯이 말했다.

[내가 평생 감탄한 인물이 있다면 다섯 사람이다.]

[…………]

[…………]

[그중의 첫번째가 무제 임보산이고‥‥‥]

황군성이 물었다.

[무제 임보산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육천태가 말했다.

[그는 신룡과 같은 사람이다.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도 알아보기 어렵다. 더우기 무공을 펼치는 것은 구경하기도 어렵지. 하지만‥‥‥]

[…………]

[…………]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금의 천하제일인이라고 할 수있다.]

육천태가 황군성을 힐끗 보았다.

[너도 상당하지만 아직 그에 비하면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한다. 그는 완성되었는데 너는 멀었어. 하나 언젠가는 네가 그를 앞지를 수도 있겠지.]

[제가 어떻게‥‥‥]

황군성이 겸양을 했다.

육천태의 말이 이어졌다.

[두번 째 사람이 진섭천, 바로 진소저의 아버지지. 임보산과 진섭천 이 두 사람이야 말로 백미라고 할 수 있지. 문무를 겸했으며 세상을 풍미할 하늘이 낸 인재들이었으니까. 이 세상에서 열개의 구슬 수수께끼를 푼 사람은 그 두 사람과 진소저 뿐이지.]

[그럼 세번째 분은 누구십니까?]

진우란이 물었다.

육천태가 잠시 천정을 바라보더니 자르듯이 내뱉었다.

[전륜법왕!]

황군성은 해연히 놀랐다.

전륜법왕, 바로 그의 사부가 아닌가?

[매우 오만한 사람이지. 하지만 그의 무공은 특별해. 천하에 적수를 찾기 어려울 거야. 스스로 수많은 무공을 창시해서 대종사라고 자부하는 사람이지. 바로 자네 사부겠지만‥‥‥]

육천태는 황군성에게 눈길을 주면서 말했다.

[네번째는 바로 자네들 두 사람이야.]

진우란과 황군성은 얼굴을 붉혔다.

 

날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육천태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진우란의 귓속으로 육천태의 전음이 들려왔다.

(추호라도 그릇된 마음을 먹지 말게. 그럼 노부는 입을 다물 것일세. 하지만‥‥‥만약 그에게 어떤 해라도 가한다면‥‥‥진섭천의 흔적은 세상에서 없어질 거야. 그 녀석의 사부는 전륜법왕이고 의부는 도신 범강이니 그만한 능력은 되겠지. 또한, 그 녀석은 어떤 가공할 세력을 등에 없고 있네.)

진우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럴 생각도 없는데‥‥‥)

황군성은 묘한 감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진우란은 완전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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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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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九 章

 

         수신묘의 세 죽음

 

 

 

황군성은 터벅터벅 걸어 호변으로 갔다.

그대로 여인숙으로 돌아갈 기분이 아니었다.

얼마 전,

그가 주루로 들어섰었을 그는 예리한 바람소리를 들었다.

순간 적으로 왔구나 싶은 그는 바람소리의 근원을 향해 몸을 날렸고,

막 단검을 던지고 사라지려고 하던 두 여인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었다.

그의 너무나도 빠른 반응에 여인들의 몸은 굳어버렸고,

황군성은 단검의 모양으로 보아 그에게 임단심의 서찰을 전해준 자가 바로 그녀들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황군성은 호변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정말 임매가 취옥성에 갖혀있을까? 홍심련‥‥‥그들은 또 대체 누구일까?)

혼란스러웠다.

사실의 진부도 가리기 어렵고 무림경험이 일천한 그로서는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을 것같았다.

문득,

임단심을 생각하던 그의 머리에 진우란이 떠올랐다.

왜 그녀가 떠올랐는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임매‥‥‥하던 그의 머리에 임단심의 얼굴이 진우란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어쩌면,

진우란이 임단심보다 더욱 깊이 그의 가슴속에 새겨져 있는 것같아 섬찟했다.

임단심과 진우란,

두 여자는 서로 다른 점이 너무나 많다.

진우란과 아직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황군성의 마음은 임단심보다 진우란을 가깝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도 알 수 없는 현상이었다.

임단심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마치 그의 의무감처럼 느껴지고 사랑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진우란을 생각할 때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끝없는 애착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가 그녀의 말에 꼼짝하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마음 때문인지도 몰랐다.

임단심이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맹종했듯이‥‥‥

[모르겠다. 아무튼 임매부터 구하고 볼 일이다.]

황군성은 한숨을 내쉬면서 호수가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로 그때,

[한숨 쉬지 말게. 누구 낚시를 방해하려고?]

황군성이 앉아 있는 바위의 바로 아래에서 소곤거리는 듯한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황군성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사람이 이토록 가까이 있는데도 몰랐다니‥‥‥)

황군성의 무공은 거의 신화경에 달했다고 할 수있다.

무림에 그보다 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한데,

그가 지척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니‥‥‥

그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황군성은 바위 아래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바위틈에서 한 노인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노인의 눈이 힐끗 그를 보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황군성!]

[육선배!]

놀랍게도 그들은 서로 아는 사람이었다.

황군성이 노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허허‥‥‥자네야 말로 어쩐 일인가? 나는 이곳에서 쌍두금구(雙頭金龜)를 잡으려는 참인데‥‥‥]

[어쩌다 보니 오게 됐습니다.]

노인은 그를 옆에 앉히며 말했다.

[그래 자네 의부는 잘 있는가?]

[의부께선 검신과 힘을 합했습니다.]

[그 잘됐군.]

이 노인은 누구인가?

천하에 이름을 날린 전대고수인 괴노(怪老) 육천태(陸天泰)인 것이다.

또한 세상에 둘도 없는 신의(神醫)로서 범강에게 스스로 귀머거리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일찌기 허명의 무쌍함을 깨닫고 기행을 일삼다가 무림에서 잠적해버렸던 기인‥‥‥

육천태가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게. 한 시진 정도만 있어보고 오늘도 허탕 치면 들어가도록 하세.]

육천태는 쌍두금구라는 거북을 잡기 위해서 왔다.

이 거북은 머리가 둘 달린 황금색 거북인데 그 수명은 만년을 산다고 전해진다.

쌍두금구가 있는 주변에는 반드시 예리하게 물어뜯긴 큰 물고기들이 나타나곤 하는데,

육천태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에게서 우연히 동정호에서 그런 물고기들이 나타난다는 소문을 들었다.

듣자마자 쌍두금구가 출현했으리라 생각한 그는 그날로 동정호로 달려와 낚시를 드리웠던 것이다.

황군성은 쌍두금구가 어떤 물건인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묵묵히 육천태 옆에 앉아서 호수를 지켜보았다.

육천태의 낚시대는 검은 묵철(墨鐵)로 만들어진 것이고,

줄은 천잠사로 된 것이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이기에 이런 낚시대를 준비한 걸까?)

황군성의 생각과 아랑곶없이,

육천태는 호수같이 가라앉은 눈으로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고 찌를 노려보고 있었다.

 

× × ×

 

슥! 스륵!

마천화의 옷이 마침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의 터질듯 팽팽한 두 가슴과 풍만한 둔부가 어떤 속박도 없이 노출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두 다리를 적당히 벌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갖다댈듯 말듯한 자세로 장대호가 서있다.

수신묘의 한쪽구석에는 죽어버린 장대호의 여편네가 널부러져 있고,

다른 쪽에는 몸을 비스듬히 하고 누워있는 진우란이 있었다.

한데,

진우란의 별이 떤 것같은 맑은 눈이 장대호와 마천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어느새 정신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색욕에 짐승처럼 변해버린 장대호와 마천화는 그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진우란은 한쪽 팔로 머리를 받친 채 비스듬히 그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다.

[하악!학!]

마천화가 뜨거운 신음을 뿜으면서 장대호의 목을 안으려 했다.

하나,

장대호는 그녀의 아랫배를 손등으로 슬쩍 스치면서 겨드랑이 아래로 빠져나가 마천화의 등뒤에 섰다.

그의 물건이 마천화의 둔부를 슬쩍 건드렸다.

[흐흐‥‥‥가만히 있어. 죽여줄 테니까.]

[아아! 못참겠어.]

마천화는 장대호의 요구대로 다시 두 팔을 벌리고 서면서도 몸을 비비 꼬았다.

아랫도리가 허전해서 죽을 지경인 것이다.

둔부를 슬슬 움직이며 자꾸 장대호에게로 밀어부쳤다.

장대호의 손이 그녀의 검은 숲에 다가갔다.

[흐읍!]

마천화가 헛바람을 삼켰다.

장대호의 손은 그녀의 축축히 젖은 부분을 슬슬 문지르기 시작했다.

마천화는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흥분에 죽을 것만 같았다.

[아아! 그 그만!]

그녀는 자신의 둔부를 마구 앞뒤로 움직였다.

홱!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펄쩍 뛰어 장대호의 몸을 두 다리와 두 팔로 감으며 둔부를 비벼댔다.

[흑흑! 못 참겠어. 빨리! 빨리 넣어줘! 아아!]

장대호는 냉정하게 그녀를 밀어냈다.

[왜‥‥‥?]

[흐흐‥‥‥그렇게 원한다면 너도 내게 봉사를 해봐. 그래야 공평하지 않아?]

장대호는 이미 홀린듯 망연한 눈빛을 하고 있는 마천화에게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천화,

그녀도 색에 관한한 누구보다 경험이 많은 색녀이고 또한 밝히는 여자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늘 장대호에게 더욱 사족을 못써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정욕에 눈이까뒤집히고 말았다.

장대호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충 짐작을 했는지 그녀는 주저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손으로 장대호의 물건을 감싸듯이 움켜쥐고 빨간 입술안으로 가져갔다.

[흑!]

장대호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진우란은 그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었다.

(남자들은 저걸 좋아하는 모양이군!)

장대호는 마천화의 머리를 움켜잡고 힘껏 당겼다.

[욱!]

마천화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마천화의 머리가 진퇴를 거듭한 후에 장대호는 그녀를 와락 밀쳤다.

털퍽!

마천화가 사지를 벌린 채 발라당 넘어지고 장대호가 그녀의 벌려진 두 다리 사이에 무릎으로 앉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물건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마천화는 어떤 기대감에 눈을 가늘게 뜨고 긴장하고 있었고,

팔을 고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진우란은 얼굴을 붉혔다.

(그도 저렇게 클까?)

그녀는 어떤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황군성이라는 사람을‥‥‥

진우란은 자신의 오금이 지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악!]

장대호의 팔뚝같은 대물이 마천화의 붉은 속살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그녀의 한눈에 들어왔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같은 일에도 마천화는 둔부를 움직일 뿐 죽지는 않았다.

[아아‥‥‥아‥아‥아아아‥]

죽기는 커녕 연방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년! 이년, 암캐같은 년! 개년! 죽어라! 아아악!]

장대호가 욕을 해대며 미친것처럼 급격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아래에 있는 마천화의 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아악아‥‥‥더‥‥‥더‥‥‥세게‥‥‥더! 아악]

진우란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마천화에게 몸을 실고 있는 장대호의 뒤로 갔다.

퍽퍽퍽!

장대호의 물건이 마천화의 몸속을 바쁘게 왕래하고 있었다.

순간,

퍽!

약간 다른 소리가 들리며 장대호는 마천화에게 완전히 엎어지고 말았다.

[됐어! 이제 그만해! 볼 건 다 본 것같으니까.]

진우란은 말과 동시에 다시 한번 발길질을 해서 마천화의 몸에 깊히 결합되어 있는 장대호의 물건을 걷어찼다.

[악!]

장대호는 무엇이 터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기절하고 말았다.

[누‥‥‥누구냐?]

마천화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욕정으로 힘없이 물었다.

[네 년이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라서 미안하군. 이제 남자가 없으니 혼자서 라도 해야겠네?]

진우란이 한발로 장대호의 등을 밟으며 말했다.

마천화의 눈에 경악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너‥‥‥너는 아까 그‥‥‥]

[그래 잡혀온 사람이지.]

진우란은 말을 하면서 장대호를 슬쩍 밀쳤다.

쿠당!

장대호의 몸이 한쪽으로 넘어가며 마천화의 몸 깊히 들어가 있던 그의 물건도 빠져 버렸다.

마천화는 아랫도리가 허전해지자 견딜 수가 없었다.

허전함을 메꾸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그곳으로 가지고 갔다.

[아아!]

[됐어. 그만해!]

진우란이 다시 발길질로 그녀의 그곳을 찼다.

[악!]

극렬한 고통이 있었으나 마천화는 오히려 어떤 희열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진우란의 한마디에 그녀의 몸은 싸늘히 식고 말았다.

[탕화(蕩花) 마천화! 마천화 맞지?]

마천화는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네 년은 누구냐?]

진우란이 그녀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거기부터 좀 가리지. 그리고 감히 네게 그따위로 말하다니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마천화는 뒤로 물러나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크르르‥‥‥]

순간,

그녀는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짐승의 소리에 흠칫하며 돌아보았다.

갑자기,

마천화는 사시나무 떨 듯 달달 떨기 시작했다.

[사‥‥사사‥‥‥신‥‥‥]

그녀의 등뒤에는 고양이 보다 조금 커보이는 검은 표범이 흉폭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줄줄줄‥‥‥

마천화는 오줌을 싸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다‥‥‥당‥‥‥신은‥‥‥그‥‥‥그럼‥‥‥사‥‥‥신‥‥‥]

진우란이 한광을 번득이며 말했다.

[마천화! 너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내뱉어서는 안될 말을 내뱉고 말았어.]

마천화는 벼락을 맞은듯이 빳빳해졌다.

(그렇다! 사신의 얼굴을 본 자는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그의 앞에서 사신이란 말을 하는 자 역시‥‥‥)

번쩍!

눈앞에서 무슨 빛이 이는 것을 느끼는 순간 마천화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진우란은 검은 표범을 보며 물었다.

[어디 있느냐?]

표범이 수신묘밖으로 달려 나갔다.

진우란은 천천히 걸어서 호변으로 갔다.

수신묘 안에는 세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마천화와 장대호의 벌거벗은 시체와 장대호 여편네의 시체였다.

한데,

신기하게도 마천화와 장대호의 몸에는 어떤 치명상도 보이지 않았다.

진우란‥‥‥

그녀의 정체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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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장

 

          색남색녀 (2)

 

 

 

황군성과 진우란은 여인숙에서 같은 방을 사용한다.

황군성으로서는 껄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진우란은 불안해서 혼자 방안에 있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잘 믿기지는 않았지만 황군성은 같은 방안에서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그녀의 파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꼬르륵!

밤이 깊어가자 황군성은 배가 슬슬 고프기 시작하고 술이 먹고 싶어졌다.

그냥 나가자니 진우란이 깨고나면 뭐라 할 것같고 그는 진우란을 불러보았다.

[진소저!]

진우란은 침상에서 잠이들었는지 아무대답이 없다.

황군성은 다시 한번 불렀다.

[진소저!]

[아웅! 왜그래요?]

[나가서 뭘좀 먹고 옵시다. 배가 출출해서 잠을 잘수가 없소.]

진우란은 몸을 뒤척이며 잠결처럼 말했다.

[혼자같다 오세요. 어린애 처럼 꼭 같이가야해요?]

황군성은 어리둥절해졌다.

어린애 처럼 혼자서는 못잔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말로서는 당하지 못할 게 여인이다.

아예 입씨름을 포기하고 황군성은 일어났다.

진우란의 드러난 뽀얀 귀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었다.

그는 여인숙을 나왔다.

[아무래도 내 양껏 먹으려면 주루엘 가야지.]

 

여인숙의 방문이 살짝 밀렸다.

진우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벌써 먹고 온 거예요?]

조용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고 새록새록 잠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숨소리를 낮춘 장대호와 그 여편네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눈알을 굴리며 침상에 누운 진우란을 확인한 그들은 한 알의 약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검은 약병을 꺼내어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몽글몽글‥‥‥

파란 연기가 병에서 나와 진우란의 얼굴을 향해 몰려갔다.

진우란의 콧속으로 파란 연기가 빨려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장대호는 약병의 마개를 닫았다.

[됐어. 흐흐흐‥‥‥계명고에 취했으니 해독약을 먹이기 전엔 결코 깨어나지 못할 거야. 이제 들고나가자.]

계명고(鷄鳴藁)란 일종의 마취약이다.

흔한 무림의 잡배들이 사용하는 미혼약보다 훨씬 효력이 강하고 또한 오래가는 것이다.

보통 미혼약은 찬물을 마시거나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 버리지만,

이 계명고는 해독약을 먹기 전에는 결코 깨어날 수 없는 무서운 마약인 것이다.

장대호는 준비해온 포대를 꺼내 진우란을 넣었다.

[한데 그놈은 어디간 거야!]

그의 여편네가 포독스럽게 말했다.

[일단 이년 부터 손에 넣고 있으면 그놈은 절로 걸려들거야.흐흐‥‥‥]

장대호는 벌써부터 입으로 침을 흘리고 있었다.

얼마 후,

두 개의 그림자가 도둑고양이 처럼 담을 넘어 여인숙을 빠져나갔다.

 

동정호 변에 세워진 수신묘(水神廟)!

쿵!

장대호는 보자기를 내려놓았다.

꿀꺽!

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여인은 한쪽에 팔짱을 낀채 서있다.

보자기를 풀자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진우란이 나왔다.

진우란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장대호가 말했다.

[흐흐흐‥‥‥이 야들야들한것, 이 장나으리가 극락구경을 시켜주마.]

그의 여편네가 말했다.

[빨리 끝내. 그년은 내손에 죽어야 해.]

바로 그때,

[안돼! 시작할 수도 없어!]

어디선가 여인의 옥음이 들려왔다.

장대호의 여인이 흠칫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냐! 썩 나와라!]

장대호가 약간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소리쳤다.

[넌 조금 있다가 힘쓰야 할텐데 소리도 치지마.]

예의 목소리는 다시 들려왔고,

쿵!

한쪽 구석에서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장대호의 안색이 확 변했다.

소리가 난 곳에는 그의 여편네가 눈을 까뒤집고 죽어있었다.

이마 한가운데 솔잎이 반쯤 꽂혀있었다.

[헉!]

장대호는 숨이 끊힐 듯이 놀랐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툭친 것이었다.

그와 함께 여인의 육향이 그의 정신을 황홀하게 했다.

[아까부터 너를 지켜보고 있었어. 제법 쓸만한 몸이더군.]

[누 누구냐?]

장대호는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눈앞이 확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마천화, 마천화인 것이다.

또한 그녀의 얼굴에는 보통 여인들에게는 없는 색기(色氣)같은 것이 있어서 장대호는 자신의 어느 한 부분이 한순간에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편네 보다 훨씬 젊고 아름답다‥‥‥)

장대호는 그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상대가 무림고수이건 아니건 가릴 바가 없었다.

그는 와락 마천화의 허리를 껴안았다.

[호호호‥‥‥확실히 제법이야. 마음에 들어. 그럼 어디 마음껏 기술을 발휘해봐!]

그녀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장대호가 그녀의 몸을 만지기 좋도록 해주었다.

물론 두 다리도 적당히 벌리고 섰다.

장대호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지나갔다.

(흐흐흐‥‥‥네년이 지금이 이래도 조금있으면 제발 살려달라고 온갖 아양을 다떨것이다.)

그는 그쪽 방면으로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고수라고 자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스르르‥‥‥

손으로 그녀의 몸에 닿을락말락 스치며 둔부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놈‥‥‥확실히 제법이야‥‥‥한동안 같이 놀아야 겠어.)

마천화는 실력있는 상대를 만나자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축축해지는 느낌이었다.

(흐흐‥‥‥죽여주마. 네년이 빌며 매달리도록 해주마.)

슬금슬금 장대호는 마천화의 몸을 더듬다가 한걸음 물러섰다.

[…………?]

그리고 그의 옷을 다 벗어버렸다.

탄탄해보이는 몸에 무엇보다 우람한 그의 육봉이 고개를 쳐들었다.

(헉!)

마천화는 보기만 해도 숨이 넘어갈 것같았다.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아니야! 내가 먼저 움직여선 안돼.)

하마터면 손을 내밀어 잡을 뻔 했던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그녀의 얼굴은 도화꽃 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참고 있는 것이다.

더욱 황홀한 정사를 위해서‥‥‥

다시 다가온 장대호는 마천화의 몸을 스다듬으로 자신의 물건으로 그녀의 하체를 툭툭 건드렸다.

마천화는 그때마다 짜릿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장대호의 눈에 기이한 빛이 감돌고,

그는 천천히 마천화의 치마를 걷어올렸다.

(흐흐‥‥‥짐작대로 네년도‥‥‥)

마천화는 겉옷 외에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치마가 걷어올라가자 두개의 하얀 옥기둥이 나타나고,

그 사이에 촉촉히 젖은 검은 비림이 나타났다.

장대호의 손은 치마 밑으로 해서 그녀의 둔부를 스다듬었다.

(아아‥‥‥그기 말고‥‥‥)

그녀는 숨이 턱에 닿을 것같았다.

장대호의 손이 더욱 거칠게 그녀를 유린해 주기 바라건만 장대호는 핵심을 피하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그녀가 둔부를 움직여 장대호의 손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인도하려 했다.

하지만,

장대호의 손은 여전히 주위를 맴돌뿐 이었다.

마천화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놈‥‥‥진짜 전문가야‥‥‥)

(흐흐흐‥‥‥네년이 내가 얼마나 많은 계집을 해치웠는지 알면 까무라칠 것이다.)

돈이 있을 때는 돈으로,

돈이 없을 때는 힘으로,

힘으로 되지 않을 무림의 여걸들은 약으로‥‥‥

그렇게 수많은 여자들을 강간했던 장대호였다.

그에게 당한 여자들은 많았지만,

아직 어느 여자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의 기술에 완전히 매료되어 무림의 여걸마저도 죽일 생각을 하기는 커녕 한번 만 더 해달라고 애원할 정도였으니‥‥‥

마천화의 옹달샘에 가득찼던 샘물이 마침내 밖으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주르르‥‥‥

그녀의 옥기둥같은 두다리를 타고 흘렀다.

두팔과 두 다리를 활짝 벌리고 서있는 마천화는 이미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달아올라있었다.

[흐윽 흐으‥‥‥]

마천화는 눈을 꼭감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장대호의 손이 마천화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사라락! 사라락!

 

             *** 

 

두 여인은 꼼짝도 못하고 빳빳하게 굳어있었다.

그녀들은 황군성의 사척반이나 되는 장검이 내뿜는 검기에 갇혀있었다.

[지난번의 서찰도 소저들이 전한 거겠지?]

두 여인은 서로 눈을 마주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소저들이 누군지 부터 말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황군성의 검이 이장 정도 떨어져 있는 탁자를 가리켰다.

[…………?]

[…………?]

갑자기 탁자가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두개의 다리가 잘려진 것이다.

기척도 흔적도 없이 발출된 검기에 의한 작용이었다.

두 여인의 놀람에 찬 눈동자 앞으로 그의 검은 다시 다가와 있었다.

마치,

중간의 동작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고 검이 정지해있을 때만 보이는 것같았다.

한 여인이 가볍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먼저 검을 거두셔요. 우리는 공자님의 적이 아니랍니다. 적이라니 상상할 수도 없지요.]

황군성은 냉냉하게 웃으며 검을 거두었다.

[내 검은 원래 있으나 마나이니 헛된 생각일랑 마시오.]

다른 여인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우리는 매화이검(梅花二劍)! 홍심련(紅心聯)에 소속되어 있어요. 련주님의 직속이죠.]

[홍심련?]

[그래요. 무림에서 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홍심련은 공자님의 친구죠.]

[나는 모르오.]

황군성은 차갑게 말했다.

[당신들이 전해준 정보는 엉터리였어. 대체 무슨 내게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지? 만약 나를 이용할 생각이라면‥‥‥]

[…………]

[당신들 홍심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오!]

매화이검 중 언니인 대매(大梅)가 말했다.

[어떻게 모르겠어요. 천하의 사신각마저 하루아침에 초토가 되어버렸는데‥‥‥]

[임매는 어디 있소.]

황군성은 무거운 음성으로 물었다.

대매가 그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사신이 지금 취옥성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

황군성은 묵묵히 매화이검을 노려보았다.

그의 몸에서는 구름같은 기도가 피어올랐다.

매화이검, 그녀들은 안색이 파랗게 변하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황군성이 느릿하게 물었다.

[홍심련의 목적은 천하제패인가?]

매화이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나를 이용해서 강자들을 제거하려고 하지? 전번엔 사신각, 이번엔 취옥성‥‥‥]

[오 오해예요. 우린 오직 공자님을 돕기 위해서‥‥‥]

[그래? 한데, 취옥성에 임매가 있는 것은 확실한가?]

매화이검은 흠칫하며 눈빛을 교환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탕!

황군성은 탁자를 짚으며 일어섰다.

[좋다! 아니 좋소. 소저들은 가시오. 하지만, 만약 취옥성에 임매가 없었을 경우!]

[…………]

[…………]

[당신들 홍심련은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오. 아마 홍심련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자들이 천하에서 모두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르오.]

매화이검의 안색이 흑빛으로 변했다.

(이 사람‥‥‥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홍심련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자가 천하에서 모두 사라진다‥‥‥

진정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황군성은 등을 돌리고 주루를 내려가고 있었다.

매화이검에게 비친 그의 등은 마치 대해보다 넓은 것같았다.

[빨리 련주님께‥‥‥]

그녀들은 빠르게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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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八 章

 

            色男色女 (一)

 

 

 

호남성 동정호(同庭湖),

늘어진 수양버들이 호수에 닿을락 말락하고,

가가소소 웃어 제끼는 유람객들의 소리가 주변의 숲을 살아있게 만든다.

군데군데 좌판에는 술과 안주를 놓고 손님을 상대하는 장사꾼들이 분주하다.

한데,

좌판 중에서 그늘이 가장 좋고 목도 좋아 보이는 곳,

돼지 목을 따는 듯한 소리가 갑자 터져 나왔다.

[이쌍놈의 새끼야! 차라리 나를 죽여라 죽여. 퉤! 더러운 새끼, 개보다 못한 새끼……]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들은 놀랍게도 서른 안팎의 젊은 여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 X같은 놈아, 내가 니놈한테 十을 팔았나 니놈 X을 샀나. 백주 대낮에 측간에서 달려들어 혼자서 부비고 핥고 쑤신 놈이 이제 와서 무슨 서방 노릇하겠다는 거냐. 이 X같은 놈아. 죽었으면 죽었지 네놈한테는 땡전 한 푼 못 준다. 씩씩……]

여인은 연주포(連珠砲)를 쏘아대듯 숨도 쉬지 않고 쏴붙혔다.

제법 반반한 얼굴의 그녀 앞에는 수치감과 당혹감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장한이 주먹을 올렸다 내렸다 하고있다.

[이……쌍년이……이……]

[죽여라! 죽여! 내가 죽고 나면 네놈은 어디 살 수 있관데? 귀신이 돼서라도 네놈의 오장육부를 파먹고 X까지 물어뜯어 버리겠다.]

바락바락 악을 쓰며 주먹앞에 얼굴을 내미는 여인이다.

[에잇 이년! 어디 죽어봐라!]

퍽!

[악!]

주위의 이목이 두려워 손대지 못하고 있던 장한도 이성을 잃었는지 여인의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얼굴을 감싸쥔 여인의 손 사이로 빨간 핏물이 줄줄흘러내렸다.

여인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이새끼야! 나라고 못때릴 줄 아느냐? 함께 죽자 이새끼야!]

여자 악귀같다고 하면 딱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이미 주먹질을 시작한 장한도 소리치며 잇달아 주먹을 날렸다.

[으아아아! 이十년 죽여버린다.]

퍽퍽퍽!

[아악! 죽여라 죽여!]

여인도 비명을 지르면서 앙겨들고,

풍류를 즐기러 나왔던 구경꾼들은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퍽!

여인은 갑자기 눈앞에 있던 장한의 얼굴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쿵!

그녀의 몸이 반드시 뒤로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얼굴에서 흘러내린 피가 호선을 그렸다.

눈이 벌개진 장한은 와락 여인의 몸위로 덮쳤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있는 여인의 얼굴과 가슴, 배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그의 눈은 광기를 번들거리고 있었다.

말릴 엄두도 내지 못한 구경꾼들이 차마 보지 못하고 눈길을 돌렸다.

순간,

북! 쫘악!

옷뜯어지는 소리가 중인들의 귀속을 파고들고,

여인의 옷은 아래위가 다 찢어져 유방과 아랫도리의 검은 부분이 확 드러났다.

[저……저런 개같은 놈! 아무리 여자가 심했기로서니 저런 개같은 짓을……]

보다못한 초로의 선비가 부채를 들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퍽!

젊은 망나니의 한번 발길질에 선비는 개구리처럼 뻗어버렸고,

사람들은 분개하면서도 다시 나서지 못했다.

 

진우란이 붉어진 얼굴로 소곤거렸다.

[아무리 부부라지만 저건 너무 심하군요.]

[내가 어떻게 해보겠소.]

황군성은 혈도를 쳐서 쓰러진 선비에게 정신이 들게 했다.

그리고 장한과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장한은 여인의 몸 위에 자신의 몸을 실고 뭔가를 삽입하려는 중이었다.

진정,

개가 따로 없었다.

인간이라면 수치감으로 이런 일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림자가 자신을 덮는 것을 느낀 장한은 여인의 몸 위에 엎드리면서 힘껏 호미각(虎尾脚)을 날렸다.

퍽!

[어이쿠!]

황군성의 몸에 반탄된 힘에 의해 장한은 땅을 뒹굴며 발을 감싸잡았다.

헐떡 까발린 그의 남성이 시꺼멓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저벅저벅!

장한은 다가오는 칠척장신의 황군성을 보곤 겁에 질려 비실비실 기어서 물어났다.

하지만,

황군성의 손은 그의 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죽이진 말아요!]

진우란의 다급한 음성이 들리고,

휙!

훌렁!

장한은 허공을 가로질러 호수로 날아가고,

펄렁펄렁!

벗겨진 그의 바지가 치부를 드러낸 채 정신을 잃고있는 여인의 몸위에 알맞게 내려 덮혔다.

[어푸! 어푸! 살려줘! 읍……꼬로록!]

헤엄을 치지 못하는 것인지 호수에 떨어진 장한이 퍼덩개를 치며 살려달라고 고함 치고있다.

황군성은 돌아서서 진우란에게 오면서 슬쩍 지풍을 날려 여인의 인중을 가볍게 찍었다.

순간,

번쩍 눈을 떤 여인이 용수철 튕기듯이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 十할새깨 어디 있어. 어디 있어~]

눈을 희번떡 거리며 살피다가,

마침내 물에서 꼬르락하는 장한을 여인이 발견했다.

그녀는 다짜고짜 좌판에서 닭을 쫓는데 써던 시퍼런 식도(食刀)를 들고 장한을 향해 달려갔다.

벌어진 옷자락에서 흉물스럽게 유방이 덜렁거리고,

사타구니의 음영은 혐오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깡!

털썩!

진우란이 황군성을 보고 배시시 웃으며 자신의 행낭을 들어보였다.

여인은 팍 엎어진 채 다시 정신을 잃고 있었다.

진우란이 그녀가 옆을 스치고 갈 때 행낭으로 뒤통수를 친 것이었다.

짝짝짝!

[소저! 정말 잘했소. 그런 사람같지 않은 것들은 그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그녀를 추켜세웠다.

진우란은 더욱 얼굴이 붉어져 황군성의 손을 이끌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숲속의 바위에 앉아 솔바람 향기를 맡으며 진우란이 물었다.

[그들은 왜 싸웠을까요? 부부같던데……]

[총명한 진소저가 내게 그런 것을 다 묻다니 뜻밖이오.]

황군성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진우란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가고, 또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날이 어두워 오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나를 찾아낼까? 그렇다면 진소저의 짐작은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것이겠지.)

황군성은 며칠 전부터 갑갑한 심정으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 자기에게 임단심의 서찰을 전해 주었던 자를 기다리는 것이다.

(임매의 소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 출처도 정확하게 확인해보지 않는 우를 범했어. 바보같이‥‥‥)

그자를 만나기 위해 그는 행적을 완전히 드러내놓고 움직이고 있다.

만일 그자가 황군성을 어떤 목적에 이용하고자 했다면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진우란과 그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제 여인숙으로 가요.]

진우란이 그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여인숙? 또?]

[나는 가난해요. 당신같은 부자가 아니니 여인숙에서 잘 수밖에 더 있겠어요?]

진우란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두볼에 상큼한 보조개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이쁘게 패였다.

객점은 숙식을 겸할 수도 있고 시설도 훨씬 낫다.

하지만 여인숙은 말그대로 떠돌이들이 잠자는 곳에 불과하다.

황군성은 며칠 여인숙에서 지내보고 차라리 밖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던 것이다.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해도 진우란은 막무가내다.

이 시골아가씨는 검소한 생활이 몸에 향기처럼 배인 모양이었다.

황군성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보다는 나았지만 마지못해 끌려가기는 마찬가지였다.

 

× × ×

 

[빠드득! 그 十년을 갈아마셔 버리겠어!]

이빨을 가는 소리와 함께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여인이 흉악하게 눈을 빛내며 얼굴을 계란으로 문지르고 있다.

낮에 호수변에서 노점을 하던 그 여인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그 뭔년이 누군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 새끼도 죽여버리겠어. 감히 나 장대호(張大虎)를 건드리다니!]

그 여인의 뒤에서 장한이 말했다.

한데,

그들의 자세는 참으로 요상했다.

여인은 엎드려서 동경을 바라보고 있고 그 뒤에서 장대호가 무릎을 꿇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다.

낮에만 해도 결코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을 원수처럼 싸우더니 밤이되자 묘하게도 다시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몸은 아직 결합하지 않은 상태였다.

장대호가 자신의 뿌리로 여인의 둔부사이에 갖다댔다.

그의 얼굴이 색기로 긴장되고 여인이 한손을 뒤로 돌려 그의 뿌리를 잡으려 했다.

순간,

[헉!]

장대호의 허리가 심하게 한번 움직이자 여인은 동경에 얼굴을 부딪히며 쳐졌다.

장대호의 손이 우악스럽게 여인의 둔부를 움켜쥐었다.

[악! 으흐‥‥‥흑!]

여인은 교성을 지르면서 둔부를 움직였다.

장대호의 몸도 앞뒤로 요동쳤다.

[더! 더세게! 헉헉! 아아! 나죽어!]

여인은 아예 비명처럼 소리치고 있었다.

여인이 급격하게 둔부를 흔들었다.

[아아!]

[이 十八년! 으아!]

장대호도 욕설을 하면서 미친듯이 몸을 움직였다.

[못참겠어!]

여인이 벌떡 일어나며 뒤에 있던 장대호를 넘어뜨려 버렸다.

그러자 묘하게도 장대호위에 그 여인이 앉은 자세가 되어버렸다.

[아‥‥‥아‥‥‥]

여인은 한손을 장대호의 뿌리와 결합하고 있는 자신의 음부에 갖다대고는 문지르며 아래위로 움직였다.

아래에서 장대호가 세차게 쳐올릴 때마다 여인은 숨이 넘어가는 비명소리를 냈다.

[아윽‥‥‥]

갑자기 여인은 절정에 달했는지 사타구니를 오무리며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장대호는 아니었다.

여전히 세차게 움직이자 여인은 잠시 혼절해버리는 것같았다.

그때였다.

(착각이었나?)

장대호는 천정에서 누군가가 꼭 자기와 눈을 마주쳤던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찰라지간이어서 확신할 수 없었다.

[최고야! 흥흥!]

정신을 차린 여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불같이 치솟아 오른 정욕때문에 장대호는 그 사실을 젖혀버렸다.

와락 여인을 밀쳐 넘어뜨리고는 그위로 덮쳐들었다.

[악!]

여인이 비명을 지르고,

장대호는 한손으로는 여인의 유방을 힘껏 비틀고 입으로는 다른 유방을 깨물었다.

[아악!]

그들의 정사는 처절한 사투였다.

여인은 장대호의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순간 장대호의 손가락이 그녀의 은밀한 곳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헉!]

여인의 손이 느슨해지자 장대호는 그녀의 전신을 샅샅이 핥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여인의 몸위에서 요동치며 움직였고,

마침내 세찬 분출로서 그들의 정사를 마무리했다.

[학학‥‥‥]

[흑흑‥‥‥]

가쁜 숨소리가 방안의 더운 열기속을 맴돌았다.

벌렁 드러누운 장대호의 물건은 여전히 더세보였다.

대단한 대물이었다.

[그 새끼가 도할망구의 여인숙에 있는게 틀림없어?]

장대호가 물었다.

[틀림없어! 들어가는 걸 내가 직접 확인해봤으니까.]

[흐흐흐흐‥‥‥]

장대호의 눈에 음산한 살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꿀꺽! 그놈은 죽여버리고 그 계집은 내가‥‥‥흐흐‥‥‥]

[흥! 그놈도 그냥 죽일 순 없지. 자 나가봐야지.]

 

한쌍의 미치광이 같은 탕남탕녀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도노파의 여인숙으로 가는 것이다.

그들이 나간 방,

휙!

천정에서 흰 그림자가 내려왔다.

한데,

이게 누군가?

아름다운 모습, 요염한 얼굴, 이십이삼 세의 나이,

음양괴 마차달의 딸인 마천화가 아닌가?

입술을 핥으며 미소를 지어보인 마천화가 중얼거렸다.

[그놈‥‥‥대물이었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호호호‥‥‥]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는 창으로 넘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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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七 章

 

           농가의 북소리

 

 

[뭐라고? 사신각이 갑자기 자취를 감춰 버렸다는 게 어디 말이나 돼?]

뾰족한 소리가 가로막고 있는 휘장을 뚫고 나왔다.

이곳은 언젠가 본 적있는 기루의 오층이다.

휘장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여인이 부복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

[아마도 무창에서 갑자기 무너졌다는 선인루가 그들의 총단이었던 것같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사신이 죽지 않았는데 사신각이 사라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다.]

휘장뒤의 여인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모든 수하들에게 알려라. 혈룡도왕을 찾는데 전력을 다하라고.]

여인의 손을 휙 내저었다.

[당장!]

사라락!

그녀의 긴소매가 휘장을 스쳤다.

[존명!]

두 여인은 천정을 통해서 바람처럼 사라져버리고,

휘장 뒤의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마른 손을 비비며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사신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가 없는데……하는 수 없지. 다음 상대로는 취옥성(翠玉城)이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영활한 두뇌를 굴리고 있었다.

 

× × ×

 

땅에는 짙은 으스름이 내려 앉았는데,

총총이는 별들은 오직 하늘만을 밝히고 있다.

[당신은 이곳에서 자면 되어요.]

소녀는 누덕누덕 기운 홑이불을 가지고 방을 나서면서 말했다.

황군성은 완전한 그녀의 포로였다.

그는 이미 자신의 의지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가 저녁을 먹고난 후에 가겠다고 했을 때,

소녀의 화난 목소리가 그의 오금에서 힘을 뽑아버렸다.

[손님을 밤에 쫓아낼 박정한 사람같아요?]

 

탕!

문은 닫히고, 하는 수 없이 벌렁 드러누운 황군성은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어딘지 모르게 신비하고,

그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소녀의 곁을 어쩌면 그도 떠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또한 그가 간댔자 뚜렷한 행선지가 있는 것도 아님에야……

한편,

소녀는 부엌에서 이불을 감은 채 웅크리고 새록새록 잠이들어있었다.

그녀의 발치에는 검은 고양이가 몸을 말고 꼬리를 흔든다.

 

뿌연 새벽안개가 마을을 뒤덮고 있는데,

덜컹!

황군성은 와락 방문을 밀어 젖히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도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빨리 일어나요. 그러다간 밥 굶기 딱 알맞아요.]

소녀가 마치 동생을 꾸짖는 듯한 어조로 황군성을 깨웠다.

[아침은 밭에 갔다 와서 먹도록 하고 당장 밭으로 가요.]

쫑알대며 황군성의 팔을 끌어 마당으로 나온 소녀는 이미 준비된 수레에 황군성을 밀어 올렸다.

한 지붕아래서 하룻밤을 지내서 그런지 소녀는 꽤나 친근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마음속으로 소녀의 말을 따르기 위한 어떤 핑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덜커덕! 덜커덕!

소녀와 함께 수레를 타고 가면서도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소녀의 말에 따르는 것으로 자꾸만 마음을 위장하고 있었다.

그러한 현상에 황군성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옆에서는 소녀의 풋풋한 향이 그의 코를 자극하고,

돌처럼 딱딱한 그의 심장을 아래위로 흔들어놓고 있었다.

소녀가 그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황군성은 가슴이 쿵 떨어지는 듯이 놀랐다.

속마음을 들킨 것같았기 때문이다.

소녀는 마음대로 하는 철부지처럼 행동하며 어느새 황군성의 마음을 사로잡아놓고 있었다.

황군성의 마음에서 임단심은 마치 꿈속의 여인인양 아득히 멀어진 기분이었다.

햇살이 안개를 완전히 녹여냈을 때,

그들은 황량하고 거친 밭에 도착했다.

[이 밭을 갈아야 해요. 요즘은 가물어서 큰일이죠. 하지만 오늘쯤은 비가 올 텐데 물이 잘 스며들도록 미리 준비해야죠.]

안개가 걷혀진 하늘에는 구름한 점 없다.

황군성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는 않았지만 머슴처럼 쟁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대체로 중국에서는 소가 농사일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쟁기를 끄는 경우가 많았다.

농가마다 소를 보유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경제사정이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군성은 열 마리 소보다 나았다.

소녀가 쟁기를 조종하고 그가 끌었는데 메마르고 돌이 많은 거친 밭임에도 마치 모래를 가는 듯이 쉽게 끝내버렸다.

[당신 정말 힘이 세군요. 당신만 있으면 농사일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소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칭찬했다.

황군성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도 소저의 수레나 끌고 쟁기나 끌면서 살았으면 좋겠소.]

순간,

그토록 뻔뻔스러워 보이던 소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버렸다.

황군성은 자신의 실언을 깨달았으나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틈도 없이 갈곳으로 가버리고 마음속에 남아 버린 것이다.

[흥!]

소녀가 다만 코웃음을 치고 수레에 쟁기를 번쩍 들어다 얹었다.

멋쩍어진 황군성은 그녀의 뒤를 따라 수레에 올라앉았다.

나귀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란히 앉은 한 쌍의 남녀사이에 생긴 묘한 침묵은 그들이 마을에 당도할 때까지 계속됐다.

동구(洞口)에는 일 나가는 사람들이 괭이를 들고 나서고 있었다.

[아이구! 진(晉)아가씨가 또 튼실한 일군을 구했군 그래. 참 재주도 좋지.]

중 늙은이의 아침 인사를 웃음으로 받으며 소녀가 말했다.

[양(楊)할아버지 안녕하셔요? 하지만, 이분은 일군이 아니예요.]

양이라 불린 중 늙은이가 황군성을 유심히 보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진아가씨 부군(夫君)되실 분인가?]

소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 손님이니까요.]

황군성은 소녀의 말을 속으로 뇌까리며 중얼거렸다.

(꼭 그렇지도 않다? 그럼 꼭 그렇지 않지도 않다는 말이잖은가?)

나귀는 주인이 누구와 이야기하던 세우지 않는 한 걸음을 옮기고,

양노인을 뒤로 하고 수레는 올라갔다.

쿠르르릉……!

그들이 탄 수레가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멀리서 은은한 뇌성(雷聲)이 들려왔다.

휘이이이……

스산한 바람이 일면서 황군성의 머리카락을 날렸다.

하늘을 바라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말짱했는데 검은 구름이 치달으면서 사위를 어둡게 하고 있었다.

황군성은 소녀를 힐끗보았다.

오늘 비가 올거라는 소녀의 말이 틀림없이 적중할 것같았다.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 조짐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있을 시간 없어요. 빨리 나귀를 몰아넣어야죠.]

소녀가 폴짝 뛰어내리며 말했다.

투둑! 투둑!

벌써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며 황군성의 뺨을 타고 목을 거쳐 가슴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쏴아아아!

우르르렁! 쿠쾅!

소녀가 나귀를 몰아넣고 났을 때 급기야 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흠뻑 비에 젖은 소녀는 후다닥 방으로 달려갔고,

황군성이 그 뒤를 따랐다.

비에 젖은 옷이 마르면서 몸에서는 후끈후끈 김이 나고 있었다.

얇은 옷이 젖으면서 몸에 착 달라붙어버린 소녀의 몸 굴곡이 뚜렷하게 내비쳤다.

황군성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딴 곳에 두었다.

소녀도 자신의 몸이 나체나 다름없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젖은 옷위에 그대로 이불을 감았다.

[아침은 부엌에 준비되어 있어요. 좀 가져다 주시겠어요?]

비에 젖은 때문인지 소녀의 목소리는 약간 울려나왔다.

부엌에는 남아있는 화기(火氣)로 말미암아 여전히 따뜻한 아침식사가 준비되어있었다.

[킥!]

음식을 챙겨서 들어오는 황군성을 보면서 소녀가 말괄량이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번쩍!

우르르……꽝!

쏟아지는 빗속에 뇌선벽력의 간주가 그들의 식사에 포함되어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그녀는 발끝으로 그것들을 한쪽으로 쭉 밀쳐버렸다.

황군성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녀와 그는 농담을 주고 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서로를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필요성도 없다.

멀뚱멀뚱 생각에 잠기는 황군성을 소녀는 크다란 눈망울을 굴리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가 물었다.

[당신은 장한가도 알고 있으니 음률(音律)도 알겠군요?]

[잘 알지 못하오. 하지만 듣기는 좋아하는 편이요.]

그녀의 물음이 황군성의 우중충한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대화도 하지 않고 젊은 남녀가 좁은 방안에 있다는 것은 어떤 면으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밖에선 하늘 북이 울리니 그 장단에 마주 쳐볼까요?]

그녀는 침상 한쪽에서 괴상한 생김새의 북을 꺼냈다.

그 북은 지름이 한자 정도이고 두께는 불과 두치 정도였다.

그리고 한손으로 드는 것인 듯 손잡이가 달려있다.

아주 오래된 물건인듯 북 전체에서 반들반들 윤이나고 있었다.

둥!

소녀가 북채로 가볍게 두들기자 북소리는 쏟아지는 비 소리와 뇌성을 몰아내며 울려퍼졌다.

둥! 둥! 둥! 탁! 둥!둥!탁! 퉁타닥!

소녀의 북소리는 사람의 가슴을 두들기고 영혼을 불러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황군성은 절묘한 북소리에 깊이 매료되고 있었다.

북소리가 그처럼 훌륭한 음률을 이룰줄은 꿈에도 몰랐다.

둥둥둥둥!

북소리는 가빠졌다가 다시 느려지기도 하고,

강해졌다가 약해지기도 했다.

끊어질 것같기도 하다가 뇌성벽력을 방불케 할만큼 힘차게 울러퍼지기도 했다.

북소리는 황군성의 마음을 완전이 옭아매고 있었다.

(아! 음률도 무공과 전혀 다르지 않구나. 이것이 만약 무공이라면 천고에 드문 것일 것……)

갑자기,

두둥!

소리를 끝으로 북소리는 멈춰지고 말았다.

황군성은 의아한 눈초리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휙!

소녀는 북을 한쪽으로 던져버리며 말했다.

[흥이 나지 않아요. 날씨 탓인가봐요. 자꾸 우울해져요.]

소녀는 무릎을 싸안으며 얼굴을 무릎에 묻었다.

[말해 봐요. 당신이 찾아다니는 그 여자는 누구죠?]

[내 미혼처요.]

황군성은 솔직하게 말했다.

소녀가 고개를 발딱 들었다.

[미혼처? 그럼 아직 혼례를 올린 것은 아니군요.]

[하지만 진배없소.]

[그럼 그 여잔 어디에 있어요?]

황군성은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내가 잘못하여 떠나버리고 말았소. 지금은 아주 흉악한 악인의 손에 잡혀있는 모양이오.]

[그 악인이 누구예요?]

소녀는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황군성에게로 다가들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사신이라고 하는 마두인데 소저는 아마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오.]

[사신?!]

소녀가 소리치고는 그 소리가 너무 컸다 싶었는지 얼른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미……미안해요. 너무 놀라서……그럼 그녀는 죽었어요?]

[사신은 저승사자가 아니오. 단지 그를 아는 자들이 그렇게 부를 뿐이오. 그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이지요. 그것도 아주 늙은 노마……]

소녀가 가슴을 눌러 진정시키는 시늉을 한 후에 물었다.

[한데 사신이 왜 그녀를 데려갔지요?]

황군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점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모르겠소. 이제 생각해 보니 도저히 모르겠소. 어쩌면 그녀와 원한이 있었지 않았나 싶은 정도밖에는……]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상한데……? 한데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녀가 사신의 손에 잡혀있다는 것을 알았죠?]

[누군가 내게 서찰을 전해줬소. 서찰에는 그녀가 있는 곳을 알리는 내용이 적혀있었고……]

소녀가 단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서찰을 전해준 사람이 누군지 모르죠?]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 앞에서 그는 완전한 바보가 되어있었다.

[당신은 속았어요. 누군가가 당신을 이용해서 사신을 제거하려고 했어요. 정말이지 당신은 덩치만 컸지 도무지 생각할 줄을 모르는 군요.]

황군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실제에 있어서는 총명하기 그지없는 그이지만,

임단심에 대해서는 그와같은 헛점이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었고,

소녀가 일일이 지적하고서야 겨우 알게된 것이다.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분노가 그의 가슴을 가득채우고 올라오고있었다.

소녀가 말했다.

[어쩌면 당신을 이용하려고 한 자가 바로 그 여자인지도 몰라요.]

황군성은 흠칫하며 말했다.

[절대 그럴리 없소.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누구나 자신이 신뢰한 곳에서 신뢰를 찾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실망이란 종종 믿음을 두었던 곳에서 거두어지는 악과(惡果)이지요.]

 

× × ×

 

소녀의 이름은 진우란(晉于蘭)이라고 했다.

그녀의 총명은 황군성을 연거푸 놀라게 하고 있었다.

한갓 시골소녀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탁월한 견식과 지혜를 갈무리하고 있었다.

특히 그녀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복종하게 하는 힘이있었다.

진우란은 나귀를 이웃에 맞겨 버리고 돌아와서 간단한 짐을 꾸리고 황군성을 따라나섰다.

이런 사람이 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대단치 않았으나 보면 볼 수록 대단해 보이는 사람,

마치 흙 묻은 구슬처럼 처음에는 시시해 보이다가,

손으로 부비고 만지면 만질 수록 그 속에서 밝은 광채를 드러내는 사람.

진우란은 바로 그런 소녀였다.

진우란의 황군성의 마음을 교묘히 비집고 들어가 있었다.

황군성은 그녀에게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어떤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진우란은 황군성을 따라 강호행에 나섰다.

이것이 그녀에게나 황군성에게나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황군성은 모르고 있었다.

단지,

그녀와 함께 있으면서 편안함과 아울러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임단심을 향한 죄책감이었다.

이미 그의 마음은 엉뚱한 소녀에게로 돌아서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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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六 章

 

          天下를 원하는 자들, 그리고 少女

 

 

 

남궁세가(南宮勢家),

발군의 인재들을 무림에 내놓아 그 이름과 명맥을 수십대에 걸쳐 보존해오고 있는 전통의 무가(武家),

비록 당금에 와서 그 세가 시들기는 했지만,

전통이 있는한 영원하리라고 하는 남궁세가,

거대한 남궁가의 장원에는 장원전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있는 가산(假山)이있다.

견고하고 빛 좋은 바위들을 쌓아서 형태를 이루고 진흙고 모래로 틈을 매운 후,

갖가지 꽃과 나무를 심어 아름답기 그지 없이 만든 가산,

그 주위로는 또한 쪽빛 인공호(人工湖)가 둘러있다.

호수의 파란 물로는 드러날락 말락하게 흰 대리석 교각이 놓여있고,

연잎이 가산의 둘레를 둘러싼 아래에는 팔뚝보다 굵은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다.

사라랑!

바람이 연잎들을 흔들 때마다 호수에는 미미한 잔물결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물에 비친 어떤 얼굴이 물결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일렁인다.

그 얼굴,

육십은 넘었을 듯한데,

붉으스레한 얼굴은 사십대의 장한인듯 젊어보인다.

인자한 얼굴은 무한한 여유를 간직한 듯 넓고,

크고 빛나는 두 눈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맑고 깨끗한 눈이었다.

가산 기슭에 쪼그리고 앉아 물을 들여다 보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마치 시골노인네 같아 우습기까지 했으나,

그의 환우는 헌앙하여 주위의 모든 것이 빛을 잃고 있는 것같았다.

노인은 물을 빤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남궁파야 남궁파야, 이제 때가 오고 있지 않느냐? 사부는 이미 해외로 나가버렸고 천하는 어지럽다. 전쟁……전쟁……, 무림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네가 어떻게 무림황제(武林皇帝)가 될 수 있겠느냐?]

아!아!

이게 무슨 소린가?

남궁파라니……

그리고 무림황제라니……

남궁파,

전륜법왕이 제자이자 현 남궁세가의 가주이며 강호에서 비밀의 세력인 일궁 현현궁의 궁주인 그 남궁파,

무림의 혼란 속에서 무림황제를 꿈꾸는 노인은 바로 남궁파였던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무림은 강자(强者)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제 힘을 기르는 시기는 끝났다. 서로가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물에 비친 그의 얼굴 밑으로 유유히 물고기가 헤엄쳐갔다.

[남궁파! 이제 네가 그들에게 먹이를 던져라. 그들이 먹이를 다투어 피를 흘리게 해라. 모든 강자들을 최후로 누르고 무림황제가 될 자는 바로 너 남궁파 뿐이다.]

남궁파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먹이는 바로……]

 

× × ×

 

남궁파가 물에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뇌까리고 있던 그 시간,

황산(黃山),

기슭에 범처럼 웅크리고 있는 장대한 성벽(城壁)……

그 주위에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넓은 천년 거목 숲의 융단,

성벽안에 하늘을 찌를 듯 우뚝우뚝 치솟은 고루거각들……

이 거대한 성은 최강의 전투력을 지닌 곳이라는,

 

<취옥성(翠玉城)!>

 

바로 취옥성이다.

태양이 높은 망루를 태워버릴 듯이 작열하며 비추고 있다.

한데,

눈부신 빛을 당당히 마주보며 이글거리는 태양을 압도할 듯 서서 망루를 지키고 있는 청년,

놀랍게도 청년의 머리카락의 벽발(碧髮),

푸른 머리카락이 아닌가?

푸른 머리카락의 준수한 청년……

이는,

틀림없이 냉천삭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북혈마(北血魔)!

바로 그다.

북해의 신으로 군림하는 자.

그가 태양을 향해 말한다.

[천년한옥부(千年寒玉符)를 손에 넣기만 하면 영원한 불사지체를 이루게 되는데……본 북혈마, 어떤 인물 어떤 무공도 두렵지 않다. 천년한옥부를 얻어 불사지체만 이루게 되면 천하는 영원히 이 북혈마의 것이다.]

북혈마는 북해에서 절대마공을 익힌 인물이다.

그의 마공은 천년한옥부를 통해서만이 완성될 수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그는 영원한 불사지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북혈마는 그 불사지체의 몸으로 천하의 영원한 주인이 되고자 한다.

북혈마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암울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한데, 천년한옥부를 아직도 구하지 못했다. 그것이 없으면 내 마공은 폭발하고 말 것인데……이제 더 이상 천년한옥부만 찾을 수는 없다.]

더 이상 찾을 수만은 없다……

그럼?

[천하! 천년한옥부를 얻을 수 없다면 천하라도 얻어야 한다!!]

북혈마는 한쪽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순간,

 

와아󰠏󰠏󰠏󰠏󰠏󰠏󰠏󰠏󰠏!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이 취옥성을 뒤흔들었다.

북혈마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렸다.

 

성주께 죽음으로 충성을󰠏󰠏󰠏󰠏󰠏󰠏!

 

죽음으로 충성을……죽음으로 충성을……

황산골짜기마다 메아리치는 함성들……

북혈마의 충성스런 수하 삼절일천군단(三絶一千軍團)의 것이었다.

 

× × ×

 

[형님은 이제 어쩔 작정입니까?]

황군우가 물었다.

황창설은 이미 황군성이 나오기도 전에 달랑 서찰하나만 남기고 소음곡으로 떠나버렸다.

황군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신(死神)을 쫓아서 그녀를 찾아야지. 너는?]

황군우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당분간 혼자서 무림을 다녀볼까 합니다.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머물기도 하고요. 혹시 압니까, 형님처럼 아름다운 소저를 만날지……]

황군성은 피식 웃었다.

 

× × ×

 

(이제는 사신각에 접근하는 방법도 어렵겠지.)

관도를 터벅터벅 걸으면서 황군성은 어떻게 사신을 찾을 수 있을 지 궁리하고 있었다.

어깨에는 전에 없던 사척반의 장검이 매달려있다.

아버지 황창설이 준 고검(古劍)이다.

황군성은 허괄의 집에서 나온 후 사신에게 접근하기 위해 여러 모로 애써 보았다.

그러나,

사신각은 총단이 파괴되었을 뿐인데,

어느 곳에도 종적을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임단심을 찾아야 하는 황군성의 마음은 조급하기 이를데 없는데……

모든 단서는 종적을 감춰버리고 길은 끊어져 버린 것이다.

상황이 처음으로 돌아가버렸다.

황군성은 무작정 그녀를 찾아헤매는 수 밖에 없었다.

 

다가닥다가닥!

관도에는 이따금 마차들이 지나가면서 부연 먼지를 일으키기도 하고,

맞은 편에서 오는 한무리의 장사군들의 수다스런 목소리가 황군성의 귀를 번거롭게 하기도 한다.

날은 맑고, 바람은 선선하다.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들 빠른 신법을 가지고 있는 황군성이지만,

빨리 달려서 갈곳이 없다.

터벅터벅 걷는 걸음이 무겁기만하다.

문득,

[깔깔깔……]

간드러진 여인의 교소가 그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가끔,

황군성의 큰 덩치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철부지 계집아이들이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그런 계집아이겠거니 하고 고개도 돌려보지 않고 걸어갔다.

짤랑짤랑!

방울소리가 들리고,

그의 곁으로 나귀가 끄는 짐수레가 하나가 다가왔다.

[이봐요, 아저씨!]

목구멍을 간질거리게 하는 유쾌한 음성에 황군성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앞에는 나귀가 끄는 수레에 올라앉은 아리따운 시골 소녀가 생긋생긋 웃고있었다.

군데군데 흙이 묻은 옷을 입고 볼 한쪽에도 분가루처럼 부옇게 마른 흙이 묻어있었지만,

해맑은 얼굴이란 바로 그녀와 같은 얼굴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뒤쪽에는 비워진 거름통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냄새가 황군성의 코를 찔렀다.

그녀가 생글거리며 반짝이는 눈초리로 물었다.

[아저씨! 무겁지 않아요?]

[…………?]

황군성은 무슨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소녀가 앙증맞은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아저씬 다른 사람보다 훨씬 커니까 걷기에도 무거울 것 아니냐 말이에요?]

황군성은 난생 처음 받아보는 엉뚱한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음으로 대답했다.

[소저는 소저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오?]

소녀가 쳇 소리를 냈다.

[자기가 시끄러울 정도가 되도록 떠드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나도 내가 무거울 정도로 크지는 않다오.]

[흥! 이 숙녀께서 인심을 써서 좀 태워주려고 했더니 성의도 모르고. 쳇!]

소녀는 쫑알거리며 나귀를 황군성의 몸쪽으로 몰아부쳤다.

심통을 부리는 것이었다.

한데,

번쩍하는 순간에 황군성의 몸은 수레의 다른 쪽에 서있었다.

소녀가 눈이 동그라졌다.

[어? 아주 빠르군요.]

황군성은 별난 소녀를 만났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럼 이 나귀와 달리기 해봐요. 이럇!]

두두두두!

수레가 황군성의 등뒤로 달려왔다.

황군성의 몸이 흔들하면서 옆으로 미끄러졌다.

순간,

[어맛!]

소녀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수레에서 나귀가 분리되어 달아나버렸다.

수레는 곤두박질 칠 지경이 되었다.

소녀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그녀의 뒤에 있는 인분통이 여차하면 그녀를 향해 덮쳐들 판인 것이다.

하지만,

수레는 나귀가 없는 체로 한동안 밀려가다가 멈춰섰다.

황군성이 재빨리 수레의 채를 잡고 중심을 잡아준 때문이다.

저 멀리 나귀는 신나게 달려가고 있었다.

소녀가 울쌍을 지었다.

[모두 아저씨 때문이에요. 이 수레를 이제 어떻게 가지고가? 엉엉!]

황군성은 당황했다.

실로 난감한 처지에 빠지고 만 것이다.

관도에는 사람들이 그들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떼를 써는 소녀를 두고 달아날 수도 없고 꾸짖을 수도 없다.

황군성은 급히 손을 저어 그녀의 울음을 멈추게 하려고 하면서 말했다.

[집, 집이 어디요? 내가 끌어다 주겠소.]

뚝!

소녀는 거짓말 처럼 울음을 멈추고 배시시 웃었다.

황군성은 기가 막혔으나 이미 자신의 입으로 약속해버린 일이다.

[그래도 양심은 있군요. 그럼 어서 끌어요. 우리집은 좀 먼데 있어요.]

소녀는 수레에 앉아 발을 얄랑거리며 그를 재촉했다.

황군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는 그래 양심도 없는것 같구나. 이 철부지……)

한손으로 수레체를 잡고 황군성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소녀는 황군성이 수레를 끈다는 사실이 무척 즐거운 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큰바람 부니 구름이 날아 올라가도다.

위세를 해내에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도다.

어찌해서든지 명사를 얻어 사방을 지키게 하리라.

 

황군성은 흠칫 놀랐다.

(이 시골 소녀가 어떻게 해서 대풍가(大風歌)를 안단 말인가? 더구나 나를 놀리는 듯이……)

소녀가 부른 노래는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지었다는 대풍가였다.

그녀의 노래는 황군성으로 하여금 수레를 끌게 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천하를 얻고 금의환향하는 한고조의 기분같다는 것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었다.

황군성은 자신도 모르게 경각심이 들어 소녀를 바라보았지만,

소녀는 해맑은 웃음으로 천진스럽게 혀를 쏙 내밀어 보일 뿐이다.

[왼쪽의 샛길로 가셔요.]

소녀가 손짓을 하며 관도 옆의 작은 길을 가리켰다.

그리고 흥겨운 듯이 다리를 흔들어 대며 노래를 불렀다.

여러 개의 노래를 부른 후,

그녀는 백낙천의 장한가(長恨歌)를 읊고 있었다.

한데,

그 음성의 처량하고 구슬픔이 어찌나 애절한지,

황군성은 자신도 모르게 홀려들어 임단심의 생각에 아득해 있었다.

 

……이별에 임하여 은근하게 거듭 부탁 말을 하는데

말 가운데 맹세 있으니 두 마음은 서로를 알았네.

칠월칠일 장생전에서

한밤중 사람 없는 데서 속삭였을 때……

 

구절이 이에 이르자 황군성은 무심코 입을 열어 뒷구절을 잇고는 망연해져 있었다.

[하늘에 있어서는 원컨대 비익조가 되고 땅에 있어서는 원컨대 연리지라 되리라. 하늘은 장구하고 땅은 구원하되 다할 때 있으려니와, 이 한은 면면하여 끊어질 때 없으리.]

수레는 숲옆의 길가에 멈춰서 버렸고,

넋잃은 황군성의 표정을 소녀는 훔쳐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봐요. 여기서 해지길 기다릴 참이에요? 빨리가요!]

톡 쏘는 음성으로 내질렀다.

펏득 정신이 든 황군성은 소처럼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소녀도 그의 그러한 표정을 보고는 감히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길은 작은 야산을 돌아가고,

야산의 뒤에 옴팍한 분지에는 개울을 앞에두고 이십여 호의 집들이 있는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개울에 걸쳐진 다리를 건너고,

마을 가운데로 나있는 좁은 길을 거슬러 올라가,

소녀의 집은 마을의 제일 위쪽에 외따로 있었다.

옹색한 초가지붕은 검게 썩어있고,

힝힝!

좁은 마당에는 먼저온 원수같은 나귀가 주인과 자신의 후임을 맞이하고 있었다.

수레가 집안으로 들어서자 소녀는 폴짝 뛰어내렸다.

그녀는 황군성이 수레를 내려놓기도 전에 담장 한쪽에 있는 작은 옹달샘에서 표주박을 들고 왔다.

표주박에는 찰랑이는 맑은 물이 파란하늘을 비춰보였다.

[정말 고마워요.]

황군성은 그녀가 받쳐드는 표주박을 본체만체,

수레 채를 내려놓고는 등을 돌렸다.

소녀의 눈썹 끝이 하늘을 가리켰다.

[이봐욧!]

귀청을 찢을 듯한 음성이 황군성의 발을 멈추게 하고,

[당신은 번번히 나를 괴롭히는 군요. 이번엔 그래 나를 염치도 없는 여자로 만들 셈이에요?]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나름대로 일리있는 소리같기도 하다.

[어서들어와욧. 일을 했으면 밥이라도 한끼 같이 먹어야잖아요.]

그녀는 앵돌아서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황군성은 묘하게도 그녀의 말에 순종하고 있었다.

이같은 일은 임단심과 함께 있을 땐 결코 있을 수 없었던 것인데……

그녀는 오로지 황군성의 뜻에따라 움직이기만 했을 뿐이기에.

문이 열려진 토담집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서 황군성은 밥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토닥토닥!

소녀는 부엌에서 연방 칼질하는 소리와 맛있는 음식냄새를 풍기고 있다.

황군성은 자신이 왜 이렇게 소녀의 말을 따르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그는 완전히 소녀의 손에 마음대로 주물닥거린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방문밖으로 보이는 산위로 구름이 넘어가고,

어느듯,

늬엿늬엿 해도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부엌에서는 콧노래 소리와 음식냄새만 풍겨올 뿐 한참이 지났는데도 먹을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황군성이 부엌에 가서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

그냥 가버리자니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 이상하고,

황군성은 계속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싱숭생숭하고 있었다.

 

[음음!]

소녀는 방문 앞에 와서 인기척을 냈다.

황군성은 기다리다가 지쳐 어느새 졸고 있었던 것이다.

번쩍!

눈을 떠보니 밖은 정말 번쩍 눈을 떠야만 겨우 보일 어둠이었다.

[이제 다 됐어요. 방으로 음식을 나르게 좀 도와주세요.]

황군성은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제야 겨우 밥을 얻어먹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억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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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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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五 章

 

        지하실에서의 武功傳授

 

 

 

[음……]

황군성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황창설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 한참 생각한 후에 말했다.

[너는 그 임소저라는 여아 뿐만 아니라 무림이 일에 너무 깊히 말려들었다. 이것은 우리들이 천년동안 견지해온 태도와 일치하지 않는다.]

[…………]

[…………]

[하지만,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는데, 천년이나 된 우리 문성무존이 어찌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아버님!]

황군성과 황군우가 놀라 소리쳤다.

황창설은 손을 저었다.

[조부님들께는 내가 잘 말해보도록 하마, 너희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단 문성무존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는 마라.]

[분부 명심하겠습니다.]

하늘은 유난히도 파랗다.

그 위로 흘러가는 구름은 하얀 솜뭉치처럼 보이고,

황창설의 마음은 어느 한곳에서 주춧돌이 빠져버린 것같은 허전함과 함께, 알던 이가 빠진 듯한 시원함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문성무존도 무림의 한 세력에 불과한 것이다.

젊은 청춘이 끓는 피를 삭이고 평생을 좁은 소음곡 골짜기에서만 보내기에는 그들의 피가 너무 뜨겁다.

지금까지는 용케 소음곡 생활에 적응해 왔지만,

점점 많아지는 후손들 마저 모두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잘못되며,

소음곡은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를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은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문성무존의 역대주인들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무공과 학문을 겸비한 사람들이었지만,

속세에서의 영원한 영광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소음곡같은 곳에서 영원한 평화와 안일을 구한 것이다.

황창설의 생각은 황군성이 사라진 뒤로 많이 변했다.

원래 그는 소음곡의 전통적인 견지에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황군성이 사라진 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신들은 소중한 자식을 담보로 일종의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이에 황창설은 점점 생각이 바뀌어 자식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쩌면,

자신이 문성무존 최고의 어른이 될때까지 기다려야 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자신의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그 기간은 훨씬 단축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은연중에 문성무존의 최고 어른인 황숭환의 생각과 거의 같은 결론이었다.

물론,

과정은 엄연한 차이가 있지만……

 

황창설 삼부자는 함께 번화가로 나왔다.

황군성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에 대비해서 철갑옷 위에 장삼을 걸쳤다.

삼부자가 함께 걸어보기는 평생처음이었다.

그들은 병기백전을 향해서 가고 있다.

황군우는 아버지와 형과 함께 걷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우쭐거리는 심정이 된 모양이었다.

연방 두리번거리며 연도의 사람들에게 으스대는 듯한 모습이다.

[네 무공이 일년 전과는 비할 수 없이 발전했구나. 이미 나를 뛰어넘었으니.]

듬직한 황군성에 황창설이 한 말이다.

[아직 미미할 따름입니다.]

[이제는 철인검(哲人劍)을 한시바삐 가르쳐야겠다.]

황창설의 말에 두 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철인검이나니요?]

황군우가 물었다.

그들은 철인검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전에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성무존은 무존은 바로 철인검이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지. 어떤 검법도 철인검보다 뛰어날 수는 없다.]

황창설은 조상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깃든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이윽고 병기백전에 도착했다.

허괄이 뛰어나와 그들을 맞았다.

캉캉! 챙챙!

치이익! 푸욱!

병기백전의 뒤쪽에는 직접 병기를 제작하는 듯 쇳소리가 귀를 두드리고,

담금질 소리가 속을 끓어오르게 하고 있었다.

[우와!]

병기백전에 들어선 황군우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병기백전,

무창에서 가장 큰 병기점(兵器店)이다.

원래 중국에서 백(百)이라고 하는 것은 무한대를 의미하는 수이다.

백이란 한마디로 <많다>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는데,

때로는 천(千)도 만(萬)도 넘어서는 개념인 것이다.

그 말에 맞게,

병기백전에 놓여있는 무기들……

일정한 간격으로 병기대에 놓여있는 수천 자루의 검들……

그다지 밝지 않은 실내에서도 눈을 찌를 듯이 푸른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병기대에 놓여있는 도(刀)……창(槍)……곤(棍)……궁(弓)……추(錐)……

또한 수백가지의 기형병기들……

 

한마디로 병기백전은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병기들을 다 갖춰놓은 듯했다.

황창설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황군우에게 말했다.

[이건 범상한 물건들일 뿐이지. 진짜 신병들을 보여주마!]

앞쪽에서 안내하던 허괄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럼 지하로 가시지요.]

허괄은 병기대(兵器臺)의 끝으로 가서 삐죽 튀어나와 있는 쇠못을 밟았다.

순간,

스르르……

병기대가 슬쩍 물러나면서 네 사람은 비스듬히 미끄러져 지하로 내려갔다.

심리(心理)의 혀를 찌르는 기관(機關)이었다.

설마 돌출된 뾰족한 쇠못을 밟아야만 열리는 기관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지하에도 위와 거의 같은 크기의 병기 진열장이 늘어서 있고,

희미하게 빛나는 야명주 밑에서 병기들은 칙칙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허괄이 말했다.

[이곳에 있는 병기들은 모두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사들인 것이지요.]

한마디로,

이곳에 있는 병기들은 골동품이거나 고물이 대부분이었다.

녹이 쓸어서 다 부스러지고 자루만 남은 검이 있고,

삭아서 썩은 새끼줄 같이 변해버린 채찍이 있었다.

그 밖에도 수 백 년이 넘었을 듯 보이는 많은 폐물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로,

여전히 고색창연한 빛을 발하는 보검과 보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허괄이 말했다.

[이것들이야 말로 진짜 보검, 보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 전에는 이십여명의 감식인들이 있는데 그들은 병기가 수집될 때마다 품질을 평가해보고 확실을 기하기 위해 이곳에 보관하지요.]

병기백전에서 수집한 병기들 중,

엄격한 감식을 거쳐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 것은 녹여서 다른 무기로 만들고,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곳 지하에 가져다 놓는다.

그리하여 수년에서 수십년, 수백년이 지나면 진품은 절로 드러나게 된다.

처음에는 다시 없을 것같은 보검으로 보이던 것도 세월이 가면서 쇠 부스러기로 삭아버리는 것들도 있고,

그다지 명품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수백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는 진품도 있었다.

[이건 아주 특이하군요.]

황군우가 묻자 황창설이 대답했다.

[그렇게 특이한 것은 아니다. 본래 옥골선(玉骨扇)이었는데 장식품이 다 닳아서 없어지고 뼈다귀만 남은 거다.]

황군우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은 마치 돌을 쪼는 정같았는데,

희미하게 백색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촤락!

황군우가 손을 비틀자 과연 쫙 펼쳐지는 것이 뼈다귀만 송송한 옥골선이었다.

허괄이 웃으며 말했다.

[작은 도련님의 안목이 아주 훌륭하십니다. 그건 한서여의선(寒曙如意扇)이라는 것으로 이미 칠백 년 정도 된 물건입니다. 옥골을 자세히 보십시오.]

황군우가 잠시 살피다가 소리쳤다.

[신기하군요. 이 좁은 옥골이 두개의 옥을 붙여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천산한옥(天山寒玉)과 만년온옥(萬年溫玉)이지요. 가만히 있으면 아무변화가 없지만, 부치면 한쪽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일고 다른 쪽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일지요.]

황군성도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한서여의선인 모양이군.]

병기에 대해서는 허괄이 전문가이다.

그는 가벼운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만약 음양이기(陰陽二氣)를 익힌 사람이 있어 이 한서여의선을 병기로 사용한다면 아마 고금십대천병은 십일대천병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음양이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문득,

황군우가 허괄의 말을 끊었다.

[허아저씨께서는 양강(陽剛)과 음유(陰柔)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열양(熱陽)과 한음(寒陰)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허괄이 말했다.

[제가 무공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합니다만 그 두 가지는 서로 상통하는 것이지요. 본체는 같고 옷만 바꿔입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네 말이 맞네. 내공에서는 음양을 겸비한 것이 드물고 초식 중에서는 강유를 겸비한 것이 드물지, 두 가지가 상부상조할 수 있다면 천의무봉(天衣無縫)한 경지라고 할 수있다.]

황창설이 허괄의 말을 보충했다.

갑자기,

황군우가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묵묵히 있었다.

꼼짝도 않고 그자리에서 한참 생각한 황군우가 고개를 번쩍들었다.

[허아저씨, 이 한서여의선을 제게 주실 수 있습니까?]

허괄이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께서 꾸짖지 않으신다면 드리겠습니다.]

[하하, 이곳은 모두 허형제가 책임지고 있는데 이런 세세한 일에 내가 어떻게 관여하겠소.]

황창설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럼 한서여의선은 이 순간부터 작은 도련님 것입니다.]

황군우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그때,

황군성이 불숙 다가서며 그의 손에서 한서여의선을 낚아챘다.

[…………?]

[…………?]

[형님……?]

황군성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한서여의선을 사용할 생각이라면 비록 반쪽뿐이겠지만 천하 최강의 음한공(陰寒功)을 가르쳐 주마.]

황군우가 소리쳤다.

[형님! 감사합니다.]

[빙백강기라는 것인데 내게 무공을 가르친 분 중 냉천삭이란 분의 절기이다. 잘 듣고 기억하도록 해라.]

황군성은 그 자리에서 빙백강기의 구결을 전수했다.

황창설과 허괄은 구결만 들어도 빙백강기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극성에 달하면 만년한철마저도 얼려서 쇠부스러기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이 빙백강기였다.

만약 황군우가 빙백강기를 한서여의선으로 펼쳐내게 된다면 그 위력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황군우는 뛰어난 총명을 가지고 있었기에 단번에 구결에 다 암기해버렸다.

촤락!

착!

그는 기뻐어쩔 줄 모르며 부채를 접었다폈다 했다.

그리고,

[저는 이 한서여의선을 이용해서 내공을 양쪽으로 가다듬을 생각이었지요. 그렇다면 그것이 가장 적당한 내공이 되지 않겠습니까?]

황창설과 황군우, 허괄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들은 전혀 그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 한서여의선의 특징을 이용해서 동시에 음양의 내공을 익히면 되는 것이다. 구태여 음양의 내공을 겸비한 자 만이 한서여의선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어리석은 것이었다.)

(이놈! 앞으로 틀림없이 한서여의선의 무공을 완성하고 말 것이다. 과연……)

(조부님들께서 군우가 내게 미치지 못한다고 하신 것은 어쩌면 성급한 판단……이같은 기상천외한 발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은 다른 병기들을 쭉 훑어본 후에 다시 그 밑의 지하로 내려갔다.

허괄이 말했다.

[여기에 있는 것은 모두 우리 병기백전에서 만든 것입니다. 그동안 만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들만을 보관해 놓은 곳이지요.]

그곳은 불과 위층의 십분지 일도 채 되지 않는 크기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병기들은 하나같이 건재한 모습들이고,

위에서와 같은 고철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황군성은 허괄의 뒤를 따라 진열대를 돌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입구쪽에서 부터 찬란한 병기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안으로 들어갈 수록 시대가 지난 고병기(古兵器)들이었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병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철컥!

갑자기 황창설이 진열장에서 사척반 정도 길이의 검을 꺼내들었다.

둔중하면서도 무겁고, 게다가 두손으로 움직이는 옛 장검이었다.

그는 황군성에게 그 장검을 내밀며 말했다.

[앞으로 이 검을 쓰도록 해라. 마치 너를 위해 만들어진 것같은 검이다.]

황군성은 두손으로 받았다.

보통 장검보다 두배 정도 크고,

장검의 무게는 적어도 육십근은 될 것같은 중병(重兵)이었다.

그러나,

황군성의 몸을 생각해 볼때 오히려 그에게 적당한 크기라고 할 수 있었다.

[네가 군우에게 무공을 전수해주었으니 나도 전수해 주도록하마.]

황창설은 품에서 한 자루의 청옥소를 꺼냈다.

[주인님! 그럼 저는 이만……]

허괄은 인사를 하고 위로 올라갔고,

 

[철인검을 배우게 되면 너희들은 문성무존의 모든 무공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황창설은 두 아들을 보면서 말했다.

[무릎을 꿇어라.]

황군성과 황군우는 가문의 최고 비학을 전수받기 위해 경건한 몸가짐으로 무릎을 꿇었다.

[철인검은 빠르지 않다. 철인검은 느리지 않다. 철인검은 무겁지 않다. 철인검은 가볍지 않다. 원래 철인검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철인검이란 심즉검(心卽劍)에 이르는 길이다. 심즉검은 심즉도(心卽道)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가능하다.]

[…………]

[모든 정종무공이 정기신(精氣神)의 단련을 주로하고 심(心)을 다스리려는데 주력한다. 하지만 철인검은 심(心)을 단련하고 지(志)로써 심을 움직이는 것이니……]

철인검……

이것은 심으로 심을 공격할 수도 있고 심으로 체를 공격할 수도 있는,

강호의 여타 무공과는 상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기(氣)를 단련하는 내공과도 상관이 없는 무공인 철인검은 그야말로 강호에 우뚝선 금자탑같은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황창설이 조용히 읊조리는 구결은 심오막측했고,

황군성이나 황군우같은 준재도 일시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막연하게나마 느껴지는 것이 있을 뿐이었다.

황군성은 속으로 놀람을 금치 못했다.

진정 무공의 끝이란 없는 것같았다.

문성무존의 무공을 배운 후에 한천사방객의 무공을 배울 땐 그들의 무공이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것인 줄 알았다.

전륜법왕으로부터 무공을 전수받았을 때는 또한 전륜법왕의 무공을 능가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같았다.

또한,

검신의 무광검이나 도신의 목계같은 심득, 그리고 위지장천의 가공절륜한 무공을 보면서 진정 그보다 뛰어난 것이 있을 까 하는 마음이들었었다.

그들의 무공깊이는 차치하고 그 무공자체는 천고의 절학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 문성무존은 철인검을 대하고 보니 그것들과는 또 다른 차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비록 오백년의 공력을 갖고 있고 수많은 무공을 익혔다고 하지만,

이백년 수위에 불과한 아버지 황창설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같았다.

깨달음만이 존재하는 철인검,

철인검을 완전히 깨달을 수 있다면 내공과는 아무상관없는 절대강자가 될 것이다.

 

철인검의 전수를 끝낸 황창설은 위로 올라가버렸고,

황군성과 황군우는 묵좌를 한 채 철인검의 구결에 몰두하고 있었다.

(철인검은 없다. 즉 초식이 없다! 철인검은 바로 마음이다!)

두 형제가 동시에 깨닫고 있는 요지였다.

마음 속에서는 실타래처럼 철인검의 구결이 하나하나 풀어지고,

그들의 머리속에 차곡차곡 심오한 검결이 쌓여갔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황군성의 머리도 황군우의 머리도 뿌옇다.

그들의 머리에 먼지가 내려앉은 것이다.

한데,

황군우는 귀밑이 희끝희끝한 것이 아닌가?

꾸당!

갑자기 황군우가 뒤로 쓰러졌다.

그는 황군성처럼 깊은 내공이 없었다.

불과 한갑자 정도의 내공이 있을 뿐인데,

철인검의 구결을 풀기위해서 심력을 다하다보니 결국 정신과 몸이 따라주지 못한 것이었다.

귀밑머리는 며칠 사이에 하얗게 변하고, 그의 맥은 끊어질 듯 미약했다.

황군성이 번쩍 눈을 떴다.

그는 즉시 손을 뻗쳐 황군우의 맥문을 통해 진기를 주입했다.

황군우의 창백한 얼굴이 붉으스레해지면서 그가 눈을 떴다.

[제가 형님의 연공을 방해하고 말았군요.]

[그렇지 않다. 지금 풀 수 있는 것은 다 풀었다. 하지만 앞으로 풀어야할 구결이 훨씬 많구나.]

황군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황군우,

그의 동생 황군우는 황군성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었다.

바로,

끈질긴 집중력이었다.

황군성은 자기로서는 그의 집중력과 노력을 도저히 따르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새삼 동생에 대해 감탄하는 마음이 일었다.

일갑자에 불과한 내공으로 완전히 정신을 몰입한 상태로 그처럼 버틸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다.

심력이 고갈되어 죽고 말 그런 일을 황군우는 해내는 것이다.

[나는 이제 올라가겠다. 너는?]

황군우가 씨익 웃었다.

[저는 조금더 있다가 가겠습니다.]

 

황군우는 혼자남은 지하실에서 중얼거렸다.

[세상에는 고수가 많아. 이미 익힌 무공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무공을 익힌다는 어리석은 일이야. 아니, 어쩌면 알고 있는 것까지 잊어야 해, 오직 한가지, 철인검을 이 한서여의선으로 펼칠 수 있으면 족하다.]

촤락!

귀밑이 희끗한 소년 황군우는 다부지게 입을 다물었다.

한가지 무공만을 익히려고 하는 황군우,

머잖아 무림은 이 황군우라는 소년을 기억해야한다.

그의 형 황군성과는 또다른 독자적인 길을 갈 황군우를……

그의 무공은 황군성에 비해 못하지 않고,

그의 두뇌는 천하에 우뚝서기에 부족함이 없다.

황군우는 철인검의 구결을 외우며 천천히 한서여의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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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四 章

 

         검은 표범

 

 

 

[적이다!]

[막아라!]

호위무사들이 검을 뽑아 휘둘렀다.

챙챙!

우두머리와 전칠이 날아오르면서 마차로 날아가던 비발(飛鉢)을 쳐냈다.

히이잉!

말이 길게 울부짖으면서 암기를 맞고 쓰러져 버리자 마차는 멈춰서 버리고,

근처의 숲으로 부터 수십 명의 복면인들이 검, 도, 창 등의 병기를 번뜩이며 날아들었다.

[으악!]

[윽!]

암기는 숲에서 계속 날아들었고,

마차를 호위하는 자들은 복면인들을 맞아 싸워보지도 못한 채 암기를 맞고 비명속에 쓰러져갔다.

우두머리와 전칠은 각기 한대씩의 마차를 넘나다니며 암기를 막느라 눈코 떨새 없었다.

챙챙!

번쩍! 번쩍!

전삼이란 자의 검술은 놀라운 데가 있었다.

엄정한 수련을 거친 것이 우두머리보다 뛰어났다.

암기를 막으면서도 그는 달려드는 흑의인 둘을 한꺼번에 베어버렸다.

[으악!]

공력은 보잘 것 없고, 초식도 그다지 돋보이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같은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그가 탁월한 재질을 가졌고,

게다가 끝없이 수련을 쌓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마차에서 날아드는 암기들을 암암리에 지풍으로 떨어뜨리며 전삼을 본 황창설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언젠가 인연이 닿아 절기(絶技)를 얻기만 한다면 전삼같은 자의 능력은 활짝 꽃필 것이라 생각했다.

마차안을 들여다보니 시녀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운데의 소녀,

황창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그 소녀는 손에 서릿발 같은 한기를 발하는 짧은 비수를 움켜쥐고 목가까이에 대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황창설은 그녀에게서 어떤 성스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 보호해 주어야겠다!)

이때,

호위무사들은 거의 죽어버리고 전삼과 우두머리만 버티고 있는데,

수십 명의 복면인들은 마차를 에워싸고 있었다.

아마도 공주를 사로잡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황창설은 소녀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소? 그렇다면 고개만 끄덕이시오.]

소녀는 갑작스런 전음에 흠칫했으나 이내 아무표정을 보이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익!

황창설은 마차의 천장을 찢으며 소녀 앞에 내려섰다.

순간,

번쩍!

두 줄기 예리한 빛이 그의 목과 가슴을 노리고 찔러왔다.

소녀의 옆에 있던 두 시녀가 소매에서 비수를 꺼내 공격한 것이다.

보통 솜씨가 넘었다.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훈련을 받은 시녀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공격을 공주는 묵인하고 있었고,

황창설은 약간 씁쓸한 맛을 느끼며 두 시녀의 현기혈을 짚어버렸다.

시녀의 공격을 피하지도 못할 실력이라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 공주의 생각이었다는 것을 황창설은 알고 있었다.

공주는 황창설의 귀신같은 손놀림에 저으기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나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내 신분을 알고 있다면, 먼저 당신이 누군지 부터 말해요.]

[나는 황창설이라 하오.]

황창설은 이 다급한 순간에도 쉽게 자신을 믿지 않는 공주를 약간 한심스럽게 생각하며 말했다.

[당신은 어떤 댓가를 원해요? 설사 지금이 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라고는 하지만 들어주지 못할 부탁도 많이 있어요.]

공주의 말에 황창설은 기가 막혔으나 그녀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바라진 않소. 단지 돕고 싶을 뿐이오.]

공주가 빠르게 말했다.

[좋아요. 그럼, 벼슬과 보물을 원하는 대로 주겠어요.]

그녀는 마치 황창설의 말을 오인하기라도 한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기실 이것은 그녀의 고단위 술수였다.

어떤 다른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으로 한정해 버리는 절묘한 수법이었던 것이다.

황창설은 계교같은 것에 익숙치 못하다.

어리둥절하는 새, 공주는 일어서서 그의 팔에 달라붙으면서 말했다.

[밖에 온 자들을 모두 죽일 수 있어요?]

밖에서는 연방 병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암기는 더 이상 날지 않고 전삼과 우두머리가 마차로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챙챙!

악! 으윽!

복면인들에 비해 그 두 사람의 무공이 비교적 고강하기에 그들은 일시 마차로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우두머리와 전삼은 상당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중과부적인 것이다.

황창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수 있을 것같소.]

공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럼 빨리 그들을 죽이고 이곳을 빠져나가요. 빨리!]

순간,

[아악!]

비단폭을 찢는 듯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이 울러퍼졌다.

앞쪽에 있는 마차에서 난 소리였다.

그 소리에 뒤이어,

[공주마마! 신 우문통(宇文統)의 불충을 용서하십시오. 적들의 손에 넘어가 영왕전하(永王殿下)의 손발을 묶게 할 수없어 감히 소인이 공주마마를 벱니다. 으윽!]

진정,

모골이 송연해지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순간 병기의 부딪힘도 사라지고 사위가 조용해져 버렸다.

호위들의 우두머리 우문통은 더 이상 자신이 마차를 호위할 수 없음을 알고 검을 돌려 마차안의 소녀를 베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검을 돌려 자신의 가슴을 찔러 자결했다.

굴러 떨어진 아름다운 소녀의 머리는 눈을 부릅뜨고 있어서 으시시한 느낌을 주었다.

소녀의 곁에 있던 두 시녀도 잇달아 자결해버렸다.

비밀을 엄수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도 적을 속이기 위해 미리 계획된 것들 중의 하나였다.

공주는 우문통의 외침을 듣는 순간 이미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몸에 걸친 패옥을 뜯어 버리고 화려한 겉옷도 벗어버렸다.

그 속에는 시녀들과 똑같은 차림의 옷이 있었다.

[공주마마!]

공주와 두 시녀가 마차에서 뛰쳐나가며 울부짖었다.

죽은 소녀를 완전히 공주로 믿게 하려는 수작이었다.

공주에게 있어서 황창설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일단은 예정된 수순을 다 밟아보는 것이 그녀로서는 최대한 모험을 피하는 것이기에.

[흑흑!]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전삼이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마차에 숨어서 지켜보던 황창설은 가슴이 찌릿함을 느꼈다.

전삼의 태도가 남다르게 느껴졌던 것이다.

오열하던 전삼이 눈물을 쓱 닦으며 검을 들고 일어섰다.

[오늘의 원한 결코 잊지 않겠다. 이 전득무 맹세코 네놈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 이 일을 꾸민 그자 역시!]

전삼……

그의 본명은 전득무였던 것이니,

형제들 중 세번 째라서 보통 전삼으로 불리웠었다.

우리는 알고있다.

전득무가 바로 검신임을……

 

전삼은 피어린 맹세를 하고 그자리를 떠났다.

시녀들의 죽고사는 문제는 그와는 상관없었던 것이다.

아무도 그의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비록 후한이 두렵기는 하지만 그를 가로막을 상황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인질로 사용해야할 공주가 죽어버렸다.

그것도 자신의 호위대장에 의해서……

이것은 그들 복면인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복면인들 중의 하나가 소리쳤다.

[어짜피 일은 실패했다. 육시랄…… 돌아가도 우린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래, 차라리 이년들과 재미나 본후에 멀리 달아나버리자.]

한사람이 호응하자 다른 자들도 잇달아 찬성했다.

[이년들을 데리고 해외의 섬으로 가자. 중원에서는 숨을 곳도 없을 것이고 해외의 작은 섬을 점령해서 우리가 왕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누군가가 의견을 내놓자 좋다고 아우성을 쳤다.

공주와 두 시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일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복면인 하나가 시녀를 잡아채며 말했다.

[당장 이년들과 살부터 섞어봐야 겠다.]

찌익!

[악!]

시녀의 옷이 가슴에서 부터 길게 찢어졌다.

다른 복면인들도 낄낄 거리며 공주와 다른 시녀를 잡아갔다.

[이년이 제일 예쁜데 요것참, 낄낄……]

갑자기 공주가 뒤로 몸을 빼면서 소리쳤다.

[모두 죽여요!]

멈칫!

복면인들이 일제히 손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한편,

황창설은 시녀의 옷자락이 찢어지는 것을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공주의 고함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기는 했으나 손을 쓰지는 않았다.

[헤헤헤……요년이 도망칠려고 수작을 부리는 구나. 그래봤자 너는 오늘부터 우리 모두의 마누라다.]

복면인이 게걸스런 웃음을 날리며 정욕에 번뜩거리는 눈으로 공주를 향해 다가섰다.

공주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바로 그때,

핑!

[악!]

그녀를 향해 다가들던 복면인이 비명을 지르며 엎어졌다.

복면인의 머리에는 작은 패옥이 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비명은 하나였으나 쓰러진 자는 둘이었다.

시녀의 옷을 찢고 쓰러뜨린 자도 패옥을 맞고 죽어있었다.

휙!

황창설은 바람처럼 공주 앞에 나타났다.

[휴!]

공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복면인들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황창설과 공주를 바라보며 다가들었다.

두 사람의 시녀도 공주의 곁에 와서 섰다.

황창설은 소음곡에서 나올 때 병기를 휴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병기라도 다 다룰 수 있는 인물이었다.

휙휙!

두번의 발길질이 있자 발밑의 돌멩이가 허공을 갈랐다.

[악!]

[악!]

두 마디의 비명과 함께 두 사람의 복면인이 쓰러졌다.

한데,

쓰러진 그들 두 복면인의 손에 있던 장검은 황창설의 손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아니,

황창설의 몸도 날아오는 두 장검을 향해 번개처럼 움직여갔다.

으아악!

악!

일진 광풍이 몰아치는듯 혈우성풍이 일어났다.

황창설의 쌍검이 사십여 명의 복면인을 순식간에 도륙내고 말았다.

공주와 두 시녀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와 같은 고절한 무공을 그녀들은 결코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황창설이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인 것 처럼 느껴졌다.

 

× × ×

 

민가에 들러 마차를 새로 사서 북경으로 향한 황창설과 공주 일행은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황창설의 무공에 필적할 수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황창설의 손에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공주등은 황창설과 동행하게 된 후에는 아무리 많은 적이 나타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황창설은 그들에게 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차의 앞자리에 앉은 황창설은 적이 누군지를 물어보았다.

[나도 그자들이 누군지는 몰라요. 다만 아버님의 적수 중 하나일 것이라고만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전삼이라고 했소? 그는 누군지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이 말하던 데……]

[그게 이상해요. 그가 검술이 뛰어남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그들을 알고 있었는지……게다가 우문통마저 강호에 대한 것은 모두 그와 상의했어요.]

 

황창설은 여러가지 위험을 겪은 후에 북경의 영왕부에 도착했고,

영왕으로 부터 열렬한 환대를 받았었다.

영왕이 그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 말했다.

[나를 제거하고 싶어하는 자들이 많네.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있다 보니 적이 많아진 거지. 사실 이번 공주가 위험에 빠졌을 때 나는 협박을 받고 있었네. 공주는 내 대신 일을 처리하다가 위험에 빠진 것이지.]

영왕은 암동하는 세력들로 부터 황실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번에 직접 변경까지 가서 처리해야 할 중대사가 있었지만 자신은 도성을 떠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고,

하는 수 없이 가장 믿을 수 있는 명석한 공주를 대신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한데,

적이 어떻게 알았는지 공주를 납치하려고 시도하면서 영왕에게 서찰로 협박했던 것이다.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서지 않는다면 공주는 죽는다󰠏󰠏󰠏󰠏

 

이것이 그 요지였다.

하나,

영왕이 진정 두려워 한것은 공주의 생명따위가 아니었다.

반드시 해야 한다면 공주를 희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공주가 자신을 대신해서 처리하고 온 일은 극히 중요한 일로,

그것이 적이 알게 되면 나라의 존위가 위협을 받게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영왕은 구출하기에는 이미 늦었기에, 공주가 자결해 주었으면 하고 속으로 바랬었다.

한데,

공주는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고 모든 위험을 뚫고 돌아왔으니,

영왕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영왕은 황창설에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어보았고,

황창설은 자세한 언급은 피했지만 대충 문성무존의 존재와 자기가 그 후계자라는 것을 밝혔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황창설은 영왕부에 머무르다가 놀라운 일을 겪게 되었다.

영왕이 공주를 황창설과 혼인시킨다는 것이 발표되었고, 그 자리에 황창설의 조부 황자준이 영왕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껄껄껄……이녀석! 도망쳐봐야 내 손바닥 안이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 이 할애비는 네녀석이 하는 짓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봤다.]

황자준은 처음부터 황창설의 뒤를 따라왔던 것이었다.

문성무존의 후계자가 될 손자가 혹시라도 위험에 빠질까봐서 취해진 조처였다.

이같은 것은 문성무존의 어른들의 소임이기도 하였다.

영왕이 황창설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말을 들어보니 문성무존이라는 데가 바로 무릉도원이더군, 그래서 내 공주를 무릉도원에 살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네. 거절하지 말게.]

황창설 역시 공주에게 깊은 사람을 느끼고 있던 터라 영왕부에서 성대한 혼례식을 가진 후에 공주의 시녀들과, 조부와 함께 소음곡으로 돌아갔다.

그는 소음곡을 나가자 마자 공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사랑을 얻어서 공주를 데리고 소음곡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때는 이미, 그의 회의와 고독이 차지하던 자리도 사랑이 대신하고 있었다.

 

× × ×

 

황창설은 긴이야기를 끝맺으며 말했다.

[나의 방황은 무척 짧았지. 강호에서 머문 기간도 삼개월 남짓 했고……한데……]

황군성은 머리를 푹수그렸다.

[이번에 문성무존이 발칵 뒤집어진 것은 너의 종적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었지. 원래 아버님께서 너를 암중에 지키기로 되어있었는데, 갑자기 태산에서 아무 흔적도 없이 네가 사라져 버리자 당신께선 책임을 다하지 못해 괴로워 하셨고 조부님을 비롯한 웃분들께 많은 걱정을 듣기까지 했다.]

[아버님! 소자의 불효가 막심합니다.]

황군성이 눈물을 떨구면서 말했다.

황창설이 고개를 저었다.

[네 잘못은 없다. 단지 일이 이렇게 되었을 뿐이다. 이제 무사한 것을 알았으니 아무 걱정없다.]

[형님! 이제 소음곡으로 돌아가야지요.]

황군우가 그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황군성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버님!]

[말해보거라.]

[소자는 지금 소음곡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황창설이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무림에서의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았느냐?]

황군성은 잠시 생각을 한 후에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자에게 미혼의 처가 있습니다.]

황창설의 눈이 번쩍 떠졌다.

 

× × ×

 

멀리서,

선인루의 처참한 폐허를 바라보면서,

전신을 먹물을 뒤집어쓴 듯이 검은 천으로 휘감은 인영이 중얼거렸다.

[그래……차라리 잘됐어. 내겐 오히려 부담스러운 짐같았어. 위지장천……과연 대단해. 삼성혈의 후인다워.]

검은 인영의 뒤에는 웅크리고 있는 작은 표범이 보였다.

검은 인영처럼 완전히 어둠의 빛깔을 하고 있는 흑표범,

분명한 표범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그 크기는 개보다도 작았다.

하지만,

반짝이는 눈은 그 흑표범이 보통 영물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검은 인영이 계속 중얼거렸다.

[혈룡도왕이란 자……그자도 위지장천 못지않았어. 겨우 도신따위가 그같은 인물을 길러낼 수는 없었을 텐데……이해할 수 없어.]

천하의 도신을 겨우 도신따위라고 말하는 이자……

[아무튼 홀가분하게 마음껏 살아볼 수 있겠어. 이젠 자유를 누려야지.]

검은 인영은 때마춰 불어온 바람을 타고 나뭇잎처럼 날아갔다.

작은 표범은 어느새 그의 팔에 감겨있었다.

절세적인 경공……

어풍비행(馭風飛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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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三 章

 

         武昌 仙人樓의 血劫

 

 

 

이른 아침,

황군성은 높은 지붕위에 우뚝 서서 비둘기가 날아서 들어가는 누각을 바라보고있었다.

 

-선인루(仙人樓)!

 

유유자적하는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헛되이 입과 손을 놀리기로 유명한 곳이다.

왠고하니,

이곳 칠층의 선인루에서는 멀리 장강의 아름다운 경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때문이다.

선인루의 벽에는 온통 멋을 부린 글귀들이 적혀있고,

앉은 자리마다 시(時), 사(辭), 가(歌), 부(賦)를 입에 올리는 먹통들이 침을 튀기고 있는 곳이다.

 

황군성은 땅으로 내려서 선인루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이곳이 사신각(死神閣)의 총단이란 말인가? 믿기 어렵군!]

사신각,

사신(死神)이 만들었다는 자객(刺客)들의 단체,

사신은 모든 것이 비밀에 싸여있는 인물인데,

무림인 중에서도 그의 존재를 아는 인물은 많지않다.

그러나,

사신각은 원한을 맺은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염두에 두어야할 곳이다.

적당한 댓가만 주어진다면 하늘이라도 죽인다는 사신각의 자객들……

사신각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때까지 무림에 존속하고 있던 모든 자객조직들이 사신각에 흡수되어버렸으니,

사신각이야 말로 천하에서 가장 거대한 자객들의 단체이고,

자객들의 하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황군성은 나직하게 외쳤다.

[모두 죽인다!]

소곤거리는 듯한 음성이 선인루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듯 자신들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고도로 훈련된 자객들의 마음추스림임을 황군성은 느끼고 있었다.

순간,

쿵!

황군성의 뒤에서 문이 부서져나갔다.

그리고,

기형장검을 어깨에 둘러맨 여자보다 아름다운 사나이가 백의를 입고 들어왔다.

얼굴은 어떤 여인보다 아름답고,

몸은 어떤 남자보다 건장해 보이는 사나이,

바로 위지장천이었다.

황군성도 절세준미한 얼굴이라고 하지만,

위지장천 만큼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었다.

다만 황군성은 위지장천에게서는 없는 뻗쳐오르는 정기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위지장천은 황군성의 등을 바라보며 내뱉었다.

[선객(先客)이 있었군! 하지만 사신각은 나와 먼저 해결해야할 원한이 있다.]

황군성은 등 뒤에서 풍겨나는 기도가 기이하도록 강렬함을 느끼고 마음속으로 저으기 놀랐다.

분명히 자신과 비슷한 나이인 듯한데 이같은 기도를 풍길 수 있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한데,

위지장천이 나타나자 선인루에 일하던 자들은 모두 미미하게 떨었다.

그들은 위지장천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황군성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위지장천의 기도에 묘한 적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호승심(好勝心)같기도 했다.

황군성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나의 일을! 당신은 당신의 일을!]

위지장천의 미간이 오무라졌다.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게 오만한가 했더니 요즘 이름을 떨치는 혈룡도왕이었군! 이름값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군.]

그는 오만하게 말했다.

황군성은 그를 무시하기라도 하듯이 우뚝 버티고 선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스스슷!

스슥!

선인루 일층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검은 복면을 한 인물들이 나타나며 황군성과 위지장천을 에워쌌다.

그리고,

복면인들은 어디선가 계속 뛰쳐나오고 있었다.

선인루의 주변마저 삽시간에 둘러선 흑의복면인들로 인해 둘러싸여버렸다.

죽음보다 짙은 살기(殺氣)가……

구름처럼 피어나며 선인루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복면인들은 황군성과 위지장천을 중심으로 타원을 이루었다.

위지장천은 그들을 바라보며 가소로운 듯이 말했다.

[오인집행관(五人執行官)! 너희들과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 사신(死神)더러 직접 나오라고 해라.]

오만한 목소리였다.

그의 눈길을 받은 다섯명의 흑의인들의 몸에서 백색의 안개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살기(殺氣)가 유형(有形)화된 것이었다.

몸을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심맥이 굳어버리는 유형의 살기!

백색의 살기는 위지장천을 향해서만 몰려가고 있었다.

황군성의 몸에서는 목석같은 느낌만 들뿐,

어떤 기도도 밖으로 뿜어지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스으읏!

백색의 살기는 위지장천을 향해 다가들고,

선인루의 살기는 하늘에 닿을 듯 치솟았다.

평범한 사람은 그 근처에만 다가와도 심장이 멎어버릴 정도였다.

이곳은 자객들의 하늘이라고 하는 사신각!

그 정예들의 힘이 두 사람을 향해서 집중되고 있었다.

백색기류가 위지장천의 몸앞 반자거리까지 다가들었다.

위지장천은 아무 것도 아닌 듯 오른 발을 번쩍 들었다가 제자리에 놓았다.

순간,

드르르르……

미세한 진동이 있는가 싶더니, 그를 향해 다가오던 백색기류는 흔적도 없이 사그라져 버렸다.

그리고,

수백 명의 흑의 복면인들이 칠공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전신을 피로 물들이며……

목을 움켜잡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채 복면인들은 떨면서 죽어갔다.

마치,

진정 죽음의 사신이 도래하기라도 한 듯이 백주에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소리없이 죽어가는 인간들의 군상은 도검이 난무하고 목이 날아가는 격전보다도 더 무서운 공포와 죽음의 현장이었다.

황군성도 그 무서운 참사에는 공포가 느껴질 정도였다.

오인집행관이라 불린 다섯 복면인이 마지막으로 쓰러졌다.

위지장천은 고개를 들고 오만하게 소리쳤다.

[사신(死神)! 나 삼성혈(三聖穴)의 마지막 후인 위지장천이 복수를 위해 찾아왔다. 썩 나서라!]

그의 음성은 마치 천둥벽력같았다.

한줄기 바람처럼 그의 음성은 죽음만이 감돌고 있는 선인루를 맴돌았다.

선인루!

칠층의 거대한 누각에 숨을 쉬고 있는 것이라곤 오직 황군성과 위지장천, 그 두 사람 밖에 없었다.

위지장천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사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위지장천의 눈 주위가 분노로 말미암아 붉게 변했다.

마치 두걔의 피빛 고리가 눈에 걸린 듯 했다.

 

우아아아󰠏󰠏󰠏󰠏󰠏󰠏󰠏!

 

위지장천은 거대한 분노에 찬 함성을 질렀고,

우르르릉……

칠층의 선인루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성이 계속된지 불과 일각이 지나지 않아서,

와르릉!

꽝!

선인루는 붕괴되어 버렸다.

이로써 무창의 명물 중의 하나가 영원히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완전히 폐허의 더미로 변해버린 선인루!

자욱한 먼지가 하늘을 가릴 듯이 치솟고,

때아닌 뇌성벽력같은 소리에 거리에는 수많은 군중이 운집하여 먼지에 싸여있는 선인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휘이잉!

한줄기 바람이 먼지를 휘감아 하늘로 올라가고,

투둑!

툭!

산더미같은 선인루의 폐허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손을 움직이지도 않건만 부서진 기물들이 그들의 몸에서 튕겨나갔다.

한사람은 은은한 담황색의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보다 조금 작은 사람은 청색의 기류가 맴돌고 있었다.

그들의 천신같은 모습에 연도에 선 노파가 절을 하며 외쳤다.

[복마성제(伏魔聖帝)! 복마성제께서 강림하셨다.]

[우우……]

사람들은 노파가 절하자 잇달아 절하며 복마성제를 외쳤다.

폐허에서 나온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땅에 엎드린 우매한 군중들 위로 각자 비상(飛上)하여 사라졌다.

무창의 거리는 온통 야단법석이었다.

사람들 마다 염주를 돌리고 중얼중얼 염불을 하고 도관과 절을 찾아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느라 분주한 때문이다.

누구는 이를 가리켜 큰 변란이 일어날 징조라고 하고,

누구는 천하의 사마가 모조리 소탕될 성스러운 조짐이라고 하기도 했다.

 

× × ×

 

휘이익!

무창의 동남로(東南路),

허공에서 날아 내린 황군성은 객점을 찾아서 걸어가고 있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선인루의 참사를 구경하기 위해 달려간 때문이었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황군성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사신(死神)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하의 비밀장소까지 뒤져보았지만 임매도 보이지 않았다. 임매는 사신이 데려간 것일까?)

그는 또 생각했다.

(위지장천이란 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도저히 내 아래라고 볼 수가 없다. 그와같은 위력을 가진 신공은 상상해보지도 못했었다. 아니, 북혈마가 펼쳤다는 전음신공이 그같은 위력이 있을까?)

문득,

그는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그의 눈앞에 상인 차림새의 중년인이 나타나 가로막은 때문이다.

[…………?]

[공자께서 혈룡도왕 황군성 대협이십니까?]

중년인은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황군성은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대답했다.

[그렇소.]

순간,

중년인의 얼굴에 반색이 돌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절하며 말했다.

[저는 이곳 무창의 병기백전(兵器百廛)을 책임지고 있는 허괄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있으니 집으로 가시지요.]

황군성은 멈칫했다.

병기백전은 그의 집안에서 운영하고 있는 가게이기 때문이다.

황군성은 마치 송곳에 가슴을 찔린 듯안 느낌을 가졌다.

태산을 떠난 이후,

소음곡의 문성무존은 물론 부모형제까지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죄책감에 속이 찌르르 울려왔다.

병기백전의 책임자 허괄은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돌아 주택가에 있는 한 채의 큰 집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허괄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며칠 전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정말 작은 주인님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 둘째 도련님과 주인어른께서 이곳에 와계십니다.]

갑자기,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같던 황군성의 목석같은 얼굴에 미미한 변화가 생겼다.

그의 아버지 황창설과 그의 동생 황군우가 지척에 있다는 것이다.

[제가 작은 주인님을 발견한 것은 순전한 우연입니다. 가게 문을 열어주고 오는 길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차림새가 근간에 소문이 자자한 혈룡도왕같지 않습니까. 허허허……]

허괄은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와 동생을 만날 사람은 황군성이지만 들떠기는 허괄이 들떠있는 것같았다.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황군성을 본 황창설은 오히려 말을 잃어버렸다.

황군성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지만 황창설은 묵묵히 보기만 할 뿐이었다.

[따라오너라!]

황창설은 그 한마디를 던지고 정원을 가로질러 연못가에 있는 정자로 올라갔다.

황창설의 얼굴은 일년 사이에 십년은 더 늙어버린 듯했다.

그는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황군성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갑자기 실종되어 버린 황군성을 찾느라고 그가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는 오직 자식 잃은 부모들 만이 알 것이다.

비록 개봉에서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다고는 하지만,

이내 검신에게 목이 찔리고 어검술에 당해 죽었다는 소문이 뒤따르기도 했다.

황창설은 둘째아들 황군우를 데리고 지난 일년간 천하를 종횡하며 황군성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이제,

살아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없었다.

황군성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흰 그림자가 정원을 가로질러 오며 소리쳤다.

[형님!]

황군우가 연락을 받고 달려온 것이었다.

황군성의 눈에도 반가운 빛이 스치고 지났다.

그러나,

황군우는 아버지와 형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으로 말미암아 얼른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자신이 함부로 나설 자리가 못된다는 것을 안 것이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황군성을 향한 벅찬 반가움이 가득했다.

그는 황군성 옆에 앉았다.

문득 황창설이 입을 열었다.

[이 아비가 젊었을 때 무단히 소음곡을 뛰쳐나온 적이 있지.]

[…………]

[…………]

[가슴에는 회의가 가득했고 마음은 죽어있었어. 소음곡엔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에 있었지. 하지만 내 가슴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황창설은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황군성도 황군우도 공감이 가는 문성무존의 공통된 감정이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아무도 모르리라 생각하고 소음곡을 나와서 무작정 북경을 향해 달려갔지. 태산을 벗어나 그렇게 신나게 달려본다는 것만으로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 느낌은 한마디로 해방감이었다.]

[…………]

[그러다 나는 날이 샐 무렵 한 무리의 행렬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몹시 서두르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황창설이 소음곡을 나와서 처음 본 외부의 인간들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길을 재촉하는 그들은 이십여명의 건장한 사나이들과 두 대의 사두마차였다.

소음곡에 사두마차 따위가 있었을 턱이 없다.

다만,

말로 듣고 그림으로 보아서 알고 있는 정도였다.

황창설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살그머니 그들의 뒤를 따랐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행렬의 일행들은 연신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단정한 백의를 입었었고,

행동에 절도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한 눈에 보통 사람들이 아님을 알 수 있었겠지만 황창설은 바깥의 사람이 모두 그들같은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십여 명의 인물들은 두 대의 마차의 앞뒤를 호위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허리에는 모두 장검이 걸려있었다.

그들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나이가 다른 사나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전삼! 이곳은 누구의 구역인가?]

[주사장(朱沙掌) 엄적(奄適)의 구역입니다.]

[그와 친분이 있는가?]

전삼이란 자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포섭당했다면 더욱 위험합니다.]

우두머리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무슨 수가 있더라고 그들의 손에서 공주님을 보호해야 한다. 그들에게 공주님을 빼앗기면 이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죽음으로써 공주님을 지키겠습니다.]

전삼은 굳센 결의를 보였다.

그들의 말을 옅들은 황창설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공주가 신분이 높기야 하겠지만 이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워 질 거라니……? 이들은 아마도 과잉충성을 하는모양이군!)

하지만,

두대의 마차 중 어느 곳에 공주가 타고 있을 거라는 상상은 은근히 황창설을 들뜨게 했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공주를 호위한다는 것으로 보아서 백의를 입은 무사들은 모두 황실이나 왕부의 무사들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 우두머리와 전삼이라는 자의 무공만이 쓸만한 것으로 보였고 다른 사람들의 무공은 황창설의 눈에는 있으나 마나한 것으로 보였다.

황창설은 마차를 앞질러가서 나무위에 은신해 있다가 마차가 나무밑을 지나갈 때, 밤고양이처럼 마차의 지붕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십여 명의 인물들 중에서 아무도 그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마차안에서 들리는 숨소리로 보아 세 사람의 여자가 타고 있는 것같았다.

황창설은 지력을 돋구어 마차의 지붕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구멍에 눈을 대고 살펴보니 과연 궁장을 한 아름다운 소녀를 가운데 두고, 다른 두 여자가 나누어 앉아있었다.

(옳지! 저 소녀가 공주인 모양이구나! 과연 예쁘긴 예쁜데……)

황창설은 약간 경박한 생각을 하면서 그녀를 보다가 조금 이상스러운 것을 느꼈다.

가운데 앉은 소녀가 공주라면 옆에있는 두 여자는 시녀들인 모양인데,

그들이 공주를 대하고 있는 것이 마치 목석을 대하듯 어떤 존경심이나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상하군, 저 나이든 두 시녀가 어째서 공주보다 더 당당해 보일까?)

고개를 갸웃거린 그는 뒤쪽의 마차를 슬쩍 보았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수작을 부려 뒤쪽의 마차지붕에 올라갔다.

그리고 구멍을 뚫어보았다.

한데,

그곳에도 역시 앞의 마차와 똑같은 상황이 아닌가?

한 소녀를 사이에 두고 두 시녀가 앉아있었다.

하지만,

황창설은 그 소녀야 말로 진짜 공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하! 앞은 가짜였구나. 어쩐지……)

시녀들의 태도가 긴장되어 있으면서도 계속 가운데 소녀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태도가 분명했던 것이다.

또한 소녀가 비록 앞의 마차에 탄 소녀와 얼굴은 거의 분간이 안갈 정도로 닮았지만 어떤 범접치 못할 기품을 간직하고 있었다.

황창설은 마차의 지붕에서 훔쳐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며 그 소녀에게 깊이 빠져 들어갔다.

그때,

휘리리링!

핑핑!

암기가 나르는 소리가 그의 정신을 번쩍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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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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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二 章

 

         武帝의 情事

 

 

태평루,

밤은 삼경이 되어가건만 여전히 불빛은 환히 밝혀져 있다.

주당들은 밤이 깊어갈 수록 기승을 부리고,

태평루 주점의 매상은 그에따라 늘어간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음,

태평루의 밤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소란하기 그지없다.

한데,

달빛을 등에 지고 신태비범한 중년인 한사람이 태평루로 들어서고 있었다.

당당히 벌어진 어깨, 중후한 얼굴, 관록이 느껴지는 온화한 표정, 사람을 압도하는 가라앉은 눈빛……

한마디로 제왕같은 풍모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입가에 걸린 부드러운 미소는 가볍게 움직이기만 해도 여인의 심금을 흔들어놓을 듯하다.

모든 여인들이 품에 안기고 싶어할 일대 정마(情魔)가 있다면 아마 이 사람일 것이다.

주루에 늦게까지 앉아 있던 여인들은 그를 보자마자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들은 몸을 수그리고 붉어진 얼굴로 그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중년인은 여인들의 뜨거운 눈빛을 모른 채 하며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객실로 올라갔다.

아! 아!

휴!

여인들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녀들의 마음에는 불덩어리가 들어앉은 듯 뜨겁고 답답함을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중년인!

그는 임단심의 아버지 무제 임보산이었다.

[이 방이 우리 집에서는 제일 좋은 방입죠. 네네, 전망이 좋은 건 기본이굽쇼, 대식국(大食國)에서 가져온 보료가 깔려있고, 욕탕까지 갖춰진 곳입니다.네네……]

점소이는 연신 굽실거리며 임보산을 한 방으로 안내했다.

[혹시 붉은 비늘 옷을 입은 사람을 보지 못했었나?]

임보산의 물음에 점소이가 순간적으로 교활한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보았습니다. 오늘 낮에 우리 집에 왔었지요. 하나……]

임보산은 점소이의 손에 은전을 놓아주었다.

점소이의 입이 함지박 만큼 벌어지며 계속 입을 열었다.

[우리집 창문만 부수고 갔지요.]

[어디로 갔는지 아는가?]

[지금은 모릅니다만 제가 친구들 한테 부탁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헤헤 이곳은 완전히 제 손바닥 안이거든요.]

점소이는 여전히 손바닥을 내민 채 말했다.

돈을 요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임보산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황홀한 미소였던지 남자인 점소이가 넋이 빠지는 것같았다.

(세상에 어쩜 남자가……남자가……)

임보산의 손가락이 점소이의 손바닥에 있는 은전을 가리켰다.

순간,

[앗! 뜨거!]

점소이는 펄쩍뛰며 은전을 떨쳐버리고 손바닥을 귀에 갖다 댔다.

데구르르……

굴러 떨어진 은전은 하얗게 백열되어있었다.

지지직!

그 비싸다는 대식국의 깔개가 연기를 내며 타기 시작했다.

점소이는 울상을 지으며 몸으로 깔개를 덮어 불을 껐다.

임보산의 귀신같은 재주를 본 후에 물집으로 부풀어 오른 손을 감싸쥐고 시꺼멓게 불 자국이 남아있는 옷을 입은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가 내려간 후,

임보산은 겉옷을 벗어서 창가에 끼웠다.

창문에서 길게 늘어진 황색 장삼이 밤바람에 나풀거렸다.

창가의 탁자에 앉으며 임보산은 중얼거렸다.

[내 딸의 목숨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이나 마찬가진데, 그놈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구나. 만나기만 하면 먼저 내 딸을 능멸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다.]

그때,

갑자기 임보산의 방문이 소리도 없이 살그머니 열렸다.

탁자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고 있는 임보산은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등만 보이고 있다.

사르락!

옷자락스치는 소리가 들리며 문은 닫히고,

툭툭!

가벼운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새근거리는 미약한 숨소리가 임보산의 등뒤에 다가섰다.

순간,

빙글!

망연히 앉아있는 것같던 임보산의 몸이 의자와 함께 돌았다.

뭉클!

살냄새가 그의 콧속으로 후끈 파고들며 그의 얼굴은 두 덩이의 살더미속에 묻혀버렸다.

풍만한 여인의 가슴이었다.

가날픈 손이 그의 머리를 와락 움켜잡았다.

임보산은 풍만한 몸을 가진 나체의 젊은 여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임보산의 손이 슬금슬금 여인의 허리를 스다듬고,

이윽고 그손은 여인의 둔부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아!]

여인이 으스라지게 임보산의 머리를 끌어앉으며 벌써부터 낮은 신음을 내기시작했다.

임보산의 손은 마치 마법사의 손인듯 부드럽게 여인의 몸을 훑어내렸고,

[헉!헉! 더 이상 못참겠어!]

여인은 흥분을 참지못하고 임보산의 몸을 번쩍들어 침상으로 달려갔다.

출렁!

임보산의 몸은 여인에 의해 침상에 던져졌다.

그위로 와락 벌거벗은 여인이 덮쳐들었다.

임보산은 그때서야 여인의 얼굴을 볼 수있었다.

나이는 스물 두세살 정도,

임보산이 이백 살이 넘어서 본 딸 임단심이 스무살인데……

도화빛으로 물든 얼굴은 색기(色氣)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긴 목과 긴팔 다리, 가는 허리, 풍만한 가슴과 둔부……

가히 절색이라고 할 만한 여인이었다.

임보산은 느긋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그에게 이른 일은 흔히 있는 일 중의 하나에 불과한 듯했다.

그 여인은 임보산의 미소에 넋이 나간듯 멍하니 있다가 다시 달려들어 임보산의 바지를 벗겼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그곳에 가져갔다.

임보산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가 지나가고,

여인은 머리를 박은 채 열중하고 있었다.

[흥!흥!]

여인의 숨소리가 마치 성난 황소의 숨소리처럼 침상 주위를 울렸다.

두손으로 임보산의 몸을 비비던 여인은 훌쩍 뛰어 그를 걸터앉았다.

두사람은 일순간 결합이 이루어지고,

[아악!]

여인은 자지러질듯한 신음소리와 함께 고개를 뒤로 젖혔다.

갑자기 임보산이 입을 열었다.

[음양괴(陰陽怪) 마차달(馬車達)의 딸이었군.]

부르르……

여인은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다……당신은……무림인이었군요.]

임보산이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한데 마차달은 네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도무지 그 음양인이라는 건 알 수가 없어서……]

 

음양괴(陰陽怪) 마차달(馬車達),

그는 음양인(陰陽人)이었다.

달의 음기가 강한 때에는 여자가 되고, 태양의 양기가 강한 때에는 남자가 된다.

남자일 때는 절세의 미남자고 여자일 때는 절세의 미녀였다.

그(?) 또는 그녀(?)의 앞에 옷을 벗고 달려들은 여자와 남자의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실상 마차달이란 이름도 남자일 때의 이름이고,

여자일 때는 마옥령(馬玉玲)이란 예쁜 이름을 썼다.

그는 관계한 남자와 여자들의 정(精)을 흡수해 내공을 쌓았는데,

공적으로 물릴까 두려워서 한 사람에게서 십년 이상의 공력을 뺏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뚜렷한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남색과 여색을 지나치게 밝혔다.

어떤 때는 젊은 부부와 함께 관계를 가져 남편과도 아내와도 동시에 뭘 했다는 말이 있고,

어떤 때는 스스로 임무수행중인 거친 표사들 앞에 나타나 당한 척(?)하면서 이 삼십 명이나 되는 남자들을 상대로 즐기기도 했다는 말도 있다.

한데,

그가 무림에서 종적을 감춘 지는 이마 삼십 년이 가까운데……

 

창백해진 여자가 입을 깨물었다가 말했다.

[어머니예요. 어머니를 아셔요?]

[물론이지, 사십년 전 쯤에 꼭 너와같은 자세로 그 자리에 앉아있었지.]

여자,

그녀는 마옥령또는 마차달의 딸인 마천화(馬千花)였는데,

마천화는 수치심으로 붉으락 푸르락해진 채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놀랍게도 임보산의 몸은 여전히 그녀의 사타구니에 달라붙은 채 딸려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마천화는 그제서야 상대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

한낫 부유한 장사치나 관리 정도가 아닌 무림계의 숨은 고수임을 알아챈 것이다.

[조용히 일을 끝내도록!]

임보산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녀는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지며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누워있는 임보산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위엄이 느껴졌다.

두려움……

그리고 다시 끓어오르는 욕망……

그녀는 다시 욕망에 휩싸이며 몸을 움직였다.

임보산에게 신분이 들통난 특유한 기법으로 자신의 꽃을 움직이면서……

[헉헉! 아아!]

그녀는 연신 들뜬 신음과 교성을 내지르건만,

임보산의 그녀의 움직임과 내지르는 소리를 즐기고 있는 것같았다.

갑자기,

마천화는 자신의 아래가 허전한 것을 느꼈다.

[응?]

자신의 몸을 꽉 채우던 어떤 것과 아래에 있던 사람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때문이다.

완전히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

바로 그때,

슈앙!

그 방에 황색 장삼을 손에 든 중년여인이 표독한 눈빛을 발하며 나타났다.

[이 색한! 파렴치한! 당장 나오지 못해?]

중년여인은 침상에 벌거벗고 앉아있는 마천화는 본체만체,

우당탕! 쿵당!

객실의 기물을 구석구석 뒤짚어 엎기 시작했다.

마천화가 당황하여 황급히 옷을 걸치며 더듬거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여……여보셔요……]

홱!

중년여인의 불길을 토할 것같은 눈이 마천화를 노려보았다.

[옳아! 네년이 여태 도망가지 않다니……나하고 한번 해보자는 거냐? 사타구니를 찢어버리겠다 이년!]

번쩍!

[아악!]

마천화는 너무도 놀라 신음아닌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몸이 중년여인의 손에 의해 눈깜짝할 사이에 거꾸로 들려진 것이다.

중년여인은 왼손으로 그녀의 오른쪽 발을 잡고, 오른 손으로 마천화의 왼쪽 허벅지를 잡았다.

마천화의 비림(秘林)에는 방금 전에 벌인 정사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었다.

[천한 것!]

중년여인은 손에 힘을 주면서 마천화의 사타구니를 힘껏 벌렸다.

순간,

[으아악!]

마천화는 극렬한 고통과 함께 자신의 몸이 창문너머로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혼비백산한 그녀는 벌거벗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달아났다.

그녀가 내던져진 객실에서는 중년부인의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중년인의 흠흠하는 목 가누는 소리도 들렸다.

 

× × ×

 

[흥! 언젠가 현장을 잡기만하면 칠십 두개의 황금꽃잎이 당신 심장을 도려낼 거예요.]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소. 게다가 그 여자로부터 도망을 치기까지 했잖소?]

[흥! 그게 도망친 거라구?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자칭 천하제일인이 여자가 두려워서 도망을 쳐? 마음에 없었다면 죽여버릴 수도 있었잖아?]

[무공이 강하다고 무조건 죽이기만 한다면 무림에 누가 살아남겠소? 죽어야 마땅한 자 왜에는 죽이지 않는 것이 내 신조라는 것을 알고 있잖소?]

[딸이 목숨이 한시가 급한데도 그저 여자나 밝히고 있으니……그러고도 아버지 소린 마다않고 듣겠지……]

[그런 말 마시오, 나도 노심초사 오직 그일 만을 걱정하고 있소.]

[흥!]

금화선녀는 임보산의 말에 콧방귀만 뀌었다.

임보산은 여자를 마다하는 인물이 아닌 것이다.

벌써 이백년이 넘는 세월을 금화선녀는 임보산의 바람끼 때문에 고생해야 했었다.

지금 그녀는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나있었다.

그러나,

임보산의 얼굴에는 어떤 묘한 기운같은 것이 어려 있어서,

얼굴을 마주보고 한번 웃고 눈짓하기만 하면 그녀의 마음은 봄눈 녹듯 녹아버리는 것이다.

결국 금화선녀는 임보산에게 어떤 제재도 가하지 못하고 그의 품에 녹아나고 만다.

 

× × ×

 

임보산이 말했다.

[그 소문은 나도 들었소. 당신 사형이 그 아이를 잘가르친 모양이오.]

그가 말하는 당신 사형이란 전륜법왕을 말한다.

[하지만 그 아이가 우리 단심이의 구절반천평맥(九節反天平脈)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금화선녀가 말했다.

한데,

그녀가 말하는 구절반천평맥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전신의 경략이 정상적인 사람보다 아홉군데가 더 돌출되어 떠있는 맥을 말한다.

겉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알 수 없고,

또한 진맥을 해서도 무공이 극히 고강한 사람이 아니고는 발견해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숨어있는 맥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데,

이 맥은 전신의 혈기가 아주 왕성해 지는 시기가 되면 가볍게 떠있던 혈맥이 뒤짚어지면서 극심한 고통속에서 죽어가게 된다.

사람의 혈기가 가장 왕성해 질때는 대체로 이십 일이세 정도일때이고 보면,

선천적으로 구절반천평맥을 타고난 임단심은 그야말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절세적인 무공을 가진 사람이 뒤짚어질 혈맥을 내공으로 바로 받쳐주어야 하는 것인데,

그 공력은 가히 하늘을 거스를 수 있다는 천년의 공력에 달해야 가능한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무공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임보산,

그도 천년의 공력을 갖지는 못했다.

누군가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지 않는 한 임단심의 구절반천평맥을 고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임보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의 내공이 깊어져서 더욱 큰일이오. 혈맥이 뒤짚힐 때 그것은 화약과 마찬가지일 텐데……그러게 내가 어떤 무공도 전수해 주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저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겨우 몇 가지 독술에 어깨너머로 배운 무공뿐이었는데 갑자기 강해졌잖아요.]

[그저 운명에 맞깁시다. 내게도 이런 어려움이 있다니……하늘은 정녕 존재하는 모양이오.]

금화선녀는 눈물을 훌쩍거렸다.

[이백 살이 넘어서 아이를 갖다니 저도 미쳤지요. 결국 저 때문에 그 아이가……]

[내가 사람을 많이 죽여서 그럴 것이오. 어쩌면 천벌이지……]

임보산은 자책하고 있었다.

무림인들은 모르고 있지만,

그의 손에 죽은 악인들의 수효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기실,

무림이 한동안 잠잠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흉마들에게 은거를 종용하고 듣지 않는 자는 가차없이 죽여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대의 흉마거마들은 모두 임보산에게 절대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명을 어긴 댓가는 오직 죽음 뿐이다.

임보산의 무공은 그들도 상상할 수없는 것,

절대무적!

그 자체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임보산의 손에서 반항해본 자도 없었다.

어떤 흉마라 할 지라도 그는 단 일초에 죽여버린다.

머리를 완전히 깨뜨려서……

알고있는 자들에게,

무제 임보산은 공포(恐怖),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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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장 

 

            이상한 음모 (2)

 

 

 

안경 교외에 있는 작은 마을들을 굽어보고 있는 포독산(蒲獨山),

큰 나무들이란 찾아볼 수없고 오직 창포(菖蒲)만 가득한 산이다.

마을 사람들은 장강의 물줄기 중에서 지하 수맥이 포독산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창포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동산이라고 할만한 작은 포독산에는 약수터만 해도 십여개가 넘는다.

수백년 된 창포뿌리를 거친 약수는 보약이라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물을 갖다먹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을에는 장수(長壽)하는 노인들이 상당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포독산에 산신각과 관제묘를 새워 산과 마을을 보호해 주기를 비는데,

그 규모가 사뭇 장엄한 데가 있다.

관제묘는 그 크기가 무창 관림(關林)에 있는 관졔묘에 비해 그다지 작지 않고,

세세한 정성은 오히려 이곳의 관제묘가 더 많이 들어갔을 성싶다.

달빛은 이곳 포독산 관제묘도 유감없이 밝게 비춰주는데,

쉬이익!

한줄기 검은 그림자가 관제묘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십이호(十二號)! 늦었구나.]

관제묘 속에서 돌연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나무를 깎아만든 관우의 상(像)앞에 복면을 한 흑의인이 서있었다.

흑의인은 날카로운 눈은 냉혹하게 번뜩이고,

흑의인의 전신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칙칙한 죽음이 느껴지고 있었다.

[십일호! 일이 들어왔습니다.]

십이호라고 불린 자도 복면을 하고서 말했다.

십일호는 눈을 반짝 빛내더니 뒤로 돌아서서 관우의 목을 비틀었다.

그리고 훌쩍 몸을 날려 관우의 등뒤로 떨어져 내렸다.

십일호라고 불린 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십이호도 정상으로 돌아온 관우의 목을 비튼 후 똑같은 방법으로 사라졌다.

관우의 상 뒤에는 목이 비틀릴 때마다 장독같은 구멍이 드러나는 기관장치가 되어있는 것이었다.

그그긍!

석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섰다.

기다란 석탁을 사이에 두고 열명의 인물이 둘러앉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십이호는 들어서자마자 포권을 한 뒤에 단검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분타주! 청부(請負)가 들어왔습니다.]

상좌(上座)에 앉은 복면인이 물었다.

[위치는?]

[제일 중앙입니다.]

복면인들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분타주가 말했다.

[으음! 삼만냥짜리로군. 우리 구역에서도 이런 큰 청부가 들어오다니……]

그는 침을 삼키고 물었다.

[대상은 누구냐?]

십이호가 손바닥에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쳐보였다.

펼쳐진 종이에 피로 적혀있는 붉은 글씨,

 

황군성󰠏󰠏󰠏󰠏󰠏󰠏!

 

바로 황군성이었다.

분타주란 복면인의 입에서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혈!룡!도!왕!]

석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들은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강호의 정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그자는 오늘 낮에 이미 안경에 들어왔다. 십이호는 청부인으로 부터 대금을 수령하라. 아마 본각에서도 초일류의 고수가 와야 할 것이다.]

그그긍!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분타주의 몸은 의자와 함께 석실 밑으로 사라져갔다.

 

잠시 후 의자만이 올라와 아무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번쩍!

한줄기 섬전이 석실의 문을 갈랐다.

화기에 콩이 튀듯이 벽면으로 흩어지며 천정과 벽에 바짝 붙는 흑의인들,

그러나,

소리도 없이 석문을 베고 들어온 붉은 그림자가 석실에 어른 거리는 순간,

번쩍!

번쩍!

툭! 투둑!

석실 바닥에는 열한 개의 수급이 구르고 있었다.

실로 귀신도 놀랄 정도의 빠름이었고, 하늘도 놀랄 정도의 무시무시한 도법이었다.

스슷!

황군성의 몸은 분타주가 앉았던 의자위에 내려섰다.

위잉! 파파팟!

그의 몸이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돌았다.

그의 몸은 빠른 속도로 바닥을 뚫고 들어가고,

주위로는 깨어진 돌조각들이 날렸다.

펑!

황군성의 몸이 밑으로 슝 빠졌다.

 

길게 이어져 있는 석동(石洞)에는 횃불이 군데군데 타고있다.

휘이익!

황군성의 몸은 마치 바람처럼 석동을 달려갔다.

하지만 횃불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신법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먼저 석동으로 들어온 분타주는 석동에 난 작은 나무 구멍으로 비둘기를 날려보내고 있었다.

[곧 본각에서 고수가 올것……]

분타주는 중얼거리며 몸을 돌리다가 화석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이마에는 굵고 긴 손가락이 닿아있었다.

분타주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혈룡도왕……음모였구……]

순간,

팍!

분타주의 이마에 작은 구멍이 뚫리며 말을 맺지 못하고 쓰려졌다.

꿍!

이마와 뒤통수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황군성은 나무 닭처럼 아무 감정도 없이 힐끗 바라본 후 비둘기가 빠져나간 작은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

슈욱!

작은 구멍으로 그의 몸은 마치 연기처럼 변하며 빠져나갔다.

기이막측한 축골공(縮骨功)이었다.

무림에서 어느 누구도 신법과 동시에 축골공을 펼쳤다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황군성은 그 상상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황군성은 죽어버린 나무 그루터기로 빠져나왔다.

달빛은 찬연하게 사위를 내리비치고,

바람은 선선하게 포독산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달빛 아래로 흐릿한 그림자를 남기며 분타주라는 인물이 날린 전서구가 언덕을 넘고 있었다.

황군성의 몸은 비조처럼 활짝 펴지며 수십장을 가로질러 비둘기를 쫓아갔다.

휘이익!

한 마리 야조(夜鳥)!

황군성은 한 마리 야조였다.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한 살인이 벌어졌던 관제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포독산 아래 마을의 건실한 장정들이 감쪽같이 실종되었다는 소문이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떠돌다가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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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이상한 陰謀 (1)

 

 

 

안휘성(安徽省) 안경(安慶),

양자강이 지나는 길목에 있는 이곳은 상품교역이 번화한 곳이다.

게다가 곳곳에 작은 호수들이 있어서 유람객도 수월찮다.

또한,

색향(色鄕)인 항주(杭州)만은 못하겠지만,

분바르고 꽃단장한 기녀들이 꿀냄새를 풍기며 사내들을 유혹하는 기루들도 적지않다.

이곳 안경에는 그런 기루들이 삼십 여개 있는데,

그 중에서도 크고 화려하며 기녀들이 많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홍화루(紅花樓)를 꼽을 수 있다.

기녀(妓女)의 수만도 일백 오십을 헤아리고,

그 내부의 화려함은 안경의 번영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곳 홍화루의 오층,

파사(페르샤)산의 화려한 포단이 깔려있는 정실의 중간에는 엷은 비단휘장이 천정에서 부터 가로놓여 있다.

그리고,

은은한 비단휘장의 뒤에서 어른거리는 여인의 형상,

휘장의 밖에는 두 사람의 노인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있는데……

[호호호호……]

휘장 뒤에 앉아있던 여인이 갑자기 낭낭한 교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엔 기쁨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두 분은 정말 수고했어요. 아래층에서 마음껏 즐기도록 하셔요.]

엎드려 있던 두 노인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아마도 무슨 즐거운 상상을 하는 모양이다.

[난향아!]

휘장뒤의 여인이 구슬이 부딪히는 것같은 음성으로 시녀를 불렀다.

시녀가 대답하며 휘장앞으로 나왔다.

[이 두분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가도록 해라. 원하는 아이는 누구든지 시중들게 하고……술과 음식 모두 최고급으로 접대하도록 해라.]

여인의 음성을 따라 난향이란 시녀가 앞장서서 내려가자,

두 노인은 그녀의 실룩이는 엉덩이를 침을 삼키며 바라보면서 따라갔다.

그들이 모두 나가고 나자 휘장뒤에 있던 여인은 천정에 매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순간,

휙휙!

묘령의 두 소녀가 그녀앞에 날아들어오며 부복했다.

[부르셨습니까?]

[황군성의 종적이 발견되었다. 첫번째 계획대로 실시한다. 즉시 움직여라. 그는 태평루(太平樓)에 있다.]

[존명!]

그녀들은 천장에 난 구멍으로 날아서 사라져 버렸다.

[호호호호……]

휘장안의 그녀는 무엇이 그리도 유쾌한지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내 공이 크면 아무도 내 자리를 넘보지 못하겠지? 비록 그 계집애라 해도……깔깔깔……]

 

× × ×

 

태평루,

이곳은 기루가 아니다.

평범한 주루(酒樓)일 뿐이다.

황군성은 수하들을 모두 신도보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태평루로 들어섰다.

그의 철갑옷은 원래는 검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갈수록 붉게 변하고 있었다.

지금은 완전한 붉은 색이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은연중에 위압감(威壓感)을 주고 있다.

그가 주루로 들어서자 뭇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황군성같은 칠척 거한도 흔치 않은 데다 그 차림새마저도 괴상했기 때문이다.

황군성은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에도 이미 자리는 거의 다 차있었다.

그가 앉을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 그때,

창가에 앉아있던 세 사람이 음식을 다 먹고 일어섰다.

자리가 비는 것을 본 황군성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점소이가 재빨리 식탁을 깨끗이 치웠고,

황군성은 술과 고기를 주문했다.

쿵쾅쿵쾅!

누군가 계단을 밟고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을 풀어헤친 한 장한이 한쪽 구석에 있는 탁자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노대(老大)! 노대!]

그 탁자에는 두 사람이 장한이 역시 털북숭이 가슴을 드러내 놓은 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중에서 팔뚝이 마치 기둥같이 굵은 인물이 소리쳤다.

[이봐 노이(老二)! 좀 조용히 할 수 없나? 밤낮으로 호들갑인가?]

다른 자리에서 장강삼웅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들은 자칭 장강삼웅(長江三雄)이라고 하는 인물들로서 이 일대에서 협객을 자처하고 있었다.

첫째는 철포삼의 외공을 익힌 자로 이름을 일장번장강(一掌飜長江) 윤걸(允傑)이라는 인물이고,

둘째는 분수자(分水刺)를 잘 쓰며 수공(水功)에 능한 자로 이름을 철교룡(鐵蛟龍) 방충(方沖)이라고 하였다.

세째는 칠절편(七節鞭)을 쓰는데 이름이 칠절편 진삼당(晉三堂)이라고 하였다.

뛰어 올라온 사람은 그중 둘째인 철교룡 방충인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말이 좀 빠른 자였다.

그는 세째인 칠절편 진삼당 옆에 털썩 앉으면서 말했다.

[내가 조금 전에 이혼귀(離魂鬼)를 만났는데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지 않겠소.]

일장번장강 윤걸이 물었다.

[놀라운 소식이라니?]

[글쎄, 얼마 전에 파양호에서 검신과 도신의 대결이 있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 아니요?]

[그렇지!]

[한데, 그 싸움에서 검신과 싸운 상대가 도신이 아니고 도신의 아들이었다고 합디다.]

철교룡 방충은 자신만이 아는 비밀을 이미 비밀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 전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입에 거품을 물고 말했다.

[도신의 아들은 이름을 황군성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은 전에도 검신과 싸워 검신의 팔을 잘랐다고……이번에도 검신을 계속 몰아세우다가 기습을 당해 어깨에 이검을 맞았다고……]

횡설수설하는 방충의 말이었지만 주루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도 작년에 검신이 이름도 없는 무명의 청년에게 팔이 잘려 병신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한데,

검신의 손에 죽었다는 그 청년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도신의 아들이라니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탕!

방충이 술을 한잔 들이킨 뒤, 식탁을 치면서 말했다.

[그 정도로 입이 벌어지지 마시오. 이제 무림에서 이보(二堡)가 사라졌다고 합디다.]

[아니……이보가 사라지다니……?]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방충은 의기양양한 듯이 말했다.

[이보가 연합해서 새로이 이신보(二神堡)가 되었으니 이보가 사라진 게 아니고 무엇이겠소? 이보가 합해졌으니 앞으로 무림에서 최강세력이 되고도 남을 것이오. 천하는 이미 이 소문으로 들끓고 있소.]

방충은 주위를 훑어보고 마치 시처럼 한마디를 읊었다.

 

󰠏󰠏󰠏󰠏󰠏이신이 모였고 혈룡도왕(血龍刀王)이 우뚝 섰으니 누가 이신보를 대적하랴?

 

일장번장강 윤걸이 물었다.

[혈룡도왕은 누군가?]

[거 말했잖소. 검신과 싸웠던 도신의 아들, 칠척의 우람한 키에 붉은 빛이 도는 비늘옷을 입었다고……]

방충은 자신이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대체로 말만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현상이었다.

그들에게 그들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들려주면 대개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백번 천번도 더했던 말을 또 한다고 벌컥 화를 낼 것이다.

어쨌거나,

방충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루에 있던 사람들의 눈은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황군성이었다.

그는 이미 도신 범강으로 부터 전수받았던 목계(木鷄), 나무 닭이 되는 법을 깊이 체득하고 있었기에 방충의 말에도 아무런 표정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주루에 있는 인물들은 황군성이 바로 혈룡도왕이라고 불리는 인물임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샛별같이 나타난 이 젊은 청년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지만,

황군성의 몸에서 풍기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에 행동만 조심스러워지고 입도 떼보지 못했다.

바로 그때,

펑!

황군성의 옆에 있는 창문이 깨어지면서 한 자루의 비수가 날아들었다.

누군가 장력으로 창문을 깨고 비수를 던진 것이다.

[앗! 위험하다.]

누군가 다급성을 질렀다.

쉭!

비수는 곧장 황군성의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순간,

황군성의 고기를 집던 젓가락이 움직이며 비수의 끝을 눌렀다.

팍!

비수의 방향이 꺾이며 탁자에 깊이 박혔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인 절묘한 수법이었다.

주루에 있던 무림인들은 입을 딱 벌렸다.

탁자에 꽂힌 비수의 뒤에는 작은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황군성은 술잔을 마저 비우고, 입가를 쓱 닦은 후에 종이를 펼쳤다.

 

<저는 사신(死神)의 손에 잡혀있어요. 사신각(死神閣)으로 와서 저를 구해주세요.

단심(丹心)>

 

삐뚤삐뚤하게 쓰여진 글씨는 서찰을 적을 때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황군성은 와락 서찰을 움켜쥐었다.

그의 몸에서 폭풍같은 기도가 일어났다.

[사신(死神)……네가 먼저 나를 건드리는구나. 용서하지 않겠다.]

황군성은 깨어진 창문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몸은 허공을 밟고 천천히 대로로 내려서고 있었다.

[허공답보! 전설적인 경공이다.]

그의 뒤에서 누군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태평로 지붕에는 두 여인이 황군성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몸을 날려 어디론지 사라져 갔다.

 

황군성은 안경의 동문 밖에 있는 부운교(浮雲橋)로 갔다.

부운교,

나무로 된 이 교각(橋脚)은 이름은 그럴싸 하지만 결코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 못되었다.

안경에서 나오는 온갖 하수와 썩은 물들이 장강으로 빠져 나가는 곳이 바로 이곳 부운교 다리밑인 것이다.

이 때문에 부운교에는 대낮에도 다니는 사람이 좀체 없다.

황군성은 황혼을 뒤로하고 부운교로 갔다.

퀴케한 냄새와 해괴한 악취들이 그의 코를 찔렀다.

황군성은 주위를 둘러본 후에 삐꺽거리는 부운교의 가운데로 갔다.

그리고,

품에서 단검을 꺼내어 부운교 바닥에 박았다.

팍!

단검은 자루만 남고 완전히 박혀버렸다.

그는 다리를 지나 맞은 편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 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꼬리부터 잘라서 들어간다……)

황군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윽고,

어둠이 짙어지는가 했더니 환하게 달이 밝아왔다.

달빛은 쓰레기로 가득 찬 부운교 밑의 개천도 밝게 비추었다.

반짝반짝!

부운교 아래에서 무엇인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황군성이 꽂아놓은 단검의 날이 달빛에 빛나는 것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추앙!

갑자기 오물로 가득찬 개천에서 검은 그림자가 뛰어올라 부운교를 넘어갔다.

첨벙!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사라져 버렸다.

한데,

부운교 아래로 삐어져 나와 달빛에 반짝이던 단검은 그 찰라의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이것을 지켜보던 황군성의 두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사신……너의 죽음이 시작되었다.)

황군성은 귀신처럼 개천을 따라 가기 시작했다.

 

개천은 안경의 성밖으로 흘러 양자강으로 들어간다.

양자강과 개천이 만나는 지점,

푸우!

갑자기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물속에서부터 강가로 걸어나오며 긴 호흡을 내쉬었다.

기이하게도 그 물고기는 손과 발이 있었다.

훌렁 가죽을 벗어버리는 데 삼십대의 강팍한 인상의 장한으로 변해버렸다.

그의 손에는 황군성이 부운교에 꽂았던 단검이 달빛에 번뜩이고 있었다.

멀리서 황군성이 오연하게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장한은 물고기 가죽을 장강의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다음 큰 바위 밑에 감추었다.

그리고,

총총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황군성은 여전히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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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 章

 

        巨魔들의 죽음

 

 

 

도신이 명의(名醫)들을 찾아다닌 것은 보람이 있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원하는 때에 귀머거리가 될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신의(神醫)를 만난 것이다.

황군성과 함께 보화산(寶華山) 절승곡(絶勝谷)에서 치매괴의(痴魅怪醫)를 만난 것이다.

한데,

그 치매괴의의 신분은 놀라웠다.

그는 전대의 고수로 전설적인 무명(武名)을 떨쳤던 괴노(怪老) 육천태(陸天泰)였던 것이다.

괴노 육천태는 왕년의 이름과 영예를 모두 버린 채 절승곡에 은거하고 있었다.

수많은 재주를 지니고 있었던 육천태는 도신 범강에게 귀머거리가 되는 수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도 또한 한 가지 무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특이한 방법으로 진기를 움직여 고막을 마치 바윗돌처럼 굳혀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천이통(天耳通)같은 수법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육천태에게 크게 사례를 하고 신도보로 돌아온 범강은 황군성의 바램에 따라서 은밀히 수하들을 풀어서 임단심을 찾게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임단심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보고도 없었다.

황군성은 이제 자신의 의부(義父)의 소원대로 검신을 굴복시켜 마왕에 대항하게 했으니 그는 다시 임단심을 찾아나선 것이었다.

이로써 범강에 대한 자신의 도리는 다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 × ×

 

황군성이 탄 배는 호수의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는 여산(廬山)에 들려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파양호는 우기가 지나서인지 군데군데 둔덕들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수로들이 둔덕들 사이로 나있으며, 갈대들이 그 둔덕들을 뒤덮고 있다.

호수의 중심에서 밖으로 나올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그에 따라 물도 흐리고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파양호의 북쪽에 구강(九江)이 있기는 하지만 수위가 낮은 모양이다.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엮어져 있는 수로들을 거슬러서 황군성이 탄 배는 올라갔다.

신도보의 수하들 여덟 명이 그를 신주 받들듯 받들어 모시고 있다.

한데,

그들이 탄 배가 하나의 둔덕을 돌아갈 때였다.

촤아아!

갑자기 한척의 쾌속선이 그들의 앞으로 돌진해 왔다.

[앗! 위험하다!]

노를 젓던 수하들이 황급히 방향을 돌리고,

달려오던 쾌속선은 미꾸라지처럼 그들의 배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쾌속선 위에는 몇 명의 추악한 늙은이들이 타고 있었다.

대뜸 수하들 중의 하나가 큰 소리로 욕을 했다.

[눈깔은 어디 빼놓고 다니냐? 늙은것들아. 시펄! 눈깔에 진물이 나서 신도보 깃발도 보이지 않냐?]

순간,

휙!

한줄기 검은 선이 허공을 가로 질러와서 욕하고 있는 자의 입으로 파고들었다.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황군성의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전륜법왕의 독문절기인 만류귀종이었다.

황군성의 손으로 한줄기의 갈대가 빨려들었다.

욕하던 자는 입을 딱 벌린 채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자신이 죽을 뻔한 것을 안 것이다.

[킬킬킬……애 새끼가 제법이군. 오늘은 바쁜 일이 있어서 살려주마.]

마치 옆에서 속삭이는 것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이미 보이지도 않는 쾌속선에서 들려온 천리전음이었다.

욕을 하던 수하가 무릎을 꿇었다.

[속하의 목숨은 소보주님의 것입니다.]

황군성은 아무 일 없었던 듯 가만히 서있었다.

(저들은 누구일까? 조금 전의 그 한 수만 하더라도 범상한 무공이라고 볼 수 없는데……)

황군성은 왠지 그들의 존재에 대해 신경이 쓰였다.

 

× × ×

 

[그런 방법이 있었군. 하하하하……]

천막이 찢어질 듯한 앙천광소가 터져 나왔다.

검신 전득무는 도신 범강의 손을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굳게 잡았다.

[이제 마왕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오. 으하하하……]

마왕……

이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금제의 주인공,

그는 또한 동한객 궁월의 원수이기도 하지 않은가?

범강이 말했다.

[이제 천하는 우리 것이오. 칠대세력 중 이보의 뭉친 힘을 누가 당해낼 수 있겠소?]

바로 그때였다.

[검신, 도신이란 놈은 냉큼 나오지 않고 뭘하느냐?]

펑! 창창!

[으악!]

싸우는 소리와 비명, 그리고 검신과 도신을 부르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왔다.

전득무와 범강은 동시에 몸을 날렸다.

서산 정상,

얼마 전에 전득무와 황군성이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곳에는 네 명의 노인들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주위에는 이제 이신보로 합쳐진 검객과 도객들이 병기를 잡은 채 포위하고 있었다.

그 노인들의 모습은 흉칙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흉악한 살기는 그들의 무공이 입신의 경지에 달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노인들 중 가닥진 검은 수염을 늘어뜨리고 족제비 눈을 한 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나와 같은 동지를 보게 되다니 반갑기 그지 없구만.]

그는 팔을 슥 들어보였는데 소매가 헐렁했다.

검신이 외팔이인 것을 비웃자고 하는 행위인 것같았다.

도신의 눈이 이채로운 빛을 발했다.

[당신은 기련사흉 중 세째 가진백(賈眞白)이로군!]

[크하하하하. 아직도 노부들을 알아보는 녀석들이 있었군 그래.]

주위에 둘러싸고 있던 도객들과 검객들 중에서 놀라는 기색들이 완연했다.

 

기련사흉,

그자들은 백여년 전 기련산 일대에서 악명을 떨치던 마두(魔頭)들이었다.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고강했던 무공으로 말미암아,

기련사흉의 악행은 극에 달했고,

그들의 피비린내 나는 이름은 중원일대에도 알려지게 되었었다.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 수많은 고수들이 노력했지만,

모조리 그들의 악명을 높이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었다.

한데,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던 그들이 또한 갑작스럽게 파양호 중의 서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검신 전득무가 기련사흉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변방의 귀신들이 감히 이곳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 죽어 마땅하다!]

 

󰠏󰠏󰠏󰠏󰠏죽어 마땅하다!

 

그의 죽어 마땅하다는 소리는 천둥벽력처럼 크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가 잦아들었을 즈음,

세개의 목이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검신 전득무가 무광검을 펼친 것이었다.

아무 비명도 없었다.

오직 지금 전득무의 보라색 무광검을 목에 대고 있는 기련사흉의 네째 가진자(賈眞紫)만이 부릅뜬 눈으로 전득무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진자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미……믿을 수 없다……이렇게 빠른……)

천하에 악명을 떨쳤던 기련사흉이 검신의 단 일초에 셋이 죽고 하나가 제압당해 버린 것이다.

검신 전득무가 말했다.

[감히 검신과 도신을 건드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가진자가 흉폭한 광채를 뿜으면서 소리쳤다.

[죽여라!]

도신 범강이 물었다.

[당신들은 뭣때문에 이곳까지 와서 행패를 부린 것이오?]

가진자는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흉칙한 모습은 더욱 흉칙해 보여 눈을 뜨고 보기도 끔찍스러웠다.

검신이 문득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손을 쓰지 못했으면 혀라도 휘둘러야지. 말해라.]

그의 음성은 사람의 마음 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검을 통해서 얻은 오랜 심득의 흔적이었다.

가진자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 말았다.

[우리는 황군성이란 분을 데리려 왔다.]

[황군성!]

도신과 검신이 동시에 내뱉었다.

가진자가 계속 말했다.

[명령을 받았다. 그분을 찾아오라는……겨우 이곳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도신이 급히 물었다.

[당신들에게 명령을 내린 사람은 누구요?]

가진자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당신들도 강하지, 우리 기련사흉이 일초도 견디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

[…………]

[그분은 신이다. 너희들처럼 억지로 갖다 붙인 검신이니 도신 따위가 아닌……]

도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 적있소. 아마 황군성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당신들뿐이 아니겠지. 전대의 거마들이 몽땅 뛰쳐나와서 황군성을 찾아다닌다는 말을 들은 적 있으니까. 한데, 무엇 때문에 황군성을 찾는거요. 그는 내 양아들인데.]

그말에 검신도 해연히 놀랐다.

그는 아직까지 황군성과 도신의 관계를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황군성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한쪽 팔을 자르기 까지 했는데……

가진자가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그……그렇다면 형들은 죽길 잘 했군……감히 황군성 그분의 양부에게 말을 막 했으니……]

가진자는 떨고 있었다.

검신과 도신을 비롯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련사흉이 누군데 겨우 이런 일로 떤단 말인가?

황군성이 무엇이기에 천하의 거마들이 찾아다니고,

그 거마들을 한손에 움직일 수 있는 그분이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세상에 과연 그런 인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검신이 그의 오른팔인 제갈공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제갈공지도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인물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다는 이야기다.

도신이 물었다.

[당신에게 명령을 내린 그 사람이 대체 누구요?]

순간,

가진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를 죽여라. 나는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지 못한다.]

도신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당신은 가시오. 황군성은 당신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곳을 떠났소.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오.]

범강이 말하자 전득무가 무광검을 거둬들였다.

흠칫,

전득무와 범강의 눈치를 살핀 가진자는 섬뜩한 살기를 비친 후에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의 세 형들의 수급은 눈을 감지 못하고 나뒹굴고 있었다.

전득무와 범강의 마음은 돌로 누른 것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가 또 있다.

전대의 거마들로 부터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자,

천하를 향한 길은 멀고도 험함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자부할 수 없는 것이 천하제일의 자리라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막사로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우워어어어!

 

용의 울음같은 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파양호 물결을 울리며 그들의 귓전을 흔들리게 했다.

[놀라운 신공이다……]

검신과 도신이 자기도 모르게 내뱉었다.

[수십리 밖이다.]

수십리 밖에서 지른 소리가 이렇게 들린다면 그것은 진정 인간의 능력인지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사람의 혼백을 뒤흔들어 놓을 듯한 소리는 거의 일각 정도 계속되었다.

검신과 도신마저 간담이 서늘했다.

 

× × ×

 

파양호 변에 있는 작은 석산(石山),

마치 천신같은 풍모를 드러낸 중년인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뒷짐을 지고 있었다.

중후한 얼굴, 백색장포, 하늘을 떠받칠 수 있을 것같은 위엄을 보이는 두 어깨……

바로,

무제 임보산이었다.

임단심의 아버지이자 금화선녀의 남편인 그,

이십일 세에 전륜법왕을 패배시키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천하의 제일인자로 떠올랐던 인물……

검은 그림자들이 석산으로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바람결에 옷자락을 휘날리며 우뚝 서있는 무제 임보산앞에 도착하는 족족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석산으로 달려온 검은 그림자들은 무려 백여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도무지 나이를 추측키 어려울 정도로 늙어빠진 노인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전신에서는 사악한 분위기가 풍겨나고 있었다.

임보산 앞에 엎드린 이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다.

임보산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기련사흉이 언제 일흉으로 변했는가?]

일행의 뒤쪽에 엎드려 있던 가진자가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말했다.

[속하의 불충을 벌해 주십시오. 저희 기련사흉은 황군성님의 종적을 쫓아 서산에 갔다가 그만……]

[그만……?]

임보산이 반문했다.

가진자는 이마가 터지도록 땅에 받으며 말했다.

[검신의 일검에 세분 형님께서는 돌아가시고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황군성은?]

[이미 그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임보산의 목소리가 중얼거리듯이 흘러나왔다.

[너희 벌레들은 죽어 마땅하군. 당장 죽도록 해라.]

가진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들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바위에 머리를 힘껏 박았다.

퍽!

두개골이 깨어지며 허연 뇌수가 붉은 피와 함께 흘러내렸다.

임보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일년이 지났다.]

그의 뒤에 꿇어 엎드린 자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 귀를 세우고 있었다.

[그동안 찾으라는 사람은 찾지도 못하고, 너희들이 세상에 나와 저지른 악행만 늘어났다.]

그의 음성이 약간 높아졌다.

[삼상(三湘) 식인마(食人魔)!]

그러자 흑의인들 중 하나가 바위에 머리를 찧어 쿵소리를 내며 답했다.

[무제(武帝)시여. 말씀하십시오. 식인마 여기 있습니다.]

임보산이 덤덤하게 말했다.

[너는 일년 동안 내 심부름을 하는 것을 기화로 무려 삼십 두명의 어린아이를 잡아먹었다. 이것을 어떻게 할 셈이냐?]

삼상 식인마가 안색이 백짓장처럼 변하며 말을 더듬었다.

[속하……속하……]

그때,

삼상 식인마의 옆에 있는 쥐이빨을 한 노파가 언성을 높였다.

[식인마! 어서 자결하지 않고 뭘하느냐? 무제께서 직접 손을 쓰시길 기다린단 말이냐?]

삼상 식인마는 노파를 원망스러운 듯이 바라보곤 자신의 천령개를 찍었다.

퍽!

그의 머리가 수박처럼 깨어졌다.

임보산이 노파를 호명했다.

[귀파파!]

노파가 깊이 조아렸다.

[식인마와 너는 어떤 관계지?]

[전에는 남편이었습니다만 어찌 무제님의 뜻을 거스른 자를 남편으로 섬길 수 있겠습니까? 소녀는 오직 무제님에 대한 충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노파는 자신을 소녀라고 말했다.

임보산 보다 나이가 적은 모양이다.

[식인마가 먹은 아이를 요리한 자는 누구지?]

임보산의 말이 떨어지자 귀파파의 안색도 흑빛으로 변해버렸다.

그때,

퍽!퍽!

몇 명의 인물들이 자신의 천령개를 부수며 엎어졌다.

임보산의 말에서 연좌제까지 동원할 것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귀파파는 머리를 숙이며 비수로 자기의 심장을 찔렀다.

푹!

추악!

붉고 뜨거운 피가 뿜어지며 귀파파는 쓰러져버렸다.

임보산은 삽시간에 말로써 사십여 명을 자결하게 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끝날 것같지 않았다.

이미 석산은 피비린내가 자욱하고 흘러내린 핏물과 뇌수들로 인하여 도살장을 방불케하고 있는데……

아직 살아있는 자들의 눈빛이 교환되고 있었다.

그들은 임보산이 자신들 모두를 죽여버릴 심산임을 알아챈 것이다.

자신들이 임보산의 명령을 일년이 지나도록 완수하지 못하자 임보산의 심사가 뒤틀린 것이 틀림없다.

그들의 눈빛이 가열차게 교환될 때,

갑자기 임보산이 몸을 돌렸다.

그들은 갑자기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머리를 땅에 찧었다.

무제 임보산……

이 가공할 인물 앞에서 그들은 숨도 쉬지 못하는 것이다.

임보산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내 뜻을 짐작하고 있는 자들은 내 뜻대로 행하라.]

육십여 명의 흑의인들은 벼락에 맞은 듯이 부르르 떨었다.

그의 뜻,

자신들을 모두 죽이려는 그 뜻을 이미 짐작하고 있는데,

말할 것도 없이 그대로 시행하라면……

그것은 몽땅 자결하라는 소리밖에 더되는가?

임보산이 등을 보이고 있을 때는 눈빛도 교환되었지만,

막상 임보산의 천신같은 모습을 마주 대하고는 어느 누구도 기를 펼 수가 없었다.

퍽!퍽!

퍽!

비명도 없는 가운데 수박깨지는 소리와 함께 하나둘 시체로 변해갔다.

아무도……

임보산에게 드러내 놓고 저항도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석산에는 임보산 외에 숨을 쉬고 있는 자는 없었다.

임보산의 몸이 천신처럼 둥둥떠오르며 쓰러진 시체들 위로 걸어갔다.

그리고,

심장을 찔러 자결한 귀파파의 머리를 슬쩍 밟았다.

퍼썩!

귀파파의 머리가 깨어지며 굳게 쥐고 있던 비수가 바위위에 떨어졌다.

튀어나온 귀파파의 눈은 경악이 어려 있었다.

임보산이 중얼거렸다.

[어리석은 년! 감히 내 앞에서 술수를 부리려하다니……다른 녀석들이 하나같이 머리를 부수고 죽는 이유를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니……]

임보산의 몸은 한줄기 빛처럼 빠르게 사라져갔다.

일백여 구의 전대 흉마거마들의 시체가 석산에 즐비하고,

새들이 날아와 그들의 피와 살점을 물어뜯고 있었다.

임보산은 사파의 무리들을 절대로 믿지 않았다.

그가 사파의 무리를 죽일 때는 반드시 머리를 제거해버린다.

어떤 사악한 수법으로도 머리가 깨어진 상태에서 되살아날 방법은 없는 것이다.

방금 전,

귀파파는 머리를 굴렀으나,

그녀는 임보산의 원칙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마두들은 다 알고 있는 원칙을……

임보산이 두려운 줄만 알았지, 얼마나 치밀한 인물인지를 모른 것이다.

임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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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九 章

 

          二神堡의 誕生

 

 

황군성,

그의 무공은 세인이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가공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검신 전득무의 무광검을 한줄기도 놓치지 않고 막아내고 있었다.

파팍!

팍!

보라색 검강은 황군성의 번천도에 부딪히며 사그라졌고, 다른 검강이 그 뒤를 이었다.

황군성과 전득무의 싸움은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해내고 있다.

백색과 보라색이 환상처럼 어우러져 모든 사람들의 넋을 놓아버리게 만들었다.

(이런 괴물같은 놈……)

전득무는 무광검을 종횡무진으로 휘둘렀다.

베고, 찌르고, 누르고, 밀고, 미끄러뜨리고……

그의 이마에는 쉴새없이 땀이 흐르고 있었다.

검신 전득무가 결투 도중에 땀을 흘리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신 범강과의 결투는 원래 계획된 것인지라 땀을 흘릴 것도 없었다.

검신과 도신의 결투는 원래 그들의 계획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매년 결투를 벌이고,

그때마다 세인들이 볼 수 없었던 가공한 검술과 도법을 선보이고,

그리하여 그들의 문하에 투신하는 검객과 도객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졌고,

결국은 신검보와 신도보를 천하의 칠대세력으로 키울 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신검보와 신도보에서도 보주 외에는 철저한 심복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한데,

신검보와 신도보의 보주들 간의 대결은 완전한 그들만의 의사로 된 것은 아니었으니……

 

각설하고,

진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전득무는 혼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황군성은 수비만 할 뿐 공격을 해오지는 않는다.

그 사실은 전득무의 가슴을 비할 바 없는 무게로 짓누르고 있다.

만약 그가 공격해 온다면……

어떻게 막아야 할 지도 난감한 지경이었다.

전득무는 황군성의 손에 있는 번천도가 고금십대천병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번천도의 이름은 모르는 자가 없지만 실제로 본 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역시 고금십대천병 중 서열 이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무광검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팍!

쉬쉭!

갑자기 황군성의 손에있던 번천도가 늘어나면서 강렬한 빛을 뿜었다.

번천도가 춤을 추자 무광검은 황군성의 몸 가까이에 이르기도 전에 소멸되기 시작했다.

그럼 번천도가 무광검보다 뛰어나단 말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황군성은 번천도를 완전히 십이성까지 연성했지만,

검신 전득무는 무광검의 최고경지인 팔단계까지 이르지 못한 채 칠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검신 전득무의 가부좌를 틀고 앉은 몸이 점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스스슷!

바로 그때였다.

검신 전득무의 귓속으로 한줄기 전음이 파고들었다.

[임단심! 그녀를 어떻게 했소?]

황군성의 음성이었다.

전득무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황군성이 우세를 차지하고도 자신을 완전히 몰아세우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전득무는 고개를 젓는 시늉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황군성에게 의사는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은 손으로는 여전히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황군성의 전음이 다시 들렸다.

[임단심! 그녀를 어떻게 했소?]

앞의 말과 똑같은 소리였다.

전득무는 문득 날카로운 검강을 내쏘았다.

그의 눈으로는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황군성이 자신의 모른다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하자 자신이 불신당했다고 여긴 것이다.

전득무는 버럭 소리쳤다.

[그때 이후로는 본 적도 없다.]

사방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황군성의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십여장이나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는 전득무에게 전음으로 빠르게 말했다.

[내 견정혈을 공격하시오.]

황군성은 번천도로 전득무를 쪼개가고 있었고,

전득무는 황군성의 말을 미덥지는 않지만 그대로 따랐다.

번쩍!

전력을 다한 무광검의 보라색 검강이 황군성의 양쪽 어깨에 있는 견정혈을 때렸다.

깡!

황군성의 몸은 허공에서 중심을 잃고 곤두박질쳤다.

그의 손에 있던 번천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와! 검신이 이겠다!]

[과연 검신이다!]

[검신! 검신!]

검객들이 환호성을 울리며 검신을 외쳤다.

황군성의 몸은 땅에 닿기 직전에 다시 중심을 잡아 안전하게 착지했다.

검신 전득무의 눈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황군성의 귀로 그의 전음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조건이 뭐냐? 무엇때문에 내게 패했느냐?]

검신 전득무의 음성은 구겨져 버린 자존심으로 용광로보다 뜨거운 분노를 담고 있었다.

황군성은 말했다.

[당신도 마왕(魔王)의 금제를 받고 있지 않소?]

전득무의 몸이 흠칫 떨렸다.

[범강이 말했느냐?]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천천히 하도록 합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면서 전음으로 이야기했다.

[무슨 말을 하자는 거냐?]

전득무의 물음에 황군성이 돌연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금제는 차치하고라도, 당신 혼자서 마왕을 이길 수 있소?]

전득무가 잠시 생각해 본 후에 답했다.

[너와 싸우기 전에는 무광검으로 승부를 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다.]

[당신이나 도신이나 실제로는 마왕의 수족에 불과하오. 함께 힘을 합쳐서 마왕과 싸우지 않겠소?]

황군성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임매와 상관이 없다면 합작하고 싶소. 나 또한 마왕과 풀어야할 원한이 있으니까.]

[독봉 임소저에게 나는 손을 쓴 일이 없다. 맹세해도 좋다.]

[그럼 신도보와 신검보의 합작에 동의한 것으로 생각해도 좋소?]

하고 황군성이 물었다.

전득무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마왕의 금제를 풀 방법이라도 있느냐? 금제를 풀 수 없다면 그에게 발각되는 즉시 죽을 뿐이다.]

황군성은 확신에 찬 음성으로 답했다.

[있소!]

그는 도신 범강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순간,

슈앙!

도신 범강의 몸이 표범처럼 달려왔다.

[멈춰라!]

[암습을 하겠다는 거냐?]

신검보의 고수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 범강을 막아갔다.

그들은 도신 범강이 자신들의 보주를 기습한다고 오해한 것이다.

그때,

전득무가 버럭 천둥같이 소리쳤다.

[멈춰라! 모두 물러서라!]

신검보의 고수들은 깜짝 놀라 물러섰다.

전득무가 포권하면서 말했다.

[범형! 수하들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범강은 전득무 앞에 내려섰다.

범강이 우렁찬 소리로 외쳤다.

[선탈금(先脫禁)!]

전득무 역시 용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로 외쳤다.

[후천하(後天下)!]

그들의 외침이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먼저 금제에서 벗어나고 후에 천하를 도모한다.

전득무와 범강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적수는 생각마저도 비슷한 것이다.

그들은 순식간에 의견의 일치를 이끌어낸 것이다.

와와와!

주변에 있던 검객들과 도객들은 이유도 모르고 환성을 터뜨렸다.

범강과 전득무는 함께 손을 잡고 소리쳤다.

[우리 신도보와 신검보, 신검보와 신도보는 앞으로 하나의 세력으로 뭉친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뜻밖에도,

검신과 도신의 싸움이 일어났어야 할 자리에서,

신도보와 신검보는 이신보(二神堡)라는 이름으로 뭉쳐버렸다.

강호의 파란은 예고되고 있었다.

황군성은 여전히 석상같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주위의 환성과 고함소리가 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임매……도대체 어디 있는 것이오? 지난 한 해 동안 천지를 돌아다녔건만 당신은 보이지 않는구려……)

 

× × ×

 

도신 범강은 난감한 신색이었다.

황군성은 표정없는 얼굴로 그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범강이 답하지 않더라도 황군성이 자신의 뜻대로 하고 말 것임을 범강은 알고 있었다.

한참 생각한 후에 범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가거라! 하지만 네 뒤에는 항상 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너는 내 아들이다.]

황군성은 고개를 숙여 절한 후에 막사를 벗어났다.

그리고,

준비된 한척의 배에 올라 파양호의 서산을 떠났다.

도신 범강과 황군성은 어떻게 해서 양부자지간이 된 것일까?

일은 이렇게 된 것이었다.

 

임단심을 찾아나선 황군성은 혼이 빠지기라도 한 듯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비록 그에게 오백년의 공력이 있고,

기이한 신공이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한달 정도를 돌아다니고 나서는 몸을 부지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길에서 쓰러져버렸다.

삶에도 아무 미련이 없었고, 임단심이 없기에 죽어도 괜찮은 것 같았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 산곡에 있는 시골의원의 집이었다.

수레를 끌고 가던 농부가 쓰러진 그를 발견하고 의원에게 데려다 준 것이다.

병이 있어 쓰러진 것이 아니라 단지 먹고 마시지 못해서 그런 것일 뿐이니,

의원이 입으로 물과 미음을 흘러넣어주자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잠도 전혀 자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닷새만에 깨어난 것이다.

그때,

그의 옆에는 한 노인이 유심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이 깨어난 그에게 말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자네도 떠돌이인 것 같으니 노부와 함께 다니지 않겠나?]

황군성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노인은 그가 승낙한 것으로 생각하고 의원에게 돈을 치른 후에 길을 나섰다.

황군성도 그 노인과 함께 나섰다.

그도 임단심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었다.

그 노인은 황군성에게 아주 자상하게 배려해 주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는 듯이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의원들을 찾아다니네. 자네가 들으면 웃을 지 모르지만 귀머거리가 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말이네. 하하하.]

정말로 노인은 천하각지의 유명한 의원들을 찾아다녔고, 의원을 만날 때마다 귀머거리가 되는 방법을 물었다.

그와 함께 다니면서 황군성은 그 노인에게 어떤 애착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는 임단심이 그의 모든 것을 배려해 주었는데 이제는 노인이 모든 것을 배려해주고 있었다.

그는 은연중에 혹시 임단심이 노인으로 변장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노인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나는 위엄은 결코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때때로 노인의 주변에는 신비한 인물들이 나타나서 은밀히 무엇인가를 말하고 노인도 무슨 말인가를 하곤 했다.

황군성은 노인의 신분이 아주 비밀스럽다는 생각은 했으나 구태여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한데,

어느 날 객잔에 들어서 였다.

노인이 황군성에게 불쑥 물었다.

[자네 무공은 누구에게 배웠는가?]

황군성은 답하지 않았다.

일일이 답한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에게 무공을 가리친 사람을 들자면 한 두 사람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문성무존에서 그에게 무공을 가르친 어른들을 생각해야 하고,

이전의 사부였던 한천사방객을 들어야 하며,

최근의 사부였던 전륜법왕을 들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노인은 대답없는 황군성앞에 젓가락 하나를 던져 놓았다.

젓가락은 바닥에 꽂혀서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세워져 있었던 것 같았다.

[이 젓가락을 한번 이겨보게.]

노인은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한 후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황군성은 어이가 없었다.

젓가락을 던져놓고 사람을 젓가락과 싸워서 이겨보라니……

그는 눈을 똑바로 뜨고 혹시 젓가락에 다른 점이 있는가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쳐다보아도 젓가락은 그냥 젓가락일 뿐이었다.

노인의 말이 그냥 해보는 빈말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 그는 젓가락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위해 고심했다.

(젓가락을 이긴다……젓가락을 이긴다……)

그 순간만은 노인의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듯이 황군성은 젓가락에 온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그는 젓가락에 점점더 몰두 할 수록, 어떻게 하는 것이 젓가락을 이기는 것인지도 잊어버렸다.

하룻밤이 지났을 때,

황군성의 눈은 빨갛게 변해버렸지만 그는 젓가락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없었다.

젓가락은 꼼작도 않고 있는데,

황군성도 식음을 전폐하고 젓가락과 싸우고 있었지만,

그는 자기 자신마저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젓가락에 자신의 정신마저도 빼앗겨 버린 것이다.

때때로 노인은 소리없이 황군성을 지켜보다가 방을 나서곤 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황군성의 마음엔 젓가락이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날이 갈 수록 젓가락은 그를 무섭게 짓눌러 오는 것이었다.

이미 젓가락은 그의 눈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커져있었고, 그의 마음을 꽉채우고도 비좁어 할 정도로 자라버렸다.

황군성은 젓가락앞에서 한낫 무력한 존재였다.

아주 미미한 존재였다.

그가 아무리 번천도를 휘두른다 하더라도 젓가락의 일각도 자르지 못할 것같았다.

그의 마음 속으로는 수천가지,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져갔다.

젓가락을 대상으로 자신이 알고있는 모든 무공이 펼쳐졌다.

혈왕신공과 빙백강기, 그리고 포산신공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그만의 독특한 신공도 그의 마음속에서 펼쳐졌지만 젓가락을 이길 수는 없었다.

문성무존의 수많은 절기들, 그리고 전륜법왕으로 부터 전수받은 무공들……

아무 것도 소용없었다.

그는 젓가락을 이길 수 없었다.

젓가락은 하늘이고 태산이고 우주였다.

젓가락을 부러뜨린다 하더라도 이긴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도무지,

젓가락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손한번 써보지 못하고 젓가락에 패하고 말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천지가 혼돈되고,

울컥!

입으로 한덩어리의 피를 토해내며 기절하고 말았다.

얼마 후,

황군성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추궁과혈로 풀어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깨어났다.

노인이었다.

노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자에 보면 목계(木鷄)라는 말이 나오네. 자네는 목계와 싸운 것이네.]

불헌듯,

황군성의 머리에도 한줄기 빛이 통하며 정신이 맑아졌다.

[그렇다! 나는 목계와 싸운 것이다!]

황군성은 벌떡 일어나며 손바닥으로 침상을 쳤다.

탁!

가벼운 손짓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침상은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은연중에 공력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황군성이 문성무존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어떻게 남화경(南華經:壯子의 다른 일컬음)을 읽어보지 않았겠는가?

그도 남화경이라면 줄줄 외우고 있었다.

문성무존이 실제로는 노장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기때문에 남화경, 도덕경 같은 것은 그에게 있어서 족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장자에 나오는 목계는 앞서 말한 바 있으니 다시 적지는 않겠다.

하지만,

황군성은 나무젓가락으로 부터 무공의 요지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싸우려 하지 않는 적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움직이지 않는 적보다 빠르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살기를 전혀 내뿜지 않는 적을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존재를 의식치 않는 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황군성은 자신이 바로, 그 적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이 젓가락이 되고 목계(木鷄)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황군성은 진정으로 노인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의 무공은 이로 말미암아 크게 한 걸음 나아간 것이었다.

[노부는 이보 중 신도보(神刀堡)의 보주인 범강(氾康)이란 사람일세. 나이는 이미 천명을 알 때가 지났건만 아직 후계자가 없다네. 그래서 노부는 자네를 후계자로 삼아 내 모든 것을 전하고자 하네.]

황군성이 놀라자 그는 이번엔 손을 저어 아무말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말했다.

[자네의 내력이 어떤가 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네. 사부가 누구라도 상관이 없어. 하지만 자네는 내 진전을 이어받았으니 다른 모든 것을 차지할 자격이 있네. 일단은 가진 후에 버리든 말든 마음대로 하게.]

그 노인은 도신 범강이었다.

그의 무공의 요결은 한마디로 목계에 있는 것이었는데,

황군성이 한 순간에 깊이 깨달아 버린 것이다.

초식같은 것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미 뿌리가 옮겨갔는데 입이나 줄기따위는 있으나 마나한 것이다.

황군성은 묘한 인연에 의해 도신 범강의 양자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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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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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八 章

 

           無光劍과 飜天刀의 對決

 

 

 

멍하니 풀린 눈에도 햇살은 찬란하게 비쳐들었다.

개울에 반사된 햇살이 금빛으로 출렁이고,

물속을 돌아다니는 은빛 물고기들은 돌 틈에서 노닌다.

[와! 잡았다. 내게 제일 커다.]

개울의 하류에서 아침일찍 부터 물고기를 낚던 근처 마을의 꼬마하나가 기뻐소리친다.

[나도 잡았다. 내것도 커.]

다른 꼬마의 소리를 들으면서 황군성은 바위덩어리처럼 굳어있던 몸을 폈다.

일어서서 고개를 들자 그의 머리뒤쪽의 먼 연장선에 푸른 산머리가 비쳤다.

그의 긴 그림자는 숲까지 닿았고,

황군성의 못박힌 듯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두 발은 힘겹게 떨어졌다.

동네 꼬마들의 눈이 일제히 황군성을 향했다.

그 맑고 어린 눈에는 놀람의 빛과 호기심이 가득해 보였다.

문득,

그 꼬마들 중의 하나가 달아나며 소리쳤다.

[거인이다. 달아나자. 엄마! 아버지!]

파급효과는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예닐곱 명이나 되는 꼬마들이 너도나도 엄마, 아버지를 외치며 달아나 버렸다.

게 중에서는 앙앙거리며 달아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데,

오직 두 녀석 만은 그자리에서 꼼작도 하지 않고 황군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군성의 힘없는 눈은 아무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개울을 따라 걸었다.

[임매, 임매를 찾아야지……]

그는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두 소년의 앞을 지나 터벅터벅걸어갔다.

자신이 어디를 걷고 있는지도 어디로 걸어가는 지도 모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두 소년 중의 하나가 말했다.

[형아, 저사람은 키가 너무 커서 바보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지?]

[바보같은 소리 하지마, 키가 커다고 어떻게 바보가 돼? 밥을 많이 먹은 것이 틀림없어. 배가 부르면 눈동자가 흐리멍텅해지는 법이니까.]

다른 소년이 확신에 찬 음성으로 먼저 말한 소년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그러자 먼저 번의 소년이 말했다.

[벌써 아침을 먹었을까? 아직 이른데……]

[이 바보야! 꼭 오늘 아침을 말하는 것이 아니야, 다른 때라도 많이 먹었을 수 있잖아.]

약간 큰 소년은 꿀밤을 쥐어박으면서 말했다.

그때였다.

[어디냐 어디? 그래 우리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놈은 어디 있느냐?]

[그런 놈은 다시는 발도 못붙이게 혼을 내놔야 해요.]

동네사람들이 괭이와 낫 등의 연장을 들고 멀리서부터 고함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먼저 도망간 소년들이 집으로 가서 한바탕 법석을 부린 모양이었다.

남아 있던 두 소년은 피식 웃으면서 달려오는 어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른들이 하는 양이 그들에게는 더 재미있게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황군성은 이미 개울을 따라 큰 걸음으로 내려가고 있는 중인데.

황군성은 등뒤에서 마을 사람들이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의 발걸음이 옮겨지면서 소리는 멀어지고,

마을 사람과 소년들의 눈에서는 황군성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황군성의 큰 덩치를 목격하고서야 어른들은 아무도 쫓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황군성은 그렇게 다시 사라져 갔다.

 

× × ×

 

세상에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데,

무수한 말들이 나돌고,

그 말들은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무림에서는 그동안 한 사람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녔고,

그 사이에서는 수많은 살상이 일어났다.

세상에 난무하는 소문들……

고금십대천병에 관련한 많은 근거없는 소문들이 나돌고, 그 소문에는 반드시 혈풍이 동반되고 있었다.

하나,

어느 누구도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는 가공할 고수가 무림에 나와 한 청년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은,

잠시 동안이나마 세인들의 가슴을 차갑게 식혀주는 역할을 했다.

그 고수의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전대의 흉마거마(兇魔巨魔)도 그와 마주서면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처분을 기다렸다.

그의 명령을 받은 흉마거마들은 각기 흩어져 한 사람을 찾아다녔고,

그들이 찾아다니는 청년의 이름은 바로 황군성이었다.

그들과는 또한 완전히 계열을 달리하는 인물들도 황군성을 찾아다녔으니,

그 인물들 역시 무림에 전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고수들이었다.

세상은 바야흐로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칠파의 세력은 갑자기 등장하기 시작한 인물들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몸을 사리고,

그들도 모르게 강호는 재편(再編)되고 있었다.

강호의 암류는 급박하게 흘러가고……

무림인들은 자신을 도야(陶冶)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난세를 향한 시대의 흐름이 그들의 본능에 호소한 때문이다.

난세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자신의 강함과 교활함, 그리고 뭉쳐진 힘밖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 × ×

 

기성자(紀省子)가 주(周)의 선왕(宣王)을 위해 싸움닭을 기르고 있었다.

그가 싸움닭을 기른 지 열흘이 지나자 선왕이 물었다.

[닭은 이제 싸울 수 있겠는가?]

기성자는 대답했다.

[아직은 안 됩니다. 아직 의기는 높고 자신에 차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 선왕이 또 물었다.

[닭은 이제 싸울 수 있겠는가?]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안됩니다. 소리가 들리거나 형체가 있는 것을 보면 곧 반응합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묻자,

[아직 안 됩니다. 아직도 상대를 노려보고 의기왕성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다시 열흘이 지나 또 왕이 묻자 기성자는 대답했다.

[그런 대로 되겠습니다. 다른 닭이 울어도 전혀 동하는 데가 없습니다. 언뜻 보기에 마치 나무로 만든 닭(木鷄)과 같습니다. 그 정신이 응집되어 다른 닭이 싸우려고도 하지 않고 등을 돌리고 도망칩니다.]

 

× × ×

 

파양호 중에 있는 서산(西山),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수많은 배들이 서산으로 몰려가고 있다.

서산에 이미 정박하고 있는 배들의 수효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물결을 가르고 있는 배들 가운데 하나,

도(刀)라는 글자가 씌여 있는 붉은 깃발을 달고 있었다.

크기도 다른 배들보다는 훨씬 큰 배다.

번뜩이는 도를 든 무사들이 갑판위를 삼엄한 경계의 눈초리를 한 채 돌아다니고 이다.

 

선실 안,

배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호화로운 곳,

호피(虎皮)가 깔려진 바닥에 놓인 태사의에 오십줄에 접어들었음 직한 노인이 턱을 고이고 앉아있다.

[나는 장자(壯子)에 나오는 목계(木鷄)와 같이 되고자 하였으나 종래 되지 못하였다. 한데 너는 이미 석인(石人)이 되어 버린 듯 하니 그 경지가 참으로 놀랍구나.]

노인 앞에는 칠척의 거한이 붉은 철갑을 입고 서있었다.

한데 이 거한……

마치 인간 화석같은 무표정한 얼굴에,

지진이 인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같은 견고한 어깨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 거한이 바로 황군성이라는 사실이었다.

지난 일년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물,

그를 찾기 위해 무림이 발칵 뒤짚혔던 그 인물인데……

[너를 만난 후에야 나는 우리 신도보(神刀堡)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너를 믿는다. 이 아비를 실망시키지 않겠지?]

노인은 기대에 찬 눈으로 황군성을 바라보았으나,

황군성은 숨을 쉬는지 않는지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돌덩어리 같은 모습이다.

그럼에도 노인은 아무런 불만이 없는 듯했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윽고 배는 서산에 닿고,

무사하나가 들어와 노인에게 보고했다.

[보주님! 서산입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는 표시를 했다.

이 노인은,

당금 무림의 칠대세력 중 신도보의 보주인 도신 범강(氾康)이었다.

도신 범강……

그는 매년 있어온 검신과 도신의 결투를 위해서 이 서산에 온 것이다.

 

× × ×

 

서산 정상,

마치 군대가 주둔하기라도 한 듯이 막사(幕舍)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외팔의 검신이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제갈공지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전해 듣기로는 도신(刀神)이 양자를 얻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것이 딴마음을 먹게 된 동기가 아닐런지……?]

검신의 움켜쥔 손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서찰이 재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우리의 금제를 깨뜨릴 자신이 있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검신은 강하게 도리질 했다.

[나가 금제를 깨뜨릴 수 없는데 그자가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데도 그자가 이런 서찰을 보내다니……]

검신 전득무가 태워버린 서찰에는 과연 무슨 내용이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본 도신은 그자의 존재를 무시하기로 했소. 이제, 그자가 꾸민 대로의 일은 모두 끝나고, 본 도신의 행동은 모두 내게서 나오게 될 것이오. 검신의 의향이 어떻든, 본 도신은 그자와 정면 충돌을 불사할 것이오……>

 

검신 전득무가 제갈공지를 향해 말했다.

[도신에게 뒤져서는 안되겠지?]

…………

 

× × ×

 

서산 정상에는 검신과 도신의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천하에 흩어져 있던 검객과 도객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그들은 검신과 도신의 대결에서 단 한 수 만이라도 옅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영광인 것이다.

마침내 해는 하늘 높이 솟아 정오가 되고,

둥둥둥!

북소리가 울려퍼지며 양 측의 막사에서 두개의 인간 물결이 일어났다.

검신 전득무와 도신 범강을 필두로 그들의 수하들이 중앙으로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백 여 명이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데도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검신과 도신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그들은 불과 이척의 거리가 남아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팔을 뻗으면 서로의 어깨를 잡을 수 있는 거리였다.

검신의 눈에 이채로움이 피어났다.

그의 눈은 도신보다도 도신의 바로 뒤에 서있는 황군성을 향하고 있었다.

모습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틀림없는 황군성,

자신의 한쪽 팔을 잘랐던 그였다.

그는 속으로 섬칫함을 느꼈다.

자신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황군성은 마치 석상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신이 입을 열었다.

[범형! 뒤의 청년이 바로 범형의 양자요?]

도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보셨소.]

[범형의 간이 왜 커졌는가를 이제 알겠군. 시작합시다. 오늘은 예전과 다를 것이오.]

검신 전득무는 냉혹하리만치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도신 범강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다를 것이오.]

그는 천천히 왼손을 들어올렸다.

검신 전득무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그들의 뒤에 서있던 수하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도신의 뒤에서 황군성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눈에서 기이한 광채를 띠는 검신을 향해 도신이 말했다.

[전형! 오늘 싸울 사람은 내가 아니오. 잘 싸워보시오.]

그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훌쩍 물러났다.

검신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줄기줄기 살기가 뻗어나왔다.

(감히……이 늙은이가……이 애송이를 죽인 후 너마저 죽여주마!)

하나,

그는 여전히 석상같은 황군성을 보고는 빠르게 마음을 추스리며 살기를 거두고 말았다.

(저놈의 무공이 훨씬 강해졌구나. 그때 내 검에 목을 찔렸는데 어떻게 살아났을까?)

전득무와 황군성의 거리는 불과 사척정도……

서로의 병기가 몸에 닿을 거리이다.

사방의 관전자(觀戰者)들은 숨을 죽이고,

전득무의 몸에서는 엄청난 기도가 폭풍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황군성에게 일검을 찌르지 못하고 있었다.

황군성의 몸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무(無)일 뿐이다.

그렇지만,

전득무로서는 그 무가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의 이마로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관전자들도 모두 이상하게 여기는 기색이었다.

검신 전득무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새파란 청년하나를 죽이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도신 범강만이 여유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후후후…… 전득무! 너는 결코 검을 뽑지 못할 것이다. 오늘이후로 우리 도신보가 천하의 웅주가 될 것이다.)

도신의 생각처럼,

검신 전득무는 황군성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놈……결국 내 비장의 무기를 쓰게 하는구나.)

그의 이마로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스스슷!

그의 몸이 천천히 뒤로 미끄러져 나갔다.

신검보의 무사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방에서 지켜보던 검객과 도객들의 입에서 놀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신이 물러섰다.]

[검신이 밀리고 있다.]

황군성은 검신이 물러서든 말든 여전히 팔을 늘어뜨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의 눈은 검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스스슷!

계속 물러서 이장 정도까지 물러선 검신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버렸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이 기괴한 대치를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바닥에 앉은 검신은 검을 자신의 무릎위에 놓았다.

마치 칠현금(七絃琴)을 연주하는 듯한 자세였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검신도 점차 자신만의 세계로 몰입해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어느 한 순간,

검신의 두 손이 합장하듯 모여지고,

번쩍!

검신의 무릎에 놓여있던 검이 한 마리의 백룡(白龍)처럼 꿈틀대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어검술이다!]

주위에서 분분히 경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마리 백룡처럼 변한 검은 서산의 허공을 어지럽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번쩍!

번쩍!

뭇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검광과 검기를 뿌리며 검은 점점 더 빨라지고,

그 세력권은 점점 압축되고 있었다.

검기가 이룬 막이 하나의 거대한 모자처럼 되어 황군성의 몸을 뒤집어 씌우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검술의 경지를 뛰어넘은 새로운 검공(劍功)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졌으며 황군성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였다.

거대한 검기의 모자가 황군성의 몸에서 일장 정도의 거리로 다가왔을 때,

황군성의 몸이 처음으로 변화를 보였다.

성큼성큼!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검신 전득무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는 거대한 검기의 덩어리가 내리덮치고 있는데,

그가 세 걸음을 옮겼을 때,

마침내 검기의 덩어리는 황군성을 덮어씌우고 말았다.

[앗! 저런!]

황군성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도신 범강의 눈은 여전히 황군성에 대한 철저한 신뢰로 빛나고 있었다.

순간,

번쩍!

하늘을 향해 치솟는 다른 한줄기 백광이 검신이 만든 검기의 덩어리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황군성은 여전히 아무 일 없었던 듯 검신을 향해 네번째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검신이 손가락으로 황군성을 가리켰다.

순간,

그의 손에서 엷은 보라빛이 허공을 갈랐다.

추측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범강이 주먹을 쥐면서 벌떡 일어섰다.

바로 그것이 검신의 진짜 공격이었음을 알아챈 것이다.

파팟!

하나,

황군성의 손에도 어느새 삼척이 넘는 백색의 도가 쥐어져 있었고,

검신의 보라빛은 그의 도에 가로막혀버렸다.

도신 범강의 입에서 무거운 음성이 터져 나왔다.

[무광검(無光劍)! 이미 칠단계 말이군!]

좌중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검신이 고금십대천병 중에서 무광검을 익혔다는 사실이 그들의 가슴에 원인모를 불길을 던져준 때문이다.

무광검……

고금십대천병 중의 하나인 이 무광검은 실제로 병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의 무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무광검을 익히게 되면 어떤 보검보다 예리한 검강이 손가락을 통해서 발출된다.

처음에는 붉은 색의 검강이나 단계가 진척될 수록 점점 무지개 색을 거쳐서 빛이 사라지게 된다.

그 단계가 팔단계인데,

지금 검신은 엷은 보라빛이니 칠단계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팔단계가 되면 검은 아무 소리도 없고, 빛도 없는데,

그 빠르고 강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으며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검신의 보라빛 검강이 황군성을 빛살처럼 무찔러갔다.

황군성의 번천도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라빛 검강은 번천도가 그리는 원들 사이에 빨려들듯 스며들며 사그라지고 있었다.

두번째의 대결……

두 사람의 대결도 두번째 이지만,

고금십대천병 중 두개가 서로 두번째로 맞부딪힌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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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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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장 

 

          삼불대 밑의 천하제일인 (2)

 

 

 

삼불대 아래에는 맑은 약수가 흘러나오는 작은 동굴이 있다.

한데 이 동굴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밑으로 곧장 뚫린 깊은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의 아래에는 다시 넓은 석실이 있으니,

이곳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흑흑흑!]

울고 있는 여인,

그녀는 임단심이었다.

검은 철갑옷을 입은 채 호호백발의 노파 앞에 업드려 있는 그녀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노파가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아가씨! 천하에 그처럼 박정한 사내가 있다니……노신이 가서 일장에 때려죽이겠습니다.]

임단심이 고개를 저었다.

[파파는 그래서도 안되지만 그럴 수도 없어요. 그 사람의 무공은 어쩌면 천하에서 제일 강할 지도 몰라요.]

임단심은 훌쩍거리면서 말했다.

[그 사람은 자그마치 사부를 다섯 명이나 두었단 말이에요. 나는 하나도 없는 사부를……]

노파가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아가씨! 하지만 아가씨는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주인님을 아버지로 두시지 않았습니까? 그자의 가문이라는 문성무존인가를 찾아가서 주인님 이름으로 협박하면 그들도 감히 어쩌겠습니까?]

임단심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파파, 더 이상 말하지 말아요. 나는 이제 무림에 나가지 않겠어요. 이곳 항산에서 여승이나 되고 말겠어요.]

노파의 당황한 듯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가씨, 뭐든지 성급하게 결정하면 고통과 후회만이 남는답니다. 노신이 무슨 수를 써든지 그 사람을 아가씨 곁으로 돌아오게 하겠습니다.]

그때,

드르럭!

석실의 한쪽이 열리면서 금화선녀가 들어왔다.

[중은 아무나 하는 것인 줄 아느냐?]

임단심이 그녀의 품으로 달려들며 소리내어 울었다.

[어머니! 엉엉엉……]

[그래그래……내 딸이 이제야 돌아왔구나.]

금화선녀는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백 살이 넘은 금화선녀에게 스물살이 되지 않은 딸이 있다는 사실이……

게다가 그 딸이 임단심이었다니……

그럼 임단심의 아버지는 대체 누구……?

금화선녀는 전무옥을 한쪽 구석에 던져버렸다.

전무옥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독봉의 어머니가 금화선녀였다니……)

그때 금화선녀가 말했다.

[저놈은 아마도 네 뒤를 쫓아온 모양이다. 너도 알고 있겠지?]

임단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검보의 소보주예요.]

금화선녀가 말했다.

[하인들이 모두 죽어서 일할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잘 됐지 뭐냐.]

임단심은 전무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버진 어디 가셨어요?]

순간 금화선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흥, 그 영감……보나마나 또 어떤 계집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겠지.]

임단심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또 훌쩍 나가서 돌아오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때 노파가 금화선녀에게 말했다.

[마님, 아가씨께서 무림에 나가있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으신 모양입니다.]

금화선녀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누가 감히 내 딸에게 고통을 주었단 말이냐? 어떤 살고 싶지 않은 자가 있더냐?]

노파가 턱으로 전무옥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검보도 아가씨를 괴롭힌 모양입니다.]

[그래? 감히 신검보 따위가?]

금화선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무옥을 향해 세대의 지풍을 쏘았다.

한대는 전무옥의 아혈을 눌러버렸고, 다른 두 대는 전무옥의 체내로 스며들어 뱀처럼 움직여 다니기 시작했다.

전무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전신이 땀으로 젖어버렸다.

무시무시한 고통이었던 것이다.

임단심이 금화선녀에게 말했다.

[어머니, 세상에 얼굴이 똑같이 생긴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쌍둥이가 아니면서 말이에요.]

금화선녀가 고개를 저었다.

[닮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형제가 아니면서도 똑같이 생긴 사람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단다. 왜 그러느냐?]

임단심은 조응경과 얼킨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금화선녀는 길길이 뛰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그년이 감히 사람이 없어서 남의 남자를 뺏어가? 그리고 그놈도 네 아버지 같은 놈인가보다. 아내를 두고도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어?]

금화선녀는 뛰어나가면서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리거라. 내 당장 그 두 년놈을 쳐죽이고 말겠다.]

임단심이 크게 소리쳤다.

[어머니!]

우뚝멈추어선 금화선녀가 물었다.

[왜 그러느냐?]

[꼭 그 사람을 죽이시겠다면 아버지부터 죽이셔요. 아버진 그 사람보다 훨씬 더하잖아요.]

순간,

바람처럼 임단심 앞에 다가선 금화선녀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짝!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감히 아버지를 죽이라는 딸이 어디 있단 말이냐?]

임단심이 다시 눈물을 쏟으면서 말했다.

[어머닌 아버질 죽이지 않으면서 왜 그 사람만 죽이려는 거예요? 절대로 안돼요.]

그때였다.

동굴의 한쪽에서 불숙 사람이 나타나며 말했다.

[잘하는구나, 모녀가 가장(家長)을 모살할 궁리만 하고 있으니.]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여보!]

[아버지!]

[주인님!]

나타난 사람은 사십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문사였다.

듬직한 풍채에 붉으스름한 혈색좋은 얼굴,

전신에 풍겨나는 위엄과 귀태(貴態),

한마디로 신태비범(身態非凡)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무림인같은 모습은 없었다.

천하의 한량이라면 모를까 무림인이라면 아무도 믿지 않을 모습이었다.

손에는 백옥선을 느긋하게 부치며 서있는 그의 모습에 여인이라면 넋이 나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중년인이 부채를 접으면서 말했다.

[오랫만이구나, 어디 아버지 죽이라는 우리 아기한번 안아볼까?]

번쩍!

중년인은 말과 동시에 임단심을 번쩍 안아 올리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한데 이 녀석이 아버지 허락도 없이 시집갔구나. 하하하……]

중년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임단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흥, 워낙 밝히는 영감이라 척보면 아시는군. 한데 딸이 버림받고 왔다는 건 왜 모르시나?]

금화선녀가 코웃음을 쳤다.

순간, 중년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대체 그놈이 어떤 놈이냐? 감히 처를 버리는 놈이라니?]

[당신같은 사람이지 또 어떤 사람이겠어요? 당신이 워낙 바람을 피워대니 우리 딸에게 화가 돌아온 거예요.]

금화선녀가 다시 쏘아 붙였다.

중년인이 임단심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같은 놈이라니, 그럼 그놈이 나처럼 잘 생겼단 말이냐?]

임단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인이 음, 하더니 다시 물었다.

[나처럼 무공이 강하단 말이냐?]

이것만은 자신있는 모양이다.

[그의 사부가 말하기를 천하에서 그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어요.]

임단심의 말에 중년인은 눈이 둥그레졌다.

[그 사람 사부가 누군데?]

[전륜법왕이라고하는……]

[전륜법왕!!]

임단심의 부모가 동시에 소리쳤다.

[전륜법왕을 아셔요?]

임단심의 아버지가 코웃음을 쳤다.

[알다마다, 그 늙은이가 아직 살아있었어? 가소로운 일이군.]

그리고 금화선녀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 설마 아직도 그 영감을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그 깐 난장이 영감을 왜 생각해요? 그 영감이 내 생각했지.]

금화선녀가 마주 소리쳤다.

임단심의 아버지가 임단심에게 물었다.

[그 영감 아직도 자기가 천하제일이라고 그러던?]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천하제일인 것 같았어요.]

임단심의 아버지가 못마땅한 듯 눈썹을 오므렸다.

[너는 이 아버지 앞에서 다른 사람을 천하제일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 영감은 내가 스물 두살때 이긴 적 있어. 그때 내 오백초도 받아내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패했었지.]

그는 금화선녀를 보며 말했다.

[실은 그 영감은 네 엄마 동문사형이었지. 그때 싸워 이긴 댓가가 바로 네 엄마라구.]

임단심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했다.

전륜법왕을 그녀의 부모는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는 사형제지간 이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한데 그 영감 제자가 내 딸을 뺏어가? 다음에 만나면 그 영감 목을 뽑아버리고 말겠다.]

[우리 딸을 뺏어간 게 아니고 버렸다고요.]

금화선녀가 말을 정정시켰다.

금화선녀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임단심은 석실 안에서 옥신각신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자 노파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러다가 또 나 혼자 이곳이나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사실,

이 가족이 다툼을 벌였다하면 너도나도 가출하는 바람에 그녀 혼자서 석실을 지키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임단심이 강호에 나간 것도 그렇게 해서 나갔던 것이었다.

한데,

임단심의 부모는 임단심을 귀여워하면서도 절대로 무공을 가르치려고 하지를 않았었다.

임단심의 독공과 철현천기보법은 노파의 절기였다.

임단심의 부모는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고 노파도 알 수 없었다.

 

× × ×

 

삼불대의 밑에 있는 석실의 한 곳,

촛불이 밝혀져 있는 호화로운 침실이다.

이곳은 금화선녀와 그녀의 남편인 무제(武帝) 임보산(任寶山)의 침실이었다.

금화선녀가 무제 임보산에게 속삭였다.

[결국 일이 커져 버렸어요. 오늘 보니 단심이의 내공이 삼백오십 년 수위였어요.]

임보산은 무거운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연을 얻었더군. 하지만 그게 오히려 그 아이의 수명을 줄여버렸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당신은 어떻게 천하제일인이라는 사람이 하나뿐인 딸하나 구해낼 방도가 없어요?]

금화선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휴!]

임보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있다면 왜 그 아이에게 그토록 무관심하려 했겠소. 죽기전에 마음껏 살아보라고 부모도 없는 아이처럼 세상에 돌아다니도록 해놓고……]

[앞으로 이 년을 못살겠지요? 기혈이 뒤짚혀 참혹하게 죽는 것을 어떻게 봐요?]

금화선녀가 말했다.

[차라리……내공을 패쇄해버릴까요? 그럼 몇 년은 더 살지 않겠어요?]

[그랬다간 뭐라고 변명하겠소? 원망만 듣겠소? 아니 원망듣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혹시 혼자서 병세에 대해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사태가 더 악화될 것이오.]

임보산은 답답한 가슴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듯했다.

[이번에도 심산유곡에 숨어있다는 기인이사들을 찾아나섰지만 쓸만한 인물은 만나지 못했소. 세상에 인물이 많다는 건 거짓말이오. 하다못해 검신 전득무같은 자들도 보기 드문 실정이니……]

금화선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형이 아직 살아있다니 말인데요 사형이 좀 도와준다면 어떻게 되지 않겠어요? 그래도 당신 왜엔 천하에 적수가 없었던 사람인데……더구나 사형의 제자가 단심이 남편이라니 더욱……]

임보산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 전륜법왕 그친구 성미를 몰라서 그러시오? 내게 한번 진걸 평생 한으로 간직하고 있을 텐데 나를 위해 힘써줄것 같소? 어림도 없는 소리……]

금화선녀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까 단심이가 말하지 않았어요?]

[뭘?]

[그애 남편 황군성인가 하는 얘가 천하에 적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

[제 사람은 다 이뻐보이는 법인데 그말을 믿으시오?]

금화선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여기 있어요. 내가 심이한테 갔다오겠어요.]

그녀는 속이 비치는 엷은 능사옷을 입은 채로 임단심의 방으로 달려갔다.

 

             ***

 

 

 

[맞아요. 그 사람은 오백년 이상의 내공을 갖고 있어요. 한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임단심은 침상에서 혼자 울다가 갑자기 뛰어 들어온 금화선녀의 물음에 답했다.

금화선녀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출 것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래 우리 사위는 어디있느냐? 빨리 말해봐라.]

임단심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왜 그러느냐 빨리 말해보거라.]

[말하지 않겠어요. 그 사람을 찾아가지 마세요. 어머니나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해친다면 다시는 저를 볼 생각도 않는게 좋을 거예요.]

[해치려는 게 아니다. 손을 빌릴 일이 있어서 그러니 어서 말해 봐라.]

금화선녀는 그녀에게 간청하듯 했다.

임단심은 그녀에게 확답을 받은 후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서안의 염가장에 있었어요.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그녀의 눈앞에 바람이 날렸다.

벌써 금화선녀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버린 것이다.

금화선녀는 임보산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여보! 그 아이가 오백년 공력이래요. 그럼 충분하지 않아요?]

임보산의 몸이 그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그는 밖으로 나갈 치장을 하고 있었다.

임보산은 노파를 불러서 신신당부를 한 후에 금화선녀의 손을 잡고 석실에서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까마득히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무제 임보산……

세상이 모르는 천하제일인이 삼불혼이라 불리면서 삼불대 밑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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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七 章

 

           삼불대 밑의 천하제일인 (1)

 

 

 

내가 허무와 고독에 모든 빛을 잃어버렸을 때,

그녀는 오히려 나를 빛으로 여겼었다.

내가 하나의 빛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하나 만큼 기뻐했고,

내가 두개의 빛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세개 만큼 기뻐했다.

허무와 고독을 떨쳐 버렸을 때 그녀는 나를 새로 만들었던 것이고,

내 마음에 야망이 들어차기 시작하자 그녀는 나의 그늘속으로 밀려들어가 버렸다.

내 우유부단한 마음은 그녀의 마음을 칼로써 도려냈었고,

이제 그녀가 떠났음에 나는 내 영혼 마저 멀리 떠나버렸음을 느낀다.

영혼이 뽑혀진 자리엔 그녀의 흔적만 남았다.

나는 이 세상은 물론 지옥까지 뒤져서라도 그녀를 다시 내 마음속으로 되찾아와야한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대로 지옥 속에 남으리라……

 

           ***

 

항산(恒山),

어두침침한 구름이 낮게 깔려있고,

사방에서는 바람한 점 없는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바람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엄청난 빠르기였다.

그 그림자는 곧장 항산의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고 있다.

문득,

그 검의 그림자를 막아서는 다른 그림자가 있었다.

검은 그림자는 마치 물이 돌아서 흘러가듯 막아선 그림자를 피해서 달려갔다.

막아섰던 그림자는 흑의를 입고 검을 맨 청년이었다.

그는 저으기 당황하는 것 같더니 검은 그림자를 뒤따라가면서 소리쳤다.

[독봉(毒鳳)! 임소저! 정체를 숨긴 고수였구려. 잠깐 서시오.]

앞서 달리던 그림자가 움찔 하는 것 같더니 그대로 달렸다.

그러자 뒤따르던 청년이 다시 소리쳤다.

[멈추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멈추게 하겠소.]

청년은 오른 손을 쭉 뻗어 앞서가던 그림자를 가리켰다.

순간,

챙!

그의 어깨에 걸려있던 장검이 쑥 뽑혀 나오며 빛살같이 날아갔다.

놀랍게도,

그것은 어검술이었다.

앞서가던 그림자는 어검술이 펼쳐진 것을 아는 지 모르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청년이 소리쳤다.

[위험해!]

청년의 검은 앞서가던 그림자의 등을 찔렀다.

순간,

깡!

불똥이 튀면서 검은 뒤로 튕겨나고, 검은 그림자는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가버렸다.

청년은 되돌아온 검을 받아쥐면서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틀림없는 독봉 임단심이었는데……그녀의 무공이 어검술조차 가볍게 물리칠 정도였단 말인가?]

그는 검을 놓았다.

그러자 검은 살아있는 짐승처럼 그의 등뒤에 있는 검집으로 찾아들어가는 것이었다.

[항산파(恒山派)에 가보면 알겠지. 이 길은 항산파로 가는 길이니까……]

그 청년은 그림자가 사라져간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청년의 속도도 엄청난 것이었다.

 

***

 

항산파의 중지(重地) 삼불대(三不臺),

이곳은 항산파 사람에게나 다른파의 무림인에게나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

그 첫번째는 두 번 말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어느 누구든 할 말이 있으면 한번 하면 되고,

다시 그 말을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번째는 거역하지 않는다인데,

삼불대를 지키고 있는 사람의 말을 삼불대 내에서는 절대 거역할 수 없다.

마지막 세번째는 <살아서는 나가지 못한다!> 이다.

즉,

삼불대에 한번 오른 사람은 죽기 전에는 결코 삼불대를 내려갈 수가 없다.

참으로 해괴한 곳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삼불대에서 세 가지를 어긴 사람은 아무도 살아있지 않다.

그도 그럴것이,

이를 어기는 자는 항상 시체가 되고 만다.

누가 그렇게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삼불대를 지키고 있는 항산파의 사람조차도 그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어떤 고수든 간에 삼불대에 올라 세가지 중 하나라도 거스러게 되면 반드시 시체로 변해버리고 만다.

마치 귀신의 장난처럼,

아무리 방비해도 흔적조차 남지않는다.

이때문에 사람들은 삼불대를 두려워마지 않는다.

하면,

이곳 항산파의 삼불대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무림명문의 하나인 항산파의 모든 신공절기(神功絶技)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누구든지 삼불대에 올라 신공절기들을 구경하는 것은 아무도 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공절기를 훔치거나 외워서 삼불대를 내려갈 수는 없다.

삼불대에 오른 자는 죽을 때까지 삼불대를 관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삼불대의 이러한 전통으로 말미암아,

항산파의 무공은 날로 쇠미해지고 있는데,

삼불대에는 모든 진산절학이 남아있지만 항산파 내에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림인들은 대부분 이 항산파의 삼불대를 수수께끼처럼 만들고 있는 존재가 어떤 절세무비한 고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도 본 적이 없고, 스스로 이름을 드러낸 적도 없는 이 유령같은 존재를 가리켜 항산파의 사람들은 삼불혼(三不魂)이라고 부르는데,

이 존재를 신적으로 숭배하고 있는 항산파는 무림의 거센 풍랑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삼불혼이 자신들 항산파를 지켜줄 것임을 굳게 믿고있는 때문이다.

 

임단심은 삼불대 앞에서 몸을 멈추었다.

순간,

그녀의 앞에 어떤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나타났다.

용두괴장을 짚은 호호백발의 노파였다.

한데,

이 노파의 눈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노안은 흰자위가 대부분이고,

동자는 그야말로 파리눈 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와같은 눈으로도 사물을 볼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허연 흰자위의 눈은 섬뜩한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노파는 아무말않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임단심은 노파를 아는 듯 했다.

노파는 발걸음을 땅에 대지도 않고 움직여 삼불대를 돌아갔다.

임단심의 몸도 그곳에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검을 맨 청년의 모습이 그곳에 나타났다.

청년의 표정이 딱딱하게 변했다.

그곳이 삼불대 앞임을 안 것이다.

[틀림없이 이리로 왔는데……설마 삼불대로 올라갔단 말인가?]

청년의 표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좋다, 내친김에 삼불대에 올라 삼불혼의 신비를 벗겨보자.]

청년은 주먹을 불끈 쥐고 삼불대위로 몸을 날렸다.

수직으로 상승한 청년은 몸은 바람개비처럼 돌면서 삼불대위에 내려섰다.

커다란 바위인 삼불대 위에는 높지 않은 삼층 석탑이 서있다.

하지만 작지도 않은 석탑이다.

삼불대 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고개를 갸웃했다.

삼불대 위엔 항상 몇 명의 사람이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던 때문이다.

그는 소리쳤다.

[아무도 없소?]

삼불대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귀를 활짝열고 주변의 동정을 살폈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뚜벅뚜벅!

청년은 석탑을 향해 걸어가며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했다.

석탑 일층의 문앞에 이르러 그는 다시 소리쳤다.

[아……]

바로 그 순간,

그의 말을 끊으면서 빠른 음성이 들렸다.

[삼불대의 삼불을 잊지 말게.]

청년은 흠칫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무도 없느냐고 소리쳐 물으려 했던 것이다.

청년이 빙글 몸을 돌리니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한 중년 부인이 서있었다.

청년은 오만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소생은 신검보의 소보주인 전무옥(全武玉)이라하오. 부인께선 누구시오?]

청년은 바로 전무옥이었다.

한데,

신검보에서 독에 중독되어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그가 어떻게 멀쩡한 모습으로 이곳에 왔단 말인가?

중년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천산일검자(天山一劍子) 사공도(史工倒)의 제자였군. 어쩐지 무공이 상당하다 싶었어.]

전무옥은 경악하며 물었다.

[부인께서는 누구십니까?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제 사문을 아십니까?]

그의 말투는 완전히 바뀌고, 오만한 기색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스승인 천산일검자 사공도,

이 이름을 아는 중원인은 열손가락에 곱히지도 않는다.

한데,

그 천산일검자를 알뿐만 아니라 전무옥의 스승이라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는 부인이 나타난 것이다.

천산일검자 사공도, 이 사람은 천산에서 검에 미쳐 산 사람이다.

그는 음식을 먹지도 않았으며 오직 천산의 한기(寒氣)를 전신으로 빨아들여 검술을 신의 경지에 이르도록 연마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검에서 뻗치는 한기는 어떤 호신강기로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천산일대에서 그의 존재는 하나의 전설과 마찬가지다.

중년부인이 물었다.

[한데 사공도의 제자가 뭣 때문에 삼불대에 올랐단 말인가? 삼불대의 규칙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전무옥은 중년부인이 자신의 사부인 사공도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자 벌컥 화가 솟았다.

[부인, 부인께서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지만 말을 삼가하시오. 소생의 사부께서는 이미 이백 세에 가까웠는데 그렇게 함부로 부르신단 말이오?]

중년부인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당돌하군, 천산일검자도 나를 보면 허리를 굽혀 절할 텐데……]

부인은 소매에서 한송이의 금으로 된 모란(牡丹)을 꺼내들었다.

전무옥의 안색이 확 변해버렸다.

[부……부인께선……혹시 금화선녀(金花仙女)……]

중년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분한 이름이지만 바로 날세.]

자신의 짐작이 확인되자 전무옥은 벼락같이 몸을 뽑았다.

그러나……

[자네는 여기서 떠날 수 없네.]

중년부인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순간,

그의 몸은 강인한 흡인력에 끌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금화선녀의 허공섭물에 걸린 것이다.

(가공……어떻게 이런……)

금화선녀……

그녀는 무림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들 중의 하나이다.

그녀의 손에 들린 금화는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암기(暗器),

한닢이면 기필코 목숨을 뺏고 만다.

칠십두개의 꽃잎이 모두 이기어검(以氣馭劍)의 수법으로 날아간다.

어떤 호신강기도 종이장처럼 찢고 파고들어간다는 금화……

금화로 대표되는 그녀의 나이는 이미 이백세가 넘었다.

하지만 주안술(朱顔術)을 익힌 때문에 여전히 삼십대 미부로 보일 뿐이다.

금화선녀나 천산일검자, 그리고 괴노(怪老) 육천태(陸天泰) 등 이런 인물들은 이미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들인 것인데……

전무옥은 자신의 현기혈에 닿아있는 한잎의 꽃을 보면서 저항을 완전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금화선녀가 자신의 사부인 천산일검자의 체면을 봐서 죽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금화선녀는 그를 납작 채들고는 석탑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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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六 章

 

          떠나버린 女子

 

 

 

[헉! 현현부(玄玄斧)!]

수비무사(守備武士)가 다급성을 내질렀다.

황군성은 무뚝뚝한 어조로 내뱉었다.

[십칠로(十七路) 사형창(蛇形槍)에게 내가 왔다고 전해라.]

수비무사는 꽁무니에 불이 붙은 듯이 안으로 달려갔다.

이곳은 서안 근교에 있는 사형창 염소승(廉邵昇)의 장원이다.

황군성은 지금 현현궁의 사자임을 나타내는 현현부라는 작은 손도끼를 꺼내들고 있다.

현현부는 묵빛 윤기가 도는 도끼로 손잡이까지 온통 새까맣다.

이것은 말 그대로 현현궁에 소속된 문파들에게 있어서는 생사를 관장하는 상징이었다.

현현부로 상징되는 현현궁의 사자는 그들 모두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황군성은 뒷짐을 지고 하늘을 보았다.

(사부! 나를 강호 패륜아로 만든 것은 당신이오. 하지만……나는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겠소.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게 될 것이오.)

그는 전륜법왕을 생각하며 어떤 무서운 마음을 키워내고 있었다.

그의 양 옆에는 임단심과 조응경,

모습이 완전히 똑같은 두 여자가 바싹 붙어서 있었다.

 

× × ×

 

사형창 염소승은 숨이 막힐 것같은 압력을 느꼈다.

(이번에 온 사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는 감히 고개를 들어 황군성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태사의에 앉아있는 황군성,

칠척의 거구에 검은 철갑,

그리고 묵빛의 현현부를 들고 있는 그는 죽음의 사자같은 공포로 염소승에게 느껴졌다.

황군성은,

자신이 현현궁의 사자가 된 점을 이용해 현현궁의 궁주이자 자신의 사형이라고 할 수 있는 남궁파의 수족을 잘라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현현궁(玄玄宮)!

실제로는 무림세가(武林勢家)인 남궁가(南宮家),

복속하고 있는 칠십여 방파들을 제외해 버리면 실상 그 세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황군성의 생각인 것이다.

황군성은 불숙 염소승에게 엉뚱한 말을 했다.

[장주, 오늘 이곳에서 하루 묵어가고 싶은데 괜찮겠소?]

[이 염가로서는 더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사자께서는 원하시는대로 하십시오.]

염소승은 땅바닥에 넙죽 업드리며 말했다.

 

삼경 무렵,

염가장의 깊은 곳에 있는 별원을 두 사람의 여인이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임단심과 조응경이다.

[흥!]

돌면서 마주칠 때마다 임단심이 코웃음을 쳤다.

조응경은 속으로 욕을 했다.

(배우지 못한 막돼먹은 계집애, 언젠가는 두고 보자.)

그들이 돌고 있는 별원의 안에서는 황군성과 염소승이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황군성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염소승은 연신 굽실거리며 <예예> 소리를 연발할 뿐이다.

염소승은 돌아갔다.

그리고,

황군성은 중얼거렸다.

[복종할 자는 살려주고 거역할 자는 죽인다. 이것이야 말로 현현궁의 방법 그대로 아닌가?]

그때 임단심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벌써 세 개 문파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했군요. 아마 남궁파가 이런 사실을 알면 분통이 터져 죽을 거예요.]

황군성은 입을 다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전처럼 허무와 회의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말 이외에는 어떤 말도 내뱉지 않는 과묵한 성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앞에서는 임단심과 조응경도 싸울 수가 없었다.

그가 풍기는 기도는 날로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응경은 눈알을 빛내며 황군성을 바라보았다.

(이분은 틀림없이 무림의 제왕이 될 그런 분이야. 사부에게도 이런 기도는 없었어. 어차피 맺어진 인연……결코, 어떤 경우에도 물러서진 않을 테야.]

그녀는 전륜법왕에게 협박당해 정신을 잃은 황군성에게 스스로 몸을 받쳤지만,

그것을 하나의 기회로 삼고 있었다.

(임단심과 난 똑같이 생겼어. 무공은 저 계집애가 조금 강하지만 나도 약하진 않아. 게다가, 난 아직까지 더 팽팽해. 저 사람이 나만을 좋아하게 할 자신이 있어.)

그녀는 임단심을 힐끗 보았다.

이미 염치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황군성과 임단심이 옷을 벗으면 함께 벗고, 누우면 함께 눕는다.

한치라도 물러서서 버림을 받게 되면,

그것이 바로 자신의 종말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사부인 남궁파의 살수를 그녀는 결코 피할 수 없다.

어떻게든,

황군성과 억지로라도 잠자리를 같이해서 정을 얻는 길 밖에는 다른 수가 없는 것이다.

문득,

황군성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혈화창(血花槍)이 어떤 것인가?]

조응경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몰라요.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흥! 남궁파의 제자면서도 그의 무기를 한번도 본 적 없다는 게 말이 돼?]

임단심이 소리쳤다.

조응경의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궁주님의 제자는 모두 스물네 명이나 돼, 하지만 아무도 궁주님이 무공을 펼치는 것도 구경한 사람이 없어.]

[여전히 그를 궁주님이라고 하는 것 좀봐,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틀림없이 그곳에 가있을 거야.]

임단심이 다시 쏘아 붙이자 황군성이 손을 들어 저지시켰다.

[임매, 그만하시오.]

단 한마디의 말이었지만 임단심은 다시 입을 떼지 않았다.

황군성의 말에는 그녀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 섭섭함을 금할 수 없었다.

자기만의 남자였던 황군성이었는데,

자기가 황군성의 모든 것이었는데,

이제는 황군성의 가슴에서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아주 좁아져 버린 것같은 느낌이었다.

(차라리……고독한 모습, 그때가 더 좋았어.)

그녀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조응경이 자신과 똑같은 생김새기에 그녀는 더욱 미웠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릴 것만 같다.

그런데도 황군성은 조응경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자신과 상의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황군성의 이러한 태도에 갑작스런 서러움이 느껴졌다.

황군성은 침상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조응경이 다가가 그의 신발을 벗기고 옷을 벗겨주고 있다.

황군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는 궂은일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황군성은 천정만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있고,

조응경은 임단심을 힐끗 본 후에 자신의 옷을 벗었다.

그리고,

그녀는 황군성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점차 손을 밑으로 쓸어갔다.

황군성의 몸 일부가 팽창해오면서 그녀의 손을 가득 채우고 삐져나왔다.

조응경은 임단심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황군성의 전신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임단심은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원망스런 눈길로 황군성과 조응경의 벗은 몸을 바라보았다.

조응경의 행위가 가증스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에서 일어나는 뜨거운 불길은 스스로는 억누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도 철갑옷을 벗지 않을 수 없었다.

조응경은 다리를 침상 아래로 내린 채 침상에 누웠고,

황군성은 침상아래에 무릎을 꿇은 채 조응경의 두 다리 사이에 있다.

[흑!]

황군성의 몸이 조응경의 몸을 압박해가자 그녀는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황군성의 큰 남성이 그녀의 몸을 한꺼번에 밀고 들어온 것이다.

뜨거운 느낌이었다.

임단심은 황군성을 뒤에서 안고 자신의 몸을 붙혔다.

황군성이 조응경을 압박하기위해 몸을 흔들 때마다 그녀도 가랑잎처럼 흔들렸다.

자세가 바뀌고,

조응경의 자리를 임단심이 대신했다.

황군성은 들소처럼 날뛰었고,

임단심은 물고기 처럼 파닥거렸다.

세 사람의 욕정이 뒤엉켜드는 방안은 삐걱이는 침상소리와 뜨거운 신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조소저는 어디 있소?]

황군성은 눈을 뜨자마자 물었다.

그의 가슴에 엎드려 있던 조응경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제가 여기를 차지했어요.]

황군성은 살짝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임매는?]

[몰라요. 그녀가 어디 갔는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어디 측간이라도 갔겠죠.]

조응경은 황군성의 하체를 더듬으며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위에 눌러앉았다.

그 느낌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조응경은 생각했다.

자신의 몸속으로 마치 말뚝같은 황군성의 그것이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녀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흐윽! 흐윽!]

몸을 움직이기 전부터 가쁜 신음이 나왔다.

하지만,

황군성이 일어나면서 그녀를 밀쳐버렸다.

[이 근처에는 없소. 찾아봐야겠소.]

휘이익!

황군성은 염가장 일대를 바람같이 돌아보았다.

그러나 임단심의 종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황군성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떠나버렸단 말인가? 내가 그녀에게 너무 박정하게 대했는가?)

사방 백여리를 돌아보았으나 그녀를 찾을 순 없었다.

황군성은 염가장으로 돌아갈 생각도,

조응경이 그곳에 있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임단심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앞이 캄캄해졌다.

자신이 조응경과 가진 정사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심적인 고통을 주었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견딜 수 없었다.

그로서는 자의든 타의든 관계를 맺은 조응경을 져버릴 수 없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인데,

자신의 처신이 분명치 못함으로 인해 임단심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그녀가 없어진 다음에야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

임단심은 그와의 정사가 끝나자 마자,

잠이든 황군성과 조응경을 버려두고 옷을 입고 염가장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이미 깊은 밤에 떠났으니 날이 샌 후에 찾아다닌 황군성에게 발견될 리가 없는 것이다.

황군성은 망연자실, 작은 냇가에 주저앉아버렸다.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것같았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오직 그의 눈앞에는 임단심만 어른거리고 있었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그의 마음에는 야심이 들끓고 있었다.

천하를 뒤흔들 웅심이 자라고 있었다.

한데,

임단심이 사라진 지금 그것들은 마치 물거품처럼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임단심을 만나기 전의 그 허무와 고독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와는 분명히 다른 점은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에는 임단심으로 가득차있는 것이다.

황군성은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물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임매! 임매! 내가 잘못했소. 용서해주시오.]

맑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황군성은 임단심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는 개울물만을 쳐다보며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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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五 章

 

       美少年(?)

 

 

 

화산(華山),

무수하게 솟아있는 절봉들,

절봉과 절봉사이로 흐르는 운무(雲霧),

옥녀(玉女)의 전설이 살아있는 옥녀봉,

그 아래에는 깊이를 모르는 만장단애(萬丈團崖)가 있다.

사시사철 짙은 운무로 인해서 지척의 분간이 어려운 이곳,

그렇기에 아무리 위에서 내려다 봐다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때때로 구름이 흘러가고 나면 그 밑에 다른 구름과 안개가 보일 뿐……

새들조차 안개와 구름이 두려워 그 안으로는 날지 않는다.

한데,

그 만장단애에 개미처럼 붙어서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구름을 한층한층 위로 하면서,

밧줄도 없이 오직 수족의 힘만으로 석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내려가는 사람,

고사리같이 여리고 긴 흰 손가락, 뽀얀 손 등……

놀랍게도 이 사람은 스물도 되지 않은 아름다운 미소년이었다.

황군성도 만나본 적 있는 신검보의 무적십이검 중의 유일한 생존자,

임단심의 집에서 제갈공지의 눈을 속이고 사라졌던 그 미소년인 것이다.

그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벌써 몇 시간,

그의 발끝은 피로로 인해 달달 떨리고 그의 손가락은 핏망울이 맺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단애의 밑으로는 구름과 안개만 보일 뿐 바닥은 얼마나 깊이 있는 지도 알 수가 없다.

이미 위로 다시 올라가기도 틀린 것같다.

윗쪽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삐어져 나온 돌뿌리를 움켜쥐며 그는 발붙일 곳을 더듬어 찾았다.

단 한번 이라도 실수한다면 그의 몸은 가루가 되고 만다.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때때로 밑에서 불어오는 강한 상승기류는 종종 그의 몸을 절벽에서 떼어놓으려고 한다.

탁!탁!

돌조각이 떨어지면서 까마득히 절벽아래로 달려갔다.

손끝과 발끝이 짜릿짜릿해 지는 순간이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그도 눈알이 핑핑 돌지경이다.

하지만,

그가 있는 곳에서 오장 정도 떨어진 아래에 절벽에서 약간 튀어나온 부분이 보인다.

비록 그다지 넓은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몸을 쉴 수 있는 곳이다.

[타앗!]

그는 절벽에서 몸을 날렸다.

허공에서 제비처럼 한바퀴 빙글 돌며 다시 절벽 쪽으로 붙어 떨어져 내렸다.

그의 몸은 정확하게 절벽 중간의 튀어나온 부분을 밟았다.

순간,

퍽!

[앗!]

그는 자신이 밟은 바위가 부서지며 전신이 오그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밟은 곳이 아래로 꺼져버린 것이다.

번쩍!

깡!

그는 순간적인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번개처럼 검을 뽑아 석벽에 찔렀다.

전신의 공력이 깃들은 청강검은 여지없이 석벽을 파고들었고,

그의 몸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바람이 불면서 그의 전신에 흘러내린 식은 땀을 씻고 지나갔다.

절벽에서 튀어나와 있던 곳은 단단한 바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곳은 이미 까마득한 아래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한데,

그 튀어나와 있던 바위가 사라진 밑에,

놀랍게도 조그마한 동굴이 하나 뚫려있는 것이 아닌가?

그 미소년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새옹지마(塞翁之馬)로군, 다행히 쉴 수는 있을 것같아.]

그는 뱀처럼 미끌어지며 동굴속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좁았고 깊지도 않았다.

머리를 들면 천정에 부딪힐 것같고 양팔을 옆 으로 뻗지 못할 만큼 비좁다.

멀리 보이는 산그림자가 긴 것이 얼마 안있어 해가 질 모양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내일 다시 내려가도록 하자.]

미소년은 중얼거린 후 작은 보자기를 풀어 소금에 절인 고기를 꺼냈다.

문득,

그의 눈에 동굴의 한쪽 벽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

 

<이곳까지 왔으니 이만큼은 얻으리라!>

 

어느 누구의 발도 닫지 않았던 처녀지인 줄 알았던 이곳에도 인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미소년은 고개를 갸웃했다.

손으로 글자를 더듬어 보니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의 안쪽으로도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그는 섬찟한 마음으로 급히 손을 떼었다.

그의 손에 느껴진 감촉,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여성다운 정숙함을 항상 잃지 않는다면, 대지(大地)가 무한하듯 길이 행복할 것이다……>

 

(어떻게 이른 글이 여기에 쓰여져……)

미소년은 크게 놀란 듯 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고 그는 가볍게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이건 주역(周易)을 해설(解說)한 것이구나.]

그는 초에 불을 밝혀서 동굴의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벽에는 마치 붓으로 새긴 듯한 글자들이 백여자나 들어차 있었다.

그 글자들은 그의 짐작대로 주역 상의 건(乾)과 곤(坤)에 대한 해석으로 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팔괘의 해석이 아닌 단순한 건곤의 해석만 있을 뿐이고 그 뒤의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불과 백여자로 이루어진 내용이지만,

그는 그것이 심오하기 이를 데 없는 무공의 구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찬찬히 살펴본 후에 그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이런 무공이 있다니……정말 이렇다면……나도 이것만 익히면 어떤 고수라도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어떤 서명도 제목도 없이 건곤의 해석과 구결만이 쓰여진 무공……

그것은 세상에서도 유래가 없이 독특한 심법(心法)이었다.

이 무명(無名)의 심법(心法)은 두 가지를 주로 하고 있었다.

감지(感知)와 속발(速發),

이 두 마디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감지는 상대가 공격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에 이미 똑같이 그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리 빠르고 강한 공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어느 부위를 노리는 지, 얼마나 강한 힘인지를 미리 알고 있기에 얼마든지 방어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빠르고 정확한 반격도 가능한 것이다.

속발,

이것은 내공을 끌어올려 발출하는 것을 순간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한꺼번에 전신의 공력을 극히 짧은 시간에 분출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지니고 있는 내공의 수 십배의 위력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

미소년이 놀라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검(劍)을 들고 대적하는 자가 상대방의 공격부위를 미리 알고 있다면,

이미 승부는 검을 뽑기도 전에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약한 공력이라고 하지만 빠르게 일어나는 공력은 강한 공력마저도 순간적으로 제압할 수 있기에 스스로의 공력제약(功力制約)에서도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소년은 가부좌를 하고 앉은 채 깊은 묵상에 잠겼다.

무명의 심법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마치 마음이 열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며 어느 정도의 성취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소년은 그날 밤을 그렇게 새웠다.

날이 밝았을 때, 잠을 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온 몸이 쾌청했다.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일은 계속되었다.

내려갈 수록 위기의 연속이고 입안에서 침이 말랐다.

손끝과 발끝은 저려왔고,

절벽의 중간에 멈춰서서 잠시 쉴 때는 아주 큰 일을 해낸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 한번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절벽타기,

그는 이것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무공의 측면에서도……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옷자락이 끝없이 떨렸다.

완전히 집중된 그의 정신은 이러한 순간의 연속으로 인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마음을 얻고 있었다.

 

마침내,

다시 하루의 밤을 절벽에 매달려 보낸 다음 날,

미소년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절벽의 경사가 완만해 지는 곳에 다다랐다.

그의 옷은 군데군데 뜯어져 있고,

그의 머리카락은 대충 흘러내려 있었다.

얼굴에 도는 피로한 기색은 그의 행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미소년은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검동(劍洞)이 멀지 않다. 나는 결코 어머니의 뜻을 거역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자가 먼저 내게 손을 썼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비탈진 경사를 한 마리 새처럼 날아 내려갔다.

 

× × ×

 

쿵!쿵!쿵!

지축을 울리는 둔중한 음향이 계곡을 뒤흔들고 있었다.

미소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짐승의 발자국은 그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아마도 지금 들리고 있는 소리는 어떤 거대한 짐승의 발걸음 소리인 모양이다.

미소년은 갑자기 자신이 어둠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다.

[이얍!]

그는 청강검을 뽑아 몸을 돌리면서 뒤로 날아갔다.

크악!

마치 대들보 같은 거대한 털북숭이 팔이 그가 서 있던 곳에 내려꽂혔다.

쿵!

[헉!]

미소년은 경악하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흑성성(黑猩猩)이가 이빨을 드러내며 흉폭한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흑성성의 키는 무려 삼장(三丈)정도 될 것같았다.

쿵쿵!

흑성성은 첫 공격에 실패하자 화가난 듯 그를 향해 걸어왔다.

미소년은 이 골짜기에 있는 괴물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미 인간세상과는 다른 별천지에 온 것이다.

괴물들을 피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든 그는 자신의 무공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무명의 심법이 얼마만한 위력을 보여 줄 것인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든 것이다.

청강검으로 흑성성의 미간을 겨누었다.

흑성성은 청강검 따위는 마치 바늘보다 작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전혀 개의치 않고 괴성을 지르며 긴 팔을 휘둘렀다.

윙!

마치 태풍같은 강한 바람이 일면서 검은 구름처럼 흑성성의 팔이 날아왔다.

순간,

미소년의 몸이 허공으로 새처럼 날아올랐다.

그리고,

번쩍!

그의 청강검에서 새파란 한줄기 빛이 뻗어나갔다.

검강(劍罡),

바로 검강이었다.

황군성과 싸울 때에는 불과 초보적인 검강밖에 펼치지 못했던 그가,

무명의 심법을 익히자마자 무시무시한 위력의 검강을 펼쳐낸 것이다.

크아앙!

한줄기 푸른 빛이 흑성성의 머리를 가르고 지나가자,

흑성성의 참혹한 비명이 계곡을 쩌렁쩌렁 울렸다.

쿠당!

쓰러진 흑성성의 몸을 보며 미소년은 몸을 날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미소년은 절벽에서 움푹 들어간 곳에 있는 한 채의 석옥 앞에 서있었다.

그는 감격하고 있었다.

[결국……찾았구나. 어머니 말씀이 맞았어……]

석옥은 컸다.

문도 거대했다.

미소년은 문을 밀고 석옥안에 들어갔다.

순간,

그는 어두운 석옥 안에서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느낌으로 살아있는 생물은 아닌 것 같았다.

확!

갑자기 석옥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사방의 벽이 눈부신 광채를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르르렁!

미소년을 둘러싸고 일곱 명의 거인이 서있는 것이 아닌가?

한데,

그 일곱 명의 거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묵빛 강철로 만들어진 이장 높이의 철인(鐵人)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손에는 싸늘한 섬광을 발하는 거대한 철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르렁 소리가 계속 들렸다.

미소년은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미리 알고 있었던 듯 검을 들고 그 일곱 철인을 경계하고 있었다.

철인들은 미소년을 둘러싸고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일곱 철인의 몸은 천천히 움직이고,

그들의 검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을 뚫고 가야 한다. 여기서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

미소년은 청강검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베어버렸다.

삽시간에 그는 머리가 반질거리는 대머리로 변했다.

한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소년은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어머니 말씀대로라면 이곳에서는 오직 검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몸에 지니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는 천천히 움직이는 철인들을 주시하며 재빨리 자신의 옷을 벗어버렸다.

그런데,

미소년의 가슴에는 마치 상처를 입기라도 한 듯이 붕대가 감겨져 있지 않은가?

쫘악!

미소년은 주저없이 붕대를 베어버렸다.

순간,

베어져 떨어지는 붕대가 있던 곳이 출렁이며 두개의 육봉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미소년은……

미소녀였던 것이다.

흑의 경장의 하의도 벗어버리고, 마지막 남은 한조각의 작은 천마저 벗어버린 미소년(?)은 확실한 여자였다.

가늘고 긴 두 다리는 백옥으로 된 기둥처럼 그녀의 몸을 받치고 있고,

잘룩한 허리는 그녀의 상하를 구분해 준다.

잘 발달한 가슴,

그녀는 아름다운 소녀였다.

완전한 나체가 되어서도 당당히 검을 들고 일곱 철인들에 맞서있는 소녀,

그 몸에서는 염기가 폭발하듯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때,

철인들은 점점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청강검으로 철인 중의 하나를 겨누고 걸음을 옮겼다.

두 다리가 교차되는 사이로 그녀의 그곳은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번쩍!

철인이 갑자기 기이한 각도로 검을 휘둘러 왔다.

그녀는 물고기처럼 몸을 뒤집으며 아슬아슬하게 거대한 검을 피했다.

삽시간에 식은 땀이 전신에 흘러내렸다.

조금만 늦게 피했더라면 그녀는 처참하게 짖이겨져 버렸을 것이다.

(이렇게 빠르고 강하다니!)

위이잉!

그르렁!

철인들은 이제 그녀의 주위를 돌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녀의 옆과 뒤로 접근해 오면서 진세를 이루어 그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번쩍!

번쩍!

철인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뒹굴면서 겨우겨우 피해내고 있었다.

청강검은 소용이 없었다.

철인들의 거대한 장검을 청강검으로 막는다면 그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가까스로 검을 피해낼 수 있는 것도,

절벽의 중간에서 무명의 심법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번쩍!

철인들이 휘두르는 검은 치밀하기 짝이 없어서,

바닥에 닿을 듯하면서도 한번도 바닥을 긋지는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뒤로 까뒤집으며 일어섰다.

피하는 데도 한도가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어떤 방도가 나오지 않으면 결국은 지쳐서 죽고 말 것이다.

순간,

그녀는 발밑이 미끈함을 느끼며 중심이 흔들렸다.

바닥에는 온통 그녀가 흘린 땀으로 인해 미끄러웠던 것이다.

철인 중 하나의 검이 그녀의 허리를 횡으로 베어왔다.

[이얍!]

미소녀는 허공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한데,

바로 그순간이었다.

다른 철인의 검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의 몸을 쪼개오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눈앞이 아찔했다.

이제는 죽었구나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번개같은 속도로 자신의 발등을 차고 몸을 엎드리며 검의 아래로 날아갔다.

위잉!

그녀의 등뒤로 거대한 검이 떨어지고,

그녀의 눈앞으로는 철인의 검을 든 강철 팔이 떨어져 내렸다.

미소녀는 다시한번 몸을 뒤집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빠르게 떨어지면서 두 다리로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철인의 팔을 휘감았다.

싸늘한 얼음기둥 같은 쇳덩이의 느낌이 그녀의 하체로 전해져 왔다.

그녀의 몸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바닥에 닿지 않고 다시 위로 들려 올라갔다.

철인은 계속 검을 휘둘렀고,

그녀는 두 다리로 철인의 팔을 휘감은 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미소녀는 철인들의 기이한 검식이 각기 특이한 한가지의 초식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거꾸로 매달려 있었지만 초식들은 바로 기억을 했다.

그녀를 놓쳐 버린 철인들은 점점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움직였지만,

팔에 매달려 있는 그녀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석옥의 안은 일곱 철인의 움직임과 검풍(劍風)이 광풍폭우처럼 몰아치고,

그들의 움직임이 극에 달했다 싶은 순간에 철인들은 우뚝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스스슷!

잘 길들여진 말들이 도열하듯 철인들은 비스듬히 검을 치켜들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미소녀는 여전히 그 팔에 매달려 초식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 일곱초식, 철인들은 각기 일초식을 펼쳤다. 한사람이 이 일곱초식을 동시에 펼친다면……아마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는 다리를 풀어 철인의 뒤로 내려섰다.

순간적인 임기응변이 아니었으면 그녀는 이미 짖이겨진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임기응변도 여자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남자였더라면,

철인의 팔을 다리로 감싸는 순간 무엇이 터져도 터져버렸을 테니까?

그녀는 나체의 몸을 흔들거리면서 석옥의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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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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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장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사이 (2)

 

 

 

쏴아아!

비는 구화산(九華山)에도 내리고 있다.

기암괴석(奇岩怪石)으로 뒤덮있는 삼지봉(三指峰),

그 가운데에 있는 중지봉(中指峰)의 정상,

둥근 바위위에 한사람의 무사가 죽립을 쓴채 비 속에 우뚝 서있다.

대지의 허허로운 기운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이 무사,

그의 손에는 사척 길이의 철봉같은 기형장검이 들려있다.

위지장천,

바로 위지장천 그 사람인 것이다.

칠대 세력의 하나인 귀왕장의 장주 철사륵을 죽였던 그……

[내가 움직이자 그자들이 움직였다. 이것은 그들이 서로 내통하고 있었다는 말……]

위지장천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결국 흉수에는 내 수하들 마저 포함되고 만 것인가? 하지만, 위지장천아 위지장천아, 너는 하늘과 맞싸우려는 자가 아니냐? 적이 많다면 그만큼 너는 강해지면 된다.]

하늘과 맞싸우려는 자, 위지장천!

그는 흑수산을 벗어난 후 이곳까지 오면서 수십 차례의 암습(暗襲)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살인기술을 연마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위지장천을 암습한 그자들은 모두 죽었다.

위지장천이 대지검(大地劍)은 그자들의 몸을 완전히 도륙해버렸던 것이다.

 

문득,

위지장천은 검을 하늘높이 쳐들면서 웅혼한 음성으로 외쳤다.

[사신(死神)! 나 위지장천은 너를 죽일 것이다.사신인 너를…… ]

죽일 것이다……

너를 죽일 것이다……

비와 바람 속에서도 위지장천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구화산을 휘감고 돌았다.

번󰠏󰠏󰠏󰠏󰠏󰠏󰠏󰠏󰠏쩍!

하늘에서 일섬뇌전(一閃雷箭)이 땅으로 내려꽂혔다.

바로 그 순간,

위지장천의 몸이 쏘아가면서 기형장검이 한쪽에 서있는 바위를 꿰뚫었다.

펑!

[으악!]

때마침 산아래에서 날아 올라오던 자가 바위를 꿰뚫고 나온 기형장검에 목이 날아가며 비명을 질렀다.

잘려진 목에서 분출된 피가 빗물에 희석되면서 묽어졌다.

잘려진 머리는 죽립과 함께 산아래로 굴러갔다.

[우아아아󰠏󰠏󰠏󰠏󰠏!]

위지장천은 사자후를 터뜨리며 산아래로 질풍처럼 달려갔다.

수십 명의 죽립인들이 그를 보고 벌떼처럼 날아올랐다.

번󰠏󰠏󰠏󰠏󰠏쩍!

꽈르렁!

뇌성벽력이 울리고,

그 찰라의 섬광 속에서도 수 십개의 임자없는 목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붉은 피분수가 허공으로 분출되고,

피비린내가 바람속에 퍼져나간다.

 

× × ×

 

달그락! 달그락!

전륜법왕의 식탁에 둘러안은 황군성, 임단심, 조응경, 그리고 전륜법왕은 저녁식사에 여념이 없다.

전륜법왕은 일단 젓가락만 들었다하면 오직 먹는데만 열중하고, 절대 입을 열어 말하는 법이 없다.

황군성을 사이에 두고,

임단심과 조응경은 요 며칠 새 끝없는 암투를 벌이고 있다.

황군성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임단심은 어떻게 해야 조응경을 효과적으로 괴롭힐 수 있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문득,

임단심은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황군성과 조응경이 힐끗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황군성에게는 이뻐게 웃어보이고 조응경에게는 콧웃음을 날렸다.

그리고,

젓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음식을 마구 집어먹었다.

후루룩! 쩝쩝!

씹어 넘기고 마시고, 임단심은 마치 걸신들린 사람처럼 체면도 생각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흥! 교양없는 년! 독이나 써는 삼류……)

조응경이 비린한 웃음을 머금은 채 오만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가 생각하기로는 사문(師門)에 있어서 임단심은 자신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잠시후 조응경은 갑작스런 포만감을 느끼며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임단심이 교활하게 웃으며 수건으로 입을 닦고 있었다.

조응경은 속에서 불이 나는 것을 느꼈다.

멋지게 당한 것이다.

두 여자의 몸 속에 있는 통심마고의 신통력을 빌린 멋진 수법이었다.

임단심이 많이 먹음으로 인해서 조응경마저 포만감을 느끼고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실상 조응경은 얌전과 교양을 몸소 실천하느라 별로 먹지도 못했는데……

뱃속은 텅 비었지만 포만감이 드니 먹을 수도 없다.

조응경은 젓가락을 놓고 임단심을 쏘아보았다.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해주마……하지만 되로 받은 것은 말로 돌려주지.)

이윽고 전륜법왕이 젓가락을 놓았다.

[내공이 얼마나 줄어들었느냐?]

[삼푼도 감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황군성이 답했다.

전륜법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백년은 감해져야 수월할 텐데……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자.]

그는 조응경과 임단심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흡양축기대법(吸陽蓄氣大法)의 구결을 외도록 해라.]

임단심과 조응경의 눈이 둥그레졌다.

 

흡양축기대법,

 

사파(邪派)의 요녀(妖女)들이 남자의 정을 취하여 내공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러한 사술을 자기들에게 익혀서 황군성에게 펼치라는 아연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 배안에서는 전륜법왕이 말은 법이고, 전륜법왕은 신이었다.

 

× × ×

 

전륜법왕을 사부로 모신 후부터,

황군성의 얼굴에서 다시 웃음이 사라졌다.

스스로 사부인 한천사방객을 져버리는 패륜을 범한 데 대한 가책이었다.

그가 지금 전륜법왕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불꽃같은 분노와 원망이 가리워져 있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부……당신은 내게 가한 고통으로 인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요. 하지만, 내가 직접 당신에게 가해하진 않을 것이오. 두번씩이나 사부를 져버리는 자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 × ×

 

[하악! 하악!]

[흐윽! 흑!]

선실을 뜨겁게 달구는 두 여인의 끈끈한 신음소리,

황군성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칠척의 거구를 누이고 있는 침상은 다른 두 사람의 무게를 더하여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삐꺽거리고 있다.

지금,

황군성의 몸위에는 두 여인이 가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얼굴도 몸도 똑같이 생긴 아름다운 두 여인이……

임단심은 황군성의 그곳에 올라앉아 힘겨운 움직임을 하고 있고,

조응경은 그녀의 비지를 황군성의 가슴에 마찰하며 연신 숨가쁜 신음을 내뱉고 있다.

[흐윽! 흑!]

임단심은 가득한 팽만감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나……죽어!]

부르르 떠는 그녀의 몸을 조응경이 밀쳐버렸다.

통심마고는 임단심의 흥분도 그녀에게 그대로 전해준다.

쿵!

임단심은 침상아래로 굴러떨어진 채,

자신의 그곳을 꼭 누르고 여전히 몸을 떤다.

조응경은 우뚝서있는 황군성의 거대한 남성위에 주저없이 자신의 몸을 실었다.

[아욱!]

몸속을 미끌어져 들어오는 육봉에 그녀는 입을 짝 벌렸다.

전신을 퍼져나가는 전율같은 쾌감에 그녀는 몸을 아래위로 움직였다.

출렁출렁!

그녀의 가슴이 흔들리고,

그녀의 둔부가 황군성의 샅에 닿을 때마다 묘한 소리가 났다.

일순간,

황군성의 두 손이 조응경의 둔부를 꽉 움켜쥐었다.

[헉!]

조응경은 몸이 터져나갈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머리까지 뚫어버릴 것 같은 강한 쾌감이었다.

침상가에 떨어져 있던 임단심도 두 손을 사타구니사이에 끼면서 부르르떨었다.

조응경은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분출과,

자신의 단전을 가득 채우는 힘을 느끼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스르르 무너지며 뒤로 쓰러졌다.

황군성은 벌떡 일어나 침상아래로 내려갔다.

음양철갑대망의 내단을 복용한 그,

그의 욕망을 완전히 풀어줄 수 있는 상대는 오직 그의 반대쪽 임단심 뿐이었다.

황군성은 임단심의 작은 몸을 구름이 덮치듯 덮어버렸다.

[아!]

임단심이 비명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그녀의 몸은 열려진 상태이고,

황군성은 열려진 그 문을 향해 돌진해들어왔다.

그리고……

광풍폭우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영혼이 빠져나가버릴 듯한 쾌감을 느끼며,

땀으로 번들거리는 서로의 몸을 애무해주었다.

침상위에는 조응경이 혼절한 채 있었다.

통심마고의 효능에 의해 임단심이 받는 모든 쾌감이 그대로 전해지지만, 그녀는 음양철갑대망의 내단을 복용한 일이 없기에 그 쾌감을 견뎌낼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 × ×

 

전륜법왕은 왼손으로 누워있는 황군성의 단전을 가볍게 눌렀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그 왼손을 덮었다.

전륜법왕이 말했다.

[저항하려고 마음먹어서는 안된다. 오직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기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전륜법왕의 포개진 두 손을 통해서 노도같은 진기가 쏟어져 들어왔다.

(윽!)

오백 년의 내공이 숨쉬고 있는 그의 단전으로 육백 년 수위의 전륜법왕의 내공이 들어온 것이다.

(우……단전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전륜법왕의 내력은 끝없이 밀려들었고,

황군성이 단전은 진기로 가득차 폭발할 것처럼 팽배했다.

갑자기 전륜법왕의 전음이 황군성의 귀를 때렸다.

[저항하지마라!]

황군성은 고통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전륜법왕의 내력에 반발했던 것이었다.

전륜법왕이 두려워 했던 것이 이 반발력이었다.

만약 황군성의 내공이 자신과 비슷하다면 두사람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거나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황군성의 내공을 백년이나 감하는 해괴한 작업이 사전에 진행되었던 바 있다.

황군성이 다시 고통에서 마음을 떠나 평정을 유지했다.

전륜법왕의 내력은 계속 밀려들고,

황군성의 단전은 조금의 여지도 없이 팽창하여 터질 것만 같았다.

밀려드는 내력으로 인해 점점더 단전이 팽창하고,

마침내,

황군성의 단전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버렸다.

전륜법왕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는 변함없는 태도로 내력을 쏟어붇고,

황군성은 터져버린 단전의 일각(一角)으로 부터 노도같은 진기가 몸속을 치닫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속이 후련한 느낌이었다.

통제되어 지지 않은 진기는 그의 몸속을 가공할 정도의 빠르기로 움직여 다녔고,

그기에는 어떤 법칙도 없는 듯했다.

전륜법왕의 내력에 압박을 받아 그 진기들의 움직임은 더욱 빨랐다.

철갑대망의 내단을 복용한 후 세 줄기의 진기의 충돌로 말미암에 전신의 모든 기맥이 열려있던 황군성이다.

진기의 거대한 흐름은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 전신을 달렸다.

그리고,

모든 세맥들까지도 샅샅이 돌아다닌 진기는 마침내 다시 단전으로 돌아왔다.

전륜법왕은 그의 단전에서 손을 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성공이다. 진기가 움직여간 방향을 따라서 다시 일주천해라.]

그의 말에 따라 황군성은 진기가 움직인 후 지나갔던 혈도를 따라 다시한번 운기행공을 했다.

과연,

진기는 전혀 막힘을 보이지 않고 아주 빠른 속도로 전신을 돌아 단전으로 돌아왔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합당한 운기행공의 방법이었다.

자연에 전혀 거스름이 없는……

황군성은 세포하나하나에서 무궁무진한 힘이 쏟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은 이미 철골지체(鐵骨之體)였다.

황군성의 몸에서는 철갑대망의 동굴에서 잠시 보였던 바 있는 담황색의 엷은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이것은,

혈왕신공과 빙백강기 및 포산신공이 합일되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이제 그는 신공으로는 고금무적이라고 해도 될 상태가 된 것이다.

전륜법왕이 말했다.

[너를 죽일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너는 최고의 신공을 몸에 갖게 되었다. 하나……]

[…………!]

[너를 죽일 수 있는 물건은 존재한다. 바로 고금십대천병이 그것이다.]

황군성은 일으나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고금십대천병에 대해서는 저도 들은 바 있습니다.]

[그렇겠지. 한데 그 중의 하나인 혈화창(血花槍)를 네 사형 남궁파가 가지고 있다. 원래 내것이었는데 옛날에 줘버렸지.]

전륜법왕은 말을 하면서도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혈화창을 상대하자면 역시 고금십대천병 중의 하나가 아니고는 안될 거야. 아니, 어쩌면 그것으로도 안될 지도 몰라. 고금십대천병은 서로 부딪혀 본 적이 없으니까 장담할 수가 없지.]

황군성은 번천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아무말 않고 묵묵히 있었다.

[그래도 일단 무림에 나가면 고금십대천병 중의 하나라도 얻도록 노력해 봐라. 어쩌면 지금 칠파의 주인들은 그 중의 하나 정도씩은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배는 벌써 황하를 거슬러 올라간지 여러 날,

마침내 황군성과 임단심, 조응경은 서안(西安)에서 땅을 밟게 되었다.

전륜법왕은 그들을 내려준 후 다시 어디론가 떠나가 버렸다.

이때는 황군성이 전륜법왕의 모든 무공을 구술받은 상태였다.

천하 무학의 대종사라고 자처하고 있는 전륜법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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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四 章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사이 (1)

 

 

 

임단심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쪽에 흩어져 있는 황군성의 검은 철갑옷은 어지럽게 보였고,

침상에서 바닥까지 점점히 떨어져 있는 여자의 흔적과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찔렀던 것이다.

자기의 자리를 잠깐이나마 조응경에게 빼앗겼었다는 사실에 속에서는 질투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녀는 옆에 있는 조응경에게 콧웃음을 쳤다.

[흥! 목숨이 아까워서 시키는 대로 아무 남자와 함께 관계를 맺는 꼴이라니……]

[…………]

[도무지 여자로서 수치도 모르는 모양이군.]

조응경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자신의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임단심은 힐끗 그녀를 보았다.

가만히 있는 것까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앞으로 또 협박당하면 다른 남자와도 그렇게 관계를 맺을 테지?]

조응경이 고개를 들면서 발끈했다.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내게 대해 함부로 말하지마!]

그녀는 억울함과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덤벅이 된 눈으로 쏘아보며 소리쳤다.

임단심은 그녀에게 반박을 당하자 화가나서 미칠지경이었다.

[이년이 내 이름을 도용하더니 내 남편까지 가로채고도 감히 큰소리야? 한번 해볼테냐?]

임단심은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기세등등하게 조응경을 노려보았다.

조응경이 차갑게 내뱉었다.

[태상께 스스로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을 나한테 준다고.]

임단심은 그녀의 날카로운 반격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전륜법왕이 황군성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을 때 그녀는 조응경에게 황군성을 주는 것을 허락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조응경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너네들만 아니었으면 우리는 벌써 태상으로 부터 무공을 전수 받고 있었을 거야. 너야말로 감히 우리 자리를 빼앗은 거지.]

그녀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임단심은 이렇게 당돌한 조응경이 황군성과 그 짓을 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그녀는 소리쳤다.

[좋다. 너도 무림인, 나도 무림인, 무공으로 모든 것을 결판내자.]

[흥! 누가 마다할 줄 아느냐?]

조응경도 마주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때문에 살기가 어려있었다.

임단심도 그녀를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두 여인의 눈이 마주쏘아보았다.

쌍둥이 처럼 꼭같은 얼굴때문에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가랭이를 찢어죽여버리겠다.]

임단심은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뻗었다.

그녀가 옥인수라고 속아서 배웠던 청마수의 제 일초인 청마도살이 펼쳐졌다.

지금 그녀의 심정은 옥인표향보다 청마도살이란 이름이 훨씬 마음에 든다고 느끼고 있었다.

번쩍!

청마도살은 그녀의 손에서 발출되자 마자 조응경은 코앞에 이르렀다.

[어림없다!]

조응경은 마주 소리치며 가슴앞에 쌍장(雙掌)을 모았다.

전륜법왕의 독문절기인 만류귀종(萬流歸宗)이 펼쳐진 것이었다.

임단심의 청마수는 이미 전륜법왕에게 똑같은 수법으로 제압당한바 있다.

만류귀종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식(守備式)으로,

어떤 힘이든지 한곳으로 끌어모아 되튕길 수 있는 것이다.

조응경은 이것을 자신의 사부인 남궁파로 부터 전수받았던 것인데.

슈풍!

임단심의 청마도살은 만류귀종에 끌어당겨졌다가 그녀를 향해 강하게 반탄되어 돌아왔다.

임단심의 본래 공력에 조응경 자신의 공력까지 실린 것이다.

그러나, 임단심은 이미 만류귀종의 성질을 대충 눈치 채고 있었다.

그녀가 펼쳤던 청마도살은 더욱 빠른 속도와 힘으로 돌아왔다.

임단심은 크게 소리쳤다.

[청마쇄압!]

펑!

청마쇄압과 청마도살이 부딪히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조응경은 선실의 벽면까지 밀려가 입가에 가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으음!]

아무렇게나 걸쳤던 그녀의 옷은 날아가 버리고 완전한 나체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임단심과의 현격한 내공의 차이는 만류귀종으로서도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응경은 이를 갈며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선공(先攻)을 취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녀는 벌거벗은 몸을 풍차처럼 돌리며 두 다리를 벌려 임단심의 머리를 차갔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비지(秘地)가 확 드러났다.

[더러운 년!]

임단심은 버럭 소리치며 청마식시의 초식을 펼쳤다.

쿠르르릉!

한데,

그녀는 조응경에게 속고 말았다.

임단심의 머리를 노리던 조응경은 발이 위에 있을 때 상체는 물구나무를 서듯이 한 상태였다.

청마식시의 초식이 펼쳐지자 마자 조응경은 연체동물처럼 두 발을 등 뒤로 감아 피하며 두 손으로 임단심의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펑!

청마식시에 격중된 선실의 한쪽 벽에 예리한 손모양의 구멍들이 생겨났다.

조응경은 소리쳤다.

[가랭이는 내가 찢어주마.]

그녀는 임단심의 발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나,

그순간 그녀는 어께로 전해지는 강한 충격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으……응……]

임단심이 앉으면서 두 무릎으로 그녀의 어깨를 찍어버린 것이었다.

퍽!

임단심은 일어나면서 발로 조응경의 턱을 걷어찼다.

조응경의 벌거벗은 몸이 뒤로 날아가며 완전히 널부러졌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녀의 몸은 아주 고혹적으로 보였다.

[요사스런 계집애. 감히 누구한테……흔적도 없이 녹여버리겠다.]

임단심은 욕설을 퍼부으며 손가락을 뻗어 용골독지(溶骨毒指)를 쏘았다.

신검보의 고수를 처음 상대했을 때 그들의 시체를 녹여버린 용골독지이다.

일단 격중되면 금방 한줌의 핏물로 변하고 말 것임은 자명(自明)한 일이었다.

한데,

조응경을 향해 쏘아가던 용골독지는 그녀의 한자 앞에서 마치 무형(無形)의 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임단심이 당황하는데, 조응경의 옆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한사람이 서있었다.

[노야……]

그는 바로 전륜법왕이었던 것이다.

전륜법왕은 분기서린 표정으로 임단심을 향해 말했다.

[네년들이 죽든 살든 내가 알바 아니다만, 감히 내 제자의 연공을 방해해 큰일을 그르칠 뻔 했으니 그냥 둘 수가 없다.]

임단심은 전륜법왕의 몸에서 일어나는 천지를 뒤덮을 것 같은 살기에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녀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질려있었다.

전륜법왕이 소리쳤다.

[마타!]

임단심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내뱉었다.

[노야……설마……저를……]

마타는 바람처럼 달려와서 전륜법왕 뒤에 우뚝 섰다.

그의 눈동자는 색기로 번들거리며 벌거벗은 채 두 다리를 벌리고 쓰러져 있는 조응경의 사타구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아니겠느냐.]

전륜법왕이 차갑게 말했다.

임단심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전륜법왕이 마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통심마고(通心魔蠱)를 다오.]

마타는 여전히 조응경의 사타구니에 눈을 고정시킨 채 허리춤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전륜법왕은 병의 마개를 열더니 훅하고 불었다.

순간,

무언가 빛살같은 것이 날아가 조응경의 코 속으로 사라졌다.

전륜법왕은 다시 훅 불었고,

빛살은 임단심의 코속으로도 들어갔다.

임단심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전륜법왕을 바라보았다.

[껄껄껄……이제 마음대로 해 보라구.]

전륜법왕의 탐욕으로 이글거리는 마타의 등을 잡고 밖으로 던져버리며 선실을 나가버렸다.

 

통심마고(通心魔蠱),

 

독봉이라 불리우는 임단심이 이것을 모를 리가 없다.

묘강에서 서식하는 고(蠱)들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것이 이 통심마고이다.

한쪽이 목숨을 잃을 때에만 다른 쪽도 목숨을 잃는 다른 고들과는 달리,

통심마고는 작은 고통까지 함께 느끼게 되는 기묘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몸속에 침투하자 마자 머리 속에 있는 중추신경을 관장하는 곳에 달라붙어 살게 된다.

그리하여,

숙주(宿主)인 사람이 느끼는 고통과 감정을 모두 알게 되는데, 이것이 다른 숙주에 기생하고 있는 한쪽의 통심마고에게 심령으로 전달이되고,

그 쪽 통심마고가 감응하게 되면 원래의 숙주가 느꼈던 고통과 감정을 똑같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임단심은 조응경을 이제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에게 어떤 고통을 가하려고 하면 즉시 자기에게도 똑같은 고통이 되돌아 올 것이다.

 

임단심은 이를 갈았다.

[지독한 늙은이. 이제 좋든 싫든 이년과 함께 살게 만들고 말았구나.]

그녀는 분통이 터져서 조응경의 발을 힘껏 차버렸다.

순간,

[악!]

동시에 두 군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조응경은 정신을 차리면서 발을 부둥켜 안았고,

임단심도 자신의 발을 들고 쿵쿵뛰었다.

발길질한 똑같은 부위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든 것이었다.

홧김에 통심마고의 신통력을 깜빡했던 댓가였다.

임단심은 화가나서 소리쳤다.

[이년아! 냄새나는 물건을 훌렁 드러내놓고 있는 게 그리 좋아?]

이제 그녀들의 싸움은 욕으로 밖에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구의 입심이 센가, 누구의 마음이 더 독한가에 의해 승부가 나게 될 것이다.

 

× × ×

 

황군성은 전륜법왕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전륜법왕은 그에게 억제된 내공을 운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중이다.

[네 몸속의 내공은 세 가지의 공력이 혼융(混融)된 것이다. 이것을 움직이려 하면 두 가지 방법 밖엔 없다.]

[…………]

[그 중의 한가지는 세 가지의 내공구결마저 혼합하여 지금의 공력에 맞는 신공(神功)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

[기연에 의해 세가지의 공력은 뒤섞일 수 있었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세 가지의 신공을 모순없이 통합하여 하나의 신공으로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다른 하나의 방법은 처음부터 내공자체를 새로 익히는 것이다. 단전에서 그것을 더욱 키워 내공이 스스로 길을 찾게 하는 것인데, 두달 정도는 걸려야 할 것이다.]

황군성이 말했다.

[그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전륜법왕은 고개를 저었다.

[그밖에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내 내공으로 너의 공력을 움직여 전신의 대혈을 뚫어주면 될 수도 있지. 하지만……]

[…………]

[난 목숨을 걸어야 할 거야. 네 녀석의 억제되어 있는 내공이 육백 년 수위인데, 나도 그 정도 밖엔 되지 않는단 말이야. 내 내공이 더 강해야만 위험없이 효과를 볼 수 있는데……]

[…………]

[내 내공이 더 강해질 리는 없고, 방법은 네녀석의 내공이 약해지는 것 뿐이겠지.]

전륜법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황군성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내공을 움직일 수도 없는데 어떻게 약하게 할 수 있습니까?]

전륜법왕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가 있지 않은가? 여체야 말로 공력을 잡아먹는 귀신이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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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三 章

 

           엉뚱한 提案

 

 

 

황군성은 무엇인가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것을 느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임단심의 상기된 얼굴과,

그녀의 벌거벗은 우유빛 상체가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출렁이며 흔들리고 있는 두개의 육봉(肉峰)도……

황군성, 그의 몸도 완전한 나신이 되어있었고,

임단심은 그의 몸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완전히 결합된 상태였다.

황군성은 어느 한곳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쾌감을 느끼며 물었다.

[임매! 그 태상인가 하는 노인은?]

한데,

그와 눈이 마주친 임단심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움직일 뿐 답하지 않았다.

[…………?]

순간,

황군성의 머리에 벼락같이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버럭소리쳤다.

[조소저! 당신은 조소저로군!]

임단심의 몸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며 굳어졌다.

그와 동시에 황군성은 자신의 하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하나,

지금 그런 것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임매는 어디있소. 빨리 말하시오.]

그는 긴 팔을 뻗어 그녀의 목을 콱 조였다.

[큭!]

[빨리 말하시오.]

황군성은 한손으로 그녀의 목을 잡고 번쩍 들어올리며 일어섰다.

두사람의 결합은 풀리면서 황군성은 자신의 어느 부위가 시원해짐을 느꼈다.

그의 손에 들리워진 조응경은 고통때문인지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황군성은 옷을 걸칠 여유도 없었다.

 

󰠏󰠏󰠏󰠏󰠏󰠏󰠏두 사자중 여자는 바꿔야겠군!

 

노인의 음성이 귓전에서 맴돌고 있었다.

어쩌면 노인이 임단심을 벌써 죽여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임매! 제발 살아있어야 하오!)

황군성은 조응경의 목을 잡고 공중에 뛰운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이 있는 곳은 선실의 한 방이었던 것이다.

매달려 가고 있는 조응경의 흰 다리를 타고 한두 방울씩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선실의 바닥에 점점이 떨어지며 붉은 얼룩을 만들었다.

그녀의 처녀가 파괴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쿵쿵쿵!

황군성은 최초에 자신들이 아침을 먹었던 선실을 찾아 뛰어올라갔다.

벌거벗은 그의 몸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쾅!

어깨로 선실문을 박살내면서 들어갔다.

[임매!]

문짝은 선실의 한쪽으로 날아떨어지고,

[아!]

선실안에서 작은 경탄성이 발해졌다.

그곳에는,

철갑옷을 입은 임단심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노인의 의자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휴!]

황군성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왼손에 들었던 조응경을 내려놓았다.

그의 몸은 완전한 나신이었고,

조응경의 몸도 완전한 나신이었는데, 그녀의 은밀한 곳에서 흘린 피가 백옥같은 다리에 혈선을 그어놓고 있었다.

임단심이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 무사해요. 다시 조소저를 데리고 그 방으로 내려가셔요.]

[임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오?]

황군성은 그녀의 표정에서 자신이 모르는 무슨 일인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분 노야께서 당신이 마음에 드신대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임매!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노야! 직접 말해주십시오.]

그는 임단심의 의자 맞은편에, 자기쪽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그 노인이 앉아 있다는 것을 안다.

과연,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간단하네! 자네를 놓고 나와 임소저가 협상을 벌인거지. 이 임소저는 정말로 자네를 깊이 사랑하더군. 자신의 목숨마저 버릴 수 있을 정도로……한데, 자네도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군.]

황군성은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다.

[당신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없소. 지금 내가 사는 것은 임매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죽음도 우리를 갈라놓진 못할 것이오.]

(아!)

임단심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넘쳐흘렀다.

반면에,

바닥에 쓰러져 몸을 웅크리고 있던 조응경의 얼굴에는 절망이 스치고 지나갔다.

노인이 말했다.

[훌륭해! 훌륭해! 과연 천생연분(天生緣分)이었군. 그럼 이야기가 더 잘돼지.]

노인은 손바닥으로 식탁을 두번 두드렸다.

탕!탕!

순간,

선실의 벽쪽에 있던 두개의 의자가 날아와 식탁의 양가에 놓였다.

사뿐!

나무가 나무에 떨어졌는데도 아무 소리도 나지않았다.

마치 나비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은 것이다.

노인이 말했다.

[두 사람다 이곳에 와서 앉도록하게. 부끄러워 말고.]

황군성은 문득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고개를 숙여보니 자신의 그곳에 부끄러운 흔적이 남아있었다.

조응경은 감히 노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두 팔로 가슴과 아래를 가리면서 의자로 가서 앉았다.

황군성도 밑을 가린 채 맞은 편의 의자에 앉았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당사자가 다 모였으니 이의없는 결정이 도출될 수 있겠군.]

임단심이 식탁밑으로 손을 뻗어 황군성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자네를 손에 넣기 위해 적지않은 양보를 했다네. 우선 임소저와 내가 타협한 내용을 들어보겠나?]

노인의 말에 황군성은 고개를 돌려 임단심을 바라보았다.

[노야께서 당신의 목숨으로 협박했어요. 당신을 조소저에게 주라고……]

[나는 물건이 아니오.]

황군성이 말했다.

노인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쨌던 자네는 조소저와 부부의 연을 맺지 않았는가?]

황군성은 차갑게 말했다.

[조소저는 나와 맺었는지 몰라도 나는 조소저와 부부의 연을 맺지 않았소.]

그의 말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으니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응경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노인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네의 목숨으로 임소저를 협박해 봤으니 이젠 임소저의 목숨으로 자네를 협박해볼 참이네.]

황군성과 임단심의 안색이 밀납처럼 창백해졌다.

노인은 임단심에게 협박하여 황군성이 조응경이란 다른 여자와 성교를 갖도록 했다.

같은 방법으로 황군성을 협박한다면,

노인은 임단심을 다른 남자에게 안기에 할 것인가?

황군성의 두주먹이 불끈 쥐어지며 눈에서 붉은 혈광이 일렁거렸다.

노인은 그들의 생각을 일기라도 한듯이 말했다.

[자네들은 이 배에 나 혼자만 타고 있는 줄 아는가?]

그는 손뼉을 쳤다.

짝짝!

그러자,

번쩍!

선실 문으로 마치 곰같은 사람이 하나 들어오는 것이었다.

키는 황군성보다 작지 않고,

팔은 길고 다리는 짧으며, 등은 곱사등,

칠십정도 되어 보이는 흉칙한 모습의 늙은이였다.

임단심은 그의 모습에 몸을 흠칫 떨었다.

[마타(魔駝)라고 들어보았는지 모르겠군.]

노인이 세 사람을 둘러보며 말했다.

임단심과 조응경은 번개불에 맞은듯 부르르 떨었다.

 

마타……

막북(漠北)에서 사십여 년 전에 활동했던 흉마(兇魔),

변태적으로 여인을 겁탈하고 자신이 기르던 늑대에게 먹이로 주었던 인물.

그의 손에 죽은 여인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팔구 세의 어린 여아에서 칠십의 노파에 이르기까지,

마타는 대상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것인데……

이 이상한 배의 이상한 노인의 하인으로 나타난 것이다.

 

노인이 웃었다.

[허허허……마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래. 그래야 이야기가 수월하지……하지만 마타! 저 공자께서는 자네를 모르는 듯하니 직접 소개해 올리게.]

황군성은 마타라는 인물이 여인에 대해 흉명을 떨친 인물일 것이라고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마타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노복은 삼천 명이 약간 넘는 여자들을 강간하고 제가 기르던 늑대에게 먹이로 주었습니다. 그 중에는 막북 다섯 부족의 족장들의 아내와 딸도 있었지요. 그리고 중원으로 들어와서도 은밀히 사백 여 명의 젊은 여인들을 강간하고 죽였는데, 주인님을 만나 종이 되기로 맹세하면서 부터 손을 쓸 수 없었지요.]

황군성은 임단심과 조응경이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노인이 말했다.

[조소저는 자네를 접대하는 일에 서툴렀겠지만 마타는 임소저를 접대하는데 서투르지 않을 걸세.]

임단심은 황군성과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두려움을 마치 황군성에게 알리기라도 하듯이……

황군성은 나직이 탄식했다.

[노야! 내게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노인의 정말 환하게 웃었다.

손을 흔들며,

[마타! 자네는 필요없을 것 같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항상 준비는 하고 있게.]

마타는 선실밖으로 나가 사라졌다.

그리고,

노인이 허공에 손을 몇 번 휘젓자 한쪽에 있는 설합이 열리면서 두 벌의 옷이 날아왔다.

그 옷들은 정확하게 조응경과 황군성의 어깨에 걸쳐졌다.

노인이 말했다.

[자네가 수락하기만 하면 나는 조소저마저 자네에게 줄 생각이네. 하하, 똑같이 생긴 두 아내라……재미있지 않는가?]

황군성이 말했다.

[노야께서는 조건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노인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내게는 제자 한 놈이 있어. 한데 그놈의 야망이 너무 크단말이야. 나는 그다지 관심도 없는데 놈은 계속 나를 귀찮게 하고있어.]

[그럼 꾸짖으면 될 것 아닙니까?]

황군성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노인의 눈이 기묘하게 변했다.

[자네가 나를 제자도 다스리지 못하는 놈이라고 비웃는 겐가? 그래도 할 수 없지. 사실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놈이 누군지 알면 쉽게 말하진 못할 걸?]

[…………]

[초사륭의 제자이니 그의 원수가 누군지는 알고 있겠지?]

황군성이 식탁을 탕치면서 말했다.

[전륜법왕(轉輪法王)! 바로 그자가 노야의 제자입니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전륜법왕은 바로 나야. 초사륭이 알고 있는 전륜법왕은 바로 그놈이지만……]

황군성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그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현현궁(玄玄宮)에……]

황군성과 임단심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현현궁,

당금 무림의 칠대세력 중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지녔으리라고 추측되고 있는 비밀의 세력……

두 명의 사자(使者)를 파견해 무수한 군소방파들을 흡수하여 그 세력하에 두고 있는 곳,

노인의 제자는 그곳의 궁주(宮主)였다.

 

노인,

전륜법왕의 말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놈이 마땅치 않지만 그놈을 징계할 힘이 없어. 오히려 놈이 나에게 태상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현현궁의 사자에게 무공을 가르쳐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지.]

 

전륜법왕의 제자의 이름은 남궁파(南宮巴),

바로 현재 남궁세가의 노가주(老家主)이기도 했다.

한데,

이 남궁파는 천품을 타고난 기재로 전륜법왕의 무공 중 열의 아홉은 배워버렸다.

그리고 무림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 현현궁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사부인 전륜법왕에게 태상궁주라는 호칭을 주고,

천하의 기재들 중에서 뛰어난 자들을 선별하여 그에게로 보냈다.

죽을 때가 다 된 전륜법왕이 내키지는 않지만 자신의 마지막 비학(秘學)을 인재를 만나면 전수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남궁파가 파견하는 기재들은 무림에서 현현궁의 사자라고 알려진 자들이다.

그들은 무림에 출두하기 전에 전륜법왕으로 부터 한 두가지씩의 무공을 배워서 나가곤 했다.

남궁파의 말처럼 전륜법왕은 이미 늙었다.

그의 무공은 남궁파를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만약 남궁파를 제압하기 위해 자신의 숨겨둔 무공을 드러내게 되면,

그 또 한 생명을 단축하는 결과가 되어 죽고 말 것이다.

자신이 죽는 것은 별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의 무공이 사장(死藏)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륜법왕은 스스로 천하무학(天下武學)의 대종사(大宗師)라고 자부하는 기인이었던 것이다.

 

전륜법왕이 못을 박았다.

[남궁파를 치기 위해, 자네는 먼저 내 제자가 되어야 하네. 그리고 현재의 사부인 초사륭과는 사제관계를 단절해야 하네.]

꽝!

황군성은 왜 신선같은 풍모의 전륜법왕이 해괴한 짓을 벌였는가를 단번에 깨달았다.

중원무림에서,

사부가 제자를 파문하는 법은 있어도 제자가 사부를 버리는 법은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다른 문파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수많은 무림인들의 지탄을 받고,

장차 무림에 발붙일 데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일은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한다는 사파의 고수들 마저 피하는 일인 것이다.

한데,

전륜법왕은 황군성에게 무림의 패륜아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륜법왕이 말했다.

[나 전륜법왕의 제자가 다른 사람의 제자일 수는 없다. 전륜법왕의 제자는 전륜법왕 만의 제자여야 한다.]

그는 망연자실한 황군성의 눈을 불꽃같은 눈초리로 응시하며 말했다.

[이것이 첫번째 조건이다. 위에서는 마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황군성은 임단심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전륜법왕이 그의 손을 덥썩 잡으면서 말했다.

[그럼 이제 네 사부와 인연을 끊는다는 맹세를 해라.]

황군성은 화석처럼 굳어있었다.

비록,

유대감 같은 것보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맺어졌던 한천사방객과의 사제지연(師弟之緣)이었다.

한천사방객은 자신들의 원한을 풀어줄 기재(奇才)가 필요했었고,

황군성은 자신의 생에 대한 회의(懷疑)를 잠시라도 떨쳐줄 새로운 무학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사제지간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같은 상황에 처하여 사부를 져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뼈에 사무치게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전륜법왕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임단심의 몸이 담보로 걸려있는 것이다.

 

󰠏󰠏󰠏󰠏󰠏나 황군성은 궁월, 초사륭, 단극린, 냉천삭, 이 네 사람의 한천사방객과 사제의 인연을 끊습니다. 임소저와 조소저, 그리고 전륜법왕께서 증인이 되신 가운데 천지에 맹세합니다.󰠏󰠏󰠏󰠏󰠏

 

맹세하는 황군성의 눈에서 두줄기의 굵은 눈물이 흘렀다.

[흑!흑!]

임단심은 자신을 위해 사부마저 버리고 무림의 패륜아가 되어버린 황군성을 위해 울었다.

하지만,

전륜법왕은 기뻐하며 말했다.

[이제 내게 아홉 번 절하도록 해라.]

황군성은 어깨에 걸쳐있던 옷을 추스리고 전륜법왕에게 구배를 했다.

전륜법왕이 말했다.

[너는 이제부터 내 제자다. 무림에서 나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말아라. 네가 네 사형 남궁파를 죽이든 말든 그건 자유다. 하지만 내 무공은 하나도 남김없이 터득해야만 한다.]

선실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었다.

전륜법왕은 기뻐 어쩔 줄 모르고,

황군성과 임단심은 비통한 심정이었으며,

조응경은 자신의 불확실한 장래에 대해 간을 졸이고 있었다.

그녀는 현현궁주 남궁파의 제자였던 것이다.

전륜법왕이 말했다.

[먼저 네 몸에 억제된 내공을 사용할 수 있는 법문을 가르쳐 주마. 귀를 활짝 열고 듣도록 해라.]

그는 두 여자들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비키라는 뜻이었다.

임단심과 조응경은 선실을 나가 아래 층으로 내려갔다.

위에는 마타가 있다는 생각에 감히 고개를 들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갑판에는 비가 뿌리고 있는데,

범선은 어두운 강물위로 미끄러져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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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장

 

                괴상한 배, 괴상한 사람 (2)

 

 

 

가짜 임단심의 본명은 조응경(趙應慶)이었고, 나이는 임단심과 같은 십구세 였다.

그녀는 금릉(金陵)에서 우연히 전무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를 임단심으로 오해한 전무옥은 그녀의 미모에 끌려서 신검보로 초청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오해를 받자 한편 어리둥절하면서도 한편 재미있기도 해서 그를 따라갔다.

그곳이 바로 신검보라는 점도 상당히 작용했었다.

그런데,

조응경이 초청에 응하자 전무옥은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준 것으로 착각하고 신검보에 도착하자마자,

검신 전득무에게 조응경과 혼인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녀는 어이가 없었고,

다행스럽게도 검신 전득무는 그녀를 보자마자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

전무옥은 풀이 죽었지만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마터면 억지로 결혼할 뻔 했던 것이다.

한데,

전득무를 만나고 난 바로 그 날 밤,

그녀는 누군가의 암습을 받고 정신을 잃어버렸었다.

나중에 깨어보니 정주에 있는 한 객점의 객실이었다.

사방에는 신검보의 고수들이 퍼져서 자기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 중의 한 명을 제압해서 전무옥이 독수를 입었다는 것을 알았다.

독봉 임단심의 독이라고 그 고수는 말했는데,

그때서야 조응경은 자신이 어떤 함정에 빠졌음을 알았다.

자신은 독이라고는 쓸 줄 모르는데,

누군가가 자기에게 누명을 덮어씌우기 위해 독을 사용한 것이틀림없었다.

그자는 자기를 진짜 독봉 임단심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응경은 정주를 남몰래 빠져나와 자신의 임무를 몇 가지 처리한 후,

동료와 함께 이곳으로 왔던 것이었다.

 

[그럼 흉수는 신검보 안에 있을 가능성이 더 많겠군.]

황군성이 중얼거렸다.

조응경이 물었다.

[한데, 당신이 검신의 팔을 자르고 사라졌다는 그 사람인가요?]

[맞아요. 바로 이 사람이죠.]

임단심이 차갑게 말했다.

노인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전득무의 팔을 잘랐다고? 그를 이겼단 말인가?]

황군성이 고개를 저었다.

[패했습니다. 그는 저보다 월등한 고수였습니다.]

노인의 눈빛이 사그라졌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문득,

[너희둘은 앞으로 나서라.]

노인이 조응경과 그녀의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두 사람은 번개처럼 움직여 노인의 양쪽에 엎드렸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내가 준비한 출전식(出戰食)은 이들이 먹고 말았다.]

조응경과 그의 동료의 어깨가 미미하게 떨렸다.

[너희들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전임 사자(使者)가 얼마 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고 말았다. 이제 다시 두 명의 사자가 필요한데, 이미 이들이 출전식을 먹고 말았으니 어쩌겠느냐?]

[태……태……태상……]

쿵쿵!

조응경과 그의 동료는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사자가 네 명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니, 너희들은 운명으로 생각하고 그만 자결하도록 해라.]

 

선실안은 기괴한 적막이 찾아왔다.

신선같은 노인의 입에서 나온 자결하라는 말에 임단심과 황군성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조응경과 그 동료의 눈이 원망스러운 듯 임단심과 황군성을 바라보았다.

사내가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자신의 우수로 천령개를 내리쳤다.

퍽!

사내는 비명도 없이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참혹한 장면이었다.

조응경은 품에서 예리한 비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번쩍!

비수는 그녀의 목을 찔렀다.

바로 그 순간,

핑!

쨍!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나면서 조응경의 손에서 비수가 빠져나가 선실벽에 꽂혀버렸다.

노인의 눈이 임단심을 향해 무시무시한 광채를 뿜었다.

[죽고 싶은 게로군. 그럼 두 명의 사자 중에서 여자는 바꿔야 겠군.]

임단심은 가슴이 찌릿하는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노인의 눈빛 하나에 그녀는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낀 것이다.

조응경의 안색은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임단심이 지풍을 날려 그녀를 구한 것이었다.

임단심은 용기를 내어 노인에게 말했다.

[이 정도로 자결하게 하는 것은 너무 참혹하잖아요.]

순간,

[으하하하하……]

노인이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황군성은 일이 긴박하게 되어가는 듯하자 임단심의 곁으로 와서 섰다.

노인이 웃음을 뚝 그치며 말했다.

[직접, 저 계집애를 죽인다면 용서해주마!]

임단심이 소리쳤다.

[흥, 인면수심의 위선자! 차라리 당신을 죽이겠어.]

그녀는 우수를 뻗어내며 옥인표향을 펼쳤다.

[안돼!]

조응경이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순간,

[청마수?]

노인의 입에서 은은한 놀람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너는 초사륭과 어떤 관계냐?]

말을 하면서 양손이 펼쳐졌다 쥐어졌다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토록 빠른 옥인표향이 마치 굼벵이처럼 느리게 노인의 손바닥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닌가?

황군성과 임단심의 놀라움은 컸다.

노인의 무공은 괴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임단심은 잇달아 옥인포슬과 옥인봉군을 펼쳤다.

노인의 손바닥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나,

청마수의 모든 수법은 노인의 손안에서 사그라지고 말았다.

[계집애가 삼백년 수위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니……]

노인의 짧은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순간,

임단심은 칠현천기보법을 밟으며 황군성을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황금빛 구룡로가 들리워져 있었다.

바로 그때,

노인의 손가락에서 뻗어나온 다섯 줄기의 빛이 임단심의 몸에 격중했다.

[윽!]

그녀는 구룡로로 치구룡술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내부로 전해진 강한 충격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뒤쪽에 있던 황군성이 황급히 허리를 잡아 그녀의 몸을 일으켰다.

노인의 손가락은 황군성의 미심혈(眉心穴)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모든 변화는 극히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황군성은 자신들의 생명이 이미 노인의 손가락 끝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노인은 검신 전득무와는 또 다른 경지에 있는 무공을 보여준 것이다.

노인의 손 그림자가 일렁이는 순간,

황군성과 임단심은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 × ×

 

우르릉!

해가 모습을 드러낼 줄 모르더니 마침내 하늘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쏴아아!

휘이잉!

바람과 함께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번쩍!

찰나지간의 섬광이 사위를 빛의 세계로 몰아 넣었다.

아……!

언제부터인지 세 명의 인물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턱밑까지 가린 죽립을 쓰고 땅에 끌리는 장포를 걸치고 잇었다.

번쩍!

오늘의 섬광은 서슬이 시퍼런 짙푸른 청광을 보였다.

웬지 으스스한 괴이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문득 어느 순간,

스슷!

새로운 인영하나가 세 명 죽립괴인들 앞에 우뚝 자리했다.

일신에 어둠보다 더 짙은 흑의에 가슴까지 내려오는 복면을 하고 있었다.

[신(神)의 명이다.]

복면 사이로 오싹 소름이 끼치고도 남을 스산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자를 죽여라.]

살인명령,

음성엔 그 어떤 감정의 기복도 찾을 길이 없었다.

세 명 삿갓괴인들은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존명!]

순간,

스스스슷!

돌연 주위 어딘가에서 수십 줄기의 검은 그림자들이 비 사이로 꺼져 버렸다.

번쩍

시퍼런 섬광이 작렬했을 때 복면인과 죽립괴인들 조차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죽임을 당할 그자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채 비는 거침없이 내렸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엇던가?

오직 비만이 내리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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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二 章

 

           괴상한 배, 괴상한 사람 (1)

 

 

 

강에는 새벽부터 안개가 솜이불 처럼 깔려있다.

쭈그리고 앉아서 혹시 지나가는 배가 없는가 살펴보지만,

이런 날 아침일찍 배를 몰고 강으로 나온다는 것부터가 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체념하고 있었다.

차라리 헤엄이라도 쳐서 뭍으로 건너갈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촤아아!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조용한 강상으로 울러퍼지고 있었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벌떡 일어섰다.

과연,

한척의 범선(帆船)이 안개속에서 서쪽으로 고물을 향하고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 × ×

 

범선은 쌍돛을 달고 있었다.

길이가 백척(百尺) 정도 되어 보이는데, 그 양옆으로는 수십 개의 긴 노가 달려있었다.

아마도 바다를 다니던 범선같았다.

한데,

배 위의 갑판에는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문득,

배의 한쪽 난간을 부여잡고 한 쌍의 남녀가 갑판위로 뛰어올랐다.

칠척거구에 검은 색 윤이 나는 기묘한 철갑옷을 입은 남자와,

역시 철갑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바로 황군성과 임단심 그들이다.

두 사람은 배 위를 잠시 훑어본 후에 선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도 배는 바람을 받아 상당히 빠른 속도록 달려가고 있었다.

선실 안에는 등불이 밝혀져 있고,

탁자에는 금방 준비된 듯한 음식이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고 있다.

황군성은 음식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식탁에는 세 개의 의자와 세 벌의 젓가락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왔으면 앉아야지.]

자애로운 노인의 음성이 그들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몸을 흠칫했다.

그 소리는 바로 그들의 지척에서 들린 것이었는데도,

그들 두사람은 아무런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소리가 난 곳은 그들의 바로 앞에 있는 의자있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서로 눈을 마주친 후에 각기 하나의 의자 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의 시선은 소리가 난 다른 한 의자에 가서 멎었다.

그곳에는,

신장(身長)이 사척도 되어 보이지 않는 백발노인이 앉아있는 것이었다.

의자의 등받이에 몸이 완전히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데,

이 난장이 노인,

그의 눈동자는 마치 대해처럼 깊고 조용하고,

전신에서 풍겨지는 화사한 분위기는 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절로 평화스럽게 해주지 않은가?

긴 수염은 무릎까지 닿을 듯하고,

붉으스레한 얼굴은 그 수염만 아니라면 십대의 소년이라고 해도 믿을 만치 젊어보였다.

한마디로,

신선같은 풍모라고 할 수 있었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노인을 보고 그 신태 비범함에 놀랐으나,

모든 경계심이 일시에 풀어져 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앉게.]

노인은 다시 두 팔을 벌리며 자리를 권했고,

황군성과 임단심은 귀신에 홀린 듯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시간을 잘 지켰어. 일각의 어김도 없이 도착했군.]

노인은 두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군성은 노인이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노야(老爺)! 저희들은……]

[됐네. 아침이나 먹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세.]

노인은 손을 저어 말을 끊고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한번 결정해버리면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

노인도 그런 사람인 듯 했다.

황군성과 임단심이 자신의 말에 따를 것이라고 철저히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황군성은 임단심과 눈을 마주친 후에 노인을 따라 젓가락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이상한 아침이었다.

생판 처음보는 사람과 아침을 먹게된 그들은 마치 남의 밥상을 대신 받은 듯 껄끄럽기 그지 없었다.

식탁에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을 먹고 나자 바로 마실 수 있는 차도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을 먹기 시작한 후,

노인은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오물오물 음식을 씹어 먹을 뿐이었다.

임단심은 노인의 미소를 대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렇게 먹는 것이 장수(長壽)하는 비결인 모양이구나.)

황군성과 임단심은 식사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노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문득,

노인이 젓가락을 놓으면서 손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탁!

황군성과 임단심의 젓가락도 덩달아 탁자에 내려졌다.

탁탁!

노인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궁주(宮主)가 이번엔 꽤 신경을 쓴 모양이군. 무공도 쓸만하고 특히 기개가 마음에 들어.]

[노……]

[지금까지 온 녀석들 중에는 이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자들이 없었거든.]

노인은 눈을 반짝이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노야라고 부르는 녀석도 없었지……]

황군성과 임단심은 눈앞에 있는 노인이 마치 구름속의 신룡과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계속 말을 이었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내 말은 자네들을 위축시키려는 게 아니야. 칭찬하는 거지.]

임단심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노야께선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보신 것 같습니다.]

노인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내가? 그럴 리가 있나?]

노인은 식탁의 한쪽에서 한폭의 두루마리를 꺼냈다.

그리고,

쫘악!

두루마리가 풀리면서 일남일녀(一男一女)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곳에 그려진 두 사람,

남자는 거한의 모습이었고,

여인은 꽃같이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 그림 속의 여인얼굴이 임단심의 얼굴과 똑같지 않은가?

남자의 모습도 황군성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황군성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임단심은 입을 짝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노인이 말했다.

[이래도 내가 사람을 잘못봤다고 할텐가? 아무튼 자네들은 좀 특별하군. 궁주가 그렇게 시켰나?]

[궁주라니? 무슨 궁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황군성이 물었다.

노인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불쾌한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네들은 궁주도 모른단 말인가?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황군성과 임단심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말려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루마리에 그려진 두 사람의 초상때문에 어떤 변명도 먹혀들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그때,

똑똑!

문득 선실의 윗층에서 바닥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노인의 얼굴에 묘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단심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녀는 갑판을 밟고 오는 두 사람의 미미한 발자국 소리를 들은 것이다.

덜컹!

선실의 문이 열렸다.

[아!]

임단심은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아,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선실이 열리고 들어선 두 사람,

일남일녀였다.

남자는 칠척의 키에 백색 장삼을 입었고,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은 임단심과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은 얼굴이었다.

황군성도 그들이 바로 이 식탁에 앉았어야 할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루마리의 인물은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두 쌍의 모습은 너무도 흡사했다.

마치 한쪽이 다른 한쪽을 모방하기라도 했듯이……

황군성과 임단심이 철갑옷을 입기 전이었다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도 황군성과 임단심을 보고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순간,

임단심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신검보에 나타났던 가짜!]

가짜 임단심은 입가에 비웃음을 담으며 아무 말 않고 선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노인이 앉아 있는 의자의 뒤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태상(太上)께 문안드립니다.]

노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임단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묘한 일이야 묘한 일……]

그는 뒤의 두 사람을 보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한 눈에 꿰뚫고 있었다.

문득,

그의 눈이 날카로운 신광을 발했다.

[한데 너희들은 너무 늦게 왔어. 나는 두 번이나 번거롭게 손을 맞을 생각은 없거든.]

무릎을 꿇고 있던 두 사람의 안색이 홱 변했다.

[태……태상……]

[너희들은 그대로 있어라. 그리고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지 말해봐라.]

말하고 있는 노인의 눈은 여전히 황군성과 임단심 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임단심이 말했다.

[노야! 저 여인이 저를 사칭하여 신검보의 소보주인 전무옥에게 독수를 썼습니다.]

가짜 임단심이 말했다.

[태상! 저는 사칭하지 않았습니다. 전무옥이란 자가 저를 보더니 막무가내로 독봉(毒鳳)이라고 부르면서 함께 동행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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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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