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1. 18:47 박스본 무협지의 추억/태산북두(太山北斗)
[태산북두] 제 17장 삼불대 밑의 천하제일인 1
第 十七 章
삼불대 밑의 천하제일인 (1)
내가 허무와 고독에 모든 빛을 잃어버렸을 때,
그녀는 오히려 나를 빛으로 여겼었다.
내가 하나의 빛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하나 만큼 기뻐했고,
내가 두개의 빛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세개 만큼 기뻐했다.
허무와 고독을 떨쳐 버렸을 때 그녀는 나를 새로 만들었던 것이고,
내 마음에 야망이 들어차기 시작하자 그녀는 나의 그늘속으로 밀려들어가 버렸다.
내 우유부단한 마음은 그녀의 마음을 칼로써 도려냈었고,
이제 그녀가 떠났음에 나는 내 영혼 마저 멀리 떠나버렸음을 느낀다.
영혼이 뽑혀진 자리엔 그녀의 흔적만 남았다.
나는 이 세상은 물론 지옥까지 뒤져서라도 그녀를 다시 내 마음속으로 되찾아와야한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대로 지옥 속에 남으리라……
***
항산(恒山),
어두침침한 구름이 낮게 깔려있고,
사방에서는 바람한 점 없는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바람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엄청난 빠르기였다.
그 그림자는 곧장 항산의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고 있다.
문득,
그 검의 그림자를 막아서는 다른 그림자가 있었다.
검은 그림자는 마치 물이 돌아서 흘러가듯 막아선 그림자를 피해서 달려갔다.
막아섰던 그림자는 흑의를 입고 검을 맨 청년이었다.
그는 저으기 당황하는 것 같더니 검은 그림자를 뒤따라가면서 소리쳤다.
[독봉(毒鳳)! 임소저! 정체를 숨긴 고수였구려. 잠깐 서시오.]
앞서 달리던 그림자가 움찔 하는 것 같더니 그대로 달렸다.
그러자 뒤따르던 청년이 다시 소리쳤다.
[멈추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멈추게 하겠소.]
청년은 오른 손을 쭉 뻗어 앞서가던 그림자를 가리켰다.
순간,
챙!
그의 어깨에 걸려있던 장검이 쑥 뽑혀 나오며 빛살같이 날아갔다.
놀랍게도,
그것은 어검술이었다.
앞서가던 그림자는 어검술이 펼쳐진 것을 아는 지 모르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청년이 소리쳤다.
[위험해!]
청년의 검은 앞서가던 그림자의 등을 찔렀다.
순간,
깡!
불똥이 튀면서 검은 뒤로 튕겨나고, 검은 그림자는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가버렸다.
청년은 되돌아온 검을 받아쥐면서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틀림없는 독봉 임단심이었는데……그녀의 무공이 어검술조차 가볍게 물리칠 정도였단 말인가?]
그는 검을 놓았다.
그러자 검은 살아있는 짐승처럼 그의 등뒤에 있는 검집으로 찾아들어가는 것이었다.
[항산파(恒山派)에 가보면 알겠지. 이 길은 항산파로 가는 길이니까……]
그 청년은 그림자가 사라져간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청년의 속도도 엄청난 것이었다.
***
항산파의 중지(重地) 삼불대(三不臺),
이곳은 항산파 사람에게나 다른파의 무림인에게나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
그 첫번째는 두 번 말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어느 누구든 할 말이 있으면 한번 하면 되고,
다시 그 말을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번째는 거역하지 않는다인데,
삼불대를 지키고 있는 사람의 말을 삼불대 내에서는 절대 거역할 수 없다.
마지막 세번째는 <살아서는 나가지 못한다!> 이다.
즉,
삼불대에 한번 오른 사람은 죽기 전에는 결코 삼불대를 내려갈 수가 없다.
참으로 해괴한 곳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삼불대에서 세 가지를 어긴 사람은 아무도 살아있지 않다.
그도 그럴것이,
이를 어기는 자는 항상 시체가 되고 만다.
누가 그렇게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삼불대를 지키고 있는 항산파의 사람조차도 그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어떤 고수든 간에 삼불대에 올라 세가지 중 하나라도 거스러게 되면 반드시 시체로 변해버리고 만다.
마치 귀신의 장난처럼,
아무리 방비해도 흔적조차 남지않는다.
이때문에 사람들은 삼불대를 두려워마지 않는다.
하면,
이곳 항산파의 삼불대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무림명문의 하나인 항산파의 모든 신공절기(神功絶技)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누구든지 삼불대에 올라 신공절기들을 구경하는 것은 아무도 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공절기를 훔치거나 외워서 삼불대를 내려갈 수는 없다.
삼불대에 오른 자는 죽을 때까지 삼불대를 관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삼불대의 이러한 전통으로 말미암아,
항산파의 무공은 날로 쇠미해지고 있는데,
삼불대에는 모든 진산절학이 남아있지만 항산파 내에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림인들은 대부분 이 항산파의 삼불대를 수수께끼처럼 만들고 있는 존재가 어떤 절세무비한 고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도 본 적이 없고, 스스로 이름을 드러낸 적도 없는 이 유령같은 존재를 가리켜 항산파의 사람들은 삼불혼(三不魂)이라고 부르는데,
이 존재를 신적으로 숭배하고 있는 항산파는 무림의 거센 풍랑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삼불혼이 자신들 항산파를 지켜줄 것임을 굳게 믿고있는 때문이다.
임단심은 삼불대 앞에서 몸을 멈추었다.
순간,
그녀의 앞에 어떤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나타났다.
용두괴장을 짚은 호호백발의 노파였다.
한데,
이 노파의 눈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노안은 흰자위가 대부분이고,
동자는 그야말로 파리눈 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와같은 눈으로도 사물을 볼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허연 흰자위의 눈은 섬뜩한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노파는 아무말않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임단심은 노파를 아는 듯 했다.
노파는 발걸음을 땅에 대지도 않고 움직여 삼불대를 돌아갔다.
임단심의 몸도 그곳에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검을 맨 청년의 모습이 그곳에 나타났다.
청년의 표정이 딱딱하게 변했다.
그곳이 삼불대 앞임을 안 것이다.
[틀림없이 이리로 왔는데……설마 삼불대로 올라갔단 말인가?]
청년의 표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좋다, 내친김에 삼불대에 올라 삼불혼의 신비를 벗겨보자.]
청년은 주먹을 불끈 쥐고 삼불대위로 몸을 날렸다.
수직으로 상승한 청년은 몸은 바람개비처럼 돌면서 삼불대위에 내려섰다.
커다란 바위인 삼불대 위에는 높지 않은 삼층 석탑이 서있다.
하지만 작지도 않은 석탑이다.
삼불대 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고개를 갸웃했다.
삼불대 위엔 항상 몇 명의 사람이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던 때문이다.
그는 소리쳤다.
[아무도 없소?]
삼불대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귀를 활짝열고 주변의 동정을 살폈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뚜벅뚜벅!
청년은 석탑을 향해 걸어가며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했다.
석탑 일층의 문앞에 이르러 그는 다시 소리쳤다.
[아……]
바로 그 순간,
그의 말을 끊으면서 빠른 음성이 들렸다.
[삼불대의 삼불을 잊지 말게.]
청년은 흠칫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무도 없느냐고 소리쳐 물으려 했던 것이다.
청년이 빙글 몸을 돌리니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한 중년 부인이 서있었다.
청년은 오만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소생은 신검보의 소보주인 전무옥(全武玉)이라하오. 부인께선 누구시오?]
청년은 바로 전무옥이었다.
한데,
신검보에서 독에 중독되어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그가 어떻게 멀쩡한 모습으로 이곳에 왔단 말인가?
중년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천산일검자(天山一劍子) 사공도(史工倒)의 제자였군. 어쩐지 무공이 상당하다 싶었어.]
전무옥은 경악하며 물었다.
[부인께서는 누구십니까?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제 사문을 아십니까?]
그의 말투는 완전히 바뀌고, 오만한 기색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스승인 천산일검자 사공도,
이 이름을 아는 중원인은 열손가락에 곱히지도 않는다.
한데,
그 천산일검자를 알뿐만 아니라 전무옥의 스승이라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는 부인이 나타난 것이다.
천산일검자 사공도, 이 사람은 천산에서 검에 미쳐 산 사람이다.
그는 음식을 먹지도 않았으며 오직 천산의 한기(寒氣)를 전신으로 빨아들여 검술을 신의 경지에 이르도록 연마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검에서 뻗치는 한기는 어떤 호신강기로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천산일대에서 그의 존재는 하나의 전설과 마찬가지다.
중년부인이 물었다.
[한데 사공도의 제자가 뭣 때문에 삼불대에 올랐단 말인가? 삼불대의 규칙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전무옥은 중년부인이 자신의 사부인 사공도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자 벌컥 화가 솟았다.
[부인, 부인께서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지만 말을 삼가하시오. 소생의 사부께서는 이미 이백 세에 가까웠는데 그렇게 함부로 부르신단 말이오?]
중년부인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당돌하군, 천산일검자도 나를 보면 허리를 굽혀 절할 텐데……]
부인은 소매에서 한송이의 금으로 된 모란(牡丹)을 꺼내들었다.
전무옥의 안색이 확 변해버렸다.
[부……부인께선……혹시 금화선녀(金花仙女)……]
중년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분한 이름이지만 바로 날세.]
자신의 짐작이 확인되자 전무옥은 벼락같이 몸을 뽑았다.
그러나……
[자네는 여기서 떠날 수 없네.]
중년부인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순간,
그의 몸은 강인한 흡인력에 끌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금화선녀의 허공섭물에 걸린 것이다.
(가공……어떻게 이런……)
금화선녀……
그녀는 무림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들 중의 하나이다.
그녀의 손에 들린 금화는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암기(暗器),
한닢이면 기필코 목숨을 뺏고 만다.
칠십두개의 꽃잎이 모두 이기어검(以氣馭劍)의 수법으로 날아간다.
어떤 호신강기도 종이장처럼 찢고 파고들어간다는 금화……
금화로 대표되는 그녀의 나이는 이미 이백세가 넘었다.
하지만 주안술(朱顔術)을 익힌 때문에 여전히 삼십대 미부로 보일 뿐이다.
금화선녀나 천산일검자, 그리고 괴노(怪老) 육천태(陸天泰) 등 이런 인물들은 이미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들인 것인데……
전무옥은 자신의 현기혈에 닿아있는 한잎의 꽃을 보면서 저항을 완전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금화선녀가 자신의 사부인 천산일검자의 체면을 봐서 죽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금화선녀는 그를 납작 채들고는 석탑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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