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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이상한 陰謀 (1)

 

 

 

안휘성(安徽省) 안경(安慶),

양자강이 지나는 길목에 있는 이곳은 상품교역이 번화한 곳이다.

게다가 곳곳에 작은 호수들이 있어서 유람객도 수월찮다.

또한,

색향(色鄕)인 항주(杭州)만은 못하겠지만,

분바르고 꽃단장한 기녀들이 꿀냄새를 풍기며 사내들을 유혹하는 기루들도 적지않다.

이곳 안경에는 그런 기루들이 삼십 여개 있는데,

그 중에서도 크고 화려하며 기녀들이 많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홍화루(紅花樓)를 꼽을 수 있다.

기녀(妓女)의 수만도 일백 오십을 헤아리고,

그 내부의 화려함은 안경의 번영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곳 홍화루의 오층,

파사(페르샤)산의 화려한 포단이 깔려있는 정실의 중간에는 엷은 비단휘장이 천정에서 부터 가로놓여 있다.

그리고,

은은한 비단휘장의 뒤에서 어른거리는 여인의 형상,

휘장의 밖에는 두 사람의 노인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있는데……

[호호호호……]

휘장 뒤에 앉아있던 여인이 갑자기 낭낭한 교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엔 기쁨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두 분은 정말 수고했어요. 아래층에서 마음껏 즐기도록 하셔요.]

엎드려 있던 두 노인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아마도 무슨 즐거운 상상을 하는 모양이다.

[난향아!]

휘장뒤의 여인이 구슬이 부딪히는 것같은 음성으로 시녀를 불렀다.

시녀가 대답하며 휘장앞으로 나왔다.

[이 두분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가도록 해라. 원하는 아이는 누구든지 시중들게 하고……술과 음식 모두 최고급으로 접대하도록 해라.]

여인의 음성을 따라 난향이란 시녀가 앞장서서 내려가자,

두 노인은 그녀의 실룩이는 엉덩이를 침을 삼키며 바라보면서 따라갔다.

그들이 모두 나가고 나자 휘장뒤에 있던 여인은 천정에 매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순간,

휙휙!

묘령의 두 소녀가 그녀앞에 날아들어오며 부복했다.

[부르셨습니까?]

[황군성의 종적이 발견되었다. 첫번째 계획대로 실시한다. 즉시 움직여라. 그는 태평루(太平樓)에 있다.]

[존명!]

그녀들은 천장에 난 구멍으로 날아서 사라져 버렸다.

[호호호호……]

휘장안의 그녀는 무엇이 그리도 유쾌한지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내 공이 크면 아무도 내 자리를 넘보지 못하겠지? 비록 그 계집애라 해도……깔깔깔……]

 

× × ×

 

태평루,

이곳은 기루가 아니다.

평범한 주루(酒樓)일 뿐이다.

황군성은 수하들을 모두 신도보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태평루로 들어섰다.

그의 철갑옷은 원래는 검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갈수록 붉게 변하고 있었다.

지금은 완전한 붉은 색이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은연중에 위압감(威壓感)을 주고 있다.

그가 주루로 들어서자 뭇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황군성같은 칠척 거한도 흔치 않은 데다 그 차림새마저도 괴상했기 때문이다.

황군성은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에도 이미 자리는 거의 다 차있었다.

그가 앉을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 그때,

창가에 앉아있던 세 사람이 음식을 다 먹고 일어섰다.

자리가 비는 것을 본 황군성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점소이가 재빨리 식탁을 깨끗이 치웠고,

황군성은 술과 고기를 주문했다.

쿵쾅쿵쾅!

누군가 계단을 밟고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을 풀어헤친 한 장한이 한쪽 구석에 있는 탁자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노대(老大)! 노대!]

그 탁자에는 두 사람이 장한이 역시 털북숭이 가슴을 드러내 놓은 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중에서 팔뚝이 마치 기둥같이 굵은 인물이 소리쳤다.

[이봐 노이(老二)! 좀 조용히 할 수 없나? 밤낮으로 호들갑인가?]

다른 자리에서 장강삼웅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들은 자칭 장강삼웅(長江三雄)이라고 하는 인물들로서 이 일대에서 협객을 자처하고 있었다.

첫째는 철포삼의 외공을 익힌 자로 이름을 일장번장강(一掌飜長江) 윤걸(允傑)이라는 인물이고,

둘째는 분수자(分水刺)를 잘 쓰며 수공(水功)에 능한 자로 이름을 철교룡(鐵蛟龍) 방충(方沖)이라고 하였다.

세째는 칠절편(七節鞭)을 쓰는데 이름이 칠절편 진삼당(晉三堂)이라고 하였다.

뛰어 올라온 사람은 그중 둘째인 철교룡 방충인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말이 좀 빠른 자였다.

그는 세째인 칠절편 진삼당 옆에 털썩 앉으면서 말했다.

[내가 조금 전에 이혼귀(離魂鬼)를 만났는데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지 않겠소.]

일장번장강 윤걸이 물었다.

[놀라운 소식이라니?]

[글쎄, 얼마 전에 파양호에서 검신과 도신의 대결이 있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 아니요?]

[그렇지!]

[한데, 그 싸움에서 검신과 싸운 상대가 도신이 아니고 도신의 아들이었다고 합디다.]

철교룡 방충은 자신만이 아는 비밀을 이미 비밀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 전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입에 거품을 물고 말했다.

[도신의 아들은 이름을 황군성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은 전에도 검신과 싸워 검신의 팔을 잘랐다고……이번에도 검신을 계속 몰아세우다가 기습을 당해 어깨에 이검을 맞았다고……]

횡설수설하는 방충의 말이었지만 주루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도 작년에 검신이 이름도 없는 무명의 청년에게 팔이 잘려 병신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한데,

검신의 손에 죽었다는 그 청년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도신의 아들이라니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탕!

방충이 술을 한잔 들이킨 뒤, 식탁을 치면서 말했다.

[그 정도로 입이 벌어지지 마시오. 이제 무림에서 이보(二堡)가 사라졌다고 합디다.]

[아니……이보가 사라지다니……?]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방충은 의기양양한 듯이 말했다.

[이보가 연합해서 새로이 이신보(二神堡)가 되었으니 이보가 사라진 게 아니고 무엇이겠소? 이보가 합해졌으니 앞으로 무림에서 최강세력이 되고도 남을 것이오. 천하는 이미 이 소문으로 들끓고 있소.]

방충은 주위를 훑어보고 마치 시처럼 한마디를 읊었다.

 

󰠏󰠏󰠏󰠏󰠏이신이 모였고 혈룡도왕(血龍刀王)이 우뚝 섰으니 누가 이신보를 대적하랴?

 

일장번장강 윤걸이 물었다.

[혈룡도왕은 누군가?]

[거 말했잖소. 검신과 싸웠던 도신의 아들, 칠척의 우람한 키에 붉은 빛이 도는 비늘옷을 입었다고……]

방충은 자신이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대체로 말만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현상이었다.

그들에게 그들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들려주면 대개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백번 천번도 더했던 말을 또 한다고 벌컥 화를 낼 것이다.

어쨌거나,

방충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루에 있던 사람들의 눈은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황군성이었다.

그는 이미 도신 범강으로 부터 전수받았던 목계(木鷄), 나무 닭이 되는 법을 깊이 체득하고 있었기에 방충의 말에도 아무런 표정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주루에 있는 인물들은 황군성이 바로 혈룡도왕이라고 불리는 인물임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샛별같이 나타난 이 젊은 청년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지만,

황군성의 몸에서 풍기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에 행동만 조심스러워지고 입도 떼보지 못했다.

바로 그때,

펑!

황군성의 옆에 있는 창문이 깨어지면서 한 자루의 비수가 날아들었다.

누군가 장력으로 창문을 깨고 비수를 던진 것이다.

[앗! 위험하다.]

누군가 다급성을 질렀다.

쉭!

비수는 곧장 황군성의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순간,

황군성의 고기를 집던 젓가락이 움직이며 비수의 끝을 눌렀다.

팍!

비수의 방향이 꺾이며 탁자에 깊이 박혔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인 절묘한 수법이었다.

주루에 있던 무림인들은 입을 딱 벌렸다.

탁자에 꽂힌 비수의 뒤에는 작은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황군성은 술잔을 마저 비우고, 입가를 쓱 닦은 후에 종이를 펼쳤다.

 

<저는 사신(死神)의 손에 잡혀있어요. 사신각(死神閣)으로 와서 저를 구해주세요.

단심(丹心)>

 

삐뚤삐뚤하게 쓰여진 글씨는 서찰을 적을 때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황군성은 와락 서찰을 움켜쥐었다.

그의 몸에서 폭풍같은 기도가 일어났다.

[사신(死神)……네가 먼저 나를 건드리는구나. 용서하지 않겠다.]

황군성은 깨어진 창문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몸은 허공을 밟고 천천히 대로로 내려서고 있었다.

[허공답보! 전설적인 경공이다.]

그의 뒤에서 누군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태평로 지붕에는 두 여인이 황군성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몸을 날려 어디론지 사라져 갔다.

 

황군성은 안경의 동문 밖에 있는 부운교(浮雲橋)로 갔다.

부운교,

나무로 된 이 교각(橋脚)은 이름은 그럴싸 하지만 결코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 못되었다.

안경에서 나오는 온갖 하수와 썩은 물들이 장강으로 빠져 나가는 곳이 바로 이곳 부운교 다리밑인 것이다.

이 때문에 부운교에는 대낮에도 다니는 사람이 좀체 없다.

황군성은 황혼을 뒤로하고 부운교로 갔다.

퀴케한 냄새와 해괴한 악취들이 그의 코를 찔렀다.

황군성은 주위를 둘러본 후에 삐꺽거리는 부운교의 가운데로 갔다.

그리고,

품에서 단검을 꺼내어 부운교 바닥에 박았다.

팍!

단검은 자루만 남고 완전히 박혀버렸다.

그는 다리를 지나 맞은 편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 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꼬리부터 잘라서 들어간다……)

황군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윽고,

어둠이 짙어지는가 했더니 환하게 달이 밝아왔다.

달빛은 쓰레기로 가득 찬 부운교 밑의 개천도 밝게 비추었다.

반짝반짝!

부운교 아래에서 무엇인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황군성이 꽂아놓은 단검의 날이 달빛에 빛나는 것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추앙!

갑자기 오물로 가득찬 개천에서 검은 그림자가 뛰어올라 부운교를 넘어갔다.

첨벙!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사라져 버렸다.

한데,

부운교 아래로 삐어져 나와 달빛에 반짝이던 단검은 그 찰라의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이것을 지켜보던 황군성의 두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사신……너의 죽음이 시작되었다.)

황군성은 귀신처럼 개천을 따라 가기 시작했다.

 

개천은 안경의 성밖으로 흘러 양자강으로 들어간다.

양자강과 개천이 만나는 지점,

푸우!

갑자기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물속에서부터 강가로 걸어나오며 긴 호흡을 내쉬었다.

기이하게도 그 물고기는 손과 발이 있었다.

훌렁 가죽을 벗어버리는 데 삼십대의 강팍한 인상의 장한으로 변해버렸다.

그의 손에는 황군성이 부운교에 꽂았던 단검이 달빛에 번뜩이고 있었다.

멀리서 황군성이 오연하게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장한은 물고기 가죽을 장강의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다음 큰 바위 밑에 감추었다.

그리고,

총총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황군성은 여전히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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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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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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