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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장 

 

            이상한 음모 (2)

 

 

 

안경 교외에 있는 작은 마을들을 굽어보고 있는 포독산(蒲獨山),

큰 나무들이란 찾아볼 수없고 오직 창포(菖蒲)만 가득한 산이다.

마을 사람들은 장강의 물줄기 중에서 지하 수맥이 포독산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창포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동산이라고 할만한 작은 포독산에는 약수터만 해도 십여개가 넘는다.

수백년 된 창포뿌리를 거친 약수는 보약이라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물을 갖다먹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을에는 장수(長壽)하는 노인들이 상당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포독산에 산신각과 관제묘를 새워 산과 마을을 보호해 주기를 비는데,

그 규모가 사뭇 장엄한 데가 있다.

관제묘는 그 크기가 무창 관림(關林)에 있는 관졔묘에 비해 그다지 작지 않고,

세세한 정성은 오히려 이곳의 관제묘가 더 많이 들어갔을 성싶다.

달빛은 이곳 포독산 관제묘도 유감없이 밝게 비춰주는데,

쉬이익!

한줄기 검은 그림자가 관제묘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십이호(十二號)! 늦었구나.]

관제묘 속에서 돌연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나무를 깎아만든 관우의 상(像)앞에 복면을 한 흑의인이 서있었다.

흑의인은 날카로운 눈은 냉혹하게 번뜩이고,

흑의인의 전신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칙칙한 죽음이 느껴지고 있었다.

[십일호! 일이 들어왔습니다.]

십이호라고 불린 자도 복면을 하고서 말했다.

십일호는 눈을 반짝 빛내더니 뒤로 돌아서서 관우의 목을 비틀었다.

그리고 훌쩍 몸을 날려 관우의 등뒤로 떨어져 내렸다.

십일호라고 불린 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십이호도 정상으로 돌아온 관우의 목을 비튼 후 똑같은 방법으로 사라졌다.

관우의 상 뒤에는 목이 비틀릴 때마다 장독같은 구멍이 드러나는 기관장치가 되어있는 것이었다.

그그긍!

석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섰다.

기다란 석탁을 사이에 두고 열명의 인물이 둘러앉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십이호는 들어서자마자 포권을 한 뒤에 단검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분타주! 청부(請負)가 들어왔습니다.]

상좌(上座)에 앉은 복면인이 물었다.

[위치는?]

[제일 중앙입니다.]

복면인들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분타주가 말했다.

[으음! 삼만냥짜리로군. 우리 구역에서도 이런 큰 청부가 들어오다니……]

그는 침을 삼키고 물었다.

[대상은 누구냐?]

십이호가 손바닥에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쳐보였다.

펼쳐진 종이에 피로 적혀있는 붉은 글씨,

 

황군성󰠏󰠏󰠏󰠏󰠏󰠏!

 

바로 황군성이었다.

분타주란 복면인의 입에서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혈!룡!도!왕!]

석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들은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강호의 정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그자는 오늘 낮에 이미 안경에 들어왔다. 십이호는 청부인으로 부터 대금을 수령하라. 아마 본각에서도 초일류의 고수가 와야 할 것이다.]

그그긍!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분타주의 몸은 의자와 함께 석실 밑으로 사라져갔다.

 

잠시 후 의자만이 올라와 아무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번쩍!

한줄기 섬전이 석실의 문을 갈랐다.

화기에 콩이 튀듯이 벽면으로 흩어지며 천정과 벽에 바짝 붙는 흑의인들,

그러나,

소리도 없이 석문을 베고 들어온 붉은 그림자가 석실에 어른 거리는 순간,

번쩍!

번쩍!

툭! 투둑!

석실 바닥에는 열한 개의 수급이 구르고 있었다.

실로 귀신도 놀랄 정도의 빠름이었고, 하늘도 놀랄 정도의 무시무시한 도법이었다.

스슷!

황군성의 몸은 분타주가 앉았던 의자위에 내려섰다.

위잉! 파파팟!

그의 몸이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돌았다.

그의 몸은 빠른 속도로 바닥을 뚫고 들어가고,

주위로는 깨어진 돌조각들이 날렸다.

펑!

황군성의 몸이 밑으로 슝 빠졌다.

 

길게 이어져 있는 석동(石洞)에는 횃불이 군데군데 타고있다.

휘이익!

황군성의 몸은 마치 바람처럼 석동을 달려갔다.

하지만 횃불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신법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먼저 석동으로 들어온 분타주는 석동에 난 작은 나무 구멍으로 비둘기를 날려보내고 있었다.

[곧 본각에서 고수가 올것……]

분타주는 중얼거리며 몸을 돌리다가 화석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이마에는 굵고 긴 손가락이 닿아있었다.

분타주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혈룡도왕……음모였구……]

순간,

팍!

분타주의 이마에 작은 구멍이 뚫리며 말을 맺지 못하고 쓰려졌다.

꿍!

이마와 뒤통수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황군성은 나무 닭처럼 아무 감정도 없이 힐끗 바라본 후 비둘기가 빠져나간 작은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

슈욱!

작은 구멍으로 그의 몸은 마치 연기처럼 변하며 빠져나갔다.

기이막측한 축골공(縮骨功)이었다.

무림에서 어느 누구도 신법과 동시에 축골공을 펼쳤다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황군성은 그 상상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황군성은 죽어버린 나무 그루터기로 빠져나왔다.

달빛은 찬연하게 사위를 내리비치고,

바람은 선선하게 포독산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달빛 아래로 흐릿한 그림자를 남기며 분타주라는 인물이 날린 전서구가 언덕을 넘고 있었다.

황군성의 몸은 비조처럼 활짝 펴지며 수십장을 가로질러 비둘기를 쫓아갔다.

휘이익!

한 마리 야조(夜鳥)!

황군성은 한 마리 야조였다.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한 살인이 벌어졌던 관제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포독산 아래 마을의 건실한 장정들이 감쪽같이 실종되었다는 소문이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떠돌다가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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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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