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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장

 

                 구룡로를 얻다. (2)

 

 

 

수중 동굴 속,

야광주는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물속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들어갔을 때 동굴은 위로 향해 열려있었다.

[푸우!]

[파!]

황군성과 임단심은 다른 동굴로 빠져 나왔다.

그곳도 야명주들로 인해 환했다.

한데,

그 동굴에는 수 십 여구의 백골들이 흩어져 있었다.

키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땅위로 올라 백골들을 살폈다.

[예리한 병기에 의해 잘렸어. 이들은 모두 살해당한 거요.]

[그렇군요. 한데 이상한 일이에요. 어떻게 이른 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을까요? 은신처라면 사람이 거의 없어야 옳을 텐데……]

임단심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마도 이 동굴에 뭔가 있었거나 있겠지.]

황군성은 앞장서서 동굴의 안쪽으로 걸어갔다.

과연,

동굴의 안쪽에는 하나의 석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천음동부(天音洞府)>

 

석문에는 이 네자가 굵은 글씨로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임단심이 말했다.

[이곳은 혹시 삼장(三莊) 중 천음장(天音莊)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들어가 봅시다.]

황군성은 석문을 힘껏 밀었다.

그러나,

석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거 잘 안돼는데……]

그가 몸을 돌리고 임단심을 보며 겸면쩍게 웃었다.

바로 그때,

끼기기긱……

문이 그를 향해 활짝 열렸다.

[어?]

임단심이 웃으며 말했다.

[그 문은 당기는 것인 모양이에요.]

천음동부는 활짝 열렸고,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들어갔다.

천음동부 안은 하나의 석실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진열대(陳列臺)들이 놓여 있어 무엇인가 놓여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황군성과 임단심이 진열대를 살펴보니 깨알같은 글씨가 적혀있었다.

 

<철비파(鐵琵琶),

소주(蘇州)의 명인(名人)인 비파산인(琵琶散人)의 소유였음,

명비곡(明妃曲)을 함께 남김.>

 

하지만 진열대에 철비파는 보이지 않았다.

그 옆의 진열대로 두 사람은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멸고(地滅鼓),

고금십대천병 중의 하나 임,

하지만 진실한 보물은 바로 북채인 듯 함,

진혼곡(鎭魂曲)을 함께 남김,

 

임단심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는 아마 천하의 유명했던 악기들을 모아놓았던 곳인 모양이에요. 지멸고 마저 여기 놓여있었다니 정말 놀라워요.]

황군성과 임단심은 천음동부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하나,

그곳에는 이미 어떤 악기도 악보도 남아있지 않았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죽인 자들이 몽땅 가져가 버렸나봐요.]

[그런 것 같소. 이제 다른 동굴을 가봅시다.]

그들은 다시 물속을 헤엄쳐 첫번째 동굴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귀왕동부(鬼王洞府)>

 

이름과 내용물은 달랐으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똑같았다.

하지만,

진열대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봐서,

그곳에는 끔찍한 금단의 마공들이 진열되어 있었던 곳이었다.

사파(邪派)의 고수들 마저 그 참혹함 때문에 감히 익히지 못하는 그런 마공들이……

 

세번째 동부,

 

<화운동부(花雲洞府)>

 

이로써 황군성과 임단심은 이곳이 삼장의 발원지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희귀한 책들과 희귀한 꽃들이 있었던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무 것도 없지만……

한데 책과 꽃의 배치는 꽃들 사이에 책이 놓여져 함께 어우러진 형태였던 것 같았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그러한 것이 꼭 이전에 한번 본 것같은 느낌을 가졌다.

 

네 번째 동굴로 해서 그들은 완전히 물밖으로 나왔다.

그들이 나온 곳은 황하강 중에 있는 작은 돌섬이었는데,

그때는 하늘에 별이 총총 나있었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강변을 바라보았지만 자기들의 보금자리가 어디쯤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물속으로 해서 그 동굴로 찾아가고 싶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임단심이 황군성에게 몸을 기대면서 말했다.

[우리 이대로 유람이나 할까요?]

[음……나는 이 황하강을 따라 끝까지 한번 가봤으면 좋겠소.]

황군성의 말에 임단심이 웃었다.

[동쪽으로 가면 곧 바다가 나오겠지만, 수원지(水源地)까지 찾아 가자면 아마 십년 정도 걸릴 지도 몰라요. 황하의 수원지가 저 토노번(吐魯番) 분지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나는 세상구경이라곤 당신과 함께 본 것이 전부라오. 임매 당신은 내가 이 황하를 처음보고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 것이오.]

황군성이 말했다.

[그때는 <이것이 바다구나>하고 속으로 생각했었소.]

임단심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황하를 처음 본 사람은 다들 그런다고 해요. 당신만 그런게 아니니까 부끄러워 할 건 없어요.]

[도대체 나와 함께 서쪽으로 가겠다는 거요 안가겠다는 거요?]

부르퉁하게 말하는 황군성을 달래며 임단심이 간드러진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낭군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누구말을 듣겠어요?]

황군성은 바위 틈에 자란 풀 위에 털썩 앉았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지나가는 배를 얻어탑시다.]

그의 팔에 기대있던 임단심의 몸도 덩달에 털썩 주저앉았다.

황군성의 눈이 그녀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녀는 두 볼이 발개지며 황군성의 철갑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도 완전한 나신(裸身)이 되어 황군성의 손에 몸을 맞겠다.

그리고,

[행복해요.]

그 한마디를 끝으로 그들은 꼭 끌어 안은 채 잠이 들었다.

 

× × ×

 

이 사람을 만난 후,

나의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처음에 내가 변했고,

그 다음으로는 이 사람이 변했다.

하지만,

이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도 내마음 같으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나의 애궂은 숙스러움은 소리내어 물으려는 내 혀를 굳게 만들고,

하는 수 없이 가만히 속으로만 묻는데 이 사람은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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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一 章

 

           九龍爐를 얻다. (1)

 

 

 

[틀림없어요. 왜 색혈광마 늙은이가 이곳에서 칠십 년이 넘도록 살았는지 이해가 가요.]

임단심은 황금화로를 황군성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하지만 이게 화인지 복인지는 알 수 없어요.]

[…………?]

[생각해봐요. 색혈광마는 이 구룡로(九龍爐)를 얻고 칠십 년 동안 이곳에 숨어살다가 마침내 당신한테 머리가 부서져 죽었어요. 저는 이 물건을 갖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하지만 결정은 당신이 하셔요.]

황군성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 비밀을 풀지 못하면 오히려 마물(魔物)이로군. 부수어 버립시다. 아예 미련을 갖지 않도록……]

그는 두 손아귀에 구룡로를 넣고 온 힘을 다해서 악착시켰다.

한데,

내공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완력만으로도 돌을 으스러트릴 수 있는 황군성의 힘에도 불구하고 구룡로는 조금도 손상이 되지 않았다.

황군성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힘을 주었지만 구룡로를 깰 수는 없었다.

[휴! 임매가 해보시오.]

임단심에게 구룡로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누구 힘이 더 센지 한번 봐요.]

임단심은 가슴앞에서 두손으로 구룡로를 압착시켰다.

그리고,

전신의 내공을 끌어올려 구룡로에 압력을 가했다.

순간,

그녀의 정심한 내공에 의해 구룡로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삼백 년의 내공은 일반 무림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일성(一成)……이성(二成)……삼성(三成)……

그녀의 내공은 점점더 강하게 주입되고 있음에도 구룡로는 벌겋게 달아오른 외에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황금이라면 녹아도 녹았을 텐데 구룡로는 끄덕도 않는 것이다.

임단심은 오기가 치밀었다.

애물단지가 될까봐서 미리 부수어버릴 려니까 부수어지지도 않는다.

색혈광마를 상대해본 후 자신의 무공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누구부서지나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공력을 끓어올렸다.

마침내 그녀의 몸이 바르르 떨리면서 십이성의 공력이 구룡로에 주입되었다.

순간,

번쩍!

화르르……

구룡로에서 누런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악!]

불길은 임단심의 얼굴과 상체를 감싸버렸다.

[안돼!]

황군성이 소리치며 발길질로 그녀의 가슴에 있는 구룡로를 걷어찼다.

퍽!

[윽!]

하지만,

황군성은 오히려 강한 반진력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임매!]

그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뒤덮혀있었다.

한편,

임단심은 머리카락이 홀랑 타버린 채 눈을 감고 구룡로를 머리위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누런 불길이 그녀의 상체를 뒤집어 씌웠으나 철갑대망의 철갑으로 만든 옷 때문에 다른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극히 짧은 순간이었음에도 그녀의 얼굴을 비롯한 노출된 피부는 심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한편,

구룡로에서 나온 불길은 가닥가닥 나누어지며 아홉마리의 용으로 변해버렸다.

[던져버려!]

황군성은 다시 그녀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손이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다시 강한 반탄력이 튕겨지고 말았다.

그가 망연자실하는 바로 그때,

구룡로에세 나온 아홉마리의 용은 연기가 사그라지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임단심의 몸이 풀썩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꽃같이 아름답던 얼굴은 두터운 수포(水疱)들로 흉하게 뒤덮혀 있었다.

텅! 텅! 텅!

구룡로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통통거렸다.

황군성은 임단심의 몸을 안으며 중얼거렸다.

[마물……정말 마물이었구나……]

구룡로에서 불꽃이 피어오른 후 이 순간까지,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졌었다.

황군성은 지금처럼 자신이 내공이 억제된 것인 한탄스러운 적은 없었다.

만약 그렇지만 않았어도,

황군성의 빙백강기는 얼마든지 불꽃으로 부터 임단심을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임매, 임매, 정신이 드시오?]

[으으음……]

임단심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구룡……]

황군성은 재빨리 그녀의 말을 막았다.

[말하지 마시오. 아무 걱정말고……소음곡으로 돌아가면 이 정도의 화상은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을 거요.]

임단심의 입은 열래야 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얼굴에 가득 덮힌 수포로 인해 피부가 팽팽히 당겨진 때문이다.

황군성의 참혹한 그녀의 얼굴을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에 구르고 있는 구룡로가 들어왔다.

한데,

황금색 구룡로에 방금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백색의 무늬가 수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황군성은 한손으로 구룡로를 잡아들었다.

황금색에 바탕에 드러난 백색의 무늬들……

그것은 바로 구룡로의 비밀이었다.

 

<이 구룡로는 본 신수금장(神手金匠) 탁이평(卓耳平)이 초장왕(楚莊王)의 명을 받들어 만들었다.

삼만 근의 황금(黃金)을 정제하여 한근 반의 곤오금(昆奧金)을 얻은 것을 재질로 하여,

이천 년 된 구엽자지초(九葉紫之草)를 비롯한 열 두가지의 천고기진(千古奇珍)을 섞어 만든 것이다.

그 효능으로 말하자면 속에든 만 가지 질병을 다스릴 수 있고, 겉으로 드러난 모든 외상을 치료할 수 있으니,

본 신수금장이 단언하건데 이보다 더한 보물은 단연코 없다.

더우기,

초장왕의 친구이자 천하의 기사(奇士)였던 곽해(郭奚)선생이 고금의 무공을 두루 섭렵한 후에 창시한 치구룡술(治九龍術)을 이 구룡로에 기록하였다.

이 모든 것이 초장왕께서 천하를 제패하여 영원한 초(楚)의 터전을 닦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하늘이 정하는 것,

초장왕께서 갑자기 붕어(崩御)하시니 모든 것은 끝이 났도다.

이에 본 신수금장은 세상에 구룡로를 내놓기가 두려워 졌으니,

비밀은 구룡로 속에 묻어 인연이 있는 자만 알게 하리라……>

 

글자는 계속되고 있었고,

먼저 구룡로의 용법부터 나와있었다.

구룡로는 신수금장 탁이평이 장담한 대로 모든 병을 다스릴 수 있는 영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치구룡술이라는 어떤 무공과도 연관성을 갖지 못한 기이막측한 무공이 기록되어 있었다.

황군성은 쭉 훑어보고 나서 뛸듯이 기뻤다.

[임매! 임매! 나의 임매! 아무 걱정 마시오. 내가 금방 낫게 해주겠소.]

그는 미약한 신음소리를 내고있는 임단심을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며 말했다.

황군성은 임단심을 일자로 눕힌 후 구룡로를 그녀의 얼굴에 갖다대고 살살 문질렀다.

놀랍게도,

구룡로가 지나간 그녀의 얼굴에는 물집이 사르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전체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세수하는 시간 만큼도 걸리지 않았다.

임단심도 그러한 변화에 놀라워했고,

황군성은 그녀의 손에 구룡로를 꼭 쥐어주었다.

구룡로에서는 어느 새 흰글씨들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임매, 당신이 고금십대천병 중의 하나인 구룡로의 비밀을 푼 것이오.]

 

× × ×

 

그그긍!

석실의 문이 열렸다.

[이곳이 그 늙은이가 살았던 곳이군.]

황군성은 고개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곳도 하나의 석실이었다.

그러나,

석실의 반은 파란 물이 들어차 있고,

그 한쪽에 돌로만든 침상과 여러개의 기물들이 놓여있었다.

파란 물 속에는 은빛 물고기들이 돌아다닌다.

[한데, 색혈광마는 어디로 통해서 이곳으로 들어온 걸까요?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가 들어온 동굴 외엔 통로가 보이지 않는데……]

임단심이 의문을 제기했다.

황군성은 손가락으로 은빛 물고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물고기들은 어디로 들어왔겠소?]

[그럼……물속으로 통로가?]

황군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친 김에 이곳이 어디로 통하는지 한번 들어가 봅시다.]

그는 임단심의 손을 잡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과연,

석실에 있는 그 작은 연못같은 곳은 상당히 깊었다.

그러나,

황군성은 어릴 때부터 소음곡 입구에 있는 큰 연못에서 수영을 즐기며 자란 사람이다.

그는 마치 물고기처럼 헤엄치며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어느 정도 들어가자,

물속에서 네 개의 동굴이 보였다.

인공의 흔적이 뚜렷한 것이,

동굴의 입구에는 각기 빛을 발하는 야명주(夜明主)들이 박혀있었다.

임단심이 좌측에서 두번 째 있는 야명주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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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장 

 

                 진짜 이름은 2

 

 

 

일은 이렇게 된 것이다.

임단심은 황군성이 동굴에서 나가자 마자 옥인수의 운기방법을 몇 번 연습했다.

그리고 진기의 흐름이 엉키지 않을 자신이 생기자 동굴의 안쪽 벽을 향해 옥인표향 일초를 펼쳐보았다.

삼성 정도의 진력을 담은 일초였는데,

옥인표향은 그녀의 손에서 일어나자 마자 벽에 다다랐다.

이것은 그녀도 생각지 못한 빠름이었다.

펑!

옥인표향에 격중된 벽이 진동하면서 동굴 전체가 무너져 내릴 듯했다.

[어맛!]

그녀의 머리 위로로 큰 바위가 떨어지고 있었다.

쿠릉!

그때 동굴의 입구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 옥인표향에 격중된 벽이 뒤로 무너지면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생각해볼 것도 없이 그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가 들어가자 마자 뒷쪽에서 그곳의 입구가 붕괴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단심은 넓은 석실의 천정을 통해 빠져 나왔다.

순간,

[크크크……네 년은 누구냐?]

석실 중앙에 기괴한 몰골의 늙은이가 앉아 흉악한 눈빛을 흘리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

임단심은 그 눈빛에서 섬뜩한 전율같은 것을 느꼈다.

[흐흐흐……칠십 년이 넘도록 사람구경이라고는 못했는데……흐흐……]

[당신은 누구세요?]

임단심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노인이 썸찟한 웃음을 흘리며 반문했다.

[나? 흐흐……무림인들은 나를 색혈광마라고 부르더군……]

임단심은 기절할 듯이 놀랐다.

[색……혈……광마?]

그녀 역시 색혈광마의 살겁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전신에 소름이 오싹끼쳤다.

[크하하하……그동안 계집의 피로는 실험해보지 않았는데 오늘 네년 덕분에 다른 방법을 사용해볼 수 있겠구나.]

색혈광마의 눈이 광기(狂氣)로 번뜩거렸다.

임단심은 두려움이 왈칵 치밀었다.

상대는 희대의 살인마 색혈광마 음자추인데,

그녀의 퇴로는 막혀있다.

이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인데,

그녀는 색혈광마 앞에서 자신감을 가질정도로 무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정도로 총명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두려운 기색을 숨기면서 차갑게 말했다.

[색혈광마! 지금은 당신은 기고만장하지만 내가 누군지 알고나면 결코 그렇진 않을걸?]

색혈광마의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쳤다.

[네년이 무슨 신분 대단한 신분이라고 감히 노부앞에서 까부느냐?]

[흥! 색혈광마, 네가 평생 죽인 사람이 이천 명이 넘는다고?]

[그렇다! 정확하게 이천이백구 명이다.]

색혈광마는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임단심은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시시한 놈들이야 이천 명 아니라 이만 명을 죽인듯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래서 천하제일이 될 수 있다면 강아지도 사람 물려고 달려들 것이다.]

색혈광마가 분기탱천하여 소리쳤다.

[네년이 감히……]

그의 손에서 한줄기 장력이 뿜어져 나와 임단심을 향해몰려갔다.

그가 자랑하는 수법인 탈혼장(奪魂掌)이었다.

임단심은 바짝 긴장하며 칠현천기보를 밟았다.

순간,

그녀는 번개처럼 빠르게 색혈광마의 등뒤로 돌아갔다.

그녀도 자신이 그처럼 빠르다는 사실에 놀랐고,

색혈광마도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임단심의 무공에 경악하며 뒤로 돌았다.

임단심은 우뚝 멈추어서며,

그제서야 자신이 철갑대망의 내단을 복용한 이후 칠현천기보를 처음 펼쳤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자신의 내공이 삼백년 수위로 늘어난 만큼,

칠현천기보의 빠름도 이전의 그것일 수는 없는 것이 당연했다.

칠현천기보는 그녀에게 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눈앞에 있는 색혈광마가 순식간에 늙어빠진 영감쟁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여자인 것이다.

이것도 마음을 휘까닥 바꾼 것에 속한다면 말이다.

 

색혈광마는 첫 공격에 실패를 하기는 했지만 전력을 다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다시금 탈혼장의 수법을 펼쳤다.

하나,

임단심은 옥인수의 제 일초인 옥인표향을 펼쳐 그에 맞섰다.

분명히 탈혼장이 먼저였다.

그리고 옥인표향은 뒤늦게 펼쳐졌었다.

그러나,

옥인표향은 그녀의 손에서 발출되자 마자 탈혼장을 깨뜨리며 색혈광마를 물러서게 했다.

색혈광마가 비명을 질렀다.

[헉! 청마수(靑魔手)! 네년은 서한객(西恨客)과 어떤 관계냐?]

임단심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토록 기고만장하던 늙은이가 자신의 단 한수에 물러서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미친 늙은이, 이건 옥인수라는 거야. 괜히 아는 척 하지 말라구.]

[그럴리가……틀림없이 청마수였는데……]

임단심이 손을 뿌리면서 말했다.

[이것도 청마수라고 하겠구나.]

그녀의 손에서 옥인포슬이 펼쳐졌다.

색혈광마는 혼신의 힘을 다해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그는 벽에 있는 횃불들을 향해 장력을 날렸다.

펑!펑!

순간,

석실안은 완전한 어둠으로 잠겨버렸다.

색혈광마는 이 석실에서 칠십년이 넘도록 살았다.

그에게는 불이 있으나 없으나 별 상관이 없을 정도로 익숙한 곳이다.

그러나,

임단심으로서는 당황스러웠다.

그녀의 시력으로 희미하게 볼 수는 있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을 포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녀는 사방의 석벽을 향해 닥치는 대로 옥인수를 펼쳤다.

펑!펑!펑!

하나,

색혈광마를 격중시킬 수는 없었다.

색혈광마는 호흡마저 감추고 어둠속에서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계집이 청마수를 사용하다니……청마수는 천하제일의 수공……직접 맞서면 죽음 뿐이다.)

색혈광마는 임단심의 옥인수를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천정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 어떤 물건이 떨어졌다.

그가 황급히 피하려고 하는데 임단심의 공격이 펼쳐졌다.

[옥인봉군!]

임단심은 색혈광마가 천정에 숨었다고 생각하고 소리나는 곳으로 옥인수를 펼친 것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들려온 소리.

[임매! 나요. 손을 멈추시오.]

그녀는 황급히 두손으로 펼쳤던 옥인봉군의 방향을 바꿔 양쪽으로 바닥을 갈겼다.

이 바람에 허공에서 떨어지는 황군성을 피하려던 색혈광마의 퇴로가 막혀 그는 꼼짝없이 황군성에게 박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골이 깨어지고 그대로 황군성의 깔개가 된 채 죽어버렸다.

희세의 마두치고는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었다.

 

대충 이야기를 마친 임단심이 황군성을 쏘아보며 물었다.

[솔찍히 말해봐요. 옥인수가 바로 청마수죠? 색혈광마가 먼저 말했어요.]

황군성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름이 뭐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소. 당신이 옥인봉군을 펼치는 순간에 내가 나타났으니 그야말로 묘한 것이지.]

임단심이 열이 뻗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청마수로군요. 세상에…… 벌써부터 저를 속일 참이에요?]

[임매가 좋아하지 않았소. 아주 아름다운 수공이라고……]

황군성은 자신의 거짓말이 금방 들통이 나버리자 쩔쩔매며 변명했다.

임단심이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좋아요. 그럼 그 수법들의 원래 이름은 뭐예요? 뭐라하지 않을테니 말해봐요.]

황군성은 머뭇거리며 답하지 않았다.

임단심이 다시 물었다.

[옥인표향의 원래 이름은 뭐예요?]

황군성은 마지못해 답했다.

[청마도살(靑魔屠殺)……]

임단심은 귓구멍으로 연기가 나는 것같았다.

[좋아요. 옥인포슬은 뭐죠?]

[청마쇄압(靑魔碎壓)……]

임단심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옥인봉군은?]

황군성은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청마식시(靑魔食屍)……]

[우웩!]

임단심은 아침에 먹었던 것을 다 올려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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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진짜 이름은? 1

 

 

 

황군성과 임단심이 철갑대망의 동굴에서 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그들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동굴 안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침상이 만들어졌고,

의자와 탁자도 만들어져 놓였다.

황군성은 임단심의 솜씨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 그가 만든 침상은 그날 밤 와지끈 부서져 버렸다.

지금의 침상은 임단심이 꼼꼼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의자와 탁자도 그가 만든 것은 도무지 모양이 나지 않는다면서 임단심이 새로 만들었다.

식량은 충분했다.

두마리의 얼린 철갑대망의 고기는 두 사람이 몇 달을 먹고도 남을 만큼있다.

하지만,

황군성과 임단심의 걱정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황군성이 철갑대망의 내단을 복용한 후로 자신의 체내에 있는 내공을 일으킬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혈왕신공도 일어나지 않고 빙백강기도 일어나지 않으며 포산신공마저도 발동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것들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몸속에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내공이 있지만 그것을 움직일 방법이 없다.

그야 말로 창고에 억만금을 쌓아놓고도 열쇠가 없어서 못 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태에서 보름이 지나가자 임단심과 황군성의 불안감은 점점 더해졌다.

한데,

오늘 아침에 황군성이 일어나자 마자 대뜸 임단심에게 말했다.

[임매(任妹), 청마수(靑魔手)를 익혀보지 않겠소?]

[청마수요? 그게 어떤 건데요?]

[내 두번째 사부인 서한객 초사륭이란 분의 독문절기요.]

[싫어요. 하필이면 왜 마자(魔字)가 들어가는 청마수예요? 배워도 다른 것을 배우겠어요.]

임단심은 고개를 저었다.

황군성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청마수가 제일 적당하겠지만 싫다면 할 수 없지. 대신 옥인수(玉人手)를 가르쳐주겠소.]

[그건 이름이 아주 예쁘군요. 좋아요. 가르쳐주세요.]

황군성은 웃으며 탁자위에 몇 개의 손 그림자를 그렸다.

[이것이 제 일초인 옥인표향(玉人飄香)이오.]

임단심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아름다운 사람이 향기를 날리는 것은 당연하지요.]

황군성은 빙긋 웃고 두번째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제 이초인 옥인포슬(玉人抱瑟).]

[옥인이 비파를 안으면 더욱 예뻐 보이겠지요.]

[이것은 제 삼초인 옥인봉군(玉人逢君)이요.]

임단심은 뛸 듯이 기뻐했다.

[특히 이 삼초가 가장 아름다워요. 님을 만난다는 것에 얼마나 정취가 있어요. 당장 가르쳐 주세요.]

황군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탁자에 앉은 채 손을 움직여 일초부터 삼초까지 보여준 후 임단심에게 해보라고 했다.

[초식도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워요. 여기에 제 독이 함께 펼쳐지면 적수가 없겠어요.]

[독을 펼치면 독인장으로 변해버리지나 않을지 모르겠군……]

[흥!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셔요. 음식에도 간이 배여야 맛난 거예요. 그래도 음식을 소금이라고 부르진 않잖아요.]

임단심은 그에게 쏘아부치고는 탁자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금방 황군성이 펼쳤던 수법을 흉내 내고 있었다.

총명한 그녀는 몇 번 연습해 본 후 금방 제 일초 옥인표향을 황군성과 똑같이 펼쳐냈다.

그녀는 아주 신기해하며 말했다.

[한 동작, 한 동작에 오묘한 현기(玄氣)와 살수(殺手)가 숨어있어요. 비록 일초지만 변화무쌍 그 자체로군요.]

[옥인포슬도 해보시오.]

황군성이 말하지 않아도 할 그녀였다.

지금까지 그녀는 이같은 무학 상의 절기를 배울 수가 없었었다.

칠현천기보법(七玄天機步法)이 뛰어난 것이긴 하지만 무림에서 일류 간다고 할 수는 없고,

그녀의 주된 수법은 다양한 독술(毒術)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실제로는 집에 있는 늙은 노파로 부터 떼를 써서 배운 것이었으니‥‥‥

실상,

그녀에게는 남이 모르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기도 한데‥‥‥

하여튼,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옥인수의 삼초를 다 배워버렸다.

그러자 황군성이 말했다.

[이제 눈을 감고 이 구결을 외도록 하시오.]

[그건 뭔데요?]

[옥인수는 그 각 초식마다 내공의 운용방법이 다른 것이오. 만약 똑같은 방법으로 펼친다면 본래 위력의 십의 일도 발휘하지 못하오.]

임단심의 그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그렇다면 배워야죠.]

황군성은 제 일초의 구결부터 말해주었다.

다 듣고 난 임단심이 말했다.

[일초는 아주 빠르겠군요. 이초는 상당히 무거울 것같고 음……삼초는 잘 모르겠어요.]

[삼초는 두가지다요. 그 한수에 옥인수의 정화가 다 들어있다고 할 수 있소. 피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수법이요.]

[한데……아주 어려워요. 이렇게 내공을 움직이다가 주화입마에 걸리지 않을지나 모르겠어요.]

임단심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억지로 하면 그럴 수도 있소. 하지만 몇 번 연습해서 익숙해지고 나면 젓가락질 하듯 자연스럽게 될 거요.]

말을 마친 황군성은 슬그머니 동굴을 빠져나가 버렸다.

 

밖에는 햇살이 내리쬐고

숲 전체는 단풍이 가득 물들어 있었다.

황군성은 속으로 유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동굴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와서 꾹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하하……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는 것이 이렇게 유쾌할 줄이야.]

언덕에 앉아 노도 탕탕 흘러가는 황하를 바라보며 그는 늦가을 햇살을 즐겼다.

해가 하늘 한가운데로 왔을 때에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쯤은 다 익혔겠지.]

그는 자신의 보금자리인 동굴로 돌아갔다.

 

동굴 앞으로 돌아온 그는 안색이 굳어졌다.

자신들의 동굴이 무너져 입구가 막혀버린 것이 아닌가?

그는 즉시 임단심이 옥인장을 연습하다가 낸 사고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굴이 무너지기는 했어도 삼백년의 내력을 지닌 임단심이 변을 당했을 리는 없으리라는 생각에 느긋하게 소리쳐 불렀다.

[임매! 밖으로 나오시오. 임매.]

하나,

동굴 안에서는 아무 동정도 없었다.

하다못해 돌조각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황군성은 덜컥 불안한 심정이 되었다.

[임매! 임매!]

크게 소리쳐 불러보았다.

여전히 반응은 없다.

황군성은 무너진 바위들을 번쩍 들어 내던지기 시작했다.

쿵!쿵!

내공은 운용할 수 없지만 그는 원래부터 타고난 신력을 가진 사람이다.

바위들을 공기돌처럼 던져내며 동굴로 들어갔다.

얼마 후,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들이 다 치워지고 동굴이 드러났다.

군데군데 바위가 떨어져 있고 그들의 식량이 철갑대망도 완전히 짓 이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가 찾는 임단심은 보이지 않았다.

황군성은 미친듯이 소리쳤다.

[임매! 임매!]

그에게서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임단심이다.

부모 형제보다도 더 절실한 사람인 것이다.

선택하라고 한다면 사회의 도덕에 강요받아 어쩔 수 없이 마음에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감정은 오직 임단심만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떨어져 있는 바위들을 하나하나 밖으로 내던졌다.

혹시 그 밑에 임단심이 깔리지나 않았을까 해서 였다.

그러나,

이미 십여개의 바위들을 던져 치웠음에도 임단심은 보이지 않았다.

황군성은 그녀가 동굴의 제일 안쪽까지 들어왔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곳에 떨어져 있는 바위들마저 밖으로 내던졌다.

몇 개의 바위를 내던 졌을 때,

문득 그는 바위틈에서 바람이 불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동굴이 있었구나!]

임단심이 그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바위를 밖까지 던질 것도 없이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둥그스럼한 동굴이 그의 눈앞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황군성은 자신의 귀를 때리는 날카로운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옥인봉군!]

임단심의 외침이었다.

이때, 황군성의 몸은 허공에서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동굴의 안쪽은 절벽같은 허방이었던 것이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임매가 이 어둠속에서도 나를 알아보는 구나.)

하나,

갑자기 번개불같은 섬광이 머리를 스치며 그는 재빨리 소리쳤다.

[임매! 나요. 손을 멈추시오.]

황군성은 내공을 운용할 수 없기에 신법을 펼치지도 못하고 소리치며 무작정 떨어졌다.

중심을 잡지 못한 그의 머리가 아래를 향하는 그 순간,

황군성은 머리에 무엇인가를 세차게 부딪히며 눈앞에 별이 번쩍이는 것을 느꼇다.

퍽!

무엇인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황군성은 내심 소리쳤다.

(아이쿠! 내 머리가 깨어졌구나.)

쿵!

그의 몸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때 임단심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당신 괜찮아요?]

 

넓은 석실에 불이 밝혀지자 모든 전경이 똑똑히 보였다.

황군성은 두개골이 부서져 버린 깡마른 노인의 시체를 깔고 드러누워있었다.

그의 눈에 천정에 뚫린 시꺼먼 구멍이 보였다.

임단심은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물었다.

[다치지 않았어요?]

[괜찮소, 괜찮아.]

그의 몸은 멀청했다.

임단심이 황군성의 밑에 깔린 노인의 시체를 보면서 말했다.

[이 늙은이는 전신의 뼈가 가루가 되어버렸겠군요. 당신 무게는 내가 잘 알고 있는데……]

황군성이 물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요.]

[색혈광마 음자추예요.]

[…………?]

색혈광마를 소리를 듣고도 황군성은 눈만 멀뚱멀뚱했다.

그가 칠십년 전의 마두(魔頭)를 알 턱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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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陰陽鐵甲蟒

 

 

 

[전 당신이 죽은 줄만 알았어요.]

임단심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나는 쉽게 죽지 않소.]

황군성이 말했다.

[그리고 검신은 내게 목숨을 빚지고 있소. 머잖아 그의 목숨을 거둬들이겠소.]

임단심은 방긋 미소만 지었다.

황군성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황군성은 검신과의 대결에서 자신을 과소평가한 검신을 기계(奇計)로 상대했다.

그는 불과 하루 사이지만 엄청나게 변하고 있었다.

싸울 수록 그의 투지와 생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들끓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허무와 절망과 고독이 너무 강했기에,

그 반발로 그만큼 억눌러져 있던 생에 대한 욕구와 투지가 샘솟고 있는 지도 몰랐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새는 줄 모른다 했던가?

황군성은 그처럼 열심히 생을 살게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황군성은 중얼거렸다.

[이제, 결코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는 않겠다. 나의 모든 것은 내가 주도한다.]

[우리 동굴같은 데를 찾아봐요.]

임단심은 그의 손등을 꼬집으면서 말했다.

어둠이 홍조띤 그녀의 얼굴을 감싸주고 있었다.

 

× × ×

 

하나의 석부(石府),

십여 개의 횃불이 밝혀져 있다.

아주 넓은 석실이다.

하지만 석실의 한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은 그야 말로 주먹보다 조금 커보이는 황금빛 화로(火爐) 하나 뿐,

괴기스러운 적막이 석실에 넘실대고 있다.

그그긍!

문득 한쪽에 있는 석벽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깡마른 체구,

너무 늙어서 꾸부정한 허리,

군데군데 빠져 버린 수염은 흉하게 보이고,

움푹 들어간 눈에서는 흉신악살(兇神惡殺)과 같은 빛이 번쩍인다.

닳아빠져 무릎이 나오고, 소매가 반쯤만 남은 옷을 입고 있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석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황금빛 작은 화로 앞에 앉은 노인은 형형한 눈초리로 화로를 응시하고 중얼거렸다.

[오늘로 딱 칠십일년 째, 일만일천사백구십다섯 가지의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노인의 까마귀 울음소리 같은 말이 석실에 울러퍼지면서 횃불이 일렁거렸다.

[나, 색혈광마(索血狂魔) 음자추(陰紫錐)가 구룡로(九龍爐)를 얻고도 비밀을 풀지 못해 청춘을 이 석실에서 잃어버리다니……]

그의 음성은 분노를 담고 있었다.

한데,

색혈광마……

구룡로……

이게 무슨 말인가?

노인이 바로 색혈광마 음자추이고 황금화로가 바로 구룡로란 말인데,

 

칠십여 년 전, 무림에는 일대의 살인마가 등장했다.

미치광이처럼 무림인들을 찾아다니며 사지(四肢)를 찢어서 죽이는 일대의 흉마였다.

장강(長江) 일대에서 부터 시작된 그의 살인은 남북으로 이어졌고,

불과 이년 이란 짧은 시간에 그에게 살해된 사람의 수는 무려 이천 명이 넘었다.

단 하루도 손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무공은 괴이독랄하여 아무도 그의 십초지적이 되지 못했는데,

이를 간과할 수 없었던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 소림사(少林寺)가 드디어 십팔나한(十八羅漢)을 파견하기에 이르렀고,

때맞추어 무당(武當)에서는 삼십육천강(三十六天罡)을 파견했다.

마침내,

소림과 무당 양파의 고수들과 색혈광마가 황하(黃河) 변에 있는 비정애(非情崖)에서 만나 일대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십팔 나한 중 여섯 명과 삼십육 천강 중 아홉 명이 색혈광마 음자추의 손에 의해 죽은 댓가로,

그들은 음자추의 일곱군데 사혈을 찌르고 비정애에서 황하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색혈광마 음자추는 무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노인은 자기가 색혈광마 음자추임을 말하고 있다.

일곱군데의 사혈을 찍혀 황하에 떨어졌던 자가……

세인들의 추측을 깨고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다.

 

색혈광마 음자추는 구룡로를 내려다보면서 섬찟한 괴소를 흘러냈다.

[흐흐흐……하지만, 구룡로의 비밀을 풀기만 하면 천하는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 으하하하……]

 

× × ×

 

[어머! 이런 곳에 동굴이 있어요.]

임단심이 두개의 바위틈에 난 작은 동굴을 보고 소리쳤다.

황군성은 그 동굴을 보고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작소, 내 몸이 들어갈 것 같지가 않은데……]

임단심이 동굴 안으로 쪼르르 달려 들어갔다.

[안은 상당히 넓어요. 들어와 보셔요.]

순간,

휙!

비릿한 내음과 함께 어둠속에서 뭔가가 덮쳐왔다.

[앗!]

임단심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쿵!

워낙 당황하여 동굴의 낮은 입구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그사이,

쉭!

비릿한 내음이 왈칵 덮쳐오고,

그녀는 힘껏 일장을 날렸다.

펑!

손바닥으로 마치 철판을 두드린 듯 한 충격이 전해왔다.

하지만 그녀는 연거푸 장력을 날렸다.

[무슨 일이오?]

황군성은 임단심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비명소리와 함께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자 크게 외치며 동굴속으로 들어왔다.

몸을 웅크리고 그가 동굴 속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한 마리의 거대한 뱀 앞에 위협받고 있는 임단심을 볼 수 있었다.

황군성에게 동굴 속의 어둠 정도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펑!

황군성은 왼손을 날려 일장을 때렸다.

투쾅!

그리고 동굴의 안쪽을 향해서도 강맹한 일장을 날렸다.

순간,

쩌저적!

동굴 속에는 북풍한설보다 더 차가운 바람이 일면서 뼈를 얼릴 듯한 한기로 가득 차 버렸다.

임단심은 몸속으로 침입하는 한기에 의해서 덜덜 떨며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추……워……요.]

그녀를 공격하던 거대한 대망은 얼음이 되어버린 듯 굳어있었다.

황군성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공력을 일으켜 그녀의 몸에서 한기를 몰아내 주었다.

그는 적이 뱀임을 보자 빙백강기를 일으켰던 것이다.

잠시 후,

임단심이 부르르 진저리를 치고는 말했다.

[대체 무슨 무공인데 이리 추워요.]

[빙백강기라는 것이오.]

화섭자를 꺼내어 불을 밝힌 임단심은 거대한 대망에 눈이 휘둥그레 졌다.

[음양철갑망(陰陽鐵甲蟒)!]

소리친 그녀는 안색이 홱 변했다.

[다른 한 마리가 있을 거예요.]

[걱정할 것 없소. 이미 손을 썼으니까.]

황군성의 말을 듣고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빙백강기로 얼리지 않았다면 힘든 싸움이 될 뻔 했어요. 이놈은 도검이 불침하는 비늘을 가지고 있거든요. 한데 이놈은 적어도 천년은 된 것같아요. 그야 말로 무림인에겐 보물이라고 할 수있죠.]

얼어있는 음양철갑대망,

그 굵기는 건장한 사람의 몸통보다 더 컸다.

길이도 이장 가까이나 되어 큰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이 누워있는 것같았다.

임단심의 말대로,

황군성이 재빨리 빙백강기를 펼치지 않았더라면 음양철갑대망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였을 것이다.

이 짐승은 힘도 써보지 못하고 어이없이 당해버린 셈이다.

동굴의 안쪽에도 빙백강기에 격중된 한 마리의 철갑대망이 있었다.

이 음양철갑대망은 늘 한쌍이 같은 곳에서 사는 것이다.

임단심의 기쁨은 대단했다.

[뜻밖에 보물을 얻었어요. 이것들은 앞으로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곳은 황하가 가까운 곳으로 음양철갑대망은 황하 물속으로 왕래하면서 옷갖 짐승들과 때때로 사람의 시체까지 먹으면서 살아왔었다.

어느 누구도 음양철갑대망이 이런 곳에 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황군성도 음양철갑대망에 대해서는 책에서 보았기에 잘 안다.

그도 내심 직접 음양철갑대망을 보고 자신이 그것을 손에 넣게 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내단과 피를 꺼냅시다.]

황군성의 왼손에서 백색 광채가 뻗어 나왔다.

번천도인 것이다.

임단심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잠깐만요. 철갑을 훼손하지 말아요.]

그녀는 품에서 한자루의 예리한 비수(匕首)를 꺼내 철갑대망의 벌려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쉬익쉭!

살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철갑대망의 철갑껍질이 머리에서 부터 벗겨지기 시작했다.

임단심은 비수로 안에서 부터 철갑을 베어 꼬리까지 길게 갈라놓았다.

철갑대망의 철갑은 밖에서는 도검불침이지만 안에서는 맥없이 잘라졌다.

잠시 후 껍질이 완전히 벗겨진 철갑대망은 얼어붙은 빨간 속살을 드러내고 말았다.

임단심은 철갑을 둘둘 뭉쳐서 한쪽으로 던지고 다른 한 마리에게로 다가갔다.

곧 두 마리의 철갑대망은 빨간 무갑대망(武甲大莽)이 되어 그들앞에 놓여졌다.

임단심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두마리를 다 먹으려면 두 세달은 여기서 살아야 겠는걸요?]

황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그동안 나도 해야할 일이 있을 것 같소.]

[그럼 낭군님, 밤이 늦기는 하지만 이 동굴부터 깨끗이 청소하도록 해요.]

 

뱀이 사는 동굴은 항상 깨끗하다.

뱀은 뭐든지 통채로 삼켜버린다. 그 때문에 찌꺼기가 남지 않는 것이다.

황군성은 철갑대망의 철갑을 동굴 한쪽에 깔아놓고는 할 일 다 했다는 듯이 앉아있었다.

임단심은 삐죽 입을 내밀고는 비수로 철갑대망의 살점을 움푹 베어냈다.

그곳은 철갑대망 전체 길이의 삼분의 이 정도 되는 곳이었다.

그녀는 그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복숭아 같은 물건을 꺼냈다.

[철갑대망이 얼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았어요. 내단이 살아있어요.]

그녀는 황군성의 입을 벌리게 해서 넣어주었다.

복숭아만한 내단이어서 다른 사람이라면 먹는데 어려움을 느끼겠지만 황군성은 칠척의 거한인 만큼,

마치 사탕 삼키듯 꿀꺽 삼켜버렸다.

임단심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이고는 다른 한마리에게로 갔다.

그리고,

마찬가지 방법으로 내단을 꺼냈다.

황군성이 복용한 것은 붉은 것이었는데 이번의 것은 푸른 빛이 돌고 있었다.

[이건 제가 먹을 게요.]

임단심이 황군성을 보며 말했을 때,

황군성은 벌써 운기행공(運氣行功을 하고 있었다.

임단심도 그의 옆에 앉아 욱욱거리며 푸른 내단을 복용했다.

그녀는 철갑대망의 내단이 배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황군성의 전신에서는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전신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고통속에 있는 중이었다.

(우우……이건 잘못됐다. 몸이 폭발할 것만 같다.)

그의 몸속에서 세가지의 기운이 일시에 팽배하며 충돌하기 시작했다.

혈왕신공의 기운과 빙백강기, 그리고 문성무존의 독문내공인 포태신공(抱山神功)이 서로 충돌하며 배척하고 있다.

꽝!

꽝!

혈도를 마음대로 치달리면서 이 세 가지의 진기들은 충돌에 충돌을 거듭했다.

그때마다 황군성은 전신이 터져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도무지 걷잡을 수도 없는 노도와 같은 기운들이었다.

전신의 삼백육십개 대혈에서 충돌하며 몸속에서 진기들이 폭발했다.

임독이맥과 생사현관마저도 그 폭발 속에 터져버렸다.

진기들은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황군성은 머리 속이 새하얗게 된 듯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전신의 대혈에서 폭발이 일어날 적 마다,

그의 옷자락이 터져 날아가 순식간에 알몸이 되고 말았다.

여러 명의 사부로 부터 무공을 익히면서 동시에 혈왕신공과 빙백강기를 익힌 것이 잘못이었다.

그리고,

문성무존의 포산신공 역시 그의 체내에서 함께 작용하여 서로 융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에 그 충돌은 더욱 심했다.

체내에서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진기의 싸움이 끊없이 이어졌다.

이것은 모두 철갑대망의 내단을 복용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원래는 서로 자라면서 적당한 상호견제를 하던 진기들이 갑작스럽게 들어온 엄청난 내력에 팽창하면서 다른 진기를 억누르려고 했던 때문이다.

운기행공을 하기는커녕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황군성은 만사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포기해버렸다.

어느 한 가지 운공방법을 택하려 해도 아무 소용도 없고, 정신도 모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념해 버리자 오히려 몸은 편안한 듯 했다.

몸속에서는 폭발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그것이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충돌과 폭발이 줄어들고 있었다.

잇달아 터지던 폭발은 간간히 터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폭발은 더욱 강력했다.

점점 빈도수는 떨어지고, 대신 강도는 높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황군성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세 가닥의 진기가 점차 단전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꽈꽝!

이전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엄청난 폭발이 단전에서 일어나며 황군성은 혼절하고 말았다.

 

임단심의 모공에서 백색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왔다.

그리고,

그 연기는 그녀의 머리위에서 둥근 고리를 만들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가고,

연기가 더욱 짙어 지면서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둥근 고리가 두개로 변했다.

그리고 위의 고리는 색마저 변해서 청색(靑色)을 띠고 있었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머리에는 다섯개의 고리가 생겼다.

청황적백흑(靑黃赤白黑)의 오색을 띠고 있었다.

오색의 고리들은 밝은 빛을 뿌리더니 밑에서 부터 허물어지며 사르르 임단심의 콧속으로 빨려들어가버렸다.

임단심,

그녀는 뜻밖의 행운으로 단숨에 오기조원(五氣照元)의 경지에 달해버린 것이다.

삼백년의 내공,

내공으로만 따지면 그녀도 강자라고 할 만하다.

임단심은 눈을 떴다.

번쩍!

그녀의 눈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신광이 발해졌다.

[아! 내 공력이 삼백년 수위로 되다니……]

그녀는 홀가분하면서도 전신에 충만한 힘을 느끼며 나직한 탄성을 토해냈다.

옆을 돌아보니 황군성은 가부좌를 튼 채로 뒤로 넘어가 있다.

황군성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거구는 은은한 담황색의 기운으로 휩싸여 있었다.

임단심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람이 왜 발가벗고 넘어가 있지?)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황군성은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그토록 그를 괴롭혔던 세가닥의 기운은 그의 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덜컥 염려가 되었다.

세 기운이 모두 소멸해 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그는 아랫배에서 부터 불끈 치솟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몸을 태워버릴 것같은 욕망은 그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앞에 임단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황군성의 마음은 금방 임단심에게로 전해졌다.

그녀의 몸도 순식간에 강한 욕망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한쌍의 음양철갑대망의 내단……

음양철갑대망이란 놈은 원래,

숫놈의 정력은 끝없이 강하고 암놈은 그런 숫놈에 즉시 교감하는 성질을 가진 것들이다.

이들은 다른 짐승들과는 달리 따로 교미기(交尾期)가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암수가 함께 살면서 교합하기를 즐기는 것이었다.

한데,

황군성과 임단심이 복용한 내단에도 그와 같은 성질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니,

황군성은 시시각각으로 정욕을 느끼게 되고 임단심은 그에 반응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황군성은 임단심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 작업에는 임단심의 손도 함께 동원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뱀처럼 뒤엉키며 펼쳐놓은 철갑위로 넘어졌다.

미친 듯이 서로가 서로의 입술을 탐하고,

알몸은 서로 뒤섞을 듯이 비벼댔다.

칠척의 거구에 깔린 자그마한 여인의 몸은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고,

황군성의 몸은 희고 매끄러운 두 다리 사이에 끼어있었다.

서로의 몸을 이어주기 위한 사랑의 사자(使者)가 마침내 임단심의 몸속으로 파고들고,

그녀는 전율에 몸을 떨며 가쁜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동굴 안은 열풍이 휘몰아치고,

밤은 끝나가고 있었다.

 

[아악!]

몸속에서 퍼부어지는 애욕의 세례를 받으며 임단심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쾌감에 혼절하고 말았다.

그녀의 몸 위에서 황군성이 부르르 몸을 떨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임단심이 상기된 얼굴로 눈을 떴다.

[어……어떻게 된 거예요?]

[아마도 철갑대망때문인 듯 하오.]

황군성은 그녀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될까요?]

[아마도……]

[어휴……어쩌면 이것도 큰 고민거리가 되겠어요.]

[왜?]

[생각해봐요. 객점에서나 어디서나 이렇게 법석을 떨면 쫓아내지 않을 곳이 어디 있겠어요?]

임단심은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라도 한 것같은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은 밀고 밀리며 애초에 있었던 곳에서 출발하여 동굴을 한 바퀴 헤매다 시피한 후에 다시 철갑위로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임단심은 황군성을 밀어내며 다리를 오무렸다.

[그리고, 내게 너무 커질까 싶어 두려워요. 적당히 자제해야겠어요.]

황군성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난 죽지 않을 거요. 과부가 되어 재혼할 일은 없을 테니 그런 걱정은 마시오.]

[누가 그걸 걱정 한다 그랬어요? 혹시 당신이 작은 구멍을 찾아가지나 않을까 걱정이죠.]

임단심은 빽 소리치고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변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황군성이 귀여운 듯이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미풍이 스치는 듯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고기나 조금 잘라오세요. 아침을 먹어야죠.]

황군성은 벌거벗은 몸으로 철갑대망을 향해서 가며 중얼거렸다.

[이젠 결코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그의 뒤에서 임단심이 달콤하게 말했다.

[낭군님, 설마 저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않으시겠죠?]

황군성은 도화꽃 처럼 화사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마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대체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이것은 보통 공처가 또는 애처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황군성은 미처 모르고 있지만……

여자란,

특히 총명한 여자란 남자를 마음대로 조종하는데 모든 인생의 가치를 두고 이것에서 최고의 기쁨을 만끽하려 하는 법인데……

 

얼마 후,

황군성은 그의 긴 머리카락을 움푹 뽑혀야만 했다.

바로 그를 낭군님이라고 부르는 여자에 의해서.

[조금만 더 뽑으면 돼요. 그럼 옷이 다 만들어져요.]

임단심은 철갑대망의 철갑으로 두벌의 옷을 꾸미고 있었다.

황군성의 머리카락은 실이 되어 옷을 꾸미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임단심의 바느질 솜씨는 아주 좋았다.

황군성의 몸에 철갑을 갖다대보면서 금방 한 벌의 옷을 만들었다.

그녀는 철갑옷을 입은 황군성을 바라보며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아주 멋있어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神將)같아요.]

철갑옷은 황군성의 몸에 아주 잘 어울렸다.

칠척거구의 그가 검은 철갑옷을 입자 그야말로 신장과 같은 위엄이 넘쳐흘렀다.

철갑은 임단심의 옷을 해 입고도 상당히 남았다.

[남은 것으론 훗날 우리 아기들이 입을 옷을 만들어야겠어요.]

황군성이 질겁을 하면서 물러났다.

임단심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걱정마셔요. 더 이상 당신 머리카락을 뽑을 일은 없어요. 그냥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만들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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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脫出

 

 

 

어둠이 낮게 깔려있는 신검보,

빈객청에 있는 어느 방,

황군성과 임단심이 앉아있다.

[이상해요. 전무옥의 체내엔 독이 전혀 없었어요.]

임단심이 말했다.

[게다가 이백년이 넘는 내공도 살아있고요. 한데도 몸은 뻣뻣하게 굳어있으니……]

황군성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문득 나직하게 내뱉었다.

[잘못들어왔어.]

[…………?]

[검신은 이미 흉수를 찾고 있는 중이오.]

[그야 당연히……]

[그게 아니요. 아마도 내일은 전무옥이 죽을 것이오.]

황군성은 단정하듯 말했다.

임단심이 해연히 놀라는데,

갑자기 밖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군성, 네 정체가 점점 궁금해지는군.]

검신 전득무의 음성이었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선 그를 향해 황군성이 말했다.

[소생 역시 검신의 무공내력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소.]

전득무의 눈이 그의 전신을 빨아들일 듯 기이한 빛을 발했다.

[그래서 내 무공내력을 직접 알아보겠다는 것인가?]

[그렇소.]

황군성의 대답은 전득무에게도 임단심에게도 모두 뜻밖이었다.

전득무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그는 그냥한번 해본 말에 불과 했었던 것이다.

임단심의 얼굴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이 판단해 볼때 황군성은 아직 전득무의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황군성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감히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체념하며 중얼거렸다.

(함께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황군성이 전득무에게 말했다.

[오늘 내가 당신과 싸우지 않으면 내일 누명을 쓰고 죽을 것인데 어찌 대결을 마다하겠소.]

전득무는 고개를 끄덕여 시인했다.

[세상의 소문이 잘못 전해졌군. 독봉 임단심이 귀계가 많고 총명하다고 들었는데 진짜 총명한 자는 오히려 그대였어.]

[…………]

[사실대로 말해주지, 네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어. 내일 아침에 빌미를 붙여 죽일 작정이었는데 이제, 시간이 단축될 수밖에 없겠지.]

[왜……?]

임단심의 말에 전득무가 반문했다.

[왜냐고? 간단해, 황군성 너를 살려두면 언젠가는 내가 죽을 것같은 기분이었거든……]

임단심은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이자는 반드시 우리를 죽이고 말겠다는 생각이다.)

전득무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너를 한번 써먹고 죽이려 했는데 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총명해, 아까워.]

황군성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정식으로 비무를 요청하는 바이오. 지금 당장.]

 

연무장,

횃불이 밝혀지고 신검보의 수많은 고수들이 둘러선 가운데,

전득무와 황군성은 오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섰다.

휘이이잉!

바람이 황군성의 긴 흑발을 휘날리며 지나갔다.

임단심은 가슴을 졸이면서 황군성의 뒤쪽에 서있다.

(제발……)

그녀는 지금 기적이라도 일어나 주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임시로 얻은 한자루의 철검을 잡고 우뚝 서있는 황군성의 모습은 뭇 사람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해준다.

형형한 눈빛이 서로 부딪히고,

검신 전득무가 우측 검지와 중지로 검결을 맺었다.

순간,

그의 검결에서 은은한 보라빛 줄기가 쏟아지며 넉자 길이의 장검이 되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것은 몸에서 쏟아져 나온 검강(劍罡)이었다.

황군성은 그의 일초를 피하기가 가장 어려울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검신은 자신의 체면 때문에라도 그를 단숨에 죽이려 할 것이다.

신검보의 고수들은 황군성을 미친 사람 보듯 하고 있다.

(검신에게 검으로 맞서려고 하다니……)

전득무가 검강으로 이루어진 검 끝을 땅으로 향하게 하며 느릿하게 말했다.

[삼초를 양보하마.]

[사양치 않겠소.]

그 순간,

칠척거구의 황군성의 몸은 바람같이 빠르게 전득무의 면전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에들린 철검이 휘둘러졌다.

그러자,

한꺼번에 일흔 두 송이의 검화(劒花)가 허공 중에 만들어 지며 전득무의 전신요혈을 노리고 날아갔다.

피할 수 있는 방위까지도 모두 차단한 기막한 검법이었다.

[아!]

신검보의 고수들이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전득무가 강기로 이루어진 검을 들어 허공을 찌르는 시늉을 하는 순간,

칠십 두 송이의 검화는 그의 검을 타고 부드럽게 전득무의 등뒤로 넘어가 버렸다.

 

와아아아!

 

신검보의 고수들 사이에서 우뢰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황군성은 자신이 문성무존에서 배웠던 검법 중의 하나를 펼쳤던 것인데,

전득무가 전혀 힘도 들이지 않고 받아넘겨 버리자 내심 당황했다.

그가 그러한 수법을 사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황군성은 즉시 두번째 초식을 사용했다.

왼손을 올려 손바닥을 펼침과 동시에 오른손에 있는 철검을 던졌다.

번쩍!

휘루루룽!

철검은 풍차처럼 돌며 전득무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전득무의 몸을 한바퀴 휘감으려는 순간,

전득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철검의 중간을 눌러 바닥에 꽂아버렸다.

팡!

부르르……

황군성의 철검은 바닥에 박혀 손잡이가 심하게 진동떨렸다.

그러나,

전득무는 황군성의 잠시 펼쳐졌던 왼손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손이 펼쳐지는 순간 그 안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초식의 일부인지 어떤 암기를 준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황군성은 두번째 공격마저 무위로 끝나버리자 세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무릎을 낮춘 자세로 천천히 쌍장을 밀었다.

그의 얼굴에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 여실히 나타났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그의 장력은 멀리 뻗어나가지 못하고 자신의 일장 정도에서 바닥을 치며 멈춰지고 말았다.

바닥도 그다지 손상되지 않았다.

[…………?]

[삼초가 끝났소. 이제 공격하시오.]

황군성은 두손을 교차하며 가슴앞에 모으고 소리쳤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황군성은 자신의 일장 앞까지 다가온 검신 전득무을 볼 수있었다.

보라빛 검이 황군성의 목을 단숨에 파고드는 중이었다.

순간,

검신 전득무의 보라빛 검이 멈칫했다.

한데,

그와 동시에 황군성의 몸에서 폭발하는 듯 붉은 연기가 모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전득무의 얼굴이 경악의 빛이 스치고 지났다.

[혈왕신공! 너는 한천사방객의……]

추잇!

보라빛 검은 혈왕신공의 붉은 구름을 뚫고 황군성의 목젖을 꿰뚫었다.

바로 그때,

전득무는 붉은 구름아래에서 치솟는 백색의 광채를 느낄 수 있었다.

반사적인 감각으로 벼락처럼 뒤로 물러나며 보라빛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슈악!

백색 광채는 벌써 그의 보라빛 검을 젖히며 왼쪽 팔을 자르고 있었다.

반드시 베어진 검신의 팔이 피를 뿌리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검신은 눈은 분노와 경악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한 무더기의 붉은 구름은 벌써 연무장 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신검보의 수하들은 뜻밖의 사태에 얼이 빠져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전득무의 오른손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왼손을 가르켰다.

순간,

슈아아앙!

그의 왼손은 뻣뻣하게 손바닥을 펴며 가공할 속도로 붉은 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어검술이었다.

황군성은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임단심을 안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달렸다.

그러다,

그는 등 뒤에서 몰려오는 엄청난 압력을 느끼고 번천도를 휘둘렀다.

쉬익!

한데,

그는 등 뒤가 화끈해지는 고통을 느꼈다.

무언가가 두개의 조각이 그의 등에 박힌 것이다.

순간적으로 아찔해졌으나 그는 더욱 빠르게 달렸다.

그의 등에는 두 조각이 난 전득무의 왼팔이 꽂혀있었다.

 

전득무는 황군성을 쫓으려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뒤쫓을 것 없다. 그자는 내 검에 목을 찔렸고 어검술에 등이 관통되었다.]

잘려진 팔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며 전득무는 연무장에서 사라져갔다.

검신이……

이름도 없는 무명소졸에게 팔이 잘렸다.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전득무의 전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몸으로 가공할 한기(寒氣)가 스며들고 있었다.

(놈이 이런 수법을 쓸 줄이야……)

사실 황군성의 제 삼초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

황군성은 빙백강기를 자신의 일장 앞에 응축시켜놓았던 것이다.

전득무의 검이 순간 적으로 멈칫 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라고 하지만 준비없이 빙백강기에 몸을 던지고 말았으니 그 한기가 뼈를 얼릴 정도였던 것이다.

그는 내공으로 한기를 몰아내기 위해 급히 자신의 연공실로 갔다.

대상없는 분노가 그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 × ×

 

미친 듯이 달려서 어느 숲속에 들어선 황군성은 마침내 정신이 가물거리며 임단심을 안은 채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악!]

갑자기 그의 거구에 깔려진 임단심이 비명을 질렀다.

황군성의 배밑을 빠져나온 그녀는 그의 등에서 황급히 두 개의 잘려진 팔을 뽑아냈다.

붉은 구름은 거의 몸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리고,

황군성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순간,

그의 고개가 돌아가며 한치 정도 길이의 검상이 보였다.

검신 전득무의 보라빛 검에 의한 것이었다.

검상은 세치 정도로 상당히 깊었다.

그것을 발견한 순간,

[아!]

임단심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느끼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털썩!

황군성의 몸위로 그녀의 몸이 포개졌다.

그리고,

어두운 숲속엔 정적이 찾아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임단심은 천천히 정신이 들었다.

황군성이 죽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비감한 심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뜨거운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황군성의 몸으로 흘러들고,

황군성의 죽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그녀는,

두 팔로 황군성의 등을 꼭 끌어안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황군성과 지냈던 지난 삼개월이 그녀의 눈앞으로 꿈결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겨우 어제서야 마음을 열었는데……)

분하고 억울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겨우 어제부터 참사랑을 받기 시작했는데 하룻만에 그 사랑이 끝나다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황군성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자결해버리자. 이 사람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검신 전득무의 얼굴이 떠올랐다.

(복수……복수를 해야하지 않을까? 신검보의 모든 사람들을 만성독약에 중독시켜버릴까?)

그녀는 도리질 했다.

(아니야. 복수따위가 무슨 소용이야. 이 사람을 따라 죽는 것만 못해.)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일단 무덤을 만들고,

그속에서 황군성을 안은 채로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바로 그때,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황군성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은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

그녀는 번쩍 눈을 떴다.

그러자,

그녀는 붉은 구름속에 싸여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깜짝 놀라 황군성의 목을 더듬어 보니 검상은 어느새 아물어가고 있었다.

[어……어떻게……이런 기적이……]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황군성은 살아있었다.

혈왕신공의 힘이 그로 하여금 죽음으로 부터 지켜주었던 것이다.

혈왕신공……

황군성이 검신 전득무와 승산없는 대결을 벌이게 된 데는 이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검신 전득무는 그보다 세 단계는 높은 고수,

그로서는 죽어주면서 그의 몸을 훼손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흔히,

살을 주고 뼈를 깍는 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황군성은 목숨을 주고 상대의 팔을 잘랐던 것이다.

검신 전득무로서도 목이 찔린 상대가 가공한 도법으로 반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황군성이 목숨을 내 줄 수 있었던 것은 혈왕신공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고,

혈왕신공은 태산에서의 그 엄청난 산사태 속에서도 그의 몸을 살려주었던 바 있다.

황군성은 번천도 보다 혈왕신공을 더 믿었던 것이다.

붉은 안개가 차차 그의 몸으로 흡수되어갔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그러나,

혈왕신공이 그의 생명을 살리는 데는 그의 본신 진기를 이용한다.

이 때문에 혈왕신공은 내공이 아주 고강해야만 위력을 재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여,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지 못할 정도로 내공이 약화되어 있다면 혈왕신공으로서도 그의 목숨을 살릴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혈왕신공의 치명적인 약점인데,

내공이 회복되기 전에 잇달아 치명적이 상처를 입게 되면 부활할 방법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황군성의 내력은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목숨을 건진 댓가인 것이다.

 

정신을 차린 황군성은 임단심과 긴 입맞춤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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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神劍堡의 지배자 2

 

 

 

 

흑수산(黑首山),

크지 않은 산이나 상당히 높은 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명한 것은 그 산정상이 검은 흑석(黑石)인 오강석(烏鋼石)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멀리서도 새까맣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 오강석은 일반의 금석(金石)보다 강하다.

그래서,

강호의 이름난 무사들은 이 오강석을 하나쯤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의 검과 도를 연마하는데 써기도 한다.

그런데,

오십여 년 전부터,

이 오강석을 가진 무사들은 아주 드물어져 버렸다.

놀랍게도,

오강석을 구하기 위해 흑수산으로 올랐던 사람들이 모조리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 때문이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흑수산에 올랐으나 내려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산 정상에는 오강석으로 세워진 작은 장원이 하나 생겼다는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전다.

지금,

흑수산 위에 있는 검은 장원,

이곳이 바로 그것인데, 그 이름이 귀왕장(鬼王莊)이다.

귀왕장,

바로 무림의 칠대세력 중의 하나로 세인의 접근을 절대로 금하고 있는 금지(禁地).

한데,

지금 이 안에서 모종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철사륵(鐵沙勒), 내게 더 이상 명령조로 말하지 마라.]

카랑카랑한 음성이 오강석으로 번들거리는 실내에서 소리쳤다.

[소주(少主)! 속하가 불충했다면 벌하십시오. 하지만 이 말은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굴강한 노인의 음성,

살아온 인생만큼의 고집이 들어있는 듯 하다.

연공실인 듯한 이곳,

놀랍게도 한 명의 청년이 웃통을 벗은 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의 손에는 벽에 붙은 듯한 굵은 철봉같은 것이 잡혀있고,

청년의 전신은 땀으로 번들거린다.

그러나,

약간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청년의 용모는 흡사 사람을 빨아들일 듯이 아름다웠다.

분명한 남자의 몸이고 음성이건만,

청년의 아름다움은 어떤 여인보다도 뛰어났다.

얼굴은 완연한 여성미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몸은 또한 완전한 남성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연공실의 바닥에 서서 청년을 올려보고 있는 노인,

백발 성성한 이 노인은 학창의를 입었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청년이 다시 소리쳤다.

[철사륵, 너는 여전히 내가 십년 전의 어린아인 줄만 아는구나. 하지만, 더 이상 너의 건방진 태도를 방관하지 않겠다.]

[아무리 그러셔도 소용없습니다. 소주께서는 무슨 수가 있더라도 월음천마공(月陰天魔功)을 익혀야 합니다.]

철사륵의 어조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월음천마공,

이것은 보통 사람이 듣고서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닌 말이다.

틀림없이 그는 월음천마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거나,

월음천마공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세고수(蓋世高手)인 것이다.

일갑자 이상의 내공을 지닌 순음지체(純陰之體)의 여인 일천명을 희생시키고 서야 연성이 가능한 악마의 무공인 월음천마공,

이 무공을 완성했다면 그는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다.

불사불괴(不死不壞)의 몸에 만독불침지신,

그리고 일천년의 공력을 얻음은 물론,

월음천마공의 힘, 어떤 것이든 허공 중에 산산히 흩어버리는 그 힘을 얻는다.

휘익!

청년이 바닥으로 내려섰다.

[철사륵, 네놈은 정녕 나를 괴물로 만들고 싶어 미친 놈이다. 나는 그따위 월음천마공 정도는 없어도 고금무적인(古今無敵人)이 될 수 있다.]

철사륵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고수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대지검(大地劍)만으로 그들을 다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네놈은 나를 무시하고 있군.]

청년이 차가운 음성을 내뱉었다.

철사륵은 그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소주의 무공은 노복의 칠성 수준에 불과합니다.]

순간,

[우하하하……]

청년은 미친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연공실이 웅웅 울리며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리고,

[철사륵, 너야말로 헛된 자만심에 가득차있군, 하기야 귀왕장의 장주니 만큼 그 무공은 인정해야 겠지.]

청년은 형형한 눈빛을 발하며 말했다.

[하나, 내가 네놈의 속셈을 모를 줄 아느냐? 월음천마공을 익혀 마성에 빠진 나를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네놈의 뜻을……]

무림의 금지 귀왕장의 장주라고 불린 철사륵,

강호상에 전혀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자,

그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소주, 그 무슨 외람된 말씀이십니까? 노복이 어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청년은 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손을 저었다.

[됐어, 철사륵! 어쨌든 너는 나를 무시했어. 난 이순간 부터 누구든 나를 무시하는 자는 적으로 삼고 죽여버리겠다고 결심했거든……]

철사륵이 쇠구슬같던 눈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너무 컸는가?)

청년의 내젓던 손으로 한 자루의 철봉이 와서 잡혔다.

아니 그것은 철봉이 아니었다.

팔목만큼 굵은 네자 정도의 철봉에 뭉뚱한 끝이 있는,

모양이 조금 괴이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검(劍)이었다.

청년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선언했다.

[나 위지장천(衛遲長天)의 최초의 적으로 철사륵 너를 택한다.]

[소주, 마음을 돌리시지요. 혹시 노복이 실수하여 다치게 하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위지장천은 콧웃음을 쳤다.

[그만 마각을 드러내지. 네놈이 아무리 그래봤자 꼭두각시 놀음을 할 내가 아니니까.]

철사륵은 한동안 묵묵히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눈에서 섬뜩한 살광이 뻗어나왔다.

[그럼 할 수 없지. 어리석은 놈, 스스로 명을 재촉하다니……]

철사륵의 몸에서 폭풍같은 기운이 일어났다.

그는 이미 방금 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그가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공한 고수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지팡이가 천천히 올려지며 위지장천을 겨누었다.

[과연 대단하군 철사륵, 아마 세놈의 늑대새끼 중에서 무공은 네놈이 제일 강할 거야.]

위지장천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게 오면서 자전편(磁電鞭)을 갖고 오지 않은 것은 네놈의 치명적인 실수다.)

위지장천은 공력을 끌어올렸다.

순간,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압력과 철사륵이 일으키는 무형의 압력이 부딪히며 사방의 오강석 벽에 미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놈……내 예상보다 훨씬 강하구나. 하지만……본좌가 철사륵이라는 사실을 네놈은 알아야만 했다.)

그때,

번쩍,

마치 검은 번개가 움직이는 듯 위지장천의 손에들린 기형괴검이 철사륵을 향해 쏘아져 왔다.

순간,

철사륵의 단장(短杖)이 허공에서 내려쳐지고,

꽝!

엄청난 폭음이 터져나왔다.

(윽! 이 놈의 내공이 나못지 않다니……)

철사륵은 위지장천의 기형괴검에서 전해지는 엄청난 충격에 몸이 튕겨나가는 것을 느꼈다.

위지장천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그는 상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대인 철사륵은 지난 십년 간을 지켜보고서도 자신을 모르고 있다.

위지장천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바로 그순간,

번쩍!

철사륵의 단장이 그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검술(馭劍術)!]

위지장천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철사륵이 어검술마저 익혔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위지장천의 몸이 기형괴검을 중심으로 한바퀴 돌았다.

쉬익!

철사륵의 단장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단장은 다시 철사륵의 손짓을 따라 움직이며 그를 향해 날아왔다.

위지장천의 몸은 기형괴검의 주위로 번쩍이며 움직여 단장을 피했다.

그렇다.

위지장천의 대지검(大地劍)은 검을 휘두르는 검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검으로 적을 찌르기는 하지만,

그 본질은 검을 휘두르듯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천정에 매달려 있는 철봉도 바로 대지검을 익히는 도구이다.

검법에 따라서 검을 휘두르는데,

검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몸이 대신 움직일 수 밖에는 없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대지검법은 어떤 강한 적과 부딪치더라도 절대 패하지 않을 수 있는 기이막측한 절학이었다.

그가 이길 수 없는 적은 있어도,

그를 이길 수 있는 적은 있을 수 없다.

위지장천은 이 대지검을 철사륵이 상상하지 못할 경지까지 익히고 있었다.

어검술의 수법에 의해 날아오는 단장을 뒤로하고,

그는 전력을 다해 기형괴검으로 철사륵을 무찔러갔다.

우우웅!

공기가 파도치고,

철사륵은 자신의 심장을 찔러오는 위지장천의 검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단장은 위지장천의 머리뒤로 날아들고 있다.

(내가 빠르다!)

기형괴검이 자신의 심장을 꿰뚫기 전에 자신의 단장이 위지장천의 머리를 부수고 말것이다.

한데,

위지장천의 몸이 기형괴검을 중심으로 다시 팽이처럼 돌았다.

철사륵은 경악하고 말았다.

위지장천이 피해버린 그의 단장이 오히려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온다.

피하거나 방향을 조정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전력을 다했기에 엄청난 빠르기였다.

철사륵의 몸이 활처럼 뒤로꺾어졌다.

그러나,

[크아악!]

화끈한 통증이 아랫배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의 왼쪽어깨를 뚫고 지나갔다.

위지장천은 비웃듯이 말했다.

[네놈이 할 수 있는 어검술 따위라면 나는 보기만 해도 할 수 있어.]

그의 눈앞에 있는 철사륵의 몸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기형괴검이 그의 아랫배에서 부터 파고들어 배와 심장을 뚫고 어깨로 빠져나와있다.

그리고,

그의 두개골 상부는 완전히 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사륵은 숨이 끊어지진 않고 있었다.

깊은 내공때문이다.

그는 입으로 꾸역꾸역 핏물을 쏟으며 말했다.

[네……네 놈의……쿨럭……무……공……이……본좌가……잘 못……보……]

[맞았어. 철사륵, 너는 나를 천년에 한번 볼까말까하는 기재라고 하면서도 내 능력을 과소평가했어. 아마 지난 십년이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

위지장천은 자신의 검을 뽑아당겼다.

순간,

철사륵의 몸에서 엄청난 핏물이 솟구쳤다.

그리고,

뻥뚫린 아랫배로 내장이 밀려나왔다.

[교……활……하지……만……그들……은……결……코……큭!]

철사륵은 눈동자를 허옇게 까뒤집으며 죽고 말았다.

위지장천을 검을 휘둘러 오물을 떨쳐버리며 말했다.

[네놈을 죽인 내 입장도 좋지는 않아. 가만히 있었으면 강호에서 가장 큰세력인 삼장(三莊)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을 텐데 이젠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으니까. 그 밥맛 떨어지는 월음천마공만 아니라면 나도 어떻게든 참았을 텐데……]

이게 무슨 말인가?

위지장천,

그가 이곳 귀왕장 뿐만 아닌 다른 이장인 화운장, 천음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귀왕장주 철사륵에게 작은 주인이라고 불린 인물……

그의 눈은 어떤 강렬한 야심에 불타고 있다.

기형괴검을 어깨에 걸치며 연공실을 나간다.

[먼저 선수(先手)를 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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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神劍堡의 지배자

 

 

 

오리평으로 들어서면서,

황군성은 신검보의 웅장한 위세에 놀랐다.

지금까지 그는 이처럼 거대한 보루를 보지 못했었다.

무려 일만 오천여 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제갈공지를 뒤따라 황군성과 임단심은 거대한 연무장을 지나 중앙에 있는 검신탑으로 갔다.

 

십층의 대전,

검신 전득무는 태사의에 앉아 제갈공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득무가 황군성과 임단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갈공지는 대전에 들어선 순간부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의 몸은 경직되어 있는 듯했다.

임단심은 전득무의 무심한 눈길을 대하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의 눈길을 받은 그녀의 몸은 점점 움추려들고 있었다.

그때,

크다란 손이 그녀의 손을 덮어쥐면서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황군성의 몸에서 전해지는 진기였다.

그제서야 그녀는 조금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황군성은 황군성 대로 전득무를 대하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비록 그의 근처에 검 한 자루 보이지 않았으나,

그가 왜 검신이라고 하는 지가 몸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전득무의 시선이 조금 움직이면서 황군성의 눈과 마주쳤다.

순간,

전득무의 눈에 약간의 놀람이 있었다.

황군성은 그의 눈을 대하자 눈을 감고 외면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것은,

검을 들지는 않았지만 심력(心力)의 싸움이었다.

실제로는 검을 든 싸움 보다도 내공의 대결보다도 더욱 무서운 싸움인 것이다.

심력의 싸움에서 움추려들게 되면 스스로 그자의 노예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상대를 공격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은 지켜야 한다.

황군성은 눈동자를 흐릿하게 하면서 혼란했을 때의 마음을 비춰보였다.

그가,

이 시대의 검신이라는 전득무의 심력에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자신의 심력이 턱없이 딸리는 상황하에서 본신의 심력으로 그를 상대한다는 것은 지배당하겠다는 의미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을 흐려버리고 자신을 숨겨버리면 상대로써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드러난 것은 제압할 수 있어도,

상대의 마음속 깊이 침투해 들어와 공격할 수는 없다.

전득무는 예의 그 윤기있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는 자였군. 분명 명사(名師)의 제자야.]

황군성은 전신에서 송골송골 솟는 땀을 느낄 수 있었다.

전득무의 동작하나,

말 한마디에 예리한 비수가 숨어있고 함정이 감춰져 있었다.

(위험했다.)

하마터면 그는 전득무의 말에 대꾸할 번 했다.

그랬더라면 이미 그의 말에 이끌려 조종되고 있을 것이다.

검을 통해 익힌 정신력의 힘이 얼마나 강한 지를 전득무는 보여주고 있다.

(아마……이 사람의 검술도 도처에 함정과 비수가 숨어있겠지……강렬한 유혹도……)

황군성은 세상에는 자기를 능가하는 고수가 아직은 수없이 많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문득,

전득무는 제갈공지를 향해 말했다.

[제갈공지, 음……잘했어. 무적십이검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는데 그대는 혼자서 이 둘을 데리고 왔군.]

제갈공지는 깊히 허리를 숙였다.

[한데, 이들이 누구지?]

전득무의 말에 임단심은 의아함을 느꼈다.

(제갈공지가 마음대로 행한 일인가?)

그때,

제갈공지가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황군성, 황소협과 독봉 임단심소저입니다.]

[아! 독봉! 영악하지 영악해. 그래, 자네들은 왜왔지?]

임단심은 어이가 없었다.

(검신이 노망이 들었나?)

[임소저, 본좌는 노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었다.

전득무는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이 그녀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왜, 검신 전득무가 두려운 존재인지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감히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 조차 두려워졌다.

그가 자신의 머리속을 환히 들여다 보고 있다는 생각에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제갈공지가 읍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군, 임소저와 황소협은 우리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전득무는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작업 인부가 부족한가?]

[그게 아닙니다. 임소저께서 소주를 구하실 것입니다.]

제갈공지는 의연하게 버티려고 안간힘을 다쓰고 있는 듯 했지만 여전히 전득무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몸이 수그러지고 있었다.

순간,

전득무의 음성이 차갑게 들려왔다.

[누가 그런일을 지시했는가? 본좌는 이들을 죽이라 했을 뿐인데. 그리고, 제갈공지, 누가 네게 이자들을 데려오라 했나?]

제갈공지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얼굴이 붉어진 채 땀만을 흘리고 있었다.

입술이 달삭달삭하지만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

전득무는 말했다.

[이번은 제갈공지의 체면을 봐서 그대들을 이곳에 일시 머물게 해주겠다. 그러나, 본좌는 계집의 암수따위에 당해 죽어가는 자식놈 따위를 구할 생각은 없다. 단지, 무인으로서 복수만을 해줄 뿐이다.]

이말을 마지막으로 전득무는 스르르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태사의에 깊이 묻은 몸은 그대로 화석이라도 된 듯 했다.

제갈공지는 전음으로 황군성과 임단심에게 말했다.

[조용히 나갑시다.]

황군성은 전득무의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소리 같은 것이 하나하나가 무기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대전을 나가며 전득무에 대한 생각을 애써 떨쳐버렸다.

그의 말은 가슴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비수가 될 지도 모른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제갈공지와 함께 계단을 걸어 제갈공지의 거소로 같다.

무수한 책들이 서가에 꽂혀있고,

중간중간에 난(蘭)을 비롯한 여러가지 꽃들이 화분에 심겨져 있었다.

그때문에 책이 있는 곳에서 언제나 나게 마련이 묵향도 퀘퀘한 책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

그 많은 책들과 기물들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주인인 제갈공지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한 마디로 말해주고 있었다.

시녀가 차를 내오자 제갈공지가 입을 열었다.

[두분께서는 믿지 않겠지만, 검신께서는 약간 괴팍스런 점이 있기는 하나 이세상에 그분처럼 마음이 넓은 사람도 없소.]

임단심이 말했다.

[한데 제갈선생께서는 왜 제가 그 여자가 아니란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으셨어요?]

제갈공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감히 그분께서 묻지 않으신 것을 함부로 말할 용기가 없소이다.]

[그럼 사정을 모른 검신께서 저를 일검에 죽이시지 않겠어요?]

제갈공지는 약간 퉁명스럽게 말했다.

[임소저는 아직도 모르셨소? 검신께서는 이미 그 가짜를 만나보셨소. 그리고 오늘 임소저를 보았으니 당연히 그녀가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아니겠소.]

[저와 모든 것이 똑같다고 하셨잖아요.]

임단심이 쏘아 부치자 제갈공지는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소저, 소저는 그분을 보통사람과 같이 보시오?]

임단심은 입이 붙어버렸다.

검신 전득무의 무서움이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제갈공지는 얼굴을 풀고 황군성에게 말했다.

[황소협! 소협은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더군, 나는 지금까지 삼십 년이 되도록 보주님을 모셨지만 그분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소.]

[도신(刀神)도 말이오?]

황군성의 날카로운 질문에 제갈공지는 예상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세상의 모든 것에 서로 상극이 있지 않소? 그런 의미에서 도신은 검신의 상극이라오. 상극은 그 능력에 있어서 비슷하지 않겠소?]

황군성은 다시 물었다.

[그럼 도신 이외에는 귀 보주의 상대가 될만한 인물은 없단 말이오?]

[아마 그럴 것이오.]

제갈공지의 대답은 확신에 차있는 듯 했으나 황군성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검신의 무공은 내가 오년 안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 정도로만 천하제일이라는 것은 너무 우스운 노릇이다.)

그는 자기의 사부들을 생각했다.

(그분들 중 궁월사부는 이미 검신과 비슷한 정도의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더우기 고금십대천병 중의 하나인 번천도마저도……하나 마왕이란 자에게 결국 패하고 말았다.)

그렇다.

고금십대천병을 지닌 궁월을 패배시킨 자도 있는 것이다.

그 패배의 휴유증으로 인해 궁월의 몸은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곳에서 석화공(石化功)으로 겨우 생명을 보존하고 있다.

황군성이 생각해볼 때 검신의 무공은 아무리 높이 쳐준다 해도 궁월의 위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그의 두번 째 사부인 초사륭,

그 역시 강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나 전륜법왕(轉輪法王)이란 자에게 당했다.

스스로 천하제일임을 자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 도취일 뿐이고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

황군성의 주위에는 많은 고수들이 있었다.

그의 사부들인 한천사방객 뿐만 아니라 문성무존의 거의 모든 사람이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윗대의 조부들은 그 무공의 깊이가 얼마나 될 지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것은 최소한 검신의 경지는 초월하고 있다는 말이된다.

그의 고조부인 황자준 등은 이미 모든 기도가 사라져 버렸고,

그의 오대조인 황필민은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었다.

또한,

문성무존 최고의 어른인 황숭환은 옆에 있을 때도 있는지 없는 지를 느낄 수 없을 만치 그 존재 자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황군성은 검신 전득무에 대한 관심이 팍 식어버렸다.

하지만,

검신 전득무는 어쨌든 대단한 고수가 아닐 수 없다.

최소한 황군성 자기보다는 세단계 이상의 고수인 것이다.

 

제갈공지는 황군성과 임단심을 전무옥(全武玉)에게로 안내했다.

성세를 자랑하고 있는 신검보의 작은 주인답게,

그의 방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확트여 더넓은 거실과 그 안쪽에 자리한 붉은 비단 휘장이 드리워진 침상,

한쪽에 모양을 갖춘 서재와 맞은 편에 놓여진 차탁,

바닥에 깔려진 융단은 그 부드러운 감촉을 신발위로 까지 전해주고,

서가 한쪽에 놓여진 새장에서는 맑은 새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백옥을 통채로 다듬어 만든 침상에 황금색 이불을 덮고서,

이 방의 주인이 멍청한 눈을 하고 드러누워있다.

임단심은 그러한 전무옥을 보자마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저사람 눈빛이 꼭 저랬지.)

그녀는 힐끔 황군성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배시시 웃었다.

황군성은 그녀의 표정을 모른 척하고 있었다.

[임소저께서 잘 살펴봐 주시기 바라오.]

제갈공지는 그녀에게 정중한 어조로 부탁했다.

[저도 단서를 잡아서 감히 누가 나를 사칭했는 알아볼 참이에요.]

임단심은 야무지게 말했다.

그리고,

전무옥의 손목에 그녀의 검지를 살짝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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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無敵十二劍의 美少年 2

 

 

 

개봉성에서 가장 큰 전장인 금종전장은 밤이 되자 그 문을 굳게 닫아놓고 있다.

금종전장의 내실,

두 자루의 황촉불이 방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데,

앉아 있는 황군성과 임단심의 맞은편에 서서 안절부절 못하고 서있는 금의화복의 노인이 있었다.

[노복이야 그저 작은 주인님 분부대로만 따르겠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정주의 순무를 만나겠습니다.]

황군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경우에도 나와의 관계를 밝혀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계시겠지요? 그리고 가문의 금기(禁忌)도……]

[노복이 미쳐죽는다 하더라도 발설하지 못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노복은 감히 주인님과 작은 주인님이 묻지 않으실 때는 기억하지조차 못합니다.]

 

× × ×

 

임단심이 웃으면서 말했다.

[결국 우리는 밖에서 한밤도 지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군요.]

[알아보셨소?]

그녀는 황군성이 창밖을 향해 말하자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때였다.

창가의 탁자 앞에 불빛이 모여들며 타오르는 듯 하더니 사람의 형체를 이루었다.

신검보의 군사 제갈공지였다.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의심을 한 점도 남김없이 지워버렸소이다. 과연 두 분은 지난 삼개월 동안 이곳에서만 사셨더군.]

그는 임단심의 집 근처에 있는 이웃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행적에 대해 물어보았던 것이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이 남문 근처의 주택가에서는 특이함으로 인해 꽤 알려졌기에,

이웃 사람들은 그들의 동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남자는 조금 이상하다는 것과,

꽃같이 아름다운 여자는 남자를 위해 아주 헌신적이라는 것 등……

그리하여,

제갈공지는 그들의 말에 한 점의 거짓도 없다는 것만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황군성의 아내로 삼고 있는 임단심이 신검보의 작은 주인과 혼인하겠다고 따라들어 갔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이다.

임단심은 분위기를 깨뜨리며 들어온 불청객에게 상당히 화가나있었다.

그래서 대뜸 차갑게 쏘아 붙였다.

[그래요? 그럼 건너방에 가서 주무시기나 해요. 다시는 이 방에 들어올 생각 마시고.]

[하하하, 임소저의 말을 어찌 어길 수 있겠소? 하지만 나는 저 방에 가서 잘 수 없는 신세라오.]

팍!

웃음소리를 남기며 제갈공지의 몸은 거품이 터지듯이 터지면서 사라져버렸다.

임단심은 기이한 그의 술법에 놀라워하며 말했다.

[신검보는 그야말로 복마전(伏魔殿)인 모양이에요.]

[환술이었소. 원래 그의 실체(實體)는 이 방안에 들어오지도 않았소.]

황군성은 침상에 몸을 눕히면서 말했다.

[내게 무림이야기나 해주시오. 그리고 당신에 관해서도……]

임단심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당신……이제야 제게 대해 물어보는군요.]

임단심은 쾌활하게 당금 무림의 정세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칠대세력에 대한 말이 거론되고,

구파일방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문득,

가만히 듣고 있던 황군성이 물었다.

[북혈마나 마왕 같은 인물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소?]

임단심은 고개를 갸웃했다.

[북혈마? 마왕? 처음 듣는 이름이에요. 한데 정말 그걸 이름으로 쓰는 자가 있단 말예요?]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무공은 측량할 수 조차 없을 정도요.]

[당신보다 강한가요?]

임단심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황군성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강하고 말고……내 무공은 그야 말로 조족지혈……]

 

× × ×

 

임단심의 집에 있는 다른 방,

탁자에 앉아 일렁이는 촛불아래 검을 닦는 사람이 있다.

오색수실이 흔들리는 보검(寶劍),

서릿발 같은 눈동자,

초생달같이 그어진 눈썹,

주사같이 붉은 입술,

극렬 준미한 얼굴의 미소년,

무적십이검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 자였다.

진지하게 검을 닦고 있는 이 미소년의 앞에는 또한 제갈공지가 서있다.

[제갈공지!]

문득,

그가 제갈공지에게 하대를 하면서 부르는 것이 아닌가?

제갈공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씀하시지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무적십이검 중의 일인(一人)일 뿐인 미소년이 어떻게 신검보의 이인자(二人者)인 제갈공지에게 하대를 하고,

제갈공지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가?

미소년은 손가락으로 검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대가 은밀히 따라 왔다는 것은 그 자식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단 이야기인가?]

[저는 단지 주군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제갈공지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미소년의 추궁하는 듯한 말에 살짝 전득무의 등 뒤로 피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흥!]

미소년이 콧웃음을 쳤다.

[내 동료가 그자의 단 일검에 모두 죽고, 내가 그자의 칼 아래 놓였을 때도 박쥐처럼 숨어있었겠지?]

제갈공지가 미소를 지었다.

[저는 원래 무능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대장부라고 자처할 만한 용기도 없지요……]

일순,

번쩍!

미소년의 보검은 어느새 제갈공지의 심장에 닿아있었다.

[제갈공지! 오늘의 일을 죽도록 후회하게 될거야. 그리고……]

제갈공지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달고 있었다.

[내가 죽기를 바란 그자도……나는, 결코 죽지 않을 테니까.]

미소년은 슬쩍 검을 밀었다.

그러자,

제갈공지의 몸도 마치 검에 붙은 지푸라기마냥 똑같이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진정 무게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같았다.

이맛살을 한번 찌푸린 미소년은 검을 거둬들이고 일어섰다.

제갈공지는 포권을 하면서 말했다.

[편히 쉬시지요.]

미소년은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보았을 때 제갈공지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미소년은 중얼거렸다.

[내 능력으로는 제갈공지를 상대하려고 해도 까마득한데, 언제 전득무 그자를 죽인단 말인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신검보의 무적십이검 중의 일인이었던 자가 보주인 검신 전득무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다니……

한데,

전득무와 제갈공지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하지 않은가?

 

× × ×

 

오늘밤,

하늘에는 별이 유난히도 많이 보인다.

긴 숨한번 쉴 동안에도 몇 개의 별똥별이 떨어지고,

길게 한번 뒤척일 때에는 하늘이 빙글 도는 듯하다.

지금,

제갈공지는 지붕위에 반듯이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고,

물을 바라보면서,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헝클어진 생각의 갈래를 바로 풀어오곤 했다.

한데,

별이 많은 오늘은 이상하게도 실타래들이 풀리지 않는다.

임단심에 대한 사건은 그녀가 단서가 되어준다면 곧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자신이 개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방관할 수도 없는 한가지의 일은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그의 눈앞에 미소년의 얼굴의 떠올랐다.

제갈공지는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자신이 생각해 봤자 풀 수 없는 수수께끼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그 뿐이다……)

문제를 뒷켠으로 밀어버리면 누구나 그렇듯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서늘한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자 제갈공지는 약간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신검보의 이인자란 나 제갈공지가 지붕위에서 파수(把守)나보며 밤을 새워야 하다니……쯥.)

지붕아래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어떤 열락의 달뜬 신음소린 그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었다.

(에잇! 귀를 막아버리자. 도무지 저 두사람은 눈치가 부족한 건가 뻔뻔스러운 건가……)

그는 귀를 꽉 막아버렸다.

 

× × ×

 

제갈공지는 튕기듯이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딱딱히 굳어있었다.

그리고,

지붕으로 연기처럼 스며들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미소년의 방이었다.

훌쩍 내려선 그는 재빨리 침상으로 시선을 던졌다.

방은 어두웠지만 그 정도에 시선을 구애받을 제갈공지가 아니었다.

침상에는 엷은 이불을 불룩해보였다.

그리고, 침상 앞에는 검은 가죽신이 놓여있었다.

제갈공지는 침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슈앙!

침상의 엷은 이불이 그의 손으로 빨려들어왔다.

힘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의 공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수였다.

한데,

이불이 벗겨진 침상에는 방안에 있던 여러 가지 잡동사니가 쌓여져 있었다.

제갈공지는 난감한 기색이었다.

[결국 떠나버렸구나. 휴! 내가 귀만 막지 않았어도……]

미소년은 신발을 벗어놓고 도망쳐버린 것이다.

[이것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아야 할 텐데……]

제갈공지는 불안한 마음으로 중얼거리고 탁자 앞에 앉았다.

시월의 밤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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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無敵十二劍의 美少年 1

 

 

황군성은 정주를 빠져나가자 곧장 개봉을 향하여 달렸다.

그의 품속에서 임단심이 의아한 눈초리로 물었다.

[개봉엔 어째서 다시 가는 거지요?]

[개봉에 아버님의 기업이 있소. 그곳을 찾아가 부탁해야겠소.]

그의 말처럼,

개봉에는 그의 아버지인 황창설의 기업 중의 하나인 금종전장(金鐘錢場)이 있다.

황군성은 이곳에 가서 신분을 밝힌 후, 금종전장의 책임자로 하여금 정주의 순무를 무마시키도록 할 작정인 것이다.

문득,

황군성은 달려가던 발을 멈추고 우뚝 섰다.

그의 사방에서 뻗어오는 가공할 검기가 있었던 것이다.

어둑어둑해오는 저녁 무렵,

그를 포위하고 있는 열두명의 흑의인들,

일견(一見)하기에도 보검인 그들의 장검으로부터 가공할 검기(劍氣)가 뻗어 나오고 있었다.

(대단한 고수들이다. 가히 검의 달인들……)

순간,

그의 품안에서 가는 떨림이 전해왔다.

임단심이 가까스로 말을 내뱉었다.

[저들은 신검보의 무적십이검(無敵十二劍)이에요. 보주인 검신의 직속으로 수라검 모령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인물들……]

그러나,

그녀의 경악과는 달리,

황군성은 여전히 조금의 미동도 없이 태산같이 버티고 서있다.

무적십이검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다가들고,

그때마다 황군성에게는 전해오는 압력은 갑절로 변해갔다.

하나,

무적십이검의 다가오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도 걸음을 떼기가 힘든 것이다.

아무런 자세도 취하고 있지 않은 듯한 황군성의 몸에서 풍겨지는 가공할 힘은 그들의 걸음을 절로 늦추고 있었다.

그들도 한걸음을 떼기위해 이마로 푸른 핏줄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과 함께 살기가 하늘을 찌를 듯 충천하고 있다.

황군성도 무적십이검도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이 긴장이 깨어지는 순간 양측 중에 어느 한쪽은 완전히 전멸하리라는 것을……

무적십이검은 시간이 갈수록 경악하고 있었다.

(이렇게 강한 자가 있다니……주군께 그다지 뒤지는 솜씨가 아니다!)

임단심은 아예 호흡을 정지하고 있었다.

행여 자신의 호흡이 황군성의 집중에 방해라도 줄까싶어 두려웠던 것이다.

서로의 거리가 일장 정도로 가까워지자,

무적십이검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어둠속에서도 그들의 검이 발하는 차가운 광망은 눈을 시리게 하고 있었다.

문득,

무적십이검 중 황군성의 정면에서 세번 째 선 인물이 검의 끝으로 작은 원을 그렸다.

순간,

놀랍게도 그의 검에서 하얀 기류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황군성은 눈도 깜짝이지 않고 그자를 지켜보았다.

보통 키이지만 여자처럼 곱상한 얼굴의 미남자다.

나이도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불과 이십세 정도,

무적십이검 중에서 가장 어려보이는 자였다.

그자가 만들어낸 흰 기류는 차츰 황군성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검강(劍罡)의 초보적인 단계였다.

그 기류가 아주 강하게 뭉치게 되면 바로 검술의 두번째 단계라는 검강이 되는 것이다.

황군성은 그자의 무공이 무적십이검중 발군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흰 기류가 자신의 몸에 충돌하는 순간에 나머지 열한개의 검이 자신과 임단심의 몸을 꿰뚫고 말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심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완벽한 반전은,

언제나 상대방이 완벽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느리게 다가온 흰 기류가 마침내 그의 몸을 둔중하게 강타하는 순간,

미소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나가고,

열한 자루의 검이 순식간에 일장의 거리를 좁히면서 황군성의 몸을 무찔러갔다.

아무런 변식도 없고, 특이한 초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다만 빠르고 정확하며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가공할 힘이 결집되어있고, 검을 통해 단련한 정신력의 총화가 스며들어있었다.

펑!

흰기류가 황군성의 몸에 충돌하며 폭음을 터뜨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황군성의 몸에서 구름같은 붉은 기운이 일어난 것은.

그것은 삽시간에 그의 몸을 가려버리고,

그 속에서 번개불같은 섬광이 일었다.

그리고……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무서운 정적이 흘러갔다.

[으으으……이럴 수가……단 일초에 십일인을 베다니……]

미소년의 가날픈 신음소리가 그 정적을 깼다.

붉은 구름에 휩싸여 있는 황군성의 주위,

쿵쿵!

십일인의 흑의인들이 검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들의 머리가 땅에 닿는 순간,

소리없이 두개골이 열려지며 뇌수가 땅위로 흘러내렸다.

실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미소년의 얼굴에 떠오른 강한 불신감은 공포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채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붉은 빛이 일렁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머리에 와닿는 싸늘한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황군성이 도신이 넓은 번천도를 그의 머리위에 갖다 대고 있는 것이었다.

미소년은 손가락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혼이 빠져나갈 것같은 공포속에서 그의 정신은 얼어붙어버렸다.

갑자기 황군성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붉은 구름이 그의 모공으로 흡수되었다.

여전히 그의 품에 안겨있는 임단심의 얼굴은 그의 승리가 믿어지지 않는 듯 했다.

(세상에……강한 줄은 알았지만 설마……무적십이검을 단 일초에 제압하다니……)

순간,

황군성이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나는 당신들 신검보와 아무 원한이 없다. 무엇 때문에 나를 공격했는가?]

미소년은 흠칫 몸을 떨고 말했다.

[당신은 본 신검보의 외총관을 살해하지 않았소?]

그는 황군성의 몸에서 공포를 느끼게 하던 붉은 구름이 사라지자 어느 정도 공포가 가신 듯 했다.

[그럼 모령산이 나를 공격한 것은 무슨 이유이지요?]

임단심이 비웃음을 담고 물었다.

미소년이 임단심을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그 이유를 모른단 말이요? 뻔뻔스럽기 그지없군.]

임단심이 대노하며 소리쳤다.

[뭐라고? 그 이유야 공격한 네놈이 알지 어떻게 내가 안단 말이냐? 감히 내게 뻔뻔스럽다니 죽고 싶으냐?]

미소년은 입술을 깨물고 독기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빨리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고 싶어도 못 죽을 것이다.]

짝!짝!짝!

그녀는 미소년의 뺨을 연거푸 세대나 때렸다.

미소년은 원래 그녀보다 무공이 훨씬 높았으나 지금은 황군성의 도가 자신의 머리에 닿아있는지라 피하지도 못했다.

뺨이 터지면서 그의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임단심을 쏘아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감히 우리 신검보의 소주(少主)께 독수를 써고도 모른 척하다니 정말 뻔뻔스럽구나.]

임단심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내가 왜?]

미소년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거야 말로 독봉 네가 알고 있어야할 이유가 아니냐?]

임단심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신검보의 소주진 뭔지 본 적도 없어. 그런 자를 내가 어떻게 해칠 수 있단 말이냐?]

황군성이 번천도를 거둬들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이상하군. 한번 자세히 이야기해 보시오. 신검보의 소보주가 언제 독수에 당했단 말이오?]

미소년도 두 사람의 태도에 거짓이 없음을 느끼고 저으기 당황했다.

그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듯했다.

[그럼……대체 누가……아니야……틀림없이 독봉이라고 했어……]

[소보주가 당한 것이 언제요?]

황군성이 다시 물었다.

[그건 불과 사흘 전……]

[그렇다면 이 사람은 아니오. 이 사람은 지난 삼개월 동안 나와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소.]

황군성은 단정을 내리고 임단심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흉수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시오. 만약! 다시 한 번 우리를 건드린다면……당신네 보주를 직접 만나겠소.]

그의 말은 엄중한 경고였다.

미소년은 흠칫 몸을 떨었다.

(저 사내……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정말 우리 신검보의 주춧돌까지 흔들지도 모른다……)

그의 귓속으로 임단심이 조그마한 음성으로 황군성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검보의 보주도 직접 만나서 입씨름하고 싶으셔요?]

황군성은 엷은 미소만 지었다.

그는 지금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생을 즐기고 있었다.

더 이상 삶은 고통이 아닌 것이다.

그때 갑자기,

[임소저, 그리고 대협! 잠시만 멈춰주시겠소?]

어디선가 호소력 있는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황군성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나,

그의 내심은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대단한 고수다. 오장 이내까지 접근하도록 눈치 채지 못했다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나뭇잎이 한 장 팔랑팔랑 날아 내리고 있었다.

한데,

스스슷!

그 나뭇잎이 갑자기 크게 변하면서 사람의 형체로 변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바로 제갈공지였다.

(환술(幻術)을 쓰는 자!)

황군성은 속으로 뇌까렸다.

미소년이 놀란 음성으로 내뱉었다.

[제갈군사……]

제갈공지는 미소년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황군성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나는 신검보의 군사인 제갈공지라는 사람이오. 소협의 명호는……?]

[황군성이오.]

[황소협이었구려. 먼저 본 신검보가 황소협과 임소저께 실수한 점에 대해 사과드리겠소. 하지만 황소협도 내 말을 들어보면 수긍이 가는 바가 있을 것이오.]

제갈공지는 부드러운 화술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얼마 전,

신검보의 작은 주인인 전무옥(全武玉)이 어떤 아름다운 소녀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는 원래 전득무에 의해서 모종의 장소로 보내져 무공을 익혔는데,

그동안 무공을 완성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데,

문제는 바로 그가 데리고 온 아름다운 소녀에게 있었다.

그녀는 독봉 임단심이라고 했었다.

실제로 그녀의 얼굴은 독봉 임단심과 완벽하리만큼 똑같았다.

게다가 음성마저도 조금도 다르지 않았기에,

임단심을 직접 본 사람들조차 그녀 본인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전무옥은 온통 그녀에게 빠져 있었는데,

보주이자 아버지인 전득무에게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말하며 승낙을 구했었다.

그러나,

전득무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다.

성격이 급한 전무옥은 길길이 뛰면서 아버지의 결정을 불복했으나,

그런 작은 일에 눈썹하나 까닥할 전득무가 아니었다.

한데,

다음날 아침,

전무옥의 시녀가 불이나케 달려와 전득무 앞에 엎드렸다.

그녀의 말인즉슨 전무옥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전득무가 가보았을 때,

전무옥은 괴이한 독에 의한 중독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전신의 경혈이 뻗뻗이 굳어가고,

체온이 식어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군사인 제갈공지가 짚이는 데가 있어서 부하들을 시켜 임단심의 거쳐를 조사해보게 했다.

그랬더니 그녀의 거처에는 네 구의 시녀들 시체만 나왔을 뿐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전득무가 자신의 공력으로 전무옥의 몸속에 침투한 독을 몰아냈다.

그러나,

독은 완전히 배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무옥은 깨어날 줄 몰랐다.

어떤 수법도 소용이 없었다.

전무옥은 살아있는 고깃덩어리가 되고 만 것이다.

좋은 말로 하면 잠자는 신검보의 소보주고……

그래서,

급기야 신검보의 고수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독봉 임단심의 종적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독봉 임단심을 찾아서 공격했는데 일이 요상하게 꼬여 이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제갈공지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묘하게 생각되었다.

누가 임단심을 사칭해서 전무옥을 해쳤단 말인가?

(혹시 내게 원한이 있는 자가……?)

임단심에게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귀보의 소주께서 당한 독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놀라지 마시오. 바로 심경신강(心硬身剛)이오.]

제갈공지의 말에 임단심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럴수가……그건 세상에서 오직 나만 알고 있는 독인데……]

심경신강,

그것은 오직 임단심만이 조제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특이한 독이다.

무색무취무미한 이 독에 중독된 자는 먼저 심장이 멎고 전신이 굳어져,

죽은 후 몇 일이 지나도 살이 썩지 않는다.

오직 내장부터 썩어서 칠공으로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본 보에서는 임소저가 틀림없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오. 물론 이제 임소저가 소주께 독수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믿지만 아무래도 이 사건과 임소저는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소.]

제갈공지는 임단심과 황군성에게 간청하는 어조로 말했다.

[만약, 두 분께서 급한 일이 없다면 우리 신검보로 가서 좀 도와주시기 바라는 바이오. 이 사건을 풀자면 임소저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같으니……]

임단심은 황군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태도가 분명했다.

[개봉에서 급히 처리해야할 일이 있소.]

황군성의 말에 제갈공지는 더 들어보지도 않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함께 본 보로 가도록 합시다. 황소협의 볼일이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힘 닫는 대로 도와드리리다.]

아예 거절의 여지를 단절하고 보는 제갈공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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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검신보의 검신 2

 

 

 

처마의 끝이 날아갈 듯 높은 전각들,

딱딱한 분위기,

퉁명스런 표정들……

이곳은 틀림없이 정주의 순무가 있는 곳이다.

관(官)이 아니고서야 어디 이런 고식(姑息)적인 분위기가 흐르겠는가?

이곳의 가장 화려한 대청,

붉은 관복을 입은 노인의 음성이 밖까지 들려나왔다.

[공자께서 진정 영왕전하(永王殿下)의 외손자이시라면, 무슨 증거를 보여 주셔야 할게 아니오.]

고압적인 음성이었다.

소리치고 있는 그의 앞에는 두 남녀가 포박당한 채 앉아있었다.

칠척의 거한과 옷속에 빠져버린 한떨기 꽃같은 미녀,

바로 황군성과 임단심이었다.

황군성은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빌어먹을 순무 늙은이가 도무지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주혜린이고, 주혜린의 아버지가 영왕이니,

그는 자연히 영왕의 외손자가 아닌가?

하나,

지금 그는 그의 말로 인해서 오히려 황족을 사칭했다는 누명까지 뒤집어 쓰게 되었다.

임단심은 도무지 융통성이라고 보이지 않는 황군성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했던 말만 하고 또하고, 순무도 했던 말만 하고 또하고……

그도 그럴 것이 만약 당대의 실권자의 영왕과 조금의 국물이라도 튄 사이라면 그의 모든 것이 곤두박질 칠 수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는 것에도 한도가 있는 것이다.

황군성으로서는 포박당한다는 것도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노릇이었으나,

포박하지 않고는 만나 줄 수 없다는 순무의 강경한 태도에 삼보 양보한 것이었는데,

벌써 한시진이 넘도록 순무와 입다툼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지쳤다.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자,

그를 몇 번 더 살핀 순무가 대뜸 명령을 내렸다.

[이 두 죄인을 뇌옥에 갖다 넣어라.]

기가 막힌 노릇이지만 돌부처같은 황군성을 보면서 임단심은 체념하고 말았다.

 

× × ×

 

덜컹!

철문을 닫고 옥리(獄吏)는 가버렸다.

[그래도 순무가 조금 켕기는 데는 있는 모양이군요. 우릴 같은 곳에 넣어주다니……]

임단심이 배시시 웃으며 황군성에게 말했다.

황군성은 희미하게 웃으며 한곳에 앉아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사실,

그는 자신이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순무와의 억지와 억지의 짜증나기 이를 데 없는 말다툼을 했음에도,

지금은 오히려 속이 후련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속에서 뭔가가 점점 뚜렷하게 형성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산다는 것일까?)

소음곡에서 그는 한번도 누구와 다퉈보거나 싸워보지 않았다.

대가족인 가정에서 보통 그렇듯이 웃사람에 대한 철저한 공경으로 그 가정의 기초는 다져지는 때문이다.

그는 웃어른들에게는 무조건 복종했었고, 동생들은 또한 그의 말에 그렇게 했었다.

도무지 충돌이란 있을 수 없다.

꾸지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별개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싸움, 피를 뿌리는 싸움이든 피곤하기 그지 없는 말다툼이든, 그 속에 이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어떤 즐거움 같은 것을 맛보고 있었다.

소음곡에서 그는,

인생이란 원래 치열한 것이고,

치열하지 못하다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도 치열했다.

영왕의 외손자임을 입증하려는 자기의 절박한 마음과 혹시 공무를 잘못 집행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순무의 마음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일순,

황군성의 마음으로 어떤 번갯불같은 섬광이 지나갔다.

그는 벌떡 일어서며 뇌전을 맞은 듯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듯이 소리쳤다.

[그렇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 이제 빈손으로 시작해서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이루겠다.]

그의 갑작스런 고함소리에 임단심은 깜짝 놀라 귀를 틀어막았다.

(아……이 분은 엄청난 고수였어……)

뇌옥 안에 그의 음성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황군성의 눈은 신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떤 강렬한 의지같은 것이 그의 얼굴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를 지배하고 있던 허무와 고독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얼굴은 환하게 밝아져 빛이 나는 듯 했다.

그렇다.

이제,

황군성은 비로소 관문을 넘은 것이다.

문성무존의 모든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했던 그 관문을……

이것은,

모든 것을 소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시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문득,

놀람과 약간의 두려움을 담은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임단심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거침없이 그녀를 껴안아 올렸다.

그녀의 키가 너무 작기에, 아니 그가 너무 크기에 얼굴을 마주 보자면 그녀를 들어 올리는 것이 편한 때문이다.

그녀의 두발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황군성은 그녀의 붉은 입술을 자신의 두터운 입술로 덮었다.

임단심은 무엇이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자신을 안아주자 두근거림과 함께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입술을 비집고 황군성의 혀가 그녀의 입 깊숙히 파고들어왔다.

서로의 타액이 교환되고,

영혼이 달아나 버릴 것 같은 달콤한 입맞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녀의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황군성의 한손이 그녀의 둔부 전체를 감싸고 쥐어짰다.

짜릿한 느낌이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그녀는 두 팔로 황군성의 목을 꽉 껴안았다.

황군성은 그녀를 안은채 바닥에 몸을 뉘였다.

임단심의 턱은 어떤 기대감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사르락! 사르락!

그녀의 하의가 벗겨지며 한쪽으로 젖혀지고,

황군성의 하의도 발가락에 밀려 한쪽에 쭈그러졌다.

아무것도 깔지 않은 바닥이지만 아무 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그녀의 몸 위로 황군성의 몸이 포개지고,

일순간 불같은 기운이 그녀의 은밀한 곳에서 머리꼭대기까지 뻗어 올라갔다.

그녀는 아득한 심연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황홀한 상태에서 그녀의 정신은 구름 속을 노닐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는 몇 번이나 최고의 희열을 맛보았다.

그리고,

황군성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힘찬 분출이 있었다.

 

× × ×

 

임단심은 황군성의 몸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에게는 가장 편안한 곳이다.

그녀가 황군성의 귀에 대고 감미로운 음성으로 소곤거렸다.

[저는 무조건 당신만을 따를 뿐이에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아무 걱정마셔요.]

[하지만 이번 한 번 만은 아버님 신세를 져야만 하겠소.]

황군성의 눈은 은은한 정을 담고 있었다.

노룡하에서 자신을 구한 후 헌신적으로 모든 것을 바쳐온 여인이다.

산사태에 몸을 맡겨 죽으려고 했음에도 단극린의 혈왕신공으로 말미암아 죽지도 못하고 되살아난 그,

허무와 고독 속에서 유일한 쾌락이 있었다면 임단심과의 정사(情事)뿐이었다.

그것도,

그를 구하기 위해 임단심이 순결을 바침으로써 알게 되었던 것이지만……

어쨌든,

지난 삼개월 동안 그는 모든 것을 임단심에게 의지해 왔었다.

임단심과 그는 한시라도 떨어진 적이 없었고,

기이하게도 그 자신도 그녀와 떨어진 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스스로 죽음에 대한 유혹과 삶에 대한 권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였기에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임단심의 그 현신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입 한번 열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임단심은 단 한번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다.

이제,

황군성으로 부터 모든 것을 전해들은 임단심은 그의 말이 마치 꿈인 듯 느끼고 있었다.

이 세상과는 별세계 인것같은 소음곡 이야기가 그렇고,

그 안에 살고 있다는 삼백세가 넘의 그의 육대조 이야기가 그러하며,

당대의 실권자의 영왕이 그의 외조부라는 사실이 그러했다.

하나,

그녀는 황군성의 말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었다.

 

황군성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 볼 일 다 봤으니 이곳을 빠져나갑시다.]

[이곳은 철옥인데 어떻게……]

그는 임단심의 염려에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커다란 왼손바닥을 펴자 오리알같은 흰 물건이 나타났다.

[…………?]

(설마 저 구슬로 뭘 하겠다는……)

그녀의 설마는 사실이었다.

황군성의 다시 손을 움켜쥐는 순간,

번쩍!

한줄기 섬광이 뻗어 나오며 소리없이 한자 두께의 철문을 베어버렸다.

임단심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황군성의 손에는 날이 넓은 한 자루의 백색 도가 쥐어져 있지 않은가?

번천도였다.

황군성은 번천도를 휘둘러 통로를 낸 후,

얼이 빠져있는 임단심을 품에 안고 유유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많은 옥리들과 포리 및 관군들이 서있었으나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문성무존의 후계자이자 한천사방객의 모든 무공을 한 몸에 익힌 황군성을 그들이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완전히 밖에 나왔을 때는 석양이 지고 있었다.

한데,

십여 명의 인물들이 나는 듯이 빠져나가는 황군성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용히 갈무리된 기도는,

각기 오색 수실이 휘날리는 검을 찬 이들이, 일파 종사의 경지를 뛰어넘는 무공의 소유자임을 말하고 있다.

[역시 우리 짐작이 맞았군, 모령산을 일초에 죽인 인물 따위가 관의 뇌옥에 갖힌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은 소리지.]

[조금 뒤따라가다가 한적한 곳에서 처치하지.]

그들은 황군성이 몸을 날린 곳을 향해 섬전같은 빠르기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섰던 곳에 환상처럼 모습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었다.

신검문의 군사인 제갈공지였다.

[주군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군. 보통 고수가 아니야. 어쩌면 저들이 모두 죽을 지도 모르지……]

그의 몸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안개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한데,

이것은 틀림없는 배교(拜敎)의 환무잠행술(幻霧潛行術)이다.

오백 년 전에 모습을 감춘 배교……

제갈공지는 어떻게 해서 배교의 비전술법(秘傳術法)인 환무잠행술을 알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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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神劍堡의 劍神

 

 

 

정주에서 백여리 떨어진 곳에 있는 오리평(五里平),

두 개의 언덕 사이에 있는 그다지 넓지 않은 평야.

하지만,

이곳에는 적지 않은 한채의 보루(堡壘)가 서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늘어선 전각들……

곳곳에서 새로 건설되고 있는 건물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신검보(神劍堡),

이곳은 바로 당금 무림의 칠대세력 중의 하나인 신검보인 것이다.

한데,

이 신검보의 중앙에는 오행의 방위를 따라 건설된 다섯 개의 구층탑이 있다.

그리고,

각각 구층으로 이루어진 다섯 개의 탑 가운데에는 십이층으로 된 거대한 탑이 있다.

이름하여 검신탑(劍神塔),

바로 신검보의 보주인 검신 전득무(全得武)의 거처다.

검신탑 십 층에 있는 대전(大殿)에는 휘황찬란한 태사의를 중심으로 십여명의 인물들이 늘어서 있다.

태사의에 앉아 있는 오십 줄의 초로인,

일견하기에도 거악같은 위엄이 풍겨난다.

넓게 확 트인 이마,

너무 짙어서 한꺼번에 이어져 버린 일자눈썹,

네모난 각진 턱,

강철보다 강인해 보이는 철완(鐵腕),

짧게 턱을 감싸고 있는 검은 수염은 그의 위엄을 더해주고 있다.

한데,

이 검신 전득무의 바위처럼 굴강한 입이 열리고 있다.

오십줄에 들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윤기있는 목소리……

그가 말하고 있다.

[제갈공지(諸葛共智), 한낱 독봉이란 어린 계집얘에게 외총관이 당했다는 그 말을 본좌가 믿어야 하느냐?]

순간,

그의 우측에 서있던 부드러운 인상의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중년인이 깊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주군! 외총관 모령산을 살해한 인물은 독봉 임단심이 아니라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거한이라고 했습니다.]

[음……그게 그거지. 내 말은 외총관의 무공이 쓸만 했는데 어떻게 이름도 없는 자에게 단숨에 죽였느냐 하는 것이지.]

검신 전득무는 말을 바꾸었다.

검신보의 군사(軍師)인 제갈공지는 이마의 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주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리고 믿어셔야 합니다. 모령산의 부하들이 직접 보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당연히 믿어야지. 본좌는 부하가 직접 본 것도 믿지 않는 그런 좁은 그릇이 아니니까?]

전득무의 말은 점점 꼬이고 있었다.

그만큼 제갈공지는 쩔쩔 매면서 허리를 굽힌다.

전득무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제갈공지에게 물었다.

[한데, 외총관이 무엇때문에 독봉 계집애와 마주쳤지?]

제갈공지의 등줄기는 아예 땀으로 젖어버렸다.

[주……주군께서 그 계집을 처치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래, 그랬지, 본좌가 시킨 일을 본좌가 모를리 있나? 한데……]

전득무의 말이 계속이어지자 제갈공지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뭣 때문에 내가 그 계집애를 죽이라고 했지?]

전득무의 좌우에 도열하고 있는 자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제갈공지는 또 쩔쩔 매면서 대답하고……

[그 계집애가…… 감히…… 소주(少主)께 독……을 썼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갈공지! 그 좀 더듬지 않고 말할 수 없나. 영 듣기가 거북하구만.]

[네……네, 그러……겠습니다.]

여전히 제갈공지는 말을 더듬었다.

강호거파인 신검보의 군사쯤 되는 자라면 말을 더듬을 리 없건만……

문득,

전득무는 좌우에 도열하고 있는 수하들을 보며 말했다.

[자네들은 여기서 뭘하고 있나? 그자를 잡아 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그의 눈길을 받은 자들은 일자로 굳어졌다가 동시에 합창했다.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그들은 잘 훈련된 병사들 처럼 일시에 허리를 굽히고 대전밖으로 미끌어져나갔다.

[쯧쯔……저렇게 뒤퉁스러워서야 원, 무인(武人)은 그저 동작이 빨라야 하는 건데……]

완전히 코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엎드려 버린 제갈공지를 보며 전득무가 말했다.

[자네도 나가보게, 여기 무슨 할일이 있다고 웅크리고 있는가?]

[네? 네……]

제갈공지는 그야말로 사면이라도 받은 듯이 꽁무니가 빠지게 대전을 나가버렸다.

순간,

[아니……생각해 보니 할 일이 있어.]

갑자기 들려온 전득무의 말에 제갈공지는 벼락을 맞은 듯이 멈춰서 버렸다.

전득무는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느릿하게 걸어서 태사의 뒤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들을 따라가. 하지만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구경만 해. 그리고 내일 이때 보고하도록……]

전득무의 음성도, 모습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제갈공지는 완전히 탈진한 모습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서운 분……진정 하늘같은……)

전득무,

일견 허술한듯 말하지만,

그 말들은 지나고 되새겨 보면 되새겨 볼 수록 심오하기 그지 없는 것들이다.

방금 전만 해도,

자신이 했던 말을 상대편의 입을 통해 다시 듣는 것 하나 만으로도 책임을 소재를 완벽하게 했다.

그의 앞에서는 어떤 거짓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리숙하게 내뱉는 그 말들은 상대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그 속에 깊이 감추어진 것을 파내는 가공할 무기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전득무의 부하들은 오직 진실 하나로만 그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속인다는 것은 꿈도꾸지 못할 일이다.

그런 상태인데 역심(易心) 같은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앞에 선 부하들은 전득무에대한 진실한 충성심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는 신검보의 일만오천 수하들을 한손아귀에 넣고 뒤흔드는 신(神)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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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毒鳳 任丹心 2

 

 

 

임단심은 황군성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객점에 다다를 때 까지 시종 그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그들이 객점의 문앞에 다가가자 흑의에 검을찬 십여명의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임단심은 일이 쉽지 않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들은 복장으로 보아 모두 신검보의 고수들인 듯 했다.

임단심을 발견하자 마자 살기(殺氣)를 드러내며 그들은 검을 뽑았다.

챙!

챙!

[독봉 임단심!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

한기가 풀풀날리는 음성으로 제일 앞쪽에 선 강팍한 인상의 중년인이 말했다.

염소수염을 한 그자는 전신에 살이라고는 한점도 없어 마치 해골같은 느낌을 주었다.

임단심은 차갑게 내뱉었다.

[신검보의 외총관(外總管)인 수라검(修羅劍) 모령산(毛岺山)이로군.]

[흥! 눈이 멀지는 않았구나. 하나, 여우같은 네년도 오늘은 여기 뼈를 묻고 말것이다.]

모령산은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군. 어째서 신검보의 졸개들이 본녀를 이처럼 귀찮게 구는지……]

임단심의 말에 모령산의 얼굴은 분노로 범벅이 되었다.

 

그가 속해있는 신검보,

당금 강호의 최강세력인 일궁일성이보삼장(一宮一城二堡三莊) 중 당당히 이보에 속하는 세력이다.

그곳의 외총관이라고 하면 강호에서는 군소문파의 장문인과 버금가는 대접을 받고 있다.

한데도,

임단심이 그녀를 마치 남의 집을 지키는 강아지보듯 한 것이니 그가 미칠 듯이 분노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한데,

일궁일성이보삼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일궁 현현궁(玄玄宮),

이것이 어디에 있는 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림에 있는 칠십여개의 방파가 현현궁에 복종하고 있다.

그곳에서 나온 사자(使者)들은 때때로 복종하지 않는 방파들을 징벌하기도 하는데,

그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단 두명의 사자만으로도 이백여명의 고수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고,

그곳에 단 하나의 생명도 남겨놓지 않는다.

그러나,

이 현현궁에 복종하는 문파들은 현현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그 지역에서 강대문파로 성장해버린다.

심지어 스스로 현현궁에 복종하기를 원하는 문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천하각지에 칠십여개의 방파를 두고 있는 현현궁이야 말로 당금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성(一城) 취옥성(翠玉城),

황산(黃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이 성은 세가지의 병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일천명의 고수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름하여 삼절일천군단(三絶一千軍團)이라 한다.

이 삼절일천군단과 직접 맞부딪힐 수 있는 세력은 강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취옥성이 당당히 천하의 칠대강파 중의 하나로 들게 된 것은 바로 이들의 활약때문이었다.

사십여년 전,

이들은 등장하자마자 흑도의 십이개 연합세력이었던 혈인방(血人幇)을 단숨에 궤멸시켜버렸었다.

당시만 해도 혈인방이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꼽히는 거대세력이었던 만큼,

그 여파는 대단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혈인방 팔천 고수들을 몰살시키면서도, 삼절일천군단은 단 한사람의 희생자도 없었다는 사실이 모든 강호인들을 경악시켰었다.

이때문에 천하의 무림인들은 취옥성이야 말로 최강의 전투력을 지닌 단체로 인정하는 데 인색함이 없는 것이다.

 

이보(二堡),

이보는 기이하게도 검과 도를 숭상하는 문파를 말한다.

신검보(神劒堡)와 신도보(神刀堡),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오래전 부터 간간히 이름이 전해지던 군소방파중의 하나였다.

한데,

어느날 갑자기 그들은 문호를 활짝열고 많은 제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그동안 보주들에게만 전해지던 검법과 도법을 문하제자 모두에게 익히게 했다.

하지만,

이들이 결정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그 주인들 때문이었다.

신검보와 신도보는 이상할 정도의 적대감을 갖고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두 세력의 우두머리인 보주들은 해마다 한번씩 장소를 정해놓고 결투를 벌였다.

그런데,

공개된 그 결투장에서 두사람이 보여준 대결은 세인의 상상을 완전히 초월해 버린 것이었다.

해마다 무승부로 끝나는 대결이기는 하지만 결투장이 정해지면 무수한 무림인들이 그들 두 절세고수의 결투를 구경하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들의 검술과 도법은 정말 검신과 도신이라고 이름할 만한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검술, 도법을 본 자가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당연히 당금 무림의 최고 검신이 있는 신검보와 최고의 도신이 있는 신도보가 당당히 칠대세력에 들게된 것이다.

그리고 무수한 검과 도의 추종자들이 그들의 휘하에 몰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삼장(三莊),

바로 화운장(花雲莊), 귀왕장(鬼王莊), 천음장(天音莊), 이 세 세력을 일컫는 말이다.

기이하게도 이들 삼장에 대해서 밖으로 특별히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삼장은 모두 세인의 접근을 절대로 금하는 금지(禁地)인 것이다.

이곳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엇이든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한 사람의 고수가 가면 고수가 사라져 버리고,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 일개 방파가 가면 그 방파가 사라져 버린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않고 그곳에 가기만 하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무림의 많은 열혈남아들이 그 비밀을 풀기위해 삼장으로 달려갔으나,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삼장은 각 장(莊)의 이름으로된 첩지(帖紙)를 무림의 어떤 고수들에게 뛰우는데, 그것은 말그대로 최명부(催命符)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첩지를 받은 자는 어느 곳에 숨더라도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해 세인들은 삼장을 공포로 당금세력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 일곱세력 중,

우두머리가 밝혀져 있는 것은 바로 이보(二堡) 뿐이었다.

그들은 결투중에 드러낸 무공으로 말미암아 은연중에 천하제일의 고수로 추앙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모령산은 바로 그러한 세력 중의 하나인 신검보의 외총관인 것이다.

자연 무공에 있어서 남다른 바가 있다.

원래 자신의 검술이었던 수라검에다가 신검보에서 배운 새로 익힌 검술을 혼합하여 그만의 독특한 검술을 만들어냈다.

무수한 검호(劍豪)들이 득실거리는 신검보에서 당당히 외총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때문이었다.

이순간,

분기탱천한 그는 자신의 체면을 돌보지 않고 욕을 퍼부었다.

[이 가랑이를 찢어죽일 년! 네년을 사로잡아 강간한 후에 죽이겠다.]

원래 흑도 출신인지라 입이 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모령산이다.

비록 신검보에 들어갔지만 개꼬리 삼년 묵는다고 족제비꼬리가 될리 없다.

임단심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매섭게 치켜올라갔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아무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개수작 마라!]

번󰠏󰠏󰠏󰠏󰠏󰠏쩍!

모령산이 수라검을 펼쳐서 십여 개의 환영을 만들어냈다.

쉬쉭!

그의 수라검은 임단심의 팔대요혈을 한꺼번에 노리고 있었다.

임단심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예의 기이한 보법을 펼쳐 모령산의 뒤로 돌아갔다.

모령산이 콧웃음쳤다.

[겨우 칠현천기보(七玄天機步) 따위를 믿고 날뛰다니……]

그는 몸도 돌리지 않은채 뒤를 향해 검을 펼쳤다.

기이하게도 모령산의 검은 여전히 임단심의 팔대요혈을 노린 채 뻗어나가고 있었다.

마치 앞을 향해 검법을 펼쳤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 작자가 과연 대단하구나!)

임단심은 식은 땀을 흘리며 재빨리 칠현천기보를 밟아 물러섰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그녀의 옷자락이 길게 찢어지고 말았다.

찌익󰠏󰠏󰠏󰠏󰠏!

어깨에서 앞가슴까지 베어져 순간적으로 그녀의 속살이 드러났다.

(헉!)

그녀는 내심 다급성을 발했으나 손으로 가릴 새도 없었다.

여전히 몸을 돌리지 않은 채 등으로 그를 쫓아오며 모령산이 수라검으로 찔러오기 때문이다.

그녀의 빠른 보법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속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심한 수치감과 함께 그녀는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검보의 외총관의 솜씨는 그녀의 상상을 절(切)한 것이었다.

찰라의 순간에 다시 모령산의 검이 그녀의 옆구리를 스치며 피가 배여나오게 했다.

고통보다 앞서서 임단심은 식은땀으로 속옷이 축축히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이자는 내공이 깊어서 독도 금방 통하지 않는구나. 오늘은 득보다 실이 많은 날인 모양이다……)

그녀는 사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흔적없는 독을 펼쳐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술이 있다.

지금 모령산의 몸을 한바퀴 돌면서 까지 독공을 펼쳤음에도 모령산은 끄덕도 하지않고 그를 공격해오고 있다.

임단심은 다시 순식간에 세군데의 검상을 입었다.

붉은 옷에 흘린 피는 그다지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창백해진 안색은 붉은 옷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황군성을 데리고 그들의 손을 빠져나갈 자신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독을 뿌리면서 모령산이 쓰러지기만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하고 있었다.

한데,

그녀의 애절한 모습을 지켜보는 황군성의 눈빛이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그때,

신검보의 늘어서 있는 고수들 중에서 몇 명이 아무 비명도 없이 뒤로 쓰러져 버렸다.

그자들을 필두로 해서 신검보의 고수들은 앞다투어 뒤로 넘어가버렸다.

멀쩡히 서있는 자들은 불과 두명 뿐이었다.

[간악한 년! 죽여버리겠다! 우아……]

모령산은 부하들의 죽음에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이십칠검을 펼쳤다.

하얀 백색 검기가 임단심의 몸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듯 몰려갔다.

한데,

임단심은 모령산의 검은 본 척도 않고 고개를 돌려 황군성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실력으로서는 모령산의 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황군성의 모습이나마 마음에 담아두고자 한 것이다.

그녀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황군성을 향해 처연하게 웃어보였다.

바로 그순간,

그녀는 황군성의 눈에서 엄청난 신광이 폭사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캉!

[으악!]

어떻게 된 상황인지도 모른 채,

모령산은 산산조각나 자신의 몸에 박히는 수라검을 느끼면서 눈을 부릅뜨고 쓰러졌다.

쿵!

임단심은 눈앞의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앞을 막아서 있는 칠척거구의 사나이,

그는 바로 자신의 정인(情人)이 아닌가?

객점앞으로는 구경꾼들이 몰려나와 있었는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황군성이 수법을 펼치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모령산이 전신에 검의 파편을 박고 죽어갈 때,

임단심 앞에 우뚝 나타난 그를 보았을 뿐이다.

남아있던 두 명의 신검보 고수는 그의 가공할 신위에 비척비척 물러섰다.

덩치가 크고 잘생기기만 할뿐 흐릿한 눈동자의 바보같던 사나이가 완연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탑탁천왕이 따로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칠척의 거구에서 뿜어지는 위압감만으로도 그들의 숨을 멈춰놓을 것만 같았다.

임단심의 그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그녀의 볼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죽음의 순간에서 자신을 구해준 인물이 세 달 전에 자신이 노룡하(怒龍河)에서 건져올렸던 정인이라니……

황군성은 자신의 앞에서 핏물을 쏟으며 죽어있는 모령산을 보자,

자신의 마음을 덮고 있던 무엇인가가 스스히 걷히고 있음을 느꼈다.

그가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칼끝에 인생을 건다……바로 이런 것이었나……]

임단심은 그의 등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당신……당신은 말도 할 줄 아는군요.]

남이 들으면 어처구니 없는 것 같겠지만,

임단심에게는 어쩌면 자신이 살았다는 것보다 황군성이 말을 했다는 것이 더 큰 의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황군성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듯,

여전히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서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다니……나는 살인마란 말인가?]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다. 그럴리가 없다. 나는 문성무존의 후계자가 아닌가? 한데……한데……이 자를 죽일 때 나는 내 인생에서 최고로 통쾌함을 느꼈다. 왜그럴까? 왜?]

주변에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던 자들은 슬금슬금 피하고 있었다.

두 명의 신검보 고수는 어느 틈에 사라져 버리고 흔적도 없다.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 임단심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이자가 죽어 마땅한 자였기 때문이예요. 죽어 마땅한 자를 죽였기에 통쾌했던 거구요.]

황군성의 큰 몸이 흠칫 떨렸다.

[그럼 왜? 이자가 죽어마땅한 자일까?]

그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말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임단심에게 하는 말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임단심은 여전히 그의 허리를 껴안은 채 다시 대답했다.

[나는 당신의 여자잖아요. 그런 저를 모욕하고 죽이려한 자니까 당연히 죽어마땅하죠.]

[그런가……? 겨우 그정도의 이치에 불과한 것이었나……?]

황군성은 몸을 돌려 그녀를 안았다.

[인생이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야만 하는 겨우 그런 것이었나?]

이말은 임단심 자신이 말한 것과는 엉뚱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황군성의 몸에서 뭔가 새로운 활력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고 큰 희열을 느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포옹하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한쪽에 쓰러져 있는 십여명의 흑의인들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한데,

그순간,

여덟 명의 인물이 그들의 주위로 날아내리며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살인자는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황군성은 아무 반응이 없었으나 임단심은 내심 아차싶었다.

버젓이 대로변에서 살인을 하고도 그대로 있다니 평소같으면 그녀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과연,

그들을 포위한 인물들은 정주(鄭州) 관아(官衙)에 소속된 포리(捕吏)들 이었다.

한손에는 검을 뽑아들고 다른 손에는 포승(捕繩)을 쥐고 있었다.

임단심은 황군성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빨리 달아나야 해요. 관군에게 쫓기면 강호에서 활동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녀는 재빨리 황군성의 손을 잡고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녀는 맥없이 그자리에 뚝 떨어지고 말았다.

황군성이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미동도 하지 않은 것이다.

[당신……왜……?]

하지만,

황군성은 그녀가 아닌 포리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위맹한 중년인을 향해서 말했다.

[당신이 책임자요?]

그의 몸에서는 태산같은 위엄과 기품이 넘쳐흘렀다.

포리들의 우두머리는 구조룡(九鳥龍) 남호풍(藍虎風)이란 사나이다.

그는 황군성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함부로 대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한 걸음 나가서며 대답하려는데,

불쑥 그의 옆에서 한사람이 호통을 쳤다.

[이 살인자! 어서 오라를 받지않고 무슨 잡소리냐?]

구조룡 남호풍이 말릴 사이도 없었다.

그는 내심 아차 싶었으나 내뱉은 말을 돌이킬 수 있는 재주는 없었다.

황급히 황군성의 얼굴을 살피니,

그의 얼굴에 은은한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리친 자도 서릿발 같은 그의 눈빛을 대하자 밀납처럼 얼굴이 창백해지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소리치는 것이었다.

[네 이놈! 강호의 무뢰배가 감히 눈빛으로 관인을 위협하겠다는 것이냐? 황제폐하의 팔십만 어림군이 두렵지도 않단 말이냐?]

이 자는 평소 만용을 잘 부리고 허풍을 잘 뜨는 소화룡(蘇火龍)이란 자로 무공은 별볼일 없는 자였다.

다수의 힘을 믿고 소수를 핍박하고, 강자를 등에 업고 약자를 호령하며, 가난한 자를 협박하여 씨나락 뺏어가는 그런 소인배의 표본이라면 바로 소화룡이자를 일컫는 다고 할 수 있다.

황군성은 더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구조룡 남호풍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순무(巡武)에게 나를 인도하시오. 그에게로 직접가서 해명하도록 하겠소.]

한데,

소화룡 이자는 황군성이 더이상 자기에게 따지려하지 않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그가 황제의 팔십만 어림군에 겁을 집어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호통을 쳤다.

[너 따위 잡종이 어떻게 감히 지고하신 순무나으리를 뵙는단 말이냐?]

남호풍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소리를 질렀다.

[소화룡! 한마디만 더하면 네 주둥이를 찢어놓고 말겠다.]

소화룡은 남호풍의 살기등등한 눈초리를 대하자 강아지처럼 슬그머니 꼬리를 말았다.

한편,

황군성 옆에 붙어있는 임단심은 조바심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가 입은 세 군데의 검상은 외상에 불과한 정도이니 아무렇지 않다고 하지만,

앞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옷이 베어졌기에,

그녀는 한쪽손으로 옷자락을 쥐고 가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순무를 감히 만날 만한 입장이 못되었다.

그녀가 죽인 인물들의 숫자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 중에서는 물론 반드시 죽어야할 악인도 있었지만,

그녀의 기분을 거스른 때문에 죽은 자들도 다수있었던 것이다.

관부에도 고수들이 적지 않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만약,

끈질긴 사냥개같은 관부의 고수들에게 쫓긴다면 그야말로 여간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군성은 순무를 만나려고만 하고 있었다.

초조한 눈으로 그녀가 황군성을 바라보자,

그는 장삼을 벗어서 그녀에게 주었다.

커다란 장삼은 그녀를 완전히 묻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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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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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毒鳳 任丹心

 

 

밤이면 나는 내 머리의 창문을 열고 달빛이 새어드는 작은 구멍을 통해 지붕위에 올라간다.

바람을 맞으면 바람이 되어 내몸은 골목길을 돌아가고,

불이 켜진 집들 위로 날아갈때는 내 몸을 눕힌다.

밤의 소음은 은밀하고,

은밀한 소음은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모두 내 귓속으로 몰려든다.

내귀로 들어오는 거친 숨소리, 몸 전체를 뒤틀고 울리며 발하는 비음(鼻音)들……

나의 몸은 어느새 한줌의 불꽃으로 타버리고 만다.

재가 되었나 했을 때는 한줄기 차가운 이성에 의해서 숲으로 들고 있다.

푸른 냄새가 폐부에 가득차고 달빛 그늘에 나는 부끄러움으로 몸을 숨긴다.

나는 알몸,

스치는 내 몸을 스치는 풀잎에 은밀한 쾌감을 느끼면서, 가만히 드러누우면 그곳은 나의 침실.

문득 하늘이 아득히 멀어지고 원죄의 업을 벗지 못한채 추락한다.

허공에서 내몸은 주발의 주사위보다 더 많이 뒤집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알은 세상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만다.

새로운 질서가 내눈에도 찾아오고,

나는 다소곳한 자태로 기와집 지붕위에 앉아있다.

산을 넘어가기 전의 달은 온화한 어둠에 차가운 빛을 던지고,

월광에 내리쪼인 나는 전율에 몸을 떤다.

내 몸을 투과한 달빛은 왜 이리도 검은가?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나는 내 속으로 도망치고 만다.

날이 밝아올 때,

나의 창문은 닫히고,

내가 몸을 일으킬 때,

다른 얼굴을 한 나 임단심(任丹心)이 이 낯선 사내 품에 안겨 있음을 느낀다.

 

임단심(任丹心),

그녀는 일어나 앉으면서 머리를 틀어올렸다.

벌써 세달 째,

그녀가 몸을 일으킬 때마다 그녀의 옆에는 칠척의 건장한 사나이가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있다.

그리고, 그녀의 몸도 역시 실오라기하나 걸치고 있지 않다.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가날픈 얼굴은 늘 분을 바른듯 홍조를 띠고 있으며,

초생달 같은 눈썹은 그린 듯 아름답다.

큰 눈에 잔잔히 떨리는 긴 속눈썹은 사내의 심금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매혹적이고,

작고 붉은 입술은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뒷쪽으로 바짝 올려붙은 두 귀는 시원한 느낌을 주고,

뾰송뾰송한 솜털은 그녀를 도화꽃인양 착각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긴 희고 긴 목과 부드러운 어깨선은 너무도 가녀려서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고,

알맞게 솟아있는 두 가슴은 그녀의 자존심을 대변하고 있다.

그녀는 이불로 몸을 가린채 침상가에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을 챙겼다.

이제 사내의 옷을 챙겨놀 차례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는 흰 장삼을 침상가에 챙겨놓았다.

아침을 준비한 후에 그를 깨워 입힐 것이다.

드르륵!

임단심은 창문을 열었다.

개봉(開封) 성 전체를 내리 비치는 아침햇살은 그녀의 침실로도 어김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부신 햇살,

언젠가 부터 찾아온 두려움 속의 불안한 행복,

이곳은 개봉의 남문 근처에 있는 한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집이었다.

 

× × ×

 

비춰들어오는 온묘로운 햇살은 식탁앞에 이르자 죽어버렸다.

달그락, 달그락……

그 식탁에는 임단심과 백의를 걸친 한 사나이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아니,

임단심 그녀가 사나이에게 억지로 아침을 먹이고 있었다.

한데,

이 사나이,

임단심 보다도 머리 두개는 더 클 것같은 칠척의 거한,

그의 전신에서는 말할 수 없는 권태와 허무와 고독이 흐르고 있었다.

싱그러운 아침햇살마저 찬란하게 비치지 못할 정도의 그것이……

죽음보다 더 깊은 허무와 고독……

그렇다.

이것은 바로 그만의 것이다.

산사태에 휘말려사라진 황군성, 오직 그 만의 것이다.

과연,

얼굴에 난 수많은 작은 상채기에도 불구하고,

그 사나이는 틀림없는 황군성이었다.

상채기들이 절세미남인 그의 용모를 조금도 가려주지 못하고 있다.

한데……

그가 어떻게 해서 이곳에 와 있단 말인가?

임단심이라는 여인과 몸을 섞는 사이가 되어서……

문득,

황군성이 손을 저으며 임단심의 젓가락을 거절했다.

그리고,

침상으로 가서 앉은 채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임단심이 애처로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뭘 원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않돼요.]

그녀는 젓가락을 놓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치 어린 아기를 안아 주듯이 황군성을 안으며 속삭였다.

[우리 오늘은 남산(南山)에 가보기로 해요. 기분이 한결 좋아질 거예요.]

남산은 개봉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높지 않은 산이다.

임단심의 집이 성의 남쪽인지라 남산은 바로 지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도 황군성은 아무 표정도 대답도 없다.

그러다 문득,

그를 잡아 일으키려는 임단심의 머리를 크다란 두손으로 쥐며 그녀의 붉은 입술에 얼굴을 덮었다.

화끈한 열기가 임단심의 입으로 전해지고,

그녀는 다시금 그 열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온 몸이 허공에 떠오른 듯 황홀해지며 역설적으로 아득한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녀는 그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었다.

황군성은 그녀를 가볍게 안아 침상에 눕혔고,

그녀는 어느새 그의 목을 꽉 틀어안고 있었다.

이내 옷자락들이 침상가로 떨어져 내리고,

그녀는 누운채로 알몸이 되어버렸다.

언제나 이랬다.

옷을 벗고 누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침상가로 다가올 때부터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치우고 마는 성미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않았던가?

남자의 흰 장삼도 침상에서 흘러내리고,

칠척거한의 탄탄한 육체가 조그마한 임단심의 몸위에 포개졌다.

임단심은 숨이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이 남자는 자신의 생각은 조금도 해주지 않는다.

거칠게 달려들어 마음끝 육체를 유린한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들어버린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머리가 뻥뚫리는 듯한 쾌락을 느끼는 임단심이었다.

화끈한 불덩어리가 그녀의 몸을 꿰뚫으면서,

벼락맞은 듯이 그녀는 전율했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충격이요 희열이다.

고통도 있지만 그것은 크나큰 희열속으로 묻혀버리고 만다.

황군성의 움직임에 따라서 그녀의 붉은 입술은 크게 벌어지고,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희열 속에서 달뜬 신음을 내뱉는다.

달콤한 그녀의 숨결은 황군성의 욕정을 더욱 부채질하고,

뱀처럼 휘감는 흰 팔과 다리는 황군성을 그녀 육체의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몸에서 흘러내린 땀으로 침상은 눅눅히 젖어들고,

전신이 뻗뻗해지는 엄청난 희열속에 그녀는 잠시 정신을 잃고 만다.

이윽고,

흥분이 가라앉는 긴 한숨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으며 얼굴에 홍조를 띤다.

이제 황군성의 몸이 무거움을 느끼고 두 팔로 그를 옆으로 밀친다.

그리고 임단심은 황군성의 배에 올라 그의 귀를 살짝 깨문 후 폴짝 뛰어내린다.

햇살을 받은 나신은 눈부시게 찬란하고,

한조각 한조각 옷이 걸쳐질 때마다 그녀는 요부에서 정숙한 숙녀로 탈바꿈한다.

황군성을 일으켜 옷을 입힌 후,

얼굴을 붉히며 침상에서 사랑의 흔적을 지운다.

몸은 날아갈 듯이 상쾌하다.

이것이……

남자가 여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라는 것을 그녀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비록 황군성이 지금까지 그녀에게 한 말은 한마디도 없지만,

그녀는 황군성이 자기를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믿고 있다.

 

황군성은 임단심의 손에 이끌려 집밖으로 갔다.

임단심은 절대로 그를 두고서는 외출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에게서 떨어지는 법이 없다.

개봉의 이 주택가에서는 그들은 이미 꽤 알려진 얼굴이다.

칠척이나 되는 거구의 미남청년이 세상에 더물기도 하거니와, 아름답기 그지없는 임단심과 부부로서 늘 함께 다니기 때문에 더욱 유명했다.

하지만,

황군성의 눈동자에는 힘이없고,

언제나 깊이 침잠하여 있다는 것은 임단심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늘 밝고 쾌활하게 움직이며 그를 기뻐게 하려고 하지만 황군성은 지금까지 한번도 웃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임단심은 그를 데리고 주루로 가서 술도 마시고, 사람들이 많은 시장이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기분을 전환시켜 줄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황군성 혼자서는 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임단심의 손길을 마다하지도 않지만, 요구하지도 않는다.

오직,

요구하는 것은 그녀와의 관계뿐이다.

 

개봉 남산은 경치가 아기자기하다.

그리고 정상에서는 개봉 전체가 잘내려다 보인다.

임단심은 황군성을 데리고 남산 정상에 올랐다.

이곳에 오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 마다 그들을 유심히 보았었다.

한눈에도 군계일학처럼 보이는 한쌍이기 때문이다.

그럴때 마다 임단심은 은근히 기뻤다.

자기의 남자에 대한 자긍심인 것이다.

임단심의 발걸음은 아주 가볍고 표홀하다.

보폭이 두배나 큰 황군성에게 조금도 뒤쳐지지 않았다.

정상에는 대개의 산들이 그렇듯이 이곳 남산에도 많은 너럭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임단심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을 하나 찾아서 올라갔다.

산위의 선선한 바람이 옷자락을 날리게 하고,

붉은 옷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바위위에 핀 한떨기 철쭉꽃 같았다.

황군성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 그녀의 양볼에는 옴폭한 보조개가 생겼다.

그때,

임단심이 만난 이후 처음으로 황군성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회의와 고독에 젖어있던 눈이 차차 맑아지며 깨끗한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임단심은 몸이 떨릴 정도로 감격했다.

[당신……당신……]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황군성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날려 황군성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 × ×

 

나는 이 사람과 함께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유람해야겠다.

이 사람을 만난 후 강호에서의 모든 은원을 잊고자 했으나,

이 사람은 한곳에 묶여 있어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낮,

남산에 올랐을 때 나를 보던 그 눈빛이 지금도 선연하다.

나는 처음으로 내 몸을 치장한 보람을 느꼈다.

나는 이 사람에게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이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그 지독한 무엇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

언제부턴가 이 사람은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

한순간도 이 사람없는 나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남자 알기를 개울의 피래미보다 하찮게 여기던 나 독봉(毒鳳) 임단심이……

 

× × ×

 

다각다각다각󰠏󰠏󰠏󰠏󰠏󰠏!

한대의 마차가 관도를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 마차안에는 백의를 입은 칠척의 거한과 홍의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타고있었다.

황군성과 임단심이었다.

황군성은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임단심은 얼굴에 연방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가 황군성에게 말했다.

[당신과 함께 강호를 다니게 되다니……꿈만 같아요.]

[…………]

[우리 늙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천하를 유람하며 다녀요.]

황군성의 대답을 기대하고 하는 말이 아닌지라 그녀는 계속 혼자서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음……우리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당신은 아버지가 되고……]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흐흐흐흐……]

돌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침각박의 스산한 괴소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마차의 전후 좌우를 둘러싸며 네 명의 흑의인들이 나타났다.

마차는 멈춰서고, 어찌된 영문인지 마부는 아무기척이 없었다.

임단심의 얼굴표정이 굳어졌다.

눈썹이 상큼 치켜올라가며 살기가 피어올랐다.

[누구냐?]

그녀가 황군성의 곁에 바짝 붙으며 앙칼지게 호통쳤다.

순간,

번쩍!

마차의 포장을 뚫고 대답대신 두자루의 검이 벼락처럼 찔러왔다.

임단심은 그 빠름에 경악하면서 태산같은 몸집의 황군성을 안고 마차의 지붕을 뚫고 솟아올랐다.

거구의 황군성을 마치 공깃돌처럼 가볍게 안아들은 그녀의 무공은 진정 놀라운 바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마차의 지붕 위로는 두 사람의 흑의인이 신검합일의 자세로 공격해오고 있었다.

임단심은 경악하며 소리쳤다.

[일검추혼세(一劒追魂勢)!]

흑의인의 검들은 빗살같은 기세로 그녀를 노리고 쏘아오고 있었다.

모두가 임단심 그녀만을 노릴 뿐 황군성에게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듯했다.

임단심의 얼굴에 서릿발같은 한기가 일었다.

[좋다! 신검보(神劒堡)와 직접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하더라도 네놈들을 없애버리고 말겠다.]

그녀의 몸은 황군성을 안은채 나비처럼 날아내리며 두자루의 검을 피했다.

[광풍진천세(狂風震天勢)!]

땅에서 기다리던 두사람이 사나운 검풍을 휘몰아치면서 공격해왔다.

그러나,

임단심은 기이한 보법(步法)을 밟으며 한쪽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그 순간,

쿵!쿵!

허공에서 그녀에게 일검추혼세를 펼쳤던 두 흑의인이 마치 바위덩어리처럼 굳어진 채 떨어졌다.

그들은 서로의 가슴에 검을 꽂은 채 일어날 줄 몰랐다.

[이……간악한 계집……]

나머지 두 사람이 욕을 하며 다시 그녀를 향해 공격해왔다.

하지만,

임단심은 냉소를 지으며 전혀 피하거나 응수하지 않았다.

두자루의 검은 그녀의 목과 아랫배를 찔러오고 있었으나 그녀는 눈썹도 깜짝이지 않았다.

한데,

그녀의 앞 한척까지 다가온 검은 힘없이 밑으로 쳐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두 흑의인의 얼굴이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더니 눈을 까뒤집은채 죽고 말았다.

임단심은 손한번 써는 것 같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네명의 고수가 죽고 만 것이다.

임단심은 네 구의 시체들을 향해서 지풍을 날렸다.

시체들은 금방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한줌의 핏물로 변해 땅속으로 스며들어버렸다.

네 자루의 주인잃은 청강검(靑鋼劍)만이 남아있다.

물론 이것도 얼마후 누군가 집어가버리고 말 것이지만……

임단심이 마차를 보니 끔찍 스러울 정도였다.

말은 일검에 반듯하게 목이 잘렸는데도 여전히 네발로 버티고 서있었다.

그리고 마부의 목에는 한 자루의 단검이 깊숙히 박혀있었다.

말도 마부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던 것이다.

그녀는 마차 안에서 보자기에 쌓인 조그마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이 그녀의 전 재산인 것이다.

비록 부피는 작지만 금원보가 가득 들었기 때문에 상당한 무게였다.

황군성은 세워논 기둥인 듯이 그녀의 옆에 무표정하게 서있다.

금원보를 챙겨들면서 그녀는 속으로 강한 의문을 느꼈다.

(신검보에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 무엇때문에 그들이 다짜고짜 나를 공격했을까?)

물어보지도 않고 모두 죽여버린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그들은 시체마저 녹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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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天下大亂의 兆朕은 泰山에서부터 豫言되었다.

 

 

 

야조(夜鳥)가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구구구!

밤비둘기의 울음소리는 마치 산의 호곡(呼哭)같다.

휘이이익!

긴 바람소리를 남기며,

냉천삭,

그는 이를 악물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중상을 입은 단극린이 팔없는 소매에 말려있다.

단극린은 혼미한 중에도 계속 혈왕신공을 운용하고 있다.

혈왕신공이 만들어낸 붉은 안개는 달려가는 냉천삭이 마치 한 조각 붉은 구름처럼 보이게 했다.

(으……가공할 내공……이었다. 가운데의 그 노인……북혈마(北血魔)보다 약하지 않은 무공이었다.)

냉천삭은 황자준의 장력을 직접 맞받았었다.

내공이 딸리는 그로서는 필연적으로 깊은 내상을 입었다.

만약 상대방이 자신의 빙백강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냉천삭은 지금쯤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의 품에 있는 단극린,

그의 상처는 더욱 심했다.

금강불괴를 이룬다는 혈왕신공을 육성까지 연성한 단극린은 우측의 노인이 펼친 검강 단 한수에 가슴이 한치 깊이로 갈라지는 중상을 입고 말았다.

더구나 검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몸으로 침투하여 깊은 내상마저 입었다.

(세상에 그런 고수들이 있었다니……)

냉천삭은 자신들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하나,

이 개월전에 이곳 태산을 떠나 운남에 있는 창산(蒼山)으로 간 서한객 초사륭을 찾아가 만나는 것 뿐이다.

초사륭은 강하다.

비록 동한객 궁월만큼 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기들보다 강하다.

서로가 함께 모인다면 세 노인의 손에서 부터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세 노인은 지금쯤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을 것이라고 냉천삭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서 반드시 자신들을 죽이고 말겠다는 신념같은 것을 느꼈다.

냉천삭은 속으로 한탄했다.

(황군성……그놈을 제자로 삼게 되었을 때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고 믿었거늘……결국 하늘은 또 이렇게 우리를 버리고 마는가? 하늘이여……하늘이여……)

단극린의 혈왕신공은 특이한 무공이다.

몸이 산산조각나고 내장이 꺼내지지 않은 한,

단극린은 스스로 상세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냉천삭은 그가 상세를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

비록 내상이 엄하기는 하지만 버텨야만 한다.

깊은 한(恨)……

그의 삶을 지탱시키고 있는 한이 소멸되기 전까지는 결코 죽을 수도 없다.

부드득!

그는 이빨을 으스라지라고 갈았다.

눈앞으로 북혈마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간 때문이다.

 

북혈마(北血魔)……

이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북해의 신으로 군림하는 자,

하지만 결코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는 전설적인 존재.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가 전설속의 인물이라고 하기도 하고,

실재로 살아있는 인물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냉천삭의 원수인 그……

냉천삭도 그를 직접 만나기 전까진는 북해에 살면서도 북혈마의 존재를 믿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날 갑자기 푸른 머리카락을 날리는 절세준미한 청년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다짜고짜로 냉천삭에게 천년한옥부(千年寒玉符)를 내놓으라고 했다.

그러나 냉천삭은 천년한옥부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자는 콧웃음치는 냉천삭을 말없이 바라본 후 떠나갔다.

냉천삭은 당시 별난 놈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자는 분명 등을 돌리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냉천삭의 집에서는 끊임없이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냉천삭이 놀라 달려가 보았을 때,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모두 칠공으로 피를 쏟으며 죽어있었다.

집안의 여자들은 공포에 질러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에 반쯤 미쳐버린 냉천삭이 다시 달려나왔을 때,

그자는 다시 방향을 바꾸어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말,

[냉천삭, 노부가 걸음을 바꾸었듯이 너도 마음을 바꾸었겠지? 빨리 천년한옥부를 내놔라!]

냉천삭은 그자의 짓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어떤 수법인지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냉천삭,

그도 스스로 천하에서 열손가락 안에드는 고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음에도.

그자의 무공이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가공하다는 것을 냉천삭은 알게되었으나,

그자가 어떤 사술(邪術)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냉천삭이 그의 정체를 알게 된 후 그것이 모두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마공이라는 것을 알았다.

북혈마,

그 악마가 전음에 공력을 실어서 냉가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던 것이다.

냉천삭은 북혈마에게 달려들었으나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비록 청년같이 보이는 북혈마였으나 기실 이백 살이 넘었던 것이다.

북혈마는 그의 빙백강기를 단숨에 파괴해버리고,

그의 두 팔을 잘라버린 후,

그가 보는 앞에서 천년한옥부를 요구하며 집안의 여자들을 강간해버렸다.

그리고, 그 여자들의 목을 하나하나 부러뜨려버렸다.

냉천삭은 미쳐버렸다.

미친 순간에 갑자기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힘을 발휘하게 된 냉천삭은 자신의 손녀를 강간하고 있는 북혈마에게 한대의 빙백강기를 갈겼다.

북혈마가 의외의 상황에 놀랄 때,

그는 벌거벗은 북혈마를 안고 북해의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어버렸다.

하지만,

북혈마는 진정 가공했다.

무엇이나 얼려버리는 그 북해의 차가운 물속에서도 냉천삭을 떨쳐버리고 유유히 빠져나가버렸다.

냉천삭은 물속에서 얼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백웅(白熊)의 동굴에 있었던 것이다.

 

[북혈마!]

냉천삭은 소리쳤다.

그의 눈에서는 새파란 청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원한의 불꽃이었다.

그 순간,

 

八月秋高風怒號(팔월추고풍노호)

卷我屋上三重茅(권아옥상삼중모)

茅飛度江泗江郊(모비도강사강교)

高者掛肩長林梢(고자괘견장림초)

下者飄轉沈塘拗(하자표전침당요)

南村群童欺我老無力(남촌군동기아노무력)

忍能對面爲盜賊(인능대면위도적)

公然抱茅入竹去(공연포모입죽거)

脣憔口燥呼不得(순초구조호부득)

 

팔월 가을 하늘 높은데 바람이 노호하여

우리 집 옥상의 세 겹의 이엉을 말았으니

이엉은 날아 강을 건너 물가에 흩어져 떨어졌는데

높은 것은 높은 나뭇가지 끝에 걸렸고

낮은 것은 굴러 제방의 웅덩이에 빠졌도다.

남촌의 아이들이 내가 늙어 무력함을 깔보아

뻔뻔스럽게 나의 면전에서 도둑질하네.

공공연히 그 이엉을 타고 대밭으로 들어가나

입술이 타고 입이 말라 소리 지를 수 없네.

 

어디선가 울러퍼지는 창노한 음성,

높지도 않다.

하지만 사방 십여리 어디에서나 귓가에 속삭이듯 울러퍼지고 있었다.

가공할 천리전음의 수법이었다.

냉천삭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는 더이상 도망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았다.

천리전음을 뛰운 상대방은 자신들을 한낫 어린아이 정도로 보고 있다.

그는 몸을 멈추었다.

(아! 세상에 고수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는 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하늘도 무심하구나 하늘도……]

그때 그의 품에있던 단극린이 정신을 차렸다.

그의 몸은 거의 완전히 나아있었다.

그가 광소를 터뜨렸다.

[죽일 놈의 하늘이지……죽일놈의 하늘……크하하하……]

그의 전신에서 붉은 안개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문득,

단극린과 냉천삭은 자신들의 눈앞에 환상처럼 나타나는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조그마한 키,

고부라진 허리,

땅에 닿을락 말락하는 긴 수염, 그리고 두자가 넘는 흰눈썹.

얼굴은 코만 보일뿐 눈도 입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수염과 눈썹에 가려진 때문이다.

노인은 백의를 입었으며 짧은 지팡이를 짚고있다.

그들은 단연코 이처럼 늙은 노인을 본 적이 없었다.

노인의 모습은 마치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숲속의 난장이 같았다.

마치 안개가 모이는 것처럼 나타난 노인에게서 냉천삭과 단극린은 주체하지 못할 경외감을 느꼈다.

말없이 노인을 바라보았고,

노인 또한 말없이 그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냉천삭은 눈앞의 노인이 방금 전 천리전음을 펼쳤던 장본인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몸에서는 비록 아무런 기도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자신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른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극에 달하면 모든 것이 평범하게 보이고, 숨겨지는 것이다.

삐익!

멀리서 긴 휘파람소리가 들려왔다.

냉천삭은 넋을 놓아 버렸다.

(틀렸구나 틀렸어……)

세 명의 노인이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와 단극린의 얼굴에는 완연한 체념의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한과 슬픔이 어우러져 그들의 얼굴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감한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노인 앞에서만도 발이 얼어붙은 듯 도망칠 수 없음을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 × ×

 

하늘이 갑자기 검은 구름으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별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달은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다.

우르릉!

어디선가 낮게 울리는 우뢰소리가 태산 곳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내 하늘은 한줄기 뇌성벽력과 함께 굵은 빗방울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번쩍!

꽈르릉󰠏󰠏󰠏󰠏󰠏꽝!

콰󰠏󰠏󰠏󰠏󰠏󰠏쏴아아아!

빗방울에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때마침 불어온 강한 바람은 그들을 멀리 휘감아 도망친다.

천지는 온통 암흑속에 잠겨버렸다.

산을 두들기는 빗줄기소리가 모든 소음마저 삼켜버리고,

간간히 들리는 뇌성(雷聲)은 사람의 닫힌 양심을 열어놓으며 고통에 몸부림치게 한다.

황군성의 몸은 이미 완전히 물에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심한 폭우는 그를 폭포수 밑에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허무과 고독이 스물스물피어오르는 그의 어깨에서는 흰 김이 솟아나고 있다.

체온에 빗물이 증발하고 있는 것이다.

황군성은 이 폭우 속에서도 달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이러한 폭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몸을 두드리는 폭우는 이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위로해 주고 있는 상대인지도 몰랐다.

황군성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은 채 걷고 있었다.

우르르르……

갑자기 그의 왼쪽에 있는 산비탈이 무너져 내렸다.

산사태다.

바위와 나무와, 흙들이 해일처럼 밀려 내려왔다.

황군성은 그 산사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짙은 고독과 허무가 오히려 산사태를 반갑게 맞이하게 해주었다.

(잘됐군, 잘됐어……참으로 적절하다……)

그랬던가?

그의 고독은 진정 죽음보다도 깊고,

그의 허무는 생을 한낱 티끝과 같이 여기게 만들 정도였던가?

죽음을 불러올 산사태를 반가워할 정도로……

(오랫만에 느껴보는 평온한 감정이다.)

황군성은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산사태를 저항없이 온몸으로 받았다.

순간,

빗물에 짓이겨진 흙들과, 바위와, 나무들이 그를 덮치고 산 아래로 몰려갔다.

일대의 지형이 변하고 있었다.

거대한 산사태,

내려갈 수록 산사태는 점점 커지고,

황군성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덮어준 무덤속에 묻혀버렸는가?

그토록 그를 지배하던 허무와 고독도 흙냄새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는가?

 

× × ×

 

[조부님!]

황자준은 황숭환을 등을 향해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의 옆에는 황자걸과 황자웅이 서있는데,

황숭환 노인앞에 있던 단극린과 냉천삭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물은 황자준 삼형제의 몸에 닿지 못하고 휘어져 땅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문성무존의 최고 어른인 황숭환의 몸에는 수염까지 빗물이 타고 내리고 있었다.

황숭환은 비 때리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황자준 삼형제는 당혹스런 태도를 취하며 황숭환을 둘러싸고 강기로 그를 빗물로 부터 보호했다.

문득 황숭환이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늙어서도 죽지 않으면 때때로 천의(天意)를 알게 되기도 하지……]

[…………!]

[…………!]

[우리 문성무존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어. 이것은 천도(天道)에 합당한 것은 아니야.]

황자준이 말했다.

[조부님! 우리 집안은 해마다 수천금을 풀어서 천하창생을 돕는데 쓰고 있습니다. 어찌 이기적이라고 하……]

순간,

황자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비척비척 물러섰다.

황숭환의 단장(短杖)이 그의 이마를 심하게 때린 때문이다.

기척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보이지도 않았다.

오직 머리에 닿아있는 단장이 눈에 보이고 극렬한 고통이 느껴질 뿐이었다.

황자준이 펼치고 있는 강기의 막까지 소리없이 뚫어버린 것이다.

어느새 단장은 원래대로 돌아가 있고,

황숭환의 음성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생각때문에 우리 집안이 망할 수도 있어. 우리는 그동안 희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어. 그런데, 지금 하늘은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나지막한 음성이었으나,

황자준 등은 그 말이 어떤 말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이미……일은 시작되었다. 만약 우리가 희생을 거부한다면 하늘은 문성무존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이미 일은 시작되었다.

이 말은 세 사람에게 어떤 강렬한 의미로 부각되며 심장을 옭아매고 있었다.

[아마도……이번 일이 끝났을 때, 우리 문성무존에서 스스로 늙은이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너희들도 당연히……]

황자준은 그의 조부 황숭환이 천기를 살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숭환의 말에 의하면 문성무존 최대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에 의한 것도 아닌,

하늘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황숭환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그들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꺼져버렸다.

 

× × ×

 

사람은 하늘을 우러러 숭배하건만,

하늘은 우리 인간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잔인한 하늘은 인간에게 다시 피를 요구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의 피로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하늘은 스스로 인간을 죽여서 피를 맛보고자 한다.

지난 백여년간,

무림은 너무도 평온했다.

간간히 일어나는 살인은 끊이지 않았으나,

수 천 년 동안 있어왔던 거대한 혈겁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하늘이 인간의 피를 요구한다.

범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능력을 가진 자들을 곳곳에 태어나게해서,

그들의 손을 빌어 인간의 참상을 보고자 한다.

찢어죽일 놈의 하늘……

그놈의 하늘이 지금 우리에게조차 피를 강요하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피를 뿌리지 않으면 미친 놈의 하늘은 우리 문성무존을 영원히 소멸시켜버릴 것을……

이제 천하대란은 시작되었다.

적어도 수만 명의 인간들이 핏물 속에 죽어갈 것이다.

나 황숭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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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神秘한 一族

 

 

 

햇살이 소음곡 전체를 내리쬐는 시간은 불과 두시진 반 정도,

지금은 소음곡이 가장 밝고 아름다울 때다.

정오가 아직 되지 않은 시간,

콰아아아!

장원의 뒤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의 맑은 물은 장원 전체에 거미줄 처럼 퍼져있는 수로(水路)를 맴돌아서 앞쪽의 수문으로 나온다.

수로가 지나는 곳의 주변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장원의 밖으로 나온 물은 곡구(谷口)쪽에 있는 연못으로 흘러들어간다.

물은 끝없이 연못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연못의 물은 조금도 더 불지 않는다.

이곳에 어디론지 통하는 물길이 있으리라.

이 소음곡,

정말 신비한 곳이다.

계곡을 가까스로 들어서면 바로 연못이 펼쳐져 있고 그 뒤에 이만 여 평의 분지에 온갖 동물들이 뛰어 놀고 있는 것이다.

장원의 한 내실,

창으로는 찬란한 금빛 햇살이 스며들어 온다.

화려한 내실을 장식하고 있는 아담한 자단목 가구들이 보이고,

비단 휘장이 쳐진 벽면에는 갖가지 병장기들이 걸려있다.

검(劒)……도(刀)……창(槍)……편(鞭)……봉(捧)……비도(飛刀)……산(傘)……유성추(流星鎚)……선(扇)……철척(鐵尺)……

무려 사십여 개의 병기들이 걸려 있지만 그 중에 갖은 종류는 하나도 없었다.

방의 중앙,

자단목의 탁자에 마주 앉은 한 쌍의 중년 부부가 보인다.

한데,

사십이 넘어 보이는 중년인,

청수한 용모임에도 위맹한 기상마저 함께 보이고 있다.

짧게 자라있는 수염이 그의 강직한 성격을 말해주는 듯 하고,

넓은 얼굴은 중후한 인상의 큰 배포를 미리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사람,

바로 이 장원의 주인인 황창설(黃蒼雪)인 것이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부인은 바로 그의 처 주혜린이고……

주혜린은 끊임없이 남편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듯 한데,

황창설은 손에든 한 자루의 청옥소(靑玉簫)를 매만지며 경탄을 터뜨리고 있다.

[보면 볼 수록…… 진품이라는 걸 느끼게 해……과연……]

그의 손에 들린 청옥소는 은은한 하늘 같은 푸른 빛을 띠고 있엇다.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청옥소의 빛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그 심미안(尋美眼)을 눈뜨게 해주는 듯하다.

황창설은 청옥소를 입에 가져갔다.

순간,

부우󰠏󰠏󰠏󰠏󰠏󰠏!

맑은 소성(簫聲)이 멀리까지 울러펴졌다.

소음곡 전체에 끝없이 들려오는 소음(簫音)과 어우러져,

청옥소의 소리는 마치 천상의 선음(仙音)처럼 들렸다.

[한데 왜 어딘지 모자라는 것같은 느낌이 자꾸드는 걸까‥‥‥?]

그가 다시 청옥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문득,

주혜린이 톡 쏘듯이 말했다.

[당신도 똑같아요.]

하지만 황창설은 여전히 청옥소를 쥐고 벙글벙글 웃고 있었다.

[도대체 당신이나 군성이는 내 말을 조금도 듣지 않아요. 지금도 당신은 딴청만 피고 있어요.]

주혜린은 단단히 화가 난 듯 미간이 잔뜩 모아져 있었다.

그러자 황창설이 이상한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뭐 대단한 문제라고 나까지 신경써야 된단 말이오?]

주혜린은 아예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어머머머……세상에……]

[…………]

[당신은 우리 아들들이 모두 이상한 생각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걱정도 되지 않아요? 그러고도 부모노릇 다했다고 그럴거예요?]

황창설은 피식 웃었다.

[무공 익히기 싫은 놈 억지로 가르칠 게 뭐있소? 책읽기 싫다면 그것도 할 수 없지. 약골이 되도 제 녀석이 되는 거고 무식한 놈이 되도 제 녀석이 되는 거지 내가 되는 건 아니니까.]

주혜린은 입을 딱 벌렸다.

[세상에……당신이 얘들에게 무심한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로까지일 줄은……]

[내버려 둬요. 살기 싫으면 죽든가 죽기 싫으면 할 만한 뭔가를 찾아보든가 하겠지.]

황창설은 마치 남의 집 감떨어진 얘기를 하듯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만한 때 생의 의욕만으로 넘친다면 머리 나쁜 놈이란 얘기 밖에는 안돼, 당연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시오.]

[그럼 설마……당신도 그랬단 말예요?]

황창설은 청옥소를 눈에 갖다대고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

[물론 그랬지. 나도 머리나쁜 놈은 아니었으니까. 당신을 만나게 된 것도 아마 그 무렵이었지?]

주혜린은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돼요. 당신과 결혼한 것이 올해로 꼭 스물하고도 두 해 째인데, 어머님외에는 전부 나하고 달라요.]

[이상할 게 없어. 이곳에 소음곡에서 태어났느냐 아니면 바깥세상에서 태어났느냐 그차이 뿐이니까.]

황창설은 청옥소를 탁자에 내려놓으면서 팔짱을 꼈다.

[이봐요, 혜명공주(慧明公主)마님!]

주혜린이 흥,하고 콧웃음을 쳤다.

[또 무슨 곤란한 말씀을 하시려고……]

혜명공주(慧明公主)……

주혜린이 혜명공주였단 말인가?

당금 황제(皇帝)의 사촌아우로 황족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영왕(永王),

늘 황제의 측근에서 중요한 사항에 대한 자문을 해주고 있는 이 시대의 실력자,

그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이 바로 혜명공주였던 것이다.

황창설은 그녀의 손을 슬며시 잡으며 말했다.

[이곳 소음곡은 태산의 정기가 어려있는 곳이라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이곳에서 자리잡은 이후 세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명을 누리며 살아온 것이오.]

혜명공주가 삐죽하면서 말했다.

[오래 사시기는 오래 사시더군요. 그 덕에 지금도 세수(歲數) 삼백이 넘으신 오대조부모님까지 모시는 며느리니까요.]

이 장원,

놀랍게도 십여채의 전각들 중에 하인이라고는 한사람도 없다.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른 명 정도,

그들은 모두 황창설의 오대조부모에서 부터 숙부들에 이르기까지 한 가족들인 것이다.

지금은 황창설이 집안일을 맞은 장주가 되어 있으나,

그가 이곳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기는커녕 밑에서 맴돌고 있는 처지였다.

단지 윗 어른들이 일체 장원이 일에 간섭하지 않으니 명색이나마 유지하는 것이다.

만약,

주혜린이 시집오면서 여덟명의 시녀들을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손수 물일까지 해야하는 처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황창설이 재력이 부족하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버젓이 외부에 몇 개의 기업(企業)을 가지고 있었다.

북경에만 해도 가장 큰 고서화점(古書畵店)인 천품서화방(天品書畵房)이 바로 그의 것이다.

또한 무창(武昌)에도 골동품점을 가지고 있으며,

서안(西安)과 중경(重慶), 항주(杭州), 개봉(開封)에도 각각 기업이 있다.

그래서 그는 한해에 한번 씩은 꼭꼭 천하에 흩어져 있는 자기의 사업체들을 찾아 운영 상황을 점검해오고 있다.

그가 주혜린에게 말했다.

[태산의 정기(精氣)를 이어받은 우리 황가에 범상(凡常)한 자란 없소. 그래서 나이가 들면 대부분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는 거요. 세존께서 그랬듯이……하지만 결국엔 모두 그 회의를 극복하고 올바른 삶을 찾게 되는 거라오. 만약,]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제 갈 길은 따로 찾아 가거나 죽어야겠지. 극복하지 못하면 당연히……]

황창설의 표정은 아주 근엄하게 변해버렸다.

자식이 그렇게 돼서 죽는다 하더라도 그다지 개의치 않을 태도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기도 그래왔고, 그의 아버지도 그래왔듯이, 자기의 아들들도 능히 극복해내리라는 철저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주혜린은 어머니로서의 불안감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자단목 탁자위에 놓여진 청옥소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 여전히 하늘같은 푸른 빛을 띠고 있다.

팔짱을 끼고 창밖을 바라보는 황창설은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공주! 걱정은 그게 아니라오. 당신은 상상도 못할 다른 곳에 군성이의 걱정이 있다오……)

 

× × ×

 

무장각(武藏閣),

이 장원이 문성무존(文聖武尊)임을 가르쳐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대리석 건물은 만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렇게 서있을 듯 견고하게만 보인다.

문성무존의 곳곳에 놓여진 작은 다리들 아래로 흐르는 수로는 이곳 무장각도 돌아흐로고,

아름다운 꽃들이 풍기는 향내에 벌과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문득, 무장각앞으로 누군가가 걸어왔다.

장대한 체구, 딱 벌어진 어깨,

늘어진 흑발……

어깨에 비스듬히 걸려있는 사척 장검……

바로 황군성이었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서 무장각안으로 들어갔다.

외인이 없는 곳이기에 무장각은 중지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개방되어 있다.

그그긍!

황군성은 석문을 밀어젓히고 들어갔다.

순간,

무장각 안은 무수한 야명주들로 인하여 대낮같이 밝아졌다.

물론 밖이야 대낮이지만.

무장각 안,

삼장 높이의 천정아래 이장 높이의 수십개의 서가(書架)가 서있다.

아니,

그것은 서가가 아니다.

서가처럼 보일 뿐 사실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벽들이다.

그리고,

그곳에 문성무존의 모든 무공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대리석 벽들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야명주들이 새겨진 글자들을 밝혀준다.

황군성은 즐비한 벽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랫만에 들어와 보는 군, 정확하게 일천삼백오십이일 만이군!]

그는 왼손을 펴보았다.

그의 손에는 동한객 궁월로 부터 받은 번천도환이 쥐어져 있었다.

[십일……십일이면……번천도를 삼성까진 익힐 수 있겠지……]

 

× × ×

 

저녁무렵,

문성무존을 맴돌아 흐르는 수로위에 누군가서 서있었다.

아니,

서있는 것이 아니라 물을 밟고 물이 흘러가는 곳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황창설,

바로 그였다.

물은 이상하게도 폭포가 있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황창설이 타고 있는 수로는 한바퀴 맴돌아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황창설은 폭포 바로 앞에 있는 한채의 전각 앞에 이르러 표홀히 몸을 날렸다.

마치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나르는 기러기처럼 날아서 전각의 문앞에 내려섰다.

황창설은 몸가짐을 단정히 하면서 허리를 굽히고 나직하게 말했다.

[소손 창설입니다.]

그러자 전각안에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너라.]

황창설은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전각 안,

기다란 회의탁이 놓여져 있고,

그기에는 십여 명의 노인들이 앉아있었다.

그 중 제일 상석에 앉아있는 노인,

계피학발에 눈썹마저 배꼽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 있다.

다른 노인들도 모두 긴 수염을 늘어뜨린 미염공(美髥公)들로 진정 신선(神仙)같은 풍모들이었다.

이들은 바로 황창설의 사대조를 비롯한 그의 웃어른들인 것이다.

황창설은 가장 말석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상석에 앉아있는 황창설의 고조부 황필민(黃筆旻)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이 일은 절대로 처에게도 말해선 않된다. 행여 연로하신 아버님이 들으시면 어떤 사고가 일어날 지 모른다.]

좌중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 집안의 가장 어른인 황창설의 오대조는 이러한 회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이곳에 없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황필민은 눈썹속에 파묻힌 눈을 빛내며 황창설에게 물었다.

[그곳은 가보았느냐?]

[예, 소손이 직접 갔다 왔습니다.]

황창설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상세히 말해보도록 해라.]

[소손이 가보았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진정 괴이한 곳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은 그의 입만을 쳐다 보았다.

[그곳에는 한층의 검은 구름같은 것이 걸려있어서 밑에는 빛이라고 한 점 없었습니다. 소손의 안력으로도 살피지 못할 정도의 어둠이었습니다.]

좌측에 앉은 한노인이 불쑥 물었다.

[삼갑자(三甲子)에 이른 네 공력으로도 말이냐?]

[그렇습니다.]

황창설은 계속 설명하고 모든 사람들의 안색은 침중했다.

[그자들의 정체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가공한 인물들일지도 모릅니다.]

황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감히 우리 문성무존의 장손(長孫)에게 손을 뻗친데 대한 댓가는 주어져야지.]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긴 수염이 허리까지 흘러내렸다.

[군성이 그 아이가 배운 무공 중에는 틀림없이 엄청난 마공(魔功)도 있다.]

황필민의 눈이 엄청난 신광을 뿜어냈다.

[자준(慈俊), 자걸(慈傑), 자웅(慈雄)! 이 일은 너희들에게 맡긴다.]

그러자,

회의탁 우측에 나란히 앉아 있던 사람들 중 셋이 벌떡 일어서며 허리를 굽혔다.

[아버님 분부하십시오.]

놀랍게도,

이들은 황창설의 증조부들이었다.

황필민은 느릿하게 말했다.

[우리 문성무존은 무림에서 활동하지 않은지 천년이 가깝다. 한데, 누군가가 우리를 그 피비린내 나는 곳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장손(長孫)에게 접근한 그자들, 너희들은 무조건 그자들을 죽여라.]

황필민은 전각의 문을 밀었다.

[단, 결코 그 아이가 모르도록 처리해라.]

황필민이 나가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읍했다.

명령을 받은 세 노인은 자리에 앉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너희들은 그만 가보도록 해라. 우리는 좀더 논의할 일이 있다.]

 

잠시 후,

전각 안은 그들 세 노인만 남았다.

황창설의 증조부인 황자준이 두 아우에게 말했다.

[군성이의 뒤를 밟아서 그자들을 죽이면 간단하겠지.]

[하지만 형님,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황자웅이 말했다.

[군성이는 우리 집안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재입니다. 녀석도 문성무존 최고의 비학인 철인검(哲人劒)을 제외한 모든 무공을 익혔습니다. 그런 녀석을 가르칠 수 있는 자라면 그자들의 무공은 진정 대단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황자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어떤 무공이 우리 문성무존의 철인검을 당할 수 있겠느냐?]

황자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철인검,

대체 어떤 무공이기에 이들이 이렇게 자신하는 것인가?

더구나,

이들의 말로 미루어 보아 황군성의 모든 행적을 알고 있는 듯 한데……

그렇다면 이들이 죽이려하는 인물은 그의 사부들,

바로 한천사방객들이라는 결론이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소음곡에서 살아온 문성무존 황가(黃家)일족,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은 과연 무엇때문에 무림에 나서기를 꺼리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 × ×

 

황필민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의 눈앞에는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이 길을 막고 서있었다.

노인의 수염은 땅에 닿을 만큼 길었고,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형한 눈으로 황필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황필민의 조심스런 말.

그 노인은 바로 황필민의 아버지인 이 집안 최고의 어른이었다.

노인의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칠칠치 못한 놈, 나잇살이 삼백이 가깝도록 내 몰래 뭘 하려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황필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증손자 현손자 오대손까지 거느린 그도 아버지 앞에서는 미욱한 자식에 불과한 것이다.

노인, 황필민의 아버지 황숭환(黃崇煥)의 입이 다시 열렸다.

[여전히 젊은 녀석들 마냥 뭐든지 힘부터 쓰려고 하니……]

황숭환은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뒤로 황필민이 조심스럽게 따랐다.

[그녀석이 태어날 때부터 오늘같은 날이 오리라는 것을 대강은 알았지……]

황숭환은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황필민의 얼굴에 은은한 놀람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빨랐어.]

[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숭환은 들릴락 말락한 음성으로 말했다.

[군성이 그놈……어깨가 너무 넓었어. 다 그 때문이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남의 한을 대신 지게 된 거지. 나도 반갑진 않지만 숙명이라면 거역할 수 없겠지. 그놈들을 죽이든 말든……]

황숭환은 꽃들 사이로 걸어서 가버렸다.

[네녀석도 밤잠없으면 책이나 볼거지 돌아다니지 마라.]

황필민은 흠칫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계셨구나.)

기실,

황군성이 때때로 소음곡을 빠져나가 모종의 장소로 간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바로 황필민이었던 것이다.

황필민은 중얼거렸다.

[문성무존이 밖으로 알려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적이 생긴다. 적이란 묘한 것이어서 우리가 강하면 그만큼 따라 강해지는 것, 세상 밖의 혼란에 궂이 빠질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라고 할 이곳 소음곡에서 행복하게 살면 그뿐……]

그의 말은 바로 문성무존이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태도이기도 했다.

적이 있으면 기필코는 멸망하고 만다.

무가(武家)의 자손으로 강호(江湖)를 횡행하노라면 필연적으로 원수를 맺고, 그러다 보면 후손들까지도 영락없이 원한의 굴레에 빠져들기 쉽상이다. 그것은 끔찍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깊은 곳에서 은인자중, 유유자적하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고금의 책들을 읽고, 무공을 익히고 연구하며……

 

× × ×

 

조각난 달이 하늘 한 자락에 걸려있다.

단혼애(斷魂崖),

깍아지른 절벽의 밑으로는 구름들이 떠다니고,

밤새들이 이따금씩 절벽 아래로 날아간다.

이 단혼애의 중간,

세인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을 이곳에는 한 개의 석동(石洞)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나직한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늘이 십일 째인데 그 아인 오지 않을 모양이오.]

[아마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이오.]

[이것만 전해주면 모든 것이 끝나는데……]

탄식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아이는 신비하기 짝이 없소. 이 근처에 사는 듯 한데 도무지 사는 곳을 알 수가 없소. 냉형! 우리가 너무 큰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오?]

[뭘 말이오?]

[우리는 그 아이의 이름 외에는 알고 있는 것이 없질 않소. 무공만 해도 그렇소. 그는 우리가 가르치기 전부터 놀라운 무공을 지니고 있었소.]

[그것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하지 맙시다. 우리는 우리의 한을 풀면 되는 것이고, 그 아이는 우리의 무공을 익히면 되는 것 아니요.]

그때 문득 그들의 귀로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당신들은 그 한을 풀지 못할 것이다.]

동굴안,

돌로된 석탁에는 기괴한 모습의 두사람이 앉아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진정 기이했다.

왼쪽에 앉은 붉은 머리칼, 붉은 옷에 붉은 얼굴……온통 붉은 노인,

그의 눈동자마저 혈광이 감돌고 있다.

그리고,

그 맞은 편에 앉은 노인,

두 팔이 보이지 않는다.

헐렁이는 소매만 있을 뿐,

하지만 그 소매는 기이하게도 찻잔을 감아쥐고 있다.

안색이 백짓장보다 더욱 희다. 마치 얼음조각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한데,

그들의 앞으로 세사람의 노인이 나타났다.

신선같은 풍모의 노인들……

바로 황자준 등이었다.

황자준은 그 두사람을 보고 의외인듯 입을 열었다.

[이게 누군가? 백년 전에 이름을 날렸던 남한객 단극린과 북한객 냉천삭아닌가?]

그랬다.

동굴 속의 두 사람은 황군성의 네 사부 중 두명인 단극린과 냉천삭이었다.

두 사람은 놀라서 몸을 움찔했다.

나타난 상대방이 뜻밖에도 단번에 자기들을 알아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단극린 등은 맹세코 한번도 황자준 등을 본 적이 없었다.

황자준도 그들을 본 적은 없었으나 강호행을 다녀온 손자를 통해 전해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단극린의 혈포가 빧빧하게 부풀어올랐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단극린, 너는 감히 물을 자격이 없다. 노부의 아들만 해도 네 아비뻘은 될 것이다.]

황자준의 말에 단극린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도 당연한 것이 황자준 등은 이백칠십에 가까운 나이인데도 수염등을 제외하면 여전히 좋은 몸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자걸이 차갑게 말했다.

[너희들은 너무 주제넘은 짓을 했어. 듣기로는 너희들의 무공도 쓸만하다고 하더라만, 오늘 이곳에 뼈를 묻어야겠다.]

냉천삭이 한광을 번뜩이며 물었다.

[노선배, 우리가 무슨 주제넘은 짓을 했단 말이오?]

그는 황자준 등이 자신들 보다 훨씬 연상인 것을 알고 노선배라고 부른 것이다.

황자웅이 말했다.

[죄라면 오직하나, 제자를 잘못 삼았다는 거지.]

단극린이 흠칫하며 물었다.

[우리 제자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했단 말이오?]

황자준이 콧웃음을 쳤다.

[잘못은 너희가 했지 그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다.]

단극린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황자준의 말이 이어졌다.

[너희들은 그 아이를 감히 강호의 혈풍속으로 끌어들이려 했어. 그동안 이해가 가지 않던 점들이 너희 한천사방객을 보니 한꺼번에 풀려버렸어. 그 아인 너희들의 한을 푸는 도구따윈 되지않아.]

냉천삭이 묵묵히 있다가 물었다.

[선배들은 우리 제자와 어떻게 되는 사이요?]

황자걸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 진작 그렇게 물었어야지. 우린 그녀석의 고조부들이지. 이게 바로 너희들이 죽어줘야 할 이유이기도 하고.]

냉천삭이 차갑게 말했다.

[우리를 선배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으시오?]

[물론 너희들은 강하겠지. 하지만, 감히 우리에게 대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황자걸은 단호하게 말했다.

순간,

황자준을 비롯한 황자걸과 황자웅의 몸에서 폭풍같은 기운이 일어났다.

[병기를 들어라!]

황자준의 준엄한 말이 떨어졌다.

단극린과 냉천삭의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갑자에 가까운 공력이다……)

그들은 강호에서 한번도 황자준 같은 고수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단극린과 냉천삭의 눈이 마주쳤다.

(우린 한을 가슴에 안은 채 죽게되겠구려……)

싸우기 전에 이미 승부는 난 것 같았다.

제자의 고조부들이라는 세 노인,

그들은 너무도 강해보인다.

자신들이 백년전 무림을 떨쳐울린 한천사방객이란 것을 알고도 마치 어린애 대하는 듯하다.

그만큼 무공에 자신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천사방객이다.

백년전 천하에 적수가 없었던 고수들……

그들은 자신들의 최고 절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순,

단극린의 몸에서 붉은 구름같은 기운이 일어났다.

그의 몸은 완전히 붉은 구름속에 싸여버렸다.

황자준은 얼굴에 은은한 감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과연 한천사방객이군……듣던것 보다 두배는 강하다.)

한편,

냉천삭의 몸에서도 얼음보다 차가운 한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팔없는 두 소매는 거대하고 굵은 봉(捧)마냥 팽팽하게 부풀어 있고,

두발은 땅에서 두치쯤 허공에 떠있었다.

그의 발은 적족(赤足)이었다.

냉천삭이 발산하는 한기가 황자준등에게까지 몰려왔다.

황자걸이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놀랍군, 놀라워, 그만큼 무공을 쌓자면 수많은 세월과 노력이 필요했겠지?]

말을 하는 중에도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하지만 냉천삭은 전혀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싸움이 결코 좋게 끝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붉은 안개에 휩싸인 단극린이 짧게 내뱉었다.

[먼저 공격하겠소.]

[얼마든지……]

황자준은 느긋하게 말하며 쌍장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냉천삭의 몸이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부우웅!

그의 두소매가 마치 거대한 봉처럼 황자걸과 황자웅을 쳐갔다.

뼈마져 얼려버릴 듯한 한기에 동굴안은 새하얀 서리가 깔렸다.

그리고 그의 발은 수백개의 발그림자를 만들며 황자준을 공격했다.

황자준 등은 한기가 보통 것이 아님을 알고 놀랐다.

[빙백지기(氷白之氣)!]

황자걸이 소리쳤다.

빙백지기,

이것은 조금이라도 몸에 스치스며들게 되면 그 한기를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는 얼음조각이 되어버리는 무서운 무공이다.

일순간,

황자준의 쌍장이 동굴안을 가득 매울 만큼의 손그림자를 만들었다.

손그림자들은 마치 비누방울처럼 각각이 냉천삭과 단극린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단극린의 귀로 파고드는 빠른 전음이 있었다.

[물러나면서 왼쪽벽에 일장을 가하시오.]

바로 냉천삭의 음성이었다.

냉천삭의 발그림자와 황자준의 손 그림자가 충돌하려는 순간,

허공에서 냉천삭의 몸은 팽이처럼 돌았다.

그의 소매가 만들어낸 거대한 봉은 여지없이 동굴의 천정과 바닥, 벽을 파고들었다.

쿠쿠쿠궁!

그러자 동굴은 순식간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자준의 손그림자는 여지없이 냉천삭의 발그림자와 부딪혔고,

냉천삭의 몸은 동굴의 안쪽으로 날아갔다.

냉천삭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동굴이 무너지고 있었다.

순간,

꽝!

소리가 나면서 동굴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며 더욱 급속하게 무너져 내렸다.

단극린이 혈왕신공으로 동굴벽을 친 것이다.

그때,

황자걸이 큰소리로 내질렀다.

[감히 도망칠 수작을 하다니!]

허리에 걸려있던 장검이 백색광망을 뿜었다.

번쩍!

그러자,

놀랍게도 백색광망은 무너져 내리던 거대한 바위들을 가르면서 그대로 단극린과 냉천삭을 베어가는 것이 아닌가?

단극린이 경악하며 외쳤다.

[검강(劒罡)이다!]

그는 전력을 다해 혈왕신공을 끌어올렸다.

혈왕신공의 붉은 안개와 백색검강이 충돌을 일으켰다.

꽈과광!

그순간 동굴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뿌옇게 돌먼지가 나르는 가운데 황자준 등은 동굴밖으로 날아나왔다.

그리고 단혼애를 날아올라갔다.

단혼애에 우뚝 멈추어서서 황자걸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놈들의 무공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군요.]

[하지만 형님 검강에 격중당했으니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황자웅의 말에 황자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철인검을 사용해야했다. 그들은 중상은 입었어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비밀통로로 도망치고 있겠지.]

황자걸이 가벼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정말 대단한 자들입니다. 가공할 빙백지기……그리고 검강을 막아내는 신공……아마 그자의 내공이 저와 같았다면 당한 것은 저일 겁니다.]

황자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자들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들은 한천사방객 중에서도 세번째와 네번째 인물, 첫째인 동한객 궁월과 둘째인 서한객 초사륭 역시 죽여야 한다. 군성이에게 쓸데 없이 한을 심어주는 자는 용서할 수 없다.]

황자준의 말에 따라 그들은 단극린과 냉천삭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 × ×

 

황군성은 동굴앞에 다다라보고 의아해져 버리고 말았다.

응당 있어야 할 동굴이 완전히 없어지고 만 것이 아닌가?

어떤 거대한 힘에의해 동굴이 붕괴된 것이었다.

[사부들이 이곳을 떠났단 말인가? 그래도 동굴을 붕괴시킬 필요는 없었을 텐데……]

그는 다시 단천애 위로 올라왔다.

칠척의 헌앙한 신체에서 드리워진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달이 기울고 있음이다.

할 일을 잃어버린 황군성은 천천히 걸어서 소음곡을 향했다.

그가 사라진 단혼애에 문득 한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그의 아버지 황창설이었다.

그는 황군성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이렇게 끝나야 하는 거다. 모두 잊어버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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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恨天四方客

 

 

 

만월(滿月)이 산위로 떠오르고 있다.

밤의 여신(女神)의 영역을 빛내기 위해 차가운 빛을 뿌리며 떠오르고 있다.

방금까지만 해도 밝음을 다투던 일등성(一等星)들도 뭇 별빛 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태산(泰山),

이곳은 중원 오악(五嶽)의 우두머리라 중악(中嶽) 태산이다.

역대의 황제(皇帝)들이 천명(天命)을 받기 위해 제단을 차렸던 산,

이 산의 한쪽면 나뭇잎까지 밝혀주며 만월은 역설적으로 관일봉(觀日峰)위에 떠오른다.

만월이 밑자락을 장대질 하던 나뭇가지마저 살짝 피해 올라간 순간,

한줄기 검은 선이 만월을 양단하며 하늘로 치솟았다.

일순간 달은 접혀졌다 펴진 동전처럼 보였다.

만월을 가른 검은 선은 지워지고, 한줄기 검은 물체가 관일봉 아래 절벽으로 떨어졌다.

천길 만길 절벽 아래로 유성보다 빠르게 추락하고 있는 물체,

놀랍게도 그것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찌푸렸던 달은 다시 해맑은 모습을 하고,

절벽 밑의 그늘은 떨어지던 사람의 모습을 삼켜버렸다.

 

× × ×

 

빛이 한점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은 어디인가?

사방팔방십이방을 둘러봐도 오직 칠흑같은 어둠만이 존재한다.

어둠 속에서 흔히 있을 법한 유령의 숨소리같은 미약한 바람조차 없다.

무서운 태고의 정적만이 감돌고 있는 이곳,

휘이익!

갑자기 어둠이 찢어지면서 달빛 속에 검은 인영이 땅으로 내려 꽂혔다.

팍!

어둠이 스물거리며 달빛을 몰아내 버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딱딱, 소리와 함께 그곳은 다시 밝아졌다.

검은 인영은 화섭자에서 초로 불을 옮기고, 그의 모습은 촛불이 자람에 따라 점점 뚜렸하게 나타났다.

그 인영은 발끝까지 걸쳐지는 흑포를 입고 한자루의 장검을 등에 맨 청년이었다.

흘러내린 머리칼은 흑포의 뒤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허무가 깃던 눈빛은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하다.

한데,

그의 붉으스레한 얼굴은 그야말로 절세미장부가 아닌가?

훤한 이마의 먹물같은 검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턱선은 사람의 시선을 절로 잡아 매는 힘이 있다.

칠척 장신의 당당한 어깨는 모든 것을 압도할 듯 한데,

정작 전신에 흐르고 있는 기운은 오직 허무였다.

문득, 촛불을 든 청년이 입을 열었다.

[사부! 제자 황군성(黃君星)이 왔습니다. 번천도(飜天刀)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 청년은 누구를 향해서 말하는 것일까?

촛불의 주변에는 몇 개의 바위들만 보일뿐 아무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 지옥의 유부인양 고요하던 곳에서 갑자기 늙으스레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단극리에게서 혈왕신공(血王神功)을 다 배웠느냐?]

[삼성 수준으로 익혔습니다.]

늙은 음성은 잠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보름 만에 혈왕신공을 삼성(三成)까지 익히다니 놀랍군!]

하지만 전혀 어조가 느껴지지 않는 노인의 음성에는 어떤 놀람도 깃들어 있진 않았다.

황군성은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촛불이 일렁이며 그의 얼굴에 여러가지 그림자를 만들어 내곤 했다.

이때 갑자기 그의 앞에 있는 바위가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록 아주 천천히시작 되었으나 급격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육척높이의 돌기둥 같은 바위가 천천히 모습을 바꾸며 사람의 형상으로 변한 것이다.

굴곡이 뚜렸해 지면서 팔과 다리가 생기고 얼굴의 윤곽도 뚜렸해졌다.

그리고 일순간,

완전한 모양을 갖춘 사람의 형상은 눈을 떴다.

번쩍!

번개불같은 신광이 폭출했다.

그것은 나이를 짐작할 수 조차 없는 노인의 눈빛이었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시간은 일각뿐, 그 안에 모든 것을 암기하라. 본문의 규칙상 번천도는 일자전승(一子傳承), 오직 입에서 입으로 전할 수 밖에 없다.]

황군성은 미동도 않은 채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왼쪽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그 손바닥 안에서 오리알 같은 흰구슬이 나왔다.

[이것이 번천도다. 고금십대신병(古今十大天兵) 중 서열 칠위인……]

오오! 그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노인의 말은 놀라왔다.

고금십대천병이라니……

무림이 있어온 이래 삼천 년 동안 등장했던 수 많은 병기들, 시대마다 보검과 신검, 보도가 어찌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고금십대천병에는 견주지 못한다.

그 고금십대천병은 과연 무엇인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도 전혀 밝혀지지 않은 이 병기는 적게는 삼 백여년 전, 많게는 천 수백 년에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닌 자는 어김없이 고금무적십인에 들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대적할 수 없었고, 어느 누구도 고금십대천병앞에서 일초를 넘길 수 없었다.

이 놀라운 고금십대천병의 이름은 이러하다.

 

서열 제 일위 낙일검(落日劒),

서열 제 이위 무광검(無光劒),

서열 제 삼위 혈화창(血花槍),

서열 제 사위 진천소(震天簫),

서열 제 오위 지멸고(地滅鼓),

서열 제 육위 자전편(磁電鞭),

서열 제 칠위 번천도(飜天刀),

서열 제 팔위 구룡로(九龍爐),

서열 제 구위 금강신(金剛身),

서열 제 십위 섬전사(閃電絲),

 

이 서열들은 강함의 순서가 아니다.

그 병기가 등장했던 순서대로 매겨진 것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고금십대천병 중 가장 강한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것들은 서로 부딪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적에게도 단 일초이상을 허용하지 않았던 고금십대천병,

그 중의 하나인 번천도가 노인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이다.

한 알의 구슬같은 모양으로.

구슬 같은 번천도는 노인이 신공을 일으키자 일순간 빛이 쏘아나가듯 쭉 늘어졌다.

그리고 한자루의 도로 변하는 것이었다.

길이는 이척반(二尺半) 정도, 엷은 날은 손바닥 만큼 넓다.

허무로 젖어있는 듯하던 황군성의 두눈이 순간 빛을 발했다.

(내 삶을 유일하게 지탱시켜 주는 것은 무공뿐……무공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더나면 나는 아마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던가?

그래서 그의 몸에서 그토록 짙은 허무가 배여있었던 것인가?

그때 노인이 번천도를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번천도는 천천히, 지겨울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의 입은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말하고 있었다.

[오성삼푼, 칠성팔푼, 십성이푼, 삼성구푼, 구성육푼……]

검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노인은 그 순간에 운용해야 할 공력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놀랍게도 번천도는 똑같은 깊이의 공력으로 운용하는 도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 일초에 일흔두 번이나 공력깊이가 바뀌면서 강약유화가 완벽히 배합된 도초(刀招)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번천도가 삼초를 모두 펼쳐내는 동안, 황군성은 눈도한번깜짝이지 않고 보고 있었다.

(엄청나다. 과연 고금십대천병의 제 칠위……)

[모두 기억했느냐?]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이곳을 떠나라. 그리고 다시는 오지마라. 나는 네가 마왕(魔王)을 죽일 때만 기다릴 뿐, 너를 기다리지는 않으니까……]

핑!

일순간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노인의 손에서 번천도환(飜天刀丸) 발출되었다.

지극히 짧은 순간에 황군성의 눈앞에 이른 그것은 가볍게 내민 황군성의 손에 빨리듯 들어갔다.

번천도환,

그것은 손가락에 낄수 있는 작은 반지가 만들어져 있으며 도환은 손바닥안에 늘 감추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황군성이 왼손 중지에 반지를 끼고 주먹을 가볍게 쥐자 번천도환은 그의 손안에 감춰져 버렸다.

순간,

노인의 몸은 서서히 굳어지며 돌로 변하기 시작했다.

[일백 칠십 년의 세월이 이렇게 보냈다. 앞으로도 이백 년은 더 지내겠지……]

황군성은 돌이된 노인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절했다.

(다시는 궁월사부(弓月師父)를 만나지 못하리라……)

황군성을 가르친 네 명의 사부 중 가장 연장자인 노인의 이름은 바로 궁월이었던 것이다.

궁월,

그 놀라운 이름……

백 여년 전 무림에는 가공할 네명의 고수가 등장했었다.

그들은 각기 누군가를 찾아 다니며 가공할 혈풍을 일으켰는데, 당시 중원의 무림인 중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차별적인 살인을 하지는 않았었다.

세인들은 그들이 어떤 무서운 한을 품은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가 원수를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 있었으니,

한천사방객(恨天四方客),

바로 한천사방객인 것이다.

그들은 각기 중원의 동서남북에서부터 혈풍을 일으키기 시작했으니 그 각각은 이름은 이렇게 주어졌다.

 

동한객(東恨客) 궁월(弓月),

서한객(西恨客) 초사륭(楚獅隆),

남한객(南恨客) 단극린(段克燐),

북한객(北恨客) 냉천삭(冷千索),

 

한데, 삼년의 세월 동안 세인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한천사방객은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렸었다.

갑자기 나타났던 것 처럼 갑자기 사라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한동안 세인들의 입에서는 구구한 억척이 난무했다.

어떤 기인이 나타나 한천사방객을 단숨에 처치해버렸다고도 했고,

한천사방객은 서로끼리 충돌해서 모두 동패공사(同敗共死)해 버렸다고도 했다.

아무튼,

그 이후로 한천사방객은 세인들의 입에서 전설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궁월,

그는 바로 그 한천사방객의 우두머리인 동한객이었던 것이다.

 

절을 마친 황군성은 순간 땅을 박차고 비조처럼 몸을 날렸다.

번천도의 전수가 이루어졌던 암흑의 공간에는 다시 고요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곳은 진정 괴이한 곳이었다.

 

× × ×

 

소음곡(簫音谷),

관일봉에서 불과 이십여리 정도 떨어진 절벽 사이에 있는 계곡이다.

원래 붙어 있던 절벽의 가운데가 함몰되면서 만들어진 이곳은 병풍같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아름답기 그지 없는 곳이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물이 계곡을 흐르며 온갖 기화이초를 키워내고, 그 기화이초(奇花異草)를 먹고 많은 영물영수(靈物靈獸)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소음곡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이러하다.

골짜기의 특이한 구조로 말미암아 불어오는 바람에 골짜기가 마치 퉁소처럼 울리기 때문이다.

은은하고 맑은 퉁소소리는 오직 계곡 안에서만 들리지만, 그야 말로 천음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그리고, 조물주(造物主)의 역작(力作)인 듯한 이 소음곡, 그 한 가운데에는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장원이 한 채 자리잡고 있다.

크기는 불과 이천평 정도, 십오륙 채 정도의 전각이 세워져 있고, 담장을 형성한 장미덩굴들은 잘 다듬어져 있다.

뒷쪽의 병풍같은 절벽사이에서 흘러나온 작은 폭포는 장원의 안으로 떨어지고, 그 물은 장원 곳곳을 돌아흘러서 앞쪽에 있는 거대한 문옆으로 빠져 나온다.

그렇다.

이 장원에는 물이 나오는 문과, 사람이 나다닐 수 있는 문이 나란히 있는 것이다.

퉁소소리는 계곡에 부드러운 화음을 주는데,

아침 햇살이 소음곡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햇살에 장원의 편액이 선명하게 보였다.

금자(金字)로 씌어진 꿈틀대는 전자체(篆字體)로 씌어진 네 글자.

 

<문성무존(文聖武尊)>

 

이것이 무슨 말인가?

설마하니 이것이 바로 장원의 이름이란 말인가?

두고 볼 일이다.

 

이 장원의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 존현각(尊賢閣),

누군가가 아침부터 빽빽소리치고 있었다.

[너는 도대체 정신이 있는 아이냐 없는 아이냐? 어째 동생들 보다 못하단 말이냐? 이 집안을 이어가야 할 장남(長男)으로서 부끄럽지도 않냐?]

여인의 앙칼진 호통소리가 전각 밖까지 울러퍼지고 있었다.

호통을 치고 있는 이 여인,

바로 이 장원의 안주인인 주혜린(朱慧麟)이다.

비록 화내고 있는 모습이기는 하나 그녀의 아름다움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중년의 나이건만 이곳 소음곡에 있은 덕분인지 주름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젊었을 때의 미모 그대로이다.

크다란 눈은 호수처럼 맑고, 갸름한 얼굴의 뽀얀 살결은 처녀의 그것같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강한 위엄과 기품이 풍겨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두 아들과 외동딸을 앞에 놓고 꾸중을 하고 있는 중이다.

큰아들은 황군성,

나이 이십일세에 아버지를 닮아 칠척의 거구이다.

그리고 둘째 아들 황군우(黃軍祐),

문무를 겸비한 십칠 세의 총명하기 그지없는 소년이다.

마지막으로 외동딸 황청청(黃靑靑),

주혜린과 그녀의 남편인 황창설(黃蒼雪)이 뒤늦게 본 딸이다.

이제 십이 세의 그녀는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는 터였다.

더우기 눈치가 빠르고 엉뚱한 짓을 잘하여 사람들을 종종 놀라게 하는 말괄량이기도 하다.

자식들에게 엄하게 대하는 주혜린의 오늘 적수(?)는 바로 큰아들 황군성이다.

얼마전부터 황군성이, 문무겸전인 이 황가(黃家)의 전통을 깨뜨리기라도 할 듯이 학문을 도외시할 뿐만 아니라 무공마저도 소홀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혜린은 눈을 반짝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군성이 너는 오늘부터 무장각(武藏閣)에서 십일 동안 무공을 익히면서 근신(謹愼)하도록 해라.]

황군성은 고개를 숙이고 일어서며 침중하게 말했다.

[어머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주혜린은 등을 돌리고 문을 나서는 그를 보면서 가볍게 탄식했다.

[저 얘가 요즘들어 왜 그러는지 모르겠구나!]

[저는 형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문득 황군우가 말했다.

그의 몸은 형만큼 크지 않았지만 얼굴윤곽은 그와 흡사했다.

뜯어보면 주혜린을 닮은 얼굴이나 언뜻 윤곽만 보면 황군성과 착각할 정도로 닮은 모습이었다.

주혜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형이 무슨 말이라도 하더냐?]

[어머님도 참, 형님이 어디 제게 무슨 말을 할 사람이던가요? 그냥 대충 짐작해 보는 거지요.]

황군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주혜린이 다시 탄식을 하며 말했다.

[그래, 저 녀석은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할 녀석이 아니지. 도무지 속을 짐작할 수 없으니 더욱 답답하구나.]

그녀는 황군우와 황청청을 보았다.

[군성이가 너희들만 할 때는 얼마나 총명하고 뛰어났는지 돌아가신 네 조부님께서 그렇게 칭찬하셨단다. 그리고 그 녀석이 무엇을 하던지 마음대로 하게 놔두라 그러셨지.]

[…………]

[…………]

[하지만, 갈수록 속을 짐작할 수 없이 변해가는데 이 어미가 어찌 그녀석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이냐?]

[어머님, 어쩌면 형님의 무공과 학문은 어머님의 생각을 훨씬 초월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한데, 이상하게도 형님에게서는 삶에 대한 의지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황군우의 말에 주혜린은 몸을 움찔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님께서도 말씀하셨고 조부님들께서도 말씀하신 것 처럼, 형님은 저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형님이 달이라면 저는 반딧불 같이 미미할 뿐이지요.]

주혜린은 고개를 저었다.

[너 또한 네 형에 못하지 않다.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황군우는 씨익 웃었다.

[어머님, 위로해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이상하네……큰오빠는 공부도 안하고 무공도 익히지 않는데 어떻게 작은 오빠보다 나아?]

황청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녀의 치기어린 말에 황군우는 다만 미소만을 지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 주혜린에게 말했다.

[한데 어머님, 형님에 비하면 까마득히 부족한 저인데도, 이미 읽을 만한 책은 다 읽었고 알만 한 무공은 대충 알고 있습니다. 한데, 어찌된 일인지 학문도 염증이 나는 것 같고 무공은 쓸모가 없는 것 같습니다. 형님도 이러한 것을 느낀 것은 아닐까요?]

[쳇, 공부가 염증이 난다고? 나는 재미만 있더라. 그리고 무공만 해도 얼마나 신나는 일인데……]

황청청이 입을 삐죽거리며 쫑알댔다.

하지만 주혜린의 얼굴은 화석처럼 굳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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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강 무협소설

 

 

            태산북두- 泰山北斗

 

 

 

 

<작품이력>

 

19947월 전 7권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와룡강 필명의 단행본 <태산북두>도 있습니다만...

본 작품과는 다른 작품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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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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