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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四 章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사이 (1)

 

 

 

임단심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쪽에 흩어져 있는 황군성의 검은 철갑옷은 어지럽게 보였고,

침상에서 바닥까지 점점히 떨어져 있는 여자의 흔적과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찔렀던 것이다.

자기의 자리를 잠깐이나마 조응경에게 빼앗겼었다는 사실에 속에서는 질투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녀는 옆에 있는 조응경에게 콧웃음을 쳤다.

[흥! 목숨이 아까워서 시키는 대로 아무 남자와 함께 관계를 맺는 꼴이라니……]

[…………]

[도무지 여자로서 수치도 모르는 모양이군.]

조응경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자신의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임단심은 힐끗 그녀를 보았다.

가만히 있는 것까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앞으로 또 협박당하면 다른 남자와도 그렇게 관계를 맺을 테지?]

조응경이 고개를 들면서 발끈했다.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내게 대해 함부로 말하지마!]

그녀는 억울함과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덤벅이 된 눈으로 쏘아보며 소리쳤다.

임단심은 그녀에게 반박을 당하자 화가나서 미칠지경이었다.

[이년이 내 이름을 도용하더니 내 남편까지 가로채고도 감히 큰소리야? 한번 해볼테냐?]

임단심은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기세등등하게 조응경을 노려보았다.

조응경이 차갑게 내뱉었다.

[태상께 스스로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을 나한테 준다고.]

임단심은 그녀의 날카로운 반격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전륜법왕이 황군성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을 때 그녀는 조응경에게 황군성을 주는 것을 허락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조응경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너네들만 아니었으면 우리는 벌써 태상으로 부터 무공을 전수 받고 있었을 거야. 너야말로 감히 우리 자리를 빼앗은 거지.]

그녀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임단심은 이렇게 당돌한 조응경이 황군성과 그 짓을 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그녀는 소리쳤다.

[좋다. 너도 무림인, 나도 무림인, 무공으로 모든 것을 결판내자.]

[흥! 누가 마다할 줄 아느냐?]

조응경도 마주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때문에 살기가 어려있었다.

임단심도 그녀를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두 여인의 눈이 마주쏘아보았다.

쌍둥이 처럼 꼭같은 얼굴때문에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가랭이를 찢어죽여버리겠다.]

임단심은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뻗었다.

그녀가 옥인수라고 속아서 배웠던 청마수의 제 일초인 청마도살이 펼쳐졌다.

지금 그녀의 심정은 옥인표향보다 청마도살이란 이름이 훨씬 마음에 든다고 느끼고 있었다.

번쩍!

청마도살은 그녀의 손에서 발출되자 마자 조응경은 코앞에 이르렀다.

[어림없다!]

조응경은 마주 소리치며 가슴앞에 쌍장(雙掌)을 모았다.

전륜법왕의 독문절기인 만류귀종(萬流歸宗)이 펼쳐진 것이었다.

임단심의 청마수는 이미 전륜법왕에게 똑같은 수법으로 제압당한바 있다.

만류귀종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식(守備式)으로,

어떤 힘이든지 한곳으로 끌어모아 되튕길 수 있는 것이다.

조응경은 이것을 자신의 사부인 남궁파로 부터 전수받았던 것인데.

슈풍!

임단심의 청마도살은 만류귀종에 끌어당겨졌다가 그녀를 향해 강하게 반탄되어 돌아왔다.

임단심의 본래 공력에 조응경 자신의 공력까지 실린 것이다.

그러나, 임단심은 이미 만류귀종의 성질을 대충 눈치 채고 있었다.

그녀가 펼쳤던 청마도살은 더욱 빠른 속도와 힘으로 돌아왔다.

임단심은 크게 소리쳤다.

[청마쇄압!]

펑!

청마쇄압과 청마도살이 부딪히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조응경은 선실의 벽면까지 밀려가 입가에 가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으음!]

아무렇게나 걸쳤던 그녀의 옷은 날아가 버리고 완전한 나체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임단심과의 현격한 내공의 차이는 만류귀종으로서도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응경은 이를 갈며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선공(先攻)을 취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녀는 벌거벗은 몸을 풍차처럼 돌리며 두 다리를 벌려 임단심의 머리를 차갔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비지(秘地)가 확 드러났다.

[더러운 년!]

임단심은 버럭 소리치며 청마식시의 초식을 펼쳤다.

쿠르르릉!

한데,

그녀는 조응경에게 속고 말았다.

임단심의 머리를 노리던 조응경은 발이 위에 있을 때 상체는 물구나무를 서듯이 한 상태였다.

청마식시의 초식이 펼쳐지자 마자 조응경은 연체동물처럼 두 발을 등 뒤로 감아 피하며 두 손으로 임단심의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펑!

청마식시에 격중된 선실의 한쪽 벽에 예리한 손모양의 구멍들이 생겨났다.

조응경은 소리쳤다.

[가랭이는 내가 찢어주마.]

그녀는 임단심의 발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나,

그순간 그녀는 어께로 전해지는 강한 충격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으……응……]

임단심이 앉으면서 두 무릎으로 그녀의 어깨를 찍어버린 것이었다.

퍽!

임단심은 일어나면서 발로 조응경의 턱을 걷어찼다.

조응경의 벌거벗은 몸이 뒤로 날아가며 완전히 널부러졌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녀의 몸은 아주 고혹적으로 보였다.

[요사스런 계집애. 감히 누구한테……흔적도 없이 녹여버리겠다.]

임단심은 욕설을 퍼부으며 손가락을 뻗어 용골독지(溶骨毒指)를 쏘았다.

신검보의 고수를 처음 상대했을 때 그들의 시체를 녹여버린 용골독지이다.

일단 격중되면 금방 한줌의 핏물로 변하고 말 것임은 자명(自明)한 일이었다.

한데,

조응경을 향해 쏘아가던 용골독지는 그녀의 한자 앞에서 마치 무형(無形)의 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임단심이 당황하는데, 조응경의 옆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한사람이 서있었다.

[노야……]

그는 바로 전륜법왕이었던 것이다.

전륜법왕은 분기서린 표정으로 임단심을 향해 말했다.

[네년들이 죽든 살든 내가 알바 아니다만, 감히 내 제자의 연공을 방해해 큰일을 그르칠 뻔 했으니 그냥 둘 수가 없다.]

임단심은 전륜법왕의 몸에서 일어나는 천지를 뒤덮을 것 같은 살기에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녀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질려있었다.

전륜법왕이 소리쳤다.

[마타!]

임단심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내뱉었다.

[노야……설마……저를……]

마타는 바람처럼 달려와서 전륜법왕 뒤에 우뚝 섰다.

그의 눈동자는 색기로 번들거리며 벌거벗은 채 두 다리를 벌리고 쓰러져 있는 조응경의 사타구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아니겠느냐.]

전륜법왕이 차갑게 말했다.

임단심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전륜법왕이 마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통심마고(通心魔蠱)를 다오.]

마타는 여전히 조응경의 사타구니에 눈을 고정시킨 채 허리춤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전륜법왕은 병의 마개를 열더니 훅하고 불었다.

순간,

무언가 빛살같은 것이 날아가 조응경의 코 속으로 사라졌다.

전륜법왕은 다시 훅 불었고,

빛살은 임단심의 코속으로도 들어갔다.

임단심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전륜법왕을 바라보았다.

[껄껄껄……이제 마음대로 해 보라구.]

전륜법왕의 탐욕으로 이글거리는 마타의 등을 잡고 밖으로 던져버리며 선실을 나가버렸다.

 

통심마고(通心魔蠱),

 

독봉이라 불리우는 임단심이 이것을 모를 리가 없다.

묘강에서 서식하는 고(蠱)들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것이 이 통심마고이다.

한쪽이 목숨을 잃을 때에만 다른 쪽도 목숨을 잃는 다른 고들과는 달리,

통심마고는 작은 고통까지 함께 느끼게 되는 기묘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몸속에 침투하자 마자 머리 속에 있는 중추신경을 관장하는 곳에 달라붙어 살게 된다.

그리하여,

숙주(宿主)인 사람이 느끼는 고통과 감정을 모두 알게 되는데, 이것이 다른 숙주에 기생하고 있는 한쪽의 통심마고에게 심령으로 전달이되고,

그 쪽 통심마고가 감응하게 되면 원래의 숙주가 느꼈던 고통과 감정을 똑같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임단심은 조응경을 이제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에게 어떤 고통을 가하려고 하면 즉시 자기에게도 똑같은 고통이 되돌아 올 것이다.

 

임단심은 이를 갈았다.

[지독한 늙은이. 이제 좋든 싫든 이년과 함께 살게 만들고 말았구나.]

그녀는 분통이 터져서 조응경의 발을 힘껏 차버렸다.

순간,

[악!]

동시에 두 군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조응경은 정신을 차리면서 발을 부둥켜 안았고,

임단심도 자신의 발을 들고 쿵쿵뛰었다.

발길질한 똑같은 부위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든 것이었다.

홧김에 통심마고의 신통력을 깜빡했던 댓가였다.

임단심은 화가나서 소리쳤다.

[이년아! 냄새나는 물건을 훌렁 드러내놓고 있는 게 그리 좋아?]

이제 그녀들의 싸움은 욕으로 밖에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구의 입심이 센가, 누구의 마음이 더 독한가에 의해 승부가 나게 될 것이다.

 

× × ×

 

황군성은 전륜법왕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전륜법왕은 그에게 억제된 내공을 운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중이다.

[네 몸속의 내공은 세 가지의 공력이 혼융(混融)된 것이다. 이것을 움직이려 하면 두 가지 방법 밖엔 없다.]

[…………]

[그 중의 한가지는 세 가지의 내공구결마저 혼합하여 지금의 공력에 맞는 신공(神功)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

[기연에 의해 세가지의 공력은 뒤섞일 수 있었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세 가지의 신공을 모순없이 통합하여 하나의 신공으로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다른 하나의 방법은 처음부터 내공자체를 새로 익히는 것이다. 단전에서 그것을 더욱 키워 내공이 스스로 길을 찾게 하는 것인데, 두달 정도는 걸려야 할 것이다.]

황군성이 말했다.

[그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전륜법왕은 고개를 저었다.

[그밖에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내 내공으로 너의 공력을 움직여 전신의 대혈을 뚫어주면 될 수도 있지. 하지만……]

[…………]

[난 목숨을 걸어야 할 거야. 네 녀석의 억제되어 있는 내공이 육백 년 수위인데, 나도 그 정도 밖엔 되지 않는단 말이야. 내 내공이 더 강해야만 위험없이 효과를 볼 수 있는데……]

[…………]

[내 내공이 더 강해질 리는 없고, 방법은 네녀석의 내공이 약해지는 것 뿐이겠지.]

전륜법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황군성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내공을 움직일 수도 없는데 어떻게 약하게 할 수 있습니까?]

전륜법왕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가 있지 않은가? 여체야 말로 공력을 잡아먹는 귀신이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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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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