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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장 

 

          삼불대 밑의 천하제일인 (2)

 

 

 

삼불대 아래에는 맑은 약수가 흘러나오는 작은 동굴이 있다.

한데 이 동굴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밑으로 곧장 뚫린 깊은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의 아래에는 다시 넓은 석실이 있으니,

이곳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흑흑흑!]

울고 있는 여인,

그녀는 임단심이었다.

검은 철갑옷을 입은 채 호호백발의 노파 앞에 업드려 있는 그녀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노파가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아가씨! 천하에 그처럼 박정한 사내가 있다니……노신이 가서 일장에 때려죽이겠습니다.]

임단심이 고개를 저었다.

[파파는 그래서도 안되지만 그럴 수도 없어요. 그 사람의 무공은 어쩌면 천하에서 제일 강할 지도 몰라요.]

임단심은 훌쩍거리면서 말했다.

[그 사람은 자그마치 사부를 다섯 명이나 두었단 말이에요. 나는 하나도 없는 사부를……]

노파가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아가씨! 하지만 아가씨는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주인님을 아버지로 두시지 않았습니까? 그자의 가문이라는 문성무존인가를 찾아가서 주인님 이름으로 협박하면 그들도 감히 어쩌겠습니까?]

임단심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파파, 더 이상 말하지 말아요. 나는 이제 무림에 나가지 않겠어요. 이곳 항산에서 여승이나 되고 말겠어요.]

노파의 당황한 듯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가씨, 뭐든지 성급하게 결정하면 고통과 후회만이 남는답니다. 노신이 무슨 수를 써든지 그 사람을 아가씨 곁으로 돌아오게 하겠습니다.]

그때,

드르럭!

석실의 한쪽이 열리면서 금화선녀가 들어왔다.

[중은 아무나 하는 것인 줄 아느냐?]

임단심이 그녀의 품으로 달려들며 소리내어 울었다.

[어머니! 엉엉엉……]

[그래그래……내 딸이 이제야 돌아왔구나.]

금화선녀는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백 살이 넘은 금화선녀에게 스물살이 되지 않은 딸이 있다는 사실이……

게다가 그 딸이 임단심이었다니……

그럼 임단심의 아버지는 대체 누구……?

금화선녀는 전무옥을 한쪽 구석에 던져버렸다.

전무옥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독봉의 어머니가 금화선녀였다니……)

그때 금화선녀가 말했다.

[저놈은 아마도 네 뒤를 쫓아온 모양이다. 너도 알고 있겠지?]

임단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검보의 소보주예요.]

금화선녀가 말했다.

[하인들이 모두 죽어서 일할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잘 됐지 뭐냐.]

임단심은 전무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버진 어디 가셨어요?]

순간 금화선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흥, 그 영감……보나마나 또 어떤 계집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겠지.]

임단심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또 훌쩍 나가서 돌아오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때 노파가 금화선녀에게 말했다.

[마님, 아가씨께서 무림에 나가있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으신 모양입니다.]

금화선녀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누가 감히 내 딸에게 고통을 주었단 말이냐? 어떤 살고 싶지 않은 자가 있더냐?]

노파가 턱으로 전무옥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검보도 아가씨를 괴롭힌 모양입니다.]

[그래? 감히 신검보 따위가?]

금화선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무옥을 향해 세대의 지풍을 쏘았다.

한대는 전무옥의 아혈을 눌러버렸고, 다른 두 대는 전무옥의 체내로 스며들어 뱀처럼 움직여 다니기 시작했다.

전무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전신이 땀으로 젖어버렸다.

무시무시한 고통이었던 것이다.

임단심이 금화선녀에게 말했다.

[어머니, 세상에 얼굴이 똑같이 생긴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쌍둥이가 아니면서 말이에요.]

금화선녀가 고개를 저었다.

[닮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형제가 아니면서도 똑같이 생긴 사람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단다. 왜 그러느냐?]

임단심은 조응경과 얼킨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금화선녀는 길길이 뛰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그년이 감히 사람이 없어서 남의 남자를 뺏어가? 그리고 그놈도 네 아버지 같은 놈인가보다. 아내를 두고도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어?]

금화선녀는 뛰어나가면서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리거라. 내 당장 그 두 년놈을 쳐죽이고 말겠다.]

임단심이 크게 소리쳤다.

[어머니!]

우뚝멈추어선 금화선녀가 물었다.

[왜 그러느냐?]

[꼭 그 사람을 죽이시겠다면 아버지부터 죽이셔요. 아버진 그 사람보다 훨씬 더하잖아요.]

순간,

바람처럼 임단심 앞에 다가선 금화선녀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짝!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감히 아버지를 죽이라는 딸이 어디 있단 말이냐?]

임단심이 다시 눈물을 쏟으면서 말했다.

[어머닌 아버질 죽이지 않으면서 왜 그 사람만 죽이려는 거예요? 절대로 안돼요.]

그때였다.

동굴의 한쪽에서 불숙 사람이 나타나며 말했다.

[잘하는구나, 모녀가 가장(家長)을 모살할 궁리만 하고 있으니.]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여보!]

[아버지!]

[주인님!]

나타난 사람은 사십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문사였다.

듬직한 풍채에 붉으스름한 혈색좋은 얼굴,

전신에 풍겨나는 위엄과 귀태(貴態),

한마디로 신태비범(身態非凡)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무림인같은 모습은 없었다.

천하의 한량이라면 모를까 무림인이라면 아무도 믿지 않을 모습이었다.

손에는 백옥선을 느긋하게 부치며 서있는 그의 모습에 여인이라면 넋이 나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중년인이 부채를 접으면서 말했다.

[오랫만이구나, 어디 아버지 죽이라는 우리 아기한번 안아볼까?]

번쩍!

중년인은 말과 동시에 임단심을 번쩍 안아 올리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한데 이 녀석이 아버지 허락도 없이 시집갔구나. 하하하……]

중년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임단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흥, 워낙 밝히는 영감이라 척보면 아시는군. 한데 딸이 버림받고 왔다는 건 왜 모르시나?]

금화선녀가 코웃음을 쳤다.

순간, 중년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대체 그놈이 어떤 놈이냐? 감히 처를 버리는 놈이라니?]

[당신같은 사람이지 또 어떤 사람이겠어요? 당신이 워낙 바람을 피워대니 우리 딸에게 화가 돌아온 거예요.]

금화선녀가 다시 쏘아 붙였다.

중년인이 임단심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같은 놈이라니, 그럼 그놈이 나처럼 잘 생겼단 말이냐?]

임단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인이 음, 하더니 다시 물었다.

[나처럼 무공이 강하단 말이냐?]

이것만은 자신있는 모양이다.

[그의 사부가 말하기를 천하에서 그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어요.]

임단심의 말에 중년인은 눈이 둥그레졌다.

[그 사람 사부가 누군데?]

[전륜법왕이라고하는……]

[전륜법왕!!]

임단심의 부모가 동시에 소리쳤다.

[전륜법왕을 아셔요?]

임단심의 아버지가 코웃음을 쳤다.

[알다마다, 그 늙은이가 아직 살아있었어? 가소로운 일이군.]

그리고 금화선녀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 설마 아직도 그 영감을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그 깐 난장이 영감을 왜 생각해요? 그 영감이 내 생각했지.]

금화선녀가 마주 소리쳤다.

임단심의 아버지가 임단심에게 물었다.

[그 영감 아직도 자기가 천하제일이라고 그러던?]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천하제일인 것 같았어요.]

임단심의 아버지가 못마땅한 듯 눈썹을 오므렸다.

[너는 이 아버지 앞에서 다른 사람을 천하제일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 영감은 내가 스물 두살때 이긴 적 있어. 그때 내 오백초도 받아내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패했었지.]

그는 금화선녀를 보며 말했다.

[실은 그 영감은 네 엄마 동문사형이었지. 그때 싸워 이긴 댓가가 바로 네 엄마라구.]

임단심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했다.

전륜법왕을 그녀의 부모는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는 사형제지간 이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한데 그 영감 제자가 내 딸을 뺏어가? 다음에 만나면 그 영감 목을 뽑아버리고 말겠다.]

[우리 딸을 뺏어간 게 아니고 버렸다고요.]

금화선녀가 말을 정정시켰다.

금화선녀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임단심은 석실 안에서 옥신각신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자 노파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러다가 또 나 혼자 이곳이나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사실,

이 가족이 다툼을 벌였다하면 너도나도 가출하는 바람에 그녀 혼자서 석실을 지키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임단심이 강호에 나간 것도 그렇게 해서 나갔던 것이었다.

한데,

임단심의 부모는 임단심을 귀여워하면서도 절대로 무공을 가르치려고 하지를 않았었다.

임단심의 독공과 철현천기보법은 노파의 절기였다.

임단심의 부모는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고 노파도 알 수 없었다.

 

× × ×

 

삼불대의 밑에 있는 석실의 한 곳,

촛불이 밝혀져 있는 호화로운 침실이다.

이곳은 금화선녀와 그녀의 남편인 무제(武帝) 임보산(任寶山)의 침실이었다.

금화선녀가 무제 임보산에게 속삭였다.

[결국 일이 커져 버렸어요. 오늘 보니 단심이의 내공이 삼백오십 년 수위였어요.]

임보산은 무거운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연을 얻었더군. 하지만 그게 오히려 그 아이의 수명을 줄여버렸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당신은 어떻게 천하제일인이라는 사람이 하나뿐인 딸하나 구해낼 방도가 없어요?]

금화선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휴!]

임보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있다면 왜 그 아이에게 그토록 무관심하려 했겠소. 죽기전에 마음껏 살아보라고 부모도 없는 아이처럼 세상에 돌아다니도록 해놓고……]

[앞으로 이 년을 못살겠지요? 기혈이 뒤짚혀 참혹하게 죽는 것을 어떻게 봐요?]

금화선녀가 말했다.

[차라리……내공을 패쇄해버릴까요? 그럼 몇 년은 더 살지 않겠어요?]

[그랬다간 뭐라고 변명하겠소? 원망만 듣겠소? 아니 원망듣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혹시 혼자서 병세에 대해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사태가 더 악화될 것이오.]

임보산은 답답한 가슴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듯했다.

[이번에도 심산유곡에 숨어있다는 기인이사들을 찾아나섰지만 쓸만한 인물은 만나지 못했소. 세상에 인물이 많다는 건 거짓말이오. 하다못해 검신 전득무같은 자들도 보기 드문 실정이니……]

금화선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형이 아직 살아있다니 말인데요 사형이 좀 도와준다면 어떻게 되지 않겠어요? 그래도 당신 왜엔 천하에 적수가 없었던 사람인데……더구나 사형의 제자가 단심이 남편이라니 더욱……]

임보산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 전륜법왕 그친구 성미를 몰라서 그러시오? 내게 한번 진걸 평생 한으로 간직하고 있을 텐데 나를 위해 힘써줄것 같소? 어림도 없는 소리……]

금화선녀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까 단심이가 말하지 않았어요?]

[뭘?]

[그애 남편 황군성인가 하는 얘가 천하에 적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

[제 사람은 다 이뻐보이는 법인데 그말을 믿으시오?]

금화선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여기 있어요. 내가 심이한테 갔다오겠어요.]

그녀는 속이 비치는 엷은 능사옷을 입은 채로 임단심의 방으로 달려갔다.

 

             ***

 

 

 

[맞아요. 그 사람은 오백년 이상의 내공을 갖고 있어요. 한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임단심은 침상에서 혼자 울다가 갑자기 뛰어 들어온 금화선녀의 물음에 답했다.

금화선녀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출 것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래 우리 사위는 어디있느냐? 빨리 말해봐라.]

임단심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왜 그러느냐 빨리 말해보거라.]

[말하지 않겠어요. 그 사람을 찾아가지 마세요. 어머니나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해친다면 다시는 저를 볼 생각도 않는게 좋을 거예요.]

[해치려는 게 아니다. 손을 빌릴 일이 있어서 그러니 어서 말해 봐라.]

금화선녀는 그녀에게 간청하듯 했다.

임단심은 그녀에게 확답을 받은 후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서안의 염가장에 있었어요.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그녀의 눈앞에 바람이 날렸다.

벌써 금화선녀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버린 것이다.

금화선녀는 임보산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여보! 그 아이가 오백년 공력이래요. 그럼 충분하지 않아요?]

임보산의 몸이 그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그는 밖으로 나갈 치장을 하고 있었다.

임보산은 노파를 불러서 신신당부를 한 후에 금화선녀의 손을 잡고 석실에서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까마득히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무제 임보산……

세상이 모르는 천하제일인이 삼불혼이라 불리면서 삼불대 밑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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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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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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