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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장

 

                괴상한 배, 괴상한 사람 (2)

 

 

 

가짜 임단심의 본명은 조응경(趙應慶)이었고, 나이는 임단심과 같은 십구세 였다.

그녀는 금릉(金陵)에서 우연히 전무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를 임단심으로 오해한 전무옥은 그녀의 미모에 끌려서 신검보로 초청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오해를 받자 한편 어리둥절하면서도 한편 재미있기도 해서 그를 따라갔다.

그곳이 바로 신검보라는 점도 상당히 작용했었다.

그런데,

조응경이 초청에 응하자 전무옥은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준 것으로 착각하고 신검보에 도착하자마자,

검신 전득무에게 조응경과 혼인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녀는 어이가 없었고,

다행스럽게도 검신 전득무는 그녀를 보자마자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

전무옥은 풀이 죽었지만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마터면 억지로 결혼할 뻔 했던 것이다.

한데,

전득무를 만나고 난 바로 그 날 밤,

그녀는 누군가의 암습을 받고 정신을 잃어버렸었다.

나중에 깨어보니 정주에 있는 한 객점의 객실이었다.

사방에는 신검보의 고수들이 퍼져서 자기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 중의 한 명을 제압해서 전무옥이 독수를 입었다는 것을 알았다.

독봉 임단심의 독이라고 그 고수는 말했는데,

그때서야 조응경은 자신이 어떤 함정에 빠졌음을 알았다.

자신은 독이라고는 쓸 줄 모르는데,

누군가가 자기에게 누명을 덮어씌우기 위해 독을 사용한 것이틀림없었다.

그자는 자기를 진짜 독봉 임단심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응경은 정주를 남몰래 빠져나와 자신의 임무를 몇 가지 처리한 후,

동료와 함께 이곳으로 왔던 것이었다.

 

[그럼 흉수는 신검보 안에 있을 가능성이 더 많겠군.]

황군성이 중얼거렸다.

조응경이 물었다.

[한데, 당신이 검신의 팔을 자르고 사라졌다는 그 사람인가요?]

[맞아요. 바로 이 사람이죠.]

임단심이 차갑게 말했다.

노인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전득무의 팔을 잘랐다고? 그를 이겼단 말인가?]

황군성이 고개를 저었다.

[패했습니다. 그는 저보다 월등한 고수였습니다.]

노인의 눈빛이 사그라졌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문득,

[너희둘은 앞으로 나서라.]

노인이 조응경과 그녀의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두 사람은 번개처럼 움직여 노인의 양쪽에 엎드렸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내가 준비한 출전식(出戰食)은 이들이 먹고 말았다.]

조응경과 그의 동료의 어깨가 미미하게 떨렸다.

[너희들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전임 사자(使者)가 얼마 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고 말았다. 이제 다시 두 명의 사자가 필요한데, 이미 이들이 출전식을 먹고 말았으니 어쩌겠느냐?]

[태……태……태상……]

쿵쿵!

조응경과 그의 동료는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사자가 네 명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니, 너희들은 운명으로 생각하고 그만 자결하도록 해라.]

 

선실안은 기괴한 적막이 찾아왔다.

신선같은 노인의 입에서 나온 자결하라는 말에 임단심과 황군성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조응경과 그 동료의 눈이 원망스러운 듯 임단심과 황군성을 바라보았다.

사내가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자신의 우수로 천령개를 내리쳤다.

퍽!

사내는 비명도 없이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참혹한 장면이었다.

조응경은 품에서 예리한 비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번쩍!

비수는 그녀의 목을 찔렀다.

바로 그 순간,

핑!

쨍!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나면서 조응경의 손에서 비수가 빠져나가 선실벽에 꽂혀버렸다.

노인의 눈이 임단심을 향해 무시무시한 광채를 뿜었다.

[죽고 싶은 게로군. 그럼 두 명의 사자 중에서 여자는 바꿔야 겠군.]

임단심은 가슴이 찌릿하는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노인의 눈빛 하나에 그녀는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낀 것이다.

조응경의 안색은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임단심이 지풍을 날려 그녀를 구한 것이었다.

임단심은 용기를 내어 노인에게 말했다.

[이 정도로 자결하게 하는 것은 너무 참혹하잖아요.]

순간,

[으하하하하……]

노인이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황군성은 일이 긴박하게 되어가는 듯하자 임단심의 곁으로 와서 섰다.

노인이 웃음을 뚝 그치며 말했다.

[직접, 저 계집애를 죽인다면 용서해주마!]

임단심이 소리쳤다.

[흥, 인면수심의 위선자! 차라리 당신을 죽이겠어.]

그녀는 우수를 뻗어내며 옥인표향을 펼쳤다.

[안돼!]

조응경이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순간,

[청마수?]

노인의 입에서 은은한 놀람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너는 초사륭과 어떤 관계냐?]

말을 하면서 양손이 펼쳐졌다 쥐어졌다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토록 빠른 옥인표향이 마치 굼벵이처럼 느리게 노인의 손바닥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닌가?

황군성과 임단심의 놀라움은 컸다.

노인의 무공은 괴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임단심은 잇달아 옥인포슬과 옥인봉군을 펼쳤다.

노인의 손바닥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나,

청마수의 모든 수법은 노인의 손안에서 사그라지고 말았다.

[계집애가 삼백년 수위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니……]

노인의 짧은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순간,

임단심은 칠현천기보법을 밟으며 황군성을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황금빛 구룡로가 들리워져 있었다.

바로 그때,

노인의 손가락에서 뻗어나온 다섯 줄기의 빛이 임단심의 몸에 격중했다.

[윽!]

그녀는 구룡로로 치구룡술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내부로 전해진 강한 충격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뒤쪽에 있던 황군성이 황급히 허리를 잡아 그녀의 몸을 일으켰다.

노인의 손가락은 황군성의 미심혈(眉心穴)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모든 변화는 극히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황군성은 자신들의 생명이 이미 노인의 손가락 끝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노인은 검신 전득무와는 또 다른 경지에 있는 무공을 보여준 것이다.

노인의 손 그림자가 일렁이는 순간,

황군성과 임단심은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 × ×

 

우르릉!

해가 모습을 드러낼 줄 모르더니 마침내 하늘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쏴아아!

휘이잉!

바람과 함께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번쩍!

찰나지간의 섬광이 사위를 빛의 세계로 몰아 넣었다.

아……!

언제부터인지 세 명의 인물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턱밑까지 가린 죽립을 쓰고 땅에 끌리는 장포를 걸치고 잇었다.

번쩍!

오늘의 섬광은 서슬이 시퍼런 짙푸른 청광을 보였다.

웬지 으스스한 괴이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문득 어느 순간,

스슷!

새로운 인영하나가 세 명 죽립괴인들 앞에 우뚝 자리했다.

일신에 어둠보다 더 짙은 흑의에 가슴까지 내려오는 복면을 하고 있었다.

[신(神)의 명이다.]

복면 사이로 오싹 소름이 끼치고도 남을 스산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자를 죽여라.]

살인명령,

음성엔 그 어떤 감정의 기복도 찾을 길이 없었다.

세 명 삿갓괴인들은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존명!]

순간,

스스스슷!

돌연 주위 어딘가에서 수십 줄기의 검은 그림자들이 비 사이로 꺼져 버렸다.

번쩍

시퍼런 섬광이 작렬했을 때 복면인과 죽립괴인들 조차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죽임을 당할 그자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채 비는 거침없이 내렸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엇던가?

오직 비만이 내리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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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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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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