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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六 章

 

          떠나버린 女子

 

 

 

[헉! 현현부(玄玄斧)!]

수비무사(守備武士)가 다급성을 내질렀다.

황군성은 무뚝뚝한 어조로 내뱉었다.

[십칠로(十七路) 사형창(蛇形槍)에게 내가 왔다고 전해라.]

수비무사는 꽁무니에 불이 붙은 듯이 안으로 달려갔다.

이곳은 서안 근교에 있는 사형창 염소승(廉邵昇)의 장원이다.

황군성은 지금 현현궁의 사자임을 나타내는 현현부라는 작은 손도끼를 꺼내들고 있다.

현현부는 묵빛 윤기가 도는 도끼로 손잡이까지 온통 새까맣다.

이것은 말 그대로 현현궁에 소속된 문파들에게 있어서는 생사를 관장하는 상징이었다.

현현부로 상징되는 현현궁의 사자는 그들 모두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황군성은 뒷짐을 지고 하늘을 보았다.

(사부! 나를 강호 패륜아로 만든 것은 당신이오. 하지만……나는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겠소.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게 될 것이오.)

그는 전륜법왕을 생각하며 어떤 무서운 마음을 키워내고 있었다.

그의 양 옆에는 임단심과 조응경,

모습이 완전히 똑같은 두 여자가 바싹 붙어서 있었다.

 

× × ×

 

사형창 염소승은 숨이 막힐 것같은 압력을 느꼈다.

(이번에 온 사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는 감히 고개를 들어 황군성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태사의에 앉아있는 황군성,

칠척의 거구에 검은 철갑,

그리고 묵빛의 현현부를 들고 있는 그는 죽음의 사자같은 공포로 염소승에게 느껴졌다.

황군성은,

자신이 현현궁의 사자가 된 점을 이용해 현현궁의 궁주이자 자신의 사형이라고 할 수 있는 남궁파의 수족을 잘라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현현궁(玄玄宮)!

실제로는 무림세가(武林勢家)인 남궁가(南宮家),

복속하고 있는 칠십여 방파들을 제외해 버리면 실상 그 세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황군성의 생각인 것이다.

황군성은 불숙 염소승에게 엉뚱한 말을 했다.

[장주, 오늘 이곳에서 하루 묵어가고 싶은데 괜찮겠소?]

[이 염가로서는 더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사자께서는 원하시는대로 하십시오.]

염소승은 땅바닥에 넙죽 업드리며 말했다.

 

삼경 무렵,

염가장의 깊은 곳에 있는 별원을 두 사람의 여인이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임단심과 조응경이다.

[흥!]

돌면서 마주칠 때마다 임단심이 코웃음을 쳤다.

조응경은 속으로 욕을 했다.

(배우지 못한 막돼먹은 계집애, 언젠가는 두고 보자.)

그들이 돌고 있는 별원의 안에서는 황군성과 염소승이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황군성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염소승은 연신 굽실거리며 <예예> 소리를 연발할 뿐이다.

염소승은 돌아갔다.

그리고,

황군성은 중얼거렸다.

[복종할 자는 살려주고 거역할 자는 죽인다. 이것이야 말로 현현궁의 방법 그대로 아닌가?]

그때 임단심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벌써 세 개 문파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했군요. 아마 남궁파가 이런 사실을 알면 분통이 터져 죽을 거예요.]

황군성은 입을 다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전처럼 허무와 회의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말 이외에는 어떤 말도 내뱉지 않는 과묵한 성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앞에서는 임단심과 조응경도 싸울 수가 없었다.

그가 풍기는 기도는 날로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응경은 눈알을 빛내며 황군성을 바라보았다.

(이분은 틀림없이 무림의 제왕이 될 그런 분이야. 사부에게도 이런 기도는 없었어. 어차피 맺어진 인연……결코, 어떤 경우에도 물러서진 않을 테야.]

그녀는 전륜법왕에게 협박당해 정신을 잃은 황군성에게 스스로 몸을 받쳤지만,

그것을 하나의 기회로 삼고 있었다.

(임단심과 난 똑같이 생겼어. 무공은 저 계집애가 조금 강하지만 나도 약하진 않아. 게다가, 난 아직까지 더 팽팽해. 저 사람이 나만을 좋아하게 할 자신이 있어.)

그녀는 임단심을 힐끗 보았다.

이미 염치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황군성과 임단심이 옷을 벗으면 함께 벗고, 누우면 함께 눕는다.

한치라도 물러서서 버림을 받게 되면,

그것이 바로 자신의 종말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사부인 남궁파의 살수를 그녀는 결코 피할 수 없다.

어떻게든,

황군성과 억지로라도 잠자리를 같이해서 정을 얻는 길 밖에는 다른 수가 없는 것이다.

문득,

황군성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혈화창(血花槍)이 어떤 것인가?]

조응경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몰라요.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흥! 남궁파의 제자면서도 그의 무기를 한번도 본 적 없다는 게 말이 돼?]

임단심이 소리쳤다.

조응경의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궁주님의 제자는 모두 스물네 명이나 돼, 하지만 아무도 궁주님이 무공을 펼치는 것도 구경한 사람이 없어.]

[여전히 그를 궁주님이라고 하는 것 좀봐,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틀림없이 그곳에 가있을 거야.]

임단심이 다시 쏘아 붙이자 황군성이 손을 들어 저지시켰다.

[임매, 그만하시오.]

단 한마디의 말이었지만 임단심은 다시 입을 떼지 않았다.

황군성의 말에는 그녀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 섭섭함을 금할 수 없었다.

자기만의 남자였던 황군성이었는데,

자기가 황군성의 모든 것이었는데,

이제는 황군성의 가슴에서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아주 좁아져 버린 것같은 느낌이었다.

(차라리……고독한 모습, 그때가 더 좋았어.)

그녀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조응경이 자신과 똑같은 생김새기에 그녀는 더욱 미웠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릴 것만 같다.

그런데도 황군성은 조응경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자신과 상의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황군성의 이러한 태도에 갑작스런 서러움이 느껴졌다.

황군성은 침상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조응경이 다가가 그의 신발을 벗기고 옷을 벗겨주고 있다.

황군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는 궂은일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황군성은 천정만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있고,

조응경은 임단심을 힐끗 본 후에 자신의 옷을 벗었다.

그리고,

그녀는 황군성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점차 손을 밑으로 쓸어갔다.

황군성의 몸 일부가 팽창해오면서 그녀의 손을 가득 채우고 삐져나왔다.

조응경은 임단심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황군성의 전신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임단심은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원망스런 눈길로 황군성과 조응경의 벗은 몸을 바라보았다.

조응경의 행위가 가증스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에서 일어나는 뜨거운 불길은 스스로는 억누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도 철갑옷을 벗지 않을 수 없었다.

조응경은 다리를 침상 아래로 내린 채 침상에 누웠고,

황군성은 침상아래에 무릎을 꿇은 채 조응경의 두 다리 사이에 있다.

[흑!]

황군성의 몸이 조응경의 몸을 압박해가자 그녀는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황군성의 큰 남성이 그녀의 몸을 한꺼번에 밀고 들어온 것이다.

뜨거운 느낌이었다.

임단심은 황군성을 뒤에서 안고 자신의 몸을 붙혔다.

황군성이 조응경을 압박하기위해 몸을 흔들 때마다 그녀도 가랑잎처럼 흔들렸다.

자세가 바뀌고,

조응경의 자리를 임단심이 대신했다.

황군성은 들소처럼 날뛰었고,

임단심은 물고기 처럼 파닥거렸다.

세 사람의 욕정이 뒤엉켜드는 방안은 삐걱이는 침상소리와 뜨거운 신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조소저는 어디 있소?]

황군성은 눈을 뜨자마자 물었다.

그의 가슴에 엎드려 있던 조응경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제가 여기를 차지했어요.]

황군성은 살짝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임매는?]

[몰라요. 그녀가 어디 갔는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어디 측간이라도 갔겠죠.]

조응경은 황군성의 하체를 더듬으며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위에 눌러앉았다.

그 느낌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조응경은 생각했다.

자신의 몸속으로 마치 말뚝같은 황군성의 그것이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녀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흐윽! 흐윽!]

몸을 움직이기 전부터 가쁜 신음이 나왔다.

하지만,

황군성이 일어나면서 그녀를 밀쳐버렸다.

[이 근처에는 없소. 찾아봐야겠소.]

휘이익!

황군성은 염가장 일대를 바람같이 돌아보았다.

그러나 임단심의 종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황군성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떠나버렸단 말인가? 내가 그녀에게 너무 박정하게 대했는가?)

사방 백여리를 돌아보았으나 그녀를 찾을 순 없었다.

황군성은 염가장으로 돌아갈 생각도,

조응경이 그곳에 있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임단심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앞이 캄캄해졌다.

자신이 조응경과 가진 정사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심적인 고통을 주었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견딜 수 없었다.

그로서는 자의든 타의든 관계를 맺은 조응경을 져버릴 수 없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인데,

자신의 처신이 분명치 못함으로 인해 임단심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그녀가 없어진 다음에야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

임단심은 그와의 정사가 끝나자 마자,

잠이든 황군성과 조응경을 버려두고 옷을 입고 염가장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이미 깊은 밤에 떠났으니 날이 샌 후에 찾아다닌 황군성에게 발견될 리가 없는 것이다.

황군성은 망연자실, 작은 냇가에 주저앉아버렸다.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것같았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오직 그의 눈앞에는 임단심만 어른거리고 있었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그의 마음에는 야심이 들끓고 있었다.

천하를 뒤흔들 웅심이 자라고 있었다.

한데,

임단심이 사라진 지금 그것들은 마치 물거품처럼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임단심을 만나기 전의 그 허무와 고독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와는 분명히 다른 점은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에는 임단심으로 가득차있는 것이다.

황군성은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물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임매! 임매! 내가 잘못했소. 용서해주시오.]

맑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황군성은 임단심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는 개울물만을 쳐다보며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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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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