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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2021.05.02 [천병신기보] 제 22장 자부지존이 되어라!
  25. 2021.05.01 [천병신기보] 제 21장 흑룡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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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五 章

 

              天魔冢의 狂風

 

 

 

[헉헉... 으음... 헉...!]

능천한은 절정을 향하여 숨가쁘게 치달려 올라갔다.

그와 그의 몸밑에 깔린 금벽라의 나신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스스스스--- 스스!

위--- 이이이이--- 이잉---!

홍백지기는 완전히 장막(帳幕)을 이루어 능천한과 금벽라를 뒤덮었다.

그 홍백지기들은 끝어뵤는 일렁이는 능천한과 파도를 받아들이고 있는 금벽라의 나신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솜에 물이 빨려들 듯이 스며드는 홍백지기,

그것은 아주 순수한 음양지기(陰陽之氣)였다.

능천한이 일으키는 뜨거운 폭풍은 점점 더 거세어져갔다.

한순간,

[아... 아우님...!]

축 늘어져 있던 금벽라의 입에서 교성이 터졌다.

[누... 누님...!]

능천한은 움직임을 멈추며 자신의 몸아래에 있는 금벽라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파르르 속눈썹이 떨리고,

주르르르...!

환희의 눈물이 금벽라의 눈에서 흘렀다.

그녀의 풍염하기 이를 데 없는 나신이 희열에 바들바들 떨렸다.

[아... 아우님...! 흐윽...]

금벽라는 희뿌연 허벅지로 능천한의 하체를 꼬옥 죄어 그를 깊이 받아들었다.

[누님... 괜찮으십니까?]

능천한은 금벽라의 눈가에 흐르는 환희의 눈물을 닦아주며 속삭였다.

[아우님...!]

금벽라의 옥용이 도화빛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능천한을 끌어당겨 그를 자기의 풍만한 젖무덤에 파묻었다.

[왜... 더... 즐기시지 않으시고요!]

금벽라는 수줍은 어조로 능천한에게 속삭였다.

능천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렸다.

금벽라가 자신의 사랑을 더 바라고 있음을 안 때문이다.

[누님... 사랑합니다!]

[천첩... 또한 아우님을... 아아...!]

[흐음... 허억... 누님...!]

능천한의 몸이 다시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지금껏 축 늘어져 있기만 하던 금벽라의 덩체가 화살을 맞은 사슴같이 능천한을 휘감았다.

열풍은 다시 봉황지존을 가득 메웠다.

부부(夫婦),

거룡(巨龍)이고 봉황(鳳凰)의 부부의 사랑은 그 열풍 속에서 더욱더 짙어만 갔다.

 

***

 

삘릴릴리... 삘리리...!

소성(簫聲)!

너무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소성이었다.

만물이 그 소성에 의해 기지개를 펴고 시들어가던 화목(花木)들이 다시 봄을 맞은 듯 활짝 꽃을 피었다.

쐐--- 애액! 스스스스---

하늘로 새카맣게 창천을 가리며 날짐승들이 모여들었고,

지상으로는 수많은 동물들이 모여들었다.

도원경이랄까?

독수리는 참새와 비둘기를 잡지 않고,

맹호는 사슴을 쫓으려 하지 않는다.

만물(萬物), 만수(萬獸)가 하나가 되어 엉켜 있었다.

그것은,

삘릴리... 삘릴릴리...!

천상(天上)에서 들려오는 듯한 환상적인 음률 때문이었다.

금수들이 빙 둘러선 산봉(山峯).

일남일녀(一男一女)가 금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내는 황포를 걸친 청년으로 매우 영준하며 태산같은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여인은 깨긋한 궁장을 걸친 미부(美婦)였다.

봄의 여신같이 푸근한 중에 만인을 정복케하는 기품을 지닌 미인이었다.

피리는 그녀가 불고 있었다.

앵두같이 붉디 붉은 입술에 금빛이 찬연한 옥소리가 물려 있었다.

그 금옥소 위를 뛰어노는 옥으로 빚은 교수여...

따사로운 추광(秋光)이 옥수에 부서져 눈이 부시다.

청년은 큼직한 바위에 편한 자세로 기대어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바위 옆에 기대어 있는 시커먼 극(戟),

도무지 무우하나 베지 못할 것 같은 칙칙하고 무딘 극(戟)이었다.

그러나 그 극에는 신비로운 기품(氣品)이 있었다.

묵기(墨氣)로 그 뛰어남을 감추었으나 그 은은히 흐르는 기품은 비범인이 놓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것이다.

극의 이름은 천극(天戟)이다.

하늘같다고 하여 붙여진 그 극의 주인은 황포청년이고...

궁장미인은 황포청년의 정실부인이 되는 여인이다.

능천한과 광양존후 금벽라가 그들이다.

문득,

삐--- 일릴리---!

길고 환상적인 여운을 남기며 소성이 끊이었다.

[...!]

금벽라는 봉황극락소를 내려놓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빙그레 미소를 띄우고 있는 능천한,

그를 바라보는 금벽라의 시선에는 따스한 모정과 사랑이 담뿍 들어 있었다.

(봉황극락음을 저토록 태연하게 들으실 수 있는 분은... 상공 한분 뿐이리라.)

금벽라가 미소를 짓는데 능천한이 감았던 눈을 떴다.

[하하, 극락환파음... 정말 휼륭했습니다. 누님.]

능천한의 말에 금벽라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하옵니다.]

금벽라가 조용히 대답했다.

잠시 따뜻한 침묵이 흘렀다.

(어느덧 이곳에서 아우님을 모신지 한달이 되어간다.)

금벽라의 옥용에 안타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한달,

그동안 금벽라는 능천한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었다.

능천한이 건드린 여인응 적지 않다.

그리고 아직 능천한에게 몸을 맡기지는 않으나 능천한을 평생 따르려는 여인들도 많다.

강호에서는 금벽라는 어쩔 수 없이 능천한의 사랑을 그녀들에게도 조금씩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녀 혼자인 것이다.

얼마든지 능천한을 독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능천한도 금벽라에게 아주 깊이 빠져 있었다.

점점 사랑의 회수가 많아질수록 더욱 진한 희열을 금벽라에게 발견하는 때문이다.

금벽라는 고향이고 바다이며 대지(大地)였다.

그러나 이제 금벽라는 능천한을 풀어주어야 한다.

폭풍같이 급변하는 천하대세가 그렇게 하도록 재촉하고 있었다.

 

---혈종문(血宗門)이 마침내 대발호를 일으켰사옵니다. 혈종오패를 십배 능가하는 가공할 세력입니다.

---변황(邊荒)에서 폭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해천검파(海天劍波), 요지(遙地)가 오만의 정예로 동서에서 들어오고 남황에서 십만의 맹수들이 천남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태양신존(太陽神尊)이 지존(至尊)의 목을 베겠다고 중원을 휩쓸고 있습니다. 그는 무적입니다.

---구천독종(九天毒宗)이 사천(四川)을 혈세하며 혈종문(血宗門)과 대격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천향염후(天香艶后)가 대살성으로 화했습니다. 패천황룡(覇天皇龍) 태상존(太上尊)을 찾는 천환여제(天幻女帝)가 그녀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내들의 씨가 마를 것입니다.

 

풍운(風雲)!

대풍운(大風雲)!

화산이 폭발하듯이 엄청난 대풍운이 천하를 뒤흔들고 있었다.

전대미문의 대풍운!

천지십병(天地十兵)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며 엄청난 돌풍을 부르고 있었다.

 

혈종(血宗),

태양신존(太陽神尊),

구천묵영독존(九天墨影毒尊),

천향염후(天香艶后),

 

가공할 네 명의 절대강자가 천하를 놓고 충돌하고 있었다.

마(魔)와 사(邪)가 구주팔황(九州八荒)을 뒤덮었다.

오직 야심과 한만이 존재하여 천하를 대혈륜(大血輪)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정(正)은 어디로 갔는가?

 

의혈(義血)의 지사(志士)들이 땅을 쳤다.

야심과 야심,

원한과 원한이 충돌하는 중에 정(正)은 그 그림자도 남지 않고 사그라 들고 있었다.

패천잠룡이 쓰러졌다고 알려진 이미 오래이고,

정도삼존(正道三尊)과 일검성(一劍聖)의 그 찬연하던 위명이 음모 속에 사그라 들었다.

천하는 오직 마사(魔邪)의 무리와 새외변황의 오랑캐들인 것으로 보였다.

천하의 의인들은,

그 폭풍의 후면에 거대한 잠룡이 꿈틀거리고 있음은 끔에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 이분을 떠나보내야 한다. 나는 평생... 이분과 함께 지냈던 한달의 세월을 잊지 못할 것이야.)

금벽라의 입가에 복잡한 미소가 흘렀다.

문득,

[예빈이냐?]

금벽라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봉황지존의 진전을 이어 한달 전보다 오배이상 강해져 있었다.

지금의 그녀의 실력은 몇몇 초고수 들 외에는 무적이라 할 정도다.

그런 그녀는 누군가 주위에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스--- 스슥!

한 줄기 흑영이 능천한과 금벽라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지존!]

왜소한 흑의인영은 날아내리자마자 능천한에게 무릎을 꿇었다.

천봉(天鳳).

녹림천봉(綠林天鳳) 진예빈이었다.

[어서 오너라!]

금별가 훈훈한 미소로 그녀를 맞았다.

[그래... 대제(大帝)는 원기를 회복하셨느냐?]

능천한이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진예빈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하옵니다. 영라대사고님의 배려로... 전보다도 더 건강해지셨사옵니다.]

진에빈의 말에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능천한에게 시선을 주던 금벽라가 진예빈에게 물었다.

[무엇인가... 급변이 있는 모양이구나?]

금벽라의 물음에 진예빈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사옵니다. 천하가 한 가지 일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무슨 일이기에...!]

금벽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급변은... 대혈풍(大血風)을 부를 뿐인데...)

그녀의 근심스헌 표정을 보며 진예빈이 대답했다.

[천마총(天魔塚)이 나타났다고 하옵니다.]

[천마총!]

진예빈의 말에 금벽라가 깜짝 놀라 교구를 떨었다.

다만 능천한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금벽라와 진예빈의 대화를 듣고 있을 따름이다.

 

<천마총(天魔塚)>

 

너무도 큰 유혹(誘惑)이 있는 곳이 아닌가?

 

---천마(天魔)!

 

고금(古今)을 지나 영원히 절대무적(絶大無敵)이라는 고금제일마종(古今第一魔宗).

그가 뼈를 누인 곳이 천마총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천마총에 들면 천마절기와 천마지존비(天魔至尊匕)를 얻어 천마만큼 강해질 수 있다.

이런 전설이 천 년을 두고 흐르지 않았는가?

강(强)하다는 것.

그것은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뉘라서 무적(無敵)이 되어 천하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지 않으랴?

천하를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묻혀 있다는 곳이 천마총이다.

천 년을 통해 수많은 야심가들이 천하를 이잡듯이 뒤집고 다니며 찾던 곳이 바로 천마총이다.

 

[천마총이 나타나다니... 그것이 무슨 소리냐?]

금벽라가 안색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진예빈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틀 전... 갑자기 그런 소문이 천하에 퍼졌습니다. 행여나 하였으나... 그 반응이 너무 놀라워... 지존께 아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라에게는 알렸느냐?]

금벽라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예. 대사고님께도 연락을 드렸습니다만... 대사고께서는 다만 웃으시며 지존께서 움직이실 때가 되었다고만 하실 뿐ㅇ...]

[아우님이 움직일 때?]

금벽라는 의아해하며 능천한을 돌아보았다.

[하하... 영라가 그랬단 말이지?]

능천한은 태평하게 껄걸 웃으며 천극을 쓰다듬었다.

(천마총이 나타났다는데 웃기만 하시다니... 어찌 대사고님과 똑같단 말인가?)

진예빈은 탄식하였다.

금벽라는 능천한을 바라보다가 나직이 함숨을 쉬며 진예빈을 돌아보았다.

[그래... 천하의 반응은 어떻더냐?]

그녀의 물음에 진예빈은 지체없이 대답했다.

[푹풍같사옵니다. 서로 쟁패하고 융화 못하던 자들이 노도같이 몰려가고 있습니다.]

[으음...]

금벽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장소는 어디라고 소문이 났느냐?]

[십만대산(十萬大山)의 혈해(血海)라... 그 험한 오지에 천마총이 있다?]

그때 능천한이 입을 열었다.

[혈종문에서 가장 먼저 십만대산으로 달려갔을 것이고...]

능천한의 말에 진예빈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그... 그것을 어찌 아셨사옵니까?]

진예빈이 놀라 말하자 금벽라도 고개를 갸웃하며 진예빈을 돌아보았다.

[상공의 말씀이 맞느냐?]

[네. 소문이 퍼지자 가장 먼저 이동한 것이 혈종문이었습니다. 혈종을 비롯하여 구십구천혈사신(九十九天血死神), 삼백육십무적혈강대(三百六十無敵血剛隊)등이 십만대산으로 달려갔습니다.]

[흠...!]

능천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뒷짐을 지고 남천(南天)을 바라보았다.

[핫하! 진정코 내가 나서야 할 때가 도래했군. 영라의 안목은 항상 정확하니...!]

스스슥!

능천한의 옆으로 금벽라가 수심에 찬 표정으로 다가섰다.

[십만대산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금봉(金鳳)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누님.]

능천한은 말을 하며 봉황지벽(鳳凰之璧)쪽을 바라보았다.

[금봉! 오랏!]

능천한이 봉황지벽을 향하여 크게 외쳤다.

그러자,

우--- 워--- 어--- 억!

봉황지벽으로부터 한소리 창창한 봉황음(鳳凰音)이 터졌다.

그리고,

우르르르르---!

쏴--- 아아아---!

찬란한 오색광기가 일시에 산역을 가득 메웠다.

[아...!]

진예빈은 아연하여 입을 딱 벌렸다.

거대한 금붕이 광풍을 일으키며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것이다.

양날개를 활짝 퍽 길이가 이십여장에 이르는 실로 거대한 황금봉황이었다.

 

---구천금봉황(九天金鳳凰).

 

콰르르르르--- 르르!

우르르르르--- 르르!

광풍을 일으키며 구천금봉황이 능천한의 앞으로 날아내렸다.

[금봉, 네가 수고를 해 주어야겠구나!]

금벽라는 구천금보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구--- 우우...!

구천금봉황은 알았다는 듯이 금벽라의 가슴에 긴 부리를 비볐다.

[하하! 누님, 걱정이 되십니까?]

능천한은 금벽라의 동그스름한 어깨를 쓸어안았다.

금벽라는 능천한의 넓은 가슴에 사르르 고개를 기대었다.

[그래요, 아우님... 아우님이 떠나시면... 신첩은 아마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옵니다.]

금벽라는 능천한의 너른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부럽다...)

그런 금벽라를 진예빈은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하! 누님, 이것을 보십시오!]

능처한은 금벽라를 안은 채 우수를 쳐들었다.

위--- 이이이--- 잉!

츠--- 파파파팟!

능천한과 우수에 어느사이엔가 반투명한 장검(長劍)이 들려 있었다.

[천... 천형제왕검(天形帝王劍)!]

진예빈은 침을 꿀꺽 삼켰다.

능천한이 든 반투명의 검(劍)!

그것은 바로 천형제왕검이었다.

그리고,

[하하하! 가랏!]

위--- 이--- 이이이잉!

슈--- 아아--- 아앙!

능천한의 장소 속에서 천형제왕검이 천장(千丈) 밖으로 날아갔다.

쿠--- 콰콰--- 콰쾅!

쿠르르--- 르르르--- 르!

다음 순간 천여장 밖의 작은 산봉이 천형제왕검에 부딪혀 얼음이 깨지듯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천검성의 최고 최후절학이었다.

 

---천검만리어기뢰(天劍萬理馭氣雷).

 

콰르르르르--- 릉! 쿠쿠쿵!

[하하! 어떻습니까? 이정도면 안심하고 소제를 보내주시겠습니까?]

능천한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산봉이 무너지는 광음 속에서 들렸다.

[아우님...!]

금벽라는 그런 능천한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녀의 봉목으로 눈물이 흐름을 능천한은 알아보지 못했다.

(신첩은... 불안하옵니다. 신첩의 몸속에... 당신의 씨가 자라고 있기에 더욱...)

무슨 소리인가?

광양존후 금벽라.

그녀가... 능천한의 아이를 갖었다는 말인가?

금벽라는 주체없이 흐르는 눈물로 능천한의 웃깃을 적셨다.

(말씀드리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시지 못하실 것이므로... 십만대산에 다녀오신 후에나... 말씀드려야...)

금벽라...

그녀는 능천한을 꼬옥 끌어안았다.

마치 영원히 그의 일부가 떨어지지 않을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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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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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四 章

 

                      療傷을 위한 情事

 

 

 

[봉황지벽(鳳凰之璧)?]

능천한의 두 눈이 현기를 흩뿌렸다.

어떤 예감이 강렬하게 능천한을 엄습하였다.

우르르르르---

능천한이 석벽으로 다가가자 흙더미들이 사방으로 밀려났다.

석벽은 인위적으로 토벽이 발라져 감추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능천한과 혈종이 충돌하는 여파에 밀려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능천한은 금벽라를 안은 채 석벽 앞에 섰다.

그의 시선은 벽()자의 흙 토()변에 가 닿았다.

흙토변의 끝에 작은 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흠을 만들어 놓은 이유가 있을 텐데...)

능천한은 중얼거리다가 좌수를 들어 보았다.

그의 좌수 중지(中指)에는 지환(指環)이 끼워져 있었다.

금강벽에 정교한 봉황(鳳凰) 무늬를 새겨 넣은 지환...

 

---봉황신지환(鳳凰神指環),

 

바로 봉황오보(鳳凰五寶) 중의 봉황신지환이었다.

능천한은 환몽천유부에서 나올 때 제갈영라의 등살에 못 이겨 그것을 끼고 나왔었다.

[비슷한 크기... 봉황과 봉황이니...]

능천한은 봉황신지환을 빼내어 작은 흠에 맞추었다.

그러자,

우르르르---

봉황지벽이 지진을 만난 듯이 뒤흔들렸다.

[...]

능천한은 긴장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한순간,

우우우우--- 이이익---

봉황지벽 안에서 해맑은 신조(神鳥)의 울음소리가 들려 나왔다.

그것은 봉황음(鳳凰吟)이었다.

[봉황음... 설마 진짜 봉황이 있단 말인가?]

능천한의 안색이 경이로움으로 흔들렸다.

우르르르--- 르르르---

--- ! --- 아아아앙!

돌연 석벽이 둘로 쩍 갈라지며 강렬한 광휘가 쏟아졌다.

일시에 주위에 대낮같이 환해졌다.

[...]

능천한은 두 눈을 크게 떠 그 강렬한 광휘를 마주 보았다.

갈라진 봉황지벽의 안쪽을 바라보던 능천한은 몸을 석상같이 굳혔다.

봉황지벽의 안쪽,

오색찬연한 것을 지닌 신조(神鳥)가 있었다.

너무도 황홀한 광채를 발하는 것을 지닌 신조,

우뚝 서 있는 키가 무려 오장에 이르는 거대한 신조였다.

[봉황! 구천금봉황(九天金鳳凰)이 실존하였다니...]

능천한은 절로 신음을 흘렸다.

 

<구천금봉황(九天金鳳凰).>

 

석벽 안의 신조를 일컬어 구천금봉황이라 한다.

다만 전설상의 영물이고 인간에 못지않은 영성을 지닌 신조라 전한다.

구천금봉황은 역사에 걸쳐 단 한번 나타났었다.

, 전설 속의 무종(武宗)인 봉황지존(鳳凰至尊)이 구천금봉황을 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구천금봉황이 지금 능천한 앞에 있는 것이다.

파파파--- ---

능천한과 구천금봉황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붕목(鵬目)과 봉목(鳳目)...

이내 구천금봉황의 눈에서 이채가 떠돌았다.

능천한의 눈빛은 창해와도 같았다.

무엇이든지 빨아들일 듯이 유연한 그의 눈빛에 구천금봉황도 놀란 듯이 보았다.

몸의 크기로 따지면 구천금봉황에게 까마득히 못 미치는 능천한이다.

그러나 능천한에게 그의 키를 일만장(一萬丈)으로 보이게 하는 기도가 있다.

구천금봉황은 천하인 영물이다.

그런 능천한의 기도를 못 알아본 까닭이 없다.

그리고,

--- --- --- 이익!

구천금봉황은 크게 봉황음에 내었다.

그리고는 몸을 움직여 옆으로 물러섰다.

구천금봉황이 옆으로 물러서자 그곳에 하나의 황금문(黃金門)이 있었다.

 

<봉황지존전(鳳凰至尊殿).>

 

황금문에는 보옥으로 수 놓아진 글이 박혀 있었다.

[봉황지존전... 역시... 이곳은 봉황지존(鳳凰至尊)의 유적이로구나.]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이곳은 봉황지존이 그 자취를 남긴 곳이리라,

--- --- 어억---

구천금봉황은 능천한에게 봉황지존을 가리키며 들어가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봉(金鳳)! 고맙다.]

능천한은 구천금봉황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우우... 우우...

구천금봉황은 능천한의 미소에 접하자 기쁜 듯이 웅얼거렸다.

가까이서 보니 황금의 문은 더욱 화려했다.

전체가 황금으로 주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수천 개의 보옥이 박혀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 그그그그릉---

능천한이 다가가자 봉황지존의 황금문이 절로 열렸다.

--- 이이이잉!

스스스--- 스스!

황금의 문이 열리자 안족에서 청아한 향기를 심은 서기(瑞氣)가 안개같이 피어올랐다.

[...]

능천한은 그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폐부 속의 폐기가 한꺼번에 녹아드는 듯이 상쾌한 향기였다.

그르르--- ---

능천한이 들어서자 황금의 문은 뒤쪽에서 저절로 닫혔다.

[...!]

능천한은 괘념치 않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화려함이 극에 달한 넓은 석실이었다.

수많은 기진이보들이 석실을 장식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달리 발광의 물체가 없음에도 석실은 환했다.

보주들의 고아휘가 석실을 밝게 만드는 것이다.

[훌륭하다.]

능천한은 전면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수십 장 넓이의 석벽(石璧),

그곳에는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진 봉황도(鳳凰圖)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살아서 하늘로 오를 듯한 봉황도였다.

한데 그 봉황도의 한 마리가 아니고 자웅(雌雄) 한 쌍이었다.

다만 한쌍의 봉황을 그린 것이 아니고 그것은 음양교합(陰陽交合)으로 뒤엉킨 한쌍의 봉황이었다.

능천한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봉황합령음양무(鳳凰合靈陰陽舞)!]

능천한은 봉황음양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봉황합령음양무(鳳凰合靈陰陽舞).>

 

이는 도가(道家)에 내려오는 최고지상의 합벽신공(合壁神功)이다.

오직 부부(夫婦)만이 익힐 수 있는 것으로,

부부사이의 은밀한 쾌락의 행위로 일어나는 강렬한 음양지기(陰陽之氣)로 서로의 몸에 잠재되어 있는 잠력을 극상으로 끌어내는 심법이다.

이는 또한 초상승의 요상대법이기도 하다.

상대가 자신의 남편이거나 부인이기만 하다면,

심맥이 갈가리 찢긴 중상이라도 다시일내에 완치시킬 수 있는 것이다.

[벽라누님이 다쳤는데... 잘되었다.]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석실을 돌려 보았다.

그의 눈에는 하나의 옥침상(玉寢床)이 보였다.

스스스스슥---

능천한은 흐르는 구름같이 걸음을 옮겨 그 옥침상으로 다가갔다.

옥침상은 붉은 흰 홍백지기(紅白之氣)를 흘리고 있었다.

[건곤정령옥(乾坤精靈玉)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봉황오보(鳳凰五寶) 중의 극락침(極樂寢)이군.]

옥침상을 바라보며 능천한은 중얼거렸다.

 

<봉황극락침(鳳凰極樂寢).>

 

천지지간의 극양(極陽), 극음(極陰)의 기운이 하나로 뭉친 희귀한 옥석(玉石)이 있다.

이를 건곤정령지옥(乾坤精靈之玉)이라 하거니와,

봉황극락침은 바로 이 건곤정령옥으로 만들어져 있다.

봉황극락침 위에서 봉황합령음양무의 음양교합의 대법을 행하던 무궁무진한 영효를 얻을 수 있다.

건곤정령지옥의 극양, 극음지기가 음양교합중인 남녀의 몸속으로 흡수되는 까닭이다.

봉황극락침에는 장방형의 옥함이 하나 있었다.

능천한은 금벽라를 봉황극락침 위에 누이고 옥함을 열어 보았다.

옥함 안에는 한 권의 비단책자와 영롱한 광채를 발하는 옥소(玉簫) 한 자루, 그리고 양피지의 쪽지가 한장 들어 있었다.

[봉황극락소(鳳凰極樂簫).]

능천한은 금강벽(金皇玉)으로 만들어진 옥소를 집어 들었다.

묵직하면서도 청량한 느낌이 손바닥 가득히 느껴졌다.

 

<봉황극락소(鳳凰極樂簫).>

 

그것이 바로 봉황극락소였다.

천병보 천지십병(天地十兵)의 서열에 들어 있는 사대신병(四大神兵)의 하나...

천병보는 봉황극락소를 이렇게 적고 있다.

 

---원주인은 봉황지존(鳳凰至尊)이고 그 이후로 누구도 소유하지 못한 신병(神兵)이다.

이에는 두가지 절대묘용이 있다.

그 하나는 이에 공력을 주입하여 내칠 때 일어나는 봉황지존강기(鳳凰至尊罡氣)이다.

철벽이라도 두부 베듯이 할 수 있는 날카로움을 지닌 강기신공이었다.

봉황지존은 봉황극락무(鳳凰極樂舞)라는 사초의 초식을 창안하여 봉황지존강기의 위력을 배가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봉황극락소의 진정한 묘용이 아니다.

봉황극락소의 진정한 무서움은 음률(音律)에 있다.

극락음(極樂音)이라는 것으로 한번 일어나며 만상(萬象)이 제압당한다.

만수와 만금을 그 음() 하나로 다스릴 수 있고,

태산을 무너뜨리며 창해를 갈라놓을 위력이 이에 있다.

하물며 인간의 심령을 조종하고 그것을 깨뜨리는 것이야 연반장이라...

천지십병외의 그 어떤 것으로도 봉황극락음을 막지 못한다.

능천한은 봉황극락소를 들여다보다가 양피지에 비급을 들어보았다.

 

<봉황극락경(鳳凰極樂經).>

 

---봉황합령음양무(鳳凰合靈陰陽舞).

---봉황원영지존신강(鳳凰元瓔至尊神罡).

---봉황극락무(鳳凰極樂舞).

---봉황등천보(鳳凰騰天步).

---봉황파천수(鳳凰破天手).

 

[대단한 신공절기들...!]

능천한은 탄성을 발하며 봉황극락경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마지막에 적힌 음률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이름하여,

 

<극락삼천음(極樂三天音).>

 

---환파(幻派).

---금천(禁天).

---대파멸황(大破滅荒).

 

[...!]

구결을 읽어내려가던 능천한의 안색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어지간한 대변괴에도 놀라지 않는 능천한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경이와 전율 속에 빠져 봉황극락경을 읽고 있었다.

너무도 뛰어나고 가공스러운 음률이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최고지상인 걸작 중의 하나를 능천한은 대하고 있다.

[뛰어나다. 이런 정도의 음률을 만들어내신 선인(仙人)이 있었음이 놀랍다.]

능천한은 탄성으로 봉황극락경을 덮었다.

[...!]

봉황극락경을 덮고도 능천한은 잠시 감동에 빠져 있었다.

신천지(新天地)를 본 기쁨이랄까?

이윽고 능천한은 양피지의 지편을 집어들었다.

그곳에는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구천금봉황에게 선택된 자여... 그대에게 봉황오보 중 가장 중요한 삼보(三寶)는 보존이 강호행도중에 신세를 진 두 사람에게 주어 그대에게 전할 수 없다.

봉황의 파천절기로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대는 천하여인들을 모두 그대의 첩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고,

천하의 제보를 그대의 손안에 모을 수도 있으며,

대도(大道)를 걸어 대무종(大武宗)의 칭호를 들을 수도 있으리라.

다만 부탁하노니... 만행을 행함에 항시 천의(天意)를 생각해주기를 바라노라.

---봉황지존(鳳凰至尊).>

 

[신물(神物)을 남기시면 심려가 크셨구나!]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지편을 다시 함에 담았다.

봉황극라소와 봉황극락경을 다시 옥함에 담은 능천한은 봉황극락침으로 다가갔다.

금벽라는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능천한은 금벽라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겉옷을 벗었다.

[누님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금벽라에게 다가서며 능천한의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어,

사각! 사각!

능천한은 피에 젖은 금벽라의 궁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저고리가 벗겨졌다.

사슴의 목같이 길고 뽀얀 목덜미와 백설이 내려앉은 듯한 동그스름한 어깨,

그리고 중년여인의 그것같이 풍요롭기 이를데 없는 젖가슴,

능천한은 금벽라의 풍만한 유방을 보자 본능적인 욕구가 불끈 치솟음을 느꼈다.

[누님...!]

능천한은 금벽라의 유방을 터질 듯이 움켜쥐었다.

뭉클하고 따뜻한 감촉이 두손 가득히 느껴졌다.

그것은 아주 원초적인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는 느낌이었다.

[누님... 누님...]

능천한은 금벽라의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달콤한 젖내음과 훈훈한 육향이 끈끈하게 능천한의 후각을 자극했다.

능천한은 어머니의 젖을 빨듯이 금벽라의 유방을 탐닉하였다.

달콤한 유두가 그의 혀끝에서 뒹굴었다.

사각사각...!

능천한의 손은 금벽라의 하복부에 더듬어 내려갔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복부가 솜같이 말랑말랑하게 그의 손안에 들어왔다.

금벽라의 유방을 탐닉하던 능천한의 얼굴이 욕정으로 벌개졌다.

그의 손은 어느덧 금벽라의 허벅지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두둑한 둔턱...

묘한 감촉을 주는 방초(芳草) 무성한 부드러운 구릉이 그의 손을 떨리게 만들었다.

사르르!

능천한은 금벽라의 허벅지사이로 파고들며 하의를 벗겨 내렸다.

풍만한 허리,

댜지같이 드넓게 퍼진 둔부,

그리고 물안개가 뽀얗게 서린 풍염한 허벅지가 드러났다.

살짝 벌려진 허벅지사이로 검은 방초가 무성하게 뒤덮여 있었다.

능천한은 두 손으로 금벽라의 나신을 뜨겁게 달구며 점점 입술을 아래로 끌어 내렸다.

뜨거운 본능의 셈,

그 습하고 붉게 이슬을 머금은 비궁을 향하여...

능천한은 금벽라의 허벅지를 두팔 가득히 안았다.

가득히 느껴지는 금벽라의 허벅지가 뜨겁기만하다.

스르르... ...!

능천한의 하의가 흘러내렸다.

[누님...!]

능천한의 육중한 몸이 금벽라의 부드럽고 드넓은 복부 위로 실려졌다.

금벽라의 몸은 넓고도 풍요하다.

능천한의 몸이 육중하나 금벽라의 몸위에서는 마치 고향을 찾은 듯이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순간 능천한의 전신에 파문이 일었다.

[... 으음...!]

능천한의 몸이 파도를 타기 시작하였다.

너무도 뜨겁고, 너무도 깊디 깊은 금벽라의 바다로 능천한은 노를 저어갔다.

후끈!

체온이 없던 봉황지존전이 때아닌 열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능천한은 끝이 없을 듯이 금벽라의 속으로 들어갔다.

우르르... 스스스스스스!

그와 함께 봉황극락침에 붉고 흰 기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붉고 흰 홍백지기는 안개같이 휘몰아 금벽라의 나신 위에서 움직이는 능천한을 뒤덮었다.

스스스스스--- 스슥!

화르르르르---!

[... 허억... ...!]

홍백지기에 싸인 능천한의 숨소리가 점점더 높아져 갔다.

금벽라의 나신을 탐닉하는 능천한의 모습은 어느덧 봉황도의 수컷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는 금벽라를 탐닉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봉황합령음양무(鳳凰合靈陰陽舞).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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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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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三 章

 

                  鳳凰之壁 열리다.

 

 

 

(혈천구마성 중의 인물이다!)

능천한의 안색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장소성에 실린 공력이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심후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 우우!]

다시 장소성이 터졌다.

장소성은 삽시에 이, 삼십여 마장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빠르다! 그냥 간다면 십 리도 못가서 추적당한다.)

능천한은 우뚝 서서 장소성이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소문주님!]

스스--- 스스슥!

일마장쯤 날아가던 거령패왕이 되날아왔다.

능천한은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적들의 접근이 예상 외로 빠르다. 몸이 불편하신 두 분 노인이 있어서 이대로라면 얼마 못가 따라잡힌다.]

능천한의 말을 듣고 거령패왕이 가슴을 두드렸다.

[좋습니다. 속하가 그자들을 유인하겠습니다.]

거령패왕의 말에 능천한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는 돌아서서 거령패왕의 어깨를 두드렸다.

[유인은 내가 한다! 거령!]

거령패왕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안됩니다. 속하가...!]

거령패왕은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능천한이 시선을 돌린 때문이다.

[걱정마라. 싸우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피하려는 것이니... 거령은 신녀를 모셔라. 무사히 사해정검맹까지 모셔야 하느니라!]

능천한의 말에 거령패왕은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화르르르---!

거령패왕은 거구를 날려 멀리 날아갔다.

[이제 움직여볼까?]

--- 스스스...

능천한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우우우---!]

그의 입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우렁찬 장소성이 터졌다.

--- 애애액!

장소성의 여운을 끌며 능천한의 신형이 북쪽을 향하여 폭사되어갔다.

--- 스스슥!

휘르르르르---!

일다경이 아니 되어,

전장에 칠 인(七人)이 내려섰다.

쌍극천효와 혈천육마성이었다.

[... 이런...!]

[지독한 놈...!]

그들은 죽어 넘어진 삼마성을 발견하고 섬뜩한 살기를 흘렸다.

[가가! 이놈의 애송이를 잡아 능지처참하리라!]

--- 스스스슥!

천황마성이 분노에 치를 떨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가자!]

[크크크크...!]

화르르르르---

스스스--- 스스스스!

오마성도 분분히 신형을 날려 북쪽으로 날아갔다.

[으음...!]

멀어지는 육마성을 바라보며 쌍극천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삼마성과 칠십이혈살수들이 적어도 반각 이상은 버틸 줄 알았거늘...]

중얼거리던 쌍극천효의 입가로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영라가 신랑 하나는 잘 골랐다.]

쌍극천효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찌 되었든 사위... 사위가 강하다는 것이 흉은 아니지...!]

스스스스--- !

쌍극천효도 몸을 띄워 올렸다.

그의 신형도 이내 연기같이 변하여 북쪽으로 날아갔다.

쌍극천효가 북쪽으로 사라진 직후,

스스스스--- !

--- 츠츠츠---!

쌍극천효가 서 있던 곳으로 칙칙한 혈광(血光)이 번졌다.

[쌍극천효...!]

그 혈광 속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혈광 속으로 한 명의 괴인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그자는 바로 혈종이었다.

혈종은 섬뜩한 눈길로 북쪽을 바라보았다.

[쌍극천효... 역시 오래 곁에 둘 놈은 아니었다. 천마총에 천하 무림을 묻은 뒤 네놈의 목도 따주리라... 크크크...!]

혈종은 음산하게 웃었다.

스스스스스---!

이어 혈광이 암천으로 스며들고,

장내에서 혈종의 모습도 사라졌다.

 

***

 

--- !

[...!]

능천한은 문뜩 몸을 멈추었다.

그곳은 바윗돌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협곡이었다.

[어느 방면의 인간들이냐?]

능천한이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협곡 전체가 칙칙한 마기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낀 것이다.

[흐흐... 패천지존(覇天至尊)!]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난석들 사이로 수백의 혈영인(血影人)들이 나타났다.

그자들의 선두에는 음침한 인상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혈영군... 네놈이었느냐?]

능천한이 냉갈하며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그자는 바로 혈영군이었다.

[흐흐... 패천지존, 혈영궁을 네 집처럼 드나들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스스스스--- 스슥!

혈영궁도들이 능천한을 에워쌌다.

능천한은 그자들을 바라보며 염두를 굴렸다.

(거령은 안전지대까지 갔을 것이고... 나 혼자라면 혈천육마성을 꺼릴 필요가 없다.)

능천한은 천극을 쳐들었다.

[혈영군, 너는 본인의 앞을 막는 게 아니었다.]

--- 이이잉!

천극에서 장강대하같이 예기가 쏟아졌다.

(!)

그 모습에 혈영군은 오금이 저려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네놈의 목을 달라고 부탁한 분이 계시다. 누군지 아느냐?]

--- ! 뚜벅!

능천한은 천극을 비껴들고 혈영군에게 다가갔다.

[... ... 막아랏!]

--- !

혈영군이 십 장 밖으로 물러나며 외쳤다.

[---! 죽어랏!]

[크크크...!]

우르르르르--- 르르!

--- 이잉! 츠츠츠!

혈영궁도들이 득달같이 능천한을 덮쳐왔다.

그자들에게서 쏟아지는 혈영강기가 일시에 장내를 뒤덮었다.

[천후검성이란 분이 바로 그분이다!]

우르--- 르르! --- 이이잉!

천극에서 족히 백만 근의 암경이 일어났다.

--- 콰콰쾅! 콰르르릉!

[--- 에엑!]

[--- 아악!]

능천한에게 덤벼들던 혈영궁도들이 나뭇잎같이 흩날려 튕겨졌다.

허공이 그자들이 토한 선혈로 불그레해졌다.

[... ... 천후검성은 죽었는데...!]

혈영군은 사색이 되어 비칠거렸다.

[죽지 않으셨었다. 네놈들의 목을 베려고 스스로 독인이 되셨었다!]

--- 쿠쿠쿵!

능천한의 손에서 시퍼런 강륜이 쏟아졌다.

--- 파팟!

[--- 아악!]

선혈이 튀어올랐다.

강륜이 벼락같이 떨쳐져 혈영군의 오른팔을 잘라낸 것이다.

[... 살려다오!]

혈영군은 어깨에서 선혈을 철철 흘리며 뒷걸음질쳤다.

그자의 안면은 죽음의 공포로 새까매져 있었다.

능천한은 그자를 향해 천극을 겨누었다.

[가거랏! 천후검성께서 네놈이 구천(九泉)에 오길 기다리고 있으리라.]

--- 이이잉!

천극에서 막강한 강기가 일었다.

(... 죽었다.)

혈영군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 이이잉!

츠츠츠--- 츠츠---!

한 자루 혈검(血劍)이 허공을 가르며 능천한의 배심으로 날아들었다.

[혈검어강살(血劍御罡煞)?]

능천한의 입에서 일성이 터지고,

스스스...!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 --- !

혈검은 능천한이 서 있던 곳을 허무하게 가르고 허공으로 휘돌았다.

그리고,

[죽어랏! 크크크!]

--- 이이잉!

한 줄기 벼락같은 인영(人影)이 능천한에게로 쇄도해 들어왔다.

[환마성(幻魔聖)...!]

--- 쿠쿠쿵!

능천한의 무거운 목소리가 패천존후신강의 새파란 그림자 속에 파묻혔다.

--- --- 콰쾅!

[... ...!]

굉렬한 폭음과 함께 환마성과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그와 함께,

[패천지존! 혈천구마성의 피를 보았으니... 네 사지가 온전치 못하리라!]

스스스스--- 스스!

화르르르--- !

능천한의 주위로 여러 줄기의 인영들이 내려꽂혔다.

[천황마성... 지절마성, 혈검마성(血劍魔聖), 독마성(毒魔聖), 미욕염성(微欲艶聖)...!]

능천한은 자신을 둘러싼 오인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전설적인 거마(巨魔)들에게 포위되었으면서도 능천한의 태도는 담담했다.

(... 이놈 봐라.)

능천한의 그런 태도에 천황마성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맹룡과강(猛龍過江)이다.

자신들 정도를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기에 그같이 태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었다.

[...!]

[...!]

거마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보통 놈이 아니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가슴이 서늘함을 느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육마성은 능천한의 기도(氣道)에 심령이 제압당해 버린 것이다.

[그대들의 명성은 풍문으로 들어왔지. 오늘... 그 명성이 사실인지 알아보겠다.]

능천한은 말을 하며 천극을 들었다.

스스스...!

천극에서 천가닥 만가닥의 강기가 줄기줄기 뻗쳤다.

[!]

[... 지독하다...!]

육마성은 안색이 하애졌다.

능천한은 천극으로 쏟아낸 예기가 그들의 심맥으로 파고 들어온 때문이다.

육마성 중 내공이 약한 측에 드는 독마성, 환마성, 미욕염성은 입가로 선혈을 흘릴 정도였다.

능천한은 천향염후와의 일전 이후로 최후로 천년 내공을 모두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그그--- 그긍!

가공할 기도가 일어나 능천한을 뒤덮었다.

무형강기도에 둘러싸인 능천한의 모습은 흡사 천신(天神)과도 같았다.

[...!]

천황마성의 이마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상상을 초월한 자다. 이대로 가면... 저놈의 무형기도에 심령이 부수어져 죽음을 면치 못한다.)

천황마성은 이를 악물었다.

능천한은 기()로써 인간의 심령을 깨뜨려 죽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고수다.

그것을 이심제기(二心制氣)의 경지이라 하고...

천황마성은 그 경지를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었다.

[...!]

[크으...!]

환마성 등은 상체를 떨며 오공으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버티고 있기는 하나 오래 가지 못할 상태로 보였다.

(저놈의... 기도를 흐트러 놓아야 한다.)

천황마척(天皇魔尺).

천병일천좌의 십육위에 올라 있는 이 마병(魔兵)이 천황마성의 손안에서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우우웃! 천황마천폭(天皇魔天瀑)!]

--- --- !

--- --- 자작!

천황마척의 굉음을 몰아 능천한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

[...!]

그제야 다른 오마성도 정신을 차리고 전의를 일으켰다.

[지극참(地極斬)!]

[혈검뢰폭(血劍雷瀑)!]

[환폭(幻瀑)!]

[염휘쇄혼수(艶煇碎魂手)!]

--- 쿠쿠쿵!

--- 자자--- !

질풍노도!

태산을 무너뜨릴 듯한 광폭한 공세가 능천한의 일신으로 쏟아졌다.

백 수십 년 전에 천하를 떨어올린 여섯 가지 천하절기가 능천한 일인에게 쏟아지는 것이다.

[거령폭류참! 자극천단강!]

능천한도 지체없이 공세를 발동했다.

천극이절해의 제이해(第二解)!

자부존(紫府尊) 제이기공(第二奇功)!

그것들이 거의 동시에 펼쳐진 것이다.

--- --- 콰쾅!

쿠쿠--- 쿠쿵!

우르르--- 르르!

[... !]

[--- 에엑!]

육마성이 피를 토하며 뒤로 밀려났다.

그자들이 비칠거리며 몸을 채 바로 잡기도 전이었다.

[누워랏! 폭천혈강륜!]

--- 자자자작!

--- --- !

능천한의 왼손 소매에서 폭포가 쏟아지듯 거대한 륜영(輪影)이 쏟아졌다.

[... 패천신륜!]

[... 패천신륜을 잊다니...!]

육마성이 숨넘어가는 비명을 토했다.

그들은 사력을 다해 몸을 보호했다.

그러나.

--- --- 파팟!

패천신륜의 예기가 육마성의 호신강기를 종이짝 찢듯이 베어버렸다.

[--- !]

[--- 으윽!]

[...!]

선혈이 이십 장 방원을 뒤덮었다.

! --- 쿠쿵!

천황마성을 제외한 오마성(五魔聖)이 처절한 몸뚱이를 지면에 뉘었다.

환마성, 독마성은 허리가 쩍 갈라져 죽어가고 있었다.

지절마성은 몸이 꺾어졌으며 혈검마성은 자신의 애검 혈검(血劍)과 함께 복부가 쩍 잘라져 모로 나뒹굴었다.

[... 대형(大兄)...!]

유일한 여인인 미욕염성은 뽀개진 가슴을 안고 신음하고 있었다.

[... 이렇게... 강했는가? 태상... 종주(太上宗主)... 못지 않다니...!]

천황마성은 복부를 움켜쥐고 비틀거렸다.

부러진 천황마척이 그의 복부에 깊이 박혀 있었다.

[졌음을 인정하는가?]

능천한이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양손에 천극과 패천신륜을 든 능천한은 본래의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 !

천황마성은 비틀거리다가 털석 주저앉았다.

그는 이를 악물며 토해내듯이 대답했다.

[... . 혈천구마성은... 그대에게 졌다.]

그러자,

[으아아... 달아나자!]

[도망... 가자! 저자는 인간도 아니다!]

! --- 리릭!

스스스스---!

멀리서 구경하던 혈영궁도들이 분분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달아나는 자들의 선두에는 오른 팔이 잘려 나간 혈영군이 있었다.

[... 다시는... 상종 않으리라.]

달아나는 혈영군의 턱이 공포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 그대는 영웅이다. 진정 강한...]

천황마성이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

능천한은 웬지 허전한 마음이 되어 등을 돌렸다.

뚜벅... 뚜벅!

능천한은 천극을 비껴들고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를 향하여 천황마성이 죽어가면서 말했다.

[주의... 해라. 혈종은 신기보(神奇譜)의 신기로... 천하무림을... 파멸시키려 하고... ...!]

(신기보의 신기로 천하무림을 파멸시키려 한다?)

능천한은 천황마성의 의미심장한 말에 흠칫하였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 !]

한소리 처절한 여인의 비명이 멀리서 들렸다.

[...!]

그 비명소리를 들은 능천한의 안색이 대변하였다.

너무도 귀에 익은 여인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벽라누님...!]

--- 이이이잉!

--- --- !

능천한은 지면을 박차고 까마득히 야공으로 치솟았다.

비명의 주인은 바로 광양존후 금벽라였던 것이다.

 

***

 

[크크크...!]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시뻘건 혈광을 흩뿌리는 자가 있다.

이곳은 후면이 높디높은 토벽으로 막힌 혈곡이었다.

[...!]

절망의 빛을 띄운 금벽라가 피투성이가 되어 토벽에 기대어 있다.

금벽라는 가슴이 쩍 갈라져 선혈을 꾸역꾸역 흘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흐흐... 광양존후, 그렇게 속을 썩이던 네년을 이토록 쉽게 잡게 되다니...]

혈종은 음침하게 웃으며 금벽라에게 다가섰다.

그자의 손에는 섬뜩한 느낌이 드는 혈황탈(血荒奪)이 들려 있었다.

(절망이다. 아우님이... 걱정이 되어 쫓아왔거늘... 아우도 못보고... 저자의 손에 죽게 되다니!)

금벽라는 눈을 내리감았다.

그녀의 무공도 여인제일고수(女人第一高手)라 불리는 정도지만, 혈황탈 아래에서는 너무도 무력했던 것이다.

[흐흐... 체념했는가? 오냐 죽여주마!]

--- 이이잉!

츠츠츠츠--- !

치켜든 혈황탈에게 심신을 얼어붙게 만드는 마기(魔氣)가 쏟아졌다.

절체절명!

금벽라로서는 재간이 없었다.

피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녀는 점차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그때였다.

[혈종!]

우르르르르--- !

복우 산역을 뒤덮는 거창한 폭갈이 터졌다.

그 폭갈은 토벽이 갈라질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

혈종은 질겁하며 허공으로 시선으로 돌렷다.

순간,

--- 쿠쿠쿠--- 쿠쿵!

--- 르르르르르---!

한 명의 황포청년이 거창한 강기를 휘몰아 자신에게 덮쳐오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패천지존(覇天至尊)!]

혈종은 숨넘어가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 --- --- !

콰르르르...

그 신음을 뒤를 이은 거창한 폭음에 잠겨 버렸다.

[--- ...!]

화르르르...!

--- --- 애액!

경기의 파동이 일마장을 뒤덮는 중에 괴로운 신음성을 지르며 한 줄기 혈영이 까마득하게 치솟았다.

[두고 보자!]

선풍 속에서 혈종의 잔독한 음성이 울렸다.

[...!

스스스...!

능천한은 힐끗 사라지는 혈종을 바라보는 금벽라의 옆으로 내려섰다.

[누님...!]

능천한은 급히 금벽라의 가슴을 눌러주며 나직이 불렀다.

[... 아우님...?]

금벽라는 힘겹게 능천한을 올려다보다가 정신을 잃었다.

[으음... 혈종! 누님을 이렇게 만들다니...]

능천한은 두 눈에서 한망을 토해내며 금벽라를 안아들었다.

그때였다.

! --- 저저적!

금이 쩍쩍가 있던 토벽(土璧)이 무너질 듯이 흔들렸다.

[이런...]

--- !

능천한은 금벽라를 안은 채 급히 십여 장 밖으로 물러섰다.

다음 순간,

우르르르... --- 쿠쿠쿵!

토벽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능천한과 혈종의 충돌에 진동되어 무너지는 것이다.

[!]

무너져 내린 토벽을 바라보던 능천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무너진 토벽의 안쪽에서 매끈한 석벽(石璧)이 나타났다.

한데 그 석벽에는 사람의 손으로 글이 새겨져 있었다.

글자 하나가 사람만큼씩 큰 전자체(篆字體)의 네 글자,

그것은...

 

<봉황지벽(鳳凰之璧).>

 

바로 이런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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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二 章

 

                        幽靈神女

 

 

 

스스스스--- !

화르르르---!

허공에서 음풍과 함께 삼인(三人)이 날아내렸다.

(이자들은...?)

능천한은 형형한 눈으로 그자들을 훑어보았다.

세 명의 괴인 중 한 명은 능천한도 아는 자였다.

바로 광육도성(廣六刀聖)이었다.

[크크... 네놈이 나 광육도성을 잘도 속였겠다.]

광육도성이 잡아먹을 듯이 능천한을 노려보았다.

[광육도성! 저자가...!]

광양대제와 녹리대제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혈천구마성

 

그자들은 광양대제나 녹림대제가 세상에 태어나기 그이전에 활동하던 대마두들이다.

그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하였다.

--- 스스스스!

화르르르르---!

놀라는 광양대제와 녹림대제 주위로 칠십이 명의 혈의인들이 나타났다.

[...!]

나타난 혈의인들을 바라보며 녹림대제가 신음을 하였다.

신광이 안으로 갈무리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개인이 혈영십천살(血影十天煞)만큼이나 강한 자들이었다.

[칠십이혈살수(七十二血煞手)들이겠군...!]

녹림대제가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크크크...! 네놈들이 무사히 혈영군(血影宮)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알았느냐?]

광육도성이 탁한 목소리로 웃으며 다가왔다.

(이자는 도()의 달인이다. 주의하지 않으면 좋지 않다.)

능천한은 눈빛을 싸늘하게 빛냈다.

--- 스스슥!

[흐흐흐---!]

양옆에서 흡혈마성과 색마성도 천천히 다가들었다.

[...!]

능천한은 천극을 비껴 든채 야공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일견하여 한가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당겨진 활시위같이 팽팽한 긴장감이 그의 전신에 뭉쳐져 있었다.

(빈틈이 없다니...)

(태산으로 보인다. 쌍극천효가 이놈을 맹호같이 예기한 것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능천한의 자세에 세 마두는 절로 몸을 떨었다.

줄기줄기 내뻗치는 능천한의 무형기도는 그것만으로도 인명을 살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빨리 결판을 내자. 시간을 끌면 혈천구마성의 전체가 달려온다.)

--- !

능천한은 천극을 움직였다.

천극이 들려지며 능천한의 가슴으로 실 한 가닥 정도의 허점이 드러났다.

(기회!)

광육도성의 눈이 번쩍이고,

--- 자자작!

--- --- 파팡!

그자의 손에서 뇌전(雷電)보다 빠르게 도세가 뻗쳐갔다.

그 도세는 가공할 속도로 능천한을 무찔러 들어왔다.

그러나 그 허점은 능천한의 의도적인 유모였다.

[--- !]

--- 사사--- 사삭!

웃음소리와 함께 능천한의 신형이 한순간에 수십 개로 나뉘어졌다.

구유백팔유령흔(九幽百八幽靈痕)이 펼쳐진 것이다.

[벽뢰섬]

--- --- 카캉!

--- --- !

동시에 능천한의 천극 끝에서 벼락이 일었다.

패천신륜의 절식의 제일 쾌초를 천극으로 떨친 것이다.

--- --- 파팟!

[--- !]

--- 당탕!

피가 확 튀며 광육도성의 가슴이 뻥 뚫려 십 장 밖으로 나뒹굴었다.

[!]

[으음... 대단하군!]

녹림대제와 광양대제가 입을 딱 벌렸다.

광육도성---!

도귀(刀鬼)라던 그자가 어이없이 쓰러지고 만 것이다.

그자는 능천한을 경시하였고,

그 때문에 능천한의 유인에 너무도 쉽게 말려들어 패사를 하고 만 것이다.

[조심하게!]

그때 광양대제가 다급히 부르짖었다.

--- 아악!

츠츠츠츠--- 츠츳!

벼락이 치듯 흡혈마성과 색마성의 공세가 능천한의 옆구리로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오랏!]

--- --- 쿠쿵!

능천한은 쾌첩하게 몸을 휘둘리며 천극을 쓸어갔다.

--- --- !

쿠르르르---

[크읏...!]

[... ...!]

굉렬한 폭음 속에서 흡혈마성과 색마성이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 역시... 혈종 이상이다. 육갑자 내공을 지닌 우리를 어린아이같이 밀어버리다니...)

흡혈마성과 색마성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능천한이 더욱더 거대해 보인 것이다.

[--- 아아!]

[--- !]

츠츠츠--- 츠츠츠!

콰르르르--- 르르릉!

그때 칠십이혈살수들이 물밀듯이 쇄도해왔다.

그 기세는 성난 파도같이 엄청났다.

[--- ! 오라!]

[--- 우우!]

녹림대제와 광양대제가 벼락같이 외치며 칠십이혈살수들을 막아갔다.

쿠르르르르--- 르릉!

--- --- 콰쾅!

그들의 몸에서 폭풍같은 경기가 일어났다.

오랜 감금 생활로 진기가 쇠할 대로 쇠한 그들이지만,

그래도 사자(獅子)는 사자 아닌가?

[크크크---]

[--- 아앗!]

콰르르르르--- 르르!

츠츠츠츠--- !

흡혈마성과 색마성도 칠십이혈살수들과 더불어 능천한을 휩쓸어 왔다.

[팔방풍우(八方風雨)! 직도황룡(直渡黃龍)!]

--- 이이이잉!

능천한 천극을 휩쓸어 내었다.

우르르르--- 르르!

평범한 초식을 떨친 것이지만 그 펼치는 능천한의 공력은 천년내공이다.

흡사 벽해가 갈라지는 듯한 거창한 경기가 팔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 르르르릉!

--- --- 쿠쿠쿵!

[--- --- !]

[--- 에에엑!]

[... 지독한 공력...!]

달려들던 칠십이혈살수들이 낙엽같이 튕겨져 나갔다.

흡혈마성과 색마성도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콰르르르---!

우르르르--- 르르!

반면 녹림대제와 광양대제는 칠십이혈살수들에 휘말려 고전하고 있었다.

크게 밀리는 것도 아니나 칠십이혈살수들의 협공을 피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지체할 수록 불리해진다.)

능천한의 눈에서 강렬한 광채가 뇌전같이 쏟아졌다.

[물러나랏! 천극망(天極網)!]

능천한의 벽력일성과 함께 천극을 후려쳐 내었다.

--- 이이이이잉!

천지사방이 일시에 극영(戟影)으로 가득찼다.

--- 콰쾅!

--- 파파팟!

[--- 아악!]

[--- --- 에엑!]

처절한 비명과 함께 십여 명의 혈살수가 무더기로 쓰러졌다.

[막아랏! 곧 원군이 온다! 그때까지만 저지하면 된다!]

흡혈마성이 발악하듯이 외치며 능천한을 가로막았다.

[귀찮은...!]

능천한이 냉갈하며 천극을 들어 흡혈마성을 겨누었다.

그때였다.

[우하하하핫!]

갑자기 거창한 웃음소리가 장중을 뒤흔들었다.

[!]

[... ... 원군인가?]

중인들이 휘청이며 손을 멈추었다.

(...!)

능천한도 눈을 빛내며 장소성이 터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소성이 웬지 낯설지 않은 때문이었다.

우르르르---!

--- !

허공일각에서 시뻘건 불덩어리가 벼락같이 떨어져 내렸다.

한데 놀랍게도 그것은 시뻘건 극양지기(極陽之氣)에 싸인 거한(巨漢)이었다.

콰르르르--- 르르!

--- 자자자작!

거한의 몸에서 시뻘건 극양지기가 백 장을 내뻗쳤다.

[--- !]

[--- 아악!]

일거에 칠십이혈살수의 절반이 불길에 싸여 나뒹굴렀다.

[그대는...!]

폭풍같이 장중을 휩쓸며 날아내리는 거한을 보며 능천한이 안면에 미소가 떠올랐다.

[핫하! 소문주님! 속하 거령(巨靈)이 왔습니다!]

화르르르---!

거한은 그대로 능천한 옆으로 날아내렸다.

그런 거한은 흡사 양떼 속을 헤집는 사자와 같았다.

[거령! 거령! 살아있었구나!]

능천한도 크게 웃으며 거한을 바라보았다.

[소문주님!]

거한은 능천한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작은 산같은 체구,

화산인 듯 이글거리는 시뻘건 호목,

그리고 그의 우직한 손에 들린 검붉은 권().

그는 거령패왕(巨靈覇王)이었다.

패천팔걸(覇天八傑)의 수뇌였다가 혈영군에게 쓰러졌던 바로 그 거령패왕이었다.

[거령! 살아있었구나!]

능천한은 감격의 눈빛으로 거령패왕의 솥뚜껑같은 손을 덥석 잡았다.

마주잡은 손,

주종의 뜨거운 마음의 격류가 마주 잡은 손을 통하여 오고갔다.

[소문주! 죄송합니다. 소문주를 보필하지 못한 죄를...]

능천한의 손을 잡은 거령패왕의 눈으로 닭똥같은 눈물이 줄줄 흘렀다.

[거령! 아니다. 이렇게 살아준 것만으로도... 너는 네 할 일을 다했느니라!]

중얼거리는 능천한의 봉목에도 뿌연 물기가 서렸다.

친인(親人)이라는 것...

이렇게 뿌듯하고느껴운 것임에야...

[--- 아악!]

[--- 에엑!]

! --- 퍼펑!

콰르르르...!

그때 멍하니 서 있던 칠십이혈살수들의 대열이 와르르 무너졌다.

[으하하... 패천(覇天)의 혼은 불멸이다!]

[누가 황산의 거룡을 건드렸느냐?]

폭풍의 기세.

양떼 속에 뛰어든 사자같이 칠십이혈살수들을 몰아치는 칠인(七人)의 장한들이 있었다.

그들의 신위는 실로 대답했다.

마치 돌풍이 몰아치듯이 삽시에 혈살수들의 대열을 무너뜨렸다.

[양군(楊君), 진위명(陳位名)...!]

그 장한들을 바라보며 능천한은 감회에 찬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들은 패천팔걸 중의 인물들 이었다.

콰르르르르--- !

[--- 아악!]

[--- 에엑!]

일시에 칠십이혈살수들이 멸절되었다.

[... 이럴 수가...!]

[...!]

흡혈마성과 색마성은 돌변한 상황에 그저 넋이 나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소문주!]

[소문주님!]

패천칠걸은 크게 외치며 능천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살아있었구나! 그대들마저 황산에 묻힌 줄 알았거늘...]

능천한은 칠걸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었다.

[허허... 장강의 앞 물결을 뒷 물결이 민다더니... 이제 우리 늙은이들은 은퇴해야겠소이다. 금형!]

녹림대제가 껄걸 웃으며 젊은이들을 바라보았다.

[허허... 단노제의 말이 맞으이...]

광양대제도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두고 보자!]

[--- !]

--- 이이이잉!

스스스--- 스슥!

흡혈마성과 색마성은 잔독하게 외치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어디로 가느냐?]

우르르르--- !

--- 이이이잉!

거령패왕이 대갈하며 손에 들고 있던 권()을 내쳤다.

그러자 검묽은 권에서 벼락이 치듯이 극양지기가 뻗쳐 허공에 뜬 색마성을 무찔러 갔다.

[!]

--- 이이이이!

색마성이 매정하여 마주 장을 내쳤다.

--- --- !

[--- 으윽!]

권에서 내뻗친 극양지기를 마주친 색마성이 피를 토하며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무섭게 성장할 거령패왕의 무공도 무공이거니와,

그의 손에 들린 권의 위력도 경천동지할 정도였다.

(벽력굉천권(霹靂轟天圈)! 거령은 벽력문(霹靂門)을 이었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벽력굉천권.

 

벽력일문의 무상지보인 극양신병(極陽神兵)이다.

천병보(天兵譜) 천병일천좌(天兵一千坐)에는 유령명공비(幽靈冥空匕)와 함께 서열십이위에 올라있다.

능천한이 상념에 잠겨있을 때,

[내려가랏!]

스스스스--- !

싸늘한 일성이 터지며 허공으로 치솟던 흡혈마성도 흠칫하다가 지면으로 뚝 떨어졌다.

[...!]

능천한은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 아아아!

츠츠츠---!

한 줄기 유령같은 백영(白影)이 흡혈마성을 무찔러 가는 것이 보였다.

(구유백팔유령흔!)

능천한의 눈에서 강렬한 신광이 쏟아졌다.

흡혈마성을 무찔러가는 백영!

그 백영은 면사의 여인인데 놀랍게도 그녀의 경공은 유령종의 구유백팔유령흔이었다.

[하하... 주모(主母)! 속하들이 돕겠습니다!]

--- 이이이잉!

--- 스스스스!

칠걸이 크게 웃으며 흡혈마성을 덮쳐 갔다.

능천한은 휘청하였다.

[주모...? 저 여인이... 혹시...!]

능천한은 언뜻 현음유령종이 한 말을 상기하였다.

 

---하하... 네 녀석에게 천하제일의 첩()을 주겠다. 그 계집아이에게 아들을 낳게 하여 유령궁(幽靈宮)의 대를 있도록...---

 

[...!]

흡혈마성을 칠걸에게 인계한 면사여인이 유령같은 신법으로 능천한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교수에는 싸늘한 빛의 비수(匕首)가 들려 있었다.

(유령명공비! 역시...)

능천한은 고소를 금치 못하며 다가오는 면사여인을 바라보았다.

그 여인은 흡사 옥()으로 빚은 듯 만투명한 피부를 지닌 여인이었고,

면사사이로 보이는 봉목(鳳目)에서는 심혼을 얼릴 듯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이윽고,

[천첩 유령신녀(幽靈神女), 알현드리옵니다.]

능천한 앞으로 다가온 미인은 날아갈 듯이 절을 올렸다.

그 모습을 보며 광양대제는 고소를 머금었다.

[아이야. 너는 도대체 벽라 말고도 몇 명의 첩이 있느냐?]

광양대제의 말에 능천한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유령신녀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이곳까지... 어찌 오셨소?]

능천한의 물음에 유령신녀는 고개를 떨구었다.

겉보기에는 한기가 서린 모습이나 그녀의 몸은 아주 따뜻했다.

[거령과 사해정검맹을 찾아 갔다가... 벽라언니를 만났사옵니다.]

[으음...!]

능천한의 안면에 괴로운 빛이 떠올랐다.

(벽라누님이... 크게 놀라셨겠군.)

능천한이 염두를 굴리는데 유령신녀가 말을 이었다.

[벽라언니도 사해정검맹의 정예들을 이끌고 가까이 전진해 있습니다.]

[벽라누님까지...?]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등에 업힌 홍예선희를 유령신녀에게 안겨 주었다.

[홍예를 부탁하오1]

--- 이이이잉!

능천한은 천극을 비껴들고 거령패왕 등이 싸우고 있는 쪽으로 덮쳐갔다.

--- 르르르릉!

--- 콰콰쾅!

거령패왕은 벽력굉천권으로 색마성을 몰아부치고 있었고,

패천칠걸은 흡혈마성을 포위한 채 난전을 버리고 있었다.

[누워랏!]

--- 쿠쿵!

능천한은 벼락같이 외치며 천극을 흡혈마성에게 무찔러 내었다.

--- --- !

[--- 아아앙!]

--- 우웅!

칠걸과 다투던 흡혈마성은 천극강기에 가슴이 으스러져 나뒹굴었다.

그와 함께,

[으하하하... 벽력파(霹靂破)!]

--- --- 아앙!

[--- --- 에엑!]

거령패왕이 내친 벽력굉천권에 색마성이 새카맣게 타서 나뒹굴었다.

[거령! 훌륭하다!]

--- 스스슥!

능천한은 거령패왕의 옆으로 날아내렸다.

[곧 강적들이 몰려 올 것이다. 빨리 이곳을 떠나자!]

[! 주모는 수하가 모시겠습니다.]

화르르르르---!

거령패왕이 거구를 날렸다.

스스스스---!

그뒤를 칠걸이 따라 유령신녀를 웅후한 채 분지 밖으로 나아갔다.

[두 분이 어서 움직이십시오!]

능천한은 녹림대제와 광양대제의 옆으로 날아내렸다.

[알았네!]

[알겠습니다. 지존!]

--- 이이잉!

휘르르--- 르르!

두 노인도 즉시 몸을 날려 거령패왕 등이 사라진 곳으로 날아갔다.

[...!]

능천한은 전장을 휘둘러보고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우우우---!]

돌연 멀리서 웅후한 장소성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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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一 章

 

            갇혀있는 高人들

 

 

 

능천한이 신음하듯 중얼거릴 때였다.

[흐흐흐... 너를 위해 여러 가지 안배를 해두었는데... 모두 소용없게 되었군. 혈마뢰를 붕괴시켜 무덤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끝일 테니...]

쌍극천효가 석로 저쪽에서 득의하여 웃었다.

그와 함께,

우르르르--- 르릉!

콰--- 콰--- 콰--- 콰쾅!

석로의 저쪽부터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능천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빠져 나갈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흐흐흐... 네가 영라의 고질병을 고쳐 주었음을 안다. 그것은 감사하고 있다.]

쿠--- 쿠--- 쿠쿵!

콰--- 콰--- 콰쾅!

석로가 무너지는 굉음 속에서 쌍극천효의 목소리가 들렸다.

콰르르르르---!

석로에 이어 능천한과 홍예선희가 있는 석실마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대라면 압사를 당하고 만다.)

능천한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쿵! 쿵!

능천한은 홍예선희가 매달려 있던 석벽을 두들겨 보았다.

우--- 우-- 우웅!

천행이랄까?

석벽 저쪽으로 빈 공동이 있는 듯한 울림이 전해왔다.

능천한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십여 장 두께... 전력으로 묵황굉벽뢰를 받치며 뚫을 수 있다!]

위--- 이이잉!

능천한은 한 손으로 홍예선희를 안고 우수에 묵황강기를 모았다.

그리고,

쿠--- 쿠쿵!

콰--- 자자작! 쿵--- 쾅쾅!

그의 손에서 벼락치듯이 묵강이 쏟아져 나갔다.

일시에 석벽에 십여 장 길이의 통로가 생겼다.

스--- 스슥!

능천한은 거침없이 홍예선희를 안고 통로로 날아들었다.

쿠--- 르르르르르릉!

콰--- 콰--- 콰쾅!

그 순간 능천한이 있던 석실전체가 폭삭 무너져 내렸다.

[큰일날 뻔했군!]

능천한은 안도하며 새로 생긴 통로를 걸어갔다.

 

(석실(石室)... 이곳도 뇌옥의 일부 아닌가?)

이윽고 통로를 빠져 나온 능천한은 흠칫하였다.

그가 들어선 곳은 또 다른 석실이었다.

한데

[...!]

[...!]

짜--- 자작!

번--- 쩍! 츠츠츠...!

어둠 속에서 네 개의 벼락같은 능천한을 노려보고 있지 않은가?

능천한은 그 눈빛의 임자들을 바라보았다.

맞은 편 석벽 아래 두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우측의 인물은 금포를 걸친 위풍당당한 백염의 노인이었다.

일견하여 일대종사의 기품이 있는 인물이었다.

좌측의 노인은 녹포(綠布)를 걸치고 있었다.

흑염을 가슴까지 드리워 흡사 관운장을 연상케 하는 호쾌한 인상이 풍겼다.

(모종의 금제를 당하고 있군!)

능천한은 두 노인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았다.

[두 분은...?]

능천한이 정중히 묻자 녹포흑염노인이 말을 받았다.

[객(客)이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

녹포노인의 말소리는 매우 웅휘하였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생은 능천한이라 하외이다. 황산 패천신문인...!]

능천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노인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그대가 패천잠룡...]

[음... 황산의 잠룡이... 거룡(巨龍)이 되었군...!]

두 노인은 감탄의 표정으로 능천한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어, 금포노인이 먼저 자신을 소개하였다.

[노부는 광양대제(廣陽大帝)라 불리던 사람이네!]

[광... 광양대제라 하셨습니까?]

금포노인의 말에 능천한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렇네 노부가 금모 늙은이지!]

금포노인, 광양대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능천한은 홍예선희를 급히 내려놓고 광양대제에게 큰절을 올렸다.

[소자... 빙조부장(聘祖父)님을 뵙습니다.]

능천한이 절을 올리자 광양대제는 흠칫하였다.

[빙조부라니... 그대가 벽라와...?]

능천한은 꿇어앉은 채 얼굴을 붉혔다.

[소자가... 빙조부님의 허락도 없이 벽라누님을 취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흠...!]

능천한의 말에 광양대제는 아주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그 모습을 모며 녹포노인이 껄껄 웃었다.

[허허! 화주가 부럽소이다. 패천의 잠룡을 손주 사위로 두게 되다니...!]

녹포노인이 껄껄 웃자 광양대제도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능천한의 손을 잡아 다독였다.

[허허! 노부가 너무 과분한 손주 사위를 두게 되었군. 벽라를 잘 부탁한다.]

광양대제는 능천한을 다독이고는 이어 녹포의 노인을 가르쳤다.

[이분을 소개하지. 이분은 바로 녹림맹주이시다.]

능천한은 눈을 빛냈다.

(역시... 광양대제와 녹림대제는 혈종의 마수에 걸렸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녹포노인!

그는 바로 녹림을 일통시킨 영웅 녹림대제(綠林大帝)였던 것이다.

 

---광양대제(廣陽大帝).

---녹림대제(綠林大帝).

 

그 실종으로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었던 정파와 녹림의 거두들,

그들이 이곳 혈영궁의 혈마뢰에 갇혀 있을 줄이야...

[대제(大帝)께서는 이것을 아십니까?]

능천한은 안색을 정중하게 고치며 품에서 하나의 옥부(玉符)를 꺼내 들었다.

[자... 자령신부(紫靈神符)!]

자색의 옥부를 본 녹림대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이어, 녹림대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능천한에게 정중히 일배를 올렸다.

[녹림공봉 단운강(丹雲岡)! 지존을 백견하나이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편히 앉으십시오.]

[감사합니다.]

녹림대제는 극히 조심스럽게 앉았다.

연령의 관계를 떠나서 능천한은 자부문도들에게는 무상의 존인(尊人)인 것이다.

[아이야. 노부는 어찌된 영문인지를 모르겟구나!]

광양대제가 믈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간단하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혈영궁(血影宮)의 대전.

커다란 복우산역의 지도가 탁자위에 펼쳐져 있었다.

[음... 지하뇌옥주위로... 지하수로(地下水路)가 있다니...!]

어두운 안색으로 중얼거리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쌍극천효였다.

그의 앞에는 혈영군이 서 있었다.

[만일... 그 폭발 속에서 그가 살아남고... 또... 이 수로가 발견된다면 능천한은 다시 한 번 살아나게 된다.]

쌍극천효는 아주 어두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혈종께 약속을 드렸으니... 반드시 제거해야한다.)

쌍극천효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힐끗 혈영군을 바라보았다.

[미리 말을 했으면 이런 이중의 노력은 필요 없었을 것을...!]

혈영군은 죄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군사!]

[이미 지난 일이니...]

쌍극천효는 말을 하며 지도를 가리켰다.

[지하수맥이 끝나는 곳과 시작되는 곳이 이 양쪽임은 확실하겠지?]

[그렇습니다.]

혈영군도 지도를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결국... 가능성은 반반으로 나뉜다. 능천한이 살아나온다면 이 양쪽수로의 끝 어딘가로 나온다.]

쌍극천효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능천한은 지금 이곳 혈영궁에 모인 전력을 투입해야 제거할 수 있는 자인 것인 문제다. 힘을 반씩 나누어 놓으면 설사 그가 살아나오는 것을 발견해도 제거하지 못한다.)

쌍극천효는 고심에 고심을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힘(力)을 삼분(三分)한다. 각기 삼푼의 힘은 양쪽 수로의 끝을 지키고 나머지 사푼의 힘을 중간에서 대기한다.]

쌍극천효는 뒤를 돌아보았다.

서생, 미인(美人), 귀신 같은 자, 온화한 인상의 청포노인등 각양각색의 구인(九人)이었다.

[아홉 분도 각기 세 분씩 조를 짜주십시오!]

[알았다.]

청포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허리에 하나의 옥척(玉尺)을 차고 있는 자였다.

일견하여 온화해보이나...

그것은 공력이 극상에 이르러 반박귀진지경임을 나타내준다.

중인들 중 최강의 인물은 바로 그자였다.

[일대는 나 천황(天皇)이 지절(地絶)과 혈검(血劍)으로 막는다. 다른 도움은 필요없다!]

청포인이 말했다.

 

---천황(天皇).

 

그자가 혈천구마성 중 최강인 천황마성(天皇魔聖)이다.

천황마성은 이미 극마지경(極魔之境)에 접근한 자다.

천황마성 외에 지절마성과 혈검마성은 나머지 팔인 중에서도 최강인 자들이다.

(이들 삼인만으로 능가를 묶어둘 수 있다.)

쌍그천효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나머지 이대는 후배가 정합니다. 흡혈마성(吸血魔聖), 광육도성(狂肉刀聖), 색마성(色魔聖)께서는 칠십이혈살수(七十二血煞手)와 함께 반대쪽을 지키심시오.]

그의 말에 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육도성과 어금니가 삐죽이 나온 혈포괴인, 간교한 인상의 화복중년인이 그자들이었다.

[본대의 삼백육십무적혈강대(三百六十無敵血강隊)와 세분 선배께서는 후배와 함께 중간에서 대기합니다.]

[좋다!]

천황마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를 발견하면 최소한 반각을 끄십시오. 그러면 후배가 달려갈 것이고 다른 쪽의 힘도 모이게 될 것이니...]

[훌륭한 복안이다. 능천한이란 어린아이가 아무리 대답해도... 놓치지는 않으리라.]

천황마성이 웃으며 말했다.

어느덧 중년인의 뇌리에는 능천한이 넘지 못할 거악으로 화해 있었다.

[군사님! 저는 그럼...?]

혈영군이 쭈뻣거리며 나섰다.

쌍극천효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전체 혈영궁도를 복우산역에 풀어 모든 변화를 수집하여 본인에게 알린다.]

[알겠습니다.]

혈영군의 대답을 들으며 쌍극 천효는 시선을 야공으로 던졌다.

(능천한... 사위라 말해도 되는 자... 그러나...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 영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쌍극천효의 안면으로 아픈 기색이 흘렀다.

그자도 사람이고 딸을 가진 자이기에...

 

***

 

쿠르르르르--- 르르릉!

콰르르르---!

암흑의 석동(石洞).

굉음과 함께 노도같은 물줄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거대한 지하수로였다.

[차--- 하--- 앗!]

돌연 지하수로가 뒤흔들리는 일갈이 터졌다.

촤--- 아아---!

혈츠츠츠츠--- 츠!

쿠르르르르--- 르릉!

노도같은 물줄기 속에서 한명의 청년이 치솟았다.

한 명의 미인을 황포로 감싼 채 안아들었고, 등에는 시커먼 극을 짊어진 청년이었다.

휘르르르르---

청년은 지하수로 한 쪽의 바위위로 날아버렸다.

이어,

[두 분! 조심하십시오!]

청년이 지하수로 쪽을 향해 외쳤다.

[허허... 걱정말게!]

[하하! 지존! 수공(水功)만이라면 지존께 가르쳐 드릴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두 마디 노인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촤르르르르---!

쏴--- 아아아아!

수로에서 금의와 녹의를 걸친 노인들이 뛰어 나왔다.

두 노인 모두 형형한 안광을 지닌 노인들이다.

그러나 노인들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공력이 폐쇄되었던 탓에 원기가 평상시만 못한 탓이다. 지금 상태로 두 분은 누구와 오래 겨루지도 못한다.)

청년은 내심 염두를 굴렸다.

그는 물론 능천한이었다.

두 노인은 광양대제와 녹림대제이고.

쌍극천효가 염려하던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갑시다!]

능천한은 홍예선희를 등에 업고 바짝 자신의 몸에 졸라매었다.

우르르르---

이내 그의 우수가 시커멓게 변했다.

[허허허! 수라천극존이 정말 대단한 중(重)수법을 창안했구나!]

광양대제가 기분좋게 웃었다.

[차--- 핫!]

쿠--- 쿠--- 쿠쿠쿵!

콰--- 콰--- 콰쾅!

능천한의 손에서 벼락치듯이 묵강류가 쏟아졌다.

거창한 폭음과 함께 삼십여 장 두께의 석벽이 박살나며 서늘한 야풍(夜風)이 확 끼쳐 왔다.

[하하! 정말 대답하군!]

스스스스--- 스슥!

화르르르르---!

사인(四人)은 선풍같이 뚫려진 통로로 날아 나갔다.

[흠...!]

통로를 날아가자 능천한은 몸을 세웠다.

그곳은 밋밋한 경사의 석벽으로 둘러싸인 분지였다.

때는 삼경을 지나 사경에 이르고 있었다.

(혈영궁의 이목이 복우산전역에 깔렸고... 두 분은 아직 남과 싸우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속히 이곳을 벗어나자.)

능천한이 염두를 굴릴 때였다.

[크--- 크크크크...!]

[켈켈... 이곳으로 나오다니...!]

갑자기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분지를 흔들었다.

[누구냐?]

능천한은 폭갈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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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 章

 

                      恐怖血魔牢

 

 

[...]

정신을 차린 혈영미인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

창전(蒼天)같은 눈을 지닌 한 청년이 팔짱을 끼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 여륭은...]

몸을 벌떡 일으키던 혈영미인은 움찔하였다.

몸을 일으키자 나신을 가리고 있던 요가 벗겨져 내린 것이다.

[흐으윽...]

요를 끌어올리며 혈영미인은 공포로 몸을 떨었다.

방바닥이 흥건하게 피로 젖어 있는 것을 본 때문이다.

[당신이 감히 여륭을...]

발악하듯이 외치던 혈영미인의 몸이 굳어졌다.

그녀는 입을 딱 벌린 채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흡사 태산을 옮겨놓은 듯한 능찬한의 모습이 갑자기 찌르르 그녀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멋있다.)

혈영미인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감돌았다.

[호호! 상공은 누구시지요?]

혈영미인은 교소를 지으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사르르르!

고통에 요가 미끄러져 내리고,

아질한 충동을 일으키는 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출렁이는 유방,

끊어질 듯이 가는 세류요.

미끈한 허벅지...

그 사이로 아련한 안개가 서린 검은 방초의 숲...

폭발적인 자극을 불러 일으키는 육체였다.

그러나 혈영미인의 그 아름다운 나신을 보는 능천한의 눈빛은 저녁호수처럼 차분하기만 했다.

[아이... 상공... 말씀을 좀 해보세요... 호호... 원하시면... 제 몸을... 드리겠어요.]

혈영미인이 교태를 뚝뚝 흘리며 허벅지를 살짝 벌렸다.

숨막히는 여인의 비궁(秘宮)!

하나,

[그대는... 정인이 죽었는데 슬프지도 않은가?]

담담한 일성이 혈영미인의 귓전을 울렸다.

혈영미인은 죽어 넘어져 있는 상관여륭을 흘겨보았다.

[! 그렇잖아도 갈아치우려고 한 자였으니 잘 죽었... 아학!]

말을 하던 혈영미인은 질겁을 하였다.

어느 틈엔가 천극의 극인(戟人)이 그녀의 목에 겨누어진 것이다.

[... 왜 이러세요?]

혈영미인은 공포에 질려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그대도 죽어보는 것이 어떤가?]

능천한이 담담하게 말했다.

[... ... ... 제발...]

혈영미인이 사색이 되었다.

그녀의 싸늘한 나신이 보기에도 애처롭게 부들부들 떨렸다.

죽음().

인간은 그것을 볼때 다만 자기에게만은 그것이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죽음이 묵전에 있음을 알 때 인간은 너무도 허약해진다.

특히 타인의 생명을 초개같이 알던 자들일 수록 자신의 생명에 대한 집착을 강한 법이다.

[제발... 살려 주세요.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제 몸을... 가지시겠다면... 어서...]

혈영미인은 후들후들 떨었다.

그녀의 몸에서 교태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였다.

[한 가지 알고 싶은 것이 있다.]

능천한은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 무엇인가요?]

혈영미인이 사색이 되어 물었다.

[월영극살이 이곳의 어딘가에 갇혀 있을 터인데...]

능천한의 말에 혈영미인이 안색이 홱 변했다.

[... 당신이 패천지존!]

[알 필요 없고... 묻는 말에나 답해라. 그녀는 어디에 갇혀있는가?]

능천한이 무겁게 물었다.

[... ...]

혈영미인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도대체... 혈천구마성은 무얼 하고 있기에...)

혈영미인은 혈천구마성을 욕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 북쪽... 석벽에... 혈마뢰(血魔牢)라는... 중죄인을 가두는 곳이 있...]

[누가 지키는가?]

능천한이 재차 물었다.

[... 무마 성중... 광육도성(狂肉刀聖)... 으음...]

말을 하던 혈영미인의 나신이 추하게 무너졌다.

[광육도성이라... 반 미치광이의 도귀(刀鬼)가 지킨다고...]

능천한은 천극을 비껴들고 중얼거렸다.

[어쩌면...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겠군...]

스스스스--- 스슥!

능천한의 신형이 한 줄기 그림자로 변하여 날아갔다.

아무도 능천한의 종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무인지경(無人之境)이랄까?

혈영궁도들은 정작 자신들이 기다리는 적을 안에 두고 바깥만 지키고 있었다.

 

***

 

높직한 석벽,

하나의 큼직한 동굴이 자리잡고 있다.

동굴의 앞,

[크크... 인육(人肉)이 먹고 싶다.]

한 명의 괴인이 눈을 희번득이며 서 있었다.

칙칙한 혈포를 몸에 걸친 괴인이었다.

고슴도치의 털같이 뻣뻣이 치솟은 머리카락,

살기가 뚝뚝 흐르는 두 눈,

그리고 삐죽이 삐어 나온 뻐드렁니가 섬뜩한 느낌을 준다.

그자는 어깨에 큼직한 귀두도(鬼頭刀)를 짊어지고 있었다.

문득,

[크크... 싱싱한 고기 냄새가 난다.]

괴인은 코를 벌름거리며 눈을 빛냈다.

그자는 한쪽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뚜벅! --- !

어둠 속에서 혈포를 걸친 한 명의 중년인이 걸어나왔다.

제법 영준하지만 음침한 인상의 인물이었다.

괴인의 눈가로 빠르게 실망의 빛이 지나갔다.

[클클... 먹을 것인 줄 알았더니...]

괴인이 혀를 차는데 중년인은 조심스럽게 괴인의 곁으로 다가왔다.

[클클... 궁주! 무엇 때문에 왔느냐?]

괴인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에 혈포중년인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호전(護殿)께서 수고하시는데 후배가 어찌 편히 자겠습니까?]

중년인, 혈영군의 말에 괴인은 입술을 실룩거렸다.

[클클... 네가 노부의 수고를 안다면 어찌 빈손으로 오느냐? 야들야들한 계집의 허벅지라도 하나들고 와야지!]

그자의 말에 혈영군의 눈가에 빠르게 한광이 지나갔다.

(흡혈마성은 인혈(人血)을 마시고 이자는 인육(人肉)을 즐겨 먹는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없군!)

그러나 혈영군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걱정마십이오. 곧 수하들이 호전의 밤참을 대령할 것입니다.]

혈영군의 말에 괴인의 입이 찢어져라 벌어졌다.

그자가 바로 혈천구마성이 광육도성이었다.

[정말이렸다?]

광육도성이 다그치듯이 물었다.

[후배가 어찌 빈 말을 하겠습니까? 그보다, 후배는 뇌옥 안을 한번 들러보아야겠습니다.]

[클클... 좋다. 어서 들어가 보아라!]

기분이 좋아진 광육도성은 흔쾌하게 대답했다.

[그럼...]

혈영군은 광육도성에게 머리를 숙여 보인 뒤 석동 안으로 들어섰다.

석동은 상당히 깊었다.

곧장 오십 장은 안으로 뚫려 있고,

그 끝에 시커먼 철문이 보였다.

그곳의 혈마뢰(血魔牢),

한번 갇히면 죽어서야 빠져 나올 수 있다고 전하는 흉명높은 곳이었다.

혈영군은 철문 앞으로 다가섰다.

(안쪽에... 십여 명의 고수가 있고... 이 철문은 안에서만 열리게 되어 있다.)

철문을 바라보는 혈영군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때,

[누구요!]

철문 안쪽에서 카랑카랑한 음성이 들렸다.

[본군이다. 문을 열어랏!]

혈영군이 석문에 대고 외쳤다.

[... 알겠습니다!]

철문 안에서 급히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 !

그그그긍!

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수고한다.]

혈영군은 거만한 몸짓을 하며 철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널찍한 석실이었고 여러 개의 돌 의자와 석탁이 놓여 있었다.

석탁 위에는 마시던 술병과 안주들이 널려 있으며,

열 명의 혈포인들이 일어서서 혈영군을 맞았다.

--- 그그그긍!

혈영군이 들어가자 철문이 뒷쪽에서 다시 닫혔다.

[궁주님을 뵙습니다.]

십명의 혈포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자들은 하나같이 초절한 공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자들은 바라보는 혈영군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혈영십천살(血影十天煞)이 이자들이군.)

그때,

[...!]

[...!]

갑자기 십인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강렬한 살기가 그자들의 몸에서 내뻗었다.

혈영군은 움찔하였다.

그 순간,

--- 스스슥!

휘르르르르릇!

혈영십천살이 선풍같이 휘돌아 혈영군을 에워쌌다.

[궁주가 아니다! 네놈은 누구냐?]

그자들 중 일인이 벼락같이 외쳤다.

십인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혈영군을 노려보았다.

[본인이 혈영군이 아님을 어찌 알았는가?]

포위당한 혈영군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담담하였다.

[크크... 누구든 이곳에 들어오면 삼재환(三才環)을 그려 보이는 것이 규칙이다!]

한자가 냉갈하며 대답했다.

[그런가?]

--- 지지직!

말을 하며 혈영군은 혈포를 북 찢어 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한 자루 시커먼 극()과 황포가 드러났다.

[... 패천지존!]

혈영십천살이 숨넘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혈포가 찢어지고 혈영군의 안면이 서서히 바뀌었다.

그 바뀐 얼굴...

혈영군이 그 발끝에도 따르지 못할 영준함과 기품을 지닌 얼굴이었다.

물론 능천한이었다.

그는 환몽천후의 만환천역술(萬幻千易術)로 용모를 바꾸고 혈마뢰에 수월히 잠입한 것이다.

[... 궁주도 변장하고 들어오다니...]

[귀신같은 놈...]

혈영십천살의 안색이 시커매졌다.

예감이랄까?

그들은 능천한에게 패할 것만 같은 느낌에 주눅이 들었다.

[저곳이 뇌옥인 모양이지?]

능천한은 태연히 한쪽의 석문(石門)을 가리켰다.

[으윽! 천방지축으로 모르는 놈!]

능천한이 자신들을 무시하자 혈영십천살은 대노하였다.

[뒈져랏!]

[--- 하앗!]

우르르르--- !

--- 르르르르!

혈영십천살이 일시에 공세를 발동하였다.

시뻘건 강기가 노도같이 휘몰아쳐 일시에 능천한을 뒤덮어왔다.

그자들의 합벽공세는 혈영군 정도의 고수 삼인(三人)이 일시에 공세를 내치는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

--- !

능천한의 눈에서 뇌전이 작렬하였다.

[잘 왔다! 천극망!]

--- --- 아앙!

--- 파파--- 파팟!

능천한이 벼락같이 천극을 무찔러 내었다.

천가닥 만가닥의 극영이 빗살같이 뻗쳐 나가 석실을 가득 메웠다.

--- --- --- 쿠쿵!

콰르르르--- 르르릉!

[--- --- !]

[--- --- !]

피보라가 경풍을 타고 석실을 가득 메웠다.

--- ! 콰당탕!

혈영십천살이 일제히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그들이 강하기는 하되 능천한을 막을 정도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 이렇게 강하다니!]

구인(九人)은 즉사하고 한 명만이 간신히 일어나 벽에 기대어 섰다.

그러나 그자도 가슴이 으스러진 중상이었다.

[우리... 십살이... 지긴 했으나... 너 또한... 뇌옥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자는 사력을 다해 벽에 달린 긴 봉()을 밑으로 내리 눌렀다.

크르르르--- 르릉!

크크--- 크크크크!

그러자 멀리서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흐흐... 뇌옥 안으로 들어가려면 서른여섯겹의 관문을 꿇어야한다. 인간인 이상... 맨몸으로 전 관문을... 뚫을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 ... .]

--- 우웅!

그자는 중얼거리다가 꼬꾸라져 숨이 끊어졌다.

[훌륭한 기백... 무인(武人)다운 기백이다.]

능천한은 쓰러진 그자를 향해 포권을 취해 보였다.

적은 적이라도 끝까지 자기 소임을 다한 그의 정신력에 감탄한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에게 실망을 주어야 하겠군!]

능천한은 천극을 왼손에 움켜 쥐고 석문으로 다가섰다.

[십만근의 묵옥강석(墨玉)이라도 박살낼 수 있는 중수법(重手法)이 내게 있음을 몰랐으리라.]

능천한은 오른손을 쳐들었다.

그의 우수는 먹물에 담근 듯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묵황굉벽뢰(墨荒宏霹雷)!]

--- --- !

쿠르르르--- 르르!

능천한의 우수에서 시커먼 묵강이 쏟아졌다.

--- --- !

--- --- 콰쾅! 우르르르!

묵황굉벽뢰에 부딪친 석문이 박살이 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석문의 안쪽 삼십 장까지도 묵황굉벽뢰의 여파가 미쳤고,

그 바람에 두 개의 철문(鐵門)이 한꺼번에 박살이 났다.

[기관과 함정... 내게는 모두 장난정도로밖에 보인지 않는 것...]

능천한은 태연히 석문 안의 통로로 다가갔다.

만절기사의 만절기환록에 통달한 능천한이다.

혈마뢰의 기관함정이 범인에게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능천한에게는 그렇지를 못했다.

천하에 그의 발을 묶어 놓은 수단이 전극한 정도이니까.

 

***

 

--- --- 콰쾅!

마지막 청옥석의 석문이 박살이 났다.

--- 쿵쿵!

우드드득! 우수수!

부서진 청석을 발로 밟아 부수며 능천한은 안으로 들어갔다.

[...!]

안으로 들어서던 능천한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곳은 습기가 가득 찬 석실이었다.

전면의 석벽,

피와 살점으로 거무틱틱하게 석벽이 있다.

한데 그 석벽에 한 명의 나녀가 매달려 있었다.

사지를 쇠사슬에 묶여 걸려 있는 여인,

본시는 백옥같은 피부를 지닌 미인이었다.

그러나 무수한 고문과 폭행을 당한 듯이 그녀의 전시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쩍쩍 갈라진 피부는 보기에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특히 여인의 중요한 중지는 달군 인두로 지져진 듯이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

[으음... 홍예(紅霓)...]

능천한은 절로 신음을 흘렸다.

여인...

그녀는 바로 천하제일기녀라고 불리던 홍예선희였다.

또한, 벽향이라는 이름을 가진 밀살교의 여교주 월영극살이기도 한...

--- 으윽!

능천한은 홍예선희의 앞으로 날아나갔다.

[... 상공!]

능천한이 다가가자 홍예선희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주르르...

만신창이가 된 홍예선희의 불 위로 뜨거운 이슬이 굴러 내렸다.

[어찌... 어찌 천녀를 위해... 함정에 드셨사옵... 니까?]

홍예선희는 자책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홍예... 그대가 이곳에 있는데 내가 어찌 아니 올 수 있겠소. 설사 이곳이 지옥이라 해도 올 것이오!]

사가가강!

--- 스스스슥!

쇠사슬이 가루로 부서져 내리고,

홍예선희의 몸이 능천한의 팔에 안겨 졌다.

[상공... ... ! 상공! 상공!]

홍예선희는 능천한의 몸에 얼굴을 파묻으며 오열을 터뜨렸다.

[홍예...]

능천한은 홍예선희의 만신창이가 된 나신을 어루만졌다.

그의 손길을 느끼며 홍예선희는 만족했다.

피부가 보도(寶刀)로 져며지고 중지를 인두로 지져지던 그 끔찍한 고통이 한순간에 모두 잊혀졌다.

[홍에... 자 입을 벌리오!]

능천한은 홍예선희를 안고 바닥에 안장 작은 옥병을 그녀의 입에 가져갔다.

그 옥병에는 태산만한 만년한옥을 깎아내야 한홉을 얻을 수 있다는 절세영약이 들어 있었다.

 

---만년빙옥정(萬年氷玉精).

 

현음유령종이 준 유령사대중보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뼈에 살을 붙인다는 영약.

특히 여인들에게 그 효능을 무궁무진하다.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고 천하미인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어서...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셔야... 하옵니다. 이곳은... 쌍극천효의... 함정...]

몇 방울의 만년빙옥정을 마신 홍예선희는 중얼거리다가 잠에 떨어졌다.

만년빙옥정에는 수면의 작용인 있는 것이다.

(쌍극천효... 그자가 이번 음모의 주역이라면... 지금까지의 나의 모든 행위를 고나찰하고 있었을 것이다.)

능천한은 홍예선희를 안아들었다.

(어서 이곳을 나가야한다.)

능천한은 염두를 굴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가 막 삼보를 움직이지 않았을 때였다.

[으하하하! 패천지존! 그곳이 계집과 사랑을 나누기에 좋지 않느냐?]

돌연 석로(石路) 전편에서 득의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쌍극천효!]

능천한은 부지불식간에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능천한이 한번 들어본 목소리였다.

바로 청죽림에서 홍예선희에게 선덕제의 암살을 종용하던 그 쌍극천효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第四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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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九 章

 

                     暗箭이 되어라!

 

 

 

스스--- 스스슥!

능천한은 광독곡의 독무(毒霧)를 꿰뚫고 허공으로 치솟았다.

[다시 오리라!]

능천한은 허공에서 몸을 틀어 광독곡을 내려다보았다.

스스스...

광독곡은 시커먼 독무로 전모를 가리고 있었다.

능천한이 감회에 찬 눈길로 광독곡을 바라볼 때였다.

[크크크!]

주향(酒香)이 물씬 풍기고,

바윗돌이 부딪는 듯한 괴소가 들렸다.

[...!]

능천한은 몸을 휘들리며 두 눈에서 뇌전같은 안광을 쏟아내었다.

그 순간,

쿠쿠쿠--- 쿠쿵!

--- 자자작!

홱 돌아선 능천한의 전면으로 벼락겉은 강기가 떨어졌다.

능천한은 그 강기의 무더기 속에 벽죽장(碧竹杖)의 그림자가 선풍같이 휘돌아치는 것을 보았다.

[벽죽취라신장(碧竹醉羅神杖)!]

--- 쿠쿠쿵!

능천한이 담담히 외치는데 그의 몸에서도 강기의 해일이 일었다.

[클클... 패천존후신강이라...]

--- --- 콰콰!

--- 르르르릉!

허공에서 폭죽이 터지듯이 굉음이 일었다.

스스스스슥! 화르르륵---

[--- !]

그중에서 폭풍같은 경기의 파동에 밀려 한 노인이 튕겨져 나갔다.

봉두난발의 머리,

주독(酒毒)으로 시뻘개진 코,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에 반질반질 윤이 나는 벽죽장을 든 노개(老丐)였다.

화르르르...

허공으로 튕겨지던 노개는 영교하게 몸을 휘둘렀다.

[클클클... 금가 계집아이가 신랑으로 삼은 까닭이 있구나!]

노개는 허공에 둥실 몸을 띄운 채 껄껄대며 웃었다.

[태상호법이셨군요!]

능천한도 허공에 몸을 세운 채 포권을 하였다.

그러자,

[예끼 젊은 놈이 고리타분하기는... 치워라!]

노개가 허공중에서 고개를 돌리며 벼락같이 일갈하였다.

능천한은 절로 미소를 지었다.

(세속의 자질구레한 예의를 싫어하시는 분이니...!)

능천한은 손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태상호법으로 모시고도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능천한의 말에 노개는 딸기코를 실룩이며 능천한을 돌아보았다.

[! 네녀석이야 금가계집의 엉덩이나 두들겨 주기에 바빴으니 이 늙은 술주정뱅이를 찾아볼 겨를이 있었겠느냐?]

노개는 입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능천한을 살폈다.

능천한을 살피며 노개의 거슴츠레한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녀석 참 당기차게 샹겼다.)

노개의 입가로 야릇한 미소가 감돌았다.

[클클... 거룡(巨龍)이 되었기에 계집아이들이 저마다 네 녀석의 씨를 받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

노개의 말에 능천한의 안색이 시뻘개졌다.

[... 노선배님...]

능천한이 멋쩍어 더듬거리자 노개는 재미있다는 듯이 낄길거렸다.

[클클... 노선배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노선배냐? 술주정뱅이 형이라고 불러라!]

노개의 뜻밖의 말에 능천한이 고개를 저었다.

[후배가 어찌 감히...]

그러자 노개는 거슴츠레한 눈을 부릅떴다.

[이놈아! 왜 이 늙은이가 네 녀석 바람둥이와 형이 될 자격이 없다는 얘기냐?]

노개가 달려들 듯이 으르렁거려 능천한은 황급히 손을 저었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다만!]

노개는 능천한의 말을 가로 막았다.

[아니면 되었다. 이후로 본 거지왕초를 노형이라 불러라!]

노개의 말에 능천한은 체념의 빛을 띄우며 고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노형!]

[클클 좋다. 한데 네 녀석은 무슨 일로 저 지옥같은 광독곡에 들어갔었느냐?]

[저안에... 몇 분 선배님들의 유해가 있습니다.]

능천한이 안색을 무겁게 가라앉히며 말했다.

[송장? 죽을 데가 없어 저런 곳에서 죽은 바보들도 있느냐?]

노개가 흥미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 사실은...]

능천한은 노개에게 간단히 경과를 얘기했다.

[그런 일이...]

능천한의 이야기를 들은 노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 천해... 그 돌중이 이런 곳에서 죽었다니... 쯧쯧!]

노개는 혀를 끌글 찼다.

[한데... 노형님께서는 어찌 이곳에 오셨습니까?]

능천한이 묻자 노개는 이내 익살스런 표정이 되었다.

[금가 계집애 등이 울상을 하며 애걸하기에 노형이 먼저 네뒤를 쫓아왔다. 계집아이들은 네 녀석이 혼자 함정에 들어가는 것이 걱정이 된게야!]

[누님도 참...]

능천한은 멋쩍에 미소를 지었다.

[아마 금가 계집들은 오백의 정예를 이끌고 헐레벌떡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게다.]

[그럴 필요가 없거늘...]

능천한은 나직이 탄식을 하며 노개를 바라보았다.

[형님께서... 이곳에 계시다가 누님 등을 더 이상 깊이 들어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능천한의 말에 노개는 정색을 하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노개의 눈에는 관심이 담겨 있었다.

[네혼자... 혈영궁에 들 수 있겠느냐?]

노개의 물음에 능천한은 빙긋 웃어 보였다.

[걱정마십시오. 천극이 제게 있으니... 어느 누구도 제 앞길을 막지 못합니다. 설사 우주혈종이 환생했어도 말입니다.]

[흐음...]

능천한의 말에 노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잠입하는 데에는 단신이 오히려 좋으니... 그러나...]

노개는 안색을 굳혔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본방의 문도들이 전한 바로는 이 주위에 혈천구마성(血天九魔聖)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혈천구마성!]

능천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그렇다. 백년 이전에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그자들이 살아있다.]

노개의 안색이 더할 수 없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혈천구마성(血天九魔聖)>

 

백육십여 년 전,

혈천방(血天幇)이라는 문파를 세워 천하를 피로 씻었던 전대마두들을 일컫는다.

그자들은 하나같이 잔혹하기 그지없이 세인들이 귀신보다도 두려워하던 자들이다.

 

---천황마성(天皇魔聖).

---지절마성(地絶魔聖).

---흡혈마성(吸血魔聖).

---혈검마성(血劍魔聖).

---광육도성(狂肉刀聖).

---독마성(毒魔聖).

---환마성(幻魔聖).

---색마성(色魔聖).

---미욕염성(迷欲艶聖).

 

이들이 그자들이다.

피에 굶주려 장강을 인혈(人血)로 채우기를 원했던 자들...

그들은 백여 년 전 의문의 실종을 당했었다.

[우형의 추측이네만, 그자들은 아우님을 노리고 있는지도 모르네...]

[...]

능천한의 안색도 굳어졌다.

 

---혈천구마성(血天九魔聖).

 

남북쌍괴(南北雙怪)와 동시대에 살았던 이 절세마두들...

그들은 능천한이라도 경시할 수 없는 자들임에 틀림없다.

[그자들이... 혈영궁에 도사리고 있다 해도... 우제는 갈 것입니다.]

능천한이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그런 모습에 노개는 넋이 나간 듯이 멍하니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능천한이 노개의 눈에도 태산으로 보인 것이다.

(멋진 놈... 계집들이 아니 따를 수가 없겠지!)

노개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갔다.

[하하! 좋다. 잘해보거라, 우형도 가능한 네 녀석의 일이 잘되도록 도와주겠다.]

노개가 껄껄 웃으며 능천한의 등을 두드렸다.

[어둠 속의 화살(暗箭)... 천 명의 고수가 있어도 막기 어려운 법! 암전이 되거라!]

[명심하겠습니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 오거라. 우형은 광독곡에 가서 옛 친구를 만나보아야겠다.]

스스스--- !

노개는 선풍을 휘몰아 광독곡으로 날아들어갔다.

[...]

능천한은 광독곡으로 날아들어가는 노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노개(老丐)...

그들 천하인은 취존개(醉尊)라고 부른다.

취중제일존(醉中第一尊)...

앉은 자리에서 천근 독주(毒酒)를 안모금에 마신다는...

[암전... 어둠 속의 화살이라...]

능천한은 입속으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X X X

 

밤이다.

산중(山中)의 밤은 빨리 온다.

그것이 깊고 음침한 절곡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깊디깊은 절곡,

어둠 속에서도 불그레한 핏빛을 흐트리지 않는 절곡이 있다.

혈영곡(血影谷)이라 불리는 곳이 그렇다.

곡 전체가 항시 혈영지기(血影之氣)로 뒤덮인 곳,

이곳은 저 유명한 혈영염제(血影閻帝)가 마성(魔性)을 키우던 곳이다.

[...!]

스스스스스--- 스슥!

야풍에 옷깃을 펄럭이며 절벽 위에 둥실 떠있는 인물이 있다.

능천한이었다.

[...!]

그의 눈은 신광을 담아 절곡, 혈영곡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혈영에 싸인 절곡에 웅크리고 있는 궁()이 보였다.

혈영궁이라 불리는 곳이 그곳이다.

(저곳의 어딘가에... 홍예... 가 갇혀 있다.)

혈영군을 내려다보는 능천한의 표정이 착찹했다.

그의 여인이면서 또한 원수이기도 한 여인...

그는 지금 그여인을 구하려고 죽음의 함정이 깃든 사지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홍예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사정이 있었으리라.]

능천한은 입술을 굳게 물었다.

[홍예에게 후에 벌을 주든지 어찌하든지...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스스--- 스슥!

능천한의 신형이 삽시에 안개같이 변하여 혈영궁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유령잠천행(幽靈潛天行).

 

유령일문(幽靈一門)의 절정은 신경공술이다.

주위환경에 신형이 흡수되어 여간해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무적의 공력을 지닌 능천한이 그것을 펼침에야...

스스스--- 스스슥!

능천한은 그림자로 변하여 혈영궁의 중지로 날아들었다.

혈영궁에는 수많은 눈들이 희번뜩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하나 날아든 능천한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윽고 능천한은 몸을 세웠다.

그곳은 잘 가꾸어진 정원이었다.

(살기가... 도처에 흐른다.)

능천한은 관묵사이로 표표히 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함정, 기관, 감시의 눈길이 어우러진 정원이다.

그러나 능천한은 자신의 접 후원을 거닐 듯이 한가하게 걸음을 옮겼다.

(뇌옥(牢獄)은 깊은 곳에 있을 것이고...)

혈영궁의 가장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기던 능천한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문득 멀찍이에 환하게 빛나는 전각을 발견한 때문이다.

(가볼까?)

--- 스슥!

능천한은 바람이 스치듯이 정원을 가로질렀다.

그의 몸은 일시에 불이 켜진 전각근처로 날아갔다.

흐릿한 신형이 야풍과 함께 흐르나니...

 

---천유환상보(天遊幻像步).

 

환몽천후가 희대의 대도(大盜) 환몽천유신(幻夢天遊神)의 시절에 창안한 경공절기다.

잠입과 은신에 최상이라는 보법.

 

***

 

전각은 가산에 둘러싸인 화려한 것이었다.

모두 이층으로 되어 있는데,

불빛은 이층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스스슥!

능천한은 이층이 들여다보이는 고송(古松) 위로 몸을 띄워 올렸다.

이어 그는 시선을 창문이 열려있는 이층으로 던졌다.

[...!]

능천한의 안면에 돌연 씁쓸한 고소가 피어올랐다.

[헉헉... 으음... 혈홍(血紅)... 혈홍...!]

[아아...!]

그 전각에서는 두개의 나신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뒤엉키고 있었던 것이다.

땀으로 번질번질해진 희멀건 여체.

짝 벌어진 그 여체 위로 건장한 사내의 몸이 내리켜지고 있었다.

[학학... ... 아흐흑! 아아...]

사내의 몸이 짓눌려 올 때마다 희멀건 여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못 볼 것을 보았군!)

능천한은 고소를 머금었다.

전각 안의 남녀는 능천한이 바라보고 있음도 알지 못하고 쾌락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데 능천한이 고소를 지으며 막 몸을 움직이려 할 때였다.

[--- ! 여륭(與隆)... 여륭...!]

자지러지는...

열락의 끝을 헤매는 여인의 끈끈한 신음성이 능천한의 발목을 붙잡았다.

(여륭! 상관여륭을 말함인가?)

능천한의 침잠하던 눈에 한망이 번뜩였다.

그는 싸늘한 살기를 몰아 전각 안을 들여다보았다.

[헉헉... 헉헉... 혈홍...!]

여인의 몸을 짓누르는 사내의 몸놀림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 ... 아아아아!]

여인은 희멀건 사지를 퍼덕이며 몸부림쳤다.

한껏 튕겨져 올라가는 허리,

경련하며 사내의 등을 후벼파는 섬섬옥수,

그리고,

[... ...!]

[... ...!]

한순간 두 남녀의 몸뚱이가 하나로 밀착되어 경직되었다.

절정을 맛보는가?

두 남녀는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

사내의 몸이 벼락에맞은 듯이 뒤흔들렸다.

[...!]

그의 팔에 안겨 있던 여인이 갑자기 축 늘어진 것이다.

(점혈... 누군가 등 뒤에...!)

사내는 등으로 식은땀이 주르르 흐름을 느꼈다.

[알아차렸으면... 일어나서 옷을 입어라!]

한소리 담담한 목소리가 사내의 뒤통수를 때렸다.

[...!]

사내는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켰다.

보이지는 않는 중에 무형지검(無形之劍)이 전신을 겨누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감히 경거망동을 하지 못했다.

[...!]

사내는 여인에게서 몸을 떼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침상 밑에 나뒹굴고 있는 바지를 집어 걸쳤다.

[그대가 복마신장(伏魔神壯) 상관여륭인가?

예의 담담한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 그렇소... 상관여륭이 나요!]

사내가 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의 눈앞에는 발가벗은 나녀가 사지를 벌리고 누워있었다.

현란한 여체!

그러나 그는 여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처지가 못되었다.

그자신이 상관여륭이라는 것을 밝힌 순간,

칼날같은 예기가 전신을 옭아매은 때문이다.

[저 계집이... 혈영군의 사매인 혈영미인(血影美人)이겠.]

능천한이 담담한 중에 살기를 실어 중얼거렸다.

(... 어떤 자이기에... 혈영궁의 중지까지 서슴없이 들어왔던 말인가?)

상관여륭의 두 다리가 자신도 모르게 후들후들 떨렸다.

[상관여륭, 돌아서라!]

능천한이 싸늘하게 말했다.

[으음...]

상관여륭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

몸을 돌린 상관여륭의 둔누이 찌어질 듯이 치떠졌다.

그의 앞, 태산같은 모습의 능천한이 천극을 짚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가 놀란 것은 능천한 때문이 아니고 능천한이 들고 있는 묵주(墨珠) 때문이었다.

[... 항마묵주(降魔墨珠)!]

상관여륭의 안색이 샛노래졌다.

[그대는... 곧 죽을 것이다. 죽는 이유는 그대 자신이 잘 알 것이고...]

능천한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무심한 말이나 그 말속에는 얼음장같은 한기가 서려 있었다.

[... 으아아...!]

--- 이이잉!

상관여륭은 짐승같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었다.

그의 건장한 몸은 깜짝할 사이에 창문에 이르렀다.

그러나,

--- !

상관여륭은 등판쪽으로 만근의 충격이 가해짐을 느꼈다.

[--- 에엑!]

상관여륭은 부서진 내장과 선혈을 토하며 나뒹굴었다.

--- !

나뒹군 상관여륭의 옆으로 능천한이 다가왔다.

일장의 소란에도 주위는 너무 조용했다.

능천한이 펼친 단음기공(斷音奇功)에 한 마디의 소리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한 때문이다.

[...!]

상관여륭은 몸을 뒤집으며 신음했다.

천정을 바라보고 누운 그의 눈에 능천한의 모습이 태산같이 떠올랐다.

[... 사부님은... 살아 계십니... ?]

상관여륭이 더듬더듬 물었다.

인간은 죽음에 당하면 선해지는 것일까?

상관여륭의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입적하셨다!]

능천한은 무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일시지간의... 색욕을 참지,... 못하고... 천추의 한을 남... 기다니...]

상관여륭은 울컥 피를 토했다.

그리고는 이내 축 늘어져 버렸다.

능천한이 내친 무형강기에 내부가 박살이 났던 것이다.

[...!]

능천한은 괴로운 신음을 토했다.

상관여륭도 능천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인간,

어찌되었든 인간의 죽음은... 그것이 누구이든지간에 슬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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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八 章

 

                    狂天毒尊遺物

 

 

 

[헛허... 이제는 편히 죽을 수 있게 되었네!]

나뢰는 만감이 서린 눈으로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훌륭하다. 소문보다 백배 뛰어나고 이미 당년의 패천황룡 이상으로 강해졌다. 혈종도 결국... 이 젊은 영웅의 손에 쓰러질 것이다.)

그의 입가로 흐믓한 미소가 떠올랐다.

(생을 마칠 생각을 하고 있다!)

능천한은 나뢰의 그런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천검만리어기뢰는 석천검에 있고... 죽음에 내공까지 갖고 갈 필요는 없지!]

--- 우우우우웅!

나뢰의 몸에서 아주 강한 기운이 일어났다.

비록 능천한의 기도만은 못해도 능히 만인을 놀라게 할 만한 기운이었다.

육백 년... 무려 십갑자에 이르는 내공이니...

[혈영군과... 역천사황을 죽이고... 혈종의 야심을 꺾어주게!]

스스스스슥!

츠츠츠츠--- !

나뢰의 몸에서 무형의 경력이 흘러나와 능천한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능천한은 피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나뢰의 뜻을 거역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역천사황은 죽었습니다. 성주의 따님이... 그자를 죽였지요!]

공력을 받아들이며 능천한이 말했다.

[설련이가... 살아 있는가?]

나뢰의 남청색 독안이 떨렸다.

[그렇습니다. 비록 천황염후의 몸이 되기는 했으나...]

[허허... 결국 하늘은 천검성에 관대하셨군!]

우르르--- 르릉!

노도가 능천한의 내부에 또 한 줄기 잠력의 호수를 만들고 있었다.

[설련을 자네의 첩으로 줌세. 잘 보살펴주고... 설련이 낳는 아이에게 천검성의 대통을 이어주고...]

(현음유령종 선배로부터도 이런 부탁을 받았거늘...)

능천한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르르르릉!

경기의 노도는 폭발의 정점으로 치달렸다.

그에 따라 나뢰의 눈에서 생기가 흐려져갔다.

[맞은 편... 석동에도 한을 품고 돌아가신 분이 있으니... 찾아뵙고... 노부의 시신은... 그냥 이 독지에 놓아... 두게!]

콰르르릉! --- 콰쾅!

쿠르르르...!

[!]

능천한의 몸이 휘청하였다.

거창한 충격을 끝으로 나뢰의 공력이 끊겼다.

[부탁... 설련에게... 아비가 보고,... 싶었다고... 전하고...]

스르르르륵!

나뢰의 머리가 독지 속으로 깊이 잠겨 들었다.

[으음...!]

능천한은 어두운 안색으로 부글부글 끓는 독지를 바라보았다.

나뢰의 모습은 완전히 독지에 파묻힌 후였다.

[편히 잠드소서...!]

능천한은 독지를 향해 큰절을 올리고 한동안 독지가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또 하나의 은원을 더 짊어지게 되었다.)

능천한은 결연한 빛으로 번뜩였다.

[더 이상 슬픔을 겪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혈종을 무너뜨려야 하고,...]

한동안 독지 가에 꿇어 앉아 있던 능천한은 몸을 일으켰다.

이어 거대한 석검(石劍)으로 갔다.

석검은 완벽한 검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저것이다!]

능천한의 시선은 석검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여덟 줄기의 선을 주시하였다.

그 여덟 개의 선은 그 파인 깊이가 서로 다르고 그 형태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그것들은 일단 펼쳐지면 무적지류(無敵之流)가 되는 흐름을 상징하고 있었다.

[...!]

능천한은 넋이 나간 듯이 그 여덟 줄기의 선을 주시하였다.

그의 눈에는 선이 단순한 선으로 남아 있지를 않았다.

거대하고 노도같은 흐름!

일단 내쳐 뻗치면 만상을 둘로 잘라내는 엄청난 흐름으로 보이는 것이다.

일각이 지났다.

[...!]

선을 들여다보던 능천한의 시선이 이윽고 어두워졌다.

그의 눈에는 유현한 혜광이 깃들어져 있었다.

[천검성은 대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능천한은 몸을 돌렸다.

[천양염후... 그녀에게... 아들을 낳게 해주는... 아주 어려운 일이 남았군!]

능천한은 고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은 광독곡의 끝에 이르고 있었다.

그곳에는 어둑한 석동(石洞)이 있었다.

[저곳에 또 한분의 유해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스스스스--- !

능천한은 구름이 흐르듯이 석동을 향하여 날아갔다.

 

능천한은 석동 앞에 이르렀다.

스스... 스스스!

서걱... 서걱!

석동은 온갖 종류의 독물(毒物)들로 뒤덮혀 있었다.

독지네, 전갈, 독사. 독두꺼비...

징그럽고도 섬뜩한 형태를 한 독물이었다.

그러나,

츠츠츠... 츠츠...!

--- 기기끼...!

독물들은 능천한이 다가가자 질겁을 하며 물러섰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약종지기가 독물들과는 극성인 까닭이다.

--- ! 뚜벅!

능천한은 침침한 석동 안으로 들어섰다.

(불광(佛光)...!)

문득 능천한은 걸음을 멈추며 석동 안쪽을 바라보았다.

석동의 안쪽으로부터 강렬한 불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불광에는 만사(萬邪)를 누르는 척사지기(斥邪之氣)가 배어 있었고,

그 때문에 독물들이 불광의 안쪽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능천한은 눈을 빛내며 불광을 향하여 다가섰다.

[!]

한 굽이 돌아서던 능천한은 문득 발을 멈추었다.

그곳은 널찍한 석실이었고,

석실 중앙에 두 개의 좌대(坐臺)가 있었다.

좌대에는 두 명의 인물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화해 있었다.

좌측의 좌대에는 회색가사를 걸친 노승이 있었다.

백미와 백염의 불덕(佛德)이 깊어 뵈는 고승으로,

강렬한 불광은 고승이 들고 있는 묵주(墨珠)에서 뻗치고 있었다.

(열반에 드신지... 몇 달 안된 분이다.)

능천한은 그 노승이 열반에 든 것이 최근임을 알아내었다.

그는 섬뜩한 예감이 들어 급히 고승의 시신주위를 돌아보았다.

능천한은 이내 석실의 바닥에 새겨진 금강지력(金剛之力)을 볼 수가 있었다.

 

<노납... 천해(天海)가 입적에 당하여 적노라.>

 

[... 역시...]

능천한의 목소리가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노승의 시신을 향하여 정중히 일배를 올렸다.

[패천신문의 후인 능천한... 선사의 유체를 배견하나이다.]

정중히 일배를 올린 뒤 능천한은 바닥에 쓰여진 글을 읽어내려갔다.

 

---천해(天海)!

 

그 노승이 바로 소림제일인이며 정도삼존(正道三尊)의 으뜸인 천해존불(天海尊佛)이었다.

그는 몇달 전에 기명제자인 복마신장(伏魔神壯) 상관여륭에게 시해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중략)... 하여 소림(少林)이 마도(魔道)의 발길에 유린됨이 걱정이 되어 편히 입적을 하지 못하노라. 인연있는 자가 이 글을 읽으리라 믿고 그대에게 부탁을 하노라.

여색에 빠져 사문을 망친 여륭을 벌하고 소림의 문호를 정비하여 주기를...

광법대사존(廣法大師尊)의 유물인 항마묵주(降魔墨珠)를 남겨 그대의 수고에 보답하려 하니 사양치 말라.>

 

[으음...!]

능천한은 바직하게 탄식하였다.

[구파일방의 제자들 중 제일(第一)로 꼽히던 복마산장이 여색에 빠져 사부를 시해하다니...!]

능천한은 탄식을 금치 못하며 천해존불의 손에 들린 항마묵주를 바라보았다.

우연이랄까?

---!

능천한이 바라보자 천해존불의 손에 들려 있던 항마묵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능천한은 조심스럽게 항마묵주를 집어들었다.

항마묵주를 손에 쥐자 청결한 기운이 장심을 통하여 스며들었다.

항마묵주는 모두 열 여덟 개의 오묵주(烏墨珠)로 이루어졌다.

본래 이 항마묵주의 주인은 소림사상 최강이라고까지 불리워지던 고승이었다.

 

---광법선사(廣法禪師).

 

그는 소림의 개파조사 달마선사 이래 가장 큰 위명을 이루었다.

그가 있었던 시대는 팔백여 년 전이었고.

당시 천하는 한 명의 고금제일여고수(古今第一女高手)의 치마폭에 정복당해 있었다.

, 천향염후가 천하 위에 군림한지 백 년에 이르렀던 시대였다.

그 천향염후의 지분천하(脂粉天下)를 종식시킨 것이 광법선사였다.

광법선사는 천향염후에게 도전하였으며,

칠주칠야의 접전이 있은 후,

결국 천향염후의 천향옥잠(天香玉簪)에 입적하고 만다.

그러나 광법선사의 항마지기(降魔之氣)에 천향염후도 크게 다쳤다.

그 때문에 그녀는 천향지기(天香之氣)가 흩어져 죽고 만다.

광법선사는 천향염후와 동귀어진하였던 것이다.

그 광법선사가 한시도 놓지 않았던 유물이 바로 항마묵주다.

이것에는 광법선사의 최후최대절기가 감추어져 있다고 전한다.

능천한은 항마묵주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글이 적혀 있다.)

이윽고 능천한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항마묵주에 적혀진 너무도 작은 글을 발견한 것이다.

그 글들은 오백 년 공력을 지닌 자만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고,

더군다나 범어(梵語)로 적혀 있어 쉽게 발견할 수도 없었다.

천 년의 내공을 지니고 만박통지의 학문을 지닌 능천한이다.

어렵지 않게 묵주에 적힌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지극히 정대한 한 가지 항마신공(降魔神功)을 적고 있었다.

이름하여,

 

<광허무상대법력(廣虛無常大法力).>

 

광법선사가 불문정종선공을 집약하여 만든 항마법력이다.

(훌륭하다. 현음명공강살, 수라천극신강, 패천존후신강. 자령팔극신공, 청허현진기 등보다도 오히려 심오하다.)

능천한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광허무상대법력은 능천한이 지금까지 익힌 그 어떤 기공보다도 뛰어났다.

단 하나, 천형제왕검을 이루는 바탕인 제왕군림신공(帝王君臨神功)만이 이에 필적될 뿐이다.

능천한의 눈빛이 밝게 빛났다.

[당년에... 광법선사께서 광허무상대법력을 완성하기만 했어도 천향염후에게 당하시지는 않았으리라.]

능천한은 중얼거렸다.

팔백 년 전,

광법선사는 육성에 이른 광허무상대법력으로 천향염후의 천향지기를 깨뜨렸었다.

(이 심오함은 천황대정존극심에는 못미치더라도 가히 불가제일이라 할 만하다. 어쩌면 이 무상대법력으로 천향염후의 심정에서 사기(邪氣)를 씻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어 그의 시선은 옆의 좌대로 이어졌다.

그 좌대에는 아주 오래 전에 죽은 한 명의 괴인의 시신이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삐쩍 마르고 극히 괴악한 인상의 인물이었다.

(이 석실의 본래의 주인이었으리라.)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괴인의 무릎 앞에 놓인 옥함에 닿았다.

옥함은 뚜껑이 열려진 상태였다.

능천한은 괴인의 시신 앞으로 다가가 옥함을 들여다보았다.

옥함에는 한 권의 누런 양피지 비급이 들어 있었다.

[천후검성께서 일차 보셨으리라.]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비급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천년 이전에 만들어진 비급이었다.

 

<광독전(狂毒典).>

 

[광독전?]

능천한은 고개를 갸웃하였다.

비급의 표지는 전자(篆子)로 적혀 있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이 비급을 한대(漢代)이전에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능천한이 자허천부에서 읽은 수많은 기록에도 광독전에 관한 것은 전무하였다.

능천한은 비급의 표지를 넘겼다.

 

<분하다. 구천무독살황류(九天墨毒薩荒流)에 설욕할 절대독공(絶代毒功)을 죽음에 이르러서야 창안하다니...>

 

바로 다음 장에 격한 필체의 글이 적혀 있었다.

능천한의 얼굴에 경이의 빛이 떠올랐다.

[구천무독살황류! 구천묵독제의 절정독공(絶頂毒功)이 아닌가?]

 

---구천묵독살황류(九天墨毒薩荒流)!

 

고금제일독공(古今第一毒功).

구천묵독제는 이 독공을 연성하다가 묵인(墨人)이 되고 만다.

시커먼 독강류(毒罡流)가 내뻗치면 방원 오백 장 내의 모든 생명체가 말살된다는...

가공할 절대독공이 구천묵독살황류인 것이다.

[광독전을 지은 이분은 구천묵독제와 동시대의 고인이신가?]

능천한은 괴악스런 인상의 괴인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광독전에는 천하가 알지 못하는 천 수백 년전의 비사가 적혀 있었다.

 

일천 삼백 년전(一千三百年前),

당시 천하에는 오랫동안 수십 갈래로 내려오던 독문이 일통되려는 기운이 일어났다.

이 기운은 특히 두명의 절대독종에 의하여 주로 되었다.

 

---구천묵독제

---광천독존

 

이들이 바로 양대독종(兩大毒宗)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구천묵독제는 구천독종(九天毒宗)을 열어 천하를 독종천하(毒宗天下)로 만들려고 하였고,

광천독존은 광독종(狂毒宗)을 열어 미친 듯이 천하를 횡행하였다.

양 독종의 발호는 전대미문이었다.

후일 절대삼기(絶代三奇)가 나서 구천묵독제를 처단하기는 하였으나,

그 이전까지는 누구도 양대독종을 막지 못했다.

양대독종은 서로를 쥐어뜯으며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두 마리 악룡(惡龍)같이 충돌하였고,

수천의 독문도(毒門徒)들이 죽은 후에야 결판이 났다.

결과는 광독종이 구천독종에게 대패한 것이다.

 

---크크... 다시 돌아온다.

 

구천묵독제에게 패한 광천독존은 피눈물을 흘리며 세외(世外)로 숨어든다.

그가 패자의 잔심(殘心)으로 은거한 곳이 이곳 광독곡이었다.

광독곡에 은거한 광천독공은 복수의 칼을 갈았다.

언젠가는 구천독종을 몰아낼 꿈을 키우며 미친듯이 독공의 창안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 사이 천하에서는 무명의 절대삼기가 나타나 구천묵독제를 쓰러뜨리고 광명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그것을 알 까닭이 없는 광천독존이다.

그는 오로지 구천독종을 깨뜨릴 일념으로 세월의 흐름조차 잊었다.

그렇게 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일백 년을 만가지 극독에 묻혀 산 노력 덕분이랄까?

광천독존은 희대의 절정독공을 창안할 수 있었다.

 

<척천독존강류(擲天毒尊罡流).>

 

한번 떨쳐지면,

천지를 독강으로 뒤덮어 버릴 수 있다는 가공할 독공이었다.

광천독존은 기뻤다.

비로소 구천묵독제인 구천묵독살황류를 누를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기쁨의 순간이 지나자 광천독존은 비로소 세월의 흐름을 깨달았다.

그 자신의 몸은 너무 늙어 이제 죽음이 코앞에 닥쳐 온 것이다.

실로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는다면... 후일 구천묵독제의 저주가 부활할 때에 한 인재를 본 독존에게 보내줄 것이다.

그 인재가 구천묵독제의 독공절기를 척천독존강류로 깨뜨려 주기를 바라며... 광독전에 모든 것을 적어 남긴다.

---광천독존(狂天毒尊) 절필(絶筆).>

 

서문은 그렇게 끝이 났다.

광독전에는 척천독존강류를 비롯한 광독종의 모든 비전이 적혀 있었다.

천후검성 나뢰,

그가 독황사후기로 찾아낸 것도 바로 이 광독전에서였다.

(한번 생긴 은원은 천년이 흘러도 이어지는구나.)

능천한은 탄식하며 광독전을 덮었다.

그는 광독전과 항마독주를 간직한 뒤에 광천독존의 시신에 일배를 올렸다.

[노선배님께서 정인(正人)이 아니셨다고 해도 큰 심원을 지니셨으니... 그것은 후생이 풀어 드리겠습니다.]

일배를 올린 후 능천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석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간만 있었다면... 광허무상대법력과 척천독존강류도 연마해보고 싶다만...)

능천한은 석동 밖으로 나왔다.

츠츠츠---

광독전은 여전히 칙칙한 독무(毒霧)로 가득 차 있었다.

[인간은 감히 접근도 못하는 절지... 이런 곳에 천세 이전과 당금의 세분 고인이 잠들어 있음을 뉘라서 짐작하랴?]

독무를 바라보며 능천한은 깊이 탄식을 하였다.

[다시 한 번은 돌아와야할 곳...!]

스스스스...

능천한은 주위를 돌아보며 몸을 솟구쳤다.

그의 신형은 광독전 외곽으로 날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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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七 章

 

                  石劍에 새겨진 絶代神劍招!

 

 

 

[--- --- !]

[--- --- 에엑!]

처절한 비명!

선연한 피보라가 일며 동체에서 잘라져 나간 목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 --- !

--- ! --- !

목이 잘린 동체가 짚단 넘어지듯이 넘어졌다.

[... ... 귀신...!]

[... 달아나자...!]

혈포를 걸친, 그다지 선해 뵈지 않는 이산의 인물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들의 전면,

지옥의 입구를 연상케하는 섬뜩한 절곡(絶谷)이 있었다.

쩍 갈라진 석벽사이...

우르르르르--- 르르!

코를 찌르는 악취를 풍기며 시커먼 독무(毒霧)가 뭉클뭉클 치솟고 있다.

--- !

--- 아아앙!

일섬(一閃)!

뇌전보다 빠른 검기가 절곡의 독무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 파팟!

[--- !]

[--- 아악!]

재차 십여 혈포인이 목이 댕강 잘려서 나뒹굴었다.

[으아아... ... 가자!]

[... 검귀(劍鬼)!]

--- 스스슥!

휘르르르르---!

나머지 칠팔 명의 혈포인들이 질겁을 하며 몸을 뽑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크크크크...!]

시커먼 독무(毒霧) 속에서 소름끼치는 음소(陰笑)가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혈종의 주구들... 씨를 말리리라!]

원독에 찬 목소리가 산역을 뒤흔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한 줄기 너무도 빠른 검광이 일마장을 뻗쳤다.

--- 파팟!

[--- 에에엑!]

[--- 아악!]

달아나던 혈포인들의 몸뚱이가 허공에서 휘청하다가 그대로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 또르르르르...!

지면에 나뒹군 혈포인들의 목이 그제야 삭뚝 잘라지며 굴러갔다.

너무도 순간적으로 목이 베어져 채 떨어지지도 않은 것이다.

실로 장쾌하고도 쾌첩한 검기였다.

[흐흐... 어찌 졸개들만 오는가? 혈영군이나 역천사황같은 자들은 오지 않는가?]

--- 스스슥!

검기가 들사그러 들며 절곡 속에서 원한에 가득찬 목소리가 들렸다.

절곡에는 지독한 원한을 가진 자가 은신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분하다. 놈들을 일수에 베어 버릴 대공(大功)을 이루고도 광독곡(狂毒谷)을 벗어나지 못하여 심원을 풀지 못하다니...!]

절곡 속의 인물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다가 돌연 그는 모골이 송연한 어조로 낄낄거렸다.

[크크... 그러나... 때가 오리라. 일천의 천검지혼(天劍之魂)과 천()아 련()아의 한을 풀날이...]

절곡 속의 괴인은 한에 맺힌 듯이 말을 이었다.

[크크... 결국... 혈영군이든 역천사황이든 석천검(石天劍)에 이끌려 온 것이니...!]

그리고,

! --- !

절곡 속에서는 돌을 두드리는 맑은 소리가 올려 퍼지기 시작했다.

시커먼 독무가 가득찬 절곡.

그곳에서 울려나오는 돌을 두드리는 소리는 괴괴롭기 이를데 없었다.

그렇게 일각이 지났다.

스스스스---!

문득 한 줄기 인영(人影)이 구름같이 떠 절곡 앞으로 날아내렸다.

[...!]

절곡 앞에 내려선 청년은 검미를 모았다.

절곡 입구에 벌어진 끔찍한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황색경장을 하고 있었다.

매우 영준하지만 그보다는 만인이 절로 경복할 만한 기품이 돋보이는 청년,

그는 한 자루 시커먼 극()을 옆에 비껴 들고 있었다.

[비명을 듣고 달려 왔거늘...!]

청년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는 능천한이었다.

이곳은 복우산이고 능천한은 금릉에서 밤낮을 도와 달려온 것이다.

능천한은 홀낏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끼로 뒤덮인 석비가 하나 있었다.

석비에는 풍상에 삭아 흐릿해진 세 자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광독곡(狂毒谷)>

 

[광독곡?]

능천한의 검미가 꿈틀하였다.

[인간이 살만한 곳이 못되는 절지이거든...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이 있다니...!]

--- --- !

절곡 속에서는 여전히 돌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인물인가?)

능천한은 자기도 모르게 강렬한 호기심이 치솟았다.

(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절지에 파묻힌 채 살인과 기행(奇行)을 하는가?)

한번 일어난 호기심은 걷잡을 수 없었다.

[들어가 보자!]

이내 능천한은 마음을 결정했다.

--- 스스스슥!

그 즉시 능천한의 신형이 물위를 흐르는 구름같이 절곡으로 다가갔다.

츠츠츠츠--- 츠츳!

--- 르르르르!

그의 몸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듯이 강렬한 약향과 서기가 일었다.

천약심향대법(天藥心香大法)으로 몸에 배인 피독약종지기(避毒藥宗之氣)였다.

만독(萬毒)과 극성인...

츠츠츠츠--- 츠츠!

스스스스스스---!

약종지기와 독무는 수증기로 맺혀 날아가 버렸다.

[...!]

능천한은 약종지기를 몰아 광독곡 안으로 들어섰다.

광독곡의 운무 속에는 수많은 종류의 독물(毒物)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츠츠츠츠--- !

그것들은 능천한의 약종지기에 접하자 분분히 달아났다.

이윽고,

스스스스슥!

능천한은 독무를 벗어나 광독곡으로 접어 들었다.

[...!]

독무를 벗어난 능천한은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어섰다.

그곳은 넓이 삼사마장의 그다지 넓지 않은 분지였다.

한데 시커먼 독운이 흐르는 그 분지에서 기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절곡 중앙에는 시커먼 독지(毒池)가 하나 있었다.

지금 그 독지에는 한 명의 괴인이 목만 내놓고 있었다.

본래 용모는 어땠는지 모르나 독지로 얼굴이 썩어 해골같은 끔직한 인상의 인물이었다.

[...!]

그 인물을 바라보던 능천한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 아아앙!

--- 쩌쩌쩌--- !

괴인은 입을 딱 벌렸다.

그럴 때마다 괴인의 입에서는 둥근 강환(罡環)이 솟구쳤다.

그 강환들은 십 장을 날아가 청옥(靑玉)을 쪼아 거대한 석검(石劍)을 만들고 있었다.

석검-!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청옥석 덩어리를 부수고 쏘아 만들어지고 있었다.

길이는 십 장,

손잡이만도 일 장이 넘는 거대한 것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아 있는 석검.

능천한은 그 석검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기로 청옥석을 갈아 검을 만듬도 놀랍거니와...

그 석검에는 만든 이의 웅혼한 기상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크크...! 어떠냐? 석천검(石天劍)의 위용이...!]

문득 괴인이 섬뜩한 어조로 말하며 능천한을 돌아보았다.

[...!]

능천한은 괴인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나직이 신음을 터뜨렸다.

--- 자작!

[크크크크크...!]

능천한은 노려보는 독안(毒眼)...!

독기로 흐물흐물해져 가는 얼굴에서 생기를 발하는 것은 오직 한쌍의 눈 밖에 없었다.

남청색(藍靑色)으로 번득이는 섬뜩한 독안!

능천한은 그 독안에서 무서운 전설을 생각해내고 놀라는 것이다.

[독황사후기(毒荒邪吼氣)...!]

능천한은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크크... 애송이의 안목이 제법이구나!]

괴인이 올빼미 우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독황사후기!

 

독문(毒門)에 전설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대법(大法)이다.

이는 절정의 독공을 기초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절기로써,

만독을 모아 그 독정지기(毒精之氣)로 인간의 잠재력을 극한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법은 전설로만 전해 내려올 뿐,

한 번도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독공의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독황사후기를 연성했다.)

능천한은 괴인의 끔찍한 모습에서 전후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만독지(萬毒池)를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고... 독기가 심맥과 뇌수로 파고들어 성격이 극단적으로 냉혹해졌다.)

능천한은 심각한 눈길로 괴인을 바라보았다.

[크크크... 오늘에야 대어가 걸렸군! 죽어랏!]

괴인은 다짜고짜 공세를 발동했다.

--- --- !

쩍 벌린 괴인의 입에서 한 무더기 강환이 벼락치듯이 튀어나와 능천한을 무찔러 왔다.

[취환주기강(醉環酒氣罡)...]!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스스슥!

능천한의 신형이 일시에 수십 가닥으로 갈라지고 괴인의 강환은 환영사이로 사라졌다.

[크크... 제법이군!]

괴인은 일격이 실패하자 돌연 우수(右手)를 번쩍 들었다.

그러자,

--- 자자자작!

흐물흐물하게 썩어가는 그의 우수에서 뇌전같은 검기가 쏟아졌다.

어느 틈엔가,

그의 우수에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스스스스--- !

능천한은 환영을 백팔 개로 만들며 경악성을 터뜨렸다.

괴인이 펼치는 검식을 알아본 것이다.

[천검제뢰(天劍制雷)! 당신이 어떻게 천검절기(天劍絶技)...!]

화르르르르...!

백 장을 치솟는 능천한이 괴인을 내려다보며 외쳤다.

[크크... 구유백팔유령흔(九幽百八幽靈痕)! 유령궁의 제자냐?]

--- !

괴인도 외치며 단검을 쳐들었다.

다음 순간,

--- !

--- 아악!

찬란한 빛줄기가 치솟는 것이 능천한의 눈에 환상같이 들어왔다.

--- 스스슥!

능천한은 아연하여 몸을 뒤틀었다.

그러나,

--- 파앗!

[--- 으윽!]

가슴이 화끈하며 능천한의 가슴이 피로 물들었다.

--- 아아--- 아앙!

능천한을 무찌르고 허공으로 치솟은 단검이 일순지간에 괴인의 손으로 들어갔다.

[크으... 이런 어검술은 단하나 뿐인데...!]

능천한은 피를 뿌리며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너무도 빨리 피하지도 못했고,

그 예리함이 경인할 정도인지라 금강지체인 능천한의 가슴이 쩍 갈라져 버렸다.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

어검술 중에서도 가장 빠르고 치명적인 어기어검술이었다.

[죽지 않다니...!]

괴인도 의외인 듯이 독안을 빛냈다.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는 절대신초(絶代神招)이건만 능천한을 죽이지 못한 때문이다.

[...!]

--- 스슥!

능천한은 석검의 끝으로 내려섰다.

가슴을 누르며 그는 놀란 듯이 말했다.

[천검만리어기뢰(天劍萬里御氣雷)!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천하의 단 일인...!]

능천한은 이글거리는 눈초리로 괴인을 바라보았다.

[...!]

능천한의 시선을 받은 괴인의 시선이 부르르 떨렸다.

그제야 능천한의 비범함을 깨달은 것이다.

(잘못 보았다. 혈종의 주구인 줄 알았거늘... 태산이었다.)

그때 능천한이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천후검성(天候劍聖) 나뢰(羅雷) 성주! 이것이 어찌된 연유이외까?]

 

---천후검성(天候劍聖) 나뢰(羅雷)!

 

일검성(一劍聖)이라 불리던 천검성주(天劍聖主)가 아닌가?

천하제일검수(天下第一劍手)이기도 한 천후검성...!

그는 분명 천검성에서 죽지 않았는가?

한데 이 끔찍한 형상의 괴인이 천후검성이라니...

[으음... 본성주를 알아보다니...]

괴인의 눈빛이 흔들리며 중얼거렸다.

그의 대답은 곧 자신의 천후검성 나뢰라는 긍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능천한을 바라보는 나뢰의 눈빛이 형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본 성주의 짐작이 틀림없다면... 그대는... 패천잠룡 능천한...!]

나뢰가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일변에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잔독한 목소리가 아니라 일파종사로서의 위엄이 담긴 목소리였다.

--- 스스슥!

능천한은 표표히 나뢰의 앞으로 날아내렸다.

독지가에 이른 능천한은 나뢰를 향하여 포권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소생이 능천한입니다.]

그러자,

[으하하하...!]

갑자기 나뢰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짙은 회한과 격동이 그 웃음소리에 담겨 있었다.

(대단한 내공... 독황사후기의 위력으로 육백 년 수위의 내공을 지니게 되었구나!)

나뢰의 웃음소리를 듣고 능천한은 감탄의 기색을 지었다.

[하하하... 하늘은... 나 천후검성 나뢰의 원을 저버리시지는 않았구나. 철천지한을 풀어줄 영웅을 보내주시다니...!]

나뢰는 크게 웃었다.

그의 독안에는 한 줄기 눈물이 흘러 흐물흐물 녹아드는 얼굴을 적셨다.

[...!]

능천한은 그런 모습을 보고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졌다.

[자네는 본성주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하겠지?]

나뢰가 격동을 가라앉히면서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능천한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말해줌세.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할 일도 있고...!]

나뢰는 감회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천후검성 나뢰.

 

혈영군과 역천사황의 합공(合攻)을 받고 쓰러진 그는...

가슴이 무너진 중상에도 즉사하지 않았다.

천검성이 초토로 변한 후에야 나뢰는 정신을 차린다.

천검성.

천하제일검파라던 천검성의 괴멸은 실로 처참했다.

 

---복수하고 말리라.

 

나뢰는 이를 갈았다.

천검성 일천검수가 도륙당하고 자신의 가족들이 변을 당했거늘 어찌 노하지 않으랴?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살아날 수 없는 중태였다.

그대로라면 며칠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편법으로 생명을 연장시킬 것을 결심하였고,

젊었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던 이곳 광독곡을 찾아왔던 것이다.

광독곡에 이른 그는 광독곡에 숨겨진 전대 독문종사(毒門宗師)의 비급을 찾아내었고,

그안에 적힌 독황사후기를 연마하여 잔명을 이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극독이 골수에 배게 되었으며,

독지를 벗어나는 순간 한줌의 독수로 변하고 마는 운명이 되었다.

또 원통하게도,

그는 꿈에도 그리던 천검성 최후최고 절기를 이 걸지에 이르러 비로소 연성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천하무적인 절대신검초인...

 

---천검만리어기뢰(天劍萬里御氣雷).

 

바로 이것인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어검술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의 어검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먼저 빠르기가 어검술보다 열배 빠르고,

그 예리함은 백배 예리하고 강하여 작은 산봉을 두 동강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위력은 천년공력을 지닌 능천한이 베어질 정도로 가공스런 것이다.

[그러나... 노부는 자질의 제한으로 천검만리어기뢰의 육성정도밖에 터득하지 못했네!]

나뢰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대는... 노부가 저 석검을 왜 만들고 있는지 아시는가?]

나뢰는 석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능천한은 서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떤 무궁무진한 천묘함이 저 석검의 검신에 있다.)

능천한,

이 천고의 기재는 나뢰가 석천검에 무엇인가 인도한 바를 주입시키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그것은 정확한 관찰이었다.

[혹시... 천검만리어기뢰의 요의를 석검에 남기시려 함이 아니십니까?]

능천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허허! 맞네!]

나뢰는 껄껄 웃었다.

능천한을 감탄의 기색으로 바라보면서 나뢰는 말을 이었다.

[노부가 죽을 날이 멀지 않았음도 잊고 있었네...!]

[으음...!]

능천한은 거대한 석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노부가 죽게 되면 이 검을 발견한 제삼자가 천검만리어기뢰를 연마하여 적도들을 쳐부수어 주기로 기대한 것이지.]

나뢰가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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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六 章

 

                     실종

 

 

 

[제왕부(帝王府)의 전통은 황실과 함께 하네!]

태상존황이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청하궁 깊은 곳의 조용한 전각이다.

방안에는 능천한과 태상존황, 선덕제, 주하령 등이 둘러앉아 있었다.

(볼수록 신비로운 분이다. 분명 두 번째 만남인데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다니...)

능천한은 태상존황을 올려다보았다.

흡사 친인(親人)같이 느껴지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태상존황은 마치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사람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제왕부는 대대로 일인에 의해 이어지고 그 추구하는바 목표는 황실의 안정이네!]

[...!]

태상존황은 미소를 머금었다.

[노부가 현질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아시겠는가?]

능천한은 고개를 저었다.

[소질은 알지 못합니다.]

[그럴 테지!]

태상존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황실 내부의 겁운은 완전히 몰아내었네. 그러나, 무림이 온전하지 못하면 황실도 어지러워지는 법이네!]

[...!]

[노부는 북경으로 돌아가 황실만을 지킬 것이고...]

태상존황은 형형한 눈길로 능천한을 주시하였다.

[천하무림은 현질 손에 맡길 생각이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을 태평케 하는 것은 소질이 당연히 해야할 도리입니다!]

태상존황은 껄껄 웃었다.

[하하! 현질의 생각이 그러함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소매 속에서 두툼한 비급을 한권 꺼내어 능천한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익히면 천하를 평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니... 받게!]

[...!]

능천한은 흠칫하며 비급의 표지를 바라보았다.

 

<천형제왕검(天形帝王劍) 연형결(鍊形訣)>

 

그것은 바로 제왕지검(帝王之劍)이라는 천형제왕검의 연형방법이 기술된 비급이었다.

[어찌 이 귀중한 것을 소질에게 주십니까?]

능천한은 비급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태상존황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적을 얕보면 아니 되네. 자네가 천형제왕검까지 지닌다 해도 상대키 어려운 적이 있으니...]

그의 말에 주하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혈종은 천형제왕검도 못 받아낸 자가 아니옵니까?]

주하령의 말을 듣고 태상존황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만악의 근원은 혈종같은 애송이가 아니야!]

선덕제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혈종 뒤에 더 대단한 존재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

[...!]

능천한과 주하령은 놀라 태상존황을 바라보았다.

[그렇네. 그 진정한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거영(巨影)이 혈종의 뒤에 있지.]

[...!]

[...]

태상존황의 말을 듣고 능천한의 안색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이미 전부터 예감한 일... 다만 백부님께서도 그것을 감지하고 계셨다니... 그것이 놀랄 뿐이다.)

태상존황은 말을 마치고 능천한에게 천형제왕검의 비급을 밀었다.

[천하를 위한 일이다. 다른 생각말고 천형제왕검을 거두어라!]

[...!]

능천한은 더 이상 거절할 수도 없었다.

[백부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능천한은 태상존황에게 절을 올린 뒤 천형제왕검의 비급을 집어들었다.

[허허! 되었다. 천하의 안위가 네 양손에 달렸음을 잊지 마라!]

태상존황은 흐뭇하게 웃었다.

선덕제와 홍화공주도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띄웠다.

 

***

 

음침한 석실(石室).

츠츠츠---!

시뻘건 혈광이 석실 가득히 흐르고 있었다.

[크으... 천형제왕검이 황실에 있었다니...!]

혈광 속에서 아주 괴로운 신음성이 흘렀다.

자세히 보면 칙칙한 혈광 속에 한 명의 인물이 앉아 있음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리고 혈광의 외곽에 한 명의 백의노인이 꿇어앉아 있었다.

[사부님도 천형제왕검에 뜻이 꺾였거늘 또다시 천형제왕검에 당하다니...]

혈광 속의 인물,

혈종은 원독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문득,

--- 자작!

강렬한 혈안의 눈빛이 꿇어앉아 있는 백의노인에게로 떨어졌다.

[...!]

그 시선에 접한 백의노인은 부를 몸을 떨었다.

[쌍극천효! 꼴 좋구나. 너는 혈종문(血宗門)의 전력말고 혈종오패만으로도 천하제패를 장담하지 않았느냐?]

[혈종이시여!]

쌍극천효는 이마를 바닥에 붙인 채 몸을 떨었다.

[죽여 없애겠다던 패천잠룡은 버젓이 살아나 천하고수가 되었고 구천묵영독존, 천향염후... 그리고 태상존황등의 강적만 만들지 않았느냐?]

[혈종! 한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쌍극천효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런 쌍극천효를 혈종은 칙칙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복안이 있느냐?]

[, 패천잠룡, 묵영독존, 천향염후 뿐만 아니라 태양신존(太陽神尊)까지도 일거에 쓸어버릴 계획이 있습니다.]

쌍극천효가 자신있게 말했다.

[... 그래? 어디 들어보자!]

혈종은 구미가 당기는 듯이 말했다.

[먼저... 패천잠룡을 제거할 것입니다. 이는 월영극살만 있으면 됩니다.]

[월영극살?]

혈종이 의아한 듯이 되물었다.

쌍극천효가 득의하여 말을 이었다.

[그 계집은... 패천잠룡의 계집입니다. 패천잠룡을 끌어 들이기에 충분한 미끼가 되지요.]

[월영극살... 그 계집이 능가와 배가 맞았단 말인가?]

츠츠츠츠---!

혈종의 몸에서 벼락치듯이 살기가 피어올랐다.

쌍극천효는 부르르 몸을 떨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계집은 패천잠룡을 암격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패천신문에 잠입시켜 둔 동안 능가에게 빠져버리고 만 것이지요.]

[... 발칙한 계집!]

혈종의 일신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치솟았다.

그리고,

[좋다. 그 계집을 이용하여 능가를 없애라! 본문의 혈천구마성(血天九魔聖)이 네 일을 도울 것이다.]

혈종이 음악하게 말했다.

이에, 쌍극천효는 희색이 만면해졌다.

[감사합니다. 혈종! 반드시 능가 애송이를 누이고 말 것입니다.]

[좋다. 그리고 묵영독존 등은 어찌할 것이냐?]

혈종의 물음에 쌍극천효는 얼굴을 들었다.

[천마총(天魔塚)을 이용할 것입니다.]

[천마총!]

혈종의 몸에 두른 혈광이 부르르 떨렸다.

 

-천마총(天魔塚)!

 

천마(天魔)!

사상최강의 마종(魔宗)인 천마의 전설이 묻힌 곳이 아닌가?

신기보(神奇譜) 서열이 위의 신기(神奇)이기도 한,

한데 어찌 그 천마총이 쌍극천효의 입에서 거론되는가?

[쌍극천효! 미쳤느냐? 천마총은 본문만이 아는 곳이거늘... 그 천마총을 이용하다니... 천마총을 천하에 공개라도 하겟다는 소리냐?]

혈종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랬는가?

천마총의 비밀을 혈종문이 쥐고 있었는가?

쌍극천효는 자신있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천마총의 비밀을 한달 이내 풀립니다. 그렇게 되면 천마총의 기관함정들은 쓸모가 없게 되고...!]

[닥쳐랏! 그러나 만약에 일어날 엄청난 결과를 생각해 보았느냐?]

혈종이 벼락같이 일갈을 터뜨렸다.

[... 혈종...!]

[만일... 천마유물(天魔遺物)이 엉뚱한 자들의 손에 들어갈 경우... 혈종문의 이백 년 심원이 수포로 돌아감을 잊었느냐?]

혈종의 일갈에 쌍극천효는 안타까운 기색이 되었다.

[혈종... 그러나...!]

[그만 두거라! 천마총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

혈종의 말에 쌍극천효는 입술을 악물었다.

(역시... 애송이는 애송이다. 큰 힘을 늘이지 않고 천하를 얻을 계획을 묵살하다니...)

그가 중얼거릴 때였다.

[천마총을 이용한다... 좋은 계획이다.]

돌연 청수한 노인의 음성이 석실을 뒤흔들었다.

[...!]

[...!]

그 목소리를 들은 혈종과 쌍극천효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 사부!]

[... 태상종주(太上宗主)!]

혈종과 쌍극천효는 그대로 이마를 땅에 대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그그긍!

스스스스!

이어 석벽이 쩍 갈라지며 한 명의 노인이 나타났다.

고희가 막 지난 듯한 백의노인이었다.

안색이 어린아이같이 불그레 하고 머리가 칠흑같이 검었다.

일견하여 세외(世外)의 선인(仙人)을 연상케 하는 풍도의 노인이었다.

다만 두 눈가에 흐릿하게 붉은 기운이 도는 것이 괴이쩍게 보일 뿐!

[사부... 못난 제자를 용사하십시오.]

혈종이 머리를 조아리며 백의노인에게 말했다.

백의노인!

그가 혈종의 사부인가?

너무도 뜻밖의 인물이 아닌가?

[일어들 나라!]

백의노인은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혈종과 쌍극천효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시립했다.

백의노인을 바라보는 쌍극천효의 눈빛이 희열로 가득찼다.

(역시... 태상종주께서는 절대종사다우시다.)

백의노인은 그런 쌍극천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너의 계획은 어떠한지 말을 해보아라.]

[! 태상종주!]

쌍극천효는 고개를 조아렸다.

(으음...)

그 모습을 보며 혈종은 입술을 실룩하였다.

쌍극천효가 백의노인에게 신임을 받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츠츠츠츠--- 츠츠!

스스스스!

그 때문인지 혈종의 몸에서 흐르는 혈광은 더욱 음산하게 혈색을 뿌렸다.

 

***

 

[홍예(紅霓)가 없어지다니...]

능천한의 검미가 깊이 모아졌다.

이곳은 만화원이다.

태사에 몸을 실은 능천한의 검미가 깊이 모아졌다.

그 앞에는 광양존후 금벽라, 녹림천봉, 진예빈이 앉아 있었다.

[상공께서 나가신 직후에 홍예동생도 급한 볼일이 있다고는 총총히 나갔사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식이 없사옵니다.]

금벽라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능천한은 태사의에 깊이 몸을 묻었다.

(무엇인가... 비밀이 있는 여인이었는데... 이번의 실종이 그 때문일까!)

능천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휴우...]

그 모습을 보며 금벽라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홍예선희도 알고 보면 금벽라에게서 능천한의 사랑을 조금 빼앗아 간 씨앗의 한 명이다.

그러나 그녀 때문에 걱정하는 능천한의 모습을 보는 금벽라의 가슴은 아픈 것이다.

(어디가 있기에... 아우님의 근심을 저리 심하게 만드는 것인가...)

금벽라는 한숨을 쉬었다.

진예빈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져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문득,

[맹주언니...]

방문 밖에어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냐?]

금벽라는 문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 들어가도 되어요!]

[그래 들어오너라!]

금벽라가 대답했다.

--- 이익!

문이 열리고 타는 듯이 붉은 홍의를 걸친 천산홍연 위지련이 들어왔다.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져 있음을 보고 금벽라는 가슴이 덜컥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능천한에게 절을 하고 일어선 위지련에게 금벽라가 물었다.

[이것이... 태상맹주님께 왔어요.]

위지련은 조심스럽게 말하며 한 장의 배첩을 능천한에게 내밀었다.

[이건...]

금벽라는 흠칫하며 배첩을 받아들었다.

 

<능천한친전(陵天漢親前)>

 

배첩의 겉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아우님...]

금벽라가 배첩을 능천한에게 넘겨주었다.

[...]

능천한은 배첩을 받아들어 펼쳐 보았다.

 

<패천지존, 그대를 본궁(本宮)에 초대한다. 물론 혼자 와야 하고... 아울러 그대의 첩() 홍예선희(紅霓仙姬)를 본궁에서 모셔두고 있음을 알려준다. 본궁은 복우산(伏牛山) 혈운애(血雲崖)에 있다.

 

---혈영군(血影君).>

 

 

[으음...]

배첩의 글을 읽어본 능천한의 검미가 부르르 떨렸다.

[아우님... 무슨 일이옵니까?]

광양존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보십시오!]

능천한은 배첩을 금벽라에게 넘겼다.

[...!]

배첩의 내용을 본 금벽라와 진예빈의 안색도 일변하였다.

[홍예언니가 혈영궁에 잡혀가 있다니... 이것은 필시 지존을 시해하려는 혈종(血宗)의 음모예요.]

진예빈이 흥분하여 말했다.

[이 배첩을 언제 받았느냐?]

금벽라가 어두운 기색으로 위지련에게 물었다.

[방금 받았어요. 혈영군이 직접 전하고 갔어요!]

위지련이 어두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능천한은 깍지를 낀 손을 입가로 가져가며 깊이 침음했다.

[눈에 보이는 함정이옵니다.]

금벽라가 괴로운 어조로 말했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누님, 그러나... 아니갈 수도 없지요. 홍예가 그자들에게 욕을 당하도록 놓아둘 수는 없으니...]

그의 말에 진예빈과 금벽라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지존! 아니되옵니다. 지존 한 분만을 바라고 살아가는 백만의 자부문도들을 생각하셔야 하옵니다!]

진예빈이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그것을 모르는바 아니야. 그러나... 홍예를 그냥 놓아둘 수는 더욱 없지!]

능천한은 자리에서 일었다.

(당연히... 그리하셔야 하옵니다만...)

금벽라는 슬픈 눈을 하고 함께 일어섰다.

[지금... 가겠습니다. 빨리 서두를 수록 그들의 대비도 그만큼 허술해질 것이니...]

능천한은 금벽라의 등을 다독거렸다.

[걱정마십시오. 천극과 패천신륜이 내게 있는 한... 어떤 함정도 소제의 발길을 막지 못합니다!]

[아우님...]

금벽라는 흐느끼며 능천한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였다.

[...]

방문 박에서 여인의 흐느낌이 들렷다.

[누구냐?]

진예빈이 냉갈하며 벌컥 문을 열었다.

방문 밖에는 검은 경장을 한 늘씬한 미인이 꿇어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흑단(黑丹)언니...]

진예빈이 흠칫하며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그 흑의미인은 바로 흑단이었다.

[흑단...]

능천한은 탄식하며 흑단을 바라보았다.

[... 상공! 용서하세요!]

흑단은 능천한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흐느꼈다.

[무엇을 용서하라는 것인가?]

능천한이 무거운 어조로 물었다.

[교주언니도... 이번 한 번의 살수행을 끝내고... 상공께 털어놓으시려 하셨사옵니다.]

흑단의 말에 능천한은 짚이는 것이 있었다.

(교주(橋主)! 홍예가 바로...)

능천한이 염두를 굴리리는데 흑단이 말을 이었다.

[홍예언니가 바로 월영극살이며... 만화원 일천기녀가 바로 밀살교의 일천살수들이옵니다.]

[...]

능천한은 예상한 일인지라 다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러나,

[그럴 수가...]

[홍예가... 월영극살...]

금벽라와 진예빈 등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랬군... 그래서 홍예의 왼쪽 젖가슴에... 잘려진 자성이 있었고...)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홍예가 바로 벽향(碧香)이겠지?]

흑단은 죄스러운 듯이 고개를 깊이 떨구었다.

[그렇사옵니다. 교주언니는 쌍극천효의 지시로 시녀로 화하여 패천신문에 잠입했던 것이옵니다.]

[으음...]

흑단의 말을 들으며 능천한은 깊이 탄식을 금치 못했다.

뚜벅 뚜벅!

능천한은 육중한 걸음을 옮겨 창가로 다가갔다.

[...!]

활짝 열린 창가에 선 능천한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북천(北天)!

복우산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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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五 章

 

             아! 天形帝王劍!

 

 

 

평화롭기만 하던 청하궁이 혈풍(血風)에 휘말려 들었다.

[--- 으악!]

[--- 에엑!]

전의를 잃은 자는 이미 고수(高手)가 되지 못한다.

혈종도들은 변변한 싸움도 못해보고 허물어져 갔다.

[흐음...]

선덕제는 그 장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귀한 신분으로 태어나고 자란 그인지라 그같이 참혹한 장면에 익숙치 않다.

물론 선덕제는 조부 영락제를 보좌하여 여러 번 북원 정벌을 다녀오긴 했다.

하지만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휘를 했을 뿐 직접 전장에 나갈 기회는 없었다.

그 때문에 피가 튀고 살이 잘리는 장면은 사실상 처음 본다고 해야 한다.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자들이 살덩이가 되어 나뒹구는 모습은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억조창생을 다스리는데 좋은 교육이 될 수도 있다. 제왕지로(帝王之路)는 결코 화()로만 다스려지는 길이 아니니...)

고통스러워하는 선덕제를 바라보는 태상존황의 표정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미 장내에서 벌어진 일장 혈전은 종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 아악!]

[--- 아악!]

혈종도들이 쓰러지며 흘린 선혈이 청죽림(靑竹林)을 흥건히 물들었다.

그때였다.

[크크크... 황실에 이런 거물이 웅크리고 있었을 줄이야.]

돌연 한소리 칙칙한 음성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츠츠츠츠츳!

청하궁 상공이 시뻘건 혈광(血光)으로 뒤덮였다.

[... 혈종!]

[혈종이 나타나셨다.]

혈종도들이 회색이 되어 외쳤다.

스스스스!

[흐흐흐흐흐!]

섬뜩한 혈광을 모아 한 명의 혈인(血人)이 나타났다.

이어 한 명의 흑의노인이 귀신같은 몰골의 혈포괴인들을 이끌고 청죽림에서 나왔다.

[절대마황(絶代魔皇)!]

흑의노인을 발견한 주하령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흑의노인은 역천사황과 쌍황(雙皇)으로 불리는 절대마황이었다.

[크크... 태상존황! 그대의 전설을 무시한 것이 실책이었다.]

혈종이 음산한 어조로 말하며 태상존황을 노려보았다.

혈광 속에서 그자의 혈안이 섬뜩하게 빛을 발했다.

그러나 태상존황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담담했다.

[혈종! 그대에게는 두 가지 일이 있다!]

태상존황이 그리 높지 않은 음성으로 말했다.

[...]

하지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혈종의 몸을 뒤덮고 있는 혈광이 부르르 떨렸다.

태상존황의 말에는 범접키 힘든 장중함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대역의 괴수로 본황과 백만 금군의 손아래 능지처참 당하는 길이고...]

[으드득! 계속 해봐라!]

혈종이 격노하여 이를 갈며 내뱉았다.

[두번째는 황상께 큰 절로 사죄하고 다시는 황실의 일에 관여 않겠다 맹세하는 것이다.]

[으음...]

혈광이 바람을 만난 듯이 파문을 일으켰다.

혈종이 격노하여 치를 떨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은 자유이니라!]

태상존황은 말을 하며 뒷짐을 지었다.

그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태산같이 장중하고 당당한 것이었다.

[...]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문득,

[혈종! 그자를 선덕제 곁에서 끌어내어 주십시오. 그 뒤는 속하가 맡겠습니다.]

한 줄기 전음이 혈종의 귀에 스며들었다.

(쌍극천효(雙極天梟)...)

혈종은 지나가는 눈길로 정사 뒤쪽의 죽림을 바라보았다.

흐릿하게, 그 청죽림 속에 한 명의 백의노인이 은신해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꿍꿍이가 있겠지?)

혈종은 마음을 굳혔다.

그 탓에 그는 알아보지 못했다.

태상존황의 입가로 파문같이 번져가는 작은 미소를...

[태상존황! 그 대답은 그대와 일전을 겨룬 뒤에 해주겠다. 나와랏!]

--- 스스슥!

혈종이 이십 장 밖으로 물러서며 외쳤다.

[핫하! 좋다. 혈황탈의 잔독함을 일찌기 들어 와거니와, 오늘 과연 혈황탈의 명성이 헛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해보겠다.]

스스스--- !

태상존황은 껄껄 웃으며 신형을 둥실 떠올렸다.

[...]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태상존황의 시선이 죽엽의 무성한 대나무 위를 훑고 지나갔다.

(과연...)

그 대나무 위에서 감탄의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인물이 있었다.

대나무 잎을 밟고 표표히 떠 있는 인물.

능천한이었다.

그는 천극을 비껴들고 장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선덕제가 있는 정사의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정사의 뒤쪽에는 두 명의 인물들이 은신하고 있었다.

백의의 심기가 깊어 보이는 노인과,

전신을 푸른 천으로 휘감아 언뜻 대나무와 구별이 아니 되는 왜소한 인물이 그들이었다.

(쌍극천효... 월영극살...)

능천한의 눈이 착잡하게 물들었다.

쌍극천효는 그와 세불양립의 적이다.

동시에 제갈영라의 아버지, 즉 능천한에게는 장인이 되는 것이다.

쌍극천효와 월영극살은 전음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꿈에도 제삼자가 자신들의 전음을 듣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월영극살이 무감정하게 말했다.

[천효! 나는 더 이상 그대들과 동류로 남길 원치 않아요!]

월영극살의 말에 쌍극천효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쨌든 좋다. 오늘 이후로 그대의 행동을 간섭치 않겠다. 네가 그자의 첩이 되든 하녀가 되든...]

[...]

월영극살은 얼음장같은 시선으로 쌍극천효를 노려보았다.

[다시 한 번 그분에 대해 무어라 하면 늙은이 목부터 잘라주겠다.]

[흐흐... 흥분하지 마라. 오늘 네 손으로 선덕제의 심장을 잘라주기만 하면 네가 혈종께 입은 은혜는 없는 것으로 하겠다.]

[...]

월영국살은 묵묵히 장중에 시선을 돌렸다.

츠츠츠츠--- !

--- 이이이이잉!

장내에서는 두 개의 태산이 대치하고 있었다.

심혼을 얼려 버릴 듯한 혈광이 백 장을 뒤덮고 있다.

그중에 태상존황이 표표히 몸을 띄우고 있다.

한가롭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의 태상존황!

그러나 그의 일신에서는 보이지 않는 거창한 기운이 줄기줄기 일어나고 있었다.

한순간,

[크크크... 누워랏!]

혈광 속에서 혈종의 일갈이 터졌다.

--- --- --- !

츠츠츠츠츠--- 츠츳!

지옥의 마화가 치솟듯이,

시뻘건 파령이 벼락같이 일어나 태상존황을 덮어 씌웠다.

[핫하! 혈황탈인가?]

태상존황은 껄껄 웃었다.

--- 우우웅!

그의 몸에서 거창한 무혈경력이 일어났고,

--- 스스스슥!

혈황탈의 마기가 모래에 물이 스며들 듯이 사그라들었다.

[대단하구나! 받아랏!]

--- 쿠쿠쿠쿵!

일격이 실패한 혈종이 대갈을 치며 재차 혈황탈을 쏟아내었다.

--- 이이이잉!

--- 카카카캇!

이가 갈리는 소성과 함께 혈황탈이 마기로 만 장을 덮으며 폭사되었다.

그때였다.

[약속을 지켜랏!]

스스스스슥---!

월영극살이 몸을 띄웠다.

월영극살의 신형은 한 줄기 청무(靑霧)로 변해 선덕제에게로 날아갔다.

[흐흐...!]

날아가는 월영극살을 바라보며 쌍극천효가 득의의 미소를 흘렸다.

--- --- !

섬뜻한 비수(匕首)가 한망을 일으키며 선덕제의 등으로 파고 들었다.

중인들은 모두 태상전황과 혈종의 대결에 시선을 모으고 있어서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절체절명(絶體絶命)!

월영극살의 비수가 선덕제의 등을 가르는 순간,

[후훗! 벽뢰섬!]

한 줄기 묵직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 --- 파팟!

벼락!

한 무더기 강륜(罡輪)이 월영극살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

때 아닌 벼락에 월영극살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 파파파--- !

월영극살의 가슴을 스친 강륜이 정사의 바닥을 후려치며 요란한 굉음을 일으켰다.

[...!]

[! 저기...!]

선덕제가 움찔하며 뒤돌아서고,

자밀위대와 홍하공주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 이잇!]

--- 아아앙!

바닥으로 나뒹군 월영극살이 몸을 휘돌리며 월아밀살비를 선덕제의 가슴으로 폭사시켰다.

[천방지축도 모르는 것...!]

선덕제가 움찔하는데 능천한의 폭갈이 허공에서 터져 나왔다.

--- --- !

휘르르르르---!

허공이 가득 덮이며 능천한의 그림자가 청공을 뒤덮었다.

--- 쿠쿠쿠쿵!

[!]

월영극살의 눈빛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능천한!

그 태산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이다.

--- --- 콰쾅!

--- 가가각!

[!]

월아밀살비가 가루로 부서지고,

월영극살의 왜소한 몸이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 !

월영극살이 나뒹구는 순간 능천한의 몸이 선덕제 옆으로 날아내렸다.

그와 함께,

[멸절마황수(滅絶魔皇手)!]

[혈영파천뢰(血影破天雷)!]

--- 쿠쿠--- !

파츠츠츠츠츠!

흑영과 혈영이 동시에 선덕제를 덮쳐들어 왔다.

그들은 절대마황과 은신하고 있던 혈영군이었다.

그리고,

[만천화우(滿天花雨)!]

--- 스스스슷!

정사 뒤쪽에서 우박이 쏟아지듯이 암기가 덮쳐왔다.

쌍극천효가 급습을 해온 것으로,

그 암기수법을 당문(唐門)에서 이미 오래 전에 실전된 초절한 수법이었다.

[...!]

멀리 떨어져 있어 손을 쓸 수 없는 주하령이 발을 굴렀다.

[물러가랏!]

직후 능천한이 폭갈을 치며 천극을 쳐들었다.

--- 우우웅!

--- 파파파팟!

일시에 정사가 극영(戟影)으로 뒤덮였다.

---천극망(天戟網)!

천극이절해 중의 제일식!

--- 콰콰콰쾅!

우르르르르--- !

만근 화약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터졌다.

우르르르르!

정사의 지붕이 박살이 나서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 !]

[--- !]

그중에서 절대마황과 혈영군이 곤두박질을 치며 나뒹굴었다.

삼인이 합공을 햇으나 능천한 일인을 당하지 못한 것이다.

[...!]

선덕제는 탄성을 터뜨렸다.

그는 감탄의 눈길로 태산같이 우뚝 선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

능천한의 시선은 벼락같은 안광을 싣고 혈종과 태상존황을 바라보았다.

쿠쿠쿠쿠쿠--- !

천지멸렬(天地滅裂)!

화산이 폭발하듯이 거창한 탈영(奪影)이 수십장을 치솟았다.

[... ... 지독하다!]

[... 숨이 막히는 듯하다니...]

중인들이 사색이 되어 뒤로 밀려났다.

[왔는가?]

천지가 피의 광란으로 뒤덮인 속에서 태상존황의 정중한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한순간,

--- 파팡! --- --- !

갑자기 혈해(血海) 속에서 찬란한 빛이 치솟았다.

[... 저럴 수가...!]

[()... 검형(劍形)이닷!]

중인들이 아연하여 경악성을 터뜨렸다.

[저것은...]

바라보고 있던 능천한의 안색도 홱 변했다.

태상존황의 몸에서 무려 백여 장에 이르는 섬광이 뻗쳐 나갔다.

한데 그것은 검()!

다름 아닌 검의 형태를 한 강기의 무더기였던 것이다.

하늘()의 형태를 한 검()!

[()... ()... 제왕검(帝王劍)!]

능천한이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천형제왕검(天形帝王劍)!

 

바로 그것이 나타난 것이다.

천마지존비와 쌍벽을 이룬다는 저 전설의 제왕지검(帝王之劍)!

그것은 무적(無敵)이며 절대(絶代)였다.

파가가가각!

--- 콰콰콰쾅!

천형제왕검이 이르는 곳에는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저주의 혈황마기(血荒魔氣)가 얼음이 깨어지듯이 박살이 나고,

천하궁을 가득 메웠던 마기가 불속에 던져진 종이쪽지같이 재로 쓰러졌다.

--- --- !

()의 통곡같은 굉음!

[--- 으윽!]

그속에서 혈종이 피를 토하며 백 장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 천형제왕검이 나타나다니...]

공포에 물들은 음성이 들리며 혈종의 몸이 까마득히 사라져 갔다.

[으아아아...!]

[... 달아나자! 천형제왕검이 나타났다!]

--- 이이이익!

화르르르르--- !

질겁을 한 혈종도들이 뒤도 안돌아 보고 날아갔다.

[... 상대가 아니다!]

[... 가잣!]

절대마황과 혈영군도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나고,

스스스슥!

쌍극천효가 쓰러진 월영극살을 잡아채어 흐르듯이 청하궁을 날아나갔다.

[...!]

[...!]

혈종도들은 일시에 청죽림에 사라졌다.

자밀위대 등도 태상존황의 신위에 넋이 나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오오오! 태상존황이시여!]

[! 제왕천하(帝王天下)!]

그들은 미친 듯이 함성을 질렀다.

[하하...]

그 중에서 태상존황이 껄껄 웃으며 정사의 선덕제에게로 다가왔다.

[백부님!]

홍하공주 주하령이 환한 미소를 띄우며 태상존황에게로 안겨 들었다.

[하하... 홍하도 수고가 많았다!]

태상존황은 홍하공주의 등을 다독거리며 정사로 다가왔다.

그의 위엄에 찬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였다.

[황백!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선덕제가 태상존황에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가 고개를 숙이는 대상은 천하를 통틀어 태상존황뿐이다.

[하하... 모두 대명(大明)의 천하를 위한 것이니...]

태상존황은 껄껄 웃으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아버님같으신 분...!)

능천한은 미소를 지으며 태상존황에게 포권을 하였다.

[천형제왕검이 실제 검이 아니라 초극심검(超極心劍)인 줄은 몰랐습니다.

능천한이 태상존황에게 말했다.

 

---초극심검(超極心劍).

 

마음()의 검()이다.

마음속에 하늘()의 광대함을 담아 그것을 의지로 검형(劍形)을 이루고,

마음이 일면 검형(劍形)이 일어 천지(天地)를 가른다.

그것이 초극심검이고,

천형제왕검은 바로 그 초극심검인 것이다.

형태가 없이 최대 일만 장 길이의 검을 가슴에 담는 절대의 검법인...

[하하... 현질이 올줄 알고 있었지!]

태상존황은 껄껄 웃었다.

그리고 그는 능천한과 선덕제를 바라보았다.

[황상! 이 아이가 노부가 말하던 패천일문의 능천한이네!]

태상존황의 말에 능천한은 천극을 세우며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무부(武夫) 능천한이옵니다!]

선덕제는 미소를 지으며 능천한의 손을 쥐었다.

[과인이그대의 도움을 받았구려. 황산에 거룡(巨龍)이 있다는 말을 황백에게 듣고 그대를 한번 만나보기를 원했네.]

[황공하여이다!]

능천한은 미소를 지으며 선덕제를 마주 보았다.

(좀더 경륜이 쌓이시면 만승지존으로 부족함이 없으실 분이다!)

능천한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오라버니를 도와주셔서 감사하옵니다.]

홍하공주가 두 사람 사이로 다가가 능천한에게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공주이신 줄은 몰랐소이다.]

능천한도 마주 인사를 하였다.

[하하... 홍하와는 구면이시군!]

선덕제가 기분좋게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태상존황을 돌아보았다.

[하하... 황백 어떻습니까? 콧대 높기로 유명하던 홍하(紅霞)도 이제는 시집을 보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허허... 이를 말인가?]

두 사람의 말에 홍하공주의 얼굴에 홍조가 가득했다.

[백부님! 오라버니! 홍하를 놀리시는 거예요?]

그녀는 태상존황과 선덕제를 향하여 곱게 눈을 흘겼다.

[하하하...]

[허허...]

태상존황과 선덕제는 그런 홍하공주의 모습에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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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四 章

 

                太上尊皇登場

 

 

 

(비록 희대의 요녀가 되긴 했으나... 바탕은 심약한 여인이다.)

능천한은 연민의 눈길로 천향염후를 바라보았다.

지난 밤,

건곤일척의 대격전을 치루었고,

그 바람에 엉뚱한 여인을 유린하게 만든 천향염후다.

그러나 울고 있는 천향염후를 능천한은 미워할 수가 없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문득 천향염후가 몸을 돌려 능천한과 마주섰다.

(역시 우물(尤物)...)

능천한은 내심 혀를 찼다.

두번째 대하는 천향염후다.

그렇건만 그녀에게서는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처절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천향염후는 눈물이 가득히 고인 눈으로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 ---

사르르---

능천한의 시선을 접한 천향염후의 몸이 움츠러 들었다.

그녀의 옥용은 붉어지고,

그녀는 양손으로 젖무덤과 하복부를 가렸다.

(부끄럽다. 이 사내 앞에서는... 깊은 곳을 보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

천향염후는 입술을 악물었다.

음탕해지기로 강요받고 수치를 모르도록 단련된 그녀다.

만인의 앞에 벌거벗고 나가서도 웃을 수 있는 그녀이건만,

능천한에게만은 속살을 보이는 것이 그토록 부끄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화르르르---

능천한을 바라보던 천향염후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녀의 교구는 한 가닥 체향(體香)을 남기고 까마득히 사라졌다.

[흐음...]

능천한은 나직이 탄식하며 시선을 거두었다.

[천검미후(天劍美后) 나설련... 그녀가 천향염후가 되다니...]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환몽천후인 교수를 쥐었다.

[, 이제... 청죽림으로 갑시다.]

스스스슥---

--- 이이잉!

능천한은 환몽천후와 함께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역천사황의 사혈(邪血)로 흥건한 갈대밭에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X X X

 

스스스스...

--- 사사사사삭---

청죽(靑竹) 사이로 여러 줄기의 인영들이 유령같이 움직였다.

[...]

[...!]

숨소리가 하나 없었다.

모두가 뇌전같은 안광을 지닌 자들로 고수(高手者)가 아니자 없었다.

 

청죽림의 외곽,

두 명의 인물이 서 있었다.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초로의 인물과 곤룡포를 걸친 중년인이 그들이었다.

비단옷을 걸친 인물은 허리춤에 황금빛 단장(短杖)을 찌르고 있었다.

길이 네 자 가량의 그 단장의 이름은 금룡신장(金龍神杖)이다.

곤룡포를 걸친 중년인은 매우 위풍당당했다.

군왕(君王)의 풍도를 지닌 인물인데

다만 야심이 지나칠 것 같은 인상이 드는 것이 흠이었다.

[통천금룡제! 청하궁(靑霞宮)에 그 아이가 있는 것이 확실하겠지?]

곤룡포를 걸친 중년인이 비단 옷의 노인에게 물었다.

비단 옷을 걸친 자는 바로 혈종오패 중의 통천금룡제였다.

[그렇소이다 전하! 선덕제는 오늘 아침 이래 청하궁에 머물고 있소.]

통천금룡제가 자신있게 말했다.

곤룡포의 중년인은 선황(先皇) 홍희제(洪熙帝)의 첫째 동생되는 인물이며,

스스로 만승지존(萬乘至尊)이 되기를 갈망하는 야심가다.

그는 바로 한왕(漢王) 주고후(朱高煦).

[조왕(燕王)과 진왕(秦王)이 실패했다는 소문을 들었네.]

한왕이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통천금룡제가 비웃음을 띤 표정으로 대답했다.

[두 분 왕야께서는 의욕만 앞설 뿐 아니라 후원해줄 뒷배도 모자라는 분들이었소. 하지만 전하께서는 경우가 다르지 않소이까?]

통천금룡제의 찬사를 들은 한왕은 자부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하핫... 다르지, 본왕에게는 혈종오패라는 강력한 조력자들이 있으니...]

통천금룡제도 마주 웃었다.

[하하... 왕야께서는 일이 성사된 후라도 혈종(血宗)의 크신 뜻을 저버려서는 아니되실 것이외다.]

[여부가 있겠는가? 그보다... 오늘 일은 확실히 해주셔야 하네.]

한왕이 통천금룡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걱정마시오. 오패의 정예 삼천이 청하궁을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있오이다. 일각내로... 그 어린놈의 목을 왕야께 갖다 드릴 것이오.]

통천금룡제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만 믿겠네.]

통천금룡제는 웃어 보이며 청죽림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울창한 청죽림의 안쪽으로 화려하게 치솟은 용마루가 보였다.

지금 청죽림 전체가 죽음같은 적막으로 싸여 있었다.

[--- !]

문득 통천금룡제의 일갈이 청죽림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웅후한 공력이 실려 있어서 십 리 사방을 뒤흔들었다.

[--- !]

[--- !]

휘리릭---

스스슥---

청죽림에 매복해있던 형종도들이 메뚜기떼처럼 청죽림으로 밀려 들어갔다.

[하하... 함께 가십시오!]

통천금룡제가 자신있는 태도로 웃으며 청죽림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아---]

--- 차차차창!

[와아! 죽여랏!]

조용하던 청죽림이 삽시에 함성과 병장기 부딪히는 소성으로 가득 찼다.

 

---청하궁(靑霞宮).

 

대 부분의 건물이 청죽(靑竹)으로 지어진 별궁이다.

그 때문에 유사시에 방어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중전을 지켜랏!]

[와아!]

백여 명위 자의검수들이 혈종도들을 막아갔다.

그러나 혈종도들의 수는 무려 삼천이다.

자의검수 한명 당 일백명을 상대해야 한다.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전력 차이다.

[방어망을 축소하랏! 다른 곳은 포기하고 중전만 지켜랏!]

수뇌인 듯한 자의대한이 맹룡같이 신위를 떨치며 자의인들을 지휘했다.

--- 차차차창---

! 콰르르르릉! 콰쾅---

굉렬한 폭음이 폭죽같이 터졌다.

스스스스슥---

자의인들은 질서정연하게 후퇴하여 한 채의 정사(精舍)를 에워쌌다.

방어망을 축소함으로써 효과적인 방어가 가능해졌다.

[저자가 황제다!]

[황제를 베는 자에게는 황금 천만냥을 준다.]

[와아아아---]

콰르르르르---

혈종도들은 정사를 노리고 벌떼같이 일어났다.

자의검수들이 지키고 있는 정사 안에는 두 명의 인물이 앉고 서있었다.

한 명은 황색 곤룡포를 걸친 이십대 초반쯤의 청년이다.

비록 나이는 많지 않지만 곤룡포의 인물에게는 태산의 위엄이 있었다.

그것은 만승지존(萬乘至尊)만이 지닐 수 있는 제왕지기(帝王之氣)였다.

그 청년이 바로 당금의 황제인 선덕제다.

선덕제는 다탁을 앞에 두고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자색 장포를 걸친 중년인이다.

자의인은 차를 마시는 선덕제에게 등을 보이는 자세로 서있다.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자의인은 작은 금관을 머리에 쓰고 있다.

쿠오오!

한데 놀랍게도 자의인의 몸에는 선덕제의 그것을 능가하는 엄청난 제왕지기가 흐르고 있었다.

과연 누기이기에 만승지존을 압도하는 기도를 지닌 것인가?

[...]

젊은 황제 선덕제는 담담한 시선으로 격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것은 자밀위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는 어떤 강한 방패가 있는 듯이 보였다.

[하하하핫...]

돌연 우렁찬 장소성이 들렸다.

그와 함께

--- --- ---

허공으로부터 한 줄기 금영(金影)이 선풍을 휘몰며 정사로 쏘아왔다.

[막아랏!]

[--- !]

--- 이이이잉---

차차차--- !

자밀위대가 다급히 외치며 일제히 장검을 휘둘러 금영을 무찔렀다.

그러나,

[흐흐흐... 금룡제천(金龍制天)!]

--- --- --- ---

금영(金影)이 손에서 벼락치듯이 금광(金光)이 쏟아지고,

[크읏---]

[...]

자밀위대들이 휘청이며 물러섰다.

스스스슥---

촤르르르---

금영은 저밀위대의 저지를 뚫고 정사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자는 물론 통천금룡제였다.

[! ... 저자가...]

[발칙한...]

자밀위대가 다급히 함성을 질렀다.

정사로 날아든 통천금룡제가 금룡신장을 들어 선덕제를 겨눈 것이다.

[핫하! 움직이지 마랏! 선덕제의 목숨이 본좌의 손에 있느니라!]

통천금룡제기 득의하여 외쳤다.

[으으... 저자가...!]

[으드득! 대역무도한 자...!]

자밀위대는 발을 구르면서도 다가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덕제는 여전히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린놈이 무슨 담이 이리도 큰 것인가?)

통천금룡제는 내심 흠칫하였다.

그때였다.

[그대가 통천금룡제인가?]

선덕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 그렇다!]

통천금룡제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며 대답했다.

선덕제의 어조에는 만인을 누르는 위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짐에게 무기를 겨눈 것이 어떤 죄인 줄 알고는 있는 것인가?]

선덕제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한 중에 심령을 억누르는 기도가 담겨 있었다.

통천금룡제의 이마에서는 저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흐흐... 이제 곧 세상이 바뀔 것이거늘... 잔소리가 심하...!]

통천금룡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 !]

갑자기 벼락치는 듯한 폭갈이 터졌다.

[--- !]

[--- !]

[---!]

그 폭갈은 엄청난 위력이 있었다.

천지가 뒤집히는 듯이 올렸고.

통천금룡제는 울컥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그래도 혈종오패에 끼인다는 그이건만,

돌연 터진 일성 폭갈에 내장이 뒤집혀 버린 것이다.

[...! ... 당신은...?]

통천금룡제는 공포에 질려 옆을 돌아보았다.

뒷짐을 짚은 채 등을 보이고 있던 자의이 돌아서 있었다.

두 눈을 부릅 뜬 자의인의 일신에서는 어마어마한 기도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통천금룡제는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에 부들부들 떨고 말았다.

자의인에게서는 실로 가공할 위압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강호의 필부가 감히 황실을 넘보다니...]

자의인이 벼락이 치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

통천금룡제는 부들부들 떨며 뒷걸음질 쳤다.

[! 이리 오랏!]

자의인이 장권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미 싸움은 멈추어진 상태였고,

양측의 인물들은 모두 자의인의 기도에 눌려 버리고 말았다.

[...!]

그들은 일제히 자의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으으...!]

그곳에는 청죽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중년인이 있었다.

화려한 곤룡포를 걸친 그자는 바로 한왕이었다.

(... 한왕을 너라고 하다니... 이자는 도대체...!)

통천금룡제는 비오 듯이 식은땀을 흘렸다.

자의인이 풍기는 기도는 실로 가공한 것이었다.

그때였다.

[... 태상존황(太上尊皇)이시여! ... 용서를...!]

--- !

한왕이 부들부들 떨며 털썩 주저앉았다.

[... 태상존황!]

통천금룡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그의 뇌리로 무서운 전설이 떠오른 것이다.

 

<태상존황(太上尊皇)>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황실을 지킨다는 전설 속의 인물이다.

설령 황제라 해도 태상존황에게 상석을 양보한다고 한다.

이유는 그가 바로 전전대 황제인 영락제(永樂帝)의 결의형제이기 때문이다.

평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황실에 분온한 기운이 감지되면 어디선가 나타난다.

일단 나타나면 그는 황실의 누구라도 변할 수 있는 생사여탈권을 지니는 것이다.

[주고후! 네가 네 죄를 알건데 어찌 스스로 벌하지 않는 것인?]

태상존황이라 불린 자의인이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 태상존황이시여... ... 용서를... 소질이... 어리석어서 간특한 자들의 꾀에 넘어갔나이다!]

한왕은 이제 이마를 바닥에 대며 덜덜 떨고 있다.

그는 태산존황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부황 영락제조차 태상존황을 형님으로 모시며 경외했었다.

들리는 말로는 홍무제 주원장이 제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태상존황의 도움 덕분이라고 한다.

태상존황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한왕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만 태상존황은 지난 이십여 년 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태상존황이 지금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으로 지레 짐작했다.

만일 태상존황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한왕은 감히 역심을 품지 못했을 것이다.

헌데 통천금룡제를 따라 청하궁에 쳐들어온 직후 한왕은 공포에 휩싸였다.

태상존황이 조카 선덕제와 함께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 죽었다!)

태상존황의 존재를 알아본 한왕은 공포와 절망에 휩싸였다.

그의 당당하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다.

[휴우...]

그 모습을 보며 선덕제가 괴롭게 신음했다.

선덕제는 태상존황을 올려다보았다.

[황백(皇伯), 이숙(二淑)을 한번 용서해주심이 어떻겠습니까?]

그의 말은 어디까지나 공손하였다.

(아무리 태상존황이라도 황제의 말이라면 따르겠지.)

통천금룡제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황상께서는 마음이 모질어야할 때가 있음을 아니되네!]

자의인, 태상존황이 준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 틀렸다. 황제도 움직일 수 없는 인물이다.)

통천금룡제가 사색이 되었다.

그때였다.

[으아...!]

한왕이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청죽림 밖으로 달아났다.

[본좌 앞에서 달아나겠다?]

태상존황이 엄한 소리로 일갈하였다.

다음 순간,

--- --- !

--- 아아악!

돌연 일섬 강기의 무더기가 낙뢰같이 흘렀다.

태상존황은 전혀 몸을 움직인 흔적도 없었거늘 강기가 떨쳐진 것이다.

[... 이심제기(以心制氣)!]

그 모습에 통천금룡제는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

그와 함께, 처절한 비명이 일며 달아나던 한왕의 목이 댕강 잘려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

--- 이익!

한왕의 끔찍한 최후를 접한 통천금룡제는 비명을 지르며 정사에서 날아나갔다.

일시에 그자의 몸이 오십여 장 밖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태상존황은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헌데 통천금룡제가 막 청죽림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였다.

[어디로 가느냐?]

벼락치는 듯한 교갈이 터졌다.

[!]

--- -- 애액!

-- 츠츠-- 츠츠츳!

기겁하는 통천금룡제의 면전으로 수십 마리 옥접(玉蝶)의 형상이 쇄도하였다.

[... 옥접화운수(玉蝶花雲手)!]

통천금룡제는 질겁하며 금룡신장을 마주 쳐냈다.

--- -- 쿠쿵!

콰르르르---!

[---!]

굉음 속에서 통천금룡제는 휘청하며 떨어졌다.

[대역죄를 범하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날카로운 교성과 함께 통천금룡제의 앞으로 절색의 궁장미인이 날아내렸다.

[... 홍하공주(紅霞公主)?]

통천금룡제는 신음하며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고금(古琴)을 한손에 든 자의궁장미인!

그 여인은 바로 주하령(朱霞靈)이었다.

[! 누워랏!]

--- 자자자작!

-- -- 이이잉!

홍하공주 주하령이 일갈하며 재차 교수를 떨쳤다.

옥주(玉柱)같이 고형화된 강기가 벼락치듯이 통천금룡제에게 쏟아졌다.

[옥접존후신강(玉蝶尊后神罡)...!]

통천금룡제는 경악성울 터뜨렸다.

--- 이이잉!

쿠르르르--- 르릉!

그의 금룡신장에서도 지체없이 금룡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쿠쿠--- --- 쿠쿵!

--- 르르르---

[--- 아악!]

--- !

옥색과 금색의 강기가 부딪히는 순간 통천금룡제는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공력과 무공이 지닌바 양면에서 모두 홍하공주 주하령의 상대가 되지못한 것이다.

[일어나랏! 한 명도 놓치지 말아랏!]

이어 홍하공주 주하령이 청죽림을 향해 교갈을 쳤다.

다음 순간,

[--- !]

[으하하! 감히 폐하를 노리다니...!]

! --- 르르르!

--- 콰콰쾅!

청죽림의 지면으로부터 수천의 인영이 치솟아 올랐다.

그들은 하나같이 신광이 안으로 갈무리 된 절정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청죽림의 지면에 은신한 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함정에 빠졌다!]

[... 달아나자!]

괴수를 잃는 혈종도들은 우왕좌왕하였다.

[--- !]

[으하하하!]

--- 차차창!

콰르르르르---!

그런 혈종도들은 자의검수들을 볏짚단을 쓰러뜨리듯이 베어 넘겼다.

[--- 아악!]

[--- !]

[... 이렇게 당하다니...!]

혈종도들은 저항도 변변히 해보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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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秦淮河에 부는 바람

 

 

 

누각(樓閣).

--- --- !

맑은 금음(琴音)이 누각의 열려진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누각 안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규방이었다.

누각 안에는 삼인(三人)이 있었다.

일남이녀(一男二女).

능천한과 금벽라, 그리고 홍예선희가 그들이었다.

능천한은 금벽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선잠이 들어 있었다.

[귀여운 분...!]

금벽라는 푸근한 미소를 띈채 자기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정랑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섬섬옥수로 능천한의 넓은 이마를 쓰다듬었다.

선잠이 든 능천한.

그는 지금은 천하고수(天下高手)가 아니다.

다만 여인들의 애정을 받아들이는 일개 정인에 불과했다.

--- --- !

능천한과 금벽라의 앞에서 홍예선희가 조용히 칠현금(七絃琴)을 탄주하고 있었다.

그녀의 탄주 솜씨는 천하일절이다.

그저 금음만으로도 편안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상공께서는... 언니만 옆에 계시면 아기같이 잘도 주무시는군요.]

탄주를 하며 홍예선희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이분은 내가 오기만 하면 어린 아기가 되시는 분이니...]

금벽라는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때의 금벽라의 모습은 너무도 온화하고 푸근해보였다.

(사실은... 지난밤에 이 계집에게 몰두하셔서 한숨도 못 주무신 탓이기도 하지.)

금벽라의 볼에 살짝 홍조가 돌았다.

능천한은 몇 번이고 그녀를 요구했었고,

그녀도 거침없이 능천한의 사랑을 갈구했었던 것이다.

[새벽녘에... 이상한 꿈을 꾸었단다.]

금벽라가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능천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꿈을...?]

홍예선희는 금을 내려놓으며 금벽라를 보았다.

금벽라의 두 볼이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어렴풋이 잠이 들자마자 천지가 새카매지고 뇌성벽력이 치는 꿈을 꾸지 않았겠니?]

[...!]

금벽라는 몽롱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암천(暗天)이 쩍 갈라지며 거대한 금룡(金龍)이 나타나 벼락 치듯이 내 속으로 들어왔어. 그 거대한 몸이 어떻게 내 속에 들어왔을까 하고 질겁하며 깨어보니 꿈이었단다.]

[언니...!]

꿈 이야기를 들은 홍예선희의 봉목이 밝게 빛났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 꿈... 태몽(胎夢)같아요...]

[... 태몽!]

금벽라는 화들짝 놀랐다.

[설마...!]

언뜻 이렇게 말을 이었으나 금벽라의 가슴은 물방아 돌아가듯이 쿵쾅거렸다.

(그럴지도... 그럴지도 몰라...)

금벽라의 안색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 꿈이 정말 태몽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금벽라의 흥분에 휩싸여 풍만한 젖무덤을 지그시 눌렀다.

[호호... 축하해요. 언니... 저는 언니가 부러워 죽겠어요!]

홍예선희가 맑게 웃으며 금벽라의 손을 꼭 쥐었다.

[아직... 모르는 일인데... 축하라니...!]

금벽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누각 밖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

금벽라는 방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방문이 열렸다.

이어 늘씬한 흑의미녀 흑단(黑丹)이 두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흑단은 그 이지적인 미모와 늘씬한 몸매로 만화원에서 홍예선희 다음으로 서열이 올라 있는 기녀였다.

그녀가 데리고 들어온 인물들은 일남일녀(一男一女)였다.

사내는 더부룩한 수염을 기른 녹포(綠布)의 중년인이었고,

여인은 환몽천후(幻夢天后)였다.

[...!]

녹포장한은 멈칫하였다.

능천한이 금벽라의 허벅지를 베고 고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천봉(天鳳)... 어서 오너라. 아우님이 주무시니 잠시 앉아 기다려라.]

금벽라가 조용히 말했다.

천봉이라니...

녹림천봉(綠林天鳳)!

그렇다.

녹포인은 바로 녹림천봉 진예빈이 변용한 모습이었다.

지금의 모습은 진예빈이 녹림대제(綠林大帝)를 대신하여 녹림을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이름하여,

 

---녹림천신(綠林天神),

 

녹림천신의 모습이 바로 지금 진예빈의 모습인 것이다.

녹림천봉 진예빈은 조심스레 한쪽으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

이어 그녀는 조심스레 한 장의 정교한 인피면구를 얼굴에서 떼어내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선을 지닌 아름다운 얼굴이 면구 밑에서 나타났다.

(녹림까지 손에 넣으시다니... 상공께서는 도대체...)

홍예선희는 논란 표정으로 진예빈과 능천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금벽라가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금녀의 교수는 여전히 능천한의 시원한 이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금릉(金陵)으로...!]

진예빈이 시선을 능천한의 잠든 얼굴로 던지며 말했다.

[선덕제께서 미행을 나오셨습니다.]

[선덕제께서 미행을...?]

금벽라의 이마가 흠칫 떨렸다.

[금릉에는 이황숙(二皇叔), 황숙들 중에서도 야심이 가장 큰 한왕(漢王)이 있거늘... 이황숙이 당신을 노리고 있음을 잘 아실 터인데...]

금벽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혼자 오시지는 않으셨을 것이고...]

금벽라는 진예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예빈은 공손히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자밀위대(紫密衛隊) 삼백이 암중에 황상을 호위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삼백(三百)의 자밀위대라...]

금벽라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자밀위대!

 

황실의 절정 고수들로 이루어진 시위대다.

개개인의 무공이 화신지경에 이른 자들로서 삼백(三百)이라 해도 구대문파 중 한두 문파의 전력을 능가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어두운 곳에서의 화살 앞에는 천명 만명의 시위라도 무력한 법,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같은 좋지 않은 시기에 어보(御步)를 옮기셨단 말인가?)

금벽라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천자(天子),

 

그 지위는 무림 뿐 아니라 억조창생의 생사가 걸린 무상지위다.

금벽라의 근심이 크지 않을 수 없다.

[... 무림이... 혈란 속에 있거늘 황실마저 어수선하다니...]

금벽라는 한숨을 쉬었다.

[하여... 어찌 해야 하올지요? 저희 힘으로라도 황상을 지켜드려야 할지 어떨지...]

진예빈이 물었다.

[급사이니... 자부에 있는 영라에게는 연락을 못했겠지?]

금벽라가 진예빈을 바라보았다.

[신응(神鷹)을 날려 보내기는 했으나... 저녁 늦게야 돌아 올 것입니다.]

[별도리 없구나. 녹림백팔무영대(綠林百八無影隊)와 정검신영대(正劍神影隊) 삼백으로 폐하 주위를 막고 신주오기와 취존개 태상호법(太上護法)을 급히 금릉으로 소환하거라!]

[...!]

[...!]

금벽라의 지시를 들으며 홍예선희와 흑단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암중에서... 사해정검맹은 엄청난 속도로 커가고 있었구나. 어쩌면 혈종은 큰난관에 부딪히겠는걸...)

홍예선희의 봉목이 맑게 빛났다.

그리고,

[분부... 거행하겠사옵니다.]

진예빈이 금벽라에게 절을 하며 일어섰다.

그때였다.

[예빈! 그럴 필요없다.]

한소리 담담한 목소리가 진예빈의 교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언제인가 금벽라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능천한이 눈을 뜨고 있었다.

[,,,,, 지존!]

--- !

진예빈은 능천한을 향하여 오체복지하였다.

능천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황상을... 호위해드릴 필요없다!]

능천한이 정좌를 하며 말했다.

[아우님... 무슨 말씀이신지...!]

금벽라가 의아해하며 시선을 모았다.

능천한은 환몽천후에게 손짓을 하며 입을 열었다.

[선덕제께서는 영민한 분, 이번 금릉미행에는 큰 뜻이 있을 것이외다.]

[큰 뜻?]

여인들은 이해를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하하! 환몽은 갈수록 아름다워 지는구려!]

여인들이 의아해하는데 능천한은 다가온 환몽천후를 덮썩 안아 무릎에 앉혔다.

[...!]

[...!]

여인들은 살짝 옥용을 붉혔다.

능천한의 손이 환몽천후의 저고리 속으로 들어가 환몽천후의 풍만한 유방을 만지작거렸다.

[황상께서는... 한 분의 강력한 조력자의 힘을 빌어 모든 환난을 일거에 제거하실 작정이실 것이오!]

[으음...!]

금벽라의 안색이 흔들렸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이다.

[황상께서... 그 존체를 미끼로 던지셨단 말씀이십니까?]

금벽라가 신음하며 물었다.

능천한은 환몽천후의 유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황상께서 점차 성장해 가시는 초조한 자들이 있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흑()과 백()이 명백히 구분될 것입니다.]

[으음...!]

[만승지존의 모으로 미끼가 되시다니...!]

여인들은 아연하여 신음을 흘렸다.

능천한은 환몽천후를 안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덕제께서는 과연... 만승지존이 되시기에 충분한 분이다.)

본능적이랄까?

능천한의 뇌리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은...

(황백(皇伯)... 황제의 백부라는 그 자의인(紫衣人)... 필시...)

황백이라는 신비인물,

능천한은 그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X X X

 

청죽림(靑竹林).

진회하 연안을 격한 넓은 분지다.

이곳은 금릉특유의 청죽(靑竹)으로 가득 차 있는 절경이고,

청죽림에는 황실의 별궁(別宮)인 청하궁(靑霞宮)이 있다.

신시말(申時末),

스스스스...

가을을 당하여 진회하면서 갈대들이 하얀 머리를 풀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하하... 좋은 풍광이 아닌가?]

갈밭을 거닐며 호탕하게 웃는 청년이 있었다.

수려한 용모에 백삼을 걸친 청년이었다.

그 영준함도 영준함이지만,

청년의 초탈한 일신에서는 범접키 힘든 기도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청년...

그가 서 있는 곳은 아무리 너른 곳이라고 그의 기도로 가득 차는 것이다.

[...!]

청년의 뒤,

분홍궁장여인이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면사를 하여 용모는 알 수 없으나,

분홍궁장에 싸인 교구에서는 가히 폭발적이라 해야 옳을 매력이 발산되어 지고 있었다.

궁장여인은 가슴에 길죽한 피낭(皮囊)을 안고 있었다.

다섯 자 길이의 교룡피로 만든 가죽주머니였다.

[환몽! 이같은 풍광을 봄도 실로 오랜만이겠구려!]

청년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여인을 돌아보았다.

청년은 능천한이었고, 면사여인은 환몽천후였다.]

[하하... 이리 오시오!]

능천한은 껄껄 웃으며 환몽천후의 섬섬옥수를 쥐었다.

[...!]

환몽천후는 부끄러운 듯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능천한에게 섬섬옥수를 맡겼다.

영혼이 없는 여인,

그러나 영혼 이전에 여인이기에 지니는 본능(本能)이 있는 탓일까?

스스스스슥!

사가가각! 사삭--- 사각!

갈대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여러 가지 소성이 일었다.

문득,

--- --- 디딩!

그 갈대의 소리사이로 물이 흐르는 듯한 금음(琴音)이 일었다.

[훌륭하군. 홍예에 못지않은 솜씨인걸!]

능천한은 두 눈을 형형히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금음에 뛰어난 명인의 혼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 것이다.

[환몽! 가봅시다!]

[...!]

스스스슥!

능천한은 환몽천후를 이끌고 구름이 흐르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은 삽시에 십여 마장 밖에 이르렀다.

[...!]

능천한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진회하(秦淮河) 변의 울창한 버드나무숲이었다.

능천한은 버드나무가 휘휘 늘어진 사이로 시선을 보냈다.

버드나무가 빙 둘러선 사이,

화려한 향차가 한대 서 있고, 그 옆에 사방이 트인 천막이 쳐져 있었다.

천막주위에는 궁녀(宮女) 차림의 시녀들이 네명 둘러 서 있으며,

천막 안에는 한 명의 자의미인이 그림같이 앉아 고금(古琴)을 뜯고 있었다.

그 미인을 바라보며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한 폭의 미녀도(美女圖)를 보는 듯하군.)

미인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감탄의 기색이 흘렀다.

기품(氣品).

미인에게는 천성적으로 몸에 배인 고귀한 기품이 있었다.

그 기품은 범사한 아녀자들이 꾸며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문득,

--- !

금음이 높고 맑은 소리를 내다가 뚝 끊겼다.

--- !

그와 함께,

한 쌍의 너무도 강렬한 시선이 능천한에게 쏘아져 왔다.

여인의 시선이지만 범인이라면 오금이 저릴 위엄이 담긴...

(무공을 지녔군. 황실의 여인으로 보이거늘...!)

능천한은 내심 의외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때서야 시녀들은 능천한을 발견하고 안색이 홱 변했다.

[무엄하구나. 어느 분의 안전인데 눈을 바로 뜨느냐?]

시녀 중 한 명이 날카로운 교성을 질렀다.

[그만 두거라!]

자의미인은 그런 시녀에게 조용한 어조로 말하며 손을 저었다.

능천한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이채가 감돌고 있었다.

능천한은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결례를 용서하오. 소저의 탄주가 너무 훌륭하여 발길이 이끌렸소이다.]

능천한은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부끄러운 솜씨로 귀공의 귀나 어지럽히지 않았으면 다행이겠사옵니다.]

자의미인이 훈훈하게 웃으며 답례를 하였다.

[부인과 잠시 오시지요. ()를 대접하고 싶사옵니다.]

자의미인이 능천한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맙소이다!]

능천한은 대답을 하고 자의미인이 있는 천막으로 다가갔다.

그가 다가가자 시녀들은 움찔하며 공손하게 물러섰다.

(범상한 분이 아니다.)

그제야 능천한의 모습에서 비범함을 발견한 때문이다.

[고맙소이다.]

능천한은 천막 안으로 들어서 자리에 앉았다.

[존함이...!]

자의미녀가 조용히 물었다.

[능천한이외다. 황산(黃山)에서 왔소이다!]

[능천한... 능공자셨군요!]

자의미녀의 봉목에 산뜻한 이채가 지나갔다.

[소생을 아시는지...?]

능천한이 담담하게 묻자 자의미인은 함초롬히 미소를 지었다.

[호호, 패천지존 능대공자님을 뉘라서 모르겠습니까?]

[패천지존이라... 감당키 어렵소이다.]

[호호, 겸양이시옵니다. 소녀는 주하령(朱霞靈)이라 하옵니다.]

여인의 말을 들으며 능천한은 여인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씨라면 황족(皇族)이겠군. 황족이 아니면 이같은 기품을 지니기 어려우니...)

(과연... 황백의 말씀과 부합하는 영걸이다. 향후 백년무림이 이분의 손아래 있겠다.)

능천한과 주하령의 시선이 허공에서 어우러졌다.

잠시 두 남녀는 서로의 깊이 감추어진 비범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난세는... 큰 영웅의 탄생을 위하여 있다함이 틀리지 않음을 공자님을 뵙고 실감하겠사옵니다.]

[하하! 과찬 과찬이십니다!]

능천한이 껄걸 웃을 때였다.

--- --- !

멀리서 한 줄기 날카로운 호각성이 일었다.

[...!]

호각성을 들은 주하령의 교구가 움찔하였다.

(저곳은 청하궁이 있는 청죽림...!)

능천한은 눈을 들어 호각성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을 청죽이 우거진 분지였다.

[실례를 하여야겠사옵니다!]

주하령이 고금(古琴)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생에 대해서는 심려마십시요!]

능천한도 같이 일어섰다.

[다시 뵈올 수 있기를...]

주하령은 유심히 능천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봉목은 기이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어,

--- 스스슥!

옥보(玉步)를 한 걸음 떼어 놓았다고 여긴 순간,

주하령은 오십 장 밖에 이르러 있었다.

--- !

--- 르르르!

스스스스--- !

동시에 네 명의 시녀도 제비가 날듯이 몸을 뽑아올려 주하령의 뒤를 따랐다.

[옥접화영신보(玉摺花影神步)... 옥접지존(玉蝶至尊)의 후인인가?]

능천한은 날아가는 주하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옥접지존!

 

홍무제 주원장을 도와 명조 건국에는 큰 몫을 했던 황실고수다.

그는 여인으로 황실사상 최강의 여고수(女高手)로 꼽힌다.

[환몽... 드디어 역도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오. 가봅시다.]

능천한은 환몽의 교수를 꼭 쥐며 걸음을 옮겼다.

--- 스슥!

그의 신형도 일시에 백 장 밖으로 움직여졌다.

스스슥! 휘르르르르!

능천한과 환몽천후는 표표히 허공을 갈랐다.

문득,

[--- 아악!]

처절한 신음성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호호호호...!]

극히 요요로운 웃음소리가 그뒤를 이었다.

[천향염후!]

그 웃음소리에 능천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천향염후가 이곳에 나타나다니...!]

스스스슥!

--- 이이이잉!

능천한은 허공에서 벼락같이 몸을 비틀어 웃음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날아갔다.

[크으... ... 네년이... 바로...!]

고통스런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스스스--- !

능천한은 까마득히 치솟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갈밭의 일각이 풍지박살이 나 있었고,

그 안에 이인(二人)이 있었다.

한 명의 여인과 사악하게 생긴 회포노인이 그들이었다.

여인.

벌거벗다시피한 여인은 능천한도 아는 영니이다.

기묘한 체향을 갈밭 가득히 뿌리는 절세미녀...

바로 천향염후였다.

그리고,

[으으...!]

피범벅이 되어 꿈틀거리는 회포노인...

그자는 가슴이 으스러지고 복부가 찢어져 창자가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중상을 입었다.

[... 천검미후(天劍美后)... 네년이 죽지 않았다니...!]

회포노인이 피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뇌까렸다.

(천검미후 나서련! 천향염후가 바로 그녀...!)

장중을 내려다보던 능천한의 눈빛이 일변하였다.

[호호호호! 역천사황(逆天邪皇)! 천검성 일천원혼의 한을 갚겠다!]

천향염후의 교수에서 폭풍이 일었다.

[사황뇌격(邪皇雷擊)!]

파츠츠츠츠---!

회포노인은 발악하듯이 핏빛강기를 떨쳐 내었다.

그러나 회포노인, 쌍황(雙皇)에 든다는 역천사황이건만 천향염후의 적수가 아니었다.

콰쾅!

[--- --- !]

피와 살 조각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역천사황의 몸뚱이가 벼락에 맞은 듯이 산산이 부수어져 날아갔다.

 

---역천사황.

 

쌍황의 일인에 들던 그의 최후치고는 너무도 허무한 종말이었다.

--- 스슥!

능천한은 환몽천후와 함께 천향염후의 뒤로 날아내렸다.

[...!]

천향염후는 능천한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고,

망연히 서서 갈가리 찌긴 역천사화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울고 있구나.)

능천한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천향염후,

그 희대의 요녀의 양볼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천향염후가 애처로워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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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二 章

 

                 夫婦

 

 

스스스슥!

폭풍대공이 장권 밖으로 물러나자 펄인(八人)이 철혈묵사를 둘러쌌다.

[...!]

철혈묵사는 침중한 안색으로 팔인을 돌아보았다.

 

---폭풍팔존(暴風八尊).

 

폭풍보 최정예 고수들이다.

개개인이 발군의 고수일 뿐 아니라 그들의 연수합격술은 통천가공하다.

이름하여,

 

---폭풍사멸대진(暴風死滅大陣).

 

폭풍대공이 만들었으나,

그 자신도 감당 못한다는 절정의 합격술이 이것이다.

--- 우우우우웅!

폭풍팔존의 신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우르르르---!

---르르르릉!

그들의 몸에서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릴 듯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폭풍이...

[...]

철혈묵사 정천학.

그는 철탑이 된듯이 폭풍의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철혈묵사! 용서해라! 다른 삼패에게 징계의 표시라도 그대로 벌하지 않을 수 없다.]

진세 밖에서 폭풍대공이 무겁게 말했다.

콰르르르르릉!

--- 우우우웅!

만근의 거석이라도 날려버릴 정도로 폭풍사멸대진의 진세가 강렬해졌다.

우지--- 지직!

--- 지끈! --- !

주위의 거목들이 견디지 못하고 성냥개비 꺾어지듯 뚝뚝 부러져 나갔다.

[...!]

그와 함께,

진중의 철혈묵사의 신형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안색도 막강한 잠력에 눌려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용할 것인가...? 사용하게 되면... 반드시 폭풍대공마저 쓰러뜨려야 하는데...)

철혈묵사의 철안으로 번민의 빛이 떠올랐다.

그의 우수는 옆구리에 이르러 머뭇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사용한다는 것일까?

(사용해야겠다. 그것이 아니면 폭풍진세를 뚫을 수 없으니...)

철혈묵사는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그는 자신의 검은 허리띠를 꽉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였다.

[겁멸파황(劫滅破荒)!]

우렁찬 함성이 터지고,

--- 이이이잉!

파츠츠츠츠---!

허공일각에서 벼락 치듯 새파란 륜영(輪影)이 쏟아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본 폭풍대공의 안색이 일변했다.

[패천신륜! 조심하랏!]

폭풍대공이 버럭 경호성을 질렀다.

--- 자자자자장!

쿠쿠쿠--- 쿠쿵---!

패천신륜은 여지없이 폭풍사멸대진을 꿰뚫고 들어갔다.

--- 파팟!

--- 가가각!

[크으윽!]

[--- 으음!]

단번에 진세의 일각이 무너지며 삼인의 폭풍존이 주저앉았다.

그 순간,

[철혈등룡류(鐵血騰龍流)!]

--- --- !

츠츠츠츠--- !

철혈묵사가 벼락같이 쌍장을 쪼개어 내었다.

노도같은 묵강(墨罡)!

--- 콰쾅!

[--- 으윽!]

[...!]

재치 삼인이 뒤로 벌렁 넘어졌다.

[패천지존! 감히 방해를 하다니!]

콰르르--- !

폭풍대공이 벼락같이 외치며 막 패천신륜을 거두어 들이는 능천한을 무찔러갔다.

[물러서랏!]

--- 쿠쿵!

그 즉시 능천한의 우정에서도 노도가 일었다.

가볍게 휘저은 일장이나 그것데는 족히 오륙백 년 수위의 공력이 담겨 있었다.

--- --- --- !

쿠르르르---!

두 줄기 거창한 경력이 충돌하며 만근 화약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일었다.

[형님! 가십시다!]

[현제 고맙네!]

--- --- !

화르르르--- 르르르!

모래 바람이 뭉게구름같이 이는 중에 흑영과 백영이 야공을 가르며 흘렀다.

[으음...!]

그리고 모래 바람 속에서도 묵직한 침음성이 흘렀다.

[패천지존... 패공산(沛空山)에서 죽었어야 했거늘...!]

사진을 뚫고 나오며 폭풍대공이 아주 싸늘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의 두 눈이 더할 수 없이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패공산...!

능천한이 제갈영라를 구하기 위하여 혈종과 충돌한 곳이 아닌가?

그곳을 폭풍대공이 어찌 입에 올리는가?

더군다나 마치 패공산에서 능천한을 격살할 기회가 있었는 듯이 말하다니...

과연 폭풍대공은 어떤 인물인가?

 

***

 

[자네를 볼 면목이 없군!]

산봉 위,

능천한과 마주 앉은 철혈묵사가 무겁게 말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오히려 혈종에서 발을 빼신 형님께 치하를 드리고 앂습니다!]

능천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때는 밤이 깊어 삼경이 지나고 있었다.

--- !

철혈묵사가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이만 혜어져야겠네. 다음에 만나게 되면... 술이나 한잔하세!]

[하하! 좋습니다.]

능천한도 껄껄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문득 철혈묵사의 시선이 천극에 이르렀다.

[천극에는 사연이 있지. 그 비밀을 푸는 자는 곧 고금제일인이 된다고 하던가?]

능천한은 짚고 있는 천극을 내려다보았다.

[잘 지니게. 앞으로 천극이 큰 소용이 있을 터이니...!]

이어 철혈묵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천하를 뒤집어 놓을 일이 내일 중으로 금릉에서 일어날 것이니... 금릉은 떠나지 말게!]

[천하를 뒤집어 놓을 일?]

능천한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혈종오패가 금릉주위로 몰린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무엇인가... 큰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능천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현제에게 많은 동조자가 있으니... 곧 알게 될 것이네. 자 이만 가네!]

철혈묵사가 걸음을 옮겼다.

[살펴가십시오. 곧 다시 뵙겠습니다.]

능천한은 철혈묵사에게 포권을 했다.

스스스슥---!

철혈묵사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백 장 밖으로 날아갔다.

삽시에 그의 모습은 까마득히 사라져 갔다.

(마음에 드는 분이다.)

능천한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지는 철혈묵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

능천한은 철혈묵사가 사라진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두 줄기의 왜소한 인영이 구름이 흐르듯이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인 것이다.

그 두 왜영의 경공은 실로 경인 실색할 정도였다.

[누님과... 환몽이군!]

능천한의 입가에 따스한 미소가 감돌았다.

달려오고 있는 인영들,

 

광양존후(廣陽尊后) 금벽라.

환몽천후(幻夢天后).

 

바로 그녀들이었던 것이다.

스스--- 스슥!

--- 이이이이잉!

두 여인은 일순지간에 능천한이 서 있는 산봉까지 이르렀다.

[아우님...!]

광양존후 금벽라의 기품있는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감돌았다.

[누님...!]

능천한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뵙고... 싶었어요!]

금벽라는 촉촉히 젖은 눈길로 능천한에게 다가왔다.

[소제도... 누님이 그리웠습니다.]

말을 하며 능천한은 금벽라의 풍만한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뭉클하며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동체가 두팔 가득하게 느껴졌다.

[아우님...!]

금벽라는 양볼을 도홧빛으로 물들이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

이지가 없는 환몽천후는 의미없는 미소를 띄우며 능천한과 금벽라를 바라보았다.

 

***

 

사르르르륵!

껍질이 벗겨지듯 한 겹 나삼이 벗겨져 나갔다.

그러자 흐릿한 황촉 밑으로 드러나는 너무도 뽀얗고 풍염한 육체...

[누님...!]

능천한은 사랑과 욕정으로 뜨거워진 손을 놀렸다.

[...!]

눈을 꼭 감고...

오직 정랑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황후의 기품을 지닌 미부(美婦) 금벽라...

금벽라는 정랑의 손에 의해 발가숭이가 되어가며 몸을 떨었다.

이곳은 만화원의 가장 깊은 곳의 침실이다.

본래는 홍예선희의 침실이었다.

하지만 지근은 능천한과 금벽라 부부가 차지한 것이다.

(석달의 기다림은... 너무도 길었사옵니다.)

꼭 감긴 금벽라의 긴 속눈썹이 흔들린다.

익을대로 익은 삼십대의 여체.

부부의 쾌락을 모른다면 모르되 막 그 기쁨을 안고 석달을 독수공방해야 했다.

그것은 실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밤마다 그녀는 정랑의 그 뜨겁던 사랑을 회상하며 달아오르는 육체를 스스로 달래야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정랑의 사랑이 자신의 육신에 쏟아지려는 것이다.

--- !

그녀의 비궁을 가린 고의가 떨어지고 너무도 무성한 방초의 계곡이 드러났다.

[누님...!]

능천한은 바짝 달아올랐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자신의 뜨거운 몸을 금벽라의 나신 위에 포갰다.

육중한 중압감...

[으음...!]

야릇한 기대감에 금벽라는 전율하였다.

전율하기는 능천한도 마찬가지다.

금벽라의 몸은 다른 여인들과 다르다.

고향같다고나 할까?

너무도 강렬한 모정과 향수가 거기 있고,

꿈결인 듯 따스함과 푸근함이 가득한 육체였다.

[아아아... 아우님... 아아...!]

[누님... 흐음...!]

펄렁인다.

조용히 퍼지는 열정의 파랑에 황촉이 펄렁인다.

[아아아...!]

능천한의 강렬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아들이며 금벽라는 몸부림쳤다.

그를 오나벽히 소유한 희열과 녹아드는 듯이 번져나가는 희열에...

금벽라는 능천한을 따스함으로 휘감아 소유하고,

능천한은 끝이 없는 듯한 금벽라의 심신 속에 자신을 묻었다.

[아아... 아우님... 아우님... 아아...!]

금벽라...

그 정숙한 여체가 점차 뜨거운 탕부의 몸짓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인 듯이 휘감고 흔들며 비틀리는 나신...

[헉헉... 누님... 누님... 누님...]

[... 상공... 상공... ... 으윽... 아아아... 아흐윽...!]

열풍은 철벽이라도 녹일 듯이 뜨거워져 갔다.

오랫동안 불붙기를 기다려온 부부지정(夫婦之情)이 격렬하게 불타오르는 것이다.

[아아아... ... ... ...!]

금벽라의 죽어갈 듯이 잦아드는 교성이 밤을 지샜다.

몇 번인지 빈사지경에 이르면서도...

그 교성은 끊일 줄을 몰랐다.

 

X X X

 

밀실(密室).

[...!]

[...!]

백 명이상의 인원이 모여 있음에도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정확히 백일명(百一名)의 여인들,

하나같이 꽃이 부끄러워할 미인들이다.

한데 그 꽃보다도 아름다운 미인들의 옥용에는 무심한 냉기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살수들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고...

상좌(上坐).

타는 듯이 붉은 홍의를 걸친 미인이 태사의에 앉아있다.

모든 여인들의 시선은 그 홍의여인을 향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후로 나는 그분을 따르기로 했다.]

문득 홍의여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밀실을 울렸다.

말을 한 홍의여인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그대들 여러 자매들이 나를 따르든지 말든지는... 그대들의... 자유다!]

홍의여인의 태사의에 교구를 깊이 묻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교주(敎主)!]

이윽고 전열에 나란히 앉아있던 흑의, 백의, 남의를 입은 미녀들이 일어섰다.

아마도 여인들 중 최공의 배분을 지닌 여인들 같았다.

[교주께서는 더 이상 살수(煞手)가 아니에요.]

흑의의 늘씬한 미인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이에 홍의미인은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흑단(黑丹)! 네 말이 맞다. 감정을 가져서는 아니되는 살수된 자로,,,, 애정(愛情)의 감정을 키우고 있었으니... 나는 더 이상 살수가 아니지...]

홍의미인의 말을 백의미인이 받았다.

[우리 필살일백령(必煞一百靈)은 생사를 교주언니와 함께 하기로 피로 맹세했어요. 언니가 가는 길이 어디든... 우리는 따를 것이에요!]

홍의미인의 옥용에 흔들림이 일었다.

그것은 고통과 기쁨이 함께 있는 그런 떨림이었다.

[나는... 교주(敎主)가 되어... 자매들을 고생만 시키는구나...!]

[호호... 고생이란 말씀은 마세요.]

가장 어려보이는 남의미녀가 교소를 지었다.

여인들 중에서 그래도 그녀가 가장 따뜻해 보였다.

[언니의 행복이 곧 저희의 행복이에요. ... 그분의 사랑을 얻으셔서 행복해지셔야 해요.]

홍의미녀의 두 눈이 눈물로 글썽글썽해졌다.

[고마워... 그분께 큰 죄를 지어 죽음으로 속죄해도 모자르나... 무슨 짓을 해서든지 그분의 계집이 되겠어![

그녀의 말에 모여 앉은 여인들의 차갑던 옥용에 한 가닥 훈훈함이 감돌았다.

[호호... 평생 살수로 늙어 죽을 줄 알았는데... 잘하면 남연(藍燕)도 시집을 갈 기회가 오겠어요.]

남의소녀가 명랑하게 웃었다.

남의소녀는 장난삼아 해본 소리였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백여 명의 얼어붙었던 방심(芳心)에 한 가닥 두근거림을 심어주게 되었다.

여인...

결국 그녀들도 살수이전에 사내의 따뜻한 손길을 본능적으로 고대하는 여인(女人)들이므로...

(언젠가는... 벽라언니가 그분의 잠자리시중을 들듯이... 나 또한 떳떳히 그분의 침실을 지킬 수 있게 되고 말리라.)

홍의여인의 두 눈이 보석같이 빛났다.

그녀의 이름은 홍예(紅霓)!

천하제일기녀(天下第一妓女)이고 또한 천하제일여살수(天下第一女煞手)이기도 한 여인...

이 밤,

황홀하고 뜨거운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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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一 章

 

                高手 續出

 

 

 

[으드득! 네놈의 목을 베리라!]

--- 자작!

노인의 손이 흔들린다 싶었는데 검기가 이미 능천한의 목 앞에 이르러 있었다.

[...!]

능천한이 탄식하며 몸을 흔들었다.

--- 가각

반응이 빠르긴 했지만 검기가 워낙 빨라 그의 어깨를 가르고 지나갔다.

그러나 옷만 잘렸을 뿐 능천한의 몸에는 흐릿한 자국이 났을 뿐이었다.

[네놈을 누이지 못하면 해천신검제(海天神劍帝)란 이름을 쓰지 않겠다!]

--- 이이잉!

우르르르---!

노인, 해천신검제의 유달리 긴 장검에서 벼락같은 검기가 일었다.

[노공이 해천검파의 당대 장문인...?]

능천한은 침음하며 사란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고의가 아니었소. 다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변명은 지옥에나 가서 하거랏!]

--- ! --- 이잉!

능천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천신검제의 장검에서 벽력같은 검기가 내뻗혔다.

[...!]

--- 르르르...!

능천한은 경시할 수 없어 천극을 마주 흔들었다.

카카--- --- 카캉!

불꽃이 튕기며 해천신검제의 검기가 오리처럼 깨져 흩어졌다.

아무리 날이 무디어도 천극은 천지십병에 드는 신병인 것이다.

[으드득!]

해천신검제는 이를 갈며 장검을 다시 쳐들었다.

--- 이이잉!

그의 장검으로부터 무지개같은 검강(劍罡)이 뻗쳐 나왔다.

[해천극랑파검강(海天剋浪波劍罡)...!]

능천한은 무겁게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등 뒤...!)

능천한은 흠칫하였다.

등 뒤로 한 줄기 인영이 소리없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해천신검제 보다도 강하다!)

능천한은 아연긴장하였다.

등 뒤로 나타난 인물은 능천한이 지금껏 만난 수많은 고수들 중 몇 손가락 안에 끼는 강자였다.

아무리 능천한이라 해도 두 명의 절정고수들을 상대로 경시할 수는 없다.

--- 이이잉!

츠츠츠--- 츠츠츳!

능천한의 일신에서 강력한 기도가 안개같이 일어났다.

[...!]

격노하던 해천신검제의 안색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도 절정에 이른 검수(劍手)로 불리기에는 손색이 없는 고수...!

능천한이 일으키는 기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

능천한 뒤쪽의 인물도 아연긴장한 듯 숨을 멈췄다.

능천한의 몸에서 일어나는 기도가 삽시에 석실을 가득 채운 것이다.

[...!]

[...!]

--- 이이잉!

숨 막힐 듯한 적막이 감돌았다.

어느 순간 해천신검제가 먼저 움직였다.

[해극파(海極波)!]

콰츠츠츠!

검이 앞으로 내찔러지며 폭포가 쏟아지듯이 검기가 폭출되었다.

[환밀파라강수(歡密破羅罡手)!]

거의 동시에 날카로운 교성이 능천한의 등 뒤에서 터졌다.

의외로 여인의 목소리였다.

콰르르르르--- !

--- 이이이이잉!

경천동지할 공세가 능천한을 앞뒤에서 후려쳐 왔다.

[천극망!]

능천한도 지체없이 천극을 휘둘렀다.

--- 자자자작!

--- 이이이잉!

수천 수만 줄기의 극영(戟影)이 석실을 가득 메웠다.

--- --- 가강!

--- --- 차창!

[크읏!]

[으음...!]

경기의 폭풍이 이는 중에서 두 마디 무거운 신음이 들렸다.

능천한은 천극을 거두며 돌아섰다.

[...!]

그런 그의 눈에 한 여인이 가슴을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서역여인...!)

여인을 바라보는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화사한 분홍색 궁장의 여인이었다.

복장은 중원여인의 복장이나 그녀는 누가 보아도 서역 여인이었다.

피부가 우유빛으로 뽀얗기 이를 데 없고.

두 눈이 벽안으로 빛났다.

그리고 중원여인과 달리 그녀의 몸매는 매우 기름지고 풍만했다.

특히 그녀의 유방은 투실투실하기 이르데 없어 물러날 때마다 출렁거렸다.

그 여인은 능천한이 이제껏 만난 그 어느 여인보다도 아름다웠다.

촉망중이었으나 능천한은 벽안여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능천한을 노려보던 벽안여인의 옥용에도 파문이 일었다.

(신존(神尊)에 못자 않은 거인이 중원에도 있었다니...)

벽안여인의 눈빛이 야릇하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환밀후(歡密后)! 분하지만 우리는 아직 저놈의 적수가 못되오!]

해천신검제가 능천한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환밀후... 그것이 이 여인의 별호인가?)

능천한은 무거운 시선으로 두 인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이내 환밀후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사란의 교구를 안아들었다.

[이토록... 끔찍한 짓을 하다니...!]

정신을 잃은 사란의 짓이겨진 하체를 보며 환밀후가 혀를 찼다.

[기다려라. 신존께서 너를 찾으실 것이다!]

해천신검제가 냉갈하였다.

스스스슥!

해천신검제와 환밀후는 사란을 안고 석실을 빠져 나갔다.

[으음...!]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능천한은 괴롭게 신음했다.

[큰 파란이... 나로 인하여 일겠구나!]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해천검파와 요지를 다스릴 수 있는 인물은... 변황의 거인(巨人) 태양신존(太陽神尊) 뿐이고...]

중얼거리며 능천한은 걸음을 옮겼다.

그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이 침중해졌다.

 

능천한은 곧 무너진 석실을 벗어났다.

그가 긴 석로를 절반쯤 지났을 때,

[상공!]

[태상맹주!]

두 명의 여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마주 달려왔다.

홍예선희와 위지련이었다.

[상공...!]

능천한의 어지러운 형색을 본 홍예선희의 옥용이 번민으로 흔들렸다.

[괜찮으시옵니까?]

홍예선희는 능천한의 헝크러진 머리를 쓸어 올려 주며 걱정스레 물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지극한 관심과 염려가 서려 있었다.

[홍예... 괜찮소!]

능천한은 미소를 지으며 홍예선희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부러워...!)

그 모습을 보며 천산홍연 위지련의 귀여운 얼굴에 부러운 빛이 떠올랐다.

[태상맹주! 어서 나가세요. 이 주위로 혈종(血宗)의 마도들이 우글거리고 있어요!]

이어 위지련은 능천한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합시다!]

능천한은 홍예선희의 교수를 잡고 걸음을 옮겼다.

 

스스스스슥!

--- 르르르르!

일남이녀는 흐르듯이 석로를 빠져나가 예의 고정(古井) 밑에 이르렀다.

[쌍검군자께서는?]

--- 이잉!

능천한이 두 언니를 이끌고 고정을 날아오르며 물었다.

[맹주언니가 부르셔서 갔어요.]

[벽라누님이?]

능천한은 흠칫하며 위지련을 돌아보았다.

--- 스슥!

휘르르르르---!

세 남녀는 고정을 벗어났다.

헌데 그 직후였다.

[...!]

[...!]

세 사람은 긴장으로 몸을 굳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폐장은 여전히 괴괴한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그 적막 속에 숨통을 조이는 긴장감이 깔려 있음을 세 사람은 직감했다.

[혈종에서 노린 것이 다만 천향옥잠 뿐이 아니 듯해요!]

위지련이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얘기지?]

[혈종오패(血宗五覇)가 모두 이 주위에 나타났어요. 그들은 모종의 목적이 있는 듯이 웅크리고만 있지 움직이지를 않아요...!]

(혈종오패가 회동? 아직껏 그런 일은 없었는데...!)

능천한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골똘히 생각할 때였다.

[헛허!]

돌연 한소리 담담한 웃음소리가 세 남녀의 귓전을 흔들었다.

[...!]

[...!]

삼인은 아연하였다.

그들은 모두 절정에 이른 고수들이다.

특히 능천한은 천년공력을 지닌 절대고수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주위에 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삼인은 반사적으로 웃음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고개를 돌린 능천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곳은 썩은 물이 고여있는 연못의 정자였다.

그 정자 위에 언제부터인가 한 인물이 뒷짐을 진 채 표표히 서 있었다.

그 인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능천한의 몸이 뇌전(雷電)에 맞은 듯이 흔들렸다.

정자 위의 인물은 자색(紫色)의 곤룡포를 걸친 중년인이었다.

나이는 사십 전후로 보이는데 안면 가득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통 인물이 아니다. 이런 기도를 지닌 인물은 이제껏... 본적이 없다!)

능천한의 검미가 부르르 떨렸다.

자색 곤룡포의 중년인에게서는 기이한 기도(氣道)가 흐르고 있었다.

허허(虛虛)로운 중에...

어느덧 천지를 가득 메우는 장중한 기도가 피어올랐다.

(제왕지기(帝王之氣)...)

능천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곤룡포의 인물에게서 풍기는 기도는 바로 만승지존(萬乘至尊)에게 있음직한 제왕(帝王)의 기도가 아닌가?

누구라도 자의인 앞에 이르면 절로 공경치 않고는 못 배기리라.

(시선이... 아주 눈에 익다... 전에 전혀 만난 기억이 없거늘...)

능천한은 미소를 떠올리며 중년인의 따뜻한 시선을 바라보았다.

자의인의 시선은 아주 따뜻하고 온화했다.

능천한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흡사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그것같았다.

실로 이해가 안가는 눈길이었다.

[허허! 그대가 능붕비의 아들인가?]

자의중년인이 껄껄 웃으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능천한은 공손하게 포권했다.

[그렇습니다. 소생이 능천한입니다.]

[헛허! 갓 낳았을 때 보았거늘... 벌써 이리 컸는가?]

자의인은 흐뭇하게 웃었다.

자의인의 말에 능천한은 흠칫 놀랐다.

[소생을 알고 계십니까?]

[암 알고 말고...]

자의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황백(皇伯)이라고 하며 그대의 엄친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지!]

능천한은 자의인의 말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황백... 황제의 백부라는 이름인데... 아버님은 그런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거늘...)

그러나 능천한은 기이하게도 자의인에게 강력하게 끌림을 느꼈다.

그것은 자의인의 풍도가 아버지 패천황룡 능붕비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자의인의 기도가 오히려 능붕비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점이 다를 뿐...

(이런 분이라면 아버님도 서슴치 않고 교제하셨으리라!)

능천한은 정중하게 자의인을 향하여 고개를 숙였다.

[백부(伯父)님이 되시는군요. 소자 능천한의 절을 받으십시오!]

말을 하며 능천한은 자의인을 향하여 절을 올리려 하였다.

[허허! 그만 두거라!]

자의인은 절을 하려는 능천한을 향하여 소매를 저었다.

(우웃!)

능천한은 경악했다.

천년내공을 지녔다는 그의 허리가 무형강기에 의해 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년내공을 지닌 것이 나 혼자인 줄 알았거늘... 제이의 천향염후가 또한 천년공력을 지녔고... 제왕같으신 이분이 또한...)

능천한은 놀란 표정으로 자의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를 자의인은 온화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헛허... 능씨일가에 거목이 났군!]

자의인... 황백은 껄껄 웃었다.

[지금 곧장 동북(東北)으로 가보거라. 흥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스스스--- 스슥!

황백은 둥실 떠올라 유유히 폐장 밖의 황야로 날아갔다.

[군림천행보(君臨天行步)...]

그 신법을 보며 능천한은 신음하였다.

자의인의 신법은 이백 년 전에 단 한번 나타났던 경공술이었다.

그 경공술은 패천자와 함께 우주혈종을 쳤던 제왕천신(帝王天神)이 사용했었다고 전한다.

[헛허... 많은 계집을 거느리며 정을 뿌리는 것은... 영웅의 본색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거둠에 있어 소홀하면 여인의 한()을 삼을 십분 주의하여야 하느니라!]

그때 능천한의 귓가로 황백의 전음이 멀리서 들려왔다.

(백부님께서... 무엇인가 아셨는가?)

능천한은 사란공주를 범한 일이 생각나 씁쓸하게 웃었다.

이어 그는 홍예선희와 일지란을 돌아보았다.

그녀들은 능천한의 뒤로 다소곳이 서 있었다.

[홍예! 일지소저와 벽라누님을 찾아가오!]

그의 말에 홍예선희의 싸늘한 옥용에 근심의 빛이 떠올랐다.

[동북(東北)에 가시는 일은 그만두셨으면...]

능천한은 홍예선희의 근심에 찬 시선을 대하자 미소가 절로 일었다.

[하하! 근심이 되오?]

홍예선희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신첩의 예감이 불안하여...]

그녀의 말에 능천한은 내심 기이함을 느꼈다.

(홍예는 비밀이 있는 여인이다. 동북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아는 듯하니...-

능천한은 염두를 굴리며 홍예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하하... 걱정 마시오. 벽라누님을 만나뵙고 인사를 드리시오. 그리고...]

능천한은 미소를 지었다.

[하하... 천하제일기루라는 만화원(萬花院)에서 하룻밤 쉬고 싶으니 준비를 해주시고...]

스스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능천한은 이미 이백여 장 밖에 나가 있었다.

천폭환상영이 펼쳐진 것이다.

(강적들이 그곳에 있을 텐데...)

사라지는 능천한을 바라보는 홍예선희의 눈빛이 근심으로 물들었다.

능천한을 못 믿어서가 아니다.

못 믿기는 커녕 그녀에게 능천한은 하늘()과 같았다.

다만 사랑하는 이이기에 천에 하나 다칠까 저어하는 것이다.

[가요 언니!]

위지련이 그런 홍예선희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 그래, 가자꾸나!]

홍예선희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스스스스--- !

두 여인의 교구도 폐장에서 사라졌다.

이내, 폐장에는 다시 적막과 어둠만이 깊게 깔려 흘렀다.

 

***

 

[철혈묵사(鐵血墨獅)! 뜻을 바꿀 수 없는가?]

한 명의 청년이 무겁게 말했다.

일신에 청삼을 걸친 청년은 영준하고 당당한 기도의 소유자였다.

일견하여 청삼청년의 일신에서는 폭풍(暴風)같은 잠력이 느껴졌다.

이곳은 숲속의 널찍한 공지다.

공지 중앙에 이인(二人)이 마주 서 있고,

그들 주위로 팔인의 청의인들이 둘러서 있었다.

팔인은 하나같이 신광이 안으로 갈무리된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청삼청년의 전면.

[...!]

사자(獅子)의 눈을 지닌 흑포장한이 철탑같이 서 있었다.

철혈로 뭉쳐진 듯한 육중한 분위기의 인물...

그의 별호가 철혈묵사(鐵血墨獅)인 듯 했다.

[...!]

[...!]

청삼청년과 철혈묵사는 묵묵히 서로를 주시하였다.

문득 철혈묵사가 침중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본인이 혈종오패에 든 것은 쌍극천효에게 신세를 졌기 때문이고... 그 신세는 황산일전(黃山一戰)에서 갚았다.]

그러자 청삼청년이 얼굴을 굳히며 말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 혈종오패의 대열에서 물러서겠다는 얘기인가?]

철혈묵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더 이상 혈종의 이름을 본인과 연결지으려 하지마라. 본인과 철혈회(鐵血會)는 다만 철혈일문(鐵血一門)에 속할 따름이나...]

[으음...]

청삼청년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철혈묵사! 물론 고이 혈종에서 빠져 나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청삼청년의 말에 철혈묵사의 안색에 어두운 기색이 돌았다.

[폭풍대공(暴風大公)... 내 손이 그대를 상대로 피를 보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래도 한 때의 동지였던 그대들을 쓰러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본대공 또한... 철혈오패 중 그대만이 본대공과 뜻을 나눌 수 있는 제목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괴롭다!]

스스스!

폭풍대공이라 불린 인물도 괴로운 표정으로 말하며 물러섰다.

 

(폭풍대공... 저 인물이 바로...)

한 쌍의 시선이 장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능천한의 가지가 무성한 소나무 위에 몸을 숨긴 채 장권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한 인물... 혈종오패 중 폭풍보(暴風堡)의 폭풍대공이 가장 신비하다더니 사실이었군!)

능천한은 형형한 눈빛으로 폭풍대공을 바라보았다.

 

<폭풍대공(暴風大公)>

 

근래 철혈묵사라는 이름과 함께 천하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이다.

그는 폭풍보라는 신비집단의 영수이며,

그 자신 또한 혈종오패 중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천하인은 정확히 그의 진정한 능력을 알지 못한다.

그 운중(雲中)에 가린 그의 진면목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혈종오패 중 최강을 철혈묵사라 칭함은 잘못이다. 폭풍대공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다.>

 

폭풍대공!

이름그대로 일신에 폭풍같은 장력을 지닌 인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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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 章

 

                  悽絶落花

 

 

 

여인(女人)이 있었다.

아니, 차라리 우물(尤物)이라 해야 옳으리라.

[으음...!]

능천한!

천하제일의 정력(定力)을 가진 그의 두 다리가 미미하게 떨린다.

그는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석벽이 무너진 틈을 주시하였다.

한 명의 우물이 그곳에 서 있었다.

너무도...

너무도 완벽한 미인이었다.

옥으로 빚어 놓은 듯한 옥용,

뇌쇄적인 매력이 폭발할 듯이 출렁이는 동체...

그리고,

입가에 떠오른 도발적인 미소,

사내로 하여금 환몽에 사로잡히게 하는 기이한 체향(體香),

능천한의 안색이 시뻘개졌다.

걷잡을 수 없는 욕정이 화산 터지듯이 일어나는 것이다.

(... 안고 싶다. 한 번만 안아보면 죽어도 한이 없으리라...)

능천한,

천하제일 정력가라는 그마저 걷잡을 수 없이 여인에게로 빠져들었다.

그 정도였다.

가공하다 함이 옳을 여인의 마력은 그토록 가공한 것이었다.

[호호... 상공...!]

여인이 까르르 교소를 터뜨렸다.

소녀의 천진함,

중년미부의 푸근함,

탕녀의 끈적끈적한 색기,

기이하게도 서로 상반되는 이런 분위가가 하나에 집약된 목소리였다.

[호호... 상공께선... 참으로 영준하세요.]

미인이 팔을 활짝 벌리며 다가왔다.

그녀의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속이 환히 비춰 보이는 나삼 하나...

그 나삼 속에서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육봉이 출렁였다.

[호호... ! 소녀는... 상공것이에요. 어서 갖으세요.]

미인이 교태를 똑똑 떨구며 다가왔다.

[...!]

능천한의 눈이 욕정으로 시뻘개졌다.

그의 시선은 미임의 쭉 뻗은 두 다리 사이,

우거진 방초로 뒤덮인 둔덕을 노려보고 있었다.

[흥흥... 아이... 어서...!]

미녀가 허리를 교태롭게 비틀며 능천한의 면전으로 다가섰다.

코를 찌르는 체향,

[...!]

능천한은 와락 미녀의 허리를 휘감아갔다.

[호호호...!]

미녀는 교태를 떨구며 허리를 비틀었다.

한데,

[...!]

그녀의 허리를 비틀어 안으려던 능천한의 몸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미녀의 옥용에 흠칫하는 빛이 떠올랐다.

능천한,

방금 전까지 욕정에 몸부림치던 능천한이 뚫어져라 그녀의 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삼단같이 틀어올린 그녀의 머리.

그곳에는 분홍빛 요기를 떨치는 비녀가 꽂혀 있었다.

능천한의 안색이 일시에 싸늘해졌다.

극사(極邪)!

그 비녀는 극사지기(極邪之氣)를 뿌리고 있었다.

천극대정신맥은 극사와 극마에 극성(極性)임이라.

욕정을 일으킨 것은 미녀의 분위기와 미모 때문이었다.

그것은 천극대정신맥의 정기로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비녀에서 흐르는 극사지기는 다르다.

그 극사지기를 접하자 천극대정신맥이 막강한 대정지기(大正之氣)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천향옥잠(天香玉簪)! 천향염후(天香艶后)의 화신이로구나!]

능천한의 폭갈이 터지고,

--- --- --- ---!

--- 쿠쿠쿠쿵---!

두 사람의 사이에서 가공스런 굉음이 터졌다.

양인의 몸에서 최극강의 강기가 터져 나온 것이다.

콰르르르--- 르릉!

--- --- ---!

양인의 충돌에 견디지 못하고 석실의 천정이 무너져 내렸다.

우수수수...!

그러나,

만근의 석괴들조차 양인의 주위에 이르러서는 먼지로 부숴졌다.

[천향염후! 천년 공력을 지녔다니... 놀랍구려!]

사진사이에 우뚝 서서 능천한이 묵직하게 말했다.

일차 충돌에서 양인은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했다.

놀랍게도 제이의 천향염후 역시 천 년에 이르는 내공을 지닌 것이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힘이었고,

능천한으로서도 일시지간에 어찌할 수 없는 힘이었다.

[패천잠룡... 아니 패천지존(覇天至尊)이라 해야 어울리겠죠. 이미 잠룡이 아니니...]

천향염후가 교소를 지었다.

가히 뇌쇄적인 미소지만 능천한은 아주 담담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패천지존이라... 과분한 칭호...!]

능천한이 담담하게 말했다.

[호호... 과분하지 않아요. 당대에 있어 본후말고 천년공력을 지닌 사람이 있다니... 기뻐요!]

미녀는 뇌쇄적인 추파를 던졌다.

[만일... 당신이 본후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했어도 본후는 당신께 본후의 순결을 드렸을 거예요. 호호... 물론... 쾌락을 즐기신 후 본후의 손에 고혼이 되었겠으나...!]

능천한은 침중한 표정이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 천향염후가 되었는디는 모르나 한가지를 명심해야 할 것이오.]

[호호, 말씀해 보세요. 세이경청할 터이니...!]

천향염후가 깔깔 웃었다.

그녀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교태롭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기에 충분한 것이,

그녀는 제일 천향염후보다도 오히려 강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능천한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대는 어찌 되었든 여인이고... 여인인 이상 여인지도(女人之道)를 걸어야 할 것이니... 옥체를 소중히 하여야 할 것이오!]

능천한의 목소리는 장중했다.

그 목소리에는 대정지기(大正之氣)가 실려 있어,

꽉 닫힌 천향염후의 심정을 깨치고 들어가 지워질 수 없게 새겨졌다.

[...!]

교태롭던 천향염후의 옥용이 일그러졌다.

[... 본후의 심령을 뒤흔들다니...!]

그녀의 옥용이 새파란 살기로 뒤덮였다.

자신의 자존심이, 자부가 능천한의 한 마디에 깨어져 버린 것이다.

[빠드드득!]

천향염후는 이를 갈았다.

[내게 치욕을 주다니... 너를 갈가리 찢어 죽여 분을 풀리라!]

--- 이이잉!

스스스스---!

천향염후의 교구 주위로 분홍빛 강기가 무럭무럭 일었다.

[으음...!]

그런 천향염후의 모습에 능천한은 한숨을 쉬었다.

(사기(邪氣)가 골수에 박혔다. 나의 대정지기로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그는 한숨을 쉬었다.

--- 이이잉!

그의 손에 들린 천극에서도 장중한 기운이 일었다.

[호호호... 네가 과연 천향미욕심공(天香迷欲心功)에도 견디는가 보자!]

츠츠츠--- ---!

휘츠츠츠---!

일시에 분홍빛 강기가 확 퍼져서 능천한을 뒤덮었다.

[!]

자기도 모르게 분홍빛 기류를 들이마신 능천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고요히 가라앉았던 욕정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살수... 천향여음정(天香女淫精)을 마시다니...!]

능천한이 휘청하였다.

 

---천향여음정(天香女淫精),

 

천향지체가 된 여인이 몸에서 나오는 여음지정(女淫之精)이다.

이는 최극의 흥분제로 음양교합외에는 달리 해독할 방도가 없는 지독한 것이다.

그것을 방심하다가 한 모금 들이마시고 만 것이다.

[호호호호! 누워랏!]

--- 우우웅!

츠츠츠츠--- !

칼날같은 지강(指罡)이 능천한의 호신강기를 꿰뚫으며 날아들었다.

[...!]

스스스슥!

능천한이 몸을 흔들자 그의 신형이 백팔 개로 흩어졌다.

 

---구유백팔유령흔

 

유령대제가 남긴 최고지강의 보법이다.

그러나,

[흣호! 눈가림은 조무무라기들이나 속일 수 있음을 잘 알텐데...!]

--- 이이이잉!

츠츠츠츠---!

천향염후의 섬섬옥수가 환영으로 몸을 숨긴 능천한의 가슴으로 정확히 파고들었다.

[! 자극천단강!]

능천한은 이를 악물며 좌수를 쪼개내었다.

--- !

[!]

일수를 내친 능천한의 몸이 휘청하였다.

욕정을 누르느라 전력을 공세에 쏟지 못했고, 당연히 손해를 본 것이다.

(빨리 결판을 내자!)

능천한은 이를 악물었다.

[호호... 천향옥잠의 진정한 무서움을 알려 주겠다!]

그때였다.

천향염후가 머리에 꽂고 있던 천향옥잠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 !

갑자기 천향옥잠에서 삼 장 길이의 강기()가 내뻗쳤다.

[호호! 천향단강(天香丹罡)이다.]

--- 아앙---!

천향염후가 그대로 천향단강을 휩쓸어 왔다.

[찻핫! 거령폭류참!]

--- --- !

천극에서도 폭풍이 쏟아졌다.

--- 르르르릉!

--- 콰콰--- !

[!]

[!]

--- - !

굉음 속에서 양인이 동시에 뒤로 밀려갔다.

(선기를 빼앗기면 안된다!)

능천한은 천극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자령천존수(紫靈天尊手)!]

벼락같이 우수를 쪼개어 내었다.

그러자,

--- 우우웅!

갑자기 석실 전체가 진공상태로 변하며 사위가 자광(紫光)으로 뒤덮였다.

[... 그대가... 자부지존이기도 하다니....!]

그속에서 경악성이 터지고,

--- 이이잉!

천향염후는 전력을 다해 천향옥잠을 그어 내었다.

--- --- !

불꽃이 튀고,

자고아이 흔들하였다.

그러나,

그 바람에 천향염후의 가슴에 헛점이 드러났고,

[가랏! 벽뢰섬(闢雷閃)!]

--- 자장!

--- !

패천신륜이 뇌전같이 그녀의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

천향염후로서는 막아낼 여유가 없었다.

--- ! --- !

[!]

패천신륜은 천향염후의 가슴에 부딪혀 튕겨나갔고,

그즉시 그녀의 가슴에 선혈이 확 일었다.

이미 금강불괴지체를 이룬 그녀이건만 패천신륜의 예기 앞에 피를 보고 만 것이다.

[--- ! !]

--- 이이잉!

천향염후는 가슴을 감싸안고 몸을 날렸다.

삽시에 그녀의 모습은 석벽사이의 통로로 사라졌다.

[!]

--- !

되날아온 패천신륜을 받아든 능천한은 털썩 주저 앉았다.

전력을 다해 공력을 사용했고,

그 때문에 간신히 억눌렀던 욕정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 지독하구나. 천향여음정...!]

능천한은 전신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욕정에 몸부림쳤다.

[... 정신을 잃으면 안되는데...!]

능천한은 정신을 차리려고 천극(天戟)의 날()을 손바닥으로 움켜 쥐었다.

그러나,

천극의 날은 너무 무디고,

그의 손바닥은 금강지수(金剛之手)이니 피가 날 까닭이 없다.

[제길... 이것도 안되다니...!]

능천한은 혼몽 속으로 빠져 들며 투덜거렸다.

그가 막 혼미한 상태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오빠! 오빠!]

한 줄기 홍영(紅影)이 바람같이 석실 안으로 날아들었다.

유난히 눈이 크고 짙은 갈색의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미인이었다.

[홍예?]

능천한은 부르르 떨며 신음하였다.

여쳬가 가까이 있자 욕정이 배가하여 그의 한가닥 이성도 무너뜨리고 말았다.

[오빠... 어디 다치셨어요?]

갈색의 이국적인 미인이 멋도 모르고 다가섰다.

그 순간,

[흐흣!]

--- --- !

능천한은 음탕한 웃음을 흘리며 그대로 미녀를 덮쳐갔다.

[! ... 왜이래욧?]

여인이 질겁을 하며 바둥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바둥거림은 능천한의 격렬한 욕정 앞에서는 너무도 무기력했다.

[흐흐흐...!]

--- 지직!

--- 우우욱!

[아악! 놓아줘요... 아아... 안돼!]

미녀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능천한의 거친 손길은 미녀의 풍만한 동체를 가린 홍의를 단번에 북북 찢어버렸다.

투실투실한 유방이 거칠게 유린당하고,

팽팽한 하복부,

한줌의 세류요(細柳腰),

쩍 벌어진 둔부 등이 삽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흐흐흐...!]

[아악... 아파... 아아악! ... 오빠... 나좀... 사란을... ... ...!]

능천한의 떡 벌어진 몸에 짓눌린 미녀의 몸부림은 너무도 미약했다.

능천한은 그녀의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유방을 터질 듯이 주무르고 덥석 깨물어 난자하였다.

[흑흑... 아아아... 아파... 엉엉...!]

미녀는... 갈색의 육감적인 육체를 버팅기며 유린당했다.

한순간,

[--- 아악! --- !]

미녀의 큰눈이 허옇게 치떠지고,

그녀의 미끈한 허벅지가 허공으로 버팅겨져서 부들부들 떨렸다.

[으흑...!]

미녀는 죽을 듯한 고통에 능천한의 등을 마구 헤집고,

그의 어깨를 있는 힘을 다해 물어뜯었다.

물론... 금강불괴지체인 능천한의 몸에 상처가 날 까닭이 없지만,...

그녀의 입시여 년을 고이 지켜온...

가장 소중한 것이 깨져 버린 것이다.

[---! 아악... 제발... 그만... 사란을... 살려주세... 아학!]

미녀는 능천한이 한번 내리찍을 때마다 사경을 넘나들어야 했다,

[흐흐흐... 헉헉...!]

[아흐윽... 아파... 제발...!]

폭풍!

능천한은 폭풍이 되어 미친듯이 어린 희생자를 몰아쳤다.

여리고 보드라운 대지가 그의 폭풍을 맞아 갈가리 찌기고 부수어져 나갔다.

처연한...

실로 애처로운 낙화(落花)였다.

 

[...!]

문득,

능천한은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순간 응천한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그의 육중한 몸밑에 깔린 애처로운 여체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고통을 참느라 너무도 세게 물어 입술에서 선혈이 터져 흐르고...

곱던 동체가 유린당하여 시퍼렇게 멍이 든 미인(美人)...

바로 변황에서 온 소녀 사란공주였다.

[... 내가... 사란을...!]

능천한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으음...!]

몸을 일으키던 능천한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사란공주의 하복부...

최초의 향위도 견디기 힘들거늘...

성숙한 여인도 견디기 힘든 격렬한 향위를 받아들인 사란의 하체...

그곳은 실로 처참했다.

찢기고 깨쳐져서 온통 선혈로 범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 ... 사란... 사란...!]

능천한은 다급히 사란의 심맥을 살폈다.

이내 그의 얼굴에 일말의 안도의 빛이 흘렀다.

[... 살아있다!]

사란은... 그 험한 일을 당하고도 살아있는 것이다.

보통의 아녀자라면 견디기 힘들겠으나 그녀는 절정에 이른 고수였기에 다만 혼절했을 따름이다.

우르르르르---!

이내 능천한의 장심에서 향기를 띄운 기류가 일어 사란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천약심향대법으로 얻은 약종지기가 떨쳐지는 것이었다.

[깨어나거라. 그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대에게 사죄할 터이니...]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연신 사란에게 약종지기를 불어놓었다.

그러자 새하얗던 그녀의 안색에 점차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

사란은 힘겹게 눈을 떴다.

[사란!]

능천한은 너무도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와락 사란을 끌어안았다.

사란은 잠시 넋이 나간 표정으로 능천한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 ... 오빠... 무서워...!]

그녀는 능천한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사란...!]

능천한은 죄책감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그는 공포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사란을 꼭 끌어안았다.

그때였다.

[... 이놈! 당장 공주님을 내려놓지 못할까?]

한소리 분노에 찬 폭갈이 능천한의 구시전을 두들겼다.

(...!)

능천한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석문 입구에 한 명의 노인이 부들부들 떨며 능천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분노...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죄책감에 몸을 떨고 있는 노인.

그는 바로 유난히 긴 장검(長劍)을 지녔던 그 노인이었다.

[... 네놈이 공주님을 능욕하다니...!]

처참하게 유인당한 사란의 육체,

그것을 본 청의노인의 노구가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第三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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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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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九 章

 

                   女人 絶代者 天香艶后

 

 

 

능천한은 바람처럼 백여 장을 전진했다.

[--- !]

[--- 아아악!]

그러자 격전이 벌어지는 소음이 들려왔다.

(고정을 통하지 않고도 상당한 고수들이 들어와 있군!)

능천한은 염두를 굴리며 전장으로 접근하여 갔다.

 

[호호호홋!]

[깔깔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하다.

너무도 끈적끈적하여 본능을 달아오르게 교소다.

그 뿐인가?

사르르르르...!

스스스스...!

붉은 홍라(紅羅)가 너울거리고...

분홍빛 육향이 사위를 가득 메웠다.

하느적거리는 육체...

연어의 뽀얀 속살과 암야의 짙음을 함께 지닌 여체(女體)들이다.

[흥흥... 아이...!]

[--- ... 아으음...!]

흔들린다!

여체가 나비같이 흔들리고,

억누를 길 없는 본능을 자극하는 육향이 뒤덮여 씌워졌다.

그러나...!

그 환몽의 유혹에는 죽음()이 있다.

[!]

[--- 에엑!]

눈이 시뻘개져서 여체를 쫓던 사내들이 픽픽 고꾸라졌다.

유혹하던 교수가 어느새 붉은 선혈을 묻히니...

백옥의 동체에 선혈이 피니 너무도 아름답기까지 하지 않는가?

여인들!

붉은 천조각을 휘저어 나신을 살짝 가린 여인들의 군무(群舞)를 추고 있다.

[흐응... 아흐응... ...!]

[호호호...!]

끈끈한 교성이 뇌쇄적인 동체에서 인다.

여인들은 둥근 환진(環陣)을 이루어 육, 칠십여 명의 사내를 가두고 있었다.

 

---나혼절염무(裸魂絶艶舞).

 

치명적인...!

사내들에게는 너무도 치명적인 미혼대법(迷魂大法)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심기가 허약한 사마외도들에게는 더욱 더 치명적인 대법이다.

[으으... 못참겠다...!]

[... --- !]

[...!

환진에 갇힌 사내들은 이미 대부분이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자들 대부분이 마도와 사도의 무리들인지라,

속절없이 나혼절염무에 걸려 들어가는 것이다.

[--- !]

[--- 아악!]

! !

욕정에 눈이 멀어 나녀들에게 달려들던 자들은 머리가 박살 나서 나뒹굴었다.

환진에 갇힌 인물들 중 그래도 이성을 잃지 않은 인물들은 단 삼인이었다.

두 눈이 시퍼런 벽안독마가 그 한 명이고,

검미를 찌푸리고 있는 쌍검군자,

못볼 것을 보는 듯이 눈을 꼭 감고 있는 소녀 천산홍인 위지련이 그들이다.

그러나 벽안독마와 쌍검군자의 안색도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쌍검군자는 입술을 악물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추태를 면치 못하리라!)

그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일렁이는 여체들로 인하여 점차 심기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 에익...! 지저분한 계집들...!]

벽안독마가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는 어떤 사연으로 인해 여자에 대해 지독한 혐오감을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마도에 든 자로서 나혼절염무를 버티어 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안독마는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우르르르---!

--- --- 애액!

그는 대갈일성과 함께 시퍼런 독강(毒罡)을 쏟아냈다.

[주의하랏!]

어디선가 여인의 경호성이 들리고,

스스스스--- !

나녀들은 민첩하게 몸을 틀었다.

[--- 에엑!]

[--- !]

애꿎게도 벽안독마의 전면에 있던 무림인들만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츠츠츠츠---!

쓰러진 군웅들은 이내 시퍼런 독수로 녹아들었다.

실로 지독하기 이를 데 없는 독공이었다.

벽안독마가 불 맞은 짐승같이 길길이 날뛰었으나,

[... --- !]

[... 안돼! 케엑!]

쿠르르르르---!

퍼퍽!

애꿎게 죽어 넘어지는 것은 군웅들이었다.

[독마! 멈추시오!]

보다 못한 쌍검군자가 대갈하며 벽안독마를 향해 폭갈을 질렀다.

[()가야! 네 할 일이나 해랏!]

벽안독마가 흉흉하게 외쳤다.

[그대가 발작하면 애꿎은 사람들만 피해를 입음을 모르오?]

쌍검군자가 벽안독마의 앞을 가로 막았다.

[비켜랏! 본좌는 저 냄새나는 계집들을 쳐죽이지 않고도 못 견디겠다!]

[어리석은...!]

쌍검군자가 얼굴을 싸늘히 굳혔다.

[호호호...!]

[--- 깔깔깔...!]

! !

[--- 에엑!]

[--- !

그사이에도 군웅들은 어지러이 나녀들의 교수 아래 쓰러졌다.

그때였다.

[우우--- 우우...!]

갑자기 우렁찬 창룡후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 장소성에는 폐부의 잡기를 몰아내는 많은 기운이 가득했다.

[!]

[...!]

[---!]

나무를 추던 나녀들이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그녀들의 옥체가 선혈로 시뻘겋게 얼룩졌다.

그리고,

[... !]

[으윽... ... 지독한!]

군웅들도 픽픽 쓰러지고

벽안독마와 쌍검군자의 안색도 하얗게 변했다.

[지독한 내공... 누구기에...!]

쌍검군자는 경이의 눈길로 장소성이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 태상맹주(太上盟主)!]

장소성의 주인을 알아차린 천산홍연 위지련의 얼굴에 화색이 가득해졌다.

[태상맹주께서...?]

쌍검군자도 흠칫할 때였다.

뚜벅! --- !

한쪽의 석로(石路)에서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 발자국 소리에는 태산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 심혼이 부서지는 듯하다...!)

벽안독마의 안색이 푸르뎅뎅하게 변했다.

가공할 기도가 그 발자국 소리에 담겨 있는 것이다.

[...!]

[...!]

나녀들과 군웅들도 주저앉은 채 석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순간,

--- 쿠쿵!

석로의 일각이 와르르 무너지고,

황포청년이 극()을 옆에 끼고 전장으로 들어섰다.

[...!]

[으음...!]

중인들은 일시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 크게 보인다!)

그들의 눈에는 능천한의 육 척 장신이 흡사 태산같이 보이는 것이다.

[...!]

능천한은 깊숙이 가라앉은 눈길로 장내를 돌아보았다.

[태상맹주님!]

--- 이익!

위지련이 희색이 만면하여 능천한의 앞으로 날아내려 무릎을 꿇었다.

[! 일어나시게!]

능천한의 위지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태상맹주를 뵈외다!]

쌍검군자가 다가와 정중하게 포권을 하였다.

능천한도 천극을 세우며 답례를 하였다.

[난경을 겪으셨외다!]

능천한은 쌍검군자의 인사를 받고는 한쪽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귀하! 그만 나오시는 것이 어떻소?]

능천한이 석벽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

[...?]

쌍검군자 등이 의아해 할 때였다.

[으음... 바로... 너였으냐?]

고통스런 여인의 목소리가 석벽 안에서 들렸다.

그리고,

--- --- 쿠쿵!

스스스스---!

그곳의 석벽이 모래로 부서지며 한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능천한과 중인들은 나타난 여인을 일제히 주시했다.

그 여인은 자색궁장을 운치있게 차려입은 삼십대의 중년미부였다.

일견 싸늘함이 배어 흐르나 더할 수 없는 기품과 위엄을 갖춘 미부인이었다.

[으음...! 천환여제(天幻女帝)...!]

여인을 발견한 쌍검군자가 신음을 토했다.

겉보기에 그는 중년이다.

하지만 실제 나이가 칠십이 넘은 노인이다.

천환여제는 그와 동년배인 것이다.

[으드득! 천환여제! 네 계집들에게 당한 빚을 갚겠다!]

--- 이이잉!

쿠르르르--- !

벽안독마가 대갈하며 벽독마라강살(碧毒魔羅罡煞)을 내쳤다.

[벽안독마...]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일갈하며 천극(天戟)을 무찔러 내었다.

--- 쿠쿵!

천극에서 해일이 일고,

[!]

벽안독마가 허공에서 휘청하며 떨어졌다.

천극에서 뻗친 무형강기에 가격당한 것이다.

[패찬잠룡! 네놈이...!]

벽안독마는 능천한을 노려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두고 보자! 독종(毒宗)의 저주가 네게로 이를 것이다!]

스스스슥!

벽안독마는 능천한과 천환여체를 노려 보다가 몸을 날려 사라졌다.

(천환여체를 치려는 저 노마를 왜 막았을까?)

능천한은 내심 곤혹한 심정이 되었다.

그는 천환여제를 바라보았다.

 

---천환여제(天幻女帝).

 

분명코 처음보는 얼굴이다.

한데 기이하게도 능천한에게 천환여제는 낯설지가 않았다.

꼭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느낌이 들고...

(어머님의 생전 모습도 저러하시리라.)

그는 천환여재의 얼굴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

천화여제의 표정도 기이했다.

웃는 듯, 마는 듯,

노한 듯, 미소를 짓는 듯,

복잡한 표정으로 능천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능붕비의 아들이구나!]

천환여제가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소자가 능천한입니다.]

(소자(少子)?)

쌍검군자와 위지련이 멍청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천환여제의 안색도 아주 묘하게 변했다.

(소자라... 나도 너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할 때가 있었고... 사실 내가 네 에미가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천환여제의 안색이 여러 번 흔들렸다.

두 사람 사이의 기묘한 분위기에 장내의 분위기도 따라서 이상해져 깄다.

나무를 추던 여황교의 소녀들은 부끄러운 듯이 은밀한 곳을 가리며 한쪽의 석문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천환여제가 괴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돌아가거라! 능붕비의 얼굴을 보아서... 너와 싸우고 싶지 않다!]

천환여제의 말에 능천한은 난색을 떠올렸다.

[그렇게 해드렸으면 좋겠으나... 소자는 궁주께서 제이의 천향염후(天香艶后)를 키우고 있다고 들었기에...!]

천환여제가 싸늘한 안색을 떠올렸다.

[이미 늦었다. 오늘 밤으로 천향염후가 다시 태어나게 된다!]

능천한의 안색도 침중해졌다.

[천하가 위태해지는 결과가 명약관화하므로... 소자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천환여제의 목용에 경련이 일었다.

그녀는 천하에서 가장 고집이 센 여인이다.

물러설 까닭이 없다.

[네가... 힘으로 본여제의 일을 막겠다는 얘기냐?]

[달리 도리가 없으므로...!]

[오냐! 능붕비가 자식을 어떻게 잘 가르쳤는지 보겠다!]

--- 르르르르--- !

천환여제의 일신에서 노도같은 강기가 일어났다.

[우웃!]

[어멋!]

쌍검군자와 위지련이 아연하여 뒤로 밀려났다.

우르르르...!

쿠쿠--- --- 쿠쿵!

그녀의 일신에서 여인의 그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고 웅장한 기도가 구름같이 일어난 것이다.

(강하다. 석달 전의 나만큼이나...)

능천한은 침중한 안색으로 천극을 쳐들었다.

[받아랏! 대천신후강뢰(大天神后罡雷)!]

--- 자자작!

천환여제의 몸에서 벼락이 쏟아졌다.

[뇌우(雷雨)!]

능천한도 천극을 마주 내쳤다.

--- 우우웅!

--- !

우르르르---!

굉렬한 폭음이 일면서 석산전체가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그중에서!

[빠드득! 자신 있으면 들어와 보아랏!]

천환여제의 몸이 튕겨져서 석벽틈으로 날아들어갔다.

언뜻 능천한은 천환여제의 입가로 선혈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못할 짓을 한 것 같군!)

능천한은 자신이 부상당한 듯이 마음이 아픔을 느꼈다.

그의 이런 감정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었다.

--- ! --- !

능천한은 천극을 비껴들고 천환여제가 사라진 석벽으로 다가갔다.

[...!]

[...!]

쌍검군자 등도 긴장된 안색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 우웅!

우수수수수...!

석벽이 무형의 강기로 뻥 뚫려 버렸다.

(과연... 맹주께서 태상맹주로 모실만한 분이다.)

쌍검군자의 얼굴에 감탄의 기색이 흘렀다.

석벽 안쪽은 긴 통로였다.

[본인의... 십 장 뒤로 오십시오!]

능천한은 쌍검군자 등에게 그렇게 말하고 통로를 걸어들어갔다.

헌데 그가 채 십보도 걷지 않았을 때였다.

--- !

석굴의 밑바닥이 그대로 훌떡 뒤집혔다.

[!]

[태상맹주님!]

지켜보던 위지련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능천한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둥실 허공을 떠서 함정을 지나갔다.

--- 가각!

쿠르르릉!

천극이 석벽의 일각을 후려쳤다.

그그긍!

그러자 바닥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중인들은 한숨을 쉬며 능천한의 뒤를 따랐다.

능천한은 묵묵히 앞으로 나갔다.

 

석로는 끔찍한 기관함정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능천한이 누구인가?

천하학문에 달통하고 거기다가 만절기사의 만절기환록마저 자기 것으로 한 기재다.

아무리 교묘한 기관장치와 함정들도 그 앞에서는 무력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반각이 안되어 능천한은 서른 두 가지 함정을 뚫고 지났다.

그르르르릉!

마지막 관문인 석문이 열렸다.

그러자 야광주로 환하게 빛나는 석실이 나타났다.

[...!]

능천한은 천극을 비껴들고 석실로 들어섰다.

그가 막 석실로 들었을 때였다.

[호호호호...!]

갑자기 한소리 여인의 교소가 터졌다.

한데 그 교소는 보통의 교소가 아니었다.

[!]

능천한은 교소를 듣자 아찔해짐을 느끼고 아연해졌다.

그가 이러니 타인들은 오죽하겠는가?

[으으...!]

[!]

능천한의 뒤를 따른 군웅들의 안색이 백지장같이 하얘지고,

일부는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으음...]

능천한의 안색이 더할 수 없이 심각해졌다.

(한발 늦었다. 대법이 끝나 제이의 천향염후가 탄생하였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태상맹주...!]

쌍검군자가 쓰러진 위지련을 부측하며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할 걸음 늦었소. 대법이 끝난 모양이오!]

능천한이 말을 마치는 순간,

[깔깔깔...!]

다시 예의 교소가 터졌다.

그 교소는 한결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

[--- !]

다시 십여 명이 선혈을 토하며 나뒹굴었다.

쿠오오오!

그와 함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향기가 실내에 가득히 퍼졌다.

[호법께선 군웅들을 이끌고 이탈하시오!]

능천한의 말에 쌍검군자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태상맹주께서는...?]

[천향염후를 상대해보겠소.]

그리고는 그는 걱정하는 쌍검군자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마십시오. 그녀에게 천향옥잠이 있다면... 제게는 패천신륜의 천극이 있으니...]

쌍검군자는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럼... 보충하십시오.]

쌍검군자는 능천한에게 예를 올린 뒤 위지련을 안고 급히 석실을 나갔다.

군웅들도 화급히 그 뒤를 따랐다.

이내 석실에는 능천한 혼자 남게 되었다.

[호호호호...!]

재차 교소가 들려왔다.

그 교소는 어느덧 지척에서인 듯이 들렸다.

[...!]

능천한은 가슴이 울렁이고 전신이 후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천지이교가 타통되고 천년공력을 지닌 능천한이었다.

그런 그이건만 여인이 교소에 심력이 흩어지려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여인의 교소에는 뇌쇄적인 가공스러움이 있었다.

(향기가... 더욱 짙어졌군.)

능천한은 심호흡을 했다.

실내에는 여인의 체향같기도 한 기이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향기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력이 담겨 있었고,

범인이라면 한 모금만 마셔도 혼미해질 정도로 지독한 것이었다.

그러나 능천한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점차 마음이 가라앉고 있었다.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

 

그 천고에 신맥을 지녔기에 가능한 정력(定力)이었다.

[호호호...!]

--- 콰콰--- !

문득 석실전면의 석벽이 굉열한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강렬한 천향(天香)!

[...!]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석벽이 무너진 곳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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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八 章

 

                        古井秘密

 

 

 

[...!]

홍예선희가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접한 능천한은 내심 뜨끔했다.

홍예선희의 봉목에 어떤 결연한 빛이 감도는 것을 본 것이다.

(이 여인... 설마...)

홍예선희는 다소곳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면서 나직하나 아주 강경한 의지가 담긴 어조로 말했다.

[천첩... 비록 기녀의 몸이오나... 아직 청백지신(靑白之身)이옵니다.]

[...]

홍예선희의 말에 능천한은 표정이 복잡해졌다.

예감이 맞아 들어가는 것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천첩은... 처녀지신으로... 단 한 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곳까지 상공께 보여 드렸사옵니다.]

그녀는 능천한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능천한도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홍예선희의 봉목은 뜨거운 정열로 달아올라 있었다.

[상공께서 천첩을 거두시든지 어찌하시든지간, 천첩은 이제 상공을 위해 목숨으로 지켜야 할 정절(貞節)이 생겼사옵니다.]

[그대는...]

능천한이 무어라 말하려 하였으나,

홍예선희는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화답을 주소서. 만일 거두어 주신다면 상공에 대한 정절을 지키겠습니다.]

[으음...]

능천한의 표정이 당혹하게 물들었다.

홍예선희의 말은 반협박조였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만도 없었다.

능천한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구려.]

[상공...]

홍예선희의 눈빛이 흔들렸다.

(벽라누님에게 또 죄를 짓는군!)

능천한은 금벽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직후였다.

[...!]

능천한은 검미를 찌푸렸다.

[무슨 일이온지요?]

홍예선희가 흠칫하며 능천한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인간의 심리를 철저하게 파헤치는 훈련을 받았다.

그 훈련 덕분에 그녀는 능천한이 무엇인가를 감지했음을 재빨리 알아본 것이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소.]

능천한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홍예선희의 눈이 갑자기 형형하게 빛났다.

마침 능천한은 누각 밖으로 시선을 돌려 홍예선희의 일변한 눈빛을 보지는 못했다.

(상당한 고수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을 주시하였다.

스스스슥---

야공을 가르며 한 명의 노인이 날아 내렸다.

칙칙한 회의를 걸치고 머리를 삭발한 자인데,

두 눈에서 섬뜩한 벽광(碧光)이 흐르고 있었다.

(독문(毒門)의 고수다. 벽독마라강(碧毒魔羅罡)을 익혔군!)

능천한은 단정히 앉은 채 그자를 내려다보았다.

문득 홍예선희가 전음으로 말했다.

[저자는 벽독문(碧毒門)의 문주인 벽안독마(碧眼毒魔)예요.]

[벽독문의 문주...]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벽독문(碧毒門),

 

독종(毒宗) 휘하 삼대독문(三大毒門) 중 하나이다.

다만 오래전부터 무림에서 활동을 하지 않아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문파다.

(묵영독존의 수하에 든 자일까?)

능천한이 염두를 굴릴 때였다.

스스스슥---

주위를 힐끔 힐끔 돌아보며 벽안독마는 고정(古井)으로 뛰어 들었다.

(고정으로 뛰어들다니... 저 고정 속에 무슨 비밀이 있는 듯하구나!)

생각하던 능천한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스스스슥---

그의 예민한 귓전으로 여러 가닥의 파공성이 들린 것이다.

스스슥---

먼저 한 명의 문사가 내려섰다.

청포를 걸친 매우 청수한 인물로서 등에 쌍검을 꽂고 있었다.

(쌍검군자(雙劍君子)... 신주오기(神州五奇) 중의 인물이니... 벽라누님의 명을 받고 왔는가?)

능천한은 담담하게 눈을 빛냈다.

그 문사는 신주오기의 일인인 검()의 달인(達人)이다.

그리고,

스스슥---

한 줄기 왜영이 쌍검군자 앞으로 날아내렸다.

타는 듯이 붉은 홍의를 걸친 깜찍한 소녀였다.

(천산홍연(天山紅燕) 위지련...)

그 소녀는 능천한도 일전에 본적이 있는 천산노인의 제자 천산홍연이었다.

[대숙(大叔)! 맹주언니는 혈종과 충돌에 대비하여 외곽에 포진하시겠다고 하셨어요.]

위지련의 말에 쌍검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들어가자!]

[!]

스스스슥---

휘르르르---

쌍검군자와 위지련도 표표히 고정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벽라누임이 와 계시는 모양이군!)

능천한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그때였다.

--- ---

스스스슥---

두 줄기 인영이 동시에 나타나 고정으로 뛰어 들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런 폐장에 무림인들이 저같이 모여드는가?)

문득 능천한의 뇌리에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혹시... 저 고정이 여황궁과 관련되는 것이 아닐까?)

능천한은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에 이삼십여 명의 정사양도의 고수들이 고정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메뚜기떼같이 날아들던 무림인들의 종적도 뜸해지고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이제 끝인가?)

능천한은 홍예선희를 돌아보았다.

[우리도 가봅시다.]

[!]

헌데 두 남녀가 막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호호호호...]

한소리 맑기가 이를 데 없는 여인의 교소가 들렸다.

스스스---

이어 폐장 안으로 한 줄기 불타오르는 듯한 홍영(紅影)이 날아들었다.

일어서려다가 다시 몸을 낮춘 능천한은 날아든 홍영을 바라 보았다.

[...]

홍영을 바라보던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십여 세정도 되었을까?

홍영은 육감적인 갈색피부에 윤곽이 아주 뚜렷한 이국적인 용모의 여인이었다.

치렁치렁한 머릿결이 탐스럽고,

타는 듯 붉은 홍의에 감싸여 있는 육감적인 몸매가 연신 출렁이고 있었다.

가히 뇌쇄적이라 할만한 용모요 육체였다.

(대단한 미모와 색기의 소유자다.)

능천한은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갈색피부의 미녀는 그만큼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홍예! 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보겠소?]

능천한은 전음으로 홍예선희에게 물었다.

[천첩도 저런 아이가 무림에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사옵니다.]

홍예선희는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옥용에 안타까운 기색이 일었다.

(상공... 제발... 그 계집에게만 시선을 주지 마시옵소서.)

홍예선희는 홍의여인만 바라보는 능천한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이미 그녀는 냉혹한 손속을 지녔던 살수가 아니었다.

다만 한 남자의 사랑만을 기다리는 평범한 아녀자였다.

그때였다.

[--- --- ---]

갑자기 귓청을 찢는 날카로운 장소가 이 리 밖에서 들렸다.

(대단한 공력... 누구이기에...)

능천한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그 장소성에 실린 공력이 적어도 육갑자에 이르는 것을 알아차린 때문이다.

[! 나 혼자 있고 싶었는데...]

홍의여인은 장소성이 들린 곳으로 혀를 낼름해보였다.

[검노(劍老)가 와보아야 헛탕만 칠걸!]

여인은 앙증맞은 표정을 지어 보았다.

[저곳에 숨어야지!]

--- --- !

이어 홍의여인은 그대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

홍예선희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홍의여인이 날아든 곳은 바로 능천한과 그녀가 은신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

--- 스슥!

전각으로 날아든 홍의여인도 질겁하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너무 놀라 까만 두눈을 화등잔만하게 치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둠 속에 능천한이 석상같이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

[...!]

능천한의 시선과 홍의여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

능천한의 면모를 그제야 확인한 홍의여인의 옥용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 모습을 보며 흥예선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계집도... 상공께...)

그때였다.

스스스스--- 스슥!

안개가 퍼지듯이 폐장 안으로 한 줄기 청영(靑影)이 스며들었다.

[...!]

그 인물에게로 시선을 돌리던 능천한의 봉목에 형형하게 빛났고,

[! 헛수고나 하세요!]

홍의여인은 입안으로 재잘대며 청의인을 향해 혀를 낼름거렸다.

(대단하다. 은연 중에 흘리는 기도만으로도 누구든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능천한은 감탄의 눈길로 청의인을 바라보았다.

청의인은 나이를 알 수 없는 백발 노인이었다.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의 일신에서는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기도가 흐르고 있었다.

능천한의 시선은 그 노인이 짊어지고 있는 장검(長劍)에 이르렀다.

장검은 무척 길었다.

길이는 무려 네가 여섯치나 되며,

폭은 한 치가 채 안되었다.

(저런 장검을 쓰는 곳은 단 한곳 동해(東海) 해천검파(海天劍派) ...)

능천한의 눈에서 형형한 신광이 흘렀다.

(변황제일검파라는 해천검파의 절정고수를 보게 되다니...!)

능천한이 내심 경이로워할 때,

[이곳에서 공주님의 웃음소리가 들린 듯 한데...]

창의노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공주? 이 망나니같은 소저가... 공주라고?)

능천한은 고개를 돌려 홍의여인을 돌아보았다.

[!]

홍예선희 옆에 착 달라붙어 있던 홍의여인이 능천한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보였다.

[후훗...]

그런 여인의 모습이 귀여워 능천한은 나직이 웃음을 지었다.

--- !

순간 심신을 얼려버릴 듯한 검광(劍光)이 전각을 향하여 뇌전같이 흘렀다.

(대단한 이목! 단음기공을 썼건만...)

능천한은 감탄하며 천극(天戟)을 마주 내찔렀다.

--- --- 카캉!

불꽃이 튀고,

전각으로 날아들던 청의인의 검기가 산산이 부서졌다.

[...!]

검기를 부순 능천한은 몸을 일으켜 난간으로 나섰다.

[...!]

재차 검을 발출하려던 청의노인의 몸이 언뜻 굳어져 버렸다.

(... 태산같다. 신존(神尊)에 못지않은 기도를 지녔다니...)

능천한을 발견한 노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검의 예기에 평생을 걸어온 그다.

사람과, 그의 지닌바 무게 정도를 알아보는 데에는 이력이 난 청의노인이다.

그는 한눈에 능천한이 상대 못할 거산(巨山)임을 알아본다.

[...!]

청의노인은 노안을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었다.

(중원에... 이런 인물이 둘만 있으면... 신존의 대망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청의노인은 복잡한 눈길로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 가각!

섬전이 번뜩였는데 장검이 이미 검집으로 들어갔고,

--- 으윽!

일보를 내딛자 청의노인의 신형이 폐장 밖으로 날아갔다.

[...!]

청의노인이 사라지자 능천한은 비로소 긴장을 풀며 천극(天戟)을 거두었다.

(오빠보다도... 더 커보인다!)

그런 능천한을 넋이 나가 바라보는 눈길이 있다.

바로 홍의여인이었다.

[홍예, 가봅시다!]

스스스슥---

능천한이 몸을 움직여 고정 옆으로 날아내렸다.

--- !

--- 이익!

홍의여인과 홍예선희도 능천한의 뒤를 따라 옆으로 날아내렸다.

홍예선희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난생 처음보는 홍의의 새까만 계집이 자기 팔을 꼭 끼고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호호... 이봐요. 나는 사란(紗蘭)이에요! 남들은 공주라 부르죠!]

홍의여인이 능천한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사란... 예쁜 이름이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정을 들여다보았다.

[와아! 사란의 이름이 예쁘다고요? 언니... 들었지? 들었지?]

능천한이 그냥 한 마디 했거늘,

사란은 길길이 날뛰며 좋아했다.

(의외로 순진한걸...)

그 모습에 홍예선희는 마음이 풀려 절로 미소를 지었다.

[맞아! 동생은 이름뿐 아니라 얼굴도 예뻐!]

홍예선희가 사란의 긴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호호... 언니 최고...]

사란은 홍예선희의 팔을 끼고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들어갑시다!]

--- !

능천한은 몸을 깃털같이 가볍게하여 고정 속으로 뛰어 들아갔다.

[함께 가요!]

사란이 홍예선희를 잡아끌며 그 뒤를 따랐다.

휘르르르르...

세 사람은 곧장 이십 장을 떨어져 내려갔다.

 

세 사람은 제법 널찍한, 물이마른 고정의 바닥에 이르렀다.

[어머멋!]

헌데 바닥에 내려선 직후 사란이 비명을 질렀다.

한쪽 벽에 큼직한 통로가 있었다.

한데 그 통로입구에 십여 명의 소녀가 죽어 넘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곱게 죽은 것이 아니고 사지가 찢어져 죽어 있는 것이었다.

(벽안독마... 그자 짓이군!)

능천한은 시신들이 시퍼렇게 변해있음을 보고 두눈을 싸늘하게 번득였다.

소녀들을 죽인 범인이 가장 먼저 고정으로 뛰어든 벽안독마임을 알아본 것이다.

--- --- !

능천한은 구름이 흐르듯이 통로 안쪽으로 날아들어 갔다.

통로 여기저기에는 입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인들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홍예선희는 질겁을 하는 사란을 이끌고 능천한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곧 널찍한 지하광장에 이르렀다.

(이런 곳에 지하광장이 있다니... 놀랍군!)

능천한은 담담한 눈빛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전면으로는 여러 방향으로 통하는 석문들이 있었다.

능천한은 어느 석문으로 들어갈까 망설였다.

그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 --- --- 아악!]

어디선가 여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능천한은 홍예선희를 돌아보았다.

[홍예! 그대는 사란소저와 이곳에서 기다리오!]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홍예선희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으나 사란은 투덜대었다.

[이봐요! 우리는 왜 안 데려 가려는 것이에요!]

능천한은 엄한 눈길로 사란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그대가 갈만한 곳이 못 되오. 여기서 홍예와 기다리시오!]

능천한의 엄한 말에 사란은 자라같이 목을 끌어당기며 투덜거렸다.

[! 저럴 때는 꼭 오빠같애...!]

스스스--- !

능천한은 투덜거리는 사란과 홍예선희를 뒤에 두고 바람같이 하나의 석문 안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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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七 章

 

                    天下第一妓女裸身

 

 

 

[중상이군...!]

능천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홍예라는 여인의 상세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묵영독존의 묵강에 가격당하여 독기가 이미 골수로 스며들고 있는 상태였다.

범인(凡人)이라면 이미 독수로 녹아 절명했을 중태였다.

다만,

홍예라는 여인은 공력이 극고하고,

또 일종의 피독술(避毒術)을 연마한 덕분에 장시간 극독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우선... 급한 대로...!]

능천한은 품속을 뒤져 한 알의 환약을 여인의 입에 가져갔다.

그러나 혼절한 여인이 환약을 복용할 수 있을 리 없는 일!

[난처하군!]

능천한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결심하고는 환약을 자신의 입에 넣었다.

환약은 그의 입속에 들어가자 그대로 녹아 액체가 되었다.

능천한은 여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붙였다.

그리고는 혀로 입술을 벌린 후 녹은 환약을 흘려넣어주었다.

(입술이...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달콤하구나!)

능천한은 고소를 머금으며 입술을 떼었다.

[독기가 더 이상 퍼지지는 않을 것이니... 어디론가 조용한 곳으로 가서 독기를 제거시켜 주어야겠다!]

능천한은 여인의 교구를 안아들었다.

여인의 교구는 무척이나 나긋나긋하였다.

(옥진의 몸이 생각나는군!)

능천한은 갑자기 불끈 열기가 치솟음을 느끼며 당혹해 했다.

그의 뇌리에는 떠나기 전에 자신에게 순결을 바친 천약관음 교옥진이 떠올랏다.

[환자를 두고 망상을 하다니...!]

스스스스슥!

능천한의 자책하며 몸을 날렸다.

 

화르르르르---!

천폭환상영을 펼친 능천한은 삽시에 삼십 리를 움직였다.

문득 능천한의 두 눈이 이채를 발했다.

멀리 어둠 속에 장원(莊園)의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저런 곳에 장원이 있다니...]

능천한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일단 가보자!]

스스스스스!

능천한은 선풍을 휘몰아 일시에 장원 앞으로 날아갔다.

[폐장(廢莊)이 아닌가?]

이윽고 장원 앞으로 날아내린 능천한은 검미를 찌푸렸다.

장원은 질퍽한 습지 가운데에 세워져 있었다.

원래는 매우 웅장하고 화려한 장원이었던 듯이 보였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아주 을씨년스런 몰골을 하고 있는 장원이다.

담벼락은 허물어져 물러 앉았고,

장원문은 풍상에 지쳐 썩어 문드러졌다.

[달리 갈 곳도 없고... 잠깐 머물며 치료할 곳이야 있겠지!]

능천한은 홍예를 안고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

장원문을 들어선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었다.

무성하게 우거진 잡초들,

허물어져 내리고 썩어 뒤틀어진 석가래와 기둥들...

부서져 나뒹구는 석조들과 기왓장...

너무도 을씨년스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머뭇거릴 처지가 아니었다.

스스슥!

능천한은 홍예를 안고 물이 흐르듯이 폐장 깊숙이로 들어갔다.

능천한은 여인을 치료할 한적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장원은 너무 오랫동안 버러져 황폐해질대로 황폐해 있었다.

[! 성한 건물이 하나도 없다니...!]

능천한은 검미를 찌푸렸다.

--- ! --- !

그의 발밑에서 마른 풀과 나뭇이플이 부수어졌다.

어느덧 능천한은 폐장의 후원에 이르러 있었다.

그 정원은 몹시도 화려하던 정원으로 보였다.

기기묘묘한 가산과 연못들이 곳곳에 벌려 있었다.

그러나 화원은 잡초로 뒤덮이고, 연못은 썩은 물로 시커멓게 차있었다.

능천한은 정원을 둘러보았다.

정원끝쪽에는 큼직한 고정(古井)이 하나 있었다.

청석을 깎아 난간을 만든 우물이었다.

그리고 고정(古井)의 뒤쪽으로 한 채의 이층누각이 있었다.

그 이층누각은 다른 전각들에 비하여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곳이 그런대로 낫군!]

화르르르---!

능천한은 한걸음에 정원을 날아 넘어 누각의 이층으로 내려섰다.

--- !

능천한은 창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지가 수북이 쌓였으나 매우 조용했다.

능천한은 바닥에 깔린 먼지를 쓸고 홍예라는 여인을 조심스럽게 뉘였다.

[급하군!]

능천한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여인의 전신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강한 내공을 지닌 여인이다. 여염집의 아녀자로 보이거늘...)

능천한은 여인의 얼굴을 가린 면사를 걷어 내었다.

[!]

면사를 걷어낸 능천한의 두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나타난 여인의 얼굴!

그것을 어찌 인간의 용모라 하겠는가?

차라리 우물(尤物)이라함이 옳을 것이다.

너무도 완벽한 아름다운 옥용이 거기에 있었다.

싸늘함이 서려 있으나 한번 보면 평생을 잊지 못할 미인이었다.

그녀의 미모를 내려다보며 능천한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벽라누님에 못지 않은걸...)

능천한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 어쩌다가 묵영독존과 충돌하여 이지경이 되었는가?]

그 미녀의 옥용에 검은 독기가 가득한 것이다.

--- 이이잉!

곧 지극히 맑고 향기로운 기류가 능천한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천약심향대법(天藥心香大法)으로 얻은 약종피독지기(藥宗避毒之氣)인 그것은 만독과 극성이다.

스스스스스스...!

우르르르르...!

능천한의 약종피독지기가 노도같이 홍예라는 여인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며,

홍예의 전신에 퍼져 있던 극독이 얼음깨지듯이 무너져 나갔다.

삽시에 새카맣던 홍에의 피부가 백옥(白玉)같이 해맑게 변해갔다.

이윽고 홍예라는 여인의 몸에서 완전한 독기가 가셨다.

그러나,

[어찌 깨어나지를 않는가?]

능천한은 검미를 찌푸렸다.

중독에서 벗어났음에도 홍예라는 여인은 깨어날 줄을 몰랐던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능천한은 여인의 심맥을 살폈다.

그녀의 맥문을 쥔 그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그렇군, 묵영독존과 대치햇을 때 일어난 기도(氣道)의 파동(波動)이 심력(心力)을 부수었구나!]

중얼거리던 능천한의 안색이 당혹하게 변했다.

[추궁과혈(追宮過穴)로 심기(心氣)를 일으켜 주어야 하는데...!]

추궁과혈을 하려면 의복을 모두 벗겨야한다.

능천한이 당혹해 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곤란하군! 어찌해야 하는가?]

능천한은 안절부절하며 여전히 혼수상태인 홍예를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능천한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귀중한 생명이 달린 일이다. 우선 깨워 놓은 뒤... 죄를 빌 수 밖에...!]

능천한은 홍예의 저고리 옷고름에 손을 가져갔다.

사르르르...!

능천한의 손길에 옷고름이 풀어져 내려지며 풍만한 젖무덤이 붉은 젖가리개에 꼭 눌린 채 나타났다.

[!]

능천한은 길게 한숨을 들이쉬었다.

여인의 풍염한 젖무덤이 그를 후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각! 사각!

이어 붉은 젖가리개마저 홍예의 젖무덤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나타나는 수밀도!

우람한 한쌍의 육봉이 허공을 향해 곤두선 채 물결을 일으켰다.

한데,

[이것은...!]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번뜩거렸다.

그의 시선은 홍예의 왼쪽 유방에는 흉칙한 자상(刺傷)이 나있었던 것이다.

예리한 병기가 참외를 쪼개어 놓듯이 왼쪽 유방을 두 쪽으로 잘라놓고 있었다.

능천한은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황산(黃山)에서 벽향(碧香)이란 계집에게도 이 부위에 패천신륜으로 상처를 입혔거늘...]

능천한은 홍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코 벽향이 아니었다.

[우연의 일치겠지!]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홍예의 치마에 손을 대었다.

사르르륵!

사각! 사각!

홍예의 붉은 치마가 그의 손길 아래서 벗겨져 내려갔다.

[... ...!]

능천한의 두 눈이 절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의 손길 아래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나신이 그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룩한 세류요(細柳腰).

수줍게 숨어 있는 귀여운 배꼽,

그리고 끊어질 듯 가느다란 세류요의 밑으로 대지(大地)와도 같이 펑퍼짐한 둔부가 쫙 퍼져 있으며,

그 둔부의 전면, 두 개의 백옥기둥이 만나는 곳...

[허억!]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성숙한 여인의 비소(秘所)!

그 신비지가 무성한 방초(芳草)와 촉촉한 홍무(紅霧)에 젖어 나타난 것이다.

[흐음...]

능천한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방초 속의 비소가 자꾸 그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다.

[처음 대하는 여체도 아니거늘... 마음이 이리 흔들리다니...]

능천한은 탄식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광양존후 금벽라.

천혜선자 제갈영라.

천약관음 교옥진...

그 세 명의 절세미인들을 처첩으로 둔 그이건만 어쩔 수 없이 이 홍예라는 여인의 육체에 호기심이 이는 것이다.

곧 그의 마음은 명경지수와 같이 맑아졌다.

천극대정신맥을 지닌 능천한이다.

일단 마음을 정히 하면 천지가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물며 여체의 유혹 정도야...

[천주(天株) 옥당(玉唐), 화개(華開), 옥침(玉枕)...]

파파파팟!

능천한의 쌍수가 경쾌하게 홍예의 나선위를 두드리며 지나갔다.

그러자,

우르르르르!

쿠르르르르--- !

경쾌한 그의 손놀림에 따라 폭풍이 일었다.

능천한의 손끝에서 일어나는 잠력이 홍예의 심맥 속에 잠들어 있던 원영지기를 두들겨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쿠르르르르...

그 힘은 능천한의 손길이 진행될 수록 강해져만 갔다.

그에 따라 홍예의 백옥같은 나신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 --- 콰쾅!

거창한 잠력은 그대로 홍예의 임독양맥으로 치달았다.

무인이라면 꿈에라도 관통시키고 싶어하는 생사현관이 그곳이다.

하나,

(의외군! 생사현관까지 타통되어 있었다니!)

능천한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홍예의 생사현관은 의외로 이미 타통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각외로 절정에 이른 고수였다.)

능천한은 잠시 망설였다.

쿠르르르르릉!

그가 일으킨 장력은 곧장 홍예의 천지이교(天地二交)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천지이교를 관통시켜줄 것인가?)

한순간 그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천지이교를 관통시켜줌은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물론 천년공력을 지닌 능천한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천지이교를 관통시켜주면 단번에 몇배 강한 고수가 되고...

그가 홍예라는 여인이 악녀(惡女)인지 아닌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기왕에 손을 썼으니...]

이내 능천한은 결심을 했다.

그녀의 천지이교를 관통시켜 주기로,

그 순간,

--- 우우웅!

능천한에게서 거창한 공력이 홍예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족히 오륙백년수위의...

한순간,

--- --- --- !

홍예의 몸에서 벼락치는 폭발이 터졌다.

그와 함께,

[!]

홍에라는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펄쩍 몸을 흔들고는 깨어났다.

[...]

정신을 차린 홍예의 봉목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당신이... 이이...]

--- !

홍예라는 다짜고짜 능천한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깨어나보니 능천한이 자신을 발가봇겨 놓고 주물러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능천한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냥 한대 맞아주었다.

그러고는,

[옷을 입시오!]

오히려 온화하게 웃어보이며 몸을 돌렸다.

[...]

그제야 홍예라는 여인은 전후사정을 이해하고 놀라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왼쪽 유방을 가렸다.

이내 그녀의 봉목에 안도의 빛이 흘렀다.

(다행히... 이 천한 계집의 정체를 알지 못하셨구나...)

여인의 눈빛이 복잡하게 빛났다.

죄책감과 연모,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갈등으로...

또한,

(... 천지이교마저 타통시켜주시다니...)

능천한이 자신의 천지이교를 타통시켜 주었음을 깨닫자,

그녀의 봉목은 더욱 크게 흔들렸다.

[...!]

홍에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능천한이 벗겨놓은 자신의 의복을 교구에 걸쳤다.

(패공산에서 본지 석달이 겨우 지났거늘... 추측키 힘든 절대자(絶代者)가 되셨다.)

여인은 볼을 붉히며 능천한의 넓은 등을 보였다.

이내 그녀는 의복을 걸치고 능천한의 뒤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천녀 홍예... 은공의 구하심에 감사드리옵니다.]

여인이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자 능천한은 천천히 돌아앉았다.

그의 눈에 흐릿한 이채가 감돌고 있었다.

[소저께 만화원주(萬花院主) 홍예선희(紅睿仙姬)셨다니... 의외구려.]

능천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화원주(萬花院主) 홍예선희(紅睿仙姬)>

 

금릉에는 만화원(萬花院)이라는 기루(妓樓)가 있다.

만화원은 금릉, 아니 중원 천하에서 가장 큰 기루다.

경국지색의 절세미녀 일천(一千)이 기녀로 있으며,

한 기녀에게 열 명의 시녀들이 있다.

시녀들이라고 해도 하나하나가 빼어난 미인들이다.

만화원의 기녀들에게는 서열이 있다.

일천번부터 일번까지의 서열이 그것이다.

이 서열은 기녀들의 미모와 재기로 가려지는 것으로 일천번째 서열의 기녀라도 가히 경국지색으로 불릴만한 미인이다.

만화원은 진회하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데 기녀들의 화대가 높은 것으로 또한 유명하다.

일천번째 서열인 화정(花情)을 하룻밤 안으려면 황금 오백냥을 들여야 한다.

황금 오백냥.

서민들은 상상도 못할 거금이다.

기녀들의 서열이 한등급씩 오를 때마다 화대는 곱절로 뛴다.

그래도 중원천하의 고관거부들은 눈에 불을 켜고 만화원의 꽃()들을 안으려고 한다.

대가가 비싸기는 하지만 만화원의 기녀들은 사내를 신선지경으로 보내는 기막힌 재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화원의 기녀들 중 서열 일백위 이상의 기녀를 안은 사람은 없다.

이유는 그녀들의 화대가 너무나 비싸기 때문이다.

서열 일백위인 기녀는 월랑()이라는 기녀다.

그녀의 화대는 무려 일백만냥의 황금이다.

이제껏 그녀를 안은 사람은 고사하고 얼굴을 본 사람도 없다.

누가 있어 기녀를 하룻밤 안고 일백만냥의 황금을 쓰겠는가?

그 뿐만이 아니다.

만화원의 서열제일위의 기녀!

그녀는 만화원의 기녀들의 총수일 뿐더러 만화원의 주인이다.

 

---홍예선희(紅睿仙姬).

 

바로 이 여인이 만화제일화(萬花第一花)이다.

그녀를 안으려면 황금 삼천만냥이 있어야 한다.

(홍예선희였다니... 의외로군!)

능천한은 두눈을 담담하게 빛냈다.

그와 마주앉아 있는 홍의미녀.

그녀가 바로 만화원주이며 만화제일화라는 홍예선희인 것이다.

마음은 얼음같으나 몸에는 화산(火山)을 품고 있는 여인.

(구허기를 잘했다. 사악한 여인이 아니니...)

능천한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능천한의 미소!

그것은 여인의 방심을 스르르 풀리게 하는 위력이 있는 것이다.

[...]

능천한의 미소를 접한 홍예선희는 넋이 나가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나의 방심마조 흔들어 놓으실 정도로... 멋있어지셨다.)

정신을 차린 그녀의 표정이 아주 기이하게 변했다.

웃는 것 같고 우는 것도 같은...

그런 홍예선희의 모습은 가히 뇌쇄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천하제일기녀(天下第一妓女)임은 분명하군!)

능천한은 부드러운 눈길로 홍예선희를 내려다보았다.

[...]

그의 시선을 받자 홍예선희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아직... 창백지신이리라!)

수줍어 하는 그녀의 모습에 능천한은 절로 마음이 훈훈해졌다.

사실 원수지간이어야할 두 사람이었건만,

우연한 기연으로 서로의 마음이 훈훈하게 풀려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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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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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六 章

 

              毒人美女

 

 

 

 

금릉(金陵).

남경(南京)이라고도 불리는 천년고도(千年古都).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이래 역대 남조(南朝)의 도움이었으며,

대명(大明) 제국이 패업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황도가 연경(燕京)으로 불리던 북경(北京)옮겨진 지는 이미 오래다.

때문에 금릉의 성세가 전일만 같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금릉은 여전히 강남(江南)의 문물과 번영의 중심지이다.

 

진회하(秦淮河).

장강(長江)의 한 지류로서 금릉의 서쪽을 끼고 물줄기다.

전설에 의하면 진회하는 진시황이 금릉의 왕기를 끊기 위해 판 운하라고 한다.

진실이야 어떻하든 진회하는 풍광의 수려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진회하는 화향(花香)을 뿌리는 노류장화(路柳墻花)들로 유명하다.

진회하 일대에 천하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환락가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강과 합류하기 위해 북쪽으로 물길을 트는 곳에 이르면 진회하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굽이돌고 휘돌아 치는 어지러운 물결,

거센 하로(河路)가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그곳은 영진산(寧鎭山).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험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험산이다.

 

때는 늦어 어둠이 어슴프레 깔리기 시작하는 황혼녘이었다.

스스스스슥!

어두워지는 영진산을 저녁노을같이 흐르는 인영이 있다.

일신에 황포를 걸친 영준한 청년,

영준하다고는 하지만 그 영준함이 기품에 눌려 빛을 잃는,

태산의 풍도를 지닌 청년이었다.

[...!]

휘르르르르---!

묵직한 극()을 옆에 비껴 든 청년은 묵묵히 전면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일보가 내딛여지면 그의 신형은 이미 백 장을 나가 있었다.

문득,

[--- --- !]

어디선가 처절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

황포청년의 검미가 꿈틀했다.

[대락 사마장 정도... 북쪽...!]

나직한 중얼거림이 그의 입에서 새어 흐르고,

스스--- 스슥!

그의 신형은 창공을 반으로 가르며 북쪽으로 날아갔다.

가공할 경공,

천폭환상영(天瀑幻像影)이 펼쳐진 것이다.

 

***.

 

이곳은 잡목이 우거진 산곡(山谷)이다.

산곡 중앙에는 한 대의 화려한 향차(香車)가 서 있었다.

이 험한 산중에 어찌 향차가 와 있는가?

게다가 향차 주변은 진한 피비린내로 뒤덮여 있었다.

마부석에는 한 명의 장한이 우뚝 서서 주위를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흡사 철탑을 연상케 하는 거한이었다.

향차 주위로 십여 구의 시신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특이한 것은 모두가 꽃다운 여인들이라는 점과,

그 여인들이 모두 목이 꺾어져 죽어 있다는 점이었다.

[... ... 네년이 바로...!]

향차 앞에 한 명의 요염한 미소부가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본래는 몹시 관능적이고 끈끈한 인상의 여인이나,

지금 이 순간은 공포와 분노로 교구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홍염선자(紅艶仙子)! 깨달음이 늦었다!]

그때 향차 안에서 냉막한 여인의 교갈이 터졌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이 아름다운 목소리이건만,

골수에 스미는 냉기가 서려 있는...

[두고 보자! 여황교(女皇敎)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 --- 애액!

홍염선자라는 여인은 이를 갈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고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향차 안에서 다시 냉갈이 일고,

--- 으윽!

무지개같은 예기(銳氣)가 곧장 홍염선자의 목으로 날아갔다.

--- !

[--- !]

홍염선자의 교구가 허공에서 벼락을 맞은 듯이 출렁거리고,

--- !

사내께나 저승으로 보내었을 풍만한 풍체가 모질게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 감히 여황교따위가 혈종(血宗)의 뜻을 거스리다니...!]

향차 안에서 예의 냉갈이 터졌다.

그때였다.

[크크... 혈종이 무어 대수라고 그러느냐?]

갑자기 싸늘한 일성이 향차 위의 허공에서 터졌다.

[!]

다급히 고개를 돌리던 마부석의 거한의 눈이 찌어질 듯이 치켜졌다.

향차 위쪽 십여 장 상공,

한 명의 시커먼 묵운(墨雲)에 뒤덮인 괴인이 둥실 떠있었던 것이다.

[묵영(墨影)...! ... 에엑!]

경악성을 지르던 거한이 목을 감싸쥐고 나뒹굴었다.

스스스스슥!

지면으로 나뒹군 거한의 동체가 삽시에 한줌의 시커먼 독수로 녹아버렸다.

그와 함께,

--- --- 쿠쿵!

콰르르르르---

벼락이 치듯!

시커먼 묵강(墨罡)이 향차로 쏟아졌다.

[--- !]

--- 지직!

--- --- 아악!

그 순간 향차가 박살나며 향차 안에서 한 줄기 홍영(紅影)이 쏟아져 나왔다.

일견하여 그 홍영은 홍의를 꼭 끼게 걸친 여인이었다.

--- 르르릉!

히히히히--- !

묵강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향차가 박살나고 향차를 끌던 준마들이 박살이 나서 즉사했다.

[()...!]

휘르르르르...!

묵인(墨人)을 노려보던 홍영이 다급히 교구를 비틀었다.

천지를 뒤덮으며 시커먼 묵운이 뒤덮어 온 것이다.

그녀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르르르---!

뇌전(雷電)이 치듯 묵기가 홍의여인의 교구를 질타해 나갔다.

[!]

--- !

홍의여인은 비명을 앞으로 내려섰다.

[으으... !]

홍의여인은 아주 괴로운 신음성을 내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홍의여인(紅衣女人)!

얼굴은 면사에 가려 볼 수 없다.

그러나 꼭 끼는 홍의로 걸친 그녀의 몸에서는 폭발할 듯한 매력이 풍기고 있었다.

가히 뇌쇄적이라 할 만한 관능이었다.

하지만 그 관능적인 몸매가 삽시에 시커멓게 변색되어 가고 있었다.

지독한 극독에 중독당한 증세였다.

[으음... ... 그대가... ...!]

홍의여인은 자기 앞에 선 묵인을 노려보며 신음을 흘렸다.

 

---묵인(墨人).

 

그 인물은 먹물을 풀어놓은 듯이 시커먼 묵기(墨氣)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때문에 도저히 묵인의 용모를 알아볼 수 없었고,

다만,

--- 자자작!

뇌전같이 번뜩이는 한 쌍의 눈길만이 선명히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묵인이 서 있는 주위 십 장 방원의 잡초들이 새카맣게 죽어 있었다.

그것은 묵인을 가린 묵기 속에 지독한 독기가 배어 있음을 뜻한다.

[홍예(紅霓)라고 불러주지!]

돌연 묵인이 지극히 패도적인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홍예!

 

그것이 여인의 이름인가?

[흐흣! 보존은 혈종을 무너뜨릴 작성이다!]

묵인이 홍의여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홍의여인은 죽어가면서도 얼음장같은 눈길로 묵인을 노려보았다.

[묵영독존(墨影毒尊)! 혈종을 과소평가하지 마랏! 혈종일문에는... 본녀같은 고수가 구름같이 있다.]

홍예라는 여인이 이를 갈며 내뱉았다.

 

---묵영독존(墨影毒尊)!

 

이 인물이 바로 일비(一秘) 구천묵영독존(九天墨影毒尊)인가?

운중(雲中)에서만 노닌다는 무림제일 신비인...,

또한 수라천극존(修羅天極尊)의 뒤를 이어 절대마종으로 떠오르는...

[후훗! 혈종의 잠력이 큰줄은 안다만... 혈종은 본존의 손바닥 안에 있다.]

[헛소리...!]

독기가 내부로 파고들어 홍예라는 여인은 말을 더듬거렸다.

[흐흐... 믿지 않는군! 어쨌든 좋다. 우주혈종(宇宙血宗)도 곧 구천독종(九天毒宗)이 자신의 상투 위에 앉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니...!]

--- 으윽!

묵영독존은 장을 쳐들었다.

[구천독종! 묵영독존... 당신이 바로 구천(九天)...!]

죽어가던 홍예가 번쩍 뛸 듯이 놀라 외쳤다.

[흐흐... 이제 그만 가거랏![

우르르르...!

--- 쿠쿵!

묵영독존의 우수에서 시커먼 묵강(墨罡)이 쏟아졌다.

(끝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홍예는 눈을 감았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앞에 영준한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천한(天漢)... 당신에게 죄를 빌 수 있기를 바랬는데...)

여인은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절대절명(絶代絶命)!

콰르르르릉!

묵영독존의 묵강이 여인의 교구 앞으로 닥쳤다.

바로 그때였다.

[천극망(天極網)!]

우렁찬 폭갈이 영진산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 자자--- 자장!

--- 쿠쿠---쿠쿠쿵!

빗발치듯하는 극영(戟影)이 그물같이 묵영독존의 머리 위로 뒤덮여 왔다.

[!]

묵영독존은 아연하였다.

허공!

극영(戟影)의 저 바깥쪽 허공에서 한 명의 황포청년이 내리 꽂히고 있었던 것이다.

한 자루 묵극(墨戟)을 무찔러내면서...

[--- 하앗!]

--- 이이이잉!

묵영독존은 위기를 직감하며 전력을 다하여 십 장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 으으윽!

그 순간,

그 많던 극영이 거짓말같이 사그러들었다.

(내친 공세로 저렇게 수월히 거두어들이다니...!)

묵영독존이 아연할 때,

휘르르르르...!

홍의여인 옆으로 황포청년이 극을 비껴들고 날아내렸다.

[...!]

[...!]

내려선 황포청년을 바라보던 홍예와 묵영독존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를 아는 모양들인데...!)

황포청년은 극을 비껴든 채 묵영독존을 바라보았다.

묵영독존을 주시하던 황포청년의 두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강자(强者). 혈종에 못지 않은... 그리고... 저 묵강(墨罡)은 바로...!)

청년의 봉목에서 뇌전이 일었다.

그리고,

[으음... 패천잠룡(覇天潛龍)!]

묵영독존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렀다.

 

---패천잠룡!

 

황포청년은 바로 능천한이었다.

그는 자부(紫府)를 떠나 이곳 영진산으로 오는 길이었다.

자부문하로부터 영진산에 여황교의 흔적이 보인다는 전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본인을 아시는가?]

능천한이 묵직하게 물었다.

일순 묵영독존의 안광이 당황하여 흩어졌다.

[... 물론, 일잠룡(一潛龍)의 명성은 귀가 아프도록 들었지.]

그리고는 묵영독존은 이내 냉정을 회복했다.

[본존은...!]

그가 말하려 하자 능천한이 말을 받았다.

[알고 있소. 묵영독존(墨影毒尊)이고... 구천독종의 당대 독종이겠지!]

[으음... 알아차렸는가?]

묵영독존이 묵기 속에서 신음했다.

그는 바로 저 구천묵독제의 뒤를 이은 구천독종의 후인이었던 것이다.

자부가 천년 동안 세외에서 웅크린 채 대비해온 바로 그...

(이토록 수월히 구천독종의 종주(宗主)와 만나게 되다니...!)

능천한의 두눈에서 줄기줄기 신광이 쏟아졌다.

우르르르---!

그와 함께 능천한의 몸에서 태산같은 기도가 일었다.

건들기만 하면 터질 활화산같이...

[그대가 구천(九天)의 후예라니... 잘 만났다.]

--- 이이잉!

천극(天戟)에서도 가공할 기류가 줄줄이 쏟아졌다.

그모습에 구천묵영독종은 괴롭게 말을 꺼냈다.

[패천잠룡... 그대는 당세의 유일한 영웅이다. 그대와는 다투고 싶지 않다. 그러나... !]

말을 하던 묵영독존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스스스스스...!

능천한의 일신에서 폐부를 시원하게 하는 향기가 일고,

그 향기에 닿자 묵독강기가 봄눈 녹듯이 녹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 약종지기(藥宗之氣)... 자부의 진전마저 얻었단... 말이냐?]

묵영독존이 경악하여 물었다.

[그렇다! 이제 왜 본인이 그대와의 일전을 고집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알겠는가?]

[으으음...!]

츠츠츠츠---!

묵영독존의 묵독강기도 파동을 일으키며 더욱 짙어졌다.

(자부와는... 인연이 없길 바랬다. 그러면... 친구가 될 수도 있었기에...)

묵영독존이 묵기 속에서 아주 괴로운 표정이 되었다.

--- 이이이잉!

우우우--- 우우웅!

양 절대고수들 사이에서 가공할 기도(氣道)가 천장을 뻗쳤다.

묵영독존의 기도는 극강패도(極剛覇道)적인 것임에 비해,

능천한의 그것은 태산과도 같은 장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능히 기도만으로 사람을 살상할 수 있다.

양인 모두 초극(超極)에 이른 절정고수들이기 때문이다.

[--- !]

--- 우웅!

홍예라는 여인이 모로 쓰러졌다.

그렇잖아도 중독된 몸이었던지라 두 절정고수가 일으킨 무형기도에 심력(心力)이 타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 안돼! 그대와는... 투지(鬪志)가 일지 않는다!]

화르르르---!

묵영독존이 괴롭게 말하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가지 마랏!]

--- 이이잉!

--- --- !

능천한이 폭갈하며 천극을 무찔러 내었다.

그러나,

[정말이다. 그대와는 싸우고 싶지 않다.]

--- 쿠쿵!

묵영독존은 묵독강기를 일으켜 극영(戟影)을 막아내며 까마득하게 치솟아 올랐다.

[그 계집이나 돌보게... 죽일 생각이었으나... 후일 그대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계집이니...]

멀리서 묵영독존의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능천한은 쫓아가려다가 다시 홍의여인 옆으로 내려섰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목소리가 낯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나와 안면이 있는 인물같기도 한데...]

능천한은 복잡한 신색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안색에 한 줄기 고소가 떠올랐다.

[어차피... 일전을 치러야 할 인물이거늘... 웬지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구천묵독제와같이 편협하거나 악독한 인물같지도 않고...]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쓰러져 있는 홍의여인에게로 몸을 돌렸다.

[구천의 저주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

능천한은 독백하며 홍의여인의 상세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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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五 章

 

               女子들의 時代

 

 

 

 

자허천부(紫虛天府),

그 거대한 석전 뒤로 아담한 장원이 세워졌다.

그것은 제갈영라와 천약관음 교옥진이 능천한을 위로 세운 것이다.

 

<자허소축(紫虛少築).>

 

이것이 그 장원에 붙여진 이름이고,

자부의 전 문하가 정성을 쏟아 자허소축을 다듬었다.

물론 가장 정성을 쏟은 사람은 제갈영라와 교옥진이었다.

왜냐하면 자허소축이 자신들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허소축은 천외선경(天外仙境)과 같이 되었다.

아마 황실의 별원(別院)이라 해도 이같지는 못하리라.

 

시간은 때로 겨울밤같이 길 때도 있으나,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일순간같이 빠를 때도 있다.

능천한에게 지난 석달의 시간은 꼭 그러하였다.

자허천부!

자부천세의 영화가 깃든 그곳에서 능천한은 석달을 보냈다.

그 석달의 고련은 잠룡(潛龍)을 신룡(神龍)으로 성장시키는 재탄생의 시간이었다.

인간의 육향(肉香)이라고는 없는 석전(石殿)...

그 차가운 석전에서 능천한은 한 병의 공청석유만을 지닌 채 석달을 살았다.

만권의 경서가 그의 뇌리에 첨가되었고,

만종의 무공이 그의 쌍수에 익어갔다.

천수약왕의 희생,

그 값진 희생으로 능천한의 일신에서는 천년공력이 쌓이게 되었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힘이 아닌 것이었다.

그리고 능천한은 마침내 석전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일신에 과연 얼마만큼의 잠력이 첨가되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

맹하(猛夏)는 어느덧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자허소축의 가장 깊은 곳,

세외선경인 듯한 정원이 있다.

잘다듬어진 관목들 사이로 솟아있는 기기묘한 가산들,

가산 곳곳에서 옥수가 흘러 큼직한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연못에는 수련(水蓮)이 한창이어서 정원전체가 수련의 향기로 가득하였다.

[하하! 영라의 손길을 대하기도 참으로 오랜만이오!]

저녁호수같은 눈빛을 하고 초탈하게 웃는 청년이 있다.

연못가의 정자 안에서는 한 명의 황포청년이 비스듬히 앉아 미녀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미녀에게...

청의를 곱게 차린 난초같은 미녀가 청년의 터부룩한 수염을 깎아주고 있고,

백삼의 온화한 미인이 청년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아무리 무공에 몰두하시었더라도... 수염정도는 깎으실 일이 아니옵니까?]

청의미인이 청년을 책망하며 조심조심 손을 날렸다.

책망의 말이나 그 어조에는 기쁨과 사람이 담겨 있었다.

[하하, 영라가 깎아주길 바라고 깎지 않은 것이니...]

청년이 크게 웃었다.

분명 웃음소리는 크게 웃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청년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상공은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세요. 평소에는 점잖으다가도...]

청의미인이 살짝 볼을 붉혔다.

청년의 손이 그녀의 저고리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청년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청의미녀의 뭉클하게 붕긋한 젖무덤을 더듬었다.

바라보던 백의미녀의 옥용이 발갛게 달아올랐으나,

두 여인은 그다지 꺼려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청년이 자신들의 일신을 맡아줄 주인이기 때문이며,

청년이 다만 탐욕으로 청의미녀의 젖무덤을 더듬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사각사각!

청의미녀는 젖무덤을 청년에게 맡긴 채 수염을 깎아 내려갔다.

드러나는 영준무비한 얼굴,

그는 능천한이었다.

(어머님을 일찍 여위셔서 모성애에 굶주린 탓이리라.)

백의미녀는 따뜻한 시선으로 능천한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천약관음 교옥진이었다.

문득,

[누구냐?]

교옥진이 서늘한 일갈을 토하며 정자 뒤쪽을 돌아보았다.

언제였는지 그곳에는 한 여인이 오체복지하고 있었다.

일신에 흑의를 꼭 끼게 걸친 여인이었다.

[녹림부주(綠林府主)... 어서 오세요!]

교옥진과 달리 제갈영라는 온화한 어조로 말하며 흑의여인을 바라보았다.

흑의여인의 일신에서는 칼날같은 예기가 흐르고 있었다.

[올라오너라!]

교옥진이 흑의여인을 향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하옵니다!]

흑의여인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정자로 올라왔다.

[...!]

정자로 올라온 흑의여인의 옥용이 살짝 상기되었다.

능천한이 제갈영라의 젖무덤을 더듬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대가 녹림대제(綠林大帝)의 제자인가?]

능천한이 몸을 일으켜 단좌하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무리가 없으시다. 일거수 일투족이 흐르는 물같으시니...!)

흑의여인의 싸늘한 옥용에 기광이 흘렀다.

그리고,

[녹림부(綠林府) 녹림천봉(綠林天鳳) 진예빈(珍霓賓)! 지존을 뵙습니다.]

흑의여인은 능천한에게 날아갈 듯이 절을 올렸다.

 

---녹림부(綠林府).

 

천하는 모른다.

녹림이 자부의 가장 큰 분부(分府)이고,

녹림을 일통한 녹림대제가 자부오대공봉(紫府五大公封)의 일인임을...

자부가 지닌 인절(人絶) 중 가장 큰부분을 녹림이 차지하고 있다.

녹림천봉 진예빈.

그녀는 녹림대제(綠林大帝)의 손녀되는 여인이다.

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는 녹림대제의 실종이후 두 가지 신분으로 녹림을 호령해왔다.

, 녹림대제의 손녀인 녹림천봉의 신분이 그 하나이고,

녹림대제의 제자인 녹림천신(綠林天神)의 신분이 다른 하나이다.

(녹림에 천봉(天鳳)이 있음을 들었거늘... 허언이 아니었군!)

능천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 인재(人才)들이 어찌 여인 중에서만 나는가? 항차 천하가 여인천하(女人天下)가 되지 않겠는가?]

능천한의 껄껄 웃자 녹림천봉의 옥용이 도화빛으로 물들었다.

능천한이 자신을 칭찬함을 알기 때문이다.

광양존후 금벽라.

천혜선자 제갈영라.

천약관음 교옥진.

그리고 녹림천봉 진예빈.

진실로 뛰어난 인재들은 사실 여인들 중에 많이 있는 것이다.

제갈영라가 미소를 지었다.

[하오나... 신첩들이 아무리 숫자가 많아야 상공한분만 낫지못함 또한 사실이 아니옵니까?]

능천한이 마주 웃었다.

[큰손 하나가 작은 손들만 못하다는 말 또한 잊지 않아야 하오!]

능천한은 껄껄 웃었다.

그런 능천한을 우러러보며 진예빈의 시선이 들렸다.

(크다. 흔적이 없는 중에 창천을 가득 메우는 기도를 지니셨다.)

그런 진예빈을 향하여 교옥진이 부드럽데 물었다.

[강호정세가 어떠한지... 지존께 말씀 드리거라!]

진예빈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네 대사고!]

 

---대사고(大師姑).

교옥진은 배분상 진예진보다 두세배분이 위다.

천수약왕(天手藥王)의 배분이 자부오대공봉 중 으뜸이었던 때문이고,

지금 교옥진이 그 천수약왕의 공봉지위를 이은 상태였다.

[혈종(血宗)... 군사님의 뜻대로 천하를 석권하였습니다!]

진예빈의 말에 제갈영라는 한초롬이 웃었다.

[물론 그것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지만... 어찌되었는지 혈종은 강남북 십삼개성을 수하에 넣었습니다.]

진예빈이 말을 이었다.

혈종오패(血宗五覇)를 앞에 내세운 혈종문(血宗門)은 천하위에 군림하였다.

무당파 소림이 천하에 등을 돌리고 혈종의 수족이 되었으며,

칠파일방이 문을 닫고 봉파에 들어갔다.

한때 혈종의 골치를 썩이던 사해정검맹과 녹림맹도 세외로 잠적한지 오래였다.

일견하여 천하가 혈종천하(血宗天下)가 된듯이 보인다.

그러나 진정코 그것은 표면의 현상일 뿐이다.

사해정검맹이 주축되어 암중에 커다란 잠력이 모여들고 있다.

그 힘은 녹림과 정파를 묶는 거창한 것이고,

그 잠력은 광양존후를 핵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제갈영라의 치밀한 배려가 있음을 천하는 꿈에도 모른다.

그리고 제갈영라는 자부의 잠력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힘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능천한의 복안이었으나 제갈영라와 교옥진이 실행하고 있었다.

 

[하온데... 의외의 변수들이 보이고 있사옵니다.]

지예빈의 말이 교옥진과 제갈영라의 안색이 다소 흔들렸다.

다만 능천한은 여전히 담담한 기색이었다.

[예측했던 일이지.]

능천한의 미소에 제갈영라는 자기 남편의 얼굴을 새삼 올려다보았다.

[예측하시다니요?]

교옥진의 물음에 능천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지가 어지럽소. 구천(九天)의 저주가 깨어날 뿐더러... 변황의 거성(巨星)이 중원으로 향하고... 또한 중원내부에서도 전혀 새로운 요기(妖氣)가 날로 빛을 더하니...]

세 여인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천기를 읽으시다니... 만절조사(萬絶祖師)의 경지에 드셨단 말인가?)

여인들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기쁨과 상통하는 것!

능천한이 거()해질 수록 자신들의 영화가 되므로,

진예빈이 말을 이었다.

[황실(皇室)... 역모의 기미가 보입니다.]

[역모...]

능천한은 다시 비스듬히 몸을 뉘었다.

[...!]

천약관음 교옥진이 살포시 그를 안아 받혀 주었다.

능천한은 교옥진의 가슴에 기댄 채 진예빈의 말을 들었다.

[반년 전 새로 즉위한 선덕제(宣德)는 아직 약관이고... 세 분의 황숙(皇叔)들은 모두 야심이 큰분들인지라... 황실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옵니다.]

제갈영라가 말을 받았다.

[황실의 흔들림을 변수라 함은... 황실에서 절대강자(絶代强者)의 그림자가 보이는 모양이군요.]

교옥진과 진예빈은 감탄의 표정이 되었다.

[그렇사옵니다. 아직 정확히 정채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아주 강한 거인(巨人)이 황실 뒤에 있습니다.]

[혈종과 천하무림도 그것을 아는가?]

능천한이 물었다.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압니다. 저희도 우연한 기회에 안 것 뿐이니...]

(황실에 거인이 도사리고 있다...)

능천한은 제갈영라의 교수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이황숙 중 조왕(趙王) 휘하의 태백삼성(太白三星)이 선덕제를 시해하려다 암중거인의 일거수에 몰살당하는 장면을 수하들이 우연히 목도하였다 하옵니다!]

[태백삼성을 일거수에...]

제갈영라의 안색마저 일변하였다.

 

황실은 무림과는 독자적인 무공을 발전시켜왔고,

황실의 보호 속에 황실무학은 가공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강호와는 달리 무공이 단절되는 일이 없는 까닭이다.

태백삼성이란 황실에는 손꼽히는 강자들로서,

무림에 나온다면 초절정으로 불리는 자들이다.

천하를 통틀어도 그들 삼인을 일거수에 쓰러뜨릴 고수는 전무하다시피 한다.

(태백삼성을 일거수에 쓰러뜨렸다면... 혈종 이상의 강자라는 얘긴데...)

능천한은 많은 인물들을 뇌리에 떠올렸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다만... 아버님이 패천신륜까지 지니신 상태다면 가능하겠지.)

능천한은 아버지 패천황룡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았다.

패천신륜은 자신에게 있으므로,

그때 진예빈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황궁(女皇宮)에서 가공할 고수가 자라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여황궁? 여황교(女皇敎)의 총단에서?]

능천한이 진예빈을 바라보았다.

 

<여황교(女皇敎)>

 

백여 년의 전통을 지닌 여인교(女人敎).

초대교주는 여천제(女天帝) 예화원(藝華元).

그녀는 원조(元朝)의 공주(公主)였고,

원조가 만리장성 밖으로 밀려날 때 함께 가지 못한 원조의 여인들을 모아 여황교를 세웠다.

대대로 여황교는 세외(世外)에 있으면서 한을 가진 여인들을 수렴하여 왔다.

여인(女人)들의 힘,

그것은 때로 무섭게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 여인들이 하나같이 절세미녀들인 경우에는 말이다.

여황교의 세력은 욱일승천하였고,

마침내 그녀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원조를 부활시켜 보겠다는 야심 아닌 야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사십여 년 전,

당시의 여황교주 대천후(大天后)는 가공할 힘으로 일어섰다.

천하가 일시에 여인천하(女人天下)가 되는 듯이 보였으나...

 

---여인된 자로 어찌 망상을 하는가?

 

한 거인(巨人)의 폭갈 속에 여황교는 안개같이 스러졌다.

패천황룡(覇天皇龍)!

그 거인을 대천후는 간과했다.

결국 대천후는 패천황룡인의 철수(鐵手) 아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기필코... 복수하겠어요.

 

대천후의 여제자가 피눈물을 흘리며 사부 대천후의 시신을 안고 세외로 갔다.

그후 여황교 세외에서 칼을 갈아왔다.

[소문에 의하면 천향옥잠(天香玉簪)이 여황교의 수중으로 들어갔고 천환여제는 천향옥잠으로 한 명의 소녀를 제이의 천향염후로 기르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런 일이... 전혀 생각지 못한 변수가...]

제갈영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진예빈이 말을 이었다.

[그 소문이 천하에 나돌자 혈종측에서 눈에 불을 켜고 여황궁을 찾고 있으며 많은 세외효웅들도 준동하기 시작하고 있사옵니다.]

[...!]

[...!]

교옥진과 제갈영라는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능천한의 안색은 여전히 평온하였다.

[출도를 서둘러야 하겠사옵니다.]

제갈영라가 능천한에게 나직이 말했다.

그녀의 옥용에는 일말의 아쉬운 기운이 감돌았다.

(석달만에 상공을 모실 수 있어 기뻐했거늘... 상공을 아니 보내 드릴 수 없으니...)

교옥진이 진예빈을 돌아보았다.

수고했다. 약왕전에 네게 주려고 준비한 것이 있으니 갖고 녹림으로 돌아가 지존을 모실 준비를 하거라!]

녹림천봉 진예빈은 능천한에게 절을 올린 뒤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이어,

스스스슥!

진예빈은 영교한 신법으로 자허소축을 날아나갔다.

능천한은 보는 듯 마는 듯한 시선으로 사라지는 진예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제갈영라가 능천한의 손에서 교수를 빼며 일어섰다.

[신첩은 자령친위대(紫靈天衛隊)의 수련장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제갈영라는 함초롬히 웃으며 교옥진을 바라보았다.

[언니가 상공을 시중들어주세요. 워낙 장난이 심한 분이시니...]

[아우님...]

교옥진의 볼이 화사하게 물들었다.

[떠나시기 전에 언니를 사랑해 주세요. 그것이... 상공을 기다릴 언니에게 큰 힘이 될터이니...]

능천한의 귓전으로 제갈영라의 전음성이 들렸다.

[영라... 그대는 욕심도 없구려!]

능천한이 고소를 지으며 제갈영라를 바라보았다.

사르르르...

제갈영라는 옷자락을 끌며 월동문 밖으로 사라졌다.

[...!]

단둘이 남게 되자 교육진은 가슴이 두방망이질 침을 느끼며 시선을 떨구었다.

문득,

[옥진의 가슴은 매우 따뜻하구려!]

능천한이 나직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이 풍염한 교옥진의 젖무덤 사이로 파묻었다.

따스함과 달콤한 젖내음...

능천한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벽라누님의 젖무덤만하군!)

장난스런 그의 표정으로 한가닥 붉은 기운이 떠오르고,

[아아... ... 지존...]

교옥진의 입에서 나직한 교성이 터졌다.

강한 두 팔이 그녀의 허리를 으스러져라 끌어안으며 그녀를 쓰러뜨린 것이다.

그리고 그 손길은 열기를 모아 그녀의 옷깃 사이로 파고 들었다.

[아아!]

열기는 교옥진의 교구에 환몽을 불어넣어 몽롱하게 만들었다.

수련(水蓮)의 향기 가득하고...

[아아... ... 지존...]

너무도 선연한 홍화(紅花)가 마음속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너무도 뾰애서 눈이 부신 동체 위로...

산산이 부서지는 연화향(蓮花香)과 함께 눈이 시린 홍화(紅花)가 한 송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아...]

고통과 함께 희열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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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四 章

 

                       軒轅天荒璧口訣

 

 

 

 

자허천부(紫虛天府)는 구십 구 개의 석실(石室)이 있다.

한데 그 방대하고 많은 자허천부의 석실들이 가득가득 차 있었다.

서책, 비급(秘笈)...

명인(名人)들이 남긴 명품(名品),

신병이기(神兵異器),

가히 천하의 제화가 모두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재화와 기진들은 일이백 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일천 수백 년의 장구한 세월동안에 쌓여온 것들이다.

자허천부에는 자부오절(紫府五絶)의 삼절(三絶)이 담겨 있는 것이다.

천하를 사고도 남을 재절(財絶),

천하를 뒤집기에 충분한 수많은 신공절기들의 기공절(奇功絶),

그리고 하늘이라도 가려버릴 수도 있다는 기절(機絶)이 그것이다.

 

[...!]

능천한은 팔충의 마지막 석실에 와 있었다.

그곳은 병기고(兵器庫)였다.

자허천부에는 만종(萬種)의 병기들이 있다.

특히 이곳 팔층의 중병고(重兵庫)에는 그중의 발군의 것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 중병고에 있는 것은 모두 천병보 천병일천좌에 드는 것들입니다.]

천수약왕이 능천한에게 설명했다.

[그렇겠소이다. 어느것 하나 범상한 것이 없으니...!]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보았다.

중병고에 보관되어 있는 신병의 숫자는 삼백종(三百種)을 넘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천병일천좌 안에 드는 절대신병들인 것이다.

능천한은 형형하게 눈을 빛냈다.

(이 신병(神兵)들로 고수들을 무장시킨다면... 사상최강의 군단이 되리라.)

능천한은 내심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자부(紫府)!

천세를 신비 속에 가려져 온 그 엄청난 잠력!

그것은 능히 일만명 초절정고수로 변신시키고도 남을 정도인 것이었다.

[...!]

능천한은 작은 옥함을 집어들었다.

그 안에는 열두 자루의 호접차(蝴蝶叉)가 들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여인들의 장신구라고 생각될 정도로 화려한 세공의 호접차들이었다.

그러나,

누가 있어 그것들의 진정코 무서운 내력을 알겠는가?

열두 개의 호접차!

그것은 천하삼대암기(天下三大暗器)에 드는 가공할 암기인 것을,

이름하여,

 

직녀호접차(織女蝴蝶),

 

호접천후(蝴蝶天后)라는 상고(上古)의 여고수가 남긴 것이다.

이는 호신강기 파해 전문의 암기로서,

직녀호접차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는 호신강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것이다.

(열두 개... 벽라누님과 영라 등에게 나누어주면 좋아하겠군!)

능천한은 직녀호접차를 집어넣고 구층으로 통하는 석문 앞으로 갔다.

(만종의 재화를 보시고도 단 하나만 취하시다니...)

천수약왕은 감탄의 눈길로 능천한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르르르르---!

능천한은 구층으로 올라갔다.

 

구층!

자허천부의 가장 위층인 이곳은 널찍한 하나의 대전이었다.

그곳은 흡사 환몽천유부(幻夢天遊府)를 연상케 했다.

이곳에 비장된 것들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가 천만금의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제일먼저 눈에 띈 것은 세 폭의 초상화였다.

[...!]

능천한은 눈을 빛내며 초상화 앞으로 다가갔다.

초상화의 세 인물들은 모두 중년인들이었다.

중앙의 인물은 절대종사(絶代宗師)의 기품이 흐르는 자삼의 중년인이었다.

사자같은 위엄과 만인을 절로 감복케 하는 기도가 흐르는...

(자부존(紫府尊)!)

능천한은 전율을 느꼈다.

그 초상화의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이어 자부존의 좌측에 있는 초상화로 옮겨졌다.

(이분은 만절기사(萬絶奇士)...!)

능천한의 눈길은 이어 마지막 초상화폭으로 옮겨졌다.

마지막 화폭에는 호미를 들고 있는 야인(野人)의 모습이 있었다.

약초를 담는 주머니를 옆에 찬...

(천외약종(天外藥宗)!

능천한의 두 눈이 엄숙하게 빛났다.

능천한은 세 초상화의 인물, 절대삼기(絶代三奇)의 초상화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지존...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으시겠다는 의지가 계시다...)

뒤에 시립한 천수약왕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흘렀다.

(극강(極强)은 부러지기 쉬운 법임을 깨달으시기를 빌 뿐...)

천수약왕은 탄식했다.

그러나 그는 능천하에게 천하제일재녀가 있음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세 분의... 구세(救世)의 뜨거운 의혈을 느끼외다. 구천독종이든 혈종이든 후생의 손으로 단절시켜 보일 것이니... 지켜보아주소서!]

능천한은 축원을 옮겼다.

절대삼기를 올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는 능천한을 천수약왕은 감격의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삼기께서 남기신 유품들...!)

능천한은 초상화의 밑을 주시했다.

세 폭의 초상화 아래에는 각기 하나씩의 옥함이 뚜껑이 열린 채로 놓여 있었다.

능천한은 자부존 앞의 옥함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두 가지 물건이 있었다.

한 권의 두툼한 양피지 비급,

그리고 자광(紫光)이 안개처럼 서린 주먹만한 구슬이 그것이었다.

능천한은 먼저 비급을 집어들었다.

 

<자령천존경(紫靈天尊經).>

 

[자령천존경!]

능천한은 비급을 대충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자령천존경 맨 뒤쪽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자부이대절기가 적혀 있었다.

 

자극천단강(紫極天丹罡),

 

자부존이 구천묵독제의 가슴을 박살내버린 절학이다.

이에는 한철벽도 꿰뚫는 패도적인 위력이 있었다.

 

자령천존수결(紫靈天尊手訣),

 

두 번째 절기인 자령천존수를 읽어 나가던 능천한의 안면이 부르르 떨렸다.

자령천존수의 구결에는 능천한이 일전에 대했던 초식에 들어있던 어떤 영감이 있었다.

,

패천륜식(覇天輪式)의 최후절초인 만겁패천초극류(覇天超極流)!

그 절대초식에 있던 막연하고도 거대한 영감이 있는 것이다.

천수약왕이 말했다.

[자령천존수는 상상 속의 절기입니다. 초절기(超絶技)라 불리는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자부존사께서도 창안만 하시고 연성은 하지 못하셨던 절기입니다.]

[...!]

능천한은 나직히 신음하며 자령천존경을 덮었다.

이어, 그는 주먹만한 자광(紫光)의 구슬을 집어 들었다.

(온기가 있다니... 예사의 물건이 아니다.)

능천한이 흠칫하는데 천수약왕이 설명했다.

[자부존 조사께서는 타계하시기 직전에 당신의 내공을 단주(丹珠)로 만들어 후세에 남겼습니다.]

[이것이 자부존께서 남긴 원영단주(元瓔丹珠)!]

능천한이 흠칫하였다.

[그렇습니다. 누구든 그것을 복용하여 녹일 수 있다면 일시에 자부존께서 지니셨던 막강한 내공을 얻게 됩니다.]

[...]

능천한은 원영단주를 내려다보며 무겁게 신음하였다.

[그러나...천세로 내려오며 어느 누구도 자부존조사님의 원영내단을 용해해 보겠다는 엄두는 내지 못하였습니다!]

천수약왕이 말의 여운을 끌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나로 하여금 이 원영단주를 복용하여 용해시키도록 할 생각이군!)

능천한은 말없이 원영단주를 다시 옥함에 집어넣었다.

이어 그는 만절기가 앞에 놓인 옥함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주 두터운 분량의 비급이 들어 있었다.

 

만절기환록(萬絶奇幻錄),

 

[영라가 좋아하겠군!]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천외약종 앞을 바라보았다.

천외약종 앞에도 한 권의 비급이 있었다.

 

약종천의보(藥宗天醫譜),

 

고금이래 그것을 능가할 수 없다는 의약비서였다.

그것들을 대충 둘러본 뒤에 능천한은 천수약종을 돌아보았다.

[자부노조께서 말씀하시기를 헌원천황벽(軒轅天荒璧)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이리오십시요!]

천수약왕은 즉시 한쪽으로 능천한을 데리고 갔다.

, 능천한은 세 장의 옥벽(玉璧)을 볼 수 있었다.

자질이 좋은 옥()을 얇게 깎아 판을 만들고,

그 위에 갑골문자로 글을 적어 놓은 것이었다.

[...!]

헌원천황벽을 받아든 능천한의 두눈이 형형한 신광을 쏟아내었다.

헌원천황벽의 구결들이 갑골문자로 되어 있으나 능천한에게 그것들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능천한은 자신도 망각하고 헌원천황벽의 구결로 몰두해 들어갔다.

(자리를 피해 드리는 것이 좋으리라.)

천수약왕은 소리없이 구층의 석전을 벗어났다.

석전을 나서며 천수약왕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허허... 이백 수십 년의 세월... 너무도 오랜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편히 쉴 날이 왔도다...]

천수약왕의 노안이 형형한 빛으로 가득 찼다.

 

---헌원천황벽(軒轅天荒璧)!

 

그것을 과연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전설속의 성인인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가 남긴 것이 아닌가 추측 될 뿐이다.

헌원천황벽!

그곳에 적혀 있는 것이 어떤 기발한 초식이나 내공 따위가 아니었다.

헌원천황벽은 형() 이전에 있엇던 의()와 만상(萬象) 이전의 대혼돈(大混沌)의 지극히 큰 이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말하자면 대천황(大天荒)의 이치와 그것을 수렴하는 방법상의 진리랄까?

그것은 내공이 아닌 심법(心法)에 가까운 것이었다.

능천한은 헌원천황벽의 구결들을 경이에 차서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구결(口訣)들에 명칭을 붙였다.

이름하여,

 

<천황대정존극심(天荒大正尊極心).>

 

만상(萬象)의 이치가 그안에 있으며.

천외천(天外天) 대자연(大自然)의 근원이 되는 아주 큰 힘이 그곳에 있었다.

대정지경(大正之境)!

그것은 곧 천인지경(天人之境)이리라.

삼라만상(三羅萬象)을 그 의지로 다스릴 수 있는 천신(天神)의 경지...!

그러나,

(무엇인가 빠져 있다.)

헌원천황벽의 구결을 모두 읽고 난 능천한의 검미가 모아졌다.

헌원천황벽의 일부분이 쾡하니 뚫린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어떤... 큰 힘의 도움이 없이는 대성하기 힘들다.)

천황대정존극심!

그 이루고자 하는 경지가 너무도 크고 광활하다.

그 때문에 다만 인간의 잠재력만을 갖고는 오성 이상 대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천황(天荒)... 대천황연(大天荒衍)과 관련 있는 것일까?)

능천한의 얼굴이 아주 심각하게 변해갔다.

 

---대천황연(大天荒衍).

 

신기보(神奇譜)에 전하는 저 제일신기(第一神奇)가 느닷없이 떠오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천황지기(天荒之氣)... 대천황연의 천황지기를 한 모금만 얻을 수 있어도... 천황대정존극신강(天荒大正尊極神罡)을 이루어 보겠으니...)

능천한은 고소를 지었다.

대천황연이 다만 전설임을 상기한 때문이다.

[결국... 지금 상태로는 삼성(三成)이상을 이룰 수 없겠군!]

능천한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헌원천황벽인 마지막 세번째 장의 끝부분을 주시하였다.

그곳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의 하늘이 무너지리라. 천지(天地)가 마기(魔氣)로 가득하고 만상(萬象)이 혈기(血氣)로 스러지리니... 때가 이르러야 비로소 천황(天荒)의 큰 벽()이 열리리라.

 

X X X

 

[...!]

능천한,

상체를 벗어 우람한 어깨와 가슴이 철벽같이 보인다.

그는 한좌의 석상(石床)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다.

그리고,

스스스스스...!

매캐한, 그러나 폐부까지 시원해지는 약향(藥香)이 무럭무럭 일어나 석실을 가득 메우고 있다.

널찍한 석실!

그 안에는 백팔 개의 향로(香爐)가 진형을 이루며 배열되어 있다.

약향은 바로 그 향로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약향!

그곳에는 만종(萬種)의 영약의 정화가 실려 있다.

 

---천약심향대법(天藥心香大法).

 

지금 석실에서는 천외약종의 최고대법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신체를 금강불괴로 만들며,

만독(萬毒)을 극할 수 있는 절대신체가 이루어지는...

스스스스...!

향로에서 피어오른 만종약향(萬種藥香)은 끊임없이 능천한의 오공과 팔만사천의 모공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악향에서 몸을 가린 채 일인이 서 있었다.

천수약왕(天手藥王)이었다.

그는 노안을 형형하게 빛내며 능천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때가 되었습니다. 복용하십시오!]

천수약왕이 신중하게 말했다.

그러자 능천한은 손을 내밀어 석상에서 하나의 구슬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자부존이 남긴 원영내단이었다.

능천한은 그것을 들어 입에 집어넣었다.

우우우--- --- !

그와 함께 능천한의 몸 주위로 새파란 강기가 번져나왔다.

패천존후신강을 끌어올린 것이다.

능천한은 이내 무아지경에 들어갔다.

[...!]

그러자 천수약왕이 천천히 능천한에게 다가왔다.

그의 노안은 모종의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천약심향대법으로 얻은 오백 년 공력을 지존께 옮겨 드리리라!]

천수약왕은 능천한의 등뒤로 다가가 단좌하였다.

천수약왕은 자신도 천약심향대법을 한 차례 걸쳤고,

그 때문에 무적이라 할 수 있는 공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노노의 오백 년 공력을 이어받으시면 원영내단을 융해하실 수 있고... 새로이 천년 공력을 지니시게 될 것이니...]

--- 이이이잉!

천수약왕의 몸에서 지극히 강한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 르르릉!

그 강대한 기운은 노노로 변하여 능천한의 명문(名門)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

능천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약왕(藥王)...!)

그는 천수약왕이 자신에게 내공을 쏘아붓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찌하랴?

능천한은 다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존! 자부(紫府)가 천 년을 그늘에서 살아온 것이... 지존 한 분을 기다리기 위했던 것임을 잊지 마소서!]

천수약왕의 창노한 음성이 능천한의 귓전을 울렸다.

스스스스스---!

쿠르르르르--- 르르릉!

만종약향이 솜에 물이 스며들 듯이 빨려들고,

천수약왕의 몸에서 쏟아지는 극강한 공력의 폭류는 끊이지를 않았다.

--- 이이이이잉!

점차 능천한의 일신에서 장엄한 서기가 무지개같이 일었다.

(), (), (), (), ()...!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투지를 상식케하는 극고한 기도를 실은 서기였다.

우르르르르...!

능천한의 몸에서 뻗치는 서기는 갈수록 더욱 짙어졌고,

그에 따라 천수약왕의 신색은 점점 고목(枯木)같이 굳어져 갔다.

쿠르르르--- 르릉!

츠츠츠...!

능천한의 일신에서 막강한 흡력(吸力)이 일어났다.

그 흡력은 한꺼번에 만종약황을 깡그리 끌어들였고,

아울러 천수약왕의 한모금 진기마저 모조리 긁어내었다.

[... 지존]

--- !

마침내 천수약왕이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완전히 진기를 능천한에게 주입시킨 그의 몸은 물기마른 고목같았다.

우르르르---!

주르르르...!

그 와중에 능천한의 볼 위로는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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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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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三 章

 

               萬毒墨鱗鞭詛呪

 

 

 

천삼백년전(千三百年前).

천하가 엄청난 겁란에 휘말려 든 때가 있었다.

고금제일독종(古今第一毒宗)이라는 독종(毒宗)에 의해 벌어진 참극이었다.

 

<구천묵독제(九川墨毒帝)>

 

묵독종(墨毒宗)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인물이 겁란의 원흉이었다.

구천묵독제는 독공(毒功)으로 고금오대마종(古今五大魔宗)에 든 독문최강의 고수다.

그는 곤륜노(崑崙奴)라고도 불리는 흑인(黑人)이었다.

다만 태생이 흑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 한 가지 독공을 연성하다가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들었다.

그 때문에 전신이 먹물을 바른 듯이 시커먼 흑인이 되었다.

곤륜노는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취급받던 시절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비하하고 조롱하였다.

그렇잖아도 독공을 익히면서 성격이 모질어졌던 구천목독제였다.

세상의 따돌림과 핍박이 심해지자 구천묵독제의 성격은 지극히 편협해졌다.

힘을 갖은 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한을 품었다.

그 결과는 너무도 끔찍한 것이었다.

 

---크크크... 너희들 하루살이만도 못한 것들이 본체를 비웃었느냐? 어디 뒈지면서 비웃어 봐라!---

 

구천묵독제는 광기에 사로잡혀 천하를 휩쓸었다.

가공할 겁란(劫亂)!

천마(天魔)와 혈종(血宗)이래 최악의 혈란이 몰아닥친 것이다.

천하가 구천묵독제의 독수(毒手) 아래 핏물로 녹아드는 듯이 보일 지경이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구천묵독제의 독수 아래 녹아들었고,

무림의 역사를 창출해온 고대(古代)의 상고문파들이 수도 없이 허물어졌다.

처참!

가공할 혈륜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더해져 갔다.

구천묵독제의 밑으로 많은 독문(毒門)의 인물들이 모였다.

그들은 구천묵독제를 종주로 떠받들며 사상최강의 독문(毒門)을 결성하였다.

 

<구천독종(九天毒宗)>

 

천세가 지난 후에도 무림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최강의 독문 구천독종이었다.

이제 천하는 구천묵독제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구천묵독제의 위세를 등에 업은 구천독종 문하들의 횡포가 오히려 구천묵독제의 그것을 능가할 듯이 보였다.

천하가 영원히 구천(九天)의 저주 아래 녹아드는 듯이 보였고...

사실이 그러했다.

그러나...

천하는 넓고도 넓다.

세상사에 뜻을 두지 않고 세외(世外)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삼인의 기인(奇人)이 있었다.

그들이 구천독종의 만행을 보다 못해 나섰다.

 

<절대삼기(絶代三奇)>

 

---자부존(紫府尊).

---만절기사(萬絶奇士).

---천외약종(天外藥宗).

 

이들은 각기 한 방면에 있어 최강의 인물들이었다.

자부존(紫府尊)은 기공(奇功)방면으로,

만절기사(萬絶奇士)는 의술과 약술로 천하제일이었다.

그들은 연장자인 자부존(紫府尊)의 영도 아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천하의사(天下義士)들을 모아 자부맹(紫府盟)을 이루고 구천독종을 친다.

천외약종의 의술은 구천독종의 독술과는 상극이다.

만절기사의 지혜는 귀신이라도 잡아 죽일 지경이고...

자부존의 무공은 당대의 천하제일(天下第一)이었다.

구천독종의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독종천하(毒宗天下)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본시 마의 무리란 일견 강해보이나 실상은 너무도 무너지기 쉽다.

자부맹이 떨치고 일어나자 구천독종은 사상누각같이 허물어진다.

마침내 구천독종은 무너지고,

구천묵독제는 절대삼기에게 퇴로를 차단당한다.

 

---크크... 네놈들이 본제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구천묵독제가 광소를 하며 하나의 채찍()을 쥐어든다.

칠십 이 개의 묵룡린(墨龍鱗)을 만독(萬毒)에 담가 만든 채찍!

 

---크하하하! 만독묵린편(萬毒墨鱗鞭)이 본제에게 있는 한 하늘이라도 본제를 어쩌지 못하리라---

 

구천묵독제가 광소를 터뜨렸다.

 

<만독묵린편(萬毒墨鱗鞭)>

 

구천묵독제가 꺼낸 묵린편은 바로 만독묵린편이었다.

천병보(天兵譜)에 수록된 천지십병(天地十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독문제일병(毒門第一兵)!

한번 떨쳐지매,

묵독기강(墨毒氣罡)이 일어 백 장 내의 모든 생명체를 밀살 시켜버린다는...

그 저주의 만독묵린편인 것이다.

 

---하늘의 뜻(天意)이 우리와 함께 하리라!---

 

절대삼기는 분연히 만독묵린편을 든 구천묵독제를 짓쳐간다.

경천동지(驚天動地)!

천붕지열(天崩地裂)!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격전이 삼주야를 끌었다.

결과는 절대삼기인의 승리.

천외약종의 약종지기(藥宗之氣)가 묵린독기강을 흐트리고,

그틈으로 만절기사의 만절신표(萬絶神剽)가 쏟아지며,

자부존의 최강절기인 자극천단강(紫極天丹罡)이 구천묵독제의 가슴을 박살내었다.

 

---크하하! 본제는 이제 쓰러지나... 구천(九天)의 저주가 천세 후에 부활하여 천하를 파멸시키리라!---

 

심장이 부서진, 구천묵독제는 무저갱(無低坑)으로 만독묵린편을 안고 몸을 던졌다.

 

---구천묵독제는 제거했으나... 구천의 암운은 걷어내지를 못하였으니...--

 

만절기사가 탄식하며 한줌의 독수로 녹라들고 만다.

만독묵린편!

그것은 실로 너무도 가공스러워 천외약종의 약술로 완벽히 막지를 못한 것이다.

그리고...

천외약종마저 쓰러진다.

그조차 만독묵린편의 독기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남은 사람은 자부존뿐이었다.

 

---핫허... 이것이 승리인가?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자기의 두 다리를 잘라낸다.

자부존은 고금을 통해 다섯 손가락에 드는 공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 막강한 공력으로 독기를 다리로 몰아넣고 잘라내어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구천(九天)의 저주가 천세에 이르면 자부(紫府) 또한 천세에 이르리라.---

 

그는 의제들의 진전을 수습하여 세외로 몸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

그것이 천삼백여 년을 이어 내려오는 신비 속의 자부(紫府).

 

긴긴 이야기가 끝났다.

[자부의 역사에 그런 비사가 숨겨져 있다니...!]

능천한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천수약왕은 능천한을 우러러보며 말을 이었다.

[자부는 구천의 부활을 막기 위해 천 년을 세외에서 기다려왔습니다. 그리고 구천의 그 저주는 당세에 이루어지고 구천을 막을 자부지존(紫府至尊)도 당세에 난다고 천기가 말하고 있었습니다.]

[으음...!]

능천한은 나직이 신음했고,

조용히 듣던 제갈영라가 입을 열었다.

[자부는 여러 개의 세력을 무림에 내놓고 있는 듯이 보이는군요.]

그녀의 말에 천수약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가장 먼저 무림에 내보낸 세력이 만절문(萬絶門)이었습니다만 팔백 년 전 천향일맥(天香一脈)에 파멸당했습니다.]

능천한이 물었다.

[자부궁(紫府宮)?]

[형식상 자부의 정통이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 약왕전(藥王殿)과 자허전(紫虛殿)입니다.]

[약왕전은 천외약종의 대통으로 이해되옵니다만 자허전이란...?]

제갈영라가 물었다.

[직접 들러보시옵소서! 노노가 모시겠습니다!]

천수약왕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신세를 지겠소이다.]

능천한은 묵중한 걸음걸이로 천수약왕과 함께 움직였다.

 

***

 

약왕곡(藥王谷)은 광활하다.

사면이 깎아지른 석벽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넓이가 백만 평에 이른다.

한데 놀랍게도 그 백만 평의 분지가 모두가 약초밭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보통의 약초들이 아니고,

하나같이 기사회생의 영효가 있는 천년영약들인 것이다.

능천한과 제갈영라는 약초밭을 지나며 그저 아연할 따름이었다.

코를 찌르는 약향에 정신마저 아찔할 지경이니...

(석굴(石窟)이 있군!)

능천한은 전면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깎아지른 석벽에 수십 개의 석굴이 뚫려 있었다.

일견하여 그 석굴들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고,

그 석굴들에서는 하나같이 무럭무럭 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외로 약왕곡에서 여러 명이 있군!]

능천한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천수약왕이 그 말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천외약종은 그대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곳 약왕전에는 노노같이 의술과 연단술에 미친 삼백의 의원들이 있습니다!]

[과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노는 그들과 함께 지존을 위하여 한 가지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천수약왕의 말에 제갈영라가 미소를 지었다.

[상공께 무적공력(無敵功力)을 주는 일이 아니신가요?]

천수약왕은 감탄의 눈빛으로 제갈영라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존후!]

 

이야기하는 사이에 세 사람은 큼직한 석굴 앞에 이르러 있었다.

석벽에 난 석굴전체가 바로 약왕전인 것이다.

이곳에는 천하의 영약이란 영약은 모두 모여 있었다.

[사부님!]

예의 석굴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며 가냘픈 인영이 걸어 나왔다.

[...!]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석굴에서 피의(皮衣)를 걸친 여인이 나타난 것이다.

나이는 이십 오륙 세 정도였다.

금벽라의 온후함과 제갈영라의 정초함을 함께 지닌 여인이었다.

[...!]

능천한을 발견한 여인의 봉목에 깜짝 놀라는 빛이 흘렀다.

그리고,

[제자! 지존(至尊)을 뵈옵니다!]

여인은 그자리에 주저앉으며 능천한에게 큰절을 올렸다.

제갈영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약왕곡의 인물들은 누구하나 범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분 소저는...?]

능천한이 침작한 어조로 물었다.

[노노의 제자 되는 아이입니다. 천약관음(天藥觀音) 교옥전이라 불리지요.]

[천약관음이라...]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피의여인을 내려다보았다.

꿇어 엎드린 미녀의 삼단같은 머리결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뛰어난 여인이다. 영라의 신체에는 못 미치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백인(百人)의 여인보다 오히려 뛰어나리라!)

능천한의 눈가에 흐릿한 웃음이 흘렀다.

[약왕께서는 훌륭한 제자분을 두셨소이다!]

능천한은 천수약왕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지존!]

천수약왕은 흐뭇하게 제자를 내려다보았다.

(지존의 헌신을 기다리며 지존을 섬기도록 가르친 효과가 있으리라!)

천수약왕이 싱글벙글 하는데 능천한이 말을 이었다.

[약왕전은 다음에 다시 보기로 하고 자허전(紫虛殿)을 먼저 보여 주시지 않으시겠소이까?]

천수약왕이 즉시 대답했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 이리로...]

천수약왕이 말을 하며 예의 석굴로 능천한을 인도했다.

[신첩은 옥진언니와 약왕전을 돌아보겠사옵니다!]

제갈영라가 뒤쪽에서 말하자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수약왕과 함께 석굴로 들어갔다.

[언니 일어나세요!]

제갈영라가 교옥진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존후! 감사하옵니다!]

교옥진이 말하며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존후라는 이름은 큰 언니외에는 적당하지 않아요. 그냥 영라라고 부르세요!]

제갈영라의 말에 교옥진의 옥용이 어두워졌다.

[또 한 분이... 계시옵니까?]

[호호... 그래요.]

제갈영라가 맑게 웃었다.

(어분 언니도 한눈에 상공께 사로잡히고 말았구나!)

제갈영라는 영활하게 교육진의 마음을 읽었다.

그녀는 교옥진의 교수를 꼭 쥐며 부드럽게 말했다.

[큰 언니는 옥진언니도 아실거예요. 광양존후가 바로 그분이에요!]

교옥진은 다소 놀란 빛을 띄웠다.

[광양존후! 당대 제일여고수(第一女高手)께서 지존의 부인...]

[호호... 걱정마세요. 벽라언니는 마음이 좋으셔서 옥진언니께도 기회를 주실 것이에요!]

[...!]

제갈영라의 말에 천약관음을 교옥진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녀의 옥용이 도화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

 

쿠르르르릉!

높이 십 장.

무게 만근의 거창한 석문이 쩍 갈라졌다.

갈라진 석문사이로 능천한이 장중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왔다.

[곡중지곡(谷中之谷)! 약왕곡 후면에 이런 전곡이 있을 줄 누가 알겠소?]

능천한이 탄성을 발하며 전면을 바라보았다.

능천한의 앞.

수백 장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절곡(絶谷)이 있었다.

나는 새도 들어오지 못할 절대절곡!

그것은 약왕곡의 후면에 자리한 곡중지곡(谷中之谷)이었다.

한데 절곡의 중앙에 거대한 구층석전(九層石殿)이 있었다.

그 석전은 높이 백여 장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석전이었다.

가장 하단부분의 높이가 이십 장이고,

각 층의 높이가 십 장 정도씩이었다.

그리고 일층 처마에 십여 장 길이의 거대한 편액이 있었다.

능천한은 그 편액의 글씨를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자허천부(紫虛天府)>

 

[자허천부...]

능천한은 나직이 현판을 읽으며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런 심산에 저같은 전각을 돌로 짓다니... 자부의 잠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이 간다!)

능천한은 구층의 자허천부를 바라보며 두눈을 형형하게 빛내었다.

뒤에 시립하고 있던 천수약왕이 공손하게 말했다.

[자허천부가 곧 자허전입니다. 자허천부에는 자부의 일천 년 영화가 담겨 있습니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떼어 놓았다.

--- 스스스슥!

한 걸음을 옮겼는데 능천한의 몸은 이미 백 장 밖에 나가 있었다.

 

---천폭환상영(天瀑幻像影).

 

(과연 지존!)

천수약왕도 이내 능천한의 뒤를 따라갔다.

능천한은 이미 자허천부 앞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까마득히 치솟은 자허천부를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었다.

태산(泰山)!

그런 능천한의 몸에서는 태산과도 같은 기도가 흘렀다.

(오히려 자허신부가 지존보다 작아 보인다. 자부가 일천 년을 세외에서 기다린 보람이 있는 분이다!)

능천한을 바라보는 천수약왕의 노안에 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들어가시지요!]

천수약왕이 앞으로 나서서 굳게 닫힌 자허천부의 석문으로 다가갔다.

그그그그--- !

천수약왕이 석문의 사자상(獅子像)을 누르자 굉음과 함께 석문이 크게 열렸다.

석문의 안쪽은 넓은 대전(大殿)이었다.

모두가 청옥(靑玉)으로 만들어진 석탁과 의자가 쭉 늘어서 있다.

태사의 뒤쪽으로 승천하는 청룡(靑龍)의 조각이 놓여 있었다.

[...!]

뚝벅... 뚜벅!

능천한은 천극(天戟)을 비껴들고 장중한 걸음걸이로 대전으로 들어섰다.

그의 시선은 곧 장 용()의 조상으로 향해졌다.

금방이라도 용음(龍音)을 터뜨리며 날아오를 듯한 청룡(靑龍)!

(기도(氣道)가 느껴진다. 천지(天地)를 뒤덮은 장중(壯重)함이 있다!)

청룡(靑龍)과 잠룡(潛龍)!

동질성(同質性)이 있지를 않은가?

그때 천수약왕이 다가왔다.

[자령신부(紫靈神符)를 용()에게 물려주십시오!]

[...!]

천수약왕의 말에 능천한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품에서 자령신부를 꺼냈다.

츠으으으!

일시에 석전이 상서로운 자광(紫光)으로 물들었다.

능천한은 자령신부를 청룡의 입에 끼워 넣었다.

다음 순간,

--- 르르르르!

--- 이이이잉!

[...!]

웅후한 진동이 자허신부 전체를 흔들었다.

천수약왕이 능천한에게 설명했다.

[자허천부는 그대로 하나의 요새입니다. 아무리 절대고수도 무공만으로 자허신부를 오르지는 못합니다!]

(그런 이유로...)

능천한이 묵묵히 들고,

천수약왕이 말을 이었다.

[자령신부로만 자허천부 전체의 기관을 해제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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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二 章

 

                 紫府至尊이 되어라!

 

 

 

츠츠츠츠츳!

시커먼 묵기가 흑룡천신의 몸을 뒤덮었다.

그 모습은 흡사 하계로 내려온 신장(神將)같았다.

[...!]

[...!]

흑룡십팔웅들의 안면에는 긴장이 흘렀다.

그들은 능천한의 강함을 일차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흑룡파천황(黑龍破天荒)!]

사나운 폭갈과 함께 흑룡천신이 먼저 공세를 발동하였다.

짜자자자자--- !

파츠츠츠츠--- !

천지가 시커먼 흑룡의 그림자로 뒤덮이고,

뇌전(雷電)같은 도기(刀氣)가 빗발치듯이 그어져 나갔다.

범인(凡人)이라면 오금이 얼어붙을 가공할 도세였다.

능천한도 흠칫하였다.

(과연 흑도종사답다!)

흑룡천신!

그는 능천한이 상대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했다.

아버지 패천황룡의 혈종을 제외하고는...

그러나,

[거령폭류참(巨靈瀑流斬)!]

능천한은 벼락치듯이 천극(天戟)을 무찔러 내었다.

--- --- 쿠쿵!

우르르르---

천극의 극인(戟刃)의 주위로 강륜(罡輪)이 무지개같이 일어나고,

--- --- !

--- --- 자작!

폭포가 쏟아지듯,

검붉은 강류()가 기세로 쏟아져 나갔다.

천극이절해(天戟二絶解) 중 거령폭류참이 펼쳐진 것이다.

--- --- --- !

[--- 으윽!]

흑룡천신의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호신해주던 흑룡무적강벽(黑龍無敵罡璧)이 종이처럼 찢어지며 가슴에 강력한 충격이 가해진 것이다.

그의 가슴은 삽시에 피범벅이 되었다.

[... 또다시... 좌절당하다니...!]

흑룡천신은 휘청거리며 분루를 흘렸다.

[...!]

그런 흑룡천신을 능천한은 무거운 안색으로 바라보았다.

[궁주!]

[대종사...!]

흑룡천신의 주위로 흑룡십팔웅이 무릎을 꿇으며 오열하였다.

장부들의 눈물,

거기에는 아녀자들의 그것같은 애절함은 없다.

그러나,

철벽이라도 녹일 듯한 비장함이 그 천배 만배로 깃들어 있었다.

그걸 보는 능천한의 마음이 좋을 까닭이 없다.

[... 천지십병(天地十兵)! 천지십병이 무엇이기에... 일초지적도 아니 되는 것인가?]

흑룡천신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너무 세게 악문 탓이다.

그때였다.

[궁주! 소녀 제갈영라가 외람되나 한 말씀 드리겠어요!]

제갈영라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소저가 천혜선자(天慧仙子)!]

흑룡천신의 거구가 움찔하였다.

그런 그를 향하여 제갈영라가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개인의 신의나 자존심도 중요한 것이겠지요. 하오나 편협(偏狹)한 자존심이나 오도(誤導)된 신의로 천하를 해하는 일이 있다면 그보다 더한 우()는 없을 것이에요!]

[...!]

제갈영라의 말을 듣고 흑룡천신의 대추 빛 안색이 여러 차례 변했다.

(깨달음이 있으리라!)

능천한은 흐릿한 미소를 짓다가 천극을 세우며 정중히 에를 하였다.

[다시 뵐 때는 웃는 얼굴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외다!]

그리고,

스스스스스슥!

능천한은 제갈영라와 함께 백여 장 밖으로 날아나갔다.

[...!]

[...!]

흑룡천신과 흑룡십팔웅은 한동안 넋이 나간 채 능천한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흑룡천신의 표정에는 아주 복잡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 패천황룡은 고사하고 그 아들의 적수도 못되다니...]

[...!]

흑룡십팔웅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런 흑룡십팔웅을 돌아보며 흑룡천신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패배란... 때로는 치욕이 되나... 때로는 좋은 약이 될 수가 있다.]

[궁주...!]

[천 년의 세월 동안 정사양도에게서 천시 받은 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결단이 없어 연성치 못하던 초절기(超絶技)를 수습하겠다!]

[대종사...!]

[대종사...!]

흑룡십팔웅!

흑룡십팔웅은 감격의 눈길로 흑룡천신을 우러러보았다.

좌절이란 때로 인간을 성장시키는 좋은 영양분이 된다.

그 본보기가 흑룡천신에서 나타나려는 것이다.

스스스스스슥---!

산풍이 언뜻 불어 흑룡천신의 흑포를 뒤흔들었다.

[...!]

하늘을 응시하며 철탑인 양 우뚝 선 흑룡천신,

그의 강렬한 신광,

굳게 움켜쥔 흑룡파황신도(黑龍破荒神刀)가 새로운 풍운을 잉태함을 천하는 알게 되리라.

물론 긴 혈운(血雲)의 시대가 지난 후의 일이지만...

 

***

 

[저곳에 강력한 진세가 흐릅니다!]

제갈영라의 말에 능천한은 멀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석비(石碑)같이 치솟아 마주 서있는 두 개의 산봉이 있다.

[... 그렇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석비같은 산봉사이로 극히 강한 기운이 안개같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강하여 능천한으로서도 이제껏 본적이 없는 기운이었다.

물론 그 강한 진세는 범인의 안목으로는 발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의 그것보다 열 배는 강하다.)

능천한의 눈에는 경탄의 빛까지 흘렀다.

[영라! 갑시다. 저곳이 약왕곡(藥王谷)일 것이오!]

[!]

스스스--- !

--- 이이이잉!

두 남녀의 신영은 가공할 속도로 날아갔다.

너무 빨라 두 남녀의 신영마저도 흐릿해지는 정도였다.

 

---천폭환상영(天瀑幻像影).

 

환유천신(幻遊天神), 아니 환몽천후(幻夢天后)의 고금제일(古今第一)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공절기가 그것이다.

 

스스스스스--- !

화르르르---!

채 일다경도 안되어 능천한과 제갈영라는 삼십 리 밖에 이르러 있었다.

[대단하군요.]

지면으로 날아내린 제갈영라가 봉목을 빛냈다.

두 사람 앞에는 괴봉(怪峯)이 있었다.

마치 신()의 묘지(墓地)에 서 있는 비석과도 같이 생긴 봉우리...

두 석봉은 무려 삼백여 장이나 되는 높이로 치솟아 있었다.

그리고,

스스스스스---!

석비 모양의 두 괴봉사이의 분지에는 자하(紫霞)가 가득 흐르고 있었다.

그 자하(紫霞)는 겉보기에는 자연적인 듯이 보인다.

그러나 기문진세에 정통한 인물이라면 그것이 가공스런 진세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을 알리라.

[...!]

[...!]

능천한과 제갈영라는 석상같이 굳어졌다.

웅장하고 괴이한 두 석봉 때문이 아니다.

두 사람은 태양같은 안광을 쏟아내며 자하로 가득한 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알아보시겠사옵니까?]

제갈영라가 능천한은 돌아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

능천한은 묵직하게 대답했다.

[팔극(八極)과 천문(天門)조차도 완벽하게 가려 선천강기(先天罡氣)에 싸여 있으니... 이는 자부일문(紫府一門)의 전설적인 절진(絶陣)...]

제갈영라가 말을 받았다.

[자령팔극천문대진세(紫靈八極天門大陣勢)!]

[그렇소... 자령팔극천문대진세... 만상귀허대천강진(萬像歸虛大天罡陣)과 더불어 고금양대절진으로 불리는...]

[...!]

두 사람은 다시 말을 멈추었다.

천하를 오시하는 지혜를 가진 두 기재...

그런 그들이건만 그들은 감히 경솔하게 진세를 파해하려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만큼 그들 앞에 있는 진세는 가공스럽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봅시다. 저것도 인간의 지혜로 이루어진 것이니...!]

능천한이 빙그레 미소를 짓으며 제갈영라의 손을 꼭 쥐었다.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

--천혜만음성령지체(天慧萬陰聖靈之體).

 

인간으로서는 최고지상의 신맥과 지혜를 타고난 그들이다.

두 사람의 지혜가 합쳐진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으리라.

[상공께서 도와주시기만 한다면...]

제갈영라도 자신에 찬 표정이 되었다.

(상공께서 곁에 계셔만 주시면 신첩 혼자라도 진세를 뚫어 보일 수 있사옵니다.)

제갈영라가 촉촉한 시선으로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좋소! 시작합시다!]

능천한이 제갈영라의 허리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끊어질 듯한 세류요가 그의 손안에 꼭 들어찼다.

[내가 팔극지세(八極之勢)로 열겠소. 영라는 천문(天門)을 맡으시오!]

말을 마친 능천한은 애정을 담아 제갈영라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

제갈영라는 이마가 불에 대인 듯이 화끈해짐을 느끼며 행복에 잠겼다.

(하늘이라도 열어 보이겠어요!)

능천한의 입맞춤은 제갈영라에게 천력(天力)을 주었다.

[조심하시오!]

스스스슥!

능천한이 우측으로 이동하였다.

[상공께서도...]

제갈영라도 미소를 지으며 좌측으로 이동하였다.

스스스스스---

이내 두 남녀의 모습은 짙은 자하(紫霞)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높직한 암봉 위,

초로(草老)의 노인 한명이 앉아 있었다.

삼베옷 걸쳤으나 노인의 모습에는 신선같은 풍도가 서려 있었다.

[...!]

노인은 노안을 형형하게 빛내며 자하(紫霞)의 바다()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노안에는 자하 속으로 들어서는 남녀의 모습이 비추어 지고 있었다.

노인의 노안은 우측으로 접근하는 황포청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은 매우 영준했다.

등에는 긴 극()을 짊어지고 있고,

전신에는 자하 속에서도 선연하게 광휘를 발하는 자광(紫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나타나셨다.]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령신부(紫靈神府)를 지닌 것으로 미루어... 궁주는 타계한 듯 하나 그 대신 자부지존(紫府至尊)을 이곳 약왕곡으로 보냈다.]

노인의 노안은 격동과 희열로 흔들리고 있었다.

[헛허... 구천(九泉)으로 갈 날이 다가와...자부지존께서 탄생하심을 보지도 못하고 갈까보아 저어했거늘...]

주르르르르...

노안에서 한 줄기 눈물이 메마른 뺨위로 굴러 떨어졌다.

화르르르르...

스스스스스...

자욱한 자하로 가려진 이곳,

이른바 약왕곡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

 

하루 밤낮이 흘렀다.

[핫하! 팔극(八極)은 천수(天手)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도다!]

한소리 호쾌한 장소가 터졌다.

거의 동시에,

[호호... 하늘의 문(天門)은 광활하나 역시 하늘()의 일각(一角)일 뿐이옵니다!]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옥음(玉音)이 자하 속에서 아주 맑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 이이잉!

스스스스슥!

자하(紫霞)의 바다() 속에서 두 줄기 인영이 솟구쳐 올랐다.

그들은 바로 능천한과 제갈영라였다.

[핫하! 영라!]

[호호호! 상공! 상공!]

두 남녀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뜨거운 가슴이 한 치의 틈도 없이 꼭 맞붙었다.

두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시도 떨어져 살 수 없는 정랑의 얼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희첩의 아름다운 옥용이 거기에 있었다.

두 남녀는 다소 초췌한 신색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주일야의 시간으로 일천일(一千日)을 책속에 파묻혀야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빛나는 눈!

끝없는 지혜를 담고 있는 눈빛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영라... 초췌해졌소!]

[상공... 뵙고 싶었사옵니다.]

제갈영라는 능천한의 가슴에 옥용을 묻었다.

그녀는 자령팔극천문대진세에서의 일주일야가 마치 백 년의 세월같이 느껴진 것이다.

[하하! 영라가 천문지세(天門之勢)를 약화시켜주지 않았다면 진중에서 백일(百日)을 보내야 했을 것이오!

능천한은 제갈영라의 등을 다독거렸다.

그렇다.

(!)

능천한의 몸이 경직되었다.

한쌍의 강렬한 신광이 서린 눈길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느낀 때문이다.

[...!]

능천한은 제갈영라를 안은 채 천천히 돌아섰다.

(...)

몸을 돌린 능천한은 내심 흠칫하였다.

높직한 암석 위,

한 명의 삼베노인이 횃불같은 안광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

양인은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창해같은 능천한의 붕목에 은은히 놀람의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놀랍다. 아버님에 못지않은 공력을 지닌 기인이 있었다니!)

능천한도 내심을 혀를 내둘렀다.

 

---패천황룡 능붕비.

 

천지금룡(天地金龍)의 내단을 복용하여 오백년공력을 지닌 천하제일내공고수!

놀랍게도 초라한 삼베노인이 그 능붕비의 내공에 버금가는 막강한 내공을 지닌 것이다.

[...!]

제갈영라도 삼베노인을 발견하고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문득,

스스스슥!

삼베노인이 앉은 채로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

능천한이 흠칫하는데 돌연 노인은 능천한 앞에 무릎을 꿇으며 큰절을 올렸다.

[노노(老奴) 약왕전주(藥王殿主) 지존(至尊)을 베알하외다!]

능천한은 돌연한 노인의 태도에 당황을 금치못했다.

[노인장! 어찌 이러십니까?]

능천한은 급히 무형경력을 일으켜 노인을 부축하려 하였다.

하지만 노인은 미동도 아니하였다.

삼백 년의 공력을 지닌 능천한이지만 노인의 내공에 비하면 조속지혈인 것이다.

그때,

[노공께서 어찌 상공께 지존(至尊)이라하시옵니까?]

제갈영라가 나서며 물었다.

노인은 오체복지한 상태로 대답했다.

[천극대정기(天極大正氣)를 지니신 분이 곧 자부지존(紫府至尊)이심을 알기 때문이외다!]

[자부지존!]

능천한이 검미를 모으며 중어거렸다.

[자부지존이라면... 상공께서 제이의 자부존(紫府尊)이란 말씀이시옵니까?]

[그렇소이다. 이미 일천수백년전부터 예견된 일이오니다!]

[...]

능천한은 나직하게 신음하였다.

(자령신부(紫靈神符)의 진정한 주인이 됨은... 자부의 부주(府主) 그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하니...)

능천한은 꿇어 엎드린 노인은 내려다보며 염두를 굴렸다.

그때,

[... 노인장께서 천수약왕(天手藥王)?]

제갈영라가 조용히 물었다.

[존후(尊后)! 바로 이 늙은이가 천수약왕이라 불립니다!]

노인이 머리를 조아린 채 대답했다.

[천수약왕!]

능천한과 제갈영라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천수약왕(天手藥王)>

 

그는 이미 이백여 년 전부터 천하인의 입에 오르내린 전설 속의 인물이다.

그는 자부(紫府)의 인물이면서도 공공연히 천하에 나돌아 다녔었다.

그가 무슨 목적으로 천하를 횡행하였는지는 알길 없다.

그 덕에 수많은 양민들이 병고에서 해방되었다.

그의 의술과 약술은 편작이나 화타를 능가한다고 했다.

 

---죽은 자(死者)라도 하루가 지나지 않았으면 살려낸다.

 

그의 이름과 더물어 이런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물론 그것은 다분히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사람들의 과장이었다.

그만큼 천수약왕의 의술은 독보적이었다.

혈종(血宗)과 패천자(覇天子).

그 전설적인 인물들과 시대를 함께 하던 전설적인 의선(醫仙)

천수약왕은 이런 사람이다.

한데 타계했어도 오래 전에 타계한 것으로 믿어지는 그가 살아있는 것이다.

(많은 영약들의 정화가 몸에 베어 있다. 그때문에 이분은 아직도 살아계신 것이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장, 소생이 불편하니... 일어서십시오!]

능천한이 말하자 그제야 천수약왕은 몸을 일으켰다.

[지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노인, 천수약왕은 대답하고는 공손히 시립하였다.

능천한은 허허로운 시선으로 약왕곡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부지존(紫府至尊)은 많은 신비에 싸인 지위인 듯 하구려. 영문을 알고 싶소!]

능천한의 말에 천수약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실 것입니다. 노노가 말씀드리지요!]

천수약왕은 이어서 천수백여 년 전에 있었던 고사(古事)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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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黑龍天神

 

 

 

--- 쿠쿠쿠쿠쿵!

콰르르르르르릉!

갑자기 수백만 근은 나감직한 석벽이 쩍 갈라졌다.

우르르르...!

사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인(四人)이 걸어 나왔다.

선두에 선 황포청년은 교룡피에 싸인 길쭉한 물체를 옆에 끼고 있다.

봉황(鳳凰)의 기품과 영준함,

그리고 태산의 장중함이 청년에게 있었다.

능천한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정기가 넘쳐흐르고 있다.

그의 뒤로 삼인의 절세미인의 걸어 나왔다.

세 여인 모두 절세미인들인데 제각기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우아함과 기품으로 가득한 황후같은 인상의 백의미부(白衣美婦).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가냘픈 청초하며 가녀린 인상의 청의미인,

그리고 교교(嬌嬌)로운 분위기의, 그래서 요사함까지 느껴지는 홍의미인이 그녀들이었다.

광양존후 금벽라.

천혜선자 제갈영라.

환몽천후(幻夢天后)라 이름 지어진 환유전신(幻遊天神)...

바로 그녀들이었다.

[다시 태양을 볼 수 있어 기뻐요!]

막내인 제갈영라가 화사하게 웃었다.

[정말 그렇구나!]

금벽라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태양마저도 안을 수 있었으니...)

능천한은 바라보는 금벽라의 시선이 눈부셨다.

[...!]

능천한은 우뚝 서서 패공산의 산역을 굽어보았다.

천극(天戟)을 비스듬히 비껴든 능천한의 모습,

광해(光海)에 떠오르는 그의 모습은 흡사 천신(天神)같지를 않은가?

그때 능천한 뒤에서 금벽라와 제갈영라는 앞일을 숙의하고 있었다.

 

---신첩을 첩()으로 거두어 주셨으니 상공께서 신경을 쓰시는 일이 없도록 해드리겠아와요.

 

제갈영라는 능천한에게 자신있는 약속을 하였다.

아울러 그녀는 자연스럽게 사해정검맹(四海正劍盟)의 군사가 되어 있었다.

[영라야. 네가 무이산까지 상공을 수행해 드려라.]

광양존후 금벽라가 잔잔히 어조로 말했다.

[언니가 상공의 시중을 드는 것이...]

제갈영라가 말하며 한눈을 찡긋했다.

남편에 대한 가장 은밀하고 깊은 시중을 의미함이리라.

금벽라는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 길은 다만 상공의 시중만이 전부가 아니지를 않느냐? 자부(紫府)의 천년영화를 수습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니... 그일은 네가 적임이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언니!]

제갈영라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네가 나보다 더 상공 곁에 머물고 싶을 것이니...)

금벽라가 공허해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제갈영라를 바라보았다.

[내게 일러줄 말이 있겠지?]

[!]

제갈영라가 눈을 빛냈다.

[계책은 은()과 집()이에요.]

[()과 집()?]

금벽라가 나직하게 되뇌었다.

제갈영라는 능천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설명하였다.

[혈종(血宗)의 힘은 추측을 불허할 정도예요. 겉으로 드러난 혈종오패(血宗五覇)도 나만 혈종의 빙산일각(氷山一角)에 불과해요.]

[으음...]

금벽라는 나직하게 말했다.

혈종오패(血宗五覇)!

당금의 천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그들이 다만 빙산의 일각이라니...

이 얼마나 놀랄 일인가?

[혈종일문의 진정한 변황파의 일전을 대비하여 감추어진 상태예요. 그것은 사해정검맹의 힘 정도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극강한 것이에요.]

제갈영라의 말을 들으며 금벽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세외(世外)로 숨어 힘을 기르란 얘기구나!]

제갈영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것이 은()이에요. 그러나 지금의 사행정검맹 정도의 재원과 인력으로는 아니 되어요.]

제갈영라의 두눈이 아주 밝게 빛났다.

사해정검맹(四海正劍盟)은 광양회를 주측으로,

혈종(血宗)에 피해를 입은 제문파가 연합하여 구성한 맹()이다.

현상태로는 사해정검맹은 다만 혈종오패 중 일패를 간신히 막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많은 인재들과 기인들을 모아야 해요. 그것이 집()의 계책이에요!]

[그 대상은...?]

[인재가 많기로는 녹림(綠林)만한 곳이 없으며 녹림 또한 정도와 같은 처지이니 수월히 협조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에요!]

[녹림이라...!]

금벽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녹림대제가 실종된 이후,

의구심은 당연히 혈종오패에게로 쏠렸고,

녹림은 독자적으로 혈종과 대결하고 있는 중이다.

구주팔황(九州八荒)에 걸린 백만의 녹림도!

그들의 잠력은 실로 무서운 것이다.

그것이 하나로 귀일(歸一)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 외에 취존개(醉尊丐) 선배를 찾으시고 신주오기(神州五奇)를 사해정검맹의 호전(護殿)들로 불러들이셔야 해요!]

[기억할게!]

금벽라가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그런 금벽라를 보며 제갈영라를 환몽천후를 가리켰다.

[환몽(幻夢)을 대동하세요. 큰 방파제 구실을 해줄 거예요.]

[그래, 환몽을 내가 데리고 가마!]

금벽라는 대답을 하며 능천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태산,

능천한은 태산의 기도를 창공에 찔러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고독을 느끼시는가?)

여인들을 능천한의 뒷모습에서 서서히 깔려드는 고독의 그림자를 보았다.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심화되는 영웅의 고독이 능천한에게도 점점 베기 시작하는 것이다.

[...!]

능천한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하늘대신 능천한을 우러러보았다.

능천하는 곧 그녀들의 하늘()이므로...

 

X X X

 

무이산(武夷山).

호남(湖南)의 명산인 무이산이 초하의 뜨거운 별아래 푸를대로 푸르러 있었다.

오시(午時)가 막 지났을 무렵.

스스스스스--- !

자하(紫霞)가 피어오르듯이 무이산을 날아 넘는 한 쌍의 인영이 있었다.

황포의 청년과 가냘픈 미녀.

그들은 패하를 떠나 남하한 능천한과 제갈영라였다.

[호호... 제몸으로 무공을 펼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제갈영라가 맑은 옥음을 내었다.

 

---천혜만음성령지체(天慧萬陰聖靈之體).

 

그 천고의 성체로 인하여 제갈영라는 무공을 익힐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 며칠 간 능천한에게 사랑을 받으며 그 지나친 음기를 억제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스스로도 무공을 연마할 수 있게 되었다.

능천한은 유령제종령(幽靈諸宗令)을 제갈영라에게 보여 주었고,

한번 봄으로써 그녀는 유령대제의 최강의 절기를 찾아내었다.

이름하여,

 

<유령현음명부강살(幽靈玄陰冥府罡煞).>

 

천하에서 가장 극음(極陰)하고,

천하에서 가장 음유(陰幽)한 신공절기가 바로 이것이다.

유령대제가 만년에 완성하고 채 연마도 못했다는...

만명(萬名)분의 음기를 지녔다는 제갈영라다.

그녀는 가공할 속도로 유령현음명부강살을 이루고 있었다.

[...!]

문득 능천한의 검미가 꿈틀하였다.

그는 막 삼십여 장 높이의 석벽을 날아 넘는 중이었다.

그런데 섬뜩한 느낌이 스쳐 지난 것이다.

휘르르르---

스스슥---

능천한은 수직으로 석벽 위로 치솟았다.

한순간,

--- 이이잉---

츠파파--- 파팟---

석벽 위로부터 벼락치듯이 시커먼 강기의 덩어리가 밀려왔다.

[기다렸다.]

쿠쿠쿠쿵---

능천한은 지체않고 마주 강기를 내쳤다.

콰르르르릉---

--- 쾅쾅---

굉렬한 굉음이 터지며 무이산 전체가 뒤흔들렸다.

스스슥---

그 사이로 능천한은 제갈영라와 함께 표표히 석벽 위로 날아 내렸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능천한이 냉갈하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

[...!]

능천한과 제갈영라의 앞으로 십팔인의 흑포장한들이 묵묵히 서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일신에 시커먼 흑포를 걸쳤는데 하나같이 태양혈이 불끈 솟아 있었다.

일견하여, 모두가 절정의 대열에 든 인물들임을 알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들이 팔목에 흑룡(黑龍)의 문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흑룡십팔웅(黑龍十八雄)들이에요.]

제갈영라가 나직하게 말했다.

[흑룡십팔웅! 흑룡궁(黑龍宮) 최강의 호한들?]

능천한이 형형한 장한들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 흑룡궁(黑龍宮)!

 

흑도대종사(黑道大宗師) 흑룡천신(黑龍天神)이 세운 흑도의 거파다.

흑룡천신에 의하여 흑도는 비로소 녹림이나 사마외도와 확연히 구분되었고,

스스로의 신념들대로 저사중도를 걷고 있었다.

흑룡십팔웅은 천하흑도를 대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들이다.

제각기들 절정고수들이나,

그들의 연수합격은 흑룡천신이라도 당하지 못한다고 하는 정도다.

[흑룡천신은 최근 혈종(血宗)에게 굴복한 상태예요. 무엇인가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에요.]

제갈영라가 전음으로 말했다.

스스스스슥---

--- 우우우우웅---

그때 흑룡십팔웅이 용행호보의 보법으로 능천한과 제갈영라를 에워 싼 진세를 좁혀 왔다.

[이들은 기세가 대단한 자들이에요. 정면으로 부딪혀 기를 꺾어 놓으세요.]

[...]

능천한의 천천히 교룡피의 가죽집을 벗겨 천극(天戟)을 꺼내 들었다.

[...!]

[...!]

천극을 발견한 흑룡십팔웅은 흠칫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천극(天戟)을 한눈에 알아 본 것이다.

그리고,

우르르르---

흑룡십팔웅의 전신에서 시커먼 낙뢰가 쏟아졌다.

[흑룡개세(黑龍蓋世)!]

쿠쿠쿠쿠쿵---

콰르르르르---

한순간 십팔인에게서 태산이 무너져 내리듯 엄청난 묵류(墨流)가 쏟아졌다.

[--- !]

능천한의 입에서 창료후가 터졌고,

콰우웅---

그의 손에 들린 천극이 허공을 찔렀다.

--- 이이이잉---

쿠르르르---

그러자 일시에 천지사방이 거창한 강망(罡網)으로 뒤덮었다.

(천극망(天戟網)! 한번 구결을 읽으셨을 뿐인데...)

제갈영라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비록 그녀라고 해도 무공을 수습하는데에는 능천한을 따를 수가 없었다.

콰쾅---

파츠츠츠---

[...!]

[...!]

벽력설 속에서 흑룡십팔웅의 몸이 휘청하였다.

그들의 몸 여기저기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나 있었다.

(우리의 합공을 물리치다니...)

흑룡십팔웅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천지십병은 무적이거늘... 견디어 내다니 대답한 인물들이다.)

능천한도 내심 놀라며 재차 천극을 비껴 들었다.

--- 이이이잉!

흑룡십팔웅도 지체없이 다시 진세를 압축하였다.

[...!]

[...!]

(거령폭류참(巨靈瀑流斬)을 이들이 견디어 낼까?)

능천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다지 그는 흑룡십팔웅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스스스스스---!

천극에서 시커먼 기류가 줄기줄기 쏟아지고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장내를 뒤덮었다.

한데 그때였다.

[못난 놈들! 누가 너희들에게 이런 짓을 하라고 하였는냐?]

아주 괴로운 목소리가 장내를 흔들고,

스스스스슥---

허고에서 우람한 흑영이 떨어져 내렸다.

[궁주!]

[대종사!]

그 흑의인물은 흑룡십팔웅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능천한은 그 인물을 주시했다.

그는 아주 우람한 체구의 흑포노인이었다.

관운장을 연상케 하는 멋진 흑염을 가슴까지 내려뜨린...

(흑룡천신(黑龍天神)!)

능천한은 한눈에 그 인물을 알아보았다.

그 인물은 다름아닌 당대 흑도대종사 흑룡천신이었다.

[으음...]

흑룡천신은 괴롭게 신음하며 능천한을 둘러보았다.

[그대가... 페천잠룡(覇天潛龍)이었다.

[으음...]

흑룡천신은 괴롭게 신음하며 능천한을 둘러보았다.

[그렇습니다. 후배가 황산의 능모입이다.]

능천한의 후배에 흑룡신의 호목이 깊게 빛을 발했다.

그리고는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 역시 황룡(皇龍)의 후손을 잘 두었소.]

흑룡천신은 괴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본의는 아니나... 노부는 그대의 앞길을 막아야 하나.]

(무엇인가 사정이 있군.)

능천한은 흑룡천신의 모종의 위협에 눌러 있을 지시했다.

제갈영라가 전음을 보냈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에요. 그런 그가 혈종수하로 들어간 것을 보면 그는 크게 좌절을 당했었을 거예요.]

우우우우웅---

흑룡천신이 시커먼 묵도를 쳐들었다.

흑룡파황도(黑龍破荒刀)라는 흑룡천신 독문의 애병(愛兵)이다.

이는 사백 년 이전에 절전된 흑황문(黑荒門)의 진산지보,

천병보(天兵譜) 천병일천좌(天兵一天坐)의 이십칠위에 올라있는 병기다.

[천극(天戟)의 신위를 보고 싶네.]

흑룡천신이 무겁게 말했다.

[무너뜨리세요. 한번 좌절을 당한 인물에게는 그것이 약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갈영라의 전음에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팔성(八成)의 거령폭류참이라면... 그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으리라.)

능천한은 염두를 굴리며 천극을 쳐들어 흑룡천신의 가슴을 겨누었다.

우르르르르---

--- 이이이잉---

천극에서 낙뢰가 치듯,

묵직한 기류가 안개같이 피어올랐다.

츠츠츠---

흑룡천신의 흑룡파황도(黑龍破荒刀)에서도 은은한 우뢰성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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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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