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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5.17 [천병신기보] 제 33장 진회하에 부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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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秦淮河에 부는 바람

 

 

 

누각(樓閣).

--- --- !

맑은 금음(琴音)이 누각의 열려진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누각 안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규방이었다.

누각 안에는 삼인(三人)이 있었다.

일남이녀(一男二女).

능천한과 금벽라, 그리고 홍예선희가 그들이었다.

능천한은 금벽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선잠이 들어 있었다.

[귀여운 분...!]

금벽라는 푸근한 미소를 띈채 자기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정랑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섬섬옥수로 능천한의 넓은 이마를 쓰다듬었다.

선잠이 든 능천한.

그는 지금은 천하고수(天下高手)가 아니다.

다만 여인들의 애정을 받아들이는 일개 정인에 불과했다.

--- --- !

능천한과 금벽라의 앞에서 홍예선희가 조용히 칠현금(七絃琴)을 탄주하고 있었다.

그녀의 탄주 솜씨는 천하일절이다.

그저 금음만으로도 편안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상공께서는... 언니만 옆에 계시면 아기같이 잘도 주무시는군요.]

탄주를 하며 홍예선희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이분은 내가 오기만 하면 어린 아기가 되시는 분이니...]

금벽라는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때의 금벽라의 모습은 너무도 온화하고 푸근해보였다.

(사실은... 지난밤에 이 계집에게 몰두하셔서 한숨도 못 주무신 탓이기도 하지.)

금벽라의 볼에 살짝 홍조가 돌았다.

능천한은 몇 번이고 그녀를 요구했었고,

그녀도 거침없이 능천한의 사랑을 갈구했었던 것이다.

[새벽녘에... 이상한 꿈을 꾸었단다.]

금벽라가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능천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꿈을...?]

홍예선희는 금을 내려놓으며 금벽라를 보았다.

금벽라의 두 볼이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어렴풋이 잠이 들자마자 천지가 새카매지고 뇌성벽력이 치는 꿈을 꾸지 않았겠니?]

[...!]

금벽라는 몽롱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암천(暗天)이 쩍 갈라지며 거대한 금룡(金龍)이 나타나 벼락 치듯이 내 속으로 들어왔어. 그 거대한 몸이 어떻게 내 속에 들어왔을까 하고 질겁하며 깨어보니 꿈이었단다.]

[언니...!]

꿈 이야기를 들은 홍예선희의 봉목이 밝게 빛났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 꿈... 태몽(胎夢)같아요...]

[... 태몽!]

금벽라는 화들짝 놀랐다.

[설마...!]

언뜻 이렇게 말을 이었으나 금벽라의 가슴은 물방아 돌아가듯이 쿵쾅거렸다.

(그럴지도... 그럴지도 몰라...)

금벽라의 안색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 꿈이 정말 태몽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금벽라의 흥분에 휩싸여 풍만한 젖무덤을 지그시 눌렀다.

[호호... 축하해요. 언니... 저는 언니가 부러워 죽겠어요!]

홍예선희가 맑게 웃으며 금벽라의 손을 꼭 쥐었다.

[아직... 모르는 일인데... 축하라니...!]

금벽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누각 밖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

금벽라는 방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방문이 열렸다.

이어 늘씬한 흑의미녀 흑단(黑丹)이 두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흑단은 그 이지적인 미모와 늘씬한 몸매로 만화원에서 홍예선희 다음으로 서열이 올라 있는 기녀였다.

그녀가 데리고 들어온 인물들은 일남일녀(一男一女)였다.

사내는 더부룩한 수염을 기른 녹포(綠布)의 중년인이었고,

여인은 환몽천후(幻夢天后)였다.

[...!]

녹포장한은 멈칫하였다.

능천한이 금벽라의 허벅지를 베고 고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천봉(天鳳)... 어서 오너라. 아우님이 주무시니 잠시 앉아 기다려라.]

금벽라가 조용히 말했다.

천봉이라니...

녹림천봉(綠林天鳳)!

그렇다.

녹포인은 바로 녹림천봉 진예빈이 변용한 모습이었다.

지금의 모습은 진예빈이 녹림대제(綠林大帝)를 대신하여 녹림을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이름하여,

 

---녹림천신(綠林天神),

 

녹림천신의 모습이 바로 지금 진예빈의 모습인 것이다.

녹림천봉 진예빈은 조심스레 한쪽으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

이어 그녀는 조심스레 한 장의 정교한 인피면구를 얼굴에서 떼어내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선을 지닌 아름다운 얼굴이 면구 밑에서 나타났다.

(녹림까지 손에 넣으시다니... 상공께서는 도대체...)

홍예선희는 논란 표정으로 진예빈과 능천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금벽라가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금녀의 교수는 여전히 능천한의 시원한 이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금릉(金陵)으로...!]

진예빈이 시선을 능천한의 잠든 얼굴로 던지며 말했다.

[선덕제께서 미행을 나오셨습니다.]

[선덕제께서 미행을...?]

금벽라의 이마가 흠칫 떨렸다.

[금릉에는 이황숙(二皇叔), 황숙들 중에서도 야심이 가장 큰 한왕(漢王)이 있거늘... 이황숙이 당신을 노리고 있음을 잘 아실 터인데...]

금벽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혼자 오시지는 않으셨을 것이고...]

금벽라는 진예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예빈은 공손히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자밀위대(紫密衛隊) 삼백이 암중에 황상을 호위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삼백(三百)의 자밀위대라...]

금벽라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자밀위대!

 

황실의 절정 고수들로 이루어진 시위대다.

개개인의 무공이 화신지경에 이른 자들로서 삼백(三百)이라 해도 구대문파 중 한두 문파의 전력을 능가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어두운 곳에서의 화살 앞에는 천명 만명의 시위라도 무력한 법,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같은 좋지 않은 시기에 어보(御步)를 옮기셨단 말인가?)

금벽라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천자(天子),

 

그 지위는 무림 뿐 아니라 억조창생의 생사가 걸린 무상지위다.

금벽라의 근심이 크지 않을 수 없다.

[... 무림이... 혈란 속에 있거늘 황실마저 어수선하다니...]

금벽라는 한숨을 쉬었다.

[하여... 어찌 해야 하올지요? 저희 힘으로라도 황상을 지켜드려야 할지 어떨지...]

진예빈이 물었다.

[급사이니... 자부에 있는 영라에게는 연락을 못했겠지?]

금벽라가 진예빈을 바라보았다.

[신응(神鷹)을 날려 보내기는 했으나... 저녁 늦게야 돌아 올 것입니다.]

[별도리 없구나. 녹림백팔무영대(綠林百八無影隊)와 정검신영대(正劍神影隊) 삼백으로 폐하 주위를 막고 신주오기와 취존개 태상호법(太上護法)을 급히 금릉으로 소환하거라!]

[...!]

[...!]

금벽라의 지시를 들으며 홍예선희와 흑단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암중에서... 사해정검맹은 엄청난 속도로 커가고 있었구나. 어쩌면 혈종은 큰난관에 부딪히겠는걸...)

홍예선희의 봉목이 맑게 빛났다.

그리고,

[분부... 거행하겠사옵니다.]

진예빈이 금벽라에게 절을 하며 일어섰다.

그때였다.

[예빈! 그럴 필요없다.]

한소리 담담한 목소리가 진예빈의 교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언제인가 금벽라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능천한이 눈을 뜨고 있었다.

[,,,,, 지존!]

--- !

진예빈은 능천한을 향하여 오체복지하였다.

능천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황상을... 호위해드릴 필요없다!]

능천한이 정좌를 하며 말했다.

[아우님... 무슨 말씀이신지...!]

금벽라가 의아해하며 시선을 모았다.

능천한은 환몽천후에게 손짓을 하며 입을 열었다.

[선덕제께서는 영민한 분, 이번 금릉미행에는 큰 뜻이 있을 것이외다.]

[큰 뜻?]

여인들은 이해를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하하! 환몽은 갈수록 아름다워 지는구려!]

여인들이 의아해하는데 능천한은 다가온 환몽천후를 덮썩 안아 무릎에 앉혔다.

[...!]

[...!]

여인들은 살짝 옥용을 붉혔다.

능천한의 손이 환몽천후의 저고리 속으로 들어가 환몽천후의 풍만한 유방을 만지작거렸다.

[황상께서는... 한 분의 강력한 조력자의 힘을 빌어 모든 환난을 일거에 제거하실 작정이실 것이오!]

[으음...!]

금벽라의 안색이 흔들렸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이다.

[황상께서... 그 존체를 미끼로 던지셨단 말씀이십니까?]

금벽라가 신음하며 물었다.

능천한은 환몽천후의 유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황상께서 점차 성장해 가시는 초조한 자들이 있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흑()과 백()이 명백히 구분될 것입니다.]

[으음...!]

[만승지존의 모으로 미끼가 되시다니...!]

여인들은 아연하여 신음을 흘렸다.

능천한은 환몽천후를 안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덕제께서는 과연... 만승지존이 되시기에 충분한 분이다.)

본능적이랄까?

능천한의 뇌리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은...

(황백(皇伯)... 황제의 백부라는 그 자의인(紫衣人)... 필시...)

황백이라는 신비인물,

능천한은 그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X X X

 

청죽림(靑竹林).

진회하 연안을 격한 넓은 분지다.

이곳은 금릉특유의 청죽(靑竹)으로 가득 차 있는 절경이고,

청죽림에는 황실의 별궁(別宮)인 청하궁(靑霞宮)이 있다.

신시말(申時末),

스스스스...

가을을 당하여 진회하면서 갈대들이 하얀 머리를 풀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하하... 좋은 풍광이 아닌가?]

갈밭을 거닐며 호탕하게 웃는 청년이 있었다.

수려한 용모에 백삼을 걸친 청년이었다.

그 영준함도 영준함이지만,

청년의 초탈한 일신에서는 범접키 힘든 기도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청년...

그가 서 있는 곳은 아무리 너른 곳이라고 그의 기도로 가득 차는 것이다.

[...!]

청년의 뒤,

분홍궁장여인이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면사를 하여 용모는 알 수 없으나,

분홍궁장에 싸인 교구에서는 가히 폭발적이라 해야 옳을 매력이 발산되어 지고 있었다.

궁장여인은 가슴에 길죽한 피낭(皮囊)을 안고 있었다.

다섯 자 길이의 교룡피로 만든 가죽주머니였다.

[환몽! 이같은 풍광을 봄도 실로 오랜만이겠구려!]

청년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여인을 돌아보았다.

청년은 능천한이었고, 면사여인은 환몽천후였다.]

[하하... 이리 오시오!]

능천한은 껄껄 웃으며 환몽천후의 섬섬옥수를 쥐었다.

[...!]

환몽천후는 부끄러운 듯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능천한에게 섬섬옥수를 맡겼다.

영혼이 없는 여인,

그러나 영혼 이전에 여인이기에 지니는 본능(本能)이 있는 탓일까?

스스스스슥!

사가가각! 사삭--- 사각!

갈대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여러 가지 소성이 일었다.

문득,

--- --- 디딩!

그 갈대의 소리사이로 물이 흐르는 듯한 금음(琴音)이 일었다.

[훌륭하군. 홍예에 못지않은 솜씨인걸!]

능천한은 두 눈을 형형히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금음에 뛰어난 명인의 혼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 것이다.

[환몽! 가봅시다!]

[...!]

스스스슥!

능천한은 환몽천후를 이끌고 구름이 흐르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은 삽시에 십여 마장 밖에 이르렀다.

[...!]

능천한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진회하(秦淮河) 변의 울창한 버드나무숲이었다.

능천한은 버드나무가 휘휘 늘어진 사이로 시선을 보냈다.

버드나무가 빙 둘러선 사이,

화려한 향차가 한대 서 있고, 그 옆에 사방이 트인 천막이 쳐져 있었다.

천막주위에는 궁녀(宮女) 차림의 시녀들이 네명 둘러 서 있으며,

천막 안에는 한 명의 자의미인이 그림같이 앉아 고금(古琴)을 뜯고 있었다.

그 미인을 바라보며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한 폭의 미녀도(美女圖)를 보는 듯하군.)

미인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감탄의 기색이 흘렀다.

기품(氣品).

미인에게는 천성적으로 몸에 배인 고귀한 기품이 있었다.

그 기품은 범사한 아녀자들이 꾸며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문득,

--- !

금음이 높고 맑은 소리를 내다가 뚝 끊겼다.

--- !

그와 함께,

한 쌍의 너무도 강렬한 시선이 능천한에게 쏘아져 왔다.

여인의 시선이지만 범인이라면 오금이 저릴 위엄이 담긴...

(무공을 지녔군. 황실의 여인으로 보이거늘...!)

능천한은 내심 의외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때서야 시녀들은 능천한을 발견하고 안색이 홱 변했다.

[무엄하구나. 어느 분의 안전인데 눈을 바로 뜨느냐?]

시녀 중 한 명이 날카로운 교성을 질렀다.

[그만 두거라!]

자의미인은 그런 시녀에게 조용한 어조로 말하며 손을 저었다.

능천한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이채가 감돌고 있었다.

능천한은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결례를 용서하오. 소저의 탄주가 너무 훌륭하여 발길이 이끌렸소이다.]

능천한은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부끄러운 솜씨로 귀공의 귀나 어지럽히지 않았으면 다행이겠사옵니다.]

자의미인이 훈훈하게 웃으며 답례를 하였다.

[부인과 잠시 오시지요. ()를 대접하고 싶사옵니다.]

자의미인이 능천한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맙소이다!]

능천한은 대답을 하고 자의미인이 있는 천막으로 다가갔다.

그가 다가가자 시녀들은 움찔하며 공손하게 물러섰다.

(범상한 분이 아니다.)

그제야 능천한의 모습에서 비범함을 발견한 때문이다.

[고맙소이다.]

능천한은 천막 안으로 들어서 자리에 앉았다.

[존함이...!]

자의미녀가 조용히 물었다.

[능천한이외다. 황산(黃山)에서 왔소이다!]

[능천한... 능공자셨군요!]

자의미녀의 봉목에 산뜻한 이채가 지나갔다.

[소생을 아시는지...?]

능천한이 담담하게 묻자 자의미인은 함초롬히 미소를 지었다.

[호호, 패천지존 능대공자님을 뉘라서 모르겠습니까?]

[패천지존이라... 감당키 어렵소이다.]

[호호, 겸양이시옵니다. 소녀는 주하령(朱霞靈)이라 하옵니다.]

여인의 말을 들으며 능천한은 여인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씨라면 황족(皇族)이겠군. 황족이 아니면 이같은 기품을 지니기 어려우니...)

(과연... 황백의 말씀과 부합하는 영걸이다. 향후 백년무림이 이분의 손아래 있겠다.)

능천한과 주하령의 시선이 허공에서 어우러졌다.

잠시 두 남녀는 서로의 깊이 감추어진 비범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난세는... 큰 영웅의 탄생을 위하여 있다함이 틀리지 않음을 공자님을 뵙고 실감하겠사옵니다.]

[하하! 과찬 과찬이십니다!]

능천한이 껄걸 웃을 때였다.

--- --- !

멀리서 한 줄기 날카로운 호각성이 일었다.

[...!]

호각성을 들은 주하령의 교구가 움찔하였다.

(저곳은 청하궁이 있는 청죽림...!)

능천한은 눈을 들어 호각성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을 청죽이 우거진 분지였다.

[실례를 하여야겠사옵니다!]

주하령이 고금(古琴)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생에 대해서는 심려마십시요!]

능천한도 같이 일어섰다.

[다시 뵈올 수 있기를...]

주하령은 유심히 능천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봉목은 기이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어,

--- 스스슥!

옥보(玉步)를 한 걸음 떼어 놓았다고 여긴 순간,

주하령은 오십 장 밖에 이르러 있었다.

--- !

--- 르르르!

스스스스--- !

동시에 네 명의 시녀도 제비가 날듯이 몸을 뽑아올려 주하령의 뒤를 따랐다.

[옥접화영신보(玉摺花影神步)... 옥접지존(玉蝶至尊)의 후인인가?]

능천한은 날아가는 주하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옥접지존!

 

홍무제 주원장을 도와 명조 건국에는 큰 몫을 했던 황실고수다.

그는 여인으로 황실사상 최강의 여고수(女高手)로 꼽힌다.

[환몽... 드디어 역도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오. 가봅시다.]

능천한은 환몽의 교수를 꼭 쥐며 걸음을 옮겼다.

--- 스슥!

그의 신형도 일시에 백 장 밖으로 움직여졌다.

스스슥! 휘르르르르!

능천한과 환몽천후는 표표히 허공을 갈랐다.

문득,

[--- 아악!]

처절한 신음성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호호호호...!]

극히 요요로운 웃음소리가 그뒤를 이었다.

[천향염후!]

그 웃음소리에 능천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천향염후가 이곳에 나타나다니...!]

스스스슥!

--- 이이이잉!

능천한은 허공에서 벼락같이 몸을 비틀어 웃음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날아갔다.

[크으... ... 네년이... 바로...!]

고통스런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스스스--- !

능천한은 까마득히 치솟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갈밭의 일각이 풍지박살이 나 있었고,

그 안에 이인(二人)이 있었다.

한 명의 여인과 사악하게 생긴 회포노인이 그들이었다.

여인.

벌거벗다시피한 여인은 능천한도 아는 영니이다.

기묘한 체향을 갈밭 가득히 뿌리는 절세미녀...

바로 천향염후였다.

그리고,

[으으...!]

피범벅이 되어 꿈틀거리는 회포노인...

그자는 가슴이 으스러지고 복부가 찢어져 창자가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중상을 입었다.

[... 천검미후(天劍美后)... 네년이 죽지 않았다니...!]

회포노인이 피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뇌까렸다.

(천검미후 나서련! 천향염후가 바로 그녀...!)

장중을 내려다보던 능천한의 눈빛이 일변하였다.

[호호호호! 역천사황(逆天邪皇)! 천검성 일천원혼의 한을 갚겠다!]

천향염후의 교수에서 폭풍이 일었다.

[사황뇌격(邪皇雷擊)!]

파츠츠츠츠---!

회포노인은 발악하듯이 핏빛강기를 떨쳐 내었다.

그러나 회포노인, 쌍황(雙皇)에 든다는 역천사황이건만 천향염후의 적수가 아니었다.

콰쾅!

[--- --- !]

피와 살 조각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역천사황의 몸뚱이가 벼락에 맞은 듯이 산산이 부수어져 날아갔다.

 

---역천사황.

 

쌍황의 일인에 들던 그의 최후치고는 너무도 허무한 종말이었다.

--- 스슥!

능천한은 환몽천후와 함께 천향염후의 뒤로 날아내렸다.

[...!]

천향염후는 능천한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고,

망연히 서서 갈가리 찌긴 역천사화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울고 있구나.)

능천한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천향염후,

그 희대의 요녀의 양볼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천향염후가 애처로워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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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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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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