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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八 章

 

                        古井秘密

 

 

 

[...!]

홍예선희가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접한 능천한은 내심 뜨끔했다.

홍예선희의 봉목에 어떤 결연한 빛이 감도는 것을 본 것이다.

(이 여인... 설마...)

홍예선희는 다소곳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면서 나직하나 아주 강경한 의지가 담긴 어조로 말했다.

[천첩... 비록 기녀의 몸이오나... 아직 청백지신(靑白之身)이옵니다.]

[...]

홍예선희의 말에 능천한은 표정이 복잡해졌다.

예감이 맞아 들어가는 것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천첩은... 처녀지신으로... 단 한 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곳까지 상공께 보여 드렸사옵니다.]

그녀는 능천한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능천한도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홍예선희의 봉목은 뜨거운 정열로 달아올라 있었다.

[상공께서 천첩을 거두시든지 어찌하시든지간, 천첩은 이제 상공을 위해 목숨으로 지켜야 할 정절(貞節)이 생겼사옵니다.]

[그대는...]

능천한이 무어라 말하려 하였으나,

홍예선희는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화답을 주소서. 만일 거두어 주신다면 상공에 대한 정절을 지키겠습니다.]

[으음...]

능천한의 표정이 당혹하게 물들었다.

홍예선희의 말은 반협박조였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만도 없었다.

능천한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구려.]

[상공...]

홍예선희의 눈빛이 흔들렸다.

(벽라누님에게 또 죄를 짓는군!)

능천한은 금벽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직후였다.

[...!]

능천한은 검미를 찌푸렸다.

[무슨 일이온지요?]

홍예선희가 흠칫하며 능천한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인간의 심리를 철저하게 파헤치는 훈련을 받았다.

그 훈련 덕분에 그녀는 능천한이 무엇인가를 감지했음을 재빨리 알아본 것이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소.]

능천한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홍예선희의 눈이 갑자기 형형하게 빛났다.

마침 능천한은 누각 밖으로 시선을 돌려 홍예선희의 일변한 눈빛을 보지는 못했다.

(상당한 고수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을 주시하였다.

스스스슥---

야공을 가르며 한 명의 노인이 날아 내렸다.

칙칙한 회의를 걸치고 머리를 삭발한 자인데,

두 눈에서 섬뜩한 벽광(碧光)이 흐르고 있었다.

(독문(毒門)의 고수다. 벽독마라강(碧毒魔羅罡)을 익혔군!)

능천한은 단정히 앉은 채 그자를 내려다보았다.

문득 홍예선희가 전음으로 말했다.

[저자는 벽독문(碧毒門)의 문주인 벽안독마(碧眼毒魔)예요.]

[벽독문의 문주...]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벽독문(碧毒門),

 

독종(毒宗) 휘하 삼대독문(三大毒門) 중 하나이다.

다만 오래전부터 무림에서 활동을 하지 않아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문파다.

(묵영독존의 수하에 든 자일까?)

능천한이 염두를 굴릴 때였다.

스스스슥---

주위를 힐끔 힐끔 돌아보며 벽안독마는 고정(古井)으로 뛰어 들었다.

(고정으로 뛰어들다니... 저 고정 속에 무슨 비밀이 있는 듯하구나!)

생각하던 능천한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스스스슥---

그의 예민한 귓전으로 여러 가닥의 파공성이 들린 것이다.

스스슥---

먼저 한 명의 문사가 내려섰다.

청포를 걸친 매우 청수한 인물로서 등에 쌍검을 꽂고 있었다.

(쌍검군자(雙劍君子)... 신주오기(神州五奇) 중의 인물이니... 벽라누님의 명을 받고 왔는가?)

능천한은 담담하게 눈을 빛냈다.

그 문사는 신주오기의 일인인 검()의 달인(達人)이다.

그리고,

스스슥---

한 줄기 왜영이 쌍검군자 앞으로 날아내렸다.

타는 듯이 붉은 홍의를 걸친 깜찍한 소녀였다.

(천산홍연(天山紅燕) 위지련...)

그 소녀는 능천한도 일전에 본적이 있는 천산노인의 제자 천산홍연이었다.

[대숙(大叔)! 맹주언니는 혈종과 충돌에 대비하여 외곽에 포진하시겠다고 하셨어요.]

위지련의 말에 쌍검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들어가자!]

[!]

스스스슥---

휘르르르---

쌍검군자와 위지련도 표표히 고정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벽라누임이 와 계시는 모양이군!)

능천한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그때였다.

--- ---

스스스슥---

두 줄기 인영이 동시에 나타나 고정으로 뛰어 들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런 폐장에 무림인들이 저같이 모여드는가?)

문득 능천한의 뇌리에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혹시... 저 고정이 여황궁과 관련되는 것이 아닐까?)

능천한은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에 이삼십여 명의 정사양도의 고수들이 고정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메뚜기떼같이 날아들던 무림인들의 종적도 뜸해지고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이제 끝인가?)

능천한은 홍예선희를 돌아보았다.

[우리도 가봅시다.]

[!]

헌데 두 남녀가 막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호호호호...]

한소리 맑기가 이를 데 없는 여인의 교소가 들렸다.

스스스---

이어 폐장 안으로 한 줄기 불타오르는 듯한 홍영(紅影)이 날아들었다.

일어서려다가 다시 몸을 낮춘 능천한은 날아든 홍영을 바라 보았다.

[...]

홍영을 바라보던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십여 세정도 되었을까?

홍영은 육감적인 갈색피부에 윤곽이 아주 뚜렷한 이국적인 용모의 여인이었다.

치렁치렁한 머릿결이 탐스럽고,

타는 듯 붉은 홍의에 감싸여 있는 육감적인 몸매가 연신 출렁이고 있었다.

가히 뇌쇄적이라 할만한 용모요 육체였다.

(대단한 미모와 색기의 소유자다.)

능천한은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갈색피부의 미녀는 그만큼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홍예! 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보겠소?]

능천한은 전음으로 홍예선희에게 물었다.

[천첩도 저런 아이가 무림에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사옵니다.]

홍예선희는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옥용에 안타까운 기색이 일었다.

(상공... 제발... 그 계집에게만 시선을 주지 마시옵소서.)

홍예선희는 홍의여인만 바라보는 능천한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이미 그녀는 냉혹한 손속을 지녔던 살수가 아니었다.

다만 한 남자의 사랑만을 기다리는 평범한 아녀자였다.

그때였다.

[--- --- ---]

갑자기 귓청을 찢는 날카로운 장소가 이 리 밖에서 들렸다.

(대단한 공력... 누구이기에...)

능천한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그 장소성에 실린 공력이 적어도 육갑자에 이르는 것을 알아차린 때문이다.

[! 나 혼자 있고 싶었는데...]

홍의여인은 장소성이 들린 곳으로 혀를 낼름해보였다.

[검노(劍老)가 와보아야 헛탕만 칠걸!]

여인은 앙증맞은 표정을 지어 보았다.

[저곳에 숨어야지!]

--- --- !

이어 홍의여인은 그대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

홍예선희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홍의여인이 날아든 곳은 바로 능천한과 그녀가 은신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

--- 스슥!

전각으로 날아든 홍의여인도 질겁하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너무 놀라 까만 두눈을 화등잔만하게 치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둠 속에 능천한이 석상같이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

[...!]

능천한의 시선과 홍의여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

능천한의 면모를 그제야 확인한 홍의여인의 옥용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 모습을 보며 흥예선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계집도... 상공께...)

그때였다.

스스스스--- 스슥!

안개가 퍼지듯이 폐장 안으로 한 줄기 청영(靑影)이 스며들었다.

[...!]

그 인물에게로 시선을 돌리던 능천한의 봉목에 형형하게 빛났고,

[! 헛수고나 하세요!]

홍의여인은 입안으로 재잘대며 청의인을 향해 혀를 낼름거렸다.

(대단하다. 은연 중에 흘리는 기도만으로도 누구든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능천한은 감탄의 눈길로 청의인을 바라보았다.

청의인은 나이를 알 수 없는 백발 노인이었다.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의 일신에서는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기도가 흐르고 있었다.

능천한의 시선은 그 노인이 짊어지고 있는 장검(長劍)에 이르렀다.

장검은 무척 길었다.

길이는 무려 네가 여섯치나 되며,

폭은 한 치가 채 안되었다.

(저런 장검을 쓰는 곳은 단 한곳 동해(東海) 해천검파(海天劍派) ...)

능천한의 눈에서 형형한 신광이 흘렀다.

(변황제일검파라는 해천검파의 절정고수를 보게 되다니...!)

능천한이 내심 경이로워할 때,

[이곳에서 공주님의 웃음소리가 들린 듯 한데...]

창의노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공주? 이 망나니같은 소저가... 공주라고?)

능천한은 고개를 돌려 홍의여인을 돌아보았다.

[!]

홍예선희 옆에 착 달라붙어 있던 홍의여인이 능천한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보였다.

[후훗...]

그런 여인의 모습이 귀여워 능천한은 나직이 웃음을 지었다.

--- !

순간 심신을 얼려버릴 듯한 검광(劍光)이 전각을 향하여 뇌전같이 흘렀다.

(대단한 이목! 단음기공을 썼건만...)

능천한은 감탄하며 천극(天戟)을 마주 내찔렀다.

--- --- 카캉!

불꽃이 튀고,

전각으로 날아들던 청의인의 검기가 산산이 부서졌다.

[...!]

검기를 부순 능천한은 몸을 일으켜 난간으로 나섰다.

[...!]

재차 검을 발출하려던 청의노인의 몸이 언뜻 굳어져 버렸다.

(... 태산같다. 신존(神尊)에 못지않은 기도를 지녔다니...)

능천한을 발견한 노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검의 예기에 평생을 걸어온 그다.

사람과, 그의 지닌바 무게 정도를 알아보는 데에는 이력이 난 청의노인이다.

그는 한눈에 능천한이 상대 못할 거산(巨山)임을 알아본다.

[...!]

청의노인은 노안을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었다.

(중원에... 이런 인물이 둘만 있으면... 신존의 대망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청의노인은 복잡한 눈길로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 가각!

섬전이 번뜩였는데 장검이 이미 검집으로 들어갔고,

--- 으윽!

일보를 내딛자 청의노인의 신형이 폐장 밖으로 날아갔다.

[...!]

청의노인이 사라지자 능천한은 비로소 긴장을 풀며 천극(天戟)을 거두었다.

(오빠보다도... 더 커보인다!)

그런 능천한을 넋이 나가 바라보는 눈길이 있다.

바로 홍의여인이었다.

[홍예, 가봅시다!]

스스스슥---

능천한이 몸을 움직여 고정 옆으로 날아내렸다.

--- !

--- 이익!

홍의여인과 홍예선희도 능천한의 뒤를 따라 옆으로 날아내렸다.

홍예선희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난생 처음보는 홍의의 새까만 계집이 자기 팔을 꼭 끼고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호호... 이봐요. 나는 사란(紗蘭)이에요! 남들은 공주라 부르죠!]

홍의여인이 능천한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사란... 예쁜 이름이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정을 들여다보았다.

[와아! 사란의 이름이 예쁘다고요? 언니... 들었지? 들었지?]

능천한이 그냥 한 마디 했거늘,

사란은 길길이 날뛰며 좋아했다.

(의외로 순진한걸...)

그 모습에 홍예선희는 마음이 풀려 절로 미소를 지었다.

[맞아! 동생은 이름뿐 아니라 얼굴도 예뻐!]

홍예선희가 사란의 긴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호호... 언니 최고...]

사란은 홍예선희의 팔을 끼고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들어갑시다!]

--- !

능천한은 몸을 깃털같이 가볍게하여 고정 속으로 뛰어 들아갔다.

[함께 가요!]

사란이 홍예선희를 잡아끌며 그 뒤를 따랐다.

휘르르르르...

세 사람은 곧장 이십 장을 떨어져 내려갔다.

 

세 사람은 제법 널찍한, 물이마른 고정의 바닥에 이르렀다.

[어머멋!]

헌데 바닥에 내려선 직후 사란이 비명을 질렀다.

한쪽 벽에 큼직한 통로가 있었다.

한데 그 통로입구에 십여 명의 소녀가 죽어 넘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곱게 죽은 것이 아니고 사지가 찢어져 죽어 있는 것이었다.

(벽안독마... 그자 짓이군!)

능천한은 시신들이 시퍼렇게 변해있음을 보고 두눈을 싸늘하게 번득였다.

소녀들을 죽인 범인이 가장 먼저 고정으로 뛰어든 벽안독마임을 알아본 것이다.

--- --- !

능천한은 구름이 흐르듯이 통로 안쪽으로 날아들어 갔다.

통로 여기저기에는 입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인들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홍예선희는 질겁을 하는 사란을 이끌고 능천한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곧 널찍한 지하광장에 이르렀다.

(이런 곳에 지하광장이 있다니... 놀랍군!)

능천한은 담담한 눈빛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전면으로는 여러 방향으로 통하는 석문들이 있었다.

능천한은 어느 석문으로 들어갈까 망설였다.

그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 --- --- 아악!]

어디선가 여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능천한은 홍예선희를 돌아보았다.

[홍예! 그대는 사란소저와 이곳에서 기다리오!]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홍예선희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으나 사란은 투덜대었다.

[이봐요! 우리는 왜 안 데려 가려는 것이에요!]

능천한은 엄한 눈길로 사란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그대가 갈만한 곳이 못 되오. 여기서 홍예와 기다리시오!]

능천한의 엄한 말에 사란은 자라같이 목을 끌어당기며 투덜거렸다.

[! 저럴 때는 꼭 오빠같애...!]

스스스--- !

능천한은 투덜거리는 사란과 홍예선희를 뒤에 두고 바람같이 하나의 석문 안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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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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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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