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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 章

 

                 五百年前美女

 

 

 

[...!]

능천한은 망연히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몸에는 한 올의 힘도 남아있지를 않았다.

일신의 모든 힘을 두 여인의 몸에 쏟아부은 후였기 때문이다.

정녕 기이했다.

사지에는 그저 무기력함만이 가득함에 비하여,

그의 일신에는 맑고 신선한 기운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천극대정신맥에서 우러나오는 굳강하고 정대(正大)한 잠력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봉황극락신향(鳳凰極樂神香)의 효용이리라...)

능천한은 쓴웃음 지었다.

... ...!

넓고 우람한 그의 가슴으로 따뜻하고 규칙적인 숨결이 와닿았다.

능천한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벌거벗은 가슴,

그곳에는 어미 새의 품에 안긴 아기 새같이 꼭 안겨 있는 여체(女體)가 있었다.

너무도 맑아 백옥같은 피부를 지닌...

바로 천혜선자(天慧仙子) 제갈영라(諸葛瓔羅)였다.

그녀의 고운 피부는 곳곳에 거칠게 유린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귀엽고... 당돌한 여인...)

능천한은 제갈영라를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가냘픈 모습에 비하여 몸은 아주 뜨거운 여인이었다.

[영라...!]

능천한은 손을 들어 그녀의 젖가슴을 쓰다듬었다.

작으나 탄력있는 그녀의 육봉이 땀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 ...!]

능천한은 등으로 전해지는 또 다른 흐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발가벗겨진 풍만한 여체가 그의 등에 꼭 붙어 흐느끼고 있었다.

그 여쳬는 능천한을 놓치기라도 할까보아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누님...!]

능천한은 여인의 교수를 꼭 쥐었다.

[아우님...!]

여인... 광양존후 금벽라도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미안합니다. 누님...!]

능천한의 말에 금벽라는 옥용을 그의 등에 파묻었다.

[아우님의 잘못이 아니고... 신첩은 다만 아우님의 곁에 머물 수만 있다면 원이 없으니...!]

금벽라가 촉촉한 어조로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누님...!]

능천한은 돌아누우며 금벽라를 끌어안았다.

뭉클 안겨드는 풍만한 동체...

그리고 물기를 실은 기품있고 따스한 옥용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금벽라는 얼굴을 물들이며 능천한을 살짝 떠밀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말을 하며 금벽라는 몸을 일으켰다.

젖무덤이 물결치듯이 출렁이고...

[...!]

돌아앉던 금벽라는 하복부를 움켜쥐며 움찔하였다.

하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의복을 걸쳤다.

능천한도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상공... 용서하세요!]

제갈영라가 눈을 꼭 감은 채 옥용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도 잠에서 깨어나 있었던 것이다.

[흐음...!]

능천한은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제갈영라를 안아 일으켰다.

[지난 일이고...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미안해 할 필요없소...]

그는 대답하며 그녀의 저고리를 어깨에 걸쳐 주었다.

[감사하옵니다. 상공...]

제갈영라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떨구어진 그녀의 시야로 석실바닥의 여기 저기에 피어 있는 선연한 혈화(血花)가 들어왔다.

두 여인이 능천한에게 순결함을 바쳤다는 아프고 아름다운 흔적이었다.

세 사람은 의복을 정돈했다.

[몸은 어떻소?]

능천한이 걱정을 담아 물으며 제갈영라 앞에 앉았다.

제갈영라는 목까지 붉게 물들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파서... 일어설 수가... ... 사옵니다...!]

[그것 보오...!]

능천한은 고소를 지으며 제갈영라의 가냘픈 교구를 두 팔로 안아들었다.

[이후로... 나의 허락없이 이런 당돌한 일을 하면 용서치 않겠소!]

능천한이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였다.

[아우님... 이리와 보시어요!]

금벽라가 한쪽에서 능천한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능천한은 제갈영라를 안은 채 금벽라에게로 다가갔다.

금벽라는 한쪽의 석벽 앞에 서 있었고,

그녀의 앞에는 또다른 은밀한 석벽이 하나 있었다.

[석문(石門)이 있어요!]

금벽라가 다정한 눈빛으로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어찌되었든 그는 금벽라가 평생을 섬겨야 할 지아비이니...

[기관이 있어요. 환유천신이 훔쳤다는 삼십육종의 재화중 마지막 신품(神品)이 숨겨져 있을 거예요!]

제갈영라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렇겠구려!]

능천한은 석실의 유리관이 모두 삼십 오 개임을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문의 우측상단 세 치 쯤에 지력으로 구멍을 내세요!]

제갈영라가 금벽라에게 말했다.

--- --- !

--- 가각!

금벽라가 지체없이 광양지력(廣陽指力)으로 석문에 구멍을 내었다.

그러자,

--- 그그긍!

으르르르...!

석문이 육중하게 끌리며 뒤로 물러났다.

[다른 위험은 없어요. 들어가시어요!]

--- --- 뚜벅!

제갈영라의 말에 능천한은 석문 안으로 들어갔다.

석문 안쪽은 또 다른 석실이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석실인데 중앙에는 석상(石床)이 하나 놓여 있고

건너편에 또 다른 석문이 보였다.

한데 그 석문에도 전자(篆字)의 글씨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환혼비전(環魂秘殿).>

 

[환혼비전(環魂秘殿)이라...!]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석실중앙으로 다가섰다.

문득 그의 시선이 석상(石床) 위에 머물렀다.

석상위에는 길이 다섯 자 정도의 교룡피(蛟龍皮)에 싸인 물건이 놓여 있었다.

(무엇인가?)

능천한은 강렬한 호기심이 꿈틀거림을 느꼈다.

기이하게도 어떤 영감이 강하게 일어나 그의 시선을 교룡피에 든 물건에 묶어 두었다.

 

---기다렸다. 수천 년의 세월을 그대를 기다려 왔노라.

 

능천한의 뇌리에 교룡피 안의 물건이 영감이 전해 오는 듯 하였다.

[영라는 신첩이 안을테니... 살펴 보세요.]

금벽라가 능천한에게 말하며 제갈영라를 안아등었다.

[...!]

능천한은 숨을 들이쉬며 석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흥분된 손길로 교룡피를 벗겼다.

[...!]

교룡피를 벗기던 능천한은 멈칫하였다.

의외로, 교룡피에서 나온 물건은 아주 볼품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무튀튀한 하나의 극()이었다.

길이는 다섯자,

극인(戟刃)의 길이가 두 자이고 손잡이가 세 자의 길이였다.

한데 그 극은 어디를 보아도 뛰어난 점이 없었다.

전체가 시커멀 뿐 아니라 극인(戟刃)조차도 뭉툭하여 무엇을 잘라낼 수 있을 것 같지를 않았다.

그러나,

(무엇이... 이리도 내마음을 끄는가?)

능천한은 그 볼품없는 극()이 너무도 강렬하게 자신의 마음을 끌어당김을 느꼈다.

그때였다.

[천극(天戟)이군요!]

금벽라에게 안긴 제갈영라가 나직하게 말했다.

[천극(天戟)! 이것이 천지십병(天地十兵)의 서열십위에 올라 있는 천극(天戟)?]

능천한은 새삼스럽게 극을 바라보았다.

!

문득 교룡피 안에서 하나의 두루마리가 능천한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

능천한은 허리를 숙여 두루마리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오래된 듯이 뽀얗게 빛이 바래 있었다.

능천한은 두루마리를 펼쳤다.

 

<인연(因緣)있는 자를 위하여 대라천기선(大羅天機仙)이 남긴다.>

 

[대라천기선(大羅天機仙)!]

능천한은 나직이 되뇌었다.

 

---대라천기선(大羅天機仙)!

 

그는 무림사상 제일의 현자(賢者).

학문은 고금(古今)을 통하고 그 지혜는 천세를 뛰어 넘을 정도였다.

천극(天戟)!

그 볼품없는 거무튀튀한 극()이 천지십병(天地十兵)에 남아있는 것도 실상은 대라천기선의 명성덕분이었다.

 

<천극(天戟)이 주인을 찾으리라.

극히 크고 혼돈된 때를 접하여 천극(天戟)의 진면모가 나타나리니...

그때를 만나면 대혈운(大血雲)도 산산이 부서지리라.

여기 연자(緣者)를 위하여 보잘 것 없는 재주나마 남기나니...

스스로 연자(緣者)가 아님을 느낀다면 다시 볼 필요도 없으리라!>

 

그리고, 그 아래로 두 가지 구결(口訣)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한 가지 심법과 이초(二招)로 이루어진 초식이었다.

 

<천혜극령쇄심기(天慧極靈碎心氣).>

 

이는 일종의 초상승의 정신력의 운용법이었다.

이에는 두 가지 묘용이 있다.

하나는 정령(精靈)을 극도로 강하게 다져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력으로 타인의 영혼을 부수어 버릴 수 있는... 극히 강한 파령지력(破靈之力)이다.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도록 강한 것이고,

그 때문에 이는 범인보다 몇 백배 강한 정력(定力)을 지닌 자만이 수습할 수 있다.

 

<천극이절해(天戟二絶解).>

 

천혜극령쇄심기 다음에 적힌 것은 천극의 운용을 위한 이초의 초식이었다.

 

---천극망(天極網).

---거령폭류참(巨靈暴流斬).

 

이것이 그 두 가지 초식이었다.

[지니고 있으시오!]

두루마리를 한번 훑어본 능천한은 제갈영라에게 건네주었다.

[...!]

그리고는 잠시 천극(天戟)을 들여다보았다.

검은 천극 속이 어떤 커다란 비밀이 감추어져 있음을 능천한은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능천한은 천극을 교룡피의 집속에 집어넣고 걸음을 옮겼다.

(환혼비전(環魂秘殿)이다.)

능천한은 눈을 빛내며 건너편 석문으로 다가갔다.

그르르르르--- !

능천한이 밀자 석문은 의외로 순순히 열렸다.

스스스스슥!

휘르르르르---!

석문이 열리자 기이한 단향 내음이 확 풍겨 나왔다.

능천한은 강렬한 안광을 쏟아내며 석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화려하게 치장된 여인의 거처였다.

사방의 벽에는 고서화들이 가득 걸려 있는데 하나하나가 진품이었다.

능천한은 묵묵히 석실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붉은 휘장이 드리워져 있는 침상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누워있다.)

능천한은 침상 위에 누군가 누워있음을 알아차리고 다가갔다.

--- !

능천한은 거침없이 휘장을 걷었다.

(!)

휘장을 걷던 능천한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런 그의 두 눈은 당혹으로 물들었다.

화려한 금침,

그 위에는 천만뜻밖에도 발가벗은 나녀가 다소곳이 누워있었던 것이다.

삼단같이 흘러내린 머릿결,

백옥의 피부, 완벽한 균형의 동체(胴體),

우람한 유방, 끊어질 듯한 세류요 밑으로 벌려진 펑퍼짐하게 벌어진 둔부,

그리고...

[...!]

능천한은 넋이 나가 나녀의 비궁(秘宮)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방초(芳草)가 한 올도 없었다.

아주 뽀얗게 두드러진 옥둔(玉屯)이 있을 뿐이었다.

[색골같으신 분...!]

제갈영라가 눈을 흘기며 능천한의 허리를 꼬집었다.

[어쿠!]

능천한은 실태를 깨닫고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신첩들을... 그렇게 즐기시고도 한눈을 파시다니요...]

광양존후도 나직이 한숨을 쉬며 투정을 하였다.

그녀가 아무리 일대여종사라해도 여인은 여인이니까...

그때였다.

[환유천신(幻遊天神)이 여인이라니... 놀랍군요!]

제갈영라가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여인이 환유천신?]

능천한은 흠칫하며 나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나녀의 머리맡에는 여러 권의 비급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능천한은 제일위의 비급을 집어 들었다.

 

<환몽경(幻夢經).>

 

[환몽경... 이 여자가 정말 환윤천신이겠소.]

비급을 훑어본 능천한은 고개를 끄떡였다.

나녀는 바로 환유천신의 진정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환혼잠령대법(還魂潛靈大法)을 펼쳤을 거예요.]

제갈영라가 말했다.

[환혼잠령대법?]

능천한은 의아해하며 제갈영라를 돌아보았다.

제갈영라는 금벽라의 품에 안긴 채 말을 이었다.

[배교(拜敎)에서 흘러나온 것인데 사실은 불완전한 술법이었어요. 어찌 인간이 영생불사할 수 있겠어요?]

능천한은 제갈영라의 말을 들으며 또 한권의 비급을 집어 들었다.

 

<배교비전(拜敎秘典).>

 

[다만 환혼잠령대법은 환혼강시(還魂畺屍)를 만들 수 있을 뿐이에요!]

제갈영라가 말했다.

[환혼강시! 강시대법 중 인간에 가장 가깝다는...?]

능천한이 흠칫하며 침상 위의 환유천신을 바라보았다.

제갈영라는 금벽라를 바라보았다.

[강시라 해도 너무 예뻐서 저는 불안해요.]

제갈영라의 말에 광양존후 금벽라가 조용히 웃었다.

[차라리 잘 되었지 않아? 저 색골양반께서 그녀를 끼고 다니시면 우리를 못살게 구는 일은 적어질 테니...]

금벽라의 말에 능천한은 얼굴을 붉혔다.

[누님도... , 아무리 아름다워도 영혼이 없는 강시입니다. 강시에게 어떻게 딴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제갈영라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걸 어떻게 믿어요? 아까 그녀를 보던 눈길은 탐욕스럽기 이를 데 없었는데... 특히 그녀의 아랫도리를 볼 때에는...]

[허참...!]

능천한은 멋쩍게 웃었다.

[호호... 농담이고요, 그녀는 생전에 묵적의 공력을 지녔었던 초절정의 고수였어요. 환생시키면 혈종과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니 환생시키세요.]

[누님의 생각은...?]

능천한은 금벽라를 돌아보았다.

[신첩도 영라와 같은 의견이에요!]

금벽라가 조용히 대답하자 제갈영라가 말을 이었다.

[강시를 깨우는 방법은 배교비전에 실려 있으니 참고하세요!]

[알겠소!]

능천한은 배교비전을 뒤적이다가 한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반혼환령호혼술(返魂還靈呼魂術).>

 

[...!]

능천한은 말없이 구결을 읽어 내려갔다.

스스스스스...!

그러자 능천한의 몸주위로 괴괴로운 기운이 일어났다.

그 모습에 금벽라와 제갈영라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구결을 한번 읽으므로 운용을 하시다니... 저분의 능력은 끝이 없구나...)

두 여인은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고금제일의 능력을 가진 기재,

그가 바로 자신들의 남편인 것이다.

스스스---!

크크크...!

한순간 실내가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일어나라! 구천(九天)에 떠돌던 잔혼이여 이제 환혼의 때가 되었노라... 일어나 눈을 뜨라. 새 생명이 그곳에 있나니...]

능천한의 입에서 괴괴로운 주문이 흘러 나왔다.

그러자,

--- !

--- 카캉!

가공스런 안광이 번뜩이며 그 안광에 가격된 천장이 움푹 패여 버렸다.

환유천신이 눈을 뜬 것이다.

(단천파라신안강(斷天破羅神眼罡)...!)

스스슥!

이어 환유천신이 꿈꾸는 듯한 눈동자로 일어나 앉았다.

[보라! 나와... 이 두 여인이 그대의 혼()이니라. 부토로 돌아가기까지 우리에게 머물러야 하니라!]

능천한은 두눈이 새파란 광휘를 쏟아내었다.

사르르르...!

한동안 세 사람을 바라보던 환유천신은 다소곳이 삼 인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

[성공이에요!]

제갈영라가 환희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는 해보고 싶지 않은 일이외다!]

능천한이 고소를 짓자 금벽라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힘은 드셨겠으나... 대신 천군만마의 힘을 얻지 않으셨사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누님!]

능천한은 미소를 지으며 환유천신을 바라보았다.

[...!]

환유천신은 영문도 모르면서 능천한을 마주보며 고혹한 미소를 지었다.

 

<第二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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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九 章

 

                幻夢天遊府의 情事

 

 

 

[흑흑흑!]

미녀가 애절히 흐느낀다.

[으음...]

능천한은 괴롭게 신음하며 무너진 석실 쪽으로 무릎을 꿇었다.

우두두둑!

바닥의 석괴가 그의 손아래서 가루로 부서졌다.

(노선배께서는... 내가 혈종의 적수가 안된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혈종과의 싸움을 뒤로 미루게 하기 위해 자폭하셨다.)

능천한은 입술을 깨물었다.

청허현도존의 자폭이 자기의 무공이 약한 때문임을 아는 까닭이다.

[아우님... 제갈동생... 고정하세요.]

금벽라가 두사람을 다독이며 달랬다.

[흑! 벽라언니...]

미녀가 흐느끼며 금벽라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영라(瓔羅) 동생...]

금벽라는 미녀를 꼭 껴안아 다독여 주었다.

[흑흑...]

[...]

흐느낌과 깊은 비통함이 흘렸다.

그리고,

[아우님, 영라동생을 소개시켜 드릴게요.]

금벽라가 영라라는 미녀를 다독이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능천한은 고개를 들어 그 미녀를 바라보았다.

(으음...)

미녀를 바라보던 능천한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경이에 찬 시선으로 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을 살피던 금벽라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알아보시는군요!]

그녀의 말에 능천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능천한은 묘한 시선으로 금벽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웃는 듯 우는 듯 괴이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천혜... 만음성령지체(天慧萬陰聖靈之體)는 전설일 뿐인 줄 알았거늘...]

능천한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혜만음성령지체(天慧萬陰聖靈之體)>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과 비전되는 전설상의 신체(神體)다.

이는 천극대정신맥과는 달리 여인에게서만 나타난다.

천혜만음성령지체를 타고난 여인은 일만 명 분의 순음지기를 지니고 태어난다.

덕분에 천하제일이라 할 만한 재지(才智)를 지니게 된다.

반면 순음지기가 너무 강하여 단명하고 마는 단점이 있다.

즉, 순음지기가 지나치게 강해서 전신의 심맥을 얼려버리는 것이다.

그 상태가 완전하게 진행되는 것이 이십 세 전후다.

천혜만음성령지체의 지나친 순음지기를 소멸시키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강력한 그 순음지기를 사내가 흡수해 주는 방법뿐이다.

단, 보통 체질의 사내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순음지기를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신이 얼어붙어 절명하고 말기 때문이다.

단 한명,

천극대정신맥을 타고 난 자만이 천혜만음성령지체의 순음지기를 다스릴 수 있다.

능천한은 괴로운 표정이 되었다.

 

---영라를 부탁하네!

 

자폭한 청허현도존이 던진 말의 진의를 확인한 때문이다.

(내가 거두지 않으면 반년을 못 넘기고 절명한다. 싫건 좋건 그녀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능천한의 안색이 여러 차례 변했다.

천혜만음성령지체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음양교환의 방법을 써야한다.

즉,

능천한이 영라라는 미녀를 살리려면 부인으로 삼아야만 하는 것이다.

[천혜선자(天慧仙子)가 소저이외까?]

능천한이 나직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신첩, 제갈영라(諸葛瓔羅), 상공을 뵙습니다!]

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능천한에게 다소곳이 절을 올렸다.

[휴, 소저 일어나오!]

능천한은 제갈영라를 부축했다.

 

---천혜선자(天慧仙子).

 

능붕비가 광양존후와 함께 극구 칭찬하던 천하제일재녀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또한 쌍극천효(雙極天梟)의 천금(千金)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갈영라는 아버지의 무도함에 반발하여 뛰쳐나왔다.

그리고,

도가제일인(道家第一人) 청허현도존의 눈에 들어 제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미 청허형도존의 모든 학문을 이어받았다.

단순히 청허현도존의 진전을 이은 정도가 아니었다.

제갈영라는 청허현도존의 경지를 이미 오래 전에 뛰어넘고 있었다.

천혜만음성령지체!

그 천고의 신체를 타고났기에...

 

[우선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광양존후가 두 사람을 재촉하며 일어났다.

제갈영라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리 오시오.]

능천한은 제갈영라의 교구를 반짝 안아들었다.

[고, 고맙사옵니다!]

제갈영라는 능천한의 가슴에 안기며 옥용을 살짝 붉혔다.

(가엾게도... 어린아이만큼 가볍게 여위다니...)

능천한은 연민의 표정으로 제갈영라를 내려다보았다.

뚜--- 벅! 뚜--- 벅!

이어 그는 석로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울리며 광양존후의 뒤를 따랐다.

 

***

 

석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곳은 전대고인(箭代古人)의 은거지였던 모양이군요!]

광양존후가 주위를 돌아보며 걸어갔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육중한 석문(石門) 앞에 이르렀다.

석문은 오강석(烏剛石)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중앙쯤에 큼직한 다섯 자의 전자(篆字)가 적혀 있었다.

 

<환몽천유부(幻夢天遊府)>

 

[환몽천유부!]

광양존후 금벽라가 나직하게 탄성을 질렀다.

[신기보(神奇譜) 서열 구위의 신기(神奇)를 여기서 보게 되다니... 놀랍군요!]

능천한의 가슴에 안긴 제갈영라가 나직이 탄성을 질렀다.

[음...]

능천한도 나직이 신음하며 석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환몽천유부(幻夢天遊府)>

 

신기보의 아홉번째 장에 적힌 신기를 말한다.

일백 년 전,

신분이 완벽한 비밀에 가려진 대도(大盜)가 있었다.

그 대도는 출신과 용모는 물론이고, 심지어 남녀(男女)의 구별마저 알려지지 않앗었다.

 

---환유천신(幻遊天神).

 

고금제일대도(古今第一大盜).

고금제일탐미가(古今第一探美家).

가장 고상하고 가장 손이 컸던 대도(大盜)가 바로 그다.

환유천신은 금은(金銀)등의 재화를 탐한 좀도둑이 아니었다.

그는 그다지 많은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환유천신의 도둑질들은 천하를 뒤흔드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저 유명한 전국옥새(傳國玉璽)였다.

화씨지벽(華氏之璧)을 진시황(秦始皇)이 깎아 만들었다는 제왕지인(帝王之印)!

그것을 환유천신이 손을 댄 것이다.

당시의 황실을 비롯한 천하가 발칵 뒤집힌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고,

그러나 누구도 전국옥새를 찾을 수 없었다.

그후,

환유천신의 도둑질은 여러 번 계속되었고,

그럴 때마다 천하가 경동되어 환유천신의 행방을 수만 명이 찾아다녔다.

하지만 환유천신은 여전히 운중(雲中)에 있었으며,

전국옥새가 사라진 뒤 육십 년 후 환유천신도 신비롭게 사라졌었다.

그것이 오백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후,

 

---환유천신은 자신이 도둑질한 삼십육종의 천하재화를 갖고 환몽천유부로 은거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같은 소문이 천하에 나돌았다.

그것이 신기보에 올라 서열 구위에 기록되어 신기(神奇)로 남게 되었다.

 

삼인은 한동안 넋이 나가 석문(石門)을 바라보았다.

문득,

[환자(幻字)의 마지막 획을 똑같이 그려보세요!]

제갈영라가 금벽라에게 말했다.

[그러마...]

금벽라는 석문으로 다가가 제갈영라가 말한 대로 해보았다.

그러자,

그그그그그!

육중한 굉음이 일며 석문이 활짝 열렸다.

번--- 쩍!

스스스스스!

석문이 열리며 강렬한 광휘가 삼인의 전면으로 쏟아졌다.

[들어가요!]

금벽라가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능천한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그그그--- 그긍!

그들이 들어서자 석문이 뒤쪽에서 다시 닫혔다.

 

삼인은 석실 안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널찍한 석실이었다.

한데 석실 전체가 교교로운 서기(瑞氣)로 뒤덮여 있었다.

또 석실 벽에 기대어 수십 개의 유리관이 놓여 있었다.

그 유리관들은 모두 삼십 오 개였다.

세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는 유리관으로 다가갔다.

스스스스스!

그 유리관에서는 기품있는 서기가 무지개같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아...!]

유리관의 안을 들여다보던 삼인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렀다.

유리관에는 청년단향복(靑年丹香木)으로 만든 목함이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서기는 목함에 들어있는 큼직한 옥인(玉印)에서 번져 나오고 있었다.

[전국옥새!]

능천한이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전국옥새(傳國玉璽)!

 

오백여 년 전에 잊혀진 무상지인(無上之印)이 거기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왕조가 바뀌었고, 대명의 새로운 옥새가 천하를 다스리고 있기에,

직국옥새의 무상신위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다.

그러나...

전국옥새는 천수백 년을 내려오며 그 자상의 위엄을 떨치던 무상지인(無上之印)임에는 틀림이 없다.

[전국옥새를 볼 수 있다니...!]

광양존후의 시선도 흔들렸다.

그리고,

[화씨지벽의 아름다움을 전언으로만 들었는데... 이제 대하니 전언이 오히려 사실만 못하군요!]

제갈영라도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세 사람은 잠시 전국옥새를 들여다보았다.

그런 후 옆의 유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옆의 유리관 안에는 두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고색창연한 지환(指環)이였다.

재질은 천하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금강벽(金剛璧),

금강석만큼 단단하다는 금강벽 위에 두 마리의 봉황(鳳凰)이 새겨져 있었다.

(봉황신지환(鳳凰神指環)! 봉황지존(鳳凰至尊)의 봉황지소(鳳凰之所)를 열 수 있다는 신물(神物)...!)

제갈영라의 봉목이 아주 신비롭게 빛났다.

(그렇다면 이것은...!)

제갈영라의 시선은 봉황신지환의 옆에 놓인 작은 옥향로(玉香爐)에 머물렀다.

온갖 보물로 치장이 된 귀품(貴品),

그 옥향로만으로도 백만금의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더 귀한 것이 옥향로 안에 들어있다.

(봉황오보(鳳凰五寶)중 봉황극락신향(鳳凰極樂神香)이다!)

제갈영라의 봉목이 아주 밝게 빛났다.

 

<봉황지존(鳳凰至尊)>

 

천년 그 이전에 있었던 전설적인 천외무종(天外武宗)이다.

그의 무공은 주로 선도(仙道)를 추구하는 온건한 것이었다.

그런 봉황지존이건만 한 가지 파천(破天)의 신기(神器)를 남겼다.

 

---봉황극락소(鳳凰極樂簫),

 

바로 이것이다.

천지십병(天地十兵)에 드는 무상신병(無常神兵)이...

봉황지존은 봉황극락소외에 많은 것을 남겼다.

봉황극락신향(鳳凰極樂神香)도 그중의 하나이다.

이는 음양(陰陽)의 화합을 이루게 해주는 묘향이다.

이는 비단 단순히 남녀를 육체적으로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봉황극락신향은 육체뿐만이 아니고 영혼(靈魂)까지도 합일(合一)시켜 남녀 모두에게 무상의 공효를 주는 것이다.

(좋은 기회... 어차피 나의 몸을 상공께 드려야 한다면...)

제갈영라의 눈빛이 결의로 빛났다.

능천한과 금벽라가 그것을 보지는 못했으나...

제갈영라는 슬쩍 금벽라를 돌아보았다.

(언니도... 상공께 마음이 끌리시는 듯하니... 오히려 좋은 일이 되겠지.)

제갈영라는 생각을 굴리며 금벽라에게 말했다.

[언니... 저 옥향로를 열어 보세요!]

[옥향로를?]

금벽라를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가 있겠지!)

금벽라가 제갈영라의 혜지가 대해 같음을 알기에 큰 의문을 갖지 않았다.

끼--- 이--- 익!

금벽라는 유리관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봉황극락신향이 담긴 옥향로를 아무런 의심도 않고 열었다.

그러자,

스스스스--- 슥!

휘르르르르---!

향로 안에서 분홍의 안개가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

[...!]

능천한과 금벽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봉황극락신향에서 폐부를 맑게 하는 향기가 솟았고,

두 사람은 그 향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웃!]

[아...!]

직후 능천한과 금벽라는 아연하였다.

갑자기 단전으로부터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공이든 무엇이든 간에 막을 방도가 없는 강렬한 것이었다.

[봉... 봉황극락신향(鳳凰極樂神香)! 그... 그대가...!]

능천한이 시뻘개진 얼굴로 제갈영라를 내려다보았다.

제갈영라는 능천한의 가슴에 안긴 채 눈을 내리깔았다.

[상공... 용서...!]

그리고---!

[으...!]

능천한은 으스러져라 제갈영라를 끌어안았다.

[아으으음...]

너무 세게 끌어 안겨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제갈영라도 능천한에게 매달렸다.

능천한은 그대로 제갈영하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올라탔다.

[헉헉... 으...!]

능천한은 터져 솟구치는 욕정을 주체 못하고 거칠게 제갈영라의 육체를 탐해갔다.

스--- 스스슥!

찌지지지직---!

제갈영라의 의복이 능천한의 손에서 거칠게 벗겨져 내렸다.

동그란 어깨,

주먹만하게 작지만 볼록 솟은 팽팽한 젖무덤,

그위에 오또마니 앉은 작은 열매...

[헉헉... 영라... 으음...!]

[아흐흑! 상공... 상공... 어서...아!]

능천한은 재갈영라의 나신을 주무르고 핥으며 탐했다.

그에게 탐닉당하며 제갈영라도 미친듯이 교구를 비틀어 대었다.

벗겨지는 치마...

한줌밖에 안되는 허리,

그리고...

미끈한 옥주와... 그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너무도 무성한 방초의 숲...!

[헉헉... 으음...!]

능천한의 두 눈은 시뻘개졌다.

제갈영라의 허벅지를 거칠게 벌린 그의 눈앞에,

생전 처음 보는 여인의 비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아흐흑... 아우님... 제발... 저좀... 어떻게... 아... 흐윽...!]

그와 함께,

금벽라가 전신을 쥐어뜯으며 능천한을 휘감아왔다.

찌--- 지직!

그녀는 스스로 면사를 찢어내었다.

그러자,

온화하면서도 당당한 기품이 있는...

황후를 연상케하는 미소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순간...

[허--- 어억!]

콰르르르르...!

무너졌다!

[아--- 악!]

제갈영라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그녀의 허리가 활이 부풀 듯이 휘어지고,

두눈은 하얗게 치떠지고

그녀의 교수는 자신의 처녀의 성을 무너뜨린 사내의 등을 후벼팠다.

우르르르르---!

콰--- 콰--- 콰쾅!

[헉헉헉헉...!]

[아흐윽,... 이이익... 아아아...!]

사내는 폭풍이었고,

그 아래의 여체(女體)는 폭풍에 두들겨 맞는 대지(大地)였다.

퍽! 퍽--- 퍼퍽!

콰르르르릉---! 콰--- 콰쾅!

[아--- 악! 흐으윽... 아... 아...!]

대지는 몸부림쳤다.

폭풍이 아래로 쇄도해 들어올 때마다 처절한 혈화가 화우(花雨)로 뿌려졌다.

처연한 낙화(落花)였다.

한순간...

[흐... 응... 으... 음...!]

콰--- 릉!

만근의 바위같은 힘이 하복부로 들이침을 느끼며 제갈영라는 축 늘어지고 말았다.

[으음...!]

밑에 깔린 여체가 축 늘어지자 능천한은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흐으으응... 아우님... 어서... 아...!]

너무도 풍염하게 무르익은 여체가 뜨겁게 능천한을 휘감았다.

[으...!]

욕정을 풀지 못한 능천한은 두눈이 시뻘개져 미소부의 동체를 끌어안았다.

광양존후 금벽라였다.

그녀의 몸은 제갈영라와 달랐다.

너무도 풍염하고 넓어서 능천한이 파묻힐 정도였다.

[아--- 악...! 아아...!]

그러나...

그녀도 파과의 고통 앞에서는 제갈영라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는 두눈을 하얗게 치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풍염한 육체로 능천한을 아기같이 감싸 안았다.

[헉헉... 으음... 누님...!]

그런 금벽라의 육체 위에서 능천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노를 저었다.

[아아...! 흥... 흥... 아이으으음...!]

금벽라의 입에서 교성이 흘렀다.

그녀 나이 이미 서른이 넘었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육체는 이내 강렬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흑흑... 아아... 아우님... 아...!]

금벽라는 극한의 희열을 흐느끼며 능천한을 휘감았다.

 

---봉황극락신향(鳳凰極樂神香),

 

그 천고의 기향(奇香)은 세 남녀의 욕정을 끝없이 불러 일으켰다.

능천한은 환몽중을 헤매며 금벽라와 제갈영라의 육체 속으로 끝없이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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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八 章

 

               血荒奪 對 覇天神輪

 

 

 

 

--- -- !

쿠르르르르---!

경기가 해일같이 일고,

굉음이 우뢰같이 터지고 있었다.

널찍한 석실(石室).

자연적인 동굴에 인력(人力)을 가한 듯이 보이는 널찍한 석실이었다.

[! 지독한 늙은이...!]

[과연... 무당제일인(武當第一人)이다.]

두 명의 인물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일인(一人)을 합공하고 있었다.

콰자자자작!

--- 쿠쿠쿠쿵!

시뻘건 혈영강기(血影罡氣)와 찬연한 금빛의 강기가 무지개같이 일어났다.

콰르르르르---!

--- 이이잉!

그 사이로 한 명의 인물이 둥실 떠 있었다.

청수한 노도인(老道人).

한데 두 다리가 무릎 아래서 싹둑 잘라 있었다.

우르르르르---!

노도인의 몸에서는 창창한 청강(靑罡)의 노을()이 피어오르고 있다.

[혈영군(血影君)! 통천금룡제(通天金龍帝)! 너희들 정도를 못 쓰러뜨릴 무당의 무공이 아니다!]

처참한 형색의 노도인의 입에서 우뢰성이 일었다.

노도인,

그는 무당제일인으로 불리던 절정고수다.

그 때문에 다리가 잘린 중상이건만 신위(神位)를 잃지 않는 것이다.

노도인은 석실에서 또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석로(石路)의 앞을 막고 있었다.

석로(石路)의 안쪽,

한 명의 소녀가 힘없이 석벽에 기대어 있었다.

백지장보다도 하얀 피부...

그러나,

그녀의 용모는 가히 경국지색이었다.

비 맞은 난초의 모습이 그러할 것이다.

[에잇! 혈영마라살(血影魔羅殺)!]

혈영인, 혈영군(血影君)이 벼락치듯이 쌍장을 쪼개어 내었다.

그와 함께,

[금룡진천하(金龍震天下)!]

--- 우우웅!

우르르르!

석 자 길이의 금장(金杖)으로 폭풍을 끌어 모으는 자,

그자는 통천금룡제(通天金龍帝)라고 불리는 자다.

--- 이이잉!

쿠쿠--- 쿠쿵!

시뻘건 혈영강기와 찬연한 금룡강기가 뒤엉키며 노도인을 쳐갔다.

[태청자허뢰(太淸紫虛雷)!]

스스스스!

노도인의 신형에서도 기이한 자청(紫靑)의 강기가 피어올랐다.

--- 콰쾅!

--- 꾸꿍!

폭죽이 터지듯이 굉음이 일었다.

거창한 파동이 석실을 뒤흔들어 무너뜨릴 듯이 번져 나갔다.

[! 지독한 늙은이...!]

[역시... 도존(道尊)이다!]

혈영군과 통천금룡제가 휘청이며 물러났다.

[...!]

그와 함께 허공에 뜬 노도인의 신형도 크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 --- !

한 줄기 백영인 유령같이 노도인을 스쳐 석로 안쪽의 미녀를 무찔러갔다.

[감히---!]

휘청하던 노도인의 입에서 벼락같은 노갈이 터졌다.

--- 르르르릉!

노도인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백영(白影)을 휩쓸어 갔다.

그때였다.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 그러길 기다렸다!]

스스스스슥!

백영(白影)이 일시에 수십 개의 환영(幻影)으로 흩어졌다.

[!]

노도인은 당황했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전력을 쏟아냈으므로 일시에 공세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순간,

--- !

[--- !]

노도인은 가슴이 화끈함을 느끼며 나뒹굴었다.

어느틈엔가 그의 가슴에는 월아형(月牙形)의 비수가 꽂혀 있었던 것이다.

[! 청허현도존)도 별것 아니군!]

백영이 남녀를 구별할 수 없는 탁한 목소리로 냉갈하며 청의노도인 앞으로 날아내렸다.

한데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이라니...

다리가 잘린 노도인!

그가 정녕코 청허현도존이란 말인가?

정도삼존(正道三尊)의 일존(一尊)이며 무당제일존이기도 하던 청허현도존,

그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천하제일지사(天下第一智士)라던 그도 자신의 운명은 알지 못했단 말인가?

[... 태옥(太玉)... 그 못난 놈이... 엉뚱한 짓만 하지 않았어도!]

청허현도존이 피를 토하며 몸을 일으켰다.

스스스스슥!

[크크크...!]

그의 주위로 혈영군, 통천금룡제, 그리고 백의에 몽면을 한 살수가 다가섰다.

살수는 일신에 백포를 뒤집어 쓰고 있어 남녀노소를 구별할 수가 없었다.

[영라(瓔羅)... 미안하다.]

청허현도존은 벽에 기댄 채 석로속의 미녀를 돌아보았다.

[...!]

석로의 미녀는 커다란 눈으로 청허현도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맑은 두눈이 처연함을 담아 촉촉히 젖어있었다.

[청허현도존! 오랫동안 살아왔으니... 여한은 없겠지?]

백의살수가 냉소하며 손을 쳐들었다.

의외로 여인의 그것같은 작은 손이었다.

그 손에는 싸늘한 빛이 흐르는 월아밀살비(月牙密煞匕)가 들려있었다.

[월영극살(月影極煞)... 영라에게는 손대지 마라!]

청허현도존은 백의살수에게 말을 하고 눈을 감았다.

월아밀실비가 꽂힌 청허현도존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꾸역꾸역 흘렀다.

[! 물론이다! 영라는 본종(本宗) 군사(軍師)의 천금이니...!]

월영극살이라 불린 백의인이 냉소할 때였다.

빠캉!

[!]

요란한 금속성과 함께 월영극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디선가 날아든 강기가 월아밀살비를 박살낸 것이다.

[누구냣!]

[어떤 놈이냐?]

삼인이 대경하여 홱 돌아섰다.

그때였다.

[혈종(血宗)의 주구들! 용서할 수 없다!]

한소리 우렁찬 폭갈이 터져 석실을 뒤흔들고,

--- --- !

--- --- 이잉!

갑자기 석실전체가 새파란 륜영(輪影)으로 가득 찼다.

[!]

[... 패천신륜(覇天神輪)!]

[으아아... 패천신륜이다!]

삼인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 --- !

쿠르르르---!

--- --- !

삼인은 사색이 되어서도 지체없이 전력을 다해 공세를 발동하면서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 --- 카캉!

--- --- !

모든 공세가 륜영(輪影)에 부닫히자 산산이 박살이 나서 흩어졌다.

그리고 혈영군(血影君)은 가슴이 화끈해짐을 느꼈다.

패천신륜의 예기(銳氣)가 혈영장기를 쪼개어 피를 본 것이다.

[...!]

[...!]

통천금룡제는 공포로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고,

월영극살은 얼마나 놀랐는지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고 있었다.

스스--- 스슥!

다음 순간,

스스스슥!

모든 륜영(輪影)이 가시며 청허현도존의 옆으로 이인(二人)이 유령같이 내려갔다.

그들은 물론 능천한과 광양존후(廣陽尊后)였다.

[능가... 또 네놈이냐?]

통천금룡제가 부들부들 떨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통천금룡제! 혈영군! 다시 만났구려!]

능천한이 묵직한 어조로 말하며 혈영군과 통천금룡제를 바라보았다.

(무섭다! 무서운 속도로 거대(巨大)해지고 있다.)

능천한의 시선을 접한 혈영군과 통천금룡제의 안면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어 그의 시선은 월영극살에게 머물렀다.

(낯익은 눈빛...)

능천한은 몽면사이로 드러난 월영극살에게 머물렀다.

월영극살은 그의 시선을 받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때였다.

[... 그대가... 패천잠룡(覇天潛龍)... ?]

금벽라의 부축을 받으며 청허현도존은 힘겹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소생이 황산 능가의 후손입니다.]

능천한이 시선을 돌리지 않으며 대답했다.

스스스슥!

혈영군, 통천금룡제, 월영극살이 품자형으로 포위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시선을 돌릴 수 없었던 것이다.

[허허... 황산으로 그대를 찾으러 가다가 저 망나니들에게 막혔었는데... 이런 곳에서 그대를 만나다니,...]

청허현도존이 안심한 듯이 웃었다.

그때,

[죽어랏! 혈영척살류(血影剔煞流)!]

[금룡통천인(金龍通天印)!]

[...!]

파츠츠츠츠츳!

--- 쿠쿵!

--- !

혈영군, 통천금룡제, 월영극살의 공세가 일제히 노도같이 일었다.

그자들은 개개인이 초절정의 고수들이다.

능천한이 맨손으로 겨룬다면 크게 우세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능천한에게는 천지십병에 드는 패천신륜(覇天神輪)이 있다.

무엇이든지 잘라낸다는 천하의 패도신병(覇道神兵)...

(끝을 내자!)

능천한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차핫! 겁멸파황류(劫滅破荒流)!]

능천한이 대갈하며 패천신륜을 쪼개어 내었다.

패천제사절(覇天第四絶)!

--- 이이잉!

콰르르르---

천지가 갈라지는 듯!

거창한 륜세(輪勢)가 폭풍처럼 일어났다.

수천 조각의 륜영(輪影)!

그것은 하나하나가 한자 두께의 동장철벽이라도 잘라버리는 날카로움을 싣고 있었다.

--- --- 카각!

츠츠츠---

[!]

[... 상대할 수 없다!]

[...!]

혈영군, 통천금룡제, 월영극살이 피를 흘리며 밀려났다.

그들의 가슴은 쩍쩍 갈라져서 선혈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능천한도 패천신륜을 받아들며 휘청하였다.

월영극살이 내친 무형살인강(無形殺人罡)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물러가랏! 그대들과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다!]

능천한이 냉갈하며 싸늘히 삼인을 노려보았다.

[...]

[...]

통천금룡제와 혈영군이 치를 떨며 능천한을 노려보았다.

능천한의 일갈에 치욕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감히 발작하지는 못했다.

패천신륜의 무서음을 뼈아프게 느낀 탓이다.

그때였다.

[크흐흐흐! 그대가 패천황룡(覇天皇龍)의 아들인가?]

갑자기 한소리 소름끼치는 음성이 석실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츠츠츠츠츳!

석실의 일각에서 칙칙한 혈광(血光)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

능천한은 이 돌변한 상황에 흠칫하였다.

그리고,

[... 혈종(血宗)!]

[종주(宗主)!]

혈영군, 통천금룡제, 월영극살이 급히 오체복지 하였다.

(혈종(血宗)?)

능천한은 흠칫하며 혈광(血光)이 번져 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있었다!

[...!]

그곳에 어느 틈엔가 일인(一人)이 서 있었다.

전신을 칙칙한 혈광(血光)으로 뒤덮은 괴인(怪人).

그자의 눈에서는 번갯불같은 혈광(血光)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둔중하게 신음하였다.

[귀하가 혈종(血宗)인가?]

능천한은 이내 능연히 몸을 세우며 물었다.

그러자 혈광 속의 괴인이 괴팍한 어조로 대꾸했다.

[크크... 패천잠룡! 그렇다. 본종이 혈종(血宗)이다!]

능천한은 두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우주혈종(宇宙血宗)과는 어떤 사이인지...]

[크크... 그것은 네가 알필요 없다.]

그리고,

--- 츠츠츳!

--- ! --- 이이잉!

그자의 몸에서 칙칙한 핏빛의 기류가 일어났다.

그것은 그자가 든 기형(奇形)의 탈()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혈황탈(血皇奪)...]

능천한은 둔중하게 신음하였다.

[자부궁(紫府宮)을 친 것도... 그대였군!]

--- --- 이잉!

츠츠츠츠---

패천신륜에서도 강렬한 기류가 일었다.

[조심하세요, 아우님!]

광양존후가 걱정스레 전음을 보냈다.

[...!]

능천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르르르---

--- 이이잉!

석실이 거창한 예기(銳氣)로 가득찼다.

천지십병(天地十兵)!

당세에 동시에 나타난 천지십병 간의 충돌이 이제 벌어지는 것이다.

 

---혈황탈(血荒奪).

---패천신륜(覇天神輪).

 

이백 년 전 한 차례 격돌이 있었던 두 신병이 이제 다시 부딪히는 것이다.

[...]

[... 지독한 예기...]

두 신병사이에 있던 혈영군 등이 오공으로 피를 토하며 한옆으로 물러났다.

그러던 어느 순간,

[크크크...]

--- 이이잉!

혈종의 음소 속에서 가공할 혈기류(血氣流)가 쏟아졌다.

숨을 탁 막히게 하는 끔찍한 핏빛마기!

[겁멸파황류(劫滅破荒流)!]

--- --- !

--- 유우우--- !

패천신륜에서도 벼락이 치듯이 륜강(輪罡)이 쏟아졌다.

------ !

--- --- !

만균의 뇌정(雷霆)이 터지듯.

동장철벽이 깨어지는 듯한 폭음이 석실을 뒤흔들었다.

[--- !]

! --- 쿠쿵!

그중에서 능천한의 앞가슴을 피로 물들이며 쿵쿵 물러섰다.

(공력(功力)의 차이가 너무 난다!)

능천한의 안색이 하얘졌다.

혈종의 공력이 너무 강한 것이다.

병장기끼리의 우열은 거의 없음에도 능천한은 손해를 본 것이다.

[아우님...]

광양존후가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안된다. 공력차이가 커서 혈황탈을 막지 못한다.)

청허현도존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살기는 틀린 몸... 영라를 위해서라도 이 싸움을 뒤로 미루도록 해야 한다.)

청허현도존의 노안이 결의로 번뜩였다.

--- 이잉!

츠츠츠---

다시 혈종과 능천한은 막강한 예기를 일으키며 대치했다.

(폭천혈강류(瀑天血罡流)...)

능천한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였다.

[능소형제... 내말을 잘 듣게, 노도가 뛰쳐나가는 순간에 급히 뒤로 물러나게!]

능천한의 귓가로 청허현도존의 전음이 들렸다.

[...!]

능천한은 흠칫했다.

(저분이 무슨 생각을,...)

다음 순간,

[--- --- !]

--- 아앙!

청허현도존이 폭갈을 지르며 혈종에게로 쇄도하여 갔다.

[! 노선배!]

[사부!]

능천한은 등이 아연하여 외쳤다.

[미쳤군!]

--- --- !

혈종이 흠칫하다가 혈황탈을 쪼개내었다.

[안돼!]

능천한이 아연하여 패천신륜을 쳐들었다.

그러나...

[능소형제! 영라를 부탁하네!]

청허현도존의 외침이 능천한의 귓전을 때리고.

[청허도천폭(靑虛道天暴)!]

--- 꾸꿍!

--- --- !

청허현도존의 일신에 새파란 안개()가 뒤덮이는 듯 하더니...

일시에 그의 노구가 굉렬하게 폭발하였다.

[노선배!]

[사부!]

능천한은 처절하게 부르짖으며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청허도천폭(靑虛道天暴)!

 

그것은 일신의 잠력을 한순간에 끌어올려 육신과 함께 폭출시키는 것이다.

절대절명의 최후신공...

--- 르르릉!

--- --- 쿠쿵!

[... 이런...]

혈종의 낭패한 목소리가 들리고,

청허현도존이 뻗친 청허도천폭의 공력에 석실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노선배!]

능천한이 입술을 깨물며 석로 속으로 뛰어들었다.

 

---헛허... 영라를 부탁하네...---

 

청허현도존의 말이 여운을 끌며,

--- --- 쿠쿵!

콰르르르릉!

무너지는 석실과 함께 굉음으로 사라져 갔다.

도존(道尊)!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의 비장한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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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七 章

 

                 危境 중의 戀情

 

 

 

백의면사여인은 살짝 눈을 내리 깔았다.

그리고는 다소곳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천첩이 광양존후(廣陽尊后)라는 과분한 칭호를 받고 있는 금가(琴家)의 계집이옵니다.]

여인... 금벽라의 대답에 능천한의 얼굴은 감탄으로 물들었다.

(역시 광양존후의 명성이 헛것이 아니었다.)

 

---광양존후(廣陽尊后) 금벽라(琴碧羅).

 

여자들 중에서는 천하제일고수라 불리는 여걸!

그녀는 정파의 지주인 광양회(廣陽會), 광양대제(廣陽大帝)의 외동딸이다.

금벽라의 나이는 이미 삼십을 넘었고,

그녀가 천하제일의 여고수임은 십오 년 전부터 변함이 없었다.

금벽라는 가전의 광양경(廣陽經)을 십이성 연마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일신에는 곤륜에서 흘러나온 세외신후(世外神后)의 진전이 담겨있다.

세외신후는 서왕모(西王母)의 수제자였던 전대 여종사다.

광양경(廣陽經)과 신후경(神后經).

양대 무맥의 비전을 한 몸에 지닌 광양존후의 무공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흑자는 그녀의 무공이 이미 아버지 광양대제(廣陽大帝) 조차 능가한다고 말한다.

 

[천첩의 생각이 맞는다면 공자께서는 패천잠룡(覇天潛龍) 능대공자이시겠지요?]

금벽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패천잠룡!]

[저분이 일잠룡(一潛龍) 능대공자!]

천산홍연 등은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능천한은 이전에 황산을 떠난 적이 없다.

그래서 무림인들 중 능천한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또한 능천한의 이름을 모르는 무림인 전무하다.

황룡(皇龍)인 아비 밑에서 날개를 키우고 있는 잠룡...

그를 어찌 모르겠는가?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소생이 능모이외다!]

능천한이 대답하자 천산홍연등의 얼굴이 흥분으로 물들었다.

[아이... 맹주언니. 우린 소개 시켜주지 않으실 거예요?]

천산홍연이 금벽라의 팔에 매달리며 투정을 부렸다.

금벽라가 미소를 지으며 능천한에게 일행을 소개했다.

[이 아이는 천산노인(天山老人)의 손녀인 천산홍연(天山紅燕)이예요!]

천산홍연이 냉큼 능천한 앞으로 뛰어 나왔다.

[호호! 잘 부탁드려요. 제 이름은 위지련(慰枝蓮)이예요!]

능천한도 미소를 지었다.

천산노인(天山老人)은 세외(世外)의 기인이다.

쌍황(雙皇) 그 이전의 인물이지만 좀체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다.

[천산(天山) 비홍단천검식(飛紅斷天劍式)은 정말 빨랐소이다!]

[호호... 고마워요!]

위지련은 능천한이 관심을 나타내어 주자 뛸 듯이 기뻐했다.

금벽라는 이어 흑의미녀와 백삼청년을 소개했다.

그들 두 남녀는 약혼한 사이였다.

 

---사천묵봉(四天墨鳳).

---신수비검(神手飛劍) 남궁유운(南宮儒運).

 

당교하는 사천당가의 맏딸로서 일신에 백팔십 가지의 암기를 지녔다.

당대 후기지수들 중에서 암기로 일절(一絶)이라 불리는 여걸,

남궁유운은 하락(河洛) 남궁세가(南宮勢家)의 장자(長子).

그는 가전의 기문진학와 검법에 숙달되었다.

거기다가 그의 재주에는 사천당문의 암기술과 독술이 가미되어 있다.

그것은 그가 장차 당문의 맏사위가 될 신분이기에 당문의 비전을 이어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능대형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남궁유운이 능천한에게 포권을 하였다.

능천한도 마주 답례를 하였다.

[소제도 부족함이 많은지라... 가르침이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말을 하며 능천한은 남궁유운을 살폈다.

(자질도 나쁜 편은 아니고... 무엇보다 성품이 침착하여 대기만성할 인물이다.)

그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 어엉!

화르르르--- !

[...!]

[...!]

갑자기 남쪽 십여 리 밖의 하늘에서 찬연한 화전(火箭)이 터졌다.

중인들은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표향색절이 쓰려던 화전과 같은 종류...)

능천한은 금벽라의 손에 들린 화전을 바라보았다.

금벽라의 봉목이 언뜻 어둡게 변했다.

[남궁소협!]

금벽라는 남궁유운을 불렀다.

[, 맹수! 속하 여기 있습니다!]

남궁유운이 금벽라의 앞으로 시립하였다.

(그는 금소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능천한의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감돌았다.

[혈종의 마도들이 우리보다 먼저 그 두 분을 찾은 것 같아요.]

금벽라가 무겁게 말했다.

(그 두 분...?)

능천한은 의아해졌다.

그리고,

(혈종도들과 사해정검맹은 누군가를 찾고 있었군.)

능천한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어찌하여야 할지요?]

남궁윤운이 고개를 숙인 채로 물었다.

[표향색절은 쌍극천효의 주구예요. 쌍극천효가 우리가 이곳에 있음도 파악하게 되면...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

[분하지만... 이란타석(以卵打石)의 누를 범할 수 없으니...!]

천산홍연이 급히 물었다.

[그럼 그분과 천혜언니는...?]

금벽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 가보겠다. 기회를 보아... 최선을 다할 수밖에...!]

[...!]

[...!]

남궁유운 등은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급작스럽게 당하여 정도(正道)가 힘을 모을 기회도 없었던 것이 한이다.)

세 젊은이의 표정에 괴로운 빛이 흘렀다.

보고 있던 능천한이 끼어들었다.

[소생이 맹주의 힘이 되어드려도 되겠소이까?]

[능대공자...!]

그러자 금벽라는 반색을 하며 능천한을 돌아보았다.

다른 세 젊은이의 안색도 밝아졌다.

[능대공자께서 힘을 써주신다면 천군만마의 도움을 받는 것과 진배없어요. 정말 고마워요.]

금벽라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능천한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 금벽라는 빠르게 남궁유운에게 지시하였다.

[남궁소협은 정검대(正劍隊)를 인솔하여 패하 방면으로 나가세요. 적을 치되 뒤를 칠 것이지 절대 정면충돌은 하지 마세요. 연후에 사로(四路)로 우회하여 동정호로 집결하세요!]

[존명(尊命)!]

남궁유운은 금벽라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갑시다!]

--- 르르르르!

--- 이익!

그는 천산홍연과 당교하를 데리고 빠르게 계곡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함께... 가시옵소서!]

금벽라가 능천한에게 말을 하며 허공으로 교구를 띄웠다.

스스스슥!

그 뒤로 능천한도 소리없이 몸을 띄웠다.

 

***

 

절곡(絶谷),

양쪽 석벽이 병풍같이 우뚝 마주 서 있다.

그 사이로 마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협도가 있고,

협도 그 안쪽은 제법 널찍한 분지였다.

스스스스슥!

어두워지는 야공에서는 두 줄기 인영이 절곡으로 날아들었다.

백의면사여인과 황포청년이었다.

[크크큿!]

[감히 어딜 들어오느냣!]

[죽어랏!]

그 직후 까마귀 울음소리같은 폭갈이 절곡의 안쪽에서 터져 나왔다.

--- 르르르릉!

--- 애애액!

그와함께 빗발치는 듯한 공세가 백의여인과 황의청년을 쓸어왔다.

그러나,

--- 스슥!

백의면사녀가 박꽃같이 뽀얀 교수를 들었고,

--- --- !

귀엽고 작으마한 교수에서 폭풍이 일었다.

콰콰--- --- !

[--- --- !]

[--- --- 아악!]

절곡 안쪽에서 일거에 십여 차례 비명이 터졌다.

[핫하... 훌륭한 광양푹풍참(廣陽暴風斬)이외다!]

황의청년이 껄껄 웃었다.

그들은 바로 능천한과 광양존후 금벽라였다.

--- 스스슥!

--- --- 이잉!

두 사람의 신형은 구름이 흐르듯이 절곡의 안쪽으로 날아 들어갔다.

[소생이 길을 트겠소!]

능천한이 크게 외치며 앞으로 폭사되어 갔다.

[수라혈강뢰(修羅血罡雷)!]

--- --- 쿠쿵!

능천한의 쌍장에서 핏빛 폭풍이 일어났다.

그 핏빛의 폭풍은 일거에 삼십 장 방원을 휩쓸고,

[--- --- 아악!]

[--- 에에엑!]

[--- 아악!]

후드드드득!

--- --- !

불나방같이 쇄도하던 혈포인들과 금의인들이 콩 튀기듯 튕겨나갔다.

(수라천극존(修羅天極尊)의 절기까지 지니고 계시다니...)

바라보던 광양존후가 혀를 내둘렀다.

일시에 절곡이 혈향으로 가득했다.

능천한은 광양존후와 절곡중앙에 몸을 세웠다.

그곳은 방원 이삼백 장 가량의 절곡이었다.

그 절곡 안에 수백 명의 마도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자들은 대부분이 혈영궁도들과 통천방도들이었다.

[크크... 광양존후(廣陽尊后)... 네발로 예까지 기어들어오다니...]

스스스스슥!

능천한과 금벽라의 주위로 아홉 명의 혈포노인과 네 명의 금포인이 날아내렸다.

그자들은 하나같이 신광이 안으로 갈무리된 강자들이었다.

(만만치 않는 자들이겠는걸!)

능천한이 내심 중얼거릴 때 금벽라의 전음이 들려왔다.

[혈영구천살(血影九天煞)과 금룡사신(金龍四神)이란 자들이예요. 이자들의 합공은 오히려 혈영군이나 통천금룡제이상이니 조심하세요!]

그녀의 전음을 들으며 능천한의 시선은 절곡 밑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있고,

동굴입구 주위에 시체같은 혈의인들이 둘러 서 있었다.

(금맹주가 찾는 인물이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저 안에...!)

능천한의 두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때,

[크크--- 크크크...!]

[혈영마뢰(血影魔雷)!]

[흐흐흐! 금룡군림천(金龍君臨天)!]

--- 이이잉!

츠츠츠츠---!

혈영구천살과 금룡사신이 신형을 벌리며 강렬한 암경을 발산하였다.

[!]

능천한은 한 걸음 휘청하며 밀려났다.

(시간을 끌 필요없다.)

능천한은 금벽라에게 전음을 보냈다.

[소생 뒤에 서십시오. 그리고 소생이 진세를 깨뜨리는 순간 지체없이 소생을 부축하여 저쪽 석벽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알겠사옵니다!]

금벽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 우우웅!

갑자기 능천한의 몸이 태산처럼 굳어지고 그의 쌍수가 시커멓게 변색되어 갔다.

(이것은 또 무슨 공력?)

금벽라는 아연하면서도 급히 능천한 뒤로 물러섰다.

[묵황굉벽뢰(墨荒宏霹雷)!]

직후 능천한의 입에서 벼락이 떨어지듯이 폭갈이 터졌다.

그리고,

--- --- !

--- --- !

엄청난 굉음!

그와 함께 시커먼 강기의 무더기가 폭죽이 터지듯이 쏟아져 나갔다.

삼십 자 두께의 묵옥강석(墨玉)을 깨뜨리기 위해 창안된 격파전용절기!

혈영구천살과 금룡사신의 공세는 묵옥강석의 굳음에 비하면 종이짝이다.

--- 아앙!

[--- --- !]

[! ... 이럴 수가!]

--- 드드둑!

혈영구천살과 금룡사신!

그자들의 신형이 조약돌 튕겨지듯이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 르르르---!

노도겉은 묵강류(墨罡流)는 백 장을 내뻗었다.

묵황굉벽뢰!

무엇이 있어 그것을 막겠는가?

[--- --- 에엑!]

[--- --- 아악!]

능천한의 전면에 서 있던 육십여 명의 마도들이 그대로 폭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으음...!]

능천한의 안색이 창백해져서 휘청하였다.

[대공자!]

금벽라가 급히 능천한을 안아들었다.

묵황굉벽뢰는 위력이 강한만큼 내공의 소모가 크다.

--- --- 이잉!

금벽라는 능천한을 가슴에 보듬고 그대로 육십 장을 날아갔다.

 

---광양폭풍영(廣洋暴風影).

 

광양일문의 최고 경공절기다.

[...!]

[...!]

마도들은 그저 입만 딱 벌릴 뿐 그녀의 앞을 막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화르르르---!

금벽라는 그대로 석벽에 난 동굴로 쇄도하여 갔다.

그러자,

[크크크---!]

동굴입구를 지키고 있던 시체같은 자들이 껑충껑충 뛰면서 금벽라를 짓쳐왔다.

[혈마강시(血魔)!]

금벽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 내가 맡겠소!]

금벽라가 혈마강시와 충돌하려는데 그녀의 가슴에 안긴 능천한이 우수(右手)를 번쩍 쳐들었다.

[천중압(天重壓)!]

--- --- --- !

--- --- --- 카카캉!

벼락이 치듯!

새파란 륜영(輪影)이 혈마강시들을 짓쳐갔다.

[...천신륜(覇天神輪)!]

금벽라가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 가가--- !

[--- --- !]

[--- 크크...!]

혈마강시들의 몸뚱이가 토막 나 뒹굴었다.

보검으로도 상처를 내지 못한다는 강시들이다.

그런 혈마강시들이건만 패천신륜의 예기에 닿자 무 베듯이 베어져 나가는 것이다.

(무섭다. 천지십병(天地十兵)의 위명이 헛것이 아니었다.)

금벽라는 아연하면서도 날렵하게 패천신륜을 받아들고 동굴의 안쪽으로 쇄도하여 들어갔다.

혈마강시 외에는 다른 제지가 없었다.

그만큼 혈종의 마도들은 혈마강시를 믿었던 것이다.

스스스스슥!

금벽라는 백여장을 진행하였다.

그녀는 이 동굴의 안쪽으로 여러 사람이 지나갔음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발길을 멈추며 조심스럽게 능천한을 내려놓았다.

능천한의 안색은 백지장보다 하얬다.

묵황굉벽뢰를 쳐내고 연이어 패천신륜을 발출한 탓에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이것을 드세요.]

광양존후 금벽라는 한 알의 영단을 꺼내어 능천한의 입에 가져갔다.

그것은 광양신단(廣陽神丹)이라는 영약이었다.

[... 고맙소...!]

능천한은 금벽라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영단을 받아먹었다.

사실 그는 광양신단을 복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천지이교가 타통된 상태다.

그 때문에 아무리 내공이 심하게 탈진되어도 이내 회복된다.

외부의 자연지기(自然之氣)와 내부에 도사린 막강한 잠력을 융합시켜 범인보다 백배 빠르게 진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곧 능천한의 얼굴 혈색이 감돌았다.

금벽라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보면 볼 수록 놀랍기만 한 분...)

그와 함께 삼십 년 넘도록 굳게 닫혀있던 방심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

--- !

능천한은 뇌전같은 신광을 흘리며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능천한은 따스한 눈빛의 봉목이 내려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금벽라... 누나같은 분... 그녀의 가슴은 정말 따뜻하고... 좋은 내음이 났는데...)

능천한은 흐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불편하신 곳은 없으신지요?]

금벽라가 진심으로 능처한에게 물었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누님의... 가슴은 정말 포근했습니다!]

느닷없는 능천한의 한 마디...

(... 누님!)

금벽라의 교구가 휘청하였다.

그녀의 시선이 격동으로 흔들리고,

폭포같은 감흥이 그녀의 교구를 휘감았다.

[하하... 못나기는 했으나 동생을 하나 두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능천한이 밝게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금벽라의 봉목이 촉촉히 젖었다.

[... 아우님...!]

광양존후는 와락 능천한을 끌어안았다.

[...!]

능천한의 얼굴이 광양존후의 젖무덤에 파묻혔다.

뭉클한 느낌이 얼굴을 때리고,

향긋한 살내음과 젖의 향기가 능천한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고마워요... 천첩은 형제가 없어 외로왔는데...]

광양존후는 능천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능천한은 그녀의 가슴이 크게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능천한은 광양존후의 풍만하기 이를 데 없는 젖무덤을 더듬었다.

모성애에 굶주린 능천한의 본능적인 행위였으나,

[...!]

광양존후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당혹하여 능천한을 내려다보았다.

[누님의 젖은 무척 부드럽고... 따뜻하군요!]

헌데 능천한은 웃고 있었다.

일점의 사심도 없는 싱그러운 웃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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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六 章

 

              여자 중의 여자

 

 

 

관도,

두두두---!

한 대의 마차가 황혼을 등지고 질풍같이 달려왔다.

[이랴! 이랴!]

마부석에는 건장한 체격의 장한이 고삐를 잡고 일어서서 말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네 필의 건마,

그놈들은 거품을 물면서 장막이 두텁게 드리워진 마차를 끌고 달렸다.

장한은 비장한 모습으로 전면을 응시하며 마차를 몰았다.

헌데 마차가 한 굽이진 관도의 모퉁이를 돌 때였다.

[크크크크---!]

--- --- !

--- --- 파팟!

음침한 음소가 터지고,

관도 우측 숲속에서 시뻘건 강기가 벼락 치듯이 날아나왔다.

[!]

마차를 몰던 장한은 아연실색하며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콰작! 콰앙!

[--- 으윽!]

--- --- 히힝!

피가 확 일었다.

네 필 건마가 머리가 박살나고 장한도 피를 토하며 마부석에서 튕겨져 나갔다.

콰당탕!

장한은 관도 옆으로 나뒹굴었다.

스스스스슥!

휘르르르르---!

숲속에서 십여 명의 혈영인(血影人)들이 날아 나왔다.

하나같이 음악한 인상의 인물들이다.

[크크... ()가 계집년이 머리를 쓴다만... 그 따위 잔꾀엔 넘어갈 혈영궁(血影宮)이 아니다!]

혈영궁도들은 음침하게 마차로 다가갔다.

[크크... 이제 그만 나오시지!]

그중의 한 자가 장막을 들추었다.

순간,

[--- !]

--- --- !

--- 츠츠츠!

날카로운 교갈이 터지고 장막 안쪽에서 벼락치듯이 검기(劍氣)가 쏟아졌다.

그러나,

[크크...!]

[그럴 줄 알았지!]

--- 이잉!

쿠르르르르--- !

혈영인들이 기쾌하게 움직이며 일제히 장력을 내쳤다.

--- --- !

[--- 아악!]

마차가 통째로 박살이 나고,

그 안에서 한 명의 아리따운 소녀가 가슴이 박살나서 튕겨져 나갔다.

[크크크...!]

[헤헤... 고년... 죽이기는 아까운 계집이었는데...]

혈영궁도들은 죽은 소녀의 허벅지를 툭툭 걷어차며 음소를 지었다.

[흐흐... 천효(天梟)군사께서 펼친 천라지망에 십팔로(十八路)로 나간 금()가 계집년의 위장마차가 모두 걸려들었다.]

[크크... 결국,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 늙은이와... 군사의 따님은 아직 이곳 패하(沛河)가 근역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얘기지!]

[크크... 가자!]

스스스슥!

휘르르르--- !

혈영궁도들은 분분히 몸을 날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일장의 혈겁이 몰아친 후,

장내에는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다시 반각 쯤 지났을까?

스스스슥!

한줄기 황영(黃影)이 허공으로부터 날아 내렸다.

봉황(鳳凰)의 용모에,

태산의 무게를 지닌 청년이었다.

[이런...!]

황포청년은 검미를 찡그리며 부서진 마차를 돌아보았다.

그는 급히 소녀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아직 어린 소녀가 가슴이 박살이 나 죽은 모습은 너무도 애처로웠다.

[혈영마장(血影魔掌)... 혈영궁도들에게 당했군!]

청년의 얼굴에 싸늘한 빛이 감돌았다.

[혈영궁(血影宮)... 통천방(通天) 그리고 자객집단인 밀살교(密煞橋) 등의 발호가 극에 이르고 있다.]

청년은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

한쪽에서 미약한 신음이 들렸다.

[...!]

스스스슥!

청년은 유령같이 움직여 신음이 들린 곳으로 날아갔다.

관도 옆의 우거진 수풀 사이에 마차를 몰던 장한이 신음을 흘리며 누워 있었다.

청년은 급히 장한의 상세를 살폈다.

장한은 왼쪽가슴이 뭉개진 상태였다.

(회생은 불가능하다.)

파팟!

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장한의 몇 곳 혈도를 눌렀다.

[...!]

그러자 장한이 간신히 눈을 떴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청년이 급히 물었다.

장한은 한동안 망연히 청년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혈종(血宗)... 마도들을... 패하근역에서 끊어 내려는... ()맹주의 계획... 실패...!]

청년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패공산(沛空山),... 으로... 가서... 전해주십... 쌍극천효(雙極天梟)... 나타났... 맹주께서도... 위험,...!]

[쌍극천효(雙極天梟)...!]

[부탁... 사해정검맹(四海正劍盟)... ... 무너지면,...]

장한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으음...!]

청년은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그의 두 눈이 아주 밝게 빛났다.

[사해정검맹(四海正劍盟)이란... 신흥조직이... 쌍극천효(雙極天梟)와 모종의 일로 다투는 모양이군!]

청년은 중얼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스스스슥!

그의 신형은 서북쪽으로 폭사되어갔다.

[무이산(武夷山)행이 더뎌지겠군!]

청년의 목소리가 그림자를 따르지 못했다.

황포청년,

그는 다름아닌 능천한이었다.

능천한은 무이산으로 가던 길이었다.

[패공산(沛空山)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는 듯하군!]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몸을 날렸다.

그의 모습은 이내 까마득히 사라져 갔다.

 

X X X

 

<쌍극천효(雙極天梟).>

 

사도제일뇌(邪道第一雷)라 불리는 모사(謀士).

만 가지(萬種)의 사이한 술수와 계략을 지녔다는...

사십여 년 전,

그는 패천황룡(覇天皇龍)의 눈 밖에 나서 초주검이 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사이한 술수를 믿고 그는 만사교(萬邪敎)라는 문파를 세웠었다.

만사교는 쌍극천효를 등에 업고 천하무림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그들의 이간질과 농간으로 수많은 무림인들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고,

급기야 좀체 화를 안내는 패천황룡 능붕비의 노함을 샀다.

그 뒤의 결과는 명약관화,

만사교의 수뇌 일천(一千)이 폐인이 되고,

쌍극천효(雙極天梟) 자신도 반죽음을 당했었다.

그것이 사십여 년전의 일이었다.

 

X X X

 

패공산(沛空山).

절강(浙江) 서북단을 흐르는 패하(沛河) 근처의 산이다.

웅장한 산세는 아니나 예측불허의 험함과 어지러움으로 가득한 산이다.

 

저녁 무렵이다.

스스스스--- !

어둠이 스물스물거리는 패공산역을 한 줄기 인영(人影)이 흐르고 있었다.

그 인물은 홍의(紅衣)를 날렵하게 걸친 소녀였다.

스스스스--- !

홍의소녀는 물이 흐르듯이 산봉을 타고 넘어갔다.

한데,

[...!]

홍의소녀의 뒤로 유령같이 따라붙는 인물이 있었다.

신형이 흐릿하여 흡사 그림자를 연상케 하는 자...

홍의소녀는 그자가 따르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흐흐... 천산홍연(天山紅燕)! 어서 금()가 계집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그자는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앞선 홍의소녀를 노려보았다.

흐릿하게나마 드러나는 그 인물의 모습...

영준하게 생긴 문사차림의 인물이었다.

계집을 홀리기에 적당할 듯한 얄팍한 얼굴에 간교함이 가득한 자였다.

천산홍연(天山紅燕)이라는 홍의소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산봉을 넘어 치달렸다.

그러나...

간교한 그자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

그자의 머리 위쪽 허공에 또 한 명의 황의인이 둥실 떠서 따라가고 있음을...

능천한이었다.

(유령잠천행(幽靈潛天行)... 은밀함에 있어서는 으뜸이지.)

능천한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었다.

 

---유령잠천행(幽靈潛天行).

 

유령대제(幽靈大帝)가 유령제종령에 남긴 절기 중 하나다.

능천한은 천곡둔에서 하루를 머물며 상세를 치료했다.

묘상을 하면서 그는 심심하여 유령제종령을 살펴보았고,

그 과정에서 교묘히 감추어진 두 가지 신법(神法)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유령잠천행(幽靈潛天行)이다.

천하제일인 추종(追踪) 전문경공이 그것이다.

 

휘르르르르!

천산홍연이라는 소녀는 두 사람이 자신을 쫓고 있음도 알지 못하고 비연(飛燕)같이 허공을 갈랐다.

이윽고 그녀는 은밀한 곡구(谷口)에 이르렀다.

(저 안에 여러 명이 있군!)

능천한은 곡구를 바라보며 신형을 더욱 은밀하게 감추었다.

곡구의 안쪽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돌아왔어요!]

천산홍연이 밝게 외치며 곡구로 날아들었다.

그러자,

쉬르르르---!

--- --- !

곡의 안쪽에서 두 줄기 날렵한 인영이 마주 날아왔다.

흑의미녀와 백삼청년이었다.

흑의미녀는 매우 활달한 성격으로 보였다.

백삼청년은 곱상한 것이 일견하여 문사(文士)의 인상이 들었다.

[조심해라 홍매(紅妹)!]

[누구냐!]

마주 날아오던 흑의미녀와 백삼청년이 대갈을 질렀다.

그들은 천산홍연을 뒤따라오던 간교한 자를 발견한 것이다.

[어멋!]

그제야 천산홍연은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그와 함께,

[흐흣! 사천묵봉(四川墨鳳), 신수제검(神手帝劍), 너희들도 있었군!]

간교한 자가 영악하게 웃으며 몸을 드러내었다.

[...!]

그자를 발견한 세 젊은이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특히 그자를 인도한 꼴이 된 천산홍연의 옥용이 새빨개져서 시근덕거렸다.

[표향색절(飄香色絶)! 네놈이...]

--- --- !

--- --- ---!

천산홍연이 벼락같이 표향색절이란 자를 덮쳐갔다.

(대단한 쾌검!)

숨어서 지켜보는 능천한의 눈가에 탄성이 흘렀다.

천산홍연이 허리를 더듬는 순간,

요대에서 한 자루 연검이 섬전보다도 빠르게 빠져나와 표향색절이란 자를 베어간 것이다.

그러나,

[흣흐...!]

--- 스슥!

표향색절이 어깨를 좌우로 흔들자 그자의 신형이 형기가 허공중에 스며들 듯이 흐릿하게 나뉘었다.

(표향환종보(飄香幻踪步)! 표향음마(飄香淫魔)의 진전을 이은 자군!)

능천한은 관목의 그늘에 선체 두눈을 싸늘하게 빛냈다.

 

---표향음마(飄香淫魔),

 

사백 수십 년 전의 인물인 그자는 지독한 색마(色魔)였고, 대도(大盜)였다.

그자는 미혼술과 최음제도 수많은 규중처자들의 순결을 짓밟았으며,

뛰어난 경공절기로 갖은 악행을 다했었다.

어느 해인가...

그는 화산파의 당대문주였던 화후(花后)까지 능욕하였으며,

그 일이 발단이 되어 구파일방의 합공을 받아 갈가리 찢겨 죽었었다.

한데 그 표향음마인 무공이 표향화음신이란 자의 몸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흐흣! 기껏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군...]

표향색절이 음침하게 웃으며 품속에서 오색화전(五色火箭)을 꺼내들었다.

[흐흐... 곧 혈종(血宗)의 정예들이 이곳에 들이닥칠 것이다!]

표향색절의 오색화전을 쳐들며 음악하게 웃었다.

[막아욧!]

[--- !]

천산홍연, 사천묵봉, 신수제검이 동시에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 !

--- 파파파팟---!

--- 이잉!

천상홍연의 몸에서 섬전같은 검기가 쏟아지고,

사천묵봉의 교수에서 수십 개의 암기가 우박같이 날아갔다.

신수제검도 웅장한 검세로 휘몰아 표향색절을 짓쳐갔다.

그러나,

[흐흣! 어림없지!]

스스스--- !

--- 아앗!

표향환음심의 몸이 유령같이 흔들리며 오색화전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

[...!]

천산홍연 등의 안색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오색화전에는 다량의 화약이 내장되어 있어 허공에서 찬연한 오색불꽃을 터뜨린다.

그것도 백 리 박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그들의 현위치가 강적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

[...!]

천산홍연 등은 오색화전이 터질 허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색화전은 터지지 않았다.

스스스스--- !

한 줄기 흐릿한 인영이 어두워지는 허공을 가로질렀다.

오색화전은 어느 사이엔가 그 인영의 손안으로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 인영은 백색궁장차림의 면사여인이었다.

[!]

백의궁장녀를 발견한 표향색절의 안색이 홱 변했다.

반면,

[()언니!]

[맹주!]

세 젊은이는 희색이 만연하여 백의궁장녀를 바라보았다.

(저 골치 아픈 계집이 나타나다니...!)

표향색절의 안면이 이지러졌다.

다음 순간,

스스스스--- ---!

그자의 신형이 연기가 흐르듯이 이십 장 밖으로 쏘아나갔다.

[달아나겠다?]

[서랏!]

천산홍연 등이 분분이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

허공을 가르던 표향색절의 몸이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스스스스--- ---!

능천한이 관목의 그늘에서 육중한 기도를 휘몰아 표향색절 앞으로 날아내렸다.

[!]

[...!]

능천한은 발견한 중인들의 안색이 거의 동시에 변했다.

모두가 능천한의 엄청난 기도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 --- ---!]

--- --- ---!

표형환음신이 발악하듯이 몸을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그자의 신형이 무려 사십여 장을 치솟았다.

--- --- !

그러나,

능천한은 두눈을 싸늘히 빛내며 우수를 쳐들었다.

그의 우수(右手)가 일순 새파란 강기로 뒤덮였다.

[수라단천강류(修羅斷天罡流)...!]

백의면사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 --- !

--- --- 자작---!

능천한의 우수에서 새파란 강류(罡流)가 작렬하여 허공을 갈랐다.

--- !

[--- !]

처참한 비명과 함께 피보라가 확 일었다.

다급히 몸을 비튼 표향색절의 오른 팔이 박살나 버린 것이다.

--- --- 이잉---!

스스스!

그자는 팔 하나를 잃고도 물이 흐르듯이 멀리로 날아갔다.

--- --- ---!

능천한은 재차 수라강기(修羅罡氣)를 끌어 모았다.

(표향일맥... 천하여인들을 위해서하도 단절시키는 것이 좋다!)

능천한이 다시 한번 살수를 펼치려 할 때였다.

[공자(公子), 그냥 살려 보내세요.]

온화하고 기품있는 여인의 목소리가 능천한의 귓전을 울렸다.

(백의여인...)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렸다.

여인의 목소리에는 기이한 힘이 있었다.

그것은 부드러움 중에도 만인이 절로 고개를 조아리게 하는 힘이었다.

능천한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에 기품있는 자태의 백의면사여인이 다가오는 것이 들어왔다.

(대단한 기도를 지닌 여인이다. 여인 중 제일인(第一人)이 되리라.)

능천한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의여인에게는 능천한과 흡사한 점이 많았다.

먼저 기품이 그렇고,

만인이 절로 감복하는 장중한 기도가 그렇다.

(여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깝다. 그렇지 않았으면 일대종사(一大宗師)가 되었을 터인데...)

능천한이 감탄할 때였다,

(거인(巨人)... 드디어 찾아내었다. 천하를 받칠 기둥을...)

백의면사여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녀의 눈빛은 아주 신비했다.

맑으면서도 포근하여 어머니와 누이를 대하는 것 같으면서,

여인답지 않은 육중함을 담아 철혈의 장부라도 무릎을 꿇게 만들 위엄이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천첩은 사해정검맹(四海正劍盟)을 맡고 있는 금벽라(琴碧羅)라 하옵니다.]

백의여인이 능천한을 향해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맹주언니가 첩()을 자청하시다니...!)

(저 인물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백의면사녀의 태도에 세 젊은이들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그들의 눈에 능천한이 갑자기 거대한 거악(巨嶽)의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금벽라(琴碧羅)!)

능천한의 유연한 눈에도 이채가 흘렀다.

그는 한 여인의 소문을 떠올렸다.

[혹시 무림일신후(武林一神后)가 아니십니까?]

능천한은 정중하게 물었다.

면사여인을 보는 순간 아버지 패천황룡 능붕비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천하(天下)에 너와 짝이 될 수 있는 뛰어난 두 명의 여아(女兒)가 있다.

존후(尊后)와 천혜(天慧)라고 불리는 두 아이가 그들이니라.

존후(尊后)라는 아이는 일대여종사(一代女宗師)로서 광양존후(廣陽尊后)라고 한다.

천혜(天慧)라는 아이는 천하제일재녀(天下第一才女)라고 불리니라.

장차 네가 천하를 도모하려 한다면 이 두 여아를 가까이 해야 하느니라.

허허, 물론 그 아이들을 패천신문의 안주인으로 삼으면 더욱 좋고---

 

광양존후(廣陽尊后),

천혜선자(天慧仙子),

 

그녀들은 패천황룡을 감탄시킨 몇 안되는 인물에 든다.

그것도 이제 막 피어오른 젊은 여인의 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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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五 章

 

                   邊荒第一兵 太陽天火神槍

 

 

 

 

이곳은 한칸의 석실(石室)이다.

스스스스---

석실 전체에 기이한 분홍빛 향기가 가득했다.

그 향기의 내용은 아주 기이했다.

여인의 지부내음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물오른 여인의 몸에서 흐르는 체향(體香)같기도 하였다.

하여튼,

그 향기에는 마력(魔力)이 있었다.

여인이라면 모르나,

사내구실을 할줄 하는 남자에게는 치명적인 효능이 그 안에 있었다.

,

사내의 본능을 자극하여 여인을 안고 욕정을 풀어내지 않으면 아니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천하(天下)를 위태롭게 만들기에 충분한 향기였다.

[...!]

[...!]

죽음같은 침묵이 흐르는 석실 안,

향기에 휩싸인 채 일백여 명의 여인들이 있다.

낯뜨겁게도,

여인들은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들이었다.

하나같이 절세미인들인데 그녀들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그 여인들이 모두 초절한 공력을 지닌 여인들이라는 점이다.

여인들의 눈빛은 마치 횃불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여인들의 내공이 적어도 이갑자 이상임을 나타내준다.

[...!]

[...!]

여인들은 나신으로 가부좌를 튼채,

하나의 옥상(玉床)을 에워싸고 있었다.

스스스...

자세히 보면 예의 분홍빛의 향기가 여인들의 몸에서 안개같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득,

스스스--- 그그그긍---

석실 한쪽의 석문이 열리며 두 명의 여인이 들어왔다.

한 명은 고풍스런 자의궁장을 걸친 중년미부였다.

아주 아름답고 왕후같은 기품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옥용은 싸늘한 한기로 덮여 있어 한편으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자의미부 옆,

눈에 확 뜨는 미인이 서 있다.

폐월수화!

침어낙안,

빙기옥골,

이런 미사여구가 오히려 부족한 미인이었다.

본래는 훈훈한 분위기의 여인인데,

어떤 험한 일을 당했는지 옥용이 얼음같이 굳어 있었다.

그 여인은 속이 훤히 비추어 보이는 나의하나를 걸치고 있었다.

터질 듯이 풍만한 육봉,

한줌에 들어올 듯한 세류요(細柳腰),

무엇이든 받아들일 듯이 펑퍼짐하게 퍼진 둔부,

미끈하게 내리뻗은 두 개의 옥주,

그리고 방초(芳草) 무성한 둔덕이 나삼을 사이에 하고 숨을 쉬고 있었다.

폭발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동체였다.

[설련(雪蓮)!]

자의미부가 미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설련(羅雪蓮)!

바로 천검미후(天劍美后) 나설련이 아닌가?

그럼 자의미부(紫衣美婦),

그녀는 혈영군(血影君)의 마수에서 나설련을 구해낸 여황교주(女皇敎主) 천환여제(天幻女帝)였다.

천환여제(天幻女帝)!

그녀는 실상 칠십여 넘은 여인이다.

다만,

초극의 내공과 주안술로 하여 젊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천향소녀대미욕공(天香素女大美欲功)을 거치면... 너는 제이의 천향염후(天香艶后)가 될 수 있다.]

천환여제가 나설련에게 말했다.

 

<천향염후(天香艶后).>

 

천환여제가 언급하는 이 여인,...

그녀는 팔백 년 전의 여인이다.

여인의 몸으로 유일하게 고금오대마종(古今五大魔宗)에 들었던 고금제일여고수(古今第一女高手)가 그녀이다.

또한,

그녀는 지분(脂粉)으로 천하를 도탄에 빠뜨렸던 절대음녀(絶代淫女)였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나타나는 주위 십 리가 형언할 수 없는 기향(奇香)에 뒤덮인다고 했다.

그 향기에 접하면 누구라도 욕정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기꺼이 그녀의 개()가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미모와 지분으로 장장 일백 년을 천하 위에 군림했던 여인,

그녀와 천향염후(天香艶后),

천마(天魔) 혈종(血宗)에 비견되는 사상최강의 탕녀이며 여고수가 그녀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천지십병(天地十兵)에 드는 절대마병(絶代魔兵)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비녀였다.

 

---천향옥잠(天香玉簪),

 

온통 신비로 가득 싸인 천향옥잠이 바로 그것이다.

[...!]

천환여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미인들을 돌아 보았다.

분홍빛의 안개,

그 사이로 드러나는 여체들에서는 폭발적인 매력이 뭉클뭉클 솟아나고 있었다.

[천향일맥(天香一脈)의 팔백 년 영화가 네 일신에 달렸다. 가랏!]

천환여제가 나설련에게 말했다.

그러자,

스스스스슥---

나설련은 혼백이 나간 표정으로 옥상으로 다가갔다.

사르르르르---

옥상에 이른 나설련은 나삼을 벗어 버렸다.

그러자 나타나는 여체(女體),

숨이 탁 막힌다.

너무도 완벽하고 뇌살적인 몸매였다.

[...!]

나설련은 천천히 옥상 위에 나신을 누이고 살짝 다리를 벌렸다.

방초무성한 계곡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리고,

[시작해랏!]

천환여제가 차갑게 말했다.

그 즉시,

스스스---!

백 명의 나녀에게 분홍의 운무가 더욱 짙게 스며 나왔다.

석실은 여인들의 야릇한 체향으로 가득해졌다.

그와 함께,

스츠츠츠츠--- 츠츳---

--- --- 이잉!

나설련의 나신에서도 요요(妖妖)로운 광휘가 흐르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나녀들의 분홍기류는 솜에 물이 빠려들 듯이 나설련의 몸으로 스며 들었다.

지금,

백인의 절정여고수들이 자신들의 일신공력을 기향으로 바꾸어 나설련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천환여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붕비(鵬飛), 그대가 죽지 않았음을 믿어요. 설련이 천향염후가 되는 날... 당신에게 진 빚을 받아내고야 말 것이예요.]

천환여제의 봉목이 형형하게 빛났다.

붕비(鵬飛)?

패천황룡(覇天皇龍) 능붕비를 말함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X X X

 

황혼!

혈광으로 대지를 물들이며 환혼이 진다.

화살맞은 백조의 가슴으로 흐르는 선혈같이...

환혼이 진다.

 

한 명의 인물이 서 있다.

[...!]

천지가 무너져도 꿈쩍 않은 웅자로 한 인물이 서 있다.

꽉 다물린 입술,

불타오르는 눈빛,

태산의 웅자로 대지를 딛고 선 한 사나이가 있다.

타는 듯이 붉은 홍색의 경장을 꽉끼게 걸쳤으며,

그의 우수(右手),

(),

한 자루 신창(神槍)이 들려 있었다.

창신(槍神) 전체가 태양의 불꽃같이 시뻘건 신창(神槍)이 들려 있었다.

길이는 일 장,

홍포인의 우수에서 비스듬히 비껴 들린 신창에서는 태양화기(太陽火氣)가 뇌전같이 흐르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인물(人物),

그리고 범상치 않은 신병(神兵),

 

홍포인의 전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대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대초원(大草原),

한 가닥 막힘도 없이 그 끝나는 곳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초원!

그 초원을 딛고 홍포의 거웅이 우뚝 서 있다.

 

문득,

스스슥---

--- 르르르!

홍포인의 뒤로 삼인이 소리없이 내려섰다.

홍포인의 뒤로 내려선 삼인은 그대로 홍포인의 등을 향해 오체복지하였다.

[...!]

[...!]

잠시,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

홍포인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신존(神尊)!]

[신존(神尊)이시여!]

삼인은 이마를 땅에 박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홍포인,

그는 삼인에게 있어서 신적인 존재였다.

홍포인은 타는 듯이 붉은 시선으로 삼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맨 좌측에 오체복지한 인물에게 닿았다.

그 인물은 피의(皮衣)로 중요한 곳만 가린 야수같이 생긴 인물이었다.

그자의 전신에는 시뻘건 털이 부숭부숭하게 나있어 섬뜩한 인상이 풍겼다.

[남황야수신(南荒野獸神)!]

홍포인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 신존(神尊)!]

남황야수신이라 불린 그자는 벌벌 떨며 대답했다.

[준비는...?]

[... 일만 마리의 맹수와 일천의 독응(毒應)이 준비를 갖추고 신존의 명을 대기하고 있습니다.]

[!]

홍포인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의 시선은 가운데 있는 인물에게로 닿았다.

그 인물은 삼인 중 유일하게 여인이었다.

금발의 여인인데 몸매와 아주 풍염하고 전신에서 폭발적인 매력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투실투실하게 부푼 유방이 지면에 눌려 있었다.

유방에 흙이 묻었으나 여인은 감히 털어버릴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환밀후(歡密后)!]

홍포인은 여전히 무감정한 어조로 여인을 불렀다.

[신존(神尊)이시여...]

여인은 고개를 들어 홍포인을 우러러보았다.

서른정도 되었을까?

두눈이 새파란 벽안(碧眼)인 절세미녀였다.

우유빛의 피부가 미미하게 경련하고 있으며,

그녀의 벽안이 짙은 갈망을 담아 홍포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길을 받자 홍포인의 두눈에 담담한 광채가 흘렀다.

(석역쌍미(西域雙美)에 드는 천만금의 가치가 있는 사랑스런 여인... 하나...)

이내 홍포인의 눈빛은 다시 엄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벽안이 슬픈 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변황의 신! 변황 백만무림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계집에게 정을 주어서는 아니된다. 나는 변황의 신이므로...)

[요지(瑤地)의 준비상황은...]

홍포인은 무뚝뚝하게 물었다.

벽안미인 환밀후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요지(瑤地).

 

당대 서역제일문파(西域第一門派).

본시는 서천(西天) 서왕모(西王母)의 후인들로 선도(仙道)를 추구하는 여인천하(女人天下)의 문파였다.

그러던 요지에 밀종(密宗)의 음사(淫邪)함이 만연되었다.

결국,

선도를 추구하던 여인들은 그 옥체에 사내들을 태우고 쾌락을 찾았다.

그것이 일천 년 전부터이며,

요지에서는 일천 년 전인 세월을 거치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음탕한 무공과 술법들이 창안되었다.

그러면서 요지의 여인들은 욕심을 키워갔다.

자신들의 육체로 천하를 정복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요지의 여인들은 이를 위해 그 아름다운 육체와 음탕한 술수로 서역무림의 신공절기들을 긁어 모았다.

결국, 일천 년이 흐른 당대에 와서 요지는 서역제일이 될 수 있었다.

홍교본산인 천룡사(天龍寺)가 요지인 분당이 된 것이 이미 오래 전이고,

황교본산인 살가사(薩加寺) 역시 천룡사와 같은 꼴이 되었으며,

백년 전에는 서장제일이라던 포달랍사마저 요지의 요녀들에게 점령당했다.

그런 요지이건만...

대초원에서 난 일인 절대영웅(絶代英雄)에게는 너무도 무력했다.

 

---태양신존(太陽神尊)!

 

천세를 걸쳐 내려오던 서역제일비(西域第一秘)!

태양성부(太陽聖府)의 비밀을 푼 이 절대영웅이 신창(神槍)을 한번 그음으로써 요지의 천년공격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것이 이십 년 전의 일이었다.

 

!

환밀후(歡密后)!

요지제일미의 벽안에서 옥구슬이 흘렀다.

(당신... 한 분을 위해 삼십 년 동안 가꾸어온 심신이거늘...)

환밀후는 눈물을 삼켰다.

[천년휘하 일만의 미인과 삼만의 서역제일용병들이 신존의 일언 천명(天命)을 받자고저 부복하고 있습니다.]

환밀후의 말에 홍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마지막 일인에게로 닿았다.

그 인물은 완전히 백발로 뒤덮인 노검사(老劍士)였다.

나이를 추측하기 힘들 정도의 백발노검사!

그러나,

그 노구에게서 뼈골까지 스미는 예기(銳氣)가 내뻗치고 잇었다.

범인이라면 그 예기만으로 피를 토하고 죽을 정도로 날카로운 예기였다.

[해천신검제(海天神劍帝)!]

홍포인이 묵직하게 불렀다.

[신존! 동해(東海) 해천검파(海天劍派) 일만검사(一萬劍士)가 신존의 존명을 고대한지 오래이오이다.]

백발노검사, 해천신검제가 노인답지 않은 칼칼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좋소!

홍포인은 돌아서서 다시 황혼을 바라보았다.

태양(太陽)...

서쪽끝이 지평선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홍포안은 입을 열었다.

[때가 왔소! 나 태양신존(太陽神尊)은 중원(中原)을 본존의 발아래에 두어보일 것이오!]

[... 신존...!]

[신존이시여!]

삼인이 격동으로 몸을 떨며 홍포인을 올려다보았다.

!

태양신존(太陽神尊)!

이 인물이 바로 천하삼정(天下三鼎) 중 태양지혼(太陽之魂) 태양신존(太陽神尊)이란 말인가?

 

[중원(中原)은 넓고... 잠룡과 대붕(大鵬)이 도사린 곳이나!]

--- 차창!

--- ! 화르르르---

!

엄청난 창영(槍影)!

신창(神槍)에서 폭죽이 터지듯이 백 장에 이르는 극양강기(極陽)!

태양신존이 신창으로 환혼을 찌를 것이다.

가공할!

실로 가공할 기세가 신창에서 쏟아졌다.

산산이 부서지는 황혼!

그 사이로 하늘이 양단되지 않는가?

 

[본존에게 태양천화신창(太陽天火神槍)이 있으니... 뉘라서 본존의 앞을 막겠는가?]

태양신존이 웅혼한 일성을 토했다.

!

그것이었는가?

신창(神槍)이 바로 그것이었는가?

 

<태양천화신창(太陽天火神槍)>

 

!

태양천화신창(太陽天火神槍)!

천지십병(天地十兵)의 사대신병(四大神兵)에 드는 절대신창(絶代神槍)이 아닌가?

한번 내침으로,

배그 장에 이르는 태양강기(太陽)를 내뻗어 만상을 재로 만든다는...

그 천고(千古)의 신창(神槍)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태양성부(太陽聖府)!

그 천 년의 신비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태양천화신창(太陽天火神槍)...

[신존(神尊)!]

[신존(神尊)이시여...]

남황야수신, 환밀후, 해천신검제가 감격하여 눈물을 지었다.

이역의 오랑캐라 하여 중화인들로부터 갖은 수모와 멸시를 당해오던 그들...

드디어,

그들은 떳떳이 천하 위에 설 기회를 목전에 둔 것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호호호호!]

한소리 맑디 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화르르르...

허공으로부터 한무더기 홍운(紅雲)이 사인 앞으로 날아내렸다.

그 홍운은 한 명의 지극히 아름답고 발라하게 생긴 홍의소녀였다.

팽팽한 홍의겉으로 여인의 신비한 육체의 곡선이 드러나보이고,

한가닥으로 묶은 검은 머리가 허벅지까지 이르렀다.

아주 당돌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소녀였다.

[사란()!]

소녀를 바라보는 태양신존의 안면에 훈훈한 미소가 감돌았다.

[호호! 오빠! 드디어 중원(中原)에 들어가실 생각이신가요?]

사란이라는 소녀가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소녀는 태양신존의 누이동생인 것 같았다.

태양신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일년내로... 중원을 사란에게 주었다.]

태양신존의 말에 소녀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오빠에게 부탁이 있어요.]

[무엇이냐? 말해 보거라!]

사란이라는 소녀는 냉큼 대답했다.

[오빠보다 사란이 한발 먼저 중원에 들어가 정세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네가 척후가 되겠다고?]

태양신존은 검미를 찌푸렸다.

[아이... 오빠...!]

사란은 태양신존의 품으로 뛰어들어 애교를 부렸다.

이에 태양신존은 별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천하를 상대로 싸워도 지지 않을 나지만 사란 네 녀석에게 번번이 지는구나!]

[! 오빠 최고!]

사란은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였다.

그런 사란의 모습을 보며 태양신존은 엄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환밀후와 해천신검제를 데리고 가야한다!]

[! 사란 혼자가도 되는데...]

그러나,

오빠의 태양신존이 내세온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음을 알기에 군소리는 하지 않았다.

[! 내일 당장 떠날래요! 중원에는 강자가 많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알아볼거예요!]

사란은 중원쪽을 바라보며 작은 손을 앙증맞게 휘둘렀다.

[오빠! 먼저 가겠어요.]

[오냐!]

화르르...

사란은 제비같이 가볍게 몸을 날려 초원저편으로 날아갔다.

[환밀후! 해천신검제!]

사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태양신존이 묵직하게 불렀다.

[!]

[신존...]

양인이 무릎을 꿇으며 복명했다.

[사란을 잘 돌아보오! 그 일은 환밀후가 주력하고... 해천신검제는 중원의 내실을 정확히 파악하여... 보고 하오!]

[존명(尊命)!]

[심려 놓으시옵소서!]

환밀후와 해천신검제의 대답을 들으며 태양신존은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중원(中原)이 있었다.

[사란으로 인하여... 너 중원이 몇달 늦게 변황의 광풍에 휘말리게 되었구나!]

태양신존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변황(邊荒)으로 부터의 대풍운(大風雲)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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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四 章

 

                  紫府의 다섯 가지 보물

 

 

 

(!)

능천한은 흠칫했다.

들려온 목소리는 죽어가는 병자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나를 찾는 인물을 만나다니...!)

능천한은 놀라긴 했으나 침착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침중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소생이 능천한입니다만... 어느 분이십니까?]

능천한의 물음에 즉시 대답이 있었다.

[... 패천잠룡(覇天潛龍)... 사경에서... 만나다니... 하늘이... 노부를 버리지는 않았군...]

고통스럽고 힘에 겨운 목소리였다.

[파진...의 비결을... 알려... 주겠네... 들어... 오게!]

능천한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귀를 기울였다.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의 최대 묘용은 류()와 환(), ()의 묘리이네... ()...!]

끊일 듯 끊일 듯, 위태로운 어조로 노인은 만상천류대진의 진세를 설명하였다.

!”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발했다.

노인의 설명을 듣자 안개에 가려져 있는 것 같이 가물가물하던 이치들이 확연히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문일지십(聞一知十)!

노인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능천한은 벌떡 일어섰다.

[기다리십시오! 소생이 노인장께 가겠습니다.]

[... 조심하게...!]

스스슥!

능천한은 미끄러지듯이 진중으로 들어갔다.

콰르르르르!

우우우!

츠츠츠---!

()... ()... ()...!

해일이 일어나듯!

광풍폭우와 천지멸렬의 환상이 능천한을 뒤덮어 왔다.

[...!]

능천한은 조금의 미동도 않고 냉철하게 전면을 바라보며 진행하였다.

이윽고...

스스슥!

모든 진세가 연기같이 사라져 갔다.

능천한의 눈에 그다지 넓지 않은 절곡의 모습이 드러났다.

[...!]

능천한은 멈칫 몸을 세웠다.

오십여 장 밖,

깎아지른 석벽이 서 있었다.

그 석벽에 한 명의 혈인(血人)이 기대앉아 있었다.

능천한은 급히 그 인물에게 다가갔다.

혈인(血人)은 청수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원래 노인은 자색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피에 흠씬 젖어 혈포가 된 것이다.

[노인장!]

능천한은 급히 자의노인을 부축하였다.

[...!]

자의노인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사색(死色)이 완연한 노인의 두 눈이 안도감으로 물드는 것을 능천한은 보았다.

[... 역시... 잠룡(潛龍)...!]

능천한을 바라보며 노인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상세가 중하십니다. 말씀하시지 마시고 우선 상세를...!]

능천한이 침중하게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노부는... 틀렸네... 외상(外傷)도 중하니 내상은 그보다 열배 중하지!]

[...!]

능천한의 입에서 경악성이 흘렀다.

그제야 노인의 상세를 알아본 것이다.

노인의 몸은 어느 곳 하나 성하지 못하고 쩍쩍 갈라져 있었다.

특히 자의노인의 가슴은 처참하게 으스러져 있었다.

그러나 노인의 외상은 내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노인의 전신 심맥은 완전히 박살이 난 상태였다.

게다가 노인의 심장조차 절반 이상 으스러져버렸다.

(이분... 누구기에 이런 중상을 입고도 살아 계시는가?)

능천한은 그저 아연할 뿐이었다.

노인의 상세는 범인이라면 이미 몇 번 죽었을 중상이었던 것이다.

[허허... 패천... 잠룡(覇天潛龍)... 만날 한 가닥 기대러 일천 리를 달려온... 것이 헛고생은... 아니었군!]

능천한은 바라다보며 자의노인은 웃음을 지었다.

[소생을 찾아오셨습니까?]

능천한은 무거운 안색으로 물었다.

[그렇네... 천하를... 구할 거룡(巨龍)을 찾아온 것이지...!]

자의노인은 말을 하며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소형제... 한 가지 부탁... ... 있네!]

[말씀해 보시오!]

[노부... 일신에는... 일문(一門)의 흥망이... 달려있네... 노부 일신의 은원을... 대신... 받아주지 않겠나?]

능천한은 그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해드리겠습니다.]

노인의 죽음이 드리운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 고마우이... ... 부르르 앉혀주......!]

[!]

능천한은 노인을 편하도록 석벽에 기대어 주었다.

노인은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노부는... 자부(紫府)...의 자부노조(紫府老祖)일세...!]

노인의 말에 능천한은 아연하였다.

[노공(老公)께서... 자부노조(紫府老祖)십니까?]

[그렇네... 이 늙은이가... 자부노조(紫府老祖)...!]

[으음...!]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자부(紫府)>

 

이 얼마나 신비한 이름인가?

자부(紫府)는 무림제일비(武林第一秘)라고도 불리는 신비문파(神秘門派)이다.

그들은 무림의 유수한 문파로 천 년을 이어내려왔다.

그러나 누구도 자부(紫府)의 진면목을 모른다.

과연 자부(紫府)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그들 휘하에 얼마만큼의 사람과 재력과 능력이 있는지를...

흑자는 말한다.

 

---자부(紫府)는 마음만 먹으면 천하를 살 수도 있는 재력(財力)이 있으며... 천하를 손아귀에 넣을 힘과 능력이 있다.

 

...라고

자부(紫府)를 세운 인물은 아주 유명한 인물이다.

동시에 천하에 천세후인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하나...

천 년 후인 지금도 진정한 면모를 알지 못하는 신비의 인물이다.

 

---자부존(紫府尊).

 

자부존(紫府尊)이라 불리는 천수 백년전의 신비고인이 바로 그다.

신비 속에서 운룡(雲龍)같이 노닐었던 제일신비인...

당대의 자부지존(紫府至尊)은 자부노조(紫府老祖)라는 고인이다.

남북쌍괴(南北雙怪)와 시대를 같이하던 전대고인(前代高人)이 그다.

 

(자부노조께서 이 지경이 되다니...!)

능천한의 검미가 부르르 떨렸다.

자부노조는 세외제일지사(世外第一智士)로 불린다.

그 때문에 능천한은 평소 자부노조를 지극히 흠모해 왔었다.

한데 그 자부노조가 죽어가는 신색으로 그의 앞에 있는 것이다.

[만상... 천류대... 진을... 치고... 그 진운이... 자네를... 불러... 오길 바랬지...!]

자부노조는 죽어가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놓인 때문일까?

[... 천하가... ()의 저주(咀呪)... 잠기고 있네...!]

[...!]

[... 첫번째... 재물이 패천신... 문파... 우리 자부(紫府)였던... 게야...!]

자부노조는 치를 떨었다.

[자부궁(紫府宮)... 삼천의 궁도와... 함께... 궤멸... 노부만이... 간신히... 빠져 나왔네...!]

능천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자부궁이 궤멸당하다니요...? 어느 누가 자부궁을...?]

능천한이 다급히 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자부노조가 어둡게 말했다.

[... 우주혈종(宇宙血宗)... 아는가?]

[우주혈종(宇宙血宗)!]

능천한은 너무도 크게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우주혈종(宇宙血宗).

 

능천한이 어찌 그 이름을 모르겠는가?

이백여 년 전,

저주의 혈황탈(血荒奪)로 천하를 혈세한 대사종(大邪宗)!

결국 패천자(覇天子)와 제왕천신(帝王天神)의 손에 의해 지옥애로 떨어지고 말았지 않았는가?

능천한이 아연하는데 자부노조는 말을 이었다.

[사흘... 전이었는데... 한 명의 혈인(血人)... 자부(紫府)로 찾아왔네... 그자는 혈광에... 싸인 채... 한 자루의 핏빛 탈()... 사용...!]

[혈황탈(血荒奪)!]

능천한이 자기도 모르게 신음했다.

[반각... 반각만이었지... 자부궁은... 삼천궁도... 들과 함께... 무너졌고... 노부도 그 탈()에서 쏟아진... 저주스런... 강기에... 저항도 못하고... 이 모양이 되었지...

[으음...!]

능천한은 땀이 절로 흘렀다.

자부노조는 말을 이었다.

[혈강(血罡)... 번뜩이는... 순간... 천지가 혈기로 가득차고... 그것으로 끝이었네... 노부도 자부탄천신강(紫府彈天神罡)... 아니었으면 즉사... 를 면치... 못했을... 것이네,...]

[흉수가... 우주혈종이라고 생가하십니까?]

능천한이 침중하게 물었다.

[... 수 없지. 우주혈종이... 이백 년을 ... 살아왔다고... 생각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자가 쓴 것은... 혈황탈(血荒奪)...]

[... 황탈(血荒奪)...!]

 

---혈황탈(血荒奪).

 

천하사대마병(天下四大魔兵)의 하나.

일단 펼쳐지면 소름끼치는 마성과 핏빛의 강기로 삼라만상을 뒤덮어 버린다는 전설의 마병(魔兵)이 아닌가?

그것이 당세에 나타나 혈풍을 부르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제왕천신(帝王天神)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려는가?)

능천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천기(天機)... 보았지. 천하는... 소형제 부자가... 죽었다고 하지만... 천기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네...]

자부노조는 능천한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노부는... 그대에게... 우주혈종(宇宙血宗)이든... 그 후인이든간에... 그들이 일으키는... 혈풍을 가라앉힐... 힘을 주기... 전에는,... 죽을... 수 없었지...]

[...!]

[노부는... 그대에게... 자부오절(紫府五絶)을 줄... 작정이네!]

자부노조가 힘겹게 말했다.

[자부오절(紫府五絶)...?]

[그렇네... 그대는 자부오절(紫府五絶)... 아는가?]

능천한은 고개를 저었다.

[알지 못합니다!]

자부노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듣게... 자부에는 천하를 위진... 시키는... 다섯 가지... 가 있네... 그 일절(一絶)이 인절(人絶)... 이네...]

자부노조는 자부심을 떠올리며 자부오절을 떠올렸다.

 

<자부오절(紫府五絶)>

 

이것이다.

이것이 자부(紫府) 일천 년의 신비이며,

자부의 그 밝혀지지 않은 거대한 잠력인 것이다.

 

---인절(人絶).

자부(紫府)의 진정한 힘이 이것이다.

자부에는 인재가 많다.

각방면에서 최고의 경지에 달리는 인재들이 자부에 있는 것이다.

십만(十萬)!

이 엄청난 잠룡들이 자부지존(紫府至尊)의 현실을 기다리며 칼을 갈고 있는 것이다.

 

재절(財絶).

자부제일절(紫府第二絶).

일천 수백 년의 세월동안 축격된 엄청난 재력이 자부에 있다.

그것은 실로 중원전체를 사고도 남을 지경의 양이었다.

 

기절(機絶).

자부제삼절(紫府第三絶).

자부의 기관지학, 토목지학, 기문진법은 정평이 나있다.

만상문(萬像門)이 궤멸된 이후,

자부의 그 방면에서의 진전은 독보적인 경지였다.

 

[자부가 방심을 하지만... 않았다면... 혈종(血宗)... 환생했어도 자부궁을 건드리지... 못했을 텐데...!]

자부노조는 한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의 상처에서는 꾸역꾸역 선혈이 흘렀고 사색(死色)이 노안에 가득했다.

[사절(四絶)... 약절(藥絶)... 자부(紫府)는 만종(萬種)의 영약을... 지녔지... 오절(五絶)... 기공절(氣功絶) 천지십병이 나타나지만...않으면 무너지지 않는 기공이... 자부에... 있네...]

말을 마친 자부노조는 이미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다만 강렬한 내공과 정신력이 이미 죽은 그의 육신에서 영혼을 묶어 두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자부오절(紫府五絶)이고... 조사 자부존(紫府尊)... 뒤를 이를 자부지존(紫府至尊)의 현신을 기다리며... 천 년을... 잠속에 있었네...!]

능천한의 눈빛이 안타깝게 변했다.

--- !

자부노조의 얼굴에 떠오르는 희광반조의 현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혈종후예(血宗後裔)... 사실... 자부오절과... 또 한 가지... 보물을... 노렸지만... 헛허... 그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네...!]

[...!]

능천한은 경건한 자세로 자부노조의 이야기로 경청하였다.

자부노조는 죽어가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 한 가지 보물이란... ... 개의 상고신품(上古神品)이네...!]

[상고신품(上古神品)...?]

능천한은 눈을 빛내며 자부노조의 말을 기다렸다.

[헌원천황벽(軒轅天荒璧)이라는... 것이지...]

[헌원천황벽(軒轅天荒璧)!]

능천한이 탄성을 발하자 자부노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노부가... 우연히... 돈황(敦煌)의 석굴(石窟)에서 얻은... 옥벽(玉璧)이네,...]

[...!]

[그 옥벽에는... 대천황지기(大天荒之氣)에 연관되는 극히... 심오한 이치가... 적혀... 있었네!]

[대천황지기(大天荒之氣)! 혹시 대천황연(大天荒衍)과 관련되는...?]

능천한이 두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노부가... 추측키로는... 그것은... 황제(皇帝)의 저술로 보이네!]

[황제(皇帝)! 전설의 성군 황제(黃帝)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네...!]

[으음...!]

능천한의 뇌리에 순간적으로 강렬한 영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그에게 또 다른 운명을 전개해 보이는 예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품속에...자령신부(紫靈神府)가 있네. 무이산(武夷山)... 약왕곡(藥王谷)... 천수약왕(天手藥王)에게... 보여주면... 자부오절(紫府五絶)... 헌원천황벽(軒轅天荒璧)을 그대에게 줄 것이네...!]

말을 하면서 자부노조의 얼굴이 점차 옆으로 떨어져 갔다.

[노인장...!]

능천한이 안타깝게 불렀다.

[부탁... 천하가... 혈종(血宗)... 저주로... 침몰하려... 구해야... 하네!]

...!

말을 마치자마자 자부노조의 목이 힘없이 꺾어졌다.

[노인장! 노인장!]

능천한은 다급히 자부노조의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자부노조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으음...!]

능천한은 손을 떨구며 깊이 탄식했다.

(천하가 무너져... 가고 있다. 자부노조께서는 그것이 걱정되어 눈도 감지 못하신 것이다!)

스르르---!

능천한은 자부노조의 치뜬 노안을 내리쓸어 감겨 주었다.

그는 이어 자부노조의 시신에 대고 깊게 머리를 숙였다.

[편히 잠드소서. 자부(紫府)가 저로 안하여 소생하고... 천하가 저를 의지하여 지탱하도록 하겠습니다!]

묵도를 한 후,

능천한은 자부노군의 시신을 안고 일어섰다.

 

잠시 후,

절곡의 양지바른 곳에 작은 봉분이 생겼다.

[...!]

봉분 앞에 꿇어 앉은 능천한.

그의 두 손에는 하나의 옥패가 들려 있었다.

자색(紫色)의 서기가 도는 옥패.

 

<자령신부(紫靈神府)>

 

그것은 자부존(紫府尊)이 만든 것이고,

자부(紫府)의 천년정화를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무상권위가 담겨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무이산 약왕곡에 가야겠군! 천하를 평정키 위해서는 막강한 세력이 필요하니...!]

능천한은 자령신부를 깊숙이 집어넣었다.

우르르르--- 르르!

--- --- !

절곡 주위의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에서는 끊임없이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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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三 章

 

                    억지 청혼(請婚)

 

 

 

[으음...]

되날아온 패천산륜을 받아든 능천한의 얼굴이 이지러졌다.

상처가 터지며 칼로 베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고소를 금치 못했다.

[후훗! 패천신륜(覇天神輪)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군!]

통천금룡제(通天金龍帝).

그는 그렇게 쉽사리 남에게 패할 인물이 아니다.

능천한이라도 통천금룡제와의 격돌 결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그만큼 그자의 무공이 높고 또 금룡신장의 위력은 무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능천한은 가볍지 않은 중상을 입은 상태가 아닌가?

그럼에도 통천금룡제는 패천신륜의 현신에 놀라 달아난 것이다.

천지십병(天地十兵)!

오랜 세월 이어온 이 열 가지 신병의 위명은 무림인들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심어준 것이다.

그때였다.

[흐흐흐흐...!]

돌연 한소리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능천한은 내심 가슴이 서늘해졌다.

(어떤 자이기에... 이토록 가까이 접근하도록 눈치를 채지 못하였는가?)

능천한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고개를 들던 능천한의 두눈이 놀람의 빛을 띄웠다.

허공(虛空)!

능천한의 머리 위쪽 허공에 한 명의 인물이 둥실 떠있었던 것이다.

(바로 머리 위에까지 접근하도록 몰랐다니...!)

능천한은 자책하며 허공에 뜬 그 인물을 주시하였다.

그 인물은 백포의 노인이었다.

안색이 백지장같이 하얗고 두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번뜩이는...

일견하기에도 음침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상의 노인이었다.

(극음(極陰)의 기공을 익힌 노인이다!)

능천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백의노인의 일신에서 골수까지 스미는 한기가 일었기 때문이다.

[흐흐... 네놈 애송이가 패천잠룡(覇天潛龍)이렸다!]

노인이 강팍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만... 노인장께서는?]

능천한은 내심 긴장하며 대답했다.

백의노인은 시퍼런 두눈을 희번뜩리며 그런 능천한을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적은 아니군. 음침하지만 살기는 없으니...)

능천한은 내심 긴장을 풀었다.

[클클... 과연 고금제일의 체질이다. 네 녀석의 씨를 받고 태어나는 아이는 능힌 일세패웅(一世覇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백의노인이 까마귀 울음소리같은 목소리로 말하자,

능천한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뻘개졌다.

[노공(老公)! 무슨 말씀이신지...]

괴노인은 거북살스런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노부에게는 예쁜 계집아이가 하나 있다.]

[...!]

[계집들 중에서는 능히 천하제일을 다툴만한 미모와 재질을 지닌 계집이지만...]

백의노인은 괴팍스런 시선을 능천한에게 던졌다.

영문을 모르는 능천한은 멍한 표정으로 괴노인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클클... 계집이기에 의발을 전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그 계집아이로 하여금 네 녀석의 씨를 받게 할 생각이다!]

[예엣?]

백의노인의 말에 능천한은 아연실색하였다.

백의노인은 능천한을 씨받이로 쓰겠다는 얘기다.

[... 노인장!]

[흐흐... 인상 쓰지 마라. 그 게집은 천하제일의 첩()이 될 것이니 네 녀석은 그 계집에게 아들이나 하나 낳게 해주면 된다!]

[...!]

능천한은 어이가 없어서 입만 딱 벌릴 뿐이었다.

노인은 품속에서 옥함을 하나 꺼내어 들었다.

[옛다. 이것은 예물이니 받아두어라.]

--- !

괴노인은 능천한에게 그 옥함을 던졌다.

[...!]

능천한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옥함을 받아들었다.

[크흐흐흐흐... 네 녀석이 예물을 받았으니 이 혼인은 성사된 것이니라!]

--- --- !

[노인장!]

당황한 능천한은 다급히 불렀다.

그러나 괴노인은 허공에서 몸을 틀어 단번에 멀리 날아갔다.

[크크크... 자부(紫府)의 영화(英華)를 취하러 왔다가 대붕(大鵬)의 씨를 얻게 되었구나!]

--- --- !

괴이한 말을 남기며 괴노인은 신기루같이 사라져갔다.

(대단한 경공... 천극수라영(天極修羅影)의 아래가 아니다!)

능천한은 노인의 가공할 경공에 혀를 내저었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인가?]

능천한은 손에 들린 옥함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은...]

옥함을 내려다보던 능천한의 안색이 일변했다.

놀랍게도 옥함은 만년한옥(萬年寒玉)으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만년한옥(萬年寒玉)!

백독을 몰아내고 항시 젊음을 지켜준다는 무상지보가 아닌가?

한데 그 만년한옥을 깎아 옥함을 만든 것이다.

[그 노인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능천한은 내심 놀라며 옥함을 열어보았다.

옥함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있었다.

매미날개보다도 얇은 천으로 만든 얇은 내의(內衣).

만년한옥으로 깎아 만든 옥병.

눈같이 흰중에 거무스름한 무늬가 종횡으로 뒤엉킨 손바닥만한 옥부(玉府)가 그것이었다.

[이것은...!]

능천한은 흠칫하며 옥부(玉府)를 집어들었다.

(현기(玄機)가 있다!)

능천한은 두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옥부 위에 얼룩진 검은 무늬를 들여다보았다.

옥부(玉府).

그것은 살덩이만한 만년한옥을 깎아야 손바닥만큼 얻을 수 있다는 구유현음벽(九幽玄陰壁)이라는 것이었다.

한데 구유현음벽 위에 얼룩진 무늬에 어떤 현기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만큼 큰 구유현음벽은 천하에 단 하나... 북해 유령궁(幽靈宮) 외에는...)

능천한은 급히 옥부를 뒤집어 보았다.

[역시...!]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옥부의 뒤에는 네 개의 글자가 전자체(篆子體)로 적혀 있었던 것이다.

 

<유령제종(幽靈諸宗)>

 

유령제종령(幽靈諸宗令)!

이것은 천 년을 내려온 일파의 종주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문파는 바로,...

 

북해(北海) 유령궁(幽靈宮).

 

[... 그 노인이 바로 현음유령종(玄陰幽靈宗)...!]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하였다.

 

<현음유령종(玄陰幽靈宗)>

 

그는 바로 남북쌍괴(南北雙怪) 중 북괴(北怪)가 아닌가.

벽력태세(霹靂太歲)와 함께 백년 이전에 이미 무림을 떠났던 전대절정고수인...

그가 나타난 것이다.

능천한은 경이에 찬 시선으로 옥함에 든 세 가지 물건을 들여다보았다.

[이것들은 유령사대중보(幽靈四大重寶)의 세 가지가 아닌가?]

그는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본래 북해 유령중에는 네 가지 지보(至寶)가 있다.

이를 일컬어 유령사대중보(幽靈四大重寶)라 한다.

 

---유령제종령(幽靈諸宗令).

---유령명공비(幽靈冥空匕).

---만년빙옥정(萬年氷玉精).

---빙잠천의(氷蠶天衣).

 

이것이 유령사대중보다.

하나같이 무가의 지보들이다.

특히 유령제종령과 유령공비의 가치는 무한하다.

 

---유령제종령(幽靈諸宗令)!

 

이는 유령궁의 조사인 유령대제(幽靈大帝)의 신물이다.

이에는 유령대제의 일신무학이 모두 감추어져 있다.

그 때문에 유령제종령은 그 권위와 더하여 사대중보 중 으뜸이 되었다.

 

---유령명공비(幽靈冥空匕),

 

이는 유령대제의 부인이던 명후(冥后)의 호신지병(護身之兵)이고...

동시에 천병보(天兵譜) 천병제일천좌(天兵第一天坐)에 오른 무상신병이다.

그 서열은 무려 십이위(十二位).

고금을 통틀어 이를 능가하는 병기는 열한 가지 이상이 없다.

벽력일맥이 벽력굉천권(霹靂轟天拳)과 함께 공히 십이위인 초절신병...

 

---만년빙옥정(萬年氷玉精),

 

만년한옥을 태산만큼 한홉을 얻는다는 극음제일영약(極陰第一靈藥)이 이것이다.

그 공효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한 방울만 마셔도 백 년 공력을 얻고 아무리 어려운 극음기공이라도 속성할 수 있다.

그 뿐이 아니고, 아무리 강한 극독이라도 얼려버리고,

영원히 청춘을 지켜준다.

 

---빙잠천의(氷蠶天衣),

 

이는 두 벌로 되어 있다.

한 벌은 여인용이고 한 벌은 남자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만년빙잠(萬年氷蠶)의 빙잠사를 뽑아 만들며,

입고 있으면 화산이 터지는 정도의 충격과 압력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준다.

빙잠천의는 유령대제(幽靈大帝)와 명후(冥后)가 쓰던 것이다.

[이 귀한 것들을... 서슴없이 주고 가다니...!]

능천한은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천하패웅이 될 아이 하나만 유령궁에 주면 된다.

 

능천한은 현음유령종이 말한 의미를 되새기며 쓴웃음을 지었다.

[인륜대사를 어찌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가? 다시 만나면 돌려주리라!]

능천한은 옥함을 닫아 품속에 집어넣었다.

이어 그는 운무로 뒤덮인 절곡의 후면으로 다가갔다.

우르르르르--- ...!

은은한 우뢰성을 동반한 운무,

그것은 너무 짙어 도저히 그 안쪽을 살펴볼 수가 없었다.

능천한은 통천금룡제가 서 있던 곳에 멈추어 서서 진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만박통지의 기재(奇才)!

기문진학에 대한 그의 지식도 천하를 통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대단한 진세다!]

이내 능천한의 눈에서 신광이 흘렀다.

[오행(五行)의 상극(相剋)에 의해 운무와 우뢰(雨雷)의 변화가 일어나고 상생(相生)의 묘결로 예측할 수 없는 대변수로 찾았다!]

그의 신색은 더욱더 침중해져 갔다.

[오행뿐이 아니고 사상(四象)의 근원이 진중에 있고 육합(六合)의 광활함과 팔괘(八卦) 구궁(九宮)의 복잡한 변화가 그중에 가미되었다.]

능천한의 두 눈은 휘황하게 빛을 토하며 진세를 훑어나갔다.

그 진세는 능천한이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난해한 진형이었다.

만상(萬象)의 이치가 그곳에 있고 만류(萬流)의 흐름이 그에 더하여 있었다.

능천한도 일시지간에 진세의 실체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 진세는 최근에 이루어졌다. 어느 누가 이런 진세를 설치했는가?)

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이 정도의 진세를 펼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천하를 털어 손을 꼽을 정도다.)

능천한은 뇌리에 비장된 수 많은 기문 진세들을 떠올렸다.

상고(上古)이래 천하에 나타났던 수많은 진세들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군!]

능천한은 문득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안색이 이내 밝아졌다.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진세의 내력을 기억해 낸 것이다.

[이것이 절전된 만상문(萬像門)의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이다!]

능천한은 흐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

 

팔백 년 전,

천향염후(天香艶后)라는 고금제일여고수(古今第一女高手)에 의해 절문당한 문파가 있다.

만절문(萬絶門)이라는 문파로...

그들의 기문진학은 자부(紫府)일맥과 쌍벽을 이루었다.

만상천류대진은 바로 만천문에서 흘러나온 절진이다.

[사문(死門)이 철저한 변()과 환()에 숨겨진 극변(極變)의 절진...!]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진세의 이치를 알면 어렵기는 하나 통과할 수는 없다.]

스스스스슥!

능천한은 신중한 발걸음으로 잔중에 들어섰다.

우르르르--- !

--- 이이잉!

그가 진중으로 들어서자,

거센 폭풍과 우뢰성이 그를 강타했다.

그와 함께

[크크크크... !]

[우희희희희...!]

섬뜩한 악귀들의 환상이 운무중에서 피어올랐다.

그것들은 금방이라도 능천한을 뒤덮쳐 올 듯이 섬뜩한 기세로 일어났고,

--- 르르릉!

--- --- --- !

해일이 일고 광풍폭우의 환상이 능천한을 뒤덮었다.

그러나,

[좌삼(左三) 우이(右二) 전일(前一) 퇴오보...!]

능천한은 육중한 바위가 움직이듯이 침착하게 만상천류대진을 뚫고 나갔다.

천지이교(天地二交)가 타통된 그다.

그저 단순한 환상에 흔들릴 까닭이 없다.

능천한의 걸음걸이는 점차 빨라졌다.

()은 변()으로,

급변(急變)은 쾌변(快變)으로 파해한걸까?

스스스스슥!

능천한은 행운유수로 진중을 지났다.

[...!]

문득 능천한의 발길이 멈추어졌다.

이미 진세의 팔할을 지나온 상태였다.

그러나 능천한의 얼굴은 극히 심각해졌다.

그는 뚫어져라 전면을 쏘아 보았다.

(이할 정도 되는 이 마지막 관문에 만상천류대진의 진정한 위력이 숨겨져 있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진정한 어려움이 그 앞에 닥친 것이다.

[이 진세로 뚫거나 설치할 수 있는 인물은 흔치 않다. 자부(紫府)의 자부노조(紫府老祖) 쌍극천효(雙極天梟),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 취존개(醉尊)... 그외에는 달리 생각할 인물이 없다.]

능천한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 웬 피()...!]

그러던 중 능천한의 눈길이 번쩍 빛났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서 일 자 정도 우측에 한 사발은 됨직한 혈흔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능천한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하루이전에 흘린 선혈이다... 어쩌면 이 진세를 구축한 인물이 토한 것인지도...!]

능천한은 혈흔을 손으로 찍어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 패천잠룡(覇天潛龍)이신... ?]

한소리 미약한 음성이 능천한의 귀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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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二 章

 

            千谷屯奇門陣

 

 

 

[...]

[...]

--- !

시선이 마주쳤다.

지극히 묵직한 시선이 거기 있었다.

태산의 무게가 그 시선중에 담겨 있는...

능천한은 홀린 듯이 전면을 바라보았다.

장권 밖.

언제부터인가 한 명의 인물이 우뚝 서 있었다.

시커먼 묵의(墨衣)를 걸친 대한(大漢)이었다.

마치 사자(獅子)를 연상케 하는...

(육중하다! 태산으로 보인다!)

영웅(英雄)이어야만 영웅(英雄)을 알아본달까?

나이는 삼십대 중반 정도,

구리빛의 피부, 먹을 찍어 누른 듯한 눈썹,

그리고 고독한 사자(獅子)의 눈...

능천한은 대한의 모습에서 고독한 백수지왕 사자(獅子)의 모습을 보았다.

(사귀고 싶은 인물...!)

대한의 인상은 지극히 강렬하게 능천한의 뇌리에 새겨졌다.

그리고...

(역시... 잠룡(潛龍)... 장차 천하가 황산에 웅크리고 있던 이 잠룡의 그늘로 가려지겠군.)

사자인 대한의 두눈에서 깊숙한 광채가 흘렀다.

그와 함께 그의 꾹 다무린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하하... 역시 패천신륜(覇天神輪)이네!]

대한이 나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극히 정중함이 실린 목소리였다.

능천한은 패천신륜을 소매에 집어 넣으며 포권을 해보였다.

[소제는...]

[알고 있네. 패천잠룡(覇天潛龍)이 아니면 뉘라서 현제같은 기도를 발하겠는가?]

대한의 말에 능천한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비로소 한 인물의 이름을 떠올렸던 것이다.

[일전에 한 가지 요언을 들은 것이 기억에 나는군요!]

[요언이라...!]

대한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천(九天)에 독존(毒尊)이 있고 (九天在毒尊). 천중(天中)의 철사(鐵獅)는 홀로 외롭네 (天中孤鐵獅).]

능천한이 미소를 지으며 요언을 읊었다.

이는,

십년 이내에 천하를 풍미한 일비(一秘), 일웅(一雄)을 가리킨다.

 

---구천묵영독존(九天墨影毒尊).

---철혈묵사(鐵血墨獅).

 

이들이 바로 일비일웅(一秘一雄)이다.

구천묵영독존(九天墨影毒尊)---

그는 아주 신비로운 인물이다.

묵영독존(墨影毒尊)으로도 불리는데, 그 검은 그림자(墨影) 외에는 전혀 알려진바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라천극존(修羅天極尊)이래 최대마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철혈묵사(鐵血墨獅).

천하에 자신의 짝될 영웅이 없어 고독(孤獨)하다는 일대호웅(一大豪雄)이다.

[핫하! 또 한 가지가 있지. 우내(宇內)에 잠룡(潛龍)이 엎드려 있지 않는가?]

대한이 호탕하게 웃었다.

영락없는 사자(獅子).

대한은 바로 철혈묵사(鐵血墨獅) 정천학(鄭天壑)이었다.

철혈회(鐵血會)의 대종주(大宗主).

당대제일의 강골(剛骨)을 지닌 인물이 바로 그인 것이다.

그때,

[--- !]

--- 쿠쿠--- !

철혈묵사의 거구가 불끈 치솟아 한곳으로 내리꽂혔다.

그곳은 높직한 가산 자리였다.

(철혈강기(鐵血罡氣)!)

능천한의 두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철혈묵사의 몸에서 검붉은 강기가 노을같이 번져 나옴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 --- !

--- !

가산 전체가 박살이 나서 날아갔다.

[--- !]

[--- 에엑!]

박살이 나서 날아가는 돌더미에 십여 명의 혈의인들이 튕겨져 나갔다.

무적지위(無敵之位)!

철혈묵사의 공세는 가히 무적의 기세였다.

--- 쿠쿵---

화르르르르---

사석이 흩날리는 중에 철혈묵사가 표표히 날아 내렸다.

지면으로 날아내린 철혈묵사는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한명... 간교한 자가 자네를 이 황산에 파묻어 버릴 생각을 하고 있네.]

[그렇습니까?]

능천한은 고소를 지었다.

[소제를 황산에 파묻어 무엇을 하겠다는 게지요?]

철혈묵사가 얼굴을 굳혔다.

[능현제는 자신이 천강지성(天罡之星)임을 모르는가?]

[후훗! 소제가 천강지성?]

철혈묵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아주 복잡했다.

어떤 심각한 갈등이 있는 듯이...

이내,

철혀룩사의 시선은 형형하게 빛을 뿌렸다.

[능현제가 거룡(巨龍)이 됨을 원치 않는 자들이 있네. 그자들은 무슨 짓을 해서든지 자네를 해치려 할 것이네!]

[흐음...!]

능천한도 안색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벽향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누군가의 안배에 의한 것일게고...)

철혈묵사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능천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세는 혈란의 시대이네. 거룡(巨龍)... 그것도 고금(古今)에 이른 대창룡(大蒼龍)이 아니면 혈운(血雲)을 삭이지 못한다네...!]

[...!]

능천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 !]

[--- 크크---!]

멀리서 두 마디 굉렬한 장소성이 터졌다.

[...!]

[...!]

양인은 힐끗 장소가 터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벽향이 사라진 곳이었다.

(십 리 밖... 막강한 내공을 지닌 자들이군.)

능천한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철혈묵사가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가게! 자네를 찾아오는 거마(巨魔)들일세!]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상을 입은 상태이니... 강적과 부딪힐 필요는 없지.)

능천한은 붕분으로 다가갔다.

옷깃을 여민 그는 패천신문의 문도들이 잠든 봉분을 향하여 일배를 올렸다.

(마도들의 목을 베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봉분에 일배를 하며 능천한은 마음에 한철을 담았다.

[다시... 뵙겠습니다!]

능천한은 철혈묵사에게 포권을 해보였다.

[강호(江湖)에서 보세!]

[그럼...!]

스스스--- !

능천한은 허공으로 날아올렸다.

일시에 그의 몸이 백 장 밖으로 날아갔다.

천극수라영(天極修羅影)을 펼친 것이다.

[혈종(血宗)과 최후를 가리기 보다는... 잠룡(潛龍)과 겨룸이 더 낫겠지...!]

날아가는 능천한을 바라보며 철혈묵사는 중얼거렸다.

그의 말뜻은...?

[--- --- !]

[--- --- !]

제차 장소성이 터졌다.

그것은 오 리도 아니되는 곳까지 접근해 있었다.

[...!]

그쪽을 바라보는 철혈묵사의 시선에서 한기가 일었다.

[잠룡(潛龍)이 거룡(巨龍)으로 성장함을 지켜봄도 큰 즐거움이 되리라!]

철혈묵사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스스--- 스슥!

이내 철혈묵사도 묵영(墨影)이 되어 멀리로 날아갔다.

 

***

 

스스스스--- !

능천한은 천곡둔(千谷屯)이라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천곡둔(千谷屯).

 

이름 그대로 천 개의 곡()이 있는 구릉이었다.

그다지 깊거나 큰 절곡들은 아니고,

고만고만한 절곡들이 천여 개나 벌려 있는 곳이 천곡둔이다.

멀리서 천곡둔을 바라보면 수많은 밭이랑이 펼쳐진 모습이었다.

(천곡둔의 지형은 나보다 잘아는 사람이 없다. 천곡둔의 중지로만 들어가면 상세를 치료할 수 있다!)

능천한은 지그시 가슴을 누르며 작은 계곡을 날아넘었다.

문득,

[!]

능천한의 눈에서 이체가 흘렀다.

그는 칠팔마장 밖의 천곡둔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르--- 르르르---

--- --- ---

한의 게곡에서 운무가 뭉실뭉실 치솟고 있었던 것이다.

우르르릉---

나직한 우뢰성까지 백 수십 장을 뒤덮고 있었다.

(전에는 저런 현상이 없었는데...)

능천한의 붕목이 형형하게 빛났다.

갑자기,

[그렇다!]

능천한이 탄성을 질렀다.

--- 스스슥!

능천한은 구릉을 박차고 유성이 흐르듯이 운무쪽으로 날아갔다.

[진운(陣雲)! 진운(陣雲)이다!]

능천한의 두눈이 강렬한 신광을 쏟아내었다.

진운(陣雲)!

능천한은 그 운무가 강력한 기문진세(奇門陣勢)에 의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최근에 누군가가 저곳에 절대기진(絶代奇陣)을 포진하였다. 그때문에 뇌성까지 동반한 진세가 일어나는 것이다.]

호기심!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강렬한 호기심이 능천한의 가슴에서 피어 올랐다.

--- --- ---

일시에 능천한은 그 절곡의 외곽으로 이르렀다.

한데,

[...!]

막 지면으로 내려서던 능천한의 검미가 꿈틀하였다.

(살기(殺氣)!

강렬한 살기를 느낀 것이다.

그 순간,

--- --- !

전면의 바위 뒤에서 십여 줄기 혈영(血影)이 닥쳐 들었다.

그자들의 병장기가 섬뜻한 혈광을 토했다.

[혈영궁(血影宮)?]

능천한의 입에서 폭갈이 터지고,

--- --- !

벼락치듯이 한 무더기 강기가 쏟아졌다.

[! 수라탄천강(修羅彈天罡)!]

[...!]

혈영인들이 질겁을 하며 경악성을 토했다.

--- --- !

--- --- 르릉!

창창한 강기가 해일같이 쏟아져 혈인들을 쓸어내었다.

[--- --- !]

[--- --- !]

혈영인들이 피를 토하며 튕겨졌다.

[!]

능천한도 휘청하며 이삼 보 물러섰다.

힘을 쓰자 가슴과 어깨의 상처가 터진 것이었다.

(혈영궁(血影宮)의 마도들이 이미 와 있다니...)

능천한이 가슴을 누르며 눈을 빛냈다.

 

---혈영궁(血影宮).

 

마도의 일파로 수십 년 전부터 암암리에 세력을 넓혀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암중이었고,

최근에 이르러서 그 흉악한 발호가 맹렬해지고 있었다.

혈영궁도들에게는 인도(人道)가 없었다.

오로지 본능적이 탐욕과 마심(魔心)이 있을 뿐인 자들이었다.

[어느 놈이냐?]

[누워랏!]

--- !

파츠츠츠츳!

뒤미처 금영(金影)이 번뜩이며 노도같은 기세로 능천한을 뒤덮어왔다.

오인(五人)의 금포인이 벼락같이 능천한을 덮쳐왔다.

언뜻, 능천한은 그자들의 소매에 용()이 수놓아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능천한의 검미가 꿈틀하였다.

[통천방(通天幇)까지?]

--- 르르릉!

--- 츠츠츠!

그와 함께 능천한의 손에서 수백 수천 개의 강륜(罡輪)이 빗발치듯이 쏟아졌다.

패천대륜오절식의 만절환(萬絶幻)!

--- 가각!

[--- !]

[--- ...!]

비명과 함께 오인이 금포를 피에 물들이며 나뒹굴었다.

(통천방도들도... 저 진운(陣雲)을 발견했다는 말인데... 어떤 자가 저것이 진운인지 알아내었는가?)

스스스--- !

능천한은 눈을 빛내며 계곡으로 날아들어갔다.

 

<통천방(通天幇)>

 

정사 중도를 걷는 문파이다.

그다지 두드러진 활동을 하는 문파는 아니나 평소 패천황룡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 이유는,

통천방이 암중에 정사의 야심가들을 끝없이 포섭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에 이르러 통천방이 과연 얼마만한 세력을 지녔는지는 추측할 수 없다.

다만,

그 세력이 강대함이 소림이나 무당을 합친 것 만큼 강할 것이라고 짐작될 뿐!

그들의 방주는 통천금룡제(通天金龍帝)!

야심이 큰 인물이다.

상고(上古)의 절전문파인 금룡궁(金龍宮)의 절기가 그의 일신에 있다.

 

--- 스슥!

[...!]

능천한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제법 널찍한 계곡이었다.

한데,

계곡의 반대편은 짙은 운무로 뒤덮여 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우르르르르--- !

--- 이잉!

뭉클뭉클 치솟은 운무!

그리고,

그 운무 중에서 은은히 울려 나오는 우뢰성!

[...!]

능천한은 형형하게 눈을 빛내며 운무가 일어나고 있는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한 명의 금포인(錦袍人)이 있었다.

화려한 비단 곤룡포를 걸친 인물인데 허리춤에 석 자 가량의 금장(金杖)을 차고 있었다.

금포인은 운무를 마주하고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저자는...!)

능천한은 안색을 굳히며 금포인에게 다가갔다.

[...!]

갑자기 금포인의 몸이 움찔하였다.

능천한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으리라.

금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순간,

--- ---

두 쌍의 시선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

[...!]

그자는 몹시 놀란 표정이 되었고,

능천한의 눈에서도 이채가 흘렀다.

그 인물은 중후한 인상인 초로의 중년인이었다.

머리에는 금관(金冠)을 썼고 있고 입고 있는 비단 장포에는 날아오르는 금룡(金龍)이 수놓아져 있었다.

(강적(强敵)...!)

능천한은 본능적으로 그자가 철혈묵사에 못지않은 강자임을 느꼈다.

금포인은...

입술을 실룩이다가 입을 열었다.

[패천잠룡(覇天潛龍) 능천한(陵天漢)?]

그자의 목소리는 몹시 중후하였다.

[그렇소. 귀하는 통천금룡제(通天金龍帝)?]

[맞다!]

--- --- !

금포인 통천금룡제가 대답과 함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금장(金杖)을 뽑아 들었다.

우르르--- 르르!

츠츠츠--- !

일시에 사위가 찬연한 금광(金光)으로 뒤덮였다.

그 금광 중에서 은은한 금룡(金龍)의 형상이 일었다.

[... 금룡신장(金龍神杖)이군!]

능천한이 나직이 경탄성을 발하며 통천금룡제의 손에 들린 금장을 바라보았다.

 

---금룡신장(金龍神杖).

 

금룡궁(金龍宮)의 무상지보(無上至寶).

천병보 천병일천좌(天兵一天坐)의 서열십오위인 신병(神兵)이다.

금룡신공(金龍神功)을 익힌 자에게서만 위력이 나타난다.

,

금룡신공을 금룡신장에 주입하던 무상의 금룡통천강기(金龍通天罡氣)가 일어나는 것이다.

 

[본인과 귀하가 다투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능천한이 오른손을 왼쪽 소매에 집어넣으며 침중히 물었다.

그러자,

통천금룡제가 차갑게 대꾸했다.

[이유를 알려 하지마라. 네가 패천잠룡이기 때문에 본제의 손에 죽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능천한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 이제보니 벽향, 혈영군(血影君)이란 작자들과 한통속이었군!]

[크흐흐흐... 과연 영특하군!]

--- --- !

--- --- 우웅!

금룡신장에서 벼락치듯이 강기가 쏟아졌다.

금빛을 띄운 검인(劍刃)같이 예리한 강기였다.

--- 르르르---!

그 순간,

능천한의 신형이 십여 개로 흩어졌다.

--- --- !

금룡신장의 금룡통천강기가 여지없이 빗나가고.

[수라잔영보(修羅殘影步)... 네가 어떻게 수라천극존(修羅天極尊)의 무공을...]

통천금룡제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호기심이 많으신 분이군!]

--- --- !

--- 츠츠츠츳!

능천한의 냉갈 속에서 새파란 륜영(輪影)이 뇌전(雷電)같이 쏟아졌다.

륜영을 대한 통천금룡제는 사색이 되었다.

[... 패천신륜(覇天神輪)!]

그리고,

--- --- 우웅!

--- 르르르르릉!

통천금룡제는 사력을 다해 금룡통천강기를 내쳤다.

--- 쿠쿠쿵!

--- 르르르릉!

천지멸렬의 굉렬한 폭음!

새파란 페천신륜의 륜영에 부딪힌 금장(金杖)이 박살이 나서 부서져 나갔다.

[--- !]

--- --- !

그중에서 한 마디 답답한 신음이 터지고 통천금룡제의 신형이 까마득히 허공으로 치솟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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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一 章

 

                 아름다운 刺客

 

 

 

--- --- !

--- --- --- !

굉렬한 폭음이 터졌다.

--- --- !

와르르르르---!

산더미같은 거석들이 공기돌같이 튕겨져 올라갔다.

높직한 석벽,

석벽 아래부분의 무너져 내린 동굴에서 만근화약을 터뜨린 듯한 굉음이 일었다.

[--- 우우!]

뻥 뚫린 동굴에서 웅휘한 청룡음이 터졌다.

그와함께,

스스스슥!

동굴로부터 한 명의 황포청년이 날아 나왔다.

찢기고 피에 젖은 황포.

산발을 한 머리와 더부룩한 수염.

그러나,

--- !

뇌전같이 흐르는 안광이 그 청년에게 있었다.

[열흘하고도 사흘이 걸렸다.]

황포청년은 힐끗 무너진 동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능천한이었다.

그의 눈에는 깊은 감회가 서려 있었다.

[난경중에서 기연을 얻었으니... 서운함은 없으나...!]

능천한의 눈빛이 아주 무거워졌다.

[본문을 이리 한 자들에게... 그 빚을 받아 내고 말리라!]

스스--- 스슥!

능천한은 걸음을 옮겼다.

 

---천극수라영(天極修羅影).

 

수라문(修羅門) 제이대장문인인 수라마영대제(修羅魔影大帝)가 창안한 경공 절기다.

능히 천하오대경공에 낄 수 있는 절경경공!

[아버님께 별일이 없으신지...!]

화르르르---!

능천한의 몸이 선풍을 몰아 분지를 날아 나갔다.

그의 몸은 그대로 섬전(閃電)이었다.

 

능천한(陵天漢)!

그는 패천동부(覇天洞府)에서 수라천존경(修羅天尊經)을 연마했다.

수라천존경에는 무려 이십여 가지 신공 절기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수라존(修羅尊)에서 수라천극존(修羅天極尊)에 이르는 동안 첨가된 신공절기들이 모두 수라천존경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수라천존경의 무공들은 하나같이 신랄하고 패도적이었다.

특히,

그중 가장 마지막에 적힌 묵황굉벽뢰(墨荒宏霹雷)는 압권이었다.

천하제일(天下第一)!

다만 두들겨 부수는데 있어서는 무황굉벽뢰이상의 기공이 없을 것이다.

그는 수라천극존 덕택에 천지이교가 관통되었고,

그 덕분에 그는 패천동부에 들어갈 때보다 몇 갑절 강해져 있었다.

[!]

갑자기 능천한의 신형이 급히 멈추어 졌다.

그의 두눈은 분노와 경악으로 형형하게 빛을 뿌렸다.

폐허(廢墟)!

처창한 폐허가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웅장하던 전각들이 석가래만 남고 무너지고 불타있으며 깨어진 기왓장만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대폐허가 있었다.

그곳은 바로... 열흘 그 이전만 해도 절대 불가침의 성역이던 패천신문(覇天神門)!

바로 패천신문(覇天神門)의 잔해였다.

[... !]

능천한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렀다.

(어느 놈이기에... 본문을 이같이 만들었는가?)

능천한은 꿇어 오르는 분노와 격정을 안으로 삭여갔다.

--- ! --- !

그는 대폐허가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

--- 드드득! --- 수수!

능천한의 발밑에서 돌조각들이 모래로 부수어졌다.

그의 분노, 그의 터져 나오는 격정이 그렇게 삭아들고 있는 것이다.

패천동부...

그 안에서의 열 며칠간의 시각.

그것이 능천한에게 격정을 삭일 여유를 갖을만한 성숙을 주었다.

[...!]

그의 봉목은 냉철하게 빛나고 있었다.

(본문의 문도들은... 벽향, 그 계집의 극독에 중독되어 변변히 대항도 못하고 당했으리라!)

그는 사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시신이 보이지를 않고 여러 사람이 오고 간 흔적이 보였다.

(무림동도들이 다녀가면서 문도들의 시신을 거두었을 것이다!)

능천한은 묵묵히 패천신문의 후원이었던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정답던 생가(生家)!

그것이 폐허가 되어 있는 것이다.

무너진... 처참한 패천신문의 잔해를 보며 능천한의 내부에서는 화산(火山)이 생기고 있었다.

한번 터져 나오면 천지를 뒤흔들어 놓을 분노의 화산이...

(아버님이 다녀가신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능천한은 아버지 패천황룡 능붕비를 생각했다.

(혹시...!)

그의 내부에서는 불안의 그림자가 뭉클뭉클 솟아 오르고 있었다.

 

능천한은 어느덧 후원에 이르러 있었다.

[...!]

문득,

능천한은 발길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정원이 있던 후원의 한쪽에 머물렀다.

--- !

무덤이 있었다.

그것도 수백 명이 묻혔음직한 거대한 봉분이 있었다.

만든지 얼마 되지 않는 듯,

붉은 진흙이 채 마르지도 않은 봉분이었다.

한데,

(여인(女人)...!)

능천한의 시선은 의아함을 싣고 봉분 앞에 머물렀다.

여인(女人).

삼단같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하얀 소복(素服)을 걸친 여인이 봉분 앞에 꿇어 앉아 있었다.

울고 있는가?

소복여인의 동그스름한 어깨가 소리없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녀의 무릎 앞에는 까맣게 탄 지전의 재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

--- ! --- !

능천한은 헛기침을 하며 소복여인의 뒤로 다가갔다.

[... ...!]

가까이 다가가자 여인의 나지막한 흐느낌이 들려왔다.

[소저... 소저는 뉘신데... 이곳에서 이러고 계십니까?]

능천한이 소복여인의 등뒤로 서며 물었다.

[...!]

그러자 여인은 흐느낌을 멈추었다.

[소녀는 죄인입니다!]

[죄인(罪人)?]

능천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 소녀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죄많은 계집입니다. 흐흑...!]

[소저...!]

능천한은 당황했다.

생전 처음 여인의 눈물에 접했기 때문이다.

[소저 고정하십시오!]

능천한은 여인의 가녀린 어깨를 다독여 주려 여인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그때였다.

--- 스스---!

순간적으로,

(살기(殺氣)!)

능천한은 가공할 살기를 느꼈다.

그것은 바로 소복여인에게서 빨리 나오는 것이었고,

--- --- !

--- --- 파팟!

거의 동시에 여인의 교수가 살기의 폭풍을 일느켰다.

[그대가!]

--- !

능천한이 대갈하며 벽력같이 몸을 뒤로 펼쳤다.

폭죽이 터져 나가는 듯한 신법(身法)!

---천극수라영(天極修羅影).

그러나,

[--- !]

--- 다탕!

십 장 밖으로 튕겨져 나가던 능천한의 몸이 허공애서 뚝 떨어졌다.

지면에 나뒹군 능천한의 가슴이 시뻘건 선혈로 물들었다.

그의 가슴...

그곳에는 초생달 모양의 비수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 월아밀살비(月牙密煞匕)!]

능천한이 치를 떨며 몸을 일으켰다.

신월(新月)형의 비수!

그것은 바로 월영천존(月影天尊)의 독문암기였던 월아밀살비(月牙密煞匕)였다.

[가랏!]

--- 르르르!

--- 파팟!

휘청이는 능천한을 향하여 소복여인이 벼락같이 덮쳐들었다.

그녀의 전신에는 칼날같은 강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벽향(碧香)! 네년이...]

--- --- !

능천한의 입에서 경악성이 서린 노갈이 터졌다.

소복여인...

그녀는 벽향(碧香)이라고 불리는 여인이었다.

극히 아름답고 기품있고 미인이나 사갈의 마음을 지닌 여인...

능붕비를 암습했던 바로 그 벽향이라는 시녀였다.

[--- !]

그리고,

스스스스스--- !

능천한의 신형이 일시에 십여 개로 갈라졌다.

 

---수라잔영보(修羅殘影步)!

 

수라천존경(修羅天尊經)상의 보법.

그러나,

--- 팟팟!

[! 무형살인강(無形殺人罡)!]

선혈이 확 튀며,

능천한의 잔영(殘影)이 일시에 사라졌다.

그의 왼쪽 어깨부위가 무형무성의 강기에 가격당하여 으스러진 것이다.

[나를 용서해다오!]

소복의 벽향이 괴로운 어조로 말하며 교수를 쭉 내뻗었다.

--- 이잉!

무형의 막강한 강기가 휘청이는 능천한의 가슴으로 밀려갔다.

[...]

피할 여유도 없었다.

능천한은 이를 악물며 가슴으로 무형살인강을 맞받아갔다.

--- !

강기가 능천한을 가격하는 순간 맑은 금속성이 터졌다.

무형살인강이 능천한의 가슴에 들어있던 패천신륜(覇天神輪)에 부딪친 것이다.

[!]

의외의 결과에 벽향의 신형이 움찔했다.

물실호기!

[으음! 벽뢰섬(霹雷閃)! 만절환(萬絶幻)!]

능천한의 벼락같은 대갈이 터졌다.

--- --- !

--- --- !

낙뢰(落雷)같이 흐르는 강륜(),

천가닥! 만가닥으로 쪼개져 날아가는 강륜()...

패천대륜오절식(覇天大輪五絶式)이 펼쳐진 것이다.

[!]

--- 르르르르!

벽향은 실색하며 교구를 떨궜다.

그러자,

벽향의 교구는 유성이 흐르듯이 삼십 장 밖으로 빠져 나갔다.

실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공이었다.

그러나...

[가지 못한다!]

능천한이 대갈을 질렀다.

부상당한 몸이나 능천한에게서는 분노의 폭류가 터져 솟구치고 있었다.

[--- !]

--- --- !

--- --- 우웅!

!

일시지간에 천지가 새파란 륜영(輪影)으로 뒤덮였다.

일시에 백 장 방원이 륜()으로 뒤덮이다니...

[! ... 패천신륜(覇天神輪)!]

삼십 장 밖으로 물러났던 벽향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패천신륜(覇天神輪).

 

천하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도 잘라낸다는 절대신병!

그것이 이백 년만에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 !]

벽향이 사력을 다해 몸을 떨쳤다.

그러자,

일거에 그녀의 몸이 오십 장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가공할 경공,

그러나,

--- --- 파팟!

--- !

[...]

선혈이 확 튀었다.

벽향의 왼쪽 젖가슴이 둘로 쪼개지며 선혈이 확 퍼져 나간 것이다.

패천신륜의 예기(銳氣).

그 앞에서는 어떤 호신기공도 견뎌내지 못한다.

--- 르르르!

젖가슴이 쪼개진 벽향은 이를 악물며 교구를 비틀었다.

그러자,

그녀의 교구는 다시 일거에 오십여 장을 날아 멀리로 날아갔다.

[아버님의 신상에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계집... 놓칠 수 없다!]

--- --- !

능천한도 지체없이 몸을 날렸다.

그러나,

[!]

허공을 날던 능천한은 몸을 휘청하며 떨어졌다.

[으음...]

그는 가슴을 움켜쥐며 지면으로 내려섰다.

월아밀살비에 찔린 상처가 의외로 깊었던 것이다.

[분하지만...]

능천한은 벽향이 날아간 곳을 노려보며 월아밀살비를 가슴에서 뽑아내었다.

월아밀살비가 조금만 더 옆에 찔렀으면 심장에 찔려 죽사할 뻔한 중상이었다.

[...]

능천한은 검미를 부르르 떨며 가슴을 눌렀다.

벽향에게 당한 두 곳의 상처는 그리 간단히 치료될 상세가 아니었다.

그때,

츠츠츠츠츳!

--- --- 이잉!

가공할 살기가 무지개같이 피어 오르고 사위에서 수십 줄기의 인영들이 유령같이 일어나 능천한을 짓쳐왔다.

(전문살수들이다.)

능천한의 검미가 꿈틀했다.

그자들은 절묘한 은신술로 잠복해 있어서 능천한이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스스스슥!

능천한은 고통을 누르며 기쾌하게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 애액!

--- !

한 줄기 은사(銀絲)가 스치며 능천한의 옆구리에 선혈이 튀었다.

그것은 사망은사(死亡銀絲)라는 은밀한 암기의 일종이다.

(빨리 결판을 내자!)

허공에서 몸을 비튼 능천한의 두눈이 차갑게 빛났다.

--- --- !

츠츠츠--- 츠츳!

그의 눈에

득달같이 덮쳐드는 장한들이 들어왔다.

하나같이 감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냉혈살수들이었다.

마치 늑대같은...

[천중압(天重壓)!]

능천한은 일성폭갈과 함께 손에 들린 패천신륜(覇天神輪)을 그어내었다.

--- 이잉!

--- --- !

일시에 천지사위가 천만근의 무게를 지닌 륜영(輪影)으로 뒤덮었다.

패천대륜오절식(覇天大輪五絶式)의 삼식이 패천신륜으로 펼쳐진 것이다.

--- --- 자작!

--- --- 가각!

[...]

[...]

! --- !

달려들던 살수들이 폭풍에 휘말려 나뭇잎같이 나뒹굴었다.

그들의 사지가 무기(武器)와 함께 도막으로 갈라졌다.

일시에 수십 명이 전멸한 것이다.

실로,

패천신륜의 위력은 가공스러웠다.

그 예기 앞에서는 견디어나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살수들은 한 마디 신음도 내지 않고 죽었다.

극도의 훈련을 받은 자들이기에 그러하리라.

[지독한 자들이군. 두려움이나 고통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는 듯하니...]

능천한은 혀를 차며 지면으로 내려섰다.

그때였다.

[...]

갑자기 능천한의 몸이 굳어졌다.

어떤, 지극히 강한 힘이 그의 주위에 나타난 것을 느낀 때문이다.

(가공할 기도(氣道)... 누구인가?)

능천한은 가슴이 떨림을 느끼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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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風雲을 孕胎하는 女人

 

 

 

 

화르르---!

타--- 다--- 다닥!

시뻘건 화마(火魔)가 넘실거린다.

천검성(天劍城),

그 웅자가 거화(巨火)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크하하하하...! 혈종(血宗)의 영화를 위하는 길이다. 죽여랏!]

[크하하하하!]

차--- 차--- 차창---!

[크--- 아--- 악---!]

[아--- 아악---!]

터져 솟구치는 피(血)!

넘실거리는 화마 속에서 천검성도들이 허무하게 쓰러져 갔다.

끊어져 나뒹구는 팔다리,

터져 흐르는 내장,

선혈!

혈광(血光) 속에 스러지는 영혼들,

[크하하하...!]

[크크크크...]

아수라혈귀들같이 날뛰는 혈의인(血衣人)들이 있다.

피(血)에 굶주린 자들,

흡사 이리같지 않은가?

천검성(天劍城)의 후원,

[비켜랏! 네놈들에게 쓰러질 천검성이 아니다.]

위--- 이잉!

피눈물을 흘리는 여인이 있다.

그녀의 손에서는 미친듯이 검광(劍光)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

찢어진 치마사이로 드러난 뽀얀 허벅지...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진 몸매의 여인,

그러나,

너무도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었다.

 

-천검미후(天劍美后) 나설련(羅雪蓮),

 

천하오대미인(天下五大美人)에 드는 천검일미(天劍一美)가 그녀였다.

[헤헤! 아랫도리가 녹아드는 것 같다!]

[크캘캘! 천하명물이다!]

[크... 이제껏 많은 계집을 맛보았으나 저만한 계집은 처음이다.]

[헤헤! 고년! 사람 미치게 만드는구나!]

휘르르르---! 츠츠츠츠!

휘--- 이이잉---!

나설련을 둘러싸고 희롱하는 자들...

하나같이 시뻘건 혈포를 입은 자들인데 음탕한 시선으로 나설련의 허벅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이... 죽엇!]

츠츠츠츠---!

파파파--- 팟!

나설련은 치욕에 몸을 떨며 보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성을 잃은 그녀의 검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헤... 헤...]

찌... 지직!

[악!]

한 혈의인이 나설련에게 접근하여 그녀의 가슴섶을 잡아챘다.

그러자,

출--- 렁!

너무나 풍만한 젖무덤이 물결치며 나타났다.

[으...!]

나설련이 이를 악물며 황급히 섬섬옥수로 젖가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젖무덤은 섬섬옥수로 가리기에는 너무도 풍만하였으니...

[헤헤! 젖통도 천하일품이다!]

[고것... 으그그... 사람 죽이는구나!]

혈의인들의 눈이 음욕으로 시뻘개졌다.

[으으... 죽... 죽인다!]

나설련의 옥용이 치욕으로 새빨개졌다.

그때,

스--- 스슥!

파--- 아악---!

한 줄기 혈영(血影)이 허공에서 나설련에게 내려 꽂혔다.

[악---!]

크--- 우--- 웅!

실색한 나설련은 어찌 해보지도 못하고 마혈이 짚여 나뒹굴렀다.

모로 나뒹군 나설련의 치마가 걷혀지고,

뽀얗고 풍만한 허벅지와 빨간 속곳이 드러났다.

스스스슥!

그와 함께 장내에 혈영(血影)으로 둘러싸인 중년인이 내려섰다.

[궁주!]

[궁주님을 알현합니다.]

혈의인... 혈영궁도들이 일제히 혈영군에게 무릎을 꿇었다.

혈영궁(血影宮),

혈영염제(血影閻帝)의 저주가 다시 피어 오르는가.

[흐흐흐...]

혈영군은 음악하게 웃으며 쓰러진 나설련에게 다가섰다.

찢어진 저고리사이로 드러난 투실투실한 젖무덤,

미끈한 허벅지...

그 사이로 붉은 천에 가려진 두툼한 둔덕...

혈영군의 두눈이 음욕으로 달아올랐다.

그자의 아랫도리가 불끈 치솟고 있었다.

[크크... 천검미후(天劍美后)... 과연 천하오대미인(天下五大美人)에 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태로구나...]

혈영군은 색욕에 뻘개진 눈을 하고 나설련에게 다가갔다.

[다... 다가오지 마랏!]

나설련이 눈물을 흘리며 교갈을 질렀다.

그러나,

찌--- 직!

[악!]

혈영군은 거칠게 나설련의 하의를 찢어 내었다.

그러나, 퍼질대로 퍼진 풍만한 둔부와 작은 속곳으로 가려진 두둑한 두덩이가 혈영군의 눈에 확 들어왔다.

[으흐흑! 안... 안돼... 아... 악!]

[흐흐...]

혈영군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나설련의 중지를 가린 고의를 잡아챘다.

찌--- 지직!

붉은 고의가 맥없이 찢겨 나갔다.

그리고,

[흑!]

혈영군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미끈한 허벅지가 보이는 곳,

그곳에는 숲(林)이 있었다.

계곡을 가득 뒤덮은 방초림(芳草林)이 있었다.

파르르르...!

방초가 흔들린다.

칙칙한 색마의 입김에 처녀림이 떨린다.

처녀림의 안쪽,

붉은 이슬을 머금은 환락의 샘이 거기 있었다.

[아흑! 놓... 놓아랏!]

나설련은 혈영군의 음탕한 손길 아래에서 몸부림을 쳤다.

[흐흐흐...!]

혈영군의 손길은 나설련의 허벅지를 벌리고 들어갔고,

[으...!]

그때마다 나설련은 송충이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아--- 흐윽!]

나설련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혈영군은 그녀의 왼쪽 젖무덤을 덥썩 베어 물었던 것이다.

나설련은 젖가슴이 떨어지는 고통에 몸을 떨었다.

혈영군은 무자비하게 나설련의 젖가슴을 유린했다.

그녀의 풍만한 젖무덤이 이빨자국으로 난자당하고 혈영군의 손아귀에 터질 듯이 주물러졌다.

[으... 흑... 아아...!]

점차,

나설련의 입에서 간헐적인 교성이 흘렀다.

또한 그녀의 나신은 간간이 묘한 파문을 일으키며 흔들렸다.

실로 기이했다.

분명코 타의로 욕을 당하는 것이다.

혈영군의 손길아래 유린당하면서 알 수 없는 쾌감이 파문같이 번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흐흐흐...!]

혈영군은 나설련의 젖가슴에서 얼굴을 떼며 득의의 음소가 떠올랐다.

이어, 그의 손길은 나설련의 세류요를 더듬고 그의 얼굴은 점차 나설련의 하복부로 내려갔다.

[아아... 흑!]

나설련의 악다문 이빨사이로 앓는 듯한 신음이 흘렀다.

본능(本能)과 이성(理性)이 그녀 안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으흐! 조것!]

[헤헤... 고년! 사람미치게 만드는구나!]

둘러선 혈영군의 마도들이 개침을 흘렸다.

혈영군에게 유린당하는 나설련의 나신을 노려보며 혈영궁의 마도들의 두눈이 발정한 짐승같이 시뻘개졌다.

[아흐흑!]

나설련의 입에서 숨넘어 가는 비명이 터졌다.

그녀의 벌려진 옥주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렸다.

혈영군의 머리가 나설련의 방초 우거진 비곡에 이른 것이다.

[흐흐흐...!]

[아아... 학... 아흑...!]

부끄러운 곳을 혈영군에게 유린당하며 나설련은 연이어 숨넘어 가는 신음을 흘렸다.

처녀지신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자극이 가해지는 것이다.

[흐흐... 극락으로 보내주마!]

나설련의 허벅지 사이에서 고개를 든 혈영군은 나설련의 나신 위로 몸을 끌어올렸다.

[아...!]

나설련은 파괴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도 알지 못하고 혼미 속에 헤매였다.

바야흐로,

혈영군의 음탕한 손길에 나설련의 청백이 깨어질 순간이었다.

위기의 순간,

[더러운 사내 놈들!]

거창한 여인의 교갈이 장내를 뒤집었다.

[크--- 윽!]

[웨--- 엑!]

혈영궁도들이 입에서 선혈을 토하며 휘청였다.

그만큼 여인의 일갈에 지독한 내공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누... 누구냣!]

혈영군은 나설련의 몸에서 벌떡 일어났다.

욕정은 이미 찬물을 뒤집어 씌운 듯이 사라진 후였다.

화르르---!

콰--- 콰--- 쾅!

번쩍 고개를 든 혈영군의 머리통 위로 가공스런 위세의 강기가 쏟아져 내렸다.

[우--- 웃!]

콰르르!

혈영군은 질겁을 하며 혈영강기(血影강氣)를 마주 짓쳐 내었다.

그러나,

촉망이라 그는 반푼의 힘밖에 쏟지 못했다.

콰--- 콰--- 쾅!

화산이 폭발하는 굉음이 터졌다.

[어--- 이쿳!]

[크--- 아!]

콰--- 다탕!

우--- 르르르!

폭발이 일면서 일어난 경기의 파동에 혈영궁도들이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크--- 윽!]

그중에서 혈영군의 고통스런 신음이 들렸고,

이어 날리는 사석 속에서 혈영군이 비칠비칠 걸어 나왔다.

화르르르---!

쐐--- 애--- 액!

낭패한 혈영군의 눈에 나설련의 나신을 허리에 끼고 까마득히 치솟는 자의궁장여인이 보였다.

사십정도 되었을까?

나이답지 않은 절륜한 미모와 황후(皇后)의 기품이 있는 중년미부였다.

휘--- 이잉!

중년미부는 나설련을 안은 채 삽시에 까마득히 사라져 갔다.

[기다리거라! 여황후예(女皇後裔)가 네놈의 목을 따러 가리라!]

멀리서 중년미부의 싸늘한 일성이 들렸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혈영군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여... 여황교주(女皇敎主)... 천환여제(天幻女帝)...!]

혈영군의 입에서 낭패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태를 씹은 표정으로...

 

---여황교주(女皇敎主) 천환여제(天幻女帝)!

 

그는 또 누구인가?

[으... 예상치 못한 변수... 저 늙은 노파가... 살아 있었다니...!]

혈영군의 안색이 아주 어두워졌다.

또 다른 변수가 있었는가?

 

X X X

 

높은 산봉!

휘르르르---!

거친 산풍이 산봉을 훑고 떠나갔다.

[...!]

한 명의 노인이 산봉 위에 서 있다.

심기가 깊어 보이는 백의노인...

그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야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르르르---!

무엇 때문인지 백의노인의 안면에 경련이 일었다.

그리고,

[휴...!]

백의노인이 한숨을 토해 내었다.

[틀렸다. 무황성(武皇星)과 천강성(天罡星)이 사라지지 않다니...!]

백의노인의 안색은 추하게 일그러졌다.

[십 년의 세월을 각고했건만 패천(覇天)의 쌍성(雙星)을 어쩌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강하게만 만들어 주었다.]

그의 안색은 아주 어두워졌다.

[계획이 초반부터 빗나가고 있다. 이 사실을 혈종께서 알면 단죄가 있으리라...]

한숨을 쉬는 백의노인...

그는 쌍극천효(雙極天梟)라고 불리는 사도제일뇌(邪道第一雷)였다.

그자의 교활한 얼굴에 짙은 고뇌의 빛이 흘렸다.

[영라... 그아이마저 애비를 버리다니...]

쌍극천효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천강성이 황산을 벗어나려 한다. 황산을 벗어나기 전에 천강성을 쓰러뜨려야 한다!]

쌍극천효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자의 눈빛은 더할 수 없이 음침했다.

 

X X X

 

휘--- 이--- 잉!

스스스스--- 스!

야풍(夜風)!

[으... 빨리 가야만 한다!]

화르르르---!

야풍을 타고 전광같이 흐르는 인영이 있다.

그 인물은 도인(道人)이었다.

백발을 허리까지 흐트러뜨린 노도인(老道人).

한데,

아! 그 노도인은 무릎 아래의 다리가 없었다.

어떤 예리한 병기가 노도인의 다리를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그러나,

스스--- 스스!

화르르르--- 르!

다리가 잘렸음에도 노도인은 뇌전같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그는 이미 대라지경(大羅之境)에 든 초절정의 고수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양팔로 누군가를 안고 있었다.

그의 팔에 안긴 사람은 소녀였다.

극히 아름다운 소녀이나... 안색이 백지장같이 하앴다.

아마도 중병을 앓고 있는 듯이...

[사... 사부님... 황산(黃山)은 아직도... 멀었사옵니까?]

소녀가 미약한 목소리로 물었다.

[영라(瓔羅)야...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다오...]

노도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크으... 태옥(太玉)... 그 못난 놈이... 암산을 하지만 않았어도...!]

화르르르---!

노도인은 다리가 잘린 채로 허공을 갈랐다.

그가 병든 소녀와 날아가는 곳,

그곳에는 황산(黃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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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기다려온 여인

 

 

 

섭대낭은 벽혈마희(碧血魔姬)라 불리며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전력이 있다.

다시 무림에 나가면 구대문파 장문인들일지라도 그녀를 이긴다는 보장이 없을 정도다.

헌데 겨우 반 년 수련한 요문천의 무공이 섭대낭에 필적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터무니없는 말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광효는 섭대낭의 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아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요문천은 영특할 뿐 아니라 놀라운 집중력을 지니고 있다.

불과 십여 년 공부한 것만으로 천하의 재사(才士)들이 모여 있는 한림원(翰林院)의 어떤 학사(學士)에게도 뒤지 않는 학문을 쌓았었다.

그런 요문천이 식음과 수면까지 전폐하고 무공 수련에 매진해왔다.

반년의 수련만으로도 충분히 상승(上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무공에 대한 이해야 워낙 영특한 분이니 막힘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천녀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도련님의 심후한 공력이옵니다.”

섭대낭이 아미를 모으며 말했다.

“석 달 전쯤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문천이의 내공이 일갑자(一甲子)를 상회하는 것같긴 했다.”

요광효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요광효도 정심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

“현재 도련님의 내공은 삼갑자(三甲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추측되옵니다.”

섭대낭이 조금 상기 된 표정으로 말했다.

“삼갑자!”

요광효도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 되었다.

말이 쉬워 삼갑자다.

보통 사람이라면 백팔십 년의 세월동안을 쉬지 않고 수련해야 쌓을 수 있는 공력이다.

물론 신선이 아닌 이상 인간이 백팔십 년을 살 수는 없다.

아무리 내공이 심후한 무림고수라도 백오십 년 정도 사는 것이 한계다.

당연히 삼갑자 수준의 내공을 지니려면 수련하는 것 외의 도움이 있어야만 한다.

직접 수련하지 않아도 내공이 비약적으로 증진되는 데에는 대략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흡정대법(吸精大法)으로 타인의 공력을 흡수하는 것이다.

다만 흡정대법을 쓰면 대개는 끝이 좋지 않다.

이질적인 내공이 몸속에서 뒤섞인 채 존재하게 되는 탓이다.

사마외도의 인간들이 다양한 흡정대법을 구사하면서도 절세고수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타인에게서 공력을 물려받는 개정대법(開頂大法)이 있다.

흡정대법과 달리 개정대법은 동일한 내공심법을 수련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시전이 가능하다.

같은 성질의 무공을 익혔으므로 흡정대법처럼 주화입마에 빠지는 부작용은 거의 없다.

다만 개정대법은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십 년 수위의 공력을 전수받으면 일이 년 수위 정도의 내공만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

개정대법의 이같은 비효율이 오랜 전통을 지닌 명문대파들이라고 해서 늘 절세고수가 나오지는 못하는 이유다.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영약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내공 증진에 효과가 있는 약초나 그것들로 만든 영약을 복용하면 단 시일 내에 내공을 증진시킬 수가 있다.

대표적인 약초가 성형하수오(成形何首烏)나 삼왕(蔘王)등이며,

여러 가지 약초를 배합하여 만든 영약으로는 소림사의 대환단(大丸丹)이 있다.

대환단은 내상의 치료에도 탁월한 효능을 지녔다.

뿐만 아니라 한 알만 복용해도 삼십 년 동안 면벽 수련한 것에 필적하는 내공을 단번에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영약에도 한계는 있다.

지나치게 강한 약성을 몸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영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 영약의 약효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유다.

 

“본부의 연공관에도 다양하고 효능이 탁월한 영약들이 준비되어 있긴 하다만... 불과 반 년만에 삼갑자의 내공을 쌓은 것은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요광효가 기쁜 내색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당금 무림을 통틀어도 삼갑자 이상의 내공을 지닌 인물은 불과 열 명 남짓일 것이다.

“천녀의 생각으로는 철접... 동영의 그 야차같은 년에게 납치되셨을 때 어떤 기연을 만나셨던 것같사옵니다.”

섭대낭도 약간 상기 된 표정으로 말했다.

아들이나 다름없는 요문천에게 좋은 일이 있는 것은 그녀에게는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기쁨인 것이다.

“파사의 내단을 얻었겠군.”

요광효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예?”

갑작스러운 요광효의 말에 섭대낭이 어리둥절할 때였다.

“아니다. 문천이의 내공이 심후해진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고...”

요광효가 화제를 돌렸다.

“나는 내일 있을 폐하의 개선식(凱旋式) 준비 때문에 올해의 기제사(忌祭祀)에는 참석할 수 없다. 그러니 네가 문천이를 데리고 영은사(永恩寺)에 다녀와라.”

“그리하겠사옵니다.”

섭대낭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이름과 출신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요광효의 처, 즉 요문천의 생모의 기일(忌日)이다.

마씨(馬氏)라고만 알려진 그 여인은 십팔 년 전 바로 오늘 죽었다.

그래서 오늘밤 자시(子時; 밤 11시~새벽 1시) 무렵에 제사를 지내야한다.

요씨 집안에는 따로 사당이 없다.

대신 북경 외곽의 영은사라는 절에 조상들의 위패가 봉안(奉安)되어 있다.

요광효가 십팔 년 전까지만 해도 불문에 적을 두고 있었던 때문이다.

“영은사의 주지 무진사태(無塵師太)에게는 기별을 넣어놓았으니 문천이를 데리고 가기만 하면 된다.”

“예...”

요광효의 말에 섭대낭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기제사를 지내러 외출한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요문천과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낭아.”

속마음을 들킬까봐 서둘러 방을 나가려는 섭대낭을 요광효가 불러 세웠다.

“하명하실 일이 있으신지요?”

섭대낭은 문고리를 잡다가 요광효를 돌아보았다.

“문천이도 이제 어린 아이가 아니다. 응석을 전부 받아주지는 말거라.”

요문천이 그런 섭대낭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명... 명심하겠사옵니다.”

섭대낭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요광효의 방을 나서면서 섭대낭은 가슴 한 구석에 전에 없는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요광효의 마지막 당부에 복잡한 심사가 서려있는 것같았기 때문이다.

 

***

 

퍼억! 푸스스!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청강석(靑剛石) 기둥이 모래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그럭저럭 지옥장강(地獄掌罡)도 쓸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요문천은 만족한 표정으로 청강석 위에 올려놓았던 손을 거뒀다.

그가 손바닥을 대고 있던 청강석은 옥(玉)의 일종으로 단단하기가 강철에 못지않다.

그럼에도 모래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저주마경에 적혀있는 세 가지 무공 중 하나인 지옥장강이 흘러들어간 결과다.

지옥장강이 주입된 대상은 겉보기에는 멀쩡하다.

하지만 내부는 강한 진동으로 인해 완전히 으스러져버린다.

만일 인간의 몸에 지옥장강이 닿으면 뼈가 가루가 되고 살과 내장은 곱게 갈은 곤죽처럼 변할 것이다.

말 그대로 지옥을 경험하며 죽게 되는 것이다.

다만 지옥장강은 직접 대상에 닿아야만 그 위력을 발휘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 때문에 지옥장강의 내력에 대해 아는 적이라면 직접적인 접촉을 피함으로써 지옥장강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

저주마경에 적힌 바로는 지옥장강은 십성(十成)에 이르면 벽공장(闢空掌)처럼 거리를 두고도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럴 경우에는 지옥장강에 직접 닿지 않는다 해도 내부가 으스러져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경지에 이르는 것은 실로 지난(至難)하다.

요문천도 팔성(八成)까지는 석달만에 이르렀지만 그후로는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옥장강을 벽공장처럼 구사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니 조급해할 건 없다.)

요문천은 모래가 되어 흩어진 청강석 기둥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이곳은 승상부의 연공관이다.

승상부에는 아주 넓고 무공 수련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연공관이 존재한다.

직접 무공을 수련하는 장소 외에도 수천 권의 무공비급으로 채워진 서고(書庫)와 온갖 종류의 무기가 마련되어 있는 무고(武庫)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서고와 무고뿐 아니라 승상부의 연공관에는 무림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영약들을 모아놓은 약고(藥庫)도 있다.

열의와 결심만 충분하다면 이 연공관에 들어오는 사람은 절세고수가 되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요문천은 연공관 내의 무공비급과 영약들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무공은 저주마경에 적혀있는 세 가지면 충분하다.

또 파사의 내단을 복용한 상태라 공력을 증진시켜주는 영약은 먹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문천이 연공관에서 가끔 드나드는 곳은 무기들이 마련되어 있는 무고다.

요문천은 지옥교를 저주마경과 함께 독왕보궁에 남겨두고 왔다.

지옥교가 워낙 특이하게 생긴 탓에 남의 눈에 띄일 것을 우려해서였다.

지옥교가 없으니 마검팔식(魔劍八式)을 수련하는 데는 다른 검을 쓸 수밖에 없다.

요문천이 무고에서 고른 검은 검날이 얇으면서도 날카로워 금석을 무 베듯 한다.

날카로움으로는 지옥교에 비교해도 그리 뒤지지 않는 그 검은 전설속의 명검인 청평(淸平)이다.

 

(근접전에서는 지옥장강이 절대적이고 거리를 둔 싸움에는 마검팔식이 무적의 위력을 발휘한다.)

요문천은 청평검을 집어 들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통의 검법의 초식들은 공격과 방어를 겸하게 되어 있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내가 산 후에 적을 죽인다는 위기(圍碁;바둑)의 격언이 여지없이 통하는 것이 무공이다.

설령 내가 적을 베더라도 나 역시 적에게 베어지면 소용이 없다.

그 때문에 공격보다는 방어에 보다 비중을 두는 일반적인 무공이고 검법이다.

하지만 마검팔식은 오직 적을 베고 죽이는 데만 집중한다.

자신의 안전은 도외시하고 적의 약점과 실수를 맹렬하게 파고 들어가 공격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마검팔식을 상대하는 적은 기필코 피를 보게 된다.

이 검법에 마검(魔劍)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마검팔식이 이토록 무모하게 적을 쓰러트리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저주마벽 덕분이다.

저주마벽은 고금을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탁월한 호신공부다.

단순히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게 아니라 최대 세배의 힘으로 타격을 돌려보낸다.

저주마벽의 이같은 막강한 힘에 보호되는 덕분에 오직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지옥검조가 애첩 혈미인을 죽여서 그녀의 살가죽에 지옥성의 무공을 적을 때 저주마벽과 지옥장강과 마검팔식을 우선적으로 적은 이유가 있다.

지옥성의 열 가지 무공 지옥십결(地獄十訣)중 그 세 가지가 다른 일곱 가지보다 특별히 중요했기 때문이다.

즉, 저주마경에 적혀있는 세 가지 무공만으로도 지옥성을 재건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문천은 지난 반 년간 저주마경 상의 세 가지 무공만 수련해왔다.

연공관의 다른 무공비급에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덕분에 요문천은 저주마경 상의 세 가지 무공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절정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사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멀지 않았다. 이제 곧 여길 나갈 수 있다.)

쩌억! 슈욱!

청펑검으로 빗발같은 검기를 그어내며 요문천은 눈을 번뜩였다.

(천하를 다 뒤져서라도 반드시 당신을 찾아낼 것이다.)

마검팔식을 펼치면서 요문천은 한 여인을 떠올렸다.

초겨울에 내리는 서리를 연상케하는 서늘한 분위기를 지닌 절세미녀...

순진하던 자신을 어른의 세계로 이끌어준 여인...

그녀를 요문천은 지난 반 년간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물론 그 여인은 철접 용천파다.

 

***

 

“요문천이 무공 수련에 미쳐있다?”

여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물었다.

삼단 같던 그녀의 머리카락은 날카로운 삭도(削刀;머리 깎는 칼)에 의해 깎여 나가고 있는 중이다.

“어떤 계기로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요문천은 반 년 전부터 무공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데... 비록 섭대낭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먼발치로 확인한 것뿐이지만 요문천의 무공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보고이옵니다.”

여인의 앞쪽에 무릎을 꿇은 젊은 비구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문천... 그 아이도 몇 달 후면 열아홉 살... 써먹을 수 있는 정도로 자라긴 했겠지.”

여인은 바닥에 흩어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뒤쪽에서는 나이 든 비구니가 삭도로 머리를 밀어주고 있다.

“산동성으로 몰려든 주체(朱棣;영락제의 이름)의 졸개들이 제법 유능한 탓에 교착되어버린 상황을 타개해보려고 북경에 잠입한 것인데...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로구나.”

어느덧 머리카락이 모두 밀려져서 비구니의 모습이 된 여인이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비로소 불모(佛母)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이 된 것이다.

 

 

 

 

<연재 종료 공지>

 

무림일기의 연재는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현재 유료로 연재중이라 형평상 더 이상 게시할 수는 없군요. 대부분의 싸이트에서는 1권 가량은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서 1권의 일부를 연재했었습니다.

이해와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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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잠룡의 세월

 

 

 

흐윽!”

섭대낭은 요문천을 으스러져라 끌어안으며 오열을 터트렸다.

도련님! 도련님!”

그녀는 두 번 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듯 요문천을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쓰다듬으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정오 무렵에 돌아온 요문천으로 인해 승상부는 발칵 뒤집혔다.

섭대낭은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 나왔다.

요광효도 어제 있었던 영락제의 피습 사건 수습으로 분주하던 중에 승상부의 입구까지 나왔다.

몰려든 시녀들도 기쁨의 눈물을 훔쳤다.

반면 승상부의 호장무사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안도했다.

만일 요문천의 신상에 변고가 생겼다면 자신들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미안해 유모. 걱정 끼쳐서...”

요문천은 자신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오열하는 섭대낭의 등을 다독이며 달랬다.

그런 요문천의 눈에 요광효가 곱게 늙은 노파와 함께 승상부 안쪽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머리카락은 백발이지만 얼굴에는 주름 하나 없는 서늘한 인상의 그 노파는 신비각 사대영반의 첫째인 고독모모(孤獨母母).

고독모모는 출신내력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고인이다.

혹자는 그녀가 고려(高麗)의 전설적인 문파 치우령(蚩尤嶺) 출신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고독모모는 갈태독이나 사해무존에 필적하는 고수였구나.)

요문천은 섭대낭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고독모모를 살펴보았다.

그전에는 몰랐었다.

하지만 파사의 내단을 복용한 덕분인지 요문천의 눈에는 고독모모의 몸 주위로 무형의 역장(力場)이 감돌고 있는 게 들어온다.

다친 곳은 없느냐?”

다가온 요광효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요문천의 몸을 살피며 묻는다.

... 심려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요문천은 요광효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럼 되었다. 대낭이는 문천이를 데리고 가서 쉬게 해주거라.”

요광효는 요문천의 뒤에 붙어서서 소매로 눈물을 닦고 있는 섭대낭에게 말했다.

예 부주님.”

섭대낭은 대답한 후 요문천의 팔을 잡아끌었다.

곧 전후 경과를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아비는 신경 쓰지 말고 편할 때 얘기 하거라.”

요문천의 말에 요광효는 가보라고 손짓을 했다.

요문천은 섭대낭에게 끌려 승상부 안쪽으로 들어갔고 모여들었던 하인들과 무사들도 흩어졌다.

“...”

고독모모는 섭대낭에게 이끌려 승상부 안쪽으로 가는 요문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모모의 눈에도 저 녀석이 전과 다르게 보이시는 것같소이다.”

요광효가 웃으며 말했다.

비록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지만 고독모모는 요광효보다 십여살 연상으로 백세(百歲)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영식이 복연(福緣)이 많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던 바인데... 이번의 소동을 겪으면서 오래되고 신령스러운 힘이 몸에 깃들었군요.”

고독모모가 눈을 조금 가늘게 뜬 채 요문천을 보며 말했다.

기쁜 일이긴 하지만... 자식이 평온한 삶을 바라는 아비의 입장으로는 근심이기도 하지요.”

요광효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을 지켜주겠다고 한 저 녀석 어미와의 약속은 지키기 힘들지 모르겠구나.)

요광효의 늙은 얼굴에 깊은 수심이 어리고 있었다.

 

***

 

(도련님의 몸과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났구나.)

섭대낭은 본능적으로 그같이 느꼈다.

그녀는 요문천을 목욕시켜주고 있는 중이었다.

욕조에 들어앉은 요문천을 씻겨주면서 섭대낭을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단 하룻밤 못 본 것뿐인데 어쩐지 요문천이 낯설게 느껴진 때문이다.

외양은 딱히 달라진 게 없다.

헌데 마냥 어린애 같기만 하던 요문천에게서 어른의 느낌이 난다.

의젓해졌고 진중해졌으며 무엇보다도 눈빛에 깊은 우수가 어려 있다.

그 눈빛이 먼 곳의 무언가를 쫓고 있는 듯 느껴져서 섭대낭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대체... 섬나라의 야차(夜叉)같은 계집에게 끌려가서 무슨 일을 겪은 것일까?)

요문천의 몸을 닦아주는 섭대낭의 손끝이 떨린다.

그녀는 머잖아 요문천이 자신의 품을 떠날 것을 예감하게 되었다.

깃털이 돋아나고 날개에 힘이 생긴 아기 새는 필연적으로 둥지를 떠나 이소(離巢)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기뻐해야할 일이다. 도련님이 어른스러워지는 것은 마땅히 기뻐해야만 하는데...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억지로 웃는 섭대낭의 눈에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

 

반 년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봄이었던 계절은 어느덧 초가을이 되어 있었다.

그 동안 세상은 몹시 소란스러워졌다.

먼저 영락제의 제삼차(第三次) 몽고 친정(親征)이 진행되었다.

오십만 명의 군사를 동원한 대규모의 정벌은 황실 재정의 고갈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부작용을 야기했다.

설상가상으로 산동(山東)에서는 불모(佛母)를 자처하는 백련교(白蓮敎) 출신의 여걸 당새아(唐塞兒)의 반란이 일어났다.

당새아는 임삼(林三)이라는 농부의 아내라고 알려진 여인이다.

일찍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된 그녀는 기연을 만나 천서(天書)와 보검(寶劍)을 얻었다고 한다.

천서와 보검은 백련교에 전해지는 세 가지 보물 광명삼보(光明三寶)에 속한다.

광명삼보는 백련교의 마지막 교주 한림아(韓林兒)가 주원장에게 암살당할 때 세상에서 사라졌었다.

혹자는 광명삼보가 한림아를 암살한 주원장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십팔 년 전 금릉이 연왕의 군세에 함락당할 때 황실보고에 수장되어 있던 광명삼보의 행방도 영영 사라지고 말았었다.

그 광명삼보 중 천서와 보검이 세상에서 사라진지 육십여 년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천서와 보검을 얻은 덕분에 당새아는 백련교의 새로운 교주로 추대되었다.

당새아도 스스로를 불모로 자처하고 있는데 천서와 보검의 힘을 빌어 호풍환우(呼風喚雨)를 자유자재로 하며 재물과 의식(衣食)을 만들어내는 신통력을 발휘한다고 전해진다.

이에 북원(北元), 즉 몽고 정벌을 위한 영락제의 혹독한 징발과 연이은 천재지변으로 고통 받던 백성들이 당새아 주변으로 몰려들어 삽시에 거대한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를 세웠으나 가혹한 탄압을 받고 세상에서 사라졌던 백련교가 육십여 년만에 부활한 것이다.

하지만 당새아가 주도한 백련교의 반란은 초반의 기세가 많이 위축된 상태다.

관군의 지속적인 투입 덕분에 산동성 밖으로는 세력을 확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당새아의 난으로 인해 민심은 급격히 흉흉해지고 있었다.

영락제가 <정난의 변>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안정되어가던 천하의 정세가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승상부는 이같은 어지러운 풍파에서 온전히 비켜나 조용했다.

반 년 전, 오이라트의 족장 토곤 타이시의 사주를 받은 동영의 인자들이 영락제에 대한 암살을 시도하는 변고가 있었다.

그때 살아남은 동영의 인자들중 한명이 승상부에 난입했던 일이 있었지만 철저하게 기밀에 붙어져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외면상 평온해 보이는 승상부는 그러나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은 승상부의 다음 대 주인이 될 요문천의 변화 때문이었다.

 

***

 

문천이는 요즘 어찌 지내느냐?”

요광효는 두 손을 모으고 서있는 섭대낭에게 물었다.

늘 밝고 활기차던 섭대낭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달 사이 부쩍 표정이 어두워져 요광효의 걱정을 사고 있었다.

여전히 하루 두 번, 식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연공관(鍊功關)에서 나오지 않고 있사옵니다.”

섭대낭이 우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만 읽던 녀석이 무공에 관심을 갖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구나.”

요광효도 한숨을 쉬었다.

 

반 년 전 철접에게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요문천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무공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승상부에는 다양한 무공비급과 영약, 무기등이 갖춰진 연공관이 있다.

요문천은 자신의 안락한 거처 대신 그 연공관에 들어가 생활해오고 있는 중이다.

하루에 두 번, 밥을 먹고 목욕을 하기 위해 나올 때를 제외하고는 연공관에 틀어박혀 무공 수련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승상부에는 고수들이 많다.

호장무사들 외에도 요광효를 존경하여 모여든 식객(食客)들 중에 강호의 기인이사들이 다수 섞여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문천의 유모인 섭대낭조차 천하백대고수(天下百大高手) 안에 충분히 드는 무공을 지니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요문천은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청하지 않고 혼자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중이다.

요광효는 이와같은 요문천의 변화를 대견해했다.

하지만 유모인 섭대낭의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혹시나 무리하다가 몸이 상하지나 않을까, 혼자 무공을 수련하다 잘못되어 주화입마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노심초사해오고 있는 것이다.

 

네가 보기에 문천이의 무공 수준은 어느 정도인 것같으냐?”

요광효는 초췌해진 섭대낭을 측은한 표정으로 보며 물었다.

영락제가 몽고에 친정을 나가 있는 동안 사실상 정무(政務)는 요광효가 보고 있는 중이다.

영락제의 장남인 황태자 주고치(朱高熾)는 제법 성군(聖君)의 자질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주고치는 병약하여 조정을 장악하는 데에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요광효가 주고치를 대신해서 대부분의 정무를 처리해오고 있다.

그 때문에 요광효는 자금성에서 살다시피 해야만 했고,

지난 반년동안 요문천을 본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그게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도련님의 무공은 불과 반 년만에 천녀를 능가하는 수준에 이르렀사옵니다.”

섭대낭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비록 걱정을 끼치긴 했지만 요문천이 지난 반 년동안 보인 놀라운 성취가 그녀를 기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허어! 그 정도냐?”

요광효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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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귀역(鬼域)에서의 초야(初夜)

 

 

 

하실 일이라는 게 무엇인지요?”

의아해진 요문천이 물었다.

철접은 대답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 보거라. 나란 계집, 너무 나이가 많아서 밉거나 흉하게 보이지는 않느냐?"

철접은 그 창백한 얼굴에 살짝 홍조를 떠올리며 물었다.

"밉다니요? 소저는 제가 본 어떤 여자보다 아름답습니다."

요문천은 철접에 말에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십팔 년의 세월동안 제법 많은 명문가의 미녀들을 보아온 요문천이다.

하지만 눈앞에 서있는 이 여()인자에 비견될만한 여자는 만난 적이 없다.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파팟!

철접이 갑자기 요문천의 가슴에 자리한 마혈(痲穴)을 찍었다.

"!"

요문천은 찌릿한 충격과 함께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철접은 마혈이 찍혀 쓰러지는 요문천의 몸을 자연스럽게 받아서 품에 안았다.

"... 왜 이러시는 겁니까?"

요문천은 철접의 품에 안기며 당황하여 물었다.

비록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말은 할 수가 있는 상태였다.

"해치지 않을 테니 겁먹지 말거라!"

철접은 요문천을 두 팔로 안아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철접의 키가 훨씬 큰 탓에 그녀의 품에 안긴 요문천이 마치 아기처럼 보인다.

철접은 요문천을 품에 안은 채 보물이 산처럼 쌓여있는 첫번째 지하 광장으로 나섰다.

(이 여자 설마...!)

철접의 품에 안겨 보물의 산쪽으로 옮겨지며 요문천은 어떤 기대로 인해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파사의 내단까지 주저 없이 먹여준 철접이 새삼 자신을 해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저항하지 못하게 혈도를 찍었다면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어쩌면 이 여자는 특별한 방법으로 은혜를 갚을 생각인 것 같다.)

요문천은 기대와 흥분으로 헐떡이며 철접을 훔쳐보았다.

비록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철접의 창백하던 얼굴에는 살짝 홍조가 감돌고 있다.

철접은 성벽처럼 쌓여있는 금괴의 벽을 지나 보물의 산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예상한 대로구나.”

보물의 산 중심부에 도착한 철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철접이 요문천을 안고 도착한 그곳은 마치 방처럼 꾸며져 있다.

탁자와 의자, 온갖 종류의 집기들과 함께 아주 넓은 침대도 하나 놓여있다.

언듯 보면 누군가의 침실같은 분위기다.

차이점은 침실을 구성하고 있는 집기들이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보물들이라는 점이다.

금괴를 천장까지 쌓아올려 벽을 만들었다.

바닥에도 금괴와 은괴를 벽돌 대신 깔아놓았다.

금괴의 벽으로 구획되어진 넓은 공간 안에 집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대부분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졌고 온갖 보석들로 치장이 된 물건들이다.

커다란 황금 탁자 위에는 수많은 그릇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중 가장 작은 접시 하나만 내다 팔아도 한 사람의 팔자를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침실 한쪽에 놓여있는 침대도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기둥과 틀은 황금이며 그 위에 깔려있는 것은 이무기의 껍질이다.

이무기의 가죽으로 만든 그 침대는 하룻밤만 자도 어떤 질병이든 낳게 해준다는 보물이다.

갈태독은 어느 군벌이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순제(順帝)에게 진상했던 그 교피만복침(蛟皮萬福寢)을 거의 강탈하듯 받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삼았었다.

(여기는 갈태독이 자신의 보물들을 감상하기 위해 만든 장소겠구나.)

침대로 다가가는 철접의 품에 안겨 요문천도 주변을 곁눈질로 돌아보며 깨닫는 바가 있었다.

갈태독은 탐욕스럽기 이를 데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의 가장 큰 도락(道樂)은 자신이 모은 보물들을 혼자 감상하는 것이었다.

철접이 요문천을 데리고 들어온 이 공간은 바로 그럴 목적으로 조성된 곳이다.

, 이 공간에 있는 보물들이야말로 갈태독이 모은 보물들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헤어지면 우린 아마 두 번 다시 못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헤어지기 전에 네게 진 빚을 마저 갚을 작정이다. 은혜와 원한은 확실하고 분명하게 처리하는 것이 우리 온미쯔(隱密宗;인자)의 전통이므로...!"

침대에 이른 철접은 요문천을 조심스럽게 뉘였다.

그리고는 요문천의 몸에 걸쳐진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 이러실 필요는...”

철접의 손길에 의해 옷이 벗겨지며 요문천은 헐떡거렸다.

하지만 말과 달리 요문천의 몸은 이미 기대와 흥분으로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아직 처녀의 몸이다.”

요문천의 옷을 벗기며 철접의 얼굴 역시 어쩔 수 없이 달아오른다.

(서른 살이 다 된 나이에 처녀라니.,.. 하물며 인자라는 험한 직업을 가졌으면서...)

요문천이 놀랄 때였다.

철접이 요문천의 바지와 속옷을 함께 쥐고 끌어내렸다.

요문천은 부끄러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한번 본 것만으로 마음을 빼앗겨버린 미녀의 눈에 알몸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로...)

요문천을 발가벗긴 철접은 가슴이 미어졌다.

요문천에게서 비명에 간 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말기를...)

반면 요문천은 이 상황이 그저 황홀할 뿐이다.

(미안해 지로야!)

철접의 두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아들인 듯 조카인 듯 키워온 어린 동생...

그 가엾은 동생은 불귀의 객이 되어 멀지 않은 곳에 누워있다.

동생이 여자도 알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철접이었다.

지난 밤 그녀는 지로, 즉 용차랑으로 하여금 여자를 경험하게 해주려고 기루에 들여보냈었다.

하지만 기녀들이 너무 대담하게 달려드는 바람에 용차랑은 기겁을 하며 도망쳐 나왔었다.

그후 철접은 용차랑에게 맛난 음식을 사 먹인 후 천독친왕부로 돌아와 함께 잤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청할 때 용차랑은 간절하게 무언가를 바라는 표정이었다.

철접은 동생이 무얼 원하는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철접은 애써 용차랑의 눈길을 피했었다.

결국 철접과 용차랑은 아무 일 없이 하룻밤을 보냈으며...

용차랑은 허무하게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동생이 그토록 원하던 걸 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철접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주르르!

마침내 철접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아이가 지로 대신이다. 지로에게 해주지 못한 모든 것을 이 아이에게 해주자.)

어느덧 철접에게 요문천은 용차랑의 환생인 듯이 느껴지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버린 어린 동생을 위해 해주지 못할 일이 없다.

철접은 정성을 다해 요문천을 귀여워해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요문천은 현실의 일이 아닌 듯한 황홀경의 극치를 맛보게 되었다.

(이렇게...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요문천을 귀여워해주며 철접 역시 몽롱해졌다.

그녀는 비로소 여자 인자들이 그토록 이성과의 관계에 집착하는지 깨달았다.

이 순간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온전히 황홀경에 빠져들 수가 있었다.

지로! 지로야! 누나가 미안해!”

철접은 두 손으로는 요문천의 얼굴을 보듬어 쥐고 울었다.

요문천의 입에서도 자지러지는 비명이 연신 터져 나왔다.

오늘 밤 요문천은 너무 좋아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곤히 잠들었던 요문천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철접은 사라진 후였다.

(갔구나.)

비어있는 옆 자리를 돌아보며 요문천은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을 받았다.

침대 옆의 황금 탁자에는 지옥교와 저주마경은 놓여있다.

하지만 갈태독이 남긴 구독진경 상편과 묵린천독편은 보이지 않았다.

철접이 떠나면서 가져간 것이다.

(그 여자는 날 동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철접과의 일을 떠올리며 요문천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로... 미안해 지로. 나만... 누나만 살아서...!”

관계하는 내내 철접은 비탄이 서린 오열을 토해냈었다.

(가엾은 여자였다.)

요문천은 가슴 한구석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철접이 느끼는 비탄이 마치 자신의 감정처럼 느껴진 때문이다.

그래서 지로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기로 결심했었다.

그렇게 요문천과 철접은 밤이 새도록 특별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지칠 줄을 몰랐다.

복용한 파사의 내단과 천독시균 덕분이었다.

철접의 상처도 이미 대부분 완치되었을 정도다.

그래도 어느 순간 요문천은 지쳐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깨어나 보니 혼자 남겨져 있었다.

몸에는 옷이 걸쳐져 있었다.

요문천은 잠에서 깨어나고도 한동안 누워있었다.

파사의 내단 덕분에 피곤한 줄도 모르겠고 몸에는 힘이 넘친다.

한번 도약하며 하늘 끝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 든다.

지난밤의 일이 꿈만 같아서 요문천은 쉽사리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이윽고 요문천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살펴보니 지옥교와 저주마경이 놓여있는 탁자에는 글이 새겨진 금판(金板)이 한 장 놓여있었다.

금판에는 수려한 필체의 글이 새겨져 있다.

 

<날 찾지 말거라. 네가 날 필요로 할 때면 내가 찾아갈 테니.. 날 위해 지로를 대신해준 배려는 잊지 않으마.>

 

금판에 적힌 글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길지 않은 그 글에 철접의 모든 심사가 깃들어 있는 것을 요문천은 느꼈다.

(철접 용천파...!)

요문천은 금판을 손에 든 채 철접을 떠올렸다.

요문천은 동침하는 도중에 나눈 단편적인 대화들을 통해서 철접이 누구며 본명이 용천파라는 사실도 알아낸 상태였다.

(내가 어찌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 요문천을 비로소 어른으로 만들어준 당신을...)

요문천은 철접의 글이 적힌 금판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를 찾아내서... 두 번 다시 내 곁을 떠나지 못하게 잡아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누구도 그녀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나 자신도 강해져야만 한다.)

요문천은 금판을 손에 쥔 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귀역(鬼域)으로 소문난 천독친왕부의 깊은 곳에서 바야흐로 장래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뜻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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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시체에서 자란 버섯

 

 

 

"갈태독은 파사가 품고 있는 보물을 빼앗아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려 했으나... 아마 파사는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갈태독에게서 달아났을 것이다."

철접은 묵린천독편을 내밀어 자신의 앞쪽을 가로막는 독충들을 물러나게 하며 파사의 골격 중간쯤으로 갔다.

"결국 갈태독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고... 얼마 후 중상을 입은 파사도 이곳으로 돌아와 최후를 맞았겠습니다."

"다 왔다!"

철접은 대답대신 걸음을 멈추며 말아 쥔 묵린천독편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파사의 골격 중간쯤인 그곳에는 쌀가마 하나 정도 크기인 큼직한 물체가 놓여있다.

츠츠츠! 끼기기!

바위같이 단단해 보이는 그 물체에는 수많은 독충들이 뒤덮고 있다.

헌데 독충들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철접이 묵린천독편을 내밀어도 흩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독충들도 물러서지 않는다! 저 바위같은 게 대체 뭔데 독충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드는 것일까?)

요문천이 의아해할 때였다.

"비켜라!"

촤악!

철접이 묵린천독편을 바닥에 대고 내리쳤다.

화악!

그러자 바닥을 때린 묵린천독편에서 검은색의 안개같은 것이 확 뿜어져 나와 바위 근처의 독충들을 휩쓸어버렸다.

푸스스! 화악!

묵린천독편에서 뿜어진 검은 안개에 휩쓸리는 순간 바위를 뒤덮고 있던 독충들이 재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끼끼! 츠츠츠!

살아남은 독충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 버렸다.

(가공하구나! 독충들을 녹이는 게 아니라 아예 증발 시켜버렸다.)

요문천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묵린천독편에 농축되어 있는 멸절독강은 내공을 주입해야만 발출된다. 그래서 평소에는 맨손으로 만져도 안전한 것이다."

철접은 휘둘렀던 묵린천독편을 다시 감아쥐며 말했다.

"그건 참 편리하군요."

"이게 무얼 것 같으냐?"

철접은 둘둘 말아 쥔 채찍으로 앞쪽에 놓인 바위같은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독충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던 걸 보면 귀중한 가치가 있는 건 분명하겠습니다!"

"이건 파사의 쓸개다."

철접은 가마솥만한 크기인 바위같은 것을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쓸개라니... 파사란 놈은 덩치에 어울리게 쓸개도 정말 엄청난 크기로군요!"

요문천은 놀라 눈을 치뜨며 바위같은 물체, 파사의 쓸개를 새삼 바라보았다.

"이 석화(石化)된 쓸개 속에 파사가 품고 있던 진짜 보물이 들어있을 것이다!"

!

철접은 말하면서 다시 채찍을 펼쳐서 파사의 거대한 쓸개를 후려쳤다.

그러자 묵린천독편에서 다시 검은 안개같은 것이 터져 나와 돌처럼 단단하게 굳었던 파사의 쓸개를 덮어씌웠다.

퍼석!

검은 안개같은 휩쓸리는 순간 파사의 거대한 쓸개도 고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반짝!

그리고 흩어지는 파사의 쓸개의 속에서 빛을 발하는 작은 물체가 드러났다.

계란만한 크기의 구슬인데 푸르스름한 빛에 덮여있다.

(저 구슬은 혹시!)

파사의 쓸개가 흩어지며 드러나는 구슬을 본 요문천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이게 바로 파사의 내단(內丹)이다."

철접은 묵린천독편을 허리띠에 끼우고는 몸을 숙여서 구슬을 집어들었다.

(역시!)

요문천은 철접이 고운 모래같은 파사의 쓸개 잔해 속에서 진어든 구슬을 바라보며 흥분을 금치 못했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든 짐승들의 왕인 파사는 몸속에 내단을 만들어 왔다.

파사가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흡수한 천지간의 정기가 그 작은 구슬 안에 농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걸 복용하면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모든 상처와 고질이 고쳐진다. 사해무존에게 치명상을 입은 갈태독으로서는 파사를 죽여서 내단을 꺼내먹는 것 외에는 달리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철접은 구슬에 묻어있던 쓸개의 잔해를 자신의 옷에 닦으며 말했다.

갈태독은 정말 무정(無情)한 인간이었군요. 아무리 목숨이 소중해도 수천리 밖에서 찾아온 이 영물을 죽일 생각을 했으니...”

요문천은 갈태독의 시신 쪽을 흘겨보며 한숨을 쉬었다.

"무정하고 무의(無義)한 인간이 어찌 갈태독 뿐이겠느냐? 그보다 입을 벌려봐라!"

철접은 파사의 내단을 자신의 옷자락에 깨끗하게 닦으며 요문천에게 말했다.

"?"

요문천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입을 벌렸다.

!

순간 철접은 파사의 내단을 요문천의 벌린 입에 그대로 넣어버렸다.

"무슨...!"

파사의 내단이 입속으로 들어오자 요문천은 기겁하며 뱉어내려고 했다.

!

하지만 철접의 손이 물 흐르듯이 요문천의 턱을 움켜쥐어 다물게 했다.

(파사의 내단이 침에 닿자 그대로 녹아버린다!)

요문천은 강제로 입을 다물린 채 눈을 부릅떴다.

입안에 들어온 파사의 내단이 마치 얼음인 듯이 그대로 녹아서 목구멍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꿀꺽!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요문천은 녹아서 액체가 된 파사의 내단을 그대로 삼키고 말았다.

"되었다!"

요문천이 파사의 내단을 모두 삼킨 것을 확인한 철접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때까지 쥐고 있던 요문천의 턱을 놓아주었다.

"... 이게 무슨 짓입니까?"

턱이 자유로워진 요문천은 목을 쥐고 콜록거렸다.

파사의 내단이 녹아서 흘러 들어간 뱃속이 독한 술을 마신 듯 화끈거리긴 하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수선 떨지 마라! 파사의 내단은 무궁무진한 효능을 지닌 절세의 보물이다."

철접은 파사의 골격 밖을 향해 돌아서면서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너는 이후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독에도 해를 입지 않게 될 것이고 내공심법을 연마하면 어렵지 않게 오갑자(五甲子) 수위의 공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왜 소저께서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요문천은 철접을 따라가며 물었다.

뱃속에서 시작한 화끈거림이 온몸으로 퍼져서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든다.

"내게는 따로 먹을 것이 있다!"

철접은 골격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따로 먹을 게 있다고?)

요문천은 어리둥절하며 그녀의 뒤를 따라 파사의 골격 밖으로 나왔다.

온몸을 화끈거리게 만드는 열기 탓에 어느덧 요문천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파사의 골격에서 나온 철접은 다시 갈태독 시체 앞으로 가서 멈춰 섰다.

(왜 다시 갈태독의 시체 쪽으로 온 건가? 설마 갈태독의 시체라도 먹겠다는 건가?)

요문천이 어리둥절할 때였다.

"갈태독은 생시에 수천 가지 극독을 복용하여 피와 살이 모두 독에 물든 독인(毒人)이 되었었다!"

철접이 갈태독의 해골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앉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자 자연스럽게 저고리가 위로 들려지며 탐스러운 엉덩이가 일부 드러난다.

"...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저고리 아래쪽으로 드러나는 철접의 뽀얀 둔부를 곁눈질하며 요문천은 침을 삼켰다.

파사의 내단을 복용하여 몸이 뜨거워진 때문일까?

철접의 둔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요문천은 온몸이 확 달아올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독인이었던 자가 죽으면 생시에 복용한 극독들의 정수가 한 곳으로 모여 특이한 형태를 갖추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철접은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갈태독의 웃옷을 벌렸다.

철접이 몸을 앞으로 숙이자 저고리가 끌려올라가며 뽀얀 둔부가 더 많이 드러나 요문천의 눈을 부릅뜨게 만든다.

역시 있었구나.”

철접이 갈태독의 상의를 벌린 채 무언가를 보며 말한다.

그녀의 허연 둔부를 노려보던 요문천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갈태독의 시신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철접에 손길에 의해 드러난 갈태독의 아랫배, 단전 부근에 영지(靈芝)의 모습을 한 버섯이 하나 돋아나 있었다.

"시신에서 버섯이 자라다니...! 혹시 시균(屍菌)입니까?"

요문천은 철접 뒤에서 고개를 숙여 버섯을 들여다보며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신동(神童) 소리를 들었다더니 아는 게 많구나."

철접은 갈태독의 시신 단전 부근에서 자라고 있는 버섯을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잡았다.

"그렇다! 이것은 동물의 시체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동충하초(冬蟲夏草), 즉 시균이다!"

!

그녀는 신중하게 버섯을 갈태독의 아랫배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하지만 이 시균은 보통의 동충하초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갈태독이 살아생전 복용한 모든 독의 정수가 모여 있는... 굳이 이름붙이자면 천독시균(千毒屍菌)이라고 할 수 있다!"

철접은 떼어낸 버섯을 두 손으로 쳐들어 살펴보며 말했다.

영지초를 닮은 그 버섯은 반투명한 껍질 안쪽에 액체가 가득 고여 있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천독시균?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은데 보통의 시균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천독시균을 먹으면 갈태독이 평생 수련했던 독공(毒功)과 내공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다! , 이걸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단번에 제이(第二)의 갈태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저의 말씀대로라면 천독시균이라는 그것은 정말 대단한 보물이로군요."

철접의 설명을 들은 요문천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이것도 네가 먹겠느냐?"

철접은 그런 요문천을 돌아보며 천독시균을 내밀었다.

"... 싫습니다!"

철접의 말에 요문천은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뱀의 내단이야 엉겁결에 먹었지만 시체에서 돋아난 버섯이라니...! 갈태독이 아니라 갈태독 할애비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못 먹겠습니다!"

요문천은 혐오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쉽구나! 천독시균을 먹겠다고 했으면 네게 진 두 번의 신세를 전부 갚는 셈이 되었는데...!"

철접은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철접이 몸을 움직이자 여기저기 갈라진 저고리 속에서 육중한 가슴이 물결치듯 출렁인다.

"파사의 내단을 먹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보답은 충분히 하셨습니다."

요문천은 자기도 모르게 철접의 가슴을 훔쳐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하지만 내 마음은 편치가 않구나."

철접은 천독시균을 손에 든 채 한숨을 쉬었다.

"정 부담이 되신다면 이리 주십시오.“

!

요문천은 그런 철접에게 다가가 천독시균을 낚아챘다.

잘 생각했다.”

요문천이 천독시균을 낚아채자 철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사의 내단에다가 천독시균까지 복용하면 너는 어렵지 않게 천하무적이 될 수가...”

말하던 철접의 눈이 부릅떠졌다.

요문천이 손에 들고 있던 천독시균을 말하느라 벌어진 철접의 입에 재빨리 집어넣은 때문이다.

철접이 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천독시균은 그녀의 입 속으로 들어온 후였다.

철접은 입을 다무는 과정에서 천독시균의 얇은 껍질을 이빨로 깨물게 되었다.

그 즉시 천독시균 안에 들어있던 점액질의 내용물이 터져 나왔다.

입을 벌리게 되면 천독시균의 정수가 밖으로 쏟아지게 된다.

철접은 어쩔 수 없이 천독시균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서로 비긴 게 되었지요?”

이마를 살짝 찡그린 철접이 우물거리며 천독시균을 먹는 것을 보며 요문천은 싱긋 웃었다.

(정은 많고 욕심은 없는 아이다.)

철접은 그런 요문천을 보며 가슴 깊은 곳이 찌르르 울리는 것을 느꼈다.

태어날 때부터 냉혹비정한 성격의 인자로 키워진 철접이다.

그녀가 사내를 대상으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그래도 망설여지는 구석이 있었는데...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구나.)

철접은 무언가를 결심하며 천독시균을 껍질까지 모두 씹어서 삼켰다.

어떻습니까? 천독시균의 약효가 느껴지시는지요?”

요문천이 철접의 안색을 살피며 묻는다

파사의 내단도 그렇고... 천독시균 역시 약효를 온전히 흡수하려면 제대로 내공심법을 운용해야만 한다.”

철접이 소매로 입가를 조금 닦으며 말했다.

그럼 어서 운기조식 하셔서 천독시균의 약효를 흡수하십시오. 몸의 상처를 치료하시는 게 급선무이니...”

그래야겠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철접은 재촉하는 요문천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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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독왕(毒王)이 남긴 보물

 

 

 

종유석의 뒤쪽에는 또 다른 지하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앞쪽의 지하 광장에 비하면 작은 규모다.

또 빛을 뿜어낼만한 보물들이 없어서 어둑하다.

그 어둠 속에 거대한 뱀의 골격이 누워있다.

형태를 보면 분명 뱀의 것이다.

한데 죽 늘어선 갈비뼈 안쪽으로 사람이 서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스스스! 지지지!

몸길이가 끝이 안 보일 지경으로 긴 그 괴수의 시체에는 수많은 독충들이 달라붙어 있다.

(무슨 뱀의 골격이 이렇게 크단 말인가?!)

요문천이 어둑한 광장 안쪽을 기웃거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였다.

"저놈은 아마도 파사(巴蛇)일 것이다."

"파사!"

요문천은 놀라 철접을 돌아보았다.

"전설 속의 영웅 예(羿)가 죽였다는 그 거대한 뱀 말입니까? 코끼리도 한 입에 삼켰다는...?"

"그 옛날 후예(后羿)가 동정호(洞庭湖)에서 잡아 죽인 파사는 얼마나 컸는지 그 뼈를 모아놓은 것이 언덕이 되어 파릉(巴陵)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진짜 파사에 비하면 저놈은 아주 작은 축에 속할 것이다."

철접이 어둑한 지하 광장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파사는 용이 되다만 영물로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짐승의 왕이었다고 한다.

크기가 코끼리를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고 한다.

또 호풍환우(呼風喚雨)하는 신통력과 한번 뿜어내면 수십 리 안쪽의 모든 생명체를 죽일 수 있는 끔찍한 독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무시무시한 힘으로 파사는 용이 되지 못한 분풀이를 세상에 해대었다.

그 때문에 동정호 일대는 수시로 물난리가 났고 파사가 내뿜는 독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생명이 죽어갔다는 것이다.

보다 못한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천신(天神) 중 한명인 후예로 하여금 파사를 죽이게 했다 것이 전설의 내막이다.

후예의 아내가 달에 홀로 산다는 항아(姮娥).

 

키키키! 키키! 샤샤샥! 스르르!

철접이 연기를 뿜어내는 등을 들고 다가가자 파사의 뼈에 달라붙어 있던 독충들이 썰물처럼 어둠 속으로 달아난다.

독충들이 달아나면서 광장 바닥에 손바닥보다 큰 비늘들이 수없이 널려있는 게 드러난다.

금속인 듯 번쩍이는 그것들은 파사의 몸을 덮고 있었던 비늘이다.

강철보다 더 단단한 그 비늘 덕분에 인간의 힘으로는 파사를 죽이는 게 거의 불가능했었다.

이놈이 진짜 파사의 후손이라면 멀리 남쪽 동정호 근처에 살았을 텐데... 어떻게 멀고 추운 이곳 북경 근처까지 와서 죽은 것일까요?”

요문천은 철접의 뒤를 따라 두 번째 광장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내 생각으로는 갈태독이 이놈을 동정호에서 이곳으로 불러왔을 것이다. 시시각각 북경으로 육박해오는 주원장의 군세를 상대할 무기로 쓰기 위해서... 독왕보궁 일대에 서식하는 독충들은 갈태독이 기르던 것들일 테고...”

철접이 파사의 골격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요문천의 뇌리에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원나라 말엽에 조백하에 용이 나타났었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나라는 망하지 않을 거라고들 했지만 채 한 달이 못 되어 대장군 서달의 군세가 북경을 점령했지요.”

만일 이놈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걸 사람들이 보았다면 용이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철접은 등을 쳐들어서 무언가를 찾는 표정으로 파사의 골격 옆을 지나갔다.

(오래 살아 영통했을 터인 파사는 동정호에 살던 중 갈태독의 부름을 받고 장강(長江)을 따라 동해(東海)로 나갔다가 북상하여 북경 근처를 흐르는 조백하로 거슬러 올라왔을 것이다. 이 지하광장은 조백하와 연결되어 있을 게 분명하고...)

요문천도 고개를 끄덕이며 파사의 거대한 뼈 옆을 지나갔다.

"독왕보궁 근처에 사는 독충들이 유별나게 컸던 것은 파사의 시체를 뜯어먹은 때문일 것이다!"

철접은 말하면서 한쪽으로 걸어갔다.

"이곳의 독충들이 비정상적으로 큰 건 그렇게 밖에는 설명이 안되는군요."

요문천도 철접의 말에 동의했다.

(헌데 누가 이 엄청난 괴물을 죽인 것일까? 유력한 후보라면 사해무존 초패강이지만 그가 이무기나 대사(大蛇)를 죽였다는 얘기는 없는데...)

요문천이 파사의 사인(死因)에 대해 생각하며 갸웃거릴 때였다.

"네게 보여주려고 한 것은 파사의 골격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

철접이 어떤 종유석 앞에 멈춰서며 말했다

"... 시체로군요!"

멈춰선 철접 옆으로 다가간 요문천은 다시 한 번 놀라 침을 꼴깍 삼켰다.

철접이 보고 있는 종유석 아래쪽에는 한 구의 시신이 기대앉아 있다.

시신은 살이 독충들에게 뜯어 먹힌 듯 모두 사라져 뼈만 남은 상태였다.

헌데 기이하게도 남아있는 뼈가 온통 수북한 털로 뒤덮여있다.

골격으로 보아 체격이 그리 크지 않았던 인물일 것이다.

그 시체 옆에는 낡은 책 한권과 수없이 많은 마디로 이루어진 검은색의 채찍이 한 자루 놓여있다.

(사람의 뼈에서 털이 자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시신의 뼈가 털로 덮여있는 것을 본 요문천이 놀랄 때였다.

"이 시신의 주인이 누구일 것 같으냐?"

등을 바닥에 내려놓은 철접이 시신 옆 바닥에 떨어져 있는 두 가지 물건을 집어들며 물었다.

순간 요문천의 뇌리를 벼락같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천독친왕 갈태독? 사해무존에게 패해 중상을 입고 달아난 후 두 번 다시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그자의 유골입니까?"

"네가 직접 확인해봐라!"

철접은 흥분하여 묻는 요문천에게 바닥에서 집어든 두 가지 물건 중 낡은 책을 내밀었다.

그녀가 내미는 검은색의 책 표지에는 <九毒眞經 上篇>이라는 글이 적혀있는 게 요문천의 눈에 들어왔다.

(구독진경(九毒眞經) 상편(上篇)!)

요문천은 눈을 치뜨며 책을 받아들어 표지를 넘겨보았다.

표지 안쪽의 첫번째 장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필체의 글이 아래위로 적혀있다.

 

<구독신왕(九毒神王) 갈극(葛極)이 독문(毒門)의 영광을 위해 구독진경 상, 하편을 짓는다.>

 

이것이 상단에 적혀있는 글이다.

저주마경처럼 아주 오래전에 쓰여진 듯 서체가 전자체(篆字體).

(구독신왕 갈극? 이 이름도 처음 듣는 것인데...!)

요문천은 갸웃하며 아래쪽의 글을 읽었다.

 

<못난 후손 갈태독이 조사님의 보우하심 덕분에 구독진경 상, 하편 중 상편을 얻게 되었습니다. 조사님의 뜻을 받들어 우내사천과 다른 천외오패(天外五覇)를 세상에서 없이할 것을 맹세합니다.>

 

두 번째 글은 해서체(楷書體)로 적혀있는데 먹의 색이 선명하여 쓰여진 것이 아주 오래 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갈태독! 역시 저 해골은 천독친왕 갈태독의 것이었군요!"

두 번째 글을 읽은 요문천은 털로 뒤덮인 해골을 돌아보며 흥분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자세히 보니 해골은 오른쪽 팔이 팔꿈치 위에서 잘렸으며 가슴의 늑골들도 여러 개 잘려져 있다.

무언가 예리한 것이 해골의 팔과 가슴을 동시에 베어버린 형상이다.

해골의 주인은 바로 천독친왕 갈태독이었던 것이다.

(각기 한 시대를 호령했던, 그리고 서로를 죽고 죽인 사이인 사해무존 초패강과 천독친왕 갈태독이 지척에서 최후를 맞이했구나.)

해골이 된 시신이 갈태독의 것임을 확인한 요문천은 복잡한 심사가 되었다.

사해무존과 갈태독이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해무존에게 패해 치명상을 입은 갈태독은 이곳 독왕보궁에 숨어서 상처를 치료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을 것이다."

철접이 구독진경과 함께 집어든 검은색의 채찍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그럼 그 채찍이 바로...!"

요문천은 놀라 눈을 치뜨며 철접의 손에 들린 채찍을 바라보았다.

"갈태독의 애병인 묵린천독편(墨鱗千毒鞭)이다. 듣기로는 한번 휘둘러지면 어떤 호신강기라도 촛농처럼 녹여버렸다는구나."

철접은 말하며 검은색의 채찍, 묵린천독편을 요문천에게 내밀었다.

 

묵린천독편은 이무기의 비늘을 천 가지 독()에 담가 만든 채찍디.

내공을 주입시키면 멸절독강(滅絶毒罡)이라는 무시무시한 독기가 뿜어져 나간다.

묵린천독편에서 뿜어지는 멸절독강의 위력은 실로 가공하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철벽을 녹여 버릴 정도라고 한다.

오십이 년 전, 사해무존 초패강이 지옥교를 들고 나타나기 전까지는 세상 그 어떤 신병이기도 묵린천독편에 맞설 수 없었다.

사실 묵린천독편과 지옥교는 모두 고금십병(古今十兵)에 드는 무서운 병기들이었다.

경륜이 일천한 요문천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독왕보궁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찾은 건 너다. 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이유다.”

철접은 묵린천독편을 요문천에게 내밀며 말했다.

"묵린천독편은 필요 없습니다. 전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요문천은 허리에 차고 있는 지옥교를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묵린천독편은 내가 잠시 보관하도록 하마!"

요문천이 사양하자 철접은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따라 오너라!"

그녀는 묵린천독편을 둘둘 말아 쥐며 파사의 골격쪽으로 걸어갔다.

요문천도 구독진경 상편을 품속에 넣으며 철접을 따라서 파사의 뼈 안으로 들어갔다.

 

파사의 골격은 워낙 커서 철접과 요문천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골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찌찌찌! 스스스!

철접이 둘둘 말아 쥔 묵린천독편을 앞으로 내민 채 다가가자 파사의 골격에 달라붙어 있던 독충들이 기겁하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묵린천독편에 농축되어있는 독기가 워낙 강해서 독물들도 두려워하는구나!)

요문천이 그것을 보며 생각하며 따라갈 때였다.

"여길 봐라!"

이윽고 파사의 목 부분에 이른 철접이 묵린천독편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요문천이 올려다보니 그 부분의 뼈가 마치 촛농처럼 녹아있다.

"파사의 목 부분 뼈가 녹아있군요! 저 상처는 혹시...!"

"묵린천독편에 당했을 것이다!"

요문천의 말에 철접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사를 죽인 게 다른 사람도 아닌 갈태독이었군요. 헌데 갈태독은 어째서 수천 리 밖에서 자신을 찾아온 이 영물을 죽인 걸까요?"

"파사는 몸 속에 한 가지 보물을 품고 있었다. 그걸 빼앗아 복용하면 사해무존의 검기에 심장이 갈라지는 중상을 입었던 갈태독도 기사회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철접은 요문천의 물음에 대답하며 다시 돌아섰다.

"갈태독이 독왕보궁으로 숨어들어온 이유가 단지 몸을 숨기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철접을 따라가며 요문천은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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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둠 속에서의 설렘

 

 

 

(이런...)

박속같이 하얀 철접의 둔부를 본 요문천은 숨이 턱 막혔다.

충격이 너무 커서 귀가 먹먹하고 눈앞이 아찔해진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철접은 허리를 숙인 채 표창을 회수하고 있다.

너무도 자극적인 그 모습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

갑자기 철접이 왼쪽 발로 바닥을 세차게 밟아서 요문천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콰직! 끼이익!

뭔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비명이 터진다.

!”

요문천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가죽신을 신은 철접의 왼쪽 발에 손바닥만한 전갈이 으스러진 채 바들바들 떨고 있다.

그 전갈은 몰래 다가와 철접의 발목에 독침을 쏘려다가 밟혀 죽은 것이다.

우지직!

밟았다가 옆으로 문지르는 철접의 가죽신 아래쪽에서 전갈의 몸통이 완전히 으스러진다.

(과연 인자로구나. 여자면서도 독충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걸 보면...!)

요문천은 무심히 전갈을 밟아 으스러트리는 철접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와 함께 철접이 신고 있는 가죽신의 바닥에 강철같이 단단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이곳에 출몰하는 독충들은 비정상적으로 거대하다. 그렇다는 건 아주 오래 산 놈들이라는 얘기가 되는데...!)

요문천은 혼미해진 정신을 수습하며 주변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 사이에 철접은 표창들을 모두 회수했다.

"내 뒤를 바싹 따라 오너라! 세 걸음 이상 뒤처지면 안된다."

표창에 묻은 독충들이 체액을 옷깃에 닦으며 철접은 걸음을 옮겼다.

...!”

요문천은 대답하며 급히 철접을 따라붙었다.

한 걸음이 채 안되게 다가서자 향긋한 내음이 요문천의 코를 간지럽힌다.

"어쩌면 오늘 오랜 세월 사람들이 목매며 찾던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표창을 챙긴 철접은 다른 것을 꺼냈다.

작은 가죽 주머니였다.

요문천이 약을 찾기 위해 그녀의 품속에서 찾았던 큰 주머니에 들어있던 작은 주머니들 중 하나다.

(사람들이 목매며 찾던 것? 설마 갈태독의 보물창고가 이 앞쪽에 있단 말인가?)

요문천이 흠칫할 때였다.

물론 그 전에 귀찮은 놈들을 쫓아버려야겠지.”

작은 주머니를 꺼내든 철접이 고개 짓으로 앞쪽을 가리켯다.

!”

고개를 옆으로 빼서 철접의 앞쪽을 보던 요문천은 기겁했다.

츠으! 츠으!

철접 앞 쪽 어둠 속에 수많은 불빛이 번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두운 밤에 반딧불이가 떠있는 것같은 광경이다.

그때 철접이 왼손에 들고 있는 등을 높이 쳐들었다.

화악!

그와 함께 철접이 쳐든 등의 불빛이 갑자기 몇 배로 밝아진다.

그 등에는 요문천이 알지 못했던, 불빛을 조절하는 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몇 배로 밝아진 등의 불빛으로 인해 통로 앞쪽의 상황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 맙소사!)

순간 요문천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며 눈을 부릅떴다.

한낮의 태양인 듯 밝아진 등의 불빛에 의해 드러난 앞쪽의 통로를 수많은 벌레가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갈, 지네, 거미, 갑충, 그리고 이름 모를 기괴한 벌레들...

통로의 좌우 벽과 천장, 바닥이 온갖 종류의 벌레들로 뒤덮여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치명적인 독을 머금고 있는 독충들이다.

등의 불빛이 밝아지기 전에 요문천이 보았던 수많은 반딧불같은 것들은 그 독충들의 눈빛이었던 것이다.

(여긴 완전히 독충들의 소굴이로구나. 아까 들었던 모래가 흐르는 듯한 소리는 저놈들이 움직이면서 내는 것이었고...!)

요문천은 진저리를 치며 허리띠에 꽂고 있는 지옥교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여차하면 뽑을 생각이었다.

철접은 품속에서 꺼낸 작은 주머니의 입구를 묶고 있는 끈을 이빨로 끊어서 열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고운 가루를 왼손으로 들고 있는 등의 위쪽에 나있는 구멍으로 솔솔 부어넣었다.

화악!

순간 등에서 대량의 연기가 일어나 주변을 뒤덮었다.

콜록!”

갑자기 퍼지는 연기를 들이마신 요문천은 세차게 기침을 했다.

사람에게는 그리 해롭지 않은 연기이니 마셔도 된다.”

철접은 연기를 연막처럼 뿜어내는 등을 들고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미리 경고를 좀 해주지 않고...)

요문천은 콜록거리며 철접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끼익! ! 사사삭! 츠츠츠!

연기가 퍼지자 통로의 사방 벽을 뒤덮고 있던 독충들이 질겁하며 안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등에서 뿜어지는 이 연기에 독충들을 쫓는 효과가 있구나!)

요문천은 놀라면서도 안도하며 철접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슈욱! !

그러는 사이에도 등에서는 연기가 확확 뿜어져 나왔다.

그 연기는 독충들을 앞쪽으로 달아나게 만들고 있다.

(온갖 악조건 하에서 임무를 수행해하는 인자답게 독충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독충들이 지키고 있는 이 통로를 살아서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문천은 새삼 감탄하며 철접의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철접의 뒷모습을 보며 걸어갔을까?

갑자기 앞서 가던 철접이 걸음을 멈췄다.

요문천은 철접이 멈출 것을 예상하지 못했었다.

또 거리가 가까웠던 탓에 요문천은 얼굴을 철접의 등에 처박고 말았다.

"어이쿠!"

철접의 키가 요문천보다 반 뼘 쯤 더 큰 탓에 얼굴이 그녀의 등에 부딪힌 것이다.

요문천은 허우적거리다가 본능적으로 철접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철접을 뒤에서 끌어안은 요문천의 양손에 부드럽고 탄력이 넘치는 살덩이들이 와락 움켜쥐어진다.

요문천은 자기도 모르게 철접의 가슴을 뒤에서 움켜쥔 자세가 된 것이다.

요문천의 양손이 자신의 가슴을 뒤에서 움켜쥐었으나 철접은 한 차례 움찔 했을 뿐 가만히 서있었다.

(이크!)

요문천은 기겁하면서도 즉시 손을 철접의 가슴에서 떼지는 못했다.

크기는 유모 섭대낭의 것보다 작지만 탄력은 비교할 수도 없이 좋은 살덩이들이다.

그 황홀한 감촉에 요문천은 자신이 친하지도 않은 여자에게 무례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잠시 망각했다.

심지어 요문천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직여서 철접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탱탱한 감촉,

양지유(羊脂油)를 굳힌 듯 매끄러운 그것들은 요문천으로 하여금 언제까지라도 만지고 싶게 만든다.

(이렇게... 이렇게 감촉이 좋다니...)

요문천은 황홀경에 빠져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잠시 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주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사실은 숨 몇 번 쉰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목적지에 온 것같다.”

철접이 나직하게 말하며 앞으로 움직였다.

그 바람에 자연스럽게 요문천의 두 손은 철접의 가슴에서 떨어졌다.

"... 죄송합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요문천은 얼굴이 벌개져서 철접에게 사과했다.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새삼스럽긴... 금창약을 발라주느라 내 몸을 구석구석 만지지 않았느냐?"

걸음을 옮기는 철접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며 등을 높이 쳐들었다.

요문천은 철접이 화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했다.

"... 그렇긴 하지만... !"

그래도 사과를 하려던 요문천은 흠칫 하며 앞쪽을 보았다.

철접이 높이 쳐드는 등의 불빛에 의해 앞쪽 삼, 사장 쯤에 육중한 철문이 서있는 것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철문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빛을 내며 번들거린다.

지하 밀로에 가득 찬 습기에 전혀 훼손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철문의 재질이 부식에 강한 합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두 쪽으로 이루어진 철문은 약간 열려있다.

쏴아아!

그 열린 틈으로 지하 통로를 메우고 있던 수많은 독충들이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고 있다.

츠츠츠!

그와 함께 조금 열려진 철문 틈으로 오색(五色)의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다.

아주 강한 빛은 아니지만 영롱하기 이를 데 없는 빛이다.

(저 빛은 보광(寶光)이다!)

요문천의 눈이 흥분으로 치떠졌다.

조금 열려져 있는 철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영롱한 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 때문이다.

그긍!

그 사이에 철접은 철문 중 한쪽을 오른손으로 밀며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화악!

철접의 손에 의해 철문이 활짝 열리면서 안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롱한 빛이 더 강렬해졌다.

(틀림없다! 저 철문 안쪽이 지난 오십여 년동안 누구도 찾지 못했다는 천독친왕 갈태독의 보물창고다.)

요문천은 흥분을 금치 못하며 서둘러 철접의 뒤를 따라 철문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

그리고 철문 안쪽으로 들어서는 순간 요문천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철접이 밀고 들어간 철문의 안쪽은 건너편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지하 광장이다.

지하 광장의 도처에는 기기묘묘한 종유석과 석순들이 늘어서서 높은 천장을 떠받히고 있다.

지하광장은 원래 천연의 동굴이었던 것이다.

족히 수천 평은 됨직한 그 넓은 지하광장에 산더미같은 보물들이 쌓여있다.

벽돌크기만한 금괴와 은괴가 마치 성벽이나 건물처럼 여기저기 쌓여있다.

금괴와 은괴들이 쌓여있는 사이의 공간을 보석과 골동품, 진귀한 그림, 명장이 만든 공예품등 진기한 물건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특히 광장 중앙에는 온갖 종류의 보석들이 사람 키만한 금제 항아리들 수십 개에 담겨진 채 영롱한 빛을 뿜어내기도 한다.

요문천이 철문 밖에서 본 보광은 그 보석들이 뿜어내는 것이었다.

부족함이 없이 자란 탓에 재물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스스로 믿어왔던 요문천이다.

"이건... 이건...!"

그런 그였건만 입을 쩍 벌린 채 헐떡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요문천의 눈앞에 있는 보물의 산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인 것이다.

"천독친왕 갈태독의 보물에 대해서는 바다 건너에서 살던 나조차도 알고 있었다. 여기가 아마 갈태독이 비밀리에 세웠다는 독왕보궁(毒王寶宮)일 것이다."

철접은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 전설은 사실이었구나! 갈태독이 원나라 황실을 등에 업고 마구잡이로 긁어모은 재보가 수억만 냥에 이르러 천하의 절반을 사고도 남는다는...)

철접을 따라가며 요문천은 넋이 나가 주변에 쌓여있는 보물의 산들을 돌아보았다.

아마 당금의 명 황실 재산도 이곳에 쌓여있는 재보의 가치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리 와 봐라!"

그때 앞 서 간 철접이 돌아보며 요문천을 불렀다.

그녀는 보물들의 산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한 굵은 종유석 옆에 서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소저?"

요문천은 서둘러 철접에게 다가갔다.

철접은 요문천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말없이 종유석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맙소사!"

철접이 가리킨 곳을 반사적으로 돌아보던 요문천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과연 그곳에는 또 어떤 놀라운 게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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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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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미궁(迷宮)의 비밀

 

 

 

<노부는 누구보다도 옥사후, 그놈을 잘 안다.

옥사후는 절대 혼자만의 판단으로 노부에 대한 독살을 시도할 수 있을 만큼 배포가 큰 놈이 못 된다.

무엇보다도 옥사후에게 강력한 무공을 지닌 조력자가 있었다는 게 그놈이 다른 인간에게 사주를 받은 확실한 증거다.

무존성을 떠난 직후 정체불명의 인간들이 노부를 공격해왔던 것이다.

비록 노부의 손에 모두 죽기는 했지만 그자들의 무공은 기괴하면서도 위력적이었다.

당금 무림에 존재하는 무공다운 무공은 대부분 파악하고 있는 노부건만 놈들의 무공은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다.

이로 미루어 보건 데 놈들은 우내사천의 후손들일 가능성이 높다.>

 

사해무존의 죽음에도 우내사천이 관련되어 있단 말인가?”

긁을 읽던 요문천은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득한 옛날 옥문관 밖 서역에 자리한 지옥성이라는 문파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것은 우내사천이라는 인물들이었다.

헌데 지옥성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사해무존 초패강을 공격한 자들 역시 우내사천의 후손일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다.

 

<무존성이 자리한 황산에서 이곳 북경까지 오는 동안 노부는 정체불명의 적들로부터 끊임없이 습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노부는 놈들이 옥사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습격한 자들의 대부분은 노부의 손에 죽었지만 그 대가로 노부 역시 회생불능의 지경에 이르렀다.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무리하게 공력을 쓰는 바람에 만성독약의 독성이 급격히 온몸으로 퍼져간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천독친왕부의 폐허에 도착한 노부는 오십여 년 전에 파악해두었던 비밀통로를 통해 갈태독의 보물창고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 사이에 독은 골수(骨髓)에까지 퍼져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

만일 누군가 이글을 본다면... 무존성에서 노부를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딸에게 흉수가 옥사후라는 사실을...>

 

글은 그렇게 끝이 나있었다.

사해무존 초패강은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독기가 골수에 미쳐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이분은 옥면환룡의 배후에 우내사천의 후손들이 있을 것임을 확신하고 죽었다.)

저주마경에 적힌 글을 모두 읽은 요문천은 고개를 들어 사해무존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결국 얘기는 돌고 돌아서 우내사천으로 돌아가는구나. 지옥성이란 문파를 멸망시킨 것도 우내사천이고, 그 지옥성의 절기를 얻어 천하제일인이 된 사해무존 초패강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배후도 우내사천의 후손들인 듯하니...!)

어느덧 요문천의 마음속에도 우내사천이라는 존재가 거대한 바위처럼 들어차게 되었다.

(어쩌면 강호무림을 암중에서 지배하고 있는 것도 우내사천의 후손들일지 모르겠구나!)

요문천이 저주마경을 덮으며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

갑자기 요문천의 왼쪽 다리 옆의 바닥에 뾰족한 날이 네 개 달린 얇은 표창이 날아와 박혔다

!”

깜짝 놀라 돌아보는 요문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끼기!

손바닥만한 크기의 시커먼 전갈이 뒤쪽에서 날아든 표창에 등이 찍힌 채 버둥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갈은 요문천의 다리 바로 옆에까지 다가왔다가 표창에 꽂혔다.

하마터면 요문천을 독침으로 찌를 뻔했던 상황이었다.

(전갈!)

요문천이 기겁하며 벌떡 일어날 때였다.

"조심해야한다. 이렇게 덥고 습기 찬 곳은 전갈 같은 독충(毒蟲)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니...!"

요문천이 지나온 쪽의 어둑한 통로로 어떤 여자가 말하며 다가왔다.

스윽!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여자는 물론 철접이었다.

(...)

헌데 그녀의 복장이 요문천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철접은 하의는 입지 않고 상체에 저고리만 걸치고 있는 것이다!

허리띠를 매고 있는 저고리의 하단이 엉덩이와 사타구니까지는 가리고는 있다.

하지만 그 아래로는 튼실하면서도 미끈한 다리는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발에는 버선과 가죽신을 신고 있고...

요문천은 철접이 속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저고리의 아랫단이 조금이라도 들쳐지면 은밀한 부분이 무방비로 드러나는 차림인 것이다.

그와 함께 요문천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저주마경에 적혀있는 세 가지 절세무공의 비결을 집중하여 읽느라 거의 반 시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 몸은 좀 어떠십니까?”

요문천은 저고리의 아래쪽으로 드러나 보이는 철접의 희고도 미끈한 다리를 곁눈질로 훔쳐보며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졌다. 네게 또 한 번 신세를 졌구나!"

철접은 한숨을 쉬며 요문천에게 고개를 조금 숙여보였다.

실제로 그녀의 몸에서는 더 이상 출혈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요문천이 발라준 금창약에 아주 빠르게 지혈이 이루어지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 것이다.

물론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지만...

"거듭 입은 은혜는 꼭 갚도록 하마!"

철접이 애잔한 표정으로 요문천을 보며 말했다.

인자답게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던 철접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표정이 떠오르자 요문천은 가슴이 찌릿한 자극을 받았다.

인형같이 느껴지던 그녀가 비로소 피가 흐르는 여자로 느껴진 때문이다.

"... 마땅히 도와드렸어야하는 상황이었으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요문천은 걷잡을 수 없이 뛰는 심장을 애써 누르며 두 손을 마주 쥐어 포권을 했다.

"늦었지만 동생 분의 일은 유감입니다.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요문천은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로의 운명이 그렇게 정해진 것을 어찌하겠느냐?"

철접도 우울하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여서 답례를 했다.

그와 함께 내려 까는 철접의 눈가로 눈물이 맺히는 것이 언듯 요문천의 시야에 들어왔다.

(애처롭다.)

철접의 눈물을 본 요문천은 가슴 깊은 곳이 찌르르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작은 표정, 감정의 변화등이 어째서 이렇게 강렬하게 느껴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요문천이었다.

(그나저나 뭐가 급해서 하체는 벌거벗은 차림으로 온 것일까? 치마가 찢어지고 피로 물들긴 했어도 못 입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문천은 치마를 입지 않아서 그대로 드러난 철접의 미끈한 다리를 곁눈질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앞으로 어찌하실 계획인지요?"

그러면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글쎄다!"

요문천의 물음에 철접은 힘없이 웃었다.

"청부받은 일을 실패했으니 막북의 토곤에게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도 이젠 내게 없구나!"

철접은 천장을 보며 처연하게 웃었다.

"아무리 비정하고 냉혹한 인자로 길러져온 나라고 해도 일단 첫 시도에서 실패한 자살을 다시 하기는 쉽지 않단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철접의 눈가로 눈물이 비치는 게 요문천의 눈에 들어온다.

"자살이란 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요문천은 어색하게 웃으며 철접의 말에 동조했다.

"세상은 넓고 넓지만 내가 돌아가고 속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얘기지!"

철접은 눈 꼬리에 맺히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면서 처연하게 웃었다.

(너무도 가엾다.)

철접의 모습의 요문천은 가슴 깊은 곳이 다시 한 번 찌르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저 여자의 외로움과 비애가 내 일처럼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런 감정은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것인데...!)

그런 요문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접은 우울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여서 전갈을 찔러 죽인 표창을 회수했다.

철접이 몸을 숙이자 저고리 사이로 묵직한 가슴이 출렁이는 모습이 들여다보여 요문천의 입속을 마르게 한다.

"내가 아는 바가 정확하다면... 난 너보다 열 살 연상이다."

철접은 표창에 묻은 전갈의 흔적을 옷깃에 닦으며 말했다.

(그렇게까지는 안 봤는데... 이 여자 벌써 서른 살이 다 되어가는구나!)

요문천은 철접의 나이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한 두 살 차이도 아니니 앞으로도 계속 말을 놔도 되겠지?"

철접은 그런 요문천을 지긋이 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편하신 대로 부르십시오."

요문천은 얼굴이 좀 붉어지며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우선은 여길 더 살펴볼...!"

말하던 철접이 이마를 살짝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무언가에 귀를 기울였다

"왜 그러십니까?"

그 모습에 요문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도 귀를 기울여 봐라!"

철접이 손가락으로 어둑한 통로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요문천은 저주마경을 들지 않은 왼손을 귀에 대고 철접이 가리키는 쪽으로 청각을 집중했다

사락! 사락! 사각!

그러자 무언가 흐르는 듯한 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이건...!"

요문천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모래가 흘러가는 듯한 소리로 들립니다만... 썩 기분이 좋은 소리는 아니군요."

"같이 가보자!"

요문천의 말에 철접이 그때까지 지옥교의 손잡이에 걸려있던 등을 떼어 들고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

요문천은 대답하며 급히 저주마경을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사해무존의 시신이 두르고 있는 허리띠에서 빈 칼집을 뽑아내었다.

칼집은 전체가 금속으로 이루어진 듯 상당히 묵직하다.

요문천은 그때까지 바닥에 꽂아놓았던 지옥교를 뽑아서 그 칼집에 꽂았다.

철컥!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지옥교는 칼집 속으로 정확하게 채워지며 들어갔다.

(역시 이게 지옥교 전용의 칼집이었구나!)

요문천은 칼집에 넣은 지옥교를 자신의 허리띠에 끼웠다.

"부디 영면하시기를... 초노사의 사인은 무존성에 분명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어 그는 사해무존 초패강의 시신에 대고 정중하게 포권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서둘러 철접이 앞서 간 쪽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는 요문천의 앞쪽에 철접이 등을 왼손으로 쳐들어서 앞쪽을 비추며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철접이 상체에 걸치고 있는 저고리는 대부분이 피로 물들어 있어 어두운 색조를 띄고 있다.

또 긴 머리카락이 등 뒤로 흘러내려 뽀얗던 목덜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철접의 상체는 어둠에 동화되어 그 형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옷을 걸치지 않은 하체는 흐릿한 등불에 비쳐져서 뚜렷하게 부각되어 보인다.

(마치 아랫도리만 있는 여자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같다.)

요문천은 침을 꿀꺽 삼키며 종종 걸음으로 철접의 뒤를 따라갔다.

그때 앞서가던 철접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요문천이 철접 바로 뒤에 멈춰서며 물을 때였다.

피핑!

철접은 대답하지 않고 앞쪽의 어둠 속을 향해 오른손을 저었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 틈엔지 네 개의 뿔이 달린 얇은 표창이 몇 개 쥐어져 있다가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 끼익! 빠카캉! !

어둠 속에서 불똥이 튀면서 무언가 비명을 지른다

(또 전갈인가?)

요문천이 흠칫 놀랄 때 멈춰서있던 철접이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삼장 정도 앞쪽의 통로 여기저기에 표창들이 박혀있다.

전갈과 커다란 지네, 거미등이 그 표창에 꽂혀 벌벌 떨고 있다.

독충들은 모두 비정상적으로 커서 손바닥만하다.

전갈과 지네, 거미등이 그렇게 크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는 요문천이다.

(이 안의 독충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저렇게 큰 것일까?)

요문천이 놀라며 기웃거릴 때였다.

앞서가던 철접이 허리를 숙여서 독충들의 몸에 박힌 표창을 다시 회수하기 시작했다.

(으헉!)

순간 요문천은 심장이 그대로 멈춰버리는 듯한 충격을 받고 눈을 부릅떴다.

철접이 허리를 숙이는 바람에 저고리가 위로 딸려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달덩이같은 둔부가 요문천의 시야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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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가죽(人皮)으로 만든 비급(秘笈)

 

 

 

<본성의 형제들이 사력을 다해 맞섰으나 중과부적! 우내사천과 그놈들이 이끌고 온 중원 무림의 인간들에게 본성의 식솔들은 몰살당했으며 오직 노부와 노부의 애첩 혈미인(血美人)만이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도 내상이 깊어 곧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위대한 지옥일맥(地獄一脈)의 멸망을 의미하고...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하여 노부는 애첩 혈미인을 죽여 그녀의 살가죽에 본성의 비전절기들을 기록하게 되었다. 달리 절기들을 적어 놓을만한 재료가 없어서...>

 

"... 인피(人皮)!"

털썩!

요문천은 기겁하며 들고 있던 저주마경을 떨어트리면서 뒤로 주저앉았다.

그는 비로소 저주마경의 재질이 지나치게 부드럽고 촉감이 이상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으으으! ... 저 책이 사... 사람 가죽으로 지어진 것이었다니... 그것도 여자의 살가죽으로..."

요문천은 덜덜 떨면서 바닥에 떨어트린 비급을 곁눈질로 보았다.

설마 사람 가죽으로 지은 책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요문천이었다.

(자신의 애첩을 죽여 그 살가죽으로 책을 만들다니... 너무도 끔찍한 일이긴 하지만 일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요문천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저주마경을 곁눈질했다.

(문파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비전의 절기를 남겨야하는데 기록할 수단은 없고... 그래서 어차피 죽게 된 애첩을 미리 죽여서 그 살가죽으로 책을 엮었구나. 먹물 대신 피를 뽑아내어 글을 썼을 테고...)

요문천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한 후 떨리는 손을 저주마경 쪽으로 뻗었다.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물건이지만 버릴 수도 없다. 끝까지 한 번 읽어나 보자!)

그리고는 용기를 내서 집어든 저주마경을 다시 펼쳤다

 

<노부는 우내사천 중 만겁마종(萬劫魔宗)이 날린 단맥마장(斷脈魔掌)에 맞아 온몸의 경맥이 끊어진 상태라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본래 우리 지옥성에는 지옥십결(地獄十訣)이라는 열 가지 절기가 있지만 죽기 전에 그것들을 다 적을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아무쪼록 저주마경을 얻은 그대가 우내사천의 후손들을 꺾어 우리 지옥일맥(地獄一脈)의 절기가 결코 우내사천의 잡기(雜技)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길 바란다!

지옥검조 하륜이 죽어가며 적는다.>

 

표지 안쪽 첫 번째 지면의 글을 그렇게 끝이 났다.

그 다음 지면부터 아주 난해하고 기괴한 무공비결들이 적혀있었다.

상대방의 공격을 세 배의 힘으로 돌려보내는 호신무공 저주마벽(詛呪魔壁),

철벽도 모래처럼 으깨버리는 지옥장강(地獄掌罡),

마검 지옥교의 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검법 마검팔식(魔劍八式)...

하지만 저주마경에 기록되어 있는 무공은 그 세 가지가 전부였다.

또한 저주마경 전체 지면중 절반 이상이 빈 상태로 남아있었다.

스스로 우려했던 대로 지옥검조 하륜은 지옥십결이라는 지옥성의 열 가지 절기 중 단 세 가지만을 기록한 후 절명했던 것이다.

(유감이로구나. 지옥십결이라는 무공들 중 일곱 가지가 영영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으니...)

요문천은 아쉬운 마음에 비어있는 지면을 넘겨보았다.

저주마벽, 지옥장장, 마검팔식등의 무공비결을 읽는 동안 어느덧 저주마경이 사람의 가죽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진 상태였다.

(글이 또 있다!)

헌데 저주마경의 맨 뒤쪽 지면을 펼쳐보던 요문천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그곳에 또 다른 글이 어지러운 필체로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맨 뒷장에 적힌 이 글은 지옥검조가 남긴 것이 아니다!)

요문천은 한눈에 그 글이 지옥검조의 필체가 아님을 알아보았다.

글은 전자체가 아닌 초서체(草書體)로 적혀있으며 급히 휘갈겨 쓴 듯 글씨의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또 지옥검조처럼 먹물 대신 피로 글을 썼다.

지옥검조가 남긴 글이 아주 검은 것에 반해 맨 뒷장에 적힌 글은 아직 붉은 기운이 남아있다.

그것은 그 글들이 적힌 것이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님을 뜻한다.

 

<노부의 이름은 초패강(楚覇强)이다. 홍무(洪武) 폐하로부터 사해무존(四海武尊)이라는 과분한 별호를 하사받았던 어리석은 인간이 사람을 잘못 본 대가로 비참하게 죽어가며 이 글을 남긴다.>

 

글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사해무존 초패강!"

그리고 그 글을 읽은 요문천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맙소사! 저 시신이 지난 오십여 년간 무림을 지배해온 무존성(武尊城)의 성주 사해무존의 것이었다니...!"

요문천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자신의 앞쪽 석벽에 기댄 자세로 죽어있는 시체를 돌아보았다.

 

-사해무존 초패강!

 

그는 바로 오십이 년 전 천독친왕 갈태독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젊은 검객이었다.

출신이 비밀에 쌓인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주원장을 찾아와 몽고족을 중원에서 몰아내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었다.

비록 약관을 갓 넘긴 애송이였으나 초패강은 이름에 걸맞게 경이적인 무공을 지녔다.

주원장의 휘하에 운집했던 그 어떤 무림 고수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에 만족한 주원장은 초패강을 최일선에서 원나라의 군세를 상대하고 있는 대장군(大將軍) 서달에게 보냈다.

서달은 자타가 공인하는 주원장 막하(幕下)의 최고 명장이다.

당연히 언제 자객이 그의 목숨을 노릴지 모른다.

그리고 주원장의 선견지명대로 원나라 측의 최고 고수인 천독친왕 갈태독이 서달을 암살하기 위해 그의 군막을 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후의 경과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대로다.

그 이전까지 누구도 막지 못했던 갈태독의 독공이건만 초패강이 일으킨 저주마벽은 뚫지 못했다.

오히려 초패강이 지옥교로 구사한 마검팔식에 갈태독은 치명상을 입고 도주했다.

갈태독의 기습에서 서달을 지켜준 이후로도 초패강은 수다한 전공을 세웠다.

서달과 함께 만리장성을 넘어 몽고족의 근거지로 쳐들어가서 원나라 황실이 동원한 무수한 고수들을 베어 넘긴 것이다.

만일 초패강의 활약이 없었다면 명나라 측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 자명했다.

특히 서달은 몽고족이 동원한 자객들의 손에 결국 쓰러졌을 것이다.

서달은 고비사막의 깊은 곳까지 원나라 황실을 추격하여 분쇄함으로서 몽고족으로 하여금 다시는 중원 정복을 도모하지 못하게 만들었었다.

서달이 원나라 황실의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던 데에는 초패강의 조력과 활약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와같은 혁혁한 전공에 보답하기 위해 주원장은 초패강에게 사해무존이라는 별호를 내려주었다.

사해(四海), 즉 천하에서 으뜸가는 무()의 지존(至尊)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뿐만 아니라 주원장은 초패강에게 무림에 속한 모든 인간들에 대한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까지 부여했다.

초패강의 애검인 지옥교가 어떤 인간을 죽이든 그 죄를 묻지 않겠다는 칙령(勅令)을 내린 것이다.

사실상 초패강을 무림의 주인, 무림왕(武林王)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후 초패강은 주원장의 권유도 있고 해서 황산(黃山)에 무존성(武尊城)을 세우고 무림의 대소사를 관장하기 시작했다.

명나라 황실의 전폭적인 지지도 있었던 탓에 무림인들은 초패강과 그가 세운 무존성의 종주권(宗主權)을 인정하게 되었다.

일반 백성들에게 황실이 존엄한 존재인 것처럼 무림인들에게는 무존성이 자신들의 주인이며 지배자인 것이다.

 

이게...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강호 무림의 주인인 사해무존 초패강이 천독친왕부의 지하에서 시신이 되어있다니...”

요문천은 경악과 충격으로 전율하며 자신의 눈앞에 앉아있는 시체, 사해무존 초패강을 살펴보았다.

사해무존 초패강이 어떤 인물인가?

무림의 주인이고 제왕이 아닌가?

자연히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든 무림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문천이 알기로 사해무존의 신상에 변고가 생겼다는 징후는 전혀 없었다.

(무존성에 뭔가 불길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강호 무림뿐만 아니라 황실까지도 뒤흔들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음모가...!)

요문천은 흥분을 금치 못하며 다시 저주마경의 마지막 장에 적혀있는 글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 사해무존 초패강의 사문내력은 밝혀진 바가 전혀 없었는데... 그는 지옥성이라는 고대의 문파에서 유래한 지옥교와 저주마경을 얻어서 천하제일인이 되었구나!)

요문천은 지옥교의 손잡이에 걸어놓은 등불에 비춰서 글을 읽어 내려갔다.

 

<노부를 죽게 만든 범인은 통탄스럽게도 둘째 제자인 옥면환룡(玉面幻龍) 옥사후(玉獅吼)란 놈이다. 그 놈이 오래전부터 만성독약(慢性毒藥)을 음식에 조금씩 넣어 노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놈은 아마도 무존성의 성주 자리를 노리고 이같은 패륜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범인이 둘째 제자라고?"

글을 읽어 내려가며 요문천은 경악과 함께 분노를 금치 못했다.

"세상 말세로구나. 제자가 스승을 독살하기까지 하다니...!"

그와 함께 요문천은 살이 썩으며 드러난 사해무존 초패강의 뼈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조금씩 사해무존의 몸에 축적된 만성독약 때문에 그의 뼈가 푸른 빛을 띠게 된 것이다.

요문천은 놀란 마음을 갈아 앉히려 애쓰면서 글의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절명하기 전까지 시간이 많지 않았던 듯 초패강이 남긴 글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만성독약에 중독된 사실을 알아차린 노부는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고 무존성을 떠나 이곳 천독친왕부를 찾아왔다.

노부가 중독된 만성독약의 독성은 아주 지독해서 천독친왕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갈태독의 독경(毒經)을 얻어야만 해독이 가능할 것같았기 때문이다.>

 

이어진 글에는 사해무존이 천독친왕부의 지하에서 죽은 이유가 적혀 있었다.

사해무존은 천하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심후한 내공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성독약의 독기를 몰아낼 수는 없었다.

이에 사해무존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천독친왕부를 찾아왔다.

갈태독이 남긴 독경을 손에 넣으면 어떤 극독이라도 해독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사해무존은 자신이 중독당한 사실과 천독친왕부로 갈태독의 독경을 찾으러 간다는 사실을 수십 년간 살을 맞대고 살아온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무림의 주인이며 천하제일인임을 자처해온 처지에 남의 독수에 어이없이 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실토하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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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체가 남긴 기연(奇緣)

 

 

 

어둠 속에 끝이 없을 듯 이어진 통로의 대부분은 두꺼운 이끼로 뒤덮여 있다.

바로 근처에 조백하가 흐르는 탓에 사시사철 습한 때문일 것이다.

(습할 뿐 아니라 상당히 덥기도 하다. 지하라면 당연히 서늘해야하는데...)

요문천은 등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북경은 중원의 동북쪽 끝에 자리한 탓에 겨울이면 추위가 매섭다.

설령 계절이 여름이라 해도 깊은 지하는 서늘해야 정상이다.

헌데 요문천이 지금 걸어가는 지하의 통로는 습기로 가득 차있을 뿐 아니라 상당히 덥기까지 하다.

이끼가 무성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아마 지하의 깊지 않은 곳으로 화맥(火脈)이 지나가는 때문일 것이다.)

바닥에도 두텁게 깔린 부드러운 이끼를 밟고 걸어가며 요문천은 나름대로 지하통로가 더운 이유를 추측해보았다.

화맥, 즉 땅 속의 화기가 흐르는 경로가 지상에 가까워지면 화산으로 분출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지하의 물을 데워 온천을 만든다.

북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팔달령 일대는 온천으로 유명하다.

천독친왕부 아래로 화맥이 지나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반짝!

어둑한 동로 저편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요문천의 눈에 들어왔다

(앞쪽에 빛을 발하는 무언가 있다!)

요문천은 등을 쳐든 채 서둘러 그 반짝이는 물체로 다가갔다.

() 아닌가?”

이윽고 반짝이는 물체 앞에 이른 요문천은 눈을 치떴다.

통로가 직각으로 꺾어지는 곳인데 좌측의 벽에 한 자루의 검이 깊이 박혀있다.

특이하게도 검날이 유리처럼 투명한 검인데 검신의 중앙으로 붉은 선이 한 가닥 길게 그어져 있다.

검의 손잡이 끝에 귀신의 머리 형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징징!

유리같이 투명한 검날이 낮으막히 진동하고 있는데 그에 따라 검날에서 서늘한 빛이 뿜어진다.

요문천이 멀리서 본 빛은 바로 투명한 검날이 진동하면서 산란(散亂) 시킨 빛이었다.

(검날이 저절로 진동하고 있다. 절대 평범한 검은 아니다!)

요문천은 눈을 반짝이며 가까이 다가가 그 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검의 손잡이 끝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귀신의 머리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 아래로 <地獄橋>라는 글이 전자(篆字), 즉 오래 된 옛 글씨체로 새겨져 있다.

"지옥교(地獄橋)? 지옥으로 건너가는 다리라고?"

검의 손잡이에 새겨진 검명(劍名)을 확인한 요문천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다시 말해서 이 검이 휘둘러지면 반드시 상대를 지옥으로 보낸다는 뜻일 텐데...)

요문천은 등을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그런 후 오른손으로 지옥교라는 이름을 지닌 그 검의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감촉은 비록 서늘하지만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의 손잡이다.

요문천은 지옥교를 벽에서 조심스럽게 뽑았다.

검날이 돌로 이루어진 벽에 깊이 박혀있어서 뽑을 때 상당한 저항을 예상했다.

스윽!

하지만 지옥교는 석벽에서 너무도 쉽게 뽑혔다.

뽑히는 과정에서 검날에 닿는 순간 석벽이 아무런 저항도 느껴지지 않으며 간단히 갈라진 때문이다.

(단단한 석벽을 마치 두부처럼 갈라버린다. 정말 날카로운 놈이다!)

요문천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며 지옥교를 얼굴 앞에 수직으로 세워 검날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지옥교의 검날은 유리처럼 투명하여 맞은편이 비쳐 보인다.

그 투명한 검날 중앙으로 방금 전 사람의 몸에서 흐른 피처럼 선명한 붉은 선이 떠있다.

웅웅!

그와 함께 요문천의 손에 들려진 지옥교가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며 진동한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걸 휘둘러서 무엇이든지 베어보고 싶다!)

지옥교의 투명한 검날을 들여다보는 요문천의 눈이 벌겋게 충혈 되어갔다.

마음 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살기와 무엇이라도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치민 탓이다.

(설마 이검이 내 마음 속에 숨겨져 있던 살의(殺意)와 파괴본능을 자극하고 있는 것인가?)

지옥교의 투명한 검날을 들여다보던 요문천은 오싹한 느낌을 받고 급히 시선을 떼었다.

지잉!

요문천의 시선이 이탈하자 지옥교의 진동도 천천히 잦아들었다.

(내가 보지 않자 칭얼거림이 잦아든다. 검 주제에 사람의 감정을 조종하고 이해한다는 건가?)

요문천은 아래로 내려트린 지옥교를 곁눈질로 보며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는 건 이놈이 신검(神劍) 아니면 마검(魔劒)이라는 건데... 살기가 강하니 신검이라기보다는 마검이겠구나.)

징징!

요문천이 곁눈질로 보자 지옥교는 다시 진동을 일으킨다.

(내가 자길 훔쳐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고... 무섭다면 무섭고 신기하다면 신기한 이 마검이 어쩌다가 이런 외진 곳에 버려진 것일까?)

요문천은 급히 지옥교에서 시선을 떼며 다시 앞으로 걸어간다.

 

요문천이 걸음을 옮기는 앞쪽에는 밀로가 거의 직각으로 꺾여있다.

!”

헌데 그 직각의 통로를 돌아나간 직후 요문천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터트리며 주춤거렸다.

모퉁이를 돌아간 그의 앞쪽에 한 구의 시신이 벽에 기댄 자세로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 시체...)

요문천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주춤 주춤 시신쪽으로 다가갔다.

만일 밀로 밖의 석실에서 끔찍한 시체들을 미리 보지 않았다면 놀라 주저앉았을 것이다.

(혹시 천독친왕부의 지하로 숨어들어간 후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던 천독친왕 갈태독의 시체가 아닐까?)

요문천은 놀란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시체로 다가가 살펴보았다.

(천독친왕 갈태독의 시체는 아니다.)

그리고 그는 이내 시체가 갈태독의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체가 완전히 육탈(肉脫)이 되지 않은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시체는 체격이 아주 좋아서 키가 무려 칠척(七尺) 가까이 되어 보인다..

그 장대한 몸에 화려한 곤룡포를 걸치고 있는 시체는 반쯤 썩어서 살이 여전히 뼈에 붙어있다.

오십여 년 전에 죽은 것이 거의 확실한 갈태독의 시체가 아직도 부패가 진행 중일 리는 없다.

결정적으로 시체의 허리춤에는 빈 칼집이 하나 걸려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갈태독은 채찍과 비수, 암기들을 무기로 사용했다고 한다.

갈태독이 검을 썼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빈 칼집을 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곤룡포를 걸친 시체가 갈태독의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비어있는 칼집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옥교라는 이 마검의 주인이었던 모양인데... 어쩌다 천독친왕부의 지하에 들어와 죽은 것일까?)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강하게 일어났다.

요문천은 몸을 숙여서 시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시체는 얼굴 부위가 심하게 부패되어 있어 살아있을 때의 용모는 추측할 수가 없다.

살이 썩으면서 드러난 뼈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돈다.

뼈의 색으로 이 인물이 극독에 중독되어 죽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잘은 모르지만 살이 이 정도 썩은 상태라면 불과 몇 달 전에 죽었다는 건데...)

등을 든 왼쪽 소매로 입과 코를 가린 채 시신의 상태를 살피던 요문천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시신의 가슴 부분이 불룩한 것이 눈에 들어온 때문이다.

(품속에 무언가 들어있다!)

요문천은 지옥교의 끝으로 시체가 걸치고 있는 곤룡포의 가슴부분을 들쳐보려고 했다.

비록 두렵지는 않지만 썩어가고 있는 중인 시체에 직접 손을 댈 정도로 대범하진 못한 때문이다.

서걱!

헌데 지옥교의 날이 살짝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곤룡포가 간단히 갈라진다.

그만큼 지옥교의 날은 날카로운 것이다.

그리고 갈라진 곤룡포 속에 책이 한 권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책을 한권 품고 있다.)

!

요문천은 지옥교의 끝으로 곤룡포를 좀 더 길게 아래로 찢었다.

털썩!

그러자 한권의 책이 시체의 품에서 빠져나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 두껍지 않은 그 책은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듯 표지가 검붉게 퇴색되어 있다.

(혹시 무공비급 아닐까?)

요문천은 지옥교를 바닥에 꽂은 후 왼손에 들고 있던 등을 지옥교의 손잡이에 걸었다.

그리고는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표지와 그 안쪽의 지면까지 다 합쳐도 이십 장 남짓인 그 얇은 책의 재질은 종이가 아니었다.

양피지와 같은 가죽의 일종인데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질겨 만지는 감촉이 야릇했다.

(어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었기에 이렇게 부드러울까?)

요문천은 갸웃하며 지옥교 손잡이에 걸어놓은 등의 불빛에 의지하여 책의 표지를 살펴보았다.

검붉은 책의 표지에는 <저주마경(詛呪魔經)>이라는 제목이 전자체(篆字體)로 적혀있다.

"저주마경? 지옥교라는 검명에 못지않게 섬뜩한 제목이다."

요문천은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들어 침을 삼키며 책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전자체로 적혀있다는 것도 저주마경이라는 이 책이 아주 오래전에 쓰여진 것을 의미한다.

반면 그것을 품고 있던 시체는 불과 몇 달 전에 죽은 듯 아직 시신이 완전히 썩지 않은 상태다.

, 저주마경은 원래부터 요문천의 눈앞에 있는 시신의 소유는 아니었던 것이다.

곤룡포를 입고 있는 시체의 주인도 오래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쓰여진 저주마경을 얻어서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제목도 그렇고...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는 책이다.)

요문천은 꺼림칙했지만 용기를 내어 책을 펼쳐보았다.

겉표지를 젖히자 첫 번째 지면에 역시 전자체로 쓰인 글이 가득 적혀있다.

 

<지옥성(地獄城) 제구대 성주인 지옥검조(地獄劍祖) 하륜(河崙)이 한을 품고 죽어가며 이 글을 적는다. 노부가 남긴 저주마경과 지옥교를 얻는 자가 곧 지옥성의 제십대 성주(城主).>

 

어두운 책의 재질보다 더 짙은 검은색으로 적힌 글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지옥성? 무림에 그런 문파가 있었나?"

글의 앞부분을 읽어본 요문천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나이 또래의 소년들이 대개 그렇듯이 요문천 역시 강호 무림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

게다가 요문천은 승상부의 소부주라는 신분 덕분에 현재의 강호 정세에 대한 내밀한 정보도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요문천의 기억에 지옥성이라는 문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지옥성이 중원 무림에 속하지 않거나 이미 오래전에 세상에서 사라진 문파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지옥성을 멸망시킨 것은 우내사천(宇內四天)이라 불리는 중원의 인간들이었다. 그놈들은 악마삼보(惡魔三寶)를 노리고 서역(西域) 하미(合密)에 자리한 본성을 공격했던 것이다.>

 

(우내사천? 악마삼보? 역시 들어본 기억이 없는 이름들인데...)

요문천은 고개를 갸웃하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우내사천이니 악마삼보니 하는 이름들도 요문천에게는 생소하기만 하다.

옛날의 서체인 전자(篆字)로 쓰여진 것도 그렇고 저주마경에 적혀있는 사연은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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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감한 치료(治療)

 

 

 

요문천은 먼저 손가락 두 개 마디만한 길이의 은제 병을 집어 들었다.

찰랑거리는 소리로 그 은병(銀甁) 안에 물약이 들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요문천은 은병의 마개를 열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알싸한 속에 그윽한 약냄새가 느껴지는데 그 약냄새를 들이키자 속이 시원해진다.

(이건 속의 상처를 다스리는 내상약이겠구나.)

내용물이 내상약(內傷藥)임을 확신한 요문천은 철접의 얼굴로 몸을 숙였다.

철접은 창백한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입부터 벌리게 해야겠구나.)

요문천은 왼손으로 마늘쪽같은 코를 잡아 눌렀다.

그러자 코로 숨을 쉴 수 없게 되면서 철접의 가늘지만 단정한 입술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푸른빛을 띤 창백한 입술이 벌어지며 드러나는 가지런한 치아가 백옥을 연상시킨다.

쪼르르!

요문천은 오른손에 든 약병을 기울여 내용물을 그녀의 입에 흘려 넣어주었다.

(아무쪼록 내상약이 효과가 있어야할 텐데...)

은제 약병의 물약을 모두 철접에게 먹여준 요문천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약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잠시 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던 철접의 숨소리가 좀 더 커졌다.

또 움직임이 거의 없던 그녀의 불룩한 젖가슴이 조금씩 아래 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목덜미를 만져보니 얼음장같이 차갑던 철접의 몸에서 조금이나마 온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내상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같고...)

요문천은 안도하며 철접의 몸을 살펴보았다.

반듯하게 누운 철접의 몸에 걸쳐진 옷은 피로 물들어 있다.

그리고 옷이 찢어진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설령 내상이 나아진다 해도 출혈이 멈추지 않으면 위험해질 것이다.)

요문천은 철접의 품에서 나온 약통들을 살펴보았다.

몇 개의 약통들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크고 납작한 합 모양의 것을 열어보았다.

약통 안에는 투명한 고약이 가득 들어있다.

(양도 많고 특별히 자극적인 냄새도 나지 않는 걸 보면 창상(創傷;날붙이에 베인 상처)을 치료하는 금창약(金瘡藥)일 것이다.)

요문천은 고약을 손가락에 조금 묻혀서 자신의 목에 난 상처에 발라보았다.

약간 쓰리지만 동시에 갈라진 상처가 오그라드는 듯한 느낌도 난다.

(금창약인 건 틀림없는데...)

약통을 들고 요문천은 난감한 표정이 되어 망설였다.

지혈이 되도록 약을 발라주려면 철접의 옷을 모두 벗겨야하기 때문이다.

(목숨이 오고가는 상황이니 인륜도덕이나 예의를 따질 때가 아니다.)

한동안 망설이던 요문천은 이윽고 결심을 하고 깊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철접의 저고리 고름을 풀었다.

고름이 풀린 저고리가 좌우로 갈라졌다.

그러자 금방 내린 눈같이 희고 비단결같이 매끄러운 철접의 속살이 드러난다.

저고리 속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어서 저고리가 벌어지자 바로 속살이 드러난 것이다.

요문천이 약을 찾기 위해 한번 더듬어본 대로 철접의 가슴은 날씬한 몸매에 비해 상당히 크고 풍만하다.

철접 자신의 얼굴만한 두 개의 살덩이가 묵직하게 얹혀 있다.

그 살덩이들은 누워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산처럼 붕긋하게 솟은 형상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또한 작은 움직임에도 이리저리 흔들거려서 금방 쑨 묵을 연상시킨다.

(이런.... 이런...)

철접의 가슴을 본 요문천은 넋이 나갔다.

너무도 아름답고 깨끗하며 또 풍만한 철접의 가슴은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주르르!

요문천이 넋을 잃고 보는 중에 철접의 왼쪽 가슴에 비스듬히 나있는 상처에서 피가 배어나와 가슴 골로 흘러내린다.

새하얀 피부를 따라 흐르는 아리도록 붉은 핏줄기가 요문천으로 하여금 퍼뜩 정신을 차리게 만든다.

(체온이 올라가면서 낙일금검이 관통했던 상처에서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한다.)

요문천은 서둘러 금창약을 손가락으로 떠서 철접의 젖가슴에 난 상처에 발라주었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너무도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탄력 넘치는 감촉은 요문천을 아찔하게 만든다.

(딴 생각 말고 치료에 집중하자! 이 여자는 지금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지 않느냐?)

철접의 가슴에 금창약을 발라준 요문천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왼팔로 철접의 상체를 끌어안고 저고리를 완전히 벗겼다.

등쪽에 난 상처에도 금창약을 발라준 요문천은 철접의 상체에 난 상처들을 살펴보았다.

양쪽 팔과 옆구리, 복부 등에도 날붙이에 베인 상처가 여럿 있었지만 다행히 치명상들은 아니다.

요문천은 철접의 상체에 나있는 모든 상처에 꼼꼼히 금창약을 발라주었다.

상체의 치료를 마친 요문천은 또 잠시 망설이게 되었다.

철접의 하체에도 여러 곳 베인 상처가 있다.

그 상처들은 상체의 상처들보다 오히려 깊어서 출혈이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겨우 두 번째 만난 여자인데... 하지만 위급한 상황이니 어쩔 수가 없다.)

잠시 망설이던 요문천은 다시 결심을 하고 철접의 치마에 손을 가져갔다.

요문천의 떨리는 손에 의해 치마가 아래로 벗겨지면서 철접의 하체가 드러난다.

잘룩한 허리에 비해 철접의 둔부는 아주 풍만하다.

키가 큰 만큼 철접은 다리도 보통의 여자들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길다.

허벅지는 오랜 단련 덕분에 튼실하면서도 탄력이 넘친다.

(설마...)

헌데 겉치마와 속치마를 함께 골반 아래로 벗겨 내리던 요문천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겉치마와 속치마 속에 당연히 입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속곳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국의 인간들이...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속옷을 입지 않는 풍습이 있다더니...)

요문천은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철접의 치마를 골반 아래로 벗겨 내렸다.

허억!”

직후 요문천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같은 신음을 터트려야만 했다.

예상했던 대로 철접은 치마 속에 속곳을 걸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드러나는 철접의 비밀...

요문천은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온몸의 피가 폭발적으로 끓어오르고 어지러워져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보면... 보면 안된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시선이 자꾸만 철접의 중심부로 향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정신을 차려라 요문천! 네가 겨우 이 정도의 인간 밖에 되지 않았느냐?)

요문천은 고개를 세차게 저어서 필사적으로 평정을 되찾으려 애썼다.

그는 의식적으로 철접의 중심부에 시선이 가지 않도록 애쓰며 상처를 살폈다.

철접의 양쪽 허벅지와 엉덩이, 다리등에 상당히 깊은 자상들이 여럿 나있다.

그런 다리로 지금까지 먼 길을 달려온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요문천은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고약을 퍼서 철접의 상처에 발라주기 시작했다.

철접의 피부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탄성이 느껴진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늘 단련을 해온 증거다.

요문천은 벌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철접의 상처에 금창약을 발라주었다.

하지만 철접의 비밀은 화인(火印)처럼 요문천의 뇌리에 새겨져 지워지지를 않는다.

 

그후로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요문천의 기억은 흐릿했다.

어쨌든 요문천은 철접의 몸에 나있는 대부분의 상처에 금창약을 발라줄 수 있었다.

이윽고 치료를 마쳤을 때 요문천의 몸은 마치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땀으로 흠씬 젖어 있었다.

치료를 끝내자마자 요문천은 서둘러 벗겨놓은 옷가지로 철접의 몸을 가려주었다.

조금이라도 더 철접의 알몸을 보고 있다가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겪은 최고 난이도의 고역이었다!)

철접의 몸을 옷가지로 가려준 요문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났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모든 힘을 소진한 듯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내가 이 여자를 해줄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아쉽지만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요문천은 아쉬움을 달래며 석실을 나가려고 했다.

헌데 떠나기 전에 석실을 한 바퀴 더 둘러보던 요문천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뭔가 이상하다.)

요문천은 눈을 치뜨며 용차랑의 시체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용차랑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마구 긁어대었던 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용차랑이 손톱이 빠질 지경으로 긁어댄 벽에는 피와 함께 이리저리 긁히고 깊이 패인 자국들이 나있다.

용차랑은 죽어가던 상태로 쓸 수 있는 공력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벽이 진짜 돌이라면 핏자국은 남을 지언정 긁히거나 깊이 패일 일은 없다.

하지만 벽에는 분명 긁히고 패인 흔적들이 여럿 나있다.

(석실의 다른 곳과 달리 이 부분의 벽은 돌이 아니다!)

요문천은 어떤 예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손으로 벽을 긁어보았다.

푸스스!

그러자 요문천의 손가락이 긁는 대로 벽면이 푸슬푸슬 흩어진다.

(석회(石灰)! 누군가 이 부분을 흙으로 채워 넣고 겉을 석회로 발라 돌인 것처럼 위장했다.)

벽면을 긁어보던 요문천은 눈을 반짝이며 벽에서 조금 물러섰다.

(혹시 이 부분이 갈태독이 천독칠왕부의 어딘가에 마련해놓았다는 보물창고의 입구가 아닐까?)

요문천은 염두를 굴리며 오른쪽 발을 높이 쳐들었다.

!

그리고는 힘껏 벽면을 찍듯이 내려찼다.

퍼억! 푸스스!

표면에 발라진 석회가 쩍쩍 갈라져 흩어지면서 그 안쪽의 흙벽이 나타난다.

(한 번 더!)

!

요문천은 다시 한 번 온힘을 모아 흙벽을 발로 찍어 찼다.

콰드득...!

다음 순간 흙으로 만들어진 벽이 안쪽으로 와락 무너져 내리며 밀로(密路)가 나타났다.

어둑하면서도 눅눅한 습기가 확 뿜어져 나오는 어둑한 통로가 무너진 흙벽 뒤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오늘 갈태독이 생전에 모아놓았다는 수억냥 값어치의 재물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문천은 흥분을 금치 못하며 통로 안쪽을 기웃거렸다.

통로 내부는 너무 어두워서 무공을 지니지 않은 요문천으로서는 그냥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요문천은 석실의 벽에 걸려있는 원통형의 등을 벗겼다.

동영의 인자들이 어둠 속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사용하는 그 등은 아주 밝지는 않다.

대신 완전히 밀폐되어 있어 비바람이 불 때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가 있는 구조다.

등을 든 요문천은 조심스럽게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요문천이 통로 안쪽으로 멀어짐에 따라 석실은 어둠에 잠겨들었다.

또르르!

헌데 어둠 속에 누워있는 철접의 눈 꼬리를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요문천이 치료를 해주는 도중에 정신이 돌아왔던 것이다.

(미안해 지로! 널 지켜주지 못한 못난 누나를 용서하거라!)

철접은 어둠 속에 홀로 누워 자책과 절망에 찬 오열을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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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물 속의 참극(慘劇)

 

 

 

요문천은 주먹만한 돌을 주워 우물 안쪽으로 던져보았다.

첨벙!

잠시 기다리자 돌이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이 우물에 여전히 물이 고여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문천은 철접이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요문천은 무언가 깨닫고 서둘러 우물 턱으로 올라섰다.

휘익!

그리고는 망설이지 않고 우물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너무 무모했나? 내 생각이 틀렸으면 우물물에 빠져 익사할 텐데...)

뛰어내리자마자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출렁!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아래로 추락하던 요문천의 몸은 도로 위쪽으로 퉁겨져 올라갔다.

(생각했던 대로다.)

몸이 다시 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요문천은 안도했다.

우물은 상당히 깊은데 지상에서 칠, 팔장쯤 되는 곳에 그물이 쳐져 있었다.

재질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가늘면서도 탄력이 아주 좋은 밧줄로 짜여진 그물이다.

아마도 동영의 인자들이 침투와 탈출 등에 사용하는 밧줄일 것이다.

철접이 우물 안으로 뛰어내렸음에도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물론 이 그물 덕분이었다.

텅 텅!

요문천은 그물 위에서 몸이 퉁겨지는 사이에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우물은 몹시 깊어서 달빛이 흘러들지 못하는 바람에 상당히 어둡다.

그래도 어둠에 익숙해지자 우물의 한쪽 벽에 크지 않은 동굴이 있는 것이 요문천의 눈에 들어왔다.

동굴 입구가 매끈한 것으로 보아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물 속에 다른 곳으로 통하는 동굴이 숨겨져 있었구나.)

요문천은 그물 위를 엉금엉금 기어서 동굴로 다가갔다.

(혹시 저 동굴이 갈태독이 천독친왕부의 어딘가에 만들어 놓았다는 보물창고의 입구가 아닐까?)

동굴로 다가가며 요문천은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천독친왕 갈태독이 추측이 불가능할 정도의 막대한 재물을 끌어 모았었다는 것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천독친왕부가 죽음의 귀역이 되고 갈태독이 실종되면서 그의 재보 역시 세상에서 사라졌다.

만일 갈태독이 숨겨놓은 재보를 찾아낸다면 단번에 천하제일의 거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부족함이 없이 자란 요문천인지라 재물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갈태독의 보물 창고와는 관련이 없더라도 뭔가 비밀을 품고 있는 장소임에는 분명하다.)

요문천은 흥분을 억누르며 동굴로 기어들어갔다.

 

동굴은 그리 크지 않아서 엉금엉금 기어야 들어갈 수 있다.

헌데 동굴로 기어들어가면서 요문천은 섬뜩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동굴 바닥이 피로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피가 흐른 후 제법 시간이 지났는지 끈적이는 감촉이 양손과 무릎에 느껴진다.

(엄청난 양의 피가 흘렀다.)

요문천은 동굴 바닥 전체에 피가 덮여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몸서리를 쳤다.

비릿한 피비린내가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한다.

(그 여자 혼자 흘린 피는 아니다.)

요문천은 침을 삼키며 동굴 안쪽으로 기어들어갔다.

동굴 바닥을 적시고 있는 피의 양은 엄청 나서 한 사람이 흘릴 수 있는 정도의 피가 아니다.

마르기 시작하여 끈적이는 피에 섞여 가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피도 손바닥에 느껴진다.

그 피는 아마도 철접이 동굴을 기어들어가는 동안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일 것이다.

(그 여자 외에도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앞서서 이 동굴을 기어들어갔다. 대량의 피를 흘리면서...)

 

요문천이 몸서리를 치며 기어가는 동안 동굴은 점점 넓고 높아졌다.

잠시 후에는 일어나서 걸어갈 수 있었는데 요문천의 양손과 무릎은 동굴 바닥을 뒤덮고 있던 피로 검붉게 물들어 있다.

동굴 천장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그 구멍으로 달빛이 흘러들어 그리 어둡지 않다.

요문천은 달빛에 의지하여 바닥을 살피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넓어진 동굴의 바닥에 여러 가닥의 핏자국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의 사람이 대량의 피를 흘리며 동굴 안쪽으로 들어간 흔적이다.

(아마도 여기가 영락폐하를 습격했던 인자들의 비밀 거점이었을 것이다.)

요문천은 핏자국을 따라 걸어 들어가며 깨달았다.

영락제를 암살하기 위해 중원으로 잠입한 동영 이가류의 자객들은 오래전부터 인적이 끊긴 이곳 천독친왕부를 은신처로 삼았을 것이다.

북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다가 죽음의 귀역으로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으니 은신처로 천독친왕부만한 곳은 없다.

이 우물 속의 은밀한 동굴은 이가류의 인자들이 천독친왕부를 거점으로 삼은 후 수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장소일 테고...

(영락폐하에 대한 암살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살아남는 자는 이 동굴로 피신한다는 약조가 사전에 있었겠지.)

요문천은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동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멀지 않은 앞쪽에서 불빛이 어른거리는 것이 요문천의 눈에 들어왔다.

(다 왔다.)

요문천은 서둘러 그 불빛쪽으로 걸어갔다.

 

불빛은 동굴의 끝에 자리한 한 칸의 석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헌데 요문천이 문이 부서진 그 석실로 다가갈 때였다.

안돼! 안된다!”

석실에서 그리 높지 않은 울부짖음이 흘러나왔다.

나직하지만 내장을 칼로 긁어내는 듯한 처절한 고통이 실려 있는 울음소리였다.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요문천은 서둘러 석실로 다가갔다.

오장육부를 다 토해내는 듯한 울음소리의 주인이 철접임을 알아차린 때문이다.

 

***

 

부르르!

석실로 들어서던 요문천의 몸이 전율에 휩싸였다.

석실 안에는 요문천이 이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상상도 하지 못했던 끔찍한 참상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 벽에 걸린 원통형의 등이 흘려내는 불빛 아래 여섯 구의 시체가 석실 바닥에 널려있다.

입구에 가까운 곳에는 이남이녀(二男二女)가 죽어있다.

이남이녀 중 부부로 보이는 삼십대의 남녀는 무릎을 꿇은 채 마주 보는 자세로 앉아서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찔러 넣은 자세로 죽어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갈라진 배에서는 내장이 줄줄 흘러나오는 남녀는 오른손으로는 상대방의 심장에 비수를 찔러 넣고 왼팔로는 서로의 몸을 감싸 안고 있다.

회생불가의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동반자살을 한 모습이다.

이남이녀의 다른 한 쌍은 부녀지간으로 보인다.

아직 앳된 모습이 보이는 소녀가 목이 부러져 죽어있으며 그 소녀의 시체 위에 중년의 남자가 엎드린 자세로 죽어있다.

소녀는 왼쪽의 팔과 어깨가 강한 힘에 으스러져 갈비뼈가 드러나 있다.

반면 중년 사내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무수히 나있지만 치명상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내의 입과 코에서 검푸른 피가 흘러나와 끌어안고 있는 소녀의 몸을 적시고 있다.

아마도 중상을 입은 딸이 고통스러워하자 아비가 딸의 목을 졸라 죽인 후 자신도 독을 먹고 죽었을 것이다.

나머지 두 명은 노인과 소년이다.

노인은 석실 가운데쯤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작은 칼로 배를 그어 자결을 한 모습이다.

노인의 갈라진 배에서는 내장이 흘러나와 그의 하체와 바닥을 뒤덮고 있다.

그 노인의 앞쪽에는 앳된 소년이 벽 쪽으로 기어간 자세로 죽어있다.

소년의 다리 하나는 허벅지쯤에서 잘려나갔으며 길게 갈라진 배에서는 내장이 흘러나와있다.

소년은 숨이 끊어지기 전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이리저리 기어 다닌 듯 내장이 터져서 오물과 피로 바닥이 칠갑아 되어 있다.

소년은 고통에 몸부림을 친 흔적은 바닥뿐만 아니라 석실의 벽에도 남아있다.

소년이 양손으로 마구 긁은 흔적이 입구 맞은편의 벽에 남아있는 것이다.

벽을 얼마나 세게 긁었는지 소년의 열 손가락은 손톱이 모두 빠지거나 부러져 있고 손가락 끝은 문드러진 상태다.

(그 아이다!)

벽 쪽으로 기어간 자세로 죽어있는 소년을 본 요문천은 전율했다.

 

<미안해 누나. 나 도저히 못 하겠어.>

 

어젯밤 동대루의 기루에서 뛰쳐나와 철접의 품에 와락 안기며 울음을 터트리던 순진해보이던 소년이 배가 갈라진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것이다.

소년은 바로 철접의 동생인 용차랑이었다.

그리고 철접은 용차랑의 시체 뒤쪽, 늙은 인자 시바타가 할복한 근처에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저앉아있다.

눈물이 말라버린 듯 철접의 눈에서는 눈물조차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그저 파랗게 질려버린 입술을 움직이며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다.

요문천은 이내 이 석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아차렸다.

철접의 어린 동생도 영락제에 대한 암살에 참여했으며 그 과정에서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이에 늙은 인자 시바타와 네 명의 남녀 인자가 용차랑을 이곳으로 데려왔지만 이미 되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용차랑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죽었을 것이고 당주의 어린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늙은 인자 시바타는 할복을 했을 것이다.

동행한 네 명의 남녀 인자도 삶을 포기하고 자살을 했고...

지로... 지로...!”

중얼거리던 철접의 입에서 꺽꺽 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미안해... 누나가... 누나가... 미안해...”

철접은 쥐어짜듯 말하며 동생의 시체 쪽으로 기어갔다.

너를... 너를 꽁꽁 묶어서라도... 여기 남겨뒀어야 했는데... 미안하구나.”

그녀는 엄청난 충격에 맥이 빠져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용차랑의 시신을 향해 기어가려고 했다.

털썩!

하지만 그녀의 몸은 이내 용차랑에게 기어가려던 자세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충격과 비통이 극에 달해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소저!”

요문천은 급히 철접에게 달려가 그녀의 가는 목에 손을 대어 진맥을 해보았다.

철접의 목에 손을 대는 순간 차가운 한기가 느껴져서 요문천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몸이 마치 시체처럼 느껴진 때문이다.

(죽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내 느리게나마 뛰고 있는 맥이 느껴져 요문천을 안심시켰다.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심장을 아주 느리게 뛰도록 조절하고 있다. 그 때문에 몸이 냉혈동물의 그것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것이다.)

요문천은 놀라면서도 안도하며 철접의 목에서 손을 떼었다.

요문천은 철접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어 다량의 출혈을 한 상태고 또 심장 근처를 금검존이 어검술로 날린 낙일금검에 꿰뚫리고도 아직 살아있는 이유를 알았다.

철접은 신진대사를 느리게 조절하여 기력의 소모를 최대한 늦춰왔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심장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

덕분에 왼쪽 가슴이 낙일금검에 꿰뚫렸으면서도 즉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낙일금검이 꿰뚫은 상처 부위의 체온을 극한까지 낮춰서 출혈을 막고 있다. 동영의 인자들이 자신의 몸속 장기와 신진대사를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요문천은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관통상을 입은 가슴을 제외한 철접의 몸에 난 다른 상처들에서는 양은 적지만 여전히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게다가 동생의 끔찍한 죽음을 목격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철접은 정신을 놓은 상태다.

이대로 방치하면 오래지 않아 철접도 죽어버릴 게 확실하다.

(치료를 해줘야한다.)

요문천은 결심하며 철접을 석실 바닥에 반듯하게 눕혔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을 그녀의 품속에 집어넣었다.

늘 목숨을 내놓고 사는 인자인 만큼 효과가 빠른 비상약을 지니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뭉클!

철접의 저고리 속으로 집어넣은 요문천의 손에 차갑지만 부드러운 살덩이가 만져진다.

(날씬한 외양과 달리 의외로 풍만한 젖가슴을 지녔구나.)

요문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유모인 섭대낭을 제외하면 난생 처음 만져보는 여자의 젖가슴인 탓에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린다.

(크기는 유모 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탄력은 훨씬 뛰어나고 매끄럽다.)

요문천은 침을 삼키며 손을 철접의 품속으로 깊이 집어넣었다.

철접의 젖가슴은 비단을 만지는 것처럼 매끄러우면서도 갓 쑨 묵처럼 탱탱한 탄력을 지니고 있다.

떨면서 그 젖가슴 주변을 더듬던 요문천의 손에 곧 가죽 주머니가 하나 만져졌다.

(찾은 것같다.)

요문천은 서둘러 그 가죽 주머니를 철접의 품 속에서 꺼냈다.

상당히 크고 묵직한 주머니다.

(자객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도구들이 들어있겠구나.)

요문천은 서둘러 가죽 주머니의 입구를 묶은 끈을 풀었다.

투둑! !

그런 후에 거꾸로 뒤집자 가죽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여러 가지 물건이 한꺼번에 바닥에 쏟아진다.

아주 얇은 표창 십여개와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주머니들 서너 개, 그리고 몇 개의 약통등이다.

약통들은 충격을 받아도 쉽게 훼손되지 않도록 유리나 도자기 대신 은으로 만들어졌는데 형태가 다양했다.

물약이 든 작은 병의 형태도 있고 고약이나 분말 형태의 약이 든 납작한 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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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폐허의 비밀

 

 

 

조백하(潮白河)는 북경의 동북방을 휘감고 흐르는 상당히 넓은 강이다.

조백하 북안(北岸)에는 무려 수천만 평에 이르는 광대한 폐허가 자리하고 있다.

그 폐허는 오십이 년 전까지만 해도 원나라의 황궁을 제외하면 천하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했던 장원의 흔적이다.

 

-천독친왕부(千毒親王府)!

 

폐허가 된 장원의 이름이다.

이 장원의 주인은 천독친왕(千毒親王) 갈태독(葛太毒)이란 인물이었다.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 말기 최고의 권세가였던 그는 원래 무림인이었다.

일개 낙척한 서생이었던 갈태독은 강남을 여행하던 도중 우연히 한 권의 독경(毒經)을 얻어 독문제일인(毒門第一人)이 되었다.

사실 갈태독의 무공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온갖 종류의 독을 자유자재로 쓰고 치명적인 독공(毒功)을 구사하는 갈태독과 싸울 경우 세상 어떤 고수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는 갈태독의 이같은 능력은 원나라 황실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당시 원나라 황실은 고질적인 내분과 부패, 군벌들의 득세등으로 인해 중원에 대한 통제 능력을 급격하게 상실해가고 있었다.

이에 편승하여 백련교(白蓮敎), 즉 홍건적(紅巾賊)을 중심으로 한 반란이 도처에서 일어나 몽고족에 의한 중원의 지배를 종식으로 몰아가는 중이었다.

그런 위기상황에서도 몽고족 군벌들은 황실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또 황제 직속의 군대는 그 질이 형편없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기에는 턱도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원나라 황실은 누구든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갈태독을 회유하여 자신들에게 반기를 드는 세력들을 제거하게 하였다.

파격적인 보상을 약속하면서...

탐욕스러운 성격이었던 갈태독은 한족(漢族)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몽고족의 정권인 원나라 황실의 앞잡이가 되어 가공할 혈겁을 일으켰다.

원나라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던 숱한 한족 출신의 반군들과 이에 동조한 무림의 명숙들이 갈태독이 쓰는 치명적인 독과 끔찍한 독공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었다.

갈태독의 활약에 만족한 원나라 황실은 일개 무부(武夫)였던 그에게 천독친왕(千毒親王)이라는 왕작(王爵)을 내렸으며 약속했던 것 이상의 후한 보상을 해주었다.

갈태독은 원 황실로부터 막대한 보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인 반군들과 무림인들의 재산까지 가로채 주머니를 채웠다.

그 결과 갈태독은 오래지 않아 천하제일의 거부(巨富) 소리를 듣게 되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재물을 모은 갈태독은 이곳 조백하 북쪽 강변 위에 자신만의 성채를 구축하였다.

그것이 바로 천독친왕부다.

그러나 영원할 것같았던 갈태독의 좋은 시절은 너무도 빨리, 그리고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강남에서 몸을 일으킨 풍운아 주원장(朱元璋)이 파죽지세로 중원을 장악한 후 원 제국의 심장부인 북경으로 육박해온 것이다.

갈태독은 원나라 황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와 부귀영화를 위해 주원장의 군세를 저지하려고 했다.

원 황실이 무너지면 갈태독 자신의 부귀영화도 끝이 나기 때문이다.

당시 북경으로 쇄도해온 주원장 군세의 수장은 명장 서달(徐達)이었다.

주원장의 고향 친구이기도 한 서달만 죽이면 주원장의 군세도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것이다.

이에 갈태독은 단기필마로 서달의 군막(軍幕)으로 잠입하여 그를 암살하려고 했다.

서달은 중원의 역사를 통틀어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명장이고 전략가다.

그에 비견되는 인물이라면 백기(白起), 한신(韓信) 정도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서달의 일신 무공은 평범한 수준이다.

신변에 접근할 수만 있으면 갈태독의 능력으로 서달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헌데 갈태독은 서달의 군막에 돌입한 직후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고 치명상을 입었다.

서달 옆에는 한명의 젊은 검객이 있었다.

약관을 갓 넘긴 그 젊은 검객에게는 갈태독의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젊은 검객의 몸을 뒤덮고 있는 푸르스름한 빛의 장막은 갈태독이 구사한 지독한 독과 끔찍한 독공을 너무도 간단히 분쇄해버렸던 것이다.

반면 젊은 검객이 휘두른 검에서 내뻗힌 삼엄한 검기는 여지없이 갈태독의 몸을 갈라버렸다.

치명상을 입은 갈태독은 필사적으로 서달의 군영을 탈출했다.

젊은 검객을 제외한 그 누구도 갈태독이 뿌리는 독을 견디지 못하는 덕분에 갈태독은 사지를 탈출할 수 있었다.

중상을 입은 갈태독은 자신의 거처인 천독친왕부로 숨어들어갔다.

오래지 않아 북경을 함락시킨 주원장의 군세가 천독친왕부에도 들이닥쳤다.

그러나 주원장의 막강한 군세도 천독친왕부를 함락시키지는 못했다.

갈태독이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그동안 모아두었던 막대한 양의 극독을 천독친왕부 일대에 뿌려버린 때문이다.

갈태독이 뿌린 지독한 독은 주원장의 군세를 막아낸 대신 천독친왕부에 거주하던 그의 수하와 일족, 측근들까지 남김없이 몰살시켜버렸다.

또한 천독친왕부의 어디론가 숨어들어간 갈태독 역시 두 번 다시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후 오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천독친왕부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귀역(鬼域)이 되었다.

처음에는 갈태독이 숨겨둔 막대한 재물을 노리고 수많은 인간들이 천독친왕부로 들어가 수색을 하였다.

하지만 갈태독이 뿌려놓은 지독한 극독으로 인해 천독친왕부에 들어갔던 자는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 나오지 못했다.

자연히 천독친왕부는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결코 살아서 돌아 나오지 못하는 사지(死地)로 소문이 나게 되었으며 인적이 완전하게 끊겨버렸다.

 

***

 

(여긴 천독친왕 갈태독의 저주가 서려있다는 귀역 천독친왕부인데...)

요문천은 놀람을 금치 못하며 주변을 곁눈질했다.

휘익!

그는 지금 철접의 왼팔에 허리가 안긴 채 허공을 날고 있는 중이었다.

승상부를 빠져나온 철접은 촌각도 허비하지 않고 곧장 천독친왕부로 달려왔다.

철접의 왼팔에 허리가 안긴 채 허공을 날면서 요문천은 수시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철접의 안색은 시시각각으로 하얘지고 있는데 이제는 너무 하얘서 금방 내린 눈을 연상케 하는 얼굴이 되어 있다.

홍옥같이 붉던 입술도 탈색이 되어 옅은 청색을 띠고 있다.

그것은 다량의 피를 흘린 것뿐만 아니라 어떤 이유로 인해 철접의 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창백해져가는 안색과 달리 그녀의 눈빛은 시간이 갈수록 밝고 선명해진다.

(아마도 동영의 인자들이 익히는 술법 중에 생명을 태워서 힘을 내는 비결이 있을 것이다.)

요문천은 곁눈질로 철접의 안색을 살피며 침을 삼켰다.

여자는 한 끼를 굶으면 배로 예뻐지고 병이 깊을수록 미녀가 되어간다는 말이 있다.

생기가 소멸되며 창백해지는 철접의 얼굴은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워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헌데 이 여자는 왜 이 죽음의 귀역으로 달려온 것일까?)

요문천은 주체할 수 없게 철접에게 끌려가는 마음을 다 잡으려고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으 스으...

천독친왕부는 전체가 검푸른 안개같은 것에 덮여있다.

그것은 갈태독이 주원장 군세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뿌려놓은 지독한 독들과 그 독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시체가 썩으며 만들어낸 독장(毒瘴)이다.

독장이 처음 천독친왕부를 뒤덮었을 무렵에는 한 모금만 마셔도 오장육부가 썩어 들어가 죽어야만 했다.

하지만 오십이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독장은 많이 옅어지고 독성도 약해졌다.

지금은 지나치게 오랜 시간만 아니라면 천독친왕부 내에 머물러도 죽지는 않는다.

그래도 숱한 사람들이 독장을 마시고 죽어간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겁을 먹고 천독친왕부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서 기분이 안좋아진다.)

요문천은 철접이 눈치 채지 못하게 헛구역질을 했다.

철접의 팔에 안겨 천독친왕부의 깊은 곳으로 들어오는 동안 마신 독장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견디기 힘들 것 같은데...)

요문천이 억지로 구역질을 참으며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추스르고 있을 때였다.

휘익!

마침내 철접이 질주를 멈추며 바닥에 내려섰다.

콰당탕! 퍼억!

그러나 바닥에 발을 댄 직후 철접은 무너지듯 나뒹굴었다.

그 바람에 그녀의 팔에 끼어있던 요문천도 바닥에 팽개쳐졌다.

어구구...”

바닥을 몇 바퀴 구른 요문천은 죽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그런 그의 눈에 철접이 사력을 다해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기력을 모두 소모했구나.)

요문천은 철접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리고 서둘러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철접은 중상을 입은 몸으로 쉬지 않고 삼십여 리를 달려왔다.

그 바람에 몸속의 모든 기운을 소진해버린 상태였다.

괜잖으십니까?”

요문천은 걱정스럽게 말하며 철접의 팔을 잡아 부축하려 했다.

“...”

하지만 철접은 말없이 요문천의 손을 뿌리치며 힘겹게 일어섰다.

얼굴은 백짓장같이 하얗고 일어선 두 다리를 금방이라도 다시 무너질 듯이 후들거리고 있다.

오직 그녀의 눈동자만이 흑요석처럼 반짝이고 있어서 기이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철접은 요문천과 마주 서며 오른손을 품속에 넣었다.

요문천의 키는 또래들 보다 작은 편이다.

반면 철접은 육척에서 두 치 남짓만 빠지는 늘씬한 체격의 소유자다.

그 때문에 마주 선 철접은 요문천을 내려다보게 된다.

이걸 먹고... 힘들겠지만 너 혼자 힘으로 승상부에 돌아가라.”

철접은 품속에 넣었던 오른손을 꺼내며 말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기름종이로 싼 환약이 하나 들려져 있다.

메추리알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환약이다.

이건 혹시...”

요문천은 두 손으로 환약을 받으며 눈을 치떴다.

내가 당주로 있는 이가류의 비전 해독약이다. 그걸 복용하면 천독친왕부를 덮고 있는 이 독장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철접은 말하면서 돌아섰다.

(역시 독장의 해독약이었구나.)

요문천은 서둘러 기름종이를 벗기고 환약을 입에 넣었다.

동영의 인자들은 독을 쓰는 재주도 탁월하다.

도검을 쓰는 것보다 독을 써서 표적을 죽이는 편이 위험부담은 낮고 성공 가능성은 높기 때문이다.

독을 잘 쓴다는 것은 해독약도 잘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문천은 환약을 씹어 삼키자마자 어지럼증과 구역질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맑아지자 비로소 주변 상황이 요문천의 눈에 들어왔다.

 

철접이 요문천을 데리고 온 곳은 천독친왕부의 깊은 곳에 자리한 정원이었다.

무너지고 불탄 건물 잔해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정원은 상당히 넓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탓에 제멋대로 자란 정원수들과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있다.

요문천이 환약을 먹고 정신을 차리는 사이에 철접은 무게가 없는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걸어가는 앞쪽에는 오래 된 우물이 하나 있다.

길쭉한 석재들을 사각형으로 쌓아 만든 우물인데 한쪽 변이 일장 가까이나 되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우물이다.

아마도 천독친왕부가 번성했을 당시에 식수를 해결한 우물중 하나였을 것이다.

(우물에는 왜...)

요문천이 의아해할 때 철접은 비틀거리며 우물가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망설이지 않고 한쪽 발을 들어 우물의 턱으로 올라섰다.

(설마...)

요문천이 섬뜩한 느낌에 눈을 치뜰 때였다.

스윽!

우물의 턱으로 올라선 철접의 몸이 우물 안쪽으로 기울어졌다.

위험합니다.”

요문천은 기겁하며 우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철접은 우물 안쪽으로 사라진 후였다.

(투신을 할 줄이야!)

요문천은 사색이 되어 우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는 곧 이상함을 느꼈다.

철접이 우물 안쪽으로 떨어졌음에도 물소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른 우물인가?)

요문천은 덜덜 떨며 우물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비록 반달이 떠있다고는 해도 한밤중인데다가 우물이 상당히 깊어서 아래쪽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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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처(自處)한 인질(人質)

 

 

 

설마...!”

섭대낭의 눈이 찢어질 듯 치떠지며 그녀의 거구가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이런...)

곽산해도 얼굴이 와락 굳어지며 섭대낭을 따라서 일어났다.

그 직후였다.

보고! 소부주님께서 자객의 인질이 되셨습니다.”

!

대청의 뒷문을 부술 듯이 열어젖히며 날아든 호장무사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안돼!”

파앗!

거의 동시에 섭대낭은 사납게 울부짖으면서 호장무사와 엇갈려 대청 뒷문으로 날아나갔다.

콰창!

한줄기 섬전처럼 대청 후면으로 쇄도하는 그녀의 어깨에 부딛혀서 대청의 후문과 문틀이 함께 박살나버렸다.

 

***

 

(금검존의 검갑이 비어있다!)

요문천은 순간적으로 금검존이 빈 검갑을 짊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는 건...)

이어 요문천은 곁눈질로 자기 뒤쪽에 붙어서있는 철접의 몸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철접의 가슴에는 전체가 황금빛인 보검이 꿰뚫고 들어가 그 끝이 등쪽으로 삐져나와있다.

(이 여자의 몸을 꿰뚫은 보검은 금검존의 애검 낙일금검(落日金劒)이었구나. 금검존은 어검술(馭劍術)을 써서 이 여자를 격중시켰을 테고...)

"포기하라 계집! 천지개벽해도 네년이 빠져나갈 길은 없다!"

철접과 요문천의 앞에 내려선 금검존이 온몸에서 폭풍같은 기세를 흘리며 눈을 부릅뜬다.

"함부로 장담하지 마라 금검존! 만일 내가 오늘 이곳에서 죽어야한다면 필히 저승으로 동행을 데려갈 것이다!"

스윽!

철접도 서늘한 시선으로 금검존을 마주 보며 비수의 날을 요문천의 목젖에 더욱 바짝 밀착시켰다.

"... 살려 주십시오 뇌영반!"

철접이 차갑게 내뱉는 것에 맞춰서 요문천도 다급히 외쳤다.

"... 장가도 못 가고 죽기는 싫습니다! 제발 이 여자 손에서 날 좀 구해주세요"

요문천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금검존에게 애원했다.

(! 호부(虎父)에 견자(犬子) 없다는 옛말도 틀릴 때가 있군! 어쩌다 황사같은 대인(大人)에게서 저런 약골이 나왔단 말인가?)

금검존은 입맛이 썼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너무 걱정 말게! 그 계집이 소부주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해주겠네!"

"... 제발 그래주십시오 뇌영반!"

금검존의 말에도 요문천은 여전히 울상을 지으며 애원했다.

"비천한 오랑캐 계집과 말을 섞는다는 것 자체가 탐탁치 않다만... 상황이 상황이니 도리가 없군. 네년이 원하는 것을 말해봐라!"

금검존은 벼락이 뿜어지는 것같은 눈으로 철접을 노려보며 말했다.

철접이 비록 대역의 죄인이긴 하나 황사인 요광효의 유일한 핏줄 요문천의 안위를 도외시 할 수는 없다.

"나는..."

철접은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금검존이 오른손을 그녀의 들어 막았기 때문이다.

"미리 경고하겠는데... 무리한 주문은 삼가하라! 우리에게는 소부주의 목숨보다는 대역죄인인 네년의 목숨이 더 중요하니...!"

(여차하면 내 목숨은 돌보지 않고 척살해 버리겠다는 뜻이군!)

금검존의 말에 요문천은 내심 쓴 입맛을 삼켰다.

"걱정마라!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루의 시간뿐이다!"

"단 하루의 시간을 원한다? 무슨 뜻이냐?"

금검존이 찡그리며 되물었다.

"하루가... 지나면 이 글 벌레를 돌려보내겠다! 이가류 당주의 명예와... 우리 대화일족(大和一族)의 시조이신 아마테라스(天照大神)님의 이름에 걸고 맹세한다!"

"섬나라 난쟁이들의 시조 나부랑이에는 관심 없다! 다만 네년도 본좌와 같은 무사이기에 믿어줄 뿐이다!"

금검존은 말하면서 손을 들어 옆으로 저었다.

! 스슥!

그러자 건물을 에워싼 포위망 중 한쪽이 썰물처럼 갈라져서 길을 낸다

"하고 싶지는 않으나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철접은 요문천을 끌고 포위망 밖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을 이었다.

"고맙다!"

"!"

철접의 말에 금검존은 같잖다는 듯이 냉소할 뿐 대꾸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문천은 그 순간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고맙다는 말은 금검존이 아니라 나한테 한 거로군!)

그 사이에 철접은 요문천을 끌고 사람들이 터준 길을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소부주님!"

"속하들의 무능을 용서하여주십시오 도련님!"

승상부의 호장무사들은 분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물러서서 철접을 포위망 밖으로 내보냈다.

헌데 철접이 막 포위망 밖으로 나섰을 때였다.

"잠깐!"

금검존이 다시 철접을 불러 세웠다.

철접은 혹시 금검존이 생각을 바꾼 게 아닌가 하여 가슴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금검존을 돌아보았다.

"할 말이 더 있느냐?"

"본좌의 검은 놓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

금검존은 냉소하며 철접의 몸을 가슴에서 등 쪽으로 관통하고 있는 황금색의 보검 낙일금검을 턱으로 가리켰다.

철접은 금검존의 말에 내심 안도했다.

"물론 그래야겠지!"

그러나 일체 표정으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왼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낙일금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스윽!

이어 그녀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낙일금검을 가슴에서 뽑아냈다.

낙일금검은 철접의 몸통을 관통한 궤적 그대로 빠져나오는데 특이하게도 피는 함께 흘러나오지 않았다.

(독한 계집! 생살이 갈라지는 데도 신음소리 한 마디도 안 내다니...!)

(과연 동영의 인자들은 다르구나!)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보는 가운데 이윽고 철접은 낙일금검을 완전히 몸에서 뽑아내었다.

(뭔가 특별한 조치를 한 모양이로구나. 낙일금검에 관통당한 상처에서는 피가 전혀 흘러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요문천은 낙일금검의 끝이 마침내 철접의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곁눈질로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오늘 진 빚은 기억해 두겠다 금검존!"

철접은 서늘하게 말하며 가슴에서 뽑아낸 낙일금검을 금검존에게 던졌다.

쐐액!

그녀의 손을 떠난 낙일금검은 마치 활로 쏘아진 것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금검존에게 날아갔다.

"!"

금검존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낙일금검을 보며 냉소와 함께 턱을 오만하게 위로 젖혔다.

!

그러자 금검존의 가슴으로 날아들던 낙일금검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허공으로 퉁겨져 올라갔다.

슈욱! 철컹!

뒤이어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방향을 튼 낙일금검은 금검존이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검갑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어검술이다!)

(과연 황실제일검이시다.)

호장무사들과 금의위 위사들은 낙일금검이 저절로 검갑을 찾아들어가는 것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루만 기다려라. 내일 안으로 이자는 확실히 돌려보낼 테니...!!"

몸통에서 낙일금검이 제거된 철접은 왼팔로 요문천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돌아섰다.

휘익!

이어 철접은 요문천을 한 팔로 끌어안은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방금 전까지 심장 부분이 검이 관통 당한 상태였던 것이 믿어지지 않는 날렵한 경신술이었다.

"도련님! 존체보중하십시오!"

"약속은 지켜라 계집!"

승상부 호장무사들의 분노에 찬 외침을 배경으로 철접은 이내 승상부 밖으로 날아나갔다.

"육시를 해도 시원잖을 오랑캐 계집년...!"

금검존은 철접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영반?"

금의위 위사들중 좀 나이가 지긋한 인물이 금검존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건넸다.

"만에 하나... 폐하를 시해하려 했던 대역죄인을 놓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대역죄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승상각하의 일점혈육의 안위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금검존은 차갑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괜한 걱정은 하지 마라!"

불안한 표정으로 말 끝을 흐리는 나이든 위사의 말을 금검존은 확신에 찬 어조로 끊었다.

"바뀌는 것은 단 한 가지! 저 왜국의 계집년 목이 하루 늦게 떨어진다는 것뿐이다!"

"...!"

금검존의 말에 나이 든 위사는 미진한 표정으로 수긍하며 물러섰다.

"천라지망을 더욱 넓게 펼쳐라! 저 계집을 포함하여 단 한명의 대역죄인도 놓쳐서는 안된다!"

파앗!

금검존은 허공으로 새처럼 날아오르며 금의위 위사들에게 지시했다

"존명!"

"봉명하겠습니다 영반각하!"

금의위 위사들은 철접이 사라진 쪽으로 날아가는 금검존을 향해 일제히 포권하며 외쳤다.

! 휘휙!

이어 그들은 일제히 날아올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 정원에는 승상부의 호장무사들만이 남아 분루를 삼키고 있는데...

무슨 일이냐? 도련님이 인질이 되었다는 게 무슨 소리야?”

화악!

천둥치는 듯한 고함 소리와 함께 거구의 여자가 거센 회오리를 몰고 장내에 내려섰다.

물론 그 여인은 뒤늦게 변고를 알아차리고 대청에서 요문천의 거처로 한 달음에 날아온 섭대낭이었다.

뒤이어 금의위 부통령 곽산해와 승상부 호장무사들의 수령 석호륜도 황망(慌忙)한 표정으로 현장에 도착했다.

... 마님... 그것이...”

승상부의 호장무사들은 사색이 되어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현장에 있었던 호장무사들중 가장 나이가 많은 무사 진영(陳永)이란 인물이 전후의 경과를 서둘러 보고했다.

... 이 무능한 밥버러지들...”

!

진영의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머리카락이 곤두선 섭대낭이 이를 갈며 오른 발로 세차게 바닥을 굴렀다.

그녀가 구른 오른 발 아래에서 정원 바닥이 직경 삼장, 깊이 세자 정도로 움푹 들어갔다.

드드드!

그와 함께 정원 전체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이 뒤흔들리면서 요문천의 거처인 은천각도 파도 위의 조각배처럼 요동을 쳤다..

(방금의 진각(振脚)에는 신비각 사대영반에 못지않은 공력이 실려 있었다.)

승상부의 호장무사들과 함께 비틀거리며 곽산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알기로 섭대낭은 결코 그 정도의 공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대낭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진짜 공력보다 두 세배 더 강력한 힘을 몸 밖으로 내뿜었다.

그것은 그녀가 타고난 살기, 천살지기를 몸 안에 품고 있어서 분노가 극에 달하면 순간적으로 몇 배 더 강력한 힘을 토해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에 하나 도련님의 신상에 불미한 일이 생긴다면...!”

드드드!

진흙 바닥처럼 뒤흔들리고 출렁이는 지면을 딛고 선 채 섭대낭은 이를 갈며 호장무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뿜어지는 시퍼런 안광에 호장무사들은 숨통이 콱 막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네놈들을 모두 내 손으로 때려죽이고 나 역시 죽을 것이다!”

섭대낭이 사납게 토해내는 살기는 승상부 내의 모든 숨 쉬는 존재들의 숨을 멈추게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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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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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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