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에 해당되는 글 366건

  1. 2020.05.28 [천신폭풍탑] 제 13장 깨어진 돌머리 1
  2. 2020.05.27 [천신폭풍탑] 제 12장 폭풍무존, 천년만의 부활
  3. 2020.05.26 [천신폭풍탑] 제 11장 장강대혈전
  4. 2020.05.25 [천신폭풍탑] 제 10장 풍운의 대륙
  5. 2020.05.23 [천신폭풍탑] 제 9장 절진 속의 부활
  6. 2020.05.22 [천신폭풍탑] 제 8장 구가천마검법과 살마경의 무공
  7. 2020.05.21 [천신폭풍탑] 제 7장 고검문의 문주 1
  8. 2020.05.20 [천신폭풍탑] 제 6장 유랑의 세월
  9. 2020.05.16 [천신폭풍탑] 제 5장 천하제일인의 죽음 3
  10. 2020.05.15 [천신폭풍탑] 제 5장 천하제일인의 죽음 2
  11. 2020.05.14 [천신폭풍탑] 제 5장 천하제일인의 죽음 1
  12. 2020.05.13 [천신폭풍탑] 제 4장 바보냐 천재냐
  13. 2020.05.12 [천신폭풍탑] 제 3장 동정호의 파란 2
  14. 2020.05.11 [천신폭풍탑] 제 3장 동정호의 파란 1
  15. 2020.05.10 [천신폭풍탑] 제 2장 바람을 부르는 가공할 돌머리
  16. 2020.05.09 [천신폭풍탑] 제 2장 바람을 부르는 가공할 돌머리 1
  17. 2020.05.08 [천신폭풍탑] 제 1장 얼음 속의 살기
  18. 2020.05.08 [천신폭풍탑] 서장
  19. 2020.05.04 [천세무림기보] 제 10장 이패멸절
  20. 2020.05.03 [천세무림기보] 제 9장 영약쟁탈전
  21. 2020.05.02 [천세무림기보] 제 8장 절맥을 지닌 여인
  22. 2020.05.01 [천세무림기보] 제 7장 요지화원
  23. 2020.04.30 [천세무림기보] 제 6장 쓰러지는 팔절 1
  24. 2020.04.29 [천세무림기보] 제 5장 선풍비가
  25. 2020.04.28 [천세무림기보] 제 4장 묵혈파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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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三 章

 

               깨어진 돌머리 (1)

 

 

 

숭산(崇山),

준극봉(峻極峰) 아래의 만장단애의 아래쪽에는 사람이고 짐승이고 모두 피해가는 무저갱(無底坑)이 하나 입을 벌리고 있다.

바닥이 얼마나 되는 지 측량할 수 조차 없는 이 무저갱은 다행히 입구가 별로 크지 않다.

또한 자비를 우선하는 소림사에서 이 무저갱의 둘레에 우물처럼 담을 쌓아놓았다.

그 때문에 스스로 들어가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 한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곳에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드높은 위쪽의 만장단애에서 그대로 무저갱안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햇살이 거북이 등딱지를 떼어버릴 정도로 뜨겁게 내리 쪼이는데,

에고 더워라! 헥헥헥!”

엷은 백의를 입은 한 소녀가 무저갱을 둘러싼 담장가에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보석같이 초랑한 눈망울을 가진 그 소녀는 야무지게 다문 입매가 극히 지적으로 보였다.

허리에는 한 자루의 옥퉁소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녀는 발이 아픈지 가죽신 위로 발을 주무르면서 투덜거렸다.

[사부님께서도 이제 돌아가실 때가 되기는 됐어. 시키는 대로 준극봉을 이 잡듯이 뒤져서 무저갱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이게 뭐 어떻다는 거야? 무저갱에서 뭐 사람이 올라와? 그럼 그게 어디 무저갱이야? 웅덩이지.]

쫑알쫑알 거리는 그녀는 장난기가 다분했으며, 틀에 얽매이지 못하는 그런 성미가 옅보였다.

그녀는 돌연 벌렁 드러누우면서 소리쳤다.

[애고, 난 모르겠다. 사람이 나오든 도깨비가 나오든 나오면 나오는 거고 난 낮잠이나 한숨자야겠다.]

나른해지는 여름날의 오후다.

소녀는 눕자마자 새근새근 코를 골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무저갱에서 금방이라도 삭아서 녹아버릴 것같은 백의를 걸친 인물이 한명 쑤욱 떠올랐다.

바로 천년만에 부활한 폭풍무존이었다.

그러나 잠이 든 소녀는 그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스읏!

폭풍무존은 그녀를 힐끗 본 후에 준극봉을 날아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한참 후 무저갱을 둘러싼 담장위로 더부룩한 검은 머리가 수욱 올라왔다.

피로에 지친 듯한 그 인물은 가까스로 담장을 손으로 잡고 밖으로 기어나왔다.

알몸에 방망이를 든 석두공이었다.

“....!”

순간 그의 기척에 백의소녀가 눈을 번쩍떴다.

그녀의 눈에 석두공의 알몸이 그대로 들어왔다.

석두공은 그녀를 보고서야 이제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나왔구나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데 소녀는 석두공을 보고도 처음에 잠시 당황한 눈빛을 보였을 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 말했다.

[척보니 무저갱에서 나왔군요.]

[무저갱? 여기를 말하는 거요?]

석두공이 반문했다.

소녀가 그의 하체를 잠시 보았다가 눈을 슬쩍 돌리며 말했다.

[그럼 깊은 구멍이 거기 말고 또 있나요?]

무의식중에 구멍이란 말을 한 그녀는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석두공의 나신도 점잖케 훔쳐본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석두공은 아무것도 모른채 심지어 자신이 발가벗었다는 사실도 모른채 말했다.

[아무튼 나는 이곳으로 올라왔소. 한데 내게 무슨 볼일이 있소?]

[물론이예요. 그 때문에 나는 수천리를 달려왔어요. 이 가죽신 보이죠? 이게 길을 떠나고 나서 세번째로 사서 신은 거예요.]

백의소녀는 자신의 발을 번쩍 들어보이며 말했다.

치마가 훌렁 올라갔다.

하지만, 그녀는 기가 막히게 다리를 살짝 돌려 치마속이 보일 듯 말듯 하게 했다.

석두공은 자신도 모르게 침이 꿀꺽 삼켰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얼른 말했다.

[무슨 일이오?]

질문부터가 좀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수천리 밖에서 어떻게 자신이 오늘 무저갱에서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일을 보러 왔단 말인가?

그에 대한 질문은 조금도 없고 생각이 건너뛰어 그렇게 묻고 말았다.

[이것을 아시겠어요?]

백의소녀는 품속에서 손가락 만한 은검(銀劒)을 꺼내들면서 말했다.

그것은 크기만 작았지 모양은 완전한 검이었다.

[아주 작은 검이군요.]

석두공이 말했다.

백의소녀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장난치지 말고 말해요. 나를 만만하게 보다간 큰코다칠 거예요.]

[그럼 검이 아니란 말이오?]

석두공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순간 백의소녀의 눈에서 서릿발같은 한기가 감돌았다.

쉬익!

손가락만한 검이 섬짓한 소리를 내면서 뽑혔다.

번쩍!

강렬한 백광이 그 검으로 부터 발해졌다.

소녀가 준엄하게 소리쳤다.

[정검령(正劍令)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겠단 말인가?]

석두공은 소녀가 살기를 돋우고 소리치자 저으기 당황했다.

[정검령? 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아니오? 나는 정검령이 무엇인지 모르오.]

[!]

소녀가 혀를 차면서 작은 검을 거두었다.

[사부말이 이번에도 맞기는 맞았군. 상대하려면 골치 아픈 자라고 하더니만, 이런 돌머리를 어디다 쓰려고 데려오라는건지 원... 그래도 명령이니 듣기는 들어야지.]

그녀는 자신의 뒤에서 작은 보따리를 풀더니 석두공에게 휙 던졌다.

[우선 옷이나 걸치고 보시지. 아무리 대책없는 사람이라 해도 상대를 잘못 만났어. 난 백란이란 말이야. 종횡선녀(縱橫仙女) 백란(白蘭)이라구.]

석두공은 속으로 뜨끔했다.

(어떻게 내가 돌머리인줄 알았을까? 무슨 멍청한 짓을 한 것같지도 않은데... , 한데 옷이라니... !)

그는 그때서야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란 사실을 알아채고 얼굴이 파랗게 질려 훌쩍 뛰어 바위뒤로 숨어버렸다.

[호호호호... 멍청이! 이미 다 봤는데 숨기는 또 뭘 숨어? 사내대장부가 숫기 없기는..... 어서 옷이나 입어.]

백란이라는 소녀가 깔깔 웃으면서 옷이든 보따리를 발로 차서 바위 뒤로 보냈다.

석두공은 옷을 받아들고 풋! 하고 웃었다.

(남자가 몸을 한번 보인게 뭐 대단하다고 이런 호들갑인가? 여자인 그녀는 내 알몸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

석두공은 소녀가 준 옷을 입고 허리까지 드리워진 긴 머리를 뒤로 묶었다.

그리고 바위뒤에서 나오자 백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아주 잘생겼잖아. 조금 전과는 아주 딴판인데.)

방금 전의 모습이 연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석두공은 멋진 사나이로 둔갑해버렸다.

[음음, 가자!]

그녀는 마치 하인을 대하듯 석두공에게 명령하곤 앞서 걸었다.

석두공은 어이가 없었다.

(옷이 고맙긴 하지만 아무래도 미친 여자인 모양이군. 내가 궂이 따라갈 이유가 어디 있겠나?)

내심 속으로 생각한 그는 슬그머니 돌아서서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편 백란은 그가 따라오리라는 것을 확신했는지 보치도 당당히 걸어갔다.

한데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싹 돌아보는 순간 그녀는 빽 소리쳤다.

[튀다니! 내 허락도 없이. , 감히 이 종횡선녀를 우섭게 봐? 별 떨거지같은 놈이... ]

그녀는 번개같은 신법으로 석두공이 사라진 곳을 향해 날아갔다.

 

* * *

 

석두공은 생각했다.

(내가 비록 무공이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하지만 이것으로 그 끝에 달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폭풍무존의 경우를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폭풍무존의 무공수준에 달하려면 아직도 나는 멀었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에 의하면 나는 소림사로 가는 길이었다. 무슨 이유로 가던 중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먼저 소림사로 가고 볼 일이다.)

석두공은 또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절곡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에 내 몸이 훨씬 자란 것같으니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것같은데...)

그는 혼자라는데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밀려왔다.

그것은 세상천지에 오직 자기뿐이라는 고독감이었다.

 

***

 

마침내 소림사에 도착했다.

석두공은 산문으로 들어서서 무작정 걸었다.

딱히 지리를 아는 바가 없기에 그저 다른 참배객들의 뒤만 졸졸 따라갔다.

그를 저지하는 사람도 없었고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사찰다운 사찰을 처음으로 구경하는 석두공에게 소림사의 웅장한 건축은 상당히 깊은 인상을 주었다.

기둥과 벽면에 화려한 단청과 울굿불굿한 물감으로 그려진 탱화들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대웅보전으로 갔다.

한데 대웅보전 어귀에 이르렀을 때 그는 낮게 속삭이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저분이 바로 만배선사(萬拜禪師)라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만번 씩 부처님께 절을 한다는 그 스님말인가?]

[그렇네. 저분의 절하는 신공은 고금무적이라서 한시간이면 만배를 다하고 나오신다고 하더만.]

[!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만약에 만배를 하자면 열흘은 몰라도 닷새는 걸릴 것인데... ]

[한데 만배선사께선 좀처럼 본사로 내려오시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

 

석두공의 앞쪽에서 걸어가는 두사람이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석두공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기인은 참으로 많구나. 하루에 만배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공력일 텐데... )

그의 눈에도 대웅전 안에서 걸어나오는 한 노승이 보였다.

한데 하루에 만배씩 한다는 사람의 몸이 저럴 수도 있는가?

허리는 보통 사람의 두배나 굵었으며 목은 짧고 손과 발은 자그만 했으며 팔다리는 통나무를 연상시킬 만큼 굵었다.

얼굴에는 주름살이 흘러내릴 만큼 쳐져있었고 눈에는 진물이 고여있으며, 수염과 눈썹은 허리까지 늘어져있었다.

너무도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에겐 그 모습이 부처님의 화신으로 보이는지 앞을 다투어 합장하며 입속으로 나직히 소원을 빌고 있었다.

(저 스님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석두공이 속으로 생각하는 찰라에 만배선사는 그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그를 스쳐지나가면서 혀를 찼다.

[끌끌... 천왕저(天王杵)가 주인을 잘못 만나 울고 있군.]

[...?]

석두공은 그게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금방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만배선사는 그를 지나 조금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소리쳤다.

[!]

석두공의 귀가 얼얼했다.

그리고 순간적이나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냥 지나치려 해도 도무지 화가 나서 못참겠다. 이놈!]

만배선사는 선장을 들어 석두공의 머리를 내려쳤다.

슈앙!

[으악!]

다른 참배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머리속에는 두개골이 깨어져 즉사하는 석두공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하나 석두공은 이상하게 만배선사에게 저항감이 일어나지 않았다.

피하려면 피하고 막으려면 막고 반격하여 일초에 죽이려면 죽일 수도 있을 그였지만 가만히 두들겨 맞고 말았다.

!

!

선장이 그의 머리에 부딪히며 반으로 부러지고 말았다.

[껄껄껄껄... 그놈 머리 하난 단단하구나!]

돌연 만배선사는 선장을 휙 던져버리고 대소를 터뜨렸다.

석두공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모든 것은 스스로 밝혀지는 것이니...

참배객들이 석두공을 귀신보듯 하면서 그 근처를 피했다.

약한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강한 자 보다 더욱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그것은 스스로 몸을 사리고 물러선다는, 강한자가 결코 익힐 수 없는 호신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만배선사는 곰처럼 걸어가며 말했다.

[따라오너라! 선장으로는 네놈의 머리를 깨지 못했지만 불력(佛力)으로 깨뜨리고 말겠노라.]

 

× × ×

 

소실산의 중턱,

입구에 울타리가 쳐져있는 토굴(土窟)이 있었다.

토굴의 앞에는 몇 가지 야생의 꽃들이 피어있었고 흰 토끼가 울타리의 틈사이로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숲 사이로 난 소로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앞장 선 사람은 사람인지 아니면 옷입은 늙은 곰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뚱뚱한 괴물같은 중이었으며, 그 뒤를 따라오는 젊은이는 창백한 얼굴에 긴 머리를 땋지도 않고 뒤로 묶어 넘긴 자였다.

젊음이 발산되는 듯한 그런 싱그러운 맛이 젊은이에겐 있었다.

또한 그의 얼굴은 세상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준수한 것이었다.

그는 바로 석두공이었다.

만배선사는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하늘이 모든 것을 모아주는데도 여전히 바보멍청이라니... 노납이 네놈의 머리를 깨지 못한다면 내 머리라도 깨고 말겠다.]

토굴의 안은 좁았다.

만배선사가 안쪽으로 들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빈틈이 없는 것같았다.

석두공은 앉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했다.

그때 만배선사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내놔라!]

(이 몽둥이를 말하는 모양이로군.)

석두공은 허리에 매어두었던 몽둥이를 끌러서 주었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 놈이군. 이놈아!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

[전 모릅니다.]

석두공은 자신에게 욕을 하는 만배선사에 대해서 조금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또한 만배선사는 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같기도 했다.

만배선사는 몽둥이를 들어서 바닥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건 천왕저(天王杵)라고 하는 물건으로 상고시대(上古時代)의 기물이다. 우리 소림사의 금강저(金剛杵)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천왕저를 흉내 낸 것에 불과하지.]

바닥이 천왕저에 닿을 때마다 푹푹 꺼졌다.

천왕저...

석두공이 무당파의 해검지에서 주어왔던 몽둥이는 천왕저라는 이름을 가진 상고시대의 병기였던 것이다.

만배선사는 갑자기 주문같은 몇 마디를 외우기 시작했다.

[태상태성응변무정구사박매보명호신지혜명정삼혼영구... ]

분명히 그것은 불경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슨 무공구결같지도 않았다.

석두공은 그 주문이 천왕저와 어떤 연관을 가진 것인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 순간 만배선사가 돌연 석두공을 향해 천왕저를 휘둘렀다.

[!]

석두공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한데 그의 등뒤에는 출구가 아니었다.

언제 막혀있었는지 그것은 만배선사의 뒤나 다름없는 흙벽이었다.

!

그의 몸이 석벽을 두자깊이나 파고들어갔다.

그때였다.

!

만배선사가 휘두른 천왕저가 그의 가슴에 격중되었다.

[!]

석두공은 한사발의 피를 토해냈다.

천왕저의 힘은 진정 두려운 것이었다.

이미 도검이 불침하게 된 석두공의 몸이건만 천왕저에 맞아 그의 갈비뼈가 두대나 부러져 버렸다.

또한 천왕저에 서린 힘은 그의 몸에서 고통이 되어 번져갔다.

석두공은 까무라치고 싶었다.

그때 만배선사가 호통쳤다.

[이놈! 열심히 듣고 따라 욀 생각은 않고 정신을 어디에 빼놓는 거냐?]

그가 맞은 이유는 그때문이었다.

만배선사는 다시 태상태성하고 외우기 시작했고 석두공은 피를 머금은 입으로 웅얼웅얼 따라했다.

[태상태성응변무정구사박매보명호신... ]

만배선사는 다시 한번 들려준 후에 말했다.

[혼자서 외워봐라!]

[...!]

석두공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외는 것도 하는 사람이나 하지...

!

천왕저가 그의 어깨로 떨어졌다.

석두공은 너무도 심한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딱 벌렸다.

그의 어깨가 능충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뼈가 바스라진 것같았다.

만배선사는 눈을 감고 못본척하며 다시 괴이한 주문을 한번 외웠다.

그리고 턱으로 한번 외워보라는 시늉을 했다.

하나 이번에도 석두공은 삼혼영군가 하는 말 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

천왕저는 그의 머리에 떨어졌다.

천하의 석두공도 입과 코로 피를 쏟으며 뒤로 넘어갔다.

한데 그의 몸은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포연신공이 절로 일어나면서 밖의 손상입은 공력이 잠복하고 잠복하고 있던 공력이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배선사는 또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석두공은 평생 이처럼 정신을 집중시킨 적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천왕저를 맞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만배선사는 겨우 중간정도 외웠을 뿐인데 벌써 앞의 구절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석두공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또다시 맞을 것을 생각하니 다리가 후들후들떨려왔다.

매에는 진정 장사가 없는 법인 모양이다.

더욱이 석두공을 때리고 있는 천왕저는 원래 때리기 위한 전문도구인 몽둥이였으니...

검으로 베인 상처는 싸늘한 느낌에 따가울 뿐이다.

주먹으로 맞았을 때는 둔중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금방 그 충격이 사라진다.

하지만 몽둥이라는 놈은 그 고통을 뼛속에 저장해서 두고두고 괴롭히는 괴물같은 놈이다.

한 대 한대 맞을 때마다 석두공은 천왕저가 더욱 더 두려워졌다.

처음 맞는 한대보다는 열번째 맞는 한대가 그 고통에 있어선 처음 한대의 열배도 더 될 것같았다.

[...]

니라니라하고 다 왼 만배선사의 눈초리가 다시 석두공을 노려보았다.

석두공은 눈을 찔끔 감았다.

달달달...

무슨 말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입술은 달짝이고 있었으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머리속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

천왕저는 그의 옆구리를 두드리고 돌아갔다.

고통! 그 고통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석두공은 그 고통을 만끽할 여유마저도 없었다.

만배선사가 또다시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구절이라도 외워야 한다!)

장렬한 결심을 했건만 석두공의 돌머리는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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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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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二 章

 

             暴風武尊, 千年만의 復活

 

 

 

(제길... 틀렸다.)

자신의 진로를 가로막은 잔혼살객을 발견한 죽립객은 입술을 악물었다.

하지만 그는 추호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퍼엉!

맹렬히 앞으로 내달으면서 잔혼살객에게 일장을 가하고 몸을 홱 돌려 바로 뒤에까지 쫓아온 부운청풍객을 향해 쌍장을 날렸다.

그럼에도 그의 몸은 여전히 앞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퓨아아앗!

부운청풍객은 벼락같이 검을 휘둘러 날아든 장력을 양단하며 죽립인에게로 날아들었다.

장력은 파죽지세로 쪼개지고 부운청풍객의 검은 죽립인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에 잔혼살객의 손에서 청월천인혈(靑月千人血)이라는 공포의 수법도 펼쳐지고 있었다.

앞 뒤에서 펼쳐진 그 두가지 살초는 죽립객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죽립객은 동귀어진을 생각했다.

기왕 죽어야한다면 이 악종들 중 한놈이라도 저 세상으로 데려가야만 한다!

한데 바로 그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다.

촤악!

물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손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죽립객의 발을 끌어당겼고,

그와 동시에 한 자루의 검이 손을 따라 치솟아 오르며 부운청풍객의 검과 잔혼살객의 청월천인혈을 풀어버렸다.

번쩍!

스파팟!

그리고, 돌연 유령같은 흰 그림자가 두둥실 떠올라서는 유유히 장강위로 날아가 버렸다.

그 그림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조각 구름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러워 보였다.

“...!”

“...!”

부운청풍객과 잔혼살객, 그리고 해천월은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너무도 엄청난 충격이 그들로부터 말을 앗아간 것이다.

잠시 후, 부운청풍객 심제을이 암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무공... 그끝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는 자신이 천하의 십대고수 중의 일인으로 오객에 속했을 때만 해도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한데 그 후에 동호천이라는 서열에서 제외된 절대고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부운청풍객은 단혼곡주 하삼풍의 큰소리치기 좋아하는 아들을 자극하여 동호천을 암습하게 했었다.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호신강기에 진탕되어 그가 죽음으로써 증명되었다.

자신의 무공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운청풍객은 잔혹한 수법을 동원하여 삼마경을 얻었다.

그 중에서 구가천마검법을 익히고 난 후에 이번에는 정말 적수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역시 동호천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물론 잔혼살객과 적룡혈운도주 해천월마저 합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상을 입고 도망쳤어야 했다.

물론 동호천은 그때 죽었지만 그에 대한 공포심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부상을 겨우 치료하고 다시 무림으로 나왔을 때 동호천의 제자와 맞부딪혔다.

더 자라기 전에 제거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는데 동호천의 제자 석두공은 동호천과는 또다른 종류의 고수였다.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괴하면서도 귀신같이 빠른 공격에 당해 손목이 부러지는 치욕을 당했다.

석두공을 제거한 것은 잔혼살객의 술수에 의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후 부운청풍객은 절치부심 각고의 수련으로 드디어 구가천마검법을 팔성(八成) 수준까지 익혔다.

그의 무공은 오년전 석두공과 싸울 때에 비해서 다섯 배 이상 강해졌으며 이제야말로 하늘 아래 더 이상 자신의 적수는 없을 것이라 단정했다.

잔혼살객과 해천월마저도 그의 무공은 인정했고 은연 중에 부운청풍객은 그들의 우두머리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한데...

한데 이게 또 뭐란 말인가?

자신의 눈앞에서 이렇게 쉽게 사람을 빼갈 수 있는 자가 또 있었단 말인가?

구가천마검법을 막고 잔혼살객의 청월천인혈을 깨뜨리고 말이다.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검성과 만박노조 등이 더이상 자신의 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고수들은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뒤에 서있는 검종맹의 수하들을 보면서 말했다.

[돌아가자! 계획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잔혼살객과 해천월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노선배님!]

장강의 남쪽에 있는 작은 야산의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엔 용왕묘(龍王廟)가 한채 서있다.

그리고 놀람에 찬 음성이 그 안에서 터져 나왔다.

“...!”

용왕묘의 안에는 한 노인이 뒷짐을 지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죽립객이 엉거주춤 서있고...

노인이 입을 열었다.

[오랫만이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네 주인인가 하는 그 아이는 어디로 갔는가?]

[그는 소림사로 가던 중에 실종됐습니다. 아마 부운청풍객이나 잔혼살객을 만났던 것같습니다.]

죽립객은 이제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듯이 죽립을 벗었다.

그는 바로 복우파(伏牛派)의 기재인 혼장서생(渾掌書生) 금사종이었다.

노인이 준엄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는 뭘 했기에?]

[전 그때 백검보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적룡혈운도주 해천월을 만나 그자의 검에 가슴을 맞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깨어나 보니 그는 제가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떠나버린 뒤였습니다.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공력이 극히 미미하게 변한 지라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혼장서생 금사종,

그가 바로 요즈음 신비의 고수로 이름을 날리는 일초진천수(一招震天手)였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노인은 그와 석두공이 구해주었던 고검문의 문주인 섭군천이다.

금사종은 그에게서 포연신공을 전수받은 적이 있기에 해천월의 일격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고검문주 섭군천이 냉소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심제을 그놈을 죽이기는커녕 도로 죽을 뻔 하다니... 창피하지도 않느냐?]

[...!]

금사종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에게 섭군천의 추궁이 이어졌다.

[놈이 삼마경을 익혔다고 해도, 아직 팔성을 넘지 않은 수준인데 그 정도라면 포연신공으로 능히 겨루어 볼 수 있는 것이건만...]

금사종은 암담했다.

지금도 그를 죽일 수 없는데 앞으로 만약 그가 검마경을 십이성까지 수련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죽일 수 있을 것인가?

금사종은 무치무요를 거의 다 익혀보았지만 그중의 어느 무공도 대성(大成)하지는 못했다.

기기묘묘한 수법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의 머리속에 있었으나 아직 그것들은 엉킨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섭군천이 나직하게 말했다.

[노부는 굳게 마음먹은 것이 있다. 만약 일년 안에 심제을 그놈이 죽는다면 천하에 공도(公道)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천하에 공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

[만약, 천하에 공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섭군천의 두눈에서 무시무시한 광망이 번져나왔다.

[노부는 거리낌없이 천하를 피로써 씻어버리겠다. 그때는 검을 들거나 주먹을 쥔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

부르르르...

금사종은 극심한 추위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천하제일의 검문이라는 고검문의 문주!

그라면 능히 그럴 힘이 있을 것같았다.

부운청풍객 등 삼인의 손에서 주머니의 물건을 꺼내듯이 자신을 빼내온 그가 아닌가?

 

-천하를 피로써 씻어버린다!

-검을 들거나 주먹을 쥔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실로 무시무시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자는 몰라도 부운청풍객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를 죽이지 못한다면... 무림이 깡그리 사라질 지도 모른다!)

금사종의 가슴은 심하게 떨렸다.

심제을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속을 꽉 채웠다.

제자의 배신에 가족을 잃고 이십 년을 감금당해 있었던 고검문주!

그는 언제든지 피를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 × ×

 

이정(二正)과 일사이객(一邪二客)이 부운청풍객등에게 당한 패배는 무림에 엄청난 반향(反響)을 불러왔다.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던 검성등이 어이없이 패해 도망쳤다는 소문은 모든 무림인들에게 커나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눈치를 보면서 검종맹과 잔혼각등에 붙지 않고 있던 많은 군소문파들이 스스로 장문령부를 그들에게 갖다 바쳤다.

백검보가 패했는데 누가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백검보의 분위기는 침통했고 모였던 고수들은 다시금 뿔뿔이 흩어져 떠나갔다.

뭉쳐도 패배,

흩어져도 패배,

어차피 그럴 바에야 그들의 성격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쪽을 택한 것이다.

 

* * *

 

[뜻밖의 인물이라!]

금포(錦袍)노인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뜻밖의 인물이 아니라 본좌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인물일 수도 있지. 그가 만약에 은세정검회(恩世正劒會)의 고수였다면 말이야!]

금포노인의 입가로 미묘한 웃음이 흘렀다.

[이제서야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하는가? 흐흐흐!]

그는 갑자기 소리쳤다.

[미사(美邪)! 둔부를 뒤로 하고 엎드려라!]

명을 받은 미사가 금포노인의 앞에서 둔부를 내밀며 개처럼 엎드렸다.

금포노인의 눈앞에 그녀의 희멀건 둔부가 산등성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둔부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사이에 붉은 꽃잎이 보였고, 꽃잎에는 깊고도 검은 동굴이 수초들에 가로막혀 있었다.

노인은 손가락을 뻗었다.

[!]

미사가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노인의 중지가 그녀의 붉은 꽃잎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었다.

촉촉한 물기가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노인은 손가락으로 실을 감듯이 뱅글뱅글 돌렸다.

미사의 은밀한 곳이 옴찔옴찔 움직이며 맑은 물이 음모를 타고 흘렀다.

[아아아! 헉헉헉!]

노인은 쥐구멍에 빠뜨린 동전을 꺼집어 내기라도 할 듯이 손가락을 더욱 깊이, 그리고 빠르게 움직였다.

미사의 둔부는 그의 손을 마중하러 나왔으며 질척이는 소리가 침상에 있는 모든 여인들의 귀속으로 파고들며 음욕을 돋구었다.

[아아아!]

미사의 신음소리는 절정을 향해서 치닫고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다가 자신의 둔부를 끌어당기며 은밀한 부분을 더욱 크게 벌리려 했다.

그때 노인이 손을 뽑았다.

[이정도까지, 흐흐흐...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거지.]

미사가 돌아서서 그의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달아오른 얼굴은 노인에게도 뜨거운 열기를 전해주었다.

[웁웁]

노인의 손가락을 입에 넣은 미사는 혀를 오물거리며 빨았다.

스윽!

노인의 금포가 젓혀지고 그의 배꼽어림에서 거대한 물건이 서서히 일어서고 있었다.

꿈틀거리며 일어서는 그것은 마침내 완전히 모양을 갖추었고 노인은 미사의 머리를 잡고 그곳으로 끌어당겼다.

[헉헉!]

미사의 혀가 노인의 남성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한입에 들어가기에 그것은 너무도 컸다.

오직 자신의 은밀한 곳으로 밖에는 받을 수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비스듬히 드러누운 노인에게 다리를 활짝 벌리고 아래서부터 접근했다.

앉은 채 조금 씩 몸을 밀착시켜 노인의 남성을 자기의 꽃잎에 맞추었다.

순간 노인이 와락 그녀의 둔부를 끌어당겼다.

[아악!]

미사가 비명을 질렀다. 천지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노인이 흥분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천하는! 이렇게 갑자기 취하는 것... ]

마치 천하를 취하기라도 하는 듯이 미사를 힘껏 끌어당기고 격렬하게 움직였다.

[아아악! ! !... ... ]

침상위에선 광란의 난교가 벌어지고 있었다.

 

× × ×

 

[천신폭풍보...]

석두공은 그말을 중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껏 달려보고 싶다. 미친듯이 폭풍처럼 달리고 싶다... )

천신폭풍보를 펼쳐보고 싶은 충동으로 그의 가슴을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한 기분은 명마(名馬)를 얻은 사람이 타보고 싶어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석두공은 다리가 달달 떨렸다. 절로 달리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두두두!

마침내 석두공은 달리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오!

거대한 폭풍인양 그의 몸은 흐릿해지면서 천신폭풍탑을 이층 내부를 돌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릉!

진정 말 그대로 그는 천신(天神)의 폭풍(暴風)이 되었으며 그 여파에 석탑은 여지없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콰드드드!

석벽이 터져나갔으며 바닥이 무너져 버렸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탑의 삼층은 전혀 무너지지 않았다.

고오오오!

그는 더욱 빠르게 맴돌았다.

콰콰쾅!

마침내 어느 순간 천신폭풍탑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듯 송두리채 터져서 날아올라갔다.

콰아아아아!

휘이이이잉!

 

그것도 분명 인간의 힘이었다.

그러나 도저히 인간의 힘이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힘이었다.

천신폭풍보-!

그것은 대자연의 거력이었으며 신의 힘이었다.

투두두둑!

천신폭풍탑을 이루고 있던 것들이 모두 작은 모래가 되어서 떨어져 내렸다.

천신폭풍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또한 항아리같은 그 절곡의 모든 것이 폐허가 되어버렸다.

석두공은 허탈한 심정으로 우두커니 멈추어섰다.

그가 선곳은 처음 석두공이 이 절곡에 떨어져 정신을 차렸던 그 대리석바닥위였다.

자신이 한 일이건만 그는 도저히 자신이 했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의 몸속에 어떤 악마가 들어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데 이럴 수가...!

“....!”

석두공의 머리위 이십여 장 정도의 허공, 그곳에 한사람이 허공을 평지처럼 밟고서 손바닥만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가만히 떠있는 그의 몸에서는 진정 천신도 범할 수 없을 것같은 엄청난 기도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석두공의 머리에 벼락같이 생각이 지나갔다.

 

-본좌 폭풍무존은 부활하리라!

 

(정말 폭풍무존이 부활했단 말인가? 저 사람이 폭풍무존이란 말인가?)

석두공은 아연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이곳에서 알같이 생긴 공간을 빠져나오면서 상당한 기억력을 회복한 석두공이었다.

아직도 여전히 보통사람의 십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이긴 하지만 조금씩은 기억력이 늘고 있었다.

그는 폭풍무존의 글에서 떠오르는 구절을 상기해 내고는 부르르 진저리쳤다.

대체 몇년 전의 인물이란 말인가?

신이 아닌 인간이 어떻게 그처럼 오랫동안 살 수 있단 말인가?

폭풍무존은 이미 이 절곡에서만도 이백사십년을 살았다고 했는데...

그때 폭풍무존이 옷깃을 날리며 서서히 밑으로 내려왔다.

이미 무공이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선 석두공이건만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폭풍무존,

그의 모습은 불과 삼십을 넘지 않은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오관은 반듯했으며 패도적인 기운이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아니, 그의 몸에서 풍겨나는 기운을 패도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패도적인 것마저 초월한, 말 그대로 강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같았다.

석두공은 그의 모습에서 부터 폭풍무존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와 닿았다.

그의 손짓 하나에 산이 날아가고 그의 입김에 숲의 나무들이 모두 뽑힐 것만 같았다.

석두공은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의 사부가 당신을 이곳에서 탑이나 깍게한 이유를 알만도 하군. 어쩌면 나라도 그랬을 것...)

석두공과 폭풍무존의 눈이 마주쳤다.

파파파팟!

석두공은 눈알이 뽑히는 것같았다.

그러나 그는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응시했다.

그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갑자기 폭풍무존의 얼굴이 실룩실룩거렸다.

그리고는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 흘러나왔다.

[너가 나르 깨우 자리가?]

석두공은 기억력은 형편없지만 순간적인 이해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그는 그 말을 정확하게 들을 수는 없었지만 틀림없이 자신에 대해서 묻는 것이라 생각했다.

[제가 깨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탑은 제가 부순 것같습니다.]

폭풍무존은 계속 입을 실룩거렸다.

아마도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 근육이 잘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상당히 정확한 발음이 나왔다.

[본좌의 천신폭풍보를 익힐 수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군. 너는 누구냐? 본좌는 폭풍무존이다.]

하지만 여전히 말의 두서는 없었다.

그저 생각나는 순서대로 말을 하고 있었다.

석두공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부터 말이 저런가 아니면 너무 오랫만에 말을 해서 그런가?)

여하튼, 그는 즉시 대답했다.

[전 석두공이라고 합니다. 우연히 천신폭풍보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본좌가 살았던 때로 부터 얼마나 세월이 흘렀느냐? 본좌는 당()의 고종(高宗) 삼년에 태어났는데...]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태어난 지는 천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는 이야기인데,

안타깝게도 그가 최초로 만난 상대는 석두공이었다.

석두공은 역사에 대해서 문외한 일뿐 아니라 무공을 제외한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돌머리다.

폭풍무존의 질문은 하나마나 한 것이 되었다.

석두공은 간단히 대답했다.

[상당히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얼마나? 이백 년 정도 되었는가?]

[아마 그 정도 됐을 것입니다.]

석두공은 아마라는 말을 붙혀서 답했다.

그래야 틀리더라도 발뺌할 여지는 남을 테니까...

하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폭풍무존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본좌는 혹시 한 천 년이나 지났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 세상이 너무 많이 달라져 버리면 곤란하지.]

[여기서 나갈 방법은 있습니까?]

석두공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폭풍무존이 씨익 웃었다.

[천신폭풍보를 익힌 놈이 겨우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니... 아마도 네 녀석은 바보인 모양이군. 이미 이곳을 폐쇄하고 있던 진도 깨어졌다. 못나갈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밖으로 나가시면 뭘 할 작정입니까?]

석두공이 빠르게 물었다.

그는 폭풍무존이 세상으로 나가기만 하면 꼭 무슨 일을 저지르고 말듯한 기분이 들어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폭풍무존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 일단은 본 은세정검회의 숙적인 독존패왕궁, 그놈들이 아직도 발톱을 다듬고 있는지 살펴봐야겠지. 그리고 은세정검회로 돌아가서 어떤 녀석이 회주가 되었는지도 알아보고, 사부께서 내게 혹시 남긴 말은 없는지도 알아봐야겠지.]

[그 다음에는요?]

[글쎄... , 아무래도 무림에 돌아다니면서 신나게 놀아봐야겠지. 평생 가까이 못했던 여자들도 한번 만나보고... ]

폭풍무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석두공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폭풍무존은 천천히 허공으로 올라가면서 말했다.

[그럼 무림에서 보게나.]

그의 몸은 구름처럼 두둥실두둥실 떠올라서 손바닥만한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하늘을 나는 것이지 신법을 펼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공답허니 허공답보는 하는 경공술도 비록 허공을 밟고 오를 수는 있는 것이지만 이처럼 날아가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폭풍무존의 모습을 만약에 도가(道家)의 제자가 보았다면 신선(神仙)이라고 엎드려 절하고 그 자리에 도관이라도 세웠을 것이다.

그처럼 폭풍무존의 모습은 우화등선(羽化登仙) 그 자체였다.

석두공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폭풍무존에게 뭔가가 모자라는 것같은데 그걸 알 수가 없군. 틀림없이 그도 나처럼 뭔가 하나는 빵통인데...]

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포기하고 자신의 방망이를 손에 들고 폭풍무존의 흉내를 내어 날아올랐다.

하지만 흉내뿐인 무공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몸은 떨어질듯 말듯 위태위태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 순간 석두공은 폭풍무존에게 뭔가가 빠진 것같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자신에게도 기억이외에 다른 그 무엇이 빠져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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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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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一 章

 

               長江大血戰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다.

개발다닥에도 땀이 날 정도로 무더운 여름밤인데,

깃발,

붉은 비단에 피빛 구름(血雲)을 타고 오르는 적룡(赤龍)이 수놓여진 깃발 하나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마차는 그 깃발을 단 채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마른 땅에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스스스!

그리고 달려가는 사두마차의 주위로 그림자인 듯 청의무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뿌옇게 일어나는 먼지,

그리고 푸른물결을 이루고 달려가는 청의무사들...

청의무사들의 수효는 일천 명이 넘을 것같았다.

두두두두-!

마차는 지축을 뒤흔들었지만 청의무사들은 옷자락 날리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관도 저 멀리 아스라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이 일렁이는 듯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너무도 검어서 어둠과 구분이 가지 않는 옷을 입은 자들이었다.

흑의에 검은 복면을 했으며 눈동자는 썩었는 듯 죽었는듯 빛이 없었다.

모두가 어둠 그 자체인듯한 자들은 조용히 땅위를 미끌어지듯 달려갔다.

그들의 모습도 관도 멀리 사라졌다.

 

그 직후 이번에는 붉은 옷을 입고 검과 도를 비껴맨 자들이 어깨에 무엇인가 기다란 물건들을 메고 달려왔다.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서 움직이는 그들의 어깨에 매여있는 것은 놀랍게도 좁고 긴 배였다.

홍의를 입은 그들은 개미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배를 들고 달려갔다.

배들의 숫자는 무려 이백개에 달하고 있었다.

 

[백검보를 노리는가?]

세무리의 인물들이 지나간 관도 옆 숲속에서 한사람이 걸어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머리에는 죽립을 섰으며 검붉은 장삼을 입은 자였다.

얼굴은 죽립에 반쯤 가려져 보이지 않았으나 서른이 넘은 사람같진 않았다.

[백검보로 가는 심부름이 이렇게 늦어 버렸군. 어쨌든 지금이라도 심부름을 하지 않을 수야 없지.]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성큼걸음을 옮겼다.

스읏!

순간 그의 몸은 고무줄처럼 쭉 늘어지는 듯하면서 이십장 밖에 서있었다.

다시 한걸음을 옮겼을 때는 사십장 밖이었다.

천천히 한걸음씩을 옮기고 있을 뿐이지만 죽립인의 그 한걸음은 한번에 이십장 씩을 돌파하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빠르기였다.

여유가 있으면서도 그 가공할 속도는 경악, 그 자체였다.

 

× × ×

 

-장강(長江)!

 

수백리에 걸쳐 뻗어있는 푸른 갈대밭에 괴이한 무리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먼저 사두마차와 청의무사들이 도착했으며, 연이어 흑의복면인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후 좁고 긴 배를 짊어진 홍의인들이 갈대밭에 내려섰다.

사두마차 속에서 돌연 싸늘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제 장강이오. 장강을 건너 세시간이면 우리는 백검보에 도착할 것이오. 그때는 아직 날이 밝기도 전, 우리의 기습으로 백검보는 힘도 한번 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오.]

[백검보에는 만박늙은이도 있다는 소문이오. 그 늙은이의 교활한 머리는 조심해야 할거요.]

어둠속에서 나직하면서도 칙칙한, 죽음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때였다.

[물론 조심은 해야지. 그러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 지금은 조심할 때보다는 진격할 때이다.]

어디선가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

마차속의 인물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

[그럼 도하합시다. 시간을 지체할 건 없소.]

스스스스슷!

배를 짊어진 홍의인들이 강가로 나가며 힘껏 배를 던졌다.

휘이이!

휘이익!

바람소리를 내며 날아간 배들은 장강에 첨벙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순간 배를 던진 홍의인들은 이미 몸을 날려 배위에 올라서고 있었다.

흑의인들과 청의인들도 귀신처럼 날아갔다.

곧 강변에는 사두마차 하나만이 남게되었다.

그 직후였다.

덜컹! !

드르륵!

마차의 벽이 옆으로 갈라지면서 마차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금방 하나의 배같은 모습을 갖추었고 말은 둥근 통나무위에 서게 되었다.

다각다각닥각!

말들은 그런 상태에서도 달렸고 통나무들이 구르면서 마차는 앞으로 나아갔다.

 

마차가 강변에서 제법 멀어졌을 때,

스윽!

죽립의 사나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운청풍객 심제을! 용서받지 못할 배덕자! 네놈부터 없애주마!]

죽립인은 나직하게 살기어린 음성을 내뱉고 강물위에 발을 얹었다.

놀랍게도 그는 물을 밟았음에도 가라앉지 않았다.

한데 그는 한걸음 옮기려다가 발을 번쩍 들어올렸다.

발밑의 감각이 조금 이상했던 것이다.

가죽으로 만든 신발에 미끈미끈한 감촉이 느껴졌다.

(기름()! 기름이다!)

죽립은 내심 크게 외쳤다.

(그렇다면 백검보에선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설마하니 백검보가 아니고서야 이곳에 기름을 부어놓은 자기 있을까?)

죽립인은 즉시 강변으로 나와버렸다.

바로 그때였다.

피유우우웅!

피유우우웅!

칡흑같은 암천(暗天)에 유성(流星)이 거꾸로 흐르듯 불빛들이 솟아올랐다.

불화살들이었다.

불화살들은 긴 포물선을 그리며 강상으로 떨어져내렸다.

! 화르르르!

그와 동시에 강물위로 무서운 속도로 불길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강상(江上)이 삽시에 대낮처럼 밝아졌다.

이백 척의 배들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여 버렸다.

화마(火魔)의 무서움은 진정 엄청났다.

하나같이 고수들 같아 보였던 자들은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재가 되어 사라져갔다.

“....!”

보고 있던 죽립인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삼천 명의 인명이 순식간에 불에타고 물속으로 가라앉는 장면...

그 참혹함을 어찌 말로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거리가 멀어서 비록 불빛만 보이고 비명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지만 들리지 않는 아우성은 사람의 심장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죽립인이 중얼거렸다.

[삼마경을 익힌 그자들이 이렇듯 간단하게 끝을 맺고마는가?]

 

불은 두시간에 걸쳐서 타오르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마지막으로 불길이 한번 치솟으며 환히 밝힌 강상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강의 여기저기에서 작은 불빛들이 나타나더니 삼천 명이 화장(火葬) 또는 수장(水葬)되었을 곳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

죽립인도 강물위로 걸어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작은 불빛들은 배들에 달린 횃불들이었다.

불빛들 사이에 어슴푸레하게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중에는 만박노조도 있었고 검성도 있었다.

 

[허허허허...]

만박노조가 통쾌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병법에 이르기를 적이 오는 길은 언제나 세곳 뿐이라 했지. 길목을 지키면 적은 막히기 마련...]

[본인은 쉽게 믿어지지가 않소. 그들의 무공을 목격한 자라면 누구나 다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오. 이정도의 불길이라면 보통 고수들은 태워죽일 수 있겠지만 그들에겐 통하지 않았을 것이오.]

붉은 옷을 입은 자가 말했다.

그는 언제나 단독으로 행동한다는 혈포단객(血袍單客)이었다.

만박노조가 냉소하며 말했다.

[자네는 그 기름이 보통 보통 기름이었을 것같은가? 이곳의 물을 잘 보게.]

그가 가리키는 물, 그것은 가마솥에서 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 기름은 휘공열유(揮空熱油)란 것으로 쇠는 물론 바위까지도 녹이는 것이네. 그 속에서 살아날 수 있다면 그건 신이거나 악마, 둘 중하나일 것일세.]

헌데 만박노조의 말이 끝나는 그 순간이엇다.

[흐흐흐! 그럼 본좌는 신인가 악마인가? 만박...]

촤아아!

물속에서 공기방울처럼 누군가 불쑥 떠오르면서 말했다.

그자는 물을 밟고 뒷짐을 진채 우뚝 서있었다.

“....!”

만박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검성이 차갑게 말했다.

[해천월! 스스로 악마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구나. 노부의 벽린검(碧燐劒)을 받아라!]

스파앗!

말이 끝남과 동시에 푸른 빛이 대기를 갈랐다.

물속에서 올라온 자는 바로 적룡혈운도(赤龍血雲島)의 도주인 해천월이었다.

그는 여유있게 웃으며 말했다.

[검성! 당신은 내 적수가 못돼!]

해천월의 우검이 번개불처럼 섬광을 발했다.

파앙!

두가닥의 검기가 충돌하며 그파장으로 인해 물결이 높이 솟았다.

해천월은 그 물결을 밟고서 높이 솟았다 떨어졌다.

그런 그의 모습은 파도를 탄 해신(海神)같이 보였다.

반면 검성은 충격을 받고 배위에서 튕겨나가 물위로 내려섰다.

그의 얼굴은 해천월의 무공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촤촤촤촤촤...

물결이 돌연 파랑을 이루며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연 물속에서 좁고 긴 배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또한 그 배위에는 타서 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 자들이 버티고 서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 중에는 심하게 화상을 입은 자들도 있었지만 멀쩡한 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최소한 이천 명은 넘게 살아있는 것같았다.

만박노조는 갑판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럴 수가...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일백 수십 척에 달하는 배들이 오히려 검성 등을 포위해버린 행세였다.

그들은 좁고 긴 배를 뒤집어서 화마를 피했던 것이다.

츄앙! 츄앙!

잉어가 물밖으로 튀쳐나오듯이 물속에서 두개의 그림자가 뛰어올랐다.

그리고 허공에 우뚝 멈추서는 것이었다.

그들 두사람... 바로 부운청풍객 심제을과 잔혼살객이었다.

[하하하하... 고수란 고수는 모두 장강에 모였군. 혈포단객과 무형도객, 철사보주까지 이곳에서 본좌등을 마중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걸?]

부운청풍객이 광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부르르르르...

강물이 진동을 일으키고 배들이 다르르 떨었다. 엄청난 공력이 깃들어 있는 웃음소리였다.

검성을 비롯한 자들은 공력을 황급히 끌어올려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엄청난 광소에 그들은 치를 떨었다.

잔혼살객이 음산하게 말했다.

[이들만 처치하면 하삼풍 혼자만 남게 되는군. 흐흐흐흐... 강위에 무림이 놓여있을 줄이야... 흐하하하하... ]

나직하게 웃었지만 잔혼살객의 웃음소리는 무서운 공포를 담고 있었다.

검성과 만박노조, 그리고 혈포단객과 무형검객 및 철사보주는 무거운 표정으로 병기를 잡았다.

잔혼살객등 삼인이 보인 무공으로 보아 그들이 살아날 가망은 거의 없을 것같았다.

 

× × ×

 

죽립인은 천천히 강중간으로 다가갔다.

그의 눈에 이미 부운청풍객 등의 모습이 보였다.

싸움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승패는 결정난 것으로 보였다.

[저들이 죽는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 어떻게든 구하고 봐야겠군.]

나직히 중얼거린 그는 은밀하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 촤촹! 카가각!

물위에서는 격전이 벌어졌는지 그 진동과 소음이 물속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슈우우우...

물고기처럼 잠수하여 나아간 그는 좁고 긴 배들의 밑을 지나 검성 등이 타고 있는 배밑까지 다가갔다.

 

펑펑!

[허억! 이 이렇게 강하다니... !]

철사보주 맹호산이 피를 토하며 뒹굴었다.

적룡혈운도주 해천월의 도에서 뿜어진 강기에 부딪혔을 뿐이지만 그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똑 같이 삼사(三邪)의 일인이었건만 그같은 무공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검성과 만박노조는 함께 힘을 합쳐서 부운청풍객을 상대함에도 수없이 생사의 위기를 맞는 것과는 큰 차이였다.

한데 십대고수 중에서 가장 어린 무형도객의 무공은 기이하도록 놀라웠다.

비록 잔혼살객에게 밀리고는 있었지만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형도객의 몸에서 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몸을 움직일때마다 사지의 어느 곳에서든, 심지어는 가슴 한가운데서도 백색 도기(刀氣)가 뻗어나오고 있었다.

카가가강!

잔혼살객의 연기처럼 흐릿한 몸에서 발출된 다섯 줄기의 섬전이 모두 무형도객의 몸 근처에서 가로막혀 떨어졌다.

그렇지만 무형도객의 몸은 그 충격만으로도 뒤로 주르르 밀려갔다.

잔혼살객이 나직하게 소리쳤다.

[혈월단천(血月斷天)!]

쩌어어엉!

순간 그의 손바닥에서 붉은 초생달 같은 것이 떠올랐다.

혈월은 미끌어지듯 무형도객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강기가 응축된 것으로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것이었다.

무형도객은 몸을 비스듬히 돌리며 손가락으로 혈월을 가리켰다.

푸앗!

그의 손가락에서 백색의 도기가 강렬하게 발출되었다.

두가닥의 강력한 기운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피직!

헌데 그 순간 혈월은 백색도기를 흡수해버리며 그대로 무형도객을 향해서 날아들었다.

(... 피할 수 없다!)

무형도객은 이를 악물었다. 혈월은 너무도 빨리 그의 얼굴을 반으로 갈라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츄앙!

물속에서 용이 솟구치듯 솟아오르며 흰그림자가 혈월을 휩쓸어갔다.

!

엄청난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콰아아아아-!

주변의 배들이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고 물길이 수십 장이나 치솟았다.

잔혼살객은 분노하여 소리쳤다.

[웬놈이냐!]

꽈르르릉!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다시 한번 밀어닥친 폭풍같은 강기였다.

잔혼살객은 다시 한번 혈월단천을 시전했고, 진정되지 않은 강상에서는 또다시 강기의 폭풍이 소용돌이 쳤다.

콰아아아아-!

(! 이놈 보통이 아니다. 본좌에 그다지 약하지 않다.)

잔혼살객은 보이지 않는 상대방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강상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솟아오른 자는 바로 죽립객이었다.

그는 잔혼살객에게 이장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적룡혈운도주 해천월과 부운청풍객에게도 각기 은밀한 일장을 날려 강상을 뒤집어버렸던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그의 전음이 천둥처럼 검성등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스팟! 쐐애액!

죽립인의 말뜻을 알아차린 검성등은 혼란의 와중에서 몸을 빼어 탈출하기 시작했다.

부운청풍객 등 삼인의 무공은 오히려 죽립객보다 높았다.

하지만 창졸간에 당한 일이나 검성등을 놓치고 말았다.

죽립객은 그들이 떠나자 자신도 즉시 몸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 놓칠 만큼 부운청풍객은 어리석지 않았다.

네번의 장력을 발출했을 뿐이지만 그의 위치는 부운청풍객에게 완전히 노출되었던 것이다.

죽립객은 어느 틈에 자신의 뒤에 부운청풍객이 다가옴을 느끼고 혼신의 공력을 끌어올렸다.

돌아서는 것도 늦고 피하는 것도 늦다.

방법은 오직하나 그대로 앞으로 달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이미 잔혼살객이 회색눈을 치켜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희롱을 당한 듯한 그에게서 미칠 듯한 분노가 죽립객에게로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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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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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風雲大陸

 

 

 

! !

수십 명이 뒹굴 수 있는 거대한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금포(錦袍)노인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무릎을 두번 쳤다.

스스스슷!

그러자 정갈한 백의를 입은 미소년들이 들어와 즉시 침상주위에 늘어섰다.

그리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소년의 손짓에 따라서 침상을 번쩍 들어올렸다.

[화정지(花精池)로 가자.]

금포노인은 나직하게 말했다.

금포노인과 삼십 명 정도 되는 여인들을 태운 둥근 침상은 밖으로 운반되어 나갔다.

오십 명이나 되는 소년들이 침상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둥근지붕의 건물을 빠져나가 마천루처럼 솟아있는 전각들 사이로 지나갔다.

움직이던 자들은 즉시 땅바닥에 엎드리며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금포노인은 그들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전각들의 뒤에 푸른 숲이 우거져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넓게 뚫어진 길은 시원스러워 보였고 나무들 사이사이에 공들여 손을 본 흔적이 역력한 꽃들이 짙은 향기를 발하고 있었다.

벌과 나비는 미녀들의 몸위로도 날아다녔으며, 새소리는 인간이 세상을 잊게하는 힘이 있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연못이 있었다.

연꽃과 수국이 만발하고 있었으며 물위로 자라있는 나무들에도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있었고 연못의 주위도 수백가지의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금포노인은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말했다.

[환요(幻妖)는 옷을 벗고 그곳에 누워라.]

사라락! 사락!

환요는 허리 숙여 절하고는 일어서 자신의 타는 듯이 붉은 홍의(紅衣)를 벗어 옆에 놓았다.

그녀의 머리위로 파란 하늘이 눈부신데 그녀는 우유빛 나신으로 금포노인 앞에 섰다.

얼굴에는 농염한 미소가 뜨거움을 담고 금포노인을 향해 피워지고 있었다.

잘 구워진 도자기의 흐름선 보다 더욱 유연해보이는 허리는 위로 터질듯 풍만한 유방을 받치고 있었고 아래로는 어떤 충격이든 다 무마시킬 수 있을 정도로 탄력있는 둔부를 요사스럽게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가 뒤로 누웠다.

모로 세워진 무릎은 오무려져 있었으나 은밀한 비궁은 오히려 금포노인을 향해 뚜렷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금포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감상하다가 눈을 사르르 감으며 말했다.

[초훼(草卉)도 옷을 벗어라.]

노인의 뒷쪽에서 한 여인이 일어섰다.

나이는 십팔구세 정도, 아직 이십세가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홍색 나삼으로 감싸고 있는 그녀의 나신은 터질듯 풍만했으며 허무한 듯 보이는 그녀의 퇴폐적인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하기에 족했다.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둔부에까지 치렁치렁늘어져 있는데...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몇 번 흔들었다.

사라라락!

그러자 홍색 나삼이 오무라진 어깨에서 흘러내리며 가슴에 잠시 걸렸다.

초훼는 다시 몸을 꼬듯이 흔들었고 나삼은 그녀의 둔부를 타고 발등으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나삼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다리는 옥으로 깎아서 만든듯 미려하고도 가늘었으며 희디흰 허벅지는 둔부로 이어지면서 그 사이에 검은 수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초훼는 자신의 손바닥으로 치골의 앞쪽을 살짝 눌려서 밀어내렸다.

부드러운 수풀이 그녀의 손을 따라 풀잎처럼 누웠다.

그때 노인의 권태로운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환요의 몸위로 올라가라.]

초훼는 누워있는 환요의 곁으로 걸어갔다. 둔부가 살랑살랑 꽃대처럼 흔들렸다.

환요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면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오십 명의 미소년들에게 들리워진 침상은 이제 연못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소년들은 평지를 걷듯이 길이 끝난 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물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위로 물이 완전히 잠겼을 때야 침상을 잡고 헤엄치며 연못의 가운데로 가고 있었다.

침상은 배처럼 물위에서 움직였다.

 

초훼는 환요의 배위에 걸터앉았다.

두 여인의 음모가 마주치면서 작은 소음을 냈다.

금포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고!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란 말이야.]

그말을 듣는 순간 초훼는 환요의 허벅지를 타고 자신의 음부로 밀어내리면서 자벌레 처럼 몸을 뻗었다.

그녀의 두손이 환요의 복숭아같은 유방을 밀어올렸다.

붉은 혓바닥은 환요의 배꼽을 핥으며 그녀의 배꼽은 환요의 은밀한 곳에 있는 민감한 부분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아... ... ]

환요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초훼는 손과 입으로 그녀의 전신을 애무했다.

그녀의 혀는 환요를 타액으로 목욕시켰으며 그녀의 손가락은 환요의 모든 성감대를 빠뜨리지 않고 자극시켰다.

초훼는 마치 남자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고 환요의 흥분을 참지 못해 발하는 신음소린 높아만 갔다.

침상위의 다른 여인들이 몸을 꼬며 손을 그녀들의 소중한 곳으로 가져갔고 허벅지에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눈을 꼭 감고 있는 여인도 있었다.

짝짝!

문득 노인이 손뼉을 쳤다.

그러자 침상이 멈추어지고 헤엄치던 미소년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금포노인이 우두머리 소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올라오라!]

퓨웃!

소년은 물속에서 높이 뛰어올라 허공에서 옷의 물을 털어버리며 침상위에 내려섰다.

그는 마치 나무로 깍아서 만든 사람인듯 표정이 없었다.

노인이 말했다.

[환요를 강간해라. 단 무공을 사용하지 말고! 성공한다면 네게 환요를 주겠다.]

소년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보이고는 즉시 옷을 벗었다.

침상위의 여인들에게 그러한 일은 자주 있어온 일인 듯 그녀들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초훼는 한쪽으로 물러섰고 당사자인 환요는 더욱 요염하게 웃어보였을 뿐이다.

초훼의 애무로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잘익은 홍시를 연상시켰다.

그녀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손으로 소중한 곳을 만지고 있었다.

휘익!

소년은 병아리를 덮치는 매처럼 환요의 몸위로 날아들었다.

그의 남성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것은 하나의 흉기가 되어 그녀를 찔러가고 있었다.

환요는 무방비 상태인 것처럼 다리를 활짝 벌리고 손으로 자신의 가장 예민한 곳을 만졌다.

[!]

소년이 자신의 위에 올라오자 환요는 거친 숨소리를 냈다.

소년이 그녀의 비부를 겨냥하고 급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환요는 아주 가볍게 둔부를 살짝 움직이며 소년의 남성을 피해버렸다.

간발의 차이였다. 환요의 은밀한 곳에서 흘러나온 촉촉한 음액이 소년의 남성에 묻었을 정도였다.

[헉헉헉!]

소년은 연이어 허리를 흔들었으나 모두 허공이거나 살짝 건들리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미친듯이 그는 허리를 흔들었고, 또한 환요가 피하지 못하도록 둔부를 꽉 움켜쥐기도 했다.

그러나 환요의 절묘한 방어 기술에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아아아아... 아아!]

그러나 환요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신음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녀 역시 참기 힘든 욕정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으헝!]

갑자기 소년이 짐승처럼 소리치며 환요의 두 다리를 꽉 움켜잡았다.

그는 그제서야 다리를 밀어서 환요가 둔부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

다른 여인들의 입에서 짧은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환요와 소년은 단순한 정사가 아닌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소년에게 환요가 강간당하게 된다면 그녀는 이제 이 화려한 침상을 떠나서 수 많은 남자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금포노인을 모시는 몸에서 하루아침에의 신분하락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니...

위기의 순간, 환요는 갑자기 두손으로 소년의 어깨를 힘껏 밀어버렸다.

그것은 둔부를 움직인 것이나 다름 없는 효과를 냈다.

[!]

다른 여인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때였다.

[그만, 그만!]

금포노인이 소리쳤다.

소년은 기계처럼 우뚝 일어섰다.

[내려가라.]

소년은 자신의 옷가지를 집어들고 침상을 내려갔다.

순간 노인의 좌수가 슬쩍 움직였다. 그러자 도저히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푸스스스!

침상을 내려가던 소년의 몸이 먼지로 분해되어 물속으로 스며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떤 기척도 없었으며 피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년은 흙으로 변해 물에 녹아버린 것이었다.

진정 이처럼 마법같은 무공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명을 완수하지 못한 자에겐 죽음만이 있을 뿐이지.]

금포노인의 말이었다. 소년은 환요를 강간하라는 명을 완수하지 못한 때문에 죽은 것이었다.

금포노인은 미사를 소리쳐 불렀다.

[미사! 내 옷을 벗겨라!]

은빛 나삼을 입은 미사가 노인의 옷을 벗겼고 노인은 침상위에서 우뚝 일어섰다.

노인의 키는 누워있을 땐 몰랐지만 육척이 넘어보이는 거한이었다.

그는 여전히 누워있는 환요에게로 걸어가서 그녀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흐흐흐흐... 삼마경을 얻은 그 세 놈은 방금 전의 그놈과 똑같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지지 못할 것을... 노부를 위해 달구어 놓기만 할 뿐...]

금포노인은 환요의 두 발을 어깨에 걸치며 그의 남성위에 그녀를 얹어 놓았다.

[!]

환요가 비명을 질렀다.

그렇지만 그 비명은 한번의 위기를 넘긴 후의 행복한 비명이었다.

나무가지에 바가지를 걸어놓은 모양으로 환요의 은밀한 곳은 위로 뻗은 금포노인의 남성에 깊히 꿰어있었다.

금포노인은 환요의 몸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아아! !]

환요의 얼굴이 참을 수 없는 흥분으로 일그러지고, 이를 악다문 노인은 오랫만에 자신이 힘으로 여인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무림 자체이기라도 하듯이...

다른 여인들은 그의 주변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하늘 파란 물...

오색 만발한 꽃들이 있는 곳에서 불꽃보다 뜨거운 육체의 향연이 벌어진 것이다.

 

× × ×

 

황산(黃山)!

서하객(徐霞客)은 삼십 년에 걸쳐 대륙의 산하를 편력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

 

-태산, 형산, 항산, 숭산, 화산의 오악(五岳)에서 돌아온 사람은 그 멋으로 인해 다른 보통의 산 따위는 성에 차지도 않는다.

그러나 황산에서 돌아온 사람은 그 오악조차도 눈에 차지않는다!

 

이렇게 세인들의 칭송을 받는 황산에는 사절(四絶)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기송(奇松), 즉 기이한 모습을 한 소나무들,

기암(奇岩), 괴상하게 생긴 바위들,

운해(雲海), 넓게 펼쳐진 구름의 바다,

그리고 마지막은 온천(溫泉)이 그 사절이다.

 

이렇게 경관이 뛰어난 황산은 칠십 두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연화봉(蓮花峰)이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곳은 연화봉이 아닌 천도봉(天都峰)으로 이곳에는 당금 무림에서 결코 넘보지 못하는 하나의 거대한 힘이 웅크리고 있다.

 

<백검보(百劒堡)>

 

천도봉 남쪽 산록에 장엄하게 벌려 서있는 한채의 보루!

그것은 바로 이정(二正)중 한명인 검성(劒聖) 당이정(唐利貞)의 백검보였다.

원래 백검보는 이곳에 있지 않았다.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백검보는 홍택호(洪澤湖) 옆에서 오가는 배들을 수적(水賊)들로부터 막아주는 역할 따위나 하던 보잘 것없는 방파에 불과했었다.

백검보라는 명칭도 원래는 무사들의 수가 백명이 넘지 않았기에 붙은 것이었다.

한데 이 백검보는 현재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劒)이라고 추앙되는 검성 당이정이 보주가 되면서부터 그 기세가 엄청나게 팽창했다.

물론 무사들의 숫자가 불어난 것은 아니었다.

무사들의 수효는 여전히 정확하게 일백명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무공은 모두가 무림의 일개 방파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가공해져버렸다.

당이정은 단신으로 공포의 살인마이던 천산구혈마(天山九血魔)를 삼십초가 되기 전에 모두 죽여버리는 위엄을 보였으며, 장강의 칠십이수로채의 채주 흑수신마(黑手神魔)와 대결에서는 이초만에 그의 두 팔과 머리를 베어버렸다.

이 쾌거로써 당이정은 무림에서 검성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천산구혈마가 어떤 인물이었던가?

전통의 도가(刀家)인 하북팽가(河北彭家)에 뛰어들어 가주이하 일백구십 인의 목숨을 하루아침에 빼앗아 갔으며, 오대산(五臺山) 청량사(淸涼寺)에서는 다섯 채의 불전을 불사르고 청량사의 주지 이하 사십칠인의 고수들을 찢어죽인 공포의 마두들이 아니던가?

그들의 살인행각을 막기위해 소림에서 파견했던 십이무승(十二武僧)들은 그들에게 눈알을 파이고 간을 뽑아주었어야 했고, 그들을 뒤쫓던 정파의 고수 일백여 인을 황하에서 수장시켜버린 인물들이었다.

또한 흑수신마는 오히려 그들보다 더욱 무서운 인물이었으니... 장강에 빌붙어 사는 칠십 두개의 수적(水賊)의 무리들을 통합하여 그 수좌로 올라선 인물이었다.

휘하에 거느린 고수들의 수효는 무려 일만육천에 이르렀고 그의 가공할 흑수(黑手)는 어느 누구도 이장을 받아내지 못했었다.

고수를 두려워 하지 않는 흑수신마!

하지만 그도 검성 당이정의 명성만을 높혀주었을 뿐이었다.

또한 당이정의 명성을 높이는데 기여한 것은 그의 수하들인 백검(百劒)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당이정의 명성만이 풍문처럼 떠돌던 어느날 백검 중의 육십세번 째 서열에 있는 함사전(咸四箭)이라는 인물이 소주(蘇州)에 들렀다가 파렴치한 무리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도화방(桃花幇)이라는 곳의 인물들인데 도화방은 원래 기녀들을 양성하여 기루에 팔아넘기는 흑도의 방파였다.

도화방의 수하들은 소주의 대로에서 버젓이 드러내 놓고 여인을 납치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인들은 그들의 횡포와 보복이 두려워서 아무도 못본 체하고 지나갔다.

함사전은 그자리에서는 가만히 있었지만 암암리에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하여 그들이 숲속으로 들어가 여인의 몸을 망치려 하는 순간에 그들을 덮쳐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도화방의 본거지로 쳐들어갔다.

도화방의 사대호법이 그의 일검에 쓰러졌으며, 도화방주인 색골요희(色骨妖姬) 음자영(陰姿瓔)은 옷을 홀랑 벗어던지는 둥 온갖 수법을 동원하여 그의 살수를 피하고자 했으나 이십사초만에 머리는 머리대로 떨어지고 몸은 몸대로 세토막으로 잘려진 고깃덩어리로 변하고 말았다.

무림인들은 함사전 개인의 무공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가 백검보내에서 단지 육십삼위의 보잘 것 없는 서열에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비록 도화방이 작고 약한 방파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문을 연 일개방파인데 한 개인의 손으로 멸망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한데도 백검보의 최고수인 보주가 아닌 그의 수하들 중의 일인이 완전히 궤멸시켜버렸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백검보의 무사들이 한꺼번에 어느 문파를 공격한다면...?

무림인들은 백검보주 당이정을 십대고수의 우두머리 격인 이정(二正)의 일인으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듯이 백검보는 그 활약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웅크린 사자였다.

 

백검보의 전각들 사이사이로는 제거되지 않은 천연의 거대한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아래에 자리를 깔고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두 노인이 있었다.

한데 그들의 모습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한사람은 오척의 단구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그보다 머리 두개는 더 큰 것같은 장신이었다.

앉아 있는 모습 만으로도 어른과 아이가 앉아 있는 듯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데 백()을 잡고 심각한 표정으로 바둑판을 노려보고 있는 단구의 노인, 그는 바로 만박노조가 아닌가?

검성과 함께 이정의 일인인 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백검보 내에 와있었다.

바둑판에는 오직 두개의 돌만이 놓여있었다.

[검성아우께서 이 우형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만박노조는 돌연 돌을 던지며 물었다.

그와 마주앉은 노인, 학창의를 걸쳤으며 검객의 분위기는 조금도 풍기지 않는다.

오히려 시골 서당의 글선생같은 모습으로 수염을 반자가량 기르고 있다. 눈매는 부드러우며 얼굴또한 온화하다.

한데 이러한 노인이 바로 백검보의 보주인 검성 당이정이란 말인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박노조의 눈빛은 예리했다.

그와 검성은 함께 이정으로서, 우형우제하는 사이였다.

이따금씩 만나는 그들은 종종 바둑을 두곤 했는데, 그때마다 검성은 두점을 깔고 두어야만 했다.

한데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검성은 만박노조가 접어준 두점을 귀의 모서리에 둘다 붙여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바둑을 두자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검성이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무림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해본 것이오. 이제는 무림에 이정이사이객(二正二邪二客)이 있을 뿐 일사삼객(一邪三客)은 사라지고 없소이다. 독비신검객(獨臂神劍客)의 행적은 묘연하지만 나머지 세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으니...]

온화했지만 천하에 대한 우려가 가득한 음성이었다.

만박노조가 탄식을 했다.

[이미 부운청풍객과 잔혼살객등 세놈의 손에 천하의 반이 들어갔네. 군소방파들은 대부분 그들에게 복속했고 버티고 있는 것이라곤 자네의 그늘에 있는 문파들과 단혼곡의 하삼풍, 그리고 혈포단객과 무형도객 정도일세.]

[대체 놈들의 무공이 어느 정도이길래 이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요? 소제는 당장이라도 검을 들고 그들과 맞서보고 싶은 생각뿐이오.]

검성은 침통하게 말했다.

무림에는 이미 이정삼사오객이 평화를 유지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그것은 오년 전 동정호에 은거하고 있던 천하제일고수인 동호천이 죽음과 동시에 끝나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작년까지는 무림에 이상한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이처럼 혼란스럽진 않았다.

그런데 부운청풍객이 검종맹(劒宗盟)이라는 세력을 거느리고 무림에 재등장함으로써 상황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부운청풍객의 검종맹에 속한 인물들은 모두가 극악신랄한 검법을 가졌으며 그들은 거의 어떤 상대이든 단 일초에 목숨을 빼앗곤 했다.

무림의 이백삼십 여개 방파가 검종맹에 복종을 맹세했으며 굴복하지 않은 사십일 개의 방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검종맹은 삽시간에 무림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해버렸다.

한데 검종맹이 보이는 곳에서 무림을 장악해나간 반면에 잔혼각(殘魂閣)으로 알려진 살수세력은 은밀하게 문파의 수뇌들을 흡수하는 방법을 취했다.

거부하는 자에겐 죽음을, 그리고 그 가짜를 만들어 그 문파를 장악했다.

강남과 강북에서 일어난 이런 세력으로 인해 천하는 피로써 들끓었고,

남해로부터는 적룡혈운도(赤龍血雲島)의 도주인 초천풍이 붉은 그림자를 해안일대에 드리우고 점점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만박노조가 말했다.

[... 동호천 노선배께선 사후대책을 마련해 놓았을 줄 알았는데... 그 소년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

검성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소년의 무공이 고강했다면 혹시 요즘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일초진천수(一招震天手)라는 그 인물일 수도 있지 않소? 그도 신분 내력이 전혀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니... ]

[노부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네. 하지만 그 일초진천수는 그 소년은 결코 아니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 소년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그때였다.

스스슷!

갑자기 만박노조의 뒤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섬쾌! 무슨일이냐?]

만박노조가 물었다.

섬쾌라는 대꼬챙이처럼 바싹 마른 인물이 대답했다.

[그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

만박노조는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그들이 누군지 몰라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섬쾌는 만박노조가 검종맹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했었기 때문이다.

만박노조의 물음은 무엇때문에라고 해야 옳을 것이었다.

섬쾌가 말했다.

[부운청풍객, 잔혼살객, 그리고 적룡혈운도주가 검종맹에서 회합을 가졌습니다.]

갑자기 만박노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검성아우! 그들은 자네를 노리고 있네.]

긴박한 만박노조의 말에도 검성은 덤덤한 표정이엇다.

저를 말입니까?”

만박노조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틀림없네! 고수이면서도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당금무림에서 자네와 단혼곡주 하삼풍, 철사보주 맹호산 밖에 없다고 할 수 있네. 아마도 그들의 첫번째 상대는 자넬걸세. 그들이 백검보를 공격한다면 우리 두사람 만으로는 그들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네.”

[우리가 꼭 패한다고는 생각지는 않소. 다른 자들은 몰라도 부운청풍객에 대해서는 소제도 조금 알고 있소이다.]

검성이 여전히 초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간 만박노조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부운청풍객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금시초문이군. 그의 내력은 아무도 모르는데.]

[그는 내 사제요. 비록 그가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검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만박노조가 소리쳤다.

[그럼 그가 백검보 출신이란 말인가?]

[그렇진 않소. 소제에겐 사문이 따로 있소이다. 아마 만박형도 들어보았을 것이오. 고검문이라고... ]

[고검문!]

만박노조가 비명을 질렀다.

천하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그인지라 전설적인 세외의 문파 고검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었군. 그래서 자네의 검법이 그토록 뛰어난 것이었군. 부운청풍객 그자도 고검문의 제자란 말인가?]

만박노조가 탄식하며 물엇다.

검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소. 한데 그는 나를 모른척 하고 있소. 내가 사문에서 수련을 끝내고 무림에 나온 후에 사부께서 그를 제자로 맞기는 했지만 서로 안면은 있는 사이임에는 틀림없소.]

[한데 그가 왜 자네를 사형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이어진 만박노조의 물음에 검성은 처연하게 웃었다.

[소제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지만 사문에서 폐출당한 몸이오. 그래서 사문이 있는 일천리 이내에도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소. 그가 나를 사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오.]

[...!]

만박노조는 묵묵히 있다가 돌연 섬쾌에게 말했다.

[혈포단객과 무형도객, 그리고 철사보주를 찾아서 이곳으로 오게 하라. 뭉치지 않고서는 그들을 대항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 보아 그들은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다.]

존명!”

스스스!

섬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만박노조는 심란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검성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말게. 지금은 그들을 방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네.]

검성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맹호산과 혈포단객이 와줄지가 염려스럽소.]

[생각할 줄 아는 자들이니 그들도 오게될 걸세.]

만박노조가 다부진 음성으로 말했다.

검성의 어깨는 무척 왜소해진 것같았다.

사문에서 폐출당했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무림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그가 무림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은 그 휴유증 때문일 수도 있었다. 백검보가 무림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게 된 것조차도 같은 원인일 것이고...

그러나 언젠가는, 언젠가는 불붙게 될 것이다.

천하제일 검문인 고검문의 대제자로서 검성의 혼은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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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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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絶陣 속의 復活

 

 

 

!

석두공은 자신의 몸이 기묘한 물체에 부딪혔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잃었다.

 

한참 후, 그가 극렬한 고통 속에서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알게된 것은 자신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위에 눕혀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리석 바닥 외에는 어떤 특이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있는 곳은 불과 백평도 되지 않는 작은 폐쇄된 공간이라는 것이 특기할 만했다.

똑바로 보이는 위쪽에는 유리로 만들어진 것같은 푸른공간이었다.

석두공은 자신이 어떤 큰 짐승의 알속으로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가슴과 어깨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통증은 그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힘이 없을 수가 있을까?)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까풀은 겨우 움직일 수 있었지만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언제나 그의 단전에서 넘칠듯 찰랑거리던 진기는 한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고통속에서도 잠은 찾아왔다.

잠들면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서도 석두공은 잠들고 말았다.

 

두번 째로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몸이 훨씬 가뿐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통도 상당히 가셔서 이제 극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동자만 굴려서 사방을 바라보았지만 그가 있는 공간엔 그 하나 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상한 곳이구나. 이곳엔 밖으로 통하는 곳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내가 이곳에 와 있지?)

의문을 던져보지만 그 의문을 풀어줄 사람도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그의 가슴과 어깨에 깊히 박혀있던 사신겸과 두 자루의 못이 원래보다 훨씬 밖으로 밀려나와 있었지만 그는 느끼지 못했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 그곳에서 석두공은 시간마저 느낄 수가 없었다.

그곳은 이 세상과는 완전히 분리된 그 만의 정지된 공간인 것같았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그는 졸려왔고 눈까풀은 의지의 힘을 배신하여 내리덮혔다.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죽음 처럼 깊은 잠이어서 그는 꿈도 꾸지 않았다.

아니 꾸었겠지만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원래 그는 무엇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세번째로 그가 눈을 떴을 땐 그의 몸 옆에 사신겸과 혈정(血錠)이라고 불리는 못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가뿐하게 치료되어 있었으며 미약하나마 공력이 다시 단전으로 뭉쳐들고 있었다.

심한 기갈이 느껴졌다.

피를 많이 흘려서 아무래도 물과 영양을 보충해야만 할 것같았다.

그렇지만 시간은 멎어버리고 공간은 제한된 듯한 이 공간에는 그가 먹을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꼬로록! 꾸룩!

뱃속에서 염치없이 내장이 아우성을 쳤다.

[이곳은 누가 만들었을까?]

석두공은 뱃속의 민생고는 젓혀두고 잘 닦여진 대리석 바닥을 유심히 보면서 중얼거렸다.

자신의 방망이를 줏어들고는 대리석 바닥을 두드려 보았다.

!!

한데 무엇이나 부수어 버리는 괴력을 가지고 있던 그의 방망이는 대리석에 대해서는 조금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방망이는 평범한 보통 방망이나 다름이 없었다.

석두공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한쪽에 떨어져 있는 사신겸을 두드렸다.

그순간,

쨍그랑!

유리조각이 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사신겸이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사신겸도 잔혼살객의 독문병기인 만큼 보통 쇠로 만들어진 고철덩어리가 아니었다.

평범한 도검은 사신겸에 스치기만 해도 무토막처럼 잘려나가는 신병인 것이다.

한데 그 사신겸은 방망이에 박살이 났건만 대리석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석두공은 혈정을 두드려 다시 실험해 보았다.

혈정도 가루로 변해 버렸다.

알 껍질같이 생겨 벽과 천정을 동시에 잇고 있는 푸른벽을 두드렸다.

!

이번에도 그의 방망이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도무지 그 벽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몇 가지의 시도를 쉬지않고 해보았으나 석두공이 얻은 것은 낙담뿐이었다.

상처는 그럭저럭 치유가 되었지만 공력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그가 살아있는 것도 석두공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은 두가지의 힘 때문이었다.

그 하나는 오독패혼공을 갈천상에게서 이어받았음으로 인해서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된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그가 고검문의 문주인 섭군천에게서 전수받은 포연신공의 위력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잔혼살객의 공격에 그의 공력이 모두 흩어져 버렸을 때, 다른 한줄기의 공력이 그의 심장과 내장을 보호하여 그가 죽지 않게끔 했었다.

오독패혼공만이 있었어도 그가 살아날 수는 없었을 것이고, 포연신공만 익혔어도 그가 살아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의 몸속을 돌고 있는 공력은 포연신공을 익힘으로 해서 형성된 미약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본래 안쪽에 존재하던 것이었다.

그의 고강하던 내공과 자리바꿈을 하여 그의 그 뛰어난 공력들은 모두 그의 몸속 깊히 숨어버린 뒤였다.

그것이 다시 밖으로 나오자면 큰 충격을 받아 지금의 공력이 흩어져야만 가능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석두공은 백평 남짓한 그 공간을 맴돌다가 드러누워 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눈앞이 노랗게 보였다.

문득 그는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품속을 뒤졌다.

피에 젖은 종이뭉치가 두개, 그리고 얼마의 돈이 나왔다.

찌이익!

그는 종이를 조금 뜯어서 입안에 넣고 씹었다.

무엇이나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같았다.

연거푸 종이를 세장이나 씹어먹고 나자 배가 불러나오는 것같았다.

이렇게 하여 기이한 공간에서의 석두공의 기이한 삶은 시작되었다.

종이를 뜯어먹고 그리고는 옷도 조금씩 조금씩 먹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그곳은 밤도 없고 낮도 없으며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문득 어느 순간에 석두공은 그 공간이 자신의 머리속과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지?)

그는 자신의 머리가 점점 맑아지는 것같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머리속도 그 공간을 닮아 더욱 텅비어 갔다.

그에 따라서 그의 머리속은 안개가 걷히는 것같이 조금씩 맑아지면서 그때까지는 기억할 수 없었던 사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부운청풍객의 얼굴과 이름이 떠올랐으며 잔혼살객의 얼굴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혼장서생 금사종이 생각나기 시작했으며 고검문주 섭군천도 생각났다.

한데 석두공에게서 그런 변화가 일어남과 동시에 그가 있는 그 공간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푸른 벽이 점점 엷어지는 것이었다.

석두공은 중얼거렸다.

[이것은 어쩌면 내 자신이 만든 것인지도 몰라.]

그는 방망이를 들고서 눈을 감은 채 벽으로 다가갔다.

한걸음 두걸음...

슈웃!

그는 벽에 다다랐고 아무 것도 의식하지 못한 것처럼 벽을 뚫고 나갔다.

그의 몸은 벽을 그냥 투과해 버린 것이었다.

석두공은 자신의 걸음수를 계산하고 있었기에 눈을 감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슴에 터질듯한 기쁨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또 어떤 것이 눈앞에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도 밀려왔다.

 

× × ×

 

항아리처럼 생긴 곳이었다.

아무래도 그곳은 큰 항아리 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정은 뚫려있어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러나 밑쪽은 사방이 완전히 막힌 절지였다.

풀도 있고 샘도 있었으며 나무들도 있었다.

풀은 당연히 땅에 깔리는 것이겠지만 아름드리 나무들도 위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 누워있었다.

그 나무들에는 황금색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렸고,

[뾰롱뾰롱!]

소리를 내면서 과일을 쪼는 새들도 있었다.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하늘로 빛은 그다지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곳은 늘 환했다.

석두공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다만 대리석으로 깔려진 바닥만 있을 뿐, 이미 벽도 존재하지 않았고 기이하게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이 먹다가 남겨놓은 옷이 덩그마니 놓여있었다.

샘물을 마시고...

과일을 따먹고...

새를 잡아서 구워먹었다.

이제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항아리 같은 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전혀 없었다.

벽을 파고 올라가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벽은 너무도 물렀다. 억지로 판다면 그곳이 완전히 무너져 버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석두공은 어느 날, 풀을 헤치고 돌아다니며 칡덩쿨과 등나무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벽가로 옮겨 심어 놓았다.

그것들이 벽의 바깥쪽에 이르도록 자라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멀리 내다보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석두공은 샘물에서 세수를 하다가 낯선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샘물 속에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훨씬 커보였다.

[내가 이렇게 컸는가?]

석두공은 그제서야 자신의 손발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그마했던 주먹도, 작았던 발도 이젠 제번 큰 것같았다.

또 어느 날, 석두공은 자신의 턱이 까칠까칠한 것을 느꼈다.

수염이 살을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그는 그 속에서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뼈마디는 굵어지고 강해졌으며, 키는 육척에 달할 정도로 훤칠해졌다.

옷을 뜯어먹어버린 후로 알몸이 된 그의 몸에도 사나이의 성징(性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또한 종종 가슴속이 답답해 오며 원인모를 열기가 불끈불끈 치솟곤 했다.

그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의 정신도 점점 성숙되어 치기어린 생각들이 가시고 의젓하고 당당하면서도 강렬한 패혼(覇魂)을 보였다.

이따금씩 머리속에 떠오르는 동작들을 몸으로 펼쳐 보이는 가운데 그의 무공도 점점 완성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미약했던 포연신공의 내공도 점점 웅대해지고 있었다.

 

흙벽 아래 심었던 칡덩쿨이 십 수 장이나 올라가 있는 어느 날 곤히 잠들어 있던 석두공은 몸을 흔드는 진동에 눈을 번쩍 떴다.

드르르르...

대리석 바닥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이쿠! 무너지면 어떡하나?)

석두공은 나무위로 몸을 피한 후에 대리석 바닥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방망이로도 어쩔 수 없었던 바닥이었다.

한데,

드르르르르...!

타타타타탁...!

진동하던 대리석 바닥이 급기야 가운데서 부터 일어나면 접혀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거대한 손이 깔아놓은 멍석을 마는 것처럼 보였다.

타타타탁!

대리석 바닥이 접혀지는 곳에서는 그에 따라서 무엇인가가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드르르르...!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강해지고 대리석 바닥이 완전히 걷혀졌을 때,

우르르릉... 쩌저적...!

지면이 갈라지면서 무엇인가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

그것은 탑()!

묵광이 흐르는 거대할 석탑(石塔)이 아닌가?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거수(巨獸)가 몸을 일으키듯, 굉음을 울리며 웅장무비하게 솟아나는 석탑!

총 삼층(三層)으로 된 그것은 거대한 하나의 돌을 깎아서 만든 정교한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석두공은 긴장된 표정으로 석탑을 주시했다.

어떤 강렬한 힘으로 석탑은 석두공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쿠르르릉...

그 사이에 철탑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고 진동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석탑은 총 삼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일층의 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다.

일층 문위에 양각으로 부조된 웅휘무쌍한 글씨가 보인다.

 

<천신폭풍탑(天神暴風塔).>

 

[천신폭풍탑...!]

석두공은 격동에 찬 일성을 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신폭풍탑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천신폭풍탑이 자신의 단조로운 생활에 극적인 변화를 줄 그 무엇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

석두공은 격동을 억누르며 천천히 일층의 문안으로 발길을 들여놓았다.

그것은 숙명에로의 이끌림이었다.

 

일층,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한쪽 벽면에 이러한 글귀가 새겨져 있을 따름이었다.

 

<본좌 폭풍무존(暴風武尊)은 천신폭풍탑을 만든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무엇때문에 본좌가 이 천신폭풍탑을 만들어야 했는가?

대체 사부의 뜻은 무엇이었는가?

본좌는 스물여덟 살 되던 해에 이 절곡으로 들어와 이백사십 년을 보냈다.

천신폭풍탑을 만든 것도 사부의 뜻,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도 사부의 뜻,

본좌의 인생은 오로지 사부의 뜻에 의해서 결정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비단 본좌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둘째 사제는 포연신공을 가지고 어느 곳인가로 갔다.

셋째 사제는 천하의 모든 기학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고는 본회에서 익혔던 일신의 무공을 폐쇄당한 채 강호에 내쳐졌다.

본좌는 폭풍무존다.

본좌의 무공은 사부를 앞 지른지 오래였으며, 석년의 달마조사나 본 은세정검회(恩世正劒會)의 창시자인 벽천검왕(劈天劒王)마저도 본좌보다 강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천강철골신(天剛鐵骨身)을 타고난 나 폭풍무존,

능히 고금제일을 자부하건만 사부는 어이하여 내 인생을 절곡속에 묻어버렸는가?

은세정검회의 정통후계자인 나는 이렇게 절곡 속에 스스로 힘을 분출하지 못해 죽어가는데 은세정검회는 아마도 넷째 사제가 이었겠지.

사부가 천년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음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어떻단 말인가?

그 훗날을 위해서 본좌의 젊음이, 본좌의 패기가 이 절곡속에서 시들어가도 좋단 말인가?

본좌는 분개한다.

본좌는 사부의 뜻을 단 한번만 거스르기로 작정했다.

이것은 이백사십 년을 이곳에서 보낸 데 대한 보상이든 댓가이든 상관이 없다.

본좌는 죽지 않을 것이다.

사부의 모든 안배가 우리 은세정검회의 숙적인 독존패왕궁의 야심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사부는 너무 소심했던 것이 된다.

본좌는 결코 이대로 죽지 않는다.

이대로는...

...>

 

폭풍무존이라는 사람은 학문에는 그다지 뜻이 없었는지 문장이 두서가 없고 어지러웠다.

스스로 고금제일인임을 주장하고 있는 은세정검회의 정통후계자 였다는 폭풍무존,

그가 남긴 글의 내용은 석두공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은세정검회... 패왕독존궁... ]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같기도 하고 없는 것같기도 했다.

폭풍무존의 한이 맺힌 글을 뒤로하고 석두공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이층에 막 올라서는 순간,

그그긍...

이층의 석문이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둔중한 기음과 함께 열렸다.

[...!]

석두공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석문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드넓은 공간이었는데 역시 일층과 마찬가지로 공간 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석두공는 의아로운 눈빛으로 사면을 휘둘러 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방 벽면 전체를 가득 메운 빽빽한 그림과 글씨 뿐이다.

하지만 그 글씨를 보는 순간 석두공은 다시금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폭풍무존의 무공은 정말 고금제일이라 할만하구나. 저 모든 것이 석벽을 두부처럼 주물러서 양각시켜 만든 그림과 글이라니...!)

그렇다.

당금의 천하를 통틀어도 이와 같은 공력을 지닌 인물은 없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돌을 부스러뜨리지도 않고 용암처럼 녹여서 글자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진정한 경이,

석두공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부의 뜻이 미치는 곳은 이곳까지 뿐이다.

사부의 명에 따라 본좌 폭풍무존은 이곳에 본좌의 최고 무공인 천신폭풍보(天神暴風步) 단 한가지만을 적어놓는다.

하지만 스스로도 본좌의 실없는 행동에 어이가 없다.

천신폭풍보는 본좌가 아닌 그 누구도 익힐 수 없는 것을...

설마하니 사부는 본좌가 이것을 적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라는 말인가?

그러나 어찌되었든 후세의 누군가가 이곳에 오게 된다면 그는 알게 되리라. 세상에 본좌의 천신폭풍보같은 무공도 존재했었음을...>

 

폭풍무존은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자신하는 만큼이나 사부를 냉소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의 시각은 상당히 삐뚤어져 있다는 것이 석두공의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두공은 인간적으로 폭풍무존에게 강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석두공은 온순하며 사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제자였다.

 

석두공은 눈은 폭풍무존이 기록해놓은 천신폭풍보를 보고 있었다.

한데 그는 그것을 읽어가면서 점점 가슴이 떨려오고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이건... 인간의 무공이 아니다. 어떻게 이게 인간의 무공일 수가 있는가?]

떨리는 음성이 석두공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천신폭풍보의 구결들은 석두공의 눈을 도무지 뗄 수없도록 끌어당기고 있었다.

어떻게 인간의 무공이 이처럼 구결만으로도 사람을 떨리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석두공이 어떠한 인물이었던가?

동호천의 제자로 어떤 무공이든지 암기는 할 수 없어도 펼칠 수는 있는 기괴한 천재였지 않은가?

그런 그를 놀라게하는 천신폭풍보는 대체 어떤 것이란 말인가?

 

× × ×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모든 절학의 하나의 권법(拳法)속에 응축시킨다.

또 어떤 사람은 검법(劍法)이나 도법(刀法) 속에 그렇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 별난, 정말 별난 사람은 남들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것에 자신의 혼을 담기도 하는 것이다.

폭풍무존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천신폭풍보라른 하나의 보법(步法)에 자신의 모든 무학을 담았다.

검을 익힌 사람에게 검이 모든 것이듯, 폭풍무존에겐 천신폭풍보가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절대신공(絶對神功)이며, 또한 초식이기도 하고, 빛을 방불케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신법이기도 하며, 부딪히는 것은 무엇이나 깨뜨릴 수 있는 패도적인 강기신공이기도 했다.

천신폭풍보가 있는 한 폭풍무존을 죽일 수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에게 천신폭풍보가 있는 한 죽일 수 없는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천신폭풍보는 진정 그가 스스로 고금무적임을 자부하게 해줄 만한 것이었다.

천신폭풍보는 잊어먹는 데는 도사인 석두공에게 결코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것으로 낙인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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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驅駕天魔劒法殺魔經武功

 

 

 

[필요한 것은 생각나는대로 여기에 다 적었소. 하지만 그래도 난 염려가 가시질 않소이다.]

금사종은 염려스러운 듯이 말하며 새까맣게 글을 적은 종이를 석두공에게 넘겨주었다.

이곳은 무당산 아래에 자리한 작은 마을의 객점이다.

[서생이 해야 할 것도 급한 일이니 할 수 없어요. 실수를 하더라도 자꾸 이걸 보면서 하는 수 밖에요.]

석두공은 금사종이 적어준 종이를 둘둘 말면서 말했다.

금사종은 먼저 일어섰다.

[조심하시오. 그리고 다시 만날 곳은 태산(泰山) 일천각(壹天閣)이오. 잊지 마시오.]

석두공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종이는 잊지 않겠어요. 그럼 어서 가보세요.]

 

***

 

석두공은 금사종을 어디론가 보내고 혼자서 숭산을 향했다.

이제 혼자가 되었으니 기억력에는 조금도 의존할 수 없다.

크게 의지가 되던 금사종 떠나버리자 막연한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다.

하지만 석두공은 자기는 원래 그랬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위로했다.

꼭 필요한 것은 금사종이 적어준 종이에 적혀 있겠지만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임기응변으로 해야 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빨리 움직인다고 해서 모든 일이 빠르게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

 

중악(中岳) 숭산(嵩山)을 오르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치는 곳이 있다.

바로 숭산 아래 자리한 시진인 등봉현(登封縣)이다.

이곳 등봉현에서는 소림사로 올라가는 참배객들이 머물기 위한 객점들이 다수 있다.

 

-여래객잔(如來客棧),

 

등봉현에서 가장 큰 객점인 이곳의 후원에는 며칠 전 부터 여러 개의 방을 잡아놓고 한 인물이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그의 일행으로 생각되는 듯한 한 인물이 찾아왔다.

그들은 함께 방안을 들어서자마자 앉지도 않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먼저 숭산으로 올라간 것은 아니었소.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소.]

[소림사로 가는 건 분명하오?]

등에 고색창연한 보검을 맨 청수한 중년인이 물었다.

틀림없소!”

마치 죽음이 번져나는 듯한 외팔이 흑의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외팔이는 바로 잔혼살객(殘魂殺客)이었다.

그리고 보검을 맨 중년인은 바로 부운청풍객(浮雲淸風客)이었다.

사부를 배신하고 감금했던 인면수심의 야망에 찬 사나이 부운청풍객은 살기어린 어눌한 음성으로 말했다.

[준극봉(峻極峰)으로 유인하여 죽이도록 합시다.]

 

***

 

석두공은 무당산에서 숭산 아래의 등봉현에 닿는 데 사흘이란 시간을 허비했다.

어린아이 혼자서 먼길을 가는 것을 불쌍하게 여겼는지 마차를 태워주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천천히 걸어서 왔다.

등봉현에 닿았을 때 그는 겨울이 오기 전에 소림사에 한 번 더 참배하려는 사람들로 객점들이 가득 채워져 있음을 알았다.

객점에서 제대로 된 밥을 사먹는 걸 포기한 석두공은 길거리에서 만두를 사먹고는 그대로 산을 올랐다.

 

정오가 막 지난 때였다.

[공자님! 소림사로 가시는 길인가요?]

느릿느릿 숭산을 올라가는 석두공의 뒤쪽에서 참배객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쫓아오면서 소리쳤다.

늘씬한 몸매에 꽃이 수 놓여진 청의를 입은, 도무지 절에 다닐 만한 그런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처녀였다.

머리에는 금비녀를 꽂았으며 허리에는 은빛 채대가 화려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

석두공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길은 소림사로 가는 길, 그 길을 가면서 소림사에 가지 않는다면 어딜 가겠는가?

청의미녀는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어머 잘됐네요. 적적해서 혼자 어떻게 소림사까지 올라가나 하고 걱정했는데... ]

[저기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요.]

석두공은 앞쪽에 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청의미녀는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남자들은 여자만 보면 엉뚱한 생각을 해서 함께 있기가 거북해요. 공자님도 뒤에 알게 되겠죠.]

[전 머리가 나빠서 아마 뒤에도 모를 거예요.]

석두공이 입을 헤 벌리고 웃으며 말했다.

청의미녀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머리가 나쁘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내가 본 어떤 사람보다도 총명해 보이는데....]

석두공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멍청하다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는데 왠 쓸데없는 참견일까? 여자는 말이 많다고 하더니 아무 말이나 막 하는 모양이구나.)

그는 앞서서 걸었고 청의미녀는 그의 옆에 바싹 붙으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디 사는 누구냐는 질문에서 부터 시작해서 뭣 하러 소림사에 가느냐까지,

질문과 또 자신이 스스로 만든 대답해 가면서 석두공의 혼을 빼놓았다.

그리고 묻지도 않았던 말을 이제는 하고 있었다.

[산동(山東)의 곡부(曲阜)를 아세요? 공자 맹자 할때 그 공자님께서 나신 곳 말예요. 내 고향도 거기죠. 어렸을 때 공자가묘에도 한 번 가봤는데 뭐 그저 그랬어요. 하지만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거에요.]

하지만 석두공은 담담히 웃기만 했다.

그는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실컷 말해 봐요. 난 사부님도 마이동풍인가 서풍인가 했을 정도로 무슨 말이든 다 잊어버리니까. 그리고 보니 당신 입니나 내 귀나 비슷한 데가 있군요. 이럴 때 쓰는 말이 천생연분이라든가?)

청의미녀의 말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여자는 함부로 돌아다닐 게 못되어요. 내 이웃에 소향이란 계집애가 있었는데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더니 그만 난봉꾼들에게 몸을 뺏겨서 배가 불렀지 뭐예요. 참 수치심도 없는 계집애죠?]

[그렇군요.]

석두공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렇든 말든 청의미녀의 수다는 쉴새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예요. 소향이의 동생은 월향인데, 그 게집애는 숫제 사내들을 집으로 끌어들인다지 뭐예요. 누가 봤는데 어떤 밤에는 사내 셋이 한꺼번에 그 계집애의 방에서 나오더래요 글쎄.]

[그래요?]

석두공은 그저 그래요, 그렇군요, 등의 말만을 연발하며 그녀의 말을 귓전으로 모조리 흘려버렸다.

 

한데 그들이 중악묘(中岳廟)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산에서 내려오던 중년 사내가 갑자기 재잘거리는 청의미녀와 어깨를 툭 부딪혔다.

청의미녀가 빽 소리쳤다.

[조심하셔야죠. 길도 넓은데... ]

그러자 그녀와 어깨를 마주친 중년 사내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소리쳤다.

[! 넌 율아(栗兒) 아니냐? 이곳에서야 너를 만났구나.]

[당신은 누구죠? 날더러 율아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청의미녀가 화난 듯이 소리쳤다.

중년 사내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네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외삼촌도 모른 척하는 구나. 당장 잡아가야겠다.]

그는 번개같이 덮쳐들더니 청의미녀의 허리를 껴안고 날아올랐다.

[아악! 살려줘요. 강도야 강도!]

청의미녀가 비명을 질렀다.

쏴아아아!

그자는 경신술을 발휘하여 나무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석두공은 이같은 사태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중년 사내의 말이 아무래도 거짓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도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하지만 그래도 근 십리에 가까운 길을 함께 걸은 일행인데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앗!

그는 몸을 날려 중년 사내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석두공이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갔지만 중년 사내의 경공 또한 놀랄 만큼 빨랐다.

청의미녀를 안고서 달림에도 불구하고 석두공과의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아아악! 살려줘요. 이 치한! 강도야 강도!]

청의미녀는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석두공은 공력을 끌어올렸다.

피유우우우!

순간 그의 몸은 빛살처럼 가는 선을 그리며 날아가 중년 사내와의 간격을 급속도로 좁혔다.

거리를 좁혀가며 석두공은 버럭 소리쳤다.

[멈춰요!]

하지만 중년 사내는 들은 척도 않고 앞으로 내달린다.

어느새 그들은 몇 개의 계곡을 건너뛰어 높은 봉우리로 치닫고 있었다.

한데 그 봉우리의 정상으로 사나이와 두공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곳에는 이미 여섯 명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석두공의 눈에 들어왔다.

(함정(陷穽)!)

석두공 내심 소리쳤다.

기다리고 있던 여섯 사내들은 모두가 흑의를 입었으며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청의미녀는 정신을 잃었는지 납치해온 중년 사내의 허리에 축 늘어져 있었다.

[후후후...!]

중년 사내는 음산한 웃음을 터뜨리며 청의미녀를 복면인들 중의 한사람에게 던졌다.

화라라락!

화려하게 치장한 그녀가 마치 한 송이의 꽃처럼 날아갔다.

석두공은 그것을 빤히 보면서도 어떻게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강한 적!

그의 눈앞에는 지금까지 그가 만나본 고수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진정 강한 적수들이 서있었다.

비록 그들이 아직 무공을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석두공은 몸으로 전해지는 느낌만으로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전신의 몸이 경직되는 느낌이었다.

왼쪽 소매가 헐렁하여 외팔이임을 알아볼 수 있는 흑의복면인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죽어줘야겠다.]

 

-죽어줘야겠다.

 

바람의 속삭임인 듯 전해지는 외팔이 흑의인의 그 말속엔 주체할 수 없는 살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청의미녀를 안고 온 중년 사내는 이미 석두공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석두공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어떤 질문도 의미가 없을 것같았다.

그들은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자신은 그들에게 죽지 않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남아있을 뿐, 이미 청의미녀의 존재까지도 그는 잊고 있었다.

단순한 만큼 석두공의 집중력의 뛰어났고 그 순간적인 정신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허리에 걸려있는 방망이로 손을 가져갔다.

순간 그의 몸에서 나이를 초월한 강렬한 기운이 일어났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웅혼하며 또한 패도적(覇道的)인 기운이었다.

석두공을 앞뒤로 포위하고 있던 외팔이 흑의인과 중년 사내의 눈에 놀람과 동시에 살기가 폭발하듯 줄기줄기 뻗어나왔다.

그것은 반드시 죽여야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문득 석두공은 그들의 이런 느낌을 어디선가 경험했던 것을 떠올리며 소리쳤다.

[삼마경(三魔經)!]

[크하하하하... ! 결국 우리를 알아보았구나!]

청의여인을 납치해왔던 중년 사내가 광소를 터뜨렸다.

츠츠츠!

한데 득의하여 웃고 있는 그자의 얼굴이 스믈 스믈 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닌가?

웃음이 끝났을 때는 얼굴의 윤곽전체가 다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은 아주 청수한 부운청풍객(浮雲淸風客) 심제을의 얼굴이었다.

흑의의 외팔이도 쓰고 있던 복면을 벗어버렸다.

그는 죽음보다 짙은 살기를 드리우고 있는 잔혼살객(殘魂殺客)이었다.

부운청풍객과 잔혼살객이 함정을 파고 석두공을 기다리고 있엇던 것이다.

석두공은 그들 두 사람의 이름을 하나 하나 기억하지 못하고 단지 삼마경이라는 말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동정호에서 석두공이 죽이겠다고 맹세한 세사람 중의 둘이었다.

츠읏!

석두공의 눈에서 새파란 살광이 파릇파릇 일어났다.

그것은 방금 전의 패도적인 기운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바늘로 쏘는 듯한 살기다,

무공이 아니건만 심약한 사람은 그 살기만으로도 심장이 멎어버릴 것이다.

[당신을 죽이겠어요.]

석두공은 잔혼살객을 젖혀두고 뒤로 빙글 돌아 부운청풍객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부운청풍객은 그의 가공할 살기에 몸을 흠칫하면서도 음침한 살소를 흘렸다.

[후후후후... 동호천도 우리 손에 죽었다. 어린 녀석이 기고만장하구나.]

말은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운청풍객의 얼굴은 웃음이 어색할 정도로 굳어있었다.

또한 그는 옷자락 속에 숨겨두었던 보검을 꺼내들고 있었다.

석두공은 끓어오르는 살기를 침묵으로 대신하며 방망이를 뻗었다.

치익!

순간 방망이에서 번개불같은 푸른 빛이 쏘아져 나갔다.

!”

부운청풍객 심제을은 안개처럼 몸을 일렁이며 옆으로 두 걸음이나 피하며 검을 뽑았다.

파앗!

검은 뽑힘과 동시에 석두공을 베고 있었다.

극쾌(極快)!

심제을의 검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수십 토막으로 쪼갤 수 있을 정도로 빠른 것이었다.

(베었다!)

심제을은 내심 외쳤다.

스르릉!

그러나 석두공의 몸은 그 찰나의 순간에 방망이로 비스듬히 검을 막으며 심제을을 날아넘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빨랐기에 오히려 환상적으로 느려보였다.

부운청풍객은 눈을 부릅떴다.

그러한 동작은 무공을 익힘으로 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선천적인 반응, 오로지 선천적으로 그처럼 빠른 신경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무공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차압!]

부운청풍객의 입에서 분노에 찬 일갈이 터져나왔다.

촤아아아!

그와 동시에 부운청풍객의 검이 하늘 가득 수천 개의 검기를 뿌렸다.

함박꽃의 꽃잎이 벌어지는 듯 화려한 검기의 폭출이었다.

[천마폭멸참(天魔爆滅斬)!]

석두공의 허공에 뜬 몸은 부운청풍객의 검에서 발출된 검기에 완전히 가려져 버렸다.

부운청풍객은 처음의 일초가 실패하자 바로 구가천마검법(驅駕天魔劒法)을 펼친 것이다.

석두공의 정신은 맑은 호수의 물결처럼 깨끗했다.

그는 자신의 본능이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뿐이었다.

! !

방망이가 석두공의 손가락 사이에서 풍차처럼 돌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옥허도인의 태극어검술을 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다시 일어났다.

치치칙!

천마폭멸참의 검기는 석두공의 손에 있는 방망이에 닿자 흔적도 없이 흡수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땅위에 어지럽게 해놓은 낙서가 비질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

그리고 검과 방망이가 부딪히면서 부운청풍객의 고검이 여지없이 부러져 나갔다.

[!]

부운청풍객은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려 검의 파편을 피했다.

[검이 부러지다니...]

검이 부러진다는 것은 극히 불길한 징조였다.

또한 무림에서 검을 사용하는 자는 스승에게 처음 진검을 받으면서 전해듣는 말이 검이 있으면 산 것이고 검이 없으면 죽은 것이라는 것이었다.

삼마경 중의 검마경에 기록된 구가천마검법을 펼치고도 검이 부러졌다...

부운청풍객의 안색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그 얼굴에는 형언할 수도 없는 살기가 깊은 곳에서 부터 우러나오고 있었다.

슈욱!

석두공의 방망이는 소리도 없이 부운청풍객의 목을 노리고 짓쳐들어왔다.

부운청풍객은 찬바람을 들이키며 부러진 검으로 동시에 삼초의 마검식을 펼쳐냈다.

[천마진천살(天魔震天殺), 천마파연옥(天魔破煉獄), 천마탈혼벽(天魔奪魂劈)!]

쩌저저정! 콰르르릉!

하늘이 갈라지고 준극봉의 정상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십여 장이나 높이 검기가 솟구쳤으며 구가천마검법이 만들어내는 천마의 호곡성같은 괴음이 십여리 까지 퍼져나갔다.

우우우우우우웅...

구우우우후후후후...

심혼을 표백(漂白)시켜버릴 듯한 천마(天魔)의 호곡성(號哭聲)이었다.

석두공은 어느덧 자신을 잊고 있었다. 완전한 무아지경에서 본능적으로 지금까지 익혔던 무공을 펼쳐내어 구가천마검법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의 몸속에는 자신이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으나 천하의 수많은 기학들이 살아있었다.

그것들의 대부분이 개개로서는 구가천마검법에 미치지 못하는 무공들이지만 합쳐지면서 임기응변적으로 보완되어 펼쳐지는 것은 능히 구가천마검법을 대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가천마검법의 진정 무서운 점은 그 천마의 호곡성에 있었다.

잠시 듣는 동안 정신이 흐릿해지면서 몸도 따라 둔해지는 것이었다.

!

검기가 그 틈을 비집고 석두공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를 빨아먹는 괴물처럼 구가천마검법이 스치고 간 곳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석두공은 이를 악물고 폭풍처럼 밀려드는 검기속을 파고 들었다.

피웃!

그의 몸이 두개로 갈라지면서 검기들이 그의 몸을 투과하여 흘러갔다.

직후 방망이가 부운청풍객의 손목을 쳤다.

파삭!

괴이한 음향과 함께 부운청풍객의 손목이 축 늘어졌다. 뼈가 산산히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부운청풍객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가랏!]

그의 토막난 보검이 독사의 이빨처럼 석두공의 가슴으로 벼락처럼 쇄도해들고 있었다.

촤아악!

석두공은 급히 몸을 비틀었으나 앞가슴이 길게 베어지며 피가 쏟아졌다.

석두공이 비칠거리며 물러섰으나 부운청풍객은 추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창백한 안색으로 망연히 서있었다.

석두공의 무공이 강하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토록 강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부운청풍객은 씁쓸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모든 웅지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겨우 사척이 조금 넘는 어린소년...

당금 무림의 십대고수 중의 한 사람인 부운청풍객을 상대로 해서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석두공은 손가락으로 혈도를 짚어 지혈을 했다.

그리고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부운청풍객에게 다가섰다.

그때였다.

[네 상대는 그가 아니다.]

관전하고 있던 잔혼살객이 칙칙한 음성을 내뱉었다.

[심형! 낙담할 것없소. 이놈은 동호천이 심혈을 기울인 제자요. 나는 처음부터 이놈이 동호천보다 쉬운 상대가 아닐 것같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소.]

잔혼살객은 부운청풍객에게 싸늘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는 자신의 무기인 사신겸, 시퍼런 낫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뒤에 있는 그의 부하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시작해라!]

순간,

[아악!]

청의미녀가 뾰쪽한 비명을 질렀다.

복면인들이 그녀의 팔다리를 움켜쥐고 옷을 벗기려 하는 것이 석두공의 눈에 들어왔다.

“....!”

그것을 본 석두공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아악! 안돼! 살려줘!]

우악스러운 복면인들의 손에 사로잡힌 청의미녀는 소리치며 발버둥쳤다.

찌익! !

그러나 그녀의 푸른 옷은 두명의 복면인에 의해 거침없이 찢어지고 있었다.

쫘악!

가슴께로부터 길게 찢어져 버린 옷자락 사이로 청의미녀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녀의 살결은 껍질을 벗긴 삶은 계란 처럼 희고 깨끗하다.

그리고 날씬해보이던 겉모습과는 달리 젖가슴은 아주 투실투실하여 중량감이 느껴진다. 그 탄력 넘치는 젖가슴이 몸부림칠 때마다 너무도 육감적으로 출렁거린다.

“....!”

잔혼살객은 자신의 뒤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른 척하며 석두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자와 마주선 석두공의 눈에는 겁탈당하며 발버둥치는 여인의 모습이 마치 그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면인것처럼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였다.

여인의 마침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어 바위위에 눕혀졌다.

네명의 복면인이 그녀의 사지를 하나씩 붙잡아 고정시키고 있었다.

태양은 눈부시게 그녀의 나신을 내리비추는데 다른 한명의 복면인이 자신의 손을 여인의 벌려진 다리 사이로 거침없이 들이밀었다.

[아악!]

여인이 고개를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석두공이 서있는 곳을 향해서 그녀의 두 다리는 활짝 벌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석두공은 본의 아니게 난생 처음 여자의 구조를 속속들이 보게 되었다.

벌려진 허벅지는 만지면 묻어날 듯이 뽀얀데 그 안쪽에는 아주 짙고 검은 체모가 무성하게 나있다.

그 체모는 도독히 살이 오른 둔덕 정상에 집중적으로 나있고 둔덕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급격히 옅어졌다.

그 옅은 체모 사이로 충격적인 형상을 한 깊이 갈라진 틈바구니가 보였다.

하얀 피부가 둘로 갈라져 생긴 그 균열은 살짝 벌려져 있어서 내부의 원색의 오묘한 살점을 수줍게 들어내고 잇엇다.

마치 잘 익은 석류가 갈라진 것같은 여인의 그 부분의 형상은 순진무구한 석두공에게 숨이 막히는 듯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석두공은 이러한 연출이 잔혼살객이 자신을 동요시키기 위하여 벌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심장은 터질 듯이 빠르게 뛰었으며 숨이 가빠왔다.

평정이 흔들리고 깨끗한 마음에 잡념이 들어차고 있었다.

정신이 점점 흐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위기를 감지한 본능은 그의 정신을 긴장시키려 하고 있었고 또 다른 본능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 하고 있었다.

여인의 비부에 손가락을 가져간 복면인은 장난질치듯이 여체의 그 균열을 벌렸다 오무렸다하면서 자극하고 있었다.

비명을 질러대던 여인은 이제 지쳤는지 미약한 신음만을 내뱉을 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있었다.

[! ... ... ... ]

다른 복면인들이 그녀의 팽팽히 부푼 유방과 배꼽을 어루만지다가 혀를 갖다댔다.

!”

여인의 몸이 순간적으로 부르르 떨렸다.

또 다른 손은 여인의 둔부를 쓰다듬고, 또 다른 입은 여인의 귓바퀴속에 혀를 밀어넣고 있었다.

여인의 몸이 꿈틀거렸다.

[으음... ... 허억... ]

그리고 마침내 여인은 기묘한 숨소리를 내면서 둔부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은밀한 곳에 손을 부비고 있던 흑의인이 일어서면서 자신의 하의를 벗어버렸다.

붉게 충혈된 흉물스런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워있는 여인의 눈에도 그것은 선명하게 보였다.

[아아... 안돼!]

그러나 비명소린 전처럼 크지 못했다.

아무런 준비과정도 없이 흑의인이 그녀의 몸위에 엎드리며 힘껏 자신의 남성을 여인의 살이 갈라진 틈으로 밀어넣었다.

커흑!”

여인은 마치 창에 궤뚫리기라도 한 듯 눈은 까뒤집으면서 실신하듯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그녀의 은밀한 곳으로는 흉물스런 남성이 뿌리까지 일거에 깊숙히 삽입되어 있었다.

사내의 꿈틀대는 그 흉칙한 살덩이를 머금은 여인의 붉은 속살이 파들파들떨고 있었다.

두개의 몸이 결합된 모습은 석두공의 망막을 가득채웠다.

석두공의 입술이 달싹달싹 떨려왔다.

잔혼살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석두공의 힘의 비밀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순수한 마음, 아무런 잡념이 없는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펼쳐지는 무공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흡흡... 아아아! ! 아아!]

흑의인이 몸을 아래 위로 움직임에 따라 여인의 입에선 달뜬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물기에 젖은 채 여인의 살 속으로 박혔다가 빠져나오곤 하는 사내의 흉물은 너무도 강인해보였다.

석두공은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잔혼살객을 공격할 수도 몸을 돌려 도망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남녀의 정사(情事)장면을 목격함으로 인하여 심적으로 크나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스읏!

바로 그 순간 잔혼살객의 손에서 새파란 낫이 아무 기척도 없이 땅위에 깔리면서 석두공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석두공의 눈은 여전히 두 남녀의 성기가 움직이는 장면에 못박혀 있었다.

그가 위험을 느끼고 움찔하는 순간 물고기가 튀듯이 솟아오른 사신겸은 그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다.

!

[!]

석두공은 그 충격에 의해서 이장이나 뒤로 날려갔다.

낫의 끝은 그의 등으로 삐죽이 빠져나와 있었다.

!

석두공은 뒤로 모질게 떨어졌다가 비칠비칠 일어섰다.

쐐애애액!

그순간에는 이미 두개의 붉은 빛이 마치 독사의 이빨처럼 그의 눈앞으로 쇄도해 들고 있었다.

파팟!

잔혼살객의 헐렁한 소매속에서 발출된 그것들은 찰라적인 순간에 석두공의 양쪽 견정혈(肩井穴)에 꽂혀버렸다.

콰앙!

그리고 잔혼살객은 질풍처럼 달려들면서 그의 가슴에 일퇴를 가했다.

[크윽!]

석두공의 가슴에 박힌 사신겸이 더욱 깊이 박히며 몇개의 가슴뼈가 끊어지고,

화라락!

석두공은 실 끊어진 연처럼 준극봉 아래의 단애(斷崖)로 떨어졌다.

“...!”

“...!”

여인을 강간하던 흑의인들이 우뚝 손을 멈추고, 그녀의 몸을 출입하던 사내도 흉물을 여체에서 뽑아내며 일어섰다.

그러자 사내의 몸을 받아들이던 여인도 바위에서 일어서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인은 마치 언제 그런 일을 당했으며 무슨 일을 했느냐고 되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부운청풍객의 시선도 잔혼살객에게 쏠렸다.

[죽었소?]

[사신겸이 심장을 반쯤 갈라놓았소.]

잔혼살객은 감정이 섞이지 않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부운청풍객은 즉시 그곳을 떠나버렸다.

그는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심한 회의를 느낀 것이었다.

구가천마검법을 익혔음에도 어린소년에게 패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꺾어놓았다.

(구가천마겁법은 대성하지 않으면 본래 위력의 이할도 채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었다. 무슨 수가 있어도 구가천마검법을 완성하리라.)

부운청풍객은 내심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구가천마검법을 십이성 연성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잔혼살객은 떠나가는 부운청풍객의 뒷모습을 보면서 섬찟한 살소(殺笑)를 피워올렸다.

[크흐흐흐... 심제을... 누가 천하의 진정한 주인인지는 아무도 모르지. 무공만으로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흐흐흐... ]

그의 뒤에는 네 명의 흑의복면인과 나체의 미녀가 부복하고 있었다.

잔혼살객은 그들을 힐끗 본 후에 말했다.

[흐흐흐... 너희들은 돌아가도 좋다. 아니, 여기서 잠시 쉬어가도 좋다.]

[각주! 감사합니다.]

네 명의 흑의복면인이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소리쳤다.

이어 고개를 드는 그들의 눈에는 욕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슈아아아앙--!

잔혼살객은 허공속의 한점이 되어 날아가버렸고,

하의를 벗고 있던 복면인이 먼저 여인을 덮쳤다.

여인이 뾰족하게 소리쳤다.

[대형! 대형은 조금 전에 했잖아요. 둘째 사형부터 들어오세요.]

그녀 또한 잔혼각의 절대칠살 중의 하나로 일곱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형이라고 불린 복면인이 음탕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흐흐... 그럼 이렇게 하자구나.]

그는 여인의 몸에서 일어서며 여인을 엎드리게 했다.

그의 남성이 여인의 뒤쪽에 자리한 또 다른 부분을 공략하며 밀려들어갔다.

여인은 말처럼 고개를 높이 들며 조심스럽게 그를 받아들였다.

[...!]

칠살의 첫째는 완전히 결합되자 그녀의 허리를 안고 뒹굴었다. 그 때문에 여인의 몸은 그자의 배위에 등을 대고 드러누운 꼴이 되었다.

어서 와요!”

첫째의 배 위에 등을 대고 누운 여인은 가랑이를 활짝 벌려보였다.

그녀의 은밀한 부분은 방금전의 행위의 흔적으로 흥건히 젖은 채 벌름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달아오른 그곳을 벌려보이며 이살을 재촉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이살은 즉시 첫째와 하나가 되어있는 여인의 배 위로 올라갓다. 그리고는 자신의 남성을 그녀의 벌려진 다리사이로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두팔로 상체를 버팅긴 채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랫쪽의 첫째도 여인의 허리를 움켜쥐고 하체를 꿈틀거렸다.

....당신들도 어서 와요! 좋게 해줄께!”

몸의 두 부분으로 사내를 받아들인 여인은 희열에 몸을 떨며 나머지 두명을 손짓으로 불럿다.

그러자 다른 두 명은 즉시 하의를 까내리고 그녀의 양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녀의 젖가슴을 주물렀다.

여인의 양손은 그들의 남성을 움켜쥐고 움직였으니...

[아아악! !! 흐윽! 흐악!]

동시에 네명의 사내를 상대하는 그녀의 입에선 기묘한 신음이 끊임없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미쳐... 더 세게... ! 주 죽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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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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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古劒門門主

 

 

 

 

 

달은 산 한쪽에 걸려 있었다.

찌륵찌륵!

풀벌레 소리가 요란한 작은 소로를 따라서 내려가던 석두공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숲으로 들어갔다.

길도 없는 곳으로 나뭇가지를 부르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는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금사종은 영문을 모르지만 따라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소로에서 십장 정도 떨어진 곳까지 들어오자 석두공은 자신의 소매자락을 조금 뜯어냈다.

찌이익!

[...?]

금사종이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무 설명도 하려고 하지않고 손바닥으로 그것을 몇 번 문지른 후 입으로 훅 불었다.

뜯어진 소매자락은 바람을 타고 나비처러 너울너울 날아서 소로의 가운데에 떨어졌다.

[가요.]

소리친 석두공은 징검다리 건너듯 바위들 위로 폴짝폴짝 뛰면서 점점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슈우우우!

금사종의 한걸음은 거의 오장씩이나 된다. 그의 무공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느리게 한걸음씩 내딛어 석두공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 후, 석두공과 금사종의 앞에 황폐한 장원이 나타났다.

밀림처럼 우거진 숲속에 덩쿨과 풀로 뒤덮힌 황폐한 장원의 존재는 두 사람에게 아주 의외였다.

장원은 크지는 않았지만 천평 정도는 되어 보였다.

담장은 허물어져 있었으며 전각들의 기와는 벗겨지고 깨어졌고, 한때는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길에는 풀과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굵은 나무뿌리가 벽을 파고들어 전각을 넘어떠렸고 산 짐승들이 군데군데 굴을 파놓고 집으로 삼고 있었다.

[을시년스럽군. 무당산 중에 어떻게 이런 장원이 있을까? 그것도 무당파에서 그다지 먼 곳도 아닌데... ]

금사종이 장원의 문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때 문앞의 풀숲에서 달빛을 받아 무언가가 반짝였다.

스윽!

금사종은 습물진기(拾物眞氣)를 일으켜 그것을 끌어당겼다.

그것은 금색으로 도금된 헌판(軒板)이었다.

 

<고검문(古劒門)>

 

금방이라도 꿈틀대며 날아갈 듯한 글씨였다.

[고검문? 어떤 문파죠?]

석두공이 옆에서 물었다.

금사종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처음 듣는 문파요. 아마도 무림에 거의 드러나지 않은 작은 방파였던 모양이오. 이미 사라져 버린 문팔인 것같소.]

[이 안에 다른 사람들이 없다면 오늘밤은 여기서 자는 것이 좋겠어요.]

그들은 황폐한 고검문의 무너질 듯한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숲속에는 함부로 건물을 지을 일이 아니다.

또한 만약에 짓는다면 관리를 철저히 해야할 것이다. 근처의 나무 뿌리들이 건물밑과 속으로 파고들어 마구 허물어버리지 않도록 잘 방비해야 할 것이다.

금사종은 속으로 자신은 결코 숲안에 집을 짓지는 않겠다고 맹세했다.

고검문에는 수십 채의 전각들이 있었지만 원래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벽에서도 나무가 자라는 판이니 어떤 건물이 남아나겠는가?

석두공은 그래도 지붕 아래에서 자고 싶은지 지붕이 남아있는 곳을 골랐다.

벽은 허물어지고 지붕도 반쯤 무너져서 한쪽으로는 별이 보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 아래에 몸을 눕혔다.

[잘자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깊은 숨소리를 내면서 잠들어버렸다.

(어린아이...)

금사종은 그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가 볼때 석두공은 정말 괴물같은 꼬마였다.

장소에 따라서 석두공의 행동은 완전히 달랐다.

지금같은 때는 또 영락없는 어린아이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몇 사람의 지략가가 한참동안 생각해서 짜내야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금방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버린다.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언제든지 금사종에게 말해준다.

그렇게 총명한 그도 기억만은 도무지 못하는 것이었다.

날이 새려면 아직 멀었지만 금사종은 잠자는 대신에 무공을 익힐 요량으로 품속에서 무치무요를 꺼내 달빛에 비춰보았다.

그리고 한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어본 후 낮은 소리로 암송하기 시작했다.

[중극신공(中極神功), 하늘의 도리는 어느 곳에도 치우쳐 있지 않으니...]

중극신공이란 것은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의 중용(中庸)에 그 근본을 두고 창안된 무공이었다.

양강(陽剛)과 열화(烈火)의 무공에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며,

음유(陰柔)와 한빙(寒氷)의 공력에 대해서도 능히 저항할 수 있는 특이한 공력이었다.

이 중극신공은 이러한 이점으로 인해 평범한 것으로도 어떤 기이한 공력도 상대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굳건히 자신을 지키는 데는 이 중극신공만한 무공이 거의 없을 것이다.

헌데 금사종이 막 한차레 구결을 되읊었을 때였다.

[지키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동신공이나 무엇이 다르랴? ()을 깊히 고수해야 하니 조금도 기이한 점이 없고 고리타분하다. 또한 기이하려고 하면 저절로 공력이 깨어질 것이니 그런 엉터리 무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돌연 어디선가 웅혼한 음성이 들려왔다.

갑자기 들려온 사람의 목소리에 금사종은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랏다.

누구냐? 누가 감히 남의 연공을 엿본단 말이냐?”

금사종은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무림에서 남이 연공하는 것을 본다면 눈을 뽑히게 되고,

구결을 옅듣게 된다면 혀를 짤리고 귀를 파게 되며,

남의 무공을 도둑질하여 사용한다면 죽음이 아니면 손과 발을 잘리게 된다.

동호천이 남의 무공을 펼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은 그가 펼치는 무공이 상대편이 익힌 것보다 더욱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동호천이 훔친 것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금사종의 일갈에 놀란 석두공도 자던 자세 그대로 일자(一字)로 벌떡 일어서서 형형한 눈초리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또 다시 어디선가 사람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엉터리 무공도 무공이라고 나를 탓하려 하는가? 무림인들의 단점은 그들이 항상 남의 말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있지.]

스팟!

순간 석두공의 몸이 번쩍하면서 벽의 뚫려진 구멍을 통하여 전각의 뒤로 날아갔다.

스읏!

금사종도 연기처럼 몸을 움직여 그의 뒤를 따랐다.

 

전각 뒤에는 몇 아름이나 되는 고목나무옆에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을 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스읏!

그러나 석두공은 멈추지 않고 우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으하하하하... 대단한 아이들이로군. 노부가 있는 곳을 이렇게 쉽게 찾아내다니!]

우물 속에서 광소가 터져나왔다.

금사종이 우물 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석두공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물은 마른 바닥을 보이고 있을 뿐, 석두공도 광소를 터뜨린 사람도 흔적이 없었다.

[비밀통로가 있는 모양이군!]

금사종은 공력을 돋구어 천시지청술(天示地聽術)을 펼쳤다.

그때 우물을 이루는 석벽의 한쪽에서 석두공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신은 원래부터 그런 모습이었나요?]

 

× × ×

 

[잠깐!]

절대칠살 중의 하나가 멈춰서면서 말했다.

[이곳에서 그자의 냄새가 끊어졌소.]

[여기에 흔적이 남아있다.]

다른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있는 천조각을 집어들면서 말했다.

먼저 말했던 자가 그것을 받아 코로 가져갔다.

한데 바로 그 직후였다.

!

갑자기 냄새를 맡던 자는 뒷머리를 둔기에 맞은 듯이 쓰러지고 말았다. 복면으로 가려진 그의 입과 코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다른 자가 소리쳤다.

[독이다!]

또 다른자는 오구검(烏口劒)을 뽑아들며 처음에 천조각을 집어들었던 자를 베어갔다.

번쩍!

파앗!

천조각을 집어들었던 그자의 팔이 어깨어림으로 부터 뭉텅 베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자는 신음소리 하나 내뱉지 않았다. 스스로 혈도를 눌러 지혈할 뿐이었다.

살수로서의 얼마나 강인한 수업을 쌓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때 다른 자가 역시 오구검을 뽑아들며 외팔이가 된 그자의 허리를 베어버렸다.

번쩍!

실로 번개와 같은 일검이었다. 검이 지나가고 외팔이의 몸이 상하로 분리되어 쓰러졌다.

[대형(大兄) ...?]

상 하체가 분리된 외팔이가 아직 숨이 끊기지 않은채 불신의 눈으로 자길 벤 자를 올려다 보았다.

철컥!

검을 다시 꼽으면서 외팔이를 벤 자가 말했다.

[셋째 너의 불찰로 네째가 죽었다. 목숨으로 갚는 것은 당연한 일.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절대칠살의 셋째의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졌다.

잘린 두토막의 시체에서 내장이 와르르 쏟아졌다.

칠살의 또 한 사람이 옥병을 꺼내 넷째와 셋째의 몸에 몇 방울의 약을 떨어뜨렸다.

푸쉬쉬쉬...

시체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아버렸다.

다른 자가 말했다.

[우리도 독이라면 일가견이 있습니다. 한데도 셋째와 넷째가 당했습니다. 놈은 우리가 방비할 수 없는 독을 가지고 있는 것같습니다.]

대형이라고 불린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즉시 무당산을 벗어나도록 하자. 놈들은 이번엔 아마 소림으로 갈 것이다.]

스스스!

그들은 즉시 몸을 날려 희미한 달빛 사이로 사라졌다.

석두공이 잘라서 던졌던 소매자락은 나풀거리며 숲으로 날려갔다.

독왕동주인 독왕(毒王) 갈천상에게서 오독패혼공(五毒覇魂功)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바 있는 석두공의 몸속엔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다섯 가지 절독이 균형을 이룬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 ×

 

철거렁! 철거렁!

신경을 거슬리는 쇠사슬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그곳은 완전히 철()로 된 항아리같은 감옥이었다.

석두공은 온몸이 쇠사슬에 감겨있는 한 노인을 보면서 측은한 듯이 말했다.

[대소변은 어떻게 봐요? 참 안됐군요.]

[크하하하하...!]

쇠사슬에 감겨있는 노인이 만감이 서린 광소를 터트렷다.

이 노인의 형상은 실로 기괴하다.

다듬지 못한 백발과 수염은 가시덤불처럼 뻗어있고, 걸치고 있는 옷은 다 헤어져서 쇠사슬이 살에 까지 파고들고 있는 것이 그대로 보인다.

그렇지만 광채가 폭사하는 눈빛은 노인을 귀신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천정에 붙어있는 한알의 야명주(夜明珠)보다 더 밝았다.

쨍쨍쨍...

노인의 웃음소리가 철로 된 벽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만들었다.

석두공은 얼굴을 심하게 찌푸렸다.

노인의 공력은 무당파의 장문인인 옥허도인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노인은 웃음을 뚝 그치며 말했다.

[흐흐흐... 먹는 것이 있어야 싸는 것도 있지 않겠느냐 이 꼬마야. 노부는 음식 냄새도 못맡아본 지가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석두공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그럼 뭘 먹고 지금까지 살았어요?]

그때였다.

!

장력에 바위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철옥(鐵獄) 안으로 금사종이 들어왔다.

노인은 그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우보다 못한 형이군 그래.]

금사종은 그를 보고 흠칫했으나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는 내 아우가 아니오. 솔찍히 말하면 내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소.]

[그런가? 하지만 너도 남 밑에서 심부름이나 할 자는 아닌 것 같은데?]

[세월이 변하면 선비도 붓을 놓고 검을 잡는 법이오. 또 태평성대가 오면 무사도 검을 버리고 괭이를 들게되어. 해야만 한다면 무슨 일을 못하겠소?]

금사종은 노인을 바라보며 늠늠하게 말했다.

노인의 눈에 은근한 감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석두공이 약간 화가 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왜 내가 묻는 말에는 답하지 않아요?]

노인은 그에게 눈을 돌리며 대꾸했다.

[노부가 네게 꼭 대답해야할 이유라도 있느냐?]

[그럼 나도 당신을 쇠사슬에서 풀어줄 이유가 없군요.]

석두공은 차갑게 응수했다.

노인이 피식 웃었다.

[나를 풀어준다고? 네녀석은 만년한철(萬年寒鐵)과 천잠사(天蠶絲)를 자를 수 있단 말이냐?]

[대답하지 않겠어요. 최소한 내 물음에 답해줄 때까지는.]

석두공은 매몰차게 말했다.

노인은 재미있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제법 흥정할 줄도 아는군. 무림에서 손해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어.]

금사종이 말했다.

[노인장께서 사연을 말씀해 주신다면 우리가 풀어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너희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단 말이지? 좋아. 마음에 들었으니 말해주지.]

노인의 선심을 크게 써는 듯이 말했다.

[노부는 이 장원의 주인이다. 최소한 이십년 전까지는 말이야. 검문(劒門)으로서 우리 고검문을 능가할 수 있는 문파가 없다는 그 고검문의 문주가 바로 나지.]

[죄송합니다만 고검문이란 이름은 생소합니다. 후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본 고검문은 어린 제자를 고수로 키워내는 문파는 아니니까 소문이 잘 나지 않지.]

금사종의 질문에 노인이 답했다.

석두공이 물었다.

[그럼 늙은 제자를 키워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석두공의 어리석은 질문에 노인은 빙긋 웃엇다.

[이미 무림에서 고수가 된 인물을 받아들여 절정고수로 키워내는 것이 바로 고검문다. 고검문의 제자는 대부분이 자신의 출신문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검문의 제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지. 그러나 고검문주인 내 명령에는 절대복종해야만 하지. 허허허허...]

고금문주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석두공은 팔짱을 끼면서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꼴이예요?]

[휴우...]

갑자기 고금문주가 땅이 꺼져라고 탄식했다.

[노부도 이게 무슨 꼴인가 싶다. 이게 다 제자를 잘못기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노인은 석두공과 금사종에게 자신의 한맺힌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본래 고검문은 그의 말대로 무림의 고수들을 제자로 맞아들여 절정고수로 키워내는 특이한 문파였다.

문주인 이 노인의 이름은 섭군천(葉君天),

그의 검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났다.

노검객들의 평생 소원은 고검문에 한번 몸을 담아 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검문의 명성은 검호들 사이에 늘리 알려져 있었으며, 고검문의 제자가 되면 그 장래는 완벽하게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문파는 두 스승을 섬기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문파를 가진 자가 또 다른 문파에 몸을 담는 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하여 누구도 자신이 고검문의 제자라는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으며 고검문이라는 말조차 쉬쉬하는 것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검문은 모든 검객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신화의 영역이었다.

 

고검문주 섭군천은 기억을 더듬는지 암울한 눈빛으로 천정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노부는 평생 단 두명의 제자를 받아들였다. 큰제자의 이름은 당이정(唐利貞)이라고 하고 둘째 제자의 이름은 심제을(深帝乙)이었지. 둘 다 무림에서 이름을 떨칠 때 내 제자가 되었어.]

[당이정? 정말 당이정이라고 했습니까?]

순간 금사종이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네.]

섭군천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사종은 경이의 표정으로 이 괴물같은 노인을 다시 보았다.

[그럼 백검보(百劒堡)의 보주이며 이정(二正)중 한명인 검성(劒聖) 당이정 대협이 바로 노인장의 제자란 말씀입니까?]

[그렇네.]

노인은 이번에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시엔 백검보가 보잘 것 없는 문파의 하나였었지. 그리고 둘째 제자놈도 어쩌면 들어보았을 게야. 그놈의 외호가 부운청풍객(浮雲淸風客)인가 뭔가 했으니까.]

!

그것은 충격이었다.

이정삼사오객 중의 이정에 속했으며 검성으로 추앙되는 백검보주 당이정이 노인의 제자일 뿐만 아니라, 오객 중의 한사람으로 정체가 신비에 가려져 있던 부운청풍객까지도 노인의 제자라는 것은 경악 그 자체였다.

금사종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노인장께선 이런 모습으로... ]

[그런데는 뭐가 그런덴가? 심제을 그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놈이 노부의 가족을 살해하고 증손녀를 납치한 후에 노부를 협박하여 이곳에 감금한 것이지.]

섭군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원한에 대해서 달관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심한 고통에 시달렸을 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석두공과 금사종은 콧날이 시큰해옴을 느꼈다.

인면수심(人面獸心)...

부운청풍객의 행동은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금사종이 입을 열었다.

[부운청풍객은 삼마경(三魔經)이라는 가공할 마공을 익혔습니다.]

[삼마경!]

섭군천이 돌연 비명처럼 외쳤다.

웅웅웅!

철옥에 오랫동안 삼마경이라는 말이 메아리쳤다.

[우욱!]

섭군천은 돌연 입으로 핏덩어리를 토해냈다.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석두공은 번개처럼 허리의 방망이를 꺼내어 노인을 묶고 있는 사슬을 쳤다.

팡팡!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사슬이건만 방망이에 맞는 순간 불똥을 튕기며 산산히 깨어졌다. 그가 우연히 얻은 이 방망이는 정말 대단한 보물이었다.

섭군천은 사슬이 떨어져 나간 것도 모르고 넋이 빠진 듯 중얼거렸다.

[막내인 영소(瑩宵)마저 놈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단 말인가? 오직 그 아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살았거늘...]

석두공은 섭군천의 몸을 뒤에서 묶고 있는 천잠사를 두가지의 공력을 사용해서 끊었다.

그가 사용한 공력중 하나는 빙백신공(氷魄神功)이고 다른 하나는 축융신공(祝融神功)이었다.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다는 천잠사지만 차갑고 뜨거운 두가지의 상반된 공력의 동시에 가해지자 썩은 새끼줄 처럼 끊어지고 말았다.

금사종이 내심 감탄하면서 섭군천의 몸을 안았다.

섭군천이 중얼거렸다.

[이젠 다 틀렸다. 다 틀렸어. 섭씨의 고검문은 이로서 끝이 나는 구나.]

그는 순식간에 수십년은 더 늙어 버린 듯했다.

비록 사슬에 묶여있기는 했지만 넘쳐나는 듯한 힘은 이제 깡그리 사라져 버린 듯했다.

석두공은 섭군천의 그같은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도 가슴속이 울렁거리는 것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이 끌린 듯 섭군천에게 절하며 말했다.

[그럼 제가 제자가 되어 고검문을 잇게 해주세요.]

섭군천은 힘없는 눈빛으로 그런 석두공을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네 자질은 제자가 되고도 남음이 있지만 고검문을 이을 순 없다.]

[...?]

[...?]

석두공 뿐만 아니라 금사종도 의아한 표정으로 섭군천을 바라보았다.

섭군천이 탄식하며 말했다.

[고검문은 오직 섭가의 자식만이 이을 수 있다. 제자는 오직 무공을 배우고 문주의 명을 따르기만 할 뿐이다.]

석두공이 이마를 모으며 물었다.

[영소란 분이 할아버지의 아드님이셨어요?]

[그렇다. 내 막내아들이었지. 그 아이만은 따로 나가 살았기에 화를 피한 줄 알았는데... 놈은 그 아이마저 죽이고 삼마경을 뺏았구나.]

섭군천은 허탈하게 대답했다.

금사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삼마경은 원래 노선배님 것이었습니까? ]

[그렇진 않아. 영소가 우연히 얻었던 것이지.]

섭군천은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석두공은 그의 등에 있는 명문혈(命門穴)을 통해서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섭군천의 명문혈에서 강한 반탄력이 일어나면서 그의 진기를 돌려보내버렸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던 섭군천이 돌연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내 부탁을 들어주겠느냐?]

석두공과 금사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웬지 들어주지 않으면 안될 것같았다.

심제을! 그 배은망덕한 놈을 죽여다오.”

섭군천이 형형한 눈빛으로 말했다.

[놈이 비록 삼마경을 익혔다지만 당이정과 힘을 합하면 해치우지 못할 것도 없다.]

이어 그는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가증스럽게도 놈은 노부로 변장하고 당이정을 본문에서 파문하여 돌아오지 못하게 한 후에 내 가족을 암습하여 죽여버렸다. 그리고 손녀를 납치한 뒤 노부를 협박하여 이곳에 감금하고는 내 무공을 뺏으려고 했다.”

[...!]

[...!]

석두공과 금사종은 숨을 죽인 채 무림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고검문의 비극에 대해서 경청했다.

[놈은 노부에게 산공독을 먹였다. 그러나 노부는 포연신공(包延神功)이라는 무공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놈은 두려워 하고 있었지. 놈이 내게서 얻고자 한것도 포연신공의 구결... ]

 

포연신공은 아주 특이한 무공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두가지의 공력을 쌓는 것이었다.

두가지의 공력 중 하나는 드러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드러난 공력이 없어지기 전에는 잠복하여 흐를 뿐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드러난 공력이 소진하거나 사라지게 되면 즉시로 잠복하고 있던 것이 드러나게 되고 손상을 입은 공력은 잠복하게 되어 위치를 바꾼다.

이런 이치로써 포연신공을 익힌 자는 공력을 무한한 것이나 다름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부운청풍객 심제을은 이 포연신공을 섭군천으로부터 뺏고자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그러나 섭군천이 갑자기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려서 그의 말을 전혀 듣지않고 공격함으로 인해 겁을 먹고 도망쳐버리고 말았엇다.

사부인 섭군천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심제을인지라 손녀라는 좋은 인질을 갖고서도 다만 섭군천을 이곳에 감금하기만 했을 뿐 자신이 갖고자 했던 것을 얻지는 못했다.

 

섭군천이 말했다.

[노부는 너희들에게 그 포연신공의 구결을 전해주겠다. 대신 그놈을 죽여다오.]

[할아버지께서 직접 죽이면 되잖아요?]

석두공의 말에 섭군천이 쓸쓸히 웃었다.

[놈을 죽여도 내 아들은 살아나지 않지. 그러나 놈이 숨쉬는 것도 보고 싶지 않다. 부디 내 부탁을 저버리지 말아다오.]

 

× × ×

 

날이 훤히 밝았을때 석두공과 금사종, 그리고 섭군천은 고정(古井)을 빠져나왔다.

포연신공의 전수가 끝난 후였다.

섭군천은 자신의 손으로 흩어져 있는 가족의 유골을 찾아서 묻기 시작했고, 석두공은 이상하게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고검문을 떠나갔다.

금사종은 섭군천과 석두공 이 두사람이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피식 웃었다.

한 사람은 천하제일 검문이라는 고검문의 문주,

다른 한 사람은 작고한 천하제일인 동호천의 유일한 제자,

같은 점이라면 모두가 천하제일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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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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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流浪歲月

 

 

 

넓직한 관도(官途),

[이제는 무당(武當)으로 갈 생각이오?]

금사종이 앞서 걸으면서 말했다.

석두공은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았어요.]

[설마 구파일방의 힘으로 삼마경을 익힌 그자들을 대항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어쨌든 뭔가를 하기는 해야잖아요.]

석두공은 뛰어가며 말했다.

확트인 관도다. 답답한 가슴마저 확 트이게 하고 길가에 넘실거리는 곡식의 황금물결은 무릉도원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근심을 모두 잊게 해준다.

[야아아아!]

소리치며 달려가는 석두공은 모습은 여느 꼬마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후루루루!

참새떼들이 먹구름이되어 어지럽게 날아올랐다.

금사종은 나직하게 말했다.

[저 천진난만한 소년이 무림의 운명을 떠맡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무당산으로 가까워 질수록 날은 어두워지는데, 희미하게 떠있던 낮달이 점점 환하게 빛을 발했다.

너른 들판에 어둠이 내리면 천지는 완전히 암흑으로 덮힌 것만 같다.

어디로 보아도 어둠...

멀어진 시야로 바라보는 어둠이기에 두려움은 어쩌면 더 클 수도 있었다.

무당산이 가까워 올수록 금사종은 점점 어떤 불안감에 사로잡혀 들었다. 누군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동호천이 남긴 무치무요(武痴武要)를 조금씩 익혀가면서 이미 두어달 전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는 금사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불안감에 그는 자꾸만 석두공의 곁으로 바싹 붙었다.

석두공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대범한 것인지 여전히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달랑달랑 걸어가고 있었다.

 

헌데 그들이 지나가고 난 후,

스스스슷!

마치 검은 안개가 뭉치는 듯하면서 사람의 형체가 만들어졌다.

[무당산... 네놈이 무슨 이유로 무당산에 가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은 바로 네놈의 무덤이다.]

칙칙한 살기에 젖은 음성을 내뱉은 그 인물은 한쪽 팔이 없었다.

죽음의 신을 연상시키는 듯한 회색 눈동자를 지닌 자, 바로 잔혼살객(殘魂殺客)이었다.

그는 손을 스윽 들어올렸다.

스스슥! 스슷!

그러자 그의 뒤에 검은 야행복을 입은 복면인들이 나타나면서 무릎을 꿇었다.

모두 일곱 명이었다.

잔혼살객의 입에서 얼음장같이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당산에서 내려올 때를 노려라. 운제(雲梯)에서 잠복했다가 반드시 죽여라.]

[존명!]

복면인들은 나직하게 외치고는 사라져갔다.

스스슷!

[놈은 어리지만 신룡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동호천의 공력을 그대로 이어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대책없이 그런 일을 벌일 동호천은 아니니, 놈에겐 분명히 어떤 숨겨진 힘이 있을 것이다.]

잔혼살객은 중얼거리면서 석두공과 금사종이 밟아간 길을 따라갔다.

그 중얼거림이 그가 직접 나서서 금사종과 석두공을 제거하지 않는 이유였다.

 

* * *

 

석두공과 금사종이 무당파의 해검지(解劒地)에 다다른 것은 밤이 깊은 이경 무렵이었다.

해검지에는 무당산에 오르면서 무당파의 조사(祖師)인 장삼봉(張三峰)도인을 기리는 뜻에서 방문객들이 두고간 수 백 개의 병기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주인이 무당파에 올라간 후에 그곳에서 출가하여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음으로 말미암은 것들이었다.

소림과 나란히 명성을 떨쳐온 무당파다.

비록 수십 년 동안 무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당파의 검객들이 하나같이 고수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금사종은 해검지에 놓여있는 녹슨 장검을 보면서 말했다.

[저 주인도 오를 땐 아마 다시는 잡지 못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나 석두공은 그 장검에는 눈을 두지도 않고 먼지가 가득 쌓인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뿌연 먼지에 뒤덮힌 작은 저()가 있었다.

크기는 한자반 정도인데 곤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으면서도 앙증맞게 보였다.

갑자기 석두공이 물었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어요?]

금사종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법은 없소. 다만, 이곳에 있는 무기의 주인들이 대부분 무당파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무당파의 성명을 생각해서 아무도 손대지 않는 것이오.]

[무당파에 오르기 전에 두고 갔으니 버렸다고 할 수 있지 않아요? 나는 저것을 갖겠어요.]

석두공은 그것을 잡아들면서 말했다.

금사종은 눈쌀을 찌푸렸다.

[그건 단지 장난감같은 조그만 방망이에 불과한데 염두에 두시오? 무당파의 협력을 얻어야 할 입장인데 괜한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같소.]

금사종의 말마따나 그것은 단지 하나의 방망이에 불과해 보였다.

병기로 사용되려면 최소한 이래야만 한다.

크기가 작다면 무겁기나 하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예리하기라도 해야한다.

그러나 석두공이 쥐고 있는 방망이는 작은데다가 예리하지도 않고 재질이 무언인지는 몰라도 무거워 보이지도 않았다.

병기로 사용하기에는 가장 부적절한 것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탕탕!

두공은 방망이로 다른 검을 두드렸다.

한데,

쩡쩡!

방망이에 맞은 검이 갑자기 두 토막으로 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유리를 돌로 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방망이에서는 먼지가 떨어져 나갔다.

돌을 쪼아서 만든 것같기도 한 회색을 뛰고 있는 방망이는 약간 투박한 느낌을 주었다.

금사종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석두공이 방망이를 두드릴 때 공력을 운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금사종은 절로 신음을 발했다.

[보물이었군. 한데 조금도 보물같아 보이지 않는군.]

[그게 내손에까지 들어오게 된 이유가 아니겠어요?]

석두공은 씨익 웃었다.

아마도 해검지에 놓여진 후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 몰라도, 그 방망이를 유심히 보거나 만져본 사람은 오직 석두공 하나 뿐일 것이다.

석두공은 방망이를 허리에 걸었다.

아직 키가 작은 그에게 방망이는 아주 적당하게 어울렸다.

 

운제(雲梯)를 지나가면 바로 무당파의 삼청관(三靑館)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는 기다리고 있은 듯이 두사람의 도인이 나타나며 석두공과 금사종의 앞을 막았다.

[무량수불(無量壽佛)!]

도호를 외우며 나타난 그들은 중년의 도인(道人)들이었다.

복우파의 못난 제자 금사종입니다!”

금사종이 포권을 하고 신분을 밝혔다.

[옥허자(玉虛子) 장문인을 뵙고자 왔습니다.]

그리고 금사종이 장문인을 뵙기를 청하자 도인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장문인께서는 오래 전부터 폐관 중이시라 만날 수 없소이다. 다른 때를 택해서 방문해 주시기 바라오.]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석두공은 고개를 저었다.

금사종은 어쩐 일인가 싶어서 석두공을 바라보았다.

그때 석두공이 갑자기 손을 뻗어 두 도인의 소매를 잡으며 나직하게 소리쳤다.

[당장 출관하면 되지요.]

쿵쿵!

말이 끝났을때는 두 도인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날아올랐다가 떨어지고 있었다.

[폐관하는 곳을 알고 있죠? 빨리 가요.]

그는 금사종을 다그치듯 소리쳤다.

휘이이익!

 

상청관 뒤,

절벽을 모로 돌아 역대로 장문인들이 폐관수련을 해왔던 곳인 등선동(登仙洞)이 있었다.

[이곳이오. 하지만 안에서 문을 열지 않는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오.]

금사종은 등선동의 석문 앞에 멈춰서면서 말했다.

석두공은 허리에서 방망이를 꺼내며 말했다.

[그럼 부수고 들어가야죠.]

그는 이상하게도 서둘고 있었다.

등선동이라면 무당파의 중지(重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등선동을 파괴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당파와 영원한 원수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금사종은 석두공의 말에 복종한다는 약속을 한바가 있으니 그가 하는 대로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다.

!

방망이가 석문에 강하게 부딪혔다.

쩌저적!

석문은 길게 금이 가면서 갈라졌다.

쿠르르릉!

석문이 우르르 무너지고 돌먼지 사이로 등선동의 내부가 검게 보였다.

!”

스팟!

순간 금사종은 안쪽에서 쏘아지는 가공할 검기에 흠칫하며 몸을 피했다.

그러나, 석두공은 방망이를 흔들며 웃었다.

[하하하... 무당파에 사람이 있기는 하군요. 무당파 장문인이 누구라 그랬죠?]

[옥허도인이오.]

금사종이 대꾸했다.

돌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등선동 안의 모습이 보였다.

“....!”

석실에는 옥허도인으로 생각되는 노인이 가부좌를 튼 채 허공에 반쯤 떠있었다.

[부공삼매(浮空三昧)!]

금사종이 놀라 외쳤다.

석두공은 감탄하며 말했다.

[묘한 재주군요. 신선이 되려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요.]

쩌어어엉!

옥허도인의 눈에서 횃불같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석두공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누구이길래 성지(聖地)를 범하느냐?]

[나는 석두공이예요. 도사할아버지께는 미안하지만 무당파는 좀더 봉문을 해야 겠어요. 무공이 약해요.]

석두공은 가슴을 펴고 옥허도인을 향해 걸어갔다.

그순간 옥허도인의 몸에서 밝은 금광(金光)이 원형으로 퍼져나왔다.

그것은 장삼봉으로부터 이어져 왔다는 태극금단신공(太極金丹神功)의 흔적이었다.

장삼봉 이후에는 아무도 익힌 사람이 없다는 전설적인 무공이 태극금단신공이다.

석두공을 유심히 본 옥허도인은 크게 놀랐다. 겨우 열두엇쯤으로 보이는 석두공임에도 그 공력의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을 것같았다.

그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검결을 맺어 가슴앞에 세웠다.

수우우우!

순간 좌측 석벽에 걸려있던 그의 진무검(眞武劒)이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석두공의 앞을 가로막았다.

들어난 검신에서 새파란 검광이 줄기줄기 흐르고 있었다.

[죽음을 달고온 아이야. 노도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옥허도인이 준엄한 어조로 물었다.

[도사할아버진 정말 다르군요.]

석두공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그의 천진난만한 행동은 도무지 적인지 친구인지조차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두서가 없는 것같았다.

석두공이 말했다.

[나는 들어오면서 두사람을 다치게 했어요. 무당파와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요.]

옥허도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말은 우리가 좋은 관계라는 거냐?]

[최소한 무당파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은 했잖아요.]

석두공은 이상한 말을 하면서 옥허도인에게 다가갔다.

옥허도인이 다시 말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도사할아버지의 무공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는군요. 하지만 좀더 폐관하셔야겠어요. 할아버지의 무공은 상당하지만 극에 달하진 못했어요. 아마도 그 무공의 삼성(三成) 정도 터득하신 모양이죠?]

석두공의 말에 옥호도인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참으로 영특하구나.]

[오늘은 아무부탁도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언젠가 저 사람이 와서 부탁할 거예요. 그때는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석두공은 금사종을 가리키며 말했다.

옥허도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그러나 그전에 내 삼초를 받아야만 한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석두공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일초!]

옥허도인은 반공에 뜬 채 소리쳤다.

슈아앙!

석두공의 앞에 떠있던 그의 진무검은 벼락처럼 뒤로 물러나더니 그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번쩍! 번쩍!

검이 이르기 전에 수십 줄기의 검기가 먼저 발출되었다.

두공은 가슴앞에서 방망이를 둥글게 돌렸다. 방망이의 수많은 그림자가 방패를 만들었다.

티티티티틱!

검기가 방망이에 부딪히며 괴이한 음향이 울려퍼졌다. 석두공의 손에 있는 작은 방망이에 부딪힌 검기는 흩어지지도 않고 방망이 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그것은 석두공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 듯했다.

[?]

이어 그는 방망이를 검을 쓰듯이 찔러내 날아오는 진무검을 막았다.

!

진무검은 방망이에 가로막히며 위로 솟아올랐다.

그때 옥허도인이 다시 소리쳤다.

[제이초! 태극어검(太極馭劒)!]

고오오오오!

순간 검의 주위에 공기가 응축되면서 태극(太極)의 문양이 생겨났다.

우우우웅!

진무검은 석두공을 향해서 둥글게 베어왔고, 그 진무검의 주위에 형성된 태극의 문양은 점점 거대해지면서 석두공을 뒤덮었다.

석두공은 자신의 몸이 쇠사슬에 묶인듯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순간에 석두공은 자신의 근육을 기묘하게 수축시키며 오른손의 방망이를 팔을 타고 흐르게 했다.

방망이는 그의 왼손끝에서 튕겨나가고, 그것은 진무검과 다시 한번 부딪혔다.

!

진무검은 주춤 멈춰섰지만 태극의 문양은 석두공을 뒤집어쒸우고 말았다.

[멈추시오!]

금사종이 쌍장을 날리며 뛰어들었다.

화르르르!

그의 쌍장에서 새파란 불꽃들이 수백개가 터져나와 어지럽게 날았다.

무치무요에 기록된 무공들 중에서 그가 가장 먼저 익힌 상화장(翔火掌)의 공력이었다.

파파파파팟!

태극문양과 상화장이 부딪히면서 둘 다 소멸해 버렸다.

옥허도인이 소리쳤다.

[훌륭한 무공이군!]

석두공은 옷이 갈갈이 찢어져 버렸다.

그는 태극문양을 몸으로 받은데다 금사종의 공격까지 한몸에 받은 꼴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상을 입은 것같지도 않았다.

금사종과 옥허도인은 무거운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 나이에 금강불괴체(金剛不壞體)라니... 실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로군. 그럼 이제 마지막 일초를 받아보게.]

옥허도인이 잠시 있다가 침묵을 깨뜨리며 말했다.

휘익!

그는 손을 흔들어 진무검을 다시 왼쪽 석벽으로 보내버렸다.

꽈르르릉!

그리고는 그 손을 뒤집으며 일장을 밀어냈다. 그의 손바닥에는 몸에서와 마찬가지로 금광이 어려있었다.

석두공의 표정은 신중했다.

금사종은 석두공의 그처럼 진지한 모습을 그다지 본 적이 없었다.

석두공은 방망이를 허리에 걸고는 두손을 가슴앞에서 교차하며 팔꿈치를 앞으로 밀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스스슷!

석두공은 분명히 그자리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이 분리되면서 또 하나의 석두공이 옥허도인의 쌍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옥허도인의 장력이 밀려가는 속도나, 또하나의 석두공이 나아가는 속도나 조금도 차이가 없이 똑같았다.

[분신둔형술(分身遁形術)...]

금사종이 나직하게 내뱉었다.

이미 동정호의 부주에서 석두공은 철사보주 맹호산의 판관필을 피하기 위해서 이 분신둔형술을 펼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피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공격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분신둔형으로는 공격까지도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푸쉬쉭!

옥허도인의 장력과 석두공의 분신이 격돌하면서 불꽃이 타오르듯 함께 타올랐다.

“....!”

반공에 뜬 옥허도인의 몸이 일장가량 밀려갔다.

그리고 석두공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엿보였다.

그러나 그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도사할아버지, 약속을 잊지 마세요.]

[석두공이라고 했느냐?]

옥허도인은 포단에 내려앉으며 말했다.

[갈때는 뒤쪽의 소로(小路)를 이용하도록 해라.]

[가르쳐 주실 줄 알았어요.]

석두공이 피곤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금사종과 그는 옥허도인이 가르쳐준 소로를 따라서 삼청관을 벗어났다.

옥허도인은 눈을 감은채 중얼거렸다.

[동노선배... 제자가 못마땅하다고 그토록 투들거리더니 노선배보다 오히려 나을 듯싶소.]

옥허도인,

그는 진정 기인이었다.

석두공이 동호천의 제자라는 것을 무공을 펼치는 순간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그가 석두공의 행동에 대해서 그다지 질책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한데 석두공과 금사종이 등선동을 떠난지 한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스스스! 화라라락!

이미 삼경이 넘었는데 일곱명의 흑의인이 등선동 앞에 나타났다.

옥허도인은 석두공을 보고 죽음을 몰고온 아이라고 불렀지만 그 일곱명의 흑의인들이야 말로 죽음 그 자체인듯했다.

그들은 깨어져 있는 등선동의 문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그자들은 어디로 갔소?]

옥허도인은 쇠잔한 노인처럼 힘없이 손을 들어 소로가 있는 방향으로 가리켰다.

두눈 가득 살광을 담고 있던 자들은 나타날때 그랬던 것처럼 소리없이 사라졌다.

[잔혼각(殘魂閣)의 절대칠살(絶對七殺)... ]

옥허도인의 입에서 무겁게 새어나온 말이었다.

잔혼각...

그것은 가장 공포스러운 살수(殺手)들의 집단이었다.

어느 곳에 존재하는지, 누가 그 단체의 주인인지, 그 모든 것이 비밀 속에 가려진 살수들의 집단,

그들은 돈을 받기만 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척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절대칠살은 그 잔혼각 내에서가 가장 뛰어난 일곱 명의 살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이 석두공과 금사종을 쫓고 있었다.

석두공은 자신들을 뒤쫓는 자들이 있음을 알았기에 무당파의 고수 두사람을 상하게 함으로써 무당파가 자신과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표시했고,

또한 무당파의 중지인 등선동을 깨뜨림으로써 화가 무당파에 미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절대칠살은 원래 운제에서 기다리다가 나오는 석두공 등을 요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그들은 직접 삼청관으로 쳐들어갔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남들이 바보라고 부르던 한 소년에 의해서 이미 정확하게 예측되었던 바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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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천하제일인의 죽음 (3)

 

 

-서악(西岳) 화산(華山)!

 

밤새 내린 서리가 아직 햇살에 녹으면서 은구슬이 되어 풀위에 굴렀다.

지난 여름 검푸르던 푸른 숲의 잎들은 이제는 불타는 홍엽(紅葉)이 되어 떨어져 뒹굴고, 성마른 놈들은 벌써부터 바싹바싹 소리를 내고있다.

서리에 눅눅해졌을 만도 하건만 메마른 가을날씨라 속까지 그렇진 않은가 보다.

천년을 이어온 무림(武林)의 정통(正統) 명문(名門)인 화산파로 올라가는 산길은 구비구비 돌고돌아 어지럽기조차 한데,

물러가지 않은 안개속에 걸어올라가는 희끄무레한 두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한사람은 당당한 장부이고 그옆에 선 사람은 불과 십삼사세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다.

그들이 말없이 산길을 오르는 동안 햇살은 안개를 녹이며 점점 그들의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햇빛 받은 두 얼굴,

그들은 동정호를 떠났던 석두공과 혼장서생 금사종이었다.

완전히 굽은 길을 접어들면서 문득 금사종이 말했다.

[여기서 부터는 화산파가 직접 경계를 서고 있는 곳이오. 원래 생각대로 그대로 지나칠 것이오?]

그는 자기보다 열살은 어려 보이는 석두공이지만 함부로 대하지 않고 반 경어를 사용했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명목상으로 금사종은 석두공에게 오년 동안 머리를 빌려주기로 한 하인에 불과한 신세가 아닌가?

두공이 물었다.

[내가 그렇게 한다고 했었요?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죠.]

그는 자신이 한말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듯했다.

금사종은 앞서 걸으면서 다시 물었다.

[대체 화산파에는 무슨 볼일이 있는 것이오?]

[장문인을 만나러 왔어요.]

[삼비철검자(三臂鐵劒子)?]

금사종의 의문에 대해 두공은 씨익 웃었다. 더이상 물어도 답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도무지 속을 짐작할 수가 없단 말이야. 자신이 했던 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 틀림없는 바보인데, 또 그런가 하면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데는 도저히 귀신도 따를 수 없을 것같으니...)

금사종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멈추시오!]

휙휙!

갑자기 그들의 앞으로 두사람의 검객이 날아서 떨어졌다.

짙은 검미에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불툭 솟아오른 관자놀이는 그들의 내공이 얕지 않음을 말해주는데, 각기 등에는 청과 홍의 수실이 늘어져 있는 고검(古劒)을 매고 있었다.

[두분은 그만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오. 이곳은 속인이 함부로 오는 데가 아니오.]

왼쪽에 선 약간 마른듯한 검객이 말했다.

금사종은 포권을 취하고 말했다.

[소생은 복우파의 금사종이라 하오. 화산파의 위명은 끊임없이 들었소이다.]

복우파의 제자가 화산파의 위명을 거론하자 두 검객의 얼굴이 약간 부드럽게 변했다.

방금 전에 말했던 검객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화산오검(華山五劒)의 셋째인 장간위(張干韋), 옆에 있는 이 사람은 넷째인 연주국(燕珠菊)이오. 복우파의 형제가 우리 화산파엔 어쩐 일이시오?]

[귀파에 용무가 있는 사람은 소생이 아니라 소생이 모시고 있는 사람이외다.]

금사종은 석두공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장간위와 연주국은 이상한 듯이 석두공과 금사종을 번갈아 보았다.

연주국이 물었다.

[소형제가 본파에 용무가 있는가?]

[그렇소. 나는 삼비철... 뭐더라?]

옆에서 금사종이 재빨리 말했다.

[철검자!]

[삼비철검자! 그 삼비철검자를 만나러 왔소. 이곳으로 좀 불러주실 수 있소?]

석두공은 어른들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했다.

그것은 어이없다기 보다는 우스광스러웠다.

연주국이 금사종에게 물었다.

[금형제! 대체 이 소년은 누구신가? 어느 고인의 자제분이신가?]

[그는...]

금사종이 막 입을 열려는 찰라,

[말하지 말아요. 함부로 내게 대해서 말한다면 용서하지 않겠어요.]

석두공이 준엄하게 소리쳤다.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성에는 범접하지 못할 위엄이 서려있었다.

화산오검의 두사람인 장간위와 연주국은 그 소리하나 만으로 석두공을 다시 보았다. 순간적이나마 그들은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던 것이다.

장간위가 연주국에게 말했다.

[자네는 여기서 두분을 모시고 있게. 내가 사부님께 알려드리겠네.]

장간위는 이미 석두공이 범상한 소년은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이었다.

 

잠시 후, 장간위는 삼비철검자를 대동하고 석두공 등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왔다.

삼비철검자는 매화꽃 문양이 그려진 장삼을 입은 팔십에 가까운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매는 칼날처럼 매서웠고 몸은 전혀 무게가 없는듯이 가벼워보였다.

또한 전신에서 풍겨나오는 조용하면서도 파도같은 무형의 기도는 화산파라는 검문을 수십 년 동안 맡아온 일대검호(一代劒毫)로서 모자람이 없었다.

장간위로 부터 말을 들었는지 그는 대뜸 석두공에게 물었다.

[존사(尊師)가 뉘신가?]

[노인께서 삼비철검자이십니까?]

석두공은 마주 질문을 했다.

삼비철검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이렇게 나를 부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건만...)

그러나 상대가 어린아이라는 생각에 그는 치밀어 오르는 노기를 억눌렀다.

그때 석두공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표정으로 보아서 삼비철검자가 맞는 모양이네요. 난 비무를 하기 위해 왔어요.]

멍청...

삼비철검자뿐만이 아니었다.

삼비철검자의 뒤를 따라 도착한 화산오검의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멍청해져 버렸다.

다만 금사종만은 그들과 약간 다른 각도로 놀라고 있었다.

그는 석두공의 무공이 대단함을 알고 있었다.

단지 그가 비무를 하겠다고 화산까지 왔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기에 놀란 것 뿐이었다.

[허허허허...]

삼비철검자가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화산오검도 덩달아 웃었다.

방금 전까지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같던 분위기가 갑자기 늘어져 버렸다.

한데,

[하하하... ]

석두공도 함께 웃으며 손가락으로 삼비철검자의 코를 가리켰다.

그의 무례한 행동에 금사종이 당황하여 외쳤다.

[그러면 않되네.]

하지만 그 순간에 삼비철검자는 깜짝 놀라며 뒤로 훌쩍 뛰어 물러났다. 마치 예리한 검이 날아들기라도 하듯이...

화산오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고,

[하하하...]

석두공은 하늘을 보면서 웃어젖혔다.

삼비철검자는 신중한 어조로 물었다.

[방금 전의 것은 혹시 본파의 매화검지(梅花劒指)가 아닌가?]

[그게 매화검지였습니까?]

석두공은 싱글벙글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연관이 있을 것같아 해본 것인데 용케 맞아떨어졌군요.]

운래 매화검지는 화산파에서도 실전된 무공이었다.

한가닥으로 뻗어진 지풍이 상대방의 몸에 이르러서는 다섯줄기로 나뉘어 격중되면서 매화문양을 새기고 마는 것으로, 화산파의 진산(鎭山)의 절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삼비철검자는 무겁게 말했다.

[매화검지를 어떻게 익혔는가?]

[그냥요. 그런 쓸모없는 말보단 이제 비무를 하겠다는 말을 듣고 싶은데요.]

석두공은 말꼬리를 돌렸다.

삼비철검자는 잠시 생각했다.

(쉽게 대답하진 않을 것이다. 먼저 무공으로 제압하고 물어보는 것이 좋겠구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비무를 수락하지. 대신 조건이 있다.]

[당연히 그래야죠.]

석두공은 얼굴가득 웃음을 피워올리며 말했다.

삼비철검자는 준엄하게 말했다.

[만약에 네가 진다면 매화검지를 돌려다오. 어떻게 해서 익혔는가는 추궁하지 않겠다.]

[그렇게 하지요. 그렇지만 내가 이길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석두공의 말에 삼비철검자는 말문이 막혔다. 증손자뻘은 될 꼬마녀석이 화산파의 장문인인 자신에게 도전하고, 게다가 이길 경우까지 생각하고 있다.

삼비철검자는 냉소하며 말했다.

[그때는 네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목숨을 달라면 목숨을 주고 종이 되라고 하면 종이 되지.]

[사부님!]

화산오검이 놀라 외쳤으나 이미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두공이 금사종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사람이 증인입니다.]

 

화산파의 장문인 삼비철검자는 열세살의 어린 소년을 상대로 검을 뽑았다.

소년은 적수공권(赤手空拳)...

강호의 뭇 고수들이 알면 실소할 일이었으나 그의 표정은 엄숙하기만 했다.

석두공은 오른손의 검지로 삼비철검자의 발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데도 삼비철검자는 검으로 자신을 방비하기만 할뿐 움직일 줄 몰랐다.

어린 석두공에게서는 벌써부터 절세고수의 풍모가 엿보이고 있었다.

(이런 꼬마가 어찌... 남들은 이나이에 겨우 무학에 입문할 때거늘...)

삼비철검자는 믿어지지 않는 사실 앞에 몸을 떨었다.

눈앞의 석두공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삼비철검자는 내심 탄식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일 순 없다. 차라리 자결하는 것이...)

그때 돌연 석두공이 손을 거두고 물러서면서 말했다.

매화검지는 돌려드리겠어요. 그리고 이것도 돌려드리죠. 아마 알만 한 것일 거예요.”

화산오검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의 사부가 이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삼비철검자의 안색은 무참하게 구겨져 있었다. 아예 새까맣게 보였다.

 

두공은 손가락으로 검결을 형성한 뒤에 한가지 검법을 천천히 펼쳐보이기 시작했다.

동을 가리키고 서를 가리키며, 날아올랐다가 물러서고, 물러서는가 하면서 옆으로 돌아가는 기이막측한 검법이었다.

화산파의 무공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화산파의 것인 모양인데도, 삼비철검자는 그것이 어떤 검법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 열일곱 초식으로 이루어진 그 검법을 펼침에 있어서 왼손은 항상 자유로웠다.

두공이 연거푸 세번이나 초식을 세밀하게 펼쳐보인 후에 말했다.

[매화검지와 병행해서 펼칠 수 있는 검법이예요. 모든 제자들에게 동시에 전수하세요. 그리고...]

두공은 갑자기 손을 뻗어 석벽을 가리켰다.

순간,

파파파파팍!

뭉게뭉게!

석벽에서 돌먼지가 날아오르며 그사이에 용비봉무와도 같은 글씨가 나타났다.

매화검지의 구결이었다.

삼비철검자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네 의도가 대체 무엇이냐?]

[내말을 듣기만 하세요!]

석두공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 두가지를 완전히 익힐 때까지 봉문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후에 단 한번만 나를 위해 그 무공들을 사용해 주시면 되요. 다른 조건은 없어요. 증인이 있는데 스스로 맹세한 것을 어기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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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천하제일인의 죽음 (2)

 

 

안개가 악령처럼 떠다니고 어둠이 안개 사이에 칙칙하게 가라앉아 있는 깊은 절곡,

천연의 석주(石柱) 두개가 관문처럼 서있다.

그리고 그 석주의 뒤에는 마차 두대가 나란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잘 닦여진 동굴이 있고, 인간세상에서는 모르는 세외의 진경이 그 속에 있었다.

어디선지 빛이 들어와 은은하게 밝혀주는 지하의 세계...

무수하게 늘어서 있는 전각들,

그리고 웅장한 대전들,

그 모든 것이 둥근 지붕을 가진 거대한 건물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다.

 

[미사(美邪)! 다리를 벌려라.]

화려한 금포(錦袍)를 입은 노인이 침상에서 한쪽 팔을 고인채 옆으로 누워 말했다.

이 금포노인이 누워있는 침상은 엄청나게 컸다.

이십 명이 누워도 서로 어깨가 닿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원형의 침상이었다.

노인은 그 침상의 중간에 누워있고 그의 주위엔 전라의 미녀들이 여러가지 자세로 앉거나 누워있었다.

금포노인의 바로 앞에는 갈색 눈동자의 미녀가 폭포수같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무릎을 오무리고 서있었다.

배시시 웃는 얼굴에는 요사스런 아름다움이 안개처럼 서려있어 보는 사람의 정욕을 불러일으킬 듯하고,

팔꿈치에 살짝 가려진 두 가슴은 터질듯이 부풀었으며, 부드럽게 흘러내린 허리선은 남자의 손을 한없이 유혹하는 듯하다.

옥으로 깎아만든 기둥인 듯 희고 미끈한 두 다리는 동그스럼한 둔부에서 이어지고, 두 다리가 시작되는 삼각주에는 검은 수림이 은밀하게 자리잡고 있다.

미사라 불린 그녀의 붉은 입술은 육감적으로 벌어져 있는데, 금포노인의 재촉을 받은 그녀는 둔부를 낮추며 무릎을 활짝 벌렸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자세였다.

금포노인의 눈에는 그녀의 은밀한 부위의 붉은 속살까지 보였다.

미사의 갈색 눈동자는 어떤 종류의 갈망으로 젖어 있었다.

[됐다. 지금의 일은 꼭 그정도 까지만 진행되었다.]

금포노인은 만족스러운듯 말하고는 미사의 옆에 있는 여인을 불렀다.

[환요(幻夭)! 이리 오도록 해라.]

환요라는 여인이 살포시 일어나 금포노인 앞에와서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미사와는 또 달랐다.

그녀는 마치 한덩어리의 구름같은 여인이었다. 부드러운 살결이 그랬으며 머리카락이 또한 그랬다.

붉은 입술과 검은 눈동자, 그리고 검붉은 유실은 구름위에 꽃이 놓여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내 옷을 벗겨라.]

[영광이옵니다.]

환요는 얼굴 가득 음탕한 빛을 떠올리며 말했다.

금포노인은 금포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겉옷을 벗기자 그 즉시 들어나는 그의 탄탄한 알몸은 도무지 노인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인해보였다.

노인은 여전히 비스듬히 드러누운 상태이고 환요는 엎드려서 노인의 가슴에 혀를 갖다댔다.

[하아!]

뜨거운 숨결이 노인의 살결위로 흘러갔다.

다른 여인들이 다리사이로 손을 넣으며 몸을 꼬았다.

[오랫동안 기다렸겠지?]

[... ... 아아!]

환요의 뜨거운 음성이었다. 그녀의 손은 노인의 등과 둔부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노인이 중얼거렸다.

[본좌도 오래동안 기다렸다. 너무도 오랫동안... ]

하지만 환요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욕정에 몸이 달아오른 그녀는 뜨거운 행위에 몰두하고 있엇기 때문이다.

노인의 가슴을 핥던 환요의 혀는 탄탄한 배를 지나 점점 더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더욱 고조됨에 따라 노인의 양물(陽物)이 꿈틀대며 일어서기 시작했다.

꿈틀꿈틀...

[! 아하!]

[... ...]

침상의 여기저기에서 흥분을 못이겨 발하는 여인들의 탄생이 새어나왔다.

노인의 양물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환요의 입술이 그곳에 닿았을 때 그것은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으며, 더이상 단단해 질수 없을 만큼 단단해졌고, 또한 더이상 뜨거워 질수 없을 만큼 뜨거워졌다.

환요는 그것을 보듬어쥔 자신의 손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노인의 양물은 그가 거느리는 많은 여인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고 또 컸다.

환요가 두손으로 겨우 감아쥘 수 있을 정도로 굵었으며 한자는 넘을 정도의 길이였다.

노인은 편안히 누웠다.

환요는 두손으로 그의 양물을 흔들며 혀로서 끝부분을 쓰다듬었다.

주위의 여인들은 자신의 몸을 쓰다듬다가 참지못하고 다른 여인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한 여인은 쪼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을 자신의 소중한 곳에 깊이 넣고 둔부를 움직이고 있었으며, 마주 보고 누워서 서로가 서로를 만져주는 여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미사만은 요염한 자세로 앉아서 노인과 환요를 주시할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잇었다.

환요의 애무가 도를 더해갈수록 노인의 얼굴은 점점 붉게 변해갔다.

그리고 그는 환요의 머리를 당겨서 앉게 했다.

[하아! 하아!]

환요가 그의 몸위에 걸터 앉으면서 가쁜숨을 몰아쉬었다.

말을 매는 말뚝만큼이나 거대한 노인의 남성이 환요의 붉고도 은밀한 곳으로 천천히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움찔움찔!

환요는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노인의 남성을 받아들였다.

어느덧 환요의 숨소리가 달라졌다.

그리고 서로 부둥켜 앉고 뒹굴던 여인들도 서로를 꽉 틀어안으며 몸을 비벼댔다.

돌연,

[하악!]

환요가 비명을 지르며 아찔한듯 휘청였다. 노인이 그의 남성을 완전히 환요의 몸속에 삽입한 것이었다.

비명도 잠시, 환요는 머리까지 뚫어버릴 듯한 쩌릿한 쾌감에 몸을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그녀의 입에서는 고통과 쾌감이 함께 어우려진 묘한 소리가 터져나왓다.

환요의 몸은 마치 뼈가 없는 듯이 부드럽다.

노인은 그녀를 몸위에 올리고도 전혀 무게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두손이 그녀의 둔부를 꽉 비틀어 잡았다.

[! 아파!]

순간 노인은 힘차게 자신의 남성을 들어올려 그녀의 몸속 깊숙히까지 밀어넣었다.

순간 환요는 자지러질 듯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은 다른 여인들과 노인의 욕정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아악!”

연이어 비명을 지르던 환요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면서 혼절해버렸다.

쾌락의 끝에 다다랐던 것이다.

바로 그때 미사가 벌떡 일어서며 환요의 몸을 끌어내렸다.

!

노인의 남성이 환요의 몸속에서 빠져나왔다.

환요대신 노인의 하체 위에 쪼그려앉은 미사는 두손으로 노인의 남성을 감아쥐어 자신의 중심부에 잇대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

그녀는 노인의 거대한 남성을 받아들이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단번에 깊은 결합을 한 그녀는 맷돌을 돌리듯이 자신의 둔부를 돌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다리를 활짝 벌린 그녀는 동작을 크게 해서 움직였다.

부드럽고도 격렬한 파도가 일었다.

물결치듯 둔부가 일렁일 때마다 검붉은 육주가 모습을 들어냇다 사라지곤 한다.

요동치는 한쌍의 젖무덤은 노인의 눈을 어지럽힌다.

그러던 어느 순간 격한 신음이 미사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골수를 관통하며 치솟는 짜릿한 전율에 미사는 다리를 오무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노인의 다리도 잔뜩 긴장되었다.

미사는 맹렬한 분출이 자신의 내부를 강타하는 것을 느끼며 진저리를 쳤다. 마치 화산이 터진 듯 뜨거운 용암이 아랫배 깊은 곳에서 불끈불끈 용출한다.

후우...!”

노인이 긴 한숨을 쉬며 긴장으로 굳혔던 두 다리를 풀었다. 거푸 전신을 누비던 분출의 희열이 갈아앉은 것이다.

노인이 만족한 것을 알아차린 미사는 그의 얼굴에 뺨을 비비며 떨어져 나왔다.

그러자 다른 여인들이 앞다투어 노인에게 달려들며 그의 남성에 묻어있는 것을 핥았다.

노인이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모든 것이 이렇게 될거야. 모든 것이...]

 

***

 

소문은 잔잔히, 그러나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무치 동호천이 죽었다.

--그의 제자가 동호천의 모든 진전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열세살 짜리 꼬마에다 바보 멍청이다.

--그자를 찾을 수만 있다면 동호천이 남긴 무치무요(武痴武要)라는 절세적인 비급을 차지할 수 있다.

 

이상하게도 동호천의 죽음에 대해서는 미리 예견되어 있었던 바였다.

또한 그것으로 인해 이미 많은 무림인들이 동정호로 갔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돌아온 자는 오십에 하나도 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동호천에 대한 소문은 믿도 끝도 없이 일어나서 전 무림에 퍼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문보다도 더욱 빠르게 소문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는 동호천의 제자는 모습을 감춰버렸다.

무림인들은 그를 찾고자 눈에 쌍심지를 돋구었으나 여기저기서 봤다느니, 나타났다느니 하는 풍문만 나돌 뿐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한데 동호천의 제자인 석두공의 잠적으로 말미암아, 그들 무림인보다도 더욱 당황해하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것은 두명의 외모가 똑같이 생긴 노인들이었다.

 

-낙양(洛陽)!

 

흔히 구조(九朝), 즉 아홉 왕조(王朝)의 도()라고 불리는 천녀고도다.

낙양은 특히 당대(唐代)에 두보와 이백, 백낙천 등 많은 문인 예술가가 활약했던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낙양이라고 하면 쇠붙이를 만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의 이름을 떠올린다.

 

<만금장(萬金莊)>

 

바로 만금장을 떠올리는 것이다.

만금장의 주인이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만금장의 재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만금장의 재력(財力)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만금장의 주된 사업은 보석을 비롯한 귀금속과 골동품, 고서화 등으로, 주된 고객들은 부호(富豪)들과 높은 벼슬아치들이었다.

한마디로 부자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온 만금장이다.

이러한 만금장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황하는 해마다 범람하는데 그때마다 수십 만에 달하는 수재민이 발생하고 황하의 물이 완전히 빠지자면 보통 삼개월이 걸리게 된다.

그 재해는 너무도 엄청나서 조정에서도 손을 잘 대지 못할 정도이다.

그런데 만금장은 그러한 수재민들을 위해서 해마다 수만 섬의 미곡과 금은을 풀어서 직접 구제사업을 벌인다.

개인으로서 이같은 일을 한 자는 역대에 없었다.

심지어 만금장의 장주를 조정에서는 반란을 위해서 민심을 모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을 정도였다.

이 만금장의 가장 깊은 곳에서 두노인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군.]

이렇게 말하며 벌떡 일어서는 사람은 놀랍게도 동호천의 두 아우 중 한사람인 주치(酒痴) 동복신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맞은 편에 있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보치(寶痴) 동적선이다.

동적선은 묵묵부답, 동복신이 혼자서 소리쳤다.

[이렇게 되면 형님의 희생은 아무 의미도 없어지지 않는가? 그 돌대가리 놈이 이것마저 잊어버렸나? 지금쯤은 무림인들의 추격을 받으면서 도망쳐 다녀야 옳은데 잠적이라니...]

동적선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두공이가 기억을 못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해력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요.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가 있는 것이 틀림없는것 같소.]

동복신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뱉았다.

[그 도깨비같은 놈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변수가 있을 리도 없지만 있다면 바로 그놈일거야.]

동적선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니오. 두공이는 믿을 만하오. 어쩌면 모든 것을 그녀석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맡겨두는 것이 좋을 것같소. 또 원래 그럴 생각이 아니었소?]

[아무튼, 나는 혼자서라도 그놈을 찾아야 겠다.]

동복신은 술병을 집어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동적선이 소리쳤다.

[형님!]

[넌 여기서 만금장주 노릇이나 잘하고 있거라. 자주 연락하마.]

동복신은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한데 만금장주라니...

보치 동적선이 바로 만금장주란 말인가?

능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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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天下第一人의 죽음 (1)

 

 

 

천하제일인과 세명의 고수가 대치한채 차 한잔 정도 마실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이 천인공노할 놈들! 수상하다 했더니 삼마경(三魔經)을 익혔구나!]

돌연 동호천의 두눈에서 폭발하듯 노광이 터져나왔다.

꽈르르릉!

이어 동호천은 뇌성벽력같은 칠권(七拳)을 잇달아 쳐냈다.

권풍(拳風)과 권경(拳勁)이 서로 밀면서 부운청풍객 등을 향해 동시에 날아갔다.

동호천이 발휘한 무시무시한 내공에 부주의 여기저기가 풍지박산이 되어 날아올랐다.

그리고 동호천의 공격이 발휘되는 순간 옥풍도객등의 신형도 벼락같이 움직였다.

그들의 몸에서 터져나온 검광과 도광, 그리고 사신겸의 섬뜩한 빛이 어지럽게 대기를 갈랐다.

고오오오!

번쩍! 번쩍!

싸움은 풍운변색, 경천동지란 말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었다.

부주는 깨어지며 통나무들이 흩어지고, 석두공과 금사종을 비롯한 자들은 모두 통나무위에 서있었다.

펑펑펑!

촤아악!

경력에 휘말린 동정호의 물이 수십장 허공까지 치솟았다.

 

<삼마경(三魔經)>

 

동호천의 입에서 흘러나온 삼마경이 대체 무엇이길래 세 명의 고수가 이같은 신위를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삼마경이란 것에 대해서는 경험이 많은 혈포단객이나 무형도객 같은 인물도 전혀 들어본 바가 없었다.

그러나 무림의 몇몇 노강호(老江湖)들은 알고 있었다. 이 삼마경이란 것이 얼마나 가공할 마물(魔物)인지를...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삼마경을 익힌 자는 고금무적(古今無敵)이 된다는 말이있다.

또한 삼마경을 익힌자는 십만 명의 인명을 살해하고 난후 자신도 죽는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삼마경은 알고 있는 사람들 조차도 입에서 떠올리기를 금기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삼마경은 말 그대로 세권의 마경(魔經)이다.

 

-검마경(劒魔經),

-도마경(刀魔經),

-살마경(殺魔經),

 

이 중에서 검마경에는 구가천마검법(驅駕天魔劒法)이란 절대적인 악마의 검법이 수록되어 있으며,

도마경에는 또한 팔황지옥도법(八荒地獄刀法)이란 것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살마경은 검마경이나 도마경이 각기 한가지의 무공만을 수록하고 있는 것에 비해 극히 잡다한 살인수법들을 수록하고 있다.

살마경에는 구가천마검법나 팔황지옥도법처럼 체계는 없지만 그에 못지않는 갖가지 수법들이 잡다하게 실려있는데, 이 살마경은 검마경이나 도마경과는 달리 천성적으로 그것을 익히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면 결코 연마해낼 수 없다.

그렇긴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살마경의 마공을 이루기만 한다면 그 기괴막측함은 이루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원래는 이 삼마경이 한사람에 의해서 창안되었을 것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점점 더 가공하게 변했었다.

삼마경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마력!

그것은 누구든지 한번 보기만 하면 깊이 빠져들고 만다는 것이다.

그 오묘한 수법들과 무공에 흔혹당한 고수는 그동안 익혔던 자신의 공력을 모두 버리고 삼마경을 익히고자 하게 된다.

그렇게 전심전력으로 삼마경을 연구하여 더욱 완벽한 무공으로 만들수 있지만, 그 무공들을 익히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공력을 포기해야한다.

공력을 폐한 고수들은 삼마경을 익힐 때까지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게 되고, 그때는 무림인이 아닌 파락호조차도 당해내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삼마경을 연성하지 못하고 보통 적에게 죽게 되고 삼마경의 주인은 끝없이 바뀌어져 왔다.

그럼에도 삼마경은 다른 비급들과는 달리 극히 은밀하게 쟁탈되고 쟁탈해왔기 때문에 무림에 거의 소문이 나지 않았었다.

 

한데 적룡혈운도주 해천월과 부운청풍객, 그리고 잔혼살객은 분명히 삼마경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해천월은 우검으로는 독문의 검법인 십이적룡검식(十二赤龍劒拭)을 펼치면서 왼손의 도()로는 도마경에 수록된 팔황지옥도법을 펼쳤다.

부운청풍객은 고검으로 구가천마검법을 펼치며 잔혼살객은 괴이하기 이를 데 없는 살마경 상의 무공들을 펼쳐내고 있었다.

쿠오오오오!

슈아아아아!

그들 삼인의 가공할 공격앞에서 동호천은 나약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동호천은 허공에 우뚝 멈춰서면서 손으로 우수로 하늘을 가리켰다.

[유성탄천(流星彈天)!]

그리 크지도 않은 음성이다.

그러나 그의 필생의 공력이 담긴 최후의 일초가 동호천의 손에서 펼쳐졌다.

쩌저저정!

그의 다섯 손가락에서 빛덩어리가 하늘로 치솟아올라갔다. 밝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폭죽같이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촤아아아!

그 다섯가닥의 빛덩이는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눈으로는 거의 식별할 수 없는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퓽퓽퓽!

[크아아악!]

[크악!]

그것은 세사람의 호신강기를 종이장처럼 찢어버리며 그들의 몸을 관통했다.

실로 눈깜박할 사이의 일이었다.

삼마경의 무공도 대단했지만 동호천의 유성탄천이란 무공은 그보다 더욱 강했다.

!

잔혼살객의 오른팔이 몸에서 분리되어 물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검풍과 도풍이 사라진 그곳에는 이미 세사람의 모습이 없었다.

그들은 호수위를 빛살처럼 날아서 사라지고 있었다.

동호천은 몸 주위에 푸른 빛이 감도는 호신강기를 둘러치고 물위로 내려섰다.

[사부님!]

석두공은 소리치며 달려갔다.

스스스!

갑자기 동호천의 호신강기가 빛을 잃고 사그라졌다.

동호천의 몸은 그와 동시에 허물어졌다.

석두공은 그를 안고 통나무위로 돌아왔다.

[사부님... ]

석두공의 눈에 뿌연 안개가 서렸다.

금사종이 말했다.

[어서 치료를...]

동호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엇다.

[이제 다 끝났다. 치료를 한다고 해도 노부의 생은 여기서 끝나니 그만두어라.]

동호천의 음성에는 조금의 기력도 실려있지 않았다.

그의 배에는 깊게 찔린 자상이 나 있었는데 그 상처에서 흐른 피가 복강(腹腔)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휘익! !

그때 망연자실하여 지켜보고 있던 무형도객과 혈포단객이 통나무 위로 날아왔다.

금사종이 그들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위급한 틈을 타 공격할 생각이오? 그렇다면 먼저 나부터 죽이시오.]

그의 얼굴에는 영웅적인 협기가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석두공이 말했다.

[놔둬요. 그들에겐 살기가 없어요.]

 

[소형제, 동노선배의 상처는 엄중한가?]

다가온 무형도객이 침중하게 물었다.

동호천이 대답했다.

[곧 죽을 걸세. 아마도 자네들이 제일 먼저 온 문상객이 될듯하네.]

[...!]

[...!]

무형도객과 혈포단객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도 한눈에 동호천의 상세가 치명적인 것을 알아본 것이다.

[보았는가?]

동호천이 혈포단객과 무형도객에게 물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호천은 다시 말했다.

[그들의 삼마경은 아직 삼성(三成) 수준이네. 그들 중 한사람만이라도 사성(四成)의 경지에 이르렀더라면 그들은 노부를 어렵지 않게 죽였을 것이네. 그들을 조심하게.]

[...!]

[노선배께선 그말을 하기 위해서 오늘같은 일을 벌였습니까?]

무형도객이 침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는 이런 작정이 아니었지.”

동호천은 쓰게 웃었다.

[헌데 삼마경이 그만 노부의 의도를 빗나가게 했네. 하지만 더 이상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네.]

동호천은 입을 다물었다.

석두공이 울먹이며 물었다.

[사부님!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하지요?]

그러나 동호천은 묵묵부답이었다.

돌연 석두공은 손을 덜덜 떨면서 동호천의 가슴에 얹혔다.

아무런 박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석두공은 망연자실 입술을 깨물었고, 그의 두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동호천은 그렇게 가버린 것이다.

 

× × ×

 

동정호에 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호수에 어지럽게 흩어졌던 통나무들을 다시 모아서 석두공과 금사종이 태운 불이었다.

일세를 풍미한 대기인 동호천은 동정호에서 한줌의 재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갔다.

바람을 부르는 풍래고도 풍래동자(風來童子)도 호변의 어부들에겐 하나의 전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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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바보냐 천재냐?

 

 

 

아름드리 통나무들을 수백개를 이어서 만들어놓은 부주 위에는 작은 집도 있으며 채소 밭도 있다.

그리고 중간에는 빈터도 있다.

“...!”

“...!”

그 빈터에 칠척장신의 맹호산과 어린 석두공이 삼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섰다.

석두공은 벙실벙실 웃기도 하고 천진한 표정이었지만, 맹호산은 긴장된 신색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녀석은 보기보단 아주 딴판이구나. 자연스러운 저 자세도 자세이려니와, 저 웃음이 그대로 방패가 되어서 공격할 엄두를 못내게 하니... 만박노조 등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데 여간 낭패가 아니로군.)

적의를 전혀 보이지 않는 석두공에 대해서 아무리 비무라고 하지만 손안에 든 묵직한 판관필(判官筆)을 쳐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분명히 맹호산은 광명정대한 인물도 아니고 사람의 인명을 중히 여기는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사람죽이는 것을 풀을 뽑거나 파리 죽이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도무지 그를 향해 손도 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손 한번 쓰지 않고 물러선다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도 없는 일, 그는 눈을 딱 감고 자신의 무기인 판관필을 뻗었다.

[조심하게!]

!

판관필이 서로 한번 마주친 후 방향을 나누어 두공의 요혈로 날아들었다.

슈숙!

신쾌하고 강맹한 기세를 지닌 판관필의 왼쪽은 두공의 오른쪽에 있는 열여덟 개의 요혈을 노렸고, 오른쪽의 것은 왼쪽의 열여덟 개 요혈을 노리고 있었다.

어느 누구라도 피하기가 쉽지 않은 수법이었다.

하삼풍은 속으로 생각했다.

(맹호산의 판관필은 과연 대단하군. 저 수법을 피하자면 나라도 진땀을 흘리겠는 걸?)

사실 맹호산은 망설이다 마음먹고 한번 펼치는 수법이고 보니, 기왕이면 자신의 절초를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맹호산의 판관필은 두공의 현기(玄機)와 풍곡(風谷)의 두 혈도를 찍어갔다.

두공과의 거리는 불과 한자의 거리도 남지 않았기에 맹호산은 성공을 확신했다.

(그럼 그렇지!)

그는 판관필에서 경기가 쏘아나가지 않게 진기를 뭉쳤다. 두공이 부상을 입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한데 바로 그순간에 두공의 손바닥이 두개의 판관필을 향해서 뻗어지는 것이 아닌가?

쉬쉭!

번개처럼 빠르기는 했지만 아무런 수법도 아닌 그냥 빠르게 뻗은 것에 불과했다.

[어딜!]

맹호산은 크게 외치면 판관필을 가볍게 흔들었다. 순간 두개의 판관필은 수십개로 변해버린 듯했다.

맹호산은 그 기세 그대로 두공의 혈도를 찍었다.

!!

그러나 두공의 몸은 이미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는 판관필을 타고 마치 물 흐르듯이 하면서 맹호산의 머리를 타넘어가고 있었다.

[일초!]

머리위에서 두공의 음성이 터져나왔다.

맹호산은 그의 신속한 반응에 놀라며 뒤로 판관필을 느리게 던져냈다.

그리고 즉시로 몸을 돌리며 선풍각(旋風脚)의 수법으로 공중에서 내려오는 두공의 허리를 찼다.

휘이잉!

선풍각이 말그대로 선풍을 일으켰다.

두공은 제비가 물을 차고 나르듯이 빠르게 맹호산의 발을 차면서 날아올랐다.

[!]

[훌륭하다!]

맹호산은 그가 연거푸 두번이나 자신의 수법을 피하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원래가 성격이 조폭한 맹호산이다.

쏴아아!

그는 즉시 양팔을 활짝 벌리고 날아올랐다.

만박노조 등의 안색이 확 변했다.

맹호산은 내외공을 모두 골고루 닦은 인물이다. 도검이 불침하는 그의 몸은 그 자체만으로서도 가공할 병기이다.

게다가 내공이 가세한다면...

맹호산은 질풍처럼 두공을 향해서 부딛혀갔다.

한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피이잉!

그가 느리게 던졌던 판관필은 밑에서 회전하며 날아올라 두공의 등뒤를 노리고 있었다.

무형도객이 버럭소리쳤다.

[맹보주! 어린아이를 죽일 참이요?]

그는 황급히 동호천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동호천은 보지도 못한 듯 덤덤했다.

중인들이 놀라는 사이에 판관필은 두공의 등으로 그리고 인간병기인 맹호산의 몸은 정면에서 두공에 부딛혀갔다.

두공이 갑자기 등을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

굉음이 터져나왔다.

한데 두공의 몸은 마치 연기처럼 맹호산의 겨드랑이로 빠지면서 그의 등뒤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

누군가 탄성을 질렀다.

맹호산은 눈앞에 날아든 자신의 판관필을 받으며 땅으로 내려섰다.

두공이 빠져나가면서 두 판관필의 각도마저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미꾸라지 같은 녀석! 받아라!]

그는 사초를 사용하고도 두공의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자 화가 꼭지 끝까지 올랐다.

[파천벽해(破天劈海)!]

파아아앗!

두개의 판관필로 부터 수백 가닥의 강기가 폭발하듯 퍼저나갔다.

강기들은 종과 횡으로 각각 방향을 잡고 있어서 피할래야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두공이 소리쳤다.

[나는 당신처럼 호걸인 척 하는 사람이 싫어요.]

스스슷!

순간 그의 몸은 세개로 나뉘어졌다.

소리치는 그의 몸은 그대로 서있는데도 그의 왼쪽과 오른쪽으로는 각기 하나씩의 석두공이 뒹굴면서 강기들의 영향권으로 부터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만박노조가 소리쳤다.

[분신둔형술(分身遁形術)!]

파파파팍!

퓽퓽퓽퓽!

강기들은 두공의 몸과 함께 아름드리 통나무마저 뚫고 들어갔다.

두공의 몸은 마치 벌집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순간에 갈라졌던 두개의 분신이 굴러와서 함께 합쳐졌다.

그러자 그의 몸은 그대로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었다.

맹호산은 할말을 잊고 멍하니 서있었다.

[크하하하하!]

그는 미친듯이 한바탕 광소를 터뜨리고는 부주를 차고 날아올랐다.

슈아아앙!

그의 몸은 한줄기 빛처럼 동정호를 날아갔다.

[동노선배! 훌륭하외다 훌륭하외다. 이 맹호산은 선배의 어린 제자조차 당해내지 못했으니 앞으로 무림에 나오지도 않겠소.]

멀리서 그의 전음이 들려왔다.

남아있는 사람들로서는 한편으로는 반가운 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이 섬찟한 말이었다.

동호천은 나직하게 말했다.

[잘가게!]

비록 나직했지만 그의 말은 진기로 가득차 있어서 멀리멀리까지 퍼져갔다.

만박 등은 그의 내공에 내심 두려움을 금할 수 없었다. ‘잘가게란 말 한마디가 뇌성벽력처럼 그들의 고막을 두드렸던 것이다.

단혼곡주 하삼풍이 차갑게 말했다.

[선배께선 차라리 우리 모두에게 그냥 은거하라고 명하시지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꾸미셨소?]

[그게 무슨 말인가? 설마하니 자네도 내 제자를 제압하지 못한단 말인가?]

동호천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의도가 어떤 것인지를 이미 대충 짐작하고 있는 터였다.

일곱 명의 고수들은 석두공을 더이상 어린아이로도 바보로도 보지 않고 있었다.

한마리의 도깨비새끼로 여길 뿐이었다.

맹호산의 공격은 그들로서도 그처럼 완벽하게 피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이었는데 석두공은 대수롭지 않게 피해버린 것이다.

[으하하하하...]

하삼풍이 광소를 터뜨렸다.

우르르릉!

그의 웃음소리에 동정호의 물결이 부르르 떨리고 내장이 터져 죽어버린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금사종은 학질에 걸린 듯이 부들부들 떨었다.

진정 하삼풍의 공력은 엄청났다.

갑자기 동호천이 말했다.

[이제 그만하게.]

!

하삼풍은 거짓말처럼 그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요. 흐흐흐... 감히 선배께 무례를 범할 수야 있겠소? 이 하삼풍도 그만 떠나야 겠소. 하지만 내 마음은 지극히 기쁘오.”

[...!]

[...?]

[선배께서 오늘 내일 한다는 말을 듣고도 사실은 반신반의 했소. 그러다가 선배의 정정한 모습을 보고는 낭설이었구나 해소. 한데, 이런 일을 꾸미는 것을 보니 선배께서 세상을 하직할 때가 다 됐긴 된 모양이오. 으하하하하... ]

하삼풍은 다시금 광소를 터뜨리고 날아올랐다.

쐐애애액!

그는 순식간에 맹호산이 사라진 방향으로 사라져갔다.

하삼풍은 번개처럼 날아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흐흐흐흐... 동호천의 손에 죽지만 않으면 무림을 장악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동호천은 자신이 죽기 전에 우리 모두를 죽여버리려고 이런 수작을 부렸을 것이다. 이곳은 빨리 떠나는 것이 최선이다. 헛된 욕심을 부리다가 천추의 한을 남기기 쉽상이지.)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동호천의 무공을 얻기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지만,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미련없이 깨끗하게 포기하고 물러설 줄도 아는 사람인 것이다.

진정 무서운 효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박노조와 무형도객이 거의 동시에 일어서면서 포권했다.

[후배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 이만...]

스읏!

만박노조가 먼저 몸을 날렸다.

명색이 무불통지라는 만박인 그 역시 이곳에서 어떤 위기감 같은 것을 느낀 것이다.

무형도객 역시 몸을 날리려고 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에 동호천이 소리쳤다.

[자네는 잠시 머물러라!]

무형도객이 움찔하면서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한 표정이 역력했다.

[후배가 노선배께 바른 말을 좀 했기로서는 이렇듯 소인배처럼 구는 것이오?]

[그냥 있기만 하게.]

동호천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여덟 명의 고수 중에서 세사람이 떠났고, 남은 사람은 적룡혈운도주 해천월과 혈포단객, 부운청풍객, 그리고 잔혼살객 및 무형도객 뿐이었다.

그러나 무형도객을 제외하고는 그들 중 물러설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부주 위의 공기는 더욱 팽팽하게 당겨진 듯했다.

부운청풍객이 앞으로 나섰다.

스르릉!

그는 보검을 뽑아들면서 허공에 흰빛을 몇 번 뿌렸다.

번쩍! 번쩍!

[소생은 노선배의 제자가 아닌 노선배께 직접 한수 가르침을 받았으면 합니다.]

무치 동호천이 무림에서 움직인 것만도 일백십수 년, 그동안에 단 한번도 도전조차 받아본 일이 없는 동호천이다.

한마디로 도전불허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한데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에게 처음으로 도전자가 나타났다.

이것은 어쩌면 동정호에서 수천 명이 죽었다는 것보다 더욱 큰 사건일 수도 있었다.

휙휙!

석두공과 금사종이 동호천 앞을 막아섰다.

석두공은 부운청풍객을 노려보았다.

순간 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수천만 개의 바늘처럼 부운청풍객을 찔렀다.

(!)

부운청풍객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맹세코 그는 이처럼 극강한 살기를 대해본 적이 없었다.

그 살기에는 다른 고수들마저 물러섰다.

어마어마한 살기...

동호천의 두 동생인 주치 동복신과 보치 동적선 마저 놀라게 만들었던 그 가공할 살기다.

소위 고수라고 불릴 정도의 인물이라면 결코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몇가지 있다.

첫번째가 힘으로 여인을 간음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둘째로는 죽음을 앞둔 자에게 치욕을 주는 짓도 말아야 할 것이며,

죽음에 임박한 자를 공격하는 것또한 말아야 하는 것이다.

동호천은 이제 스스로 죽음을 선언한 입장인데 그런 동호천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파렴치하기 이를데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석두공이 자르듯이 한자한자 내뱉었다.

[.......]

부운청풍객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쳤다.

이토록 살기로 가득찬 음성이 있을 수 있을까?

석두공의 음성은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놈... 죽여야 한다!)

부운청풍객은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물러서거라!]

동호천이 소매를 슬쩍 저었다.

부드러운 경풍이 그이 손짓에 따라 일어나며 석두공과 금사종의 몸이 옆으로 주르르 밀려갔다.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다.

한데 부운청풍객은 자신을 응시하는 동호천의 눈망울 속에서도 하늘을 볼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의 심혼을 송두리채 빨아들이는 심연(深淵)과도 같았다.

(이것은 심력(心力)이다! 강한 심력으로 이미 나를 공격했다. 저항하지 않는다면 백치가 되고 말 것이다.)

부운청풍객은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눈을 뗄래야 뗄 수도 없었다.

자신이 송두리채 동호천의 눈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는 혼신의 공력을 다짜내어 자신을 버텼다.

파파파팟!

그가 딛고 있는 부주의 통나무가 움푹 파였다.

또한 그의 옷자락도 찢어질듯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시퍼런 혈관들이 툭툭 불거져 나오고 그의 전신은 삽시간에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동호천은 말없이 그를 응시하기만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운청풍객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때 손에 땀을쥐고 두사람을 바라보던 적룡혈운도주 해천월과 잔혼살객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의미심장한 눈빛이 교환되고,

해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혈포단객에게 은밀한 전음을 뛰웠다.

[혈포단객! 무엇때문에 이곳에 왔소? 지금이 기회요. 함께 동호천을 죽입시다.]

하지만 혈포단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눈을 동호천과 부운청풍객에게 못박아두고 있었다.

해천월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혈포단객은 혼자서 행동하는 인물, 함께 하자는 데 대한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동호천을 돕지도 않을 것이다.

이때 잔혼살객은 죽음이 서려있는 것같은 나지막한 음성으로 무형도객에게 말하고 있었다.

[무형도객! 동호천이 가장 사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귀하다. 우리 개개인으로서는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동호천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만약, 귀하가 동호천에게 도전하겠다면 본인은 당신을 적극 돕도록 하겠다.]

[웃기는군.]

무형도객은 비릿한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동호천이 나를 죽이겠다면 당당히 싸워보겠다. 하지만 그가 그런 뜻이 없다면 나는 그에게 도전할 생각이 없다.]

[...!]

무형도객의 말에 잔혼살객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뜻은 모두 모여졌다. 귀하 혼자만 고집을 부리겠다면 그것도 할 수 없지. 그러나, 만약 우리를 방해한다면 그순간부터 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형도객이 냉랭하게 되받았다.

[잔혼살객! 당신과 나는 같은 오객으로서 조금 아는 사이가 아닌가? 이런 식으로 나를 협박하지 마라.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

고요한 전음이었지만 무형도객의 음성에는 태산같은 무게가 있었다.

그때 동호천이 돌연 눈을 감으며 말했다.

[부운청풍객! 네 무공은 아주 특이하군. 전에 보았을 때와는 다른 걸 보니 기연이 있었던 모양이군. 오초를 양보하마!]

쿵쿵쿵!

부운청풍객은 세걸음을 물러서며 식은땀을 씻어냈다. 하지만 그의 전신은 이미 물에 빠진 생쥐나 다름없는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도전이 받아들여졌다.

동호천은 상대방의 무공을 상대방보다 더욱 능숙하게 펼쳐보임으로서 아예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해왔던 절대고수다.

그런 그가 부운청풍객의 무공을 파악하지 못하고 도전을 수락한 것이다.

스르릉!

부운청풍객은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동호천은 여전히 눈을 감고 떠지 않았다.

그때였다.

[후배 해천월 부운청풍객과 함께 노선배의 무공을 견식하고자 하오.]

해천월이 우검과 좌도를 뽑아들면서 말했다.

동호천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뱉었다.

[그것도 좋겠지.]

[잔혼살객도 두사람과 뜻을 같이 하겠소.]

잔혼살객이 허리에서 그의 성명병기인 사신겸(殘魂鎌)을 꺼내들면서 말했다.

번쩍! 번쩍!

시퍼런 사신겸의 날이 햇빛에 빛을 발했다.

[상관없네.]

동호천은 방금 전에 석두공과 맹호산이 섰던 곳으로 가서 우뚝 섰다.

부운청풍객, 잔혼살객, 그리고 적룡혈운도주 해천월은 그를 세 방향에서 둘러싸고 병기를 뽑았다.

금사종은 석두공의 눈치를 살폈고,

석두공은 살기어린 표정으로 세사람을 쏘아보고 있었다.

팽팽히 당겨놓은 활시위같은 긴장이 부주 일대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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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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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동정호의 파란 (2)

 

 

[금사종, 상화장은 얼마나 익혔느냐?]

동호천이 힘없는 음성으로 물었다.

금사종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겨우 초식을 암기했을 뿐입니다.]

[당장은 그 정도면 족하다. 밖으로 나가서 의자들을 내놓고 자리를 만들어라!]

동호천의 말에 금사종은 어리둥절하면서 나갔다.

밖으로 나왔지만 부주의 어디에도 의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통나무를 잘라놓은 것들을 발견했을 뿐이다.

[이걸로 의자를 대신하라는 말인가? 한데 무슨 일로...?]

금사종은 말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부주의 근처로 시체가 떠와 있었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인물들이 물위에서 부주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한명은 마치 빛살처럼 부주로 쇄도해 오고 있었다.

!

금사종은 통나무를 번쩍 들어 한쪽에 놓으면서 말했다.

[이곳에 앉으시오.]

그 자신도 엉겁결에 취한 행동이었다.

 

동호천은 두공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곧 당금 무림에서 내로라 하는 인물들은 거의 다 모일 것이다. 그들 중에는 너를 탐내는 자도 있을 것이고 너를 죽여버리려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쪽의 뜻에도 따라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공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런 그를 보며 동초천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죽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무림은 난세로 치닫게 된다. 그동안 내 눈치를 보던 자들이 천하제일이란 자리를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게 되겠지. 네가 할 역할이 그들에게 또다른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공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는 그만한 힘이 없을 것같습니다.]

[아직은 없지. 그러나 앞으로 생기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들끼리 싸우지 않고 너를 죽이려고 쫓아다니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동호천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두공이 입을 딱 벌렸다.

[그런 제 목숨이 백개라도 모자랄 텐데요.]

[어쩌면 네 목숨은 백한개 일지도 모르지 않느냐? 자 밖으로 나가자.]

동호천은 말을 하고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꼿꼿한 자세로 일어났다.

그리고는 두공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섰다.

 

***

 

부주의 가운데 위치한 마당같은 곳에는 통나무 의자 십여개가 양쪽으로 나란히 놓여져 있고, 네 사람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금사종은 한쪽에 서있다가 동호천과 두공이 나오자 허리를 굽혔다.

네사람, 그들은 만박노조와 하삼풍, 잔혼살객, 그리고 혈포단객(血袍單客)이었다.

혈포단객은 하삼풍의 쾌속선에 달라붙은 탓에 물에 젖지 않고 부주까지 이른 것이다.

동호천은 그들을 향해서 웃어보이며 말했다.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소. 여러분!]

만박노조 등은 벌떡 일어서면서 안색이 변했다.

(어떻게 된 건가? 분명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들었는데...)

만박노조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후배 만박이 동노선배께 문안드리오.]

[고맙네.]

동호천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삼풍도 포권을 했다.

[하삼풍 노선배께 인사드리오.]

[됐네. 됐어. 모두 앉도록 하게.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동호천은 손을 저어 만류하며 통나무 의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자신도 그 중의 하나에 가서 앉았다.

하삼풍과 잔혼살객 등은 그가 앉은 후에 따라 앉았다.

모두가 동호천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을 조심하고 있었다.

문득 동호천이 소리쳤다.

[모두들 나오게.]

순간,

휘익! 휙휙휙!

부주의 곳곳에서 여러 명의 인물이 번개처럼 빠르게 뛰쳐나왔다.

[역시 노선배께서는 명불허전이시군요. 후배 부운청풍객(浮雲淸風客) 인사드립니다.]

중년의 나이지만 관옥같은 얼굴을 가진 중후한 인상의 사나이가 포권하며 말했다. 그의 어깨에는 한자루의 고색창연한 보검이 걸려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포권을 했다.

[적룡혈운도주(赤龍血雲島主) 해천월입니다.]

[철사보주(鐵獅堡主) 맹호산이외다.]

[무형도객(無形刀客)입니다.]

원래 있는 네 사람의 몸에서 풍겨나는 기도만으로도 사위가 압도당할 듯했다.

한데 이들 네사람이 새로이 더해지자 공기는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되어버렸다.

 

적룡혈운도주 해천월,

그는 칠십에 가까운 노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청년과도 같은 단단하고 탄력있는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해천월은 등에는 도()를 맸으며 왼쪽 허리에는 검()을 매고 있었다.

그는 우검좌도를 사용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철사보주 맹호산,

사십이 막 넘었을 그는 칠척이 넘는 키를 가진 거한이었다.

피부는 철판이라도 깐 듯이 검붉게 보였으며 두자루의 판관필을 가지고 있었다.

 

무형도객,

오객의 한사람인 그는 이들 중에서 가장 젊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전혀 무림인 같지 않을 정도로 표정은 부드럽고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고생이란 전혀 모르고 자란 대부호의 자제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동호천은 그런 무형도객을 가장 유심히 보았다.

(대단한 녀석이군. 무도에 대해 깊이 깨달았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공을 스스로 만들어 익혔다니... 당금 무림에 나 이외에 또 이런 녀석이 있었을 줄이야.)

유심히 보았다고는 하지만 동호천의 시선이 무형도객에게 머무른 것도 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

하지만 무형도객은 그에게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동호천은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옆에 서있는 두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이 노부의 제자요.]

 

-무치 동호천의 제자!

 

그 하나만으로도 세인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만박노조 등의 시선이 일제히 두공에게로 모였다.

순간,

[!]

모두가 거의 동시에 짧은 탄성을 질렀다. 두공의 골격이 무공을 익히기엔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한데 동호천은 한숨을 푹쉬었다.

[... 옥에 티란 말이 있듯이, 하늘은 언제나 완전한 것은 만들지 않는 모양이오. 이놈은 골격이 이토록 뛰어나지만 머리는...]

[...!]

[...!]

[바위처럼 단단하오. 두공아!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말해보아라.]

동호천은 두공에게 말했다.

두공은 포권을 취했다.

[후배 석두공(石頭公)입니다. ]

순간,

[허허허허... ]

단혼곡주 하삼풍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석두공...

말그대로 돌대가리란 소리가 아닌가?

한데,

[하하하하... ]

석두공 그도 따라서 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삼풍은 웃음을 뚝 그쳤다.

반짝반짝 별빛같은 눈을 가진 미소년이 바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행동이 바로 그 인물이 아닌가?

이같은 상황에서 화내지 않고 웃는다는 것만 보아도 정말 바보거나, 아니면 아주 심기가 깊거나, 그것도 아니면 모든 일에 초탈한 그런 사람일 것이다.

(바보로군!)

이것은 그곳에 있는 고수들 모두의 생각이었다.

단 한사람, 금사종 만은 석두공에게 어떤 신비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동호천은 탄식하며 말했다.

[이렇다네. 한데도 노부는 이녀석에게 내 모든 것을 물려주지 않을 수 없다네.]

꿀꺽!

누군가 침을 삼켰다.

동호천의 모든 것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그대로 천하제일인의 뒤를 잇는다는 것,

서로가 견제하고 있는 입장에 있는 이정삼사오객으로서는 군침이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노부는 이런 생각을 했네. 이녀석 혼자서는 결코 무림에서 배겨나갈 수가 없을 걸세. 완전히 자랄 동안만이라도 보호자가 필요하단 말일세.]

[그렇겠군요. 선배께서 이 만박을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으신다면 고제자의 후견인이 되고 싶습니다.]

만박노조가 일어서면서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하삼풍의 시선이 만박의 뒤통수에 내리꽂혔다.

(교활한 늙은이. 염치도 없구나.)

동호천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부도 그렇게 하고 싶네.]

만박의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졌다.

순간 다른 일곱 명의 고수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노선배!]

그들이 막소리치는 데,

[! 앉게, 모두 진정하고 앉게.]

동호천이 손을 저으며 말하자 그들은 털썩 주저앉았다.

동호천의 말이 이어졌다.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할게 아닌가? 노부는 만박에게 후견을 맡겼으면 싶지만, 이런 일은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니 내 제자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네.]

[헤헤헤... 사부님! 제뜻은 물어보나마나입니다. 전 아무도 따라가지 않아요. 저도 부하를 거느린 대장부인데 남에게 몸을 의탁하다니요? 말도 안됩니다.]

두공이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만박 등은 그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바보가 맞는가? 바보가 어떻게 저런 말을 다...)

동호천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이놈! 나는 곧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네녀석이 무림을 너무 쉽게 보는구나.]

[저는 무림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쉽고 어렵고가 있습니까? 단지 대장부로서 제 뜻을 말했을 뿐입니다.]

이번에는 석두공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박노조 등은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무형도객이 일어서면서 형형한 눈초리로 물었다.

[동노선배님! 그럼 이번 동정호의 일이 모두 선배님께서 제자를 위해 벌이신 일이란 말씀이십니까?]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상대가 동호천이라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느꼈던 의문이지만 모두 잊어버렸던 것인데, 사실이 확연해지자 무형도객이 직접 따지고 든 것이다.

동호천은 그를 빤히 들여다 보면서 말했다.

[그렇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무형도객의 영준한 얼굴이 분노로 달아올랐다.

[은연중에 무림을 견제하여 오신 노선배께서 이같은 일을 벌이시다니... 수천 명의 목숨이 동정호에 피를 뿌리고 시체를 가라앉혔는 데 선배께서는 아무렇지도 않단 말입니까?]

피를 토할 듯한 말이었다.

(젊은 놈이 곧 죽겠구나. 감히 무치 동호천 앞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아무리 평생 사람을 죽이지 않은 동호천이라 할지라도 살지 못할 것이다.)

하삼풍은 속으로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하나가 죽으면 그만큼 적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한데 동호천은 피식 웃었다.

[그게 뭐 대단한가? 감탄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선배! 어떻게 그러실 수 있소? 평생 한사람도 죽이지 않았다던 선배의 명성은 모두 헛된 것이었구려!]

무형도객이 분에 찬 일갈을 터뜨렸다.

동호천은 그의 고함을 들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일곱고수는 물론이고 금사종마저 바짝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고 있었지만,

석두공과 동호천은 북소리를 들은 듯 바람소리를 들은 듯 표정이 없었다.

동호천이 말했다.

[사실, 한사람도 죽이지 않았다던 말은 거짓말이네. 난 한사람을 죽였다네. 독한 놈이었지.]

[...!]

[...!]

무형도객마저 말을 잊고 입을 딱 벌렸다.

쥐죽은 듯 고요한 침묵이 부주에 감돌았다.

잠시 후 동호천이 다시 말했다.

[아마도 내가 있음으로 해서 자네들은 행동을 어느 정도 자제했을 것이네. 그렇지 않은가?]

[그렇소.]

사신도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호천은 말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사람이 별로 죽지 않았겠지? 오늘 나때문에 이삼천 정도 죽는다고해서 그다지 나쁠 것이 뭐있는가?]

[어떻게 그런 궤변이... 노선배 정말 실망했소이다.]

무형도객이 기가막힌 듯 살기어린 음성을 내뱉었다.

석두공이 그를 만류하면서 말했다.

[이미 일은 벌어진 것, 돌이킬 수 없습니다. 사부님께 추궁하신댔자 대협께서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사부님께서 하고 싶은 말이나 다 하고 죽도록 해주시지요.]

무례한 것같으면서도 아닌 것같기도 하고, 조리가 있어 현명한 것같기도 하면서 바보스러운 데가 있는 두공의 말이었다.

만박노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똑똑한 바보로군 똑똑한 바보야.)

그때 동호천이 말했다.

[무형도객이라 했든가? 자네의 말은 무슨 뜻인지 알겠네. 하지만 난 달리 감흥이 없으니 내 제자 말대로 접어두고 내 말이나 다 들어보도록 하게.]

무형도객은 분을 누르고 가만히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동호천의 말이 이어졌다.

[내 제자의 후견을 정하는데 있어, 노부는 오초 내에 내 제자를 제압하는 자로 정하고 싶네. 만약 오초 내에 제압하는 사람이 여럿이라면 가장 먼저 제압하는 자로 하지. 무림인이 무공으로 정하는 것인 만큼, 아마 이녀석도 무공에는 토를 달지 못할 걸세.]

[오초내에 저를 제압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석두공이 물었다.

그의 이 말에 모든 사람들은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고,

동호천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또한, 이곳에 온 자네들도 마음대로 해도 좋네. 내 제자를 억지로 잡아가든지 어떻게 하든지... 분명히 밝혀두네만 저녀석을 잡는다면 노부가 직접 엮은 두권의 무치무요(武痴武要)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무치무요란 말에 중인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천하제일인의 비급을 탐내지 않는 무림인이 누가 있겠는가?

[좋습니다. 대장부가 자유를 위한 일인데 누구와 싸우길 마다하겠습니까? 당장 시작하지요.]

석두공이 호언을 하면서 나섰다.

만박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무지 석두공이란 놈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 것같았다.

[껄껄껄...]

갑자기 철사보주 맹호산이 대소하고 말했다.

[자네는 머리는 좀 시원찮은데 행동은 정말 시원시원한데가 있군그래. 본좌가 먼저 자네를 상대해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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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동정호의 파란 (1)

 

 

동호천은 침상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자네는 앞으로 오년 동안만 머리를 빌려주게.]

[...머리라니... 이것 말입니까?]

금사종이 안색이 변하며 자신의 머리를 잡았다.

동호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사종이 뒷걸음질 쳤다.

[...안됩니다.]

[고깃덩어린 필요가 없다. 노부가 빌리려고 하는 것은 머리가 하는 역할 뿐이니까.]

동호천의 말에 금사종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렇다고 미리 말씀을 해주시지 않으시고... ]

[지금 말했지 않은가? 단지 자네가 참을성이 없었을 뿐이지.]

금사종은 멋쩍게 웃었다.

과연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호천은 두공에게 말했다.

[이 청년의 이름이 무엇이냐?]

[그 그게... 저 서생이라고... ]

두공은 얼굴이 빨갛게 변하며 얼버무렸다.

동호천은 금사종에게 말했다.

[이렇다네. 자네가 할 역활은 이 아이의 머리가 되어주는 것 뿐이네. , 무슨 말이든지 이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해야만 하네.]

금사종은 어이가 없었다.

방금 전에 자신의 이름을 말했었는데 그사이에 다 잊어버렸다니...

(무공은 아주 고강한 것같은데 이런 머리로 어떻게 상승무공을 익혔을까?)

금사종에게 그것은 또 하나의 의문이었다.

동호천의 말이 이어졌다.

[오년 동안만 하면 되네. 그때까지는 한시도 내 제자의 곁에서 떨어져서는 안돼. 대신!]

[...!]

금사종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동호천은 베개밑에서 두권의 책을 꺼냈다.

[이것을 자네에게 주겠네. 이 두 권을 익히게 되면 천하제일(天下第一)은 못되도 천하제이(天下第二)는 될 수 있을 걸세.]

포개진 비급의 표지에는 <무치무요(武痴武要)>라는 제목이 쓰여있었다.

금사종은 무치라는 글을 보고는 몸이 급격하게 떨렸다.

죽음이 임박한 것같은 노인이 바로 전설적인 고수인 무치 동호천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본 것이다.

털썩!

금사종은 무릎을 꿇으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제자분께서 익히셔야 할 것입니다.]

[협기(俠氣)가 있기는 있군.]

동호천이 만족한 듯이 말했다.

그리고 또 말했다.

[하지만 익히지 않으면 지금 당장부터 어려움이 닥칠거야. 상권은 신공편이고 하권은 신초(神招)편이네. 하권에서 상화장(翔華掌)이란 수법을 당장 익히도록 하게. 한가지 명심할 것은....]

금사종은 비급을 받으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동호천의 눈에서 가공할 빛이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살기도 아니고 무공도 아니었다.

단지 위엄이라고만 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자네가 이것들을 모두 대성한다고 하더라도 내제자는 즉시 자네를 죽일 수 있네. 절대 그 사실을 잊지 말게.]

금사종은 동호천의 말에 다만 몸을 움추릴 뿐이었다.

[저쪽으로 가서 상화장을 익히게.]

동호천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금사종이 두공의 방으로 들어간 후, 동호천은 두공의 손을 끌어다 잡았다.

[사부... ]

두공은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면서 울먹였다.

동호천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너와 헤어질 날도 며칠 남지 않았구나. 아직 대성하지는 못했지만 아무도 너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스윽!

두공은 대답을 못하고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동호천이 말했다.

[장부란 자신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다. 울고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어야 한다. 정사라든지 의리같은 데에도 얽매이지 말아라. 너를 얽어매는 것은 너자신 하나면 족하다.]

두공은 동호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동호천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평생 오직 한사람을 죽였다. 처음에는 한사람도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나중에 생각이 바뀌었지.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난 후다. 그래서 내 목숨이 하나이니 만큼 딱 한사람만 죽이자고 생각했었지.]

[...!]

[단혼곡주 하삼풍의 아들을 죽였는데, 그래도 죽이고 나니 후회가 되더군.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는 앙금이다. 네게 부탁하는데, 하삼풍을 죽일 기회가 오더라도 나를 생각해서 두번은 살려줘라. 세번 살려줄 필요까지는 없다.]

[한데 사부님...]

두공이 고개를 들면서 말문을 열었다.

[사부님의 말씀을 제가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상관없다. 나는 네게 부탁했고, 네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하삼풍의 복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

동호천이 웃으며 말했다.

[!]

두공도 따라서 웃었다.

죽음을 눈앞에둔 사부의 유언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제자는 그것들을 한마디도 기억하지 못했다.

 

***

 

시간은 흘러서 정오가 지나고, 동정호변에 모여든 무림인들의 숫자는 더욱 많아져서 삼천여 명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배를 준비했고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살아있는 무림의 전설적인 존재를 찾아간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심장은 급격하고 고동치고 있었다.

그들은 서서히 배를 저어 부주로 향하기 시작했다.

감히 먼저 가려는 사람도 없었고 뒤쳐지려는 사람도 없었기에 배들은 횡으로 열을 지어 나아갔다.

그 모습은 마치 올가미가 가운데를 향해서 조여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 × ×

 

갑자기 동호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벌컥 화를 냈다.

[그 미친 놈들이 날짜를 잘못 계산했구나!]

[...?]

두공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호천을 바라보았다.

씩씩!

동호천은 화가 나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미친놈들! 멍텅구리! 때려죽일 놈들!... ]

그는 잇달아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두공이 염려스럽게 말했다.

[사부 혹시 미친 건... ]

철썩!

동호천의 손바닥이 두공의 뺨에 작렬했다.

[이놈아! 미치긴 내가 왜 미쳐? 그 두놈들이 미쳤지.]

두공은 얼이빠진 듯이 뺨을 감싸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호천이 다시 소리쳤다.

[아직 열흘도 더 남았는데 그놈들이 나를 일찍 죽으라고 하다니... 멍텅구리같은 녀석들! 날짜계산도 제대로 못하다니... 씩씩!]

[그놈들이 누굽니까? 사부. 제가 혼을 내놓겠... ]

짝짝!

두공은 다시 뺨을 싸잡고 한걸음 물러섰다.

[네놈은 사숙(師叔)들을 혼내놓겠다는 거냐? 도무지 경우가 없구나.]

동호천이 준엄하게 말했다.

[주치(酒痴)사숙과 보치(寶痴)사숙 말이십니까?]

두공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무리 기억력이 없는 두공이지만 그 두사람만은 조석으로 보고 자랐기에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머리가 기억을 하고 있는 건지 입이 기억을 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

동호천이 소리치고는 갑자기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한듯이 가만히 있었다.

[...]

그러다가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껄... 네말이 맞다맞아. 그놈들은 혼이 나야된다. 내가 열흘이나 일찍 죽도록 한 댓가를 받아야지. 껄껄껄... ]

[...?]

[다음에 그놈들을 만나면 아무소리도 하지 말고 다짜고짜 뺨부터 열대씩 때리도록 해라. 이말은 잊어버리면 내가 죽기전에 네녀석부터 죽여버리겠다.]

동호천의 말은 진심이었다.

두공은 그의 의도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즉시 품속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서 숯으로 몇자 적었다.

 

<사숙들은 뺨을 열대씩 맞아야 한다. 열흘 빨리 사부를 죽게 했으니 당연히 맞아야 한다.>

 

번개처럼 써내려간 글씨였다.

그러나 그것은 숯으로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기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껄껄껄껄... ]

동호천은 만족한듯 크게 웃었다.

그의 눈앞에는 제자에게 두들겨 맞을 두 동생의 얼굴이 환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웃고난 후 그는 극히 피로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고요한 그의 얼굴은 덕도한 고승인듯 담담히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콰아아아!

[배 밑창이 뚫렸다. 어서 다른 배로 옮겨가라!]

누군가가 고함쳤다.

그러나 아우성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어떤 개같은 놈이 밑창을 뚫었다.]

[무치가 남길 비급을 혼자서만 독식하려는 놈이 있다.]

[찾아서 찢어 죽여야 한다. !]

갖가지 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올가미처럼 부주를 조여가던 배들이 일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뿌직! !

휘이이익!

휙휙휙휙!

일제히 배의 갑판같은 나무판자를 줏어들고 물위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림을 주름잡는 고수들이다. 작은 나무판자 하나만 하더라도 타고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동정호에는 갑자기 배들이 사라지면서 수 천명의 고수들이 마치 소금장이처럼 물위에 새까맣게 떠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물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분수자(分水刺)가 고수들의 다리를 찍기 시작했다.

!

[으악!]

피가 호수물로 적셔들고,

펑펑!

암습자들에 대항하여 물속으로 장력을 쳐내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물속에 있는 자들의 수공(水功)은 대단했다.

한개의 분수자가 다리를 찍는 순간에 이미 다른 하나의 분수자가 다시 등을 찍고 있었다.

호수는 순식간에 붉게 물들면서 사람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수공(水功)을 익힌 고수는 극히 드물다.

물에서 이같은 공격을 받은 사람들이 그처럼 죽어가는 것은 무공도 무공이지만 무엇보다도 놀라고 당황한 데다 수공에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감하게 물속으로 들어가서 싸우는 자들도 있었지만 마치 물고기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분수자로 사방에서 찍어대는 그들에게 난도분시가 되어 영원히 물속으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살아 있는 수백 명의 인물들은 단지 널판지들 위를 빠르게 뛰어다니며 분수자의 공격을 피할 뿐이었다.

 

동정호변,

그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있던 한척의 배위에서 하삼풍이 씨익 웃으며 만박노조를 바라보았다.

[다른 자들은 내가 책임진다고 하지 않았소?]

내 솜씨가 어떻느냐는 듯이 교만한 음성이었다.

만박노조가 말했다.

[순식간에 이천삼 백여 명이 죽었군. 무림의 힘이 크게 줄어들었어.]

[노조께선 저들도 고수로 보는 것이오? 저들은 대부분 명을 받아서 온 이인자거나 충실한 후계자를 두고 왔을 것이오. 한마디로 있으나 마나한 자들이오.]

하삼풍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만박노조는 가벼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대신할 자가 있는 자들은 모두 죽어버려야겠군.]

[다행히 난 후계자가 아직 없소이다. 노조.]

하삼풍은 농담처럼 말하며 배를 출발시켰다.

그들이 탄 배는 쾌속선이었다.

배는 손살같이 부주를 향해 달려갔다.

스읏!

그때 물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없이 뛰쳐올라오며 하삼풍의 배 후미에 붙었다.

그는 피처럼 붉은 혈포를 입은 중년인으로 손에는 역시 피처럼 붉은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보였다.

그러나 그 얼굴은 마치 불에 달아올라 벌건 단계를 지나 하얗게 백열하는 철판처럼 보였다.

어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강렬한 힘이 그에게 숨겨져 있는 것같았다.

손가락 두개가 쾌속선에 박혀서 그의 몸을 지탱시켜주고 있었다.

한데 아비규환의 지옥같은 동정호에서 부주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그 쾌속선 말고도 또 있었다.

쏴아아아아!

물위에 우뚝 서서 부주를 향해 미끌어져가는 사람...

그는 전신에 먹보다 검은 묵의(墨衣)를 걸치고 있었는데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피풍의가 어둠처럼 그를 감싸고 있다.

쾌속선 위에서 그 묵의인을 발견한 하삼풍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잔혼살객(殘魂煞客)이로군.]

잔혼살객...

드디어 오객(五客) 중의 잔혼살객 마저 모습을 드러냈다.

슈슈슉!

물속에서 분수자들이 튀어나오면서 잔혼살객의 몸을 노렸다.

그러나,

파파파팍!

잔혼살객의 주위에는 이미 철벽처럼 두터운 호신강기(護身剛氣)가 펼쳐진 후였다.

[크아아악!]

[크룩!]

물속에서 기괴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를 습격했던 자들이 호신강기에 반탄되어 자신들의 내장이 파열되어 버린 것이다.

파아아아앗!

잔혼살객이 지나감에 따라서 그 주위에서는 비명이 줄을 이었다.

[크아아아악!]

[크악!]

물속에서도, 물위에서 물속의 살수들을 피했던 자들도, 잔혼살객이 그들의 곁을 지나감에 따라서 비명과 동시에 시체가 되어갔다.

추풍낙엽이라는 표현,

그 표현으로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한데 갑자기 잔혼살객의 귓전을 때리는 음성이 있었다.

[잔혼살객! 더이상 본좌의 수하들을 해친다면 먼저 본좌와 싸워야 할 것이다!]

(단혼곡주 하삼풍!)

잔혼살객은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그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하삼풍이 천리전음의 수법으로 그에게 말했던 것이다.

잔혼살객의 눈빛은 흐릿한 회색이었다. 죽음의 빛이란 바로 그런 것을 말하는 듯하다.

그는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쾌속선을 보고 말했다.

[하곡주! 당신은 남을 죽여도 되고 나는 안된단 말이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당신의 단혼장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소.]

휘익!

말이 끝나자 마자 그는 몸을 돌려 다시 부주를 향해서 빛살처럼 쏘아져 갔다.

하삼풍의 전신에서 폭풍같은 기운이 일어났다.

푸르르르...

그의 옷자락이 바람을 맞은 돛인양 팽팽해지면서 떨었다.

만박노조는 그런 하삼풍을 힐끗 보고는 속으로 놀랐다.

(대단하군. 이미 내공이 오기조원(五氣造元)의 경지에 달했어. 하삼풍, 역시 삼사의 우두머리라는 이자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겠군.)

그때 하삼풍이 분노를 가라앉히면서 말했다.

[잔혼살객! 능히 그럴 수도 있겠지. 능히... 그러나 두렵진 않더라도 죽을 순 있다네...]

얼굴은 평색을 회복한 듯했으나 음성에는 여전히 주체하기 어려운 분노가 서려있었다.

[잔혼살객이 나왔으니 이제 남은 자들은 맹호산(孟湖山)과 해천월(海天月), 그리고 혈포단객(血袍單客)과 부운청풍객(玉風秘客), 무형도객(無形刀客)이로군.]

옆에서 만박노조가 말했다.

그 순간 잔혼살객은 이미 부주에 다다르고 있었다.

[타앗!]

하삼풍이 돌연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슈아아앙!

그는 한마리의 독수리처럼 비상하여 부주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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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바람을 부르는 가공할 돌머리 (2)

 

 

풍랑은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푸르던 동정호는 물이 뒤집혀 뻘겋게 변해버렸고 물가에는 파선되어버린 배들의 잔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바람이 봄눈녹듯 잦아지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하나둘 호변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 중에는 금의청년도 있었다.

약간 오만한 듯하면서도 의협심은 있어보이는 이 인물은 나직하게 뇌까렸다.

[풍래고... 풍래동자... 반드시 그 껍질을 벗기고 말겠다. 사악한 자를 제거하여 세상을 편안케 하는 것이 무공을 배운 사람의 도리...]

멀리 수평선 처럼 가물거리는 곳에 풍래동자가 있다는 부주가 가물가물하게 보였다.

 

[물로 나갈 것이오?]

금의청년은 직접 배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보았다.

그러나 열이면 열 모두 배를 손봐야 되기 때문에 지금 물로 나갈 수는 없다고 한다.

금의청년이 실망하며 돌아설 때였다.

[이보시오! 물로 나가시려오?]

누군가가 헐레벌떡 달려오며 소리쳤다.

금의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럼 잘됐소. 나도 소문을 듣고 달려왔다오.]

달려온 사람은 몸이 떡 벌어진 전형적인 사공이었다.

그는 금의청년의 손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지금 다른 배들은 아마 움직이지 못할 거요. 하지만 내 배는 다르오. 당장 출발할 수 있소. 한데 어디로 가실 거요? 군산(群山)?]

[아니오. 저곳이오.]

금의청년은 멀리 호심(湖心)에 아스라히 보이는 부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순간 사공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그는 금의청년의 손을 놓고 뒷걸음질 치면서 말했다.

[저곳은 갈 수 없소. 내가 사람을 잘못보았소. 그럼 이만... ]

그의 음성에는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기다리시오!”

금의청년은 성큼 다가서며 사공의 손목을 잡았다.

[놓으시오. 나는 아직 죽고싶은 생각이 없소. 저곳엔 풍래동자가 있는 곳인데 어떻게 간단 말이오?]

사공은 말을 하면서 손을 뿌리쳤다.

그러나 금의청년의 손은 마치 쇠갈쿠리처럼 사공의 손목을 조이고 있었다.

사공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금의청년은 그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손목을 놓아주며 말했다.

[당신이 직접 갈 필요는 없소. 배만 빌려주면 나혼자 가겠소.]

그는 한덩어리의 은을 꺼내서 손목을 주무르는 사공의 품속에 집어넣었다.

 

사공의 배는 정말 튼튼한 것이었다.

천년은 묶었을 법한 굵은 나무 하나를 통째로 깍아서 만든 배였다. 그러니 풍랑이 아무리 거세도 어디 부서지고 말고 할 곳도 없어보였다.

금의청년은 천천히 노를 저어서 부주를 향해 나아갔다.

선창가에서는 사공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수근거리고있었다.

[어쩌면 또 바람이 불지도 모르겠군. 빨리 피하는게 좋을 것같아.]

한데, 그 무렵 하나 둘... 호수가에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공도 아니고 또한 유람객도 아니었다.

각양 각색의 무림인들...

그들의 수효는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 × ×

 

휘익!

금의청년은 부주에 가까이 이르자 경신술을 발휘하여 사뿐히 내려섰다.

기둥에 매인 커다란 북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저 북소리가 이 넓은 동정호 곳곳까지 퍼져나간단 말이지? 보통 공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

금의청년은 북을 힐끗 보고는 발소리를 죽이면서 부주 위에 지어진 집으로 다가갔다.

창가에 몸을 붙이고 안쪽의 동정을 옅보려는 데 갑자기 안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공아! 공아!]

노인의 창노한 음성이었다.

금의청년은 호흡을 멈추고 긴장했다.

 

두공은 자기 방에서 사부인 동호천의 방으로 후다닥 달려가면서 대답했다.

[사부! 무슨일입니까?]

[내 손을 잡아다오.]

동호천은 일어나려고 하면서 손을 뻗었다.

두공은 그를 안아 앉히면서 말했다.

[뒤를 보시게요?]

[그게 아니다. 오랫만에 밖을 보고 싶구나.]

동호천은 힘없이 말했다.

두공이 창문을 밀며 말했다.

[날씨가 화창해요. 사부!]

[아니다. 아니다. 밖에 나가서 보겠다.]

동호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공은 염려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비온 뒤라 바람이 차가운데...]

[이놈아! 내가 나가겠다는데 왠 잔말이냐?]

갑자기 동호천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두공은 눈을 찔끔 했으나 이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잠시동안만입니다. 금방 들어와야 해요.]

[이놈이 내가 늙었다고 그사이에 나를 괄시하려는구나.]

동호천은 노기서린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 음성에는 이미 기운이 서려있지 않았다.

두공은 그를 업고 나가며 말했다.

[사부도 참... 세상에 저와 사부 두사람 뿐인데 제가 어떻게 사부를 괄시해요? 사부야 날 늘 괄시하시지만...]

[...]

동호천은 무슨 영문에서인지 그의 말을 받지 않고 묵묵히 있었다.

두공에게 엎혀 밖으로 나가자 찬바람이 순간적으로 그를 떨게 만들었다.

창밖에 있던 금의청년은 재빨리 문뒤로 몸을 숨겼다.

후우...!”

밖으로 나온 두공은 상쾌한듯 숨을 들이켰다.

[저리로 가자!]

동호천은 손가락으로 풍래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북을 치면 안되요.]

두공은 걸어가면서 다부지게 말했다.

그는 북이 울리면 사람들이 바람이 오는 것으로 오해할까 싶어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동호천은 두공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북에 다가서면서 북을 쓰다듬었다.

[공아! 이 북이 아마도 수백 명의 목숨은 구했겠지?]

[헤헤... 그정도까지야...]

두공은 숙스러운지 머리를 긁으며 얼굴을 붉혔다.

동호천은 북을 주먹으로 통통 두드렸다.

[그런데 네가 얻은 것은 무엇이냐? 풍래동자라는 요상한 이름?]

[뭘 바라고 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냥 이상하게 미리 알 수 있으니까 알려준 것뿐인데... ]

[그래... 그런데 너와 나 외에는 아무도 그걸 모르는구나. 오히려 네가 바람을 불러오는 것으로 생각할 뿐...]

[전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요. 사부께서 오래 사시기만 한다면...]

두공은 동호천이 혹시라도 넘어질까봐 바싹 다가서며 말했다.

동호천은 그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착한 녀석! 하지만 너의 그 행동으로 인해 너를 죽이려는 자가 왔구나. 이런 것이 세상이란다.]

숨어있던 금의청년은 기절초풍했다.

(저 노인은 내가 온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구나.)

[그러니 이 북은 깨어버려야겠다.]

동호천은 말을 하면서 갑자기 손바닥을 북에 밀착시키고 가볍게 눌렀다.

순간 두공은 맑은 눈으로 동호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부의 뜻이 그렇다면 하는 수 없겠지요. 하지만 저를 죽이려 온 사람은 기회를 놓쳤어요. 그는 이미 제가 쳐놓은 덧에 걸렸거든요.]

!

거대한 북이 약간 흔들리는가 싶더니 가루가 되어서 날았다.

동정호에서 공포를 던져주던 명물 풍래고는 바람을 부르지 못하고 바람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숨어서 지켜보던 금의청년은 놀라 눈을 부릅떴다.

더구나 자신이 이미 덧에 걸렸다는 말은 그의 심장을 멎게 만들 것만 같았다.

급히 자신의 몸 주위를 돌아보았으나 어디에도 덧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동호천의 음성이 그의 귓가로 들려왔다.

[그자를 죽이지는 말아라. 복우파(伏牛派)의 중강면장(重剛綿掌)을 제대로 익혀낸 것을 보니 쓸만한 인재인 것같다.]

[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요. 염려마세요.]

두공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금의청년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맹세코 그는 나와 눈도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복우파 출신으로 중강면장을 익힌 것까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두공이 버럭 소리쳤다.

[아직도 그곳에서 나오지 않을 생각이요?]

금의청년은 얼굴이 붉어지며 문뒤에서 나왔다.

한데 그가 걸어온 뒤에는 검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는 것이 아닌가?

동호천은 두공을 보고 허허 웃었다.

그는 두공이 펼쳐놓았다는 덧이 무엇인지 그때서야 알아본 것이었다.

금의청년은 그의 웃음에 더욱 당황하며 포권했다.

[소생은 복우파의 금사종(琴思鍾)이라고 하며 별호는 혼장서생(渾掌書生)이오. 노선배께서는 명호가 어떻게 되...]

[서생? 그럼 책을 잘 읽겠군요.]

두공은 금사종의 말을 재빨리 가로챘다.

금사종은 얼떨결에 답했다.

[그렇소. 왠만큼은 읽소.]

[잘됐어. 아주 잘됐어.]

동호천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두공이 다시 물었다.

[한번 보면 잘 잊어버리지도 않겠군요?]

[대충 그런 편이오. 한데 소형제는... ]

금사종은 도깨비에 홀린 심정이 되어 되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호천의 말이 그의 물음을 막아버렸다.

[두공아! 안으로 들어가자구나!]

[! 사부님... ]

두공은 동호천을 업으며 금사종에게 말했다.

[맨발로 들어오세요.]

금사종은 그제서야 자신의 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의 신발이 검게 변해 있었다.

또한 그가 지나온 곳마다 검은 발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혼이 달아날 것만 같았다.

(... 독이었구나. 바닥에 독을 발라놓았어.)

그렇다. 그것이 바로 두공이 설치한 덧이었던 것이다.

두공은 침입자가 숨을 곳은 구석진 곳이고, 구석진 곳은 주인의 발이 닿을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꺼리낌없이 그런 곳마다 독을 발라놓았던 것이다.

금사종이 황급히 신발을 벗어던지는데 두공의 말이 들려왔다.

[일곱걸음인가? 여덟걸음인가? 그렇게만 걸으면 죽게 되요.]

음성은 벌써 집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호변(湖邊),

검과 도를 비롯한 갖가지 병기들을 휴대한 형형색색의 무림인들이 몰려서있다.

그들은 심각한 신색으로 멀리 호수 가운데 떠있는 부주를 바라보면서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무려 천 수 백여 명을 헤아리는 무림인들,

그들은 무리를 지어온 자들도 있었으며 독불장군으로 혼자서 온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리를 지어왔다고 해서 강한 것도 아니며, 혼자 왔다고 해서 약한 자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잔잔한 호수물에 바위가 내리비치는 곳에 학창의(鶴氅衣)를 입은 한사람의 노인이 서있었다.

키는 불과 오척의 단구이나, 그 사람만을 바라본다면 태산인양 거대하게 보이는 인물...

백발에 백염, 그리고 백미인데 눈에는 마치 보석처럼 형형한 빛이 감돈다.

“....!”

그는 그 눈으로 멀리 부주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형형한 눈으로 부주위에 있던 마지막 한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스라히 보였다.

사르르르...

오척단구의 노인은 눈을 내리감으며 말했다.

[환사(幻死)와 섬쾌(閃快) 거기 있느냐?]

순간, 아무것도 없는 허공 중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며 두사람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종들은 여기 있습니다. 하명하십시오. 주인님.]

[이곳에 온 자들은 누구누구인가?]

노인은 여전히 눈을 내리감은 채 물었다.

그러자 그의 뒤쪽에서 나직한 음성으로 누군가가 말했다.

[검성(劒聖)과 독비신검객(獨臂神劒客)을 제외한 십대고수(十大高手)가 다 모였습니다.]

[단혼곡주 하삼풍도 왔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

노인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어떻게 하여 소문이 이처럼 날 수 있었단 말인가? 당금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인 무치(武痴) 동호천 노선배의 은거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단 말인가?]

[...!]

환사와 섬쾌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주인이 모르는 것을 그들이라고 알리가 없다.

그때였다.

휘이이익!

한줄기 백영이 빛살처럼 노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순간,

번쩍!

파아아앗!

백색검광이 허공중에서 그어지며 백영을 향해 짓쳐갔다.

그때 노인이 소리쳤다.

[무례하지 마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검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백영이 유유히 그의 뒤로 날아떨어졌다.

[허허허허...!]

웃음을 터뜨리는 그자는 긴 수염을 휘날리는 네모난 얼굴의 각진 턱을 가진 사자같은 인물이었다.

[만박노조(萬博老祖)께 두 사람의 귀신같은 비밀호위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명불허전이오.]

만박노조...

그렇다.

오척단구의 노인은 바로 만박노조였던 것이다.

이정삼사오객(二正三邪五客) 중 이정(二正)에 속한 인물로, 무림의 고수들을 논할때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사람이 이 신비(神秘) 속에 감춰진 기인 만박노조인 것이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단혼곡의 하삼풍, 하곡주이신가? 노부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 왕림하셨나?]

단혼곡주,

그렇다면 삼사(三邪)의 우두머리로 불리우는 그가 아닌가?

만박노조의 두 하인이 말한 대로 진정 이곳에는 당금의 고수중 열에 아홉은 모인 곳이란 말인가?

단혼곡주 하삼풍은 얼굴을 실룩실룩했다. 자신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만박노조에게서 모욕을 당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분노를 억누르고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노조께서 방금 전에 본좌의 소식을 묻지 않으셨소?]

(그때 이자는 적어도 삼백장 밖에 있었는데... )

만박노조는 내심 하삼풍의 공력에 놀라움을 금치못하며 뒤로 돌았다.

하삼풍의 입가에 뜻모를 미소가 걸렸다.

그가 말했다.

[이 하삼풍은 수완을 부리는 데는 둔한 사람이오. 단도직입적으로 말합시다.]

[그대가 내게 할말도 다 있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고 하지 않았소?]

하삼풍은 눈쌀을 찌푸렸다.

[허허허허...]

만박노조가 허탈한 듯 나직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가공할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이런...! 허무살소(虛無殺笑)! 이 늙은이가...)

하삼풍은 심장이 바늘로 찔리는 듯한 충격을 순간적으로 받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

만박노조가 허무살소를 그치고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온자들 중에 고수가 아닌 자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하곡주와 나를 능가할 인물은 아마도 없겠지?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이곳에 온 자들 중에는 아마 없겠지만 저곳에 있는 자는 우리가 힘을 다 합친다 해도 상대가 안될 거요.]

하삼풍이 동정호의 호심에 떠있는 부주를 가리키치면서 말했다.

만박노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치 동호천 선배를 이길 순 없겠지.]

[그렇소. 동선배는 나와 출신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내가 극히 존경하는 분이오. 그러나 이제 곧 고인(故人)이 되실 것이오.]

하삼풍은 말을 하면서 만박노조의 표정을 살폈다.

만박노조는 그의 말에 수긍하는지 묵묵히 있었다.

하삼풍의 말이 이어졌다.

[동선배의 무공은 고수들 중에서도 군계일학이오. 이정삼사오객이라 불리는 우리가 그다지 큰 충돌을 벌이지 않고 지내온 것이 사실 동선배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뜻이 있었음을 노조께서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오.]

만박노조는 머리를 끄덕였다.

[사실 그렇지.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지리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하곡주부터 말일세.]

[아마 그럴 것이오.]

하삼풍은 겸면쩍게 웃었다.

그는 야심(野心)을 속으로 감추는 인물이 아니었다. 적어도 남이 짐작하는 야심은...

[하지만, 노조께서도 들었을 것이오. 동선배께 바보같은 제자가 하나 있다는 말 말이오. 그자가 동선배의 무공을 그대로 이었다면 향후의 무림은 오로지 그자의 뜻에 따라 좌우될 것이오.]

[...!]

하삼풍이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어리석은 자의 손에 무림이 좌우된다는 것은 위험하기 이를데 없을 것이오.]

[만약 그대같은 자의 손에 조종되지만 않는다면 그다지 염려할 것도 아니지.]

만박노조는 하삼풍을 쏘아보면서 말했다.

하삼풍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어쨌든 앞으로 우리들의 충돌은 아마 피할 수 없게될 것이오. 이정의 일인으로서 노조께서는 무림의 안위가 염려스럽지 않소?]

만박노조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하곡주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고 하고서도 말을 돌리기만 하는군. 그럼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하하하하... 그것도 좋겠소. 내뜻에 꼭 맞는 말이오.]

하삼풍의 의도는 분명했다.

그는 자신이 할 말을 만박노조가 하는 것도 좋다는 말을 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뜻에 맞다고 했다.

이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서로가 힘을 합친다는 것이리라.

만박노조가 말했다.

[이번 만은 하곡주와 힘을 합치도록 하지. 그러나, 그 댓가는 분명히 정해야 할걸세. 나는 동선배의 제자를 데려가겠네. 그 나머지는 뭐든지 자네가 차지하게.]

[이의없소이다.]

하삼풍의 포권을 하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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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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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바람을 부르는 가공할 돌머리 (1)

 

 

 

 

-동정호(洞庭湖),

 

악양(岳陽)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천하제일호는 마치 바다처럼 드넓다.

파란 물결에는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하고, 그 하늘로는 흰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청백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위를 떠가는 유람선은 하늘을 나는 듯 호수를 미끌어지고, 낚시를 드리운 태공(太公)들은 하늘을 낚아올릴 듯하다.

호수물을 스치운 맑은 바람은 갈대들을 이리저리 흔들고, 동정호 가운데에 마치 점처럼 떠있는 하나의 부주(浮州)에까지 이른다.

아름드리 통나무들을 수백개를 이어서 만들어놓은 부주는 이름 그대로 하나의 떠있는 섬이다.

한변의 길이가 족히 백장이 넘는 드넓은 부주 위에는 작은 집도 있으며 채소 밭도 있고, 작으나마 한척의 배도 끌어올려져 있었다.

또한 한쪽에는 커다란 북도 기둥에 매달려 있다.

멀리서 보아서는 도무지 부주라고 믿지 않을 그런 것이었다.

종종 섬으로 오해받는 부주는 그러나 한곳에 고정되어잇지 않고 바람에 밀리면서 동정호의 이곳저곳을 떠다닌다.

한데 부주 위에서 한 소년이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한곳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가득 얼굴을 찌푸렸는데,

세상에 이처럼 잘생긴 미소년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짙은 검미에 검은 하늘을 담은 듯 영롱한 눈빛,

건강미가 넘쳐흐르는 적당히 그을린 피부,

오똑한 콧날과 부드러운 턱선...

나이는 아직 열두엇 정도,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장중한 무게가 실려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큰 바람이 불겠어. 비도 많이 오겠지.]

소년은 말하고는 즉시 한쪽에 매달린 북을 향해 걸어갔다.

소년은 자기 키만큼이나 한 북채를 들고는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둥둥둥둥...!

 

북을 두드리는 소년의 팔놀림은 힘찼고,

북소리는 동정호 수면위로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 × ×

 

둥둥둥---!

[어이! 장삼(張三), 이거 북소리 아닌가?]

푸르른 동정호에 그물을 던지던 어부가 다른 배에 있는 어부를 향해서 소리쳤다.

그쪽에 있던 어부는 그물을 걷어올리며 외쳤다.

[맞네. 풍래고(風來鼓)가 틀림없네.]

[북소리가 급한 것을 보니 큰바람이 올모양일세. 빨리 돌아가세나.]

갑자기 동정호에 떠있던 배들이 일제히 술렁이고 있었다.

둥둥둥-󰠏!

북소리는 들리고 동정호에 떠있던 배들은 그 북소리에 맞추기라도 하듯이 모두 물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배들중에는 어선도 많았지만 유람선(遊覽船)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유람선에는 외지에서 동정호의 풍광을 구경온 외지인들이 타고 있다.

갑자기 들려온 북소리와 더불어 배가 움직이고 풍악소리가 그치자 유람선 안의 인물들은 놀라 당황하고 있었다.

둥둥둥---!

점점 빠르게 들려오는 북소리가 마치 전쟁에서 사용하는 군고(軍鼓)의 것인양 우렁찼다.

배를 조종하는 선부(船夫)들의 얼굴에도 긴장이 어려있다.

물가를 향해 경주하듯 달리는 여러척의 배들 중 가장 뒤쪽에 처진 한척의 유람선에서 노를 젓던 늙은 선부가 굳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이렇게 급박하게 풍래고가 울린 적은 한번도 없다. 최대한 빨리 뭍으로 나가야 한다. 어쩌면 모두 여기서 죽을 지도 모른다.]

유람선의 승객들 중 금의(錦衣)를 입은 한 청년이 노인에게 소리쳤다.

[여보시오! 수적(水賊)이라도 나타났소? 대체 무슨일인데 이런 소동이요?]

그러나 늙은 선부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직 필사적으로 노를 저을 뿐이다.

유람선에 올라 손님들의 흥을 돋구던 기녀(妓女)들마저도 뭔가를 알고 있는 듯 표정은 굳었고 금()과 비파(琵琶)를 잡은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금의청년이 화가 치밀었는지 배의 기둥에 일장을 가하면서 소리쳤다.

[감히 나를 무시하는 건가?]

청년의 손에 맞은 배의 기둥에는 칼로 새긴듯이 장인(掌印)이 세치 깊이로 파여있었다.

보통 수련을 쌓아서는 그처럼 매끈한 일장을 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녀들도 늙은 선부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늙은 선부는 마주 고함쳤다.

[살고 싶으면 빨리 빈 노라도 잡고 저으시오.]

[... 뭐라고?]

금의청년은 어이가 없는듯 기녀를 돌아보았다.

기녀가 재빨리 말했다.

[바람이 와요. 바람이....! 이대로 물위에 있다간 모두 고기밥이 될거예요.]

[하하하하...!]

금의청년은 낭소를 터뜨렸다.

[대체 바람이 어디 분다고 그러시오. 하늘도 구름 한점 없이 맑고 물결도 잔잔하지 않소? 이런 물위에서는 나뭇잎도 뒤집어지지 않을 것이오.]

[미친 놈! 풍래고를 듣고도 부정타게스리 그딴 소리를 하다니...]

늙은 선부가 버럭 욕지거리를 해댔다.

순간 금의청년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늙은이! 정말 이 공자님의 손에 죽고싶은 모양이구나!]

그러나 옆에 있는 기녀만이 그 기세에 오돌오돌 떨었을 뿐 늙은 선부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젊은 놈이 노인 앞에서 힘자랑을 하려는 겐가? 내가 죽고 나면 이배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살아나지 못해!]

스스스스...

노인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금의청년은 움찔하며 뻗어가던 손을 거두었다.

바람!

정말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이다.

파라라락!

갑자기 옷깃이 떨리고 있었다.

청년의 안색이 대변했다.

[이럴 수가... 정말 바람이 불다니... ]

하늘에는 수평선 저쪽에서 부터 검은 구름이 질풍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물결이 일어나고, 배가 벌써부터 이리저리 요동쳤다.

다른 배들에서 손님과 선부들이 힘을 합해서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호변에 있던 배들은 벌써 물위로 끌어올려지고 있었으나 금의청년등이 타고 있는 유람선은 아직도 호변까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휘이이잉!

청년은 달려가서 빈 노를 잡으며 소리쳤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오?]

[북소리... 풍래고라고 하는 저 북소리 때문이예요. 언젠가부터 이곳엔 이상한 노인과 소년이 와서 살기 시작했는데, 소년이 북소리로 바람을 부르는 힘이 있데요.]

기녀중 한명이 기둥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청년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북소리가 바람을 부른다고? 세상에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가...]

[직접 겪고도 믿지 못하세요? 벌써 수십 명이 풍래고를 듣고도 피하지 않았다가 죽었어요. 그래서 호수에 나올땐 항상 귀를 열어놓고 있다구요. 풍래고가 울리지 않나 해서...]

우당탕! 쿵탕!

배가 좌우로 요동치면서 물건들이 굴러떨어지고, 담이 작은 승객들은 갑판에 엎드려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촤아아!

우우우웅!

바람이 배를 맴도는 소리가 귀신의 호곡(號哭)처럼 들렸다.

사방은 이미 칠흑처럼 어두워지고 있었다.

호수는 물결이 잔잔하다는 말도 모두 거짓말이었다.

호수 물은 뒤집혀 누렇게 변했으며, 물결은 배를 엎을 듯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청년 등이 탄 유람선만이 뭍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배들보다 너무 멀리 나가있었으며 또한 배가 날렵하지 못하다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손님들을 많이 실었을 때에는 수입이 좋다고 좋아했던 선부였으나, 이제는 오히려 그 손님들이 짐이되어 배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또한 그 두번째 원인이었다.

늙은 선부는 탄식을 했다.

[! 조금만 빨랐어도 살 수 있었거늘...]

바람은 방향을 종잡을 수 없이 불어 배를 오히려 뭍에서 부터 멀어지게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절망뿐이다.

한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촤아! 촤아!

경쾌하면서도 힘찬 노젓는 소리가 미칠 듯한 바람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그의 귀로 들려왔다.

(이런 풍랑속에서 배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니...)

늙은 선부는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피리링!

갑자기 배의 선수(船首)에 있는 용두(龍頭)로 굵은 동앗줄이 날아와 걸렸다.

늙은 선부는 기를 쓰고 앞으로 나아가 선수에 다다랐다.

촤아! 촤아!

노젓는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늙의 선부의 눈에는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보여지고 있었다.

어둠! 그리고 산더미 같은 파도들 사이로 가랑잎같은 작은 배한척이 파도를 타고서 유유히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배의 후미에는 굵은 밧줄이 매여있는데 그것은 유람선의 용두에 걸린 밧줄의 다른 한쪽 끝이었다.

흰그림자가 그 조각배 위에서 노를 저어가는데 조각배는 순식간에 뭍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늙은 선부는 혼이 빠져달아나는 것같았다.

[풍래동자(風來童子)...! 풍래동자가 직접 배를 끌어주다니... 병을 주고 약을 주는 건가?]

잠시 후, 배는 마치 거대한 손에 끌려가기라도 하는 듯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선착장!

배들이 떠내려 가지 못하도록 동앗줄을 묶는 돌과 쇠로 만든 기둥들이 늘어서 있다.

한데 그곳에는 부주(浮州)위에서 북을 두드렸던 미소년(美少年)이 밧줄을 매는 쇠기둥들에 기름을 바르고 밧줄을 여러 겹으로 바른 후 당기고 있었다.

그에 따라서 한척의 유람선이 풍랑속에서 끌려오고 있었다.

비록 소년이 꾀를 쓰서 힘을 적게 들이고는 있지만, 끌려오는 것은 작은 물건도 아닌 수십 명의 사람이 타고 있는 한 척의 유람선이다.

소년의 신력(神力)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오자 소년은 밧줄을 단단히 묶어 풀어지지 않게 한 다음 끌어올려놓았던 조그만 배를 밀어서 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촤아! 촤아!

힘찬 노젓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풍랑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유람선에서는 앞을 다투어 사람들이 내려왔다.

[십년감수했다!]

손님들 중의 누군가가 소리치며 객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늙은 선부는 매여져 있는 밧줄을 보고는 엎드려 절하면서 말했다.

[풍래동자님께서 이 늙은 목숨을 살려주신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소녀 또한 동자님의 은혜를 가슴 깊히 새기겠습니다.]

기녀들도 내려와서 밧줄이 묶여 있는 쇠기둥에 대고 절하며 말했다.

금의청년은 괴상한 일을 당해서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는 객점으로 걸어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풍래동자인가 뭔가가 바람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인다면 왜 그를 먼저 죽여버리지 않는단 말인가?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구나.)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면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여하튼 금의청년은 굴강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 × ×

 

[이놈! 두공(頭公)!]

동정호의 중간 쯤에 떠있는 부주의 위에 지어져 있는 집 안에서 노인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이곳이라고 피해갈 리 없다.

넓고 평평해서 다른 배보다는 안전하겠지만, 이곳 역시 산더미 같은 파도가 위에서 덮치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이 잠겼다 말았다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미소년은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자신이 타고온 배를 끌어올려 단단히 묶어놓았다.

[이 쇠대가리! 빨리 들어오지 못하느냐?]

다시금 집 안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미소년은 탄탄한 평지를 달리듯이 흔들리는 부주위를 달려가며 소리쳤다.

[사부! 가고 있습니다. 가요. !]

!

문을 밀치고 들어서 소년은 한쪽 벽에 기대서며 일부러 힘든듯 거친 숨소리를 냈다.

[핵핵!]

[이놈! 쇠대가리! 내가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

침상에 누운 노인이 성질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면서 부르르 떨었다.

한데 이 노인...

비록 몇 년 전보다 훨씬 늙어 보이기는 하지만 틀림없는 무치(武痴) 동호천이다.

비록 일백삼십이 넘은 나이기는 하나 갑자기 이처럼 늙을 수도 있단 말인가?

동안처럼 붉으스레 하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하지 않은가?

미소년이 침상으로 다가가서 동호천의 머리를 받쳐 바르게 눕히며 달래듯이 말했다.

[사부! 진노를 푸세요. 제가 한사람이라도 더 구한다면 하늘이 혹시 사부께서 더 오래 사시게 해줄지도 모르잖아요.]

[... 너 이놈... ]

동호천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말을 잊지 못했다.

두공이라 불린 미소년이 다시 말했다.

[오늘은 적어도 서른 명은 구했을 거예요. 그러니 최소한 삼십년은 벌어온 셈이죠.]

동호천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소용없다. 소용없어. 사람은 늙으면 죽는게야. 내가 앞으로 아침해를 보름동안만 더 볼 수 있으면 아마 다행일 것이다.]

동호천의 음성에는 진한 허무가 배여있었다.

그는 염려가 가득한 눈으로 두공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네가 어떻게 험난한 강호를 헤쳐나갈 지... ]

[()은 아직 나가보지 않아서 잘 몰라요. 그래도 호수라면 얼마든지 자신...]

두공의 어리석은 듯한 말에 동호천은 씁쓸하게 웃었다.

[강호(江湖)란 무림을 말하는 거야.]

[그랬군요. ? 그럼 틀렸는데 왜 꾸짖지 않으세요?]

두공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물었다.

동호천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쉬고 싶구나. 네방으로 가거라.]

두공은 동호천의 이불을 다시 한번 도닥거려주고 나서 옆으로 뚤린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은 하나의 창고나 다름없었다.

수십 종에 이르는 병기들이 흩어져 있고, 한쪽으로는 또한 수백권이 넘을 것 같은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두공은 먼저 불을 켠 후 책더미에 벌렁 드러누워 그 중의 한권을 펴들었다.

일렁이는 등불에 책의 제목이 드러났다.

 

<필생검법(必生劒法)>

 

괴상한 제목의 책이었다.

강호의 무공들에는 필살(必殺), 필사(必死) 등의 말은 사용되어도 필생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산다는 것은 그처럼 당연한 것이고 죽거나 죽이는 것이 평상적인 것이 아니기에 그같이 사용되는 것이다.

파락!

두공은 한장의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잠시후,

!

필생검법은 그의 얼굴을 덮고 말았다.

그만 잠들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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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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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얼음속의 殺氣

 

 

 

-대별산맥(大別山脈)!

 

하남(河南)과 호북(湖北), 안휘(安徽)등 삼개성을 경계짓는 장대한 산맥이다.

대별산맥은 광대하기 이를데 없어 그 안에 속한 명산만해도 동백산(冬柏山), 계공산(鷄公山), 작산(雀山), 천주산(天柱山)등 십여개에 이를 정도다.

때는 겨울, 대별산 일대는 천지가 온통 눈으로 덮혀있다.

그 흰눈에 반사된 일광은 토끼의 털을 새까맣게 그을려 놓을 정도로 눈부시다.

한데...

[어 춥다 추워!]

[그러게 말이오. 올해는 유난히 추운 것같소.]

[한데 셋째는 어찌 아무 말도 없는가?]

[낄낄낄... 대형! 나는 벌써 입이 얼어붙었소이다.]

[그럼 말 나오는 데는 방귀나오는 그곳이냐?]

[우하하하하... ]

손에 지팡이를 짚은 세 노인이 눈길을 걸으며 농담을 하고 있었다.

우스개소리를 하고는 있지만 그들은 전혀 추운 것처럼 보이지 않고, 그 풍모는 마치 신선과 같아보였다.

쿡쿡 눌러짚는 지팡이질에도 불구하고 눈위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다.

답설무흔(踏雪無痕)의 경공술을 이렇게 천천히 가면서, 그리고 농담까지 해가면서 펼칠 수 있는 고수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단 말인가?

있다면 아마 그 수효는 열을 넘지 못할 것이고, 어쩌면 그들 외에는 아예 없을 수도 있으리라.

세 노인은 모습이 마치 쌍둥이인 듯 똑같다.

모두가 빛바랜 회색 도포를 입었는데 도포자락이 길어서 발까지 덮혔다. 그 때문에 어쩌면 발이 없는 유령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정도다.

얼굴은 붉으스레하고 눈은 길고 흰 눈썹속에 거의 파뭍혀버렸으며, 석자는 못되어도 두자는 족히 될 것같은 흰 수염은 바람을 따라 춤을 춘다.

나란히 걸어가는 세 노인 중 가장 오른쪽의 노인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독왕동(毒王洞)의 갈늙은이가 우리를 보면 아마 기절초풍할거요.]

[그러면 안되지. 그럼 백로주(白露酒)를 우리가 직접 찾아먹어야 할게 아닌가? 난 이 눈속에서 땅속을 여기저기 파헤치는 건 질색이야.]

가운데 노인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맨 왼쪽의 노인이 버럭 소리를 쳤다.

[이 술도둑놈아! 너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피하는 것아니냐? 네가 술만 적게 훔쳐먹었더라도 우리가 하려는 일들은 훨씬 쉬워졌을 것이다.]

싫은 소리를 들은 가운데 노인이 펄쩍 뛰면서 말했다.

[형님은 어찌 나만 갖고 그러시오? 정작 세상의 인간들이 제일 꺼리는 사람이 형님이라는 걸 왜 모르시오? 무림에서 제일가는 무공(武功) 도둑이 누구인데... !]

가운데 노인의 말은 중간에서 막혀버렸다. 그에게서 형님이라 불린 왼쪽의 노인이 한뭉치의 눈을 그의 입에다 쳐넣어버린 것이다.

!

벼락같은 솜씨로 가운데 눈을 가운데 노인의 입에 밀어넣은 왼쪽 노인이 그의 가슴을 가볍게 치자 꿀꺽 소리가 나며 눈덩어리가 그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렸다.

꼼짝없이 눈덩이를 삼켜버린 가운데 노인은 눈이 빨갛게 될 정도로 화가 났다.

[입을 막는다고 진실이 뚫고 나갈 구멍이 없을 줄 아시오?]

[어디 한번 해봐라. 눈은 대별산을 덮고도 남는다. 진실이라는 것이 나오는 구멍마다 남김없이 막아주마.]

왼쪽 노인은 정말 그렇게 할 기세다.

결국 가운데 노인은 끓어오르는 속을 삭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약간 앞서 걸어가며 속으로 말했다.

(주책바가지같으니...! 겨우 반각 먼저 태어났으면서 형이라고 밤낮...! 그래 형이니까 죽을 때도 아마 먼저 죽을 거야. 이제 그렇게 큰소리치며 살 날도 얼마 남지도 않았을 걸? 올해로 벌써 백서른한살이니까.)

가운데 노인이 당하는 것을 본 오른쪽의 노인은 아예 입을 닫고 있었다.

똑같은 모습의 세 노인이지만 왼쪽의 노인은 아마 이들 사이에서 폭군이나 마찬가지인듯하다.

한데,

휘익!

앞서 나가던 가운데 노인이 갑자기 번개처럼 물러섰다.

[무슨 일이냐?]

좌측의 노인이 물었다.

가운데 노인은 허리에서 요대를 풀어들며 말했다.

[조심하시오. 누군가 앞에 잠복하고 있소. 엄청난 고수요.]

나머지 두 노인은 앞을 주시했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수백년은 묵었을 듯한 한그루 거대한 소나무만이 눈속에 푸른 그림자를 드리우며 오연하게 서있는 것이 다소 별나게 보일 뿐이다. 몇 아름이나 되어 신기(神氣)가 느껴지는 고송(古松)이다.

[거 뭐가 있다고 그러시오?]

막내인 듯한 오른쪽의 노인이 불쑥 앞으로 나서 걸어가며 말했다.

파팟!

그러나 아람들이 소나무 근처에 가자마자 그는 기세당당하게 걸어갔던 것과는 딴판으로 벼락처럼 물러나며 혈죽선(血竹扇)을 펼쳐들었다.

한 겨울에 부채가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하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가볍게 진저리쳤다.

[작은 형 말이 맞소. 감당하기 어려운 살기였소.]

좌측의 노인, 그러니까 이들 세노인 중의 맏이가 굳어진 표정으로 외쳤다.

[어느 방면의 친구가 노부 형제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오?]

[...]

하지만 앞쪽은 여전히 조용하기만 하다.

좌측의 노인은 상대방쪽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무시당한 듯한 기분이들었다.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감히 나 동호천(董湖天) 앞에서 신비한 척을 하다니... 껍질을 벗겨버려야겠다.)

노인의 이름은 동호천이었다.

 

당금무림의 절세고수들을 꼽으라면 누구든지 이정(二正)과 삼사(三邪), 그리고 오객(五客)을 꼽는다.

그들 십인(十人)의 무공은 천하에서 상대할 고수가 없으리라고 말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천하인들이 삼노(三老)를 제쳐놓고 말할 때 뿐이다.

젊었을 때는 삼괴(三怪)로 불리웠으며 늙어서는 삼노로 불린 인물들,

그들 중의 첫째는 무치(武痴) 동호천(董湖天)이며,

둘째는 주치(酒痴) 동복신(董福身)이고,

셋째는 보치(寶痴) 동적선(董積善)이다.

이들 삼노는 전대의 고수들로 무림에서 행동할 때 기괴하기 이를데 없었으나 어느 누구도 그들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주치 동복신과 보치 동적선의 무공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지만 무치 동호천의 무공은 전설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동호천은 싸우려는 상대방이 펼칠 무공을 먼저 펼쳐보이는 인물이다.

그것도 상대방보다 더욱 완벽하게 상대방의 비전절예를 펼쳐보인다.

그리하여 싸우기도 전에 상대가 기가 질려 물러나게 하고야 만다.

남과 직접 싸우는 경우가 없었기에 그를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으로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고수들일 수록 그를 두려워하고 천하제일인으로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무공이 약한 사람들은 그가 보잘 것 없는 무공을 펼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천하에 손꼽히는 고수들은 동호천이 그들 자신의 절세적인 무공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삼류무공처럼 간단히 펼쳐내는 것을 보았다.

동호천은 살아있는 전설이며 숨쉬는 신화이기도 하다.

성품은 낙천적이고 소탈하지만 그의 무공은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한다.

동호천은 그런 인물인 것이다.

 

동호천은 슬쩍 몸을 흔들었다.

스읏!

그 순간 이미 그의 몸은 굵은 소나무 앞으로 다가가 있었다.

뒤에서 동복신과 동적선이 소리쳤다.

[조심하시오. 형님도 감당하지 못할 지 모르겠소.]

(저런 죽일 놈들!)

동호천은 야유하는 동생들에게 눈을 흘기고는 번개처럼 빠르게 소나무 뒤로 돌았다.

몇 아름은 되는 굵은 소나무 둥치에 가려져 동호천의 모습이 다른 두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뒤에 누가 있소?”

동복신이 소나무쪽에 대고 외쳤다.

하지만 소나무 뒤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동복신과 동적선의 비슷하게 생긴 얼굴이 서로를 돌아보며 찡그려졌다.

파팟!

잠시 더 동호천의 대답을 기다리던 동복신과 동적선이 동시에 몸을 날려 허공에 흰 선을 그리면서 소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공력을 모두 끌어올린 두사람의 옷은 마치 철판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나무에 다가갔을때 예의 살기가 다시 두사람의 심장을 얼릴 듯 느껴졌다.

[차앗!]

둘째인 동복신의 손에서 요대가 빳빳하게 펼쳐지며 새파란 검기를 뿜었다.

그와 동시에 막내 동적선의 부채도 허공을 갈랐다.

번쩍!

실로 귀신같은 빠르기며 태풍처럼 강한 위력을 지닌 공격들이었다.

순간,

[멈춰!]

갑자기 동호천의 음성이 소나무 뒤에서 터져나왔다.

파팍!

이어 백색원반 하나가 선을 그리며 날아와 두사람의 공격을 차단했다.

동복신과 동적선이 병기를 거두며 소나무를 돌아 옆으로 날아내렸다.

그들의 눈에 소나무를 살펴보던 동호천이 접시를 손에 받아드는 것을 보였다. 동호천은 접시로 자신들의 공격을 막아냈던 것이었다.

동호천의 눈은 여전히 한아름 가득 될 소나무에 고정되어 있었다. 살기는 바로 그 아람들이 소나무로부터 뿜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나무의 중간쯤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 구멍은 눈이 녹아 얼은 얼음으로 막혀있었다.

그러나 동호천의 눈은 뿌연 얼음 속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얼음 속에는 불과 예닐곱 살쯤 되었을까 싶은 어린 아이가 눈을 부릅뜨고 있지 않은가?

동적선이 어이가 없어 물었다.

[이 끔찍한 살기(殺氣)를 아이의 시체가 발하고 있단 말이오?]

[아직 시체라고 말할 순 없다.]

동호천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동복신이 다시 물었다.

[심장이 멎고 피가 얼어붙을 정도인데도 시체가 아니오?]

[멍텅구리들. 그러니까 무공이 늘지를 않지. 살기를 내뿜을 수 있다는 건 정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살기는 내공(內功)이나 마찬가지로 정신력의 결집이 아니더냐?]

동호천이 두 동생을 욕하며 말했다.

그리고 소매를 칼날처럼 세워 소나무를 베어 넘겨뜨렸다.

우두두두!

세사람의 장정이 안아도 다 안을 수 없을 것같던 우람한 소나무는 얼음으로 막힌 작은 구멍의 윗부분에서 베어져 버렸다.

또한, 아랫부분도 잘라져 어린 아이의 시체가 있는 부분만이 따로 분리되었다.

동호천은 그 통나무토막을 끌어안았다.

[살아날 수만 있다면 이 아이는 이십세 전에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다. 또한, 오십세가 되기 전에 고금제일인이 될 것이다.]

동호천의 말에 동복신과 동적선이 입을 딱 벌렸다.

화라라락!

그 사이에 동호천은 이미 몸을 날리고 있었다.

[따라 오너라. 동왕동 갈영감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아무 일도 안된다.]

 

× × ×

 

단촐하게 꾸며진 석실(石室),

탁자를 가운데 두고 네 명의 노인이 둘러앉아있다.

그런데 그 탁자위에 놓여있는 것은 음주가효도 아닌, 얼어붙은 하나의 나무토막이었다. 바로 동호천이 가지고 온 아이가 들어있는 소나무 토막인 것이다.

스으! 스으!

나무토막, 아니 그 속에 얼어붙은 아이는 여전히 가공할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동호천등 삼노의 맞은 편에는 머리카락이라고는 한오라기도 없는 독두옹(禿頭翁)이 앉아있다.

그가 바로 무림인들이 상종조차 하기를 꺼리는 독왕동(毒王洞)의 동주 독왕(毒王) 갈천상(葛天祥)이다.

 

[동대형(董大兄)한테는 미안하지만 안되겠소. 섣불리 녹이려다가는 아주 부숴버리고 말게요. 내 생각에는 양지바른 쪽에 묻어주는 게 좋을 것 같구려.]

나무토막을 살펴본 독왕 갈천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무림인들이 가장 꺼리는 인간이라는 독왕 갈천상이지만 세상 밖의 존재같이 여겨지는 삼로 앞에서는 본래의 괴팍한 성질을 억지로라도 죽일 수밖에 없다.

묻어주라?”

독왕 갈천상을 주시하고 있던 동호천의 눈이 은은한 노기를 나타냈다.

그의 칼날같은 눈빛을 받은 갈천상이 흠칫했다.

동호천은 손을 탁자위에 얹어놓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삼십년 전... 단혼곡주(斷魂谷主) 하삼풍(夏三馮)의 아들을 살해하고 그가 지녔던 단혼검(斷魂劒)을 챙겼던 자가 있었지. 아무도 그 흉수를 몰랐고, 또한 하삼풍이 길길이 날뛰며 조사했어도 흉수의 그림자도 볼수 없어 그 사건은 미궁속에 빠져버렸었지.]

갑자기 갈천상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눈빛은 경악으로 가득 차있었다.

동복신이 물었다.

[갑자기 그 무슨말이오? 단혼곡의 하삼풍의 이름이 지금 여기서 왜 나와?]

동호천은 대답대신 입다물고 있으라는 눈총을 쏘아보냈다.

그리고 계속 말했다.

[지금도 하삼풍은 아들의 흉수를 찾기위해 이를 갈고 있다더군. 어쩌면 대충 감을 잡고 있을지도 모르지. 더구나 내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말이야.]

[동대형은 내가 그 흉수란 말이오?]

갈천상은 노기를 억누르며 말했다.

동호천은 단지 입가에 미소만 지어 보였을 뿐이고 동복신과 동적선은 놀란 표정이었다.

!

갈천상이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

[한번 말해보시오!]

탁자가 한자정도 내려앉아버렸다.

하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갈천상의 내공에 의해 다리가 바닥을 뚫고 들어간 것이었다. 나무로 만든 탁자를 두드려 돌로 된 바닥을 뚫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공력이었다.

돌연, 동호천은 어깨를 펴면서 말했다.

[갈천상... 단혼검을 지녔다고 해서 큰소리치는 건가?]

느릿한 음성이다.

그러나, 동호천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무형의 기운은 태산이 방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다.

[!]

갈천상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 두걸음이나 물러났다.

동호천이 갑자기 너무 커보였던 것이다.

동호천이 위압적인 음성으로 말했다.

[네게 단혼검이 있음은 알고 있다. 그리고, 단혼검보다도 더 중요한 오독패혼경(五毒覇魂經)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

[그런 것들 보다는 아마도 네 목숨이 더 중요하겠지.]

갈천상은 식은 땀을 흘렸다.

설마 동호천이 아무리 무치(武痴), 만나면 숨길 수 있는 무공이 없다는 무치라고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드러내본 적이 없는 오독패혼경과 단혼검의 존재까지 알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미 발뺌하기도 틀렸다.

갈천상은 탄식하며 말했다.

[동대형, 무엇을 원하시오?]

[처음엔 오독패혼경만을 원했다.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그러나 자네는 말을 그르쳤네. 오독패혼경으로 이 아이를 살릴 뿐만 아니라 단혼검도 이 아이에게 주게.]

단호하게 내뱉는 동호천의 말은 하늘과 땅이 뒤집어진다고 해도 번복되지 않을 듯이 들렸다.

동복신과 동적선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대충 짐작하고 갈천상을 마치 딴사람처럼 보고 있었다.

갈천상은 그들과 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끔 만나는 사람으로 무림의 일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 자였다.

또한, 제자도 기르지 않고 아내도 없이 언제나 혼자 사는 괴팍한 노인이다.

그런데 그가 당금무림의 십대고수(十大高手)중 삼사(三邪)에 속하는 단혼곡주 하삼풍의 아들을 죽이고 단혼검을 빼앗았다지 않은가?

동복신 등은 그럴리가 있나 하는 눈빛으로 갈천상을 바라보았다.

갈천상은 도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동대형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소만, 단혼검은 내가 보관하고 있소. 그러나 맹세하건데 하삼풍의 아들은 절대 내가 죽이지 않았소.]

동호천이 빙그레 웃었다.

[나는 자네가 내 말에 따르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세. 내 아우들도 마찬가지고.]

[그렇고 말고요.]

형의 눈빛을 받은 동적선이 제빨리 대답했다.

갈천상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일어섰다.

[아이를 들고 따라오시오.]

갈천상은 석실의 한쪽 벽으로 다가가 양손으로 밀었다.

그그긍!

갑자기 벽이 빙글 돌면서 그의 몸이 석벽안으로 사라졌다.

동호천 등은 그를 따라 들어갔다.

 

석벽 안쪽은 어두침침한 동굴이었다.

자연석동(自然石洞)을 약간 개조한 듯, 여기저기 깎여진 바위들이 보였다.

그렇지만 동굴의 낮은 천정은 허리를 숙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약간 들어가다보니 향기로운 냄새가 동굴속에서부터 풍겨나왔다. 폐부를 시원하게 해주는 맑은 향기였다.

[갈동주는 영약을 기르는 모양이군.]

술을 밥보다도 더 좋아하는 주치(酒痴) 동복신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내게 영약이라는 것은 오로지 독이 아니오? 지금 이 향기는 백송(白松)에서 채취한 망아독균(忘我毒菌)에서 나오는 것이오.]

심사가 꼬일대로 꼬여있는 갈천상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동복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향기에 독은 없는 것같은데?]

[그것이 무서운 점이라오. 망아독균은 밖에서는 독균이라고 할 수도 없소. 하지만 복용하여 사람이나 짐승의 배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때부터 무서운 독이 되는 것이오.]

[한데 어째서 망아독균이오?]

말없이 듣고 있던 동적선이 불쑥 물었다.

갈천상은 동굴의 두갈래로 갈라진 부분에 이르러 우측의 동굴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것을 먹는 순간부터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오. 자신을 잊는것은 물론이고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심지어 움직이는 것조차 잊어버리니, 한마디로 그것을 먹는 순간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거요.]

우측 동굴의 안쪽은 커다란 석문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그긍!

석문은 갈천상이 동굴 천정의 한곳을 지풍으로 누르자 안쪽으로 열렸다.

석문이 열리며 들어난 곳은 한칸의 넓직한 석실로써 가운데에는 석대(石臺)가 하나 놓여져 있고 사면 벽에는 선반들이 얹혀져 있는데, 그 선반 위에는 수백, 수천개에 달할 것같은 병들이 놓여 있다.

또한 선반 아래쪽에는 괴이한 기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책들과 함께 놓여 있었다.

갈래진 두 동굴 중에서 하나는 독물(毒物)을 기르는 곳으로 사용하고 이곳은 독왕이 무공과 독을 연구하는 장소로 쓰고 있었다.

갈천상은 중앙의 석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은 아이를 꺼내서 저기에 놓으시오.]

동호천은 수도(手刀)를 사용해서 마치 조각을 하듯이 소나무와 얼음을 베어내고 아이를 꺼냈다.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으며 눈을 부릅뜨고 꽁꽁 얼어있는 이 아이는 많아야 칠세 정도로 보이는 사내아이였다.

[!]

아이의 모습이 들어나는 순간 동복신이 감탄을 발했다.

갈천상 역시 약을 잡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아이를 쳐다보았다.

[놀랍군. 천년무골이야.]

동호천이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아름답게까지 보이는 어린 아이는 그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비록 얼어붙어 있기는 하지만...

한데 동적선이 분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누군가 아주 지독한 짓을 했어. 일부러 눈으로 이 아이를 덮어서 죽게 했소.]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소.]

갈천상은 뻣뻣하게 쭈그리고 앉아 있는 소년을 모로 눕히며 말했다.

[살리고 싶다면 지금부터는 모두 내말을 들어야 하오. 일단 동대형께서 아이의 용천혈(龍泉穴)로 서서히 내공을 주입해 주시오.]

동호천은 즉시 소년의 발을 잡았다.

갈천상은 또 말했다.

[동둘째형께서는 샘물을 길어다 주시오. 동세째형은 내가 시키는 대로 금침(金針)을 꽂아주시오.]

네사람은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갈천상은 오독패혼경상의 구결을 이용하여 다섯가지의 독을 소년의 심장(心臟)에 직접 주입했다.

심장은 피마저 얼어붙었기에, 속이 빈 구리대롱을 뜨겁게 가열하여 구멍을 뚫어도 피가 나지 않았다.

그 구리대롱을 통하여 독이 흘러들어갔다.

치이이익!

마지막 독이 들어갔을때는 구리대롱마저 녹아서 소년의 가슴에 누렇게 덮혔다.

갈천상은 즉시 소년의 천령개에 손을 얹고는 오독패혼공(五毒覇魂功)을 운용했다.

피조차 흐르지 않는 소년의 몸은 두사람의 경이적인 고수의 내공이 움직이고 있었다.

먼저 용천혈에서 부터 경략을 뚫고 올라간 동호천의 공력은 거의 모든 폐쇄된 기혈을 타통시키고 있었고,

그 뒤를 따라서 갈천상의 오독패혼공이 소년의 몸속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갈천상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우리 세사람을 동시에 물속에... ]

그가 말하자마자 동적선이 공력으로 그들을 띄워올려 동복신이 준비한 큰 통속에 담갔다.

출렁!

통속에 가득하던 차가운 물이 바닥으로 넘쳐흘렀다.

갈천상의 입이 다시 열렸다.

[빨리 금침을...]

동적선은 금침합을 손에들고 뚜껑을 열었다.

갈천상이 말했다.

[천돌(天突)에 두치 이푼!]

즉시 동적선의 손에서 금침이 날았다.

파앗!

한줄기 황금빛을 뿌리며 날아간 금침은 정확하게 소년의 천돌혈에 가서 두치이푼의 깊이로 박혔다.

갈천상의 말은 계속되었다.

[화개(華蓋) 한치... 영허(靈墟)에 반푼... ]

그의 말에 따라 금침은 선을 그리며 날아가 벌거벗은 어린 소년의 몸에 차곡차곡 꽂혀들었고, 금새 소년은 고슴도치와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차가운 물은 소년의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고 있었고 금침과 오독패혼공의 공력은 다섯가지의 극독으로부터 소년의 몸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몸이 녹음에 따라서 피도 따라서 녹으며 얼어붙은 심장도 녹기 시작했다.

갈천상이 말했다.

[이제 동대형은 손을 떼도 좋소이다.]

동호천은 즉시 손을 뗐다.

갈천상도 손을 떼고 일어서면서 동적선의 손에서 금침을 받아 소년의 심장에 꽂았다.

[!]

동복신과 동적선이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소년의 심장에 꽂힌 금침은 무려 다섯 치나 되는 큰 것이다.

한데 갈천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그와 똑같은 침을 하나더 그 옆에 꽂는 것이었다. 그것도 더 깊이...

[이젠 거의 다 되었소. 하지만 성공할지는 오직 하늘만이 아실 것이오.]

갈천상은 중얼거리며 금침에다가 가느다란 철사를 두개 연결했다.

그리고 그 철사의 다른 끝에는 각기 이상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동라(銅螺)가 매달려 있었다.

갈천상은 그것을 동호천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두개의 동라를 서로 부딛히게 하시오. 공력을 높혀서.]

...

동호천은 동라를 부딛혀 소리가 나게했다.

한데 그순간 물속에 드러누워 있던 소년의 머리가 쭈삣 서면서 몸이 펄쩍 하는 것이 아닌가?

갈천상이 놀라며 말했다.

[이런!]

그는 황급히 소년을 다시 석대위에 눕혔다.

[하마터면... 다시 한번 해보시오.]

...!

소년의 몸은 다시 펄쩍 한번 뛰었으나 여전히 아무 변화가 없었다.

갈천상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어렸다.

그는 팍팍한 음성으로 말했다.

[다시!]

...!

소년의 몸이 다시 뛰었다.

동호천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소년의 생명을 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공력을 더욱 높혀서 동라를 울렸다.

... ...!

석실이 터져나갈 듯했다.

퍽퍽퍽!

파파파파팍!

사면 벽에 있던 병들이 일제히 터져나가며 독가루가 석실에 가득 날렸다.

하지만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그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갈천상은 악을 쓰듯 소리쳤고, 동호천은 오성(五成)의 공력으로 동라를 두들겼다.

...!

천정의 돌부스러기가 부스스 쏟아졌다.

한데 이때였다.

푸악!

소년의 입에서 한사발은 족히 될 것같은 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휴우...!]

소년은 긴 숨을 쉬면서 사르르 눈을 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감돌던 무시무시한 살기도 어느새 사그라지고 없었다.

동복신이 소리쳤다.

[살았다!]

갈천상은 털썩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쏟아졌던 독물이 그의 옷에 스며들어 노랗게 변했다.

동호천은 그의 손을 잡으며 크게 웃었다.

[껄껄껄... 갈형! 정말 수고 많았소이다.]

[! 그말은 고마우나 나는 이제 동대형을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싶소. 사람을 이렇게 삶을 수가 있소? 하삼풍의 아들은 내가 죽인게 아니란 말이오.]

갈천상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동복신이 웃으며 말했다.

[갈형! 우리가 하삼풍과 특별한 친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얼 염려하신단 말이오? 또한 갈형이 어떤 다른 욕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소이다.]

[정말이요. 나는 하삼풍의 아들을 죽이지 않았소. 단혼검은 그야말로 우연히 내손에 들어온 것이오. 하삼풍에게 돌려줄까도 생각했었지만 그가 나를 믿어주지 않을 것같아서 그만둔 것이고....]

갈천상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갑자기 동호천이 크게 웃었다.

[허허허허... ]

[...?]

[...?]

갈천상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동대형은 내가 지금 거짓말 하고 있는 것같소?]

[아니 아니, 그게 거짓이 아니라는 건 내가 잘 알고 있지.]

동호천의 말에 갈천상이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동대형께서 어떻게...?]

[하삼풍의 아들은 내가 죽였네.]

동호천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갈천상과 동복신 등이 아연실색을 했다.

그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잠시 후 갈천상이 먼저 말했다.

[.... 당신도 살인을 하시오?]

그의 물음은 지당했다.

다른 무림인에게라면 우스울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최소한 동호천에게는 그러했다.

동호천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상하게 해본 적도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동호천이 말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놈이 스스로 죽었다고도 할 수 있지. 놈은 감히 노부를 암습했어. 그게 그 망나니가 죽은 이유일세.]

동적선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형님의 호신강기(護身罡氣)에 반탄되어서?]

동호천의 머리가 끄덕여졌다.

그랬군. 어쩐지...”

갈천상이 고개를 연방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그때 절벽 아래를 지나다가 온몸이 으스러진 채 떨어지는 시체를 하나 받았는데 그 시체가 단혼검을 가지고 있었소. 나중에 알았지만 그게 하삼풍의 아들이었소. 한데 그때 그놈은 이미 내장이 조각조각나있어서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었소. 그래서 나는 그를 묻어주고 단혼검만을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오.]

[노부는 그때 절벽 위에 서서 갈동주가 단혼검을 얻는 것을 보고 그냥 떠나버렸지. 그때문에 내가 갈동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이고.... 허허허]

동호천은 다시 한번 호탕하게 웃었다.

갈천상이 볼 메인 소리를 했다.

[그럼 손상된 내 오독패혼공은 어떻게 해주겠소? 동대형의 협박에 속아 넘어가는 바람에 사십년을 수행한 공력이 십년 수준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소.]

[그것 가지고 뭘그러시나. 자 내가 좋은 술을 대접합세. 밖에 이미 준비해놨으니 나가세.]

동복신이 갈천상의 어깨를 툭치면서 말했다.

순간 갈천상의 안색이 홱 바꿨다.

[혹시...?]

[왜 아니겠소? 천일백로주(千一白露酒), 자네가 뒷쪽 석벽의 샘물 아래 숨겨놓은 천일백로주일세.]

동복신, 술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별명을 가진 그답게 어느틈에 술을 찾아서 준비해놓고 왔던 것이었다.

번쩍!

갈천상이 번개처럼 동굴을 빠져 나갔다.

동복신이 뒤에서 걸어가며 느긋하게 말했다.

[그래봤자 소용없을걸? 쏟아버리지 않는한 어느 곳에 숨기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내 별호가 주치(酒痴).]

동호천 등은 나가고 석대에는 발가벗겨진 어린 소년만이 고른 숨을 쉬면서 잠들어 있었다.

터져버린 약병에서 쏟아져 나온 독들이 석실을 떠다니는데...

 

* * *

 

동호천은 초랑초랑한 눈망울의 귀여운 소년의 손을 잡으면서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

소년은 빤히 동호천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그는 미소만 지어보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동호천은 당황하여 갈천상을 보았다.

갈천상도 의외인 표정이었다.

소년은 이번에는 동복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동적선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도 똑같이 생긴 사람이 셋이나 있다는 것이 사뭇 이상한 모양이었다.

동호천이 그의 손을 살짝 끌어당겨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물었다.

[얘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네 부모님은 누구시냐?]

[?]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떠면서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그래.]

[나도 몰라. 모르겠는걸?]

소년은 고개를 흔들고는 갈천상을 보며 킥킥 웃었다.

갈천상의 대머리가 또 우스운 모양이었다.

동복신이 기막힌 듯이 물었다.

[이 아이가 어제 그 아이가 분명한가? 혹시 바뀌진 않았나?]

그럴리가 없다는 것은 자신도 잘 알고 있지만 물음은 그렇게 나왔다.

갈천상이 눈을 감고 고개를 비틀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호흡을 오랫동안 하지 못하여 뇌가 손상된 것같소. 숨을 쉬지 못하게 되면 제일 먼저 손상받는 부위가 바로 머리 속의 뇌요.]

[그럼 이 아이가 바보천치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동적선이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갈천상이 탄식했다.

[아마도 우리는 헛수고를 한 것같소. 차라리 고이 죽도록 놔두는 것을...]

[함부로 말하지 말게. 이 아이의 눈을 보고도 그런말이 나오는가? 여전히 맑고 총명해. 나는 이처럼 지혜로 가득한 눈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네. 자네는 이처럼 빛나는 눈을 가진 바보를 보았는가?]

동호천이 노기띤 음성으로 말했다.

갈천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동대형, 헛고생하지 마시오. 한번이면 족하오. 내가 독을 만지기는 하지만 의술에 대해서도 아마 동대형보다는 나을 거요. 자세히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이 아이의 뇌 기능 중의 태반은 마비되었을 것이오.]

[말씨름할 게 뭐있소? 직접 해보면 될 것을... ]

동적선이 말하며 탁자에 일자(一字)를 죽 긋고 물었다.

[얘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지평선(地平線)! 지평선이네.]

소년이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음성이 아주 맑고 깨끗하여 듣기 좋았다.

동호천 등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동적선은 다시 일자에 한획을 더 첨가해서 이자(二字)를 만들었다.

[이건 뭐냐?]

[계단!]

소년이 재빨리 대답했다.

갈천상이 그것보라는 듯이 동호천을 힐끗 보았다.

동호천이 말했다.

[아직 어려서 글자를 배우지 않았을 수도 있지않나. 다른 걸 물어봐라.]

[그래봤자 헛소고일 것이오. 옷차림이나 골격으로 봐서 속된 가문의 자식은 아니오. 아직 글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되지 않소.]

갈천상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동호천은 그의 말을 못들은 척하고 소년에게 물었다.

[두사람이 있단다. 그런데 다시 두사람이 더 왔단다. 그럼 모두 몇사람이 있느냐?]

[두사람!]

소년이 즉시 대답했다.

동호천은 다시 물었다.

[일곱개는 다섯개보다 많으냐 적으냐?]

[다섯개.]

소년은 이번에도 주저없이 말했다.

동호천은 속이 터질 듯한 것을 참으며 다시 물었다.

[일곱개는 다섯개보다 많으냐 적으냐? 많으냐 적으냐?]

[일곱개.]

소년의 대답에 동복신이 술을 들이키며 한숨을 쉬었다.

[! 형님, 이제 그만하시오. 갈형의 말이 맞는 모양이오. 천고(千古)의 인재(人才)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하늘도 무심하구려.]

동호천은 벌떡 일어서며 갈천상을 향해 물었다.

[어떤 방법이 없겠나? 영약이나 아니면 다른 어떤 거라도...]

[내가 알기론 그런 약이나 치료방법은 없소. 그러나... ]

갈천상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건 원래의 백치와는 다르오. 만약 잘 먹고, 게다가 본인이 계속 노력한다면 어느 정도 극복될 수도 있는 것이오.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가능할런지...]

[그정도만도 됐네.]

동호천은 소년을 앉아들었다.

그는 갈천상에게 말했다.

[언제고 다시 오겠네.]

파앗!

그는 마치 연기처럼 그자리에서 꺼져버렸다.

동복신과 동적선도 일어서며 갈천상에게 몇마디 인사를 건네고는 즉시 달려나갔다.

갈천상이 소리쳤다.

[단혼검은 가져가지 않으시오?]

[훗날 이 아이가 오거든 주게나.]

동호천이 천리전음으로 답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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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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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폭풍탑은 1994년에 박스본으로 출간했던 작품입니다.*** 

 

 

와룡강 기정무협소설

 

     천신폭풍탑 天神暴風塔

 

 

 

卷頭 蛇足

 

이번 작품은 옥총서생(玉葱書生;옥수수)같은 내용이다.

껍질을 하나씩 벗겨가다 보면 점점 거대한 그 무엇에 만나게 되고 전체를 통괄하는 커다란 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설정된 하나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주인공의 우여곡절과 운명을 만나게 될 것이다.

주인공은 분명히 강하다.

하지만 그보다 강한 자도 존재한다.

신비하기 이를데 없는 천신폭풍탑(天神暴風塔)을 만든 폭풍무존(暴風武尊)의 무공은 고금제일이며, 그는 천년의 시간을 격하고도 여전히 살아있다.

폭풍무존뿐만 아니라 독존패왕궁의 궁주인 혁련무적(赫連無敵) 역시 주인공보다 강하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정신적인 불구를 딛고 일어서면서도 오직 무림의 평화라는 하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청년의 정열(情熱)이 그에게는 있다.

자신의 신념을 결코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보다 강한 적에 맞서는 청년의 패기(覇氣)가 있다.

정체를 모르는 여인과의 사랑에 자신을 내맡기는 무모함이 있다.

때로는 소중한 시간을 무심코 흘려버리는 어리석음을 보일 때도 있고, 주어진 상황에 끌려가는 소극성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는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리석을 때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소극적일때는 소극적이라는 것을 안다.

능력이상으로 자만하지도 않으며, 능력이상의 과욕도 부리지 않는다.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그의 의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무림의 흐림을 바꾸어 놓는 대역사를 이룬다.

부분적으로 흥미를 돋구기 위한 내용도 들어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관대한 독자라면 작은 것에 치우쳐 창의성을 비웃는 그런 일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본저자는 과분하게도 어떤 칭찬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무협이란 전적으로 재미를 만들기 위해 쓰는 것이고, 독자는 재미를 위해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혹 저자의 생각이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어도 세권의 책에 단 한마디의 말도 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본 저자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독자제현께서 이 작품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모든 복잡한 것을 잊어버리고 재미있게 봐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작은 바람은 어느 정도 충족되리라 기대하면서 독자제현에 대한 인사를 마친다.

 

 

 

 

 

 

序章

 

           恩世正劍會 獨尊覇王宮

 

 

 

<은세정검회(恩世正劍會)!>

 

그것은 환상(幻想)의 전설이다.

아니, 절대의 의미를 지닌 하나의 신앙체(信仰體).

이른바 무림평화의 암중수호전(暗中守護殿)이라는 은세정검회.....

전설은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정도무림(正道武林)의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극강의 사마(邪魔)가 창궐하여 천하가 수습할 수 없는 위기에 빠져들 때... 그때 비로소 은세정검회는 나타난다.

 

-대정수호(大正守護)의 대명(大命) 아래, 이름없는 범인(凡人)으로 세상 곳곳에 숨어있는 은세정검회의 은자(隱者)...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들이며, 하나같이 진정한 무예를 일신에 지닌 개세고수들이다.

 

이같은 전설은 이미 천년 이전부터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은세정검회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과연 그들이 현실로 존재하고 있는지 조차 자신있게 장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은세정검회란 그저 환상처럼 아스라이 떠도는 전설속의 이름일 뿐이고... 이제는 그같은 전설이 있었다는 사실마저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독존패왕궁(獨尊覇王宮)!>

 

사마(邪魔)의 창궐을 막으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은세정검회라면,

그러한 은세정검회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는 신비한 세력이 있으니 바로 독존패왕궁이다.

완벽한 무림지배의 힘을 갖추어 놓고서 그들의 숙적인 은세정검회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독존패왕궁...

먼저 나서는 자는 필연적으로 당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독존패왕궁은 길고도 오랜 세월을 은세정검회를 대비하며 그늘 속에 숨어있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은 은세정검회마저 잊어버렸거늘 어찌 독존패왕궁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천하를 어둠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가공할 힘이 존재하고 있음을 세상은 모르고 있었다.

 

-은세정검회!

-독존패왕궁!

 

이들은 과연 지금도 존재하는가?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다.

무림에는 무수한 세력과 고수들이 명멸해 갔지만 그들은 아직 한번도 그 전모를 들어내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 *

 

그곳은 죽음의 마역(魔域)이다.

오직 죽음 밖에 존재하지 않는, 오직 죽음의 귀기만이 자욱이 흐르고 있는...!

사시사철 항상 짙은 운무에 뒤덮여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으며 낮에는 죽음의 열기(熱氣), 밤에는 죽음의 한기(寒氣)가 뿜어져 나와 접근하는 일체의 생명체를 사체로 만들고야 마는 그야말로 절대의 사역(死域)이다.

 

<이기소혼곡(二氣燒魂谷)>

 

대자연의 신비한 힘이 만들어놓은 지상의 지옥(地獄)!

그러나, 그곳이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그같은 곳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빛바랜 옛 고서에 간간히 보일 뿐이다.

하물며 그 절대의 사지 속에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고오오오...!

문득 여명의 아침 하늘을 갈가리 찢어내며 장엄한 붕조(鵬鳥)의 울음소리가 신비롭게 울려퍼졌다.

안휘성(安徽省) 외곽에 자리한 구화산(九華山),

칼끝같이 늘어선 구화산의 수천 군봉 위로 한 마리 거대한 붕조의 자태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설의 만금지왕(萬禽之王)인 묵령신조(墨翎神鳥)였다.

묵령신조는 오백여 년 전에 존재했던 마도(魔道)의 하늘 마중천(魔重天)의 상징이었으며, 대대로 마중천의 지존인 마중천주(魔重天主)와 영()으로 통해있다는 전설속의 신조다.

콰아아아!

묵령신조는 자태를 드러냄과 동시 불가사의한 속도로 이기소혼곡으로 내려 앉았다.

“....!”

깍아지른 듯한 양쪽 절벽이 하늘까지 가리운 채 침침한 어둠을 형성하고 있는 이곳에 내려선 묵령신조의 등에는 마치 태양같은 신위를 보이고 있는 인물이 우뚝 서있었다.

붉은 얼굴에 배꼽어림까지 늘어뜨린 검은 수염은 그를 미염공(美髥公)이라 칭할수 있을 만큼 기품이 있어보였다.

미염의 노인은 묵령신조의 등에서 천천히 내려섰다.

그의 품에는 어린 소녀가 안겨 있었다. 곤히 잠들은 듯 보이는 그소녀는 정말이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소녀는 입가에 화사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불과 열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지만은 몸매의 조형미는 완벽, 아니 그 이상이었다.

뿐인가?

만지면 묻어나기라도 할 듯 곱고 투명한 피부하며... 한 나라도 위태롭게 만든다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바로 이런 아름다움을 두고 생겨난 말이리라.

미소녀를 안은 미염공은 무거운 긴장이 감도는 시선으로 협곡 저편의 자욱한 홍무가 감도는 곳을 주시했다.

"이기소혼곡... 이곳이다."

 

-이기소혼곡!

 

그렇다. 묵령신조가 내려선 이 협곡의 저편이 바로 이기소혼곡이었다.

개벽(開闢)의 혼돈(混沌)이 아직 살아숨쉬고 있다는 전설속의 그 비역이 바로 이곳 구화산에 자리하고 있엇던 것이다.

미염공은 비감한 표정으로 자신의 품안에서 잠들어있는 미소녀를 내려다 보았다.

"자(紫鳳)! 네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라면... 너는 저곳에서 새롭게 태어나야만 한다. 이제 너는 이십세가 될때까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마중천...! 오직 마중천에 이르러야만 진정한 너를 되찾게 된다."

소녀는 대답이 없다. 달콤한 꿈에 젖었는지 얼굴 가득 미소만 지으며 곤히 자고 있을 뿐이었다.

미염공의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품에서 자그마한 백색 화살을 꺼냈다.

"은세초혼전(隱世招魂箭)! 자봉아! 너를 마굴(魔窟)로 던져야 하는 이 할애비를 용서하거라."

미염공의 음성은 가늘게 떨렸다.

!

갑자기 은세초혼전이 소녀의 심장에 깊이 박혔다.

“....!”

순간 소녀는 눈을 부릅떴으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이내 축 늘어져 버렸다.

 

잠시후,

꾸우!

묵령신조는 소녀의 곁에서 구슬픈 듯이 울었고, 노인은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경공을 펼쳐 이기소혼곡을 벗어나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죽어버린 소녀의 손에는 뜯어진 서찰이 하나 쥐어져 있었다.

그 서찰의 내용은 이러했다.

 

<마중천주(魔重天主) 황자강(黃自强)이 삼가 존귀하신 독존패왕궁(獨尊覇王宮)의 지존께 만배를 올리오며...

-중략(中略)-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

-중략(中略)-

부디 은세정검회(恩世正劍會)을 멸하여 사무친 복수를 해주시기를... (下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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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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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二覇滅絶

 

 

 

"흐흐흐...!"

돌연, 음침한 웃음소리가 일었다.

"!"

철문영과 여섯 노인은 흠칫 하며 몸을 멈추었다.

휘익!

동시에 두 명의 괴인이 그들 앞에 날아내렸다.

두 괴인은 일신에 적포를 걸치고 있는데 얼굴전체가 불덩어리같이 시뻘겠다.

그들을 본 여섯 노인의 안색이 홱 변했다.

"... 열화쌍괴(熱火雙怪)!"

노인들의 경악성에 철문영도 흠칫 했다.

 

열화쌍괴(熱火雙怪).

 

그자들은 삼마(三魔), 삼괴(三怪)가 활동하던 일갑자 전의 괴인들이다.

성격들이 제멋대로들이라 상대하기 극히 까다로운 자들이다.

거기다가 그들의 열화소천신공(熱火燒天神功)을 극양의 기공으로 적수가 드문 공력이다.

죽었는 줄 알았던 그 노괴물들이 돌연 구련산에 나타난 것이다.

 

"애송아, 신호하면 먼저 약속장소로 달려가거라."

한 노인이 전음을 보내자 철문영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한 노인이 열화쌍괴에게 포권을 해보이며 입을 열었다.

"두분 선배님께서는 무슨 분부가 있으셔서 후배들을 부르셨는지요?"

노인의 말에 오른쪽의 괴인이 눈을 부릅떴다.

"흐흐... 잔소리는 듣기 싫다. 순순히 말로 할 때 열양만정과를 내놓아라!"

노인은 시침을 뚝 떼었다.

"후배는 선배님들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괴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듣기 싫다. 우리는 저 애송이 놈이 열양만정과를 지니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열양만정과는 본 어르신네들께서 독염마강(毒炎魔罡)을 익히는데 사용할 것이다. 잔말말고 내놓아라!"

괴인의 호통에 노인들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빙혼신군, 그 육시를 할 놈이 이 노괴물들을 불러내었군.)

노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랏!"

뒤미처 한 노인이 철문영을 향해 일갈했다.

스스스

즉시 철문영은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이놈들!"

열화쌍괴가 대노하여 철문영을 덮쳐가려고 하였다.

"어딜!"

여섯 노인이 폭갈하며 열화쌍괴를 막았다.

그사이 철문영은 이미 맞은편 숲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모조리 태워죽이리라!"

철문영이 사라지자 열화쌍괴는 길길이 날뛰며 여섯 노인을 휘몰아쳐갔다.

 

한편, 철문영은 몇 개의 산봉을 넘어 이윽고 한 채의 다 쓰러져가는 토지묘에 이르렀다.

삐걱!

그와 함께 토지묘 안에서 두 명의 청년이 걸어나왔다.

한 명은 울긋불긋한 화의(花衣)를 걸친 계집같이 생긴 자였다.

비록 용모는 곱상하지만 미간사이가 거뭇한 것이 호색한(好色漢)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한 자는 팔척의 키에 떡 벌어진 체구를 한 청년이었다.

탁탑거웅(托塔巨雄)만은 못하나 우람한 체구를 지닌 자였다.

"귀하가 적화장에서 온 사자요?"

곱상한 청년이 두눈을 희번뜩이며 물었다.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하들은 낙일곡에서 온 분들이오?"

곱상한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본 공자가 낙혼옥랑(落魂玉郞)이오. 그리고 이쪽은 본곡의 수석호위인 흑웅신수(黑熊神手)라고하오."

철문영은 무표정하게 손을 내밀었다.

"예물을 먼저 주시오."

"친구, 의심이 많구려!"

낙혼옥랑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옥함을 내밀었다.

철문영은 옥함을 받아 열어 보았다.

옥함 안에는 몇 알의 희귀한 명주가 놓여 있었다.

"좋소. 적화장의 예물은 여기있오!"

철문영이 작은 옥갑을 내밀자 낙혼옥랑은 빼듯이 옥갑을 받아들었다.

옥갑을 열어본 낙혼옥랑은 해벌쭉하니 웃었다.

"물건은 분명히 인계했오. 그럼 본인은 이만..."

철문영은 즉시 몸을 날렸다.

"매우 오만한 놈이군... 흐흐 열양만정과를 전해준 놈만 아니었다면 쓴맛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낙혼옥랑은 음침한 시선으로 사라지는 철문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철문영은 오십여 장쯤 가다가 은밀한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는 우선 낡은 백포를 벗었다.

백포 안에서 청색 경장이 나타났다.

그것은 빙심마혼 역이한이 걸쳤던 것과 똑같은 색의 옷이었다.

이어, 그의 안면근육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변천환술(易變千幻術)을 펼치는 것이다.

곧 그의 모습은 또 다른 엉뚱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 얼굴은 바로 빙심마혼 역이한의 모습이었다.

"후훗! 누구라도 속지 않을 수 없겠지?"

철문영은 음산하게 웃었다.

그의 모습은 실제로 역이한 자신이 보아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역이한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휘익!

, 철문영은 바람같이 몸을 날려 나갔다.

잠시 후, 그는 좁은 협곡위 절벽에 몸을 숨겼다.

이곳은 낙일곡으로 들어가지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곳이다.

그때, 철문영의 눈에 협곡으로 들어서는 두 명의 청년이 보였다.

그들은 바로 낙혼옥랑과 흑웅신수였다.

"흐흐... 안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철문영은 음산하게 웃으며 천천히 공력을 끌어 모았다.

, 그의 전신은 싸늘한 기류도 뒤덮였다.

", 급히 연마하여 육성밖에 안되는 빙백음강(氷魄陰罡)이지만 한두 명 얼려 버리기에는 충분하지."

살계를 열기로 결심한 철문영의 눈에서 차가운 한광이 번뜩였다.

빙백음강(氷魄陰罡)은 음혼빙백경상 최고의 기공이다.

사실 빙혼신군 역검성도 팔성 정도밖에 익히지 못한 극음기공이다.

"하하... 아버님께서 기뻐하시겠는걸!"

낙혼옥랑이 희희낙락하여 철문영이 숨어있는 절벽 밑으로 다가왔다.

쐐애액!

순간, 철문영은 독수리가 내려덮치듯이 절벽 밑으로 덮쳐내려갔다.

퍼엉!

"끄아악!"

즉사하였다.

피하고 어쩌고 해볼 수도 없었다.

육성의 빙백음강은 낙혼옥랑의 배심을 박살내었다.

무웅!

짓이겨져 꽁꽁 얼어붙은 낙혼옥랑의 몸이 삼사 장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어느 놈이냣?"

흑웅신수가 대경하여 쌍장을 휘저었다.

파르르...

불길이 크게 일었다.

흑웅신수의 쌍장에서 화염이 일어난 것이다.

"낙일산화신공(落日散火神功)!"

철문영은 일갈하며 재차 빙백음강을 쏟아내었다.

"으흡!"

흑웅신수는 안색이 새파래져 두 걸음 물러섰다.

"역이한... ... 네놈이..."

흑웅신수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흐흐흐..."

철문영은 음소하며 덮쳐들어갔다.

"차핫!"

흑웅신수도 전력을 다해 쌍장을 떨쳤다.

파앙!

우르르

굉음이 터졌다.

흑웅신수의 몸이 쓰러질 듯이 비틀거렸다.

그 순간 철문영의 좌수가 독사같이 흑웅신수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크아!"

흑웅신수가 눈을 부릅뜨며 신음을 터뜨렸다.

파앗!

쿠웅!

철문영이 좌수를 뽑아내자 흑웅신수의 거구가 둔중하게 넘어갔다.

짙은 혈향을 풍기며 선혈이 분수같이 치솟았다.

"!"

철문영은 다소 착잡한 표정으로 흑웅신수를 바라다보았다.

(좋은 자질을 지닌 기재였었는데...)

철문영은 고개를 젓고는 급히 낙혼옥랑에게로 다가가 열양만정과를 회수했다.

휘익!

한줄기 선풍이 이는 순간 철문영의 모습은 장내에서 사라져갔다.

그리고, 철문영이 사라진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아아!"

돌연, 거창한 장소성이 터졌다.

그와 함께 저쪽에서 십여 줄기의 쾌영이 협곡으로 날아들었다.

선두에는 잔혹해 뵈는 인상의 초로 노인이 달려오고 있었다.

"영아!"

초로의 노인은 죽어 넘어진 낙혼옥랑의 시신으로 덮쳐가며 짐승같이 부르짖었다.

그자가 사패 중 남곡 낙일곡의 곡주인 낙혼유사(落魂幽士)인 것이다.

"... 빙백음강(氷魄陰罡)! 빙혼궁 놈들이..."

낙혼유사는 대성통곡하다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낙혼옥랑을 즉사시킨 것이 빙백음강임을 알아본 것이다.

"곡주님, 홍웅신수의 숨이 붙어 있습니다."

함께 온자 중 한 명이 다급히 외쳤다.

과연, 흑웅신수는 실낱같은 숨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누구냣? 어느 놈이 영아를 저 모양으로 만들었느냐?"

낙혼유사는 죽어가는 흑웅신수를 붙잡고 흔들며 악을 썼다.

"... ... 마혼... 역이... ... 갑자기... ... 습을 하여... ... 양만정... 과를... 탈취..."

여기까지 들은 낙혼유사는 흑웅신수를 팽개쳤다.

"역이한! 이놈! 갈가리 찢어죽이리라! 아니... 빙혼궁을 쑥밭으로 만들어 놓고 말리라!"

낙혼유사는 길길이 악을 쓰며 협곡을 날아갔다.

"곡주님!"

나머지 인물들도 급히 그 뒤를 다라갔다.

그와 함게, 협곡 위의 절벽에서도 한 줄기 청영이 소리없이 그 뒤를 따랐다.

 

낙혼유사는 삽시에 십여 리를 날아갔다.

그때, 낙혼유사의 전면에서 한 명의 청삼청년이 수십 명의 인물들과 달려오고 있었다.

"이놈!"

청삼청년을 보자 낙혼유사는 눈이 홱 뒤집혀 미친 듯이 덮쳐 들었다.

"! 낙혼유사(落魂幽士)!"

청삼청년은 기겁을 했다.

그는 바로 진짜 빙심마혼 역이한이었던 것이다.

위잉!

콰르르

폭풍같은 극양의 경기가 밀려 들었다.

"차핫! 빙백음강!"

"차핫!"

빙심마혼 역이한과 빙혼궁도들은 사력을 다해 낙혼유사의 낙일산화신공(落日散火神功)을 막아갔다.

콰릉

"끄아악!"

"흐윽!"

칠팔 명의 빙혼궁도가 삽시에 불길에 싸여 튕겨져 나갔다.

역이한도 낭패의 기색으로 나뒹굴었다.

"육시를 내리랏!"

낙혼유사는 광란하듯이 역이한에게로 짓쳐들어갔다.

콰르릉휘익

낙혼유사의 인장이 지면을 뒤집었다.

간일발의 차이로 몸을 피한 역이한은 급급히 몸을 띄워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놈! 어딜 달아나느냐!"

낙혼유사는 폭갈하며 몸을 띄웠다.

휘익!

삽시에 장내는 텅 비게 되었다.

부스럭!

, 한 그루 고목 뒤에서 본면목을 회복한 철문영이 걸어나왔다.

"이것으로 되었다. 낙일곡과 빙혼궁은 상잔하며 쓰러지리라."

철문영은 낙혼유사 등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이제 낙일산화경(落日散火經)을 회수해야 겠구나."

철문영은 낙일곡쪽으로 몸을 날렸다.

스스스...

그 직후, 한 개의 바위 뒤에서 한 명의 노파가 일어섰다.

그 노파는 일전 선풍마존의 손에서 빠져나간 무영괴파였다.

"놀라운걸, 그 사람에게도 이런 독한 면이 있었다니... 그보다도 그의 또 다른 분신이 바로 선풍마존(旋風魔尊)이었다니... 강호가 홀딱 뒤집힐 사실인걸."

무영괴파는 노파답지 않은 낭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은 점점 재미있게 되어가는군. 호호, 어디, 그 사람의 화좀 돋우어주어 볼까?"

스스스...

무영괴파의 모습은 안개와 같이 사라졌다.

 

은밀한 절곡, 스스스...!

한 줄기 귀신같은 인영이 질곡을 빠져나왔다.

인영은 몸을 멈추고 곡을 돌아보았다.

그의 한 손에는 낡은 비급이 한권 들려있었다.

그는 바로 철문영이었다.

"이제 돌아가서 음혼빙백경도 회수해야지."

철문영은 중얼거리며 비급을 품속에 넣고 앞으로 나갔다.

그가 좁은 소로의 모퉁이를 돌아갈 때였다.

돌연, 한 명의 촌로가 뛰어나왔다.

"어이쿠!"

철문영이 피하려고 하였으나 그는 어이없게도 노인을 피해내지 못했다.

"아이쿠! 젊은 놈이 늙은이를 친다... 아구... 나죽네..."

노인이 벌렁 나자빠지며 바락바락 악을 썼다.

"죄송합니다. 노인다, 어디 많이 다치지는 않으셨는지요?"

철문영은 당황하여 얼른 노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노인의 손목이 이상하게 야들야들하다고 느꼈으나 경망중이라 깊이 생각지 않았다.

"아이쿠... 허리가 부러졌나?"

노인은 몇 마디 철문영에게 닥달을 놓아 철문영의 넋을 빼놓고는 소로를 따라 절뚝거리며 사라졌다.

"거참, 사람 하나 피하지 못하다니... 내가 어떻게 된 건가?"

철문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그때였다.

철문영은 가슴이 허전함을 느꼈다.

"... 이런!"

철문영은 기겁을 했다.

어느틈엔가, 그의 가슴에서 몇 가지 기물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방금 회수한 낙일산화경은 물론이고 그가 팔절 중 사절을 스러뜨리고 회수한 비급들이 몽땅 사라지고 없었다.

또한, 파천마륜, 옥령신필등, 무림천년기전의 고수들이 남긴 신병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무영괴파! 이 못된 늙은 도둑의 짓이군!"

철문영은 멍청한 표정으로 촌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는 촌로가 무영괴파의 환신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이제 어쩔 수 없었다.

필시 장안은신술을 펼쳐 몸을 숨겼을 터이니 아무리 철문영이라도 찾아낼 수는 없었다.

"이 늙은 할망구 다음에 만나면 죽도 살도 못하게 만들어 주겠다."

철문영은 땅을 구르며 사라졌다.

"호호..."

철문영이 사라지자 커다란 고목에서 한 명의 소녀가 스르르 빠져나왔다.

"당신이 그래보았자 평생가도 날 잡지는 못해요."

여인은 교소를 지었다.

스스스

뒤미처 그녀도 장내에서 사라져갔다.

 

X X X

 

드덟은 황원(荒原).

지금, 그곳에는 한 폭의 지옥혈도(地獄血圖)가 그려져 있었다.

갈가리 찢긴 육신들이 대지를 덮고 있다.

피가 흘러 내를 이루었다.

죽어 넘어진 시신은 쌓여 산을 만들었다.

부러져 나간 무리들.

잘려져 떨어진 팔다리가 핏속에 잠겨 있다.

처참,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죽음, 죽음만이 황원을 뒤덮고 있었다.

헌데, 돌연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 크으..."

쌓여진 시체 사이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

그것은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모습이었다.

전신이 피로 목욕한 듯이 시뻘겋게 피칠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신의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특히 그의 옆구리는 무엇인가 예리한 것에 찢겨 꾸역꾸역 재장이 터져 흐르고 있다.

하지만, 그자의 눈을 보라.

육신은 초죽음의 상태지만 두눈만은 무서운 빛를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끔찍한 원광이었다.

"크으..."

괴인은 일어나려다가 휘청하며 주저앉았다.

"으으..."

그때, 시체 사이에서 또다시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흐흐흐..."

그 물체는 지옥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로 음소를 터뜨렸다.

놀랍게도, 그 물체도 사람이었다.

그자의 몰골은 앞서 일어난 자에 못지 않았다.

그자의 한 팔은 강맹한 힘에 짓이겨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또한 그의 눈도 앞서 일어난 자 못지 않게 원광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크크... 낙혼유사(落魂幽士)! 네놈도 살아 있었구나."

! 낙혼유사(落魂幽士)!

그럼, 팔이 짓이겨져 나간 자가 낙일곡주인 낙혼유사란 말인가?

그럼, 먼저 일어난 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때, 낙혼유사가 이를 갈며 뇌까렸다.

"빙혼신군! 네놈이 살아있는데 내가 어찌 죽겠느냐?"

빙혼신군(氷魂神君)!

사패 중 북궁 빙혼궁의 궁주.

그럼, 황원을 뒤덮은 시선들은!

그렇다. 빙혼궁과 낙일옥의 전 수하들의 시신인 것이다.

구련산에서 낙혼유랑이 격살당한 것이 십여일 전의 일이다.

그 직후, 이로인해 양파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고... 결과는 양파의 전멸로 나타났다.

아들들을 잃은 두 효웅에게 전후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

결국, 이런 처참한 결과로 결말이 난 것이다.

두 효웅도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원한의 불길이 양인의 목숨을 끈질기게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네놈을 죽이기 전에는 쓰러질 수 없다."

낙혼유사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한 자루 보도(寶刀)가 피에 젖은 채로 들려 있었다.

"크흐흐...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빙혼신군이 빠져나온 내장을 덜렁이며 일어섰다.

그의 손에도 싸늘한 빛을 발하는 소도(小刀)가 들려 있었다.

"흐흐..."

"크크..."

두 효웅은 비틀거리며 다가섰다.

그들의 두눈은 원광으로 번들거리고 꽉 거머진 무기들에서 피가 흘렀다.

"크크크... 죽어랏!"

푸욱!

조금 길이가 긴 낙혼유사의 보도가 빙혼신군의 가슴으로 박혀들었다.

그러나, 빙혼신군은 고통도 모르는 듯 자신의 가슴으로 파고든 보도를 꽉 움켜쥐어 잡아당겼다.

파악!

그러자, 낙혼유사의 몸이 힘없이 빙혼신군에게로 쓰러졌다.

그 순간, 빙혼신군의 손에 들린 소도가 낙혼유사의 목을 꿰뚫었다.

동시에 낙혼유사의 보도도 빙혼신군의 가슴을 관통했다.

"흐흐... 결국... 이렇게 끝나는가...?"

"흐흐... 아무튼 좋다. 네놈과 함께 지옥으로 갈테니..."

두 효웅은 한 치의 틈도없이 맞붙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점차 그들의 눈에서 빛이 사라져갔다.

휘르르...

그때, 돌연 멀리서 한 줄기 인영이 다가왔다.

그는 커다란 피풍을 펄럭이고 있었다.

그는 죽어가고 있는 낙혼유사와 빙혼신군의 옆으로 다가왔다.

"... 의도한 바대로 되기는 했으나, 너무나 처참하구나."

그 인물은 씁쓸히 중얼거렸다.

그의 발밑에서는 두 인물이 죽어가고 있었다.

한때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들.

그러나, 죽어가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바 없었다.

휘르르

스산한 바람이 혈향(血香)을 몰고 지나갔다.

문득, 한 줄기 비장한 노랫소리가 광막한 황원을 뒤흔들며 울려퍼졌다.

 

<천세(千世)의 고혼이 구천(九泉)에 떠돌다, 장검(長劍)에 이는 일진선풍(一陣旋風)으로, 잔혼(殘魂)의 외로운 넋을 달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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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영약쟁탈전

 

 

 

돌연 나타난 이 서생으로 인해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어갔다.

(후훗!)

주루 안으로 들어가서 한 바퀴 돌아본 서생은 미미하게 웃었다.

몇 명의 인물들을 본 것이다.

(후훗, 낙일곡이 빙혼궁을 견제하기 위해 깨나 고심하겠군. 이제 낙일곡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빙혼궁에서는 전력을 다해 나를 저지 하려하겠지?)

청년은 미소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철문영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빙혼궁이 집요한 추적이 있었으나 낙일곡에서 철저히 철문영을 호위하였으므로 별다른 일은 없었다.

철문영은 음식을 시켜먹기 시작했다.

그의 태평한 태도에 몇 명의 인물이 안달이 나서 어쩔 줄 몰라했다.

물론, 그들은 낙일곡의 고수들이었다.

"..."

"..."

돌연, 주루 안이 물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철문영은 식사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주루 입구에 한 명의 청년이 우뚝 서 있는 것이 철문영의 눈에 들어왔다.

(빙심마혼(氷心魔魂) 역이한!)

철문영의 눈길이 한순간 강렬하게 번뜩였다.

청삼에 냉막한 표정의 청년.

그는 북궁(北宮) 빙혼궁의 소궁주인 빙심하혼 역이한이란 자였다.

빙혼궁은 본시 빙혼마신이란 자가 세운 문파였다.

건립될 당시만 하여도 빙혼궁은 구대문파를 능가하는 강대한 문파였다.

특히 그들의 비전암기인 빙호추명사(氷魂追命糸)는 강호일절(江湖一絶)이라 불릴 정도로 악랄하기 이를데 없는 암기였다.

그러나, 빙혼마신의 사후 후계자 문제로 내분이 일어 빙혼궁은 쇠토일로를 걷게 되었다.

그러다가, 당대 궁주인 빙혼신군(氷魂神君) 역검성이 천세문에서 음혼빙백경(陰魂氷魄經)을 갖고 나와 지난날 보다도 더 융성해진 것이다.

음혼빙백경상의 무공은 낙일산화경상의 무공과는 상극이다.

그 때문에 같은 사패에 속하면서도 양파는 사이가 좋지를 못했다.

어느 한쪽이 강해지면 필연적으로 다른 한쪽이 움추려 들리 때문이다.

일전, 구화에서 음양정령과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낙혼곡의 끈질긴 견제로 음양령정과가 빙혼궁의 손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일로 인해 양파의 반목을 더욱 심해진 것이다.

자연, 빙혼궁도 전력을 다해 열양만정과가 낙일곡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저지하고 있는 것이다.

 

빙심하논 역이한은 냉기를 담은 시선으로 주루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일순, 그의 눈길이 철문영에게 고정되며 냉랭하게 번뜩였다.

뚜벅 뚜벅!

역이한이 곧장 철문영에게로 다가왔다.

주루 안에 진을 치고 있던 낙일곡의 고수들이 손에 땀을 쥐었다.

"이봐! 친구, 자네 이름이 무언가?"

역이한 철문영의 옆에 멈춰서며 물었다.

철문영은 힐끗 역이한을 올려다 보고는 모른 척 하며 다시 음식에 손을 가져갔다.

역이한의 안면이 보기 흉하게 이지러 졌다.

"건방진 자군!"

역이한이 냉갈하며 철문영을 잡아갔다.

그래도 철문영은 태연했다.

그 순간, 쉬잇!

"!"

역이한은 신랄한 도세(刀勢)가 등으로 파고 들어옴을 느꼈다.

"차핫!"

역이한이 일갈하며 몸을 띄웠다.

와장창

애꿎은 식탁만이 부서져 나갔다.

휘익휘익!

그와함께 팔인의 장한이 날아들며 역이한을 포위했다.

"핫하... 잘먹고 가네."

철문영은 은자 한 조각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몸을 띄웠다.

파악!

뒤이어 창눔니 부서지며 철문영은 주루 밖으로 날아 나갔다.

위잉! 츠츠츳!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두 줄기 싸늘한 경기가 철문영을 짓쳐왔다.

"하하... 이럴 줄 알았지! 역이한 혼자 주루에 들어오더니만 쥐새끼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군."

철문영은 대소마혀 풍차처럼 몸을 휘 돌렸다.

휘익!

"!"

철문영은 단번에 오륙 장을 날아 올랐다.

위잉!

그러자, 두 명의 백포인도 전력을 다해 철문영을 따라 올라모며 장을 내쳤다.

"흐흣! 가랏!"

철문영의 얼굴에 살기가 서렸다.

그와함께 산악같은 경기가 밀려 내려갔다.

꽈릉!

"크윽!"

"!"

두 줄기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한 명은 양팔이 박살이 나서 뒹굴고 다른 한 자는 가슴이 터져 즉사했다.

와장창

그때, 창문이 부서지며 역이한이 날아 나왔다.

"흐흐... 알고 보니 숨은 고인이셨군!"

역이한이 살기로 뒤덮인 시선으로 철문영을 노려보며 덮쳐들었다.

철문영도 지체않고 일장을 내밀었다.

콰릉

"으음!"

양인은 휘청하며 내려섰다.

물론 철문영이 전력을 다했다면 역이한은 피곤죽이 되어 즉사했을 것이다.

휘익휘익!

뒤미처 주루에서 팔인의 낙일곡 고수들이 날아 나왔다.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고 빨리 약속 장소로 가시오."

한 장한이 역이한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하하... 잘들 해보시오."

철문영은 껄걸 웃으며 돌아섰다.

휘익!

철문영은 모습은 삽시에 멀리 사라졌다.

"크악!"

여기 저기 은신했던 빙혼궁의 궁도들이 저지하려 했으나 역부족.

철문영의 장이 허공을 가르면 일 장도 못받고 나가 떨어졌다.

 

일다경쯤 후, 철문영은 구련산 깊숙이에 이르러 있었다.

그가 막, 우거진 수림을 지날 때였다.

시잉!

돌연, 전면에서 극히 미세한 파공음이 일었다.

"!"

철문영은 대경하며 급급히 몸을 휘둘렀다.

"크윽!"

그러나, 폭사되어온 암기가 극히 미세하여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호신강기까지 단번에 꿰뚫어지며 그의 어깨에 가느다란 금속줄이 관통하였다.

"빙혼추명사(氷魂追命糸)!"

철문영은 이를 지그시 물며 힘껏 빙혼추명사를 뽑아내었다.

그의 손에는 싸늘한 한기를 뿜는 금속의 줄이 들렸다.

이것이 빙혼추명사다.

신체의 일부에 닿기만 해도 전신이 얼어 붙는 음란한 암기다.

(빙혼추명사가 있다는 것을 잊고 방심했군.)

철문영은 자책하며 눈을 번뜩였다.

스스스!

뒤미처 십여 가닥의 빙혼추명사들이 폭사되어 왔다.

"어림없다."

철문영은 맹렬히 몸을 휘둘렀다.

휘르르

강맹한 선풍(旋風)이 일며 날아오던 빙혼추명사가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죽어랏!"

빙혼추명사를 튕겨내며 철문영을 전면의 숲을 향해 강맹한 장력을 휩쓸어 내었다.

"크악!"

"아악!"

선혈이 튀고 육신이 찢어져 나갔다.

은신하고 있던 자들은 어찌 해보지도 못하고 피를 토하며 즉사한 것이다.

휘익!

단번에 십여 명을 참살한 철문영은 전광같이 전면으로 폭사되어 갔다.

"흐흐... 돌아가랏!"

그러나, 그가 채 이십 장을 못나갔을 때 전면에서 수십 줄기 경풍이 짓쳐왔다.

퍼엉콰릉!

"!"

철문영은 검미를 찌푸리며 날아내렸다.

스스스...!

그와함께 철문영의 주위로 사십팔 인의 장한들이 나타났다.

"빙혼사십팔혼(氷魂四十八魂)!"

철문영이 검미를 찌푸렸다.

나타난 자들은 빙혼궁 최고의 정예들이었다.

그들 개개인이 일류고수로서 이들이 펼치는 빙백음혼살진(氷魄陰魂煞陣)은 무적이다.

"흐흐... 순순히 열양만정과를 내어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리 발악해보아야 빙백음혼살진을 벗어날 수는 없다."

우두머리인 듯한 자가 음산하게 말했다.

차앙!

그러나, 철문영은 대꾸하지 않고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우두머리의 눈빛이 음랄하게 변했다.

"끌끌...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들겠단 말이지? 좋다. 네놈에게 빙혼궁의 무서움을 싫도록 맛 보여 주마."

그자는 음소를 터뜨리며 오른손을 들었다.

스스스...

철문영을 포위하고 있던 빙혼사십팔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와함께, 철문영은 골수까지 스미는 한기를 실은 암경이 밀려옴을 느끼고 흠칫 했다.

위잉... ... !

빙혼사십팔혼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아울러 무형의 암경도 점점 더 가중되어 갔다.

보통사람이라면 암경에 실린 한음지기 만으로도 막대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철문영에게 한음지기는 별 문제가 못 되었으나 밀려오는 암경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곤란하게 되었군. 이 진을 깨뜨리려면 적어도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정도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다가는 신분이 드러난 위험도 있으니...)

철문영은 검미를 찌푸렸다.

(별 수 없지. 곧 낙일곡의 지원군이 올터이니 그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철문영은 장검에 힘을 주었다.

"쳐랏!"

진중에서 일간이 터졌다.

위잉!

시잉!

강맹한 경기와 서너 줄기의 빙홍추명사가 파고 들었다.

"차핫!"

철문영은 맹렬히 장검을 휘둘렀다.

파파팍

파웅!

날아오던 경기가 산산이 흩어지고 빙혼추명사가 퉁겨져 나갔다.

"달마검법(達磨劍法)! 네놈은 소림의 문하였던가?"

진중에서 약간 놀란 듯한 음성이 흘렀다.

달마검은 소림칠십이예 중 한 가지다.

그리 독랄하거나 패도적인 위력은 없으나 그 웅후한 기세는 독보적이다.

위잉

스스스

빙혼사십팔혼의 공세는 파상적으로 밀려왔다.

막강한 암경에 짓눌려 있는 상태인지라 철문영은 행동하기가 거북했다.

파파팟!

 

"으음!"

철문영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미처 완전히 마지못한 빙혼추명사가 서너 군데 글고 지나간 것이다.

(제길... 낙일곡의 굼벵이들은 왜 이리도 느리지?)

철문영은 내심 투덜거렸다.

파파팍!

또 다시 십여 줄기 빙혼추명사가 튕겨져 나갔다.

그때였다.

"와아...!"

돌연, 구련산을 뒤흔드는 함성이 터졌다.

갑자기 숲속에서 수백 명의 적의인들이 몰려 나온 것이다.

"이제야 왔군!"

철문영은 쾌재를 불렀다.

빙혼사십팔혼은 갑자기 들이닥친 적의인들을 막느라 자연 빙백음혼살진을 허술히 하게되었다.

"크크크... 빙혼궁의 졸개들아, 감히 어디까지 와서 망동을 부리는 것이냐?"

특히 열 두 명의 적포노인들이 맹위를 떨치며 빙백음혼살진을 유린하여 갔다.

삽시에 빙백음혼살진의 한 모퉁이가 무너졌다.

"크흐흐... 애송아, 어서 가자!"

열두명의 적포노인 중 여섯 명이 철문영 옆으로 날아내리며 재촉했다.

휘익!

철문영은 지체않고 몸을 날렸다.

빙혼사십팔혼은 철문영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펑펑!

"아악크으..."

조용하기만 하던 숲속은 삽시에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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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九絶太陰天羅經을 지닌 여인

 

 

 

"초령은 혹시 적화장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오?"

철문영의 말에 상관초령은 멋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화신검께서 적의 숙부뻘 되세요."

철문영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결국, 열양만정과의 일을 어떻게 좀 해결해 달라는 부탁이군."

"그래요. 저와 흑호채의 힘으로는 사패와 정면 충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달리 부탁할 곳도 없어 표형을 찾은 거예요."

상관초령이 초조한 빛을 띄우며 말했다.

이에 철문영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

"걱정하지 말아요. 열양만정과의 일은 내 해결해 주리다. 평소 사패(四覇)의 짓거리가 볼썽사나웠는데 이 기회에 한바탕 두들겨 놓겠소."

사관초령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표형 고마워요. 숙부님을 대신해서 제가 감사를 드려요."

철문영은 싱긋 웃었다.

"초령답지 않은 말이군. , 이제 교기대회가 시작될 터이니 가봅시다."

철문영이 일어서자 상관초령도 일어섰다.

"군영대회에 참여하실거예요?"

상관초령이 객실을 나서며 물었다.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오. 그저 한 바퀴 둘러볼 생각이지만 초령은 어떻소?"

상관초령이 미소를 지었다.

"표형도 잘 아시잖아요. 저는 예쁘게 차리고 사뿐사뿐 걷는 일따위하고는 담을 쌓았잖아요. 군방대회에 나가면 아마 예선에서 떨어질 거예요."

철문영이 껄걸 웃었다.

"철익비룡(鐵翼飛龍)과 비천옥호(飛天玉狐)."

두 사람이 지나가자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남녀야말로 신진제일의 고수들이니 주목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관초령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철문영의 손을 흔들며 재잘거렸다.

"카아악"

돌연 전면에서 여인들의 함성이 일었다.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전면에서 수십여 명의 여인들에 둘러싸여 한 명의 청년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 옥면유협인가 무언가하는 기생오라비군요."

상관초령이 입술을 삐죽였다.

과연, 여인들에 둘러싸여 다가오고 있는 청년은 눈에 확 띄는 영준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제법이군. 이미 공력이 일갑자를 넘었는걸.)

철문영의 시선이 강령하게 빛났다.

"..."

철문영과 옥면유협 임백천의 시선이 부딪혔다.

양인은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던가?

"... 철익비룡(鐵翼飛龍)!"

여인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졌다.

커다란 피풍을 표표히 날리며 서있는 철문영의 모습은 독특한 것이었다.

여인들이 터놓은 통로로 임백천이 환희 웃으며 다가섰다.

"형께서 표형이십니까?"

"형께서는 임백천형이시겠구려."

철문영은 임백천이 내민 손을 굳게 잡았다.

"핫하..."

"하하하..."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치며 호탕히 웃었다.

금방 십년지기같이 친해진 것이다.

"핫하하... 두분 무엇이 그리 즐겁소?"

돌연 천둥치는 듯한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

고개를 돌린 중인들은 입을 딱 벌렸다.

한 명의 거한이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구 척이 넘는 키에 마치 하나의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거한이었다.

거한의 등뒤로는 다섯 자가 넘는 대형의 감산도(坎山刀)가 매어있었다.

거한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두 청년에게로 다가왔다.

"형장께서 탁탑거웅(托塔巨雄)이외까?"

철문영이 묻자 거한은 철문영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는 형께선 철익비룡?"

철문영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소이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소이다."

"하하... 소제 역시 마찬가지오."

탁탑거웅 맹청탁도 호탕하게 웃으며 철문영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의 손은 너무나 커서 그리 작지 않은 철문영의 손이 푹 파묻혀 버렸다.

"하하... 맹형, 이거 섭섭하외다. 소제 임모는 아니 보이십니까?"

임백천이 껄걸 웃으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하하..."

"하하..."

세 사람은 호탕하게 웃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해 버린 것이다.

"이것봐요! 형들께서만 기분내시기예요?"

보고있던 상관초령이 교갈을 하며 성큼 앞으로 나왔다.

"이봐요, 나는 비천옥호 상관초령이예요. 우리 인사나해요."

상관초령이 섬섬옥수를 내밀자 맹청탁은 다황한 듯이 얼굴이 시뻘개졌다.

"핫하..."

그 모습을 본 임백천과 철문영 등이 대소를 터뜨렸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춘 임백천이 말을 꺼냈다.

"이제 절정신유(絶丁神儒)형만 빠지고 우리 오영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잠시 교기대회를 둘러보고 한잔 거나하게 나눕시다."

상관초령이 임백천을 향해 물었다.

"기생오라버니도 군영대회에 참가하지는 않을 모양이지요?"

임백천의 안색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상관초령이 대놓고 기생오라버니라고 부를 줄은 생갖치 못했기 때문이다.

"꺄아!"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여인들이 비난의 교성을 질렀으나 상관초령은 태연했다.

아울러, 임백천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소이다. 물론 옥호리(玉狐狸)께서도 군방대회에는 참석치 않으시겠지요?"

옥호리라는 말에 상관초령은 고운 아미를 찡긋거렸다.

"낄낄...!"

그리고는 재미있다는 듯 사내같이 낄낄대며 웃었다.

"기생오라비 답지 않군요. 내가 잘못 본 모양인걸. 제법 사내다워요."

상관초령이 손을 내밀었다.

"핫하... 상관형같은 친구도 한둘 쯤은 있어도 상관없겠지요."

두 사람이 손을 마주잡고 흔들자 보고있던 여인들의 눈길이 과히 곱지 않게 변했다.

", 두분 기분 그만내시고 교기대회나 구경하러 갑시다."

철문영이 두 사람의 어깨를 말했다.

"클클, 좋소 좋아, 우선 군방대회를 보러갑시다. 혹시 이 맹청탁에게 시집오겠다는 급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오?"

맹청탁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하하하..."

중인들은 한바탕 웃어제치고 울창한 풍림으로 다가갔다.

네 사람의 젊은이는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넓은 광장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진회하가 내려다 보이는 아늑한 풍림 속의 공지로 좌측 끝에 높직한 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군방대회는 무림 여협들의 대회임에도 오히려 젊은 청년들이 관중의 차지하고 있었다.

"무림오영(武林五英)이다."

네 젊은이가 들어서자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들에게 쏠렸다.

네 사람은 개의치 않고 한쪽으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임백천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여인들은 그에게 시선을 보내며 열광하여 마지 않았다.

"호호... 누가 나중에 임형의 부인이 될 지는 모르나 고생깨나 하겠어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바람을 피울테니 말이예요."

상관초령이 임백천의 옆구리를 찌르며 놀려 대었다.

"하하... 그러는 소저의 낭군될 사람도 고생깨나 할 것이오. 부인이 호랑이 보다도 무서울테니 일평생 다른 여자에게 곁눈질도 못할 것이 아니요?"

임백천이 킬킬대며 받아넘겼다.

"! 그딴 소리하지 말아요. 나는 혼인같은 것 안해요."

상관초령이 뱁새눈을 하며 임백천을 흘겨보았다.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그녀는 빠르게 철문영을 쓸어 보았다.

철문영은 미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군방대회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외다."

문득, 철문영의 말에 임백천 등은 대위로 시선을 돌렸다.

성장을 한 한명의 절세미녀가 대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군방대회(群芳大會)를 시작하겠사옵니다. 우선 폐원의 원주께서 심사를 해주실 분들을 모시고 나오시겠습니다."

여인은 말을 하고 돌아섰다.

사르르...

이어, 나직한 패옥 부딪는 소리가 들렷다.

그와함께 한 명의 면사여인이 여러 명의 노부인들과 광장에 나타났다.

면사여인, 그녀가 바로 요지선자였다.

비록 면사로 얼굴을 가려 용모를 볼 수는 없었지만 전신에서 우아함과 부드러운 분위기가 은연중 흘러 나왔다.

과연 천하제일의 미인으로 군림해온 여인다운 기품이었다.

요지선자는 대위에 마련된 의자로 가 앉았다.

동시에 여러 노부인들도 마련된 좌석에 앉았다.

"자세히들 보세요. 요지선자 약선배님의 좌측에 앉은 노파가 누구신지 아시겠어요?"

상관초령의 지적에 세 청년은 그 노파를 주시했다.

노파는 나이를 짐작키 어렵게 얼굴 전체가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노파의 두눈에선 번갯불과도 같은 신광이 흐르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최절정의 내가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저분 노파는 화산의 명숙이신 화령신모(火靈神母)세요."

상관초령의 말에 청년들은 흠칫 했다.

"저분이 삼마(三魔), 삼괴(三怪)와 동배의 고인이신 화령모모란 말이오?"

임백천이 놀라 물었다.

"그래요. 저분은 연로하시기는 했으나 아직도 성격이 불과 같으시니 대할 기회가 있으면 십분 조심해야해요."

상관초령이 말하는데 요지선자가 일어섰다.

"이번 군방대회에도 이렇게 많은 후배들께서 참가해 주신데 대해 감사 드려요. 제가 이 군방대회를 마련한 이유는 여러 후배들께서 거치른 무림생활에 행여나 여인으로서의 섬세함을 잃지나 않을가 하는 노파심 때문이예요. 따라서 오늘 군방대회를 진행함에 있어 평가는 무예보다도 행동거지와 여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재기에 큰 비중을 두겠으니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 군방대회를 평가해 주실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어요."

맑은 옥령이 울리듯, 청아하면서도 윤택한 목소리로 요지선자는 노부인들을 소개하였다.

노부인들은 화령모모 외에는 무림인이 없었다.

그녀들은 모두 무림세가나 명문의 안주인들이었다.

요지선자는 소개를 마친 뒤 문득 시선을 철문영 등에게 던졌다.

커다란 피풍을 걸친 철문영, 작은 동산과같이 우람한 체구의 맹청탁, 눈에 확 띄는 귀공자 임백천, 그리고 미모와 재기넘치는 상관초령, 네 젊은이는 수많은 인파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모습들이다.

"!"

철문영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요지선자의 눈길을 정면으로 받자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 것이다.

(... 무섭다. 한 쌍의 봉목만으로 사람의 이지를 뒤흔들다니... 혹시 그녀가 그 기공(寄功)...)

철문영은 한 가지 가공할 기공이 생각나 등골이 서늘해져왔다.

그러나, 천하에서 가장 정력(定力)이 굳은 그 인지라 곧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힐끗 옆을 보니 임백천 등은 정신이 나가 멍하니 요지선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순 요지선자의 눈에 감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무림오연 중 네분 소협들께서 군방대회를 지켜봐 주시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감사해요."

요지선자가 말을 하자 철문영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해나 되지 않았으면 다행이겠습니다."

철문영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제야 임백천 등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들의 귀에는 철문영의 목소리가 천둥같이 크게 들린 것이다.

뒤미처 임백천, 맹청탁, 상관초령은 차례로 공수를 해보이고 앉았다.

"네분 소협께서 관전해 주시니 여러 후배 여협들께서 한층 힘이 나실거예요."

요지선자는 말을 하며 장중을 둘러보았다.

"이제 군방대회를 시작하겠어요."

요지선자의 선언에 청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뒤이어, 은은한 풍악소리가 들리는 중에 군방대회에 출전하는 여인들이 차레로 나와 인사를 하였다.

그때마다 청년들은 환호했다.

여인들은 한 껏 성장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차례로 자신들이 지닌바 재기들을 겨루었다.

여인 하나하나가 자신의 용모와 재기에 자신있는 재녀들이었다.

상관초령은 힐끔 옆을 바라보았다.

맹청탁은 연신 무어라 소리를 지르며 웃어제끼고 있었다.

조금 단순하면서도 직선적인 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임백천은 만면에 미소를 담은 채 종종 손을 들어 보였다.

대위에 오른 여인들은 열이면 여덟, 아홉이 임백천에게 뜨거운 시선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가끔 무엇인가 철문영의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출전한 여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관초령은 야릇한 감정이 섞인 시선으로 철문영의 안색을 살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철문영은 담단한 시선으로 재기를 겨루는 여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상관초령은 자신이 왜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알수없어 피식 웃었다.

신시초가 되자 대충 경쟁자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하락(河落) 남가부(南家府)의 남하봉, 백양세가(白楊勢家)의 백리소하(百里素霞), 복마문(伏魔門) 복마곤신(伏魔棍神)의 딸이며 한산신니의 애제자 한산냉연(寒山冷燕) 염옥화, 천남일염(天南一艶) 황보연연, 중주 남궁세가(南宮勢家)의 다지신녀(多智神女) 남궁옥영 등 다섯 명의 여인들이 돋보였다.

상관초령이 문득 철문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표형께선 누가 우승할 것으로 보세요?"

철문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미모로는 천남일염(天南一艶) 황보낭자가 으뜸이오. 그러나 무공으로는 한산냉연 염소저가 가장 뛰어나오. 그러나 두분 소저는 다지신녀 남궁낭자의 재기에는 상대가 못되지요. 제가 보기에는 다지신녀 남궁소저가 가장 유력한 것같소."

철문영의 말에 임백천이 동조했다.

"소제의 생각도 표형과 같소이다."

상관초령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철문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왜 일어나세요?"

"잠깐 바람좀 쏘이고 오리다."

철문영은 상관초령에게 말한 뒤 장내를 벗어났다.

"!"

진회하가로 내려온 철문영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노을이 깔리기 시작한 진회하가를 걷기 시작했다.

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수양버들가지가 노란 장막같이 드리워져 있다.

철문영은 붉은 저녁놀 속의 수양버들가지 사이로 진회하를 거닐었다.

사패와 사절 등에 대한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그는 어느덧 한산한 강가에 이르러 있었다.

그곳은 지회하의 동쪽 끝부분이었다.

"너무 멀리왔군, 돌아가자."

철문영은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

철문영의 몸이 굳어졌다.

짜르릉

어디선가, 인간의 음()이라 믿어지지 않는 감미로운 악기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것은 비파(琵琶)소리였다.

마치 맑은 샘물이 흘러나는 소리인 듯, 잔잔히 흐르는 봄의 꽃향기같은, 실로 감미롭기 이를데 없는 비파소리였다.

다만, 비파소리의 기저에는 심금을 울리는 처연함이 갈려 있는 점이 흠이었다.

"누가 이토록 아름다운 비파소리를 내는 것일가? 인간의 손에서 나는 소리하고 믿겨지지 않는구나."

철문영은 문득 정신을 차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귀를 기울여 비파소리의 근원을 찾으려했다.

비파소리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저곳이닷!"

철문영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진회하의 외곽에 떠있는 작은 섬이었다.

비파소리는 그곳에서 들리고 있는 것이다.

"가보자!"

철문영은 누가 그토록 아름다운 비파음을 내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한 번 찾아가 보기로 작정했다.

"차핫!"

그는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의 몸은 단번에 삼십여 장 상공으로 날아 올라갔다.

파악!

진기가 막히는 순간, 붉은 노을을 받아 강렬한 빛을 내며 거대한 은빛의 철익(鐵翼)이 펼쳐졌다.

휘익!

한 바퀴 허공을 돌아본 그는 섬쪽으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진회하를 가로질러 날아간 철문영은 섬의 상공에서 몸을 멈추었다.

섬은 그리 크지 않았다.

가장 먼저 철문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척의 길쭉한 철선(鐵船)이었다.

그리고, 곧 그는 세 명의 남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섬전체가 수양버들로 들어차 있다.

지금, 버드나무 사이의 공지에는 넓은 포단이 깔려있고 그 포단 위에 일남이녀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인이었다.

일신에 백포를 걸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세 자 가량의 곤방대를 들고 있었다.

두 여인은 이십 전후의 젊은 여인과 노인 정도된 나이의 노파였다.

비파는 노파의 품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 젊은 여인이 타고 있었다.

"!"

여인을 바라다 보던 철문영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졌다.

여인의 미모가 너무나 뛰어난 때문이다.

특히 마치 백옥으로 빚은 듯이 시리도록 푸른 피부는 눈이 부시기까지 하였다.

다만 한 가지, 지나치도록 연약해 보이는 것이 애처로움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

문득, 한 소리 높은 소리가 일며 여인의 섬섬옥수가 멈추어졌다.

여인은 지면에 생긴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다.

"누구냐?"

그제서야 노인도 누군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일갈하며 일어섰다.

순간적으로 노인의 일신에서 엄청난 잠력이 폭발하려는 것을 철문영은 보았다.

삼인은 허공을 바라보다가 아연하였다.

한 마리 신응같이 떠있는 철문영의 모습 때문이다.

휘익!

철문영은 표표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실례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비파소리에 정신이 팔려 그만 결례되는 짓을 하였습니다."

철문영이 정중히 포권하며 사과하자 경계의 빛을 띄우던 노인의 안색이 풀어졌다.

"허허... 괜찮소이다. 소협께서는 혹시 무림오영(武林五英) 중 철익비룡 표소협이 아니오이까?"

노인의 물음에 철문영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소갱아 표아무개입니다."

그때였다.

"아가씨..."

노파의 다급한 비명이 일었다.

철문영이 급히 돌아보니 젊은 여인이 축 늘어져 정신을 잃고 있었다.

"소생이 저분 소저를 너무 놀래켜드린 모양이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철문영이 말하자 노인은 급히 품속에서 옥병을 꺼내며 고개를 저었다.

"소협 때문이 아니오. 본시 저희 아씨께서는 지병을 지니고 계셔서 종종 저러시니 미안해하지 마시오."

노인은 옥병에서 몇 알의 환약을 꺼내 여인에게 복용시켰다.

뒤이어 노부인이 급히 여인의 몸을 주물러 주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무거우면서도 신속하기 이를데 없었다.

(두 노인 모두 최절정의 고수들이구나. 내가 이제껏 만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인물들인걸. 이런 고수들을 종복으로 둔 저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철문영은 의아한 기색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보면 볼수록 아름다왔다.

비단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전신에 베인 기품 또한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 유모... 그분 공자님은..."

이윽고 여인은 정신을 차렸다.

여인은 정신을 차리자 마자 철문영을 찾았다.

그러다가 철문영이 그대로 있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모, 나를 배로... 데려가 주어요. 그리고... 저분 공자님을 선실로 모셔주세요."

여인의 말에 노파는 여인을 안아들고 철선으로 다가갔다.

"소협, 아씨께서 뵙기를 청하시닌 괜찮으시다면 저희 배로 잠깐 올라가 주십시오."

노인이 철문영을 바라보며 청했다.

"폐를 끼치겠습니다."

철문영은 무엇인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아 두 말않고 철선으로 올라갔다.

"들어 가시지요."

노부인이 선실에서 나오며 청하였다.

철문영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선실 안은 매우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빼어난 기법의 화폭이 걸린 선실 끝에는 편안해 보이는 침상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예의 미녀는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철문영을 바라보았다.

"몸이 불편하여 결례를 하오니 양해하여 주시와요."

여인이 살짝 볼을 붉히며 말했다.

"아니오이다. 불편하신 소저를 번거롭게해 드린 소생이 오히려 송구스럽습니다."

여인은 미소를 띄우며 자리를 권했다.

철문영이 침상 옆의 의자에 앉자 여인은 문득 말을 꺼냈다.

"공자께서는 진맥을 하실 수 있으신지요?"

"잘은 못하나 할줄은 압니다."

그의 말에 여인은 섬섬옥수를 철문영 앞에 내밀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소녀의 진맥을 보아주셨으면 해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여인의 손목을 잡았다.

막상 잡아보니 여인의 손목은 너무나 가냘펐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러질 듯이 가냘픈 손목이었다.

헌데, 여인의 맥문을 짚은 철문영은 안색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인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 ..."

철문영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렀다.

그 신음소리는 경악과 안도의 의미가 뒤섞인 그런 신음성이었다.

철문영은 미미하게 떨리는 손을 여인의 맥문에서 떼었다.

"소녀의 병세가 무엇인지 알아내시었는지요."

여인이 나직이 묻자 철문영은 여인의 눈을 직시했다.

그의 눈빛은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따뜻한 정까지도 담고 있었다.

여인은 철문영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구절태음천라경(九絶太陰天羅經)!"

철문영의 입에서 묵직한 한 마리가 흘러나왔다.

!

 

구절태음천라경(九絶太陰天羅經)!

 

천하에서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과 비견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절맥(絶脈).

이 절맥을 지닌 여인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방치해 둔다면 이십이 못되어 전신의 심맥이 얼어붙어 절명하고 만다.

이를 치료하는 갈은 단 하나.

거의 동시에 세상에 나타난다는 천라태양신맥을 지닌 인물과 부부가 되는 길밖에 없다.

서로의 극양, 극음의 기운을 교환하여 양극단의 기운을 식혀야 하는 것이다.

 

"소녀의 구절태음천라경은 알아보셨으니 공자께서도 천라태양신맥을 지니고 계심을 아시겠지요?"

여인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미, 운명은 지어진 것이다.

비록, 생전 처음 만나는 두 남녀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연히 구절태음천라경을 지닌 여인을 만날 줄이야.)

(이제는 그 무거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었구나.)

말은 않으나 두 사람의 안면에는 안도의 미소가 흘렀다.

"... ... 상공께서는 지금의 모습이... 본 모습이 아닌 듯 하옵니다만, 소녀에게 상공의 옥안을 보여주실 수 있으신지요."

여인의 말에 철문영은 내심 감탄했다.

지금껏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 자신의 역용을 이 여인은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

철문영이 본 모습을 회복하자 여인은 나직이 탄성을 질렀다.

너무나도 뛰어나게 영준한 철문영의 용모 때문이다.

"뛰어난 역변천환술(易變天幻術)이시군요. 소녀의 천명은 뇌벽향(雷碧香)이라 하옵니다."

"소생의 본명은 철문영이라 하외다. 한가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소저의 증세는 이미 잘작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어떤 힘에 의해 늘려있는 것 같았소이다."

뇌벽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사옵니다. 소녀는 올해로 만 이십 사 세가 되옵니다. 구절태음천라경이 발작할 시간이 휠씬 지났지요."

철문영이 이해가 안가는 표정을 짓자 뇌벽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공께서는 백여 년 전에 활동하셨던 한분 의선을 기억하세요?"

철문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성수화타(聖手華陀)!"

철문영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성수화타(聖手華陀)!

 

그는 고금이래의 모든 의술을 집대성한 기인이다.

따라서, 그의 손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어떤 난치의 병도 완치될 덩도였다.

그는 백 육십여 년 전에 강호에 출도하여 구십여 년 전까지 활동했었다.

"그분이 소녀의 의조부(義祖父)님이셨다고 하면 이해가 가시겠사옵니까?"

뇌벽향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수화타께서 손을 쓰셨으니 구절태음천라경의 발작이 지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뇌벽향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조부님께서는 구절태음천라경은 인위적인 힘으로 고쳐질 수 없다는 통설을 깨시는 약력(藥力)으로 저의 절맥을 치료하시려 하셨어요."

"성수화타시니까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으셨겠지요."

철문영이 동조하자 뇌벽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실 조부님께서는 거의 완성을 하시고 그만 돌아가셨어요."

"성수화타께서 운명을 달리하셨구려."

철문영은 놀라운 기색을 띄우면서 말했다.

약력으로 구절태음천라경을 치유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가운 일이기 때문이다.

", 조부님 당신게서도 이백 세가 넘으시자 어쩔 수 없으셨던 모양이예요."

뇌벽향은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 만드시려던 영약을 재료로 연단하는 것으로 조부님께서는 생전에 백칠가지 영약을 모으셨으나 마지막 자부현청(紫府玄靑)을 얻지 못하셨어요. 그 때문에 운명하시면서도 회한의 표정을 지우지 못하셨지요."

"그래서 소저께서는 자부현청을 찾으러 강호에 나오셨구려."

철문영이 묻자 뇌벽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문제가 있사옵니다."

문득, 뇌벽향이 발갛게 볼을 붉히며 말했다.

"문제라니요? 무엇이오이까?"

철문영의 물음에 뇌벽향의 볼이 더욱 붉어졌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소녀와... 상공은 음양교환... 의 수법으로... 절맥을 치료해야 하옵니다. 하온데..."

뇌벽향은 몹시도 말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들은 이제 정기적으로 서로의 음기와 양기를 교환하여야 한다.

그것은 부부사이의 은밀한 일, 처녀인 뇌벽향으로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것이다.

"어려워 마시고 말씀해 보십시오."

철문영의 재촉에 뇌벽향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상공께서는 동정지체가 아니시지요?"

철문영의 뽀얀 볼도 살짝 물들었다.

그는 천세비동에서 화희를 범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동정지체가 아닌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본래 상공께서 동정지체라 하셔도 약간의 문제는 있었사옵니다. 소녀의 나이가 상공보다 많은 까닭에 소녀의 음기(陰氣)가 상공의 양기(陽氣)보다 강한 때문이지요. 자칫하면 상공의 양기가 극도로 쇠잔해져서 폐인이 될 수도 있어요. 헌데 동정...을 상실하시면서 가장 강한 원양지기(元陽之氣)가 발출된 탓으로 위험률이 더 높아진거예요. 이 상태로는 소녀의 음기를 받아 들이실 수 없으세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것이구려.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하겠오?"

"걱정은 하지 마시와요. 조부님이 모으신 백칠 가지 영약들은 이제 상공을 뵙게 되었으니 필요없어요. 그 영약들로 상공의 원양진기를 폭증시켜 드리겠어요. 그것은 천라태양신맥의 극양지기와는 상관없는 것이니... 강하실수록 좋은 것이니까요."

말을 하면서 뇌벽향의 볼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원양지기(元陽之氣)란 사내로서의 힘을 말하는 때문이다.

"이제 소녀는 천산(天山)으로 돌아가서 준비를 하겠사옵니다. 상공께서는 강호의 일을 대강 마치신 후 천산으로 오시와요."

"천산에서 기거하십니까?"

", 현기곡(玄機谷)이라는 곳이예요. 전대기인이 사시던 곳인데 조부님께서 발견하시어 소녀도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아옵니다. 오시게 되면 첨인봉(尖刃峯)을 찾으셔서 소녀를 부르세요."

"알겠습니다."

철문영은 그윽한 시선으로 뇌벽향을 건너다 보았다.

"너무 피곤해 보이는군요. 이제 그만 일어나겠오이다. 늦어도 세달이내에 천산으로 가리다."

철문영이 일어서자 뇌벽향의 봉목이 뽀얘졌다.

"배웅하여 드리지 못함을 용서하세요."

뇌벽향이 고개를 떨구며 말하자 철문영은 미소를 지으며 뇌벽향의 섬섬옥수를 쥐어 주었다.

"아니... ... 공자께선..."

그가 밖으로 나가자 문밖에 서있던 두 노인은 깜짝 놀랐다.

철문영의 본 모습때문이었다.

노부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두 노인도 밖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두분, 뇌소저를 부탁드리오."

철문영이 말하자 노인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십시오. 공자께서도 가능한한 빨리 천산으로 찾아주십시오."

"명심하리라. 자 그럼 이만..."

철문영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선수를 박찼다.

파앗!

허공에 이르자 창룡철익이 활짝 펴졌다.

"휘익!"

한 소리 긴 장소가 일었다.

그와 함께, 창룡철익을 편 철무니영의 거대한 신영은 섬을 날아넘어 진희하쪽으로 날아갔다.

진회하는 이미 환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동정호(洞庭湖)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작은 야산.

야산을 등지고 한 채의 장원(莊園)이 서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으나 제법 짜임새 있게 세워진 장원이었다.

 

적화장(赤花莊).

 

이 장원의 이름이다.

무림명숙의 한 명인 적화신검 상관형양의 거쳐였다.

 

이경무렵, 사위는 한 치 앞도 분간키 어려운 어둠 속에 묻혀있다.

휘르르...

돌연, 한 줄기 검은 인영이 소리없이 이동하였다.

그 야행인의 종적은 실로 귀신이 곡할 정도로 은밀했다.

무엇인가 언뜻 스친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스스스

야행인의 신영은 어느덧 적화장의 담밑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잠시 멈칫 하던 야행인은 안개와 같이 담장으로 흘러 넘어갔다.

사사삭

야행인은 여전히 귀신같은 신법으로 전진해 갔다.

그러다가, 야행인은 문득 몸을 세웠다.

멀지않은 전면에 한 명의 인물이 서 있는 것을 본 때문이다.

"!"

야행인이 나직이 헛기침을 했다.

동시에, 서 있던 인물은 흠칫 몸을 떨다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표대협이시오?"

야행인은 나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표아무개입니다."

야행인이 다가서자 기다리던 인영은 야행인의 손을 굳게 잡았다.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라니요. 어려울 때에 서로 돕는 것이 무림동도로서의 도리 아닙니까?"

야행인의 말에 기다렸던 인물은 나직이 말했다.

", 우선 안으로 들어 가십시다. 빙혼궁(氷魂宮)의 흉수들이 곳곳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은밀히 한 채의 전각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간단한 탁자가 하나 있었다.

끼이익

어디를 만졌는지 무엇인가 돌아가는 소성이 일며 탁자가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탁자가 있던 곳에 비밀스런 계단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은 곧 하나의 밀실에 이르렀다.

"표형, 어서와요!"

그들이 밀실로 들어서자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악!

그와함께 밝은 불빛이 일며 밀실이 환해졌다.

그러자, 밀실에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야행인은 바로 철문영이었다.

그는 꼭끼는 야행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인후해 보이는 초로의 백포인이 서 있다.

그가 바로 적화장의 주인인 적화신검 상관형향이다.

그리고, 밀실 중간의 탁자 앞에 두 명의 여인이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좌측에는 검은 경장을 꼭 끼게 걸친 여인이 서 있다.

그녀는 바로 비천옥호 상관초령이다.

그녀 옆에는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 서 있었다.

천남일염이나 상관초령에 못지않은 미모의 여인이다.

아니, 오히려 잔잔한 여인다움이 상관초령보다 돋보이는 그런 미녀다.

그녀는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다.

철문영의 지금 모습이 그다지 영준하지 못한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도 철문영의 일신에서 풍기는 일대종사의 기재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인사해요. 이쪽이 옥봉(玉鳳) 언니예요."

상관초령의 소개에 철문영은 포권을 해 보였다.

", 앉으십시다."

상관옥봉과 철문영이 인사를 나누자 적화신검 상관형양이 의자를 권했다.

그리고 나서 상관형양은 은밀한 곳에서 한 개의 작은 옥갑을 꺼내었다.

"열어 보십시오."

상관형양이 철무니영에게 옥갑을 내밀었다.

"이것이 열양만정과(熱陽滿精情菓)입니까?"

철문영이 받아들며 물었다.

"그렇소이다."

상관형양의 말에 철문영은 옥갑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밀실전체가 향기로운 향기로 가득찼다.

옥갑 안에는 어린아이 주먹만한 붉은 열매가 소중히 놓여 있었다.

이것이 음양정령과(陰陽精靈菓) 중 양과(陽菓)인 열양만정과인 것이다.

"이것을 소생이 당분간 빌려야 겠습니다."

철문영의 말에 적화신검은 고개를 저었다.

"빌리다니오. 약소하나마 대협께서 이번일을 맡아주신 대가로 드리겠습니다. 사양마시고, 받아주십시오."

철문영은 사양하려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품속에 집어 넣었다.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긴히 쓸곳이 있어 염치불구하고 받겠습니다."

상관형양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열양만정과는 달리 쓸곳이 없는 상태입니다. 부담갖지 마십시오."

"고맙습니다. 자 이제 빙혼궁과 낙일곡을 적화장에서 떼어놓을 계획을 짜보십시다."

철문영은 세 남녀와 머리를 맞대로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우었다.

"좋습니다. 마침 낙일곡에서 독촉차 사람이 와 있으니 그자를 통해서 열양만정과를 은밀히 보내겠다는 이야기를 해놓겠습니다."

상관형양이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표형을 번거롭게 해드린 것같아 죄스러워요."

상관초령은 말에 철문영은 미미하게 웃었다.

"초령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면되오."

상관초령과 철문영은 마주 보며 웃었다.

 

X X X

 

구련산(九蓮山), 호남(湖南)과 강서(江西)의 경계에 자리한 명산이다.

그러나, 무림인들에게는 그 보다도 사패(四覇)중 낙일곡(落日谷)이 있는 곳으로 더 알려진 산이다.

 

구련산하(九蓮山下)

그리 크지 않은 시진(市鎭),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이나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팽팽한 살기와 긴장이 전체 시진을 뒤덮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은밀한 요소요소 마다 맹수의 그것같은 날카로운 눈길들이 번뜩이고 있다.

딸랑... 딸랑...

돌연, 방울 소리가 들리며 시진의 입구에 한 필의 나귀가 나타났다.

삐쩍 말라 볼품없는 나귀의 등에는 한 명의 서생이 앉아 있었다.

서생의 모습은 꾀죄죄하기 이를데 없었다.

원래 하얀색이던 장삼은 얼마나 깁고 꿰맸는지 본래의 천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돌연, 방울 소리가 들리며 시진의 입구에 한 필의 나귀가 나타났다.

삐쩍 말라 볼품없는 나귀의 등에는 한 명의 서생이 앉아 있었다.

서생의 모습은 꾀죄죄하기 이를데 없었다.

원래 하얀색이던 장삼은 얼마나 깁고 꿰맸는지 본래의 천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과거에 낙방한 낙방문사의 모습이다.

"... 서거라."

서생은 이윽고 시진에 하나 뿐인 주루 앞에서 나귀를 세웠다.

"어이 이보게, 내 나귀좀 돌봐주게."

서생은 큰소리로 점원을 불러 나귀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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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瑤芝花園

 

 

 

당금무림.

또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중원을 한바탕 휩쓸던 선풍마존의 혈풍도 지금은 가라 앉아 있었다.

비록, 언제 다시 혈풍이 불어닥칠지는 모르나 일단은 평화가 돌아온 것이다.

그 무렵, 그들은 뛰어난 무공으로 단시일 내에 거대한 명성을 날렸다.

 

<무림오영(武林五英).>

 

무림인들은 그들을 무림오영이라 불렀다.

 

철익비룡(鐵翼飛龍) 표운(飄雲).

 

오영(五英) 중에서도 일인자.

그는 지난 일년 사이 발군의 무공으로 중원을 위진했다.

북육성 녹림도의 본거지인 녹림십팔채가 그의 한 자루 장검에 굴복했다.

그 뿐이 아니다.

청해일대를 본거지로 일단의 집단이 있었다.

청해마궁(靑海魔宮).

 

삼마(三魔), 삼괴(三怪)와 동배의 마두들인 청해삼마신(靑海三魔神)이 세운 마문(魔門)이다.

그들은 각지의 마두들을 모아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 세력이 구파에 못지 않아 어느 누구도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연, 청해마궁은 청해와 감숙일대를 휩쓸며 갖은 못된 짓을 자행하였다.

살인, 방화, 약탈은 예사였고 수많은 아녀자들이 능욕을 당했다.

그러던 청해마궁이 돌연 잿더미로 화한 것이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청년고수의 손에 말이다.

그 청년이 바로 철익비룡이었다.

청해삼마신이 철익비룡의 검에 쓰러지고 청해마궁이 무너지자 무림인들은 환호하였다.

그 일로 철익비룡은 단연 신진제일고수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후에도 그는 몇 가지 커다란 일을 해치웠다.

특히 그 중에서도 무림의 두통거리이던 천효사십팔흉(天梟四十八凶)을 베어 버린 일은 너무도 유명하다.

무림에는 천효방(天梟幫)이라는 단체가 있다.

천효방은 마중효신(魔中梟神) 갈천중이라는 자가 세운 방파였다.

세워진지는 십여 년밖에 되지 않은 신흥방파다.

그러나, 그들의 세력은 사패(四覇)에 못지 않은 강대한 문파였다.

그런 천효방의 주력이 바로 천효사십팔흉이었다.

그들은 뛰어난 무공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간악한 성품을 지닌 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무림의 두통거리가 되었으나 누구하나 선뜻 나서서 그들의 만행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때, 사소한 분규가 철익비룡과 천효방 사이에 벌어졌다.

결국, 철익비룡은 단신 천효사십팔흉을 모두 베어 버리고 말았다.

이 쾌거로 철익비룡의 성가는 더욱 높아졌다.

또한 그는 특이한 철익(鐵翼)을 사용한다고 알려졌다.

그의 경공 역시 중원제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적은 늘 묘연하였다.

그러자 무림인들 사이에선 이런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는 어디에도 있고 아울러 어느 곳에도 없다

절정신유(絶丁神儒).

 

오영 중 두 번째 인물이다.

그는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다.

그도 무림에 나타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인이 가장 존경하고 선망하는 인물이 바로 그다.

그의 명성은 오히려 철익비룡을 능가하는 것이다.

비록 그의 정체가 구름 속의 신룡같더라도 말이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화제가 많다.

먼저, 그는 당금의 천하제일미남자(天下第一美男子)라는 것이다.

그의 용모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한 번 대한 여인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그를 찾아 다닌다.

이것은 마치 이십여 년 전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과 비슷한 일이었다.

그를 한 번 대한 여인들에게 절정신유에 대해 물어보라.

그러면 즉시 그녀들의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여인들은 누구도 절정신유의 용모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묘사가 절정신유의 인상을 해칠까 두려워 해서이다.

또한 그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생각이 앞서기 대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절정신유는 천하제일의 거부(巨富)이다.

그는 얼마만큼의 재산을 지녔는지 모른다.

그가 단지 부자이기만 하다면 천하인들의 존경을 받을 리 없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활불과 같은 존재이다.

큰 재난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절정신유의 모습이 나타나곤 한다.

그러면, 그 즉시 상상키 어려운 거금들이 난민들에게 풀어지는 것이다.

그외에도 그는 만박통지의 재사이다.

또한 그의 무공도 신비막측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옥면유협(玉面遊俠) 임백천.

 

그는 명문의 후손이다.

, 강호제일의 명문인 청룡검문(靑龍劍門)의 소문주인 것이다.

오십여 년 전까지 중원에 군림하던 쌍존(雙尊) 중 청룡검존(靑龍劍尊)이 그의 주부이다.

훌륭한 가문.

영준한 외모.

뛰어난 무공.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젊은 기재가 바로 옥면유협이다.

자연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미녀들이 들끓었다.

그것은 기분 좋은 정도를 지나쳐 골치아픈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탁탑거웅(托塔巨雄) 맹청탁.

 

천생신력을 지닌 거한.

능히 한 손으로 만 근을 든다는 신력을 지녔다고 전한다.

그는 어려서 한 이인으로부터 절정의 외공을 배웠다.

그의 외공은 극에 달해 도검(刀劍)이 통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있다.

또한, 그의 무기인 백근 대력감산도(大力坎山刀)로 펼쳐지는 진천사십팔로(震天四十八路)의 도법(刀法)은 거세무적(擧世無敵)이다.

 

비천옥호(飛天玉狐) 상관초령.

 

오영(五英)의 유일한 여인이다.

 

그녀는 미()와 재()를 겸비한 기녀(奇女)이다.

그녀의 미모는 당금 중원의 뭇 여협들 중 첫째 둘째를 가릴만큼 뛰어나다.

그러나, 그녀의 무공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아니,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다.

당금 무림네 있어서 그녀를 제압할 만한 고수는 많지 않다.

그녀의 사문이 어디인지는 자헤시 알려진바 없다.

그녀의 무공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녀는 당금의 무림여걸들 중의 일인자이다.

또한 그녀는 지금껏 단 한 번 패했을 뿐 져본적이 없다.

그 단 한 번의 패배는 철익비룡(鐵翼飛龍)에게서 맛보았다.

그녀는 녹림십팔채 중 태호(太湖)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흑호채(黑狐寨)의 주인이다.

그 때문에 철익비룡과 충돌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십초가 못되어 패배를 자인하고 무기를 버렸다.

그후, 철익비룡과 상관초룡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상이 무림오영(武林五英)이다.

무림인들은 이들 오인이 앞으로의 무림을 이끌어 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무림인들이 꿈에도 모르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철익비룡(鐵翼飛龍)과 절정신유(絶丁神儒)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몰랐다.

물론 철익비룡과 절정신유란 철문영(鐵文英)의 분신이었다.

동천목을 떠난 그는 우선 천세문의 복수에 착수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마교와 사절, 사패만 남기고 천세문의 혈한에 관계된 자들은 모조리 제거되었다.

또 한편으로 그는 구절태음천라경(九絶太陰天羅經)을 지닌 여인을 찾아야 했다.

철익비룡이란 그 목적을 위해 만들어낸 분신인 것이다.

하여간, 지금 그는 어느 정도 초조한 상태였다.

자신의 찬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은 이년 이내에 발작한다.

그 전에 구절태음천라경을 지닌 여인을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과연 그가 그 여인을 찾아낼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X X X

 

금릉(金陵).

남경(南景)으로 불리던 강남(江南)의 중심(中心).

대명(大明)의 시조 태조홍무제(太祖洪武帝)가 처음 도읍으로 정했던 고도이기도 하다.

지금은 황성(皇城)으로 도성이 바뀌었으나 금릉은 여전히 강남의 중심으로 군림하고 있는 대도(大都)이다.

중추가절(中秋佳節).

더할 수 없이 맑게 개인 날이다.

각양각색의 의복을 걸친 선남선녀들이 물결을 이루며 흘러간다.

금릉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인파 속에는 기이하게도 병장기를 지닌 무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무인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금릉이다.

그러나, 이 무렵이면 금릉은 각지에서 몰려든 무림인들로 시끄러워진다.

그것은 금릉에서 벌어지는 한 가지 성회(盛會) 때문이다.

금릉에는 전체 무림인이 잘 아는 한곳의 단체가 있다.

이름하여,

 

<요지화원(瑤芝花園)>

 

이는 구성원 전부가 여인들인 특이한 문파이다.

또한, 그 여인들의 거의 전부가 기녀(妓女)들이다.

바로 진회하(秦淮河)에서 술과 웃음을 파는 여인들이다.

요지화원이 성립하는 데는 사연이 있다.

 

이십여 년 전이었다.

무림에는 한 명의 절세미녀(絶世美女)가 나타났다.

그녀의 미모는 경국지색(傾國之色), 바로 그것이었다.

얼마나 뛰어난 미모였는지 전무림인이 상사병에 시달릴 지경이었다.

 

요지선자(瑤芝仙子) 약시란(若施鑾).

그 여인의 이름이다.

그녀의 미모는 완벽, 바로 그 자체였다.

그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그런 경세의 미녀였던 것이다.

자연, 그녀의 주위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들끓게 되었다.

여러 무림세가의 귀공자들이나 한 지방을 웅패하고 있던 지존들, 명문대파의 제자들이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필사적으로 경쟁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왕후장상의 귀인들과 고관거부들의 자제까지 약시란의 주위를 맴돌았다.

유사이래 어느 여인도 겪지 못한 갈 등을 약시란은 겪어야했다.

그녀는 섣불리 어느 한 사람에게 정을 주지 못했다.

만일 그녀가 어느 누구에게 지나친 정감을 표시하면 그즉시 피보라가 인다.

누구 손에 죽었는지 모르게 상대방 남자는 사살되고 마는 것이다.

자연, 그녀는 천하인의 정인이면서 동시에 누구의 여인도 아닌 묘한 입장이 되었다.

이것은 가슴 뜨거운 젊은 여인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녀도 때로는 뜨겁게 마음을 불태울 상대를 원했다.

그러나... 그런 인물은 좀채 없었다.

천하인의 걸시를 극복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사람이라는 눈속으로 빠져들었다.

상대는 이름도 없던 백면서생이었다.

그에게는 재산도 권력도, 힘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남다른 인품의 유생일 뿐인 평범한 인물인 것이다.

아니 평범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그는 고금이래의 모든 학문에 능통한 은사였다.

동시에 춘추전국시대의 송옥, 반안 등이 무색한 영준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하여튼, 약시란과 서생은 만나자마자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약시란은 자신들의 애정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은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감수할 각오로 그녀는 정인과의 결혼까지를 강행하려고 했다.

불안한 속에서 비교적 순조롭게 결혼 준비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결혼식 전날.

약시란은 죽음과도 같은 충격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불안한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그녀의 정인이 처참하게 난도질 당해 참살당한 것이다.

늘 경계의 눈빛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나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벌어진 참사였다.

이 사건은 약시란에게 감당키 어려운 충격이었다.

그녀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산문(山門)으로 은신했다.

강호와 인연을 끊고 죽어간 경인의 명복을 빌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났다.

어느날, 그녀는 소복을 벗고 강호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강호에 선언했다.

자신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겠노라고.

그후, 그녀는 자신의 여생을 자신과 같이 불우한 여인들을 도우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녀는 웃음과 몸을 파는 불우한 여인들을 모아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를 사모하던 남성들은 힘을 모아 그녀를 도와주었다.

여기에는 흑백양도 문파의 구분이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진회하가의 수십만 평 대지에 화려한 장원이 세워졌다.

이는 황제가 기거하는 자금성이 무색할 정도로 화려한 장원이었다.

 

요지화원(瑤芝花園).

 

바로 요지화원이 그것이다.

그후, 무림에는 한 가지 불문률이 생겼다.

, 요지화원의 십 리 이내에서는 여하한 분규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불문률은 흑백양도에 구별하지 않고 통용되는 철칠이었다.

요지선자 약시란에 대한 무림인들의 예우인 것이다.

요지황원이 자리가 잡혀가자 요지선자는 매년 가을에 한 번씩 요지화원을 전무림인들에게 개방하였다.

자연 그때만 되면 요지화원은 무림인들로 번잡하게 변한다.

아울러 약시란은 여러 가지 행사를 마련하였다.

그중 무림인들의 인기를 가장 끄는 행사는 군영대회와 군방대회(群芳大會)였다.

군영대회는 젊은 무사들이 서로의 무공을 비교하는 대회다.

그리고 군방대회는 무림여협들이 재지를 겨루는 모임인 것이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라도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던짐에 서슴지 않을 것이다.

군영대회와 군방대회는 무림 전체가 공인하는 공인된 명예획득의 관문이다.

그러니 자연 젊고 영기 넘치는 젊은 남녀들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게 마련이다.

오늘.

드디어, 요지화원이 개방되고 군영대회와 군방대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요지화원은 수많은 무림인들로 크게 붐비고 있었다.

 

정오가 막 지났을 무렵,

문득, 흘러가는 인파 속에서 한 명의 청년이 걸어나왔다.

청년의 용모는 평범했다.

단지 신비롭도록 유현하게 빛아는 눈빛만이 인상적일 뿐이다.

그는 전신에 흑색경장을 하고 있으며 어깨 뒤로는 매우 넓은 피풍을 두르고 있었다.

아직 피풍을 두를 시기는 안되었다.

그러나, 피풍을 한 청년의 모습이 그렇게 부자연스럽지는 않았다.

또한, 알게 모르게 청년의 일신에서는 남다른 기개가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일대종사로서의 기개같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청년의 허리에 걸린 청강장검(靑剛長劍)이 인상적이다.

청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럽은 광장으로, 지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헌데 그들은 대부분 병장기를 소지한 무림인들이었다.

문득 청년의 발길이 멈추어 졌다.

"요지화원(瑤芝花園)..."

청년은 전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요지화원(瑤芝花園)!

그렇다.

이곳은 요지화원 앞의 광장이었다.

잠시 서 있던 청년은 요지화원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청년이 다가가자 정문에 서 있던 네 명의 미녀가 청년을 맞았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의 여인들이었다.

특히 그중 맨 우측의 여인은 고아한 기품까지 지닌 미녀였다.

청년의 모습을 본 여인의 눈길이 맑게 빛났다.

"저히 화원을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방명록에 서명을 하시겠는지요?"

여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년에게서 벙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것이다.

청년은 멈칫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재빨리 탁자 위의 두툼한 방명록을 청년 앞에 내밀었다.

청년은 붓을 들어 일필휘지로 내려썼다.

 

철익(鐵翼) 표운(飄雲).

 

여인들의 눈길이 확 변했다.

"! 철이기룡 표대협이셨군요. 대협께서 찾아주신 것을 알면 선자께서 크게 기뻐하실 거예요."

예의 여인이 환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주위에 서 있던 무림인들은 놀란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철문영이었다.

"소녀가 안내해 드리겠아옵니다."

예의 여인이 재빨리 철문영의 앞으로 나섰다.

"폐를 끼치겠오이다."

철문영이 말하자 여인은 미소를 지었다.

"폐라니오. 소녀가 할 일을 하는 것 뿐이옵니다. 소녀의 천명은 도화(挑花)라고 하옵니다."

여인의 말에 철문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가시는 분. 표형(飄兄)아니세요?"

그때, 돌연 뒤쪽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 철문영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한 명의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눈에 확 띄는 늘씬한 미녀로 일신에 하늘색의 연무복을 걸치고 있었다.

덤덤하던 철문영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초령(草苓), 오랜만이오."

철문영이 환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표형, 반가와요. 이게 얼마만이예요?"

여인은 대담하게 사내같이 철문영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이를 본 도화라는 여인의 눈길이 잠시 흔들렸다.

"어머, 혹시 소저께선 비천옥호 상관소저 아니신가요?"

여인의 말에 철문영이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철문영과 마주 서 있는 여인은 바로 무림오영 중 유일한 여성인 비천옥호 상관초령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여인답지 않은 호협한 성품을 지닌 여장부였다.

철문영은 그녀의 그런 성품이 마음에 들어 각별한 교제를 하고 있었다.

"두분, 이리 오세요. 두 분께 저희 화원에서 특별히 마련한 객사로 안내해 드리겠어요."

도화라는 여인이 앞장섰다.

"호호... 표형과 함께 있으니 이런 대우도 받는군요."

상관초령은 매끄러운 철문영의 손을 잡고 흔들며 도화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도화라는 여인의 안내를 받아 진회하가 내려다 뵈는 관목 숲 속의 객사 앞에 이르렀다.

객사들은 관목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매우 운치있고 조용했다.

도화라는 여인은 나란히 붙어있는 두 개의 객방 앞에 섰다.

"두 분께서는 이 방들을 사용하세요.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면 시녀들에게 말씀하여 주세요. 그리고 교기대회는 미시부터 시작되니 참석하시려면 풍림원으로 오세요."

"수고하셨소이다."

철문영이 치하하자 도화는 미소를 지어보이고 물러갔다.

"표형,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어요? 사실은 표형께 한 가지 부탁 드릴 것이 있어서요. 며칠 동안 표형을 찾아다녔어요."

자기방으로 들어가려던 철문영은 멈칫 했다.

"우선 안으로 들어와서 이야기합시다."

철문영이 방으로 들어서자 상관초령도 따라 들어갔다.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하고 마주 앉았다.

"그래, 초령이 하고 싶은 부탁이 무엇인지 들어봅시다."

상관초령은 생긋 웃었다.

"우선 약속해요. 제 부탁을 들어준다고 말예요."

상관초령이 어거지 스듯이 말하며 철문영의 식지에 자신의 식지를 걸었다.

"초령, 말해봐요. 아무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해주지 않으려 하겠오?"

철문영의 말에 상관초령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좋아요. 말씀드릴께요. 표형도 얼마전 구화(九華)에서 음양정령과(陰陽精靈菓)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으셨을 거예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음양정령과란 음령정과(陰靈精菓)와 열양만정과(熱陽滿精菓)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들은 극양, 극음의 서로 다른 영효를 지닌 영약이면서도 한 가지에 달린다고 하지않소? 헌데 음양정령과가 어찌되었단 말씀이오?"

상관초령은 어두운 신색이 되었다.

"음양정령과는 어느 약초채집꾼에게 발견되었어잖아요. 그 직후 음양정령과는 한 분의 무림명숙이 거금을 주고 사갔어요. 그분은 바로 적화장(赤花莊)의 적화신검(赤花神劍) 상관형양대협이세요."

철문영은 검미를 찌푸리며 들었다.

상관초령은 계속 이야기를 했다.

 

상관형양에게는 한 명의 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상관옥봉.

강남일미(江南一美)라 불리는 미녀였다.

헌데 그녀는 선천적으로 잔음결맥증이라는 난병을 지니고 있었다.

상관형양이 거금을 주고 음양정령과를 사들인 이유는 바로 상관옥봉의 고질을 치료하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상관옥봉의 고질은 음양정령과 중의 음령정과로 치유가 되었다.

헌데 문제가 생겼다.

사패(四覇) 중의 낙일곡에서 열양만정과를 노린 것이다.

낙일곡에서 얻은 무림천년기전은 낙일산화경(落日散花經)이다.

헌데 낙일곡주인 낙혼유사(落魂幽士)는 나이가 들어 낙일산화신공(落日散花神功)의 연마에 들어간 까닭에 신공의 화후가 구성(九成) 수준에 멈춰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열양만정과의 극양한 양기를 빌어 신공을 대성하려고 한 것이다.

만일, 낙혼유가가 정당한 대가를 치루고 열양만정과를 요구했으면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낙혼유사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한 것이다.

상관옥봉을 자기 며느리로 맞을 터이니 그 예물로 열양만정과를 보내라는 것이다.

원래 낙혼유사에게는 낙혼옥랑(落魂玉郞)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자는 지독한 망나니로 자기 아버지의 위세를 빌어 수많은 양가집 규수들을 범한 색골이다.

그자가 언제인가 상관옥봉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음심을 품은 것이다.

낙혼옥랑같은 자에게 딸을 준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상대는 천하를 쥐고 흔드는 사패 중 한 문파다.

그러니 정면으로 거절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낙일곡과 견원지간인 북궁(北宮) 빙혼궁에서도 압력이 왔다.

빙혼궁의 무공과 낙일곡의 무공은 상극이다.

헌데, 만일 낙혼유사가 열양만정과를 얻으면 빙혼궁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타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던 방법으로든 열양만정과가 낙혼유사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그러니 빙혼궁의 압력이 적화장에 가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되니 적화신검 상관형양은 진퇴유곡의 지경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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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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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쓰러지는 八絶

 

 

 

핏빛 선풍(旋風).

드디어 팔절(八絶)에게도 떨어지다.

무림은 술렁였다.

도대체 선풍마존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선풍마존은 얼마만큼이나 강한 것일까?

 

고죽검신(枯竹劍神).

팔절의 일인, 아울러 검법에 있어 당대 최고라는 인물.

헌데, 그런 고죽검신이 선풍마존의 검에 쓰러진 것이다.

무림인들은 떠들었다.

 

팔절(八絶)은 선풍마존의 적수가 못된다. 사폐(四覇)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대에 선풍마존의 적수가 못된다. 사퍠(四覇)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대에 선풍마존을 당할 고수는 없다. 오직 전대의 삼마(三魔), 삼괴(三怪)정도만이 선풍마존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를 가도 선풍마존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그런중에, 팔절(八絶)중 나머지 철인과 사패(四覇)가 급히 모임을 갖았다.

선풍마존을 상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각자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모임은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일말의 불안한 심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정주(鄭州).

이곳은 무림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왜냐하면 이곳에 팔절(八絶) 중의 일 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천신도(驚天神刀) 제갈현.

그자이다.

그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무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돌연 몇 년 전부터 위명을 날려 팔절 중에 끼게 되었다.

그의 거처는 정주교외의 신도장(新刀莊)이었다.

경천신도, 이자는 바로 천년기전중의 폭혈참신도보(爆血斬新刀譜)를 얻었던 것이다.

이제 경천신도는 도법(刀法)에 있어서는 무림제일로 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가 경천신도의 목을 조여들어 오고 있었다.

물론, 경천신도 본인은 그것을 알리 없다.

 

이곳은 정주로 통하는 관도.

휘잉!

초가을 서늘한 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초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정오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그 때문에 길가의 다루(茶樓)는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대부분이 여행중인 듯한 사람들 뿐이다.

다루의 구석.

언제부터인가 한 명의 노파가 구석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노파의 얼굴은 주름으로 뒤덮여 있고 머리결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노파에게는 한두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먼저, 간간이 치켜뜨는 노파의 두눈에서 섬전같은 신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안목있는 자라면 노파가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절정의 공력을 지닌...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노파의 살결이었다.

노파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나 노파의 왼쪽 소매가 약간 접혀 있다.

헌데, 살짝 드러난 노파의 팔목 위의 살결이 그렇게 희고 탄력이 있을 수 없었다.

도무지 주름 투성이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피부였다.

한편, 노파는 한쪽 좌석에 앉은 인물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 인물은 노파와 두 개의 탁자를 격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건장한 청년이었다.

다만, 죽립(竹笠)으로 깊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일견하기에도 그 청년의 일신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베어 나오고 있었다.

그 기운은 가슴을 섬칫하게 만드는 냉기였다.

동시에 골수까지 스미게 하는 싸늘한 살기가 풍겨지고 있었다.

그 청년은 무엇인가 길쪽한 것을 천으로 싸서 안고 있었다.

청년은 자기 앞의 찻잔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또 한편, 또 다른 구석에서는 한 명의 청삼노인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노인은 조용히 찻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간간이 청년과 노파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뜻언뜻 청삼노인의 눈에 살기가 흐르고 지나갔다.

두 명의 노인이 자기를 관찰하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년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두두두

돌연,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일었다.

노파는 고개를 들었다.

관도 저편에서 뿌연 먼지가 일면서 몇 필의 기마가 달려왔다.

노파의 두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기마의 선두에는 두 필의 준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우측에는 한 명의 장한이 말을 몰고 있었다.

허리에는 묵직한 보도를 걸고 있는 그 장한은 매우 위맹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부릅뜬 한 쌍의 호안에서 전광같은 안광이 발해지고 있었다.

공력이 절정에 달한 때문이다.

중년장한의 옆에는 왜소한 노인이 말을 달리고 있었다.

일신에 회의를 걸친 노인의 두눈은 쉴새없이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그다지 심기가 바른 자는 아닌 듯한 노인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십여 필의 준마를 몰고 장한들이 따르고 있었다.

"경천신도(驚天神刀) 제갈대협이시다."

다루에 있던 몇몇 무림인들이 외쳤다.

그러자 죽립의 청년이 죽립을 슬쩍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끔찍한 살기를 실은 안광이 번뜩임을 노파와 청삼노인은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웬지 두 노인은 동시에 흠칫 몸을 떨었다.

두두두

중년장한, 즉 경천신도 제갈현 등이 탄 준마들이 다루로 가까워졌다.

그때였다.

돌연 한 줄기 비장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 노랫소리는 어디서 들리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천세의 고혼이 구천에 떠돌다.

장검에 이는 일진 선풍으로 장혼의 외로운 넋을 달래리라.

 

여기 저기서 경악성이 터졌다.

"... 선풍비가(旋風悲歌)."

무림인들은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했다.

히히힝

그와 함께, 경천신도 일행이 급히 말의 고삐를 당겼다.

그곳이 마침 다루의 앞이었다.

경천신도와 회의노인의 안색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뒤이어, 거창한 일갈이 터졌다.

"웨액으윽!"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폭갈에 실린 공력에 기혈이 뒤집힌 것이다.

동시에, 죽립청년이 벌떡 일어섰다.

쐐애액

청년의 손이 번뜩이자 쓰고 있던 죽립이 대기를 갈랐다.

맹렬한 기세로 경천신도를 향하여 밀려간 것이다.

단순한 죽립이지만 날아가는 기세가 엄청났다.

만일 그대로 맞는다면 몸이 두 동강나고 말 것이다.

"차핫!"

그러나, 경천신도도 어엿한 팔절 중 일인이었다.

뜻하지 않은 기습이었으나 다급히 장을 쳐들었다.

위잉!

한 줄기 산악같은 경풍이 죽립을 후려쳐간 것이다.

"흐음!"

파파팟!

죽립이 산산이 부서져 튕겨 나갔다.

그러나, 죽립에 실린 경기는 경천신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경천신도는 죽립을 후려친 우수가 부서져 나가는 듯한 통증에 신음을 터뜨렸다.

그의 손은 파열되어 선혈이 낭자했다.

츠츠츠

정신 차릴 사이도 없었다.

죽립이 부서지자 마자 금찍한 도기(刀氣)가 경천신도의 허리를 잘라왔던 것이다.

"!"

경천신도는 다급히 비명을 질렀다.

그는 촉망중에 보도를 도집채 들어, 날아오는 도세(刀勢)를 막아갔다.

카앙!

"크아악!"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피가 확 퍼졌다.

경천신도는 청년의 단 일도(一刀)에 허리가 끊어져 즉사했다.

경천신도의 보도(寶刀)는 도집채 두 동강이 나있었다.

휘익!

단번에 경천신도를 도륙낸 청년은 그대로 허공으로 치솟았다.

전광석화!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도록 일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멈춰랏! 악도!"

이내 회의노인이 폭갈을 지르며 몸을 띄웠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청년은 백여 장 밖을 달리고 있었다.

"..."

중인들의 입이 딱 벌렸다.

그사이 회의노인과 선풍마존은 이미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중인들은 경천신도의 시신을 둘러싸고 웅성거렸다.

그 틈에서 예의 노파가 조용히 빠져나왔다.

"과연 무섭구나. 폭혈참신도법(爆血斬神刀法)을 익힌 경천신도가 손도 못써보고 당하다니... 물론 다분히 승천마라도(昇天魔羅刀)의 예리함이 있기도 했으나 역시 무서운 자다."

노파는 나직이 혼잣말로 중어거렸다.

휘이익

어느정도 중인들로부터 멀어지자 노파는 몸을 날렸다.

삽시에 노파는 십여 리를 달렸다.

쾅콰릉!

"?"

노파는 두눈을 번뜩였다.

멀지않은 곳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린 것이다.

스스스

노파는 폭음이 들리는 곳으로 소리없이 다가갔다.

그곳은 관도옆 숲 속의 공지였다.

쾅파웅!

지금, 그 공터에서 선풍마존과 회의노인이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다.

굉렬한 폭음이 터지며 아름드리 거목들이 허리가 꺾여져 쓰러졌다.

펑콰릉!

"크윽"

요란한 폭음이 터지며 회의노인은 비칠비칠 물러났다.

아무래도 회의노인은 선풍마존의 적수가 못되었다.

노인도 팔절(八絶)중의 일인이지만 공력이나 초식 등 어느 것 하나 선풍마존에 미치지 못했다.

"차핫!"

청년, 선풍마존은 숨돌릴 틈도 주지않고 회의노인을 향해 휩쓸어 갔다.

위이잉!

회의노인은 맹렬히 장을 쪼개내었다.

노인의 공세는 선풍마존의 하복부를 짓쳐갔다.

"!"

선풍마존은 별 수 없이 장을 회수하며 몸을 휘돌려 떠올랐다.

"흐흐흐."

회의노인은 음산한 웃음을 터뜨렸다.

차앙!

그와함께 노인의 손에 한 쌍의 비륜(飛輪)이 들려졌다.

그것은 직경 반자 가량의 크기로 외곽에 날카로운 톱니가 파여 있었다.

(저 늙은이는 이제보니 신류비마(神輪飛魔) 정노괴였군.)

숨어서 관전하던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륜비마(神輪飛魔).

그자도 팔절의 일인이다.

그자의 비륜(飛輪) 공부는 신륜천왕(神輪天王)의 것이다.

"흐흐... 죽어랏!"

신륜비마는 음소를 터뜨렸다.

쌔앵

그와 함께 면철로 만든 비륜이 선풍마존에게로 폭사되어 갔다.

"차핫!"

쩌엉!

선풍마존은 급급히 승천마라도로 비륜을 막아갔다.

기이잉

그러나, 비륜은 허공으로 튕겨져 올라갔다.

그리고, 더욱 빠르게 선풍마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

선풍마존은 흠칫 몸을 떨었다.

위이잉

재차 승천마라도가 비륜을 막아갔다.

쌔애앵

그 순간, 텅빈 선풍마존의 배를 노리고 또 다른 비륜이 날아갔다.

"!"

선풍마존의 두눈이 당황으로 흔들렸다.

"흐흐..."

신륜비마가 득의하여 웃었다.

그러나, 일순간 선풍마존의 몸은 검붉은 광채로 둘러싸였다.

창창!

두 마디 맑은 금속성이 일었다.

한 쌍의 비륜이 검붉은 호신강기에 튕겨진 것이다.

"죽어랏!"

뒤미처, 선풍마존의 승천마라도가 신륜비마의 몸을 갈라갔다.

"!"

파앗

신륜비마는 다급히 피했다.

그러나 피가 튀며 그의 옆구리가 갈라졌다.

휘청 하는 순간 한 쌍의 비륜은 다시 신륜비마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월락대지(月落大地)!"

신륜비마의 입에서 폭갈이 터졌다.

사력을 다해 신륜천왕(神輪天王) 최대의 초식을 펼친 것이다.

위잉!

츠츠츠

거대한 환형(環形)의 경기를 일으키며 한 쌍의 비륜이 떨어져 내렸다.

"()!"

선풍마존의 안면에 짙은 냉기가 깔렸다.

동시에 그의 양 소매에서 한 쌍의 검은빛 비륜이 폭사되었다.

"... 파천마륜(破天魔輪)!"

신류비마가 실색을 하며 외쳤다.

그렇다. 그 검은 비륜은 신륜천왕의 병기이던 파천마륜이었다.

!

파삭!

요란한 금속성이 일었다.

검은 기류에 부딪힌 신륜비마의 비륜이 산산이 부서져 나간 것이다.

휘익!

그 순간, 신륜비마는 몸을 휘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 어딜!"

그러나, 선풍마존의 냉갈과 함께 파천마륜이 신륜비마를 쫓아갔다.

"아아악!"

신륜비마는 처절한 비명을 토했다.

전력을 다해 막아 보려고 했으나 파천마륜이 신륜비마의 목과 허리를 절단하며 날아간 것이다.

차악!

선풍마존은 되날아온 파천마륜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신륜비마늬 시신으로 다가갔다.

면 텬간 무림최고의 고수 들 중 일인으로 군림하던 신륜비마.

종국에 와서는 시신도 온전히 보전 못하고 죽은 것이다.

선풍마존은 신륜비마의 몸에서 한 권의 비급을 꺼냈다.

"!"

그순간, 몸을 펴려는 선뭉마존에게 신랄한 두 줄기 경기가 날아 들었다.

"차핫!"

선풍마존은 일갈하며 몸을 지면으로 바짝 붙여 암격을 스쳐 보냈다.

휘익!

뒤이어 허공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

위잉!

그가 채 몸을 바로 잡기도 전에 한 줄기 청영(靑影)이 그의 앞으로 쇄도하여 들어왔다.

지독히도 빠른 경공이었다.

선풍마존은 다급히 장을 내쳤다.

콰릉!

우렁찬 폭음이 일었다.

창졸간에 장을 쳐낸 선풍마존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사이 이미 청영은 공지를 가로 지른 후였다.

!

"흐읍!"

강맹한 경기가 선풍마존의 등을 가격했다.

다음 순간 청영과의 일장을 교환한 직후라 피하지 못한 것이다.

쿵쿵!

그는 지면에 내려서서 도 삼사보 앞으로 나간 후에야 몸을 세울 수 있었다.

위잉!

촤웅!

또다시 골수가지 에이는 살벌한 경기가 선풍마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 줄기는 그의 목을 노렸고 또 다른 한 줄기 경기는 그의 허리를 파고 들었다.

처음맞은 일장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인지라 선풍마존은 당황했다.

"환마(幻魔)!"

선풍마존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츠츠츠...

그러자 그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콰르릉

두 줄기 경기는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가랏!"

동시에, 예상도 못한 방위에서 선풍마존의 폭갈이 들렸다.

위이잉

폭풍같은 경기가 장내를 휩쓸었다.

그를 암습한 두 명은 최고의 경공을 지닌 자들이다.

그러나 너무나 강맹한 위력의 경풍이라, 두 사람은 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맛보아야했다.

파앗!

그순간 선풍마존의 모습이 유령같이 공지의 상공에 나타났다.

그의 눈에는 두 명의 인물이 급급히 피하는 것이 보였다.

한 명은 예의 노파이고 다른 한 명은 다루에 나타났던 청삼노인이었다.

"신풍도객(神風盜客)! 무영괴파(無影怪婆)! 잘 걸렸다."

선풍마존이 살기띈 일갈을 터뜨렸다.

두 노인, 바로 팔절중의 두 사람이었다.

신풍도객(神風盜客)은 신풍무영(神風無影)의 진전을 얻은 대도(大盜)이다.

그리고, 무영괴파(無影怪婆)는 공령천존(空靈天尊)의 공령비경(空靈秘經)을 연마했다.

사실 팔절 사패중 가장 까다로운 상대가 이들 두 사람인 것이다.

"가랏!"

선풍마존은 버럭 폭갈을 터뜨렸다.

콰르릉!

거창한 장경이 양인을 휩쓸어갔다.

"차핫!"

"이얏!"

신풍도객과 무영괴파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 쳐나갔다.

퍼엉!

콰르릉!

"으음... ..."

"!"

삼인은 다같이 휘청 하며 물러섰다.

"흐흐... 제법들이구나!"

한 걸음 물러선 선풍마존은 살기를 발했다.

삽시에 그의 일신에 패도적인 경기가 뒤덮였다.

(! 받을 수 없다!)

무영괴파의 안색이 홱 변했다.

선풍마존이 막강한 절공을 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

선풍마존은 벼락치듯이 쌍장을 후려패 내었다.

쿠아앙!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宏音), 파앗!

너무나 끔찍한 위력이었다.

무영괴파와 신풍도객은 전력을 다해 몸을 빼었다.

양인 모두 경공의 독보적 존재들이라 일시에 십 장 밖으로 피해갔다.

콰르릉!

"크아악!"

그러나, 무영괴파는 간신히 피했지만 신풍도객은 피하지 못하고 처절한 비명을 토했다.

그의 등은 완전히 풍지박산이 되었다.

휘익!

무영괴파는 섬전같이 공터를 빠져나갔다.

"서랏!"

선풍마존이 폭갈을 지르며 쫓아갔다.

그러나, 그가 공터를 벗어 났을 때는 여디에도 무영괴파는 없었다.

"이런... 가장 까다로운 적을 놓쳤군. 장안은신술(帳眼隱身術)로 몸을 감출 여유를 주지 말았어야 할 것을...}

선풍마존은 혀를 찼다."

장안은신술은 공령천존의 공령비술중 하나이다.

일단 장안은신술이 펼쳐지면 누구도 숨은 자를 찾아낼 수 없다.

"별 수 없지."

선풍마존은 돌아서 공터로 돌아갔다.

휘익!

한 줄기 선풍과 함께 선풍마존은 사라졌다.

신륜천왕의 비급을 회수해서 사라진 것이다.

흔들!

잠시 후, 문득 바위가 움찔 하였다.

그러더니 바위사이에서 무영괴파의 모습이 유령같이 나타났다.

"... 너무 강하다. 팔절과 사패 전체가 힘을 합해야 스러뜨릴 수 있는 강적이다."

무영괴파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팔절중 고죽검신, 경천신도, 신륜비마, 신풍도객이 격살되었으니 이제 나와 천음인(天音人), 혈사신마(血沙神魔), 신필수사(神筆秀士)만이 남았구나. 무슨 방도를 취하지 않으면 팔절과 사패가 차례로 당하겠는데..."

무영괴파는 혼자 침중히 중얼거렸다.

"흐훗! 하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야 본 신분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니까. 우선은 저자의 정체부터 밝혀 보아야지."

스스스

무영괴파는 소리없이 몸을 날렸다.

그녀가 가는 방향은 선풍마존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장내는 다시 적막 속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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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旋風悲歌

 

 

 

콰르르릉

천지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일었다.

우르르쾅!

그와 함께 거대한 석벽이 무너져 내렸다.

일시에 수만 근의 화약이 터진 듯한 힘이 석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핫하하..."

청아한 장소성이 일었다.

휘이익

그와함께, 날리는 사석을 뚫고 한 덩의 청삼청년이 높은 듯한 절벽 위로 날아 올랐다.

여인이 무색할 정도로 고운 피부와 섬세한 선을 지닌 영준한 모습의 청년, 그는 바로 철문영이었다.

그는 지금 청색경장을 걸치고 등에는 큼직한 피풍을 달고 있었다.

"하하... 화희. 어떻소?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의 위력이?"

철문영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앞에는 화희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그녀는 잠깐 사이지만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복장이 부인의 복장으로 변해 있었다.

발끝까지 끌리는 장의는 매우 고혹해 보이기까지 했다.

또한 그녀는 머리를 부인들같이 높게 틀어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그녀의 눈길이었다.

그녀의 눈길은 예전과 달랐다.

전에까지만 해도 그녀의 눈빛은 어린 아이를 쫓는 어머니의 눈길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눈길은 더할 수 없이 조용하며 애틋하게 변하여 있었다.

마음 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철문영의 것이 되어버린 까닭이리라.

"놀랍사옵니다. 무공이라는 것이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고는 생각해왔아오나 이 정도로 끔찍한 위력이 있을 줄은 몰랐사옵니다."

화희는 조용하면서도 약간은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철문영은 환히 웃어 보였다.

"화희, 더 강하고 신기한 무공들을 보여 줄테니 잘 봐요."

화희가 살며시 미소했다.

"첩신은 굉천참살강보다도 강한 무공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철문영이 껄걸 웃었다.

"하하... 그럼 잘 보오. 이제 펼쳐 보이겠오."

철문영은 돌아섰다.

"차핫! 창룡천행비(蒼龍天行飛)!"

철문영은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휘익!

그는 단번에 삼십여 장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파악!

그와 함께, 찬연한 은광이 사위에 떨쳐졌다.

그의 피풍 밑에서 얇은 면철로 된 날개와 같은 것이 튀어나온 것이다.

"...!"

바라보고 있던 화희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것은 바로 철문영이 천세신전(千世神殿)에서 발견한 창룡철익(蒼龍鐵翼)이었다.

휘르르

얇은 면철로 된 날개가 활짝 펼쳐지자 철문영은 마치 거대한 대붕(大鵬)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한 차례 철익(鐵翼)이 크게 흔들렸다.

그와함께 그의 몸은 수직으로 날아 올라갔다.

위이잉, 뒤이어 까마득히 치솟았던 철문영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아내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창룡철익의 모용이었다.

단 한 모금의 진기로 허공을 마음대로 비상하거나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창룡철익으로 펼치는 창룡천행비(蒼龍天行飛)의 경공은 독보적이다.

휘익!

이윽고 철문영은 절벽 아래로 날아 내렸다.

촤르르

그러자 철익은 신속히 축소되어 피풍 속으로 들어갔다.

차앙!

맑은 용음(龍吟)이 일면서 철문영의 손에 한 자루 고색창연한 고검이 들려졌다.

그 검의 검명(劍名)은 천인(天刃), 바로 검군자(劍君子)가 사용하던 호신지물이다.

철문영은 고검을 들어 양손으로 굳게 쥐었다.

위잉위잉!

그러자, 고검의 푸르스름한 검신이 황색의 검기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황룡무적천하(黃龍無敵天下)!"

돌연, 절곡을 뒤흔드는 폭갈이 터졌다.

촤웅!

동시에 맹룡(猛龍)의 포효같이 굉음이 터졌다.

그리고, 천인검으로부터 황룡이 꿈틀거리는 듯한 형상의 강맹한 기류가 뻗어 나갔다.

파악! 우르르

황색의 검기가 석벽을 강타했다.

그러자, 석벽의 전면이 깊이 십여 장으로 갈라져 나갔다.

"..."

화희는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

철문영은 흡족히 웃으며 검을 회수했다.

위잉위잉!

뒤미처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 광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채들은 끊임없이 그의 몸주위를 휘돌며 점차 고형화 되어갔다.

바로 묵혈파뢰강(墨血破雷罡)이었다.

"극강참혼(極剛斬魂)!"

우렁찬 일갈이 터졌다.

콰웅!

검붉은 광채가 충천했다.

삽시에 천지가 검붉은 광채로 뒤덮였다.

콰르릉쾅!

뒤이어 화산이 폭발하듯 엄청난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극강참혼수가 떨쳐진 것이다.

"!"

날리는 사석 속에서 약간 답답한 듯한 신음이 일었다.

화희는 바짝 긴장하여 휘날리는 사석 속을 주시했다.

그리고, 이윽고 날리던 사석들이 가라 앉았다.

아보라!

장내에는 엄청난 변괴가 일어나 있었다.

마치 항아리와 같은 모양의 절곡의 한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있었다.

인간의 힘이라 믿어지지 않는 가공할 위력이었다.

"상공!"

화희가 걱정스럽게 불렀다.

철문영이 창백한 신색으로 눈을 감고 서 있는 것을 본 때문이다.

극강참혼수는 끔찍할 정도로 위력이 강하다.

그러나, 그만큼 진력의 소모가 큰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휘익

뒤미처 철문영은 한소리 청아한 장소성을 터뜨리며 날아 올랐다.

"상공, 괜찮으시와요?"

화희가 급히 다가왔다.

"핫하... 괜찮소. 힘이 좀 들었을 뿐이지."

철문영은 말을 하며 화희의 가녀린 허리를 끌어안았다.

"화희와 떨어져서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문득 철문영이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말하자 화희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첩신은... 첩신은..."

화희는 철문영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아니지. , 장원으로 돌아갑시다. 헤어져 있을 동안을 위해 오늘부터 화희를 놓아주지 않겠오."

철문영은 힘있게 화희를 끌어안았다.

철문영의 품에 안겨 화희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핫하... 창룡천행비(蒼龍天行飛)!"

철문영은 지면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파앗!

뒤이어 찬연한 은광을 발하며 철익이 넓게 펼쳐졌다.

휘익!

철문영은 한 줄기 선풍을 불러 일으키며 까마득한 허공으로 날아갔다.

더 없이 높고 푸른 하늘로,

 

X X X

 

천세(千世)의 고혼(孤魂)이 구천(九泉)에 떠돌다.

장검(長劍)에 이는 일진(一陣) 선풍(旋風)으로, 잔혼(殘魂)의 외로운 넋을 달래리라.

 

<선풍비가(旋風悲歌)>

 

전중원이 얼어 붙었다.

핏빛의 선풍(旋風)이 중원을 휩쓴 것이다.

한 줄기 비장한 노랫소리가 울리면 누군가의 몸이 싸늘이 식어갔다.

선풍비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의 이름은 중원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선풍마존(旋風魔尊),

 

중인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그가 혈풍을 몰고 다니는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최초로 선풍비가를 들은 것은 구대문파 중 공동(崆峒)의 장문인 청오자(靑烏子)였다.

그와 함께, 공동의 정영 일백이 삽시에 다시는 못올 길로 가고 말았다.

이로써 공동파는 완전히 구대문파에서 제명을 다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몇 달 사이에 네 개의 유수한 문파가 멸문당했다.

또한 내노라 하던 무림의 명숙 사십여 명도 선풍마존의 손에 쓰러졌다.

그들이 쓰러지기 전, 항상 한 줄기 선풍비가(旋風悲歌)가 울려 퍼지곤 하였다.

이렇게 되니 무림의 고수들은 너나할 것 없이 전전긍긍하며 몸을 사렸다.

언제 죽음의 선풍비가(旋風悲歌)가 자신에게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선풍마존이란 누구인가?

어떤 자이기에 흑백양도를 불문하고 무차별의 살수를 쓴단 말인가?

그리고, 십여 일 동안 선풍비가는 중원의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콰르릉, 번쩍

뇌성벽력(雷聲霹靂).

쏴아

장대발같은 빗줄기가 대지를 두드렸다.

번쩍

일섬전광(電光)이 번뜩였다.

어둠 속에 한 채의 장원이 드러나 보였다.

그 장원은 울창한 죽림(竹林)에 에워싸여 있었다.

쿠르릉쾅

재차 한 줄기 섬광이 암천을 갈랐다.

스스스

번뜩이는 섬광, 그보다도 빠르게 한 줄기 인영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내렸다.

일신에 검은 야행복을 걸친 괴인이었다.

괴인의 두눈에서 혼백을 얼릴 듯한 한광이 폭사되었다.

"고죽검신(枯竹劍神) 장학량..."

문득, 괴인의 입에서 한 줄기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죽검신(枯竹劍神) 장학량!

 

팔절(八絶)의 일인, 강호제일검사(江湖第一劍士)로 불리는 인물이 아닌가?

헌데, 고죽검신 장학량이 어찌되었다는 얘기인가?

스스스

괴인의 신영이 뿌얘졌다.

그가 귀신같은 신법으로 죽림으로 날아들어간 것이다.

죽림 속에는 적지않은 고수들이 숨어 있었으나 누구도 괴인이 침입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웅장한 대전, 억수같이 퍼붓고 있는 어둠 속에 대전으로부터 밝은 불빛이 비쳐나오고 있다.

대전 안, 지금, 대전 중앙의 탁자를 마주하고 구인이 앉아있다.

상좌.

한 명의 초로의 노인이 수심에 찬 그색으로 태사의에 몸을 기대고 있다.

대체적으로 깡마른 모습이나 두눈의 안광이 날카롭다.

그 노인 옆의 탁자에는 한 자루 죽검(竹劍)이 놓여있다.

검신이 푸르스름한 것으로 보아 범사한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노인, 그가 바로 고죽검신 장학량이다.

본시에도 뛰어난 검사였다.

그러나, 십여 년 전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제일검사의 칭호를 받고 있는 검의 달인이다.

노인 앞에는 여덟 명의 장한들이 앉아 있다.

하나같이 위맹해 보이는 자들이다.

이들도 각기 한 자루씩의 죽검을 지니고 있다.

 

고죽팔검(枯竹八劍).

 

고죽검신이 총애하는 제자들이다.

그들도 이미 강호에서 제법 큰 명성을 얻고 있었다.

문득, 맨 좌측의 장한이 입을 열었다.

그는 고죽팔검의 맏이인 사도장이라는 인물이었다.

"사부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사 그자가 천세문(千世門)의 후인이라고 해도 두려울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사부님게서는 이미 당년의 천하제일인이었던 검군자(劍君子)의 절기를 완벽히 연성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사도장의 말에도 고죽검신은 안색이 풀어지지 않았다.

 

검군자(劍君子)!

 

천녀기전의 전통을 마련했던 인물, 구죽검신은 검군자의 신검경(神劍經)을 익힌 인물이다.

강호에서 가장 강한 인물 중 한 명인 고죽검신, 헌데 그의 얼굴은 짙은 암운으로 어두워져 있다.

"청오자 등은 변변히 대항도 못하고 피살되었다. 가벼이 볼 자가 아님에 틀림없다."

고죽검신이 침중히 입을 열었다.

"..."

고죽팔검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

"..."

무거운 암운이 아홉 사람을 짓눌렀다.

콰르릉번쩍,

우뢰성과 함께 한 줄기 섬광이 대지를 밝혔다.

그순간이었다.

아홉 사람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들은 한 줄기 비장한 노랫소리를 들은 것이다.

 

천세의 고혼이 구천에 떠돌다.

장검이 이는 일진 선풍(旋風)으로, 잔혼의 외로운 넋을 달래리라.

 

고죽검신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 선풍비가(旋風悲歌)..."

그는 실성한 듯 중얼거렸다.

"선풍마존(旋風魔尊)! 어디에 있느냐?"

사도장이 버럭 외치며 일어섰다.

그는 선풍비가가 들려온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죽검신 장학량, 천세의 원혼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선가 음산 냉혹한 음성이 들려왔다.

"... 역시..."

장학량은 부르르 떨며 외쳤다.

"에잇!"

사도장이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장아! 위험하다."

장학량이 다급히 외쳤으나 사도장은 이미 대전 밖으로 날아나간 후였다.

"사부님 저희들이 나가보겠습니다."

나머지 일곱 명이 일어섰다.

"조심해라. 선풍마존은 너희들은 상대가 아니다."

"."

휘익

일곱 명은 대답을 하고 몸을 날렸다.

"크아악!"

그러나, 다음 순간 처절한 비명이 일었다.

"!"

장학량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병기인 고죽검(枯竹劍)을 집어들었다.

"이 얘들이 그자에게..."

장학량이 침중히 중얼거렸다.

번쩍다시 한 번 섬광이 번뜩였다.

"크아악아악!"

"으악!"

동시에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선풍마존! 네놈은...!"

고죽검신은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지르며 대전 밖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

그때, 검은 인영이 비틀거리며 대전으로 뛰쳐들어왔다.

"... 장아!"

고죽검신이 다급한 비명을 질렀다.

쿠웅!

그와 함께, 대전으로 들어온 인물은 그대로 나뒹굴었다.

그자는 완전히 혈인(血人)으로 변해 있었다.

"... 이럴 수가..."

급히 다가간 고죽검신이 치를 떨었다.

그 인물은 고죽검신의 대제자인 사도장이었다.

헌데, 지금 사도장은 가슴이 완전히 부서져 숨이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고죽검신이 다가서자 사도장은 간신히 눈을 떴다.

그리고 피를 토하며 중얼거렸다.

"... 사부님... ... 분합... 니다. ... 그 자의... 모습도... 못보고... 당했습니다... ... 그놈은... 너무... ()..."

사도장의 목이 옆으로 떨어졌다.

"장아!"

고죽검신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그러나 사도장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놈! 선풍마존, 네놈을 각을 떠 죽이고 말리라!"

고죽검신이 벽력같이 외치며 일어섰다.

사랑하던 제자.

그 제자가 눈앞에서 죽어갔다.

고죽신검이 이성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

"고죽검신, 네게는 그럴 기회가 없다."

고죽검신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등뒤에서 냉혹한 일갈이 들려온 것이다.

"죽어랏!"

고죽검신은 발악하듯이 폭갈을 터뜨렸다.

쐐애액.

동시에 죽검이 태풍을 일으켰다.

"!"

그러나, 냉막한 코웃음이 울렸다.

그와 함께, 고죽검신은 한 줄기 흑영이 귀신같이 움직이는 것을 언뜻 보았다.

그의 일검은 허공을 가르고 만 것이다.

""

고죽검신은 다급히 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섰다.

"... 네가 선풍마존(旋風魔尊)!"

고죽검신은 두 눈을 부릅떴다.

우웅!

그의 오른손에 들린 고죽검이 부르르 떨렸다.

마치, 원래부터 서 있었는 듯, 한 명의 냉막한 얼굴의 청년이 고죽검신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냉전과도 같은 눈길이 고죽검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죽검신! 각오는 되어 있겠지?"

만년빙동에서 불어 나오는 냉풍같은 일갈이 청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으드득, 좋다. 네놈의 심장을 꺼내 제자들의 원수를 갚고 말리라."

고죽검신은 이를 갈며 고죽검을 움켜 쥐었다.

우웅! 우웅

고죽검이 울리며 푸르스름한 검기가 피어 올랐다.

차앙!

냉막한 신색의 청년도 검을 뽑았다.

"... 그 검은..."

청년의 손에 들린 고검을 본 고죽검신은 부르르 떨었다.

"그렇다. 바로 검군자(劍君子)의 천인검(天刃劍)이다. 천인검으로 네 목숨을 끊어주마!"

청년, 즉 선풍마존은 냉갈하였다.

(... 아무래도 오늘은 길보다 흉이 많겠다. 고죽검으로 천인검(天刃劍)을 상대할 수는 없다.)

고죽검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는 수십 년을 검날 위에서 살아온 노검사(老劍士).

마음을 가다듬으며 고죽검에 힘을 주었다.

"이얍!"

고죽검신은 폭갈을 치며 고죽검을 쪼개내었다.

파파팟.

검화가 피어올랐다.

신랄한 검세가 선풍마존을 쓸어갔다.

츠츠츠...

동시에 천인검이 허공을 갈랐다.

파악!

"크으!"

"!"

선혈이 튀었다.

고죽검신의 고죽검 끝이 갈라지며 그의 어깨가 베어진 것이다.

그러나, 고죽검신도 과연 팔절의 일인다웠다.

어느 틈엔가, 선풍마존의 소맷자락을 길게 그은 것이다.

선풍마존은 흘깃 소매 끝을 내려다 보았다.

마치 여인의 속살같이 뽀얀 손목에 발그레한 혈혼이 생겨 있었다.

츠츠츠쐐애액

고죽검신의 고죽검이 검기와 파랑을 일으켰다.

동시에 천인검이 섬칫한 광망을 그었다.

차앙!

위이잉

검기의 무더기가 대전을 가득 메웠다.

삽시에 삼십여초가 지났다.

고죽검신의 검세는 장강대하같이 쏟아졌다.

팔절 중 일절로서 손색이 없는 검세였다.

그러나, 선풍마존은 무난히 고죽검신의 검세를 받아넘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선품마존은 고죽검신이 펼치고 있는 검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검칠십이로(神劍七拾二路).

 

바로, 검군자의 비전절예다.

그러나, 아무리 천하제일의 겁법이라 불리던 신검칠십이로도 그 변화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선풍마존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차악!

"크윽!"

피가 튀며 끊어진 고죽검의 한끝이 튕겨져 나갔다.

고죽검신의 장포는 피로 물들었다.

그의 가슴은 천인검에 길게 베어진 것이다.

"... 좋다. 어디 천인검강(天刃劍罡)을 받아보아라."

고죽검신이 이를 악물며 내뱉았다.

그는 고죽검을 단전에 갖다 붙였다.

츠읏!

그러자, 끊어진 고죽검 끝에서 일 장 가량의 유형검강(有形劍罡)이 쭈욱 뻗어나왔다.

"!"

이 모습을 본 선풍마존은 최초로 긴장의 빛을 띄웠다.

천인검강(天刃劍罡)이란 검군자 최후의 무공이다.

이는 너무나도 날카로워 능히 한 자 두께의 철벽은 관통할 수 있다.

우웅우웅

거의 동시에 천인검이 진동했다.

그와 함께 천인검이 휘황한 황색검기로 뒤덮였다.

"죽어랏!"

고죽검신이 발악하듯이 외쳤다.

파츠츳

유형의 검강이 대기를 갈랐다.

"황룡무적천하(黃龍無敵天下)!"

동시에, 선풍마존도 폭갈을 터뜨렸다.

콰웅!

용트림하는 듯한 소성이 일었다.

한 줄기 황색 검기가 신룡이 승천하듯 떨쳐졌다.

촤웅!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쿠웅!

피를 뿌리며 고죽검신이 넘어졌다.

그의 가슴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져 있었다.

"으음!"

선풍마존도 휘청 하였다.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듯 하였다.

"... ... 이렇게... 허무하게 지... 다니..."

고죽검신은 고개를 쳐들려고 하다가 그대로 고개를 꺾고 말았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으음, 과연 팔절은 무엇인가 다르군."

선풍마존은 착잡한 시선으로 고죽검신의 시신을 내려다 보았다.

휘익

, 선풍마존은 내전을 한 바퀴 돌았다.

"여기 있군!"

그리고, 그는 은밀한 서랍 속에서 한 권의 낡은 비급을 꺼내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스스스

그와 함께 그의 모습은 흐릿하게 변하여 갔다.

콰르릉콰릉!

뇌성과 함게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이 터졌다.

아마도 멀지않은 곳에서 낙뢰(落雷)가 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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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墨血破雷罡

 

 

 

"으음!"

철문영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 여기가 어디지?"

정신을 차린 철문영은 벌떡 일어났다.

"!"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 졌음을 느끼고 흠칫 했다.

그는 자신의 전신에 거대한 잠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힘은 상상할 수도 없이 막강한 것이었다.

만년한철로 만든 철벽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 이 괴인이 왜 죽어 있지?"

몸을 일으키던 철문영은 깜짝 놀랐다.

그의 옆에는 예의 괴인이 쓰러져 있었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괴인의 몸은 바싹 말라있었다.

마치 물기가 빠진 나뭇가지와 같은 모양이었다.

"이 봉서는..."

그러다가 철문영은 자기 옆에 한 장의 봉서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봉서를 집어들어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노부는 바로 네 전대 문주인 수군한(手君漢)이라고 한다. (중략)... 이제 노부는 네놈에 십이성의 묵혈파뢰강(墨血破雷罡)을 주입시켜줄 것이다. 묵혈파뢰강은 천세절전(千世絶典)중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 다음가는 기공이다. 네가 이 기공의 구결만 이해하면 즉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네 일신에는 노부의 원영진기(元嬰眞氣)와 만년지령유(萬年地靈乳), 독혈용형삼(毒血龍形蔘)등이 용해되어 있다. 이는 족히 오갑자가 넘는 막강한 힘이다. 그러나 이것을 얼마나 네것으로 만들 수 있는 지는 너의 노력여하에 달린 것이니 무공연마에 한시도 게을리 하지 마라.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수법을 남긴다. 이는 노부가 이곳에 갇혀 비동에 침입했던 자들의 인육을 먹으며 창안한 수법으로 너무 악독하다. 이 수법의 명칭은 극강참혼수(極剛斬魂手)라는 것으로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치 말아라. 마지막으로 만일 노부의 당라이가 살아있다면 네 사람으로 만들도록 부탁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수취란(手翠蘭)이며 팔꿈치 부근에 붉은 점이 있다. 이제 천세문 이천년의 역사가 그대의 어깨에 걸려 있다. 부디 본문의 영휘를 만세에 떨치도록 노력해 주기를 부탁한다.>

 

서신의 뒷면에는 한가지 끔찍한 위력의 수법이 적혀 있었다.

만일 묵혈파뢰강으로 그 수법을 펼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날 것이다.

"으음, 이분이 전대문주셨다니..."

철문영은 경악의 표정으로 괴인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는 괴인의 시신에 삼배를 올렸다.

"편히 잠드십시오. 본문의 혈한은 기필코 소생의 손으로 글어 보이겠습니다."

삼배 후 그는 괴인의 시신을 들었다.

얼마전이라면 불가능 했겠지만 이제는 천근거석이라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수군한의 시신을 조사전에 안치했다.

"화희(花姬)의 걱정이 태산같겠군. 빨리가서 안심시켜 주어야지."

그는 벌거벗은 모습을 가릴 생각도 않고 달려나갔다.

곧 그는 화희가 기다리는 석실에 이르렀다.

"도련님!"

그가 들어서자 초조하게 서성이던 화희가 와락 달려들었다.

철문영이 벌거벗은 채였으나 화희는 개의치 않았다.

"도련님... 도련님..."

화희는 미친 듯이 철문영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안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철문영은 화희의 가슴이 격심하게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희는 진심으로 철무니영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련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첩신은... 첩신은..."

화희는 철문영의 얼굴을 받쳐들며 말문을 잊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주종관계이상의 강한 유대가 있었다.

그것은 친 남매의 그것보다도 강하여 마치 모자사이의 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화희, 미안해.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이상하게 강해진 느낌인걸."

철문영이 화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제야 화희는 철문영의 몸이 많이 변했음을 알아차렸다.

마치 눈부신 주옥같이 아름다워졌을 뿐아니라 제법 우람해일 정도로 튼튼해져 있는 것이다.

"하루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화희의 말에 철문영은 흠칫했다.

"벌써 하루가 지났어?"

화희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했다.

", 그보다 어찌 되신 일인지 말씀해주세요."

"그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보다 배가 몹시 고프단 말야. 먹을 것좀 주어. 옷도 좀 입혀주고."

화희는 살짝 볼을 붉혔다.

어릴 때부터 자기 손으로 길러온 철문영이지만 이제는 발가벗은 모습은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자란 것이다.

"첩신의 정신이 나갔군요. 하루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을 터인데... 자 나가세요. 빨리 음식을 장만해 드릴께요."

철문영은 화희의 팔짱을 끼고 석실을 나섰다.

 

마지막 밀실, 철문영은 떨리는 손길로 벽장의 뮨울 열었다.

그는 일신에 산뜻한 청색 무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 무복 실 한올에는 화희의 정성이 베어 있었다.

끼익!

벽장문이 열렸다.

그러자 철문영의 눈에 두 권의 두툼한 비급과 한쌍의 옥환(玉環)리 보였다.

청색과 홍색의 옥환, 그것은 천세문 문주의 신물(信物)인 동시에 비장의 무기였다.

이름하여 건곤쌍환(乾坤雙環), 묵직한 느낌이 드는 것이 철문영의 마음에 들었다.

이어 그는 두 권의 비급을 꺼내어 들고 석탁에 앉았다.

그는 우선 한 권을 집어들었다.

 

<무종중경(武宗重經)>

 

철문영은 떨리는 손길로 겉장을 넘겼다.

 

천세문주(千世門主)는 구류(九流)의 무공에 능통해야한다, 여기에 구류(九流)의 무공중 최강(最强)어거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무공 아홉 가지을 적는다. 천세문주되는 자는 필히 여기에 적힌 아홉가지 신공을 연마하여야만 한다.

 

그 다음으로 아홉가지의 기공이 적혀 있었다.

 

광령법신(光明法身).

 

불문제일신공(佛門第一神功)이다. 이를 완성하면 무적금강지체(無敵金剛之體)가 된다.

다만 한 가지 제약점이 있다.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단 시일내에 연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소한 반갑자이상의 고련이 있어야 완성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연성은 못하더라도 이는 마음을 정()하는데 그 이상의 것이 없으니 필히 명심(銘心)하여야 할 것이다.

 

황룡무적검기(黃龍無敵劍氣).

 

도가제일검공(道家第一劍功)이다. 극에 이르면 검기(劍氣)만으로 백 장 밖의 적을 살상 할 수 있다.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

 

속가(俗家)의 제일신공이다. 광명법신(光明法身)만한 거세적인 위력은 없다. 그러나 신속한 연성이 가능하고 잔혹하게 패도적인 위력은 독보적이다.

 

표향전궁신강(飄香電弓神罡).

 

선문의 절개기공이다. 빠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독공(毒功)과는 상극의 기공으로 사악한 강기(罡氣)에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광막산영수(廣莫散影手).

 

현문(玄門)에서도 가장 현묘(玄妙)하며 복잡한 무공이다. 모두 삼백육십식으로 이루어지며 각식에 네 가지 변화가 있어 그 변화가 끝이 없다.

 

천뢰금강지(天雷金光指).

 

유가제일신공(儒家第一神功)으로 부족함이 없는 지공이다. 이는 강기(罡氣) 파해전문의 지공이다. 특히 적의 공력이 더 강하더라도 상대의 기공을 무너뜨릴 수 있다.

 

환마잠영술(幻魔潛影術).

 

마도제일의 마공은 못된다. 그러나 천하에서 가장 빠른 경공중 하나이며 호신하기에 가장 적합한 수법이다. 일시간에 몸을 감출 수도 있고 적에게 접근하기에는 최적인 마공이다.

 

섭심미혼대법(攝心迷魂大法).

 

사도(邪道)의 사술에서도 가장 사이한 수법이다. 상대의 심령을 제압하여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사법이다. 이 사법에서 섭심술, 통령대법 등의 사법이 파생되었다. 그 만큼 사이한 수법이니 깊이 심취하는 것운 금물이다.

 

역변천환신공(易變千幻神功).

 

기문(奇門) 제일기공은 아니다. 그러나 신체를 자유로이 변형시킬 수 있고 용모는 한모금의 진기로 바꿀 수 있는 등, 강호행동시 필요한 기공이므로 무종구대중공(武宗九大重功)에 포함시킨다.

 

"이런 무종들이 있었다니..."

철문영은 무종중경(武宗重經)을 덮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공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그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무공들인 것이다.

철문영은 무종중경을 내려놓고 두 번째 비급을 집어들었다.

 

<천세절전(千世絶典).>

 

웅후한 필체가 금박으로 쓰여있었다.

"이것이 마교에서 노렸던 비급이란 말이지?"

철문영은 중얼거리며 겉장을 열었다.

이에는 천세문이 이천여 년에 걸쳐 구류만상경을 작성하여독가적으로 창안한 몇 가지 절대신공들이 적혀 있었다.

 

묵혈파뢰강(墨血破雷罡).

 

양강함과 패도적인 면에서는 이에 비할 무공이 없다. 검붉은 광채가 번뜩이면 만년한철이라도 한줌 가루로 변한다. 그만큼 패도적이다. 또한 이는 최고의 호신강기(護身罡氣)이기도 하다. 묵혈파뢰강의 호신강벽은 어떤 호신강기 보다도 강하다.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인 것이다.

 

건곤멸겁파(乾坤滅).

 

이것이 천세절전에 적힌 두 번째 무공이다. 그러나 이는 한 번도 사람의 손에서 펼쳐져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이 무공이 필쳐질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천세문 문주의 신물인 건곤쌍환(乾坤雙環)으로 펼치는 무공이다. 한 번도 시전되어 본적이 없으므로 그 위력도 미지수이다.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

 

이것이 천세문 최후의 비결(秘訣)이다. 이는 약 팔할 정도 이루어진 하나의 신공구결이다. 하지만 이천 년의 세월이 걸렸으면서도 미완성이라는 점에서 이 신공의 막중함은 짐작할 수 있다. 천세문의 오십 자 명 문주들이 구류만상경의 방대한 무공을 참수하여 완성시키려 하던 것이 바로 이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인 것이다. 그것이 비록 천자가 못되는 짧은 구결이지만 그안에 이천 년의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능히 마교(魔敎)에서 노릴만한 가치가 있는 진결(眞訣)이다.

 

"휴우천외유천(天外有天)."

철문영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무종중경(武宗重經)이 무공의 최고봉이라도 여겨졌다.

그러나, 천세절전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절감해야만 했다.

천세절전의 세 가지 무공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가장 약할 것 같은 묵혈파뢰강이라도 무림에서 상대가 될 무공이 없을 것이다.

철문영은 다시 천세절전을 들여다 보았다.

천세절전은 아직도 반정도 분량이 남아 있었다.

철문영은 그것들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나머지 반의 분량은 역대문주들이 광무천세결을 가다듬으며 얻은 심득(心得)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에는 언급안된 분야가 없었다.

또한 무공의 가장 근간이 되는 기초에서부터 자세한 언급이 되어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무공을 처음 익히려는 철문영에게는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었다.

", 이 심득들만 완전히 이해한다면 여타 무공을 익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철문영은 눈을 빛냈다.

그의 생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어떤 무공이든 그 근원은 같다.

, 잠재되어 있는 잠력을 불러 일으티는 것이다.

이것이 주로 내가공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이 마공(魔功)이든 신공(神功)이든 이 경우는 어디에든 적용된다.

다만 신공이 정당하고 전진적인 방법으로 잠력을 키우는데 반하여 마공은 급격하고 비정도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른 뿐이었다.

나머지 초식(招式)이나 변화 등은 그저 내가공력을 효과적으로 방출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천세절전의 심득에는 이같은 내용이 정확히 지적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천세절전의 심득만 이해하면 무공이든 속성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심득(心得)부터 내것으로 만들어야겠구나."

철문영은 눈을 빛내며 난해한 심결들을 들여다 보았다.

그는 곧 삼매경에 빠져들어갔다.

널찍한 석실.

한 명의 여인이 석탁에 앉아 무엇인가 꿰매고 있었다.

그녀는 화희였다.

그녀는 더욱더 아름답고 푸근한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지금 철문영의 장삼을 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휴우!"

화희의 가지런한 치아사이로 나직한 한숨이 흘렀다.

그녀는 일감을 놓고 천세비동으로 통하는 석문을 바라보았다.

"도련님의 연공이 언제나 끝나려는지..."

화희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 들어오신지 벌써 이년, 무공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우신지..."

화희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년(二年). 그렇다.

어느덧 이 년이 지난 것이다.

한 번 무공에 몰두하자 철문영운 완전히 무공에 미치고 말았다.

식사시간만 제외하고 하루종일 무공과 씨름을 했다.

하루에 한 번 운공을 하여 피로를 풀 뿐, 잠도 한잠 자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도시 이해 못할 일들이 일어났다.

그렇게 몸을 혹사시컴에도 철문영은 전혀 허약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점점더 건강해져가는 것이다.

 

"그분이 좋아서 하시는 일,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일 아닌가?"

화희는 한숨을 쉬며 다시 일감을 잡았다.

철문영의 몸이 부쩍부쩍 자라는 동안에 화희는 몇 달 사이에 의복 전부를 새로 만들곤 해야했다.

그녀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한올 한올 실이 꿰어져감에 따라 그녀의 진한 정성이 의복에 배어나갔다.

끼익!

문득 석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 한 명의 헌헌장부가 나타났다.

알맞게 벌어진 체격, 더 할수 없이 영준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산뜻한 청색무복이 매우 잘 어울렸다.

청년의 옥안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하하! 화희(花姬)!"

청년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제야 화희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 도련님!"

환희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 올랐다.

청년은 바로 철문영이었다.

이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허약하기만 하던 소년을 당당한 장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화희! 드디어 끝났어!"

철문영이 외치며 팔을 벌렸다.

화희의 두눈이 뿌애졌다.

"... 정말이신가요?"

"핫하... 그래 드디어 묵혈파뢰강을 극한까지 익혔어!"

철문영은 다가온 화희의 허리를 감아 높이 들어올렸다.

"고마워! 이게 모두 화희 덕이야."

철문영이 꼭 끌어 안으며 말했다.

화희는 뿌애진 시선으로 철문열을 올려다 보았다.

"도련님, 축하드려요... 이제는 첩신이 돌보아 드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셨군요."

화희는 말을 하며 살며시 철문영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아니야, 난 아직도 화희가 필요해."

철문영이 말하자 화희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이에 철문영은 흠칫 했다.

무엇인가 그녀의 고개질에서 단호한 것을 본 것이다.

(... 이제 내가 저분 곁에서 떠날 때가 되어 가는구나. 더 이상 저분 곁에 있으면 저분과 빙향공주님의 관계만 더욱 악화될 뿐...)

화희가 아련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철문영의 검미가 꿈틀 했다.

"환희... 설마... 내곁을 떠나려는 것은 아니겠지?"

철문영의 물음에 화희는 쓸쓸히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너무나 정신적 유대가 강해 상대에게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환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도련님은 더 이상 첩신의 보살핌이 필요치 않으세요, 이이상 첩신이 도련임 곁에 있다는 것은 도련님께 누가 될 뿐이예요."

"그렇치 않아. 나는... 나는 화희가 없으면 견더 나갈 수 없을 게야!"

철문영이 소리쳤다.

그의 안색은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 올랐다.

태어날 때부터 그림자같이 옆에 있어준 환희와 떨어져 있는 것은 철문영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환희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첩신을 잊으실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이제 강호로 나가셔야 하잖아요."

그녀의 결심은 굳어진 것 같았다.

"아냐! 아냐! 내가 어떻게 화희를 잊어! 그건 불가능해! 제발 떠나려는 생각은 철회해줘!"

철문영이 외치며 환희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그러나, 화희는 단호하면서도 슬픈 눈길로 철문영을 올려다 보았다.

"빙향공주님을 잊으셨나요? 그분과의 사이가 벌어지신 것도 첩신이 도련님 곁에 있었다는 이유가 크잖아요? 그리고 도련님께선 어차피 빙향공주님께 돌아가셔야 할 분, 이제 첩신은 잊어 주시와요."

철문영의 눈길이 흔들렸다.

그는 잘 알고 있다.

화희의 고집도 자신에 못지 않은 것을 말이다.

평소엔 극히 온유하나 한 번 마음먹으면 흔들림이 없다.

(안돼... 화희를 놓칠 수는 없어. 하지만... 하지만...)

화희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철문영의 눈길이 번뜩였다.

(마지막 수단이다. 화희를 영원히 내게 구속시켜 놓으련면...)

일순, 철문영의 눈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눈길이 무엇을 뜻하는가?

화희는 금방 알아차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도련님, ... 설마 첩신을..."

화희가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와르르...

그동에 만들고 있던 옷가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화희를 보낼 수는 없어! 영원히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테야!"

철문영이 이글거리는 눈길로 화희를 훑어보며 다가섰다.

"... 제발... 안돼요. ... 첩신은 도련님의 은... 총을 받을 만한 계집이 못돼요!"

화희는 계속 물러섰다.

그러나, 곧 그녀의 등이 벽에 닿았다.

"화희!"

그와 함께 철문영이 득달같이 덤벼들었다.

"... 도련님! ... 안돼요... 아흑!"

화희는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녀의 몸직은 너무나 무력했다.

부욱찌지직!

화희의 겉옷이 거칠게 찢겨졌다.

"아흑... 아아..."

화희는 비명을 질렀다.

너무도 강한 힘이 자신을 짓눌러 온 것이다.

뒤이어 뜨거운 열풍이 화희를 휩쓸었다.

"... 안돼요! 아아..."

화희는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 몸짓은 거칠은 폭풍을 막기에는 너무도 무력하기만 했다.

"나낟..."

어느 한순간, 모든 것이 일시에 멈추었다.

대지(大地)가 허물어자는 처절한 고통이 석실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꽈르릉쾅!

상상할 수도 없는 강대한 해일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광풍폭우가 몰아치고 대지는 부서질 듯이 고통을 당해야 했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폭풍은 끝이 없을 듯이 이어졌다.

한차례 대지를 무너뜨리고 나면 또다시 강대한 해일이 대지를 초토화 시켰다.

또르륵

그리고 한 방울 이슬이 진한 아픔과 형엄할 수 없는 환희(歡喜)를 아로 새기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의 이슬로서 또다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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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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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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