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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동정호의 파란 (2)

 

 

[금사종, 상화장은 얼마나 익혔느냐?]

동호천이 힘없는 음성으로 물었다.

금사종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겨우 초식을 암기했을 뿐입니다.]

[당장은 그 정도면 족하다. 밖으로 나가서 의자들을 내놓고 자리를 만들어라!]

동호천의 말에 금사종은 어리둥절하면서 나갔다.

밖으로 나왔지만 부주의 어디에도 의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통나무를 잘라놓은 것들을 발견했을 뿐이다.

[이걸로 의자를 대신하라는 말인가? 한데 무슨 일로...?]

금사종은 말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부주의 근처로 시체가 떠와 있었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인물들이 물위에서 부주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한명은 마치 빛살처럼 부주로 쇄도해 오고 있었다.

!

금사종은 통나무를 번쩍 들어 한쪽에 놓으면서 말했다.

[이곳에 앉으시오.]

그 자신도 엉겁결에 취한 행동이었다.

 

동호천은 두공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곧 당금 무림에서 내로라 하는 인물들은 거의 다 모일 것이다. 그들 중에는 너를 탐내는 자도 있을 것이고 너를 죽여버리려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쪽의 뜻에도 따라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공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런 그를 보며 동초천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죽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무림은 난세로 치닫게 된다. 그동안 내 눈치를 보던 자들이 천하제일이란 자리를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게 되겠지. 네가 할 역할이 그들에게 또다른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공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는 그만한 힘이 없을 것같습니다.]

[아직은 없지. 그러나 앞으로 생기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들끼리 싸우지 않고 너를 죽이려고 쫓아다니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동호천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두공이 입을 딱 벌렸다.

[그런 제 목숨이 백개라도 모자랄 텐데요.]

[어쩌면 네 목숨은 백한개 일지도 모르지 않느냐? 자 밖으로 나가자.]

동호천은 말을 하고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꼿꼿한 자세로 일어났다.

그리고는 두공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섰다.

 

***

 

부주의 가운데 위치한 마당같은 곳에는 통나무 의자 십여개가 양쪽으로 나란히 놓여져 있고, 네 사람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금사종은 한쪽에 서있다가 동호천과 두공이 나오자 허리를 굽혔다.

네사람, 그들은 만박노조와 하삼풍, 잔혼살객, 그리고 혈포단객(血袍單客)이었다.

혈포단객은 하삼풍의 쾌속선에 달라붙은 탓에 물에 젖지 않고 부주까지 이른 것이다.

동호천은 그들을 향해서 웃어보이며 말했다.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소. 여러분!]

만박노조 등은 벌떡 일어서면서 안색이 변했다.

(어떻게 된 건가? 분명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들었는데...)

만박노조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후배 만박이 동노선배께 문안드리오.]

[고맙네.]

동호천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삼풍도 포권을 했다.

[하삼풍 노선배께 인사드리오.]

[됐네. 됐어. 모두 앉도록 하게.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동호천은 손을 저어 만류하며 통나무 의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자신도 그 중의 하나에 가서 앉았다.

하삼풍과 잔혼살객 등은 그가 앉은 후에 따라 앉았다.

모두가 동호천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을 조심하고 있었다.

문득 동호천이 소리쳤다.

[모두들 나오게.]

순간,

휘익! 휙휙휙!

부주의 곳곳에서 여러 명의 인물이 번개처럼 빠르게 뛰쳐나왔다.

[역시 노선배께서는 명불허전이시군요. 후배 부운청풍객(浮雲淸風客) 인사드립니다.]

중년의 나이지만 관옥같은 얼굴을 가진 중후한 인상의 사나이가 포권하며 말했다. 그의 어깨에는 한자루의 고색창연한 보검이 걸려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포권을 했다.

[적룡혈운도주(赤龍血雲島主) 해천월입니다.]

[철사보주(鐵獅堡主) 맹호산이외다.]

[무형도객(無形刀客)입니다.]

원래 있는 네 사람의 몸에서 풍겨나는 기도만으로도 사위가 압도당할 듯했다.

한데 이들 네사람이 새로이 더해지자 공기는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되어버렸다.

 

적룡혈운도주 해천월,

그는 칠십에 가까운 노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청년과도 같은 단단하고 탄력있는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해천월은 등에는 도()를 맸으며 왼쪽 허리에는 검()을 매고 있었다.

그는 우검좌도를 사용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철사보주 맹호산,

사십이 막 넘었을 그는 칠척이 넘는 키를 가진 거한이었다.

피부는 철판이라도 깐 듯이 검붉게 보였으며 두자루의 판관필을 가지고 있었다.

 

무형도객,

오객의 한사람인 그는 이들 중에서 가장 젊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전혀 무림인 같지 않을 정도로 표정은 부드럽고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고생이란 전혀 모르고 자란 대부호의 자제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동호천은 그런 무형도객을 가장 유심히 보았다.

(대단한 녀석이군. 무도에 대해 깊이 깨달았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공을 스스로 만들어 익혔다니... 당금 무림에 나 이외에 또 이런 녀석이 있었을 줄이야.)

유심히 보았다고는 하지만 동호천의 시선이 무형도객에게 머무른 것도 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

하지만 무형도객은 그에게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동호천은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옆에 서있는 두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이 노부의 제자요.]

 

-무치 동호천의 제자!

 

그 하나만으로도 세인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만박노조 등의 시선이 일제히 두공에게로 모였다.

순간,

[!]

모두가 거의 동시에 짧은 탄성을 질렀다. 두공의 골격이 무공을 익히기엔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한데 동호천은 한숨을 푹쉬었다.

[... 옥에 티란 말이 있듯이, 하늘은 언제나 완전한 것은 만들지 않는 모양이오. 이놈은 골격이 이토록 뛰어나지만 머리는...]

[...!]

[...!]

[바위처럼 단단하오. 두공아!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말해보아라.]

동호천은 두공에게 말했다.

두공은 포권을 취했다.

[후배 석두공(石頭公)입니다. ]

순간,

[허허허허... ]

단혼곡주 하삼풍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석두공...

말그대로 돌대가리란 소리가 아닌가?

한데,

[하하하하... ]

석두공 그도 따라서 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삼풍은 웃음을 뚝 그쳤다.

반짝반짝 별빛같은 눈을 가진 미소년이 바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행동이 바로 그 인물이 아닌가?

이같은 상황에서 화내지 않고 웃는다는 것만 보아도 정말 바보거나, 아니면 아주 심기가 깊거나, 그것도 아니면 모든 일에 초탈한 그런 사람일 것이다.

(바보로군!)

이것은 그곳에 있는 고수들 모두의 생각이었다.

단 한사람, 금사종 만은 석두공에게 어떤 신비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동호천은 탄식하며 말했다.

[이렇다네. 한데도 노부는 이녀석에게 내 모든 것을 물려주지 않을 수 없다네.]

꿀꺽!

누군가 침을 삼켰다.

동호천의 모든 것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그대로 천하제일인의 뒤를 잇는다는 것,

서로가 견제하고 있는 입장에 있는 이정삼사오객으로서는 군침이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노부는 이런 생각을 했네. 이녀석 혼자서는 결코 무림에서 배겨나갈 수가 없을 걸세. 완전히 자랄 동안만이라도 보호자가 필요하단 말일세.]

[그렇겠군요. 선배께서 이 만박을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으신다면 고제자의 후견인이 되고 싶습니다.]

만박노조가 일어서면서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하삼풍의 시선이 만박의 뒤통수에 내리꽂혔다.

(교활한 늙은이. 염치도 없구나.)

동호천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부도 그렇게 하고 싶네.]

만박의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졌다.

순간 다른 일곱 명의 고수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노선배!]

그들이 막소리치는 데,

[! 앉게, 모두 진정하고 앉게.]

동호천이 손을 저으며 말하자 그들은 털썩 주저앉았다.

동호천의 말이 이어졌다.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할게 아닌가? 노부는 만박에게 후견을 맡겼으면 싶지만, 이런 일은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니 내 제자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네.]

[헤헤헤... 사부님! 제뜻은 물어보나마나입니다. 전 아무도 따라가지 않아요. 저도 부하를 거느린 대장부인데 남에게 몸을 의탁하다니요? 말도 안됩니다.]

두공이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만박 등은 그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바보가 맞는가? 바보가 어떻게 저런 말을 다...)

동호천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이놈! 나는 곧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네녀석이 무림을 너무 쉽게 보는구나.]

[저는 무림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쉽고 어렵고가 있습니까? 단지 대장부로서 제 뜻을 말했을 뿐입니다.]

이번에는 석두공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박노조 등은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무형도객이 일어서면서 형형한 눈초리로 물었다.

[동노선배님! 그럼 이번 동정호의 일이 모두 선배님께서 제자를 위해 벌이신 일이란 말씀이십니까?]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상대가 동호천이라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느꼈던 의문이지만 모두 잊어버렸던 것인데, 사실이 확연해지자 무형도객이 직접 따지고 든 것이다.

동호천은 그를 빤히 들여다 보면서 말했다.

[그렇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무형도객의 영준한 얼굴이 분노로 달아올랐다.

[은연중에 무림을 견제하여 오신 노선배께서 이같은 일을 벌이시다니... 수천 명의 목숨이 동정호에 피를 뿌리고 시체를 가라앉혔는 데 선배께서는 아무렇지도 않단 말입니까?]

피를 토할 듯한 말이었다.

(젊은 놈이 곧 죽겠구나. 감히 무치 동호천 앞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아무리 평생 사람을 죽이지 않은 동호천이라 할지라도 살지 못할 것이다.)

하삼풍은 속으로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하나가 죽으면 그만큼 적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한데 동호천은 피식 웃었다.

[그게 뭐 대단한가? 감탄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선배! 어떻게 그러실 수 있소? 평생 한사람도 죽이지 않았다던 선배의 명성은 모두 헛된 것이었구려!]

무형도객이 분에 찬 일갈을 터뜨렸다.

동호천은 그의 고함을 들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일곱고수는 물론이고 금사종마저 바짝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고 있었지만,

석두공과 동호천은 북소리를 들은 듯 바람소리를 들은 듯 표정이 없었다.

동호천이 말했다.

[사실, 한사람도 죽이지 않았다던 말은 거짓말이네. 난 한사람을 죽였다네. 독한 놈이었지.]

[...!]

[...!]

무형도객마저 말을 잊고 입을 딱 벌렸다.

쥐죽은 듯 고요한 침묵이 부주에 감돌았다.

잠시 후 동호천이 다시 말했다.

[아마도 내가 있음으로 해서 자네들은 행동을 어느 정도 자제했을 것이네. 그렇지 않은가?]

[그렇소.]

사신도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호천은 말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사람이 별로 죽지 않았겠지? 오늘 나때문에 이삼천 정도 죽는다고해서 그다지 나쁠 것이 뭐있는가?]

[어떻게 그런 궤변이... 노선배 정말 실망했소이다.]

무형도객이 기가막힌 듯 살기어린 음성을 내뱉었다.

석두공이 그를 만류하면서 말했다.

[이미 일은 벌어진 것, 돌이킬 수 없습니다. 사부님께 추궁하신댔자 대협께서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사부님께서 하고 싶은 말이나 다 하고 죽도록 해주시지요.]

무례한 것같으면서도 아닌 것같기도 하고, 조리가 있어 현명한 것같기도 하면서 바보스러운 데가 있는 두공의 말이었다.

만박노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똑똑한 바보로군 똑똑한 바보야.)

그때 동호천이 말했다.

[무형도객이라 했든가? 자네의 말은 무슨 뜻인지 알겠네. 하지만 난 달리 감흥이 없으니 내 제자 말대로 접어두고 내 말이나 다 들어보도록 하게.]

무형도객은 분을 누르고 가만히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동호천의 말이 이어졌다.

[내 제자의 후견을 정하는데 있어, 노부는 오초 내에 내 제자를 제압하는 자로 정하고 싶네. 만약 오초 내에 제압하는 사람이 여럿이라면 가장 먼저 제압하는 자로 하지. 무림인이 무공으로 정하는 것인 만큼, 아마 이녀석도 무공에는 토를 달지 못할 걸세.]

[오초내에 저를 제압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석두공이 물었다.

그의 이 말에 모든 사람들은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고,

동호천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또한, 이곳에 온 자네들도 마음대로 해도 좋네. 내 제자를 억지로 잡아가든지 어떻게 하든지... 분명히 밝혀두네만 저녀석을 잡는다면 노부가 직접 엮은 두권의 무치무요(武痴武要)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무치무요란 말에 중인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천하제일인의 비급을 탐내지 않는 무림인이 누가 있겠는가?

[좋습니다. 대장부가 자유를 위한 일인데 누구와 싸우길 마다하겠습니까? 당장 시작하지요.]

석두공이 호언을 하면서 나섰다.

만박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무지 석두공이란 놈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 것같았다.

[껄껄껄...]

갑자기 철사보주 맹호산이 대소하고 말했다.

[자네는 머리는 좀 시원찮은데 행동은 정말 시원시원한데가 있군그래. 본좌가 먼저 자네를 상대해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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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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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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