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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바람을 부르는 가공할 돌머리 (1)

 

 

 

 

-동정호(洞庭湖),

 

악양(岳陽)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천하제일호는 마치 바다처럼 드넓다.

파란 물결에는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하고, 그 하늘로는 흰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청백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위를 떠가는 유람선은 하늘을 나는 듯 호수를 미끌어지고, 낚시를 드리운 태공(太公)들은 하늘을 낚아올릴 듯하다.

호수물을 스치운 맑은 바람은 갈대들을 이리저리 흔들고, 동정호 가운데에 마치 점처럼 떠있는 하나의 부주(浮州)에까지 이른다.

아름드리 통나무들을 수백개를 이어서 만들어놓은 부주는 이름 그대로 하나의 떠있는 섬이다.

한변의 길이가 족히 백장이 넘는 드넓은 부주 위에는 작은 집도 있으며 채소 밭도 있고, 작으나마 한척의 배도 끌어올려져 있었다.

또한 한쪽에는 커다란 북도 기둥에 매달려 있다.

멀리서 보아서는 도무지 부주라고 믿지 않을 그런 것이었다.

종종 섬으로 오해받는 부주는 그러나 한곳에 고정되어잇지 않고 바람에 밀리면서 동정호의 이곳저곳을 떠다닌다.

한데 부주 위에서 한 소년이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한곳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가득 얼굴을 찌푸렸는데,

세상에 이처럼 잘생긴 미소년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짙은 검미에 검은 하늘을 담은 듯 영롱한 눈빛,

건강미가 넘쳐흐르는 적당히 그을린 피부,

오똑한 콧날과 부드러운 턱선...

나이는 아직 열두엇 정도,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장중한 무게가 실려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큰 바람이 불겠어. 비도 많이 오겠지.]

소년은 말하고는 즉시 한쪽에 매달린 북을 향해 걸어갔다.

소년은 자기 키만큼이나 한 북채를 들고는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둥둥둥둥...!

 

북을 두드리는 소년의 팔놀림은 힘찼고,

북소리는 동정호 수면위로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 × ×

 

둥둥둥---!

[어이! 장삼(張三), 이거 북소리 아닌가?]

푸르른 동정호에 그물을 던지던 어부가 다른 배에 있는 어부를 향해서 소리쳤다.

그쪽에 있던 어부는 그물을 걷어올리며 외쳤다.

[맞네. 풍래고(風來鼓)가 틀림없네.]

[북소리가 급한 것을 보니 큰바람이 올모양일세. 빨리 돌아가세나.]

갑자기 동정호에 떠있던 배들이 일제히 술렁이고 있었다.

둥둥둥-󰠏!

북소리는 들리고 동정호에 떠있던 배들은 그 북소리에 맞추기라도 하듯이 모두 물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배들중에는 어선도 많았지만 유람선(遊覽船)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유람선에는 외지에서 동정호의 풍광을 구경온 외지인들이 타고 있다.

갑자기 들려온 북소리와 더불어 배가 움직이고 풍악소리가 그치자 유람선 안의 인물들은 놀라 당황하고 있었다.

둥둥둥---!

점점 빠르게 들려오는 북소리가 마치 전쟁에서 사용하는 군고(軍鼓)의 것인양 우렁찼다.

배를 조종하는 선부(船夫)들의 얼굴에도 긴장이 어려있다.

물가를 향해 경주하듯 달리는 여러척의 배들 중 가장 뒤쪽에 처진 한척의 유람선에서 노를 젓던 늙은 선부가 굳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이렇게 급박하게 풍래고가 울린 적은 한번도 없다. 최대한 빨리 뭍으로 나가야 한다. 어쩌면 모두 여기서 죽을 지도 모른다.]

유람선의 승객들 중 금의(錦衣)를 입은 한 청년이 노인에게 소리쳤다.

[여보시오! 수적(水賊)이라도 나타났소? 대체 무슨일인데 이런 소동이요?]

그러나 늙은 선부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직 필사적으로 노를 저을 뿐이다.

유람선에 올라 손님들의 흥을 돋구던 기녀(妓女)들마저도 뭔가를 알고 있는 듯 표정은 굳었고 금()과 비파(琵琶)를 잡은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금의청년이 화가 치밀었는지 배의 기둥에 일장을 가하면서 소리쳤다.

[감히 나를 무시하는 건가?]

청년의 손에 맞은 배의 기둥에는 칼로 새긴듯이 장인(掌印)이 세치 깊이로 파여있었다.

보통 수련을 쌓아서는 그처럼 매끈한 일장을 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녀들도 늙은 선부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늙은 선부는 마주 고함쳤다.

[살고 싶으면 빨리 빈 노라도 잡고 저으시오.]

[... 뭐라고?]

금의청년은 어이가 없는듯 기녀를 돌아보았다.

기녀가 재빨리 말했다.

[바람이 와요. 바람이....! 이대로 물위에 있다간 모두 고기밥이 될거예요.]

[하하하하...!]

금의청년은 낭소를 터뜨렸다.

[대체 바람이 어디 분다고 그러시오. 하늘도 구름 한점 없이 맑고 물결도 잔잔하지 않소? 이런 물위에서는 나뭇잎도 뒤집어지지 않을 것이오.]

[미친 놈! 풍래고를 듣고도 부정타게스리 그딴 소리를 하다니...]

늙은 선부가 버럭 욕지거리를 해댔다.

순간 금의청년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늙은이! 정말 이 공자님의 손에 죽고싶은 모양이구나!]

그러나 옆에 있는 기녀만이 그 기세에 오돌오돌 떨었을 뿐 늙은 선부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젊은 놈이 노인 앞에서 힘자랑을 하려는 겐가? 내가 죽고 나면 이배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살아나지 못해!]

스스스스...

노인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금의청년은 움찔하며 뻗어가던 손을 거두었다.

바람!

정말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이다.

파라라락!

갑자기 옷깃이 떨리고 있었다.

청년의 안색이 대변했다.

[이럴 수가... 정말 바람이 불다니... ]

하늘에는 수평선 저쪽에서 부터 검은 구름이 질풍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물결이 일어나고, 배가 벌써부터 이리저리 요동쳤다.

다른 배들에서 손님과 선부들이 힘을 합해서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호변에 있던 배들은 벌써 물위로 끌어올려지고 있었으나 금의청년등이 타고 있는 유람선은 아직도 호변까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휘이이잉!

청년은 달려가서 빈 노를 잡으며 소리쳤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오?]

[북소리... 풍래고라고 하는 저 북소리 때문이예요. 언젠가부터 이곳엔 이상한 노인과 소년이 와서 살기 시작했는데, 소년이 북소리로 바람을 부르는 힘이 있데요.]

기녀중 한명이 기둥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청년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북소리가 바람을 부른다고? 세상에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가...]

[직접 겪고도 믿지 못하세요? 벌써 수십 명이 풍래고를 듣고도 피하지 않았다가 죽었어요. 그래서 호수에 나올땐 항상 귀를 열어놓고 있다구요. 풍래고가 울리지 않나 해서...]

우당탕! 쿵탕!

배가 좌우로 요동치면서 물건들이 굴러떨어지고, 담이 작은 승객들은 갑판에 엎드려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촤아아!

우우우웅!

바람이 배를 맴도는 소리가 귀신의 호곡(號哭)처럼 들렸다.

사방은 이미 칠흑처럼 어두워지고 있었다.

호수는 물결이 잔잔하다는 말도 모두 거짓말이었다.

호수 물은 뒤집혀 누렇게 변했으며, 물결은 배를 엎을 듯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청년 등이 탄 유람선만이 뭍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배들보다 너무 멀리 나가있었으며 또한 배가 날렵하지 못하다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손님들을 많이 실었을 때에는 수입이 좋다고 좋아했던 선부였으나, 이제는 오히려 그 손님들이 짐이되어 배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또한 그 두번째 원인이었다.

늙은 선부는 탄식을 했다.

[! 조금만 빨랐어도 살 수 있었거늘...]

바람은 방향을 종잡을 수 없이 불어 배를 오히려 뭍에서 부터 멀어지게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절망뿐이다.

한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촤아! 촤아!

경쾌하면서도 힘찬 노젓는 소리가 미칠 듯한 바람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그의 귀로 들려왔다.

(이런 풍랑속에서 배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니...)

늙은 선부는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피리링!

갑자기 배의 선수(船首)에 있는 용두(龍頭)로 굵은 동앗줄이 날아와 걸렸다.

늙은 선부는 기를 쓰고 앞으로 나아가 선수에 다다랐다.

촤아! 촤아!

노젓는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늙의 선부의 눈에는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보여지고 있었다.

어둠! 그리고 산더미 같은 파도들 사이로 가랑잎같은 작은 배한척이 파도를 타고서 유유히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배의 후미에는 굵은 밧줄이 매여있는데 그것은 유람선의 용두에 걸린 밧줄의 다른 한쪽 끝이었다.

흰그림자가 그 조각배 위에서 노를 저어가는데 조각배는 순식간에 뭍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늙은 선부는 혼이 빠져달아나는 것같았다.

[풍래동자(風來童子)...! 풍래동자가 직접 배를 끌어주다니... 병을 주고 약을 주는 건가?]

잠시 후, 배는 마치 거대한 손에 끌려가기라도 하는 듯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선착장!

배들이 떠내려 가지 못하도록 동앗줄을 묶는 돌과 쇠로 만든 기둥들이 늘어서 있다.

한데 그곳에는 부주(浮州)위에서 북을 두드렸던 미소년(美少年)이 밧줄을 매는 쇠기둥들에 기름을 바르고 밧줄을 여러 겹으로 바른 후 당기고 있었다.

그에 따라서 한척의 유람선이 풍랑속에서 끌려오고 있었다.

비록 소년이 꾀를 쓰서 힘을 적게 들이고는 있지만, 끌려오는 것은 작은 물건도 아닌 수십 명의 사람이 타고 있는 한 척의 유람선이다.

소년의 신력(神力)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오자 소년은 밧줄을 단단히 묶어 풀어지지 않게 한 다음 끌어올려놓았던 조그만 배를 밀어서 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촤아! 촤아!

힘찬 노젓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풍랑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유람선에서는 앞을 다투어 사람들이 내려왔다.

[십년감수했다!]

손님들 중의 누군가가 소리치며 객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늙은 선부는 매여져 있는 밧줄을 보고는 엎드려 절하면서 말했다.

[풍래동자님께서 이 늙은 목숨을 살려주신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소녀 또한 동자님의 은혜를 가슴 깊히 새기겠습니다.]

기녀들도 내려와서 밧줄이 묶여 있는 쇠기둥에 대고 절하며 말했다.

금의청년은 괴상한 일을 당해서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는 객점으로 걸어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풍래동자인가 뭔가가 바람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인다면 왜 그를 먼저 죽여버리지 않는단 말인가?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구나.)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면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여하튼 금의청년은 굴강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 × ×

 

[이놈! 두공(頭公)!]

동정호의 중간 쯤에 떠있는 부주의 위에 지어져 있는 집 안에서 노인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이곳이라고 피해갈 리 없다.

넓고 평평해서 다른 배보다는 안전하겠지만, 이곳 역시 산더미 같은 파도가 위에서 덮치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이 잠겼다 말았다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미소년은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자신이 타고온 배를 끌어올려 단단히 묶어놓았다.

[이 쇠대가리! 빨리 들어오지 못하느냐?]

다시금 집 안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미소년은 탄탄한 평지를 달리듯이 흔들리는 부주위를 달려가며 소리쳤다.

[사부! 가고 있습니다. 가요. !]

!

문을 밀치고 들어서 소년은 한쪽 벽에 기대서며 일부러 힘든듯 거친 숨소리를 냈다.

[핵핵!]

[이놈! 쇠대가리! 내가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

침상에 누운 노인이 성질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면서 부르르 떨었다.

한데 이 노인...

비록 몇 년 전보다 훨씬 늙어 보이기는 하지만 틀림없는 무치(武痴) 동호천이다.

비록 일백삼십이 넘은 나이기는 하나 갑자기 이처럼 늙을 수도 있단 말인가?

동안처럼 붉으스레 하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하지 않은가?

미소년이 침상으로 다가가서 동호천의 머리를 받쳐 바르게 눕히며 달래듯이 말했다.

[사부! 진노를 푸세요. 제가 한사람이라도 더 구한다면 하늘이 혹시 사부께서 더 오래 사시게 해줄지도 모르잖아요.]

[... 너 이놈... ]

동호천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말을 잊지 못했다.

두공이라 불린 미소년이 다시 말했다.

[오늘은 적어도 서른 명은 구했을 거예요. 그러니 최소한 삼십년은 벌어온 셈이죠.]

동호천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소용없다. 소용없어. 사람은 늙으면 죽는게야. 내가 앞으로 아침해를 보름동안만 더 볼 수 있으면 아마 다행일 것이다.]

동호천의 음성에는 진한 허무가 배여있었다.

그는 염려가 가득한 눈으로 두공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네가 어떻게 험난한 강호를 헤쳐나갈 지... ]

[()은 아직 나가보지 않아서 잘 몰라요. 그래도 호수라면 얼마든지 자신...]

두공의 어리석은 듯한 말에 동호천은 씁쓸하게 웃었다.

[강호(江湖)란 무림을 말하는 거야.]

[그랬군요. ? 그럼 틀렸는데 왜 꾸짖지 않으세요?]

두공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물었다.

동호천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쉬고 싶구나. 네방으로 가거라.]

두공은 동호천의 이불을 다시 한번 도닥거려주고 나서 옆으로 뚤린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은 하나의 창고나 다름없었다.

수십 종에 이르는 병기들이 흩어져 있고, 한쪽으로는 또한 수백권이 넘을 것 같은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두공은 먼저 불을 켠 후 책더미에 벌렁 드러누워 그 중의 한권을 펴들었다.

일렁이는 등불에 책의 제목이 드러났다.

 

<필생검법(必生劒法)>

 

괴상한 제목의 책이었다.

강호의 무공들에는 필살(必殺), 필사(必死) 등의 말은 사용되어도 필생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산다는 것은 그처럼 당연한 것이고 죽거나 죽이는 것이 평상적인 것이 아니기에 그같이 사용되는 것이다.

파락!

두공은 한장의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잠시후,

!

필생검법은 그의 얼굴을 덮고 말았다.

그만 잠들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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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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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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