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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九絶太陰天羅經을 지닌 여인

 

 

 

"초령은 혹시 적화장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오?"

철문영의 말에 상관초령은 멋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화신검께서 적의 숙부뻘 되세요."

철문영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결국, 열양만정과의 일을 어떻게 좀 해결해 달라는 부탁이군."

"그래요. 저와 흑호채의 힘으로는 사패와 정면 충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달리 부탁할 곳도 없어 표형을 찾은 거예요."

상관초령이 초조한 빛을 띄우며 말했다.

이에 철문영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

"걱정하지 말아요. 열양만정과의 일은 내 해결해 주리다. 평소 사패(四覇)의 짓거리가 볼썽사나웠는데 이 기회에 한바탕 두들겨 놓겠소."

사관초령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표형 고마워요. 숙부님을 대신해서 제가 감사를 드려요."

철문영은 싱긋 웃었다.

"초령답지 않은 말이군. , 이제 교기대회가 시작될 터이니 가봅시다."

철문영이 일어서자 상관초령도 일어섰다.

"군영대회에 참여하실거예요?"

상관초령이 객실을 나서며 물었다.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오. 그저 한 바퀴 둘러볼 생각이지만 초령은 어떻소?"

상관초령이 미소를 지었다.

"표형도 잘 아시잖아요. 저는 예쁘게 차리고 사뿐사뿐 걷는 일따위하고는 담을 쌓았잖아요. 군방대회에 나가면 아마 예선에서 떨어질 거예요."

철문영이 껄걸 웃었다.

"철익비룡(鐵翼飛龍)과 비천옥호(飛天玉狐)."

두 사람이 지나가자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남녀야말로 신진제일의 고수들이니 주목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관초령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철문영의 손을 흔들며 재잘거렸다.

"카아악"

돌연 전면에서 여인들의 함성이 일었다.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전면에서 수십여 명의 여인들에 둘러싸여 한 명의 청년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 옥면유협인가 무언가하는 기생오라비군요."

상관초령이 입술을 삐죽였다.

과연, 여인들에 둘러싸여 다가오고 있는 청년은 눈에 확 띄는 영준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제법이군. 이미 공력이 일갑자를 넘었는걸.)

철문영의 시선이 강령하게 빛났다.

"..."

철문영과 옥면유협 임백천의 시선이 부딪혔다.

양인은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던가?

"... 철익비룡(鐵翼飛龍)!"

여인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졌다.

커다란 피풍을 표표히 날리며 서있는 철문영의 모습은 독특한 것이었다.

여인들이 터놓은 통로로 임백천이 환희 웃으며 다가섰다.

"형께서 표형이십니까?"

"형께서는 임백천형이시겠구려."

철문영은 임백천이 내민 손을 굳게 잡았다.

"핫하..."

"하하하..."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치며 호탕히 웃었다.

금방 십년지기같이 친해진 것이다.

"핫하하... 두분 무엇이 그리 즐겁소?"

돌연 천둥치는 듯한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

고개를 돌린 중인들은 입을 딱 벌렸다.

한 명의 거한이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구 척이 넘는 키에 마치 하나의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거한이었다.

거한의 등뒤로는 다섯 자가 넘는 대형의 감산도(坎山刀)가 매어있었다.

거한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두 청년에게로 다가왔다.

"형장께서 탁탑거웅(托塔巨雄)이외까?"

철문영이 묻자 거한은 철문영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는 형께선 철익비룡?"

철문영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소이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소이다."

"하하... 소제 역시 마찬가지오."

탁탑거웅 맹청탁도 호탕하게 웃으며 철문영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의 손은 너무나 커서 그리 작지 않은 철문영의 손이 푹 파묻혀 버렸다.

"하하... 맹형, 이거 섭섭하외다. 소제 임모는 아니 보이십니까?"

임백천이 껄걸 웃으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하하..."

"하하..."

세 사람은 호탕하게 웃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해 버린 것이다.

"이것봐요! 형들께서만 기분내시기예요?"

보고있던 상관초령이 교갈을 하며 성큼 앞으로 나왔다.

"이봐요, 나는 비천옥호 상관초령이예요. 우리 인사나해요."

상관초령이 섬섬옥수를 내밀자 맹청탁은 다황한 듯이 얼굴이 시뻘개졌다.

"핫하..."

그 모습을 본 임백천과 철문영 등이 대소를 터뜨렸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춘 임백천이 말을 꺼냈다.

"이제 절정신유(絶丁神儒)형만 빠지고 우리 오영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잠시 교기대회를 둘러보고 한잔 거나하게 나눕시다."

상관초령이 임백천을 향해 물었다.

"기생오라버니도 군영대회에 참가하지는 않을 모양이지요?"

임백천의 안색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상관초령이 대놓고 기생오라버니라고 부를 줄은 생갖치 못했기 때문이다.

"꺄아!"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여인들이 비난의 교성을 질렀으나 상관초령은 태연했다.

아울러, 임백천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소이다. 물론 옥호리(玉狐狸)께서도 군방대회에는 참석치 않으시겠지요?"

옥호리라는 말에 상관초령은 고운 아미를 찡긋거렸다.

"낄낄...!"

그리고는 재미있다는 듯 사내같이 낄낄대며 웃었다.

"기생오라비 답지 않군요. 내가 잘못 본 모양인걸. 제법 사내다워요."

상관초령이 손을 내밀었다.

"핫하... 상관형같은 친구도 한둘 쯤은 있어도 상관없겠지요."

두 사람이 손을 마주잡고 흔들자 보고있던 여인들의 눈길이 과히 곱지 않게 변했다.

", 두분 기분 그만내시고 교기대회나 구경하러 갑시다."

철문영이 두 사람의 어깨를 말했다.

"클클, 좋소 좋아, 우선 군방대회를 보러갑시다. 혹시 이 맹청탁에게 시집오겠다는 급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오?"

맹청탁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하하하..."

중인들은 한바탕 웃어제치고 울창한 풍림으로 다가갔다.

네 사람의 젊은이는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넓은 광장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진회하가 내려다 보이는 아늑한 풍림 속의 공지로 좌측 끝에 높직한 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군방대회는 무림 여협들의 대회임에도 오히려 젊은 청년들이 관중의 차지하고 있었다.

"무림오영(武林五英)이다."

네 젊은이가 들어서자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들에게 쏠렸다.

네 사람은 개의치 않고 한쪽으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임백천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여인들은 그에게 시선을 보내며 열광하여 마지 않았다.

"호호... 누가 나중에 임형의 부인이 될 지는 모르나 고생깨나 하겠어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바람을 피울테니 말이예요."

상관초령이 임백천의 옆구리를 찌르며 놀려 대었다.

"하하... 그러는 소저의 낭군될 사람도 고생깨나 할 것이오. 부인이 호랑이 보다도 무서울테니 일평생 다른 여자에게 곁눈질도 못할 것이 아니요?"

임백천이 킬킬대며 받아넘겼다.

"! 그딴 소리하지 말아요. 나는 혼인같은 것 안해요."

상관초령이 뱁새눈을 하며 임백천을 흘겨보았다.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그녀는 빠르게 철문영을 쓸어 보았다.

철문영은 미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군방대회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외다."

문득, 철문영의 말에 임백천 등은 대위로 시선을 돌렸다.

성장을 한 한명의 절세미녀가 대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군방대회(群芳大會)를 시작하겠사옵니다. 우선 폐원의 원주께서 심사를 해주실 분들을 모시고 나오시겠습니다."

여인은 말을 하고 돌아섰다.

사르르...

이어, 나직한 패옥 부딪는 소리가 들렷다.

그와함께 한 명의 면사여인이 여러 명의 노부인들과 광장에 나타났다.

면사여인, 그녀가 바로 요지선자였다.

비록 면사로 얼굴을 가려 용모를 볼 수는 없었지만 전신에서 우아함과 부드러운 분위기가 은연중 흘러 나왔다.

과연 천하제일의 미인으로 군림해온 여인다운 기품이었다.

요지선자는 대위에 마련된 의자로 가 앉았다.

동시에 여러 노부인들도 마련된 좌석에 앉았다.

"자세히들 보세요. 요지선자 약선배님의 좌측에 앉은 노파가 누구신지 아시겠어요?"

상관초령의 지적에 세 청년은 그 노파를 주시했다.

노파는 나이를 짐작키 어렵게 얼굴 전체가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노파의 두눈에선 번갯불과도 같은 신광이 흐르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최절정의 내가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저분 노파는 화산의 명숙이신 화령신모(火靈神母)세요."

상관초령의 말에 청년들은 흠칫 했다.

"저분이 삼마(三魔), 삼괴(三怪)와 동배의 고인이신 화령모모란 말이오?"

임백천이 놀라 물었다.

"그래요. 저분은 연로하시기는 했으나 아직도 성격이 불과 같으시니 대할 기회가 있으면 십분 조심해야해요."

상관초령이 말하는데 요지선자가 일어섰다.

"이번 군방대회에도 이렇게 많은 후배들께서 참가해 주신데 대해 감사 드려요. 제가 이 군방대회를 마련한 이유는 여러 후배들께서 거치른 무림생활에 행여나 여인으로서의 섬세함을 잃지나 않을가 하는 노파심 때문이예요. 따라서 오늘 군방대회를 진행함에 있어 평가는 무예보다도 행동거지와 여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재기에 큰 비중을 두겠으니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 군방대회를 평가해 주실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어요."

맑은 옥령이 울리듯, 청아하면서도 윤택한 목소리로 요지선자는 노부인들을 소개하였다.

노부인들은 화령모모 외에는 무림인이 없었다.

그녀들은 모두 무림세가나 명문의 안주인들이었다.

요지선자는 소개를 마친 뒤 문득 시선을 철문영 등에게 던졌다.

커다란 피풍을 걸친 철문영, 작은 동산과같이 우람한 체구의 맹청탁, 눈에 확 띄는 귀공자 임백천, 그리고 미모와 재기넘치는 상관초령, 네 젊은이는 수많은 인파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모습들이다.

"!"

철문영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요지선자의 눈길을 정면으로 받자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 것이다.

(... 무섭다. 한 쌍의 봉목만으로 사람의 이지를 뒤흔들다니... 혹시 그녀가 그 기공(寄功)...)

철문영은 한 가지 가공할 기공이 생각나 등골이 서늘해져왔다.

그러나, 천하에서 가장 정력(定力)이 굳은 그 인지라 곧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힐끗 옆을 보니 임백천 등은 정신이 나가 멍하니 요지선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순 요지선자의 눈에 감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무림오연 중 네분 소협들께서 군방대회를 지켜봐 주시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감사해요."

요지선자가 말을 하자 철문영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해나 되지 않았으면 다행이겠습니다."

철문영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제야 임백천 등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들의 귀에는 철문영의 목소리가 천둥같이 크게 들린 것이다.

뒤미처 임백천, 맹청탁, 상관초령은 차례로 공수를 해보이고 앉았다.

"네분 소협께서 관전해 주시니 여러 후배 여협들께서 한층 힘이 나실거예요."

요지선자는 말을 하며 장중을 둘러보았다.

"이제 군방대회를 시작하겠어요."

요지선자의 선언에 청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뒤이어, 은은한 풍악소리가 들리는 중에 군방대회에 출전하는 여인들이 차레로 나와 인사를 하였다.

그때마다 청년들은 환호했다.

여인들은 한 껏 성장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차례로 자신들이 지닌바 재기들을 겨루었다.

여인 하나하나가 자신의 용모와 재기에 자신있는 재녀들이었다.

상관초령은 힐끔 옆을 바라보았다.

맹청탁은 연신 무어라 소리를 지르며 웃어제끼고 있었다.

조금 단순하면서도 직선적인 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임백천은 만면에 미소를 담은 채 종종 손을 들어 보였다.

대위에 오른 여인들은 열이면 여덟, 아홉이 임백천에게 뜨거운 시선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가끔 무엇인가 철문영의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출전한 여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관초령은 야릇한 감정이 섞인 시선으로 철문영의 안색을 살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철문영은 담단한 시선으로 재기를 겨루는 여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상관초령은 자신이 왜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알수없어 피식 웃었다.

신시초가 되자 대충 경쟁자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하락(河落) 남가부(南家府)의 남하봉, 백양세가(白楊勢家)의 백리소하(百里素霞), 복마문(伏魔門) 복마곤신(伏魔棍神)의 딸이며 한산신니의 애제자 한산냉연(寒山冷燕) 염옥화, 천남일염(天南一艶) 황보연연, 중주 남궁세가(南宮勢家)의 다지신녀(多智神女) 남궁옥영 등 다섯 명의 여인들이 돋보였다.

상관초령이 문득 철문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표형께선 누가 우승할 것으로 보세요?"

철문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미모로는 천남일염(天南一艶) 황보낭자가 으뜸이오. 그러나 무공으로는 한산냉연 염소저가 가장 뛰어나오. 그러나 두분 소저는 다지신녀 남궁낭자의 재기에는 상대가 못되지요. 제가 보기에는 다지신녀 남궁소저가 가장 유력한 것같소."

철문영의 말에 임백천이 동조했다.

"소제의 생각도 표형과 같소이다."

상관초령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철문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왜 일어나세요?"

"잠깐 바람좀 쏘이고 오리다."

철문영은 상관초령에게 말한 뒤 장내를 벗어났다.

"!"

진회하가로 내려온 철문영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노을이 깔리기 시작한 진회하가를 걷기 시작했다.

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수양버들가지가 노란 장막같이 드리워져 있다.

철문영은 붉은 저녁놀 속의 수양버들가지 사이로 진회하를 거닐었다.

사패와 사절 등에 대한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그는 어느덧 한산한 강가에 이르러 있었다.

그곳은 지회하의 동쪽 끝부분이었다.

"너무 멀리왔군, 돌아가자."

철문영은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

철문영의 몸이 굳어졌다.

짜르릉

어디선가, 인간의 음()이라 믿어지지 않는 감미로운 악기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것은 비파(琵琶)소리였다.

마치 맑은 샘물이 흘러나는 소리인 듯, 잔잔히 흐르는 봄의 꽃향기같은, 실로 감미롭기 이를데 없는 비파소리였다.

다만, 비파소리의 기저에는 심금을 울리는 처연함이 갈려 있는 점이 흠이었다.

"누가 이토록 아름다운 비파소리를 내는 것일가? 인간의 손에서 나는 소리하고 믿겨지지 않는구나."

철문영은 문득 정신을 차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귀를 기울여 비파소리의 근원을 찾으려했다.

비파소리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저곳이닷!"

철문영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진회하의 외곽에 떠있는 작은 섬이었다.

비파소리는 그곳에서 들리고 있는 것이다.

"가보자!"

철문영은 누가 그토록 아름다운 비파음을 내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한 번 찾아가 보기로 작정했다.

"차핫!"

그는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의 몸은 단번에 삼십여 장 상공으로 날아 올라갔다.

파악!

진기가 막히는 순간, 붉은 노을을 받아 강렬한 빛을 내며 거대한 은빛의 철익(鐵翼)이 펼쳐졌다.

휘익!

한 바퀴 허공을 돌아본 그는 섬쪽으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진회하를 가로질러 날아간 철문영은 섬의 상공에서 몸을 멈추었다.

섬은 그리 크지 않았다.

가장 먼저 철문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척의 길쭉한 철선(鐵船)이었다.

그리고, 곧 그는 세 명의 남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섬전체가 수양버들로 들어차 있다.

지금, 버드나무 사이의 공지에는 넓은 포단이 깔려있고 그 포단 위에 일남이녀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인이었다.

일신에 백포를 걸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세 자 가량의 곤방대를 들고 있었다.

두 여인은 이십 전후의 젊은 여인과 노인 정도된 나이의 노파였다.

비파는 노파의 품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 젊은 여인이 타고 있었다.

"!"

여인을 바라다 보던 철문영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졌다.

여인의 미모가 너무나 뛰어난 때문이다.

특히 마치 백옥으로 빚은 듯이 시리도록 푸른 피부는 눈이 부시기까지 하였다.

다만 한 가지, 지나치도록 연약해 보이는 것이 애처로움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

문득, 한 소리 높은 소리가 일며 여인의 섬섬옥수가 멈추어졌다.

여인은 지면에 생긴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다.

"누구냐?"

그제서야 노인도 누군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일갈하며 일어섰다.

순간적으로 노인의 일신에서 엄청난 잠력이 폭발하려는 것을 철문영은 보았다.

삼인은 허공을 바라보다가 아연하였다.

한 마리 신응같이 떠있는 철문영의 모습 때문이다.

휘익!

철문영은 표표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실례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비파소리에 정신이 팔려 그만 결례되는 짓을 하였습니다."

철문영이 정중히 포권하며 사과하자 경계의 빛을 띄우던 노인의 안색이 풀어졌다.

"허허... 괜찮소이다. 소협께서는 혹시 무림오영(武林五英) 중 철익비룡 표소협이 아니오이까?"

노인의 물음에 철문영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소갱아 표아무개입니다."

그때였다.

"아가씨..."

노파의 다급한 비명이 일었다.

철문영이 급히 돌아보니 젊은 여인이 축 늘어져 정신을 잃고 있었다.

"소생이 저분 소저를 너무 놀래켜드린 모양이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철문영이 말하자 노인은 급히 품속에서 옥병을 꺼내며 고개를 저었다.

"소협 때문이 아니오. 본시 저희 아씨께서는 지병을 지니고 계셔서 종종 저러시니 미안해하지 마시오."

노인은 옥병에서 몇 알의 환약을 꺼내 여인에게 복용시켰다.

뒤이어 노부인이 급히 여인의 몸을 주물러 주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무거우면서도 신속하기 이를데 없었다.

(두 노인 모두 최절정의 고수들이구나. 내가 이제껏 만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인물들인걸. 이런 고수들을 종복으로 둔 저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철문영은 의아한 기색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보면 볼수록 아름다왔다.

비단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전신에 베인 기품 또한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 유모... 그분 공자님은..."

이윽고 여인은 정신을 차렸다.

여인은 정신을 차리자 마자 철문영을 찾았다.

그러다가 철문영이 그대로 있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모, 나를 배로... 데려가 주어요. 그리고... 저분 공자님을 선실로 모셔주세요."

여인의 말에 노파는 여인을 안아들고 철선으로 다가갔다.

"소협, 아씨께서 뵙기를 청하시닌 괜찮으시다면 저희 배로 잠깐 올라가 주십시오."

노인이 철문영을 바라보며 청했다.

"폐를 끼치겠습니다."

철문영은 무엇인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아 두 말않고 철선으로 올라갔다.

"들어 가시지요."

노부인이 선실에서 나오며 청하였다.

철문영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선실 안은 매우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빼어난 기법의 화폭이 걸린 선실 끝에는 편안해 보이는 침상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예의 미녀는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철문영을 바라보았다.

"몸이 불편하여 결례를 하오니 양해하여 주시와요."

여인이 살짝 볼을 붉히며 말했다.

"아니오이다. 불편하신 소저를 번거롭게해 드린 소생이 오히려 송구스럽습니다."

여인은 미소를 띄우며 자리를 권했다.

철문영이 침상 옆의 의자에 앉자 여인은 문득 말을 꺼냈다.

"공자께서는 진맥을 하실 수 있으신지요?"

"잘은 못하나 할줄은 압니다."

그의 말에 여인은 섬섬옥수를 철문영 앞에 내밀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소녀의 진맥을 보아주셨으면 해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여인의 손목을 잡았다.

막상 잡아보니 여인의 손목은 너무나 가냘펐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러질 듯이 가냘픈 손목이었다.

헌데, 여인의 맥문을 짚은 철문영은 안색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인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 ..."

철문영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렀다.

그 신음소리는 경악과 안도의 의미가 뒤섞인 그런 신음성이었다.

철문영은 미미하게 떨리는 손을 여인의 맥문에서 떼었다.

"소녀의 병세가 무엇인지 알아내시었는지요."

여인이 나직이 묻자 철문영은 여인의 눈을 직시했다.

그의 눈빛은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따뜻한 정까지도 담고 있었다.

여인은 철문영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구절태음천라경(九絶太陰天羅經)!"

철문영의 입에서 묵직한 한 마리가 흘러나왔다.

!

 

구절태음천라경(九絶太陰天羅經)!

 

천하에서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과 비견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절맥(絶脈).

이 절맥을 지닌 여인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방치해 둔다면 이십이 못되어 전신의 심맥이 얼어붙어 절명하고 만다.

이를 치료하는 갈은 단 하나.

거의 동시에 세상에 나타난다는 천라태양신맥을 지닌 인물과 부부가 되는 길밖에 없다.

서로의 극양, 극음의 기운을 교환하여 양극단의 기운을 식혀야 하는 것이다.

 

"소녀의 구절태음천라경은 알아보셨으니 공자께서도 천라태양신맥을 지니고 계심을 아시겠지요?"

여인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미, 운명은 지어진 것이다.

비록, 생전 처음 만나는 두 남녀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연히 구절태음천라경을 지닌 여인을 만날 줄이야.)

(이제는 그 무거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었구나.)

말은 않으나 두 사람의 안면에는 안도의 미소가 흘렀다.

"... ... 상공께서는 지금의 모습이... 본 모습이 아닌 듯 하옵니다만, 소녀에게 상공의 옥안을 보여주실 수 있으신지요."

여인의 말에 철문영은 내심 감탄했다.

지금껏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 자신의 역용을 이 여인은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

철문영이 본 모습을 회복하자 여인은 나직이 탄성을 질렀다.

너무나도 뛰어나게 영준한 철문영의 용모 때문이다.

"뛰어난 역변천환술(易變天幻術)이시군요. 소녀의 천명은 뇌벽향(雷碧香)이라 하옵니다."

"소생의 본명은 철문영이라 하외다. 한가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소저의 증세는 이미 잘작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어떤 힘에 의해 늘려있는 것 같았소이다."

뇌벽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사옵니다. 소녀는 올해로 만 이십 사 세가 되옵니다. 구절태음천라경이 발작할 시간이 휠씬 지났지요."

철문영이 이해가 안가는 표정을 짓자 뇌벽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공께서는 백여 년 전에 활동하셨던 한분 의선을 기억하세요?"

철문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성수화타(聖手華陀)!"

철문영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성수화타(聖手華陀)!

 

그는 고금이래의 모든 의술을 집대성한 기인이다.

따라서, 그의 손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어떤 난치의 병도 완치될 덩도였다.

그는 백 육십여 년 전에 강호에 출도하여 구십여 년 전까지 활동했었다.

"그분이 소녀의 의조부(義祖父)님이셨다고 하면 이해가 가시겠사옵니까?"

뇌벽향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수화타께서 손을 쓰셨으니 구절태음천라경의 발작이 지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뇌벽향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조부님께서는 구절태음천라경은 인위적인 힘으로 고쳐질 수 없다는 통설을 깨시는 약력(藥力)으로 저의 절맥을 치료하시려 하셨어요."

"성수화타시니까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으셨겠지요."

철문영이 동조하자 뇌벽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실 조부님께서는 거의 완성을 하시고 그만 돌아가셨어요."

"성수화타께서 운명을 달리하셨구려."

철문영은 놀라운 기색을 띄우면서 말했다.

약력으로 구절태음천라경을 치유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가운 일이기 때문이다.

", 조부님 당신게서도 이백 세가 넘으시자 어쩔 수 없으셨던 모양이예요."

뇌벽향은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 만드시려던 영약을 재료로 연단하는 것으로 조부님께서는 생전에 백칠가지 영약을 모으셨으나 마지막 자부현청(紫府玄靑)을 얻지 못하셨어요. 그 때문에 운명하시면서도 회한의 표정을 지우지 못하셨지요."

"그래서 소저께서는 자부현청을 찾으러 강호에 나오셨구려."

철문영이 묻자 뇌벽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문제가 있사옵니다."

문득, 뇌벽향이 발갛게 볼을 붉히며 말했다.

"문제라니요? 무엇이오이까?"

철문영의 물음에 뇌벽향의 볼이 더욱 붉어졌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소녀와... 상공은 음양교환... 의 수법으로... 절맥을 치료해야 하옵니다. 하온데..."

뇌벽향은 몹시도 말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들은 이제 정기적으로 서로의 음기와 양기를 교환하여야 한다.

그것은 부부사이의 은밀한 일, 처녀인 뇌벽향으로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것이다.

"어려워 마시고 말씀해 보십시오."

철문영의 재촉에 뇌벽향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상공께서는 동정지체가 아니시지요?"

철문영의 뽀얀 볼도 살짝 물들었다.

그는 천세비동에서 화희를 범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동정지체가 아닌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본래 상공께서 동정지체라 하셔도 약간의 문제는 있었사옵니다. 소녀의 나이가 상공보다 많은 까닭에 소녀의 음기(陰氣)가 상공의 양기(陽氣)보다 강한 때문이지요. 자칫하면 상공의 양기가 극도로 쇠잔해져서 폐인이 될 수도 있어요. 헌데 동정...을 상실하시면서 가장 강한 원양지기(元陽之氣)가 발출된 탓으로 위험률이 더 높아진거예요. 이 상태로는 소녀의 음기를 받아 들이실 수 없으세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것이구려.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하겠오?"

"걱정은 하지 마시와요. 조부님이 모으신 백칠 가지 영약들은 이제 상공을 뵙게 되었으니 필요없어요. 그 영약들로 상공의 원양진기를 폭증시켜 드리겠어요. 그것은 천라태양신맥의 극양지기와는 상관없는 것이니... 강하실수록 좋은 것이니까요."

말을 하면서 뇌벽향의 볼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원양지기(元陽之氣)란 사내로서의 힘을 말하는 때문이다.

"이제 소녀는 천산(天山)으로 돌아가서 준비를 하겠사옵니다. 상공께서는 강호의 일을 대강 마치신 후 천산으로 오시와요."

"천산에서 기거하십니까?"

", 현기곡(玄機谷)이라는 곳이예요. 전대기인이 사시던 곳인데 조부님께서 발견하시어 소녀도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아옵니다. 오시게 되면 첨인봉(尖刃峯)을 찾으셔서 소녀를 부르세요."

"알겠습니다."

철문영은 그윽한 시선으로 뇌벽향을 건너다 보았다.

"너무 피곤해 보이는군요. 이제 그만 일어나겠오이다. 늦어도 세달이내에 천산으로 가리다."

철문영이 일어서자 뇌벽향의 봉목이 뽀얘졌다.

"배웅하여 드리지 못함을 용서하세요."

뇌벽향이 고개를 떨구며 말하자 철문영은 미소를 지으며 뇌벽향의 섬섬옥수를 쥐어 주었다.

"아니... ... 공자께선..."

그가 밖으로 나가자 문밖에 서있던 두 노인은 깜짝 놀랐다.

철문영의 본 모습때문이었다.

노부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두 노인도 밖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두분, 뇌소저를 부탁드리오."

철문영이 말하자 노인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십시오. 공자께서도 가능한한 빨리 천산으로 찾아주십시오."

"명심하리라. 자 그럼 이만..."

철문영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선수를 박찼다.

파앗!

허공에 이르자 창룡철익이 활짝 펴졌다.

"휘익!"

한 소리 긴 장소가 일었다.

그와 함께, 창룡철익을 편 철무니영의 거대한 신영은 섬을 날아넘어 진희하쪽으로 날아갔다.

진회하는 이미 환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동정호(洞庭湖)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작은 야산.

야산을 등지고 한 채의 장원(莊園)이 서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으나 제법 짜임새 있게 세워진 장원이었다.

 

적화장(赤花莊).

 

이 장원의 이름이다.

무림명숙의 한 명인 적화신검 상관형양의 거쳐였다.

 

이경무렵, 사위는 한 치 앞도 분간키 어려운 어둠 속에 묻혀있다.

휘르르...

돌연, 한 줄기 검은 인영이 소리없이 이동하였다.

그 야행인의 종적은 실로 귀신이 곡할 정도로 은밀했다.

무엇인가 언뜻 스친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스스스

야행인의 신영은 어느덧 적화장의 담밑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잠시 멈칫 하던 야행인은 안개와 같이 담장으로 흘러 넘어갔다.

사사삭

야행인은 여전히 귀신같은 신법으로 전진해 갔다.

그러다가, 야행인은 문득 몸을 세웠다.

멀지않은 전면에 한 명의 인물이 서 있는 것을 본 때문이다.

"!"

야행인이 나직이 헛기침을 했다.

동시에, 서 있던 인물은 흠칫 몸을 떨다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표대협이시오?"

야행인은 나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표아무개입니다."

야행인이 다가서자 기다리던 인영은 야행인의 손을 굳게 잡았다.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라니요. 어려울 때에 서로 돕는 것이 무림동도로서의 도리 아닙니까?"

야행인의 말에 기다렸던 인물은 나직이 말했다.

", 우선 안으로 들어 가십시다. 빙혼궁(氷魂宮)의 흉수들이 곳곳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은밀히 한 채의 전각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간단한 탁자가 하나 있었다.

끼이익

어디를 만졌는지 무엇인가 돌아가는 소성이 일며 탁자가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탁자가 있던 곳에 비밀스런 계단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은 곧 하나의 밀실에 이르렀다.

"표형, 어서와요!"

그들이 밀실로 들어서자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악!

그와함께 밝은 불빛이 일며 밀실이 환해졌다.

그러자, 밀실에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야행인은 바로 철문영이었다.

그는 꼭끼는 야행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인후해 보이는 초로의 백포인이 서 있다.

그가 바로 적화장의 주인인 적화신검 상관형향이다.

그리고, 밀실 중간의 탁자 앞에 두 명의 여인이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좌측에는 검은 경장을 꼭 끼게 걸친 여인이 서 있다.

그녀는 바로 비천옥호 상관초령이다.

그녀 옆에는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 서 있었다.

천남일염이나 상관초령에 못지않은 미모의 여인이다.

아니, 오히려 잔잔한 여인다움이 상관초령보다 돋보이는 그런 미녀다.

그녀는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다.

철문영의 지금 모습이 그다지 영준하지 못한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도 철문영의 일신에서 풍기는 일대종사의 기재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인사해요. 이쪽이 옥봉(玉鳳) 언니예요."

상관초령의 소개에 철문영은 포권을 해 보였다.

", 앉으십시다."

상관옥봉과 철문영이 인사를 나누자 적화신검 상관형양이 의자를 권했다.

그리고 나서 상관형양은 은밀한 곳에서 한 개의 작은 옥갑을 꺼내었다.

"열어 보십시오."

상관형양이 철무니영에게 옥갑을 내밀었다.

"이것이 열양만정과(熱陽滿精情菓)입니까?"

철문영이 받아들며 물었다.

"그렇소이다."

상관형양의 말에 철문영은 옥갑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밀실전체가 향기로운 향기로 가득찼다.

옥갑 안에는 어린아이 주먹만한 붉은 열매가 소중히 놓여 있었다.

이것이 음양정령과(陰陽精靈菓) 중 양과(陽菓)인 열양만정과인 것이다.

"이것을 소생이 당분간 빌려야 겠습니다."

철문영의 말에 적화신검은 고개를 저었다.

"빌리다니오. 약소하나마 대협께서 이번일을 맡아주신 대가로 드리겠습니다. 사양마시고, 받아주십시오."

철문영은 사양하려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품속에 집어 넣었다.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긴히 쓸곳이 있어 염치불구하고 받겠습니다."

상관형양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열양만정과는 달리 쓸곳이 없는 상태입니다. 부담갖지 마십시오."

"고맙습니다. 자 이제 빙혼궁과 낙일곡을 적화장에서 떼어놓을 계획을 짜보십시다."

철문영은 세 남녀와 머리를 맞대로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우었다.

"좋습니다. 마침 낙일곡에서 독촉차 사람이 와 있으니 그자를 통해서 열양만정과를 은밀히 보내겠다는 이야기를 해놓겠습니다."

상관형양이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표형을 번거롭게 해드린 것같아 죄스러워요."

상관초령은 말에 철문영은 미미하게 웃었다.

"초령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면되오."

상관초령과 철문영은 마주 보며 웃었다.

 

X X X

 

구련산(九蓮山), 호남(湖南)과 강서(江西)의 경계에 자리한 명산이다.

그러나, 무림인들에게는 그 보다도 사패(四覇)중 낙일곡(落日谷)이 있는 곳으로 더 알려진 산이다.

 

구련산하(九蓮山下)

그리 크지 않은 시진(市鎭),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이나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팽팽한 살기와 긴장이 전체 시진을 뒤덮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은밀한 요소요소 마다 맹수의 그것같은 날카로운 눈길들이 번뜩이고 있다.

딸랑... 딸랑...

돌연, 방울 소리가 들리며 시진의 입구에 한 필의 나귀가 나타났다.

삐쩍 말라 볼품없는 나귀의 등에는 한 명의 서생이 앉아 있었다.

서생의 모습은 꾀죄죄하기 이를데 없었다.

원래 하얀색이던 장삼은 얼마나 깁고 꿰맸는지 본래의 천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돌연, 방울 소리가 들리며 시진의 입구에 한 필의 나귀가 나타났다.

삐쩍 말라 볼품없는 나귀의 등에는 한 명의 서생이 앉아 있었다.

서생의 모습은 꾀죄죄하기 이를데 없었다.

원래 하얀색이던 장삼은 얼마나 깁고 꿰맸는지 본래의 천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과거에 낙방한 낙방문사의 모습이다.

"... 서거라."

서생은 이윽고 시진에 하나 뿐인 주루 앞에서 나귀를 세웠다.

"어이 이보게, 내 나귀좀 돌봐주게."

서생은 큰소리로 점원을 불러 나귀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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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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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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