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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三 章

 

               깨어진 돌머리 (1)

 

 

 

숭산(崇山),

준극봉(峻極峰) 아래의 만장단애의 아래쪽에는 사람이고 짐승이고 모두 피해가는 무저갱(無底坑)이 하나 입을 벌리고 있다.

바닥이 얼마나 되는 지 측량할 수 조차 없는 이 무저갱은 다행히 입구가 별로 크지 않다.

또한 자비를 우선하는 소림사에서 이 무저갱의 둘레에 우물처럼 담을 쌓아놓았다.

그 때문에 스스로 들어가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 한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곳에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드높은 위쪽의 만장단애에서 그대로 무저갱안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햇살이 거북이 등딱지를 떼어버릴 정도로 뜨겁게 내리 쪼이는데,

에고 더워라! 헥헥헥!”

엷은 백의를 입은 한 소녀가 무저갱을 둘러싼 담장가에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보석같이 초랑한 눈망울을 가진 그 소녀는 야무지게 다문 입매가 극히 지적으로 보였다.

허리에는 한 자루의 옥퉁소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녀는 발이 아픈지 가죽신 위로 발을 주무르면서 투덜거렸다.

[사부님께서도 이제 돌아가실 때가 되기는 됐어. 시키는 대로 준극봉을 이 잡듯이 뒤져서 무저갱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이게 뭐 어떻다는 거야? 무저갱에서 뭐 사람이 올라와? 그럼 그게 어디 무저갱이야? 웅덩이지.]

쫑알쫑알 거리는 그녀는 장난기가 다분했으며, 틀에 얽매이지 못하는 그런 성미가 옅보였다.

그녀는 돌연 벌렁 드러누우면서 소리쳤다.

[애고, 난 모르겠다. 사람이 나오든 도깨비가 나오든 나오면 나오는 거고 난 낮잠이나 한숨자야겠다.]

나른해지는 여름날의 오후다.

소녀는 눕자마자 새근새근 코를 골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무저갱에서 금방이라도 삭아서 녹아버릴 것같은 백의를 걸친 인물이 한명 쑤욱 떠올랐다.

바로 천년만에 부활한 폭풍무존이었다.

그러나 잠이 든 소녀는 그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스읏!

폭풍무존은 그녀를 힐끗 본 후에 준극봉을 날아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한참 후 무저갱을 둘러싼 담장위로 더부룩한 검은 머리가 수욱 올라왔다.

피로에 지친 듯한 그 인물은 가까스로 담장을 손으로 잡고 밖으로 기어나왔다.

알몸에 방망이를 든 석두공이었다.

“....!”

순간 그의 기척에 백의소녀가 눈을 번쩍떴다.

그녀의 눈에 석두공의 알몸이 그대로 들어왔다.

석두공은 그녀를 보고서야 이제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나왔구나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데 소녀는 석두공을 보고도 처음에 잠시 당황한 눈빛을 보였을 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 말했다.

[척보니 무저갱에서 나왔군요.]

[무저갱? 여기를 말하는 거요?]

석두공이 반문했다.

소녀가 그의 하체를 잠시 보았다가 눈을 슬쩍 돌리며 말했다.

[그럼 깊은 구멍이 거기 말고 또 있나요?]

무의식중에 구멍이란 말을 한 그녀는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석두공의 나신도 점잖케 훔쳐본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석두공은 아무것도 모른채 심지어 자신이 발가벗었다는 사실도 모른채 말했다.

[아무튼 나는 이곳으로 올라왔소. 한데 내게 무슨 볼일이 있소?]

[물론이예요. 그 때문에 나는 수천리를 달려왔어요. 이 가죽신 보이죠? 이게 길을 떠나고 나서 세번째로 사서 신은 거예요.]

백의소녀는 자신의 발을 번쩍 들어보이며 말했다.

치마가 훌렁 올라갔다.

하지만, 그녀는 기가 막히게 다리를 살짝 돌려 치마속이 보일 듯 말듯 하게 했다.

석두공은 자신도 모르게 침이 꿀꺽 삼켰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얼른 말했다.

[무슨 일이오?]

질문부터가 좀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수천리 밖에서 어떻게 자신이 오늘 무저갱에서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일을 보러 왔단 말인가?

그에 대한 질문은 조금도 없고 생각이 건너뛰어 그렇게 묻고 말았다.

[이것을 아시겠어요?]

백의소녀는 품속에서 손가락 만한 은검(銀劒)을 꺼내들면서 말했다.

그것은 크기만 작았지 모양은 완전한 검이었다.

[아주 작은 검이군요.]

석두공이 말했다.

백의소녀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장난치지 말고 말해요. 나를 만만하게 보다간 큰코다칠 거예요.]

[그럼 검이 아니란 말이오?]

석두공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순간 백의소녀의 눈에서 서릿발같은 한기가 감돌았다.

쉬익!

손가락만한 검이 섬짓한 소리를 내면서 뽑혔다.

번쩍!

강렬한 백광이 그 검으로 부터 발해졌다.

소녀가 준엄하게 소리쳤다.

[정검령(正劍令)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겠단 말인가?]

석두공은 소녀가 살기를 돋우고 소리치자 저으기 당황했다.

[정검령? 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아니오? 나는 정검령이 무엇인지 모르오.]

[!]

소녀가 혀를 차면서 작은 검을 거두었다.

[사부말이 이번에도 맞기는 맞았군. 상대하려면 골치 아픈 자라고 하더니만, 이런 돌머리를 어디다 쓰려고 데려오라는건지 원... 그래도 명령이니 듣기는 들어야지.]

그녀는 자신의 뒤에서 작은 보따리를 풀더니 석두공에게 휙 던졌다.

[우선 옷이나 걸치고 보시지. 아무리 대책없는 사람이라 해도 상대를 잘못 만났어. 난 백란이란 말이야. 종횡선녀(縱橫仙女) 백란(白蘭)이라구.]

석두공은 속으로 뜨끔했다.

(어떻게 내가 돌머리인줄 알았을까? 무슨 멍청한 짓을 한 것같지도 않은데... , 한데 옷이라니... !)

그는 그때서야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란 사실을 알아채고 얼굴이 파랗게 질려 훌쩍 뛰어 바위뒤로 숨어버렸다.

[호호호호... 멍청이! 이미 다 봤는데 숨기는 또 뭘 숨어? 사내대장부가 숫기 없기는..... 어서 옷이나 입어.]

백란이라는 소녀가 깔깔 웃으면서 옷이든 보따리를 발로 차서 바위 뒤로 보냈다.

석두공은 옷을 받아들고 풋! 하고 웃었다.

(남자가 몸을 한번 보인게 뭐 대단하다고 이런 호들갑인가? 여자인 그녀는 내 알몸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

석두공은 소녀가 준 옷을 입고 허리까지 드리워진 긴 머리를 뒤로 묶었다.

그리고 바위뒤에서 나오자 백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아주 잘생겼잖아. 조금 전과는 아주 딴판인데.)

방금 전의 모습이 연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석두공은 멋진 사나이로 둔갑해버렸다.

[음음, 가자!]

그녀는 마치 하인을 대하듯 석두공에게 명령하곤 앞서 걸었다.

석두공은 어이가 없었다.

(옷이 고맙긴 하지만 아무래도 미친 여자인 모양이군. 내가 궂이 따라갈 이유가 어디 있겠나?)

내심 속으로 생각한 그는 슬그머니 돌아서서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편 백란은 그가 따라오리라는 것을 확신했는지 보치도 당당히 걸어갔다.

한데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싹 돌아보는 순간 그녀는 빽 소리쳤다.

[튀다니! 내 허락도 없이. , 감히 이 종횡선녀를 우섭게 봐? 별 떨거지같은 놈이... ]

그녀는 번개같은 신법으로 석두공이 사라진 곳을 향해 날아갔다.

 

* * *

 

석두공은 생각했다.

(내가 비록 무공이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하지만 이것으로 그 끝에 달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폭풍무존의 경우를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폭풍무존의 무공수준에 달하려면 아직도 나는 멀었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에 의하면 나는 소림사로 가는 길이었다. 무슨 이유로 가던 중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먼저 소림사로 가고 볼 일이다.)

석두공은 또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절곡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에 내 몸이 훨씬 자란 것같으니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것같은데...)

그는 혼자라는데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밀려왔다.

그것은 세상천지에 오직 자기뿐이라는 고독감이었다.

 

***

 

마침내 소림사에 도착했다.

석두공은 산문으로 들어서서 무작정 걸었다.

딱히 지리를 아는 바가 없기에 그저 다른 참배객들의 뒤만 졸졸 따라갔다.

그를 저지하는 사람도 없었고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사찰다운 사찰을 처음으로 구경하는 석두공에게 소림사의 웅장한 건축은 상당히 깊은 인상을 주었다.

기둥과 벽면에 화려한 단청과 울굿불굿한 물감으로 그려진 탱화들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대웅보전으로 갔다.

한데 대웅보전 어귀에 이르렀을 때 그는 낮게 속삭이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저분이 바로 만배선사(萬拜禪師)라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만번 씩 부처님께 절을 한다는 그 스님말인가?]

[그렇네. 저분의 절하는 신공은 고금무적이라서 한시간이면 만배를 다하고 나오신다고 하더만.]

[!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만약에 만배를 하자면 열흘은 몰라도 닷새는 걸릴 것인데... ]

[한데 만배선사께선 좀처럼 본사로 내려오시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

 

석두공의 앞쪽에서 걸어가는 두사람이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석두공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기인은 참으로 많구나. 하루에 만배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공력일 텐데... )

그의 눈에도 대웅전 안에서 걸어나오는 한 노승이 보였다.

한데 하루에 만배씩 한다는 사람의 몸이 저럴 수도 있는가?

허리는 보통 사람의 두배나 굵었으며 목은 짧고 손과 발은 자그만 했으며 팔다리는 통나무를 연상시킬 만큼 굵었다.

얼굴에는 주름살이 흘러내릴 만큼 쳐져있었고 눈에는 진물이 고여있으며, 수염과 눈썹은 허리까지 늘어져있었다.

너무도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에겐 그 모습이 부처님의 화신으로 보이는지 앞을 다투어 합장하며 입속으로 나직히 소원을 빌고 있었다.

(저 스님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석두공이 속으로 생각하는 찰라에 만배선사는 그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그를 스쳐지나가면서 혀를 찼다.

[끌끌... 천왕저(天王杵)가 주인을 잘못 만나 울고 있군.]

[...?]

석두공은 그게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금방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만배선사는 그를 지나 조금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소리쳤다.

[!]

석두공의 귀가 얼얼했다.

그리고 순간적이나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냥 지나치려 해도 도무지 화가 나서 못참겠다. 이놈!]

만배선사는 선장을 들어 석두공의 머리를 내려쳤다.

슈앙!

[으악!]

다른 참배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머리속에는 두개골이 깨어져 즉사하는 석두공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하나 석두공은 이상하게 만배선사에게 저항감이 일어나지 않았다.

피하려면 피하고 막으려면 막고 반격하여 일초에 죽이려면 죽일 수도 있을 그였지만 가만히 두들겨 맞고 말았다.

!

!

선장이 그의 머리에 부딪히며 반으로 부러지고 말았다.

[껄껄껄껄... 그놈 머리 하난 단단하구나!]

돌연 만배선사는 선장을 휙 던져버리고 대소를 터뜨렸다.

석두공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모든 것은 스스로 밝혀지는 것이니...

참배객들이 석두공을 귀신보듯 하면서 그 근처를 피했다.

약한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강한 자 보다 더욱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그것은 스스로 몸을 사리고 물러선다는, 강한자가 결코 익힐 수 없는 호신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만배선사는 곰처럼 걸어가며 말했다.

[따라오너라! 선장으로는 네놈의 머리를 깨지 못했지만 불력(佛力)으로 깨뜨리고 말겠노라.]

 

× × ×

 

소실산의 중턱,

입구에 울타리가 쳐져있는 토굴(土窟)이 있었다.

토굴의 앞에는 몇 가지 야생의 꽃들이 피어있었고 흰 토끼가 울타리의 틈사이로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숲 사이로 난 소로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앞장 선 사람은 사람인지 아니면 옷입은 늙은 곰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뚱뚱한 괴물같은 중이었으며, 그 뒤를 따라오는 젊은이는 창백한 얼굴에 긴 머리를 땋지도 않고 뒤로 묶어 넘긴 자였다.

젊음이 발산되는 듯한 그런 싱그러운 맛이 젊은이에겐 있었다.

또한 그의 얼굴은 세상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준수한 것이었다.

그는 바로 석두공이었다.

만배선사는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하늘이 모든 것을 모아주는데도 여전히 바보멍청이라니... 노납이 네놈의 머리를 깨지 못한다면 내 머리라도 깨고 말겠다.]

토굴의 안은 좁았다.

만배선사가 안쪽으로 들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빈틈이 없는 것같았다.

석두공은 앉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했다.

그때 만배선사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내놔라!]

(이 몽둥이를 말하는 모양이로군.)

석두공은 허리에 매어두었던 몽둥이를 끌러서 주었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 놈이군. 이놈아!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

[전 모릅니다.]

석두공은 자신에게 욕을 하는 만배선사에 대해서 조금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또한 만배선사는 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같기도 했다.

만배선사는 몽둥이를 들어서 바닥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건 천왕저(天王杵)라고 하는 물건으로 상고시대(上古時代)의 기물이다. 우리 소림사의 금강저(金剛杵)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천왕저를 흉내 낸 것에 불과하지.]

바닥이 천왕저에 닿을 때마다 푹푹 꺼졌다.

천왕저...

석두공이 무당파의 해검지에서 주어왔던 몽둥이는 천왕저라는 이름을 가진 상고시대의 병기였던 것이다.

만배선사는 갑자기 주문같은 몇 마디를 외우기 시작했다.

[태상태성응변무정구사박매보명호신지혜명정삼혼영구... ]

분명히 그것은 불경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슨 무공구결같지도 않았다.

석두공은 그 주문이 천왕저와 어떤 연관을 가진 것인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 순간 만배선사가 돌연 석두공을 향해 천왕저를 휘둘렀다.

[!]

석두공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한데 그의 등뒤에는 출구가 아니었다.

언제 막혀있었는지 그것은 만배선사의 뒤나 다름없는 흙벽이었다.

!

그의 몸이 석벽을 두자깊이나 파고들어갔다.

그때였다.

!

만배선사가 휘두른 천왕저가 그의 가슴에 격중되었다.

[!]

석두공은 한사발의 피를 토해냈다.

천왕저의 힘은 진정 두려운 것이었다.

이미 도검이 불침하게 된 석두공의 몸이건만 천왕저에 맞아 그의 갈비뼈가 두대나 부러져 버렸다.

또한 천왕저에 서린 힘은 그의 몸에서 고통이 되어 번져갔다.

석두공은 까무라치고 싶었다.

그때 만배선사가 호통쳤다.

[이놈! 열심히 듣고 따라 욀 생각은 않고 정신을 어디에 빼놓는 거냐?]

그가 맞은 이유는 그때문이었다.

만배선사는 다시 태상태성하고 외우기 시작했고 석두공은 피를 머금은 입으로 웅얼웅얼 따라했다.

[태상태성응변무정구사박매보명호신... ]

만배선사는 다시 한번 들려준 후에 말했다.

[혼자서 외워봐라!]

[...!]

석두공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외는 것도 하는 사람이나 하지...

!

천왕저가 그의 어깨로 떨어졌다.

석두공은 너무도 심한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딱 벌렸다.

그의 어깨가 능충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뼈가 바스라진 것같았다.

만배선사는 눈을 감고 못본척하며 다시 괴이한 주문을 한번 외웠다.

그리고 턱으로 한번 외워보라는 시늉을 했다.

하나 이번에도 석두공은 삼혼영군가 하는 말 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

천왕저는 그의 머리에 떨어졌다.

천하의 석두공도 입과 코로 피를 쏟으며 뒤로 넘어갔다.

한데 그의 몸은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포연신공이 절로 일어나면서 밖의 손상입은 공력이 잠복하고 잠복하고 있던 공력이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배선사는 또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석두공은 평생 이처럼 정신을 집중시킨 적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천왕저를 맞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만배선사는 겨우 중간정도 외웠을 뿐인데 벌써 앞의 구절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석두공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또다시 맞을 것을 생각하니 다리가 후들후들떨려왔다.

매에는 진정 장사가 없는 법인 모양이다.

더욱이 석두공을 때리고 있는 천왕저는 원래 때리기 위한 전문도구인 몽둥이였으니...

검으로 베인 상처는 싸늘한 느낌에 따가울 뿐이다.

주먹으로 맞았을 때는 둔중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금방 그 충격이 사라진다.

하지만 몽둥이라는 놈은 그 고통을 뼛속에 저장해서 두고두고 괴롭히는 괴물같은 놈이다.

한 대 한대 맞을 때마다 석두공은 천왕저가 더욱 더 두려워졌다.

처음 맞는 한대보다는 열번째 맞는 한대가 그 고통에 있어선 처음 한대의 열배도 더 될 것같았다.

[...]

니라니라하고 다 왼 만배선사의 눈초리가 다시 석두공을 노려보았다.

석두공은 눈을 찔끔 감았다.

달달달...

무슨 말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입술은 달짝이고 있었으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머리속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

천왕저는 그의 옆구리를 두드리고 돌아갔다.

고통! 그 고통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석두공은 그 고통을 만끽할 여유마저도 없었다.

만배선사가 또다시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구절이라도 외워야 한다!)

장렬한 결심을 했건만 석두공의 돌머리는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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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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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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