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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古劒門門主

 

 

 

 

 

달은 산 한쪽에 걸려 있었다.

찌륵찌륵!

풀벌레 소리가 요란한 작은 소로를 따라서 내려가던 석두공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숲으로 들어갔다.

길도 없는 곳으로 나뭇가지를 부르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는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금사종은 영문을 모르지만 따라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소로에서 십장 정도 떨어진 곳까지 들어오자 석두공은 자신의 소매자락을 조금 뜯어냈다.

찌이익!

[...?]

금사종이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무 설명도 하려고 하지않고 손바닥으로 그것을 몇 번 문지른 후 입으로 훅 불었다.

뜯어진 소매자락은 바람을 타고 나비처러 너울너울 날아서 소로의 가운데에 떨어졌다.

[가요.]

소리친 석두공은 징검다리 건너듯 바위들 위로 폴짝폴짝 뛰면서 점점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슈우우우!

금사종의 한걸음은 거의 오장씩이나 된다. 그의 무공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느리게 한걸음씩 내딛어 석두공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 후, 석두공과 금사종의 앞에 황폐한 장원이 나타났다.

밀림처럼 우거진 숲속에 덩쿨과 풀로 뒤덮힌 황폐한 장원의 존재는 두 사람에게 아주 의외였다.

장원은 크지는 않았지만 천평 정도는 되어 보였다.

담장은 허물어져 있었으며 전각들의 기와는 벗겨지고 깨어졌고, 한때는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길에는 풀과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굵은 나무뿌리가 벽을 파고들어 전각을 넘어떠렸고 산 짐승들이 군데군데 굴을 파놓고 집으로 삼고 있었다.

[을시년스럽군. 무당산 중에 어떻게 이런 장원이 있을까? 그것도 무당파에서 그다지 먼 곳도 아닌데... ]

금사종이 장원의 문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때 문앞의 풀숲에서 달빛을 받아 무언가가 반짝였다.

스윽!

금사종은 습물진기(拾物眞氣)를 일으켜 그것을 끌어당겼다.

그것은 금색으로 도금된 헌판(軒板)이었다.

 

<고검문(古劒門)>

 

금방이라도 꿈틀대며 날아갈 듯한 글씨였다.

[고검문? 어떤 문파죠?]

석두공이 옆에서 물었다.

금사종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처음 듣는 문파요. 아마도 무림에 거의 드러나지 않은 작은 방파였던 모양이오. 이미 사라져 버린 문팔인 것같소.]

[이 안에 다른 사람들이 없다면 오늘밤은 여기서 자는 것이 좋겠어요.]

그들은 황폐한 고검문의 무너질 듯한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숲속에는 함부로 건물을 지을 일이 아니다.

또한 만약에 짓는다면 관리를 철저히 해야할 것이다. 근처의 나무 뿌리들이 건물밑과 속으로 파고들어 마구 허물어버리지 않도록 잘 방비해야 할 것이다.

금사종은 속으로 자신은 결코 숲안에 집을 짓지는 않겠다고 맹세했다.

고검문에는 수십 채의 전각들이 있었지만 원래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벽에서도 나무가 자라는 판이니 어떤 건물이 남아나겠는가?

석두공은 그래도 지붕 아래에서 자고 싶은지 지붕이 남아있는 곳을 골랐다.

벽은 허물어지고 지붕도 반쯤 무너져서 한쪽으로는 별이 보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 아래에 몸을 눕혔다.

[잘자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깊은 숨소리를 내면서 잠들어버렸다.

(어린아이...)

금사종은 그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가 볼때 석두공은 정말 괴물같은 꼬마였다.

장소에 따라서 석두공의 행동은 완전히 달랐다.

지금같은 때는 또 영락없는 어린아이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몇 사람의 지략가가 한참동안 생각해서 짜내야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금방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버린다.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언제든지 금사종에게 말해준다.

그렇게 총명한 그도 기억만은 도무지 못하는 것이었다.

날이 새려면 아직 멀었지만 금사종은 잠자는 대신에 무공을 익힐 요량으로 품속에서 무치무요를 꺼내 달빛에 비춰보았다.

그리고 한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어본 후 낮은 소리로 암송하기 시작했다.

[중극신공(中極神功), 하늘의 도리는 어느 곳에도 치우쳐 있지 않으니...]

중극신공이란 것은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의 중용(中庸)에 그 근본을 두고 창안된 무공이었다.

양강(陽剛)과 열화(烈火)의 무공에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며,

음유(陰柔)와 한빙(寒氷)의 공력에 대해서도 능히 저항할 수 있는 특이한 공력이었다.

이 중극신공은 이러한 이점으로 인해 평범한 것으로도 어떤 기이한 공력도 상대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굳건히 자신을 지키는 데는 이 중극신공만한 무공이 거의 없을 것이다.

헌데 금사종이 막 한차레 구결을 되읊었을 때였다.

[지키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동신공이나 무엇이 다르랴? ()을 깊히 고수해야 하니 조금도 기이한 점이 없고 고리타분하다. 또한 기이하려고 하면 저절로 공력이 깨어질 것이니 그런 엉터리 무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돌연 어디선가 웅혼한 음성이 들려왔다.

갑자기 들려온 사람의 목소리에 금사종은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랏다.

누구냐? 누가 감히 남의 연공을 엿본단 말이냐?”

금사종은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무림에서 남이 연공하는 것을 본다면 눈을 뽑히게 되고,

구결을 옅듣게 된다면 혀를 짤리고 귀를 파게 되며,

남의 무공을 도둑질하여 사용한다면 죽음이 아니면 손과 발을 잘리게 된다.

동호천이 남의 무공을 펼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은 그가 펼치는 무공이 상대편이 익힌 것보다 더욱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동호천이 훔친 것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금사종의 일갈에 놀란 석두공도 자던 자세 그대로 일자(一字)로 벌떡 일어서서 형형한 눈초리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또 다시 어디선가 사람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엉터리 무공도 무공이라고 나를 탓하려 하는가? 무림인들의 단점은 그들이 항상 남의 말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있지.]

스팟!

순간 석두공의 몸이 번쩍하면서 벽의 뚫려진 구멍을 통하여 전각의 뒤로 날아갔다.

스읏!

금사종도 연기처럼 몸을 움직여 그의 뒤를 따랐다.

 

전각 뒤에는 몇 아름이나 되는 고목나무옆에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을 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스읏!

그러나 석두공은 멈추지 않고 우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으하하하하... 대단한 아이들이로군. 노부가 있는 곳을 이렇게 쉽게 찾아내다니!]

우물 속에서 광소가 터져나왔다.

금사종이 우물 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석두공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물은 마른 바닥을 보이고 있을 뿐, 석두공도 광소를 터뜨린 사람도 흔적이 없었다.

[비밀통로가 있는 모양이군!]

금사종은 공력을 돋구어 천시지청술(天示地聽術)을 펼쳤다.

그때 우물을 이루는 석벽의 한쪽에서 석두공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신은 원래부터 그런 모습이었나요?]

 

× × ×

 

[잠깐!]

절대칠살 중의 하나가 멈춰서면서 말했다.

[이곳에서 그자의 냄새가 끊어졌소.]

[여기에 흔적이 남아있다.]

다른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있는 천조각을 집어들면서 말했다.

먼저 말했던 자가 그것을 받아 코로 가져갔다.

한데 바로 그 직후였다.

!

갑자기 냄새를 맡던 자는 뒷머리를 둔기에 맞은 듯이 쓰러지고 말았다. 복면으로 가려진 그의 입과 코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다른 자가 소리쳤다.

[독이다!]

또 다른자는 오구검(烏口劒)을 뽑아들며 처음에 천조각을 집어들었던 자를 베어갔다.

번쩍!

파앗!

천조각을 집어들었던 그자의 팔이 어깨어림으로 부터 뭉텅 베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자는 신음소리 하나 내뱉지 않았다. 스스로 혈도를 눌러 지혈할 뿐이었다.

살수로서의 얼마나 강인한 수업을 쌓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때 다른 자가 역시 오구검을 뽑아들며 외팔이가 된 그자의 허리를 베어버렸다.

번쩍!

실로 번개와 같은 일검이었다. 검이 지나가고 외팔이의 몸이 상하로 분리되어 쓰러졌다.

[대형(大兄) ...?]

상 하체가 분리된 외팔이가 아직 숨이 끊기지 않은채 불신의 눈으로 자길 벤 자를 올려다 보았다.

철컥!

검을 다시 꼽으면서 외팔이를 벤 자가 말했다.

[셋째 너의 불찰로 네째가 죽었다. 목숨으로 갚는 것은 당연한 일.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절대칠살의 셋째의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졌다.

잘린 두토막의 시체에서 내장이 와르르 쏟아졌다.

칠살의 또 한 사람이 옥병을 꺼내 넷째와 셋째의 몸에 몇 방울의 약을 떨어뜨렸다.

푸쉬쉬쉬...

시체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아버렸다.

다른 자가 말했다.

[우리도 독이라면 일가견이 있습니다. 한데도 셋째와 넷째가 당했습니다. 놈은 우리가 방비할 수 없는 독을 가지고 있는 것같습니다.]

대형이라고 불린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즉시 무당산을 벗어나도록 하자. 놈들은 이번엔 아마 소림으로 갈 것이다.]

스스스!

그들은 즉시 몸을 날려 희미한 달빛 사이로 사라졌다.

석두공이 잘라서 던졌던 소매자락은 나풀거리며 숲으로 날려갔다.

독왕동주인 독왕(毒王) 갈천상에게서 오독패혼공(五毒覇魂功)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바 있는 석두공의 몸속엔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다섯 가지 절독이 균형을 이룬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 ×

 

철거렁! 철거렁!

신경을 거슬리는 쇠사슬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그곳은 완전히 철()로 된 항아리같은 감옥이었다.

석두공은 온몸이 쇠사슬에 감겨있는 한 노인을 보면서 측은한 듯이 말했다.

[대소변은 어떻게 봐요? 참 안됐군요.]

[크하하하하...!]

쇠사슬에 감겨있는 노인이 만감이 서린 광소를 터트렷다.

이 노인의 형상은 실로 기괴하다.

다듬지 못한 백발과 수염은 가시덤불처럼 뻗어있고, 걸치고 있는 옷은 다 헤어져서 쇠사슬이 살에 까지 파고들고 있는 것이 그대로 보인다.

그렇지만 광채가 폭사하는 눈빛은 노인을 귀신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천정에 붙어있는 한알의 야명주(夜明珠)보다 더 밝았다.

쨍쨍쨍...

노인의 웃음소리가 철로 된 벽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만들었다.

석두공은 얼굴을 심하게 찌푸렸다.

노인의 공력은 무당파의 장문인인 옥허도인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노인은 웃음을 뚝 그치며 말했다.

[흐흐흐... 먹는 것이 있어야 싸는 것도 있지 않겠느냐 이 꼬마야. 노부는 음식 냄새도 못맡아본 지가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석두공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그럼 뭘 먹고 지금까지 살았어요?]

그때였다.

!

장력에 바위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철옥(鐵獄) 안으로 금사종이 들어왔다.

노인은 그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우보다 못한 형이군 그래.]

금사종은 그를 보고 흠칫했으나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는 내 아우가 아니오. 솔찍히 말하면 내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소.]

[그런가? 하지만 너도 남 밑에서 심부름이나 할 자는 아닌 것 같은데?]

[세월이 변하면 선비도 붓을 놓고 검을 잡는 법이오. 또 태평성대가 오면 무사도 검을 버리고 괭이를 들게되어. 해야만 한다면 무슨 일을 못하겠소?]

금사종은 노인을 바라보며 늠늠하게 말했다.

노인의 눈에 은근한 감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석두공이 약간 화가 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왜 내가 묻는 말에는 답하지 않아요?]

노인은 그에게 눈을 돌리며 대꾸했다.

[노부가 네게 꼭 대답해야할 이유라도 있느냐?]

[그럼 나도 당신을 쇠사슬에서 풀어줄 이유가 없군요.]

석두공은 차갑게 응수했다.

노인이 피식 웃었다.

[나를 풀어준다고? 네녀석은 만년한철(萬年寒鐵)과 천잠사(天蠶絲)를 자를 수 있단 말이냐?]

[대답하지 않겠어요. 최소한 내 물음에 답해줄 때까지는.]

석두공은 매몰차게 말했다.

노인은 재미있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제법 흥정할 줄도 아는군. 무림에서 손해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어.]

금사종이 말했다.

[노인장께서 사연을 말씀해 주신다면 우리가 풀어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너희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단 말이지? 좋아. 마음에 들었으니 말해주지.]

노인의 선심을 크게 써는 듯이 말했다.

[노부는 이 장원의 주인이다. 최소한 이십년 전까지는 말이야. 검문(劒門)으로서 우리 고검문을 능가할 수 있는 문파가 없다는 그 고검문의 문주가 바로 나지.]

[죄송합니다만 고검문이란 이름은 생소합니다. 후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본 고검문은 어린 제자를 고수로 키워내는 문파는 아니니까 소문이 잘 나지 않지.]

금사종의 질문에 노인이 답했다.

석두공이 물었다.

[그럼 늙은 제자를 키워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석두공의 어리석은 질문에 노인은 빙긋 웃엇다.

[이미 무림에서 고수가 된 인물을 받아들여 절정고수로 키워내는 것이 바로 고검문다. 고검문의 제자는 대부분이 자신의 출신문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검문의 제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지. 그러나 고검문주인 내 명령에는 절대복종해야만 하지. 허허허허...]

고금문주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석두공은 팔짱을 끼면서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꼴이예요?]

[휴우...]

갑자기 고금문주가 땅이 꺼져라고 탄식했다.

[노부도 이게 무슨 꼴인가 싶다. 이게 다 제자를 잘못기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노인은 석두공과 금사종에게 자신의 한맺힌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본래 고검문은 그의 말대로 무림의 고수들을 제자로 맞아들여 절정고수로 키워내는 특이한 문파였다.

문주인 이 노인의 이름은 섭군천(葉君天),

그의 검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났다.

노검객들의 평생 소원은 고검문에 한번 몸을 담아 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검문의 명성은 검호들 사이에 늘리 알려져 있었으며, 고검문의 제자가 되면 그 장래는 완벽하게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문파는 두 스승을 섬기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문파를 가진 자가 또 다른 문파에 몸을 담는 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하여 누구도 자신이 고검문의 제자라는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으며 고검문이라는 말조차 쉬쉬하는 것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검문은 모든 검객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신화의 영역이었다.

 

고검문주 섭군천은 기억을 더듬는지 암울한 눈빛으로 천정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노부는 평생 단 두명의 제자를 받아들였다. 큰제자의 이름은 당이정(唐利貞)이라고 하고 둘째 제자의 이름은 심제을(深帝乙)이었지. 둘 다 무림에서 이름을 떨칠 때 내 제자가 되었어.]

[당이정? 정말 당이정이라고 했습니까?]

순간 금사종이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네.]

섭군천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사종은 경이의 표정으로 이 괴물같은 노인을 다시 보았다.

[그럼 백검보(百劒堡)의 보주이며 이정(二正)중 한명인 검성(劒聖) 당이정 대협이 바로 노인장의 제자란 말씀입니까?]

[그렇네.]

노인은 이번에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시엔 백검보가 보잘 것 없는 문파의 하나였었지. 그리고 둘째 제자놈도 어쩌면 들어보았을 게야. 그놈의 외호가 부운청풍객(浮雲淸風客)인가 뭔가 했으니까.]

!

그것은 충격이었다.

이정삼사오객 중의 이정에 속했으며 검성으로 추앙되는 백검보주 당이정이 노인의 제자일 뿐만 아니라, 오객 중의 한사람으로 정체가 신비에 가려져 있던 부운청풍객까지도 노인의 제자라는 것은 경악 그 자체였다.

금사종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노인장께선 이런 모습으로... ]

[그런데는 뭐가 그런덴가? 심제을 그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놈이 노부의 가족을 살해하고 증손녀를 납치한 후에 노부를 협박하여 이곳에 감금한 것이지.]

섭군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원한에 대해서 달관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심한 고통에 시달렸을 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석두공과 금사종은 콧날이 시큰해옴을 느꼈다.

인면수심(人面獸心)...

부운청풍객의 행동은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금사종이 입을 열었다.

[부운청풍객은 삼마경(三魔經)이라는 가공할 마공을 익혔습니다.]

[삼마경!]

섭군천이 돌연 비명처럼 외쳤다.

웅웅웅!

철옥에 오랫동안 삼마경이라는 말이 메아리쳤다.

[우욱!]

섭군천은 돌연 입으로 핏덩어리를 토해냈다.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석두공은 번개처럼 허리의 방망이를 꺼내어 노인을 묶고 있는 사슬을 쳤다.

팡팡!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사슬이건만 방망이에 맞는 순간 불똥을 튕기며 산산히 깨어졌다. 그가 우연히 얻은 이 방망이는 정말 대단한 보물이었다.

섭군천은 사슬이 떨어져 나간 것도 모르고 넋이 빠진 듯 중얼거렸다.

[막내인 영소(瑩宵)마저 놈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단 말인가? 오직 그 아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살았거늘...]

석두공은 섭군천의 몸을 뒤에서 묶고 있는 천잠사를 두가지의 공력을 사용해서 끊었다.

그가 사용한 공력중 하나는 빙백신공(氷魄神功)이고 다른 하나는 축융신공(祝融神功)이었다.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다는 천잠사지만 차갑고 뜨거운 두가지의 상반된 공력의 동시에 가해지자 썩은 새끼줄 처럼 끊어지고 말았다.

금사종이 내심 감탄하면서 섭군천의 몸을 안았다.

섭군천이 중얼거렸다.

[이젠 다 틀렸다. 다 틀렸어. 섭씨의 고검문은 이로서 끝이 나는 구나.]

그는 순식간에 수십년은 더 늙어 버린 듯했다.

비록 사슬에 묶여있기는 했지만 넘쳐나는 듯한 힘은 이제 깡그리 사라져 버린 듯했다.

석두공은 섭군천의 그같은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도 가슴속이 울렁거리는 것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이 끌린 듯 섭군천에게 절하며 말했다.

[그럼 제가 제자가 되어 고검문을 잇게 해주세요.]

섭군천은 힘없는 눈빛으로 그런 석두공을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네 자질은 제자가 되고도 남음이 있지만 고검문을 이을 순 없다.]

[...?]

[...?]

석두공 뿐만 아니라 금사종도 의아한 표정으로 섭군천을 바라보았다.

섭군천이 탄식하며 말했다.

[고검문은 오직 섭가의 자식만이 이을 수 있다. 제자는 오직 무공을 배우고 문주의 명을 따르기만 할 뿐이다.]

석두공이 이마를 모으며 물었다.

[영소란 분이 할아버지의 아드님이셨어요?]

[그렇다. 내 막내아들이었지. 그 아이만은 따로 나가 살았기에 화를 피한 줄 알았는데... 놈은 그 아이마저 죽이고 삼마경을 뺏았구나.]

섭군천은 허탈하게 대답했다.

금사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삼마경은 원래 노선배님 것이었습니까? ]

[그렇진 않아. 영소가 우연히 얻었던 것이지.]

섭군천은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석두공은 그의 등에 있는 명문혈(命門穴)을 통해서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섭군천의 명문혈에서 강한 반탄력이 일어나면서 그의 진기를 돌려보내버렸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던 섭군천이 돌연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내 부탁을 들어주겠느냐?]

석두공과 금사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웬지 들어주지 않으면 안될 것같았다.

심제을! 그 배은망덕한 놈을 죽여다오.”

섭군천이 형형한 눈빛으로 말했다.

[놈이 비록 삼마경을 익혔다지만 당이정과 힘을 합하면 해치우지 못할 것도 없다.]

이어 그는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가증스럽게도 놈은 노부로 변장하고 당이정을 본문에서 파문하여 돌아오지 못하게 한 후에 내 가족을 암습하여 죽여버렸다. 그리고 손녀를 납치한 뒤 노부를 협박하여 이곳에 감금하고는 내 무공을 뺏으려고 했다.”

[...!]

[...!]

석두공과 금사종은 숨을 죽인 채 무림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고검문의 비극에 대해서 경청했다.

[놈은 노부에게 산공독을 먹였다. 그러나 노부는 포연신공(包延神功)이라는 무공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놈은 두려워 하고 있었지. 놈이 내게서 얻고자 한것도 포연신공의 구결... ]

 

포연신공은 아주 특이한 무공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두가지의 공력을 쌓는 것이었다.

두가지의 공력 중 하나는 드러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드러난 공력이 없어지기 전에는 잠복하여 흐를 뿐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드러난 공력이 소진하거나 사라지게 되면 즉시로 잠복하고 있던 것이 드러나게 되고 손상을 입은 공력은 잠복하게 되어 위치를 바꾼다.

이런 이치로써 포연신공을 익힌 자는 공력을 무한한 것이나 다름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부운청풍객 심제을은 이 포연신공을 섭군천으로부터 뺏고자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그러나 섭군천이 갑자기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려서 그의 말을 전혀 듣지않고 공격함으로 인해 겁을 먹고 도망쳐버리고 말았엇다.

사부인 섭군천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심제을인지라 손녀라는 좋은 인질을 갖고서도 다만 섭군천을 이곳에 감금하기만 했을 뿐 자신이 갖고자 했던 것을 얻지는 못했다.

 

섭군천이 말했다.

[노부는 너희들에게 그 포연신공의 구결을 전해주겠다. 대신 그놈을 죽여다오.]

[할아버지께서 직접 죽이면 되잖아요?]

석두공의 말에 섭군천이 쓸쓸히 웃었다.

[놈을 죽여도 내 아들은 살아나지 않지. 그러나 놈이 숨쉬는 것도 보고 싶지 않다. 부디 내 부탁을 저버리지 말아다오.]

 

× × ×

 

날이 훤히 밝았을때 석두공과 금사종, 그리고 섭군천은 고정(古井)을 빠져나왔다.

포연신공의 전수가 끝난 후였다.

섭군천은 자신의 손으로 흩어져 있는 가족의 유골을 찾아서 묻기 시작했고, 석두공은 이상하게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고검문을 떠나갔다.

금사종은 섭군천과 석두공 이 두사람이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피식 웃었다.

한 사람은 천하제일 검문이라는 고검문의 문주,

다른 한 사람은 작고한 천하제일인 동호천의 유일한 제자,

같은 점이라면 모두가 천하제일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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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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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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